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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된장 만드는 것도 수행의 일부분”

    “된장 만드는 것도 수행의 일부분”

    “승려도 자급자족은 물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익을 창출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해야지요. 수행자라고 늘상 신도들의 헌금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하는 생활속에서 선을 닦아야 하지요.‘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수행철학입니다.”영평사 주지 환성스님이 자죽염(자줏빛 나는 죽염)과 된장 등 장류를 만들어 파는 영평식품을 설립해 ‘수익사업’을 하는 이유다.16년전부터 만들어 온 자죽염은 물론,8년째 만들어 오고 있는 재래식 된장 등이 맛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엔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죽염이나 된장 등은 예로부터 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을 쓰던 사찰음식입니다. 사찰수행에 필수적인 건강식이라고 할까요. 채식위주로 생활할 때 생길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를 예방하는 기능을 하지요. 애초에 수행자들의 건강식품으로 개발한 것을 불사(佛事)에도 도움을 주고, 이익을 창출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회향도 할 목적으로 상품화한 것입니다.” 자죽염은 고온에서 녹아내린 죽염이 붉은 빛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황토흙에 죽염을 넣고 장작불로 아홉번 가열해서 만들어 낸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소금은 서해안의 섬에서 들여온 천일염만을 사용한다. 된장을 만드는 과정도 자죽염 못지않게 복잡하다.11월쯤 사찰 근처에 심은 메주콩을 수확해 1월에 메주를 뜨고,1개월정도 발효시킨 다음,2월경에 자죽염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죽염수에 담가 놓는다.4월쯤 간장이 된 죽염수를 따라내고,3년정도 묵힌 메주를 으깨 된장을 만든다. “우리는 대부분 굉장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어려운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요. 또, 어린이나 청소년 문제 등 ‘절 밖의 일’도 해야 하는데, 신도들에게만 헌금을 강요해서는 안 되지요. 수행자가 장삿꾼 노릇을 해서야 되겠냐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분명하고,(영평식품을)세웠던 이념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아내가 중2아들 유학 보내자고…

    Q중학교 2학년인 아들을 조기 유학시키러 호주로 가겠다는 아내 때문에 답답합니다. 샐러리맨의 뻔한 월급에 무슨 돈이 있으며 나 혼자 어떻게 사느냐고 하면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그 정도 투자도 못하냐며 절 한심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붙이니 말이 안 됩니다.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별로 가고 싶어하지도 않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 건지 요즘 회사 사정도 별로 안 좋은데 방법이 없네요. - 구자모(가명,45세) - A보낼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본인이 가겠다고 할 때 그리고 어느 정도 학력이 뒷받침될 때 유학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학을 보내기에 적합한 나이가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2라면 가장 예민하고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나이여서 더욱 신중하셔야 하구요. 무엇보다 아내가 왜 조기 유학을 그렇게 원하는지 그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 부부가 깊은 대화를 나눠 보십시오. 투자 대비 효과가 어떤지 예상한 대로 결과가 안 나온다면 또 어떻게 할 것인지 기간은 어느 정도 생각하는지 정작 아내는 또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말입니다. 부모의 삶에서 자식이 전부는 아니며 유학만 보내면 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 잘 하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니고요. 아이 하나를 유학시키기 위해 부모까지 따라나갔을 때 경제적인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파악하셔야 합니다. 어려운 대로 뒷바라지를 할 수는 있겠지만 상황이 달라졌을 때 또 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미리 생각하셔야 합니다. 상황은 늘 변하게 마련이니까요. 가장 중요한 아드님의 의견을 물어보셔야 합니다. 물론 무조건 아드님이 원하는 대로 하시라는 뜻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부모의 권유에 못이겨 억지로 갔을 경우에는 현지 적응도 어려울 뿐더러 훗날 부모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와 가족이 따로 떨어져 사는 상황에 대해서도 그 장단점을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떨어져 살면서 오히려 배우자와 가족의 소중함을 발견하고 그 전보다 더 끈끈한 가족애로 뭉치는 가족도 있지만 오랜 기간의 별거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당장 두 집 살림을 하려니 생활비가 많이 드는 점도 있겠지만 기러기 아빠들의 불규칙한 생활, 부실한 식사, 술에 의존하는 생활, 성적인 욕구 불만 등 치러야 할 대가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부부가 의견 일치를 본 다음 아드님이 동의한다면 실제적인 조기 유학을 위해 사전조사와 치밀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겠죠. 경험자와의 만남이나 관련 서적, 인터넷을 통한 정보수집이나 대행 회사와의 상담, 현지 방문 등을 통해 더욱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무쪼록 두 분이 깊은 대화를 통해 자녀교육의 공동 목표부터 세운 다음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시기 바랍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 儒林(71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0)

    儒林(714)-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0)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0) 한양에 두고 온 분매를 그리워하면서 지은 퇴계의 영매시는 다음과 같다. “잊혀지지 않는구나, 지난해 봄 서울에서 분매 두고 돌아오는 소매 신선 바람에 스쳤더니, 어찌 오늘에서야 시냇가 나의 서재 속에, 황종률로 변했으니 그 조화 무궁하여라.(痛憶京師二月中 盆梅歸袖仙風 那知此日高齋裏 幻出黃鐘律未窮)” 이처럼 퇴계는 한양에 두고 온 분매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그 무렵 퇴계의 천거로 성균관 대사성으로 근무하고 있던 고봉. 고봉 역시 지병으로 대사성을 사임하고 있었는데, 스승이 한성에 두고 온 매화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고봉은 이 매분을 퇴계의 문인이었던 김이정에게 전해주어 스승에게 돌려드리도록 하였던 것이다. 김이정은 한성에서 퇴계의 손자 이안도(李安道)를 만나 부탁하며 이 분매를 배로 운반하여 온계리의 본제(本弟)로 돌려보내도록 하였는데, 이 분매가 퇴계에게 도착하였던 것은 바로 올봄. 퇴계는 1년 만에 다시 상봉하는 이 매화꽃을 보자 너무 기뻐서 다음과 같은 시제의 시사를 짓는 것이다. “서울의 분매를 호사자 김이정이 손자 안도에게 부쳐 배에 싣고 오니, 기뻐서 한 절을 읊노라.(都下盆梅好事金而精付安道孫兒船載寄來喜題一絶云)” 그러고 나서 퇴계는 그의 일생일대의 마지막 영매시를 짓는다. “붉은 티끌 일만 겁을 초연히 벗어나, 속세 아닌 이곳 찾아 이 늙은이와 벗하니, 일을 좋아하는 그대(김이정을 가리킴)가 나를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빙설 같은 그 얼굴을 어찌 볼 수 있으리오.(脫却紅塵一萬重 來從物外伴濯翁 不緣好事君思我 那見年年氷雪容)” 퇴계가 노래하였던 ‘빙설 같은 그 얼굴(氷雪容)’은 이미 한양에서 분매와 이별할 때 읊었던 ‘청진한 옥설 그대로 함께 고이 간직해주오.(玉雪淸眞共善藏)’란 내용의 시를 되풀이하여 표현한 것. 그렇다면 퇴계는 어째서 이 매분을 그처럼 그리워하였음일까. 평소에도 매화를 매형, 매군, 매선으로 의인화해 부르면서 인격체로 대접할 만큼 매화를 사랑하여 살아생전 ‘매화시첩(梅花詩帖)’이란 시집까지 간행하였던 퇴계였지만 어째서 이 매분만은 각별히 상사하였음일까. 그렇다. 그 매분은 2년 전 봄. 두향이가 은밀히 남의 눈을 피해 보내왔었던 바로 그 매화. 이 세상에서 그와 같이 얼음과 같은 살결과 옥과 같은 뼈대를 지닌 화괴(花魁)를 가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 매분은 퇴계와 헤어진 20여 년 동안 오로지 임을 보고 싶은 상사 하나로 분매를 가꾸고, 임을 생각하는 상사 하나로 분매를 가지치고, 임을 그리워하는 상사 하나로 꽃을 피워 퇴계가 평생 동안 처음으로 본 아취고절의 매화 한 그루를 가꾸어낸 두향이가 보낸 사랑의 정표가 아니었던가.
  • 우리나라 最古 추정 문헌 발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서기 600년경 백제시대 문헌이 확인돼 고대사 연구에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 이전인 삼국시대를 기록한 것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16일 전남 목포대 최연식(41·역사문화학부) 교수에 따르면 삼국시대 주류 불교인 삼론학(三論學)의 개론서로 쓰였던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총12권)’를 쓴 지은이가 중국인이 아닌 백제 승려 혜균(慧均)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이 문헌으로 삼국시대 이전인 고대 한국인의 불교사상은 물론 의식구조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원본이 아닌 필사본으로 현재 일본 교토대 도서관에 7권, 개인 소장 2권 등 9권만 전해진다. 그동안 고대시대 생활상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제한적인 시나 광개토대왕의 비문 등을 통해서만 알려지거나 짐작됐다. 지금껏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7세기 중·후반 통일신라시대의 원측과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로 알려졌다. 대승사론현의기는 이보다 60년가량 앞선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혜균이 백제 승려로 보이고 이 책에 나오는 절 이름 ‘寶憙寺(보희사)’가 2000년 4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나무에 쓴 글)에 기록된 ‘寶憙寺’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책 내용 가운데 ‘현재 이곳에서 질문하는 문제는 중국에서는 해결됐다.’라는 대목에서 이곳이 보희사가 있는 백제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보희연사(寶憙淵師)는 보희사의 연사 스님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문헌의 내용과 정황상 혜균이 중국 진(陳)나라 유학시절 만난 승려 길장(549∼623)이 장안으로 간 599년 직후에 이 문헌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책은 백제에서 펴낸 뒤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고 백제가 멸망하면서 국내에서는 잊혀졌다. 이번 연구는 최 교수가 2004년 6월 한국불교 삼론학의 전문가인 독일 보훔대의 플라센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혜균은 일본에서 중국의 고대 불교학자로 추정됐다. 두 교수는 오는 20일 서울 대우재단 빌딩에서 그동안 연구실적과 과정을 밝히는 학술토론회를 연다. 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샘물 한 모금] 엄마의 밥그릇

    가난한 집에 아이들이 여럿. 그래서 늘 배고픈 아이들은 밥상에서 싸움을 했습니다. 서로 많이 먹으려고... 엄마는 공평하게 밥을 퍼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마지막으로 엄마 밥을 펐습니다. 엄마는 항상 반 그릇을 드신 채 상을 내가셨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달라고 졸랐지만 절대로 더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배고픔을 못이긴 막내가 엄마 밥을 먹으려 수저를 뻗었다가 형이 말리는 바람에 밥그릇이 그만 엎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엄마가 막내를 때렸습니다. 막내는 엉엉 울었습니다. 형이 쏟아진 밥을 주워 담으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아! 아이들은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엄마의 밥그릇엔 무 반 토막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밥을 더 주려고 무를 잘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밥을 조금 푸셨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제야 엄마의 배고픔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스한 엄마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엄마도 아이들도 저마다 끌어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 TV 행복한 동화 -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침계 (枕溪)/도종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침계 (枕溪)/도종환

    물소리를 베고 눕다 먼 숲에서 뻐꾸기 울고 추녀 끝에선 풍경이 우는데 비 그친 숲의 햇빛과도 어울리고 종로3가의 눅눅한 먼지와도 섞이다가 오늘은 한나절 소리의 장대비를 맞으며 누워 있다 안개비 소리없이 내리는데도 오후 들자 점점 커지는 계곡의 물소리 어제 온 티끌도 씻고 오늘 올 근심도 흘려보낼 수 있어서 침계루도 나도 물소리 베고 눕다
  • 儒林(71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56)

    儒林(710)-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 (56)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56) 특히 퇴계의 유학은 일본으로 건너가 ‘제2의 왕인(王仁)’이라고 불릴 만큼 일본 정신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일본 근세유학의 개조였던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는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 왔던 강항(姜沆)을 스승으로, 친구로 삼아 처음으로 유학을 일으킨 사람인데, 그가 가장 열독하였던 책은 퇴계가 발문을 붙여서 간행한 ‘연평답문’이며, 문인이었던 하야시 라잔(林羅山) 역시 퇴계가 지은 ‘천명도설’을 읽고 ‘퇴계는 이씨들 중에서 우뚝 솟아올라 두드러지시니, 그 나라 유학자의 이름을 온 세상이 다 기리고 있다.’는 내용의 찬사를 조선의 사신을 통해 보내오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또한 퇴계의 영향으로 일본의 근세유학을 열었던 야마사키 안사이(山崎暗齋)는 퇴계를 ‘주자의 직제자(直弟子)’라고 평가하고 ‘조선의 제일’이라고까지 추앙하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가 이처럼 유교의 종주국이었던 중국에서까지 유학의 완성자인 이부자(李夫子)로 칭송받고 퇴계의 사상이 일본으로 건너가 고금절무(古今絶無)의 ‘참된 유학자(眞儒)’라고까지 평가받는 데에는 이와 같이 거친 성정을 지닌 고집불통의 고봉과 같은 제자와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를 할 만큼 천재였던 율곡과 같은 빼어난 후학들과의 충돌과 도전에서 다듬어질 수 있었으니, 바로 고봉의 이러한 점이 임금 선조와의 독대에서 ‘학문을 착실히 한 사람을 천거해 달라.’는 부탁을 받자 퇴계는 몇 번을 고사하다가 ‘굳이 말씀드린다면 기대승 같은 사람은 글을 많이 읽었고 성리학을 깊이 연구해서 그 견해가 감히 유학에 정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는 추천의 말과 함께 고봉을 천거한 이유였던 것이다. 퇴계와 고봉의 사이에 오고간 편지에는 4년여에 걸친 ‘사칠논변’에 관한 편지 말고도 13년 동안 100여 통의 편지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으나 경오년(1570년) 11월15일 ‘후학 대승이 절을 하며 올리는 편지’야말로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마지막 편지였던 것이다. 이 무렵 퇴계는 고황(膏)에 깊은 병이 들었다. 평생 동안 병약하여 항상 아프고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였지만 이번의 병은 골수에까지 스며들어 회복할 가망이 없는 불치의 병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퇴계는 고봉의 마지막 편지를 받은 뒤 불과 20여일 뒤인 12월8일에 숨을 거두었는데, 퇴계 역시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 보인다. 퇴계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퇴계의 제자인 김성일의 ‘학봉문집(鶴峯文集)’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11월 9일. 가묘(家廟)에서 시사(時祀)를 지내기 위해서 온계로 가서 재숙(齋宿)하다가 감기에 걸리셨다. 제사를 지낼 때 독()을 받들고 제물을 올리는 일을 손수 맡아하여 몸이 더욱 불편하셨다. 자제들이 기후가 편치 않으니 제사에 참여하지 말 것을 고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는 늙어도 제사를 지낼 날이 많지 않으므로 불가불 참여할 수밖에 없다.(余今老矣行祭之日不多 不可不參)’”
  •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가평 운악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기 가평 운악산

    경기도 가평 운악산(934.5m)엔 지금 가을이 한창이다. 웅장한 암봉마다 가을이 똬리를 틀었다. 노랗고 붉은 잎사귀엔 가을빛이 영롱하다. 그런 수채화 같은 산의 품에 자리한 현등사에도 여린 가을이 살포시 스며 들고 있다. 풍경소리 들으며 화사한 단풍으로 마음 물들이고 싶어 운악산을 찾았다. 가평군 하면과 포천시 화현면 경계를 이루는 운악산의 대표적인 들머리인 가평군 현리에는 천년고찰 현등사. 신라 22대 법흥왕(514∼539)때 인도 승려 마라가미를 위해 세운 뒤 수백 년간 버려져 있다가 고려때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했다는 절이다. 이 때문에 운악산은 현등산으로도 불린다. 등산객들은 포천 쪽보다는 가평 쪽 들머리를 더 많이 찾는다. 가평 쪽에서 오르는 코스는 크게 두 가지. 일명 ‘A코스’라 불리는 만경등산로는 눈썹바위능선∼철다리를 거쳐 정상에 이르고,‘B코스’인 현등로는 현등사∼절고개를 거쳐 정상에 오르게 된다. 조망이 좋은 만경등산로로 올라 현등로로 하산하는 원점회기 코스가 인기 있다. 매표소 위쪽 ‘운악산 현등사’라 적힌 일주문을 지난다. 맑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을 10여분 오르면 ‘현등분기점(375m)’이라 적힌 표지판을 만난다. 눈썹바위능선을 타기 위해서는 ‘만경등산로’라 적힌 오른편 산길을 따라야 한다. 숲길을 잠시 오르니 이내 능선에 올라선다. 뚜렷하게 이어진 능선길을 30분 정도 더 오르면 눈썹바위 아래다. 길은 눈썹바위를 왼쪽으로 우회하도록 나있다. 급경사 오르막을 10분정도 오르면 주능선 안부에 이른다. 왼편 길을 따라 10m 정도 급경사 바위를 오르고 숲길과 바위를 번갈아 오른다. 왼편 소나무숲 사이로 바위와 단풍이 어우러진 정상부 능선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20분 정도 지나 도착한 ‘병풍바위 촬영소’.‘경기의 소금강’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붉게 물든 단풍과 어우러진 병풍바위는 설악산, 금강산의 봉우리를 떼어놓은 것처럼 닮은꼴이다. 미륵바위와 무명봉을 차례로 지나고 현등사쪽 지능선과 이어지는 안부에 이른다. 정상 500m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바윗길. 철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철다리도 만난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드넓은 정상에 선다. 하산은 정상 남쪽으로 내려선다.15분 정도 내려서면 포천 쪽 대원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절고개에 닿는다. 동쪽 현등사 방면 계곡길로 발길을 옮겨 코끼리바위 아래로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계곡길을 따라 30분가량 내려가면 현등사. 민영환바위와 백년폭포를 지나 40분이면 매표소에 이른다. 하판리 매표소∼눈썹바위능선∼정상까지 약 2시간 20분, 정상∼절고개∼현등사∼매표소까지 약 1시간40분 소요된다. 글 김도훈(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가을의 초대 축제속으로

    가을의 초대 축제속으로

    지금 전국 곳곳은 푸짐한 축제의 열기에 휩싸여 있다. 주제도 다양하다. 남도의 음식부터 국화, 갈대, 쌀 등 가을에 어울리는 이벤트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왕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런 축제가 열리는 곳은 어떨까.10월의 축제는 단순히 눈뿐만 아니라 입, 코 등 온몸으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자 떠나자.10월의 축제 속으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산해진미가 다 모였어요 우리 음식의 고향 ‘남도’는 풍성함과 맛깔스러움의 대명사. 수십 가지의 젓갈과 바다, 육지, 하늘에서 나는 갖가지 음식으로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러온다. 허리띠 한 칸 정도는 늘어날 각오를 하고 찾아보자.‘맛을 찾아 떠나는 가을여행’이란 주제로 제13회 남도음식문화 큰잔치가 오는 18일부터 26일까지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 열린다. 전남 22개 시·군의 유명한 음식점과 음식들이 총집합해 남도 음식의 진수를 보여준다. 단순히 전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맛보기는 물론 판매도 한다. 또한 매일 가족단위로 ‘돌산갓김치담그기’,‘열전 달리는 음식 5종’,‘남도 음식 기네스 대회’,‘우리 가족 요리’ 등 다양한 참여 행사가 열려 남도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보는 시간도 있다. 이밖에 한국의 대표적인 추수감사제인 ‘상달제’가 흥겨움을 더한다. 대취타대와 전통 복장의 행렬들이 신나는 음악과 함께 행진하는 모습에 어깨가 절로 들썩이며, 열기구 탑승·탈 만들기·마당극·민속공연 등 음악과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남도 여행에는 커다란 밀폐용기를 하나 가지고 가기를 권한다. 수십가지의 밑반찬을 남기는 것보다 ‘환경적’으로도 좋고 하루만 지나도 머릿속에 가득한 남도 음식의 여운을 남게 해준다.(061)286-5242,www.namdofood.or.kr # 노란 바다 속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국화 축제인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가 오는 27일부터 11월5일까지 경남 마산 돝섬에서 열린다. ‘아니 마산에서 무슨 국화 축제냐.’고 반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마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국화 재배를 시작한 지역이며 90년에 이미 전국 국화 생산량의 60%를 넘는 최대 산지이다. 전국 각지에 국화를 생산하는 농가가 많아졌지만 그 품질에 있어서는 역시 으뜸을 자랑한다. 기후가 온난하며 안개가 적고 일조량이 풍부한 마산의 기후가 색깔이 선명하고 꽃송이가 풍성한 국화를 키워내는 최적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지역 국화에 비해 꽃꽂이 했을 때 수명이 길어 더욱 인기다. 이처럼 국화 재배의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마산의 돝섬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마산 가고파 국화축제에서 마산의 파란 바다와 국화의 노란 바다를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봄부터 자식처럼 가꾼 2만점의 국화 작품과 모두 200여종의 품종에 50만본 이상의 오색 국화들이 기다린다. 또 국화를 이용한 베개 만들기, 소망 등달기, 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와 국악공연, 시낭송회, 발레공연 등 볼거리가 축제를 수놓는다.(055)240-2271,www.gagopa.org # 청자의 본고장을 찾아서 ‘남도 답사의 일번지’ 전남 강진에서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강진청자문화제가 열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도자기 만들기 체험’에서 비색청자의 신비감을 학술적으로 토론하고 접하는 청자 심포지엄까지 80가지가 넘는 행사가 연일 열린다. 특히 아이들이 진흙을 뭉쳐서 밥그릇이나 예쁜 꽃병을 만들어 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체험형 축제의 대표격이다. 또한 문양 넣기, 청자 모자이크 만들기, 상설물레체험 등 신비한 청자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맛과 역사의 고장인 강진에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얼이 느껴지는 다산초당, 백련사, 영랑 김윤식 선생의 생가 등 돌아볼 곳이 많으며 전국에서 유명한 강진 한정식, 돼지불고기백반 등 맛난 먹을거리가 즐비해 1박2일 나들이를 계획한다면 꼭 권하고 싶은 축제이다.(061)430-3228,www.gangjinfes.or.kr # 엄마, 로봇들이 악기를 연주해요 절도 있는 움직임과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군무, 악기연주에 어린아이들은 ‘로봇’이 연상되나 보다. 화려한 제복, 신나는 음악이 흐르는 가을을 즐기고 싶다면 오는 16일까지 강원도 원주에서 열리는 군악축제인 원주따뚜를 권하고 싶다. 단순히 듣는 음악에서 보고 즐기는 음악 축제인 원주따뚜는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뉴질랜드·러시아·프랑스 등 9개 나라 군악대가 깊어가는 가을의 추억을 선사한다. 또한 폐품으로 만든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는 ‘폐품악기 체험’,‘댄스경연대회’, 문희준, 김범수 등 연예병사들의 참여행사가 열린다.(033)741-2183,www.wonjutattoo.com # 이런 축제도 있어요 전남 순천만에서 오는 14일부터 22일까지 순천만 갈대축제가 열린다.800만평의 갯벌과 70만평이 갈대밭이 어우러진 순천만의 가을을 느껴보자. 유람선을 타고 순천만을 돌아봐도 좋고, 갈대밭에 난 산책로를 따라 걸어도 좋다. 어린이 뮤직컬, 갈대작은음악회 등도 열린다.(061)749-4293,www.reedsfestival.co.kr ‘이천쌀로 지은 세계최고의 밥맛’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버리는 놀이마당’,‘이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전통농경문화’라는 주제로 이천쌀문화축제가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경기도 이천에서 열린다. 특히 농업인과 예술인, 전문놀이꾼들이 참여하는 풍년마당, 문화마당, 놀이마당, 햅쌀마당, 주막거리, 햅쌀장터, 난전 등이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031)644-2607,www.ricefestival.or.kr ‘감의 천국’ 경북 청도에서 청도반시축제가 오는 21∼22일 이틀동안 열린다. 감따먹기 체험을 비롯해 달콤하고 사각사각한 맛이 일품인 아이스홍시, 감와인 시음도 빼놓을 수 없는 흥밋거리. 이외에도 감식초, 감카스텔라, 감말랭이, 감잎차 등 감으로 즐길 수 있는 먹을거리가 풍부하다.(054)370-6376.
  • 궁궐 문화재 안내판 ‘180도 변신’

    궁궐 문화재 안내판 ‘180도 변신’

    경복궁·창덕궁 등 관람객들의 발길이 잦은 조선시대 궁궐 내 문화재 안내판이 확 바뀐다. 문화재청은 유적지 풍경을 해치거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5대 궁궐 안의 안내판을 모두 바꾸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다음달 말부터 경복궁과 창덕궁의 안내판이 교체돼 새롭게 정비된 40여개의 안내판을 볼 수 있게 됐다. ●제 역할 못한 안내판 퇴출 그동안 안내판이 제 구실을 못하고 찬밥 신세가 된 것은 궁궐 안 곳곳에 세워져 있어 관람 분위기를 깨뜨리고, 내용의 신뢰도가 떨어지거나 전문 용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궁궐 내 건물 하나하나에 안내판이 세워져 관람 동선과 관람객 시선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 관람객은 “궁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안내판이 방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안내판과 안내책자(브로슈어), 안내서(리플릿), 음성안내, 안내 도우미 설명 등의 내용이 중복돼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례도 많다. ●권역별 안내판으로 단순화해 새로 탄생하는 안내판은 건물별이 아니라 여러 권역별로 묶어 단순화하고 꼭 필요한 정보만 추려 쉽고 간결하게 담았다. 특히 권역별 입체 지도를 곁들여 관련 문화재가 한눈에 들어오도록 돕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기존 스테인리스스틸·페인트 재질에서 알루미늄·물감 재질로 바꿔 궁궐 분위기에 맞춘다. 또 안내매체별 역할을 분담, 상호 연계되도록 안내판은 문화재의 명칭과 연혁을 담고 리플릿은 문화재 배치와 관람안내를, 책자는 개별 문화재의 상세한 설명을, 해설사는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와 야사를 들려주는 방법을 적용한다. 궁궐별 책자와 리플릿도 다시 제작된다. ●궁능에서 사적으로까지 확대 문화재청은 우선 다음달 말부터 경복궁·창덕궁 안내판을 교체한 뒤 내년 상반기까지 창경궁·덕수궁·종묘 등으로 확대키로 했다. 현재 60∼140개인 궁궐의 안내판이 새롭게 정비되면 20∼45개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문화재활용과 하선웅 사무관은 “형태와 내용이 제각각이었던 문화재 안내판을 체계적으로 개선,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 데 의의가 있다.”면서 “궁궐에 이어 내년 말까지 왕릉의 안내판도 정비하고, 지방의 절·향교 등 사적지들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깔깔깔]

    ●성형수술하면 못 타요 인터넷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올라왔다. “성형수술하면 기압으로 인해 꿰맨 자리가 터지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다던데, 사실인가요?” 이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당연히 탈 수 있다.”는 주장이 압도적인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댓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여권 사진하고 다르면 못 타요.”●실용가치 새 살림을 차린 한 새댁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된 목사는 아주 이른 아침 찬송가를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잠이 깼다. 목사는 젊은 안주인의 신앙심에 깊이 감동했고, 아침식사 때 이 사실을 언급한 목사는 참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이에 새댁이 대답하기를 “그건요. 계란을 삶아 낼 때 부르는거랍니다. 반숙으로 할 때엔 3절까지, 완숙으로 할 때엔 5절까지 부르거든요.”
  • [길섶에서] 노스님/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대학시절 공부한답시고 여러차례 기거한 고향 절의 노스님은 참으로 특이했다. 새벽부터 예불은 하지 않고 절 주변에 개간한 밭에서 일을 했다. 틈이 나면 인근 계곡을 돌며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웠다. 죽어서 신세지기 싫다며 자신의 관을 미리 짜서 학생들이 있는 요사채 지붕 밑에 놓아둬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불공차 찾아오는 시골 아낙들이 이고 오는 것은 쌀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스님은 학생 기숙비 등을 아껴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새경을 넉넉하게 쳐줬다. 때문에 산 아래 마을에서는 “절에 가면 부자 된다.”라는 말이 돌았다. 지난 여름 오랜만에 찾은 절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노스님이 돌아가신 뒤 새로 온 스님이 많은 돈을 들여 수리를 한 덕택이라고 한다. 하룻밤을 자며 젊은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풍채 좋은 스님은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촌 보살들이 이게 있어야지. 내가 여기저기서 불사 좀 했지.”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얘기를 들을수록 노스님의 존재가 커져만 가는 것은 어인 일인지. 김학준 지방자치부 차장 kimhj@seoul.co.kr
  • [열린세상] 추석 귀경길의 상념/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귀한 우리의 추석연휴가 끝났다. 끝은 다 그렇듯이 이제 모두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올해의 한가위는 평소와 다른 여운이 있었다. 이유를 찾는다면 예년보다 연휴가 길었고 그래서 친인척들과 함께한 넉넉했던 시간 때문이었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고속도로, 국도가 귀향, 귀경차량으로 넘쳐났다. 줄을 이어 한 방향으로 달리는 거대한 차량의 흐름 속에서 까닭없는 의문이 일었다. 이 시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추석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 방향으로 동시에 10시간 이상씩을 운전하며, 복잡한 터미널을 감수하며 왜 달려가는 것일까. 이로 인하여 우리의 무엇이 변화될까. 순 작용은 무엇이며 혹시 역 작용은 없을까. 과학에서는 흐름을 에너지로 해석한다. 흐름에는 이를 일으키는 힘, 기력이 반드시 존재하며 이를 방해하는 저항도 있다. 흐름의 양과 강도는 이들 즉, 기력과 저항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흐름을 일으키는 힘은 대체적으로 에너지 차(差)인데 그 종류가 다양하여 그 계산은 다소 복잡하다. 그러나 흐름이 이루어진 후의 상태 변화는 정확히 계산된다. 엔트로피 크기가 그것인데 그 양은 많아지거나 적어지지 않고 항상 한 방향으로 증가한다. 그러므로 양의 크기에 따라 변화의 폭을 알 수 있고 향후 변화의 여지도 가늠할 수 있다. 한가위를 지내면서 우리에게도 이런 저런 변화가 많았다. 전국에서 3900여만 명이 움직였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친지들과 함께 뉴스를 보고, 제찬도 준비하며, 성묘도 같이 했다. 그 속에서 북한 핵문제, 조카의 결혼문제도 얘기했고, 집안 대소사도 얘기했다. 서울의 아파트 값을 놓고 열 받았던 삼촌도 만났다.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그 중에서 우리 집의 화두는 ‘추석 차례상’에 대한 분분한 의견이었다.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는 일에 대한 이론을 제기하는 현실파 조카 때문이었다. 자연스레 세대 간, 종교 간, 가치 간에 따른 여러 의견이 개진되었다. 귀경길 라디오는 인터넷 차례상 대행업체에 의한 웃지 못할 사연들, 늦게 배달되고, 상했던 차례음식 등으로 망가진 추석을 보내게 된 안타까운 얘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의식(儀式)’을 치른다. 차례상 역시 의식적 행위임에 틀림 없다. 의례는 정신세계를 지향한다. 변화하는 세상에 의식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의식이 지나치게 간소화되어 본질적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다. 초등학교 시절, 추운 겨울 토요일 날 운동장에 서서 따라 부르던 애국가가 너무 길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그 추운 겨울아침의 애국가가 나라사랑과 무관 했다고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의식은 우리의 정신 형성에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계속되는 이런 저런 생각에 꼼짝 않는 귀경길 자동차 속이 소중하다. 고생은 되었지만 추석은 가족의 생각, 이웃의 생각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결국 우리는 추석을 통해 자연스레 세대간, 지역 간, 개인 간의 차이를 깨닫고, 우리의 생각을 가늠할 수 있었다. 물론 잘 화합되었을 수도 있고,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더 한번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해의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화화상통(和和相通)이란 말이 있다. 서로 통하여 순환되면 만사가 순리대로 풀린다는 뜻일 것이다. 추석은 결국 우리를 통하게 하였다. 이런 소통이 부분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폭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사회적 큰 혼합의 기능을 충실히 한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변화라면 그 변화 전후의 엔트로피를 정확히 계산하여 GNP증가에 기여한 수치를 가늠하여 경제적으로 그 가치를 평가할 수도 있을 텐데 하는데 생각이 미치니 사회경제학 지식의 짧음이 아쉽다. 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 [공직초대석] 이성열 중앙공무원교육원장

    [공직초대석] 이성열 중앙공무원교육원장

    “요즘 공무원이요? 사고에 거침이 없고 발표를 아주 잘하죠. 약점으로 지적되던 팀 플레이도 뛰어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승부욕은 강한 편입디다.” 이성열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은 요즘 5급 행정고시에 합격해 교육받는 새내기 공무원들을 이렇게 평했다. 1976년 행정고시 17회로 공직에 들어온 대(大)선배인 이 원장의 눈에 비친 후배들의 모습은 발랄하고 당차다.30년 전의 자신과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은 차이를 느낀다고 했다. 가을 분위기가 물씬한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의 원장실과 구내식당, 교육원 강의실, 산책로를 돌며 3시간 동안 이뤄진 인터뷰에서 이 원장은 자신의 교육관을 자세히 털어놨다. ●“새내기들 당차고 거침없어” 중앙공무원교육원은 국가직 공무원으로 처음 공직에 발을 내딛는 ‘초보’부터 수십년 동안 공직생활로 잔뼈가 굵은 ‘왕고참’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무원을 교육하는 곳이다. 신임 공무원들에겐 공직에서의 기본 소양을 일러준다. 기존 공무원들은 ‘승진리더 과정’,‘핵심인재 과정’,‘고위공무원단 후보자 과정’,‘고위정책 과정’ 등 맞춤형 교육을 한다. 국가직 공무원이라면 거의 대부분 이곳을 거쳐갔다고 보아도 좋다. 우리나라 공무원 교육기관의 ‘맏형’인 셈이다. 이런 탓에 이 원장은 공직사회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는 요즘 여성의 공직 진출 추세가 놀랍다고 했다. 자신이 공직에 들어올 때 행정고시 동기에 여성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여성이 40%를 육박한다. 시대변화를 실감한다. 외형적인 면에서 가장 큰 변화이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새내기 공무원들이 예전보다 훨씬 다양성이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공직사회는 획일성이 무척 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것은 강한 승부욕이라고 했다. 흔히 ‘요즘 젊은이들이 승부욕이 약하다.’고 하는데 공직에 들어오는 젊은이들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자율성과 책임감도 뛰어나다. 팀 단위로 과제를 주면 과거보다 훨씬 잘 뭉치고 조화롭게 사고하여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단다. 교육원은 최근 행정고시 합격자들을 팀 단위로 나누어 전 세계 50개 남짓한 나라들을 찾아가는 연수를 실시했다. 방문기관을 자유롭게 정해 접촉을 하고 보고서를 내도록 했는데, 어학연수를 다녀온 사람이 많고 인터넷으로 정보습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정말 잘들 해내더라고 이 원장은 감탄했다. 새내기들의 어학실력은 뛰어난 사람이 많지만, 조금 떨어지는 층도 적지 않다. 시험위주의 공부만 했으면 모자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몇개월 동안 집중적인 어학교육을 받으면 전체적으로 어학능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교육원의 교과과정은 이론은 되도록 줄이고, 올바른 공직관과 세계관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좌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어학이 중요해지는데, 시험용 영어를 ‘살아있는 어학’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기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5급 고시 출신자는 8개월 동안 교육을 받는다. 정책부서에 곧바로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주로 리더십과 정책실습, 현장 실무 등에 집중한다.7급과 9급 새내기 공무원들은 실무능력과 보고서 작성요령 등에 비중을 둔다. ●공직은 일반 직장과 다르다? “고시를 준비하고 합격한 사람들은 독특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인의 취업관과는 다르다고 봅니다.” 이 원장의 공직관이다. 물론 공무원도 하나의 직업이지만, 반드시 국가관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신입 공무원들의 입교식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도록 제도화했다. 교육도 국가관과 공직관을 세우는데 집중한다.“당신들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야 하는 인재”라는 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한다. “시장에서 실패는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만 공직은 그렇지 않죠.” 이 원장이 국가관과 공직관을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다. 정책 실패는 곧바로 국민과 국가에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보면 훗날 커다란 난관에 봉착해도 힘을 갖고 극복할 수 있는 정신력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직접 강의실에 들어가 그동안의 근무경험, 공직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 지녀야 할 정신자세 등을 후배들에게 들려준단다. ●“고위공무원단의 성패는 재교육에 달려” 교육원에는 올해 ‘고위공무원단 후보자 과정’이 생겼다. 이 원장은 “고위공무원단이란 고위직으로서의 역량이 되는 사람만 편입시켜 평가를 하고 성과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중앙인사위원회 사무처장 시절 이 제도 도입에 깊이 관여했다. 따라서 성공적인 안착에도 관심이 많다. 고위공무원단 후보자 과정은 역량강화에 역점을 둔다. 정책능력 개발방법도 중요하다. 개인별로 진단하고, 처방과 함께 맞춤형 교육을 한다. “세계적인 기업인 GE는 직원들의 재교육에 연간 1조원이 넘는 돈을 씁니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교육훈련비는 그 10분의 1밖에 안되죠.” 경영학 교수들은 GE의 발전동력을 ‘사람에 대한 투자로 본다.’고 했다. 재교육에 대한 투자가 GE를 오늘날의 기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재 육성이 세계적인 추세인데, 우리 정부도 효율을 높이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하고, 언론과 국회에서 사람에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중앙공무원교육원 직원들의 재직기간을 보면 교육을 바라보는 전반적인 수준이 아직 떨어진다고 답답해한다. 직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은 1년밖에 안된다. 잠시 거쳐가는 것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많다. 제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비전을 갖고 인품이 있는 분들이 각 기관의 교육원을 맡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일정기간 안정적으로 근무하면서 교육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친한파 양성의 요람”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는 외국인 교육생도 눈에 띈다. 한국의 발전상을 배우기 위해 찾은 외국 공무원들이다. 해마다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중국, 시리아,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서부터 태평양의 섬나라까지 다양한 국가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11개 교육과정을 운영한다.1984년 이후 올해까지 103개 국에서 2759명이 이 과정을 거쳐 갔다. 우리나라의 정부혁신, 경제발전, 행정정보화 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산업현장을 방문하는 등 또 다른 ‘외교의 현장’이다. “외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은 이들은 친한파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곳을 거친 외국 관료들은 모두 우리나라에 큰 힘이 됩니다.” 이 원장이 외국 공무원들에게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종종 외국 공무원 교육생들과 교육원 뒤 관악산을 오른다. 그는 등산이 익숙지않은 외국 공무원들의 배낭을 대신 들어주며 동고동락한다. 이런 노력으로 처음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는 ‘낯 설고 물 설었던 나라’ 한국이 돌아갈 무렵에는 ‘친근한 나라’로 변신하게 된다. 당연히 이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뒤에는 적극적인 ‘친한파’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바둑·탁구·당구등 공무원 대표급 ●이성열교육원장 이성열(55)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두고 주변에서는 “평상심과 균형감각을 유지하는 사람”이라고들 한다. 중앙과 지방행정업무를 두루 거쳤다. 총무처와 행정자치부, 중앙인사위원회에서 공직생활을 하면서 특히 인사·조직·의전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했다. 앞장서 소리를 내며 일하기보다는 뒤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총무처 공보관과 행정자치부 공보관을 거치면서 언론 쪽에도 발이 넓은 편이다. 경남 마산 출신이면서도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소청심사위원장 시절에는 청구를 기각당한 이유를 따지는 공무원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어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처리를 하다보니 그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가는 편이다. 서울고와 서울대를 나왔다. 행정고시 17회. 운동을 즐긴다. 스스로 “‘둥근 것’은 모두 자신있다.”고 큰소리친다. 탁구는 옛 총무처 대표선수였고, 당구로는 공무원당구대회에서 준우승했다. 바둑도 아마 4단 정도의 고수이다.
  • 泰군부 입법·행정 장악

    지난달 쿠데타를 통해 탁신 친나왓 총리를 축출한 태국 군부가 1일 발효된 임시 헌법에 따라 입법·행정권을 완전 장악했다. 새 총리에도 육군 총사령관, 합참의장을 역임한 수라윳 출라논(63) 추밀원 고문이 임명됐다. 새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 효력을 지니게 될 임시헌법이 군부에 과도정부 총리의 임면권을 부여하고 있는 점과 군출신 총리가 임명된 데 대해 국제사회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1일 태국 언론들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군부가 마련한 임시 헌법을 승인, 즉각 발효에 들어간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군부는 이날 국영TV를 통해 발표된 성명에서 “(쿠데타 지도부는)임시 헌법 아래서 ‘국가안보평의회’로 존속될 것이며 총리를 해임할 권한과 치안 업무를 감독할 권한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태국의 모든 TV와 라디오를 통해 전문이 공표된 임시 헌법은 쿠데타 지도자인 손티 분야랏글린 장군에게 총리 임명권과 “국가 안보 평의회의 조언에 따라” 총리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250석의 의회 의석은 전적으로 국가 안보 평의회가 지명한 사람들로 채워지도록 했다. 추방된 탁신 총리를 대신할 새 총리 취임식이 이날 오후 태국 정부청사에서 손티 장군 등 군부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흰색 정복 차림으로 부인과 함께 참석한 수라윳 신임총리는 푸미폰 국왕의 대형 초상화에 큰 절을 올리는 의식으로 총리에 공식 취임했다. 새 총리는 각료 35명에 대한 임명, 총선이 열리는 내년 10월 총선까지 국정을 ‘형식상으로’ 관장하게 된다. 수라윳 총리는 이날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앞으로 일주일 안에 새로운 각료를 임명할 것이며, 그 뒤 투자자들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정부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목조각 5000여점 모아 ‘목인박물관’ 설립 김의광 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목조각 5000여점 모아 ‘목인박물관’ 설립 김의광 관장

    죽은 이가 마지막으로 가마를 타고 간다. 에구메라, 여러 목인(木人)들이 외로울까봐 함께 벗을 하잔다.‘따라와∼’ 창을 들고 호랑이를 탄 남자, 해태 위에 걸터앉은 선비, 물구나무 선 광대, 학을 타고 천도복숭아와 술병을 든 신선, 머리에 뿔이 두개가 나 있는 도깨비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들갑이다. 기왕지사, 가는 길에 노래나 몇술 뿌려보자. 자, 이승과 이별하는 최후의 마당이 아닌가.‘이제 가면 언제 오나/허어야 허어야/간다 간다 나는 간다/북망 고개로 나는 간다/서른 서이 상두꾼아/발맞추어 나아가세’ 처량하면서도 차원 높은 해탈의 노래다. 목인(木人), 풀어보면 나뭇조각 인간을 뜻한다. 비록 말이 없지만 웃음과 울음이 있다. 풍자의 여유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이 주술 및 벽사, 그리고 각종 의례에 사용했다. 죽은 이를 저승길로 무사히 안내하고 극락세계로 모시는 역할도 했다. 무덤의 부장용으로 쓰였던 목용(木俑), 마을의 수호신, 일상 생활에서 각종 민예품으로 사용됐던 흔적들이 뜸뜸이 전해내려온다. 아울러 이들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은 당시의 생활 풍습과 토속신앙, 복식문화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치로 평가된다. ●목인은 민화와 함께 민중공예문화 대표 특히 상여장식에 표현된 다양한 목인들은 민화와 함께 우리 민중의 공예문화를 대표한다. 하지만 상여소리를 하는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 맥이 끊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잠깐, 여기에서 주목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목인박물관’을 설립한 김의광(57) 관장이다. 강산이 세번 바뀌는 지난 30년 세월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3000여점의 목인과 목조각을 옹골지게 ‘목인석심(木人石心)´으로 수집했다. 조선시대 후기의 상여문화를 알 수 있는 목인을 비롯, 신당(神堂), 절에 있던 목조각 등 귀중한 작품들을 많이 모았고 올 3월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박물관을 열었다. 그랬더니 오늘날 민속학자, 역사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쓰레기통 언저리에 버려졌거나, 그랬음직한 목인들이 일약 스타가 된 셈이다. 그동안 말없이 방치됐던 목인들이 김 관장의 노력에 의해 당시의 생활풍습과 의식문화 등을 알려주는 데 중요한 역할로 떠올랐다. 이쯤되면 김 관장을 가리켜 별난 사람이라기보다는 단절되가는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훌륭한 인물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지난 19일 목인박물관에서 김 관장을 만났다.2층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역시나 애지중지 목인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최근에 열린 ‘목인, 세속에서 얻은 성스러움’의 특별전에 대한 마무리 손질작업이기도 했다. 김 관장은 먼저 안에 전시된 여러 목인들을 설명해준다. 전시실에는 300여점의 목인과 상여 앞에 매달렸던 꽃나무 조각 200여점이 벽면에 가득 전시돼 있었다. 지난 세월만큼이나 군데군데 칠이 벗겨져 있었으나 당시의 생활상을 연상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연꽃, 학, 닭, 기러기, 사당패, 가슴을 드러낸 기생, 봉황탄 어린이 등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조상들의 숨결이 새록새록 느껴진다. 그는 “삶을 마감하고 가는 길은 우울하고 어두웠을텐데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준 조상들의 마음이 정말 아름답지 않으냐.”고 하면서 죽음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새삼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쭉 둘러보노라니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한 줄타기 하는 목인,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붉은 치우천왕, 첩과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는 본처 목인, 아들을 손꼽아 바라는 부부 목인…. ●인도·태국 등 동남아 목조각도 2000여점 모아 그는 “이 박물관 집은 단기 4288년, 흔히 쌍팔년 4월에 지어졌다. 여기 목인들이 있기엔 잘 어울리는 공간.”이라면서 이들을 불러모으느라 애를 많이 썼다며 웃는다. 특히 이 박물관 1층 지하에는 요즘 보기 힘든 방공호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1970년대초였어요. 외국인 친구네 집에 갔는데 우리나라 전통 민속품이 진열돼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그때부터 취미로 목조각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당시 ㈜태평양에 입사, 근무했던 시절이어서 퇴근 후나 주말 등을 이용해 골동품 가게를 뒤졌다. 주로 인사동이나 청계천 일대였다. 갈 때마다 맘에 드는 목인을 보고 가격이 비싸 만지작거렸던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기독교인이 상여장식을 모은다고 하자 ‘귀신이 붙었다.’라는 얘기도 자주 들었다. 그럴수록 목인은 그에게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다가왔다. 이름없는 장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혼, 보면 볼수록 감동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하나 둘 수집한 것이 3000여점. 최근 2∼3년 사이에는 행동반경을 넓혀 인도, 태국 등의 동남아 목조각 2000여점을 모았다. 당연히 현지에서 발품을 팔았다. “목인 중에서도 상여 목조각에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 그대로 담겨 있어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킵니다. 상여 목인은 주로 조선 후기에 왕성하게 만들어졌지요. 그땐 관을 지키는 사람이 장군이었다가 일제 시대에 와서는 순사로 변합니다.” 김 관장은 “사실 상여문화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풍습이다.”면서 죽은 자가 현세에 누리는 마지막 호사였고 평민에게는 평소 고관대작이나 탈 수 있는 가마를 죽을 때 타보는 영광(?)도 있었다고 했다. ●올겨울 ‘목인도록´ 제작… 특별전 계획 김 관장은 또 “누군가 그런 것(목인을)들을 모으지 않았다면 쓰레기통 비슷한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목인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함께 살아온 우리 시대의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런 명분으로 박물관을 열었더니 민속학자 등 주변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에 대한 보답으로 올 겨울에는 ‘목인도록’도 제작하고 특별전을 열 예정이다. 내년 3월 개관 1주년 때에는 그동안 모아온 동남아의 목인들도 전시해볼 계획이다. “우리 박물관은 목인들과의 대화의 장소입니다. 음악과 역사가 공존합니다. 옛날의 목인을 보며 차도 마시는 문화공간이지요.”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 못했지만 60을 바라보는 지금 나이에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 너무 뿌듯하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김 관장은 서울 출신. 연세대 정외과를 나와 75년 설록차를 생산하는 태평양에 입사했다. 이후 태평양 계열사인 장원산업 회장으로 있던 2004년 목인들의 반란(?)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의 박물관을 설립했다. 그가 박물관과 인연이 된 것은 부친의 영향도 없지 않았다. 자유당 시절 상공·교통·내무장관을 지낸 부친(김일환)이 이화여대 이사로 있었던 1999년에 김활란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십장생도 병풍’을 기증했다. 조선시대 궁중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병풍은 1972년 프란체스카 여사로부터 선물받아 30년 가까이 소중하게 보관해왔던 것이다. 김 관장은 이때 ‘적재적소’라는 말을 생각해냈다. 즉 물건이나 사람이나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그래서 수집했던 목인들을 모아 박물관 설립을 생각하게 됐다. “공예품이 청자라면 목인은 백자입니다. 또 청자가 귀족의 애장품이라면 목인은 민초의 삶, 애환과 고통 그 자체이지요. 사람에게도 적재적소가 있듯이 목인들도 제자리가 있는 것이지요.”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9년 서울 출생 ▲68년 대광고 졸업 ▲72년 연세대 정외과 졸업 ▲74년 동대학 석사 ▲75년 ㈜태평양 입사 ▲83년 태평양 장업㈜ 전무 ▲92년 태평양 돌핀스야구단 대표이사. 대통령 표창(전통차 계승발전) ▲2002년 장원산업㈜ 회장 ▲06년 3월 목인박물관 관장, 옛돌조각 사랑모임 회장, 사단법인 한국민속박물관회 이사, 서울시박물관협회 이사
  • [‘하늘길’ 탄 中華대장정] (하) 두 얼굴의 라싸

    [‘하늘길’ 탄 中華대장정] (하) 두 얼굴의 라싸

    |라싸(拉薩) 이지운특파원|라싸로 오는 길과 라싸 현지는 많이 달랐다. 철로가 보여준 원시의 풍광과 이에 어우러진 원색의 채색 위로 라싸에는 여러가지가 뒤섞여 있었다. 많은 면에서 예상과도 달랐다. ●더 오른 물가 철도 개통 이후 예컨대 물가는 낮아졌어야 옳다. 라싸의 일부 물가는 전 중국에서 가장 높다. 베이징에서 1위안(120원)짜리 광천수가 3위안에 팔리는 식이다. 물류비용이 크게 떨어졌다는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광천수는 적어도 베이징 가격에 팔려야 정상이다. 그러나 광천수 가격은 그대로다. 채소 등은 오히려 값이 뛰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 폭증 때문이다.“일부 물가는 더욱 상승할 것이며, 내년부터 화물열차가 본격 운행된다 해도 한동안은 수요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지 상인들의 전망이다. ●동·서로 나뉜 라싸 한족(漢族)의 숫자도 예상보다 많았다. 공식적인 자료는 ‘시짱자치구 인구의 92% 이상이 장족(藏族)’이라고만 설명한다. 그러나 라싸 시내(城管區) 주민 27만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은 한족으로 집계된다. 돈벌이가 괜찮은 택시 기사의 80% 이상도 한족이다. 한족의 급증세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한족의 유입은 도시 모양새도 바꿔놓았다. 부달라(布達拉)궁을 중심으로 동쪽은 장족의 거리, 서쪽은 한족의 거리로 확연히 나뉜다. 서쪽에는 대형 마트가 연이어 들어서는 등 소비형 거리로 빠르게 변모해가고 있다. 동쪽이라고 변화가 없는 게 아니다.“불과 몇개월새 퇴폐 안마시술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주민들의 생활상도 ‘당연히’ 달라졌다. 일부 장족 농목민들의 연간 현금 수입 중 절반 이상이 ‘다겅(打工·아르바이트)’이 차지하는 식이다. 한 농목민은 “시내 건설현장에서 잡일을 하거나 집을 지은 뒤 단청 채색을 해주는 일 등을 한다.”고 소개했다. 오후 4시쯤 찾은 샤오자오쓰(小昭寺) 주변의 전통 찻집에서는 맥주를 주문해놓은 젊은이들이 인기스타 청룽(成龍)의 영화가 방영되는 TV를 보고 있었다. 티베트의 100여 ‘생불(生佛)’ 가운데 하나이자, 중국 불교협회 티베트분회 부회장인 나다아왕단쩡(那達阿旺旦增)은 “승려가 되려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돈에 물든 티베트”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변화는 티베트가 돈의 본색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찰 앞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승려도 돈을 달라 하고, 해발 4000m 고지에서 만나 사진을 찍은 목동도 돈을 내라 한다. 오히려 한족들이 나서 “돈에 물들었다.”고 힐난할 정도다. 양줘웅춰(羊卓雍錯) 호수 주변의 잡상인들은 “한 외국인이 잃어버린 50만원짜리 비행기 티켓을 돌려주면서 그 가격을 다 받아낸 적이 있다.”고 자랑까지 한다. ●중국의 폭력에 대한 공포 눈에 드러나지 않는 변화도 있다. 심리적인 위축이다.‘정치’ 등 민감한 질문에는 거의 모두가 기겁을 한다.‘정치에 관심없다.’는 내용으로 한국의 한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던 한 택시기사는 기자에게 “별 일 없겠지?”라고 되물으며 좌불안석이다. 티베트를 관찰해왔다는 한 외국인은 이같은 ‘공포’의 근원을 과거 티베트 독립운동 시기에 가해진 중국 정부의 폭력 진압에서 찾았다.“중국군의 폭력을 겪었던 세대들은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와 상처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 군대와 군인은 라싸 시내 곳곳에 포진해 있다. 특히 라싸시 간선도로의 하나인 진주루(金珠路)를 동에서 서로 달리다보면 ‘시짱 군구(軍區)’를 비롯, 적지않은 수의 군 부대와 군 훈련 및 관련 기관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현지인은 “도시에도 산에도 사찰에도 곳곳에 사복 군인이 숨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곳에 독립 움직임은 없다.”고 단언했다. 하긴 라싸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고, 높고, 현대식인 건물은 공안국 건물이다. 시짱자치구의 한 한족 고위 공무원은 “외세가 달라이라마 등을 부추겨 독립을 사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시짱자치구의 소개로 찾은 한 농목민의 가정에는 집안에 모셔놓은 신주 단지 바로 옆으로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진타오(胡錦濤) 현 주석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부부는 아침 저녁으로 절을 하며 신주를 모신다고 했다. ●자본주의로 변해가는 라싸 지난 17일 낮 라싸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미국 맥주 버드와이저의 광고판이 여러개 눈에 띄었다. 라싸가 보여준 예상치 못한 여러 장면 가운데 하나였다. 앞으로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갈 라싸의 모습은 고원의 날씨 만큼이나 예측하기 어려워 보였다. jj@seoul.co.kr
  • [이주일의 어린이책] 故임길택 작가가 엮은 초등생 시집 2권 출간

    “…천천히 걸어서 가는 길은 힘들지만 보고 듣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로 후딱 쉽게 가버리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합니다.”(동화작가 권정생의 추천글 중에서) 1997년 세상을 떠난 동화작가 임길택 선생님이 엮은 어린이 시집 2권이 보리에서 나왔습니다.‘아버지 월급 콩알만하네’(김환영 그림)와 ‘꼴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정지윤 그림)라는 재미난 제목이 붙었지요. 그런데 의미가 보통 깊은 동시집들이 아니랍니다. 평생 교단에 섰던 작가가 그 밝은 눈으로 간추린 코흘리개 초등생들의 천진한 시들입니다. 꼬맹이 작가들의 맑은 시선이 닿은 곳은 저기 멀리 소란한 세상과 담을 친 가난하고 조용한 강원도 산골이구요. 매끈한 글솜씨를 자랑할 리 없는데, 풋내나는 거친 글들이 정말이지 대단한 향기를 뿜어댑니다. 삐뚤빼뚤 맞춤법은 틀렸어도 세상읽는 눈만큼은 한치 틀리는 법 없는 침묻은 연필심 끝에 무심한 동심이 매달립니다.1980년 ‘사북사태’를 맞은 탄광촌 아이들에게 아마도, 선생님이 ‘아버지’를 글감으로 시를 써보라 하셨겠지요. 검댕투성이에 툭하면 술주정을 하는 아빠의 모습을, 신통하게도 따뜻이 끌어안아주는 속여문 아이들입니다. “토요일이라/언니가 교회를 가서/내가 밥을 담았다./나는/아버지가/조금 잡수시는 걸 알면서도/많이 담았다./하지만/아버지는 많이 남기셨다.”(‘아버지의 밥’) “내가 아버지께/우주여행을/하고 싶다고 하니까/아버지께서/아버지도/꼭/데리고 가거라 하셨다./그러자 나는/술 안 잡수시고/담배 안 피우시면요/라고 대답했다.”(‘우주여행’) 책장을 넘기다 보면 권정생 작가의 추천글이 똑 맞는 소리다 싶어집니다. 넘치게 많아 탈인 요즘아이들에게 이 동시집들은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누리지 못해도 만족할 줄 아는 마음. 넉넉한 마음이 행복하게 전염될 글들은 ‘골찌도 상이 많아야 한다’에도 수북하거든요. 산골마을(정선 봉정 분교)에서 날아온 손때절은 시들에 가슴 풀리고마는 건 시간문젭니다.“바람 부는 날에는/대추가 지붕 위에/탁탁탁 하면서 떨어진다.//어머니는 방 안에서/대추 돈을 먼저 받아놨는데/대추는 자꾸만 떨어진다고/걱정을 하신다.”(‘바람 부는 날’)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인들의 든든한 벗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인들의 든든한 벗

    취재, 글 신주영 기자 사진 한영희 무심한 시선이 더 고마울 때가 있다. 울고 있는데, 왜 우느냐고 묻기보다는 슬며시 손수건 한 장 갖다 놓고 사라지는 벗처럼. 외국인 노동자와 노숙인들을 위한 복지재단 ‘작은 손길’을 운영하고 있는 김광하(54세) 대표는 굳이 번드르르한 말을 하지 않고도 상대를 배려하는 법을 그는 아는 듯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오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한 ‘사명당의 집’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풍경은 빨래를 너는 남자들이었다. 방금 목욕을 마쳤는지 사람들의 표정이 개운해 보였다. 이곳은 ‘작은 손길’이 운영하는 노숙인 상담보호센터, 하루 평균 사오십여 명의 노숙인들이 쉬어가는 공간이다. 잠자리가 일정치 않은 이들에겐 행인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낮 동안이라도 편히 눈 붙일 수 있는 집이고 놀이터고 쉼터다. “여기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해요. 이름이 뭔지, 어디서 살았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나이가 몇인지….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나 할까요. 다들 사연 많은 인생들이라는 것만 암묵적으로 느낄 뿐이지요. 고단한 심신, 여기서만은 그냥 마음 푹 놓고 쉬어가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숙인들끼리 서로들 자원봉사를 하시니까 저희가 특별히 하는 건 없어요.” 사명당의 집 한 켠 쪽방에서 만난 ‘작은 손길’ 대표 김광하 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래 그의 본업은 자원중개상이다. 수입이 생기면서부터 봉사 단체에 후원금을 내오던 그는 사재를 털어 아예 ‘작은 손길’이라는 사단법인을 꾸렸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다 내 맘 같지는 않은 법. 어렵사리 괜찮은 건물을 구해도 노숙인들이 들어오면 집값이 떨어지고 범죄 우려도 있다면서 집주인들이 세주기를 꺼렸다. 여섯 달 동안 발품 팔아서 구한 지금 쉼터도 몇 달 동안 주민들이 항의를 하는 바람에 여러 번 방을 뺄 뻔했다. 김광하 대표는 사람들의 이런 시선이 이해가 되면서도 아쉽다고 했다. “저도 처음엔 편견이 없었던 건 아니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사회의 손길을 못 받아서 본의 아니게 이렇게 된 분들이 많아요. 나는 그래도 부모 잘 만나서 공부도 하고 직장도 얻고 악다구니처럼 살았어요. 경쟁에 익숙했던 체질이었고요. 이분들은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성품이 저보다 낫습니다. 욕심이 없어요. 여분의 옷을 놓고 가져가라 해도 자신이 입을 옷 딱 한 벌만 챙겨갈 정도로 순수하죠. 그래서 어쩌면 경쟁에서 도태된 것일지 모르지만, 참으로 정직하고 순박합니다.” 김광하 대표가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택한 데에는 조용히 남을 돕고도 늘 말이 없던 장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소설가 박완서 씨의 둘째 사위다. ‘작은 손길’이라는 이름도 장모가 지어준 것이다. “누구나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분이 가까이에 있으면 아무래도 많이 배우게 되더군요. 제 장모님이 보이지 않게 봉사를 많이 하시거든요. 그분 사시는 모습 보면서 인간이 혼자서만 잘 사는 게 도리가 아니다 싶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한 걸 아시면 절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웃음)” 2003년 출범한 ‘작은 손길’의 회원 수는 현재 2백여 명. ‘작은 손길’은 정부나 종교 단체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단체들과는 달리 회원들이 매달 오천 원에서 만 원씩 보내주는 성금과 물품으로만 운영된다. 공공기관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 사람을 머릿수로만 보게 될 것을 우려해서다. ‘작은 손길’이 역점을 두고 있는 또 다른 일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보호와 문화교류다. 이전부터 외국인 상담소를 운영해오던 김광하 대표는 부천에 ‘아시아인권문화연대’라는 이름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문화 공간을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부천 강남 시장에 도서관을 마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쉽게 정착을 할 수 있도록 미얀마나 태국 등 현지 책을 구비해놓고 대여해주고 있다. “저는 해외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편하게 사업을 해왔는데, 우리나라 들어오는 외국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반인들이 특별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기는 어렵잖습니까. 저같이 외국 나가서 덕을 많이 본 사람이 이런 일에 나서야지요.” 그가 건네는 손은 작을지 몰라도 그 가슴의 깊이는 보통 사람의 그것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간<샘터>2006.09
  • 정의는 이로운가

    정의는 이로운가

    김성우 언론인《돌아가는 배》저자 인생은 의문이다. 세상에 정의는 있는 것인가. 정의가 있다면, 정의는 항상 불의에 이기는 것인가. 정의가 반드시 불의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그래도 의롭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의로운 것이 과연 이로운 것인가. * 태사공(太史公)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크게 질문한다. ‘천도(天道)는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1) 천도가 대정의(大正義)다. 그는 절의를 지키려 수양산에 숨은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두고,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항상 선인의 편’(2)이라더니 백이·숙제는 선인이 아닌가. 그런데도 굶어죽고 말았으니.”하고 통탄한다. 그러면서 “조행이 정도를 벗어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만 범하면서도 종신토록 안락하고 부귀를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으며 공명정대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는데도 재화를 당하는 사람이 많으니, 천도는 과연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하고 묻는 것이다. * 플라톤도 천도를 의심한다.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올바르지 못한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름으로써 경쟁에서 상대를 능가하게 되고, 일단 능가하게 되면 부유하게도 되어 친구들을 잘되게 해주고 신들에 대한 봉납을 넉넉하게 바치게 되어, 결국은 이 사람이 올바른 사람보다 신의 사랑을 더 받게 된다.”(3) * 러시아 시인 푸쉬킨은 아예 천도를 부정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지상에 정의는 없다.’고. 그러나 천상에도 정의는 없다.”(4) * ’세계사의 주 부분으로 판단하건대 지금까지 정의는 항상 위험에 처해 왔다.’(5)고 말하듯이, 모든 역사는 정의의 패전보(敗戰譜)다. ’정의는 장님일 뿐 아니라 절름발이’(6)이기 때문이다. * 플라톤이 ‘우리 시대에 가장 정의로운 사람’(7)이라 불렀던 소크라테스. 그 소크라테스도 “바른 사람은 행복하고 부정한 사람은 불행하다.”고 평생 주장하고, 불의를 행할 것인가, 불의에 당할 것인가를 택일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다더니 결국은 불의의 독배를 마셨다. * 정의는 추방된다. 중국 초(楚)나라의 우국지사 굴원(屈原)은 참소로 쫓겨나자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추방당했다.”(8)고 노래 불렀다. ’그레고리 개혁’으로 유명한 교황 그레고리 7세는 로마에서 축출되어 객사하면서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했다. 그래서 망명길에서 죽는다.”는 임종의 말을 남겼다. * 정의란 무엇인가. ’의는 사람의 길’(9)이요, ‘의는 사람의 대본’(10)이다. * ’정의 속에 모든 덕이 다 들어 있다.’(11) 정의는 덕의 일부가 아니라 덕 전체요 완전한 덕이다. * ’사상체계의 제1 덕목을 진리라고 한다면 정의는 사회제도의 제1 덕목이다.’(12) ’정의는 사회의 질서다.’(13) * ’정의의 제1차적 기능은 자기가 정의롭지 못한 것에 의해 해를 입지 않는 한 남을 해치지 않는 데 있다.’(14) 그리고 ‘정의란 사람들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서로 해치지 않고 해침을 당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계약이다.’(15) * ’정의란 자기 것을 소유하고 자기 일을 하는 것’(16)이다. 그리고 ‘정의란 누구에게서도 그의 소유의 것을 빼앗지 않는 것이다.’(17) * ’의는 마땅함이다.’(18) ’정의의 목적은 각자에게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19) * 이(利) 아닌 것이 의(義)다. 이익을 찾지 않는 것이 정의다. ’무엇을 위하는 것이 있어서 하는 것은 이요. 위하는 것 없이 하는 것이 의다.’(20) ’이를 보면 의를 생각하라.’(21)고 했고, ‘이를 보고도 양보하는 것이 의’(22)라고 했다. * ’정의는 타인의 선(善)이다. 자기 아닌 남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다.’(23) 말하자면 정의는 ‘남에게 좋은 것이요. 자기에게 해 가 되는 것이다.’(24) 성경도 말한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25) * 그러니 이는 불의(不義)하고 의는 불리(不利)하다. 이익은 정의에 어긋나고 정의는 자신에게 이롭지 못하다. 이롭지 못한 데도 정의로와야 하는가. * ’정의의 칼은 칼집이 없다.’(26) 정의는 힘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의는 강자의 이익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27) 라고 공언한 것은 플라톤이었다. 정의는 힘 있는 자의 힘이다. ’힘 없는 정의는 무력하고 정의 없는 힘은 압제적이다.’(28) * ’정의는 가장 약한 자의 권리다.’(29) 아리스토텔레스도 “약한 자는 항상 평등과 정의를 부르짖지만 강한 자는 여기에 아무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30)고 말했다. 정의가 이렇게 약자에게 무력한 데도 정의의 힘을 믿고만 있어야 하는가. * 정의가 이롭지 못한 것이라 하여 세상에 의로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 명종(明宗) 때의 사람 노극청(盧克淸)이 가난하여 집을 팔려고 내놓았다. 그가 잠시 외지에 나간 사이에 아내가 현덕수(玄德守)란 사람에게 은 12근을 받고 집을 팔았다. 극청이 돌아와 덕수에게 “내가 집을 살 때 은 9근 주었고 몇 해 사는 동안 더 꾸민 것도 없으니 더 받은 3근을 돌려 주겠다” 했더니, 덕수가 그대는 의를 지키는데 나만 의를 지키지 못하겠느냐”면서 받지 않았다. 극청이 다시 “내 평생에 의가 아닌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어찌 집을 헐하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겠느냐.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겠다면 그 집 값을 돌려 줄 테니 집을 물러달라”고 했다. 덕수가 마지못해 은 3근을 받으면서 “내가 어찌 극청보다 못할 사람인가.”하고는 그 돈을 절에 기부했다.(31) * 아무리 정의가 무력한들 정의가 없으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예부터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생존하고 하늘의 뜻에 거슬리는 자는 멸망한다.’(32)고 했다. 정의가 무너지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이다. * 선상수훈(山上垂訓)에도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33) * ’정의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사악을 타파하는 데 실패하는 일은 드물다.’(34)는 말을 우리는 믿지 않으면 안 된다. * 부귀가 불의의 과실이라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부귀한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고 세상에서 행복이라 일컫는 것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정도의 정의가 요구된다.”(35) * 송(宋)대의 학자 정이(程)는 “성인은 의로써 이를 삼는다.”(36)고 했고, 장재(張載)는 “모름지기 의리의 즐거움이 의욕보다 더하다는 것을 진실로 알아야 한다.”(37)고 했다. 그리고 묵자(墨子)는 결론 내린다. ”의로움이란 이로운 것이다.”(38) 정의는 불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에게 유리한 것이다. *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정의가 이루어지게 하라.”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1세의 이 모토가 모든 사람의 모토라야 한다. (1) ‘天道是耶非耶’-《사기》 백이전(伯夷傳) (2) 《노자(老子)》 79장 (3) 플라톤 《국가》Ⅱ, 362b (4) 푸쉬킨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5) 월터 휘트먼 《민주주의의 전망》 (6) 토머스 오트웨이 《보존된 베니스》 (7) 플라톤 《파이돈》 118a (8) 《사기》 굴원전(屈原傳) (9) ‘義人路也’ -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 (10) ‘義者人之大本也’-《회남자(淮南子)》 인간훈(人間訓) (11)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V·1 (12) 존 롤즈 《정의론》 제 1장 (13)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4) 키케로 《의무론》 Ⅰ·7 (1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철학자 열전》X, 에피쿠로스 (16) 플라톤 《국가》Ⅳ, 433e (17) 토머스 홉스 《리바이어탄》 Ⅱ (18) ‘義者宜也’- 《중용(中庸)》 20장 (19) 키케로 《법률에 대하여》Ⅰ (20) 《십팔사략(十八史略) 남송(南宋) 효종(孝宗) [송학자 장식(張拭)의 말] (21) 《논어(論語)》 헌문(憲問) (22) 《예기(禮記》 악기(樂記) (23)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V·1 (24) 플라톤 《국가》I, 343c (25) 《신약성서》고린도전서 10:24 (26) 조세프 드 메스트르 《페테르부르그 야화》 (27) 플라톤 《국가》I, 338c (28) 파스칼 《팡세》 §298 (29) 조세프 주베르 《단상집》 법에 대하여 §17 (30)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Ⅵ·3 (31) 《고려서절요(高麗史節要)》 권13, 명종(明宗) (32) ‘順天者存 逆天者亡’- 《맹자》 이루(離婁) 상 (33) 《신약성서》 마태복음 5:6 (34) 호라티우스 《카르미나》Ⅲ (35)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Ⅶ·15 (36) 《근사록(近思錄)》 출처류(出處類) (37) Ib. (38) ‘義利也’-《묵자》 경(經) 상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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