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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방송기자가 누린 특전(청와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청와대경내의 대부분이 공개되고 있다.예외가 있다면 대통령가족이 사는 관저와 뒷산의 경호시설 정도다.고도의 보안을 요하는 시설이거나 보호되어야 할 프라이버시가 있는 건물들이다. 이번주 들어 이 비공개지역의 일부가 청와대를 출입하는 70여 기자중 단 한명에게만 공개가 돼 화제를 뿌렸다.불교방송의 출입기자만이 경호실 안전요원의 안내로 청와대 뒷산을 살펴볼 수 있는 특전을 받았다.불교방송기자는 서울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배기에서 오래된 돌 불상 하나가 정중하게 모셔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동안 불교계 쪽 사람들을 술렁이게 한 사건은 청와대측의 이런 적극적인 공개확인을 통해 「해프닝」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얼마전부터 시중에는 청와대가 경내에 있던 문화재급 불상을 자리를 옮기고 아무렇게나 대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는 일부 주간지에 보도되는 과정을 거쳐 확산됐다.이야기는 당연히 불교계로 흘러들어갔다.불교계의 여러 단체들이 이의를 제기하기에 이르렀고,청와대에 진위확인을 요구해오면서 사건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청와대에는 불교방송기자가 확인한대로 불상이 실제로 있다.또 이 불상은 자리를 한번 옮겨 앉은 적이 있었다.89년 독실한 불교신자인 노태우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의 일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이 사실이 와전되고 지금 대통령의 종교와 연관되면서 「사건화」된 것 같다. 청와대에 불상이 들어오게 된 것은 일제 강점때의 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데라우치 조선총독은 경주 남산에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상 하나를 가져다 뒷산에 모셨다.데라우치총독은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고,문화재에 대한 안목도 꽤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높이는 1m10㎝ 정도.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좌불이다.불상은 이후 청와대 재산목록으로 기록되면서 서울시 지방문화재로 지정이 됐다. 불상은 88년까지 처음 모셔진대로 그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불상이 있던 자리에 89년 새로운 건물이 기공됐다.이때 불상은 본래 있던 자리에서 1백m쯤 더 올라간 자리로 옮겨지게 된다.어떤 의식을 갖고 이를 옮겼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청와대 옆을 돌아 오르는 산책길 옆에 불상은 자리잡고 있다.어떤 절에 있는 불상 못지않게 잘 모셔져 있다. 불상 옆에는 청와대식구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한채의 암자도 있다. 이름이 오운암.언제 이곳에 암자가 지어졌는지는 정확치 않다.불교를 숭상하던 임금시대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본래는 신축건물 밑에 있던 건물이었으나 새 건물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이 역시 현재자리로 옮겨졌다.오랫동안 비어 있는 건물인데 여전히 깨끗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 그밑에 내려오면 조그만한 정자가 자리잡고 있다. 고 박정희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는 여름철이면 가끔 이곳에 내려와 막걸리잔을 기울이곤 하던 곳이다. 불교방송의 기자는 『석불이 매우 정갈하고 잘 보존돼 있었다』고 말했다.그런 과정을 거쳐 이 사건은 가라앉았다. 청와대비서실은 애당초 이런 말이 나왔을 때 어처구니없어 했다.대통령의 종교관이 「내 종교가 소중한만큼 남의 종교도 소중하다」는것이고 종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서도 바깥에서 말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말이 나왔다고 말하고 있다.생각있는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그러나 역시 확인된 뒤가 서로 마음편해 하는 것 같다. 청와대는 이번 해프닝이 유언비어가 줄어드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 큰스님 성철(외언내언)

    불교 조계종종정 성철 큰스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다.그런 표현이 결례가 된다면 자미롭다거나 그냥 친근감을 갖게하는 분이라고 해도 괜찮다. 우선 큰스님의 상호부터가 그러하다.우리들 속중의 눈으로 보는 그분의 얼굴형상은 부처님상보다는 나한상쪽에 가깝다.그래서 어쩐지 친밀감을 갖게하고 첩첩 산속에 은거하며 속세에는 미동도 않는 깊은 뜻이 돋보이는지 모른다. 큰스님이 언젠가 문하스님들을 「건달」로 몰아붙이며 야단을 친적이 있다.당신이 주석하시는 해인사의 하안거 해제때 법문을 통해 『우리 해인사에 건달들이 제일 많다』며 『중이면 중값을 해라』고 호통을 친 것이다.그는 『중들은 공부를 안하고 신도들은 속아서 큰스님들인지 알고 시주를 많이 한다』고 불교계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기실 중들만을 건달로 몰아붙인것이 아니다.세상사람 모두를 건달로 본것이다.그러나 그가 말하는 「건달」이란 여기저기 떠돌며 관계없는 일에 잘 덤벼들고 풍을 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만은 아니다.불교에서 말하는 건달은 팔부중의 하나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며 제석천의 아락을 맡아보는 나한,이른바 건달파를 가리킨다.술과 고기를 먹지않고 향만 사르며 공중으로 날아다닌다.어쩌면 성철스님에게는 사부대중 모두가 다 건달들인지 모른다. 독특한 포시관으로도 스님은 유명했다.절(사)이나 중들에게 하는 보시는 절대로 참보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오로지 부처님께 공양하는 진여의 마음으로 어려운 사람들,혼탁한 사회에 보시하라는 것이다.또 자신을 만나려면 3천배를 해야하는데 그 절(배)이 참으로 「마음의 보시」라는 얘기다. 그의 구도정진은 치열했다.『위로 깨달음을 구하며 아래로 중생을 교화한다』(상구보제 하화중생)는 서원의 화신이었다.「스님같은 부처님」,「부처님같은 스님」 성철종정이 열반에 드셨다.『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실천보시인 것이 아닌가.
  • “과기선진” 도약의 길 열다/막내리는 대전엑스포… 93일 점검

    ◎관람객 1천3백50만… 질서의식 돋보여/태양광발전등 온국민 과학교육장으로/문화예술공연 2천2백61회·3만명 참가 신기록/국내관은 철거후 새단장… 내년 4월 과학공원으로 개장 사상 최대 규모 ,최장기의 대축제 대전세계무역박람회가 성공적으로 막을 내린다.지난8월7일 개막된 대전엑스포가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7일 폐막된다.93일간 엑스포려정을 끝내면서 박람회장운영·과학·경제·문화분야등 성과를 되짚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분석해본다. 「새로운 도약에의 길」을 주제로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을 부제로 내건 이번 엑스포는 세계 1백8개국과 33개 국제기구가 참가한 엑스포 1백40년 역사상 최초의 개발도상국 개최및 참가국 최다 등의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테드 앨런 국제박람회기구(BIE)의장은『대전엑스포는 짧은 준비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한 준비로 역대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이라며『특히 이번 엑스포는 현재 인류가 직면해 있는 환경·질병·전쟁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총체적 장일 뿐 아니라세계속의 한국을 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회장운영부문◁ 조직위측은 엑스포기간중 입장객수를 하루평균 10만명,전체 1천만명선으로 예상했다.그러나 3일 현재 총입장객수는 1천3백만8만6천4백17명으로 국민 3명당 1명꼴로 관람했다.하루 최저 관람객수는 5만4천6백4명,최대 22만1천7백26명. ○하루평균 10만 입장 폐막때까지 관람객수는 1천3백50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여 예상을 35%이상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일부 인기전시관에 집중되는 바람에 장기간 대기사태가 발생,22만여명으로 최고 관람인파가 몰린 지난달 31일에는 1인당 관람전시관수는 인기관이 0.3개,비인기관은 2개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위측의 회장운영수준은 『대체로 무난했다』는 평.조직위측은 개장초부터 연일 15만명의 인파가 몰리자 효율적인 관람을 위해 토·일요일에는 단체관람객을 받지 않는등 관람객 분산을 유도했고 각 기업관과 협의,관람객예약제를 도입하는등 나름대로 보완책을 마련했다.또 집중적인 홍보로 개장초 1인당 하루 쓰레기량을 5백55g에서 10월 4백34g으로 낮췄으며 재활용수거율도 6%에서 8%로 끌어올려 대회장의 깨끗한 운영에 노력을 다했다..교통문제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원활한 소통이 이뤄졌고 주차관리도 성공적으로 처리했다는 지적.단체관람객들을 엑스포타운에 대거 수용해 숙박도 무난하게 해결됐다.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조직위측은 개장초반 폭우로 인한 전시관침수,정전사고,구내식당 집단식중독사건,모노레일 정지소동 등이 연달아 터지자 서둘러 보완책을 강구했으나 임기응변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엑스포기간중 회장운영의 최고 유공자들은 자원봉사자와 도우미.회장내 7천6백여명이 활약한 자원봉사자의 경우 일당 1만원,유니폼,식비제공 등의 열악한 조건속에서도 청소 등의 허드렛일도 마다않고 성실하게 수행했다.도우미및 컴패니언(기업관도우미)도 급여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정보통신관의 개장전 집단보이콧사건을 제외하면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미소로 대해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관람할수 있도록『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게 중평. 해외 관람객의 유치도 돋보인다. 조직위측은 해외관람객수를 50만명으로 잡았다.88일 현재 60만명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 미테랑대통령·포르투갈 수아레스대통령·헝가리 건츠대통령등 정부수반을 비롯,2백여명의 해외 귀빈(VIP)이 대거 방문하는등 외형적인 면에서는 큰 성과를 거뒀다.다만 관람객들이 일본 48.5%,아시아 25.4%,미주 20%,유럽 10%로 아시아권 편중현상을 보여 아쉬웠다. 엑스포가 과학전문박람회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관람객들의 관람태도는 아쉬운점이 있었다. 자원활용관·재생조형관등 교육적 효과가 기대되는 전시관보다는 첨단영상기술과 오락기능에만 치중한 우주탐험관·테크노피아관등 일부 전시관에만 관람객들이 집중,「국민교육의 장」인 엑스포의 본래의 의미를 퇴색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엑스포기간중 최대의 성과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관람객들속에서도 질서의식·청결및 친절운동이 자리를 잡고 전시관 관람을 위해 4∼5시간동안 묵묵히 줄을 서서 참고 기다리는 성숙된 선진시민의식을 보여준 것을 꼽을수 있다. ▷경제부문◁ 조직위측에 따르면 직·간접사업비로 투입된 총투자액 규모는 1조7천2백68억원에 이르고 있다.재원은 국고 5천1백16억원,지방비 2천6백26억원, 수익금등 기타 9천5백26억원 등이다. ○투자액 1조7천억 이중 박람회장 건설및 회장운영비 명목인 조직위 예산이 4천23억원,국내 상설전시관 투자비 3천3백8억원등 박람회장에 투입된 직접비용은 7천3백31억원. 대전권의 도로및 교량,상하수도·하천·시가지정비등 지원기반시설 확충사업투자 2천2백35억원,고속도로확장및 엑스포인터체인지 건설등 정비사업 투자 7천7백2억원이 투입됐다.이 투자액은 그동안의 물가및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로서는 엑스포의 전체 투자비에 대한 손익계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른다.최소 10년뒤를 내다봐야 하는「국민교육의 장」이라는 무형의 자산과 투자액의 상당부분이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에 사용됨으로써 산술적 계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투자비의 계량화는 조직위측이 밝힌 대로 3조원이상의 생산유발효과,20만명이상의 고용증대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것에 의존해야 할 입장이다. 또 엑스포를 방문한 외국 VIP에게 사진첩과 방문비디오테이프를 선물,돌아간 뒤 방송을 통해 5분이상 방영함으로써 거둔 우리나라 이미지 제고의 광고효과도 숫자로 계량화할수 없는 커다란 성과이다.이번 엑스포 폐막후 국제전시관및 한국후지쓰관,한국아이비엠관 등을 제외한 국내 상설전시구역은 새단장을 한 뒤 내년4월「과학공원」으로 조성돼 새로 문을 연다.이 과학공원은 과학기술및 정보화사회의 국민교육의 장,미래생활문화공간으로 활용됨으로써 또다른 무형의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한국개발연구원 김정호연구원은『엑스포의 경제적 효과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기술·지식의 습득과 기술혁신의 성과를 얼마나 빠르게 기업화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과학부문◁ 엑스포가 과학전문엑스포답게 미래주역인 청소년들에게 각종 첨단과학기술,미래의 생활모습 등을 선보임으로써「과학교육의 현장학습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 엑스포전시물중 관람객들의 관심을 끈 분야는 순수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됐으나 아직까지 실험제작 단계에 있는 미래의 대중교통수단들이다. 전자석의 흡인력을 이용,레일 위를 떠서 달리는 자기부상열차,전지의 힘으로 달리는 전기자동차와 태양열을 받아 전기를 생산해 이를 이용하는 태양전지거북선등. ○외국민속공연 인기 또한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할 청정에너지인 태양열에너지,효율적인 에너지절약기술도 소개됐다.자원활용관의 경우 천장에 직경11m의 대형 태양전지판을 설치,전시관운영에 필요한 전기를 자체조달했으며 전기에너지관은 부족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우주공간속에 위성을 띄워 태양빛으로 만든 에너지를 지구상에 공급하는 태양광발전의 개념도 전시됐다.또 한여름의 냉방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심야전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빙축열시스템도 눈길을 끌었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해줄 것으로 보이는 국내에서 개발한 여러가지 로봇도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관람객들의 얼굴을 20분만에 조각해주는 조각로봇,꽹과리·징·북·장구로봇이 한조가 돼 가락에 맞춰 신명나게 연주하는 사물놀이로봇,우주의 아기요정을 형상화해 과학적 상상력을 심어준 꿈돌이로봇,주위상황에 어울리는 말을 하기도 하고 장애물을 피해가는 지능형이동로봇 등등. 외국기술에 의존,아쉬움은 있지만 첨단영상기법들도 이번 엑스포의 최대 인기품목.화면에 나타나는 상황에 따라 좌석이 상하좌우로 움직여 실제로 우주선을 탄듯한 착각속에 빠지게 하는 시뮬레이션극장,초대형스크린의 아이맥스영화,원형극장의 벽을 화면으로 만든 서클비전,컴퓨터그래픽 입체영화,초대형화면에 입체감을 살린 아이맥스입체영화 등도 절찬리에 상영됐다. 이밖에 최첨단 과학기술로서 3차원의 입체감을 느끼게 하는 홀로그래피와 미술의 만남인 홀로그램,기존TV보다 선명도에서 4배이상 뛰어난 고선명(HD)등도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받았다. ▷문화부문◁ 엑스포기간중 문화공연행사는 55종 2천2백61회.세계각국의 문화예술인들과 국내 50여개 단체 3만여명이 참가하는 문화신기록을 수립했다.그러나 전체 55종의각종 문화행사가 산만하게 관리돼 원활하게 운영되지 못하는 기획의 부재를 드러냈다.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소개에 미흡했을 뿐 아니라 떠들썩한 행사 위주로 흘러 차분하고 섬세한 행사가 없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공식적인 공연행사보다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인 첨단영상과 음향이 어우러진 갑천워터스크린쇼와 한국의 빛과 소리,미술표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 테크노아트전,거리의 팬터마임등 거리의 볼거리공연,뉴질랜드의 마오리족공연·에콰도르악단의 공연등 국제관 자국선전용 공연이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끌어 이채를 띠었다. 서커스단인 중국잡기예술단을 지난 10월 9일 초청,공연을 가진 엑스포극장에서는 단지「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공연횟수를 늘리는등 건강한 세계문화소개 차원이 아닌「인기에만 영합하는 얄팍한 상혼」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엑스포를 계기로 문화인구의 다양한 호기심과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문화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건으로 떠올랐다.
  • 시선집 「황토현… 노래」,「전봉준을 위하여」 출간

    ◎시·판소리에 나타난 동학정신 조명/89편수록… 농민항쟁의 좌절·비애 절절이 갑오농민전쟁 발발 1백주년(19 94년)을 앞두고 시와 판소리에 나타난 동학정신을 조명한 2권의 책이 나왔다. 동학농민혁명백주년기념사업회가 엮은 시선집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창작과 비평사간)와 시인 장효문의 「전봉준을 위하여」(자유세계간)는 동학을 문학적으로 조명한 첫 작업이란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러나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한국문학의 시적 형상화작업은 때늦은 감이 있다.근대문학의 경우 소설가 채만식,극작가 김우진을 제외하고 시로 형상화된 작품은 거의 없었다.또 지난 68년 신동엽이 「금강」을 발표하기 이전에는 19 47년에 발표된 조운의 시조「고부 두성산」1편이 겨우 명맥을 이었을 뿐이다. 우리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시적 대응이 문학사에서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는 「황토현에…」는 74명에 달하는 시인들의 시 89편이 실려 있다.지금까지 발표된 2백50여편중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조운,신동엽,고은,황동규,김지하,김남주,고재종,안도현등 원로에서부터 젊은 시인의 작품까지 잘 모아져 있다. 특히 일명「파랑새요」로 불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비롯,「가보세 가보세」「개남아 개남아」「칼노래」「유시」등 5수의 민요가 수록돼 민초들의 마음속에 그려진 동학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민요편에 수록된 「유시」는 18 95년 3월29일 녹두장군 전봉준이 처형되기 전에 남긴 작품.「때 만나서는 천지도 내편이더니/운 다하자 영웅도 할 수 없구나/백성사랑 올바른길 무슨 허물이더냐/나라위한 붉은 마음 그 누가 알리」라고 읊은 전봉준의 비통한 심사가 절절하다. 이밖에 신동엽의 「금강」,황동규의 「전봉준」,양성우의 「만석보」,김남주의 「황토현에 부치는 노래」,문병란의 「전라도 뻐꾸기」등 대표적인 동학관련 시들이 빠짐없이 수록됐다. 20여년을 동학문학연구를 위해 매달려온 시인 장효문씨(53)의 「전봉준을 위하여」에는 동학농민혁명현장기행과 함께 「창작판소리 전봉준」이 실려있다.자신이 이미 발표한 「서사시 전봉준」을 개작해판소리한마당의 창본을 마련한 것이다.「고부성의 함성」「일어나면 백산,앉으면 죽산」「전주성의 무혈입성」「우금치여 말하라」「새야 새야 파랑새야」등 다섯 대목으로 동학을 판소리로 형상화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교수(인하대·국문과)는 『농민군의 일어섬을 기리고 그 좌절을 애도하는 80년대 시 일각의 단순한 봉기주의 모델로는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장려한 서사시적 화폭은 결코 이루어 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학전쟁을 문학화하려는 시인들의 좀더 창조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 여성교양학회가 소개하는 올바른 생활예절

    ◎명함은 상대방이 바로 보도록 건네야/웃 어른에 절올린 후엔 정면서 비껴 앉도록 우리사회의 산업화 현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최근 사람들끼리 서로 존중하는 규범인 기본 예절이 간단하게 생략되거나 무시돼 인간관계가 점차 삭막해져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국 전문대학 여성교양학과 교수들의 연구모임인 「한국여성교양학회」(회장 임희규)가 지난 27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생활의질서 삶의평화」를 주제로 제1회 한국생활예절 연구발표회를 가져 관심을 모았다. 인천 인산전문대와 부천 유한전문대등 7개 전문대생들의 시연으로 흥미롭게 펼쳐진 발표회에서는 결혼예식에서 함받기와 신방차리기,차예절·한복·양장차림의 절하는법 등이 재미있는 상황설정과 함께 선을보였다.특히 방문이나 손님맞이·웃어른 뵙기·문상갔을 때의 예절,명함주고 받기 시연은 현대생활에서 꼭 필요한 예절로 참석자들의 눈길을 모았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임희규교수(인천 인산전문대)는 『우리의 예절규범이 실제 현대생활과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일상생활속에서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지속적인 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이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생활 예절중 남녀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명함주고 받기와 웃어른 뵙기의 올바른 예절법을 소개한다. ▲명함을 주고 받는 것은 서로가 어떤곳에 소속돼 있다는 것을 소개하고 확인하는 절차다.명함을 건네면서 「이런 사람입니다」「이런데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례다. 명함을 교환할때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남자가 여자에게,손님이 주인에게 먼저 주어야 한다.자기의 성명이 상대방에게 보아 바르게 되도록 해 두손으로 건네고 받고 모르는 글자기 있으면 곧바로 물어 확인하는 것이 예의다. 명함은 받아서 눈여겨 보고 핸드백이나 웃주머니에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넣어야 한다.손에들고 만지작거리거나 아무데나 넣는것은 상대방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태도로 보여진다. ▲아랫사람이 먼길에서 돌아왔거나 오래간만에 어른을 뵈었을때 드리는 문안인사는 절을 하는것이 바람직하다.이때「어머니 절받으세요」라는 인사는 명령형으로 잘못된 표현.「어머니 인사 여쭙겠습니다」혹은 「인사드리겠습니다」란 말을 써야 한다.절을 올린 다음에는 일반 온돌인 경우 방석을 자기 앞쪽으로 당겨 앉되 정면으로 마주 앉지 않고 사선으로 비껴 앉도록 한다. 여자는 두 무릎을 가지런히 한뒤 오른쪽 무릎에 왼손을 얹어놓고 그위에 오른손을 가볍게 얹으며 남자는 무릎을 끓는다. 어른이 「편히 앉으라」고 하면 여자는 한쪽 무릎을 세우고 무릎 조금 안쪽으로 두손을 가볍게 포개고 남자는 책상다리로 앉는다.이후 어른이 일어서면 얼른 따라 일어서고 또 어른이 들어오면 앉았던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서 맞이한다.
  • 여몽연합군 일 정벌(일본속의 한국문화:7)

    ◎“원구 3만명에 결사항거” 표석 곳곳에/대마도주 종조국,“80기로 맞섰다” 용전 과장/일제 군국주의자들,증오심 부추기려 미화 13세기말,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7백여년전인 1274년에 몽고군과 고려군이 연합하여 대마도를 공격한 일이 있었다.우리는 이 사건을 여몽연합군의 일본정벌이라 부르고 있는데 일본에서는 통상 문영·홍안의 역이라 부르고 있다.이때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곳은 대마도와 일기도 그리고 북구주의 박다였다. 여기서는 사건을 좀 더 강하게 원구의 내습이라 부르면서 곳곳에 표석을 세워 그날의 참화를 잊지 않도록 환기시키고 있다.심지어는 위령비에다 신사까지 세워서 이날 이때까지 제사를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말썽 많은 동경 한복판의 정국(야스쿠니)신사와 같은 것이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이다. ○1274년에 도해 대마도 서해안에도 위령비와 신사가 있다고 해서 오늘은 그곳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소위 원구라는 호칭은 우리가 하는 위구라는 말과 같은 뜻이라 하겠으나 일본은 단 한번 당한 침략인데도 곳곳에 기념물(?)을세워 놓고 있는 반면 우리는 수없이 당한 위구였는데도 단한곳 그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다는 점에 큰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만일에 우리가 위구고전장이라고 해서 절을 세운다고 가정하면 전국 도처에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사찰 투성이가 되고 말 것이다.그런데 왜 일본에는 이런 곳을 만들어서 요란하게 제사를 지내고 있는 것일까.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대마도에서는 제사를 지낸 뒤에 서북쪽 바다를 향해 화살을 날리는 행사가 반드시 있다고 하며 수년전에는 원구700주년기념행사를 성대히 거행했다는 소문이다.두말할 나위도 없이 일제잔재이며 이 잔재때문에 일본인들은 대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일본속의 한국문화를 솔직하게 시인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시신 두토막… 묘2개 엄원(이즈하라)에서 원구고전장이 있다는 소무전(고모타)마을로 가자면 이 섬의 진산인 백악산을 넘어가야 한다.백악산도 백두산이란 우리 민족고유어에서 유래하고 있다.도중에 차는 어동총이라는 곳에 잠시 머문다.「어동총」이란 무엇인가.여몽연합군이 대마도를 공격하였을때 항전하다가 죽은 제1대 도주 종조국의 무덤인데 그가 두 토막이 나서 시체가 두군데 묻혀 있다는 것이며 그중의 하나가 이곳의 오동총이라고 하니 듣기에도 소름이 끼친다.비문에는 종조국공어동총이라 새겨 놓았으나 그 옆면에는 자신이 없는 듯이 『종조국의 묘라고 전해지고 있다』고 부기해놓고 있다. 다시 차는 고개를 넘어 해안에 닿는다.멀리 바다 건너에는 우리나라의 남해안이 바라보이고 작은 어선들이 항구에 들어선다. 항구에 들어서는 어선들이 마치 옛날 왜구들이 우리나라를 약탈하고 돌아오는 장면같이 느껴져 섬찢했다.물론 필자의 시대착오이긴 했지만 이 마을에다 지어놓은 소무용국신사와 또하나의 종조국어동총을 보는 순간 갑자기 지난날의 어린 시절이 눈앞에 다가섰다. 왜 그랬을까.바로 이 신사와 동체묘가 일본군국주의의 소산이었기 때문이다.이 섬 사람들은 7백년이나 지난 일을 기억할리가 없는데 명치유신 이후 이나라에 군국주의가 되살아나더니 케케묵은 신공황후라는 귀신의 삼한정벌설이 대대적으로 등장하는가하면 원구고전장 같은 곳이 만들어져서 한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기 시작했다.바로 그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본시 원구란 말은 없었고 명치유신이전에는 「이국합전」정도로만 불렀었다는 사실을 상기할때 원구고전장이란 말자체가 근대적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또 그보다 더 뚜렷한 증거는 이 신사앞에 세워놓은 안내판이다.하나는 일제때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원구분전지도」라는 안내판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 관광협회에서 만들어 세운 「원군침공요도」라는 안내판이었다.앞의 것은 한마디로 증오심을 유발하기 위한 문구로 가득차 있는데 반해 뒤의 것은 매우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었다. 「원구분전지도. 문영 11년 10월15일에 원군 3만여명이 선수를 서로 맞대고 쳐들어와 대마도를 포위하였다.수호대 종조국은 겨우 80여기로 그들과 싸웠으며 의용전사한 도민이 부지기수였다.적들은 살아남은 노유부녀들을 붙잡아서 손바닥에 구멍을 뚫고 새끼를 꿰매어 뱃머리에 엮어서 매달았으며 칼로 찔러 죽이기도 하였으니 그 참상은 눈뜨고 볼수 없는 일이었다.적의 선봉은 그 나라의 중죄인들로서 이름하기를 생권군이라 하였으며 악랄하기 짝이 없는 놈들이었다.종조국은 일기당천의 용사들을 지휘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끝내 전사하고 말았다.죽음에 임해서도 그는 눈을 부릅뜨고 적을 응시하며 쓰러졌다.종조국의 동생 마지윤도 함께 쓰러져 충사하였으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원군은 오지 않았으니 오호라 슬프도다.명치29년 11월2일 종조국에 특지를 내려 종2위로 삼으니(천황의) 성은이 고골을 적시고 전국이 감읍하였다」 ○태풍에 배침몰,철수 누가 읽어 보아도 소름이 끼치는 글이요 제1대 도주 종조국의 용전이 너무 과장되어 있다.그러나 그때 종조국은 결코 일본천황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 자기 영토를 지키기 위해 싸웠을 뿐이다.또 그런 종조국에 종2위라는 작위를 내린 해가 명치29년,즉1896년이었다.청일전쟁을 도발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한 바로 그해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관광협회에서 만들어 세운 안내판의 글귀는 담담하기만 하다. 「원군침공요도 문영지역 ­문영11년10월에 고려군을 포함한 3만여명의 원군은 먼저 대마와 일기를 공격하고 10월19일 박다만에 이르러 이튿날 상륙하기 시작하였다.일본군은 주로 구주의 무사들이었는데 원군이 장궁독시와 철포와 같은 신식무기로 싸운데 반하여 일본 무사들은 무거운 갑옷을 입고 1대1로 싸울줄밖에 몰랐다.그래서 대패했는데 때마침 태풍이 불어 원의 군선이 거의 다 침몰하고 1만3천명의 군사를 잃고 고려로 철수하였다.이것이 문영의 역이다」 일제말기에 「신풍」이라는 자살부대를 만들어 10대 청소년들을 몰살시킨 역사를 일본인들은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원구때의 신풍이 다시 불지 않는 조작된 역사란 사실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런 역사 왜곡의 현장을 그대로 둔채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들.그들의 마음을 우리는 어떻게 믿을수 있단 말인가.
  • 백제혼의 귀환(외언내언)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한 것은 서기660년.수도인 사비성(부여)이 함락되면서 6백년의 왕조 백제는 허무한 종언을 고한다.그러나 백제 유민들의 부흥운동은 그뒤 4년이나 계속되어 임존성(대흥)의 흑치상지와 주류성을 근거로 한 왕족 복신은 2백여개성을 함락하고 한때 사비성을 포위공격하는 위세를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역사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는듯 강력했던 부흥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왕과 종친·귀족 88명및 백성 1만2천8백여명을 포로로 끌고간다.망국의 치욕을 피해 많은 백제의 왕족과 귀족·고관등 유민들이 일본으로 망명한다.백제와 위는 전통적인 우호관계가 유지되어 왔으며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위의 원군이 출병할 정도였다. 백제인들은 일찍부터 일본에 한문과 불교를 전해주는등 미개한 위에 문화와 기술을 전파해준다.7세기 전반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카(비조)문화는 실상 백제문화의 연장 혹은 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당시 일본에서 「구다라노 모노」(백제의 물건)란 말은 최상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니 백제문물에 대한 일본인들의 동경심을 짐작할만하다. 왜국에 귀화한 백제인들은 정치·학문·예술·기술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서 활약했다.절을 세워주고 불상을 만들어주고 성을 쌓아주었으며 양잠기술도 가르쳐주었다. 최근 일본 미야자키현 남향촌의 주민 1백여명이 백제의 왕족인 정가왕과 복지왕부자의 신위를 모시고 부여를 찾아왔다.실로 1천3백년만의 영혼의 환국이다.백제의 왕릉이 집결된 능산리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제사도 올렸다. 또 신위를 모시고 사비성문에서 궁궐터가 있는 시내로,다시 백제를 떠났던 금강 구드래나루까지 행렬을 갖기도 했다.주민들은 왕족이 사용하던 동경과 말방울등 유물도 잘 보존했다가 이번에 엑스포 전시관에 출품했다.1천3백년전 조상의 원혼을 달래주려 한 남향촌 주민들의 집념과 정성이 참으로 돋보인다.
  • 대마도의 토속신앙(일본속의 한국문화:6)

    ◎돌 쌓은 소도 해변에… 우리풍습 그대로/우리땅 향해 세워… 제사도 서낭당제와 비슷/“죄인 숨어도 못잡는다” 고속 이곳에도 남아 백제산성보다 훨씬 더 원초적인 우리나라 고대문화유적이 대마도에 남아 있다.그냥 죽은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고 있다.바로 소도가 그것이다.소도는 흔히 솟대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두가지 형태가 있다.그 하나가 긴 장대위에 세마리의 새를 조각하여 올려 놓은 목제소도이고 다른 하나는 돌을 차곡차곡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린 적석(돌무더기)소도가 그것이다.이 두 가지 소도는 옛날에 우리나라 어느 고을이나 마을에 반드시 수호신으로 설치되어 있었던 것인데 최근에와서야 새마을운동을 한다고 많이 헐려서 지금은 산간벽지나 바닷가 어촌 그리고 섬마을에만 남아 있다. ○삼근마을에 위치 정 대마도에도 이 적석소도가 남아 있는데 일명 석탑이라 불리고 있다.대마도의 소도는 우리나라 남해안과 면한 이섬의 서해안에 특히 많이 남아 있다.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이곳에서는 마을마다 매년 여름에 보리농사를 마칠 무렵 「야쿠마제」라는 하수감사제를 올려왔다.6월초오일이다.이날 하루는 각자 돌을 날라서 탑을 쌓고 치성을 드리며 말타기와 씨름을 하면서 즐겁게 하루를 보내게 되어있다. 우리가 찾아 간곳은 대마도의 윗섬에 있는 삼근정,일명 봉정(미네정)이라는 고을이다.미네(삼근)란 세 뿌리란 뜻이어서 삼신신앙과 관련이 있고 또 봉이라 전사하여도 천신산이 있는 고을이란 뜻이 되어 그 원의를 살려 주고 있다 할 것이다. 우연치않게 우리를 안내해주고 있는 아비류(아비루)씨와 영류씨의 고향이다.특히 아비류씨는 대마도주 종가가 이 섬을 지배하기 이전의 호주으로서 다분히 우리나라에서 바다를 건너 이 섬에 정착한 여기서 말하는 소위 도래씨주이다.지금도 대마도에서는 아비류씨의 세력이 막강한데 우리로서는 여간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다.참고로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이 아비류씨 고가에서 세종대왕 한글 창제이전의 옛 한글 38자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이 문자를 일본에서는 아비류문자로 알려지고 있고 일면 신대문자라고도부르고 있다.이 문자 하나만 가지고서도 소도가 있는 마을 미네(삼근)정의 유래와 대마도의 호주 아비루씨의 뿌리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삼근정에는 이 고을 독자의 역사민속자료관이 있고 유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으나 사진찍는 것만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그냥 보기만 하고 돌아섰다.그리고 대망의 대마도 소도를 보러 떠났다.소도는 우리나라를 건너다 보는 바닷가에 하나가 아니라 서너개 무더기로 서 있었다.어쩌면 그렇게도 정답게 고개를 북쪽으로 돌려서 있는지 갑자기 향수를 느끼는 듯한 기분이 들어 가슴이 뿌듯했다. ○신사에다 모신 곳도 『역사는 가고 없으나 이름만은 남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옛날 이곳 대마도를 찾아온 님들의 발자취는 지워져서 없으나 돌무더기 솟대만은 남아서 우리를 반겨주고 있는 것이다.소도가 있는 해안가를 지나 조금 들어 가면 거기 또 하나의 신라금동불이 우리를 반긴다.김동불뿐만 아니다.동검 동모 동경을 비롯하여 토기 고려청자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물론 소도보다 훨씬 뒤에 조국에서 가져온보물들이다.그들이 훔쳐 왔든 사왔든 그것은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제품이다.이렇게 귀중한 보물을 간직한 신사의 이름이 해신신사인데 뒷산 이름은 이두산(이즈산 즉 성산,천신산)이라 한다.이 이즈산에서 북쪽을 내려다 보면 바닷가에 소도가 서있고 바다 건너에는 우리나라 산들이 아롱거린다.왜 바다신을 모시려 했는지 알법도 하다.바다신이 아니라 바다건너에 보이는 조국의 신이 곧 바다신으로 변한 것임을 알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도를 쌓아 바다 건너 조국을 바라 보고 서 있는 망향의 신사가 이밖에도 여럿 있다.모두 대마도 서해안에 자리잡고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이 섬 최북단의 좌호천도신사이고 다른 하나는 최남단의 두두(소두)의 천도단이다.둘다 경내에는 본당이 없고 돌로 쌓은 신단만 있다.다시 말해서 당집이 없고 제단과 소도 그리고 성스러운 수풀(성림)만 우거져 있는 것이다. 일본학자들은 일본신도신앙의 원점을 대마도의 이 천도신앙으로 보고 있다.그렇다면 이 천도신앙의 원점은 어느 나라에 있다는 것인가.두말할 나위도 없이 한국의 단군신앙이 그 원점이다. 대마도를 지금 쓰시마 즉 「두 섬」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 말의 본래 뜻은 우리나라 말의 「다물」(다물)이라는 설이 또한 있다.쓰시마가 우리의 「두섬」이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까지 완강히 부인하는 그들이기 때문에 「다물」이 대마도의 원명이라고 하면 성을 낼지도 모를 정도로 거부감을 갖는다.과연 옳은 태도인가. ○“삼한시대 유물” 놀라 앞서 지적한 대마도 최남단의 천도신사는 우리나라 삼한시대의 소도가 그대로 이 곳의 신앙으로 옮겨져 온 것인데 그 이름까지도 소즈(졸토)즉 소도란 말로 사용되고 있다.이 소즈만은 상설화되어 있으나 나머지 바닷가의 소도제 즉 소위 야쿠마제는 해마다 파도에 휩쓸려 쓰러지기 때문에 다시 쌓아 복원하고 그러고나서 그 앞에다 고기와 술을 놓고 마을 사람 모두가 절을 하며 음복까지 한다.우리나라 서낭당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집수리를 할때 흰 쌀에 흰 소금 그리고 흰 무를 상에 올려놓고 맹승이라는 무당이 만신이름을 연호하는 광경도 우리 산신제를연상시키는 것이었고 『밤에 손톱을 깎지 말고 휘파람을 불지 마라』는 우리나라 속신까지도 고스란히 대마도에 건너가 있다. 놀라운 것은 범인이 소도를 모신 성역에 도망해 들어가면 아무도 그를 붙잡지 못한다는 삼한시대 고속이 이곳에 남아 내려 왔다는 사실이다.민속신앙은 본고장을 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확인할수 있었다.이렇게 볼때 대마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 아니라 가깝고도 가까운 섬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 전통음식점/서울 장충동 「풀향기」(맛을 찾아)

    ◎취나물·더덕구이 등 20가지 절음식 푸짐/육류없어 식사뒤 “정신 맑아지는 포만감” 서울 중구 장충동의 전통음식점 「풀향기」는 이름 그대로 육류와 생선을 전혀쓰지 않고 향긋한 나물로 맛을 낸 음식,농주 송차등 전통의 술과 차의 멋스러움을 즐길 수 있는 집이다. 향기정식 두부소박이 들깨국수 등의 전통 메뉴가 아니더라도 민속보자기를 깐 목제식탁,한지로 장식한 벽,군데군데 놓여진 고가구와 병풍이 주는 편안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최근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돼 점심 저녁시간이면 예약을 하고 가야 할 정도로 붐빈다. 시댁식구중 절음식에 심취한 어른이 있어 조금씩 배우면서 시작했다는 주인 김경자씨(45)는『산에서 나든 들에서 나든 우리나라의 나물은 독특한 향과 약효를 갖고 있다』며 일일이 다듬고 찧는 손정성이 나물반찬의 상큼하고 은근한 맛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이집의 가장 대표적인 요리는 풀향기 정식(1인분 1만5천원). 취나물 도라지 고사리 깻잎등 제철에 나는 12가지 나물요리를 큰나물판에 담고 튀김모듬 된장찌개더덕구이 두부소박이등 7∼8가지 반찬과 쑥국(때로 아욱국 근대국이 나온다),보리 조 기장 현미 콩등을 섞은 잡곡밥등이 모두 목기에 담겨져 나온다. 육류가 없어 먹고나면 「정신이 맑아지는 포만감」을 느낀다는 이들 식사와 함께 술한잔과 차한잔을 분위기있게 음미할 수있는 곳이 바로 「풀향기」다. 주인 김씨가 누룩을 띄워 직접 담근 농주(1되 5천원)와 여기에 어울리는 안주로 고추장 된장 부추 고춧잎을 넣은 얼큰한 고추장떡,두부에 버섯등으로 양념을 한 두부소박이,인삼튀김등이 별미다. 시골장까지 가서 구해온 머루 다래 산초 더덕 산수유등 10여가지 향긋한 과일주(1잔 2천5백원)와 솔잎을 발효시킨 송차 더덕차 구기자차 매실차 모과차등 전통차(〃)가 이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영업시간은 상오 11시30분부터 하오 10시까지.
  • 고들빼기·갓/“가을의 별미” 쌉쌀한 맛 일품

    ◎출하 일러 다소비싸… 새달 하락 전망/곡물·채소·육류 전반적 안정세 지속 겨울 김장의 별미 재료인 고들빼기와 갓이 벌써부터 시장에 선을 보이고 있다.쌉쌀한 맛이 일품인 이들 채소는 김장용으로 뿐만아니라 가을철 가족들의 입맛을 돋우는 반찬으로도 인기. 서울 경동시장을 비롯,재래시장의 경우 아직 많은 양은 반입이 안돼 가격은 약간 비싼편.고들빼기의 경우 1관에 1만1천∼1만2천원,4백g한근에 1천5백원선의 일반소비자가로 거래되고 있으며 김치 양념거리로도 쓰이는 갓은 1단 6백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본격 김장철이 되기전,가을 김치용으로 갓과 고들빼기를 찾는 주부의 수는 늘고 있는 추세다.이시장 신일 상회 상인 김춘영씨는 『핵가족화로 김장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가 먹는 가정이 준 반면,제철 채소가 나오는 즉시 조금씩 별미김치를 담가먹는 주부들이 많다』고 말한다. 본격김장철인 11월 중순∼12월초까지는 소비와 출하량이 맞물려 보합세로 이어지다 김장철이 끝나면서 내림세를 보일 것이라고 상인들은 전망한다.고들빼기는 키가크지 않고 뿌리가 통통한 것이 맛이 좋고 갓은 줄기가 짙고 부드러우며 잎에 윤기가 나는 것이 싱싱하고 좋은 것이다. 한편 곡물류가운데는 연초부터 계속 강세를 보이던 찹쌀의 가격이 햇품의 증가로 9월중순 이후 꾸준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8㎏ 한말에 2천원 내린 2만5천원선.일반미 상품은 8㎏ 한말에 1만2천5백원으로 보합거래되고 있다. 채소류는 기상여건의 양호로 출하작업이 원활,지난주에 이어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배추는 2·5㎏ 한통에 1천원이며 무는 1.5㎏한개에 지난주보다 1백원정도 내린 9백원의 약세. 또 순조로운 반입이 이어지고 있는 육류도 안정세다.쇠고기(한우)는 5백g 한근에 8천3백50원,돼지고기는 2천7백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수산물도 반입이 순조로워 고등어 30㎝정도 한마리에 2천5백원에 보합거래되고 있고 갈치는 성어기에 접어들면서 반입이 증가해 70㎝ 한마리에 지난주 대비 2천원이 내린 1만원선의 거래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고들빼기 김치만드는법/3일간 절인후 갖은 양념넣고 잘 버무려 고들빼기김치의 맛은 절이고 버무리는 방법에 좌우된다.▲재료…고들빼기 3㎏(3단정도) 잔파1단 고춧가루3분의2컵 찹쌀풀1컵 생멸치젓 3분의 2컵 통깨 1큰술 마늘 10개 생강 1개 홍고추 5개 밤 5개 소금 ▲만드는법…①고들빼기는 잔뿌리를 다듬어 3∼4%소금물에 완전히 잠기도록 돌로 눌러 3일정도 절인다음 깨끗히 씻어 물기를 뺀다.②마늘·생강을 다지고 파는 4∼5㎝크기로 잘라 놓는다.밤은 납작하게 썰고 홍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빼내 굵게 채썰어 둔다.③멸치젓은 몸체를 갈아 액젓에 혼합한 다음 찹쌀풀 고춧가루 마늘 생강 통깨를 넣어 넓은 그릇에서 잘 섞는다.④③에 고들빼기와 잔파를 넣고 가볍게 버무린다.⑤밤 고추를 섞어 항아리에 담는데 이때 여러번 뒤적이면 풋내가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 작은 원칙부터 소중히 하라/홍기삼 동국대교수·국문학(정경문화포럼)

    『삼국유사』의 「처용랑 망해사」라는 설화에는 신라말기의 시대적 위기를 알려주는 신들이 등장하고 있다.처음엔 수신(용왕)이 나타나고 다음엔 산신 그리고 지신의 순서로 나타난다.신들은 한결같이 헌강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어 나라의 위기를 알렸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상서로운 일로 잘못 알고 주색잡기에 흥청망청거리다가 『마침내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는게 이야기의 끝이다. 올해는 유독 대형사고가 많이 발생했는데 「처용랑망해사」이야기의 역순으로 일어나고 있다.즉 땅(기차사고)에서 먼저 사고가 나더니 다음엔 하늘과 산(비행기사고)에서,그리고 마침내 바다(선박사고)에서도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참으로 기이한 일이다.그런데 더 기이한 것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원인규명을 했고 그것은 언제나 사람의 잘못으로 밝혀지곤 했는데 거기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여태껏 없었다는 사실이다.더 의아한 것은 대형사고 이후에는 으레 재발방지를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국정책임자들이 대국민 약속을 되풀이 해왔다는 사실이다.결과만을 두고 생각한다면 그런 약속을 한 국정책임자들은 명백히 거짓말을 했고 그런 거짓말이 이런 참혹하고 부끄러운 비극을 불러왔다는 뜻이 된다.그들이 진실로 두려워했던 것은 감투와 자리의 상실이었고 그들이 발휘한 지혜는 명철보신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칠 수 없다. 기차에서 그리고 비행기에서 도저히 죽음을 당할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 그토록 억울하고 허망하게 참변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그런 것이 교훈이 되어 다시는(또는 최소한 당분간이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사람됨이 정직하고 자기직분에 성실한 국정운영자들이었다면 사고의 위험이 있는 곳을 미리 점검하고 안전대책을 단단히 세워 이런 참사는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국민들은 정권 초기라는 이유로,누적된 부정부패와 국가적 기강의 와해가 그 근보적 원인임을 이해하면서 참았다.그러나 국정운영의 당사자들이 바로 누적된 부패의 감염자들이고 국가기강을 와해시키는데 한몫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 되고 말았다.그들은 국정을 책임질능력과 경륜이 없을 뿐 아니라 안전대책을 세우겠다는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서 정직성 또한 의심받게 되었다.땅에서 하늘과 산에서 그리고 바다에서 일어난 모든 사고의 원인은 바로 정직성과 책임감의 상실에 있었던 것이다. 한국인들은 지금 사려깊은 자존심대신 교만을 즐기고 책임감대신 처신을 택한다.정직성은 비웃음과 경멸의 대상일뿐 존중되지 못한다.이 지경이 된 원인이 전통적 규범의 상실에 있는지 천민자본주의의 결과인지 잘 알수는 없다.그러나 둘러보면 작은 일에서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정직의 상실은 참으로 심각한 지경이지만 그것을 우려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가령 아주 작은 예를 하나 들어보기로 하자.이제 조금 뒤면 연하장이라는 새해 인사 우편물이 등장 할 것이다.그런데 이 작은 카드 한장만 보더라도 한국인의 부정직함이 어느정도인 가를 짐작하게 한다. 카드의 문장은 대체로 『지난해 보살펴 주신 은혜에 감사하오며』로 시작된다.전혀 거짓말이다.지난해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베풀어준 일이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연하장은 12월26일이나 27∼28일쯤 도착되는 경우가 많은데 버젓이 「새해아침」이라고 쓰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거짓말은 거기서 머물지 않고 더 계속된다.양력을 기준으로 연말이나 연초에 보내면서 세수의 표현으로 「갑자원단」「을축원단」이라고 버젓이 쓰는 것이다.갑자,을축과 같은 십이지 육십갑자는 양력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음력에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술 더떠서 고명한 지도자들중에는 『불소…』 아무개라고 써서 보내기도 하더니 요즈음엔 부부의 공동명의로 연하장을 보내오기도 한다.불소란 아들이 그 어버이에 대해서 쓰는 말이니 어느새 그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내 아들이 되고 그 부인은 내 며느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유세장에 엎드려 절을 하며 한 표를 호소하는 출마자처럼 천덕스럽고 역겨운 모습이다. 이런 거짓말들이야말로 명철보신의 지혜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원칙을 비웃고 정직을 경계하는 이가 너무도 많아 보인다.작은 거짓을 두려워하고 작은 원칙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큰 원칙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도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 프랑스에 첫 한국사찰 등장/송광사 파리분원 길상사 개원

    ◎재불신도 추진,불인에도 개방 파리에서 1시간 거리인 토르시(Torcy)에 송광사 파리분원인 길상사가 10일 문을 열었다.이날 개원식에는 법정,청학스님과 재불신도 80여명,런던 연화사,재불한인회,대사관을 각각 대표한 인사들이 참석했다.길상사는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로 조용한 주택가의 대지 2백평 연건평 80평의 2층 양옥에 위치하고 있는데 건물구입과 수리에 약 5억2천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프랑스에는 파리를 중심으로 재불불교신도들의 모임인 불자회(회장 한혜명화)가 5년전에 결성됐으나 법당이 없어 그동안 가람식당 등 장소를 옮겨 가며 매주 법회를 열어 왔다. 건물 수리에는 최준걸 불자회 부회장과 김우준 김동건 강대룡 등 회원들이 지난 여름 동안 노력 봉사를 했고 건물 물색과 매입 교섭등에는 재불화가 방혜자씨가 애를 썼다.불자회 회원은 약 1백20명이며 유학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길상사 정문에는 국어와 불어로 절 이름과 함께 「명상의 집」이라는 간판도 함께 붙여졌는데 이는 종교의 근본이 명상이므로 프랑스 사람들도명상을 하고자 하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법정스님은 설명. 길상사는 앞으로 법정스님을 회주로 하고 송광사에서 파견되는 스님이 수년씩 나와 있는 방식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파리분원 개설실무를 총괄한 청학스님이 밝혔다. 길상사 주소는 KILSANG­SA, 32 rue du Petit Bois, 77 200 Torcy, FRANCE(전화 60­17­39­59)
  • 온보기 안되면 반보기라도…/김후란시인(일요일 아침에)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명절때면 한집에 모인다.아직은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우리의 정겨운 생활풍습이다. 지난 추석때도 기차 버스 항공편 선편 자가용등 모든 기동력이 총동원되면서 인구의 절반이 이동하였다.현대 지구상에서 이처럼 가족극이 연출되는 일은 우리나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어떤 부모는 미리 낫을 구해두었다가 성묘갈 때 가지고 가서 자녀에게 벌초를 시켰다고 한다.조상모시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중간지점서 상봉 명절을 보낼 때마다 새삼 느껴지는 것이 있다.TV뉴스시간마다 귀성차량행렬과 들떠있는 인파소개로 이어지는 동안 그 한쪽에서 쓸쓸한 눈길을 북녘으로 보내고 있을 남북이산가족의 심정이 너무나 안됐다는 점이다. 죽음보다 더 아픈건 살아있으리라고 믿어지는 가족을 인위적인 장벽이 가로막아 만나러갈 수 없는 경우일 것이다. 그 옛날 시집간 딸이 보고싶어 견딜 수 없으면 시댁과 친정집 중간지점으로 딸을 나오도록 전갈을 보내어 준비해 간 음식을 놓고 반나절만 모녀가 정회를 풀곤 했다 한다.그것이 「반보기」이다. 남북회담이 잘 풀릴 경우 남북상호방문단 교류가 있을 것도 같더니 슬그머니 무산돼 버린지 오래다. 통일만 되면!하고 고대하던 남북이산가족들이었다.한차례 상호방문단이 실현되자 그대로 계속되리라고 앞다투어 신청서를 냈던 실향민들이었다.그 꿈은 희망에서 실의로 좌초되었다. 13년전 1980년 광복절에 대한적십자사가 이산가족 서신교류와 판문점에 노부모 상봉면회소를 설치하는 일,그리고 상호 성묘단방문 등을 북측에 제안한 적이 있었다.그중에서도 연로한 부모 면회소 설치는 가슴 뜨거워지는 제안이었다. 비록 반보기형태가 되겠지만 늙으신 부모님 살아계실 때 손이라도 잡아볼 수 있겠다고 흥분하던 나의 친지가 그후 희망이 꺾이자 명절 돌아오는 것이 고통이라고 토로하는 걸 보았다. ○이산가족의 명절 동서독이 통일을 성취한 비결이라면 많은 우여곡절과 물밑노력을 들수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가 가족 상호방문 허용이었다고 하겠다. 구라파에서 최대명절로 치는 크리스마스를 비롯해서 평소에도 동서독 이산가족 사이에 중병이들었거나 별세하는 등 큰 가족사에는 방문허가증을 받아 상호방문이 이뤄졌다고 한다.비록 사상과 이념과 체제가 다르다해도 같은 민족,같은 핏줄로서의 인간적인 교류는 허용이 되었던 것이다. 국제인도법상에도 「이산가족 재회에 관한 권리규정」이 있다.서로 떨어져 살지라도 「가족구성원에 관한 소식을 알아보려는 것은 가족의 권리」라고 명시되어 있다. ○핏줄 방문은 천륜 카뮈가 「내가 아는 진정한 자유는 정신 및 행동의 자유다」라고 표현했듯이 인도주의차원에서 가족상봉의 권리를 현실화하는 일이야말로 정치 이전의 천륜문제로서 인간자유표방이라고 하겠다. 인간수명에는 한계가 있다.한번 떠나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상에서의 1회성 생명이다. 남북분단 반세기를 기록하는 이 엄청난 민족적 시련이 구체적으로 직접 해당되는 일천만 이산가족 개개인에게는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일지 미루어 짐작된다. 언제까지 정치적인 남북회담 불연속선이 갈것인지,8개월여만에 재개된 5일 남북실무접촉도 특사교환문제 운만 떼는데 그쳤다.그러나 희망을 잃지 말자. 시간은 물같이 흘러가고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다.무엇보다도 노부모와 자녀가 생사확인부터 하고 온보기가 안되면 반보기로라도 만날수 있는 날이 어서 와야 한다.그렇게 만들어가야 한다.
  • “일본 곳곳에 「한글숭배」 신사”/부산외대 김문길교수 확인

    ◎자모만 일부 바꿔 위패등 새겨/“학문신”… 시험합격 기원 참배/“개국때 만들어진 신대문자… 한글이 되레 모방” 주장 일본인들이 한글을 변형시켜 만든 문자를 신사에 모셔놓고 복을 기원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게다가 그들은 그 문자가 일본의 개국신화 시대에 만들어진 「신대문자」이며,한글이 오히려「신대문자」를 모방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부산외국어대 김문길교수(일본어학과)는 8일 자신이 일본 현지에서 조사한 신사에서의 「한글숭배」실태및 『한글은 신대문자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 일본 학자들의 저서를 공개했다.이에 따르면 일본의 신사에서는 정문 윗부분과 위패등지에 「신대문자」로 신의 이름을 새겨놓아 참배객들이 그 문자에 대해 절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그 글자는 한글을 약간 바꾼 정도라는게 김교수의 지적이다.그는 오카야마현 나가오(장미)신사를 예로 들었는데 사진에서 보듯 정문에 쓰여진 신의 이름은 「□ㅏㄱㅏㄴㅏㅁㅜㄱㅏ」였다. 김교수는 일본인들이 이 문자를「가무나가라」라고 읽는다며,한국인이 이 글자를 오른쪽부터 읽으면 단지 한글의 자모를 풀어 써 「무」를 「ㅁㅜ」로 표기했을 뿐이라는 걸 금세 알 수 있다고 말했다.다만 「라」가 「□ㅏ」로 쓰인 것은 일본인들이 한글을 모방하면서 「ㄹ」을 「□」로 바꾸는등 문자 몇개를 변질시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교수는 자신이 지난 7∼8월 일본의 일부지방을 돌아 본 것만으로도 1백여개의 신사에서 이같은「한글숭배」를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또 일본인들에게 왜「신대문자」에 절을 하느냐고 물으면 한결같이『신대문자로 이름이 쓰여진 신은 학문의 신이어서 그 신사를 참배하면 각종 시험에 무사히 합격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인들은 「신대문자」를 언제,왜 조작했을까. 김교수는 「신대문자」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초 일본의 대표적인 국학자 히라다 아쓰다네(평전독육)가 1819년 2월 발간한 「일문전」이라는 책에서였다고 밝혔다.당시 일본에 서구의 문물이 밀려들자 이에 위기를 느낀 민족주의 학자들이 가장 일본적인 학문(국학)과 종교(신도)를 부흥시키자는 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중국의 한자,불교경전에서 따온 「가다카나」「히라카나」와는 다른 일본 고유의 문자를 조작할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히라다가 『일본의 개국신인 천조대신이 만든 문자를 발견했다』면서 「신대문자」를 공표하자 이 문자는 국학·신도의 인기를 타고 급속히 번져나갔으며 이후 신사의 문자로 정착했다는 분석이다.당시는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일본학자들이 한글교본을 쉽게 접할 수 있었으리라고 김교수는 추정했다. 히라다가 만든 「신대문자」는 모두 47자로,그 모양새는 한글 자모를 풀어쓴「ㅁㅜ·ㄱㅏ」 형태와 「ㅏ·ㅓ」등을 자음 밑에 붙여쓴 「ㄱㅏ·ㄴㅓ」형태등 2종류이다. 김교수는 『일본의 국학자들은 「신대문자」를 고유문자라고 내세우기 위해 거꾸로 한글을 모방품으로 밀어붙였다』면서 그러나 1945년 종전이후 양식있는 일부 학자들은 그같은 주장을 부끄러워하고 있다고 밝혔다.
  • “상근 예비군제 비리소지 없나”(국감 중계)

    ◎「시우회」에 대한 특혜 중단 요구/내무위/원전지역 지진 내구력 밝혀라/경과위/위성방송용 장치 개발 계획대로 추진/답변 ○“범법자 서훈 박탈을” ▷행정위◁ 총무처를 상대로 여야의원들은 청와대와 행정부가 정부조직개편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질타. 야당측은 범죄사실이 있는 국가서훈자의 상훈을 박탈하라고 집중 요구한 반면 여측은 행정사무개선방안과 공무원사기진작책등 정부의 정책방향을 부각시키는데 주력. 민주당의 김충현·신순범·이영권의원은 서훈제도와 관련해 박정희·전두환 전대통령이 임기중 자신에게 스스로 훈장을 수여했음을 예로들어 『서훈제도가 공직자들의 논공행상에 남용되고 있다』고 지적. 신순범의원은 특히 감사원이 총무처에 서훈박탈을 요구한 전경환 전새마을운동중앙본부장등 31명의 명단을 제시하며 『총무처가 상훈업무를 소홀히 해 살인,뇌물수수범뿐 아니라 월북자까지 국가서훈자로 돼있다』고 지적,이들의 상훈을 박탈하라고 요구. 박명환의원(민자)은 『지난 1년동안 공직자의 직무태만및무사안일에 따른 비위는 7백11건으로 이를 변상하는데 5백47억여원이 소요됐다』고 지적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뒤 재산공개등 사정활동의 여파로 공직자의 무사안일과 직무태만이 더욱 늘고 있다』고 질타. 신순범의원은 지난 6일 김영삼대통령이 일부 언론에 정부조직개편을 않겠다고 말한 것과 관련,『정부 스스로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무분별하게 확대된 정부조직을 재정비할 방안은 무엇이냐』고 추궁. 이건영의원(민자)은 『작은 정부를 만들겠다는 공언에도 불구하고 6월말 현재 국가공무원은 지난해보다 2천9백명이 늘어났다』면서 『사회전반의 인력절감추세에 정부가 크게 뒤져있다』고 공박. ○충정사 허가 등 따져 ▷내무위◁ 서울시에 대한 감사에서 의원들은 교통·주택등 방대한 시 행정전반에 대해 질의를 벌였으나 대부분 이미 언론에 보도되거나 시의회에서 거론된 내용이어서 양에 비해 질적으로는 떨어진 느낌. 김옥두의원(민주)은 『시 퇴직공무원의 상조회인 시우회가 구민회관관리,도로굴착및 복구공사감독대행을 맡아 연간 1백억원 이상의 수입을 보도록 한 것은 특혜』라면서 이의 중단을 촉구. 이환의의원(민자)은 남산제모습찾기 사업대상지인 남산골에 예비역장성들의 절인 충정사를 허가심의한 배경을 따졌으며 남평우의원(민자)은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내부구조변경에 벌금을 부과해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데 대한 대책을 추궁. 이원종시장은 『충정사는 전수방사부지정문 우측으로 이전하도록 허가했으며 건물신축비용은 예비역장성불자연합회에서 부담해 준공후 시에 기부채납하고 건물가액만큼 무상사용토록했다』고 설명. 이시장은 또 『올림픽선수촌아파트의 불법구조변경에 대한 벌금부과는 법령상 불가피하다』면서 그러나 민원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 ○“국민의 부담만 가중” ▷국방위◁ 병무청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병무부조리 실태및 대책,해외도피자에 대한 병역관리,상근예비군제 도입의 실효성등을 집중 따졌으며 특히 94년말까지 폐지되는 방위병에 대체,95년부터 실시되는 상근예비군제에 상당한 비중을두고 질의. 나병선의원(민주)은 『상근예비군제를 도입해 현역병 20만명을 대체할 경우 국방비를 연간 3천억원 절감할 수 있다고 하나 방위병의 성격과 다를 바 없어 유사시 국민의 부담만 가중하게 된다』며 『상근예비군제를 도입할 경우 같은 내무반에 근무하는 현역병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고위공직자나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주장했다. 정대철의원(민주)은 『상근 예비역 지원자가 과다할 경우 현행 방위병제도처럼 선발과정에서의 비리개입등 문제점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면서 비리개입 소지에 초점을 맞춰 질의. 권노갑의원(민주)도 『방위병제도는 25년동안 5차례의 수정보완을 거쳐 정착된 제도로서 복무기간과 근무조건만 보완개선해 준다면 현실적으로 훌륭한 제도라는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라고 전제,『왜 방위병제도를 폐지하려고만 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면서 「선 방위병제 개선」이 급선무라고 강조. ○“평화적 이용 걸림돌” ▷경과위◁ 8일 과기처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지진활동성 지대인 고리·월성·울진 원전의 안전성,방사성폐기물 처분장 확보,정부출연연구소의 중국과의 인공위성개발 중복협약추진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특히 민주당의원들은 한반도의 비핵화선언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 선언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당 이철의원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는 효과는 없고 핵재처리와 농축기술개발등 평화적 핵이용의 길만 막고 있는데 관련조항철회를 추진할 용의는 없는가』고 따졌다. 민자당 구창림의원은 『중간핵심기술육성을 타 예산에서 전용을 않으면서 합리적으로 추진할 방안은 무엇이냐』고 질의. 민자당 김채겸·민주당 손세일의원은『지난10월 자원연구소와 일본 교토대등 한일 공동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고리·월성·울진등 원전지역에 지진발생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하고『이번 공동조사연구의 결과와 이 지역 원전의 지진 내구력에 대해 소상히 밝히라』고 강력히 요구. ○“배경 이해할 수 없다” ▷교체위◁ 체신부와 한국통신 산하연구소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이동통신과 무궁화위성사업 전파관리등 굵직한 현안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특히 체신금융 실태및 농어촌지역 우체국의 장비 현대화 등에 정책의 비중을 둘 것을 촉구. 조영장의원(민자)은 『체신부가 95년 상용화가 불투명한 디지털 이동통신 기술을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막대한 예산낭비는 물론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잦다』면서 『무궁화위성의 위성방송이 97년이전 실시가 불가능해 최소한 5백억원 이상 예산낭비가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웠느냐』고 질의. 김명규의원(민주)은 『최근 공보처가 위성방송 실시를 98년 이후로 연기키로 했는데 이같은 정책결정이 주무 부서인 체신부와 협의없이 나온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직접 위성방송이 연기될 경우 문제점과 대책을 설명해 달라』고 주문. 이에 대해 윤동윤장관은 『지난 2일 공보처장관이 「현실여건으로 위성방송을 계획대로 실시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겠느냐」고 밝힌 내용이 언론에 잘못 전달됐다고 공보처에서 구두로해명해 왔다』며 『무궁화위성 발사와 관련한 위성방송용 지구국 송수신 장치등은 계획대로 개발추진중에 있다』고 답변.
  • 난파 봉선화(외언내언)

    난파 홍영후의 「봉선화」3절이다.『북풍한설 찬바람에/네 형체가 없어져도/평화로운 꿈을꾸는/너의 혼이 예있으니/화창스런 봄바람에/환생키를 바라노라』모진 비바람속에서 조국의 화창한 광복을 비는 마음이 구구절절 담겨져있다. 1920년 그의 나이 23세때 작곡된 이 노래는 삽시에 전국에 퍼져나갔고 일제가 이를 금지곡으로 정하자 입속에서 남몰래 부르는 노래가 되어 부르다가 들키면 간혹 투옥되거나 탄압을 받기도 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애창되는 「고향의 봄」「옛동산에 올라」「성불사」「그리움」「봄처녀」등 주옥같은 명편들과 어릴때 부른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도 그가 지은 노래다. 뿐만아니라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잡지 「음락계」를 창간했고 조선음락가협회를 창립,실내악의 효시인 「난파 트리오」등 문화불모였던 이 땅에 신문화를 정착시키는 기틀을 마련하면서 「예술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남겼다. 국가보훈처는 국가독립유공자의 친일행위에 대한 재조사에서 난파의 친일행위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 전시했던 유품을 철거하고 그에대한 내용을 삭제했다.장애자인 운보(김기창)가 일제징용을 담은 삽화 3장을 그렸다고 해서 친일구설에 휘말린 예와 비슷하다. 물론 이런 오점은 육사나 윤동주 한용운과 이상화처럼 한점 부끄럼없이 훼절치 않은 인물에 비유될수는 없다.그당시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위해」국민가요 한두편을 작곡한것이 친일이라면 불절히 살아 숨쉬는 민족혼을 노래로 달래준것은 어떤 공적인지 착잡한 감이다. 그는 1936년 도산 안창호가 이끌던 흥사단 단가를 작곡했다는 이유로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었고 심한 고문끝에 죽기전까지 병상에서 시달렸다. 1941년 여름 그는 평소 아끼던 연미복을 꺼내입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마치 먼 연주여행길에 오르듯이.예술가의 애국과 친일과 예술활동의 한계,그 분량속에 묘한 아이러니가 숨겨져있음을 부인할수가 없다.
  • 추석놀이/가족끼리 오손도손/레크레이션단체가 권장하는 한가위놀이방법

    ◎화투·포커는 “이제그만”/쟁반에 젓가락으로 알밤 옮기기/세계지도 따라 윷놀이 “교육효과”/속담 맞추기 통해 우리말 사랑을… 추석 연휴기간은 그동안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도 함께 모이는 모처럼의 기회이다.그러나 어른들끼리만 몰려앉아 화투·포커 등으로 만남을 헛되이 낭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이럴때 아이들을 포함해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간단한 놀이를 즐기면 교육상 좋을 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우애를 도모하는데도 그만이다. 추석기간중 간단히 즐길수 있는 건전한 가족놀이 몇가지를 레크리에이션단체의 도움으로 소개한다. ◇알밤 옮기기=알밤을 가득 담은 쟁반과 빈 쟁반을 준비하여 1∼2m 정도 띄어놓고 각 팀대표가 나와 정해진 시간동안 젓가락으로 옮기는 놀이.중간에 떨어진 알밤은 다시 주울수 없고 쟁반에서 쟁반으로만 옮길수 있다. ◇가을은 말이 살찌는 계절=팀에서 다리가 가장 날씬한 어린이를 대표로 뽑아 부녀자들이 일할때 입는 몸뻬옷을 입히고 몸뻬 안에 풍선을 여러개 불어넣어 살찐 말처럼 뚱뚱하게 만든다.이 뚱뚱해진 어린이를 춤추게 하고 어른들에게 절하게 하며 재롱을 즐긴다. ◇그림맞추기=가족단위로 멋진 그림을 그려서 가위로 8등분한 다음 서로 바꿔갖는다.제한시간 안에 그림을 빨리 맞추는 가족이 이긴다.그림을 섞어서 똑같은 갯수로 나눠가진 다음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팀이 상대팀으로부터 그림 한조각씩을 빼앗아 그림을 맞춰나가는 응용놀이도 있다. ◇누가누가 잘하나=민속경기의 하나인 투호놀이에서 본뜬 놀이.빈 항아리나 그릇으로부터 약 5m거리에 선을 긋고 그 지점에서 나무젓가락이나 성냥을 가장 많이 던져넣는 사람이 승리한다.여자나 어린이는 거리를 3∼4m로 줄여주어도 좋다. ◇투윷놀이=될수록 큼직한 전국지도나 세계지도를 구해 여행코스를 만들어 넣는다.가족들끼리 상의해 함정 또는 「앞으로 다섯말」「뒤로 세말」등 규칙을 정한다.주사위 두개를 던져 합친 수만큼 진행해 말들이 먼저 들어온 편이 이긴다. ◇산가지놀이=옛날에 갯수를 파악할때 쓰던 산가지 대신 나무젓가락이나 금속젓가락을 30여개 준비해 방석 위에 모아놓는다.각 팀대표 한명씩 나와서 한개씩만 가져가는데 다른것을 건드리지 않고 가져가야지 건드릴 경우 빈손으로 들어가야 한다.많이 가져간 팀이 승리. ◇속담찾아 삼만리=두팀으로 나눠 한쪽 팀에서 속담을 하나만 말한다.그러면 반대편에선 그 속담과 비슷한 속담을 찾아 말하거나 반대되는 속담을 말하는 놀이.한사람이 진행자가 되어 미리 준비한 속담책을 보고 문제를 내도 좋다. ◇박씨네 시조놀이=문학평론가 박덕규씨 3형제가 전래의 민속시조놀이를 새롭게 부활해 보급하는 놀이.놀이를 진행하는 낭송자가 시조의 전문이 실려있는 「읽는 패」를 들고 시조의 초·중장을 읽어나가는동안 시조의 종장이 적힌 「깔패」를 상대방보다 먼저 찾아내는 사람이 이긴다.놀이에 앞서 서울시내 서점에서 놀이기구를 구입해야 한다.
  • 추석/올바른 차례상 차리기 이렇게

    ◎주부클럽연합회 도움말로 차례 지내기를 알아보면/상차림/북쪽 향해 병풍치고 밥대신 송편 올려/어동육서·홍동백서 등 원칙따라 진설/차례법/단정한 차림새로 남 동,여 서쪽에 위치/남 왼손을 위로 해 2배,여 2배반 배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란 속담이 있듯 추석 명절은 예부터 1년중 가장 좋은 때다.그래서 이날이 되면 멀리 객지에 나가 흩어져 살던 일가친척들이 모두 고향을 중심으로 한데 모여 갓 추수한 햇곡식과 햇과일로 정성껏 조상께 차례를 드려왔다.이날 차례를 못모시는 것이 우리 조상들에게는 가장 큰 수치로 여겨졌다.따라서 예전에는 차례상을 차리는 예법도 까다롭고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사회구조가 핵가족화되면서 이에 따른 예법과 절도가 많이 간소화됐으나 요즘 주부들이 이를 정확히 알기란 힘든 일이다. 차례상 차리는 방식은 지역과 가문 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차림은 비슷하다. 대한주부클럽연합회(문의 02­752­4229)의 도움말로 서울·경기지방 중심의 추석 차례상 차리기를 알아본다. ▷차례상 차림◁ 북쪽을 향해 병풍을 치고 상을 편 다음 신위(지방)에 글문을 놓아야 되나 없으면 사진도 무방하다.추석차례상에는 메대신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을 올리는 것이 일반 제사때와 다른 점이다. 추석상 차리기의 기본원칙은 생선류를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 어동육서와 동쪽에 머리부위,서쪽에 꼬리부분을 놓는 동두서미를 지키는 것이다.과일은 적게는 세가지에서 많게는 아홉가지를 차리며 붉은 과일은 동쪽,흰 과일은 서쪽에 두는 홍동백서 또는 대추·밤·곶감·배·약과·강정의 순인 조율이시의 순으로 놓아야 한다. 두분을 모실경우 음식은 5열로 놓되 1열은 신위앞에 시접·잔반·송편을 둔다.2열은 서쪽부터 국수·육적·전·소적·조기·어전·고물떡을 두고 3열에는 육탕·소탕·어탕 등 탕을 차린다. 4열은 북어·고기·오징어·문어 말린 것중 택일해 포를 놓고 이밖에 나박김치·고비·시금치·도라지·간장·식혜건더기를 장만하며 5열이 과일이다. ▷차례 지내기◁ 차례를 지내기 전에 제주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게 입는다.한복을 입었으면 꼭 두루마기를 입어야 하고 양복이면 반드시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의 정장을 해야한다. 신위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남자 자손이 서고 서쪽은 여자 자손이 자리한 다음 먼저 제주가 꿇어앉아 강신잔에 차나 술을 따라 3번 올리고 2번 절한다.왼쪽에 선 집사가 잔반을 제주에게 주면 제주가 이를 갖고 오른쪽 집사 잔반에 술을 따라준다.제주는 오른쪽 향위로 잔을 3번 돌리고 다시 오른쪽 집사에게 잔을 주면 집사는 잔을 받아 상에 올린다. 그다음 제주는 젓가락을 접시에 3번 구른후 음식위에 놓고 남자는 2배·여자는 2배반 절을한다.절을 올릴때 남자는 왼손·여자는 오른손이 위로가게 포갠다.절이 모두 끝나면 조상이 음식을 드시라는 뜻으로 3∼5분간 방문을 닫고 기다리다 인기척을 3번하고 들어간다.마지막으로 절을 한 다음 지방을 불에 사르고 제수를 상에서 내려 가족끼리 음식을 나누어 든다.
  • 「이산가족교류」 핵떠나 협의하자(사설)

    명절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흩어져 있던 가족의 모임과 상봉에 있다.살아있는 부모형제는 말할것 없고 돌아가신 조상들과도 대하는 날이 설이요 추석이다.추석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일찍부터 즐거운 상봉의 기대에 부풀어 있다.사람사는 즐거움이요 도리이며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고 다할수없는 불행한 이웃이 있다면 어떻겠는가.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안타깝고 송구스러워지는 마음 금할수 없게된다.「이제나…저제나…」하며 지낸 세월 보낸 추석이 얼마인가.금년에도 임진각 망향단을 찾아 북녘하늘만 바라보며 절하고 눈물짓는 안타까운 모습밖에 볼수없는 현실이다. 온세계가 화해와 공존인데 왜 우리만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화해는 커녕 인간생활의 기본욕구요 도리인 가족상봉마저도 이렇게 거부당하며 살아야하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된다.누구의 책임인지 따지며 북이 어떻고 남이 어떻고 해보았자 시간낭비일뿐 감정만 상하고 일만 더 어려워질 뿐이다.독일 예멘 인도차이나 그리고 중동을 보자.우리의 현실을 더욱 부끄럽게 만드는 교훈은 가까운 중국과 대만의 교류일 것이다. 우리는 왜 안되는가.인간양심의 근원으로,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분단은 참을수있고 핵문제까지도 접어둘수 있을지 모른다.그러나 이산가족 교류만은 그래선 안되며 그럴수 없다.그것은 국가체제와 이념을 초월하는 기본인권의 문제다.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거부할수 없고 해서도 안되는 인도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도덕정치와 인권외교를 지향하는 김영삼대통령도 일찍부터 남북이산가족의 고통을 덜어주고 해소하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인바 있다.취임직후 이인모노인을 무조건 송환하는 결단도 내렸다.이산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선 모든것을 초월할수 있다는 깊은 뜻의 호소일 것이다. 한완상통일원장관도 최근 1천만 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주최의 「세계 한민족화합과 만남의 장」행사에서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위한 우리측의 간절한 소망을 피력했다.이산가족문제만은 북한의 핵문제와 연관시키지 않고있다며 북한의 호응을 촉구했다.고향이나 판문점에서 그것이 어려우면 제3국에서라도 만날수 있게 하고 우선 서신교환부터라도 주선하자고 촉구했다. 북한당국도 이문제에서만은 모든것을 초월해야 할것이다.북한이 듣지 않는다면 이문제야말로 핵보다 우선해서 유엔에도 제기하고 세계에도 호소해야할 일이라 생각한다.그것은 우리만이 아닌 세계의 보편적 가치인 기본인권과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 대마도 이즈하라 만송원(일본속의 한국문화:3)

    ◎임란침략 선봉장 종의지 아들이 건립/20대 도주 의성,선친 명복 빌기위해 세워/마룻바닥 구석에 약탈한 조선제기 전시 『살아서 대마도에 가서 부산을 단 한치만이라도 바라볼 수 있다면 아침에 갔다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 정유재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4년간 억류당한 유학자 강항의 비통한 한마디다.강항는 돌아와서 유명한 「간량록」을 지어 남겼다.「간양록」을 읽지 않고서는 일본을 안다고 할 수 없다는 책이다. 대마도의 행정수도 이즈하라(엄원)에 가면 누구나 관광업소 제1호 만송원을 둘러보게 된다.본래 송음사라 이름지었다가 만송원으로 고쳤다고 하는데 만송은 우리나라 역사책에도 잘 알려진 임진왜란의 침략앞잡이 종의지라는 19대 대마도주의 법호라고 한다.그 아들 종의성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어 절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 이 만송원의 유래다.그런데 이 아들 의성 역시 임란후 국서(외교문서)를 위조하여 속임수로 한일국교를 정상화시킨 장본인이다.그러니 만송원으로 들어가는 한국관광객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은 뒤 화재를 만나 몇번이나 다시 지었다는 법당에는 일본막부 덕천가의 위패를 유리창속에 안치해놓고 앞의 마룻바닥 한 구석에는 조선국왕이 바쳤다는 이 절의 보물 삼구족을 마치 노획물이나 되는 듯 전시해놓았다.도대체 놓여 있는 자리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경복궁서 훔쳐온 듯 일본막부 덕천일주을 신주처럼 모셔놓고 그 앞에 그것도 마룻바닥 한 구석에다 우리나라 왕실에서나 쓰던 성스러운 기물을 진열하였으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거기다 더한 것은 조선국왕이 이 보잘것없는 섬의 도주에게 왕실에서 쓰는 기물을 바쳤다(여기 말로 공헌하였다)는 말투다.아마도 이 말은 일제때 조선을 얕잡아보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 추측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말은 바른대로 해야 되지 않겠는가.조선국왕의 하사품이라든지,아니면 더 솔직하게 말하면 임진왜란 때 왜국의 선봉장으로 서울에 입성했을 때 경복궁에 들어가 훔쳐온 것이라든지 확실하게 사실을 고백해야 할 것이 아닌가.왜냐하면 필자가 아는 한 우리측의 어느 기록에도 이런 성스러운물건을 대마도주에게 하사하였다는 글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는 상태에서 만송원 법당안을 둘러보고 나면 그 뒷산이 청수산이라는 이즈하라의 진산에 올라가게 되는데 30여대에 걸친 종가들 일족의 공동묘지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여기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종가의 족보문제다.도대체 종가란 자들은 언제 어디서 온 사람들인가. 임란 직후에 사상초유의 외침에 시달린 우리 조상들은 많은 임란일록을 지어 남겼다.그중에 화은 신경(신경,1614∼1653년)의 「재조번방지」란 책이 있다.이 책에 보면 대마도주 종가는 우리나라 송씨였다는 기록이 나온다.즉 신경은 대마도가 우리나라와 가장 친근한 섬이라 하면서 그 이유를 『대개 대마도땅은 모래와 돌로 되어 있어 전적으로 우리나라와 교역하여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이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도주 종성장(12대)은 우리나라 송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그섬(대마도)으로 들어가서 도주가 되어 성을 종으로 간 사람이다』 신경의 「재조번방지」는 매우 신빙성이 있는 책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대마도주 종가의 뿌리가 조선인 송가였다는 이 기록을 근거없다고 하여 일소에 붙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조선인 송씨가 조상 본시 일본 사람들의 습속이란 『성을 가는 것을 가장 수치스럽게 여겨온 우리네와는 달리 마음대로 갈고 고치는 사람들이므로 종가의 세계보를 그 어느 누구도 보증하기 어렵다 할 것이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만송원에 모셔져 있다는 종의지란 인물이 과연 어떤 인물이었나 하는 점이다.강항에 따르면 종의지는 『풍신수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데 있어서 향도노릇을 한 모사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 임란 이전에는 우리나라 쌀을 받아먹다가 임란때 선봉장으로 공을 세워 수길에게 영지를 얻어 일본쌀을 먹게 되었다고 그 배신행위에 격분하고 있다. 그러나 강항이 4년간의 억류생활을 마치고 그리운 조국땅을 향해 대마도를 거쳐 오는데 이 이즈하라에서 의지의 참모역을 맡고 있던 심복부하 유천조신을 만나 이런 하소연을 들었다.대마도는 그때 임란 직후라 조선과의 교역이 끊겨 도민의 생계가 막막하던 때였다. 『이 섬은 한일 두나라 사이에 끼여 있어 수길(즉 일본)이 상국(즉 조선)을 침범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우리가 사전에 수길이 조선을 침략하리라는 정보를 귀뜀하여 주지 않았습니까.미리 침략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는데 우리로서는 그때 할일을 다했습니다.수길이 침략군을 동원하게 되자 약한 우리 대마도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봉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에 장차 조선이 강해서 일본을 친다고 한다면 우리는 조선을 위해 일본을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또 대마도는 과거 2백년간 위관의 소굴이었다고 하나 호남을 범한 일은 있으나 영남을 범한 일은 없습니다.우리 대마도가 조선의 영남을 지켜준 셈입니다』 ○임란발발 미리 알려 조신의 이 말 가운데 왜구의 방파제가 되어 조선의 영남지방을 지켜주었다는 마지막 말은 과장되어 있으나 임란 직전에 왜군이 침략할 것이라는 정보를 조선에 알려준 사실만은 거짓이 아니었다. 종의지와 조신은 임란 직전인 1590년에 우리 사신 황윤길과 김성일을 수행하여 일본에 갔었는데 돌아와서 두 사신의 보고가 엇갈리는 바람에 조정에서는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했다.이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이듬해(1591년) 5월 임란이 일어나기 꼭 1년전에 종의지가 홀로 배를 타고 부산 영도에 와서 『조선조정에 급히 아뢸 말씀이 있으니 나를 서울에 가도록 하여 주시오.일본이 곧 쳐들어옵니다.대비하여야 합니다』라고 한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이때 서울의 조정에서는 어리석게도 현지 관리의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아무 회답도 보내지 않았다.종의지는 열흘동안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대마도로 돌아가고 말았다.이 사실로 미루어 그는 과연 조선인 종씨의 후손이 아니었든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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