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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가탄신일 특집] 미암사 쌀바위·와불, 부여 지역 소문난 기도처…전국서 발길 이어져

    [석가탄신일 특집] 미암사 쌀바위·와불, 부여 지역 소문난 기도처…전국서 발길 이어져

    “이곳은 부처님 마음이 쌓이는 곳입니다”충남 부여에서 보령 방향으로 16㎞를 달리면 계향산 중턱에 미암사가 있다. 전국의 많은 사람이 각자의 간절한 소원을 품고 찾는 곳이다. 발길은 미암사의 쌀바위(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371호)와 세계 최대의 와불 앞에 이른다.미암사 석만청 회주스님은 기도처로 소문난 쌀바위에 대해 “부처님 마음이 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 와서 기도할 만큼 간절한 소원을 빌고 있다면 그 누가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애절하게 절을 하고 공을 드리는 그 순간엔 누구나 부처님 마음과 똑같을 겁니다.” 스님의 말처럼 쌀바위에 얽힌 전설을 듣고 좌불상을 닮은 쌀바위를 보면 절로 합장을 하며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쌀바위 전설’은 이렇다. 백제 때 한 할머니가 아들을 낳지 못해 마음 졸이는 며느리가 안타까워 대를 이을 손자를 얻고자 쌀바위를 찾아가 정성껏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식음을 잊고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던 중 관세음보살이 현몽해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쌀 세 톨을 꺼내 바위에 심으라 했다. 거기서 하루 세끼 먹을 쌀이 나오면 끼니를 지을 때 이 쌀을 가져다 지으라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꿈에서 깨어보니 바위에서 쌀이 정말 나왔고, 손자도 얻어 행복하게 살았다. 소원이 이뤄지자 할머니에게 욕심이 생겼다. 그는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부지깽이로 쌀이 난 구멍을 후벼 팠는데, 그곳에서 쌀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핏물이 흘러나와 주변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후 사람들은 기도가 이뤄진 것과 그 이상의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는 의미로 이 바위를 쌀바위라고 불렀고, 이 이야기를 들은 백제 무왕이 쌀바위 옆에 암자를 짓고 미암사(米岩寺)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신비로운 이야기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쌀바위에서는 실제로 좋은 기운이 나온다. 바위에서 원적외전이 방사되는데, 이는 한국건자재시험연구원의 시험성적서에서도 확인된다. 석만청 스님은 이를 “신앙적으로 해석하면 양기와 음기”라고 덧붙였다. 모습과 색만으로도 주변 바위들과 확연히 다른 것을 알아볼 수 있다. 쌀바위 바로 옆에 있는 미암사 와불도 부여를 대표하는 명소다. 크기가 길이 30m, 높이 7m에 이른다. 손가락 길이만도 3.5m다. 뿐만 아니다. 와불의 몸 안에 예불을 드리는 법당이 있어서 규모와 신비로움에서 방문객들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 와불은 백제불교를 계승하고 국운융창과 국민화합을 기원하는 뜻으로 3년에 거쳐 조성됐다. 석만청 스님은 베트남전쟁 희생자들을 위한 현지 위령제를 지내려고 베트남에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거의 모든 절마다 모셔져 있던 와불을 보고 돌아와 미암사 와불을 구상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의 자세다. 발바닥에 새겨진 1만6000여 자의 옴자를 손으로 문지르면 중생 번뇌가 소멸되고 복을 얻는다고 한다. 미암사에는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도 많이 찾아온다. 신앙을 가지지 않았지만 기도하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들이다. 석만청 스님은 “삶이 어렵고, 부당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와서 눈물을 흘려가며 공을 드린다. 이곳에서 기도가 이뤄진 분들이 많다”면서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 있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의지처가 되는 것이 신앙을 추구하는 우리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태기 객원기자
  • [석가탄신일 특집] 남해 보리암 능원 주지스님 “모든 이의 간절함 끌어안는 관음보살 품”

    [석가탄신일 특집] 남해 보리암 능원 주지스님 “모든 이의 간절함 끌어안는 관음보살 품”

    어려운 경제 상황,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는 일…. 세상살이가 팍팍할수록 유명한 기도처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관세음보살은 그들의 기도를 듣는 보살이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어머니의 이미지로 많이 표현된다. 들어주고 위로해주며 기댈 수 있는 품을 내어준다는 뜻일 테다. 경남 남해군 금산의 남쪽 봉우리 정상, 해발고도 681m 절벽 위에 국내 3대 관음성지로 불리는 보리암이 있다. 이곳에서 기도하면 한 번은 소원을 성취한다고 알려진 기도처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관음보살을 친견한 뒤 이 산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산도 보광산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이성계가 이 산에서 백일기도 후 조선을 개국한 뒤 그 영험에 감사하는 의미로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었다는 뜻이다. 후에 현종은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인접한 곳까지 차를 몰고 들어갈 수 있지만, 귀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높은 길을 오르다 보면 다른 세상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의 모습과 그에 맞닿아 펼쳐진 남해 바다를 보노라면 마음이 먼저 편안해진다. 산의 정상에 가까운 곳인데도 산죽이 속세의 번뇌를 차단하듯 신비롭게 보리암을 둘러싸고 있다. 저마다의 소원을 가지고 보리암에 오른 이들을 맞이해 온 능원 주지스님은 “종교와도 상관없이 오는 분들 누구나 마음의 평안을 얻고, 그 마음을 삶의 현장에 가지고 나가셔서 오래 유지하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능원 스님은 “보리암의 스님들도 관세음보살님처럼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보리암은 기도하기 위해 찾아오는 신자들 외에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 왔다. 매년 5000만원 넘는 장학금을 내놓고, 각종 시설과 어려운 이웃에게 직접 나눔을 실천한다. 관음보살의 마음을 나누는 보리암을 찾아 능원 스님에게 대화를 청했다. 보리암의 영험함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기도의 참의미와 현대사회를 향한 조언으로까지 이어졌다.→보리암은 환경부터 참 신비로운 느낌입니다. 원효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태조 이성계가 기도한 곳으로 유명한데, 또 다른 이야기가 더 있습니까.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금산 곳곳에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특히 보리암 법당과 산신각이 있는 축에서 주로 기도를 하셨을 거라고 많은 사람이 말합니다. 이 금산 중에서도 보리암이 있는 여기가 중심이고 핵심이라고 하거든요. 또 보리암에서 30㎞ 정도 바다로 나가면 ‘세존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다녀가셨다고 하는 섬입니다. 부처님이 금산에 오셨다가 여기서 돌을 떼서 배를 만들어 세존도로 지나갔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영험한 기도처로 여겨졌다는 뜻일 것 같습니다. -사실 금산이 좁은 산인데도 바위 밑이나 굴에 보면 옛날 스님들이 수행하시던 터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토굴도 곳곳에 많은데 지금은 헐었어도 흔적은 남아있습니다. 수행이라고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그런 바위 밑이나 굴에 한 번 들어가 앉아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금산은 그런 종교적인 체험, 기도체험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겠죠. 사람들이 얼마나 다녀갑니까.-주말 이틀이면 1만 명 넘게 다녀갑니다. 평일에도 하루 2000명 남짓 오셔서 기도를 하시고요. 이곳이 일출 명소이기도 해서 1월 1일엔 7000명 정도가 옵니다. 공간이 넓지 않아서 해를 볼 수 있도록 서 봐야 3000명이면 꽉 차 보이는데, 해돋이 인파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이지요. 새해가 시작되면 개인이나 국가가 잘되길 바라는 염원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습니까. 그 마음들이 모이는 겁니다. 이 깊은 산속에 빼곡하게 선 사람들이 떠오르는 해를 함께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거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난해 말 종교 인구 통계 조사에서 불교 인구가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왔는데 이곳에선 그런 걸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작년에 비해서 더 많이 오고 있어요. →기도하는 분들을 많이 지켜보셨을 텐데, 소원을 비는 이들에게 좋은 기도방법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지켜보니,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의 말씀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보리암에 와서 기도하면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더라’ 였습니다. 그다음엔 ‘한 가지는 꼭 들어주시는데, 나를 위한 기도를 하면 안 되고 남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더라’라고 말이 바뀌었어요. 요즘에는 ‘보리암 관세음보살님은 누구나 차별 없이, 종교와도 관계없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라고요. 종종 이런 얘기를 합니다. ‘기도를 할 때 내 기도가 이뤄지는 건,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기도와 정성이 오늘 내 기도를 이뤄줍니다. 오늘 내 기도도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열심히 정성을 다하면 그 기도가 다른 사람의 소원을 이뤄줄 겁니다. →보리암 관음보살님은 종교와 관계없이 소원을 들어주신다는 말이 있다고 하셨는데,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이 오신다면 어떤 자세를 갖는 것이 좋겠습니까. -소원을 털어놓고 남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은 종교를 초월해 중요한 마음 같아요. 종교가 다른 분들은 오셔도 법당엔 안 들어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럴 때 ‘부처님은 존경할 만한 어른이다’라고 말씀드려요. 저도 교회나 성당에 갈 때가 있는데, 예배당에 가면 십자가 앞에 나가서 합장으로 예를 갖춥니다. 제 나름대로 존경의 표시를 하는 것이지요. 법당처럼 예배당도 성전이고 예수님 또한 존경할 만한 어른이기 때문입니다. →차별 없는 보살핌, 남을 위한 기도 등의 말씀은 갈등이 심한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교훈인 것 같습니다.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떤 하나의 방법만을 전하기엔 어려운 내용입니다만, 신라 말기 충담사가 지은 향가 ‘안민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입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평화롭고 안정되게 이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지요. 우리 또한 각자 다 역할과 위치에 충실하면 됩니다. 대통령답게, 국회의원답게, 장관답게 말이지요. 갈등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행실로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당하면서 생겨납니다. →보리암이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는 것도 그 ‘역할’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군요. -전국적으로 유명한 기도처라고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지역민들과 함께하지 않으면 사찰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긴 어렵습니다. 마땅한 역할을 해야지요. 그런데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일을 하다 보니, 베푸는 일에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많이 느낍니다. 누군가에게는 그 도움이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예요. 세심하게 배려하며 그들과 함께 호흡하려고 합니다.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도 뭔가 절박한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직접 스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절에 있는 시간이라면, 사람을 피하거나 안 만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도가 만나자고 하면 꼭 만나고, 모르는 분들이라도 신분만 정확히 밝혀주시면 만납니다. 만나서 주로 이야기를 듣지요. 차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들어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에게 힘이 되나 봅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어머니에 많이 비유를 합니다. 보리암은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도량인데, 그렇다면 이곳 스님들도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출가를 하신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출가의 계기나 출가 이전의 얘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물어봐도 답을 안 해요. 자꾸 과장이 되더라고요. 자세한 말씀은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저도 나름대로 절박한 것이 있었지요. 그때는 니체와 사르트르 책들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보리암을 찾는 분들, 그리고 각자의 삶에서 간절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직접 도와드릴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 오시는 분들이 편하게 기도하고 참배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겠지요. 보리암에 오시는 것만으로도, 금산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평안을 얻으신다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법문을 듣는 게 아니라고 해도 이곳에서 바다를 보며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고 하십니다. 부디 그 기도하는 마음, 수행자의 마음을 삶의 현장에 돌아가서도 잘 유지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분이 지친 마음에 평안을 얻고, 우리 서로가 상대와의 ‘다름’을 인정하면 좋겠습니다. 동시에 서로 같은 부분, 즉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요. 서로가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갈등을 넘어 화합할 수 있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jtk3355@seoul.co.kr
  • 안민석 “안철수, 사실 알린 것도 고발하나?…진실 가려보자”

    안민석 “안철수, 사실 알린 것도 고발하나?…진실 가려보자”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가짜뉴스 폭탄과 근거 없는 네거티브 양산을 강력 규탄한다”며 안 의원 등 6명을 검찰에 고발한 것과 관련해 “진실을 가려보자”고 맞받아쳤다.안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저를 고발했다네요. 웰컴입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을 파헤친 교문위 국정감사 속기록을 분석한 결과, 야당 의원 15명이 총 1517회에 걸쳐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을 언급했다. 야당 1인당 평균 100회 언급했다”며 “그러나 같은 교문위 소속 안철수 후보는 단 한번도 거론하지 않은 사실을 공개했더니 안철수 후보 측이 절 허위사실 유포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을 알린 것도 고발한다면 후보 검증 뭐하러 하느냐”고 되물었다. 앞서 안철수 후보 측 선거대책위원회 이건태 법률지원단장은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근거 없는 네거티브와 가짜뉴스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무차별 투하하는 세력이 판을 치고 있다”며 안 의원 등 6명을 검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핫뉴스] 국민의당 “가짜뉴스 유포” 안민석 등 6명 고발 이 단장은 안 의원이 페이스북에 안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이 적시된 글을 올린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와 언론 인터뷰에서 허위사실을 말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 고찰, 화엄의 목소리…구례 화엄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천년 고찰, 화엄의 목소리…구례 화엄사

    “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 이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6.25 전쟁 당시 전투경찰대 제 2연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1920~1958)은 상부의 명령에 불복한다. 이미 정읍의 백제 시대 고찰 내장사(內藏寺)도 작전상의 이유로 소각되었던 터라 금산사, 쌍계사, 백운사, 선운사와 더불어 전남 대표사찰이었던 구례 화엄사도 머지않아 한 줌 잿더미로 내려앉을 운명이었다. 차일혁 총경은 묘안을 낸다. 화엄사에 도착한 그는 부하들로 하여금 각황전과 대웅전의 문짝을 뜯어와 불 지르게 한다. 상부의 명령을 이행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을 만든다. 그는 결국 징계 처분을 받는다. 화엄사는 그렇게 전화(戰火)를 피한다. 시인 고은은 그를 위해 공적비를 화엄사 부도전 앞에 새겨두었다. 봄경치에 있어서는 지리산 노고단 한 자락에 앉은 천년고찰, 화엄사 주변도 당연 이름 내밀만하다. 매화, 벚꽃, 진달래, 산수유, 개나리 등등을 스친 슴슴한 봄바람은 석탄일을 앞두고 절집 찾은 방문객들의 코를 향긋하게 적셔준다. 사월 초파일, 구례 화엄사다. 화엄사의 기초는 백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화엄사를 창건한 후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중수하였다. 신라 헌강왕(875) 때에 이르러서는 화엄사는 대총림으로 승격된다. 고려 태조 26년(943)에는 왕명으로 고려 최초로 화엄사를 중수, 보수하였고 조선 세종 6년(1426년)에는 선종대본산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1592~1598) 시절 구례 석주관에서 승병 300여 명이 화엄사에서 출정하여 이 앙갚음으로 왜장 가등청정은 화엄사를 전소시킨다. 이후 인조(1630~1636)때 절을 다시 짓게 되었고, 숙종(1699~1703)때에는 목조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각황전이 건립된다. 근세에 이르러서는 도광대종사의 전면적인 대중수작업으로 현재의 웅장한 가람배치를 하게 된다. 화엄사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나라 화엄종의 총본산이자 화엄사상의 상징적인 사찰이어서 불교사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다. 현재 화엄사 일원은 명승 및 사적 제 7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며, 특히 각황전(국보 제 67호)은 우리나라 불교 목조 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늘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각황전 앞에는 석등(국보 제12호),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 있어서 천년 고찰의 위의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각황전 앞의 홍매화는 봄맞이 화엄사 방문객들에게 두고 두고 회자되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외에 대웅전, 영전, 원통전, 명부전, 나한전, 영산전 등 천년 사찰의 품격을 화엄사는 그대로 지니고 있어, 지리산까지 다가온 방문객들의 힘든 발걸음을 넉넉히 안아 준다. <화엄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지리산 노고단을 방문한다면 필수 방문지다. 2. 누구와 함께? -도시의 삶에 지친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로 539/ 구례 시외버스정류장에는 6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4. 감탄하는 점은? -운고루에서 내려다보는 지리산의 깊디 깊은 골짜기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걸맞을 만한 사찰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각황전, 대웅전, 운고루, 보제루, 4사장 삼층석탑, 석등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산채비빔밥 ‘만남가든’(782-9172), 소내장탕 ‘목화식당’(782-9171), 다슬기수제비 ‘부부식당’(782-9113), 족탕 ‘동아식당’(782-5474), ‘수구레국밥’(783-2228) /지역번호 (061)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hwaeomsa.com/index2.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운조루, 섬진강 어류 생태관, 수락폭포 10. 총평 및 당부사항 -화엄사는 들어서는 입구부터 큰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지리산 노고단 쪽으로 가는 길이라면 일부러라도 화엄사에는 들릴만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아들에게 주는 충고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아들에게 주는 충고

    아들에게 주는 충고 (Advice To A Son) -어니스트 헤밍웨이 절대 백인 남자를 믿지 말고, 유대인을 죽이지 말고, 계약서에 서명하지 말고, 좌석을 빌리지 마라. 군대에 입대하지 말고 아내를 여럿 만들지 말고 잡지에 기고하지 말고 두드러기를 긁지 마라. 변기 위에는 꼭 종이를 깔고, 전쟁 따위는 믿지 말고, 네 자신을 청결하고 단정하게 유지하고, 창녀와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 협박범에게 절대 돈을 주지 말고, 법률소송에 휘말리지 말고 출판사는 절대 믿지 마라. 그랬다간 지푸라기 위에서 자는 신세가 될 거야. 친구들은 언젠가 널 떠날 테고 네 친구들은 모두 죽을 테니 깨끗하고 건전하게 살다가 하늘나라에서 친구들과 만나렴. Never trust a white man, Never kill a Jew, Never sign a contract, Never rent a pew. Don‘t enlist in armies; Nor marry many wives; Never write for magazines; Never scratch your hives. Always put paper on the seat, Don’t believe in wars, Keep yourself both clean and neat, Never marry whores. Never pay a blackmailer, Never go to law, Never trust a publisher, Or you‘ll sleep on straw. All your friends will leave you All your friends will die So lead a clean and wholesome life And join them in the sky. *헤밍웨이(1899~1961)가 시를 썼다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무기여 잘 있거라’ ‘노인과 바다’ 같은 쟁쟁한 소설을 쓴 작가가 뭐가 아쉬워 시를? 몇 년 전에 한국어로 번역돼 출간된 그의 파리 시절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지만 시는 처음이었다. 내 강의를 듣는 팬이 내게 선물한 헤밍웨이의 시집을 열며 나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 많은 장편소설과 단편들, 에세이와 신문기사들을 쏟아낸 창고에서 뭐 더 나올 게 있을라고. 그의 소설처럼 그냥 술술 읽히는 스물여편의 시 중 여기 소개하는 ‘아들에게 주는 충고’가 제일 재미있었다. 감히 위대한 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심심할 때 읽을 만한 괜찮은 시다. ‘두드러기를 긁지 마라. 변기 위에는 꼭 종이를 깔고’ 하하. 헤밍웨이도 결벽증 환자였나? 결벽증 환자 중에도 그처럼 터프가이가 있나. 살다 보면 두드러기나 변기 같은 사소한 일상에서 누군가의 충고가 절실하게 필요할 때가 있다. 아무렴. 두드러기를 짤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며 가려움으로 며칠씩 잠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터. 전부 20행의 시에 5번의 마침표. 4행이 끝날 때마다 마침표를 찍었다. ‘Never’가 앞에 여러 번 반복돼 리듬을 주고, 행의 끝에 엇갈려 각운도 베풀었다. 4번째 행 “Never rent a pew.”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좌석을 빌리지 마라”고 직역했는데, 어느 번역을 보니 “전당포에서 돈을 빌리지 말고”라고 돼 있다. 아내를 여러 차례 갈아치우지 마라,고 충고하나 헤밍웨이 자신은 무려 네 번이나 결혼했다. 이런…그의 아들들에게 아버지의 충고가 제대로 먹혔을 것 같지 않다. 이 시를 쓴 해가 1931년이라는데, 그 뒤로도 그는 이혼을 두 번 했다. 헤밍웨이의 여성 편력을 살펴보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혼하자마자 결혼했다. 1927년과 1940년은 이혼한 해에 바로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1945년에 마르타와 이혼하고 그 이듬해 메리라는 여자와 결혼해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러니까 헤밍웨이는 아내 없이는 (한 해도) 못 살았던 남자이다. 짐작컨대 여자들은 그에게 연인이자 뮤즈이자 아내이자 어머니가 아니었나. 헤밍웨이는 훌륭한 아버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들이 셋이었는데, 그의 아들 중 하나가 “그는 훌륭한 아버지였다. 아이들 곁에 없었던 것만 빼고”라고 말한 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집을 자주 비운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헤밍웨이에 비하면 우리 아버진 열 배나 훌륭한 분이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위인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우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 곁에 있어 주었다. 아들에게 아버지가 전해 주고픈 삶의 지혜들을 열거하는 듯하나 뒤로 갈수록 헤밍웨이가 자기 자신에게 주는 충고, 스스로 확인시키는 다짐들로 내겐 읽혔다. ‘법률소송에 휘말리지 말고 출판사는 절대 믿지 마라.’ 여기까지 읽고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출판사만 믿다가는 빈털터리가 돼 지푸라기 위에서 자는 신세가 될 거야. 아-그도, 헤밍웨이처럼 자기 관리를 잘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거물작가도 출판사와 알력이 있었구나. 하긴. 출판사 사장은 아들에게 ‘절대 작가를 믿지 말라’는 충고를 할지도 모르겠다. 선인세 계약금을 받고 원고를 주지 않는 작가들이 꽤 있다고 나도 들었다. 나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남의 돈을 떼먹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우긴 적은 있지만, 계약하고 해약한 경우는 있지만, 약속한 원고를 (아무 말 없이) 넘기지 않는 일은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내가 얼마나 나름 성실한 인간인지 알아주시길. 마지막에 ‘네 친구들은 모두 죽을 테니’가 아프게 다가왔다. 언젠가 내 곁에 친구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오겠지. 언제인지 모를 그날까지 맘 편하게 살아야지. 깨끗한 옷 입고, 맛있는 것 먹고 벗들과 속닥거리다 하늘나라로 가야겠다.
  • 최규선, 은신처에서 수천만원 현금과 차명폰…자수하겠다더니?

    최규선, 은신처에서 수천만원 현금과 차명폰…자수하겠다더니?

    구속 집행 정지 중 달아났다 보름 만에 체포된 최규선(57)씨가 도피 초반 경상도와 전라도의 유명 사찰을 전전하며 일주일가량 은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은신했던 아파트에서는 수천만원의 현금과 도피 조력자가 사용해온 것으로 추정되는 차명폰이 발견됐다. 25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 강남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던 최씨는 구속 집행 정지기간 만료 시점을 불과 1시간 40분 앞둔 지난 6일 오후 2시20분 무렵 박모(34·여)씨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유유히 병원을 빠져났다. 범행 첫날에는 315㎞ 떨어진 경남 하동시의 한 절에서 하룻밤을 보냈으며, 이튿날에는 전남 순천시의 또다른 사찰로 거처를 옮겨 여섯밤을 지냈다. 이후 순천시의 한 아파트에 숨어 일주일간 체류하다가 지난 20일 오후 9시 검찰에 붙잡혔다. 검거 당시 아파트에서 현금 3000여만원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도피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함께 붙잡힌 박씨는 30대 중반이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씨가 대표를 맡은 법인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검찰이 두 사람의 소재를 조기에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찌감치 최씨의 수행비서 이모씨의 조력 행위를 포착해서다. 이씨의 통화내역 분석 과정에서 최씨를 돕고 있는 숨은 조력자가 박씨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박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차명폰으로 이씨와 여러차례 통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와 같은 최씨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법원은 지난 23일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범인도피 혐의로 박씨를 구속했다. 최씨는 회삿돈 195억원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월 2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지난 1월 4일 항소심 재판부에서 질병 치료 등을 이유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내림에 따라 풀려나 있었다. 최씨는 DJ 정부 시절 권력형 비리 사건인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이다. 2주간의 도피 행각 끝에 꼬리가 밟힌 최씨는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검찰 조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메디컬 인사이드] 게으르면 고혈압을 이길 수 없다

    [메디컬 인사이드] 게으르면 고혈압을 이길 수 없다

    음식은 싱겁게 음주는 한잔만약물치료·생활요법 병행해야중년을 지나 고령으로 가는 길에는 복병이 많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고혈압’입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고혈압으로 병원에서 진료받은 인원이 752만명이고, 환자 수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습니다. 고혈압은 심장과 뇌, 신장, 대동맥에 합병증을 일으켜 목숨을 앗아 가거나 삶의 질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고혈압 자체로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문제는 고혈압의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면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르면 절대 고혈압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늘이 준 운명에 따라 살겠다고요? 5~10년 뒤 후회하지 않으려면 전문가의 조언을 새기길 바랍니다. 고혈압으로 진단받았다면 혈압약 복용은 기본입니다. 일반적으로 19세 이상 성인이 2번 이상 혈압을 측정해 수축기 혈압이 140㎜Hg 이상이거나 확장기 혈압이 90㎜Hg 이상일 때 고혈압으로 진단하고, 상태가 계속 악화하면 약을 처방합니다. ‘완치’의 개념이 없는 만성질환이기 때문에 환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이 있지만, 한편으로 약은 합병증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기도 합니다. 고혈압 전단계(수축기 혈압 120~139㎜Hg, 확장기 혈압 80~89㎜Hg)부터 혈압을 잡으려고 해도 고된 삶이 기다립니다. 전문의의 조언에 따라 진행하는 ‘생활요법’에 들어가야 합니다.●고혈압 ‘주적’은 소금… 밥상서 아웃! 첫 번째는 ‘소금’입니다. 박성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소금 섭취량은 하루 6g 미만으로 서서히 줄이면서 싱거운 맛에 적응해야 한다”며 “될 수 있으면 소금에 절인 음식은 먹지 말고 식탁에 간장과 소금을 올리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했습니다. 소금의 주성분인 ‘나트륨’은 물을 갖고 있으려 하기 때문에 혈액의 부피를 늘리고 혈관 압력을 높입니다. 스낵 1봉지(1.5g), 라면 1개(2.5g)만 먹어도 이미 소금 4g을 섭취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국과 김치, 생선구이만 먹어도 3g의 소금이 우리 몸으로 들어옵니다. 따라서 소금을 줄이려면 굳은 결심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박 교수는 “레몬과 식초 등의 신맛을 이용하거나 카레가루 등 향신료에서 맛을 얻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묽은 간장을 사용하고, 소금에 절인 채소는 손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고춧가루나 후추의 매운맛은 혈압을 높이진 않지만, 소금을 곁들이지 않고 먹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음식에 너무 많이 넣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소금에 절여서 만든 김치, 깍두기 등은 4~5쪽 정도로 절제하고 장아찌, 젓갈 등 염장식품은 피합니다. 소금을 하루 6g 이하로 계속 제한하면 수축기 혈압을 5㎜Hg 줄일 수 있습니다. 과일과 채소 위주의 저지방식을 꾸준히 먹으면 수축기 혈압이 무려 8~14㎜Hg 감소한다고 하니 실천하기 어렵더라도 꼭 도전하시길 바랍니다.●금주 2~4㎜Hg·스트레스 6㎜Hg 낮춰 절주도 필수입니다. 이광제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과도한 음주는 혈압을 올리고 혈압약에 대한 저항성을 높인다”고 경고했습니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하루에 허용되는 양은 소주와 맥주 모두 겨우 2잔입니다. 심지어 여성과 저체중 남성은 1잔으로 제한해야 합니다.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하는 분이 많겠지만 꾸준히 금주하면 보상으로 수축기 혈압 2~4㎜Hg을 줄이는 효과를 얻습니다.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이는 담배도 끊어야 합니다. 특히 ‘니코틴’은 혈관을 수축시켜 혈압을 높입니다. 스트레스를 줄여도 6㎜Hg의 혈압을 낮출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직장에서 늘 마음을 이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유산소 운동 도움… 근력은 서서히 운동은 빠르게 걷기, 조깅, 자전거 타기, 수영, 체조, 줄넘기, 에어로빅이 좋습니다. 이 교수는 “근력 운동은 일시적으로 혈압을 상승시킬 위험이 있어 가볍게 시작해 2주 간격으로 서서히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운동 강도는 최대심박수의 50~60% 수준입니다. 최대심박수는 220에서 나이를 빼면 나옵니다. 약간 땀이 날 정도로 주 5~7회, 최소 30분 이상 운동하면 수축기 혈압이 4~9㎜Hg 줄어듭니다. 꾸준히 노력해 체중을 10㎏ 줄이면 수축기 혈압은 무려 5~20㎜Hg가 감소합니다. 생활요법은 최소 기간이 ‘6개월’입니다. 제대로 실천하는 것만큼 꾸준한 실천도 중요합니다. 이 교수는 “6개월 이상 생활요법을 실천했는데도 계속 혈압이 오르면 약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때도 생활요법을 완전히 중단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약물치료와 생활요법을 동시에 진행해야 합병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최동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운동요법이 고혈압 치료의 전부라고 오해해 운동에만 매달리는 환자를 간혹 보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노력의 결실 반대의 상황은 무엇일까요. 가슴이 터질 듯 아프다가 돌연사하는 ‘심근경색’, 높은 압력에 견디기 위해 심장이 부어오르는 ‘심부전’,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는 ‘뇌졸중’ 위험이 3~7배 높아집니다. 아니면 시력을 잃거나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겠습니까.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광장시장 한복집 2남 3녀 중 둘째딸… 음악가 꿈꿔

    광장시장 한복집 2남 3녀 중 둘째딸… 음악가 꿈꿔

    김정숙씨의 친정과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사실이 그닥 많지 않다. 친가와 외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다.친정 부모는 서울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한복집을 운영했고 김씨는 2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두 살 위인 친언니는 미국 뉴욕 패션기술대(FIT) 출신으로 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숙명여중·고(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과 동창)를 졸업한 뒤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졸업 뒤 서울시립합창단에서 활동했지만 문재인 후보가 학생운동 전력 탓에 판사 임용이 되지 않아 부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면서 음악가의 길을 포기했다. 김씨는 2011년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탄생 65주년 기념음악회 무대에서 ‘청산에 살리라’를 부르는 등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친정에선 처음에는 문 후보를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반대가 심했는데 군대 갔을 땐 면회 가고, 절에서 사시 공부를 할 땐 월급 타서 뒷바라지하니까 더 반대하지 않았다”면서 “지금은 너무 좋아한다. 친정어머니가 치매신데 가족을 못 알아볼 때도 ‘문 사위’는 알아보셨다”고 밝혔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의 보드가야로 가려면 13㎞ 남짓 떨어진 거점도시 가야를 경유하기 마련이다. 가야에는 정각(正覺) 이후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브라마주니 언덕이 있으니 보드가야에 버금가는 성지(聖地)다. 주변에는 팔리어(語)로 가야시사라는 산이 있어 부처 당시 초대형 사원이 지어졌다. 꼭대기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고 중국에서는 가야시사를 상두산(象頭山)으로 의역(意譯)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한다.가야산(伽倻山)이라면 경남 합천의 해인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충남 내포(內浦)의 가야산 역시 합천의 가야산을 뛰어넘는 한국 불교 역사의 중심지였다. 합천 가야산 정상은 해발 1430m 상왕봉(象王峯)이다. 내포 가야산 줄기 북쪽에도 해발 310m의 상왕산(象王山)이 있다. 조선시대 사찰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왕산 개심사는 가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합천 가야산과 내포 가야산의 작명 원리는 다르지 않다. 인도의 가야와 보드가야, 가야시사는 부처의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설법이 이루어진 곳이다. 인도에서 실크로드, 중국을 거쳐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 조상들도 같은 상징성을 가진 성지를 갖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10개 남짓한 살기 좋은 고을을 가리킨다. 삽교천을 따라 바닷길이 깊숙하게 내륙으로 들어왔다는 지형적 특징이 고유명사가 됐다. 가야산 서쪽 서산시 운산면에는 개심사와 함께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마애불과 백제 사찰 보원사의 옛터가 있다. 가야산 동쪽 예산군 덕산면에도 백제 거찰(巨刹)로 알려진 가야사가 있었다. 이름으로만 보면 가야사는 과거 보원사를 뛰어넘어 내포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을 수도 있다. 가야사 옛터에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올 길지(吉地)’라는 지관의 말에 헌종 10년(1844)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무덤을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는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에 오른 이후 퍼진 말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황제가 불과 2대에 그치고 나라가 망했으니 흥선대원군이 ‘2대천자지지’를 제대로 해석했어야 했다는 씁쓸한 우스개도 있다. 어쨌든 남연군 무덤에 서면 풍수지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과연 명당이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 무덤을 썼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대원군은 훗날 아들 명복이 보위에 오르자 건너편 산기슭에 새 절을 짓고 부처의 은덕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보덕사(報德寺)라 이름 지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하지만 가야사는 이미 폐사(廢寺) 상태였던 듯하다. 다만 남아 있던 석탑과 석등 같은 석물의 일부 훼손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말의 개화파 문인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도 ‘남연군묘를 가야사의 빈터에 썼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대원군은 단순히 불교에 호의를 가진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 후원한 인물이었다. 집권 이전에도 영종도 용궁사를 원찰로 삼은 것은 물론 쇠퇴한 흥천사, 화계사, 보광사를 중창했다. 대원군은 ‘불교를 즐겨 좇았다’거나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리라’는 글귀가 새겨진 인장을 즐겨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친(親)불교적 인사가 유서 깊은 대찰(大刹)에 불을 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대원군이 불교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는 것은 보덕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구니 수도도량이어서 일반인 출입을 막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개방한다. 보덕사는 한마디로 남연군 무덤의 원찰이다. 대원군이 아버지의 극락왕생과 후손의 발복(發福)을 빌고자 지은 절이다. 이름처럼 자식을 왕으로 만들어 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뜻이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수적이었을 것이다. 큰법당은 무덤의 원찰이니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다. 큰법당 앞에 바짝 붙여 지은 디귿자 모양의 대방(大房)은 충청도에서는 이례적이다. 폐쇄적인 구조의 대방은 내부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두고 있다. 왕실 여인들의 출입을 전제로 한 공간이다. 대방은 서울 근교의 왕실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에 주로 지어졌다. 보덕사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껏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비구니 사찰답게 아주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어 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절의 들머리에는 가야사 터에서 가지고 왔다는 화사석(火舍石)으로 다시 세운 석등이 있다. 가야사는 백제시대 겸익이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유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 부분이 없는 소조 불상도 10점 남짓 출토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 건물 유구도 찾아냈다고 한다. 가야사 역사의 본격 재구성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는 절의 흔적뿐 아니라 남연군묘의 제각(祭閣)이었던 명덕사(明德祠)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특히 ‘가량갑’(加良岬)이라고 새겨진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눈길을 끌었다. ‘가량’과 ‘가야’(伽倻)는 과거에는 같은 발음이었던 듯하다. 가야국과 관련된 역사 기록에서도 ‘가량’과 ‘가야’를 혼용한 사례가 보인다. 가야사라는 이름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창건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사이 어느 시점에 가야사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가야사와 ‘가야갑사’(加倻岬祠)의 기록이 함께 보인다. 그런데 발굴조사에서는 일정한 두께로 깎은 돌로 조성한 유구가 확인됐다. 절의 시설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명산(名山)에 제사 지내던 흔적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계룡산 산신에 제사 지내던 중악단(中岳壇) 역시 사찰인 신원사 곁에 두었다. 잘 알려진 대로 남연군 무덤은 대원군에게 통상을 요구하고자 오페르트가 저지른 도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1868년 행담도에 1000t급 차이나호를 정박시킨 뒤 작은 배로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에 상륙한다. 일당은 덕산 관아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뒤 가야산으로 향했지만 남연군이 안장돼 있는 무덤의 회곽은 단단하기만 했고, 결국 간조 시간에 쫓겨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국사 교과서에도 서술돼 있으니 역사적 의미는 각자 새기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연군 무덤을 방문한 길이라면 오페르트 일행이 상륙한 예산 고덕면의 구만포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삽교호 방조제에 물길이 가로막혀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삽교천 중류의 구만포는 내포의 중심 포구의 하나였다. 남연군 무덤에서는 자동차로도 20분 이상이 걸린다. 이 길을 걸어서 오갔을 오페르트 일당은 매우 조급했을 것이다. 구만포는 지금 한때 포구였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황량하다. 그래도 내포의 역사를 더듬기에 구만포만 한 곳이 없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애완견 덕에 유방암 발견했지만…한 30대 여성의 죽음

    애완견 덕에 유방암을 발견해 화제가 된 여성이 결국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데일리메일 호주판은 21일(이하 현지시간) 멜버른에 살던 르네 챈들러(33)가 유방암으로 결국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얼마 전 국내에도 보도돼 화제가 된 챈들러는 6개월 전 처음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그녀의 사연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유방암이 발견된 계기가 입양한 강아지 백스터 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강아지 백스터는 자신을 입양해 준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한 듯 가슴으로 뛰어 올랐고 이 과정에서 그녀는 우연히 혹같은 덩어리를 발견했다. 그리고 찾은 병원에서의 청천벽력같은 진단 결과는 유방암 4기라는 것. 곧 챈들러는 화학요법, 유방 절제술등을 동원해 수개월간 사투를 벌였으나 암은 뼈와 뇌 등 곳곳으로 전이됐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던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특히 시인으로도 활동했던 그녀는 매사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았고 이같은 행동은 큰 감동을 줬다. 여기에 그녀의 절친이었던 재키 위데스는 막대한 치료비 마련을 위해 고펀드미(GoFundMe) 페이지를 열어 6만 달러(약 6800만원)가 넘는 돈을 모았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 암과 싸워왔던 챈들러는 그러나 안타까움 속에 20일 조용히 눈을 감았다. 절친 위데스는 "그녀의 작은 몸이 더이상 암과 싸울 힘이 없어 평화롭게 잠들었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가 챈들러에게 마지막까지 큰 힘이 됐다"며 눈물 지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 이야기] 술 마시고 서주 빼앗긴 장비… 강탈한 여포측 말, 훔친 건가 찾은 건가?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 이야기] 술 마시고 서주 빼앗긴 장비… 강탈한 여포측 말, 훔친 건가 찾은 건가?

    유비는 도겸을 도운 인연으로 서주를 얻고, 갈 곳 없는 여포를 소패에 머무르게 한다. 황제를 앞세운 조조는 유비와 여포를 갈라놓기 위해 유비에게 원술을 토벌하라는 칙명을 내린다. 유비는 마지못해 출정하면서도 장비에게 서주를 맡기는 것이 미덥지 않다. 술만 마시면 이성을 잃는 술버릇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장비는 스스로 약속한 금주령을 어기고, 말리던 조표에게 매질까지 한다. 화가 난 조표는 여포와 내통해 서주를 여포에게 바친다. 시간이 흘렀다. 장비는 여포 부하들의 말을 빼앗아 온다. 분노한 여포의 침공에도 장비는 당당하기만 하다. 본래 서주의 주인이 유비였으므로 유비의 말을 돌려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원저 : 요코야마 미쓰테루(橫山光輝)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유비는 갈 곳 없이 떠돌던 여포를 받아들여 소패를 내준다. 하지만 여포는 유비가 없는 틈을 타 서주를 점령한다. 그러곤 여포 역시 유비에게 소패를 내주어 머무르게 한다. 장비가 서주를 빼앗긴 것은 술만 마시면 이성을 잃는 술버릇 때문이다. 말리던 조표에게 매질을 한 것도 마찬가지다. 즉 장비의 매질은 이성에 의한 행동이 아니다. 술을 마시고 정신을 놓아 버린 상태에서 한 행동은 과연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될까? 장비는 유비를 볼 면목이 없다. 하루아침에 서주의 주인에서 손님으로 전락한 유비의 처지가 모두 자신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장비는 여포의 말을 빼앗는 것으로 작은 복수를 도모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탄로나 여포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된다. 그런데 장비는 원래 서주가 유비의 것이므로 유비의 말을 되찾아 온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장비의 주장은 맞는 걸까? ●장비의 죄는 감면될까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이성적으로 결정하거나 행동할 능력이 없는 심신장애인에게는 처벌의 효과가 전혀 없다. 처벌이 아닌 치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형법은 제10조에서 ‘심신장애(心神障碍)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으면 처벌을 하지 않고, 미약한 경우에는 형을 ‘감경’하도록 하고 있다. 장비가 조표를 때려 상처를 입힌 행위는 상해죄에 해당한다. 그런데 장비는 술만 마시면 이성을 잃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장비가 조표를 때린 행위에 대해 형을 면제하거나 감경해야 할까? 형법은 제10조 제3항에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自意)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제1항과 제2항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즉 스스로 고의적이거나 과실로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한 후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감경할 수 없다. 장비는 평소 술을 마시면 이성을 잃는 데다 폭력적인 성향도 강하다. 본인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어 금주하기로 굳게 약속까지 했다. 그럼에도 술을 마셔 스스로 심신장애 상태를 초래했다. 그 후 평소 성향에 따라 조표를 때렸다. 장비의 심신상실 주장은 인정될 수 없는 것이다. ●유비의 말(馬)인 것이 확실하다면? 유비가 말의 엉덩이에 ‘유비’라는 낙인을 찍어 놓았다고 치자. 그래서 장비가 가져온 말들이 유비 소유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장비의 말대로 유비의 말을 도로 가져온 것이므로 정당한 걸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절도죄의 보호법익(保護法益)을 살펴보아야 한다. 보호법익은 형벌 규정을 통해 보호하려는 법적인 이익을 말한다. 예를 들어 살인죄는 ‘사람의 생명’, 사기죄는 ‘재산’을 보호한다. 절도죄는 원칙적으로 소유권을 보호한다. 타인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침해하거나 위태롭게 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보충적으로 점유권도 보호한다. 점유권은 소유권에 상관없이 물건을 점유하거나 소지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물건의 주인이 아니더라도 평온하게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권리도 보호하는 것이다. 원래는 유비의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장비가 가져갈 당시에는 여포가 말을 평온하게 키우고 있었다. 즉 장비는 여포가 가지고 있는 말의 점유권을 빼앗은 것이다. 말이 명백하게 유비의 소유라고 하더라도 장비의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 ●장비는 억울함을 풀 수 있을까? 장비는 억울하다. 유비의 말이 명백한데도 절도죄가 성립한다니. 이럴 때 항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반적으로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개인의 힘에 의한 구제가 난무해 결국에는 무법 상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런데 국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때로는 무법 상태를 조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내 물건을 가지고 가는 것을 눈앞에서 본 경우에 보고만 있다가 나중에 법적인 절차를 통해 되돌려 받으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기의 물건인지 입증하기도 어렵거니와 물건의 소재를 몰라 되돌려 받기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법이 불법의 편에 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스스로 구제하는 것이 정의이고 공평이다. 그래서 엄격한 요건을 정해 스스로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민법상 자력구제(自力救濟), 형법상 자구행위(自救行爲)가 그것이다. 민법 제209조는 ‘점유자(占有者)는 그 점유를 부정히 침탈 또는 방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자력으로써 이를 방위할 수 있고, 동산일 때에는 현장에서 또는 추적하여 가해자로부터 탈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침탈자가 현장에 있거나 그 자리에서 추적해 탈환한 경우에만 인정된다. 점유의 침해가 완료되지 않고 진행 중인 경우에만 인정되는 것이다. 형법은 제23조에서 자구행위라는 제목으로 ‘법정절차에 의하여 청구권(請求權)을 보전하기 불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 곤란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민법상 자력구제를 형법으로 표현한 조항이다. 다만 자력구제는 동산이나 부동산에 대해 인정되는 반면 자구행위는 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해 인정된다. 예를 들어 내게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고 외국으로 도망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는 것을 발견한 경우 채무자를 체포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 채권자를 현장에서 발견하거나 그 자리에서 추적하지 않은 경우에도 인정된다. 유비는 서주를 잃은 후 여러 곳을 떠돌았다. 3만명에 이르던 부하들도 불과 수십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런 유비를 여포가 받아들였다. 결국 장비가 말을 가져온 때는 이미 여포가 서주의 주인이 돼 안정된 이후다. 원래 유비의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장비가 말을 가져온 행위는 적법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용어 클릭] ■청구권(請求權):채권(債權)이나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와 같이 어떤 사람에 대해 특정한 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종로 뒷골목 인사동, 옛 시간을 더듬다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종로 뒷골목 인사동, 옛 시간을 더듬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중략)…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시 ‘귀천’ 中 일부) 천상병(千祥炳·1930∼1993) 시인은 세상에 소풍 나왔다가 그렇게 갔다. 독일 유학을 하였던, 서울대 상대 동기로부터 막걸리 값 몇 번 받아썼던 게 빌미가 되었다. 1967년 동백림 사건이다. 막걸리 값은 어느덧 ‘간첩자금수수’라는 죄목으로 그를 전기고문 의자에 앉혔다. 친구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막걸리 값 얻어 술 마시고 시 쓰던 천상병은 졸지에 간첩이 되고 만다. 진정한 블랙코미디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수사일지에는 “100원 내지 6500원씩 도합 5만여 원을 갈취 착복"한 무뢰한으로 천상병은 국가기관 기록에 남는다. 행려병자로 ‘서울시립정신병원’에 갇히기도 한 그를 따뜻하게 받아 준 여인이 바로 목순옥(1935~2010) 여사였다. 목 여사는 문인들의 도움으로 인사동에 작은 찻집을 하나 내고 생계를 이어 나간다. 문단에서 이름 석 자 대면 절 서너 번씩 받을 수 있던 문필가들도 인사동 거리에서는 결코 내로라하지 못했다 한다. 인사동 골목 골목에는 이런 저런 사연들이 상처 아문 실핏줄처럼, 보드라운 이야기길을 만들어 서울 한 복판을 흐른다. 1984년 11월 7일에 길이 0.7㎞, 너비 12m에 이르는 인사동길이 제정된다. 이후 인사동은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었고, 1997년 4월 13일부터는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꾸며진다. 또한 1999년 7월부터 역사탐방로 공사를 하여 2000년 10월부터 본격적인 현재의 인사동 길의 모습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지금의 인사동 길은 종로 2가에서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하지만, 예전에는 종로에서 태화관길(현재 태화빌딩)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또한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방(坊)은 조선의 행정구역 명칭으로 하나의 구획을 일컫는다. 인사동에 골동품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부터였으며, 1970년대까지 인사동은 한국전쟁 이후 흘러들어온 골동품을 거래하던 큰 골목이었다. 하지만 가짜 고서화 사건, 금당살인사건으로 인해 1980년대부터 인사동 골목은 골동품 가게들이 점차 토속음식점, 전통찻집,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판매점이 들어서면서 현재 인사동 모습의 원형을 만들었다. 현재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길을 가리키는 ‘매니스 앨리’(Many’s Alley)로 통하며 서울 시내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인사동 거리에서 눈여겨 볼만한 주요 유적지 및 전통 가게들이 몇 군데 있다. 최근에 스타강사인 설민석 강사의 룸살롱(?) 발언으로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옛 독립선언 유적지인 태화관(현 태화빌딩) 자리다. 사실 태화관은 원래 이완용의 집터였기에 삼일운동 때 그 조약을 무효화시킨다는 뜻으로 여기서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인사동 194번지인 이 곳에서 한용운 선생이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또한 인사동 주요 유적지로는 경인미술관으로 운용되는 조선 철종 때 지어진 박영효 대감댁의 터, 삼일운동 기념비가 있는 승동교회,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15인 민가다헌, 조선시대 궁중 약재를 관리하던 전의감터, 한국 전통 회화의 요람이던 도화서터, 을사늑약에 반대하여 자결하였던 충정공 민영환의 집터가 있다. 인사동에는 거개 나름의 전통을 뽐내는 점방(店房)들도 많다. 1934년에 개업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통문관, 국내 최초의 전각 전문 갤러리인 문정전각, 목조각상을 소장하고 있는 목인박물관, 인사동 대표명소인 쌈지길, 다양한 전시회를 만날 수 있는 인사아트센터, 한국 최고 김치박물관인 뮤지엄김치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들린 서예도구 판매점 명산당필방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다양한 가게와 전시관 등이 있다. 인사동 골목길을 걷는 맛은 나름 운치가 있다. 대로변 번화한 거리의 번잡함을 피해 잊혀진 옛 시간이 만든 길을 걷다보면 가슴 먹먹한 추억도 한량없다. 인사동 골목길은 길을 잃어도 또 다른 길을 만나게 한다. 우리네 인생사와 닮았다. <인사동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한 번은. 아직은 명맥이 살아있는 곳. 특히 외국인 친구가 있으면 필수!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3. 가는 방법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6번출구 인사동 방면 도보 1분/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 안국동 방면 도보 7분 4. 감탄하는 점은? -골목 골목, 구석 구석에도 관광객들이 차고 넘친다는 점. 볼거리가 풍부하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명성에 비해 점점 유흥업소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 추세. 인사동의 장소성과 문화경쟁력 제고의 방향으로 인사동 거리가 유지되어 함. 6. 꼭 봐야할 곳은? -쌈지길, 경인미술관 7.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남짓 8.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insainfo.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낙원상가, 조계사, 탑골공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인사동 들리기 전 반드시 북인사 관광안내소 나 남인사 관광안내소에 들러 나들이 장소 체크하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는 아무 생각 없이 나올 수 있는 곳. 구석 구석 볼거리 많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이덕일의 역사의 창] 세종 같은 대통령이 나오려면

    [이덕일의 역사의 창] 세종 같은 대통령이 나오려면

    조선 최고의 임금으로 평가받는 세종. 많은 국민은 왜 세종처럼 훌륭한 대통령은 나오지 않는지 아쉬워한다. 그러나 부왕 태종이 없었다면 세종이란 명군이 나오기 힘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태종은 무엇보다 스스로 악역을 담당함으로써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군주다. 여러 물의를 일으킨 세자 이제(양녕)를 폐출하고 이도(충녕)를 임금으로 발탁한 이도 태종이었다. 당시 세자는 이미 명나라에서도 사신을 보내 공식적으로 인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갈아치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태종은 결단을 내렸다. 세자 개인보다 국가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서기 1400년은 조선 개국 8년째였다. 개국 초에 감찰(監察) 김부(金扶)가 좌정승 조준의 집 앞을 지나다가 “비록 큰 집을 지었지만 어찌 오래 살게 되겠는가? 뒤에 반드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것이다”라고 풍자하고, 태조 이성계가 “이는 조선 사직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라며 사형시킨 것은 조선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으로 개국공신 외에 정사공신(1차 왕자의 난)과 좌명공신(2차 왕자의 난)이 더 책봉돼 모두 삼공신이 됐다. 개국 초 개국공신들은 개경의 왕륜동(王輪洞)에 모여서 “(태조께서) 천명을 받으셨고, 신 등이 힘을 합하고 마음을 같이해서 함께 큰 대업을 이루었다”는 ‘회맹문’을 발표했다. 조선은 태조 이성계와 개국공신들이 함께 세워서 함께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이었다. 정사·좌명 공신들은 태종의 왕위를 공동의 것으로 생각했다. 태종의 처남 민무구·무질은 1·2차 왕자의 난 때 자형을 위해 칼 들고 싸운 인척이자 공신이었다. 그러나 태종은 재위 8년(1408) 민씨 형제를 유배 보낸 후 재위 10년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민씨 형제들의 죄상을 기록한 교서에는 “양인(良人·자유민) 수백 명을 억압해서 자기 집의 노비로 만들었다”는 대목이 있다. 민씨 형제에 의해 노비로 전락한 백성들은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국왕의 처남이자 왕비의 동생인 민씨 형제들은 법 위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마지막으로 신문고를 쳤고 태종이 힘없는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 주었다. 정사·좌명 공신 이숙번은 태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다. 태종은 이숙번도 재위 17년(1417) 함양으로 유배 보낸 후 평생 도성을 밟지 못하게 했다. 친처남들을 사형시키고, 최측근을 종신 유배 보낸 태종의 조치에 조야가 벌벌 떤 것은 당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조선은 그 누구도 법 위에 존재하지 못하는 법치국가가 됐다. 세종 때 선조(先朝·태종) 때의 일을 묻기 위해 이숙번을 도성으로 불렀는데, 재상들이 모두 다투어 절했다는 ‘용재총화’의 기사는 태종이 이숙번을 종신 유배 보낸 이유를 잘 말해 준다. 태종은 재위 18년(1418)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고 세종의 장인 심온을 새 왕의 등극을 명나라에 알리는 사신으로 보냈다. 그러나 심온은 두 처남이 죽고, 이숙번이 종신 유배 가는 것을 보고도 별다른 교훈을 얻지 못했다. 심온의 아버지 심덕부는 위화도 회군 때부터 이성계를 좇은 데다가 심온의 동생 심종이 이성계의 둘째 딸 경선 공주의 남편인 점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심온은 북경으로 떠날 때 “영광과 세도가 혁혁하여 이날 전송 나온 사람으로 장안이 거의 비게 되었다”(‘세종실록’ 즉위년 9월 8일)는 거창한 전별식을 치렀다. 태종은 세종의 안정된 왕권을 위해 심온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고, 심온 역시 자살해야 했다. 이처럼 태종이 강력한 공신세력을 정리하고, 모두가 법 아래 존재하는 법치국가를 만들었기에 세종은 안정적인 왕권으로 내치와 외치에 전념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대통령은 태종 같은 인물이다. 해방 이후 친일청산에 실패한 데다 개발독재가 가세하면서 우리 사회 상층부 구석구석을 장악한 부패, 특권 카르텔은 나라를 망하게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카르텔을 해체하려면 태종처럼 악역을 감내하는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그 이후에야 세종처럼 안정된 상태에서 선정을 펼칠 수 있는 성공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 태종 없이 세종 없다는 역사의 교훈이다.
  • 문재인 측 “안철수·박지원 등 고발 검토…허위사실 유포 도 넘어”

    문재인 측 “안철수·박지원 등 고발 검토…허위사실 유포 도 넘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측이 1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를 비롯해 안 후보 측 선대위 관계자들을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안 후보 측에서는 문 후보의 아들 준용씨의 특혜 채용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문 후보 측 선대위 유은혜 수석대변인은 이날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안 후보와 박지원 대표, 대변인단을 비롯한 선대위 관계자들의 허위사실 유포가 도를 넘고 있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문 후보 측은 허위사실 유포 사례 중 하나로 전날 안 후보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직업이 없는 (문 후보의) 아들이 1대 1 경쟁률로 5급 공무원에 특채된 것은 비리가 아닌가”라고 말한 점을 꼽았다. 유 수석대변인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선거범죄대응센터는 ‘5급 공무원’이라는 표현을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삭제 조치를 시행했다”며 안 후보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했다. 박지원 대표가 전날 유세 도중 “문 후보도 기장 800평 좋은 집 사는 만큼 집을 소유한 과정을 공개하라”고 한 것을 두고선 문 후보의 집이 경남 양산에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유권자의 눈을 흐리려는 발언이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 측은 유세에 사용될 예정이었던 트럭과 충돌해 사망한 오토바이 운전자의 빈소에 문 후보가 방문한 것과 관련한 안 후보 측의 논평도 문제 삼았다. 유 수석대변인은 “문 후보가 유가족을 만나 억울함이 없게 당 차원의 조치를 취하겠다 약속하고 문상을 마쳤는데도 안 후보 측은 ‘경호원으로 유가족을 막고 억지로 절했다’고 하는 등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가 2012년 총선 당시 한명숙 당 대표에게 아들이 몸담았던 한국고용정보원 원장을 지낸 권재철 전 원장의 공천을 부탁했다는 안 후보 측 주장을 두고서도 “그런 바 없다”며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보도를 인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 측은 안 후보 지지 모임 관계자도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수석대변인은 “대선 개시일 전에 안 후보의 당선을 돕고 문 후보를 낙선시키려고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을 시도한 혐의로 안 후보 팬카페 관리자 등 19명을 고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사장 벽돌 책상 삼아 ‘열공’하는 中소녀

    공사장 벽돌 책상 삼아 ‘열공’하는 中소녀

    최근 중국에서는 11살 소녀가 공사장 앞에서 벽돌을 책상 삼아 공부에 열중하는 사진 한 장이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6일 장시성(江西省) 쑤이촨현(遂川县)의 한 공사장에서 벽돌로 쌓아 올린 책상에서 공부를 하는 시옹징(熊婧·11)의 모습이다. 시옹징의 부모는 쑤이촨현에서 오랫동안 미장일을 해오고 있다. 시옹징의 부모는 아이가 어린 시절에도 공사장으로 일을 나가야 했다. 아이를 맡길 이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하는 수 없이 어린 그녀를 업고 공사장에 나가 일을 했다. 어느덧 초등학교에 입학한 시옹징은 지금 초등 4년생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장 엄마, 아빠가 있는 공사장으로 와서 숙제한다. 주말에도 예외는 없다. 공부를 마치면 부모를 도와 벽돌을 나르기도 하고, 엄마의 시멘트 반죽을 돕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목말라 보이면 차 한 잔을 타서 나르는 효녀다. 11살 소녀지만 행동거지는 성숙한 어른 같다. 비록 벽돌로 마련해준 책상이지만 성실히 공부하고, 부모를 걱정해 주는 딸의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래서 딸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어깨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우리 딸은 학교에서 성적도 좋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SNS의 위력…만년설 화산에서 조난 당한 청년 구조돼

    SNS의 위력…만년설 화산에서 조난 당한 청년 구조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위력을 발휘하며 소중한 목숨을 살렸다. 만년설로 뒤덮인 화산에 올랐다가 조난을 당한 청년이 SNS 덕분에 무사히 구조됐다. 정신을 잃지 않고 스마트폰 SNS을 활용한 덕분이다. 페루 남부 아레키파에 있는 화산 미스티에는 매년 부활절을 앞두고 등산객이 몰려든다. 고난주간에 화산에 오르면서 고난을 체험하는 관습이 있어서다. 안토니오 타이페(25)는 지난 14일(현지시간) 오전 친구들과 함께 미스티 정상에 올랐다. 사고는 내려올 때 벌어졌다. 만년설이 덮인 산을 조심스럽게 내려오던 타이페는 뒤쳐지면서 혼자가 됐다. 설상가상 눈에서 미끄러지면서 머리와 다리를 다쳤다. 꼼짝할 수 없게 된 청년은 손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머리를 지혈했지만 거동은 불가능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영락없이 목숨을 잃게 될 위기상황. 절망한 그는 순간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떠올렸다. 서둘러 꺼내 보니 기적처럼 신호가 잡히고 있었다. 타이페는 채팅앱 왓스앱에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그러면서 피를 흘리는 자신의 셀카를 찍어 올렸다. SNS의 위력은 엄청났다. 순식간에 메시지를 공유하는 사람이 불어나더니 페루 긴급상황작전센터로 사고가 접수됐다. 긴급상황작전센터는 실시간으로 SNS에 상황을 알리며 구조작전에 나섰다. 같은 날 저녁 긴급상황작전센터는 SNS에 "타이페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긴급 소식을 전했다. 이어 청년을 발견해 심리적 안정을 돕고 있다면서 아레날에 있는 작전센터 베이스로 그를 옮길 것이라는 실시간 상황소식을 올렸다. 구조당국의 실시간 상황보고는 계속됐다. 긴급상황센터는 "베이스에선 다시 경찰이 청년을 산밑 지휘본부로 후송할 것"이라며 "지휘본부엔 이미 소방대가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년은 14일 밤 무사히 구조됐다. 현지 네티즌들은 "침착하게 청년을 구한 구조대, 정말 고생했다" "실시간 상황보고, 진짜 감동적이었다"며 작전센터에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봄의 끝자락 새로 시작되는 선홍빛 꽃의 향연, 군포 철쭉축제 오는 28일 개막

    봄의 끝자락 새로 시작되는 선홍빛 꽃의 향연, 군포 철쭉축제 오는 28일 개막

     절정으로 칫닫던 벚꽃 기세기 꺽이고 4월말 봄의 끝자락에 선홍빛 철쭉의 향연이 새로 시작된다. 경기 군포시는 철쭉동산 일원에서 오는 28일부터 3일간 ‘다시 꽃피는 사랑의 설렘’을 주제로 철쭉제를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빼곡히 고개를 내민 철쭉의 꽃봉오리가 화려한 만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수리산 끝자락에 자리한 철쭉동산(2만 2000㎡)에 20만 그루의 산철쭉과 자산홍이 일제히 피어나면 도심 가득 선홍빛 꽃물결이 넘실댄다. 점점 녹음이 짙어갈 무려 피어난 철쭉은 연녹색 수리산과 어울려 더욱 선연한 빛을 발한다. 초록의 산야를 진분홍의 빛으로 물들인 풍경이 아름다워 철쭉동산은 군포 8경중 6경으로 불린다. 경기도에 인천 강화군의 고려산과 부천 춘의산의 진달래축제가 있지만 철쭉축제는 군포 수리산 자락의 철쭉동산이 유일하다. 진달래와 유사한 철쭉의 명칭은 중국 이름 척촉(躑躅)에서 유래됐다. 철쭉은 독성이 있어 개꽃으로, 진달래는 참꽃으로 불린다. ‘개’는 먹지 못하는 식물을 의미한다.  현재 군포시에는 철쭉동산 20만그루 외에 당동 당정 대야토지구획정리 지구내 공원 36곳에 14만여 그루, 산본나들목등 11곳에 2만 4000그루가 식재돼 있다. 또 지난해 개장한 초막골생태공원과 새로 조성한 철쭉공원, 쌈지공원에 10만그루, 군포역 앞 환단 등 12곳에 4만 5000천 그루 등 모두 100그루의 철쭉이 조성돼 있다. 4월말 100만그루의 철쭉이 일시에 활짝피면 온 도심이 물든 대장관을 볼 수 있다.  축제의 주 무대인 철쭉동산 앞으로 안산선이 지나 수도권 어디서든 접근이 용이하다. 수리산역, 산본역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이면 충분하다. 경남 합천 황매산, 충북 단양의 소백산 등 전국에 유명한 철쭉제가 있지만 오랜 시간 멀리 이동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없이 산에 힘들게 오르지 않고도 마지막 봄의 청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철쭉동산에서 이어지는 초막골 생태공원과 둘레길인 수릿길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철쭉동산 정상에서 산길로 느린 걸음을 걷다보면 수리산 슬기봉이 눈앞에 들어오고 이어 생태공원에 이른다. 56만㎡ 크기의 골짜기에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공원으로 수리산, 철쭉공원과 연결돼 군포시의 생태녹지축을 이룬다. 지난해 7월 개장한 군포의 새로운 명소로 생태·역사·문화 스토리를 함께 담아냈다. 다랭이논, 맹꽁이습지원, 반디뜨락, 연꽃원 등 생태공원에 걸맞는 시설을 갖춰 볼거리가 쏠쏠하다.   새싹이 돋고 곳곳에 산철쭉이 피어 있는 풍경소리길, 갈치호수길을 걸으며 자연과 만나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도 좋다. 수리산과 접해있어 자연과 교감하며 걷기에 좋은 군포 수릿길은 ‘수리산 둘레길’, ‘수리산 임도길’, ‘자연마을 길’, ‘도심테마길’ 4개의 주제 14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축체 기간 철쭉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도 준비돼 있다. 주요행사로 철쭉 꽃피는콘서트, 철쭉 설레임콘서트가 펼쳐지며 철쭉 만발콘서트, 철쭉 가족인형극, 수리수리 마술쇼 등의 상설테마공연도 열린다. 이외에도 철쭉과 관련된 향초, 머그컵, 꽃향나는 커피 만들기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철쭉동산앞 차 없는 거리에는 이색 먹거리가 풍성해 축제의 맛과 흥을 더 할 예정이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새 영화] ‘콜로설’

    [새 영화] ‘콜로설’

    20일 개봉하는 ‘콜로설’은 ‘서울에 괴수가 나타났다’는 홍보 문구만으로도 한국 관객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영화다. 앤 해서웨이 등 주연배우 면면을 볼 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예상하기 쉽지만 사실은 기발한 아이디어에 기댄 B급 코믹 괴수물로, 캐나다·스페인 합작 영화다.직장을 잃고 백수로 지내며 술에 절어 살던 글로리아(앤 해서웨이)는 남자친구 팀(댄 스티븐스)의 집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 서울에 괴수가 나타나 도심이 쑥대밭이 됐다는 뉴스를 접한 글로리아. 그녀는 이따금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괴수에게서 자신의 독특한 몸짓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알고 보니 자신이 특정 시간에 초등학교 근처 놀이터에 가면 서울에 괴수가 나타나고, 놀이터 안에서 자신이 한 행동들을 괴수가 그대로 따라하는 것. 글로리아는 초등학교 동창 오스카(제이슨 서데이키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는데, 오스카가 놀이터에 들어서는 순간 서울에 거대 로봇까지 출몰한다. 글로리아는 자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죄책감을 갖지만, 오스카는 글로리아가 자신을 떠나려 하자 서울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한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서울은 바람 앞 등불 신세가 된 것이다. 저예산 영화라 괴수나 로봇의 비주얼이 그다지 돋보이지는 않는다. 배우가 특수분장을 뒤집어쓰고 괴수 연기를 하는 일본 전대물 느낌에 가깝다. 서울이 파괴되는 장면을 미국 사람들은 방송으로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는데, 한국 관객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동북아 화약고인 한반도 운명이 워 게임을 하는 머나먼 타국 사람의 손가락에 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왜 한국일까 궁금하기는 한데, 스페인 출신 나초 비가론도 감독이 한반도 상황을 풍자하려고 한 것은 아닌 듯하다. 당초 이 영화는 일본 도쿄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는데, 기획 단계에서 고질라와 마징가Z 이미지를 무단 사용한 게 문제가 돼 촬영지를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들의 연기는 부족함이 없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레미제라블’의 앤 해서웨이는 설명이 필요 없는 대세 여배우. 댄 스티븐스는 최근 크게 흥행한 디즈니 실사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를 맡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다. 한국 관객들에겐 경기 부천 상동과 여의도 한강 일대에서 진행된 촬영에 대한 기대 또한 있을 법하다. 러닝타임 109분 가운데 17분가량 한국의 도심 야경과 거리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주로 뉴스 화면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비쳐진다. 큰 기대를 품으면 ‘어벤져스2’ 때보다 더 크게 실망할 수 있다. 12세 관람가.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인형뽑기 200개 싹쓸이… 경찰 “절도 아니다”

    ‘인형 뽑기 기술자’로 화제를 모은 20대에게 경찰이 “문제는 있지만 절도범은 아니다”라고 결론 냈다. 대전서부경찰서는 16일 이모(29·무직)씨 등 20대 남자 2명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했다고 밝혔다. 이씨 등은 지난 2월 5일 새벽 대전 서구의 한 인형뽑기방에서 2시간 만에 인형 200여개(시가 200만원 상당)를 뽑아 간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다음날 인형뽑기방 주인이 텅 빈 기계를 보고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절도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 사이에 ‘낚시터에서 월척을 잡아도 죄가 되냐’고 댓글을 다는 등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처벌 대상인지부터 절도·사기·영업방해 중 어느 것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 결과 “기계 오작동을 일으켜 성공률을 높인 것은 문제가 있지만 처벌하기는 마땅치 않다”고 결론지었다. 대학교수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대전경찰청 법률자문단도 “특정 방식으로 조이스틱을 움직여 집게 힘을 세게 한 것은 이들의 ‘개인기술’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북 경산에 사는 이씨 등은 자신들이 잘 아는 게임 방식의 인형뽑기방이 대전에 많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원정을 와 인형이 담긴 통 두 곳을 싹쓸이했다. 1만원당 12차례 시도해 3번에서 많게는 8번까지 성공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인형뽑기에 관심이 컸고, 그동안 돈도 많이 투자해 기술을 익혔다. 많이 뽑아서 지인들에게 나눠 주고 판매도 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최근 중고생부터 청년들까지 인형뽑기 열풍이 불면서 수백만원을 썼다는 20대가 인형뽑기 기계를 털다 잡히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전국의 인형뽑기방도 지난해 11월 500곳에서 올 2월 말 1433곳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北 “초강경 대응”… 오늘 태양절 ‘도발 D데이’로 할까

    軍당국 “北 언제든지 핵실험 가능” 외교·안보 전 부처 오늘 비상대기 북한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압박에 맞서 최대 기념일로 꼽는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인 15일에 6차 핵실험을 감행할 정황이 속속 공개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앞서 북한은 5차 핵실험도 지난해 9월 9일 정권 수립일에 했다. 우리 군 당국은 14일 북한이 언제든지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도 지난 13일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핵실험 준비를 마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이번 ‘태양절’은 북한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명 ‘꺾어지는 해’(5년·10년)인 105주년이다. 따라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한 후계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이날을 ‘디데이’(D-DAY)로 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외교·안보 전 부처가 15일 비상대기를 한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북한 한성렬 외무상도 이날 평양에서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핵실험이 언제든 가능한 상태”라며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우리의 합동참모본부 격인 북한군 총참모부도 성명을 내고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초강경 대응”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군의 핵 항공모함을 비롯한 전략자산들이 한반도 인근으로 전개된 상태에서 북한이 무모한 도발로 화를 자초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응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물론 중국을 통한 외교적·경제적 대북 레버리지를 활용해 높아진 긴장을 낮출 수도 있다. 최근 방한했던 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의 방북이 거론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인 핵실험보다는 신형 전략무기 등을 태양절 기념 열병식을 통해 공개한 뒤 주민들에게 ‘대미결사항전’을 선동하는 식으로 우회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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