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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우리안에 있는 이방인

    시대에 따라 질문하는 방식도 바뀐다.‘나는 누구인가.’ 대신에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은 우리 시대 특유의 질문방식처럼 보인다.옛날에는 태어난 곳에서 한평생 살다가 무덤까지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그런 상황에서 ‘나는 어디에’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거나 여행하는 일은 흔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외지’에서 ‘내지’로의 공간이동은 일본제국주의 시대부터 비롯되었다.식민지 근대와 더불어 ‘외지’ 지식인들은 제국으로의 순례여행을 다녀옴으로써 출세를 보장받았다.그들은 제국의 언어와 민족언어를 동시에 구사함으로써 제국의 문화가 들어오는 채널이 되었다.그들은 제국의 명령을 번역하고 훈육하고 계몽했다.근대 이후 이 땅에서 권력의 중심부로 편입하려는 사람들에게 제국으로의 유학과 순례여행은 의례 통과해야 될 과정의 일부였다. 소위 말하는 ‘탈’식민주의 시대에 이르면,특권층만이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다국적 금융자본과 군산복합체는 욕망의 상층기류를 타고 날아다닌다.그들에게 조력과 정보를 제공하면서 마름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은 그들의 뒷좌석에 앉아 분주하게 세계를 떠돈다.국제화 시대는 매판지식인이라는 단어조차 없애버렸다.반면 욕망의 저류에는 무수히 많은 노동력이 세계를 유랑한다.무슨 관광여행을 다닌다는 말이 아니다.자기 땅으로부터 뿌리뽑힌 자들은 세계를 떠돌지 않을 수 없다.매춘노동자들은 러시아로부터 남진하고,산업노동자들은 동남아시아로부터 동진한다. 이들은 국경선을 넘어 타국으로 들어가지만 그곳에서도 결코 환영받을 수 없는 비천한 존재가 된다.오늘도 작별을 고하면서 지구 저편으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고향을 등진 자들은 새로운 땅에서도 이방인에 불과하다.불법취업 노동자들은 일회용 소모품으로 사용하다가 강제출국시킬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을 합법화해 달라고 세계 곳곳에서 절규하고 있다.명동성당에서도 그들의 절박한 외침이 들린다. 노동력과 욕망은 전지구촌으로 떠돌지만 민족국가의 경계선은 더욱 완강해지는 양가적인 시대,혹은 신자유주의시대에 들어와 이산(離散)의 무리들은 점점 더 비체화되어 간다.국제화를 외치면서도 민족국가의 경계선은 더욱 삼엄해진다.노동의 유연화를 위해 민족국가의 경계를 없애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민족국가의 경계가 더욱 강화되어야만 노동의 국제적인 유연화,혹은 착취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국제화를 부르짖지만 민족 국가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부적절한’ 존재 혹은 비체가 된다.이처럼 경계선의 안과 바깥,‘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전존재가 결정되어 버리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한국 국적이라는 경계선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인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다.혹자는 ‘우리’ 문제도 산적한 마당에 ‘그들’의 인권씩이나 거론할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한민족 순수혈통주의 신화에 절어 있어서 타민족,타인종에 대한 감수성이나 인권 문제에는 맹목인 지점이 있다. 주한 미군이 주둔한 지 반세기가 넘어도 남한은 혼혈이 존재하지 않는 순수의 땅이다.기지촌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는 외딴 섬이다.비체화된 그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외국인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 땅의 경계 바깥에 존재한다. 과거 한 때 남한 사회는 남아도는 노동력을 열심히 수출했다.소위 말하는 1세계의 노동력으로 수출된 사람들이 경험했던 인종차별에 대해 우리는 ‘한민족’으로서 함께 분노했다.그러면서도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안의 이방인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면,세계에 흩어져 있는 우리 민족이 어떻게 보호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임 옥 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 청화스님의 수행과 삶/부처님 법대로 주지 마다하고 40년 정진

    12일 평소처럼 태연하게 미소 띤 얼굴로 열반에 든 조계종 원로회의 위원 청화(淸華)스님.언제 어디서나 죽고 삶에 연연하지 않았던 스님은 자신에게 혹독할 만큼 엄격했으나 모든 사람을 부처로 여기고 배려하는 큰 인물이었다.이제 육신은 소멸한 채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으로 가득한 화택(火宅)에서 벗어났지만 영롱한 사리로 남아 무언의 설법을 전하고 있다.생전 몸은 세속에서 떨어진 채 변함없이 구도의 길에 매달렸지만 마음은 그 누구에 대한 편견 없이 자비와 관용을 향해 열어놓았던 큰 스님.열반 후에도,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전남 곡성 성륜사에는 스님의 극락왕생과 영혼불멸을 기원하는 추모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청화 스님 어디로 가셨습니까.’ 지난 16일 스님의 영결식장인 전남 곡성 성륜사에 모인 스님,신도들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단 한번의 주지 소임도 맡지 않은 채 40년간 토굴과 암자를 구름과 물처럼 전전하며 수행에만 매진한 스님이 어떻게 그많은 상좌(제자)를 둘 수 있었을까.스님을 은사로 출가한상좌는 자그마치 136명.그것은 ‘부처님의 법대로 따른다.’며 청정무구한 수행으로 일관한 스님을 추앙하는 납자와 수행승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성륜사 주지 도일 스님은 “스님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은 겉치레와 형식에 매이지 않은 스님의 수행관과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총무원 간부며 중앙종회 의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았으나 번번이 내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원로회의 위원에 추대될 때도 극구 사양했으나 종단의 간곡한 요청에 “위원을 맡되 회의에 참석하지는 않겠다.”고 선언,단 한 차례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장좌불와의 수행자’‘일종식 납자’‘염불선의 실천자’….많은 스님들은 “내가 보아온 수많은 수행자들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 열심히 수행한 스님”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1960년대 한 암자에서 정진할 당시 한겨울 바위틈에서 나오는 찬 샘물을 머리에 부으면서 공부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토굴에서 참선할 때 아무데서나 한가지 반찬에 밥을 먹으면서 시자들에게‘시간 낭비는 생명낭비’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격식을 싫어해 녹차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맏상좌인 용타(전주 기신사 회주)스님은 “청화 스님이 주위 사람들에게 ‘출가했으면 부처님 법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을 자주했다.”고 전했다. ‘행법이 다르다고 해서 수행의 기본정신이 다른 것은 아니다.’라고 했던 스님은 종파성을 지양한 통불교(通佛敎)와 함께,선·염불을 하나로 모은 염불선을 주창했다. 임종 직전 상좌들과 법담을 나누던 스님은 “금생에서의 세연이 다했으니 이제 가련다.화합하고 수행을 열심히해 중생구제하는 게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이다.”라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kimus@ ■청화스님 유언 스님은 자신을 지키는 데는 철저했으면서 그 누구에게도 말을 낮춤 없이 존대한 것으로 유명하다.상좌인 성전 스님(전 옥천암 주지)은 “스님을 한 번이라도 친견한 이라면 모두 귀의할 마음을 가질 정도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을 잃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성륜사 전국신도회 회장 정해숙(68)씨는 “스님이말과 행동을 달리했던 때를 본 적이 없으며,시봉 스님들에게도 자신을 따르기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그래서인지 의사 교수 예술인 기업가 정치인 등 스님과 인연을 맺어 자주 찾은 지식인들이 적지 않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홍라희 부부,대상그룹 회장 임창욱·박현주 부부,전 대통령 전두환·이순자 부부,박선자 경상대 교수,이중표 전남대 교수,배광식 서울대 치대교수,윤산 화백,아산 조방원 화백….스님이 임종 때까지 주석하던 성륜사도 아산 조방원 화백이 10만평을 내놓아 건립됐다.미국 카멜 삼보사에 선방을 세울 때도 외국인 불자가 땅을 기증했다고 한다.스님을 찾아오는 이는 반드시 산문까지 직접 나와 배웅했으며,최근까지도 손수 법복을 빨아 다려입었다. 광주 추강사에 주석하던 시절 일화는 유명하다.스님들이 먹을 쌀이 2∼3일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찾아든 딱한 객승에게 쌀독에 남은 쌀을 모두 걸망에 담아주었다.두륜산 진불암에 머물 때는 갑자기 절을 찾아온 낯선 스님을 위해 40리 떨어진 해남까지 내려가 제물을 준비해와 제사의식 가운데 절차가 제일 복잡하다고 하는 구병의식을 베풀기도 했다.스님의 하심은 많은 이들을 감복하게 해 출가토록 했다. 대흥사 상원암 주지도 출가전 무례한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으나 “자네는 아주 점잖은 사람”이라고 다독여준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상좌다. 스님은 임종 며칠 전 시자들에게 “올 때도 빈손으로 왔는데 굳이 마지막 가는 길을 호화롭게 할 필요가 있느냐.”며 “죽은 뒤 거적에 말아 일반 화장터에서 화장해 아낀 돈을 불우이웃 돕기에 써달라.”는 유언을 했다고 한다. 청화스님 어록 ●비록 몽매에 사무친 그리운 귀향의 길이라 할지라도 고달픈 나그네에게는 가파른 산 너머 아득한 마을일 것이며 번뇌의 해탈과 영생의 행복을 지향하는 위(끝)없는 정도(正道)일지라도 삼독심(탐욕 분노 어리석음)에 얽매인 중생들에게는 천리만리 머나먼 꿈나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참다운 자아를 성취한 거룩한 성자들에게는,닿기만 하면 황금빛으로 변한다는 헤르메스의 지팡이와도 같이 영원히 행복한 금빛 찬란한 극락정토 아닌데가 없습니다.(1986년 월간 ‘금륜’창간호) ●우리는 죽지 않고 나지 않는 도리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내가 분명히 죽고,나하고 친한 분들도 다 죽는데 왜 죽지 않는 것인가? 헛 것이며 그림자인 우리 몸만 그때 그때 사라지는 것입니다.생명 자체는 절대로 죽음이 없습니다.지금 당장에 어느 분이 인연이 다해서 금생의 목숨이 끊어진다고 합시다.그런다 하더라도 그분의 목숨은,생명 자체는 조금도 흠축이 없습니다.다만 그 사람이 얼마만큼 업을 지었는가의 업장,따라서 지금 그의 몸이 죽어 있는 상태가 안락스러울 것인가,또는 고통스러울 것인가 하는 차이뿐입니다.(1991년 3월 불교방송 초청법어) ●우리가 성불할 때까지는 사뭇 놓치지 않고서 공부를 해야 되겠지만 우리 중생은 모양세계에 놓여 있습니다.모양세계란 것은 그때그때 구분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하루에 세때 먹어야 되고 갈곳은 가야되듯이,모양에 따른 한계가 있어서 쉴 때도 필요하고 푸는 제도나 맺는 제도도 있고 처음과 끝이 있습니다.속물이란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 속물입니다.(2001년 동안거 해제법어) ●아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고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에 있고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 따로 있단 말입니까? 좋아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고 똑똑한 척하는 마음도 모양이 없습니다.모양이 없으면서 분명이 존재하고 한도 끝도 없는 것을 구합니다.모양이 없다는 것은 마음이 얼마만큼 크다고 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마음은 어디 국한되게 크고 작은 것으로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한도 끝도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2000년 11월 성륜사 정기법회 법어)
  • 7살짜리를 1m몽둥이로 300대 “이 안닦았다” 하루 밥 한숟갈/‘폭력’ 어린이집

    “다시는 매맞고 싶지 않아요….” 16일 오후 인천 남동구 도화동 인천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뛰놀던 인천 B초등학교 4학년 박모(10·인천 남동구)군은 겉보기엔 또래들처럼 천진난만했다.하지만 지난 6일 이곳에 오기 전까지 1년 넘게 박군은 어린이집에서 끔찍할 정도로 얻어맞았다.박군은 ‘어린이집’이라는 말만 나와도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 진저리를 쳤다. ●거의 매일 맞아… ‘어린이집' 말만 들어도 진저리 박군과 여동생(7)이 만수동의 한 어린이집 원장 C(51·여)씨의 ‘엽기적’인 폭력의 덫에 걸린 것은 올해 초다. 부모가 모두 모은행 과장으로 맞벌이를 하는 탓에 어린이집에 24시간 맡겨졌다.부모들은 사이가 좋지 않아 자식들을 제때 찾아보지도 않았다.이 때문에 남매는 C씨의 전적인 책임 아래 놓였다.C씨는 남매가 들어온 지 얼마쯤 지나 거의 매일 지름 3㎝,길이 1m짜리 나무막대로 허벅지와 종아리를 수십대씩 때렸다.숙제를 거르거나 이를 닦지 않으면 하루에 밥 한 숟가락만 주는 벌을 내리기도 했다.2∼3시간씩 어린이집 1층과 2층 계단을 기어 오르내리게 했으며,1시간 동안 토끼뜀을 하거나 벽을 보고 절을 하도록 했다. ●담임교사 “옷 벗기자마자 눈물 쏟아져” 지난 5일에는 박군이 학교에서 친구의 풀을 훔치고,여동생이 설탕과 반찬을 몰래 먹었다는 이유로 300여대씩 때렸다.다음날 학교에서 남매가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을 수상히 여긴 박군의 담임인 전모(34·여) 교사가 박군을 달래며 물어본 결과 그동안 가려졌던 C씨의 폭력이 드러났다.온 몸이 멍으로 뒤덮인 남매를 본 학교측은 인천 남동경찰서에 신고했다. 남매는 아동학대예방센터로 옮겨졌다.전 교사는 “박군 남매의 옷을 양호실에서 벗기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모 “애 때리는게 무슨 잘못이냐” C씨는 그러나 “아이들은 맞으면서 커야 한다는 내 교육 방침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면서 “경찰과 학교가 정당한 교육 활동을 간섭하고 있다.”고 엉뚱한 논리를 대며 반발했다.C씨는 “지난 5일에는 남매의 어머니도 ‘사랑의 매’를 함께 때렸다.”고 말했다.경찰은 C씨를 폭력 혐의로 입건,조사중이다.박군의 부모도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할 방침이다. 박군의 어머니는 “C씨가 아이들을 심하게 다루는 것을 알았지만 딱히 맡길 데가 없어 그냥 놓아뒀다.”면서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 매를 드는 교육은 큰 잘못이 아니다.”고 진술했다.경찰은 박군 남매 이외에 문제의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2명의 초등학생과 8명의 유치원생도 폭력을 당했다는 소문이 있어 조사하고 있다.남동구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사건은 원장과 개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원장이 처벌받더라도 현행법상 어린이집의 인가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원장 처벌돼도 어린이집 인가취소 안돼 아동 학대는 2000년대 들어서도 20% 가까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지난해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신고된 학대 건수는 2946건으로,2001년의 2606건에 비해 300여건이나 늘었다.올 상반기에만 이미 1725건이 접수됐다.성폭력 등 신체 폭력의 비율이 높다는 것도 문제다.오는 19일 세계아동학대예방의 날을 앞두고 아동학대예방센터가 200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처리한 6000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신체 폭력이 1151건을 기록,전체의 19.2%를 차지했다.어린이집 등 유아교육기관과 보육시설에서의 폭력도 213건이나 됐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장화정 상담연구팀장은 “아동학대자와 이를 묵인·방조한 사람은 교정교육을 받고,또 다시 교육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 이두걸 박지연기자 douzirl@
  • “한반도 평화가 곧 석가모니의 설법”‘천일기도’ 끝낸 실상사 도법 스님

    “우리 생활의 모든 곳을 평화의 현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이란 확신을 갖게 됐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기도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1년 2월16일부터 전북 남원 지리산 실상사에서 매일 4차례 5시간씩 기도와 정근을 해 12일자로 1000일 기도를 마치는 실상사 주지 도법(54) 스님.회향(回向)을 이틀 앞둔 지난 10일 실상사에서 만난 스님은 기도기간 내내 단 두 번밖에는 실상사를 벗어나지 않은 채 정진한 때문인지 몹시 수척했지만 여유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민족 화해·평화로 이끌 수 있다면… “불교에서 회향은 단순히 한 의식의 마무리라는 의미를 넘어 부처님의 공덕을 일반 중생들에게 돌려 극락왕생에 이바지한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이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불교의 수행을 앞날이 보이는 사실적인 삶의 방식으로 이끄는 대안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도법 스님의 1000일 기도는 좌우대립과 이념의 갈등 속에 희생된 원혼들이 떠돌고 있는 지리산이라는 공간 속에서 민족의 화해와 생명의 가치를 찾아보자는 발원에서 시작된 것.힘의 논리가 아닌,자연과 생태가 갖고 있는 근원적인 미덕으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빨치산과 토벌대에 속한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두 자식 중 어느 쪽을 내칠 수 있었겠습니까.바로 이 모성이야말로 힘과 공격,승리의 논리가 팽배한 세상을 공존과 화해,평화의 세계로 이끌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스님이 생태와 화해,평화라는 화두에 천착하게 된 것은 불운했던 가정사와 무관하지 않다.스님은 아버지가 제주4·3사태 때 희생된 유복자로 태어났다.어릴 적부터 친척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불교가 싫지 않았던 스님은 18세에 금산사로 출가했다.여러 절과 암자를 떠돌며 만행과 수행을 계속했던 스님은 조계종의 정통 수행법인 간화선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생태와 평화의 실천적인 방식을 택했고 1990년 뜻을 같이하는 젊은 스님들과 함께 선우도량을 만들어 활동을 시작했다. 금산사 부주지를 지낸 뒤 95년 실상사 주지 소임을 맡아 귀농학교를 시작,자연과 생태를 거스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이들과 함께 직접 유기농사를 지으며 수행해오고 있다. “기도를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개인적으로 수행 차원에서 기도의 성과를 얻긴 했지만 이 기도가 우리사회와 불교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하던 중 한 지인으로부터 1만명만 결사의 자세로 뜻을 모은다면 위기상황에 빠진 한반도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지리산 평화결사’ 운동을 해나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종교 초월 300여명 ‘지리산 평화결사' 참여 기도 중 이라크전쟁과 북핵 사태,그리고 이라크 파병 문제가 불거졌고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힘센 사람들에 의해 이끌려가는 한반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절박감으로 시작한 것이 ‘지리산 평화결사’. 지금까지 종교를 초월한 300여명의 회원이 결사에 참여했고 오는 15일 공식 출범식을 갖고 활동에 들어간다.회원들은 불교계보다 천주교 개신교 등 다른 종교 인사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곳 실상사에서 적지 않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불교-실상사-도법으로 고정화된 고리를 이젠 폐기해야 합니다.평화,특히 생명의 평화는 불교에선 깨달음의 수행일 수 있지만 기독교에선 구원의 가치입니다. 우선 한반도의 위기를 헤쳐나가자는 뜻에서 지리산 평화결사 운동을 시작하지만 이 운동이 단순한 위기 대응을 넘어 일상적으로 생명평화의 삶을 가꾸기 위한 보편적인 노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소신엔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 탁발수행에 더욱 정진할 터” ‘평화는 이해와 포용력에서 얻어진다.’고 거듭 강조한 스님은 지리산 평화결사 운동에서 탁발순례에 치중할 계획이다.“탁발은 무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승려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밥을 얻어 먹으면서 육신을 지탱하고 법과 진리를 빌려서 자기완성을 한다는 뜻이 있지요.대중들에게 무엇을 나누어준다는 것보다 무엇을 내놓게 하는 정신을 구하러 다니는 것이지요.” ‘극단의 방법은 죄악’이라는 스님은 최근 외곽순환도로와 고속전철과 맞물려 소용돌이치고 있는 환경파괴 논란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언제까지 정부와 불교·시민단체의 무한대립이 계속돼야 합니까.돌이킬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는 부분에 대해선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정부가 앞으로의 정책에서 생태적 삶을 지킨다는 약속을 한다면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난 98년 조계종 분규 때 총무원장 대행을 맡아 어느 한 쪽에 치우침 없는 소신으로 분규를 마무리짓고는 아무 말 없이 실상사로 돌아갔던 스님.두 번 연임해 8년간 지켜왔던 실상사 주지 임기를 한 달 남짓 남겨놓고 있는 시점에서 이제 탁발에 나서겠다고 한다.‘삶이 곧 수행이고 깨달음’이라는 스님의 탁발수행을 통한 평화 설법이 어떤 메아리로 되돌아올지…. 글 사진 남원 김성호기자 kimus@
  •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가르침대로”11년째 택시 몰며 포교/ 부산 보광정사 지홍 스님

    ‘하루 일하지 않거든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作 一日不食).’ 부산 금정구 금사동 보광정사 주지인지홍(51) 스님의 좌우명이다. 그에게는 택시 운전기사라는 또 다른 직업이 하나 있다.만 11년째 강산이 변한다는 적지 않은 세월을 애마(개인택시)와 함께 해왔다.한때 하루 4∼5시간씩 핸들을 잡았으나 최근에는 여기저기 오라는 데가 많아 하루 2∼3시간 정도 운전을 한다. 흔히 머리깎고 속세를 등진 대부분의 스님이 그러하듯 그에게도 절밥(?)을 먹기까지에는 남다른 아픈 사연이 있다. 울산 언양이 고향으로 6남매중 둘째였던 지홍 스님은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에 열네살 때 절에 들어왔다. “당시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낼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절에 가면 밥도 먹고 학교도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버지 친구의 권유로 입산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어머니께서 옷이 떨어지면 기워 입으라고 대나무 꼬챙이에다 흰실과 검은실을 감아준 게 유산의 전부”였다고 말한 그는 어릴 때의 슬픈 기억을 지우기라도 하듯 단숨에앞에 놓인 녹차를 훌쩍 마셨다. 지홍 스님이 택시 운전을 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사찰 운영경비 마련과 포교 활동 등을 위해 핸들을 잡게 됐다고 한다. 20여년 전 대학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망자의 염을 해 모은 약간의 돈과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현재의 사찰 부지에 터전을 마련했다. 현재 절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학생 1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부모의 이혼 등 이런저런 이유로 이곳에 오게 된 아이들이다. 절이 문을 연 지 얼마 안됐을 때 부모가 이혼해 조카를 돌보고 있던 한 신도가 형편이 어려우니 절에서 맡아 달라고 부탁한 게 시초였다.이후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인원이 늘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들에게 들어가는 학비 등 경비가 수월찮았다. 그러던 차에 택시기사를 하면 아이들 학비도 벌고 포교 활동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즉시 택시회사 문을 두드렸다. 신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택시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이마저 얼마 안돼 그만두었다.사납금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 핸들을 잡아야하고 일하는 동안에는 절 살림을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결국 개인시간을 내기가 수월한 개인화물(용달차) 면허를 사 운행한 뒤에야 비로소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하게 됐다. 어린 나이 때부터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 온 지홍 스님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좌우명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것이다. “승려 노릇 제대로 해야 합니다.마냥 신도들에게만 의존해서는 안됩니다.승려가 되기 위해 수행할 때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라는 옛 큰스님의 가르침을 따를 뿐입니다.” 그는 승려가 된 후 뒤늦게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서른둘의 나이에 동방불교대학을 졸업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 그는 속세로 지천명(知天命)인 오십이 넘었는데도 동국대 문화대학원 장례과에 다니는 등 만학도의 길을 계속 걷고 있다.스님은 장례문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지난 8월에는 사찰 경내에 장례예식장과 장례문화연구소를 설립,제례 방법 및 절차 등 장례문화에 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누가 내 밥상을 차려주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낸 지홍 스님이 속세인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잠언 역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비구니 도량 운문사 ‘동안거’ 르포/ 3개월 긴 話頭… 불 밝히는 산사

    동안거(冬安居) 결제를 하루 앞둔 지난 7일 경북 청도군 운문면의 비구니 사찰 운문사.호랑이가 걸터앉은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진 호거산(虎踞山) 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천년고찰에 비구니와 사미니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 운문사에서 비구니와,공부하는 학승 사미니들은 일년 365일 어느 한 날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고된 수행과 공부를 이어가지만 동안거는 이들에게도 다른 수행 납자들 못지 않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8일부터 3개월간 산문을 나서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하는 동안거를 준비하는 마음가짐 몸가짐이 어느때보다 조심스럽다. ●300여명 하루 평균 12시간 용맹정진 올해 동안거에 참여하는 스님은 이곳 강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미니 270명과,다른 사암에서 동안거를 나기 위해 문수선원으로 찾아든 비구니 28명 등 300여명.평소 하루 8시간씩 수행에 정진하지만 동안거 기간엔 평균 12시간에서 길게는 18시간씩 참선에 드는 용맹정진을 강행한다. 새벽 3시에 기상해 4시25분까지 아침 예불을 마치고 1시간 가량 입선(入禪).아침 공양에 이어 7시20분까지 청소,9시30분까지 강의를 마치면 아침 일정이 끝난다.오후2시까지 울력 등 자유시간을 가진뒤 1시간 가량 입선에 들고 저녁공양 뒤 밤 9시까지 다시 입선정진한뒤 취침에 든다. 현재 국내에는 비구니들을 교육하는 강원 5곳이 있지만 운문사 강원은 마치 ‘군대식’의 엄격한 질서와 규율이 철저하게 지켜지는 최대의 비구니 도량이다.수행 정신의 핵심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一日不作 一日不食’.공부와 일이 따로 있지 않다는 정신아래 모든 스님들이 각자 맡은 소임을 철저히 수행한다. 강원에 소속된 270여명의 학인 스님들은 어느 순간도 자기 소임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공양에 드는 쌀만 해도 하루 한 가마.김장에는 배추 1만2000포기가 필요하다.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스님들이 손수 쌀농사를 지어 모내기며 벼베기,탈곡까지 했지만 지금은 소작을 준채 밭농사를 지어 먹거리들을 자체 해결하고 있다.물론 공양과 청소같은 살림살이는 모두 스님들의 몫이다.공양시간 때만 되면 공양간에서 밥이며 반찬 짓기 소임을 맡은 스님들은 비지땀을 쏟기 일쑤.그시간 곳곳에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절 청소며 울력이 착착 진행된다. ●공양에 드는 쌀만 매일 한 가마 저녁 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금당과 요사채에서 엄숙한 회의를 갖는다.동안거 한 철 맡을 소임과 수행시간표를 짜기 위한 모임이다.옛날과 달리 스님들의 소임도 각양각색.‘종두’라고 불리는 1학년에겐 설거지며 허드렛일이 맡겨지고 2학년 ‘원두’에겐 채소가꾸기,3학년 ‘미화’에겐 부엌살림이,4학년 ‘화엄’에겐 절 살림을 총괄하는 일이 주어진다. ‘추승구족’.가을 스님은 다리가 아홉이라고 한다.가뜩이나 가을철엔 할 일들이 많은데 동안거의 수행정진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그래도 이들의 동안거 준비는 어김없이 마무리됐다.저녁 입선까지 모두 마친 밤9시,산사는 비구니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던 한낮과는 달리 쥐죽은듯 고요하기만 하다.동안거가 공식 시작하는 입제까지는 12시간.그러나 환하게 불을 밝힌 금당이며 인근 문수선원에서 스님들은 너 나 없이 화두를 잡고 참선에 들었다. 글 사진 운문사 김성호기자 kimus@ ■천년고찰 운문사는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신라 진흥왕대인 557년 한 신승(神僧)이 3년간 수도끝에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600년 원광국사가 중창해 귀산,추항 등 두 화랑에게 세속오계를 전수했으며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1955년 금광 스님이 비구니 초대주지로 부임한 뒤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됐고 현 회주 명성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도량의 면모를 크게 바꾸었다.운문승가학원이 1987년 4년제 운문승가대학으로 개칭,지금까지 2000여명의 비구니를 배출했으며 현재 270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경학을 연구하고 정진하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자 수행도량이다.
  • 속세 못떠난 前치안감/“불가 귀의” 명퇴1년만에 교통공단 이사로

    서울경찰청 차장(치안감)으로 근무하다 “불교에 귀의하겠다.”며 명예퇴직했던 김기영(56)씨가 최근 경찰청 산하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안전이사로 임명돼 7일 첫 출근을 했다. 김 전 차장은 지난해 10월2일 “오랫동안 불교에 귀의할 생각을 해오다 결심을 굳혔다.”며 명예퇴직 신청서와 휴가원을 제출했다. 평소 불심이 깊었던 김 전 차장의 ‘불가 귀의’는 세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이날 “몸이 아파서 대구병원에 3개월 동안 입원하는 등 치료를 받았다.”면서 “당시 여러 설이 난무할 것 같아서 명예퇴직 신청서에 ‘불가 귀의’라고 간단하게 쓴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실제 불가에 귀의할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대학 시절 친구가 운영하는 절에 찾아간 적도 있었지만 가족의 반대가 워낙 심해 어쩔 수 없었다.”며 “여러가지로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의 행보를 놓고 경찰 안팎에서는 “개인 비리를 덮기 위한 의도적 몸낮추기가 아니었느냐.”라는 비판과 “개인적으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반응이엇갈렸다.경남 김해 출신으로 간부후보생 23기인 김 전 차장은 강동경찰서장,서울경찰청 형사과장,경비부장 등을 거쳐 2001년말 치안감으로 승진,서울경찰청 차장을 지냈다. 장택동기자 taecks@
  • 병자호란때 삼전도비문 지은 백헌 이경석 우암 송시열을 눌렀다?/‘2004년 4월의 문화인물’에 선정

    문화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04년 이달의 문화인물’에는 주목할 만한 이름이 하나 들어 있다.‘4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된 백헌 이경석(1595∼1671)이 그 주인공이다.반면 이경석을 정치적 반대파로 생각한 우암 송시열(1607∼1689)은 문화인물 후보로는 추천됐지만 명단에 들지는 못했다.백헌과 우암의 관계에서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우암의 문인들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렸던 서계 박세당(1629∼1703)이 이미 올해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됐다는 것이다. ●우암도 추천됐지만 뽑히진 못해 백헌과 우암 사이에는 서울 송파의 이른바 삼전도비에 얽힌 시비가 있었다.1637년 병자호란 때 세 차례 절하고 아홉 차례 머리를 조아리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으로 청 태종에게 항복한 인조는 ‘공덕비’를 세우라는 요구를 물리치지 못했다. 명을 받은 백헌은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청의 비위에 맞게 비문을 지었다.그러나 30여년이 지나 우암은 명나라를 따르고 청나라를 배격하는 이른바 춘추대의를 명분으로 “오랑캐에 아첨하여 늙도록 편안히 살았다.”며 백헌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1702년 백헌의 후손으로부터 신도비명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박세당은 우암을 “노성인(백헌)을 모욕한 불상(不祥)한 무리”로 규정하는 한편 삼전도 비문을 지은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백헌을 두둔했다. 우암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그 문인들은 박세당을 사문난적,즉 ‘주자학을 문란하게 만든 도적’으로 몰아 삭탈관직하여 귀양보냈다.덩달아 박세당이 지은 이경석 신도비문은 불태워졌고,이경석 신도비 또한 땅속에 파묻혀야 했다. 삼전도비의 문제는 병자호란 당시 대청(對淸)문제에서 강경론을 주장한 척화파와 온건론을 편 주화파의 문제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청군에 포위되어 있는 남한산성에서 이조판서 최명길이 항복문서를 쓰자 예조참판 김상헌은 이를 찢었다.최명길은 “대감의 충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 역시 나라와 백성의 안전을 위하는 것”이라며 다시 풀로 붙였다고 한다.백헌이 최명길에 공감한다면,우암은 김상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이다. ●나라사랑의 다양한방법 생각케 문화부가 백헌을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하는데 삼전도비에 얽힌 얘기를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흔적은 없다.선정 이유도 “조선 중기 문신으로 경학을 크게 발전시켰고 문장과 글씨에 능했다.”는 평범한 것이다. 또 우암의 선정이 늦춰진 데는 조선 후기 독단으로 치달은 노론의 영수로 당쟁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이 먼저 고려되었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문화사적으로 중요하다는 인물을 선정하면서 백헌을 앞세운 것은 ‘나라 사랑하는 방법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이는 또 이라크 추가파병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현재의 국내 상황에도 시사하는 점이 적지않은 것 같다. 백헌은 효종의 아들 소현세자가 청나라의 볼모로 끌려가자 세자의 이사(貳師)로 심양으로 가,대청(對靑) 외교를 풀어나가다 명나라 선박이 선천에 들어왔을 때 조선의 관련 사실을 두둔하느라 청제의 노여움을 사 귀국한 뒤 3년간 벼슬에서 물러났다.또 효종의 북벌 계획이 청나라에 알려져 청나라가 북벌 계획의 전말을 치죄하려 하자,당시 영의정으로서 효종과 관련자들을 비호하고 두둔하면서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 극형당할 처지에 놓였다가 효종의 구명으로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해 은거생활을 하기도 했다.인조 효종 현종의 3대 50년에 걸쳐 안팎으로 얽힌 난국을 적절하게 헤쳐나간 백헌은 현종 9년에 신하로서는 최고의 영예인 궤장(杖)을 하사받았다. 한편 내년의 문화인물로는 이밖에 ▲조희룡 ▲신흠 ▲이항로 ▲의상 ▲백광홍 ▲이첨 ▲김창조 ▲조헌 ▲최항 ▲장욱진 ▲박두진이 선정됐다. 이들은 지방자치단체 등 각계에서 추천한 37명의 후보 가운데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자문위원회의 검토와 검증 절차를 거쳐 뽑혔다.그러나 후손들의 로비와 잡음 등을 우려해 선정 자문위원은 물론 선정 과정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백헌을 선정하는 과정에도 논란이 있었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199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이달의 문화인물’은 2004년까지 15년 동안 모두 175명이 선정됐다. 서동철기자 dcsuh@
  • ‘호남의 소금강’ 순창 강천산

    ●빨갛게… 노랗게… 오색향연 절정 남녘에 단풍이 절정이다.빨갛게,노랗게 물든 산엔 능선마다 인산인해.새파란 하늘을 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르는 이들의 뺨에도 발그스름하게 단풍이 피었다. 지난 주말엔 엄청난 단풍행렬 때문에,산엔 발도 못디디고 차를 돌린 사람이 꽤 있다고 하니,이번 주 단풍나들이 계획을 잡았다면 일찌감치 서둘러 집을 나서야겠다. 또 사람에 치이기 십상인 유명 산보다 숨어 있는 단풍 명소를 찾아보면 어떨까.전북 순창의 강천산을 다녀왔다.깊은 계곡과 맑은 물,기암괴석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인근 내장산의 명성에 가려 그 진면목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단풍 명산이다. 강천산(剛泉山·583.7m).이름 그대로 단단한 바위와 물이 많은 산이다.1981년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으로 지정됐다.높지 않지만 주계곡인 강천계곡 양편으로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 등 10여개의 청정계곡을 품고 있고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 등 구석구석 비경을 갖췄다. 산행은 주차장부터 시작된다.계곡과 봉우리가워낙 많아 등산코스가 다양한데,대략 5개 코스가 있다.이중 짧으면서도 아기자기한 강천산의 비경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병풍바위∼강천사∼구름다리∼신선봉 코스(5㎞)를 택했다.좀 더 긴 산행을 원하면 신선봉에서 하산하지 말고 선녀봉과 산성을 거쳐 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11㎞)를 잡으면 된다. ●구석구석 비경 품은 그림같은 바위산 매표소를 지나 강천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비포장이지만 차량이 드나들 정도로 넓고 평탄하다.길가와 계곡은 온통 단풍 일색.불타는 듯 계곡을 물들인 애기단풍 아래로 투명한 계류가 노래하듯 정겨운 소리를 내며 흐른다. 매표소에서 10분쯤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있고,절벽 아래로 물줄기가 하얗게 부서지며 떨어진다.도저히 폭포가 있을 수 없는 곳인데….공원 관리직원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인공폭포란다.계곡물을 호스를 통해 모터로 끌어올려 암벽 꼭대기에서 물을 뿌려대는 것이라고. 폭포 아래는 자그마한 단풍나무 공원.마침 아침 햇살을 받아 일곱 색깔 무지개를 그리며 떨어지는 물줄기와 어우러진 단풍이 비단처럼 곱다. 계곡을 따라 30여분쯤 더 올라가니 강천사가 나온다.강천산이란 이름을 있게한 천년 고찰.풍수지리설을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한때 12개의 암자와 500여명의 수도승을 거느린 거찰이었으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완전소실되었다가 1961년 이후 대웅전과 관음전,선방,보광전,객사 등의 건물이 복원됐다.전란 와중에도 불타지 않은 강천사 석탑만이 고찰의 흔적을 말해준다. 강천산은 산세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형상이라고 해 원래 이름이 용천산(龍泉山)이었고,절 이름도 용천사였다고 한다.이후 조선 선조 때 학자 송익필이 절에 머물면서 ‘宿 剛泉寺’란 제목의 시를 지으면서 강천사로 불렸고,산 이름도 강천산이 되었다고 한다. ●길이 75m·높이 50m 구름다리 아찔 강천사를 지나 계곡 오른쪽으로 난 가파른 길을 10분 정도 오르니 계곡을 가로지르는 현수교(구름다리)가 나온다.길이 75m,높이 50m의 용접 철교다.다리 밑을 내려다보니 마치 번지점프대에 선 듯 아찔하다.멀리 계곡을 따라 길게 펼쳐진 단풍숲이 붉은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 현수교를 건너 전망대가 있는 신선봉꼭대기까지는 불과 500m 정도.하지만 온통 바위투성이라 발을 내디디기가 힘들다.노약자라면 30분 정도는 고생을 각오해아 할 것 같다. 신선봉(425m)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니 지금까지 올라온 계곡과 맞은편 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산자락 아래,반쯤 물든 단풍숲 가운데 강천사가 그림같이 자리잡고 있다. ●강천 제2호수·금성산성도 볼 만 현수교 입구에서 아래 계곡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좀 더 시간을 내 강천제2호수와 금성산성까지 가보기로 했다.현수교 아래에서 계곡을 따라 20분쯤 가니 댐이 앞을 가로막는다.강천제2호수다.강천산 입구에 있는 강천호의 담수 조절을 위해 계곡 상류에 협곡을 막아 조성한 저수지.물이 가득 차면 저수지를 둘러싼 단풍숲이 수면에 비친 풍광이 황홀할 정도라고 한다.그러나 막상 댐에 올라서니 물이 거의 바닥을 적시는 정도다.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댐 한쪽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30분쯤 가니 금성산성이 나온다.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이 산성은 삼한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전해지며,이후 파괴와 개축이 반복됐다.특히 갑오농민전쟁 당시 농민군과 관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이때 동헌,민가 등이 모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순창 글·사진 임창용기자 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수도권에선 호남고속도로 정읍IC∼29번 국도∼21번 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호남·영남권에선 88고속도로 순창IC~24번 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 코스를 따라가면 된다.주차장 이용료는 2500원(산 입장료 1000원 별도).서울 강남터미널에서 순창행 고속버스가 하루 6회 출발하며,광주·전주·남원에서 각각 20∼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순창읍내에선 정읍행 군내버스(20분 소요)를 타거나,택시(8000원 정도)를 이용하면 된다.강천산군립공원 관리사무소(063-650-1533). ●숙박 강천산 인근에 강천각여관(063-652-9920),구룡파크장(063-652-6767) 등 여관이 10여 군데 있다.일행이 많으면 콘도형 객실을 갖춘 강천산 휴양농원(063-652-2552)이 편리하다.요금은 5만∼6만원.주말에 방이 없으면 순창읍내 여관을 이용하면 된다. ●순창고추장 마을 검붉은 색깔에 알싸한 감칠맛이 나는 순창고추장.고려 말 이성계가 스승인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순창을 찾았다가 한 농가에서 낸 고추장 맛을 못잊어 조선 개국후 진상토록 해 유명해졌다고 한다. 강천산을 나와 793번 도로를 타고 10분 정도 순창읍 방향으로 가다보면 ‘순창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이 나온다.마을 입구엔 관광객들을 위한 널찍한 주차장이 있고,주차장 한편에 널린 메줏가루 냄새가 코를 찌른다.바둑판처럼 정리된 포장도로,지붕에 기와만 얹은 몰개성의 건물들,저마다 원조를 내세우는 간판들.서정적 전통 마을을 그렸던 기대와 달리 지나치게 상업화된 모습이 실망스럽다.고추장 마을에선 전통고추장 전시판매장(063-653-4333)을 비롯,50여개의 집에서 고추장 및 고추장을 이용해 만든 장아찌류 등을 판매한다. 식후경 강천산 주차장 아래 식당과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데,그중 충장로식당(063-652-5388)의 백반이 비교적싸면서 먹을 만하다. 취나물을 비롯한 각종 산나물 무침과 야채 겉절이,꽁치구이 등 생선구이와 조림,도토리묵 무침,각종 김치류,청국장 등 밥과 함께 나오는 반찬 가짓수만 무려 25가지.음식값은 6000원. 가짓수가 많지만 허투루 만들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산나물은 강천산 인근에서 봄에 난 것을 말린 묵나물을 쓰고 도토리묵도 마찬가지.야채 몇가지를 썰어 함께 무친 도토리묵은 새콤하면서 싱싱해 특히 젓가락이 자주 간다. 순창고추장 맛을 보고 싶으면 대접을 달라고 해 나물무침과 야채 겉절이 몇가지를 밥에 얹어 고추장으로 비벼먹으면 된다.나물과 김치,야채 겉절이 종류가 워낙 다양해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고기류를 먹고 싶으면 좀 멀지만 담양쪽으로 가보자.강천산 주차장에서 차로 30분 정도 가면 담양 대나무골테마공원 주변에 떡갈비 전문 음식점이 많다.
  •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전 ‘돌아와요 충무항’ 있었다/요절가수 김성술 1970년 불러

    가수 조용필씨가 부른 ‘돌아와요 부산항에(황선우 작사·작곡)’와 같은 곡에 다른 가사를 붙인 노래를 조씨보다 먼저 부른 가수가 있는 것으로 4일 알려졌다. 주인공은 26세의 나이로 요절한 통영 출신 가수 김성술(예명 김해일) 씨.이 노래는 ‘돌아와요 충무항에(김성술 작사,황선우 작곡)’라는 제목으로 1970년 12월 유니버설 레코드사에서 음반으로 발매됐다. ‘돌아와요 충무항에’는 “꽃피는 미륵산에 봄이 왔건만/님떠난 충무항은 갈매기만 슬피 우네/세병관 둥근기둥 기대여 서서/목메어 불러봐도 소리 없는 그 사람/돌아와요 충무항에 야속한 내 님아(1절)”라는 가사로 돼 있다. 이 음반은 김씨가 음반발매 6개월 만인 1971년 서울 대연각 화재로 숨진 뒤 대부분 회수돼 불살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유가족과 지인들이 25년 동안 수소문한 끝에 음반 한장을 찾아냈다.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회 하나비씨는 “국민가요의 오리지널 곡을 부른 가수가 통영 출신이라는 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며 시비(詩碑)제작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작곡가황씨는 “고향인 부산을 주제로 만든 곡을 당시 김성술씨가 ‘통영에 관한 노래를 부르면 통영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부탁해 빌려줬다.”면서 “김씨가 요절해 무용지물이 된 곡을 조용필이라는 재능있는 가수를 찾아내 살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김영두의 그린에세이] 친구의 선글라스

    내 친구 경희는 선글라스를 수집한다.새 선글라스를 장만하면 먼저 필드에 쓰고 나타난다.자랑하고 싶어서일 것이다.몇 년 전에 린다 김 선글라스가 유행한 적이 있다.며칠 전 그것과 흡사한 선글라스를 끼고 골프장에 나타났다. “여우같다.린다 김보다 너에게 더 잘 어울린다.” 절친한 친구에게 예의를 지키느라고 새 선글라스에게 인사를 했다.“여우? 여배우? 멋있지? 근데 아직 도수를 못 넣었어.니가 내 공이 떨어지는 곳을 보고 알려줘.” “공이 안 보이면 앞길이 암울하지.” 옛날에 동화책에서 장님과 앉은뱅이의 이야기를 읽었다.장님이 앉은뱅이를 업고,앉은뱅이는 장님의 눈이 돼 산도 넘고 물도 건너며 세상을 여행한다는 내용이었다.서로 돕고 살라는 교훈적인 동화였다.암흑천지에서 헤매는 친구를 위해 나는 기꺼이 광명한 눈이 되고자 했다. 친구가 공을 친다.시력이 0.3인 사람이 연기에 그을린 듯한 시커먼 색유리를 통해서 200m 앞의 공을 찾기는 힘들다.나는 눈을 부릅뜨고 공의 궤적을 좇는다.“슬라이스가 난 것 같은데… 내 공 어디로갔니?” 장님도 헤드업은 한다는데,친구는 전혀 헤드업을 안 한다.친구는 공이 클럽헤드에 맞는 순간부터 제 의지를 갖고 세상구경을 떠난다는 사실은 모르는가보다.공을 찾는 일은 전적으로 내게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시커먼 속셈 같다. “참,내 정신 좀 봐라.니 공 봐주기로 했었지.공이 똑바로 나는 것을 본 기억은 나는데,어디 떨어졌는지는 잊었어.치매인가 봐.” “봐주기로 했잖아.공 못 찾으면 벌타 먹잖아.” 나는 장난으로 한 말인데,친구는 언성을 높이며 침까지 튀기며 삿대질까지 한다. “간신히 만든 막내 떨어지겠다.좀 조용히 말해라.나 아직 귀는 어둡지 않아.공 맞는 소리도 들었어.근데 넌 틀니 했니? 침까지 튀기게.” “넌 아직 젊구나.막내도 만들고.나도 아직 틀니를 낄 정도는 아니야.잇새가 좀 벌어진 것뿐이야.” 친구의 선글라스 뒤의 눈은 나를 흘기고 있을 것이다.“만약에 30년 뒤에도 걸을 수는 있어서 같이 골프를 친다면,한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공이 나는 것이 안 보이고,한 사람은 공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그 자리가어딘지 잊고,한사람은 이가 빠져서 공 떨어진 장소를 알려 주려고 해도 잇새로 바람만 새겠지.그런 사태에 대비해서 예행연습을 해본거야.” 소설가·골프칼럼니스트 youngdoo@youngdoo.com
  • 긴장의 천성산/ 16개월만에 공사재개 vs 단식 한달째

    지난 1년4개월간 중단된 고속철 천성·금정산 터널 28.6㎞ 구간의 공사가 3일 우여곡절 끝에 일부 재개됐다.이날 금정산 입구에서 12.5㎞ 짜리 터널을 뚫기 위한 벌목 및 측량작업이 시작된 것이다.곧 문화재 조사도 갖는다.천성산의 16.1㎞ 길이 터널 공사는 이달 중순 시작될 예정이다.이 공사는 2008년 완공된다.내년 4월부터 운행하는 고속철은 현 철도노선을 이용하다가,이 구간이 완공되면 새 노선을 달린다.그러나 공사가 순탄할지는 불투명하다.지난해 7월 불교 및 환경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로 공사가 중단된 이후,지난 9월 국정현안조정회의에서 공사재개 방침을 정했음에도 반발의 강도는 여전하다.천성산 내원사의 지율 스님은 한달째 단식농성중이며 공사가 본격화되면 온몸으로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금정산 벌목 및 측량 시작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 있는 범어사 입구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당장 무슨 일이라도 터지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긴장감이 감돌았다.1300년 수행도량의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현수막엔 불자의 수행방해와환경파괴 등으로 이어질 터널공사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절 입구에서 남쪽으로 1㎞ 남짓 떨어진 산자락에는 공사위치를 표시한 붉은 깃발이 꽂혀 있었다.고속철 공단 관계자들은 공사일정표를 챙기는 등 한창 바쁜 모습이었다. 절대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공사 관계자는 “3일부터 터널공사장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내기 위해 측량 및 나무 절단작업을 시작한다.”면서 “금정산터널 구간은 산정상에서 지하 350m 깊이로 총연장 12.5㎞를 파들어가며 진입로 공사가 끝나는 내년 3월쯤 본격적인 발파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성산 구간은 중순쯤 공사 범어사 입구에서 북쪽으로 40분 남짓 승용차로 달리자 차창 너머 왼편에 해발 850m 높이의 천성산이 그림처럼 길게 펼쳐졌다.양산 검단면 덕현리 마을입구에 도착하자 차를 내려 산을 올랐다.산중턱에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무제치늪’이 자리잡고 있었다. 무제치늪까지 가는 길 양쪽으로는 억새풀이 가로수처럼 쭉 늘어져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해발 520m 위치에 있는 2000여평 면적의 무제치늪 둘레에는 높이 2m의 울타리가 겹겹이 쳐져 있었다.곳곳에 서있는 ‘환경보호지역이기 때문에 절대 출입할 수 없다’는 경고 표지판이 일반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습지에는 갈색으로 변한 온갖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녹색연합이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무제치늪 주변에는 도룡뇽,수달,황조롱이,소쩍새,수리부엉이 등 11종의 천연기념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지율스님이 부산시청 앞에서 한달째 단식농성중인 이유가 바로 이같은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길안내를 맡은 공사 관계자는 “종교단체와 지율스님 등이 극렬 반대하고 있는 만큼 가급적 조심스럽게 공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성 금정산 터널 반대 여전 부산지역 문화예술인 150명은 지난달말 시민단체인 ‘금정산·천성산 고속철관통반대 시민종교대책위원회’와 함께 ‘금정산·천성산을 지키는 문화연대’를 창립,터널 공사를 적극적으로 막기로 했다.이에 앞서 지난달 3일 지율스님 등 내원사 비구니 17명은 부산역에서 천성산까지 8일간 삼보일배로 걷는 행사를 벌였다.더욱이 지율스님은 지난 달 27일부터 ‘묵언단식’에 돌입했다.지율스님 옆에는 경찰관과 고속철공단 직원이 24시간 머물고 있다. 부산 김문기자 km@
  • [건강칼럼] 이브는 모른다

    성의학 전문의로 일하다 보면 가끔 사람들의 무지한 성지식 때문에 어이없을 때가 있다.이런 경우다. 사례1.병원을 찾은 중년 여성의 얼굴에 수심과 분노가 어려있다.“아무래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아요.”“왜 그렇게 생각하세요?”“한달째 잠자리를 같이 안해요.”“그럴 수도 있죠.남편에게 걱정거리가 있지 않을까요?”“있긴 해요.한달 전 증권으로 꽤 손해를 봐 그후론 살기가 등등해요.대하기도 무섭고요.”“그런 상황이면 잠자리를 안하는 게 당연하죠.속에서 천불이 나는데…”“아니,남자는 언제라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사례2.20대 젊은 여성이 겸연쩍어하며 병원을 찾았다.“고민이 있어요.최근에 사귀는 사람과 여행을 하며 한방을 썼는데 그이가 도대체 관심이 없는 거예요.”“다행이네요.”“그게 아니라 절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서요.사랑하면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요?” 남성의 성욕은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강하게 억제된다.시각적 자극과 상상력이 남성의 성욕을 자극하는 요인인데,긴장과 스트레스가 주어지면 이런 자극 전달체계가 막혀 성욕 감퇴로 이어지는 것.특히,우울증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 두번째 사례의 경우,성욕과 사랑은 전혀 별개로 이해되어야 한다.풀어서 말하자면,사랑없는 성욕이 가능하듯,성욕없는 사랑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의학계에서는 성욕의 경우 남녀의 작용 구조가 약간 다르다는 견해를 제시한다.남녀 간에는 서로 이해하지 못할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그런데 서로가 이해하려는 노력 대신 자기 주장만 내세우다 보면 갈수록 공감대의 영역이 줄어 나중에는 사소한 일로도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게 뻔하지 않은가.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이런 벽을 넘어설 때라야 아름답고 유쾌한 성생활이 열린다는 것이다.‘노력하는 마음’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감동이야말로 멋진 성생활의 양념임을 명심하자. 김영철 선릉 힐비뇨기과 원장
  • 책꽂이

    ●세계의 언론학 교육(원우현·유일상 지음,삼영서관 펴냄) 미국을 비롯, 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프랑스·독일·일본·중국 등의 언론학 교육 실태를 분석.국내에는 현재 약 100여개 4년제 대학에 신문방송학과 또는 그 유사학과가 개설돼 있다.신문방송학은 양적 팽창을 거듭해 ‘공룡학문’이 되고 있다.유학을 꿈꾸는 이들 또한 많다.학부 및 대학원의 저널리즘 교육 과정과 대학별 평가 순위 등을 실어 유학준비생들에게 특히 도움이 되도록 했다.1만 8000원. ●행복의 발견(히로 사치야 지음,이미령 옮김,대숲바람 펴냄) 300자도 채 되지 않는 ‘반야심경’은 한국 불자들에게 가장 친숙한 경전이다.절에서는 예불 때마다 독송되고 수행의 하나로 이뤄지는 사경도 ‘반야심경’을 가장 많이 한다.이 책은 불교의 대표적 경전인 ‘반야심경’을 88가지 주제로 나눠 에세이식으로 풀어쓴 것.‘반야심경’의 핵심사상인 ‘공(空)’의 철학은 선입관을 갖고 세상을 고정화된 시각으로 보지 않고 집착하기 말자는 것이다.9500원. ●빠빠라기(투이아비 지음,유혜자 옮김,동서고금 펴냄) 남태평양 사모아 제도의 작은 섬에 사는 투이아비 추장이 유럽을 방문한 뒤 자기가 목격한 문명세계를 비판한 연설문 형식의 글.한 예로 추장은 빠빠라기들이 ‘육신은 죄악’이라고 말하면서 온갖 도롱이들을 두르고 다닌다고 전한다.문명의 폐해를 원주민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이 글은 독일인 선교사 에리히 쇼이어만이 1920년 문명 세계의 언어로 번역한 것.‘빠빠라기’는 사모아 제도의 원주민들이 백인들을 부르는 말이다.7500원. ●기이한 직업들(낸시 리카 쉬프 지음,김정미 옮김,문학세계사 펴냄) 미국 신시내티의 50년된 힐탑 실험실에선 겨드랑이,숨결,발,기저귀 악취 등을 감식하는 일이 매일 진행된다.방취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악취를 맡아 1부터 10까지 단위를 매기는 것이다.이 직업의 이름은 ‘악취감식가(odor judge)’.또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엔 ‘공룡 뼈 먼지청소부(dinosaur duster)’가 있다.부드러운 깃털로 공룡 뼈를 절대 건드리지 않으며 먼지를 털어내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업이다.이 책에는이처럼 별난 직업들이 망라돼 있다.7200원. ●가둘 수 없는 영혼(팔덴 갸초 지음,정희재 옮김,꿈꾸는 돌 펴냄)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한 후 티베트 사람들의 3분의 1이 죽었고,6000여개의 사원이 파괴당했다.15만명 이상의 승려들이 강제로 환속당하거나 감옥이나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한 때 숨어있는 이상향이라 불리던 티베트는 그렇게 파괴됐다.이 책은 중국치하의 티베트 참상을 30여년간 정치범으로 감옥에 갇혀 지낸 한 라마승의 입을 통해 낱낱이 고발한다.저자는 티베트 최장기수이자 고통받고 있는 티베트의 현실을 유엔에서 증언한 최초의 티베트인이다.9900원.
  • “여생을 포교와 사회봉사에 바치고파”/태고종 수계식에서 사미계 받은 박현태 전 KBS사장

    “감개무량합니다.탈 없이 수계식까지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남은 생을 포교와 사회봉사에 바치겠습니다.” 22일 오전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열린 태고종 합동 수계식에서 사미계를 받은 박현태(70) 전 KBS 사장은 “그동안 받은 은덕을 내 생각대로 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길을 갈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선암사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약 4주간에 걸친 엄한 행자교육을 마친 박씨는 “높은 문화유산과 일반 신도들이 실천하기 좋은 대승적인 계율을 갖고 있어 태고종을 택했다.”면서 “오래 전부터 출가할 생각을 했는데 한 신도가 절을 지어 시주할 뜻을 밝혀와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그는 내년 6월 완공되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 백련사 주지로 취임한다. “많은 분들이 제가 마치 무슨 거창한 계획이라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시는데,저는 부처님 제자로 심부름이나 하려고 합니다.스님이나 신도들이 바빠서 동사무소에 가지 못할 때엔 대신 다리 품을 팔아야지요.” 처음에는 가사 장삼을 입을 생각도하지 않았다는 박씨는 “봉사 소임을 맡기 위해선 계를 받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소문 끝에 태고종을 찾았고 황혼출가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학 시절부터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는 박씨는 “봉사 활동을 하다보면 나를 중심으로 한 작은 사회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고,신도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가족을 포함해 버린 것이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면벽수행 같은 고행은 맞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제 자신을 잘 지켜 내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고,주변에서 손쉬운 봉사부터 찾아 나가겠습니다.” 박씨는 경남 사천 출신으로 일간지 정치부장,편집국장,11대 국회의원,문화공보부 차관,KBS사장,수원대 법정대학장,동명정보대 총장을 지냈다. 순천 선암사 김성호기자 kimus@
  • [오늘의 눈] 변질된 APEC

    1989년 설립된 아태경제협력체(APEC)의 목적은 “역내 무역 자유화의 촉진과 실질적인 경제적·기술적 협력을 도모한다.”는 것이다.그러나 21일 폐막된 11차 정상회의를 보면 설립취지를 “경제협력보다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안보문제에 보다 큰 관심을 갖는다.”는 식으로 다시 써야 할 것 같다. 부시 행정부의 주장처럼 안보와 경제를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북핵과 테러는 역내 경제에 크고작은 영향을 미친다.따라서 안보 이슈를 배제하자는 주장 역시 현실을 무시한 ‘단견’에 불과하다.그러나 역내 안보가 지역경제에 실질적 위협이 될 만큼 위태로운지는 따질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가 대두된 지는 10년이 넘었다.그러나 북핵 문제로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진 것은 분명히 아니다.여기에 APEC이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다.북한에 다자 보장이라는 유인책을 제공하려면 이번처럼 방콕이 아닌 한국이나 일본에서 문서 보장안을 발표하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중국과 일본을 겨냥한 환율절상 압박은 역내 회원국이 아닌 미국내 제조업체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가 있다.변동환율제로 바꿔 위안화 가치를 올리는 게 과연 역내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는 미국내에서조차 논란이다.위안화의 급변이 국제 환투기를 불러 제2의 외환위기로 비화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미국이 테러리즘 척결을 강조하며 이라크 지원을 촉구하거나 미사일 확산방지 등을 주장한 것도 APEC이 당면한 과제는 아니다.그보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협상 결렬이 역내 경제에 미친 영향,사스 같은 괴질에 대한 공동대책,역내 자유무역지대(FTA)의 창설 등을 심도있게 논의했어야 했다.미국을 겨냥,“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마하티르 모하메드 말레이시아 총리의 언급은 지나친 감이 있으나 딱 부러지게 부인할 수도 없다.미국을 제외한 20개 회원국들이 들러리가 아니라면 ‘절에서 젓국찾는’ 미국의 정략적 행보에 한번쯤은 이의를 제기했어야 했다.APEC은 안보협의체가 아니다. 백문일 워싱턴 특파원 mip@
  • [녹색공간] 산감스님의 불끄기

    불교를 이야기할 때 놀라운 사실 하나는 붓다의 성스러운 일생이 항상 숲과 함께였다는 점이다.그는 숲속에서 태어나고,깨달음을 얻고,숲속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마침내 숲속에서 열반에 들었다. 1600년 한국불교도 숲을 떠나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신라 말 구산선문도 깊은 산 숲속에 자리했고,지금도 많은 수행자들이 산에 기대어 생사를 걸고 있다.전통적으로 수행자들이 지은 숲속의 절집들은 숲을 지키는 산막(山幕)으로서의 오랜 역할을 다했다.절숲이 건강하게 남아 있음은 절집이 숲을 지켜온 내셔널 트러스트의 산막이었음을 증명한다. 또한 숲속 수행자들은 각 지방의 기후풍토에 맞는 숲을 유지해 국토를 푸르게 하는 데 공헌했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로부터 나무와 꽃을 들여와 우리 숲의 다양성을 이룬 숲의 전령사들이었다.은행나무며,배롱나무며,파초며…. 수행자들의 숲을 위한 노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지금도 큰 절집에는 ‘산감(山監)’제도를 두고 숲을 지키고 있다.산감은 ‘산감독(山監督)’의 준말로,총림과 같은 큰 사찰에서 산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맡긴 소임이다.산감 소임은 대중스님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데,주로 사람들의 도벌을 막고,숲을 돌보고,산불을 감시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그러나 에너지 다변화로 사람들이 나무를 때지 않게 되고,숲 또한 솎아 주어야 할 만큼 울창해지면서 산감 소임도 한동안 유명무실해졌다.그래서 산감은 일없이 사하촌이나 드나들며 마을 개구쟁이들과 노는 게 소임이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산감스님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개발지상주의에 의해 사찰의 자연환경이 날로 망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예전에는 작대기 하나 들고 마을사람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 그만이었지만,지금은 그게 아니다.거대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나 기업을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중차대한 소임으로 바뀌었다. 낙동정맥 천성산은 내원사라는 비구니 사찰이 신라 원효 때부터 지켜온 산이다.거기 가녀린 비구니 스님들이 천성산 자연을 지키기 위해 좌충우돌 설쳐대는 거대한 공룡 정부와 몸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추운 겨울 도보를 시작으로,천성산 지키기 삼보일배,정부 과천청사에서의 일인 시위,성명서 발표,일일 삼천배 등을 이끌고 있는 산감 지율스님의 뒤를 이어 종교를 초월한 많은 이들이 스스로 산감이 되고자 줄을 잇고 있다. 천성산과 사패산이 몇 해째 산불에 타고 있다.예전에 산불이 나면 몰래 나무하다가 들켜서 산감에게 곱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도 너나없이 열일 제쳐두고 발 벗고 나서 불을 끄러 산으로 올라갔다.그 숲이 거기 있어야 자신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을 지키는 일은 개인적 이해타산에 따라 찬반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자연을 지키는 일은 그 어떤 정치적 입장에도 우선하는 가치다.숭유배불의 살벌했던 조선왕조도 사찰의 자연환경만은 함부로 훼손하지 않았다.오히려 곳곳에 금표(禁標)를 박아 지켜주었음을 우리 시대는 상기해야 할 것이다.노 정권은 ‘재신임’ 운운하는 정치적 도박판에 환경문제를 ‘돈 놓고 돈 먹기’식으로 내놓지 않기를 기대한다. 김 재 일 두레 생태기행 대표
  • 상여꾼 이끄는 구슬픈 선소리 50년/‘쌍상여 호상놀이’ 전수자 이재경 씨

    ‘천지 만물 중에 인간만큼 귀한 게 또 있을까.우리네 인생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것을…’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던가.그러나 태어남이 그렇듯 죽음 또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하랴.그래서인지 예부터 배우자의 장례 기일에 눈을 감는 이를 축복받은 삶의 상징으로 그렸다.두 개의 상여가 나란히 이승의 문을 나가게 되는 것을,호상(好喪) 가운데 호상이라 했다.“당신과 한 날 한 시에 죽고 싶다.”는 말 속엔 인위적으로 그럴 수 없는 인간의 소망이 담겨 있는지 모른다. ●이승의 마지막 입맞춤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는 지금도 두 개의 상여가 함께 나가는 ‘쌍상여 호상놀이’의 명맥이 살아 숨쉬고 있다.암사동의 옛 지명인 바위절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이 놀이를 이어가고 있는 이재경(李載慶·74·서울시 무형문화재 10호)옹.그는 “1954년부터 상여꾼을 이끄는 선소리를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이야.”라고 운을 뗐다. 19세 때인 48년 선소리를 배웠다.기골이 장대한 데다 상여를 뒤따르는 농악대에서도 호적(胡笛)을 잘 분다고 소문 날 정도로 음악성이 꽤 깊었던 터라 ‘지휘자’격인 선소리꾼으로 일찌감치 발탁됐다. 그는 “출상(出喪) 때 두 개의 상여가 이리저리 밀리는가 하면 급기야 머리를 마주 하고 입을 맞댄다.”면서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으니 땅 속에 묻히기 전에 마지막으로 키스나 한번 하고 떠나자는 게지.”라고 쌍상여 행진에 얽힌 사연들을 풀어나갔다. 지금 이옹을 포함해 ‘바위절마을 호상놀이 보존회’ 회원은 150여명에 이른다.모두가 이곳에서 형님,아우로 지내온 사람들이다. 4대째 이 동네에서 사는 문경수(文慶洙·63)씨는 69년엔 지금의 강동구 강일동에서 송파구 오금동까지 10여㎞를 산 넘고,물 건너 장지(葬地)까지 간 경험도 있다고 떠올린다.그만큼 버거운 일이다. ●“저승 보냄이 쉽나?” 아무리 실제가 아니라 옛 풍습을 재연하는 것이지만 행사 진행에 참가한 ‘가짜 상주’들은 정말로 핏줄을 여읜 듯 구슬프디 구슬픈 곡(哭)으로 구경꾼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출상,상여놀이,노제,외나무다리건너기,징검다리건너기,달구질로 구성된 호상놀이 재연행사는 2시간여 걸린다.이 가운데서도 압권은 단연 외나무,징검다리,논두렁 등 장애물을 건너가는 장면이 첫 손에 꼽힌다.각각 폭이 330㎝,370㎝나 되는 크고 작은 두 개의 상여가 장지로 가는 길에 논두렁,징검다리 등 70∼90㎝밖에 안되는 매우 비좁은 장소를 건널 때는 아슬아슬하면서도 절묘한 장면으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상여꾼들의 균형감각이 없다면 쓰라린 낭패감을 맛보기 십상이다.그러나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이옹은 행여 상여가 물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망자를 욕되게 하기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운다고 설명했다.이러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옛날엔 마을 사람이 죽으면 그날부터 장례일까지 오일장이면 닷새,삼일장이면 사흘을 꼬박 상여 연습에 힘을 쏟았다고 기억을 더듬었다.어떤 땐 상여꾼들끼리 발이 안 맞아 밤을 지새우는 일도 잦았다고 했다.이럴 때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막걸리와 김치였다. ●이 한몸 가면 그뿐 요즘 확산되고 있는 납골·산골,화장 등 새로운 장묘문화에 대해 묻자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상여로 떠올려지는매장 찬성론자의 태도와는 반대였다.이옹은 “땅이 좁아지고 후세의 인식이 달라졌으니 (변화는)당연한 것”이라면서 “내가 죽으면 그만인데…”라고 짧은 한숨과 함께 말꼬리를 흐렸다. “죽은 이가 마지막 가는 길에서라도 서러움을 떨쳐내고 기분좋게 해주기 위해 될수록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야 하며 이렇게 하려면 복잡한 예식이 되는 것이야.장례는 마음의 문제야.결국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남은 사람들이 아옹다옹하지 않고 화목하게 살자는 단합의 마당이라 할 수 있지.” 그는 “가끔 바위절 호상놀이를 두고 절차가 틀렸다고 다른 지역인이 따지는 일도 있지만,얼마나 진심으로 망자에 대한 애석함을 표시하느냐가 훨씬 중요하지 절차가 그렇게 중요하겠느냐.”고 말한다. 선소리꾼은 걸음의 완급을 판단해 적절히 구령을 넣어야 한다.선소리 마디마디에 율동을 넣어 발걸음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다.“군대식으로 ‘뒤로 돌아 갓’이란 구령이 있는데,지휘관이 빠르기를 알맞게 하지 못하면 오합지졸을 만드는 게 아니냐.”라고 예를 들었다.그래서 선소리엔 적당한 ‘애드리브'(ad lib)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젊은이들이 어려워 해 전수자가 끊길까 우려된다.”며 기능보전에 대한 정부 등의 대책을 아쉬워했다.그는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인 장례절차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은 갖고 있기는 한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송한수기자 onekor@
  • 개신교신자 삼보일배 참여 논란/전북 기독교 교회협 첫 반대 성명

    ‘기독교의 근본 정신을 벗어난 이단행위’‘종교의 생명존중사상을 실천하는 보편적인 행동’ 최근 집회나 환경운동 등에서 불교의 삼보일배(三步一拜) 의식을 하는 개신교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개신교계의 찬반양론이 뜨겁다. 원래 불교에서 삼보일배는 수행법인 ‘절’의 한 형태로,자기를 낮추어 부처님과 자연을 공경하고 예배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세걸음을 걸을 때마다 한 번씩 절을 해 탐욕과 성냄,어리석음 등 인간의 삼독(三毒)을 상징적으로 끊겠다는 자기 서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삼보일배의 자연·생명존중 의미에 공감한 다른 종교계의 참여가 늘면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부안에서 서울까지 진행됐던 새만금갯벌살리기 삼보일배단에 이희운 목사가 시종일관 함께 했고 그 이후 크고 작은 행사에 개신교 인사들의 삼보일배 참여가 크게 늘고 있다.최근 핵폐기장 백지화를 요구하는 부안군민들의 삼보일배에도 개신교 신자들이 가세했다.이처럼 개신교 신자들의 삼보일배 참여가 늘자 마침내 지난 6일 전북지역 14개 시·군 기독교회로 구성된 전북기독교교회협의회가 개신교 단체로는 처음으로 “개신교 신자들의 삼보일배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에 대한 신자들의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협의회가 밝힌 입장은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는 기독교 교리와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기독교인이 아니며 기독교인일 수 없다.”는 게 요지. 이에 대해 뉴스앤조이 등 개신교계 인터넷 신문에는 협의회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과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의 글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삼보일배의 정신,즉 내용이 중요하면 그런 불교식 태도가 무엇이 중요한가”(청결)/“불교의 구도전통은 얼마든지 기독교에서 그 형태를 취할 수 있다.구도행위를 빌려온다고 해서 진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평화). 김성호기자 kimus@
  • [임영숙 칼럼] ‘경계도시’의 ‘경계인’

    송두율 교수가 “어떤 처벌도 받겠지만 추방은 상상하기 싫다.”고 말했을 때 가슴 한 구석에 찡한 느낌이 왔다.‘아무리 오래 살아도 유랑자와 같은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해외 거주 지식인’이 고향땅에 뼈를 묻고자 하는 수구초심을 표현한 것으로 그 말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길을 먼저 걸었던 윤이상은 고향 통영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며 노후를 조용히 지내고 싶어했지만 끝내 그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갔다. 윤이상이 타계하기 1년 전인 지난 94년 그의 음악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국내 첫 시도였던 윤이상 음악제가 열렸을 때 나는 “77세의 병든 노구로 고향땅을 밟고자 하는 그의 염원을 가로막아야 했던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문화부의 공연담당 기자로서 유럽음악계가 경탄하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에 대한 풍문을 계속 들으면서 그의 실체를 접할 수 없는 목마름을 나는 느꼈다. 그의 귀국을 추진한 국내 음악계의 노력은 번번이 좌절됐고 그 노력을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당시중앙정보부 요원의 방문을 받기도 했다.나는 윤이상 음악제에 달려갔고 금기시됐던 그 음악의 아름다움에 눈물이 나올 만큼 감동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부인과 아들들을 데리고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 눈물을 흘리며 절하는 송 교수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부인 정정희씨의 대한매일 인터뷰는 더욱 가슴 아팠다.입국 계기를 “제일 먼저는 아이들 때문이다.”고 밝힌 부인은 “아버지가 겪은 아픔을 두 아들이 고스란히 넘겨 받는 것 같다.”며 몇 차례나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한다. 그러나 송 교수의 다른 언행은 이런 정서적인 접근을 무색하게 만든다.그가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수만달러를 북으로부터 받았고 ‘정치국 후보위원 김철수’로 확인됐다는 국정원의 조사결과가 밝혀진 후 가진 기자회견은 엉뚱했다.자신의 지난 과오를 진솔하게 털어 놓고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대 국민 사과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기자회견은 마치도 ‘경계인’의 강의 같았다.송 교수 자신도 37년 만의 귀국에서 ‘문화 충격’을 느꼈다지만,양파 껍질 벗겨지듯그의 진실이 벗겨진 다음 가슴으로 다가오는 사과가 아닌 ‘어정쩡한 자기 합리화’ 같은 해명을 강의처럼 들어야 했던 시청자들은 분노하거나 실망했다.악의적인 색깔 공세 탓이든,진솔하게 과거 행적을 밝히지 않은 송 교수 자신의 탓이든,기자회견과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오랜 외국생활로 인한 그의 한국어 구사와 이해에 문제가 있었든 ‘지식인 송두율’은 거의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듯싶다. 송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의 홍형숙 감독은 “경계도시는 원래 동·서독 분단시절에 베를린의 별칭이지만 통독 이후 지구상의 마지막 경계도시는 대한민국의 서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경계도시 시절 베를린처럼 지금 서울과 평양도 육로로 연결돼 1000여명이 한꺼번에 평양을 방문하고 있다.이 경계도시를 찾은 경계인은 그러나 동족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미국의 다문화 커뮤니케이션 학자 홉스테드가 한국 문화를 ‘불확실성 회피가 높은 문화’라고 분석했을 정도니 남과 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경계인이 설자리는 이곳에 없는 것이다. 10년 전 윤이상의 귀국이 이루어졌다면 그가 지금처럼 온전히 내 기억 속에 남을 수 있었을까.귀국조건으로 ‘서약서’라는 이름의 ‘반성문’을 쓰는 것을 거부했던 그가 만일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귀국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지식인 송두율’에게 실망했다 하더라도 ‘자연인 송두율’에게 연민을 가질 수는 없을까.처자식을 데리고 찾아온 이를 내치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우리는 생떼 같은 목숨을 백십여명이나 죽인 KAL기 폭파범 김현희도 품에 안은 민족이 아닌가.부질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주필 y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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