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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기자칼럼] 일본 문화재 ‘신비’ 마케팅/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 개관 1주년을 맞았지만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물관 측은 하루 평균 관람객 8923명이 2004년의 5235명보다는 훨씬 많다고 자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사이 ‘주5일제 실시’라는 커다란 변수를 감안한다면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다. 늘어난 휴일과 현장학습 강화로 가만히 앉아 끌어들인 관람객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 전통문화 보존·공개방식 부러워 이에 반해 지난주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목격한 일본인들의 철저한 전통문화 보존과 공개방식은 첫눈에도 매우 부럽고 효과가 있다고 느껴졌다. 이를테면 교토의 기온거리는 광대한 지역에 전통 목조가옥들이 완벽하게 보존돼 금세라도 어느 길모퉁이에서 게이샤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서깊은 한옥들이 하룻밤새 철거되어 공사판으로 돌변하는 서울 북촌과는 대조적이다. 방문하는 문화유적 어디든지 관람객들이 문화재를 떠받들고 경의를 표하는 것 또한 예사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피상적인 관찰일 수도 있지만, 많은 곳에서 공통적으로 문화재를 신비화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고, 여운을 더해주는 전략을 치밀하게 구사한 결과인 듯 느껴졌다. # 쇼토쿠 태자상 관람 인파 먼저 고구려 담징의 금당벽화와 백제 관음상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나라의 호류지 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이곳은 마침 유메도노(夢殿) 안에 봉안된 쇼토쿠 태자상을 공개하고 있었다. 이것은 불심이 깊은 쇼토쿠태자가 구세관음으로 환생한 것을 녹나무에 조각한 목조불상이다. 백제가 전해줬다는 설도 있는데 비불(秘佛)이라 하여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고 1년에 두 번, 봄 가을에 보름씩만 공개한다. 우연히 방문시기가 맞아떨어져 불상을 접할 수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이 기간을 기다려 인파를 이룬다고 했다. # 교토 다실에 신비로움 더해 다음으로 교토에 있는 다도(茶道)의 종가 우라센케 곤니치안.350년 된 목조건물과 아담한 정원, 소박한 다실 등이 종종 외부에 공개되지만 창시자 센리큐의 실물대형 목조상만은 신비에 묻어둔다. 여러 다실을 관람하다 건물 가장 뒤쪽 부분에 이르니 안내자가 미닫이문 안쪽을 가리키며 “센리큐의 목조상을 모신 이곳은 청소를 하는 사람 외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도는 일종의 정신수양 방법으로 발전했는데, 이곳에서는 고요함에 신비로움까지 더하니 여운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이어서 나라국립박물관의 제58회 정창원전. 정창원은 원래 도다이지 절에 달린 창고였지만 756년 일본 쇼무 ‘천황’이 죽자 ‘황후’가 남편의 유물 600점을 부처에게 바침으로써, 그때부터 나라의 보물창고의 역할을 하게 된 곳이다. 일본은 물론, 신라, 당, 실크로드를 거쳐 온 페르시아 유물까지 수만점이 완벽하게 보존돼 고대의 생활상을 전해준다. 나라국립박물관은 1년에 ‘딱 한 번’ 유물점검 기간을 이용해 4주간의 전시회를 연다. 공개되는 유물은 다시 보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전문·아마추어 연구자들까지 일제히 이곳으로 몰려들게 된다는 것이다. 기자는 1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입장할 수 있었으나 요미우리 신문이 발행한 정창원전 특별호 등 유인물이 많아 지루함을 덜 수 있었던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 우리 박물관에 관람객 이어졌으면 지난주는 ‘문화의날’이 낀 일본의 연휴였다. 문화재 전시에도 이젠 마케팅이 필요하다.‘신비마케팅’‘연휴마케팅’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우리도 어느 연휴,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이 인파에 묻히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OUR STORY] 성민이네 김장축제

    [OUR STORY] 성민이네 김장축제

    입동이 지나면서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매년 이맘때면 어머니들은 김장 준비로 아픈 허리를 두드리곤 했다. 하지만 가족이 적고 먹을거리가 다양해진 요즘은 김장의 의미가 옛날보다 덜하다. 대형 할인점에서 사다 먹는 편이 값도 싸고 번거로움을 덜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년에 한번쯤 가족끼리 하루 날잡아 김장을 해보면 어떨까. 많이도 아니다. 배추 3∼4포기면 족하다. 아이들에게 산교육이요, 우리 식탁을 안전하게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울러 가족이 담갔다는 김치를 식탁에 올려놓으면 분위기가 한껏 달라진다.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재미있는 ‘김치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성민이의 김치체험 일기 “김치요, 그걸 왜 집에서 담가요. 슈퍼마켓에서 1만원어치만 사다 먹어도 한 달을 먹을텐데.”라며 지난해까지 손사래를 치며 김치를 사다 먹던 원은정(35·주부)씨. 그런데 올해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김치를 담그겠다고 인터넷은 물론 책까지 사서 보며 준비를 단단히 했다. 또 “큰아들 성민이가 유치원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을 배우고 나서 ‘우리 집에는 김치를 안 담그느냐.’며 성화예요. 그래서 아이들도 좋아하고 해서 배추 2포기를 샀어요.”라며 원씨는 활짝 웃는다. 김치담그는 것이 복잡한 ‘일’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놀이´라고 생각한다면, 안전한 먹을거리도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 웃음이 넘쳐나요 배추를 버무리기 시작하자 첫째아들 성민이가 “엄마 내가 할게. 나 김치 잘 먹잖아.”라고 거든다. 그러자 “아냐 배추는 내가 더 잘 먹어.”하며 둘째 성주(6)도 나선다. 막내 다현(4)은 쳐다보며 눈만 멀뚱멀뚱한다. 하얀 비닐 장갑에 두건까지 쓰고 능숙한 솜씨로 쓱쓱 절인 배추에 속(김치소)을 비비며 “엄마 이거 내가 만든 김치야. 너 먹으면 안돼.”라고 성민이가 말하자 “그래 형도 마찬가지야.”라고 성주가 응수한다. 그래서 원씨네 가정은 하루종일 ‘하하하, 호호호’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 배추를 어떻게 절여요 김치 초보들이 가장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바로 ‘배추 절이기’다. 도대체 어떻게 어느정도 절여야 가장 맛있는지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9가지의 김치와 응용 요리까지 간편하고 쉽게 설명한 책인 김치백서의 저자 박상혜씨는 이렇게 말한다. 배추 크기와 물의 온도에 따라 배추를 절이는 시간이 달라진다. 보통 중간 크기의 배추 한통에 굵은 소금 1/2컵(종이컵 기준)정도 버무린다. 절이는 시간은 8시간 내외. 배추는 4등분 내지 8등분으로 나눈 다음 굵은 소금(천일염)을 골고루 뿌리고 물을 자작자작하게 붓는 것이 좋다. 아니면 수돗물을 받아 소금을 녹인 후 소금물을 부어도 좋다.2시간에 한번씩은 배추를 뒤집어 주어야 한다. 배추를 손으로 꺾었을 때 ‘툭’하고 부러지면 그건 아직 멀었다는 신호. 적당히 절여진 배추는 그냥 휘어진다. 시간이 되어 절여진 배추는 건져내어 깨끗한 물에 씻고 난 후 채반에 건져 놓아 물기를 빼주면 된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도움말:요리연구가 박상혜 ■ 남은 재료로 국밥·고등어조림 만들기 항상 김치를 담그고 나면 남는 재료들이 있기 마련이다. 이때를 위해 이렇게 한번 사용해 보면 어떨까. # 무채된장국밥 남은 무채를 넣고 끓인 무채된장국밥은 구수하고 시원해 한끼 식사로 그만이다. 재료는 밥 4공기, 무 1/2개, 백일송이버섯 1봉지, 청고추·홍고추 2개씩, 맛국물 8컵(다시마팩 1개, 물 9컵), 된장 1큰술, 소금 약간. (1)무는 0.2㎝정도 두께로 채 썬다. (2)백일송이버섯은 일정한 길이로 찢어놓는다. (3)고추는 원형으로 썬다. (4)맛국물에 된장을 넣고 끓인다. (5)끓인 된장물에서 다시팩을 건져낸 후 무채를 넣고 끓인다. (6)무채가 어느정도 익으면 백일 송이버섯과 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 후 밥을 말면 끝. # 배추우거지 고등어 묵은 김치고등어조림과 또다른 맛인 배추우거지 고등어조림. 아주 담백한 맛이 그만이다. 재료는 배추 1포기, 고등어 2마리, 대파 1대, 홍고추·청고추 2개씩, 고춧가루 1작은술, 된장 2큰술, 참기름 1작은술, 다진마늘 1작은술, 다진생강 1/2작은술. (1)고등어는 어슷하게 잘라 4등분한다. (2)배추는 밑동을 자르고 뜨거운 물에 데쳐내어 우거지로 만든다. (3)우거지에 된장과 다진마늘, 다진 생강을 넣고 참기름으로 양념해 버무린다. (4)냄비에 양념한 우거지를 깔고 고등어를 올린 후 고춧가루를 뿌려 끓인다. (5) (4)에 고추와 대파를 어슷썰어 넣고 푹 끓여 완성한다. ■우리나라 대표 김치,배추김치 우리나라 대표김치는 배추김치다. 재료는 배추 2포기, 굵은 소금 1컵, 꽃소금 1/2컵, 설탕 약간. 소와 양념은 무 1개, 쪽파 1/2단, 미나리 1/3단, 다진마늘 3큰술, 다진 생강 1작은 술, 새우젓 3큰술, 고춧가루 1컵. 팁:배추의 둘레가 여자 손으로 네 뼘 정도인 것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배추가 더 크다면 모든 양념을 2배 정도 준비하는 편이 좋다. 또 쪽파나 미나리는 정해진 양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ci0008(1)배추를 세로로 4등분해 굵은 소금에 담가 절인 후 물기를 뺀다. (2)무는 깨끗이 씻은 후 채 썰어 꽃소금에 5분 정도 절였다가 씻은 뒤 물기를 빼고, 쪽파와 미나리는 5㎝ 길이로 자른다. 팁:무를 썰 때는 아주 얇게 썰어야 김치소의 제맛이 난다. 칼로 썰기가 힘들므로 채칼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3)새우젓은 곱게 다진 후 고춧가루에 넣어 섞는다. (4)(3)에 미나리, 무, 쪽파, 다진마늘, 다진 생강을 넣어 양념을 만든 뒤 꽃소금과 설탕으로 추가 간을 한다. (5)절인 배추의 잎사귀 사이에 만든 소를 넣는 것이 아니라 붉게 ‘칠’한다는 생각으로 묻혀주고 소는 조금만 넣는다.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면 맛난 배추김치 완성. 양파를 두 개정도 갈아서 그 즙과 젓갈을 함께 넣으면 훨씬 시원하고 개운한 맛의 배추김치가 된다. ■ 시원하고 담백, 백김치 시원하고 담백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김치는 당연 백김치다. 재료는 배추 2포기, 굵은 소금 2컵, 꽃소금 1컵, 맛국물 20컵, 양파즙 1/2컵. 양념은 무 1/2개, 미나리 1/2단, 청고추·홍고추 4개씩, 마늘 10쪽, 쪽파 1/2단, 다진 새우젓 3큰술.(배추의 크기와 양념하는 방법 등은 배추김치와 같다.) /ci0008(1)배추는 반으로 갈라 굵은 소금에 8시간 정도 절인 후 물기를 빼놓는다. 팁:배추김치 절일 때와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좀 사각사각한 백김치를 원한다면 1시간 정도 덜 절이는 것도 방법이다. (2)미나리와 쪽파는 5㎝길이로 자르고, 청고추·홍고추, 무, 마늘, 생강은 채 썬다. (3)절여진 배추 한쪽에 (2)의 재료들과 다진 새우젓과 설탕을 넣고 버무려 만든 양념을 담는다. (4)절인 배추 사이사이에 양념을 채워 넣고 통에 담은 후 꽃소금과 맛국물, 양파즙을 섞어 국물을 만들면 완성. 백김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맛국물이다. 사골을 끓여 기름을 완전히 제거한 육수를 쓰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번거롭기 때문에 다시마와 멸치로 맛국물을 내면 된다. 맛국물 10컵을 만들기 위한 재료는 물15컵, 다시마10㎝×10㎝ 2장, 무(약 200g) 5토막, 대파 1줄기, 표고버섯 4개, 양파 2개, 멸치 20마리 정도. 기본적으로 재료를 모두 넣고 국물이 팔팔 끓어오르면 다시마만 건져주고 중불에서 물이 10컵정도 될 때까지 졸여주면 된다. 더 감칠맛을 내기 위해 건새우, 북어머리 등을 넣어도 좋다. 위와 같이 모든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은 없지만 맛국물에는 다시마와 무 그리고 표고버섯은 기본으로 들어가야 한다. ■ 김치계의 미인,보쌈김치 김치를 마치 보자기에 싸듯 담가 하나씩 꺼내먹는 맛이 일품인 보쌈김치는 손님 접대용으로 좋고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하면 그만이다. 재료는 절인 배추 2포기, 무1/2개, 배 1개, 미나리 1/2단, 쪽파 1/2단, 껍질 벗긴 밤 5개, 낙지 1마리, 굴 1컵, 잣 1큰술, 굵은 소금 1컵, 설탕물(설탕 1큰술, 물 2컵) 양념은 고춧가루 1컵, 다진 새우 1/2컵, 멸치액젓 1/3컵, 다진 마늘 4큰술, 다진 생강 3큰술, 설탕·꽃소금 약간씩. /ci0008(1) 절인 배추의 뿌리부분은 잘라내고 넓은 잎만 준비한다. 팁:포기김치를 담글 때 넓적한 잎을 많이 떼어놓았다가 사용하도 좋다. (2)무와 배는 가로세로 3㎝ 길이로 잘라 설탕물에 담가놓고, 쪽파와 미나리는 5㎝길이로 자른다. 대추는 돌려깎아 채썰고, 밤은 편으로 자른다. (3)굴은 흐르는 물에 씻고, 낙지는 5㎝길이로 자른 뒤 씻어서 물기를 빼놓는다. (4)김치양념재료를 한 그릇에 모두 담아 버무린 뒤 준비해둔 무, 쪽파, 미나리를 넣고 골고루 무친다. (5)용기에 절인 배추잎을 포개 놓은 뒤 양념을 담고 굴과 낙지를 올린 다음 대추채, 밤, 잣을 고명으로 올리면 된다. 이렇게 몇 개의 배추잎에 김치소를 넣고 예쁘게 말거나 보자기를 싸듯 싸서 위를 실로 묶어준다. 김치가 익으면 조그만 공기에 넣고 실을 풀어 먹으면 예술작품이다.
  • 엄마의 밥그릇

    가난한 집에 아이들이 여럿. 그래서 늘 배고픈 아이들은 밥상에서 싸움을 했습니다. 서로 많이 먹으려고... 엄마는 공평하게 밥을 퍼서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마지막으로 엄마 밥을 펐습니다. 엄마는 항상 반 그릇을 드신 채 상을 내가셨습니다. 아이들이 밥을 달라고 졸랐지만 절대로 더 주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배고픔을 못이긴 막내가 엄마 밥을 먹으려 수저를 뻗었다가 형이 말리는 바람에 밥그릇이 그만 엎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으로 엄마가 막내를 때렸습니다. 막내는 엉엉 울었습니다. 형이 쏟아진 밥을 주워 담으려고 했을 때였습니다. 아! 아이들은 저마다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습니다. 엄마의 밥그릇엔 무 반 토막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밥을 더 주려고 무를 잘라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밥을 조금 푸셨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제야 엄마의 배고픔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따스한 엄마의 사랑을 느꼈습니다. 엄마도 아이들도 저마다 끌어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 TV 행복한 동화 -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경주 남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경주 남산

    삼천리 방방곡곡 아름답지 않은 곳 어디 있을까마는 경주는 단연 돋보인다. 언제 찾더라도 식상하지 않은 여유와 부드러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신라인의 체취와 함께 남산(南山)이 있다. 그리 높지도 험악해 보이지 않는 남산엔 수많은 불적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가 공인된 뒤로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받들어져 수많은 절과 탑, 불상이 조성되었다.‘절들은 별처럼 벌여있고, 탑들은 기러기 날아가듯(寺寺星張 塔塔雁行)’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세월은 아득히 흘렀지만 골골에선 여전히 그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포석정을 뒤로 하고 부흥골을 오른다. 구불텅하게 높이 뻗어있는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향수병에서 향기가 번져나듯 솔향기가 짙게 배어난다. 부흥사 이르기 전 만나게 되는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넓은 연꽃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 평안하다. 부흥사 남쪽 늠비봉 넉넉한 봉우리 위엔 늠비봉 5층석탑이 태양빛을 받으며 서있다. 그 모습을 보며 당시 웅장했을 남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늠비봉 위쪽 금오정에 오르면 외동평야부터 경주 시가지까지 옛 화려했던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주능선을 따라 금오봉을 향한다. 임도로 이어진 능선길 덕에 남산의 심원한 맛이 퇴색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 삭막한 능선길이 사라진 신라의 허망함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오른편 멀리 보이는 상선암 마애대좌불. 거대한 자연 암반에 조각된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란다. 불상을 만나려면 냉골로 내려서야 하는데, 지금까지 오른 것이 아깝다고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상선암과 금오봉 사잇길은 조망하기에 좋다. 이쯤에서 바라보는 마애대좌불 바위절벽도 좋고, 너른 배리들판의 모습도 시원하다. 그 너머 망산이 있고 벽도산·단석산 그리고 주변 봉우리의 어울린 모습이 마치 다도해의 섬을 연상시킨다. 금오봉(468m)에 섰다. 높이로 치자면 남산 최고봉은 고위봉(494m)이지만, 주봉은 이곳 금오봉이다. 때문에 이곳 금오봉을 목표로 남산을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오른쪽 용장골로 내려서는 길. 벼랑 끄트머리엔 산 전체를 기단 삼아 세워진 용장사지 3층석탑이 세상을 내려보며 서있다. 그리고 아래쪽 등성이에는 황남빵을 쌓아놓은 듯 삼륜대석불좌상이 있고, 옆쪽 바위벽엔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한 신라인의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이처럼 남산의 여러 유적들은 자연과 가깝다. 눈비를 맞게 하지 않기 위해 바위 처마 아래 불상을 조각했고, 놓여진 바위를 하층기단 삼아 그 웅장함을 표현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들은 박물관에 있으면 미완성이지만 이 봉우리 위에서는 완성품’이라 했던가. 용장사지에 섰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기거하며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용장사는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으로, 천년 긴 세월 동안 향연이 그치지 않던 곳이었다지만, 지금은 텅 빈 한쪽에 자리한 표지판만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부흥골을 거쳐 늠비봉∼금오정∼금오봉을 거쳐 용장골로 하산할 경우 산행시간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글 사진 김도훈(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보신각 종 날마다 정오 타종 21일부터 서울 역사성 홍보

    서울시는 오는 21일부터 매일 정오에 서울 종로구 종로2가 보신각 종을 타종하고, 남산봉수대 의식을 재현한다. 유적지인 서울의 역사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보신각 타종은 조선시대 태조 5년(1396년)부터 도성의 4대문과 4소문을 일제히 여닫을 때부터 시작됐다. 새벽 종을 파루(罷漏), 저녁 종을 인정(人定)이라 했다.재현 행사에서는 타종군 5명과 타종관 1명이 종루를 지키는 수위의식을 갖고 정오에 종을 12차례 칠 예정이다. 그동안 보신각 종은 3·1절과 광복절, 제야의 종 때만 종소리를 울렸다.21일에는 타종식에 앞서 식전행사로 ‘아우라꼬레아 예술단’의 퓨전 국악공연이 펼쳐진다. 같은 시간 남산에서는 남산봉수대 봉수의식이 재현된다. 오장 2명과 봉수군 4명이 남산봉수대 주변을 수위하며 1거(炬·봉화를 올리는 숫자)를 재현할 계획이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비구니 대중가수 1호 인드라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비구니 대중가수 1호 인드라

    어두운 그늘에 한줄기 빛을 내린다. 광명이요, 생동이다. 맞다. 환하게 불을 밝히니 ‘인드라’라고 한다. 심산 유곡, 저 깊은 득도의 세계에 있던 희미한 ‘인드라’가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중생의 무대에서 노래한다. 어디에서? 그냥 누군가 막 그리워질 법한 가을날이다. 억새풀이 군데군데 하늘거리는 청계천에서 가을의 물소리를 작은 목탁구멍 속에 담아낸다. 또 옛날 임금님이 거닐었던 경복궁 뒤뜰에서 주옥같은 타령을 하얀 고깔에 비비며 얼씨구나 춤을 춘다. “어디로 가나 세상에 태어나 무엇을 하다가 가나/밝은 세상에서 궂은 날만 보다가 이제 어디로 가나/불꽃이 사라지면 고요함이 남듯이/집착이 사라지면 고요함이 찾아드네.” 양인자·김희갑씨 부부, 아마도 이 시대 최고의 작사·작곡가 커플로 여겨진다. 김희갑씨는 올 4월에 칠순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념공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올 가을에는 특별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랬다. 이 부부는 최근 환상의 합작품을 내놓았다.13년 만에 대중가요 작사·작곡의 콤비를 이루었던 것. 특히 한꺼번에 무려 여덟곡이나 생산해냈다. 누가 부를까. ●삭발 13년 만에 ‘중생의 세계로´ 신세대 비구니 인드라(40·법명 서연, 속명 정수경). 지난 1993년 머리 깎은 지 13년 만에 화엄경에 나오는 인드라망 구현을 위해 중생의 세계로 훌쩍 튀어나왔다. 예명이 ‘인드라’요 음반명도 ‘인드라’이다. 이른바 비구니 출신 대중가수 1호로 확실하게 도장을 찍은 셈이다. 아울러 데뷔 여덟곡 모두 신곡이라는 점에 범상치 않아 눈길을 끈다. 어찌했든 신인가수치고는 대단한 일임에 틀림 없다. 이에 대해 김희갑씨는 “인드라는 대중이 좋아할 요소는 다 갖추었다. 음대 출신이라 기본기가 탄탄하고 특히 트로트 창법이 매력적이다.”면서 “스님이어서 그런지 호흡도 길고 체력 또한 좋다. 특히 고음이 매력적이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양인자씨도 “이렇게 발랄하고 끼가 많은 비구니를 본 적이 없다.”면서 음색에는 우수가 쫙 깔려 있어 보기드믈게 근사하다고 거들었다. ●음대 출신… 관현악 전공한 독특한 이력 인드라가 이들 부부와 인연이 된 것은 출가무렵, 김국환이 부른 ‘타타타’가 작용됐다.‘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벌은 건졌잖소∼’로 시작되는 가사가 마음에 다가와 언젠가 노래를 부른다면 꼭 김씨 부부의 곡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인드라는 음대에서 관현악을 전공해 플루트 등 웬만한 악기는 프로급 수준으로 다룰 정도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가을햇살이 눈부시도록 화사하게 쏟아내는 지난 주말 인드라를 만났다. 서울 종로구청 옆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따끈따끈하게 막 나온 음반을 지인들에게 보내느라 많이 바쁜 모습이었다. 반갑다는 인사를 건네자 “많이 도와주세요.”라며 활짝 웃는다. 맑고 고우면서도 당찬 목소리가 퍽 인상적이었다. 왜 가수가 되려고 했느냐고 물었더니 “일상사에 정화가 필요하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무명(無明)을 대뜸 꺼낸다. 따지고 보면 전생의 길모퉁이에서 어디선가 다들 봤거나 아니면 잠시 못봤거나 했을 것이라며 웃는다. 아울러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가 스치듯 만나는 사람마다 어찌 미워하겠는가 하는 화두를 툭 던진다. 지혜롭지 못해 어디서 왔는지, 또 우리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떻게 알겠느냐는 것이다. 이어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을 법한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읊조린다.“꽃이 피는 아침 좋아서 웃었네 세상도 함께 웃었네/꽃이 지는 저녁 나는 울어 버렸네 나혼자 울었네/수리수리 마하수리 백년이 아차하는 순간일세.” 인생이 곧 수행이요 그 가짓수가 8만 4000가지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득도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속으로 ‘대학 다닐 때 머리 깎았을 뿐인데….’하는 생각을 했지만 수첩에 주워 담기가 꽤나 바쁘다. ● 고통과 행복의 출발·끝은 ‘나´ 왜 비구니가 됐을까. 영남대 음대를 졸업할 무렵 철학과 삶의 고뇌에 푹 빠졌다. 어느날 절에 갔을 때 다가오는 느낌, 즉 ‘괜찮은 진리’를 생각하게 됐다. 모든 것이 ‘나로 인해 고통과 행복이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라고 답을 얻었다. 그래서 스물일곱살 때 마산시립 교향악단 수석단원이던 시절, 속세의 음악이 문득 싫어짐을 느껴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그것도 이차돈이 순교했다는 ‘흥륜사’에서. 67년생, 숫자로 치면 나이 40이지만 30대초반의 앳되 보이는 얼굴이다. 수행과정에서 후회는 안했는지 물었다.“산사생활에 적응하기가 무척 힘들었지요. 지나고 보니 지금은 많이 (속이든 마음이든)비워졌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는 얼마전 청계천에서 승복차림에 목탁을 들고 신명나게 노래 한마당을 펼쳤다. 또 경복궁에서는 서양악기 플루트를 꺼내 무념무상의 연주를 해 주목을 끌었다. 행인들은 ‘스님이 플루트를? 혹시 괴짜 아닌가’하는 시선을 보냈다. 한 행인의 물음에 “스스로 인드라가 돼서 가는 곳마다 노래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빛이 되고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우리만 (산에서)도 닦으면 뭐해요. 부처님의 제자로 할 일은 중생들과 같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플루티스트가 되려고 했어요. 머리깎고 스님이 될 줄은 정말 몰랐지요.” ●여고·대학시절 음악경연대회 입상도 하기사 학창시절 공부나 친구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했다. 여고시절 ‘월간음악’ 주최 콩쿠르와 영남대 주최 전국 남녀 고교생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을 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받았다. 85년 영남대 음대 진학했을 때만 해도 꿈은 세계적인 플루티스트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 무렵 둘째언니의 권유로 해인사에 드나들면서 세속적인 음악활동이 무의미함을 느꼈다. 홀연히 음악을 내던진 그는 계룡산 동학사 강원(승가대학)을 거치면서 구도의 길로 들어섰다. 수행 도중 가끔 여기저기 사찰행사에서 MC도 보고 플루트를 연주했다. 소문이 퍼져 지난 2004년 대구 불교방송에서 방송제의가 들어왔다. 7개월 동안 ‘음악이 있는 명상’이란 저녁 9시 프로그램과 ‘토요일 오후 서연입니다’ 진행을 맡았다.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중생이 기쁘면 부처도 기쁘다’는 생각에 대중 앞에 적극 나섰다. 학창시절 국악까지 했던 목소리로 많은 팬들까지 끌어들였다.2005년 경북 영천 만불사 음악회에서는 ‘베사메무쵸’‘잊혀진 계절’ 등 친숙한 노래를 연주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관객들은 촛불을 흔들며 환호했다. 이때마다 저절로 느끼는 마음, 즉 아무리 거룩한 법문이라도 중생의 귀에 안들어오면 ‘꽝’이라는 것이다. ●“수행의 힘 노래에 반영되었으면…” “어디서 뭘 하든 제가 있는 곳이 곧 수행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이 부처의 뜻입니다. 연예계 생활이 지겨우면 다시 산으로 들어갈지 모르지만 세속 나이 40에 뭔가 시작했습니다. 이 또한 한 수행의 과정이 아니겠습니까.” 그는 깜짝 등장한 화제성 인물은 결코 아니란다. 지속적인 음악활동을 통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것이다. 그의 노래도 발라드에서 트로트, 서양음악과 국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음색이다. 아울러 여럿 악기를 다룰 수 있는 재능까지 겸비했으니 기본기가 탄탄하다. 그래서 한국적 소리와 서양소리를 잘 버무릴 수 있는 비구니 가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자신의 노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에 “수행의 힘이 노랫소리에 잘 반영되었으며 좋겠다.”고 피력했다. ■ 인드라 그가 걸어온 길 ▲1967년 대구 출생 ▲84년 영남대 주최 ‘전국남녀 고등학생 음악경연대회’ 입상 ▲88년 제1회 플루트 독주회 ▲89년 영남대 음대 졸업 ▲85∼88년 영남오페라단 플루트 주자 ▲89∼92년 예술의 전당, 호암아트홀 연주 ▲89∼92년 마산교향악단 수석단원 ▲90∼92년 경남예술고등학교 강사 ▲90년 제2회 플루트연주회 ▲93년 경주 흥륜사 출가. 명진스님을 은사로 득도. 공주 동학사 강원(승가대학)에서 수학 ▲2004년 소아암 환자를 위한 음악회. 장애어린이 돕기 조인트 콘서트 ▲04∼05년 대구 불교방송 ‘음악이 있는 명상’‘토요일 오후 서연입니다’ 진행 ▲06년 세종문화회관, 김희갑 음악회 초청 출연 ▲06년 10월 제1집 음반 ‘인드라’ 출반 km@seoul.co.kr
  •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절에 이르다/김정환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절에 이르다/김정환

    부지런하게 혹은 바지런하게 아픈 발바닥 너머. 상쾌한 공기를 마신 땀이 식는 광경으로 나타나는 산의 일부인 동시에 마음자리 가장 깊은 안온한 잠보다 더 안온하게 자리잡은, 인간의 자연 너머 청정 자체가 쉬는 안도의 한숨 같은 동시에 비정규직 노동의 고단한 사정 같은 절에 이르다.
  • 클림트 작품 누르고 ‘최고가’ 될 듯

    사고뭉치에다 조울증 환자, 평생 술에 절어 산 화가. 추상표현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20세기 후반 미국 화단에 돌풍을 일으킨 잭슨 폴록(사진 왼쪽·1912∼1956)에게 따라다닌 딱지다. 그가 평단의 주목을 받은 건 44세란 젊은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요절하기 전 6년간뿐이었다.‘스스로를 망친 천재’(영국 BBC) 폴록의 진가가 이제 제대로 평가받게 된 걸까. 폴록이 58년 전 스튜디오 바닥에 가로 1.2m, 세로 2.4m의 캔버스를 깔아놓고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특한 기법으로 완성한 ‘넘버 5,1948(오른쪽)’이 1억 4000만달러(약 1316억원)에 팔렸다고 뉴욕 타임스가 2일(현지시간) 전했다.신문에 따르면 이 그림을 소유하고 있던 할리우드의 연예 재벌 데이비드 게펜은 전날 뉴욕 소더비 소속인 토비아스 마이어의 중개로 멕시코 금융업자인 데이비드 마티네스(48)에게 팔기로 했다.이번 거래가 사실로 확인되면 지금까지 가장 비싼 그림이었던 오스트리아 작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1’(1907년작)을 누를 것으로 보인다. 클림트의 작품은 지난 6월 화장품 재벌인 로널드 로더가 1억 35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러나 게펜이나 마티네스, 소더비 어느 쪽도 이번 거래를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클림트 작품은 로더사가 운영하는 맨해튼 5번가의 노이에 갤러리에 전시해 쉽게 관람할 수 있는 반면, 폴록의 작품을 관람객이 직접 보기는 힘들 것 같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3일 예상했다.마티네스가 2년 전 5470만달러를 주고 매입한 타임워너센터 안의 초호화 아파트 벽에 그림을 걸어놓을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늦가을 산사에서 보낸 편지

    늦가을 산사에서 보낸 편지

    남쪽 지리산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다.9월 말부터 반도 허리의 설악산에서 시작한 단풍의 오색 물결이 백두대간의 봉우리를 징검다리 삼아 지리산까지 내려섰다. 성삼재와 정령치 등 높은 고갯마루를 건넌 단풍은 골 깊고 물 맑은 계곡까지 찾아왔다. 알다시피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에는 천년 사찰들이 자리잡고 있다. 오색의 파스텔 톤으로 색칠한 산사의 가을을 보고 있노라면 속세의 때에 찌든 우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산사의 모습에 눈이 시원해지고, 댕그렁 댕그렁 청아하게 울려대는 ‘풍경’소리에 귀를 씻고, 가슴까지 맑게 흐르는 옥수(玉水) 한 모금에 마음의 때가 씻겨나간다. 자, 깊어가는 이 가을에 모든 것을 잠시 멈추고 지리산의 산사로 훌쩍 떠나보자. 그리고 보고픈 사람에게 편지 한 장을 써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형,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아마 형에게 대학 2학년 때 편지를 써보고 첨이네. 가끔 메일이나 전화로 이야기하다 이렇게 펜을 드니 좀 어색하다. 참, 형이 그렇게 칭찬하던 가을 지리산에 다녀왔어. 생각나? 최루탄 가스로 매콤한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야, 가을 지리산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이야기 하지마.”라고 크게 외쳤던 것 말이야. 그래서 지리산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단풍도 보고 천년이 넘는 사찰을 돌아보았지. 너무 좋았어…. # 어머니의 가슴 같은 실상사 지리산 서쪽의 뱀사골 끝자락에 연꽃 모양의 산세가 둘러싸고 있고, 그 연꽃의 밥 즉 ‘연밥’에 해당되는 소중한 자리에 실상사(實相寺)가 위치해 있어. 한국 선문의 발상지인 실상사는 통일신라 흥덕왕 3년(서기 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져. 우리나라 선문의 효시인 ‘구산선문’이 이곳 ‘실상산문’에서 출발한 우리나라 선풍(禪風)의 발상지이기도 해. 형, 근데 참 재미난 사찰이야. 이렇게 유서 깊고 오래된 절이 울창한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논 한가운데 있어. 일주문도 없고 잘 꾸며져 돌담에 마치 오래된 한옥같은 느낌이라 마음이 너무 편안해져. 천왕문을 지나자 사찰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담한 목조 건물이 몇 개, 빨간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에 외갓집에 온 듯 너무 마음이 푸근해져.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여럿 있고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어. 수철화상 능가보월탑(보물33호), 수철화상능가 보월탑비(보물34호), 석등(보물35호), 부도(보물36호), 삼층쌍탑(보물37호) 등 보물이 즐비해. 무심히 바라보면 사방이 터져있는 들판 한가운데에 멋쩍은 듯 엉거주춤 서 있어 볼품없지만 마음을 열고 다가서면 수 많은 국보와 보물뿐 아니라 지친 우리 마음을 감싸주는 어머니 가슴 같은 곳이야. # 불타버린 뱀사골과 피아골 정말 지리산의 날씨는 ‘여인의 마음’과 같다고 한 말이 실감나더라. 가을 햇살이 아름답던 날씨가 갑자기 흐리더니 비가 오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더 좋았어. 부슬부슬 비 내리는 사찰의 처마 밑에 잠시 걸터앉아 한적한 경내에 울려 퍼지는 풍경의 아름다운 소리, 그 여운이 가슴 속에서 잔잔히 울려…. 차를 몰고 861번 도로로 노고단을 향해 가는 길은 정말 예술이야. 구불구불 위험하긴 하지만 지리산 봉우리를 타고 넘는 하얀 구름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어. 근데 좀 아쉽게도 올해는 가을 가뭄이 심해서인지 단풍이 좀 별로야. 노고단쪽은 이미 단풍이 들었는데 예년보다 덜하고 7부 능선 아래는 아직 단풍이 내려오지 않았더라고. 아마 형이 이 편지를 받는 주말쯤이 절정에 달할 것 같아. 수려한 단풍으로 유명한 남원 뱀사골로 들어서니 형의 이야기가 허풍이 아님이 실감나더라. 계곡 들머리의 수려한 바위들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와. 또 맑고 깨끗한 소·담을 물들인 붉은 물결에 지리산의 속살을 느꼈어. 이무기가 용이 됐다는 ‘탁용소’, 용이 못된 이무기가 살았다는 ‘뱀소’, 소금장수가 물에 빠져 이름이 붙은 ‘간장소’, 정진스님이 산신제를 올렸다는 ‘제승대’ 등 이번 주에 가려면 꼭 뱀사골로 가, 알았지? 참, 4일 뱀사골에서 단풍제례가 열려 볼거리를 더한대. 구름 낀 노고단을 넘어 구례 피아골로 향했어. 피아골은 예년에 비해 단풍이 좀 늦데. 아마 11월 초·중순이 절정일 것 같대. 그래서 연곡사에 들렀어. # 가을 길의 저 끝에 19번 국도에서 빠져 양편으로 황홀한 모습의 단풍나무 길을 달렸어. 아직 절정을 맞지 않았지만 굽이굽이 휘감아 도는 길가에 진하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서로의 모습을 뽐내는 여인의 자태처럼 농염한 모습이야. 연곡사는 신라 진흥왕 6년(545년)에 연기대사가 창건한 고찰인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어. 그 후 수 차례 증건과 소실을 되풀이하다 지금은 작은 법당이 초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야. 연곡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두가지가 고려시대에 만든 ‘동부도’와 ‘북부도’란 석탑이야. 자세하게 봐. 그 단단한 재질인 화강암을 한땀 한땀 정으로 쪼아서 그린 운룡과 사자, 사천왕 등 그림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야. 아마 로마에 있는 라오콘 상이나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그 이상이야. # 반달곰이 살고 있는 천년 고찰 형, 지리산 반달곰이 살고 있는 문수사라고 들어봤어? 나도 신기해서 안내판을 보고 핸들을 꺾어 들어갔어. 세상에 굽이굽이 험한 산길을 한 30분을 달렸나.1단을 놓고도 힘겹게 오른 산의 끝자락에 문수사가 있더라. 무려 해발 700m야.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런 사찰이야. 백제 성왕 25년(547년) 연기조사께서 창건했고 원효, 의상 대사를 비롯해 윤필, 서산, 소요, 부유, 사명대사 등 우리나라의 고승들이 수행 정진한 제일의 문수도량이래. 임진왜란 때 일부가 파괴됐고 6·25때 전소되었다가 1980년대에 새로 지어졌대. 3층 법당 대웅전(목탑)이 멋져. 또 문수사에 정말 반달곰이 있어. 비록 철창에 갇혀있지만 시커먼 곰의 가슴에 선명하게 새겨진 하얀 V자가 예쁘더라. 원래 4마리였는데 두 마리는 방사를 하고 이젠 두 마리만 남았대. 이밖에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지은 화엄사, 녹차의 시배지로 유명한 쌍계사, 작고 아담한 천은사 등도 가을에 꼭 한번 들러보면 좋은 절이야. 어때, 형. 지리산에 가본 지 오래지. 아이들과 형수님 손잡고 이번 주에 지리산의 고즈넉한 산사에 꼭 한번 다녀와. 마음이 넉넉해질 거야. # 단풍 구경도 식후경이래 참, 내가 맛있는 식당 몇 개 소개할게. 남원은 추어탕이 유명한 거 알지. 광한루옆 옛 육남시장터 천변에 있는 새집(063-625-2443)과 부산집(063-632-7823)이 유명해.6000~7000원선이야. 가족들과 좀 근사한데서 먹고 싶으면 남원 시내 청월장(063-633-7533)의 한정식 한번 먹어봐. 도미회, 대하, 육회, 삼합과 각종 나물 등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나와.1인분에 3만원인데 아이들이 어리니까 형수랑 2인분이면 충분히 먹을 거야. 또 뱀사골에는 그때 그 식당(063-625-3329)을 비롯해 산채백반집이 많아.15∼16가지나 되는 산나물이 푸짐해.7000원이야. 구례쪽에서는 화엄사 가는 길의 그 옛날 산채식당(061-782-4439)과 지리산식당(061-782-4054)이 유명해. 고기가 생각나면 이시돌(061-782-4015)의 한방 갈비도 강력추천해. 담백한 육질과 깔끔한 밑반찬에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
  • 아는 만큼 웃기는 이야기

    아는 만큼 웃기는 이야기

    다음 음담도 약간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아는 만큼 웃기는 이야기다. 한 선비가 냇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많은 냇물을 말을 타고 건너가려다가, 마침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선비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대가 글자를 아느냐? 알면 한 수 짓는 것이 어떠하냐?” 스님이 말했다. “소승은 무식하여 시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선비는 먼저 “溪邊紅蛤開 시냇가 홍합이 열렸다.” 라고 읊고는 재촉했다.“넌 빨리 대구를 맞추렷다.”스님이 말했다. “생원님께서 읊으신 것은 고기여서 산에 사는 이 사람은 감히 대구를 맞추지 못하겠으니, 죄송하지만 나물로 대구를 하여도 되겠습니까?” “괜찮아.” 스님이 먼저 옷을 걷더니 개울을 건너가서 읊었다.“馬上松栮動 말위의 송이가 움직인다.”-《어수신화》중 <마상송이> (본문 115쪽)양반이 스님에게 반말을 하면서 멋대로 시를 짓고 응대할 것을 강요한다.사실 조선시대 양반과 스님사이네는 엄격한 위계가 있었고, 양반은 종종 승려를 괴롭혔다.못된 양반들은 승려를 구타하고 절의 기물을 빼앗거나, 기생들과 어울려 절간에서 유흥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맥락 속에서 보자면 이 우스개의 양반 역시 시를 못 짓는다는 승려를 괴롭힐 요량으로, 먼저 시 한구를 지어놓고는 닦달하는 것이리라. 이 우스개는 조선시대 양반과 승려의 관계에 대한 지식 외에도, 한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오래된 웃음의 숲을 노닐다 中에서
  • [토요일 아침에] 듣기>말하기/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수

    독일 남부 지역에서 있었던 일화다. 어떤 부부가 결혼한 지 25년이 지나서 은혼식을 맞이했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부부가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 부부가 사는 지역에서는 아침식사 때 주로 ‘셈멜’이라고 부르는 동그란 빵을 먹었다. 그 빵은 바닥이 잘 구운 누룽지처럼 적당히 딱딱하고 고소해서 사람들은 빵의 윗부분보다는 아랫부분을 즐겨 먹었다. 부인은 빵을 반으로 잘라서 항상 맛있는 아랫부분은 남편에게 주었다. 그날도 부인은 그렇게 하면서 섭섭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여보, 내가 당신을 위해서 25년간 희생한 것을 알고나 있소? 이 맛있는 부분을 항상 당신에게 양보했는데, 당신은 이제껏 고맙다 소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러자 남편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난 이가 시원치 않잖아? 그래서 빵의 바닥부분은 딱딱해서 싫어. 부드러운 윗부분을 더 좋아한다고. 난 당신이 싫어서 내게 주는 줄 알고,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부부는 상대방의 의향을 먼저 들어보지도 않고 자기 좋은 대로 생각하는 바람에 서로 오해를 하고, 그래서 배우자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25년을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이와 비슷한 실수를 많이 범하고 산다. 대부분은 남의 말을 귀담아 듣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계획, 느낌을 일방적으로 털어놓기에 바쁘다. 또 말을 듣더라도 있는 그대로 듣기보다는 내 입장에서 내 방식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서로간의 진정한 소통이 어렵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나서 상처를 주거나 심하면 서로 결별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먼저 주의깊게 잘 듣고 그 다음에 말을 한다면, 주위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독일의 작가 미카엘 엔데는 ‘모모’라는 소설에서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한다. 어느 마을에 모모라는 이름의 소녀가 나타났는데, 고아인 데다가 몸에 맞지도 않는 헐렁한 옷을 걸친 불쌍한 거지 소녀였다. 그런데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이 소녀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능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모모 앞에 와서 모두 쏟아놓았고 그러면 그녀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을 뿐이었다. 이렇게 모모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그들은 자기 속에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놀라운 지혜를 깨닫곤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잘 듣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 못지않게 소중한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루카복음 8장15절)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먼저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의 당부라고 하겠다. 자기를 최대한 알리고 선전해야 하는 시대에 자기 말을 앞세우기보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가 덜 시끄럽고 평화롭게 될 것이다. 자신은 말주변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열등감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굳이 말 잘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다른 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노력하면 어떨까? 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감탄을 하지만,‘난 뭐야.’하는 생각에서 주눅들기 쉽다. 반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는 평안을 느끼고 힘을 얻게 된다. 심리상담가들의 하는 일은 주로 내담자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이다. 천주교의 신부님들이 고해성사를 주면서 하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하늘이 인간에게 귀 두 개와 입 하나를 주신 데에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적게 먹는 것이 신체 건강의 지름길이듯이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것이 마음 건강의 지름길이다. 손희송 신부·가톨릭대 교수
  • [Local] 내년부터 국내 ‘여행바우처’ 폐지

    경북도가 10월 ‘독도의 달’을 맞아 독도를 알기 쉽게 설명한 ‘독도 바로 알기’ 책자를 발간했다. 포켓용(25절 크기,44페이지)으로 제작된 이 책자에는 독도의 일반현황과 독도 영유권에 관한 사실과 근거 등이 수록돼 있다.1부 일반현황편에는 독도의 위치, 거리, 크기 등의 최신자료를 실었고 기후와 자연생태, 독도 자생식물 사진, 독도주민 김성도(67)씨 부부 생활모습 등을 담았다.2부에는 영유권에 관한 역사적 사실과 독도에 관한 한·일간 주장과 근거를 중심으로 문헌과 고지도 등의 사료를 실어 독도가 한국의 영토인 사실을 자세히 설명했다.
  • [열린세상] 저출산시대,‘부모노릇’의 재음미/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얼마 전 집 근처 절에서 열린 불교경전 판화 전시회에 간 적이 있다. 다양한 시기에 간행된 경전들을 구경하다가 ‘부모은중경’이라는 낯익은 제목 앞에 발길이 머물렀다. 부모의 소중한 은혜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했다는 이 책에서는 부모의 은혜 10가지를 글과 그림으로 깨우쳐 주고 있다. 자녀를 잉태하면서부터 시작되는 부모의 수고와 은혜 중 9번째 은혜는, 자식을 위해 나쁜 일(악업)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다소 의외의 가르침이다. 악업의 구체적 사례가 적시되지 않아 옛날 어머니들이 어떤 악업을 행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혹시 이를 표피적으로 받아들인 모성문화가 오늘날 도를 넘는 교육열로 이어진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필자도 20년 넘게 부모노릇을 해 오면서 많은 것을 참고 견뎌야 하는 부모됨을 도 닦는 일에 비교하곤 한다. 그러나 자식을 핑계로 한 악업까지도 부모노릇에 포함된다고 여긴 적은 없다. 내가 특별히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악업이 자녀에게 진정한 이익을 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신용불량자 10명 중 1명은 자녀의 사교육비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다면서 부모를 신용불량자로 만드는 교육을 문제 삼았다. 우리 교육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신용불량자가 된 부모들을 변명하기 위해 교육을 끌어들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본다. 교육이란 자녀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자라서 올바른 판단을 하며 제대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과정이다. 그런데 자녀의 성적을 올리자고 빚을 지고 가정이 파산하게 된다면 자녀가 어떻게 건전한 경제관을 갖고 자기 앞날을 엮어 갈 수 있을 것인가. 과외 덕분에 조금 더 나은 대학에 들어간다 한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할 짐을 진 자녀의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분별없는 교육 투자를 부모됨의 악업으로 포장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부모 악업의 또 다른 버전은 자녀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유흥업소 도우미로 나가는 경우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으니 생계를 위해 노래방 도우미가 되는 것을 흉볼 수는 없지만, 자녀의 과외비 마련을 위해서라면 문제가 다르다. 미성년 자녀에게 부모의 상습적인 늦은 귀가, 특히 술에 전 부모의 자기희생 타령이 좋은 작용을 할 리 없다. 일을 하는 동기나 목적이 부모 자신의 이익과는 관계없이 오직 자녀를 위한 억지 희생일 뿐이라면 이는 자녀가 되갚아야 할 굴레로 작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영국에 머물 때 자녀교육에서 부모의 적절한 관여가 중요하며, 특히 아버지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지난해 30대 후반의 여성 경제전문가가 교육부장관으로 임명되자 남편은 어린 네 자녀를 돌보고자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자녀의 행복과 교육적 성공을 위해 돈보다 부모와 자녀의 유대를 더 중시한 것이다. 따라서 젊은 전문직사회에서는 어린 자녀를 돌보기 위해 부부가 함께 파트타임으로 고용계약을 바꾸는 일도 드물지 않다. 정규직은 풀타임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을 위해 정규직 파트타임제가 다양한 형태로 작동하고 있었다. 고용 환경이 가족친화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출산기피로 이어져 사회적 존립이 위태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는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보다 돈이 자녀교육의 선결조건으로 여겨지면서 세계 최악의 저출산 사태를 낳고 있다. 자녀교육에 돈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성장기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은 부모가 함께해 주는 것이다. 자녀교육을 핑계로 한 악업, 서로에게 짐이 돈벌이를 부모의 본분인 양 포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강영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2) ‘짝사랑’은 이제 그만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2) ‘짝사랑’은 이제 그만

    “당신, 일본 사람인가요?” “아닌데요.” “그럼 중국사람?” “아니요.” “그러면…한국인?” “네.” “남한이요? 북한이요?” “물론 남한이죠. 북한사람들은 자유롭게 외국에 나올 수가 없어요.” “맞아, 그렇지. 남한의 수도가 평양이던가요?”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한국을 모른다. 동양하면 으레 일본을 먼저 떠올리고, 그리고 중국을 얘기한다. 한국은 언제나 그 다음이다. ●지금껏 짝사랑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프랑스에 대해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멋과 낭만의 나라 프랑스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만큼 그들도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완전한 착각이다. 우리가 상식선에서 프랑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나폴레옹부터 에밀 졸라, 생텍쥐페리, 장폴 사르트르 등 각계의 명사는 물론이요, 루브르박물관 등 명소들을 본 것처럼 알고 있다. 프랑스 와인은 또 어떤가. 무슨 무슨 샤토의, 몇년도 포도주가 최고라는 것을 읊을 줄 알아야 분위기와 유행을 아는 사람으로 친다. 그렇다면 프랑스인들은 우리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까?불행하게도 프랑스인들은 우리나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아니 우리나라가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하고, 초고속인터넷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다 삼성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있는데 우리를 몰라?KTX도 프랑스에서 들여왔는데….”라고 반박할 테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일본어나, 중국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한반도가 지구상의 어디에 붙어있는지 모르는 사람도 허다하다. 서래마을 냉동영아 사건은 프랑스인들이 우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사례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유전자 감식 결과 쿠르조 부부가 냉동영아들의 부모임이 드러났는데도 이들은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뗐다. 지난 8월22일 쿠르조 부부가 투르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프랑스 기자들도 이 사건이 너무 많은 수수께끼를 갖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수사결과는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변호사도, 수사당국도, 여론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프랑스를 일방적으로 좋아한 셈이다.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지 120년을 맞았지만 상황은 1886년 수교 당시나 지금이나 별로 나아진 게 없는 것 같다. 한국측은 몇해 전부터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행사들을 기획했고, 총리가 기념식 참석을 위해 프랑스를 방문하는 등 부산을 떤 것과는 대조적으로 프랑스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 프랑스가 1866년 병인양요 당시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문제도 그렇다. 우리 정부는 1993년 이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다. 한국의 프랑스에 대한 ‘짝사랑’은 관광객수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연간 프랑스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은 40만명 정도다. 반면 한국을 찾는 프랑스의 관광객수는 연간 4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은 찬밥신세 프랑스인들은 일본을 매우 좋아한다. 그들에게 일본은 ‘이국적’인 것의 표상이다. 일본은 기술력이 세계 최고이며 독특한 문화를 가졌다고 높이 평가한다. 프랑스에서는 일본식 스시바가 인기다. 망가(Manga)는 일본 만화, 기모노는 일본 전통의상이라는 것 쯤은 다 알고 있다.19세기 말 인상파 화가들이 일본문화에 심취했듯이 일본은 그들에게 언제나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프랑스인들이 관심을 갖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기 때문이다. 에어버스 항공기, 초고속열차(TGV) 등 프랑스의 기술력을 수출해야 하는 만큼 대통령부터 나서서 중국의 환심을 사려고 난리다. 반면 한국은 영원한 찬밥이다. 일본이나 중국은 여행하고 싶은 나라로 꼽지만 한국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매년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프랑스를 찾지만 한국어 안내문을 갖춘 관광지는 루브르 박물관이 고작이다. 베르사유궁전의 박물관장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관장은 “일본인 관광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 베르사유궁”이라고 자랑하면서 “한국인들은 베르사유를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매년 적어도 10만명은 베르사유궁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관장조차도 이렇게 모르고 있다니 기가 막혔다. 한국어 안내문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국가이미지 개선노력 절실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계기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20년전 프랑스 언론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한국의 이미지는 대학생 시위대가 전경들과 난투극을 벌이는 것이 고작이었다.10년 전에는 재벌기업과 맞선 노조의 폭력시위가 단골 메뉴였다. 지금은 북한 핵문제가 한국 관련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나마 최근 몇년간 한국 영화가 프랑스의 극장가에서 선전한 덕분에 영화를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을 보는 눈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신년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던 기 소르망은 말했다.“프랑스인들은 한국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무관심하다. 한국 정부는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lotus@seoul.co.kr ■ ‘파리 신드롬’이란 ‘파리 신드롬’이란 게 있다. 2004년 정신치료학 전문저널 네르뷔르(Nervure)에 처음 보고됐다고 하는 파리 신드롬은 불친절한 주민, 지저분한 환경 등 상상과는 다른 파리의 실상에 외지인들이 파리에서 겪게 되는 정신적 충격과 피해를 뜻한다. 일본인 관광객들 중에서 그 사례가 종종 발견되고 있다. 프랑스의 대중 주간지 ‘주르날 뒤 디망슈’는 최근 호에서 매년 10여명의 일본인들이 파리를 관광하고 난 뒤 너무나 지저분한 거리와 파리 사람들의 불친절함에 큰 충격을 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을 지경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중 3분의1은 파리 방문 당시의 과도한 스트레스가 정신병으로까지 발전했다고 한다. 좀 과장된 듯 하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파리는 누구에게나 동경의 도시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만화나 영화를 통해 본 프랑스인은 고상했으며 여행 가이드북에 소개된 프랑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런데 직접 와보니 상상과는 너무 다른 것이다.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길거리에는 개똥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지하철에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술에 절어 있는 노숙자들도 많다. 이런 모습에 실망하고, 스트레스받으며 관광을 하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날치기라도 당하면 심리적 공황상태를 맞을 수 있다. lotus@seoul.co.kr
  • [이현세 만화경] 그런데도 자꾸만 불효를 한다

    [이현세 만화경] 그런데도 자꾸만 불효를 한다

    나를 키워주신 큰어머니는 경주 양북의 양지바른 야산에 누워 계신다. 나는 두 살이 채 되기 전에 큰집에 양자로 왔다. 큰어머니는 평생을 내가 그 사실을 알까봐 두려워했다. 두 어머니의 사이는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어쩌다 보니 할머니와 아버지 산소는 청평에 있는데 큰어머니만 경주에 모시게 되었다. 살아서 외로웠던 분은 죽어서도 외롭게 계신다. 추석 전주에 성묘를 갔다. 억새가 봉분까지 덮고 있었다. 산비둘기와 꿩이 날았다. 큰어머니는 지금도 나를 기다린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는 내게 마음을 열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청평에 있는 동생집에 계신다. 아버지 없이 힘들게 살아온 어머니의 철학은 ‘몸만 건강하면 사람은 산다.’는 것이었다. 나는 2년 전만 해도 하루 담배 3갑에 술은 주종과 양을 가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제나 술과 담배에 절어 사는 내 건강이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특히 담배에 진저리를 쳤다.6년 전에 생긴 심장병이 낫지 않고 ‘마징가 Z’의 아수라백작처럼 목소리가 갈라져 나오는 후두염의 증세가 있어서 결국 담배에 대해서 백기를 들었다. 이때 어머니는 정말로 기뻐하시며 당신의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담배를 끊고 나니 술이 늘었다. 담배충동이 생기면 술로 목구멍을 씻어 내린다는 식이다. 아이들과 함께 어머니에게 들르면 큰딸애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할머니, 아빠 혼 좀 내주세요! 매일 술이세요.” “이 사람아, 제발 술 좀 줄이시게!” 이때부터 또 내 술이 어머니의 걱정거리였다. 그 뒤로 가능하면 어머니 앞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자식은 누구나 자기입장에서 판단하고 결정한다. 뜨거웠던 올여름, 가족들과 태국 푸껫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들렀다. 제 식구끼리 가는 여행이라 죄스럽기도 하고 해서 군색한 변명과 함께 용돈으로 얼버무리고 모처럼 동생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며 떠날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자네 술 한 잔 드릴까?” 어머니가 모처럼 권한 것이어서 반갑기는 했지만 제 스스로 약속한 것도 있고 떠날 시간도 된 듯해서 자랑처럼 웃으며 감히 거절했다. 보다 못한 동생이 웃으며 농처럼 한마디 던졌다.“형님, 어머니는 형님을 하룻밤 재워 보내고 싶어서 그러시는 거유. 술 취하면 못 가신다는 거, 음주운전 안 된다는 건 어머니도 아시우!” 자식이 어떻게 어머니의 애잔한 마음까지 알겠는가. 모처럼 어머니가 신나서 가져다 주시는 소주를 자식놈은 기분좋게 마시며 산골에 지는 시원한 여름 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 망할 당뇨라는 놈이 찾아왔다. 그날 어머니의 술은…, 앞으로 술을 참아야 하는 자식 놈의 딱한 사정을 미리 알고 위로해 준 셈이 되었다. 추석이라서 가족이 전 날 청평으로 갔다. 차례가 끝나고 음복하는 내 꼴이 영 시원찮았는지 당신이 걱정스레 바싹 다가 앉았다.“자네, 왜 술도 한 잔 안 하시는가? 어디 아프신가?” 남편을 지키려는 아내는 강하다.“어머니, 그 이 이젠 술 드시면 큰일 나요….” 아내는 송편도 부침도 안 된다고 했다.“그럼 단술도 한 잔 안 되시나?” “네, 어머니, 설탕이 많아서요.” 남편을 위해서 아내는 냉정해진다.“무신 병이 그런 병이 있노? 굶어 죽으라 말이가!” 어머니의 인내는 여기까지였다. 어머니는 울화를 참지 못하고 벌떡 차듯이 일어나 방을 나가 버리셨다. 망할 놈! 제 놈이 제 몸을 함부로 굴린 것은 이렇게 불효가 된다.‘사람은 건강하기만 하면 산다’는 어머니의 사랑을 아들은 이렇게 배신으로 갚았다.50년을 제 잘난 맛에 살아왔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항상 자해하는 못난 아들의 모습으로 걱정이었다. 당신이 주는 음식을 거절하지 않고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어쩌다 일 년에 한 두번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불효자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요즘은 효자가 되기란 얼마나 쉬운 것인가. 그런데도 나는 자꾸만 불효를 한다.
  • [씨줄날줄] 미터법/ 우득정 논설위원

    “산업자원부 관료들이 똑똑해졌다.”잘난 체하기로 유명한 재정경제부 관리들의 평이다. 과거 상공부 시절 업계에 휘두르던 인·허가권이 규제 완화 차원에서 모두 날아간 뒤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머리를 굴리다 보니 눈에 광채를 띠게 됐다는 것이다. 산자부가 내년 7월부터 ‘평’‘돈’‘근’ 등 비법정 계량단위를 사용하거나 광고하는 업소에 대해 50만원의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도 새로운 먹을거리 발굴 사례로 꼽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계량 및 측정에 관한 법률’(일명 미터법)을 시행한 이래 1983년에는 건물과 토지도 ‘평’ 대신 ‘㎡’를 사용토록 했다.2000년에 전면 개정된 ‘계량에 관한 법률’ 33조에 따르면 비법정 계량단위를 제품에 표기하거나 광고 문구에 사용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돼 있다. 지금까지 법률을 만들어 놓고 거들떠보지 않다가 일제 단속에 나서겠다고 팔을 걷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김종갑 산자부 제1차관은 비법정 계량과 법정계량 사이에 1%만 차이가 나도 소비자 손실은 2조 7000억원에 이른다고 엄포를 놓았으니 그동안 산자부의 직무태만으로 인한 소비자의 손실부터 먼저 보상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30여년 전에도 ‘말’‘되’ 등 비법정 계량단위를 사용하면 처벌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가 미터법에 생소한 재래시장 상인들과 소비자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후 ‘말’이나 ‘되’ 대신 10㎏,20㎏ 단위로 유통이 늘어나면서 ‘말’과 ‘되’는 절로 소멸의 길을 걸었다. 요즘 정육점에서도 ‘근’ 대신 ‘㎏’이 더 익숙하게 사용된다.1억 2500만달러짜리 우주선이 계량단위 착오로 화성 상공에서 폭발했다거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기계톱’으로 불리던 MG42 기관총의 복제 실패 등의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소비자가 편리하다고 인식하면 법정 계량단위는 절로 정착된다.34평보다 112㎡가 더 편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평’ 대신 ‘㎡’를 쓰게 하려면 공공부문 공급주택부터 100㎡,150㎡로 바꾸어야 하고, 건축단가도 ㎡단위로 새로 고시해야 한다. 자기 할 일부터 한 뒤 단속에 나서라는 얘기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옛 서울대농생대 부지 개발 표류

    옛 서울대농생대 부지 개발 표류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농생대) 옛 부지를 활용하는 방안이 표류하고 있다. 23일 수원시와 서울대측에 따르면 시는 부지를 매입해 국립대를 유치하고 생태공원으로 개발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예산문제 등을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땅 주인을 찾고 있는 서울대측도 부지가 팔리지 않아 속을 태우고 있다. ●농진청 이전계획으로 매각 무산 서울대는 2003년 9월 수원 농생대를 서울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9만여평에 달하는 부지를 매각하기 위해 농촌진흥청과 협상을 벌였다. 농진청은 이 부지를 매입해 바이오벤처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지방이전 추진대상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계획을 백지화했다. 결국 학교부지 매각 협상도 결렬됐다. 서울대는 농생대를 이전하면서 재정경제부로부터 빌린 1000억원을 갚기 위해 지난해 6월부터 10차례에 걸쳐 공개매각을 실시했으나 모두 유찰됐다. 급기야 서울대측이 방향을 선회, 최근 수원시에 매입 여부를 타진했으나 가격이 안 맞아 결렬됐다. 부지 가격은 유찰과정을 겪으면서 878억원에서 695억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감정가는 최근 1193억원으로 크게 올랐다. ●수원시, 부담 커 매입 요청 거절 수원시는 서울대측이 제시한 액수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과 도비 등 지원액이 감소하는 추세여서 1000억원이 넘는 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며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매입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립대학 유치가 김용서 시장의 공약인데다 인근지역 주민들도 농생대 부지에 국립대학이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가 한경대와 경인교대·재활복지대 3개 국립대의 통합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구체안이 나온 이후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심산이다. 다급해진 쪽은 서울대. 서울대는 수원시와의 매각협상이 결렬되자 지난 12일 일반 매각공고를 냈으나 주인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용도변경이 최대 변수 이 부지는 도시계획시설상 학교용지로, 수원시가 용도변경을 해주지 않으면 아파트 건설 등 다른 사업이 불가능하다. 또 인근에 소음을 발생하는 공군비행장이 들어서 있는 것도 매각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이같은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 수원시가 시간을 끌면서 가격이 더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수원시는 “수원의 마지막 남은 녹지공간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용도변경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적절한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는 한 농생대부지 활용계획은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반기문 차기유엔사무총장 “중립 지켜 세계적 이슈 다룰 것”

    반기문 차기유엔사무총장 “중립 지켜 세계적 이슈 다룰 것”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 분단 국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신화를 만들어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20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가졌다. 한달 후면 36년간의 한국 외교관 생활을 접고 국제사회의 평화 조정자의 막중한 역할을 위해 뉴욕으로 떠나는 그에게 청소년들을 위한 삶의 메시지와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포부를 들어봤다. 반 차기 사무총장은 “순수한 마음을 얼마나 오랫동안 가지느냐가 성공을 좌우한다.”면서 “이는 상대방에게 신뢰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여일(如一)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인 유엔사무총장 탄생 이후, 우리 청소년들의 꿈의 지평도 넓어졌다. 청소년들에게 메시지를 주신다면.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유엔사무총장이 나왔다는 것 하나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 게 아닌가 한다. 어렸을 때부터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제가 학교를 다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좋다. 물론 나름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좌절하지 말고 항상 밝은 쪽으로 보는 게 필요하고, 그러면 일이 더 쉽게 되고, 그 방향으로 결국 가게 된다. 안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몸이 일단 안 움직인다. 그리고 일생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일한 마음을 가져야 상대방으로부터 신뢰와 믿음을 얻는다. 저는 사무관 때나, 장관이 돼서나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대했다. 장관으로서 결재를 할 때 부하 직원이라도 상대방 시간에 맞춰주려 배려했다. 물론 몸이 고단하기도 했지만 마음은 즐거웠다. ▶부모의 입장에서 한국의 부모들에게 교육에 대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요즘 너무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것을 한꺼번에 주입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겐 마음의 여유,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고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줘야 한다. ▶40년 외교관 생활을 마감하면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는 외교철학을 정리하신다면. -한국이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외교관으로 생활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외교관 생활을 통해서 냉정한 국제현실에 대해 몸소 체득하고 무한경쟁 시대속에서 한국이 번영과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가는 길은 개인 개인이 경쟁력을 쌓아나가는 길뿐이라는 확신을 했다. 저 스스로도 반성을 많이 하고 있는데, 아직 한국민들의 국제화가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세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제때 파악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아팠던 역사가 이런 지혜의 중요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외교관을 꿈꾸는 청소년, 그리고 후배외교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한국과 같은 나라에 있어 외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겠으나, 국가간 업무를 다루는 만큼 늘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고, 아프리카 등 어려운 지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이 겪는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중동 등에서 반기문 차기 사무총장이 미국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초반 행보를 지켜볼 텐데…. -제가 오랫동안 미국 관련 업무를 담당한 데서 그런 오해가 생긴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실용주의자이다. 미국을 잘 이해하는 것은 유엔에 매우 중요한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데 있어 좋은 자산이 되고, 만약 저 자신이 지나치게 어느 특정국의 입장에 편향되었다면 이번에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중립성이 요구되는 직책에 선출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안보리 이사국, 특히 5개 상임이사국들이 제가 중립적·객관적으로 범세계적 이슈를 다룰 것이란 신뢰를 표현한 것으로 본다. ▶끝으로 사무총장으로서 본격 행보를 시작하기 전에 북한에 대해 보내고 싶은 메시지는. -북한이 스스로 고립의 길을 자초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깝다. 북한이 택해야 하는 길은 자명하다. 더 이상 국제사회를 우려케 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북한 문제는 유엔사무총장이 다루어야 할 많은 문제 중 하나가 될 것인데 그간 외교장관으로 6자회담 등을 통해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유엔사무총장으로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해 필요한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다. 글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세계의 대통령’ 배출 충북 음성 행치마을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이 20일 ‘명당’으로 대접받고 있다. ‘세계의 대통령’을 배출한 이 마을에 풍수전문가와 관광객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몰려든다. 반 장관의 아저씨뻘이 되는 반달환(58)씨는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뒤 매일 30∼40명의 외지인이 관광버스와 자가용 등을 타고 마을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앞을 지나가다 구경삼아 들르는 이들도 꽤나 많다.”고 귀띔했다. 이곳 지형에 대해 풍수전문가들은 “마을을 감싸는 뒷산에서 강한 힘이 느껴지면서 전체적으로 온화한 느낌을 준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정작 반 장관은 “선친의 묘소에 상석 하나 없을 정도로 평범하다.”면서 “토정비결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며 어머니가 오래 전부터 절에 다녔다.”고 소개했다. 주민들은 지금까지 1000여명이 마을을 찾았다며 추수기를 맞아 성가신 반응을 보일 정도다.17가구 30여명의 행치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집을 비운 채 들판에 나가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서는 추수기를 맞아 얼마 전의 들뜬 표정은 찾을 수 없었다. 주민들은 지난 4일 마을회관에 모여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반 장관이 고향을 찾은 지난 추석 때 마을회관에서 조촐한 환영행사도 열어줬다. 마을에는 주민과 문중, 모교 명의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 축하 플래카드 5개가 내걸려 경사스러운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반 장관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5살까지 살았다. 아버지가 충주로 일을 얻어 이사가면서 충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충주에는 지금도 어머니 신현순(85)씨와 여동생(55)이 살고 있다. 반 장관의 선친 묘소는 행치마을에 있다. 이장 반옥환(52)씨는 “반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된 것에 대해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광주반씨 집안이 300년 전에 자리를 잡은 이 마을에는 반 장관의 아버지 묘와 문중에서 이례적으로 돌로 만든 광주반씨 장절공 행치파 족보(7×3.5m), 행치파 사당 등이 있다. 생가는 50여평의 터에 있었으나 본채는 허물어지고 행랑채만 남아 있다. 음성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儒林(71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2)

    儒林(71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2)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62) ―아니다. 퇴계는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였다. ―그대의 빙설 같은 얼굴을 또다시 만나볼 수는 없을 것이다. 서탁 옆에는 작은 동이가 놓여 있었다. 퇴계가 사랑하는 열정에서 퍼 올린 우물물이었다. 정화수(井華水). 아무도 깨어나지 않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길어낸 신성한 우물물. ‘한 바가지의 물로 샘과 내가 서로의 마음을 얻었네.(一瓢眞相得)’라고 노래하였던 열정에서 길어 올린 우물물. 아침마다 퇴계는 정화수를 자신이 직접 매분에 물 주고 있었던 것이다. 퇴계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매분 곁으로 다가갔다. 표주박으로 제자가 길어온 정화수의 물을 떠서 자칫 쏟아질까 조심하면서 매분 위에 듬뿍 뿌려주었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시키지 않는 퇴계에게 있어 하루 일과의 첫 시작이었던 것이다. 매분에 물을 주고 나서 퇴계는 다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자세를 바로하였다. 서탁 위에 종이와 붓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그제서야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자신의 답장을 받아 고봉에게 돌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위해 서둘러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다. “절을 하며 답해 올리는 글절” 퇴계가 남긴 평생의 마지막 편지는 그렇게 시작된다. 26살의 나이 차이가 나는 후학에게도 절을 하면서 답장을 올릴 만큼 겸손하였던 군자 이퇴계. 일찍이 성프란치스코는 인간으로서 가장 지키기 힘든 덕을 ‘겸손’이라고 말하면서 ‘겸손이야말로 완덕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관문’이라고 말하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퇴계가 남긴 마지막 문장의 첫머리가 ‘절을 올리면서 답해 올리는 글’이라는 사실은 퇴계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완덕(完德)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뜻하는 장면일 것이다. 퇴계는 천천히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먼길을 애써 달려 사람을 보내시면서 부치신 귀한 편지와 별지를 함께 받아보니, 한가로이 도를 음미하고 계시며, 지내시는 모습도 복이 가득하심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염려하던 마음에 크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저는 근심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어린 증손을 땅에 묻은 아픔은 지난 일이라 돌이킬 수 없거니와, 아들 준(寯)의 아내가 몇 해 동안 유핵(乳核)을 앓아 왔는데, 올가을부터 그 증세가 종기로 발전하여 아프다가, 요 며칠 사이에는 매우 위독하여 끝내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너무 급박하여 어찌할 줄 모르겠습니다. 저도 올해는 특히 쇠약하고 피곤한 증세가 심합니다. 하지만 사방의 후배들은 남의 생각을 헤아리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갖은 방법으로 거절하여 돌려보내 보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옵니다. 그 사이에는 막무가내로 거절할 수 없는 이들도 있어 분수에 맞추어 응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된장 만드는 것도 수행의 일부분”

    “된장 만드는 것도 수행의 일부분”

    “승려도 자급자족은 물론,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익을 창출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일도 해야지요. 수행자라고 늘상 신도들의 헌금만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열심히 일하는 생활속에서 선을 닦아야 하지요.‘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수행철학입니다.”영평사 주지 환성스님이 자죽염(자줏빛 나는 죽염)과 된장 등 장류를 만들어 파는 영평식품을 설립해 ‘수익사업’을 하는 이유다.16년전부터 만들어 온 자죽염은 물론,8년째 만들어 오고 있는 재래식 된장 등이 맛좋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엔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죽염이나 된장 등은 예로부터 산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신경을 쓰던 사찰음식입니다. 사찰수행에 필수적인 건강식이라고 할까요. 채식위주로 생활할 때 생길 수 있는 건강상의 문제를 예방하는 기능을 하지요. 애초에 수행자들의 건강식품으로 개발한 것을 불사(佛事)에도 도움을 주고, 이익을 창출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회향도 할 목적으로 상품화한 것입니다.” 자죽염은 고온에서 녹아내린 죽염이 붉은 빛을 띠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황토흙에 죽염을 넣고 장작불로 아홉번 가열해서 만들어 낸다. 가장 중요한 재료인 소금은 서해안의 섬에서 들여온 천일염만을 사용한다. 된장을 만드는 과정도 자죽염 못지않게 복잡하다.11월쯤 사찰 근처에 심은 메주콩을 수확해 1월에 메주를 뜨고,1개월정도 발효시킨 다음,2월경에 자죽염을 만드는 과정에서 나온 죽염수에 담가 놓는다.4월쯤 간장이 된 죽염수를 따라내고,3년정도 묵힌 메주를 으깨 된장을 만든다. “우리는 대부분 굉장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세요. 어려운 이웃이 얼마나 많은가요. 또, 어린이나 청소년 문제 등 ‘절 밖의 일’도 해야 하는데, 신도들에게만 헌금을 강요해서는 안 되지요. 수행자가 장삿꾼 노릇을 해서야 되겠냐는 말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분명하고,(영평식품을)세웠던 이념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 문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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