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10살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인민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미인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2030년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505
  • [여행가방]

    ●모두투어 창립 20주년 이벤트 새달 11일 창립 20주년을 맞는 모두투어네트워크 (www.modetour.com)가 5월31일까지 풍성한 이벤트를 연다. 행사 기간 중 고객 1인당 1000원씩 적립해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하는 ‘천원의 기적’, 홈페이지에서 출석도장 20개를 찍은 방문객 중 170명에게 20만원짜리 여행상품권 등을 제공하는 ‘도전! 모두투어 개근상’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고로쇠 판매 개시 한화리조트 지리산에서는 화엄사 주변에서 채취한 고로쇠 약수를 3월말까지 판매한다. 배송비 포함 18ℓ 6만원, 4.3ℓ 4팩 6만 5000원. 고로쇠 패키지도 마련했다. 객실 1박과 조식(2인)이 10만 9000원~11만 6000원. (061)782-2171. ●3·1절 기념 독도 탐방 우리테마투어(wrtour.com)는 3·1절을 앞두고 울릉도와 독도 등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7일 밤 서울시청 앞을 출발해 정동진에서 일출을 감상하고 울릉도 관광, 독도 탐방을 마친 뒤 1일 밤 돌아오는 1박3일짜리 일정이다. 28만원.(02)733-0882.
  •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 선종] 현대사 고비마다 버팀목으로… 한국 민주화 큰 횃불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 안의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긴 ‘큰 횃불’로 인정받는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였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양심의 울림과 행동을 끈질기게 이어갔던 투사였다. ●박정희 독재정권 비판 시국 메시지 김수환 추기경이 인권과 민주화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8년 삼도직물 사건부터. 당시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불거진 이 사건을 놓고 추기경은 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교회가 노동자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게 정당함을 전격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 차원에서 낸 최초의 성명서로 기록된다.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와 인권에 개입하기 시작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 선포, 긴급조치 등 독재와 부정부패가 극성일 무렵 성탄절 미사를 통해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고 나선 것은 유명하다. 당시 KBS를 통해 방송된 미사 강론에서 “비상 대권을 대통령에게 주는 것이 나라를 위해서 유익한 일인가.”라고 비판했으니 일반인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1971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시절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공동사목교서를 발표한 데에 이어 이듬해 ‘평화의 날’을 맞아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선포, “불의와 부정부패, 부조리, 인권탄압, 독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일인독재체제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그 유명한 시국 메시지를 발표한 것은 그 이듬해인 1972년 8월이었다. “인권과 사회정의의 실현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우선 정치적 민주화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을 위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정치”를 거듭 촉구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현실 참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이다.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이른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도왔다는 이유로 1974년 구속된 사건은 유신체제하 독재정부와 천주교회의 대립 차원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마다 추기경은 “우리 민족이 처한 아픔이자 교회의 아픔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80년대 군사정권에 맞서 직선제 주장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1979년 유신 체제가 붕괴될 때까지 국가권력과의 대립을 거듭해야만 했다. 1976년 명동 3·1절 기도회, 1978년의 전주교구 7·18기도회 등에서 사제들이 잇달아 구속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와중에서 모든 신자들에게 ‘광주를 위한 특별기도’를 요청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 부산의 미 문화원 사건, KBS시청료 납부 거부운동, 언론통제 등 군부독재에서 빚어진 사회문제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1986년 군사정권에 개헌실시를 촉구한 데 이어 1987년 6월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비판, 대통령 직선제 실시를 주장했다. 그 끝에 나온 6·29선언과 대통령 직선제 실시는 결국 문민정부를 등장시킨 큰 발판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힘내라 대한민국’ 네티즌 재치랩 만발

    청와대가 올해 3·1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나라사랑 캠페인’의 일환으로 랩송을 제작해 인기 가수들에게 부르게 한다는 계획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이 재치있는 랩을 앞다퉈 만들어내고 있다.  청와대는 전문가에 의뢰해 일명 ‘힘내라! 대한민국(가칭)’ 등의 랩송을 만들어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디 cur***를 쓰는 한 블로거는 일단 빅뱅에게 ‘애도’를 표한 뒤 빅뱅의 노래 ‘붉은 노을’을 개사한 ‘푸른 운하’를 선보였다.  노래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난 너를 사랑해 이 세상 너뿐이야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없는 노을만 붉게 타는데’는 ‘난 네가 싫은데(u-hu I hate you sir) 뉴스엔 온통 너뿐(whole in the world) 귀를 틀어 막아도 라디오에선 네 목소리만 들려오네’로 바뀌었다.  ‘아름다웠던 그대 모습을 이젠 볼 순 없겠지만/ 후횐없어 그저 바라볼 수 있게 붉게 타주오’ 부분 역시 ‘아름다웠던 747곡선 이젠 볼 순 없겠지만/ 상관없어 그저 환율만 어떻게 유지해주오’로 개사됐다.  팬들 역시 빅뱅이 나라사랑 랩송을 부르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이 많았다. 네티즌 박모씨는 “대한민국 연예계를 쥐락펴락하는 YG 수장이자 한 때 문화계의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내 성장기를 가로질러온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그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길 바랄 뿐이다.”라고 빅뱅을 키워 낸 양현석씨에게 당부했다.  다음은 ‘푸른 운하’ 가사의 전문이다.    Let‘s go yes girl we’re back again with 이명박  fresh collaboration 2009 it‘s bigbag    그댄 아시나요 있잖아요 예전이 너무 그리워요  삽을 놓고 땀을 훔쳐요 당신의 이름을 불러요  꼭 이렇게 내 취직자린 정해져야만 했는지  너만 생각하면 머리 아퍼 독하디 독한 술같어    술뿐이겠어 병이지 매일 앓아누워 몇번인지  내일이면 또 잠깐 잊었다가 또 모레 쯤이면 생각나겠지만  그래도 어떡해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매일 퇴임 카운터만 보는데 4년 후만 기다리는데    (*chorus)  난 네가 싫은데(u-hu I hate you sir)  뉴스에는 온통 너뿐(whole in the world)  귀를 틀어막아도 라디오에선 네 목소리만 들려오네    혹시 그대가 염치가 있다면 국민 얼굴 보기 두렵다면  sir 운하 생각 하덜덜덜 마 너만봄 열이 펄펄펄 나    양파 같은 그대 얼굴 저 많은 오핼 닮아 더 뻔뻔해지는 걸    Oh baby baby 다 지나간 시간 땀흘리며 한 삽질 잊지 않을게요  만약 4년이 지나 투푯날이 되면 투표장에 달려갈게요    (*repeat)    아름다웠던 747곡선 이젠 볼 순 없겠지만  상관없어 그저 환율만 어떻게 유지해주오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Let’s go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sing a together  Come on    물가 뜨고 월급 지네 내통장은 메말랐네  환율 뜨고 주가 지네 떡락 속에 나 또한 무뎌지네    물가 뜨고 월급 지네 내통장은 메말랐네  환율 뜨고 주가 지네 떡락 속에 나 또한 무뎌지네    (*repeatx2)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Let‘s go  아 아 아 아 아 아 아아앍  Now Who ? The BIG - BAG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모닝 브리핑] 청와대 ‘힘내라 대한민국’ 랩송 제작 추진

    청와대가 올해 3·1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나라사랑 캠페인’의 일환으로 랩송을 제작할 계획인 것으로 15일 알려졌다.청와대는 전문가에 의뢰해 일명 ‘힘내라! 대한민국’ 등의 랩송을 제작한 뒤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연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백범 김구 선생, 매헌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랩송과 연계해 홍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대통령이 된 통나무집 소년 링컨(러셀 프리드먼 지음, 손정숙 옮김, 비룡소 펴냄) 미국에 링컨 대통령이 없었다면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링컨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던 성경에 한 손을 올리고 취임선서한 것은 노예해방을 이뤄낸 링컨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짙게 깔려있다. 12일은 링컨 탄생 200주년. 가난한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노예해방을 통해 분열 위기에 있는 나라를 통합해낸 위대한 대통령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논픽션 청소년 소설의 대가로 평범한 위인전에 다양한 취재와 사진자료로 생생함을 보탰다. 1만 1000원. ●지도는 언제나 말을 해(김희경 글·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논장 펴냄) 알쏭달쏭 퍼즐처럼 보이는 1800년전 로마인들이 만든 지도가 하는 말. “우리 인생도 1200 조각의 퍼즐이 아닐까?” 16세기 네덜란드 사람 오르텔리우스가 그린 일본지도의 당돌한 선언. “코레아는 섬일지도 몰라. 그까짓 것 대충 그리지, 뭐.” 봐도 봐도 헷갈리는 고대 지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도 속에 담긴 철학, 역사가 보인다. 이 책은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한국 작가와 폴란드 그림작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다른 나라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 시각이 바탕이 된 핵심을 뚫는 문장이 각 지도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끝에 각 지도에 대한 보충 설명과 함께 원본 지도도 실어 다양한 정보도 주고 있다. 1만 3000원.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김혜리 글·그림, 사계절 펴냄) 왜 절에는 뱃속이 텅 빈 나무로 된 커다란 물고기가 달려 있을까. 왜 스님들은 아침저녁으로 물고기의 배를 두드릴까. 불교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목어’에 관한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그림책. 작가는 나무 물고기의 탄생 배경과 쓰임새를 불교 가르침에 맞게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주인공인 동자승 ‘멋대로’의 이야기는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으나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세상살이의 교훈도 준다. 고무 판화로 제작된 그림은 인물의 표정과 상황 묘사가 생생해 읽는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98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9) 서울 북악산 세검정~백사실 계곡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9) 서울 북악산 세검정~백사실 계곡

    북악산 북서쪽 창의문(자하문) 일대의 부암동은 서울의 오지마을이다. 그동안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던 덕에 시골 같은 풍경과 깨끗한 자연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 ‘도심 속 비밀정원’으로 알려진 골짜기가 숨어 있는데, 그곳이 백사실 계곡이다. 최근에는 청정지역에 서식하는 도롱뇽과 맹꽁이 등이 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이들의 자연탐험교실로도 각광받고 있다. 본래 이름은 부암동 뒷골이고, 예로부터 능금나무가 많아 능금나무골이라 불렀다. 백사실 계곡은 사계절 좋지만 특히 겨울철에는 무주공산에 들어온 듯한 깊은 고요와 적막함을 만날 수 있다. 탐방 코스는 세검정에서 출발해 현통사를 거쳐 백사실 계곡을 거슬러 올라 부암동으로 나오는 길이 걷기에 좋다. 세검정(洗劒亭)은 부암동과 홍지동, 평창동 등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사용되지만 본래는 정자 이름이다. 일찍이 연산군이 수각(水閣)·탕춘대(蕩春臺) 등과 함께 이 정자를 지어 흥청망청 놀았고 이후에는 시인, 묵객 등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의 거사 동지인 이귀·김류 등이 광해군 폐위 문제를 의논하고 칼을 씻은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골 풍경… 깨끗한 자연 그대로 세검정 앞의 세검교에서 우회전하면 길은 홍제천을 따라 이어진다. 세검정성당을 지나면 앞쪽으로 자하슈퍼가 보이고 그 뒤로 작은 야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산 속에 백사실 계곡이 숨어 있다. 자하슈퍼를 지나면 거대한 부처바위(佛岩)가 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을 주민들이 꺼내 세워둔 것이다. 부처바위 뒤로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작은 폭포가 나온다. 백사실 계곡의 물이 이리로 흘러온 것이다. 여기서 길이 끊긴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계곡을 건너 골목길로 이어진다. 이리저리 꺾어지는 골목을 따라 오르면 불쑥 현통사라는 절이 나타난다. 현통사는 좁은 터에 건물들이 바투 붙어 있는 고요한 절집이다. 대웅전 처마 밑의 풍경소리가 맑게 울린다. 현통사 입구의 오른쪽 계곡을 따르면 본격적으로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진다. 솔숲에서 맑고 청량한 공기가 몰려온다. 인적없는 이곳이 정말 서울 땅인지 의심스럽다. 이어 아름드리 고목들이 자리잡은 널찍한 터가 나오고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정자 주춧돌과 연못터에 이른다. 이곳이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무계정사 아래엔 현진건 선생 집터 간밤에 내린 눈이 살짝 덮은 별장터는 고요하고 적막하기 그지없다. 마침 정적을 뚫고 걸어오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두 손에 검정비닐 봉지를 들고 배낭을 멨다. “시장 다녀오시나 봐요?” “네, 사진 찍으러 오셨어요?” 할머니는 20년 넘게 이곳에 살았다. 시장이 멀고 편의시설이 거의 없어 불편하지만 조용하고 공기가 맑아 좋다고 했다. “그럼 구경 잘하세요.” 할머니는 자상하게 인사를 하더니 산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별장터에서 할머니처럼 계곡을 따라 오르면 백사실마을이 나오고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면 북악스카이웨이로 이어진다. 부암동으로 가려면 오른쪽 길을 잡아야 한다.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르면 ‘백석동천’이라 써진 커다란 바위를 만나게 된다. 백석은 흰 돌이 많아 붙여진 것이고 동천은 ‘신선이 노닐 정도로 아름다운 곳’을 일컫는다. 이곳을 지나면 말쑥한 건물들과 포장도로가 나오면서 어리둥절하다. 산길이 끝난 것이다. 잠시 신선이 사는 세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지금부터는 골목길이다. 포장도로를 따르면 응선사를 지나 작은 언덕을 넘는다.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북한산 비봉능선이 장쾌하다. 이어 TV드라마 촬영지인 산모퉁이 카페에서 알봉처럼 솟은 북악산이 잘 보이고,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창의문에 이른다. 부암동주민센터 뒤편에는 안평대군이 지었다는 무계정사(武溪精舍) 터가 있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보고 그것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무계정사 바로 아래엔 ‘운수 좋은 날’로 잘 알려진 소설가 빙허 현진건 선생의 집터가 있다. 세검정에서 시작해 백사실 계곡을 거슬러 올라 부암동주민센터까지 넉넉하게 2시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 교통과 맛집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로 나와 1711, 1020, 0212번 버스를 타고 세검정에서 내린다. 걷기가 끝나는 부암동 창의문 일대는 환기미술관이 있고, 맛집과 분위기 있는 카페가 넘쳐난다. 클럽 에스프레소(02-764-8719)는 북악산을 찾는 등산객들도 즐겨 쉬어가는 곳. 자하손만두 (02-310-5024)의 만둣국은 조미료는 전혀 넣지 않아 맛이 담백하다.
  • 남도 무지개 다리를 찾아서

    남도 무지개 다리를 찾아서

    봄이 가장 먼저 훈기를 풀어 놓는 곳, 남도.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에도, 들너머 고향 논밭에도 봄기운이 찾아들고 있다. 유행가 노랫말처럼 말이다. 남도를 여행하다 보면 유난히 자주 홍예교(虹霓橋), 즉 무지개다리와 만난다. 우아하고 세련된 자태로, 또 때론 앙증맞은 모습으로 반기는데 금방이라도 봄의 전령이 교각을 타고 내려올 것만 같다. 남도를 대표하는 무지개다리는 전남 순천시 조계산의 양쪽 끝자락에 있다. 각각 조계종과 태고종의 대가람인 송광사와 선암사 들머리에서 오는 봄을 맞고 있다. 남도에 가거들랑 한번쯤 무지개다리를 찾아 자분자분 걸어 오는 봄을 맞아 보시라. 상사호 옥빛 물결을 훔쳐보며 선암사 입구로 들어서면 승선교(昇仙橋)가 가장 먼저 이방인을 반긴다. 우리나라의 무지개다리 중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는 다리다. 건축에 대단한 조예가 없더라도 교각의 우아한 휨새며 하늘로 날아갈 듯한 자태에 금방 눈을 빼앗겨 버린다. 위쪽의 누각 강선루와 어우러지는 장면은 산수화에 다름아니다. 이처럼 돌다리 하나와 누각 하나만으로 절경을 펼쳐 놓은 선인들의 혜안이 놀랍다. 선암사 입구의 무지개다리는 두 개다. 그 중 보물 400호로 지정된 큰 다리가 승선교다. 안내판에 따르면 건립연대는 17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길이 14m, 높이는 7m. 다리 가운데 용머리 조각이 이채롭다. 절집 관계자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라는데,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세계로 접어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봄 선암사 가을 송광사라 했던가. 선암사는 봄꽃이 필 때면 절집 전체가 하나의 꽃으로 보일 만큼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 중심에 ‘선암매’라 불리는 600년 묵은 매화가 있다. 특별히 ‘볼 일’이 없더라도 해우소는 잊지 말고 들렀다 가자. 바닥이 무서울 정도로 크고 깊다. 긴 알 모양의 연못 삼인당과 편백나무 우거진 산책로는 시원한 풍경을 내준다. 선암사에서 500m쯤 올라가면 야생화 미로원 등 생태체험장이 조성돼 있다. 송광사까지는 산길로 6.5㎞ 정도 떨어져 있다. 두 절집을 잇는 종주산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선암사가 시골 처녀처럼 담담하고 순박한 자태를 하고 있다면 송광사는 도시 처녀의 화려하고 세련된 자태를 연상케 한다. 선암사와 더불어 조계산의 양대 가람을 이루는 송광사에도 능허교라는 빼어난 무지개다리가 있다. 선암사 승선교에 견줘 크기는 작지만 우화각과 육감정, 침계루 등 주변 전각들과 어우러진 화려한 자태가 일품이다. 능허교 아래에도 용머리가 조각돼 있는데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에 엽전 세 냥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절집 관계자에게 설명을 구하니 조선시대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능허교 불사를 벌였는데 그때 쓰고 남은 돈이란다. 시줏돈을 허투루 쓰는 호용죄(互用罪)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모든 것을 비운 채 허공으로 향하는 능허교(虛橋) 위에 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우화각(羽化閣)을 날개 삼으니 가벼워진 몸이 봄기운에 실려 날아갈 듯하다. 원래 송광사로 길을 여는 것은 절집 초입의 청량각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보수 공사 중이어서 완전히 해체돼 있다. 청량각을 이고 서있었던 무지개다리도 역시 공사 중이다. 대리석을 사용하는 바람에 세월이 더께로 쌓여 있던 예전 자태와는 사뭇 다르다. 송광사는 800년을 함께 살아온 두 그루의 곱향나무 ‘쌍향수’와 쌀 7가마로 지은 4000명 분량의 밥을 한 번에 담을 수 있다는 ‘비사리구시’, 어느 순서로든 포개지는 신기한 그릇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세 가지 보물로 유명하다. 이 중 쌍향수를 보려면 천자암까지 올라야 한다. 잰걸음으로 1시간30분쯤 걸린다. 국보 4점, 보물 11점 등 송광사 경내 수많은 보물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남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들이 많다. 가장 높고 긴 것으로는 여수 흥국사 홍교가 꼽힌다. 길이 11.8m, 높이 5.5m. 조선 인조 17년(1639년)에 계륵대사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잘 다듬은 자대석을 각지게 짜올려 우아한 반원을 이루고 있다. 보성군 벌교읍 홍교는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원래는 뗏목다리가 있었던 곳. 벌교(筏橋)란 이름도 뗏목다리에서 비롯됐다. 썰물 때는 다리 밑바닥이 거의 드러나고, 밀물 때는 대부분이 물속에 잠긴다. 이 다리를 위해 주민들이 60년에 한 번씩 갑자년마다 회갑잔치를 해주고 있다고 한다. 절반 가까이 보수공사를 벌인 탓에 옛멋을 많이 잃었다. 보물 제304호. 진도군 임회면 남도석성 앞의 쌍홍교와 단홍교는 질박한 아름다움이 일품이다. 편마암 판석을 겹쳐 세운 것으로 전국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양식을 하고 있다. 구례군 천은사 홍교는 콘크리트로 지어져 자체로는 볼품이 없지만, 다리 위 누각 수홍루와 어우러진 풍경이 빼어나다. 앞에 큰 저수지가 있어 운치를 더한다. 유난히 심한 봄가뭄 탓에 바닥을 드러내곤 있지만 각종 드라마나 CF 등의 단골 촬영지로 이용된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선암사(754-5247)는 호남고속도로 승주나들목에서 우회전해 857번 지방도를 따라간다. 송광사(755-0108)는 주암나들목에서 좌회전해 벌교 방면 27번 국도를 타고 간다. ▲맛집: 조계산 굴목재 아래 보리밥집은 순천 지역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올 만큼 유명한 맛집. 장작불로 지은 보리밥에 산나물 듬뿍 넣고 멸치젓갈과 함께 비벼먹는 맛이 일품이다. 5000원. 이순신 장군이 낙안읍성을 방문했을 때 백성들이 대접했다는 팔진미는 낙안의 별미다. 읍성 주변 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1인분 1만원선. ▲잘 곳: 송광사 아래 민박집이 1개, 승주읍내에 모텔이 2개 있다. 깔끔한 숙박업소가 많은 순천시에서 묵는 것도 좋겠다. ▲주변 명소: 선암사와 송광사는 각각 상사호와 주암호를 품고 있다. 봄기운을 느끼며 드라이브하기 좋다. 금전산 자락의 자그마한 절집 금둔사는 해마다 가장 먼저 매화꽃 소식을 전하는 곳이다. 납월매(月梅)라고도 불리는 홍매화가 지난주 꽃을 틔우기 시작했다. 낙안읍성에서 선암사 방향으로 가다 만날 수 있다. 글 사진 순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5) 리투아니아 출신 계룡산 무상사 입승 보행 스님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5) 리투아니아 출신 계룡산 무상사 입승 보행 스님

    겨울철 스님들의 집단·집중 수행인 동안거(冬安居)의 끝, 해제(解制)를 사흘 앞둔 6일 오후 충남 계룡시 엄사면 계룡산 자락의 국제선원 무상사. 몸과 마음을 챙겨 ‘참나’를 찾기 위한 안거를 나기 위해 15개국에서 찾아든 60여명의 스님, 재가 불자들이 3개월의 수행 정진을 마무리하는 정중동의 엄한 분위기에 몸,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안거철엔 절대 외부인을 사찰 경내에 들이지 않는다.”는 주지 무심(미국) 스님의 물러서지 않는 완강한 거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찾아간 수행공간. 3개월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묵언 수행의 끝자락에 선 수행자들이 해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주지 스님에게 간곡한 청을 들여 수행자들의 기강을 책임진 입승(立繩), 보행(48·본명 케스투티스 마르시우리나·리투아니아)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무상사는 외국인 스님들이 연중 수행을 하는, 국내 몇 안 되는 국제선원. 특히 안거철이면 ‘한국에서 집중수행을 하며 한 철을 살겠다.’는 외국의 스님들이 대거 몰리지만 이번 동안거엔 지난해보다 20여명이 줄었다는 주지 스님의 귀띔. 스님들이 모여 사는 이곳도 세계 경제불황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모두 자비를 들여 찾아온 무상사에서 숨막히는 3개월의 묵언 정진을 관통한 수행자들의 마지막 단도리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보행 스님이 굳은 얼굴로 기자 앞에 선다. 참선 때마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를 치며 선방 수행자들의 기강을 잡아온 입승 소임 때문일까. 스님이 좀처럼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오늘부터는 죽비를 치지 않고 묵언을 풀어 말을 할 수 있다.”며 불청객을 맞지만 외계인에 대한 경계가 쉽게 풀리지 않는 눈치다. 화두를 들어 참구하는 수행자의 몸, 마음을 다잡는 입승 스님. 입승 스님은 죽비를 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거듭된 다짐일까, 아니면 도반들의 엄한 공부 챙김일까. ●묵언정진… 외국인 수행자들 기강 책임져 “선방의 마음 하나 몸 하나는 모두 말로 풀 수 없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곳 무상사의 가풍인 묵언 정진은 말로 인한 업을 짓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철저히 매달리도록 독려하는 방편이지요.” 스님이 매달려 참구하는 화두가 궁금해졌다.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이전,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찾기 위한 ‘혹독한 싸움’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 뭐꼬.” 본래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나는 무엇인가. 외마디로 객에게 던져주는 평범한 화두에 실린 삶의 무게가 심상치 않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지금 리투아니아 공화국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 출신. 사회주의 소련 체제의 붕괴와 조국 독립의 격동기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고통과 혼돈에서 스님은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그 무엇’에 심한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때는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소련군 생활이 싫어 택한 게 고향 카우나스의 폴리테크닉 대학이다. 대학에서 전기공학과 공부를 마치면 군 대체복무가 수월하다는 생각에 원래 되고 싶은 연극 배우의 꿈을 잠시 미룬 채 진학했지만 결국 대학 졸업 후 2년간 소련 육군 병 생활을 해야 했다. 혐오하던 소련군 생활을 마친 뒤 결국 ‘테아트르 앤드 아츠 아카데미’에 들어가 6년간 공부 끝에 작은 극단까지 만들어 연극을 하며 살았다. 오랜 배회 끝에 마침내 올라선 연극 무대에서 배우 겸 연출자로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성취감에 마냥 행복했단다. 고등학교 시절 판토마임으로 이름난 선생님을 보고 연극배우로 살겠다는 절실한 꿈을 키웠던 보행 스님. 그 무대에서 막 빛을 보기 시작할 순간 인생 향로를 틀어 지금 무상사에서 죽비를 잡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그는 일찍부터 이른바 ‘무아(無我) 경계’에 눈떴던 것 같다. 고교 졸업후 러시아어로 된 불교 서적들을 읽던 중 ‘네가 너를 세상에 드러내 세우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결코 네 진면목이 아니다.’라는 말에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됐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그토록 하고 싶던 연극을 하면서도 줄곧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지만 ‘내 자신이 완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회의가 계속됐다. 그러던 중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건너온 폴란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조금씩 머릿속의 안개가 걷혀가는 듯했다. 결국 하던 극단 일을 접고 빈 집을 얻어 친구들과 함께 고향 카우나스에 고봉사라는 사찰을 마련했다. 지금도 고봉사엔 매일 법회 때 30여명의 리투아니아 신도들이 모인다고 한다. 고봉사에서 생활하다 유럽 한국불교 포교의 핵심인 폴란드 바르사뱌의 도암사로 건너가 매년 결제에 참가하는 등 행자생활을 했다. 그러다 만난 게 숭산 스님과 지금 무상사의 주지인 무심 스님. 고봉사 생활중 읽은 숭산 스님의 책 ‘부처님께 재를 털면’을 보며 숭산 스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하니 도암사로 찾아온 숭산 스님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을까. “‘부처님께 재를 털면’은 미혹에 빠진 일반인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방편을 쉽게 쓴 책이었지요. 미궁에서 길을 찾던 저에겐 벽력처럼 쳐들어온 이정표였던 셈이지요.” 숭산의 법문에 빠져있던 중 결국 무심 스님의 “한국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출가를 결심했다. 생활이 어려워 비행기 표 사기도 힘들었던 시절, 한동안 접었던 극단 일을 틈틈이 해 모은 돈으로 한국에 온 게 1999년. 이후 화계사 국제선원에 8년간 몸담아 행자부터 살림살이를 맡는 원주, 입승 등 온갖 소임을 두루두루 거쳤다고 한다.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사미계를 먼저 받았지만 부산 범어사에서 조계종 사미계를 다시 받고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컴버랜드시 프로비던스 선센터에서 비구계를 받아 지금은 한국 조계종의 공식 비구계 수지를 기다리는 중. “언제쯤 한국의 비구계를 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작은 웃음만 보여 준다. “비구계 받는 것이 전부인가요. 끊임없이 공부할 따름이지요. 1000년 이상의 선 불교 역사를 가진 한국 사찰에서 배우고 수행하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일입니까.” ●한국 온 지 10여년… 온갖 소임 두루 거쳐 이곳 무상사에 옮겨 산 지는 1년 남짓. 절집 살이를 놓고 보면 미국인 조실 대봉 스님과 주지 무심 스님에 이어 세 번째 높은 소임을 맡고 있다. 대봉 스님과 무심 스님은 대하기 아주 어려운 스님들.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서 깍듯한 예의가 묻어난다.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염화미소’(拈華微笑). 스님은 염화미소 화두를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한단다.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이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 화두에 스님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염화미소의 사연을 처음 듣는 순간 마치 집을 떠나 오랜 세월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삶은 인연짓기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순간의 만남도 오랜 인연의 공덕 때문이겠지요.” ‘온전하지 못한 내가 남에게 무엇을 내세워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에 절실한 꿈이던 인기 연극배우의 허물을 벗고 인생 향로를 틀었던 스님. ‘이 뭐꼬’ 화두 참구는 언제까지 할 예정이냐는 기자의 우문에 “오직 모를 뿐, 그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순간 순간 나를 버려가고 있을 뿐”이라는 말만 돌려준 채 자리를 뜬다. 글ㆍ사진 계룡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보행 스님은 ▲1961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출생 ▲1983년 카우나스 폴리테크닉 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1989년 빌뉴스 테아트르 앤드 아츠 아카테미 졸업 ▲1990~1995년 카우나스에 리투아니아인들과 불교사찰 고봉사 창건, 수행 ▲1995~1997년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선원 도암사서 수행 ▲1997년 숭산 스님 설법에 감화, 출가결심 ▲1999년 한국입국 ▲1999~2007년 화계사 국제선원서 수행 ▲2001년 화계사 국제선원서 사미계 수지 ▲2003년 부산 범어사서 조계종 공식 사미계 수지 ▲200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선센터서 비구계 수지 ▲2007년말~ 계룡산 무상사 입승
  • 「미스·투자개발공사」양지혜(楊智惠)양-5분 데이트(182)

    「미스·투자개발공사」양지혜(楊智惠)양-5분 데이트(182)

    『청소하고 바둑두는 것이 취미예요. 바둑은 급수보다도 둘 때의 변화무쌍한 재미에 끌려 바둑책을 봐 가며 열심히 두곤 하죠』 한국 투자개발공사 총재실 비서생활 3년째인 양지혜양의 말. 46년 10월 1일생.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고향이고 그곳 상업학교를 나왔다. 산업은행에도 잠깐 근무한 적이 있는 양양은 바다가 보이고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는 부용산의 아름답고 포근한「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며 고향을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 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유는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서였단다. 가장 관심있는「액세서리」는「벨트」인데도 아직 쇠줄로 된 것, 헝겊, 가죽으로 된 것, 하나씩 밖에는 없는 극성맞게 옷에 관심을 보이는 아가씨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다가 불교신자가 됐는데 요즘도 가끔 봉은사엘 들른다. 안정성 있는 직업, 신용할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와 결혼하겠다는 안전 제일주의의 아가씨이다. 원(媛) [선데이서울 72년 4월 30일호 제5권 18호 통권 제 186호]
  • [강주리기자의 고시 Talk] 고시생들의 ‘잔인한 2월’

    ‘2월이 빨리 갔으면….’ 고시생들에게 ‘잔인한 달’은 4월이 아닌, 2월이다. 인생의 행로를 결정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시험들이 몰려 있어서다. 18일 사법시험을 시작으로, 21일 행정·외무고시, 22일 변리사시험, 28일 공인회계사시험 등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당연히 초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고, 몸에 ‘이상 신호’도 울린다. 하루 10시간 이상 책과 씨름하는 고시생들은 두통, 변비, 소화불량, 목근육통, 허리디스크 등 한마디로 온몸이 ‘종합병원’이다. 하지만 1분, 1초가 아쉬운 고시생들에게 운동은 사치나 다름없다는 분위기다. 행시생 이모(26)씨는 “변비와 소화불량이 심해서 약을 자주 복용한다.”면서 “운동도 하고 싶지만 2월에는 시험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며 답답해했다. T헬스장 관계자도 “시험이 몰린 2월에는 이용객이 다른 달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때문에 요즈음 고시 관련 인터넷카페에는 헬스클럽 이용권 등을 팔겠다는 고시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수험생은 “운동할 여유가 없다.”면서 “2개월 넘게 남았는데 8만원에 양도하겠다.”며 급매물로 내놓았다. 통상 3개월 이용권이 17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50% 이상 헐값에 파는 셈. 또 다른 사람에게 이용권을 넘길 때는 1만원의 위약금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 이용권을 팔겠다는 수험생들이 수두룩하다. 반면, 한의원이나 병원들은 ‘고시생 환자’들로 북적인다. 김지숙 인재한의원 원장은 “빵·커피·야식 등 잘못된 식습관과 스트레스, 자극적인 식당음식으로 인해 위경련 등 탈이 날 수 있다.”면서 “밥을 제때 챙겨먹고 무리한 근력운동보다 요가, 절 운동 등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자세를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Let’s Go] 동해안 품은 양양 암자 3곳

    ‘조고각하(照顧脚下). 이 길을 걷는 자는 네 발밑을 살피라’. 강원도 양양의 바닷가 절집 홍련암 들어가는 절벽길 팻말에 써 있는 글귀다. 단순히 산길이 험하니 조심해서 건너오라는 충고에 그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순간순간 스스로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뒤돌아보라는 가르침으로 쓴다. 그래서 법당이나 승방의 댓돌 위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7번국도를 따라 강원도 양양 땅을 주유하다 보면 이처럼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암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하나같이 관음신앙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불경에서 관음보살이 흰꽃이 만발한 바닷가의 산에 상주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바로 그렇게 돌아서면 바다, 돌아서면 절집이다. 귀와 눈 그리고 폐부를 씻기에 맞춤한 곳. 입춘도 지났고 봄은 이미 멀잖은 곳에 와 있다. 바닷바람이 차긴 하나 한겨울의 매서운 맛은 사라졌다. 새봄을 준비하는 당신, 이 바람에 겨우내 묵은 기운을 훌훌 털어내시라. 대가람 낙산사의 산내 암자인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에서도 북쪽으로 300m 정도 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암자 옆자락으로 철책선이 필요할 정도로 바다와 맞닿아 있다. 남해 금산의 보리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더불어 3대 관음도량이라 일컬어진다. 여기에 여수 향일암을 더하는 이도 있는데, 숫자야 어찌 됐건 바닷가 절벽을 주춧돌 삼아 선 홍련암의 자태가 더없이 신비하다. 홍련암은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낙산사 창건에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려 했던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하자, 바다 위에서 관음보살이 탄 붉은 연꽃이 솟아났다고 해서 홍련암이라 이름 지어졌다. 바다에 접해 있던 덕에 2005년 낙산사 화재 당시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앞이 아닌 옆에 달려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절벽 위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언뜻 봐서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것 같지만, 실은 파도가 들이쳤다가 나오는 바닷가의 자연동굴 위에 서 있다. 법당 마루에는 8㎝ 크기의 사각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으로 바다와 절벽 그리고 해조음을 보고 들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창건 이래 수많은 보수공사를 벌이면서도 이 구멍만은 손대지 않았다고 절집 관계자는 전했다. 양양8경의 하나인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에 이르는 구간은 내 나라 안에서 절경으로 손꼽히는 곳.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고 상쾌한 바닷가 풍경을 펼쳐 보인다. 특히 의상대는 일출 감상 명소로 새해 첫날이면 5000명의 해맞이 인파가 몰려들곤 한다. 겨울철만 되면 임연수어 낚시터로 유명세를 떨치는 동산항과 인구항 사이에 죽도라는 섬이 있다. 둘레 1㎞, 높이 54m로 섬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크기다. 예전에는 뭍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잇닿아 있다. 이름대로 장죽(대지팡이)으로 쓰이는 대나무가 사시사철 울창하다. 죽도암(竹島庵)은 섬 뒤편에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있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절집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려운 곳에 덩그러니 자리잡고 있다. 주지 도경 스님과 비구니 우성 스님 그리고 젖먹이 때부터 키웠다는 동자 셋이 가족처럼 어울려 산다. 죽도암 옆으로는 죽도해수욕장이 넓게 펼쳐져 있다. 세찬 바람이 불 때면 파도가 멍석처럼 둘둘 말린 채 밀려오는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죽도암에 건물이라고는 관음전과 요사채뿐이다. 해수욕장에서 섬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요사채가 먼저 눈에 띈다. 관음전은 오른쪽 커다란 바위 위에 터를 잡았다. 요사채 앞마당은 곧바로 검푸른 바다. 간혹 큰바람 불 때면 요사채까지 파도가 들이친다. 건물 자체로야 대단할 것 없지만 앞마당만큼은 세상 어느 부호의 저택과 견줘도 부럽지 않을 크기와 경관을 가졌다. 관음전의 문을 열면 동해 만경창파가 법당 안을 가득 채운다. 파도소리, 갈매기 울음소리와 어우러진 청아한 독경소리는 외지인의 가슴을 청량하게 씻어낸다. 암자 주변 바닷가에 늘어선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은 풍취를 보태기에 모자람이 없다. 7번국도를 따라 주문진 방향으로 가다 남애 못미처 인구해수욕장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죽도암이 나온다. 표지판이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주의해서 찾아가야 한다. 죽도암 주변 갯바위에 올라 남쪽을 향해 서면 거대한 불입상이 눈에 띈다. 휴휴암(休休庵)에서 조성 중인 관음보살상으로, 낙산사 해수관음상에 견줄 만한 크기다. 휴휴암은 죽도암에서 7번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쯤 내려가다 만날 수 있다. 온갖 번민일랑 바다에 떨궈 버리고, 쉬고 또 쉬어 가라는 뜻에서 절집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1997년 묘적전이라는 법당 하나로 창건된 휴휴암은 바닷가에 누워 있는 듯한 와불 형상의 바위가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면서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후 불사가 크게 일어 비룡관음전과 요사채 등의 건물이 들어섰고, 이젠 제법 번듯한 가람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더불어 고즈넉했던 풍경도 요족하고 번다한 풍경으로 바뀌었으니, 여행자들이 예전처럼 편히 숨 한자락 내려놓고 쉬어 가기란 쉽지 않게 됐다. 절벽 위에 세워진 ‘비룡관음전’을 내려서면 커다란 너럭바위에 닿는다. 연화법당이라 불리는 곳으로 휴휴암의 가장 큰 볼거리다. 너럭바위 20m 앞 오른쪽 해변에 있는 긴 바위가 해수관음보살이 감로수병을 들고 연꽃 위에 누워 있는 형상이란 게 이 절집 사람들의 설명이다. 너럭바위 주변의 와불, 발가락 바위 등도 이채롭다. 저마다 사연을 감추고 있는 바위들이어서 흥미를 더한다. 묘적전 옆의 동굴 법당에서는 대다라니경에 등장하는 85보살상과 만날 수 있다. 범종각 오른쪽에 세워지고 있는 16m짜리 관음보살상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 경기도 양평에서 44번국도를 타고 강원도 홍천, 인제 등을 지나 미시령과 한계령 갈림길에서 한계령 방향을 따른다. 한계령을 내려서면 양양이다. 양양 시내에서 속초방향으로 좌회전하면 낙산사, 우회전하면 죽도암, 휴휴암으로 향한다. 영동고속도로→현남 나들목→속초방향 7번국도→양양 등 역순으로 갈 수도 있다. ▲맛집 : 양양군 손양면 수산리 수산항 수산횟집(671-1580)은 사골국물로 육수를 낸 물회(1만원)가 일품이다. 휴휴암 인근 갑산메밀국수(671-1833)는 쫄깃한 막국수가 별미. 6000원. 서면 송천리 떡마을(673-7020)에선 장작불로 떡쌀을 삶고 떡메로 쳐 만드는 전통 떡을 맛볼 수 있다. ▲잘 곳 : 쏠비치 호텔&리조트(1588-4888)는 비수기에도 투숙객들이 몰리는 곳. 오산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아쿠아월드’에서 동해의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인근 관광지 : 일출 명소로 유명한 하조대는 반드시 찾아야 한다. 기암괴석 사이로 솟아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다.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히는 남애항도 찾을 만하다. 글ㆍ사진 양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종교플러스]

    ●템플스테이 운영사찰 신청접수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은 2009년도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을 20일까지 모집한다.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되면 불교문화사업단으로부터 시설 및 운영자 교육지원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을 원하는 사찰은 2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갖추고, 프로그램 운영자를 확보해야 한다. 희망 사찰은 불교문화사업단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사찰 홍보물, 조감도 및 가람 배치도, 시설 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된다. 현재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은 87곳이 지정돼 있다. ●겨울생명평화학교 13일 개최 생명평화결사는 13일부터 15일까지 전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2009 겨울생명평화학교’를 개최한다. 도법 스님과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지난 5년간의 순례를 통해 제시한 화두인 ‘단순 소박한 삶을 위하여’가 주제.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 명상, 숲길걷기, 공동체 대화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도법 스님의 ‘단순 소박한 삶과 마을운동’, 황대권 공동체위원장의 ‘아쉬람, 공동체 마을 만들기’ 강연도 있다. ●내일 용산참사 희생자 시국법회 시국법회추진위원회(공동대표 수경스님 외)는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 5일 오후 6시30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용산 참사 희생자를 위한 시국법회’를 연다. 법회는 수경 스님의 여는 말을 시작으로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의 추모사와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의 법어 순으로 진행된다.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의식과 함께 108배 참회정진도 있다. 시국법회에는 스님 100여명을 비롯해 유족대표, 신도 5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회가 끝난 뒤 조계사~청계광장까지 추모행진도 갖는다. ●고 탁명환 소장 15주기 추모식 이단사이비연구의 선구자인 고 탁명환 소장의 15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월간 현대종교 주최로 열린다. 추모식은 월간 현대종교 탁지원 발행인의 사회로 진행되며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 장기기증운동본부장 박진탁 목사가 각각 설교와 추모사를 한다. 이날 추모식은 고 탁 소장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연구 사료를 엮은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탁지일 저) 출판기념회도 겸한다.
  • [포스트 김정일시대 어디로] 부자세습+집단지도 ‘과도체제’ 부상

    [포스트 김정일시대 어디로] 부자세습+집단지도 ‘과도체제’ 부상

    “‘포스트 김정일 시대’ 준비, 가속화됐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해 9월 건강 이상설 이후 첫 외국손님 접견이자 대외적으로 건강한 모습을 처음으로 내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 67세인 김 위원장의 뒤를 이을 후계자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숙제로서 부담을 더하고 있다. 김정일의 절대권력을 고려할 때 그의 공백과 후계구도는 북한의 향후 진로는 물론 한반도,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3월8일 국회격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6년만에 예정돼 있어 권력 엘리트들의 교체 등 후계구도를 위한 세대교체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도 지난해 말 펴낸 ‘2008년도 정세 평가와 2009년도 전망’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중폭의 세대교체를 단행하는 등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기반을 조성할 것으로 분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모두 후계자 선정 등 김정일 이후의 후계체제 정비를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지만 김정일이 당장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공식적으로 드러내놓고 지명하거나 공표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우선 선호하는 후계자를 위한 인적 물갈이 등 조직 정비에 나서면서 후계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노동당의 움직임도 지적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실장은 2일 “북한의 핵심 권력기관인 조선노동당에서 후계자 영도체제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이는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 조직 지도부가 김경옥 부부장을 전국 시·도 당 지부를 관할하는 제1부부장에 임명, 전국적인 조직망 강화에 박차를 가한 것도 후계 구도 수립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 교수는 “북한은 이미 ‘인민 추대, 수령의 차세대, 수령 생존시 결정’이란 후계자 선정 기준을 갖고 있다.”면서 “후계자가 정통성을 갖기 위해서, 주요 지위에서 일정 기간 역할과 성과를 보여주는 후계 학습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정일도 1973년부터 후계 수업을 받아왔지만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1980년 당 조직 지도부장이 되면서였다. 현재 김정일의 세 아들은 모두 김정일과 같은 ‘후계 수업’을 거치지 않아 권력 기반이 약하다. 때문에 당과 군의 연합 성격을 띠는 집단지도체제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는다. 우뚝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김정일을 정점으로 한 집권세력들은 기존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연착륙하면서 점진적인 권력 진화를 시도하려 할 것이란 주장이다. ‘포스트 김정일’과 관련,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부자세습 가능성 여부다. 북한은 건국 이래 수령제 통치체제를 다져왔고 봉건적인 북한의 정치문화와 스탈린주의에 가까운 사회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김일성, 김정일에 이은 3대 세습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수령에게 절대적인 충신과 효자가 되라.’는 가르침이 뿌리박혀 있는 북한 상황에서 부자세습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세 아들이 과거 김정일과 같은 치밀한 세습 준비를 받지 못한 데다 누구도 두드러진 역할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정일의 지위를 누가 잇더라도 최소한 과도기적으로는 군과 당의 실력자들로 구성된 집단지도체제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란 점에서 부자세습과 집단지도체제의 결합은 유력한 시나리오로 설득력을 갖는다. 양무진 교수는 “당 중심 국가인 북한에서 선군 정치로 군부가 득세했다 하더라도 후계 체제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당을 중심으로 한 논의와 공론화가 필수적”이라면서 “군부 실력자들은 과도기적인 권력이양기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상징적, 실질적인 후계는 당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절대권력의 김정일이 누구를 낙점하든 일단은 그가 대권을 이어받게 될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적다. 다만 뿌리를 내리고 권력을 장악할지 아니면 잠시 권좌에 올랐다가 밀려날지는 후계자 자신과 둘레 인물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毛澤東)은 후계자로 화궈펑(華國鋒)을 내세웠지만 화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덩샤오핑(鄧小平) 에게 밀려나면서 과도기적인 인물로 그친 예도 있다. 당시 중국과 달리 북한에는 김정일 친위세력에 맞설 만한 파워 그룹이 없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사고] ‘신문의 날’ 표어·포스터 공모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는 제53회 신문의 날 및 신문주간을 맞아 신문의 날 표어 및 신문주간 포스터를 현상 공모합니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번 공모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공모부문 표어 / 포스터(일반부/학생부-초·중·고) ●응모기간 2009년 2월1일(일)~2월 28일(토) ●출품요령 출품규격을 준수해 공모신청서를 작성, 방문 또는 우편접수. 신청서는 한국신문협회 홈페이지(www.presskorea.or.kr)에서 다운받아 활용 ●출품작 수 및 규격 표어 2점, 포스터 2점 이내, 4절(39.4】54.5) ●제출 및 문의처 한국신문협회(100-745) 서울 중구 태평로 1가 25 프레스센터 13층 1302호 (전화 02-733-2251~2,팩스 02-720-3291) ※응모 소재 및 시상내역 등 기타 자세한 사항은 한국신문협회 홈페이지를 참조하 시기 바랍니다. 한국신문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
  • [시론] 정초에 보내는 위기극복 응원가/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시론] 정초에 보내는 위기극복 응원가/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연초에 필자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강의 현장에서, 인사차 들른 곳에서 각계각층 분들을 만났다. 그들과의 만남에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절망의 그림자가 생각보다 짙고 내면의 불안감이 짐작보다 크다는 사실이었다.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설파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여러 원천에서 ‘뿌리 깊은 희망’의 단초를 찾아내 열심히 희망을 전하고 있다. 필자는 감히 예언한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또 제일 모범적으로 극복한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응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적 시련으로 힘겨워하는 분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한다. “비바람이 지나면 반드시 무지개가 뜹니다! 힘내세요.” 낙심의 계절을 지내고 있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일화가 있다. 세계 제일의 경영자이자 부호였던 철강왕 카네기의 사무실 한쪽, 화장실 벽엔 볼품없는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다. 그저 커다란 나룻배에 노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인 이 작품을 그는 보물처럼 아꼈다고 한다. 나룻배 밑에 화가가 써 놓은 글귀 때문이었다. “반드시 밀물은 오리라. 그날 난 바다로 나아가리라.” 카네기는 춥고 배고팠던 청년 시절 이 그림을 만났다. 그림 속 글귀를 읽고 ‘밀물’이 밀려올 그날을 희망하며 기다렸다. 훗날 세계적 부호가 된 카네기는 자신에게 용기를 심어 준 나룻배 그림을 고가에 구입해 화장실 벽에 걸어 놓은 것이었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카네기처럼 반드시 밀물이 올 게다. 마음속에 커다란 희망을 품고 확신을 갖자. 바다로 나아갈 준비를 하자. 차제에 굳이 역경이 아니라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에라도 새삼스럽게 우리 삶을성찰하게 해 주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한다. 중국 고사에 ‘이소산금’(二疏散)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漢)나라 때 태자를 가르친 스승으로, 삼촌과 조카 사이인 소광(疏廣)과 소수(疏受)가 있었다. 태자가 훗날 황제가 됐을 때 엄청난 권력과 부를 갖게 될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소광이 소수에게 말했다. “만족할 줄 아는 이는 욕된 일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이는 위험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그만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자.” 소수는 흔쾌히 동의했다. 낙향한 두 사람은 황제가 내려준 황금을 팔아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해 매일 잔치를 베풀고 즐기는 데 썼다. 보다 못한 한 이웃이 그 돈으로 자손들을 위해 논밭을 사두라고 충고하자 소광은 이렇게 말했다. “이미 자손들이 열심히 가꾸면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정도의 땅이 있소. 거기에 재물을 더하면 게으름만 가르치게 될 것이오. 부자는 원래 사람들의 원망을 쉬이 사니, 자손들이 원망을 듣는 것을 원치 않는다오.” 이처럼 재물을 자신과 집안을 위해 쓰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썼다는 말에서 ‘두 소씨가 황금을 뿌리다.’라는 뜻의 ‘이소산금’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철학자들은 세상의 가치를 ‘목적가치’(행복·기쁨·평화 등)와 ‘수단가치’(목적가치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부귀·권세·명예 등)로 나눴다. 궁극적으로 가치 있는 것은 목적가치다. 따라서 우리가 목적가치를 향해 나아가더라도 수단가치에 매여 이미 누리고 있는 목적가치를 과소평가한다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희망을 다시 한번 점검하자.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진정한 희망이 숨어 있으니 말이다. 차동엽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 강주은 “남편 최민수 100% 믿는다”

    강주은 “남편 최민수 100% 믿는다”

    배우 최민수의 아내 강주은(38)이 아리랑TV ‘디플로머시 라운지(Diplomacy Lounge)’의 MC 자리를 꿰찼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디플로머시 라운지’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강주은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자리가 낯설다는 강주은은 남편 최민수가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고 전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남편 최민수는 MC를 맡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남편을 늘 살면서 절 아깝게 생각했다. 사회에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이었고 사회활동을 하는 것에 많은 응원을 보냈다.”고 전했다. 이어 “남편은 이번 프로그램의 MC가 저한테 어울리는 자리라고 말을 했다. ‘사회가 세계로 나아가는 시점에서 세계가 우리나라에 가까이 오고 세계가 우리나라와 가까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울리지 않나.’라고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번 설을 최민수와 함께 보냈다는 강주은은 남편에 대해 강한 믿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남편에 대해서 관심이 많을텐데 남편에게 ‘고독’은 첫번째 친구다. 옛날에도 오대산에서 몇개월씩 살았고 원래 산을 사랑했던 사람이다.”며 “근래 남편이 산에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데 아내로서 남편이 산을 찾아가는 것이 부자연스럽지 않고 100% 서포트 해준다.”고 설명했다. 최민수는 지난해 4월 60대 노인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승용차에 매단 채 운전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돼 충격을 안겼다. 당시 경찰은 질주, 흉기위협 등은 심한 과장으로 와전됐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검찰은 최민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결정했다.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에도 최민수는 집을 떠나 산 속에서 칩거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남편 최민수가 산에서 칩거하는 모습이 아내로서 안쓰럽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남들이 보기에는 안쓰러울 수도 있지만 100% 이해한다. 남편에게 산을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강주은은 남편에게 “본인의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살렸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니깐 믿고 사랑하면 잘 살아나가겠다.”고 말하며 걱정해주시는 많은 분들게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한편 8일 밤 10시30분 첫 방영하는 ‘디플로머시 라운지’는 주한 외국대사를 비롯해 국제 외교계 인사 및 각국 외교수반을 만나 한국과 관련된 주요 현안에 대해 들어보는 대담 프로그램으로 강주은은 MC로 활약하게 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안성 시골집 시골밥상

    안성 시골집 시골밥상

    언젠가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한 시골밥상이란 아마도 한정식을 염두에 두고 지어진 이름일 것이다. 한정식이 기와집에서 맛보는 깔끔한 도회식 상차림에 만만치 않은 밥값을 치러야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부담스럽다면, 시골밥상은 소박한 흑벽의 초가집에서 수수하게 차려낸 시골 음식으로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이라도 선뜻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런데 시골밥상이라는 간판을 내건 밥집을 찾아보면 그 차림에는 공통점이 있다. 각종 나물과 장아찌 그리고 하나같이 내세우는 자랑거리가 된장찌개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 밥상의 고향 시골은 전라도나 경상도 같은 남쪽지방이 아니라 경기도와 충청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엔 그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도 제대로 된 시골밥상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살아서 진천, 죽어서 용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산하가 수려하고 살기 좋다는 뜻일 것이다. 경기 안성은 바로 충북 진천과 경기 용인 사이에 끼여 있다. 양쪽의 기운이 더도 말고 절반씩만 흘러들었다 해도 후손 길이 흐뭇할 고을이다. 실개천 하나를 두고 진천과 경계를 이루는 안성 땅에 깔끔하면서도 향토색 짙은 시골밥상을 차려 낸다는 집이 있어 다녀왔다. 1993년에 문을 열었으니 ‘시골집’은 벌써 16년의 공력이 쌓였다. 시골집의 시골밥상에는 아구탕, 된장찌개와 함께 열세 가지의 반찬이 오른다. 흑미밥과 보리를 약간 섞은 흰 쌀밥 등 두 종류의 밥이 제공된다. 당연히 진천쌀과 안성쌀로 밥을 짓는데, 그날 필요한 만큼만 쪄서 쓴다. 역시 이 집의 자랑인 된장찌개는 멸치와 다시마, 무로 국물을 내서 겨울엔 냉이, 여름엔 청양고추를 넣어 끓여 낸다. 직접 담근 토속 된장만 사용하면 맛이 짜서 개량 된장을 적당량 섞는다고 한다. 여기에 시골손두부와 호박 등을 송송 썰어 넣고 홍합을 넣는데, 칼칼하면서 입에 착 감긴다. 따라나오는 반찬은 겉보기에 그리 대단할 게 없지만, 재료를 모두 주인 부부가 직접 농사를 지었거나, 이웃 농민들로부터 사들인 것으로만 만들었다는 게 자랑이라면 자랑이다. 부지깽이나물이며 겨울철에만 밑반찬으로 등장하는 호박말랭이를 보고 있자니 입안에 침이 괸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것들이지만, 시골집 안주인이자 주방장인 정혜란(58)씨가 은근히 힘을 줘 자랑하는 반찬은 고추장아찌와 무장아찌, 배추겉절이다. 고추장아찌는 뒷마당에 심은 고추를 따 여름 장마가 오기 전 간장에 재어 둔 뒤, 수시로 간장을 바꿔 가며 만드는데, 간장 게장을 만들 때와 비슷하게 품이 든다. 무장아찌는 햇빛에 무를 널었다 걷기를 반복해 만든다.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건조기에서 말린 것과는 천양지차다. 된장찌개와 이런저런 반찬을 입에 넣는다. 조금 텁텁하지만 은근하면서도 개운하다. 그런데 뭔가 빠진 듯하다. 뭘까. 아마도 인공조미료에 입맛이 길든 탓이 아닐까. 시골 음식이란 게 뭐 그리 대단할 게 있을까. 모든 재료를 깨끗하고 양심적으로 사용한다는 것, 그 정성이 고마울 따름이다. 글 사진 안성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일죽 나들목을 나와 안성 방향 4㎞쯤에서 시작되는 일죽~진천 도로를 타고 다시 4㎞ 정도 달리면 안성골프장과 칠장사 입구에 닿는다. 그 길로 4.5㎞쯤 더 달리면 충북과 경계를 알리는 팻말과 함께 왼쪽으로 시골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밥상 8000원. (031)672-7444. ●주변 볼거리 고려 초기 세워진 천년고찰 칠장사가 지척이다. 홍명희의 ‘임꺽정’을 읽었다면 친근하게 느껴질 절이다. 조선 말 중창한 대웅전과 석불입상, 안마당의 괘불대 등이 볼 만하다. 보개면 복평리 남사당전수관에서는 매주 토요일 남사당놀이 상설공연이 열린다. (031)675-3925.
  • [29일 TV 하이라이트]

    ●사미인곡(KBS1 오후 7시30분) 돌연 일본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진출을 선언하고 떠났다가, 3년만에 다시 돌아온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을 만나본다. 지난 2008년 1월7일에 발생한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임춘월씨. 힘든 상황에서도 밝은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춘월씨도 만나본다. ●아침드라마 아내와 여자(KBS2 오전 9시) 연하는 선자를 핑계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만 같은 태환에게 화가 치밀어 태환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태환은 자신이 연하의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해 집을 나가 버린다. 그러나 여진과 결혼하라며 치매증세를 보이는 선자의 모습에 준하와 가족들 모두 당혹스러워한다. ●돌아온 일지매(MBC 오후 9시55분) 친아버지에게 자신이 아들이 아니라는 단호한 말을 듣게 된 일지매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키워가고, 포도청에서 탈출해 동굴 속에 숨어 살며 농가에 내려가 닭서리를 하며 지내게 된다. 일지매와 함께 탈출한 왕횡보는 자신의 나라인 청으로 도망치고, 첩자를 놓친 구자명은 150 0리에 걸친 왕횡보 추격에 나선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 S 오후 8시50분) 테니스공에 푹 빠져버린 개, 대오. 4년 전 우연히 신도들이 절에 가져 온 테니스공,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 번 물자 그 후 단 하루도 테니스공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테니스공을 아무리 멀리 던져 버려도, 몇 시간이 걸려서라도 꼭 찾아오고야 마는 대오. 대오는 왜 테니스공에 푹 빠지게 된 걸까? ●다큐프라임-원더풀사이언스(EBS 오후 9시50분) 인간의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그것은 모두 믿을 만한 것일까?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에서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기억의 재구성’ 편에서 인지 과학에서 바라보는 인간 기억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오기억(잘못된 기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본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 10시35분) 태국 남부의 핫야이에서 처음으로 한국 문화 체험 행사가 열려 큰 호응을 얻었다. 이곳의 한 대학 김밥 만들기 행사에서 동포들이 시범을 보이고 학생들이 잡지나 텔레비전에서만 봐오던 ‘김밥’을 직접 만드는 체험을 했다. 또 동포들이 전통 한복과 개량 한복 등 자신들의 한복을 전시하여 주목 받았다.
  • 300년 전통 남해안 별신굿 한마당

    300년 전통 남해안 별신굿 한마당

    “마을 평안하고 주민들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며, 고기도 많이 잡게해주시소.” 경남 통영시 소속의 조그마한 섬인 죽도에서 ‘남해안 별신굿’이 1박2일 동안 펼쳐진다. 통영시는 28일 한산면 매죽리 죽도(일명 댓섬) 마을에서 남해안별신굿보존회(회장 정영만) 주관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인 남해안별신굿이 30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다고 밝혔다. 남해안별신굿은 경남 통영·거제를 중심으로 남해안 섬마을 곳곳에서 풍어와 평안, 장수를 빌기 위해 1~10년만에 한번씩 열었던 마을굿이다. 보통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2~8일씩 열렸다. 남해안별신굿은 산업화의 영향으로 20~30년 전부터 급격히 사라져 지금은 통영 죽도마을과 거제 죽림마을 2곳에서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2년마다 열리는 죽도마을 별신굿은 죽도에 사람이 살면서부터 시작돼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올해 죽도 마을 별신굿은 30일 오후 5시30분 들맞이 당산굿으로 시작해 다음날 새벽 산신 및 일월(해)맞이굿을 거쳐 용왕굿, 큰굿 등의 순으로 31일 오후 5시까지 굿과 기도, 휴식을 되풀이하며 열린다. 죽도 주민 47가구 70여명이 모두 동참한다. 생선과 과일, 고기가 푸짐하게 올려진 제사상을 가구마다 한 상씩 정성껏 차리고 간절히 절과 기도를 한다. 인간문화재 보유자 및 전수자인 남해안별신굿 보존회 회원 30여명이 행사를 주도한다. 음식을 비롯해 별신굿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은 무려 2000여만원. 통영시가 1000여만원을 지원하고 마을 주민과 별신굿 보존회 등에서 경비를 보탠다. 별신굿 일정이 결정되고 나면 주민들은 부정 타는 일은 하지 않는 등 행동을 각별히 조심한다. 임신한 부녀자들은 마을을 벗어나 생활하는 등 옛 전통을 그대로 따른다. 정영만 남해안별신굿보존회장은 “섬마을마다 노령화로 별신굿을 지낼 만한 주민이 없는 실정에서 다행히 통영시 등의 지원으로 별신굿을 2년마다 열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행사는 소원을 비는 기원 중심으로 치르고,내년에는 놀이중심의 축제형태로 여는 등 죽도마을 별신굿을 해마다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통영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7) 북한산성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7) 북한산성

    북한산은 북한산성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북한산성이 북한산이라는 천연의 요새를 최대한 이용해 축조된 까닭이다. 백제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산성은 1711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으로 개축됐다. 당시 산성은 14개의 성문과 120칸의 행궁, 140칸의 군창 등이 있어 유사시 수도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북한산성을 한 바퀴 도는 코스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북한산의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산길이다. 총 14개의 성문 중에서 능선에 있는 12개의 성문을 거치기 때문에 흔히 ‘12성문 종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겨울철에 산성 일주는 무리이고, 원효봉과 의상봉을 중심으로 작은 원을 그리며 산성계곡에 흩어져 있는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북한산성 최고의 전망대 원효봉 구파발 인근의 효자리 마을회관 정류장에 내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펑퍼짐한 원효봉이 눈에 들어온다. 원효봉은 전체가 암봉이지만 생김새가 후덕해 정이 가는 봉우리다. 마을을 지나서 원효암 안내판을 만나면서 산길이 시작된다. 야트막한 능선에 올라붙으면 첫 번째 성문을 만난다. 산성 안의 시체가 나오는 문으로 알려진 시구문(서암문)이다. 시구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성길이 시작되고 15분쯤 가면 원효암에 닿는다. 근처에 원효대사가 수행했던 원효대가 있다고 해서 원효암이란 이름이 붙었다. 원효암을 지나면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는다. 쇠 난간을 잡고 암봉에 올라서면 탄성이 터져나온다. 그동안 막혀 있던 조망이 시원하게 뚫린 까닭이다. 돌불꽃으로 치솟은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836.5m)가 하늘을 불태울 기세고, 멀리 도봉산 오봉이 어른거린다. 암봉에서 내려서 솔숲을 통과하면 원효봉 정상이다. 이곳은 온통 암반이라 정상 자체의 품격도 뛰어나지만, 조망 또한 북한산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백운대·만경대·노적봉이 어울려 눈부신 성채를 이루고, 그 오른쪽으로 대동문~문수봉~용출봉~의상봉까지 북한산성을 구성하는 주요 봉우리와 성문이 조망된다. 험준하기 짝이 없는 화강암 봉우리들을 연결한 산성은 가히 하늘이 내린 난공불락의 요새다. ●산성에 얽힌 뼈아픈 역사 1711년의 북한산성 증축은 사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었다. 병자호란의 뼈아픈 굴욕을 당한 후에 수도 한양에 가까운 철옹성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북한산성은 안타깝게도 실전에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못했다. 북한산성은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최대한 이용한 자들은 오히려 외세였다. 산성 내 축조되어 있던 시설물들을 철저하게 파괴한 자들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산성이 항일무장투쟁의 본거지로 사용된다면 얼마나 진압이 어려울지를 훤히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효봉에서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북문에 닿는다. 북문은 지붕이 사라져 뼈대만 앙상하지만 홍예문의 무지개 곡선이 우아하다. 북문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면 상운사를 스쳐 대동사 입구까지 이어진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 북장대 능선을 따르는 것이 이번 산길의 핵심이다. 10분 정도 오르면 적석고개에 닿고 하산하면서 노적봉이 기막히게 보이는 훈련도감터와 노적사를 차례대로 만난다. ●김시습이 시를 썼던 산영루 노적사에서 내려오면 산성계곡을 만난다. 행궁, 절, 군창 등 북한산성의 주요 시설물이 자리잡은 넓고 평탄한 계곡이다. 15분쯤 오르면 비석거리가 나온다. 비스듬히 누운 암반에 비석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비석들은 당대 북한산성 총사령관들의 선정비가 대부분이다. 비석거리 앞 계곡에 정자 주춧돌이 남아 있는데, 그것이 유명한 산영루다. 기록에 의하면 산영루는 산성계곡 최고의 절경인 향옥탄을 바라보고 있고, 김시습이 하루 종일 시를 써서 계곡물에 띄워 보냈다고 한다. 산길은 산영루 터에서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면서 중성문을 지난다. 중성문은 북한산성 안의 내성(內城)으로 순한 계곡길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이어 법용사에서 왼쪽 길을 택해 국녕사를 지나면 가사당암문이다. 의상능선에서 가장 험준한 나한봉, 증취봉, 용출봉을 건너뛴 것이다. 암문에서 지척인 의상봉에 오르면 넓은 암반이 펼쳐지고, 산성계곡이 손금처럼 훤히 보인다. 하산은 의상봉에서 급경사를 조심조심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대서문에 닿는다. 효자리~원효봉~북문~적석고개~비석거리~의상봉~대서문 약 7㎞, 3시간가량 걸린다. 산악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704번 파란색 버스를 탄다. 북한산성 입구 다음 정류장인 효자동 마을회관에서 내린다. 하산 지점인 북한산성 산성마을에는 뒤풀이 장소가 넘쳐난다. 이곳 식당들은 대부분 양미리구이를 파는데,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다. 한 접시 5000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