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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피플+] 전신 화상 입은 10살 소녀, 38년 만에 미인대회 꿈 이루다

    [월드피플+] 전신 화상 입은 10살 소녀, 38년 만에 미인대회 꿈 이루다

    지난 30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공연예술극장에서 열린 ‘2019 미세스 콜로라도 아메리카’에 특별한 사연을 가진 여성이 도전장을 냈다. 34명의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고 당당히 아름다움을 뽐낸 이 여성은 48세의 다네트 하그. 다네트는 어린 시절 미인대회에 참가하는 게 꿈이었다. 매년 가족들과 아이오와주 자택에 둘러앉아 ‘미스 아메리카’를 보던 그녀는 얼른 자라 미국 최고 미인이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신데렐라를 가장 좋아했으며 종종 공주처럼 꾸미고 집안을 누비기도 했다. 그러나 다네트의 꿈은 곧 짓밟히고 말았다. 그녀가 10살이 되던 해 가스누출 폭발사고로 집은 모두 불에 탔고 하그는 전신 70%에 화상을 입었다.다네트의 여동생 체니 하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언니는 늘 미인대회에 나가고 싶어했다. 하지만 온몸에 화상을 입은 뒤에는 미인대회에 나갈 수 없을 거라며 풀이 죽었다”고 떠올렸다. 이 사고로 다네트는 수십차례의 수술을 받으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중고교 시절 대부분을 피부 이식 수술로 보냈으며 늘 압박복과 마스크로 몸을 가리고 다녔다. 다네트는 “화재가 나던 해에도 어김없이 ‘미스 아메리카’를 보며 꿈을 키웠다. 그러나 한순간의 사고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무대 위의 여자들을 보며 다시는 저런 아름다움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좌절했다”고 털어놨다.이후 콜로라도주의 도시 그릴리에서 소아과 간호사로 일한 다네트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2명의 자녀를 낳고 살았지만 미인대회를 향한 꿈은 늘 마음 한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결국 폭발사고 후 38년 만에 미인대회에 오른 그녀는 무대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젊은 여성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 다네트는 “우리의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비롯된다. 아름다움은 곧 인격의 반영”이라면서 “온몸에 화상을 입고 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졌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부디 남아있는 내 흉터에 집중하지 말고 이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집중해달라”고 당부했다. 객석에서 딸의 무대를 지켜본 다네트의 부친 돈 버즐라프는 “딸이 미인대회 입상이라는 목표를 달성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딸이 용감하게 상처를 극복한 것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당시 사고로 다네트의 부친 역시 심한 화상을 입었다. 수많은 응원을 끌어낸 다네트는 비록 이날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했지만 38년 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미인대회 출전이라는 꿈을 이루고 돌아갔다. 다네트는 ‘오늘 대회를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깨닫고 공유한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사진=CBS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월드피플+] 여자친구의 할머니에게 간 일부 기증한 20대 남성

    [월드피플+] 여자친구의 할머니에게 간 일부 기증한 20대 남성

    미국에서 한 20대 남성이 여자 친구의 할머니에게 자기 간 일부를 기증한 놀라운 사연이 공개됐다. ABC와 CBS 등 현지언론은 27일(이하 현지시간) 최근 오하이오주(州)의 세계적인 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특별한 간 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이 수술이 특별했던 이유는 간 기증자가 바로 이식받는 환자의 손녀와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였기 때문이다.사연이 공개돼 화제를 모은 주인공은 현재 미시간주(州) 첼시에서 살고 있는 코디 코윈(26)이다. 동갑내기 여성 셸비 플랫과 3년째 사귀고 있으며 결혼을 약속했다는 코윈은 최근 여자 친구의 할머니 버니스 램지(71)에게 간 이식 수술이 필요할 만큼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먼저 나서서 적합성 검사를 받고 반년을 넘게 기다린 끝에 이식 수술까지 마쳤다는 것이다. 램지 할머니는 5년 전 처음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을 진단받았다. 이 질환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유전적으로 알코올성 지방간질환과 비슷한 병태를 보인다. 따라서 할머니는 예전보다 먹는 것을 주의했지만, 지난해 여름 갑자기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던 것이다. 때마침 가족과 함께 아일랜드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코윈은 귀국 뒤 여자 친구로부터 할머니의 소식을 접하고, 여자 친구의 가족을 돕기 위해 옆집으로 이사했다. 코윈은 어렴풋이 자신과 할머니의 혈액형이 똑같이 RH+O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먼저 나서서 간 이식 적합성 검사를 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어머니 등 다른 가족들은 그를 만류하며 좀 더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코윈은 다른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검사조차 못할 만큼 혈액형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 검사를 받은 것이었다. 이에 대해 코윈은 “램지 할머니는 내게 항상 다정했다. 어쨌든 내가 할머니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그저 간 이식 수술 일정이 하루라도 빨리 잡히기만을 기다렸을 뿐”이라고 회상했다. 결국 코윈과 램지 할머니는 지난달 25일 수술대에 오를 수 있었다. 반년이 좀 지나 이식 수술이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코윈은 젊은 나이 덕분인지 집에서 쉬며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램지 할머니는 수술을 잘 끝났지만 당뇨 합병증이 있어 병원에 입원한 채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코윈은 “난 건강하므로 내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단지 램지 할머니에게서 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랬을 뿐”이라고 말했다.또 그는 항상 스스로 여자 친구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 일로 이들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램지 할머니는 항상 날 볼 때마다 웃으시며 나를 영웅이라고 부르신다”고 말했다. 사진=방송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프랑스 누벨바그의 여성 기수 아녜스 바르다 별세

    프랑스 누벨바그의 여성 기수 아녜스 바르다 별세

    아흔을 바라보던 2017년 장편 다큐멘터리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Faces Places)를 제작한 프랑스 여성 감독 아녜스 바르다(91)가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AFP통신이 29일 전했다. 벨기에 출신의 바르다는 장뤼크 고다르 등과 함께 1950~60년대 ‘누벨바그’ 기수를 대표하는 유일한 여성 감독이다. 루브르 학교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사진작가로도 활동했던 바르다는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영화 사조의 하나인 ‘누벨바그의 어머니’로도 평가된다. 바르다는 당시 비평가 출신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문학 작품을 각색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영화 제작을 비판하며 다른 예술과 구분되는 영화적 실험 정신에 주목했다. 그녀는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등과 누벨바그를 주도했으며 대표작으로는 국제적으로 큰 명성을 얻은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 등이 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여성주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으며 현대 여성 감독들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2015년 칸국제영화제는 바르다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여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개봉해 3만명이 넘게 본 사진작가 ‘JR’(장 르네)과 함께 만든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제90회 아카데미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고, 제70회 칸국제영화제 골든아이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34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바르다의 가족들은 이날 성명에서 “감독이자 예술가인 아녜스 바르다가 목요일 밤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암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고 애도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한국 지속 성장, 사람·기술 질적 변화에 달려”

    “한국 지속 성장, 사람·기술 질적 변화에 달려”

    “모든 사람에게 일 통한 학습기회 제공” 노동시장 유연성·여성 활용 해법 제시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가 27일 “한국은 최근 성장 속도가 둔화해 기존 성장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면서 “지속 성장은 노동, 자본과 같은 양적 투입보다 인적자본, 기술 등 질적 변화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로머 교수는 이날 대한상공회의소의 싱크탱크인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초청으로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혁신성장,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을 주제로 강연을 하며 이같이 밝혔다. 로머 교수는 “인적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국가는 교육 시스템을 통해 배출된 인적자본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일을 통해 학습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머 교수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안정성과 포용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로머 교수는 “낮은 실업률, 활발한 소득계층 이동성이 함께 유지될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의 일자리 문제에 대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여성 인력 활용을 해법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의 경우 여성 인력이 늘었을 때 이를 흡수할 여력이 있어서 고용이 늘었다”면서 “노동시장이 공급을 흡수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서다. 해고가 사회적으로 용납됐는데 일자리를 다시 구하는 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젊은층은 첫 일자리가 평생 일자리가 아닐 것이라는 걸 알아야 하고 이게 가능해지려면 다른 일자리로 가는 게 쉬워야 한다”면서 “한국에는 고학력 여성이 많지만 지금까지 잘 활용되지 않았다. 반대로 여성 인력을 아직 충분히 활용하지 못해 잠재 자원으로 남은 현 상황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로머 교수는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해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며 임금을 인상해 생산성을 올리는 정책은 혼조세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노동력 수요가 줄어들 수 있고 노동자는 시장에서 단절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어떤 정책이건 노동시장에서 단절된 노동자나 실업자의 수가 줄어든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 수치가 올라간다면 문제가 있다. 이런 경우 최저임금 인상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청순 외모에 근육질 몸매…중국 ‘베이비 페이스 머슬녀’

    청순 외모에 근육질 몸매…중국 ‘베이비 페이스 머슬녀’

    마치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청순한 외모의 한 중국 여성이 엄청난 근육질 체격을 자랑해 수많은 누리꾼들을 놀라게 했다. 25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킹콩 바비’라는 별명을 지닌 중국의 쳉 루(21)라는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쳉은 약 3개월 전부터 콰이쇼우, 더우인 등 중국 동영상 플랫폼에서 하루 2차례씩 자신의 운동 영상을 공개하고 있다. 쳉은 자신이 스쿼트와 역기 운동 등으로 근육을 키워가는 모습을 방송하고, 약 30만 명의 팔로워가 그녀의 운동을 지켜본다. 쳉은 자신의 몸무게 두 배인 120kg까지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귀여운 외모의 작은 소녀가 어떻게 근육질 몸매를 갖게 됐을까. 매체에 따르면 쳉은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다. 그는 또래 친구들처럼 분홍색을 좋아하고 귀여운 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쳉의 인생이 변한 것은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가 보디빌더 대회에 자신을 데려가면서부터다. 쳉은 “나는 그 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들은 다른 미의식을 보여주었고 매우 건강해 보였다”고 말했다. 보디빌더 대회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챙은 선양 체육 대학에 입학해 보디빌딩 전공을 선택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여자가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서는 약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고대 뮬란처럼 남자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여자가 못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쳉은 자신의 몸매를 공개한 후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고, 젊은 여자가 왜 근육질처럼 보이려고 하냐며 손가락질한다”며 “심지어 미래에 내가 남편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고까지 비난한다”고 말했다. 쏟아지는 악플에 쳉은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아름다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있다”면서 “나는 건강한 몸을 갖고 싶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건강한 몸을 갖자고 격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쳉의 현재 목표는 좀 더 전문적인 보디빌더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의 최고 성적은 지난해 중국 보디빌딩협회가 개최한 보디빌딩 전국 선수권대회에서의 4위다. 사진·영상=Trending/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 ‘극단원 상습 성추행’ 이윤택 징역 8년 구형…李 “대가 받겠다”

    ‘극단원 상습 성추행’ 이윤택 징역 8년 구형…李 “대가 받겠다”

    이윤택 측 “연극인들에 의해 성추행 용인된 점 감안, 중형 선고 합리적 판단을”피해자 공개 증언 “단 한순간도 성추행 동의 안해···응당한 처벌 원해”극단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했던 이윤택(67)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에 대해 검찰이 2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전 감독은 2010년 7월∼2016년 12월 여성 배우 9명을 25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26일 서울고법 형사9부(한규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 전 감독의 항소심 병합 사건 결심공판에서 이같이 구형했다. 구형 이유는 따로 밝히지 않았다. 김 전 감독은 앞서 2014년 3월 밀양연극촌에서 극단 운영의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극단원 A씨에게 유사성행위를 시킨 혐의로 추가 기소됐으나 무죄 선고를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극단원 신분이 아니라 업무나 고용 관계가 없었다는 이 전 감독 측 주장을 수용했다. 최후진술에서 이 전 감독은 “모든 일이 연극을 하다 생긴 제 불찰”이라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의식하든 못하든 모든 불합리한 것들이 관행처럼 잠재돼 있던 것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노출되고, 제가 그 책임을 지게 된 입장”이라고 했다. 다른 상황이 아닌 정상적인 연극을 하다가 불합리한 관행을 따른 자신이 시대가 바뀌어 결국 책임을 지게 됐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전 감독은 “젊은 친구들을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지 못하고 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변명하지 않겠다. 제가 지은 죄에 대해서 응당 대가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변호인은 “연극인들에 의해 용인돼 왔다고 생각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며 중형 선고가 합리적인지 판단해달라고 말했다. 결심공판에 앞서는 이 전 감독의 추가 기소 사건의 피해자인 극단원 A씨가 법정에 나와 유죄 판결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날 증언은 A씨 요청에 따라 공개로 진행됐다.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온 A씨는 “제 무의식 속에는 요구를 거절하면 안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런 두려움과 공포는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결국 성폭력에 대한 기억조차 잊게 만들었다”고 힘겹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저는 지금도 예술감독이 두렵고,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며 “저는 단 한 순간도 예술 감독에게 합의한 적도 동의한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예술감독이 제게 행했던 모든 요구와 행위들이 어떤 경우라도 해선 안 되는 것임을 인정받고 응당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항소심 선고는 새달 9일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클래식계 아이돌 ‘디토’ 12년 음악 여정 마침표

    클래식계 아이돌 ‘디토’ 12년 음악 여정 마침표

    ‘클래식계 아이돌’, ‘클래식계 보이그룹’으로 불리며 12년간 인기를 끌었던 실내악 그룹 ‘앙상블 디토’가 올해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는 오는 6월 12~29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고양아람누리에서 디토 페스티벌 ‘매직 오브 디토’를 개최한다며 “올해로 마지막 시즌을 맞는다”고 25일 밝혔다. 이어 “음악감독인 리처드 용재 오닐과 멤버들은 각자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새로운 길에 서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용재 오닐 등 젊은 음악가 공격적 마케팅 성공 ‘디토’는 2007년 미국계 한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주축으로 2007년 결성해 이어져 왔다. 스테판 피 재키브 등 클래식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젊고 새련된 외모의 음악가들을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들의 출발은 미래 고객을 확보하고,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무작정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에 기대어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영화포스터 같은 홍보물, 뮤직비디오 촬영 등 대중음악에서나 볼 법한 기획을 선보였고,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가정에서 태어난 용재 오닐의 스토리를 내세우며 젊은 관객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2008~2009년 예술의전당 유료관객 1위를 기록하는 등 대표적인 인기 공연으로 자리잡았고, 일본과 중국 등 해외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크레디아 이강원 이사는 지난 1월 열린 ‘영 아티스트 포럼’에서 “관객은 클래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가갈지를 몰랐던 것”이라며 “단기간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수출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말했다. ●상업화 비판에도 관객층 확장 가능성 확인 하지만 젊은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클래식을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들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기존 음악 팬들의 평가는 낮았고,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관객 유입 속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즌이 바뀌며 멤버도 교체됐다. 무엇보다 ‘프렌차이즈 스타’ 용재 오닐이 40대가 되는 등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관객의 취향과 업계의 패러다임도 변화했다. 이 이사는 “연주자들 역시 밝고 친근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하기엔 나이가 들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클래식 관객층을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또 이들을 통해 실내악의 장벽도 조금이나마 낮아졌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듣기 편한 음악만 연주한 게 아니라 현대음악 등 실험적인 시도도 많이 했다”면서 “중견 연주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당시 공연계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2019 디토 페스티벌’은 용재 오닐과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의 리사이틀, 12년간의 하이라이트 레퍼토리로 구성한 ‘디토 연대기’, 현대음악 콘서트 ‘디퍼런트 디토’ 등으로 구성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나운규(1902~1937)라는 존재와 ‘아리랑’(1926)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아니 한국영화사 전체를 관통해서도 가장 무게 있는 영화인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개봉한 지 90년도 훨씬 지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저 여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리랑’은 왜 훌륭한 영화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원로 영화인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신화화된 결과가 아닐까.‘아리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민족 영화라는 평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관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애초 나운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조선영화도 미국영화처럼 한번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이상 활동사진에 신기해하는 초창기 관객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활극적 볼거리와 속도감에 열광하는 영화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조선인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25 전쟁 시기까지 수십 차례 반복 상영되며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연 ‘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일본 신파를 극복하다 먼저 1920년대 전반기 조선영화계를 살펴보자. 조선 극영화의 시작은 ‘월하의 맹서’(1923)를 만든 윤백남의 역할이었지만 이후 조선영화를 주도한 감독은 윤백남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경손(1905~1977)이었다. 그는 고대소설을 영화화한 ‘심청전’(1925)으로 감독 데뷔해 이광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개척자’(1925)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조선영화 제작은 초창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춘향전’(1923), ‘장화홍련전’(1924), ‘운영전’(1925) 등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즉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활동사진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손은 일본영화를 모델로 삼아 상업적인 노선을 모색하는데 일본 신파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장한몽’(1926), 일본 시대극 영화를 참조한 ‘산채왕’(1926)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당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하던 조중환과 이경손이 함께 설립한 계림영화협회가 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 문화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영화 역시 ‘나의 죄’(己が罪)가 원작인 ‘쌍옥루 전후편’(1925), ‘새장 속의 새’(籠の鳥)를 각색한 ‘농중조’(1926) 등 일본 신파의 조선적 번안이 대세였다. 이처럼 연애비극이나 가정비극을 다루는 신파 서사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기본적 설정으로 안착하게 된다.나운규의 ‘아리랑’이 특별한 점은 일본 신파영화의 화법을 받아들인 시기에 등장한 영화였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어떤 의도로 만든 영화인지는 나운규의 운명 전 해인 1936년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제1집)라는 글이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양화(洋畵)를 보면 수(數)로는 서부활극이 전성시대요 또 대작연발시대다. 그리피스의 ‘폭풍의 고아들’(1921)을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더글러스의 ‘로빈 후드’(1922)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나운규가 미국영화의 “대작연발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한 나운규는 ‘아리랑’을 만들기 직전 선배 감독 이경손에게 “화나는데 서양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고, 어떻게 하면 “하품 나는 조선영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조선영화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아리랑’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서구영화의 창조적 수용 연출의 기회를 잡은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고안해냈다. 대중적 화법인 신파 양식을 기반으로 비극과 활극을 직조한 동시에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가장 핵심은 ‘아리랑’이 나운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다. 당시 “전 조선영화를 통하여 가장 우수한 장면”(‘동아일보’ 1926년 10월 7일자)으로 기록된 사막 장면은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한 나그네(나운규)가 여자(신일선)를 취하려는 악마 같은 상인을 살해한 장면은 주인공 영진(나운규)이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지주의 하수인 기호를 환상 속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정확히 반복된다. 광인의 내면세계를 일그러진 세트로 시각화해 보여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등 동시기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 작품의 인물 구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지주도 그 하수인도 조선인이라는 설정이지만 돈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본가 계급의 폭압적 행태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민족영화가 되었고,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아리랑의 실제 감독은 누구일까 ‘아리랑’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은 쓰모리 슈이치(한국 이름 김창선)라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의 실제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 시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조선영화인의 협업으로 구축되었던 조선영화 제작현장을 감안해야 한다.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사는 일본인 흥행사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인데, 그의 조카 사위 쓰모리 슈이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현대 영화의 프로듀서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조선키네마의 첫 번째 영화 ‘농중조’와 ‘아리랑’ 개봉 당시 감독 크레디트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문헌들은 두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조선영화인 이규설과 나운규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제작 현장에서 일본인이 감독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각본을 쓰고, 무성영화이지만 동작 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우들의 조선어 대사 연기를 지도한 것은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무성영화의 논리상 그들의 입에서 발성되어야 할 대사는 변사의 음성에서 들리게 된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면 쓰모리가 설령 크레디트상의 감독직을 맡았더라도 각본을 쓰고 실질적인 연출을 진행한 나운규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나운규는 계속해서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통해 ‘풍운아’(1926), ‘야서(들쥐)’(1927), ‘금붕어’(1927)라는 활극멜로드라마를 그의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세워 ‘사랑을 찾아서’(1928) 등 자신의 감독 및 주연작을 이어 나간다. ●조선 무성영화 황금기 이끌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이 이후 조선 무성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언급해야 한다. 먼저 지주와 소작민,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계급구도에 기반한 서사와 활극이 더 선명하게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이후 조선영화의 상업적 기준이 된 점이다. 또 일제 치하의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의 관념을 싣는 수단, 즉 계급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진영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카프 진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설가 심훈의 감독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8)는 단연 ‘아리랑’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클래식계 아이돌 ‘디토’ 12년 음악 여정 마침표

    클래식계 아이돌 ‘디토’ 12년 음악 여정 마침표

    ‘클래식계 아이돌’, ‘클래식계 보이그룹’으로 불리며 12년간 인기를 끌었던 실내악 그룹 ‘앙상블 디토’가 올해로 공연을 마무리한다. 공연기획사 크레디아는 오는 6월 12~29일 서울 예술의전당과 고양아람누리에서 디토 페스티벌 ‘매직 오브 디토’를 개최한다며 “올해로 마지막 시즌을 맞는다”고 25일 밝혔다. 이어 “음악감독인 리처드 용재 오닐과 멤버들은 각자 또다른 시작을 위해 새로운 길에 서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디토’는 2007년 미국계 한국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을 주축으로 2007년 결성해 이어져 왔다. 스테판 피 재키브 등 클래식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젊고 새련된 외모의 음악가들을 앞세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이들의 출발은 미래 고객을 확보하고,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등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무작적 해외 유명 아티스트의 내한공연에 기대어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영화포스터 같은 홍보물, 뮤직비디오 촬영 등 대중음악에서나 볼 법한 기획을 선보였고, 전쟁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가정에서 태어난 용재 오닐의 스토리를 내세우며 젊은 관객의 마음을 끌어들였다. 2008~2009년 예술의전당 유료관객 1위를 기록하는 등 대표적인 인기 공연으로 자리잡았고, 일본과 중국 등 해외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크레디아 이강원 이사는 지난 1월 열린 ‘영 아티스트 포럼’에서 “관객은 클래식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다가갈 지를 몰랐던 것”이라며 “단기간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고, 수출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클래식을 상업화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들의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기존 음악 팬들의 평가는 낮았고, 시간이 지나며 새로운 관객 유입 속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즌이 바뀌며 멤버도 교체됐다. 무엇보다 ‘프렌차이즈 스타’ 용재 오닐이 40대가 되는 등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관객의 취향과 업계의 패러다임도 변화했다. 이 이사는 “연주자들 역시 밝고 친근한 클래식 음악이라는 콘셉트를 유지하기엔 나이가 들었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평가는 엇갈리지만 클래식 관객층을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또 이들을 통해 실내악의 장벽도 조금이나마 낮아졌다. 노승림 음악평론가는 “듣기 편한 음악만 연주한 게 아니라 현대음악 등 실험적인 시도도 많이 했다”면서 “중견 연주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당시 공연계에서 젊은 연주자들이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2019 디토 페스티벌’은 용재 오닐과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의 리사이틀, 12년간의 하이라이트 레퍼토리로 구성한 ‘디토 연대기’, 현대음악 콘서트 ‘디퍼런트 디토’ 등으로 구성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그알’ 대만 린사모 “버닝썬에서 제일 거물..승리는 돈 없었다”

    ‘그알’ 대만 린사모 “버닝썬에서 제일 거물..승리는 돈 없었다”

    ‘그알’이 버닝썬 게이트에 대해 다뤘다. 23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그알)’에서는 버닝썬 게이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버닝썬 손님이었다고 밝힌 한 제보자는 “어떤 젊은 남자가 1층에서 자기네 룸에서 술을 마시자고 해서 따라 갔다.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여자가 누워있고 그 위에 남자가 올라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다 나를 보자마자 떨어지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바로 112에 전화했다. 2시간 뒤 어떤 번호로 전화가 와 ‘아 뭐 신고하셨죠?’ 이러더라. 나는 이미 집이었다. (여자가) 아예 의식이 없었다. 그래서 신고한 거다. 진짜 시체였다”라고 폭로했다. 버닝썬과 경찰 간 유착 관계로 지목된 전직 경찰관 강씨는 구속 전 ‘그것이 알고싶다’와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고향 친구 최씨와 말 그대로 알아만 봤다”라면서 “나도 한참 후에 알았다. 엄청난, 위에서 체계적으로 플랜이 다 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몽키뮤지엄부터 승리와 함께 일한 최측근이라고. 승리 초호화 생일파티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제작진은 2박3일간 진행된 승리 생일파티에는 유명 정치인, 재력가 A씨 아들, 룸살롱 여성 등이 동원됐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승리 생일파티는 클럽 버닝썬 단합 파티격으로 진행돼 사업설명회도 열렸다고 전해졌다. 특히 린사모 실체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이날 한 제보자는 린사모에 대해 “제일 거물”이라고 밝히며 “린사모는 남의 테이블에도 술을 시켜줬다. 남편이 대만 총리급이라 이름도 잘 못 꺼낸다. 스케일이 엄청 컸다. 삼합회 대장을 데리고 온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측은 버닝썬 관계자들은 린사모가 투자한 돈의 출처가 삼합회로 추정한다고 전했다. 즉, 검은 돈을 세탁하는 곳으로 버닝썬을 택했다는 것. 린사모는 대만 패션 잡지와 인터뷰에서 “빅뱅 지드래곤을 통해 승리와 친분을 쌓았다”고 밝힌 바 있다. 버닝썬의 지분구조는 호텔 측이 50%, 승리 친구인 이문호 대표가 10%, 승리와 유인식이 함께 세운 회사 유리홀딩스가 20%, 해외투자자가 20%다. 린사모가 20%의 지분을 가진 해외투자자라는 것. 이문호 대표는 “승리는 원래 돈이 없었다. 린사모가 10억을 투자했고 우리에게 지분을 주신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성폭행 누명쓰고 억울한 옥살이한 남자…36년 만에 풀려나다

    성폭행 누명쓰고 억울한 옥살이한 남자…36년 만에 풀려나다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36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남성이 자유의 몸이 됐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은 50대 미국 남성이 36년 만에 누명을 벗고 출소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1982년 12월 9일,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백인 여성을 성폭행하고 칼로 찌른 혐의로 한 남성이 체포됐다. 용의자는 당시 22세였던 흑인 남성 아치 윌리엄스(58)였다. 아치와 그의 가족은 사건 시각 그가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끝내 종신형이 선고됐다. 사건 현장에서 아치가 아닌 다른 남성의 지문이 발견됐지만 피해 여성이 재판에서 아치를 범인으로 지목한 게 결정적이었다. 1년 후 루이지애나주 교도소에 수감된 아치는 계속해서 억울함을 호소했고, 1995년에는 누명을 쓰고 수감된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단체 ‘이노센트 프로젝트’에 편지를 써 도움을 요청했다. 그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단체는 1999년 정부에 지문 재확인 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아치의 DNA가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 샘플과 일치한다고 밝혔다.아치와 이노센트 프로젝트 변호사들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과 DNA 등을 다시 분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2014년에는 현대화된 FBI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지문을 재조회해줄 것을 요구했다. 검찰은 끝까지 아치의 유죄를 주장하며 재조사를 거부했지만,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 시 법원이 현장에서 나온 지문을 이달 중으로 다시 조회하라고 명령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사건 발생 후 36년 만에 FBI의 현대식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해 현장 지문을 재감식한 결과, 지문은 연쇄 강간범 스티븐 포브스의 것으로 드러났다. 스티븐은 1986년 아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집에서 3km 떨어진 곳에서 다른 여성을 강간하려다 체포됐으며 1996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스티븐은 사망 전 아치가 수감된 후 발생한 다른 4건의 강간 사건에 대해서만 자백한 바 있다. 현장 지문이 아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지난 21일 아치는 36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아치의 석방을 도운 변호사 바네사 포킨은 “사법당국이 조금만 더 빨리 아치의 억울함에 귀를 기울였다면 그가 젊은 시절을 억울하게 감옥에서 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치의 고통과 손실은 계량화할 방법이 없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죄수들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도록 모든 DNA와 지문 조회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피해 여성이 왜 아치를 범인으로 지목했는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처음부터 아치를 범인으로 염두에 두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 당시 피해 여성과 이웃들 모두 범인의 인상착의를 아치보다 키가 큰 남성으로 묘사했다는 점이 미심쩍은 부분이다. 이들은 경찰이 용의선상에 오른 남성들의 리스트를 보여주었을 때도 모두 아치를 한 번 이상 지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이 계속해서 아치의 사진을 보여주며 추궁하자 모두 그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치가 풀려나던 날 이스트 배턴 루즈 지방 검사 힐러리 무어 3세는 “국가를 대표해 사과한다”면서 “무고한 사람이 잘못된 판결로 고통을 받았다. 늦게나마 정의가 바로 세워졌다”고 밝혔다.아치는 출소 후 “36년간 이 날만을 꿈꿨다.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신앙을 통해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늘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했다”면서 “나는 풀려났지만 여전히 누명을 쓰고 수감된 사람들을 생각하면 고통스럽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렇게 36년 만에 무죄로 풀려났지만 이제 아치의 곁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 아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감옥 근처로 이사했던 어머니는 1999년 사망했으며 아버지 역시 2003년 세상을 떠났다. 사진=이노센트 프로젝트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엄마는 기장, 딸은 부기장…美 여객기 모는 조종사 모녀 화제

    엄마는 기장, 딸은 부기장…美 여객기 모는 조종사 모녀 화제

    엄마와 딸이 함께 조종하는 여객기를 타고 여행하는 승객의 기분은 어떨까?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포스트 등 현지언론은 같은 여객기를 조종하는 모녀의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 화제가 되고있다고 보도했다. 나란히 조종석에 올라 여객기를 조종하는 화제의 인물은 기장 웬디 렉슨과 부기장인 그의 딸 켈리. 모녀는 지난 16일 LA에서 애틀랜타로 향한 델타항공 여객기를 함께 몰았다. 세상에 수많은 여객기 조종사가 있지만 친모녀가 함께 조종석에 올라 비행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이같은 사실은 엠브리-리들 항공대학교 총장인 존 R. 와트렛 박사의 트위터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와트렛 박사는 "방금 모녀 파일럿이 조종한 비행기를 타고 애틀란타로 날았다. 너무나 멋진 비행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며 사진과 함께 사연을 적었다. 이 글은 트위터에 올라 순식간에 1만6000번 리트윗 될 만큼 큰 화제를 모았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렉슨 가족이 말 그래도 조종사 가문이라는 사실. 현지언론은 "웬디 기장의 남편이자 켈리의 아빠도 아메리칸 에어라인 소속 기장 출신으로 현재는 은퇴한 상태"라면서 "또다른 딸인 케이트 역시 조종사"라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박두례 신임 부천시여성단체총연합회 회장 “부천여성 자긍심 고취와 역량 높이는 데 모든 열정 쏟아붓겠다”

    박두례 신임 부천시여성단체총연합회 회장 “부천여성 자긍심 고취와 역량 높이는 데 모든 열정 쏟아붓겠다”

    “정주열 회장님과 회원들이 다져놓은 그동안의 기틀과 성과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부천여성들의 자긍심 고취와 역량을 높이는 데 모든 열정을 쏟아 붓겠습니다.” 신임 박두례 경기 부천시여성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제2대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23일 이같이 포부를 말했다. 22일 부천시청 어울마당에서 열린 회장 이·취임식에서 제1대 정주열 회장이 이임하고, 제2대 박두례 회장이 취임했다. 이날 행사에는 홍건표 전 부천시장을 비롯해 한국당 소사당협 차명진 위원장, 최갑철·권정선 도의원, 김환석·이상윤·남미경·곽내경 시의원, 부천시여성단체 회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부천시여총은 현재 40여개 단체에서 6000여명 회원들로 이뤄졌다. 부천 여성의 권익신장과 소외계층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부천시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부천내 최대 단체다. 1부 식전행사는 하늘여행예술문화공연을 시작으로 배띄어라 아리랑과 다문화여성들의 일본 춤, 장구난타, 어린이공연이 펼쳐졌다. 이어 2부는 개회사에 이어 내빈소개, 국민의례, 연혁보고, 단체기입장 및 소개, 감사패 전달 3부 ‘내 인생 최고 젊은 날 오늘’ 주제로 이화영 강사의 강연 순으로 진행됐다. 박두례 신임회장은 6000여 부천시여성총연합회 회원들의 마음을 담아 이임하는 정주열 회장에게 감사패와 공로패·꽃다발을 전달했다. 박 회장은 “부천시여총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많은 단체와 개인이 소속돼 있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한다면 못해낼 일이 없을 것”이라며, “사욕을 버리고 상호 배려하는 마음으로 믿고 의지한다면 개인의 행복과 자존감도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새롭게 출발하는 제2대 부천시여총은 과감히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조직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다짐했다. 정주열 회장은 이임사를 통해 “2017년 1월 부천시여성연합회와 여성단체협의회가 하나의 단체로 통합해 부천시여성총연합회로 창립돼 초대회장으로 취임했다”며 “취임때 약속처럼 부천의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 멋진 여성으로 활동하려고 최선을 다했고, 여성의 권익신장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후회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유튜브 금지된 중국의 인기 유튜버

    유튜브 금지된 중국의 인기 유튜버

    유튜브가 금지된 중국에서 인기 유튜버가 탄생할 정도로 인터넷 생방송이 중국에서 돈과 명예를 얻으려는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빠른 속도로 급성장 중인 중국의 인터넷 생방송 산업 규모는 2020년 1120억 위안(약 18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방송 사이트 가운데 하나인 YY는 지난해 순이익이 40억 위안에 이르며 사용자는 8800만명이다. 한 달에 수백 수천 위안을 벌어들이는 YY의 대표 인기 방송은 아이돌에 대한 순위 투표를 하는 것이다. 아이돌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상위권에 올리기 위해 기꺼이 돈을 낸다. 인터넷 생방송을 하는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대체로 교육 수준이 높지 않으며 시골에서 도시로 온 이들이다. 이들은 이주노동자인 농민공과는 다르지만 살고 있는 도시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인터넷을 통해 연대감을 형성한다. 원래 인터넷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포럼으로 시작한 YY에서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이들은 주로 남성이다. 이들은 팬으로부터 돈을 버는데 YY의 대표적인 스타인 위리의 한 달 수입은 100만~150만 위안에 달한다. 위리의 방송을 시청하는 인구는 900만명 정도다. 인터넷 방송의 내용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실없는 농담을 하거나 가짜 코카인을 흡입하고, 온갖 못 먹는 것을 먹는 식이다.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이 먹은 것은 불타는 담배꽁초, 살아있는 금붕어, 전구 등이다. 유튜브가 금지된 중국에서 요리하고 강아지와 노는 잔잔한 일상을 공개해 유튜브 스타로 떠오른 중국 여성도 있다. 구독자 수 3만명이 넘는 리즈치는 쓰촨성 시골에서 할머니와 살며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요리하는 자연주의적 생활방식으로 전 세계 구독자를 모았다. 인터넷 방송에 관한 다큐멘터리 ‘욕망의 인민공화국’을 만든 하오우는 인터넷 매체 ‘제육성조’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사용자가 제작한 콘텐츠의 광고 비용은 싸고 웹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든 방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방송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방송의 주된 시청자는 10대와 20대로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높다.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이주해 시간이 많이 남는 이주 남성 노동자들이 주로 인터넷 방송을 시청한다. 하오는 이어 “인터넷 방송은 중국의 늘어나는 빈부격차와 도시인의 고독을 보여준다”며 “중국 경제는 시골의 젊은이들에게 대도시로 이동할 기회를 제공했지만 실제로 도시에서 성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도시에서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고 좌절한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인터넷 생방송이 새로운 도피처가 됐다는 것이다. 인터넷 방송 진행자들은 영화배우와 같은 스타와 달리 팬들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팬들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과 희망을 구현하기 위해 인터넷 스타들에게 돈을 쓴다고 덧붙였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애 안 낳는 젊은세대 타박만 해서 될 일인가… 사회부터 변화해야”

    “애 안 낳는 젊은세대 타박만 해서 될 일인가… 사회부터 변화해야”

    맞벌이하며 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처지에서 보면 저출산은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경제·사회적 압력에 대한 개인과 가족의 합리적인 대응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뜻 누구에게 아이를 키우는 기쁨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이를 가질 것을 권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저출산은 극복해야 할 과제인가. 아니면 사회가 저출산 현상에 적응해야 하는가. 저출산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세대를 타박하며 사회적 압력을 더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일자리 등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지 못하는 사회가 저출산을 걱정할 자격이 있을까. 저출산과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차분한 검토가 우선되어야 한다.●한국, 세계 최저 출산율 0.98명 기록 2018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8명을 기록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5개국 가운데 합계출산율 0명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1971년 100만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났으나, 2018년에는 32만 7000명에 그쳤다. 50년도 안 되어 3분의1 토막이 난 셈이다. 2020년대 중반부터는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어지면서 인구 자연 감소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림 1] 출산율 하락의 원인은 가임여성의 감소, 출산연령 상향, 혼인 감소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주 출산 연령인 만 30~34세 여성 인구는 2017년 16만 9000명에서 2018년 15만 6000명으로 5% 감소하였다. 여기에 평균 출산연령은 32.8세로 2017년에 비해 0.2세 높아졌으며, 혼인건수는 2012년 이후 매해 감소하고 있다. 20~49세 여성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9%는 독신이다. 2000년 29.6%이던 여성 독신자 비율은 2016년 49%로 높아진 것이다. 최근에는 결혼 적령기 남성의 결혼 감소세도 가팔라지고 있다. 남성 결혼 적령기로 분류되는 만 30~34세 남성의 결혼건수는 2017년에 2016년에 비해 10.3% 감소하였다. 출산율이 높아질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 것이 2019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그림 2] 정부는 2006년부터 저출산 대책을 수립 시행하면서 지금까지 150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문재인 정부도 저출산 대책 명목으로 집행된 예산이 60조원이다. 출생아 한 명당 투입된 예산은 2006년 465만원에서 2018년에는 6669만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그렇지만 저출산 기조가 바뀌기는커녕 더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합계출산율 2명은 돼야 현재 인구 유지 가능 합계출산율 2명은 현재의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간주된다. 우리나라에서 합계출산율 2명선이 무너진 것은 언제일까? 1970년 4.53명을 기록하였던 합계출산율은 13년 후인 1983년 2.06명을 기록하며 급속히 낮아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 시기부터 인구관리정책이 시행되어야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1983년 7월 29일 인구시계가 4000만명을 넘어서자 신문들은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인구폭탄’이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전두환 대통령은 40명의 가족계획 유공 의사를 초청해 인구정책을 거국적으로 추진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가족계획협회는 인구 증가 억제를 위해 2자녀 영세민을 대상으로 임신중절을 확대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였다. 출산 억제에 초점을 맞춘 인구정책은 그 이후에도 한참 유지되다가 1996년에야 산아제한정책이 폐지되었다. 정책의 관성이 현실의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의 정책 집행력을 감안할 때 만약 1980년대 중반 인구정책을 전환했다면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21세기를 맞이한 2001년과 2002년 우리 사회는 다시 급격한 출생아 감소라는 충격을 경험하였다. 2001년 마이너스 14.35%의 가장 큰 출생아 감소와 더불어 연간 신생아 60만명 선이 무너졌다. 2002년에는 출생률 마이너스 12.76%의 감소와 더불어 출생아 수가 40만명대가 되었다. 1983년과는 달리 당시 참여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기본법 제정,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발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하였으나 추세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후 20015년까지 43만~45만명을 유지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던 출생아 수는 2016년 40만명을 턱걸이한 후 결국 2017년 35만 7000명, 2018년 32만 6000명을 기록하면서 2000년대 초반과 유사한 급속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출생아 수의 감소는 지속적인 흐름이 아니라 계단형으로 급격하게 추락하기 때문에 미리 대응하는 것이 힘들다.[그림 3] ●비혼 관계의 출산 꺼리는 문화적 배경도 한 몫 저출산의 원인에 대해서는 육아시설 부족, 양육비용 부담 등 보육환경이 문제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육아와 관련된 제도를 정비하고, 출산 및 양육과 관련한 더 많은 복지제도가 시행된다면 저출산 추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폴란드의 경우 자국 내 합계출산율은 1.4명 수준인데 비해 복지수준이 양호한 영국이나 독일에 거주하는 폴란드인들은 2.1명 수준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의 국민은 출산·양육 및 복지제도가 우리나라보다 더 잘 갖춰진 나라에 가더라도 여전히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미국에서 여성 1000명당 신생아 수를 인종별로 비교한 결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인의 경우 1.597명으로 평균 1.765명보다 낮음은 물론 백인, 히스패닉 등 모든 인종을 통틀어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였다. 캐나다에서도 이민 1세대와 이민 2세대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인들의 출산율은 0.79~0.87명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 결과의 원인에는 비혼 관계의 출산을 극도로 꺼리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 OECD 평균 혼외출산율은 39.9%를 기록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1.9%에 불과하다. 프랑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은 혼외출산율이 50%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러한 높은 혼외출산율이 안정적인 출생률 유지에 큰 도움을 준다. 한국의 사회·문화적 환경을 고려해봤을 때 이러한 높은 혼외출생률을 기대하기 힘든 만큼 단순한 출산 및 양육환경의 개선을 통해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겠다는 목표는 가까운 미래에 달성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마카오 등 동아시아 국가들 모두 ‘골머리’ 시야를 넓혀 우리 주변의 동아시아 국가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저출산으로 고민하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은 마카오(0.95명), 싱가포르(0.83명), 대만(1.12명)이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1.6명) 역시 계속 낮아지는 출산율로 고민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많은 인구에 기반한 저렴한 인건비, 높은 인구밀도를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대도시 주택가격 상승과 과도한 교육열로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를 유발하였다. 이러한 경쟁에서 낙오한 다수가 발생하였으며, 결국 이는 경제적 양극화, 그리고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게 해 저출산을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청년들에 대한 일자리 공급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이 세대들은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경쟁에 출전하는 대신 경기장을 떠나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것이다. [그림 4] 노동자가 파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자신의 요구와 의지를 받아들여 줄 것을 요구하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청년세대들 역시 ‘출산과 결혼 파업’을 통해 기존 체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저출산은 우리 사회를 무너뜨릴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서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이 가속화되면서 경제활력이 감소하고, 군 병력이 부족해지고,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체계가 붕괴할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전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 경제는 세계적으로 높은 대외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은 84%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높은 대외의존도는 반대로 국내 소비에 기반한 내수의존도가 낮은 효과를 거둔다. 인구의 감소가 발생해도 경제적 위축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상 크지 않으며, 대외교역의 비중 확대 등으로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 국민연금도 피라미드형 인구구조와 제조업 위주의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역사적으로 매우 드문 상황을 기본으로 간주한 복지체제로서 인구 및 고용형태의 변화를 감안해 보았을 때 지속 가능성은 높지 않다. 후속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 복지체계를 마련한다면 저출산은 결코 복지사회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다. 다소 냉소적일 수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 한국사회의 청년 실업, 임금 불평등, 주택가격 상승, 환경오염 등의 문제는 인구감소로 해결될 수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과 발전은 일차적으로 인간을 노동에서 배제하는 쪽으로 흘러가며, 이후 새로운 직업과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새로운 고용이 필요한 흐름을 보여온 것이 산업혁명 이후 기술진보의 일관된 흐름이다. AI와 로봇기술의 발전은 인간이 담당하고 있던 노동의 영역을 급속히 대처한다. 독일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는 기존 인력의 60분의1 수준인 10명으로 연간 5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한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내 800개 직업의 2000개 작업 가운데 45%(2조 달러 규모)는 자동화가 가능한 것으로 분류된다. 가까운 미래에 일자리의 감소된다는 의미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 모두 AI와 로봇기술의 발전에 힘쓰며 동시에 인간의 일자리 보호를 고민한다. 일자리 감소보다 더 빠른 출생의 감소는 오히려 기술발전 탓에 발생할 갈등을 최소화해 더 빠른 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저출산은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미래의 부담을 덜어주는 긍정적 요소라 할 수 있다. ●결혼 제도에 기대지 않아도 평등한 삶 살도록 북유럽 등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산업국가의 공통점은 사람을 귀중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지금의 저출산 흐름은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지 않으려는 집단적 인식의 결과이다. 단순히 어린이집이 더 많아지고, 학교에서 더 늦게 아이들을 봐준다고 해서 아이를 낳고 키울 만한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삶을 살 수 있고, 타의에 의해 경쟁에 내몰리지 않으며, 결혼이라는 제도에 기대지 않아도 평등하게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존중받으며 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 “젊은층이 길고 딱딱한 뉴스 안 읽는다는 건 오해”

    “젊은층이 길고 딱딱한 뉴스 안 읽는다는 건 오해”

    초등학생이 장래희망으로 인기 유튜버를 꿈꾸고, 국민 10명 중 6명이 유튜브로 검색하는 시대. 시시각각 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뉴스와 콘텐츠를 만들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뉴스 생태계에 관련한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정김경숙(51) 구글코리아 홍보총괄 전무를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글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났다. 최근 미디어 업계에서는 유튜브를 경쟁자를 넘어 위협적인 존재로 느끼고 위기감이 팽배한 것이 사실이다. 구글이 한국에 상륙한 지 21년, 그중 12년을 구글코리아에서 일한 그는 로고만 있는 구글 첫 화면을 띄우면서 말문을 열었다. “첫 화면에 광고를 띄운다면 돈은 벌겠지만 속도는 느려지겠죠. 20년째 변하지 않는 구글의 철학은 사용자 중심의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유튜브의 경우도 광고비가 해당 언론사로 가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채널 또는 수익 다각화로 함께 성장하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모토로라코리아와 한국릴리를 거쳐 구글코리아에 입사한 그는 홍보 업무에만 국한하지 않고 한국의 뉴스 생태계를 키워 나가는 일을 하고 싶다고 구글 본사에 먼저 제안했고, 회사는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미국과 달리 포털사이트에는 방문자의 40~60%가 몰리고, 정작 뉴스를 만든 언론사의 사이트에는 4%밖에 오지 않는 국내 미디어 시장이 왜곡됐다고 생각했어요. 언론이 건강해야 좋은 콘텐츠가 생산되니까요.” 이후 구글은 지난해부터 언론사가 독립적인 저널리즘 체계를 유지하도록 기술과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GNI)를 출범시켰고, 2015년부터 다양한 저널리즘 형식과 콘텐츠를 실험하는 ‘구글 뉴스랩 펠로십’을 진행했다. “디지털 시대에 젊은층이 길이가 길고 딱딱한 뉴스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오해예요. 10~20대는 뉴스를 공유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이 시대에 알아야 될 뉴스를 맥락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 중요해요. 같은 콘텐츠라도 시각화, 데이터화, 스토리텔링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해 보는 것이 필요하죠.” 최근 문제시되는 유튜브의 가짜뉴스(허위 조작 정보)에 대한 고민도 깊다. 구글은 청소년들의 가짜뉴스 분별력을 키워 주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15억원을 투자하고 다음달 19~20일에는 ‘맥락 저널리즘’을 주제로 ‘GNI 미디어 해커톤 대회’를 개최한다. 그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정답이나 빠른 답은 없는 것 같다”면서 “표현의 자유의 균형을 지키면서 자체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부적절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모니터하는 것이 어렵지만 구글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입사하고 싶은 외국계 기업 1위로 꼽히는 구글의 장점으로 ‘책임 있는 자율성’을 꼽은 그는 “직원들이 어떤 의견을 개진해도 오픈 마인드로 받아 주고 성에 대한 인식도 평등하고 수평적이며, 업무 영역을 넓혔을 때 자율성을 인정하고 지원해 준다. 그것이 내가 12년째 구글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양성 평등 운동을 하고 있는 그는 석사 학위만 무려 4개를 보유하고 있고, 현재는 IT 전문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워커홀릭은 아니고 맡은 일에서 최고가 되려니 계속 공부를 하게 되더군요. 인간성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능력을 갖춰야 좋은 리더로서 존경받을 수 있겠죠. 앞으로 IT 업계에서도 포용적인 리더십을 갖춘 여성 인재들이 더 많이 활약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제 캐릭터 띵구,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를 키울 것입니다”

    ‘띵구’ 이승구 작가가 말하는 ‘조각 한류(韓流)’“제 작품의 캐릭터 ‘띵구’를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캐릭터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서 조각뿐만 아니라 인형과 피규어, 티셔츠까지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조각가이지만 중국을 넘어 세계인 누구나 하나씩 갖고 싶어하는 작품을 남기려 합니다.” 中주요 건물 앞에 설치된 하얀 강아지 ‘띵구’연예인에서 문화예술로 ‘한류’ 한 차원 높여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조각가 이승구(47) 작가의 포부다. 그의 작품은 베이징의 랜드마크인 파크뷰그린 쇼핑물, 진하오호 리조트 골프장, 상하이 그린랜드, 항저우 인디고 쇼핑몰 앞 등에서 설치돼 있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홍콩, 우한, 다퉁 등에서도 볼 수 있다. 이들 건물 앞에서 떡 하니 버티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가 그의 작품 주인공이다. TV나 영화의 스타들이 중국에서 일으키는 연예인 한류를 이 작가가 ‘조각 한류(韓流)’ 돌풍을 일으키며 문화예술로 한류를 한 차원 더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화와 예술에서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그가 어떻게 최고의 인기 작가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몇 차례의 약속 재조정 끝에 그가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지난 12일 만났다. 코밑과 턱에 수염을 기른 모습에 첫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다.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면. “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난 100% 한국 사람입니다. 제가 중국에서 활동하지만, 부모님과 형, 누나 모두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2002년 중앙대 조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 킬시립미술학교를 거쳐 2008년 슈투트가르트 국립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에서 7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친 직후인 2008년부터 중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니 한국에선 저를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각을 전공한 대학 동문들만 저를 알지만….” “獨 유학시절 만난 아내와 결혼 중국행…11년째中문화예술 자부심 대단…외국작가 활동 애로 많아”-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독일에서 ‘개념 미술’을 공부하다 다른 유학생들처럼 미래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중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롭게 활동을 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아내의 나라 중국에 왔습니다. 처음엔 전혀 중국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잠시 살아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베이징올림픽이 한창이던 2008년 8월 중국으로 왔는데, 벌써 11년이 됐습니다.” -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어떻나. “많이 놀랐습니다. 중국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남다릅니다.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 근성’이 아니라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제가 홍보하지 않고 전시회를 해도 하루 1000~2000명씩은 거뜬히 옵니다. 고미술전시회라도 열리면 허름한 옷차림의 동네 어른들도 가서 봅니다. 유료 입장이라도 고가의 티켓을 끊고 들어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술가의 거리인 베이징 798 예술구에 있는 갤러리들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드나들어 한 달에 한 번씩 바닥을 공사해야 할 판’이라고 농담 조로 이야기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중화사상이랄까 자긍심 이런 게 느껴집니다. 이런 분위기가 젊은 층으로 퍼져 나가면서 예술품 구매도 활발하지요.” 건물 앞을 보란 듯이 지키고 선 하얀 강아지 ‘띵구(DDinggu)’. 입을 크게 벌리고 붉은 혀를 쑥 내밀고 있다. 이 작가는 이 애완견은 “불테리어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한 사냥개 특유의 야생성도 엿보이지만 하얀 이빨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다. 검은 눈은 귀여워 보인다. 전체적으로 순진무구한 느낌이 물씬 풍기며 띵구라는 이름처럼 익살맞은 장난꾸러기 같다. 좌충우돌하는 강아지 띵구를 왜 중국인들을 좋아할까. 새로 짓는 건축물에 사악한 기운이 범접하지 못하게 지켜달라는 벽사의 의미로 강아지를 설치하는 걸까,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동물로 친숙한 느낌이 주는 작품성 때문일까. 신축 건물 앞에 버텨선 띵구, 볼테리어 형상화띵구는 어릴 적 별명…본성 잃어가는 인간 내면사냥개 특유의 야생성에 익살 맞은 장난꾸러기신축 건물의 사악한 기운 물리치는 벽사 의미도”- 전혀 연고가 없는 중국에서의 활동, 힘들지 않나. “중국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작가들도 살아남기 힘들어하는 곳입니다. 외국 작가들이 얼마 못 버티고 철수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 사람이 제 작품을 사서 가져간다고 포장했습니다만 ‘작가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포장을 다시 풀더라고요. 중국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한국 작가가 할 일은 작품에 몰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엔 작품 평론은커녕 보도자료 하나 부탁할 곳도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자국 작가를 열심히 밀어주는 것이 마냥 부러웠죠.” - 전시회, 얼마나 자주 하나. “지난해에만 베이징, 상하이, 샤먼, 다통 등에서 6번 전시회를 가졌다. 요즘엔 상업시설도 있지만, 공공시설에서 전시회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선 한번 하면 2개월가량씩 전시합니다. 그러면 지난해 사실상 1년 내내 전시를 한다고 보면 됩니다. 너무 자랑 같나요(웃음). 갤러리에서 전시하면 일부러 찾아가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한계가 있지만, 공공시설엔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제 작품을 볼 수 있으니 더 좋습니다. 예컨대 서울광장처럼 이런 곳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 공공장소 임대가 쉽지 않을 텐데. “제게 전시해달라고 부탁이 많이 들어옵니다. 당연히 저도 일정한 금액을 받습니다. 공공시설 전시회도 수년 전에 제가 처음으로 중국에 도입한 방식입니다.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도한 것입니다. 요즘엔 중국 작가들도 저를 따라서 공공시설에서 전시를 많이 합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 전시작은 솔드아웃(Sold out·매진) 됩니다.” - 작품 소재가 강아지로 특이하다. “제 작품의 모티브는 사냥개인 불테리어입니다. 여기에다 제 어렸을 적 별명인 ‘띵구’를 붙여줬습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 제 이름을 빗대어 ‘띵구’라고 불렀거든요. 띵구는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고 그 바탕에 색깔을 입힌 겁니다. 이렇게 탄생한 띵구가 또 다른 저 자신입니다. 원래 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놓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고 입이 큽니다. 그러나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 본성을 잃고 애완용이 되었습니다만 그 근성이 남아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이죠. 억압이나 스트레스 속에서 자유나 자신의 참모습을 찾고자 하는 갈망 이런 것을 담았습니다. 이걸 캐릭터에 담았습니다. 띵구가 저보다 유명해지게 할 겁니다.” “2009년 첫 전시회부터 전시작 매진 행렬지난해 6번 전시회…전시기간은 1년 내내”그의 작품 가격은 얼마나 나갈까. 그는 중국에서도 17%의 세금을 내느라 골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높이 4m짜리의 대작은 4억 5000만 원에 넘겨줬다고 한다. 최고가라고 한다. 그러나 50cm 전후 크기의 작품 가격은 수천만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그래도 전시회 때마다 그의 작품은 다 팔려나간다. 최근 수년 동안 경기 활성화에 힘입은 중국에 불어닥친 건물 신축 바람도 그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전통이 아닌 현대식 신축 건물의 지킴이로 그의 작품이 불티난 것이다. 요즘엔 그의 작품을 모방한 가짜도 돌아다닌다고 한다. 중국 대륙을 누비는 띵구, 2007년 만들었고, 2008년에 처음 발표했다. - 작품 성격,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제 아이가 2014년인가 그때 로컬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중국 학생들처럼 목에 빨간 스카프인 홍링진(紅領巾)를 매고 왔습니다. 어릴 적 한국에서 반공교육을 세게 받았던 저는 상당히 충격적이었지만 우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사람도 미디어나 교육 등의 영향으로 변한다는 겁니다. 이걸 전시회에서 한번 차용한 적이 있습니다. 제 전시회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홍링진을 매게 했더니 중국 사람들은 학창 시절을 추억했고, 외국인들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듯 재미있어하였습니다. 저는 뻘줌하고 어색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 20년간 3개국을 떠돌았으니 제 정체성에 혼란이 왔던 겁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마음, 본능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을 띵구에 담은 겁니다.” - 하루 작품 활동은 얼마나 하나. “직접 만드는 것만이 작품 활동은 아닙니다. 제가 하는 독서나 여행 등도 작품의 영감이나 아이디어를 주기에 작품활동의 연장이라 생각합니다. 소재는 스테인리스 강철입니다. 이걸 구부리고, 떼어내고 도색하는 모습이 어찌 보면 철공소 풍경과 비슷할 겁니다. 작품을 만들려며 진흙으로 틀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높이 4m짜리 큰 작품 하나 완성하는데 한 6개월 걸립니다. 땀도 많이 흘리고 몸무게도 5kg 정도 빠집니다. 힘들지만 완성되고 나면 카타르시스도 느낍니다. 이럴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요즘엔 작업을 도와주는 스태프, 체계적인 시스템도 갖췄지만, 초창기엔 혼자서 거의 다 했지요.” “4m짜리 대작은 6개월…체중 5kg 빠져작품 최소 수천만원에 대중화 한계 회의사랑받는 작가 되려고 작품 대중화 고민인형·피규어·애니메이션 제작이 돌파구”- 언제부터 중국인들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았나. “중국에 온 다음해인 2009년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그때 제 작품이 운이 좋게도 모두 팔려나갔습니다. 중국 현지인들이 아니라 중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 작품을 거의 다 사갔습니다. 제 작품이 사람들 눈에 많이 익어야겠다는 생각에 초창기에도 1년에 두 번 정도는 꾸준히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중국인들의 관심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4년 베이징에 있는 호텔 및 백화점인 파크뷰그린의 전속작가가 되었고요. 때마침 소셜네트워크(SNS) 바람을 탔어요. 제 작품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위챗(중국의 모바일 메신저)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제가 덕을 봤습니다. 첫 개인전부터 지금까지 항상 다 팔려나갔습니다.” - 첫 전시 작품이 다 팔렸다면 중국에서 고생하지 않았겠다. “2008년 중국에 왔을 때, 말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문화도 달랐습니다. 조용하고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독일 문화에 익숙했다가 갑자기 거대도시 베이징의 시끄럽고 복잡한 문화에는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작업실을 구하는데 여러 번 실패했다가 버스를 잘 못타는 바람에 베이징 798 예술구 뒷골목을 갔지요. 그곳이 마음에 들어 작업실을 구했습니다만 집에서 작업실까지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엔 중국에 잘못 온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지만, 작업에만 몰두했지요. 매일 하루 4시간의 출퇴근 때 버스 안에서 작품 드로잉과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 드로잉은 지금도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 버스를 종점에서 탔는데 맨 뒤 오른쪽 끝자리가 제자리였지요.” - 작가를 그만둘뻔했다던데. “2016년쯤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회의감이 깊이 밀려들어서 작가를 때려치우려 했습니다. (두 손을 30~40㎝가량 벌리더니) 요만한 크기의 작품이 몇천 만원이면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있나요. 저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대중화 한계에 고민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이 제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비싼 작품만 만들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 2만~3만원 이면 살 수 있는 피규어나 인형 등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각의 범위를 폭넓게 생각하자는 목표가 생긴 겁니다. 물론 너무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예술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니.” - 인가 작가여서 사드 영향은 없었겠다. “왜 없었겠어요. 롯데와 같은 대기업도 나가떨어지는데….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인 왕징의 한인 상가도 거의 절반 가까이 철수했지요. 제가 하려던 전시회나 띵구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작업이 취소되었습니다. 중국 회사와 계약해 띵구 피규어와 인형, 티셔츠를 만들려던 프로젝트가 취소됐다가 최근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법인등록도 하고, ‘이승구 스튜디오’라는 회사도 만들었습니다. 나이키와 같은 브랜드화할 계획입니다. 한국보다 시장이 훨씬 큰 중국에서 승부를 볼 생각입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美 휴양지, 관광객 간 폭행사건 잇달아…비키니 입고 패싸움도

    美 휴양지, 관광객 간 폭행사건 잇달아…비키니 입고 패싸움도

    미국의 대학들이 봄방학을 시작하면서 몇몇 휴양지에서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폭행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마이애미 사우스비치의 한 도로에서는 십여 명의 젊은 여성이 ‘패싸움’을 벌여 이곳을 지나던 차량 운전자 및 동승자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사우스비치는 마이애미에서도 가장 유명한 해변 마을 중 한곳이다.이날 한 행인이 동영상 공유 사이트 플라이하이트닷컴에 게시한 휴대전화 영상에는 비키니 등 수영복만을 입거나 그 위에 비치 드레스를 걸쳐 입은 젊은 여성들이 곳곳에서 서로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 여성은 상대방에게 주먹을 휘두르거나 머리채를 휘어잡고 또는 서로를 밀치다가 바닥에서 뒤엉켰다. 이 때문에 도로를 지나지 못하는 차량들은 계속해서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이들 여성은 격렬하게 싸우느라 경적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주변에는 많은 행인이 이들 여성의 싸움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봤다. 심지어 일부 행인은 이들 여성의 모습을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공개된 영상에는 남성 행인들의 목소리도 담겼다. 한 남성은 “그들을 일으켜라”고 재촉했다. 아마 이들 여성 때문에 지나갈 수 없었던 차량의 운전자인 듯싶다. 하지만 이내 또다른 남성이 “그들을 싸우게 놔둬라”고 외친다. 이어 어디선가 “그들은 감옥에 갈 것”이라는 제3의 남성 목소리가 들려온다.하지만 이들 여성은 이런 경고를 무시한 채 폭행을 이어간다. 잠시 뒤 두 명의 여성 구경꾼이 싸우는 여성들을 떼어내려 하지만 결국 이들 마저 싸움에 뛰어든다. 심지어 형광색 수영복은 입은 한 여성은 격렬하게 싸우느라 신체 일부를 노출하기도 한다. 영상은 이들 여성이 도로 한가운데 바닥에서 서로 엉켜 붙어 싸우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따라서 이들 여성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싸우게 됐는지 이후 현장에는 경찰이 출동했는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얼마 전 사우스비치에서는 한 남성이 한 여성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다. 피해 여성은 남성의 주먹으로 인해 그 자리에서 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인근 오션 드라이브에서 젊은 남성들 사이에 패싸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우산을 사용해 폭행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현지 경찰은 소란스러운 관광객을 막기 위해 무력을 동원했고 심지어 인기 있는 관광지에는 경찰 마크가 새겨진 풍선 비행선을 배치해 폭행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왜 맨발로 다녀!” 여객기 내 만취 남성들 간 유혈 난투극

    “왜 맨발로 다녀!” 여객기 내 만취 남성들 간 유혈 난투극

    영국 글래스고 프레스트윅 공항에서 스페인 테네리페 수르 공항으로 향하던 여객기에서 난투극이 벌어져 승객 두 명이 구금됐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만취한 남성 두 명이 아일랜드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 여객기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몸싸움을 벌여 승객들이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고 보도했다. 싸움은 지난 16일 한 여성 승객이 맨발로 기내를 돌아다니면서 시작됐다. 당시 장면을 촬영해 SNS에 공유한 승객 벤 워드로프는 “한 여성 승객이 맨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자 만취한 한 남자가 그녀에게 비난을 퍼부었다”고 설명했다. 벤에 따르면 만취한 남성이 여성에게 소리를 지르자 여성의 남자친구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개입했고 싸움이 시작됐다.비행기가 착륙할 때쯤 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서로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두 남성은 급기야 한 쪽이 다른 한 쪽의 코를 깨물면서 피를 보고야 말았다. 벤이 공유한 영상에는 여성 승무원이 치고받는 남성 승객을 떼어놓으려 애쓰는 모습과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남자들이 나서서 싸움을 말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두 남성은 승무원과 승객들이 떼어놓기 전까지 싸움을 지속했고 코를 물린 한 사람은 얼굴에서 피가 흘렀다. 목격자들은 이들의 유혈 난투극이 짐칸까지 피가 튈 정도로 격렬했다고 전했다.벤은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 승무원이 남성 승객 사이에서 싸움을 말리려 애썼다. 싸움이 난 사람들 앞에는 어린 소년과 그 가족이 앉아 있었고 모두들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항공사 측의 신고로 두 남성 승객은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체포된 상태다. 라이언에어 여객기에서는 한달 전에도 기내에서 만취한 남성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져 비행기가 회항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술 취한 남성이 여성 승객에게 접근하면서 벌어진 싸움은 승무원이 제지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다른 승객들이 말린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글래스고 프레스윅에서 스페인 말라가로 향하던 비행기는 마드리드로 우회했다. 한편 스페인 테네리페 경찰은 이번 난투극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탑승객과 승무원을 포함한 항공기의 안전이 우리의 최우선 과제”라면서 “우리는 기내 난동을 심각하게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베를루스코니의 ‘별장 성접대’ 폭로했던 모델 의문의 죽음, 伊검찰 수사 나서

    베를루스코니의 ‘별장 성접대’ 폭로했던 모델 의문의 죽음, 伊검찰 수사 나서

    모로코 출신의 모델 이마네 파딜은 2012년 책을 써냈는데 이탈리아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2)가 연 파티 ‘붕가붕가‘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는 사실을 폭로해 ‘붕가붕가 모델’로 통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미성년 윤락녀들과 성관계를 맺고 화대를 지급한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서 베를루스코니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국내에서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별장 성접대 추문처럼 베를루스코니가 자신의 빌라에서 음란한 파티를 즐겼다는 것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유죄가 선고됐고, 그는 항소를 포기했다. 나중에 그는 탈세 혐의가 인정돼 사회봉사 활동 등을 언도받았다. 그런데 파딜이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밀라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복통을 호소하며 입원한 지 한달 만이었다. 생전의 그녀는 방사성 물질이 몸 안에 들어온 것 같다고 주장했다. 현지 언론도 그녀의 주장에 동조하는 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프란체스코 그레코 밀라노 검찰총장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파딜의 의료 기록에 “이상한 점이 여럿”이라며 “의사들은 그녀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명쾌한 설명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지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문제의 병원이 독성물질 연구소에 샘플들을 보냈는데 코발트 등 방사성 물질 혼합체의 존재가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검찰은 아직 이런 결과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16일 “젊은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늘 안 된 일이다. 난 이 사람을 만난 적도, 말을 건넨 적도 없다. 나도 그녀의 증언을 읽어봤는데 모든 게 날조되고 아둔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네 차례 총리를 지내며 여전히 뇌물 공여 등 수많은 범죄 혐의에 시달리고 있다.그는 2010년 10월 경찰에 절도 혐의로 검거됐던 17세 나이트클럽 댄서 카리마 엘 마루그를 석방해달라고 요청했다. 루비란 별명으로 불렸던 그녀는 ‘붕가붕가 파티’에 여러 번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2013년 6월 결국 그는 화대를 건네고 성관계를 맺은 사실과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인정됐다가 다음해 결국 무죄로 뒤집어졌다. 베를루스코니는 늘 자신이 “성인은 아니다”면서도 여성들을 돈으로 산 적은 없다며 “여성을 정복하는 즐거움을 잃는다면 대체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떠벌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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