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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친서 파동’ 진상은 뭔가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 정부의 외교적 미숙함이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부시 미 행정부의 오해를 씻기 위해 급기야 대통령 친서가 미국에 전달됐다는 보도다.참으로 개탄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고건 총리는 20일 국회 답변에서 “(파병을 북핵 등과 연계한다는) 일부 보도 때문에 오해가 있어서 (미국에) 친서를 보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추가 파병 결정을 미국에 사전 통보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확정 통보는 아니고 사전 협의과정에서 ‘공감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도 “(나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방미 당시) 미국의 파병 요청에 대해 우리가 ‘깊은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잇따른 파병·북핵 연계 발언으로 한·미 관계에 이상기류 조짐이 보이자 나 보좌관이 부랴부랴 지난 12∼14일 미국을 방문해 대통령 친서를 전하며 불을 껐다는 주장이 총리의 국회 답변에서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우리 정부 외교안보팀의 어설픈 외교적 거래시도가 미측의 반발을 샀고,결국 추가파병 방침을 서둘러 통보하는 우를 범한 것으로 여겨진다.이에 나 보좌관은 외교적 관례를 들어 명쾌한 답변을 피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 정부 외교안보팀의 일처리가 미덥지 않고,일부 해명에 수긍이 가지 않는다.외교의 요체는 절제되고 정선된 말이라고 한다.특히 대통령의 외교적 발언은 치밀한 사전 검토작업을 거쳐 이뤄져야 하며,쉽게 번복되어서도 안 된다.청와대는 21일 친서 유출 경위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하지만 우리는 왜 국가정책의 혼선이 빚어지는지,대통령이 친서까지 보내며 사태 수습을 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등을 따져 대책을 마련하고,관련자의 책임을 묻는 일이 시급하다고 본다.
  • [열린세상] 무엇이 ‘쿨’한 선택일까?

    어느 날 갑자기 친구가 이민을 떠났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 땅에서 함께 살 것으로 믿었던 친구가 느닷없이 이 땅을 떠나버렸다.친구는 ‘눈치’보도록 만드는 한국사회가 싫다고 했다.친구는 장차 두 아들의 군대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쿨’하게 이민을 택했다.이 땅에서 부르주아로 살면서 누릴 것은 누리고 챙길 것은 챙기면서도 구차스럽게 편법,탈법,불법까지 불사하여 아들의 군대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모병제가 실시될 가망도,양심적인 대체복무도 가까운 장래에 허용될 것 같지 않아서 이 땅을 떠난다고 했다.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까지 친구는 반미,반핵,반전 평화주의자였다. 원정출산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한 남학생에게 물었다.그러자 그는 자신에게도 그런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그 학생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공적인 헌신과 애국애족을 거론하지 않았다.국익을 내세우면서 무조건적인 이라크 파병을 외치는 특정한 집단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식민지 근성이 끔찍하다고 했다.지금의 젊은 세대는 국가와 민족과 같은 거창한 담론이 개인의 이해관계와 위배될 때에는 단호하게 개인의 행복과 안녕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은 ‘쿨’한 국가를 원한다.국가가 개인에게 일방적으로 의무를 강요하기 이전에 국가가 먼저 보험기능과 봉사기능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2030의 이민 열풍도 그런 현상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이다.이런 현상을 단지 젊은이들의 윤리적 인프라가 저하된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국적은 더 이상 생득적인 운명이 아니다.일본의 가라테를 세계로 수출한 최배달은 일본으로 귀화한 사실을 평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으로 간직했다고 한다.소위 말하는 세계화 시대인 지금 한국 국적을 버린다고 해서 그것을 스캔들로 재단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타국으로의 귀화를 민족에 대한 배신이자 전향으로 단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역사적인 행운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조만간 하나의 국적이 아니라 이중국적 혹은 다중국적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2030세대는 한창 예민한 나이에 ‘세계화’를 부르짖던 시절을 보냈다.그 시절 문민정부는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젊은이들이여 드넓은 세계로 진출하라고 부추겼다.그들이야말로 90년대 초반 해외연수 붐을 일으킨 당사자들이었다.우리는 그 결과를 지금 목격하고 있다.‘세계는 드넓고 할 일은 많다’를 신조로 삼으면서 살았던 세대들에게 지금 한국은 비좁고 할 일도 많지 않은 사회일 따름이다.그래서 그들은 눈치보지 않고 ‘쿨’하게 이 땅을 떠난다. 그런데 과연 어떤 것을 ‘쿨’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쿨’하다는 의미가 신파적인 감정 과잉에 사로잡히지 않으며,지나친 윤리적 잣대를 나와 남들에게 들이대지 않고,냉정하고 절제된 이성에 바탕한 ‘정서’라고 한다면,전세계를 통틀어 그처럼 쿨한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눈치가 약자의 정치이고 의리가 강자의 논리로 군림하는 한 쿨한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없이 사는 미국이 이라크 파병을 요청하면 약자인 한국은 눈치껏 정치를 해야 한다.강자는 의리를 내세우는 법이다.‘한때 너희를 도왔으니,너희도 우리를 도와야 해.’라고 강자는 강요한다.한국정부는 미국이 원할 때면 눈치껏 알아서 미국의 미친 전쟁을 무조건적으로 도왔다.그래도 언제나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강자의 논리다.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미국에서 사회적 약자로서 출발한 친구가 과연 눈치보지 않고 쿨하게 살 수 있을까? 어디를 둘러보아도 우리의 삶은 쿨하지 않지만,그래도 쿨한 가을은 어김없이 되돌아온다.눈치보기 싫어서 이 땅을 떠난 친구가 과연 눈치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는지 이따금 궁금해지는 가을이다. 임 옥 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공동대표
  • 靑386 “대의 따르겠다”/쇄신표적 이광재실장 “숙고” 일부 “무책임 경질론 철회를”

    청와대 386핵심측근들은 17일 정치권에서 조기 인적 쇄신을 요구하고 나서자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대의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 인적 쇄신 요구의 표적’인 이광재(사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정신적 여당’이라고 주장하는 통합신당의 김근태 대표에 이어 천정배 의원까지 경질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자 “지적받은 사람이 나라면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면서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는 상황에 이른 지금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이 실장은 “어떻게 하는 것이 대의를 지키는 것인지 숙고하겠다.”고 밝혀 자신의 거취를 신중히 검토하는 듯한 분위기를 나타냈다.이 실장은 이날 문화일보에 보낸 이메일에서도 “언제라도 자리를 내놓을 생각을 갖고 있다.”며 “대통령에게도 사표의사를 밝힌 바 있고,또 문희상 비서실장에게도 같은 뜻을 전달해 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처신과 관련해 “평소 ‘권력은 칼날 위의 꿀을 빨아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하며 생활해 왔다.”면서 “당초 청와대에 들어오지 않으려 했고,상황실장을 맡으라고 할 때도 거절했었다.”고 소개했다.그는 또 “상황실장의 직책 때문에 1급을 달라고 할 때도 나이(65년생)를 들어 2급을 자청했고,심지어 관용차도 거부하고 택시로 출퇴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정보와 권력을 독점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재 청와대는 과거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도 정보공유 폭이 넓어졌다.”면서 “지금까지 대통령에게 1대1 대면보고를 한 것이 지난 8개월 동안 불과 10여차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청와대 386참모는 이 실장을 겨냥한 연쇄적인 인적 쇄신론에 대해 “통합신당의 사고가 초기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 실장이 인사와 정보를 모두 주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고 비판했다.또 다른 청와대 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12월15일에 인적 쇄신·국정 쇄신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여론에 떠밀리듯 미리 인사를 하게 될 경우 상당한 부담이 생기게 된다.”면서 무책임한 경질론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핵심실세는 ‘청와대에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지난 10일 대통령이 재신임투표를 발표할 때 이미 사의를 표명했던 것이 아니냐.”면서 “지금 당장 다시 사표를 내 반려되면 쇼하는 것처럼 비쳐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문소영기자 symun@
  • 올 가을 겨울 패션소품 트렌드/크게 더 크게 길게 더 길게

    ‘크게,더 크게∼.난 무엇이든 큰 게 좋아.’옷은 심플하게 입고 귀고리,시계,가방 등 소품은 눈에 띄게 큰 것으로 코디하는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깔끔하고 품위있는 연출’을 주제로 한 패션 코디는 단순하면서 고급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자칫하면 너무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고급스러운 소재와 포인트 색상을 사용한 소품으로 패션을 마무리하는 것이다.조이너스 전미향 디자인실장은 “올 하반기에는 과장되면서도 독특한 아이디어가 묻어나는 소품들이 더욱 사랑받고 있다.”며 “의상과 자연스럽게 섞이면서도 포인트가 되는 소품을 이용한다면 멋들어진 패션을 완성하는 데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유행 스타일과 자신만의 개성을 접목한 멋진 소품으로 패션을 완성해보자. ‘크리스챤 디올’의 2003년 하반기 특징은 하드코어(Hard Core).고무 소재인 라텍스나 금속으로 큼직하게 만든 브로치,목걸이 등 약간은 남성적이고 과격해 보이는 액세서리로 우아함이 흐르는 의상에 펑키 스타일을 가미했다. 미국브랜드 ‘랄프로렌’이 선보인 2003 가을·겨울 패션쇼에서는 과장된 귀고리와 초커(목을 조르는 듯 달라붙는 목걸이)가 등장했고,고급의 대명사로 알려진 ‘부셰롱’이나 ‘반 클리프 아펠’ 역시 큰 사이즈의 액세서리들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로마시대에서 영감을 얻어,팔꿈치까지 오는 과감한 디자인의 팔찌를 선보이기도 했다. 패션주얼리업체 ‘일루이’의 김종현 마케팅팀장은 “절제된 장식과 직선미를 살린 의상에 크고 화려한 장식의 액세서리 아이템이 국내외의 공통된 하반기 패션트렌드”라며 “심플한 도시적 이미지 위에 오버 사이즈(큰 사이즈)의 제품을 악센트로 사용해 단조롭지 않은 패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이는 것은 단연 시계.시계는 가을·겨울에는 소매 길이가 길어져 신경을 덜 쓰는 소품 중의 하나였지만 최근에는 센스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필수 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이탈리아 패션시계 ‘지오 모나코’나 대담한 숫자판과 정교한 움직임으로 유명한스위스 브랜드 ‘프랭크 뮬러’ 등은 요즘 트렌드에 부합하면서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스타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특히 여성용 시계는 작은 숫자판,화려한 보석 장식 등의 여성스러운 디자인 대신 남성용보다 큰 크기와 투박함을 가진 제품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또 금속과 가죽으로 일변되던 밴드의 경우도 진주체인,스웨이드(미세한 털이 있는 송아지나 산양가죽),데님 소재를 이용한 것 등 다양한 제품들이 많아졌다.스포츠 캐주얼 의류가 보편화되고 좀더 활동적인 느낌을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파시미나,숄,스카프,목도리.가을의 전령인 스카프나 산양 하복부의 털로 만든 파시미나는 고급스러운 정장과 잘 어울리고 품위있는 자리나 실내에서의 모임에서 하나만으로도 멋을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이맘 때면 폭넓은 사랑을 받는 아이템.때이른 추위에 최근에는 니트 목도리를 꺼내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소재,모양,색상 등은 각양각색이지만 예년보다 훨씬 길어졌다는 게 이들 소품의 공통된 특징이다.특히 남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목도리는 목에 둘렀을 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보통이었지만 올해는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다. 목에 감아 늘어뜨리거나 두번 정도 감아서 살짝 묶어주는 스타일이 편하다.앞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스타일이 간단하면서도 시선 분할을 유도해 슬림하면서도 길어보이는 착시현상을 주기도 한다. 가방은 반달모양의 ‘호보백’ 같은 큰 가방이 인기를 끌고 있다.손에 드는 ‘토트백’도 예년에 비해 커졌다.세부장식도 화려하다.스티치(바느질 장식),주머니,셔링(주름 장식),타슬(술),링 등을 크게 달아 포인트로 이용하고 있다.특히 호보백은 넓은 어깨끈에 가죽을 덧대거나 큰 링을 이용해 더욱 멋스럽게 했다. 최여경기자 kid@
  • ‘영혼의 그림’에 담은 神의 존재/‘손문자展’ 16~25일 유나갤러리

    화가 손문자(61)는 평범한 일상과 자연 속에서 신의 임재를 체험한다.그리고 그림을 통해 그런 신앙을 표현한다.종교적 열정과 신앙은 그의 예술의 촉매이자 상징적 의미의 원천이다.“영원을 볼 수 있는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말은 누구보다 그에게 잘 어울린다. 16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청담동 유나갤러리에서 열리는 ‘손문자 작품전’은 영성으로 충만한 자리다.이번 그림의 주제는 산상수훈.예수가 갈릴리 호숫가 산 위에서 기독교인으로서의 덕행에 관해 한 설교가 바로 산상수훈이다.작가는 자신의 따뜻한 그림을 통해 예수처럼 자기를 부정하고 겸손하게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 것을 권한다. 산상수훈의 주제는 오병이어의 이미지와 더불어 한층 뚜렷하게 드러난다.갈릴리 언덕을 묘사한 기하학적인 도형,팔복을 뜻하는 여덟 개의 동그라미 그리고 예수의 기적을 암시하는 물고기가 그의 그림의 포인트다.작가는 이 상징적인 도상들을 비슷한 계열의 절제된 색채로 보여준다.손문자의 그림은 궁핍한 이 시대,신의 사랑을 만천하에 전해주는 ‘영혼의 그림’이다.(02)545-2151. 김종면기자 jmkim@
  • 몸짓으로 그리는 가을 수채화/16~19일 국립무용단 ‘비어있는 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해질 무렵의 창(窓),빈 들판….이 가을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춤으로 형상화할 수 있을까.국립무용단이 16∼1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비어있는 들’은,무대를 화폭삼아 무용수들이 몸으로 그리는 한폭의 가을 수채화같은 작품이다. 올초 부임한 김현자 단장이 지난 4월 이미지극 ‘바다’에 이어 두번째 선보이는 공연으로,전통과 창작의 구분을 벗어난 그만의 독특한 무용스타일이 이번 무대에도 고스란히 배어있다.공연은 ‘저물 무렵,창’‘숲’‘가는 비 오다’‘거울앞 누님’‘추상(秋像)’,그리고 표제작인 ‘비어 있는 들’등 모두 6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각 장마다 가을의 우울한 창이나 하얀 국화꽃,가을 단풍,빈들을 가득 채운 갈대 같은 서정적인 정경들이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몸짓으로 표현된다.특히 5장 ‘추상’은 무용수들이 그때그때 느낌에 따라 춤을 추는 즉흥 춤판으로 꾸며진다. 김단장은 절제되고,은유적인 한국 무용의 표현영역을 확대시켜 마임과 연기적인 요소까지 결합함으로써 보다 역동적인 공연이 되도록 했다.무대미술가 박동우가 제작한 무대도 볼거리.앞쪽 객석 4줄을 뜯어내고 무대를 앞으로 당겨 깊이감을 살리는 한편 갈대를 활용해 가을 숲의 이미지를 살렸다. 강은구가 맡은 음악도 거문고 다스름,영산회상,피아졸라의 음악,범패,우크라이나 초원의 노래 등 장면에 따라 골고루 선곡돼 분위기를 맞춘다.최진욱,정윤 등 정상급 무용수와 함께 이소정,박미영,엄은진같은 차세대 무용수들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자리로도 의미가 있다.(02)2274-3507. 이순녀기자 coral@
  • [녹색공간] 질병의 자리

    영국 유학시절 우연히 보게 된 텔레비전 프로에 이런 것이 있었다.꽤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회를 보던 여성 앵커의 이야기였다.어머니와 언니를 유방암으로 잃은 그녀는 자신도 언젠가는 그들과 같은 병에 걸릴 것이라는 두려움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여기저기 병원을 전전하던 그녀는 유전자 검사를 받게 되고 그 결과 유방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된다.당시 유방암이 시작되고 있다는 아무런 증상과 증후가 없었음에도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다.불안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외견상 아무런 이상이 없던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여러 명의 의사를 찾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수술을 해 주겠다는 외과 의사를 만나게 되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다.유방재건수술까지 마치고 속옷 차림으로 거울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프로그램은 끝을 맺는다.그런데 수술 뒤 행해진 조직검사의 결과를 설명하는 해설자의 마지막 말이 시청자를 아뜩하게 만든다.“정밀한 조직검사가 행해졌지만 그녀의 유방조직에서는 아무런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7번 염색체에 있는 BRCA1이라는 유전자가 유방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되어 있다.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 중에서 정말로 유방암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예외없이 유방암과 난소암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이며,대부분의 유방암 환자는 이 유전자와 관계없이 유방암에 걸린다는 것이다.가족력이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이 유전자를 가진 가정의 모든 여성이 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이들의 유방암 발병률은 85%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 여성의 질병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적절한 답을 구할 수 없었던 나는,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해 주고 나름대로의 답을 적어보라고 했다.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름대로의 논리로 정리한 글을 제출했다.그런데 한 학생이,질문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지적을 해 나를 놀라게 했다.그 학생의 논리는,질병이 꼭 어디에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었다.다시 말하면 꼭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질병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그러고는,본래 질병이란 ‘느끼는’ 것이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 지금까지 나는,나를 찾는 환자를 대할 때 그 환자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고통받는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어디를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에 모든 관심을 쏟았던 것이다.결국 그게 그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출발점이 다르면 같은 노력을 들이고도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그 학생은 일깨워주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의료현장에서 따뜻한 인간애가 사라지고 있다는 주위의 지적은 바로 의료가 인간의 실존적 고통보다는 질병이라는 의학적 실체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의학 연구도 국가 정책도 새로운 치료수단을 개발하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의료비는 끝없이 오르고 의료서비스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대부분의 학생들은 위에 말한 여성이 수술을 받은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하지만 그들이 의학교육을마치고 현장에 나갔을 때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강 신 익 인제대 교수 의철학
  • 美비만청소년 ‘위절제 수술’ 는다

    다이어트와 운동이 싫은 미국 비만 청소년들이 비만 탈출을 위해 ‘위절제술’이란 극약처방에 매달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7일 보도했다.보통 위절제술은 식욕장애가 심각한 비만 성인들을 대상으로 ‘최후의 수단’으로 행해져 왔으나 최근 10대들에게 권장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 2년간 150명 정도가 이 수술을 받았으며 점차 증가 추세에 있다.이는 미국에서 청소년 비만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준다.정부 통계자료에서 2000년 6∼18세 청소년의 15%가 비만으로 20년 전보다 9%포인트나 늘어났다.한 소아과 의사는 약 25만명의 비만 청소년들이 잠재적 고객(?)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만 해도 사회적 거부감이 강했으나 최근 성인병을 앓는 10대 비만 환자 증가로 의료부담이 늘어나고,이들의 수명 단축이 우려되는 등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때문에 점차 용인되는 분위기라고 신문은 전했다.또한 인내와 고통을 동반하는 전통적인 체중 감량 요법보다 훨씬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병원이 값비싼 심장병 수술이 급감하자 새로운 수입원을 찾은 것이라고 꼬집고 있다.4만달러(약 4600만원)나 하는 이 수술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박상숙기자 alex@
  • 盧대통령 기자간담회/“각성제 같은 경제정책 안해”

    |발리 곽태헌특파원| 노무현 대통령은 8일 숙소인 발리 하얏트호텔에서 수행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갖고,북한핵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으나 SK로부터 거액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최도술 전 비서관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북한은 인내하기 어려운 다급한 상황” 노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큰 틀에서는 (평화적으로 잘)해결될 수밖에 없지만 구체적으로 절차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평화적 해결의 당위성과 기대는 있지만,북한과 미국간의 불신 탓에 단기적으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노 대통령은 “시간이 흐르면 북한에 불리하다.”면서 “북한은 (핵연료봉 재처리 등)1,2차례 모험적인 주장과 행동을 했으며 한국에 긴장과 위협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중유공급이 중단되고 경수로건설이 중단될 위기”라면서 “북한은 에너지와 식량문제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뭔가 상황이 변경되지 않으면 안되고,미국을 대화로 끌어내려고 반복해서 행동하게 된다.”고 말했다.노 대통령은“우리도 인내심을 가져야 하지만 북한의 인내심과 맞물려 있다.”면서 “북한도 인내하기 어려운 다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각성제 투입 같은 (경제)정책은 절대하지 않겠다” 노 대통령은 “전체 아세안의 경제덩치가 크지 않아 소홀하기 쉬우나 한국의 상대로는 큰 비중이어서 아세안과 경제관계를 돈독하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에 급박하게 닥친 문제는 FTA”라고 말했다.노 대통령은 “이런 추세를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아세안과의 관계에서 FTA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표명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경제문제와 관련,“아무리 어려워도 그때 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처하지 않겠다.”면서 “경쟁력과 잠재성장력을 훼손하는 일회적인 각성제 투입 같은 정책은 되도록 절제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최 전비서관 언급 회피 노 대통령은 최도술 전 비서관과 관련,“내가 말하면 (기사를)써야 하니까 편하게 해주겠다.”면서 “내용을 다 알지는 못하며,지금 여기서 그런 얘기 많이 한다고 결판날 일도 없고,국내에 가서 말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이어 “대통령이 앞질러 말하는 것을 (국민들이)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면서 “천천히 말하자.”고 말을 끝냈다. ●“위안화 관련,옥신각신하지 않은 것 다행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일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를 주재하면서 위안화 문제가 나온 배경과 관련,“정해진 의제가 다 끝난 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중국의 수출 증대만을 목표로 위안화가 조작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면서 “그냥 듣고 넘어갔으면 됐는데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의견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의 희망으로 보일 수도 있는 말을 했고,이에 대해 원 총리가 ‘오해가 있어서 다시 말하겠다.’고 부연 설명했다.”면서 “(일본과 중국 총리간에)옥신각신 하지 않고 끝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tiger@
  • 점, 선, 여백…/호암·로댕갤러리 이우환展

    이우환(사진·67·도쿄 다마 미술대 교수)은 흔히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로 불린다.그가 그리지 않는 그 ‘여백’이야말로 그의 존재론적인 사유의 결정체다. 그에게 여백은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이 아닌 열린 세계,곧 우주와의 교감이 이뤄지는 현장이다.작가와 대상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과 울림,철학적 사유의 아름다움이 그 안에 담겼다.나와 타자,현실과 관념 사이를 중재하며 작가는 특유의 여백의 미학을 보여준다.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 여백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그렇기에 이우환의 그림은 ‘어려운’ 그림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호암갤러리(02-771-2381)와 로댕갤러리(02-2259-7780)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이우환-만남을 찾아서’전은 국내에서 처음 마련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다.일본과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온 이우환의 예술세계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우환은 화가이자 조각가,문예비평가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그는 일찍이 1960년대 후반 일본에서 미술평론가로 등단해 당시의 모노하(物派) 운동을 주도했으며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전위미술운동과 단색화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한국과 일본 현대미술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이다. 미술사적으로 이우환은 모노하에 최초로 이론적인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모노하는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에 걸쳐 일본에서 나타난 미술경향으로,전후 일본 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 가운데 하나다. 나무나 돌,점토,철판 같은 모노(物),즉 물건을 거의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작품을 보는 사람이 그 공간 안에서 사물과의 관계를 직접 자각토록 한다는 점에서 모노하는 현상학적이다.이우환이 추구하는 사유와 감성의 조화 또한 그런 ‘만남의 현상학’에 다름 아니다.이번 전시에는 35점의 회화작품 외에 사물과 사물 혹은 사물과 인간간의 관계를 다룬 조각도 여러 점 나와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서울 태평로 대한매일 사옥 앞에 설치돼 일반에 널리 알려진 ‘관계항(關係項,Relatum)’.한 장소에서 서로를 의탁하고 있는 철판과 돌의 모습이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역시 저것에서 말미암게 된다.”는 장자 ‘제물론’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조각작업을 병행해서인지 이우환의 그림에선 공간감이 짙게 묻어난다.그는 캔버스의 바탕과 긴밀하게 호흡한다. 색채와 형태,구성,이미지 등 회화적 요소를 되도록 배제하는 그의 그림에서 캔버스에 나타난 선 하나,점의 위치,방향성,붓자국의 나타남과 사라짐,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조응관계는 매우 중요하다.이번에 선보인 ‘조응(Correspondence)’ 시리즈에서는 80년대 해체적인 분방함에서 90년대 엄격하고 절제된 공간으로 회귀한 작가의 예술적 변모 양상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이우환은 백남준과 함께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국제무대에서 인정받는 작가다.지난해 ‘호주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에서는 백남준,쿠사마 야요이와 함께 아시아의 대표작가 3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같은 세대인 백남준에 대해 그는 “백남준은 비디오의 창시자인 동시에 비디오의 종말을 고한 자”라고 평가한다. 이번 전시는 그 이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우환의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준다.전시는 11월 16일까지. 김종면기자 jmkim@
  • 묘사 이상의 감각적 인물화/화가 유현숙 21일까지 개인展

    서양화가 유현숙(39)의 인물화는 매우 독특하다.무엇보다 인물의 배경이 또렷하지 않다.그저 퇴락한 벽 같은 화면만이 아련히 인물을 받쳐줄 뿐이다.부드러운 중간색조의 그림은 세부적인 묘사를 절제한 흔적이 역력하다.그런 만큼 몽롱한 분위기가 강하지만 강렬한 느낌 또한 지울 수 없다. 10년째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작가 유현숙이 7일부터 21일까지 서울 태평로 갤러리 코리아에서 초대전을 연다.인물화를 중심으로 20여점이 선보인다.스냅사진처럼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하는 그의 그림은 인물화라고 하지만 인물 자체의 구체적 형상을 그리기보다는 내면의 파토스를 드러내는 데 치중한다.때로는 고양이 같은 동물을 등장시켜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Conception(개념)’이란 작품이 대표적인 예.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묘사한 그림으로 작가의 독특한 미적 감수성을 헤아려보는 텍스트가 될 만하다.(02)774-1366. 김종면기자
  • 스페인 방랑화가의 독특한 ‘원색 에너지’/29일까지 선갤러리 ‘에두아르도 우르쿨로’ 展

    파블로 피카소,호안 미로,살바도르 달리,후안 그리스,훌리오 곤살레스,파블로 가르가요,에두아르도 아로요,안토니 타피에스….20세기 현대미술을 살찌운 스페인 출신 작가들이다.스페인 출신 작가들의 특징이라면 가공할만한 에너지와 무한한 상상력,풍부한 감수성을 꼽을 수 있다.이같은 스페인 현대미술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또 한 명의 거장이 바로 에두아르도 우르쿨로(1938∼2003)다.그러나 그의 작품세계는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측면이 없지 않다. 서울 인사동 선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에두아르도 우르쿨로’전(29일까지)은 그런 점에서 특별히 눈길이 가는 전시다.정물화를 중심으로 유화,드로잉 등 모두 56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서는 6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르쿨로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마지막 암소’‘신비한 테라스’‘시선’‘정물화’‘카페’ 등 대표작들이 망라됐다. 우르쿨로는 영원한 ‘방랑화가’다.그 자신이 여행을 무척 좋아해 스스로를 여행자 혹은 방랑자로 불렀다.우르쿨로는 “나의 의도는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할 주제들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그 주제들이란 여행가방,모자,구두,재킷,우산,암소,기모노,엉덩이,두개골,뉴욕의 도시풍경 등 사뭇 독특하다.작가는 특히 마천루의 스카이라인,브루클린 다리 등 뉴욕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여행자가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우수 깃든 화면에 담아냈다. 우르쿨로의 작품들은 미술사적으로 팝아트 양식에 가깝다.말기에는 큐비즘에 기울어 팝아트와 큐비즘을 결합한 ‘네오 큐비즘’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리듬감 넘치는 절제된 화면을 추구하는 그는 스페인의 전통적인 낭만주의적 특성에 따라 화려하고 강한 원색을 구사했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 순회전의 하나로 올들어 베이징,콸라룸푸르,상하이에서도 우르쿨로전이 열렸다.우르쿨로는 지난 7월 베이징 전시를 마치고 귀국한 직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전시에 맞춰 한국에 온 미망인 빅토리아 이달고씨는 “우르쿨로가 한국 방문을 고대했는데 갑작스럽게 사망해 안타깝다.”고 말했다.(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개정판 만드느라 새벽까지 잠 못자요”/‘한국민법학 태두’ 곽윤직 前서울법대 교수

    ‘한국민법학의 태두’에서 ‘곽서(郭書)’까지. 후암(厚巖) 곽윤직(郭潤直·78) 전 서울법대 교수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그러나 이유는 단 하나.바로 60년대 중반부터 잇따라 내놓은 ‘민법총칙’,‘물권법’,‘채권총론’,‘채권각론’ 등 민법강의 시리즈의 탁월함이다.사법시험 준비생들 사이에 ‘바이블’로 통하다 요즘에는 간단히 ‘곽서’로 불린다. ●저서 ‘민법시리즈' 사시준비생 바이블 서울 용산구 후암동 자택으로 찾아갔다.현관에서는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 3마리가 먼저 반긴다.뒤따라 나온 곽 전 교수는 “저렇게 클 줄 몰랐는데…”라며 웃는다.자녀들이 다 분가해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5년 전쯤 종자도 잘 모르고 새끼를 받아왔다고 한다.집안의 첫 느낌은 낡았다는 것이다.겸연쩍게 말을 붙이자 별일 아니라는 듯 40년된 집이란다.체면도 생각해서 널찍한 아파트로 옮기라는 말도 수없이 들었다.“살다보니 무슨 책이 어디에 있는지 손에 익었어요.이사가면 흐트러지는 게 귀찮더라고요.” 그래도 명절 때 잊지 않고 찾아주는 제자들덕에 적적하지는 않다고 한다.자주 찾아오는 제자들 이름을 물어보니 서성 전 대법관,윤재식 대법관,손지열 대법관 등 기라성 같은 법조인 이름이 쏟아져 나온다. 주말에는 손자 7명이 찾아와 시끌벅적해진다.이제 중학생이 돼서 많이 점잖아졌다고 자랑하는 얼굴은 영락없이 이웃집 할아버지다. 2층 서재를 둘러봤다.독일·스위스 민법 전집을 비롯해 판례공보 등 각종 잡지들이 빼곡히 차 있다.깔끔하게 정리된 가운데서도 고서점 같은 묵은 책 냄새가 물씬 풍긴다.책장을 보니 외국서적은 개정판마다 구입한 책도 여러 권 된다.“꼭 필요한데 웬만한 대학도서관에도 없어요.개정판이 나오면 호기심은 생기는데….” ●이공계 원했지만 낙방후 법학공부 1층 응접실로 내려와 근황을 물었다.곽 전 교수는 요즘도 ‘곽서’를 개정하느라 바쁘다.개정판을 11월까지는 마무리하려고 강행군 중이다.전날 상속법 부분을 연구하느라 새벽 4시까지 책을 뒤적였다.현역시절처럼 새벽에 책을 보는 것이 가장 편안하단다.밤늦게 책을 보다 보니 오전 11시쯤 늦게 일어난다.식사는 오후 1시쯤,밤 10시쯤 두번이다.이런 습관 때문에 담배도 여전히 하루 1갑이다.“줄인다고 줄인 게 1갑이에요.나 같은 사람에게 담배는 밤의 벗이지.” 건강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사실 인터뷰 약속을 잡으면서 약간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전화상으로 발음이 부정확한 듯 했기 때문이다.“그때는 저녁시간이어서 의치를 빼고 있어서 그랬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건강을 위해 별달리 관리하는 것도 없고 불편한 것도 없다고 한다.육류를 피하고 된장 같은 우리 음식이나 야채,생선을 즐긴다.암으로 오진받아 위절제 수술받은 것 빼고는 병원에 간 일도 별로 없다.한때 골프와 바둑을 즐겨 했다.그러나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골프는 소풍가는 기분으로 다녔고 바둑은 흥이 나는 대로 뒀다.승부에 집착하면 오락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 스스로도 재미없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다시 태어나면 법학자는 안 되겠단다.“물건을 만들거나 건물을 짓거나 직접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는,그런 일을 해보고 싶어요.추상적인 이론과 논리는 골치가 아파서….” 이 때문인지 자녀 가운데 법과 인연을 맺은 사람이 없다.1남3녀를 뒀는데 모두 평범한 직장인이다. 곽 전 교수와 민법학의 인연은 몇차례 고비가 있었다.일제 때 강제징집을 피하기 위해 이공계 공부를 하려 했다.결과는 색맹 때문에 낙방.어쩔 수 없이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형법 쪽에 관심이 많았다.그러나 공부하면서 민법의 중요성을 깨달아 관심을 돌렸다. 강단에 선 것도 군 제대 뒤 주변사람의 권유 때문이었다.군복무 직후 고등고시 시험이 있었는데 사법과가 두달,행정과는 석달 남았더란다.그래도 행정과가 여유있다는 생각에 시험을 봤는데 2등으로 덜컥 붙어버렸다.외교관을 권유받았지만 강의나 하겠다며 학교로 되돌아 왔다.“그때 여유가 있어 사법과를 보거나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지금과는 다르겠죠.” 강의는 ‘악명’높았다.학생들은 넘쳤지만 앞자리는 항상 텅 비었다.안 들을 수는 없고 듣자니 눈초리가 매서웠기 때문이다.학점도 박했다.“일부러 아주 못되게 굴었지요.어려운 질문만 골라서 하고 학생이 질문하면 질문수준이그것 밖에 안 되느냐고 야단치고….미워했던 학생들 많았을 겁니다.” ●“학점 짜게줘 미워하는 학생들 많았죠” 곽 전 교수가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은 고 김증한 교수가 유일하다.김 교수 밑에서 배운 독일어와 독일법은 두고두고 밑천이었다.혹독했던 김 교수의 강의 밑에서 살아남은 학생은 그와 그의 친구 단 2명뿐이었다.그가 ‘곽서’에 매달리게 된 것도 같은 이유다.공부할 때는 일제가 30년대 들여놓은 법전을 봤고,강의할 때는 일본학자들 책 번역서 몇 가지가 전부인 현실이 못마땅했다.우리 손으로 책을 만들어 보자는 오기가 일었다.또 우리 실정에 맞는 판례연구를 해보자는 생각에 1977년 우리나라 최초 법학학회인 ‘민사판례연구회’를 조직했다.이 모임은 지금도 연구성과를 모아 1년에 책 한권씩 내고 있다. 문제는 교수양성체계의 부실함으로 모아졌다.“일본만 해도 대학 졸업 뒤 3년간 조수로 공부하고 나면 15년간 조교수 생활을 거칩니다.이 과정을 끝내야 교수가 되어서 강의를 맡고 학생을 지도합니다.적어도 18년간의 수련과정이 있다는 거지요.” 예전에는 책을 쓰면 내용을 하나라도 더 집어넣으려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스위스식 교재가 우리에게 적합해요.학생들을 위한 개괄적인 책과 실무자·전문가를 위한 세부적인 책,이 두 종류면 됩니다.”그래도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욕심은 여전한가보다.“요즘 사람들 두껍거나 한자가 많이 들어간 책을 너무 싫어해요.” ●“대법관 인원 더 늘려야 합니다” 논란이 됐던 대법관 제청파문과 사법개혁에 대해 물었다.전혀 다른 개혁을 얘기했다.“대법관 수를 더 늘려야 합니다.독일만 해도 대법관격인 최고재판소 판사가 150명입니다.각기 전문분야별로 재판부를 구성해 사건심리를 하고 있습니다.” “합의부 배석판사 제도를 폐지하고 판사로서의 수련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법관의 전문성을 키워줘야 한다는 뜻이다.대법원 구성에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전국 법관이래야 2000명 안팎입니다.10년차 이상이라면 이미 개개인에 대한 평가가 있다고봐야 합니다.오히려 지금 같은 시스템이 철저한 능력에 의한 인사입니다.” 부인과 만나려 했으나 끝내 보이지 않았다.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자 곽 전 교수는 “늙은이 얘기 너무 쓰지 말라.”며 다시 2층 서재로 발길을 돌렸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정치권 색깔논쟁 가열

    송두율 교수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한나라당은 5일 엄정한 사법처리와 함께 ‘기획입국’ 의혹에 대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고,사실상 여당인 통합신당측은 이를 ‘색깔공세’로 규정하며 맞불을 놓았다.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는 “송씨가 김정일 추종자라는 사실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검찰의 엄중한 수사와 사법처리를 주장했다.그는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송 교수 수사와 관련,“건수 잡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고 언급한 데 대해 “김정일 추종자에 대해 시비 거는 것을 건수 잡은 거라 말하다니 당혹스럽다.”고 일축했다. 여권의 색깔론 제기에 대해 홍 총무는 “색깔 논쟁이란 말이 무절제하게 쓰이고 있다.”면서 “김정일 추종자에 대해 색깔공세를 하지 말라는 것은 자신이 김정일 추종자이거나 김정일 추종자의 비호세력”이라고 비난했다.최병렬 대표는 “검찰 수사는 영역이 더 넓어지고 구체화돼야 한다.”며 “송씨를 왜 데려왔고,누가 데려왔으며,KBS는왜 송씨를 미화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타협하지 말고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수사 확대를 주문했다. 이에 통합신당측은 “송 교수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이 또다시 해묵은 색깔공세를 펴고 있다.”고 역공에 나섰다.김근태 원내대표는 “냉전시대의 매카시즘이 다시 기승을 부려선 안된다.”며 “마치 거물간첩이 온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21세기에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이어 “밝힐 것은 밝히되 국민의견을 존중해 국민화해와 남북분단의 비극 등 전체적인 구도를 잃지 않는 선에서 매듭지어야 한다.”고 원만한 처리를 주장했다. 김영춘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도 “송 교수 개인의 문제를 마치 엄청난 배후세력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데 반대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민주당은 엄정한 수사와 함께 소모적 논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두 당과의 차별화를 꾀했다.유종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송 교수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정치공방과 국론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며 “국정원과검찰,청와대,KBS,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관련기관이 좀 더 당당한 자세로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송 교수 본인도 모든 사실관계를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한 뒤 법과 국민감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처리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경호기자 jade@
  • 청소년 신용불량 해결책 없나 / 실태 분석

    빚더미에 절망하는 20대 청춘들이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년들이 무절제한 과소비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요즘에는 실업난 등으로 생계형 신용불량자도 늘어나는 추세다.지난 8월말 현재 20대 신용불량자는 67만여명으로 전체 20대 12명 중 1명꼴에 달했다.청년 신용불량의 실태와 해결의 실마리를 알아봤다.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명동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국 6층 상담실.개인워크아웃(상환기간 연장,부채 감면 등 금융기관과 신용불량자간 채무 재조정을 통한 경제적 회생)을 주선하는 이곳은 시장터나 다름없다.18개 상담창구는 꽉 들어찼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대기실은 물론,복도와 비상계단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30분간의 상담을 받으려면 꼬박 4∼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최모(24·충북 청주 출신·서울 C대 휴학중)씨도 3시간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그가 카드빚 3000만원을 안고 신용불량의 멍에를 쓴 것은 올해 초.집안이 가난해 대학 첫 등록금부터 카드빚을 내야 했다.처음 서울에 올라올 때만 해도 아르바이트로 등록금과 하숙비 정도는 충당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뜻대로 안됐다.몇백만원의 카드빚이 순식간에 두배,세배로 커졌다.최씨는 지금 신용카드사에서 연체자에게 빚 독촉하는 일을 하고 있다.자기와 똑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상대로 빚 받아내는 것이 미안하지만 그나마 돈벌이가 제일 쏠쏠하다.그는 마음이 급하다.취직을 하려면 졸업 전까지는 신용불량 딱지를 떼어야 하기 때문이다. 5300만원을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된 김모(28·여·대전시)씨는 서울대 공대 출신의 재원.2년 전 부친이 큰 병에 걸린 뒤 병원비를 대느라 카드빚을 졌다.다니던 대기업 연구소는 그만둔 지 오래고 지금은 학습지 방문교사를 하고 있다.회사로 연체독촉이 빗발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주부 박모(53)씨는 신용불량자인 딸(26)을 데리고 왔다.“딸이 살을 뺀다며 다이어트 식품을 마구 사들이기에 무슨 돈으로 저러나 싶었지요.그게 다 카드로 긁었던 거였죠.나중에 보니까 갖고 있던 옷이며 핸드백이며 모두 몇십,몇백만원짜리 명품들이더군요.” 박씨는 이미 2000만원씩 2차례에 걸쳐 딸의 빚을 갚아줬지만 이제는 능력이 없는 상태다.딸의 빚은 현재 8000만원이 넘는다. 20대 청년 신용불량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통계수치가 말해준다.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차 신용불량 증가기간에는 30∼50대들이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의 2차 신용불량 증가기에는 20대가 다른 연령대를 압도하고 있다.올 8월말 현재 20대 신용불량자 수는 67만 2000명.20대 전체 인구 795만 4000여명(통계청 추계)의 8.4%다.전체 신용불량자 수(341만여명)가 지난해 8월에 비해 43% 가량 늘어난 데 반해 유독 20대는 70% 이상 증가했다.특히 20대 여성 신용불량자의 증가율이 가파르다.올초 20만 8600여명에서 31만 100여명으로 48.6%나 증가했다. 잠재 신용불량의 위험성도 커지고 있다.국민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했던 ‘20대 소비·금융 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3명 중 1명꼴인 34.1%가 카드 결제대금이 모자라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4명중 1명(24.5%)은 카드빚을 갚기 위해 돌려막기를 경험했다.국민은행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청년실업이 더욱 심각해진 지금은 연체 위기에 빠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용회복지원위원회 김승덕 홍보팀장은 “과소비로 인한 신용불량이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경기침체와 빈부격차 심화 등으로 생계를 꾸리려다 잘못되는 20대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한국금융연구원 이건범 연구위원은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청년들이 대거 신용불량자가 돼 경제활동에서 이탈함으로써 성장잠재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전문가가 본 쿠체/추상성 빼어난 ‘제2카프카’

    쿠체의 소설을 접해본 이들은 그의 문체가 절제된 가운데도 폐부를 찌르는 힘이 있다고 한다. 탄탄한 구성과 사변적 깊이 그리고 존재의 밑바닥까지 울려오는 전율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보기 드문 거장의 대작을 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또한 그 작품 배경의 추상성과 절망의 함정으로 점철돼 있는 상황들은 카프카의 작품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쿠체의 소설에서는 남아프리카와 닮은 상황들이 종종 재현되지만 구체적인 장소들은 언급되지 않는다.이런 독특한 설정 때문에 그는 현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핵심을 비껴간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실제로 그가 작품활동을 시작했을 때 남아프리카에서는 인종분리 정책이 시행되고 있었으며,그는 ‘정치적 작가’라는 꼬리표가 붙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이렇게 회피적 방편으로 출발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작품의 추상성은 그러나 그의 작품에 깊이와 보편성과 사유적 공간을 부여하는 힘으로 작용하게 된다. 예를 들면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의 배경은 19세기의 어느 불특정한 시기 제국의 전초기지로 매우 추상적이다.이 변방의 요새는 ‘야만인’들이라 불리는 유목민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제국의 중앙정부에서 파견된 군사요원들은 지금까지 이 변방의 요새를 평화스럽게 다스려온 치안판사의 온건한 정책을 폐기하고 야만인들에 대한 강경한 탄압과 정복전쟁을 시작한다. 지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누구든지 이것이 남아프리카의 백인들이 흑인들에 대해 가지는 망상적 공포와 그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반응 그리고 그런 반응들이 연쇄적으로 불러오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의 추상성은 남아프리카의 상황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지 않지만, 백인들이 처한 거북한 입장을 억압적 지배자의 집단에 속하면서도 그 집단의 정당성을 믿을 수 없는 묘한 위치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로 일반화시켜 순전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사가 가지지 못하는 사유의 깊이를 작품에 부여한다. 그 외에도 최근 한국의 강단에서 많이 논의되는 쿠체의 작품으로는 18세기 영국작가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여성의 시각에서 다시 쓴 ‘포’(Foe)라는 작품이 있다.이것은 고전적 작품을 패러디하며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전형적인 포스트모더니즘적 실험이라 할 수 있는데,‘야만인을 기다리며’에 비해서는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전수용 교수(이화여대 영문과)
  • 새 작품집 낸 중견 VS 신인 정길연 - 정이현 대담

    등단 19년 만에 “이제 소설이 뭔지 알 것 같다.”는 작가 정길연(42)과 첫 작품집을 내고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신인 정이현(31)이 28일 만났다.비슷한 시기에 작품집을 낸 여성작가란 사실 하나만으로 통한 것일까.장편 6편에 두권의 작품집에 이어 세번째 작품집 ‘쇠꽃’(문이당)을 낸 농익음과 지난해 등단한 뒤 ‘낭만적 사랑과 사회’(문학과지성사)를 갓 구워낸 풋풋함은 첫 만남이란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도란도란 정담을 일구었다.말문을 연 것은 선배.후배의 ‘첫 출산’을 축하한 뒤 문학입문 과정을 이야기한다. 연:정외과(성신여대)를 졸업하고 문예창작과(서울예대)로 재입학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야.그 전문성은 소설의 자양분이거든.나처럼 바로 문창과(서울예대)에 들어간 경우엔 때로 문학 자체의 세계에 갇힌다는 한계를 실감할 때가 있거든. 현:든든한 힘이 되네요.사실 ‘작가 오정희’론을 펼치는 20살 동기들을 보며 ‘난 저 나이에 뭐했나.’하며 기죽기도 했거든요. 연:아니야.40대쯤되면 그 모든 걸 소설이란 용광로에 녹일힘이 생겨.소설가는 장거리 주자이거든. 다리도 놓을 겸 살짝 끼어들어 작품집 낸 소감을 물었다. 연:이제 작품집 낸 기분이 뭔지 알겠어요.등단 이후 정신없이,그저 작가이기에 쓴다는 관성에 등 떼밀려온 느낌이었거든요. 현:일단 기쁘고 설렙니다.교정지 넘긴 이후 ‘붕’ 떠있었어요.막상 책이 나오니 ‘진짜 독자’를 만난다는 부담도 들고요. 두 사람은 대담 제의를 받은 뒤 촉박한 일정을 쪼개 서로의 작품을 읽었다.그 발품에 힘입어 상대 작품에 대한 덕담과 조언을 주고받았다. 연:문단에는 선,후배가 없어요.무서운 신인작가 많아요(웃음).문체만 있고 내용이 빈약한 작가들이 꽤 있어 걱정했는데 이현씨는 ‘트렁크’나 ‘무궁화’등의 작품에서 보듯 발랄함과 정통적 기법을 겸비해 인상적이었어요. 현:그저 학교서 받은 수업에 충실하면서 제 주위 이야기를 담으려 한 것입니다.선배님 작품을 계속 읽은 편인데 장편 ‘종이꽃’에서 이번의 ‘쇠꽃’ 사이에 즉,한없이 연약한 종이가 단단한 쇠가 되는 과정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연:큰 변화는 없어요.다만 개인적 환경변화에 따라 공중의 상상력이 땅에 뿌리내리면서 굳게 박혔다는 느낌,혹은 작가로서 배수진을 쳤다는 생각이 드네요. 얼핏보면 군더더기 없는 구성과 정제된 문체로 느릿느릿 걸어온 선배와 재기발랄한 문체로 ‘쌩’달리는 후배의 작품세계는 달라보인다.그러나 둘의 소설관은 딱 맞아떨어진다.“독자에게 늦게 들킬수록 작가로서는 더 좋은 고도의 사기극”이라는 선배의 말에 후배는 “어머,놀랐어요,전 작품집에서 소설이 ‘짝퉁’(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물건)이라고 썼거든요.”라고 맞장구친다. 하지만 ‘있음직함’을 그리는 방법은 달랐다.“둘다 동시대 여성의 질곡을 다뤘는데 저는 사회에 초점을 두었는데 선배님은 개인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 본다.”는 후배의 정리에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 모세혈관에서 찾은 문제점을 대동맥에 연결시키는 게 과제”라고 말한다.이어 “이현씨도 언젠가 그 역의 작업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장편 쓰는 풍경,첫 작품집 이후 짐벗기 등 아직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후배의 질문은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선배는 자신의 경험을 자상하게 들려주었다. 이종수 기자 vielee@ 정길연‘쇠꽃’ 잘짜인 구성과 시처럼 절제된 문체,생생한 대사가 8편의 작품에 빛난다. 기막힌 반전을 숨기며 유부남인 친구 오빠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키우는 주인공과 어머니의 2대에 걸친 기구한 인생을 담은 ‘연’을 비롯,애인과 공모하여 초호화 양로원 노블 팰리스에서 수발들던 할머니의 차를 훔친 뒤 그에게 버림 받은 이야기를 다룬 표제작 등 질곡과 싸우기보다는 숙명적으로 안고가는 여인들의 한많은 사연을 촘촘히 엮었다. 정이현 ‘낭만적 사랑과 사회’ 여러 유형의 영악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경박한 세태를 조명한 작품집. ‘결혼=인생 최대의 도박’이라 여기는 깜찍하고 도발적인 주인공의 남자 관계를 소재로 성 풍속도를 스케치한 표제작을 비롯, 8편을 담았다.남편과의 세차례 사별에 원인을 제공한 듯한 여성(‘순수’),자신의 출세를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화장품 회사 중견 간부(‘트렁크’)등악마적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초점은 그런 인물을 낳은 사회를 까발리는 데 있다.
  • [癌없는 세상]방사선 최신치료법

    흔히 대다수 사람들은 방사선치료를 ‘암환자가 수술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는 치료’쯤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방사선치료법이 얼마나 발전했으며 부작용도 거의 없이 암 정복에 기여하는지를 안다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방사선치료법으로는 전산화 단층촬영(CT)이나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들 수 있다.첨단 영상과 컴퓨터를 동원해서 종양의 위치와 크기,모양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뒤 정상조직을 피해가면서 종양에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투사하는 방법이다.이 가운데서도 가속된 수소입자를 이용한 양성자 치료가 최근들어 새로운 암치료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실 기존에는 방사선(X선)을 쪼이면 암세포뿐만 아니라 방사선에 노출되는 정상세포들도 파괴되어 이로 인한 후유증도 있었다.X선은 처음에는 선량(線量)이 높았다가 몸속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약해지기 때문에 표피 가까이 있는 정상세포가 암세포보다 훨씬 많은 손상을 받는다.그러나 양성자는 정상세포에 별 영향을 주지 않고 그냥 통과하다가몸속에 있는 암조직에 도달해 순간적으로 파괴력을 극대화 한 후 그 자리에서 소멸된다.이런 현상을 ‘브래그피크(Bragg’s Peak)’라고 한다. 예를 들어 뇌종양환자를 치료한다면 양성자 투입구에는 소량의 방사선이 노출되나 뇌 중심부에 위치한 종양에는 막대한 방사선이 투입된 후 소실되어 투입구 반대쪽의 정상 뇌 조직에는 방사선 노출이 전혀 없다. 또한 골반에 위치한 종양의 예처럼 양성자 치료를 여러 방향에서 투입할 경우 종양에는 많은 방사선이 투입되는데 반해 주위 정상조직에는 극소량의 선량에 조사되므로 부작용 없이 암의 완치율을 높일 수 있다. 이 브래그피크의 위치는 에너지를 조절함으로서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고,암의 위치(깊이)에 따라 에너지를 조절함으로써 종양에 정확하게 필요한 방사선을 투입할 수 있어 ‘꿈의 방사선치료’로 각광받는다.이 치료법은 방사선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현재 미국·일본·유럽 등 10여개 기관에 치료전용 양성자 시설이 있으며,전 세계적으로 20여 군데에서 이같은양성자치료 장치를 설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립암센터에서도 도입 설치 중에 있으며 2005년부터는 양성자치료법을 일반에 적용할 계획이다. 조관호 양성자치료센터장 표홍렬 전문의 신경환 전문의 ■다양해진 치료법 항암요법으로 쓰이는 방사선 치료도 개인의 특성에 따라 맞춤형이 등장하는 등 치료법이 다양해지고 있다.국립암센터 표홍렬 전문의와 신경환 전문의의 도움말을 얻어 최신 방사선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맞춤방사선 치료’ 최근들어 종양세포에 대한 방사선치료 효과를 선택적으로 높이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반면 암이 아닌 정상조직에만 방사선의 효과를 둔화시켜 치료효과를 높이는 방법도 이용되고 있다.이처럼 선택적으로 방사선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사용되는 약제를 ‘방사선보호제’라고 한다. 예컨대 아미포스틴이라는 약제는 두경부암에서 방사선치료를 할 때 가장 큰 문제점인 구강건조증(입마름증)을 예방하기 위해 임상에서 사용된다. 암은 매우 복잡한 원인과 과정이 개입돼생기고,이미 생성된 암도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따라서 복잡한 요인들로 인해 생긴 암을 단순히 한두 가지의 요인을 치료한다고 해서 완치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암의 생성과 생존에 관여하는 다양한 분자들이 규명되기 시작했고,같은 종류의 암이라도 개인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고 조절된다는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이런 연구결과에 따라서 최근에는 개인에 따라 다르게 조절되는 암 관련 분자들을 분석,암환자마다 시도할 치료법에 대한 반응을 미리 예측하여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개인별로 도입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이를 ‘맞춤 방사선치료’라고 부른다. ●강도변조 방사선치료(IMRT) 선형가속기(기존의 방사선치료기의 이름) 등을 이용하여 정상조직에 쪼이는 방사선량을 최소화하면서,암 부위를 집중적으로 치료하는 최첨단 방사선치료법이다. 기존 방사선 치료법에 비해 가장 큰 장점은 불규칙한 종양의 형태에 따라 재단사가 옷감을 재단하듯 방사선을 만들어 투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러나 기존 치료법에 비해 준비 및 치료과정 등이 훨씬 복잡하고 정밀성이 요구되는 게 흠이다.여러 단계의 확인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많은 전문 인력과 장비가 필요하고,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문제다.하지만 치료효과는 높다.두경부암(비인두암,인두암,하인두암,구강암,성문암 등)의 방사선 치료시 침샘으로의 방사선량을 최소화하여 기존의 방사선치료 후 거의 모든 환자에서 나타났던 구강건조증을 방지할 수 있다.전립선암의 방사선치료시에는 방광및 직장으로의 방사선량을 최소화해 방사선 합병증을 줄이고,암 부위로의 방사선량을 증가시켜 완치율이 높아졌다. 뇌암,자궁경부암,간암,폐암,유방암 등에도 강도변조 방사선치료(IMRT)가 적용되고 있으며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근래 들어 특히 그 치료 결과에 대한 우수성이 입증되면서 미국,유럽 등에서 활발히 활용되고 있다.국내에서도 몇몇 병원에서 이 방법을 쓰고 있으며 확산되는 추세이다.국립암센터 양성자 치료센터에서도 방사선 종양학과 전문의가 각각의 전문 암 분야에서 강도변조 방사선치료(IMRT)를 담당하고 있다. 김성수기자 sskim@ ■방사선치료의 흐름 김주영 전문의 방사선치료의 세계적인 흐름은 표적치료와 복합치료다. 표적치료는 종양조직에만 방사선량을 집중시켜 정상조직을 보호하고 종양조직에는 고선량(高線量)을 쪼이는 방법이다. 입체조형방사선치료,강도변조방사선치료,정위방사선수술 및 분할정위방사선치료 등 현대적인 기계설비와 전산발달의 총화로 이루어진 특수 방사선치료를 모두 포함한다.이런 ‘표적’의 개념은 물리적인 의미에서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적용되는데 질병의 분자생물학적 원인이 하나씩 밝혀짐에 따라 정상세포와 달리 암세포에서 나타나는 물질을 추적하고 암의 발병과정이나 진행과정에서 핵심이 되는 단계에 관계하는 물질을 선택적으로 차단하는 약재들의 개발이 그것이다. 복합치료는 한 가지 방법만이 아닌 여러 가지의 항암요법을 동시에,혹은 차례대로 써서 치료효과를 높이려는 방법이다.복합치료의 개념은 세 가지 중요한 항암요법을 적절히 조합하여 치료효과를 높임과 동시에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데 있다.현대적인 종양치유의 개념은 종양의 완치뿐만이 아니고 환자의 정신적인 만족이나 사회와 가정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까지를 포함한다.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종양이 발생한 기관을 수술로 제거하는 대신 가능한 한 보존하여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수술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항암·방사선의 병행치료,또는 방사선의 종양세포에 대한 효과를 강화시키기 위한 방사선민감제의 동시 사용 등이 중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성대암의 경우 과거에는 수술로 치료하여 암이 완치되어도 본인의 목소리를 상실했지만,방사선치료로 대치됨으로써 비슷한 수준의 완치율을 보이면서 목소리도 보존할 수 있게 됐다.항문암,방광암 등에서 항문과 방광을 보존하면서 방사선치료를 한다든가,팔·다리에 생긴 육종(종양)을 보존적 수술을 하면서 방사선·항암요법을 병행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또한 미용적 측면도 강조되고 있는데 초기 유방암의 경우 유방을 절제하지 않고 최소한의 수술 후 방사선치료를 시행함으로써 과거 유방을 완전 절제했을 때와 비슷한 완치율을 보이면서 유방이 보존되는 효과도 있다. ■뇌종양 방사선수술 김대용 전문의 최근에는 뇌종양도 마취를 하지 않고 통증과 출혈없이 방사선수술로 치료한다.정위방사선수술을 통해서다. 3차원적으로 여러 위치에서 병소가 있는 한 지점을 향하여 한 번에 고선량(高線量)의 방사선을 쪼이는 방법이다.일반인들에게는 오래전부터 ‘감마나이프’라는 특정 상품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하는 부위에만 국한해서 다량의 방사선을 쪼일 수 있으며,그외 조직에는 선량의 급격한 감소로 주위의 정상 조직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환자의 머리를 고정시킨 후 컴퓨터단층촬영이나 자기공명을 통해 얻은 영상을 재구성하면 모든 구조물에 대한 좌표를 알 수 있다. 이런 후에 치료하고자 하는 부위에 좌표를 맞추어 3차원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방사선을 집중적으로 쪼인다.이 때 이용하는 방사선에 따라 동위원소의 감마선을이용하는 정위방사선수술(감마나이프 등)과 선형가속기의 X선을 이용하는 정위방사선수술(브레인스캔,엑스나이프 등)로 분류된다. 이런 방법으로 뇌동정맥기형 등의 뇌혈관기형을 비롯,뇌하수체 선종,뇌수막종,양성뇌종양,신경교종,전이성 뇌종양 등의 악성 뇌종양을 치료한다. 최근에는 정위방사선수술에 분할치료라는 생물학적 장점을 접목시킨 분할정위방사선치료도 보편화되고 있다.
  • [녹색공간] 과연 시민 사회인가

    이제 우리는 무엇이나 말하고 어디서나 외친다.아무 것이나 요구하고 어떤 것도 굽히지 않는다.시민이 주인이고 시민이 만들어 가는 시민사회라 한다.일찍이 ‘권리 주장’이 이처럼 시끄럽게 날뛴 적은 없다.수많은 주장들이 불길처럼 치솟고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시민의 권리 주장은 법석을 떠는데 시민의 책임 이야기는 성글다.권리 주장 그 너머 공동체의 선과 덕목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온전한 시민사회에 사뭇 미치지 못하는 형국이다. 우리 사회는 전래하는 가족 중심의 의식 세계로 틀지어져 있다.가족의 이익을 챙기는 의식의 틀로 세상을 보고 그 틀로 삶을 가늠한다.좀처럼 가족의 테두리 너머 넓은 지평으로 관심 세계를 넓히지 않는다.오랜 습속이다.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과정에서도 이 습속의 바탕은 흔들리지 않았다.필요하면 언제이고 가족 중심의 의식 세계로 되돌아가는 회귀지향성으로 현대를 살아간다.우리 사회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가족주의’이다. 그것이 지난날 군사정권이 부추겼던 경제 중심의 의식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다.물질로 모든 것을 재고 물질의 획득으로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경제주의’에 휘둘렸던 것이다.‘가족주의’라는 습속에 ‘경제주의’가 덮쳐 삶 자체가 좁은 이기성의 소용돌이 속에 무참히 함몰되었던 것이다. 이른바 시민 사회라 하는 시대로 넘어오면서도 저 이기성의 덩어리를 벗어 던지지는 못하였다.그 덩어리를 시민 사회로 포장해 놓았을 따름이었다.시민 사회란 경제 타산과 욕구를 보장해 주는 치레에 지나지 않았다.포악한 독재 체제 밑에 억눌려 온 좁다란 이익 추구의 야만성이 그 체제를 몰아낸 빈터 위에 분출하여 미친 듯이 활개치기에 이른 것이다. 자기 집안의 이익,자기 지역의 이익,자기 집단의 이익,그것이 절대의 가치를 가진 듯이 아무렇게나 날뛴다.주저함 없이 탐욕하는 거친 이기주의자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그것이 곧 시민의 자유이자 권리라고도 말한다.절제함 없는 이 탐욕의 해방 공간이 시민 사회인 양 모두들 밖으로 나와 거리를 휩쓸고,그들이 뿜어내는 뜨거운 욕망의 도가니가 시민 사회의 속성인 양 모두를 탐욕을 획책한다.우리의 뒤틀린 시민 사회이다. 참다운 시민 사회는 자기의 이익을 탐하는 이기주의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공공의 선을 위해 함께 참여하는 일구는 삶의 공동체이다.가족주의와 경제주의가 틀짓고 있는 좁다란 이기성의 지평 그 너머 낯선 사람의 아픔에 다가가 상처를 싸매 주고 그를 보살피는 사람이 참된 뜻에서 시민이며,그러한 품격이 깊은 뜻에서 ‘시민다움’이다. 이 시민의 원형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한나 아렌트에 이르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남긴 돋보이는 시민 담론이 있다.그러나 나는 서슴없이 그 원형을 ‘선한 사마리아인’에게서 찾는다.강도당한 사람의 아픔에 동감하여 그 상처를 보살펴 주는 ‘참 이웃됨’의 자질이 ‘시민다움’이며,그러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 바로 ‘참 시민’인 것이다. 오늘의 우리 사회는 시민 덕목을 놓치고 있다.시민의 탈을 쓰고 자기 이익만을 찾으려 하는 ‘가짜’ 시민이 함부로 설치고 자기 권리만을 제멋대로 소리질러대는 ‘얕은’ 시민이 판친다.깊은 뜻에서 ‘시민다움’의 덕목을 갖춘 ‘시민’이 없는 시민사회,‘거짓 시민사회’이다. 박 영 신 연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녹색연합 상임대표
  • 불황 속 해외골프 7만명 웃돌아/밖으로 돈 펑펑

    회사원 장모(42)씨는 올봄에 친구들과 중국에 골프여행을 다녀온 데 이어 최근에는 회사 동료들과 태국에 3박4일간 골프 여행을 갔다 왔다. 장씨는 25일 “월요일 새벽에 중국을 출발해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있기 때문에 주말과 일요일에 중국에서 골프를 치고 월요일에 도착해 출근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골프장은 골프비가 싼 데다 예약(부킹) 걱정을 할 필요도 없어 하루 36홀을 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작년동기대비 23%증가 경기침체 장기화로 중산·서민층들의 지갑 사정이 말이 아닌데도 해외로 골프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1만달러 이상을 갖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국내 골프장 숫자가 적어 골프비가 비싸고 부킹하기가 힘든 점 등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고쳐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그러나 부유층들이 외화낭비를 줄이는 등 경기회복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관세청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호화 해외여행객 및 사치성 소비재 수입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8월까지 골프채를 갖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7만 248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만 3806명보다 23.2%(1만 3671명) 증가했다. 이는 지난 2000년과 2001년 연간 해외 골프여행객에 비해 각각 3만 1542명,1만 7785명이 많은 수치다. 골프여행 국가별로는 태국이 26.9%로 가장 많았다.그 다음으로는 중국(15.8%),일본(15.3%),미국(8.3%),필리핀(7.6%),인도네시아(2.9%),말레이시아(2.6%) 등이 뒤를 이었다. 관세청 관계자는 “국내 골프장 사용료가 비싸고 부킹도 어렵기 때문에 해외 골프여행객이 크게 늘고 있는 것 같다.”면서 “8월까지의 증가 추세로 미루어 보면 올해 연간 해외골프 여행객은 사상 처음으로 10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1만弗지출도 3천명 육박 미화 1만달러 이상을 갖고 해외여행을 간 사람들도 올 들어 8월까지 2991명으로,2001년 연간 수치 2237명을 이미 넘어섰다. 이들이 세관에 반출신고한 금액은 총 6300만달러로 집계됐다.1인당 평균 2만 1063달러를 갖고 해외여행을 갔다는 얘기다.외국환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여행자가 1만달러 이상을 갖고 출국할 때에는 세관에 신고하게 돼 있다. 한편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7월까지 대리석 수입액은 5313만 4000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 늘었다.골프채도 32% 증가한 8560만 4000달러어치를 수입했다. 또 주류 18%,금 15%,냉장고 21%,승용차 38%,세탁기 52%,컬러TV 37%,손목시계 23% 등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오승호기자 o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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