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7-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15
  • 온천욕/“5∼20분씩” 하루 2회정도 바람직

    ◎온양·유성 등 관광겸 유적답사 코스로도 각광/고혈압·당뇨병환자 몸을 덥힌후 입욕/끝나면 물기는 닦지말고 말려야 좋아/공복·음주후는 피하고 현기증·구토땐 탕에서 나와야 학생들의 봄방학이 계속되고 화요일이 3·1절로 공휴일이 된다.모처럼 가족이 함께 쉴수 있는 이런때 따끈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하면 추위는 물론 피로와 일상의 스트레스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온천 주변에는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유적지등이나 전통민속마을등도 있어 교육의 시간으로 활용할수 있다.온천 요령및 온천을 겸해 가족이 가볼만한 나들이코스를 알아본다. ▷온천요령◁ 온천욕은 먼저 얼굴과 손발을 씻으면서 몸을 따뜻하게 한 다음 탕속에 들어가는게 순서이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환자들은 갑자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충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여유있는 목욕법을 취해야 한다. 탕속에 머무르는 시간은 수온이 체온보다 휠씬 높아 뜨거울 경우는 5∼10분,미지근한 물에서는 15∼20분 정도가 알맞다.목욕 횟수도 보통하루에 1∼2회 정도가 바람직하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횟수를 이보다 늘려도 좋겠지만 그렇더라도 3∼4회를 넘기면 몸의 수분을 지나치게 빼앗기게 되고 피부건강에도 좋지 않다. 또 목욕이 끝난 뒤에는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말끔히 닦아내기보다는 20∼30분 정도 누워 안정을 취하면서 물기가 자연히 마르도록 하는게 온천욕의 요령이다. 공복이나 음주후 입욕은 되도록 피해야하며 목욕중 현기증이나 구토증세를 느낄 때는 즉시 탕에서 나와야한다. ■온양온천=섭씨54∼57도의 약알칼리성 라듐온천으로 유명하다.칼륨·나트륨·칼슘등을 함유,피부병·류머티즘등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서울과 불과 1시간여거리인데다 인근에는 현충사·외암리 민속마을·온양민속박물관·독립기념관등이 있다. 온천후 우리민족의 자주독립정신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고취시킬수 있는 독립기념관을 역사공부삼아 찾아볼만하다.이 독립기념관에서부터 8㎞거리에 유관순기념 사당이 있어 더욱 뜻깊은 방문이 될수 있다.또 2만5천평규모로 꾸며진 온양민속박물관은 계몽사 김원대회장이 20년을모아온 자료로 만든곳으로 우리선조들의 생활상과 풍습을 알수 있다.외암리 민속마은 격조높은 옛조상들의 체취를 느끼게하는 곳이다. ■유성=알칼리성 라듐온천으로 나트륨·규산등이 풍부,위장과 피부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대전엑스포를 계기로 서울과 유성간 고속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된데다 숙박시설이 정비돼 교통과 숙박측면에서 전국 제1의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인근에는 계룡산국립공원과 보문산공원등이 있어 산행을 즐길 수있고 1시간거리의 공주·부여등 백제문화 유적지를 모처럼 탐방하며 우리역사를 새삼 되새겨 보는 시간을 가질수 있다. ■수안보=서울에서 버스로 2시간30분정도가 소요되는등 전국 어느곳에서나 3∼4시간이면 갈수있고 근처에 스키장까지 있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온천수는 섭씨 51∼53도의 무색·무취하고 매끄러운 유황라듐천으로 위장병·신경통·피부병등 치료에 효능이 있다.부근에 월악산·조령산과 문경새재·송계계곡·수옥정폭포등 수려한 관광지가 있어 산행을 곁들여도 좋겠다.인근에 보물 96호인 미륵리 석불입상, 5층석탑등을 볼수 있다. ■덕산=충남 예산군,수덕사 가는 길목 매헌 윤봉길의사의 사당 사이 들판에 자리잡고 있는 덕산온천은 유일하게 충남문화재자료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윤봉길의사는 19 32년 중국 상해홍구공원에서 열린 천장절기념식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대장을 죽인 인물.윤의사 사당을 참배하고 섭씨52도의 수온에 온천을 하면서 피로를 풀수 있다.칼슘·나트륨·불소등이 고루 함유돼 신경통·류머티즘등 노인성 질병과 위장병·피부병등에 좋다는 소문이 나있다.덕산온천∼아산방조제∼온양온천 드라이브 코스도 좋고 수덕사∼태안해안국립공원∼예당저수지등으로도 연결된다. ■백암=수온 섭씨46도로 라듐이 많이 함유된 국내 유일의 알칼리성 방사성온천.8㎞떨어진 곳에 백암산(해발 1천4㎞)이 있어 겨울 산행도 즐길 수있고 성류굴·망향정·월송정등의 볼거리도 풍성하다. ■부곡=경남 창녕군의 국내최대 유황온천.섭씨 최고78도까지 올라가는 온천욕이 그만이다.유황외에 규소·칼슘·철분등 20여종의 무기질이 포함돼 호흡기및 피부질환에 특히 효험이 높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게다가 부곡하와이 등 주변의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각종 레저를 함께 즐길 수있다.
  • “드디어 해냈다” 가족들 눈물/쇼트트랙서 금메달 2개 따던날

    ◎새벽 TV보던 국민도 환호 릴레함메르의 쾌거를 밤잠을 설치며 꼭두새벽부터 TV를 통해 지켜보던 국민들은 『드디어 해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특히 나이어린 여자쇼트트랙선수들에게 감탄과 찬사를 한꺼번에 쏟아냈다. 상큼한 기분으로 출근한 직장인들도 직장에서 온종일 금메달소식으로 얘기꽃을 피웠다. ○‥두번째 금메달소식을 전해준 쇼트트랙 여자3천m계주대표팀의 맏이인 김소희양의 대구시 남구 대명10동 개나리맨션 아파트 나동 909호 집에서는 아버지 승태씨(45·건설업)와 어머니 김귀순씨(45)등 가족들이 밤을 새우며 TV를 지켜보다 딸이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는 순간 『금메달이다』를 외치며 감격의 눈물. ○‥소희양과 함께 대표팀의 큰 언니역할을 해온 전리경양의 어머니 최복자씨(45·종로구 평창동 금강빌라)도 『메달을 딸 것이라고 생각은 했으나 금메달을 거머쥘 것이라고는 생각못했다』며 환호. ○…막내둥이로 세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된 김윤미양의 어머니 이문순씨(43)는 초조하게 딸의 경기모습을 지켜보다 금메달이확정되는 순간 『딸의 경기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노르웨이까지 간 남편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며 울먹이기도. ○…92년 알베르빌동계올림픽에 이어 첫메달을 안겨준 김기훈선수의 서울 성동구 자양2동 679의 34집에서는 어머니 박문숙여사(52)와 이모 박성애씨(42)가 『금메달 소식을 집근처의 절에서 불공을 드리다 알았다』면서 축하전화를 해오는 팬들과 방문객들에게 일일이 감사. ○…은메달을 획득한 채지훈선수의 서울 종로구 청운동 벽산빌라 5동 502호 집에서 경기를 지켜본 아버지 수민씨(53·무역업)는 『처녀출전한 동계올림픽에서 메달을 따 대견스럽다』며 『27일 열릴 5백m경기에서도 메달을 땄으면 좋겠다』고 기대.
  • 신서정시 시집 3권 나란히 선봬

    ◎황미라 「두꺼비 집」/김경실 「이르쿠츠크…」/이정웅 「포대능선」/초월자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 형상화/「두꺼비 집」/도가적셰계·불교적 메시지 담은 선시/「포대능선」/갈등·한과꿈·이상이 내면세게 묘사/「이르쿠츠크…」 신서정시 계열 신진시인 3명이 나란히 시집을발간,눈길을끈다.문학아카데미가 기획시선으로 엮어낸 황미라의 「두꺼비집」과 이정웅의 「포대능선」,그리고 김경실의 「이르쿠츠크의아침」. 이들은 모두 지난 89년 문단에 등단한후 전통 서정시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감각의 시 언어와 정서를 안고있는 작품경향을 견지, 신서정시 작가들로 주목돼온 열성적 신진들이다. 특히 이번 시집들은 작가들이 그동안 치중해온 작품을 테마별로 모아 각자의 작품경향과 정서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했다. 「심상」신인상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한후 춘천에서 동인활동을 벌이고 있는 황미라는 시집 「두꺼비집」에서 신을 포함한 초월자에 대한 사랑을 집요하게 보여준다.서문에서 『신에 대한 나의 질문이며 고백이며 투정』이라고 밝혔듯만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외경심과 그를 향한 애틋함을 시인의 명징한 그리움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중심을 가르는 한줄기 강물보다 굳은 땅 상처내지 않고 저만큼 돌아 제슬픔 삭히는 시내가 아름다운 걸 훌쩍 훌쩍 이르러 이제야 깨닫습니다』(별을 내는 어둠중).『분홍살에 덧입혀진 슬픔을 털며 서른일곱 질기고 촘촘한 날들을 빠져나온 생채기,알 수 없는 깊이의 무서움인데 쓰린 부위마다 사납게 그어대는 칼바람,피눈물에 매일 밤이 붉어도 그리움 하나 지우지 못하네 나는 그 무슨 사랑의 채무자,……』(분홍살중)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정웅은 두번째 시집 「포대능선」에서 산과 절,절과 부처,부처와 자신을 연결하는 정신세계를 어린시절 체험과 기억에 담아내고 있다. 평소 산을 즐겨찾는 시인이 산을 주제로 쓴 단편시가 주를 이루지만 선시류로 분류 될만큼 도가적 세계와 불교적 메시지가 혼합된 실험성이 짙게 깔려있다는 평이다. 『아무 일 없는 일 배를 타고 백운대에 올라 얼음 부딪친 불씨로 물을 태웠더니 불꽃이 땅을 꿰고 하늘을 찌르네』(노을중)『말 없는 침묵 없다는 듯 스륵 스륵 정적속에 무슨 소린가 들려오네 그는 침묵없는 말조차 잘라내는 허공의 톱질소린가 발을 멈추고 올려다보니 티하나 허락지 않는 하공 그 원단』(오봉의 눈발) 한편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김경실은 신작시집 「이르쿠츠크의 아침」을 통해 내면세계의 정확한 묘사에 치중하는 시인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다. 내면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간직하고 있는 갈등과 한,꿈과 이상을 담아내는가 하면 여행중 발견하게 되는 감동과 지혜를 미적 깊이로 다듬어내기도 한다. 『겨울비 유리창을 두드릴때 일어나던 두통이여 엉킨 실꾸리에서라도 찾아볼까 저당잡힌 오늘을 기름칠 윤내어도 뼛속 깊이 허기지는 사랑을 세상 작은 소리에도 귀기울이는 노곤한 나의 일상이』(겨울일지1중)『작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커 양팔을 벌리면 희망과 절망 모두 다 껴 안을 수 있지요 작지만,아주 작지만』(채송화).
  • 점집엔 상류층이 더 간답디다(박갑천칼럼)

    『어머,당신이 여긴 웬일이에요?』.이름난 점쟁이 집에서 그야말로 뜻밖에 남편을 만난 아내는 놀란다.할일 없으면 낮잠이나 잘것이지 점쟁이한테는 뭣 때문에 다니느냐는 핀잔의 강도가 얼마나 높았던 남편인가.그 남편을 바로 점쟁이집에서 만나다니.이 이야기는 제아무리 초연한 체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내일을 알고 싶어하는 심리는 있다는 사실을 뒷받친다.약한 자여,그대 이름은 사람이니라이기에. 설을 쇠면서는 식구끼리 둘러앉아 재미로 토정비결들을 본다.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1년신수를 보러 점쟁이집을 찾기도 한다.첨단과학 세상이건만 그 관습은 줄기 커녕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 같기만 하다.웬만큼 이름이 난 역술인이라면 이 무렵이 대목이다.부적 하나에 몇백만원짜리도 있다지 않던가.이들 역술인들은 국운을 점쳐오고도 있다.그건 대체로 좋다.올해도 상승세 쪽이 강하니 두고 볼 일이다. 점의 매력이 줄지 않는 까닭은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점괘에 나온 행운의 현실화를 기대하는 심리 때문이다.놀랄 만큼 적중하는 경우가 있기때문이기도 하다.예를 들면 홍계관같은 점쟁이가 그런 사람이다.「부계기문」등에 적혀있는 그에 대한 얘기는 그의 점이 얼마나 신통한 것이었나를 말해준다. ­인산군 홍윤성이 향시에 합격한 다음 서울에 왔다가 홍계관의 이름을 듣고 찾아 간다.꽤 오랫동안 점을 치던 홍계관은 꿇어앉더니 공손히 절하면서 말한다.『공은 더 할 수 없이 귀하게 될 운명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잇는다.어느 해 어느 때 형조판서가 될것인데 그때 자기 아들이 죽을죄를 짓고 옥에 갇히게 될것인바 자기를 보아 살려달라는 것이었다.그 아들에게도 아무때 네가 죽을죄를 짓게 될것인즉 그때 홍계관의 아들이라고 하면 살려줄 것이라고 이른다.그말대로 되었다는 것이니 놀랍다. 『점쟁이 저 죽을날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동언해」 등에는 「점쟁이」대신 「소경」이라 써놓고 있는데 홍계관도 소경이었듯이 지난 날에는 소경 가운데 점치는 이가 많았기에 그러하다.사람이란 한치 앞의 운명을 모른다는 뜻으로 쓰인다.사실이 그렇다.알수도 없지만 알아서도 안되게 되어있는것이 섭리의 뜻.한치 앞을 모르기에 설마설마하며 속아 살아가는 것이지 앞일을 확실하게 안다고할때 자살해 버릴사람은 얼마일것인가. 점쟁이 집으로는 가난한 사람보다 가멸지고 벼슬 높은 사람들 쪽의 발길이 더 뻔질나다고 한다.「재미」를 넘어선다 해도 「참고」정도면 모를까 너무 빠져드는건 옳은 자세라 할수 없겠다.
  • 자유와 행복과 일/석지명(일요일 아침에)

    이번 설에 나는 많은 시간을 눈을 치우는 데 보냈다.그런데 땀을 흘리면서도 묘한 기쁨을 느꼈다.일하는 기쁨이었다. 자유란 무엇인가.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행복이란 무엇인가.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하겠는데 그것이 가능한가.그렇지 않다.인간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을 골라서 할 수가 없다.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첫째,인간의 변덕스런 마음이 만들어낸 문화가 어떤 일은 귀한 것으로,다른 것은 천한 것으로 정해 놓고,한 쪽으로만 사람들의 마음이 쏠리게 한다.둘째,인간의 권태성은 같은 일을 계속해서 좋아할 수 없게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가.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되 인연이 나에게 맡겨 주는 일을 좋아하는 수 밖에 없다.인간은 습관의 동물이다.어떤 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오직 그 일을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좋아하도록 익숙해 있느냐 마느냐에 있을뿐이다.세상에서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별 것이 아니다.나에게 잘 해 주는 사람이다.좋은 일이라는 것도 별 것이 아니다.나에게 보람과 기쁨을 주는 것이다.그런데 보람과 기쁨은 일 그 자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다. 선사님들은 『선도 생각지 말고 악도 생각지 말라』고 한다.좋은 일이나 나쁜일,착한 일이나 악한 일이 별도로 없다고 한다.나쁜 일을 돌리면 좋은 일이 되고,악한 일을 돌리면 선한 일이 된다.게으름을 피우고 놀고 먹는 것이 편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노는 일은 그대로 힘들다.못된 일만을 저지르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악행은 그대로 불안하다.건달이나 악당은 오로지 한 습관을 선택한 결과일 뿐이다. ○저마다 느낌의 차이 옷 장사를 해서 큰 돈을 번 부부가 있었다.그런데 돈을 모으는 것은 좋지만 도무지 쉴 틈이 없었다.일하지 않고도 일생을 살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진 그 부부는 놀기 위해서 마침내 가게를 팔았다.그러나 일하지 않은 지 3개월여쯤 지났을 때,노는 일에 대해서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나중에는 노는 일이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일하는 것이 즐거웠다.일이 고될수록 더 진한 삶의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절에 가면 이런 이야기를 흔히 듣는다.한 수도승이 도를 묻기 위해서 유명한 선사님을 찾아갔다.그 선사님은 장작을 패고 있었다.수도승은 선사님에게 『도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다.선사님은 『지금 가르쳐 준 것이 무엇이냐?』하고 되물었다.수도승은 여기서 앞뒤가 꽉 막혀 버렸다.자신의 질문을 미리 알고 이미 답을 해 주었다고 하는 선사님에게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수도승은 그곳을 떠나 10년동안 선사님의 가르침을 생각했다.어느날 문득 깨침을 얻었다.그는 선사님을 다시 찾아가서 『일이 도라고 해도 허물이 남습니다』라고 말했다.선사님은 그 수도승의 공부를 인가해 주었다. 선사님의 가르침과 수도승의 깨침은 온갖 방면에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궁극적인 도에 대해서는 우리는 아는 체 할 수가 없다.단지 수도승의 깨침을 지금 우리가 말하려고 하는 일과 관련시켜서 방편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도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것을 좋아하는데 있다』고 말이다. ○이제 마음을 다잡자 어떤 선사님은 『일하지 않은 날은 먹지도 말아라』고 가르쳤다.이 가르침을 음식이 풍부한 요즘 말로 고치면 『일하는 날이 참답게 사는 날이다』가 될 것이다.설을 맞아서 지난 며칠동안 충분히 쉬었다.이제 마음을 다잡고 자유와 행복을 만들어 낼 「일」을 설계해야 할 참이다.
  • 부부간엔 평절/가자먼저 세배/올바른 세배·덕담 나누기

    ◎차례 올리고 떡국 먹기전 세배의식/방문 인사는 친척·마을어른 순으로/절한후 아랫사람이 먼저 새해인사/액수 큰 세뱃돈은 서로에게 부담줘 설날 웃어른에게 새해인사로 하는 절을 세배,새해인사로 하는 말을 덕담이라고 하는것은 모두 잘 아는 사실.한국전례연구원의 김득중원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설무렵이 되면 세배를 차례 모시기전에 하는지,아침떡국전에 하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설날 차례를 지내는 가정에서는 차례를 지낸 다음 세배의식을 행하고 음복과 함께 아침 떡국을 먹으며 그렇지않은 가정에서는 온가족이 모여 세배의식을 행한 다음에 아침떡국을 먹는것이 바른 순서』라고 일러준다. 또 다른집에 사는 어른에게는 아침을 먹은 다음에 찾아가서 세배를 하되 마을어른 선생님 상급자등은 먼저 집안의 친척어른들께 세배한 다음 찾아가서 하는것이 바른 순서.그러나 거리관계로 부득이한때는 바꿔해도 무관하다. 세배를 할땐 우선 큰 방에 온가족이 설빔을 차려입고 모여 상좌를 북으로 간주해서 제일 어른이 북쪽에 서고 차례대로 그 남쪽에 서며 남자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여자는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서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선다. 세배를 할땐 여러계층의 가족이 동참하게 되는만큼 순서를 지켜야 하는데 부부간의 세배가 첫째이다.이는 「부부일신」으로 배우자와 먼저 절을 한다는것은 즉 자기자신에게 가장 먼저 새해 절을 한다는 의미로 부부는 평절로 맞절을 한다음 서서 『올해도 더욱 건강하세요』처럼 서로 덕담을 한다. 그다음 제일 큰어른과 그 배우자가 자리에 앉으면 그아래 모든 가족이 동시에 세배를 올린다.이어서 다음 차례의 어른과 배우자가 자리에 앉고 다시 그아래 가족이 동시에 세배를 드린다.자손들이 웃어른께 새배를 올릴땐 먼저 세배를 한후 일단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절하는 사람중 가장 웃사람이 『아버지,어머니 새해에도 만수무강 하세요』하며 새해 인사를 여쭈면 어른이 『오냐,너희들도 새해엔 소원성취 해야지』라고 긍정적인 내용으로 덕담을 내린다.이런 식으로 마지막 아랫사람이 바로 위의 오라버니나 누이에게 세배할때까지반복을 하고 세배를 끝낸다. 한편 세뱃돈은 절값이 아니라 절을 잘한것에 대한 칭찬으로 내리는 상금이다.따라서 주는 사람에게 부담이 되고 받는 아이들이 재산적 가치로 느낄만큼 너무 큰 액수여서는 안된다.또 세배의 의미를 알만큼 철이 든 사람에게는 세뱃돈을 주지 않는것이 당연하다.
  • 북한의 설(외언내언)

    북한에는 두종류의 명절이 있다.「사회주의명절」과 「민속명절」.사회주의명절은 양력설(1월1일) 김정일생일(2월16일) 김일성생일(4월15일) 노동절(5월1일) 정권창건일(9월9일) 노동당창건일(10월10일) 헌법절(12월27일)등이다.애초에는 3·1절(3월1일)과 해방절(8월15일)도 명절로 지정했으나 62년 명절에서 빼버렸다. 북한 최대의 명절은 김일성생일.「민족의 명절」로 이틀간을 쉬게 되며 「명절공급품」이란 이름아래 고기·과자·술등 특식이 가족수에 따라 배급된다.김정일생일도 아버지생일 못지않게 성대하게 치러진다. 「민속명절」로는 음력설과 추석이 지정돼있다.민속명절을 「봉건적잔재이며 낡은 풍속」이란 이유로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88년에 추석이,89년에는 음력설이 명절로 부활했다.그러니까 북한에서도 양력설·음력설 모두가 명절인데 우리와는 달리 양력설을 「설」이라고 부르고 음력설은 「음력설」이라고 부른다.뒤늦게나마 민속명절을 부활시킨것은 잘한 일이지만 사회주의명절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하루를 쉴수 있을뿐명절공급품도 없고 성묘나 다례도 찾아 볼 수 없다.대신 김일성주석에 대한 숭배의식은 반드시 치러야 한다.양력설이든 음력설이든 북한주민들은 설날아침 마을 가까이에 있는 김일성주석의 동상을 찾아가 경배를 드리고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북한당국이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당연하다.김일성주석이야말로 「어버이」니까….「어버이」에 대한 경배가 끝나면 어른들은 집에서 쉬고 어린이들은 널뛰기 자치기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지난 6일 귀순한 북송재일교포 정기해씨는 『극심한 식량난 때문에 가축용 배합사료가 주식으로 배급되고 있으며 그나마 이것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몇달동안 감자만으로 끼니를 때웠다』고 증언했다.이런 궁핍한 생활속에서 명절을 맞은들 무엇이 즐겁겠는가.북한이 대체식량으로 개발한 옥쌀(옥수수가루로 만든 쌀)이나 혼합국수(옥수수가루와 감자가루를 섞어 만든 국수)도 먹을 수 없는 형편이라면 북한의 설은 차라리 고통스런 명절이 아닐수 없겠다.
  • 설/상차림/차례법/격식보다 정성 다하는게 중요

    ◎주부클럽 도움말로 알아보면/상차림/2열 어동육서,5열 조율시이로 진설/메대신 떡국외엔 일반 제사상과 같아/차례법/남 동,여 서쪽 위치… 2번·2번반씩 반례/헌작 끝난뒤 방 밖에서 3∼5분 기다려 설날 아침엔 일찍 일어나 먼저 집안팎을 정리하고 설빔으로 갈아입은후 조상에게 차례를 지낸다. 설날 아침의 차례상은 기제사의 메(제밥)나 갱(제사국)대신 설날의 특식인 떡국을 올리는것만 다를뿐 나머지는 일반제사의 제수와 특별히 다를점이 없다.또 제사의 진설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제사에 기본적인 차림은 있으나 그것도 가문마다,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므로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집안형편에 맞춰 제수를 장만하고 자신의 집안 전통에 따르되 정성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 한결같은 의견이다. 주부클럽연합회(문의전화 752­4229)생활관 예절지도교사 이종희씨의 도움말로 서울·경기지역 중심의 설 차례상 차리기 요령을 알아본다. 먼저 북쪽을 향해 병풍을 펴놓고 상을 편뒤 상 가운데 신위나 사진을 둔다.그다음 신위앞 1열에 시접과 잔반 떡국,2열에 어동육서·동두서미의 원칙에따라 서쪽부터 국수 육적 전 소적 어적(조기)어전 고물떡을 올린다.다음 3열에는 육탕 소탕 어탕등 탕을 홀수로 놓고 4열에는 포(북어 고기 오징어 문어 말린것중 한가지)와 나박김치 고비(고사리)시금치 도라지 간장 식혜(건더기만)를 놓으며 5열은 홍동백서의 순으로 밤 배 곶감 약과 한과 사과 대추를 올린다.아니면 조률시이 원칙에따라 대추 밤 곶감 배 약과 강정순으로 진설한다. 이때 2열의 국수는 고물떡이 있을때 함께 놓는 것이며 3열의 탕은 간소한 상차림을 위해 합탕으로 놓아도 무방하고 밝은때 지내기 때문에 촛불은 안켜도 된다.또 기제사에서는 술을 3번 올리지만 차례때는 한번만 올리는것이 다르다. 차례를 지낼땐 신위를 중심으로 동쪽에 남자자손이,서쪽에 여자자손이 자리를 한다음 제주가 꿇어앉아 강신잔에 술(혹은 다)을 따라서 3번 나누어 모사그릇에 비운다음 2번 절한다.그런다음 왼쪽집사가 잔반을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잔반을 받아들어 오른쪽 집사 잔반에술을 따라준후 제주는 오른쪽 향위로 잔을 3번 돌리고 다시 오른쪽 집사에게 주면 집사는 잔을 받아 상에 올린다.제주는 젓가락을 접시에 3번 구른후 음식위에 놓는다.헌작한 사람과 절을 하는데 남자는 2배,여자는 2배반 절(과거엔 남자 2배,여자 4배 혹은 여자는 아예 참여하지 않음)을 한다.헌작이 끝나면 음식을 드시라는 의미에서 3∼5분동안 방문을 닫고 기다린다.시간이 지나면 인기척을 3번하고 들어가서 제주를 비롯한 차례 참석자들은 절을 한다.지방은 불사르고 제수를 상에서 내려 다시 상을 보아 자손들끼리 음복한다. 절을 할때 손의 위치는 남자의 경우 왼손을 위로 하고 여자는 오른손을 위로 한다. 한편 차례를 모실때 만일 부모·조부모 4분을 모셔야 하면 한상을 차려서 조부모 두분을 먼저하고 시접 잔반 떡국등을 바꿔 부모를 그다음에 모실수는 있지만 아버지와 할머니처럼 대를 섞어서 할수는 없다.
  • 다리:상/구릉·계곡따라 80여개 산재(서울 6백년 만상:10)

    ◎영제­옥천­금천교 궁중위험 갖춘 “조형예술”/세종때 건립 수표교는 치수의 지혜 엿보여 다리는 떨어진 두곳을 잇는 매개체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단순히 지나는 곳만이 아닌 「만남」의 중심이요 무대인 것이다. 그해 신수가 좋아진다고 믿으며 정월 대보름달 아래서 청춘남녀들이 즐긴 다리밟기와 불가에서 절을 지을 때 속세와 불국토,즉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믿고 다리를 함께 놓은 것에서 다리의 이같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다리는 인류가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강이나 개천 또는 언덕과 산을 쉽고 편하게 건너거나 넘기 위해 놓여진 것이다.오늘날 토목학자들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 가운데에 가장 길고 큰 것이 다리이기에 다리를 「토목구조물의 꽃」이라 일컫는다. 내사산과 외사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의 서울은 한복판에 청계천이 흐르는등 구릉과 계곡이 많아 다리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서울에 얼마나 많은 수의 다리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선조 고종때를 전후해 작성된「한경식략동국여지승람」 「수전지도」 「서울지도」등에 따르면 서울에 산재해 있던 다리는 성안 76개,성밖 10개등 대략 86개로 알려지고 있다.경복궁의 영제교를 비롯,창경궁의 옥천교,창덕궁 금천교등 궁궐안 다리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다리들은 정전에 이르는 외당앞에 명당수가 흐르는 어구위에 건설된 것이어서 단순한 다리기능외에 다양한 조형미를 연출한 예술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제교는 다리바닥의 가운데가 높은 어도이고 좌우는 낮은 삼도로 이뤄져 신분에 맞게 다니도록 했다.폭이 10.2m로 어가의 행렬이 지나는데 꼭 맞고 난간과 멍엣돌에는 재앙을 막고 왕조를 지키기 위해 귀면이나 석수를 조각했다. 영제교는 새 왕조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경복궁을 지을 때 함께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원래 근정전앞 총독부청사 뒤쪽에 있었으나 일제가 총독부건물을 지으면서 헐렸다 지난 74년 복원됐다. 궁중다리 가운데서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옥천교 역시 삼도로 되어 있으며 중앙의 벽면에 삼각형 모양의 귀면을 조각해 벽사시설을 했다.창덕궁 금천교는 1411년에 공조판서 박자청이 감독한 현존하는 궁안의 돌다리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난간 밖으로 내민 멍엣돌에 용두상이 조각돼 있다. 그러나 시정의 일반시민들의 귀에 가장 익은 다리이름은 아마도 수표교일 것이다. 수표동 43번지와 관수동 152번지 사이의 청계천에 있던 이 다리는 1420년 세종때 건설될 당시의 이름은 마전교였다.그러다 세종 23년에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다리 돌기둥에 「경진지평」넉자를 새겨 수표석을 세워 수량을 측정하면서 수표교로 불리게 됐다.청계천복개에 따라 철거된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안에,수표는 홍릉의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 옮겨졌다 현재는 여주 영릉에 보존돼 있다.이 다리는 교각이 물의 저항을 덜 받도록 네모와 육모기둥의 석재를 2단으로 세워 우리 조상들의 이수·치수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서울의 다리로 살곶이다리를 빼놓을 수 없다.한자말로는 전곳교인 이 다리는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 남쪽에 위치한 돌다리로 살곶이앞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폭 5.95m,길이 75.75m로 조선시대에 세운 교량으로는 가장 긴 살곶이다리는 세종 21년(1439년)에 가교공사를 시작했으나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착공 60여년만인 성종 14년(1483년)에야 승려들을 동원하여 가까스로 완성했다.기록에는 『스님이 살곶이다리를 놓으니 그 탄탄함이 반석과 같다 하여 성종이 제반교라 어명하였다』고 전한다.대원군때 경복궁을 지으면서 모자라는 석재를 보충하기 위해 살곶이다리의 석재 절반을 갖다 쓴데다 1920년 장마에 떠내려가 폐교상태였다 지난 77년 서울시가 복원했다. 이름없는 수많은 다리와 달리 한강에 다리가 생겨나고 서울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한강교량의 건설이 서울의 발전과 맥을 같이하게 되면서 다리는 통행로 본래의 기능을 되찾는다.
  • 탁월한 백제공장들(백제를 다시 본다:4)

    ◎“6∼7세기 문화선진”… 신라·일에 기술 전원/황룡사 9층탑·안압지 백제장인 손길/와·노반박사 일서 가람 짓고 향로 제조/금속공예·건축기술 당시론 최고수준… 장인들은 관인으로 대우 신라통일기 장인들의 탁월한 기량을 얘기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이 이른바 만불산이란 공예품이다.신라 경덕왕은 당나라의 대종황제가 불교를 숭상한다는 소문을 듣고 공장에게 명하여 만불산을 만들게 했는데,「삼국유사」에는 그 모양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에 의하면 만불산은 한 발쯤 되는 가산에 험한 바위와 괴이한 돌,동굴을 장치하여 여러 구역을 만들었다.각 구역마다 춤추며 노래하는 사람의 모습과 각국의 산천형상을 새겨넣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벌과 나비가 날고 제비와 참새가 춤을 추어 언뜻 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궁남지 본떠 건립 그 뿐이 아니다.그 한가운데는 크고 작은 만불을 안치하고 주위에는 각종 장식품,천여구의 승려 조각과 누각 그리고 자줏빛 종을 벌여놓았다.바람이 불어 종이 울면 승려들이 모두엎드려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고 은은히 염불하는 소리가 나도록 기막히게 장치되었다고 한다.그리하여 이 만불산을 선물로 받은 대종은 『신라의 기교는 하늘의 조화이지 사람의 기교가 아니다』라고 깊이 탄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같은 신라의 기술은 본래 백제로부터 전수받은 것이었다.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신라의 호국사찰 황용사 9층탑을 제작한 것은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였다.신라는 삼국통일 직후 왕궁 옆에 못을 파서 안압지를 만들었는데,그 의장이나 기법은 모두 백제의 궁남지를 본뜬 것이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무왕 35년(634)3월에 궁성 남쪽에 못을 파고 물을 20여리나 끌어들여 궁남지를 만들었는데 못언덕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못속에 인공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에 비겼다고 한다.뒤에 못가에 망해루를 지어 국왕이 신하들과 더불어 이곳에서 연회를 즐겼다.이기백선생이 추리하듯 백제를 멸망시킨 직후 사비도성에 입성한 신라의 최고지배층은 이 궁남지와 망해루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듯하다. 그리하여 당나라를 상대로 한창 피나는 전쟁을 치르는 긴박한 상황속에서도 서둘러 안압지와 임해전을 축조했다.앞서 얘기한 경덕왕때 황룡사 연기법사의 발원으로 화엄경을 베끼는 사경작업이 진행되었는데,16년전 세상에 공개되어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화엄경사경의 발문을 보면 광주,남원,장성,고부등 옛 백제지역 기술자들이 종이를 만든다거나 경문을 쓰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백제는 그 지리적 조건에 힘입어 일찍부터 여러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했다.건국 초기에는 북쪽에 인접한 낙낭군을 통하여 중국 한대문화를 받아들였다.낙랑군이 멸망된 뒤로는 고구려와 접촉했다.그런데 고구려는 중국 뿐아니라 만리장성 이북의 유목민족과도 접촉이 많았기 때문에 백제는 고구려를 통하여 야성적인 호주문화까지 받아들인 셈이다. 한편 백제는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서해안을 끼고 있어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하여 바다 건너 양자강유역의 세련되고 우아한 중국 남조문화와 접촉했다.백제문화의 특징은 이처럼 각지에서 흘러들어온 외래문화에 끊임없이 자신의 독자적인 미의식을 가미하여종합하려고 한 점에 있다.삼국 중 가장 기름진 농경지를 확보하고 있어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즐겼던 백제였던 만큼 느긋한 마음으로 풍요로운 예술을 꽃피울 수 있었다. ○기술자 박사 칭호 흔히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고대의 기술자들을 한결같이 노예계급으로 보면서,삼국시대의 명품들은 어디까지나 지배층에 강제된 노예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견해이다.삼국시대 및 통일기 신라의 기술자들은 국가로부터 전문 박사칭호를 부여받았을 뿐아니라 관등까지 받은 어엿한 관인신분이었다. 일본측 역사서인 「일본서기」에는 실로 많은 백제 기술자들이 등장한다.6세기 초 이래 백제로부터 일본조정에 유교경전이나 의학,역학,역학을 지도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끊임없이 파견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뒤로는 사찰건물이나 불상,기와,향로를 제작하기 위해 노반박사,와박사 등이 파견되었다.현재 알려져 있는 수많은 금동제 불상이나 무령왕릉에서 나온 각종 금속제품을 통해서 알수 있듯이 당시 백제의 금속공예기술은 최고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서기 588년 일본왕실의 외척으로 권세가였던 소가(소아)씨가 법흥사(일명 비조사)건립에 착수했을 때는 실로 많은 백제의 일급 기술자들이 초빙되어 갔다.당시 일본에 건너간 노반박사 백매순은 덕장이란 관등을 갖고 있었는데,그는 문헌기록을 통해서 확인되는 유일한 백제의 금속공예기술자이다.한편 「원흥사가람연기변류기자재장」에는 그를 「누반사」백매순이라 표기하였는데 이는 그가 다름아닌 누금세공기술자였음을 말해주고 있다.누금세공이란 금판와 금입에 금판을 붙이는 방법이다. 사비시대의 백제는 대외관계에 있어서나 국내정치면에서 실로 다사다난한 때였다.하지만 문화적으로는 백제가 그동안 축적한 기량이 최대로 발휘된 일대 황금시대였다.바야흐로 국교의 지위를 차지한 불교가 이 시기 백제문화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한편으로는 도교사상이 스며들어 전란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유토피아사상이 싹트게 했다. ○문화 견인차 구실 야심만만한 정복군주였던 무왕은 불교와 도교 모두에 심취해 있었다.그가 궁남지에 인공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에 비긴 것은 도교사상에서 영향받은 것이다.한편 그가 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한 것은 유명한 사실인데 이밖에도 그는 부소산성과 마주보고 있는 금강 대안의 울성산성 근처에 또 하나의 호국사찰을 완공했다.바로 왕흥사였다. 왕흥사는 오랜 공사끝에 무왕 35년(634)2월에 낙성되었는데,왕은 때때로 이 절을 찾았다.무왕은 먼저 금강 언덕에 있는 바위에서 멀리 부처를 바라보며 예불을 한다음 배를 타고 절에 가서는 법회에 모인 승려들에게 향을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향을 피워 부처와 보살을 공양하기 위해서였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그토록 융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향을 피우는데 필수적인 이 시대의 향로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마침 작년 말에 부여 능산리에서 금동향로가 나온 것은 기적같은 느낌이 든다.의장의 풍부함이라든가 현란한 장식성으로 볼 때 문득 신라의 만불산을 연상케 하는 이 진품의 작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이 끝내 유감일 따름이다. ◎백제 기술집단/노반박사는 금속공예의 명인/와박사도 뛰어난 녹유계통의 토기 만들어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의 기록을 통해 백제의 기술과 공장들의 모습을 가늠해 왔다.그러나 최근 이루어진 고고학 발굴에서 그 생생한 백제 기술의 실상을 비로소 가늠하게 되었다.그 대표적 케이스의 하나가 지난해 연말 부여 능산리 출토 금동용봉봉래산향로라 할 수 있다. 세기적 보물이기도 한 능산리 금동향로의 출현은 백제의 기술과 우선 노반박사의 존재를 떠올리게 했다.「일본서기」등과 같은 일본쪽 기록에 보이는 백제최고 기술집단의 하나인 노반박사는 금속공예의 명장이고,바로 능산리 금동향로를 제작한 기술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들의 활동은 불교미술에도 큰 영향을 끼쳐 불상이나 탑의 상륜부 등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일본 나라(나양)의 이소노카미(석상)신궁에 비장된 백제전래품 칠지도는 백제의 금속공예술이 이미 상당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새김글씨를 금으로 상감한 4세기경의 칠지도는 금속의 정련과 주조기술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따라서 6∼7세기경 사비시대 백제의 기술은 능산리 금동향로를 만들어낼 만큼 더욱 발전되었다.심미안적 세공에 의해 제작된 틀,소재의 정선,주조술,가공,도금술이 어울려 이룩한 걸작의 종합금속예술품이 능산리 금동향로인 것이다. 그리고 와박사 역시 넓은 영역에 걸쳐 활동한 공장이다.단순히 건축물의 지붕을 덮는 기와 뿐 아니라 테라코타불상,토기 제작에 관여했을 것이다.특히 삼국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녹유계통의 토기를 만들어 낸 이들도 바로 와박사로 보여진다.녹유토기는 후대 고려청자의 모태를 어느 정도 이루었고,사비시대 백제의 대가람이었던 익산 미륵사 터에서 발견되고 있다.
  • 파출소 경관이 잡은 떼강도/박찬구 사회부기자(현장)

    ◎비번날 골라 3일잠복끝에 수갑 채워 『좁은 골목길에서 20여분동안 차량 추격전을 벌이면서 강도들을 놓치면 끝이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 창신1파출소 소속 김인호경장(40·가명)은 1일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한 떼강도를 검거하느라 지난 닷새동안 겹친 긴장과 피로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듯 목소리마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평소 알고 지내던 한시민으로부터 사무실 강도들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청년들이 성남시 금광동의 현대다방을 아지트로 삼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김경장은 하루 20시간씩의 방범근무를 해야하는 짝수날짜를 피해 비번인 지난27일과 29일 하오 두차례에 걸쳐 다방주변에서 잠복근무를 하면서 사무실강도단 4명이 거의 매일 이 다방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김경장은 비번인 31일을 범인검거를 위한 D데이로 잡고 이날 하오5시30분쯤 수갑과 가스총등으로 무장하고 파출소부소장 조용필경사(54)와 신호섭경장(35·가명)등과 함께 자신의 엑셀승용차를 몰고 이 다방앞 노상주차장에 도착했다. 『하오7시쯤 일당중 1명은 쏘나타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고 40분쯤뒤 나머지 3명이 프린스에 올라탔습니다』 대낮에 사무실을 털 정도로 노련하고 대담한 범인들은 곧 자신들이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폭6m쯤의 좁은 길을 시속40㎞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핸들을 꽉 붙잡고 불과 1m간격으로 이들을 추격할때는 긴장감으로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왔고 10평남짓의 방 두칸짜리 연립주택에서 고생만시킨 처와 두아들의 얼굴이 눈앞에서 자꾸 아른거렸습니다』 하오8시쯤 2㎞남짓 골목길을 필사적으로 달리던 범인들의 차가 왕복2차선도로를 나서자 김경장은 중앙선을 넘어 대각선방향으로 프린스를 가로 막았다. 순간 김경장은 스프링처럼 차에서 내려 범인들이 반항할 틈도 주지않고 주범 박흥순씨(29)등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경찰의 위신을 되찾는 순간이었다.
  • 국경일 기념식 일반시민 초청/총무처,희망자 접수

    정부는 앞으로 국경일기념식에 일반시민들의 참석을 허용하기로 했다. 총무처는 29일 오는 3·1절기념식부터 이를 시행하기로 하고 전체초청자 3천명 가운데 10%인 3백명을 일반희망자로 충원하기로 했다. 3·1절기념식 참석을 원하는 시민들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총무처 의정국 의정과나 정부합동민원실 민원처리1과에 전화나 우편을 통해 다음달 5일까지 신청하면 된다.
  • 각국의 공휴일/일본 종교휴일없고 춘분·추분 논다(세계의 사회면)

    ◎미 기념일 요일로… 연휴 많도록 지정/영 복싱데이 집배원·고용원에 선물/유럽­기독교 동서남아­회교 관련 휴일 많아 세계각국의 공휴일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종교관과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이 깔려있다. 또 같은 문화권이면서도 서로 다른 독특한 휴일을 보내기도 한다. ○국왕탄생일도 휴무 가까운 일본은 연간 모두 14일(일요일 제외)을 법정공휴일로 정하고 있다.1월1일 원단을 포함,1월15일 성인의 날,2월11일 건국기념일,4월29일 녹색의 날,9월15일 노인의 날,10월10일 체육의 날,11월3일 문화의 날,11월23일 근로감사의 날등을 매년 경축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는 석가탄신일·크리스마스등 종교와 관련된 휴일이 일체 없는 반면 춘분(3월21일)추분(9월23일)등 계절과 연관된 휴일이 있는 점이 특색이다. 헌법기념일인 5월3일,국민의 날인 5월4일,어린이날인 5월5일은 항상 3일간 연휴여서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적으로 여행객들이 크게 붐비고 있다.국왕생일(12월23일)도 휴일로 정해놓고 있는데 이는 여왕탄생일인 6월13일을 휴일로 정한 홍콩·호주등과 비견할 만하다. 종교와 관련해서는 미주·유럽대륙에서는 기독교와 관련된 휴일이,동·서남아시아에서는 회교와 관련된 기념일이 많은 것이 당연. ○성인 제삿날도 있어 기독교권인 유럽등지에는 11월1일 핼로매스라는 휴일이 있다.「모든 성인의 날」이라는 뜻의 이 날은 기독교성인과 고유의 기념일을 갖지 못한 이들을 제사지내기 위한 날로 「만성절」이라고도 한다. 이 전날(10월31일)은 영국 켈트족의 고유의식인 핼로인데이로 온갖 기괴한 모양의 가면을 쓴 가장무도회가 열리며 선물을 나눠주는 풍습이 있다.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다음날 12월26일에 복싱데이(Bonk Hohday)라는 휴일이 있는데 이날은 은행이 문을 닫는 날이다. 미국의 경우는 모든 공휴일을 날짜가 아닌 요일로 지정해두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가능한한 월요일을 휴일로 지정,연휴가 되도록 배려하고 있는데 워싱턴 탄생기념일은 2월 셋째 월요일,노동절은 9월 첫째 월요일 등으로 정해놓는 식이다. ○일­월 연휴 연4회 물론 7월4일 독립기념일처럼 날짜로 정해놓을 수밖에없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밖에 미국에는 1월 넷째 일요일인 마틴 루터 킹목사의 탄생기념일,5월 마지막 월요일인 현충일,10월 둘째월요일인 콜럼버스기념일,11월11일의 재향군인의 날등이 휴일로 돼있다. 회교국가에서는 성지순례가 끝나는 12월10일(이슬람력)의 대희생제,단식이 끝난후 3일간 계속되는 라마단,이슬람력 정월에 해당하는 무하르람이 가장 대표적인 명절이다. 태국에서는 불탄일을 전후한 4월초와 4월8일이후 두번째 수요일인 「송크란절」이 최대의 명절로 올해에는 4월14일이 송크란절이다. 대만에서는 11월1일 장개석 전총통생일,9월28일 공자탄생일및 교사의 날등이 중요한 휴일이며 파라과이에서는 우리의 광복절인 8월15일이 「아순시온시 설립기념일」로 휴일로 지정돼있다.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는 3월8일 국제여성의 날,5월1·2일 국제연합의 날도 휴일로 보내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1월10일을 마호메트 승천일,8월20일을 마호메트 탄신일로 정해놓았는데 크리스마스도 휴일로 정해놓은 점이 이채롭다.
  • 10명이 창극·판소리·민속악 공연/「작은 창극단」 운영

    ◎국립극장 「국악의 해」 사업계획 발표/완창 판소리 작년보다 늘려 10회로 창극대본 일어·영어로 번역 작업도 국립극장은 「작은 창극단」의 방문공연을 통해 창극을 적극적으로 보급하고 외부의 국악관련행사에 보유 장비와 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악의 해」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국립극장은 올해 2회의 정기공연과 10회의 완창판소리 공연등 지금까지 해오던 국악공연외에 「작은 창극단」을 운영하고 국경일기념 판소리공연을 가지며 「국악의해」를 기념하는 신작 창극을 공연한다. 「작은 창극단」은 10명 정도의 소규모 출연인원이 45분내외로 창극과 판소리,민속악을 공연하는 프로그램으로 학교와 공단 사회단체등 올해 모두 10곳을 찾아갈 계획이다. 국경일 판소리공연은 국경일에 그날의 의미를 되새길수 있는 내용의 판소리를 그 역사의 현장에서 공연하는 프로그램.3·1절에는 「류관순전」을 탑골공원과 충남 목천 아우내장터에서,광복절에는 「윤봉길의사전」을 충남 덕산 윤의사 생가에서 공연할 예정이며 개천절과 제헌절을 위해서는 창작판소리 2편을 의뢰해 놓았다. 「국악의해」기념공연은 9월29일부터 10월12일까지 14일동안 창작창극「천하명창 임방울」을 올린다. 국립창극단의 올해 정기공연 레퍼토리는 「흥보가」와 「심청가」.「흥보가」는 2월25일부터 3월3일까지,「심청가」는 7월7일부터 13일까지 공연된다.또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소극장에서 열리는 「완창판소리」는 지난해보다 1회 늘려 2월26일 유영애의 「흥보가」를 시작으로 성창순 김소영 김경숙 김일구 안숙선 이임례 박동진 민소완 왕기석등 명창들이 줄지어 나선다. 국립극장은 이밖에 국악상품의 국제화를 위한 기초작업의 일환으로 창극대본을 영어와 일어로 번역하고 문화학교의 국악관련 강좌를 확대한다.또 국립창극단과 국립극단 국립무용단원을 외부 국악행사에 적극 참여토록 하는 한편 대·소극장과 의상·소품도 국악공연에 우선 대여토록 했다.
  • 연세대강사 김찬호씨/우리 집에선…:2(녹색환경 가꾸자:6)

    ◎음식쓰레기 물기 말려 마당에 매립 연세대에서 문화인류학을 강의하고 있는 김찬호씨(32).김씨의 강의를 듣는 1·2학년 교양반 학생들은 다른 강의실에서 한번 쓰고 버린 이면지를 시험답지로 나눠받고 처음에는 황당해했다. 『절더러 좀스런 남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낙동강사태등 환경오염 문제가 발생했을때 국민들의 반응은 분노에 가깝지요.그만큼 위기의식은 광범위하게 퍼져있으나 환경당국과 기업탓만하지 당장 자신의 불편함은 감수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김씨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회원이며 서울YMCA시민회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주 2∼3회 환경교육 강의를 하고있다.그의 모든 생활은 환경살리기 실천으로 연결돼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서 동갑내기 아내 이정주씨와 딸 지수(4) 지예(4개월)네식구가 전세들어 살고 있는 마당있는 그의 집에는 흥미로운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지금은 물이 말라 볼 수 없지만 가을까지만 해도 마당 한켠에 있는 낮은 연못에서는 미꾸라지가 있었다.처음 이사온 지난 여름 연못에 모기가들끓어 분무식 살충제를 뿌렸으나 공해에 문제가 있다싶어 생태학을 전공하는 친구로부터 자문을 받아 미꾸라지를 키웠던것.시장에서 30마리를 사 연못에 넣은 결과 하룻만에 모기가 없어지는 효과를 보았다고. 이집에서는 또 좀처럼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있다해도 학생들이 앞뒤 빽빽히 써낸 리포트용지와 신문지 뿐.젖은 음식쓰레기는 거의 없다. 『음식 쓰레기나 종이를 그냥 버리면 죄책감이 들어요.일종의「결벽증」인가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우리나라 가정쓰레기중 가장큰 골칫덩어리는 물기많은 음식물쓰레기.김씨는 일단 음식쓰레기 양을 최대한 줄이고 어느정도 물기를 말린뒤 마당에 묻어 자연적으로 썩게한다.요즘같은 땅이 어는 겨울에는 삽질이 힘들지만 횟수를 줄일뿐 계속하고있다. 폐지를 분리해 내놓는데도 김씨의 잔손길은 많이 간다.문밖에 내놓기전 학생들이 리포트로 낼때 찍어오는 호치키스를 일일이 뗀다.호치키스나 박스종이의 굵은 철사줄등이 재활용공장의 폐지 절단기 고장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코팅된 종이는 비닐을 뜯어내고 비닐봉지는 따로 분류해 사온 가게에 모두 돌려준다.장바구니를 이용,비닐봉지는 될수록 받지않는다. 아이스크림을 사러갈때도 비닐사용을 줄이기 위해 집에 있는 검정비닐봉지나 그릇을 들고 가서 담아온다. 김씨의 이같은 환경운동 실천에는 아내 이씨의 협조가 필수적이다.연애시절 강원도 춘천 소양호에서 뱃놀이를 하면서도 물에 뜬 쓰레기를 하나 가득 주워오기도 했다.낭만적인 감정의 기억보다 쓰레기를 주운 사실이 더 기억에 남는 이들이다. 아이를 목욕시킨 물은 빨래하면서 쓰고 이 물은 또 욕조에 담아 두었다가 화장실에 사용한다. 추운 겨울 외출때도 1회용기저귀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두아이를 기르면서 10개들이 1회용 기저귀 한통도 쓰지 않았다. 어릴때부터 어머니 박경옥씨(65)의 체질화된 절약생활로부터 자신의 환경의식이 싹터온 것같다는 김씨는 『요즘 사람들이 쉽게 버리는 생활태도를 조금씩만 고쳐도 환경오염은 많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김씨는 『조그만 실천이지만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나처럼 해봐라」하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좋다』고 말했다. 김씨 옆에는 딸의 장난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모아놓은 아이스크림 나무막대가 가지런히 눈에 띈다.
  • 5월1일 근로자의 날로 확정/당정,노동절 명칭은 안쓰기로

    정부와 민자당은 25일 올해부터 5월1일을 근로자의 날로 정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날 상오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법무·노동부,총무·법제처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합동당정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당정은 처음에는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현행법에 3·1절등 4대 경축일에 한해 「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고 일부 계층에서 반발하고 있는 점등을 감안해 이름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민자당의 한 정책관계자는 이와 관련,『법으로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키로 했으나 노동계에선 노동절이라는 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해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은 다음달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 개정안을 의원입법으로 제출,통과시킬 방침이다.
  • 「수제천」에 우는 아이와 국악교육/임영숙(서울광장)

    올해 고등학생이 되는 딸 아이가 갓난아기였을때 국악의 백미로 꼽히는 「수재천」을 들려주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또는 우리 민요에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수제천」만 들려주면 무서운듯 손을 내젓고 울어댔다. 그 아이가 태어나기전 「국악의 가락을 찾아서」란 시리즈를 신문에 연재하면서 「수제천」을 처음 듣고 이른바 「피가 땡기는」 체험을 나는 했다.그래서 호들갑스러운 글을 썼다.『…「수제천」에는 태고의 울림이 있다.천년의 시간이 그 속에서 흐른다.…담담하게 흐르는 천년의 시간은 우리 핏속에 흐르고 있는 시간이다.그래서 「수제천」은 우리들의 가슴에 그냥 와 닿는다.가슴으로 받아들인 것은 머리로 분석 할 수 없다.좋다는 말 이외의 설명은 모두 군더더기일 뿐이다.그것을 우리의 피는 안다』고. 그런데 딸아이는 「수제천」을 거부했다.아직 서양음악에 길들지 않은 어린아이인데도 심한 낯가림을 한 것이다.음악의 모국어인 국악에 무지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노력,조기 국악교육은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몇년이 지난후에야 『그애가 운 것은 거부의 표현이 아니라 보다 순수한 받아들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민속음악과는 달리 궁중음악에는 벽사적인 성격이 있고 바로 그 점이 어린아이의 때묻지 않은 영혼에 무서움으로 다가간 것이 아닐지.서너살 무렵 처음 찾아간 절의 대웅전 단청이 무서워서 어머니 치마자락 뒤로 숨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하게된 생각이다. 「94 국악의 해」선포식 및 축하공연이 20일 성대하게 치러지고 국악관련 행사가 전국적으로 「불이 붙듯」(황병기 국악의 해 조직위원장) 펼쳐지고 있다.판소리영화 「서편제」의 인기에 힘입어 일반인 대상 국악강좌가 성황을 이루고 국악연주음반과 테이프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신문기사도 잇따른다.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국악이 생활속의 진정한 우리 음악으로 자리잡으려면 「국악의 해」 한햇동안의 관심과 영화 「서편제」의 인기만으로는 부족하다.「국악의 해」를 맞아 국악인들이 피력하는 가장 큰 염원이 「국악교육의강화」로 모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행 초·중·고등학교 음악교과서의 국악관련 내용 수록비율은 국민학교 12.58%,중학교 11.5%,고등학교 12.85%에 불과하다.그나마 학교현장에서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고 있다.음악교사들이 국악을 모르기 때문이다.초등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의 음악관련 학점중 국악학점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무했던 형편(올해 신입생부터 총21학점 가운테 3∼5학점을 국악으로 수강)이고 전국 11개 교육대학중 국악전공 전임교수가 있는 곳은 5개대학 뿐이다.중·고교 음악교사 임용고사에서도 피아노 실기시험만 있고 국악기 실기시험은 없는 탓에 국악전공 학생이 음악교사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따라서 영어교사가 국어를 가르치는 것과 같은 어설픈 국악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해방후 국어교사에 대한 재교육이 실시됐듯이 음악교사의 국악재교육이 교육부에 의해 실시되고 있긴하다.그러나 진정한 국악교육은 교사 재교육만으론 이루어지기 어렵다.서양음악 교육을 받은 교사가 재교육만으로 국악교육을 제대로 수행해내기엔 우리 국악이 서양음악과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피아노의 한음에 관한한 루빈스타인이 치나 우산꼭지로 치나 마찬가지』라는 한 음향학자의 말이 상징하듯 서양음악은 고정된 음을 바탕으로 하여 화성이 중시되는 음악이지만 국악은 「움직이는 음」으로 구성돼 있으며 철저히 화성의 감각이 배제된 음악이다. 이같은 국악의 특수성을 염두에 두고 교육개혁 차원에서 국악교육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만 진정한 국악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다.10여년전 실패한 국악교육 경험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국악교육 개혁과 함께 방송의 사회교육 기능이 제대로 발휘된다면 「94 국악의 해」는 국악을 우리 생활속에서 살아 숨쉬게 하는 국악중흥의 원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서는 각 방송사가 「국악의 해」를 뉴스로서만 다루지 말고 보다 많은 국악을 들려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실명 「바둑드라마」 선뵌다/M­TV 3·1절 특집극 「맞수」 준비

    ◎조훈현·서봉수 등 넷 등장/한·일바득 1백년사 압축/조훈현 활동 주축… 오다케·섭위평도 나와 국내최초로 실명바둑드라마가 등장한다.MBC­TV가 3·1절 특집극으로 준비중인 「맞수」(가제)가 바로 그 드라마.최근들어 방송계에 항공드라마,스포츠드라마,본격경찰드라마등 전문적인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룬 드라마들이 늘고있는 추세에 「바둑드라마」까지 가세,관심을 모은다.특히 전문드라마들이 대부분 젊은 시청자들의 취향에 맞는 소재와 배역,줄거리로 짜여진데 비해 「맞수」는 3·1절 특집이라는 타이틀과 제한적인 애호층을 확보하고 있는 바둑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남다른 호기심을 자아내고 있다. 조훈현·서봉수·이창호·유창혁등 국내최고의 프로기사 4인방,그중에서 15년넘게 바둑계의 제왕으로 군림해온 조훈현이 줄거리의 주축을 이룬다.일본의 다케미야·오다케,중국의 섭위평등도 극중 인물로 등장한다. 바둑을 통해 오늘의 한·중·일 관계는 물론 3·1절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는 취지아래 기획·제작된 「맞수」는 내용뿐 아니라 기획및과정자체도 색달라 눈길을 끈다.먼저 3·1절이나 6·25전쟁,광복절등 일련의 특집극들은 수십년째 제작·방송돼와 중복을 피할만한 작품을 고르기가 쉽지않다.그래서 방송사측이 이색적인 방법을 시도했다.TV드라마는 방송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대본을 기초로 제작되거나 문학작품을 방송작가가 각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러나 「맞수」의 경우 그 순서가 뒤바뀌었다.즉 방송사측에서 먼저 특집극의 내용과 구조를 정하고 소설가에게 작품을 의뢰한뒤 이를 다시 드라마 대본으로 각색한 것.기획에서부터 대본이 나오기까지 일반드라마의 2배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맞수」를 기획·연출할 고석만 TV제작국부국장은 『물론 좋은 드라마대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은 드라마도 만들고 동시에 좋은 문학작품을 남길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습니까.물론 속단일수도 있지만 방송과 문학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다소 「기대와 예단」섞인 설명을 한다. 「소재주의」와는 분명 다른 것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내용물은 엇비슷한데 내용물을 담을 그릇만 바꾸는 것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 수절노파 몸서 사리모양 결정체(조약돌)

    ◎흑·회·옥색 등 4백31개 수습 “눈길” ○…지난 7일 하오5시쯤 경남 고성군 상리면 자은리 고성공설화장장에서 화장을 한 조기순할머니(75·고성군 마암면 화산리 290)의 엉치뼈와 다리뼈등에서 지름 6.5㎝에서부터 좁쌀만한 크기에 이르기까지 옥색·회색·흑색등의 다양한 색깔을 띤 사리모양의 결정체 4백31과가 수습돼 눈길. 조카 김윤식씨(42)에 따르면 『지난 6일 집앞에서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이모 조씨를 화장해 유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같은 결정체가 나와 고성에 있는 보성사에 보관해놓았다』며 『미처 수습하지 못한 좁쌀만한 크기까지 합치면 모두 1천여과가 더 넘을 것』이라고 설명. 40여년전 결혼했다 곧바로 혼자된 조씨는 평소 음식은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었으며 남과는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혼자 산에 자주 다녔으나 절에는 한번도 간 적이 없었다는 것. 한편 충무 서광사 주지 보경스님은 『스님들의 사리와 모양이나 색깔이 똑같다』고 감정.
  • 석유류 배달 눈금표시용기로 바뀐다

    ◎정량거래 지침 마련… 판매·소비자 시비 근절 가정에 배달되는 석유류 판매용기가 눈금이 표시된 것으로 바뀐다. 상공자원부는 6일 「석유류 정량거래 질서확립 지침」을 고시,소비자 보호와 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전국 7천여개의 석유 일반판매소(부판점)가 가정용 등유나 경유를 팔 때는 반드시 공업진흥청의 검정을 받은 법정 계량용기(눈금표시가 된 탱크)를 사용하도록 했다.또 법정 계량용기로 석유류를 배달할 때 판매자와 소비자간의 합의로 적정 배달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는 법정계량 용기의 보급과 업계 지도 등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된다.지금은 석유류 판매소가 등·경유를 소비자에게 판매할 때 눈금표시가 없거나 엉터리 규격의 용기를 사용하고 있어 정량시비가 많다. 상공자원부 관계자는 『새 용기는 눈금이 있고 용기내부를 볼 수 있게 만들어져,소비자가 육안으로 배달량을 확인할 수 있어 정량 시비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