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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베르테르 효과/이용원 논설위원

    1774년 독일의 문호 괴테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한다. 약혼한 여성을 사랑한 끝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괴테 자신의 실연 체험에 절친한 친구의 자살을 접목한 것이었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는 연애담이라기보다, 사랑·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절대성을 추구하던 18세기의 시대적 열정 그 자체였다. 소설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그에 못잖은 부작용을 불러왔다. 주인공 베르테르를 흉내내 권총 자살하는 젊은이가 급증한 것이다. 책은 다음해 판매금지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세상에 나온 지 딱 200년 뒤인 1974년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에도 일종의 전염 현상이 있다는 가설을 발표했다. 그는, 자살 소식이 신문 1면 머리기사로 나온 뒤의 두달 동안 자살자 수가 평상시보다 평균 58명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제 주장에 ‘베르테르 효과’라는 이름을 붙였다. 필립스의 가설이 나오자 구미 각국의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검증했지만 결론은 찬반으로 확연히 갈렸다. 어쨌거나 그뒤로 베르테르 효과라는 불길한 용어는 사회학과 정신의학의 영역에 자리를 마련한다.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인 이은주씨가 지난달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자살자가 급증했다는 검찰 발표가 나왔다. 올 들어 이씨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는 하루 평균 자살자가 0.84명이었는데 그뒤 23일동안 2.13명으로 2.5배 증가했다는 것이다. 또 이씨와 같은 자살 방식을 택한 사례가 50%쯤 늘었고, 연령대 별로 보아도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15.5%에서 30.6%가 됐다. 전형적인 베르테르 효과라 할 수 있다. 베르테르 효과의 특징은 전염성에 있다. 저명인사의 자살 소식을 접한 충격이 바이러스처럼 내재해 있다가 특정한 자극이 가해지면 충동적으로 발병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 뉴스를 전하는 언론매체, 또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네티즌 모두가 선정성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로써 자살 대책이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젊은 베르테르’의 죽음이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까닭이 시대상황에 있듯이, 현재 우리 사회에 드리운 어둠을 함께 걷어내야 자살이라는 악질(惡疾)을 잠재울 것이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뮤지컬 ‘헤드윅’ 제작발표회

    뮤지컬 ‘헤드윅’ 제작발표회

    새달 12일부터 대학로 라이브극장을 뜨겁게 달굴 뮤지컬 ‘헤드윅’은 트랜스젠더 록가수의 이야기. 음악이 생명인 작품의 특성에 맞춰 14일 오후 7시 홍대 앞 라이브클럽 롤링홀에서 이색 제작발표회가 열렸다. 주인공 ‘헤드윅’ 역에 송용진, 조승우, 김다현, 오만석 등 네 명의 매력적인 배우가 캐스팅돼 일찌감치 화제가 됐던 터라 이날 공연장의 열기는 웬만한 록콘서트장을 뛰어넘을 정도. 취재진과 뮤지컬 팬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운데 네 명의 주인공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자기만의 색깔을 지닌 ‘헤드윅’을 연기해냈다. 불이 꺼지고 고막을 찢을 듯한 기타 소리가 튀어 나왔다. 현란한 조명에 눈이 부신 틈을 타 등장한 사람은 송용진. 로커 출신답게 하드록 느낌이 강한 ‘헤드윅’의 오프닝곡 ‘테어 미 다운(Tear Me Down)’으로 강렬한 인상을 심었다. 몸짓도 예사롭지 않다. 격렬하게 흔들다가도 흐릿한 눈빛을 한 채 한없이 흐느적거리고 야릇한 행동과 표정도 서슴지 않는다. 두 번째 주자는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조승우. 그의 출연분 표가 일찌감치 동난 상황에서 그가 과연 트랜스젠더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어둠 속에서 느린 걸음으로 조용히 무대 앞으로 다가 선다. 그의 노래는 가장 변화무쌍한 ‘위그 인 어 박스(Wig In A Box)’. 절정을 향해 서서히 끓어 오르는 록발라드는 ‘지킬 앤 하이드’에서 이중성을 완벽하게 소화한 그에게 딱 알맞는 곡이었다.“내 얼굴엔 메이크업/카세트 테이프 노래/가발로 마무리하면 어느새 난 미소 짓는 미인대회 여왕님”. 애교스럽게 노래하며 살짝 짓는 미소는 이날 만큼은 더없이 퇴폐적이다. 격렬한 사운드와 리듬이 분출하자 무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더니만 급기야 객석으로 내려 앉는다. 골이 흔들릴 정도로 한바탕 춤을 춰대자 뒤 편에 자리한 팬들은 자지러진다. 만약 일반 관객이 객석에 앉아 있었다면 그는 아마 조용히 집에 돌아가지 못했으리라. 기자들의 다소 썰렁한 반응에 던지는 콧소리.“너무 조용하시다∼. 오케이 에브리바디?” 이날 네 명의 주인공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트렌스젠더 분위기를 발산하려고 애썼고 조승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승우와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김다현은 이날 가장 중성적인 매력을 뽐낸 주인공. 워낙 곱상하게 생긴 외모에다 목소리도 세 명에 비해 하이톤이라 유리(?)했다.“즐거우세요?정말 즐거우세요?어깨를 들썩거릴 준비 됐나요?들어갑시다∼.” 노래에 앞서 교태를 부리는 듯한 말투와 미소는 그가 다음에 보여줄 퍼포먼스의 예고편이었다.‘슈가 대디(Sugar Daddy)’는 제목처럼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로큰롤. 흥겨우면서도 끈적거리게 달라 붙는 멜로디에 맞춰 엉덩이를 쓸어올리거나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의 노래가 끝난 뒤 여성팬들이 숨넘어갈 듯 “어떻게∼어떻게∼”를 연발할 만하다. 이날의 스타를 뽑으라면 단연 오만석.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그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가 담긴 ‘오리진 오브 러브(Origin Of Love)’를 불렀는데 이렇다할 제스처 없이 강렬한 눈빛만으로 승부했다. 조승우보다 더 큰 갈채와 환호를 받아서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네 명의 남자가 한 무대에 서서 ‘앵그리 인치(Angry Inch)’를 부르는 장면. 모노 드라마인 이 뮤지컬에서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확실한 볼거리였다. 공연은 6월26일까지 대학로 라이브극장에서 펼쳐진다.(02)3485-8740.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오만석 다른 캐릭터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역할이라 도전해 보고 싶었다. 핏 속에 있는 것들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축구하는 거 좋아하는데 허벅지가 더 두꺼워질까봐 못 가고 있다.(웃음) 김다현 음악이 충격적이었다.‘Origin Of Love’ 같은 곡들은 듣는 순간 삶 자체를 허무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조승우 ‘헤드윅’ DVD를 조기 예매해서 사볼 정도로 좋아했다. 내가 받은 충격과 감동을 연기로 꼭 표현해 보고 싶었다. 연습에 들어간 뒤 말투가 느린데 더 느려졌고 행동도 연약해지는 거 같다. 배우에게 없던 성격까지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송용진 ‘헤드윅’을 100번도 더 봤다. 작품을 본 순간부터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고 떠들고 다녔다. 연기력 부족을 걱정하는데 ‘그리스’를 1년하면서 연기에 대한 감잡았다. 연기력을 높이기 위해 트랜스젠더 클럽에 매주 간다.(웃음) ■ 연출가가 말하는 4인 4색 ‘헤드윅’은 누구나 욕심낼 만한 매력적인 역할이지만,1시간 40분 동안 11곡의 노래를 부르고 혼자서 극을 끌고 가야하기에 대단한 에너지가 필요한 역할이다.3개월 넘도록 나홀로 공연을 한다는 것은 초인에게만 가능한 일. 이런 불가피한 이유 때문에 관객들은 같지만 또 다른 ‘헤드윅’을 만날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회를 갖게 됐다. 이지나 연출과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4인4색의 ‘헤드윅’을 들어보자. ●이지나 연출의 품평회 송용진은 록버전의 곡을 가장 잘 소화해낸다. 뮤지컬 ‘렌트’‘그리스’ 등의 작품을 통해 연기파로 변신하고 있다. 조승우는 얄밉다. 연출자가 왜 필요한가 하는 자괴감이 들게 한다. 나이 어린 사람 때문에 입을 턱턱 벌어지는,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김다현은 커밍아웃을 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트랜스젠더적인 요소가 가장 많다. 송용진과 함께 요즘 트랜스젠더들을 살핀다는 미명 하에 이태원 트랜스젠더 바를 뻔질나게 들락거린다.(웃음)성실도가 높다.오만석은 내가 연출한 첫 작품부터 함께 해온 배우다. 인간적·능력적으로 쌓아가는 힘에서 감동을 받는다. 나중에 가장 큰 감동을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삼성 하우젠 컵 2005] ‘광양 빅뱅’ 선후배는 없다

    ‘복수혈전’ 지켜 보라. 6일 팡파르를 울리는 프로축구 6경기 중 단연 하이라이트는 전남과 FC서울의 맞대결이다. 그중에서도 FC서울 이장수(49) 감독이 뉴스의 초점이다. 이 감독은 지난해 전남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는 좋은 성적을 내고도 구단측과의 마찰로 불명예 퇴진했다. 옷을 벗은 뒤 이 감독은 FC서울 사령탑으로 전격영입됐고 이번 개막전에서는 ‘친정팀’을 상대로 명예회복에 나선다. 장소는 4개월전까지만 해도 안방이었던 광양이다. 이 감독과 맞서게 될 전남의 사령탑이 허정무(50) 감독이라는 점도 공교롭다. 허 감독은 이 감독의 연세대 2년 선배로 둘은 절친한 사이. 하지만 지난해 시즌이 끝나고 허 감독이 경질된 이 감독의 후임으로 전남 사령탑을 맡으면서 조금은 어색한 입장이 됐다. 허 감독 역시 지난해 본프레레호의 수석코치에서 물러난 뒤 7년 만에 K--리그행을 선택하며 전남을 복귀팀으로 택했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 채워야 하는 만큼 허 감독으로서도 FC서울과의 개막전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승부다. 허 감독은 “주변에서 개막전을 자꾸 이 감독과의 맞대결로만 결부시키는데 사실 그런 부담은 떨쳐버리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지금껏 두 감독의 대결은 백중세. 지난 96년 당시 허 감독이 이끌던 전남과 이 감독의 천안(현 성남)은 5번 만나 2승1무2패의 호각세를 이뤘다. 두 팀간 전력도 팽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에도 3차례 격돌, 모두 0-0 무승부를 기록할 만큼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개막전에서만큼은 반드시 결판을 내자는 분위기다. 전력상으로는 ‘축구천재’ 박주영을 영입한 FC서울이 다소 앞선다. 부상중인 박주영은 개막전에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샤프’ 김은중과 새로 영입한 ‘용병골잡이’ 노나또가 투톱을 이뤄 반드시 개막전 축포를 쏘아올리겠다는 기세다. 전남은 루마니아 국가대표 출신 스트라이커 아드리안 네아가의 ‘한방’에 기대를 걸고 있다. 전북에서 말을 갈아 탄 국가대표 박재홍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수비라인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자신한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3일 TV 하이라이트]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엄마가 인영을 만나는 것을 본 기준은 뛰어 들어가 인영을 끌고 나온다. 기준 엄마로부터 수준 차이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돌아온 인영은 어릴 적 엄마와 기준 엄마의 일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식구들과 함께 엄마의 산소를 찾은 인영은 무덤 앞에서 기준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보통 사람보다 다섯 배나 손이 큰 대전시 대덕구 홍성수씨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매일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는 두 마리의 개. 녀석들이 필사적으로 담을 넘는 이유는? 담을 넘어야만 볼 일을 볼 수 있는 개 ‘흰댕이’와 ‘복댕이’의 별난 배변습관을 포착했다. ●생방송 쟁점토론(YTN 오후 3시5분) 여야가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으로 특별법을 만들기로 합의해 충남 연기·공주지역에 ‘행정중심 복합도시’가 건설될 것으로 보인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는 정부부처 12부 4처 2청이 옮겨가는 인구 50만명 안팎의 도시 규모로,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거쳐 본격적인 건설에 착수할 방침이다. ●TV 정치교실(EBS 오후 11시40분) 채용비리, 민주노총 대위원회의 폭력사태를 지켜보며 노조활동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 위주의 민주노총 활동을 두고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벼랑 끝에 놓인 민주노총, 그 한계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슬픈연가(MBC 오후 9시55분) 서준영의 정체가 자신의 절친한 친구 최준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우는 충격에 휩싸인다.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친구와 소중한 연인에게 배신당한 건우는 다음날 아버지를 찾아가 혜인과의 결혼을 허락한다는 조건으로 음반사업을 포기하고 KNT후계자로 들어오겠다고 선언하고…. ●인간극장(KBS2 오후 8시55분) 영남씨는 얼마 전부터 돌봐주고 있는 노숙자 명균씨와 아들 성일이를 데리고 봉화로 향한다. 이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봉화에 꾸려 주려는 것. 명균씨는 그동안 못받은 임금을 받으러 동분서주하지만 허탕만 치고, 영남씨는 그런 명균씨의 등을 다독이며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고 달랜다.
  • 수필가 한흑구의 고향 ‘포항’

    수필가 한흑구의 고향 ‘포항’

    “보리, 너는 차가운 땅 속에서 온 겨울을 자라왔다(중략). 보리다! 낮은 논에도, 높은 밭에도, 산등성이 위에도 보리다. 푸른 보리다. 푸른 봄이다.(중략)보리, 너는 항상 순박하고 억세고 참을성 많은 농부들과 함께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보리, 하면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국내 수필문학의 대가로 불리는 한흑구(韓黑鷗·본명 세광·1909∼79년)이다. 그의 대표작 ‘보리’가 지난 60,70년대 국정 중등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등 널리 알려져 있어서다. 수필을 시와 같은 미문(美文)으로 쓴 작가로도 유명하다. 수필가는 남북 두 체제에서 작품활동을 한 문인이다.35년 평양에서 월간종합지 ‘동광’에 단편 ‘황혼의 비가’를 발표하며 데뷔했으나 39년 흥사단사건으로 피검된 이후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다 광복되던 해 월남해 수필 창작 등에 전념했다. ●포항에서 30여년간 작품활동 월남후 3년간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는 1948년 동해의 푸른 바다가 펼쳐보이는 경북 포항으로 삶터를 옮겼다. 아마 바다와의 인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수필가는 자신의 필명을 흑구(검은 갈매기)로 했다. 일제 강점기인 29년 미국으로 유학길을 떠날 때 태평양 뱃길 선상을 외롭게 나는 검은 갈매기 한 마리를 보고 자신의 신세에 비유해 붙인 것이다. 그는 포항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는 동해가 좋아 평생 포항에서 안빈낙도의 은둔생활을 했다. 이를 두고 미당(未堂)은 “선생은 스스로 평생을 귀양살이라도 능히 해낼 수 있는 묘한 은둔의 사색가로 사셨다.”고 평했다. 이곳에서 수필가는 100여편의 작품을 발표했다.58년부터 17년간은 영일만에 자리한 포항수산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보리’를 잉태한 영일만 수필가가 ‘보리’를 쓸 당시 포항은 지금의 서산(西山)에서 내항 사이를 시가지로 하는 조그마한 어항이었고, 그 주변은 거의 보리밭이었다. 특히 그가 이육사를 비롯한 다수의 문인들과 자주 찾았다는 영일만의 구만리(九萬里)는 온통 보리밭 물결을 이뤘다. 동네 처녀들이 쌀 한 말을 다 못먹고 시집간다고 했을 정도로 보리밭 천지였다. 포항문협의 창립멤버이자 한흑구 생존시 절친했던 박이득(64·아동문학가)씨는 “흑구 선생은 푸르른 바다와 보리가 조화를 이루며 넘실대는 영일만 일대에서 주로 작품 구상을 했었다.”면서 “‘보리’를 쓸 수 있었던 영감도 영일만에서 얻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보리 작품속의 구절 대부분은 흑구 선생과 함께 영일만의 보리밭을 거닐며 이야기로 나누던 것들”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금 영일만 일대의 들녘은 파밭으로 그득하다. 보리밭은 그저 일부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80년대 이후 주민들이 보리농사가 돈이 되지 않자 파 재배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가 몸담았던 수산대학도 아파트 신축 부지로 팔린 뒤 얼마전 헐리고 말았다. 다만 수필가가 생전에 그토록 사랑했던 동해의 푸른 파도만이 남았다. ●포항문학의 개척자 수필가가 이곳에 정착할 무렵만 해도 인구 5만의 포항은 문화의 변방이었고, 문학의 불모지였다. 하지만 그가 이주한 뒤 문학적 토양을 일궈 싹을 틔우면서 포항문학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51년에 20여명의 신진 문인들로 구성된 포항문인협회가 결성되기에 이르렀고, 이듬해 시 동인 ‘효안’,55년 ‘청패’ 동인이 탄생됐다. 67년에는 흑구 선생을 정점으로 한 ‘흐름회’란 향토문화단체가 출범했다. 지역 문화행사를 주도하고 소속 회원들이 제각기 문학작품집을 내놓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문협 포항지부가 정식으로 출범하던 해인 79년 수필가는 향년 7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묘지는 영일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흥해읍 죽천2리 언저리에 마련됐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뒤인 81년에 나온 포항지역의 대표적 문학지인 포항문학 창간호는 온통 한흑구의 특집으로 꾸며져 그가 포항문단에 남긴 큰 자취를 증언한다. 그의 후학들은 83년,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청하골 보경사 인근 길섶 숲속에 문학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보리’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흑구가 이 지역 문단에 남긴 업적이 수록돼 있다.88년부터 매년 문협 포항시지부 주최로 구만리에서 ‘보리누름문학제’가 열려 작가의 문학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바닐라 스카이(MBC 오후 11시40분) 독특한 화법으로 스페인 최고의 흥행과 함께 평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오픈 유어 아이스’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 아메나바르 감독은 그 뒤 할리우드로 진출해 공포영화의 신기원을 이룬 ‘디 아더스’를 연출하기도 했다. 원작에 반해 직접 판권을 사들인 배우 톰 크루즈는 제작과 주연을 맡기로 한 뒤 ‘제리 맥과이어’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카메론 크로 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했다. 출판사와 잡지사를 운영하는 데이비드는 타고난 매력과 든든한 재력으로 많은 여성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절친한 친구 브라이언의 애인인 소피아(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나게 되고, 바로 소피아가 자신이 찾던 사랑임을 깨닫는다.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데이비드의 섹스 파트너였던 줄리(카메론 디아즈)는 질투에 사로잡혀 데이비드와의 동반자살을 시도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심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데이비드. 얼굴과 기억을 원래대로 복원시켜 주는 생명업체의 도움으로 옛날로 되돌아가지만 줄리의 환상은 소피아의 모습으로 악몽처럼 나타난다. 데이비드는 급기야 줄리를 목졸라 죽이지만 실제로는 소피아인 것으로 드러나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교묘히 교차되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속에서 수수께끼를 푸는 듯한 두뇌게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작품. 줄거리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나, 어둡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원작을 경쾌하고 스릴 넘치는 할리우드의 색깔로 대체했다.2001년 작품.135분. ●나의 작은 회사(EBS 오후 11시) 목수로 목공소를 차린 이반은 그저 열심히 일만 하는 소시민이다. 하지만 어느날 목공소에 불이 나고, 보험회사가 자신을 속이자 분노가 폭발한다. 보험회사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을 돕기 위해 또 다른 보험회사 브로커 맥심이 찾아오고 그들은 친구들과 함께 유머러스하면서도 기발한 범죄를 공모한다. 패거리가 나름의 엉뚱한 범죄극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웰컴 투 콜린우드’‘레이디 킬러’ 등을 연상시키는 작품. 지금까지 프랑스 영화계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사회파 코미디로, 몬트리올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뤼크 베송 감독의 ‘서브웨이’의 시나리오를 쓴 피에르 졸리베 감독의 1999년 작품.96분.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16세이하 청소년대표팀 박경훈 감독

    [스포츠 라운지] 16세이하 청소년대표팀 박경훈 감독

    ‘오버래핑’을 아시나요. 오버래핑이란 수비진에 있다가 순식간에 상대 진영 깊숙이 파고드는 것을 말한다. 드리블 능력은 기본이고 스피드를 갖춰야 가능한 기술이다. 1980년대 한국축구에서 ‘오버래핑의 달인’은 단연 박경훈(44) 16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이다.100m를 11초대에 주파하는 빠른 발에 크로스(당시는 센터링)능력까지 갖춘 그의 오버래핑은 상대팀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만 10년을 대표팀 붙박이 수비수로 활약했던 박 감독은 외국연수, 프로팀코치, 고교감독을 거쳐 지금은 축구꿈나무를 육성하는 일을 최일선에서 맡고 있다. ●장래희망 화가에서 축구선수로 박 감독은 서울 수유중에 다닐 때 그림을 잘 그려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1년간 쉬면서 예고진학을 준비했을 정도. 그때 수유중에 축구부가 새로 생겼고, 박 감독은 졸업은 했지만 스카우트돼서 1년간 ‘부정선수’로 뛴다. 원래 그림뿐 아니라 축구, 야구, 농구 등 모든 운동을 잘 했기 때문에 축구선수로도 단숨에 두각을 나타냈다. 선수경력이 짧아 특기자가 될 수 없었던 그는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을 못하게 되자 대구 청구고교로 진학한다.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1학년때 부터 주전을 꿰찼다. ●1980~1990년 붙박이 대표팀 수비수 80학번인 박 감독은 대학(한양대) 1학년 때인 80년부터 90년까지 만 10년을 대표팀에서 뛰었다. 오른쪽 풀백을 주로 맡았지만, 나중에는 리베로 역할도 했다. 별명은 털이 많다고 ‘원숭이’. 이때 같이 뛰었던 스타플레이어들이 최순호 변병주 정해원 이태호 등이다. 특히 변병주 현 청구고 감독과는 청구고 동기동창에 대표팀도 같이 들어갔고, 나올 때도 같이 나온 절친한 사이다. 포지션도 변 감독이 오른쪽 윙, 박 감독은 오른쪽 풀백이었다. 얼굴과 체격도 비슷해, 박 감독이 오버래핑해서 올려준 크로스를 변 감독이 날린 것으로 잘못 아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박 감독은 그래서 변 감독을 만나면 요즘도 “네가 유명해진 것은 다 내 덕”이라고 농담을 건넨다. ●“변병주는 또 다른 나?” 모교인 청구고와는 인연이 깊다. 프로팀(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하다가 나온 96년 모교인 청구고 감독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당시 선수가 7명뿐이라 팀이 해체되기 일보직전이었죠. 거절했어야 했는데 내 인생을 180도 바꿔놓았던 모교라는 생각에 결국 (감독직을)수락했죠.”박 감독은 이후 3년간 준우승만 3번을 차지하며 청구고를 축구명문교로 재건한다. 청소년 대표였던 신동근을 비롯,‘한국판 비에리’ 김동현,‘차세대 스트라이커’ 박주영 등이 다 이 학교 출신이다. 특히 박주영은 박 감독이 반야월초등학교 때 처음 재능을 발견해 청구중으로 스카우트해 왔고, 이후 박 감독에 이어 청구고감독을 맡은 변 감독이 본격적으로 조련시켜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박 감독의 아들 새결(16)이도 청구고 1학년으로, 친구 변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다. 아버지와 달리 183㎝의 당당한 체격으로 포지션은 센터포드.“변 감독이 ‘어쨌든 몸은 분데스리가급’이라고 평가한다.”며 박 감독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딸 해나(17)도 중학교 때 1년간 여자축구를 했었다. ●박주영 초등학교때 발견 스카우트해 청구고 감독을 그만두고는 올림픽대표팀 코치를 거쳐 지난해 12월부터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3월에는 프랑스 몬테규에서 독일 잉글랜드 프랑스 카메룬 등 8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가 열리고, 한국팀도 출전한다.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인 만큼 성적보다는 위축되지 않는 플레이를 하도록 독려할 생각이다. “축구꿈나무를 키워 세계의 벽을 넘기에 손색이 없는 스타로 만드는 게 꿈입니다. 잘만 다듬으면 세계적인 선수로 클 수 있는 아이들은 많습니다.” 박 감독은 그러나 “최근에 유소년 선수를 보면 축구기술은 전반적으로 향상됐지만 특징을 가진 선수를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능력있는 선수를 찾아 내 자기만의 특징을 가진 선수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글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박경훈은… ▲생년월일:1961년 1월19일 ▲출신학교, 팀:대구 청구고-한양대-포철-럭키금성-포철 ▲대표경력:국가대표(1980∼1990년) ▲프로경력:134경기 출장,4골(1984∼1992년) 프로축구 MVP (1988년) ▲주요 국제대회 참가경력: 1981년 스페인 월드컵 아시아예선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1984년 아시안컵 1986년 멕시코월드컵 1988년 서울올림픽, 아시안컵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베이징 아시안게임 ▲지도자경력: 잉글랜드 지도자유학(1993년) 전남 드래곤즈코치(1994∼1996년) 대구 청구고 감독(1996∼2000년) 부산 아이콘스코치(2000∼2002년) 올림픽대표코치(2003년 1월∼2004년 8월) U-16대표팀 감독(2004년 12월∼)
  • [이경기의 스크린1인치]안녕이라고 말하지마 ㅠ.ㅠ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축배를 올리자!’ 졸업 시즌이나 연말 송년회 모임에 단골로 등장하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은 전 세계의 애창곡이다. 영화에서도 당연히 이별이나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는 장면에서 단골로 쓰이고 있다. 산타 클로스의 선물 보따리 이동을 돕는 작은 요정 엘프의 나라로 갔다가 자신이 인간임을 깨닫고 뉴욕에 있는 출판업자 부친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해프닝 극이 ‘엘프’. 극중 모든 사건이 해결되고 버디(월 페럴)가 의붓 엄마 에밀리(매리 스틴버겐), 의붓 남동생 마이클(다니엘 테이) 등과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때 백화점에서 사귄 버디의 여자 친구 조비(주이 데스채널)와 아버지 월터(제임스 칸)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합창하는 노래가 ‘올드 랭 사인’이다. 2차 대전 당시 영국군 장교 로이(로버트 테일러)와 마이라(비비안 리)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영화가 ‘애수’(‘Waterloo Bridge). 휴가를 나왔다가 공습 경보를 피해 지하실로 피신했다가 운명적으로 알게된 미모의 발레리나 마이라. 런던 캔들 클럽에서 가슴 설레이는 첫 데이트. 저녁 만찬을 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는 장면에서 레스토랑 안의 적막감을 깨트리는 멜로디가 ‘올드 랭 사인’이다. 국내에서 6·25 와중인 1953년 부산 극장가에서 공개돼 눈물샘을 자극한 이 영화의 주제곡은 시인 강소천이 우리말 가사로 옮긴 이후 가는 해를 보내는 미련과 새해를 맞는 설렘을 상징하는 노래로 애송되고 있다. ‘Old Lang Syne’은 스코틀랜드 방언으로 ‘오랜 옛날부터’라는 뜻의 ‘Old Long Since’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민족 시인 로버트 번즈가 민담으로 전래된 노래를 채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원래 노랫말에는 가족과 친구와의 석별의 아픔을 언급하기 보다는 ‘그 옛날을 위해 정다운 친구여, 멀리 지나가 버린 옛날을 위해, 우리 항상 다정하게 잔을 들자꾸나, 멀리 지나간 버린 옛날을 위해’라며 오랜만에 만난 절친한 친구와의 해후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는 13세기 영국 국왕 에드워드 1세의 독재에 항거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 운동을 전개했던 민족 영웅 윌리암 왈리스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현재 영국에 귀속돼 생활하고 있지만 늘상 독립 의지를 가슴에 품고 있다는 스코틀랜드인들은 지금도 연말이면 성당에 집결해 고향의 추억을 반추하면서 ‘올드 랭 사인’을 열창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여파 때문인지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도 해마다 12월31일 템스 강변에 있는 국회 의사당 시계탑인 빅 벤이 자정을 알리면 모든 시민들이 환호성을 울리면서 ‘올드 랭 사인’을 합창하는 장면이 해외 뉴스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우리 장년층들에게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정식으로 국가로 지명 받기 이전에 ‘올드 랭 사인’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졸업 시즌 환송곡으로 불러 가슴 벅찬 감정을 불러 일으킨 추억을 갖고 있다.
  • [인간시대] 아, 내 머리카락…

    [인간시대] 아, 내 머리카락…

    “머리 밑이 엄청 가렵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원형탈모로 걱정인데…. 혹시 대대적인 탈모의 신호탄이 아닌지.”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다 ‘대다모’(대머리 다 모여라) 회원으로 신규 가입한 아이디 ‘virusjin’은 동아리 동료들에게 이런 내용의 비밀상담을 해왔다. 그는 “오늘 아침에 머리감을 때 왈칵 울화가 치밀어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울었다.”면서 “아 글쎄, 두피 마사지를 하면 좋다고 해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또 문질렀는데 머리카락이 한줌이나 빠져버려 깜짝 놀랐다.”고 털어놨다. 또 머리 밑이 가려운 게 증상이 심해진 증거인지, 아니면 좋아지려는 것인지(터무니없지만 한가닥 희망이라도) 궁금하다.”면서 “그러나 우리 모두들 용기를 내자.”고 호소했다. 2001년 같은 이유로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모여 정보를 나누다 정식 출범한 대다모는 남성 주축의 ‘원형탈모 동호회’와 ‘여성탈모 동호회’로 나눠졌다. 회원은 원형탈모 동호회 3040여명, 여성탈모 동호회 9190여명이다. 아무래도 여성들의 고민이 더 깊어 회원의 숫자가 많고 활동도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보다 개방적(?)이라 할 원형탈모 동호회에서는 각종 정보를 나누고 서로 의욕을 다지기 위해 ‘정팅’(정기적인 모임)까지 갖고 있다. 머리카락이 많이 나도록 도와주는 일이나 물건이라면 불구덩이 속이라도 뛰어들지 못하랴 생각하는 ‘서글픈 마니아’에 속하는 셈이다. 평소에는 대다모 홈페이지(www.daedamo.com)를 통해 탈모와 관련된 국·내외 뉴스를 분석, 번역해 올리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 몇몇을 소개하면 이렇다. 배우 이덕화씨가 내년 1월1일부터 주말 오후 10시에 방송될 MBC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주인공 전두환 전 대통령 역에 캐스팅돼 마침내 가발을 벗은 모습으로 연기한다는 내용도 들었다.20대 후반부터 대머리의 조짐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이덕화씨는 가발로 살짝 가리고 있다. 한국성인병예방협회가 전국 20∼60대를 조사한 결과, 탈모를 경험한 사람은 25.5%로 4명 중 1명꼴로 나타났다는 통계도 올랐다. 통계에 따르면 40대 남성이 38.8%로 비율이 높았고 화이트칼라(30.5%), 자영업자(31.4%), 고소득층(31.6%) 등에서 상대적으로 탈모증상이 많았다. 또 탈모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느끼는 사람은 24.2%에 머물렀으며 66.9%는 ‘일종의 질환’으로 평가했다. 특히 63.5%는 ‘탈모증상이 있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늘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44.3%는 ‘탈모관리를 전혀 안한다.’고 답했고,‘사회생활에서 직·간접적인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비율도 25.6%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대다모 회원 K씨는 “20대까지 몰려드는 등 탈모 증후군이 늘어나는 경향”이라면서 “취업시험이나 진학, 결혼 등 중대사를 앞둔 사람의 경우 심하면 정신질환으로까지 번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인데 숨기고 고민할 것까지 있느냐.’고 하지만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씀”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제불황으로 인한 구직난, 어려워진 학업 등으로 예년에 비해 탈모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20∼30% 늘어났다고 입을 모은다. 사회 분위기가 ‘머리카락 걱정’까지 부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남 모르게 고민하다가 모발이식센터를 찾는 10∼20대가 눈에 띄게 늘어 주변을 안쓰럽게 하고 있다. 몇 가닥 안되는 머리카락 때문에 빚어진 끔찍한 사건도 실제로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홍모(38)씨는 술을 마시다 절친한 친구 전모(37)씨를 포장마차에서 쓰던 칼로 찔러 숨지게 했다. 홍씨는 여성들이 보는 앞에서 가발을 두 차례 벗기며 놀렸다는 점을 살인의 동기로 들었다. 대다모 회원인 또 다른 K씨는 “가발을 썼다는 사실은 남에게 숨기고 싶은 비밀이며, 나 역시 가발을 썼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됐다면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발이식센터 W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고객 가운데에는 고3 수험생들이 20% 가까이 되고 20대도 25% 정도”라고. 그러면서 “예민한 사춘기, 더군다나 진학이나 취업 등 인생을 가를 수 있는 대업(?)을 앞두고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거나, 놀림감이 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다.”고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또 다른 전문가는 탈모가 유전에 따른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지만,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대머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대머리 유전자를 지녔지만 발현되지 않고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처럼 식물 위주로 음식을 섭취하던 시절에서 육류를 많이 먹고 ‘만병(萬病)의 아버지’인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시대로 내려오면서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현대에도 머리카락 빠지는 진짜 원인과 치유법만은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탈모증상을 퇴치하는 방법을 알아내면 노벨상감이라는 ‘가설 아닌 가설’이 의료계에 떠돌까.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이마 벗겨지면 정력 세다? 호르몬을 잘못 이해한 것 전문가들은 탈모에 대해 잘못 알려진 말들이 증상을 부추긴다고 귀띔한다. 특히 탈모로 고생하는 이들을 놀리는 말은 잘못일 뿐 아니라, 그들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바깥으로 겉돌게 만든다는 충고도 빼놓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으로 예부터 나도는 ‘앞이마가 벗겨진 사람은 정력이 세다.’라는 말이 꼽힌다. 반면 뒷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정력이 약하다고 한다. 이는 남성 호르몬이 왕성한 사람이 대머리가 되기 쉬운데, 호르몬이 많으면 정력이 셀 것이라고 어림짐작한 호사가(好事家)들의 입방아 때문이다. 머리를 자주 감으면 더 빠진다는 말도 마찬가지로 잘못이다. 거꾸로, 두피를 깨끗하게 해주는 게 탈모 예방에 도움된다. 머리를 감을 때 빠지는 머리카락은 이미 빠져나올 준비(?)가 된 것들이다. 따라서 건강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전혀 없다. 면도를 하면 굵게 많이 돋다난다고 믿는 사람도 적잖다. 하지만 이는 짧은 상태여서 더 빳빳하고 굵게 느끼게 되는 것이지, 실제 굵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샴푸를 쓰지 말고 비누로 머리를 감는 게 좋다는 말은 어떤가. 우선 알아둬야 할 사실은 대머리 유전자가 없는 사람은 머리를 어떻게 감는가를 불문하고, 설사 머리를 감지 않더라도 대머리가 될 가능성은 없다. 이같은 사실은 또한 탈모가 진행되고 있더라도 세발(洗髮) 용품은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혈액순환이 잘 되면 탈모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브러시로 두드리면 피지선의 활동을 자극해 두피에 기름기가 많아지고, 대머리의 원인물질인 효소가 활성화돼 탈모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하라. ■도움말 황정욱 모발이식센터원장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양파즙·자연식 8選 등등 ‘물 요령껏 마시기’ 추천도 탈모 증상과 관계된 사람들은 인터넷 등에서 성공비법이 소개만 되면 곧바로 ‘클릭, 또 클릭’이다. 어느 회원은 소금요법을 들이밀었다.“따뜻한 물로 머리카락을 적신 뒤 소금을 골고루 뿌려 10∼15분간 그대로 두었다가 따뜻한 물과 찬 물로 잇따라 헹궈내라.”고 권한다. 중요한 것은 바닷물로 만든 천연소금을 쓰는 게 좋다는 말도 곁들인다. 양파즙 마사지도 목록으로 나와 있다. 양파에 들어 있는 포도당, 자당과 같은 당질이 보습제 역할을 해 두피에 수분을 공급한다고 설명한다. 강한 머릿결을 유지하고, 모발 생성효과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사용법을 살펴보면 양파를 강판에 갈아 즙을 낸 뒤 거즈에 묻혀 머리에 충분히 바른다. 이어 20분이 지나 35도 정도의 미지근한 물에 감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자연식 8선에 대해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우선 현미(玄米)가 있다. 다른 질환을 앓다가 검정콩을 먹었는데 탈모 증세까지 깨끗이 나았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해독작용과 지방을 분해하는 성분이 들어 도움된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도 회원들은 검정참깨, 다시마, 녹차, 달걀 노른자, 물, 덩굴식물인 하수오(何首烏)를 권장한다. 물이 항목에 들어간 점은 뜻밖일 수 있다. 이는 한의학에 바탕을 뒀다. 한방에서는 탈모를 열이 많아서 생기는 것으로 본다. 즉, 몸 안에 열이 많아서 사막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물을 많이 마시면 그러한 현상을 막아준다는 논리다. 특히 홀짝홀짝 자주 마시면 좋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 1컵, 식사 30분 전에 1컵, 취침 30분 전에 1컵, 그외의 시간에는 30분에 4분의1컵 정도를 마시면 좋다고 한다. 이쯤되면 건강 챙기기는 물론이고 머리카락을 한 올이라도 지키려는 몸부림은 눈물날 만하지 않은가.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소아암어린이돕기 자선경기 출전 홍명보·황선홍

    [스포츠 라운지]소아암어린이돕기 자선경기 출전 홍명보·황선홍

    “라이벌이라는 말보다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영원한 동반자’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겁니다.” 홍명보와 황선홍. 십년지기인 둘은 서로를 ‘경쟁관계’로 표현하는 데 불편해했다. 실제로 절친한 사이인 둘은 비슷한 점이 꽤나 있다.2002한·일월드컵을 정점으로 축구인생의 최고순간을 맛봤고, 비슷한 시기에 은퇴를 한 뒤 똑같이 해외에서 ‘축구공부’에 매진했다.‘흥부’ 홍명보가 축구행정가나 지도자로 장래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면,‘황새’ 황선홍은 국가대표 감독이 꿈이라는 점만 다소 다를 뿐이다. 이들은 오는 26일 인천문학월드컵 경기장에서 선수로 다시 발을 맞춘다. ●‘흥부’ 홍명보 vs ‘황새’ 황선홍 홍명보가 소아암어린이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기 위해 마련한 자선축구경기에 황선홍이 함께 출전하기로 한 것. 둘은 같은 팀(사랑팀)이 돼서 오랜만에 후배들과 땀을 쏟으며 흔쾌히 ‘산타클로스’가 되기로 했다. 둘은 같은 87학번이다. 나이는 황선홍이 68년생으로 홍명보보다 한 살 위지만 같은 학번이라 십년 넘게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태극마크는 황선홍이 대학 2학년 때인 1988년에 먼저 달고, 홍명보는 졸업반이던 1990년에 대표팀의 일원이 됐다. 가장 막내로 시작했던 대표팀에서 최고 선참의 자리까지 함께 올랐고, 같은 프로팀(포항)에서도 6년간 한솥밥을 먹었다. 황선홍은 “경기를 뛸 때 뒤에 명보가 보이면 마음이 놓인다.”고 말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텁다. 2002한·일월드컵에서는 ‘맏형’ 역할을 함께 해내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수많은 A매치를 치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도 서로 같다. 바로 2002월드컵 첫 경기였던 폴란드전. “월드컵에서 첫 승을 거둔 경기라 가장 기억이 납니다. 스페인전에서 마지막 PK를 성공시켰을 때보다도 첫 승을 거둔 폴란드전을 평생 못 잊을 겁니다.”(홍명보) “월드컵에 4번째 나갔는데, 한 번도 못 이겼습니다. 이렇게 선수생활이 끝나면 정말 한이 남을 것 같았습니다.16강이 문제가 아니라 제발 ‘한 번만이라도 이기자.’는 생각뿐이었죠.”(황선홍) ●‘세대교체’는 의견 달라 한국축구의 최대 화두가 돼버린 ‘세대교체’에 대해서는 생각이 약간 다르다. “(한국축구의)세대교체가 늦은 것은 사실입니다.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곧바로 젊은 선수로 바꾸고 경험을 쌓게 했어야 하는데, 시기를 놓쳤습니다. 최종예선이 코앞에 닥친 이제와서 급작스레 바꾸기에는 늦은 셈이죠.”(홍명보) “젊은 선수들에게도 기회는 줘야 하지만, 노장도 필요합니다. 발전가능성만 보고 무조건 대표팀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젊은 후배들도 철저한 경쟁을 통해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살아 남아야지 ‘노장은 안 되고, 소장만 집어넣겠다.’는 식은 곤란합니다.”(황선홍) 월드컵 이후 반짝붐이 일다가 다시 사그라지고 있는 K리그에 대해서는 같은 해법을 제시했다. “재미있는 경기를 안 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구단들이 노력을 안 하고 세일즈도 제대로 못 하니까 결국 팬들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겁니다.”(홍명보) “J리그는 거품이 빠지고 고정관중이 정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드컵이 끝나고 관심을 끌 기회를 놓쳤습니다. 구단별로 장기적인 마스터 플랜을 마련해야 합니다. 자국 프로리그가 약하면 대표팀도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황선홍) ●따로 또 같이 홍명보는 내년 1월초 다시 미국으로 가 2∼3년간은 공부에만 집중한다. 일단은 LA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연수부터 착실히 받을 생각이다. 전설적인 선수에서 독일월드컵조직위 위원장까지 오른 독일의 베켄바우어처럼 축구행정가가 되든지, 아니면 지도자의 길을 택할 생각이지만 결정은 나중으로 미뤘다. 다만, 지난해 처음 시작한 자선경기는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생각이다. 축구를 통해 얻은 게 너무 많기 때문에 이를 축구로 다시 돌려주겠다는 다짐에서다. 전남 코치인 황선홍은 독일에서 국제지도자 코스를 밟은 데 이어 최근에는 브라질 프로팀에서 두 달간 연수를 하고 귀국했다. 한때 허정무 전남감독의 사의로 공석이 된 대표팀 수석코치로 물망에 올랐지만, 공식제의는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다리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합류할 생각도 있다고 털어놨다. 황선홍의 꿈은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것.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썼던 ‘영원한 맏형’ 홍명보와 황선홍이 제2의 축구인생을 어떻게 펼쳐 나갈지 궁금해진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어떻게 지내세요] 화가 천경자

    [어떻게 지내세요] 화가 천경자

    색채의 마술사이자 최고의 여류화가인 천경자씨. 국내 화단에서조차 그의 근황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1998년 국내의 모든 ‘짐’을 정리하고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는 것 외에는.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사당동)에서는 지난달 9일부터 ‘천경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천 화백이 미국으로 떠나면서 서울시에 기증한 93점 중 대표적인 소장품 43점을 재구성했다. 전시 기간은 내년 2월10일까지. 미술관 관계자는 “평일에는 300여명, 휴일에는 500여명의 관람객이 찾을 정도로 최고의 화가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천 화백의 근황을 알고 싶어도 속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안타깝게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소문 끝에 천 화백의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천 화백은 현재 뉴욕에 사는 큰딸 이혜선씨 집에서 투병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에 살고 있는 천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 교수는 최근 본지 워싱턴 특파원과의 전화통화에서 “어머니는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뉴욕에 계시다. 한달 전에 뉴욕에 가서 어머니를 뵈었다. 많이 쇠약하시다.”고 밝혔다. 천 화백이 자신의 인생이나 예술에 대해서 아무 말씀이 없었느냐고 묻자 “중환중이어서 그런 말씀을 하실 여력이 없다.”며 더이상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국내 지인들도 이같은 상황을 간접적으로 전한다. 이번 전시를 돕고 있는 한 지인은 “실어증이기 때문에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 못 알아보기도 하는 상태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미술평론가 L씨는 “천 화백의 큰딸과 절친한 친구가 국내에 살고 있어 (천 화백에 대해)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있다.”면서 “치매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천 화백은 1924년 11월11일 생으로 내년에 81세가 된다. 천 화백을 아끼는 많은 국내 팬들이 다시 붓을 든 그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어떻게 지내세요’ 는 독자와 함께 합니다. 각계 명사는 물론 한때 스타였던 인물, 화제를 뿌렸던 사건 속 주인공들의 근황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추천과 참여를 기대합니다. (연락처 : km@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구상시인 마음의 고향 ‘왜관’

    [문학이 머문 풍경]구상시인 마음의 고향 ‘왜관’

    강/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피안을 저어 가듯/태백의 허공석을 나룻배가 간다./기슭, 백양목 가지에/까치가 한마리/요란을 떨며 날은다.(중략) ●남북 양쪽에서 필화 경험 지난 5월 고인이 된 시인 구상(具常). 시인은 남북 두 체제에서 필화를 경험한 유일한 문인이다. 1946년 함경도 원산에서 동인지 ‘응향’에 ‘밤’ 등 시를 발표하며 데뷔했으나 반인민적인 반동시인으로 몰렸다. 그 체제를 못견뎌 월남한 시인은 65년 8월 희곡 ‘수치’를 무대에 올리려다 등장인물 중 빨치산 군관의 대사가 문제되어 공연 보류조치를 당했다. 시인의 고향을 원산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진짜 고향은 서울 이화동이다.4살 때 독일계 성 베네딕트 수도원의 교육사업을 위촉받은 아버지를 따라 함남 원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성 베네딕트 수도원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 종교학과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당시 문예창작과와 종교과를 두고 과 선택문제로 고민했던 시인은 결국 종교과를 선택했다. 이것이 그의 시에 나타난 초월적 종교관의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6·25전쟁 때는 국방부 기관지 ‘승리일보’를 만들었고 군작가단 부단장을 지냈다. ●왜관에서 20여년간 작품활동 전후 이승만 정권에 대해 반독재 투쟁을 벌였던 그는 1952년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부인 서정옥(93년 작고)씨가 병원을 개업한 경북 칠곡군 왜관으로 삶터를 옮겼다. 이곳에서 시인은 53년부터 74년까지 기거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칠곡군은 지난 2002년 구상문학관을 건립했다. 부인이 경영하던 순심의원 자리에 2층짜리 문학관이 들어섰다. 문학관 뒤편에 시인의 거처였던 관수재(觀水齋)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시인과 가까왔던 윤장근(73) 죽순문학회회장은 “설창수 시인이 ‘낙동강이 보인다.’며 관수재라는 이름을 붙였다.”며 “강물과 푸른 풍경이 선생의 가슴에서 시를 우려내기에 지극히 안성맞춤인 장소였다.”고 말했다. 낙동강은 구상 시의 원천이었다.‘강’이란 연작시 100편을 발표했으며, 그의 시에는 늘 퍼내도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윤 회장은 “구상 선생이 유난히 ‘강’에 집착하는 것은 관수재에서 늘 낙동강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관수재에서 보이는 것은 테니스장에서 공을 치는 아낙네들뿐. 목을 쭉 빼보았으나 강 범람을 예방하기 위해 만든 높은 제방에 가려 강 건너 모텔과 신축아파트 공사장의 기중기만이 눈에 들어왔다. 문학관 2층에 올라가서야 겨우 낙동강이 보였다. 안내하던 문학관 직원은 “당시와 변하지 않은 것은 6·25전쟁 때 폭격돼 두동강 난 낙동강 철교밖에 없다.”고 귀띔했다. 시인은 관수재에서 윤 회장 등 많은 문인들과 교분을 쌓았다.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을 할 때 시인이 대구 향촌동 다방에 보이지 않으면 문인들은 관수재로 몰려가 시인과 밤새도록 술잔을 기울였다. 특히 절친한 친구인 천재화가 이중섭은 관수재의 단골손님이었다. 이중섭은 일본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그리워하며 단란한 구상 시인의 가족을 이따금씩 그렸다고 한다. 한번은 병색이 짙은 구상에게 천도 복숭아를 그린 그림을 주며 쾌유를 기원했다. 시인은 생전에 “그 ‘복숭아 그림’ 때문인지 지병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연명했다.”고 회상하곤 했다. 구상 시인의 본적지는 관수재가 있는 왜관이다. 전쟁중 북에 있는 가족이 내려오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 시와 마음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왜관을 본적지로 고집하지 않았을까. 요즘 하루 100여명의 관광객들이 구상문학관을 찾아 시인을 느끼고 있다. 시인의 빈 자리를 구상문학관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칠곡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유영철에 희생 노점상 동생 자살

    22일 오전 서울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안모(43)씨가 마지막 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4월 유영철에게 살해돼 인천 월미도 해변에서 불태워진 채 발견된 서울 황학동 노점상(44)의 동생. 두 아들을 차례로 보낸 아버지(71)는 “우리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고 오열했다. 동생 안씨가 서울 행당동 H아파트 자택에서 가스배관에 목을 매 숨진채 발견된 것은 지난 20일 오후 6시50분쯤. 숨진 안씨는 형의 죽음이 유영철의 소행으로 밝혀진 직후 40일 남짓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최근까지도 병원을 오가며 약을 복용했다. 안씨는 그동안 유영철의 공판에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그때마다 친구들에게 유영철의 잔인함과 뻔뻔함에 치를 떨며 울분을 토했다. 안씨는 지난 7월 월미도 현장검증에서 태연히 범행을 재연하는 유영철의 모습에 분을 참지 못하고 “왜 열심히 살려는 불쌍한 사람을 택했느냐.”고 울부짖어 주변을 안타깝게 했던 당사자. 유영철이 붙잡히기 전까지는 형을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바람에 두달이 넘도록 고초를 겪기도 했다. 절친한 고향 친구 홍모(43·일용직)씨는 “안씨는 평소 꿈에 형이 나와 자꾸 살려달라고 울부짖는다고 고통스러워 하면서 친구들에게 와달라고 부탁하곤 했다.”면서 “‘형 생각만 하면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노점상으로 동대문 풍물시장에서 스킨스쿠버 장비를 팔아온 안씨에게 형은 아침에 일부러 들러 해장국을 챙겨줄 정도로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안씨의 형수 노모(42)씨는 “지금도 죽은 남편 생각을 하면 눈물만 난다.”면서 “결국 유영철이 우리 집안을 이렇게 무너뜨리고 말았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유지혜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儒林(225)-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儒林(225)-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제2부 周遊列國 제5장 良禽擇木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벌을 받으면 마땅히 자신이 받아야지 팔다리와 같은 고굉지신들에게 대신하여 받게 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라고 소왕은 끝내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것이다. 소왕의 일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 한번은 소왕이 병이 나서 점을 치게 하니 ‘황하의 신이 노하셨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러나 소왕은 황하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신하들이 강가로 나아가 제사 지내기를 청하니 소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부터 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산천에는 지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강수(江水), 한수(漢水), 저수(雎水), 장수(水)의 한계 안에 있으니 무릇 재앙과 복은 이 강들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부덕하다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 황하에까지 죄를 지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러고는 끝내 제사를 지내지 않았는데 공자는 이 말을 전해듣고 소왕을 칭찬하여 말하였다. “초나라의 소왕은 위대한 도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나라를 잃지 않은 것은 마땅한 일이다.” 소왕이 이처럼 어진 군주가 된 것은 공자의 칭찬대로 자칫하면 나라를 빼앗길 뻔했던 위기를 극복하고 정치를 개혁하고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소왕의 위기는 그의 아버지 평왕 때문이었다. 평왕이 며느리를 가로채 아들을 낳고 태자를 죽이려 하자 충신 오사(伍奢)가 이를 간하다가 큰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한다. 이에 오자서는 오나라로 도망쳐 반드시 초나라를 멸망시켜 부형의 원수를 갚는 것을 맹세하는데, 이때 절친한 친구인 신포서(申包胥)는 ‘개인적인 원한으로 나라를 배반하지 말라.’고 권고하였으나 복수의 화신이 된 오자서는 듣지 않고 오나라로 망명한다. 그러자 신포서는 이렇게 다짐한다. “만약 자네가 초나라를 멸망시킨다면 나는 꼭 초나라를 부흥시키겠네.” 훗날 실제로 오자서는 오나라의 공자를 도와 정권을 탈취하고 그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치게 함으로써 복수를 실현하는데, 이미 자신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평왕이 죽었으므로 평왕의 시체를 파내어 채찍으로 삼백대를 때리고 눈알을 뽑아내고 귀를 뜯어내었던 것이다. 이런 잔인무도한 짓을 본 신포서는 절친한 친구였던 오자서에게 편지를 보내 ‘자네가 하는 짓은 너무 참혹하지 않은가.’하고 꾸짖는다. 이에 오자서는 편지를 받아보고 침통해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초 평왕의 일에 대해서는 사죄를 하는 바이네. 허지만 자네 역시 내 억울한 마음을 알아주어야 할 것이네.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기 때문에 상식에 어긋나는 일을 했을 뿐이네.” 오자서의 답변에서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멀다. 즉,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이 남아 있지만 세월은 짧고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뜻의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이 태어난 것. 그러나 오자서의 말을 전해들은 신포서는 격분하여 도망쳐 있는 소왕을 찾아가 초나라를 부흥시킬 계획을 상의하였는데, 이미 초나라는 국세가 기울어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초나라가 회복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진나라로부터 도움을 받는 일뿐이었다. 다행히 진나라의 왕 애공은 평왕의 부인이었던 왕비의 아버지였고 따라서 소공은 애공의 외조카가 되었기 때문에 진나라도 그냥 모른 체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애공은 선뜻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사로 간 신포서에게 듣기 좋은 말만 했을 뿐. 이에 신포서는 조당의 벽에 붙어 서서 소리 내어 통곡하기 시작하였는데 곡성이 밤낮을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한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계속 통곡하다가 7일 만에 땅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고 만다.
  • [인간시대]내 인생의 등대-장충식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인간시대]내 인생의 등대-장충식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딸깍발이 정신’은 과연 우리네에게 어떤 교훈을 심어줄 것인가? 장충식(72)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은 희미하게나마 해답을 들려줬다. 11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관세청 건너편 단국빌딩에서 만난 장 이사장은 “2주일 전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사직서를 냈다.”면서 “(선친의 유업인) 단국대 일이 (재단의 교비 유용혐의로 이사장에서 퇴진한 점을 두고) 잘못됐으니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 몇 권은 생각을 갖게 하지만, 내게는 행동하게 한 스승이 계셨다.”며 국문학자 일석(一石) 이희승(1896∼1989)선생과 맺은 인연을 소개했다. 이희승 선생은 한살 위였던 선친과 절친한 사이로 내왕이 잦았으며 일생껏 ‘돈의 철학’을 일깨워줬다고 했다. 남을 위해 값어치 있게 써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30년 전 단국대 총장 때였어요. 선생께 동양학연구소 일을 맡겼는데 학교에서 가장 많은 봉급을 드렸죠.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학자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해서…. 그런데 화를 내시지 뭡니까.” 한참 입씨름하다 3분의 1로 줄이자 “분수에 넘치는 돈은 못받는다.”며 그때서야 받더란다.“나 정도면 더 받아야 한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웃었다. 이같은 인연은 대한적십자사 총재, 세종문화회관 이사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으면서 실천으로 이어졌다고 그는 자신했다. 급여를 반납했다는 것이다. 적십자사 총재로 일한 데 따른 연금도 받고 있는데, 다른 돈을 챙길 이유가 없다는 말로 그 까닭을 일러줬다. 또 슬하에 1남 3녀인 자녀들에게 이같은 교훈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재산을 상속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그는 요즈음 책 쓰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말 4권 출간으로 끊긴 대하소설 ‘그래도 강물은 흐른다’의 후속편이다. 자신이 세운 범은(梵恩)장학재단을 국내에서 가장 튼튼한 장학회로 키워내는 꿈도 부풀어 있다. “자식들에게 힘들이지 않고도 남보다 잘 살라고 재산을 물려주면, 사회지도층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토요영화]

    [토요영화]

    ●원 나잇 스탠드(iTV 오후 11시30분) 각자 아내와 남편이 있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애틋한 내용을 산뜻하고도 감각적으로 그린 멜러물.‘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마이크 피기스 감독 작품. 웨슬리 스나입스,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 출장차 뉴욕에 온 LA 출신의 성공한 CF 감독 맥스(웨슬리 스나입스)는 돌아갈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아름답고 지적인 캐런(나스타샤 킨스키)을 만나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LA로 돌아온 맥스는 다시 예전처럼 CF 촬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낸다. 캐런과 보낸 하룻밤의 뜨거운 기억은 추억으로 돌려버렸지만, 자신의 생활에 대해 회의를 가져올 만큼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맥스에겐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다. 1년이 지난 어느 날, 맥스는 절친한 친구인 행위예술가 찰리가 에이즈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시 뉴욕을 찾은 맥스는 찰리가 입원한 병원에서 찰리의 형수가 캐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태연하게 행동하려 하지만, 한밤중에 찰리의 병실을 동시에 찾은 맥스와 캐런은 끝내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데….100분. ●아담스 패밀리(MBC 오후 11시30분) 1930년대 연재 만화를 1960년대에 TV시리즈로 제작했고, 이것을 다시 영화화한 엽기 코믹물. 아담스 일가는 가장 고메스, 부인 모티시아, 딸 웬즈데이, 아들 퍽슬리 등 4명. 어느 날 고메스의 형인 페스터가 행방불명된 지 25년만에 나타난다. 사실 그는 페스터가 아니고 이 집의 재산을 탐낸 늙은 여인 아비게일의 양아들이 고메스로 변장한 것이다. 고메스는 차츰 페스터의 어색한 행동에 의심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시험을 해보는데….99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빅’ 여성 버전 ‘완벽한 그녀에게‘

    어린시절 누구나 어른이 되길 꿈꿨고 모두들 그 꿈을 이뤘지만, 어릴 때의 생각처럼 그다지 행복하진 않다. 어른이 되는 것보다 ‘어떤’ 어른이 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완벽한 그녀에게 딱 한가지 없는 것’(13 Going on 30·5일 개봉)은 우리가 실제로 꿈꾸던 어른이 됐는지 한번쯤 뒤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영화다. 친구들로부터 촌닭 취급을 받는 제나는 13세 생일에도 어김없이 따돌림을 당한 채 벽장에 갇힌다.“서른살이 되고 싶어.” 다음날 눈을 떠보니 제나(제니퍼 가너)는 서른살이 돼 있었다. 영화 ‘빅’에서처럼 몸만 자란 게 아니라, 그 세월을 훌쩍 건너뛴 것. 뉴욕의 호화아파트에 살고있고, 잘 나가는 스타 남자친구에 직업은 패션지 에디터. 꿈에 그리던 모습대로 된 제나는 처음엔 신기하고 화려한 어른들의 세계를 즐긴다. 하지만 겉모습 이면에 감추어졌던 제나의 본모습이 서서히 드러난다. 직장동료의 남편과는 불륜관계고, 부모와는 인연을 끊은 채 살고있으며, 진실된 친구 하나 없는 제나.“이건 내가 아니야.”라며 부정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다. 어린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매트(마크 러팔로)를 다시 찾아 새로운 삶을 꾸려보려고 애를 쓰다가 사랑에까지 빠지지만 모든 건 뜻대로 되지 않는다.“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그건 우리가 선택한 것인 만큼 존중해야 된다.”며 결국 현재의 약혼녀를 선택하는 매트. 하지만 영화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우리에게 남겨진 현재의 시간 역시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게해준다. 과거로 돌아가 어그러진 인생을 바로맞출 수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미래에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뻔한 로맨틱코미디 같은 제목에 상큼 발랄한 스토리를 가졌지만, 그 안엔 평범한 삶의 진실과 깨달음이 보석처럼 빛나는 영화다. 30대 이상이라면 마돈나, 릭 스프링필드, 팻 베네타 등이 부르는 80년대 팝음악이 향수를 자극할 듯싶다. 인디영화계에서 활약했던 개리 위닉 감독의 할리우드 입성작.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스타들의 입영전후

    스타들의 입영전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잊혀진다.’는 말은 연예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말이 아닐까. 특히 신체 건장한 일부 남성 연예인들이 갖은 병명을 들이대며 군대라는 곳에 제발로 걸어 들어가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그렇다.2년이란 공백은 한창 인기가도를 달리는 이들에게 너무도 긴 세월이다. 그러나 군대는 결코 ‘무덤’이 아니었다.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마치고 오히려 연예계를 씩씩하게 행보하는 스타들이 늘고 있다. 연예인들의 병역 기피가 도마 위에 오를 때마다 또 다른 차원에서 거론되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차인표, 서경석, 이휘재, 홍경민, 이훈 등등. 이들은 모두 인기라는 달콤함을 맛볼 무렵 군입대라는 ‘입에 쓴 약’을 달게 받아 먹은 스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TV연예정보프로그램들을 통해 몇몇 스타들의 군생활이 중계되다시피 해 잊혀지기는커녕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 전기를 맞기도 했다. 차인표가 그런 경우. 늦깎이로 데뷔해 트렌디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그는 후속작 대신 군대를 선택했다. 그가 상대적으로 고령(?)이라는 점과 연인 신애라가 있었기에 더욱 뜨거운 관심을 받은 그의 군생활은 이미지를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가 만약 인기에 연연해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면 ‘천태산’(MBC ‘영웅시대’)이란 인물을 맡지는 못했을 것이다. 서경석도 연착륙한 케이스. 방송으로 돌아오자마자 MBC ‘타임머신’ MC 자리를 꿰찼다. 결혼 직후 입대한 탤런트 이훈도 현재 MBC와 KBS를 오가며 입담을 뽐내고 있다. 새달 말 제대를 앞두고 있는 가수 홍경민은 민감한 시기에 방송에 복귀하는 터라 더욱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가 오히려 그의 컴백에 ‘윤활유’가 된 셈. 그의 성실한 병역의무 이행은 특히 남성팬들로부터 큰 갈채를 받고 있다. 이처럼 군대는 앞을 길게 내다본 사람들에겐 영광이요, 근시안을 가진 이들에겐 뼈에 사무친 후회와 한탄으로 남았다. 새달 군입대를 통보받은 송승헌, 한재석, 장혁 등은 드라마 출연 무산으로 ‘민폐’를 끼쳤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이미지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중고’를 자초했다. 가수 유승준도 ‘패가망신’을 스스로 부른 대표적인 경우. 군입대를 약속해 놓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 병역기피 의혹으로 한국 입국 자체가 금지됐다. 결혼과 출산이 더이상 여배우들의 멍에가 아니듯 군대가 남자 연예인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일 수 없다. 최근 병역 파동을 계기로 군입대가 이미지 유지 또는 쇄신을 위한 또 하나의 홍보수단으로 자리잡아가는 느낌이다. 원빈, 이동건 등 톱스타들이 앞다투어 군입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제대뒤 뜬 스타 윤영준 두려웠다. 일찍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을 통해 아역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공룡 선생’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얼굴도 알렸는데….26개월이란 공백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공백을 메우는 데는 두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아픔도 컸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절친한 친구(이정재)가 그 기간동안 일약 스타로 떠올라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을 그저 내무반에 앉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감사한다. 그 잊혀짐의 시간들이 오히려 연기자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데 둘도 없는 약이 됐으니…. 연기자 윤영준(29)처럼 요즘 회자되고 있는 연기자들의 병역문제가 가슴에 와닿는 배우는 없을 것 같다. 그는 최근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는 극중 한기주(박신양)의 비서로, 앞서 ‘태양의 남쪽’에서는 나이트클럽 사장 용태(명로진)의 부하로 나오는 등 ‘의리의 사나이’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여세를 몰아 얼마 전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그림자놀이’에서 주인공을 꿰찼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위의 호평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와 영화 섭외도 줄을 이어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실 저도 군 입대를 비켜가기 위해 별 짓을 다했어요. 하지만 결국 연기자를 믿는 시청자에게 서운함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인기는 언제라도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거든요.” 그는 ‘당시 군대를 면제 받고 연기생활을 계속 해왔다면 어땠을까?’라고 생각을 하면,‘아역 출신 연기자라는 꼬리표에 짓눌린 채 더 큰 고민의 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단다. 중1때 아역배우로 데뷔한 그는 20살이 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연기자 윤영준’을 기억해 주는 이가 없었다. 이후 5년여 동안을 ‘일반인 윤영준’으로 지내야 했다.“제 스스로 최면을 걸었죠.‘이건 나의 옛 이미지를 씻고 새로운 차원의 연기자로 도약하기 위한 일종의 ’전화위복의 시간들’이라고요.” 그의 판단은 옳았고, 이후 아역 출신 연기자로서 흔치 않은 ‘대기만성형’ 성인 연기자로 우뚝 섰다. 올해로 연기 데뷔 17년째인 그는 나름대로의 연기철학을 가지고 있다.“연기는 바로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자의 경험이 드라마 캐릭터에 녹아들 때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오거든요.” 자신만의 연기 노하우도 가지고 있다.“가령 26세의 남자 역할을 맡으면,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제가 태어나서 26살까지의 경험들을 작문하듯 정리하죠. 그리고 ‘드라마는 그 26살 이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연기톤을 잡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대사, 행동 하나 하나에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죠.” 그는 팬들의 사랑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인터넷에서는 현재 9800여명의 회원들로 구성된 ‘LONG RUN 배우 윤영준’이란 그의 팬카페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군입대 당시부터 지금까지 저를 잊지 않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죠. 연기자는 팬들과 함께 커나간다는 것을 하루에도 열두번씩 뼈저리게 느낍니다.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자가 되도록 노력할 거예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50년전 한국친구 찾습니다

    한 미국인이 50년전 우정을 나눴던 한국인 친구를 애타게 찾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시에라 비스타에 사는 로버트 에콜스는 서울신문에 “친구를 꼭 찾고 싶다.”는 편지와 함께 50년 전 자신의 사진과 한국인 친구의 사진을 보내왔다. 에콜스는 편지에서 “친구의 이름은 ‘조진용’이며 당시 그와 인천 부평에서 함께 일했다.”고 설명했다. 에콜스는 “조씨는 내 인생에서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면서 “4년 동안 그의 대학 학비를 댈 정도로 절친한 친구였던 만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간절한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에콜스는 “내가 알고 있는 조씨의 마지막 한국 주소는 부산시 광복동 2-3 이천섭 집이었고, 그의 가족은 포항에 살았다.”면서 “내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에콜스의 미국 주소는 1900 Carmelita Drive Sierra Vista,Arizona USA, 전화번호는 520-458-2318.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구리장사씨름대회] 모제욱 결혼식 전날 꽃가마

    “신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을 마련해 정말 행복합니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변칙 씨름의 달인’ 모제욱(29·LG투자증권)이 오랜 만에 꽃가마에 오르며 생애 최고의 날을 맞았다. ‘잡초’ 모제욱은 22일 구리시체육관에서 열린 구리장사씨름대회 한라장사(90.1∼105㎏) 결정전 결승(5판 다선승제)에서 팀 후배 김기태(24)를 3-2로 꺾고 지난해 보령대회 이후 1년 5개월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통산 11번째 한라장사 우승. 이로써 김선창(33·신창건설) 등이 보유한 최다 우승 기록에 한개 차로 다가섰다. ‘잡초’는 정통 다리 기술보다는 끌어치기 등 손을 이용한 변칙 기술에 뛰어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1995년 프로 데뷔 이래 ‘무적 탱크’ 김용대(28·현대투자증권)의 최고 맞수로 군림해 왔으나 부상에 허덕이면서 올들어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지난해 후반 아킬레스건이 끊어졌고 무릎 연골도 다쳤다. 부상을 딛고 올해 3월 함양대회에 출전했으나 이준우(24·신창)와의 8강전에서 다시 십자인대 부상을 입어 6개월여 동안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동안 받은 수술만도 두차례. 그러나 그는 다시 ‘잡초’처럼 우뚝 일어났다. 한 때 은퇴를 고려할 정도의 고통 속에서 피워낸 우승꽃이라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핑돌았다. 특히 23일 간호사 박영주(27)씨와 백년가약을 맺을 터여서 기분을 말로 설명할 수도 없었다. 이날 결승까지의 과정도 별명을 말해주듯 순탄치 않았다. 8강에서 이준우와 다시 만나 부상 징크스를 떠올렸으나 뒷무릎치기로 돌파했고, 강력한 우승후보 조범재(28·신창)와의 4강전은 무승부(1-1)로 끝났지만 계체승으로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결승전 상대는 평생의 반려자와의 사이에 징검다리를 놔준 절친한 후배 김기태. 승부는 승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번개 같은 빗장걸이로 첫 판을 따냈으나 뒤집기를 허용, 승부가 원점이 됐다. 끌어치기로 다시 앞서 나갔으나 안다리 걸기에 다시 동점을 내준 모제욱은 마지막 판에서 잡채기로 승부를 결정지으며 포효했다. 구리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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