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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홍신의 세상보기] 독도,진정 한국 땅이기 위하여

    [김홍신의 세상보기] 독도,진정 한국 땅이기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추억 가운데 하나는 이틀 동안 독도에서 우리 땅의 냄새를 제대로 맛본 기억이다. 독도를 떠날 때 막사 앞 작은 화단에 꽃씨를 심어 놓고 왔지만 해마다 꽃이 피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 일행은 헬기로 수송한 방송장비를 설치하고 독도에서 생방송으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거침없이 당당하게 한국 땅임을 자랑했다. 바람이 하도 드세어서 헬기장 쇠말뚝에 밧줄을 걸어 내 허리춤에 묶은 채. 굳이 역사를 들추지 않아도 내 조국의 끝자락이 분명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비밀문서로 분류된 외교문서 속에 그 날의 생방송을 트집잡는 항의문서가 포함돼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3·1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주한 일본대사가 서슴없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억지소리를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영유권을 지배하기 때문에 기존의 무대응 입장을 유지한다.’고 했다. 우리 땅을 굳이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우리 땅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틀’에서나 가능한 것이다.‘비상식과 기획된 음모’ 앞에선 효력이 상실되기 마련이다. 우리말에도 ‘억지가 논 서마지기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는가. 목적이 분명한 의도로 치밀하게 덤비는 일본의 집요함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정부 태도에 자존심 상한 국민이 많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유엔 해양법 제121조 3항에 ‘인간이 거주할 수 없거나 그 자체의 경제활동을 유지할 수 없는 암석은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지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래서 1999년에 발효된 이른바 신 한·일어업협정에서 우리 정부는 독도를 제외함으로써 일본의 야욕에 빌미를 준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은 보란 듯이 일본 영토로 못박고 나섰다. 파도 치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암석인 오키노도리섬(가로 2m×세로 5m)에 300억원을 투입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들어 남한 반절 크기의 영해를 확보하기도 했다. 유인도는 2가구 이상의 인구가 거주해야 하고 식수와 수목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독도를 국제법상 유인도화하는 것이 정당방위일 것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서도의 벼랑끝 지점에 식수로 부족함 없는 샘이 존재하고 있다. 과거에 거주했던 어부가 개발한 것이다. 오래 전에 토끼를 방목하는 바람에 수목이 피폐해진 점도 국가가 독도 관리를 잘못한 탓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산림 전문가의 소견에 따르면 화산섬에 구덩이를 파고 모진 해풍에 견딜 만한 수종을 개발해 이식하고 관리만 잘해 준다면 독도에 수목이 자랄 수 있다고 한다. 2가구 이상의 거주자 문제는, 독도 인근의 고급 어족자산 때문에 숙박시설과 판로만 확보되면 거주할 어부가 생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성금을 모아 매달 일정액의 지원금을 지급하면 거주자가 분명 생긴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일부에서는 독도에 선박해상관광호텔을 정박시키면 자연스럽게 경제활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선착장을 증설하고 잡종지 지번을 부여하면 그만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점도 유념했으면 한다. 일본이 50년간 집요하게 주장하고 항의하는 까닭은 언젠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기겠다는 수작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국제사법재판관 한 사람 키워내지 못하고 그럴 각오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본은 끊임없이 일본인 재판관을 배출했고 현 재판관도 마사코 왕세자비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문제는 한국의 분명하고 단호한 의지가 국제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땅이 분명하다면 무엇이 두려워 유인도화하지 못하며 무엇이 겁나서 국민들의 자유로운 입도를 꺼리는 것인가? 천연기념물이기 때문이라는 핑계가 옹색해 보인다. 같은 천연기념물인 마라도와 홍도를 한국인들은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당당하지 않으면 훗날 무서운 재앙이 된다는 사실에 숙연했으면 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독도 여행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싶다.
  • 3월, 애국심에 호소하라

    “태극기, 동해, 독도, 독립국….” 3·1절이 있는 3월엔 애국심 호소형 광고가 눈에 띈다. 해마다 이 맘때면 항일 등의 애국 열기가 달아오르고, 업체는 앞다퉈 애국적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준비한다.KTF는 동해 바다 한 가운데 태극기를 휘날리며 우뚝 선 독도를 배경으로 “일본 휴대전화가 되는 곳은 일본 땅이고 한국 휴대전화가 되는 곳은 한국땅이다.”라는 제목의 신문 광고를 게재 중이다. 이어 “2002년 5월 국내 최초로 독도에서 이동전화 서비스를 개통한 KTF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담아 우리 땅 독도와 함께 합니다.”고 적으며 애국심에 호소한다.SK는 한강에 유전을 세운 가상 그림을 배경으로 ‘에너지 독립국의 꿈’이란 신문 광고를 내놓았다. 아래에는 “대한민국을 에너지 독립국으로 만들기 위해 적도 뜨거운 바다에서도 아마존 깊은 정글에서도 SK주식회사는 걸음을 멈추지 않겠습니다.”고 적고 있다. 외국계 맥주 카스와 경쟁을 벌이는 국내 유일한 토종 맥주 브랜드 하이트도 애국심 광고를 펼치고 있다. 태국기를 배경으로 ‘우리 나라 우리 맥주, 대한독립 만세 맥주독립 만세’란 제목 아래 “그날엔 우리의 주권을 되찾자는 함성이 드높았습니다. 오늘은 우리 경제의 주권을 확립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맥주 시장을 외국 자본으로부터 지키는 일-하이트가 함께 합니다.”라고 적었다. 국내 MP3플레이어 제조업체 레인콤은 지면 맨 위에 태극기를 내세우고 ‘아니 맨 몸으로 만세 부른다고 독립이 돼?’라는 제목을 달아 3·1절 신문 광고를 진행했다. 광고에는 “하드디스크 타입 MP3 시장은 미국 기업이 세계시장 대부분을 석권한다”면서 “MP3 종주국으로 이 상황을 지켜만 볼 수 없었다.”고 적었다. 하드디스크 타입 세계 1위 업체인 미국의 애플컴퓨터가 최근 제품 가격을 인하하자 애국광고로 대응한 것이다. 또 최근 전자사전 겸용 MP3플레이어를 내놓은 만큼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전자사전 만큼은 우리가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며 국산품 애용을 강조했다. 한편 KT의 캠페인 ‘건강한 인터넷으로 하나되는 나라’는 해외 유명 기관 홈페이지에 잘못 게재된 대한민국의 정보를 바로 잡는 활동을 하는 사이버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를 모델로 삼아 제작됐다. 관계자는 “애국심 호소형 광고는 IMF 경제위기 당시 기업들에 ‘IMF시대의 비상구’로 불릴 만큼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면서 “국민들에게 태극기에 대한 사랑을 호소함으로써 국민 감성을 자극하고 한국민이란 자신감을 일깨워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낸다는 점에서 기업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

    기골이 장대하다.180㎝의 키, 몸무게가 80㎏이 넘는다. 얼핏 운동선수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었다. 또 철학자가 되려고 데카르트와 칸트에 푹 빠지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 미 국무부 초청으로 방미했다. 이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문정인(55) 동북아시대위원장은 대표적 ‘미국통’이자 ‘북한통’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깊은 신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 강점 그래서인지 현 정부들어 개각 때마다 그는 요직 발탁의 하마평에 올랐다. 국정원장,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그리고 최근에는 주미대사와 대통령 안보보좌관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가운데 실제로 인사권자가 직접 그에게 몇차례 제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마다 문 위원장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고사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하마평에 오른 이유에 대해 주위에서는 탁월한 친화력과 빠른 분석, 그리고 국제적인 인적 네트워크와 학자답지 않은 추진력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동안 평양에 수차례 다녀오면서 그곳 수뇌부들과 ‘스킨십’이 많았다. 또 미국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알게 된 많은 지인들이 현재 백악관 안팎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3·1절 낮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문 위원장 자택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곧 대문을 열고 나왔다. 등산용 모자에 검은 티셔츠, 운동화 차림이었다. 평소의 휴일 같으면 연세대학 연구실에서 밀린 ‘숙제’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동북아위원장으로 일하면서도 연세대학(국가정보론)과 대학원(동아시아국제관계론)에서 일주일에 두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그는 “안 그래도 인터뷰를 끝내면 연구실에 갈 예정”이라며 웃는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강아지 한 마리가 낯설게 짖어댔다. 이 소리에 놀랐는지 7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문 위원장은 “우리 장모님”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10년째 장모를 모시고 있다고 했다. 또 부인이 미국에 가 있어서 장모가 대신 집안일을 봐주고 있다고 귀띔했다. 잠시 2층의 서재를 둘러봤다. 책상 주변만 하더라도 국제관계 연구서적 등 책 수천권이 쌓여 있어 평소의 연구활동을 짐작케 했다. 마침 점심 때여서 동네 식당(복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하는 아주머니, 조기축구회 아저씨들이 그를 알아보고 “교수님, 오랜만에 오셨네요.”하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식사를 마친 뒤 인근 찻집으로 다시 자리를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문 위원장이 현직에 몸담고 있는지라 현안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북한이 ‘핵보유 선언’을 하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지체없이 “북한의 핵보유 선언의 배경에는 (미국과의)대화 용의에 대한 강력한 러브콜이 깔려 있다. 그러나 서방언론은 핵보유 선언만 집중보도해 6자회담의 판이 깨진 것처럼 되고 말았다.”면서 “북한은 언제든 6자회담에 복귀할 생각을 갖고 있으며 또한 평소 미국의 성실한 대화자세를 요구해온 만큼 그 자세 여부에 따라 북한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들맨은 고이즈미 총리가 적임자 이어 리비아의 핵폐기 선언 과정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은 블레어 영국 총리를 중재자(그는 ‘미들맨’이라고 표현했다.)로 내세워 9개월 동안 비밀리에 협상한 끝에 결국 리비아의 ‘비핵선언’을 이끌어냈다.”면서 “이는 협상과정에서 리비아의 체제 등에 대한 영국과 미국측의 보장 약속, 이에 따른 신뢰감을 리비아측에 심어주었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선언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도 이같은 방법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자 “미들맨 카드는 살아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 평양에 몇차례 다녀와 적임자이기도 하다.(블레어 총리처럼)우리도 못할 일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북핵해법의 한 카드가 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현재 북한이 미국에 원하는 것은 세가지로 압축된다고 했다. 첫째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없어야 하며, 둘째 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해주고, 셋째 내정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는 “이 세가지 사항을 미국이 못 들어줄 이유도 없다.”며 미국측의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 부시정권에는 ‘인권’과 ‘핵’을 앞세운 기능적 북한 전문가들이 확산돼 있다보니 북한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완전히 무시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따라서 앞으로 미국은 북한을 잘 아는 기술적 전문가가 (북한측에)접근해야 된다고 지적했다. 남북정상 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서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은 이미 약속된 것이다. 다만 시기가 문제다.”면서 “우리측은 6자회담이 잘 되든 깨지든 상관없이 북한당국이 원하면 언제든 정상끼리 만난다는 방침”이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답방장소로 제주도가 우선 거론되고 있다고 하자 “제주도를 동북아의 제네바로 표방,‘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채널 가동에 대해 그는 “국정원은 국정원대로, 통일부는 통일부대로 관계당국에서 나름대로 채널을 두고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이밖에 현재 거론되고 있는 6자간 국방장관 및 외무장관 회담의 성사와 관련,“얼마전 외부강의에서 잠시 언급했다가 해당부처에서 자제요청을 받았다. 자신이 얘기할 사항이 아니다.”며 언급을 피했다. ●동북아 평화공동체 한국 주도로 “동북아시대를 맞아 개성공단은 제조, 인천은 물류, 서울은 금융허브가 될 것입니다. 개성공단의 경우 북핵문제가 해결되면 동북아시대에 큰 역할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이 뒤따르겠지요.” 그는 동북아시대위의 추진방향과 관련,“▲하나되는 동북아 ▲네트워크 동북아 ▲열린 동북아 ▲함께 하는 동북아 등 4가지 큰 틀”이라면서 평화번영의 공동체를 한국이 주도해나가자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 추진 중인 한·중·일 공동TV채널과 정기적인 프로축구 시합 등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것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제주 출신 고교때 투포환 수준급 문 위원장은 1951년 제주시에서 9대째 가문을 잇는 집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격조건과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학창시절 운동과 문학활동에 많은 소질을 발휘한다. 씨름과 유도선수로 시합에 자주 나섰고, 특히 투포환 던지기 실력은 도내 최고를 자랑할 정도의 수준급. 또한 도내 백일장에서 시와 수필 등으로 여러차례 장원을 차지한다. 1970년 연세대 철학과에 진학한 그는 칸트와 유교철학을 원전으로 공부하며 철학세계에 푹 빠진다. 이때 ‘역사와 철학’이 접목된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또한 연세대학보 ‘연세춘추’ 기자 및 편집국장으로 활약하면서 몇차례의 시화전을 통해 끼를 발산한다. 그러던 72년 학보 편집국장의 자격으로 미 국무부에서 초청하는 아시아·태평양 10개국 학생지도자대회에 참석해 3개월 동안 미국의 주요한 몇 곳을 견학했다. 귀국 후 3학년 1학기 때 군입대를 했다. 훈련을 마친 뒤 정보사령부에 배치됐다. 이때 이수혁 외교통상부차관보와 사수-조수로 함께 근무했다.75년 군 제대 직후 친한 선배의 권유로 이슬람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 이슬람중앙연합회 국제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면서 영어로 된 이슬람 관련서적 10여권을 번역했다.3년 뒤에는 미국으로 메릴랜드대로 건너가 5년만에 정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94년부터 연세대에 몸담아왔다. 문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햇볕정책을, 현 참여정부에서는 동북아 평화번영 정책을 전도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장관급 자문기구여서 한 달에 고작 102만원의 월급을 받지만 조찬 강연 및 각종 간담회 등에도 부지런히 참석하는 열정을 보이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3월 제주 출생 ▲69년 제주 오현고등학교 졸업 ▲77년 연세대 철학과 졸업 ▲78∼81년 미 메릴랜드대 조교 및 강사 ▲81년 메릴랜드대 정치학 석사 ▲84년 동 대학 정치학 박사 ▲85년 윌리엄스대 정치학과 조교수 ▲87년 켄터키대 정치학과 조교수, 게리하트 상원의원 자문위원 ▲87∼88년 인하대 정외과 조교수 및 학과장 ▲93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태평양국제대학원 초빙교수 ▲94년 한국정치학회 국제위원장 ▲94년 연세대 정외과 교수 ▲98년 국방부 자문위원 ▲99년 청와대국가안정보장회의 자문위원 ▲2002년 미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2004년 6월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추진위원장(장관급) k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1)대관령·진부령의 황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1)대관령·진부령의 황태

    산에서 물고기를 구한다? 그럴 수도 있다. 일명 ‘더덕북어’로 불리는 황태는 백두대간의 심산유곡에 가야만 구할 수 있다. 백두대간을 사이에 두고 ‘영동’에 명태가 있다면,‘영서’인 산간에는 황태가 있다. 눈이 펄펄 내려서 ‘교통두절’ 운운하는 방송이 나올 무렵이면 황태의 황금빛 치장이 짙어 간다. 해마다 2월의 끝,3월이 시작될 무렵이면 봄을 시샘하는 폭설이 내리곤 해 대관령 인근 ‘하늘 아래 첫동네’인 평창군 횡계마을은 눈에 갇혀 봄을 맞는다. 황태의 본고장인 횡계 마을은 생각보다 덜 알려졌다.6·25가 끝난 1954년, 일단의 ‘함경도 아바이’들이 횡계마을로 찾아들었다. 그들은 소나무 말짱을 엮어서 덕장을 세웠고, 인근 송천 개울가에는 속초와 주문진에서 할복한 명태들이 터덜거리는 낡은 트럭에 실려와 부려졌다. 이 명태를 하루쯤 얼음물에 담가 수도승처럼 ‘정화의식’을 거친 후 3단 높이의 높다란 덕장에 내걸었다.2마리씩 코가 꿰인 동태들은 이렇게 변신을 준비했다. 황태란 말은 본디 없었으나 해방 이후 단단한 북어와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황태와 북어는 출신 배경이 똑같은 생태이나 훨씬 극심하게 고난의 통과의례를 거치는 황태라서 그 결과는 판이하다. 황태는 모진 풍설을 맞으며 얼었다 녹기를 반복해 전혀 다른 먹을거리로의 변신에 성공하는 것이다. ‘거래지’에서 흘러내린 물이 마을 앞을 가로지른다 해서 ‘엇개’로 불리던 횡계는 산간에 둘러싸인 너른 저지대다. 옛 장터인 ‘장선말’에 덕장이 들어서서 ‘덕장모퉁이’란 지명도 얻었다. 그러나 덕장 사정은 예전과 다르다.‘원주민’이던 아바이 1세대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고, 이제는 주문진의 ‘업자’들이 땅을 임대해 겨울 한철 덕장을 꾸려 나간다.12월부터 3월까지 약 4개월동안 덕장 구경을 할 수 있다.4월부터는 말목을 뜯어내 보관한 다음 그 땅에서 밭농사가 시작된다. 다시 겨울이 오면 경작지에 말목을 세웠다가 봄이면 뜯어내고. 이렇게 횡계의 4계는 덕장과 경작지 사이를 돌고 돈다. ●바닷바람에 그냥 말린 북어와는 다르다 횡계에서 제일 오래된 ‘삼신덕장’을 운영하는 평안도 출신의 유성준(83)옹과 유영선(40)씨 부자는 소문난 ‘황태지킴이’. 원주민으로는 유일하게 지금껏 횡계덕장의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원주민이라고는 하지만 월남하여 흘러 들어온지 40여년에 불과하다. 날품팔이로 전전하다 어찌어찌 함경도 아바이들이 진을 친 이곳 산골까지 발길이 닿았다. 그들은 손에 돈이 쥐어지면 모두 땅을 샀다. 평당 30원에 사들인 땅이 지금은 거금의 땅으로 변했다. 그러나 유옹 부자는 모텔과 콘도가 올라가는 금싸라기 땅에서 곁눈질 하지 않고 오로지 황태만 키워낼 뿐이다. 같은 황태라도 명칭도 제각각이다. 너무 추워서 하얗게 질려버린 백태. 이 백태는 겉이 허옇게 변해 상품 가치는 떨어지지만 창고에 넣어두면 스스로 발효하여 가까스로 상품 구실을 한다. 문제는 일명 먹태, 찐태로 불리는 흑태. 일기가 너무 따뜻해 얼지 않은 채로 마르면 딱딱한 북어가 되고 만다. 횡계 사람들은 황태와 북어를 엄정히 구분한다. 바닷가 세찬 해풍에 그대로 말린 놈을 바닥태, 즉 북어라 하며, 영서의 냇물에 씻어 차가운 서북풍에 말린 놈은 황태라고 부른다. 방망이로 두들겨 패지 않으면 먹을 수가 없으니 “북어와 여자는 두드려야 맛이 난다.”는 이해 못할 속담이 예서 나왔음직 하다. 황태야 자신의 몸을 잔혹스러울 정도로 내돌려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그저 손으로 쩍쩍 찢어 입에 넣기만하면 될 일이다. 바람을 못이겨 덕에서 떨어지면 낙태요, 몸통에 흠집이 있거나 일부가 잘려나가면 파태요, 애초부터 머리를 잘라내고 몸통만 말린 뒤 갈갈이 찢어 안주나 반찬거리로 내는 ‘황태채’는 무두태이다. 크기에 따라서도 이름이 다르다. 큰 놈부터 왕태, 대태, 중태, 소태로 서열화되며, 앵태는 그중 작은 놈(20㎝ 정도)으로 우리가 아는 노가리급이다. 당연히 몸집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요즘 황태덕장엔 베링해 ‘원양태’만 가득 유옹이 입촌할 당시만 해도 이 마을에는 20여 가구만 살았으며, 냇가를 따라 10여 채의 덕장이 있을 뿐이었다. 횡계는 본디 강릉도호부 소속으로 영서에 속하면서도 동해가 지척이다. 함경도 아바이들이 덕장의 최적지를 찾다가 ‘황태명당’으로 이곳을 점찍은 것이리라. 이제 더 이상 동해 명태를 황태덕장에 내거는 일은 없다.‘지방태’는 사라지고 베링해의 ‘원양태’가 시장을 지배한다. 유옹은 “원양태가 횡계에 등장한지도 벌써 38년이나 되었다.”고 귀띔한다. 그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 명태 자원이 격감했다는 말이다. 덕장 1칸에 평균 2500마리가 걸리니,20마리를 1급(한 축)으로 치면 1칸에서 120급 정도가 건조된다. 이런 황태지만 최근에는 중국산 때문에 몸살이다.‘개도 돈을 물고다녔다.’는 얘기는 전설이 된지 오래다.“그러나 이제 맛으로 승부해야죠.” 눈길을 무릅쓰고 기꺼이 현장까지 동행해 준 이영신(평창문화원 사무국장) 시인의 훈수다.‘구름도 쉬어간다.’는 대관령 700고지의 냉랭한 기온과 극심한 일교차, 여름에도 손이 아린 송천,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부터 동해로 가는 통로였던 천혜의 입지 등이 황금빛 황태신화를 창조해 낸 주역들이다. 눈비 몰고 오는 동해의 ‘샛바람’을 피할 수 있는 영서에 자리잡아 춥고 마른 북서풍을 껴안으며 오늘도 황태는 노릇노릇 익어가고 있다. 횡계는 더 이상 먼지 날리는 비포장길의 산간 오지가 아니다. 도암면사무소가 옮겨오면서 인구도 3800명에 이르고 있으며, 산간에 그럴듯 한 저자거리도 생겼다. 용평스키장이 번성하면서 겨울이면 스키족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횡계의 황태음식점에서 내는 황태구이, 찜, 탕 등의 맛갈스러운 별미가 빈한한 재정자립도의 촌동네 살림살이를 또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지. ●대관령엔 횡계덕장·진부령엔 용대리 덕장 대관령이 횡계마을에 덕장을 선사했다면, 진부령은 용대리마을에 또 다른 덕장을 선사했다. 말하자면 대관령과 진부령이라는,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대표적인 고갯길이 남한 덕장의 최적지로 부각된 것이다. 백두대간을 넘어가는 고개는 단순한 도로가 아니다. 사람과 물산이 오가고, 문화가 오가던 전통시대의 동맥이었다. 강릉에서 지척인 횡계가 영동고속도로 권역으로 주문진 등의 명태를 소화한 곳이라면, 인제군 용대리는 대체로 속초나 고성같은 강원 북부해안의 명태를 담당했다. 군인이었던 30여년쯤 전의 일이다. 휴가 때 거진에서 서울 마장동 터미널까지 오자면 반드시 용대리를 거쳤다. 반대로 인제에서는 원통을 거쳐 용대리를 통과해야만 진부령을 넘을 수 있었고, 이내 간성에 이르던 기억이 새롭다. 동해 주둔 군인들의 휴가 통로가 바로 명태들의 덕장행 루트이다. 이곳 토박이인 방효정(81) 인제문화원장의 기억으로는 일제시대에도 진부령 관통도로가 존재했다. 좁은 비포장도로가 인제와 간성, 즉 영동·영서를 이었다. 당시만 해도 목탄차가 힘들여 넘어가는 고갯목이었다. 속초와 인제를 연결하는 지금의 미시령은 1970년대에 군 작전도로로 뚫렸다. 도부꾼들이 내설악쪽의 소로를 이용하여 동해의 건어물과 소금을 지고 넘어와 곡식으로 바꿔갔다. 해산물과 농산물의 물물교환이 소박하게 이뤄졌다. 진부령과 미시령 코앞 길목에 자리잡은 용대리가 오늘날과 같이 황태덕장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은 불과 20여년 전의 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인근 백담사로 귀양(?)오면서 갑자기 뜨기 시작했다는 주민들의 전언이다. 그러더니 땅투기가 빚어질 즈음에는 덩달아 황태덕장도 뜨기 시작했다. 함경도 아바이들이 주축이 된 대관령덕장과 달리 뒤늦게 1980년대에 5∼6가구가 시작한 진부령덕장은 간성과 인제 사람들이 주축이 되었고, 지금은 모두 인제 사람들이 운영한다. ●99년부터 황태축제 시작… 연간 7억 소득 지금은 옹벽타기 훈련장으로 더 잘 알려진 용머리가 있어 용대리로 불린 이곳은 바람이 워낙 드세어 ‘바람부리’로 악명높다. 밤과 낮을 번갈아 얼었다 녹기를 되풀이함은 대관령과 다를 바 없다. 폭설이 내린지 10여일이 지났건만 덕장에는 눈이 고스란히 쌓여있다. 엄청난 바람이 ‘영너머’에서 고개를 타고 내려온다. 현지인들은 ‘영너머’란 말을 자주 쓴다. 바람은 물론이고 물산과 사람과 문화교류를 모두 “영너머로 오간다.”고 표현한다. 무려 40여일간 영너머 바람을 견디다 보면 황태 속살이 부풀어 솜처럼 부드러워진다. 1990년 무렵부터 덕장이 불어나기 시작해 지금은 30여개 덕장에서 연간 100만 마리 이상이 생산된다. 아예 지난 99년부터는 황태축제가 시작돼 연간 7억5000만원 상당의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축제 기간에만 10만∼15만 인파가 전국에서 몰려든다. 영동에 명태축제가 있다면 영서에는 황태축제가 있는 셈이다. 올해도 2월26일부터 3월1일까지 황태축제가 벌어졌다. 전국 황태의 7할이 용대리에서 생산되고 있으니, 양평쪽에서 홍천을 거쳐 진부령이나 미시령을 넘고자 하는 이들은 용대리 길가의 무수한 황태식당과 덕장을 거쳐야 한다. 황태의 본적지는 두말 할 것 없이 평창의 횡계리다. 반면에 황태를 새롭게 알린 곳은 인제의 용대리다. 하나는 대관령, 다른 하나는 진부령에 위치해 ‘영너머’로 오가는 바람을 이용하면서 바다동네와 산동네의 인정과 물산까지도 맞교환하는 중이다. 황태의 요긴한 쓰임새를 길게 설명해 무엇하리. 짝짝 찢어서 술안주로, 혹은 도시락반찬이나 찜과 탕, 구이로, 무엇보다 조상님 제상에 듬직하니 올려 ‘절받는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 또 술꾼들에게는 아침 해장 감으로 황태에 비할 것이 없나니, 황태에 인체의 독을 빼는 성분이 들어있다는, 동의보감을 위시한 각종 처방문은 필경 얼고 녹는 환난의 아픔을 겪은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베풂의 징표’가 아닐런지.
  • 이부총리 “땅투기 의혹 송구 모든책임 내게 있다”

    부동산 투기 의혹과 3·1절 골프모임 등으로 잇따라 구설수에 올랐던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이 3일 공식 사과와 해명을 했다. 일련의 잡음에 대해 죄송하며,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부총리에게 강한 믿음을 표시했다. 이 부총리는 오전 청와대에서 대통령 업무보고를 마친 뒤 오후 2시쯤 기자회견을 갖고 “최근 재산등록과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에게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불경기로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처의 부동산 문제가 불거져 유감스럽다.”면서 “사전에 편법을 할 의도나 생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편법 시비를 일으킨 데 대해 면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부총리는 “민간인 시절에 발생한 일이지만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면서 “여러 차례에 걸친 재산공개 과정을 통해 소상히 밝혀 왔으나 어떤 의혹도 남지 않게 신중하게 처리했어야 했다.”며 거듭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태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제 개인의 문제로 국정운영에 차질을 주는 상황이 와서는 안 된다.”면서 “부동산 정책이나 주택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변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며 언급을 피했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사의표명을 놓고 상의한 적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공무원사회 후배인 산업은행 유지창 총재는 “이 부총리가 전화를 통해 이번 건으로 사표를 낼까 생각한다고 말해서 적극 만류했다.”고 전했다. 한편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노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대한 언급 없이 재경부의 지난해 업무성과와 올해 계획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며 부총리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배석했던 재경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신용불량자 대책, 종합부동산세제 입법 등과 관련해 재경부의 노고를 치하했으며 경제운용 계획이 잘 짜여져 실천만 잘 되면 올해 우리 경제가 크게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태균 김미경기자 windsea@seoul.co.kr
  • [4일 TV 하이라이트]

    ●바람꽃(KBS1 오전 8시5분) 서울역에서 오랫동안 형주를 기다리던 영실은 통금 위반으로 경찰서에 끌려가고, 다음날 서울로 올라온 형주는 영실이 기다리던 곳에서 영실의 사진을 들고 찾아 헤맨다. 결국 영실은 정님이에게 형주와 인표의 소식을 묻는 편지를 보내지만, 정님은 읽자마자 편지를 구겨 버리고 공장으로 향한다. ●여자플러스(SBS 오전 11시10분) 새 교실, 새 책상, 새 책, 새 친구들과 선생님. 많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이때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훈련. 이 중에서도 환경 및 생활습관을 바로잡아주면 향상시킬 수 있다는 아이의 집중력 높이기를 조명한다. ●언론과의 대화(YTN 오후 3시15분) 광복 60년이 되는 올해 3·1절은 그래서 좀더 특별하게 여겨진다. 역사학계의 거목인 강만길 상지대 총장과 함께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문제와 광복 60주년이 되는 2005년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 보고, 우리의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해 얘기한다. ●생방송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유치원과 어린이집, 보육원 등을 돌며 어린 아이들에게 성교육과 성폭력 예방을 내용으로 하는 인형극 공연을 펼치고 있는 이인숙씨와 김라미씨는 원래 집에만 있던 평범한 아줌마들이었다. 이들이 전하는 목소리를 통해 주부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실천적 방법들을 생각해 본다. ●논스톱5(MBC 오후 6시50분) 수아는 자신의 생일날을 진우와 함께 보내기 위해 진우의 아르바이트를 돕기로 한다. 고생하는 수아를 두고 볼 수만은 없는 경준은 옆에서 수아를 도와 같이 아르바이트 일을 한다. 한편 승기는 술에 취하면 본심을 얘기하는 이정의 술버릇을 우연히 알아낸다. 승기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부부클리닉-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탈북자 진섭과 딸 하나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혜련. 어느 날 혜련의 집 근처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진섭의 북한에 남겨 둔 아내 정해가 이사 오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진섭과 정해는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두 아내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다 못한 혜련은 이혼을 신청한다.
  • [인간시대] 강준식씨의 남다른 국기 사랑

    [인간시대] 강준식씨의 남다른 국기 사랑

    “대한민국의 상징인 국기가 엉망으로 관리되는 현실을 접하다 보니 일종의 사명감까지 생기더군요.” 강준식(57·서울 관악구 봉천7동)씨는 동생 준길(47·대구시 동구 불로동)씨와 손을 맞잡고 태극기 홍보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 형제는 3·1절 기념식이 열린 1일에도 충남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을 찾아 ‘태극기 동산’에서 열린 행사장에 태극기 50개를 경품으로 내놓았다. 형 준식씨는 현재 태극기선양회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태극기 보급’에 앞장선 것은 형인 준식씨의 태극기 사랑이 남다른 데서 비롯됐다. 서울 서초구청에서 행정차량을 운전하는 기능직으로 일하던 준식씨는 1989∼1992년 방배2동에 근무할 때 태극기와 ‘악연?’을 맺었다. 각종 행사 때 길거리에 태극기를 내걸고, 또 태극기를 거둬오는 일을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민이 생겼다. 줄지어 나부껴야 할 태극기가 지나가는 차량이 일으키는 바람에 꼬여 볼품이 없었다. 당시 내무부 등 상급기관으로부터 긴급지시가 ‘전통’으로 내려와 게양대에 말린 태극기를 풀기 위해 공휴일에도 출근하는 고역이 되풀이 됐다. 강씨의 머릿 속에는 항상 이 문제가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강씨는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때 태극기가 얼마나 국민들에게 귀중한 물건인가를 새삼 깨닫고 본격적으로 문제해결에 뛰어들었다. 어떠한 바람에도 감기기 않는 태극기 개발이 그의 인생 목표가 됐다. 기울기가 45도 정도로 고정돼 있는 게양대의 경우 태극기가 감기면 쉽게 펴지지 않는다는 데 착안, 태극기를 묶는 깃대를 360도 회전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는 알루미늄 게양대의 무게가 태극기 무게와 비슷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 그래야만 게양대가 회전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벼우면서도 꺾이지 않는 깃대 재질을 찾아 시내 기계상들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강씨는 알루미늄 제품 가운데는 요건을 갖춘 게 없어 주머니를 털어 깃대를 특별 주문했다.600여만원이나 들었다. 관청용인 무게 90g짜리 태극기 7호(90㎝×135㎝)를 기준으로 해 기존 알루미늄 깃대는 태극기 무게의 4배인 380g 정도나 된다. 깃대의 두께가 2㎜인 알루미늄 봉(棒)을 열처리해 0.5㎜짜리로 압축, 자신이 원하던 깃대를 만들었다. 이후 출근길에도 태극기를 들고 나오는 등 강씨의 열의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서초구에서도 시간을 할애해 주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휘감기지 않는 태극기를 특허청에 실용신안등록을 출원, 지난해 4월에는 기술평가까지 마쳐 독점 제작권을 따냈다. 올해부터는 낚싯대 재질의 깃대를 이용, 강한 바람이나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거나 휘지 않는 업그레이드된 깃대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올 1월 공직에서 정년퇴임한 준식씨는 태극기 제작을 위해 자신이 사는 연립주택 안에 7평짜리 작업실을 만들었다. 필요한 물량만큼 만들어 시내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100여개씩 기증하거나 요식업을 하는 동생 준길씨에게 보내는 등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 안 되는 일반주문을 통해 판매하는 수익금으로 충당한다. 가격은 7호 1만원, 가정용인 8호(60㎝×90㎝) 1만 5000원이다. “다행히 관청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최근 가로변에 내건 태극기 가운데 70%가 휘감기지 않는 것으로 교체됐다.”고 두 형제는 활짝 웃었다. 형 준식씨는 “사회환원 차원의 일이기 때문에 공무원으로 있는 아내에게 가장 미안한 마음”이라면서도 “태극기선양회에서 7명이 자원봉사 형식으로 도와주는 덕분에 힘들지 않다.”고 고마워했다. 자신은 또 회원이 12만명이나 되는 ‘사색의 향기’ 동료들로부터 인식만이라도 달리하자는 홍보를 할 수 있고, 동생도 대구시 족구연합회장으로 있어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관청용은 특허 덕분에 조달청을 통해 공급할 수 있어 걱정이 덜하다. 다만 준식씨는 아직도 일반 가정의 태극기 게양률이 3%에 그치고 있어 자신에게 할 일이 많다며 국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연락처 (02)889-0465 또는 011-211-9781, 대구 (053)981-3154 또는 011-9595-0025.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경제 때문에? 청와대, 이헌재 부총리 ‘재신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면서 사퇴압력을 받아온 이헌재 경제부총리에게 노무현 대통령이 2일 일단 재신임을 보냈다. 청와대는 이날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현안점검회의에서 경제가 이제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이 부총리가 할 일이 많다면서 “이 부총리가 안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도록 국민과 언론의 이해와 당부를 구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더 이상 이 부총리를 흔들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청와대의 이런 입장에는 노 대통령의 의지와 판단이 반영돼 있다고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부총리는 이날 언론사 간부들과 오찬약속을 취소하는 등 사흘째 공식 일정을 취소한 터였다.1일엔 3·1절 기념행사에 불참하고 국회의원들과 골프를 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달 28일엔 국무회의와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 부총리는 노 대통령이 신임을 보낸 2일 오후부터는 일정을 재개했다. 이 부총리가 오후에 국회를 찾아 법안처리를 당부했다고 재경부는 설명했다.3일 오전에는 청와대에서 노 대통령에게 재경부 업무보고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 부총리에게 신임을 보낸 방식은 매우 특이하다. 노 대통령의 직접적인 의사표시가 아니라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 회의라는 형식을 빌린 점이나, 느닷없이 지난해 이 부총리가 사의를 표시한 사실을 공개한 점이다. 김종민 대변인은 “이 부총리가 지난 연말 사의를 표시했으나 경제가 어려워 여지껏 만류해 왔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신임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에는 부동산 투기의혹에 부정적인 기류도 존재한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 부총리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이기준 교육부총리 파문’보다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3일 업무보고를 마친 뒤 과천청사에서 기자브리핑을 가질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부총리의 브리핑 때까지는 이 부총리에 대한 평가를 자제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부총리가 브리핑에서 어떤 얘기를 할지가 주목된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씨줄날줄] 독립지사 권평근/이용원 논설위원

    1945년 9월8일 인천시내에는 흥분과 긴장이 교차했다. 우리 백성을 일제의 사슬에서 구출해 준 ‘해방군’ 미군이 입국하는 날이었다. 당연히 적극 환영하자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반면 패망한 일제는 시민들에게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미군이 환영행사를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8일 아침이 되자 시민들은 거리 곳곳으로 몰려 나왔고, 미군 함정이 도착하는 오후 2시를 앞두고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부두로 향하였다. 대기한 일본 경찰이 위협하자, 행렬을 이끌던 권평근 조선노조 인천중앙위원장은 “해방된 우리땅에서 웬 참견이냐. 쏠 테면 쏘라.”라고 가슴을 내밀었다. 흉탄이 발사돼 권 위원장 등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해방된 조국 땅에서 일제의 흉탄에 순국한 비운의 독립지사 권평근(1900∼1945)이 이번 3·1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타계한 지 60년만의 일이다. 권평근은 배재학당 재학 중에 고향인 경기도 강화에서 3·1운동에 앞장섰다. 이후 피신 생활을 거쳐 1920년대 후반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귀국해 인천으로 이사한 그는 노동조합·청년동맹을 중심으로 항일 활동을 했다.31년 ‘일본인 습격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돼 그해 10월 경성지법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기록을 보면 권평근은 31년에만도 5∼7월에 걸쳐 반일시위를 3차례 구체적으로 준비했다. 또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해외 반일 조선인 명부’에는 그를 ‘배일사상이 농후한 요주의 인물’로 기록해 놓았다. 권평근의 공적은, 본지가 1995년 연재한 ‘새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학계와 언론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독립지사를 발굴한 것이었다. 당시 취재팀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자료, 경성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가 발행한 ‘사상월보’등 일본측 기록과,31년의 각 신문보도 등 국내 자료를 종합해 그의 삶을 복원해 냈다. 보도가 나간 뒤로는 학계로부터 찬사가 잇따랐다. 그런데도 권평근이 건국훈장을 탄 것은 그로부터도 10년이 지나서였다. 좌파 계열로 분류된 탓이었다. 미군 환영행사를 주도하려던 그에게 좌파란 굴레는 과연 합당할까. 그의 이데올로기라면 오직 민족이었을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사설] 노 대통령 발언이 국내용이라니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측에 ‘과거사 사과·배상’을 강도 높게 요구한 데 대한 일본 지도층 및 언론의 첫 반응이 개탄스럽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한국의)국내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들도 독도 문제 등으로 한국 국민감정이 격앙된 것을 감안한 정치적 발언이라고 의미를 깎아내렸다. 이렇듯 성의없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한·일 관계의 앞날은 암담해진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전된 이상 양국간 외교적 마찰은 피하기 힘들게 됐다. 일본 집권 자민당 의원단이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하려던 일정을 연기했다. 앞서 우리 국회 문광위는 ‘한·일 우정의 해 문화교류행사’ 재검토촉구결의안을 채택했다. 두나라 정부가 슬기롭게 대처하지 않으면 한·일 관계가 걷잡을 수 없게 악화될 우려가 있다.‘우정의 해’ 행사를 넘어 긴밀한 북핵 공조가 필요한 상황에서 양측의 지혜로운 대처가 있어야 한다. 일본측은 청구권 문제는 끝난 일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한·일협정의 전면개정이 어렵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일본이 그것을 역설할 때가 아니다. 개인청구권을 부인한 협정 때문에 고통받는 일제 피해자들을 어떡하든 돕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입법조치도 있고, 사법판결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일본이 독일처럼 과거 잘못에 무한책임을 진다는 기본자세를 가졌다면 노 대통령 발언에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도 대통령의 발언에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일본이 이렇게 나오는데도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국제사회에서 정말 ‘국내정치용’으로 치부된다. 반기문 외교부 장관은 어제 “한·일협정 자체를 재협상하자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미리부터 선을 그었다. 자칫 ‘대통령 따로, 외교부 따로’의 모양새로 나아갈까 걱정스럽다. 과정이야 어떻든, 대통령의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일제 피해자 지원에 있어 일본의 태도 변화를 반드시 이끌어내는 외교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 潘외교 “한일협정 재협상 비현실적”

    일본에 ‘배상’을 촉구한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경축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실질적인 후속조치를 마련하느라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특별히 계획돼 있는 후속대책은 별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의 발언은 일본 정부와 지성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라면서 “현안에 대한 대응이나 별도의 정책은 외교부를 통해 구체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일협정 그 자체를 재협상하자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혀, 일단 재협상 시도는 없을 전망이다. 반 장관은 ‘지금까지 부분적 추가협상이라도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나 계획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어떤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 협의가 가능한지 앞으로 양국 당국자간 협의가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를 종합해볼 때 노 대통령의 발언은 특별한 외교적 조치를 염두에 두고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일본의 자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예상하기 어려운 만큼 일본의 ‘추가적 조치’에 대한 기대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사설] 日, 과거사 추가 성의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배상’과 ‘개인청구권 해결’을 거론했다. 이승만 정권 이후 어떤 대통령보다 강한 어법을 사용한 것은 충격적이다. 임기중 한·일 과거사 문제를 쟁점화하지 않겠다던 노 대통령을 이렇게 만든 일본측의 책임을 먼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2차대전 승전국이 아니므로 불법행위를 전제로 한 ‘배상’은 물론 ‘보상’조차 안 된다는 게 일본측의 논리였다.‘경협자금·독립축하금’ 등의 명목으로 포괄적 보상을 일부 했을 뿐이다.1965년 한·일협정도 그런 기조 위에 체결됐다. 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진실규명, 진심 어린 사과, 그리고 배상이 있어야 화해가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일반론으로 보기에는 의미심장하다. 양국 정부가 정교하지 못한 대응을 한다면 양국 관계는 극단적으로 볼 때 한·일협정 이전으로 되돌아갈 위기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가 당장 한·일협정의 전면개정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독도 망언, 교과서 왜곡에 군비증강까지 일본의 우경화가 심한 데 대한 최상의 경고라고 이해된다. 일본이 역사왜곡을 중지하고, 한·일협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스스로 바로잡는 게 서로에게 최선이다. 일본 민주당 등 야3당은 엊그제 종군위안부 명예회복법안을 제출했다. 집권 자민당은 소극적인데, 그래선 안 된다. 종군위안부뿐 아니라 원폭피해자 등 협정에서 누락된 부분은 자체입법으로 보상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징병·징용 배상도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원론적 주장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독일은 지난 2000년 입법을 통해 강제징용 외국인노동자 보상책을 만들었다. 유수한 기업들이 보상기금 마련에 참여함으로써 회사 이미지를 높여 해외 판로개척에 도움을 받고 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희망하는 일본 정부나, 군국주의 비호로 성장한 일본 대기업들은 독일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후 일본에 일관된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 점은 유감스럽다. 기념사에서 독도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것이 옳았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는 일본의 변화만을 기다리지 말고 입법을 통해 일제 피해자를 지원하고, 한·일협정의 추가·보완 가능성을 적극 타진해야 할 것이다.
  • 한나라 농성파 “행정도시법 연기” 압박

    한나라 농성파 “행정도시법 연기” 압박

    여야가 지난달 23일 합의한 ‘행정도시 특별법안’에 대해 한나라당이 실시한 자동응답(ARS)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53%가 반대,36%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24일 전국의 성인 17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특히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자 63%가 이번 합의에 반대해 당 지도부는 적잖은 부담을 갖게 됐다. 이 조사에 힘입어 합의안에 반대하면서 농성중인 의원들은 2일 법사위 전체회의 표결과 본회의 처리 ‘결사 저지’라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사안의 중요성을 반영하듯 휴일인 1일 박근혜 대표를 비롯, 당 지도부와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잇따라 의원들이 농성중인 원내대표실을 방문했다. # 장면1:농성파 “4월에 처리하자” 김문수·이재오·박계동·배일도 의원 등 행정도시특별법안에 반대하며 7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1일 법안 저지 의지를 불태웠다. 농성 의원들은 ‘강온 양면전’을 펼칠 태세다. 먼저 2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반대입장을 강력하게 펼친 뒤 오전 10시부터 위헌성을 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일 예정이다. 이를 위해 법사위에 헌법학자인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와 전기성 서울시립대교수를 야당측 공술인으로 추천했다. 이어 법사위 전체회의 표결 저지에 총력전을 편 뒤 오후 본회의도 결사적으로 막을 예정이다. 배일도 의원은 “농성에 참가한 의원 4명은 소수지만 투쟁 경험이 많은 분”이라며 “200여명이 아니라 5000명이라도 막을 자신이 있다.”고 전의를 보였다. # 장면2:박 대표 vs 농성파 3·1절 기념식에 참가한 박근혜 대표는 오후 2시께 느닷없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이재오 의원이 “공휴일인데 좀 쉬시죠.”라고 말문을 열자 박 대표는 “누구 때문에 못 쉬잖아요?”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분위기는 금방 썰렁해졌다. 양측의 입장이 확연하게 달라 접점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의원이 “이번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짧아 국민들이 찬반을 결정할 기회가 없었다.”면서 “3대 쟁점법안을 4월 임시국회로 연기했듯이 ‘행정도시 건설특별법안’ 처리도 4월로 미뤄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박 대표는 “입에 맞는 떡이 없듯 정치도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면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면서 합의의 불가피함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박계동·심재철 의원 등이 “합의안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다.”면서 ‘4월 연기론’에 가세했고 안상수 의원은 “여론의 반대에도 내일 표결을 강행한다면 박 대표가 대권욕에 기인한 것”이라는 날선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박 대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 ‘슬기로운 판단’을 당부했다. # 장면3:손 지사 vs 농성파 최근 여야 합의안에 지지 입장을 표명한 손학규 경기지사도 농성장을 찾았다. 이재오 의원은 “당 지도부가 아닌 경기 지사가 이번 합의에 대해 ‘다행’이라고 표명한 것은 말이 되느냐?”면서 “대권 주자의 관점으로 이 문제를 보면 안 된다.”고 항의했다. 손 지사는 “저라고 이번 결정에 흡족하겠느냐?”면서 “다만 언제까지 지지고 볶고 할 수는 없고 어느 선에서 타협하고 안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이어 “대권을 의식했으면 합의를 반대하는 한나라당 다수 의원의 입장에 서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안상수 의원은 “이번 합의는 나라가 망하는 길”이라면서 “여야 상생도 중요하지만 나라를 쪼개서야 되겠느냐.”면서 ‘여론 수렴 거친 뒤 4월 처리’라는 농성파 의원들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종수 전광삼기자 vielee@seoul.co.kr
  • 외국의 과거사 청산-獨, 사죄후 배상

    노무현 대통령이 1일 3·1절 기념식에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과거사 청산방식을 언급함에 따라 외국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단 일본과 대표적으로 비교되는 국가는 독일이다. 일본과 같은 2차 세계대전 전범(戰犯)국가인 독일의 과거사 청산 요점은 ‘사죄’와 ‘배상’으로 요약된다. 독일의 사죄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뤄졌다. 지난달 초 이스라엘을 방문한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은 이스라엘 국회 연설에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고 사죄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지난해 8월1일 바르샤바 봉기 60주년 기념식에 참석,“과거 폴란드에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줬다.”며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사죄와 함께 경제·물질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배상 노력도 적극적이다. 독일 정부와 재계는 1999년 나치시절 강제 노역자들을 위한 보상 기금을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盧대통령 “日 과거사 배상해야”

    盧대통령 “日 과거사 배상해야”

    노무현 대통령이 1일 한·일협정 피해배상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과 태도변화를 촉구해 한·일관계에 파란이 예고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정동 유관순기념관에서 열린 8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배상할 일이 있으면 배상하고, 그리고 화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은 “전세계적인 과거사 청산의 보편적 방식을 밝힌 것일 뿐이고, 일본에 배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은 임기 중 과거사를 쟁점으로 삼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를 강조해온 데 비해 상당히 강한 어조로 일본의 태도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노 대통령은 외교문제로 비화되고 있는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노 대통령은 대신 “진실한 자기반성의 토대 위에서 한·일간의 감정적 앙금을 걷어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데 앞장서줘야 한다.”고 일본 지성인들의 반성을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그것이야말로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일본의 지성인다운 모습이고, 그렇지 않고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대일 청구권 외에도 아직 묻혀 있는 진실을 밝혀내고 유해를 봉환하는 일 등에 적극 나설 것이라면서 “일본도 법적 문제 이전에 인류사회의 보편적 윤리, 이웃간 신뢰의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한·일 협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배상의 범위도 있을 것”이라고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에 대한 추가배상의 가능성을 제기한 뒤 “일본 내 징용·징병자의 유해 송환도 배상문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한·일 협정과 피해보상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의 부족함도 있었다고 본다.”면서 “늦었지만 정부로서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노 대통령은 총리실에 구성된 민·관공동위원회 외에 포괄적인 해결을 위한 국민자문위원회 구성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한·일 두 나라의 관계를 동북아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공동운명체라고 규정하고 “진실과 성의로써 양국 국민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Anycall프로농구] ‘단테효과’ SBS 첫 12연승

    [Anycall프로농구] ‘단테효과’ SBS 첫 12연승

    ‘3·1절 대회전’에서 TG삼보는 정규리그 우승의 기쁨을 맛봤고,SBS는 최다연승의 신기원을 이뤘다. TG는 1일 창원에서 열린 프로농구 04∼05시즌 경기에서 LG에 80-92로 패했지만,2위 KTF 역시 SBS에 덜미를 잡혀 2년 연속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SBS는 안양에서 ‘숙적’ KTF를 93-88로 누르고 한국프로농구 사상 최다인 12연승의 위업을 일궈냈다. 이전까지는 97∼98시즌 현대(현 KCC),01∼02시즌 SK가 기록한 11연승이 최다였다. TG는 남은 4경기를 모두 져도 35승19패로 KTF가 4경기를 다 이길 경우 동률이 되지만 상대 전적에서 4승1패로 앞서 정규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LG는 안방에서 TG가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만큼은 막겠다는 듯 초반부터 식스맨을 총동원하는 ‘올인’ 전략으로 몰아붙였다.LG는 3쿼터 데스몬드 페니가와 제럴드 허니컷이 번갈아 가며 3점슛과 슬램덩크슛을 꽂으며 승기를 잡았고,4쿼터 초반 페니가의 3점슛 3개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LG는 1시간 앞서 끝난 안양 경기 결과로 TG의 우승에 변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사르고, 우승 축하연을 적극 도와주는 미덕을 보여줬다. TG는 시즌 내내 단 3일 동안만 2위로 내려앉았을 뿐 줄곧 1위를 지키며 ‘무적함대’의 위용을 뽐냈다.TG의 우승 원동력은 ‘짠물 수비’. 경기당 74.9점만을 내주며 2년 연속 최소실점 1위를 기록한 TG는 ‘좋은 수비가 곧 승리’라는 농구의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했다. ‘트윈 타워’ 김주성과 자밀 왓킨스는 가공할 블록슛으로 상대의 포스트 공격을 제압했고, 슈터 양경민까지 뛰어난 수비력으로 상대 주포를 꽁꽁 묶었다. 최고의 전성기를 보이는 포인트가드 신기성은 공수에서 팀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한편 파죽지세의 SBS는 이날 돌풍의 주인공 단테 존스(29점 20리바운드)의 덩크슛과 김성철(22점)의 3점포로 초반부터 KTF 수비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4쿼터에서 손규완에게 3점포 3방을 허용해 4분여를 남기고 75-73까지 쫓겨 연승행진의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상대 주포 게이브 미나케가 5반칙 퇴장당하면서 승부의 추는 SBS로 기울었다.KTF 추일승 감독까지 테크니컬 파울을 당했고, 야금야금 자유투를 넣은 SBS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완성했다. 창원 이창구·안양 임일영기자 window2@seoul.co.kr
  • “대통령 3·1절 기념사 시의적절”

    여야 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시의적절하고 단호한 메시지”라고 환영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최근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 망언’에서 보듯 일본의 역사 의식은 독선적이고 후진적”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가원수가 일본의 적극적인 과거사 규명과 사과 및 배상을 촉구한 것은 필연적이고 시의적절한 요구였다.”고 말했다. 임 대변인은 이어 “정부가 민간인의 대일 청구권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것 역시 정부가 공식적으로 원칙을 세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김무성 사무총장은 “야당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면서도 독도 영유권 주장과 관련해 “대통령이 일본의 주권침해에 대해선 단호하고 분명한 목소리를 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 3·1절에 울린 ‘독도의 분노’

    3·1절에 울린 ‘독도의 분노’

    제86돌 3·1절을 맞은 1일 삼일정신을 기리고 순국열사들의 넋을 달래는 기념행사가 전국에서 이어졌다. 이날 오전 서울 이화여고 유관순 기념관에서는 애국지사와 광복회원을 비롯한 정부인사 및 각계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식이 열렸다. 대한민국 광복회는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을 해 3·1운동의 진원지가 된 종로 탑골공원의 태각비 앞에서 독립운동으로 희생된 선열을 기리는 추모식을 가졌다. ●광복회 민족대표 33인 추모 독도에서는 낮 12시 울릉군의회 의원과 군민 등 175명이 태극기를 들고 참석한 가운데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을 규탄하는 ‘범 군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동도 선착장에서 열린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주한 일본 대사의 ‘독도영유권 망언’을 규탄했다. 참석자들은 대회가 끝난 뒤 500여개 고무풍선에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대형 현수막을 드리워 일본쪽으로 날려보냈다. 부산지역 요트 동호회원 등 6명은 이날 오후 일본의 독도 관련 망언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이날 부산에서 요트를 타고 독도로 출발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단체전국연합은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의 피해자 지원 대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대국민 호소문’에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넘겨받은 48만명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전체를 공개하라.”면서 “민관이 합심해 보상에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태평양유족회는 탑골공원 앞 인도에서 3·1절 기념행사를 가졌다. 진보와 보수 성향 단체들도 각각 3·1절 행사를 진행했다. 보수 성향의 단체들로 이루어진 국민행동본부는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5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북한해방 3·1 국민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현 정부의 일방적 대북 지원은 독재를 옹호하는 반민족적 행위이며 친북좌익세력은 김정일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통일연대 회원 300여명은 오후 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명동성당까지 3.2㎞ 구간에서 ‘민족자주 3·1만세 행진’을 펼쳤다. 또 3·1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주민 29명이 일본군에 학살된 경기 화성시 제암리에서는 당시 참상을 재현한 마당극 ‘아!제암리 만세’가 공연됐다. 또 하남시 여성회는 시청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하는 3·1절 기념행사’를 열고,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경찰은 이날 전국 24개소에서 7만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1절 기념행사가 열렸다고 밝혔다. ●홈피·블로그 ‘사이버 태극기’ 물결 한편 사이버 세상에서도 태극기의 물결은 이어졌다. 이날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카페 ‘고구려 지킴이’ 회원 70여명은 서울 명동에서 태극기 문양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애국가와 만세삼창을 한 뒤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었다. 싸이월드와 네이버 회원들은 각자의 미니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사이버 태극기’를 게양하고 3·1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온라인게임사인 ‘엠게임’은 무협 게임 속에 ‘독도는 우리땅’이란 현수막과 태극기를 내걸었다. 이날 정오에는 게임 이용자들이 동시에 ‘3·1절 만세삼창’을 하는 깜짝 이벤트도 벌였다. 이효용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 “日 자기반성부터 하라” 盧대통령 ‘3·1절 기념사’

    “日 자기반성부터 하라” 盧대통령 ‘3·1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의 한·일 관계 발언 수위가 높아졌다.”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내용을 전날 훑어볼 수 있었던 여권 관계자는 1일 기념사를 듣고 “많은 부분에서 내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28일 오후 늦게부터 기념사 내용에 대폭 수정이 가해졌다는 얘기다. 임기 중에 과거사 문제를 외교정점화하지 않겠다던 노 대통령의 평소 발언에 비해 실제 기념사에서는 과거사 문제가 구체적이고 강한 어조로 거론됐다.‘과거 진실규명→사과→배상→화해’라는 4단계의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방식을 들면서 한·일협정 체결 이후 처음으로 배상을 거론했다.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변화는 최근의 상황변화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첫째는 최근 독도문제에 대한 일본의 끊임없는 소유권 주장이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다카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대사가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발언을 하는가 하면, 일본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이 상정됐다. 노 대통령은 독도 문제를 거론하면 대사의 발언에 맞대응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격에 맞지 않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일본의 지성인들은 자기반성과 앙금 해소에 앞장서 지성인답게 행동하라는 간접적인 발언으로 경고와 불쾌함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로 광복 60주년과 한·일협정 체결 40주년, 한·일 우정의 해를 맞은 의미심장한 올해에 일본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과 발언에 대해 격앙된 우리 국민감정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배상 발언이 한·일청구권협정 재협상을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일협정문서 공개로 우리 정부에서도 피해자 보상을 해줘야 하는 새로운 상황을 맞은 만큼 일본 정부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성의를 보이라는 얘기일 수 있다. 우리측 입장에서 보면 협상 체결 당시에는 다루지 못했던 원폭·정신대 피해자에 대한 배상과 징병·징용자의 유해송환과정의 배상이 일본정부의 추가배상 범주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노 대통령의 대일 촉구는 법적 근거라기보다는 지정학적·정서적 협력관계에 따른 것이다. 노 대통령은 “법적·정치적 관계진전만으로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양국의 공동운명체를 강조했다. 독일이 진정한 반성과 배상을 했기 때문에 지난해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 프랑스로부터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는 일본에 보내는 함축적인 메시지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경제플러스] 모바일게임 ‘독도 지켜라’ 서비스

    KTF는 3·1절을 맞아 남북한 최초 합작 모바일 게임인 ‘독도를 지켜라’ 서비스를 1일부터 제공한다.8일까지 게임 정보료와 데이터 통화료는 무료다. 이 게임은 왜구들의 독도 침입을 막고 독도를 지키는 내용이다. 휴대전화 화면에 ‘태극기 달기’ 서비스도 함께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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