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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고무신/함혜리 논설위원

    하이힐에 익숙한 사람들은 굽이 낮은 구두를 잘 신지 못한다. 땅으로 꺼지는 것 같고, 자기만 손해보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키높이 구두가 보편화되고, 굽 12㎝의 킬힐이 유행하는 이유다. 나 역시 키가 큰 편이 아닌지라 적당히 굽이 있는 구두를 신어야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갖는다. 일주일 동안 절에 있으면서 흰 고무신을 신어야 했다. 구두에 익숙했던 터라 맨 발바닥이나 다름없는 고무신이 처음엔 너무 설었다. 그런데 지내 보니 고무신의 장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실용적이다. 비가 아무리 와도 젖을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발 씻을 때도 편하다. 맨발에 물을 좍좍 끼얹고 탁탁 털면 된다. 깔끔하다. 아무리 더러워져도 수세미로 싹싹 닦으면 금세 깨끗해진다. 구두처럼 소리가 나지 않으니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다. 고무신은 특히 사람들의 가식을 단번에 벗겨버리는 힘이 있다. 높은 굽이나 화려한 장신구 따위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깊은 뜻이 있는 것을 신어보지 않았다면 어찌 알았겠나. 기분좋은 발견이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서인영, 노출의상에 스님들 앞에서 “너를 원해”

    서인영, 노출의상에 스님들 앞에서 “너를 원해”

    가수 서인영이 절에서 겪은 황당 굴욕담을 공개했다. 서인영은 11일 방송되는 KBS 2TV ‘상상플러스’ 여름특집 녹화에 참여해 “어느 날 절에서 노래를 하게 됐다.”며 범상치 않은 사연의 시작을 알렸다. 서인영은 “다소 대범하고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절에서 공연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한 뒤 “그 의상을 입고 스님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민망했다.”며 당시의 난감했던 심정을 전했다. 이어 “특히 ‘너를 원해 처음 봤을 때부터 너를 갖고 싶었어’라는 가사 부분에서는 정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밝혀 좌중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한편 이날 방송에는 서인영 외에도 백지영, 남상미, 김보연 등이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예정이다. 사진제공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美 “北, 관계개선 신호 보냈다”

    제임스 존스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9일(현지시각)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밝혔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으로부터 방북결과 보고를 받은 존스 보좌관은 이날 폭스 뉴스와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클린턴 전 대통령이 3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으며 두 사람은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다.”면서 “북한은 미국과 새로운 관계,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점을 내비쳤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여전히 권력을 쥔 것 같다.”면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한에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으며 북한이 얻은 것은 사진 촬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은 미국 여기자 억류 사건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3남 정운의 업적으로 선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9일 최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여기자 사건에 대해 “‘김정운 대장의 지략으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태평양을 건너와 장군님(김정일)에게 사죄했다.’는 내용의 강연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운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체제 구축을 위한 ‘후계자 선전’ 활동이 당의 영역에서 북한 사회 전반으로 가시화될지 주목된다. 이는 지난 1968년 미 정찰함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을 당시 후계자 반열에 있던 김정일 위원장의 업적으로 선전한 것과 닮은꼴이다. 김정운의 후계자 업적쌓기도 꾸준히 감지된다. 북한이 44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도 김정운의 공로로 포장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시작된 ‘150일 전투’와 올해 5·1절(국제 노동절) 기념행사, 고(故) 김일성 주석의 97회 생일기념 ‘축포 야회’ 역시 김정운의 작품으로 선전되고 있다. 안동환 이경원기자 ipsofacto@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퇴근하라고 컴퓨터 끄는 사장님 먹는 조루 치료제 프릴리지 약효는 잭슨자녀 대부 마크 레스터 “패리스는 내 친딸” 탈모 예방하려면 머리 감은뒤 수건 두드려 말려 천년요새서 환경운동 보루로 인천 계양산
  • [부장판사들과 함께 하는 법률상담 Q&A]

    # 사례 방송국이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물수건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다량의 대장균이 검출됐다는 보도를 하면서 배경화면으로 A씨가 운영하는 식당 내부를 촬영한 장면이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2~3초 동안 방영됐다. 하지만 A씨의 식당은 이런 내용으로 단속되거나 적발된 적이 없다. 방송이 나간 뒤 단골고객들로부터 여러 차례 항의를 받게 된 A씨는 방송사에 따졌지만, 방송사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방송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여전히 ‘다시보기’를 통해 해당 장면을 볼 수 있다. Q A씨가 권리구제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 있을까. A 사례처럼 보도된 경우 시청자들은 실제로 대장균이 나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배경으로 쓰인 A씨의 식당 물수건에서 대장균이 검출된 것으로 오인하기 쉽다. 또 식당의 간판이나 외관이 비춰진 적이 없더라도 적어도 그 식당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내부 모습만으로도 어느 식당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단골손님들이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면 매출이 감소하는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 A씨로서는 우선 고객들의 오해를 푸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비록 해당 뉴스에서는 문제의 장면을 단순히 배경화면으로만 사용했을 뿐 A씨의 식당에서 대장균이 검출됐다고 보도를 하지는 않았지만, 시청자들이 오해할 소지가 충분하다면 이는 사실과 다른 보도라고 볼 여지가 있다.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실적 주장에 대한 언론보도가 진실하지 않아 피해를 입은 사람은 보도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석 달 이내에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A씨는 방송사를 상대로 자신의 식당이 보도 내용과는 무관하다는 정정보도를 청구할 수 있다. 절차적으로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방법과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 등 두 가지가 있다. 전자의 경우 신청일로부터 2주 이내에 조정기일이 열리고, 위원회에서 방송사와의 합의를 적극 권유한다. 합의가 성립되면 판결과 같은 효력이 부여되고, 비용은 일체 소요되지 않는다. 방송국 인터넷 홈페이지의 다시보기 코너에서 해당 화면을 삭제하는 것도 쌍방 합의만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나아가 A씨는 매출 감소 및 영업상의 신용 하락이나 명예 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별도로 청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절차에서 언론사들은 대개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정정보도나 반론보도를 수용한다. 또 사안이 특별히 중하지 않다면 손해배상을 하더라도 100만~300만원의 상징적인 금액 이상은 어렵다는 태도를 취하곤 한다. 특히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정정보도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만약 A씨로서는 손해가 커서 배상받는 일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면 처음부터 바로 법원에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쪽을 검토하는 것이 좋다. 단 이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절차에 비해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조원철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 유신 “덕만, 널 택했다” 애틋한 고백…최고 시청률

    유신 “덕만, 널 택했다” 애틋한 고백…최고 시청률

    덕만을 향한 유신의 사랑이 애틋하다. 지난 4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22회에서 유신랑(엄태웅 분)은 절대 덕만(이요원 분)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선포했다. 덕만이 쌍둥이 공주임을 확인한 미실(고현정 분)과 을제대등(신구 분)은 덕만을 체포하기 위해 사람을 보낸다. 추적을 피해 어쩔 수 없이 괴질이 도는 양지골 마을로 도망 친 유신과 덕만. 덕만은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유신을 걱정하며 혼자 떠날 것을 권한다. 덕만이 “떠나십시오. 유신랑이 나 살리려다 우리 엄마처럼 죽으면 절 백번 죽여도 모자랄 만큼 제 자신을 미워할 겁니다.” 말하자 이에 유신랑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아무생각도 하지 마라. 난 널 택했다.”고 소리친다. 한편 궁에서는 유신랑과 천명공주(박예진 분)의 혼사 이야기가 오간다. 이에 유신랑의 아버지 김서현(정성모 분)이 가문을 위해 혼사를 받아들일 조짐을 보여 덕만과 유신랑, 천명공주의 관계가 더욱 복잡해 질 것을 시사했다. 유신랑과 덕만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화제만발 뉴페이스 비담(김남길 분)의 등장으로 지난 4일 방송된 ‘선덕여왕’ 22회는 전국 시청률 35.4%(TNS미디어코리아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사진제공 = MBC ‘선덕여왕’ 캡쳐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대한해협 두번째 횡단 꿈 끝내 못이루고…”

    “대한해협 두번째 횡단 꿈 끝내 못이루고…”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씨가 4일 ‘천상’으로 떠났다. 조씨의 굵직한 삶은 한국 수영의 역사 그 자체였다 1952년 해남에서 태어난 조씨는 고향 실개천에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웠다. 타고난 물개였던 그는 수영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68년 해남고를 자퇴, 무작정 서울로 갔다. 당시 YMCA 수영장에 등록한 조씨는 간판집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수영 실력을 갈고 닦았다. ●한국신기록 50차례 갈아치운 수영계 큰별 하지만 경력도 없고 억센 전라도 사투리의 시골 소년은 서울 선수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 일쑤였다. 오산고에 특기자로 진학하려다 퇴짜를 맞는 등 온갖 고생을 했다. 그러다 1969년 전국체전 서울 예선전에 처음으로 출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수영계의 주목을 받았다. 양정고에 스카우트된 조씨는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0년 제6회 방콕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름 석 자를 국제무대에 알리기 시작했다. ●“독도는 우리땅” 알리려 독도 33바퀴 돌아 4년 뒤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전대미문의 기록인 2연패에 성공,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으며 이름을 날렸다. 1976년 고려대에 입학해 사학을 전공한 조씨는 한국 신기록을 50차례나 갈아치우며 한국 수영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 조씨는 1970년 대한민국 체육상, 1980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1978년 은퇴한 뒤에도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발휘했다. 조씨는 1980년 8월11일 부산 다대포 앞 방파제를 출발, 13시간16분 만에 일본 쓰시마섬(대마도)까지 대한해협 48㎞를 횡단했다. 1982년에는 도버해협을 9시간35분 만에 건넜다. 그러나 인생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신의 수영장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가 하는 봉제업을 키우려다 가산만 축냈고, 1985년 교통사고로 얼굴과 오른팔이 찢어지는 중상을 당했다. 사고와 사업 실패로 낙담하던 조씨는 1989년 서울에 ‘조오련 수영 교실’을 열어 제2의 수영인생을 시작했다. 수영인으로서 재도약하기 위해 다시 물과 인연을 맺은 것. 차남 성모씨도 고인의 대를 이어 수영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아내가 심장마비로 타계한 2001년 이후 그는 거의 매일을 술에 절어 살았다. 경기 부천시에서 홀로 살다시피 하던 그는 지난 4월 14살 연하의 이성란(44)씨를 새 반려자로 맞아 고향 해남에서 꿈같은 신혼생활을 보냈지만 그마저 못다 핀 꽃이 되고 말았다. 그는 수영 인생의 마지막 도전으로 내년에 다시 대한해협을 건널 작정이었다. 최근까지 제주도에 캠프를 차리고 준비해 왔던 터다. 결국 “내년에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을 맞아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 한국인의 저력과 함께 60세라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도 보여 주겠다. 내 수영 인생의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온몸을 던지겠다.”던 고인의 생전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길섶에서] 단기 출가/함혜리 논설위원

    전화 저쪽에서 낯선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하루 6시간 정도 좌선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묵언입니다. 오후엔 불식(不食)입니다. 그래도 참여하시겠습니까?” 순간 온갖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얼마나 힘이 들까. 몸에 무리가 오면 어떻게 하지. 잘 버텨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왕에 가기로 마음 먹은 일. 걱정들을 떨쳐 버리며 용기를 내어 대답했다. “네. 갑니다.” 여름 휴가 동안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에서 하는 7박8일간의 단기출가 프로그램 ‘참사람의 향기’에 참여했다. 결정하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절에 도착한 순간부터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새벽부터 밤까지 오롯이 ‘나’에 집중하도록 짜여진 수행 프로그램도 좋았지만 나를 사로잡은 것은 미황사를 감싸고 있는 멋진 자연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달마산의 장엄한 풍광, 맑은 공기와 산새 소리, 세속의 먼지를 날려버릴 듯한 바람…. 그 속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생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었다. 아!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씨줄날줄] 영도다리/노주석 논설위원

    나이 든 부산 사람에게 ‘부산의 상징’이 뭐냐고 물어 보면 세 손가락 안에 영도다리를 꼽는다. 대부분 어릴 적 부모로부터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얘기를 듣고 컸기 때문이리라. 그 시대를 산 부산 사람들에게 영도다리는 고향 같은 곳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영도다리를 모른다. 열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는다. 흘러간 명물이다. 마지막으로 다리를 들어 올린 1966년 이후 추억의 다리로 전락했다. 영도다리는 1934년 부산 남포동과 영도를 연결하는 동양 최초의 개폐교(開閉橋)였다. 개통식 날 부산과 경남 일대에서 6만명의 구름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당시 부산 인구가 16만명일 때니 얼마나 북새통이었을지 짐작된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사람들의 관심은 다리가 정말 들릴지에 온통 쏠렸다. 심지어 영도다리가 올라가는 걸 한번 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임시수도 부산으로 피란 온 실향민들에겐 잊지 못할 망향의 장소이자 단골 약속장소가 됐다. 박시춘이 작곡하고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 2절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아치다/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다.”라는 가사 그대로였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속출하면서 ‘잠깐만’이라는 팻말이 나붙었고 경찰관이 배치됐다. ‘자살명소’라는 이름표가 따라다녔다. 요즘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에게 돼지국밥과 밀면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피란 시대의 산물이다. 돼지국밥은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여러 사람이 나눠 먹던 데서 비롯됐다. 밀면은 메밀을 구하지 못한 이북 출신들이 밀가루로 대신 만든 냉면이었다. 아나고, 복국, 부산찜, 동래파전 같은 부산식 음식 족보에 없던 돼지국밥과 밀면이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각광받는 시대가 온 셈이다. 영도다리가 75년 만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다. 어제 통행이 중지됐다. 부산시는 10월쯤 다리를 해체하고 2012년 6월까지 복원할 예정이다. 철거냐 보존이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문화재로 지정돼 살아남았다. 영도다리가 ‘끄덕끄덕’ 들리는 광경을 다시 보고 싶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정준모의 시시콜콜 예술동네] 국립현대미술관에 진입로가 필요한 이유

    요즘 아침에 집을 나와 저녁에 들어갈 때까지 어김없이 맞닥뜨리는 것 하나는 도로공사 현장이다. 경제 살리기 일환으로 예산 선 집행을 위해 시행하는 공사라고 하는데 역시 우리 대한민국의 길 닦는 솜씨는 가히 신기에 가깝다. 엊그제 시작한 것 같은데 어느새 번듯하고 깨끗한 길이 완성되어 있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길을 잘 닦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관 이래 23년간 고립무원의 상태로 산속에 절집처럼 덩그러니 놓인 국가기관이 있다. ‘과천시 막계동 산 58의4’에 자리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경복궁에서 출발한 국립미술관은 덕수궁시절을 거쳐 1986년 거국적으로 현재 위치한 과천에서 개관한다. 하지만 당시 미술관이 꼭 필요하다거나 국민적 요구가 있어서가 아니라 ‘88 서울올림픽’을 유치하면서 올림픽 준비의 일환으로 커다란 미술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된 일이었다. 목적이 그리 순수하지 않았던 셈이다. 올림픽을 치를 나라에 변변한 미술관 하나 없는 것이 창피하다고 생각해서 급히 부지를 마련하고 미술관을 개관하고자 했다. 마치 88서울올림픽의 부록처럼 이렇게 건립된 ‘국립현대미술관’은 당시 ‘동양 최대의 미술관’으로 보도됐다. 그런데 이 동양 최대의 미술관은 개관해서 지금까지 진입로가 없다. 어쩌다 미술관을 찾은 이들은 길이 막혀 아우성이고, 봄, 가을 행락철이 되면 두 시간 이상 차 속에서 보내야 한다. 사실 과천 현대미술관의 진입로 문제는 건설 당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길을 내주어야 할 서울시와 협의도 없이 정부는 미술관 건물부터 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서울시장과 문공부 장관 간의 사적 감정 때문에 진입로를 내는 문제가 꼬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때부터 서울시와 중앙정부 간의 힘겨루기가 지속되고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눈 앞에 차로 5분거리에 빤히 보이는 미술관을 두고 산속으로 25분간 굽이굽이 20년 넘게 돌아다녀야 했다. 진입로 문제가 지지부진하자 몇 년 전 친환경 주차장을 건립해서 차량 적체를 해소하려고 예산을 확보, 기본설계까지 마쳤건만 전임 관장의 고집과 판단착오로 무산되어 세금만 날리고 말았다. 현재 과천 국립미술관의 진입로 문제는 미술관과 문화부, 서울시보다도 당장 국민들의 불편사항이라는 점이다. 미술 열풍으로 주말이나 휴일에 미술관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서울대공원을 찾아온 사람들의 차량에 밀려 차 속에서 2시간 남짓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 보도에 의하면 서울시는 서울대공원을 2020년까지 미래형 복합테마 파크로 조성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그 안을 공모할 것이라 한다. 이런 상황이면 앞으로 동물원을 지나 미술관으로 가려면 차 속에서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수백억원을 들여 세운 미술관이 몇 억원이면 가능할 진입로 비용 때문에 미완성인 채로 20년 이상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적인 낭비이다. 미술관을 찾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서울시민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 기회에 서울시가 대승적 차원에서 미술관에 길을 내주어 ‘자연 속 미술관’과 ‘문화예술이 있는 공원’ 모두를 완성했으면 한다. <미술비평가>
  • [도시와 산] (17) 울산 무룡산

    [도시와 산] (17) 울산 무룡산

    울산 시내에 있는 무룡산(舞龍山)은 해발 452m로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울산의 진산(鎭山)으로 옛날부터 수호산으로 추앙받았다. 왜구로부터 울산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 역할을 했다. 동해와 연결된 정상에서의 경치는 일품이다. 정상에서 석유화학공단을 내려다보는 야경은 울산 12경에 포함될 정도로 빼어나다. 앞을 못 보는 슬픈 용과 산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든다는 등 많은 전설도 풀어낸다. ●용이 승천 산에 묘를 쓰면 ‘가뭄’ 무룡산은 앞을 보지 못하는 슬픈 용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옛날 무룡산 꼭대기 연못에는 일곱 마리의 용이 살았다. 어느 날 선녀 일곱이 내려와 용들과 어울려 논 뒤 함께 하늘로 올랐다. 그러나 용 가운데 앞을 못 보는 한 마리가 하늘로 오를 수 없어 마음씨 착한 한 선녀가 남았다. 옥황상제는 이 일로 진노했고, 선녀와 용들은 다시 무룡산 연못으로 귀양을 왔다. 얼마 뒤 옥황상제의 노여움이 풀려 선녀와 용들은 모두 승천했다. 그 후로 무룡산에는 연못이 없어졌다. 산 정상에 묘를 쓰면 울산에 비가 오지 않았다고 한다. 무룡산에 몰래 묘를 쓰면 자손들이 발복한다는 풍수설이 있어 종종 사람들은 암장했다. 그때마다 크게 가뭄이 들어 주민들은 암장을 찾아냈다고 한다. 울산읍지에 따르면 1924년 여름 큰 가뭄이 계속돼 농작물이 말라죽어 먹을 게 없게 되자 주민들이 무룡산에 몰래 쓴 묘를 파헤쳤다. 이 때문에 묘 주인과 주민 간에 싸움이 발생해 20여명이 경찰에게 붙잡혀 갔다. 무룡산은 쓰시마섬과 가까워 왜구들과 관련된 각종 얘기가 전해온다. 신라 충신 박제상(363~419년)이 418년에 눌지왕의 아우 미사흔을 구하기 위해 왜국으로 출발한 곳이 무룡산 아래 바닷가에 있는 유포(柳浦)다. 현재 북구 강동동 판지마을에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터인 ‘유포석보’(柳浦石堡)가 있다. 유포석보는 조선 세조 5년(1459년) 축조된 이후 울산과 경주 등 10개 고을에서 징집된 300명의 장정이 3교대로 지켰다고 한다. 무룡산은 왜구들이 울산으로 숨어드는 것을 막는 천혜의 요새였다. 초창기 왜구들은 쓰시마섬을 출발, 유포에 상륙한 뒤 무룡산 고갯길을 이용해 울산에 잠입했다. 그러나 세조 이후 경상 좌병영(울산 병영)이 유포와 무룡산에 군사를 배치하면서 길이 완전히 차단됐다. 왜구들은 울산과 경북 경주의 경계지역으로 우회해야 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무룡산 고갯길은 왜구들에게 내주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통화 관문 무룡산 정상에 오르면 우리나라 통신발달사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통화시설이 무룡산 중계소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근대적인 국제통화방식인 지름 19m의 스캐터(전파를 바다를 향해 발사하는 방식) 통신용 안테나가 설치된 곳이다. 정부는 1968년 6월 일본 하마다(濱田)와 가장 가까운(270㎞) 무룡산에 중계소를 설치했다. 1980년 11월 한·일 간 해저케이블이 개통돼 국제통화가 이원화될 때까지 이곳은 우리나라 유일의 국제통화 관문이었다. 1991년 3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국제통화가 일반화되면서 운영이 중단됐고, 같은 해 11월 한국통신 사적 제5호로 지정됐다. 2000년 12월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됐다. 무엇보다 이 안테나는 197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한·일 프로레슬링 경기를 TV로 볼 수 있게 해준 시설이다. 당시 국민들은 일본에서 열린 김일 선수와 안토니오 이노키(猪木?至) 간의 프로레슬링 경기를 보면서 열광, 또 열광했다. 지금은 초고속해저 광케이블에 일자리를 뺏긴 채 세월의 뒤안길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다. 등산객 김용수(53)씨는 “무룡산 중계소가 없었으면 아마 우리는 김일 선수와 이노키 선수의 한·일 프로레슬링 경기를 볼 수 없었을지 모른다.”면서 “스캐터 통신은 당시 프로레슬링의 인기만큼이나 한·일 전파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무룡산은 지역 주민들의 삶이 진하게 묻어 있다. 가난했던 옛날 인근 주민들은 무룡산에서 나물과 약초를 캐고, 땔감을 구했다. 칡이며, 각종 나무열매며, 가재와 물고기가 풍부해 주민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다. 집에서 기르던 가축들은 무룡산에서 풀을 뜯으며 농사일을 할 힘을 길렀다. 쉼터 역할을 하는 약수터도 있다. 무룡산의 산행길은 십수 군데가 있지만 컴퓨터과학고(구 화봉공고) 뒤편 화동저수지로 올라가는 코스가 완만하면서도 정겹다. 정상은 언제 와도 시원하다. 푸른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서 달려온 바람이 휭휭 얼굴을 스쳐 달음질해간다. 정상에서 북쪽 능선을 바라보며 하산길을 택하면 쉽게 내려올 수 있다. 울산을 대표하는 노래인 ‘울산아리랑’에서도 무룡산의 기품이 잘 드러나 있다. ‘운무를 품에 안고 사랑 찾는 무룡산아….’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울산지역 노래방의 단골 레퍼토리가 될 정도로 시민의 가슴 속에 각인돼 있다. ‘울산아리랑’의 2절 중간쯤에 나오는 정자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울산의 동쪽에 있는 무룡산은 도심의 산답게 거미줄처럼 등산로가 뚫려 있어 울산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많은 산꾼들도 즐겨 찾는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무룡산에서 본 야경, 마치 보석 뿌려놓은 듯… 울산 12경중 으뜸 “무룡산에서 관망하는 울산공단 야경은 마치 보석을 뿌려 놓은 것과 같이 아름다우며, 울산이 한국의 산업수도로서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역동성과 상징성이 있다.” 울산시가 무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석유화학공단의 아름다운 야경을 설명한 글이다. 무룡산은 울산 12경 중의 하나로 선정되면서 울산산업의 이미지와 연계돼 있다. 울산의 진산(鎭山)이 도시의 발전을 가져온 산업화와 연계돼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있다. 최근 방학을 맞은 딸과 아내를 데리고 산행에 나섰다. 밤에 오른 무룡산은 하늘과 땅이 바뀌어 있었다.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웅장한 ‘불의 나라’는 별들로 이뤄진 우주. 땅에서 쏘아 올린 불빛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는 둥근 달이 망망대해로 흘러간다. 시간의 물줄기를 따라 둥근 달이 서쪽으로, 서쪽으로 흘러가지만 거대한 밤의 왕국은 불빛이 꺼질 줄 모른다. 여름밤. 야간산행은 이렇듯 한낮의 불볕더위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사방에서 심포니를 이루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시골마을 유년의 기억이 가물가물한 한여름 밤의 수많은 별. ‘아빠, 너무 예뻐요!’라고 연신 외치는 딸의 목소리가 밤하늘에 흩어진다. “그래 예쁘다.”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맞장구를 친다. 무룡산 주변에는 수년 전의 산불로 나무가 없다. 민둥의 등산로는 공단의 불빛을 그대로 받아 대낮처럼 환하다. 찌르라기들의 합창과 등 뒤로 불어오는 솔바람을 친구삼아 공단 야경을 내려다보노라면 세상 어디에도 이런 ‘카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는 둥근 달을 띄워놓은 망망대해를, 땅에는 불야성의 별천지를 갖춘 이런 카페가 또 어디에 있을까. 하물며 풀벌레들이 들려주는 생음악에, 적당하게 식은 산들바람은 어느 누가 만들 수 있을까. 정자 해변에서 떠오른 달은 여천공단 중천을 한참이나 노닐다가 마침내 시청 뒤 남산 너머로 사그라져 간다. 무룡산의 야간 산행은 어느 곳에서도 즐길 수 없는 여름밤의 추억을 만들어 준다. 석유화학공단의 웅장한 불길은 시민들에게 오늘의 삶이자 내일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언양만세운동 기록 90년만에 ‘햇빛’

    울산 언양만세운동 참가자 5명의 활동기록이 90년 만에 빛을 보았다. 21일 병영3·1운동유족회(회장 이춘걸)에 따르면 1919년 이후 90년 간 잠자던 울산 울주군 상북면지역에서 언양만세운동에 참가한 5명의 ‘범죄인 명부’를 최근 상북면사무소에서 찾았다. 3·1운동유족회는 일제가 작성한 이 범죄인 명부를 바탕으로 서류를 꾸며 국가보훈처에 정부포상을 신청했다. 포상신청이 이뤄진 상북면 출신 유공자는 김경수(당시 나이 28·명촌리), 김정욱(36·명촌리), 정태원(46·지내리), 정용득(35·등억리) 등 4명이다. 김종백(29·양등리)의 서류는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범죄인 명부에 따르면 이들은 1919년 4월2일 언양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일경에 붙잡혀 1심에서 모두 태형과 곤장 90대 등을 선고받았다. 독립유공자로서 정부포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독립운동을 한 죄로 일제의 재판을 받은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1심에서 종료된 이들 5명의 사건은 해방과 함께 재판서류가 모두 불타 버렸다. 때문에 이들은 그동안 관련 기록이 없어 정부포상을 신청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 이춘걸 회장이 3·1절 행사에서 강길부 국회의원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이에 강 의원이 적극 나서서 상북면사무소에서 잠자던 범죄인 명부를 찾아 냈다. 이 범죄인 명부는 재판기록을 대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이 회장은 “조국 광복을 위해 희생하신 향리 어른들의 거룩한 뜻과 명예가 90년 간 묻혀 있었다는 것은 후손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늦게나마 활동기록을 찾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언양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옥고를 치른 상북면 출신의 유공자는 이들 5명을 포함해 모두 13명이다. 다른 유공자들은 모두 1995년 이전에 포상을 받았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객원칼럼] 책 읽는 장소를 권함/김무곤 동국대 교수

    [객원칼럼] 책 읽는 장소를 권함/김무곤 동국대 교수

    강호(江湖)에 눈이 빛나는 사람이 적으니 사는 재미가 덜하다. 사람 만난 뒷자리에 향기가 남는 일이 드물어져 간다. 정치가나 기업가나 언론인이나 학자나 다 마찬가지다.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그 무언가가 없다. 도무지 공부들을 안 하기 때문이다. 공부 안 하면 메시지가 있을 리 없고, 메시지가 없으면 만남이 공허하다. 남자들끼리 만났다 하면 폭탄주에 노래방에 등산이다. 폭탄주. 난폭하니 자칫 이성을 잃기 쉽고 건강을 망친다. 노래방. 슬프지도 기쁘지도 아니한데 왜 절규해야 하는가. 등산. 올라가서 땀 빼놓고 내려와서 삼겹살은 왜 구워먹나. 가끔 입을 열면 정치이야기. 이제 지겹다. 동시대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이 폭탄주, 노래방, 등산에 그토록 몰입하는 것은 셋 다 그다지 말을 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함께 있어도 혼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람의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투입이 없으니 산출이 없고, 자극이 없으니 변화가 없다. 머릿속에 바뀐 게 없으니 오래 전 이야기를 닳고 닳도록 써먹는다. 새로운 생각을 거부하고 낯선 제안을 물리치게 된다. 이윽고 자기 자신을 황폐화시킬뿐더러 사회의 생기를 빼앗는 것이다. 대한민국 남성 제군(諸君)! 폭탄주 자제하고 공부하기를 권함. 올가을엔 눈빛이 형형해져서 귀환하기를 권함. 아래에 절호의 독서 장소를 예시함. #기차. 한때는 책을 읽으려고 기차를 탔다. 신촌 기차역에서 일산으로 가는 기차는 왕복 1시간20분 걸렸다. 캔 커피 하나, 책 두 권 들고 매주 기차역으로 간 적이 있었다. 역 근처 서점에서 신간 한 권, 잡지 한 권 사는 기분은 늘 상쾌하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해도 내리기 싫어진다. #공원 벤치. 바람이 시원한 날이면 더 좋겠지만, 비 안 오고 어둡지 않으면 괜찮다. 책도 읽고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그러다 산책도 하다가 책을 베고 잠들 수도 있다. 잠잘 때를 생각하면 좀 두꺼운 책이 좋다. #화장실. 여행 해보면 제집 화장실이 얼마나 귀중한 공간인지 알게 된다. 화장실은 독립적이고, 은밀하고, 자유롭다. 미국의 소설가 헨리 밀러도, 프랑스의 극작가 마르셀도 생각이 비슷했던 모양이다. 헨리 밀러는 “나의 훌륭한 독서는 거의 화장실에서 이루어졌다.”라고 썼다. 마르셀은 헨리 밀러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결코 침범 당할 수 없는 고독이 요구되는 모든 일. 즉, 독서나 몽상, 울음, 관능적인 쾌락을 위한 장소”라고 예찬했다. 책 읽는 장소가 책에 대한 기억을 결정하는 듯. 독일 작가 마르틴 발저는 ‘어느 책 읽는 사람의 이력서’에서 고백했다. “어느 해 늦여름 나는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서 바이런을 읽었다. 이 나무 아래에서 바이런을 읽었을 때 ‘나는 베니스의 한숨의 다리 위에 서 있었네. 다리 한쪽엔 궁전이 있고 다른 한쪽에 감옥이 있었네’라는 시구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걸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마르틴 발저에게 바이런은 사과나무와 함께 떠오른다. 나에게 중국작가 쑤퉁의 ‘홍분(紅粉)’은 서대문 지하다방의 쌍화차 냄새와 함께 떠오른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는 대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선 절집의 툇마루다. 내용을 기억하지 않아도 좋다. 책과 함께 그곳에 있었다는 추억을 읽으면 된다. 가끔 어딘가에서 책을 읽었던 그 행위 자체가 한 권의 책이 된다. 프루스트는 말했다. “자신이 읽은 책에는 그 책을 읽은 밤의 달빛이 섞여 있다.” 김무곤 동국대 교수
  • [전국플러스]

    제주~전남 여객선 36회 늘려 운항 제주도는 피서철 성수기를 맞아 제주와 전남권을 연결하는 여객선을 36회 늘려 운항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도는 다음달 15일까지 완도와 목포, 녹동, 인천, 부산 등 5개 항로의 여객선 이용객이 23만 60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완도, 목포, 녹동 등 3개 항로를 다니는 6척의 여객선 운항 횟수를 2회부터 10회까지 모두 36회 늘렸다. 도는 또 여객선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제주항 여객터미널에 선박의 출발과 도착을 안내하는 전광판 시설을 개선하고, 우천에도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제2부두에는 비가림시설을 166m 추가 설치했다. 특히 교통이 혼잡했던 국제여객터미널의 주차장을 2520㎡로 3배 늘려 소형차량 44대와 대형버스 58대 동시 주차가 가능해졌으며 국제부두~동문로터리, 제4부두~동문로터리에 무료 셔틀버스를 운행 중이다. 한편 올 상반기 뱃길을 이용해 제주를 찾은 수학여행단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5.8% 증가한 10만 8000명(331개교)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새달 3일부터 영어 미술수업 서울시는 다음 달 3~14일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어린이예술마당에서 초등학생에게 영어로 미술을 가르치는 ‘2009 여름방학 영어 미술수업’을 연다고 20일 밝혔다. ‘숨겨진 나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수업은 영국의 미술 명문대학 ‘런던 세인트 마틴’과 런던대의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교사로 참여하며 시각디자인, 영상디자인, 의상디자인 등에 관한 수업이 진행된다. 신청은 홈페이지(www.artstation.co.kr)에서 회당 35명씩 선착순으로 받는다. 사전 예약자는 25일 교육을 무료로 체험할 수 있다. 청도 운문사 보행전용 진입로 조성 경북 청도군 운문사 진입로가 새롭게 조성돼 20일부터 개방됐다. 청도군은 6억원을 들여 운문사 매표소에서 절 입구 주차장까지 1.3㎞ 구간에 보행 전용 진입로를 조성했다. 그동안 차량과 관람객이 함께 다녀 통행이 불편했으나 기존 도로는 차량에 내어주고, 운문사가 자랑하는 수백년 묵은 소나무 숲 사이에 보행자 전용 길을 낸 것이다. 보행 진입로는 바닥에 마사토를 깔고 목재교량, 쉼터 등이 설치돼 운치 있는 길로 꾸며졌다. 운문사 방문객들은 솔숲 사이 길을 따라 솔 향기를 맡으며 한층 운치 있게 운문사를 다녀올 수 있게 됐다.
  •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중산층 두껍게] “희망을 대출 받았죠”… 수급자 女사장 월500만원 벌다

    [서울신문 창간 105주년-중산층 두껍게] “희망을 대출 받았죠”… 수급자 女사장 월500만원 벌다

    “여보, 대단해….” 2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은 그녀의 여린 등을 힘겹게 쓰다듬었다. 지금 아내 차모(44)씨는 매월 500만원가량 소득을 올리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지난해 9월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로 창업자금 2000만원을 지원받은 지 10개월 만이다. 차씨는 현재 간병파견업무, 요양보호사교육 등으로 밤 10시30분까지 근무하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하기만 하다. 한때 남편과 음식점을 경영하며 아이 셋과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오던 차씨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빚 1억 5000만원에 집 보증금마저 잃었다. 당시 시중은행 어디서도 그녀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돈을 빌릴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고리사채로 버티던 차씨는 끝내 파산을 신청, 신용불량자가 됐고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다. 15년간 자활센터에서 간병인으로 지내며 월 8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차에 남편마저 2007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마지막 희망이 된 건 ‘마이크로크레디트’였다. “신용등급조차 없어 돈을 빌릴 수 없는 제겐 유일한 희망이었죠. 앞으로 3~4년만 더 노력하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차씨는 웃었다. ●올해 상반기 1147명 창업 도와 저신용층 서민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가 정부에서 본격 시행한 지 5년째를 맞았다. 당초 신용불량자, 영세 자영업자 등 저소득 계층의 대출금 상환능력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현재 대출상환율은 90% 수준을 보이는 등 비교적 건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이용한 서민들과 전문가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가 ‘빈곤층의 탈출구’로서, 노동 의지가 있는 서민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고 자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8월 8000만원의 마이크로크레디트 자금을 이용해 창업에 성공한 김용한(39·나눔특송 대표)씨는 “택배사업으로 현재까지 1억 9000만원을 벌었고 올 연말까지 2억 5000만원의 수익을 기대한다.”면서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고 만족해 했다. 김씨와 공동창업한 4명 가운데 1명은 기초생활수급자 생활을 청산했고, 또 다른 한 명도 내년 3월이면 수급자 신분을 벗을 예정. 김씨는 “열심히만 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고 강한 믿음을 내비쳤다. 김씨처럼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지금까지 이용한 사람은 2600여명 정도. 보건복지가족부의 ‘희망키움뱅크 지원실적’에 따르면 저신용자층의 상환율은 ▲2005년 86.2% ▲2006년 91.8% ▲2007년 97.7%로 해마다 좋아지고 있다. 창업자 수도 2005년 47개 자활공동체 189명에서 올 상반기 198개 단체 1147명으로 대폭 늘었다. ●민간단체 공급·사후관리 부족 하지만 전국적 인프라 부족으로 서민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적고 자금 집행 후의 사전·사후관리 소홀도 개선돼야 할 점이다. 노대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5년 만에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지속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다만 운영자가 주로 비영리민간단체로 구성돼 공급량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운영경비 등을 감당하지 못하는 등 기금조성 방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크로크레디트 이용자들도 자금운영과 교육 등 사전·사후 관리가 미진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금융소외자는 전체 금융권 이용자 3500만명의 20% 정도로, 경제력이 낮은 여성·퇴직자·실업자·영세사업자 등 금융위원회 추산 2004년 691만명, 2006년 721만명, 지난해 816만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민들이 대부업체에서 빌린 ‘고금리 사채빚’은 지난해 사상 첫 7조원을 넘어섰고 올 5월 자영업자 수는 전년 대비 30만명(4.9%)이나 줄었다. ●정부차원 개인 지원 크게 늘려 정부는 이들이 중산층에서 급격히 몰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이크로크레디트 제도를 올해부터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복지부의 ‘희망키움뱅크사업’, 금융위가 지원하는 소액서민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에서 올해부터는 서울시(희망드림뱅크사업)와 행정안전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새마을금고(1514개)가 전방위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활용가능 기금액도 연 300억원에서 1000억원 규모로 키웠으며 수혜대상을 늘리기 위해 단체가 아닌 ‘개인’ 저신용자에게 지원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복지부는 올 연말까지 저소득 개인에 대한 지원을 포함 기존 기금 연 20억원을 330억원으로 늘려 3100명까지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도 소액서민금융재단을 중심으로 사업시행기관을 50곳에서 200~300곳으로 확대키로 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용어클릭 ●마이크로 크레디트 국민기초생활보장법 15조에 따라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금융소외계층(신용등급 7~10급), 저소득계층의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무담보·무보증으로 소액 자금을 빌려주고 사전·사후관리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자식·고부 갈등 老끼리는 다 통해 뭐든 들어드려요”☞거짓없고 솔깃한 공약… 금배지들 ‘空約’ 꼬집다☞불티나는 돼지고기 선물시장선 찬밥☞스타벅스의 변신 “와인도 맥주도 팔아요” ☞임금님이 여름 보양식으로 즐겼던 맛 ‘신안 민어회’
  • 서울신문과 반백년 해로 김영숙씨

    서울신문과 반백년 해로 김영숙씨

    2002년 태풍 ‘루사’가 할퀴고 간 강원도 양양읍 남문1리 253의5 단독주택 쪽방. 당시 78세의 노인 이창재씨는 방 안에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었다. 40여년을 한결같이 모아온 서울신문을 모두 홍수에 떠내려 보내고 할 말을 잃었다. 안방까지 들어찬 흙탕물에 신문더미가 쓸려가거나 불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100부씩 묶음을 만들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모아온 신문은 어느새 한 트럭 가까운 분량이나 됐다. 이씨는 신문더미를 무척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아내인 김영숙(72) 할머니는 “어쩌다 신문이 하루치라도 빠지면 할아버지가 불같이 화를 냈다.”면서 “홍수에 할아버지가 ‘억장이 무너진다.’며 말도 못할 지경이 됐어.”라고 돌아봤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해 가을 시름시름 앓더니 간암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3월 꽃샘바람이 불 무렵 할아버지는 세상을 등졌다. 그는 42년간 서울신문 독자이자 양양지국장이었다. 생전에 살았던 집 대문 앞에는 지금도 매일 아침 서울신문 한 부가 놓여 있다. 홀로 사는 할머니가 이씨 이름으로 이어받아 구독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조 차분하고 중심이 선 신문” 이씨 부부가 서울신문 독자가 된 것은 1961년 즈음. 버스 터미널에서 할아버지는 누군가 내버린 신문뭉치를 주웠다. 제호 ‘서울신문’. 어조는 차분하고 중심이 서 있었다는 것이 부부의 평가였다. 그 길로 구독을 신청하기 위해 양양지국에 가봤더니 4·19 혁명 직후라 신문 보급도 잘 안되던 어수선한 시절, 모든 게 엉망이었다. 당시 쌀 20가마 값인 10만환을 지불하고 아예 지국을 넘겨받게 됐다고 한다. 결혼한 지 갓 1년,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 부부의 험난한 배달생활은 시작됐다. 할머니는 “양양이 오지이잖수, 당시엔 서울신문이 석간이었어. 신문이 나오면 서울에서 직행버스로 싣고 내려와. 우리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기다리고 있지. 오후 4~5시쯤 버스가 도착하면 안내양이 안에 실은 신문 보따리를 내려줬어.”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근방에 배달됐던 신문은 100부에서 200부가 고작이었다. 한두 보따리 분량이다. 그러나 배달 실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잦았다. 할머니는 “친절한 안내양은 신문 보따리를 다 전해주는데 어떤 안내양은 대충 탁 던져 놓고 출발해 버려. 버스 구석에 있는 보따리를 다 안 건네주고 그냥 속초로 가버리는 거야. 그럼 또 전화로 교환원한테 속초 대달라고 한바탕 난리굿을 치러야 해”라며 웃어 보였다. 1980년 서울신문이 조간으로 바뀐 뒤에는 기상시간이 새벽 3시로 당겨졌다. 비바람이 부나 눈보라가 치나 리어카를 끌고 정류장에 나가 신문을 받아왔다. 강릉에서 넘어오는 차에서 양양과 주문진, 간성, 속초, 고성 지역으로 배달되는 신문이 모두 부부의 손에 쥐어졌다. 날씨가 험한 날엔 차가 연착해 1시간 이상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혹 안내양이 서울신문이 아닌 타지를 내려놓고 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서울신문 왜 안 갖다 줍네까.”라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기억도 생생하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서울신문의 전성기는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다. 할머니는 “새마을운동을 한창 벌일 때는 양양 사람들이 앞다퉈 신문을 구독했다우. 양양 지역에서만 500~600부가 배달됐지 아마.”라고 기억했다. 이 시절 남편 이씨는 정식시험을 치르고 서울신문 독자에서 지역주재 기자로 변신해 지역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이씨 부부는 2001년까지 양양지국을 운영했다. 고희를 넘긴 할머니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서울신문 독자로 살아온 셈이다. 출가한 3남매도 모두 서울신문 독자다. 할머니는 한국사의 굵직굵직한 대목을 서울신문 기사 제목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005년 낙산사가 전소됐던 양양·고성지역의 산불사태. 아직도 생생한지 “서울신문 1면에 시뻘건 화염에 휩싸인 절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는데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라며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는 기억력도 희미해진다. 아침마다 마룻바닥에 신문을 펼쳐 놓고 주욱 읽어내려가면서 사건들을 더듬어 내려가는 게 그나마 기억력을 유지하는 비법이다. 할머니는 “생전 바깥양반이 서울신문은 상업주의에 안 쏠리고 균형감을 갖췄다고 했어.”라고 소개했다. ●1985년 서울신문 새 사옥 견학 못잊어 서울신문은 할머니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도 만들어줬다. 1985년 서울신문사 빌딩이 태평로에 새로 들어선 직후 건물 견학을 왔을 때다. 할머니는 신이 난 아이처럼 아직도 즐거워했다. “서울신문 오래 봤다고 마을 아낙네들이랑 구경하러 오라고 하더구먼. 새 건물이 반짝반짝해서 주변 다른 건물들하곤 비교가 안 됐어. 지하에 있는 윤전기가 착착 돌아가면서 신문을 찍어내는 게 어찌나 신기하던지….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했지. 시골 사람들이 나 아니었으면 언제 그런 거 볼 수 있겠어?(웃음)” 105주년을 맞는 서울신문의 역사를 할머니는 각별하게 여기고 있었다. “서울신문이 벌써 105주년 맞았습네까? 나는 50년 가까이 ‘독자’ 이름을 지켰으니 서울신문이랑 반백년 해로한 셈이네. 우리 할아버지랑 산 거보다 더 오래된 거라우.”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삶의 현장 떠도는 새 불교수행법 필요”

    “삶의 현장 떠도는 새 불교수행법 필요”

    생명평화를 위한 그의 발걸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5년 간의 여정을 마쳤던 생명평화탁발순례단 단장 도법(60) 스님. 그가 이번에는 한국불교의 새로운 수행 문화를 위해 ‘움직이는 선원’ 운동을 제시했다. 15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스님은 “오늘날 불교 수행은 역사적 현실·현장과 괴리된 채 은둔해 있다.”면서 “정적인 수행을 답습할 게 아니라 삶의 현장을 떠도는 새로운 수행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는 동안거에 지리산서 ‘만행’ 계획 스님이 이야기하는 ‘움직이는 선원’은 말그대로 걸어 다니며 하는 참선 수행법. 불교에는 본래 ‘만행(漫行)’이란 방법이 있는데 이것으로 한 차례의 안거를 대신하겠다는 생각은 새로운 발상이다. “오는 동안거에는 90~100일 동안 스님 20명쯤과 함께 지리산 800리를 걸을 생각입니다. 침묵과 명상으로 지리산 곳곳을 밟는 거죠.” 단순히 걷는 게 아니라, 이 기간 스님들은 순례 출발 전후로 ‘100대절명상’(100대 절마다 하나씩 서원을 하는 명상)을 하고 ‘탁마’(琢磨)의 전통을 이어 토론의 시간도 갖는다. 첫 번째 만행 현장을 지리산으로 정한 것은 생명·환경을 위해 힘써온 지난 행력과 무관하지 않다. 스님은 “지리산은 민족의 성산(聖山)이지만 지자체들이 댐이나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면서 마치 자기네 산처럼 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사안마다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지리산 보존을 위해 화엄사, 쌍계사, 대원사, 벽송사, 실상사 등 지리산에 있는 주요사찰들의 뜻을 모으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5개 사찰을 중심으로 운동을 시작하지만 이것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져 지리산이 국민의 성지, 생명의 성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도법스님은 새달 14일부터 18일까지는 새로운 수행법을 통한 불교계 통합 및 쇄신, 생명·평화 문제를 범불교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행사도 주관한다. 무비 스님, 혜국 스님, 향봉 스님 등 불교계 큰스님들은 물론 100여명의 스님들이 모여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조계종이 금강경 가르침 따르는지 의문” 도법 스님은 “용산참사 등을 볼 때 과연 조계종이 소의(所依)경전인 금강경의 가르침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 “동체대비심을 비롯, 금강경의 가르침으로 오늘날 한국불교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28) 방태산 적가리골~주억봉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28) 방태산 적가리골~주억봉

    아침에 밭을 갈고, 오후에 나물과 약초를 뜯고, 저녁에는 책을 읽는다. 이러한 삶을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고, 아직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예전 방태산(1444m)의 아침가리와 적가리에 살았던 화전민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아침가리란 말처럼 아침이면 밭을 다 갈고, 방태산을 헤매며 약초를 뜯어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기에. 강원도 인제의 방태산은 점봉산과 더불어 남한 최고의 원시림과 깊은 골짜기, 톡 쏘는 탄산 약수를 품은 명산으로 사람들에게 은둔의 욕구를 자극하는 신비로운 매력을 가졌다. 예로부터 방태산 줄기에는 ‘3둔 4가리’(혹은 3둔 5가리)로 불리는 은둔의 유토피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3둔은 방태산 남쪽의 살둔·월둔·달둔, 4가리는 방태산 북쪽의 아침가리(조경동)·연가리·적가리·명지가리를 말한다. 여기서 둔(屯)은 평평한 산기슭, 가리는 사람이 살 만한 계곡을 일컫는다. 오래 전부터 흉년과 전쟁 등을 피할 수 있었던 방태산은 오늘날에는 피서지로 주목받고 있다. 방태산 ‘3둔 4가리’는 저마다 수려한 계곡을 품고 있는데 그중 가장 빼어난 곳이 적가리골이다. 이곳은 마을 심마니들과 여행 마니아들만 몰래 숨겨 두고 찾던 곳이었는데, 1997년 방태산자연휴양림이 생기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방태산 산행은 휴양림에서 시작해 구룡덕봉(1388m), 주억봉을 거쳐 다시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총 10.2㎞, 6시간쯤 걸리는 코스가 정석이다. ●적가리골 은둔의 욕구를 불러 일으켜 휴양림 숙소인 산림휴양관 앞의 널따란 마당바위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여기서 300m쯤 올라가면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서늘한 바람이 밀려오면서 계단폭포가 나타난다. 이곳이 적가리골의 최고 절경으로 주민들은 ‘이폭포 저폭포’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부른다. 위쪽에 있는 높이 15m쯤의 ‘이폭포’는 떨어져 잠시 널찍한 소(沼)에 머물다가 다시 ‘저폭포’라는 이름의 짤막한 폭포로 떨어진다. 주변에는 피나무·박달나무·소나무·참나무류 등 다양한 수종이 자생하고, 맑은 물속에는 열목어·메기·꺽지 등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한다. 전설에 의하면 폭포 밑에 두 개의 구멍이 뚫어져 있어 그곳을 따르면 홍천군 내면으로 통한다고 한다. 폭포를 지나 휴양림 도로 가장 위쪽의 공터에서 산길로 들어선다. 야영장을 지나 맑은 계류를 따라 20분쯤 걸으면 갈림길. 왼쪽은 구룡덕봉으로 돌아 방태산 정상인 주억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곧장 주억봉으로 이어진다. 원점 회귀산행을 하려면 여기서 왼쪽 길을 선택해야 한다. 갈림길에서 30분쯤 가면 길은 계곡과 헤어지는데, 이곳에서 수통에 물을 담는다. 다시 15분쯤 가면 심마니들의 임시 숙소인 모둠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가팔라진다. 코가 땅에 닿을 듯한 된비알은 매봉령까지 40여분 내내 계속된다. 매봉령부터는 경사가 완만해지면 주변의 들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매발톱, 기린초, 검종덩굴, 도깨비부채 등과 향기 좋은 개회나무의 흰꽃들도 그득하다. 이러한 천상의 화원은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된다. 꽃구경을 하며 30분쯤 오르면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 10분쯤 더 오르면 구룡덕봉 정상이다. 정상에 흉측하게 남아 있던 철조망과 쓰레기는 얼마 전에 인제군에서 대대적으로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시림 지대 구룡덕봉에서 주억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1000m가 넘는 다른 산의 고지대와 달리 굵고 키가 큰 나무들도 많은데, 아름드리 주목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만큼 원시림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건장한 나무들과 눈을 맞추며 30분쯤 걸으면 주억봉 직전의 갈림길. 오른쪽 길이 지당골을 통해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로다. 능선을 따라 15분쯤 더 오르니 주억봉 정상이다. 정상의 조망은 넙죽 절을 올리고 싶을 정도로 경이롭다. 우선 북쪽으로 넉넉한 품을 가진 점봉산 뒤로 설악산 서북주릉이 일필휘지로 펼쳐진다. 과연 광활한 산국(山國)의 제왕다운 품격이 흘러 넘친다. 남쪽 대개인동 방향으로는 두터운 나무들이 능선과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 방태산을 ‘이 땅에 마지막으로 남은 원시림 지대’ 또는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하산은 정상에서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지당골 방향을 잡는다. 길은 거칠고 경사도 매우 급하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수시로 멈춰 관절을 풀어 주도록 하자. 그렇게 1시간쯤 내려오면 계곡을 만나면서 길은 온순해진다. 계단폭포 아래에서 등산화 끈을 풀고 차가운 계곡에 발을 담그며 산행을 마무리한다. 방태산자연휴양림 입구 근처에는 1670년께 어느 심마니가 산삼 캔 자리에서 솟았다는 방동약수가 있으니 휴양림 오가는 길에 꼭 들러 보자. 300년쯤 된 음나무 아래의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방동약수는 탄산·철·불소·망간 등이 주성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맛은 일반탄산 약수에 비해 다소 부드럽다. <여행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대중교통은 상봉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현리행 버스를 이용한다. 현리터미널(033-461-5364)에서 방동리 경유 진동리로 가는 버스는 06:50 09:30 10:40 13:30 15:20 17:30 19:20에 다닌다. 갈터에 위치한 진동산채가(033-463-8484)는 방태산과 점봉산에서 나온 나물을 사용하는 유명한 맛집이다. 산채비빔밥 6000원. 산골정식 1만원. 방태산자연휴양림 (033)463-8590.
  • [민선 4기-남은 1년 이렇게] 박용래 관악구청장 대행

    [민선 4기-남은 1년 이렇게] 박용래 관악구청장 대행

    지난 5월15일부터 구청장직을 맡게 된 박용래 권한대행은 남은 임기 1년의 핵심과제로 ‘조직 안정’을 꼽았다. 인사비리 등으로 얼룩진 구정을 하루 빨리 바로잡아 조직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동시에 구의 미래 비전을 담은 ‘에듀밸리 2020’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10년 뒤 관악구의 새 성장동력을 발굴하겠다는 각오도 설명했다. ●탕평인사로 비리 근절 예기치 않게 구청장 권한대행을 맡은 그였지만 취임 후 내세운 것은 ‘경청과 소통의 리더십’을 통한 공무원조직 안정. 경기침체로 어려움에 빠진 지역 주민을 돕기 위한 ‘주민행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무원 조직에 ‘일하는 분위기’를 불어넣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련한 행정가’라는 평가답게 그동안 ‘복마전’으로 불리던 구청의 인사시스템부터 손질했다. 국별 인사책임제를 도입, ‘상부’의 의중이 아닌 실무 담당 직원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인사 관련 소통 창구를 만들었다. 인사가 공정하게 이뤄진다는 믿음이 있어야 직원 간 신뢰가 생겨나 일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박 권한대행은 강조했다. “덕분에 지난 1일 단행한 4·5급 승진인사는 조직 안팎에서 합리적이고 무난한 인사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불편부당한 행정을 시스템으로 만들어 민선 5기 때도 특정 여론이나 의견이 끌려다니는 일이 절대 없도록 만들어 놓겠습니다. 직원 근무평정 공개, 주요보직 직위 공모제 등을 통해 열심히 일하고 실력있는 직원들이 커 나갈 수 있는 관악구를 만들어 가려 합니다.” 그동안 박 권한대행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의사가 없음을 여러차례 밝혀왔다. 그래서일까, 자신이 2006년 관악구에 부구청장으로 오자마자 직접 발로 뛰며 만들었다는 구의 ‘에듀밸리 2020’사업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미국·영국 등 세계적 대학도시를 갖춘 나라들의 성공적 학·관 협력사례를 우리 현실에 맞게 벤치마킹한 이 계획은 2020년까지 관악구를 서울대와 연계해 세계적인 교육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자치구 단위에서 보기 드문 성공적인 마스터플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 교육도시로 만들 것 “이 프로젝트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면 10년 뒤 관악구는 ‘사교육을 적게 받아도 명문대에 갈 수 있는 지역’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될 것입니다. 또 서울대와 함께 지역 창의 행정의 모범사례로도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구정 기반 다지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유신랑’ 엄태웅, ‘미실’ 고현정에 선전포고

    ‘유신랑’ 엄태웅, ‘미실’ 고현정에 선전포고

    유신랑이 미실에게 정면 도전했다. 지난 14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 16회에서 유신랑 엄태웅은 미실 고현정과 독대해 불꽃 튀는 신경전을 펼쳤다. 엄태웅은 그동안 부드러운 포용력과 대범함 그리고 총명함으로 백제군과 아막성 전투를 성공으로 이끈바 있으며 미실 대항세력의 중심이 될 것을 예고했다. 16회 방송에서 유신랑은 드디어 미실에게 정면 도전했다. 유신랑은 카리스마와 눈빛 연기로 고현정에게 밀리지 않는 포스를 선보였다. 미실이 자기 세력을 넓히고자 유신랑을 따로 불러 적이 되지 말고 내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이에 유신랑은 미실의 눈을 쳐다보며 “새주님, 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소인에게 그와 같이 말씀해주시니 실로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허나 새주께서 저를 얻으실 수 있는 방법은 절 죽이셔서 그 시신을 갖는 것입니다. 산 채로는 가지 않겠사옵니다.”라고 당돌하게 맞받아쳤다. 자리를 박차고 나오며 유신랑은 “다시는 공주님과 아버지께 협박하지 마시옵소서. 저 또한 새주께 이 유신의 적이 되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이옵니다.”라며 선전포고성 발언을 했다. 훗날 김유신 장군으로 성장해 선덕을 도와 미실에 대항하는 화랑 ‘유신랑’의 포스가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방송 직후 게시판에는 ‘미실에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는 유신랑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미실과 격돌한 엄포스, 16회 최고의 장면이었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사진제공 = MBC ‘선덕여왕’ 캡쳐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PB] 이승엽 결국… 2군행

    이승엽(33·요미우리)이 극심한 타격 부진으로 결국 2군행을 통보받았다. 일본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호치’는 13일 “요미우리 코치진이 극심한 타격부진에 빠진 이승엽에게 올 시즌 처음으로 2군행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개막 직후부터 불안정한 타격감이 계속되고 원상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아 2군에서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그동안 “이승엽을 2군에 보낼 일은 절대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최근 부진이 길어지자 타격감 회복의 기회를 주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승엽은 4일 주니치전에서 시즌 16호 홈런을 터뜨린 뒤 최근 7경기 연속 20타수 무안타로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다. 12일 한신전에 앞서 이승엽은 “계기가 되는 한방을 때려내고 싶다.”며 슬럼프 탈출 의지를 보였으나 9회 2사 2루에서 대타로 나와 우익수 뜬공에 그쳤다. 이승엽의 2군행은 심한 기복으로 요미우리 코칭스태프에 믿음을 주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승엽은 지난해 엄지 재건 수술 후유증으로 4월 중순부터 100일 동안 2군에서 생활하는 등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이승엽은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도 고사하고 소속팀 훈련에 전념했다. 절치부심한 이승엽은 올해 개막전 시범경기에서 맹활약하며 시즌 초반 5번 타자로 나섰지만, 타격 부진으로 불과 4경기 만에 선발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당했다. 이후 5월 연타석 홈런 등 홈런 6방을 몰아치며 부활 조짐을 보였으나, 인터리그에서 32타석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지난 6월26~28일 야쿠르트와의 3연전에서 3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올리며 다시 상승세를 타는 듯하다가 7경기 연속 무안타로 내리막길을 걸으며 롤러코스터 행보를 거듭했다. 13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이승엽이 2군에 얼마나 머무를지는 확실치 않다. 빠르면 23일 쯤 복귀가 가능하지만, 일본 프로야구가 올스타 브레이크(23~27일)를 앞두고 있어 28일 이후 1군에 합류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승엽은 올시즌 73경기에 출전, 타율 .235(213타수50안타)에 홈런 16개와 35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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