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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의 세상 유람] 보는 것, 보이는 것, 보려고 하는 것

    [심리학의 세상 유람] 보는 것, 보이는 것, 보려고 하는 것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석진이라는 개그맨의 무신경함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의사에게 질문을 해가며 성심성의껏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의사가 그에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슬며시 책상 아래로 내려가 숨고, 책상 아래 숨어 있던 다른 의사가 올라와 천연덕스럽게 그 앞에 앉았다.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지금까지 계속 대화하고 있던 의사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는데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번 바뀐 것도 아니고 문진표를 작성하는 도중 상당히 여러 번 의사가 바뀌었는데도 그는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장면을 본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어떻게 자신과 대화하던 사람이 바뀌어도 못 알아볼까?”라며 놀라워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는 무신경함이 절정을 달한, 우리와는 매우 다른 사람일까? 아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 상황은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책으로도 유명한 사이먼스(Simons, D. J.)와 레빈(Levin, D. T.)의 1998년 연구를 재현한 것이다. 이 근사한 실험을 통해 이들이 보여준 결과는 대화하고 있던 사람이 중간에 바뀌어도 절반 정도의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는 변화맹시(change blindness)라 하는데, 우리가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떤 변화(나와 대화하는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정도로 큰 변화)가 발생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우리 역시 저 개그맨 대신 저 자리에 앉아있었어도 의사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본다는 행위를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우리의 보는 능력은 매우 훌륭하다. 몇 백 미터 밖에서 먹이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독수리나 불빛에 너무 민감해서 밤에만 다니는 올빼미만큼의 광학적인 능력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설핏 곁눈질 한 번만으로도 내 옆을 지나는 행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스캔할 수 있고, 얼굴 표정을 힐끗 보는 것만으로도 남자친구의 거짓말을 탐지해 낼 수 있으며, 여자 친구의 립스틱 색상이 1호 바뀐 것조차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다르다. 내가 아무리 보고 있어도,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위치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대상은 나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실을 간파한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통제하려고 한다. 보이고 싶은 것만을 보여주는 TV 광고, 보이고 싶은 스스로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이미지메이킹, 보이고 싶은 결과만을 보여주는 학술 논문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그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무척이나 간명하고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우리 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기본적으로 뇌는 매우 게으르다. 아니, 뇌는 항상 피곤하기에 게을러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겠다. 우리의 작은 뇌로 매순간 복잡한 주변 환경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에 맞는 반응을 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뇌는 가능한 한 자신의 힘을 아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런 별명이 붙는다. ‘인지적 구두쇠!’ 이런 뇌에게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라고 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 앞의 상황을, 내 앞의 사람을 얼핏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며 정답을 알았다고 자족하며 즐거워한다. 우리에게는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가 ‘보려고’ 한 것일까? 아니면 어느 누군가가 ‘보이려고’ 한 것일까? 그냥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에 세상에는 우리가 보아야 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최훈 한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만질 수 없음을 만지는 언어:촉각의 소노그래피/전승민

    문학의 칼 칼날과 포옹할 수 있을까? 한강에게 언어는 세계와 자신을 가르는 칼이다. 언어는 전체 의미 중에서 표현 가능한 부분만을 잘라 기표에 담으므로 진실은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왜곡된다. 그래서 문학 하는 이들에게 언어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영원한 고통이다. 문학의 괴로움은 그것이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비-진실해지는 이 운명에서 비롯한다. 현실의 경험을 기표로 쪼개어 재조합하는 언어로는 그 어떤 실재에도 완벽히 다다를 수 없다. 현실을 조각내지 않는 언어는 과연 가능할까?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2011)은 진실을 조각내는 언어의 칼금과 대결하며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그것은 현실을 분절하는 한계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현실을 가장 훼손하지 않는 순수한 상태의 언어에 의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언어가 언어이기를 포기할 때 획득되기에 순수를 추구할수록 더욱 비-순수해지는 역설 속에 있다. 그 ‘순수’는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에게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실은 어떤 인과나 합리적 추론으로 증명되는 참인 명제가 아니라 오직 몸으로 살아낼 때만 느끼는 힘의 압력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남자와 여자는 이 거대한 진실을 유한한 인간의 몸뚱이로 견디는 사람들이다. 남자의 진실은 영원한 실명, 여자의 진실은 계속되는 실어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실과 고통은 보상이나 처벌의 체계에서 비롯하지 않으며 당위나 인과에 의해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각자의 진실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영원히 실패한다. 예정된 실패의 운명 속에서 ‘희랍어 시간’이 길어 올리는 물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삶을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발버둥치는가이다. 이 궁극의 물음에 대해 소설은 질문으로 되돌아가 그것을 파괴하는 재귀적인 답을 제시한다. 삶이 인간에게 들이미는 통각은 소거되어야 할 병증이 아니라 그가 살아 있음을 감각하게 하는 생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은 인물의 아픔에 관한 원인을 굴착하기보다 그 아픔을 온몸으로 함께 통과한다. 서사는 플롯의 인과와 시간의 합리적 흐름에 복무하지 않고 다만 고통의 양태와 통각을 소슬히 응시하기 위해 흐른다. 그래서 ‘희랍어 시간’에서의 시간은 선형적이지 않고 소설의 언어 역시 일반의 언어로부터 탈구되어 있다. 요컨대 한강은 인간과 문학이 삶에 대해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 그러나 ‘왜’로 시작할 수밖에 없으므로 언제나 오류일 수밖에 없는 어떤 질문과 대결한다.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105쪽) 신성의 잠재태로서의 고통 ‘희랍어 시간’의 시간은 환(環)으로 흐른다.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26쪽) 소설에서 읊어지는 보르헤스의 말처럼 첫 번째 장은 ‘1’에서 시작해 21번째 장까지 진행된 후 마지막 장에서 ‘0’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1에서 0을 향해 구부러지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의 삶이 전생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전사(前史)는 작가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에 상세히 기록돼 있다.1) 남자와 여자는 ‘해부극장’ 연작에 나오는 백골의 전생이며, 백골의 고통은 곧 여자가 느끼는 통증이다. 그것은 말의 소리가 신체의 발음 기관을 경유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갈 때 발생하는 비릿하고 붉은 통각이다.2) 세 치의 혀와 목구멍에서 나오는 말들, 헐거운 말들, 미끄러지며 긋고 찌르는 말들, 쇳냄새가 나는 말들이 그녀의 입속에 가득 찼다. 조각난 면도날처럼 우수수 뱉어지기 전에, 막 뱉으려 하는 자신을 먼저 찔렀다.(‘희랍어 시간’·165쪽) 여자의 고통이 언어가 파열될 때 발생한다면 남자의 고통은 반대로 무언가가 덩어리로 뭉개질 때 발생한다. 완전히 실명하게 되리라 진단받은 마흔을 목전에 두고, 그는 마치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것처럼 16년간의 독일 생활을 접고 모국으로 돌아온다. 사물과 풍경의 날카로운 경계는 그의 시야에서 점차 사라진다. 그는 실명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신이 없다. 남자의 삶 역시 독일과 한국에서 보낸 시간으로 분절되어 있으므로(“그때 내 인생은 거의 정확히 절반씩 두 언어, 두 문화로 쪼개어져 있었던 셈입니다.” 40쪽) ‘희랍어 시간’은 여자와 남자가 공유하는 고통 그 배면의 시간이다. 여자는 두 번째로 찾아온 실어 증상을 스스로 극복하기 위해 강의를 신청하고, 남자는 자신을 둘로 쪼개는 힘을 피해 “수천 년 전에 죽은 언어 (…) 마치 고요하고 안전한 방”(119쪽)과 같은 희랍어 속으로 숨어든다. 이 공통의 시간 너머에 있는 그들의 고통에는 이유가 없다. 백골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아픔은 단지 붉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성에서 비롯한다. 달리 말하자면 그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파야만 하는 것이다. 까닭 없이 고통받는 인간은 신을 찾아 헤맨다.3) 소설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남자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그의 고해는 세 통의 편지로 이루어진다. 가장 먼저 발송되는 편지는 독일에서 살던 시절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사과문이다. 그녀는 청각장애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장애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녀를 욕망한다.(“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라고.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거라고.” 47쪽) 그는 “백치처럼 순진하게”(47쪽) 그녀에게 독순술 수업에서 배운 대로 말을 해 보라고 요청한다. 남자는 그녀의 청각장애를 자신의 예정된 실명과 동등하게 고려하지 못한다. 그녀의 독순술이 그의 ‘결핍’을 보충하는 자질이 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누군가의 언어 행위는 그의 자발적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지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요컨대 언어는 강요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품는 모든 욕망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정당화되고 그것이 그녀에게도 좋은 것이라 ‘백치처럼’ 그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녀는 사과하는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세계를 두 눈으로 또렷하게 볼 수 있다고 해서 타인의 고통을 왜곡되지 않은 상(像)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 사물을 보는 눈과 인간의 고통을 보는 눈은 다르다. 한편으로, 인간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것은 그 또한 다른 인간으로부터 상처받을 수 있음을 내포한다. 두 번째 편지의 수신인은 여동생 란이다. 그는 여동생에게, 앞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의 운명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똑같은 병을 앓았던 아버지였음을 말한다. 그의 시력 상실은 부계 유전질환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어스름이 정말 완전한 밤으로 이어지는지”(82쪽)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자신과 똑같은 아들을 끝까지 멀리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데에 결국 실패하면서 삶으로부터의 자기 소외 속에 생을 마감한다. 그는 어둠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삶의 빛 속으로 한 발짝도 걸어 나가지 못했던 셈이다. 이제, 앞서 소설이 던진 유일한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답이 도착한다. 인간이 부서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영혼 안에 어리석고 나쁜 것과 함께 어떤 좋음 또한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통을 감각하고 수용하는 능력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새’는 그것의 체현물이며(“그의 얼굴 속에 새 같은 무엇인가가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따스한 감각이 그녀에게 즉각적인 고통을 일깨운다는 것을 곧 깨닫는다.” 147쪽) 개별 존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새 같은 무엇인가가 문득 육체를 떠났고, 그 육체는 더이상 어머니가 아니었다.” 145쪽) 말하자면 새는 인간이 생의 통각에 반응하는 마음의 일부로서 육체와 정신을 이어 준다. 새를 통해 인간은 육체의 통증을 실존적인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뒤에서 논의되겠지만, 인간은 역설적으로 바로 이 ‘새’로 인해 자기 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새를 두고 인간이 각자 품고 있는 어떤 신성(神性)의 잠재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유한자로서의 운명에 함몰되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은’ 차원으로 도약하게 만드는 그 무엇은 분명 신성하다. 요컨대 인간은 선험적인 신성을 배태하므로 고통받는다. 여자는 특히 이 신성의 언어적 측면이 육화된 존재다. 문자가 소리로 변할 때 언어가 겪는 분절의 고통을 그녀는 자기 몸의 통증으로 겪는다. 심장과 혀를 경유하여 귀로 도달하는 모든 파열하는 소리는 여자에게 폭력이다. 그래서 실어증은 파괴하는 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대응이다. 침묵은 그녀를 에워싸고 보호한다. 실어의 원인은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55쪽)다. 여자는 언어의 신성 그 자체이지만 이 신은 전지전능하지 않다. 그녀 역시 구원을 바란다. 어머니가 뱃속의 그녀를 지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현실 속 무언가의 실존이 얼마나 연약하고 위태로운 우연에 기대고 있는지 아는 그녀는, 그래서 무언가의 존재를 위협하거나 변형시키는 힘에 대해 온몸으로 대항한다. 그녀에게 폭력은, 어떤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자리로부터 박탈시키는 모든 종류의 유형력이다. 목소리 역시 그러하다. 음성은 공간을 점유하면서 다른 존재들을 밀어낸다.(“그녀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싫어했다. (…) 목소리는 훨씬 넓게 퍼진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넓게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51쪽) 여자에게 말은 육체적인 고통이다. 그러므로 실어는 존재들을 지켜내기 위해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는 사랑의 행위-신의 사랑이다. 그녀는 말하지 않는 대신 언어를 시선으로 번역한다. “신은 보는 존재이거나, 시선 그 자체인 건가요?”(104쪽)라는 대학원생의 물음은 반쯤 정답을 향해 있다. 타인의 고통을 무참히 다룬 죄를 고해하고 받은 상처를 토로하던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남자가 찾던 신의 모습은 여자의 몸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점 희미해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과연 그녀를 ‘볼’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의 소노그래피 그녀가 희랍어로 힘겹게 써 내려가는 시는 마치 예수가 부활하기 전 무덤 속에서 썼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한 여자가 땅에 누워 있다. 목구멍에 눈(雪) 눈두덩에 흙. (64쪽) 차가운 무덤 속에 묻힌 신의 눈에는 흙이 있고, 입과 목은 차가운 눈으로 막혀 있다. 그녀는, 신은 말할 수 없다. 무덤 안은 남자와 여자가 발 딛고 있는 현실 세계다. 카타콤베 묘지에 갔던 남자의 기억이 떠오른다. 여러분, 왜 관 속에 유골이 없을까요? (…) 박물관에 가져다놓은 거 아니에요? (…) 누군가가 훔쳐갔나요? (…) 다아 여기 있습니다. (…) 관 속에 보이는 흙을 분석하면 칼슘과 인 성분이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면, 사람의 뼈가 삭아서 이런 흙이 되는 겁니다.(153쪽) 백골은 전생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남자는 자신이 곧 그 백골이라는 것을 안다.(“수천 구의 육체들이 뼈까지 깨끗이 삭아버린 거대한 무덤 속에, 그토록 따뜻한 몸을 가진 우리가 모여 있었다는 게.” 155쪽) 그는 구토감을 느낀다. 온몸에 묻은 죽음의 흙냄새와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여자에게 고해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이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마치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가 정원지기인 줄로만 알고 예수의 시신이 어디에 있느냐 묻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다.(요한복음 20:15) 그는 앞으로 펼쳐질 영원한 어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신에게 거듭 질문한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내 말, 거기서 듣고 있나요?(161쪽) 두 사람의 과거로 구부러졌다 돌아오곤 하던 현재는, 남자와 여자가 ‘어둠’ 속에서 서로 마주하게 되는 배타적인 둘만의 시간, 즉 17장부터 21장까지의 시간 동안 직선으로 그러나 더 천천히 흐른다. 건물 안으로 날아온 새를 구하려던 남자는 발을 헛디뎌 안경을 깨뜨리고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한다. 밖으로 나온 여자가 남자의 소리를 듣고 그에게로 향한다. 그런데 그녀가 그에게로 다가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녀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밖으로 나간다. 빈자리들이 이상한 통각을 띠고 그녀의 눈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질끈 눈을 감아보았다. 그녀의 시간과 다른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어긋난 것 같았다.(160쪽) 남자의 시간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던 것이다. 그는 점점 흐릿해지는 자신의 시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39쪽) 두 사람의 대화는 남자의 빈자리가 발생시키는 시간의 진동을 여자가 감지하면서 시작된다. 이 시간의 감각은 파동의 형태로 전달된다. 남자는 여자의 구두 소리를 듣고 난간을 주먹으로 두드려 자신이 있음을 알린다.(“듣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이 진동은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133쪽) 여자가 ‘들은’ 것은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라 그녀의 몸 전체, 피부 세포에 닿아 그것들을 흔드는 진동이다. 그들의 대화는 시신경에 의한 시선도, 청신경에 의한 소리를 통해서도 아닌 바로 이 촉각의 소노그래피(sonography)를 통해 이루어진다.4) 시인이 존재들에게 엑스선을 투과시켜 백골들의 영상을 얻어낸다면(“검푸른 뢴트겐 사진에 담긴 나는/그리 키가 크지 않은 해골” ‘해부극장 2’)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는 소노그래피를 통해 육체의 말랑한 조직들, 피부나 혀, 심장에서 반향된 영상을 보여 준다. 엑스선은 말랑한 것들을 찍을 수 없고 초음파는 뼈를 투과할 수 없다. 통증은 말랑하고 붉은 것의 감각이다. 뼈에는 통각 세포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은 뼈가 육신을 가졌을 적의 고통의 서사다. 소노그래피의 언어는 존재 자체가 내뿜는 파동이므로 소리로 쪼개지지 않는 언어다. 이것 역시 몸으로부터 유래하지만 “폐와 목구멍과 혀와 입술을 움직여, 공기를 흔들어 상대에게 날아”(55쪽) 가는 목소리가 갖는 폭력성은 없다. 여자가 말 대신 택한 시선의 언어 역시 그런 점에서 비육체적이다.(“시선만큼 즉각적이고 직관적인 접촉의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는 느꼈다. 접촉하지 않으면서 접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55쪽) 이때 접촉의 감각은 시각이나 청각이 배제된 상태의 대리보충, 즉 실제 피부의 감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5) 소노그래피의 촉각은 오감의 유무와 관계없이 존재가 뿜어내는 살아 있음의 파동, 즉 여자가 말한 ‘시간’의 감각이다. 한강은 특유의 독특한 문체로 두 인물 사이에 반향되는 소노그래피를 형상화한다. ‘희랍어 시간’에는 큰따옴표나 작은따옴표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언뜻 자유간접화법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자유간접화법은 문장 안에서 형식적 서술자와 서술 내용이 담는 의식의 주인을 불일치시키며 서술자보다 인물을 부조한다. 그러나 한강의 문장에서 3인칭 화자는 남자와 여자의 의식 이면으로 유보되지 않는다. 따옴표 없이 곧장 전해지는 말은 인물의 목소리를 3인칭 서술자와 동일한 층위에 위치시키며 그들 간의 위계를 무너뜨린다. 모든 소리는 세계의 일부로 스며들어 있다. 소설은 이 지점에서 자기 안으로 시를 틈입시킨다. 인용부호에 의해 절단되지 않는 하나의 커다란 말뭉치(corpus)를 만들어 내는 서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3인칭 서술자 각각의 인격을 부각한다. 목소리들이 어우러지는 한 공간-소설 안에서 인물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시가 되고 그들의 모든 말은 행과 연의 형식으로 배열된다. ‘희랍어 시간’은 세 인격의 목소리가 만들어 내는 소리 풍경(soundscape)이다.6) 그녀는 그의 말을 똑똑히 듣고 있다. (…) 그녀는 그를 똑똑히 보고 있다. (…) 그늘진 그의 얼굴을, 그녀는 지금 온 힘을 다해 건너다보고 있다.(169쪽) 촉각의 소노그래피가 만드는 소리 풍경 안에서 듣는 일은 곧 보는 일이며, 보는 일은 곧 듣는 일, 존재의 파동을 온몸으로 감각하는 일이다. 진동은 소리가 글자로 박제되는 것과 달리 발생하고 감각되는 즉시 사라진다. 나타남과 동시에 사라지는 소노그래피는 존재를 파열시키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투명하게 통과한다. 모든 인물의 말이 인용부호 없이 제시되지만 특히 여자의 목소리는 서사 세계 안에서도 음성화되지 않는 가장 시적인 목소리다. 여자의 문장들은 기울어지면서 남자의 목소리와 구분된다.7) 19장 ‘어둠 속의 대화’ 후반부에는 이렇게 목소리가 뒤섞이면서 두 사람의 파동이 중첩되는 대목이 있다.8) 서사 표층에서 실제로 발화되는 음성은 남자의 목소리뿐이므로 소노그래피가 아니라 일반적인 감각으로 읽어낼 경우, 소설은 오직 남자의 독백으로만 가득 찬다. 그러나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각자가 소환하는 기억의 단위들로 교환되며 소리가 아닌 언어, 파동의 접면들이 교차하며 이루어진다.(“잉크 위에 잉크가, 기억 위에 기억이, 핏자국 위에 핏자국이 덧씌워진다.” 155쪽) 언어의 칼금을 막아내기 위해 언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소설은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서로 겹치며 일으키는 간섭을 현상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화해할 수 없었다. 화해할 수 없는 것들이 모든 곳에 있었다. (…) 독한 취기 같은 피로가 그녀의 의식을 둔하게 만든다. 그의 목소리가 마치 꿈인 것처럼, 아주 먼 곳에서부터 토막토막 끊긴 채 울려온다.(166쪽) 여자의 파동은 남자에게로 전해진다.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그의 얼굴을 응시하려 애쓴다. 초점 없는 그의 눈을 또렷이 마주 보려 애쓴다.(167쪽) 여기서 남자의 응답은 여자의 파동과 똑같은 기울임체로 발화된다. 두 존재가 고막을 통해 소리를 교환하지 않고도, 살을 맞대지 않고도 그 무엇보다 깊은 층위에서 교감하는 장면이다.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과거로 여러 통의 편지를 쓰던 인간은 신의 고통 안에서 그와 함께 현재적으로 공명한다. 이 장면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여자의 그것으로 중첩되며 같은 기울임체로 서술되지만,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의 그것으로, 다시 말해 기울어진 목소리가 평평하게 바뀌지는 않는다. 여자는 신성의 체현자이기 때문이다.(“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그런 침묵을 본 건 처음이었어.” 78쪽) 구원의 빛이 침묵의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온다. 나를 만지지 마라 이제, 소설의 질문에 대한 두 번째 답이 제시된다.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고통을 감각하는 신성이 서로에게 중간태인 동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어에는 수동태와 능동태가 아닌 제3의 태, 중간태가 있다.(18쪽) 중간태는 어떤 행위가 주어에 재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대상에게 했던 행위가 다시 주체로 돌아오는 이 재귀적 운동은 소노그래피의 언어가 보이는 양태다. 소노그래피의 방식은 그 자체로 중간태적 추론이다. 그는 대상에게로 뻗어 나간 자기 파동의 반향을 소노그램으로 읽어 낸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것은 그것의 원인을 축자적으로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에게 계속해서 질문하는 일이다. 아무리 유사한 경험을 하더라도 고통은 결코 동일한 정도로 감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의 아버지는 남자와 같은 유전질환으로 인해 시력을 이미 잃은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동일한 조건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주파수를 오롯이 피부로 느끼는 일이다. 그것은 타인의 삶을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그의 삶을 추체험하는 일이다. 가령, 남자가 곧 실명하리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불투명한 비닐봉지를 자기 눈에 갖다 대며 “이건 소파고 이건 책장이야. (…) 이렇게 걸어도 안 넘어질 수 있어.”(146쪽)라며 일부러 왔다 갔다 하던 여동생처럼 말이다. 동생은 오빠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칠 ‘어둠’이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을 거라는”(147쪽) 위로를 보낸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은 내가 영영 닿을 수 없는 점근선의 영역이다. 반면 마지막 고해, 요아힘과의 이야기는 남자 역시 언어의 육체성이 자아내는 폭력을 경험했음을 들려준다. 그 폭력은 곧 타인의 고통을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포획하여 해석해 버리는 일이다. 요아힘은 남자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욕망을 타인과 자신의 고통 안에서 어떻게 겹쳐 두어야 하는지 모르므로 남자에게 상처만을 남긴다. 그는 고통의 완전한 극복과 단절을 믿는다. 시한부 선고의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병실의 벤젠 냄새 속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10쪽) 말하는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와 꼭 같은 경험을 몸의 기록으로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다. 어둠과 죽음의 병실을 물리친 그에게 생의 감각은 생동하는 육체의 폭발적인 감각, 물컹하고 뜨거운 것이다. 요아힘은 여자에게는 고통이었던 육체적인 것과의 접촉을 갈망한다. 남자가 어둠을 품은 이라면 요아힘은 빛의 질서를 품은 이다. 남자가 비논리와 모순을 껴안는 문학을 사랑한다면 요아힘은 사고를 명징하게 자르는 철학을 사랑한다. 고통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났다고 믿는 이의 강한 확신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누구보다도 눈을 멀게 만든다. 자신이라면 완전한 어둠이 다가올 그때를 위해 점자를 배워 두겠다는 철학자의 명랑한 조언은 남자의 신앙인 소멸의 이데아를 산산조각 낸다. 다시 한번, ‘백치처럼’ 순진한 이 조언은 남자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요아힘에게 그것은 단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소멸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말이야… 그건 깨끗하고 선하고 숭고한 소멸 아닐까? 그러니까, 소멸하는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깨끗하게, 아름답게, 완전하게, 어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진눈깨비 아닐까?(118쪽) 이것 봐. 죽음과 소멸은 처음부터 이데아와 방향이 다른 거야. 녹아서 진창이 되는 진눈깨비는 처음부터 이데아를 가질 수 없는 거야.(118쪽) 빛이 소멸한 세계에서 앞으로의 생을 계속해야 하는 남자에게 요아힘의 논증, 어둠 속에는 좋음의 이데아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반박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꺼트린다.(“네 말을 들은 순간, 덧없는 전 세계가 빛을 잃었지.” 118쪽) 그래서, 점자를 통해 남자와 진정으로 닿기를 바라던 요아힘의 욕망은 언어의 폭력적인 육체성과 실상 같은 것이다. 남자는 요아힘으로부터 깨닫는다. 자신이 독일에서 여자에게 던진 사랑의 말, 너는 나의 목소리가 필요할 테니 같이 살게 될 것이라는 그 고백이 폭력이었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받은 상처로부터 타인에게 준 상처를 깨달은 마리아는 이제 눈앞에 현전한 예수ㅡ언어의 육신을 본다. 신과 인간의 목소리는 구별되지 않고 한데 뒤섞인다. 남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신의 파편들, 진눈깨비의 이데아는 희랍어 시간의 여자 그 자체다. 그녀의 이름은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100쪽)이다. 고통받는 두 인간의 신성은 한데 섞이고 소노그래피는 중첩된다. 말할 수 없는 이와 볼 수 없는 이의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이해는 공통원소 없는 그 존재들의 배면에서 투명한 파동을 통해 전해진다. 파동은 한 곳으로 수렴하지 않고 서로의 몸 안을 투과하며 지나간다. 이제, 신은 요아힘과는 다른 ‘접촉’의 방식으로 남자를 구원하고 눈으로 목이 막혔던 그녀 역시 그 구원으로 인해 부활한다. 따로따로 제시되던 목소리는 한 연으로 묶이면서 말을 주고받는 직접적인 대화의 국면에 도달한다. 1인칭 단수 화자들은 ‘우리’를 직감한다. 어두운 초록색 흑판에 백묵으로 문장을 쓸 때 나는 공포를 느껴요. (…) 태연하게 내 혀와 이와 목구멍으로 발음된 모 음운들에 공포를 느껴요.(167쪽) 구원은 끝없이 멀어지는 존재가 내 안으로 들이닥쳐옴을 느낄 때 일어난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나를 만지지 마라”(Noli me tangere)는 말을 남기며 떠나간다.(요한복음 20:17) 멀어지는 자신을 붙잡지 말라는 이 말은 타자를 주체의 자기동일성 안으로 납치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타자를 몇 번이고 무한히 떠나보냄으로써 그의 존재를 부조하라는 율법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를 부축해 그의 집까지 데리고 온 여자는 손가락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쓴다. 그녀가 그에게 최초로 대답한 말은 떠난다는 말이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171쪽) 두 사람이 가장 가까워지는 이 접촉은 소설이 시종일관 지양해 온 폭력적인 접촉과 다르다. ‘어둠 속 대화’의 절정 이후 남자는 여자의 어깨를 끌어안는다. 그러나 두 몸의 접촉 이후 다만 ‘모른다’는 진실의 무자비한 범람만이 남자를 압도한다.(“심장과 심장을 맞댄 채 여전히 그는 그녀를 모른다.” 183쪽) 그가 그녀를 안자마자 뒤이어 열네 번의 ‘모른다’가 연속해서 등장한다. 그래서 그가 그녀에게 입을 맞출 때까지도 둘의 접촉은 항구적인 비접촉이 되는 것이다. 강력하게 현전하는 단 하나의 진실은 “맞닿은 심장들, 맞닿은 입술들이 영원히 어긋”(184쪽)나는 ‘시간’이다. 마리아는 이제 떠남 속에서 빛이 아닌 어둠을 본다. 이때의 ‘봄’은 시각과 무관하게 생의 파동을 온몸으로 수용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는 기적을 의미하지 않는다.9) 그것은 죽음 안에서 떠나가는 생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구원은 영생이 아니라 떠나감의 현전 안에서 일어난다. 보르헤스가 말한 시간-존재를 태우는 불(122쪽)이 여자와 남자를 통과하고 나면 새는 날아가고 백골만이 남는다. 개별 존재의 신성이 육신 속에서 체현된 것이 새라면 죽음 이후부터 그 신성은 뼈들이다. 플라톤이 말했듯 진실에 대한 앎은 전생으로부터 온다. 우리는 그것을 다만 상기할 뿐이다. 전생의 기억은 시로 돌아온다. 그때 우리는 바다 아래의 숲에 나란히 누워 있었어요. 빛도 소리도 그곳에는 없었지요. (…) 마침내 당신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낼 때까지, 입술 사이로 둥글고 가냘픈 물거품이 새어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곳에 누워 있었어요.(185~186쪽, 21장 ‘심해의 숲’) ‘심해의 숲’의 다른 이름은 ‘해부극장 3’으로 부활 이후 무덤가에 나란히 누운 여자와 남자의 그림이다.10) 죽었던 신과 고통받는 인간이 함께 나란히 누울 수 있다면, 인간의 신성은 더는 논증이 불필요한 문제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혼이 파괴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의 신성과 달리 인간의 신성은 죽음으로부터 몸을 ‘일으켜’ 고통을 내려다보는 일이 아니라 다만 죽음 안에서 옆에 누운 다른 이의 뼈를 쓰다듬는 일이다.11) 구원을 바라던 신은 부활하여 드디어 입술을 연다. 시종일관 남자의 목소리를 사용하던 1인칭 화자는 마지막 장 ‘0’에서 오직 한 번 여자의 목소리로 발화한다. 현전하는 이 말씀, 로고스는 음성도 문자도 아니다. 그것은 그 무엇도 파괴하고 밀어내지 않는 언어, 촉각으로 전해지는 파동의 말씀이다. 남자와 여자는, 우리는, 그리고 인간은 영원히 어긋나는 방식으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결국, 구원의 반증은 ‘우리’라는 단어다. 그래서 소설은 ‘0’의 끝에서 다시 ‘1’로 돌아간다. 신은 말한다. 에모스, 에메테로스. 나의, 우리들의.(10쪽) 역설의 구원 한강의 문학에서 시간은 정말로 환(環)처럼 흐른다. 그러므로 ‘희랍어 시간’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이미 읽은 이가 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그는 눈사람이다.(‘작별’12)) 언 몸이 진눈깨비로 흩날리며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눈사람은 남자가 갈망하던 소멸의 이데아의 현현이면서 새와 백골의 중간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장 많은 것을 안다. 그는 고통스럽지 않기 위해 몸 안의 심장을 얼리는 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피와 살과 내장과 근육이 있는 몸을 다시 갖고 싶지 않”(150쪽)다고 확신한다. 아이와 애인과 가족과 작별하며 그가 마주하는 최후의 질문은 “그러니까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가 인간인 건지”(150쪽)이다. 이는 ‘희랍어 시간’이 던지는 질문과 같은 물음이다. “사는 일이 거대한 장례식일 뿐이라면/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13)는 물음이다. 그리고 그 최후까지 남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눈(雪)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소멸하는 것처럼 한강의 인물들은 사랑할수록 점점 멀어져 간다. 그러나 바로 그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서로의 “진동이 출발하고 도착하는 투명한 접지”(‘작별’, 133쪽)가 된다. 나와 당신은 같아질 수 없으므로, 당신은 언제나 나를 떠나는 중이므로 나는 당신과 연결된다. 눈사람은 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실체는 다만 촉각의 소노그래피뿐이며 그것은 “변함없이 진동하며 두 사람 사이에 고요히 걸쳐져 있”(134쪽)음을 안다. 그리고 이 파동을 타고 전해지는 “무색무취인 데다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어서 거의 인간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134쪽)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랑은 강렬한 접촉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멀어지는 ‘사이’에서 전해진다. 언어는 이때 비로소 완전한 순수에 도달한다. 의미는 분할되거나 상실되지 않는다. 따옴표로 분절되지 않는 목소리들이 행과 연을 만들면서 소설 속에 시를 쓴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죽음 안에서 삶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난다. ‘작별’과 ‘희랍어 시간’의 마지막 장면이 모두 두 존재의 입맞춤으로 끝나는 것은 붉은 혀와 입술이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는 뜻일 테다. 우리는 서로를 만지지 않음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감각한다. 나의 파동이 쓰다듬을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살이 아니라 다만 당신의 뼈, 시간의 불에 타고 남은 마지막 눈의 결정이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기에 당신은 나를 구원한다. --------------------------------------------------------------------------------------------- 1) 시집의 해설을 쓴 비평가 역시 한강의 시들은 “말과 동거하는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의 화자들을 ‘희랍어 시간’ 속 남자와 여자로 잠시 연결하며, ‘희랍어’를 “순수한 언어의 능력에 집중하는 소설”이라 평한 바 있다. 조연정,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142~143쪽. 2) “나에게 혀와 입술이 있다.// 그걸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다.//(…)// 구불구불 휘어진 혀가/ 내 입천장에/ 매끄러운 이의 뒷면에/ 닿을 때//(…)// 나에게 붉은 것이 있다,라고/ 견디며 말한다” 한강, ‘해부극장 2’, 한강, 위의 책. 3)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한강, 위의 글. 4) 소노그래피는 초음파를 이용해 시각 영상을 재현하는 기술이다. 5) 양현진은 실명과 실어가 몸짓, 촉각에 의한 소통에 주목하게 한다고 본다. 그러나 피부의 직접적인 접촉과 몸짓만을 대화로 보는 것은 국소적인 독해다. 소설에서 시각과 청각이 배제될 때 도드라지는 것은 시간, 즉 파동의 흐름이다. 양현진, ‘한강 소설의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 ‘한국문학이론과비평’, 70집,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16. 6) 사운드스케이프는 여러 가지 소리의 구성으로 이루어지는 ‘듣는 영상’으로 단지 소리가 만드는 공간적 환경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지각하는 청취자의 지각 속에서 그려지는 풍경이다. 7) 한강은 대상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해 기울임체를 사용한다. 시집에 수록된 ‘해부극장 2’의 백골과 ‘조용한 날들 2’에 등장하는 달팽이의 목소리가 그렇게 나타난다. “(건드리지 말아요) (…) (하지만 상관없어, 네가 찌르든 부숴뜨리든)” 8) 서로 다른 두 개의 물질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의 파동은 동일한 공간에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두 파동이 동일한 지점에서 교차할 때 일으키는 상호작용을 파동의 중첩 현상이라 한다. 9)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걸 믿는 게 아니라, 죽음 앞에서 꿋꿋한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다.” 장뤼크 낭시, ‘나를 만지지 마라’, 이만형·정과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37쪽. 10) 한강의 시 ‘해부극장’ 연작은 두 편뿐이지만 소설의 ‘심해의 숲’은 남자가 쓰는 또 한 편의 시다. 11) 낭시는 예수의 부활을 수직 변화로 이해하지만 소설이 말하는 인간의 신성은 수평적이다.“이 ‘자세’가 (…) ‘부활’을, 다시 말해 ‘들어올림’이라는 사태를 만든다. (…) 무덤의 수평성과 직각을 이루는 수직성으로서의 들림 혹은 일으켜 세움인 것이다.” 장뤼크 낭시, 위의 글. 12) 한강, ‘문학과 사회’, 2017년 겨울호, 문학과지성사. 13) 한강, ‘회상’, ‘서랍에’, 문학과지성사, 2013.
  •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제주, 애도/윤치규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제주, 애도/윤치규

    그러니까 빙의가 될 거라고 했다. 무당이 바다에 빠져 죽은 넋을 건져 올릴 거라고. 정확히는 무당이 아니라 심방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무당을 심방이라고 불렀다. 처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다. 내가 아는 양 차장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굿을 한다니. 그것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은 귀신을 위해 제사를 올린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주도의 밤이 푸른 이유는 어둠 속에 귀신이 섞여서 그런 거야.” 바다 위에는 아주 작은 불빛도 떠 있지 않았다. 양 차장의 말과 정반대로 하늘은 어두웠고 바다는 그것보다 더 어두웠다. 아득히 먼 곳에서 파도만 끊임없이 밀려왔다. 파도는 내 발밑에서 잠시 반짝이다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그 지루한 반복을 지켜보면서 돌아갈 핑계를 찾았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보다 지금 내 처지가 더 분하고 답답했다. 도대체 난 무엇을 바라고 제주도까지 내려온 걸까? 양 차장이 이렇게 변해버린 줄 알았다면 아마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따가 상주 역할 좀 맡아줄 수 있어?” “제가 그런 걸 어떻게 해요.” “왜 못해? 현충원에서 대표로 묵념하는 거랑 똑같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은 꺼림칙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상주를 맡으라니. 부모님이 멀쩡히 살아계신데 그런 역할을 맡아도 되는 건가? 만약 그게 예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경험은 전혀 해보고 싶지 않았다. 상주는 심방이 칼을 들고 춤을 출 때 그 앞에서 미안하다고 흐느끼며 대신 매를 맞아야 했다. 양 차장은 별거 아닌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딱히 그런 일을 자처해서 겪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냥 한 번 해봐. 시늉만 해보는 거야.” “진짜 싫어요. 아무리 차장님 부탁이라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남서쪽으로 내려오는 해안선을 따라 승합차 한 대가 전조등을 켜고 다가왔다. 승합차는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동쪽으로 향하다 문 닫은 어촌계 앞에서 차를 돌려 해변 뒤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시동이 켜진 상태로 문이 열렸고 차 안에서 네 사람이 내렸다. 셋은 남자였고 한 명은 여자였다. 그들은 모두 한복 위에 두툼한 패딩점퍼를 걸치고 있었다. 어깨에 저마다 북과 장구, 징 같은 악기를 하나씩 짊어지고 서로 짝을 이뤄 무거운 상자를 옮겼다. 그들은 해변에 짐을 내려놓고 눈짓으로 인사했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크기가 가장 큰 현무암 바위 앞에 모였다. 서로 손을 붙잡고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사장 위에 멍석이 깔리고 천막이 세워졌다. 멍석은 전통방식으로 짚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지만 천막은 철제 캐노피였다.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네 귀퉁이 위에 큼지막한 돌멩이를 올려놓고 고정끈을 단단하게 묶었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준비하는 모습이 다들 전문가처럼 보였다. 천막 안에는 여섯 칸짜리 병풍을 펼쳤다. 그 앞에 직사각형 밥상을 놓고 놋으로 된 제기 위에 청귤과 보리빵, 고기산적을 올렸다. 작은 반상 위로 소주도 한 병 보였다. 여자는 소주를 노란색 주전자에 붓고 빈 병은 멍석 바깥쪽에 두었다. 그사이 남자들은 바지 끝단을 걷어붙이고 바다로 향했다. 현무암 바위에 오색 줄을 두르는데 뒷부분이 물에 조금 잠겨 있었다. 그들은 발이 젖어도 신경 쓰지 않고 줄을 동여맸다. 오색 줄은 어느 한 곳도 느슨하거나 처진 곳 없이 단단하게 묶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여자가 승합차로 돌아가 심방을 모셔왔다. 심방은 연세가 아주 많은 할머니였다. 흰색 고깔을 머리에 쓰고 붉은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 겉옷 밑단으로 삐져나온 도복이 부산하게 펄럭였다. 머리에 쓴 고깔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심방은 느리고 우아하게 한 걸음씩 바닷바람을 뚫고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는 모습이 묘한 경외감을 주었다. * 휴가도 아닌데 주말에 일부러 제주도까지 내려온 이유는 양 차장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정기 인사를 앞두고 본부장이 새로 설립된 인도네시아 현지 법인의 총괄 책임자로 양 차장을 추천했다. 본부장은 나를 따로 불러 양 차장의 의중을 알아보라고 시켰다. 전화로도 충분히 물을 수 있었던 일을 주말에 직접 찾아오기까지 한 이유는 나 또한 누구보다 양 차장의 복귀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양 차장은 마땅히 돌아와야 하는 사람이었다. 과수원 한가운데 귤 창고를 개조해 놓은 카페에서 양 차장을 만났다. 볕이 좋은 테라스에 앉아 청귤 라떼를 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남편과 아들의 장례식 이후로 일 년 반 만이었다. 그래도 표정이 전보다 한결 나아졌다고 생각했다. 대화 중에 농담도 자주 섞었고 먼저 웃음을 보일 때도 있었다. 이제 어느 정도는 괜찮아진 사람처럼 보였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는 있게 된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오셔야죠. 이렇게 한가로운 곳에서 경력 다 썩히기는 아깝잖아요.” “제주도는 안 바쁜 줄 아니? 여기도 정신없어. 오히려 그때보다 시간이 더 부족해.” “여기는 안 어울려요. 화려하게 복귀하셔야죠. 그 덕에 저도 승진 좀 하고요.” 일부러 추켜세워주려고 한 말이 아니라 양 차장의 경력은 은행 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영업점 경험은 기본이고 본부에서도 핵심 부서로 손꼽히는 자본시장부 출신이었다. 대리 때는 글로벌 인재로 선발되어 아이비리그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수료했고, 과장 때는 은행장의 비밀 장부라고 불리는 도쿄지점의 첫 여성 책임자로 발령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을 초임지 때 사수로 만난 건 내게 정말 큰 행운이었다. 실제로 아무 연줄도 없었던 내가 자본시장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양 차장의 추천 덕분이었다. “차장님 안 계시니까 저 완전 찬밥 됐어요. 승진도 벌써 몇 번째 밀리는지 몰라요.” “나 없어도 잘하잖아. 승진은 때가 되면 하게 될 거야.” “부사수를 끝까지 책임지셔야죠. 자꾸 이러시면 제가 제주도 따라옵니다.” 가족을 잃은 직후 양 차장은 은행을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도 설득하기 위해 제주도까지 내려온 사람은 나였다. 인사부가 먼저 고향에서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전례 없는 특혜지만 그만큼 사고가 비극적이었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모두 잃었다.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1139번 국도의 좁은 커브 길과 군데군데 얼어붙은 빙판, 그리고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은 두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양 차장의 미래까지도 한순간에 앗아갔다. “나 지금은 여기에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나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야.” “어머니 따라서 귤 농사라도 이어받아요?” “그런 건 아니고. 궁금하면 너도 같이 가볼래?” 양 차장이 가방에서 팸플릿을 꺼냈다. 만장굴에 대한 안내 책자였다. 유네스코 삼관왕이라느니, 세계 7대 자연경관이라는 수식어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접혀 있는 종이를 펼치니까 그 안에 동굴 속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었다. 주석에는 이 동굴이 수십만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서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규모의 화산 동굴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게 다 뭐냐고 묻자 수줍게 치아를 내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고향을 잃은 사람에게 고향을 다시 돌려주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일을 하면 마음이 좀 나아져요?”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게 좀 도움이 되시냐고요.”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양 차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말해 놓고 보니 마음이 뜨끔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양 차장은 잘못했다는 말을 싫어했다. 그때 당시 신입이었던 내가 어떤 실수를 저지르면 고개를 숙이거나 반성하지 말고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방안부터 제시하라고 다그쳤었다. 최선을 다했다고 변명하거나 죄송하다면서 울먹거리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노력했어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책임을 질 뿐이다. 책임에는 후회와 반성이 필요하지 않다. 죄송하다는 말은 자기 연민일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 내 기억 속의 양 차장은 그런 말을 단호하게 내뱉는 사람이었다. “차장님 혹시 예전에 저한테 자주 했던 말 기억하세요?” “어떤 말? 너한테 맨날 그만두라고 했던 거밖에 기억 안 나는데.” “은행원답지 않게 너무 사연에 연연한다면서요. 특히 신용평가표 작성할 때마다 그랬잖아요. 은행원은 모든 것을 숫자로 말하고, 숫자에는 구구절절한 서사가 없다.” 지점에서 처음 업무를 배울 때 내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취급자 의견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대출을 해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단계인데 이상하게 반려되거나 보류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입이 올린 평가여서 더 까다롭게 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 핵심적인 이유는 내가 그 의견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승인권자가 궁금해하는 건 차주가 어떤 곤란한 사정으로 어디에 쓰려고 돈을 빌리는지가 아니었다. 오직 담보와 소득, 매출액과 순수 자본 비율 등을 고려해 얼마나 보장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회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양 차장은 내게 서류를 검토할 때는 숫자만 정확히 산출하면 다른 것을 고민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고객마다 털어놓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정은 계산식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매출액과 영업이익처럼 계량화할 수 있는 수치뿐이라고. 숫자가 나쁘면 대출은 진행될 수 없었다. 반대로 숫자가 좋으면 필요하지 않더라도 대출을 적극적으로 권유해야 했다. 반기별로 할당되는 이익 목표를 채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 기업이 아니라 돈을 갚을 수 있는 기업에 더 강하게 대출을 밀어줘야 했다. 그렇게 사정이 어려운 업체는 조금씩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여건이 되는 업체는 기존의 대출을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는 대출을 추가로 끌어안았다. 한번은 그런 방식에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정말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대출이 나갈 수 없고,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대출을 밀어 넣는 일에 대해서. 당장 거래처에 문제가 생겨 대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소기업 사장에게 고금리의 제2금융권을 소개해 일정 비율 원금을 변제시킨다거나, 여유 자금이 생겨 대출을 갚겠다는 사람을 내부 평가 기간에 맞춰 억지로 미루게 하는 일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양 차장은 그런 걸 정상이라고 말했다. 정말 조금도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은행이 자선단체는 아니잖아? 그 답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영리법인의 선과 정의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확신에 차 있던 사람이 이제는 제주도에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 자카르타마저 포기한 채로. 아무리 사람이 쉽게 변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책임할 정도로 변해 버린 것 같아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 굿당에 도착한 심방이 멍석 위에 고무신을 벗어 앞코를 뒤집어 놓았다. 옷매무새를 천천히 매만지며 비뚤어진 고깔부터 버선까지 다시 한번 점검했다. 덧신을 신고 멍석 위에서 채비를 갖추자 여자가 흰색 술을 가져왔다. 가닥이 풍성하고 끝이 구불구불한 술이었다. 심방은 술 안에 손가락을 넣어 위에서 아래로 몇 번 쓸어내렸다. 꼬여 있던 술이 한 올씩 풀리자 신기하게도 바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심방은 노란 주발에 쌀을 가득 담았다. 놋그릇 안에 흰 쌀을 붓고 무명으로 감쌌다. 쌀이 쏟아지지 않게 끈으로 단단하게 묶고 그 밑에 머리빗 하나와 소주병을 같이 얽어맸다. 무명천 밑에 매달린 머리빗과 소주병이 부딪치면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주변이 적막한 탓인지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남자 중 한 명이 그걸 들고 바다로 향했다. 물에 잠긴 바위를 지나 더는 들어갈 수 없는 깊은 곳까지 걸었다. 달그락 소리는 무명천에 감싼 주발을 물속에 던져버리고 나서야 사라졌다. 바람이 그치자 파도의 기세도 한결 약해졌다. 여자가 소반을 들고 굿당에서 나왔다. 심방이 정해준 장소에 소반을 내려놓는데 제기 위에 있던 청귤 몇 개가 백사장 위에 떨어졌다. 여자는 그걸 주워 소매로 닦아 내게 하나 건넸다. 양 차장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두 손으로 받기는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쥐고만 있었다. 청귤은 전체적으로 녹색이었고 군데군데 노란 빛을 띠었다. 껍질은 무르지 않아 아직 단단했다. 양 차장이 내 손바닥에 놓인 것 중에 알이 작은 것 하나를 집어 향을 맡았다. “이촌역 지점에 있었을 때 모셨던 지점장님 기억나?” “저랑은 악연이에요. 그분이 고과를 긁어놔서 지금도 승진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퇴직해서 그런지 얼굴이 좋아졌더라. 청귤청도 두 상자나 사 갔어.” 이촌역 지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청귤 향이 떠올랐다. 양 차장의 어머니가 직접 담근 청귤청이 지점장실뿐만 아니라 창구에도 하나씩 놓였다. 청귤차라는 게 별것도 아닌데 고객에게 반응이 좋았다. 상담할 때면 새콤달콤한 향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 덕분에 고객에게 청귤차 한 잔을 내오는 건 이촌역 지점만의 특별한 서비스로 자리 잡았다. 달콤한 차는 금리나 신용처럼 민감한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씁쓸한 커피나 떫은 차를 대접할 때보다 더 대화가 잘 풀렸다. 설명 듣는 시간이 길어져도 불만이 적었다. 가끔은 어떤 상품에 가입해야 청귤청을 사은품으로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인기가 좋았던 청귤차가 지점에서 사라진 건 지점장과 양 차장이 언쟁을 한 이후부터였다. 두 사람이 다투게 된 원인은 내가 거절한 어떤 대출 때문이었다. 지점장은 자신의 친구라며 손님 한 명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직접 만나기도 전에 서류부터 건네는 게 처음부터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 고객이 신청한 대출은 서민구제금융 대출이었다. 재직만 확인된다면 신용등급을 따지지 않는 상품이었다. 취급하기에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았다. 만약 돈을 갚지 못한다고 해도 국가기관에서 대신 갚는 담보 특약이 있어 부담이 적은 대출이었다. 다만 문제는 그 고객이 직장을 다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내가 알아차려 버린 것이었다. 지점장이 준 서류는 위조된 것이었다. 자신이 아는 업체 사장에게 부탁해 용역회사에서 청소직으로 근무하는 것처럼 꾸몄다. 건강보험료까지 정식으로 내고 있어 서류만으로는 문제가 될 게 없었다. 내가 그게 위조라는 사실을 아예 몰랐다면 전혀 꺼릴 게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이상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 고객이 폐암 4기이며, 이미 너무 많은 종류의 항암제를 써서 더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밖에 남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점장님은 곧 퇴직하니까 상관없었던 거예요.” 재직 문제로 대출이 어렵다고 보고하자 지점장이 나를 따로 불러냈다. 그러면서 유연하게 처리할 방법이 없냐고 은근히 압박을 넣었다. 외부에서 감사가 나오더라도 서민구제금융은 그렇게까지 엄격하게 따져보지 않는다면서 다시 한번 판단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서류에 도장을 찍고 처리하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될 것 같았다. 이대로는 진행할 수 없어 사수였던 양 차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양 차장은 길길이 날뛰며 곧바로 지점장에게 따졌다. 지점장은 한 걸음 물러서며 내 자율에 맡긴 거라며 선을 그었다. 그 말은 결국 내게 양 차장을 따를지 자신을 따를지 결정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지점장이 나를 거칠게 몰아세웠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능숙한 사람이었다. 지점장은 그 동기가 외환위기 때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사람이고, 그가 그만두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됐을 수도 있었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내게 그런 걸 상상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제비뽑기처럼 누군가는 잘리고 누군가는 살아남았던 시대를. 아무 잘못도 없이 운이 조금 나쁘다고 해서 그 사람이 평생 어떤 수모와 고통을 감내해야 했는지. 그런 말을 듣는 내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딱히 대답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사정은 분명히 안타까웠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 같았다. * 멍석 위에 앉은 남자들이 악기를 집었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예행연습을 시작했다. 북채를 쥔 고수가 북을 두드리자 장고수가 장단을 더하며 합을 맞췄다. 징수는 징을 한 번 쳤다. 크고 웅장한 징소리가 먼바다까지 닿아 사라지면 다시 징을 쳤다. 심방은 징 소리에 맞춰 사방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장고수의 박자가 조금 빨라지자 심방이 천천히 춤사위를 시작했다. 버선발을 높게 세우고 두 팔을 하늘로 뻗었다가 무릎을 굽히면서 다시 땅 밑으로 늘어뜨렸다. 제자리에서 낮게 뛰기도 하고 절을 하듯 허리를 굽히기도 했다. 춤사위는 아주 느렸다가 갑자기 속도가 붙었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동작이 조금씩 격해지고 빨라졌다. 북과 장구의 박자도 그에 맞춰 더 급해졌다. 어둠 속에서 흰색 술은 선명하게 빛났다. 밤바다 앞에서 흰색 궤적을 그리며 허공 위에 흔들렸다. 징수가 채를 한 번 휘두르면 하늘로 치솟았고, 고수가 매화점을 두드리면 땅으로 떨어졌다. 그 잔상은 구천을 떠도는 도깨비불 같다가도 업을 풀고 승천하는 혼령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를 부르면서도 내쫓는 것 같았고, 원망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그 자국을 두 눈으로 좇다 보니 나도 모르게 넋이 나갈 것 같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주변에 사람이 늘어나 있었다. 뭔가에 홀린 것 같아 서둘러 돌아보는데 어쩐지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낮에 양 차장을 따라 만장굴에 갔을 때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한낮이었지만 만장굴 내부는 굉장히 어두웠다. 입구에서 계단을 내려갈 때만 해도 땅속으로 들어간다는 걸 실감하지 못할 정도였다. 동굴이니까 어두운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어두운 줄은 몰랐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은 박쥐 때문에 밝기를 제한하고 있었다. 굴의 내부는 좁고 어두워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같은 걸 조금만 구경하려고 해도 금방 뒷사람이 다가왔다. 바닥은 또 울퉁불퉁해서 자주 돌부리에 걸렸고 천장에서 떨어진 물이 군데군데 고여 신경 써서 걷지 않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었다. 양 차장이 인솔한 단체는 오사카 지역의 이쿠노구에서 온 재일 교포 상인회였다. 조센이치바라고 불리는 시장의 정식 명칭은 미유키모리 쇼오텡가였지만 일본에서는 코리아타운이나 조선 시장 같은 속칭으로 더 유명하다고 했다. 내가 처음 들어본다고 하자 일행 중 비교적 한국말이 유창한 어떤 노인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킨테츠선의 츠루하시역과 이마자토역 사이에 작은 강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조센이치바가 나온다고. 과거에 제주에서 일본으로 떠난 사람 대부분이 그 일대에서 자리를 잡았다고. 양 차장은 만장굴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거북바위 앞에서 일행을 모았다. 그곳에서 마이크를 켜고 거북바위와 해안동굴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들려주었다. 노인과 함께 어깨를 맞대고 양 차장의 해설을 들었다. 바위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제주도와 닮아 있었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은 한라산이 솟은 것 같았고, 전체적인 윤곽도 해안선과 비슷했다. 바위의 아래쪽에는 유선이 아직 남아 있었다. 동굴 벽면에 그려진 것과 거의 같은 높이였다. 아마도 천장에 붙어 있던 암석이 떨어졌을 때 그만큼의 수위로 용암이 흐른 것 같았다. 용암에 잠긴 부분은 모두 쓸려갔지만, 윗부분만큼은 섬처럼 남은 것이다. “화산 동굴은 용암의 겉과 속이 식는 속도가 달라서 생깁니다. 겉은 식어서 단단하게 굳지만 속은 여전히 뜨거운 상태로 계속 흘러 이렇게 텅 비는 거예요.” 설명을 다 듣고 동굴 속을 걷는데 생각보다 길이 일찍 끝나버렸다. 조류에 휩쓸리듯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더듬거리며 앞으로 걷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간이 넓어지고 조명이 환한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비상 전화기 같은 것도 설치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너진 천장에서 용암이 쏟아져 내려 생긴 근사한 돌기둥 앞에서 줄지어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뒷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겨우 유선과 종유석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데 우습게도 그곳이 반환점이었다. 반환점에서 노인은 눈을 감고 벽에 귀를 가져다 댄 채로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용암 벽 너머로 무언가가 들리는 것처럼 두 손으로 귀를 모았다. 그의 표정은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다. 손주들이 포켓몬스터와 던전 같은 단어를 내뱉으며 신나게 뛰어노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이나 벽 안쪽의 소리를 들었다. 점자를 읽듯 조금씩 색이 다르고 층이 나누어진 선명한 가로줄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었다. 그는 그 벽 너머에 어렸을 때 들었던 소리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그가 기억하는 것은 대낮의 호루라기 소리나 새벽녘의 군화 소리, 누군가가 끌려가며 질렀던 비명. 고막을 찢는 일방적인 사격 소리 같은 것들이었다. 기억이 청각으로만 남은 이유는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누군가가 눈을 가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그때 자신의 두 눈을 덮어주었던 주름진 손바닥에 대해 회상했다. 노인을 지켜준 손은 여러 명의 것이었다. 해변에서는 아버지였고 방안에서는 어머니였다. 마을이 불탔을 때는 삼촌이 되었다가 밀항선에 숨을 때는 이웃집 아저씨가 되기도 했다. 그는 산지항에서 무역선 배 밑창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게 너무 후회된다면서 벽에서 귀를 떼지 못하고 오랫동안 흐느꼈다. 관람이 다 끝나고 양 차장은 그들에게 기념품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탁자 위에 장식용으로 두는 돌하르방이었다. 돌하르방은 겨울 모자를 눌러쓰고 양손을 가슴과 배 위에 올려놓았다. 돌하르방의 모습은 어쩐지 지점장의 친구였던 그 고객과 닮은 것처럼 보였다. 그 고객은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빠진 머리털을 가리려고 모자를 썼다. 스테로이드와 호르몬 약의 부작용으로 눈과 코가 부어올랐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했다. 그와 마주 앉은 것은 아주 잠깐뿐이었지만 그 인상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눈을 감으면 지금도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었다. * 본격적으로 굿판이 시작됐다. 구경하는 사람은 서로 대화도 나누지 않고 진지하게 제사를 지켜봤다. 낮에 본 노인은 맨발로 천막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나머지는 자리가 부족해 모래 위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 뒤에 몸을 숨겼다. 처음 보는 낯선 풍경에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붉은 도복에 흰 고깔을 쓴 심방이 무서운지 실눈을 뜨거나 아예 눈을 감아버린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는 돌하르방을 손에 꽉 쥐고 있었다. 낮에 들은 설명 때문인 것 같았다. 양 차장은 마을마다 돌하르방을 세우는 목적이 복을 기원하는 게 아니라 화를 피하기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심방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가 직사각형의 종이를 조심스럽게 들고 왔다. 중간에 가짜 돈이 매달려 있고 위쪽이 삼각형으로 접혀 있는 종이였다. 여자는 그 종이를 심방의 등 뒤에 붙였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심방의 걸음걸이와 표정이 바뀌었다. 심방은 주위에 모인 모든 사람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 짚으로 만든 인형을 내려놓았다. 파도는 작게 들이쳐 인형의 밑을 적셨다가 빠져나갔다. 인형에 수의를 입히고 염포로 단단하게 묶었다. 두꺼운 상자를 펼쳐 상여를 만들고 그 위에 인형을 시체처럼 올렸다. “인형에 염을 하고 나면 굿당 가운데 잠깐 앉아 있어 줘.” “저는 진짜 못하겠어요. 솔직히 이게 다 뭐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나 대신한다고 생각해. 나도 그런 적 있었잖아.” 최후의 일격처럼 긴 파도가 뭍 안쪽으로 깊이 밀려들어 왔다. 파도는 양 차장의 운동화를 덮치고 용왕상까지 닿았다. 파도에 두 발이 다 젖었는데도 양 차장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어 멍석 귀퉁이에 올려놓고 맨발로 모래를 밟고 섰다. 발이 시릴 텐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심방이 염포의 끝을 넉넉하게 잡고 내게 건넸다. 그걸로 상여를 굿당까지 끌고 오라는 것 같았다. 당황해서 멀뚱히 있자 양 차장이 등을 떠밀었다. 왜 내가 이런 일까지 맡아야 하는지 혼란스럽고 이상했다. 시키는 대로 일단 상여를 억지로 끌고 와 굿당 앞에 놓았다. 신발을 벗어 멍석 중앙에 앉아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 무아지경에 빠진 심방의 무용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무악은 요란해졌고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곡을 시작했다. 곡소리와 북소리가 절정에 닫자 심방은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제자리에서 뛰어올랐다. 한순간에 춤이 멈추고 심방이 내 앞에 우뚝 섰다. 흰색 술을 바닥에 내려놓고 댓가지를 꺾어 만든 기다란 회초리 묶음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걸로 내 등을 내리쳤다. 댓가지가 얇아서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대 두 대 맞을 때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이유로 매를 맞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모두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지점장이 지시했던 대출은 결국 불가 판정을 내렸다. 내게는 지점장보다는 양 차장에게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지점장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만 그를 한 번이라도 직접 만나보고 다시 결정하라고 부탁했다. 그 고객이 직접 찾아온다고 해서 위조된 서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내 입으로 직접 거절의 뜻을 전하라는 의도였다. 자신이 맡기 싫은 역할을 내게 떠넘기는 짓이었다. 지점으로 찾아온 그 고객은 행색이 지나치게 초라했다. 오랫동안 고생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비굴함이 몸 전체에 배어 있었다. 그는 나를 계장님이라고 깍듯이 호칭했다. 의례적으로 묻는 말에도 변명하듯 눈치를 보며 둘러댔다. 차라리 선배라고 거들먹거리는 부류였다면 거절하기가 더 나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대출이 어렵다는 말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양 차장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그를 칼같이 잘라내지 못했다. 그에게 대출이 거절되었다고 말한 사람은 양 차장이었다. 내가 우물쭈물하자 양 차장이 도와주려고 다가왔다. 양 차장은 그에게 친절하게 웃으며 자리를 옮겨 달라고 부탁했다. 그 고객은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단 한 칸 옆으로 옮기는 것뿐이었지만 그를 비추고 있던 어떤 불빛 같은 게 꺼지는 것 같았다. 그는 내게 곤란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한 번 더 사과했다. 창구에 앉아 그가 떠난 의자를 바라보면서 대화를 엿들었다. 대출이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 듣는 동안 그는 계속 기침을 쏟았다. 입안이 바짝 말랐는지 마른 혀를 계속 다시는데도 양 차장은 능숙하게 키보드만 두드렸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지점에서 청귤청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지점장이 자신의 집무실에 있던 것을 치우게 하자 창구에 놓였던 것도 자연스럽게 버려졌다. 그 외에는 딱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점장과의 신경전도 끝났고 우려했던 인사 보복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다만 나는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아무도 없는 지점에 나와 그 고객이 단둘이 마주 앉아 있는 꿈이었다. 그 꿈은 지금도 가끔 꿀 때가 있었다. 꿈속에서 그 고객은 날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앉아 기침을 쏟을 뿐이었다. 나 역시도 딱히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몇 번을 곱씹어도 그날의 결정은 옳은 일이었다. 다만 후회하는 것은 그때 내가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오지 못한 것이었다. 야윈 목에서 쏟아지는 메마른 기침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에게 청귤차 한 잔을 권하지 않았다. 아무리 잘못한 게 없더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텐데. “설운 어멍아 이런 변고가 어디 있수광. 구름 질로 바람 질로 고향산천 온 줄 모릅니까. 한 달을 그물고 두 달을 그물어도 경해도 원망하고 있수광. 이승에서 못한 것 저승에서 허쿠다. 잘들 삽서 하다하다 걱정말앙 잡들삽서. 살암시민 살암십서.” 심방이 백안을 뜨고 귀신에 씐 것처럼 여러 목소리를 냈다. 노인처럼 한탄하다가 아기처럼 울었고 남자처럼 화를 내다가 여자처럼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앞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엎드려 있었다. 양 차장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듯 무언가를 빌었다. 나는 시킨 대로 고맙수다 라고 말하며 심방에게 절을 해봤다. 고맙수다, 고맙수다. 기계적으로 말을 반복할 뿐인데도 내가 진짜 상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심방은 매질을 멈추고 제풀에 꺾인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멀리 바다를 바라봤다. 밤하늘은 여전히 별도 없이 캄캄했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그 밑이 아주 조금은 푸른 듯 보였다.
  • 코로나 백신 접종 8일 만에 양성 판정받은 美 간호사의 사연

    코로나 백신 접종 8일 만에 양성 판정받은 美 간호사의 사연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한 응급실 간호사가 접종 8일 만에 양성 판정을 받은 보기 드문 사례가 공개됐다. ABC뉴스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두 병원의 응급실에서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업무를 맞고 있는 매슈 W.라는 이름의 이 45세 남성 간호사는 지난 18일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당시 그가 겪은 부작용은 백신을 맞은 팔이 하루 정도 아팠던 것뿐이었다.하지만 그는 6일 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24일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부터 오한을 시작으로 근육통과 피로를 느끼기 시작했다. 증상은 크리스마스였던 25일 절정에 달했다. 이후 다음 날인 26일 한 병원에서 운영하는 선별 진료소를 방문했다는 그는 검사를 받고 양성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례는 아니라고 말한다. 샌디에이고 가족건강센터의 감염병 전문가인 크리스천 래머스 박사는 ABC 10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매슈 간호사가 백신을 맞기 전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만일 매슈 간호사가 백신을 접종한 뒤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해도 이는 여전히 전문가들의 예상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래머스 박사는 “우리는 백신의 임상시험을 통해 당신이 백신으로부터 보호받기 시작하는 데 10일에서 14일이 걸린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1회 접종량은 50% 정도이며 최대 95%를 얻기 위해 2회 접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한편 매슈 간호사는 지난 주 증상이 나타났기에 현재 좋아졌지만 여전히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中 원조 늑대전사 드디어 떠나네” 뒤에서 웃는 서구국가들

    “中 원조 늑대전사 드디어 떠나네” 뒤에서 웃는 서구국가들

    10년간 양국 황금기·냉각기 모두 겪어위구르 인권 등 모든 논란에 강경 대응서방국 ‘앓던 이 빠졌다’는 분위기 강해중국과 영국 관계가 차갑게 얼어붙은 가운데 류샤오밍(64) 영국 주재 중국 대사가 10년 만에 퇴임한다는 소식에 서구국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전량외교’(늑대외교)의 대표 주자였기에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28일(현지시간) CNN은 전인대 상무위원회 대표 탄야오쭝을 통해 류 대사의 퇴임 사실을 확인한 뒤 “중국의 ‘원조 늑대 전사’ 외교관이 드디어 영국을 떠난다. 홍콩과 신장 문제 등으로 논쟁이 난무하던 전쟁터에서 임기를 마치게 됐다”고 전했다. 류 대사는 중국 공무원 법정 은퇴연령인 60세보다는 높지만 고위직에 비공식적으로 적용되는 ‘7상 8하’(67세까지 공직을 맡고 68세 이후로는 은퇴) 원칙을 감안하면 꽤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셈이라고 CNN은 설명했다. 류 대사는 2006∼2010년 평양에서 근무한 뒤 2010년 런던으로 부임해 10년간 대사직을 수행했다. 보통 중국 외교관이 한곳에서 4년 정도 일하는데 상당히 오랜 기간 영국에서 근무했다. 중영 관계에서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기에 전 세계의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의 임기 중 양국 관계는 절정기를 맞았다. 2015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영국을 방문해 데이비드 케머런 총리와 친분을 과시했다. 영국 역시 미국의 반대에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했다. 이때 두 나라는 ‘황금시대’ 개막을 선언할 만큼 호시절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중국의 ‘홍콩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과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영국 5세대(5G) 사업 배제, 신장자치구의 위구르족 인권탄압 의혹 등을 놓고 갈등이 커져 빠르게 얼어붙었다. 이 과정에서 류 대사는 서방국의 불만에 하나하나 강하게 반박해 반감이 커졌다. 지난 6월 그는 BBC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재교육 수용소에서 위구르족 등을 구금하고 있다’는 지적에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장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고 답했다. 2014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자 ‘해리포터’ 시리즈의 악당에 비유해 화제가 됐다. 그는 “일본 군국주의가 볼드모트(해리의 부모를 죽인 악당)라면 야스쿠니 신사는 호크룩스(사악한 마법을 담는 물체)”라고 강변했다. 류 대사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도 ‘좋은 모루는 망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넉살 좋게 응수해 왔다. 이런 공격적인 외교 스타일 덕분에 그는 중국에서 외교관으로는 드물게 트위터 팔로어가 10만명이 넘는 스타가 됐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지난 한 주 코로나19 사망자, 한 달 전보다 7.4배 폭증

    지난 한 주 코로나19 사망자, 한 달 전보다 7.4배 폭증

    일일 신규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000명을 넘나든 지난 한 주(20~26일·52주차) 간 사망자 수는 한 달 전보다 7배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 수는 최근 4주간 7.4배 늘었다. 49주차(11월 29~5일)에 18명에 그쳤던 사망자 수는 한 달만인 지난 한 주(52주차) 134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연령대별 지난주 사망자를 보면 80대 이상 81명, 70대 34명, 60대 15명, 50대 2명, 40대 1명으로, 60세 이상이 130명(97.0%)으로 대부분이었다. 사망자의 감염경로는 시설·병원 76명, 확진자 접촉 14명, 지역 집단발생 6명, 조사 중 37명이며,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는 129명(96.3%)이다. 지난주 일일 평균 확진자 수는 1017명으로 나타났다. 한 달 만에 49주차(11월 29~5일) 일일 평균 확진자 수 487.7명의 2배까지 증가해 3차 대유행의 절정에 달했다. 주별 평균 위중증 환자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52주차인 지난주 주별 평균 위중증 환자는 288명으로 한 달 전인 49주차 101명의 2.9배까지 증가했다. 50주차(6일~12일) 151명, 51주차(13~19일) 233명으로 한 주에 50명에서 최대 70명까지 위중증 환자가 늘어났다. 즉시 가용 중환자실도 같은 기간 대비 55개에서 164개로 3배로 늘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포토] 머슬퀸 여신들의 과감한 란제리 화보

    [포토] 머슬퀸 여신들의 과감한 란제리 화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내 최고의 피트니스 대회 ‘머슬마니아’의 4대 미녀 정한나-이하린-강주연-이선이가 절정의 매력을 과시했다. ‘완판녀’로 등극한 4명의 미녀 머슬퀸들은 맥스큐의 온라인 미공개 화보집인 ‘스페셜 에디션’ 3호 표지 모델로 발탁돼 명불허전의 미모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머슬마니아 4대 미녀의 판타지 아일랜드’ 라는 컨셉으로 진행된 이번 ‘맥스큐 스페셜 에디션’ 화보 촬영을 통해 정한나-이하린-강주연-이선이는 완벽한 케미와 4인 4색의 다양한 매력을 선보여 팬들을 심쿵케 했다. 특히 2020 머슬마니아 하반기 대회에서 스포츠모델 여자 그랑프리와 셀러비 라이징스타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오른 정한나를 비롯해 미즈비키니 종목 쇼트 1위를 차지한 강주연, 스포츠모델 종목 쇼트 3위에 오른 이선이, 그리고 2019 머슬마니아 마이애미 세계대회에서 미즈비키니 종목 클래식 1위를 차지하며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이하린은 2020년 머슬마니아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급부상했다. 2021년을 짊어질 비키니여신들은 “힘들게 준비한 머슬마니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영광이다. 무엇보다 ‘맥스큐’ 11월호 표지 모델에 이어 온라인 미공개 화보집 ‘맥스큐 스페셜 에디션’을 통해 팬들에게 깜짝 선물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맥스큐 제공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벚꽃 모임’ 불기소에도… 아베에게 치명상 입힌 日검찰

    ‘벚꽃 모임’ 불기소에도… 아베에게 치명상 입힌 日검찰

    ‘벚꽃을 보는 모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 온 아베 신조(얼굴) 전 일본 총리가 24일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결국 사법처리는 면하게 됐다. 그러나 고 하시모토 류타로 이후 15년 만에 검찰 대면조사를 받은 전직 총리가 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에 대해 아베의 총리 시절 전횡에 대한 ‘검찰의 설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날 ‘벚꽃을 보는 모임’이라는 정부 주최 행사의 전야제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등 혐의를 받아 온 아베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확정했다. 비서진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은 몰랐다고 한 그의 주장을 대체로 수용했다. 이번 일로 정치 재개의 보폭을 넓혀 온 아베는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처를 입게 됐다. 무엇보다도 국회에서 전야제와 관련해 100회 이상 허위답변을 해 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일본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8년에 가까운 아베 집권 기간에 크게 약화됐다. 극우성향 사학재단에 대한 국유지 불하 특혜의혹인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아베의 최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생상의 수백만엔 수뢰 의혹 등이 모두 불기소로 끝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며 ‘아베의 수호신’으로 통했던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 정년연장 파문은 검찰 인사농단의 절정이었다. 자신의 퇴임 후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꾸민 아베의 시도는 결국 구로카와의 상습도박이 들통나면서 무산됐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은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번 전야제 수사가 당초 예상보다 넓고 깊게 진행된 데는 과거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검찰 나름의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 정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전직 총리에 대해서는 복수, 현직 총리에 대해서는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정가 소식통은 “관련자를 약 100명이나 불러 조사하고 아베 전 총리를 직접 조사대에 앉힌 것은 ‘엄정수사’의 형식을 갖추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 전문 저널리스트 우오즈미 아키라는 아사히신문에 “검찰의 아베 직접조사는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설욕의 의미”라면서 “이번 일이 검찰과 정치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벚꽃 모임’ 불기소에도… 아베에게 치명상 입힌 日검찰

    ‘벚꽃 모임’ 불기소에도… 아베에게 치명상 입힌 日검찰

    ‘벚꽃을 보는 모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 온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4일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결국 사법처리는 면하게 됐다. 그러나 고 하시모토 류타로 이후 15년 만에 검찰 대면조사를 받은 전직 총리가 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에 대해 아베의 총리 시절 전횡에 대한 ‘검찰의 설욕’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이날 ‘벚꽃을 보는 모임’이라는 정부 주최 행사의 전야제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등 혐의를 받아 온 아베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확정했다. 비서진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자신은 몰랐다고 한 그의 주장을 대체로 수용했다. 이번 일로 정치 재개의 보폭을 넓혀 온 아베는 재기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상처를 입게 됐다. 무엇보다도 국회에서 전야제와 관련해 100회 이상 허위답변을 해 온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일본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은 8년에 가까운 아베 집권 기간에 크게 약화됐다. 극우성향 사학재단에 대한 국유지 불하 특혜의혹인 ‘모리토모학원 스캔들’, 아베의 최측근인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생상의 수백만엔 수뢰 의혹 등이 모두 불기소로 끝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정권의 입맛대로 움직이며 ‘아베의 수호신’으로 통했던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 검사장 정년연장 파문은 검찰 인사농단의 절정이었다. 자신의 퇴임 후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꾸민 아베의 시도는 결국 구로카와의 상습도박이 들통나면서 무산됐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은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번 전야제 수사가 당초 예상보다 넓고 깊게 진행된 데는 과거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검찰 나름의 의지가 담겼다는 분석이 정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전직 총리에 대해서는 복수, 현직 총리에 대해서는 경고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정가 소식통은 “관련자를 약 100명이나 불러 조사하고 아베 전 총리를 직접 조사대에 앉힌 것은 ‘엄정수사’의 형식을 갖추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법조 전문 저널리스트 우오즈미 아키라는 아사히신문에 “검찰의 아베 직접조사는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말라’는 설욕의 의미”라면서 “이번 일이 검찰과 정치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황교익 “조국 보며 예수 떠올렸다…당당히 죽음의 길”

    황교익 “조국 보며 예수 떠올렸다…당당히 죽음의 길”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을 십자가 진 예수에 비유하면서 그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형을 선고한 재판부를 비난했다. 24일 황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유대 제사장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예수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골고다 언덕 길을 조국과 그의 가족이 걸어가고 있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인사청문회장에서 조국을 앉혀두고 사퇴하라며 압박을 하고 그 절정의 지점에서 검찰이 기소를 할 때에 저는 예수를 떠올렸다. 그들이 조국을 죽이는구나. 조국은 자신의 죽음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는 당당히 죽음의 길을 걸었다”고 주장했다. 황씨는 “가시왕관이 씌워졌고 십자가를 짊어졌다. 검찰 개혁 않겠다 했으면, 법무부 장관 않겠다고 했으면 걷지 않았을 길”이라면서 “예수의 길이다. 예수가 함께 걷고 있다”고 했다.자녀 입시비리와 사모펀드 불법 투자 등 15가지 혐의로 기소된 정경심 교수는 전날 1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법원은 15개 혐의 중 입시 비리 관련 혐의 7개는 모두 유죄, 사모펀드와 증거인멸 관련 혐의는 일부 유죄로 판단하면서 혐의 11개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황씨 외에도 강성 친문(親文)으로 불리는 이들은 “판결이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 기소의 문제점들이 국민에게만 보이나보다. 법원이 위법수사와 기소를 통제해야 하는데 오늘은 그 역할을 포기한 것 같다”면서 “윤석열이 판사 사찰을 통해 노린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윤석열과 대검찰청의 범죄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상호 의원도 “감정이 섞인 판결로 보인다.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항소심에서는 바로잡히길 바란다”며 “부디 조국 전 장관과 정경심 교수께서 힘내시길 빈다. 끝까지 응원하고 함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남국 의원은 “가슴이 턱턱 막히고 숨을 쉴 수가 없다”며 “세상 어느 곳 하나 마음 놓고 소리쳐 진실을 외칠 수 있는 곳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이러한 여권과 친문의 반응에 23일 “단체로 실성했다”며 “자기들의 거짓말에 자기들이 발목 잡힌 셈”이라고 일침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포토] 도유리, 산타 비키니로 뜨거운 여름

    [포토] 도유리, 산타 비키니로 뜨거운 여름

    미스맥심 도유리가 한겨울에 뜨거운 여름을 선사했다. 도유리는 최근 자신의 SNS에 붉은색 비키니를 입은 사진을 게시하며 절정의 매력을 발산했다. 경주에서 진행된 촬영에서 도유리는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섹시함과 귀여움을 가득 담아 남성팬들을 심쿵케 했다. 13만 명의 팔로워룰 자랑하는 도유리는 올해 실시된 ‘2020 미스맥심 콘테스트’에서 3위를 차지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랫동안 레이싱모델로 활동하며 익힌 팬 친화력으로 라운드를 거듭하며 상승곡선을 탔다. 도유리는 13만 팔로워들의 화력 지원에 힘입어 막판 스퍼트를 올리며 우승을 굳히는 듯했으나, 대학원생 박소현, BJ 은유화에게 막판 추격을 허용하며 최종적으로 3위를 기록했다. 스포츠서울
  • [포토] 박은혜, 비밀스런 관능미 폭발

    [포토] 박은혜, 비밀스런 관능미 폭발

    차세대 비키니여신 박은혜가 관능미를 폭발시켰다. 미즈비키니 오픈 톨 2위, 커머셜모델 3위 등 한국 최고의 피트니스 대회인 머슬마니아 하반기 대회에서 2관왕에 오른 박은혜가 디지털 화보집 시크릿비에서 절정의 매력을 과시했다. 헬스 남성잡지 ‘맥스큐’ 창간 10주년 기념호와 2021 시크릿 캘린더 표지를 장식한 박은혜는 디지털 화보집 시크릿비의 스페셜컷을 공개했다. 완벽한 용모와 S라인을 자랑하는 박은혜는 머슬퀸의 매력은 물론 인기 유튜브 채널 ‘자몽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인기 유튜버다. 구독자가 11만에 이를 정도다. 올해 초 실시한 맥스큐 표지모델 콘테스트에서 톱10에 랭크되며 2020년의 포문을 활짝 연 박은혜는 맥스큐 창간 10주년 기념호인 10월호 표지 모델에 발탁된 데 이어 2021년 캘린더 표지 모델, 디지털 화보집 ‘시크릿비’ 단독 표지모델까지 섭렵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스포츠서울
  • 폭설로 차량 1000대 고립된 일본 고속도로 상황 공개

    폭설로 차량 1000대 고립된 일본 고속도로 상황 공개

    일본 북부 니가타현과 군마현에 1m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져 운행중이던 차량이 밤새 도로에서 고립당했다. 현지 고속도로건설회사인 넥스코(NEXCO)동일본에 따르면 도쿄와 니가타현을 연결하는 가네츠 고속도로에서 교통체증이 시작된 것은 현지 시간으로 17일 아침이다. 이날 아침 눈덮인 도로를 지나던 차량 한 대가 눈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면서 ‘지옥의 교통체증’이 시작됐다. 하루종일 이어지던 교통체증은 17일 늦은 밤이 되자 절정에 이르렀다. 차량이 늘어선 거리는 15㎞에 달했고, 이러한 현상은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됐다. 도쿄에서 니가타현으로 들어가는 도로의 눈은 수습됐지만, 도쿄로 향하는 도로는 여전히 아수라장이다. 오늘 18일 정오 기준, 1000여 대의 차량이 해당 도로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서 있다.현지 구조대는 어제 17일, 차량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끼니와 과자, 물 600병, 휘발유와 디젤 수천 ℓ등을 긴급 호송했지만, 차량에 갇힌 운전자와 동승자들은 밤새 추위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익명의 한 운전자는 NHK와 한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차가 눈에 파묻히는 것을 느꼈다. 정말 무서웠다”면서 “지원받은 물과 음식은 이미 동이 났다. 물을 마시려면 플라스틱 병에 눈을 담아 녹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현재까지 큰 부상자나 심각한 사고가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밤 사이 이어진 고립으로 30대 여성과 60대 남성이 병원으로 후송됐다. 이들은 호흡기 질환 및 메스꺼움 증상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넥스코는 SNS 및 라디오를 통해 차량에 갇힌 운전자와 동승자가 몇 시간에 한 번씩은 차 밖으로 나와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일산화탄소에 중독될 수 있다는 경고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한편 군마현과 니가타현을 중심으로 쏟아진 폭설은 군마현 후지와라에서 17일 오전 5시 기준, 24시간 적설량이 1m 28㎝를 기록했다고 NHK는 보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윤석열 징계에 野 연일 비판…김종인 “법치 셧다운”·주호영 “광기의 절정”

    윤석열 징계에 野 연일 비판…김종인 “법치 셧다운”·주호영 “광기의 절정”

    국민의힘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에 대해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법치는 ‘셧다운’되고 민주주의는 사망선고를 받았다는 지적이 나온다”면서 “법치와 민주주의 파괴 등 국정 비정상의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세력이 있다는 게 국민들의 공통적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나면 법치와 민주적 절차를 철저히 무시하는 특유의 일탈된 집단사고를 통해 법치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질됐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라고도 덧붙였다.같은 회의에서 주호영 원내대표 역시 지난 정권에서 윤 총장이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사실을 이야기하며 “당시 (현재 여권이) 인면수심의 정권이라 불렀는데 이 정권은 무어라고 불러야 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주 원내대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 축하한다. 망나니 역할을 아주 충실히 잘 수행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한다. 거룩하게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압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이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육사의 시 ‘절정’과 정호승의 시 ‘산산조각’을 올린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주 원내대표는 “두 시인의 고결한 시심을 훼손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갖다 붙인 것은 너무 심했다”며 “광기는 이 정권의 절정이고 산산조각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추미애의 인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부의 방역 실패 책임을 묻는 지적도 이어졌다. 김 위원장은 “제가 지난 3월에는 자영업 대책, 8월에는 백신 준비, 9월에는 전 국민 자가진단키트, 10월에는 의료인 수급 문제를 얘기했지만 12월 해결된 건 단 하나도 없다”면서 “우리가 자랑하던 K-방역이 신기루 아니었다 싶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백신이나 지원금 스케줄을 내년 재보선에 맞췄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무능을 감추려는 정치 과잉이 계속되면 K-방역이 자칫 ‘킬방역’이 될 수 있음을 강력 경고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평창 -24도, 서울-11도 ‘최강’ 한파 맹위…울릉도엔 눈 48.5㎝(종합)

    평창 -24도, 서울-11도 ‘최강’ 한파 맹위…울릉도엔 눈 48.5㎝(종합)

    기상청 “찬 바람에 체감온도 더 내려가”철원 -19도, 춘천 -15도…칼바람 쌩쌩아침 최저 -19~-1도, 낮 최고 -2~6도차가운 바람을 동반한 한파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아침 기온 최저 -19도의 영하권 한파가 예보됐던 17일 오전 곳곳에서 -20도 이하를 뚝 떨어졌다. 강원 평창과 충북 제천은 -20도 이하로 내려가는 한파가 몰아쳤고 서울도 -11도 이하로 떨어졌다. 찬 공기를 품은 강한 바람의 영향으로 체감 온도도 뚝 떨어질 전망이다. 울릉읍에는 50㎝의 달하는 눈이 쌓였다. 제주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대설특보는 해제된 가운데 중부 내륙을 중심으로 발효된 한파특보가 이어지고 있어 출근길 추위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기상청 방재기상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까지 공식 최저기온을 기록한 곳은 충북 제천이다. 제천 신월동 관서용 기상관측소의 수은주는 오전 5시 53분 -20.1도까지 떨어지면서 전국에서 가장 낮은 공식 기온이 기록됐다. 강원 철원과 대관령의 기온도 -18.2도까지 떨어져 뒤를 이었다. 서울 기온도 -11.1도를 기록, 전날(16일) 올겨울 최저기온 기록(-11.2도)에 근접한 추위가 이어졌다. 기상청은 이날 오전 내놓은 통보문을 통해 “중부지방은 낮 동안 영하에 머물면서 오전에 이어 매우 춥고, 바람도 약간 강하게 불며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아진다”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등과 관련한 건강 관리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공식기온 관측지점 외 자동기상관측시스템(AWS)상엔 이보다 낮은 기온도 관측됐다. 강원 평창 봉평면 면온리에 설치된 면온 AWS에는 오전 5시 24분쯤 -24.1도의 기온이 기록되면서 강원 산간 추위를 실감하게 했다. 이 추위로 인해 한파경보는 오전 6시 30분 기준, 경기 일부지역(동두천, 연천, 포천, 가평, 양주, 파주)과 충북(괴산, 충주, 음성, 단양, 제천), 경북(의성, 영양평지, 경북북동산지), 강원(태백, 영월, 정선·홍천·양구·인제·평창 평지, 영월, 횡성, 원주, 화천, 춘천, 철원, 강원 중·북·남부 산지)에 발효된 상태다.수도권·충청·경북 한파주의보 울릉읍 48.5㎝, 제주 33.7㎝ 눈 한파주의보는 서울 전역과 인천(강화)를 비롯해 경기, 충청, 경북 일부지역에 이어지고 있다. 쌓인 눈도 최대 50㎝ 가까이 있다. 오전 6시 기준 울릉군 을릉읍엔 48.5㎝ 눈이 기록된 상태고, 제주 해안동 어리목 관측지점엔 33.7㎝ 눈이 쌓여있다. 서울 관서용 관측소엔 0.7㎝ 눈이 누적해서 기록됐다. 다만 이날(17일) 오전 6시에 울릉도와 독도, 앞선 오전 1시엔 전북(부안, 고창)에 발효됐던 대설특보가 해제되면서 눈이 더 쌓일 가능성은 낮은 상태다.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제주 산지에만 대설주의보가 발효돼 있는 상황이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이 중국 산둥반도 부근에 위치한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철원·대관령 -19도를 비롯해 맹추위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보했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중부 내륙과 전북 동부, 경북 내륙의 아침기온은 영하 12도 이하로, 한파경보가 발표된 경기 북부, 강원 영서, 충북 북부, 경북 북부는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19~-1도, 낮 최고기온은 -2~6도다. 지역별 아침 예상 최저기온은 △서울 -10도 △철원·대관령 -19도 △춘천 -15도 △강릉 -6도 △대전 -8도 △대구 -6도 △부산 -4도 △전주 -6도 △광주 -4도 △제주 4도다. 낮 예상 최고기온은 △서울 0도 △춘천 1도 △강릉 5도 △대전 3도 △대구 4도 △부산 6도 △전주 3도 △광주 4도 △제주 8도다. 대설주의가 발표 중인 제주도 산지에는 서해상에서 만들어진 구름대의 영향으로 이날 낮까지 1∼5㎝ 눈이 내리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제주지방기상청이 전망했다.“한파로 면역력 저하 등 건강관리 유의”수도권 동파, 농작물 냉해 등 피해 우려 기상청 관계자는 “한파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 건강관리에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며 “수도관 동파, 비닐하우스 농작물 냉해 등 시설물과 농작물 피해도 우려되니 철저히 대비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전국이 대체로 맑지만 충남과 전라도, 제주도는 대체로 흐리고, 새벽까지 전라 서해안과 제주도에는 산발적으로 눈이 내리는 곳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 농도는 전 권역이 ‘좋음’∼‘보통’ 수준으로 예상된다. 서울·경기도와 강원 영동, 전남 동부, 경상도는 대기가 매우 건조해 산불 등 각종 화재 예방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바다의 물결은 동해 앞바다에서 1.0∼2.0m, 서해와 남해 앞바다에서 0.5∼1.5m로 일겠다. 먼바다의 파고는 동해 1.0∼4.0m, 서해 1.0∼2.0m, 남해 1.0∼2.5m로 예상된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지긋지긋했던 2020, 여기서 다 털고 가소~

    지긋지긋했던 2020, 여기서 다 털고 가소~

    내년은 신축년, 소의 해다.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소만큼 친숙하고 귀한 동물이 또 있을까. 이 땅에서 대를 이어 농경민족으로 살아왔던 터라 소와 관련된 지명 역시 나라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나들이 삼아 다녀올 만한 곳들을 꼽았다. 대부분 덜 알려진 실외 공간이긴 하나, 개중에는 인기 폭발인 ‘신상’ 여행지도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엄중한 만큼, 마음 속에 갈무리해 뒀다가 상황이 진정되면 다녀오길 권한다.소와 관련된 지명은 대부분 형태를 표현한 것들이다. 소의 머리를 닮았다는 경남 거창의 우두산, 강원 춘천의 우두벌(현 우두동 일대) 등이 그렇다. 두 지역은 일본 왕가의 기원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서기’ 등 일본 역사서에 건국 이전 조상들 이야기가 나온다. 요약하면 이렇다. ‘韓’(한)의 고천원이란 천상계에 살던 조상 신들이 포악한 ‘스사노 오모미코토’에 추방당해 신라로 내려온다. 이들이 가장 먼저 발을 디딘 곳은 ‘소시모리’다. 이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소머리, 우두(牛頭)다. 비약이 다소 심한 듯하지만, 실제 우리 역사학계에서 이를 두고 여러 논쟁이 있었다고 하니 마냥 가벼이 여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인 듯하다. 이를 일제강점기 때 내선일체 의식을 강화하려 했던 일제의 농간으로 이해하는 이들도 있다. 이를 두고 어느 쪽의 판단이 옳으냐 그르냐를 가르기보다, 그저 여행의 재미를 더해 주는 요소 정도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우두산은 거창의 진산이다. 나라 안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절경인 가조분지 뒤에 듬직하게 서 있다. 우두산의 진면목은 올라야 보인다. 산 아래에서 마주하는 자태와는 사뭇 다른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우두산을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갈래다. 고견사 코스와 마장재 코스다. 가장 많은 이들이 꼽는 고견사 코스는 항노화힐링랜드에서 고견사, 의상봉, 상봉, 마장재, ‘Y자형 출렁다리’ 등을 거쳐 원점회귀하는 것이다. 마장재 코스로 오르는 이들도 있다. 고견사 코스와 반대 방향으로 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해 고견사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소요시간은 어느 방향이건 휴식 시간을 포함해 5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총산행거리는 7.4㎞ 정도다. 마장재 코스로 오를 경우 Y자형 출렁다리에서 상봉 방향, 곧이어 나오는 갈래길에서 마장재 방향을 택하면 거리를 좀더 줄일 수 있다. 우두산 등반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고견사 코스의 경우 땅에 코를 박고 올라야 할 만큼 된비알이 거푸 나온다. 대신 전망은 좋다. 정상에 오르면 가조분지 전체를 너른 품으로 안고 있는 듯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다. 파도처럼 일렁이는 인근 산들의 군무도 일품이다. 우두산의 다른 이름이 별유산이었다는데, 아마 이상향을 뜻하는 ‘별유천지비인간’이라는 말이 축약된 것 아닐까 싶다. 이 지역 등산가들의 ‘최애’ 구간은 의상봉(1032m)이다. 정상 능선에서 우지끈 솟아오른 모양새가 소의 뿔을 빼닮았다. 이 모습 보겠다고 들머리에서 의상봉 구간(2.2㎞)만 다녀오는 이도 있다. 의상봉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암릉이기 때문에 빙 돌아 오르는 방법은 없다. 곧게 뻗은 나무 계단을 따라 소의 걸음으로 우직하게 올라야 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 모골이 송연해지기도 한다. 허벅지에 쥐가 날 때쯤 정상에 닿으면 정말 천상계라 할 만큼 빼어난 전망이 펼쳐진다. 의상봉에 연이은 봉우리는 상봉(1046m)이다. 우두산의 주봉으로, 소의 두 뿔 중 하나다. 다만 정상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 모양새나 전망 등 여러 면에서 의상봉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진다.상봉에서 마장재까지는 내리막 구간이다. 빼어난 암릉들이 절창을 펼쳐내는 구간이기도 하다. 암릉 산행을 즐기는 이들은 보통 이 구간을 우두산 최고의 풍경으로 꼽는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암릉들의 자태, 발아래로 펼쳐진 천길 낭떠러지 등이 아찔한 느낌을 안겨 준다.우두산의 핵심 볼거리인 ‘Y자형 출렁다리’는 코로나19 악화로 다시 폐쇄됐다. 주말 개방을 제한할 만큼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신상’ 여행지이기 때문에 개방 여부에 늘 변수가 많다. 방문 전 홈페이지 확인이 필수다. 통제 중이긴 해도 출렁다리 초입까지는 갈 수 있다. 항노화힐링랜드 주차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600m쯤 오르면 나온다. 춘천은 오래전 ‘우두주’(牛頭州)라고 불렸다. ‘소머리의 땅’이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춘천 도심이 있는 지역 너머, 그러니까 소양2교 건너편이 우두벌(현 우두동 일대)이다.조선 후기의 학자 이중환은 우두벌을 우리나라에서 강을 끼고 발달한 고을 중 평양 다음으로 살 만한 곳이라 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택리지’에서 “춘천의 우두촌(牛頭村)은 소양강 상류의 두 갈래 물이 옷깃처럼 합치는 그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며 “비록 좁은 두메 골짜기이지만 들판이 멀리 펼쳐져서 시원하고 명랑하다”고 썼다. 이 ‘시원하고 명랑한’ 풍경은 소양강 처녀상 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우두벌 가운데쯤엔 우두산(133m)이 봉긋 솟았다. 소양강에 바짝 붙은 야트막한 산이다. 일본 왕가의 기원설이 전하는 또 하나의 장소가 바로 여기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가 절정일 때는 우리나라를 찾은 일본인 관광객 일부가 춘천 우두산에 들러 절을 하기도 했단다. 우두산은 오래전부터 군사 요충지였다. 사방이 평탄한 땅에 솟아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수없이 많은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정상에 세워진 충렬탑은 한국전쟁 당시의 격전을 기억하기 위해 1955년 조성됐다. 우두벌 건너 서면에 있는 신숭겸 장군 묘역은 춘천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신숭겸은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927년 후백제 견훤과의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의 옷을 입고 왕건을 대신해 죽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이를 비통하게 여긴 왕건이 자신이 묻히려던 묏자리에 신숭겸을 묻었다고 한다. 신숭겸 묘역은 특이하게 봉분이 세 개다. 여기엔 사연이 있다. 왕건이 신숭겸의 시신을 수습할 당시엔 머리가 없었다. 백제군이 베어 갔기 때문이다. 왕건은 황금으로 신숭겸의 머리를 만들어 묻었다. 가짜 봉분을 두 개나 만든 건 바로 이 황금 두상의 도굴을 우려한 조치였다. 글 사진 거창·춘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17시간만 윤석열 정직 2개월’에 금태섭 “비겁, 배짱도 없어”(종합)

    ‘17시간만 윤석열 정직 2개월’에 금태섭 “비겁, 배짱도 없어”(종합)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17시간30분에 걸친 밤샘 심의 끝에 정직 2개월을 결정했다. 15일 오전 10시34분부터 2차 심의를 시작한 징계위는 16일 오전 4시쯤 심의를 종료하고 윤 총장에 대해 정직 2개월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징계위원으로는 정한중(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위원장 직무대리,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 이용구 법무부 차관,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4명이 출석했다. 윤 총장 측에서는 특별변호인으로 이완규 변호사 등 3명이 나왔다. 윤 총장 측은 2차 심의에 앞서 징계위에 정 직무대리와 신 부장에 대해 기피를 신청하고, 검사징계법 규정대로 징계위원 7명을 채워달라고 요청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징계위는 15일 오전 10시34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을 시작으로 박영진 울산지검 부장검사, 류혁 법무부 감찰관,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에 대한 증인심문을 차례로 진행했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도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출석하지 않았다.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은 징계위가 직권으로 증인으로 채택했다가 철회해 입장을 담은 의견서만 제출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오후 2시쯤 징계위가 열리는 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또 징계위가 한창 열리던 중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絶頂)’을 언급하며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라고 썼다. 윤 총장 측 변호인단은 15일 저녁 증인심문이 끝난 직후 “심 국장의 진술 내용을 탄핵해야 하고, 새로운 증거 열람이 필요한 데다 증인심문에서 나온 증언들을 정리해 최종 의견 진술을 준비해야 한다”며 속행 기일을 요청했지만, 징계위는 최종 의견을 진술하라고 요구했다. 변호인들은 징계위 요구가 무리하다며 최종 의견 진술을 하지 않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징계 절차 자체가 위법하고 부당한 만큼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증인심문 절차가 모두 끝나고 윤 총장 측 변호인이 돌아간 뒤 징계위는 1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윤 총장의 징계 수위를 두고 밤샘 토론을 벌였다. 토론이 장시간 이어진 건 법무부가 청구한 징계사유의 인정 여부 등을 놓고 위원들 간에 이견을 좁히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는 징계위가 끝난 뒤 “해임부터 정직 4월·6월 등 여러 의견이 많았다”면서 “합의가 안 돼 토론을 계속했다”며 경위를 설명했다. 이용구 법무부 차관도 “위원회가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결론내렸다. 그다음의 몫은 여러분들과 많은 분들이 평가하실 거라 생각한다”면서 “저희는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총장 정직 2개월에 대해 “비겁하고 무능한데 배짱도 없네, 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도대체 이렇게 망쳐놓은 걸 어떻게 복구해야 하는가, 라는 걱정이 듭니다”라고 우려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를 향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팔아먹은 대한민국 역적으로 등극한 것을 축하한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무부 징계위원들 쇼 하느라 고생많았다. 을사보호조약으로 국권을 넘겨준 을사5적도 이만큼 고생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새벽 4시 넘어까지 벌일 필요가 뭐 있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결국 판사 사찰’ 문건이 尹 운명 갈랐다

    결국 판사 사찰’ 문건이 尹 운명 갈랐다

    15일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2차 기일에서 내려진 정직 2개월 처분은 징계위가 재판부 사찰 및 감찰 방해 등 윤 총장이 받고 있는 6가지 혐의 가운데 4가지를 인정한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징계위가 이날 증인이 제출한 추가 의견서 반박을 위해 기일을 잡아달라는 윤 총장 측 요청을 거부하고 의결을 강행했다는 주장이 나와 적법성 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윤 총장 측은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 기본(입장)”이라며 법적 다툼을 예고했다.징계위는 이날 오전 10시 34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약 9시간동안 증인 심문을 마친 뒤 토론 및 심의를 거쳐 16일 오전 4시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의결했다. 출석한 징계위원은 4명으로 1차 기일 때와 동일했다. 검사징계법에 따라 징계위원의 과반 수에 해당하는 3명의 의견 중 윤 총장에게 유리한 수위로 정해졌다. 6개 징계 사유 중 핵심인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한 징계 수위 결정에 가장 큰 작용을 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윤 총장 측은 미국, 일본 등 해외 사례를 들어 법관 정보 수집 및 공개가 보편적인 행위라고 강조해왔다. 징계위 측은 우리 사법 체계를 해외 사례와 동일시할 수 없고, 무엇보다 대검에서 판사들의 공개된 정보를 넘어선 세평과 성향 등을 취합한 것은 위법 소지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법관 정보 수집 건이 일부에 불과한데다 정보의 수준이 낮아 법조계에서는 범법 행위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아 징계위 결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질 전망이다. 여기에 징계 회부 과정이나 징계위 운영 등 절차 면에서도 문제가 드러난 점은 향후 더 큰 논란을 낳을 수 있다. 추 장관 측이 당장은 윤 총장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을 순 있어도 향후 행정소송 등에서 징계위 결정이 유지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증인 심문은 ‘재판부 사찰 의혹’ 관련 문건 작성 책임자인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을 시작으로 총 5명에 대해 이뤄졌다. 심문을 마친 뒤 윤 총장 측은 징계위에 최종 의견 진술을 위해 “시간을 달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정한중 징계위원장(직무대리)이 처음에는 최종 진술을 내일 오후에 하자고 해서 ‘너무 촉박하다’고 얘기했고, 이후 갑자기 ‘오늘 종결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윤 총장 측은 항의 차원에서 의견 진술 기회를 포기하고 회의장을 나왔다. 징계위는 오후 7시 50분쯤 정회했다. 이 변호사는 “채널A 강요미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에 윤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의견 대립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대검 실무팀에서 범죄 혐의 성립 불가 의견서를 낸 경위 등에 대한 증언들이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윤 총장 측은 추미애 장관 측 ‘핵심 증인’으로 꼽혔던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과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제출한 진술서를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손 담당관과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 등 증인들이 징계위에 총 60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준비했지만 제출이 무산될 뻔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윤 총장 측이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입수 경로를 캐묻자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편 추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육사의 시 ‘절정’을 언급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윤 총장은 1차 기일에 이어 이날도 징계위에 불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尹측 최후진술 거부하고 퇴장… 징계위, 자정 넘겨 밤샘 진통

    尹측 최후진술 거부하고 퇴장… 징계위, 자정 넘겨 밤샘 진통

    15일 열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 2차 기일에서는 윤 총장 측과 징계위 측이 증인심문을 진행하며 팽팽한 진실 공방을 벌였다. 윤 총장 측은 이날 증인들이 추가 제출한 의견서 반박을 위해 심의 기일을 속행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징계위가 이를 거부하며 충돌을 빚었다. 윤 총장 측은 “징계 절차가 위법하고 부당했다”면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고, 결과에 따른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징계위는 이날 오전 10시 34분부터 증인심문을 시작해 오후 7시 30분까지 약 9시간 동안 진행됐다. 징계위는 심문을 마친 뒤 이날 심의를 종결하겠다며 윤 총장 측에 최종 의견 진술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정한중 징계위원장이 처음에는 최종 진술을 내일 오후에 하자고 해서 ‘내일은 너무 촉박하다’고 얘기하니 잠시 나가 있으라고 했다”면서 “회의실에 다시 들어가 보니 갑자기 오늘 종결하겠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이어 윤 총장 측은 추미애 장관 측 ‘핵심 증인’으로 꼽혔던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과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 제출한 진술서를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면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지 않겠다”며 회의장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징계위는 이날 저녁 7시 50분쯤 정회했다. 이 변호사는 “채널A 강요미수 사건 수사 과정에서 당시에 윤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의견 대립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대검 실무팀에서 범죄 혐의 성립 불가 의견서를 낸 경위, 중앙지검에서 실제로 검토했던 자료 등에 대한 증언들이 있었다”고 덧붙였다.한편 윤 총장 측은 증인심문 시작 전 예고한 대로 정한중 징계위원장 직무대리와 신성식 대검 반부패부장 2명에 대해 기피신청했으나 징계위는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없다”며 이를 모두 기각했다. 윤 총장 측은 징계위 절차를 근거로 추후 행정소송 등에서 징계위의 불공정성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총장은 1차 기일에 이어 이날도 징계위에 불참했다. 증인심문은 ‘재판부 사찰 의혹’ 관련 문건 작성 책임자인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을 시작으로 총 5명에 대해 이뤄졌다. 손 담당관은 올해 초 윤 총장의 지시를 받고 법관 정보수집 문건을 작성한 수사정보정책관실 책임자다. 그는 문건 작성의 목적이 법관 사찰이 아닌 공소 유지 업무라고 주장해 왔다. 류혁 법무부 감찰관과 이정화 대전지검 검사는 재판부 사찰 의혹에 대한 법무부 감찰 과정과 결과에 대해 윤 총장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류 감찰관은 윤 총장에 대한 감찰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보고 라인에서 제외됐다. 이 검사는 윤 총장 감찰 보고서에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법리 검토 의견이 삭제됐다고 폭로한 실무자다. 재판부 분석 문건을 입수해 법무부에 전달했다가 다시 수사 참고자료로 되돌려 받은 한동수 감찰부장은 ‘명백한 법관 사찰’이라며 이들과 상반된 증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부장은 윤 총장의 징계 청구 사유가 된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의 감찰, 검언유착 의혹과도 관련이 있다. 윤 총장 측이 신청한 증인 7명 가운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는 출석하지 않았다. 한편 추 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육사의 시 ‘절정’을 언급하며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강철 무지개” 추미애, 일제강점기 저항시로 심경표현

    “강철 무지개” 추미애, 일제강점기 저항시로 심경표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15일 이육사 시인의 시 ‘절정’을 인용해 검찰 개혁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등에 대한 심정을 표현했다. 대표적 저항 시인으로 꼽히는 이육사의 시 ‘절정’은 일제 강점기 속 극한 상황에서도 결기를 잃지 않고 독립을 염원한다는 의지를 담은 작품이다. 추미애 장관은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통해 “매서운 겨울바람입니다. 낙엽진 은행나무는 벌써 새 봄에 싹 틔울 때를 대비해 단단히 겨울나기를 하겠다는 각오다”라고 적었다. 추 장관은 “그저 맺어지는 열매는 없기에 연년세세 배운대로 칼바람 속에 우뚝 나란히 버티고 서서 나목의 결기를 드러내 보인다.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라고 적은 뒤 “꺾일 수 없는 단단함으로 이겨내고 단련되어야만 그대들의 봄은 한나절 볕에 꺼지는 아지랭이가 아니라 늘 머물 수 있는 강철 무지개로 나타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절정’이 발표된 1940년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극에 달하던 암흑기다. 윤 총장 징계 청구 혐의 및 징계위 진행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와 검찰·야당은 물론 여론의 반발 등에 부딪힌 상황을 빗댄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검찰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면서도 잘못에 책임지지 않고, 책임을 물을 길 없는 성역이었다. 어떤 기관도 국민 위에 존재할 수 없다. 검찰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민주적 통제를 받으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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