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6-23
    검색기록 지우기
  • 청부
    2026-06-23
    검색기록 지우기
  • 사라
    2026-06-23
    검색기록 지우기
  • 대대
    2026-06-23
    검색기록 지우기
  • 무례
    2026-06-2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05
  • [서울신문 새출범 리셉션]이명박시장 “새 100년 여는 신문되길”

    ●정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정세균 〃 정책위의장 △배기선 국회 문광위원장 △심재권 민주당 대표비서실장 △윤여준 한나라당 의원 △김용균 〃 의원 △장광근 〃 의원 △박진 〃 대변인 △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 △김영춘 〃 의원 △박영선 〃 대변인 △박성범 한나라당 중구지구당위원장 ●관계 △고건 국무총리 △김진표 경제부총리 △안병영 교육부총리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허상만 농림부장관 △한명숙 환경부장관 △지은희 여성부장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장승우 해양수산부장관 △김병일 기획예산처장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문희상 청와대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이병완 〃 홍보수석 △박주현 〃 참여혁신수석 △조윤제 〃 경제보좌관 △윤태영 〃 대변인 △김칠두 산업자원부 차관 △김창곤 정보통신부 차관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 △권오룡 행정자치부 차관보 △김성진 재정경제부 공보관 △유선규 교육부 공보관 △정남준 행정자치부 공보관 △이상목 과학기술부 공보관 △이기섭 산업자원부 공보관 △남선우 공정거래위원회 공보관 △이철휘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김창환 국세청 공보담당관 △천룡 재정경제부 국유재산과장 △박광무 문화관광부 출판신문과장 △송정근 문화관광부 출판신문과 △이동훈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이명박 서울시장 △이춘식 서울시 정무부시장 △최창식 서울시 건설안전본부장 △김순직 서울시 대변인 △강경호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제타룡 도시철도공사 사장△조광권 서울시교통연구원장 △문병권 중랑구청장 △김충용 종로구청장 △정영섭 광진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유영 강서구청장 △고재득 성동구청장 △조남호 서초구청장 △권문용 강남구청장 △김기동 중구청장 권한대행 △조동수 송파구 공보과장 △손덕수 서울 중구의회 의장 △박양삼 강서구의회 의장 △김동학 중구의회 부의장 △이종만 광진구의회 의원 △김영식 성북구의회 의원 ●경제계 △신동혁 은행연합회장 △이호군 여신금융협회장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 △오상현 손해보험협회장 △강권석 금융감독원 부원장 △오갑수 〃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김종욱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김영석 〃부행장 △박인철 〃홍보실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주철수 〃홍보실장 △배을용 〃팀장 △최동수 조흥은행장 △정계용 〃홍보실장 △신동규 한국수출입은행장 △홍영표 〃홍보실장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연원영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신명태 〃공보실장 △김인환 기업은행 행장직무대행△강신원 한미은행 부행장 △이옥원 국민은행 홍보실장 △김종창 금융통화위원△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 △신호주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맹정주 한국증권금융 사장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황성수 한국증권업협회 홍보실장 △김진수 증권예탁원 홍보실장 △박종수 대우증권 사장 △김진걸 〃홍보부장 △박중진 동양종금증권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강연재 〃전무△구정득 〃이사△박승권 〃홍보실장 △장정욱 LG투자증권 홍보팀장 △조경순 대신증권 홍보실장 △송치호 메리츠증권 홍보팀장 △도덕재 한국투자증권 홍보부장 △이희주 〃홍보팀장 △강석연 한국신용정보 대표이사 △이재순 농협중앙회 홍보실장 △임형수 〃팀장 △권오용 KTB네트워크㈜ 상무 △최기훈 미래에셋증권 홍보팀장 △서광민 굿모닝신한증권 홍보실장 △윤재만 비씨카드 상임감사 △김인래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송재명 〃전무 △김상욱 현대캐피탈 전무 △박병욱 금호생명 사장 △조해성 〃경영기획팀장 △이동훈 제일화재 회장 △김우황 〃부회장 △김형철 〃대표이사 △이은성 동양화재 이사 △곽제동 동부화재 부사장 △김문기 〃홍보실장 △고준호 삼성생명 홍보부장 △고석표 대한생명 홍보부장 △정재원 ING생명 홍보부장 △오영교 KOTRA 사장 △곽주영 KT&G 사장 △한영수 한국무역협회 전무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현정은 현대 회장 △노치용 〃전무△현기춘 〃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육재희 〃상무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오동수 〃상무 △이용훈 현대자동차 전무 △장윤경 현대모비스 홍보부장 △이종수 현대건설 전무 △손광영 〃상무 △정근영 〃부장 △이광석 현대산업개발 상무 △송철수 〃홍보부장 △남영선 한화 상무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진철호 진엔지니어링 사장 △김승진 〃이사 △양한호 인천국제공항철도 부사장 △김순복 신세계 부사장 △하정만 유한양행 홍보팀장 △안홍진 삼성 상무 △김광태 삼성전자 상무 △김왕열 삼성건설 홍보부장 △조돈영 르노삼성자동차 전무 △정상국 LG 부사장 △김영수 LG전자 부사장 △유성노 〃홍보부장 △이상민 LG텔레콤 상무 △최영택 LG카드 상무 △장기주 LG건설 상무 △허태열 〃홍보부장 △이노종 SK 기업문화실 전무 △신영철 SK텔레콤 상무 △이상민 SK건설 홍보팀장 △방대훈 SK네트웍스 홍보부장 △유지호 SK건설 상무 △두원수 하나로통신 이사 △최형 롯데 이사 △윤석금 웅진 회장 △강석진 CEO그룹 회장 △박병욱 금호아시아나 대표이사 △오남수 〃사장 △장성지 〃상무 △최준집 대한항공 전무 △서강윤 〃홍보부장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 △정학재 ㈜페이퍼러스 사장 △강병원 동원E&C 사장 △홍원주 정미산업 대표이사 △김종택 대한상공회의소 홍보실장 △김태호 KTF 홍보실장 △김교육 린나이코리아 전무 △양재은 〃홍보팀장 △김상환 삼번 사장 △이은복 서울경금속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이영국 GM대우 수석부사장 △김종도 〃상무 △김석기 동명기술공단 사장 △최상규 ㈜신영 홍보부장 △오규현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 전무 △윤귀석 〃이사 △이남규 광명잉크㈜ 대표이사 △엄성용 효성 상무 △이충구 유닉스전자 대표이사 △박윤수 보워터한라제지 부사장 △김상영 POSCO 홍보실장 △유덕희 경동제약 회장 △박재영 삼미오피스텔 사장 △남동익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이종연 〃홍보위원 △김희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장 △김부원 대한공인중개사협회장 △정종득 벽산건설㈜ 대표이사 △이부용 롯데건설 홍보팀장 △송자 대교 회장 △전순표 CESCO 사장 △이병권 해태제과 기업홍보부장 △표철종 〃파트장 △김진 ㈜두산 부사장 △김영배 경총 전무 △김소유 아폴로산업 대표이사 △이재희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조성호 정광건설 사장 △박상회 삼보맨파워 대표이사 △배선용 대림산업 홍보부장 △이정진 스타항공투어 점장 △남기혁 대우건설 이사 △조문형 〃홍보팀장 △이병우 KT 상무 △우정목 신성교통 회장 △문규영 아주산업 회장 △이경동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부이사장 ●문화·언론·학계 △이운산 종교협의회 회장·태고종 총무원장 △최인호 소설가 △법현 태고종 교무부장 △김기덕 명지대교수 △김봉현 동국대 교수 △현용순 건국대 교수 △김행수 스포츠서울 대표이사 △이종남 〃 제작이사 △이보상 〃 경영기획실장 △이상우 굿데이 회장 △이태형 동아TV 회장 △박기정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신동식 한국여성언론인연합 공동대표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정복수 한국어문언론인협회장 △이웅 한국신문잉크주식회사 대표이사 △김두호 굿데이 전무이사 △박원세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 △김정명 문화일보 상무 △박강호 언론노조 부위원장 △추덕담 〃 대외협력국장 △박옥희 이프 발행인 △신방휴 KD미디어 전무 △한보영 문화방송 해설위원 △김호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김현수 한국교열기자협회 편집위원 △김운기 한국언론재단 광고영업부장 △이윤표 한국언론재단 △은효진 APC뉴스 발행인 △김시욱 스포츠조선 서부광고지사장 △유달산 도서출판인아 사장△위호인 MBC애드컴 대표이사 △김동완 치즈필름프로덕션 대표 △최욱 〃 감독 △김용길 헤드컴 대표 △조안준 조안준디자인어소시에이츠 대표 △신호인 KD미디어 대표이사 △최종덕 비디코리아 대표이사 △이두학 웰콤 부사장 △김춘오 나라 피앤피 부장 ●주한 외교사절 △리빈 주한 중국대사 △테이무라즈 라미시빌리 주한 러시아대사 △프랑수아 데스쿠엣 주한 프랑스대사 △크리스토퍼 로빈스 주한 영국 부대사 △오사와 츠토무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 △모린 코맥 주한 미대사관 공보관 1등서기관 △최성완 주한 미대사관 공보담당관 △리 루이 펑 주한 중국대사관 공보관 △아르노 몽티니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관 △제니 홍 주한 영국대사관 홍보담당관 ●전직사우 △고홍경 △김기봉 △김기철 △김성태 △김소유 △김종규 △김창년 △김천곤 △박권순 △박기남 △박헌환 △반영환 △배기찬 △변희범 △신동수 △신우식 △안병탁 △연병해 △원완식 △유병하 △윤영옥 △윤일균 △이기춘 △이동화 △이상무 △이세일 △이중호 △이평원 △임정용 △장기봉 △전경영 △조남진 △조항진 △주영관 △최재근 △최태원 △황병선 ●기타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이내흔 대한야구협회 회장 △유건재 한국기원 사무총장 △오맹근 전국자동차노조 정책기획국장 △송근달 무공수훈자협회 부천시 자문위원 △최병재 서울신문 강남지사장 △최재근 〃 풍산지국장 △김기봉 〃 청양지국장 △황갑순 〃 경기 장흥지국장 화환 보내주신 분 △강경호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이사장 △강성천 전국자동차노조연맹위원장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장 △강영주 한국증권거래소이사장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고재일 ㈜동일토건사장 △구형우 페이퍼코리아회장 △곽주영 ㈜KT&G대표이사 △권기홍 노동부장관 △권오창 ㈜대한주택보증사장 △김영기 한국농구연맹총재 △김무원 대한공인중개사협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김승호 보령제약사장 △김영수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윤규 현대아산사장 △김인환 중소기업은행장직무대행 △김정길 열린우리당상임중앙위원 △김정태 국민은행장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 △김행수 스포츠서울21사장 △닉 라일리 대우오토테크놀로지사장 △도기권 굿모닝신한증권대표이사 △라응찬 신한금융지주회사회장 △로버트 펠런 외환은행장 △마티어스 아이혼 아그파코리아대표이사 △문규영 ㈜아주산업회장 △맹정주 한국증권금융사장 △박병욱 금호생명보험사장 △박세흠 ㈜대우건설대표이사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박종수 ㈜대우증권대표이사 △박중진 동양종합금융증권대표이사 △법장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 △서정돈 성균관대총장 △성균경영인포럼회원일동 △손경식 CJ주식회사회장 △송자 ㈜대교회장 △스포츠서울21노동조합지부 △신동규 한국수출입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신훈 금호건설사장 △안정호 한국인삼공사사장 △양승우 안진회계법인대표이사 △연원영 한국자산관리공사사장 △오상현 대한손해보험협회장 △오호수 한국증권업협회장 △요스트 케네만스 ING생명대표이사 △유삼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윤국진 기아자동차대표이사 △윤병철 우리금융그룹회장 △윤종웅 하이트맥주 △이건희 삼성회장 △이구택 포스코회장 △이래소 현대통신회장 △이상우 굿데이신문회장 △이인원 예금보험공사사장 △이재희 ㈜유니레버코리아회장 △이종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이지송 현대건설사장 △이팔성 우리증권사장 △이호웅 한국씨름연맹총재 △장면태 이멕스21대표이사 △장석준 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 △전윤철 감사원장 △정건섭 동양화재해상보험사장 △정동영 열린우리당의장 △정대근 농협중앙회장 △정만원 ㈜SK네트웍스사장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정영섭 구청장협의회장 △정창용 AD사업단 △제일화재해상보험 △조순형 민주당대표 △최동수 조흥은행장 △최병렬 한나라당대표 △한국프로축구연맹 △허동수 한국기원이사장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황의존 전국버스운송조합조합장 화분 보내주신 분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 △구본무 LG회장 △김병묵 경희대총장 △김석기 ㈜동명기술공단대표이사 △김지완 ㈜현대증권대표이사 △김진선 강원도지사 △노원식 농협광화문지점장 △다그터 볼드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대표이사 △마형렬 대한건설협회장 △박기정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회장 △신호인 ㈜케이디미디어대표 △야마모토 도쿄신문대표 △오영교 코트라사장 △윤창번 하나로통신사장 △이규방 국토연구원장 △이용경 KT사장 △이웅 ㈜한국신문잉크 △이인원 예금보험공사사장 △이호군 ㈜비씨카드대표이사 △최동주 ㈜올가푸드 △최연희 국회의원 △최종덕 BD코리아대표이사 △한상량 ㈜보워터한라제지사장 △허동수 한국기원이사장(가나다순)
  • “친근한 '서울’로 독자에 다가갈것”

    서울신문은 4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내외빈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호변경을 축하하고 새출발을 다짐하는 축하연을 가졌다. 채수삼 서울신문사 사장은 인사말에서 “보다 밝고 역동적이면서 친근감 있는 세련된 이미지의 ‘서울’이라는 명칭을 제호로 사용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해 제호를 변경하게 됐다.”고 밝히고 “독자가 찾고 싶고,읽고 싶은 신문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애정을 갖고 지켜봐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축사에서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꿔 21세기 서울신문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고,한나라당을 대표해 참석한 홍사덕 원내총무는 “서울신문이 창간 100주년을 맞은데 경의를 표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건배사를 통해 “창간 100년을 맞이한 서울신문이 앞으로 정도를 걷는 새로운 미래 100년을 열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관계에서는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허성관 행정자치·오명 과학기술·허상만 농림·한명숙 환경·지은희 여성·강동석 건설교통·장승우 해양수산·김병일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참석했다.청와대에서는 문희상 비서실장·유인태 정무수석·이병완 홍보수석·조윤제 경제보좌관·윤태영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재계에서는 현명관 전경련 상근부회장,신동혁 은행연합회장,김종창 한은 금통위원,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오영교 KOTRA 사장,박병욱 금호아시아나 대표이사,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이연택 대한체육회장,본지에 연재중인 소설 ‘유림’의 작가 최인호씨,종교협의회 회장인 이운산 스님(태고종 총무원장) 등이 참석했다.한편 서울신문은 올 1월1일부터 대한매일에서 제호를 바꿔 새출발했으며,대한매일신보의 항일 구국 정신을 이어 받아 올해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 ■ 참석자 명단 ●정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정세균 〃 정책위의장 △배기선 국회 문광위원장 △심재권 민주당 대표비서실장 △윤여준 한나라당 의원 △김용균 〃 의원 △장광근 〃 의원 △박진 〃 대변인 △김부겸 열린우리당 의원 △김영춘 〃 의원 △박영선 〃 대변인 △박성범 한나라당 중구지구당위원장 ●관계 △고건 국무총리 △김진표 경제부총리 △안병영 교육부총리 △허성관 행정자치부장관 △오명 과학기술부 장관 △허상만 농림부장관 △한명숙 환경부장관 △지은희 여성부장관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 △장승우 해양수산부장관 △김병일 기획예산처장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문희상 청와대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 △이병완 〃 홍보수석 △박주현 〃 참여혁신수석 △조윤제 〃 경제보좌관 △윤태영 〃 대변인 △김칠두 산업자원부 차관 △김창곤 정보통신부 차관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 △권오룡 행정자치부 차관보 △김성진 재정경제부 공보관 △유선규 교육부 공보관 △정남준 행정자치부 공보관 △이상목 과학기술부 공보관 △이기섭 산업자원부 공보관 △남선우 공정거래위원회 공보관 △이철휘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김창환 국세청 공보담당관 △천룡 재정경제부 국유재산과장 △박광무 문화관광부 출판신문과장 △송정근 문화관광부 출판신문과 △이동훈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이명박 서울시장 △이춘식 서울시 정무부시장 △최창식 서울시 건설안전본부장 △김순직 서울시 대변인 △강경호 서울지하철공사 사장 △제타룡 도시철도공사 사장△조광권 서울시교통연구원장 △문병권 중랑구청장 △김충용 종로구청장 △정영섭 광진구청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유영 강서구청장 △고재득 성동구청장 △조남호 서초구청장 △권문용 강남구청장 △김기동 중구청장 권한대행 △조동수 송파구 공보과장 △손덕수 서울 중구의회 의장 △박양삼 강서구의회 의장 △김동학 중구의회 부의장 △이종만 광진구의회 의원 △김영식 성북구의회 의원 ●경제계 △신동혁 은행연합회장 △이호군 여신금융협회장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 △오상현 손해보험협회장 △강권석 금융감독원 부원장 △오갑수 〃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 △김종욱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김영석 〃부행장 △박인철 〃홍보실장 △김승유 하나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주철수 〃홍보실장 △배을용 〃팀장 △최동수 조흥은행장 △정계용 〃홍보실장 △신동규 한국수출입은행장 △홍영표 〃홍보실장 △이인원 예금보험공사 사장 △연원영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신명태 〃공보실장 △김인환 기업은행 행장직무대행△강신원 한미은행 부행장 △이옥원 국민은행 홍보실장 △김종창 금융통화위원△강영주 증권거래소 이사장 △신호주 코스닥증권시장 사장 △맹정주 한국증권금융 사장 △임종록 한국증권업협회 상무 △황성수 한국증권업협회 홍보실장 △김진수 증권예탁원 홍보실장 △박종수 대우증권 사장 △김진걸 〃홍보부장 △박중진 동양종금증권 사장 △김지완 현대증권 사장 △강연재 〃전무△구정득 〃이사△박승권 〃홍보실장 △장정욱 LG투자증권 홍보팀장 △조경순 대신증권 홍보실장 △송치호 메리츠증권 홍보팀장 △도덕재 한국투자증권 홍보부장 △이희주 〃홍보팀장 △강석연 한국신용정보 대표이사 △이재순 농협중앙회 홍보실장 △임형수 〃팀장 △권오용 KTB네트워크㈜ 상무 △최기훈 미래에셋증권 홍보팀장 △서광민 굿모닝신한증권 홍보실장 △윤재만 비씨카드 상임감사 △김인래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송재명 〃전무 △김상욱 현대캐피탈 전무 △박병욱 금호생명 사장 △조해성 〃경영기획팀장 △이동훈 제일화재 회장 △김우황 〃부회장 △김형철 〃대표이사 △이은성 동양화재 이사 △곽제동 동부화재 부사장 △김문기 〃홍보실장 △고준호 삼성생명 홍보부장 △고석표 대한생명 홍보부장 △정재원 ING생명 홍보부장 △오영교 KOTRA 사장 △곽주영 KT&G 사장 △한영수 한국무역협회 전무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현정은 현대 회장 △노치용 〃전무△현기춘 〃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육재희 〃상무 △김중웅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노정익 현대상선 사장 △오동수 〃상무 △이용훈 현대자동차 전무 △장윤경 현대모비스 홍보부장 △이종수 현대건설 전무 △손광영 〃상무 △정근영 〃부장 △이광석 현대산업개발 상무 △송철수 〃홍보부장 △남영선 한화 상무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 △진철호 진엔지니어링 사장 △김승진 〃이사 △양한호 인천국제공항철도 부사장 △김순복 신세계 부사장 △하정만 유한양행 홍보팀장 △안홍진 삼성 상무 △김광태 삼성전자 상무 △김왕열 삼성건설 홍보부장 △조돈영 르노삼성자동차 전무 △정상국 LG 부사장 △김영수 LG전자 부사장 △유성노 〃홍보부장 △이상민 LG텔레콤 상무 △최영택 LG카드 상무 △장기주 LG건설 상무 △허태열 〃홍보부장 △이노종 SK 기업문화실 전무 △신영철 SK텔레콤 상무 △이상민 SK건설 홍보팀장 △방대훈 SK네트웍스 홍보부장 △유지호 SK건설 상무 △두원수 하나로통신 이사 △최형 롯데 이사 △윤석금 웅진 회장 △강석진 CEO그룹 회장 △박병욱 금호아시아나 대표이사 △오남수 〃사장 △장성지 〃상무 △최준집 대한항공 전무 △서강윤 〃홍보부장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 △정학재 ㈜페이퍼러스 사장 △강병원 동원E&C 사장 △홍원주 정미산업 대표이사 △김종택 대한상공회의소 홍보실장 △김태호 KTF 홍보실장 △김교육 린나이코리아 전무 △양재은 〃홍보팀장 △김상환 삼번 사장 △이은복 서울경금속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이영국 GM대우 수석부사장 △김종도 〃상무 △김석기 동명기술공단 사장 △최상규 ㈜신영 홍보부장 △오규현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 전무 △윤귀석 〃이사 △이남규 광명잉크㈜ 대표이사 △엄성용 효성 상무 △이충구 유닉스전자 대표이사 △박윤수 보워터한라제지 부사장 △김상영 POSCO 홍보실장 △유덕희 경동제약 회장 △박재영 삼미오피스텔 사장 △남동익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이종연 〃홍보위원 △김희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장 △김부원 대한공인중개사협회장 △정종득 벽산건설㈜ 대표이사 △이부용 롯데건설 홍보팀장 △송자 대교 회장 △전순표 CESCO 사장 △이병권 해태제과 기업홍보부장 △표철종 〃파트장 △김진 ㈜두산 부사장 △김영배 경총 전무 △김소유 아폴로산업 대표이사 △이재희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조성호 정광건설 사장 △박상회 삼보맨파워 대표이사 △배선용 대림산업 홍보부장 △이정진 스타항공투어 점장 △남기혁 대우건설 이사 △조문형 〃홍보팀장 △이병우 KT 상무 △우정목 신성교통 회장 △문규영 아주산업 회장 △이경동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부이사장 ●문화·언론·학계 △이운산 종교협의회 회장·태고종 총무원장 △최인호 소설가 △법현 태고종 교무부장 △김기덕 명지대교수 △김봉현 동국대 교수 △현용순 건국대 교수 △김행수 스포츠서울 대표이사 △이종남 〃 제작이사 △이보상 〃 경영기획실장 △이상우 굿데이 회장 △이태형 동아TV 회장 △박기정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신동식 한국여성언론인연합 공동대표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정복수 한국어문언론인협회장 △이웅 한국신문잉크주식회사 대표이사 △김두호 굿데이 전무이사 △박원세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부회장 △김정명 문화일보 상무 △박강호 언론노조 부위원장 △추덕담 〃 대외협력국장 △박옥희 이프 발행인 △신방휴 KD미디어 전무 △한보영 문화방송 해설위원 △김호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 △김현수 한국교열기자협회 편집위원 △김운기 한국언론재단 광고영업부장 △이윤표 한국언론재단 △은효진 APC뉴스 발행인 △김시욱 스포츠조선 서부광고지사장 △유달산 도서출판인아 사장△위호인 MBC애드컴 대표이사 △김동완 치즈필름프로덕션 대표 △최욱 〃 감독 △김용길 헤드컴 대표 △조안준 조안준디자인어소시에이츠 대표 △신호인 KD미디어 대표이사 △최종덕 비디코리아 대표이사 △이두학 웰콤 부사장 △김춘오 나라 피앤피 부장 ●주한 외교사절 △리빈 주한 중국대사 △테이무라즈 라미시빌리 주한 러시아대사 △프랑수아 데스쿠엣 주한 프랑스대사 △크리스토퍼 로빈스 주한 영국 부대사 △오사와 츠토무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 △모린 코맥 주한 미대사관 공보관 1등서기관 △최성완 주한 미대사관 공보담당관 △리 루이 펑 주한 중국대사관 공보관 △아르노 몽티니 주한 프랑스대사관 공보관 △제니 홍 주한 영국대사관 홍보담당관 ●전직사우 △고홍경 △김기봉 △김기철 △김성태 △김소유 △김종규 △김창년 △김천곤 △박권순 △박기남 △박헌환 △반영환 △배기찬 △변희범 △신동수 △신우식 △안병탁 △연병해 △원완식 △유병하 △윤영옥 △윤일균 △이기춘 △이동화 △이상무 △이세일 △이중호 △이평원 △임정용 △장기봉 △전경영 △조남진 △조항진 △주영관 △최재근 △최태원 △황병선 ●기타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이내흔 대한야구협회 회장 △유건재 한국기원 사무총장 △오맹근 전국자동차노조 정책기획국장 △송근달 무공수훈자협회 부천시 자문위원 △최병재 서울신문 강남지사장 △최재근 〃 풍산지국장 △김기봉 〃 청양지국장 △황갑순 〃 경기 장흥지국장 화환 보내주신 분 △강경호 서울특별시지하철공사이사장 △강성천 전국자동차노조연맹위원장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장 △강영주 한국증권거래소이사장 △고영구 국가정보원장 △고재일 ㈜동일토건사장 △구형우 페이퍼코리아회장 △곽주영 ㈜KT&G대표이사 △권기홍 노동부장관 △권오창 ㈜대한주택보증사장 △김영기 한국농구연맹총재 △김무원 대한공인중개사협회장 △김승연 한화회장 △김승호 보령제약사장 △김영수 중소기업중앙회회장 △김윤규 현대아산사장 △김인환 중소기업은행장직무대행 △김정길 열린우리당상임중앙위원 △김정태 국민은행장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장 △김행수 스포츠서울21사장 △닉 라일리 대우오토테크놀로지사장 △도기권 굿모닝신한증권대표이사 △라응찬 신한금융지주회사회장 △로버트 펠런 외환은행장 △마티어스 아이혼 아그파코리아대표이사 △문규영 ㈜아주산업회장 △맹정주 한국증권금융사장 △박병욱 금호생명보험사장 △박세흠 ㈜대우건설대표이사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오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박종수 ㈜대우증권대표이사 △박중진 동양종합금융증권대표이사 △법장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 △서정돈 성균관대총장 △성균경영인포럼회원일동 △손경식 CJ주식회사회장 △송자 ㈜대교회장 △스포츠서울21노동조합지부 △신동규 한국수출입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신훈 금호건설사장 △안정호 한국인삼공사사장 △양승우 안진회계법인대표이사 △연원영 한국자산관리공사사장 △오상현 대한손해보험협회장 △오호수 한국증권업협회장 △요스트 케네만스 ING생명대표이사 △유삼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 △윤국진 기아자동차대표이사 △윤병철 우리금융그룹회장 △윤종웅 하이트맥주 △이건희 삼성회장 △이구택 포스코회장 △이래소 현대통신회장 △이상우 굿데이신문회장 △이인원 예금보험공사사장 △이재희 ㈜유니레버코리아회장 △이종인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이연택 대한체육회장 △이지송 현대건설사장 △이팔성 우리증권사장 △이호웅 한국씨름연맹총재 △장면태 이멕스21대표이사 △장석준 국민연금관리공단이사장 △전윤철 감사원장 △정건섭 동양화재해상보험사장 △정동영 열린우리당의장 △정대근 농협중앙회장 △정만원 ㈜SK네트웍스사장 △정몽구 현대자동차회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정영섭 구청장협의회장 △정창용 AD사업단 △제일화재해상보험 △조순형 민주당대표 △최동수 조흥은행장 △최병렬 한나라당대표 △한국프로축구연맹 △허동수 한국기원이사장 △현정은 현대그룹회장 △황의존 전국버스운송조합조합장 화분 보내주신 분 △강동석 건설교통부장관 △구본무 LG회장 △김병묵 경희대총장 △김석기 ㈜동명기술공단대표이사 △김지완 ㈜현대증권대표이사 △김진선 강원도지사 △노원식 농협광화문지점장 △다그터 볼드 팬아시아페이퍼코리아대표이사 △마형렬 대한건설협회장 △박기정 한국언론재단이사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회장 △신호인 ㈜케이디미디어대표 △야마모토 도쿄신문대표 △오영교 코트라사장 △윤창번 하나로통신사장 △이규방 국토연구원장 △이용경 KT사장 △이웅 ㈜한국신문잉크 △이인원 예금보험공사사장 △이호군 ㈜비씨카드대표이사 △최동주 ㈜올가푸드 △최연희 국회의원 △최종덕 BD코리아대표이사 △한상량 ㈜보워터한라제지사장 △허동수 한국기원이사장(가나다순) 박정현기자 jhpark@˝
  • “고구려는 한국史” 中 北京대 교수들/98년 ‘中韓관계사’서 명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東北工程)’프로젝트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베이징(北京)대 교수들이 고구려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기술한 책자가 공개됐다. 김우준 연세대 동서문화연구원 간사는 3일 베이징대 장페이페이(蔣非非),왕샤오푸(王小甫) 교수 등 학자 6명이 지난 98년 발간한 ‘중한 관계사(中韓關系史·사진)-고대권’을 공개했다.베이징대 ‘한국학연구중심’이 발간한 한국학총서 중 하나인 이 서적은 서문에서 “중국에는 하,상,주,진,한,수,당,송,원,명,청 등의 왕조가 있었고,그 중간에 춘추전국시대,위진남북조시대 등이 있었다.한국에서는 고조선,삼한,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 등의 왕조가 있어 양국간 정치·외교·경제·문화 관계를 서술했다.”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사 기술 대목인 3장 1절은 ‘위진 남북조와 고구려의 관계’라는 제목 아래 ‘고구려 승려들이 중국에 유학을 많이 했고,불경 외에 기타 다른 분야 연구도 많이 했다.’,‘고구려 왕이 위에 조공을 바쳤고,북위는 고구려에 대해 특별한 예를 표시했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김 교수는 “지난 2000년 베이징대 출판부에서 입수한 것으로 당시 이 책이 베이징대를 비롯한 대학들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었다.”고 밝혔다.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대학인 베이징대 교수들이 고구려사를 한국사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채수범기자 lokavid@
  • 사건패트롤/“나이키 탐나는걸 어떡해요”10대4명, 서울구경와 100만원어치 훔쳐

    “나이키 운동화가 폼 나잖아요.” 2일 서울 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사무실에서 중학생 정모(14)군 등 10대 청소년 4명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이들은 서울 명동 일대 스포츠용품점을 돌아다니며 나이키 운동화와 양말 등 100만원어치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정군 등은 지난달 31일 “좋은 대학에 가려면 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입시정보도 얻고 서울 구경도 하자.”며 무작정 충북 청주에서 상경했다.이들은 옷 가게가 밀집한 명동을 돌아다니다 자신도 모르게 나이키 운동화를 갖고 싶다는 유혹에 사로잡혔다. 이들은 이틀 동안 나이키·리바이스·스프리스 등 수입 스포츠용품 매장 13곳에서 닥치는 대로 물건에 손을 댔다.운동화는 물론 양말과 모자처럼 부피가 작은 물건을 마구 종이가방에 담았다.매장 직원의 신고로 덜미가 잡힌 정군은 “유명 상표 제품을 갖고 싶었다.”면서 “한번 손을 대기 시작하니 재미가 붙어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경찰은 정군 등이 범행을 순순히 시인한 데다 피해 업주들이 선처를 호소해 이들을 부모에게 넘겼다. 또 이날 중부경찰서 형사계에는 모 프로농구단의 아르바이트생 강모(20)씨 등 2명이 치어리더 단장의 신용카드를 훔쳐 나이키·아디다스 운동화 세켤레 43만원어치를 몰래 구입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고교 졸업 후 취직이 안 돼 농구단 캐릭터 인형을 쓰고 응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면서 “좋은 신발을 한번 신어보고 싶었으나 한달에 30만원밖에 벌지 못해 범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anne02@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9)연기스님 前상사리(하)

    스님, 이제 매듭을 지어야 할 시간이군요.인도에서 연을 타고 오셨다는 그 연기 스님께서 화엄사를 창건했다는 지금까지의 견해를 부정할 수 있는 증거는 없습니다.불갑사를 마라난타 존자가 창건한 경우처럼 화엄사 또한 백제에 포교하러 온 인도 승려에 의해 544년(백제 성왕22) 창건되고,29대 법왕이 미륵사,금산사를 지으면서 미륵신앙의 힘으로 신라의 공격을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집결시킬 때 화엄사에도 많은 승려와 함께 재정적 지원을 했다는 기록은 진실인 듯 싶습니다.따라서 화엄사 창건과 신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이 확인된 셈입니다. ●화엄십찰 지정은 백제 유민 회유 목적 스님, 화엄사가 신라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백제 정복 후 백여 년 동안 계속된 백제인들의 저항과 이를 다스리기 위해 고안된 화엄십찰 정책 때문이었습니다.옛 백제 땅에 있던 사찰로서 화엄십찰로 지정되고 국력을 기울여 화엄사상 도량이 된 것은 전주 귀신사,계룡산 갑사,구례 화엄사였지요.셋 중에서 구례 화엄사를 중시한 것은 구례가 예부터 신라와 백제의 국경도시로서 군사 거점이기도 했지만 하동,순천,진주,사천,함양,산청,합천으로 이어지는 곳으로서 민심의 동향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친다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구례는 옛 마한과 진한시대에도 두 나라의 국경으로 그때는 석주관(石住關)이라 불렀다 하더군요.삼한시대 이후 백제 땅이 되면서 구차례현(仇次禮縣)으로 지명이 바뀌었고,757년 신라의 전국 지명 개편 때 구례가 되었다 합니다.백제 유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화엄십찰 지정과 화엄사상 전개에는 의상대사의 공헌이 아주 컸습니다.702년에 의상이 죽은 뒤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속되었는데,가장 큰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은 백제 정복 100년을 전후한 760년 무렵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화엄사를 중심으로 화엄사상 정책을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통일 신라 정부가 매우 큰 공력을 기울인 것은 백제 출신으로서 존경받는 승려를 책임자로 정하는 문제였습니다.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북한과의 남북회담 때 남측 수석대표를 정할 때 북한에 고향을 두었거나 부모 형제가 있는 사람을 선정하는 경우와 같았습니다.통일 신라 정부는 이미 금산사의 진표율사를 통하여 그 같은 경험을 한 뒤이기도 해서 적임자를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그때 여러 경로를 통하여 천거된 사람 중에 전라도 흥덕현(興德縣)이 고향이면서 경주 황룡사에서 화엄경을 강론하고 있는 연기(緣起)라는 승려가 있었습니다.또한 그는 754년 8월부터 화엄경 사경(寫經)을 시작하여 755년 2월에 완성함으로써 세간의 불자들로부터 높은 존경을 받고 있기도 했지요.그가 사경한 화엄경은 699년에 한문으로 번역된 주본(周本)80화엄이었습니다. ●연기 스님 고향은 고창군 흥덕면 그를 세상 사람들이 존경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어머니도 비구니였다는 점이었습니다.아드님이 출가하여 사문이 되자 어머니는 그 아드님에게서 계를 받고 사문이 되었는데 그런 뒤부터는 아들이 아닌 스님으로 존경하면서 모셨다고 합니다.아들은 일찍부터 백제 유민들의 원한에 사무친 삶을 해원시켜 주려는 꿈을 꾸어 왔고,그런 아들의 고귀한 마음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이 출가하자 그 아들을 돕기 위해 출가를 결심했던 것이지요.아들의 꿈이 어머니의 꿈으로 더욱 진솔해진 것입니다. 스님,제가 36년 전 겨울 화엄사로 갔던 이유는 바로 흥덕현이 고향인 그 연기 스님을 뵙기 위해서였습니다.내 마음을 뒤흔들고 있었던 계급 혁명을 위한 여러 행동들과 사회적 불안을 바로 이해하고 싶어서였습니다.그때 저의 그 같은 생각은 그 뒤에도 한참을 더 내 안에서 번민하며 살았습니다.그러다가 인연 연(緣)자 연기 스님의 생애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졌습니다.연기 스님의 고향이었던 흥덕현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흥덕현은 원래 백제영토였다더군요.백제 때는 상칠현(上柒縣)이라 불렀는데,신라에 복속된 뒤 백제 때 이름과 비슷하게 발음되는 상질(尙質)로 고쳤으며,고려 때에는 장덕현(章德縣)이 되었는데 충선왕의 이름 장(璋)과 음이 같다 하여 다시 흥덕으로 바꾸었다 하더군요. 연기 스님이 백제 유민들로부터 크게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화엄사를 맡게 되었고,그때부터 화엄사는본연의 화엄사상 도량으로 거듭 태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화엄경 사경도 화엄사서 만들었을수도 스님, 저의 생각으로는 스님께서 경주 황룡사에서 마치셨다는 그 화엄경 사경 작업도 어쩌면 황룡사가 아닌 화엄사에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생깁니다.왜냐하면 백제의 역사를 신라기(新羅紀)로 정리한 통일신라와 그 이후 사가들의 신라 중심 사고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그보다는 스님께서 이룩해 내신 저 불멸의 정신사인 ‘화엄석경(華嚴石經)’을 완성하기에 앞서 이 불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고 점검하기 위해서였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엄십찰을 정책적으로 고안해 낸 것은 통일신라의 핵심 권력자들이었지만 화엄사상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옛 백제 땅인 전라도와 충청도 사람들의 절대적인 참여와 지지가 필요했을 것입니다.그러기 위해 연기 스님은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일을 고안해 내셨습니다.돌에다 화엄경을 새기는 일이었지요. ●옛 백제땅 돌며 평등사상 설법 불사가 시작되기 전에 연기 스님은 옛 백제 땅을 돌면서 화엄사상을 설법했지요.우주 모든 사물은 어느 하나라도 홀로 생겨 나거나 존재할 수 없으며,모든 것은 끝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서로의 원인이 되고 대립하며 대립을 초월하여 다시 하나로 융합되는 것이라고 설파했습니다.따라서 모든 존재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는 것이므로 신라인과 백제인의 갈등과 투쟁과 죽임도 어느 한쪽에만 원인이 있고 책임이 있지 않다는 것,끊임없는 대결보다는 대결을 뛰어넘어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 길이 화엄사상임을 가르쳤습니다.적대감정을 해소하고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길을 절규했습니다.모든 사람은 본래 평등하지만 각자의 마음에 있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으로 해서 생기는 고통 때문에 평등이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그 실현을 위해서는 먼저 참회하고 서로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그런 다음 1만 4000여 장의 돌로 다듬은 석판을 만들고,그 석판 위에다 진본 60화엄경을 새겨 넣는 대장정을 시작하셨지요.모두 51만 자로 된 화엄경을 다섯 명의 서예가에게석판 위에 옮겨 적게 한 다음 석공들이 정으로 음각하는 순서를 밟았지요.글씨를 쓰고,음각하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연기 스님께서는 화엄사로 모여 든 수많은 불자들과 함께 기도를 하거나 법회를 열어 화엄신앙의 원력으로 마음에 쌓인 증오와 원한을 씻어내기 시작했습니다.이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옛 백제 땅 민중들은 여러 날 동안에 걸쳐 화엄사로 몰려들었습니다.일년 넘는 동안에 모여든 사람은 수십 만 명이었습니다.화엄사를 향하여 오는 동안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하여 그토록 견고하게 자리잡았던 분노와 두려움들이 어느새 많이 풀어지고 녹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절에 머무는 동안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남아 있던 응어리들이 조금씩 풀려 갔습니다. 연기 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붙잡고 말씀하셨습니다.어머니의 인자함으로 자식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용서하고 다독여 안아서 기어코 사람의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식으로 키우듯이 먼저 나 자신의 어리석음과 두려움을 깨우친 다음 남을 용서하라고 하셨지요. 그렇게만든 화엄석경을 장륙전(丈六殿) 사방 벽에다 장엄했습니다.장륙전은 뒷날 각황전으로 이름이 바뀝니다만 우리나라 최초로 화엄사상의 이상인 평등과 자유로움의 궁전으로 태어났습니다.이렇듯 어머니와 아들은 백제 유민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증오와 저주를 씻어내고 안에다 두려움 없는 행복이 깃들게 했습니다.두 분이 죽고 난 뒤 백제 유민들은 두 분의 작지만 위대한 생애를 탑으로 승화시켜 솔바람 청청한 지리산 언덕에 세우고 효대라 불렀습니다.효대라는 이름을 부르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효대가 생겨났습니다.스님,그것이 바로 연기(緣起)였습니다.
  • 주말매거진We/세상에 이런일이

    10명중 4명 바람~ 바람~ 바람~ |베를린 DPA 연합|결혼생활을 오래 해온 독일 여성들은 10명 중 4명꼴로 한번 이상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거나 여전히 혼외정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친한 친구들과의 비밀대화에서 털어놓은 것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함부르크 소재 게비스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또 남성들의 경우엔 51%가 훨씬 더 심한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사 사실을 배우자에게 털어놓는 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심리학자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그러나 단 1회적 탈선행위라면 비밀로 지켜야 한다고 심리학자 겸 이혼전문가인 토니 징어는 권유하고 있다. 베를린의 심리학자인 콘스탄체 파키는 여성들이 혼외정사를 갖는 이유에 대해 “많은 여성들이 단순히 도피하고 망가지고 싶어한다.다른 여성들은 자유를 입증하고 싶어하고 남자와 똑같은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한다.”며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남편에게 없는 애정과 관심과 칭찬을 정부에게서 얻는다.”고 말했다. 함부르크의 치료사인 미하엘 쾰렌은 남자들은종종 “애인을 취함으로써 자아를 확인하려 한다.”고 말하고 “남성들은 자신이 여성들에게 여전히 성적 매력이 있는 존재로 여겨지는지를 입증하고 싶어하는 데 반해 여성들은 남편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느낄 경우 보복 수단으로 혼외정사를 이용한다.”고 지적했다. 콘스탄체 파키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조용히 혼외정사를 즐기지만 남성들은 동료들에게 애인 자랑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에도 불구하고 특히 젊은이들은 여전히 정조를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 두번 죽이는 거예요 “제발 밥과 잠자리가 있는 ‘교도소’로 저를 보내주세요.” 사업에 실패한 뒤 갈 곳을 잃고 찜질방 등을 전전하던 한 장애인이 교도소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일부러 남의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붙잡혔다. 25년 동안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 도매업체를 운영해온 김모(49)씨는 지난 98년 환란 사태 당시 자금난으로 부도를 냈다.생활고 때문에 아내와도 이혼한 김씨는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됐다.이후 김씨는 찜질방과 사우나 등을 떠돌며 하루하루를 어렵게 버텨왔다. 한쪽 손이 없는 신체장애 3급의 장애인인 김씨는 생계가 막막해지자 ‘교도소에 가면 최소한 숙식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이에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6시쯤 서울 회현동의 한 사우나 수면실에서 잠을 자던 김모(25·회사원)씨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옷장 열쇠를 훔친 뒤 옷장 안 지갑에 들어있던 현금 15만원을 훔쳤다. 이 모습은 사우나의 폐쇄회로(CC)TV 화면에 찍혔고,김씨는 나흘만인 지난 15일 이 사우나에 다시 갔다가 CCTV에 찍힌 김씨의 인상착의를 기억하고 있던 직원의 신고로 경찰에 검거됐다.김씨는 경찰에서 “7년째 사우나와 찜질방에서 살다가 ‘차라리 교도소에 가면 먹고 자는 것이 해결되니 편하겠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의 생각은 다르다.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김씨는 다른 사우나에서도 절도를 한 혐의가 있고,절단기와 전기드릴 등을 마련해 다른 물건을 훔치려고 준비했다.”면서 “교도소에 가려고 절도를 한 것인지,붙잡히고 난 다음에 변명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어쨌든 결과적으로 김씨는 또다시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김씨가 전과가 없고 범행을 시인하는 점 등을 근거로 경찰이 15일 김씨를 절도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풀어줬기 때문이다. 장택동기자 taecks@ 캠퍼스 짱 비리도 짱 대학 총학생회장과 차기 총학생회장 당선자가 서류를 가짜로 꾸며 수천만원의 학교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나란히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16일 대전 M대 총학생회장 Y(25)씨와 차기 회장 당선자인 K(24)씨는 교내 학생회관에서 잠복중이던 경찰에 긴급체포됐다.영문을 몰랐던 학생들은 지난해 총학생회장과 사무국장으로 일한 두 사람이 학교 공금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두 사람이 타깃으로 삼은 행사는 총학생회가 기획한 고교 3학년 초청 축제와 대동제.두 행사비 규모만 2억 1700만원에 달해 이중 일부를 빼돌려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들은 학교에서 지원한 학생복지기금 중 기획사에 줄 돈을 주로 빼돌렸다. 400만원 가운데 310만원만 입금시키고 90만원을 가로채는 등 모두 6차례에 걸쳐 2340만원을 빼돌렸다.기획사에 전액을 지급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미는 등 수법도 대담했다. 빼돌린 공금은 유흥주점에 가거나 학생회 간부들에게 10만원씩 용돈을 주는 등 술을 마시거나 ‘호기’를 부리는데 사용됐다. 안동환기자 sunstory@ 지뢰만 보면 난 열받아 |코펜하겐 AFP 연합|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작은 바이오기술(BT) 회사인 아레사는 지난 25일 지뢰를 탐지할 수 있는 유전자 변형(GM) 식물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 연구진은 3년간의 연구 끝에 ‘탈레 크레스(Thale Cress)’라는 식물에 유전자 공학을 적용시켜 뿌리가 지뢰에 닿을 경우 3∼5주 안에 색이 녹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하는 GM식물을 개발했다고 밝혔다.식물의 뿌리가 지뢰가 함유하고 있는 이산화질소(NO(F))와 접촉할 경우,식물의 색이 변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시몬 우스테르가르트 최고경영자는 “이 식물이 지뢰,특히 농업지역에 유실된 지뢰를 탐지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우선 소규모 제한된 지역에서 1차 실험을 거친 뒤 효능이 입증되면 지뢰 탐색 작업에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1차 실험은 보스니아,스리랑카,그리고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실시될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언제쯤 지뢰탐사에 투입될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덴마크 적십자사는 일단 이번 연구결과를 “혁명적”이라며 환영했다. 회사측은 이 식물이 유전적 구조로 인해 인간의 도움없이는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이는 심은 장소에서만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말했다.이 식물이 오염된 지역내 중금속 탐지·제거작업에도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회사측은 덧붙였다. 현재 전세계 75개국가량에 약 1억개의 지뢰가 매설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토종물고기 ‘쉬리’ 독도 간다

    토종 물고기 ‘쉬리’가 올 3·1절을 맞아 독도로 옮겨진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25일 “독도경비대에 토종 물고기 쉬리와 어름치 50여 마리를 관상용으로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대형 수족관과 담수를 토종 물고기에 맞는 수질로 바꾸는 장치도 함께 기증한다. 아쿠아리움측은 관할 울릉군청으로부터 물고기 기증에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데 이어 문화재청·내수면연구소 등 관련 기관과 조만간 협의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다.한 관계자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반일감정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토종 물고기를 독도에 기증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7)연기스님 前상사리(상)

    스님을 처음 뵌 것은 1968년 겨울이었습니다.연기라는 스님이 계신다는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지리산 남쪽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로 가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만 믿고서였지요.그 해 겨울 산벚꽃 꽃잎만한 함박눈이 내리던 노고단 준령을 넘어서 화엄사까지 왔을 때 각황전(覺皇殿) 뒤 아름드리 소나무들의 늠렬한 푸른 빛깔들은 함박눈을 맞으며 선정에 들어 있더군요. 그때 저는 함부로 마셔버린 사상의 술에 취하여 스물 한 살 밤과 낮이 길 없는 혼돈으로 몹시 흔들리고 있었고,마음은 까닭을 알 수 없는 분노의 황토물에 젖어서 어둡고 쓸쓸했습니다.말이 사상이지 사실은 어설픈 어릿광대의 흉내내기에 지나지 않았지요.스님을 다시 찾아가는 올겨울에도 눈이 내렸습니다.꼭 서른여섯 해 만입니다.스물한 살 푸르렀던 나이가 어느새 함박눈을 뒤집어 쓴 머리칼로 변했습니다. ●연기스님의 지극한 효행 형상화 36년 전 그때 저는 연기 스님이란 분이 화엄사에 계신 줄 알고 찾아갔었지요.각황전 석등 앞에서 눈을 쓸고 있는 노승께 연기 스님을 뵈러왔다고 하자 그 노승은 나를 잠시 바라보시더니 각황전 뒤 108 돌계단을 올라가면 기다리고 계실 거라 했습니다.어떻게 제가 찾아올 줄 알았는지 궁금했지요.함박눈을 맞으며 돌층계를 오르면서 연기란 분이 어떤 스님인지 자못 궁금했습니다.층계를 다 올라왔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다만 매우 특이한 모습의 3층 석탑 한 기(基)와 석탑 맞은편에 석등 하나가 분분하게 흩날리는 함박눈 속에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 석탑이나 석등보다 높다란 언덕 주위에 빙 둘러서 있는 수백년 된 소나무들의 붉은 몸피와 짙푸른 솔가지들의 층층마다 내리고 있는 눈송이들의 정취가 더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잠시 뒤 저는 속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천천히 탑 주변을 한바퀴 돌다보니 안내판이 있었습니다.사사자3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국보 제35호,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고 걸작품이라는 것,효대(孝臺)로도 불리는 이 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 스님이 그의 어머니께 바친 효행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그제야 저는 연기라는 스님이 화엄사에 계시니 가서 만나보라던 어느 스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눈을 쓸다 말고 능청스럽게 연기 스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실 거라 했던 그 노승의 말씀에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지요. 피식 웃었지요.하지만 더는 의심의 원 안으로 걸어들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그냥 겨울 지리산을 만나보았다는 것만으로 자위하며 돌아오려 했는데,워낙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화엄사 객실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그 다음날도 눈은 그치질 않았지요.꼬박 이틀을 객실에서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연기라는 스님에 관한 얘기와 화엄사의 내력을 얼마만큼이나 알게 되었지요.그런데 연기 스님이나 화엄사 둘 다 전설 또는 신화적인 요소를 많이 지녔다는 것,우리나라 역사 속의 저 무수한 사찰들 중에서 화엄사만큼 중요한 인물들이 중첩으로 관련된 곳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쳤습니다.눈을 쓸던 그 노스님이 얘기로 전해주었거나 보여준 몇 가지 문헌들을 종합해 볼수록 혼란스럽기도 했고,신비스러운 면도 있었습니다. ●起·緣起·烟起… 생몰연대와 업적 달라 우선 연기라고 발음되는 이름이 셋이었습니다.제비 연()자를 사용하는 연기(起),인연 연(緣)자를 쓰는 연기(緣起),연기 연(烟)자를 쓰는 연기(烟起)였습니다.한 사람이 세 가지 이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세 사람이 각각 저마다의 이름을 사용했으며,각각의 생몰연대와 업적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세 사람의 이름을 둘러싸고 온갖 억지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세 사람 모두를 누군가가 꾸며낸 가공 인물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게 되었다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제가 그때 그 노스님의 말씀 중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던 것은 화엄사상(華嚴思想)에 관련된 스님들의 이름이었습니다.연기존자(起尊者),자장율사(慈藏律師),원효(元曉),의상(義湘),연기조사(緣起祖師),도선국사(道善國師),의천(義天)을 비롯한 화엄학승들이 수행한 통일신라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핵심 사찰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렇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구례 화엄사라는 사찰에이토록 명망이 드높았던 승려들의 이름이 거론되는지,그 승려들의 생몰연대와 업적이 확연하게 다른데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같은 업적을 놓고 경합을 벌이듯 거론되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모습의 그 효대와 효대의 주인공인 연기 스님이라는 분과 그 분 어머니도 비구니였다는 얘기가 전설인지 아니면 신화인지,혹은 사실이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그런데 36년 전 겨울에 있었던 그 일은 제가 눈 덮인 화엄사 길을 탈출하듯 빠져나온 뒤로 한동안 잊어버렸습니다.저 살기 바빠서였습니다.그러다가 다시 화엄사와 효대를 찾게 된 것은 1993년 무렵부터였습니다.식구들과 함께였거나 혼자일 때도 있었습니다.벌써 20년도 더 지나 있었고,각황전 석등 앞에서 눈을 쓸던 노스님도 육신을 벗고 고해의 바다를 건넌 지 오래였지만 효대 주변 솔숲엔 천년의 바람소리가 한결로 푸르렀고,어머니를 바라보는 연기 스님의 자세는 지리산과 한 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하나씩 차례로 물어 들어갔습니다.화엄사는 언제,누가 창건하였는지,중창자는 누구였는지,각황전 자리에 있었다는 장륙전(丈六殿) 벽면을 장식했던 돌에 새긴 화엄경은 어떤 종류였는지도 물었지요. 그러나 그보다는 화엄경과 화엄사상이 먼저 영향을 끼친 것이 신라인지 아니면 백제인지가 더 궁금했습니다.이 의문은 원효와 의상 두 사람 중에서 의상은 당나라에 유학하여 화엄경을 배워왔는데,유학하지 않은 원효가 화엄사상을 어떻게 배울 수 있었는지,왜 백제시대의 화엄사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지,정복지 백제 땅을 다스리기 위해 화엄십찰을 짓고 화엄사상을 펼치는 과정에서 전라도 주민들로부터 어떤 도움을 왜 받아야 했는지는 지금도 여전히 궁금합니다.그리고 연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세 사람의 정체는 과연 누구인지,그들이 이룩한 업적은 어떤 것이며 왜 그런 일을 하며 살아야만 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효대의 주인공이신 연기 스님은 세 분의 연기 중 과연 어떤 분이신지,그 연기 스님이 우러러 보고 있는 맞은편의 그 스님상이 과연 연기 스님의 어머니이신지,어머니가 맞다면 왜 출가한 사문인 아들을 따라서절에 오게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장엄하면서도 슬픈 화엄사의 내력 스님.화엄사를 창건한 연대가 544년 무렵이었고,창건자는 연기조사(緣起祖師) 또는 연기(緣起)라고 적고 있는 기록을 틀렸다고 할 만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문제는 역시 연기라는 이름입니다.지금의 화엄사에서는 세 분의 연기 스님을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창건자는 연기(起)이고,중창자는 연기(緣起)이며,본격적인 화엄사상도량으로 키운 이는 연기(烟起)라는 것이지요.제비 연()자 연기는 인도에서 오신 스님이며,인연 연(緣)자 연기는 의상 스님이거나 지금의 전라남도 고창군 흥덕면 출신 황룡사 승려로서 755년 2월 황룡사에서 신라의 흰 종이에다 먹으로 주본(周本) 80화엄을 사경했던 스님이며,연기 연(烟)자 연기는 화엄사를 크게 확장한 도선(道善) 국사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스님.과연 스님은 이 세 분의 연기 중 어느 분이십니까? 저는 감히 효대의 주인공이 지닌 신비를 풀어낸다면 세 연기의 비밀과 함께 화엄사의 아름답고 장엄하면서 조금은 슬픈 내력도 자연스럽게풀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이날까지 이 신비가 신비로 남아 있는 것은 화엄사와 효대가 지닌 역사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여깁니다.즉,화엄사는 신라와 백제의 주요 국경도시인 구례(求禮) 땅에 정략적인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 개신교 연합기구 탄생 ‘급물살’

    한국 개신교가 교파를 초월해 추진중인 교회 연합기구 탄생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교단장협의회로 구성된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실무 9인위원회는 최근 ‘한국 교회연합 이행과정에 대한 기본방향’을 확정,연합기구 탄생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9인 위원회가 확정한 기본방향에 따르면 올 상반기중 ‘한국교회 연합 정관’을 통과시키며 정관 통과에 앞서 연합기구 공동행사로 치러지는 3·1절 행사를 비롯한 각종 연합사업의 추진을 위해 ‘이해와 협력 위원회’를 우선 구성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해 내년에는 공청회를 통해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하반기에 KNCC와 한기총 양측 교단 총회로부터 교회연합에 대한 승인을 이끌어내는 한편 2006년에는 사업위원회별 KNCC와 한기총 연합체를 만들어 정관 세칙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어 2007년 상반기에는 KNCC와 한기총의 모든 인력 및 업무,재정 등을 담당하는 한국교회 연합 출범위원회를 구성,하반기에 한국교회 연합을 출범시키기로 확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일정표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정관 제정 등 실질적인 문제에서 적지않은 불협화음에 부닥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그동안 보여졌듯이 북한 핵과 이라크 파병문제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처럼 두 기관의 사회문제 접근 시각이 다른 데다 연합기구의 정체성과 전통성·역사성을 놓고 교단간 입장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 당분간 산고가 계속될 전망이다. 김성호기자 kimus@
  • 53년만에 부른 “아버지…”/국군포로 전용일씨 ‘눈물의 성묘’

    “사랑하는 아버지,어머니.그리고 형님,불효 자식 용일이가 50년 만에 돌아왔습니다.큰절 받으십시오.” 20일 0시쯤 꿈에 그리던 고향에 도착한 국군포로 전용일(73)씨는 경북 영천시 화산면 유성리 동생 수일(64)씨의 집에서 첫밤을 보낸 뒤 부모님과 형님의 묘소가 있는 신령면 완전리 선영을 찾았다.고령에다 그간의 여독이 덜 풀린 탓인지 새벽 한때 정신을 잃고 인근 병원에서 링거를 맞기도 했다. 1951년 12월 입대할 때만 해도 홍안의 청년(20세)이었던 전씨는 일흔이 넘은 백발로 부모님의 묘소 앞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동생의 부축을 받아 반세기 만에 이뤄진 성묘에서 그는 감회가 벅찬 듯 수십 차례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아버지”를 큰소리로 외쳐댔다. “이 아들 53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따뜻한 부모님의 품에 안겼습니다.이 불효 자식을 부디 용서해 달라.”고 절규했다. 전씨는 “내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돌아온 것은 부모님이 끝까지 걱정해 주신 덕분”이라며 “50년 전의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이 될지는 몰랐다.”고 흐느꼈다. 그는1999년 77세의 나이로 작고한 인근 형님 환일씨의 묘소에도 절을 올린 뒤 “형님,몇 년만 더 사셨더라도 이 동생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요.왜 그렇게 빨리 가셨습니까.”라며 형님을 애타게 불렀다. 그는 성묘를 마친 뒤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신령면 신덕1리 마을회관을 찾아 주민들이 마련해준 다과와 손국수로 점심식사를 했다.그는 이 마을에 사는 가까운 친척집에도 들렀다. 전씨는 앞서 영천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혼자 사는 형수(완전리)를 찾아 인사한 뒤 차로 5분여 거리인 동생집으로 향했다. 마중 나온 환영객 50여명은 전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며 환영했다.그는 환영객들에게 “환영해 줘서 감사하다.만나서 반갑다.”며 “여러분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조국과 고향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편 영천시와 영천시의회는 설 연휴가 끝난 오는 27일 오후 영천시민회관에서 전씨의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범시민 환영식을 성대히 개최할 예정이다 영천 김상화기자 shkim@
  • 차례모시기 ‘종교 갈등’ 조상님들 좋아 할까요?

    명절은 분명 오랜만에 가족이 만나는 기쁜 날이지만,오히려 쌓여 있던 가족들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날이기도 하다.부모·형제간의 해묵은 갈등 때문에 명절이 괴롭다는 가족이 많다.“이제부터 나는 절 안한다.”고 선언하는 동생 부부가 있는가 하면,복잡한 명절 문화가 싫다며 “왜 차례를 지내야 하느냐?”“부모님이야 마음으로 추모하면 되지.음식을 차리는 게 무슨 의미냐?”며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는 형제들도 있다.“명절이나 제삿날에라도 만나야 형제들간에 우애가 생기지.”라고 말씀하셨던 돌아가신 부모님의 예측은 이미 어긋난 것 같다.이를 ‘명절증후군’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2004년 설날,차례상을 앞에 두고 차례와 가족의 현주소를 알아보자. ●명절은 괴로워 결혼 18년된 김성덕(45·회사원)씨는 명절이 괴롭다.“장남이라 의무는 많은데 회사원인 제 봉급으로는 사람노릇이 힘들어요.더구나 자수성가한 두살 아래 동생이 부모님께 척척 큰돈을 내놓을 때면 더 괴롭죠.그러니 저나 아내나 명절이면 서로 예민해져서 싸우게 됩니다.”특히 지난 추석,김씨는 동생으로부터 “큰형이 부모님을 서울로 모셔오는 게 도리가 아니겠냐.”는 채근을 받은 터라 설날에 동생을 만날 일이 솔직하게 말해서 부담스럽다. 게다가 제사 준비에 바쁜 아내와 달리 동생 부부들은 여전히 ‘손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내에게도 미안하다.“제가 장손인데 제사를 거부하겠어요? 제사는 살아있는 후손이 조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고,아름다운 풍습이고….그러나 도시 생활에서 이는 너무 번거로워요.부모님 돌아가시면 뭔가 변화가 있어야할 것같아요.” 이정희(가명·28)씨는 ‘음식을 차리는 제사 방식을 바꾸자.’고 남편에게 말을 꺼냈다가 이혼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저와 시어머니가 함께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어요.시아버지 돌아가신 지 5년 됐는데 추도 예배를 드리자는 것에 저희 시어머니는 합의하셨지요.그런데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면서 제사 안 지내려면 이혼하자는 겁니다.” 형제간 우의가 두텁다는 김철휘(54·서울 마포구 서교동)씨는 차례나 제사 때마다 형제가 멀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제동생 내외는 제사에 절을 올리지 않고 저희가 절할 때,서 있습니다.종교의 자유는 인정합니다.제수씨도 전날부터 와서 열심히 부침개를 부치고 차례 준비를 하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습니다.하지만 절을 할 때면 두 사람이 서있다는 사실이 늘 부담스럽긴 합니다.때로는 형제간에 큰 벽이 생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몸이 아픈 부인 때문에 3년 전부터 절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김석구(53·경기 성남시 분당구)씨도 괴롭긴 마찬가지.“가족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요.연세드신 숙부님이 언짢아하시는 것이야 이해되지만,동생들조차 ‘형은 여자에게 잡혀산다.’고들 말하니 섭섭합니다.그렇게 제사가 중요하다면 동생이 제사 못 지낼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왜 제사 문제만은 아직도 봉건적인가요?” ●제사도 ‘우리 집 스타일’로 그래서 형제가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가정도 늘고 있고,제사 음식을 각자 자신의 집에서 준비해오는 등 갖가지 지혜로 현대식으로 형제간의 우애도 다지는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도 늘고있다.3형제 중 막내인 정진호(43·서울 도봉구 수유4동)씨는 이번 설날엔 자신의 집에서 차례를 모실 차례라 했다.“일단 부담스럽지 않고,오랜만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저희 집에 오신다는 생각을 하면 기쁘기도 하고,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말하기 곤란해 묵혀 두고,문제를 키우는 가족들은 명절이 괴롭다.그러나 서로 조금씩만 이해하고 양보한다면 그리 큰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진효순(62·부산 해운대구 우1동)씨는 며느리를 위한 음식을 따로 준비하는 시어머니다.“나는 불교 믿고,며느리는 교회다니는데 서로 종교가 다르면 어때요? 다 좋은 마음 공부인데.난 며느리가 제사준비를 열심히 해주는 것만으로 만족해요.”며느리 정희수(32·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그런 시어머니가 고맙단다.“흔히 종교적인 갈등을 이야기하잖아요.그런데 교회 다니는 저를 위해 시어머니께서는 제사상에 올리지 않은 음식을 따로 준비해두세요.서로 이해하기 나름아니겠어요?” 곽현숙(54·경기 부천시 원미구 심곡동)씨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동서가 절은하지 않지만,제사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말했다.“사람이란 생각이 다 다르게 마련인데,조상 숭배 방법이 다르다고 사이가 나빠지면 조상님인들 좋아할까요? 전 제사상에 올렸던 음식을 싸가지고 가는 동서가 예쁘기만 해요.그것이면 됐잖아요?” ●“나 죽으면 제사 지내지마” 제사의 변화를 가늠케하는 것은 정작 열심히 제사를 지내는 사람일수록 “나 죽으면 제삿밥 안 얻어먹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권영진(56·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씨는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며 시아버지의 제사와 차례는 옛날식으로 켜켜이 제수를 쌓을 정도다.하지만 그는 며느리에게 제사만은 전해주지 않을 예정이다.“나는 시아버지께 사랑도 많이 받았어요.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지만,제사를 올릴 때마다 남편이 찬찬하게 읽어내리는 ‘축문’을 들으면 시아버지가 생각나서 콧날이 시큰해집니다.그러나 이젠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어요? 제사는 제 대(代)에서 그만 끝내려고 해요.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시니 절에서 제사를 지내도 좋을 테고….제주변의 부인들 중에는 우리 대까지만 제사를 지낼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허남주기자 hhj@
  • 儒林(유림)속 한자이야기

    유림(3)에는 絶命(절명)이 나오는데,絶(끊을,뛰어날 절)은 실()을 칼(刀)로 자른다는 뜻으로 命(목숨,명령 명)과 결합되어 ‘목숨을 끊다’가 된다.죽음에 다다른 것은 臨終(臨 임할 림,終 끝날 종)이라 한다.‘죽는다’를 은유적으로 ‘북망산(北邙山)에 가다’라고도 하는데,이는 중국 하남성 낙양 북쪽의 북망산에 한나라 이후 역대 제후 등 귀족들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있다 하여 ‘人命(인명)은 在天(재천)’이라고 한다.죽지 않고 오래 살기를 원함은 동서고금(東西古今:동양이나 서양,옛날이나 지금을 통틀어 일컫는 말), 남녀노소(男女老少) 똑 같다.그러나 옛날에는 오늘날보다 일찍 죽었기에 두보의 시 곡강(曲江) 중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稀 드물 희) 즉,70세까지 산 경우는 예로부터 드물었다.’라고 했다.그래서 오늘날 칠순잔치(七十이 되는 날 하는 잔치) 축의금 봉투에 ‘축 고희(祝 古稀)’라고 쓴다. 그리고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뜻하는 말로 伯牙絶絃(伯 맏 백,牙 어금니 아,絶 끊을 절,絃 줄 현)이 있다.이는 중국 춘추시대에 ‘백아’라는 거문고 명수와 그가 어떠한 연주를 하더라도 무엇인지를 척척 알아 맞히는 ‘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어느 날 ‘종자기’가 병으로 죽게 되자 ‘백아’는 더 이상 자기의 연주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여겨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는 일에서 유래되었다.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라는 뜻인 知音(知 알지,音 소리 음)’도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상용어 중에는 매우 급박한 경우를 뜻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이 있는데,이를 절대절명(絶對絶命)으로 잘못 쓰는 사례가 있다. 유림(4)에는 首(이수)가 나온다.(뿔없는 용 리)는 과 (괘이름 리)가 결합된 한자로 가 들어간 한자의 음은 璃(유리 리),離(떼놓을 리) 등과 같이 대부분 ‘리’로 발음된다 은 머리를 바짝 치켜든, 머리가 큰 한 마리 독사를 본 떠 ‘훼’라고 발음했으나,언제부터인가 몇 마리 벌레가 한 곳에서 오글거리는 모양인 蟲의 약자로서 ‘벌레 충’이라 불리었다. 날아다니는 작은 곤충류(蚊모기 문,蜂 벌 봉),기어다니는 지렁이와 뱀 종류(蚓 지렁이 인, 살무사 훼),갑각류(蛤 조개 합,蝦 새우 하,蟹 게 해) 등에는 대부분 자가 들어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蛇足(사족,뱀의 다리)이란 말에도 자가 들어간다. 蛇足은 초나라 재상인 ‘소양’이 위나라를 격파하고 이어서 제나라를 치려 하자,제나라에 사신으로 와 있던 진(秦)나라의 ‘진진’이 ‘소양’을 만나 다음과 같은 蛇足 일화를 들어 ‘당신은 지금 재상이기에 더 이상 공을 쌓아도 필요 없으니 돌아가라.’고 회유하여 돌려보낸 일에서 유래되었다. “어떤 사람이 종들에게 한 사발의 술을 주었다.그랬더니 조금씩 나눠 먹는 것보다는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린 사람이 모두 마시기로 합의하였다.그런데 한 사람이 뱀의 다리까지 그리고는 술잔을 잡아들고 으쓱거리자 다른 한 사람이 ‘뱀은 다리가 없네 ,자네의 그림은 틀렸어.’라고 하며 술잔을 빼앗아 마셨다.” 이는 史記(사기, 한나라 사마천이 지은 역사책)에 나오는 일화로 ‘쓸데없는 일을 함’을 뜻한다. 首는 頁(머리 혈)과그 위 머리털을 본 뜬 글자로 신체 중 제일 윗부분이기에 ‘머리,먼저,시초’등을 뜻한다. 예를 들면 首尾(수미:머리와 꼬리),首相(수상:내각의 우두머리),首邱初心(수구초심:여우는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을 향한다.즉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로 ‘예기’라는 책에 나옴),首(비석머리,도장,궁전의 돌 등에 뿔없는 용의 모양을 새겨 장식한 것) 등이 있다. 박교선 교육부 연구사
  • 주말매거진 We/세상에 이런 일이-국내

    “마을 주민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제사라도 지내야지요.” 수령 1600년이 넘는 ‘괴목’(사진)앞에서 스님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채로운 장면이 연출된다.충남 공주에 있는 계룡산 갑사 스님들은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에 계룡산 앞 갑사동 용천교 입구에 서 있는 괴목 앞에서 사하촌 주민들과 함께 한바탕 축제를 벌인다.이른바 ‘괴목대신제’다. 300년 넘게 이어져온 괴목대신제는 60년대 이후 절과 마을의 형편이 여의치 않아 명맥만 겨우 유지됐다.그러다 공주시가 지원을 하고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0년 ‘대동한마당’ 형태로 복원됐고 올해에는 스님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과 관광객이 모여 더욱 크게 행사를 열기로 했다. 괴목대신제의 유래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300여년 전 갑사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작명등의 기름이 조금씩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상하게 여긴 스님들이 작명등을 지키기 시작했다.칠흑같이 어두운 밤 덩치가 큰 누군가가 기름을 훔쳐가는 것을 발견한 한 스님이 뒤를 쫓아갔다.기름을 훔친 이유를 묻자 ‘나는 괴목의 당산신인데 사람들이 담뱃불로 나무의 뿌리에 상처를 내 치유하려고 갑사의 작명등 기름을 가져가 발랐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은 스님들과 마을 사람들은 괴목 주위를 잘 정리하고 제사를 지내줬다.그러자 작명등 기름도 없어지지 않고,마을에 돌았던 역병도 사라졌다.이후 갑사 스님들과 마을 주민들이 괴목의 당산신에게 매년 정월 초사흘에 제사를 올리게 됐다는 사연이다. 갑사 주지 장곡(49)스님은 “사찰과 마을의 주민이 제사를 지내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문화행사”라면서 “생명존중의 정신이 깃든 행사인 만큼 많은 대중이 동참해 면면히 이어져 내려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주 김효섭기자 newworld@ “왜 일본 남자가 기분 나쁘게 한국 여자랑 일본 노래를 불러?” 서울 강서경찰서는 4일 일본 노래가 귀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일본인과 시비를 벌이다 폭행한 한모(39·여)씨를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한씨와 맞붙어 싸운 일본인 K(61)와 한국인 아내나모(56)씨도 함께 입건됐다. 조사 결과 한씨는 전날 오후 8시40분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 모 노래방 홀에 앉아 있다 일본 노래를 부르는 K에게 일본인을 비하하는 욕을 하면서 시비가 붙으면서 양측이 서로 주먹질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족보를 위조해 100억원대가 넘는 토지보상금을 다른 파(派)가 가로챘다는 종중간의 법정 다툼이 9년째 계속되고 있다.종중간에 이만한 규모의 문중 부동산을 둘러싼 사기 사건은 보기 드문 일이다.‘족보의 진실’을 놓고 다투고 있는 종중은 온양 정씨(溫陽 鄭氏) 목자공파(穆字公派)와 정랑공파(正郞公派).목자공파의 종손 며느리인 장모(58)씨가 정랑공파와의 재산분쟁에 뛰어든 것은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남편과 일찍 사별한 장씨에게 지난 86년 아버지가 없어 의기소침해하던 작은 아들이 “우리 집안에 족보라도 있냐.”고 물은 것이 계기였다. 장씨는 남편의 뿌리를 찾아 본관인 온양을 시작으로 중앙도서관 족보실,서울대 규장각 등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지난 93년 마침내 온양정씨의 족보를 찾아냈다.목자공파의 4대조는 구한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정술교(鄭述敎)로 을사조약 때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스승인 것도 알아냈다. 그러던 중 천안시가 95년 택지개발을 위해 온양정씨 조상묘가 있는 쌍용동 일대를 매입해 토지보상금을 온양정씨 정랑공파에게 지급한 사실을 알게 됐다. 장씨측 주장에 따르면 초기인 1856년·1916년 족보와 정모씨가 제작한 1923년·1957년 족보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장씨는 친척과 함께 지난 95년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소송 주체를 ‘종손’이 아닌 ‘종중’으로 한 절차상의 문제와 한두명의 전문가 견해는 증거로 불충분하다는 게 이유였다. 장씨는 이후에도 족보가 위조됐다는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했고 손해배상 소송을 내 부분적으로 승소했다.장씨는 최근 “천안시가 선산의 토지개발보상금 140억원을 위조된 족보만 믿고 다른 파에 지급했다.”면서 지난해 3월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그러나 진실을 밝혀내기는 여전히 여의치 않다. 유지혜기자 wisepen@
  • [농촌경제 비상구가 없다](3)노모와 이별하는 농촌가장-아기 울음 끊긴 농촌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13일 새벽,대구의 한 재래시장.채소가게 한 모퉁이에 짐꾼 서너명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옷도 제대로 입지 못해 무척 추워 보이는 40대 후반의 한 남자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지난해 2월 인근 농촌에서 빚 때문에 이곳으로 피신해 온 김모(49)씨였다. “참,뭐라고 말할 수가 없죠.빚 때문에 가정이 산산조각났고,정든 고향 친구와 선후배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요.돌아가신 어머니를 제 손으로 모시지도 못….” 김씨는 지난 2년여간의 처참했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의 짐꾼생활은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야반도주한 뒤부터 시작됐다. “하늘이 캄캄했어요.당장 먹고 잘 곳이 있어야 말이죠.막무가내로 시장을 찾았지요.” 김씨는 2∼3년전만 해도 부자는 아니었지만,어머니를 모시고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인건비를 줄이려고 농협에서 영농자금을 빌려 거액의 농기계도 구입했다.그러나 태풍으로 농사를 연거푸 망친 데다 빚보증 때문에 전 재산을 날렸다.아내와다툼이 잦아졌고,술로 날을 지샜다.그렇게 보낸 허송세월이 1년.아내와 이혼도 했다.결국 빚 독촉을 이기지 못해 남몰래 고향을 등졌다.자신의 빚 5000여만원 전액을 보증서 준 고향 친구들에게 떠넘긴 채.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할머니와 함께 살던 고등학생 딸은 가출했다.아들은 구미에서 직장생활을 하지만 연락할 길이 없다.지난 여름에는 어머니가 숨졌으나,고향 사람들 뵐 면목이 없어 장례식에도 못갔다.“어느 날 한밤중에 어무이 산소를 찾아가 목놓아 울었어요.못난 자식이라 그 옆에 계신 아부지도 뵐 면목이 없었어요.”라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하루 수입 3만∼4만원으로 끼니를 때우며,쪽방에서 근근이 산다는 김씨는 “제발 고향 사람들에게 내 소식을 전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특별취재팀 대구 김상화 대전 이천열 광주 남기창기자 ■한마을 46명중 44명 환갑넘어 농촌에서 희망과 미래를 뜻하는 갓난 아기 울음소리가 멎은 지 오래다.대신 상여꾼들의 구슬픈 소리는 더 높아만 간다. 농촌이 출산율 급감과 노령·사망률 증가로텅 비어가고 있다.적은 수나마 농촌을 지켜왔던 젊은이들도 폐농으로 정처없이 하나 둘 떠나고 있다.농촌은 이제 풍전등화다. ●26년째 아기 없어 27세가 막둥이 2002년 말 기준 주민 평균연령이 44.8세로 전국 최고령 지자체인 경북 의성군의 구천면 청산2리는 아기울음 소리가 사라진 지 벌써 26년이 넘었다.이 마을 박종하(55) 이장은 “우리 마을에서 태어난 막둥이가 올해로 27살이 됐다.”고 말했다. 군위군 산성면 무암리도 신생아 출생이 20여년 전의 까마득한 일이 됐다.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00여명이 넘던 주민이 해마다 줄어 지금은 46명만 남았다.그것도 노인들밖에 없다.50대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60대 이상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인구 2만 9762명인 군위군의 주민 사망자 수는 연간 411명으로,출생 143명을 3배 가까이 웃돈다.이런 현상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박영언 군수는 “계속되는 농촌 인구 감소로 지자체의 존립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농촌발전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축사·사육하던 소까지 경매 인구 감소에다 빚을 감당하지 못한 농촌 일꾼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 일용직 근로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극단의 야반도주를 택한다. 의성군 점곡면 김모(50)씨는 빚으로 2개월 전 자신의 축사와 먹이던 소들이 몽땅 경매처분되자 가족과 함께 마을을 몰래 빠져 나가 지금은 도망자 신세로 살고 있다. 김씨는 한때 알부자였다.1995년 축협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축사를 짓고 소도 들여왔다.빚을 추가로 내 소를 계속 불려 나갔다.소가 새끼를 낳으면서 금세 50여마리로 늘었다.남부러울 게 없었다.그러나 98년부터 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소값이 하루가 다르게 폭락했다.결국 6억원의 빚더미에 깔려 신음하다 보따리를 싸고 말았다.군위군 효령면 박모(34)씨도 2년전 어느날 갑자기 도시로 사라졌다.1000여평에서 오이 시설농사를 짓던 그는 면내 지인들의 대출보증을 섰다 전재산을 날렸다.보증서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야반도주해 버렸기 때문이다.자신의 빚 5000여만원에다 이들의 빚 1억여원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농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게 된 그는 정든 땅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이런 이유로 지난 한해 동안 의성·군위·고령군에서만 고향을 등진 농민회원만도 20여명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충남 청양군 비봉면 한모(48)씨도 쌀농사와 돼지 등을 기르며 진 빚 2억원이 부도로 이어지자 연대보증을 서 함께 망가진 장인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농촌의 보루’라는 영농후계자들도 속속 농촌을 떠나고 있다.80년대 중반 농민후계자로 선정됐던 이모(44·군위군 군위읍)씨는 2년 전부터 농사를 포기했다.의성군 금성면 김모(50)씨도 마늘 등 복합영농을 하면서 진 빚으로 전재산을 날리고 대구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F때 귀농인 다시 도시로 IMF사태 이후 농촌으로 몰려 들었던 도시 실직자들도 다시 농촌을 떠나고 있다.경북도에 따르면 97년 이후 지난해 상반기까지 도시근로자 1028가구가 농촌으로 돌아왔다.그러나 영농 경험부족에다 영농비 폭등,농산물 가격 하락 등 열악한 농촌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이들이재이농 행렬을 이루고 있다. 4년 전 고향인 영양군 석보면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고추,배추,벼 등 복합영농을 하던 전모(47)씨는 지난해 가을 다시 대구로 돌아갔다.기상이변과 농산물값 하락으로 2년 연속 ‘쭉정이 농사’만 지었다.경북도 및 군 관계자들은 “도시 귀농인들이 정착에 실패,지난해 하반기부터 농촌을 떠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군위군의 한 관계자는 “비록 때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는 농민들이 삶의 터전인 농촌에 머물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고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취재팀 ■‘나홀로 농사' 팔순의 母情 “큰 아들이 도회지로 달아나다시피했지.제발 잘 살아 줬으면 해.여기 일은 하루빨리 잊고….” 경북 의성군 금성면에 사는 박분순(83) 할머니.돈 때문에 곁을 떠난 아들식구 생각에 자나깨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그래서 언제부턴가 늘 염주를 손에 들고 다닌다.노령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의 매일 절에도 간다.아들(50)이 잘 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박 할머니의 기도생활은 1년 전부터 시작됐다.함께 살던 큰 아들 부부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대구로 도망치듯 떠난 뒤부터다.애지중지하던 손자·손녀도 ‘할머니,할머니…’라고 울먹이며 따라갔다. 할머니는 농사짓는 것 밖에 모르던 아들에게 빚이 그렇게 많아진 게 못내 답답할 따름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농산물 개방이니,농가부채 탕감이니 하는 말은 잘 몰라.하지만 농사지으면 빚만 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늘 재롱을 피우던 손자·손녀들이 아른거리는지,할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가득 고였다.할머니를 더 안타깝게 하는 건 연락이 뜸한 나머지 세 아들과 딸들.울산 사는 둘째 아들 내외도 지난 추석 때 잠깐 얼굴 본 게 마지막이다.구미에 사는 딸도 생활이 어려운지 좀처럼 기별이 오질 않는다.모두들 살기가 바빠 그런 줄 알지만,섭섭한 속마음은 헤아릴 수 없다. 할머니는 아들이 넷이나 돼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해 최소한의 생계비도 지원받지 못한다.살기가 고달플 땐 면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로지정해 달라고 떼도 써 보지만 ‘그저 알았다.’고 할 뿐 별 소식이 없다.매월 교통비로 나오는 8400원과 이웃들이 틈틈이 도와주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고 있다.손수 밥을 지어 먹는 일도 고달프기만 하다.병마와도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신경통,고혈압,위장병….병이란 병은 다 달고 다닌다.그래서 요즘엔 자신이 어찌될까봐 늘 불안하다. “이웃들 보고 매일 아침 우리 집에 와서 내가 죽었는지,살았는지 봐 달라고 하지….” 할머니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최근 들어 부쩍 자식들보다 이웃들이 소중하다고 말한다.그래도 할머니는 큰 아들 내외,손자·손녀와 다시 오순도순 사는 게 소원이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하루빨리 농사꾼들이 잘 사는 세상이 돼 큰 아들이 돌아와 같이 사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야.” 특별취재팀
  • 나눔세상/‘택시강도’ 소년에 온정 쏟아져

    10대 택시강도를 도운 운전사의 따뜻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각계에서 온정의 손길이 잇따르고 있다. 택시운전사 이창수(48)씨는 지난해 10월 승객을 가장한 문모(18·구속)군에게 강도를 당한 뒤 문군을 추적해 붙잡았지만,딱한 가정 형편을 알고 주머니를 털어 문군의 누나에게 전달했다. 이같은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문군을 조사한 서울 강동경찰서에는 안경점을 운영하는 문송환(45·경기 안산)씨와 주부 양윤숙(59·경기 분당)씨 등 많은 시민들이 생활비를 전달하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연락해 왔다.한 변호사는 문군의 무료변론을 자처하기도 했다.또 강원도 철원 모 사단에서 군종법사로 일하고 있는 송덕상(69)씨는 “본인이 원하면 절 안에서라도 살 곳을 마련해 중단한 학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며 도움의 뜻을 전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도 택시운전사 이씨의 선행을 칭찬하고 문군을 격려하는 글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포털사이트 ‘다음’ 게시판에서 ‘정말 대단하다’는 네티즌은 “자기도 어려우면서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모습,이게 바로 우리의 원래 모습이다.자랑스럽다.”고 밝혔다.‘엠파스’ 게시판에 ‘riverpool’이라는 네티즌은 “소년의 미래를 구했군요.저 소년은 아마 잊지 못할 겁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유지혜기자 wisepen@
  • [길섶에서] 자녀에 감사

    부모 마음은 비슷하다.자녀가 공부잘하고 예의 범절이 바른 ‘범생’처럼 되길 바란다.말도 잘 안 듣고 공부를 게을리하는 10대 아들 때문에 늘 속썩이는 부모가 있었다. 그 부모가 어느 날 절에 가서 법사로부터 강론을 들었다고 한다.강론의 요지는 “사랑한다는 생각을 버리라.”였다.사랑은 아들에게 이런 저런 요구를 하게 되고 아들이 부응하지 못하면 부모는 실망해서 불만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자녀에게 감사하라.큰 사고치지 않고 자라나고 있고,어떻든 학교에는 다니고 있지 않은가.”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하지만 사랑한다는 생각이 집착을 낳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자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무엇보다 과잉 기대를 줄이고,그래서 작은 만족을 주는지 모른다. 한 고위공직자는 “현재 40,50대는 부모에게 효도를 한 마지막 세대이며,자식에게 효도를 받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런 ‘샌드위치 세대’는 부모에게 봉사했지만 자녀에게는 받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자녀에게 ‘감사하다.’는 말이 그래서 더욱 필요한지 모른다.이상일 논설위원
  • [나의 건강보감]웅진코웨이개발 박용선 사장

    “무슨 운동을 그렇게 하느냐고요? 그게 제가 세상을 사는 방법입니다.” 웅진코웨이개발 박용선(48) 사장.그는 운동광이다.복싱에 태권도는 물론 볼링과 야구,축구,탁구에다 마라톤,심지어는 시쳇말로 ‘맞장’까지 구미가 당기는 운동은 뭐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스스로도 키로 하는 운동 빼고는 뭐든 한다고 할 정도다.그가 자란 곳은 서울 돈암동 서라벌고등학교 뒤편.어렸을 때부터 고만고만한 ‘동네 어깨’들과 어울렸고,‘용가리’로 불리며 그 ‘구락부’의 중간보스까지 올랐다. ●球技에서 마라톤까지 ‘운동광' “고등학교 시절 권투를 시작했어요.당시에는 권투가 최고였거든요.동네 복싱도장에서 권투에 한참 재미를 붙였는데 아,관장이 절 불러 이러는 거예요.‘어이,용가리,너는 코가 커서 권투 못해.’치고받다가 코뼈라도 주저앉으면 날샌다는 뜻인데,그 말에 열받아 그만뒀어요.그래도 그땐 동네 공터마다 샌드백 하나씩은 걸려 있어 그걸 두들기며 울화를 풀곤 했지요.” 앞서 중학교 때는 태권도 바람이 불어 도장을 찾았다가 요샛말로 ‘개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태권도 배우겠다는 놈이 두툼한 겨울 내복에 양말까지 신고 도복을 입었다가 애들 보는 앞에서 사범에게 혼쭐났죠.그럭저럭 여름이 됐는데 도장의 함석 지붕이 불볕에 달아 실내가 한증막이더라고요.더위라면 옴짝달싹을 못하는 체질이라 그때 그만뒀죠.”초등학교 때는 야구가 좋아 야구부에 들어가려 했으나 유니폼을 장만할 돈이 없어 입맛만 다시다 말았다.대신 ‘동네야구’는 원없이 했다.지금도 그는 회사 야구동호회 시합날이면 아침부터 가슴이 뛴다.그가 81년 갓 입사해 처음으로 만든 ‘운동 조직’이어서다. 그는 말쑥한 댄디스타일이 아니다.오히려 누구와도 격의없이 소주잔을 기울일 만큼 호방하고 선이 굵은 현장 스타일이다.그러면서도 미세한 시장의 흐름을 읽어내는 동물적인 감각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제게 그런 장점이 있다면 아마 권투 등 여러 운동을 익히면서 체득한 감각이 경영 현장에서 발현된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권투는 상대와 맞붙어 감각적으로 때리고 피하는 운동이거든요.권투 선수는 그래서 상대의 발만 보고도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경영도 마찬가집니다.상대의 주먹을 보고 움직이면 늦습니다.그보다 한 박자 빨라야 됩니다.” 대학 2학년 때 웅진그룹 산하 헤임인터내셔널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던 그는 ‘감각과 열정의 승부사’답게 지난 1998년 외환위기 때 사장에 취임하자 정수기 렌털마케팅에 나서 우리나라 정수기 시장의 절반을 장악했다.이름도 생소한 ‘정수기 코디제’도 그의 아이디어다.그렇게 정수기시장을 휘어잡더니 이번에는 “닦지 말고 씻으세요.”라며 비데마케팅에 나서 사상 최악이라는 시장상황을 헤치고 연간 매출액 1조원의 디딤돌을 놓았다.그런 그가 요새 축구 재미에 푹 빠져 있다.“사장으로 부임해 사내 축구부부터 만들었어요.직원들과 몸으로 부딛히며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동료애를 키운다는 점에서 어떤 방법보다 매력적입니다.”그는 운동장에 나서면 사장이 아니라 철저하게 선수가 된다.그렇게 내닫고 뒹굴면서 직원들의 기를 벼르고 스트레스를 털어낸다. ●“직원들과 의사소통에 그만” 축구장에만 나서면 직원들과 격의없이 뛰고 뒹굴지만 팀을 이끄는 그의 리더십은 분명하다.“저는 패스는 실수할 수 있지만,드리블은 실수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무슨 말이냐면,경기장에서나 일터에서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그렇지 않은 일을 냉정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거죠.슈팅할 때는 과감하게 하되,아니다 싶으면 주저없이 다른 사람에게 공을 넘겨 또 다른 기회를 잡도록 하는 것이 미덕입니다.경영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의 운동편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고등학교때 동네 ‘조직’에서 다진 탁구 실력도 만만찮아 지금도 선수 빼놓고는 누구와도 일전을 불사한다.한때는 직장 동료들과 아예 볼링장에서 자장면으로 점심을 떼우며 볼링을 쳐댔다.지금도 기분 좋으면 230∼240점대는 거뜬히 때리는 실력이다. 바둑에서는 실리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계속 밀어붙여야 하는 경우가 있다.기사들은 이를 ‘기세 싸움’이라고 한다.CEO로서 그의 삶이 그렇다.“만 6년을 사장으로 일하면서 처음 부임 때 생각했던 구상에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고 돌이키면서도 그간의 경영성과를 두고 ‘운칠기삼(運七技三)’으로 보는 소극적 해석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그래선지 항상 예각의 기세로 사는 그에게 모두가 건강하게 사는 세상이 어떤 세상이겠냐고 물었더니 호방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그야 정수기 등 우리 회사 제품이 필요없는 사회 아니겠습니까?현실은 자꾸 거꾸로 가지만….”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박용선사장의 축구건강론 축구는 시간당 580∼620㎉의 에너지를 소모할 만큼 격렬한 운동이다.거친 몸싸움과 태클을 뚫고 쉴새없이 뛰어야하기 때문이다.11명이 유기적으로 팀워크를 발휘해야 하는 운동이면서 강인한 체력과 투지,승부 근성과 희생 정신을 근간으로 하는 매력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박용선 사장도 이런 점 때문에 축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한다.“제 경우 다른 사람보다 승진이 빨랐는데 이 때문에 주변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축구동호회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서로 교류하고 건강도 다지는 기회로 삼고자 한건데 의외로 성과가 만족스럽습니다.특히 축구장에서의 스킨십은 정말 멋진 교감입니다.” 키 175㎝,몸무게 73㎏의 탄탄한 체격을 가진 그는 운동장에 나서면 펄펄 난다.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이 뛰는 자리지만 돈암동 조기축구에서부터 다진 체력이라 지쳐서 못뛰는 일은 없다.최근에는 축구의 변형인 5인조 풋살에도 재미를 붙였다.매번 축구장을 찾아 유랑해야 하는 불편도 문제지만 그나마 겨울에는 경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는데,그런 고민을 실내 경기인 풋살이 말끔히 해소해 줬다. 심재억기자
  • 불출마 ‘들불’

    새해 벽두부터 불기 시작한 정치권의 총선 ‘불출마’ 바람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9일에는 한나라당 유흥수(부산 수영) 정문화(부산 서) 현승일(대구 남) 신영균(전국구) 의원과 열린우리당 설송웅(서울 용산) 의원이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민주당 김운용(전국구) 의원도 정계를 은퇴했다. 정문화 의원은 이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남기고 정치권을 떠나겠다는 뜻을 밝혔다.그는 “현실과 이상간의 괴리,우리 정치의 한계와 구조적 모순,그리고 본인의 능력부족을 절감하는 아픔은 참으로 큰 것이었다.”며 “이런 상황은 선거에 출마해 당선돼 선수가 쌓인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전국구 재선인 신영균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새로운 정치를 위해 후배들에게 의자를 물려주고 떠날 때가 됐다.”며 “이제 다시 영화인 신영균으로 돌아가 문화예술사업에 마지막 힘을 쏟을 것”이라며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유흥수 의원은 부산 지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와 개혁에 부응하고 새 정치 구현에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은퇴한다.”고 말했다.이로써 한나라당에서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은 양정규·강삼재·김종하·김찬우·김용환·정창화·박헌기·윤영탁·주진우·한승수·목요상·김동욱·오세훈 의원을 포함해 20여명으로 늘어났다.이밖에 영남지역 일부 중진들이 불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데다 ‘전국구 전원교체’ 방침에 따라 강창성·서정화·이연숙 의원 등이 불출마 선언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출마 도미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그러나 경남지사 보선 출마를 전제로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던 이주영(경남 창원을) 의원은 이날 다시 총선에 나서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설송웅 의원도 열린우리당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에서도 전국구 의원인 장태완 의원에 이어 일부 중진 의원들이 불출마 대열에 합류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삼기자 hisam@
  • 공양도 축구도 함께 “어느새 친구됐어요”10대들이 허문 한·일의 벽/2002월드컵 기념 40명 산사체험

    “발우(鉢盂:그릇)공양 시간에는 소리를 내면 안되지.” 죽비(竹)를 들고 있던 해우 스님이 참다 못해 한마디했다.공양도 수양을 위한 방법이라 일절 말을 하거나 소리를 내서는 안된다고 어제 저녁 그렇게 설명을 했지만 ‘쇠귀에 경읽기’’였기 때문이었다. 지난 7일 새벽 계룡산 갑사에서 스님들의 생활을 체험하던 한·일 청년 40명의 아침 공양 풍경이다.이 프로그램은 2002년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기념하고 한·일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대한불교 조계종 파라미타 청소년회에서 일본 법화종 묘법사 신도 학생을 초청해 한국문화를 알려주고 있는 중이다.지난 5일 입국한 이들은 그동안 서산 마애삼존불,수덕사 등 백제권을 돌아본 뒤 갑사를 찾았다. 학생들이 산사에서 벌인 ‘소동’은 이것뿐이 아니었다.보름달이 계룡산 중턱에 걸린 어둑한 저녁에 숙소앞에서 축구를 해 스님들의 저녁 수행을 방해하기도 했다.땀을 흘리면서도 계속해서 축구를 했던 아마노 쇼타(15·중학교 2학년)는 “춥지도 않고 재미있어요.두세번 골을 넣는데 점수는 상관없어요.”라고 말하곤 축구공을 향해 뛰어갔다.쇼타가 공을 차는 모습을 잠시 구경하던 장기수(19·충주 대원고 3년)군도 “쇼타는 정말 빠르고 축구 잘해요.”라고 말하다 어느새 축구공을 차기 위해 달려갔다. 학생들은 갑사에 3일간 머물며 예불·참선·다도 등을 체험했다.불교 무술 시간에 전일본 가라데 2위의 발차기 실력을 보여준 에가시라 고미코(23·국립 사가다 에이가쿠대 4년)는 “수덕사 박물관에 갔을 때 일본에서 공부한 경전이 있어서 놀랐다.”면서 “한국에서 일본으로 문화가 전파된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트너를 정해 사흘간 숙식을 함께한 한·일 학생들은 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우리는 홋카이도에서 왔는데,한국이 훨씬 춥다.한국 친구와 펜팔한 적도 있는데 한국 친구들은 친절하고 성격이 밝아서 좋다.(마츠무라 유코·19·고3)” “산사 체험보다 서로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하는 게 재미있다.텔레비전을 보고 일본 학생들은 모두 비행청소년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안 그런 것 같다.(장기수)” “일본과 달리 마을 가까이에 절이 있어 신기하다.처음엔 어색하기도 했지만 교류기회가 많으면 한 가족처럼 협력하는 좋은 관계가 되지 않겠는가.(요시나가 마오·18·고2)” “내 파트너가 마오인데,둘다 탤런트 원빈을 너무 좋아한다.그래서인지 왠지 서로 말이 통하는 느낌이다.(차유진·19·의정부 광동여고 3년)” 장곡(49) 주지스님은 “한·일간의 관계는 최근에도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독도 우표발행 등을 둘러싸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지만,갑사에 머문 양국 학생들은 다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친구였을 뿐”이라면서 “양국 청소년들이 이처럼 교류를 하다 보면 한·일관계도 언젠가 진전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9일 서울로 온 일본학생들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경복궁 등을 관광한 뒤 동대문에서 쇼핑을 했다.일본 학생들은 10일 11시30분 6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떠난다. 계룡산 갑사 김효섭기자 newworld@
  • [길섶에서] 초심

    한번 나무랄 일 없이 잘 자란 고3 딸아이가 제 엄마와 대판 싸움을 벌였다.장애인 단체에 틈틈이 자원봉사를 나가면서 삶의 고달픔,어둠에 눈을 뜨게 된 딸애가 서울시내 한 절을 찾으면서다.아이는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인 벽안의 스님이 들려주는 철학설법이 너무도 좋았다.하지만 대입수험일을 앞두고 성당에서 열심히 기도하던 제 엄마는 그게 서운했던 모양이다.아까운 시간에 왜 하필 절이냐고 아내는 분해했다.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고3 여름,왜관의 한 수도원으로 한달이나 잠적해 지금은 늙으신 부모의 속을 새까맣게 태웠던 기억이 난다.딸의 모습에서 30년전의 나를 본다.순수했던 영혼.지금도 가끔씩 그때의 나를 회상하면 행복해진다. 김충수신부는 강론집 ‘내가 지금도 사제로 사는 이유’에서 좋은 신부가 되겠다는 어린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33년의 사제생활 동안 잊지 않으려 했다고 썼다.중1 때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50년째 그는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아내가 뭐라 하든 나는 딸아이가 지금의 초심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이기동 논설위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