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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직 9급 공채 필기시험 총평

    “유형은 정형적, 출제분야는 골고루, 문제 난이도는 무난하게” 지난 12일 서울을 제외한 15개 시·도에서 실시된 지방직 9급 공채 필기시험에 대한 수험전문가들의 평가다. 내년 대대적 시험제도 개편을 앞두고 출제위원들이 파격 없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출제한 것으로 보인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국어, 어문규정 9문제… 대체로 쉬워 국어는 어문규정 9문제, 비문학 7문제, 한자·속담 4문제가 출제됐다. 대체로 쉬웠다는 평이다. 송운학 에듀윌 국어강사는 “내년부터 9급 시험에 고교졸업자도 쉽게 응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정책에 맞춰 상대적으로 어렵게 출제됐던 국어문제 난이도가 쉬워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어휘, 어법을 포함한 어문규정은 매년 가장 많이 출제되는 분야다. 이번 시험에서는 어간의 말음이 ‘ㄹ’인 용언의 활용형과 어휘 ‘상기다’의 용법은 다소 낯선 유형이었다. ‘그는 땀에 전 작업복을 갈아입었다.’에서 ‘전’은 ‘(땀에) 절다’의 바른 활용형이다. 또 정답을 고르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르지는 않았지만 ‘관계가 깊지 않고 조금 서먹하다’는 뜻의 ‘상기다’라는 어휘가 생소했다. 반면 ‘들르다, 띠다, 벌리다, 담그다, 무릅쓰다, 받치다, 붙이다, 갈음, 늘이다’ 등의 어휘는 이전에도 자주 출제됐다. 또한 묵호(Mukho), 극락전(Geungnakjeon), 경포대(Gyeongpodae) 등 로마자표기법도 단골 출제됐던 것이고, 파이팅·슈퍼마켓·코냑·팸플릿 등 외래어 표기법 문제도 기초적인 수준이었다. 비문학 영역은 이전처럼 ▲글의 중심내용 찾기 ▲알맞은 접속어 ▲글의 내용 파악 및 논리적 연결 문제가 출제됐다. 모두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나마 수험생들이 어려워할 만한 문제는 한자와 어휘문제였다. ‘선거법에 저촉된다.’는 말을 할 때 저촉(抵觸)은 법률이나 규칙 따위에 위반되거나 거스른다는 뜻으로 ‘해당’으로 바꿀 수 없다. 또 면종복배(面從腹背)는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마음을 먹는다는 뜻이다. ●영어, 지난해와 출제비중·유형 똑같아 이번 시험 영어는 분야별로 문법 2문제, 어휘 4문제, 생활영어·영작 4문제, 독해 10문제가 출제됐다. 지난해와 분야별 출제비중·문제유형이 똑같았다. 난이도도 거의 같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 맨정신’이라는 뜻의 ‘sobriety’와 가까운 뜻을 찾는 A책형 문제 2번의 답은 보기 4번 temperance(금주, 절제)다. 또 문제 4번에서 take place는 ‘개최되다’는 뜻이고, take down은 ‘걷다, 치우다’는 뜻으로 구분하는 문제가 출제됐다. 문제 13번에 derivative(파생물)와 substitute(대체물)의 뜻 차이를 묻는 문제도 출제됐다. 김현수 강사는 “공무원 영어는 기출문제·기본서를 중심으로 어휘·독해를 공부하고 난 뒤 독해를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한국사, 의거 80주년 윤봉길 관련 문제 한국사는 시기별로 조선시대 관련 문제가 예년과 같이 7문제(35%)로 가장 출제비중이 높았다. 또 선사시대·연맹왕국 각 1문제, 고대국가 3문제, 남북국·후삼국 각 1문제, 고려 3문제, 근현대사 3문제 등으로 출제됐다. A책형 문제 4번은 그림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옳지 않은 설명을 고르는 문제다. 북쪽을 지키는 수호신인 현무도가 등장했는데, 현무도가 발견된 강서대묘는 벽화가 그려질 수 있는 굴식돌방무덤으로 덧널무덤이라고 한 보기 2번이 잘못된 설명으로 정답이다. 문제 19번은 윤봉길 의사 관련 문제다. 1932년 4월 폭탄으로 일본군 대장을 즉사시켜, 올해가 의거 80주년이다. 이 사건의 영향을 고르는 문제의 정답은 ‘한국광복군 형성의 기초가 되었다’는 보기 2번이 답이다. ●행정법, 알기 쉬운 문제 위주로 행정법은 판례 13문제, 법령 6문제, 이론 1문제가 출제됐다. 보기의 길이가 다소 긴 문제가 있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응시자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알기 쉬운 문제 위주로 출제됐다. 4번은 지난해 말부터 시행되고 있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대한 내용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다. 개인정보에 관한 분쟁을 조정하는 위원회는 개인정보보호심의위원회(보기 3번)가 아니라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다. ●행정학, 토머스 갈등관리 방안 단골 출제 행정학은 기출문제가 반복 출제돼 난이도는 예년과 비슷했다. 기초이론의 기본적 내용이 출제됐다. 신공공관리론의 대안으로서 신공공서비스론의 출제빈도가 높아진 것이 특징이다. 또 갈등해결의 방안으로서의 토머스 모형도 최근 자주 출제되고 있다. 특히 예산 분야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성(性)인지예산이 출제빈도가 잦다. A책형 문제 3번은 토머스가 제시하고 있는 갈등관리 방안에 대한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다. 이 안에 따르면 타협이란 자신과 상대방 이익의 중간 정도를 만족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과 상대방의 이익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방안’이라고 한 보기 4번이 정답이다. 문제 20번은 성인지예산에 대한 문제다. 이 예산정책이 ‘성 중립적 관점에서 출발한다.’고 한 보기 2번이 옳지 않은 설명으로 정답이다. 성인지예산 정책은 성별 차이로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정책이다. 남진우 강사는 “인사, 재무, 지방행정 등 각론분야에서 법령에 관한 문제가 많이 출제가 되고 있어 법령을 숙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도움말 에듀윌
  • 빌라 경비원 알고보니 ‘전설의 소매치기’

    평범한 빌라 경비원인 줄로만 알았던 60대 노인이 알고 보니 ‘전설의 소매치기’였다. 지난 1982년 5월 명동 지하상가에서 단속 중인 경찰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난 절도 19범의 범인이 스마트폰 절도를 일삼다 경찰에 붙잡혔다. 범인과 60대 노인은 한 사람이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16일 전철역 승강장에서 승객의 스마트폰을 훔친 노모(64)씨를 검거, 절도 및 모의총포 소지 혐의로 구속했다. 노씨는 지난 3월 13일 오후 7시 55분쯤 퇴근하던 피해자 정모(25·여)씨의 웃옷에서 스마트폰을 훔치는 등 2010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소매치기와 절도 행각을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노씨는 핸드백에 든 물건을 빼내거나 찢는 것보다 어려운 맨손으로 주머니에 든 금품을 꺼내는 ‘맨손빼기’ 기술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씨는 소매치기를 당한 사실도 모르고 분실 신고를 냈다가 하루가 지난 뒤 소매치기를 당한 사실을 깨닫고 경찰에 신고했다. 노씨는 1980년대에 서울 중구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소매치기 조직 ‘영철파’의 조직원이었다. 절도와 폭력 등으로 감옥에서 보낸 기간만 22년이다. 노씨와 한패는 명동 미도파백화점 등 도심 상가를 중심으로 550여 차례에 걸쳐 4500만원을 훔쳤다. 1982년 무렵 서울에 아파트 두 채를 살 수 있는 액수다. 노씨는 2008년 3월 만기 출소한 뒤 곳곳을 전전하다 지난해부터 서초구 반포동 고급빌라에서 경비원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노씨를 붙잡은 뒤 서울 은평구에 있는 노씨 집을 수색하다가 콜트 45구경 모의권총과 모의실탄 5발, 수갑 등을 찾아냈다. 경찰은 노씨의 여죄를 캐고 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애완견 ‘양육권 소송’에 전재산 퍼부은 30대男

    애완견을 되찾기 위해 법정투쟁을 벌이느라 전 재산을 쏟아부은 남자가 외신에 소개됐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34세 청년 크레이그 더쇼비츠가 지극한 동물사랑으로 화제가 된 인물. 그는 헤어진 애인이 데려간 애완견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애완견 양육권을 되찾기 위해 법정싸움을 하면서 그는 지금까지 변호사 비용 등으로 자그마치 6만 달러(약 7000만원)를 썼다. 헤어진 남녀가 벌이고 있는 소송의 한복판엔 너클스라는 이름을 가진 애완견이 있다. 절반은 퍼그, 또다른 절반은 비글인 이 개는 잡종이지만 크레이그 더쇼비츠에겐 자식 같은 존재다. 그는 인터뷰에서 “너클스를 아들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자와 헤어진 후 캘리포니아로 이사하면서 개를 가져간 옛 애인은 개를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남자친구가 선물로 준 개라 절대 옛 주인에게 보낼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한편 소송에 전재산을 탕진(?)한 크레이그 더쇼비츠는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인터넷사이트를 개설, 후원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성적은 아직 저조한 편이다. 사이트를 개설한 뒤 1주일 동안 85달러(약 9만7000원)를 후원 받았을 뿐이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내·외국 행사요원 7000여명 안식처 ‘엑스포타운’ 24시

    내·외국 행사요원 7000여명 안식처 ‘엑스포타운’ 24시

    여수 엑스포 개막 이후 관람객은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했지만 조직위와 운영요원 등의 수고는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이들은 밤 늦은 시간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다음 날엔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일정을 준비한다. 박람회 기간 내·외국 행사요원 7000여명이 숙소로 사용 중인 엑스포타운의 24시를 들여다봤다. 지난 13일 밤 박람회장의 ‘게이트 4’를 나서 엑스포타운으로 향하던 한 여성 도우미는 피로에 잔뜩 절은 모습이었다. “다리가 무겁다.”면서도 “맥주 한 캔과 소시지 하나를 샀는데 한 모금 들이켤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다.”며 웃었다. 옆에 있던 동료는 “오늘 하루 너무 힘들어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하소연했다. 폐장시간인 밤 11시, 엑스포타운 옆 환승주차장에서 교통정리를 하던 경찰들이 철수를 서둘렀다. “피곤하지 않으냐.”는 질문에 환하게 웃음으로 화답했다. 이들은 목포에서 지원 나온 전경들이라고 했다. 관람객들이 막바지 기념촬영에 몰두하고 있을 무렵 흰색 조리복을 입은 최종례(62)씨가 잰걸음으로 숙소인 엑스포타운으로 향했다. 최씨는 “하루 3000명분의 식사를 준비했는데 4분의1가량만 팔려 아쉽다.”고 말했다. 30년간 군생활을 한 뒤 제대한 최씨는 박람회장 내 식음료점에 재취업했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로 지원했으나 탈락한 뒤 식음료점 구인광고를 보고 문을 다시 두드렸다. 보안요원인 김슬기로운(20)군은 환히 불을 밝힌 엑스포 디지털갤러리 밑에서 뒷정리에 나섰다. 밤 12시 무렵 교대자가 내려오면 김군도 숙소로 돌아가 단잠을 취할 수 있다. 김군은 “여수 토박이로 고교 졸업 뒤 진로를 고민하다 지원했다.”면서 “남들이 빅오쇼 볼 때도 자리를 지켜야 하지만 재미있다.”고 말했다. 폐장 직후 조직위의 차재옥 과장도 서둘러 빅오쇼가 열렸던 야외무대로 향했다. 50대인 차 과장은 “가족이 가장 보고 싶다.”면서 “폐장 직후에도 각종 전시관과 공연시설 관계자는 점검에 나서느라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엑스포타운의 실제 생활은 어떨까. 1블록에는 강동석 위원장과 간부진, 외국인들이 머물고 있다. 2블록은 운영진과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취재진이 들어선 아파트는 가구마다 TV만 갖춘 채 이불과 요가 있는 방이 3~4개씩 딸려 있었다. 경기 시흥에서 내려운 주부 자원봉사자 손경희(47)씨는 “가구당 성별·연령별로 7~9명씩 무리지어 생활하는데 아침부터 전쟁을 치른다.”며 “여자 9명이 화장실 2곳으로 나뉘어 화장까지 마치려면 새벽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전했다. 가구마다 실장이 있어, 밤 11시 30분과 자정에 걸쳐 두 차례 점호가 이뤄진다. 지난 10일 엑스포타운에 입주한 손씨는 여수엑스포 1기 자원봉사자로, 10일의 봉사기간을 마치면 2기와 임무를 교대해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는 엑스포타운의 분위기를 “가족 같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박수정(24)씨와는 벌써 ‘우리 딸’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워졌다. 손씨는 “그동안 20대를 철없다고 생각했으나 이곳에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여수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사격, 면회사절 왜

    “제발 부탁합니다. 만나지 말아 주세요.” 14일 사격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이 열린 창원 종합사격장. 변경수(54) 대표팀 감독이 취재기자들에게 선수 접촉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2003년부터 9년째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변 감독이 취재 불허 카드를 꺼내든 것은 처음이다. “아시안게임은 1개월, 올림픽은 3개월이다. 화제가 된 선수들이 우쭐했다가 다시 차분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지금 인터뷰다 뭐다 해서 선수들을 띄워 놓으면 올림픽에선 백전백패다.” 지난달 23일 국제사격연맹(ISSF) 런던월드컵 여자 25m 권총 결선에서 796.9점을 기록, 7년 만에 세계신기록을 세운 김장미(20·부산시청)가 대표적인 예. 변 감독은 “CF가 들어올 정도로 관심이 쏟아지니 흔들리고 있다. 잠재력 있는 선수인데 지금 무너지면 끝나는 거다. 진종오 같은 베테랑도 흔들리는데 김장미는 오죽하겠나.”라고 말했다. 사격 대표팀의 목표인 금메달 2개를 위해 변 감독은 외부 접촉을 일절 끊고 선수들의 심리 훈련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다. 이날 남자 공기권총에서 진종오(33·KT)가 한국신기록을 경신하며 단 한 장의 출전권을 따냈다. 진종오는 695점(본선 591점+결선 104점)을 기록, 지난 3일 제8회 경호처장기전국사격대회에서 세운 한국신기록 693.3점(본선 593점+결선 100.3점)을 11일 만에 갈아치웠다. 그러나 라이벌 이대명(24·경기도청)은 677.7점(본선 577점+결선 100.7점)으로 3위에 그쳤다. 이대명은 15일 50m 권총에서 2위 안에 들어야 올림픽 티켓을 바라보게 됐다. 여자 공기권총에서는 김병희(30·서울시청)와 김장미가 출전 자격을 얻었다. 남 50m 소총복사는 김학만(36·상무), 여 50m 소총3자세는 나윤경(30·우리은행)·정미라(25·화성시청), 여 트랩은 강지은(22·KT)이 출전할 전망이다. 남 50m 소총3자세, 50m 권총, 속사권총, 25m 권총, 남 스키트는 15일 선발전을 치른 뒤 강화위원회에서 최종 명단을 결정한다. 창원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단독] “승단 정화 안되면 또 핵폭탄급 폭로”

    [단독] “승단 정화 안되면 또 핵폭탄급 폭로”

    조계종 승려들의 호텔 도박 사건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은 13일 “이(도박동영상)보다 더 큰 핵폭탄이 있다.”면서 “도박한 승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종단의 대처 방안을 보고 터뜨릴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성호 스님은 이날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승려들의 도박, 음주, 음행, 횡령, 은처(隱妻·부인을 숨겨 두는 행위)가 고위층에도 존재하며 그에 관한 자료, 사진, 동영상을 갖고 있다.”면서 “그것을 제가 폭로하지 않도록 그 전에 승단이 정화됐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9일)한 이후 어떻게 지냈나. -신변에 위험을 느껴 동가숙서가식으로 지낸다. →어디서 기거하나. -보안상 말씀 드리기 어렵다. →동영상 발견 경위는. -대웅전에 기도하러 가는데 부처님 앞에 휴대용 저장장치(USB)가 놓여 있었다. 그게 지난 7일이었다. 시간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컴퓨터에 넣어 보니까 도박하는 영상이었다. 부처님께서 나한테 심부름 시킨 일이란 생각이 탁 다가왔다. →어느 절에서 발견한 건가. -밝힐 수 없다. 운명적으로 내가 (고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불교를 위해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종단이 잘되기 위해선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동영상이 부처님 앞에 있더라는 얘긴 납득이 안 간다. -그런 걸 갖다 놓은 사람들이 나라면 (고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도박에 연루된 스님들과 다른 계파인가. -난 계파에 소속돼 있지 않다. 그들 대부분은 지금 종권을 잡고 있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천승가회) 소속이다. 지금의 총무원장은 이들 위에 얹혀 있는 형국이다. →총무원 내 계파 간 갈등, 백양사 현 주지와 후임 주지를 둘러싼 갈등이 복합돼 있다는 시각이 있다. -백양사 내분은 모른다. 도박한 스님이 백양사 문중이라고 하는데 난 모르겠다. →도박한 스님들은 안면이 있는 분들인가. -T, E, B 등 세 명 정도다. 그들은 직업이 승려가 아니고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스님처럼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도박, 음주, 결혼, 축재 등 계율을 어기는 스님들이 어느 정도인가. -중벼슬은 닭벼슬이라고 했는데 스님들이 권력놀음에 심취해 있다. 국회의원을 국민이 걱정하듯 국민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스님들은 특권층이 아니지 않은가. 사회악을 일소해야 할 검찰과 경찰에선 알고도 종교집단이라고 겁먹고 조사도 않고, 여론 수그러들면 그냥 넘어가다 보니까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것이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했으면 이런 사태가 안 났을 것이다. 해외에서 몇백억원을 잃었다는 스님들도 있다. →자승 총무원장이 대국민사과를 했는데. -그건 쇼다. 그 사람이 나가야 한다. →조계종의 무엇이 문제라고 보는가. -돈이라고 본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돈을 만지면서 도박이란 데 손을 대고, 시주란 게 자기 돈이 아닌데 자기 돈처럼 쓴다. 스님이 월급이 뭐냐. 다 도적질한 거다. 신도들이 한 푼 두 푼 모아 내놓은 걸 자기 돈처럼 쓴다. 스님은 정진수행하고 돈 관리는 신도들이 해야 한다. 제가 고발한 것은 고발장에 적시한 피고발자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계율을 어긴 스님을 다 청소해 달라는 것이다. 사회악 척결차원에서 해야 한다. →제2, 제3의 폭로가 이어질 것이란 소문이 있다. -엄청난 핵폭탄이 있다. 그보다 더 큰 게 있다. 제가 고발할 때는 그냥 했겠나.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화해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고 순교한다는 각오로 하는 것이다. 종단이 바로 가야 한다. 종단이 망할 수는 없다. 종단 정화가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언제쯤 터뜨릴 건가. -상황 봐서 종단이 정신 못 차린 것 같으면,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한다. 정치적인 중들, 종단을 사당화한 세력들, 처자식 숨겨 놓은 스님들은 종단에서 특별기구를 만들어 다 뿌리 뽑아야 한다. 폭탄을 터뜨리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갖고 있다는 폭탄의 실체가 있나. -자료가 있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서류, 동영상, 사진도 있다. →혼자서 그런 일들을 못할 텐데, 누구와 같이 하는 건가. -그런 게 자발적으로 온다. 얼마나 심하면 (다른 스님들이) 그런 걸 찍었겠나. 여러 곳에 묻어 놓았다. 김성호·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성호스님은 누구 1958년생으로 전북 익산 남성고를 나와 법대 2학년을 마치고 사법시험 공부를 위해 들어간 사찰에서 ‘금강경 오가해’를 접하고 197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에서 선학과 박사를 마친 뒤 충남 대조사, 경북 운남사, 전북 금당사 주지를 했다.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1994~98년) 시절 호법부 상임감찰, 사업국장, 사서실(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현 자승 총무원장과 관련된 괴문서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멸빈(승적 박탈)의 징계를 받았으나 법원에서 제적 징계의 효력 정지 판결을 받은 바 있다.
  • “못난 짓으로 물의 일으킨 인사들 대신 참회”

    “못난 짓으로 물의 일으킨 인사들 대신 참회”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만이 욕심에 휘둘리지 않고 깨달아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승가(僧家)와 절집에도 염의를 입고 시주밥을 먹고 살지만 발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못난 짓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대신해 참회하겠습니다. 일단 총무원에서 잘 관리해 지도할 것입니다.”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10일 대구 동화사 동별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조계종 종정 진제스님. 도박 행각으로 입초시에 오른 스님들을 의식한 듯 대중 참회의 속뜻을 감추지 않았다. “‘참 나’를 찾지 못한 중생의 고통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게 마련입니다. 승속을 떠나 밝은 지혜를 갖춰 행복을 찾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마음 속 ‘참 나’ 찾아야 온 세상이 하나” 지난 3월 28일 종정 취임 후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난 진제 스님은 우선 “종정의 소임을 맡다보니 밝은 지혜로 만 가지 어려움을 헤쳐나가도록 한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을 만 중생에 전해야 한다는 신념을 더 확고히 갖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수행풍토를 지켜오고 있는 한국불교의 간화선을 이제는 생활 속에서 다질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부모가 있기 전 나의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의심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참 나’를 찾아내게 됩니다. 모든 일을 하면서 그 의심을 하게 되면 진정한 한 생각이 시동을 걸게 되고 결국 불평 불만이 소멸하게 되지요.” 마음 속의 ‘참 나’를 발견할 때 온 세상이 하나이고 시비 갈등이 소멸하게 됨을 알게 된다는 간화선 참선 수행. 올해 초 미국 뉴욕 종교인세미나에서 한 이런 간화선 설법에 쏠린 큰 반응에 간화선 세계화와 대중화의 원력을 다지게 됐고, 매일 아침 법당에서 그 원을 다시 새긴 뒤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인성 5계’는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 “무기를 갖곤 세계평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았던 진리를 증득해 갈등 없는 평등사회를 이루어야지요. 물질이 아무리 풍요로워도 인간 내면세계가 깜깜한 무명인 탓에 고뇌에 빠지는 예가 숱합니다.” 6년 설산고행 끝에 깨달은 진리를 49년간 설법했어도 100분의1도 드러내지 못했다는 석가모니 부처님. 공자는 그 석가모니 부처님을 향해 ‘다스리지 않아도 만 중생을 다스린다.’며 높이 샀다고 한다. 진제 스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음에 빠져사는 삼독을 해소해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전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연신 불거지는 부정부패와 관련해 ‘인성 5계’를 생각했다는 진제 스님.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부모에 효도하고 이웃을 공경하며, 친구를 사귐에 믿음과 사랑, 공경으로 대하고 맡은 일에 성실과 정성을 다하며 몸 마음을 청정히 한 채 다른 생명을 존중하라는 인성 5계야말로 우리 사회를 바로 세우는 근본입니다. 이 오계를 늘상 새기고 다지면 봄바람에 눈 녹듯이 모든 삿됨과 일탈이 해소됩니다. 물론 간화선 수행은 그 근본을 세우는 큰 방편이 될 수 있지요.” ●“마음 마음 마음이요, 가히 찾기 어렵도다” “행복의 행복(글)자도 없습니다.” ‘종정 스님은 진정 행복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에 거침없이 돌려준 일갈. 말 없는 가운데 마음의 갈등이 없어지는 참선, 그중에서도 생활선에 눈떠 체화해야 한다는 진제 스님은 인터뷰 말미에 법어처럼 큰소리를 남겼다. “마음 마음 마음이요, 가히 찾기가 어렵도다. 찾으려 하면 천리 만리 밖에 앉았으니, 모든 대중이시여 ‘참 나’를 바라보고 계시라.” 대구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억대 도박’ 총무원 집행부 총사퇴

    조계종 고위직인 종회의원과 주지를 포함한 스님 8명이 전남 장성의 백양사 인근 호텔에서 억대 포커 도박을 벌인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조계종의 자승 총무원장은 10일 “관련자를 소환해 종헌 종법에 따라 죄를 물어 처벌하고 대대적 인적 쇄신을 하라.”고 지시했다. 총무원은 종단 차원의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방안을 이르면 11일, 늦어도 다음 주에는 발표할 것을 검토 중이다. 조계종 총무원의 집행부인 부·실장 7명은 이날 오전 총사퇴했다. 앞서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했던 성호 스님은 지난 9일 서울중앙지검에 이들 스님을 도박 혐의로 고발하는 고발장을 제출했다. 성호 스님은 이들이 호텔방에서 도박하는 13시간짜리 동영상을 자료로 검찰에 냈다. 검찰은 사건을 형사부에 배당하고 서울 종로·전남 장성 등 해당 경찰서에서 수사토록 했다. 불기 2556년 부처님오신날(28일)을 앞두고 이날 대구 동화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승가(僧家)와 절집에도 염의를 입고 시주 밥을 먹고 살지만 발심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못난 짓으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을 대신해 참회하겠다.”고 밝혔다. 대구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9일 TV 하이라이트]

    ●수요기획(KBS1 밤 11시 40분) 해월종택의 13대 종손 황의석옹은 8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난다. 그의 어머니는 100년을 넘게 살아 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매일 산소를 보며 절을 하고 한없이 바라만 본다. 그리고 13대 종부 이정숙씨는 집안일을 도맡아서 하는데…. ●적도의 남자(KBS2 밤 9시 55분) 장일은 용배가 경필을 죽인 범인이 아니냐는 선우의 말에 애써 두려움을 감춘다. 협박 편지 사본에 잡아떼던 광춘은 여전히 장일에게 미련을 두고 있는 수미를 막기 위해 진술을 약속한다. 한편 선우는 노식에게도 협박 편지를 보여 주고, 일말의 동요도 없는 노식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뺏어 버리겠다고 공언한다. ●더킹 투하츠(MBC 밤 9시 55분) 한마음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남북 단일팀. 미국팀의 추격을 받던 강석은 먼 곳까지 그들을 유인하고, 항아는 미국팀과의 협상을 주도한다. 그 사이 재하는 미국팀의 통신소와 보급창고에 잠입해 임무를 수행한다. 한편 재신은 시경에게 존 마이어가 재강을 죽인 인물이 맞냐고 묻는다. 그리고 재신은 치료를 받아 기억을 되찾겠다고 말한다. ●옥탑방왕세자(SBS 밤 9시 55분) 왕세자 이각과 박하(한지민)는 한강 둔치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며 데이트를 즐긴다. 하지만 이 모습을 용술과 치산, 그리고 만보에게 들키고 만다. 한편 세나와 태무는 장 회장이 세나를 딸이라 믿게 만드는 등 본격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이각도 본격적으로 세자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 나간다. ●극한직업(EBS 밤 10시 40분) 제철을 맞은 제주 자리돔 잡이에 어민들의 손이 분주해진다. 본선을 중심으로 부속선 2대와 운반선까지 4대의 배에 나눠 탄 선원 7명이 한 팀을 이뤄 본격적인 자리돔 잡이를 시작한다. 본선의 어군 탐지기에 자리돔 떼가 나타나자 어선들은 빠르게 자리돔 떼를 쫓는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어로 작업을 시작한다. ●미스터리 세계를 가다(OBS 밤 10시) 해양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적의 해양 포식자 백상아리. 하지만 그런 백상아리도 벌벌 떨게 하는 포식자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페럴론 제도’에서 살고 있는 범고래다. 과연 백상아리를 제압할 수 있는 범고래의 능력과 기술은 무엇일까. 프로그램에서는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그들의 비밀을 밝힌다.
  • NC 1군 진입 이루어질까

    프로야구 제9구단 NC 다이노스는 내년에 1군에 진입할 수 있을까. 또 제10구단은 창단할 수 있을까. 8일 오전 열리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결론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구본능 KBO 총재와 양해영 사무총장, 9개 구단 대표가 모인 가운데 이사회가 열린다. 지난달 10일 같은 안건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롯데와 삼성, 한화 등 일부 구단의 반대에 부딪혀 이날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8일에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 사실상 무산된다. KBO가 내년 경기 일정을 짜고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와 신인 드래프트를 준비하는 시점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NC 1군 진입은 어렵지 않을 듯 NC의 1군 진입 문제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NC와 연고지인 경남 창원시가 내년 1군 참가를 희망한다는 공문을 KBO에 보냈고 지난 1일 실행위원회에서 이를 검토했다. 주된 트집거리였던 절차상 문제가 해소된 것이다. 더욱이 이사회 의결은 재적인원 3분의2 이상 출석과 출석 인원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이뤄진다. 구 총재와 6개 구단만 찬성하면 통과되는 것이다. 문제는 제10구단 창단이다. 전북과 수원이 구단 유치를 희망하고 있고 몇몇 기업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기존 구단들은 대체로 회의적인 분위기다. 구단이 갑자기 2개나 늘어나면 선수 수급도 그렇고 기존 구단의 인기나 수익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이번에는 NC의 1군 참가는 통과되고 10구단 창단은 미뤄질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이 많다. ●10구단 창단은 여전히 안갯속 그러나 은퇴 야구인 모임인 일구회나 프로야구선수협의회 등은 야구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9개 구단으로 운영하면 시즌이 길어지고 경기 없이 쉬는 팀이 생긴다. 전체 경기는 576경기로 44경기 늘어나지만 팀당 경기 수는 133경기에서 128경기로 줄어든다. 8개 팀이 경기를 치르는 동안 한 팀은 나흘 쉬어야 한다.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 편성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절정의 인기를 누리는 지금이야말로 10구단 창단의 적기란 지적도 많다. 일구회는 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시장 확대를 통한 프로야구 발전보다 자기 이익을 앞세운 몇몇 구단이 NC의 내년 1군 참가와 제10구단 창단을 반대하고 있다.”며 “프로야구는 국민의 여가 생활로, 미래 세대에게 꿈을 주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0)김상헌과 최명길

    [선택! 역사를 갈랐다] (10)김상헌과 최명길

    1637년 1월 18일 청군에게 포위되어 있던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산성으로 쫓겨 들어온 지 한 달이 훨씬 지났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매서운 추위에 병사들은 얼어 죽거나 동상에 걸려 쓰러지고, 얼마 남지 않은 군량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구원병이 끊겨 버린 점이었다. 시간은 자신들 편이라고 확신했던 청군 지휘부는 연일 출성과 항복을 독촉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조선 조정은 결국 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조판서 최명길(1586~1647)이 청군 진영에 보낼 문서의 초를 잡았다. 문서는 ‘조선국왕은 절하고 대청국 관온인성 황제께 글을 올립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었다. 조선이 처음으로 ‘오랑캐’ 청을 황제국으로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예조판서 김상헌(1570~1652)은 글을 보고 통곡했다. 그는 항복 문서를 빼앗아 찢어버린다. 그러자 최명길은 흩어진 종이 쪽을 주워 모아 풀로 붙인다. 처참하고도 희극적인 장면이었다. 왜 한 사람은 찢어버리고, 다른 한 사람은 도로 붙인 것일까? ●원칙을 위협했던 현실 17세기 초반,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는 심하게 요동쳤다. 15세기 이래 패권국으로 군림했던 명의 몰락이 뚜렷해지고, 만주에서 급속히 떠오른 후금이 명에 도전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나라 사이에 낀 조선의 처지는 괴로웠다. 임진왜란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대륙 패권의 변동이라는 격변 속으로 휘말렸기 때문이다. 명은 조선을 끌어들여 후금과 싸움을 붙이려 했고, 후금은 후금대로 조선에 중립을 지키라고 압박했다. 명과 후금에 치여 ‘샌드위치’가 된 처지에서 1627년 조선은 정묘호란을 겪는다. 명과의 결전을 앞두고 조선을 묶어 두려 했던 후금의 침략을 받았던 것이다. 후금군 철기(鐵騎)의 돌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조선은 후금과 형제(兄弟) 관계에 입각한 화약을 맺는다. 조선 지식인들은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지닌 세계관으로 보자면 만주족 후금은 분명히 ‘오랑캐’이자 ‘금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후금을 형으로 섬기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엄혹해졌다. 조선이 ‘임금’이자 ‘부모’로 섬기던 명은 후금에 계속 밀리기만 했다. 정묘호란 이후 후금은 명과의 싸움에서 연전연승하면서 기세가 높아졌다. 급기야 1636년 후금의 홍타이지 칸(汗)은 황제가 되기로 하고 ‘아우’ 조선에 그 사실을 통고한다. 칭제 사실을 알리려 후금 사신 용골대 일행이 입국하자 조선 조야는 정신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다. ‘중화국 명의 천자(天子)만이 천지간에 군림하는 유일한 황제’라는 조선 지식인들의 믿음과 원칙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선 조정은 격앙되었다. ●주화냐? 척화냐?의 선택 대다수 신료는 “명은 부모의 나라이고 후금은 부모의 원수인 데다, 명은 왜란 때 조선을 도왔으므로 절대로 배신할 수 없다.”며 용골대 일행의 상경을 막으라고 촉구했다. “용골대 일행의 목을 베어 명으로 보내고 전쟁을 불사하자.”는 초강경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김상헌은 그 같은 주장을 폈던 척화파(斥和派)의 맏형 격인 인물이었다. 천자국 명을 섬겨온 예의와 명분을 수호하기 위해서도 후금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결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명을 위해서라면 종사가 망하는 것도 감수할 수 있다.’는 주장이기도 했다. 소수파였던 주화파(主和派)의 의견은 달랐다. 주화파의 대표자 최명길 또한 ‘오랑캐와 척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론이자 원칙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당시 현실에서 ‘원칙’을 관철하려 할 경우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최명길은 ‘임금의 의리는 필부의 그것과 다르다.’며 ‘조선의 임금이 명을 위해 종사를 망하게 할 수는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묘년에 맺은 후금과의 형제관계를 유지하도록 끝까지 노력하되, 후금의 칭제에 대해 호오(好惡)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자고 강조했다. 최명길은 ‘오랑캐가 칭제했다.’는 사실 자체에 흥분하여 기존의 관계를 무조건 파기하자고 했던 척화파들을 비판했던 것이다. 인조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는 결국 다수파인 척화파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후금과 맺은 형제관계를 파기하고 절교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절교 ‘이후’에 대한 군사적 대책은 미흡했다. 청이 침략할 경우 서울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가 맞선다는 것이 주된 방책이었다.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이 얼어붙자 청군 철기는 서울을 향해 내달렸다. 12월 14일 청군 선봉은 지금의 녹번동 부근까지 도달했다. 청군은 의주에서 서울로 이르는 대로 주변의 산성에 들어가 청야작전(淸野作戰·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폈던 조선군을 무시하고 돌격을 감행했다. 허를 찔린 조선 조정은 강화도로 피난할 시간적 여유를 상실했고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남한산성에는 1만 4000여 명의 병력과 그들이 45일 정도를 버틸 수 있는 군량밖에는 없었다. ‘춥고 배고픈’ 산성은 청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고 남·북방의 구원병들은 산성으로 접근하는 족족 청군에게 궤멸하였다. 청은 처음에는 왕세자를 내보내야 항복을 받아 주겠다고 했다. 이어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나중에는 척화신들을 묶어 보내야 한다고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포위된 산성에서도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지속되었다. 김상헌 등은 인조에게 “오랑캐의 신하가 되느니 최후의 결전을 벌여 깨끗이 망하자.”는 주장을 폈고 최명길 등은 “종사와 백성을 생각해야 할 임금은 은인자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성을 지키던 병사들도 동요했다. 추위와 굶주림, 공포에 지친 병사들 가운데는 항복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자들도 나타났다. 막다른 상황에 몰리자 인조는 결국 최명길 등의 건의를 받아들인다. ●‘선택’의 역사적 의의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포(三田浦)로 내려와 항복했다. ‘오랑캐 추장’ 홍타이지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이었다. 인조가 겪은 치욕보다 더 처참한 것은 수십만의 백성이 청군에게 포로가 되었던 사실이다. 조선 포로들은 심양으로 끌려가 노비로 사역되었다. 많은 포로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죽는가 하면 도로 붙잡힌 포로들은 발뒤꿈치를 잘리는 혹형을 받았다. 포로가 된 많은 여인이 끌려가는 도중 청군의 첩으로 전락했고, 심양에 도착해서는 질투심에 눈이 먼 만주족 본처로부터 끓는 물 세례를 받은 여인도 있었다. 어렵사리 종사와 국체를 보전했지만, 전란 때문에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처절함 그 자체였다. 조선은 과연 이 처참한 국난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조야를 막론하고 당시 조선 지식인들 대다수가 “명은 중화이고 청은 오랑캐”라는 것을 원칙으로 견지하는 한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칙’과 ‘현실’이 부딪칠 때 무엇을 가장 우선적이고 소중한 목표로 삼을 것인지를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다. 남한산성의 함락이 임박했을 때, 김상헌 등이 제기한 주장은 “조선의 신료는 물론 임금도 명을 위해 ‘옥쇄’(玉碎·명예나 충절을 위하여 깨끗이 죽는다는 의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최명길 등은 “조선 임금은 명보다는 조선 백성의 운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전자가 ‘무차별적 원칙론’이라면 후자는 ‘선택적 원칙론’이었다. 병자호란의 발생부터 종결까지 인조는 양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병자호란 무렵의 국제질서 변동 과정에서 조선은 ‘독립변수’가 아니었다. 명과 청 사이에 낀 조선은 두 나라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전화에 휘말리고 말았다. 양국과의 관계를 모두 원만히 유지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명과 청이 계속 싸우는 상황에서 ‘종속변수’ 조선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처한 이 같은 엄혹한 조건을 잘 알고 있었던 최명길은 병자호란 직전 인조에게 ‘결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는 청과의 화친을 강조하면서도 “척화파들의 주장처럼 청과 맞서 싸우려는 것이 ‘진심’이라면 강화도를 포기하고 압록강까지 전진해서 싸우자.”고 촉구했다. 인조가 거부하여 무산되었지만, 이 주장이 갖는 의미는 만만치 않다. 국경에서 결전을 벌이면 승패 또한 그곳에서 조기에 결판날 것이고, 청군이 깊숙이 남하하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렇게 많은 포로가 청군에게 사로잡히는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명길의 주장이야말로 ‘종속변수’ 조선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명청 교체의 격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이 아니었을까. 17세기 초반 조선이 명청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로 내몰렸던 사실은 미국과 중국이 맞선 오늘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패권국이 쇠퇴하고 새로운 강국이 떠올라 그에 도전하는 사태가 빚어질 때 한반도는 예외 없이 위기를 맞았다. 명청 교체를 비롯하여 14세기 후반의 원명 교체, 16세기 후반의 일본 굴기, 19세기 후반의 청일전쟁이 한반도로 몰고 왔던 결과들이 그 생생한 실례다. 다가오는 미·중 대결의 시대, 이른바 G2시대를 맞아 우리는 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나아가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는 것을 피하고자 우리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한명기(명지대 사학과 교수)
  • 공직선거법·증권거래세법·북한인권법… 18대 폐기 법안 6300건

    공직선거법·증권거래세법·북한인권법… 18대 폐기 법안 6300건

    18대 국회가 2일 본회의를 끝으로 막을 내렸지만 법안 폐기율이 51.9%에 이르면서 사장된 민생법안들도 만만치 않다.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날까지 18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 1만 3912건 중 미처리(계류) 법안은 6300건(45.3%)에 이른다. 이미 폐기된 법안 919건까지 합치면 18대 국회 법안 폐기율은 51.9%로 5대 국회(1960~1961년) 폐기율(72.8%)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17대 국회 법안폐기율은 47.7%, 16대는 35.1%였다. 높은 폐기율은 여야 간 합의 실패에도 원인이 있지만, 의원들의 무분별한 법안 발의에도 원인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비롯해 97건으로 헌정 사상 최고라는 오명을 남겼다. 의장 직권상정은 17대 국회에선 29건, 16대 국회에선 5건에 불과했다. ●법안 폐기율 51.9%… 5대 이후 최고 ‘노무현·김대중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법’은 민주통합당의 반대로 지난달 법안 발의만 해놓은 상태에서 사라지게 됐다. 선거 때마다 지역구 조정을 의원들 마음대로 하는 게리맨더링 관행 때문에 제출된 공직선거법 개정안 역시 휴지조각이 됐다. 지난 4·11 총선 때도 경남 남해·하동 지역구는 불과 한 달여 전에 사천과 합구가 결정되는 등 막판까지 혼란을 겪었다. 이런 이유로 개정안은 국회에 임시기구로 두는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를 중앙선관위 산하에 상시 설치하고 선거구획정안은 국회 본회의에 그대로 부의, 처리하되 수정의결을 할 수 없도록 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파생상품 거래세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증권거래세법 개정안은 지난해 3월 여야 합의로 법사위를 통과해 놓고서도 본회의 문턱에서 좌절됐다. 이번 총선에선 여야 모두 조세정의를 내세우며 파생상품 거래세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부산 지역 의원들의 반대가 거세 막판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거래세 여야합의하고도 좌절 친족관계의 성폭력을 가중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은 지난해 3월 발의된 이후 법사위에서 잠자다 결국 폐기처분됐다. 북한인권자문위원회와 북한인권재단 설치가 목적인 북한인권법은 2005년 발의된 이후 8년째 입법화가 좌절됐다. 이 밖에 지방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도시재생활성화법’, 도심에 있는 군공항 이전을 위한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사학비리 근절에 초점을 맞춘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도 폐기됐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경북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76) 경북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농촌 마을에 봄이 깊어지면 농부는 유쾌함이 동반된 분주함으로 몸과 마음이 설렌다. 못자리를 살피고, 볍씨를 파종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한창 바쁘다. 길가에 줄지어 서서 꽃 피운 벚나무는 어느새 가지마다 연초록의 잎사귀를 한가득 돋웠고, 하얀 꽃잎은 봄눈이 되어 흩날린다. 농촌의 분주함은 길가의 낮은 둔덕에 아무렇게나 솟아오른 쑥을 캐는 할머니들의 손길에서도 느껴진다. 쌉싸름한 쑥개떡이라도 쪄 먹으려면 다 자라 쇠기 전의 여린 쑥을 뜯어야 한다. 환한 꽃으로 밝아온 농촌의 봄이 깊어지면서 마을의 풍요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도 만개한다.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는 농촌의 봄은 그래서 햇살뿐 아니라, 사람들의 표정까지 한없이 밝다. ●해마다 찾아오는 정체불명의 일본 노인 낙동강변의 풍요로운 농촌 마을 경북 구미 옥성면 농소리. 마을 회관 앞 도로변의 낮은 둔덕 풀밭에 마을 노인들이 쑥을 캐러 나와 앉았다. 노인들의 굽은 어깨너머로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솟구쳐 오른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바라다보인다. 마을 회관 지붕에 놓인 대형 스피커에서는 ‘봄 노래’가 쉼 없이 흘러나온다. “나무 앞의 간판에는 저 나무를 400살이라고 해놨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실제 나무의 나이는 1000년도 넘었어. 내 고조부 때부터 그렇게 이야기했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알고 있지.” 이 고장에서 태어나 군대 생활 몇 년 빼고는 마을을 떠난 적이 없다는 토박이 이성록(74) 노인은 나무를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누가 언제 심은 나무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400살이라고 쓰인 문화재청 안내판의 나이는 틀렸다고 단언한다. “어떻게 우리 나무를 알았는지, 일본 후쿠시마에 산다는 팔순 노인이 몇 해째 거푸 찾아왔어. 그 사람 말이 재미있어. 옛날 중국에서 매우 큰 은행나무의 자손으로 자란 암수 한 쌍의 은행나무가 있었다는 거야. 그 나무 중의 딸 나무가 바로 우리 은행나무고, 아들 나무인 수나무는 일본에 있다는 거지. 그러니까 일본 나무와 우리 나무가 남매라는 거야.” 지난해 가을에도 몇 사람의 동반자와 함께 찾아와서 한참 동안 나무만 바라보고 돌아갔다고 한다. 자신의 신분과 나무를 찾아온 목적을 또렷이 밝히지 않아 처음엔 그냥 관광객 정도로만 보았는데, 세 차례나 반복되는 그의 방문은 예사로이 여길 수 없었다고 한다. 전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떤 문헌이나 증거도 없다. 곁에서 쑥을 캐며 이야기를 듣던 할머니들도 그 일본 노인의 태도가 대단히 진지했다고 덧붙인다. ●안녕을 기원하는 시월 동고사 그럴 수도 있고,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맞는지를 증명할 자료는 없다. 그러나 마을에서 오래도록 전해온 이야기나 일본 노인의 이야기가 모두 나무의 나이를 1000년 넘게 본다는 주장이다. 1970년에 문화재청은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 제225호로 지정하면서 나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전제했다. 전문가의 조사를 바탕으로 문화재청은 마을 근처의 지명 가운데에 ‘바윗골 절터 양지’라는 표현이 있어서 나무 곁에 절이나 장터가 있었고, 나무는 절집과 관계있을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나무의 나이를 400살 정도 된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큰 차이를 보이는 결과이지만, 식물학적 생육상태로는 400살쯤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다. 지금 나무의 키는 21.6m, 줄기 둘레는 11.9m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모든 은행나무를 통틀어 무척 큰 나무에 속한다.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나무가 1000년을 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그러나 어차피 나무의 나이를 정확히 측량할 어떤 근거도 없는 이상 마을 사람들의 말을 비과학적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정확한 수령의 측정보다 마을의 살림살이를 지키며 살아가는 나무의 현재적 의미와 가치가 더 중요한 까닭이다. “시월 상달에 처음 드는 오(午)일에 동고사(洞告祀)를 지내지. 마을에서 제일 깨끗한 사람을 제주로 정하는데, 제주가 되면 몸을 더럽힐 일을 피하느라 바깥출입도 금하면서 제사를 준비해야 해. 옛날에는 집집이 쌀 한 되씩을 갹출해서 제수를 준비했는데, 요즘은 현금으로 40만원쯤 모아서 제수를 준비하지.” 15년 전쯤에 동고사를 지내지 않고 해를 넘겼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마을에 흉한 일이 빈발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기는가 하면, 젊은 사람이 몹쓸 병에 걸려 쓰러지기도 했다. 궁리 끝에 다시 동고사를 올렸고 마을엔 평화가 돌아왔다고 한다. 이 은행나무가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수호목으로서의 의미로 살아왔음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가을엔 단풍이 아주 좋지. 열매가 많이 맺혀서 냄새도 대단해. 해거리를 하기 때문에 그 양이 들쭉날쭉한데, 잘 열리는 때에는 다섯 가마 정도를 거두지. 그걸 내다 팔아서 동고사 지내는 비용에 보태.” ●앞으로도 천년의 세월을 살아야 할 나무 긴 세월 속에 정확한 나이를 잊은 한 그루의 커다란 은행나무. 사람이 닿을 수 없는 하늘 끝에 나뭇가지를 내걸고 마을의 살림살이를 화평하게 지켜온 나무다. 1000살이든 400살이든 말없이 사람의 마을을 지켜온 것처럼 앞으로도 수굿이 제자리를 지킬 것이다. 마을 어디에서라도 하늘을 바라보면 반드시 눈길에 걸리는 한 그루의 나무를 사람들은 언제까지라도 삶의 지킴이로 기억할 것이다. 파릇이 새잎 돋우고 늘어진 가지들이 지어낸 나무 그늘의 평화가 그지없이 아름답다. 글 사진 구미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경북 구미시 옥성면 이곡1길 10(농소리). 중부내륙고속국도의 상주나들목으로 나가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낙동대로를 타고 선산 대구 방면으로 간다. 10㎞ 남짓 가면 낙단교차로가 나온다. 오른쪽 도로로 빠져나가서 낙단대교 아래를 지나 700m 뒤에 이어지는 교차로에서 오른쪽 도로를 이용한다. 국도 59호선을 이용해 6.3㎞ 직진하면 농소2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도로 위에서 마을회관 뒤편으로 높지거니 솟아오른 나무가 먼저 보인다. 나무 곁에 자동차를 세울 공간이 없으니 회관 앞 도로 옆에 주차해야 한다.
  • ‘범죄의 표적’ 스마트폰 2년새 분실 신고 50배

    ‘범죄의 표적’ 스마트폰 2년새 분실 신고 50배

    최근 매달 5만여대의 휴대전화가 사라지고 있다. 고가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범죄의 표적으로 떠올랐다. 경찰도 스마트폰과 관련된 신종 범죄 예방책을 마련하기위해 고심하고 있다.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월 1107건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분실 신고 접수 건수는 지난해 1월 1만 520건으로 1년 사이 10배나 늘었다. 지난 1월엔 5만 5205건으로 다시 5배가 급증했다. 2년 만에 50배나 증가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분실 신고되는 휴대전화 대부분이 스마트폰”이라면서 “경찰에 분실 신고한 접수증을 통신사에 제출해야 스마트폰 보험을 통한 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실 신고 현황에는 허위 분실 신고도 포함돼 있다. 스마트폰 보험 제도를 악용, 새 제품으로 교환받으려는 소비자가 적지 않은 탓이다. 통신사 측은 “허위 신고 여부를 확인하지만 면밀히 따지기가 쉽지 않아 보상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용자 수는 현재 2500만명을 넘어서 3000만명에 육박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을 노린 절도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대당 1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절도 사건이 하루를 멀다 하고 잇따라 터져 나오는 이유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이날 찜질방, 오락실 등에서 스마트폰 304대(시가 2억 6000만원)를 훔친 고모(25)씨 등 75명을 절도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로부터 스마트폰 1대당 20만~40만원에 사들인 장물업자 신모(27)씨 등 8명도 장물취득 혐의로 입건했다. 영등포경찰서도 중학교 후배들을 시켜 조직적으로 고가의 스마트폰 8대(시가 590만원)를 빼앗아 팔아넘긴 양모(17)군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공범 12명과 장물업자 김모(30)씨는 불구속했다. 전화 한통 쓰자며 스마트폰을 빌렸다가 도주해 버리는 사건도 잦다. 특히 PC방, 찜질방은 스마트폰 절도에 가장 취약한 곳으로 떠올랐다. 노성훈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밀폐된 곳일수록 절도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고 설명했다. 실제 PC방 등을 전전하는 가출 청소년들이 스마트폰 절도범 가운데 압도적인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학교 폭력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일진들에게 스마트폰은 탐나는 아이템이다. 현금화가 쉬워서다. 절도는 아니지만 택시 운전사들도 스마트폰 분실률 증가에 한몫하고 있다. 택시에 손님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이 적지 않다. 장물업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스마트폰을 매입한다.”는 내용의 명함을 택시기사들에게 뿌릴 정도다. 전화가 걸려오면 지하철역 인근에서 만나 거래한다. 기종에 따라 20만~40만원에 팔아 넘길 수 있어 택시기사에겐 쏠쏠한 용돈이 된다는 것이다. 택시에 두고 내린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이유다. 이영준·조희선기자 apple@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선택! 역사를 갈랐다] (9) 조광조와 중종

    조광조(호 靜庵·정암, 시호 文正·문정)의 일생은 짧고 격절(激切)했다. 1519년(중종14) 겨울, 전라도 능주에서 사약을 마시게 되었을 때 그의 나이 38세였다. 이 젊은 선비가 남긴 일화들은 금세 신화가 되었고, 후세는 그를 성리학의 순교자로 기억하였다. ●절명시 전승되는 그의 최후 장면은 장엄한 서사다. 그때 조광조는 서울에서 내려온 금부도사(禁府都事)를 정중히 맞이하고, “임금께서 죽음을 명하셨다면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이다.” 라며 죄명을 물었다. 그런데 가져온 명령서에는 죄명이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을 대접하는 도리가 이렇게도 초라하단 말인가.” 라면서 “당장에 상소를 올려 바로잡아야 될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이익에 관한 일이라 그만둔다”고 훈계했다. 사약을 마시기 전에 조광조는 시 한편을 읊었다. “나라님 사랑 아버지 사랑하듯 하였소(愛君如愛父). 나라일 걱정 내 집안일처럼 걱정하였소(憂國如憂家). 밝은 해가 세상을 내리쬐시니(白日臨下土), 밝고 밝게 비추어 내 마음 아시리라(昭昭照丹衷).” 이 서사에는 세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우선 그는 만고 충신이며, 지순(至純)한 도덕군자이고, 세사를 초탈한 영웅이란 것이다. 이것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조광조에 대한 집단기억으로 정착되어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끝없는 추모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기묘사화와 후세의 평가 정치가 조광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쉬움으로 일관되었다. 학문이 완숙되기도 전에 정치에 뛰어들어 과격한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였으니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이이(1536~1584, 호 栗谷·율곡)는 “사람들은 입 모아 말하기를, 시기가 성숙하지 못한 탓으로 돌렸다.”라고 말했다. 조광조를 쓰러뜨린 것은 기묘사화(己卯士禍)였다. 그 시작은 1519년 11월 16일(음력) 아침이었다. 중종은 남곤, 심정 및 홍경주와 함께 정치적 소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사사로이 붕당을 지은” 죄로 조광조와 김정, 김식 및 김구 등 4명을 주범으로 몰았다. 윤자임, 박세희, 박훈 및 기준 등도 부화뇌동한 혐의로 엮였다. 붕당의 몸통으로 거론된 이들 8명은 당년 20~30대로, 사건 발생 나흘 만에 각지로 유배되었다. 그들 대다수는 결국 죽음을 면치 못하였다. 문제가 된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조광조는 “나라의 병통이 이원(利源)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국가의 명맥을 영구히 새롭게 할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알다시피 사적 ‘이익’의 추구는 성리학의 금기사항이었다. 그런 점에서 중종반정 때 117명이나 되는 신하들이 마구잡이로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봉된 것이 조광조 등의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들은 문제가 있는 76명의 공신칭호를 박탈하였다. 공신세력은 이에 분노했고, 중종은 반색하였다. 조광조 등이 숙청의 역풍을 맞은 것은 물론이다. 지금까지의 연구에서는 네 가지 사실이 가려져 있었다. 첫째, 사건의 총지휘자가 중종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훈구파의 우두머리라는 남곤이 실상은 공신이 아니고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의 제자였다는 사실이다. 셋째, 조광조 일파의 정치적 성격은 다양해, 기준과 권전 등의 급진파가 있었나 하면, 김안국·김정국 형제 등 소극적 지지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끝으로, 조광조의 노선이 실은 선배 박경(?~1507)의 노선을 충실히 계승하였다는 점이다. ●조광조는 박경의 후계자 1507년(중종2) 박경 등의 역모사건이 발생하였다. 놀랍게도 조광조를 비롯해 그 동지 김식, 공서린 및 조광좌 등이 연루되었다. 주모자 박경은 사림파의 종장(宗匠) 김일손(1464~1498) 계열의 학자였다. 서얼이었던 박경은 정국공신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변란을 꾀했으나 실패하였다.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박경은 정치적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중용’(中庸)‘대학’(大學)을 숙독하는 것이 제일”이라며 성리학의 근본가치를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제를 폐지하고 대신에 ‘향리 선거법’ 즉, 추천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또한 관행에 구애되지 않고 인재를 발탁할 것, 특히 서얼과 종친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았다. 청년 조광조 등은 박경의 견해에 공감하였다. 서얼과 종친에 관한 부분을 뺀 나머지 사항들은 고스란히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중심축이 되었다. 한마디로 조광조 등은 박경의 뜻을 계승하여 성리학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조광조의 도학적 리더십 조광조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된 데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우선 그는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법 집행이 공정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지지가 컸다. 오죽했으면 조광조가 유배를 당하자 한성부 향도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겠는가. 그때 1000명이 넘는 유생들도 대궐에 난입해 조광조의 구명을 요구했다. 조광조는 소통에 능하였고, 그래서 동지들의 신뢰가 대단했다. 특히 김정 및 한충 등과는 큰 이불과 긴 베개를 펴놓고 함께 잠을 잘 정도로 가까웠다. 그들의 우정은 죽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다. 또한 조광조는 정치적 명분이 뚜렷했고, 모든 일을 끝까지 정열적으로 밀고나가는 사람이었다. 반대파에 대한 공격 역시 격렬했다. “벼슬을 얻으려고 애쓰거나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 무리들이 중요한 자리에 설 수 없게 되어, 겉으로는 칭찬하나 속으로는 욕하였다.”고 할 정도였다. 조광조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찬반 양편으로 갈라섰다. ●왕이 최고의 성리학자라야! 조광조는 요순시대의 재현을 확신했다. 1515년(중종15)의 증광문과시험 시권(답안지)에서 그는, 명도(明道)와 근독(謹獨)을 통해 황금시대를 복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펼친 이상(理想) 정치운동의 핵심은 왕도정치(王道政治)에 있었다. “임금은 하늘과 같고 신하들은 사계절과 같습니다.” 조광조는 이런 주장을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왕을 만인의 스승, 즉 군사(君師) 또는 철인군주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조광조는 중종에게 ‘근독’과 ‘명도’를 주문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상정치가 구현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훗날의 예를 보아도 ‘군사’를 자처한 당대 최고의 석학 정조 때에도 요순시대는 재현되지 않았다. 그야 어떻든 조광조는 이상정치의 구현을 위해 중종에게 대학과 중용 공부를 강조하였다. 특히 대학을 중시하였다. “비록 대학 한 권밖에 없다 해도 (왕은)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조광조는 ‘소학’도 높이 평가했다. “세종 때는 오직 ‘소학’의 도(道)에 마음을 썼으므로, 그 책을 널리 반포하였습니다.”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주희를 비롯한 송나라의 성리학자들도 이미 ‘소학’과 ‘대학’이 표리관계임을 말하였다. ‘소학’은 성리학적 행동규범을 가르치는 교과서요, ‘대학’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길을 단계적으로 제시하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조광조는 성리학으로 새 세상을 열고자 하였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중종 물론 조광조 등이 이념에만 매달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은 실제로 공신세력을 약화시켰고, 현량과를 실시하고 향약을 보급하는 등 몇 가지 개혁안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그럼에도 기묘사화라는 역풍에 휩쓸려 좌초하였다. 조광조 등은 위기가 닥쳐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대세를 뒤엎지 못하였다. 왕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종이었다. 인간적 삶이 평탄하지 못했던 왕은 누구든 불신하였다. 우선 자신을 추대한 반정공신들도 믿지 못했다. 사림파를 요직에 임명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림파라고 해서 중종이 끝까지 총애할 리가 없었다. 중종은 4년간의 정치적 밀월 끝에 결국 조광조를 배신하였다. 처음부터 중종에게는 이상정치의 구현이라는 바람이 없었다. “왕은 (경연에서) 몸이 피로하고 괴로워서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고쳐 앉기도 하고 때로는 용상(龍床)에서 퉁 하는 소리를 내기도” 하였다. 조광조와 김식 등은 중종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중종이 ‘소인’(小人)들에게 쏠리는 날이 올 것을 예측하였다. 특히 조광조는 자신들이 붕당(朋黨)을 만든 죄로 일망타진될 것을 내다보았다. 이러한 위험을 짐작하고서도 왕도정치의 길을 계속 걸어갔으니, 그들은 이상을 위하여 순교한 것이다. ●조광조의 유산 중종이 공신들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구체화한 것은 1512년(중종7년)쯤이었다. 부왕 성종이 사림파를 등용했던 것처럼 중종도 새 인물들을 찾았다. 그에 부응해 이조판서 안당이 조광조를 추천했다. 조광조는 동지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이성동 등 급진파는 삼정승까지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개혁을 외쳤다. 왕과 공신들은 그들을 혐오하였다. 1519년 겨울, 그들은 사화를 일으켜 이상주의자들을 내쫓았다. 그러자 낡은 정치가 재연되었다. 중종은 외척과 권신들을 들였다 내쳤다하며 세월을 허비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선비들은 ‘불나비’ 조광조를 잊지 못했다. 그들은 조광조의 뒤를 이어 성리학 지상주의의 깃발을 더욱 높이 세웠다. 마침내 백인걸 등의 노력으로 조광조는 문묘에 배향되어 조선 선비들의 영원한 아이콘이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여기저기서 굉장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그 본영인 미국 경제가 벌써 몇 년째 신음소리를 낸다. 스페인과 그리스 등은 아예 국가부도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사회의 현안인 양극화와 청년실업의 문제 또한 신자유주의의 여파다. 그래서 지금은 근본적인 대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고식적인 처방이 아니라, 근본적 의미의 새로움이 요청된다. 우리가 조광조의 부활을 소망하는 이유다. 21세기의 그 개혁사상가는 구체제의 귀결인 지배와 종속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 공존공생의 평화공동체를 일으킬 것이다. 착취와 오염으로 병든 생태계에 새 숨을 불어넣을 그의 출현을 기다린다. 백승종(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 벚꽃 명소 진해 여좌천을 걷다

    벚꽃 명소 진해 여좌천을 걷다

    그곳은 벚꽃의 나라였습니다. 지금은 경남 창원시로 통합된, 옛 마산에서 진해로 향하는 터널 끝자락에서 떠오른 생각이었습니다. 작은 터널 하나 지났을 뿐인데, 풍경은 전혀 차원이 달랐습니다. 벚꽃이 도시 풍경의 한 축이 되는 게 아닌, 벚꽃 스스로가 하나의 도시를 이루고 있는 듯했습니다. 벚꽃은 곧 집이었고, 길이었으며,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일반적인 잣대로는 꽃이 만개했을 때 ‘절정’이라고 표현합니다. 한데 벚꽃의 경우에도 그럴까요. 동백이 그렇듯, 벚꽃도 떨어질 때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춘설처럼 분분히 날리는 벚꽃들이 여간 몽환적이지 않지요. 그렇다면 벚꽃의 경우, 꽃이 져 흩날릴 때라야 비로소 ‘절정’에 이른 것 아닐까요. 벚꽃의 만개 소식을 듣고 난 이후 진해를 찾은 것도 그런 까닭이었습니다. 진해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된 군항 도시다. ‘세계 최대·최고의 전략적 군항 건설’을 기치로 내건 일제가 현 장복산 자락에 만든 계획 도시다. 당시 일제는 10만여 그루의 벚나무를 군항과 시내 거리에 심었다. 광복 뒤 일제 잔재라 해서 대부분 베어졌으나, 진해 왕벚나무의 원산지가 제주도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1976년부터 다시 벚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 때 심은 벚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은 당시 ‘벚꽃장’이라 불렸던 현 해군교육사령부 통제부와 해군사관학교, 해군기지사령부 등 일부에 불과하다. 현재 진해의 벚나무는 대략 35만 그루로 추산된다. 18만여명(올해 1월 말 기준) 진해구민 숫자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길이 벚꽃이고 벚꽃이 곧 길인 곳 옛 마산에서 장복터널을 지나면 곧바로 진해다. 왼쪽은 장복산, 바로 앞은 여좌천 들머리다. 멀리는 벚꽃 모자 눌러쓴 대섬 등이 펼쳐진 진해 앞바다다. 단언컨대 바로 이곳부터 당신의 입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올 게다. 그리고 탄성은 진해를 돌아보는 내내 쉼 없이 이어진다. 진해의 벚꽃 명소는 여좌천 일대와 경화역 주변, 그리고 안민고개 등이 꼽힌다. 여좌천을 중심으로 3~4㎞ 이내에 몰려 있다.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 등이 진해 벚꽃의 ‘원조’로 꼽히지만, 군사시설인 만큼 군항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여좌천은 그 가운데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는 벚꽃 명소다. 진해내수면환경생태공원 초입부터 진해여고 앞까지, 약 1.5㎞ 구간에 벚꽃 터널이 펼쳐져 있다. 미국 뉴스채널 CNN에서 운영하는 CNN Go가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으로 선정하면서 부쩍 이름이 높아졌다. 여좌천에 서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단박에 갖게 된다. 노란 유채꽃 만발한 개천 위로 벚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 줄기 바람이라도 불면 하얀 꽃눈이 내린다. 여좌천 물길 위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잎 배들이 동동 떠다닌다. 여좌천 맞은편의 내수면환경생태공원은 반드시 들를 것. 벚꽃 군락지로서보다는 작은 호수와 벚꽃, 그리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경화역은 진해역과 성주사역 사이에 있는 폐역이다. 경화역을 중심으로 경화 1건널목~세화여고 사이 800m에 걸쳐 벚꽃터널이 장관을 이룬다. 경화역에선 열차도 쉬어간다. 보다 정확히는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한다. ●이 길에서 경탄하지 않는 자, 사람이 아니리 안민고개는 경화역 위쪽의 장복산을 따라 펼쳐져 있다. 진해구 태백동에서 안민생태교까지 약 4㎞ 구간을 일컫는다. 말 그대로 ‘십리 벚꽃길’이다. 구간 전체에 나무 데크를 조성해 누구라도 쉽게 걸을 수 있게 했다. 길 전체에 펼쳐진 아치형의 벚꽃 터널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특히 길 중간중간 드러나는 진해 전경이 더없이 빼어나다. 차로도 오를 수 있다. ‘진해 드림로드’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트레킹 코스다. 장복 하늘마루 산길(3.8㎞), 천자봉 해오름길(9.9㎞), 백일 아침고요 산길(3.1㎞), 소사 생태길(7.6㎞) 등 네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외지인의 경우 천자봉 해오름길을 주로 걷는다. 안민고개 초입에서 3㎞ 정도 떨어진 전망대가 들머리다. 홍매화와 벚꽃 등이 평탄한 길을 따라 어우러져 있다. 진해 시가지보다 고도가 높아 벚꽃 개화도 다소 늦게 시작된다. 장복산(582m)도 진해 벚꽃 명소의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여좌천 등에 견줘 다소 ‘올드 버전’인 것도 사실. 진해구민회관에서 옛 장복터널까지 산길을 따라 벚꽃길이 조성돼 있다. 이 길의 미덕은 편백나무와 벚꽃이 어우러져 그윽한 풍경을 선사한다는 것. 숲의 공기 청량하고 바람은 더없이 시원하다.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다. 장복산 중턱엔 기막힌 ‘전망대’가 또 하나 숨겨져 있다. 삼밀사(三密寺)다. 장복산 공원 옆 임도를 따라 오를 수 있다. 절집에 들면 ‘516 나한상’이 이방인을 반긴다. 표정과 자세가 제각각인 나한상 516개가 조각돼 있다. 등을 돌려 ‘516 나한상’과 시선을 나란히 하면 눈부신 진해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장복산 기슭에서 시작된 벚꽃의 행렬이 여좌천을 지나 진해 앞바다까지 ‘주르륵’ 이어져 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렸네 벚꽃의 위세에 눌려서 그렇지, 진해 일대엔 다른 봄꽃들을 완상할 만한 곳이 많다. 특히 천주산(639m)은 진달래 명산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늘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란 호방한 뜻의 산으로, 의창구 북면에 있다. 천주산의 으뜸 볼거리는 정상 못 미쳐 장쾌하게 펼쳐진 진달래 군락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로 시작되는 동요 ‘고향의 봄’을 기억하는지. 아동문학가 이원수(1911~1981) 선생이 어릴 적 천주산 일대에서 지냈던 기억을 바탕으로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봄꽃 개화가 유난히 늦은 올해는 진달래 축제(15일)를 넘긴 이후 절정을 맞고 있다. 진해구 해군기지사령부 내 제11부두 주변엔 유채꽃 단지가 조성됐다. 올해 처음 조성돼 일반인에게 선보이는 지역이다. 면적은 5만㎡(1만 5000평). 단일 재배지역으로는 전국 최대라는 게 진해구의 설명이다. 전망대와 관람로, 포토존 등 편의시설도 마련돼 있다. 앞서 진해군항제(1~10일) 기간 중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이상 기온으로 개화가 늦어지면서 공개도 늦춰졌다. 해군기지사령부는 진해 벚꽃의 ‘원조’쯤으로 여겨지는 곳. 평소 일반인 출입통제로 볼 수 없었던 우람한 벚꽃들의 자태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남원로터리 옆 해군사관학교 출입로를 오는 22일까지 오전 8시 30분~오후 4시 30분 개방한다. 글 사진 창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수도권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끝까지 내려가 내서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서마산나들목에서 나간다. 2번 국도를 타고 부산·진해 방향으로 가다가 양곡나들목(마창대교 분기점), 장복터널을 지나 우회전해 진해구 여좌동으로 들어간다. ▶맛집:석동 제주복집(547-5555), 진해남부교회 부근 선학곰탕(543-6969), 제황산공원 입구 사공추어탕(546-0655) 등이 알려졌다. 추억의 간식 ‘진해콩’도 유명하다. 1915년부터 경화당제과에서 가내수공업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잘 곳:신라온천(299-9301)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추천하는 굿스테이 업소다. 의창구 북면에 있다. 여좌천, 경화역 부근에도 저렴하고 깔끔한 모텔들이 많다.
  • ‘수사반장’ 최불암 35년만에 명예총경 승진

    ‘수사반장’ 최불암 35년만에 명예총경 승진

    수사극의 원조 격인 드라마 ‘수사반장’에서 박 반장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모았던 배우 최불암(72)씨가 명예총경으로 승진 임용됐다. 드라마가 방영 중이던 1977년 명예경정에 임명된 지 35년 만이다.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은 일선 경찰서장의 계급이다. 드라마 속 박 반장의 직급은 경위였다. ●드라마 속 직급은 경위 경찰청은 17일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 대청마루에서 MBC 드라마 ‘수사반장’ 팀에 대한 명예 경찰 승진임용식을 갖고 주연을 맡았던 최씨와 당시 연출자 이연헌(70)씨를 명예경정에서 명예총경으로, 극본을 담당한 윤대성(73)씨를 명예경위에서 명예경감으로 승진·위촉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사반장’은 경찰 수사의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드라마로,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인해 수사 주체성을 인정받는 등 경찰 위상이 달라진 만큼 드라마팀에 대한 승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수원 살인사건 등 잇단 흉악범죄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드라마 속 수사반장처럼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경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임용식에서 “수사반장이 종영한 지 23년이나 됐지만 아직 경찰을 대표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말하라면 많은 이들이 수사반장을 꼽는다.”면서 “수사반장이 보여 준 경찰상에 대해 우리 경찰 모두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되새기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자리”라고 말했다. 최씨는 “총경이라는 계급이 경찰조직에서 얼마나 높고 어려운 역할을 수행하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시민들이 우리 경찰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는 연결다리가 되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출연때부터 총경 제의 거절 또 “드라마를 할 때부터 경찰에서 총경을 하라고 했는데 그때마다 거절했다.”면서 “평생 몸 바쳐 일해도 총경을 달지 못하는 분도 계시는 만큼 도저히 맡을 엄두가 나지 않았었다.”고 말했다. 1971년 3월 첫 방영해 1989년까지 모두 880회가 제작된 MBC TV드라마 ‘수사반장’은 방송 당시 순간 시청률 70%를 넘나들며 큰 인기를 누린 국내 최초의 실화 수사극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지방행정개편추진위 ‘갈팡질팡’

    지방행정개편추진위 ‘갈팡질팡’

    정부가 통폐합 대상이 된 일부 자치 지역은 별도의 주민여론 수렴 절차 없이도 중앙정부 주도로 통폐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확정했다. 또 통합 지자체의 경우 부의장을 추가하고 조직규모도 그대로 유지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행정효율을 살리려는 당초의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5일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위원장 강현욱)는 지난 13일 개최한 비공개 본회의에서 자치제도 변경을 위한 4개안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개편안에 따르면 자치구·군의 경우 통폐합 전 인구 또는 면적이 해당 특별·광역시 자치구·군의 평균 이하라면 통폐합 대상이 된다. 서울 중구, 부산 중·강서구, 대구 중구, 인천 동구 등 10개 지역이 이 기준에 따라 통합 대상이 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지난해 시·군 통폐합 대상으로 분류된 경북 안동·예천, 충남 홍성·예산, 전남 여수·순천·광양 지역은 주민 여론조사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국가 주도로 통폐합을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통합 지자체의 의회에는 부의장을 한 명 더 두고, 지자체 국·실 수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당초 통합 시·군에 인센티브로 주기로 했던 교부세 50억원을 자치구·군으로도 대상을 확대한다. 그러나 위원회의 이번 확정안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기본 취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원회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분분하다. 한 위원은 “일부 지역을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절차 없이 통폐합을 추진한다는 것은 지역주민의 자율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당초 통합기본 원칙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꼬집었다.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최대 명분이던 조직 축소를 통한 재정건전성 확보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통합 지자체 의회에 부의장을 한 명 더 두고 국·실을 이전과 똑같이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방안은 지방의회와 공무원 반발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는 것이다.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진행된 본회의도 구설에 올랐다. 위원회의 한 인사는 “13일 회의에는 전체 위원 27명 중 22명이 참석해 8명만 동의해 절반을 넘겨야 하는 원칙에 어긋나는데도 통과됐다.”며 “일부 지역의 반발이 극심할 텐데도 위원장이 무리하게 의결을 강행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6월 30일까지 종합계획을 확정해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확정안은 국회에서 최종 통과 여부가 결정된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사설] 지방행정·의회 개편 적극 검토할 때 아닌가

    지방행정과 지방의회 등 지방자치제도의 전면 개편이 추진되고 있다. 대통령 소속 지방행정체제 개편추진위원회는 최근 비공개회의를 통해 서울특별시와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 등 6개 광역시의 구(區)의회를 없애고, 6개 광역시에서는 구청장을 현재의 민선 대신 정부가 임명하는 관선으로 바꾸는 내용 등이 포함된 지방자치제도 개편안을 확정했다. 이 안은 2014년 지방선거부터 적용하도록 돼 있다. 이날 개편추진위는 일부 위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개편안을 전격 표결처리했다. 의결정족수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강현욱 위원장이 표결을 강행했다고 한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30년 만에 부활된 지방자치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편추진위가 표결처리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두면서도 서울과 광역시의 지방행정과 지방의회를 바꾸려고 한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반영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지방의회는 강제로 없어졌고,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다시 문을 열게 됐지만 지난 20여년간 대도시의 구 의회가 제 기능을 했다고 보는 주민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91년 지방자치제가 부활할 때 지방의회 의원들은 무보수였지만, 2006년부터는 지역에 따라 연간 3000만~4000만원을 의정비로 받고 있다. 의정비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지방의회가 지방자치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일을 제대로 한다면 의정비도 올려주고 보좌관들을 두는 것을 반대할 주민들이 많지 않겠지만 현실과 거리가 멀다. 광역시에서 구청장까지 관선으로 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구 의회를 없애는 것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 구 의원이 없더라도 광역의원인 시 의원이 주민들의 뜻을 반영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은 그동안 구 의원 공천권까지 행사하면서 풀뿌리정치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야 모두 지방행정·지방의회 개편에 정략적인 접근 대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 [주말 영화]

    ●벅시(EBS 토요일 밤 11시) 벤자민 시겔은 잔인한 킬러로 악명이 높아 ‘벅시’(벌레)라 불리고 있다. 그는 찰리 러키 루치아노 밑에서 메이어 랜스키와 함께 뉴욕의 마피아 조직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벅시는 캘리포니아 조직을 장악하기 위해 혼자 LA로 떠난다. 벅시는 그곳에서 어릴 적 친구인 영화배우 조지 래프트를, 단역을 전전하던 버지니아 힐을 만난다. 버지나아에게 첫눈에 반한 벅시는 그를 위해 비벌리힐스의 저택을 구입한다. 그러나 버지니아는 공교롭게도 벅시의 동료인 조이의 애인이었다. 한편 벅시는 미키의 도움으로 LA 조직을 인수한 뒤, LA 사교계의 유명 인사가 된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 최초의 호텔카지노인 플라밍고 건설 계획을 세우고, 뉴욕의 마피아 조직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애초에 100만 달러를 예상했던 플라밍고 호텔카지노장 건설비용이 600만 달러로 늘어나고 만다. 게다가 버지니아가 스위스은행에 200만 달러를 은닉해 놓은 것이 드러나자, 마피아들은 곧 벅시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는데…. ●독립영화관-윈터스 본(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아빠의 실종을 둘러싼 미스터리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차가운 세상에 맞선 소녀의 사투가 시작된다. 17살 소녀 리돌리는 미국 미주리 주(州) 오자크 산골 마을에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마약판매 혐의로 실형선고를 앞둔 리돌리의 아빠가 집을 담보로 보석금을 내고 종적을 감춰버린다. 경찰은 아빠를 찾지 못하면 집이 경매에 넘어가 쫓겨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엄마와 어린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리돌리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집을 지키기 위해 아빠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아빠의 행적을 쫓기 위해 마을을 찾아나선 리돌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고, 친척들마저 그녀를 외면한다. 한편 경매 기간은 점점 다가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사람들은 리돌리의 주위를 위협해온다. ●달마야 놀자(OBS 일요일 밤 11시 15분) 업소의 주도권을 놓고 일대 격전을 벌이던 재규 일당은 예상치 못한 기습으로, 더 이상 숨을 곳도 없이 보살펴 줄 조직의 힘도 끊긴 채 고립된다. 그리고 그들은 스님들이 수행중인 절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 동안의 모든 일상을 뒤집는 느닷없는 이 인연은 고요했던 산사를 흔들기 시작한다. 한편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재규 일당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스님들은 약속한 일주일의 시간이 야속하기만 한다. 보스의 연락만 기다리는 재규 일당 역시 심정이 편치만은 않다. 그렇게 절 생활의 무료함과 초조함을 달래기 위한 재규 일당의 일과는 사사건건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고, 이들을 내쫓고 평화를 찾기 위한 스님들의 눈물겨운 대책은 기상천외한 대결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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