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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상화가 유영국(이세기의 인물탐구:72)

    ◎간결한 선­강렬한 색채 “산의 화가”/데생을 하지않은 성품… 비례로 화면 골격잡아/자신의 그림 천여점 보좌,12일부터 공개 전시/고교2년때 화가 결심… 도일후 대학3학년때 일 미술전 대상 수상 그의 산은 항상 젊다.거센 불길로 타오르거나 짙푸른 숨결로 우거져 있다.화면 여기저기서 문득문득 솟구치는 빛의 반사는 비바람과 일출,일몰을 함축한다.단순하게 선 하나를 그었을 뿐인데도 원근의 면과 지평선의 무한공간,원과 삼각형이 절묘하게 조화된다.잡다한 수사학을 떨친채 그의 산은 높고 꿋꿋한 기상으로 피안을 우러르고 「강렬하고 명쾌한 색채의 변부」는 급류처럼 화면에 휘몰아친다. 그가 산을 그리게 된 것은 「산이 높아 골이 깊다.(산고곡심)」는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그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친 속에서 산만을 바라보며 성장했다.울진의 중첩된 산들은 습곡단층을 이루면서 항상 무엇으론가 꽉차 있었고 그때부터 산은 무한한 신비감과 감동으로 그에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산의 작가」이자 「원색의 연마사」로 대변되는 화가 유영국은 『화가의 눈은 항상 먼곳을 바라볼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먼곳으로 눈을 돌릴때 산과 바다와 자신의 세계가 도저(도저)하게 펼쳐진다.일부러 산을 그리지 않아도 자연에 눈을 돌리고 있으며 그곳에서 절로 『산과 바다가 대어나온다』고 도했다. ○“항상 먼곳을 보라” 강조 「근대한국미술논총」을 보면 평론가 김영나는 「1930년대 동경 유학생들」이란 글에서 『유영국의 경우 19 48년부터 계속 산을 주제로한 그림을 그려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제국미술학교출신이며 판화가인 정규는 『1930년대 자유전을 대표한 추상주의 화가는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이지만 그중에서도 철저한 우리나라의 추상주의 화가는 유영국』이라고 단정하고 있다.그만큼 보이지 않는 변화속에서 산에 대한 그의 사고와 사상이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의 틀속 갇혀 안주하는 형은 아니다.구성과 묘사가 완성되는 타블로와는 달리 초기엔 크고 작은 나무판을 콜라주한 릴리프(부조)적인 방법으로 앵포르멜 경향을보이고 있다가 차츰 기하학적 구성에서 벗어나 넓은 면과 밝은 색채,직선을 선회한 곡선의 이미지로 장식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평론가 오광수는 그의 색채 감정에 대해 『매우 투명한 원색이 주류를 이루면서 화사한 색채의 구성은 경쾌한 사유를 동반한다』고 말한다.모든 것을 극도로 걸러낸 생략과 절제는 이미 그 자체가 아름다움의 극치로서 색채언어를 완결했다는 의미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것은 서울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반때 부터다.일본 유학 안내팸플릴을 보고나서 화가가 될것을 결심했으나 그는 도무지 데생을 해본 경험이 없었다.망설이던 끝에 데생시험이 까다로운 동경(동경)제국미술학교 대신 데생시험이 없는 동경(동경)문화학원을 지망하게 되었고 혼자서 데생을 공부하는 모색과 탐구의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지금도 그는 그림을 그릴때 데생을 하지 않는다.화면에 자리와 크기만 정하고 공간관계 비례관계로 골격을 잡아 나간다.야외에서 스케치를 하는 일도 없고 미대 시절외엔 대상을 놓고 그림을 그린 적도 없다. 당시동경(동경)분위기는 일본 문부성이 주도하는 문전(문전)과 이과전(이과전)이 대립되어 일년 내내 전시회가 열릴 만큼 회화운동이 열기를 띠고 있었다.그는 대학 3학년때인 38년 자유미술가협회 창립전에서 영예의 최고상을 차지 했다. ○한때는 고기잡이 생활 그러나 전쟁말기의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선 면 색」의 삼요소로 형태의 절대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설화성과 감정이 배제된 단순한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그가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의 작가 몬드리안을 좋아하는 이유는 「몬드리안의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 말하는 회화」이기 때문이며 그림은 그래야 된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화가로서의 활동에 제동이 걸리자 그는 43년에 귀국하여 일단 고향에 잠적했다.한동안 고기잡이 배를 타는 엉뚱한 생활을 하다가 해방과 함께 김환기 장욱진 이규상과 신사실파전을 창립,「절제된 율동미로 신비스런 평면세계를 전개」하기도 했으나 또다시 6·25가 터져 귀향,이번엔 죽변에 정착하여 그림을 멈추고 부인 김기순여사와 함께 양조장 경영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새벽부터 밤늦도록 술을 거르기도 하고 마차로 손수 술배달에 나서기도 했다.그러다가 『이만하면 생계에 급급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수 있다』고 생각되자 다시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고향에 두고온 양조장은 그가 그림을 팔지 않아도 될만큼 얼마동안은 생활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처음엔 난로를 피워도 손이 시려운 약수동의 적산가옥에서 몇시간씩 선채로 그림을 그린 것이 화근이 되어 뒷날 골절을 앓게 되었고 79년부터는 화곡동에 거주 7년전부터 건축가인 차남(건)이 지어준 지금의 신방배동으로 이사해 왔다.자녀는 2남2녀.다리가 불편 해서 주로 휠체어를 타고 그림을 그린다. 최근의 그는 산의 형상성을 존중하여 자연으로 귀의하려는 또다른 변모를 보이고 있다. 이는 「동양적인 또는 한국적인 자연관을 지닌 때문」이며 근작들에 이르러「더욱 불타는 색채의 대결」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산은 모든 자연풍경의 시초이자 종말」이라는 러스킨의 말을 절감시킨다.처음은 즐겁고 다음은 깊은 사색을 던지며 상서로운 관유(관유)와 유열의 진동이 화면전체에 창만해 있다. ○휘체어 타고 그림 그려 언제나 시대의 첨단에 서서 선도적 구실을 했다는 자부심을 감추고 갈채를 받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까.그는 최초의 추상작가니 선구자니 하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자신이 좋아서 했을뿐」선구자가 되겠다는 의도는 없었기 때문이다.회화의 개화를 주도한 이후 혼란과 무분별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언제나 의연하게 자신의 세계를 지켜왔고 현재도 그는 시대적인 경향으로 자신만의 회화간을 고수하는 자세다. 큰 키에 희끗한 머리.은근하게 멋이 풍기는 옷차림에 꾸밈없는 경상도 억양이 그럴수 없이 정답다.직업화가로서 고집스럽게 평생을 버텨온 그로서는 실은 커다란 우여곡절을 겪었다곤 할수 없다.그의 절친했던 화우인 장욱진같은 기인기질도 천재적 광기도 신화도 없어 보인다.다만 싫은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고 자신의 모슴을 쉽사리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자 한다.아침마다 동네를 산책하고 한달에 한번 예술원 회의,병째 마시던 폭주습관은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그가 지금까지 그려온 그림은 천여점,드물게 거의가 보관되어 있고 그래서 그것은 한 화가의 위대한 투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직장에 나가듯 하루 8시간의 작업을 지켰으나 요즘은 아침 저녁 한시간씩 그린다. 그의 화실에는 근작 소품들의 손질이 끝나가고 있다.12일부터 갤러리 현대 초대로 실로 10여년만에 60년대부터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한지리에 펼치기 위해서다. 그의 산하는 여전히 푸르르고 보석더미처럼 번쩍이는 화면은 이제 「차가운 추상」을 지난 중첩되는 산주름이 격정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이 경이롭다. 만일 현대의 고전이란 말이 가능하다면 형태와 색채에 있어 독보적일 뿐만 아니라 미술사를 말할때 그를 빼고는 말할수 없다는 차원에서라도 그의 존재는 눈부신 그의 화면만큼이나 「빛나는 고전」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연보 ▲1916년 경북 울진출생 ▲1935년 경성제2고보(현 경복고)졸업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 진학 ▲1937년 일본 독립미술전 출품,제1회 자유미술전 출품(42년까지),N·B·G(NeoBeaux­ArtsGroup)출품(41년까지) ▲1938년 동경문화학원졸업,제2회 자유미술전 회고상 수상 ▲1947년 신사실파 창립회원(유영국 김환기 이규상),서울대 강사 ▲1957년 모던아트 창립전 ▲1958∼61년 현대작가초대전 및 국제자유전 ▲1962년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신상회 창립전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1964년 제1회 개인전(서울신문회관 화랑),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 ▲1966년 제2회 개인전(중앙공보관)한국현대회화 10인전 ▲1967년 동경국제 미술전 ▲1969년 제3회 개인전(신세계화랑) ▲1971년 제4회 개인전(신세계화랑),한국회화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제5회 개인전(현대화랑) ▲1976년 제6회 개인전(신세계) ▲1977년 제7회 개인전(진화랑),예술원상 수상 ▲1978년 살롱 드메초대전(파리시립현대 미술관) ▲1979년 국립현대 미술관초대 유영국 회고전(1백20점 전시) ▲1982년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5년 서울미술대전출품 ▲1988년 88올림픽 기념 세계현대미술제출품 ▲1995년 갤러리 현대초대전 「1965∼1990」 예술원회원,화집 「유영국」(79년 국립현대미술관 출간)
  • 연극연출가 임영웅(이세기의 인물탐구:71)

    ◎56년 「환절기」로 입신… 「완벽 무대」추구/작자의도 밀도있게 접근… 깊이있는 연기 도출/「고도를 기다리며」 초연땐 하루 19시간 맹연습/집팔아 지은 산울림소극장 개관 10돌 맞아 기념공연 막 올려 마른나무 한그루가 텅빈 공간에 물음표처럼 서있는 무대,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이 공허한 대지위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다.그들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리는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다.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란 무엇인가.신인가 죽음인가 행복인가.고도는 그 무엇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일 수도 있다.시간과 공간이 단절된 상황속에서 이 연극은 언제나 시작되고 끝나면서 또 어디서나 생길수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69년 12월,한국일보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초연됐을 때 그것이 베케트의 난해한 부조리극이라는 이유만으로 관객은 이미 긴장되어 있었다.그러나 우려는 기우였다.연출가 임영웅은 관념과 현학이 넘치는 난삽의 「고도」를 시감의 템포로 도해시켰고 객석은 시종 웃음을 터뜨리며 서구 연극의 새로운사조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수 있었다.이후 「고도」는 「손색없는 명작」으로 정착되어 89년 프랑스 아비뇽과 다음해 고도의 본고장인 더블린 연극페스티벌에서 「한국의 고도는 과연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호평을 받았다.이보다 앞서 88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왔던 세계적인 극평가 마틴 애슬린(미스탠퍼드대 교수)은 「베케트의 희극성과 비극성이 섬광처럼 교차된 마지막 장면은 특히 작가의 의도에 밀도있게 접근하고 있음」을 지적하여 진작부터 세계무대의 진출과 입신을 예고해 주었다. ○속물근성 찾을 수 없어 널리 알려지다시피 임영웅의 연출에선 잡다한 상업성이나 분칠한듯한 속물근성은 찾아볼수 없다.관객을 의식한 연희성과 상투적인 작위성은 배제된다.부조리극이든 블랙 코미디든 혹은 뮤지컬이나 관념적인 추상언어라 할지라도 인간 심리의 바닥없는 심연에 끈질기게 파고들어 캄캄한 내부에 도사린 모순과 갈등을 명징하게 그려낸다.예를들어 77년 화사한 비애가 전신에 스며드는 베르코르의 「바다의 침묵」이나 87년 「영국 애인」등은지금도 잊을수없는 정미한 무대로 기억된다. 그에게선 예술가 특유의 동심과 기벽과 기행은 찾아볼 수 없다.번뜩이는 재치나 직감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만약 그런 의외성과 파격을 지녔다 하더라도 「보수적인 체질속에 숨겨진 진보적 감각」은 그의 탄탄한 자존심의 틀에 갇혀 쉽사리 노출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출가 임영웅을 떠올릴 때마다 프랑스 연극계의 거장이며 「황소의 뿔」로 불리는 장 루이바로를 연상케 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것 같다.바로가 그의 부인이자 연극 동반자인 마들렌 르노와 그들의 소극장을 세워 레퍼토리 극단으로 활동한 것처럼 그도 그의 부인인 오징자 교수(서울여대 불문과)와 함께 소극장운동의 전범으로 존재하면서 오교수는 극단 산울림의 희곡번역과 기획등에 참여하고 있다.그리고 연극을 「인간에 의한 공간예술」로 승화시킨 점과 비록 작은 일도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 섬세한 감지,한번 결심한 것은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황소고집등은 바로와 비슷한 노선을 그려나가고 있다.연극의 문제는 무엇보다 「얼음덩어리와도 같은 객석의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결국 얼음을 녹여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그의 연극을 보면 관객은 원로 여석기씨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순한 인사가 아닌 진심의 경의」와 진정한 감동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게 된다. 그의 연극행로는 물흐르는듯 순조롭진 않았다. ○음악가부친 재능 이어 휘문고시절 동랑 유치진의 「사육신」연출을 계기로 연극연출을 지망하게 되었고 56년 극단 신협의 「꽃잎을 먹고 사는 기관차」(임희재작)로 연출데뷔,박진 이해랑에 이은 국립극단 연출을 거쳐 「정서적인 플롯과 사실적인 언어가 거부된」 오태석의 「환절기」를 「오서독스하면서도 감각적인 논리성」으로 형상화하여 연출가로서의 극명한 위치를 다졌다. 그의 예술적 재능은 음악가였던 부친 임태식씨와 음악계의 원로 지휘자인 숙부 임원식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할수 있다.13살에 부친을 잃은 창백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나 조모와 숙부의 따뜻한 보호아래 그는 음악 문학 연극에 접할수 있었고 동랑 유치진 이해랑과의 만남이 실질적인 연극의 촉진제가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무리 비극적인 작품이라도 그는 작품속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별빛 희망과 인간미의 향기를 절차탁마로 가꾸어낸다.그런만큼 탐구정신과 선별의 명철로 작품분석에 침몰하여 자신이 완전히 이를 소화해야만 비로소 배역을 정하고 스태프를 구성한다. 연습때는 연기자의 동선 하나 조명의 밝기,음향의 정확성에 주도면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자로잰듯 확실하고 투명해야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완벽주의는 결벽과 맞먹게 마련이어서 그의 연출노트는 개칠한 흔적없이 추가사항들을 빈틈없이 정리해 놓고 있다.「고도」초연때의 하루 19시간의 연습 강행군으로 「사자」란 별명이 따르기도 했으나 그의 속마음은 만년소년에다 청담을 잃지 않는 순수성이 두드러진다.혹독한 연습과 훈련에 의해 수많은 배우들이 그의 연극을 거쳤고 관객이 그의 연극에 안심하는 것처럼 그들도 극단 산울림 출연을 자랑삼고 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은 언제나 어두운 곡절과 고뇌가 감춰진다.연극이 생계를 해결하는 직업이 될수 없다는 실망과회의에 빠져 그는 한때 연극을 포기하고 방송 프로듀서로 돌아간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쩌면 「마지막 작품」이 됐을지도 모를 「쥬라기의 사람들」(이강백작)로 82년 대한민국 연극제에 참가,연출상 수상기념으로 2개월간의 해외연수길에서 그는 연극은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귀국길에 오르자 남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소극장을 짓는다는 참으로 엉뚱한 결단을 내려 주위를 놀라게했다.집을 팔고 빚을 얻어 누구라도 감히 꿈꿀수 없는 소극장 신축을 서둘렀고 85년 3월 숱한 수난끝에 탄생된 것이 지금의 홍대앞 산울림소극장이다.1년여 이상 극장을 짓느라고 가뜩이나 과로로 균형을 잃은 몸이 더욱이나 기울어진 자세가 되자 그와 절친한 평론가 유민영은 「걸어다니는 피사의 사탑」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런 그의 모습은 실제로 움직이는 연극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여 묘한 「시니컬 포퍼먼스」가 느껴진다. ○연극상 수상만 43차례 이제 극단 창단 25주년과 소극장 개관 10주년을 맞은 그의 감회는 남다르다.피와 땀과 노력의 결정인그의 아지트에서 10년을 하루같이 앙코르 공연을 제외한 26편의 신작공연과 43차례의 연극상 수상,40만 관객을 동원하고 있으나 남보기완 달리 극장운영에 따른 고충속에서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그때도 그를 격려하듯 동랑연극상이 주어졌고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는 다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이 두려운듯 「죽을때까지 연극을 하겠다」고 재삼재사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었다. 개관 10주년기념공연으로 지난 16일부터 윤석화의 일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아놀드 웨스커작)를 필두로 극단 산울림의 신작 창작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맨 마지막에 명편 「고도」를 무대에 올리게 된다. 비튜겐슈타인의 말처럼 그는 수많은 남의 인생을 연출하고 있지만 자기자신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며 그 자신의 인생은 결국 연극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그렇다면 그에게 있어 「고도」란 무엇인가.그가 살고있는 현재이며 또는 불확실성의 미래이고 영원한 의문부호일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25년간 고도와의 외로운 투쟁끝에 「임영웅식 연극」을 성취한그로서는 아마도 고도가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그래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보 ▲1934년 서울출생 ▲1948년 휘문고를 거쳐 서라벌예대 연극영화과 졸업 ▲1956년 극단 신협 ‘세일즈맨의 죽음’(아더밀러)조연출겸 무대감독, ‘꽃잎을 먹고사는 기관차’(임희재작)데뷔연출 ▲1958년부터 세계일보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1963년 동아방송 드라마프로듀서 ▲1966년 예그린악단 뮤지컬연출 ‘살짜기 옵서예’등 ▲1968년 국립극단연출 ‘환절기’등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초연 연출 ▲1970년 극단 산울림 창단 ▲1973년 한국방송공사 입사 ▲1985년 산울림 소극장 신축개관 ▲1989년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고도를 기다리며’초청참가 ▲1990년 더블린 연극페스티벌 참가 ▲1991년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회장 ▲1992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백상예술대상 연출상및 특별상(69·72·86·95년),서울신문 문화대상및 연출상(70년),서울연극제 최우수연출상(82·85년),한국 연극영화 예술상 특별상(85년),대한민국연극제 대상(82·85년),김수근문화상(86년),동아연극상 연출상(86년),서울시 문화상(87년),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87년),이해랑연극상(92년),동랑연극상(94년)등 ‘전쟁이 끝났을 때’‘환상살인’‘인종자의 손’‘덤웨이터’‘위기의 여자’‘홍당무’‘코뿔소’‘꽃피는 체리‘‘블랙 코미디‘‘마리테레츠는 말이 없다’‘밤으로의 긴여로’‘여우와 포도’‘하늘만큼 먼나라’ 뮤지컬 ‘배비장전’‘꽃님이’‘대춘향전’등
  • 만리 정계복귀 시사/등사후 경제개혁 지속 지원

    【홍콩 연합】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절친한 중국의 실세인 만리전인대 상무위원회 전위원장(국회의장격)은 등 사후 보수파들로부터 경제개혁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2일 보도했다. 만리는 그러나 이럴 경우 정부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경제개혁이 간섭받지 않도록만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스탠더드는 전했다.
  • 인니서 동화 강요받은 화교들/“어떤 민족·종족이든 인니시민 되라”

    ◎종교·문화활동 규제… 창씨개명도 요구 인도네시아 화교들은 요즘 중국과의 문화적 유대를 끊고 모범적인 인도네시아 시민이 되라는 정부의 동화정책에 시달리고 있다. 트라이 수트리스노 부통령은 최근 인도네시아의 웨스트 칼리만탄 주정부 관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민족이나 종족이든 인도네시아 시민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인도네시아식 문화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부분이 말레이시아 혈통으로 회교도들인 인구 1억9천만명의 인도네시아인중 화교들은 단지 3%인 5백만명에 불과하다.그러나 이 나라 상권의 70% 이상은 화교들의 수중에 있다.또 화교들은 금융과 재정서비스 분야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절대다수의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은 화교들의 상권 장악에 분개하면서 화교들이 과연 애국심이 있는지를 의심한다. 수트리스노 부통령은 홍콩이나 대만의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인도네시아에서 중국문화가 진흥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정부는 화교들이 그들 조상의 문화를 따르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포함,어떠한 정치적 흥정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화교들은 인도네시아의 헌법에 따라 종교의식과 관련된 제한된 형태의 중국문화만을 지킬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으나 이 마저도 화교 사회내에서만 행사를 치를 수 있다.또한 한자는 정부의 통제를 받는 단 하나의 중국어 신문을 제외하고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중국인들은 설상가상으로 인도네시아식 창씨개명을 강요받고 있다.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화교이며 수하르토 대통령의 절친한 사업동료인 재계의 거물 리엠 시외 리옹도 공식적으로는 인도네시아식 이름인 쇠도모 살림으로 불리고 있다.
  • 홍콩 초대행정장관은 여성?/영 현부총독 진 여사 천거

    ◎양국 모두 신뢰… 등 집안과 긴밀한 유대/기업인 오광정 재계 지지 못얻어 불리 영국은 오는 97년 7월1일 정식 발족하는 홍콩특별행정구의 초대 행정장관으로 현재 홍콩정부의 부총독격인 포정사 진방안생 여사(56)를 중국에 추천했다고 홍콩 연합보가 12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영국소식통을 인용,영국측은 중국 고위층과 만난 자리에서 홍콩특별행정구 초대 총독격인 행정장관 후보자로 중국과 영국 양측으로부터 모두 신뢰를 받고있는 진방안생 여사를 비공식적으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올해 내로 홍콩특별행정구의 초대 행정장관을 확정한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진방안생 여사는 93년 12월 홍콩인으로는 처음으로 크리스 패튼 총독 바로 아래의 부총독격 직위인 포정사에 임명되는 등 홍콩에서 가장 능력있는 여인으로 널리 꼽혀왔고 지난 62년 홍콩정부에 들어온 후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파격적인 승진을 거듭해 왔다. 집안도 명문으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할아버지 방진무는 항일(항일)과 반장개석(반장개석)의 선봉에섰고 안휘성 주석을 지냈으며,외할아버지 방수이는 강소성 무석의 저명한 민족자본가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존경을 받아왔다. 진방안생의 4번째 삼촌 방심량은 의사이자 행정국(행정국) 전 의원으로 중국에 의해 애국지사로 꼽혀왔고 홍콩인들 중 유일하게 등소평 집안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으며 등의 장남이자 장애자인 등박방과 절친해 그가 캐나다로 가서 수술을 받는 것도 주선했다. 홍콩연합보는 초대 행정장관으로는 진방안생 이외에 홍콩의 첫 유선텔레비전인 워프케이블을 경영하고 중국에 대규모로 투자 중인 홍콩재벌 구창집단 및 융풍의 최고실력자 오광정(49)도 거론되고 있으나 홍콩 최대재벌인 이가성이 홍콩특별행정구예비공작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기업인이 행정장관에 나서는 것을 반대했다고 말했다.
  • 다이애나/“찰스재혼 못한다”/이혼한 카밀라와 결합설에 “발끈”

    ◎“두아들과 주말 보내지 말라” 엄포/찰스는 주위계승 위해 “생각 없다” 영국의 찰스 세자와 그의 연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결혼 가능성에 대해 다이애나 세자빈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찰스(46)와 그보다 한살 연상으로 최근 남편과의 이혼을 발표한 카밀라가 요즘 빈번하게 만나는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자 다이애나(33)는 카밀라가 절대로 자신의 두 아들의 계모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신문 투데이는 『다이애나는 이미 윌리엄(12)과 해리왕자(10)가 찰스,카밀라와 함께 주말을 보내는 것을 금지시켰다』고 전하고 있다. 다이애나의 한 친구는 찰스와 카밀라가 왕자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 다이애나가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고 전했다. 찰스와 지난 25년동안 3번의 정사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 카밀라를 내내 미워해온 다이애나는 찰스와 카밀라의 우정이 지속되는 데는 참기로 했지만 카밀라가 왕실의 안방을 차지,두 아들의 어머니 노릇까지 한다는 데 대해서는 격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반응이라고 다이애나의 친구들은 전하고 있다. 일부 왕실전문가들은 찰스왕세자(46)가 카밀라와 재혼하려는 시도는 천년동안 지속돼온 왕조를 무너뜨리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만약 엘리자베드 여왕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면 영국은 찰스왕과 별거중인 다이애나왕후(33)를 갖게 되는 역사상 좀처럼 보기힘든 상황이 불가피해 질 것이다.왕궁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왕과 왕후가 애정문제로 불화를 빚을 것이라는 전망은 카밀라 왕후 또는 왕후라는 칭호가 없는 찰스의 아내 카밀라를 상정하는 것만큼이나 국민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쳐질 것이다. 최근의 여론조사들은 영국 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갈등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헌법은 관습이나 전통에 기초를 둔 불문법이지만 영국 국교회의 독립 이후 군주가 가톨릭 교도와 결혼하는 것만은 절대 금하고 있다.이것만 어기지 않는다면 다른 것은 여론의 강력한 반대가 없는 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일생동안 왕위계승자로서의 수업을 받았기에 문제의 핵심을 누구보다잘 알고 있는 찰스는 어떠한 것도 자신의 왕위계승에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카밀라와 재혼할 계획이 없다』고 절친한 친구들에게 말한 것으로 신문 선이 보도했다.
  • 여야 물밑접촉…「경색해법」찾기 분주/김대통령 귀국앞둔 정가 움직임

    ◎「12·12」 논의 불가속 영수회담엔 유연/민자/“대통령과 담판” 강조… 협상카드 고심/민주 민자당이 다음주 초에 민주당이 불참하더라도 국회를 소집하기로 방침을 세워 놓은 가운데 여야는 김영삼 대통령과 이기택 민주당대표의 회담을 통해 국회정상화의 돌파구를 마련해 보자는 생각에서 잇따른 접촉을 갖고 있으나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민자당◁ ○…김대통령과 이대표의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50대 50이라고 밝히면서도 무산되는 쪽에 무게를 두는 눈치.현안에 대해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김대통령과 이대표가 만나기란 쉽지 않고,만난다고 해서 경색정국을 풀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단은 청와대회담을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일련의 일정표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물밑 접촉을 통해 접점을 찾아 나가고 김대통령이 19일 귀국하면 그 결과를 보고해 결심에 따르겠다는 생각이다.김대통령은 아직 이 문제와 관련해 아무런 지시나 생각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 관계자들은 오는 21일 김대통령이 3부요인과 여야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해 순방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 이기택 대표가 참석할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걸었으나 이대표는 18일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한 고위관계자는 『이대표가 불참하면 다음주에 영수회담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좋다』고 못박았다.이 관계자는 『여야 영수회동은 국정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여야지 쟁점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자리여서는 곤란하다』고 「12·12」문제에 대한 민주당의 「사전보장」요구를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범진 대변인도 이날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12·12문제에 의제를 국한한 영수회담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민자당 관계자들은 민주당이 의제를 미리 정하자고 고집하지 않으면 회담은 쉽게 열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대야 협상창구인 서청원 정무1장관은 『김대통령이 포괄적인 주제로 만나자고 하면 민주당 이기택대표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그러나 그동안 김대통령과 이대표의 4차례 회담이 그랬듯이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아무런 「결실」이 없으면 상처만 깊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강삼재 기조실장이 『영수회담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고 신중론을 개진한 것도 이러한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당◁ ○…18일 아침 열린 긴급확대간부회의를 통해 청와대에서 제의가 오면 회담에 응하기로 가닥을 잡았다.『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 마당에 당사자가 만나자는데 못 만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이는 언뜻 「기소요구를 받아 줄 의사가 없는 한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던 강경자세가 한풀 꺾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그렇지 않다.여권과의 기세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이 보다 강하게 담겨 있다.여권의 회담 제의가 경색정국을 풀기 위한 화해제스처로 일반에 비쳐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복안인 것이다.나아가 영수회담을 장외투쟁의 명분축적용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어차피 여권은 청와대회담을 통해 내놓을 카드가 없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김대통령의 생각에 변화가 없는 한 회담은 실패로 끝날 것이뻔하고 그렇다면 그에 따른 부담은 아무래도 청와대측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에 따라 여권이 먼저 청와대회담을 거론하고 있지만 당장 제의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파행정국을 헤쳐 나갈 관문은 결국 영수회담 밖에 없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따라서 일단 청와대회담에 대비해 기소촉구에 총력을 기울이되 내부적으로 테이블 밑으로 주고 받을 카드를 마련하는 데 고심하고 있다. ◎“「12·12」는 이미 청산된 사건”/미래지향·생산적 정치 아쉬워/「일하지 않는 국회」에 불만/김봉조 민자의원(인터뷰) 국회가 「과거문제」로 장기간 공전하고 있는데 대해 답답해 하는 여당 국회의원들이 많다.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민자당의 김봉조의원은 『일하지 않고 과거에 집착하자는 것이 무슨 정치협상거리가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평소에는 부드러운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번의 국회공전사태에 대해서만은 『생각만 해도 열이 난다』고 했다. 김의원은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 장기구상을 밝힌것은 경제적 의미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할것 없이 모든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생산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라고 풀이하고 『지금도 세계정상들이 모여 국가차원의 경쟁을 하고 있는데 국회가 이래서야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장과 우루과이 라운드 특위위원장도 지낸 그는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 남지 못한다』면서 『모든 것이 세계화,미래화로 가는데 뒤돌아 서서 과거로 가서야 되겠느냐』고 민주당의 공세를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기택대표가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데 대해서는 『역사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노력하고 행동하는 일들에 대해 훗날 평가되는 것이지 누가 만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12·12사건」 관련자에 대한 기소 요구에 대해서도 『준사법부인 검찰에 정치권이 기소하라,말아라 하는 월권적 요구를 해서는 안되며 대통령이 기소를 지시할 사항은 더 더욱 아니다』라면서 『12·12사건은 여소야대였던 13대 국회에서 당시 4당대표의합의 아래 전직대통령을 국회증언대에 세움으로써 끝난 문제』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그때 이기택대표가 5공청산 특위위원장을 맡았고 동료의원인 정호용의원이 희생됐었다』고 상기시키면서 『법적으로 보더라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 만들어진 대통령 직선제 헌법 아래 새정부(6공 지칭)가 출범했다』고 강조 했다. 그는 민주당의 이대표와는 야당 시절 절친한 동료였던 때문인지 이대표에 대한 비판이 인신공격성으로 이해될까봐 상당히 부담스러워 했다.그러나 국회가 공전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이대표가 생산적인 명분을 내세우지 않은 것은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면서 『12·12 때는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 이제와서 갑작스럽게 국회를 볼모로 정치공세를 펴는 것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한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인터뷰 끝에 『내년에 지방자치 선거도 있는데 예산이 제때에 심의되고 통과되지 않으면 나라살림은 말할 것도 없고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도 마비된다』고 지적하고 『추곡수매량도 결정되지 않아 농민들이 벼를 집에쌓아놓고 있다는 사실을 민주당은 아는지나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 민주 이대표 부인 “신장기증” 선행

    ◎남편에겐 “몸이 아파 병원에 간다”/새삶 얻은 환자,수술뒤 알고 놀라 이기택 민주당대표의 부인 이경의여사(49)가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던 독립유공자의 며느리에게 신장을 기증,새생명을 얻게해 흐뭇한 화제가 되고 있다. 이여사는 지난 19일 상오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이식외과장 박기일교수의 집도로 3시간가량의 수술을 거쳐 6년동안 만성 신부전증으로 고생해온 이건자씨(47)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현재 126동 병실에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이씨는 『수술전 장기기증인인 이여사를 몇차례 만나 언니처럼 친하게 지냈으나 전혀 내색을 하지않아 이대표의 부인인지 몰랐었다』며 『앞으로 건강하게 살아가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이여사의 장기기증은 이미 3년전에 결정됐던 것.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이여사는 절친한 친구가 암으로 죽게 되자 91년 9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에 『사후에 각막·신장·간·심장등의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했다.이대표와 가족들도 이여사의 뜻에 공감,장기기증서약서를 써놓은 상태. 서약당시 사후 기증을 약속했던 이여사는 그러나 2개월전 장기기증운동본부측으로부터 생명이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이건자씨의 얘기를 전해듣고 당장 장기를 기증할 것을 결심,지난 17일 입원했다. 이여사는 입원당시 이대표에게 『신장이 이상해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말만 한채 신장기증사실을 알리지 않아 가족들도 전혀 몰랐다가 수술 전날 주치의가 수술동의서를 받기위해 이대표에게 연락을 취해 알게됐다.
  • 떠나는 모습/문정희 시인(굄돌)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던 며칠전,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마침 옆자리에는 서로가 절친한 친구이며 부부인듯한 네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편하고 재미있게 얘기를 나누는 바람에 굳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 대화 내용이 훤히 우리 자리까지 들려왔다. 그분들의 대화 내용은 장차 자신의 비문에 어떤 글귀를 새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그중 유머가 많은 한사람은 자기는 평소에 골프를 너무 좋아했으므로 비문을 골프채 모양의 대리석에다 새겨달라고 부탁하며 다시 한번 껄껄 웃었다. 나는 속으로 『좁은 국토에 묘지를 쓰는 것조차 황감한데 무슨 비석까지…』하고 생각하면서도 그분들의 유머와 밝은 죽음관이 밉지 않았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가까운 두사람의 여성의 얼굴이 언뜻 떠올라 홀로 조금 전율했다. 평소에 누구보다 가까이 지내는 K선생은 아주 감성적인 조각가인데 그분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모든 장기를 필요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는 서명을 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사람,독신의 S교수는가족들이 미리 사놓은 가족묘지 자리를 불쌍한 어느 할머니에게 선물해버리고 자신의 몸은 실험용으로 써줄것을 서명한 것도 나는 우연한 기회에 눈치챘었다. 두사람 모두 깊은 종교인이었기에 가능했을까.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조용하고 부드럽기만한 그분들의 어디에서 그런 용기와 사랑이 나왔는지 진심에서 놀랍기만 하다. 나는 너무 겁장이인 데다가 아직 죽음이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는 철부지이기에 그 두여성에게 진실로 열등감을 느낄 뿐이다. 훌훌 털고 떠나가는 가을 낙엽을 볼때마다 떠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문득 새겨보게 된다.떠나는 모습은 가벼울수록 좋은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래도 너무 괜찮은 친구들을 가졌음에 틀림없다.
  • 이씨 범행공모여부 철야조사/지존파수사/무기 구입알선 경위 등 추궁

    ◎백화점 전산실직원 곧 소환/범인들 미제살인사건 관련여부도 조사 「지존파」연쇄납치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24일 범인들에게 현대백화점의 고액매출자 명단을 건네주고 가스총·전기충격기등 범행 장비를 구입해준 이주현씨(23·서울 동작구 신대방동)가 자수함에따라 범행 개입여부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이씨는 이날 전남 영광군에 있는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상경,하오 9시쯤 서초경찰서로 자진 출두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현대백화점 고객명단은 청계천에서 일수놀이를 하며 알게된 강남 관세청뒤 단란주점 주인인 천모씨(26·여)를 통해 현대백화점에 근무하는 천씨 친구로부터 입수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자신이 직접 을지로 공구상가에서 2백만원을 주고 구입한 가스총·전자봉·전자충격기등과 함께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로비에서 김현양등 3명에게 넘겨주었다고 주장했다. 또 지난 15일 김현양으로부터 저소음권총·적외선망원경등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으며 구입자금 5백만원을 국민은행 온라인으로 수령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러나 이씨가 김현양과는 고향친구이며 이웃 면에 살았던 두목 김기환과도 평소 잘알고 있어 이씨가 이번 사건에 깊히 개입했을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특히 이씨가 영광군 출신들이 대부분인 청계천 세운상가 일대 오락실주변의 불량배들과 어울리면서 용돈을 얻어 썼고 두목 김도 구속될 당시 청계천 일대에서 활약한 사실을 중시하고 있다. 경찰은 이에따라 두목 김이 면회간 김현양을 시켜 이씨에게 무기구입을 부탁했고 이씨가 이에 순순히 응한 것으로 보고 자세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함께 범인들이 지난해 6월부터 지난 4월까지 대전 유성과 성남 분당 등지에서 막노동을 했으며 당시 이들이 또다른 일당 1∼2명과 함께 일하며 가깝게 지냈다는 제보가 새로이 접수됨에 따라 이들이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신원을 확인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이날 범인들이 지난 8월말쯤 백화점 고객 명단과 가스총·대검등을 건네받은 대가로 이씨에게 3백만원을 지급한 사실외에 추가로 첨단범죄장비인 적외선망원경 2개와 저소음총 3개,일본도 3개,조립식 탄알등 6개 종류 9백50만원어치의 물품을 구입키로 한 사실을 밝혀냈다. 범인들이 입금한 5백만원은 살해된 피해자 소윤오씨로부터 갈취했던 8천만원가운데 일부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또 지난 4월쯤 분당일대의 공사장에서 범인들을 목격한 김모씨(48)가 당시 구속된 6명외에 또다른 일당이 함께 일했다는 제보를 해옴에 따라 유성과 분당일대에 수사관을 급파,목격자등을 확보하기위해 탐문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또 범인들의 르망승용차 트렁크에서 발견된 업무노트에서 적외선망원경·저소음권총등 무기의 개수와 가격,이씨의 계좌번호등이 자세하게 적혀있는 점을 밝혀내고 이 필체가 구속된 범인들의 것과 동일한지 여부를 가리기 위해 필적대조 작업도 함께 벌이고 있다. 경찰은 범인들이 갖고 있던 현대백화점 고객 명단이 고객이름외에 고객별 매출액까지 기재돼 있는 중요한 영업서류임에 비춰 백화점 직원이 이 서류의 유출에 관련됐을 것으로 보고 이 백화점 전산실 관계자들을 곧 소환,조사키로 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지금까지 전국 경찰에 접수된뒤 아직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는 강간살해 사건 3∼4건이 범인들이 저지른 범죄유형과 유사한 점을 중시,관련여부를 캐고 있다. ◎이주현과 지존파의 관계/같은 영광출신… 서로 밀접한 사이 지존파일당에게 백화점고객명단을 넘기고 기관총등 대량살상무기를 건네주려한 이주현씨와 김현양은 같은 전남 영광출신으로 평소 절친하게 지내온 것으로 밝혀져 이씨가 범행모의과정에서부터 깊숙이 개입한 혐의가 짙어지고 있다. 역시 영광출신인 두목 김기환도 서울 종로3가일대 성인오락실주변의 같은 고향출신 「건달」들과 평소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이들 「건달」이 청계천일대의 무기브로커들과도 연계돼 있었던 점,이씨가 청계천일대에서 음란비디오판매상등 「건달」생활을 했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두 김과 이씨등이 지연과 친분등을 이용해 일종의 범죄커넥션을 구성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두 김과 이씨,오락실주변 「건달」들이 모두 20대 중반이어서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고 범죄의 세계에 일찌감치 발을 들여놓았던 점등때문에 이들이 쉽사리 공생관계를 이루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씨는 김현양의 영광 백수중 1년후배로 지난해 영광읍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거주한 영광군 백수읍 천정리에서 함께 자란 것으로 밝혀졌다. 고향에서 P고2년을 중퇴하고 92년 봄까지 방위복무를 마치고 상경한 이씨는 현재 서울 동작구 신대방1동 보증금 2백만원,월세 20만원짜리 다세대주택 셋방에서 K모씨(24)와 동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웃 주민들에 따르면 이씨에게 지난 1년여동안 여러차례 친구들이 자가용을 타고 찾아와 『일을 같이 해보자』고 권유해 동거중인 K씨가 걱정해 왔다. 특히 이씨가 일이 없어 쉬고 있던 지난 7∼8월에는 고향친구들이 몇차례 전화를 했고 8월 하순쯤에는 이들과 같이 외박을 하고 용돈까지 받아 썼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찰은 평소 청계천과 종로3가일대에서 같은 고향출신 「주먹」과 친하게 지내면서 이들을 통해 무기브로커들과 접촉하게 된 이씨가 친구 김현양의 소개로김기환등 지존파일당의 범죄행각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심증을 굳혀가고 있다.
  • “일당중 40대 1명 더 있었다”/함께 일하던 공사장인부 진술

    「지존파」 연쇄납치살인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서초경찰서는 23일 구속된 일당들이 올해초 4개월 남짓 성남 분당의 한 빌라 신축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으며 당시 40대후반의 남자 1명도 이들과 함께 생활하다 사건발생이후 자취를 감췄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이 남자를 또 다른 공범으로 보고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은 이 40대남자가 지존파두목 김기환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조직원 이외의 다른 인부들과 어울리기를 꺼려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남자가 적어도 범행모의나 실행과정에 가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공사장에서 이들 지존파를 목격한 인부 김모씨(48·성동구 하왕십리)로부터 『당시 함께 일하던 일당은 모두 7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이번에 구속된 5명은 출퇴근을 했고 두목 김은 40대후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공사장숙소에서 숙식을 함께 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 김 대통령,작가 박경리씨 초청 조찬

    ◎“「토지」 인간상 신한국인과 닮은점 많아요”/“희망 잃지않는 꿋꿋한 삶 인상적”/20년전 사위 김지하씨 구속때 박씨집 방문 인연/손 여사는 여고2년 후배… 함께 기숙사생활도 소설가 박경리씨가 27일 청와대를 다녀갔다.25년동안 원고지 4만장에 이르는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끝낸 것을 축하하려고 김영삼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가 아침식사에 초대해서다. 김대통령이 소설가를 단독으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나눈 것은 이례적이다.김대통령부부가 박씨와 맺고 있는 인연과 「토지」의 집필완료가 한국문단사에 갖는 의미등을 고려한 초청일 것이다.더 나아간다면 「토지」가 만들어낸 인간상과 김대통령이 추구하는 신한국인상의 맥락이 이어져 있다는 점도 일조했다.그런 흔적이 이날의 대화록에서 많이 눈에 띈다. 김대통령은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끈기 있게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야말로 바로 우리한국인의 참모습』이라면서 『이 소설을 통해 재확인 한 것이지만 나는 항상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해왔고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김대통령은 특히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질곡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우리민족에 대한 희망과 저력을 믿어왔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늘까지 견뎌왔다』고 말해 「토지」의 인간상과 스스로의 정치역정을 대비시켜 음미했다. 김대통령은 20년전 박씨의 사위인 김지하씨가 「오적」시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박씨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김대통령의 핵심참모들인 김덕용의원이나 김정남교문사회수석은 김씨의 절친한 친구들이다.또 박씨는 손여사의 진주여고 2년 선배이고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해 대통령내외는 박씨와 남달리 인연이 깊다. 이 때문인듯 이날 조찬회동은 20년전 김대통령이 박씨 집을 방문했던 때와 손여사와 박씨의 기숙사 생활을 회고하며 시종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고 주돈식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김대통령은 먼저 박씨가 25년동안에 걸쳐 등장인물만도 4백명이나 되는 방대한 작품을 쓴데 대해 축하인사를 했다.김대통령은 『암과 투병하면서 25년동안 4만장 전 16권의 원고를 썼다는 것은 우리문단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긴 것으로 한국 문단 전체의 경사이며 큰 성취』라고 치하했다. 이에 박씨는 『「토지」를 쓰는 것이 생활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25년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념으로 써내려 갔다』면서 『특히 민족의 생활사를 그린다는 집념으로 썼다』고 소개했다. 박씨는 또 『집근처에서 밭농사를 지으면서 자연과 접하고 흙을 만지면서 많은 영감과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고 설명 했다.박씨는 『항상 글쓰는 소재의 종착역은 한국 국민은 희망이 있고 저력이 있으며 끈기가 있다는 점을 소설 바탕에 깔았다』면서 문학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대통령은 문화를 통해 선진국이 돼야 한다고 화답했다.
  • 테러범 30명 중동서 악명 떨쳐/「카를로스 체포」계기로 본 수배자

    ◎검거대상 1호… 유태인 습격 주도/아브니달/85년 윤선박 납치… 이라크에 은신/아바스/스위스 민항기 폭파연루로 “유명”/지브릴 지난 72년 뮌헨 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 공격사건으로 유명한 국제테러리스트 일리치 라미레스 산체스(일명 카를로스)의 체포로 국제테러리스트에 대한 검거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현재까지 중동과 관련해 일어난 테러로 서방측에 의해 지명수배된 테러리스트는 30명에 달하며 아래 테러리스트들은 이들중 가장 많은 지목을 받고 있다. ▷아부 니달◁ 팔레스타인 과격파로 본명은 사브리 알 반나이며 테러주모자로 세계 제1 검거대상자중 한 사람이다.그의 조직은 지난 85년 12월 27일 20명을 사망케한 로마와 빈 공항 테러공격과 22명의 유태교인들이 학살된 86년 이스탄불 유대교도집회 테러공격을 비롯 수십건의 잔혹한 테러사건으로 악명이 높다.그는 현재 리비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하메드 아바스◁ 급진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압둘 아바스라는 게릴라 이름으로 통한다.그는 85년 이탈리아 여객선 「아키예 라우로」 납치사건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그는 현재 이라크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메드 지브릴◁ 시리아에 기반을 둔 급진 팔레스타인 지도자로 지난 68년 7월 이스라엘 엘 알 항공기 공중납치사건을 주도한 후부터 테러리스트로서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그의 행동대원들은 지난 70년 2월 취리히에서 텔아비브로 가는 스위스 여객기에 시한폭탄을 몰래 설치해 당시 탑승객 47명 전원을 폭사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오랫동안 2백70명의 사망자를 낸 팬암기 폭파혐의를 받아왔으나 CIA가 리비아 관련사실을 밝혀내 혐의를 벗었다. ▷이마드 무그니예흐◁ 레바논에서 수백명의 미국인,프랑스인,이스라엘인을 살해한 자살폭탄테러와 납치의 배후로 알려진 시아파 회교도의 분파인 지하드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그는 85년 6월 TWA 항공기를 납치해 미해군 잠수부 한명을 살해한 헤즈볼라 행동대원중 한 사람으로 지목받고 있다.지하드의 인질로 윌리엄 버클리 베이루트 CIA 지국장이 지난 84년 3월 16일 납치돼 구금중 살해된 적도 있다. ▷하산 에제딘◁ 무그니예흐의 절친한 동료로 TWA사건과 관련,체포영장에도 이름이 올랐던 적이 있으며 2명이 살해된 지난 89년 쿠웨이트 항공 점보 제트기 공중납치사건에도 연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화이트워터 청문회 새 이슈 없다(특파원수첩)

    ◎밝혀진 사실 재론… 여야간 정략적 입씨름만 최근 미의회의 빅뉴스는 화이트워터사건의 청문회이다.CNN TV는 청문회의 전과정을 거의 매일 생중계하고있다. 지난 26일부터 하원의 금융위원회가 화이트워터청문회를 열고 있는데 29일엔 상원의 금융위원회도 청문회를 개시했다. 화이트워터사건은 클린턴대통령이 아칸소주지사시절 투자했던 휴양지개발회사인 「화이트워터」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이 회사에 공동투자했던 맥두걸이 운영하던 「메디슨신용금고회사」기금이 클린턴의 선거자금 대출상환에 불법사용됐고 메디슨금고가 파산하기직전 주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아 국고에 6천만달러의 손실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클린턴대통령의 후보시절부터 문제가 제기되었으나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대통령취임 6개월만인 작년 7월 백악관법률보좌관으로 화이트워터관련사항을 맡고있던 빈센트 포스터가 의문의 권총자살을 하면서 뉴스의 표적이 되었다.더구나 포스터는 클린턴의 절친한 아칸소 고향친구이며 퍼스트레이디 힐러리여사와 함께 문제의 신용금고회사 법률자문역을 맡았었다. 29일 상원금융위에서 공화당의원들은 청문회가 시작되자마자 백악관 관리들이 화이트워터 불똥이 클린턴대통령에게로 튀지않게하기 위하여 진실을 왜곡,은폐했다며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공화당의 오린 해치의원(유타주)은 『화이트워터문제가 포스터의 사망원인이 되지는 않았다는 피스크특별검사의 결론은 논증이 빈약하다』며 문제를 제기했으나 증인으로 나온 당시 수사경찰들은 한결같이 자살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답변했다. 공화당측이 계속 포스터의 죽음을 물고늘어지자 민주당측은 『여기는 금융위원회지 의학심의위가 아니다』고 논박했다. 이어 공화당의원들은 화이트워터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백악관과 재무부관리들이 접촉,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몰아붙였다. 이같은 백악관측의 부당한 영향력행사의혹은 하원금융위원회가 이미 나흘동안 집중적으로 다루었었다.첫 증인이었던 로이드 커틀러대통령고문은 『백악관과 재무부의 접촉에는 아무런 윤리기준위반도 없었으나 백악관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것은 인정된다』고 말했다.28일엔 맥라티고문(전비서실장)을 비롯,전현직 백악관핵심보좌관 10명이 증인으로 대거 출석,공화당의원들로부터 12시간에 걸친 집중적인 질문세례를 받았으나 이들은 한결같이 『어떤 부당한 행위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의회청문회가 화이트워터사건에 대한 새로운 단서나 혐의를 밝혀낸것은 아직 없고 대부분의 증언도 그동안 언론등에 공개된것이었다. 그럼에도 청문회가 뉴스의 표적이 되고있는 것은 정치적인 의미 때문이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은 이를 과거 워터게이트나 이란콘트라사건처럼 클린턴민주당 행정부의 비도덕성을 부각시키는 기회로 삼으려 하고있다.반면 민주당측은 차제에 이 사건을 청문회를 통해 완전히 걸러버리겠다는 계산이다. 의회청문회가 국민의 공개심판을 유도하는 중요한 무대이긴하지만 그 진행과정은 어차피 정파들의 정략적 계산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을 실감케한다.
  • “김정일과 50분간 미­북문제 논의”/박보희씨 북경회견 일문일답

    ◎“북 세체제 생각보다 확고/남­북·미­북 관계 좋아질것” ­김정일과는 어디서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는가. ▲지난 20일 김일성광장에서 김일성추도식이 끝난 직후 이 광장 두석단에 있는 주석실에서 약 50분가량 만났다.이때 남북문제와 미국­북한문제 등 많은 얘기를 했다. ­김정일의 건강은 어느 정도인가. ▲그는 겉으로는 창백하고 수척해보였으나 악수할때 느끼는 힘이나 가까이선 본 모습은 건강에 이상이 없어보였다.장례식 때문에 최근 피로가 겹친 정도이지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그의 측근들로부터도 들었다. ­북한의 매스컴보도에 따르면 박사장이 평양에서 김정일을 「각하」라고 호칭하고 또 그가 조국통일의 운명을 지고 태어나셨다고 했다는데…. ▲그것은 과장된 표현이고 나는 항상 「김정일 비서님」으로 호칭한다.(그러나 박사장은 내외신회견에서 영어로 얘기할때는 「His Excellency Kim JongIl」(김정일 각하)또는 「Marshall Kim JongIl」(김정일 원수)라는 표현을 썼다) ­방금 영어로 「각하」라고 부르면서도왜 안썼다하는지…. ▲영어로는 일국의 대사에게도 「His Excellency」라는 표현을 쓰는데 북한에 가서는 영어를 안쓰고 한국말을 쓰지 않은가.한국말로는 「김일성 주석님」「김정일 비서님」이라고 쓴다. ­북한에 가게된 경위는. ▲문선명총재와 김일성주석과의 인연을 고려해 문총재와 본인의 이름으로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조화나 보내려고 북경에 왔었는데,13일 상오에 교포들은 평양에 들어와도 좋다며 구두초청이 있었고 기회는 그날 하오 뿐이어서 들어갔다. ­김정일은 한국의 김영삼대통령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전혀 얘기한게 없다. ­김정일에 대한 평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김일성과 김정일은 같은 위치에 있었다.김정일체제는 완벽하고 일사불란해서 혁명1세대에 대해서도 그대로 잘 대접하고 김용순 같은 젊은 엘리트들이 앞으로 대단히 잘해갈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김용순등은 『남쪽에서 우리를 너무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체제가 3일천하니 길어야 3년밖에 못갈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설명했다. ­김일성의 사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 남아있는데. ▲내가 보기로는 자연사가 틀림없다.6월에 카터를 만날때만해도 겉으론 건강해 보였으나 너무 과로했었다.한국에서도 보도됐었지만 김일성은 6월에 18번이나 외국인을 접견했는데 당시 외국인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자리에 눕고 그러다가 다른 사람을 만날땐 건강한듯 나타났었다.이같이 비상한 최후 노력을 하다가 사망 며칠전에는 자기와 같이 오랫동안 고락을 같이했던 절친한 전우들이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어서 충격이 더 컸던 것으로 들었다. ­김정일이 미국에 대해 어떤 얘기를 했는가. ▲클린턴대통령이 김의 사망에 조의를 표한데 대해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그는 특히 김일성이 미국에 가볼 생각이 있었는데 실현하지 못해 안타깝다며 그분의 의지를 받들어 미국에 가서 클린턴대통령과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남북한관계나 북한·미국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김정일은 대단히 배포가 크고 일을 대담하게 처리한다.개방정책도 시험적으로 실시하려다가 압력을 받아 그만 두기도 했었다.
  • 불 사진개척자 나다르 걸작전

    ◎오르세미술관,1850년대 백50점 모아/세계최초 항공촬영·사진인터뷰로 유명 초기사진사의 개척자인 나다르(1820∼1910)의 사진 작품전이 프랑스 파리시내 오르세 미술관에서 9월11일까지 석달간 일정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 특별전시회에서 그의 걸작이라할수 있는 「사라 베른하르트」등 전성기인 1854년부터 1860년까지의 작품 1백50여점을 볼 수 있다. 그의 본명은 가스파르 펠릭스 투르나숑이지만 청년기에 파산한 집안의 생계를 위해 신문들에 「나다르」라는 필명으로 기고를 하면서부터 나다르가 아예 본명이 되다시피했다.그래서 그는 생존시는 물론 사망후에도 여전히 나다르로 통한다. 당시 그와 절친했던 작가 빅토르 위고는 그에게 보내는 편지봉투에 주소도 쓰지 않고 나다르라고만 썼으나 파리의 우편배달부는 정확히 나다르의 집에 편지를 전달해주었다. 나다르가 초기 사진사의 개척자로 꼽히는 것은 당시 대부분의 초상 사진이 뻣뻣하고 격식을 차린 자세로 촬영됐는데 그는 여기서 탈피해 자연스런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다. 비극배우 베른하르트의 어깨를 드러낸 모습을 천사같이 담은 사진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뛰어넘어 경악을 불러일으켰다고 기록돼 있다. 1854년 파리시내에 스튜디오를 처음 연 나다르는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했고 특히 유명한 예술가들의 모습을 사진에 많이 담았다. 시인 보들레르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찬 몽상가로,화가 마네는 거의 야성적일 정도의 강렬한 시선을,드 뒤브로는 몸짓에 중점을 둬 그가 팬터마임 배우임을 단번에 알아차릴수 있을 정도로 「살아있는」 사진을 찍었다. 나다르는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 인물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해 편안함을 주려고 노력했고 명암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상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그래서 그는 명암을 완벽할 정도로 이용한 빛의 명인이자 감정과 본성의 연출가로 불렸다. 나다르는 불굴의 개척자 정신으로 「사상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일을 많이 했다.1855년에는 지도제작과 측량에 사진을 이용하기 위해 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세계최초로 항공사진을 찍었다.지하납골당에 들어가 사진을찍었는가 하면 과학자 유진 세브렐이 말하는 모습을 21장의 사진에 담은 최초의 「사진 인터뷰」를 만들어내화제가 됐었다.
  • 지명유래:3(서울 6백년 만상:34)

    ◎초동/왕자의 난때 방원­진압군 싸운곳/수송동/정도전이 이름 붙였던 수진방서 유래/고덕동/“두임금 못 섬긴다” 충신 이양중이 은거 조선시대는 선비정신이 최고의 덕목으로 꼽히는 사회였다.뜻을 세우면 목숨을 걸고 그 뜻을 관철시키는 선비정신은 충절이나 명현으로 칭송받기도 했고 때로는 멸문지화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의 수송동은 1914년 수동과 송현동이 합해지면서 수자와 송자를 따서 붙여진 땅이름이다.송현동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고갯마루라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수동은 바로 조선왕조의 실세 정도전이 붙였다고 전해진다.정도전은 지금의 종로구청과 교통센터가 들어선 곳에 집을 짓고 「당대에 집주인은 오래장수할 것이요 백자천손이 번창할 자리」라는 뜻으로 수진방이라고 동네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경복궁의 좌향을 놓고 논쟁끝에 무학대사를 물리칠만큼 풍수지리에도 높은 식견을 가졌던 정도전도 자기 운명앞에서는 삼척동자였다.서울정도 5년만인 태조 7년(1398년) 세자책봉을 놓고 조선왕조는 첫번째 혈전을 벌이게 됐다.충직한 신하였던 정도전은 이태조의 명에 따라 후궁 강씨 소생의 막내아들 방석을 지지하려다 방석등과함께 방원에게 피살당하고 만다. 정도전이 터를 잡고 이름까지 붙였던 「정도전터」는 그가 역적으로 몰리자 수만필의 말을 길러내는 사복시터로 전락하고 만다. 근래 수송국민학교가 들어서 미래의 꿈나무들을 배출하면서 「백자천손이 번창할 자리」라는 정도전의 예언을 이어가는듯 했으나 결국 종로구청과 교통센터가 차지해 버렸으니 그의 예언 역시 별것이 아니었음이 증명된 셈이다. 정도전의 죽음은 또하나의 땅이름을 지었다.방원이 사병을 일으켜 두명의 이복동생과 개국공신 정도전,남은등을 살해하자 태조는 펄쩍펄쩍 뛰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제 동생을 둘씩이나 죽이고 개국공신을 살해하면서까지 왕위를 노리는 정안군(정안군 방원)를 살려둘 수 없다.당장 잡아들이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왕위를 노렸던 방원이었지만 처음에는 아버지 군대에 차마 맞서 싸우지 못했다.광화문에서부터 뒷걸음질 치다 지금의 스카라극장까지 밀리게 됐다.막다른 골목에 이른 방원은 결국 칼을 빼 부왕의 군대와 첫 싸움을 벌였다.그때부터 이곳은 「처음 싸움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초전골이라고 불렸다.그후 백성들은 초자를 풀초자로 바꿔 불러 지금의 초동에 이르렀다. 똑같은 옹고집도 때를 잘 만나면 두고두고 칭송거리가 된다.역시 이태조와 태종연간의 일이다.방원과 절친한 친구이면서 고려왕조에서 형조참의까지 지낸 이양중이라는 선비가 있었다.이양중은 방원과 그의 아버지 이태조가 조선을 개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지금의 고덕동의 농촌으로 은거해 버렸다. 왕위에 오른 방원은 옛 우정으로 이양중을 불러 지금의 서울시장인 한성판윤에 임명하려 했다.태종이 친히 고덕동에까지 나가 밤새도록 술잔을 나누며 우정을 받아 줄 것을 간청했지만 불사이군을 고집한 이양중은 태종의 청을 끝내 거절했다. 왕명을 순순히 따르지 않았으니 트집을 잡자면 혼줄이 났으련만 태종은 이양중의 뜻과 덕이 높다고 칭송하고 그의 아들을 불러 높은 벼슬을 제수했다고 한다.이때부터 이양중이 은거했던 일대를 고덕리 혹은 고더기로 불리다가 뒤에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지금의 고덕동이란 이름을 얻었다.
  • 「화이트 워터」 증폭/“백악관 보관서류 파기” 새주장

    【워싱턴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부부의 이른바 화이트워터 스캔들을 조사할 의회청문회 소집요구가 강해지는 가운데 비위혐의의 은폐기도를 시사하는 폭로가 이어짐으로써 이 사건은 걷잡을수 없이 증폭되고 있다. 로버트 피스크 특별검사로부터 소환장을 받은 일부 백악관관리들의 증언시작을 불과 하루 앞둔 9일에는 지난해 7월 자살한 빈센트 포스터 백악관 법률부고문이 보관한 관련서류가 파기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는 추가 폭로들이 터져나왔다. 힐러리 클린턴 여사가 운영하던 로즈 법률회사 사환인 클레이턴 린제이는 9일 피스크 특별검사가 임명된 다음날인 지난 1월21일 클린턴부부와 절친한 사이였던 포스터보좌관의 서류를 동료사환인 제레미 헤지스와 함께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린제이는 파기된 서류가 포스터의 첫 이름자를 딴 VWF라고 적힌 서류함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포스터보좌관의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또 뉴욕 포스트는 이날 포스터보좌관이 자살한 직후 그가 보관중이던 클린턴부부의 부동산투자 관련서류 가운데 추가 묶음이 급히 백악관사무실에서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고 보도했다.
  • 화이트워터 사건/클린턴에 치명타 될까/백악관 진화 노력속 파문확산

    ◎특별검사→보좌관 「워터게이트」 비슷/은폐기도 밝혀지면 예측불허 클린턴미대통령의 화이트워터사건은 제2의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치달을 것인가.특별검사 임명,백악관보좌관 사임,백악관관리에 대한 소환장,백악관의 수사관에 대한 간섭,문서 파기및 분실,언론보도후 해명분주등 20년전 닉슨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사건과 이번 화이트워터사건은 이름뿐 아니라 가는 코스마저 너무나도 흡사하다. 클린턴대통령은 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보좌관들이 이 사건을 조사중인 재무부관리들과 회동한 사실을 몰랐으며 부인 힐러리여사는 이 사건과 관련,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열을 올렸다. 이 사건은 클린턴대통령이 과거 아칸소주지사시절 부동산회사인 화이트워터사에 동업자와 공동투자하면서 비롯된것.동업자 맥두걸이 경영한 메디슨담보회사가 예금주들의 돈을 유용하고 파산했는데 돈을 일부 화이트워터사로 빼돌렸으며 클린턴은 이 회사로부터 대출을 받았었다.클린턴부부가 이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나하는 것이 의혹의 초점이다. 이 사건이 갑자기 확대국면에 돌입한것은 지난 5일.클린턴의 절친한 친구로 화이트워터사건을 관장해온 백악관법률고문 버나드 너스바움이 이 사건을 조사중인 연방수사관들로부터 지난 14개월간 보고를 받아왔음이 밝혀져 이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던것. 또 6일엔 민주당의 중진 댄 로스텐코스키 하원세출위원장이 『연방수사관들이 백악관보좌관들에게 부당하게 사건조사내용을 브리핑한데 대해 필요하면 청문회개최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이어 7일 워싱턴 타임스지가 지난 92년 대통령선거운동당시 화이트워터사의 투자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힐러리여사가 로즈법률회사 사람을 시켜 관련문서들을 파쇄토록했다고 이 법률회사의 전·현직 종사자들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이 폭로기사로 화이트워터 사건은 대출금 유용,부당한 영향력행사 차원에서 백악관이 사건을 은폐하려한게 아니냐는 보다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클린턴대통령은 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법률회사에서는 언제나 많은 서류들을 파쇄한다.당시 그 서류들이화이터워터사와 관련된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면서 『공화당측이 부당하게 정치적인 공격을 하고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사건을 조사하고있는 로버트 피스크특별검사는 10일 너스바움고문을 비롯,마크 기어런공보국장등 10명의 백악관관리들을 소환하여 연방수사관들의 조사에 부당하게 압력을 가했는지등을 신문할 예정이다.과거 워터게이트사건의 특별검사는 의회가 임명했지만 이번엔 클린턴행정부가 자진해서 특별검사를 임명했었다. 클린턴은 당초 자진해서 특별검사를 임명함으로써 적어도 조사가 끝날때까지는 백악관이 여론의 표적에서 벗어날수 있을것으로 계산했었다.그러나 결과는 백악관 고위보좌관들도 시인한것처럼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만셈」이 되었다. 공화당측은 이 「굴러온 떡」을 잘 활용하면 클린턴의 재선을 막을수있다는 판단아래 클린턴이 정직하게 조사에 응하고 진실을 밝히지않으면 돌이킬수없는 재앙을 맞게될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있다.
  • 한 회장 거액 사례금 수수 포착

    ◎검찰 농협비리수사/설계 계약후 1억6천만원 받은듯/측근 통장으로 송금 확인/회장직대 등 소환 비자금 조성 추궁 농협비리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부장 김태정검사장)는 7일 재소환한 한회장으로부터 서울 양재동에 20층짜리 규모의 농협 농산물종합유통센터건물을 짓기 위해 K건축설계회사에 설계비 3억원을 건네 줬다는 진술을 받아 내는 등 수사에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이에따라 K건축의 P모씨 명의의 계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아 계좌추적에 나서기로 했다. 검찰은 설계비 3억원 가운데 P모씨의 동남은행 여의도지점및 농협구좌 등 2개의 통장에 온라인으로 1억6천만원이 송금된 사실을 확인,이 돈의 일부가 한회장에게 커미션으로 주어졌는지 여부를 수사중이다. 검찰은 또 설계용역 발주과정에서 K건축을 한회장에게 소개해 준 K모씨와의 공모여부도 캐기로 했다.검찰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 이민중인 K모씨는 한회장과 이웃사이로 평소 절친한 친분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P씨 명의의 계좌추적에서 한회장에게 커미션을 준 사실이 확인될 경우 횡령혐의로 구속된 한회장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위반(수재)혐의를 추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에따라 8일부터는 은행감독원직원을 지원받아 압수한 P씨의 예금계좌 2개에 대한 정밀추적에 들어갈 방침이다. 한편 검찰은 이날 정기수농협중앙회회장직무대행등 3∼4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지난 5일 구속된 한호선회장의 비자금 조성경위및 사용처,인사비리,공사·대출관련 커미션 수수등을 집중추궁했다. 검찰은 이에앞서 농협의 설계용역을 90%이상 따낸 H환경종합건설 대표 김모씨와 농협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은 기업체관계자 등 5∼6명을 불러 커미션수수여부를 조사했으나 한회장과 이들은 혐의사실을 모두 부인했다. 검찰은 또 한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1백10명의 국회의원이 누구인지가 국민의 관심사로 떠올랐으나 이 부분은 수사대상에서 제외해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은 지원금이 아니고 촌지』이며 『공소시효도 지나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또 한회장및 윤동기전비서실장,수행비서 등 돈을 갖다주라고 지시한 사람과 갖다준 사람 모두를 조사했으나 이들이 『회장지시로 사전에 명단을 작성,돈을 준뒤 태워버렸다』고 완강히 부인해 더이상 수사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농협중앙회는 이날 상오 9시 임원및 간부직원등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농협개혁추진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농민을 위한 진정한 농협으로 거듭 태어 날 것을 다짐했으며 이어 「농협중앙회선거관리위원회」현판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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