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정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무보수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운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췌장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환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250
  • ‘그리스 신화의 세계’펴낸 외국어대 유재원 교수

    ◎“신화는 역사… 시간 초월한 진리”/인문학 관점서 神의 상징적 의미 고찰/정신분석학 접근으론 본질 파악 못해 “‘신화란 재미있는 거짓말’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입니다.신화는 허구가 아니라 진실이고 역사예요.그리스도교인들에게 예수가 진정한 하느님이고 숭배의 대상이듯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는 올림포스의 신들이그러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지요.우리가 신전이라 부르는 고대 유적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신자들이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경건한 교회당이었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학과 유재원 교수(49)가 그리스 신들의 상징적 의미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쉽게 풀어 쓴 ‘그리스 신화의 세계’(현대문학)를 펴냈다.이 책은 월간 ‘현대문학’에 97년부터 1년여 동안 연재됐던 내용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그리스 신화란 시인 호메로스가 활동하던 무렵인 기원전 8∼9세기부터 ‘이교세계’가 끝나는 기원후 3∼4세기까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여러 지방에 널리 퍼져 있던 온갖 불가사의한 설화와 전설을 총칭하는 말.1천년이 넘는 세월속에서 그리스 신화는 변화를 거듭했다.호메로스 시대에는 신화의 모든 내용이 진실이었다.그러나 불과 삼사백년이 지난 플라톤 시대에 이르면 신화는 공화국에서 내쫓아야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그리스도교가 세력을 얻게된 고대 세계 말기에는 신화란 부도덕한 이야기로 가득찬 백해무익한 거짓말로 간주됐다.우리는 과연 어느 시대의 관점에서 그리스 신화를 이해해야 할까. “고대 그리스 문명이 절정에 달했던 기원전 4∼5세기는 서양사상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시대입니다.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 철학자와 에스퀼로스·에우리피데스·소포클레스 같은 비극작가,헤로도토스·투키디데스 같은 역사가들이 활동하던 시기죠.이 시기에 신화는 굳건한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그러나 현대인과 고대 그리스문명 사이에는 그리스 문화를 왜곡한 로마시대와 중세가 가로놓여 신화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고 있어요.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로마와 중세를 뛰어넘어 올림포스 신앙의 본질을 밝혀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알고 있던 살아있는 신들의 신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신화에 관한 우리의 이해수준은 그리 높지 못하다.신화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문학적인 원형을 찾거나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하는 정도가 고작이다.그러나 신화를 문학작품으로 다루거나 정신분석학의 응용대상으로 보는 한결코 신화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유교수의 지적이다.신화는 거대한 세계관이요 사상체계이기 때문이다.유교수는 이 책에서 서양문화의 지적 원형으로서의 신화를 요령있게 보여 준다.신화는 탈(脫)역사화 공간이다.그 신화 속에는 시간을 초월한 진리가 숨어 있다.그 진리를 얼마만큼 자기 것으로 만드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그리스 아테네 대학에서 ‘그리스어의 시제일치 현상에 대하여’란 논문으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유교수는 한양대에서 신화학도 강의하고 있다.그는 어쩌면 신화학을 위해 언어학을 전공했는지도 모른다.언어학과 신화학은 쌍태(雙胎)관계인가.“현대 신화학을 창시한 독일의 막스 뮐러는 언어학자였습니다.또 ‘그림 동화집’으로 유명한 그림 형제도 사실은 인도­유럽 비교 역사언어학의 대가였어요”
  • 이강백­이윤택 예사롭지 않은 첫 만남/느낌,극락같은

    예술의전당 이강백 연극제에서 ‘느낌,극락같은’은 단연 화제작.네편 가운데 이것만 초연이다.작가 이강백과 연출자 이윤택의 첫 만남이기도 하다.작가는 현실을 은유하는 묵중한 대사,알레고리 등 관객을 ‘괴롭히는’ 관념적 작품으로 진작부터 입지를 다져온 중진.반면 연출자는 90년대 인기 절정인건 분명하지만 대중의 혀에 착 감기는 요리 감각으로 ‘고급대중극’을 표방한 인물이다.이질의 만남이 불러일으킬 흥미의 파장을 당사자가 먼저 안다는 듯 둘은 서로의 예술세계를 겨냥,한판 설전을 치뤄 상품성을 더욱 높여놨다.22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드디어 막이 오른다. 불교를 축으로 한 그 기둥줄거리는 낯익다.한 스승한테 배운 불상제작자동연과 서연은 불상 만들때 형식이냐 마음이냐를 놓고 갈라진다.갈등의 골이 패가던 중 동연이 스승의 딸 함이정을 범하고 서연은 ‘진정한 부처 마음’을 찾겠다며 길을 떠난다.함이정의 아들이 대립을 지양할 화두로 찾아든 것은 음악.일견 전형적인 ‘극락’궁구 드라마를 연출이 어떻게 ‘느낌’으로육질화할지가 주목거리다. 스승 함묘진에 신구·고능석,서연 조영진,동연 이용근,함이정에 김소희 등.동연과 서연의 불상을 사람에게 맡기고 불상 코러스 12명까지 동원한 것에서만도 감각적 연출이 엿보인다.6월14일까지.평일 하오 7시30분 토 하오 3시,7시30분 일 하오 3시.580­1880.
  • 토머스 탤리스,라틴교회음악(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2)

    ◎20세기,멸망과 화해하는 법 1.가장 인간적인 것은 멸망이다.인간이 죽음을 알았다.그리고 모든 인간적인 행위가 눈물겹고 아름답다.그렇게 노동이,종교와 역사가,예술의 생애가 시작된다.종교는 죽음을 삶 속에 끌어들이고 죽음 이후를 유토피아로 제시한다.그것은 멸망과의 화해를 좀체 용인하지 않는다.그리고,그렇게 종종 광신으로 치닫는다. 우리는 멸망의 시대를 살고 있다.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좌우냉전과 절멸전,동유럽 제국의 거대한 몰락을 가슴에 품은 20세기가 바야흐로 저물고 있다. 세기말 천년말의 낭떠러지 앞에 우리는 나침반 없이 서 있다.오늘의 경제난국과 가난연습은 사실 고마운 선물인지 모른다.생계 걱정이야말로 세기말의 광란을 극복하는 말짱한 정신의 교량일 것이므로. 2.그러나 그것 뿐인가.이 현기증나는 흔들림의 의미를 그렇게 무마하고 망각하면 그만인가.16세기 영국 작곡가 탤리스의 라틴 교회 음악이 지금 우리에게 그렇게 묻는다.그대 죽음을 아는가.그대 멸망을 아는가… 그리고 더욱 놀랍게도 그 질문,그 흔들림이,악기 반주 없이 인간의 목소리 만으로,절망을 넘어선 화해의 경지를 구성한다.절망이 아름다운 공의 건축물로 들어선다.스펨 인 알리움 하부이…내 희망은 오로지 당신 뿐…광신인가? 아니다.음악은 흔들림을 매개 삼아 더 드높은 아름다움의 경지를 연다.그리고,그렇게 더 우월한,이성과 이성 바깥을 완벽하게 조화시키는 음악예술 이성의 길이 펼쳐진다. 유토피아? 아니다.그 길은 절망을 머금은 길이므로 실패가 없고 시각의 독재를 벗어나 귀의 상상력을 무한 자극한다.그 상상력은 펼쳐질 뿐 아니라 온몸을 적신다.그래서,어떻게? 비데테 미라쿨룸(보라 기적을)…호모 쿠이담(어떤 사람이)…아우디비 보쳄(목소리 들린다)…칸디디 파크티 순트(휘황한 백열로)…탤리스의 라틴 교회음악은 그렇게 이어지다가,가사의 종교성을 벗으며 잠시 침묵이 더 무겁다가,에 도달한다. 이 음악에 이르러 우리는,귀를 가진 우리의 몸은 벌써 고통의 비(우)에 흠씬 젖은 세상으로,드러난다.20개 성부가 주선율을 모방하면서 연속적으로 등장,그 세상이 여러겹의 아름다움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마치 끊임없이 펼쳐질 것처럼.선율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닮아가고 목소리가 끊임없이 선율을 닮아간다.음악의 몸과 우리의 몸이 구분되지 않는다. 끊임없이,끊임없이…그러는 사이 어느새 또다른 20개 성부가 새로운 주제를 갖고 들어선다.그,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지만,음악도 우리 몸도 음악의 세계이므로,단절일 수 없고 단순한 이어짐일 수 없다.아나는 역사 속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그 모든 유토피아들의 절규들이 단절을 넘어 위대한 공을 이루는 광경을 보고있는가…고통이 의미로,의미가 의미 충만의 세계로 펼쳐진다. 그렇다.삶은,끊임없이 살만한 것이다.죽음이,멸망이,흔들림이 있으므로 더욱 아름답게.음악은 현실 속을 파고 들면서 좌절하지 않는다.오로지 슬픔을 형상화하는 까닭이다.유토피아는 언제나 실패한다.기쁨의 환각을 위해 현실보다 못한 까닭이다. 3.40성부 모테트 은 영국음악이 이룩한 종교음악의 최고봉이다.탤리스는 영국사 중 가장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흔들리면서,그 흔들림을 가장 영롱한 음악으로 전화시켰다. 그는 헨리 8세,에드워드 6세,메어리 여왕,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 등 모두 4명의 군왕을 섬겼다.이들은 종교에 대한 태도가 각각 달랐다.탤리스는 어떤 때는 영어로 어떤 때는 라틴어로 작곡을 해야했고 음악양식도 그때마다 달라졌다.그리고 그는 때때로 군왕의 명령을 어겼다.그렇다.그는 끝내 음악의 명령을 따랐다.숭고한 비탄이 아름다움의 뼈대로 들어선다.그리고 아름다움은 다시 그 숭고한 비탄이 열려가는 통로로 작용한다. 그러나 탤리스의 음악은 당시 영국의 정치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룩된 업적이 아니다.사실,베토벤의 음악에서조차 완벽한 ‘불구하고’는 없다.그것은 음악이 지닌 진혼과 평화지향의 성격에 위배된다.특히 탤리스의 은 크게 보아 음악에 대한 영국민의 깊은 사랑,그리고 다른 나라보다 깨인 정치의식의 소산이고,그러므로,베토벤이 독일적이듯,영국적이다. 역대 군왕은 모두 탤리스의 음악을,종교적 신념과 무관하게 존중해 주었다.엘리자베스 여왕은탤리스와 버드에게 21년 동안의 음악출판독점권을 주었다.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독일­프랑스의 그것과 달리,왕족 몇몇의 목숨을 앗아갔을 뿐 백성 전체를 기아와 공포,그리고 살륙의 장으로 내몬은 종교전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그리고 그것이 향후 300년 동안 영국의 부강을 보장하는 것이다.그렇게 탤리스의 슬픔은 낙관적인 희망의 그것이다. 탤리스가 살던 16세기 말,영국은 서정적 선율의 극치로써 서양음악의 주도권을 꿈꾸고 있었다.그 소원은 이루어지지만,기간이 너무 짧았다.그리고 곧 언어가 따따부따한 이탈리아 음악의 ‘일상적인’ 대공세가 시작된다.프랑스는 가까스로 감미로운 비무장지대를 형성한다.그리고 ‘더 크게 흔들린’ 바흐 음악이 강한 성으로 구축된다.이 전쟁은 사상자가 없는,아름다운 전쟁이다.어쨌거나,그렇게 영국음악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야 다시 세계성을 되찾는다. 4.오늘 소개하는 음반은 정격연주로서 탤리스 당대의 ‘흔들림 속 영롱함’을 정밀하게 재현하면서 그 후의 질문들을 더욱 영롱하게,마치 촉촉한 눈동자처럼 덧붙인다.연주자와 작곡가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렇게 질문은 영국음악 자체의 그것으로 확대된다.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멸망을 맞는,아니 멸망을 한없이 슬퍼하는 자들의 고통 대신 들어서는 것이다. 흔들려라,끊임없이.흔들림이야말로 고요와 평정의 요람이나니.그대 죽음을 아는가.그대 멸망을 아는가?… 그것은 이미 말(언)이 아니다.음악도 아니다.음악과 말에 존재하면서,그 ‘사이’로써 세계를,멸망의 낙관적 희망을 담지하는 어떤 것이다. 1989.EMI CDC 7 49555 2 테버너 콘소트/태버너 합창단 지휘:앤드류 패럿 ◎왜 명반인가/토머스 탤리스(1505∼1585)/짧은 무반주합창/당대 악기 연주 존중/정격연주의 절정 모테트는 길이가 짧은 무반주 합창곡.16세기 종교음악의 최절정을 구현했다.바흐에 이르는 역대 음악 거장들이 모두 모테트 걸작을 남겼다. 정격연주는 작곡자 당대의 악기와 연주 관행을 최대한 존중하는 음악 해석 방식이다. 콘소트는 ‘콘서트’(협주)의 옛말.통(통,whole) 콘소트는 관악기,현악기등 같은 그룹의 악기들로 만 구성되며 분산(분산,broken)콘소트는 혼합 구성이다. 앤드류 패럿(1947∼ )은 영국태생의 지휘자.16,17세기 음악 연주 관행을 연구하면서 1973년 정격연주단체 테버너 합창단을 창단하고,테버너 콘소트와 연주단을 추가했다. 데뷔는 1977년 몬테베르디의 .그후 바흐 ,,,헨델 ,모짜르트 등 대작을 포함한 숱한 정격연주가 있다.
  • 슈베르트 D.956.(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1)

    ◎눈물 부서져,광휘(光輝)로운…/베토벤 장례식후 유언으로 쓴 4악장/안개,흐느낌 영롱한 눈물 아! 베토벤 죽음의 安息/절정이 쇠한 미완성 아찔한 현기증… 음악 작품에는 작곡가의 혼이 있습니다.그의 삶이 있고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명연주가가 그것을 살려 냅니다.金正煥 시인의 지상 음악감상실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바이올린,비올라,첼로.세 겹 현음(絃音)이 겹쳐 전설같은 안개가 형성된다마치 시작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듯이.비장(悲壯)이 낮고 무겁다. 그러나 짧다.선율이 잠시 흐르다가 흩어질 틈도 없이 현악기들이 갈라진다.바이올린은 길길이 치솟고 첼로는 둔중하게 깔리고,비올라는 양자를 수습치 못한다.무언가 찢어진다.바이올린 음이 제 스스로 분리되어,하나가 아니고둘이다.아니 여럿이다.첼로 음은 무거운 채로 균열되고…. 음악은 그렇게 흐느낌의 생애를 시작한다.현악5중주 D.956번.슈베르트는이 작품을 생애 마지막 유언으로 썼다.1827년 3월 29일 베토벤 장례식에서그는 관을 옮겼다. 2.베토벤은 그에게 평생 거대한 벽이었다.비엔나의 한 카페에 베토벤은 늘같은 자리에 무뚝뚝하게 앉아 있었지만 슈베르트는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렸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슬픔의,원흉이 그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매독이그의 몸에 치명적으로 번진 상태였던 것.그런데,어떻게,아름다운 음악이? 그러나 그렇게 음악은 고통의 생애를 ‘고통스러울수록 아름답게’ 액정화(液晶化)하기 시작한다.이듬해 10월 2일 그는 피아노 소나타 세 편 ,하이네시에 곡을 붙인 가곡 여섯편을 라이프치히 출판업자에게 보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위대한 유언에 달하는 걸작이다.그러나 그 모두를 합해도 그가 ‘써 볼 참’이라고 덧붙인 현악5중주 한 편을 능가하지 못한다. 출판업자는 ‘노래’에만 흥미를 보였다.11월 19일 슈베르트는 31세로 숨을 거두고 현악5중주는 22년 동안 연주도 출판도 되지 못하다가 1850년 처음으로연주되고 1853년에 원고가 일부만 출판되었다. 3.슈베르트는,아니 음악은 그 운명을 알고,오로지 아름다움으로써 감내하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2악장 아다지오에서 기적이 일어난다.1악장의 서두,‘공간화했던 시간’이 장중한 주선율로 흐르고 제1바이올린과 첼로음이 묻어난다.그 묻어남은 정확히 눈물의,시야(視野)흐릿함과 자체(自體) 영롱함을 그대로 닮았다. 그렇다.눈물은 언제나 생애의 광경에 묻어난다.그것이 광경을 흐리지만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고 귀는 마음에 가장 가깝고 그렇게 기억의최대 광경이 음악의 선율로 액정화되고 흐른다. 귀가 광경을 보고 눈이 선율을 듣는다.위대한 미완성,위대한 미완성….미완성이므로 더욱 감동적인 그러므로 몸은 지상을 떠나되 음악은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그렇게,미완성이므로 영원히 이어지고 포괄하는 순간이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렇다.상상력은 손에 잡히지 않고 무한한 광경을 펼친다.조각 예술조차,우리가 손으로 만지기 전에,얼마나 무수한 광경을 펼치고있는가.다만 음악은,그 사실을 다시 예술의 시간으로 가시화(可視化)하며 흐른다. 4.슈베르트 현악5중주,2악장 아다지오.때는 불곰 러시아가 터키를 노리고 숫사자 영국이 그 러시아의 배후를노리던 1827년.제목조차 선율화하는 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펼쳐진다.전쟁의 참상과 인간 존재의 슬픔을 머금고.더욱 광활한 음악의 광경으로. 그 속으로 황혼녘,우리의 가장들이 귀가한다.일터를 찾지 못한,하릴 없는 가장들이.점차 황혼을 닮아가는 그들의 생애와 표정이 음악의 집으로 귀가한다.음악은 다시 묻어나고 무언가,슬픔이,지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다가 아름다운 희망으로 전화된다. 아,미완성.31세.모차르트보다 4년 더 짧았던 슈베르트의 생애.그러나 누가 그것을 안타까워하겠는가.그의 유언이 이리도 흐릿하며 영롱하고,간절하며 흥건한 것을. 3악장은 베토벤의 위대한 스케르초에 바치는 헌사다.그것은 베토벤의 언어로 베토벤을 뛰어넘으려 했던 자신의 시도가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펴가는 과정의,고백의 헌사다. 그래서,4악장은 슈베르트만의 출발.그러나 음악 안에 이미 죽음의 안식이 깃든다.되돌아오는 론도 무곡(舞曲) 형식 속에 그 형식이 발전한다.그렇게 그는 자신의 음악 속으로가라앉고,아찔한 현기증이 지나면 어느새 지상에 남은 자 벅찬 삶의 무게에 감동하고. 5.그래,이제 알겠다.왜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현악4중주 아닌 현악 5중주를 유언의 형식으로 삼았는가를.현악4중주는 절정과 심화,5중주는 절정이 쇠하는 미완성의 경지고,그런 채로 ,펼쳐짐인 채로,현악기 음악의 끝이다. 현악6중주는 3중주의 2배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리고,위 음반이 위대한 연주인 까닭도 그 미완성의 경지와 일맥상통한다.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이 예의 강성한 독재성을 스스로 무마시키며 현악5중주의 세계로 귀가한다.그리고 묻어난다.숱한 광경으로 묻어난다. 피아티고르스키의 첼로가 그런 그를 따스한 자궁으로 받아들인다.프림로즈의 비올라가 그 세계를 가장 겸손하게 주관하면서 나머지 두 무명(?)연주자를 위로 세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이페츠와 ‘ 백만불 짜리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했던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유언했다.‘내 장례식 때슈베르트 현악5중주 2악장을 연주해다오…’ 놀라운 일이다.2악장에는 피아노가 없는데. □金正煥 시인 약력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 △‘창작과 비평’통해 시인 등단. △자유실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황색 예수전’등 시집 다수.음악 관련 저술 ‘클래식은 내 친구’‘김정환의 클래식 이야기­음악이 있는 풍경’ 등 △라디오 클래식 음악 해설자 1년. ◎1961.녹음,1988.BMG 7964­2­RG/바이올린:야샤 하이페츠/비올라:윌리엄 프림로즈/첼로: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현악5중주는 현악4중주 악기 구성(바이올린 2대,비올라 1대 첼로 1대)에다 비올라 혹은 첼로를 추가한다. 모차르트가 비올라를,슈베르트가 첼로를 추가한 대표적인 경우.슈베르트 이전에 보케리니가,이후에 본 윌리엄즈가 첼로를 추가했다. 야샤 하이페츠(1899∼1987)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세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1911년 데뷔,그 이듬해에 니키쉬의 베를린필과 고난도의 차이코프스키 을 협연했다.1917년 미국 이주 및 카네기홀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바이올린의 제왕으로 군림했다.그의 전집음반이 BMG레이블로 나와있다.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 또한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 귀화한 첼리스트.1921년 소련을 떠나 푸르트뱅글러의 베를린필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했다(1924∼28년).그 후 슈나벨,호로비츠,밀슈타인 등과 실내악 연주 호흡을 맞추다가 하이페츠를 만났다.정명화의 스승이다. 윌리엄 프림로즈(1903∼1982)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이자이에게 배우며 활동하다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비올리스트.1938년부터 1942년까지 토스카니니의 NBC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라주자로 활동했다.
  • 세계 5대제국 흥망의 역사/유아사 다케오 지음(화제의 책)

    ◎제국 흥망사 되돌아 보며 미래 가늠 인류 역사상 제국의 지배는 세계 곳곳에서 무자비한 파괴를 동반해왔다.아울러 대국 중심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그렇다고 이것이 대국의 역할을 과소 평가하는 것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거대 제국이 세계에 질서를 강제하고 역사의 큰 틀을 만들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러면 왜 지금 ‘대국의 흥망’이 문제인가.오늘날처럼 시대를 읽기 어려울 때,과거 제국의 흥망사를 되돌아 봄으로써 미래를 가늠하는 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바람에서다.일본 니가타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인 유아사 다케오(湯淺赳男)가 펴낸 이 책은 세계사의 흐름을 요령 있게 정리,역사와 문명을 바라보는 거시적인 시각을 갖도록 도와준다.이 책에서 다루는 세계 5대제국은 로마·중국·비잔틴·이슬람·유럽이다.우리는 대국의 흥망 하면 먼저 로마제국을 떠올린다.로마제국의 몰락은 곧 유럽과 서아시아의 고대 그 자체의 몰락을 의미할 만큼 역사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이와 관련,지은이는 비잔틴은 세계사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점과 시점에 놓여 있는 만큼 결코 호사가의 호기심 속에 가둬 두어서는 안된다는 견해를 펴 눈길을 끈다.비잔틴 제국 즉 동로마제국은 용케 멸망을 피한 로마제국의 노인국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비잔틴제국은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열쇠를 제공한다.비잔틴 제국은 동유럽 특히 러시아 문명의 주요한 수원(水源)이 되었으며,중세 서유럽에게는 문명의 메트로폴리스와 같은 존재였다.국가와 문명은 마치 종유석처럼 세월에 따라 저절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탄생과 성장, 절정과쇠퇴를 겪는 일종의 생명체다.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그 흥망성쇠의 드라마를 온전하게 엿볼 수 있다.일빛 8천원.
  • 대타협 못하면 勞使 공멸

    ◎“노사정위 출범이 경제회복 지름길” 각계 한 목소리/민노총도 대화 참여… 위기극복 동참해야/과격한 가두시위 외국인 투자 내쫓는 길 멈칫거리는 노사정위원회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불안하다.민주노총이 곧 출범할 2기 노사정위 참여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꼬일대로 꼬인 우리 경제의 미래는 노사정위 성사 여부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문가들은 우리의 현재 상황에 대해 “제2의 환란(換亂)이 오느냐,또는 외국인 투자의 물꼬를 터 위기를 극복하느냐를 가름하는 분수령”이라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의 설명은 이렇다.노사가 원만한 타협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춤할 수 밖에 없다.다시 외화는 부족해 지고 각종 경제지표는 곤두박질 친다.외국인 투자가 들어와야 일자리가 늘어나는데 과격한 노조 활동은 외국인 투자를 내쫓아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든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정리해고제 등의 재협상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李甲用 민주노총 위원장은 4일자 외지와의 인터뷰에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노동자의 시위와 파업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내부에도 강경 일변도의 투쟁 방식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현재의 위기 상황을 감안해 대화로 주장을 관철해야 한다는 논리에서다. 민주노총에 대해 우호적인 상당수 인사들도 노사정 참여를 권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근로자추천 사외이사제의 도입 검토 등 정부가 노동계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것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하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과 관련,LG경제연구원 金周亨 상무는 “5∼6월이 춘투(春鬪)기간임을 감안해도 노사 불안이 국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는 수준에 이르면 결과는 뻔하다”고 걱정했다. 서울대 金信行 교수(경제학과)는 “민주노총이 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사항을 파기하려는 생각은 잘못”이라면서 “우리의 경제위기는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해결이 가능하지만 자본은 불안한 곳에 모이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신여대 姜錫勳 교수(경제학과)는 “개혁을 하려면 정부·기업·근로자 모두에게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른다”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정부의 정치적 결단과 기업의 자구노력은 물론 노동계의 자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柳鍾星 사무총장은 “정부와 재벌의 책임도 크지만 민주노총은 부정과 거부보다 부당 노동행위를 하고 있는 사업장을 적발해 정부에 처벌을 요구하는 등의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회사원 崔鍾哲씨(36·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는 “노동계는 정부에게 힘을 실어 줘 경제난을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주부 趙仁淑씨(42·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는 “노동자들이 실직 등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지만 현재의 경제난은 폭력 시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車 내수회복 4년 걸릴듯/기아경제硏 분석

    ◎올 33% 감소… 2002년에 96년 수준 급감하고 있는 자동차 내수판매는 앞으로 4년 뒤에나 96년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4년 동안은 자동차업계의 비용축소 등 자구노력이 강도높게 추진되면서 정리해고도 절정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 내수판매는 지난 해보다 33% 50만대 이상 감소,1백1만대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1·4분기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7%나 내수가 감소했다. 특히 기아경제연구소는 자동차 내수판매가 2002년에 가서야 연간 최고 판매대수를 기록한 96년의 1백64만4천여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연도별 내수판매 예상치는 내년에 1백12만대로 올해보다 다소 늘어나고 2000년 1백32만대,2001년 1백53만대로 지난 해 수준에 근접할 전망이다.앞으로 2∼3년 안에는 과거와 같은 6% 이상의 고성장을 기록하기는 어려우며 2002년에 가서야 성장률이 6.3%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자동차사들은 올해 자동차 내수 매출액이 지난 해의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시발로 4년동안 침체상태가 지속된다면 현재의 비용구조로는 대규모 적자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자동차사들은 이에 따라 업체 별로 고용조정 방안 등 고정비용 절감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 자동차사들은 판매가 부진한 생산라인을 폐쇄하거나 줄여 현재 4백22만대인 생산능력을 낮출 방침이다.
  • 풍류정신으로 보는 중국문학사/감상자의 시각서 본 中 문학

    ◎단일한 잣대로 각 시대의 특성 고찰 【金鍾冕 기자】 “이슬 맞으며 누런 국화를 따고/서리를 맞으며 푸른 게를 먹고/술을 데우며 붉은 낙엽을 태웠네/생각하면 인생은 빈 술잔인데/중양절마다 술을 마신들 그 얼마나 마시겠는가!” 중국 원나라의 잡극(雜劇)작가 마치원의 산곡(散曲) ‘야행선(夜行船)’에 나오는 구절이다.또 선진시대 ‘시경’의 관저(關雎)편을 보면 남녀간의 상열지정(相悅之情)이 소박한 언어로 표현돼 있고,이백의 ‘장진주(將進酒)’에는 인생과 세상을 초월하려는 적극적인 낭만주의 사상이 담겨있다.장강대해(長江大海)를 이루는 중국문학,그속에는 진정 면면히 이어지는 멋과 정신이 깃들여 있다. 최근 안동대 중문과 최병규 교수가 펴낸 ‘풍류정신으로 보는 중국문학사’(예문서원)는 이같은 중국문학의 특성을 ‘풍류정신’이란 한 마디로 아우른 색다른 시각의 중국문학사다.지금까지의 문학사는 주로 시대나 작자 등을 기준으로 서술한 것이 대부분이다.그러나 이 책은 개별 작품의 심미적인 요소들을 들춰내며 감상하는 형식을취한다.때문에 중국문학의 정신을 보다 가까이서 친숙하게 호흡할 수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중국문학은 크게 유가문학과 도가문학으로 나뉜다.유가와 도가는 중국 문화의 양대 지주이자 중국 문학의 사상적 근원을 이룬두 흐름이다.유가가 중국 북방의 기질을 대표하는 문화라면,도가는 중국 남방의 기질을 대표하는 문화다.공자의 가르침에 힘입은 유가문학이 대개 현실적이고 복고주의적이며 형식주의적인 성격을 띠는 반면 도가문학은 노장(老莊)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낭만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양상을 띤다.중국문학은 세상이 편안할 때는 유가의 사상이 지배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도가의사상이 득세하는 유(儒)·도(道)문화의 순환 속에 성장·변환해갔다.이러한 중국문학의 특성을 감안할 때 풍류정신은 당연히 도가사상이 풍미하던 시기에만 성했던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그러나 중국문학사를 꼼꼼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풍류정신이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선진(先秦)문학에서부터 명청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로 풍류정신의 흐름을 살핀다.최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소박하고 원초적인 낭만세계가 주를 이뤘던 선진시대 문학은 풍류정신의 맹아기,통일국가의 기상을 작품 속에 드러낸 한대(漢代)문학은 풍류정신의 발아기에 해당한다.또 ‘위진풍도(魏晉風度)’와 ‘명사풍류(名士風流)’를 탄생시킨 위진남북조 문학은 풍류정신의 개화기,문화의 번성기였던 당대(唐代)문학은 풍류정신의 절정기에 속한다.그는 또한 금욕주의적인 도학이 문학을 지배했던 송대(宋代)문학을 풍류정신의 억압기로,이민족의 침략으로 대중문학이 위축됐던 원대(元代)문학을 풍류정신의 침체기로,당대의 인성해방 사상이 반영된 명청대(明淸代)문학을 풍류정신의 부흥기로 본다. 이같은 문학사적 시대규정에는 도식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풍류정신이라는 단일한 잣대로 각 시대 문학의 구체적인 특성을 살피고 있는 점은 지적인 신선함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 부활절 맞은 바티칸·세계 각국 표정

    ◎교황 58개 언어로 축일 메시지/“현대인 자신의 능력 과신말라”/성베드로광장 신도 등 수만명 운집/예루살렘 테러대비 무장군경 배치 【바티칸시티·예루살렘·켄터베리 등 외신 종합 연합】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부활절인 12일 아침 성 베드로 광장에서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고 라티언와 그밖의 57개 언어로 ‘기쁜 부활절을 맞이하기를 축원한다’며 전세계 인류를 향해 축하 메시지를 발표. ○…교황은 전세계로 보내는 부활절 메시지에서 각 국 지도자들과 선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절의 참 평화가 새로운 영적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를 기원한다고 축원.교황은 특히 이같은 참 평화에 대한 영적 감동이 최근 ‘위험한 정치적 결정’으로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예루살렘과 중동의 정치지도자들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기원. 이어 교황은 “부활절의 의미가 분쟁 해결에 있어 대화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가져다 주기를 바란다”고 강조.교황은 “골육상쟁의 투쟁과 살육이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민족갈등의 상처를 만들며 내일을향해 죽음과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면서 인류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않기를 바란다고 경고. ○…부활절의 절정을 맞은 이날 수만명의 가톨릭 교도와 관광객들은 교황의 부활절 메시지를 듣고 축복을 받기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 ○…교황은 이에앞서 11일 밤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에서 수 천명의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활절 전야행사를 주재. 이날 설교에서 교황은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더이상 창조주의 영향력을 인정할 수 없게 됐다”고 경고. ○…교황은 9일 성 베드로 성당에서 추기경과 주교,신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제를 위한 예수승천 축일(성 목요일)미사를 갖는 것으로 부활절 행사를 시작. 교황은 이날 하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에 가진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것을 기념하기 위한 의식으로 로마 라테란 대성전에서 성직자 12명의 발을 씻어 주기도. ○…교황은 성 금요일인 10일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고 행진하는 의식을 거행. ○…영국의 켄터베리에선 조지 케리 켄터베리 대주교가 “과거의 폭력에 대한 원한과 기억은 평화에 대한 모색을 좌절시킬 수 있다”면서 부활절이 주는 용서와 이해의 의미를 강조. ○…예루살렘에선 부활절에 종종 발발하는 종교간 테러와 폭력사태를 대비,수천명의 무장 경찰과 군인이 추가로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펼치기도.
  • “6월 선거 필승” 강력한 야당 기치/전당대회 이모저모

    ◎1만1천여명 참석… 여당 연합공천 등 비난/요란한 행사 생략… 對與 투쟁 영상물 이채 한나라당이 4·10 전당대회를 통해 강력한 건전야당의 기치를내걸었다.당직자,대의원 등 1만1천여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에서 한나라당은합리적 견제와 비판적 협력으로 국정의 한 축을 이끌겠다는 각오를 다졌다.새로 출범한 총재단은 당내 결속과 단합을 통해 4·2재보선 압승의 여세를 6월 지방선거 승리로 몰아갈 것을 다짐했다. 행사의 절정은 趙淳총재와 李會昌 명예총재가 재추대되고 5명의 부총재가지명되는 순간이었다.이들은 趙총재와 李명예총재를 중심으로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했다. 趙총재는 취임사에서 “여권이 연합공천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아래 국민회의 자민련 국민신당 3당 야합을 획책하는 것은 망국적인 신(新)지역감정의 조장이며 지역 분할통치의 음모”라고 통렬히 비판했다.李명예총재는 치사에서 “정부 여당이 북풍이다 정계개편이 다하여 구시대 권력정치에만 열중하면 민주주의도 경제회복도 국민대통합도 실종될 것”이라며 정부여당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했다. 李漢東 부총재는 “총재를 중심으로 뭉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金潤煥 부총재는 “국익을 위해서는 협력을 아끼지 않겠지만 정권에 대해서는 야당의 자세를 확고히 지키는 건전하고 건강한 야당으로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李基澤 부총재는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된 조국에서 중앙청 수위라도 하고 싶다’고 했던 정신으로 당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열변을 토했다.辛相佑 부총재는 “허탈감과 좌절감을 벗어 던지고 집권여당과 당당한 경쟁을 통해 성장하자”고 촉구했다.金德龍 부총재는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기위해 새 출발을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趙총재의 가필로 논란을 일으킨 당헌당규개정안 부칙2조에 대해서는 金榮馹 제1사무부총장이 제안설명을 통해 “趙총재가 당무운영위에서 부칙2조가 대의원의 전대소집 요구를 배제한 의미가 아니며 ‘소집한다’는 ‘소집하여야 한다’는 뜻이란 점을 분명히해 조문상 오해를 완전 해소했다”고 보고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여당때 연예인이 동원된 요란한 식전행사가 간단한 난타공연과 ‘선구자’합창으로 대체됐다.현 정부 출범뒤 대여(對與)투쟁 상황을 담은 영상물을 방영,야세(野勢)를 과시하기도 했다.특히 玄敬大 헌정수호비상대책위원장과 李圭正 제2사무부총장이 金鍾泌 총리서리 체제의 위헌성을 공박하고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고발하는 성명을 각각 낭독,열기가 고조됐다. 4·2 재보선에서 당선된 朴槿惠 의원 등이 소개될 때는 승리를 자축하는 박수가 울려 퍼졌다.그러나 경제난을 감안,팡파레·축포 등 특수효과는 사용하지 않았다.여당때처럼 엄격한 출입통제나 경비병력도 눈에 띄지 않았다.
  • ‘眞景시대’ 사상·예술 총제적 조명

    ◎중국풍 탈피 ‘고유의 색’ 태동∼개화 분석/식민사관이 왜곡한 조선성리학도 재해석 우리 역사에서 진경시대(眞景時代)란 무엇인가.조선왕조 후기 우리 문화가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며 발전했던 1657년 숙종대에서부터 1800년 정조대에 이르는 125년간을 일컫는 말이다.진경문화는 영조 51년의 재위기간 동안 절정을 누렸다.최근 도서출판 돌베개에서 펴낸 ‘진경시대’(전2권)는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던 진경시대의 사상과 문화,예술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 첫 연구서란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등 관련학자 10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조선왕조는 중국의 주자성리학을 국시로 천명하며 개국한 나라다.그런 만큼 조선 전기에는 문화 전반에 중국풍이 만연했다.그러나 율곡 이이에 의해 조선성리학이 창안되면서 문화전반에 걸쳐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내는 운동이 전개됐다. 율곡의 평생지기인 송강 정철은 한글 가사문학으로 국문학 발전의서막을 장식했고,간이 최립은 독특한 문장형식으로 조선 한문학의 선구가됐다.그런가 하면 창강 조속에 의해 조선의 고유화풍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조속은 인조반정에 참여하기도 했던,조선성리학 이념에 투철했던 선비화가.그는 반정(反正)성공 후에는 전국의 명승지를 유람하며 시화로 이를 사생해 내는데 몰두했다.이 때 쓴 시와 그림은 진경시와 진경산수화의 한 단초가됐다.진경산수화의 경향은 자연스럽게 조선 풍속화의 출현으로 이어졌다.조선후기 풍속화는 중국 회화의 직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실제 생활모습과 풍속·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어 진경산수화와 함께 우리 회화의 독자적인 경지를 보여준다.진경시대에는 초상화에 있어서도 조선적인 도상관(圖像觀)이 확립되는 양식적인 변화가 뚜렷했다.숙종대를 전후한 진경시대전기의 초상화에서는 중국식의 채전(彩氈)이 사라지고,그 대신 의답(椅踏)이나 바닥에 조선의 단아한 화문석 돗자리가 등장했다.이는 요란하고 화려한 채전이 조선의 현실에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당시 조선성리학의 검박한 기풍과도 어울리지 않았기때문이다. 조선후기 문학운동사의 한 흐름으로 주목할만한 것이 중인계층의 위항문학(委巷文學)운동이다.위항문학운동은 사대부들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한시단(漢詩壇)에 중인 출신의 시인군이 대거 참여하면서 본격화된 것으로 18세기 정조대부터 문학운동의 대세를 이뤘다.이 위항문학인들은 새로운 시대사상인 북학사상을 수용,사대부계층을 대신하는 시대의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정조는 100여년 동안 사회를 주도해온 진경문화의 바탕 사상인 조선성리학이 사회적 기능을 다했음을 간파했다.청조 고증학을 받아들이려는 북학운동이 일어나자 정조는 규장각 제도를 개편하고 학문활동의 터전을 마련해주는등 적극적으로 지원했다.진경문화는 ‘문예군주’정조의 치세하에서 화려하게 대미를 장식하고 북학문화로 이어졌다. 조선성리학은 종종 조선후기의 사회발전을 저해하고 사대주의를 조장하는 피폐한 사상이라는 식으로 매도되기도 했다.이는 조선시대를 파당과 당쟁의 역사로만 기록한 왜곡된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은 바가 적지 않다.이 책은 이런 점을 직시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조선성리학과 그것에 뿌리를 대고 있는 진경문화에 대한 이해가 절실함을 웅변해 준다.
  • 美 콜로라도州 메사 베르데(세계 문화유산 순례:67)

    ◎1,500년전 절벽위에 세운 ‘인디언 도시’/4,000개 공동주택·종교시설 23곳… 관개설비까지/전성기때 7,000명 거주… 암굴주거지 600곳 압권 【메사 베르데(美 콜로라도주)〓金在暎 특파원】 사막같은 황야에선 뭐니뭐니 해도 녹색이 가장 그리운 색이다.‘녹색의 대지(臺地)’란 뜻의 지명 ‘메사베르데’에는 불모의 땅에 지친 백인 개척자들이 불현듯 눈앞에 나타난 녹색 고원에 대고 지른 반가운 환호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백인들은 시적(詩的)인 땅이름만 남기고 금방 자리를 떠버렸다.반면 이곳의 원주민 인디언들은 이름 대신 800년의 손때가 절인 삶과 문명의 유산을 남겼다.백인들은 메사 베르데의 녹색을 눈에서 사막의 잔상을 씻어내는 청량제 쯤으로 여긴 셈이나 인디언들은 이 녹색 대지에다 사막의 살아있는 저쪽 피안(彼岸)을 세웠던 것이다. 미 콜로라도주 남서부 밑바닥에 소재한 메사 베르데 인디언 유적은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 등 4개주 접경지역에 펼쳐졌던 아나사지(Anasazi)문명에 속한다.미국의 인디언 문화는 크게 태평양 연안,대분지,대초원,남서부 사막,동부 수목지 등 5개로 대별하며 남서부 문화 가운데 아나사지 문명은 부족의 명맥이 끊겼음에도 특히 강한 인상을 주고 있다. ○1888년 카우보이가 발견 반 불모지의 사막성 땅에 불쑥 솟아오른 암석대지인 ‘메사’는 몸체가 암석 절벽이고 위 봉우리는 평평한 고원으로 산 아닌 산이다.뉴멕시코,아리조나주에서 콜로라도주로 북상하는 도중에 많이 만나며 그중 뉴멕시코 북서쪽 끝 산 후안 분지에 많다.인디언 영화에 흔히 나오는 이 메사들은 특징은 막철분을 으깨 바른 것 같이 생생한 주황색 빛의 절벽인데 주변의 사막성 황무지와 어울려 위협적으로 보인다.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주를 움켜쥔 록키산맥의 끝자락으로 조금만 더 북상하면 4천m 고봉들이 곳곳에 솟아있다.메사 베르데란 이름은 1600년대 중·남아메리카에서 북상해온 스페인 정복자들이 선사했다.메사의 치렁치렁한 녹색 뒷머리를 보고 영탄조를 발한 이들도 막상 북쪽의 전면을 보고는 이 고원에 오르는 것을 단념했다.해발 2천m의 고지대지에서 그대로800m 단층애를 이룬 메사 전면이 너무 가파라서 그 안엔 탐험하더라도 어떤 유적이나 고대사회가 있을 성 싶지 않았던 것이다. 소나무,전나무 등의 녹색 잎이 물결치고 있는 메사 베르데는 거대한 산악지형이다.북에서 남으로 기울어진 이 지형은 십여개의 가파른 협곡 사이 몇곳에 평평한 메사가 놓여 있다.면적은 서울 2배가 넘는다.1888년 12월,잃어버린 소를 찾아 메사를 헤매던 2명의 카우보이들에 의해 1300년 이후 600년동안 잠자고 있던 아나사지 인디언 유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드넓은 메사에서 인디언의 삶터는 아주 조그만 부분에 불과했다.입구에서 10㎞는 족히 들어간 다음에 첫 흔적이 있고 35㎞는 더 가야 샤핀 메사의 주 근거지가 나온다.푸에블로 인디안의 메사 베르데 유적은 서기 500년부터 800년 동안 줄기차게 이어진 것으로 석기,역사기록 전무의 선사적 특징은 변동이 없으되 주거지 유형의 변화가 일목요연하게 잡혀진다.물을 담을 만큼 촘촘한 바구니를 유카 실로 엮었던 초기에는 지하에 방을 내고 나무잎과 흙으로 지붕을 인 움집에서살았다. 토기를 굽기 시작한 800년 무렵부터의 중기는 지상 가옥으로 변하면서 마을이 이뤄지고 집을 잇대어 짓는 단체구조로 발전했다.메사 베르데의 토기는 흰 바탕에 검은 무늬의 특이한 배합으로 눈길을 끈다.1100년부터는 진흙으로 겉마감한 ‘아파트형’ 아도비 흙집에 단체로 거주하는데 크게는 50개의 방이 갖춰져 있다. ○사다리 타고 창문 통해 출입 메사 대지의 대대적인 개간과 관개시설,공동주택,종교적 공동시설 등은 메사 베르데 문화의 절정기를 말해준다.전성기 때는 인구가 7천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유적 측면에서는 단연 말기에 지어진 암굴(岩窟) 공동주택이 압권이다.메사 안에는 4천개소의 유적이 파악되고 있는데 그중 고원 밑 노천굴에 세워진 주거지만 600개에 달한다.굴의 벽을 천정,바닥 등으로 활용하는 암굴주거 시설은 대부분 방 수가 5개 이하지만 제일 큰 ‘클리프 팰리스(절벽궁전)’는 217개의 방에 종교적 의식이 거행되던 원형의 반지하실인 ‘키바’(Kiva)가 23개나 있다.바닥을 몇개의 테라스로 층을 나눴으며방도 다층구조를 가졌다.인디언 풍습대로 방은 1평 남짓 작은 것으로 창문과 나무 사다리로 출입했다. 롱 하우스는 방이 150개,스푸르스 하우스는 114개에 달하며 가파른 소다 협곡을 마주하고 있는 35개 방의 발코니 하우스는 10미터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메사 베르데의 전체면적은 211㎢로 190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이 유적은 80년대 들어서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적인 문화유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여행 가이드/콜로라도 산맥 끝자락 4개주 교차점에 위치 메사 베르데는 콜로라도,뉴멕시코,아리조나,유타주 등 콜로라도산맥 하단부 4개주가 직각으로 만나는 교차점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아리조나주 북부 그랜드캐년에서 연방국도 160번을 타고 350㎞ 북동쪽에 있으며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는 300㎞,콜로라도 덴버에서는 550㎞ 떨어져 있다. 인근에 콜로라도주 남동부의 상당히 큰 도시인 코르테즈와 두랑고가 있다.
  • 국산­할리우드 수준작 대격돌

    ◎한국영화 ‘강원도의 힘’ ‘남자이야기’/‘아이언마스크’ 스타 내세운 호화대작/드물게 소개되는 호주영화도 개봉 한동안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들의 대리전 무대처럼 보이던 극장가가 4일 분위기를 일신한다.수상결과에 따라 일부 영화가 막을 내리거나 상영관 수가 줄면서 그 빈자리를 새 영화들이 채우게 된 것. 이에 따른 개봉작은 무려 7편으로 이중에는 한국영화로 ‘강원도의 힘’과 ‘남자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나머지는 스타를 내세운 전형적인 할리우드 작품(‘아이언 마스크’‘스피어’‘미스터 커티’)이거나 개성이 강한 독립영화(‘후드럼’),국내에 드물게 소개되는 호주영화(‘내가 쓴 것’)등이다. ‘강원도의 힘’(미라신코리아 제작)은 지난 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로 데뷔해 국내외 평단에서 격찬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두번째 작품.90년대 말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30대 유부남 대학강사와 여대생의 엇갈린 사랑이라는 형태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같은 시간,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따로 그려낸다.곧 ‘시공간 해체’라는 새로운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결국은 관객 스스로 영화를 재구성해 해석하게끔 유도한다.흥행결과는 미지수이지만 충무로에서는 다음달 열리는 제51회 칸 국제영화제에 공식초청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작품이다. 할리우드 영화 ‘아이언 마스크’는 국내에서 인기절정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간판으로 삼고,제레미 아이언스·존 말코비치·제라르 드파르디유 등 연기파들을 조연으로 배치한 호화 대작이다.알렉상드르 듀마의 고전소설인 ‘달타냥 이야기’3부작 가운데 ‘철가면’(영어제목 The Man in the Iron Mask)을 영화로 만들어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하고,선과 악을 함께 연기하는 디카프리오의 1인2역도볼 만하다. ‘스피어’도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 원작에 더스틴 호프만·샤론 스톤·사무엘 잭슨 등 톱스타를 동원한 점에서는 ‘아이언 마스크’에 뒤지지 않는다. 우피 골드버그가 주연을 맡은 ‘미스터 커티’는 여성의 성공담을 그린 코미디영화.여성(게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한 증권투자 상담가가 가상의 동업자인 백인남자를 앞세워 성공을 거머쥔다는 내용이다.참신한 소재에 성·인종차별을 깨부수는 주제여서 상당히 유쾌함을 줄 만한데도 줄거리에 사실성이 결여돼 가슴 후련한 웃음을 끌어내지는 못한다. 한편 ‘후드럼’은 지난 30년대 뉴욕 할렘가에서 실제 발생한 백인·흑인갱단의 세력다툼을 사실적으로 담았다.갱스터무비의 틀을 가졌지만 흑인들이 만들고 흑인의 눈으로 해석한 흑인영화이다.백인갱단의 흑인거주지 침입을 막아낸 주인공 ‘범피’ 존슨을 영웅이면서도 인간적 고뇌에 번민하는 인물로 그렸다. 이밖에 호주영화 ‘내가 쓴 것’은 예술 또는 예술가적인 삶과 인간심성의 연관성을 고급스럽게 포장했지만 응집력이 부족해 미스터리팬을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듯.
  • 빨치산 토벌(대한민국 50년:13)

    ◎49년 ‘레드 킬러 작전’ 3,400여명 사살·생포/군검,지리·오대·태백산일대 주민 90% ‘적색’ 분류/48년부터 6·25휴전후까지 산악지대서 ‘소탕전투’ ‘낮에는 대한민국,밤에는 인민공화국’. 빨치산의 점령지역을 일컫는 표현이다.낮에는 군경의 치안아래 있으나 밤만 되면 빨치산의 점령구로 바뀌었다.대한민국 영토이면서도 한국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곳.48년부터 50년 사이 일부 남한지역은 이처럼 사실상‘무정부 상태’였다. 봄바람이 북풍을 녹이기 시작하던 49년 3월.1백여명의 빨치산은 전남 곡성군에서 군경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경찰 사망자 수는 1백여명이고 통신도 파괴됐다.보성 화순 순천 나주 함평 구례 영광 등에서도 비슷한 전투가 잇따랐다.그해 8월 전남 화순도 더위와 피비린내로 뒤덮였다.3백여명의 빨치산은 광부들과 연합해 철로,통신시설을 차단한뒤 건물을 불태우고 경찰관을 무참히 학살했다.호남지역 빨치산 활동의 중심은 역시 험준한 산세를 갖고있는 지리산 일대. ○48년 ‘여순사건’서 촉발 경상북도도 빨치산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이다.빨치산이 은신해 있던 산의 이름을 딴 ‘일월산 부대’의 지휘자는 유명한 金達三이었다.일제 또는 미제 소총으로 무장한 빨치산은 경찰서와 군부대를 습격했다.국군 1개 중대는 빨치산의 공격으로 4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경북지역 가운데 봉화 영덕 영주 등의 동북지역에서 빨치산은 발호했다. 대중과 연계해 무장투쟁을 벌이는 게릴라를 일컫는 빨치산은 48년 10월의 여순사건으로 촉발됐다.토벌 군경에 쫓겨 지리산으로 들어간 반란군들은 소규모 유격전을 벌였다.49년 6월에 접어들면서 빨치산은 더위 만큼 날뛰었다.조국전선을 결성한 북한이 게릴라를 대거 남파했기 때문이었다.북한은 게릴라 전문양성기관인 ‘강동정치학원’을 설치해 게릴라들을 훈련시킨뒤 남으로 내려보냈다.때로는 남한에서의 투쟁을 독려하고 고무하기 위해 남한내 빨치산을 북으로 불러 올려 교육시켰다.강원도지역도 38선을 넘어온 북한군이 빨치산들과 어울려 유격활동을 했지만 남쪽지역에 비해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빨치산의 활동은 49년 9월들어 절정에 달했다.정규군 편제인 병단을 만드는가 하면 중대 소대 분대도 편성됐다.심지어 여단으로 편성되기도 했다.무기와 탄약은 북한으로부터 보급받았으며 생활은 현지보급에 의존했다.산악을 근거지로 한 빨치산들은 이즈음해서 산을 내려온다.경찰서와 군부대를 공격하는 ‘아성(牙城)공격’이다.목포형무소에서는 폭동이 발생해 1천4백여명의 죄수 가운데 4백여명이 탈옥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따라 李承晩 정부는 대대적인 빨치산 토벌작전에 나선다.전국을 지리산,오대산,태백산 지구로 나눠 빨치산 토벌 동계 대공세를 벌였다.38선에서의 대치와 충돌 못지 않게 남한 내부의 산악지대는 ‘전장(戰場)’이었던 것이다.빨치산의 수는 1만여명.하지만 빨치산과의 전투보다 추위와 눈보라와의 싸움은 토벌을 더욱 힘들게 했다.빨치산은 지리산이나 일월산처럼 산세가 험하거나 외진 곳을 주 근거지로 삼았던 탓이다.빨치산을 추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당시 관계자들은 회고하고 있다.군경은 주민 가운데 90%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했을 정도로 주민들은 빨치산 편으로 분류됐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주민들은 빨치산에 대한 정보를 군경에 제공하기를 거부했다.빨치산의 보복과 경찰에 대한 반감·증오가 얽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월 6일 李承晩 대통령이 방송에 모습을 드러냈다.“최단시일에 공비소탕작전을 끝내고 명년 초에 후방치안문제로 유보해오던 지방자치단체의 선거및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실시한다”고 빨치산 소탕작전을 독촉하는 발언을 했다.토벌군은 마을을 불살라 유격대를 주민들과 분리시키는 ‘소진(燒盡)소개(疎開)작전’으로 빨치산의 끈질긴 저항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이현상 체포로 “작전 끝” 정부군의 진압에 49년 겨울을 지나면서 게릴라들은 차츰 소멸돼 갔다.12월 15일 지리산에서 벌어진 빨치산 토벌작전인 ‘레드 킬러’로 1천7백여명의 빨치산이 사망했고 1천7백여명이 생포됐으며 132명이 귀순했다.이에 앞선 그해 10월 좌파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던 남로당에 대한 등록취소령도 남한내 빨치산 활동에 조종(弔鍾)을 울리는데 일조를 했다.50년 봄으로 접어들면서 빨치산의 활동은 잠잠해졌다.마치 6월의 한국전쟁을 앞둔 폭풍전야의 고요함이었다. 빨치산 토벌작전은 한국전쟁이 끝난후까지도 여전히 계속됐다.53년 5월17일 빨치산 소탕 작전사령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틀림없이지리산 벽점골 비트에 잠복중입니다”.작전과장의 설명에 장교들은 침을 삼켰다.남한내 빨치산의 총지휘자이자 충청 경상 전라도를 넘나들며 경찰서와 관공서를 습격했던 남부군단 사령관 李鉉相.종적을 감춘지 3년만에 그의 은신처를 알아낸 것이다.여순사건의 지휘자였던 金智會 등을 체포해서 밝혀낸 쾌거였다. 치밀한 작전계획 아래 포위망을 좁힌 것은 그로부터 5개월뒤.李鉉相을 체포하기 위해 동원된 병력은 4개 연대였다.9월 18일의 새벽바람을 가르며 1연대는 운봉을 출발해 남원군 산내면을 경유해 반성리에 포진했으며 3연대는 노고단을 경유에 반야봉으로,5연대는 함양을 경유해 백무동 능선을 압박해 나갔다. 2연대는 돌격대 역할을 맡았다.바스락 소리에 돌격대는 숨을 멈췄고 수십미터 앞에는 잡초를 헤치는움직임이 포착됐다.빨치산 3명이 조금씩 움직였고 거리가 5m 앞으로 좁혀졌을때 돌격대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숨진 빨치산가운데 한명이 李鉉相.이로써 기나긴 3년동안의 빨치산과의 전쟁은 끝났다.당시 李承晩 대통령이 완전히 성공을 거둔 유일한 것이 빨치산 토벌이었다. ◎약간의 마을 파괴” 미 반공시각 파악/일부 국내학자들 “지금이라도 진산규명” 주장/“민족사 정립 차원 특별법 제정해야” 빨치산은 한국전쟁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빨치산진압작전은 ‘모조리 죽이고,모조리 태우고,모조리 빼앗는(殺光,燒光,槍光)’다는 ‘삼광(三光)작전’.일본군이 만주 및 한만 국경지역에서 조선과 중국의 항일 게릴라들을 토벌할 때 사용하던 전술이었다. 일부 마을에서는 게릴라가 아닌 민간인을 대량으로 죽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군경의 초토화 정책에 따른 것이다.49년 경남 하동과 경북 문경에서는 국군이 마을사람 수백명을 모아놓고 집단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국회에서도 “민중들의 삶의 근거지를 빼앗고 좌익으로 몰고 있다”는 비난이 제기됐다.李靑天 국방위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진상조사단까지 구성돼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으나 ‘빨갱이 소탕’이라는 지상명제에 밀렸다. 당시 주한미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영사가 본국에 타전한 보고서는 “별로눈에 띠지 않는 약간의 마을 파괴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드럼라이트영사의 보고서는 다분히 반공논리에 의해 작성된 측면이 많다.“공산주의의 위협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비공산주의자 청년들을 가려 뽑아 그들을 좌익과 같이 견고하고 무자비한 행동에 맞설 수 있도록 조직화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40여년이 흐른 지금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이제라도 진상규명을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특별법을 제정해 ‘민족사 정립을 위한진실규명 국민위원회’같은 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제주 4·3사건의 피해자·유가족 명예회복을 위해 국회가 요즘들어 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4·3사건과 빨치산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져 50년동안 슬픔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 러시아 劇문학의 내력 관조/톨스토이의 ‘어둠의 힘’등 9편 소개

    ◎17세기 이후 대표작품 특징 해부/시대배경과 발전·쇠퇴 상관 분석 러시아 극(劇)문학의 진수를 소개한 작품집 ‘러시아 희곡’(전2권,조주관 등 옮김)이 도서출판 열린책들에서 나왔다.수록작품은 폰비진의 ‘미성년’,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푸쉬킨의 ‘보리스 고두노프’,레르몬토프의 ‘가면 무도회’,고골의 ‘검찰관’,투르게네프의 ‘시골에서 한 달’,오스트로프스키의 ‘뇌우’,톨스토이의 ‘어둠의 힘’,체호프의‘벚나무 동산’등 9편.이 구체적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은 17세기 서구 무대극의 모방으로부터 성립된 러시아 극문학이 세계 극예술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 내력을 읽을 수 있다. 18세기 러시아 최고의 희극작가로 꼽히는 폰비진의 ‘미성년’은 선량한 신부감과 그녀의 상속재산을 노리는 임시보호자,이들을 혼내주는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 작가의 계몽주의적 의도를 관철시킨 작품이다. 그리보예도프는 리얼리즘 희곡을 통해 러시아 연극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인물.작품의 반은 속담이 되어야 한다는 푸쉬킨의 말처럼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에 나오는 수많은 대사들은 러시아의 속담과 경구가 되고 있다. 심리주의극의 전범은 이후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쉬킨에 의해 제시됐다. 푸쉬킨 스스로 낭만주의적 비극이라 이름붙인 ‘보리스 고두노프’는 전통적 희곡 형식을 과감히 파괴,장이나 막의 구분없이 23개의 에피소드로 이뤄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가면무도회’는 19세기 낭만주의 작가 레르몬토프의 대표작.죄없는 아내에 대한 의심과 모욕당한 신의,질투심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오델로’를 연상시킨다. 고골은 틀에 박힌 희곡을 거부하고 일상생활 속의 비속함과 권태,자기만족 등을 풍자적으로 묘사,가장 현실감 있는 러시아인의 모습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검찰관’은 엉뚱한 사람을 도시를 감찰하러 온 관리로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잡다한 사건들을 통해 관료주의 사회의 도덕성 상실을 꼬집은 작품이다. 투르게네프의 극작품들은 극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오히려 산문에나 어울릴 듯한 비(非)극적 요소들로 가득한 것이 특징. 그의 글은 당시 유행하던 격언극이나 살롱희곡 등과 비슷하다.‘시골에서한 달’은 그의 마지막 희곡이다. 오스트로프스키는 ‘러시아 민중극의 창시자’로 불린다.‘뇌우’는 발단·전개·위기·절정·파국이라는 고전적인 5막극의 전개방식에 충실한 비극이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민중의 교화를 목적으로 희곡을 썼다.그는 미완성 초고들을 포함해 16편의 희곡을 남겼다. ‘어둠의 힘’은 불륜과 살인 등 어둠속에서 주인공 니키타가 양심의 저항을 통해 죄를 고백하고 갱생의 길을 찾는 모습을 그린 작품.현대극의 정초를 세운 극작가로 평가받는 체호프는 톨스토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그는 ‘벚나무 동산’에서 극적인 사건의 부재,말과 행위의 괴리,내적 흐름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심리주의를 넘어선 객관주의를 보여준다. 러시아의 극문학이 서구에 비해 늦게 발달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먼저 몽고족의 침입으로 인한 3세기에 걸친 타타르의 지배와 폭군 이반 사후의 동란기 등으로 러시아가 정치·문화적으로 서구와 단절되었던 점을 들 수 있다.또한 중세 유럽에서 발달했던 제례극(祭禮劇)이나 성사극(聖史劇)과 같은 종교극이 러시아 정교하에서 발달할 수 없었다는 것도 그 한 이유다. 그러나 러시아 극은 17세기 말 알렉세이 황제의 후원으로 융성기를 맞았다. 그동안 정교와 황실의 탄압을 받아왔던 러시아 전통극 쓰꼬모로흐와 가장먼저 서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인 키예프 지방에서 발달하기 시작한 학교극(學校劇)의 성행에 힘입어 새로운 종교극의 형태로 그 모습을 정비하게 된 것.이후 극을 서구화와 절대권력의 강화를 위한 선전도구로 인식한 표트르 대제때에 이르러 세속극이 비로소 무대에 오른다.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 프로코 포비치의 ‘성 블라지미르의 희비극’이다. 한편 러시아는 광범위한 영토확장과 함께 절대왕권의 절정에 이른 예카테리나 2세 시대에 유럽의 강국으로 부상한다.이와 함께 러시아 극문학도 전성기를 맞게 된다.
  • 제일제당그룹 종합연 이철훈 박사(세계 최고에 도전한다:12)

    ◎초강력 ‘천연 미생물농약’ 결실 눈앞/부작용 없고 기존 항균제보다 활성 최고 1천배/세계최대 제약·농약사 ‘노바티스’에 기술 수출/92년엔 레지오넬라균만 죽이는 산물질 ‘AL072’ 개발 경기도 이천의 제일제당그룹 종합연구소 이철훈 박사(42·미생물탐색연구그룹장)는 한달에 한번꼴로 연구원 3∼4명과 함께 ‘토양채취여행’을 떠난다.30∼40㎞ 차를 몰고 가다가 내려 흙을 한삽 퍼담은 뒤 또 다른 길을 재촉한다.속모르는 남이 보면 부러워할 일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고행길이나 다름 없다. 하루에 야산 3개정도 넘는 일은 기본이고 난지도같은 쓰레기장을 포함,악취가 진동하고 세균이 우글거리는 하수·분뇨처리장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탓이다.보통 3박4일간의 여행에서는 700삽의 흙을 채취한다.지금까지 10년째 전국의 산하를 누벼 모두 70여만삽의 흙을 모았다. 이박사는 86년 독일 괴팅겐대 인간유전학연구소 박사과정때 남성불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인 ‘프로타민단백질’의 유전자 구조와 발현과정을 세계 처음으로 규명,국제 유전학계의 관심을 모았던 인물.88년 박사학위를 받을 때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최우등졸업’(summa cum laude)의 영광도 안았다. ○‘토양미생물 탐색’ 첫 가동 고국에 돌아온 이박사가 토양채취여행에 나선 것은 87년 국내에 물질특허제가 도입되면서 모방 위주의 상품개발이 더는 불가능해졌다는 판단 때문.그는 89년 물질특허를 비켜가기 위한 방안으로 ‘토양 미생물 탐색’이란 이색 프로젝트를 국내 산업계에서는 처음으로 가동했다. 토양 미생물 탐색은 우리 주변의 흙속에서 찾아 낸 수없이 많은 토양균 가운데 어떤 것이 인간에게 유익한 물질을 만들어 내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어떤 토양균이 인간에게 유익한 항생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확인되면 그균을 분리해 종류를 규명하고,그 균이 만들어내는 항생물질이 새로운 것인지를 밝히는 일이 토양 미생물 탐색의 주된 관심사다. 보통 2만∼3만개의 토양균을 탐색하면 1∼2개의 쓸모있는 균이 나오지만,이 유용균이 인간에게 필요한 신물질이 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땅속의 미생물을 찾아 내어 신약으로 만들 수 있는 확률은 10만분의 1도 안될 만큼토양 미생물 탐색은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는 작업이다. 이박사는 G7프로젝트의 하나로 토양 미생물 탐색에 나선지 3년만인 92년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경북 포항에서 떠낸 토양에서 ‘스트렙토마이세스’라는 방선균이 분비하는 신물질 ‘AL072’를 찾아 냈다. 이 항생물질은 수많은 세균과 곰팡이중에서 레지오넬라균만을 독성없이 죽이는 독특한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또 0.2PPM의 매우 낮은 농도로도 일반 냉각수에 서식하는 레지오넬라 양의 100배나 되는 균을 박멸하는 탁월한 효과를 보였다.그러면서도 부식성과 독성이 강한 기존의 염소계 화학살균제와 달리 인체나 환경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았다. 레지오넬라균은 여름철 대형건물의 냉각탑수에 서식하는 세균.물방울입자를 통해 호흡기로 감염되어 치사율이 20%에 이른다.84년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23명이 감염되어 이중 4명이 숨진 사례도 있다.“연구과정에는 늘 실패의 가능성이 내재하지요.기업체는 특히 단기적인 평가를 하기때문에 열심히 해도결과가 시원찮으면 견디기 힘든 곳입니다.회사측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끝까지 도와준게 큰 힘이 됐습니다”.이박사는 지난해 4월 이 신물질을 원료로 삼아 대형건물의 냉각수용 천연살균소독제를 선보였다.이 레지오넬라 천연 살균소독제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온 연간 1백50억원 규모의 염소계 화학살균제 시장을 대체할 것으로 전망된다.이 신물질 관련 기술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 15개국에 특허 출원됐다. 흙에서 ‘21세기 노다지’를 찾는 이박사의 노력은 국제 농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환경보전형 천연생물농약’분야에서도 대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박사는 지난 94년 충북 문촌지역에서 곰팡이를 완전 박멸하는 새로운 구조의 ‘슈도모나스’라는 항진균성 미생물을 찾아냈다.그리고 이것에서 꿈의 신물질로 불리는 ‘세파시딘A’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놀랍게도 세파시딘A는 기존의 항진균제보다 낮게는 50배,높게는 1천배 뛰어난 활성을 보였습니다.세파시딘A로 박멸되지 않는 곰팡이를 찾기 힘들정도였지요.‘앤티 바이오틱스’같은 세계적학술지는 이를 미생물학계의 대사건으로 소개했습니다.그러나 문제가 생겼어요.동물 실험을 해보니 혈액내단백질이 세파시딘A와 엉겨 붙는 바람에 약효가 형편없이 떨어지더라구요” ○연 3억불 로열티 수입 예상 그는 동물실험결과에 낙담한 나머지 한때 상품화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그러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94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 미생물대사체학회’에 나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학회에서 돌아와 첫 출근해보니 연구실에 팩스 한장이 기다리고 있더군요.세계 최대의 농약회사인 스위스 시바가익사가 보낸 것이었습니다.천연 미생물 농약을 개발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찾던 대상이 시바시딘A같은 물질이라며 공동 개발하자는 것이었지요.뜻밖의 제안에 정말 가슴이 떨리더라구요” 시바가익사는 96년 산도스와 합병해 연간 매출액이 1백70억달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제약·농약회사인 노바티스란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이박사와 노바티스는 세파시딘A를 농작물 뿌리의 곰팡이를 박멸하는 환경친화적 생물농약으로 개발키로 합의했다.지난해말에는 이 신물질의 화분실험과 온실실험도 모두 마쳤다. 온실실험에서 세파시딘A의 방제효과는 92%로,기존 화학살균제의 60%선을 훨씬 웃도는 대성공작이었다.오는 4∼8월에는 미국의 대규모 목화농장에서 마지막 현장실험을 거쳐 2001년쯤 상품화할 계획이다.한국의 첫 미생물농약기술수출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이박사는 이미 20개국에 이 천연미생물의 균,신물질,제조방법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다. 전문가들은 2000년대 초반 전세계 살균제 시장은 미생물제제가 기존 화학제제를 완전 대체하면서 연간 1백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이중 뿌리 살균제 시장의 점유율은 30% 안팎.이박사가 이 신물질의 기술 수출료를 12%만 받아도 연간 로열티수입은 3억달러(약 3천억원)를 훨씬 웃돌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이박사의 궁극적인 소망은 좋은 신약을 개발하는 것이다.아플 때 먹어서 부작용없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 10년 앞을 내다보고 계속 뛸 작정이다. ◎무한가능성의 미생물산업/의약품·농약·에너지·환경오염처리 등 다양/2000년 시장규모 500억∼1,000억불 전망 1674년 레벤 훅이 현미경으로 미생물의 존재를 처음 확인한 이후 32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생물을 병원균쯤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미생물은 현재 뿐 아니라 미래에도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편안하게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생명체다. 곰팡이·박테리아·바이러스 등 주로 1개의 세포로 이뤄진 미생물이 활용되는 분야는 의약품,농약,신소재,에너지생산,환경오염처리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의약품 분야에서는 1920년대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을 계기로 항생물질의 개념이 등장한 이래 스트렙토마이신,테트라사이클린,반코마이신,에리스로마이신 등의 항세균물질과 암포테리신 등의 항곰팡이 물질들이 상품으로 나와 질병 예방과 치료에 큰 구실을 했다. 최근에는 고지혈증치료제인 메발로친,로바스타틴과 함께 장기 이식수술뒤의 면역억제제인 사이클로스포린A,타크로림스(FK506) 등이 개발됨으로써 미생물을 이용한 신약시대가 절정기를 맞고 있다.또한 전세계적으로 미생물을이용한 항암제,항에이즈치료제,항결핵제,노화방지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머잖은 미래에 수많은 미생물 신약이 인간의 고통을 해소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미생물은 환경분야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중금속을 함유한 폐수의 처리에도 필수적이며 해상의 유출된 기름을 제거하는 데도 이용된다. 이와 함께 살충제·제초제·살균제 등의 농약에도 수많은 미생물 물질이들어가며 최근에는 미생물 자체를 농약으로 쓰는 환경친화적 생물농약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전세계의 미생물 분야 시장은 80년대 초반 1백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나 2000년에는 5백억∼1천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철훈 박사 약력 △56.9.서울 출생 △80.2.서울대 약학대학 졸업 △82.2.성균관대 대학원(생물학석사) △88.일 괴팅겐대 인간유전학연구소 이학박사 △86.남성불임 원인물질 ‘프로타민단백질’의 유전자 구조 규명 △87∼88.독일 괴팅겐대 의과대학 전임연구원 △88∼현재.제일제당 발효연구실 미생물탐색연구그룹장 △88.독일 괴팅겐대 박사과정 최우등 졸업 △94.라지오넬라균 선택적 사멸 무독성 신물질 ‘AL702’ 발굴,천연 항진균물질 ‘세파시딘A’ 추출
  • 백제를 다시 본다/소외되어온 백제사 재조명

    ◎서울신문 연재물 이해 쉽도록 풀이 1993년 12월 백제의 마지막 왕도 옛 사비땅 부여에서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가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국립부여박물관이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발굴한 이 금동향로는 침체된 백제사 연구에한 줄기 빛을 던져주는 주목할만한 고고학적 성과였다.최근 출간된 ‘백제를 다시본다’(도서출판 주류성)는 바로 이 금동향로 발굴을 계기로 새롭게 되돌아본 백제사이자 백제문화사다.이 책은 지난 94년 1월14일부터 9월30일까지 서울신문에 30회에 걸쳐 연재됐던 글 ‘백제를 다시 본다’를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한 권에 묶은 것. 편저자인 서울대 최몽룡 교수를 비롯 이기동(동국대)·최무장(건국대)·전상운(성신여대)·이종철(국립전주박물관)·강우방(국립경주박물관)등 전문학자 20명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다산 정약용에 따르면 백제는 고대 삼국 중 가장 강대한 국가였다.그럼에도 우리 학계의 백제사 연구는 ‘백제’라는 국호의 기원이나 건국집단의 계통에 관해서 조차 합일된 견해가 없을 정도로 지리멸렬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우리 고대사에 있어 백제사는 뒷전에 밀려난 ‘잊혀진 역사’였다.‘백제를 다시 본다’는 이러한 백제사 연구의 현주소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한다.이 책은 고고학·종교학·공예·민속·언어·성곽과 복식에 이르기까지 백제문화 전반을 다룬다.기존의 백제사 관련서들은 한문투로 내용이 어렵고 빡빡한 것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전문가 중심의 이해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또한 그동안 역사서 시장을 주도해온 대중적인 책들은 학계의 연구를 객관적인 성과로 이끌어내기에는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이 책은 비록 논문의 형식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30편에 이르는 백제사 전문가의 글들을 통해 학계의 연구성과와 수준 그리고 새로운 전망까지 담아낸다.그런 점에서 적극적인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특히 각 편의 첫 머리에는 신문연재를 담당했던 황규호(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서동철(현 서울신문 정치부 기자)2인의 간략한 해설을 붙여 백제사 이해의 길라잡이 구실을 하도록 했다. 이 책은 백제사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있지만 초점은 웅진시대를 마무리짓는 538년부터 660년 백제 멸망때까지의 사비시대에 맞춰져 있다.사비시대는 세계적인 보물로 평가받는 금동대향로를 제작하는 등 백제문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이러한 사비시대를 중심으로 백제사를 조명,패망한 나라라는 원죄에 묶여 소외돼온 백제사의 올바른 상을 정립하겠다는 것이 이 책의 기획의도다.그동안 백제는 흔히 나약한 고대국가로 묘사돼 왔다.그러나 백제가 멸망할 당시의 인구가 76만호로서 같은 시기 고구려의 69만호보다 많았던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백제는 강성한 국가였다.이 책은 백제가 비록 당이라는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에게 무참히 패망했지만 끝내 민족의 자존을 지킨 ‘정신적 선진국’이었음을 철저한 고증과 문헌비판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 일 중년 ‘자살 신드롬’/경제난에 막막한 생계 비관

    ◎현대사회 도전의욕도 상실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전후 베이붐 세대 가장들 사이에 경제난에 따른 자살사건이 자주 발생하자 심리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중년 자살 증후군’으로 규정하고 있다. 최근 수개월동안 재정파탄 및 불황과 관련된 비관자살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일본열도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현재 일본의 실업률은 3.5%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하순 빚더미에 올라 앉은 소규모 자동차부품회사 경영인 3명이 도쿄(동경)서부의 한 호텔 각방에 따로 따로 투숙,동시에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이보다 1주일 전에는 자민당소속의 아라이 쇼케이(신정장경)의원(50)이 불법 증권거래 혐의로 조사를 받게되자 도쿄의 한 호텔방에서 목매 자살했다. 지난 90년대초 거품경제시대가 끝난 이래 일본의 자살률은 꾸준히 증가해왔다.지난 96년 기업체 간부들의 자살은 478건으로 전년도보다 16% 이상 늘어났고 2만3천건을 넘은 전체 자살건수의 2%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일본경찰청 연례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심리학자들은 현재 5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적,경제적 문제에서 파생하는 정신적,신체적 스트레스,그리고 그와 연관된 가정문제로 점차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문제평론가 오자와 료코씨는 “베이붐 세대의 절정기는 국가에 도전하고 학원 및 사회의 자유화를 외쳤던 학생운동시기였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지금 그들은 허무주의에 빠져 젊은날의 귀속의식을 상실한 채 투쟁정신을 잃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 벚꽃도 4∼15일 빨리 핀다/서귀포 14일 개화

    ◎진해 하순쯤 절정 개나리·진달래에 이어 벚꽃도 평년보다 4∼15일 가량 빨리 필 전망이다. 기상청은 6일 “2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1.7∼4.4도 높았고 3월에도 고온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벚꽃의 개화시기가 빨라지겠다”고 밝혔다. 제주 등 일부지방에서는 이미 벚꽃이 피었지만 품종,수령,장소 등 기상청이 정한 표준 관측목을 기준으로 할 때 벚꽂의 개화전선은 오는 14일 서귀포와 제주에서 시작돼 남해안 20일,남부지방은 이달 하순,중부지방 4월 상순 등의 순으로 북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해 벚꽃놀이는 3월 하순 후반이면 가능하겠다.
  • 로마에서 중국까지/장­노엘 로베르 지음(화제의 책)

    ◎고대 동서양 교류의 역사 추적 극서의 로마에서 극동의 중국에 걸쳐 이뤄진 고대 동서양 교류의 역사를 기록.166년은 로마인들이 중국에 첫 발을 디딘 해. 세계통치라는 로마의 사명을 천명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사신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후한의 황제 환제의 궁전을 방문한 것이다. 이 인류 역사상 첫 동서간의 만남은 당시 세계를 분할하고 있던 4개의 대제국,즉 로마·파르티아·쿠샨,그리고 세리카라고 불린 중국의 평화공존 아래 이뤄졌다. 이 책은 우선 그 만남의 전사부터 소개한다. 1세기 초 한왕조의 중국은 절정기에 있었고,쿠샨왕조는 번영을 구가했으며,파르티아도 강철같이 그들의 영토를 지키고 있었다.그러나 서양에서 극동에 이르는 교류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또 다른 조건이 필요했다.지중해 연안지역에서도 통일과 평화와 번영을 확보해야 했던 것이다.이는 대서양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 영역을 확장해나간 강대국 로마에 의해 실현됐다. 이 책은 또한 당시 로마와 중국이 상대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신화와 전설을 통해 밝힌다.여기서 주목할 것은 근대 이후에 일반화된 ‘오리엔탈리즘’이나 ‘옥시덴탈리즘’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로마는 중국을 비단을 생산하는 풍요로움으로 가득찬 황금의 나라로 보았고,중국은 로마를 도교적 이상국가 곧 무릉도원으로 여겼다.이 책을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는 것이 아니라 동방과의 교류를 원활히 할 수 있는 방향,곧 오리엔트로 집중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와 팔미라이다. 프랑스의 고대 로마사 연구가인 로베르는 이 두 도시의 흥망성쇠를 마치 한편의 극적인 역사소설처럼 그린다.조성애 옮김 이산 1만2천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