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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산가족교류」 핵떠나 협의하자(사설)

    명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흩어져 있던 가족의 모임과 상봉에 있다.살아있는 부모형제는 말할것 없고 돌아가신 조상들과도 대하는 날이 설이요 추석이다.추석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일찍부터 즐거운 상봉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사람사는 즐거움이요 도리이며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고 다할수없는 불행한 이웃이 있다면 어떻겠는가.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안타깝고 송구스러워지는 마음 금할수 없게된다.「이제나…저제나…」하며 지낸 세월 보낸 추석이 얼마인가.금년에도 임진각 망향단을 찾아 북녘하늘만 바라보며 절하고 눈물짓는 안타까운 모습밖에 볼수없는 현실이다. 온세계가 화해와 공존인데 왜 우리만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화해는 커녕 인간생활의 기본욕구요 도리인 가족상봉마저도 이렇게 거부당하며 살아야하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된다.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며 북이 어떻고 남이 어떻고 해보았자 시간낭비일뿐 감정만 상하고 일만 더 어려워질 뿐이다.독일 예멘 인도차이나 그리고 중동을 보자.우리의 현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교훈은 가까운 중국과 대만의 교류일 것이다. 우리는 왜 안되는가.인간양심의 근원으로,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분단은 참을수있고 핵문제까지도 접어둘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산가족 교류만은 그래선 안되며 그럴수 없다.그것은 국가체제와 이념을 초월하는 기본인권의 문제다.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거부할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인도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도덕정치와 인권외교를 지향하는 김영삼대통령도 일찍부터 남북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해소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바 있다.취임직후 이인모노인을 무조건 송환하는 결단도 내렸다.이산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선 모든것을 초월할수 있다는 깊은 뜻의 호소일 것이다. 한완상통일원장관도 최근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주최의 「세계 한민족화합과 만남의 장」행사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측의 간절한 소망을 피력했다.이산가족문제만은 북한의 핵문제와 연관시키지 않고있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고향이나 판문점에서 그것이 어려우면 제3국에서라도 만날수 있게 하고 우선 서신교환부터라도 주선하자고 촉구했다. 북한당국도 이문제에서만은 모든것을 초월해야 할것이다.북한이 듣지 않는다면 이문제야말로 핵보다 우선해서 유엔에도 제기하고 세계에도 호소해야할 일이라 생각한다.그것은 우리만이 아닌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기본인권과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대마도 이즈하라 만송원(일본속의 한국문화:3)

    ◎임란침략 선봉장 종의지 아들이 건립/20대 도주 의성,선친 명복 빌기위해 세워/마룻바닥 구석에 약탈한 조선제기 전시 『살아서 대마도에 가서 부산을 단 한치만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아침에 갔다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4년간 억류당한 유학자 강항의 비통한 한마디다.강항는 돌아와서 유명한 「간량록」을 지어 남겼다.「간양록」을 읽지 않고서는 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책이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에 가면 누구나 관광업소 제1호 만송원을 둘러보게 된다.본래 송음사라 이름지었다가 만송원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만송은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침략앞잡이 종의지라는 19대 대마도주의 법호라고 한다.그 아들 종의성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 절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 이 만송원의 유래다.그런데 이 아들 의성 역시 임란후 국서(외교문서)를 위조하여 속임수로 한일국교를 정상화시킨 장본인이다.그러니 만송원으로 들어가는 한국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은 뒤 화재를 만나 몇번이나 다시 지었다는 법당에는 일본막부 덕천가의 위패를 유리창속에 안치해놓고 앞의 마룻바닥 한 구석에는 조선국왕이 바쳤다는 이 절의 보물 삼구족을 마치 노획물이나 되는 듯 전시해놓았다.도대체 놓여 있는 자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복궁서 훔쳐온 듯 일본막부 덕천일주을 신주처럼 모셔놓고 그 앞에 그것도 마룻바닥 한 구석에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나 쓰던 성스러운 기물을 진열하였으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거기다 더한 것은 조선국왕이 이 보잘것없는 섬의 도주에게 왕실에서 쓰는 기물을 바쳤다(여기 말로 공헌하였다)는 말투다.아마도 이 말은 일제때 조선을 얕잡아보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 추측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 되지 않겠는가.조선국왕의 하사품이라든지,아니면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임진왜란 때 왜국의 선봉장으로 서울에 입성했을 때 경복궁에 들어가 훔쳐온 것이라든지 확실하게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 아닌가.왜냐하면 필자가 아는 한 우리측의 어느 기록에도 이런 성스러운물건을 대마도주에게 하사하였다는 글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는 상태에서 만송원 법당안을 둘러보고 나면 그 뒷산이 청수산이라는 이즈하라의 진산에 올라가게 되는데 30여대에 걸친 종가들 일족의 공동묘지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종가의 족보문제다.도대체 종가란 자들은 언제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임란 직후에 사상초유의 외침에 시달린 우리 조상들은 많은 임란일록을 지어 남겼다.그중에 화은 신경(신경,1614∼1653년)의 「재조번방지」란 책이 있다.이 책에 보면 대마도주 종가는 우리나라 송씨였다는 기록이 나온다.즉 신경은 대마도가 우리나라와 가장 친근한 섬이라 하면서 그 이유를 『대개 대마도땅은 모래와 돌로 되어 있어 전적으로 우리나라와 교역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도주 종성장(12대)은 우리나라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섬(대마도)으로 들어가서 도주가 되어 성을 종으로 간 사람이다』 신경의 「재조번방지」는 매우 신빙성이 있는 책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대마도주 종가의 뿌리가 조선인 송가였다는 이 기록을 근거없다고 하여 일소에 붙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조선인 송씨가 조상 본시 일본 사람들의 습속이란 『성을 가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겨온 우리네와는 달리 마음대로 갈고 고치는 사람들이므로 종가의 세계보를 그 어느 누구도 보증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만송원에 모셔져 있다는 종의지란 인물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나 하는 점이다.강항에 따르면 종의지는 『풍신수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데 있어서 향도노릇을 한 모사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 임란 이전에는 우리나라 쌀을 받아먹다가 임란때 선봉장으로 공을 세워 수길에게 영지를 얻어 일본쌀을 먹게 되었다고 그 배신행위에 격분하고 있다. 그러나 강항이 4년간의 억류생활을 마치고 그리운 조국땅을 향해 대마도를 거쳐 오는데 이 이즈하라에서 의지의 참모역을 맡고 있던 심복부하 유천조신을 만나 이런 하소연을 들었다.대마도는 그때 임란 직후라 조선과의 교역이 끊겨 도민의 생계가 막막하던 때였다. 『이 섬은 한일 두나라 사이에 끼여 있어 수길(즉 일본)이 상국(즉 조선)을 침범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우리가 사전에 수길이 조선을 침략하리라는 정보를 귀뜀하여 주지 않았습니까.미리 침략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로서는 그때 할일을 다했습니다.수길이 침략군을 동원하게 되자 약한 우리 대마도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에 장차 조선이 강해서 일본을 친다고 한다면 우리는 조선을 위해 일본을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또 대마도는 과거 2백년간 위관의 소굴이었다고 하나 호남을 범한 일은 있으나 영남을 범한 일은 없습니다.우리 대마도가 조선의 영남을 지켜준 셈입니다』 ○임란발발 미리 알려 조신의 이 말 가운데 왜구의 방파제가 되어 조선의 영남지방을 지켜주었다는 마지막 말은 과장되어 있으나 임란 직전에 왜군이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조선에 알려준 사실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종의지와 조신은 임란 직전인 1590년에 우리 사신 황윤길과 김성일을 수행하여 일본에 갔었는데 돌아와서 두 사신의 보고가 엇갈리는 바람에 조정에서는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했다.이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듬해(1591년) 5월 임란이 일어나기 꼭 1년전에 종의지가 홀로 배를 타고 부산 영도에 와서 『조선조정에 급히 아뢸 말씀이 있으니 나를 서울에 가도록 하여 주시오.일본이 곧 쳐들어옵니다.대비하여야 합니다』라고 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이때 서울의 조정에서는 어리석게도 현지 관리의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아무 회답도 보내지 않았다.종의지는 열흘동안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대마도로 돌아가고 말았다.이 사실로 미루어 그는 과연 조선인 종씨의 후손이 아니었든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 추석/예절·전통문화행사 “풍성”

    ◎각 단체서 한복바로입기 강좌·민속놀이대회 등 마련/새마을지도자협/농산물 9도 큰 장터·차례상차림 전시/서울시 농촌지도소/떡·한과·차 등 우리음식 1백여점 선봬/주부클럽연/절하기 등 생활속 예의범절 강습 추석명절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와 예의범절을 고취 시키려는 단체별 추석관련 행사가 다양하다. 설과함께 한국민의 2대 전통명절인 추석은 오곡백과가 풍성,『더도말고 덜도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생겨 날만큼 모든것이 넉넉하다.따라서 흩어져 살던 가족들도 이날만은 한자리에 모여 정담을 나누며 그동안의 소원했던 사이를 풀곤했다. 그러나 바쁘기만한 현대사회에선 자칫하면 전통명절마저 잊고살기가 쉬운데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서울시농촌지도소·대한주부클럽연합회등에서 전통음식전시회를 비롯,한복 바로입기·차례상 차리기·성묘하기등 추석관련 강좌와 행사들을 마련,지켜나가야할 고유의 전통예절을 일깨워준다. 새마을지도자중앙협의회는 20일부터 26일까지 추석맞이 우리농산물 9개도 큰장터를 준비,각도별 농·특산물과 추석 차례상품등 1백여 품목을 산지직송, 시중가보다 10∼20%를 할인판매하는 농산물직거래및 20여종의 각도별 민속주를 모아 우리술 시음·판매행사를 갖는다.또 농산물직매장내에 대한요식업중앙회 협조로 추석상차림을 표본전시하고 안내전단 1만장을 제작,배포하는한편 윷놀이·제기차기·투호등의 전통민속놀이 대회(20·25·26일)를 개최한다.한편 부대행사로 20쌍의 재래닭 전시·투계 및 조리법실연 코너도 운영한다. 서울시농촌지도소가 운영하는 농업 텃밭가꾸기 회원 1천5백여명중 우리 전통음식에 관심이 있는 3백여명의 주부들이 모여 최근 결성한 우리음식 연구회는 23일과 24일 이틀동안 농촌지도소 대강당에서 순수 우리농산물을 이용한 전통음식 전시회를 연다. 이 전신회는 간편한 식사와 외식기회가 늘면서 마치 서구화가 현대화인양 잘못 인식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음식 문화를 계승 발전 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쌀로 만든 화전·섭전·약식·준악·삼색단자등 30여점의 떡을 비롯,약과·매작과·조란·유란·엿강정·다식등 한과류 20점,수정과·식혜·오미자차·유자차·배숙·모과차·책면등 화채류와 차류 20여점,육포·편포·자반·부각등 마른자반류와 궁중음식인 신선로·구절판등 모두 1백여점이 선을 뵌다. 전시기간중에는 일반 참석자들을 위해 추석명절 음식인 모시잎송편·쑥송편·깨송편·밤송편등 10여종의 송편떡과 신선로·구절판 만들기 공개강좌도 갖는다. 이밖에 대한주부클럽연합회는 주부클럽 생활관에서 21일과 22일 우리의 옷 한복 바로입기·절하기·간소한 상차림·생활속의 예의범절을 중심으로 추석맞이 어머니 무료예절과 상차림 공개강좌를 실시하며 한국식생활개발연구회도 21일 하오 계절 농산물을이용한 추석음식 강습회를 연다.
  • 김일성 정권수립 45돌행사 불참(북한 이모저모)

    ◎흥남비료공장 생산공정 현대화 ○각종행사 규모 대폭 축소 ○…북한은 정권수립 45주년(9월9일)과 관련해 올해가 소위 「꺾어지는 해」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행사규모나 내용면에 있어 지난 88년 40주년과 비교해 대폭 축소,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정권수립 기념일 하루전에 거행된 경축보고대회의 경우를 보면 지난 88년 40주년때에는 김일성이 직접 참석,「주체의 혁명적 기치를 높이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자」는 제하의 보고를 통해 사회주의 체제고수를 위한 총력경주를 강조했으나 올해 45주년에는 김일성은 불참하고 총리 강성산의 보고로 대신했다. 또한 행사의 규모나 내용면에 있어서도 40주년때에는 각종 기념전시회·전람회는 물론 「9·9절」 직전 3일간에 걸쳐 평양서 「전국영웅대회」(9월2∼4일)를 개최했으며 그해 2월부터 전개한 「2백일 전투」를 통해 거의 1년내내 정권수립 40주년을 대대적으로 맞이하자는 분위기를 고조시켰었으나 올해는 영화상영주간·이동미술전시회·청년학생들의 웅변 및 연단대회 등이고작이다. 해외사절단의 경우도 88년 40주년때에는 중국 국가주석 양상곤,당시 소련 KGB의장 체브리코프,후사크 체코대통령,마다가스카르 대통령 등 10여명의 국가수반급을 포함,1백30여개국 3백60여 대표단을 평양에 초청했으나 올해의 경우 「국제김일성상」위원회 관계자들과 조총련 방북단 등을 제외하고는 「9·9절」사절단은 전무하다. ○풍서호등에 여객선 운항 ○…북한은 지난 정권수립 45주년(9월9일)를 맞아 양강도내 풍서호 및 초도섬 주민들이 교통난 해소를 위해 여객선 「은정 18­2호」,화물선 「은정 18­2호」,화객선 「사양산호」등의 운항을 시작했다고 평양방송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일 명의로 하사된 이들 선박들 가운데 「은정 18­1호」와 「은정 18­2」는 대규모 댐건설로 수위가 높아진 풍서호수 상류의 문조리·임서리·노흥리(이상 풍서군)주민들과 풍서임산사업소산하 8개 벌목작업소 사람들,광산촌 사람들의 교통난을 해소,과거 풍서읍으로 가기 위해 1백40여개의 굴을 통과해야만 하던 것을 80리 뱃길을 이용,30분이면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의 사적지가 있는 사양산의 이름을 단 화객선 「사양산호」의 경우는 4백㎦ 규모의 초도섬 주민들의 교통편의를 위해 마련됐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선진 질소정류 설비 갖춰 ○…북한 최대규모의 흥남비료연합기업소(함흥소재)변류직장 현대화공정이 완료되어 7일 조업식을 진행했다고 중앙방송이 8일 보도했다. 북한은 이날 변류직장 현대화 공정 조업과 관련,노동당중앙위 명의의 축하문을 전달했는데 변류직장 현대화 공사는 『새로운 선진적인 질소정류설비를 설치해 이전의 공정을 현대화한 거창한 공사』라고 밝히고 오는 「10월5일 자동화종합공장」에서 설계를 맡아 조작이 편리하고 효율이 높은 수십대의 현대적인 전해형 규소정류기를 만들고 이를 직접 조립하는 한편 수천점의 낡은 설비를 해체,새로운 설비를 설치하고 변압기를 개조해 능률을 높이는 공사를 진행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흥남비료공장의 변류직장이 현대화됨으로써 ▲위생적이고 문화적인 작업환경을 보장해 주고▲전력과 경영용 자재를절약하며▲비료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되었다면서 전체 비료공장 종사자들에게 생산공정의 현대화에 주력할 것과 자체의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고 표준조작법을 제대로 지켜 비료생산을 정상화할 것을 촉구했다.
  • 괴한 40명 사찰 난입/스님등 14명에 뭇매

    【고성=조성호기자】 11일 상오 4시30분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에 박종일씨(24·전남 무안군 몽탁면 내리) 등 청년 40여명이 난입,이 절에서 잠자던 총무 무이 스님(54)과 인부 14명을 몽둥이와 쇠파이프로 집단 폭행,중경상을 입혔다. 이들 청년은 이날 건봉사에 몰려가 잠자던 무이 스님과 팔상전 복원공사를 하기위해 이 곳에 와 있던 강대희씨(51) 등 인부 14명을 깨워 법당앞 마당으로 끌어내 쇠파이프와 몽둥이로 폭행했다.
  • 진안 만덕산(한국의 종교성지:11)

    ◎원불교단 중요사적지·3대교주 탄생지/대종사가 24년 최초의 교리강습회 연곳 원불교 초선지가 있는 전북 진안군 성수면 중길리의 만덕산성지는 원불교단의 중요한 사적지로 오늘날 훈련도량인 전주교구훈련원과 산업도량인 만덕산농원이 위치하고 있다. 원기9년(1924년)5월 교주 소태산대종사가 익산총부(현 이이중앙총부)가 건설되기전에 이곳에와 12명의 제자들에게 김씨문중의 산제당인 만덕암을 빌려 최초로 교리강습(선)을 가졌던 곳.3대교주인 대산 김대거 종법사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소태산 대종사가 부안 봉래산에서 원기7년 2대교주가 될 정산종사를 만덕산 미륵사에 보내 화주승 최도화를 만난 인연으로 그해 겨울 3개월을 이 절에서 보내게 되었고,이태후 이곳에서 초선을 베풀게 됐던것.당시 11세 소년 김대거와 대종사와의 법연이 이루어졌다. 진안군·완주군·임실군등 3개군에 걸쳐있는 해발 763m의 만덕산 남쪽 7부능선 큰바위밑이 원래 초선지이나 그곳이 남의땅으로 되어있어 지난 19 85년 초선의 뜻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만덕초선지비는현지에서 2㎞ 아래인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 여름송이값 “껑충”… 3주새 3배로

    ◎반입물량 절정때 10분의 1에 그쳐/강원도사 A등급 1㎏ 16만∼20만원/서울경동시장/향 그윽한 가을송이 15일께 선보일듯 여름송이가 끝물에 들어가면서 가격이 큰폭으로 올랐다. 서울 경동시장의 경우 하루 반입량이 7∼8t으로 절정을 이루던 지난달 중순 여름송이의 가격은 A등급품이 1㎏에 5만∼6만원,B등급품은 3만원선이었으나 끝물에 들어선 이달초 들어서는 평균 16만∼20만원,14만∼16만원선의 가격을 각각 유지하고 있다. 섭씨 17∼22도 정도의 기온에서 양질의 상품성을 띠고 출하되는 송이버섯은 원래 8월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데 올해는 이상저온 현상이 계속돼 소량씩이지만 꾸준히 시장반입이 계속되고 있다고 상인들은 설명한다. 전국 각지에서 골고루 채집되는 송이는 인제·고성·삼척등의 강원도와 청도·영양·안동·봉화·울진등 강원도산이 맛과 질이 좀더 우수한 편이다.끝물에 들어선 최근 경동시장반입량은 출하절정기의 10분의 1 수준인 7백∼8백㎏정도다. 절기상으로 백로이후에 채집되는 송이는 가을송이로 불리며 여름송이보다 향이뛰어나고 육질이 단단해 인기가 높다.상인들은 이달 15일정도면 조금씩 선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독특한 향을 가진 송이는 일본과 유럽등 동서양 공통적으로 고급음식에 들어가는 식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해외수출을 주로하고 호텔등의 고급 음식점들에 주로 판매됐으나 최근에는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일반 주부들도 가정의 가을 특선요리와 선물용으로 많이 찾는다고 경동시장 무진상회 이무형씨는 설명한다. 버섯은 머리부분이 굵고 클수록 상품으로 친다.또 전체적으로는 품질에 따라 ABC등급으로 나누는데 갓이 펴지지 않고 몸체길이가 8㎝이상으로 균등하게 굵은 것을 정품으로 쳐 A등급으로 분류한다.또 B등급은 갓이 3분의 1이하로 펴지고 몸체 길이가 6㎝이상 8㎝미만의 것이다. 갓이 3분의 1이상 펴지고 몸체길이가 5㎝이하면 C등급으로 분류되며 등외품은 갓이 완전히 펴졌든지 벌레가 먹은 등의 흠집이 있는 것이다.버섯은 갓이 피는 정도에 따라 육질이 질기고 향이 조금씩 떨어진다.
  • 검은 돈 세탁하면 하얀 돈 될까(박갑천칼럼)

    「검은돈」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세상이다.사정의 줄기가 실명제로 이어지면서 끊이지않고 나온다.「새빨간 거짓말」같이 말에 색깔이 있듯이 돈에도 색깔은 있는 모양이다.어쨌거나 검은돈이 있다면 흰돈도 있을것 아니겠는가.옳아.그래서 돈세탁한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겠지. 한다지만 돈의 모습에 감장·하양이 따로 있을리 없다.다만 그것을 갖게된 내력과 쓰게되는 행태에 따라 선악·미추·정사…등으로 비치면서 색깔은 갈린다 할것이다.말없는 돈이지만 까매진 모습에 울고 하얘진 모습에 웃는 것이나 아닐지. 황현의 「매천야록」에 이런 얘기가 쓰여있다.색깔검은 돈의 사례이다.­『초시를 매매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2백냥도 주고 3백냥도 주어 금액이 고르지 않았고 5백냥을 달라하면 사람들이 혀를 찼다.갑오(고종31년:18 94년)전의 액수는 1천여냥을 달라해도 아무렇지않게 생각했으며 회시는 많으면 1만냥을 썼으니…』.이렇게 색깔검은 돈이 세상까지 검게하는 것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광해군때 함경감사로 있던 심열은 은그릇을 만들어 자기이름을 새겨서 궁중으로 바쳤다는 것이었는데(하담파적록) 그 은색깔이 과연 하얄수 있었던 것일까. 「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승람:양천현조)등에는 이른바 형제투금전설이 실려 내려온다.고려 공민왕때 어떤 형제가 황금 두덩이를 주워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배를 타고 양천강에 이르렀을때 아우가 황금덩이를 물에 던진다.이유인즉 이때까지는 형제의 우애가 두터웠는데 황금을 쥐자 형님을 싫어하는 마음이 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이말을 들은 형 또한 금덩이를 물에 던진다.민속학자 손진태에 의하면 이는 일본 등에도 있는 전설이라는 것이지만(한국민주설화의 연구)그 황금색깔은노란게 아니라 하얀것 아니었을까. 고려 명종때 산원동정 노극청이 외출한 사이 그부인이 도관낭중 현덕수에게 백금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이를안 노극청이 백금3근을 현덕수에게 돌려주려 한다.9근을 주고 산집인데 그후 집에다는 하나도 돈을 안들였다는것이 이유였다.두사람은 받으라거니 못받겠다거니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돈을 절에 시주해버린다(고려사·동국리상국집등).그 백금색깔이야말로 진실로 하얘ㅆ던 것이리라. 하얀마음의 하얀돈이 돌고도는 가운데 세상까지 하얗게 돼가야겠다.그럴수있게 우리모두의 마음이 그곳으로 모아져야 한다.
  • 부도우려 중기 집중 지원토록(사설)

    정부는 영세중소기업의 자금난완화를 위해 긴급안정자금 2천억원을 추가지원키로 했다.또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키로 되어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 특별감면제도를 연장할 방침이다.정부가 20인이하의 영세중소기업을 위한 긴급경영안정자금 2천억원을 중소기업은행과 국민은행을 통해 방출하고 있지만 수요가 많아 곧 소진될 것에 대비,추가로 지원규모를 늘린 것이다. 실명제 실시이후 가장 우려했던 분야가 증시와 중소기업이었으나 증시는 예상보다 빨리 안정세를 되찾고 있는 편이다.정부는 이에따라 중소기업의 부도를 여하히 막느냐는 것이 실명제성패의 중요한 관건이라는 측면에서 중소기업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자금을 적기에 공급하고 있다. 당국은 실명제실시와 함께 중기특별대책으로 운전자금을 포함,1조2천여억원의 긴급자금을 1개월내에 지원하고 대출및 신용보증의 절차간소화,어음할인확대 등의 응급조치를 취한바 있다.이러한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향후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왜냐면 중소기업의 자금결제가 월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또 추석이 낀 9월말과 실명확인이 끝나는 10월중순경을 중기자금난의 고비로 보고있다. 정부는 사태의 추이에 따라 추가 중기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정부가 물가등 여러문제가 걸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비상조치로 봐야한다.그러나 대출심사나 관행등 은행창구는 정부의 지원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절차가 간소화된 것도 아니고 담보요구는 여전하며 오히려 어음할인은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고 중기업체는 주장하고 있다.중기의 긴급경영안정자금으로 배정된 5천8백여억원중 집행된 대출은 3백15억원에 불과하다.이런 현실로는 정책효과를 기대할수 없음은 물론이다.은행의 창구관행대책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실명제는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신용사회를 확립하자는 데 있다.이는 누구보다도 금융기관이 관행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실명제실시를 계기로 금융기관은 담보위주의 대출을 신용에 입각한 대출로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 중기의 자금난해소에 대기업들의 자세와 협조 또한 절실한 상황이다.상당수 대기업들이 결제기간을 단축하고 가급적 현금으로 지급키로 했지만 아직도 많은 대기업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정부와 금융기관,그리고 대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연쇄부도위기 등 중기를 둘러싼 여러 악조건들을 조속히 제거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 어록으로 본 김 대통령의 통치철학

    ◎“우리경제 못살리면 역사의 죄인된다”/도도한 개혁의 강물 누구도 막을 수 없다/금융실명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고빗길 김영삼대통령의 취임 6개월은 정치적 수사보다 실천에 체중을 싣고있다. 그러나 지난 6개월동안 쏟아낸 어록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의 진면목과 인간적 체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앞으로 개혁의 강도가 어느 정도 될 것이며 개혁의 물꼬가 어떤 방향으로 트일지도 예상이 가능하다. 그의 통치철학이 곳곳에 배어있는 것이다. ▲이제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될 것이다.(2월25일 취임사) ▲선열들의 숭고한 피에 개혁으로 보답하겠다.(3·1절 경축사) ▲앞으로 정치자금은 한 푼도 받지않겠다.(3월4일 출입기자간담회) ▲꽃샘 추위가 있다고 해서 개혁을 향한 전진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3월8일 재경 언론사사장단과 오찬간담회) ▲나의 취임사 중에 눈물은 반성을,땀은 고통과 인내를 뜻한다.눈물과 땀이 없으면 이 나라는 새로 태어날 수 없다.(3월15일 안기부순시) ▲임기중에 골프를 치지않겠다.(3월17일 금융기관장과 오찬)▲고통분담을 위해 공무원의 봉급을 동결한 것은 참으로 큰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3월22일 신경제 1백일보고회) ▲재산공개는 우리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이다.(30일 대구방문) ▲사람도 1주일에 한번은 쉬어야 한다.(신문의 날을 하루앞둔 4월6일 출입기자 간담회) ▲재산공개와 관련해서 진정으로 참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4월9일 민자당 제3차 상무위원회) ▲우째 그런 일이….달리다 보면 돌부리도 나오는 법이다.(4월13일 최형우전민자당사무총장이 대입부정입학과 관련됐다는 보고를 받고) ▲토지·건물등 부동산을 갖고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4월16일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 조찬) ▲도도히 흐르기 시작한 개혁의 강물은 어느 누구도 막을수 없는 역사의 대세이다.(4·19묘역 방문) ▲역사상 가장 정직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길 바라며 조국이 어려울 때 살려낸 대통령으로 평가되길 원한다.(4월23일 미 CNN­TV와 회견) ▲(개혁의 속도를 자전거의 스피드에 비유하면서)너무 급히 달려도 위험하지만 달리다가 멈추면 쓰러진다(5월1일 모범수출업체 대표 20명과 오찬) ▲돈내라는 사람도,갖다줄 곳도 없는데 기업만 하면되지 무슨 걱정이 있느냐.(5월4일 언론사 사회부장과 오찬)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이며 문민정부의 출범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다.(5월14일 5·18 특별담화) ▲세종대왕이 이루신 위로부터의 개혁에서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게 된다.(5월16일 세종대왕 탄신 숭모제전) ▲5·16은 분명히 쿠데타라고 생각한다.(6월4일 취임 1백일 기자회견) ▲사정엔 성역이 절대 없다.(6월15일 민주당 이기택대표와 조찬) ▲우리는 그동안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는 그릇된 인식속에서 온갖 불법선거가 당연시 되어온 경향이 없지 않았다.(6월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 9명과 오찬) ▲백범선생이야말로 우리민족의 지도자이며 민족의 혼을 일깨우고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신 분이다.(6월26일 김구선생의 묘소에서) ▲남이야 어찌되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러한 현상들은 우리가 고쳐야 할 한국병의 하나이다.(6월28일 사회자원봉사자와 오찬) ▲누구든 나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중용할 생각이다.(6월29일 민자당 시도지부위원장단과 만찬) ▲우리는 청년의 나라인데도 노화현상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6월30일 청년회의소 간부들과 다과회) ▲우리경제를 못살리면 천추의 한이 되고 우리가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므로 다함께 뛰자.(7월2일 재벌그룹총수들과 만찬) ▲선진국과 후진국은 종이 한장의 차이로 우리는 싸우고 싸워서 선진국의 길로 나가야 한다.(7월16일 대전엑스포 현장을 둘러보며) ▲개인이나 집단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이 더욱 중요하고 필요한데 최근 애국이라는 말이 사라져가고 있어 안타깝다.(7월22일 체육계인사와 오찬) ▲(여름휴가에 대해)내가 안가면 각료들도 못갈 것이고 차례로 그아래 사람들도 눈치를 보게될 것이다.(7월25일 수석비서관회의) ▲금융실명제는 신한국으로 가는데 반드시 넘어야할 고빗길이다.제도개혁에는 아픔이 따를수 밖에 없다.(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특별담화) ▲(금융실명제와 관련)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겠다거나 벌어 감춰놓은 사람이 걱정이지 국민 대다수는 구애받을 이유도,걱정할 필요도 없다.(8월20일 구로공단 대륙정밀 방문)
  • “첨단과학전시관서 성장한국 실감”/외국인관람객들이 말하는’93세박

    ◎선진국 수준의 기술·국민질서의식 인상적/국제적홍보 미흡·외국어안내 부족 아쉬움 서울신문은 대전 엑스포를 관람한 외국인 참관객을 상대로 소감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행사장에서 무작위로 선정한 세계각국의 언론인과 학생·엔지니어·공무원·학자들이 본 대전엑스포 관람소감을 소개한다. ○우주탐험관 인상적 ▲A C 위트지에르씨(31·네덜란드· 텔레비전 앵커우먼)=아시아 여러나라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취재 하기위해 대전에 왔다. 유럽에도 한국의 전자제품을 비롯한 자동차와 의류등이 많아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이곳에 와서 성장의 현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마련한 첨단 과학전시장을 보고 미래의 과학 기술 발전이 우리 생활을 어떻게 변화 시킬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전자와 전기·통신·음향기재등은 유럽의 기술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 같다. 대전에서의 취재가 끝나면 서울과 판문점등을 방문해서 한국의 현실을 정확하게 알릴 예정이다. 엑스포조직위원회에서 국제적인 홍보가 미흡했던 것 같다. 네덜란드에는 한국음식점과 상사등이 많이 있는데도 네덜란드 사람들은 엑스포 행사에 관해서 잘 모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휴가를 1년전부터 계획하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람객을 유치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본다. 귀국해서도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대전 엑스포를 선전해서 참관하도록 권유 하겠다. ▲템보 게럴드씨(31·잠비아·공무원)=잠비아의 수도 루사카에 주재하는 한국외교관들과 상사원들을 통해 엑스포를 알게되어 오게 됐다. 우주탐험관이 인상 깊었다.왜냐하면 다가오는 21세기는 우주의 시대이며 우주개발이야말로 인류가 개발해야 할 분야이기 때문이다.과학기술의 발달이 우주개발에 응용되어 인류의 미래를 밝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엑스포방문이 끝나면 대전 부근의 온천과 절과 산·해변등을 돌아 보고 한국의 경제현실을 살펴보려고 한다. 외국인들을 위한 다양한 언어의 서비스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 사람들은 앞으로 국제적인 지위와영향력이 커지는데 대비해서 여러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인재들이 많이 필요 할것으로 보인다. 고국에 돌아가서는 물론이거니와 일본과 영국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엑스포 참관을 적극 권할 계획이다. ▲파이잘 마로프씨(26·말레이시아·학생)=삼성의 우주항공관이 가장 인상깊었다.과학기술의 발전이 멀지않아 한국을 선진국대열에 서게 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대전관람이 끝나면 서울과 광주를 방문한뒤 귀국할 예정이다.엑스포의 운영과 서비스가 완벽해서 흠잡을 데가 없다.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한국은 풍습과 음식·예절·풍경등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말레이시아는 70년대부터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본받는 동방정책을 펴고있다. 한국의 날씨는 매우 더운데 행사장에 나무그늘이나 공원에 벤치가없어 구경온 사람들이 햇볕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질서정연한 것이 인상깊다 ○민속·음식예절 신기 ▲수전 호킹양(24·오스트레일리아·학생)=일본을 여행하다 친구들로부터 엑스포 이야기를 듣고 대전에 오게됐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주제와 환경보호에 관한 테마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환경 보호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과 인류공동의 재산인 에너지와 자원을 아껴써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됐다. 그러나 모든 전시장과 공연장에서 한국어만 사용하며 영문설명이 눈에 띄지않아 답답했다. 한국의 여러 도시와 시골을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돌아가 친구들에게 대전 엑스포와 한국에 관해서 이야기 해 주려고 한다. ▲샤말 두타씨(31·방글라데시·신문기자)=방글라데시의 무역진흥국에서 대전 엑스포에 관해서 알게 되어 취재하기 위해 오게 됐다. 나는 집에서도 한국제 전자제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와서 백화점에 가보고 가전제품이 가득 진열 되어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국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겠다. 한국에는 30여년 만에 문민정부가 들어서 국민들이 아주 활기차 보인다. 민중들의 창조적인 에너지가 국가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이때문에 한국의 발전 속도는 더욱 가속화 될것으로 본다.인구가 1억2천만이나되는 방글라데시에도 천연가스만 조금나올뿐 자원이 없는데 한국의 발전 모델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귀국할 때는 집에있는 아내와 어린이들을 위해 한국의 질이 좋은 운동용품과 T셔츠를 선물로 사가려고 한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 서울 올림픽때부터 호돌이의 팬이었는데 꿈돌이까지 좋아하게 됐다.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가장 좋아 하는것은 한국의 전자제품이며 어린이들은 T셔츠와 운동화를 갖고 싶어한다. 영문 팸플릿이 부족하고 전시관을 관람하는데 줄을 너무 오래 서야하는 것이 불편하다. ▲피터 워너씨(52·미국·사진작가)=대전 엑스포의 디자인과 전시관배치가 세계 어느 나라 보다도 훌륭하다. 전시관마다 미래의 세계를 제시한다는 엑스포정신에 따라 영상물과 전시물에 첨단 기법을 활용했기 때문에 메시지전달이 잘 되고있다. 특히 첨단기법을 동원한 다채로운 건축양식과 박람회장 뒤편의 나지막한 우성이산의 푸르름이 어우러져 사진 작가에게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되고있다. 그러나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여 혼잡한 것이 자칫하면 무질서하게 보여 걱정이다. 이렇게 좋은 시설을 해놓고도 일본이나 중국 미국등 가까운 나라의 어린이들이 와 보지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대전엑스포의 전시장과 놀이시설을 보고 한국의 어린이들이 미국의 어린이들보다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관광지 돌아볼터” ▲라울 몬티엘군(25·파라과이·학생)=아시아와 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유럽의 젊은이들이 한데모여 세계북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인상깊다. 서로 연주기법과 감정이 다를텐데도 완벽한 하모니를 연출해내는 광경은 놀라울 뿐이다. 인류는 하나라는 말이 대전에서 구체화되는 듯한 느낌이다. 국제관에서 열리고있는 각국의 축제도 한 장소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됐다. 하루에 15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여든다는 것만 해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스페인어를 하는 통역이 몇명안되어 불편했다. 대전에서 구경이 끝나면 설악산과 북한산을 올라가고 싶다. ▲엔리케 아소레이씨(30·스페인·공무원)=서울은 바르셀로나올림픽 전 개최지이고 대전은 세비야 엑스포 후 개최지여서 스페인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한국과 스페인은 반도 국가이며 주변에 강대국이 많아 주변환경도 흡사하다. 큰 행사를 치르는 한국의 공무원이나 이를 참관하는 일반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저력을 느끼고 있다. 교육수준이 높고 깊은 문화적인 전통을 가진 한국은 멀지않아 아시아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에서도 손색이 없는 선진국의 대열에 설것으로 확신한다.
  • 편식교정… 젓가락사용법 조기교육을/자녀의 식사습관·예절지도 이렇게

    □기본 식사습관·예절 반드시 손 씻고 식사중 소리내지 않기 치아건강 위해 단단한 음식 먹이도록 위어른과 겸상할때는 속도를 맞추고 부모의 모범적인 식사태도 보여줘야 어린이들에게 균형된 식사를 제공하는것 못지않게 중요한것이 올바른 식사습관과 식탁에서의 예절지도 이다.얼마남지 않은 여름방학기간에 어린이들에게 일상적인 식사예절부터 편식의 교정에 이르기까지 올바른 식사예절을 가르쳐 보자. 어린시절 형성되는 식사태도나 음식에대한 기호·위생습관등 식사행동은 한번 잘못 길들여지면 교정이 힘들고 심신의 건전한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영양사 김미옥씨(서울 녹번 국민학교)는 어린이 식사지도에 가장 중요한것은 부모의 모범적 식사태도라고 설명한다.즉 부모들 자신이 먼저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선택하는 일에 올바른 태도를 보여 자녀들이 좋은 식습관을 익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것. 요즘은 특히 자녀가 적어 대개의 가정이 어른보다 아이가 즐겨먹는 음식들로 식단을 마련,편식의 원인이 되는가하면 국민학생이 돼도 우리 음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젓가락을 사용하지못해 서양식 포크만 고집하는 어린이들이 의외로 많아 문제인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또 단단한 음식은 씹어먹는것 자체가 싫어 자꾸 기피하고 부드러운것만 찾다보니 치아가 튼튼하지 못한것이 요즘 아이들의 공통적인 특성이기도 하다. 우선 성장기엔 균형된 영양섭취가 중요하다.이를위해선 어머니가 먼저 어떤것이 좋은식사(균형식)인지를 알아야 한다.즉 인체가 생명을 유지하고 매일 생활을 유지하려면 약 40여종의 영양소가 필요한데 아이들에게 음식을 무조건 권하기만 할것이 아니라 단백질식품·칼슘식품·비타민·무기질식품·탄수화물식품·지방식품으로 대별되는 기초식품군의 종류와 함유영양소 및 뇌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이들 식품의 유기적인 관계를 부모가 확실히 알고 어린 자녀에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편식이 심한 경우도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긴시간에 걸쳐 끈기있게 노력하되 음식을 담는 그릇이나 요리에 변화를 줘 싫어하는 음식에 친근감을 갖게 해줄것.어릴땐 친구에대한관심이 크기때문에 음식을 골고루 잘먹는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하게하면서 편식교정을 해보는것도 좋은 방법 이다. 한편 식사예절은 잘못 습관이 되면 남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으므로 어릴때부터 몸에 배도록 계속적인 지도를 하는것이 중요하다.식사예절에서 식사전 반드시 손을 씻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한손에 잡지않으며 음식을 씹을때 소리를 내지않고 식사중 TV를 보지않게하는 것등은 기본 이다.또 어른을 모시고 식사할때 어른을 좋은 자리에앉게하고 어른이 수저를 드신후 식사를 시작하되,속도를 맞추며 식사중 자리를 뜨지않게 하는것도 아주 기초적인 예절이나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잘 안지켜져 주의를 시켜야 할 사항 이다.식당등 집이 아닌 외부에서 식사를 할땐 과식을 삼가고 순서를 지키며 조용히 행동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에 방해하지 않도록 늘 주의를 줄것.
  • 빗속 「선열추념가」… 유족들 오열/임정 5위 영결·안장식 이모저모

    ◎울음섞인 추모사에 참석자들 목메어/소복차림 후손 “할아버지” 절규… 숙연 ○…10일 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임정선열5위의 영결식은 전날에 이어 계속내린 비로 더욱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현충문옆 국기게양대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빗속에 펄럭이는 가운데 국화로 장식된 선열 5위의 제단은 새삼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분위기 시종 엄숙 국민제전위원측은 이날 영결식행사장 주변에 천막30개를 설치했고 참석자들에게는 미리 준비한 우의를 나누어 줘 빗속행사에 만전.또 식순및 행사내용등이 인쇄된 팸플릿이 비에 젖는 것을 막기위해 비닐봉지에 싸 배포하는등 역사적인 행사에 차질을 빚을까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흔적이 역력. ○…이날 영결식장의 종교의식행사에서는 천주교와 불교,기독교외에 대종교가 이례적으로 참석해 눈길.특히 김선적 종무원장(67)은 선열들의 명복을 비는 「봉안 원도문」을 유독 큰소리로 낭송,비교적 낮은 목소리로 의식을 진행하던 다른 종교와 대조를 보여 주목. 김종무원장은 박은식선생등의 독립운동 행적과 대종교의 역할등을 중심으로 추모사를 울음섞인 목소리로 낭독해 유가족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종교의식 시간 걸려 ○…이날 영결식에서 선열추념가를 부른 합창단 1백20명이 무궁화무늬가 새겨진 한복을 입어 눈길. 국립합창단과 함께 조가를 부른 이들은 대전무궁화 합창단(단장 정인자·51)으로 이들은 어제 가사를 팩시밀리로 받아 이날 상오5시 서울에 버스편으로 도착할 때까지 버스안에서 가사와 리듬을 열심히 익혔다고. 정 단장은 『지난7월 26일 효창공원에서 열렸던 백범 선생 추모식 때도 추도가를 불렀다』고 자랑. ○…이날 영결식행사는 당초 예정보다 30분가까이 늦어진 상오 11시 10분쯤 국군 조포대의 조포 21발이 울리는 가운데 종료. 이는 추모사와 종교의식이 예정시간보다 배이상 길어진데 따른 것이라고 행사 관계자가 설명. ○…상오 11시30분쯤 시작된 안장식은 흰보자기에 싼 옥함을 유택에 넣은뒤 가로30㎝,세로90㎝ 정도의 세조각으로 된 「횡대」라는 나무조각으로 옥함을 덮은 다음,횟가루를 유족대표들이 횡대위에 뿌리는등 헌토작업과 봉분을 쌓는 성분작업및 잔디를 입히는 절차로 약20여분동안 진행됐으나 흙바닥이 질어 인부들과 유족들이 애를 먹기도. ○시아버지유택 큰절 ○…소복차림의 박은식 선생의 자부 최윤신 할머니(77)는 비가 와 진흙땅으로 변한 잔디밭에서 시아버지의 유택을 향해 절을 올리며 오열했는가 하면 노백린 선생의 묘역에서도 흰소복차림의 여자 유족이 『할아버지』하며 오열하는등 안장식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나와 더욱 숙연한 모습. 또 이날 영결식행사에 참석한 중국교포 이소심씨(55·여·의사·중국 사천성거주)는 『오늘 영결식을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부러움과 감격스러움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정부당국이 아직 환국하지못한 다른 선열들의 유해 봉환에도 관심을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고향마을/권문용 한국고속철도공단 부이사장(굄돌)

    천안에서 국도를 따라 10여분간 내려가다보면 구름이 머물고 간다는 운치있는 이름을 가진 운주산 기슭을 돌아가게 된다. 이 산의 남쪽 기슭에는 배일이라는 이름의 아주 고요한 마을이 놓여 있다.어느 시인의 글처럼 황금빛 황소의 게으른 울음소리가 들리고 늙으신 아버님이 엷은 졸음에 겨워 볏베개를 돋워 고이시는 모습이 보이는 듯한 마을.이곳이 세종 이래 5백여년간 20대가 대대손손 이어 살아온 나의 고향마을이다. 이 조용하던 곳에 상전벽해보다 더 큰 변화가 몰려왔다.고속철도가 이곳을 지나가게 되어 10리가 넘는 긴 터널이 뚫리고 마을 앞뜰은 교량이 가로질러 가게 된 것이다. 얼마전 이곳의 공사현장을 둘러보기 위하여 지프를 몰고 갔었다.아주 어렸을때 감나무에서 홍시를 따 주시던 할머니손의 따뜻한 체온이 아득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바로 이 마을 뒷동산에 높이가 20m가 넘는 대형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아 바로 여기로구나』하고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각종 중장비가 동원된 것이 마치 기계화 사단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것 같았다. 산길을 내려오다 동양화 한폭같은 운주산을 몇번인가 되돌아 보면서 문득 할아버지,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또 그분의 할아버지까지 편안히 주무시고 계신 이곳,바로 그 밑에 터널을 뚫고 철마를 달리게 하다니 조용하게 주무시는 조상님들께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소주와 북어를 들고 아무도 살지 않고 2백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소슬대문이 우뚝한 고색창연한 고향집 사랑채로 들어섰다.그리고는 큰 절을 올렸다. 『할아버님들께 죄송스럽습니다.그러나 이 길은 후손들이 앞으로 신의주를 거쳐 북경을 지나고 타슈켄트와 우크라이나 평원을 지나 모스크바,파리,런던까지 우리 민족의 기상을 전세계에 뻗치고자 하는 길이오니 부디 이 일을 도와 주소서』 이끼낀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 제조업체/인건비 부담에 “허덕”/한은,2천여업체 88∼92년 분석

    ◎5년째 생산성증가율 앞질러/경쟁력 악화일로… 공동화 우려 제조업이 과중한 인건비부담으로 허덕이고 있다. 생산성증가를 앞지른 인건비부담은 결국 제품값에 얹어져 우리 경제의 대외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많은 기업인들이 높은 인건비 때문에 국내투자를 기피하고 있으며,일부는 값싼임금을 찾아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이대로 가면 국내제조업은 수년안에 공동화될 우려마저 있다.과다한 인건비부담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6일 한국은행이 매출액 5억원이상인 전국의 2천1백35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88∼92년의 「인건비(임금·복리후생비·제수당·퇴직금 포함) 및 생산성동향」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종업원 1인당 인건비증가율이 5년 연속 생산성증가율을 앞질렀다. 작년의 경우 국내제조업의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은 전년보다 11.5%가 증가했으나 1인당 인건비는 12%가 상승했다.인건비가 생산성증가를 0.5%포인트 앞지른 것이다. 지난 88년에는 생산성증가율이 21.1%인데 비해 인건비증가율은 25.9%,89년에는 각각 19.4% 및 24.9%,90년에는 18.6% 및 19%,91년에는 16.9% 및 18.9%였다.매년 0.4∼5.5%포인트 차이로 인건비상승이 생산성증가를 앞질러왔다. 이에 따라 지난 5년동안 종업원 1인당 생산성은 2.2배가 됐지만 1인당 인건비는 2.5배로 더 많이 올랐다.임금은 토끼뜀인데 생산성증가는 거북이걸음인 상황이다. 제조업의 인건비증가율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훨씬 높다.지난해 대기업의 1인당 인건비는 10.5%가 오른데 비해 중소기업은 15.4%가 올랐다.대기업들은 최근 수년간 자동화투자확대와 인력절감 등의 경영합리화를 통해 인건비상승을 생산성증가범위이내로 낮춘 반면,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절대임금수준은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높지만 임금이 오르는 속도는 중소기업이 훨씬 빨라 인건비부담으로 인한 경영압박이 대기업보다 더 심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제조업의 전체부가가치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88년의 경우 48.9%였으나 89년 51.2%,90년 52.3%,91년 53.3%,92년 53.9% 등으로 연평균 1%포인트씩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의 업종별 1인당 인건비증가율은 섬유·의복이 16%로 가장 높았으며 비금속광물(14.3%),제재·가구(14.1%),석유화학(12.7%) 등도 제조업평균치(12%)를 넘어섰다.반면 조립금속·기계(11%),음식료품(9.2%),종이·인쇄(6.3%) 등은 평균치를 밑돌았다. 지난해 업종별 1인당 생산성증가율도 섬유·의복이 13.6%로 가장 높았고,조립금속·기계(12.8%),비금속광물(12.4%),석유화학(12%) 등도 평균치(11.5%)를 웃돌았다.음식료품(10.4%),제재·가구(7.2%),종이·인쇄(2.9%) 등은 평균치보다 낮았다.
  • 고려초까지 3음절 이름 사용/인하대 김문창교수,이름 시대별 분석

    ◎최근 「새아라」등 유행은 전통회복 「다영글」「새아라」「차오름」등 우리말 이름,특히 3음절어 이름을 최근 많이 짓고 있는 것은 새 유행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이름짓기 전통이 되살아나는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김문창 인하대 국문과교수는 최근 발표한 「고유어식 사람 이름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각종 역사문헌에 등장한 한국인의 이름을 시대별로 분석해 이같이 주장했다. 김교수는 우선 고려 초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성이 없었으며 이름도 3음절로 된 고유어가 주를 이루었다가 고려 광종9년(958년)중국식 과거제도가 도입되면서 상류층에는 성 1자,이름 2자를 한자로 표기하는 현재의 보편적인 작명법이 자리잡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상류층을 제외한 일반대중은 여전히 고유어로 이름을 지어 한글창제이후의 기록에는 오히려 고유어식 이름이 빈번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 예로 1450년쯤 간행된 「사리영응기」에는 「한실구디」「박검둥」「박올마대」등이 나오는데 이들은 모두 정7품∼종8품인 하급관리였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사리영응기에 등장하는 한글이름 44개가운데 2음절어는 26개,3음절어는 18개로 2∼3 음절의 이름이 고루 쓰인 것으로 분석했다. 김교수는 이후 20세기 초까지도 하급관리·중인계층·서민층·여성·천민등은 고유어 이름짓기를 면면히 이어왔으며 그 이름중 40%는 3음절어였기 때문에 최근 몇년새 2∼3음절의 고유어 이름이 퍼져가는 현상은 전통의 회복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교수의 논문은 한국어문교육연구회가 발간한 「어문연구」77호에 실렸다.
  • 폐암/술집·레스토랑 종업원에 다발

    ◎담배연기에 무방비… 발병률 일반인 갑절 간접흡연으로 인한 폐해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술집과 레스토랑 종업원들이 폐질환을 일으킬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의학협회저널 최근호는 술집과 레스토랑 종업원들이 손님들의 담배연기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됨에 따라 폐암발병률이 일반인보다 50∼90%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를 수행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미카엘 시겔교수(역학)에 따르면 레스토랑의 담배연기오염도는 일반 사무실에 비해 평균 1.6∼2배,흡연자 가정의 거실보다 1.5배 높았다.특히 술집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일반 사무실의 3.9∼6.1배,흡연자가정 거실의 4.5배를 기록했다.이 결과가 종업원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를 분석해본 결과 폐암에 걸릴 확률은 최고 2배 가까이나 됐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LA의학협회는 즉각 시민들에게 술집과 레스토랑에서의 자발적인 금연을 당부하고 나섰다.미국은 현재 68개시에서 레스토랑 흡연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나 LA의 경우 연초 제조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아직 시행이 유보된 상태이다. 시겔교수는 이와관련,『간접흡연이 폐암과 심장병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정설』이라고 지적,『종업원들의 건강보호를 위해 술집과 레스토랑에서의 흡연은 하루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술집과 레스토랑이 종업원들에게는 일터란 사실을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절5백번」 도우미,“그래도 즐거워”(엑스포 이모저모)

    ◎대테러훈련 6개월 “5분내 진압 끝”/물스민 천장등 일부 「날림」 보완분주 ○내국인만 출입통제 ○…개막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대전 엑스포장은 시설과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관람객들의 불평을 사고 있다. 조직위측은 3일부터 시설보완을 이유로 내세워 외국인을 제외하고 엑스포장내 일반 관람객들의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있는데 가족들과 함께 박람회장을 찾은 국내 관광객들은 『누구를 위한 엑스포냐』며 한마디씩. 관람객들의 불편이외에도 2년여에 걸친 공사기간에도 불구하고 박람회장 곳곳에서 칠이 벗겨지고 벽면이 갈라질뿐 아니라 천장에서 물이 스며나오는 등 날림공사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특공대 “준비만전” ○…엑스포 방호를 위해 6개월전부터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거듭하고 있는 경찰청소속 「경찰특공대」요원들도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개막일을 기다리고 있다. 특공대는 24시간 현장근무와 사태발생시 5분이내 출동준비 능력 등을 갖춘 정예요원으로 구성돼 있다.팀장인 장덕진경위(37)는 『그동안 혹독한 훈련과 치밀한 전술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안전한 엑스포를 치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자신감 넘친 표정. ○18세 최연소 도우미 ○…서울 한서고교를 졸업한 윤인미양(18)이 9백명이 넘는 「도우미」중 최연소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양은 지난 1일 회장운영 종합리허설에 참가한뒤 『리허설이 시작된 상오9시30분부터 하오3시30분까지 6시간동안 아마 5백번정도 절을 한것 같다』며 첫 근무의 즐거움에 힘든줄 몰라하는 표정. ○뜨거운 엑스포타운 ○…1백8개국이나 되는 참가국 요원,6천여명의 자원봉사단 등 1만2천여명의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려 생활하게 되는 엑스포타운은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신한국시대의 청년문화」의 시범지역으로 발돋움. 함께 일하고 함께 생활하는 24시간 현장체제를 갖추고 있는 이곳에는 아침이면 각자 맡은 부서로 가서 일하고 밤10시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오지만 스스럼없는 대화와 토론으로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면서도 엑스포주역으로서의 몸가짐에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아 주위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있는 것. ○엑스포 FM 첫 전파 ○…대전 엑스포 소식을 전파를 통해 전국에 알릴 90.5MHZ 대전 엑스포 FM 첫 전파가 2일 하오2시 송신을 시작했다. KBS 식장산중계소 허건국소장(46)은 이날 오명조직위원장의 축하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송신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채 『엑스포 기간내내 항상 전쟁하는 기분으로 근무해 방송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대공연장 어제 개관 ○…엑스포 기간중 각종 주요 공식행사장으로 쓰일 대공연장,엑스포극장,놀이마당이 3일 하오 일제히 개관. 개막식등 주요행사장으로 사용될 대공연장은 대형영상시설 등을 설치,2천6백명이 관람할 수 있고 1백여명이 동시에 출연할 수 있는 초대형시설을 자랑한다. ○이동전화 현장 수리 ○…한국이동통신은 대전엑스포에 이동전화 애프터서비스센터를 설치,개막일인 7일부터 휴대용전화기와 카폰·무선호출기(삐삐)등에 대한 현장 서비스를 해주기로 했다. 행사장 남문쪽 주차장에 설치될 애프터서비스센터에서는 무료점검과 수리는물론 휴대용전화기 및 무선호출기의 가입·대여·요금수납·이용안내 등의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 ○…한국통신(사장 조백제)은 3일 대전엑스포 전화번호부 4만5천부를 발행,대전시내 및 행사장내 공중전화부스 등에 비치. 1백72쪽짜리 전화안내책자에는 박람회장과 엑스포타운,관공서 및 주요기관,신문·방송사 등 보도기관,교통·숙박·백화점·의료·금융기관 등의 전화번호를 상세히 수록했다.또 생활안내 특수전화번호를 비롯,통신서비스취급소,엑스포 관련 음성정보서비스,통신이용요금 등 전신전화의 이용안내도 실었다.
  • “선대의 한 풀었다” 벅찬 감회/유해봉환 맞는 유족 표정

    ◎중국과 수교전엔 교섭 번번이 좌절 임정요인 5인의 유해봉환을 앞둔 유족들은 모두 『독립운동과 관련된 고인들의 유해를 드디어 고국땅에 모실수 있게 돼 여한이 없다』고 입을 모으며 벅찬 감회에 젖었다. 유족들은 이미 대표를 선정,3일 중국 상해로 건너가 봉환절차에 입회할 예정이며 5일 유해와 함께 귀국할 계획이다. 유족대표로는 박은식선생의 손자 유철씨(55)를 비롯,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72),노백린선생의 손자 영훈씨(55),김인전목사의 외손자 최순성씨(64),안태국선생의 손녀사위 이의석씨(72)등이 있다. 박유철씨는 『할아버지 유해를 조국에 모셔오기 위해 수십년동안 노력해 왔다』면서 『이제 늦게나마 결실을 보게 돼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박씨는 박시창전광복회장이 선친이기도 하며,지난 86년 작고하면서 『내가 죽더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꼭 조국의 흙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는데 이에대해 『선친의 유언도 이뤄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신규식선생의 외손자 민영수씨는 『외조부의 유해를 고국산하에 모시게 돼 어머님의 한까지 모두 풀어드리게 됐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대만공사를 지낸바 있는 민씨는 『그동안 유해봉환노력은 중국이 미수교국이었던 문제로 번번이 성사되지 않았었다』면서 『지난 90년 중국측이 비공식으로 허락했으나 애국선열유해봉환을 비밀리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거부했었다』고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털어놓았다. 신선생은 슬하에 아들이 상호씨 한명뿐이었으나 15세때 상해에서 사망,외동딸 창희씨가 민필호씨와 결혼해 2남4녀를 뒀으며 이중 큰딸 민영주씨는 김준엽전고려대총장의 부인이기도 하다. 노영훈씨 역시 『생전에 모습을 뵌 적은 없지만 내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해온 할아버지를 가깝게 모시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노씨는 지난 84년 조부의 묘소를 수소문,상해 공동묘지에 있음을 확인해 봉환케 됐는데 『단한번 정복차림에 말을 타고 조국 남대문에 입성했으면 한이 없겠다고 하셨던 조부가 이제 정말 오시게 됐다』면서 『이 기쁜 소식을 아버지께 전해도 고혈압으로 누워계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세월의 무상함을 원망하기도 했다. 김인전목사의 딸 설영여사(88)는 3살때 청력을 잃은 탓에 아들 최순성씨와의 수화를 통해 『살아 생전에 아버님 유해를 모시게 돼 여한이 없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씨 역시 『어머님이 항상 독립운동가 후손님을 명심,몸가짐을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이제 그 어른을 모실수 있게 돼 더없이 기쁘다』고 말했다. 안태국선생의 유일한 손녀인 효실씨 역시 『조부의 유해가 돌아오신것에 지하에 계신 선친도 기뻐하실 것』이라면서 『목숨 바친 조부의 뜻이 후손들에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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