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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시인 산문집 “맛깔스럽네”

    소설가·시인 산문집 “맛깔스럽네”

    언젠가 한 소설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누가 저더러 ‘시인형 소설가’라고 하더라구요. 근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시인형 소설가’, 멋지지 않나요.” 시대가 요구하는 ‘멀티플레이어’는 문학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멀티플레이어’라는 단어가 문학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장르를 초월하는 작가들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는 일은 그래서 너무도 즐겁다. 소설가가 시인도 됐다가 가수로 변신하는가 하면 시인은 사색하게 하는 단어가 가득한 산문으로 독자들을 명상에 잠기게 한다. 소설가 한강(37)이 직접 작곡하고 부른 노래를 담은 CD와 함께 산문집을 냈고, 원로 소설가 박완서(66)는 묵상집을 발표했다. 대구의 시인 송재학(52)도 온갖 ‘풍경’을 꿰뚫은 첫번째 산문집을 공개했다. 시인 김사인, 소설가 성석제·윤대녕의 맛깔스러운 산문집도 여전히 화제다. 한강의 ‘일탈’(?)은 뜻밖이지만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전부터 시를 썼고, 시는 원래 노래에서 온거니까, 노래를 만드는 일이 아주 낯설다고 느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 펴냄)에는 음악과 작가의 필연적인 ‘만남’을 암시하는 노래와 관련된 글들이 녹아 있어 읽는 이들에게 아스라한 추억을 선사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노래 ‘짝사랑’, 아버지(한강은 소설가 한승원의 딸)의 노래 ‘황성옛터’를 비롯한 20여곡에 얽힌 자신의 삶을 공개한다. 한강의 노래는 사위가 고요하게 잠든 한밤 중에 듣는 것이 제격일 듯하다. 스스로 “햄릿처럼 망설였다.”고 녹음까지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했지만 깔끔한 반주 속에 약간은 떠는 듯한 한강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저절로 조마조마해지게 된다. 산문집에 끼워져 있는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라는 제목의 CD에는 TV 가요 프로그램에 등장한 가수 강원래를 지켜본 뒤 만든 ‘휠체어 댄스’(이 노래만 한강이 부르지 못했다.), 사랑노래 ‘내 눈을 봐요’ 등 10곡이 수록돼 있다. 박완서의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시냇가에 심은나무 펴냄)은 1996년부터 98년까지 천주교 ‘서울주보’에 그 주일의 복음과 관련된 글을 쓴 것을 모은 책이다.10년이 지난 글들이지만 아직까지도 읽으면서 저절로 가슴이 잔잔해지는 느낌을 갖게 한다.‘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절대자의 명언에 대해 작가는 “차라리 옳은 것을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옳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시인 송재학의 산문집 ‘풍경의 비밀’(랜덤하우스 펴냄)에는 그가 본 세상의 풍경에 대한 해석과 감동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나는 절보다 절터를 더 좋아한다.…(중략)부재가 존재보다 더 비장하고 더 슬픈 것, 이것은 불법(佛法)하고도 통하는 이야기이리라.”(‘금곡사 가는길’ 가운데)특히 불교와 관련된 사색 글이 많은 것이 특징.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얻은 깨달음을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대학생 아들을 둔 작가는 ‘문청’ 시절의 애달픈 사연들도 부끄럽게 공개했다. 라디오 불교방송(BBS FM) ‘살며 생각하며’ 진행자인 시인 김사인(51)은 자신이 직접 쓴 오프닝 멘트를 묶어 ‘따뜻한 밥 한그릇’(큰나 펴냄)이라는 산문집을 냈다. 오프닝 멘트라 200자 원고지 4장 안팎씩 밖에는 되지 않지만 119편의 글 하나하나에는 그의 시 만큼이나 따뜻한 감성들이 녹아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씨

    아스라한 전설의 시대, 호주의 남쪽 어느 바닷가에서 인간과 비슷한 동물이 만들어져 뭍으로 기어올라왔다. 이들은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 다시 물가로 내려가 자맥질을 했다. 또한 새로운 먹을 것을 잡거나 다른 곳으로 건너기 위해 스스로 헤엄치는 요량을 터득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두뇌가 발달됐고 육신이 점차 단련되면서 인간으로 진화했다는 설이다. 이후 밤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은 세월이 흐른 근대에 이르러, 영국은 이같은 인간의 원초적 헤엄을 스포츠화시켰고 올림픽의 부흥과 함께 세계적인 인기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1970년 방콕·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조오련 선수가 연이어 2관왕을 차지하면서 국민적인 ‘수영 붐’을 일으켰다.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는 최윤희 선수가 3관왕을 차지하면서 또 한번 불을 댕겼다. 그로부터 24년 후인 도하 아시안게임에서의 박태환. 그는 과거 조오련 선수의 주종목 자유형 200m,400m는 물론 1500m에서 당당히 3관왕을 획득, 국민적 스타로 떠올랐다. 특히 그의 쾌거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영웅 이언 소프와 비교된다. 인간 어뢰로 불리며 호주 전역을 들끓게 했던 이언 소프의 신드롬처럼 박태환 역시 차가운 겨울철에 뜨거운 ‘수영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요즘 각 수영장마다 신기(神技)의 발차기와 잘 생긴 박 선수의 외모는 폭발적인 부러움의 대상이다. 영원한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5)씨. 일곱살 때부터 헤엄을 쳤으니 아마 조씨처럼 물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도 드물 터. 기네스북 도전과 한국인의 기개를 떨치기 위해 한강 600리 수영, 대한해협과 울릉도∼독도, 도버해협 횡단 성공 등 수많은 바닷길을 열었다. 때로는 해파리떼들과 만나 사투를 벌였고 교통사고를 당해 팔이 휘어졌지만 그래도 물살을 가르며 살아온 특별한 인생이다. 추운 날에도 옷을 벗어야 했고, 다들 살 빼려고 하는 대신 오히려 찌워야 하는 정반대의 역정이었다. 이처럼 한국 수영계의 대부로 끝없는 도전을 해온 그는 요즘 남다른 감회에 빠져 있다. 다름 아닌 도하 아시안게임의 3관왕인 박 선수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하기야 30여년 만에 자신의 주종목에서 금메달을 보란 듯이 따줬으니 얼마나 대견스러울까. 박 선수가 세번째 금메달을 따던 날 조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정말 대단하다. 우리나라 수영의 새로운 희망이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귀향해 집을 짓느라 바쁘다.”고 해 지난 13일 조씨의 고향인 해남에서 만났다. 그가 귀향해 사는 곳은 해남군 계곡면 여시골마을. 해남읍내에서 자동차로 15분거리에 위치한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산골이다. 사방 2㎞ 안에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외진 곳이지만 맑은 물이 곳곳에 솟아나오는 청정지역. 때마침 비가 온 뒤여서 그의 집까지 가는 비포장도로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조씨는 흙 묻은 작업복 차림에다 농부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보시다시피 아직 집이 완성이 안돼 컨테이너 막사에 거주하고 있다. 먼길 오느라 점심도 못했을 텐데….”라고 하면서 주방으로 사용하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데리고 가 직접 삶은 국수 한 그릇을 권한다.6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오래 살아온 솜씨여서 그런지 싱싱한 굴과 큼직큼직한 멸치가 투박하면서도 잘 조화를 이루어 맛이 그만이다.“부엌에서 인부들에게 밥이나 지어주고 있다.”며 활짝 웃는다. 여전히 특유의 호방한 성격 그대로였다. 언제 귀향했느냐는 질문에 “지난 8월31일 이곳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다.10년 전부터 귀향하려고 땅을 사놨다.”는 즉답이 나온다. 옛날 절터 주변의 땅 2만여평을 매입했단다.“해남을 떠난 지 꼭 38년 만의 귀향이다. 서울나들이를 비로소 이제야 마치고 내려왔다.”면서 “조용한 곳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좀 보고 자서전도 준비할 생각”이라고 의미부여를 했다. 전환점에 선 수영의 마라토너답게 거침없이 나오는 바리톤 음성에는 간단치 않은 삶의 철학이 배어 있었다. 현재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황토집은 내년 3월에 완공된다. 집 앞마당에는 30m 레인 하나 정도 나올 만한 작은 수영장과 낚시터까지 갖춰진다고 했다. 조오련 수영캠프가 아닌 남은 인생을 스스로 조용히 돌아볼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했다. 박 선수의 경기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이제 아시안게임을 제패했으니까 원을 더 크게 그려 베이징올림픽을 봐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주변에서 많은 관심과 독려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한 “이제 17세인 만큼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취월장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면서 “박태환이라는 총알이 올림픽 과녁을 정확히 맞힐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도 따라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화려했던 현역시절이 문득 생각났는지 “나는 수영 선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면서 다만 전국대회에서 3등 정도만 하면 공짜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68년 12월 완행열차를 타고 무작정 상경했다고 회고했다. 시골 형편이 대부분 그랬듯 가난한 가정의 5남5녀 중 막내로 자랐다. 수영은 일곱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혔다. 해남고 1학년 때 심부름하러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하계체전 예선전을 지켜봤는데 1등 기록이 자신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어 양정고 1학년에 입학했다. 청계천 부근 간판집과 창고지기로 일하면서 틈틈이 종로 2가의 YMCA 실내수영장을 다니며 실력을 쌓았다. 그의 천부적 수영실력은 이듬해 6월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수영복조차 없이 ‘사각팬티’를 입은 채 자유형 400m와 1500m에 참가, 내로라하는 장거리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때 마침 귀빈석에서 관람 중이던 민관식 대한체육회장이 그의 사정을 듣고 태릉선수촌에 입촌시켜 훈련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후 경기할 때마다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고3 때인 1970년 드디어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2관왕에 올랐다.4년 뒤인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2관왕에 올랐고 은퇴할 때까지 통산 50개의 한국신기록을 세운다. 은퇴 후에는 거친 바다에 도전한다.1980년 13시간여 만에 대한해협을 횡단한 것을 시작으로 도버해협(1982년), 대한해협 재횡단(2000년) 성공,2003년 8월15일 강원도 화천 비무장지대에서 여의도까지 한강 600리를 수영으로 완주했다. 뿐만 아니라 광복 60주년을 앞둔 지난해 8월 성웅(26·회사원), 성모(22·고려대4) 두 아들과 울릉도∼독도간 93㎞를 18시간 만에 횡단하는 데 성공,‘독도가 헤엄쳐 건널 수 있는 우리 땅’임을 당당히 입증했다. 1986년에 결혼한 그는 서울 압구정동에 수영교실을 열어 집안생계를 꾸려나갔다. 두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았던 조씨 부인은 2001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혼자 살다 보니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습니다. 아들 둘도 인생을 스스로 개척할 만큼 다 컸고 결국 이래저래 귀향결심을 하게 됐죠.” 그는 장시간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 보면 무아지경을 경험한다. 성철 스님이 무념무상에서 9층탑을 쌓는다고 하면 자신은 3층높이는 될 것이라는 그는 “바다수영은 조류의 흐름과 파도, 수온 등 모든 것을 고려해야 한다. 억지로 떠오르려고 하면 가라앉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집이 완공되면 주변 땅에서 녹차밭을 가꾸겠다는 그는 내년에 또한번 새로운 도전을 할 예정이다. 독도 둘레가 6㎞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내년 7월 독도 둘레를 수영으로 33바퀴(3·1독립선언문의 33인 상징) 돌 예정이다. 비록 귀향했어도 굽힘없는 도전정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2년 해남 출생 ▲71년 양정고등학교 졸업 ▲76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81년 고려대 사학과 편입졸업 ▲89년 조오련 수영교실 설립 ▲98년 대한수영연맹 이사 ●경기기록 ▲70년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자유형 400m,1500m 1위 ▲74년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 400m,1500m 1위,200m 2위 ▲78년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 접영 200m 3위 ▲78년 이후 수영부문 한국신기록 50회 수립 ▲80년 대한해협 횡단 13시간 16분 ▲82년 도버해협 횡단 9시간35분 ▲03년 한강 600리 종주 ▲05년 을릉도∼독도 횡단 18시간 ●상훈 자랑스런 양정인(03년)외 국민훈장목련장, 체육훈장 거성장, 대한민국체육장 등 다수
  • 한국 고고학 1906년 시작됐다

    근대적 의미에서 한국 발굴의 역사는 일본인 이마니시 류(今西龍·1875∼1932)가 경주 북산고분군을 발굴한 19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올해는 한국 고고학의 발굴 역사가 100주년을 맞는 해가 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8일 경주 교원드림센터에서 갖는 ‘신라고분 발굴조사 100년’ 학술 심포지엄은 주제를 ‘신라’로 제한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한국 고고학 발굴 100년’을 기념하는 행사라 해도 좋다. 발굴의 역사가 한 세기,1946년 우리 손으로는 처음인 경주 호우총 발굴도 6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기초적인 발굴 조사 연구의 기반조차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태이다. 윤형원 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경주지역에서 그동안 발굴한 고분이 1500개에 이르지만, 신라 고분의 종합적인 양상을 알 수 있는 기초연구는 답보 상태”라면서 “봉분이 있는 신라 고분이 몇개나 되는지도 모르는 만큼 학술조사를 위한 기초연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모색해 보자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말했다. 심포지엄은 원로들의 회고로 시작된다. 사이토 다다시(齋藤忠) 일본 다이쇼 대학 명예교수가 ‘일제하의 신라고분 발굴조사’,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발굴한 김정기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 ‘국가에 의한 신라고분 발굴조사’, 윤용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대학에 의한 신라고분 발굴조사’를 발표한다. 특히 우리 나이로 99세인 사이토 교수는 1930년대 경주박물관의 연구원을 역임하며 황오리1호분 등 신라고분을 여럿 발굴했고, 부여 군수리절터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백제 금동보살입상과 납석제좌불을 직접 수습했다. 신라 고분 발굴의 역사도 정리된다. 요시이 히데오(吉井秀夫) 일본 교토대학 교수가 ‘일제강점기 경주 신라고분 발굴조사’, 차순철 경주문화재연구소 전문위원이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 경주 신라고분 발굴조사’를 발표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굴조사 방법의 정보를 공유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오현덕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연구실 연구원은 ‘신라고분에서의 지하물리탐사’, 박동일 드림Tns 대표는 ‘신라고분에서의 3D스캔측량 적용’을 소개한다. 윤형원 학예연구실장은 “이번 심포지엄에선 신라 고분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들을 계획”이라면서 “경주지역에는 지금도 발굴이 이뤄지지 않은 고분이 수없이 많지만 발굴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도 의견을 모아 보겠다.”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경주 남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북 경주 남산

    삼천리 방방곡곡 아름답지 않은 곳 어디 있을까마는 경주는 단연 돋보인다. 언제 찾더라도 식상하지 않은 여유와 부드러움,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신라인의 체취와 함께 남산(南山)이 있다. 그리 높지도 험악해 보이지 않는 남산엔 수많은 불적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신라 법흥왕 14년(527년) 불교가 공인된 뒤로 남산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받들어져 수많은 절과 탑, 불상이 조성되었다.‘절들은 별처럼 벌여있고, 탑들은 기러기 날아가듯(寺寺星張 塔塔雁行)’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세월은 아득히 흘렀지만 골골에선 여전히 그 흔적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포석정을 뒤로 하고 부흥골을 오른다. 구불텅하게 높이 뻗어있는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향수병에서 향기가 번져나듯 솔향기가 짙게 배어난다. 부흥사 이르기 전 만나게 되는 부엉골 마애여래좌상. 넓은 연꽃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모습이 평안하다. 부흥사 남쪽 늠비봉 넉넉한 봉우리 위엔 늠비봉 5층석탑이 태양빛을 받으며 서있다. 그 모습을 보며 당시 웅장했을 남산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늠비봉 위쪽 금오정에 오르면 외동평야부터 경주 시가지까지 옛 화려했던 서라벌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주능선을 따라 금오봉을 향한다. 임도로 이어진 능선길 덕에 남산의 심원한 맛이 퇴색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 삭막한 능선길이 사라진 신라의 허망함처럼 가슴을 두드린다. 오른편 멀리 보이는 상선암 마애대좌불. 거대한 자연 암반에 조각된 남산에서 두 번째로 큰 불상이란다. 불상을 만나려면 냉골로 내려서야 하는데, 지금까지 오른 것이 아깝다고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다. 상선암과 금오봉 사잇길은 조망하기에 좋다. 이쯤에서 바라보는 마애대좌불 바위절벽도 좋고, 너른 배리들판의 모습도 시원하다. 그 너머 망산이 있고 벽도산·단석산 그리고 주변 봉우리의 어울린 모습이 마치 다도해의 섬을 연상시킨다. 금오봉(468m)에 섰다. 높이로 치자면 남산 최고봉은 고위봉(494m)이지만, 주봉은 이곳 금오봉이다. 때문에 이곳 금오봉을 목표로 남산을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다 오른쪽 용장골로 내려서는 길. 벼랑 끄트머리엔 산 전체를 기단 삼아 세워진 용장사지 3층석탑이 세상을 내려보며 서있다. 그리고 아래쪽 등성이에는 황남빵을 쌓아놓은 듯 삼륜대석불좌상이 있고, 옆쪽 바위벽엔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의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한 신라인의 지혜로움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이처럼 남산의 여러 유적들은 자연과 가깝다. 눈비를 맞게 하지 않기 위해 바위 처마 아래 불상을 조각했고, 놓여진 바위를 하층기단 삼아 그 웅장함을 표현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들은 박물관에 있으면 미완성이지만 이 봉우리 위에서는 완성품’이라 했던가. 용장사지에 섰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7년간 기거하며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용장사는 남산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람으로, 천년 긴 세월 동안 향연이 그치지 않던 곳이었다지만, 지금은 텅 빈 한쪽에 자리한 표지판만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줄 뿐이다. 부흥골을 거쳐 늠비봉∼금오정∼금오봉을 거쳐 용장골로 하산할 경우 산행시간은 6시간 정도 소요된다. 글 사진 김도훈(월간 MOUNTAIN 기자) www.emountain.co.kr
  • 우리나라 最古 추정 문헌 발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서기 600년경 백제시대 문헌이 확인돼 고대사 연구에 획기적 전환점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 이전인 삼국시대를 기록한 것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16일 전남 목포대 최연식(41·역사문화학부) 교수에 따르면 삼국시대 주류 불교인 삼론학(三論學)의 개론서로 쓰였던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총12권)’를 쓴 지은이가 중국인이 아닌 백제 승려 혜균(慧均)으로 나타났다. 최 교수는 “이 문헌으로 삼국시대 이전인 고대 한국인의 불교사상은 물론 의식구조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책은 원본이 아닌 필사본으로 현재 일본 교토대 도서관에 7권, 개인 소장 2권 등 9권만 전해진다. 그동안 고대시대 생활상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제한적인 시나 광개토대왕의 비문 등을 통해서만 알려지거나 짐작됐다. 지금껏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는 7세기 중·후반 통일신라시대의 원측과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로 알려졌다. 대승사론현의기는 이보다 60년가량 앞선 것으로 보인다. 최 교수는 “혜균이 백제 승려로 보이고 이 책에 나오는 절 이름 ‘寶憙寺(보희사)’가 2000년 4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나무에 쓴 글)에 기록된 ‘寶憙寺’와 같다.”고 말했다. 이어 “책 내용 가운데 ‘현재 이곳에서 질문하는 문제는 중국에서는 해결됐다.’라는 대목에서 이곳이 보희사가 있는 백제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보희연사(寶憙淵師)는 보희사의 연사 스님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문헌의 내용과 정황상 혜균이 중국 진(陳)나라 유학시절 만난 승려 길장(549∼623)이 장안으로 간 599년 직후에 이 문헌이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책은 백제에서 펴낸 뒤 신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고 백제가 멸망하면서 국내에서는 잊혀졌다. 이번 연구는 최 교수가 2004년 6월 한국불교 삼론학의 전문가인 독일 보훔대의 플라센 교수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혜균은 일본에서 중국의 고대 불교학자로 추정됐다. 두 교수는 오는 20일 서울 대우재단 빌딩에서 그동안 연구실적과 과정을 밝히는 학술토론회를 연다. 목포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13) ‘법이 머무는 곳’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종교건축 이야기] (13) ‘법이 머무는 곳’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사내리 209, 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주지 도공 스님). 신라 진흥왕조인 553년 의신 스님이 창건했고 혜공왕조인 776년 진표 율사가 중창한 ‘호서제일가람’이다. 정유재란때 불타 없어졌지만 사명대사와 벽암대사에 의해 1624년에 복원된 사찰.‘법이 머문다.’란 뜻의 법주(法住)는 불법을 구하기 위해 인도에 유학했던 창건주 의신 스님이 흰 노새에 불경을 싣고 와서 후학을 양성할 절터를 찾기위해 머물렀다는 연기설화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시대에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법상종 종찰의 면모를 유지해 왔으며 지금은 국내 대표적인 미륵도량이자 화엄사찰이기도 하다. 산내암자 11개, 말사 80개를 거느린 주요 본사답게 이런저런 사연이 많지만 아무래도 법주사의 핵심은 국내 유일의 목조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이다. 흔히 사찰의 탑이라면 화강석으로 만든 석탑을 떠올릴 만큼 나무로 세운 목탑은 생소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원시불교 이래 탑전은 목조의 전통을 유지해 왔으며 ‘삼국유사’ 등에도 탑의 시원이 목조였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전한다.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도 목탑이 세워진 사실이 만복사지 탑지에서 밝혀졌고 조선시대까지 전해져왔음이 각종 유적들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법주사 팔상전으로, 이 팔상전은 현재 목조 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1984년까지만 해도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이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목조탑의 쌍벽을 이뤘으나 아쉽게도 소실됐다. 법주사 경내의 중심에 선 팔상전은 사방에 계단이 설치된 석조 기단위에 5층으로 올린 5층 목탑이지만 내부는 가운데 벽을 중심으로 한 통간 건물로 되어 있다. 정사각형 모양의 사찰 전각 기단은 사제(四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다. 특히 동서남북에 배치된 계단은 구도자에게만 허락된 수행의 경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통한다. 기단에 올라서 안으로 들어가면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도가 모셔져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벽면 앞에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했고 불상 앞에 납석원불과 나한상이 모셔져 있다. 전체 5층 가운데 1·2층은 5칸,3·4층은 3칸,5층은 1칸으로 구성한 것도 특이하다. 팔상전이란 석가여래의 일생을 8단계로 나누어 표현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신 전각. 쌍계사. 통도사. 운흥사. 선암사. 범어사 등의 팔상전에서도 이같은 팔상도를 볼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찰의 팔상전에 모셔진 팔상도가 불단을 향해 평면적으로 나열되어 한꺼번에 전체를 볼 수 있지만 법주사 팔상전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한가운데 조성된 네 벽을 돌아가면서 각 벽면에 두 폭씩을 배치했기 때문에 한 곳에서 전체를 다 볼 수가 없다. 팔상도의 8폭을 전부 보기 위해선 팔상전 안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데 팔상도를 따라 돌다보면 결국 가운데 벽 심초석(心礎石)에 봉안된 불사리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탑돌이를 하게 되는 셈이다.(지난 1968년 팔상전을 해체수리할 때 심주(心柱) 밑에서 사리장치(舍利裝置)가 발견되어 이곳이 불사리를 봉안한 장소임이 확인되었다. 목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것은 법주사 팔상전이 처음이다.) 팔상도를 따라 탑돌이를 한 뒤 문을 나서서 지붕을 올려다보면 2층 처마 아래 모서리에 새겨진 난쟁이 모습의 인물과 용 형상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연꽃 봉오리 위에 쪼그려 앉아 두 팔과 머리로 추녀를 받친 모습의 난쟁이상이 흥미롭다. 왕방울 눈에 나선형 눈썹과 짙은 수염을 갖고 있는데 부처님을 공양하고 불전을 수호하는 불교 외호신 중 하나라고 한다. 법주사 팔상전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 해도 불사리를 봉안한 탑에 더해 예배 공간의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탑의 내부를 예배공간으로 썼던 기록은 삼국유사 권5 ‘월명사도솔가(月明師兜率歌)’조의 “동입내원탑중이은(童入內院塔中而隱)”이라는 구절에 처음 나타나는데 “동자가 탑 속으로 숨어들었다.”는 내용이다. 학계에서는 사람이 탑 안으로 숨어든다는 것은 탑 내부에 큰 공간이 있었음을 의미하며 법주사 팔상전이 바로 동자가 숨어들었다는 그 탑 형식의 목탑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팔상전은 지난 1968년 해체 보수공사 이후 내부 통풍이 안되고 벽면에 습기가 심하게 차오르는 등 훼손될 위기에 처해 있다. 법주사 주지 도공 스님은 “미륵신앙과 화엄사상을 함께 담은 법주사의 중심건물인 팔상전은 불사리 봉안처로서의 탑 성격과 예배장소의 기능을 동시에 갖춘 유일한 탑전인데 예산과 보존 처리의 어려움 때문에 훼손되어 가는 문화재를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사진 남상인기자 sanginn@seoul.co.kr ■ 법주사의 명물들 법주사 경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명물들이 들어서 있다. 팔상전을 비롯해 석련지, 쌍사자석등이 국보로 지정됐고 보물도 12점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국보·보물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倚像)과 사천왕상, 석련지, 대웅보전, 금동미륵대불은 신도와 관람객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받는 문화재들이다. 우선 일주문을 지나 팔상전과 대웅보전을 가기 위해 통과하는 천왕문의 사천왕상은 국내 사찰중 가장 큰 규모. 천왕문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조선 후기 맞배지붕 건물인데 중앙 통로 양쪽 2칸에 높이 5.7m, 둘레 1.8m 크기의 사천왕상을 2구씩 배치해 천왕문을 통과하는 이들의 시선을 제압한다. 사리각 옆 암벽에 조각된 전체 높이 6.18m 크기의 마애여래의상도 독특한 불상. 둥근 얼굴과 감은 듯 뜬 눈에 잘록한 허리 등 비사실적인 추상이 인상적이다. 연꽃 잎이 불상 주위를 둘러싼 연봉이 불상을 둘러싸고 발 아래엔 반쯤만 조각된 연화문상석이 놓여 있다. 석련지는 원래 법주사의 본당이었던 용화보전의 장엄품을 설치했던 것. 신라 성덕왕조때 화강석으로 조성됐는데 8각 지대석 위에 3단의 굄을 만들고 다시 굄돌을 올려 그 위에 구름을 나타낸 동자석을 끼워 무량수의 감로천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신라 진흥왕때 창건된 대웅보전 안의 불상 3구는 국내 사찰 법당에 봉안된 소조불 좌상중 가장 큰 것. 중앙에 비로자나불, 좌측에 노사나불(아미타불), 우측에 석가모니불을 모셨는데 각각 마음, 덕, 육신을 뜻한다고 한다. 최근 개금불사를 마치고 점안식을 가졌다. 팔상전 왼편, 미래 미륵부처님의 현존을 의미하는 금동미륵대불은 국내 최대의 규모.8m 높이의 기단 위에 25m높이로 조성됐는데 소요된 청동만도 160t이나 된다고 한다.
  • [씨줄날줄] 백제금동 ‘마술램프’ /황진선 논설위원

    아라비안나이트는 6세기경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발전해 15세기경에 완성됐다. 천일야화(千一夜話)로 잘 알려져 있다. 이란·이라크·시리아·아라비아·이집트 등 아랍 세계의 갖가지 민담과 설화를 포함하고 있다.‘알라딘의 신기한 램프’와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나중에 삽입된 것이라고 한다.1703년 프랑스어판으로 번역된 뒤 전세계로 퍼져나가 어린이들의 상상력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1993년 충남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는 한국판 천일야화의 보물창고다. 중부대학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허강 교수팀이 향로에 새겨진 문양을 근거로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동영상 등 무려 805건의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냈다. 금동향로는 높이 61.8㎝, 몸통 지름 19㎝에 불과하지만, 받침대와 몸체·뚜껑에 용 불사조 물고기 사슴 학 봉황 인물 등 208가지 형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 형상들은 백제인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된 백제 문화의 원형이다. 그 원형이 상상력의 보고가 됐다. 백제 창왕(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의 죽음을 슬퍼하고 백제의 부흥을 기원하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도 그것을 보여준다. 이는 같은 장소에서 백제창왕명 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이 발견된 데 근거한 것이다. 문화의 원형에 상상력을 발휘하면 소설·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등 무궁무진한 문화상품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 일본 국보1호 고류지(廣隆寺) 목조 미륵반가사유상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도 똑같은 미륵반가사유상(국보 83호)이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국보 1호로 내세워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들었다. 철학자 야스퍼스와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앙드레 말로가 “인간 존재의 가장 청정하고, 가장 원만하며, 가장 영원한 모습의 상징”이라는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 천일야화를 간직한 백제금동대향로가 그보다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계적인 문화 원형으로 가꿔 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알라딘의 램프’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문화콘텐츠진흥원, 백제금동대향로의 재발견

    문화콘텐츠진흥원, 백제금동대향로의 재발견

    백제 문화유산의 꽃인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가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등의 디지털 콘텐츠로 부활했다. 중부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허강 교수팀은 30일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인물과 동물, 문양, 복식, 신선사상 등을 토대로 스토리를 가미해 꾸민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동영상, 문자 등 805건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1993년 부여 능산리고분군 절터에서 발굴된 금동대향로는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한 듯한 몸체에 불사조인 가릉빈가, 물고기, 사슴, 학 등 동물 27마리와 두명의 사람이 새겨져 있다. 받침대에는 용 한마리가 있고 뚜껑에는 23개의 산과 북, 거문고, 피리, 비파 등을 연주하는 악사 5명이 배치돼 있다. 또 무인 및 기마수렵을 하는 17명의 인물과 용, 새, 호랑이, 사슴 등 동물 42마리가 표현됐고 뚜껑 위에는 여의주를 갖고 비상하는 봉황이 있다. 금동대향로는 총 208개의 원형을 담고 있어 백제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에 1300여년 만에 부활한 애니메이션은 창왕이 아버지인 위덕왕의 죽음을 슬퍼하고 백제 부흥을 기원하는 내용을 7편에 나눠 담았고, 캐릭터는 5명의 악사들이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현대감각으로 형상화했다. 금동대향로가 현대적 콘텐츠로 개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10억원을 지원하고 부여박물관에서 금동대향로를 정밀촬영한 사진과 관련자료 등을 제공해 이뤄졌다. 작업기간은 1년여가 걸렸고 콘텐츠는 웹사이트(http:///cp0518.culturecontent.com)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부여박물관 관계자는 “그동안 대향로를 도록으로 만들기는 했으나 이런 콘텐츠로 제작하기는 처음”이라면서 “대향로를 국내·외에 알리는데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여박물관은 이 콘텐츠를 활용,‘금동대향로 체험관’을 만드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백제금동대향로의 재발견

    백제금동대향로의 재발견

    백제 문화유산의 꽃인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가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등의 디지털 콘텐츠로 부활했다. 중부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허강 교수팀은 30일 금동대향로에 표현된 인물과 동물, 문양, 복식, 신선사상 등을 토대로 스토리를 가미해 꾸민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동영상, 문자 등 805건의 문화콘텐츠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1993년 부여 능산리고분군 절터에서 발굴된 금동대향로는 활짝 핀 연꽃을 표현한 듯한 몸체에 불사조인 가릉빈가, 물고기, 사슴, 학 등 동물 27마리와 두명의 사람이 새겨져 있다. 받침대에는 용 한마리가 있고 뚜껑에는 23개의 산과 북, 거문고, 피리, 비파 등을 연주하는 악사 5명이 배치돼 있다. 또 무인 및 기마수렵을 하는 17명의 인물과 용, 새, 호랑이, 사슴 등 동물 42마리가 표현됐고 뚜껑 위에는 여의주를 갖고 비상하는 봉황이 있다. 금동대향로는 총 208개의 원형을 담고 있어 백제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번에 1300여년 만에 부활한 애니메이션은 창왕이 아버지인 위덕왕의 죽음을 슬퍼하고 백제 부흥을 기원하는 내용을 7편에 나눠 담았고, 캐릭터는 5명의 악사들이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현대감각으로 형상화했다. 금동대향로가 현대적 콘텐츠로 개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10억원을 지원하고 부여박물관에서 금동대향로를 정밀촬영한 사진과 관련자료 등을 제공해 이뤄졌다. 작업기간은 1년여가 걸렸고 콘텐츠는 웹사이트(http:///cp0518.culturecontent.com)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부여박물관 관계자는 “그동안 대향로를 도록으로 만들기는 했으나 이런 콘텐츠로 제작하기는 처음”이라면서 “대향로를 국내·외에 알리는데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부여박물관은 이 콘텐츠를 활용,‘금동대향로 체험관’을 만드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허 교수는 “철저한 고증에다 상상력을 가미해 캐릭터 등 문화콘텐츠를 제작했다.”면서 “이를 토대로 문화콘텐츠진흥원과 함께 팬시와 상업 애니메이션 등을 만들어 상업화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발해 ‘치미’ 등 90점 남녘나들이

    발해 ‘치미’ 등 90점 남녘나들이

    북한의 국보급 문화재 90점이 최근 금강산을 거쳐 서울에 도착했다. 다음달 12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건무)이 개최하는 특별전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을 통해 남한에서 처음으로 실물이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평양 조선중앙력사박물관(관장 김송현)으로부터 대여한 이들 유물이 금강산에서 인수·인계 작업을 거친 뒤 지난 4일 서울로 안전하게 이송됐다고 8일 밝혔다. 북한에서도 전시되지 않았던 고려 태조 왕건상 등 북한의 국보 50점과 고려 금속활자 등 준국보 11점이 포함돼 있다. 이날 박물관이 간담회에서 먼저 공개한 작품들은 구석기부터 19세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들. 높이 93.5㎝짜리 대형 신석기 독을 비롯, 청동기 뼈피리와 거울 거푸집, 고조선 쇠칼·칼집, 발해 치미(기와 끝에 얹는 용의 머리처럼 생긴 장식물), 고려 신계사 향완(향을 피우는 향로의 일종)과 태조 왕건상,18세기 김홍도의 ‘선녀도’ 등이다. 특히 발해 수도였던 상경용천부 제9절터에서 출토된 높이 91㎝, 너비 91.5㎝, 두께 36㎝짜리 대형 치미는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소장한 치미 2점 중 규모가 큰 것이다. 또 1992년 고려 태조릉인 현릉에서 출토된 태조 왕건 청동상은 제조 당시 비단으로 만든 옷을 걸친 흔적이 있어 북측과 협의, 이번 전시때 하반신을 비단으로 두를 예정이다. 북한 대여품에는 시대별 대표유물들이 골고루 포함됐지만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제작된 국보급 회화와 도자기 등도 대거 포함돼 눈길을 끈다. 특히 안견의 ‘용’, 정선의 ‘옹천의 파도’, 심사정의 ‘매화와 새’, 김홍도의 ‘표범가죽’, 신윤복의 ‘소나무와 매’, 장승업의 ‘게’, 안중식의 ‘수선과 모란’, 양기훈의 ‘붉은 매화’ 등 그동안 사진으로만 보아온 회화 19점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월16일까지 열리며,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옮겨 8월28일부터 10월26일까지 계속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녹색공간] 삶은 오직 틈새에 내리건만/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교수

    작년 여름에 가본 우즈베키스탄의 고도 부하라는 내 가슴에 잔잔한 감흥을 남겼다. 부하라의 명물인 칼랸 미나레트 건축 과정에 나타난 마음의 틈이 내게 들어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12세기 초 왕명을 받아 건축을 맡았던 타지크인 건축가 바코프는 받침돌을 놓고 사라졌다.3년의 수소문 끝에 찾아내어 문초를 하자 “땅이 비옥하고 맑은 샘물이 있는 곳이라 기저를 다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여 자리를 떴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 탑 공사로 인해 건조한 지역에서 야생동물들이 생명을 부지하는 데 필요한 물을 구할 수 있는 장소가 사라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곳에 인간이 축조물을 만드는 행위는 바로 이들 생명의 서식지를 없애는 일이다. 그는 생물의 보금자리에 탑과 구조물을 건립하는 공사가 달갑지 않았다. 대안으로 동물들에게 새로운 곳을 찾아갈 수 있는 시간을 주자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말 없이 사라진 이유였다. 다행히 왕도 한 발 물러서는 마음의 여유를 보였다. 그리고 몇 백 년이 지나 나는 바코프의 탑을 보았다. 내 마음에도 한 줄기 틈이 내렸다. 지난 1년 가까이 맡겨진 숙제를 하기 위해 시간이 나는 대로 우리나라 사찰을 보러 다녔다. 신심을 다지는 일은 아니지만 명승을 보는 여유만으로도 마음이 추슬러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 빡빡한 일상에 벌어지는 틈을 주는 일이니 어찌 가벼운 인연이겠는가? 그러나 절에 가까이 다가서면 언제나 아쉬움이 돋는다. 느슨하던 사찰에 숨 막히는 덧칠이 곳곳에 나타난다. 속세의 빡빡한 마음이 사찰 주변을 파고들어 틈이란 틈은 거의 메워놓았다. 명승고찰과 인연으로 조금 벌어진 삶의 틈으로 뜻밖의 막힘이 내 눈을 점령한다. 흙길은 사라지고 진입로는 물샐 틈 없는 물질로 덮였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으려 일주문 아래로 걷는 발걸음을 허용하는 절은 거의 없다. 차를 타고 빠르게 옆으로 돌아가니 일주문의 존재도 잊었다. 그런 속도에 틈이 들어서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축대를 쌓은 돌 틈에는 시멘트가 자리를 잡았다. 이제 사찰을 끼고 도는 배수로가 정겨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돌 틈으로 드나들던 생명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삶터를 잃은 미물들이 생명을 부지하기나 했을까? 이런 모습은 내 눈을 거쳐 숨 막히는 마음을 낳는다.“자비가 생명인 스님들이 간접 ××을 하는구나. 세상의 때를 씻어내려야 할 부처님의 집이 오히려 병든 중생의 마음에 물들었구나.” 나는 이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이미 그 속에 갇혀 있다. 밤새 헤매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손오공처럼. 틈을 메우는 마음이 절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엔 돈이 가는 곳엔 어김없이 틈은 사라진다. 전통 마을숲 고목의 틈도 하나씩 이상한 물질로 채워지고 있다. 내가 잘 한다고 관여했던 시민단체의 재정 지원도 죽은 나뭇가지를 잘라내고, 나무 구멍을 메워 보금자리를 틀었던 원앙을 몰아내는 쪽으로 가버린 경우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받은 전통 마을숲에서는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은 돈이 고목의 외과치료비가 되어 비슷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고목 틈새에 살던 더 많은 생명이 삶터를 잃었을 터이나 무딘 눈과 빡빡한 마음이 제대로 볼 틈이 없다. 삶의 틈새에서 깨우침을 얻은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지는데 세상에 살만한 틈이 사라지고 있다. 잠시 멈춰 서서 틈새에 삶터를 내렸던 생명은 어찌할지 한 번 정도 생각할 마음과 돈의 틈은 없을까? 빡빡해진 사람들 마음에 틈을 끼워 넣지 않는 이상 생명이 깃들 틈은 하나씩 경관 속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그리고 틈을 만날 기회는 줄어들고, 자라는 세대의 마음은 더욱 빡빡해지겠구나! 삶이 오로지 시간과 공간에 자리잡은 틈새에 내린다는 사실을 너와 내가 깊이 깨칠 틈은 언제나 올까?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교수
  • 문경에는 특별한 게 있다

    문경에는 특별한 게 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가정의 달 5월이면 어디론가 떠나자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의 등쌀, 집안에 홀로 계시는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에 고민이 밀려온다. 그렇다면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에 나서보면 어떨까. 짙어진 신록의 기운을 느끼며 가족끼리 오붓하게 걸을 수 있는 옛길들이 가득한 곳. 할아버지도, 나이 어린 아이도 함께 즐거워하는 곳. 바로 경북 문경이다. 5월을 앞둔 이맘 때 가장(家長)들은 고민(?)에 빠진다. 무슨 행사와 챙겨야 할 날들은 이렇게 많은지.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시간적인 여유도 만들기 쉽지 않은 이 시대의 아빠들을 위해 경북 문경에 다녀왔다.3대(代)가 함께 할 수 있는 여행지로 문경은 전국에서 제일이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박물관과 체험장, 어르신들을 위한 온천과 걷기 좋은 옛길들, 또한 유명한 사찰들이 고루 자리잡고 있다.문경새재, 하늘재를 걸으며 할아버지의 옛이야기를 들어보고, 뜨끈한 온천에서 굽을 대로 굽은 아버님 등도 밀어드리자. 도자기 체험, 철로 자전거, 탄광체험 등 다양한 레포츠의 재미가 기다리고 있는 곳이 문경이다. 또한 4월29일부터 5월7일까지는 한국전통찻사발축제가 열려 더욱 문경 나들이의 재미를 더 할 것이다.상품권이나 현금이 ‘선물´로 제일이라지만 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즐거운 여행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을 우리 가슴속에 남겨 줄 것이다. 글 사진 문경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1 동심을 가득 싣고 파란 하늘 길로 문경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은성광업 등 크고 작은 수십 개의 석탄 광산이 성업을 했으며 전국 석탄 생산량의 13%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탄광지역이었다. 하지만 석탄은 얼마 안가 사양산업으로 밀려나면서 문경의 석탄을 나르던 가은선 철도와 탄광들은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런 가은선 철도와 폐광지역에 요즘은 사람들의 발길이 넘쳐난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가은선에는 가족과 연인이 철로 자전거를 타며 사랑을 속삭이고 폐광에 들어선 석탄박물관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문경에 제일 먼저 도착하면 할 일이 철로 자전거 표를 사는 일이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 표를 구하지 못해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경 진남역(054-550-6375)으로 철로 자전거를 타러 갔다. 어른 두명, 아이 두명이 탈 수 있으며 왕복 4㎞구간을 달린다. 불정역쪽 코스는 낙동강 지류인 영강을 벗삼는 계곡미가 으뜸이고 가은역쪽 코스는 두개의 터널을 지나 맛이 색다르다. 가족과 함께라면 터널을 지나는 가은역쪽이 무난하고 재미있다. 철로 자전거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눈앞에 멈춰 선다. 페달은 물론 브레이크, 안전띠까지 달려 있어 자전거보다 안정감이 훨씬 느껴진다. “하나, 둘, 셋∼” 인솔자의 구령에 따라 발에 힘을 주었다. 철로 자전거의 무게가 60㎏인데도 레일 위를 사뿐히 미끄러져 나아간다. 천천히 움직이던 철로 자전거가 어느새 속도를 붙이더니 제법 빠르게 달린다.“와∼신난다. 아빠 더 빨리 달려”라는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르막 경사도 없어 철로 자전거는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오래간만에 하는 다리운동이라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다리가 뻐근해져온다. 좀 쉬려고 하면 “아빠 뭐해 빨리 밟아.”라고 더욱 재촉한다. ‘그래 봉사하는 김에 죽어라 하자.’며 다리에 힘을 준다. 가운데 앉으신 어머님도 싱그러운 봄바람과 향기로운 꽃향기에 “아범 덕에 내가 호사를 누리는구나.”라며 즐거워하신다. ‘덜컹 덜컹’소리를 내며 달리는 철로 자전거에 가족의 행복을 가득 싣고 내달린다. 갑자기 ‘와∼’하는 비명과 함께 들어선 진남터널. 오색전구로 불을 밝혀놓은 터널로 빨려 들어간다. 서늘한 터널 안의 공기와 희미한 불빛에 정신이 든다. 저기 터널 끝에 환한 세상을 향해 영차 영차 힘차게 철로 자전거는 달려간다. 이렇게 철로 자전거로 왕복하는 시간은 보통 40분정도 걸리며 1대당 1만원이다. 하지만 인근 석탄박물관이나 관광사격장 이용자들은 30% 할인해 준다. #2 파란 하늘로 떠나는 하늘재 경남 문경은 예로부터 산줄기 사이로 수많은 고갯길이 열렸다. 문경새재, 영남대로 등 예전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오르거나 물건을 팔러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이 다니던 많은 옛길들이 남아 있다. 가족과 함께라면 하늘재란 옛길을 추천한다. 하늘재는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를 잇는 고갯길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기는 하나 해발 525m의 고갯길이다. 하늘재 여행은 문경읍 관음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편하다. 하늘재 정상에서 미륵리로 내려가는 고갯길은 숲이 우거진 오솔길로 거의 내리막이라 누구나 편하고 쉽게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포암산 입구를 알리는 커다란 표지가 있는 곳에 주차를 한다. 여기서부터 하늘재의 시작이다. 맑은 솔향기와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에 세상시름을 잠시 묻어두고 걸어 보자. 잔주름이 깊게 자리잡은 부모님 손을 잡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는가. 굵은 손마디가 가녀리게 변한 아버님, 어머님 손을 잡으며 옛이야기 한번 풀어 보자. 또는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의 손에서 대견함을 느껴 보자. 사는 것이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늘재 입구에서 아쉽게도 미륵리 절터까지는 2㎞ 남짓으로 천천히 걸어도 40분이 걸리지 않는다. 미륵리 절터에는 원래 미륵대원이라는 석굴사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사원은 없고 석불입상(보물 제96호)과 5층석탑(보물 제95호),3층석탑, 석등, 당간지주, 돌거북 등만 남아 있다. 또 미륵사터 부근 만수계곡 들머리엔 자연경관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관찰로’가 있다. 탐방로에는 150여 종의 야생화와 습지식물, 수서곤충, 소나무, 참나무 군락 등을 만날 수 있다. 군데군데 의자가 있어 쉬기에 그만이다. 가족과 함께 하늘재를 걸었다면 가장은 따로 할 일이 있다. 가족들이 미륵사터를 돌아보고 있을 때 쉬지 말고 포암산 입구에 세워 놓은 자동차를 가져와야 한다. 문경 온천의 물은 전국에서 제일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문경종합온천(054-571-2002)은 꼭 들러 보자. 지하 900m 화강암과 석회암층에서 끌어 올린 칼슘·중탄산온천수를 쓰는데 온천수가 예사롭지 않다. 마치 진흙을 옅게 풀어 놓은 것처럼 온천수가 연갈색을 띠고 있다. 철분을 다량 포함하고 있는 온천수가 공기와 만나면서 산화되어 색깔이 변한 것이다. 또한 끈끈하고 하얀 미네랄이 떠다녀 ‘더러운’물로 오해를 사기도 한다.6000원 #3 문경 나들이의 재미를 더하는 찻사발축제 문경의 ‘도자기’ 역사가 90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예로부터 질 좋은 흙과 풍부한 땔감, 사통팔달의 요지였던 문경에는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문경에서 발견된 가마터는 82개. 동로면에서 발견된 12세기 청자 가마터를 비롯해 19세기의 것까지 다양한 시대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문경에 얼마나 도자기가 발전했는지를 알려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또한 8대를 이어오고 있는 도자기의 장인, 발물레와 전통 망댕이 가마를 고집하는 도공들이 즐비한 곳으로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문경도자기를 더욱 알아준다고 한다. 이런 도자기의 고향 문경에서 오는 29일부터 5월7일까지 한국전통찻사발축제를 도자기전시관 일대에서 연다. 아이들이 도자기를 직접 빚는 체험은 기본이고 한지·자수·염색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고 각종 다례시연과 인형극, 노래 등 다양한 공연도 펼쳐진다. 또 2005년 8월 문경읍 용연리에서 발굴된 백자공방유적 3기를 문경도자기전시관 망댕이가마 앞에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한편 전통 도자기 분야의 유일한 중요무형문화재인 백산 김정옥 선생과 전통도예명장인 도천 천한봉 선생 등 문경 전통 작가들 24명의 도자기를 전시하며 특별할인 판매행사 등 재미난 이벤트가 가득하다.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054)550-6394 ●여기도 빼놓지 마세요 아이들이 중학생 이상이라면 문경관광사격장(054-550-6446)도 좋다.‘앗’하는 기합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빨간 접시를 향해 ‘빵’하고 총을 쏘아 보는 클레이 사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부서지는 원반에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간다. 만 14세 이상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사격이 가능하며 조교가 옆에서 도와 준다.25발에 1만 7000원으로 저렴하며 권총, 공기총도 쏠 수 있다. 문경 석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려주는 석탄박물관(054-550-6424)은 실제 은성탄광이 있던 곳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폐광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230m의 갱도 체험로에는 붕괴순간, 갱내에서 도시락을 막는 장면 등 다양한 생활모습들이 실감 넘치는 음향과 조명들로 당시의 긴박감이나 생활상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여행정보 문경의 맛있는 음식점으로 진남교반 유원지에 위치한 진남정(054-552-7708)을 추천한다. 문경의 명산에서 채취한 능이버섯, 송이버섯, 싸리버섯, 밤버섯, 석이, 이꽃바라기, 수수버섯, 가지버섯 등 10여 가지를 넣고 사골로 우려낸 육수에 살짝 끓여서 내놓기 때문에 입 안 가득 향긋한 버섯향기가 스며든다.4∼5인용은 5만원,2∼3인용은 3만원으로 가격도 적당하다. 또 게르마늄 성분이 든 거정석을 갈아 사료에 섞어 먹인 약돌돼지 구이와 직접 쑤는 도토리묵·도토리손칼국수로 이름난 문경새재 입구의 ‘초곡관’(054-571-2320)도 유명하다. 찾아가는 길은 영동고속도로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 탄 뒤 문경새재나들목으로 나가면 된다.
  • 청와대 안팎은 ‘문화유산 보고’

    청와대 안팎은 ‘문화유산 보고’

    지난 1일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산의 숙정문 일대가 열렸다. 홍련사에서 숙정문, 촛대바위까지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37년 만의 일이다.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인 북원 자리의 청와대와 북악산 곳곳에는 일반 시민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유적들이 자리잡고 있다. 대통령 경호상 개방될 수 없었던 까닭에서다. 예컨대 일제 강점기에 경주에서 옮겨놓은 석조여래좌상, 임금의 쉼터인 오운정,‘천하제일복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바위, 법흥사터, 만세동방계곡 등 크고 작은 역사의 흔적들이다. 청와대 경호실은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주변의 문화유산을 손수 정리한 책,‘청와대 주변 역사·문화유산’을 펴냈다.29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청와대의 유래에서부터 유적의 사진과 역사·전설까지 자세하게 기록,‘역사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문화관광부의 감수까지 받았다. 경호실측은 “출입이 통제돼 청와대 주변의 문화유산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점이 안타까워 직접 유적들을 사진찍고 자료를 모았다.”면서 “사라진 유적들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석조여래좌상 대통령 관저 뒤쪽에는 높이 1m의 석조 불상이 있다. 서울시유형문화재 제24호이지만 청와대 경내에 있어 접근이 어려운 탓인지 서울시문화재의 홈페이지에는 소재지를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기록하고 있다. 원래 석조여래좌상은 경주 남산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8세기경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과 크기만 다를 뿐 똑같다. 일명 ‘미남불’로도 불린다. 불상은 일제 강점기인 1927년 총독부 관저가 신축되면서 당시 경무대(현 청와대)터로 옮겨졌다. 일본 총독인 데라우치가 조선 문화재에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안 경주금융조합 이사 오히라가 자신의 집 정원에 뒀던 불상을 총독 관저로 가져갔다. 일본 총독의 점유물이 된 것이다. 서울시는 1974년 1월 유형문화재로 지정했으며, 현재 불상의 보호각은 1980년대인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법흥사터 청와대 동쪽 북악산 기슭에 있는 신라 진평왕 때 내옹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현재 주춧돌 등 일부만 남아 있다.1965년 청오 스님이 현재 절터에 증축해 사용했으나 68년 1·21사태 이후 신자들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폐허가 됐다. ●만세동방계곡 법흥사 아래에 있는 계곡이다. 중턱에는 ‘만세동방 성수남극(萬世東方 聖壽南極)’이라고 쓰여진 약수터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재직때 약수물을 손수 떠다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78년 폐쇄됐다. 수남극은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의 별인 노인성(星)으로 무병장수를 뜻한다. ●오운정 대원군이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2.3평 정도 되는 임금의 휴식 공간이다. 청와대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오운정(五雲亭)이라는 편액의 초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정자는 19세기 중엽 성행했던 전통기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 1989년 대통령 관저 대지를 조성하던 중 발견된 가로 2m, 세로 1.3m 규모의 바위에 새겨진 글귀다. 관저 부지가 오래전부터 명당자리였음을 의미한다. 글자는 조선중기 때인 300∼400년 전쯤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해태바위·말바위 북악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해태바위다. 멀리에서도 보이지만 접근할 수 없다. 무게만 55t이나 된다. 전설의 동물 ‘해태’와 비슷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왕조 창건 때 정도전이 물을 상징하는 해태바위가 불의 형상인 관악산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말바위는 북악산의 끝이라 해서 말(末)바위 또는 말과 비슷하다고 해 말(馬)바위라고도 불린다. ●사라진 유적 문관들이 모여 글을 짓고 연회를 즐기던 융문당, 무관들이 활쏘기와 훈련을 하던 융무당은 1922년 5월 철거돼 일본 사찰의 자재로 사용됐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그리움 피는 산수유마을 가다

    그리움 피는 산수유마을 가다

    ■ 이젠 노란 그림 구경 갈까 올봄은 매화와 산수유 꽃을 함께 볼 수 있다. 원래 산수유는 매화가 지고 나면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올해는 일주일 정도 개화 시기가 앞당겨졌다. 그래서 섬진강 나들이를 더욱 즐겁게 한다. 매화마을과 산수유마을의 위치는 차량으로 30분 거리로 아주 가깝다. 매화마을에서 섬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전남 구례군이다.19번 국도를 따라가면 오른쪽에 산동면 지리산온천이 눈에 들어온다. 산수유마을로 유명한 산동면 상위마을은 이곳에서 4㎞정도 떨어져 있다. 생김새가 중국의 촉나라 대추와 비슷한데다 신맛이 두드러져 촉산초(蜀散草)라고도 불린다. 산수유는 다년생 나무로 3월초에 꽃망울을 맺어 3월 중순이 넘어서면 노란 꽃을 활짝 피워 지리산 자락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의 역할을 한다. 이맘때부터 마을전체는 노란 물감을 들인 풍경화를 그려낸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빨라 벌써 노란 꽃잎이 서서히 마을을 물들이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4월2일까지 ‘제8회 산수유꽃 축제’가 열린다. 풍년 기원제를 시작으로 관광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고로쇠 약수 마시기, 산수유 차·술 무료 시음, 산수유 염색 체험, 산수유 엿 만들기, 산수유 기념품 만들기 등 산수유와 관련된 다양한 체험행사를 마련했다. 노랗던 산수유나무는 11월이면 붉은 보석 같은 열매를 맺는다. 빨간 껍질과 씨앗을 분리한 뒤 껍질로 차, 술, 한약재 등을 만든다. 여기서 나는 산수유 열매는 자연적 환경과 토질, 기후가 적합해 육질이 두껍고 시고 떫은 맛이 두드러지며 색이 곱다. 열매는 신장계통 및 당뇨병, 고혈압, 관절염, 부인병 등 각종 성인병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례군청 문화관광과 (061)780-2227. ■ 그래도 아쉽다면 동백 구경 어때요 어렵게 5시간이 넘게 차를 몰고 간 남도의 매화와 산수유 꽃잔치가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면 광양 백계산 자락에 있는 동백림에 들러보자. 통일신라 시절 풍수지리 학자로 유명한 도선국사가 35년간 머물며 입적했다는 ‘옥룡사’란 절터가 있던 자리. 들어가는 입구에 울창한 동백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 이곳의 6000여그루의 동백나무는 도선국사가 심었단다.1878년 화재로 소실된 옥룡사 절터는 진위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동백림의 아름다움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동백림은 3월 중순에 만개를 해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 광양에 갔으면 불고기는 먹어봐야지 광양을 대표하는 음식이 불고기. 일단 맛을 보러 광양읍사무소 뒤쪽 한국식당(061-761-9292)으로 갔다. 인근에 나름대로 원조라는 간판을 걸고 불고기집들이 몰려 있어 주차장부터 달콤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담한 한옥인 한국식당은 4대째 불고기를 하는 집으로 광양에서도 이름이 자자하다. 광양 불고기는 좀 특이했다. 고기에 양념이 거의 없는 정말 선홍빛의 고기가 한접시 나온다. 한우의 등심을 얇게 썰어서인지 고기 군데군데 떡심이 붙어 있다. 백운산에서 나는 참숯을 피워놓은 놋화로에 고기를 굽는다. 맛은 담백하고 부드러웠다.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불고기의 맛은 고기를 손질하는 기술과 양념의 노하우가 맛을 좌우합니다. 갓 잡은 한우의 등심에 붙은 힘줄과 비계를 떼어내고 살코기는 결 반대로 얇게 썰어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양념을 하지요.”라고 주인 박영희(54)씨가 말한다. ■ 남도의 넉넉한 맛에 빠져봐요 누룽지 또한 별미. 남도의 넉넉한 인심을 말하듯 밑반찬도 각종 김치와 젓갈, 전, 나물 등 푸짐하다. 불고기는 1인분에 1만 3000원. 누룽지는 2000원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전남 구례와 광양으로 가려면 대략 3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대전∼진주고속도로를 타고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면으로 가다가 옥곡나들목에서 빠진다.2번국도와 만나 하동 섬진강다리앞에서 861번도로를 타고 섬진강을 따라 올라가면 매화마을과 만난다. 매화마을에서 861번도로를 타고 강을 따라 올라간다. 강 건너로 길이 하나 더 있는데 19번 국도. 화개장터로 유명한 남도대교를 건너 19번국도와 합류, 계속 북상하면 지리산온천관광지가 있는 산동면이 나온다. 온천관광지에서 4㎞가량 떨어진 언덕에 산수유마을로 알려진 상위마을이 있다. 대전∼진주고속도로를 타고 함양나들목에서 88고속도로를 갈아탄 뒤 남원나들목에서 나와 19번국도를 따라 내려오면 산동면과 만난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수원 광교산 등산로 휴식년제 확대

    수원시는 3일 시민들이 즐겨찾는 광교산 환경보호를 위해 내달 1일부터 일부 등산로에 대해 제2단계 부분휴식년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휴식년제에 들어가는 구간은 사방댐∼노루목(1.4㎞), 절터 약수터∼억새밭(0.4㎞), 백년수 약수터∼백년수 정상(0.3㎞), 백년수 삼거리∼천년수 정상(0.3㎞) 등 4개 노선이다. 시는 부분휴식년제 지정구간 등산로에 감시원을 배치하고 입산통제 안내판과 차단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지정된 등산로만 이용해 줄 것을 시민들에게 홍보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시는 지난 2003년 2월부터 제1단계 부분휴식년제가 실시된 경기대∼백년수 약수터(3㎞) 구간과 삼림욕장∼광교헬기장(4㎞) 구간의 등산로를 내달 1일부터 다시 개방키로 했다. 시 관계자는 “1단계 부분휴식년제가 시행된 구간은 토양이 비옥해지고 다람쥐와 청설모 등의 야생동물이 출현하는 등 생태계가 복원되는 변화를 보였다.”며 “자연이 복원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많은 협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해발 582m의 주봉(시루봉)에 능선이 완만한 광교산은 도심에 가까이 위치해 있어 1995년 11월 시민들에게 연중 개방된 이후 평일 2000∼3000명, 휴일에는 최고 1만여명의 등산객이 몰리는 등 등산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고구려인이 지은 日사찰서 ‘부의 상징’ 금도금장식 나와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아스카(飛鳥)시대에 고구려에서 건너온 일족이 세운 것으로 알려진 고마지 절터에서 탑 꼭대기 지붕모양의 장식에 늘어뜨렸던 것으로 보이는 금동제 파편이 발견됐다고 교토부 야마시로쏘 교육위원회가 21일 발표했다. 탑이 완성된 서기 660년대의 것으로 보이는 금동제 장식품은 금도금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교육위원회는 “금도금은 당시 한반도에서 전래한 최고수준의 기술”이라며 “당시 도래한 씨족의 재력과 이들이 창건한 절의 장엄함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장식품은 길이 약 13.5㎝, 너비 4㎝, 두께 1㎝, 직경 15㎝의 둥근 관의 일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기단을 둘러싸고 있는 바닥에 깐 돌 사이에서 출토됐다. 야마시로쏘 교육위원회에 따르면 장식품은 효고현 희메지시에 있는 고쿠분지터 등 몇 곳에서 출토된 적이 있지만 금도금이 선명하게 남아있 는 장식품이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taein@seoul.co.kr
  • [뉴스피플] 개성 영통사 복원 천태종 총무원장 운덕 스님

    “개성 영통사에 이어 다른 북한 사찰도 복원하고, 이들 사찰의 성지순례 및 합작사업을 추진하는 등 대북 민간교류 강화에 앞장서겠습니다.” 지난 5년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원래 모습을 되찾은 개성 영통사에서 최근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남한 불교천태종 및 북한 조선불교도연맹 스님 등 남북한 관계자 500여명이 모여 ‘영통사 복원 낙성식’을 개최한 것. 남북 종교단체가 북한에서 이처럼 대규모 합동법회를 가진 것은 처음이다. 자재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된 뒤 2003년부터 기와 40만장을 제공하는 등 본격적인 복원에 나섰던 천태종 운덕(65) 총무원장은 8일 “천태종 창시자인 의천 대각국사가 출가한 영통사를 500년 만에 복원한 것은 남북 불교의 화합이 이뤄낸 성과”라며 낙성식의 의미를 되새겼다. 운덕 총무원장은 “영통사 복원은 나무 하나, 벽돌 한장까지 손수 쌓아올린 북측의 복원발굴·건축 관계자들과, 기와 한장 한장에 통일의 발원을 담아 정성을 보내준 천태종 신도들이 이룬 것”이라면서 “이를 계기로 단절된 역사를 잇기 위한 북녘 사찰 복원 및 지원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최초의 공동 사찰 복원사업이라는 성과를 거둔 만큼, 남북 민간교류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통사에 이어 개성 국청사 복원도 추진할 예정이다.13세기 몽골 침략때 소실된 국청사는 의천 대각국사가 초대 주지를 역임한 천태종의 본산사찰이다. 운덕 총무원장은 “국청사 복원을 위해 남북이 뜻을 모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절터에 철도가 지나가고 있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전망”이라면서 “오래 걸리더라도 낙성불사의 꿈을 꼭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영통사 등 개성내 불교사찰을 참배하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을 개성관광과 묶어, 불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도록 정례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그는 또 “의천 대각국사의 열반 다례재를 매년 음력 10월 영통사 경선원에서 봉행하는 방안도 협의,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태종은 사찰 복원 및 지원사업뿐 아니라 북한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상호 발전할 수 있는 합작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우선 조선불교도연맹이 운영하는 ‘불련무역회사’를 통해 나물·국수 등 북한의 청정 농산물과 가공식품 등을 도입해 종단 산하 사찰 및 신도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다. 운덕 총무원장은 “판로를 정했으니 내년부터 들여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1차로 평양에 생활필수품인 비누생산공장을 합작으로 설립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며 해주의 석재광산을 남북 공동으로 개발, 석재를 들여오는 사업도 논의 중이다. 운덕 총무원장은 “영통사 낙성식이 끝난 뒤 남북 협력의 분위기가 고조돼 다양한 경협 사업들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면서 “현대아산에 이어 천태종이 북한의 파트너로 인정받은 만큼 민족통일을 위한 불사에 적극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자신의 그림을 그린 거장은 렘브란트로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1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인간적인 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말년에 그린 ‘쾰른 자화상’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오랜 불화를 견뎌낸 여유가 느껴집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다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17세기 말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입니다. 남인이었던 그는 출세길이 막혀 막막했던 심경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허울이 아닌 사실을, 시대를 녹여버릴 듯한 강렬한 눈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의 수염은 떨리는 듯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애석하게도 웃는 얼굴이 아닙니다. 여섯 차례의 이사 끝에 겨우 마련한 집. 그러나 유명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남산은 주한미군의 골프연습장에 가려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헬기 소리로 요란합니다. 일제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굴곡은 이곳에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시 희망을 힘겹게 떠올려 봅니다. 먼 훗날에도 이 땅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고백’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요. 당당하면서도 너그럽고, 가난하지 않아도 겸손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층 고고관·역사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그 곳에 있었다. 후손들에게 기록을 남긴 역사(歷史)시대의 모습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문자를 남길 수 없어 유물로만 자취를 남긴 선사(先史) 시대의 모습도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동관으로 줄지어 이어진다.1층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인 고고관과 역사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구석기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까지 한눈에 동관 1층 101∼110 전시실이 바로 고고관이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전도와 함께 일본·중국·대한민국·세계고고학의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역사부도 등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서울 암사동 출토)는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유물. 이어 ‘요령식 동검’(청동기시대·황경남도 신천 〃),‘산수무늬 벽돌’(백제·충남 부여 〃)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검은 돌처럼 바싹 말라버린 선사시대 ‘도토리’(신석기시대·경남 창녕 비봉리 〃)는 ‘갈판·갈돌’(〃·서울 암사동〃)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500년 쯤 지나면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나 배경 화면을 사고 파는 전자화폐 ‘도토리’가 나란히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이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스치며 지나간다.4∼6세기 고구려 고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는 벽화는 ‘사신도’가 대표하고 있었다. 비록 모사품이지만 청룡·주작·백호·현무의 모습은 그 시절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백제실을 대표하는 ‘백제금동대향로’(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 앞에서는 좀처럼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博山) 굽이굽이마다 상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향로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가야실에서 볼 수 있는 ‘투구’와 ‘말머리가리개’(부산 복천동 〃)는 외국 영화의 전투장비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오래 머문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아니었지만 발해실의 ‘용머리 장식’이나 ‘도깨비 기와’(중국 헤이룽장성〃)는 세상의 모든 나쁜 귀신을 쫓아낼 듯하다. 반면 두명의 부처가 함께 조각된 ‘발해불상’(발해 팔련성 〃)은 이민족도 너그러이 융합했던 민족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딸을 시집보낸 왕도 범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고관을 다돌고 나면 맞은 편 111∼120 전시실인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표적 기록문화유산인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금석문, 문서, 지도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역사관 첫 전시실인 한글실에는 한글의 과학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랜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 하노라.’며 조선 현종 임금이 궐 밖으로 시집간 셋째 딸 명양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도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밑거름이 됐던 ‘동국대전도’가 2.3배 확대돼 바닥 타일로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굽혀 살펴보면서 걸어보면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양 한반도 전체를 걷는 느낌이다.‘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도성도’ 등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옛 지도도 직접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등기제도, 노비의 경제적 가치, 조선시대의 의술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소파나 영상물 상영관 등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시설이 전시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해진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정해진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층 미술관Ⅰ·기증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서예·회화·불교회화 등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Ⅰ’과 국내·외 각계각층 213명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 있는 ‘기증관’이 있다. 특히 미술관Ⅰ에는 교과서에 실려 눈에 익은 작품들도 많아 직접 실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네? 미술관Ⅰ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 춤추는 아이, 행상, 벼타작, 담배잎썰기, 씨름도 등이 눈길을 모은다. 꽉 짜인 원형 구도에 간략한 필선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았다. 작품 크기는 30㎝ 안팎으로 아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씨름도’의 씨름꾼 옆에는 이들의 신발로 보이는 신발들이 내팽겨쳐져 있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 하나는 고급신발로 보이는 고무신이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데도 공평한 승부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경기를 보고 있다.‘허허, 저런’‘빨리 넘겨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긴박한 표정과는 달리 엿판을 매고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위를 치면서 열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얼핏보면 빛 바랜 누런 종이에 검은 잉크가 뭉개져 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면 왼쪽 하단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 오른편 상단 도원의 세계가 보인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한 것이다. 전체적인 경관은 짙은 안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잘 어우러져있다. 꿈과 현실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를 법하다. 두루말이 형태로 폭이 20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당대 지적 권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 양쪽에 자신이 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제발(題跋)뿐만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20여명의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품은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불교회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들이 모여있는 불교회화관에 들어서면 좀 더 화려해진다.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 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웅전 석가모니 불상 뒤에 놓였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석가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사실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불화의 세계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 自讚)’은 날카로움 속에서 정중함과 정성을 담아 쓴 흔적이 엿보였다.‘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에서는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나는 듯하다. ●문화재 사랑으로 만들어진 기증관 기증관은 11개실로 구성됐으며 이홍근 박병래 등 문화재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1946년 이희섭 선생이 금동불상 세 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213명이 청동기 금속공예 회화를 비롯한 국보 6점과 보물 32점 등 모두 2만 2091점을 기증했다. 특히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운영자인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등 일본인 3명도 기증자 대열에 포함돼 있어 눈에 띈다. 기증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국보 904호)를 볼 만하다. 투구는 1500년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제작됐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생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투구는 베를린 박물관이 보관하다가 1986년 뒤늦게 손 선생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 투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라 생각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3층 아시아관·미술관Ⅱ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 3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인기 유물’과 그렇지 못한 ‘비인기 유물’ 사이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봐 왔던 익숙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도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 유물도 전시 3층에는 306∼311호까지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중국·일본의 유물이 전시된 ‘아시아관’이 있으며,301∼305호까지 ‘미술관Ⅱ’에는 불상·청자·백자 등 우리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통 301호부터 관람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오면 바로 왼쪽으로 ‘아시아관’입구인 306호가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들은 306호 ‘아시아관’을 먼저 관람하게 된다. 306호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나가 301호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시아관’을 얼른 둘러본 뒤 ‘미술관Ⅱ’에서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아시아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조금 빨라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팔을 가진 부처 조각상이나, 인자해 보이지 않는 부처의 미소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 박사 수준의 설명을 해 주던 엄마들도 이곳의 잘 모르는 유물들 앞에서는 슬쩍 조용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시아관’에서 잠시 풀 죽은 엄마들은 3층 북쪽에 자리잡은 ‘미술관Ⅱ’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볼것 많고 배울것 많은 고려청자 전시실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로 가득찬 301호 불교조각 전시실을 지나면, 전시된 모든 유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숙한 금속공예(302호)·청자 전시실(303호)을 지나게 된다.304호에는 수수한 느낌의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고 305호에는 백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유물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따로 마련된 방에 모셔진 이 불상은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자체에서 풍기는 위엄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미륵반가사유상 외에도 고려청자 전시실은 관람객들의 ‘정체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사방이 온통 비취색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옮길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또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학생들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진열된 어느 것 하나 국보·보물 아닌 것이 없을 듯한데, 그 가운데서도 국보가 있고 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부터 차례로 관람하면서 올라왔다면 3층이 마지막 장소다. 특히 조선백자들이 전시된 305호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된다면, 어수선하게 관람했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손목없는 부처님…왜? “엄마, 왜 부처님 손이 없어요?” 3층을 관람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301호에 마련된 불교조각 전시실에는 많은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3개 철조불좌상의 양 손목이 없다. 공교롭게도 ‘손목 없는 불상’3개 모두 철로 만들어졌으며 앉아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첫번째 ‘손목 없는 불상’은 301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약 2m크기이며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두번째는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된 것으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며, 세번째는 10세기에 만들어져 경기 포천군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손목 없는 불상’에 대해 불상 전문가인 홍익대 김리나 교수는 “불상의 손목은 다른 곳에 비해 가늘고 몸체에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누군가 고의로 잘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불상의 손 모양새(손갖춤)는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짓는 것으로 부처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수목공원·공연장…가족나들이 ‘딱’이네 “박물관도 즐기고 공원 나들이도 하세요.” 박물관은 자칫 아이들에게는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유물에 서려 있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공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런 염려를 덜어도 될 것 같다.‘거울못’과 10만그루의 수목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이 박물관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아이도,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은 어른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연못·폭포·정원·식물원 등 눈길 박물관 바로 앞에는 도심 공원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못’이다. 거울못은 지름만 150m에 달하는 인공연못이다. 박물관을 설계한 정림건축 박승홍 건축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만나게 된다. 거울못은 성벽 모양을 한 박물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모든 물들이 한데로 모이는 저수지이자 통일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연못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연못과 박물관 정문 사이에는 언덕이 하나 있다. 박물관 정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겨울에는 거울못이 얼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열린마당’은 박물관 중심에 시원하게 배치된 수목 공원이다. 한옥의 대청마루에 해당한다.10만 그루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2호 보신각종, 보물 365호 흥법사 진공대사탑 및 석관 등이 숨어 있다.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공부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설계가의 바람이 담겼다. 박물관 왼편으로 석조물정원, 어울마당, 미르폭포 등 다양한 녹지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뒤편에도 크지는 않지만 녹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통염료식물원에서는 개암나무, 씀바귀 등이 재배된다. 그 옆으로는 의자와 잔디밭 등이 펼쳐져 있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도시락을 먹기에 그만이다. ●뮤지컬 즐기고 도서관서 책도 보고 박물관에는 공연장과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전문 공연장 ‘용’은 805석짜리 중극장이다. 서관에 있다. 박물관 안 공연장으로는 국내 최초다. 클래식,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공연도 연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지난달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금난새·정명화의 공연이 열렸다.4일부터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 연극 ‘이’, 뮤지컬 ‘러브 다이어리’ 등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점은 1층에 8석의 장애인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휠체어로 들어와서 옮겨 앉지 않고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회전무대 등 무대시설이 부족하고 완벽한 음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흠이다. 지적인 관람객들이라면 서관 4층에 있는 도서관이 제격이다.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전문 도서관이다.9만여권의 장서와 6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그러나 한 번도 ‘제 집’을 갖지 못했다. 무려 6차례나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60년 동안 타의에 의해 ‘역마살’에 시달렸다. 전쟁과 문화 홀대의 역사를 아프게 말해주는 대목이다. 국립박물관은 광복이 된 1945년 12월 경복궁 내 건물에서 정식 개관했다. 그러나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요 유물 2만여점은 부산대학교 박물관 등으로 전전해야 했다. ‘전세방 처지’는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53년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남산 분관에 자리잡았다가 55년 덕수궁 석조전에 이어 72년에는 경복궁 현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했다. 86년 박물관은 옛 중앙청 건물로 네번째 이사를 갔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96년 경복궁 사회교육원 건물로 옮겨가 지난해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은 환갑이 돼서야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마련한 셈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교통편 ●지하철 용산∼회기 국철과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정문까지 걸어서 100m도 안 된다. 박물관 입구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0분 거리다. ●버스 버스도 비교적 편리하다. 초록버스 0211번(보광동∼옥수동)이나 빨강버스 9502번(의왕 고천∼신세계백화점)을 타면 된다. 용산가족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도심순환코스)를 타도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승용차 서문으로 입장하면 된다. 주차료는 2시간에 소형차 2000원, 대형차 4000원이다.30분당 각각 500원,1000원의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단 종일 주차는 각각 1만원,2만원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개관 초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 ◆관람료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매표소에서 무료관람권을 발급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서다. 내년부터는 성인(19∼64세) 2000원, 청소년(7∼18세) 10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20인 이상 단체는 성인 1500원, 청소년 500원이다.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어린이박물관도 7∼64세까지 500원을 받는다. 6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돈을 안 내도 된다. 그리고 매달 넷째 토요일과 관람 시간 종료 1시간 전부터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국빈이나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 등도 무료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된 문화 기관 17곳 가운데 5곳을 이용하면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관람시간·입장제한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매표는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한다. 휴관일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이다. 최대 300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최대 허용인원은 1만 8000명이다. 어린이박물관은 더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9시부터 1시간30분 단위로 150명만 들어갈 수 있다. 평일에도 오전 일찍 가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관람 유의사항·편의시설 이용법 박물관 안은 당연히 금연지역이다. 음식물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와도 안 된다. 다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은 출입할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돌려 놓는 것은 상식이다. 전화 통화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다면 차라리 전화 전원을 꺼 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유물과 작품의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삼각대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몰지각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상업적 용도의 촬영도 금지돼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유물을 관람하는 값이다.1000원짜리 두 장 냈다고 제것처럼 만지면 안 된다. 혹시 아이들이 제집처럼 뛰어다니거나 유물을 손대면 따끔하게 혼을 내자. 편의시설도 꽤 갖춰져 있다. 유아나 노약자, 장애인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품보관함도 있어 가방 등을 넣어둘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PDA·MP3플레이어 이용하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최첨단 IT(정보기술) 박물관을 자랑한다. 설비시설은 물론 박물관 관리에 최신 IT 기술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PDA와 MP3 플레이어 등 개인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더욱 편리하고 상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모바일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PDA와 MP3를 갖고 전시품 앞에 서면 단말기가 전시품 위 적외선 발생장치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후 관람객들에게 화상과 음성으로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 준다. 지난해 리움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사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PDA를 켜면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언어 선택 화면이 뜬다. 이후 각각의 박물관 전시실과 관람 코스가 안내된다. 전시실이나 코스를 따라 돌기만 하면 된다. 또 세계 최초로 박물관 네비게이터 기능도 갖췄다. 관람객의 현재 위치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MP3 플레이어도 유물 소개는 PDA와 마찬가지다. 다만 네비게이션만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PDA 300대,MP3 400대를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는 각각 100대 이하만 선착순 대여하고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오전 10시만 되면 바로 동이난다. 대여료는 종일 PDA 3000원,MP3 플레이어 1000원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대학서 잠자던 古유물 빛본다

    대학서 잠자던 古유물 빛본다

    대학교 박물관들이 지난 45년간 발굴해온 유적에서 출토된 구석기∼조선시대 유물들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대학 박물관이 발굴·연구 외에 전시기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깊다. 한국대학박물관협회(회장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는 4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연세대와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45년 발굴유물전 ‘대학 박물관-새로운 역사의 발견자’를 개최한다. 전국 40개 대학 박물관이 지난 45년동안 발굴한 유물 910여점이 전시되는 첫 대규모 연합전이다. 선사∼통일신라 유물은 연세대에서, 고려∼조선시대 유물은 이화여대에서 볼 수 있다. 대학 박물관은 지난 1960년대부터 전국 각지의 유적에서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발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발굴·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외부공개 등 활용하는 측면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 이번 연합전은 대학 박물관의 연구성과를 정리함과 동시에, 발굴유물에 대한 가치를 일반에 공개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전시회에는 경희대 박물관이 발굴한 서울 암사동유적, 한양대 박물관의 연천 전곡리유적, 연세대 박물관이 발굴한 동굴유적인 영월 연당쌍굴 등 전국 143개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검·도자기·옷 등 920점이 전시된다. 백제 지배층이 사용했던 공주대 발굴 흑색마연토기와 전남대가 발굴한 삼국시대 녹유잔탁, 고구려 절터 이름을 알려준 제천 장락사지 출토 장(長)자명 기와 등 시대별 대표유물을 볼 수 있다. 또 순천대와 목포대가 발굴한 청동기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을 비교할 수 있으며, 대학 박물관의 발굴역사를 보여주는 영상과 발굴장비도 전시된다. 배기동 협회장은 “발굴문화재를 대중에 보여줌으로써 유적보존 및 발굴유물 전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대학박물관의 사회적인 역할을 제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경주 남산 2000여기 불법 묘지

    지난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경주 남산에 2000여기의 민묘(民墓)가 불법 조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박형준 의원은 28일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사적 311호이자 국립공원인 남산에 매년 100기의 민묘가 불법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절터·석탑 등 남산의 중요한 유적지 내 위치한 민묘만 1206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의원은 “대부분의 민묘가 만들어진 것은 광복 전후로 추정되나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현재 전체 민묘가 남산 면적의 2%를 차지하는데 계속 방치할 경우 남산이 공동묘지로 변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종수 김상화기자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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