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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한발 떨어져 찾는 ‘은밀한 일상’ 한발 앞서 찾아온 ‘따뜻한 위로’

    빼앗긴 봄에도 꽃은 피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여름은 왔다. 6월 초, 기온이 27도까지 올라가자 베를리너들은 성급히 옷을 벗고 공원에 드러누웠다. 꽁꽁 싸맸던 마음을 꺼내 햇빛에 널고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에 멍든 몸을 뜨거운 햇살에 지졌다. 남자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들은 비키니 차림이었다.7월의 수영장이나 해변이 아닌, 5월부터(!) 공원에서 저러고들 있으니 계절의 경계가 무색했다. 절로 눈길이 갔지만 동네이웃처럼 자주 보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루는 나도 비키니를 챙겨 입고 태닝족에 합류했다. 반듯이 누워 배와 등을 태웠다. 두 시간 남짓 누워 있었는데 벌겋게 살이 익었다. 베를린에선 이미 여름이 시작된 느낌이다.베를린에서 가장 좋은 계절을 꼽으라면 역시 여름이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유럽 도시 전체가 여름에 활기를 띤다. 오전 5시가 되기도 전에 날이 밝고(서머타임 때문에), 해는 밤 9시가 넘어야 진다.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나오면 하늘은 그제서야 짙은 푸른 색으로 어두워지고 석양의 끝을 지운다. 유럽으로 출장을 올 때마다 놀라던 초여름의 늦은 일몰, 잊고 있던 유럽의 긴 해가 매일 떠오르는 요즘이다. 여름에만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둘 늘어난다. 늦은 밤에 보는 오픈에어 시네마도 며칠 전부터 시작했다. 베를린에 있는 35곳의 야외 영화관이 문을 연 것이다. 야외 영화관은 여름 한철 반짝 문을 열고 9월 초면 문을 닫는다. 오픈에어 시네마가 문을 닫는 건 베를린의 여름이 끝났다는 신호다.●‘한여름 밤의 꿈’ 같은 오픈에어 시네마 지난해 여름엔 거의 매주 야외 영화관에 갔다. 이 좋은 걸 베를린 다닌 지 12년 만에, 남자친구가 생겨서 처음 해봤다. 야외 영화관은 동네마다 몇 군데씩 있다. 큰 공원 안에 있기도 하고 슈프레 강변의 바 안에 있기도 하고 클럽 옆에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곳은 크로이츠베르크의 마리아난 플라츠에 있는 프라이루프트 키노다. 영화관 뒤로는 1800년대에 지어진 멋진 문화공간이 있고, 사방은 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시골 숲속이나 인적 드문 공원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자연적이고 평온한 바람이 분다. 오픈에어 시네마의 자리는 일찍 온 순서대로 앉는다. 맨 앞자리 몇 줄은 천으로 된 비치의자를 놓을 수 있다. 자리를 사수하려면 한 시간 정도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줄을 서 있다가 30분 전에 문이 열리면 사람들은 일사불란하게 비치의자를 들고 좋은 자리를 찾는다. 영화관 안에는 생맥주와 팝콘, 커리 부어스트(소시지) 등을 먹을 수 있는 야외 매점도 (당연히) 있다. 매점의 불빛이 서커스장 조명처럼 발랄하다. 야외 영화는 보통 밤 9시가 넘어야 시작한다. 싱그러운 나무의 냄새를 맡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건 여름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계절엔 아예 즐길 수 없으니까. 커다란 스크린이 야외에 있으니 코로나19의 일상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심이 된다. 앉는 사람들 간의 거리는 조정을 하겠지만, 춤도 출 수 없고 디제이도 없이 문을 여는 베를린의 클럽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베를린에서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독일어로 더빙된 영화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일이다. 독일에선 극장뿐 아니라 TV에서 보여 주는 모든 해외 영화에 더빙이 돼 있다. 자막이 익숙한 우리에겐 구식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릴 때부터 오디오 북을 듣고 자는 독일인들에게 더빙은 친숙하고 일상적인 문화다. 더빙 문화의 역사도 길어서,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의 목소리는 보통 정해져 있는 성우가 있다. 예를 들어 브루스 윌리스는 30년 넘게 한 목소리다. 야외 영화관을 고를 때는 원어에 영어 자막이 있는 영화를 선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이해도 못 하는 독일어를 두 시간 내내 듣게 될 수도 있다. ●베를린의 편의점 ‘슈페티’ 앞에서 맥주 한 잔 베를린의 여름이 뜨거워지는 건 슈페티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수로 알 수 있다. 슈페티는 베를린의 편의점 같은 곳. 동네마다 있고 대부분 24시간 문을 연다. 없는 것 없이 다 파는 우리나라의 편의점과는 달리 간단한 식료품과 과자, 음료, 담배류, 술을 주로 판다. 종류마다 다 있는 건 역시 맥주. 밤 10시면 슈퍼마켓까지 다 닫는 베를린에서 유일하게 술을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밤마다 슈페티 앞으로 모이는 건 당연하다. 술을 사서 가게 앞 인도나 벤치, 길가에 아무렇게나 앉아 마신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슈페티 앞에는 늘 사람들이 맥주병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여름엔 그 열기의 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가게 앞의 긴 테이블과 의자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짜릿하게 전해진달까. “여긴 뭔데 이렇게 사람이 많아?” 하고 쳐다보면 힙한 바가 아니라 슈페티 앞일 때도 많다. 베를린의 슈페티는 술 취한 아저씨나 돈 없는 어린애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온 몸에 문신을 한 힙스터들,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 클럽 가기 전에 취하러 온 젊은 애들, 집 앞에 한 잔 하려고 나온 동네 주민까지 한데 어울려 같이 마시고 같이 취한다. 동네 사랑방이자 여름엔 펍보다 붐비는 ‘가맥집’이다.그 도시에서 꼭 가 봐야 하는 바 순위가 있는 것처럼 베를린에는 유명한 슈페티 명소가 있을 정도다. 미테의 로젠탈러플라츠 역 바로 앞 슈페티가 그렇다. 밤새도록 사람들이 앉아 술을 마시는 다국적 만남의 장소다. 이곳은 워낙 유명해서 슈페티답지 않게 안에 어엿한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서울의 ‘편맥’처럼 베를린에는 ‘슈맥’이 있다. 슈페티 앞에 사람이 꽉 차 있는 밤을 만나면 베를린의 여름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것이다.●히피들의 은신처, 크룽커크라니히 옥상 바 날이 좋으면 더 각광받는 곳, 바로 루프톱 바다. 베를린에도 내로라하는 야외 옥상 바가 많다. 대부분은 호텔 꼭대기에 있다. 25아워스 호텔 꼭대기에 있는 몽키바는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하다. 베를린 동물원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때문에 유독 사랑받는다. 베를린을 놀러 오는 여행자들의 인기 리스트에 항상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미테의 아마노 호텔 꼭대기에도, 베를린에서 가장 핫한 부티크 호텔, 소호에도 루프톱 바가 있다. 모두 세련되고 힙한 분위기가 넘친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호텔 바를 가지는 않듯이, 여기서도 그렇다. 호텔 바보다는 오래돼 보여도 자연적이고 자유가 넘치는 곳을 좋아한다. 그런 옥상 바가 한 군데 있다. 히피들의 아지트처럼 대접받는 크룽커크라니히 바다. 노이쾰른의 쇼핑몰 꼭대기에 숨어 있는 이곳에는 삐걱대는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제멋대로 놓여 있다. 사람들은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사서 아무 데나 털썩 앉는다. 유일하게 이들이 신경을 쓰는 건 아름다운 노을. 그것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집요하게 쳐다본다. 이곳에서 내다보이는 베를린의 도시 풍경 또한 최고다. 시야를 막는 고층빌딩 하나 없이 고만고만하게 낮고 많은 지붕 너머로 베를린의 상징인 TV타워가 내다보인다. 이 낮은 지평선 도시와 석양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 노이쾰른의 아카덴 쇼핑몰 꼭대기로, 한 번에 찾기는 힘든 길을 헤매면서 올라간다. 가는 길이 쉽지 않아 관광객의 레이더에서는 여전히 조금 벗어나 있다. ●야외 사우나서 꿈꾸는 ‘이열치열’ 베를린의 여름이 매일 뜨겁고 쨍쨍한 것만은 아니다. 30도까지 치솟다가도 갑자기 13도로 뚝 떨어질 때가 있다. 그러면 7월 말이어도 조용히 가죽재킷을 꺼내 입어야 한다. 전기장판만큼은 켜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이렇게 으스스한 날엔 목욕가운을 챙겨 바발리로 향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 있는 스파 단지처럼 넓은 정원과 실내외 수영장, 마사지실, 레스토랑 그리고 사우나가 13개나 있는 곳이다. 카운터에서 밴드를 차고 들어가고, 나올 때 쓴 비용을 결제한다. 바발리 안에서는 모두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다. 그러다 사우나에 들어갈 때는 고이 가운을 걸어두고 알몸으로 들어간다. 사우나 안에 남자 여자가 ‘깨벗고 같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독일의 사우나는 혼욕 문화다. 안에 들어가면 계단식 나무의자에 줄줄이 발가벗은 사람들이 앉아 있다. 매 시간마다 열리는 사우나 프로그램에 맞춰 온 사람들이다. 처음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쳐다보고 일부러 자연스러운 척도 한다. 하지만 알몸이라는 부끄러움도 잠시, 모두가 똑같이 알몸인 그곳에서 뭔가 원초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누구 하나 똑같은 체형 없이, 늘어진 배와 제각각으로 생긴 허벅지, 어깨, 가슴, 성기까지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그냥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바발리의 사우나에는 특별한 점이 또 있다. 필링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팬티만 걸친 전문 마스터가 들어와 프로그램 소개를 하고 커다란 부채질을 한다. 사람들이 앉아 있는 뒤쪽 끝까지 골고루 뜨거운 바람을 보내 주는 것이다. 종교 의식을 치르듯 강하고 경건하게 부채질을 하는 마스터의 몸놀림 또한 이곳 사우나의 관전 포인트다. 야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2층 벽난로 앞에서 와인을 마실 수도 있다. 바발리는 베를린에서 단연 최고의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현재 사우나는 이용이 중단된 상태다. 그래도 야외 수영장에서 나체로 수영하고 정원에 누워 마사지를 받거나 휴식을 취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바발리는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이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땀을 쫙 뺀 후 뻥 뚫린 샤워실에서 샤워하며 이열치열 여름을 나고 싶다. ●공원처럼 산책하는 베를린만의 ‘묘지피서 ’ 베를린에서 공원만큼 산책하기 좋은 곳이 묘지다. 동네마다 크고 작은 묘지가 있다. 제각각 다른 크기의 비석과 그 앞에 놓인 꽃들,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 평화롭다. 대부분 숲처럼 나무가 많아서 공원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나중에 묘지인 걸 안 적도 많다. 아주 춥고 우중충한 날씨가 아니라면 음산한 기분도 들지 않는다. 햇볕 좋은 여름이라면? 18세기의 멋진 비석도 구경하고 책 읽고 빈둥거리기 좋다. 베를린 사람들은 묘지에서도 공원처럼 산책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풀어놓고 놀게 한다. 누군가의 묘지가 이토록 가깝고 친근하게 있다면 추모하는 일도 서글프지만은 않을 것 같다.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찾아와 마음을 나누다 갈 듯하다.베를린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었다. 그 묘지 안에는 장례식을 치르던 작은 교회가 있었는데, 나중에 카페로 오픈을 했다. 카페 스트라우스. 내부는 아치형의 천장이 그대로 있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장례식 홀로 쓰이던 공간이 나온다. 반투명 유리로 돼 있는 지붕과 빈티지한 카키색의 창문,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그 안으로 따사롭게 들어오던 햇살에 낮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누군가의 죽음이 거쳐 갔고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던 공간이라고 하기엔 더없이 평온하고 조용하다. 어느 해 8월, 이 묘지 교회의 작은 정원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시며 오전 내내 책을 읽던 아침이 생각난다. 베를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라 더 그랬을 것이다. 작년 여름엔 남자친구와 함께 노트북을 싸 들고 자주 묘지로 갔다. 프란즐러베르크의 오래된 묘지 안에 있는 라이제파크에 가기 위해서다. 검은 비석과 잡풀, 큰 나무들이 울창한 묘지 안쪽으로 죽 걸어 들어가면 공원이 나온다. ‘볼륨을 줄인’, ‘거의 들릴 듯 말 듯한’, ‘나즈막한 목소리’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이제파크는 이름처럼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다. 공원에는 짧은 풀들이 잔디처럼 자라 있고 그 뒤로 무릎까지 오는 잡풀이, 그 뒤로 중간 키의 나무들이, 그 뒤로 가장 큰 나무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다. 풀숲이 무성해 바로 앞까지 와서야 인기척이 느껴진다. 풀밭에 누워 있으면 도심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푹푹 찌는 한여름, 살갗이 타 들어갈 것처럼 덥다가도 이 공원 나무 아래에만 누우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에어컨 있는 집이 거의 없고 지하철에도 에어컨이 없는 베를린에서 호수로 피신을 못 갈 땐 이 공원이 제일 만만하면서도 은밀한 피서지다. 여행작가 dongmi01@gmail.com
  • 해군으로, 삯바느질로…부부는 ‘전쟁영웅’이 됐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해군으로, 삯바느질로…부부는 ‘전쟁영웅’이 됐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귀신 잡는 해병대·인천상륙작전 등‘해군의 아버지’로 불린 손원일 제독해군 모집하고 모금으로 전투함 마련부인 홍은혜 여사는 ‘해군의 어머니’전쟁 고아 돌보고 해군 군가 작곡도부부 전쟁영웅. 아마 대한민국 전사(戰史)에 흔치 않은 사례일 겁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으로 국방장관까지 지낸 손원일(1909~1980) 제독과 부인 홍은혜(1917~2017) 여사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손 제독은 2012년 9월, 홍 여사는 지난해 8월 각각 국가보훈처가 지정하는 ‘6·25 전쟁영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부부의 일생은 ‘해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에게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14일 해군에 따르면 손 제독은 1909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2남 3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나 독립운동가였던 부친을 따라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부친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낸 손정도 선생입니다. 1924년에 중국 남경 중앙대 항해과를 졸업한 그는 1927년 중국해군의 국비유학생으로 3년간 독일에서 수학했습니다. 젊은 시절 고난도 있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이유로 일제의 감시를 받던 그는 1930년 일시 귀국했다가 상해독립단체의 비밀연락원의 임무를 띠고 입국했다는 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히게 됩니다. 그는 모진 고문을 받으며 1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출감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간 손 제독은 무역업에 종사하다 1945년 광복을 맞아 귀국하게 됩니다. ●“나라를 지키려면 해군이 필요하다” 손 제독은 1945년 8월 ‘해군의 씨앗’으로 불리는 ‘해사대’를 결성했습니다. 해군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해 직접 발품을 팔며 어렵게 70명의 대원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 11월 11일 오전 11시 서울 관훈동 표훈전에서 70명의 해사대 대원이 모여 결단식을 가진 ‘해방병단’이 바로 우리 해군의 모태입니다. 11월 11일이 해군 창립일이 된 것도 손 제독의 깊은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해군을 ‘바다의 신사’라고 여겨 ‘열 십’(十)과 ‘한 일’(一)을 합친 ‘선비 사’(士)를 뜻하는 11월 11일을 택했습니다. 1946년에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세웠습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초대 해군참모총장이 된 그는 이듬해 해병대를 창설, 모든 해군 조직을 외세가 아닌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신화를 썼습니다.1949년 손 제독은 미국으로부터 전투함을 구입하기 위해 ‘함정 건조기금 갹출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병과 국민 모금운동을 벌여 어렵게 1만 5000달러의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당시 손 제독의 부인 홍 여사는 장병 부인들을 모아 삯바느질로 전투함 구입 자금을 마련하는데 앞장 섰다고 합니다. 손 제독은 정부 지원금 4만 5000달러를 합해 6·25 전쟁 직전 백두산함, 금강산함, 삼각산함, 지리산함 등 4척의 전투함을 구입, 바다를 지키게 했습니다. 그의 선견지명은 놀라운 성과로 돌아왔습니다. 백두산함은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6일 새벽, 무장병력 600여명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하던 북한 수송선을 격침시켜 첫 승전보를 올렸습니다. 우리 군의 사기를 크게 높인 것은 물론 북한의 배후 위협 전략을 조기 차단한 값진 승전이었습니다. ●6·25 전쟁 전 전투함 마련…첫 승전보 심지어 그가 일군 해병대는 단독작전으로 1950년 8월 ‘통영상륙작전’을 감행, 적 469명을 사살하고 차량 12대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뒀습니다. 당시 미국 종군기자 마거린 히긴스로부터 “귀신도 잡을 수 있겠다”는 평가를 받아 해병대에 붙여진 별명이 ‘귀신 잡는 해병대’입니다. 동시에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직전 ‘엑스 레이’ 작전을 지시,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인천 지역에 잠입해 한 달 동안 북한군 해안포대의 위치와 규모 등 정보를 수집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이는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지휘 아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됩니다. 당시 침투 부대의 활약상은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정전협정 직전인 1953년 6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한 뒤에도 국군묘지(현재의 국립서울현충원)와 국방대학원 설립, 군목제도 및 국내외 위탁교육제도 신설 등 특유의 수완으로 군의 핵심 정책들을 만들었습니다.부부는 닮는다고 합니다. 홍 여사의 나라를 위한 헌신도 지극했습니다. 홍 여사는 6·25 전쟁 중 부상당한 해군과 해병대 병사들을 돌보는데 노력을 다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1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공장과 탁아소, 유치원 등을 지어 전사자 가족을 도왔고 부상병을 돕기 위한 모급활동도 펼쳤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이 ‘일본 군가’를 부르다니…” 홍 여사가 해군에 미친 영향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홍 여사는 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가가 없어 일본 군가에 가사를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대) 작곡과에서 수학한 경험을 살려 손 제독이 쓴 가사에 곡을 만들어 한국 최초의 군가 ‘해방 행진곡’을 발표했습니다. 이후에도 ‘바다로 가자’, ‘해군사관학교 교가‘ 등 다수의 해군 군가를 직접 작곡했습니다. 손 제독은 1980년 71세, 홍 여사는 2017년 100세로 타계했습니다. ‘전쟁영웅 부부’의 업적을 이렇게 짧은 글로 정리하는 것 자체가 버거울 정도로 그들은 군과 현대사에 굵은 한 획을 그은 인물이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Focus人] 걸그룹 환상 벗어던지고 ‘여자 싸이’로 탈바꿈한, 차세대 트로트 가수 설하윤

    [Focus人] 걸그룹 환상 벗어던지고 ‘여자 싸이’로 탈바꿈한, 차세대 트로트 가수 설하윤

    “모든 가사가 속담으로 이뤄진 ‘속담파티’라는 신곡 녹음이 다 끝난 상태예요. 원래 3월쯤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선보이지 못하고 있어 너무 아쉬워요. 모든 분들이 힘들고 지치실텐데 힘내시고 하루빨리 코로나 바이러스가 종식돼서 찾아뵙고 싶어요.” 장윤정, 홍진영을 잇는 차세대 여성 트로트 가수로 평가받고 있는 설하윤씨(28). 2015년 12월 한 음악 방송프로그램에서 ‘불멸의 연습생 S양’이란 이름으로 출연해 출중한 노래와 춤으로 화제를 모았고 그를 눈여겨본 소속사들로부터 많은 걸그룹 제의가 들어왔다. 아이돌의 꿈을 위해 12년간 외롭고 힘든 자신만의 싸움을 묵묵히 견뎌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트로트 가수의 길을 택했다. 왜일까? “내가 다시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두려웠어요. 어느날 소속사 대표님께서 ‘트로트 가수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건 다 똑같은데, 제가 단지 걸그룹이란 거에 매료돼 있었던 거 같아요. 공연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직접 보고 노래하면서 위로를 해드리는 게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에요”라며 트로트 가수가 된 걸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부대에서도 교주급 지위를 누리고 있다. 본인 스스로도 ‘여자 싸이’라고 말할 정도로 털털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단지 공연을 하러 온 것이 아닌 군인들과 함께 스트레스를 풀고 놀러 왔다는 마음으로 임한다고 한다. 공연 중 흥을 돋우기 위해 군단장께 가는 도중 군인들이 만들어 낸 ‘모세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그는 ‘역시 현역 군인들이 최고죠’라며 군부대 공연을 갈 때마다 늘 좋은 기운을 얻어 온다고 한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그를 지난달 24일 본사 스튜디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Q) 데뷔 4년 차다. 인기 실감하는지아직까지는 크게 실감을 못하고 있어요. 코로나19 사태로 좀 어려운 시기라 사람들 접촉을 많이 못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듣는 얘기들엔 조금 인기가 있다고, ‘핫’ 하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방송에서도 많이 찾아주셔서 고정예능도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저를 ‘리액션 요정’이라고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Q) 본인 인생이 이렇게 될 줄 예상했는지12년이라는 긴 연습생 끝에 이렇게 데뷔를 했는데 트로트 가수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고 더군다나 이렇게 활발하게 활동할 줄은 더욱 생각 못했었던 거 같아요. 지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공연하고 행사하는 게 너무나 행복해요. 사람들에게 위로도 드리지만 저 또한 위로를 받아요. 그래서 무대 위에서 ‘박수, 함성~’ 하면서 외칠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요. (Q) 가수를 꿈꾸게 된 계기는초등학교 5학년 친척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영화 타이타닉 주제곡 ‘My heart will go on‘을 불렀는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게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거 같아요. 그 당시 노래를 부르는데 소름이 돋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정말 멋진 일이구나’란 생각에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Q) 트로트 가수로 데뷔한 걸 후회하지 않는지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너목보’(너의 목소리가 보여)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죠. 엄마, 이모도 방송을 보러 오셨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제가 실력자로 나와서 이슈가 됐어요. 이후에 발라드 가수, 걸그룹 가수 등 제의가 많이 들어왔었는데 다시 아이돌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너무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때 대표님께서 트로트 한 번 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해주신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왜 트로트를 하냐고 친구들과 부모님도 의아해했죠. 무대에 서서 노래를 하는 게 다 똑같을 뿐인데, 단지 걸그룹에 매료돼 있었던 거 같아요. 아이돌은 ‘안녕하세요. 누구입니다’ 이렇게 예쁘게 딱 하고 더 이상 말을 못하잖아요. 저는 말을 너무하고 싶었거든요.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의 눈을 직접 보면서 노래를 불러 드리고 위로를 해드리고 정말 매력적인 직업인 거 같아요. (Q) ‘신고할꺼야’ 첫 트롯 공식 데뷔 떨리진 않았는지긴장과 떨림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안 떨리는 거예요. 그냥 너무 행복했어요. 무대에 서는 순간 그냥 신나는 거예요. 그래서 저의 신나는 모습이 카메라에 너무 비쳐서 조금 릴랙스 하라고 대표님께서 말할 정도였으니깐요.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모습에 카메라 감독님들께도 신인 같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Q) 예능에서도 남다른 두각을 보이고 있는데정말 경험이 무시를 못한다고 예능이 정말 저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냥 편하게 리액션을 하는 건데 너무 좋다고 칭찬을 해주시니깐 감사하죠. 저는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리액션이 나오니깐 피디님들 언제든 불러주세요. (Q) 콧구멍밖에 안 보인다는 악플에도 꿋꿋...‘너목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밑에서 카메라를 찍기 때문에 코밖에 안 보인다는 댓글이 있는 거예요. 악플이라고 생각하면 악플일 수도 있는데 ‘콧구멍 큰 걸 잘 살리면 개인기로 만들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서 오십원 넣었는데 들어가고 백원 넣었는데 들어가고 오백원 넣었는데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이홍렬 선배님 다음으로 콧구멍 개인기를 만들었죠. (Q) 장윤정, 홍진영을 잇는 차세대 트로트 여신과분한 거 같아요 아직까지는. 장윤정 선배님이 젊은 친구들이 트로트를 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 주셨고 트로트 가수가 예능도 하고 노래도 하고 다 하네 이런 매력을 보여주신 게 홍진영 선배님이시기 때문에 제가 그 뒤를 잘 이어받으면 좋겠어요.(Q) 최초 여성 트롯가수 맥심 표지모델군인들의 최애 잡지 표지를 두 번이나 ‘아, 군통령 등극했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죠. 여사친 콘셉트로 진행할 때, 좀 과하다고 생각한 의상을 주시더라고요. 제가 여사친 콘셉트가 맞는지 여쭤봤는데, 돌아온 답은 ‘예, 여사친 콘셉트입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Q) 군대에서 교주급 인기, 자신만의 ‘군대 콘셉트’많이 갈 땐 한 달에 13군데를 갔더라고요. 이틀에 한 번 꼴로. 군부대를 가면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데 저도 뭔가 위로를 더 드릴 게 없을까라고 늘 생각해요. 그래서 특별한 이벤트를 자꾸 만들어요. 군인들한테 무대로 올라오게 해서 제 찐팬(진짜 팬)인지 물어보기도 하고 군단장님이랑 와이프 분이랑 셋이서 함께 블루스를 추고 놀아요. 군인들에겐 ‘나는 너희들과 스트레스를 같이 풀러 왔다, 놀러 왔다’란 마음을 갖죠. 예쁜 척 콘셉트보다는 제가 조금 더 스트레스를 풀어줄 만한 여자 싸이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Q) 속옷 매장에서 매니저 제안받을 정도의 남다른 ‘장사 수완’속옷 알바를 하다가 제가 너무 잘 파니깐 매니저 할 생각 없냐고 점장님께서 직접 물어보시는 거예요. 일단 손님께서 좋아하시는 취향에 대해 조심스럽게 여쭤보고 치수도 직접 재드리고 해요. 남자친구가 있는지도 물어보죠. 그 유무에 따라 대응하는 방법이 달라지거든요. 그런 걸 잘한 거 같아요. (Q) 꿈을 위한 기간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혼자서 많이 연습했던 거 같아요. 두 걸음만 옮기면 끝나는 좁은 방 안에서 계속 연습했죠. 제 목소리를 들으면서 많이 연구를 했고 다른 가수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도 많이 관찰한 거 같아요. 물론 외롭고 힘들었죠. 만약에 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저도 굉장히 많이 힘들었을 거 같았는데 그 사랑이 저를 버티게끔 했었고 꿈을 그만큼 사랑했고 절실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죠. (Q) 이상형은듬직했으면 좋겠고, 묵묵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남자 품에 폭 안길 수 있는 키 큰 사람이면 좋겠고요. 그리고 제 성격이 너무 밝기 때문에 저를 부드럽게 해 줄 수 있는 그런 성격이라면 더 좋겠어요. (Q) 반려동물을 ‘푸딩’을 키우고 있는데반려동물 키우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진짜 많은 힘이 되고 가족과도 같은 존재예요. 바쁘고 힘든 생활 속에서 집에 들어가면 항상 반겨주는 게 반려동물이거든요. 그 행복감을 꼭 아셨으면 좋겠어요. 꼭 키우시길 권장합니다.(Q)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통해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함께 했는데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영광스러웠고. 좋은 조언을 정말 많이 해주셨어요. 조항조 선배님은 ‘하윤아 너는 어쩌면 그렇게 그림 같애’ 그러면서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셨고요. 제가 돌아가신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나요. 인터뷰하다가 할머니 얘기가 나와서 중단된 적도 있었거든요. 왕중왕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5라운드 2차 경연에서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주현미 선배님의 ‘신사동 그 사람’을 준비했죠. 근데 이덕화 선배님께서 할머니께 바치는 노래라며 소개해 주시는데 뒤에서 그 소리를 듣고 미치겠더라고요. 결국 감정조절에 실패해 뜻밖의 실수를 했죠. 이덕화 선배님께서 그렇게 말씀 안 하셨어도 제가 더 끝까지 잘 부를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원망은 전혀 없어요. (Q) 계획과 꿈SNS를 통해 혼자 노래 연습하는 것도 보여 드리고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팬들과 소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치신 여러분들한테 조금이나마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신곡도 준비하고 있어서 곧 소개할 예정이고요.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게 꿈이에요. 항상 트롯가수로 활동을 많이 하고 싶고 지방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분들께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sungho@seoul.co.kr 임승범(인턴), 장민주(인턴)
  • 뜨거워진 광진을…‘대통령의 입’ 고민정 vs ‘대권 잠룡’ 오세훈

    뜨거워진 광진을…‘대통령의 입’ 고민정 vs ‘대권 잠룡’ 오세훈

    “오 후보님은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 하시는데, 그러면서 청년들에게 젊은 정치 말할 수 있을까요.”(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 “저를 올드보이라고 하시는데 그러는 고 후보님은 올드보이에 의존한 정치 하지 않으십니까.”(오세훈 전 서울시장) 4·15 총선에서 서울 한강벨트 동쪽 끝 광진을을 차지하기 위한 팽팽한 접전이 시작됐다. 1년 전부터 지역구 터를 닦기 시작한 미래통합당의 ‘대권 잠룡’ 오세훈(59) 전 서울시장과 ‘대통령의 입’ 고민정(41) 전 청와대 대변인이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전하면서 선거 열기가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고 후보는 공영방송(KBS) 아나운서 출신의 젊고 참신함이, 오 후보는 합리적 보수의 이미지가 강점이다. 변호사, 시민운동가, 교수 등 다양한 사회 경험과 국회의원, 서울시장 재선을 지내며 정치적 경력까지 겸비한 오 후보는 단연 “일해 본 경험”을 내세운다. 2011년 서울시장 사퇴 후 좀처럼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한 오 후보에게 광진을은 정치적 운명을 가를 중요한 승부처이기도 하다. 반면 이번이 첫 출마인 고 후보는 “시·구의원부터 구청장, 시장, 정부부처, 청와대까지 원팀을 이루고 있다”고 자신한다.25일 오전 8시 광진구 건대입구역에서는 파란 점퍼와 운동화 차림의 고 후보가 출근하는 주민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고민정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인사했다. 바쁜 걸음 속에서도 한 중년 여성이 ‘엄지 척’을 해 보이는가 하면 “예전부터 팬이었어요”라며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젊은 청년도 있었다.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여러 번 들어왔다. 고 후보는 “언제든지요”라며 흔쾌히 응했다.비슷한 시각 오 후보는 선거운동을 잠시 중단한 채 통합당 선거대책본부 지도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경찰청을 항의 방문했다. 오 후보는 지난 23일 건대입구역에서 출근길 인사 중 대학생진보연합 소속 회원 10여명에 둘러싸여 선거운동을 방해 받았다. 오 후보는 “치열한 선거 상황 속에서 그들을 피하기 위해 선거 운동도 게릴라식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참담하다”며 엄중 수사를 촉구했다. 오 후보는 이날 항의방문 후 “선관위와 경찰청에서 재발방지를 약속받았다”며 선거운동을 재개했다. ‘민주당 텃밭’ 광진을...한강변 아파트촌 보수적 기류도 광진을 지역은 수도권에서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으로 꼽힌다.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에 의석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는 1996년 성동구에서 분구된 15대 총선부터 현재까지 민주당 의원인 추미애 법무장관이 5선을 지냈다. 그럼에도 오 후보가 이곳에 출사표를 던진 데는 최근 새로운 기류도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호남 출신 지역민이 많아 민주당 우세 지역으로 분류됐으나 최근엔 호남 출신이 줄어들고 충청 출신이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강변 아파트촌이 형성된 자양2·3동, 구의3동 등을 중심으로 신흥 부촌이 형성되면서 보수적 색채도 나타나고 있다. 오세훈 “지하철 한양대~잠실 지하화...단독·다가구주택 개선도” 광진을 당협위원장을 지내며 지역을 다져온 오 후보는 ‘지역현안 맞춤’으로 접근하겠다는 전략이다. 오 후보는 서울 지하철 일부 지상 구간을 지하로 넣어 지역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역 숙원사업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잠실 구간 등 지상역사 문제를 겨냥한 공약이다. 지하화로 확보된 공간에는 어린이 복합놀이공간 구상을 내놨다. 관련법 제정을 통해 단독·다가구주택 시설 개선 사업 기반을 만들 것도 약속했다. 따로 관리실이 없는 주택·원룸촌도 관리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안심센터’ 등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오 후보는 “우리나라는 주거정책이 대체로 아파트 위주로 가고 단독·다가구 주택은 방치한 상황”이라면서 “비아파트촌이 많은 광진을 시작으로 비아파트에 대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민정 “황제식 개발 대신 도시재생...1인가구 공유 플랫폼 구성” 광진구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1학년을 보낸 고 후보는 ‘광진 사람’임을 강조한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난 추세를 반영해 생활밀착형 공약을 내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고 후보는 1호 공약으로 구의역 일대 ICT 스타트업 허브 조성, 2호 공약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생활공유플랫폼 구성을 약속했다. 주로 원룸이나 작은 거주공간에서 생활하는 1인 가구 밀집 지역에 공유주방, 공유창고 등 공유 공간 만들어서 생활 속 불편한 덜어주고, 작은 도움 필요할 때 이웃에 요청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고 후보는 “광진은 골목이 살아 있는 곳이고 30~40년 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사신 분들이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그런 역사를 지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것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는 황제식 개발이 아니라 도시 재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어느 소시민의 소소한 달리기/유영규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어느 소시민의 소소한 달리기/유영규 사회부장

    달리기를 시작한 건 지난주부터다. 화면 속 줄어드는 숫자를 보고 있자면 왠지 맘이 급해진다. 월요일과 화요일, 일주일에 두 번은 연신 휴대전화를 쳐다보며 광화문 사거리 인근 약국들을 향해 뛴다. 출생연도가 각각 1과 2인 나와 어린 딸이 일주일간 쓸 마스크 4장을 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첫날은 40여분을 기다렸는데 거짓말처럼 딱 내 앞에서 마스크가 동났다. 남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면 내 몫은 없다. 그렇게 시장경쟁 논리가 룰이 된 달리기는 일상이 됐다.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지금 소시민들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렵게 구한 마스크를 들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지하보도에 노숙자 2명이 웅크려 있다. 언제 씻었는지 모를 몸과 갈라진 발에선 악취가 났다. 고개를 푹 숙인 얼굴에 마스크는 없다. 마치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듯 다들 그들을 피해 갈 때 한 젊은 여성이 노숙자 옆에 마스크 1개를 살포시 내려놓았다. 방금 약국에서 산 공적마스크인 듯했다. ‘나도 하나 건네야 하나’ 그녀의 배려가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 코가 석 자’라는 핑계로 중요한 가치를 잊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은 약자들에게 더 가혹한 법이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위협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말그대로 치명적이다. 코로나19의 경우 나이가 많은 독거노인이나 기저질환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요양병원 환자들이 대표적인 약자다.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노숙자와 빈곤층,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일용직 노동자, 공공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 역시 ‘고위험군’에 속한다. 코로나19의 공습이 길어지면서 자영업자들은 경제적인 사망을 두려워하고 있다. 지원은 급한데 도움의 손길은 더디기만 하다. 사회적 재난과 참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2014년 세월호가, 2015년 메르스가 그랬다. 코로나19 역시 우리나라 공공 의료체계의 빈약함과 위기 상황 속 정부의 비전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사회적 재난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의 셈법도 바뀐 게 없다. 어려운 사람을 찾아 신속하게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재난수당인지 기본소득 인지를 두고 입씨름만 하는 모양새다. 그나마 희망은 국민이다. 남보다 더 가지려는 이웃나라의 흔한 사재기 대신 남보다 덜 가지려는 나눔과 배려를 실천하고 있어서다. 대구지역 동사무소와 보건소, 소방서 등에는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수제마스크부터 비타민, 빵, 음료 등으로 자원봉사자들을 돕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어 주겠다며 임대료를 깎아 주는 `착한 건물주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달구벌 대구가 어려움에 부닥치자 누구보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대구와 ‘달빛동맹’을 맺었던 빛고을 광주였다.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에 대한 척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지원이다.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공간이라면 이미 공동체라 부를 수 없다. ‘인류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한 게 국가’라는 토머스 홉스의 목소리를 다시 곱씹어야 할 이유다. 다음주에도 마스크를 사기 위한 줄은 계속 설 생각이다. 늦은 개학을 앞둔 딸에게 아빠가 사 놓는 준비물이라는 생각에서다. 다만 내 몫이라 생각해 온 마스크는 천마스크로 바꾸려 한다. 그렇게 애써 착한 척이라도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소시민의 작은 배려가 방학 중인 딸에게 아빠가 해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교육이라고 믿어 본다. whoami@seoul.co.kr
  • [Focus人] “야한 거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남성잡지 맥심 첫 여성편집장 이영비

    [Focus人] “야한 거 싫어하는 사람 있나요?” 남성잡지 맥심 첫 여성편집장 이영비

    “엉덩이가 크고 예쁜 여자가 수영복을 입든 청바지를 입든 본인이 입고 싶어서 나온 건데, 일부 사람들은 이런 걸 애들이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포즈는 되고 어떤 건 안 되고, 그 기준들이 법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 모호하거든요. 맥심은 법이 규제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 모호한 영역의 가장 밖에 있는 매체인 거 같아요.” 한 때 ‘털 난 중년 아저씨’로 오해까지 받으며 수많은 악플과 비난 속에서도 묵묵히 11년째 맥심코리아를 이끌고 있는 맥심 코리아 이영비(38) 편집장. 그녀는 맥심 최초의 여성 편집장이자 최연소 편집장이기도 하다. 그녀 이후 2016년 미국 맥심도 엘르 출신 여성 편집장을 데려오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신도 야한 거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극적이고 섹시한 것에 끌리게 돼 있어요. 일을 하면서 표현 수위에 있어 법이 제한하는 테두리 안에서 최대치로 밀고 가고 싶었죠”라며 “독자들에게 내가 발견한 재밌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었고 에디터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사람들의 취향을 공유해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에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올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1995년 영국에서 창간됐고 1997년 미국판 창간을 시작으로 2002년 한국판을 창간한 가장 핫한 남성잡지 중 하나인 맥심. 독자들이 원하는 바로 그 ‘핫’함을 찾고 달구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녀는 “다른 잡지들은 인생을 좋게 만드는 건강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맥심은 불량식품 같지만 인생에서 빠지면 뭔가 아쉬운 양념 같은 존재다”라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를 비유적으로 설명했다. 지난 22일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맥심코리아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다음은 그녀와의 일문일답.(Q) 맥심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2003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1년간 공부했다. 하루는 친구가 파티한다고 집에 초대했는데 그 집 화장실에 미국 맥심이 꽂혀 있었다. 애들 집 어딜 가도 맥심은 항상 있었다. 보자마자 맘에 들었다. 고상한 척 안 하고 가식 없이 기발하게 웃겼다. ‘잘린 손가락 붙이는 법’ 같은 유용한 팁도 있고 우리나라의 패션 잡지와는 발상부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책이라는 고상한 물체에 이런 장난스런 이야기들을 가득히 찍어내도 되나?’ 하는 문화 충격을 받았지만 맥심의 애독자가 되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한국에 와서 전공인 신문방송을 살려 왠지 우아(?)하게 살 수 있을 거 같은 KBS 라디오PD에 지원했지만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고 ‘너랑 딱 맞을 거 같다’던 친구의 말처럼 운 좋게 같은 해 맥심에 지원해 들어오게 됐다. (Q) 여성 편집장으로 발탁된 사연2010년 편집장 됐다. 당시 회사 소유 문제로 조직이 거의 와해됐었다. 편집장은 공석이었고 연차 높은 선배들은 떠나고 후배들만 남았던, 곧 없어질 것 같던 회사의 편집장 자리를 맡게 된 거다. 운 좋게 다시 판매율이 올라가 기사회생했는데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될 줄 몰랐다. 맥심은 여자에게 매력적인 남자를 만드는 가이드북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여자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이후로 다른 나라 맥심에도 여자 편집장이 부임하는 경우가 꽤 많이 생겼다.(Q) 편집장이 여자라는 사실에 대한 놀람과 우려에 대해네이버에 맥심 이영비 편집장 관련 악플들을 보면 욕이 엄청나게 많다. ‘털 난 중년 아저씨일 줄 알았는데 20대 파릇파릇한 여자라서 감정이 오묘하다’라는 댓글도 있다. 물론 털 난 중년 아저씨는 아니지만 성별을 떠나 젊은 세대들이 공유하고 있는 재밌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은 아는 사람이 맥심 편집장이 되는 게 가장 맞지 않나 생각한다. (Q) ‘전체관람가’ 잡지란 말에 놀라는 분들도 많은데‘전체관람가’로 출간되는 게 사실이다. 비유를 해보자면, 주부지의 타깃은 결혼한 기혼 여성들이다. 즉, 성인이다. 주부지에 섹스, 부부생활 이야기도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주부지를 ‘전체관람불가 성인지’ 분류에 넣지 않는다. 맥심도 마찬가지다. 타깃은 남자며 실제 주요 독자층도 20~30대 남성이다. 그 나잇대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룬다고 해서, 성에 관한 담론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10대에게 유해하다고 간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맥심은 남성 잡지다. 남성들이 보기에 남성들이 좋아하는 모든 것을 다룬다. 표지가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Q)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다는 비판에 대해맥심 화보를 찍을 때마다 여성 전체를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일부 페미니즘 진영의 공격을 받곤 한다. 하지만 내가 봐온 여자들은 성적 매력을 당당하게 어필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일종의 철학을 하나같이 갖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맥심을 성적 대상화의 사회악으로 보는 일부 남성혐오집단의 공격이나 악플 등에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이는 걸 많이 봐왔다. 대형 일부 서점에서 진열된 책을 보고 어머니들이 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취향에 대해서 본인이 보고 싶지 않다고 그걸 못하게 하고 비난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Q) 맥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비난에 대해서대중이란 표현을 써서 모호하지만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하지 못했을 때 거센 비난을 한다. 그건 어느 매체건 마찬가지다. 이념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했다기보다는 그 당시의 상황이 맥심에게 불운하게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이 반성하고 조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케이스들이 쌓이다 보면 아무래도 사람이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그게 조금 안타깝다. 아이템을 선정하고 진행함에 있어 속된 말로 ‘쫄게’된다.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난도 어쨌거나 저희 매체의 역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Q) UFC 마니아로 알려져 있는데사람들은 원초적으로 누가 더 센지를 궁금해한다. 호랑이와 사자, 지네와 전갈 등을 싸움 붙이는 이유다. UFC는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지만 폭력적이란 시각이 아닌 원초적으로 누가 더 센지에 대해 끌리는 측면이 있다. 센 남자들을 보면 약간 매혹되는 게 있다. 하지만 여자가 유혈 낭자한 UFC를 즐겨본다고 하면 특이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도 많기에 소위 ‘남성적인’ 취향의 여자들이 그걸 잘 드러내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정기구독자의 5~10%는 여성이고 매달 한두 개는 여성독자의 상담이 들어온다. 남녀의 취향 경계는 이미 흐려지고 있다. 편견을 걷고 들여다보면 남자에게 재밌는 건 상당수의 여자에게도 재밌다. (Q) 섹시함의 기준이 남성과 다를 수 있다. 여성 입장에서의 섹시함이란기본적으로 맥심 모델 콘테스트에 나온 분들은 본인의 얼굴과 몸매에 자신감을 갖고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대중에게 어필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많은 카메라와 사람들 앞에서도 자연스럽고 자신 있는 포즈와 표정을 취한다. 소속사에서 키우는 연예인들, 속칭 “너 뜨려면 맥심 나와야 돼”라고 말하면서 인형처럼 똑같은 얼굴 표정으로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는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뭔가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것이 명확한 친구들이 맥심에게 잘 맞는 거 같다. 그런 것들이 또한 맥심이 생각하는 섹시함의 기본인 거 같다.(Q) ‘44 사이즈 모델은 쓰지 않겠다’라고 한 적 있는데“맥심은 육덕진 여자를 좋아하시죠?”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육덕진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성 모델들이 나왔을 때 실제로 잡지 판매율이 높은 편이다. 그 의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여성을 예쁘고 섹시하다고 느끼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델 본인 스스로도 ‘넌 살을 빼야 돼’, ‘아이돌처럼 새다리가 돼야 돼’라는 외부적인 기준에 맞추지 않고 자신의 상태가 만족스럽고 맘에 들어서 나올 때 바로 그 모습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섹시하고 예쁜 여자를 다루는 매체로서 이런 외부의 기준들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인드가 맥심의 방향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Q) 역대 최고령 모델인 송해씨를 표지로 선정한 이유역대 맥심에 나오신 분들 중 최고령이다. 아마 그 기록은 당분간 깨지지 않을 거 같다. 남자 아이콘이란 인터뷰 코너가 있는데 여자 표지모델을 선정하듯이 남성들의 롤 모델을 선정하고 섭외해서 백커버로 들어간다. 송해 선생님은 방송의 살아있는 역사이시다. 그 지나온 시간만으로도 너무 멋있는 거 같다. 표지모델 섭외에 너무 흔쾌히 응해주셨다. 영화 대부 콘셉트였는데 눈물도 흘리시고 연기도 너무 잘해 주셨다.(Q) 국내외 연예인 중, 기억에 남는 표지모델과 그 이유는최근에 작업했던 200 특집호가 제일 재밌었던 거 같다. 저희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미스 맥심 모델 엄상미, 김소희를 비롯해서 한지나, 예린, 꾸뿌 등이 나온 표지였다. 빨간색, 하얀색 비키니를 입고 같이 파티하고 놀고 싶은 예쁜 여자 친구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환화게 웃는 모습을 연출했다. 모델들이 저희가 원하는 콘셉트를 가장 심플하고 정확하게 표현한 거 같았다. 제작진들도 상당히 즐거웠다. (Q) 소녀 이미지가 강한 연예인의 화보 촬영 시 마찰은 없는지원치 않으면 벗기지 않는다. 본인이 미니스커트까지만 입겠다고 하면 그 이상 권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돌 소속사들도 그들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 당연한 거다 하지만 맥심도 맥심이 원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아보지만 아예 접점이 없으면 저희들도 하지 않는다. 일단 맥심에 나오기로 결정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가 자신의 가장 섹시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친구들이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섭외된다.(Q) 세월호 참사로 예정보다 늦게 배포했는데당시 윤태진 아나운서 표지였는데 너무 귀엽고 발랄하게 잘 나왔다. 맥심은 재밌는 것들을 소개하고 고민 없이 보고 웃을 수 있는 그런 매체다. 여러 국가적인 국난이 있어도 발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너무나 안타깝고 비극적인 참사라 그땐 기분이 좀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북치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학생이 구조됐다라는 오보가 당일에 뒤집혀져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만 웃자고 잡지를 내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 좀 늦추게 됐다. 판매가 잘 됐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거 같다. (Q) 표지모델과의 마찰로 에디터 중 한 분이 표지 모델로 나왔는데두 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촬영 다 끝낸 표지모델이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 미국 출장 중이었는데 전화받고 바로 귀국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다 했고 출판해도 문제 될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틀 후면 인쇄기가 돌아갈 급박한 상황 속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걸 그냥 콘셉트로 가는 건 어떨까하고. 독자들에게 무슨 변명 따위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우리 해프닝 자체를 맥심의 커버로 남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란 위험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론 그 에디터분이 굉장히 연기를 잘해줬다. 조명 쓰러져 있고 쓰레기 굴러다니고 망한 촬영장 콘셉트였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덕분에 맥심이란 매체가 그 일을 계기로 전화위복 됐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 모델 분께 감사한 마음이다. 비록 모델료는 돈가스 사주는 걸로 대신했지만. (Q) 만드는 사람이 재밌어야 보는 사람도 재밌다. 직원 간 소통은 어떻게아무래도 만드는 콘텐츠가 자유롭다 보니깐 직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의 범위나 양 그리고 자유도 자체가 높다. 그렇다고 위아래가 없는 건 아니다. 휴가 신청 올라오면 다 오케이다. ‘놀고 싶으면 노세요’라는 의미다. 평소 업무 강도가 높다보니깐 자유도 자체를 높여 놓는 편이다. 옆돌기를 하든 불쇼를 하든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상관하지 않는다. (Q)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연예인요즘은 사람들이 정말 뭘 좋아하고 뭘 보고 싶어 하는지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 유튜버 개인 팬덤이 두터운 친구들과 같이 작업을 하는 게 장사하는 입장에서도 물론 좋지만 연예인들보다 더 흥미로울 때가 더 많다. 외모를 떠나서 그렇게 자신의 콘텐츠가 풍부한 친구들과 작업하는 게 재밌고 즐겁다. 연예인 중에선 개인적으로 배우 김혜수씨가 맥심에 나오면 참 멋있겠다란 생각을 하고 있지만 아마 안 하실 거 같다. (Q) 가장 의미 있었던 작업은 2017년 10월호 광마 마광수 추모 특집호다. 그가 사망한 달 모든 기획을 정리하고 표지부터 후반부 기사들을 특집으로 꾸미고 추모 특집을 준비했다. 상큼하고 섹시한 맥심 여자 표지 모델이 아닌 마광수 얼굴이 표지로 나가면 판매가 저조할 것도 예상했다. <즐거운 사라>가 당대에 판금되고 저자와 출판사 사장이 구속까지 될 정도의 텍스트인가, 우리 사회는 이 텍스트를 감옥에 가두고 숨겨야 하는 것인가, 지금의 한국에서도 그 기준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맥심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던지고 싶었다. 맥심뿐 아니라 세상의 많은 콘텐츠 제작자들은, 그의 문학과 사고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마광수라는 인물의 불행한 개인사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Q)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일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 경직된 ‘벽’이 얼마나 많은지 절감했다. 얼마 전 유튜브로 90년대 뉴스를 봤다. 당시 사회 문제시되던 오렌지족의 행태란 게 수입차 타고 락카페 가는 정도였다. 지금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들이다. 결국 세상은 나아간다. 맥심과 함께 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했다. 티팬티를 입거나 왁싱을 하면 무슨 외국 포르노 배우 보듯 하던 시선도 많이 사라졌다. 논란의 대상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이게 왜 나빠?”라고 생각해보는 게 맥심 편집장 이영비의 목표라면 목표다. 또한 내외부적인 어려움 없이 매달 마감을 쉬지 않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맥심이라는 편견도 많고, 미움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으면서 10년 넘게 만들어 오고 있다. 독자들이 내가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최근 200호 특집을 했는데 300호 갈 때까지, 제가 죽어 없더라도 맥심 많이 봐주셨으면 한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가슴으로 낳은 세 딸 키우다 내 인격의 바닥을 봤습니다

    가슴으로 낳은 세 딸 키우다 내 인격의 바닥을 봤습니다

    느지막이 눈물 콧물 다 뺐다… 환갑 넘어 들춰보는 ‘공개입양일기’차성수(63)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은 스스로를 이 시대 지식인이자 교양인이라고 자부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그는 학생 운동에 몸담으며 서울 구로공단 노동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서른두 살에 동아대 교수로 임용됐고 2007~08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냈다. 2010년부터 8년간 서울 금천구청장을 연임했다. 재작년부턴 자산 30조원을 굴리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배운 사람의 여유랄까요. 저는 제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웬만한 일에는 화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거든요. 그런데 입양한 세 딸을 키우면서 제 인격의 바닥을 봤어요. 보육원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냈던 딸들이 나와 아내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외면했을 때, 사춘기 시절 입양아라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거세게 반항했을 때…. 저는 인간의 온갖 추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나약한 한 사람에 불과했어요.” ●맏아들 다 키우니… 50세에 하늘이 맺어 준 인연 14일 서울신문이 서울 여의도 차 이사장 집무실을 찾은 건 그가 ‘가슴으로 낳은’ 세 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차 이사장 슬하 네 남매 중 맏아들 남준(33)씨를 제외한 혜인(19)·혜윤(18)·혜주(16)양은 공개 입양한 자녀다. 벌써 14년 전인 2006년 두 돌을 좀 넘긴 막내 혜주양을 첫 입양했다. 차 이사장이 우리 나이로 쉰을 맞았을 때다. 지천명을 맞아 자신을 바꿔 보기로 결심했다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보자며 입양을 선택했다. 젊은 시절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아내와 “언젠가 입양한 자녀를 길러 보자”고 했던 약속을 뒤늦게 지킨 것이다. 이듬해 혜주양의 언니를 만들어 주기 위해 혜인양을 가족으로 맞았다. 더는 입양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2008년 혜윤양과도 하늘이 맺어준 것처럼 인연이 닿았다. “경북 김천에 있는 보육원이었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내려갔는데 혜주를 처음 보는 순간 한눈에 들어왔어요. 마치 제가 낳은 아이 같았죠. 혜주가 아내와는 금방 가까워졌지만 저는 보기만 하면 울더군요. 그러다 한 100일쯤 지났나….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꼬옥 안아 주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입양한 혜주양은 딸 키우는 재미를 쏠쏠하게 알려줬다. 하지만 여섯 살 때 데려온 장녀 혜인양은 달랐다. 혜주양과 빨리 가까워지라고 같은 보육원에서 입양했는데, 이미 유아기를 넘어서인지 쉽게 차 이사장 가족에 녹아들지 못했다. 마치 희로애락의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가족들의 눈치만 봤다. “혜인이를 키우면서…. 제가 참…. 제 인성이 무너졌어요. 애가 어금니를 쓰지 않고 앞니로만 음식을 씹는 거예요. 태어나서 그때까지 누가 밥 먹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앞니만 쓰다 보니 구강도 뒤틀려 있었어요. ‘ㅊ’을 ‘ㅅ’처럼 발음했죠. 우리 성인 ‘차’를 말할 때 ‘샤’라고 했어요. 이미 6년간 밴 습관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았죠. 매일 야단치고, 혼내고…. 그래서 혜인이의 마음을 더 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차 이사장은 혜인양을 보육원으로 돌려보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내 유현미(61)씨가 차 이사장의 생각을 들은 다음날 혜인양을 호적에 올렸다. 이미 맺은 인연, 절대로 끊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차 이사장은 “우리 가족은 사실상 아내가 일군 가정”이라며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 덕에 나와 딸들이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차녀 혜윤양은 생모가 기를 여건이 안 돼 보육원에 위탁한 아이였다. 보육원은 정기적으로 며칠씩 아이들을 일반 가정에 가족체험을 보내는데, 혜윤이가 차 이사장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4박5일, 다음에는 한 달가량 차 이사장 집에 머물렀던 혜윤이는 “여기서 살겠다”고 떼를 썼다. 생모가 반대했지만 혜윤이가 먼저 차 이사장 집으로 입양을 보내 달라고 졸랐다. 생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혜윤이도 차 이사장 가족이 됐다.●돌아가면서 사춘기… 행복 찾는 길 열어줄 뿐 “딸들 나이 차가 크지 않다 보니 사춘기도 돌아가면서 겪더라고요. 첫째 아이를 간신히 넘기니 곧바로 둘째가 오고….” 특히 혜인양이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공부하라는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고, 그럴 때마다 혜인양은 뛰쳐나갔다. 엄마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원망했다. 결국 고등학교 과정을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제가 혜인이를 키우면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달았어요. 사랑은 인내하는 것. 사랑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 혜인이가 우리 원하는 대로만 하길 바랐더니 더 반발이 컸던 거죠. 그 시기를 넘기니 혜인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검정고시를 통과해 고교 졸업장을 땄고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어요. 저도 혜인이가 무엇을 하든,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입니다.” 여기서 차 이사장은 동네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인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그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동네에 작은 분식집을 차렸다. 아내와 함께 4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하며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자영업을 하면 열에 아홉이 망한다지만, 친구 분식집은 동네 명소가 됐다. 매일 새벽 시장에 나가 직접 식재료를 고르고, 인심 좋게 장사한 덕분이다. 어느덧 부모가 된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와 “아빠, 엄마도 너희 나이 때 이 집에서 떡볶이 먹었다”고 회상하는 곳이다. 장성한 자녀들이 “이제 그만 쉬시라”고 권해도 “아직 정정하다”며 오늘도 가게 문을 연다. “구청장이 돼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오랜만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죠. 가방끈 길게 만들어서 월급 많이 주는 직장 다니는 게 행복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우리 고향에서도 그런 사람은 별로 도움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시절 공부 잘해 명문대 간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죠. 구청장에게 동네를 위해 ‘일 잘하라’고 따끔한 충고를 날리는 이는 중학교만 나와서 분식집을 하는 그 친구뿐입니다. 저도 딸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요. 행복을 찾는 길만 열어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늙은 아빠 부끄럽게 생각 않고 인정해 줘 뭉클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혜주양은 여전히 차 이사장에게 큰 기쁨을 안기는 존재다. 다음달에 중학교를 졸업하는 혜주양은 며칠 전부터 차 이사장에게 졸업식에 꼭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차 이사장이 학교에서 인기 스타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차 이사장이 구청장 시절 혜주양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구청장 아빠’라는 말에 신기해하며 앞다퉈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세 딸 키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요?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혜주가 네다섯 살쯤 됐을 때 과자를 사 주려고 슈퍼마켓에 데려갔죠. 주인이 저를 보더니 ‘할아버지가 맛있는 것 사 줘서 좋겠네’라고 했어요. 그때 혜주가 큰 소리로 ‘할아버지 아니에요. 우리 아빠예요’라고 외쳤습니다. 이미 머리가 허옇게 센 저를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빠로 인정해 줬던 그 순간, 얼마나 혜주가 고맙고 예쁘던지…. 딸들이 순간순간 안겨 준 그런 소소한 기쁨이 진정한 행복이에요.” 차 이사장은 아무리 바빠도 혜주양 졸업식에는 꼭 갈 생각이다. 다만 혜주양을 안달나게 하려고 튕기는 척하고 있다. 지금은 구청장이 아니라서 혜주양 친구들이 실망할까 걱정이다. 그는 “구청장 시절엔 업무에 치여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며 “아이들에게 항상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사랑은 핏줄 아닌 내 곁에 있는 사람 “목사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신학을 공부했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머릿속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입양한 세 딸을 통해 가슴으로 깨달았죠. 피가 통하느냐 아니냐는 사랑을 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곧 사랑이었어요.” 비혼과 비출산 트렌드가 점차 확산되는 요즘을 차 이사장은 어떻게 바라볼까. “젊은 사람들이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거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 중장년층의 잘못이 크죠.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상의 기쁨과 행복, 감동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야 풍성해지는 법입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가슴으로 낳은 딸 셋, 내 인격의 바닥을 마주했습니다

    가슴으로 낳은 딸 셋, 내 인격의 바닥을 마주했습니다

    느지막이 눈물 콧물 다 뺐다… 환갑 넘어 들춰보는 ‘공개입양일기’차성수(63)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은 스스로를 이 시대 지식인이자 교양인이라고 자부했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그는 학생 운동에 몸담으며 서울 구로공단 노동야학 교사로 활동했다. 서른두 살에 동아대 교수로 임용됐고 2007~08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냈다. 2010년부터 8년간 서울 금천구청장을 연임했다. 재작년부턴 자산 30조원을 굴리는 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배운 사람의 여유랄까요. 저는 제 인격이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웬만한 일에는 화내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거든요. 그런데 입양한 세 딸을 키우면서 제 인격의 바닥을 봤어요. 보육원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냈던 딸들이 나와 아내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외면했을 때, 사춘기 시절 입양아라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거세게 반항했을 때…. 저는 인간의 온갖 추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나약한 한 사람에 불과했어요.” ●맏아들 다 키우니… 50세에 하늘이 맺어 준 인연 14일 서울신문이 서울 여의도 차 이사장 집무실을 찾은 건 그가 ‘가슴으로 낳은’ 세 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차 이사장 슬하 네 남매 중 맏아들 남준(33)씨를 제외한 혜인(19)·혜윤(18)·혜주(16)양은 공개 입양한 자녀다. 벌써 14년 전인 2006년 두 돌을 좀 넘긴 막내 혜주양을 첫 입양했다. 차 이사장이 우리 나이로 쉰을 맞았을 때다. 지천명을 맞아 자신을 바꿔 보기로 결심했다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꿔 보자며 입양을 선택했다. 젊은 시절 함께 시민운동을 했던 아내와 “언젠가 입양한 자녀를 길러 보자”고 했던 약속을 뒤늦게 지킨 것이다. 이듬해 혜주양의 언니를 만들어 주기 위해 혜인양을 가족으로 맞았다. 더는 입양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2008년 혜윤양과도 하늘이 맺어준 것처럼 인연이 닿았다. “경북 김천에 있는 보육원이었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내려갔는데 혜주를 처음 보는 순간 한눈에 들어왔어요. 마치 제가 낳은 아이 같았죠. 혜주가 아내와는 금방 가까워졌지만 저는 보기만 하면 울더군요. 그러다 한 100일쯤 지났나….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 꼬옥 안아 주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입양한 혜주양은 딸 키우는 재미를 쏠쏠하게 알려줬다. 하지만 여섯 살 때 데려온 장녀 혜인양은 달랐다. 혜주양과 빨리 가까워지라고 같은 보육원에서 입양했는데, 이미 유아기를 넘어서인지 쉽게 차 이사장 가족에 녹아들지 못했다. 마치 희로애락의 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가족들의 눈치만 봤다. “혜인이를 키우면서…. 제가 참…. 제 인성이 무너졌어요. 애가 어금니를 쓰지 않고 앞니로만 음식을 씹는 거예요. 태어나서 그때까지 누가 밥 먹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앞니만 쓰다 보니 구강도 뒤틀려 있었어요. ‘ㅊ’을 ‘ㅅ’처럼 발음했죠. 우리 성인 ‘차’를 말할 때 ‘샤’라고 했어요. 이미 6년간 밴 습관이라 쉽게 고쳐지지 않았죠. 매일 야단치고, 혼내고…. 그래서 혜인이의 마음을 더 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차 이사장은 혜인양을 보육원으로 돌려보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내 유현미(61)씨가 차 이사장의 생각을 들은 다음날 혜인양을 호적에 올렸다. 이미 맺은 인연, 절대로 끊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다. 차 이사장은 “우리 가족은 사실상 아내가 일군 가정”이라며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 덕에 나와 딸들이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차녀 혜윤양은 생모가 기를 여건이 안 돼 보육원에 위탁한 아이였다. 보육원은 정기적으로 며칠씩 아이들을 일반 가정에 가족체험을 보내는데, 혜윤이가 차 이사장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4박5일, 다음에는 한 달가량 차 이사장 집에 머물렀던 혜윤이는 “여기서 살겠다”고 떼를 썼다. 생모가 반대했지만 혜윤이가 먼저 차 이사장 집으로 입양을 보내 달라고 졸랐다. 생모가 원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혜윤이도 차 이사장 가족이 됐다.●돌아가면서 사춘기… 행복 찾는 길 열어줄 뿐 “딸들 나이 차가 크지 않다 보니 사춘기도 돌아가면서 겪더라고요. 첫째 아이를 간신히 넘기니 곧바로 둘째가 오고….” 특히 혜인양이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공부하라는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났고, 그럴 때마다 혜인양은 뛰쳐나갔다. 엄마가 자신을 학대한다고 원망했다. 결국 고등학교 과정을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제가 혜인이를 키우면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깨달았어요. 사랑은 인내하는 것. 사랑은 소유하는 게 아니라는 것. 혜인이가 우리 원하는 대로만 하길 바랐더니 더 반발이 컸던 거죠. 그 시기를 넘기니 혜인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검정고시를 통과해 고교 졸업장을 땄고 지금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어요. 저도 혜인이가 무엇을 하든, 원하는 대로 해 줄 생각입니다.” 여기서 차 이사장은 동네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고향인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그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동네에 작은 분식집을 차렸다. 아내와 함께 4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하며 두 자녀를 훌륭하게 키웠다. 자영업을 하면 열에 아홉이 망한다지만, 친구 분식집은 동네 명소가 됐다. 매일 새벽 시장에 나가 직접 식재료를 고르고, 인심 좋게 장사한 덕분이다. 어느덧 부모가 된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려와 “아빠, 엄마도 너희 나이 때 이 집에서 떡볶이 먹었다”고 회상하는 곳이다. 장성한 자녀들이 “이제 그만 쉬시라”고 권해도 “아직 정정하다”며 오늘도 가게 문을 연다. “구청장이 돼 고향으로 돌아오고 나서 오랜만에 그 친구를 다시 만났죠. 가방끈 길게 만들어서 월급 많이 주는 직장 다니는 게 행복이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우리 고향에서도 그런 사람은 별로 도움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시절 공부 잘해 명문대 간 다른 친구들은 모두 고향을 떠났죠. 구청장에게 동네를 위해 ‘일 잘하라’고 따끔한 충고를 날리는 이는 중학교만 나와서 분식집을 하는 그 친구뿐입니다. 저도 딸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아요. 행복을 찾는 길만 열어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늙은 아빠 부끄럽게 생각 않고 인정해 줘 뭉클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혜주양은 여전히 차 이사장에게 큰 기쁨을 안기는 존재다. 다음달에 중학교를 졸업하는 혜주양은 며칠 전부터 차 이사장에게 졸업식에 꼭 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차 이사장이 학교에서 인기 스타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것이다. 차 이사장이 구청장 시절 혜주양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친구들이 ‘구청장 아빠’라는 말에 신기해하며 앞다퉈 사인을 받았다고 한다. “세 딸 키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요?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게 떠올라요. 혜주가 네다섯 살쯤 됐을 때 과자를 사 주려고 슈퍼마켓에 데려갔죠. 주인이 저를 보더니 ‘할아버지가 맛있는 것 사 줘서 좋겠네’라고 했어요. 그때 혜주가 큰 소리로 ‘할아버지 아니에요. 우리 아빠예요’라고 외쳤습니다. 이미 머리가 허옇게 센 저를 다른 사람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빠로 인정해 줬던 그 순간, 얼마나 혜주가 고맙고 예쁘던지…. 딸들이 순간순간 안겨 준 그런 소소한 기쁨이 진정한 행복이에요.” 차 이사장은 아무리 바빠도 혜주양 졸업식에는 꼭 갈 생각이다. 다만 혜주양을 안달나게 하려고 튕기는 척하고 있다. 지금은 구청장이 아니라서 혜주양 친구들이 실망할까 걱정이다. 그는 “구청장 시절엔 업무에 치여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 했다”며 “아이들에게 항상 빚을 지고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사랑은 핏줄 아닌 내 곁에 있는 사람 “목사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신학을 공부했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머릿속으로는 알 수 없었던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입양한 세 딸을 통해 가슴으로 깨달았죠. 피가 통하느냐 아니냐는 사랑을 하는 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곧 사랑이었어요.” 비혼과 비출산 트렌드가 점차 확산되는 요즘을 차 이사장은 어떻게 바라볼까. “젊은 사람들이 아이 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라는 거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 중장년층의 잘못이 크죠.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이상의 기쁨과 행복, 감동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은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야 풍성해지는 법입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Focus人] “사진의 끝을 보고 싶어요”, 고등학생 자동차 사진작가 백건우

    [Focus人] “사진의 끝을 보고 싶어요”, 고등학생 자동차 사진작가 백건우

    “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있지만 사진이 제 직업이 된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하고 있는 건 지금 하는 거고, 나중에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어렸을 때 국어공부 안 하고 자동차만 가지고 논다고 부모님께 많이 혼났지만 그런 게 자동차 사진을 찍게 된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지난해 5월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딩입니다. 찍을 차가 없습니다. 슬픕니다… (중략)’란 글을 올린 고등학생 자동차 사진작가 백건우(18)군. 화제의 발단이 된 건 글과 함께 올린 직접 찍은 각종 자동차 사진들로 고등학생이 취미로 찍은 사진이라고 보기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실력 때문이었다. 이후 언론과 자동차 회사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게 됐다. 카메라 협찬은 물론 BMW, 시트로엥, 재규어, 랜드로버 등 유명 자동차 회사들과 슈퍼카를 가진 차주들의 촬영 의뢰가 쏟아졌다. 이젠 떳떳하고 당당하게 ‘찍을 수 있는 차들’이 생기게 됐다. “하교하는 어느 날 학교 정문 앞에 7억 정도 나간다는 하얀색 롤스로이스가 있었어요. 기사 분께서 직접 차 뒷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그 차를 타고 바로 촬영하러 갔던 기억이 생생해요. 제가 찍은 첫 고급차였죠.” 하지만 공무원인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부모님과의 마찰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공부하는 척’ 무던히도 애썼다. 독서실 간다고 말하고 자동차 행사장으로 가기도 했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멀리 이천까지 갔다가 집에서 새벽까지 보정작업을 하기도 했다. 열심히 돈 벌어서 부모님께 벤츠 한 대 사드리고 싶다는 백군. 최근 수능을 치르고 사진관련 학과에 입학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어 사진의 끝을 보고 싶다고 했다. 지난 19일 백군의 주요 촬영장소 중 한 곳인 파주 출반단지에서 그를 만났다.(Q) 많은 피사체 중, 왜 자동차였는지유치원 때부터 자동차를 너무 좋아했고 점점 크면서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었어요. 재벌집이 아니라 차를 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모형차를 사서 모았어요. 모형차도 생각보다 가격대가 높아 그냥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찍기 시작했죠. 찍은 사진들을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Q) ‘사진 찍어드립니다’란 글로 유명해졌다. 올리게 된 계기는모형자동차 사서 찍다보니 내가 연출할 수 있는 데 한계를 느꼈어요. 그냥 진짜 자동차를 찍고 싶었죠. 어린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면허도 없고 중요한 차도 없고 그래서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게 된 거예요. (Q) 하굣길에 찾아온 첫 고급차 롤스로이스의 추억주말엔 학원을 다녀서 시간이 없고, 주로 평일 오후에 사진 작업을 해요. 그래서 학교 끝나고 바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루는 학교 끝나고 애들이랑 우르르 나오는데 하얀색 롤스로이스가 서 있더라고요. 차주 분이 직접 오시지 않고 기사분이 오셔서 차 뒷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그거 타고 바로 갔던 기억이 생생하게 나요. 7억 정도 나간다고 들었는데 제가 찍은 제일 좋은 첫 차였죠.(Q) 카메라도 지원 받았는데사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나서 생각보다 반응이 빨리 왔어요. 여러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 중 니콘코리아에서 연락 와서 D850 카메라를 협찬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그전까진 니콘 중고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사진에서 한계점도 많이 보였고, 굉장히 열악한 조건이었죠. 하지만 전 제 사진이 아직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이런 좋은 카메라를 받아도 되는지 걱정됐어요. 이 카메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드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금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Q) 이렇게까지 화제가 될 줄 예상했는지완성된 사진을 올릴 땐 별다른 생각 없이 올렸죠. 무심코 던진 돌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저도 신기했어요. 처음엔 ‘왜 저러나’라고 의아해 했죠. 많은 분들이 사진을 보셨고 기자 분들, 여러 회사들에서 전화가 왔어요. 개인적으로 기분은 좋았는데 걱정도 많았어요. 회사와 작업을 하게 되면 결과물을 어느 정도 보장해줘야 했기 때문이죠. 저 혼자 찍는 경우엔 상황이 안 좋아서 캔슬하거나, 로케이션 문제로 포기할 실패할 때가 많았지만 회사와 연결돼 찍는 건 상황이 좀 다른 거죠.(Q) 카스파터도 해봤는데 어떤 한계점을 느꼈는지카스파터(car spotter)는 강남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길거리의 차들을 찍는 분들을 말해요. 강남 도산대로 같은 곳을 지나다니는 슈퍼카 같은 좋은 차들을 줌렌즈로 당겨서 찍어 SNS에 올리죠. 저도 그런 취미를 가지고 있었긴 하지만 오래하진 않았어요. 그렇게 찍다보면 차주도 싫어하고 차 위치도 내 마음대로 바꾸지 못하고 한계점이 많잖아요. 그래서 글을 올려서 좋은 시승차도 받아 자유롭게 찍었죠. 지금은 제가 생각하는 걸 맘대로 찍고 올릴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Q) 수험생을 둔 부모님의 반응은부모님은 처음에 너무 싫어하셨어요. 조금 있으면 기말고사인데 공부해야지 어딜 나가느냐고. 그래서 부모님 몰래 나간 적도 많아요. 독서실 간다고 하고 자동차 행사장에 가기도 하고요. 촬영할 시승차가 아파트 주차장에 있어도 모른 척하고 엄마가 집에 올라가면 그때 나가기도 하고. 최대한 부모님과의 마찰을 피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Q) 수업과 사진을 어떻게 병행했는지학교 생활하면서 동시에 촬영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카메라를 들고 학교 간다는 거 자체가 어려운 일이잖아요. 최대한 잠을 안자고 보정하기도 하고. 한번은 레인지로버란 차를 촬영했는데 가방은 야간자율학습교실에 놓고 화장실 간다고 카메라 챙겨서 학교 앞에 온 차를 타고 경기도 이천까지 갔어요. 저녁까지 촬영하고 다시 학교에 몰래 들어갔죠. 야자(야간자율학습) 하는 척 하다가 밤 10시에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껜 야자했다고 하고 방에 들어가서 노트북으로 작업하기도 했죠. (Q) 가장 기억에 남는 차모델이 연예인이면 일반인이 찍어도 잘 생기게 나오잖아요. 슈퍼카처럼 좋은 차들만 찍는 분들이 있는데 비슷한 이유인 거 같아요. 근데 저는 평범한 차들을 좀 특별하게 보이게 해주는 게 더 재밌어요. 그래서 가장 기억에 남는 차가 가장 고생하면서 찍었던 벤츠스프린터란 종류의 차예요. 사실 차가 크면 굉장히 불편해요. 중간에 갑자기 세우기도 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 차를 찍기 위해 주차장에 들어가려다 방지봉에 차 지붕이 걸려서 경비 아저씨께 혼나면서 촬영했어요.(Q) 완성 시간과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차 종류마다 다르지만 1장에 4~5시간, 차 한 대 완성하는 데는 며칠 정도 걸려요. 중점을 두는 부분은 차가 주인공이 돼서 배경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거죠. 차만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배경만 너무 튀어서도 안 돼요. 그 중간의 타협점을 잘 잡아야 하는데 셔터를 누르다보니 터득되더라고요. 전문적으로 사진 보정프로그램을 배운 적이 없어서 프로그램의 기능을 알려주는 시스템을 보고 계속 따라했던 거 같아요. (Q) 좋은 차들 찍으면서 어떤 점이 좋았는지좋은 차들을 타면 정말 좋아요. 대부분 교외에서 촬영하다보니 이동거리가 하루 100킬로미터가 넘는 경우가 있어요. 작고 불편한 차보다는 아무래도 크고 좋은 게 좋은 거 같아요. 하지만 결과물이 중요하니깐 크게 상관하지 않는 편이에요. 차주 분들의 차나 시승차를 타고 강원도, 충청도 멀리는 경상도까지 가는데 휴게소에서 쉬면서 얘기도 하고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작업하면서 가기도 하고 그래요. 촬영한 번 갈 때마다 집 떠나 여행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Q) 어리다고 무시한 적은 없었는지직접 촬영하면서 들은 얘기는 아닌데, 어떤 언론매체랑 인터뷰 할 때, ‘고3인데 이렇게 나오시면 안 되죠“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사실 전 제가 할 거 다 하고 나온 건데 학생이란 신분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신 분들이 꽤 있었던 거 같아요. 제가 첫 촬영할 때가 18살이었는데 어른들이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어린놈이 뭘 아냐고’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밖에 없었어요. 이런 것들도 모두 사회생활의 한 부분이니깐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도 여전히 을의 입장이지만 그분들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맞춰 드리는 거 같아요.(Q) 사진 전해주고 보람 느낀 적대부분 거의 좋아하셨던 거 같아요. 사진 찍을 때나 보정할 때도 ‘최대한 실망시켜 드리지 말자’, ‘역시 이 친구 잘 찍는다’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어요. 한 차주 분은 제가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거실에 걸어두고 싶다고 사진 해상도를 높게 해서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그분이 제가 찍은 사진을 거실에 걸어놓고 인증샷까지 찍어 보내주셨어요. 한동안 그 사진이 제 카톡 배경사진이 됐었죠. 사진 찍는 사람으로서 최고의 찬사라고 생각했고 너무 좋았죠. 사진을 받는 사람들한테 기억 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Q) 일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회사와 일하게 되면 아무래도 마감의 압박이 있죠. 한 번은 심한 감기로 응급실에 입원한 적이 있어요. 근데 입원한 그 주가 마감 주였어요. 마감 이틀 정도 남겨 놓은 상태에서 링거 꽂고 보정해서 완성한 기억이 있어요. (Q) 본인이 생각하는 자동차 사진의 매력은자동차는 인물이나 다른 피사체들과 달리 확실히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은 거 같아요. 그 큰 피사체를 어떻게, 어디에 배치해서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사진의 완성도와 분위기가 달라져요. 모두 제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있어 좋아요. (Q) 도전해 보고 싶은 사진이 있다면제가 인물사진을 잘 못 찍어요. 친구들은 제가 사진 찍는 걸 잘 아니깐 저한테 찍어달라고 하는데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왜 이따위로 찍느냐”고 놀리기도 해요. 인물 사진 찍는 실력을 키워 보고 싶어요. 패션사진도 찍고 싶고요. (Q)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지금은 제가 좋아하는 사진을 계속 찍고 있지만 사진이 제 직업이 된다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하고 있는 건 지금 하는 거고. 나중에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 모르잖아요. 최대한 여러 일을 해보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지금 무슨 일을 하던 미래에 어떤 식으로 도움 될 수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거든요. 어렸을 때 국어공부 안 하고 자동차만 가지고 논다고 부모님한테 많이 혼났지만 그런 게 제가 자동차 사진을 찍게 된 원동력이 된 거 같아요. (Q) 부모님께 하고 싶은 말진짜 저를 안 버리고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도 안 쫒아내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열심히 돈 벌어서 벤츠 한 대 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제가 말 안하고 많이 돌아다녀서 많이 서운하셨을 텐데 이 자리를 빌려 많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 앞으론 조금만 섭섭해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이번에 대학도 사진학과에 입학했어요. 제가 계획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보다 전문적인 사진 지식을 배워서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찍고 싶어요. 사진의 끝을 본 다음에, 사진 찍는 일이 됐든 다른 일이 됐든 그때 가서 시도해 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제가 어떤 사진을 찍든 계속해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장소협찬: 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sungho@seoul.co.kr    
  • 인도 경찰, 집단 성폭행범 넷 현장검증 도중 달아나자 모두 사살

    인도 경찰, 집단 성폭행범 넷 현장검증 도중 달아나자 모두 사살

    인도 경찰이 지난달 27일(이하 현지시간) 여자 수의사를 집단 성폭행하고 시신에 불을 질러 태운 네 명의 남성 용의자들이 6일 현장 검증 도중 달아나려 해 사살했다고 밝혔다. 남부 텔랑가나주 하이데라바드 경찰은 이날 아침 현장 검증을 위해 용의자들을 범행 장소에 데려갔는데 용의자들이 달아나거나 경관의 총을 빼앗으려 해 할 수 없이 사살했다고 BBC 텔루구에 밝혔다. 경관 둘도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다음날 숯검댕이처럼 검게 탄 그녀의 유해가 발견되자 하이데바라드 경찰서 앞에 수천 명이 몰려 격렬하게 항의하는 등 전국에서 거센 항의 시위가 이어져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희생된 27세 여성은 사고 당일 저녁 6시쯤 의사를 만나려고 모터바이크를 타고 집을 떠났는데 타이어가 펑크 났다고 가족에게 전화로 알렸다. 한 탱크로리 운전자가 도와주겠다고 접근했고 그녀는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종적이 묘연해졌다. 가족들이 백방으로 찾아다녔으나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검게 탄 채로 다음날 아침 우유배달부에 의해 발견됐다. 이와 관련 하이데바라드 경찰서는 초동 수색에 미온적이었던 경관 셋을 정직 처분했다. 전날에는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에 사는 23세 여성이 법원에 성폭행 피해 사실을 증언하려고 출두하던 도중 가해자 둘이 포함된 남성 다섯 명에게 끌려가 불 태워져 중상을 입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여성은 지난해 12월 12일 두 남성에게 총이 겨눠진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올 3월 고소했는데 이날 아침 법원 출두를 위해 열차역으로 가는 길에 다섯 남성들에게 근처 들판으로 끌려갔다. 남성들은 그녀의 몸에 기름을 끼얹은 뒤 불을 붙였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심각한 화상을 입고 근처 러크나우 병원에서 화상의 90% 정도를 치료받은 뒤 에어 앰뷸런스로 수도 델리의 병원으로 후송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나 충격적인 것은 피해 여성이 고소한 직후 체포됐던 두 남성 용의자들이 지난 주 모두 보석으로 풀려나자 이같은 보복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경찰은 다섯 남성 모두를 체포해 구금했다고 밝혔다. 이날 끔찍한 범행이 자행된 곳은 운나오 지구란 곳이었는데 지난 7월 집권당 BJP 의원이 다른 여성을 성폭행한 곳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의 피해 여성이 집권당 의원의 실명을 공개하며 고발한 뒤 자동차 사고로 중상을 입은 사건을 살인 사건으로 보고 다시 수사하고 있다. 사고 당시 차 안에 함께 타고 있던 이 여성의 이모 둘이 목숨을 잃었고, 변호사 역시 부상을 입었다. 인도에서는 2012년 수도 델리에서 한 젊은 여인을 여러 남성이 집단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뒤 여성을 상대로 한 흉악한 성범죄가 전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다. 최근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인도 경찰에 등록된 성폭행 사건 수는 3만 3658건으로 하루 92건씩 발생한 셈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우타르 프라데시주는 인도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한 주이며 여성에 대한 범죄를 제대로 기록조차 안하는 주로 악명 높다. 2017년에만 4200건 이상 보고돼 가장 발생 빈도가 높다. 특히 주 정부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BJP 당이 완벽하게 장악한 주인데도 거듭되는 성폭행으로부터 여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자당 의원을 보호하는 데 급하다는 이유로 야당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허지웅 눈물 “병의 재발 없이 계속 살 수 있다면...”

    허지웅 눈물 “병의 재발 없이 계속 살 수 있다면...”

    방송인 겸 작가 허지웅이 눈물을 보여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난 29일 허지웅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아무리 지독한 악플러도 이해할 수 있지만 윤리적·자본적 헤게모니를 모두 거머쥘 수 있었고 그래서 영원히 은퇴하지 않을 전 세계 유례없는 한국의 386과 그의 그루피들에 대해 유감이 많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과 함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허지웅이 상의를 입지 않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가수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 그는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한참을 흐느꼈다. 이후 허지웅은 “손잡고 가보자”라는 구절에서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자신의 뺨을 치며 오열했다. 이어 그는 “병의 재발 없이 계속 살 수 있다면 젊은 세대의 본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난 그게 너무 절실했는데 그런 386들은 사기만 쳤다”며 “한국 역사상 최고의 꿀을 빨았으면서도 세상 피해자인 척 하느라. 부동산이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상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 손잡고 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이라며 “가슴에 흉터는 암 조직검사 자국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전했다. 한편, 허지웅은 지난해 혈액암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최근 MBC ‘나혼자산다’, ‘라디오스타’ 등에 출연하며 방송 활동을 재개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척추주사로 요통. 좌골신경통 통증 조절 가능“

    “척추주사로 요통. 좌골신경통 통증 조절 가능“

    통증을 조절하는 것은 환자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특히 요통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만성 통증으로 많은 시간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는 고질 중 하나다. 척추질환으로 인한 통증은 척추주사요법을 통해 통증을 조절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적절한 보존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조절되지 않는 매우 심한 요통과 좌골신경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이영준, 이준우 분당서울대병원 영상의학과 교수팀이 심한 요통과 좌골신경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통증 원인과 영상의학적인 소견을 분석하고, 이 환자들에서 척추주사요법의 효과를 규명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인 ‘Neuroradiology’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2017년 한 해 동안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척추 관련 통증으로 인해 척추주사 주입을 시행 받은 환자들 중, 통증척도 10점 만점에 10점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요통 및 좌골신경통 환자 38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환자들을 연령별로 비교해보았을 때, 50세 이전의 젊은 연령층에서는 추간판탈출증(추간판이 돌출되어 요통 및 신경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 50세 이후에서는 척추협착증(척추관 및 추간공이 좁아져 요통 및 신경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 가장 흔한 원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35세 이하 환자들은 모두 추간판탈출증으로 통증을 호소했고, 압박 골절로 인한 통증은 65세 이상의 고령 환자에게서만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다. 주목할 점은 약 44.2%의 환자가 척추주사요법 실시 후 통증 척도 점수가 30% 이상 감소했으며, 6개월 이내에 수술로 이어지는 경우도 주사요법에 반응을 보이는 환자들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환자들에 비해 통계적으로 5.8%와 16.8%로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났다. 이영준 교수는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그 동안 임상적인 관점에서 소견을 기술한 제한적인 연구만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환자들의 임상적, 영상의학적 소견과 치료의 효과를 함께 살펴본 연구로서, 극심한 요통과 좌골신경통을 겪는 환자들에게도 척추주사요법이 통증을 완화시키는데 효과적인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연구”라고 말했다. 이준우 교수는 “척추질환은 심한 정도가 아니라면 비수술적 치료와 생활습관 관리로 호전이 가능하다”며 “척추 관련 통증의 치료 경향이 점차 더 보존적인 형태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적 치료에 앞서 척추주사요법을 먼저 시도해 봄으로써 통증완화를 기대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의진의 교실 풍경] 무례한 사람들

    [이의진의 교실 풍경] 무례한 사람들

    한 여학생이 달려온다. 손가락으로 남학생 한 명을 가리키며 울먹거린다. 샘, 쟤가 저보고 눈이 짝짝이라 이상하게 생긴 데다 돼지라고 놀려요. 남학생을 바라보며 사실을 확인한다. 정말 그렇게 말했니? 사실을 말한 건데, 왜요? 그건 사실이 아니라 ‘평가’란다. 어느 누구도 외모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평가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아. 예쁘다고 칭찬하는 건 되고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하는 건 안 되나요? 설령 예쁘다고 말한다 해도 평가이기 때문에 안 되는 거야. 그건 예의가 아니지. 남학생은 불만스럽게 입을 내밀었지만 더이상 말하지는 않는다. 늦은 밤 택시를 탔다. 회식에 같이 참석했던 분이 손사래를 치는데도 총무로 고생했다며 구태여 배웅을 하신다. 차가 출발하자 기사가 나를 슬쩍 돌아본다. 짐짓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기사가 다시 나를 돌아보며 결국 한마디 한다. 주부가 늦은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가셔도 되나요? 밤 11시였다. 나를 제외한 남자들은 여전히 회식 자리에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기사가 다시 말한다. 남자들하고 노는 게 재미있지요? 피곤에 잠식당하는 상황에서도 천천히 느릿느릿 대답했다. 직장 동료가 남자인가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기사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소 붐비는 퇴근 시간 전철 안. 할아버지 한 분이 좀 취한 듯 몸을 흔들며 탄다. 주변을 둘러본다. 노약자석까지는 좀 떨어진 위치다. 어린 여학생 앞에 서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싸가지가 없다며, 옛날에는 안 그랬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른다. 앉아 있던 여학생이 황급히 일어난다. 그 자리에 할아버지가 앉는다. 바로 옆의 건장한 남자들은 눈을 감고 자고 있다. 할아버지가 말하는 싸가지는 어린 여학생과 건장한 남자에게 다르게 적용된 셈이다. 가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무례함, 예의 없음을 온몸으로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예의 없음’이 예외 없이 약한 사람, 사회적 소수자를 향해 달려가는 걸 본다. 자기보다 힘이 세거나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에게도 일관되게 표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열하다. 특히 만만한 대상을 찾아다니는 이러한 무례함은 연예인을 표적으로 하는 인터넷 댓글창이 좋은 무대가 된 지 오래됐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라도 한번 돌기 시작하면 떼로 몰려간다. 남들과 다르다거나 좀 튄다고 생각되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말들을 쏟아낸다. 얼마 전 용감하고 당당했던 배우이자 가수가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연예인에게 별 관심 없던 나조차 가끔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그녀를 둘러싼 많은 논란을 접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료 배우를 ‘선배님’이라 부르지 않았다고, 속옷을 ‘제대로’ 챙겨 입지 않는다고 욕을 먹었다. 누군가는 그녀를 일컬어 관심을 끌기 위해 기행을 일삼는 ‘관종’이라 불렀다. 그녀에게는 늘 악성 댓글이 따라다녔고 악성 댓글과 루머 등으로 연예 활동을 잠정 중단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계 여성의 날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기꺼이 기념했고, ‘Girls Supporting Girls’(여자는 여자가 돕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었다. ‘관심을 끌기 위한 이상한 행동’으로 불리던 그의 시도들은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연대의 힘’이 되었던 거다. 그녀를 관종이니 뭐니 하며 이상한 여자 취급했지만, 그녀를 향해 수없이 퍼부어지던 악성 댓글과 루머는 사실 만만한 아이돌 출신 어린 여자에 대한 무례함과 폭력이었을 뿐이다. ‘튀는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함께 늙어 갈 수 있는 세상, 약자들이 표적이 돼 숨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 그리하여 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만들어 가는 사회를 꿈꾼다. 이런 미래를 위해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요즈음이다.
  • 국민 85% “사회갈등 심각”…세대·계층·젠더 대립 심화

    국민 85% “사회갈등 심각”…세대·계층·젠더 대립 심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갈등은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 줬다. 일반적인 여야 정당 간 갈등을 넘어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갈등이라는 것은 모든 집단과 사회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현상이며, 이러한 갈등의 존재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2019년 대한민국의 모습은 갈등을 해소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각자의 이익에 맞춰 갈등을 극대화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사실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이 심하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모르는 척하고 있다가 조 장관 임명을 계기로 새삼 놀란 척하는 상황이다. 이미 2013년 여론조사에서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85%였으며, ‘갈등이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2017년에 이르면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은 85.9%로 조금 높아졌지만, 반대로 ‘심각하지 않다’는 응답 비율은 0.6%로 확 낮아졌다. 모두가 모르는 척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갈등은 다층화해 심화하며 증폭된 것이다.●세대갈등 2002년 이후 대한민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갈등 가운데 하나는 세대 간 갈등이었다. 정치인의 고령층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계기로 시작된 세대 간 갈등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를 전후하면서 더욱 강하게 부각됐다. 정치적 노선을 둘러싼 대립에서 시작된 갈등은 점차 일상생활에서 보편화되고 있다. 젊은층은 고령층을 비하하는 표현들을 인터넷 공간에서 노골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반면 고령층은 유튜브의 최대 사용자로 떠오르면서 자신들만의 논리와 이해를 공고하게 확산하고 있다. 2015년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실시한 세대갈등의 심각성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1%가 세대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와중에 발생한 조 장관 임명은 그동안 하나의 세력으로 간주돼 왔던 청장년층 내부의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과도한 일반화라는 비판도 있으나 20대와 30대는 ‘586정치인’을 비롯한 기성세대들이 말과 다른 행동을 해 왔음을 새삼스럽게 인식하며, 숨겨 왔던 민낯이 드러난 것으로 간주하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비난의 대상이 된 586세대들은 언론의 편향성과 가짜뉴스를 비롯한 잘못된 정보에 경도된 과도한 비판이라는 입장을 보이며 젊은 세대를 질타했다. 세대갈등은 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각기 다른 세대 간의 갈등을 의미한다. 각 세대는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현재에도 다른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세대갈등은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세대갈등이 심해지고 상호 적대적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이해구조가 붕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동질성 및 공감대가 상실되면서 각 세대는 다른 세대들에 대한 증오감과 무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갈등이 악화된 것은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세대별로 전혀 다른 사회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2년 이후 30대와 40대의 입장에서는 복고주의로 인식될 만한 세력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해 반감이 커지는 것이 현실이다. 갈등을 빚고 있는 세대들이 공유하는 유일한 가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다. 청년층은 실업을, 중장년층은 조기 퇴직과 은퇴 이후를, 노년층은 빈곤을 걱정하고 있다. 모두가 미래는 현재보다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복지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 간 갈등은 전 지구적 현상이다. 과거에는 한 세대가 은퇴에 접어들면 그들이 점유하고 있던 일자리와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전됐지만, 21세기에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로 대표되는 혁신으로 인해 이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돼 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퇴직 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고령층은 빈곤으로 내몰리면서 높은 노령층 자살률이 나타난다. 세대마다 다른 세대를 비난하지만 그 내면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 대한민국 세대갈등의 본질이다. ●지역갈등 지역 간 갈등은 과거의 영호남 대결이 아닌 수도권과 지방의 대립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사실 수도권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지방에 연고를 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수도권에 거주하더라도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유사한 사고와 가치를 공유했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진행 중인 수도권 억제와 균형발전정책이 50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이들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타협을 통해 예산을 확보해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돼 왔다. 2019년 8월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거주하지만 이들은 정치적으로 뚜렷하게 차별화된 목소리를 내는 존재는 아니었다. 이러한 흐름은 점차 변화하면서 새로운 갈등 요소로 발전하고 있다. 수도권을 고향으로 생각하는 세대가 점차 증가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재원을 지방으로 이전해 주는 순환구조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당장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지방의 정치적 영향력 감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적 지형의 변화는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 확대로 연결될 것이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수도권을 누르면 지방이 성장한다’는 가정하에 이뤄진 50여년간의 실험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방의 정서에 공감하지 못하는 수도권의 젊은 세대들은 ‘지방은 공정성과 객관성이 부족한 동네’라거나 ‘지방에 예산을 투입해 봐야 낭비’라는 논리에 힘을 싣고 있다. 출퇴근길 ‘지옥철’과 만원버스에 시달려야 하는 이들로서는 수백명이 사는 섬들을 연결하는 연륙교 사업에 수천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반면 지방에서는 그동안 지방을 떠받쳐 왔던 주요 산업 및 기업의 쇠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위기감이 더 커지고 있다. 그동안 지방이 감내해 왔던 원자력발전소를 비롯한 많은 시설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논리와 더불어 중앙정부에 집중된 권한과 예산을 지방으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가속화하는 지방의 인구 감소로 발언의 힘은 약해지고 있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들이 수도권을 떠나지 않는다는 논리로 쉽게 무력화되면서 수도권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수도권과 지방은 서로에 대한 이해 수준이 낮아지고 있다. 이 때문에 수도권의 젊은층에 지방은 예산만 잡아먹는 효율성 없는 공간으로 간주된다. 또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간주되고 있다. 반면 지방은 기존의 수도권 억제와 더불어 지방에 대한 지원 강화를 더욱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도움을 주기보다는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견제하면서 갈등이 심화하는 초입에 서 있다.●젠더갈등 세대갈등과 지역갈등은 과거부터 존재해 온 것으로 인식되는 데 반해 남녀 간의 젠더갈등은 새로운 갈등으로 여겨진다. 젠더갈등은 20대를 중심으로 본격화되고 있으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그 폭이 넓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오랫동안 억압과 차별을 감내해 왔던 여성들이 기존의 사회구조에 대해 반발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 기존 사회체계의 수혜자였던 남성들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남성들 역시 거부감과 적대감을 보이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알파걸’로 자란 20대 여성은 대학 입학과 사회 진출 과정에서 겪는 차별로 인해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여성의 능력이 더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같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임금차별을 포함해 그동안 사회 통념적으로 요구되던 각종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이런 차별을 수용했다면, 지금의 20대는 이 상황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황의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이 지배적인 사회는 느리게 반응하거나 무시하곤 한다. 이러한 일을 겪으면서 20·30대 여성들은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에 저항하고 남성 자체에 대한 불신과 회의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이런 여성의 인식과 분노의 감정은 집단화된 목소리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은 과거 아버지 세대의 남성 우위 사회구조가 붕괴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과 의무는 그대로 존재해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이는 양성평등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이어지면서 여성이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인지에 관해 공격적 의문을 제기하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력단절 발생 이전 여성의 임금도 남성보다 약 19.8%가 낮다. 동일 학교 동일 학과를 졸업한 경우에도 17.4%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0대 남성들의 반발은 논리적 타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최근 발생하는 젠더갈등은 산업구조의 변화 그리고 최근 취업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1990년대생들의 독특한 인적구조가 겹치면서 더 증폭되고 있다. 중후장대형 산업이 쇠퇴하면서 과거 남성에게 독점되던 양호한 일자리가 감소했고, 남은 일자리를 둘러싼 여성과의 갈등이 격화했다.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들은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에 1990년대 여아 100대 남아 최대 140이었던 극심한 성비의 불균형이 겹쳐 문제가 증폭된다. 전통적인 성별 의무와 책임 그리고 여기에 따르는 권한은 붕괴하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개인’ 능력에 대한 인식과 인정은 미흡한 것이 젠더갈등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구조는 다양하고 갈등의 수준과 범위 역시 확대되고 있다. 갈등의 핵심에는 ‘저성장’이 자리잡고 있다. 성장률이 악화하면서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세대, 지역, 젠더 간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갈등의 해결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지만, 현재의 정치권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떨어진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갈등의 지속은 증오와 혐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으며, 포퓰리즘의 득세와 파시즘 발현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트럼프, 코키 로버츠 별세 소식에 “날 좋게 다룬 적이 없었다”

    트럼프, 코키 로버츠 별세 소식에 “날 좋게 다룬 적이 없었다”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그녀는 날 좋게 다룬 적도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지상파 ABC·CBS 방송과 공영 라디오 NPR 등에서 앵커우먼·해설위원 등으로 활약한 여성 원로 언론인 코키 로버츠가 17일(이하 현지시간) 7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뱉은 한마디다. 로버츠의 가족은 그녀가 유방암 합병증으로 투병해오다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뉴멕시코주 앨버커키를 떠나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로 향하는 에어포스원 기내에서 취재진에게 “하지만 유족에게 잘 지내라고 기원하고 싶다. 그녀는 프로였고 난 프로를 존중한다. 여러분도 많이 존경한다. 그녀는 진짜 프로다. 날 잘 다룬 적은 없지만 난 분명히 그녀를 프로로 존중한다”고 털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자신을 잘못 다룬 이벤트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은데 야후! 뉴스는 2015년 11월 로버츠가 대통령 선거를 예측한 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에서 언급하면서 로버츠의 이름을 ‘쿠키’로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전했다. 켈리앤느 콘웨이 백악관 고문도 트위터에 “친절했다. 그녀는 동의할 수 없는 일에도 동의하는 척했다. 잘 듣고 조언을 건네고, 참을성과 잠깐 멈출 줄 아는 지혜를 보였고 열심히 일했으며 믿음과 가족을 앞세웠다. 신의 은총 있길, 영면하라”고 애도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미셸과 난 별세 소식을 듣고 슬펐다”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기자란 직업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때 젊은 여성의 롤모델이었으며 변화하는 미디어 지형과 세계에 맞서 40여년을 늘 변함 없었으며 유권자들에게 우리 시대의 이슈를 알렸으며 모든 단계의 젊은 언론인에게 멘토 역할을 다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로라 부인도 공동 성명을 통해 “이제 더 이상 코키 로버츠가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슬프다. 고인은 재능있고 터프하며 공정한 기자로 수십년 동안 보도를 해왔다. 그녀의 열정을 존중하고 유머를 감사해 했다. 그녀는 친구가 됐다. 우리는 (아들) 스티브와 자녀들, 손주들이 찢어지는 심경일 것을 알며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코키 로버츠를 무척 좋아했고 존경했다. 그녀는 사람들과 정치를 잘 이해했다. 거의 반세기 가까이 미국 저널리즘에 하나의 기관처럼 자리잡았다. 터프하지만 공정했고, 통찰력이 있었으며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로 일관했다. 그녀가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추모했다. 고인은 1960년대 WNEW, KNBC 등 지역 방송국을 거쳐 40여년 전 ABC 방송에서 ‘데이비드 브랭클리의 디스 위크’에 비평가 패널로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제임스 골드스턴 ABC 뉴스 회장은 “로버츠의 관대함과 사려 깊은 행동, 날카로운 통찰력을 무척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츠는 NPR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NPR은 애도 성명에서 “코키 로버츠는 NPR 탄생의 산파였다. 그녀는 우리 시청자들의 뉴스 읽기를 이끌어왔다”고 추모했다. 로버츠는 의회 담당 특파원으로도 많은 기사를 썼다. 또 뉴욕타임스에서 발행한 여러 베스트셀러의 작가로도 명성을 떨쳤고 세 차례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캐피털 데임즈: 내전과 워싱턴의 여성들’ 등이 있다. 고인은 남편과 현직 기자인 아들 스티븐과 두 명의 다른 자녀, 여섯 명의 손주를 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젊은이들이 뭔들 못 하겠는가?/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

    [열린세상] 젊은이들이 뭔들 못 하겠는가?/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

    “혹시 너희들이 잘나서 여기 앉아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저 우연히 있는 집에서 태어났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라도 자식 위해 희생하는 부모를 만나 여기까지 온 줄 알고는 있느냐? 어디 가서 잘난 척할 생각 마라. 너희들은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1990년 봄 대학 국어 수업 시간. 흰 셔츠에 은발의 중년 교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행운에 속지 말라’며 죽비를 내리쳤다. 평생의 가르침이었다. 대한민국을 장악한 386세대 일부의 성공에 운의 역할은 지대했다. 권위주의 체제의 고도성장이 취업을 보장했고, 경제 위기에는 중간 관리자로 살아남아 세계화의 단물을 빨며 시장 권력을 장악했다. 불의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 자본을 독점하고는 정치ㆍ사회ㆍ문화 권력을 구축했다.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성공을 ‘개천의 용’ 스토리의 두 뼈대인 능력주의와 교육의 힘 덕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정의의 열망으로 충만했던 세대가 만들어 낸 오늘은 어떤가. 청소 노동자, 탈북민 모자, 젊은 비정규직은 여전히 시스템 실패로 더위에 배고픔에 사고에 죽임을 당한다. 이들은 죽어서도 선택적으로 상대를 비난하는 정치권의 재료로 이용당할 뿐이다. 미국의 능력주의는 허구라는 사회학자 스티븐 맥나미의 지적처럼 한국의 대학 교육도 불평등 재생산의 핵심 매개체라는 불온한 혐의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어떤가. 능력주의와 학력주의의 신화 속에 모든 것들을 갈아 넣고 쏟아부어도 결국 운 좋은 소수에게만 괜찮은 삶이 허락된 사회. 공공성이 철저히 파괴된 지대추구형, 승자독식형 능력주의 경제. 구체적으로 이철승과 정승국이 말하는 ‘한국형 위계질서’와 ‘이중노동시장’에서 불안정 노동자계급(precarious proletariat)으로의 추락 위험. 젊은이들의 공정성 요구는 능력주의가 분배의 기초 원리가 돼야 한다는 절박한 실존적 외침이다. 물론 능력주의가 완전한 해답은 아니다. 경제학자 벤 버냉키가 프린스턴대 졸업식에서 언급한 대로 능력주의는 타고난 건강과 재능, 집안의 정서적ㆍ경제적 지원을 포함한 수많은 측면에서 가장 운 좋은 사람이 사회에서 가장 큰 보상을 받는 제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그는 가장 운 좋은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일해 세상을 이롭게 하고 그들이 행운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책임을 가장 크게 질 때만 능력주의가 그나마 도덕적이고 정의로울 수 있다고 설파했다.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는 어떤가. 자칭 우파는 세습적 현존 질서와 승자의 기득권을 배타적으로 해석하고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한다. 제 자식들 일자리 청탁엔 한없이 관대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은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젊은이들을 기만한다. 자칭 좌파는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외치면서도 기득권 세력이 돼 불평등을 만끽한다. 제 자식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자원을 능숙하게 유용하면서도 다들 그런다. 이게 위법은 아니라며 뻔뻔하게 능청을 떤다. 능력주의의 형식적 최소 요건마저 무시되는 한국에서 능력주의가 허구라는 비판적 성찰은 그래서 사치스럽다. 이들은 젊은이들이 왜 분노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공정을 외치는 대학생들의 시위를 한쪽은 정치 선전의 장으로만 악용하고, 다른 쪽은 가짜뉴스에 낚인 특권적이고 이기적인 철부지들의 준동으로 폄하한다. ‘왜 청소 노동자를 위해서는 시위하지 않느냐’며 자신들이 책임지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젊은이에게 추궁하는 어른이란 얼마나 비루한가? 이런 염치없는 기성세대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이 반능력주의 대중선동세력의 포로가 될까 봐 아찔하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고 위험도 책임도 없이 한평생을 보낸 기성세대가 세계적인 저성장과 불확실성에 대응해 한국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단순한 구세대의 퇴장과 양보가 엄중한 환경 변화에 사회를 지탱할 근본적 해결책일까. 젊은이들이 나서야 한다. ‘모르겠다, 그런데 불이익은 싫다’는 냉소적ㆍ소극적 태도를 극복하고 ‘위험과 보상, 행동과 책임, 능력과 공과(desert)의 균형’이 작동하는 공정한 세상을 건설하라. 단군 이후 최고의 스펙을 갖춘 젊은이들이 뭔들 못 하겠는가? 역사는 그대들의 편이다.
  • 통합축제 새 지평 연 보성… 발굴 의병만 777명 ‘의향’ 알린다

    통합축제 새 지평 연 보성… 발굴 의병만 777명 ‘의향’ 알린다

    철쭉·서편제·다향 등 4개 축제 함께 개최 율포 활어잡기 페스티벌 새달까지 열려 비수기없는 사철 관광으로 지역 활성화 8년 간 못 풀었던 도시가스 공급도 해결 김철우(55) 보성군수는 전남 22개 시군 중 가장 젊은 자치단체장이다. 그러나 정치 경력이 풍부해 최연소 정치인이란 타이틀과 인연이 많다. 1998년 제3대 보성군의원에 출마해 전국 최연소 당선이란 기록을 썼다. 3선을 하며 5대에는 전·후반기 의장을 지낼 정도로 정치력을 발휘했다. 그는 의리와 뚝심의 정치인으로 불린다.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민당에 입당해 지금까지 32년간 민주당을 지키고 있다. 중앙당 부대변인,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해 중앙 인맥도 풍부하다. 김 군수는 지난해 취임 후 “꿈과 희망이 넘치는 보성을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녹차와 소리의 고장을 넘어 군민들이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군정을 펴나가고 있다. 오랜 정치 경험으로 상황 판단과 추진력이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김 군수는 부임 1년 동안 이전 군수들이 엄두도 못 냈던 걸쭉한 사업들을 해결해 지역 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고 있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심사 우대국) 한국 제외 조치에 따른 갈등과 맞물린 상황에서 예부터 충신열사가 많아 의향이라 불려온 ‘의병의 고장’ 알리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지난 5월 통합 페스티벌 관광객 60만여명 보성군은 축제를 통합해 새로운 대한민국 축제 패러다임을 만들었다고 20일 밝혔다. ‘사계절 비수기 없는 지역’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시도로 지역축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년 5월 봄철 축제 통합페스티벌로 지역 모든 축제를 통합했다. ‘5월 하면 보성으로!’라는 말을 연결 짓도록 했다. 지난 5월 축제를 통합 개최해 관광객 60만여명을 불러모았다. 이 기간 경제적 파급 효과는 766억원에 이른다. 군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최우수 축제로 선정된 보성다향대축제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판소리의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서편제 보성소리축제를 동시에 열었다. 전국 최대 철쭉 군락지에서 펼쳐지는 일림산 철쭉 문화축제, 율포해변 활어잡기 페스티벌 등 4개 축제를 같이 개최했다. 군 전체를 하나의 축제장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는 다채로운 내용을 즐길 수 있게 하면 더 오랜 기간 방문객이 지역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게 전략이었다. 계절을 연결하는 ‘율포해변 활어잡기 페스티벌’은 지난 5월부터 다음달까지 매주 토요일 율포해변 일원에서 만날 수 있다. 상설화 결정에 대해 김 군수는 “지속적인 관광객 유치를 고민하던 중 청정 득량만의 제철 수산물을 활용하는 활어잡기 축제는 지역 음식점과 숙박업소뿐만 아니라 어민들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판단으로 상설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군수의 판단은 적중해 성황을 이루면서 유료 참가자만 회차당 1000명을 육박했다. 보성읍 시내 활성화 성공사례는 진도 등 인근 시군부터 전북 무주군, 경북 예천군 등 축제 관계자들이 견학하러 올 정도다. ●보성읍 도시가스 사업 1100억원 투입 2023년이면 보성군 보성읍에 도시가스가 공급돼 주민 9000여명이 혜택을 받는다. 보성읍 도시가스 공급 사업은 2011년부터 시작돼 8년 넘게 경제성 미비 등의 이유로 지지부진한 상태로 표류해왔다. 김 군수가 취임 1년 만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보성읍 에너지 복지 현실화가 코앞까지 왔다. 보성군 벌교읍은 지난해 8월부터 도시가스가 공급됐으나 보성읍의 경우 한국가스공사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진행 등을 자진철회하면서 사업 무산 위기에 놓였다. 김 군수는 그동안 연료비 절감 등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 문재인 정부 정책기조에 맞춰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연계한 소외지역 에너지 복지차원으로 사업 논리를 바꿨다. 인적·물적망을 총동원해 사업당위성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김 군수를 비롯한 군 직원들은 매주 1회 이상 중앙부처를 방문하고, 국회의원을 면담하고, 유관기관을 수시 방문해 보성군의 생각과 사업 논리를 피력했다. 결국 1년여 만에 국무회의 의결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김 군수는 “숙원사업 해소를 위해 국회, 중앙정부, 가스공사 등을 찾아다니며 보성읍 가스 공급의 당위성 설명과 건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며 “지난 2월 청와대 주관 전국시장·군수·구청장 초청 국정 설명회에서 보성읍에 도시가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한 게 밑거름이 돼 국무회의 통과라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보성읍 도시가스 사업은 장흥~보성~벌교(58㎞)를 잇는 가스배관 주 관로 사업이다. 사업비 1100여억원이 투입된다. 도시가스 공급이 완료되면 주민들은 연간 연료비 80여만원을 절감하고, 연간 32억원(4000가구)이 절약될 것으로 예상된다.●임진왜란~광복 350년 의병사 종합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언급됐듯 ‘보성 가서 주먹자랑 하지 마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용감하게 싸운 보성군민의 용기와 패기에 붙여진 일본의 두려움이었다. 지난해 군은 ‘보성의병사’ 제작에 착수해 의병 777명을 발굴해냈다. 평민 중심의 의병들은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만 기록되는 특성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많은 보성사람들이 의병 활동에 가담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성은 밀고자가 적어 일본이 의병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보성군민 전체가 의병을 지키고 의병활동에 도움을 주는 잠재적 의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성의 의병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했던 1592년부터 광복한 1945년까지 약 350년간 세월을 모두 포용하는 우리나라 의병사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해군의 스승이자 퇴계 이황의 제자 죽천 박광전 선생은 노령인 나이에 7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 전투에 참전, 승리를 이끌었다. 보성에서 창의한 전라좌의병이 진주성 전투 등 전국구로 의병활동을 펼친 기록은 보성 의병이 지역방위를 넘어 전국적인 의병활동에 적극 나섰다는 것을 뜻한다. 호남에 가장 먼저 3·1 만세 함성이 울려 퍼진 장소도 보성이다. 보성은 6·25 전쟁 전후로 민족상잔의 아픔을 담은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아픈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하는 등 의병역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포괄하는 문화적 자원까지 겸비했다. 이순신 장군이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고 선조에게 보낸 장계 ‘今臣戰船 尙有十二’(금신전선 상유십이)를 쓴 곳이 바로 보성의 열선루다. 이순신 장군은 보성에서 10일간 머물며 수군을 모병하고, 군량미를 확보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보성의 선거이 장군, 최대성 장군 등과 함께 싸웠다.백범 김구 선생은 1898년 보성 득량면 쇠실마을에서 약 40일간 피신 생활을 했다. 광복 후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하고 다시 쇠실마을을 찾아 보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서재필 선생은 외가인 보성 문덕면 가내 마을에서 보성군수 서광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홍암 나철 선생은 벌교읍에서 태어나 민족 대종교를 만들고, 만주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한 호남 의병 정신을 계승한 인물이다. 김 군수는 “보성은 녹차의 고향 다향, 서편제의 본향 예향, 충신열사가 많은 의향으로 3보향의 고장이다”며 “국가 위급 시마다 구국활동을 펼쳐왔던 남도의병의 중심지역이라는 사실을 모든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더 힘쓰겠다”고 밝혔다. 보성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전통적 성역할 깨지자 불안감… ‘대림동 경찰 폭행’ 여혐 비하

    전통적 성역할 깨지자 불안감… ‘대림동 경찰 폭행’ 여혐 비하

    젠더 교육·채용 확대… 인식 바꿔 여성의 사회 참여 늘려야 2018년 12월 31일 기준 한국 여성 경찰은 1만 3582명이다. 전체 경찰 12만 448명 가운데 11%에 불과하다. 성별 분리 모집 과정에서 여성의 채용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2020년부터 경찰대학 신입생과 경찰간부후보생을 통합 선발하기로 했지만 순경은 여전히 남녀를 분리해 뽑는다. 어렵게 경찰이 되더라도 여성 경찰은 조직 내에서 ‘섬’처럼 여겨진다. 여성 경찰은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거나 인사평가에서 불이익을 받기 쉽다. 지난 5월 주취자를 진압하는 과정이 담긴 일명 ‘대림동 경찰관 폭행’ 영상이 공개된 이후 피의자들의 공권력 경시가 아닌 ‘여경 무용론’에 불이 붙은 건 여성 경찰에 대한 외부 인식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줬다. 경찰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모든 조직의 문제다. 서울신문 서울젠더연구소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공동으로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제1회 서울젠더포럼’을 열었다. 포럼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직 내 성차별적 인식을 되짚고 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금 의원을 비롯해 손원진 경찰인재개발원 생활치안교육센터 교수요원(경감),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 이은애 경찰청 수사구조개혁팀장(총경),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진행은 신 교수가 맡았다. 신경아 교수 지난 5월 주취자에 대한 여성 경찰의 대응 장면 영상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여성 경찰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 발언에서 시작해 여성 경찰 무용론으로까지 확대됐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위치에 여성이 진입하려 할 때 이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사건의 쟁점과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은애 팀장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 일부 뉴스에서 “여성 경찰이 잘 대처했다”,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를 멈춰 달라”는 남성 경찰들의 인터뷰가 나왔다. 그걸 보면서 ‘이런 문제조차 남성 경찰로부터 보호받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나’라는 고민이 들더라. 1997년 경찰이 된 이후 지금까지 경찰로서의 존재 이유를 지속적으로 증명해야 했다. ‘여성 경찰이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도 계속 받는다. 전통적인 성역할에 따르면 경찰은 남성 고유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그 금기가 풀어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라고 본다. 금태섭 의원 한쪽에서는 여성 피해자의 진술을 듣는 등 여성 경찰의 고유 역할이 있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 주장 자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온라인상에서 젠더 갈등 양상으로 확산된 건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의 문제가 표출된 것이라 생각한다. 정치권에서는 (젠더 이슈를) 피해 다니는 형국이고, 그래서 더 갈등이 증폭되는 게 아닌가 싶다. 추지현 교수 사회학자로서 이번 사안은 여성 경찰과 경찰 직무의 문제라기보다 한국 사회에서 현재 청년 세대가 갖고 있는 불안이 여성 문제로 전이된 형태라고 본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보통의 삶을 살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고 타인과 경쟁해야 하는 피폐한 삶을 살면서 그 불안감이 여성 혐오로 표출된 것이다. 또 여성 경찰이 조직 안에서 한몫을 하는 경찰로 고려되지 못하고 여성이라는 기표로만 떠돌면서 여전히 동등한 동료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불거졌다고 본다. 이웅혁 교수 이번 논란은 남성 지향적인 경찰 조직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불거졌다. 대다수 국민들이 경찰의 역할을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경찰의 사명은 ‘물리력을 사용해서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패러다임이 고착화된 것이다. 112 신고를 분석해 보면 범죄 사건은 10~2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비범죄성 생활 민원이다. 경찰은 ‘범죄 전투사’의 역할뿐 아니라 가출 청소년을 도와주고 아동 학대 가정을 상담하는 등 ‘갈등 조정 해결자’로서의 역할도 있지만 경찰 스스로도 자신의 역할은 범죄를 막는 것이라고 본다. 경찰 조직의 구조적 한계와 편협함이 이번 사건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 손원진 교수요원 현장의 남자 경찰들은 이번 사건이 남녀 갈등 문제로 비화되는 게 안타깝다는 반응이 많았다. 강의실에서 이론 중심으로 수업을 듣고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여성 경찰은 사회적 약자 보호나 여성 범죄를 담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경찰 조직 안에서 동등한 역할을 하는 경찰로 대우 받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여성 경찰 비율을 늘리는 것이야말로 경찰의 구조적 한계를 깨는 가장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신 교수 현재 여성 경찰 비율이 11% 정도인데 경찰청이 2022년까지 15%까지 높인다는 계획을 내놨다. 여성 경찰이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조직 내 변화는 일어나고 있나. 이 팀장 사실 ‘여성 경찰 확대’라는 표현 자체가 시혜적인 발언이다. 여성 경찰이 전체 경찰의 1% 수준일 때 근무를 시작했는데 20년 만에 11%로 올랐다. 현재 여성 경찰을 남성 경찰과 분리해서 채용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경찰청 훈령이다. 헌법에 ‘차별하지 말라’고 명시돼 있고, 국가공무원법 어디에도 여자를 남자에 비해 적게 뽑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여성 경찰은 경찰의 정책적 도구로서 뽑혔다. 1988년 올림픽 당시 교통안전요원이 필요해서, 노태우 대통령이 1990년 일명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지난 정부에서 ‘4대악 근절’을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여성 경찰을 많이 뽑았다. 한 해에 여성 경찰을 전국에서 30명 뽑을 때도 있고, 300명 뽑을 때도 있고, 1000명 뽑을 때도 있다. 국가와 경찰청이 얼마나 여성 경찰을 도구화해서 이용해 왔는지 보여 준다. 여성 경찰은 대부분 팀당 1명이다. 팀에서 둘 이상 받지 않으려 한다. 성희롱·성차별 문제나 여성 혐오 발언 등을 논의하고 연대할 동료가 없다. 추 교수 경찰 성별에 따라 직무를 분리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여성 경찰이 일이 편한 내근직을 선호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여성 경찰들이 근무하는 내근직은 편한 곳이 아니다. 승진을 하거나 수당을 많이 받거나 경찰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아니다. 남성 경찰들이 중요한 위치를 놓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 있는 역할에 여성 경찰들을 밀어내 왔다. 그 자리마저 한정돼 있어 여성 경찰 한 명이 빠지면 나머지 여성 경찰들끼리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여성 경찰들은 30년씩 경력을 쌓아도 내근 외에는 해본 일이 없다. 주요 보직 경험이 없어 관리직으로 갈 수도 없고, 승진도 안 된다. 여성 경찰 입장에서도 안타깝지만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신 교수 경찰을 선발할 때 체력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의 소통 능력과 같은 지적이고 정서적 역량도 측정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어떤가. 손 교수요원 경찰의 역할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선발한다면 굳이 체력 기준을 도입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선발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공정성 시비다. 점수화되지 않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본다. 지원자가 얼마나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지 점수로 구분할 수 있으면 시험에 포함됐겠지만 점수화할 수 없어 배제되는 거다. 영어, 국어, 형사소송법을 여전히 시험으로 치는 이유다. 이렇게 뽑은 경찰들을 중앙경찰학교에서 옛날 방식으로 가르친다. 1980년대 중고등학교만도 못한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성과 남성을 나눠 수업하고 집합도 남녀 따로 시킨다. 여자 생활 지도관은 여학생들에게 ‘이거 하지 마라’, ‘튀지 마라’라는 잔소리를 한다. 자부심을 부여하는 척하면서 경찰 조직이 원하는 여성 경찰 모습으로 재사회화한다. 금 의원 경찰은 사회 치안을 유지하는 12만명의 대규모 조직이다. 기본적으로 인구의 50%가 여성인데 경찰 내 여성 비율도 그에 따라 맞추는 게 필요하다. 검찰에서 한 부에 여성 검사가 1명이었을 때 그 부서에 검사가 몇 명이냐고 물으면 부장검사가 대놓고 0.5명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물론 지금은 여성 검사가 많아져 그런 분위기는 없어졌다. 경찰 역할을 바꾸거나 채용기준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을 많이 뽑으면 조직의 성격 자체가 바뀐다. 물리력이 필요한 일부 경찰 직무에서는 체력검사를 하고 나머지는 성비를 반반으로 맞추는 식으로 조정하면 조직 성격 자체와 역할도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 교수 이 사안은 경찰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여성들은 공공 영역과 민간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진 중요한 위치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헤쳐 왔다. 여성의 참여 비율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금 의원 우선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시험 과목 등 채용 절차와 더불어 교육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젠더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바꿔 나가야 한다. 이 팀장 가장 중요한 건 각계의 여성들이 소리 내 이야기하는 플랫폼이 마련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회의원 남녀 비율부터 50%로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의 네트워크가 강해지고 발화 기회가 점점 많아져 연대해 발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 초중고 교육부터 직장 교육까지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교육이 문화 재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통해 성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것과 더불어 남녀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공정한 채용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젠더 이슈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추 교수 사실 페미니즘이 다시 부상한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모든 해법으로 교육이 거론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젠더 교육을 하는 것이 여성 경찰 비율을 20%로 올리는 것보다 더 큰 반향이 있을지 모른다. 청년경찰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들은 일과 생활을 양립하고자 하고, 권위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회피하려고 한다. 그들 내부에서 연대의 지점도 보인다. 페미니즘 물결은 돌이킬 수 없다. 선배나 관리자 이상의 직급 외에도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손 교수요원 모든 경찰의 성별 분리 채용을 폐지하는 전향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당장 교육을 통한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니 일단 경찰 교육기관에 대한 진단과 기관을 재구조화하는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 정리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단독] “난, 처벌받을 사람 처벌만 바랐을 뿐… 모든 미투 의미있다”

    [단독] “난, 처벌받을 사람 처벌만 바랐을 뿐… 모든 미투 의미있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처벌받아야 할 사람이 처벌받는 것, 그걸 바랐을 뿐이에요.” 20대 대학생 양예원(25)씨가 품어 왔다는 희망이다. 이 이치가 실현되는 데 꼬박 4년이 걸렸다. 그는 ‘스튜디오 촬영회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8일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인 최모(45)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과 80시간의 성폭력 치료강의 이수, 5년간의 관련 기관 취업제한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강제추행과 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 등을 인정한 것이다. 양씨는 판결 직후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로 비슷한 피해자들이 힘을 얻고 판례가 향후 다른 재판 때 잘 쓰였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했다. 배우를 꿈꾸던 양씨의 삶의 궤적이 달라진 건 2015년 8월부터였다. 아버지의 사업이 잘못돼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그는 당장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가 필요했다. 바로 보수가 지급되는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비공개 촬영회’ 모델로 섰다. 양씨는 “촬영회 참가자인 최씨가 촬영 중 내 옷매무새를 바로잡는 척하며 신체를 만졌다”고 떠올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고하면 사진이 유포될지 모른다는 걱정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그날의 악몽은 양씨를 계속 따라다녔다. 지난해 그는 소장용임을 전제로 찍었던 촬영회 사진물이 인터넷에 불법 유포된 사실을 알게 됐다. 눈앞이 캄캄해 길에 풀썩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건 혼자 묻고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구나. 제대로 마주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구나.’ 양씨는 지난해 5월 11일 비공개 촬영회 스튜디오 관계자를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기관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들은 경찰관은 “그건 성적 취향이다. 처벌까진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피해를 당했다고 해도 돈을 받았다면 문제 삼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하는 경찰도 있었다. 양씨는 카메라 앞에 서서 피해 사실을 직접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가면 불법 유포 사진은 계속 퍼질 것이고 가해자들은 영원히 처벌받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러나 후폭풍도 거셌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한결같이 범행을 부인했다. 온라인상에서는 “양씨가 무고한 남성들을 성범죄자로 모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가짜뉴스와 온갖 악플(악성댓글)이 쏟아졌다. 양씨는 악플에 정면 대응했다. 대수롭지 않게 쏟아 낸 악플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보여 주고 싶었다. 심각한 인신공격 등을 한 악플러들을 고소했다. 다만 합의 가능성은 열어 뒀다. 합의의 전제 조건으로 ‘악플러 본인 실명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양씨에 대한 악플 범죄 사과문을 일주일간 게시할 것’을 내걸었다. 양씨는 “단순한 조건인데도 이행하겠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양씨의 평범한 일상은 판결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또래들은 취업 준비에 한창이지만 양씨의 고민은 결이 다르다. ‘과연 내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내가 이력서를 내면 날 알아보고 아르바이트마저 안 써 주지 않을까’, ‘휴학한 학교에 돌아가면 사람들이 날 받아 줄까’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인 20대에 새로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감사하려고 한다”며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양씨는 “어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포기하고 굳이 폭로해 자기 무덤을 팠다’고도 말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인생에 큰 고비가 찾아왔을 때 제대로 넘지 않으면 언젠가 그 일이 더 큰 고비를 몰고 온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모든 피해자는 폭로 이후 삶의 행로가 조금씩 달라졌겠지만 그 용기가 사회를 더디게나마 변화시키고 있다”며 “그래서 우리 사회의 모든 미투가 유의미하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나이가 들면 어려운 사람이 된다

    [하지현의 사피엔스와 마음] 나이가 들면 어려운 사람이 된다

    나는 전공의들과 가깝게 지내려 하는 편이다. 회진을 할 때는 엄격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최대한 편안하게 하려 노력해 왔다. 가급적 시간을 내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여 주려고 했다. 서로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이야기하며 더욱 관계가 친밀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회진을 할 때 언짢은 소리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이때 잔소리의 강도에 비해 듣는 전공의의 얼굴 표정은 훨씬 굳어 있고, 어떨 때에는 사색이 돼 있는 것이 관찰됐다. 저녁에 소주 한잔을 할 때에 예전에는 신나게 떠들던 친구들이 요새는 내가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으면 묵묵히 앉아 있거나 겨우 맞장구를 치는 정도였다. 처음엔 긴장을 많이 하는 전공의가 들어 왔구나 싶었는데, 몇 년이 지나도 분위기는 그대로라 개인의 성격만은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지만, 똑 떨어지는 원인은 찾기 힘들었다.의문이 커지고 있던 중 우연히 배우 김의성이 어떤 매체와 한 인터뷰를 보게 됐다. 내용은 이렇다. 그는 30대에 10년 동안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다 돌아와 다시 연기를 시작해 어느덧 50대 중반의 중견 배우가 됐다. 언제나 젊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나이 어린 후배 배우들이나 현장 스태프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려고 노력을 해 왔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만큼 사람들이 다 자신을 좋아해 줄 것이라 믿었고, 대중의 사랑도 그런 태도에서 왔다고 여겼다. 그런데 현장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어린 현장 스태프들을 아무리 편하게 대해 준다고 해도 의도와 상관없이 현장에서는 ‘강자’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자와 약자의 관계가 된 순간 약자가 나를 좋아할 것이라는 기대 자체가 오만한 착각이고, 열려 있는 태도를 갖는 것은 좋지만,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또한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지만, 그들이 나를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 그랬던 것이다. 내 열린 태도나 상대에 대한 호의와 상관없이 이미 나이가 꽤 든 어른이라 그쪽이 나를 볼 때에는 기본적으로 어려운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그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처음 교수가 됐을 때 나와 그들의 나이 차이는 열 살 남짓이었다. 아마, 큰형이나 작은삼촌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매년 새로 들어오는 전공의는 같은 나이로 들어오는데, 나는 나이를 먹어 가고 50대가 됐다. 어느 순간 그들의 부모 나이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 된 것이다. 만만한 삼촌을 대할 때와 아버지를 대할 때는 엄청난 질감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나는 여전히 오픈 마인드로 대하며 친근하게 대하고 있다고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나이와 직급 자체로 태도로는 넘을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돼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전공의들에게는 무시하기 힘든 위력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떨 때에는 가까워지려는 시도도 불필요하고 원치 않는 침범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둘러보면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세칭 586세대가 한국의 주류로 꽤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고, 사회가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물갈이는 쉽지 않은 상태이다 보니 나이가 꽤 들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 꽤 많다. 격의 없이 사람들을 대한다고 보지만, 막상 이들을 대하는 청년들의 눈에는 ‘젊은 척하는 꼰대’로만 보여지거나, 애를 쓰지만 안쓰러울 뿐이라고 볼 뿐 호의로만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다. 특히 열린 태도로 젊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중장년일수록 착각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을 하루빨리 돌아봤으면 한다. 젊은 후배들이 거리를 둬도 그런가 보다 하고, 상처받지 말고 관계의 거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이 든 선배로서 해야 할 일만 해야 한다. 나서는 대신 겸손하게 기다리고, 조언을 가장한 참견 하지 않기, 일을 맡긴 후에는 뒤돌아보지 않기를 실천했으면 한다. 내 태도나 노력과 상관없이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나는 강자가 돼 있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걸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부터 바꿔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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