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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남호 때리기’… 목청 높인 정동영

    ‘조남호 때리기’… 목청 높인 정동영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국회에 그리 나오기 싫으셨습니까.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 아닙니다. →국회를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능멸했습니다. 투표권 있으시죠. 민주주의의 권리, 재벌의 권리는 누리면서 민의의 전당은 무시해도 됩니까. -아닙니다.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절 똑바로 보세요(호통). 18일 국회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청문회에 조남호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으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았다. 조 회장은 무리한 정리해고의 장본인으로, 해외 출장을 이유로 50여일이나 국회 출석을 피했다. 괘씸죄, 청문회 회피용 거짓 출장 변명까지 의원들의 뭇매는 어느 정도 예고돼 있었다. 결국 조 회장은 청문회에서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호소하면서도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조 회장을 가장 집요하게 몰아세운 이는 정 최고위원이었다. 한진중공업 조합원 장례식 동영상에 이어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과의 휴대전화 연결까지 불사하며 조 회장을 작심한 듯 몰아붙였다. 정 최고위원의 질의에 청문회장은 때론 숙연해졌고 때론 여야 의원들 간에 고성이 오가며 정회되는 소동도 빚어졌다. 3차에 걸친 희망버스에 모두 동승하며 한진중공업 해결사를 자처해 온 정 최고위원도 그러나 조 회장에게서 속시원한 해결책을 듣지는 못했다. 오전 질의 순서에서 정 최고위원은 조 회장에게 “이분들을 기억하느냐.”며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들이밀었다.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으로 복직투쟁 끝에 자살한 김주익 노조 지회장, 곽재규 조합원의 장례식 화면이었다. 정 최고위원은 “이들은 조 회장이 죽인 사람들이다. 살인하지 말라. 해고는 살인이다.”라며 울먹이다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의 딸들이 흐느끼며 조사를 읽는 장면에서 청문회장에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정 최고위원이 “회장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한 말씀하라.”고 요구하자 조 회장은 “드릴 말씀이 아무것도 없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고개를 떨궜다. 오후에는 참고인으로 채택됐지만 출석을 거부한 김 지도위원과의 전화 연결을 놓고 청문회가 10여분간 정회되기도 했다. 역시 주인공은 정 최고위원이었다. 그가 김씨를 휴대전화로 연결한 뒤 “김 지도위원, 조 회장이 제 앞에 있는데 말해 보세요.”라고 하자 김씨는 전화를 통해 “제가 크레인에서 225일 있는 게…”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여당석에서 곧바로 반대하는 고성이 터져 나왔고 청문회장은 금세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장제원 한나라당 의원은 “부산 시민들은 김씨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여당 의원들도 “지금 쇼하는 것이냐.”, “그럴 거면 청문회장에 불러내라.”고 고함을 질렀다. 이에 정 최고위원은 “목숨 걸고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대변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나라당은 왜 김진숙을 두려워하느냐.”고 맞섰다. 10여분 정회한 동안에도 여당 의원과 정 최고위원은 옥신각신했다. 결국 정 최고위원이 전화연결을 양보하며 청문회는 속개됐다. 다른 의원들도 조 회장의 부도덕한 기업인 행태를 공격하는 데 집중했다. 민주당 이미경 의원은 “주주들에겐 2009년부터 3년간 440억원을 현금배당하고, 정리해고 발표 다음 날 주식 배당을 시가로 174억원이나 했다.”며 “회사의 위기는 조 회장이 조작한 위기”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은 “정리해고 직후 주주 배당, 이사 봉급 인상이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해도 안방에선 불났는데 건넌방에서 갈비 먹고 라면 끓여 잔치 벌인 것”이라면서 “노동자들에게 상생의 기회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렇게 비난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이범관 의원은 “한진중공업홀딩스 지배주주로서 받은 현금배당을 내놓는 등 경영 합리화에 기여하겠다는 자세를 가질 수 있느냐.”고 다그쳤다. 조 회장은 이에 대해 “그런 의견을 검토해 곧 발표를 하든지 하겠다.”고 답변했다. 조 회장은 또 정리해고를 단행한 직후 주주 및 한진중공업홀딩스에 주식·현금 배당을 한 데 대해 “배당은 공시했던 사항으로, 날짜가 우연히 겹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8·15 66주년] “음지서 독립 투쟁한 여성도 수만명… 정부가 증언·사료 수집해 예우해야”

    “들꽃은 늘 조명받지 못했다. 오히려 발에 밟히고 차였다. 그러나 들꽃의 생명력은 강하다. 그들은 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피어있다.” 시인 이윤옥(52·여)씨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들꽃이라고 말한다. 지난 6월 출간된 그의 두번째 시집 ‘서간도에 들꽃피다’는 역사의 뒤편에 묻혀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한 최초의 시집이다. 이씨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광복군 여성대원들의 맏언니였던 오광심은 물론 밥 짓고, 군복 만들고, 독립자금 조달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라면서 “이들을 기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시로 그들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씨는 “‘(여성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증거를 가져오라’는 정부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는 어불성설”이라며 “정부가 직접 여성독립운동 사료를 수집하고 드러나지 않은 여성 유공자들을 발굴해 걸맞은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사를 건 엄혹한 시기에 그들이 독립투쟁의 흔적을 남겼겠느냐.”면서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66돌을 맞은 광복절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에서 이씨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평가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역할이 형편없이 과소평가돼 있다. 남성 독립유공자가 수만명이라면 여성 유공자의 숫자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공인된 독립유공자 1만 2966명 가운데 여성은 204명에 불과하다. 직접 총과 폭탄을 들고 싸운 여성도 적지 않지만 뒷전에서 밥 짓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나르는 등 음지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한 여성들도 모두 독립유공자 아니겠는가. →현재의 독립유공자 심사체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인데…. -스스로 서류를 제출해 독립운동을 증명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으려면 직접 증거자료를 수집해 국가보훈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상황을 안다면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본군에 쫓겨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일부러 서류 등 흔적을 없앴는가 하면 가명을 서너 개씩 쓰기도 했다. 그나마 명단에 오른 분들은 후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기록을 수집하고 정리해 가능했다.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분들도 많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가. -간단하다. 정부가 나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국내와 일본신문만 봐도 적잖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평남도청에 폭발물을 던진 안경신 의사의 경우도 ‘여자폭탄범’이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실렸다. 또 백범일지를 보면 연미당·정정화 여사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이렇게 하나하나 기록을 되짚어 찾는 것이 국가가 할 일 아니겠는가. 생존해 있는 여성독립운동가가 몇 분 안 된다. 그들의 증언이 가장 중요하다. 빨리 그 분들의 구술을 문서로 기록해 둬야 한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강의를 하던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운동가를 아는 대로 써 보라고 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댄 학생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태반이 유관순 열사였다. 그런 현실이 서글펐다. 그때 가까이 두고 읽을 수 있는 시집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를 쓰는 데 필요한 자료는 어떻게 수집했나. -기록이 거의 없었다. 국가보훈처 자료도 여성유공자 한 명당 서너줄의 기록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이들의 활동무대를 직접 찾아 나섰다. 중국 상하이, 광저우, 항저우, 충칭 등을 답사했고, 춘천 부산 나주 인천 수원 등을 돌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그러나 생존한 여성독립운동가가 6명에 불과해 자료 수집도 쉽지 않았다. 생가와 묘지가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경북 안동에서 김락 지사의 묘소를 찾아가는 데 마을 사람들에게 수소문해야 했을 정도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 3·1절에는 여성독립운동가를 주제로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다. 이미 펴낸 시집도 공공도서관이나 초·중·고교에 보급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쉽지 않다. 얼마 전 요양원에 계신 이병희 여사를 찾아가 직접 시를 낭송해 드렸다. 눈물이 쏟아져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앞으로 시를 통해 여성 독립유공자 200여명의 숭고한 일생을 재조명해 보고 싶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슈퍼스타K3 최아란 해명…난동 조작논란 글 번복 (전문)

    슈퍼스타K3 최아란 해명…난동 조작논란 글 번복 (전문)

    슈퍼스타K3 최아란이 난동 조작논란을 부른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는 해명을 했다. 최아란은 14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처음에 제가 올린 글은 방송을 보지 않고 주변 친구들과 모르는 번호로 아무 이유 없이 욕설 문자들이 날아오기에 욱해서 내 정신으로 올린게 아니었다”고 해명글을 올렸다. 엠넷 ‘슈퍼스타K3’(슈스케3) 첫 회에서 불합격을 받자 기물을 파손하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리고 이를 제작진이 시킨 것이라고 주장해 조작 논란을 일으켰다. 방송 직후 난동에 대한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최아란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방송에 나온 일시적으로 짜여진 행동들과 행위는 제작진들의 제작 의도하에 시키는 대로 했다. 자백할 수 있다. 큰 오해는 마시고 지역 예선 Mnet리허설 현장에 오신 분들은 이해하실 거다. 제가 정말 화가 나고 억울해서 나의 의도로 행동한 부분이 아니란 걸 자백한다”라는 해명 글을 올렸다. 슈퍼스타K3 제작진이 최아란의 주장을 부인하며 조작논란이 불거지자 최아란은 자신의 글을 삭제했다. 최아란 해명 전문 전국민 여러분 뜨거운 성원과 열정적인 관심쏟아주셔서 저 그대들에게 빠져들게 생겼습니다. 처음에 제가 올린 다이어리글은 방송을 보지않고 주변친구들과 모르는번호로 아무 이유없이 욕설팸들이 날리오길래 욱” 해서 글을 급하게 내정신으로 올린게 아니랍니다 . 어차피 떨어졌구만, 저는 여러분과 같은 시민입니다. 별반없이 인위적인 펄포션은 재미를 주기 위한 틀에 부가적으로 나의 솔직한 모습을 라면스프 만큼 조금 첨가했습니다, 짭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절 바라보고 있는 전국민 여러분” 저는 그대들과 한편일세 ♡ 내 클럽 완전 좋아하니께 같이 함께할 그대들 음악에 미쳐 볼랑가? ㅋㅋㅋㅋㅋ 전국민여러분 사랑합니다 사진=최아란 미니홈피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오작교 형제들(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농장이 창식의 소유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복자는 충격으로 온몸이 떨린다. 자은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태희의 경찰서로 끌려오게 된다. 자은은 태희와 실랑이를 하던 중 인호가 실종됐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한다. 아빠의 실종 소식을 믿을 수 없어 자은은 식음을 전폐하고 인호가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도한다. ●풍경이 있는 여행(KBS1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불명산에 위치한 천년고찰 화암사는 시인 안도현의 표현에 의하면 ‘잘 늙은 절’이다. 가는 길부터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숲길이 펼쳐진다. 화암사는 크지 않다. 그리고 여느 절처럼 수리가 잘돼 있지도 않다. 곱게 늙은 노인의 깊게 파인 주름처럼 아름답게 늙어 가는 화암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함께한다. ●MBC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애정만만세(MBC 토요일 밤 9시 50분) 형도는 정희의 진료를 마치고 할 말이 있다며 불러낸다. 그러고는 정희에게 재미 결혼 때 아무것도 못해 줘서 미안하다며, 늦게라도 아빠 노릇 하고 싶다며 돈을 건넨다. 한편 깡패들이 몰려와 재미가 개업한 죽집 이름이 정수에 의해 미리 특허 신청돼 있다고 행패를 부린다. ●잘먹고 잘사는 법(SBS 토요일 오전 9시 45분) 밥상 가족을 웃게 만든 검은 차광막의 정체는 무엇일까. 오늘의 밥상 메뉴에는 부드럽고 달콤한 호박된장찌개부터 씹을수록 고소한 가지나물과 아삭아삭 오이소박이에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인 호박잎쌈, 알싸한 파김치까지 여름 재료가 총출동한다. ●산 너머 남촌에는(KBS1 일요일 오전 9시) 정미와 하이엔은 휴가철 행락객들이 오가는 것을 보며 부러워한다. 그리고 휴가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운을 뗐다가 구박만 듣는다. 게다가 이게 웬일. 남편들이 휴가 온 여인네들과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화가 난 정미와 하이엔은 자체적으로 여자들끼리 휴가를 다녀오자고 결의하는데…. ●영상앨범 산(KBS2 일요일 오전 7시 40분) 비가 쉴 새 없이 내리던 날. 12명의 남자들은 어김없이 짐을 꾸렸다.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영남의 지붕’, ‘영남의 병풍’이라 불리는 곳이다. 경남 밀양 산내면, 청도 운문면, 울산 상북면 등에 높이 1000m 이상 되는 7개의 산을 통칭하는 곳이다. 운무에 싸인 짙푸른 숲에서 영남 절경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 본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MBC 일요일 오전 10시 45분)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두 명의 남자가 있다. 거친 남성의 이미지를 부각해 당시 ‘차가운 남자‘로 통했던 남자와 도시적이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당대 ‘뜨거운 남자’로 통했던 남자. 극과 극의 매력을 발산했던 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이 시작된다.
  • ‘4% 물가’ 지킬 수 있을지 의문

    ‘4% 물가’ 지킬 수 있을지 의문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1일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두달 연속 3.25%로 동결했다. 미국 등 대외경제 환경이 불안정한 탓이다. 그럼에도 소비자물가가 7개월 연속 4%대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동결로 4% 물가 목표를 지킬 수 있을지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날 “기준금리 정상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미국 신용등급 강등으로 국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준금리 인상이 트릴레마(3중고)에 빠졌다.”고 말했다. 트릴레마는 환율·물가·금리의 3중고를 의미한다. 김 총재의 발언은 기준금리 정상화의 속도조절로 받아들여진다. ●美 쇼크에 금리인상 속도조절 김 총재는 “최근 물가 상승폭 확대에도 불구하고 연간 물가상승률 전망치인 4.0%를 수정할 의사가 없다.”면서 “특정 수준을 목표로 삼지는 않지만 대외여건 변화를 매우 면밀하게 주목하면서 우리 경제의 건실한 성장을 기조로 하는 중립금리 수준을 찾아가겠다.”고 말했다. 금통위의 금리 동결은 만장일치로 이뤄졌다. 한은은 올들어 1, 3월 한달 간격의 베이비스텝으로 금리를 올린 뒤 3개월 만인 6월에 금리를 올렸다. 김 총재는 미국 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블딥은 2개 분기 연속 전기와 비교해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이 전년 동기나 전분기 대비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 QE’라는 단어가 붙을 만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총재는 자본시장과 관련, 외국인 자금 이탈의 상당부분이 유럽 자본이고, 유럽지역 문제해결을 위해 나간 측면이 있으며 한국 자체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나 시장 상황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시간이 지나면 안전자산을 선호하고 좋은 투자처를 선호하는 자본들이 한국에 몰려올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김총재 “美 더블딥 우려 크지 않다” 그는 스태그플레이션(높은 인플레이션과 낮은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는 답하기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면서 답변을 피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의 금리동결에 대해 섣불리 올렸다가 오히려 경기둔화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기준금리 동결이 불가피했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폭우와 장마 탓에 7월 생산자물가는 6.5%나 뛰어 올라 채소·과일 대란이 우려된다. 다음 달 추석을 맞아 물가는 다시 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전기요금 인상 등 지방공공요금이 들썩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도서관 향교서 충·효·예 배워요”

    Q:“왜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졌을까요.” A:“지키지 못해서요.” Q:“누가 지키지 못한 걸까요.” A:“음…. 우리가요.” 10일 광진구 광장동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마련된 ‘도서관 향교’의 수업 풍경이다. 30여명의 어린이와 선생님이 모인 가운데 기초예절교육이 한창이었다. 평소 학교 수업시간에 장난치며 노닥거리던 아이들은 사흘이 지나자 의젓한 모습으로 유교의 기본 정신인 충·효·예를 몸으로 깨우치기 시작했다. 오지은 관장은 “예부터 향교는 지방교육의 중심이었다.”며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향교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는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오는 20일까지 매일 오전 9시~낮 12시 전통문화교육을 통한 향교교육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옛 어린이 한자교과서)에서부터 고사성어 읽기, 원문에 담긴 교훈 이해, 절하는 법, 차(茶) 마시는 법까지 프로그램 또한 다채롭다. 성동초교 6학년 장보윤(12)양은 “고사성어를 퀴즈로 풀고 TV에서나 봤던 다도법을 알게 돼 기뻐요. 곧 재료비 5000원만 내면 닥종이 인형·부채 만들기, 된장 샌드위치 만들기도 할 수 있어 다음 수업도 손꼽아 기다려져요.”라며 웃었다. 구는 창건 600돌을 맞은 한국 제1의 향교인 강서구 가양동 양천향교와 손잡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절전통놀이 전문강사 정규승씨를 비롯해 한문 담당 이광희, 다도·음식 담당 최진·윤옥희씨가 강사로 나섰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선소리산타령 이수자 최숙희씨도 민요를 가르친다. 서울시 향교재단 정규승(61) 부설연구원장은 “한류가 대세인 요즈음 아이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도 선조들이 남긴 삶의 지혜를 몸소 익히게 해주고 싶다.”며 “성균관에서 지역별로 다른 배례법을 비교해 표준을 뽑아 보급 중인데 이런 배례법 경연대회나 조선조 벼슬 놀이인 ‘승경도 놀이’ 수업을 통해 당시 행정·직위체계를 저절로 터득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9)송나라 대문장가 소식

    우리에게 소식(蘇軾·1036~1101)은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문장가일 뿐만 아니라 정치가이자 화가, 시인, 서예가였다. 심지어 그는 요리에도 조예가 있는 팔방미인이었다. 다방면에 걸친 그의 재능은 자신의 문장을 자평할 때 말한 것처럼, “만 섬이나 되는 샘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용솟음쳐 나올” 정도였다. “평지에서는 도도하게 콸콸 흘러 하루에 천리를 가기에도 어렵지 않다. 그것은 산의 돌멩이들과 어울려 꾸불꾸불 흐를 때에 사물에 따라 모양을 바꿔 나간다.”(‘자평문’) 자신의 문장에 대한 드높은 자부심과 거침없는 기개야말로 소식이라는 인간 그 자체이자 그의 문장의 특징이다. ●21살에 과거 급제… 정치 행보는 부침 거듭 21살, 소식은 과거에 급제했다. 당시 최고 문장가였던 구양수는 소식의 과거 시험지를 보고, “이 늙은이는 이제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소.”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구양수의 예언대로 소식은 30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를 대신해서 문단의 맹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소식의 이름이 문장으로 널리 알려지는 것과는 달리 정치적 행보는 부침을 거듭했다. 신법당과 구법당의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소식은 지방으로 좌천되었으며, 두 차례나 유배를 당했다. 1069년, 신종은 왕안석의 신법을 채택하여 정치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신법은 대지주와 호족들의 토지 겸병을 막고, 관료체제를 정비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한 부국강병책이었다. 대지주와 호족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구법당은 시행과정 상의 예상 문제점들을 들어 신법을 반대했다. 구법당은 사마광, 정이의 낙파(洛派)와 소씨 삼부자(소순, 소식, 소철)의 촉파(蜀派)로 나뉘어 서로 신법에 맞섰다. 북송 ‘신고문운동’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소식과 왕안석은 한데 묶일 수 있지만, 정치적인 견해에서는 서로 달랐다. 또한 신법에 대한 정견이 일치했을지는 모르나 유가의 도를 종주(宗主)로 삼는 낙파와 달리, 소식은 노장과 불교를 모두 포괄한 유학자였다. 소식은 신법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세 차례나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일로 신법당의 미움을 사 한미한 관직으로 지방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 그의 문학적 활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어 시, 사(詞), 기(記) 등 호방하고도 개성 넘치는 문체를 형성하게 된다. 소식을 좌천과 유배로 몬 것도 그의 문장이요,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불운과 험난한 인생을 치고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준 것도 그의 문장이었던 것이다.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 소식은 “마음속 생각이 충만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고 봤다. “옛날에 글을 짓는 사람은 글에 능한 것을 ‘좋은 글’로 여긴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글을 ‘좋은 글’로 생각했다. 산천의 구름과 안개, 초목의 꽃과 열매도 충만하고 울창하게 되어야 밖으로 드러나듯이.”(‘南行前集敍’) 작가가 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얻은 충실한 사상, 내용을 갖고 있으면 예술적 형식은 자연스럽게 얻게 된다. 이 문장론은 ‘흉유성죽론’(胸有成竹論)이라는 예술론으로 더 잘 알려졌다. 문인화론의 확립자로 알려진 소식은 사군자, 특히 문동의 대나무 그림에 주목했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지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다. 그때 급히 서둘러 붓을 휘두른다.”(’文與可畵篔簹谷偃竹記’) ‘마음속의 대나무’를 들어 소식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술과 인격의 관계였다. 일체의 객관 사물이란 모두 작가의 주관적인 색채로 그려지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경(意境)이 조화를 이뤄 감상자에게 생동감을 줄 수 있다. 문동이 즐겨 그렸다는 ‘누워서 쳐다 본 대나무‘는 단지 몇 마디의 대나무를 그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만 자가 넘는 화가의 기세가 담겨 있다.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의 절개를 지키며 살아가겠다는 문인의 기세. 요컨대 대나무라는 대상을 얼마만큼 잘 모사했느냐가 아니라, 대상을 통해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화가의 고유한 감정과 정신세계를 얼마나 잘 드러냈느냐가 핵심이다. 이 같은 문인의 자부심이야말로 좌천과 유배와 같은 정치적 불운에도 굴하지 않게 만든 ’소식의 힘‘이었다. ●자신의 인연 받아들이고 ‘거사’ 자처 1079년(44세), 신법당과의 악연은 마침내 필화사건으로 터졌다. 오대시안(烏臺詩案)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소식이 썼던 시들에 임금과 정부를 모욕, 비방하는 내용이 있다는 신법당의 참소로 일어났다. 136일 동안 어둡고 좁은 감옥 안에서 그는 언제 사형 명령이 떨어질지 숨죽이며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했지만, 황주(호북성) 유배령이 떨어졌다. “본성이 말을 삼갈 줄 몰라서 남들과 친하건 친하지 않건 가릴 바 없이 마음속의 생각을 다 털어놓아야지 못다한 말이 있으면 마치 목구멍에 음식이 걸린 것 같아서 반드시 토해 내고야 마는” 소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소철은 유배길을 떠나는 형에게 신신당부했다. 구설수에 오르지 않도록 글과 말에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호방한 성격의 소식이었지만 충정심이 나라에 죄를 얻은 상황이라, 폄적(貶謫·벼슬자리에서 내치고 귀양 보내다) 초기에 그는 글을 한 줄도 지을 수 없었다. 그는 “문을 닫고 외부와의 출입을 끊은 채 놀란 혼백을 가다듬고 물러나 엎드려 있었다.” 붓을 놓은 일은 외부와의 완전한 관계 단절을 의미했고, 또한 자기 존재의 의의까지 회의하게 만든 일이었다. 폄적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가족을 부양하는 경제력의 원천인 관직을 잃자 소식의 가족들은 갑작스레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동생·친척과의 이산 및 지인의 죽음은 인생무상으로 엄습했다. 폄적은 소식으로 하여금 다른 경계로 자신을 밀어붙이는 어떤 문턱에 서게 만든 경험이었다. 소식은 불교 서적을 읽고, 근처 절을 찾아가 향을 피우고 고요히 앉아 묵상에 잠겼다. “깊이 성찰하여, 대상과 자아를 잊고 몸과 마음이 모두 텅 비는 경지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워지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또 소식은 지인의 도움으로 황주성 동쪽 산비탈의 황무지를 사서, 그곳을 ‘동파’(東坡)라 이름하고, 자신을 ‘동파거사’(東坡居士)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이름보다 더 유명한 ‘동파’라는 호가 탄생한 시점이다. 이 시기 소식의 두 벗은 ‘도연명집’(陶淵明集)과 ‘유종원집’(柳宗元集)이었고, 그는 스스로를 도연명에 비유하며 세속적인 욕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은 저절로 흘러넘쳐 글이 되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황주성 밖의 적벽에서 뱃놀이를 하다가 지은 ‘적벽부’(赤壁賦)다. “손님도 저 강물과 달을 아는가? 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이 쉼 없이 흘러가나 아주 가버려 없어진 적은 없고, 달도 차고 이지러지는 것이 저와 같으나 결국 줄거나 늘어나지는 않았네. 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천지도 일순간을 멈추어 있지 못하지만, 불변한다는 각도에서 보면 만물과 내가 모두 무궁하다네. 그러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는가? (중략) 또한 천지간에는 만물에 각기 주인이 있어 만일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비록 터럭 하나라도 가져선 안 될 것이나,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만은 귀로 들으면 음악이 되고 눈으로 보면 경치를 이루어 이를 가져도 막는 이 없고 써도 다 없어지지 않으니, 이는 조물주의 무한한 보배요, 나와 그대가 함께 즐겨야 할 것이라네.” 스무 살 무렵부터 ‘장자’를 애독하며 “이 책을 보고 마음을 얻었다.”던 그는, 이제 어떤 외물(外物)에도 얽매이지 않는 ‘거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사물을 사물로 대하고 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사물의 바깥에서 노닌다.”고 말하며, 초월적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적벽부’에서도 보이듯, 말년의 소식은 변화와 불변의 경계조차 자유로이 가로지르면서 초월적 경지조차도 초월한 듯이 보인다. 그는 이제 억지로 세간과 출세간을 분별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을 둘러싼 인연의 오고 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편안히 내맡길 따름이었다. ‘궁이후공’(窮而後工)이라는 구양수의 표현대로, 소식의 문장은 궁함을 통해 하나의 궁극에 이르게 된 것이다. 최정옥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Weekend inside] 순천대 본관 앞 연못 풍수지리의 진실은

    [Weekend inside] 순천대 본관 앞 연못 풍수지리의 진실은

    #3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전남 순천대 총장을 지낸 허상만(68) 전 총장은 퇴임 9개월 후에 농림부 장관에 취임했다. 허 전 총장은 장관직에 이어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직도 활동적으로 수행했다. #4대 후임 김재기(당시 59세) 전 총장은 2006년 퇴임 후 한달 만에 교통사고로 숨지고 말았다. 대낮에 보성인 고향집으로 향하던 국도에서 대형 화물차와 정면충돌하는 변을 당한 것이다. 지역 교육계가 큰 슬픔에 빠졌다. #5대 2006년 취임한 장만채(53) 전 총장은 퇴임 직전에 전남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6대 경제관료 출신 임상규(당시 62세) 전 총장은 2010년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취임했다. 그러나 임 전 총장은 안타깝게도 임기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지난 6월 과거 공직 비리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1991년 단과대에서 종합대로 승격한 순천대는 지방대학으로는 보기 드물게 6명의 역대 총장(임기 4년) 중 2명이 퇴임 후 장관과 도교육감을 맡았다. 반면 2명은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았다. 이를 놓고 순천대 교정과 지역에서는 풍수지리학적 관점에 빗댄 기이한 소문이 돌고 있다.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역대 총장들의 영예와 비극에는 교정에 조성된 ‘연못’이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순천대 본관 앞에는 가로 21m, 세로 28m, 면적 318㎡의 제법 커다란 연못이 있다. 울창한 연꽃과 수백마리의 잉어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태평하게 노니는 평범한 연못이다. 이 연못은 2002년 9월 퇴임을 앞둔 허 전 총장이 3개월에 걸쳐 7400만원을 들여 조성했다. 당시 학교 측은 풍수지리학적으로 그 자리에 연못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자주 듣고 연못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허 전 총장은 틈나는 대로 연못에 나와 주변을 돌봤다. 이후 장 전 총장도 이 연못에 각별한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업무 중 휴식을 하고자 하면 연못가에 나와 물고기밥을 던져주었다. 그는 3차례나 잉어 수백 마리를 직접 구입해 연못에 풀었고 홍연꽃, 백연꽃도 사와 이식 작업을 하면서 자연석과 개흙으로 주변을 꾸몄다. 장 전 총장은 대학 교육이 초·중등 교육과 맞지 않는다는 우려를 씻어내고, 대학총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도교육감에 당선됐다. 이와 반대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김 전 총장과 임 전 총장은 문제의 연못에 그리 각별한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는 게 괴소문의 내용이다. 임 전 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모 교수는 “연못과 관련한 총장들의 얘기는 흥미롭게 들었다.”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임 전 총장은 연못에 관심을 가질 만한 시간과 이유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순천대 바로 뒤에는 봉황을 상징하는 난봉산이 있다. 이 대학의 터가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봉황이 날갯짓을 하는 모양’이라는 게 풍수지리학적인 해석이라고 한다. 순천대에서 10년 넘게 전통 풍수지리를 강의하고 있는 김계현(65) 교수는 “연못을 돌보는 것이 역대 총장들의 앞날을 결정한다는 말을 맞다, 아니다로 직설적으로 표현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면서 “다만 봉황의 기운이 짙은 순천대는 연못을 만들 때 풍수지리학의 도움을 받은 게 확실하고, 예부터 연못은 하천 치수와 더불어 중요하게 여겨졌다.”고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봉황은 갈증이 나면 물을 찾아 떠나버리기 때문에 봉황이 그 자리에 머물도록 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대학 본관 앞에 물 접시 형태의 연못을 만들어 갈증을 달래주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연못을 관리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또 인근에 있는 곡성군 태안사를 예로 들었다. 태안사는 1950년 8월 6·25전쟁 당시 곡성경찰서장 등 329명의 경찰관이 곡성 지역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군과 교전하다 산화한 넋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경찰관 위령탑’이 있는 절로 알려진 곳이다. 김 교수는 “태안사는 봉황을 상징하는 봉두산 산세에 있다. 8년 전에 입적한 청화 스님이 절의 형상을 보고 대웅전 입구에 큰 연못을 만들었다.”면서 “봉황 지형은 그만큼 연못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총장 선거에서 제7대 총장으로 선출된 송영무(57) 교수는 “연못 얘기는 얼핏 들었다.”면서 “총장으로 정식 취임하면 교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어떻게 할 것인지 그때 검토해 볼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교직원은 “연못 주위에서 자주 눈에 띄는 직원을 발견하면 ‘승진하려고 하느냐’는 우스갯소리를 한다.”면서 “그러나 연못에는 충격적인 일도 함께 얽혀 있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길섶에서] 만신(萬神)/곽태헌 논설위원

    어제 아침 신문에 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실렸다.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100일 앞두고 서울 보신각에서 열린 ‘합격기원 타종행사’가 끝난 뒤 학부모와 수험생들이 보신각 종에 손을 대고 기원하는 모습이다. 수능에서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염원을 읽을 수 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절을 찾고, 교회를 찾고, 성당을 찾는 학부모들은 늘게 마련이다.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자녀에게 도움만 된다면, 평소에 믿는 종교와는 상관없이 모든 신을 믿고 찾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수험생이 있으면 가족의 모든 스케줄도 수험생 위주로 될 수밖에 없다. 대학 가는 데 사실상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우리의 현주소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면 수험생과 부모 모두가 행복해진다고 한다. 기대치나 욕심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수험생의 부담도 덜어주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 눈높이를 낮춰 보는 것은 어떨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김보민 “저 몸무게 44.5kg인데” 악플 대처 글 (전문)

    김보민 “저 몸무게 44.5kg인데” 악플 대처 글 (전문)

    김보민 아나운서의 몸무게를 고려하지 않은 비난 악플에 김 아나운서의 대처 방법이 칭찬을 받았다. 3일 김보민 KBS 아나운서 트위터에 오른 악플은 ‘동네아줌마, 상체비만 하체비만, 방송이 장난인가’ 등을 운운하는 인신공격성 악플이다. 그러나 김보민 아나운서는 악플에 대해 의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해 눈길을 끌었다. 다음은 김보민 비난 악플과 대처 글 전문. <김보민 악플 글> 무슨 동네아줌마가 마실나온 것도 아니고.살도 좀 빼세요. 요즘 방송보면 상체비만 하체비만 장난 아니던데 방송이 장난인가요? 가뜩이나 이미지도 안좋으신데 나아지긴커녕 갈수록 비디오적으로도 오디오적으로도 모두 엉망이 돼가면 어쩌자는건지.. <김보민 악플 의연대처 글> 저 44.5킬로그램입니다. 아나운서 공채 29기에 올해로 9년차구요, 결혼 5년차에 4살 아들 하나 있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못 생기고 살쪄서 전 어쩌죠? 더 노력하겠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제 노력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느낌이어서요. 이런 절 사랑해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관심에 미소로 지나치면 되는데 오늘 아침에 이 멘션을 보며~ 예쁘고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모습이 저랍니다. 마음으로 예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전혀 성형하지 않아도~눈이 동양적이라도~완벽하지않아 빈틈이 보여 마음에 들 지 않으셔도~~계속보다보면 정 드실 거예요. 자꾸보면 정드는 얼굴이랍니다~하루 잘 보내세요^^ 트위터보니~ 제게 글만 쓰셨더라구요.혹시 제가 드린 답변에 맘 상하지 않으셨음 좋겠습니다. 저도 아나운서지만 한 사람의 아내이기도,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보니~ 맘이~ 좀~ 스포츠 타임 사랑하시는 애청자 분이셔서 전 고맙습니다.응원 많이 해주세요. 사진 = 김보민 트위터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깔깔깔]

    ●부전자전 20세 된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모님 앞에서 말했다. “저는 제 인생을 찾아 떠나겠어요.” 아버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 인생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전 즐겁게 살고 싶다고요.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여행도 하고 싶고, 멋진 여자들도 만나고 싶어요. 절 막지 마세요!” 말을 마친 아들이 일어서서 나가려 하자 아버지가 아들을 가로막았다. “왜 그러세요? 뜻을 굳혔으니 절 막지 마시라고 했잖아요.” 그러자 아버지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누가 널 막는다고 그러냐? 어서 앞장서라. 같이 떠나자꾸나.” ●난센스 퀴즈 빵이 시골에 갔다. 왜 갔을까? 소보로. 우리에게 내일이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하루살이.
  •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장애극복 이미지보다 능력으로 평가받고 싶어”

    “역경을 극복한 이미지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능력 있으니까’ 이렇게 합당한 평가가 내려졌으면 해요. 저도 그걸 보여 주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현관에 들어서니 키 182㎝의 훤칠한 청년이 수줍은 듯 손을 내밀었다. 기자가 다가서던 각도와 약간 틀어진 채였는데 기자 목소리를 듣고 이내 바로 잡았다. 짙은 속눈썹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라틴계 호남을 연상시키는 이창훈(26)씨는 지상파 방송 사상 처음으로 KBS에 프리랜서 앵커로 기용돼 1년간 활약하게 된다. <서울신문 7월 26일 자 29면> 지난 29일과 30일 케이블채널 서울신문STV를 통해 방영된 ‘TV 쏙 서울신문’ 스튜디오에 나온 이씨는 지금까지의 삶과 앵커로서의 각오 등을 특유의 중저음과 빛나는 재치로 풀어냈다. 오는 8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집에서 방송국 근처의 9호선 국회의사당역까지 지하철과 도보로 출퇴근해야 하는 이씨는 “어머니와 몇 번 왕복해 봤는데 평소에도 지하철 등을 이용해 왔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자택과 스튜디오를 오가며 진행된 이씨와의 일문일답. →시력을 잃은 뒤 많이 힘들었을 텐데. -태어난 지 7개월 됐을 때 시력을 부분 상실했는데 어둠과 밝음 정도만 분간할 수 있었어요.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건 없었고 무섭고 아팠을 뿐이지요. 가위에 눌려 잠에서 깰 때마다 어머니를 때리고 깨물곤 했다고 나중에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요.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며 뒷바라지해온 어머니 이상여(57)씨는 “창훈이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어 구석에 숨어 잠을 청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용케도 아이가 냄새를 맡고 찾아내 정말 힘들었다. 온 몸이 꼬집힌 자국투성이였다.”고 말했다.) →학교 생활은 어땠나. -여덟살 때 시각장애인 학교가 진주에 없어 서울로 왔어요. 한빛맹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뇌수막염이 재발, 시력을 완전히 잃었어요. 사지도 마비돼 의사들은 다시 움직이기 어렵다고 했는데 용케 이겨냈습니다. 나 혼자 경상도 사투리를 쓰니 티 안 내려고 애써야 했지요. 다른 아이들이 집에 가는 주말에 혼자서 기숙사 생활을 하려니 외롭고 힘들었죠. 3~4학년 때 브라스 앙상블에서 트럼펫과 피아노를 배우면서 재능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주변에서 잘한다고 얘기해 줘 성격도 밝아졌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내내 흥얼거리길래) 성격 참 좋은 것 같다. -늘 살아 오면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느낌을 가졌어요. 그런 안정감이 제 장점입니다. 그런 분야의 책도 많이 보고 학교에서 좋은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하지요. →인터넷 방송 경험이 밑거름이 됐을 텐데. -한국시각장애인방송(KBIC)에서 매일 밤 9~11시 방송 중 제가 한 시간을 맡고 있습니다. 노래 두 곡 들려주고 다른 동료가 장애인계 뉴스를 전하는데 전 전체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들의 방송 아카데미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함께 도전한 분들뿐만 아니라 KBIC에도 재주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좋은데 뉴스에 어울리는 목소리도 있고 예능 끼를 갖고 있는 분도 있어요. 함께하면 능력이나 기회를 공유하고 교류하며 힘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3개월 연수를 빼면 실제 활동할 시간이 짧은 것 같은데. -KBS에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공고한 뒤 절 뽑기까지 한 달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거든요. 어떤 대우를 할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계약도 맺지 않았습니다. →비장애인들이 어떻게 대했으면 하나. -모르면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영화 ‘말아톤’ 포스터에 ‘5세 아이 지능을 가진 스무살 청년’ 이런 식이에요. 정신지체 3급이라고 정확한 정보를 주면 되는데 ‘아, 다섯 살짜리 아이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유도하는 거예요. →그런 이들의 마음을 열려면. -마음을 열 수는 없고 삶을 보여 줘야죠. 대학 다니면서도 ‘시각장애인이니까 이런 건 이렇게 해줘.’, ‘이런 부분은 강하고 이런 건 약하다.’ 분명히 얘기했어요. 신뢰감을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친구들은 절 장애인으로 의식하지도 않아요. →‘장애 극복’ 이런 식의 표현을 싫어한다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상황을 겪으면서 견뎌내는 것이죠. 안 보이는 건 안 보이는 거잖아요. 벽에 들이받을 수 있는 거지요. ‘벽이 있었네.’ 하고 웃는 거지요. 시각장애인 앵커나 스포츠 캐스터, 작가, 배우가 되는 일이 특별한 일이 안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해요. →좌우명이 있다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란 야구판 명언이 있어요. KBS 장애인 라디오에서 장애인들이 직접 프로야구 올스타전을 중계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시각장애인들 중에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1년에 5~10회는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경기를 응원하러 갑니다. 응원 소리와 그라운드에서 들려오는 소리로도 충분히 야구를 즐길 수 있어요. 2009년 장애인의 날 전날에 KIA-LG 경기 때 시각장애인 장남석(당시 26)씨가 시구한 적이 있는데 저도 꼭 해 보고 싶습니다. →배우자 이상형은. -신앙이 있어야 하고 가치관이 같았으면 좋겠어요. 잘 웃고 생기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팔로어가 50명쯤 된다는 그의 트위터 계정은 @lch85 글 사진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박근혜 수해현장 ‘조용한 방문’

    박근혜 수해현장 ‘조용한 방문’

    “집도 절도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는데 비 피해까지 입게 되니 살아갈 일이 막막하네요.” “오갈 데가 없어 아이들을 일단 교회에 맡겼는데, 일요일이라 예배를 본다고 해서 데리고 나왔습니다. 복구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딱히 맡길 곳이 없습니다.” 31일 오후 1시 30분 적잖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사태로 피해를 입은 서울 방배동의 남태령 전원마을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조용히’ 나타났다. 우의를 입고 장화 차림에 비닐 모자를 눌러쓴 모습. 수행 인사라고는 비서실장 격인 이학재 의원과 수행 비서 1명이 전부였다. 주민들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뒤늦게 박 전 대표를 알아본 수해 주민들은 하나둘 저마다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박 전 대표는 수해 복구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취재진은 물론이고 가까운 의원들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정현 의원조차 뒤늦게 현장 방문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가 박 전 대표를 수행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장에 도착해서도 관계기관의 브리핑마저 고사하고, 현장에 나와 있던 공무원들에게도 자신을 수행하지 못하게 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두 시간 가까이 산사태에 쓸려간 비닐하우스와 서민들이 많이 생활하는 반지하방에 들어가 피해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주민들의 고충을 들었다. 몇몇 주민들은 급작스레 닥친 불행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기도 했다는 게 수행한 이학재 의원의 전언이다. 그는 이재민들에게 “무얼 좀 드셨느냐, 아픈 데는 없느냐.”며 물어본 뒤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시겠느냐.”, “빨리 복구되도록 저도 노력하겠다.”며 관심을 표했다. 이에 이재민들은 박 전 대표의 손을 잡고 “군인들이 너무 많이 도움이 된다. 일찍 철수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아이들 맡길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하소연도 나왔다. 박 전 대표는 이어 복구 작업에 투입된 공무원과 군 장병들에게 “피해가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격려했다. 앞서 박 전 대표는 지난 30일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린 글을 통해 “기후변화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롭게 강화된 기준으로 선제적 예방을 하지 않으면 각종 위기와 재난, 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라며 “국가 재난 시스템의 기본 방향과 틀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손가락 화석 만들어 주던 우리 선생님이…”

    29일 오후 강원 춘천시 신북읍 상천초등학교에서 눈물의 추도식이 열렸다. 산사태로 희생된 인하대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했던 학교에 유가족들이 모인 것이다. 며칠째 비를 토해내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추도식에는 상천초등학교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이 찾아와 영정사진에 헌화를 하며 눈물을 훔쳐 안타까움을 더했다. 과학캠프에 참여했던 이 학교 4학년, 2학년 두 자녀를 둔 하모(40·여)씨는 아이들을 데리고 멀찌감치 서서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것을 줄곧 닦아냈다. 하씨는 “아이들이 캠프 첫째날 집에 와서는 ‘탱탱볼도 만들고, 손가락 화석도 만들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면서 “27일 아침 책가방을 멘 큰 애에게 사고가 났다고 했더니 ‘우리 김유라(사망) 선생님 이름도 있어요?’ 묻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친구를 조문하기 위해 찾은 인하대 학생들도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삼켰고, 부모들은 엎드려 절을 하다 일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오열했다. 고 이민성(25)씨의 어머니 김미숙(50)씨는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바쳤다. 김씨는 “아들아, 좋은 곳으로 가라. 조금 이따가 보자.”라고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교실 칠판에는 인하대생들을 환영하는 팸플릿이 여전히 달려 있고, 교탁 위에는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던 과학책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추도식이 끝나고도 유족들과 주민 등 100여명은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칼로 찌르고 100m 아래로 밀어버린 아내가…

    흉기에 수차례 찔린 채 절벽 아래로 떼밀린 40대 여성이 기적적으로 살아나면서 남편의 범행 전모가 드러났다. 강원 고성경찰서는 24일 아내를 흉기로 찌르고 나서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 숨지게 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최모(56)씨를 구속했다. 최씨는 지난 19일 오후 11시30분께 고성군 토성면 공터에서 아내 K(44·여·수원시)씨와 말다툼 끝에 차에 있던 흉기로 수차례 찔르고, 쓰러진 K씨를 차에 싣고 미시령 옛길 정상 부근으로 올라가 100여m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아내가 숨진 것으로 생각한 최씨는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양양군 서면 조침령 터널 부근에서 아내가 챙겨온 옷가지와 소지품을 태웠다. 절벽에서 떨어진 뒤 가까스로 기어올라와 도로에서 실신한 최씨의 아내는 차량을 타고 지나던 주민 정모(29)씨에 의해 다음날인 20일 오후 6시33분께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남편의 소행이 드러났다. 당시 K씨가 떠밀린 절벽은 경사가 60도에 달해 일반인이 오르내리기 어려운 지형이었으나, 20여m 지점에서 언덕 등에 걸리면서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다. k씨는 병원에서 치료 중이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는 경찰에서 “올해 초 재혼한 아내와 줄곧 떨어져 지내다 보니 아내의 불륜이 의심돼 홧김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 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입학사정관제 자기소개서 표절 가려낸다

    올해 대학입시부터 자기소개서 등을 베꼈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다음 달 시작되는 대입 수시모집에서 ‘자기소개서 표절 검색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 간 비교가 가능한 ‘지원서 표절 검색 기능’과 전국 고등학교의 양적·질적 정보를 담은 데이터베이스(DB)로 구성된 ‘입학사정관 공정성 확보 시스템’을 개발해 수시모집부터 가동한다고 20일 밝혔다. 입학사정관제의 핵심 평가 요소인 자기소개서 및 교사 추천서의 신뢰도와 공정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정부 재정 지원을 받는 60개 대학이 우선 제공 대상이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공립대와 주요 사립대는 거의 다 해당된다. 시스템에서 자기소개서, 교사 추천서, 학업 계획서, 각종 활동 보고서 등을 검색해 기존 서류들과의 ‘유사도’를 확인할 수 있다. 자기소개서나 추천서를 등록하면 시스템이 이를 다른 원서와 비교한 뒤 자동으로 표절률을 산출해 수치와 의심 문장을 보여준다. 특히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대학들이 확보한 서류 사이의 유사성을 모두 따져, 가령 A학생이 B대학에 제출한 원서가 C학생이 D대학에 제출한 원서와 비슷한 경우에도 적발할 수 있다. 대교협 측은 “단어가 아닌 구나 절과 같은 문장 단위 검색으로, 사설 학원이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모범 답안을 베끼거나 일부 변형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했다.”면서 “개인정보가 담긴 만큼 전형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폐쇄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교 DB는 전국 2000여개 고등학교가 직접 정보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학교와 관련된 객관적·정량적 지표는 물론 진학·진로 상담 교사들이 직접 기재한 정보도 제공된다. 대교협은 DB도입으로 입학 사정관들이 특성화 교육, 봉사활동 실적 등 수치화하기 어려워 기존 공시 사이트에는 담을 수 없었던 부분까지 상세히 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새 시스템은 수험생과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입학사정관과 교직원이 입시 평가, 관리 업무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막는 ‘회피·제척’ 기능도 제공한다. 특수관계인 여부는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이 정보를 대교협이 공유하도록 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박지성, 가장 저평가된 EPL 선수”

    “박지성, 가장 저평가된 EPL 선수”

    박지성(30·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지난 2002년 일본 J리그의 교토 퍼플상가에서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번으로 옮길 당시 교토 퍼플상가 구단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박지성이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더라도, 그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그를 반길 것이다.” 축구 선수뿐만이 아니라 한 인격체로서 당시 21세였던 인간 박지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드러냈던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박지성이 아시아 프로축구 무대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다. ●‘연봉 두배’ 광저우 러브콜 거절 맨유가 원하는 이적료와 현재 연봉의 두배를 주겠다던 중국 프로축구 광저우 헝다의 제의마저 거절한 박지성이 맨유와 재계약을 타결하기 직전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구단과 에이전트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게 유럽 프로축구 이적시장의 생리다. 하지만 2010~11시즌이 끝난 뒤 현재까지의 흐름을 보면 박지성의 맨유 잔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지성은 베트남 자선경기가 끝난 뒤 맨유의 큰 시장 가운데 하나인 미국 투어에 곧바로 합류했다. 친선경기에 교체로 나서 골까지 넣었다. 또 2011~12시즌 원정유니폼 공개 행사에 네마냐 비디치, 리오 퍼디낸드와 함께 대표로 나섰다. 세계 최고의 구단인 맨유가 팬을 상대로 곧 다른 팀으로 옮겨 갈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대표 상품으로 내놓는 ‘사기’를 칠 이유는 없다. 이 같은 구단의 배려에 박지성은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싶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다만 계약 기간, 연봉(주급)이 얼마나 늘어나고, 올라가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사실 계약 기간에 그렇게 목을 맬 필요도 없다. 부임 뒤 최고의 성적을 내는 FC바르셀로나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은 매년 1년 계약만을 고집하며 구단을 압박하고 있다. 박지성도 절정의 기량을 유지하면 된다. 이런 가운데 박지성이 미국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들으며 EPL에서 저평가된 선수 중 한명으로 뽑혔다. 박지성은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블리처리포트가 지난 18일 선정한 ‘EPL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 15명’에 이름을 올렸다. 딱히 순위를 매기지는 않았지만 볼턴 골키퍼 유시 야스켈라이넨에 이어 두 번째로 언급됐다. 블리처리포트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분명히 박지성의 가치를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사람들은 박지성이 가치를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고 설명했다. 또 “박지성의 능력을 기사로 설명하기에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극찬했다. ●28일 베컴·앙리와의 맞대결도 관심 한편 맨유는 오는 28일 미국 프로축구 메이저리그(MLS) 올스타팀과 친선경기를 벌인다. MLS 올스타팀 명단에는 한 때 맨유의 간판스타였던 데이비드 베컴(LA 갤럭시)과 아스널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티에리 앙리(뉴욕 레드불스) 등이 이름을 올려, 박지성과 이들의 맞대결이 관심을 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산시성 山西省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아찔한 현대 발전상보다는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국다운 장소를 찾는다면 산시성이 그 답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더 비밀스럽게 빛나는 곳, 산시를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주)레드팡닷컴 02-6925-2569 핑야오구청 平遙古城 평요고성 유네스코가 감탄한 성곽 도시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시성山西省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점이 더 많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면서 세계 면 요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중국 금융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명·청대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 고성까지 지니고 있는 까닭에서다. 산시성을 여행할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보자.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중국의 진짜 모습을 잰 걸음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역사 유적지가 많은 이곳 산시에서도 핑야오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핑야오구청 때문이다. 핑야오구청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시 그 보존 상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2,500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성이다. 성벽 둘레 길이 6,163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명·청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의 골목이나 성벽의 구멍 개수까지 공자의 제자수를 따라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핑야요구청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곳으로도 꼽히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1970년대 개발의 급류를 타고 허물어질 뻔했던 고성은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현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중국 내 여행지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느긋하게 옛 중국을 만끽하다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고성이라 유명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객 행위며 시끌벅적한 상업화의 모습을 볼까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크게 상업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조용히 고성의 정취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 핑야오구청에서라면 골목들을 탐험하는 일조차 설레는 ‘여행’이 되어 줄 것이다.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듯 반듯하고 널찍하게 뻗은 골목들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명·청 시대의 건축이나 발전 모습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붉은 등을 매단 상점과 식당 등을 지나 조용히 걷노라면 몇백년전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다니며 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표호票號나 불교, 도교 사원, 각종 박물관들이 도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민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이 고성과 역사를 같이하며 빛이 바랜 집들과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활기찬 고성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고성에서 가장 높은 시루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핑야오구청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훌륭한 포토 포인트가 되어 준다. 1 핑야오구청 거리에서 마임을 하는 예술가 2 국제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예쁜 중국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3 핑야요구청에는 중국의 옛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복판에 위치한 시루는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4 시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요구청 거리. 예스런 모습의 거리지만 활기가 넘친다 산시성의 면 요리 맛보기! 혹시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전해 준 면요리가 지역에 맞게 변형된 것이 스파게티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이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산시성은 쌀보다는 메밀이나 밀, 귀리 등이 많이 나는 기후 때문에 예부터 면 요리를 즐겨먹었다. 현재 38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를 가지고 있으며 9월에는 면 축제도 열린다니 가히 면 요리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산시성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면 요리들은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다소 심심하면 함께 나온 소스들을 넣어 먹으면 된다. 핑야오구청을 즐기는 6가지 방법 2,500년 전 세워진 이 고색창연한 성 안에서는 누구든 시간을 잊고 중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 긴 역사에 압도되어 짐짓 역사책마냥 지루하거나 고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접어두시길. 은퇴 후 동양 문화를 즐기러 온 프랑스 노부부들만큼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곳도 핑야오구청이었으니 말이다.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자의 ‘핑야오구청 120% 즐기기’ 제안! 1 카페에서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핑야오구청은 유럽인들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 중 10위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2 고소해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미니호떡 셔무미쩌무위에빙.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 줄 간식 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3, 6 핑야오구청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시켜 줄 고택 숙소.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에서 보내는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4, 5 선물로 좋을 한자로 만든 핸드폰줄과 예쁜 중국풍 신발들. 핑야오구청에서 즐기는 쇼핑은 화려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자전거로 돌아보는 고성의 낭만 핑야오고성 내의 주 교통수단은 전기차와 자전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전거로 고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대안이 되어 준다. 종일 타도 10위안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전거에 서툰 이들을 위해 다인용 자전거도 준비되어 있다. 02 고성에서 쇼핑하기 쇼핑은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하고 세련된 물건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핑야오의 특산품을 찾는다면 칠기제품이 유명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기념품을 찾는다면 종이로 화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종이공예나 아기자기한 손거울, 한지로 만드는 핸드폰줄 등이 인기 있다. 꽃 자수가 예쁜 중국풍 신발이나 어린이용 치파오도 중국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아이템. 대부분이 정찰제로 운영되거나 무리한 흥정 혹은 호객 행위가 없어 더욱 기분 좋다. 03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 중국 여행에 마사지를 빼놓기 아쉽다면 저녁을 먹고 고성 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마사지숍으로 가보자. 숍마다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므로 둘러보고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마사지사의 실력은 종종 운에 좌우되곤 하지만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풀며 휴식하기에는 충분하다. 04 고택에서 맞는 고즈넉한 밤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숙소. 문을 지나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지나면 곳곳에 위치한 정원이 운치를 더해 객실로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도 <홍등> 같은 중국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내게 해준다. 매번 똑같이 생긴 호텔이 지루하다면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아침나절 정원 나뭇가지에 앉은 맑은 새소리와 햇살에 잠이 깨면 이곳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05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주전부리 골목 탐험을 하다 보면 출출해질 때쯤 새로운 주전부리들이 나타나곤 한다.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쇠고기 핑야오 뉴러우나 호두, 참깨 등이 들어가 고소한 미니호떡 셔우미쩌우위에빙 등이 그것이다. 명청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윽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겠다. 06 세계의 여행자들과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잔 고성에 어둠이 깔리고 홍등에 불이 들어올 즈음 고성 내 위치한 카페나 바에 가면 낮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고 중국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흥겨운 음악과 시원한 칭타오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핑야오구청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대부분의 고택 숙소들이 일찍 문을 닫기에 기분 좋을 만큼의 술자리 이후에는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T clip 인천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엔(太原, 태원)까지 아시아나 전세기가 2011년 10월28일까지 운항된다.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운항하며 약 2시간 소요.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림 위안화(1위안은 약170원) 일본 NHK에서까지 취재 올 정도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산시성 식초와 이백, 두보 등이 극찬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명주인 ‘펀주汾酒 ’가 있다. 전세기 한국사업자인 (주)레드팡닷컴(02-6925-2569)을 비롯한 전국 여행사에서 산시성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멘산 綿山 면산 한식의 유래를 찾아서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산綿山은 여행책자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지만 한해 130만명의 중국인이 찾는 여행지다. 중국 4대 명절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자 가파른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 문화와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개자추 전설의 배경이 된 곳답게 멘산에는 개자추의 무덤과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은 약 해발 1,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을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시원한 멘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원래 있던 동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의 말을 반영하듯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공중도시 멘산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일컬어지는 타이항太行산맥에서 나온 한 갈래다. 그 천연절경의 협곡을 따라 불교, 도교 사원들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호텔까지 더해져 공중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석탄 부호가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훼손, 파괴된 부분을 복원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한 덕에 명실상부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고. 절벽 동굴에 지어진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운봉사는 당태종 시대에 서안의 가뭄을 해결했던 고승이 있던 곳으로 108번뇌와 12간지를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안쪽에서 내려다보는 사원과 멘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며 간절한 기원이 깃든 절벽 위의 종들도 이국적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 발아래로 안개 낀 협곡이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다. 이곳에서 갈지자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면 정궈스正果寺, 정과사에 닿는다. 중국 남북조시대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담란曇鸞대사를 기념하는 파고다와 법당 및 동굴에서 발견된 등신불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교사원인 따뤄궁 또한 절벽에 층층이 쌓여 올려진 건물로서, 금박으로 쓰여진 도덕경에서 볼 수 있듯 확연한 도교적 색채를 지녔지만 멘산의 유물들을 모아둔 전시관도 구경할 수 있어 일반인도 가볼 만하다. 저택에서 엿본 산시성의 번영기 멘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왕가대원도 산시성의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청대淸代의 명문가 저택이었던 이곳은 압도적인 크기를 지니고 있어, 흔히 얘기하는 중국의 스케일과 부유했던 산시성의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4만 5,000㎡의 면적에 1,000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으며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현재는 정부 관리 하에 관광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미로같이 얽힌 저택 내에서 자칫 눈을 팔면 일행을 잃기 십상이다. 절벽 위의 호텔, 원펑수위안 멘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텔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운봉서원은 중국 내 유일한 절벽 위 호텔로 윈펑스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객실에서 즐기는 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T clip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 멘산을 이야기하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주인인 문공을 보필한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아직까지도 충효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인물.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서로의 공을 놓고 다투는 신하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로 이곳 멘산에 칩거하게 되고,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지르지만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개자추가 죽은 날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은 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Weekly Health Issue] 과민성 방광

    [Weekly Health Issue] 과민성 방광

    당신이 이런 증상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라. 갑자기 샅이 감전이라도 된 듯 저리면서 소변이 마렵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느낀 요의를 참을 수가 없어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마침 차 안이라 마땅한 방법이 없다. 등에 진땀이 나는 상황이다. 이런 절박뇨가 하루 중 수시로 생겨 도무지 일을 할 수도, 편히 여행길에 오를 수도 없다. 한밤중에 잠을 자다가 깨는 것은 다반사고 마렵다고 느낀 오줌을 순식간에 지려 축축하게 속옷을 적시기도 한다. 전에 없던 일이라 이상하지만 “나이 들어 그렇겠거니.”하고 지나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많은 환자들이 “이게 사람 사는 게 아니다.”고 혀를 차대는 과민성 방광 증상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삶의 질을 엉망으로 만드는 과민성 방광에 대해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규성(대한배뇨장애요실금학회 회장) 교수로부터 듣는다. ●과민성 방광이란 어떤 질환인가 정상인은 방광에 400∼500㎖의 소변이 차도 불편하지 않게 참을 수 있다. 방광과 신경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민성 방광은 갑자기 마렵기 시작한 소변을 참지 못하는 절박뇨가 수시로 나타난다. 말 그대로 방광이 너무 예민해 소변을 저장하는 동안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방광 근육이 수축하면서 절박뇨로 이어진다. 방광은 신축성이 있어 어느 정도 늘어나도 압력이 높아지지 않으며, 소변을 보려고 하지 않으면 수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경계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면 과민성 방광이 생기게 된다. ●과민성 방광이 발생하는 경위를 설명해 달라 절박뇨가 있으면 방광에 소변이 다 차기 전에 소변욕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하루에 8회 이상 소변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를 빈뇨라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하루에 평균 5∼6회 소변을 보는데 비해 빈도가 잦아지고, 야간에 소변을 보기 위해 일어나거나(야간빈뇨) 마려운 소변을 참지 못해 소변이 새어 나오는(절박요실금) 증상이 동반된다. ●유병률은 어느 정도며, 발병 추세의 특성은 18세 이상 성인 남녀에게서 12.2%의 유병률을 보이며, 나이에 비례해 증가한다. 즉 성인 100명 중 12명이 이 질환을 갖고 있다. 특이점은 40세 이하에서는 여성에게서, 50세 이상에서는 남성에게서 더 흔하다는 점이다. 이 연령대에 남성에게 전립선비대증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최근 과민성 방광이 주목 받는 이유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민성 방광을 나이가 들면 생기는 자연적인 노화현상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병적인 상태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과민성 방광이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잦은 소변 욕구로 인한 업무능력 저하뿐 아니라 우울증 유발, 수치심으로 인한 대인관계 기피 및 자신감 상실 등 사회적 활동이 많은 남성에게는 치명적이다. 가족 관계에서도 장거리 여행이나 외식, 영화보기 등 바깥활동 기피, 배뇨장애로 인한 부부간 성생활 기피 등 다양한 형태로 삶을 망가뜨린다. 과민성 방광 환자의 경우 정상인에 비해 우울증 발병 빈도가 2∼3배 높게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삶의 질을 중시하는 경향이 고조되면서 과민성 방광에 대한 관심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원인은 무엇인가 과민성 방광은 말 그대로 방광이 너무 예민한 것이 문제다. 이 경우 방광이 소변을 저장하는 동안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방광 근육이 수축하면서 발생한다. 방광은 신축성이 있어 어느 정도 늘어나도 압력이 높아지지 않으며, 따라서 소변욕도 빈번하게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방광의 저장기능은 자율신경계 중에서도 교감신경이 관장하며, 대뇌는 방광의 수축을 억제한다. 따라서 신경계에 문제가 생기면 과민성 방광이 발생하며, 이 밖에 노화나 전립선비대증과 같은 질환도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기가 어렵다.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며, 자각증상은 무엇인가 갑자기 소변이 마렵고 급해지면 과민성 방광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더 진행되면 요의를 참을 수 없어 빨리 화장실에 가야 하며, 자칫 지체하다가는 도중에 소변이 새는 요실금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증상은 추울수록 심해지며, 물소리를 듣거나 손에 물이 닿으면 불현듯 나타나기도 한다. ●검사 및 진단법을 설명해 달라 증상과 병력 청취가 중요하며, 과민성 방광이 의심되면 소변검사와 배뇨일지로 진단한다. 중년 이후의 남성은 전립선 초음파와 전립선암 검사를 따로 시행하기도 한다. 또 치료 효과가 없거나 정밀진단이 필요한 경우에는 방광기능검사를 하기도 한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치료는 행동치료와 약물요법, 수술치료로 구분한다. 행동치료의 큰 원칙은 ‘소변참기’다. 소변이 마렵더라도 30분 정도 의도적으로 소변을 참았다가 화장실에 가며, 2주 간격으로 참는 시간을 늘려나간다. 소변을 참으면 병이 된다는 속설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소변을 참을 때는 항문 괄약근을 강하게 조여주면 방광 수축이 억제돼 훨씬 수월하다. 골반 근육을 전기자극이나 자기장을 이용해 수축시키는 치료법은 일부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효과가 있다. 부교감신경의 작용을 통제해 방광 수축을 억제하는 약물은 매우 효과적이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약물이 방광 이외의 다른 장기에 영향을 미쳐 구갈·시력저하·변비 등이 나타나기도 하나 최근에 개발된 약물은 이런 부작용을 크게 개선했다. 약물은 최소 3∼6개월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약물치료가 원인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 증상을 조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계속 나타나면 수술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수술은 방광 주위의 신경을 절단하거나 전기로 척추신경을 자극하는 방법 등이 활용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15도 인사, 사람 사이 가장 겸손한 접속이죠”

    “15도 인사, 사람 사이 가장 겸손한 접속이죠”

    “겨우 200개 정도 팔았어요. 그쪽 대사관에서는 무조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큰일이네요. 다 안 팔리면 빚을 내서라도 하긴 해야죠. 허허허.” 다음 달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갤러리 스케이프에서 열리는 ‘그리팅맨’(Greetingman·인사하는 사람) 전시 얘기다. 유영호(46) 작가는 머리를 긁적였다. 작가가 작품 판매를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대개는 안 그런 척한다. 대놓고 팔리네 안 팔리네 말하지도 않고, 가격은 슬쩍 귀엣말로 건넨다. 그런데 유 작가는 전시장 한편에다 개당 20만원이라는 가격표를 당당히 붙여놨다. 내놓고 판매 걱정부터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000개를 팔아 그 돈으로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다 6m짜리 그리팅맨을 세울 예정이라서다. 우르과이대사관은 부지를 물색 중이다. 작품 하나를 들어 봤다. 묵직하다. 한 개당 무게가 1.5㎏ 정도 한단다. 슬쩍 물어봤다. 알루미늄 주물이 아니라 플라스틱처럼 좀 싼 재료를 쓰면 자금 마련이 한결 쉽지 않을까. “아유, 그럴 순 없죠. 겸손하게 인사하는 작품이니까 받아들거나 세워놨을 때 겸손함의 무게감이 느껴져야죠. 그래서 20만원이 비싼 게 아니에요. 가격을 높여볼까 하다가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하셨으면 해서 그렇게 정한 겁니다. 나중에 6m짜리 만들면 그분들 이름을 동상 발판에 다 새겨 드릴 겁니다.” 왜 이런 프로젝트를 기획했을까. “인사라는 게 인간 대 인간이 가장 겸손하게 접속하는 거잖아요. 전 지구적으로 인사를 건네보자는 거죠. 몬테비데오도 그래서 골랐습니다. 지구 상에서 한국과 정반대쪽에 있는 곳이니까요. 전 세계 분쟁 지역, 빈민가, 오지 같은 데 1000곳에다 저걸 다 세우는 게 목표입니다.” 가능할까. “안 그래도 주변에서 미쳤다 그래요. 하하하. 그래서 그리팅맨 파는 가게를 만들 겁니다. 계속 팔아서 그 돈으로 제작비를 대는 거죠.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인사하는 자세는 지극히 절제되어 있다. 뺨을 비벼대는 호들갑도,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당당함도 없다. 온몸을 일자로 만든 데다 온몸의 무게중심이 배꼽이 아닌 목에 있는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거기다 수백 개의 그리팅맨이 쭉 도열해 있다 보니 경건함까지 배어 나온다.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나도 신발 벗고 올라가 똑같이 인사해야 할 것만 같다. 절에서 볼 수 있는 천불상, 만불상 같은 게 떠오른다. “안 그래도 어떤 외국인 분은 현대적인 절이라고 감탄하시더군요. 사실 개인적으로 저런 배치를 좋아하지도 않고 갤러리에 어울리는 배치도 아니지만, 그 때문에 저렇게 세워뒀습니다.” 인물상을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아마 큰 조각상 가운데 인사하는 사람은 없을걸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광장 같은 곳에 들어선 조각상들은 대개 근엄한 얼굴에 위압적 태도를 하고 있다. 대형 조각상은 대개 국가와 민족의 승리나 영광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동상과 닮았다고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다시 만들기로 한 해프닝이 한 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예의, 우애, 소통, 공감을 나타내는 그런 동상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개 숙이는 각도도 중요하다. “90도 인사는 진정성이 없어 보이잖아요. 뻣뻣하지도, 가식적이지도 않은 각도를 찾다 15도로 정했죠. 저 각도 찾아내는 게 의외로 어렵습디다.”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한국 미술의 세계 진출이라 하면 어렵고 추상적인 서양적 맥락의 작품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말고 세계적인 작품은 오히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단순함이 좋다, 뜻에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가회동 한옥을 구경하고 가던 사람들이 그리팅맨과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서는 제 갈 길을 간다. (02)747-4670.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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