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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포영화 ‘첼로’ 주연 성현아

    공포영화 ‘첼로’ 주연 성현아

    “옴싹달싹 못하던 저를 자유롭게 뛰놀도록 손잡아 준 고마운 존재가 영화예요. 제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죠. 이 안에 계속 있고 싶고, 절대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녀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에겐 ‘공포’영화가 아니라 공포‘영화’가 고팠던 게다. 여전히 따라다니는 ‘마약’과 ‘누드’라는 유쾌하지 못한 이미지. 그로 인한 여러 빗나간 추측과 오해들. 이를 극복하는 심적인 여유는 영화를 향한 열정속에서 찾을 수 있었기에, 장르와 역할 비중에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만 서면 행복하다는 그녀다. 성현아(30)가 다시 관객들을 찾는다. 새달 18일 개봉하는 공포 영화 ‘첼로-홍미주 일가 살인사건’(감독 이우철·제작 영화사 태감)를 통해서다. 데뷔 이후 첫 공포물, 그것도 첫 단독 주연이다.‘첼로’는 서로 다른 시간·장소에서 일가족이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에 얽힌 죽음의 실체를 공포의 선율로 풀어내는 영화. 성현아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첼리스트 홍미주 역을 연기했다.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한 그녀에게 먼저 “왜 자꾸 음침하고 무거운 이미지로만 치닫나?”“밝은 배역을 맡지 못해 서운하지는 않나?”라고 물었다. 이번 영화에서 그녀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주홍글씨’에 비해 더 침울하고 핏기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이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핀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후회는 없어요. 좋은 감독님과 배우 등 최적의 스승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한 일이죠. 아직 시작단계니까 앞으로 기회는 많을 거구요, 다음엔 밝은 역할을 해볼 수 있겠죠.” 그녀는 처음 대본을 보고 ‘공포물임에도 드라마틱한 색깔이 짙은 작품’이라는 느낌이 너무 좋아 꼭 출연하고 싶었다고 했다. 엉뚱하게 시작해서 엉뚱하게 끝나는 여느 공포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것. 또 “연기경력에 공포 영화 출연 경험을 새겨 넣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라며 미소지었다. 북치고 장구칠 정도는 아니지만, 영화속 그녀의 역할 비중은 독보적이다. 하지만 그녀는 “심리적 부담보다는 힘든 연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고 말한다. 공포 영화이다 보니 일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을 뽑아내야 하는 일이 많아 힘들었단다. 촬영 내내 핏물을 뒤집어 써야 했던 일도 무척 고생스러웠다. “주고 받는 대화는 별로 없고… 혼자 연기가 많았어요. 게다가 주어진 상황에 대한 표정, 행동 연기가 중요했죠. 혼자 상상속을 헤매며 연기해야 했어요.” 특히나 단순 피범벅의 영화가 아닌, 관객의 감정 이입이 필요한 공포영화라 ‘오버’하지 않는 절제된 무서움을 표현해내는데 주력했단다. 그녀는 ‘첼로’가 개봉하기도 전인 새달 7일 낯선 남녀가 우연히 만나 벌이는 꿈같은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차기작 ‘애인’ 촬영에 들어간다. 지난 1년반 동안 영화 3편을 찍었고, 올 10월이면 또 한편의 그녀 영화가 개봉된다.2년 만에 4편을 찍는 강행군인 셈.“욕심이 아니라면, 무언가에 쫓기는 ‘조급함’으로 보인다.”고 말했더니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오래 쉬는게 성격상 맞지 않아요. 아직 여유를 찾지 못해 그렇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성격이 예민해서 쉬다보면 자꾸 잡생각이 떠오르고, 활력도 줄어들면서 병이 나더라고요. 힘들어도 일하면서 집중하는 게 더 편하답니다.(웃음)” 미스코리아에서 탤런트로, 가수에서 다시 영화배우로… 하지만 ‘인기 연예인’이라는 말을 듣기보다는 그냥 ‘배우’라는 수식어를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그녀. 이번에도 자신의 연기가 “여전히 생경한 느낌”이라고 겸손해 한다.“전 아직 완벽한 영화 배우가 아니에요. 하다보면 제게 꼭 맞는 옷을 입을때가 있겠죠. 그때까지 제 연기실험은 계속될 거예요.” 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미리 본 ‘친절한 금자씨’

    ‘친절한 금자씨’(제작 모호필름)는 배우 이영애의 ‘허기’를 완벽하게 달래준 스릴러극이 됐다. 순백의 정적인 이미지에 갇혀 있던 이영애에게 숨구멍을 터준 영화는, 배우 자신에게나 관객에게나 전복의 묘미를 안겨준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봄날은 간다’ 이후 4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이영애의 영화’로 괄호치고 출발한 스릴러에서 그녀는 13년 반을 복역하고 갓 출소한 유괴살인범 이금자 역이다. 복역 이후 주인공의 동선을 쫓는 한편으로 카메라는 그녀의 복역생활을 복기하느라 여념없다. 그녀가 교도소에서 ‘친절한 금자씨’란 별명으로 통하기까지 동료죄수들을 얼마나 희생적으로 보살폈는지를 돌이키는 데 공을 들이며 영화는 자연스럽게 관객을 금자씨 편으로 포섭한다. 스릴러물임에도 관객에게 비밀이 거의 없다는 데서 오히려 독특한 감상을 던지는 영화다. 스무살에 살인용의자로 몰려 억울하게 수감된 주인공이 치밀한 복수극을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한겹두겹 노출시키는 대담한 능청에 “역시, 박찬욱”이란 탄성이 터져나온다. 교도소에 갇힌 13년을 오로지 출감 뒤의 한판 복수극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았던 이중인격의 캐릭터를 이영애가 연기한다는 사실 자체가 시종 신선한 화학반응을 자아내는 감상포인트. 그녀가 태연자약하게 수위높은 대사를 날리는 대목들에선 긴장과 이완이 동시에 손잡고 코믹스릴러의 기묘한 분위기를 뿜어내기도 한다. ‘복수는 나의 것’‘올드보이’‘쓰리, 몬스터’ 등 극도의 긴장으로 일관했던 전작들에 비하면 감독은 최대한 어깨 힘을 빼보려 노력한 듯싶다. 감독의 실험적 시도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절제된 대사로 시각을 집중공략하는 한편으로 금자의 심리와 주변상황을 친절히(?) 해설해 주는 성우의 내레이션, 이따금씩 끼어들어 복수극에 야릇한 팬터지를 입히는 만화적 화면 등은 낯설 만큼 새롭다. 조금은 들뜬 분위기에서 여러 실험을 즐기던 영화는 그러나 결국 ‘박찬욱표’로 되돌아온다. 자신의 핏덩이 아이를 볼모로 살인누명을 씌웠던 유괴범 백 선생(최민식)을 포박한 금자가, 백 선생에게서 아이를 잃었던 부모들로 하여금 손수 그를 응징케 만드는 결말 시퀀스는 ‘날생’의 하드보일드 살인극 자체다. ‘박찬욱 감독이라서 만들 수 있는 영화’임에는 여러모로 틀림없다. 그러나 예민한 관객이라면 ‘불친절한 박 감독’을 발견할 여지 또한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감독이 관객보다 배우를 훨씬 많이 배려했다는 인상을 남기는 몇몇 대목들이 무엇보다 개운찮다. 예컨대 금자가 자신을 연모하는 20세(13년전 금자가 살인누명을 썼던 나이) 빵집 청년에게 잠자리를 허락하는 장면. 죄를 뒤집어쓴 금자가 감방에서 썩은 세월의 무게를 역설하는 비감한 장면일 수 있건만, 섹스신 흉내조차 내지 않고 카메라는 황망히 다음 장면으로 건너뛴다. 극의 핵심에 손상을 주진 않더라도 ‘금자의 일인극’이나 다름없는 영화의 질감을 일궈내는 데는 결정적 흠집으로 꼬집힐 만하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우리나라도 로봇수술시대 ‘활짝’

    국내에서도 로봇 팔이 환자의 흉부 속으로 들어가 환부를 들어낸 뒤 감쪽같이 봉합까지 하는 ‘로봇수술 시대’가 열렸다.세브란스병원은 최근 미국에서 들여온 수술용 로봇 ‘다빈치’를 이용한 담낭(쓸개)절제술을 18일 국내 처음으로 실시하고 이 장면을 취재진에 공개했다. 수술 로봇 ‘다빈치’는 담낭에 용종(폴립)이 생긴 환자 K(여·49)씨의 흉부에 직경 12㎜의 원격조종용 카메라팔과 직경 8㎜의 로봇팔 2개를 들여보내 수술 부위 절제와 봉합 등을 능숙하게 처리해 냈다. 담낭을 박리, 절제한 뒤 잘라낸 부위도 기존 봉합방식 대신 특수 금속으로 만든 클립을 고정시키는 것으로 수술은 20분 만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으며, 수술 장면은 카메라를 통해 3차원 입체영상으로 생생하게 중계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사용한 수술용 로봇은 뼈에 수술용 구멍을 뚫거나 복강경 카메라를 움직여 수술 시야를 확보해 주는 ‘보조적’ 수준에 머물렀다. 이런 로봇은 팔의 움직임이 기본적인 5가지 동작만을 소화하는 ‘5자유도’에 그쳤으나 이번에 소개된 ‘다빈치’는 인간의 최소 동작까지 근접한 ‘7자유도’의 동작을 선보여 통제실에서 수술 모습을 지켜보던 보호자와 관계자들의 탄성을 샀다. 예전처럼 집도의가 환자 가까이에서 수술을 지휘하던 것과 달리 의사가 통제실에서 로봇카메라가 잡아주는 3차원 입체영상을 보면서 컴퓨터게임을 하듯 스틱을 조종하자 로봇 팔이 원하는 동작을 똑같이 재현해 냈다. 수술 과정에서 출혈도 거의 없어 수술을 마친 환자는 당일 퇴원했다. ‘다빈치’는 위암 대장암 췌장암 식도암 전립선암 신장암 방광암 난소암 자궁암 폐암은 물론 관상동맥 질환 등 심장수술까지 해낼 수 있다. 이날 수술을 지휘한 이우정(외과) 교수는 “수술시간을 크게 단축하는 것은 물론 절개에 따른 출혈과 통증, 감염 위험 등 외과적 수술에 따른 부담이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수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연정론과 재외동포법/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 교수

    지난 한 주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연정론’을 놓고 크게 술렁거렸다.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와 관련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연정(연합정부)론은 향후 정치구도의 개편과 연계된 사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연정 논란의 불씨를 댕긴 것은 7월4일 서울신문이 1면에 단독으로 보도한 ‘노 대통령, 연정이라도 해야’라는 기사였다. 발빠른 취재와 대통령의 발언에서 쟁점을 끌어내 공론화시킨 점이 돋보인 보도였다. 이후 서울신문은 연정론에 대한 후속 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냄으로써 관련보도를 주도했다. 대통령의 연정에 대한 과거 발언에서부터 여야의 반응과 대응, 그리고 향후 시나리오까지 심층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지나친 추론에 근거한 기사는 단독보도의 빛을 가리는 옥의 티였다. 대통령의 발언이고,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 할지라도 향후 진행될 연정의 시나리오까지 보도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서울신문은 ‘의회해산’ 과 ‘내각제’(7월6일자)의 진행가능성과 ‘차기 대권 주자의 반응’(7월7일자)까지 보도했다. 7월5일자 ‘정책공조→소연정·대연정→내각제 개헌’이라는 기사에서는 노 대통령의 장단기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이 기사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갖고 있었던 것 같다.”,“가능성도 없지 않다.”,“소지도 안고 있다.”와 같은 추측성 표현이 자주 등장했다. 사실에 근거한 취재를 통해 후속보도를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연정론과 비교되는 보도가 국민들의 관심을 끌었던 ‘재외동포법’에 관한 기사이다.‘재외동포법’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발의하여 부결된 법안이다. 이 법안의 정식 명칭은 ‘재외 동포의 출입국과 법적지위에 관한 법률’이다. 서울신문 6월30일자의 보도에 따르면 이 법안은 “이중국적인 남성이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국적을 포기하면 재외동포의 자격과 혜택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인터넷에서는 네티즌들간에 치열한 공방이 오갔다. 텔레비전에서는 이 문제를 뉴스뿐만 아니라 시사다큐와 시사토론회를 통해 심층적으로 다룰 정도로 반향이 컸다. 그러나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법안이 어떤 취지에서 발의되었고, 무슨 내용을 담고 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네티즌들간에는 이 법안의 내용과 효과에 대해 논쟁이 분분하였다. 텔레비전 토론에서는 출연자들간에 법안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오가기도 했다. 혼란의 일차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와 관계없이 신문들은 이 법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신문의 보도내용은 법안이 부결되었고, 이를 둘러싸고 의원들간의 갈등이 있었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지면을 통한 해설과 심층 보도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서울신문에서는 이 사안과 관련,‘국적포기 단죄 수포로, 재외동포법안 부결’(6월30일자),‘여, 재외 동포법 부결 후폭풍’(7월1일자),‘재외동포법 대안 싸고 논란’(7월2일자) 등의 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이들 기사 중 어디에도 재외동포법이 어떤 법안이고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재외동포법은 국민들의 관심사인 병역문제가 핵심 쟁점이다. 그런데도 보도내용은 정치권의 행위와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법안 부결과 관련한 정치권의 동향을 주로 보도했다. 따라서 신문보도만으로는 왜 재외동포법이 문제가 되는지, 그리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주요 사건에 대한 해설과 예측을 통해 독자들에게 사건의 진행에 대응하도록 하는 것은 신문의 중요한 역할이다. 사건의 핵심 쟁점과 주요 의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독자를 위해서는 사실에 근거하여 사건을 보도하고 예측해야 한다. 신문의 저널리즘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반면 인터넷 저널리즘과 영상저널리즘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사건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절제된 해설은 신문이 다른 매체에 대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정민 전남대 신문방송학 교수
  • [Doctor & Disease]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 박영순 박사

    [Doctor & Disease]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 박영순 박사

    “나이 들면 당연히 눈 나빠지지, 뭘 그래.”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십상인 노안. 이렇듯 특별히 눈에 질환이 왔거나 다친 경우가 아니라 노안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눈의 운명’에 수동적이었다. 그러던 것이 의학계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 치료술을 쏟아내고 있으며, 사람들도 “눈, 이거 손 좀 봐야겠어.”라고들 고쳐 말한다. “과거처럼 사람들이 노안을 노화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연령대나 숫자로도 알 수 있습니다. 삶의 질과 노령화에 대한 각성이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노안 전문병원인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박영순(50) 박사의 진단이다. 그는 노안이 노인의 문제라는 인식에 대해 ‘아니다.’고 말한다.“누구나 나이 45세를 전후해 노안 상태를 겪게 됩니다. 빠르면 40대 초반이나 30대 후반에 올 수도 있지요. 이게 노인의 문제라면 우습지 않습니까.” ▶노안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눈의 수정체는 스스로 두께를 조절해 사물을 잘 보이게 하는 렌즈 구실을 하는데, 노화로 이 수정체를 움직이는 근육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고, 말랑말랑한 수정체가 딱딱하게 되면서 신문 등 가까운 곳을 잘 못보는 현상이다. ▶노안도 다른 유형이 있나. -특성별로 분류하자면 근시이면서 노안인 경우, 원시이면서 노안인 경우, 정상 상태에서 노안으로 진행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그 3가지가 갖는 각각 특성은 무엇인가. -원시이면서 노안인 경우는 젊어서 ‘눈 좋다.’는 말을 들을 만큼 시력에 자신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수정체 굴절력이 약하거나 안구 지름이 작아 원거리는 잘 보나 근거리는 잘 보지 못하며 노안도 갑자가 오는 사례가 많다. 근시이면서 노안인 경우는 어려서부터 눈이 안좋거나 안경을 낀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40을 넘기면 책을 읽거나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안경을 벗어야 하며, 반대로 먼 곳은 안경을 끼어야 보인다. ▶앞서 지적한 근력 약화와 수정체 경화 외에 다른 원인은 없는가. -전반적인 체력 저하나 눈 건강에 대한 소홀한 인식 등도 원인이 된다고 본다. ▶최근의 노안 발생 추세는 어떠하며, 경향에 특이점은 있는가. -예나 지금이나 노안화 비율은 비슷하나 예전에는 노안을 감수한 반면 요새는 노안을 치료받으려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돋보기 말고는 치료법이 없었으나 지금은 다르다. 이밖에 경향상의 특이점은 없다. ▶노안은 어떻게 진단하며 수술 판정기준은 무엇인가. -진단은 시력검사처럼 간단하지만 수술은 본인의 선택 문제이다. 직업상 시력장애가 문제가 되거나 일상적인 불편감이 크다면 비교적 심하지 않은 데도 적극적으로 치료하려는 사람도 있는 반면 심한 노안을 가진 사람도 본인이 감수할 수 있다면 그냥 지나간다. ▶자가검진은 어떻게 하며 유효성은. -자가검진은 간단하다. 예전과 달리 30㎝ 거리에서 신문이 잘 보이지 않으며, 잘 보이는 거리가 점점 길어진다면 노안이다. 박 박사는 “사람의 팔 길이는 제한돼 있는데 읽는 거리를 마냥 늘릴 수만은 없지 않으냐.”며 웃었다. 그렇지만 그걸 방치한다고 해서 당장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묻자 “시력을 잃고 사는 불편을 감수하다 보면 매사에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돋보기로도 안돼 아예 글읽는 일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며 언제든 불편하다고 여기면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다. ▶노안은 어떻게 치료하나. -돋보기와 다초점렌즈 시대를 거쳐 근래 홀뮴레이저를 이용해 한쪽 눈을 근시로 만들어주는 모노비전(monovision)방식을 적용했으나 유효기간이 2∼3년에 불과하며 나중에는 짝눈이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후 각막 주변을 레이저로 지져 중심부가 볼록 튀어나오게 하는 각막열응고술(LTK)이 시도됐으나 정확성이 떨어지고 난시가 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각막 굴절력을 높이는 LTK와 달리 원거리 시력을 유지하되 근거리 시력을 보완하는 공막절제술(LAPR)도 최근 자주 적용되는 기술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기술은 독일 슈뢰더 박사가 고안한 ASA-80수술법이다. 효과가 탁월해 ‘노안 교정의 혁명’으로까지 평가되는 이 치료법은 라식과 원리는 비슷하나 라식이 260마이크론을 깎는 데 비해 이 수술법은 고작 100마이크론만을 깎기 때문에 수술이 간단하고 합병증 우려가 거의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수술 말고 노안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직 그런 방법은 없다. 피로나 과음 때문에 일시적으로 노안현상이 심해진 경우라면 안정과 휴식으로 어느 정도 복원되지만 이런 방법이 근본적인 치료책은 될 수 없다. ▶그렇더라도 예방 혹은 진행을 늦추는 방법이 없지는 않을텐데…. -검지로 눈 밑 3㎝부위를 바깥에서 안쪽으로 밀듯 자극해주면 눈으로 가는 혈류가 개선돼 노안 예방효과가 있으며, 눈을 감거나 크게 뜬 상태에서 눈동자를 상하좌우로 최대한 크게 굴리는 운동도 꾸준히 하면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는 모양체 근육의 근력을 강화해 노안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그는“건강한 눈이 삶의 질을 배가시킨다는 사실은 노안을 치료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 박영순 박사 ▲고려대의대 및 대학원(박사)▲독일 테크노라스 레이저테크니크 GmbH 연수▲미국 애틀랜타 에모리 아이센터 연수▲열린 의사회 초대 회장▲윤호병원 안과 원장▲고려대의대 및 백병원 외래교수▲미국·유럽 안과학회 회원▲현, 박영순 아이러브안과 원장.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한민족은 몰락하고 있는가?/곽우철 지음

    우리 역사는 몰락의 역사였을까, 아니면 성장의 역사였을까? 한민족 자체의 역사만을 놓고 볼 때는 매우 판단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주변국인 중국이나 일본, 멀리 서구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상대적으로 최소한 성장의 역사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민족은 몰락하고 있는가?’(곽우철 지음, 노트북 펴냄)는 1400여년 전만 해도 동북아의 강자로 중국에 맞섰던 한민족이 왜 몰락의 역사를 걸어왔는지 그 원인을 진단하고, 한민족 앞날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 책이다. 지은이는 영(靈)·혼(魂)·백(魄)이라는 독창적 준거틀을 세워, 유대인과 일본인, 한민족의 성향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몰락과 성장의 원인을 진단한다. 한민족이 임진왜란으로 전국토가 초토화되는 참극을 겪었으면서도 불과 300여년 만에 다시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한 것을 예로 들며 한민족의 몰락은 정신적 요인이 크다고 지적한다. 즉 정체성과 결속을 지속시킬 만한 정신적 유대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이다. 반면 유대인은 유대이즘이라는 수직적, 신앙적 기초 위에서 수평적 인간관계를 잘 규율해 나감으로써 강력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일본은 신앙의 수준에 버금가는 천황제를 통해 신념을 수직화하고, 일본민족 내부의 횡적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지금이라도 한민족이 정체성과 결속을 살리기 위해 정신적 각성과 회개가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역사의식 고취와 한마음 의식을 가져야 하며, 경제적 내핍과 탐욕 절제의 정신을 키워야 하다고 강조한다.1만 2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우주전쟁-어린딸 구하려 괴물과 맞선 소시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가 손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화팬들은 ‘묻지마 신뢰’를 보낼 것이다. 제작과정 내내 입소문 유난했던 그들의 ‘우주전쟁’(War of the Worlds·7일 개봉)은 “역시 스필버그!”란 감탄사를 날릴 만큼 독창적 면모를 갖춘 SF어드벤처물이다. 1898년 출판된 H G 웰스의 동명 원작소설에 근거한 영화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관객의 허를 찌른다.‘스필버그표 SF는 이러이러해야 할 것’이란 편견을 가진 관객에게 “맘대로 상상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날려왔다고 할까. ●스필버그표SF 통념 깨 관객 허 찔러 우선 현실로부터 시공(時空) 자체를 옮긴 ‘스타워스’류의 화면이 아니란 점. 부두의 컨테이너 상자를 옮기는 평범한 소시민 노동자 톰 크루즈가 어떻게 SF물의 주인공으로 변모할지, 화면이 열리면 그것부터 점치는 숙제가 관객 앞에 떨어진다. 그가 맡은 인물 레이는 어린 딸(다코타 패닝)과 성년을 눈앞에 둔 아들(저스틴 채트윈)을 뒀지만 가정사에 소홀해 이혼당한 홀아비. 아이들과 주말을 함께 보내게 됐어도 조금도 즐겁지 않은 그가 곧 시험에 든다. ●날벼락치며 도로 뚫고 ‘괴물 ET´ 출현 마른 하늘에 엄청난 번개가 친 뒤 도로를 뚫고 정체불명의 괴물이 솟구쳐 오르고 순식간에 도시는 아수라장이 된다. 이때부터 톰 크루즈는 아이 둘을 데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도망자’가 된다. 정체불명의 괴물이 외계에서 온 생명체이며,ET처럼 친인간적인 존재가 아니란 점도 영화를 새롭게 탐색하게 만드는 모티프가 된다. 철없던 아빠에게 부성애가 움트는 감동 드라마를 엮어가는 데 영화는 전력질주한다. 괴생명체에 맞서 지구를 지키는 할리우드 SF물의 판박이 영웅이 아니라 ‘용감한 아빠’이기만을 고집하는 레이의 캐릭터는 색다른 감상 포인트가 될 만하다. 부산을 떠는 펜타곤 백악관 등 SF재난 영화에 단골로 끼어드는 설정도 피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 스필버그가 정말 자랑하고 싶었던 건, 새로 빚어낸 외계 생명체 ‘트라이포드’의 캐릭터였다. 무지막지한 세 발 아래로 질척한 액체를 흘리며 인간의 피를 짜는 외계생물은 ET의 ‘악성 변종’ 그 자체다. 그렇게 뜨르르하게 홍보작전을 펴면서도 트라이포드의 정체만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 채 상상의 극대화를 부추긴 셈이다. ●그 많은 괴물 누가 처치?… 설명 부족 트라이포드의 추격을 받으며 엑소더스에 나선 레이 가족과 시민행렬을 쫓는 화면은 시종 어둡고 음울하다. 하지만 메시지의 질감은, 문명의 어두운 미래를 경고하는 여느 SF물들의 차가운 금속성과는 사뭇 다르다. 가족애가 부각된 한편의 휴먼 드라마를 위해 스필버그가 우주전쟁을 끌어들여 수선을 피웠다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의외로 절제된 특수효과는, 영화가 최소한의 현실감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다. 톰 크루즈가 비켜선 화면은 거의 없다. 스필버그의 독창성에 흠집을 내는 부분은 뒷심이 달려 흐리멍텅해진 결말 쪽에 있다. 흩어졌던 가족들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얼렁뚱땅 재회하는 마지막 대목은 ‘판박이 맺음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맥이 빠진다. 그 많든 트라이포드들을 누가 어떻게 다 무찔렀는지도 아무래도 설명부족이다.“함부로 상상하지 말라.”는 감독에게 입바른 팬이라면 이렇게 응수할 수도 있지 싶다.“마지막 10분은 눈감아 주겠노라.”고. 농장 지하실에 숨어지내다 레이 부녀를 숨겨주는 남자 오길비는 팀 로빈스가 연기했다.12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선조들의 문방구엔 멋과 철학이

    예전의 문방구 속엔 실용 정신과 더불어 당대인들의 미학과 철학이 진하게 배어 있다. 특히 조선시대 문방구는 글 읽기와 글 쓰기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던 선비들의 생생한 숨결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이처럼 우리 선조들이 만들고 사용한 거의 모든 기종의 문방구를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호림박물관 소장 문방구특별전-소박함·멋스러움·예스러움’을 마련했다. 6일부터 9월30일까지 열리는 이번 특별전에선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연적인 ‘백자청화철화접문시명팔각연적’(白磁靑華鐵畵蝶文詩銘八角硯滴) 등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200여점의 문방구를 선보일 예정. 조선시대의 것이 주류를 이루며, 종이·붓·먹·벼루·필통·지통을 비롯한 거의 모든 기종의 문방구를 망라하고 있다. 이 중 지금의 책상과 마찬가지인 19세기의 목조 경상(經床)은 간결하고 절제된 구성과 자연스러운 나뭇결에서 선비들이 지향했던 미학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18세기의 청화백자 팔각연적은 각 면마다 시를 쓰고 윗면에 나비를 그려넣어 시서화 일체를 구현한 격조 높은 멋의 세계를 전해 준다. 백색 바탕에 푸른 청화로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생생하게 그린 19세기의 ‘백자청화매죽문필통’은 성리학적 이상세계를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양반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종이를 담아두던 ‘죽제양각십장생문지통’(19세기)은 대나무 특유의 직선적 요소와 곡선적 요소를 적절히 활용하여 시원하고 대담한 조형성을 담고 있다. 이밖에도 시를 짓는데 사용된 죽첨(竹籤), 책을 몇 번 읽었는지 셈하던 서산(書算), 일종의 지시봉으로 사용한 서간(書竿), 수정으로 만든 붓과 용이 새겨진 붓 등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문방구의 세계를 보여 준다. 관람문의 (02)858-2500.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당신, 이야기(베트콩 습격으로 한진직원 5명 사망) 들었소? 내 두말도 안하겠소! 우리 운전수들 군인 출신이오. 방어용으로만 할 테니 M16을 지급해 주시오.”(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너 미쳤냐? 어떻게 민간인에게 군대 소총을 나눠주라는 거야.”(찰스 마이어 꾸이년지구 사령관) “돈 벌러 와서 죽을 수는 없지, 우리도 방어는 해야 할 거 아냐.”(조 전 부회장) “미스터 조, 이건 사이공 사령부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과 나만 아는 일이오, 알겠소?그리고 절대 먼저 쏘지 마시오.”(마이어 사령관)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자서전에서 밝힌 이 대화는 한진이 사지인 베트남 정글에서 어떻게 달러를 벌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해방둥이’ 한진이 ‘수송보국’의 길을 걸은 지 60년. 이런 피와 땀들이 모여 오늘날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상의 길’을 개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라잡이’에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서있었다. 길이 있는 곳에 ‘한(韓)민족의 전진(進)’, 한진이 있다며 전장으로, 바다로, 하늘로, 수송 외길을 걸어온 고 조 회장. 이 때문에 한진그룹의 23개 계열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5대양 6대주에서 한민족의 영토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전장에서 성장한 한진 “형님이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갈 때입니다. 돈 될 만한 사업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중훈 형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 꾸이년지역의 풍경에서 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냈습니다. 항만을 보니, 화물이 꽉 찬 배가 50척이 몰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것만 본 것이 아니라 배들이 짐을 실은 채 마냥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형님은 갑자기 창문에서 휙 돌아앉아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고 합디다. 다른 사장들이 쳐다볼까 싶어 큰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조 전 부회장은 한진의 베트남사업 첫발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의 화물수송사업은 전후방이 없었던 베트남에서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빗발치는 전장을 오가며, 뚝심과 오기로 밀어붙였다. 베트콩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직원들이 공포에 떨 때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직접 수송 차량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그런 고생끝에 주어진 과실은 너무나 달콤했다. 한진이 1966년부터 5년간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무려 1억 5000만달러.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한 가용외화가 5000만달러 남짓이었으니, 한진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진은 베트남 특수로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고 조 회장은 67년 7월 자본금 2억원으로 대진해운을 설립했고, 그해 9월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동양화재를 5억 7000만원에 인수했다. 또 68년 2월에는 한국공항,8월에는 건설회사인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을 세웠다. 이어 인하대학교도 인수했다. ●부실기업 대한항공공사 인수 고 조 회장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이자 도전을 맞이한다. 다름아닌 항공사업이었다. “청와대로부터 호출이 왔었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가는 내용이었죠.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비서실장, 김성곤 공화당 의원 등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만년 적자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독촉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형한테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도 불안해서 저도 형님과 같이 청와대에 따라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게 소망이라는데 형님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조 전 부회장) 고 조 회장은 결국 69년 ‘말 많고 탈 많았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항공공사는 당시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를 보유했지만, 전체 좌석수는 점보기 1대보다 적었다. 또 27억원의 부채는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은 ‘베트남에서 목숨 걸고 번 돈을 부실 항공사에 모두 쏟아붓게 됐다.’며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국제선 개척으로 이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36년 후 대한항공은 화물수송 세계 1위, 보유 항공기 113대, 매출 7조 2000억원(지난해)이라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에겐 은퇴란 없다” 트럭 한 대로 국내 최대의 운수그룹을 일군 고 조 회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지 않고, 현장을 챙길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정열적인 경영자였다. 그가 모언론 인터뷰에서 “창업주에게 은퇴란 없다.”고 한 말은 그의 성격과 일 욕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 조 회장은 또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문어발식’ 확장도 자제했다.‘낚싯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업을 하기보다 수송 전문화에 더 집중했다. 주변에서 ‘돈 버는’ 무역회사를 만들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고 조 회장은 그때마다 “우리가 무역회사를 하면 많은 무역회사들이 우리의 경쟁자가 될 텐데 그들이 우리 비행기를 타고 우리에게 화물을 맡기겠느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1920년 부친 조명희옹과 모친 태천즙 여사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집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뚝딱거리고 어질러 놓기를 좋아했던 둘째아들에게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룬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란 아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 조 회장은 45년 광복 직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설립, 수송 외길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만 고만하던 한진상사가 두각을 낸 것은 56년 미군부대 화물 수송을 맡으면서다. 이때 맺은 미군과의 인연은 한진 성장의 든든한 ‘우군’이 됐다. ●“찰리 조, 보따리 좀 싸봐” 조중건(영어명 찰리) 전 부회장은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의 동생이라기보다 사업 동반자이자, 유능한 참모였다. 조 전 부회장은 통역과 포병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수송학을 전공했다. 59년에 귀국한 그는 바로 한진에 합류했다. 조 전 부회장의 본격적인 활약은 베트남 전쟁에서 발휘됐다. 고 조 회장이 1965년 베트남을 시찰한 뒤, 조 전 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니가 가서 보따리 좀 싸봐.”이 말은 한번 기획을 잘 해서 사업으로 만들어 보라는 ‘조 브러더스(중훈·중건 형제)’의 은어였다. 조 전 부회장은 미군 인맥을 활용해 중장비 조달 등의 악조건을 뚫고 베트남 꾸이년항의 미군 용역과 수송작업을 따냈다. 계약금액은 790만달러. 조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베트남 수송사업을 돌아볼 때 그것은 참으로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업이었다.” 조 전 부회장은 또 고 조 회장을 도와 70∼80년대 대한항공의 성장사를 주도했다. 국제노선 개척을 위해 당시 소련과 중국 등 적국까지 넘나들며, 대한민국의 하늘을 넓혀 놓았다. 항공노선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토막.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선수단 수송을 위한 부정기 항공 노선을 뚫기 위해 혈혈단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구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사장과 항공청 장관, 체육부 장관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루는 그들이 조 전 부회장을 한 궁전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사우나탕과 보드카로 조 전 부회장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 수십번 반복된 행동으로 조 전 부회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력으로 계속 버티며, 협상을 주도해 나갔다. 동이 틀 무렵 조 전 부회장은 그들의 수장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고 조 회장의 막내동생인 조중식(70) 전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 부회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한진에 입사했다. 당시 새로운 건축공법인 H-빔 공법으로 서울 소공동 KAL빌딩 설계 및 시공을 했으며, 중동 특수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많은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조씨가, 명망가로 사통팔달 한진 조씨가의 혼맥은 명망가 집안이 두루 포함돼 있다. 관·재·학·법조계 등으로 폭넓게 뻗어있다. 또 연애 결혼보다 유난히 중매 결혼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82) 여사와 결혼했지만, 그의 동생들과 자녀들은 당대의 유력 인사의 자녀를 배필로 맞았다. 고 조 회장과 김 여사는 슬하에 4남 1녀(현숙·양호·남호·수호·정호)를 뒀다. 장녀인 조현숙(60)씨는 68년 숙부인 조 전 부회장의 중매로 당시 엘리트 법조인인 이태희(65·현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 변호사는 흥아타이어 감사를 지냈던 이상묵씨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인 명희(56)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 고 조 회장과 이 전 차관이 한 모임에서 아들·딸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인연이 돼 사돈간이 됐다. 조 회장 얘기다.“양가에서 혼담이 오가던 중에 장모님이 예비 사위 얼굴을 보기 위해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사진을 보고 흡족하셨던 모양입니다. 군제대 후에 바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당시 양가의 통혼은 운수기업과 주무부처인 교통부의 고위층 집안이 맺어졌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조 회장의 장인인 이 전 차관은 76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하대와 국민대, 중앙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 인사로 활약했다.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인 영혜(54)씨와 우연히 테니스코트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조양호 회장은 “다른 형제는 해외에서 공부하다 보니 집안에서 혼사를 챙겼지만 둘째는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다 보니,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애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수호(51) 한진해운 회장은 조씨가가 국내 재벌가와 혈연으로 얽혀지는 첫번째 다리를 놨다. 조 회장의 처가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집안이기 때문이다. 부인인 최은영(43)씨의 모친이 신 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여사다. 신 여사의 남편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이다.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은 87년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인 명진(41)씨와 혼인했다. 이 결혼으로 한진 조씨가는 재계 혼맥의 주류로 편입된다. 장인인 구 회장이 LG 구씨가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 이씨가와도 바로 연결된다. 구 회장의 부인인 이숙희 여사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차녀다. ●방계 혼맥도 장관 사돈 많아 고 조 회장의 형제자매 혼맥도 전직 장관 가문부터 평범한 집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영학(68)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장남인 진호(43)씨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의 장녀인 경아(3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장녀인 윤정(41)씨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정훈(4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쌍둥이인 주은(38)씨는 미혼, 주연(38)씨는 김태효(38) 성균관대 교수와 결혼했다. 조씨 가문의 장자인 고 조중렬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최학희(80) 여사와 결혼,2남 1녀를 뒀다. 장손인 조지호(57) 한양대 교수는 이병호 전 상공부 장관의 장녀 숙희(56)씨와 혼례를 올렸다. 차남 건호(53)씨는 재미동포인 윤주덕 내과의사의 딸 영태(51)씨를 아내로 맞았으며, 장녀인 인숙(59)씨는 문영호(66) 전 동부제일병원 내과과장과 혼인했다. 영호씨의 부친은 제일은행 이사를 지낸 문재관씨다. 고 조 회장의 첫째 여동생인 조정옥(82) 여사는 전윤진(89) 전 동양화재 감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둘째 여동생 조정원(80) 여사는 박두진(78)씨와 혼례를 치렀다. 셋째인 조도원(77) 여사는 박태원(79) 전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과 결혼했으며, 막내인 조경숙(75) 여사는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회(78)씨에게 시집갔다. 고 조 회장의 막내 남동생인 조중식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복수(68)씨를 아내로 맞았다. golders@seoul.co.kr ■ “떠날때는 ‘쿨’ 하게” ‘2인자’ 조중건, 조카 경영권승계 앞두고 야인으로 역사적으로 2인자의 삶은 불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1인자를 향한 욕심이 화(禍)를 불러들인 탓이었다. 반면 드물게 성공한 2인자는 맺고 끊음이 명확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런 점에서 성공한 2인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1996년 조카들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될 시점에 미련없이 대한항공을 나와 야인으로 돌아갔다. 오너가(家)의 일원이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행동했으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았던 것이다. 1인자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조 전 부회장이 한때 하와이에 머무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형제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또 조 전 부회장이 일정 기간 대한항공의 ‘수장’을 맡다가 장조카인 조양호 대한항공 사장(현 회장)에게 물려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의 일부 계열사를 받을 것으로 판단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세간의 예측과 달리 조 전 부회장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하와이로 떠났다. 조 전 부회장은 훗날 이같이 전했다.“형제간이라도 언젠가 헤어질 거면 기분좋게 헤어지고 싶었다. 조카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보기가 안 좋았다. 또 한국에 있으면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형(고 조중훈 회장)에게 누를 끼칠까봐 신경이 쓰였다.”시쳇말로 어차피 헤어질 거면 ‘쿨하게’ 떠나고 싶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96년 초 작은아버지께서 물러나시기를 원하셨다.”면서 “선친도 그동안 숙부께서 고생하셨던 것을 잘 아셨던 만큼 섭섭지 않게 해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럼 조 전 부회장이 생각한 2인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형이 대한항공의 ‘선장’이었다면, 나는 ‘일등항해사’였다. 선장은 모름지기 새로운 곳을 향한 모험심과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일등항해사다.2인자는 항상 해결사 역할을 해야만 했다. 성공확률은 거의 50% 이하였다.” 그는 그렇다고 무조건 ‘예스맨’이 2인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전 부회장은 고 조 회장이 정부로부터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형에게 수없이 대들었다.“형, 하지 마시오.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그러나 조 전 부회장도 끝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최단 기간에 부실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고 조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언제나 조 전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전면에 나선 총수가 그저 ‘이러 저러하니, 알아서 만들어봐.’라고 화두만 획 던질 뿐일 경우가 많다. 물론 1인자에게는 1인자의 고뇌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작은 일 하나 때문에 며칠을 헤매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는 그럼에도 2인자의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회고했다.“2인자들은 1인자가 꾸는 꿈에 덩달아 취해 열정을 다해 일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형은 육·해·공의 종합물류 기업이라는 꿈을 내게 보여줬다.” golders@seoul.co.kr ■ 역대 정권과의 인연 1999년 4월20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고강도 제재 의사를 내비쳤다. 민간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이같은 조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빌미를 제공한 것은 대한항공. 대한항공기의 잇단 사고가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국적항공사의 항공 사고는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 조씨가(家)로서는 처음으로 맞는 정권과의 갈등이었다. 한진 조씨가와 역대 정권과의 인연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가 우호적 관계였다면, 김대중 정권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고 조 회장은 국적항공사 대표라는 신분과 특유의 사교성, 부지런함 덕분에 역대 정권의 핵심 인사와 적지 않은 친분을 쌓았다. 이 때문에 사업상 ‘손해본 장사’도 많았다. 고 조 회장은 리스크를 떠안으면서도 정권이 요청한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를 비롯해 대한선주(현 한진해운과 합병), 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를 떠안았다. 동시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인맥을 활용, 민간 차원의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30여년간 한진그룹의 ‘2인자’였던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도 과거 군경력을 바탕으로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대목이다. “1953년부터 2년간 미국 포병학교 교관 생활로 400여명의 기간 장교들과 많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중략)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친근한 관계였고 나를 친아우처럼 아껴주셨고, 가끔 당시 혁명 주체들이 내 형(조중훈 회장) 집에서 모여 회의를 했다.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이권과 청탁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나 형은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신기루와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98년 DJ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씨가는 서서히 ‘쓴맛’을 보기 시작한다. 대통령 전세기의 경쟁 입찰제 도입은 그 신호탄이었다. 이어 국세청 조사인력 240여명이 동원된 3개월간의 한진그룹 세무조사는 조씨가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DJ정권이 대한항공에 대해 강하게 ‘칼자루’를 휘두른 이유는 뭘까.1차적으로 DJ정권 출범 이후 크고 작은 대한항공측의 사고 탓이었다. 대한항공의 문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훼손이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었다. 여기에 과거 조씨가가 보인 ‘반DJ 행보’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세무조사 이후 대한항공은 노선권 배분 차별 등 정부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법보다 감정을 앞세운 정부의 무리수도 적지 않았다. 사법부는 대한항공이 잇따라 제기한 노선 배분 소송에서 정부 결정을 뒤엎는 판결을 속속 내렸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건강칼럼] 복병 식중독

    바야흐로 장마철이다. 수해도 걱정이지만,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식중독도 겁난다. 고온다습한 이 즈음에는 잠깐 꺼내놓은 마요네즈 샐러드, 우유나 치즈, 크림빵 등 모든 식품이 바로 식중독의 온상이다. 특히 먹다 남은 음식은 바로 세균이 증식하므로 각별한 조심이 필요하다. 그러면 끓인 음식은 다 안전할까. 대부분은 그렇지만 주의해야 할 음식이 있다. 바로 조개류 음식이다. 패류는 겉보기에는 팔팔 끓인 듯해도 조개가 입을 벌리지 않아 속살이 안 익은 경우가 있다. 이런 조개를 먹고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숨진 사람도 있다. 특히 간기능이 나쁘거나 암 환자,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 위 절제 수술을 받은 사람, 당뇨병 등 만성 질환을 앓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비브리오 패혈증은 감염 12∼24시간이 지나면서 몸살과 같은 오한, 발열이 나타나며, 시간이 지나면 몸에 출혈성 반점이 생기면서 사망에도 이르게 된다. 따라서 6∼8월 중에는 날생선이나 날패류를 삼가는 게 상책이다. 대장균 O157은 혈변과 치료가 힘든 신부전을 일으키므로 조심해야 한다. 육회나 덜익은 햄버거, 카파치오 등 덜 익은 고기는 피하고 수육이나 불갈비 등 익힌 음식을 먹으면 된다. 다행히 대부분의 식중독은 단순한 설사거나 장염이므로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장염이나 설사는 끓인 물과 죽, 충분한 수분 섭취만 해도 1∼2일이면 완치된다. 단, 영·유아나 만성질환자, 노인 등은 설사가 탈수로 이어지기 쉬워 조심해야 한다. 이런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 다음의 수칙을 지켜야 한다.▲흐르는 물에 손 씻기 ▲음식 익혀 먹기 ▲일회용이 아닌 젖은 수건 피하기 ▲손댄 음식은 바로 처리할 것 ▲조리한 음식은 냉장고에 보관할 것 ▲전염병이 돌 때는 물을 꼭 끓여 먹을 것 ▲냉장고 속의 식품도 상할 수 있음을 명심할 것 ▲날음식을 피할 것 ▲피부에 상처가 있으면 물에 들어가지 말 것 ▲과일은 껍질을 벗겨 먹을 것 ▲여행 중에는 병에 든 생수를 먹을 것.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원장
  • [CEO 칼럼] 사이버공간의 환경보호/송영한 KTH사장

    [CEO 칼럼] 사이버공간의 환경보호/송영한 KTH사장

    사이버 공간에서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원리와 합의를 찾아내야 하고, 무한한 공유가 아닌 자격 구분에 따른 제한된 접근이나 유료화도 상식으로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뉴스들은 미래의 자원 고갈과 자연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가 점점 현실의 문제로 다가옴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변을 오염시키기 마련이므로, 각별한 노력이 없다면 우리 삶의 터전은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인터넷과 웹에 기반한 사이버 공간은 인간이 만들어낸 대단한 작품이다. 초기 이용자들은 통제를 벗어나 가능성을 찾는 자유정신을 바탕으로 지식·정보를 상호 공유하는 문화를 이끌었다. 서비스 기술이 발전하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유익한 정보와 서비스를 부담없이 제공받을 수 있는 놀라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상업화를 통해 제한없는 개발을 거듭한 결과 우리는 낙원을 잃고 사이버 공간을 안락하게 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팸 메일이 넘쳐나고, 위장된 바이러스와 스파이 웨어는 아카시아나무 뿌리보다 더 끈질기게 침투해 온다. 지식으로 가장한 무책임한 정보가 제거되지 않고 유령처럼 떠다닌다. 대화의 공간은 무절제한 언어구사가 장악했고 경쟁적인 언어폭력이 판 자체를 깨버리기도 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뽐냄질과 중독성 높은 게임·성인물들은 자녀를 가진 부모들로 하여금 컴퓨터 이용의 차단을 고민하게 한다. 트래픽 확보를 위한 지나친 마케팅은 가치와 가격의 관계를 파괴, 가치있는 콘텐츠에의 재투자가 위축되는 악순환에 빠진 지 오래고, 전자상거래도 치밀한 해킹에 쉽게 허점을 드러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지경이다. 사이버공간 구축의 시간이 빨랐던 만큼 그 공간의 오염 또한 감당할 수 없이 빠르다. 그러나 이 공간은 이미 사람들의 생활속에 너무 깊숙이 결합되어 있어, 오염이 싫다고 이 공간을 제거해 버릴 수도 없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사이버공간이 더 이상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데 연대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공간이 인간생활을 윤택하게 할 ‘부족한’ 자원이기 때문이다. 사이버공간과 실공간이 눈에 보이지 않게 융합되는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우리가 누릴 혜택은 한계가 없을 텐데, 그런 가능성의 싹이 더 발빠른 오염으로 시들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사이버공간도 경제적인 공간으로 인식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자원을 배분하게 해야 할 것이다. 획득한 가치에 비례하는 요금을 부담하고, 수익모델이 공개돼 무료 콘텐츠·서비스라도 수익 창출에 공헌한 바를 인정받아, 가치있는 콘텐츠·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생산·공급되도록 수익이 분배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넷의 자유와 공유정신도 재음미해 봐야 할 때다. 본질에 비추어 필요하다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원리와 합의를 찾아내야 하고, 무한한 공유가 아닌 자격 구분에 따른 제한된 접근이나 유료화도 상식으로 통할 수 있어야 한다. 실명 이용제도의 도입도 이런 문화적 인식의 토대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이버공간의 환경보호는 개인의 주장이나 몇몇 업체의 소신으로 될 일이 아니다. 인식이 확산되기를 기다릴 만큼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문화운동으로 전개돼야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사회적 합의에 근거한 법률 체계도 살펴야 할 것이며, 학교 및 사회교육이 근본적으로 네티즌의 교양을 형성할 책임을 지게 하고, 문화·사회·산업정책에서도 일관성이 유지되게 하며, 언론도 이를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연대가 기대된다. 최근 인터넷침해 대응능력의 강화가 법으로 강제되고, 개인정보보호의 책임을 분명히 하거나, 인터넷 오용을 예방하기 위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어 다행이다. 그러나 미봉책은 또 하나의 오염으로 남을 수 있다. 송영한 KTH사장
  • 수술 2주만에 ‘지겨운 치질’ 안녕~

    최소한의 절제를 통해 항문의 기능을 보존하고 수술후 회복 시간을 앞당기는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이 치질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임상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대장항문 전문 양병원 양형규 박사팀은 지난 97년부터 2000년까지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로 수술받은 650명의 환자를 추적 조사한 결과 이 방법으로 수술받은 환자의 62.3%가 15일 이내에 일상 복귀가 가능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는 기존 절제 방법으로 치료 받은 경우보다 최소 2주에서 6주 정도 치료기간이 줄어든 결과이다. 합병증도 기존 치료에 비해 크게 줄었다. 치질 수술의 대표적 합병증인 지연 출혈은 보통 수술 후 7∼14일 후에 나타나며, 심한 경우 출혈량이 많아 쇼크를 초래하기도 하는데,‘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의 경우 지연 출혈률이 0.5%로 기존 치료법의 1.2∼4%에 비해 크게 적었다.또 항문 피부를 지나치게 많이 잘라내 나타나는 항문 협착이 나타나는 경우는 이전 치료법의 경우 평균 4% 정도였으나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에서는 1명(0.15%)에 그쳤다. 의료팀은 “기존 치료법의 경우 치질을 비정상조직으로 보고 이를 잘라내는 데 치중해 절제 부위가 크고 항문이 좁아지는 협착 가능성이 높았으나 거상고정식 점막하 치핵절제술은 치질을 밑으로 처진 정상조직으로 보고 최대한 보존하는 수술법을 적용해 회복 속도가 빠르고 배변기능의 손실, 항문 협착 등의 부작용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이 임상연구 결과는 최근 발간된 대한대장항문학회지에 게재됐다. 양 박사는 “이전에도 치질을 정상조직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지만 까다로운 수술 방법과 의료보험 수가 탓에 실제 수술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그 영화 어때?] 오늘 개봉 옴니버스 영화 ‘에로스’

    30일 개봉하는 옴니버스 멜로 ‘에로스’(Eros)에는 세가지 빛깔의 사랑이 담겨 있다. 첫사랑처럼 수줍은, 꿈꾸듯 몽롱한, 촛불처럼 위태로운. 골라보는 재미만도 ‘수지 맞다’ 싶은데, 옴니버스 작업에 참여한 감독들의 면면도 호화롭다.‘중경삼림’‘화양연화’의 왕가위,‘에린 브로코비치’‘오션스 일레븐’의 스티븐 소더버그,‘정사’‘욕망’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왕가위 감독이 ‘그녀의 손길’편으로 맨먼저 사랑에 관한 짧고도 강렬한 영감을 스크린에 투사했다. 궁리와 장첸이 주연한 이 작품은 많은 관객들에게 가장 애절한 감성으로 다가갈 것 같다. 도도하고 색정적인 고급 콜걸 후아(궁리)의 기습적 손길로 첫 경험을 했던 젊은 재단사 장(장첸). 후아의 향기를 잊지 못하는 장은, 그녀의 옷을 만들고 그립게 바라보며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다. 남녀 주인공이 단 한번도 격정적인 접촉을 하지 않는 화면은 탐미적이되 절제된 미학의 극치를 구사한다. 전염병으로 초라하게 죽어가는 후안을 끝까지 말없이 끌어안는 장의 사랑에 나른한 감동을 전해받을 즈음. 아이디어 많기로 소문난 할리우드 감독 소더버그가 불쑥 디미는 이야기는 어째 좀 생뚱맞기도 하다. 밤마다 에로틱한 꿈을 꾸는 광고 세일즈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과 그의 심리를 상담하는 의사(알란 아킨)가 롱테이크 샷으로 흑백화면을 채우는 단조로운 설정이다. 꿈속의 정체모를 여인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린 남자, 그의 등 뒤에 앉아 상담을 빙자해 엉뚱한 행동을 계속하는 의사의 모습은 무성 코미디처럼 낯선 유쾌함을 안긴다. 이탈리아 거장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드라마 ‘위험한 관계’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한쌍의 남녀를 담담한 어조로 좇는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 크리스토퍼(크리스토퍼 부숄츠)와 클로에(레지나 넴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는, 단순히 남녀관계 변화를 포착했다기보다는 인간의 존재방식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드러낸다. 명감독들이 날려온 ‘사랑과 욕망의 모르스 부호’같은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가 됐다. 화면을 뒤덮는 재즈선율에 노곤하게 빠져든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Doctor & Disease] 대장암 말기의 유방암 전문가 이희대 박사

    [Doctor & Disease] 대장암 말기의 유방암 전문가 이희대 박사

    영동세브란스병원 유방암센터 소장인 이희대(54) 박사. 국내 유방암 치료의 권위자이자 최근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에 선임된 그를 만나면 두 번쯤 놀랄 각오를 해야 한다. 먼저 마주치는 놀라움은 경이로움이다. 그는 현재 대장암 4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받은 중환자. 암세포가 간과 뼈까지 전이돼 내로라하는 의사들도 실질적인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단계다. 이런 그가 환자들을 맞고 있다. 놀라운 일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그가 너무나 밝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 연구실로 들어서자 그는 “제가 바로 암 고치는 암 환자입니다.”라며 환하게 맞았다. 암이 주는 막연한 공포감에 빠져 사는 기자는 그 경이로움에 잠시 말을 잊었다. 사실, 이 박사를 만나 유방암의 증세며 치료법을 묻는 게 여간 송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기자의 고충을 눈치챘는지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유방암이라는 게 알고 보면 잘 먹어서 생긴 병입니다. 고지방식과 비만이 큰 문제거든요. 지난 2001년까지만 해도 국내 여성암 발병률은 자궁암이 1위였는데 이후 유방암으로 역전됐고, 이후 최근 10년 사이 발병률이 11.5%에서 16.8%로 놀라운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기간 자궁암은 9.1%, 위암은 15.3%로 순위가 유방암 아래입니다.” ●유방암 발병률 16.8%… 여성암 1위 그는 유방암의 원인으로 고지방식과 비만, 호르몬, 피임, 출산기피, 스트레스 등을 들었다. 특히 그는 호르몬의 ‘이중성’을 세세하게 거론했다.“이게 여성을 여성답게 하지만 유방암의 원인이기도 하지요. 최근들어 초경이 빨라지고 폐경은 늦어집니다. 그만큼 호르몬에 노출되는 기간이 길어지는 셈이고, 또 피임약이나 갱년기 치료제라는 호르몬 제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갈수록 유방암의 위험성은 더 높아진다고 봐야죠.” 문제는 이처럼 모든 여성이 유방암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는데 정부 차원의 지원은 너무나 미미하다는 점.“자궁암은 벌써 수십년 전부터 국가 주도로 일선 보건소에서 검진을 했고, 그래서 통계에서 보듯 발생 추이가 줄고 있는데 유방암은 폭발적인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습니다.”그가 제기한 우려는 현실적이었다.“유방암은 30∼50대가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 연령대의 여성이 유방암으로 무너지면 그건 개인의 불행 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의 붕괴를 뜻합니다. 특히 젊은 30대의 유병률이 16.8%나 된다는 점은 빨리 원인을 밝혀야 하는데 연구비를 지원해 주는 곳이 없습니다.” ●폭발적 증가에도 정부지원 태부족 자신이 암환자인 탓에 암, 특히 유방암의 심각성을 제기하는 그의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모든 암이 그렇듯 유방암도 진단에 고급장비가 필요하지만 그런 투자 없이는 이 증가세를 제어할 수 없으니 어떡합니까. 적어도 수술로 완치되는 0기나 종양이 2㎝ 이내인 1기 때는 발견해야 좋은 치료 예후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국민검진사업이 뿌리내린 미국의 경우 유방암 1기 이전 발견율이 무려 70∼80%나 된다는 사실이 교훈이 되겠지요.” 유방암이 보이는 증상의 특성에 대해서도 명쾌하고 간명하게 설명했다.“정상적인 세포가 발암인자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생긴 비정형 증식이 암으로 발전하는데, 대부분 관(管)조직으로 이뤄진 유방의 특성상 관 내부의 상피세포에서 시작된 유관암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증상으로는 결체조직인 멍울이 만져지는 경우가 전체의 68%나 되기 때문에 자주 만져 이상을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요. 단순한 유방 통증이 암으로 진단받는 경우는 2.8%로 많지 않은 대신 아무런 증상이 없는 경우도 17.8%나 되기 때문에 정기검진을 받는 것도 유방암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한 방법이 됩니다.” 경향상의 특징도 뚜렷하다.10년 전인 96년과 비교해 환자는 3801명에서 9667명으로 2.5배 이상 늘었으나 당시에 비해 조기발견율도 늘어 0기와 1기의 경우 각각 4.2%,19.6%이던 것이 최근에는 9.6%,35.6%나 됐다. 그는 이를 지속적인 계몽의 결과라고 분석했으나 2기를 넘겨 발견되는 54.8%가 더 큰 문제라고 짚었다. ●美선 1기 이전 발견율 70~80% 이 박사는 다른 암과 달리 유방암은 자가검진이 비교적 쉬워 조기발견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방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생리 직후 목욕탕에서 흉부에 비누를 칠한 뒤 유방을 동심원 형태로 만지는데, 처음에는 얕은 피부조직, 다음에는 중간 깊이, 그 다음에는 아주 깊은 쪽을 만져 이상 유무를 확인하는 식입니다. 이때 멍울과 통증은 물론 유두 출혈, 유방 피부와 유두의 함몰 상대를 집중적으로 살피면 됩니다. 폐경 이후의 여성은 한달에 한번 편한 시기를 정해 이렇게 하면 되고요.” 이 박사는 유방암학회 이사장으로서의 포부도 빠뜨리지 않았다.“우선 유능한 연구인력이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격려하고 지원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 등 각계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데도 주력해야겠지요. 또 다른 문제는 모든 암이 그렇듯 유방암도 조기발견과 예방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좀 가난해도 쉽게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일, 그것은 틀림없이 정부의 몫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성부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유방암은 여성들이 직면한 최대의 문제, 최대의 위협이니까요.” ●“여성 최대의 위협” 여성부 나서야 이 박사는 한창 때 1년에 600명까지 수술을 해냈던 유방암·갑상선암 분야의 손꼽히는 권위자였다. 그런 그가 지난 2003년 1월 대장암 판정을 받은 이래 지금까지 세차례나 수술을 받았으며, 계속된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지난해 2월에는 절제한 간에서 또 암세포가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를 치료하는 의사들에게 ‘이제 그만하자.’고 했어요. 솔직히 지금도 제 몸속에 암이 자라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던 그는 어느 순간 한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어요.‘암하고 좀 같이 살면 어때.’하고 여기게 된 거지요. 그 후 저는 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암 5기가 되라.’”그가 말하는 ‘암 5기’는 암의 마지막 4기를 이겨낸 사람들만이 체험하는 기적의 단계.“주변에 의외로 이런 기적이 많습니다. 암에 기 죽지 말고 이기겠다는 오기를 갖되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암이 죽음이 아님을 알게 될 겁니다.” ‘암 치료하는 암환자’ 이희대 박사. 그는 지금 수많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퍼뜨리는 기적의 실체로 그 자리에 있었다. ■ 이희대 박사는 ▲연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국군서울지구병원 일반외과장▲미국 국립암연구소 연수▲미국 조지타운대학 암센터 연수▲미국 슬로 케터링 암센터 임상연수▲대한외과학회·대한소화기병학회·대한암학회·대한내분비외과학회 회원▲아시아 유방암학회 운영위원▲미국 외과학회·암학회 정회원▲한국유방건강재단 이사▲현 연세대의대 교수 겸 영동세브란스병원 유방암센터 소장▲현 한국유방암학회 이사장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클래식 발레 vs 캐주얼 발레

    이달 말 발레팬들의 가슴을 뒤흔들 무대들이 기다린다. 이름만 들어도 흥분될 영국 로열발레단의 클래식 무대(29일∼7월3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와, 국내 유니버설발레단이 마련한 모던발레 무대 ‘컨템포러리 발레 셀러브레이션’(30일∼7월3일 문예진흥원 대극장). 큼지막한 무대들이 한꺼번에 막을 올리니 무용팬들의 고민이 적잖을 것 같다. ●영국 로열발레단 ‘신데렐라’‘마농’ 영국 로열발레단은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파리 오페라발레단과 함께 세계 3대 발레단으로 꼽히는 무용단.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으로 ‘백조의 호수’,1995년 ‘지젤’ 내한공연에 이어 10년 만의 방한인 셈이다. 무용가 겸 안무가 니네트 드 발루아가 1931년 런던 북부 새들러스 윌스 극장에서 만든 빅 웰스 발레단이 로열발레단의 효시.1949년 전설적 무용수 마고트 폰테인, 로버트 헬프먼이 공연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뉴욕에서 대성공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의 헌장을 받은 뒤 1957년 마거릿 공주가 단장을 맡으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주요 레퍼토리는 3막으로 이뤄진 고전발레들. 이번 무대에서는 왕실의 우아함과 화려함이 돋보이는 ‘신데렐라’와 ‘마농’을 선보인다. ‘신데렐라’는 천재 안무가 프레데릭 애시턴의 작품. 영국 무용의 형식과 스타일을 한눈에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세심하고 절제된 감정을 바탕으로 하되 해학과 유머감각이 곁들여진,‘균형미’가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마농’은 극단적 인간심리를 반영하는 ‘드라마틱 발레’를 구사하기로 정평난 케네스 맥밀런의 안무작. 관능미와 비장미가 어울린 사랑이야기로, 남녀 주인공이 하이라이트 대목에서 추는 관능의 2인무로 특히 유명하다. 세계적 프리마 발레리나인 다시 버셀을 비롯해 알리나 코조카루, 타마라 로조 등 주역 무용수들이 무대에 선다.29일∼7월2일 오후 7시30분,7월3일 오후 3시.4만∼20만원.2개 공연 관람시 20% 할인.(02)399-1114∼7. ●유니버설 발레단 ‘컨템포러리 발레 셀러브레이션’ 로열발레단이 고전무대의 단아함을 보여준다면, 유니버설쪽은 발레의 격식과 규칙을 훌훌 털어버린 ‘캐주얼’ 무대를 선보인다. 현대감각에 맞는 이야기에 아이디어가 넘쳐난다는 것이 이 공연의 특징. 이번에는 유럽, 미국, 한국의 대표적 안무가 3인의 작품들이 국내 초연된다.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감각이 조합된 크리스토퍼 휠든의 ‘백스테이지 스토리’, 산뜻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나초 두아토의 ‘두엔데’, 여섯가지 색채의 매력을 보여주는 유병헌의 ‘더 컬러스’ 등이 그들. 영국 출신인 크리스토퍼 휠든이 국내에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 유럽이 주목하는 젊은 안무가로, 그의 2001년 최신작 ‘백스테이지 스토리’는 공연을 기다리는 무대 뒷모습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중견안무가 유병헌은 중국 출신으로 베이징 센추럴발레단에서 재직하다 2001년 유니버설발레단 부단장에 임명됐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 오후 7시, 일 오후 4시.2만∼3만원.1588-7890.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설] 트위스트 김의 눈물의 절규

    50년 동안 관객들을 웃고 울렸던 만능 배우 트위스트 김의 사이버 테러 고발은 ‘IT 강국’의 어두운 면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예명을 도용한 불법 성인사이트 때문에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딸과 손녀마저 주위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할 때 자살 일보직전까지 몰렸다고 절규했다. 이 때문에 자신과 아내는 몇년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을 뿐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로 얼굴이 삐딱하게 돌아가는 안면신경마비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오늘날 인터넷의 힘이라고 일컬어지는 ‘익명성’이 이처럼 특정 피해자에게는 인격 살해라는 흉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개똥녀’사건을 비롯, 인터넷에는 특정인들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식의 공격을 가하는 테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사건의 진실을 따지기에 앞서 집단적 린치의 대열에 가세하는 것이 지금의 인터넷 문화다. 게다가 연예인들은 각종 스팸메일의 단골 발신자로 악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트위스트 김처럼 피해자는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해명은 구차한 변명이나 기만 정도로 난도질 당한다. 얼마 전 이해찬 국무총리가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검토토록 지시한 것도 익명의 가학성이 상궤를 벗어났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가상의 공간이라고 해서 무절제한 폭력성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오프라인에서처럼 나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춰야 한다. 특히 사이버 테러의 경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에서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무심코 휘갈긴 한 마디의 리플이 당사자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CEO 칼럼] 섬기는 리더십/기옥 금호폴리켐 사장

    [CEO 칼럼] 섬기는 리더십/기옥 금호폴리켐 사장

    지난 4월2일 세계 11억 가톨릭 신자들의 지도자이며 종교의 벽을 넘어 전 인류의 정신적 지주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종(善終)했다. 선종이라 함은 “선하게 살다 복되게 끝마친다.”는 뜻의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라고 한다.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삶의 이치를 가르쳐준 셈이다. 그는 지병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제의 본분과 인간적 매력을 잃지 않았던 사랑과 화해의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USA투데이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리더십의 교훈으로서 일곱가지를 선정했는데 여기에는 희생, 진실성, 용기, 솔선수범, 지식, 소통능력, 영감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솔선수범의 선정 이유가 특히 눈에 띈다.“교황은 타인에 대한 공감, 신뢰, 자기절제를 솔선수범했다. 그는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실행하는 사람이었지 바티칸에 앉아서 지시나 하는 행정가가 아니었다.” 이는 많은 이들이 마음속에 요한 바오로 2세를 진정 ‘위대한 리더’로 기억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리더십, 즉 ‘섬기는 리더십’에 관련된 책들이 번역 출판되었다. 이들 책은 거의 대부분이 실용적으로 리더십 개발 훈련에 활용될 수 있도록 쓰여졌는데, 로리 베스존스가 지은 ‘최고경영자 예수’, 제임스 C 헌터의 ‘서번트 리더십’, 알렉산더 버라디의 ‘서번트 리더의 조건’, 캔 블랜차드와 필 하지스가 공동으로 저술한 ‘섬기는 리더 예수’ 등이 대표적이다. 로리 베스존스는 그의 저서에서 남성적이며 권위적인 힘의 내용에 기초한 ‘알파 리더십’, 여성적이며 상호 협조적인 힘의 사용에 기초한 ‘베타 리더십’, 그리고 이 두 경영스타일을 상호 연계시키고 고양시키는 ‘오메가 리더십’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세계의 경영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여러 유형의 다양한 사람들이 최고경영자와 각계각층의 리더 자리에 앉게 됨에 따라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세계가 분열이 아니라 총화를 목적으로 삼고, 착취보다는 능력을 함양시키고, 지배하기 보다는 받침대가 되거나 상대를 고양시키는 그러한 리더들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독창적인 오메가 리더의 전형으로 ‘자아극복의 강점’ ‘행동의 강점’ ‘인간관계 형성의 강점’을 갖춘 ‘예수’를 들었다. 그러한 리더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세가지 범주의 총체적인 결합이 요구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편, 캔 블랜차드와 필 하지스는 ‘섬기는 리더십’의 완성을 위해서는 위의 세가지 강점 이외에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따르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를 정리해 보면 ‘섬기는 리더십’의 본질과 그 원형을 2000년 전에 보여 주었던 예수의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고, 최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우리에게 그 리더십의 실체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서도 이러한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들을 찾아 볼 수 있다. 얼마전 타계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성용 명예회장도 그러한 리더의 한 사람으로 평소 자신에게는 엄격하였고, 주변사람들에게는 꿈과 비전을 심어주었던 선각자였다. 2년반 후에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후손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지도자를 뽑을 수 있도록 지금부터 착실하게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기옥 금호폴리켐 사장
  • 심방세동 ‘전극도자 절제술’ 효과적

    난치성 부정맥으로 뇌졸중의 주요 원인인 심방세동을 전극도자시술로 완치할 수 있다는 임상 결과가 제시됐다. 기질적 원인과 고혈압 심장병 스트레스 음주 등이 원인인 심방세동은 흔한 지속성 부정맥이나 치료가 어려워 난치병으로 분류된다. 증상은 불규칙한 맥박, 어지럽거나 답답함, 두근거림, 졸도, 중풍 등이며, 심방세동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뇌졸중은 5배, 심부전은 2배 이상 발병률이 높으나 지금까지는 주로 약물치료에 의존, 근본적인 치료에 미치지 못했다. 고대안암병원 부정맥센터 김영훈 교수팀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98년부터 지난 3월까지 17∼80세(평균 52.5세)의 남녀 심방세동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전극도자 절제술을 적용한 결과 80%의 완치율을 보였다고 최근 밝혔다. 시술 결과 만성환자(55명)의 경우 완치율이 70%에 달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盧대통령-WAN회장대행 신문법싸고 신경전

    盧대통령-WAN회장대행 신문법싸고 신경전

    3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 총회 개막식에서 개정 신문법을 놓고 미묘한 갈등이 일어 참석자들을 긴장케 했다. 갈등의 원인은 신문법의 시장점유율 제한조치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느냐를 놓고 견해차가 생긴 것. 이 조항을 두고 보수언론 등은 ‘정부가 신문을 더 못팔게 한다.’고 왜곡해 왔다. 문제는 이런 왜곡이 한국신문협회를 통해 WAN에까지 전달됐다는 점이다. 축사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맥락을 감안해서인지 WAN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노 대통령은 “여전히 신문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권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운을 뗐다. 다시 언론권력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동시에 “언론 자유에 대한 보호는 강조됐지만 언론 자체가 시장의 독점과 독점적 지배구조를 통해 권력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고려되지 않았다.”면서 “언론 권력의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언론인의 윤리적인 자세와 절제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답사에 나선 개빈 오렐리 WAN 회장 대행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런저런 발언들을 나열했다. 한편으로는 인권변호사 출신 노 대통령의 인권의식과 한국의 민주화를 칭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점유율 등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는 점심 때 ‘이해찬 국무총리와 편집인의 만남’ 자리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 자리에 초대된 몇몇 외국 언론인들은 개정 신문법의 점유율 제한 조항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민주주의 정당에서 30% 이상의 지지를 받는다고 그 이상의 지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냐.”는 보수언론의 논리를 그대로 전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질문까지 나왔다. 이 총리는 개정 신문법의 취지를 설명하다 ‘성격대로’ 아예 직격탄을 날렸다.“우리 상황이 잘 이해는 안 가시겠지만 자전거나 경품을 주고 무가지를 대량 배포하는 행위가 일상적이고, 구독강요 행위가 워낙 심해서 ‘신문 끊기가 담배 끊기보다 더 어렵다.’라는 말까지 있다.”고 소개한 것이다. 그 뒤 추가 질문은 없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儒林(355)-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제3부 君子有終 제3장 慕古之心 퇴계의 고백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일찍이 의정부의 사인(舍人)이 되어 노래하는 기생이 눈앞에 가득하였을 때 문득 한 가닥 환희심이 일어나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기미(機微)는 살고 죽는 갈림길이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이 말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은 의미심장하다. 퇴계는 ‘화려하고 시끄럽게 쾌락에 빠지는 것’과 ‘그것에 초연할 수 있는 평상심’을 ‘살고 죽는 생사의 갈림길(機則生死路頭也)’로 보고 있음인 것이다. 특히 퇴계는 술을 경계하고 있었다. 일찍이 15살 되던 해 송재공을 따라 안동에 갔을 때 술에 취해 말에서 떨어진 실수를 한 이래로 술에 대해 평생 근신하였다. 퇴계는 병약했으나 술은 즐기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는 퇴계가 만년에 도산서당에서 지은 시 중에 술에 관한 시가 서너 수 나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퇴계는 직접 집 뒤의 산속에 술 빚는 창고를 두어 서당에 손님이 찾아오면 산봉우리로 불러 술을 마셨다고 한다.‘달밤에 이 문량이 도산으로 찾아오다(月夜大成來訪陶山)’란 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밤 함께 즐겁네/좋은 손님들 찾아오니, 산봉우리 넘어 불러/탁주잔 기울여 마시네. 관란헌에 셋이서 솥발처럼 앉아/그윽한 마음 열고, 다시 난초 배에 올라/달 놀이 하다 돌아왔네(良夜同欣好客來 隔岑呼取濁 盃 臨軒鼎坐開幽款 更上蘭舟弄月回).” 이밖에도 절우사(節友社) 화단의 매화가 늦봄에 피어나자 읊은 퇴계의 시는 아취(雅趣)를 느끼게 한다. 그 시의 마지막 연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찌 필요하리오/난초향기 같은 말. 하늘가에 옛 친구들/볼 수가 없어, 그대 더불어 날로 아무 일 없이/술잔 기울여 마시네(今者何須蘭臭言 天涯故人不可見 與爾日飮無何尊).” 이처럼 술을 좋아하던 퇴계였으나 평생 술을 절제하여 취하지는 않았다. 술에 대한 경각심을 퇴계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벼슬에 올라 서울에 있을 때에 늘 사람에 이끌려 날마다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러나 얼마 뒤 한가한 날에는 문득 심심한 마음이 들어서 돌이켜 생각해 보고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 몰랐다.” “또 내가 일찍이 금문원(琴聞遠:제자))의 집에 놀러간 일이 있었는데, 산길이 몹시 험하였다. 갈 때는 말고삐를 잔뜩 잡고 조심스러워하는 마음을 놓지 않았는데, 돌아올 때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길 험한 것을 아주 잊어버리고 마치 탄탄한 큰 길을 걷듯 하였으니, 마음을 잡고 놓음이 이처럼 심히 두려운 것이다.” 퇴계의 두 번째 고백 역시 학문의 길은 몹시 험한 산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항상 말고삐를 잡고 마음을 놓지 않아야 하며, 마치 탄탄한 큰길처럼 함부로 가면 낭패를 본다는 내용으로 제자들에게 내리는 경책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젊은 날의 퇴계는 마음을 다잡고 거경(居敬)의 마음으로 한결같이 학문에 열중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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