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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책꽂이]

    아마추어 골퍼가 자주 하는 골프 실수(이범주·최웅선 지음, 그리고책 펴냄) 골프는 미세한 실수 하나로 샷이 달라진다. 연습을 해도 실력이 그대로인 이들을 위해 기본적인 그립부터 시선, 손목, 스윙, 어깨 힘, 어프로치, 벙커, 퍼터 등 시작과 끝의 모든 실수를 담았다. 사진을 충실히 쓰고 QR코드로 동영상도 제공한다. 256쪽. 1만 5000원. 해방일기 7:깨어진 해방의 약속(김기협 지음, 너머북스 펴냄) 해방 2주년을 앞둔 1947년 7월, 좌우합작·남북합작을 추진하던 중간파 여운형의 죽음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냉전의 시작이던 당시 국내 정치는 좌우 대립이 아니라 중간파와 좌우 극단파가 충돌했고 극좌·극우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인민의 염원을 눌렀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444쪽. 2만 3000원.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우치다 다쓰루·오카다 도시오 지음, 김경원 옮김, 메멘토 펴냄) 일본 사상가와 사회비평가의 대담집. 세대, 교육, 연애, 사제관계, 성과주의 등 암울한 사회상을 유쾌하게 풀어간다. 260쪽. 1만 3000원. 탈성장사회(세르주 라투슈 지음, 양상모 옮김, 오래된생각 펴냄) 수년 전부터 탈성장을 주장해 온 저자가 경제성장의 구조적 모순을 극복하는 대안 모델과 사상을 제시한다. ‘평화로운 탈성장의 소론’(2007) 이후 집필한 글의 종합판. 304쪽. 1만 5000원.
  • ‘노란 리본’이 피었습니다…먹먹하게도

    ‘노란 리본’이 피었습니다…먹먹하게도

    전북 무주에 걷기 좋은 강변길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는 길이었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조붓한 강변길들은 나무랄 데 없이 서정적이었다. 한데 정작 마음을 빼앗아 간 건 적상산의 피나물 군락지였다. 줄기를 자르면 피처럼 선홍빛 액체가 흐른다는 들풀. 해마다 이른 봄이면 피나물은 노란 꽃을 피운다. 키 낮은 들풀인 까닭에 주변의 커다란 수목들이 나뭇잎을 내기 전 서둘러 꽃을 피우고 자손을 퍼뜨려야 하기 때문이다. 적상산의 그늘진 북사면은 온통 노란빛 일색이다. 응달을 좋아하는 피나물은 이른 아침 꽃술을 접었다가 사위가 밝아지면 연다. 새벽녘, 푸른 기운 사이로 노란 꽃들이 무리 지어 선 모습, 노란 리본을 보는 듯 가슴이 먹먹해지는 풍경이다. ●적상산 자락에 피나물 군락지… 노란 꽃 줄기 자르면 붉은 액체가 예부터 무주는 전북에서도 외진 곳에 속했다. 무주와 진안, 장수 등 외진 지역들의 머리글자를 합쳐 ‘무진장’이라 부르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달라졌다. 잘 뚫린 도로 덕이다. 그런데도 여태 도시로부터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풍경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금강을 따라가는 강변길이 그렇다. 무주는 금강이 휘돌아 가는 고을이다. 강변을 따라 조붓한 길들이 많다. 예컨대 ‘벼룻길’이 그렇다. ‘벼루’는 ‘벼랑’을 이르는 현지 사투리다. 그러니 벼룻길은 강가의 가파른 비탈 사이로 난 길이라고 보면 틀림없겠다. 지금은 길로서의 기능을 잃은, 그러나 오래전엔 무수히 많은 이들이 분주히 오갔을 그 길들을 이어 붙인 게 ‘예향천리 금강변 마실길’이다. 부남면에서 서면마을까지 총 19㎞ 거리다. 그 가운데 잠두마을 옛길과 학교길을 걸었다. ●‘반딧불이의 마을’ 잠두 숲길 걷노라면… 산새소리·맑은 공기에 취해 잠두길은 잠두마을 강 건너에 뚫린 숲길이다. 잠두마을 앞 잠두1교에서 출발해 잠두2교 나그네가든까지 얼추 2㎞쯤 된다. 자박자박 걸어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잠두(蠶頭)는 산 위에서 바라본 지세가 누에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해마다 반딧불이 축제가 열릴 만큼 무주에서도 청정 지역으로 꼽힌다. 트레킹 들머리는 잠두1교다. 시멘트로 얼기설기 만든 옛 잠두교 뒤로 잠두1교가, 더 뒤로는 통영대전고속도로의 550m짜리 거대한 잠두교가 놓여 있다. 수십 년 세월이 포개진 풍광이다. 잠두1교를 떠받치는 교각 위엔 파랑새 두 마리가 나란히 앉아 있다. 필경 짝짓기를 앞두고 있는 게다. 두 파랑새 암수의 희롱하는 소리가 산골에 울릴 만큼 낭자하다. 잠두길은 금강을 끼고 갈선산(480m) 허리를 에둘러 간다. 금강의 원형이 살아 있는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은 20여년 전만 해도 무주와 충남 금산을 잇는 비포장 국도였다. 완행버스가 탈탈거리며 달릴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폴폴 날리던 그런 길 말이다. 이른 봄, 벚꽃이 화사했을 그 길엔 이제 녹음이 내려앉았다. 공기는 맑고 산새 소리는 청아하다. 시인 김소월이 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했는지 능히 짐작할 만한 풍경이다. ●강과 산에 막혀 ‘섬 아닌 섬’ 주민들이 바위 쪼아 만든 ‘학교길’ ‘학교길’은 말 그대로 ‘학교 가는 길’이다. 무주를 휘휘 돌아가던 금강은 무주 끝자락에서 급하게 휘돌아 가며 앞섬, 뒷섬마을을 만들었다. 강줄기와 산으로 막힌 두 마을은 배를 타지 않으면 무주읍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야말로 ‘섬 아닌 섬’이었던 셈이다. 특히 뒷섬마을의 경우 배를 두 번이나 타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 아이들 등굣길이라고 수월했을 리 없다. 해서 뒷섬마을 주민들은 아이들 학교 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벼룻길 중간의 질마바위를 정으로 쪼아 길을 냈다. 이게 ‘학교길’이다. 길은 1971년 5월 20일에 완성됐다. 질마바위 아래 표지석의 ‘1971년 5월 20일’이란 글자는 당시 주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새겨 놓은 것이다. 질마바위 아래 개울은 물총새의 사냥터다. 다리쉼할 겸 10여분 정도 바위 그늘에 앉아 있자니 퐁당퐁당 돌 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물총새가 사냥을 마친 뒤 물 위로 솟구치는 소리다. 대개의 경우 물총새 입엔 작은 물고기가 물려 있기 마련이다. 꼭 TV의 생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길은 무주읍 내도리 뒷섬마을에 놓인 후도교를 들머리 삼아 향로봉(420m)을 넘어간다. 향로봉에서 굽어보는 내도리 일대 풍경도 일품이다. 경북 예천 회룡포에 견줄 만한 물돌이동 풍경이 펼쳐진다.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적상산의 피나물 군락지였다. 이른 봄, 노란 피나물꽃들이 하늘대는 풍경이 빼어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으나 발걸음하기는 처음이다. 듣던 대로 적상산의 북사면은 온통 노란빛 일색이었다. 능선 중턱부터 눈길이 닿는 산 하단부까지 죄다 피나물꽃 일색이었다. 간간이 보랏빛 벌깨덩굴 등의 들꽃들도 눈에 띄었지만 노란꽃의 기세는 그야말로 산자락을 압도하고 있었다. 여느때라면 필경 그 자태에 취했을 터.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달랐다. 아이들을 속수무책으로 잃은 비통함에 국민들이 속죄와 애도의 뜻을 담아 선택한 빛깔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붉은(赤) 치마(裳)를 두른 듯하다는 적상산은 무주 사람들이 어머니의 품처럼 생각한다는 산 아니던가. 그 정경은 그러니까, 어머니의 주름진 치마를 부여잡은 채 재롱을 떨고 조르며 재잘대는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안국사 돌담에 앉아 산골 마을 바라보면… 내가 인간인지 부처인지 피나물 군락지는 안국사 뒤편 산자락 능선에 있다.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닿는다. 들머리인 안국사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적상산 사고’를 지키던 절집이다. 임진왜란 등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엔 승병들의 거처로 쓰였던 호국 사찰이기도 하다. 절집 아래엔 옛 적상산성도 복원돼 있다. 돌담 위에 앉아 골 깊은 무주의 산골마을들을 둘러보는 맛이 각별하다. 기왕 적상산에 올랐다면 안렴대와 적상산 전망대도 둘러보길 권한다. 둘 모두 빼어난 풍경 전망대다.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무주 일대의 산군들이 펼쳐내는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무주에 새 명소가 생겼다. 태권도를 세계적인 관광 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한 태권도원(www.tkdwon.kr)이다. 국기인 태권도를 상징할 변변한 공간 하나 없었던 터라 태권도원의 개원이 더욱 반갑다. 태권도원이 실제로 문을 연 건 지난 4월 말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따르느라 제대로 개원식도 치르지 못한 채 손님을 맞고 있다. 태권도원은 박물관과 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연면적은 231만 4000㎡(70만여평)에 이른다. 내부는 체험과 교육·수련, 깨달음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체험지구에는 태권도 역사와 관련 자료 등을 모아 놓은 태권도박물관, 자신의 체력과 태권도 실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체험관 등이 들어서 있다. 체험관에서는 전자 인식 태그를 이용해 자신의 발차기 실력이나 주먹의 파괴력 등을 측정해 볼 수 있다. 와이어에 매달려 날아차기에도 도전할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는 전망대에서는 덕유산과 적상산 일대 전망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 밖에 숙박을 겸한 패키지 프로그램 등 모두 45가지의 단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글 사진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나들목으로 나와 19번 국도를 타고 가옥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무금로를 따라 직진하면 잠두마을이다. 학교길은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으로 들어 무주1교를 건넌 뒤 내도 방면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된다. 앞섬다리 건너 내도에 들어선 후 직진해 후도교를 넘자마자 오른편으로 학교길이 시작된다. 태권도원은 충북 영동과 경계를 이루는 설천면 끝자락에 있다. 입장료는 4000원. 320-0114. →맛집 무주읍내 금강식당(322-0979)과 내도리로 건너가는 앞섬다리 부근의 앞섬마을(322-2799), 뒷섬마을의 큰손식당(322-3605) 등은 어죽으로 이름난 집들이다.
  • [후보자 인터뷰] “학원·명품학교 유치 영등포 新강남시대 열 것”

    [후보자 인터뷰] “학원·명품학교 유치 영등포 新강남시대 열 것”

    “영등포 신(新)강남 시대를 열어젖히겠습니다.” 2010년 선거에서 3000여표 차로 석패했다. 패인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여권 표가 분산된 상황을 언급할 것 같았는데 자신의 책임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양창호 새누리당 영등포구청장 후보는 “쉽지 않은 상황을 이겨내고 당당히 당선된 여당 후보도 있었다”며 다른 핑계를 대고 싶지 않다는 뜻을 드러냈다. 2012년 총선 도전도 고려했을 법했다. 하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이 선거 저 선거 쫓아다니는 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구청장으로서의 비전을 갖고 주민들과 약속했는데 다른 도전을 한다면 거짓된 비전을 보여준 게 아니겠어요. 대통령비서실에서 계속 근무하라는 만류도 있었지만 한 치 망설임 없이 사직하고 첫날 첫 번째로 등록했습니다.”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공약은 무엇일까. 양 후보는 최근 4년 동안 영등포 인구가 2만명가량 줄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초등학교 고학년생~고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중후반~50대 초중반 인구가 집중적으로 감소했단다. 교육 환경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그래서 문래동에 아이들이 안전하게 공부할 수 있는 학원특별지구를 설립하겠다고 강조했다. 대형학원도 유치하고 명품학교도 육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사교육을 부추기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강남이나 목동으로 떠나는 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4년 전 숙원 사업 위주로 공약을 짰다면 이번엔 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으로 현안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게 그의 설명. 그림 제목은 ‘영등포 비전 2020’으로, 영등포를 강남·서초·송파에 버금가게 만들어 신강남 시대를 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신교육시장도 이를 위한 비전 가운데 하나. 두 번째 비전으론 신성장도시를 꼽았다. 실행 가능한 도시계획은 신속하게 추진하고 어려운 곳은 구역을 풀어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자산 가치가 높아지고 자금 회전이 이뤄져 활력이 생길 것이라고 양 후보는 내다봤다. 비전만 있는 게 아니다. 그는 “1, 2차 3개년 계획을 꼼꼼하게 짜 안전도시, 능동적이고 문화가 흐르는 복지도시까지 포함한 5대 비전을 뒷받침하겠다”며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시의원으로, 청와대 행정관으로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너새니얼 호손 ‘주홍글씨’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이사야 1장 18절) 17세기 미국의 어둡고 준엄한 청교도 사회를 배경으로 죄지은 자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 낸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는 치밀한 묘사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 미국 문학의 걸작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치욕의 상징인 주홍글씨가 알레고리로 등장한다. 성경에서 비롯된 주홍빛은 인류의 죄와 피를 의미한다. 주홍글씨란 어떤 죄나 잘못을 저지르면 평생 동안 죄를 지은 사람에게 따라다니는 불명예를 뜻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주홍글씨를 단순히 죄의 상징으로 낙인찍는 데 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죄를 짓는 과정이 아닌 그 후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작품 속 주인공을 만나 보자. 뉴잉글랜드 보스턴. 젊고 아름다운 헤스터 프린은 2년 전 미국에 건너와 사생아 펄을 낳고 간통을 의미하는 A(Adultery)를 평생 가슴에 달고 다니는 벌을 받게 된다. 때마침 행방불명됐던 헤스터의 남편이 나타나 처형대 위에 서 있는 헤스터를 목격한다. 그는 로저 칠링워스라는 이름의 의사로 정체를 숨긴 채 마을에 정착한다. 헤스터는 청교도주의적인 사회에서 불의의 남녀 관계로 냉혹한 제재를 받지만 사랑하는 상대를 지키기 위해 모든 비난을 인내한다. 그의 딸도 세상과는 유리된 채 밝고 자유분방하게 살아간다. 그녀가 사랑한 상대는 목사 딤스데일이었다. 그는 젊고 온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자였다.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모두 포기하고 죄를 드러낼 의지가 약했던 그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로저 칠링워스는 그런 목사에게 접근해 마음을 할퀴고 상처를 줘 쇠약하게 만든다. 헤스터는 목사가 자책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알고 로저 칠링워스에게 복수를 그치라고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리고 목사를 찾아가 영국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살자고 설득한다. 그러나 목사는 장관 취임식 날 자신의 죄를 만천하에 고백한 뒤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작가 호손은 죄를 지은 후 벌어지는 죄의식과 벌, 나아가 구원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헤스터가 가슴에 늘 새기고 다니던 낙인은 원래 쇠붙이로 만든 뒤 불에 달궈 찍는 도장으로, 가축이나 목재에서 유래했고 노예가 도망치지 못하게 할 때나 형벌의 수단으로 썼던 것이다. 흔히 ‘낙인을 찍는다’는 말은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판정이나 평판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사용된다. 주목할 점은 낙인의 기준이 시대와 종교, 사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번의 실수와 잘못으로 온갖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하고 평생 동안 낙인찍힌 채 손가락질을 감수해야 하는 건 옳은 일일까?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죄도 많다. 남의 마음에 심한 고통을 주거나 잘못된 가치관으로 사회를 변형시키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특히 그들이 권력자이거나 승리자였다면 그러한 잘못은 더욱 치장되고 미화돼 버린다. 마녀재판이라고 하는 잘못된 관습도 결국 그 사회의 약자요, 유리된 자들을 사회질서 유지의 희생양으로 사용한 비극적인 사건이다. 헤스터가 살았던 17세기 뉴잉글랜드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새롭게 뿌리 내린 곳이었다. 그들은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미국 사회를 건설했다. 금욕, 절제, 규율을 기본 윤리로 삼은 청교도 사상은 미국 사회를 일군 힘이 되기도 했지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고 죄의식과 규율 속에 가두는 독선적인 경향도 강했다. 19세기를 살아가던 호손은 작품을 통해 17세기 청교도적 삶의 허구성을 비판했다. 헤스터는 주홍글씨를 단 채 사람들로부터 온갖 저주와 욕설을 들어야 했지만 타고난 위엄과 기품을 잃지 않는다. 그녀의 실수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윤리적 규범으로 규정지어진 벌을 받겠다는 자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자세 그리고 이제부터 제대로 삶을 살아야겠다는 결연하고 일관된 의지가 있었다. 그녀는 세상의 규범이 자신의 명예와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죄를 지은 뒤 보여준 가난한 사람에 대한 사랑과 병자들에 대한 헌신, 불평 없이 깨끗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주홍글씨의 A를 Able(유능함)로 인식하게 했다. 나아가 목사가 죽은 뒤에도 평생 주홍글씨를 달고 남을 위해 애쓰며 사려 깊고 헌신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이제 그녀는 Angel(천사)의 상징이 된다. 하늘나라의 기쁨을 전하고 가장 고상하고 순결한 여인으로 표적이 된 것이다. 한편 대조되는 인물이 있다. 목사는 성직자라는 위치에서 드러낼 수 없는 죄를 내면화해 자책하고 스스로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다. 그리고 또 한 명, 끝까지 복수의 화신이 돼 목사를 괴롭혔던 로저 칠링워스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도 이해심도 가지지 못했고 섬뜩한 복수의 칼날에 자신도 베어 버린 악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복수는 헤스터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 본문에서도 사랑과 증오는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에 자비를 구하자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방법이 왜곡됐으며 결국 비극으로 끝나 버린다. 이렇게 호손은 세 사람을 통해 종교적 신념에 근거한 양심의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사회적 낙인을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으로 승화시킨 헤스터, 마음속 낙인으로 괴로워하고 영혼의 구원을 외치며 죽은 목사, 죽기 직전 자신의 전 재산을 펄에게 물려주는 것으로 자신의 악행을 뉘우친 로저 칠링워스를 통해 도덕적 진실과 양심의 구원, 나아가 영혼의 자유를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주홍글씨’라는 크고 작은 치욕을 겪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똑같은 죄를 저지른 헤스터와 딤스데일. 한 명은 사회의 지탄과 멸시, 천대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은 죄의 폭로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자책했다.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것은 스스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세다. 양심과 도덕적 판단이 그 어떤 규범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았던 인간의 본성과 규범, 죄와 벌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좋겠다. ■너새니얼 호손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은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다. 장편 ‘주홍글씨’와 함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작품으로는 흔히 ‘큰 바위 얼굴’로 축약돼 알려진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과 다른 흰 산 이야기’가 있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호손은 작품에서 원죄와 속죄, 법과 양심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호손은 자신의 조상들이 17세기 퀘이커교도에게 태형을 가하거나 마녀재판에 참여한 일 등에 대해 죄의식을 느꼈다고 한다. 1825년 보든대학을 졸업한 호손은 24살에 소설 ‘판쇼’를 출판하지만 스스로 회수했다. 이후 보스턴 세관에서 일하다가 1842년 결혼한 뒤 콩코드에 살면서 집필한 단편들을 모아 ‘영 굿맨 브라운’이 담긴 단편집 ‘낡은 저택의 이끼’를 출간했다. 1850년 ‘주홍글씨’를 출간한 뒤 소설가로 명성을 얻었다. 세밀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주홍글씨’는 미국의 상징주의 소설에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팁:‘알레고리’는 어떤 한 주제 A를 말하기 위해 다른 주제 B를 사용해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면서 주제를 나타내는 수사법이다. 은유법이 하나의 단어나 문장 같은 작은 단위에서 구사되는 반면 알레고리는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총체적인 은유법으로 관철돼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 “원희룡,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절” 野 강력비판

    “원희룡,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절” 野 강력비판

    ”원희룡,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절” 野 강력비판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은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도지사 후보가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 절을 올린 것을 규탄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은 18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4주년’ 성명을 통해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큰 절 올린 새누리당 원희룡 제주도지사 후보는 5·18 민주영령과 제주도민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은 원희룡 후보가 지난 2007년 군사 쿠테타로 헌정을 파괴하고 수많은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역사적 범죄의 주범이면서도 이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거부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찾아가 큰 절을 올렸다고 비판했다. 이는 광주의 아픔을 바라보는 국민적 정서에 역행하는 원 후보의 역사 인식을 보여줬던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또 원희룡 후보가 4.3위원회 폐지 법안에 서명하고 국회 임기 12년 동안 단 한차례도 4.3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4.3희생자 재심사 발언을 번복하는 과정에서 도민사회와 동떨어진 4·3에 대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제주도당은 “양민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4·3위령제는 참석하지 않으면서 광주학살의 주범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는 세배까지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라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4주기를 맞은 오늘 제주도민과 국민에 큰 상처를 안겼던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길섶에서] 봉정암/서동철 논설위원

    설악산 봉정암은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 꼽힌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봉정암은 해발 1244m의 첩첩산중에 자리 잡았다. 제법 이력이 붙은 등산객도 인제 백담사에서 쉬지 않고 4~5시간은 올라야 한다. 그럼에도 봉정암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줄지어 기도 드리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봉정암이 어느 절보다 ‘기도발’이 잘 받는다고 할머니들은 입을 모으지만, 영험을 봤다면 아마도 그 8할은 죽을 힘을 다해 산에 오른 정성의 결과일 것이다. 봉정암 오층석탑의 보물 지정이 예고됐다. 부처의 뇌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알려진 고려시대 석탑이다. 봉정암 대웅전도 다른 적멸보궁처럼 별도의 불상을 두지 않고, 진신사리를 모신 탑을 향해 창문을 냈다. 탑이 곧 부처이기 때문이다. 봉정사 탑은 기단을 별도로 만든 다른 탑과는 달리 커다란 바위를 기단으로 삼은 독창성이 돋보인다. 보물 지정으로 더 많은 사람이 찾겠지만, 걱정도 없지 않다. 지난 부처님 오신 날에도 봉정암을 찾은 사람이 무려 4000명에 이른다지 않는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문학 번역하는 외국인 국문학 박사 1호 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한국문학 번역하는 외국인 국문학 박사 1호 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을 탐내어)/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병 속에 물과 함께 달을 길었네)/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절에 가서 비로소 깨달았으리)/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병을 기울면 달도 또한 없는 것을).’ 고려시대 이규보가 지은 ‘영정중월’(詠井中月)이라는 선시다. 케빈 오록(75) 교수와 만남은 이규보 시에서 시작했다. 그는 외국인 출신 국문학 박사 1호로 기록된다. 24세 때, 그러니까 1964년 한국에 신부(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로 선교차 왔다가 한국시가 맘에 들어 1982년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쓴 논문이 ‘1920년대 한국 시가 끼친 영향’이었고 석사논문은 ‘1920년대 단편소설과 자연주의’였다. 어떻게 해서 국문학 박사학위까지 취득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싶었는데 학위가 없으면 안 된다고 해서 그랬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학위는 강의할 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학위 때 쓴 일정한 논문주제와 가르치는 학문은 다른 것이 아니냐고 했다. 만남의 장소는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자택이었다. 그는 2012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를 맡아 우리 문학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만났을 때 연락처를 알아내느라 애를 먹었다고 하자 “한국사람들은 참, 기자가 알려달라고 하면 (번역원에서)얼른 알려주면 될 것을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등 연휴가 끝난 지난 7일 오전이어서 그는 “연휴 때 술을 많이 마셨겠다”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꾼다. 다시 이규보 시로 돌아간다. 그동안 접한 한국 시 가운데 이규보의 시처럼 상상력과 규모, 그리고 욕심을 초월한 인생관은 놀라울 만큼 훌륭하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두보나 소동파를 능가하는 좋은 시라고 설명한다. 아마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충분히 ‘노벨상감’이라고 했다. 고려시대의 시는 대부분 그러하다고 말한다. 시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린 정지상, 혜심 스님의 작품도 기가 막히다고 했다. 그는 조선시대 시조번역을 1000수 이상을 했고 정철의 가사와 윤선도의 연시조 ‘어부사시사’ 등도 번역했다. 가사번역은 600수가 넘는다. 신라시대의 시조집은 2006년, 그리고 현대시는 10년 전에 영역판 책으로 펴냈다. 올가을에는 조선시대 시선집을 한 권 더 낸다. 그는 “아마 한 사람의 손으로 신라에서 오늘날 시까지 관통하며 번역해낸 것은 최초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권수로 따지면 그동안 낸 책(시와 소설)이 25권 분량이고 시와 시조는 모두 2000여수에 이른다. 대표적 현대소설로는 최인훈의 ‘광장’, 이문열의 ‘일그러진 영웅’ 등도 번역했다. 최근에는 ‘나의 한국:갓 없이 40년’(My Korea: Forty Years Without a Horsehair Hat)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에 대해 “갓은 선비의 상징이다. 외국인이 드물었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코 큰 놈이 국문학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름대로 한국에서 선비로 인정받고 싶었다”며 웃는다. 어떻게 그런 방대한 작업을 할 수 있었느냐고 하자 “자식과 부인에 대해 신경 쓸 일 없으니 시간이 많다”며 다시 한번 웃는다. 답이 명쾌하고 한국문학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는 김삿갓의 한시 60수도 번역했다. “송송백백(松松柏柏), 나무와 바위 사이를 걷고 있는 김삿갓이 보인다. 찰나에 느낀 세상의 신비가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고 풀이한다. 김삿갓은 장난기가 가득한 천재였다. 그를 촘촘히 들여다보고 영문으로 번역해냈으니 이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잠시 그의 명함을 들여다봤다. 좀 특별한 면이 있다. ‘경희대 명예교수 오록(吳鹿)’이라고 적혀 있다. 조병화 시인이 지어준 이름이다. “오나라의 사슴이라는 뜻이죠. 또 오(吳)에는 오랑캐라는 뜻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오랑캐의 사슴이라고 할 수 있죠. 중국에 가서 명함을 건넸더니 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아일랜드 출신이고 옛날에 바이킹의 지배를 받았으니 바이킹의 후예, 오랑캐의 후예나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조병화 시인이 그런 뜻에서 지어주었고 저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아마 사슴은 예쁘니까 붙여줬겠죠(웃음).” 조병화의 ‘소라의 초상화’를 외운다. ‘당신네들이나/영악하게 잘살으시지요/나야 나대로히/나의 생리에 맞는 의상을 찾았답니다.’ 박목월·박두진 시인과는 대학 때 강의를 들으며 만났다. 그는 미당 서정주와도 인연이 깊다. 다시 시 한 수를 외운다. ‘하늘이 하도나/고요하시니/란초는 궁금해 꽃피는 것이다.’ 미당의 초기 시에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보들레르와 비유된다고 말했다. 또한 미당의 작품 중에는 예이츠도 있다고 했다. 그는 “미당에게 외국의 어떤 시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었느냐고 잠깐 물었더니 ‘전혀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미당은 충분히 노벨상을 받을 만한 좋은 시들을 썼다”면서 “안타깝게도 일제 때 친일했던 부분, 전두환 정권 당시 약간의 실수를 하고 말았다”고 했다. 미당과는 아일랜드에서 만난 추억도 있다고 했다. “더블린 중국집에서 미당과 저희 할아버지 등 셋이서 만났습니다. 미당의 시집을 더블린에서 출간했는데 기념차 방문했지요. 당시 할아버지는 90세, 미당은 80세였습니다.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면서 통역 없이 3시간 동안 얘기했습니다. 할아버지나 미당이나 서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주 오래 얘기했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예이츠나 사무엘 베케트 등이 있다. 한국의 시와 소설을 접하면서 ‘노벨상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노벨상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우습고 문인은 그런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나 문단에서 밀어야 합니다. 아일랜드에는 현재 시인 10여명, 소설가 5, 6명이 주목받고 있지만 어떤 상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 시단에 대해서는 난해한 시가 늘어나는데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깨달음을 담은 시는 줄어들고 있다고 평했다. 얼른 시란 무엇인지 물었다. “시는 가슴속에 있는 감각과 감정의 덩어리입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할 때 항상 남게 되지요. 그러나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말씀의 나라입니다. 말이 적을수록 시가 좋습니다. 결국 시 작품은 상징입니다. 한국에는 좋은 선시들이 많습니다. 10년 전에 읽었던 시도 지금에 읽으면 달라집니다. 모럴 중심으로 시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한국 문학에는 유교라는 큰 짐이 깔려 있다고 했다. 그래서 문학을 망칠 뻔했고 서거정과 김시습, 서산대사 등이 그 짐을 다소 회복했다고 말한다. 황진이는 어떠한지를 물었더니 “황진이 시는 12수가 있는데 대부분 사랑에 대한 시다. 세상에서 사랑은 중요하지만 작품에서 전부는 아니다. 서거정, 김시습의 시는 황진이보다 앞서간다”면서 그러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에 좋은 시는 좋지 않느냐고 말한다. 시조 중에는 ‘어부사시사’가 으뜸이며 연시조로 아주 멋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이어 우리 문단의 풍토에 대한 쓴소리가 나온다. “한국 문학은 작품에 대한 가치보다 사업이 돼 버렸어요. 문학은 서로 나눠야 해요. 영월에 가서 김삿갓 시 못 사요. 안동에 가서도 못 사요. 전철 타면 시가 여럿 있는데 시조나 한시가 없어요. 높은 양반들 시집 선물 안 합니다. 아주 쉬운 것들을 안 합니다. 한국사람들이 외국인에게 시 선물을 안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를 소개하려면 그런 것부터 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문학 전집이 나오면 달려나가 번역하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중간에 에이전트가 있고 출판사에서 허락받아야 번역할 수 있어 복잡하다고 했다. 작가가 쓴 초고를 보고 눈물이 나와야 번역을 잘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미리 받아들이는 출판사가 없다는 것이다. 아울러 요즘에 미당이나 박목월 같은 큰 시인이 없다고 했다. 우리 문단의 미래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문학 속에 유교정신이 지배적이었어요. 그러나 요새 김중혁 같은 젊은 작가들에 의해 많이 달라졌어요. ‘유리방패’는 유교를 희롱합니다. 재치 있습니다. 옛날 무거운 문장보다 가볍고 좋아 번역하기도 쉬워졌습니다. 김동리나 염상섭 같은 작품보다 훨씬 쉬어졌지요. 한국문장이 영어와 같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영어로 작품을 쓰려면 룰이 많아요, 그러나 한국 랭귀지는 작가 마음대로 룰을 정합니다. 그래서 한국문학의 미래는 매우 밝습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올해로 꼭 50년이다.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한 열정,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하는 간절한 생각만큼은 아직도 왕성하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오록은 아일랜드 더블린 인근에서 태어났다. 더블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1964년 한국에 신부(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로 선교차 왔다가 한국 시가 마음에 들어 1982년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조선시대 시조번역을 1000수 이상 했다. 정철의 가사와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등의 연시조도 번역했다. 신라시대 시조집도 펴냈다. 그동안 번역해낸 한국 시와 소설이 책으로 25권 분량이고 신라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시와 시조 번역은 모두 2000여수에 이른다. 2012년부터 한국문학번역원 이사를 맡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로 재직한다.
  • 김호월 교수 사직 “더 이상 교수직 신분 아냐”

    김호월 교수 사직 “더 이상 교수직 신분 아냐”

    김호월 교수 사직 “더 이상 교수직 신분 아냐” 김호월 홍익대 교수가 세월호 유족 비하 발언 논란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호월 교수는 13일 학교 측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호월씨는 13일 오후 3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 대학원장님께 사의를 표명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그는 “더 이상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지 말기 바란다”라며 “오늘부터 더 이상 저는 학교의 교수직 신분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라고 말했다. 또 “저와 저희 가족에 대해 협박도 하지 말라”며 “제 글을 왜곡·편집해서 올리지 말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가족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 마음과 신변이 정리되는 대로 제가 다니는 절에 가서 실종자 분들이 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겠다”고 밝혔다. 김호월 교수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고 썼다. 이 글이 논란을 빚자 김호월 교수는 지난 12일 “내가 쓴 글로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 분들께서 상처를 받았다면 정말 죄송하다”며 “유가족에게 한 말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네티즌들은 “김호월 교수 결국 사직 했네”, “김호월 교수 사직 진심으로 사과하는 듯”, “김호월 교수 사직 한 순간 실수로 사직하게 됐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엔저에도 日수출 왜 힘 못쓸까

    2012년 12월 아베 신조 일본 정권이 출범한 이후 올 3월까지 엔화가치는 달러화에 비해 한 달 평균 14.9% 떨어졌다. 그런데 이 기간 일본 기업의 수출 물량은 월평균 1.6% 감소했다. 과거 두 차례의 엔화 절하(환율 상승) 때 수출이 크게 늘었던 것과 대조된다. 1990년대(1995년 5월~1997년 4월, 5.9% 절하)에는 수출이 3.8%, 2000년대(2005년 2월~2007년 7월, 6.0% 절하)에는 8.1% 각각 늘었다. 이번에는 엔화 절하 폭이 과거의 두 배가 훌쩍 넘는데도 왜 수출은 힘을 못쓰는 것일까. 곽준희 한국은행 국제경제부 조사역은 그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메이드 인 재팬’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주력 수출품인 기계·기기류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과거에 비해 약하다는 설명이다. 둘째, 엔저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 부족으로 일본 기업들이 수출 가격을 선뜻 내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엔화 절하기에 일본의 전체 수출물가는 1.8% 하락에 그쳤다. 셋째, 엔화가치가 많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달러당 평균 95.7엔으로 115~120엔대였던 과거 절하기 때와 비교하면 절대 수준 자체가 크게 낮지 않다는 것이다. 곽 조사역은 13일 내놓은 ‘엔저의 수출 파급효과 제약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하며 “일본 기업들이 과거 엔화 절상(환율 하락)기 때 크게 손해 봤던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이번 절하기에 수출 단가를 내리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엔화 약세에도 우리나라 수출이 ‘선전’하고 있는 것도 여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세계경제 회복세와 일본 정부의 엔저 정책이 지속되면 앞으로 일본 기업들이 가격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사전 대응전략을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미현 기자 hyun@seoul.co.kr
  • 김호월 교수 사직서 제출 “더 이상 가족 협박하지 말라…진심으로 사죄”

    김호월 교수 사직서 제출 “더 이상 가족 협박하지 말라…진심으로 사죄”

    김호월 교수 사직서 제출 “더 이상 가족 협박하지 말라…진심으로 사죄” 김호월 홍익대 교수가 세월호 유족 비하 발언 논란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호월 교수는 13일 학교 측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호월씨는 13일 오후 3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 대학원장님께 사의를 표명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그는 “더 이상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지 말기 바란다”라며 “오늘부터 더 이상 저는 학교의 교수직 신분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라고 말했다. 또 “저와 저희 가족에 대해 협박도 하지 말라”며 “제 글을 왜곡·편집해서 올리지 말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가족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 마음과 신변이 정리되는 대로 제가 다니는 절에 가서 실종자 분들이 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겠다”고 밝혔다. 김호월 교수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고 썼다. 이 글이 논란을 빚자 김호월 교수는 지난 12일 “내가 쓴 글로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 분들께서 상처를 받았다면 정말 죄송하다”며 “유가족에게 한 말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 In&Out] 리움보다 인기 있는 홍대 앞 ‘마술 같은 미술관’

    [문화 In&Out] 리움보다 인기 있는 홍대 앞 ‘마술 같은 미술관’

    2012년 8월, 파차라키디아파 마히돌 태국 공주가 비밀리에 서울 홍대 앞 미술관을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공주를 알아본 태국 단체 관광객들이 그를 둘러싸고 연신 절을 올리는 해프닝이 빚어졌던 것이다. 태국에선 왕족을 신성한 존재로 보고 어디서나 경배하는 전통이 있다. 푸미폰 국왕의 첫째 손녀딸이자 현직 검사로 왕위계승 서열 3위인 공주는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미술관을 떠나야 했다. 그런데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 대목이 있다. 왜 태국인들은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민속박물관을 제쳐두고 서울 변두리의 조그마한 미술관을 찾았을까. 정답은 세계 최대 여행커뮤니티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가 내놓았다. 트립어드바이저가 지난 2월 말 서울 소재 180개 미술관·박물관의 순위를 매긴 결과 이름도 생소한 서울 홍대 앞 트릭아이미술관이 1위에 꼽혔다. 국립중앙박물관, 삼성리움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 등은 그 뒤를 이었다. 1980~1990년대 최고 흥행 영화는 ‘로버트태권브이’나 ‘우뢰매’였으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던 것과 비슷하다.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이곳을 둘러본 해외 관광객은 32만여명. 올해에는 매주 1만명, 한 달 4만명가량이 찾았다. 태국(5만 3500여명), 홍콩(4만 500여명), 중국(3만 9500여명), 타이완(9700여명), 싱가포르(5000여명) 등의 순이다. 사실 이곳은 미술관이라기보다는 ‘마술관’에 가깝다. 인간의 뇌를 적절히 자극해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3차원 트릭아트 기술을 이용, 원근법을 극대화한 입체적인 그림들을 선보인다. 대형 벽화 앞에서 유치원생이 엄마보다 큰 거인으로 변하는가 하면 가만히 서 있는데 천장에 매달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선 서양의 고전 명화를 패러디한 이곳 그림의 수준이 너무 낮다고 불평할 수도 있다. 다만 전형적인 상업시설임에도 ‘사진 찍지 마시오’, ‘만지지 마시오’란 문구가 없어 쌍방향 소통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한류 미술관’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근 상권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중국어와 태국어 간판까지 등장했다. 최근 싱가포르관광청장이 이곳을 찾았고, 서울시 산하의 서울마케팅이 해외에 이곳을 홍보하고 있다. 다음달에는 싱가포르에 해외 1호점이 문을 연다. 연간 100만명이 찾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과 비교할 순 없겠으나 창조적 문화콘텐츠라는 점에선 높이 살 만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홍익대학교 김호월 교수, 세월호 유족에 “쌩난리” 막말 논란 끝 사직서 제출

    홍익대학교 김호월 교수, 세월호 유족에 “쌩난리” 막말 논란 끝 사직서 제출

    ‘홍익대학교 김호월 교수’ ‘김호월 세월호’ 홍익대학교 김호월 교수가 세월호 유족 비하 발언 논란 끝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김호월 교수는 13일 학교 측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호월씨는 13일 오후 3시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늘 아침 대학원장님께 사의를 표명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전했다. 그는 “더 이상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지 말기 바란다”라며 “오늘부터 더 이상 저는 학교의 교수직 신분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라고 말했다. 또 “저와 저희 가족에 대해 협박도 하지 말라”며 “제 글을 왜곡·편집해서 올리지 말길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유가족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제 마음과 신변이 정리되는 대로 제가 다니는 절에 가서 실종자 분들이 빨리 가족의 품에 돌아오기를 간절히 빌겠다”고 밝혔다. 김호월씨는 지난 9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이 세월호 주인인가? 왜 유가족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하나,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친다. 이래서 미개인이란 욕을 먹는 거다”라고 썼다. 이 글이 논란을 빚자 김호월씨는 지난 12일 “내가 쓴 글로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 분들께서 상처를 받았다면 정말 죄송하다”며 “유가족에게 한 말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엘리베이터 탄 비로자나불/서동철 논설위원

    강원 철원의 도피안사는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다. 철원평야에 둘러싸인 도피안사가 중요한 것은 큰법당인 대적광전의 철조비로자나좌불상 때문이다. 국보 제63호인 비로자나불은 신라 경문왕 5년(865) 조성됐다. 철원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불상으로는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일원에서 비교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렵다. 2012년 2월 시작된 중창불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오는 25일 비로자나불의 이운(移運)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대적광전을 새로 짓고, 옛 대적광전은 서쪽으로 옮겨 세우면서 극락보전의 편액을 달았다. 이제 마당 한쪽의 임시법당으로 옮겨뒀던 비로자나불을 다시 제자리로 모시는 것이다. 절은 몇 년 사이에 제법 규모를 갖추게 됐다. 며칠 전 찾은 도피안사에서 뜻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새로 지은 대적광전의 비로자나불을 모실 자리에 현대적 기술을 동원한 강철 구조물이 들어선 것이다. 비로자나불이 앉는 바닥 구조물은 유사시 버튼을 누르면 법당 지하로 내려가고, 지붕도 덮어 씌워 외부의 상당한 충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비로자나불이 탄 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는 비상용 엘리베이터라고 할 수 있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옛 철원 일대는 6·25전쟁의 격전지였다. 대적광전이 불타고 누군가 땅에 묻은 비로자나불이 다시 햇볕을 본 것이 전쟁이 끝나고 한참이나 지난 1959년이다. 이후에도 도피안사 일대는 오랫동안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고 군 검문소에 주민등록증을 맡겨야만 출입할 수 있는 민간인 통제지역이었다. 비로자나불 전용의 자동식 지하 수장고를 만든 것은 또 다른 전쟁에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뜻일 것이다. 폐허만 남은 노동당사 건물이 지척인 만큼 분단을 소재로 하는 또 하나의 관광자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강철 구조물로 만든 엘리베이터를 탄 비로자나불이란 도무지 자연스럽지가 않다. 극락왕생을 비는 극락보전의 존재도 그렇다. ‘유점사 본말사지’에는 도피안사의 창건 설화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담겼는데, 안양사에 봉안하려던 비로자나불이 사라져 찾았더니 도피안사 자리에 좌정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안양(安養)이란 극락의 다른 말, 도피안(到彼岸)이란 해탈의 경지를 가리킨다. 불교 신앙이 기복(祈福)으로만 흐르지 않고 참다운 가치를 갈구하는 단계로 발전했음을 상징한다. 비로자나불의 명문(銘文)에서도 철원평야에 살던 보통사람들의 의식이 깨어가는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극락보전을 새로 세운 것은 도피안사의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읽지 못한 때문은 아닌지….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전주영화제 개막작 ‘신촌좀비만화’ 두 중견 감독의 도전

    전주영화제 개막작 ‘신촌좀비만화’ 두 중견 감독의 도전

    10일 폐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신촌좀비만화’(15일 개봉)는 한국의 대표적 중견 감독 3명이 뜻 모아 만든 옴니버스 3D 영화다. ‘만추’의 김태용·‘베를린’의 류승완·드라마 ‘연애시대’의 한지승 감독이 그들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지원을 받아 3D 영화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실험정신에서 출발한 프로젝트. 섬세한 감성의 휴먼·멜로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김태용·한지승 감독의 도전이 특히 눈길을 끈다. 김 감독의 단편 ‘피크닉’은 엄마를 힘들게 하는 자폐아 동생을 소풍 길에 절에다 버리고 오고 싶어하는 여덟 살 꼬마의 이야기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3D 효과가 돋보인다. 한지승 감독의 ‘너를 봤어’는 인간과 좀비가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배경으로 했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치료약을 먹으며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가는 좀비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좀비 시와(남규리)와 그들이 일하는 공장의 작업반장 여울(박기웅)의 사랑이야기를 담았다. 뮤지컬, 코미디, 호러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됐다.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4일 전주에서 김태용(45)·한지승(47) 감독을 나란히 만났다. →감성적인 그간의 작품들 성향과 3D 기술은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김:최근작 ‘만추’가 멜로라서 그렇지 나는 호러물인 ‘여고괴담’으로 데뷔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3D 기술이 영화를 통해 어떻게 미학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실험 결과는 낙관적이라고 자평한다. 영화에서 공간을 설득시키고 실재감이 느껴지게 하려고 도입하는 장치가 3D인 셈이다. 공간을 영화적으로 해석하기에는 3D가 확실히 재미있는 것 같다. -한:3D의 장르적 한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려 보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3D가 감성적인 면과 닿는다면 효과와 가능성은 어떨지 알아보는 과정이었다. ‘너를 봤어’의 경우 감성이 멜로에 집중되기는 했지만, 형식적으로 뮤지컬과 결합했다는 데에도 의미가 있었다. 김 감독의 ‘피크닉’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했다. 3D를 빌려 감성적인 느낌이 입체화됐더라. 그런 표현이 좋아 보였다. →한 감독은 2012년에도 뱀파이어 로맨스를 소재로 한 3D 영화 ‘카오스’를 찍었는데, 전작과의 차별점은. -한:‘고스트맘마’ ‘하루’ ‘싸움’ 등 주로 일상성에 기반한 극영화를 찍다 보니 뱀파이어, 좀비 등 색다른 소재에 관심이 생겼다. 처음 3D를 찍을 때는 동선이나 장소의 층위 등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번에는 먼지나 빛의 반사 등 좀 더 세밀한 부분을 입체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김 감독의 ‘피크닉’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어린 주인공이 보는 만화책 주인공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하고 동생이 벽에 그린 낙서가 새가 되어 화면에 날아드는 등 세 작품 중 3D 효과가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데. -김:처음 프로젝트를 제안받고 누군가의 정서적 측면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숲에서 겪는 이상한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떠올렸고 주인공을 꼬마로 설정했다.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만들어진 판타지와 의식 세계를 3D로 본다면 흥미롭겠다고 생각했다. 여덟 살 꼬마가 숲에서 느끼는 심리 상태나 자폐아가 가지는 의식 세계는 3D로 표현될 때 영화적으로 이해하기 더 쉬울 것 같았다. →‘너를 봤어’는 3D로 표현된 인물과 공간, 뮤지컬과의 결합 방식이 아주 독특하다. -한:영화의 소재를 좀비로 선택한 것은 다분히 3D의 특장점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좀비의 특성이 말보다 행동이 먼저이기 때문에 공격하고 공격당하는 동적인 느낌을 3D로 차용해 보려 했다. 특히 3D를 통해 공간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인물도 보통의 클로즈업보다 더 가깝게 입체감을 살려 밀도를 높였다. 시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장점까지 살려야 하는 뮤지컬의 특성에도 3D가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이번 작업은 영화의 감성적인 면을 3D에 접목하는 실험이었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짚어본다면. -김:아직 영화를 2D로 보는 것이 더 익숙한 관객에게 3D 효과가 오히려 감상에 방해요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영화가 현실과 더 동떨어져 보이는데다 극중 인물과의 심리 동화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극중 인물들의 감성과 3D 효과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낯선 세계를 설득시켜 수용하게 하는 것이 감독의 의무다. 과학기술에 감성의 깊이를 예술적으로 흡수할 만한 충분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3D 영화의 궁극적 목표는 관객들이 의도된 입체성을 눈치 못 챌 정도로 현실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3D가 영화적 표현을 확장하고 미학적 가치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결국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야기, 곧 콘텐츠다. 풍부하고 정확한 서사가 3D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영상이어야만 한다. 글 사진 전주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세월호 현장, 공짜밥에 구호품 빼돌리기까지…‘무개념 얌체족’들 빈축

    세월호 현장, 공짜밥에 구호품 빼돌리기까지…‘무개념 얌체족’들 빈축

    실종자·사망자 가족들의 침통한 분위기로 무겁게 가라앉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인 척하며 구호물품을 빼돌리거나 돈을 챙겨가는 ‘얌체족’들이 기승을 부려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20일째인 5일 연합뉴스와 현장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사고와 상관없는 일부 시민들이 진도까지 와서 공짜 식사를 하고 구호물품을 가져가는 일이 심심치않게 벌어지고 있다. 5일에는 관광객으로 보이는 40대 아버지와 10대 딸이 진도 팽목항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미리 준비한 빈 가방에 각종 음료수와 빵 20여개를 챙겨 떠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실내체육관에 비치된 침구류와 수건, 미용물품 등을 그냥 집어가는 사람들도 상당수라는 것이 현장의 이야기다. 지난달 말에는 팽목항 공용화장실에서 대형 롤 화장지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까지 생겼다. 또 “서울에서 일부 노숙자들이 내려와 구호물품을 ‘쇼핑’ 해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전남 진도경찰서는 지난달 27일 세월호 실종자 가족인 것 처럼 행세하며 구호물품을 빼돌린 혐의로 이모(3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지난달 21일부터 3차례에 걸쳐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 팽목항 등에서 실종자 가족이라고 속여 구호물품을 챙기다 경찰에 적발됐다. 단순히 호기심으로 참사 현장을 찾아와 실종자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자원봉사자인 것 처럼 가족들에게 접근해 이것저것을 묻고 홀연히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른바 ‘인증샷’을 찍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슬픔으로 가득찬 팽목항 등대 앞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기념촬영을 한 ‘철부지 커플’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절망과 허탈함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하지 않은 이들의 행동을 지켜본 자원봉사자들의 안타까움도 커지고 있다. 한 자원봉사자는 “참담한 현장에서까지 얌체짓을 하는 이들을 보면 참담한 심정”이라며 “어려운 때일수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아쉽다”고 말했다. 네티즌들 역시 “저런 사람들은 전부 공개해서 망신을 줘야한다”, “실종자 가족들은 애가 타는데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기념촬영이라니…. 내가 다 부끄럽다”, “남이 아프건 말건 잇속만 챙기는 현실이 슬프다” 등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가족, 세월호 특검 촉구 서명운동 “애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유가족, 세월호 특검 촉구 서명운동 “애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유가족, 세월호 특검 촉구 서명운동 “애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어린이날인 5일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가 설치된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는 이른 아침부터 부모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어린이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대다수 어린이는 고인들의 영정 앞에서 헌화·묵념하고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에게 이처럼 단문의 편지를 썼다. 한 70대 할머니는 “못된 어른들 때문에 희생된 너희에게 할머니가 사죄한다. 용서하고 쉬거라!”라고 쓰고서 울먹였다. 절기상 ‘여름이 온다’는 입하(立夏)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대변하는 듯 이날은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세차게 몰아쳐 쓸쓸함을 더했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9시 쯤 합동분향소 출구 양쪽에 테이블을 설치하고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희생자·실종자 조기 수습과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특검과 청문회를 열자는 내용이다. 서명 시작 10분 만에 조문객 50여명이 서명하는 등 대다수 조문객이 서명에 동참했다. 단원고 희생 학생 부모 등 11명은 분향소 정문 앞에서 흰색 마스크를 쓰고 사흘째 침묵시위를 계속했다. 이들은 ‘내 아이 보고 싶어 피눈물납니다’, ‘애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제발 마지막 한 명까지 찾아주세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한편, 지난 23일부터 이날 오전 10시까지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18만명을 넘어섰고 추모문자도 9만6천여건에 이른다. 분향소에는 현재 전날보다 학생 10명이 늘어난 학생 185명과 교사 4명, 일반 탑승객 24명 등 213명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네티즌들은 “세월호 유가족 특검 촉구 서명운동 힘내세요”, “세월호 유가족 특검 촉구 서명운동 힘을 모읍시다”, “세월호 유가족 특검 촉구 서명운동 건강도 챙기세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TV 영화]

    ■동승(씨네프 화요일 오후 2시) 천진난만한 아홉 살짜리 아기스님 도념, 한창 외모에 신경 쓰고 있는 총각스님 정심은 큰스님과 한솥밥을 먹으며 산 아래 고요한 산사에 살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이 피고 지고, 빨간 단풍이 물들고, 함박눈이 내렸지만 어린 도념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절에 나무를 해 주는 아랫마을 초부 아저씨는 분명히 도라지꽃이 피면 엄마가 오신다고 했지만 소식은 없다. “이번에도 저 나무만큼 자라면 오신다고 하겠지”라면서, 엄마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절에 들르는 예쁜 아줌마가 오늘도 또 왔다. 저 아줌마가 우리 엄마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도념은 생각한다. 그 예쁜 아줌마는 큰스님한테 도념을 입양하겠다고 하지만, 큰스님은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막아선다. 그럼에도 도념의 마음은 자꾸만 설레기만 한다. ■라푼젤(OBS 월요일 낮 12시 5분) 높다란 탑 안에서, 청소하고 밥해 먹고 그림을 그리며 18년을 살아온 끈기 만점의 소녀 라푼젤. 어느 날 탑에 침입한 왕국 최고의 대도, 플린 라이더를 한 방에 때려잡고, 대도를 협박해 꿈에 그리던 집 밖 여행을 단행한다. 어릴 때부터 세상은 험난한 곳이라고 익힌 라푼젤은 라이더를 쫓는 왕실 경비마(馬) 맥시머스의 추격, 라이더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스태빙턴 형제의 위협, 라푼젤의 가짜 엄마 고델의 무서운 음모 등 흥미진진한 사건들과 맞닥뜨린다. 그래도 이 스릴 넘치는 세상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데….
  • 北 2인자 없애기… 최룡해 가고 황병서 뜨고

    北 2인자 없애기… 최룡해 가고 황병서 뜨고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한 것으로 2일 공식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장성택 숙청 이후 김 제1위원장의 최측근 실세로 부상했던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돌연 해임되면서 권력 지형이 달라진 것이다. 이는 최고지도자의 필요에 따라 ‘2인자’는 만들어지지만 그 지위를 용납하지 않는 유일 영도체제의 특성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북 체제를 떠받드는 권력층의 잦은 교체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는 징후라는 진단도 나온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5·1절 경축 노동자연회 보도를 통해 황 제1부부장을 총정치국장으로 소개했다. 이는 지난달 26일 김 제1위원장이 주재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2012년 4월 총정치국장에 오른 지 2년 만에 낙마했다. ‘당 중의 당’으로 불리는 조직지도부에서 잔뼈가 굵은 황병서는 장성택 숙청을 주도한 ‘삼지연 회합’의 핵심 멤버로 꼽힌다. 1990년대부터 조직지도부에서 군을 담당해 온 그는 장성택 숙청 이후 부부장에서 제1부부장으로, 지난달 15일 대장 임명이 확인된 지 10일 만인 같은 달 26일 차수로 고속 승진하며 권력자로 떠올랐다. 그가 지난해 김 제1위원장의 공식 수행한 횟수는 최룡해(153회)의 절반 정도인 59회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4월까지 34회로 가장 많아 그 위상이 달라졌다는 평가다. 특히 황병서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총정치국장을 겸직한 것으로 파악돼 전성기의 최룡해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당의 군부 통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군의 이권 사업을 당으로 귀속시켜 김정은의 ‘비자금 곳간’을 확대하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건강 악화설이 제기된 최룡해의 숙청 여부는 엇갈린다. 이승열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룡해와 대립 관계인 황병서가 총정치국장이 된 건 최룡해의 정치적 실각을 의미하며 재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최룡해가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했고 해임 보도가 없어 숙청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과거 조명록이 사망한 후 1년 5개월간 총정치국장을 공석으로 남겨뒀던 전례를 감안하면 최룡해의 건강 악화를 교체 이유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 시대는 집권 2년간 핵심 권력층의 변화가 매우 잦다”며 “체제 불안 상황에서는 권력 내부의 온건 기조는 사라지고 강경 노선만 득세해 남북관계도 경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점프 영상 화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스키점프 영상 화제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아찔한 스키점프 영상을 영국 일간 가디언이 29일(현지시각) 소개했다. 절벽에서 스키를 탈 때, 살아남으려면 이들처럼 해야 한다는 것일까. 이들이 스키를 타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아 누리꾼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영상을 보면 프랑스 알프스 산자락, 깎아진 듯 등골이 서늘한 절벽에서 스키를 신은 남성들이 몸을 던진다. 곧이어 이들은 낙하산을 펼치며 베이스점프를 즐기는데, 산자락뿐만 아니라 아찔한 높이의 댐 위에서도 뛰어 내리는 등 아슬아슬한 스릴을 만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영상=EpicTV 영상팀 seoultv@seoul.co.kr
  • ‘고속 승진’ 황병서 총정치국장 임명된 듯

    ‘고속 승진’ 황병서 총정치국장 임명된 듯

    최근 차수로 승진한 황병서 북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인민군 총정치국장 임명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3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정숙평양방직공장 노동자 기숙자를 시찰했다는 이날 노동신문 보도와 관련, “(시찰에) 동행한 고위급 인사들은 황병서와 박영식 중장, 마원춘 노동당 부부장뿐인데 김정은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5·1절 경축 노동자) 연회에 참석해 근로자들을 축하해 주라’고 지시했으므로 그것은 황병서에게 한 것”이라며 “북한이 총정치국장의 교체를 간접 공개한 것”이라고 서울신문에 설명했다. 이에 따라 최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최룡해의 교체 여부는 5·1절 노동자 연회 보도에서 확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최룡해·황병서 간 권력투쟁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승렬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자유조선방송 주최 세미나에서 “최근 황병서가 권력의 핵심으로 등장한 것은 최룡해에 대한 조직지도부의 지도와 검열, 통제가 강화됐음을 의미한다”며 “조직지도부가 주도하는 ‘반(反)최룡해연합’이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던 김 제1위원장의 고모 김경희가 북한 기록영화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중앙TV는 지난 29일 김 제1위원장의 체육 관련 활동 기록영화인 ‘온 나라에 체육열풍을 일으켜주시여’를 방영하며 함께 수행한 김경희의 모습도 내보냈다. 앞서 조선중앙TV는 지난 15일 김경희가 편집·삭제된 기록영화를 방영해 숙청 가능성 등이 제기된 바 있다. 안석 기자 c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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