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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량했던 고향 폐교… 10년 만에 고창 으뜸 ‘책 창작공간’ 변신

    황량했던 고향 폐교… 10년 만에 고창 으뜸 ‘책 창작공간’ 변신

    황량했던 폐교가 10년 만에 아이와 작가들이 모이는 창작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와 폐교를 문화체험공간 ‘책마을해리’로 만드는 마법을 부린 이대건(51)씨를 만나 책으로 지역을 소생시키는 방법을 들어 보았다. 도서관으로 시작해 책과 관련한 다양한 체험공간으로 변모한 ‘책마을해리’는 이제 대안학교를 꿈꾸고 있다. 수도권에서 책 편집자로 20년 이상 일했던 이씨는 스스로를 ‘책마을해리’의 해리포터 촌장이라고 소개한다. 그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해리면에 자리잡은 체험학습장 ‘책마을해리’의 주소에다 마법사인 소설 주인공 이름을 덧붙인 것으로 이씨의 편집 감각이 살아 있는 작명이다. 나무집 도서관, 부엉이 도서관이 자리잡은 책마을해리의 운동장에 겨울이면 소담스러운 눈이 쌓이고, 여름이면 푸릇한 풀이 빛난다. 책과 디저트를 파는 카페공간에는 장작불에 군고구마가 익고 삽살개 구름이가 난로 옆에 순하게 앉아 있다. 이씨가 폐교를 10년간 4000여명의 사람이 모여 400여종의 책을 만들어 낸 ‘책마을해리’로 탈바꿈시킨 것은 해리포터의 마법과도 같은 힘이었다. 책마을해리는 이씨의 할아버지가 1936년 세웠던 광승간이학교에서 나성국민학교, 나성분교를 거쳐 2001년 폐교가 된 공간에 자리잡았다. 책 만드는 놀이터, 마을학교로 시작해 시인학교, 만화학교로 확장했으며 2017년부터는 책영화제도 열고 있다. 오로지 책만 읽는 공간인 책감옥, 작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1500년 역사의 고창한지를 체험하는 공방, 책을 읽으며 쉬어 갈 수 있는 북스테이 등 책과 연결된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확장을 보여 주는 곳이 책마을해리다. 할아버지가 세웠던 학교가 도축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이씨는 폐교를 사들여 2012년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그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지만 영원히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지역을 건강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마을해리가 고창의 보물로 자리잡게 된 데는 어르신 마을학교 ‘밭 매다 딴짓거리’가 큰 도움이 됐다. 한글을 읽거나 쓰는 데 서툰 할머니들이 마을학교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우리 곧 죽어. 뭐 하라고 하지 마”라고 하던 80대 할머니들도 청년과 다를 바 없는 성취감에 학교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 감정도 무뎌지는 줄만 알았던 할머니들에게 시샘과 질투, 수줍음은 남아 있었다. 글씨를 배우며 드러나는 실력 차이 때문에 할머니들 사이에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벌어지자 마을학교는 주로 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마을학교를 졸업하고 돌아가신 할머니의 그림 전시회도 책마을해리에서 열리고 있다. ‘인문학 마을, 도서관 도시’가 관청에서 하는 정책이라면 이씨가 하는 일은 책을 매개로 작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키워 가는 것이다. 마을회관 가는 길에 있는 폐교 앞을 지나며 무서워했던 할머니들은 이제 마을을 지켜 줘서 고맙다며 이씨의 손을 잡는다.오로지 책과 마을만을 생각하며 책마을해리를 키워 온 이씨의 ‘마법’은 2019년 사회혁신가들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아쇼카 펠로우’로 선정되며 인정받았다. 아쇼카 펠로우는 1980년 미국에서 사회혁신기업가들에게 상금을 주면서 시작됐고 한국인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 15명이 선정됐다. 노벨상 상금보다는 적지만 펠로우가 되면 3년간 평균 1억 5000만원을 맘껏 쓸 수 있다. 책마을해리는 작은 민간단체가 대기업과 함께 크는 사례이기도 하다. 책마을과 차로 10분 떨어진 곳에는 2016년 매일유업에서 문을 연 상하농원이 있다. 농촌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6차 산업’의 성공 모델로 꼽히는 상하농원은 대기업에서 만든 농업 체험공간으로 책마을해리와 규모 면에서는 비교되지 않는다. 하지만 책마을해리에서 출판한 그림책과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 등을 상하농원에서 열어 상생하고 있다. 이씨는 “지방에서 가능성을 찾을 때는 사람을 먼저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아마섬은 소멸 위기의 섬에 청년들이 찾아가 기업을 만들고 마을공동체를 성공적으로 살린 모델로 유명한 곳이다. 아마섬은 도시에서 ‘바보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지역을 살려냈다. 이씨 역시 스스로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10년간 고창에서 책마을해리를 일궜다고 자평했다.
  •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1960년대 대혼란, 美 정치 지형 뒤엎다

    베트남전과 반전 시위… 1960년대 대혼란, 美 정치 지형 뒤엎다

    1970년대 서구에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했다. 특히 미국의 70년대는 60년대의 혼란을 물려받은 악몽 같은 세월이었다. 격동의 70년대를 거치면서 미국의 정치적 지형은 새로 조성됐고 이를 토대로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승리했다. 미국 정치의 ‘보수화’가 이 시기에 결정됐고, 시공간을 확장해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선도 잉태했다고 볼 수 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가 미국의 70년대를 재조명해 지금 미국을 이해하는 장기 연재를 맡았다.존 F 케네디가 1963년 암살된 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린든 존슨(1908~1973)은 흑인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켰고 ‘위대한 사회’라고 불리는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남북전쟁 후 인종 분리 제도를 유지해 온 남부의 반발은 거셌다. 존슨은 케네디가 시작한 베트남전쟁을 물려받았다. 존슨과 그의 안보팀은 우월한 군사력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를 저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64년 대선에서 승리한 존슨은 1965년 초부터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을 시작하고 지상군을 베트남에 증파했다. 그러나 북베트남과 베트콩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중국의 개입을 우려한 존슨은 북베트남의 심장부는 그대로 두고 주변만 공습했다. 미군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느라 많은 희생을 치렀다. 1967년 말 남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은 50만명이었다. 1965년 2000명 수준이던 미군 전사자는 1966년 6000명, 1967년 1만 1000명을 넘어섰다. 미군의 항공 전력도 북베트남의 정교한 대공 방어망에 걸려 큰 희생을 치렀다. 그럼에도 미군 사령부는 베트남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로버트 맥너마라(1916~2009) 국방장관은 전쟁에 회의를 느끼고 존슨 대통령에게 사임을 청했다. 전쟁에 지친 존슨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역력했다. ●‘구정 대공세’로 미국 여론 반전 1968년 1월 31일 구정(舊正)을 기해 북베트남군은 정규군을 동원해 베트남 전역에서 대공세를 취했다.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이 베트콩에 의해 뚫렸고 북부의 유서 깊은 도시 후에가 북베트남군에 장악됐다. 미군은 반격해 사이공을 확보했고 치열한 교전 끝에 후에를 탈환했다. 그러나 후에는 완전히 파괴됐고 포로가 된 공무원, 군인, 경찰, 교사, 수녀 등 3000명이 학살됐고 2000명이 실종됐다. 두 달 동안 계속된 전투로 북베트남군 6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됐다. 미군 4000명, 남베트남 정부군 5000명, 한국군 200여명도 전사했다. 케산 고지 전투에서는 미 해병대원 500명이 전사했고 북베트남군은 전사자 1만명을 내고 후퇴했다. 전술적으로는 미군의 승리였다. 하지만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이 공격을 받은 모습을 TV로 본 미국민은 정부가 거짓말을 해 왔다고 믿게 됐다. 게다가 CBS의 월터 크롱카이트는 전투가 한창일 때 남베트남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이제 미국이 협상으로 전쟁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방송했다. 모든 언론이 베트남전쟁은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고 보도했다. 맥너마라 국방장관은 2월 말 퇴임했고, 존슨은 오랜 친구인 클라크 클리퍼드(1906~1998) 변호사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한편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SDS·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이 중심이 된 진보적 청년계층은 군산 복합체가 움직이는 미국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워 가고 있었다. 1965년에 이들은 UC 버클리, 하버드, 위스콘신 등 캠퍼스에서 집회를 열었고 10월에는 버클리에서, 11월에는 백악관 앞에서 큰 시위를 벌였다. 그해 8월 LA 남쪽 흑인 거주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많은 건물이 불타고 수십명이 사망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다른 도시에서도 흑인 시위와 폭동이 빈발했다. 민권법 통과를 위해 존슨 대통령을 지지했던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가 이끌던 온건한 흑인단체도 반전대열에 가담했다. 1967년에는 학생 시위대가 국방부와 백악관을 포위하는 대형 집회로 발전했다.●유진 매카시, ‘반전 후보’로 나서다 학생운동 그룹은 전쟁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1968년 대선에 나설 민주당 후보로 밀고자 했다. 이들이 접촉한 로버트 케네디(1925~1968) 상원의원 등은 정부의 전쟁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현직 대통령에 도전하기를 꺼려했다. 이때 나선 사람이 미네소타 출신 상원의원 유진 매카시(1916~2005)였다. 세인트존스대와 미네소타대에서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하원의원을 지낸 후 상원의원이 된 그는 학구적이고 종교적이며 양심적인 정치인이었으나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1968년 1월 초 매카시가 베트남전쟁 반대를 외치면서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전국에서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매카시 돌풍’이 일었다. 그해 3월 12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매카시는 42%를 획득해 49%를 얻은 존슨 대통령을 바싹 추격했다. 그러자 며칠 후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매카시를 돕던 젊은이들은 케네디가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했다. 3월에 열린 매사추세츠 등에서의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선 매카시가 1위를 달렸다. 존슨 대통령은 전쟁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상태였다. 클리퍼드 국방장관은 베트남에서 미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존슨에게 보고했다. 3월 31일 존슨은 북베트남에 대한 공습 중단을 선언하고 하노이에 협상을 제안하면서 자신은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4월 4일, 멤피스에서 킹 목사가 백인우월주의자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워싱턴, 시카고, 뉴욕, LA, 워싱턴DC 등 미국 120개 도시에서 흑인들의 시위가 폭동으로 번졌다. 경찰과 주 방위군이 무장을 하고 폭동에 대처했고 사망자가 속출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선 학생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컬럼비아대는 인근 할렘에 거주하는 흑인 주민들과 체육관 건립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들’이 주도하는 신좌파 계열의 학생들이 베트남전쟁 반대와 징집 거부를 주장하면서 총장실을 점거했고 학장을 인질로 감금했다, 캠퍼스에는 체 게바라(1928~1967)와 맬컴 X(1925~1965)의 사진이 곳곳에 붙었고 무장한 경찰이 캠퍼스를 포위했다. 뉴욕시는 내란이 일어난 것 같았다.●케네디 상원의원 암살로 좌절된 열망 로버트 케네디가 풍부한 자금과 인력을 갖고 대선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매카시의 선거운동은 동력을 상실했다. ‘케네디’라는 빅 네임은 미디어를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1968년 6월 5일, 로버트 케네디는 캘리포니아 프라이머리에서 승리했다. 그날 밤 12시 넘어 케네디는 로스앤젤레스의 앰배서더 호텔에서 연설을 했다. 그리고 호텔 주방을 거쳐 이동하던 중 아랍계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하고 변화와 개혁을 이루려던 젊은이들의 꿈마저 좌절되고 말았다. ■이상돈 명예교수 1951년생. 서울대 법대를 거쳐 미국 툴레인대와 마이애미대에서 유학한 뒤 1983년부터 2013년까지 중앙대 법과대학 교수로 헌법 등을 가르쳤다. 2016년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활동도 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이 외할아버지.
  • “오직 승리뿐? 어이없다”…中 ‘시안봉쇄’ 비판한 ‘장안10일’ 글 삭제

    “오직 승리뿐? 어이없다”…中 ‘시안봉쇄’ 비판한 ‘장안10일’ 글 삭제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도시 전체가 전면 봉쇄된 중국 시안의 실상을 알린 ‘장안(시안의 옛 이름) 10일’ 글이 전면 삭제됐다. 인구 1300만명의 대도시 시안이 봉쇄되면서 시민들이 겪는 고통을 알리며 당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비판한 이 글은 제2의 ‘우한일기’로 주목받으며 친정부 성향의 언론인의 지지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감대와 불만이 중국 전체로 퍼질 것을 우려한 당국은 ‘제로코로나’ 정책을 수정하는 대신 불만을 차단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식인 ‘기록 삭제’를 택했다. 9일 대만 중앙통신사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프리랜서 기자 장쉐가 자신의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공식 계정에 쓴 ‘장안 10일’ 원문이 차단됐다. 장쉐의 계정을 구독 중인 이용자가 이 글을 누르면 ‘공개 계정 정보 서비스 관리 규정’을 위반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며 “법규에 따라 관련 내용을 보여줄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나온다. 위챗 관리 규정엔 ‘공식 계정 이용자는 돌발 사건을 이용해 극단적 정서를 선동하거나 (정부·사회) 조직기구의 정상적 운영을 저해하고 사회의 조화와 안정에 영향을 주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위챗 공식 계정 서비스에서 9일 현재 장쉐의 계정이 통째로 검색이 되지 않고 있다. 기존 구독자가 아닌 이용자는 장쉐의 계정을 찾아가 들여다볼 수 없는 것이다. 원문뿐만 아니라 위챗과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서 원문을 공유하거나 복사한 글, 또는 ‘장안 10일’과 관련된 글들 대부분 삭제됐고, 남아 있는 글들은 대부분 ‘장안 10일’이 혼란을 선동한다고 비난하는 취지의 글들뿐이다. ‘장인 10일’을 포용해야 한다며 지지한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의 글 역시 삭제됐다. 그동안 친정부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온 후 전 편집장은 지난 5일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글에서 “많은 사람이 좋든 싫든 ‘장안 10일’과 같은 표현을 허용해야 한다”며 “중국 인터넷에서 단 한 가지 목소리만 있는 것을 희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한 바 있다.중국의 유력 언론매체 탐사보도 기자 출신으로, 지난 2015년 프리랜서 기자로 전향한 장쉐는 지난 4일 도시 전면봉쇄 속에서 고통을 겪는 시안 시민들의 모습을 생생히 전달한 ‘장안 10일’을 공개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와 관영 매체들은 시안 시민들이 도시 전면봉쇄 속에서도 당국의 지원 속에서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고 선전해왔지만, ‘장안 10일’은 당국의 우격다짐식 격리 때문에 먹거리를 구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을 겪는 주민들의 모습을 상세히 전달했다.“두 젊은이가 일주일째 라면만 먹다가 입이 다 헐었다고 한다. 행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정부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2021년 12월 29일) “시안(西安)은 오직 승리뿐이라고? 어이가 없다. 이번 봉쇄가 끝난 뒤에도 정부의 공훈만 칭송하기 바쁘다면 주민들의 고난은 무의미하다.”(2022년 1월 3일)장쉐는 ‘시안은 승리’라는 친구에게 ‘한 소녀의 부친이 심장 이상을 일으켜 병원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바이러스) 위험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받아 주지 않아 수술이 늦어졌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을 보냈다고도 전했다. 장쉐는 “이번 사건이 끝난 뒤 피눈물의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부의 공훈만 칭송하기 바쁘다면 사람들의 고난은 무가치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장쉐의 글은 중국 인터넷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국제적으로도 제2의 ‘우한일기’로 주목받았다. ‘장안 10일’은 방역을 위해 코로나19 발생 지역 주민들의 기본적 생활권을 극단적으로 제약하는 중국식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장쉐는 ‘장안 10일’에서 “‘우리는 어떤 대가라도 감당할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말은 좋지만 여기서 우리(시안 사람들)는 ‘우리’인지 ‘감당해야 할 대가’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고 일갈했다. 대(大)를 위해 소(小)가 희생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중국 공산당의 보편적 사고에 정면으로 도전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극도로 경직된 방역 정책 탓에 병원 문턱에서 진료를 받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거나 임신부가 유산하는 일까지 잇따르면서 중국 부총리까지 나서 공개 사과를 하는 등 시진핑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앞두고 사회 안정 도모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 당국은 ‘시안 사태’에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데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장안 10일’ 삭제에 일부 네티즌들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웨이보에서 “모든 소시민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 우리는 모두 소시민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면서 “‘장안 10일’이 없다면 누가 소시민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려 하겠나”라고 꼬집었다.
  • “일주일 라면만 먹다 입 헐어”… 中시안 봉쇄에 ‘제2 우한일기’

    “일주일 라면만 먹다 입 헐어”… 中시안 봉쇄에 ‘제2 우한일기’

    정부만 칭송… 주민 고난 무의미병원 찾아 헤매다가 가족 잃기도“두 젊은이가 일주일째 라면만 먹다가 입이 다 헐었다고 한다. 행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정부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2021년 12월 29일) “시안(西安)은 오직 승리뿐이라고? 어이가 없다. 이번 봉쇄가 끝난 뒤에도 정부의 공훈만 칭송하기 바쁘다면 주민들의 고난은 무의미하다.”(2022년 1월 3일)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다시 퍼지자 지난해 12월 말 인구 1300만명의 대도시인 산시(陝西)성 시안에 고강도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프리랜서 탐사보도 전문기자 장쉐(江雪)가 지난 4일 올린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글이 화제다. 정부의 우격다짐식 방역에 대한 비판과 고군분투하는 시민들에 대한 애정을 함께 담은 이 글은 ‘제2의 우한일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한일기는 2020년 감염병 최초 발생 당시 소설가 팡팡이 후베이성 우한 봉쇄의 참상을 폭로한 글이다. 장쉐는 ‘장안십일’(長安十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안에 봉쇄령이 내려진 지난달 22일 정부는 ‘물자 공급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봉쇄 이틀 뒤부터 음식을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장안은 시안의 옛 이름이다. 그는 “29일에 두 젊은이가 온라인에서 ‘일주일째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더니 입이 다 헐었다’고 토로했다”며 “행정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정부는 아직 모른다”고 비판했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막강한 택배 시스템이 있었지만 (중앙정부의 빅테크 때리기 탓인지) 당국이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또 지난 3일 한 친구가 ‘시안은 승리밖에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소개한 뒤 “어이가 없었다. 그 친구에게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사연이 담긴 글을 보내 줬다”고 적었다. 부친이 심장 이상을 일으켜 병원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바이러스) 위험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받아 주지 않아 수술이 늦어졌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장쉐는 “이번 사건이 끝난 뒤 피눈물의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부의 공훈만 칭송하기 바쁘다면 사람들의 고난은 무가치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그의 글에는 “보는 내내 울었다”, “시안 주민들의 마음속 소리였다” 등 지지의 댓글이 대거 달렸다.
  • “일주일째 라면만 먹다 입 다 헐어” 초강도 봉쇄로 ‘제2의 우한’된 시안

    “일주일째 라면만 먹다 입 다 헐어” 초강도 봉쇄로 ‘제2의 우한’된 시안

    “두 젊은이가 일주일째 라면만 먹다가 입이 다 헐었다고 한다. 행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정부는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2021년 12월 29일) “시안(西安)은 오직 승리뿐이라고? 어이가 없다. 이번 봉쇄가 끝난 뒤에도 정부의 공훈만 칭송하기 바쁘다면 주민들의 고난은 무의미하다.”(2022년 1월 3일)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다시 퍼지자 지난해 12월 말 인구 1300만명의 대도시인 산시(陝西)성 시안에 고강도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프리랜서 탐사보도 전문기자 장쉐(江雪·사진)가 지난 4일 올린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글이 화제다. 정부의 우격다짐식 방역에 대한 비판과 고군분투하는 시민들에 대한 애정을 함께 담은 이 글은 ‘제2의 우한일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한일기는 2020년 감염병 최초 발생 당시 소설가 팡팡이 후베이성 우한 봉쇄의 참상을 폭로한 글이다. 장쉐는 ‘장안십일’(長安十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시안에 봉쇄령이 내려진 지난달 22일 정부는 ‘물자 공급이 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봉쇄 이틀 뒤부터 음식을 구하기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장안은 시안의 옛 이름이다. 그는 “29일에 두 젊은이가 온라인에서 ‘일주일째 인스턴트 라면을 먹었더니 입이 다 헐었다’고 토로했다”며 “행정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정부는 아직 모른다”고 비판했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의 막강한 택배 시스템이 있었지만 (중앙정부의 빅테크 때리기 탓인지) 당국이 이를 활용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또 지난 3일 한 친구가 ‘시안은 승리밖에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소개한 뒤 “어이가 없었다. 그 친구에게 아버지를 잃은 소녀의 사연이 담긴 글을 보내 줬다”고 적었다. 부친이 심장 이상을 일으켜 병원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바이러스) 위험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받아 주지 않아 수술이 늦어졌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장쉐는 “이번 사건이 끝난 뒤 피눈물의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부의 공훈만 칭송하기 바쁘다면 사람들의 고난은 무가치한 것이 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그의 글에는 “보는 내내 울었다”, “시안 주민들의 마음속 소리였다” 등 지지의 댓글이 대거 달렸다. 장쉐는 유명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활동하다가 2015년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이후 박해받는 인권 변호사 가족의 사연을 소개하는 등 울림이 있는 기사를 꾸준히 공개해 왔다. 통상 중국에서 당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곧바로 삭제되곤 한다. 글쓴이도 경찰에 불려가 고초를 겪기도 한다. 다만 장쉐의 장안십일에 대해선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고 있다. 뜻밖에도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장쉐의 일기는 봉쇄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안 주민들의 심금을 울렸다”며 “서술이 진실하고 객관적인 한 그것은 봉쇄 기록의 일부다. 팡팡의 우한 일기처럼 조작된 기록과는 다르다”고 칭찬했다.
  • [여행가방]

    [여행가방]

    ●에버랜드 ‘호호(虎好) 패밀리’ 콘텐츠 에버랜드가 ‘호호(虎好) 패밀리’ 이벤트를 새로 선보인다. 지난해 6월 태어난 호랑이 오둥이 남매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다. 타이거밸리에서 호랑이 가족을 매일 만날 수 있고 연구캠프에선 오둥이 남매의 성장앨범이 전시된다. 카니발광장 야외무대에선 ‘오둥이 어흥스쿨’이 펼쳐진다. 하루 2회 약 15분간 신나는 댄스공연이 이어진다. ‘오둥이 패밀리 하우스’에선 다양한 고객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약 1㎏으로 태어난 오둥이 남매는 현재 몸집이 30배가 넘을 만큼 ‘폭풍 성장’했다고 에버랜드 측은 밝혔다.●스위스 트래블 패스 요금 인하 스위스를 대중교통으로 여행할 수 있는 ‘스위스 트래블 패스’ 요금이 올해 평균 20% 인하(8일, 15일권)된다.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적합한 6일권도 새로 도입하기로 했다. 젊은이들을 위한 유스패스는 15%이던 할인율이 30%로 높아졌다. 다만 이용 가능한 나이는 만 26세 미만에서 만 25세 미만으로 낮춰졌다. ●서울관광재단 ‘글로벌서울메이트’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올해 활동할 ‘글로벌서울메이트’를 모집한다. 서울에 체류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유튜브 부문 30명, 인스타그램 부문 100명을 선발한다. 서울의 관광 디지털 콘텐츠를 발굴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세계로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31일 오후 5시까지 비짓서울 인터넷 홈페이지(www.visitseoul.net)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등에서 접수한다. 지난해엔 55개국 130명이 총 2605건의 콘텐츠를 생산했다.
  • 중국도 ‘백약이 무효’…출생률 43년 만에 최저

    중국도 ‘백약이 무효’…출생률 43년 만에 최저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저출산 고령화를 막을 해법을 찾지 못한 듯 하다. 2020년 출생률이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40여년 넘게 이어오던 산아제한 정책을 지난해 폐지하는 등 중국 정부가 출산 장려에 애를 쓰지만 ‘이미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중국의 출생률(인구 1000명 당 신생아 수)은 8.52명으로 1978년 이후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글로벌타임스가 보도했다. 중국의 출생률은 ‘두 자녀 정책’이 시행된 직후인 2016년 12.95명으로 전년보다 소폭 늘었지만 이후 12.43명(2017년)→10.94명(2018년)→10.48명(2019년) 등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출생률에서 사망률을 뺀 인구 자연증가율도 1000명당 1.45명에 불과해 이 또한 1978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고 매체는 지적했다.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인 허난(河南)성은 신생아 수가 92만명을 기록해 1978년 이후 처음으로 10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경제 수준이 높은 장쑤(江蘇)성 등 동부 연안과 베이징 등은 출생률이 5.99∼6.98명으로 평균을 훨씬 밑돌았다. 노동소득 한계를 벗어난 주택 가격과 자녀 교육비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쑹젠 런민대 인구개발연구센터 부주임은 “코로나19 유행도 출생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출산을 장려하려면 더 치밀하고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인구는 1949년 5억명에서 1964년 7억명, 1974년 9억명으로 빠르게 늘었다. 식량 부족과 경제성장 지체 등을 우려한 덩샤오핑(1904~1997)은 1980년 “소수민족을 뺀 모든 가정에 한 명씩만 자녀를 낳으라”고 지시했다. 이를 어기면 연평균 소득의 10배에 달하는 벌금을 매기고 젊은 부부의 강제 유산도 장려했다. 이로 인해 4억명 이상 출산이 억제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부작용도 상당했다. 조부모 4명과 부모 2명, 아이 1명으로 이뤄진 ‘4·2·1’ 가족 구조가 고착화돼 경제 성장의 주역인 젊은 세대가 너무 많은 피부양자를 떠안게 됐다. 아들을 원하는 부부가 딸을 낳으면 몰래 생명을 빼앗는 ‘영아살해’, 둘째 이후 자녀를 호적에 올리지 않는 ‘헤이하이즈’(어둠의 자식)도 문제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2015년부터는 노동 가능 인구(15~64세)마저 줄어들었다. 중국사회과학원은 “지금의 추세가 이어지면 2035년쯤 노후연금 고갈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중국은 35년간 시행한 ‘한 자녀’ 정책을 접고 2015년 ‘두 자녀’를 허용한 지 6년 만에 ‘세 자녀’도 인정하기로 했다. 두 자녀 정책으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나아질 기미가 없자 산아제한을 한 번 더 풀었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인구절벽’(생산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 문제를 그만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일부 지역에서 여성들의 출산 휴가를 최대 190일로 늘리는 등 적극적으로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저출산을 추세를 돌려놓기에는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도 많다. ‘한 명도 낳기 힘든’ 상당수 젊은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중국의 낮은 출산율은 교육·주택·취업 등 종합적인 문제다”, “(과도한 주거비 등) 생활 압력이 너무 커 출산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3명은커녕 1명도 낳기 힘들다”는 댓글이 나온다.
  • 생존욕구 큰 X세대가 뛴다… “은퇴 후 30년 버티려 내 삶에 재투자”

    생존욕구 큰 X세대가 뛴다… “은퇴 후 30년 버티려 내 삶에 재투자”

    치킨집, 편의점, 커피숍 창업으로 이어졌던 중년의 은퇴 공식이 바뀌고 있다. 기존 기성세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중년인 X세대가 40~50대로 진입하면서다. X세대는 인류 역사상 어떤 세대보다 젊고, 덜 권위적이며, 소비력이 좋은 노년층이 될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자랐고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특성도 발견된다. 이들이 경제적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인생의 후반을 ‘은퇴’가 아닌 또 다른 ‘시작’으로 보는 이유다. “평생을 오피스워커로 살아왔으니 남은 후반부는 다른 칼라(collar)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구독자 3만 4700여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50대 몸짱 TV’의 운영자 오세욱(52)씨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40~50대 맞춤 운동법을 소개하는 전업 유튜버가 됐다. 아내는 그의 도전을 내켜 하지 않았지만 안정적인 ‘수익’ 대신 결국 그의 ‘꿈’을 지지하기로 했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삼성전자 연구원, 미래전략실을 거쳐 도이치은행, 다이와증권 애널리스트, 외식업체 재무 담당 임원을 지낸 오씨는 인생 후반을 운동을 통해 느꼈던 삶의 활력과 만족감을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오씨는 20~30대를 위한 운동법은 많지만 정작 중장년층을 위한 콘텐츠가 적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그는 2년 전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로 중년층을 위한 운동 팁들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몰아 지난해는 중장년층을 겨냥한 운동법을 책으로 출간했다. 최근에는 트레이너 자격증도 땄다. 오씨는 “예전이었으면 할아버지 소리를 들을 나이인 50이 돼도 아직 살날이 살아온 만큼 남아 있다”면서 “건강만 있으면 (X세대는) 지금도 청년이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오씨처럼 모든 X세대가 자신만만한 노후를 계획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는 “40대는 자녀 양육 시기가 길어지면서 70세까지는 현업에서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세대지만 조직에서는 큰 기대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조직이든 조직 밖이든 오랫동안 생존해야 한다는 욕구가 굉장히 크다”고 설명했다. 천편일률적인 기성세대의 은퇴법과 모습은 달라도 생존에 대한 욕구 자체는 그 어느 세대보다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이들의 생존 욕구는 소비로도 나타난다. 신한카드빅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온라인 교육 플랫폼 ‘클래스101’ 등 5개 업종에서 20대 여성 비중은 2년간 16.1% 감소했지만 40대 여성은 7.9% 늘었다. 도서 소비도 활발하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2010년 20%를 차지했던 40대 독자 비중은 X세대가 40대에 대부분 진입한 2019년 34%까지 올랐다. 특히 신기술을 배우려는 40대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산업계를 강타한 ‘메타버스’ 관련 도서 연령대별 구매 비중은 X세대가 43.3%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윗세대야 30년 열심히 일해서 10년 노후 준비면 됐겠지만 지금은 은퇴 후에도 30년을 더 살아야 하잖아요. 살아남으려면 ‘존버’(최대한 버틴다는 뜻의 은어)하면서 공부해야죠.” 유통업계 대기업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는 임주완(43·가명)씨는 퇴직 후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다. 임씨는 내년부터 모아 둔 적금을 깨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임씨는 향후 남은 5년을 “내 인생 마지막 베팅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50대 초중반이 대표로 내려오고 80년대생 임원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면서 “임원을 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크게 없고 이대로 회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사실 모르겠다. (직장에서는) 길어 봐야 최대 5년이지 않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임씨는 2년 전부터 좋아하던 골프 라운딩 횟수도 줄이고 주말마다 마케팅 특강을 나가면서 강의 경력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는 “대학 때 IMF를 겪어서 그런지 특히 경제적으로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면서 “석사 학위를 따면서 그랜저 한 대 값(약 3500만원)이 깨졌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박사 과정 역시)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X세대는 젊은이보다 중년과 노인이 주류인 세상에서 노인이 되는 첫 세대다. 책 ‘영포티, X세대가 돌아온다’의 저자 이선미씨는“미래는 더이상 젊은이의 전유물이 아닌 주류가 될 중노년 세대와 젊은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됐다”면서 “거대한 인구수를 자랑하는 X세대가 활력 있는 새로운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 김경진 “백의종군 여론 80%” 김용남 “나갈 사람 안 나가”...연일 이준석 사퇴 압박

    김경진 “백의종군 여론 80%” 김용남 “나갈 사람 안 나가”...연일 이준석 사퇴 압박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를 거부한 가운데 당내에서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4일에도 연이어 나왔다. 전날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 결과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 모두는 이제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오직 정권교체를 위해 백의종군 하겠다”고 밝혔다. 당 의원들이 당직을 내려놓은 건 사실상 대표 사퇴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이라는 게 이들의 해석이다. 김경진 공보특보단장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개인 의견임을 전제한 뒤 “이준석 대표는 백의종군하는 것이 맞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김 단장은 진행자가 “의원들의 당직 총사퇴 결의는 결국 이준석 대표 사퇴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준석 대표는 일련의 언동, 행동으로 당원뿐만 아니라 정권교체를 바라는 민심을 많이 잃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준석 대표의 최대 정치적 자산이라는 ‘2030 상징성’과 관련해 김 단장은 “젊은이들하고 대화를 나눠 봤는데 ‘자신들은 이준석 대표나 신지예 위원장이 2030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이준석 대표 자체가 2030를 완벽하게 대표한다, 이준석 없이는 2030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과대포장된 주장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기에 “이준석 대표가 물러나 백의종군하는 게 좋겠다라는 당내 여론이 80% 정도 된다”고 강조했다.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이날 이 대표를 향해 “전체 의원들의 요구가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먼저 보라”며 대표 책임론을 거론했다. 김 최고는 이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진행자가 “당 지도부 사퇴는 이준석 대표 사퇴까지 포함돼야 완결된다는 말이냐”고 묻자 “의원총회에서 의원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원내지도부가 사퇴를 결행했다. 예를 들어 의원들이 당 지도부 책임도 있다고 사퇴를 요구한다면 저는 기꺼이 사퇴할 의사가 있다”라고 밝혔다. 다만 “만약 의총에서 의원들이 당 지도부 총사퇴를 주장한다면 저는 따르겠다는 입장인데 이준석 대표가 ‘후임자를 결정하겠다’고 한 건 곧바로 전국위원회를 소집해서 후임 최고위원들을 선출해버리겠다 그런 얘기 같다”며 이 대표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듣기에 따라 그런 압력으로 들린다고 입맛을 다셨다. 이어 김 최고는 “지금 이 대표가 그렇게까지 갈 상황인가”라며 “오히려 전체 의원들의 요구가 과연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먼저 보는 것이 좋다”고 의원들의 요구는 ‘당 대표가 책임지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국민의힘 선대위 상임공보특보인 김용남 전 의원도 전날 밤 CBS라디오 ‘한판승부’,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잇따라 출연해 의원들이 당직을 내려놓고 백의종군 하겠다는 건 ‘대표 사퇴’를 주문한 것인데 “정작 나가야 할 사람은 안 나가고 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한편 이 대표는 이러한 사퇴압박에 대해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한테 단련됐다”며 “내 거취에 변함없다”며 일축한 상황이다. 윤석열 후보 주위에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가운데 윤 후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 [씨줄날줄] 역주행 고1 학력/박현갑 논설위원

    [씨줄날줄] 역주행 고1 학력/박현갑 논설위원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주관하는 역량 중심 평가다.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교육정책 방향을 점검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제공한다. 우리나라는 PISA 2000 시행 이후 3년 단위 평가에서 줄곧 성취 상위국에 포함됐으나 그 수준이 2015년 이후부터는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 교육과정을 세계적 교육정책 방향에 맞게 역량 중심으로 개편했다. 그런데 만 15세(중3, 고1)의 PISA 2009와 2018의 읽기, 수학, 과학 영역 성취 수준을 우리와 여건이 비슷한 4개국과 비교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분석 결과는 그간의 노력에 성과가 없었음을 보여 준다. 비교 국가는 PISA 초기부터 높은 성취를 보인 싱가포르, 최근 높은 성취 수준을 보인 에스토니아, 교육환경이 비슷한 일본, PISA 상위국으로 성취 수준 변화가 우리와 비슷한 핀란드 등 4개국이다. 평가원이 이 기간의 학습격차 양상과 성취 격차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일본, 핀란드와 함께 세 영역에서 2009년에 비해 2018년의 평균점수가 모두 하락했고, 특히 읽기 영역에서의 하락폭이 가장 컸다. 수학, 과학도 하위 10% 집단의 차이가 상위 10% 집단보다 더 크게 나타났다. 부모의 교육수준, 직업 지위, 가정의 보유 자산에 따른 세 영역의 성취도 하락폭도 비슷했다. 평생학습 시대다. 학교 교육 과정만으로는 미래 사회에서 앞서갈 수 없다. 학교 안팎의 협업이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을 도울 맞춤형 교재와 교수법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학력진단 평가 방안부터 찾아야 한다. 의무교육 과정인 고교까지는 학원이 아닌 학교가 보충학습을 책임져야 한다. 상위 몇%만 공부하는 교실의 수업 분위기를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사회 인식 변화도 중요하다. 부모의 직업 지위나 교육수준, 재산에 따라 자녀의 역량 수준이 달라진다면 진정한 능력주의 사회로 갈 수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스타트업에 뛰어든 젊은이들이 제 역량을 펼 수 있도록 사업 인허가 과정에서 정보 제공 등 다양한 멘토링으로 기성세대에 의존하지 않고도 성공하는 사례를 많이 발굴하고 보급할 필요가 있다.
  • 뉴욕 지하철 회전식 개찰구 뛰어넘던 28세 남성 떨어져 즉사

    뉴욕 지하철 회전식 개찰구 뛰어넘던 28세 남성 떨어져 즉사

    미국 뉴욕 퀸스의 지하철역에서 회전식 개찰구를 뛰어넘던 28세 남성이 몸의 중심을 잃고 떨어져 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즉사했다. 포레스트힐스-71번 애버뉴 역에서 2일(이하 현지시간) 아침 6시 45분쯤 벌어진 참극이라고 폭스 뉴스가 다음날 전했다. 경찰이 911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더니 남자가 콘크리트 바닥에 넘어져 있었는데 자극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곧바로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고 일간 뉴욕 데일리 뉴스가 맨먼저 보도했다. 교통 당국은 사망자의 신원을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 동영상을 돌려 봤더니 이 남자가 개찰구 위로 몸을 솟구쳤는데 발이 걸려 몸의 중심을 잃게 됐고,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뉴욕시 부검의가 정확한 사망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할 예정이다. 뉴욕 지하철을 이용하는 이들은 보통 한 번 탈 때 2.75달러(약 3280원)를 낸다. 서울 지하철 기본요금이 1250원이니까 세 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뉴욕 지하철을 일주일 내내 제한 없이 이용하는 티켓은 33달러, 30일치 무제한 이용권은 137달러로 결코 저렴하지 않다. 해서 요금을 안 내려고 회전식 개찰구를 뛰어넘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개찰구가 제대로 회전하지 않아 성미 급한 이용객들이 개찰구를 넘어가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뉴욕 메트로는 2018년 개찰구를 뛰어넘는 행동도 경범죄로 간주해 100달러 벌금을 물리고 있는데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17년 맨해튼에서 회전식 개찰구를 뛰어넘은 이들은 3만 3000명이 적발돼 2만 5000명에게 소환장이 발부됐고, 8000명이 체포됐다는 통계가 있다고 폭스 뉴스가 전했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역에서는 제값 내고 타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젊은이들이 회전식 개찰구 을 허들 넘듯 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파리 지하철 이용자의 5%가 무임승차를 즐긴다고 추정하는 이도 있다. 2013년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일부 대학에서는 무임승차를 했다가 단속에 걸려 벌금을 내야 하는 경우에 대비해 계를 조직하는 이들이 있었을 정도다. 단속요원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이 등장하기도 했다.  
  • 대선후보도 “집 없어서 못 만들었다”던 청약통장 이렇게 쓰인다

    한 대선 후보가 지난해 9월 방송토론회에서 “주택 청약 통장이 있느냐”는 질문에 “집이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고 대답해 청약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자 “(청약을) 모를 수 있겠냐”며 지난달 31일 유튜브에서 억울한 심경을 토로한 가운데 최근 떠오르는 2030의 청약통장에 대한 트렌드를 알아봤다. 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요즘 젊은이들의 청약통장 관심사 1순위는 ‘부모 세대로부터의 증여’다. 워낙 집값이 높은 까닭에 돈은 못 물려받아도 청약통장이라도 물려받자는 것이다. 청약통장을 받으려면 증여받기로 한 자녀는 일단 이미 가지고 있던 청약통장이 없어야 한다. 또 본인이 집 세대주로 등록돼 있어야 한다. 만일 엄마가 딸에게 통장을 증여한다면 엄마가 세대원이고 동일 세대 내에서 딸이 세대주가 되야 한다는 것이다. 유의할 점은 부모의 청약통장이 2000년 3월 26일 이전에 가입됐는지 여부다. 만약 이후에 가입됐다면 증여를 받을 수가 없다. 증여없이 청약당첨을 노린다면 가점이 높아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청약 당첨 평균 가점은 60점 이상이어야 지원 가능성이 있다. 요즘 ‘집값 안정세’라고 정부가 자신하는 것과는 달리 수도권 공급 부족 탓에 청약 열기는 여전히 뜨겁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지역 청약 경쟁률은 무려 164.4대1에 달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서울 성북구 ‘해링턴플레이스 안암’의 84㎡(전용)의 당첨자 최저가점은 4인 가족 기준 만점인 69점이었다. 69점은 4인 가족(20점) 기준으로 15년 이상 무주택 기간(32점)을 유지하고,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15년 이상(17점)이 돼야 받을 수 있는 점수다. 미성년자 자녀도 청약통장에 가입할 수 있다. 부모가 어린 자녀의 미래를 위해 은행에 가서 청약통장에 가입하려면 자녀 기준으로 발급된 기본증명서(상세), 가족관계증명서(상세), 자녀이름으로 된 도장 등을 준비해가면 된다.
  • 2015년 발코니 붕괴로 여섯 친구 잃은 아일랜드 27세 심장마비 사망

    2015년 발코니 붕괴로 여섯 친구 잃은 아일랜드 27세 심장마비 사망

    지난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 연수 중 기숙사 건물의 발코니가 붕괴돼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던 친구 6명과 함께 추락했으나 기적적으로 회복해 화제가 됐던 아일랜드 여성 에이오페 비어리가 갑작스레 숨졌다. 스물일곱 살의 안타까운 나이다. 그녀가 새해 첫날(이하 현지시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영국 BBC가 다음날 전했다. 고인은 지난달 29일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왔는데 2015년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인지 여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이스트 베이 타임스가 전했다.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 재학 중이던 비어리와 친구들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J-1 여름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으로 UC 버클리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 해 6월 비어리의 스물한 번째 생일에 모두 14명의 젊은이들이 기숙사 4층의 좁은 발코니에 모여 있었다가 비운을 맞았다. 5명의 아일랜드 학생들과 한 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 친구가 목숨을 잃었고, 다른 7명이 중태에 빠졌다. 비어리의 부상 정도도 결코 간단치 않았다. 뇌를 크게 다쳤고, 팔과 손, 골반과 턱,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간과 신장, 비장이 파열됐고 폐가 주저앉았다. 나중에 심장 개봉 수술도 받았는데 그녀는 기적처럼 회복했다. 나중에 붕괴 원인은 목재 데크를 지탱하는 이음새가 바싹 말라 썩어 있었던 것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건설사는 워낙 이런 하자 불만이 많았던 회사로 당시에도 무수한 하자 보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건축 회사를 감독하는 캘리포니아주 정부의 건축 면허 위원회에 하자 불만 사례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서 비어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의 건축 개혁을 앞장서 요구해 왔다. 2016년 그녀는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건설사가 과거 법정 소송에 대한 이력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의무화하는 방안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을 때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그녀는 의원들을 향해 참사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는지, 그녀가 직장을 구하려던 목표가 엉망이 됐는지 눈물로 토로했다. 그녀는 “내 삶이 영원히 바뀌었다”며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는 네 살 때부터 알아와 함께 세계를 여행하곤 했다고 했다. 아울러 자신의 생일이 이제는 “친구들의 기일이 돼버렸다”고 개탄해 지켜보던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희생된 이들의 유족은 붕괴 사고가 일어난 해에 건물 건축에 함께한 회사들과 피해 보상에 대해 합의했는데 그 내용은 일체 공개되지 않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 [202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몸의 기억으로 ‘나 사는 곳’을 발견해가는 언어-신미나론/염선옥

    1. 몸의 기억에 부여되는 리얼리티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결과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쩌면 예술이 끝자락에 도달해 있고 이제 “규정 불가능성”(하이데거)에 빠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현대는 예술 과잉의 시대이자 ‘무(無)예술성’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헤겔이 비유한 것처럼, 이제는 예술이 인간의 비대해진 욕망을 더는 채워 줄 수 없다는 “예술의 종언”을 증명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가 쓰고 읽는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성과 서정성이 미학적으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은 이분법적 폐쇄성이 낳은 관념적 산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시의 속성을 탈(脫)서정성에 두려는 해체적 사유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성과 서정성은 대척적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접점을 만들어 가면서 새로운 시의 차원으로 수렴되어 가는 것이라는 앙투안 콩파뇽의 ‘현대적 전통’론은 여전히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신미나에게 ‘시’는 현대성과 서정성이 만나면서 발원하는 예술적 실체로서 그녀의 시는 현대인에게 예술의 존재를 아직도 따뜻하게 건네는 악수로 은유될 수 있을 것이다. C.S. 루이스는 ‘오독’(1961)이라는 비평집에서 현대는 삶과 예술이 혼동되며 시인과 대중이 서로 예술을 다르게 이해하는 시대라고 갈파한 바 있다. 또한 이성복은 ‘불화하는 말들’(2015)이라는 시론집에서 시인들에게 세상과 불화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그만큼 적지 않은 논자들이 현대시가 세계와 갈등을 일으킬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예술과 세계가 불화하는 시대에 신미나는 점점 멀어져 가는 경험과 언어 사이의 거리를 좁히면서 그것을 통합하려고 한다. 본래 시가 노래와 춤이라는 몸의 기억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실된 아우라(Aura)를 여전히 기억해야 할 미학적 흔적으로 보고 이를 재포착함으로써 삶과 분리된 예술을 통합하려는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닫힌 기억들이 열린 기대 속에서 각인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녀에게 몸의 기억은, 비록 하찮고 순간적으로 꺼질 미광(微光) 같은 것일지라도, 수없는 리얼리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 아가, 세상이 어찌 보이냐 할아버지 어린 나를 무등 태우고 뒤돌아서서 지붕 위로 어금니 던진다 까치가 어금니 물고 간 곡선으로 내 젖무덤은 부풀어 올라 백내장 걸린 할아버지 중얼거리시데 저 봐라, 상갓집에서 혼 빠진다 - ‘산 너머’ 전문 시의 화자는 어린 시절 이를 뽑던 기억, 할아버지 무등을 타던 기억을 떠올린다. “문고리에 실 묶고 방문을 닫는 찰나 번쩍 세상이 온다”는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감각을 부여한다. 할아버지가 무등 태우며 ‘헌니 줄게 새 이 다오’를 노래하던 순간은 온몸으로부터 분출되고 온몸으로 수렴되는 발화의 기억을 남긴다. 신미나의 시에 그려진 화자의 경험과 기억은 독자의 마음을 열어 주면서 무등 탔던 기억, 실에 묶어 이를 던졌던 기억, 미신과도 같이 헌 이를 주면 새 이를 물어다 준다고 노래했던 기억에 생생한 리얼리티를 부여한다. 이렇듯 몸의 기억에 리얼리티를 부여한 결과 그녀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오래된 정동적 연결망을 제공하게 된다. 신미나는 수많은 시편을 통해 “장판에 손톱으로 꾹 눌러놓은 자국 같은”(‘이마’) 기억, “어린 조약돌 몇 개 씻어 주머니에 넣고”(‘첫사랑’) 다니던 기억, “눈밭에 노란 오줌 구멍을 내”(‘연’)던 기억, “방바닥에 엎드려 글씨를” 쓰다 “공책 뒷장에 눌러쓴 자국이 점자처럼 새겨졌”던 기억(‘받아쓰기’), “생쌀을 씹는 버릇”(‘윤달’)의 기억을 소환한다. 이러한 섬세한 기억들이 귀환하는 방식은, 기록되지 못한 채 떠돌지라도, 시인으로 하여금 창의적 감각과 초월적 사유를 거느리게끔 해 준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대인이 가진 몸의 기억을 순간적으로 각성시키면서 파편화된 체험을 끌어들이는 놀라운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2. 신화와 샤먼적 요소 신미나는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공동체적 감각이 묻혀 있는 시대를 향하는 시인이다. 기억의 바닥에 있는 시대의 경험과 그것에 얽힌 삶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려고 노력한다. 이는 개인의 정체성이 전체를 통해 얻어지는 질서의 틀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신미나의 기억은 할머니의 삶과 함께 빈번하게 드러나는데, 화자의 삶은 할머니에 의해 ‘명랑’을 되찾고 있으며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마고 2’) 싫을 정도로 화자의 고백에는 할머니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숨쉬고 있다. ‘마고 할멈’은 시인에게 삶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죽음을 애도하며 견뎌 애써 살게끔 해 주는 상징이다. 기억 속의 할머니는 시인의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이고, 시인은 자신의 경험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할머니의 삶과 기억을 끌어들여 샤먼적 요소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처럼 그녀의 시에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쉬운 농경적 삶의 방식이 생생하게 보전되어 있다. 과학기술 사회에서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묻혀 버린 옛것을 꺼내와 그것이 가져다준 진정한 메시지를 독자와 교환한다. 삶을 위로하던 공감 요소인 신화가 불려올 때 그녀의 시에서는 샤먼의 배치 과정이 필연적으로 중요하게 개입하게 된다. 사실 신미나의 시에는 무속 체험과 감각이 빈번하게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첫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2014)와 제2시집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2021)에서 신화나 샤먼의 체험을 두루 끌어들이고 있다. 그녀에게 신화나 샤먼적 요소는 자신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의 산물이다. 신화와 샤먼적 요소는 “뜻 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처럼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어디 먼 데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리는 기억에 담겨 있는데, 이는 “너무 많은 무늬를 몸에 새긴” 것 같아 끝없이 되풀이된다. 그것들은 자아를 지탱하는 배경과 같으며 이러한 사례는 그녀의 시 전체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지푸라기인형”(‘마고 2’, ‘백일몽’)과 “헝겊인형”(‘묘의 함’), “종이인형”(‘묘의 함’,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거울’)은 무(巫)와 관련을 두고 있으며, 탱화나 “천년을 물속에 살아야 사람으로 환생한다는 물가”(‘백일몽’) 이야기, “때리면 정신 든다는 무당 말”(‘불티’)에 “아비가 대나무 뿌리로 아들을 때”리는 주술성이라든가 “몸을 얻으려면 새 옷을 입어야”(‘홍합처럼 까맣게 다문 밤의 틈을 벌려라’) 하는 샤먼적 상상, 저승으로 떠나게 될 아기들이 가여워 제명과 맞바꿔 아기들을 살린다는 ‘마고’ 신화까지, 그녀는 수많은 샤먼적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과학적 시선에 의해 지배되는 현대에 샤먼과 신화적 요소는 리얼리티를 감쇄시킬 수도 있을 법한데, 신미나의 시에서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독특한 형태로 보존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는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은 기억을 중심으로 인문적 사유가 제거된 과학기술의 공허함과 허황된 논리를 비판하면서 그 빈 곳에 신화와 샤먼을 채워 넣는 것이다.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한다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왔다 묘의 주머니는 작고 이따금 탄내가 난다 주머니 속에는 타다 만 볍씨가 있다 묘의 상자 속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고 정글짐 꼭대기의 해가 타고 있다 - ‘묘의 함(函)’ 전문 ‘묘’는 “한 번도 태어나지 않은 아이”로서 “헝겊 인형이 대신 말을” 하고 “오색 종이로 만든 가마에 고깔모자를 쓰고 묘는 검정으로부터” 온 존재이다. 종이 가마에 고깔모자를 쓴 검정으로부터 태어난 ‘묘’는 제의를 치르는 무당 같은 신비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묘의 상자 안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가 있”다. 바로 이는 접신과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다. ‘종이 인형’을 한 묘의 상자 안에는 타인의 삶이 담겨 있는데 거기에는 “문방구에서 훔친 종이 인형”이 있고 “엄마를 삽으로 때리던 아버지”도 있다. 시인이 은유하는 것은 시대의 종말과 위기에 있지 않다. 다만 그녀는 시공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라고 믿어 왔던 인간의 존재방식에 균열을 낼 뿐이다. 기술 발전과 합리성이 채워 주지 못하는 소외와 불안을 ‘무속’ 모티프를 통해 진단하고 ‘해원’이라는 처방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찾아온 할머니가 장사치로 떠도는 게 싫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냈더니 이고 있던 채반을 내려놓고 갔다 채반 위에 팥 한 알 또렷이 남았다 다음날엔 보따리를 두고 갔다 매듭을 풀어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나왔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일으켜 세워도 자꾸만 목이 꺾였다 배를 갈라보니 노란 것이 반짝 했다 금니였다 할머니의 등에 새긴 문신은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방패 마작처럼 패를 뒤집어 얼굴이 자도르르 돌아간다 쟁기, 방패, 귀갑 귀갑, 쟁기, 쟁기 눈, 코, 잎을 갈아 끼운다 높고 슬픈 노래를 물려주려고 잠들면 가만 코에 손가락을 대본다 할머니는 피가 너무 환해서 인간의 잠을 자지 못한다 - ‘마고 2’ 전문 장사치로 떠도는 할머니가 등장하자 화자는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화를 낸다. 이는 가난한 할머니의 고통이 새겨 넣은 상처를 마주하는 화자의 고통을 암시한다. 종종 가난으로 얼룩진 기억은 삭제되거나 묻히는데, 시인은 할머니의 기억을 아프게 되살려 고통과 가난을 마주하는 순간을 불러낸다. 할머니는 보따리를 두고 갔지만 그 매듭을 풀어 보니 지푸라기 인형이 그 안에서 나온다. 아무리 일으켜 세우려고 해도 자꾸 목이 꺾이기만 하는 인형의 배를 갈라 보니 노란 금니가 반짝이고 있다. 지푸라기 인형이라는 샤먼적 요소를 통해 할머니와 접신하는 경험은 신비롭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신화와 샤먼적 요소를 통해 추억으로 남은 것이다. 할머니에게 들었던 신화를 통해 다시 할머니를 만난 것이다. 할머니의 등장이 어린 손녀가 겪어 갈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전개는 신화의 이미지를 거느리는데 “배를 갈라보니” 노란 금니가 나온다는 신화는 작품에 이러한 환상성을 부여하고 있다. 붉은 구슬을 입에 물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나왔 습니다 천수관음은 천개의 손으로 슬픔을 어루만진다는데 손이 천개면 세상의 눈물을 닦을 수 있습니까 뜨거워서 그래, 아가 어쩌다 네 마음에 명랑을 잃었니?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내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습니다 봄에 난 콩 싹처럼 웃어보라, 해를 피하지 않는 해바라기처럼 용감해라, 물 만난 오리처럼 신나게 욕해보라, 비 온 뒤 제비처럼 까불어라, 분수처럼 솟구쳐라, 쪼개고 쑤시고 부러뜨려라, 톱날의 요철과 같이 벌떼처럼 화를 내라, 연기처럼 곧게 서라, 백합처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 할머니는 겹겹의 모란 치마로 나를 폭 싸서 공중에 띄웠습니다 키질하듯이 위아래로 까부르니 몸이 아기만큼 작아져 배꼽이 간지럽고 이히히 웃음이 났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우스운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한 것인데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았습니다 - ‘탱화 3’ 전문 화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흰 천을 배로 가르며 할머니가 오셨다는 것은 시인에게 강림하는 샤먼적 순간을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명랑을 잃은” 화자에게 할머니는 “천수(泉水)를 한 모금 머금고” 입에 흘려 열을 식혀 주었다. 이러한 발화를 통해 할머니의 존재는 화자에게 한 차원 더 명확해진다. 할머니는 “…웃어보라, …용감해라, …욕해보라, …까불어라, …솟구쳐라, …부러뜨려라, …화를 내라, …곧게 서라, …기도하고, 뛰고 달리고 돌아서서 안고 뱉고 찢고 발 굴러라”라고 위로하며 말을 배우기 전 아기들만 아는 재미로 슬픔을 걷어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런 할머니에 대해 화자는 “오랜만에 웃은 게 세상에 없는 일인 걸 알고 섭섭해서 눈을 감”는다. 화자에게 할머니는 ‘웃음을 주는’ 존재이며 삶에 원초적인 힘을 주는 정신적 동반자이다. 할머니의 상실을 지우고 할머니의 존재를 보존하는 방식은 기억에 의해 가능한 것인데, 시인은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신비함을 그 안에 담음으로써 이러한 작업을 수행한다. 할머니와의 만남을 신비한 일로 확장해 가면서 신화적이고 샤먼적인 성격을 현실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3. 존재론적 근거로서의 기억을 통한 표준화에의 저항 할머니는 현존하지 않고 시인의 몽상과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베냐민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르면, 신미나는 과거를 고정적 점으로 보지 않고 현재로부터 관찰하고 불러낸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억으로 새겨진 것은 언젠가 ‘있었던’ 실재일 뿐이다. 그러나 신미나는 세속적 질서 속에 할머니의 기억과 농촌 경험을 가져와 행복에 대한 표상을 과거로부터 형성한다. 화석으로 남은 시골이 따스한 공간이었다는 전언을 통해 도시가 가진 허상을 비판하고 지금까지 가졌던 삶의 불균형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신미나는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응시하면서, 데리다가 말하는 흔적(trace)을 만지는 일을 수행한다. 수레가 남긴 바퀴자국을 토대로 동물과 수레의 현전을 논할 수 없듯 그의 흔적은 ‘없다’를 말할 수 없는 심적 자국인 것이다. 그 점에서 ‘지켜보는 사람’을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의 첫 작품으로 배치한 것은 퍽 유의미하다. 본다는 것, 보았다는 것은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부재가 아닌 존재로 인정하는 일이며, 그 존재성은 사라지지 않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있는’ 것과 ‘있었던’ 것이 가지는 존재성의 기대를 동시에 내포한다. 한 알의 레몬이 테이블 위에 있다 오래전에 있었던 것처럼 금방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한 알의 레몬이 눈앞에 있다 그것을 치우면 레몬은 과거형으로 존재한다 흰 테이블보 위에 레몬이 있다 눈을 감아도 레몬은 레몬 빛으로 남고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진심으로 보인다 - ‘지켜보는 사람’ 부분 화자는 테이블에 놓인 “오래전에 있었던” 한 알의 레몬을 바라본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레몬은 비록 치워진다 해도 ‘과거형’이 될 뿐 비(非)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리했던 것은 눈을 감아도, 그것을 치우더라도, “레몬 빛으로” 남는 ‘사실’이 되고 “진심으로” 보이는 것이 된다. 존재의 가치는 시간이 증여한 것도 아니고 사회가 합의한 상징도 아니다. 그것은 개인이 경험하여 의미가 솟아나는 지점에서 생겨날 뿐이다. 그 세계에서 기호화되지 못한 것들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림자를 만”들고 조용히 남아 있게 된다. 이는 “쪼그리고 앉아”(‘단조’)서 보던 물에 불어나는 한 톨의 쌀알이 “찬 벽에 발을 대고 누”워서도 천장에 떠오르는 또렷함 같은 것이다. 기억은 ‘있었던’ 것의 부재를 또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는 과정으로 도약한다. 동요 속에서 마구 튀어오르거나 우글거리는 기억의 운동성은 존재의 살아 있음을 말해 주는 증거가 된다. 시인이 쓸모없는 일로 여겨지는 기억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오롯이 권역을 형성하고 우리의 인식과 감각에 등장하는 본연의 것들은 비록 외곽으로 밀려나 버렸다 해도 우리를 상실과 폐허 속에서도 살아가게 하는 존재론적인 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때때로 기억은 자주 하찮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억이 물질적인 감각에 찍힌 낙인일 때 신미나의 시는 기억의 집적을 통해 그러한 규정을 벗어난다. 그의 기억은 일정한 시공간과 서사와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은 생명의 고리를 이으면서 긍정적으로 순간순간을 끌고 나간다. 보들리야르는 현대를 가리켜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라고 지적하면서도 현대인은 기억과 상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신미나의 시는 언어의 옷을 채 입지 못한 기억들로 가득 채워짐으로써, 시적 주체를 추동하는 공감의 발원지로 기능하게 한다. 새로운 것의 권위에 대해 역설한 콩파뇽은 기억을 유행과 현대적인 것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이는 기억이 ‘새로움’에 대한 ‘낡음’이라는 모순관계의 짝패가 아니라 오히려 현대가 담아내지 못하는 ‘상상력’의 방식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공연한 일들”과 “쓸모없는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신미나의 목소리는 기억의 세부를 포착하겠다는 의지이며, 그녀의 시는 폐기되는 세부에 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는 주변에 널린 세부에 주목하면서, 삶은 지평이 아니라 오히려 세부의 집적임을 말한다. 이때 세부는 여러 차원의 경험으로 채워진 모래사장으로서, 우리는 그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공연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은 삶을 채워 주는 세부인 것이다. 그녀의 시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식과 불화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법칙 이외에 어떤 언설에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이 지향하는 고유의 법칙을 유지한다. 이때 도시는 다름과 비뚜름 대신 바름을 동의반복적(同意反復的)으로 배열하고 배치하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유동하는 세계 어디를 가도 한가운데 자랑스럽게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바로 도시이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한 도로와 건물, 기호와 상징, 그 속에서 현대인은 한 방향으로 향하는 물고기 떼처럼 몰려간다. 모든 공간이 유사해지면서 모국어가 있어도 전 세계가 몇몇 우세어를 중심으로 통일되고 있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이 표준화와 평균화에 저항하는 신미나 시의 힘이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고요는 몰려오던 해일이 눈앞에서 멈춘 듯한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두었으므로 나의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어요 빛에 일렁이는 물 그물이 나의 발을 얽을 뿐입니다 - ‘아쿠아리움’ 부분 물주름 없는 물결 귀를 떠난 소리 풀 없는 인공 정원 - ‘홍제천을 걸었다’ 부분 현대인의 행동 양식은 모든 면에서 어떤 인공적인 것의 제작 방식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같은 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현대인은 동화되어 가고 있다. 노동하는 동물로 격하된 채 살아갈 뿐 거부와 배척이 두려워 ‘소수-되기’를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도시는 개인에게 감동을 주는 일에 대하여 어떤 말도 하거나 듣지 않는다. 도시인다운 ‘다수-되기’(에티엔 발리바르)를 지향하게끔 할 뿐이다. 도시는 고유한 특성이 제거된 개인을 색인 속에 분류하고 저장한다. 그런 가운데 개인의 슬픔은 썩어 가거나 사라지게 된다. 도시인의 언어는 차가운 콘크리트 언저리에서 싹튼 불쾌하고 축축한 우울과 소외의 언어가 된다. 그런 언어로 표지된 도시인은 자신의 결여된 내면성을 드러낼 방식이 없게 된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항의가 신미나의 시다. 4. ‘나 사는 곳’의 발견 과정으로서의 기억 혹자는 신미나의 시에서 농촌과 자연과 가난이 빚어낸 서정성을 읽어낸다. 그러나 우리는 더 확장된 의미로서 폭력의 시대에 소실되어 가는 ‘나 사는 곳’(오장환)을 훑는 작업을 읽어 낸다. 모국어의 소실과 전통의 소외와는 달리 매체와 일상을 메우는 것은 온통 서구 것이다. 케이팝(K-Pop)과 한류(Korean-Wave)도 서구 입맛에 맞춘 예능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SNS의 시대,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 하이브리드-스토어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콘택트 없이도 실시간 업무를 가능하게 했고, 신용카드라는 합의된 인증 방식의 결제를 통해 우리의 취향과 입맛은 모두 통제되고 있다. 이런 위험신호를 감지한 신미나는 ‘나 사는 곳’을 중심으로 우리의 것 속에서 새로움을 찾아내고 있다. 보들레르가 현대성을 현대인의 불안과 관련시켜 읽어 냈다면, 신미나는 현대성을 폭력과 상실로 읽어 낸다. 그녀가 읽은 현대라는 미달태(未達態)는 “누군가 세계의 안과 밖에 커다란 간유리를 끼워”(‘아쿠아리움’) 둔 것과도 같아 “폐는 부레가 될 수 없고 물고기는 눈을 깜빡일 수 없는” 상실의 세계일 따름이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머금고 “그만, 이라고 말해도 자꾸만 공을 물어 오는 착한 개처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력인 것이다. 아쿠아리움에 가둔 물고기 세상처럼, 우리가 사는 곳은 동일한 풍경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풀 없는 인공 정원”(‘홍제천을 걸었다’)이 가득한 곳이 되고 말았다고 시인은 진단한다. 마당이 있는 저 집에서 살면 참 좋겠다 언덕 위에는 여자 대학교가 있고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고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 문방구 평상에 한참을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고 옆에서 신문지 깔고 고구마순 껍질이나 같이 벗기고 싶고 해 지기 전에 수건을 걷어 오른팔에 얹고 옥상에서 내려갈 때 젖이 불은 개가 헐떡이며 걸어가는 것을 보는 집 보러 왔다가 그냥 간다 이가 썩어 구멍 난 데를 혀로 쓸며 돌아보는 사직동 - ‘지하철역에서 십오분 거리’ 전문 ‘고스트 타운’(베냐민)이 된 도시가 현대화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시인이 바라는 도시는 어떤 곳일까? “풀 없는 인공 정원” 대신 “마당이 있는” 집이고 “문방구 평상에 앉아 있어도 핀잔주지 않는 할머니가” 있는 곳이다. 부품을 한데 모아둔 것처럼 젊은이들만 들어찬 도시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공간이며, 아이들이 애용하는 문방구 평상이 있는 공간이다. 또 획일화되지 않은 무정형의 공간이며 비폭력적 공간이자 비상실의 장소이다. 빌딩과 벽이 없는 언덕 위에 여자대학교가 있는 곳이며 그곳에서 “배구공 튕기는 소리도 가끔 들리고” 비빔국수 잘하는 냉면집도 있어 맛볼 수 있는 “가을이면 키 큰 은행나무가 긍지처럼 타오르는 동네”인 것이다. 시인이 이러한 공간성을 가져오는 방식은 ‘우리 것’의 회복이자 ‘나 사는 곳’의 확인 과정인 셈이다. 첫 시집에서부터 발견되는 그의 시적 공간은 도시 미학적 공간과 거리가 이처럼 철저하게 멀어진다. 또한 신미나의 시는 흔적으로만 남은 우리말의 보고이다. 현대적인 것을 이루는 성좌를 완성할 때 세련된 시어의 반복과 나열이 필수라면 시인의 언어는 낡은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적인 것으로 명명된 모든 상황에서 시인이 채우는 장판, 요, 밥물, 물금, 내천, 조약돌, 연밥, 무밭, 아욱잎 등 추억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우리의 감각적 언어가 더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시인은 농도 짙은 외래어를 사용하기보다 ‘싱고’, ‘무이모아이…’ 같은 우리말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쏟아져 흐르는 외래어와 말줄임에 우리말은 몸살을 앓고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언어란 얼마나 나약하기만 한가? “나는 오리라 하였고 당신은 거위라” 하였으며, “나는 공복이라 하였고 당신은 기근”이라 부르며, “당신은 성북동이라 하였고 나는 종암동이라” 하였다는 등 언어는 불통을 잠재적으로 내재한다. 언어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일치”(‘사랑의 순서’)하는지도 모른다. 신미나는 시가 소통되지 못하는 시대에 자신의 언어를 독자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도시의 방식인 고통의 언어 대신 모태의 언어를 내뱉는다. 모태의 언어는 관찰과 소통과 사색을 통해 유래된 ‘흙’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기를 더 많이 드러내고 표출하는 도시 방식 대신 듣고 보고 느끼는 ‘삼중(重)의 겹’을 택한 결실이다. 이때 시인은 도시 안에서 ‘보는 자’이자 ‘느끼고 듣는 자’가 된다. “휘파람을 불며 길을 나서”면 “리어카에 폐지를 실은 노인들”(‘입김’)도 볼 수 있고, “한 손으로 번쩍 아이를 들어올리는”, “얼굴만 아는 여자”(‘길음동’)도 만날 수 있다. 또 “신발을 꺾어 신고 앞서”(‘모란과 작약을 구별할 수 있나요?’)가는 이를 살펴볼 수도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것은 무언가가 되지 못한 세부이며 삼중의 겹을 통해 시로 현상된 것들인 셈이다. 또한 그녀의 시는 우리로 하여금 “수건 안감의 아라베스크 무늬”를 보게 하고 “귀 기울여 듣게” 한다. 우리는 말하기를 유보하고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선행해야 비로소 삼중의 겹을 완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 머리를 끄덕이게 하는 공감 과정이 그 안에 있다. 장마 지면 정미네 집으로 놀러 가고 싶다. 정미네 가서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고 싶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 새로 온 교생은 뻐드렁니에 편애가 심하고 희정이는 한 뼘도 안 되는 치마를 입는다고 흉도 볼 것이다 말 없는 정미는 응 그래, 싱겁게 웃기만 할 것이다 나는 들여놓은 운동화가 젖는 줄도 모르고 집에 갈 생각도 않는다 빗물 튀는 마루 밑에서 강아지도 비린내를 풍기며 떨 것이다 불어난 흙탕물이 다리를 넘쳐나도 제비집처럼 아늑한 그 방, 먹성 좋은 정미는 엄마 제사 지내고 남은 산자며 약과를 내올 것이다 - ‘정미네’ 전문 “밍크이불”은 어느 집에나 있었고 우리는 그 “밍크이불을 덮고 손톱이 노래지도록 귤을” 까먹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김치전을 부쳐 쟁반에 놓고 손으로 찢어 먹고” 싶다고 느낀 경험과 교생의 편애에 대해 불만을 가졌던 기억, 예쁜 친구를 험담하던 기억이 시인의 머리에서 튀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기억 속에 둥둥 떠 있기만 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는 우리에게 ‘스스로 주어짐으로 돌아감’(장뤼크 마리옹)을 선사한 기억의 주체인 셈이다. 또한 신미나의 기억은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뿐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시대적 소멸의 흔적을 길어 올린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마고 이야기(‘마고 1·2’)를 소재로 삼는가 하면 할머니의 기억과 할머니와의 접신 과정을 ‘탱화’(‘탱화 1·2·3’)로 드러내기도 한다. 만약 시간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새로움’의 추구라는 개념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신미나의 시에서 전통적 서정성을 읽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저버린 것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이는 시가 발견해야 하는가, 발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 신미나의 시는 시간 개념을 긍정하며 발명보다 발견을 더 큰 화두로 삼는다. 이는 타인에게 물려받은 것을 거부하는 것이며 기호화되지 않은 세부의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내포한다. 그리고 발견은 ‘나 사는 곳’을 살피는 몸짓이며 몸에 각인된 과거를 통한 시인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원적 모색을 뜻한다. 신미나는 언어적 한계를 무화(無化)하기보다 기억을 통해 자신이 실감하는 쪽을 그려 내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되살려 시어를 택하고 그 속에서 실감을 표현하는, 들뢰즈식으로 ‘행동하는’ 시인인 셈이다. 단절과 폐허의 상황에서 그녀는 ‘벽’이 아닌 ‘문’을 택하고 단절이 아닌 소통을 지향한다. 선명한 기억이야말로 개인을 지탱하는 근원적 뿌리이며 개인의 감각과 사회의 전체성을 함께 붙드는 운동임을 그녀의 시는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 [임정욱의 혁신경제] 미국의 디지털 전환과 일자리 대이동/TBT 공동대표

    [임정욱의 혁신경제] 미국의 디지털 전환과 일자리 대이동/TBT 공동대표

    1월 초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정보기술(IT)·전자제품 융합전시회인 ‘CES 2022’ 참관을 위해 일찍 미국을 방문했다. 사실 갈까 말까 고민이 많았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미국의 하루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십만 명을 넘는 상황이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해외에 못 가본 지 거의 2년이다. 세계 첨단의 기술 트렌드를 선보이는 CES는 물론이고 팬데믹 이후 미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오미크론을 뚫고 출장을 강행했다. 개최지인 라스베이거스에 가기 전 캘리포니아 베이 지역의 실리콘밸리에서 많은 지인들을 만났다. 여러 가지 변화를 체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예전에 자주 가던 식당 중 문 닫은 곳들이 많다. 팬데믹을 견디지 못하고 두 손을 든 자영업자들이 많은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살아남은 식당들은 한창 디지털 전환 중이었다. 코로나 전염이 염려되는지 종이로 된 메뉴를 주지 않는 식당들이 많다. 대신 QR코드를 들이대며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라고 한다. 스캔하면 디지털 메뉴가 떠오른다. 아예 스마트폰에서 주문하고 식사비 결제까지 할 수 있다. 식당 직원들 손에는 ‘토스트’라는 주문 단말기가 쥐어져 있다. 고객 주문과 결제를 디지털로 처리하고 특히 음식 배달 주문까지 쉽게 처리할 수 있는 기기다. 이 제품을 만드는 스타트업은 팬데믹이 터지자 직원 절반을 감원하는 등 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고객인 식당들이 더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하면서 기사회생했다. 코로나가 미국 식당의 디지털 전환을 5년 이상 당겼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식당에는 음식값에 3%의 추가 수수료가 있다고 써 있다. 이게 뭐냐고 했더니 ‘코로나 수수료’라고 한다. 코로나로 식재료, 인건비 등이 상승하자 이것을 이유로 음식값의 3~5%를 수수료로 더 받는 식당이 많다고 한다. 한 지인은 “이것저것 합치면 대략 음식값이 팬데믹 전보다 20% 오른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자동차 주유비도 그렇고 인플레이션 현상이 극심하다. 길 가다 보이는 식당, 유통 점포에는 크게 ‘채용중’(We’re hiring)이라고 써 있는 곳이 많았다. 다들 웃돈을 주고도 직원을 채용하려고 하는데 구할 수가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은 대규모 사직(大辭職·Great Resignation)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월 400만명 이상이 자발적으로 일을 그만두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우려, 육아 문제 때문이거나 자영업 창업,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은퇴를 앞당기거나 일을 안 하고 실업수당과 코로나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일자리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실리콘밸리의 테크기업에 다니는 지인들은 대부분 재택으로 일하고 있었다. 원격으로 일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이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돌아오라고 하면 회사를 그만두거나 원격근무가 되는 다른 직장으로 옮기겠다”고 서슴없이 말했다. 직원들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도 오히려 매출이 오르는 것을 경험한 테크회사들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알고 지내던 똑똑한 Z세대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빅테크 대기업 대신 고성장 스타트업에 들어가 만족하며 일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 반도체와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직원을 각각 만났는데, 이들이 입사하고 일년 만에 직원수가 수백 명에서 1000명 이상으로 늘었다고 한다. 물론 그 직원들 대부분은 미국 전역의 집에서 일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전환과 대규모 사직이 미국의 산업계와 일자리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가 물러가도 팬데믹 이전 사회로 복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이런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고 유연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스타트업들을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
  • 전 국회의장 尹향해 “기대가 절망으로…어투·행동·인사법 모두 바꿔야”

    전 국회의장 尹향해 “기대가 절망으로…어투·행동·인사법 모두 바꿔야”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2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최근 지지율 하락에 우려를 표하며 “비상한 각오와 분발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한 ‘새해 국민의힘에 보내는 쓴 약 세 봉지’ 글에서 “이대로 가면 모든 것이 위험하다. 나라가, 국민이 불행해진다”며 이같이 적었다. 김 전 의장은 “정치인 윤석열에게 묻는다”며 “정치권 등장 반년, 당의 대권 후보로 뽑힌 지 두 달 만에 지지했던 많은 국민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려 한다. 기대가 실망으로, 아니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 후보의 현재 모습에 대해 “정치 변화의 주역은커녕 여의도 정치 한복판에 주저앉은 사람으로 비친다”며 “정치를 바꾸겠다면서 구식 문법으로 답한다. 말에 설득력이 없고 진정성이 묻어나오지 않는다”고 평했다. 그는 “무엇보다 이미지가 문제”라며 “정치의 샛별, 미래의 설계자, 개혁의 완성자라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고언했다.그러면서 “준비 안 된 아마추어 정치인 그대로 서툴고 부족하고 때로는 불안하기까지 하다”고 혹평했다. 특히 “크든 작든 말실수가 잇따른다. 상대 후보의 식언(食言)을 실언(失言)으로 상쇄시켜주는 형국”이라며 “수습 태도나 능력 또한 떨어지고, 번번이 타이밍을 놓친다”며 우려를 표했다. 김 전 의장은 그 이유를 다섯 가지로 요약 분석했다. 우선 ‘정치신인 윤석열’로서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며 “선거 전략의 오류”라고 짚었다. 그는 “(윤 후보가) 기성 정치인인 이재명과는 확연히 다른 나만의 매력을 부각해야 하는 데 더 나은 점을 내세우려다 보니 엇박자가 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과 기본 방향은 되돌아보고, 어투·행동·인사법도 모두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말은 하는데 메시지가 없다. 말의 절제가 부족하면 실언·허언처럼 들린다”며 말 수를 줄이라고도 조언했다. 발성, 화법에도 “소리는 거칠고 강하지만 핵심도 강조점도 불분명하다”, “여의도 정치 꼰대들이 하는 말처럼 들리니 젊은이들은 물론 중장년층도 매력을 못 느낀다” 등 신랄한 비판을 내놨다. 김 전 의장은 지난 1978년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할 당시 강영훈 외교안보연구원장에게 발탁돼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간 것을 계기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대통령 정무 비서관을 거쳤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사무총장을 맡아 박근혜 전 대표와 함께 당을 추스르는 데 기여했다. 2008년 7월 제18대 전반기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 [책 속 한줄] 나이듦과 몸/김지예 기자

    [책 속 한줄] 나이듦과 몸/김지예 기자

    ‘나이가 들어 성격이 나빠졌다’고들 생각하는데, 나빠진 것은 성격이 아니라 청력이다.(35쪽) 하루만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 이렇게 한 해씩 보내다 소년이 청년으로, 청년이 중년으로, 중년이 노년으로 변하는구나 싶다. ‘노년의 부모를 이해하는 16가지 방법’(뜨인돌출판사)의 저자 히라마쓰 루이는 일본 안과의사다. 10년간 10만명이 넘는 노인을 진료하며 주위를 난감하게 하는 고령자의 행동이 성격이나 치매 탓이 아니라 대부분 노화에 의한 신체 변화 때문에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노인과 젊은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자 실용서를 썼다. 예컨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고 과거를 미화하거나, 약속을 새까맣게 잊는 것, 다 된 음식에 간장을 흠뻑 뿌리거나 신호가 바뀌었는데 천천히 걷는 것 등의 상당수는 몸의 변화와 관련된다. 인간의 신체는 변한다. 노화는 물론 장애나 질병이 올 수도 있다. 성별에 따라서도 다르다. 하지만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 길이, 서류의 글씨 크기처럼 사회가 만든 작은 환경마저 다양한 몸을 배려하는지 의문이다. ‘젊은’ 신체를 가진 비장애인에 맞춰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는 “사회가 고령자를 배려하면 젊은 세대가 고령자가 됐을 때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비정상이 아닌 ‘다른 몸’을 받아들이는 게 변화의 시작이 아닐까.
  • [2021 하반기 히트상품] 만송 ‘피톤치드 수-향’

    [2021 하반기 히트상품] 만송 ‘피톤치드 수-향’

    만송은 향기 관련 제품을 꾸준히 개발하면서 방향제, 탈취제, 디퓨저 등의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올 하반기에 출시한 ‘피톤치드 수-향’(사진)은 환경부 생활화학제품 안전확인을 받은 제품이라고 만송 측은 설명했다. 이 제품 용량은 분무형 30·100·500㎖가 있으며, 보충용은 500·1000·2000㎖로 구성됐다. 특히 분꽃향, 페퍼민트향 등 다양한 향을 첨가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피톤치드 수-향은 기존 소독용 제품들과 달리 알코올 성분 등 인위적인 화학 원료를 배제한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원료로 제조해 장시간에 걸쳐 피부·인체에 노출돼도 문제가 없다는 게 만송 관계자의 설명이다. 김만중 만송 대표는 “최근 화장품 전문회사 에스에이 코스메틱과 협력해 현대식 시설에서 대량으로 생산할 준비를 마쳤다”면서 “해외에 K-POP을 널리 홍보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공연도 주선하며 젊은이들을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시키고, 사단법인 한국힙합문화협회에 후원·지원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 지구촌 ‘신신 커플’ 1만 4000쌍 ♡ 100세부터 가정방문 여행

    지구촌 ‘신신 커플’ 1만 4000쌍 ♡ 100세부터 가정방문 여행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121. 주소는 몰라도 경남 마산에서 ‘예식장’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특별한 예식장이 있다. 1967년 낡은 목조 건물을 고쳐 문을 연 신신예식장이다. 3층짜리 건물을 1층은 살구색, 2층은 연두색, 3층은 분홍색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했지만 건물 외벽 곳곳 균열을 때운 흔적이 54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요즘 기준으로는 너무나도 촌스러운 공간이지만 주말이면 이곳 ‘주인장’의 축복을 받기 위한 연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50년이 넘는 무료 예식 봉사로 세상에 따뜻함을 더하고 있는 ‘신신예식장 주인장’ 백낙삼(90)씨에게 그의 특별한 인생관을 들어 봤다. ●세계서 찾는 없는 이들의 결혼식장 “참 이상해요. 여기는 마산에서도 돝섬 바다와 가까운 작은 결혼식장이거든요. 그런데 요즘 예약하시는 분들을 보면 서울에서 참 많이 오시고 저 멀리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에서도 ‘꼭 신신에서 하고 싶다’며 찾아오세요. 연령대도 다양한데 얼마 전에는 80대 부부가 찾아와서 제가 주례를 서기도 했죠.” 부인 최필순(80)씨와 단둘이 결혼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백씨는 요즘 주중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울리는 예약 전화에 목이 쉴 정도다. 백씨의 미담과 그의 인생이 담긴 ‘신신’은 마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지만, 올해 그의 인생이 연이어 언론에 조명되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LG그룹이 주는 의인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고, 특히 방송인 유재석이 진행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한 뒤로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백씨는 이미 이웃 사랑 실천 등을 이유로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포장을 받았고, 2019년에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도 받았다. “시골에 살면서 청와대로 두 번이나 초대를 받았죠. 88년에도 청와대 초대로 서울에 갔지만 경찰에서 제 신원 조회가 안 된다는 이유로 청와대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따로 국민포장만 받았어요. 3년 전에는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통령한테 직접 훈장을 받는 영광도 누렸죠.” 백씨는 노태우 정부 당시 국민포장 수상자로 선정돼 서울을 찾았지만 정작 청와대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그의 신원정보가 청와대에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애초 마을 어른들이 백씨를 ‘효자’라며 국민포장 후보로 추천한 게 화근이었다. 백씨는 “처음 내가 ‘효자’ 부문으로 국민포장을 받게 됐다는 도청의 연락을 받고 ‘나는 불효자라서 이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면서 일이 꼬이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정부에서는 국민 추천을 통해 ‘51년간 무료 결혼식으로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봉사한 공로’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한국전쟁 직후 찾아온 고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고마운 삶을 살고 있다”는 그의 인생은 역설적이게도 누구보다 힘들고 절망적인 시기에 희망의 싹을 틔웠다. 1953년 전쟁통에도 교육자의 꿈을 안고 고향 울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지만, 전쟁의 생채기는 20대 청년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백씨의 아버지는 부산에서 운수업을 하며 아들의 학비를 댔지만 큰 사고로 회사가 도산하면서 백씨마저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기고 부랴부랴 부산으로 와야 했다. “가족들이 원래 살던 집으로 갔더니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고, 어디 산동네에 달셋방 하나 겨우 구해 아버지와 형님 둘이 살고 있더군요. 하루는 자고 일어났는데 아무도 없고 제 머리맡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어요. ‘너는 네 살길을 찾아라’라는 쪽지만 남겨 놓고 야반도주를 한 거죠. 그렇게 가족들 모두 뿔뿔이 흩어졌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학업은 마쳐야겠다고 결심한 백씨는 이웃들에게 차비를 빌려 서울로 돌아왔지만, 모두가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그의 자취방은 도둑이 들어 베개 하나 남겨 놓지 않고 싹 쓸어간 뒤였다. 텅 빈 방에 홀로 누워 뜬 눈으로 하루를 보낸 백씨는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주린 배를 부여잡고 무작정 밥과 일자리를 찾아 자취방이 있던 흑석동에서 서울역으로 걷기 시작했다. 폭격에 무너져 임시로 복원해 강바람에도 흔들리던 한강대교를 건너던 때였다. 시커먼 강물을 바라보니 억눌러 왔던 감정이 폭발했다. “난간을 붙잡고 서럽게 엉엉 울고 있는데 어디선가 ‘젊은이, 힘들고 어려워도 꼭 살아남아’라는 말이 들려왔어요. 얼굴도 모르는 행인이 저에게 해준 그 말이 흔들리던 저를 붙잡아 준 큰 힘이 됐죠. 눈물을 닦으며 다시 걸어 서울역 근처 자동차 서비스 공장에 들어가 어떤 일이든 시켜만 달라고 애원했고, 사무원으로 채용되면서 최소한의 숙식은 해결했죠.” 이듬해 봄 한강을 찾은 백씨는 또래의 연인들이 보트를 타며 청춘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면서 먹고살 길부터 떠올렸다. 그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꽃다운 시절이지만 당장 눈앞의 생존이 더 절박했다. 공장에서 도움을 주던 어르신에게 사정을 설명해 카메라 한 대를 구한 백씨는 낮에는 한강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의 사진을 찍어 주고, 밤에는 공장에서 택시 주차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매일 200원, 한 달에 5000원 저축을 목표로 발이 퉁퉁 붓도록 일감을 찾아다녔고, 비가 오는 날이면 비닐우산을 팔거나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팔기도 했다. 그가 거리의 사진사로 활동하던 곳이 한강의 ‘신신보트장’이었다. “신신(新新)이라는 어감이 좋았다”는 백씨는 훗날 마산에 예식장을 열면서 청춘의 일터였던 보트장의 이름을 가져왔다.●은퇴 후 ‘신신의 부부들’ 만나는 게 꿈 백씨에게 예식업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저처럼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가정을 꾸리는 사람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향 어른들의 중매로 지금의 부인을 만난 백씨는 처가인 울산의 작은 초가집 앞에서 약식으로 혼례를 치렀고, 그 뒤로 한동안 부인과 떨어져 지내야 했다. 부부가 함께 지낼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모은 돈으로 지금의 신신예식장 자리에 있던 7평짜리 목조 건물을 사 사진관을 열었고, 사진관을 예식장으로 키우며 부부가 함께 살 보금자리까지 마련했다. 처음 예식장 문을 연 당시엔 사진값 6000원만 받고 식장을 빌려줬지만 지금은 식장 운영·관리비와 봉사자들에게 줄 최소한의 인건비 등의 명목으로 70만원가량을 ‘유동적’으로 받는다. ‘완전 무료 예식장’을 표방하는 만큼 이마저도 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스드메 패키지’를 무료로 제공한다. 백씨가 주례와 사진사를 담당하고, 미용 기술을 익힌 봉사자들이 헤어와 메이크업을 담당한다. 예복과 드레스도 무료로 빌려준다. 신신에서 올린 1만 4000여회의 결혼식 기록은 백씨에겐 세상 무엇보다 뿌듯한 자랑거리다. 그는 “‘형편이 어려워 신신에서 결혼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겨 연락드린다’는 전화와 편지도 자주 오고 ‘신신에 보탬이 되고 싶다’며 30~40년 지난 예식비와 후원금을 보내 주는 분들도 많이 늘고 있다”면서 “내가 하고 싶어 시작한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고 나라와 사회에서 상까지 주시니 나처럼 행복한 사람이 세상에 또 있겠나”라며 자신의 선행을 더욱 낮췄다. 앞으로 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100세까지 예식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제가 며칠 뒤면 우리 나이로 92세가 됩니다. 100세까지 신신예식장 주인으로 살며 봉사하는 게 제 꿈인데 이제 8년 정도 남았네요. 100세가 되고 저도 은퇴라는 걸 하게 되면 못난 남편 만나 평생 고생만 한 아내 손 꼭 잡고 전국을 여행하며 신신에서 저희와 아들과 딸의 연을 맺은 부부들을 만나 그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남은 인생의 소망입니다.”
  • [씨줄날줄] 모병제/김성수 논설위원

    [씨줄날줄] 모병제/김성수 논설위원

    ‘마음으로 품은 애국, 병역으로 실천하자’ 기억이 흐릿하지만 1980년대엔 이런 표어가 있었다. 병무청이 애국심을 고취시켜 군 입대를 독려하기 위해 만든 슬로건이다. 이 표어에 감동받아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입대 열차를 탔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20대 남성들에겐 가장 큰 고민이 병역이다. 일단 군대를 갔다 와야 그다음 인생의 항로를 결정했다. 과거에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들은 군대를 갔다 온 뒤에도 툭하면 ‘군대를 다시 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분명히 제대해서 집에 왔는데, 다시 징집돼서 ‘훈련병’으로 돌아가는 꿈을 몇 번씩 되풀이해서 꿨다. 군대에서의 기억이 별로 유쾌하지 않은 탓이다. 징병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병역은 선택이 아니다.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의 아들’이 아니라면 반드시 군대를 가야 한다. 중국과 맞서고 있는 대만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만 대만은 1951년부터 징병제를 시행하다 67년 만인 2018년 12월 말부터 모병제를 전격 도입했다. 징병제와 모병제를 혼합해 운용하고 있는데, 매년 8만명을 새로 징병하고 정규군은 18만 8000명으로 줄었다. 100만명이 넘는 중국 지상군의 5분의1도 채 안 된다. 2년이던 의무 복무 기간도 4개월로 줄였다. 이로 인해 전투력도 많이 약화됐는데, 대만도 최근엔 중국이 공공연하게 침공 의사를 노골화하면서 군사적 긴장관계가 고조되자 징병제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 징병제를 선택했던 선진국들은 대부분 모병제를 도입했다. 미국(1973년), 영국(1963년), 프랑스(2001년), 독일(2011년) 등이 다 모병제 국가다. 다만 ‘선진국=모병제 국가’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나라 중 여전히 징병제를 유지하는 국가는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10개 나라나 된다. 상비군을 가진 164개 나라 중 모병제는 93개 나라, 징병제는 71개 나라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모병제 도입은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늘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이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선택적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징집병 규모를 15만명으로 줄이되 모병제로 전투부사관 5만명과 군무원 5만명을 충원하자는 게 골자다. ‘인구절벽’에 부딪혀 군대 갈 사람이 없는 상황에선 모병제는 피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가난한 자의 군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충분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제대로 모병제를 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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