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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워 입어? 브라 ~ 보

    란제리 브랜드인 트라이엄프사가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로 쉽게 데워서 입을 수 있는 브래지어를 출시했다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최근 보도했다. 이 제품은 환경친화적인 젤리 모양의 겔을 패드에 삽입해 만들었는데 이 겔은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로 쉽게 데울 수 있는 물질이다. 또 이 제품은 겨울용 모피 목도리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트라이엄프사는 이번에 출시한 제품을 사용하면 겨울철 난방 사용을 줄일 수 있어 지구온난화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정부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겨울철 실내온도를 섭씨 20도 이하로 낮추도록 권고하고 있고 지난 여름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에어컨 사용을 줄이려고 넥타이를 매지 않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트라이엄프사는 에너지 절약을 포함한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대량생산하기에 앞서 이 브래지어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이 제품을 일반인에게 판매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반바지와 세트로 착용하기에 어울리는 이 제품은 일반 브래지어에 비해 다소 크지만 세련된 디자인을 사용했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연합뉴스
  • [5만원의 행복] 단풍구경 못한 당신 달래며 은행나뭇잎 비가 내리네

    [5만원의 행복] 단풍구경 못한 당신 달래며 은행나뭇잎 비가 내리네

    꼭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서울 근교에도 훌륭한 여행지가 많다. 특히 경기도 양평 주변에는 넉넉한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운길산 수종사, 아이들의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서울종합촬영소, 우리의 영 원한 학자인 다산 정약용 생가, 물고기 를 맨손으로 잡을 수 있는 경기도 민물고기연구소와 각종 갤러리 등 많은 볼거리를 가지고 있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가을 끝자락을 붙잡는 수종사·여유당 ●일찍 일어나야 더 멋진 여행을∼ 일단 양평일대는 차량 정체로 소문난 곳이다. 특히 당일 여행의 경우 무조건 아침 일찍 출발해야한다. 그래야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동네에서 파는 1000원짜리 김밥이라도 좋다. 김밥 6줄과 음료수, 과자 등을 사서 출발, 차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시간을 절약함과 동시에 돈도 아낄 수 있다. 북한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제일 먼저 들를 곳이 다산 정약용생가. ●학자의 숨결을 느끼며 아침 9시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도 없고 한적해서 좋았다.“아빠, 이게 수원 화성을 쌓을 때 썼던 거중기예요.”라는 아이. 역시 어젯밤에 여행을 위한 사전공부의 효과가 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자리잡은 다산 생가는 정약용이 태어나 유년시절과 말년을 보낸 곳이다. 생가로 가는 길가에선 목민심서 글귀를 새긴 나무기둥과 수원화성 축조에 쓰인 거중기와 녹로의 모형을 볼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다산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이 눈에 들어온다.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과 선이 아름다운 여유당의 어울림은 은은한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홍수에 떠내려갔던 여유당을 1975년 복원했다. 낮은 돌담 너머로 보이는 생가는 ㅁ자의 전통 한옥으로 고풍스러운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40여평 규모의 다산전시관에는 목민심서·흠흠신서 등 다산의 저서와 서화, 수원화성을 쌓을 때 이용한 거중기 모형이 전시돼 있다. 다산 생가에는 가을이 한창이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어른들은 의자에 앉아 따뜻한 캔커피를 한잔 하며 여행의 여유를 즐겨도 좋다. 주차장·입장료 무료.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월요일 휴무.(031)576-9300. 30∼40분 정도 돌아보고 떠나자. 정약용의 묘역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동방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사찰 수종사로. ●동방의 아름다운 사찰 다산 생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운길산 수종사가 있다. 입구부터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아이들과 걸어 간다면 1시간은 더 걸린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편하다. 일반 승용차로 갈 수는 있지만 순탄치않다. 길이 좁고 경사가 심하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길에 차를 세워놓아 운전하기도 쉽지않다. 하지만 차로 오르다 보면 길가에 주차할 만한 공간이 곳곳에 있다. 어린 아이를 업고 올라가느라 힘들지 않으려면 조심스럽게 차를 몰고 올라가야한다. 오전 10시쯤 차를 중턱에 세워놓고 5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걸었다. 정말 이젠 가을의 끝이다. 파란 하늘과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걸었다.10분을 걷자 “아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업고 가.”라며 아이가 주저앉는다. 할 수 없이 아이를 업었다.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생각보다 힘들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흙길을 따라 걸으니 수종사 입구가 나온다. 단풍이 좋다는 산이나 사찰에 많이 가보았지만 이렇게 운치있고 아름다운 곳은 처음이다. 옅은 파스텔처럼 번지는 단풍의 아름다움, 저 멀리 보이는 북한강, 고즈넉한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사찰 역시 조선의 문호 서거정이 ‘동방에서 제일 아름다운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칭송했다는 것이 이해가 간다. 조선시대 세조가 북한강 뱃길로 한양으로 향하다가 맑고 은은히 퍼지는 종소리를 듣고 운길산을 뒤졌으나 절은 안 보이고 작은 암굴에 모셔진 16나한을 발견한다. 그때 세조가 들은 종소리는 굴 천장에서 떨어진 물소리의 울림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절을 지을 것을 명하니 바로 수종사(水鐘寺)다. 이런 전설을 가진 수종사에는 유명한 것이 두개 있다. 첫번째가 물(水)이다. 입구에 있는 석간수 샘은 이래저래 수종사 최고의 보물이다. 물 맛을 알아본 다산 정약용이 시인묵객들을 모아 수종사에 머무르며 석간수로 우린 차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최고의 찻물로 이름이 높다. 대웅전 마당에 있는 다실‘삼정헌’에서는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차를 나누어준다. 북한강의 장쾌한 경치를 바라보며 마시는 차맛은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수종사 쌍은행나무다. 세조가 절을 짓고 기념으로 심었다고 한다. 나무 아래는 525년 되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위세가 당당하며 긴 세월동안 모진 풍파를 다 겪었지만 아직도 위태로운 벼랑끝에 꼿꼿하게 버티고 서 도도히 흐르는 북한강과 남한강을 지키고 있다. 바람이 불자 은행나무 비가 내린다. 황홀감이 느껴졌다. 파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가지 밑에는 노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수많은 은행잎이 떨어져 만든 그림이다. 은행을 찾아 줍는 이, 나무 밑에 자리를 깔고 여유를 즐기는 이, 디카를 꺼내 연신 연인의 표정을 담는 사람들…. 오르기가 힘들어 중간에 포기했으면 정말 아쉬웠겠다. 배가 고프다고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서둘러 하산한다. 내려오는 길은 편하다. 서 있어도 자동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비탈이기 때문이다. ●양수리의 맛집 오전 10시에 수종사에 올라갔다 오니 12시가 지났다. 자동차로 5분 거리의 ‘죽여주는 동치미국수’로 갔다. 얼음이 버적버적 얼큰한 동치미 국물에 쫄깃한 국수를 말아준다. 별로 맵지 않아 초등학생 정도면 먹는 데 지장이 없다. 함께 나오는 동치미 국물에 씻은 배추김치 같은 김치도 맛이 그만이다. 어른 둘, 아이 둘이면 국수 셋에 녹두전 하나면 OK. 국수 5000원, 녹두전 1만원.(031)576-4070. 빨리 먹고 오후 1시까지 서울종합촬영소로 가자.‘월컴투동막골’을 무료로 볼 수 있다. ■ 내친김에 들러보는 서울종합촬영소·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 ●신난다, 재미있다 10분 거리에 한국영화의 메카인 서울종합촬영소가 있다.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모두 1만원.(031)579-0605.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오후 1시쯤 도착했다면 바로 매표소 옆에 있는 시네극장으로 가자. 오후 1시부터 영화가 무료로 상영된다.11월은 ‘웰컴투 동막골´이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1시·3시 두번, 평일에는 오후 1시30분에 한번 상영한다. 영화를 보았으면 무조건 영상지원관 2층으로 가자. 제일 재미있는 곳이 영상체험관. 유료시설로 입장료와 별도로 어른 2000원, 청소년 1000원. 아이들이 좋아한다. 엘리베이터와 영상 시뮬레이터를 이용하여 고층 빌딩 안 영화제작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스튜디오X-prees’부터 청색스크린 앞에서 촬영한 후 암벽이나 다리 같은 배경화면을 합성하는 ‘매직박스’, 타임터널 등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매시 15분마다 입장할 수 있다. 그다음 미니어처 체험전시관으로 가자. 무료. 매시 정각과 30분에 입체영화를 상영한다.‘원더풀데이즈’라는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을 3D로 만들어 특수안경을 쓰고 본다.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영상에 아이들이 손을 내밀어 허공을 휘젓는다. 스케일은 작지만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보는 것과 같다. 이제는 오후 4시면 야외 세트장이나 1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돌아가든지 아니면 내친김에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로 가자. ●팔뚝만한 잉어를 맨손으로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경기도민물고기연구소(031-772-3480)는 무료이며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다. 서울종합촬영소에서 빨리 움직여야한다. 학습관 1층 수족관에 들어 있는 황쏘가리, 어름치 등의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쉬리와 각시붕어 등 우리나라 토종물고기들이 아름답게 전시되어 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그래도 ‘공짜’라는데…. 살아 있는 물고기들로 가득찬 1층 전시실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첨단 전자장비를 이용한 다양한 체험시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물고기를 판박이 할 수 있는 ‘내가 만든 물고기’, 박제 물고기에 낚싯바늘을 대면 물고기 이름이 나오는 ‘낚시체험’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야외에서는 좁은 수로의 야외수족관에 잉어, 붕어, 피라미 등을 풀어 놓아 누구나 잡을 수 있게 만든 ‘터치 풀’이 인기. 아이의 성화에 못이겨 팔을 걷어 붙이지만 피라미나 붕어 등 작은 물고기는 도저히 잡을 수 없고 가장 큰 잉어를 노렸다. 족히 60㎝이상 될 크기의 잉어들의 몸놀림도 예사롭지않다. 결국 아빠들 몇 명이 마음을 합했다. 두 사람은 물고기를 몰고 한 사람은 구석에서 기다렸다. 몇 번을 허탕 친 끝에 간신히 잡았다.“우와∼.”아이들의 탄성에 아빠들도 힘이 난다. 가을이 아쉬워 떠난 여행, 이렇게 하루가 아쉽게, 그러나 재미있게 지나갔다.
  • [제11회 서울광고대상-부문별 우수상] 하나로텔레콤 “합병 통합상품 선보여”

    하나로텔레콤은 초고속인터넷 ‘하나포스´와 유선전화 ‘하나폰´을 함께 이용했을때 기본료가 경쟁사보다 3200원이나 저렴하고 하나폰50요금제 가입시 이동전화요금과 시외전화요금이 50% 할인되는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올해 말 두루넷과 합병을 앞두고 두루넷의 초고속인터넷과 ‘하나폰´을 결합한 통합상품을 선보여 두루넷 고객도 통신비를 대폭 절약할 수 있게 됐다. ‘하나포스´ 고객에게 무료 또는 대폭 할인된 가격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던 ‘24가지 특별한 혜택´을 지난 3월부터 두루넷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하나로텔레콤 두원수 상무
  • 부쩍오른 차 보험료 이렇게 하면 확 줄인다

    부쩍오른 차 보험료 이렇게 하면 확 줄인다

    자동차보험료가 지난 1일자로 일제히 3% 정도 올랐다. 사고 차량에 대한 정비수가(酬價)가 그만큼 인상됐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에 새로 가입하거나 연 계약을 바꿔야 하는 사람들은 절약법을 통해 보험료의 인상 부담을 줄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험료 얼마나 올랐나 1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동차보험료는 보험사에 따라 연평균 2.9∼3.6% 인상됐다. 가입자마다 1년에 수만원 정도를 더 부담하는 셈이다. 이번 인상은 자동차보험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입자를 대신해 보험사가 정비업체에 지급하는 차량 수리비용이 평균 3% 정도 올랐기 때문이다. 정비수가 중에는 보험료 지급 빈도가 높은 대물(對物)과 자차(自車·자기자동차 손해) 보상에서 6∼7% 인상됐다. 건설교통부는 전국 3000여개 공식 정비업체들의 요구에 따라 정비수가의 인상 범위를 시간당 1만 8228만∼2만 511원으로 제시했다. 이를 근거로 보험사들은 정비업체들과 개별협상을 벌여 그 결과를 보험료에 반영했다. 인상률은 삼성화재 2.9%, 현대해상과 LG화재·신동아화재 3.4%, 동부화재 3.6% 등이다. 그러나 인상률을 단순히 비교하고 보험사의 우열을 가려선 안된다. 같은 가입자 조건으로 A보험사의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도 가입자의 여러가지 선택 등에 따라 B보험사의 인상률이 사실상 더 낮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의 구체적인 조건을 미리 생각해 두고 인터넷의 ‘보험료 비교사이트’에서 보험료를 정확히 비교하는 게 바람직하다. ●더 아끼는 방법은 없나 보험료는 현명한 선택에 따라 최고 절반까지 줄일 수도 있다. 보험료를 아낄 수만 있다면 3% 인상이 문제가 아닌 셈이다. 우선 운전자의 범위를 세밀하게 제한하는 특약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삼성화재의 평균 인상률이 낮은 이유도 35세,43세,48세 이상의 운전자라면 각각 보험료를 일반형보다 더 낮춰주는 연령 한정특약을 세분화했기 때문이다. 오토 한정특약도 신설했다. 다시 말해 나이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많거나 자동변속기 차량 운전자는 비교적 사고가 적기 때문에 보험료를 깎아주었고, 이 때문에 평균 인상률도 낮아졌다. 또 운전자의 범위를 운전자 자신인 ‘기명 1명’으로 한정하면 모든 가족이 운전하는 경우의 일반형보다 최고 28%, 부부운전보다 최고 20% 보험료가 싸진다. 이와 함께 운전석에 에어백을 장착하면 전체 보험료의 5∼10%, 미끄럼방지 제동장치(ABS)를 달면 2∼3% 할인된다. 심지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달아도 0.7∼5% 보험료를 깎아주는 보험사도 있다. 연 단위로 계약하는 자동차보험료를 일시납이 아닌 분할 납부로 한다면 0.5∼1.5%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따라서 분할을 해야 할 사정이라면 신용카드의 무이자 할부를 이용하는 편이 낫다. ●무사고가 돈 버는 지혜 특약이 보험료를 일반형보다 할인받는 방법이라면 특별할증은 사고를 내는 바람에 보험료를 더 물어야 하는 제도다. 따라서 이를 잘 알고 피한다면 보험료 부담을 덜 수 있다. 경미한 사고는 보험사별로 별 차이가 없지만 음주운전 등 중대범죄 사고는 3년동안 특별할증률이 최고 50%나 된다.2회 사고 운전자는 보험사에 따라 3∼10% 보험료를 더 물어야 한다. 또 보험처리 사고가 7년 이상 단 한 건도 없으면 최대 40%를 할인받는다. 반면 사고가 빈발하면 2년새 최고 250% 보험료가 할증된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를 내도 책임보험과 임의보험(자동차보험 등)에 가입했거나 피해자와 합의하면 형사처벌을 면제받는다. 그러나 면제받지 못하는 12종의 중대 사고가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뺑소니, 피해자 사망,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속도 위반, 앞지르기 위반, 철도건널목 통과위반, 횡단보도, 무면허운전, 음주운전, 보도침범, 승객추락방지 의무위반 사고 등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조금만 신경쓰면 자신도 모르게 지출되는 보험료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방법이 많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경제플러스] 에버랜드 에너지절감 시스템 개발

    국내 ESCO기업(에너지절약 전문기업) 1호인 삼성에버랜드는 최근 석유화학 증류부문에서 획기적으로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LG화학 나주공장에 처음 적용했다고 14일 밝혔다.LG화학 나주공장 옥탄올 증류탑에 적용한 이 시스템은 석유화학 증류분리 공정에서 사용되고 버려지는 증기를 압축기로 압축시켜 생산공정의 열원으로 다시 이용하는 에너지 재활용 기술이다.
  • 국가브랜드 높이기 한창

    국가브랜드 높이기 한창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는 국제사회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반영한 흐름을 타고 발전해왔다. 당초 산파역을 맡은 나라는 한국과 호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나라들이 똘똘 뭉치는 데 따른 대응 차원의 확대 재편이었다. 이후 유럽연합(EU)에서 배제된 미국이 적극 가세한 데다 미국의 지역경제 패권을 견제하려는 중국과의 긴장 속에 현재와 같은 APEC 구도가 형성됐다. 상대적으로 강대국들의 입깁이 센 APEC 내에서 아세안 국가들도 나름대로 입지 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국가 위상 제고를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 4개국은 선발주자로서 아세안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 나라가 의욕있게 추진 중인 국가브랜드 업그레이드 전략을 들여다보면 항상 지도자들이 그 핵심에 있다. 우리에겐 ‘리더십 연구’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이들 나라들의 ‘국격(國格) 높이기’ 전략을 지도자 중심으로 살펴본다. ■ 압둘라 말레이시아 총리압둘라 아흐메드 바다위(65) 말레이시아 총리가 지난해 3월 총리직에 오른 이후 과제는 아시아의 정치 거물 마하티르 전 총리의 그림자를 벗는 것이었다. 이재현 동남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제통화기금(IMF) 처방을 거부하고 판정승을 거둔 마하티르가 남긴 큰 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문제였다.”면서 “그러나 근검 절약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로 그 우려를 불식할 수 있었다.”고 진단했다. 압둘라 총리의 조부·부친은 사우디에서 회교율법을 공부했고, 총리 자신도 말라야 대학 이슬람학과 출신이다.1년 반 통치 평가는 성공적이다.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한다는 청사진, 즉 ‘비전 2020’국가개발 청사진을 추진하고 있다. 공항·항구에 집중 투자해 2020까지 동남아 최고의 물류기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마하티르 시절부터 콸라룸푸르에 멀티미디어 복합단지를 조성하고 바이오밸리 건설에 착수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가 남긴 유산 ‘아시아적 가치’는 반민주적으로 악용돼 왔다는 비판도 있지만 업적으로 기여한 측면도 있다. 강한 이미지의 마하티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압둘라 총리는 온화한 이미지로 다인종 국가인 말레이시아의 통합·화합에 나서고 있다. 국민들은 그를 ‘압둘라 아저씨’란 뜻인 ‘팍 라’로 부른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유도요노 印尼 대통령수실로 밤방 유도요노(56)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국가 경영 포인트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잃어버린 아세안(ASEAN)내 지도적 국가의 부활이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쓰나미’(해일)로 정치적 시험대에 놓였으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정치적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아체 반군과의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정정 불안을 해소시켰다. 휴양지 발리에서 빈발한 테러를 기화로,‘인간안보’ 내세우며 지역 리더로 재부상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면서 APEC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에서 활발한 행보 중이다. 한국 동남아연구소의 전제성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하락세에 들어섰던 인도네시아가 유도요노 집권 이후 반환점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과거 청산’에서 자유롭다. 군 출신이지만 국내 인권탄압 문제에 연루되지 않았다.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 포트 리벤워스 지휘 참모대학을 수료하고 웹스터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엘리트다. 와히드 정부에서 광업에너지부 장관을 시작으로 정·관계 경력을 쌓았다. 부친도 군인 출신이다. 부인 크리스타아니 헤라와티는 인도네시아 군사학교 교장이자 외교관이던 사르오 에디 위보오 장군의 딸이다. ■ 탁산 태국 총리2001년 23대 총리로 취임한 탁신 시나왓(56)총리는 지난 3월 24대 총리로 임기를 다시 시작했다.‘마약과의 전쟁’등 강력한 추진력이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다. 전통적으로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이 미약한 것으로 정평이 난 태국 정치지형이 탁신 이후 바뀌고 있다. 지난 2월 총선 때는 탁신 총리의 ‘타이 락 타이’당(애국당)이 500석 가운데 377석을 확보하며 압승했다. 이동윤 동아시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한 정당이 과반을 넘어선 것은 태국에선 처음”이라면서 “서구 언론들은 무대포라고 비판하지만 조직적이고 합리적인 아이디어맨”이라고 평가했다. 탁신 총리는 대중영합주의라는 야당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저소득 국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역내 리더십을 주창하는 한편, 마약·매춘 문제에 강력하게 대처해, 얼룩진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는 국가파워 업그레이드 전략을 쓴다. 경찰 간부 출신으로 미국 이스턴 컨터키 대학과 샘 허스턴 주립대에서 범죄학 석·박사를 마쳤다. 정계 입문 전엔 통신산업에 뛰어들어 국내 5대 기업의 회장까지도 오른 최고 경영자(CEO)출신이다. 태국의 전통외교 ‘Bamboo Policy’를 이어받아 국익 극대화에 힘쓰고 있다는 평가다. ■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청렴한 정부’‘껌조각 찾을 수 없는 거리’등 클린(clean) 브랜드로 유명한 싱가포르가 리셴룽(李顯龍·54) 총리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위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 중이다. 야심찬 도전의 핵심은 아시아판 라스베이거스 건설. 싱가포르의 국토 면적은‘점’으로 불릴 정도로 작다. 서울보다 80㎢ 넓는 정도다. 그렇지만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로 역내 최선진국이다. 국경을 맞대고 정치적 긴장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가 물류중심 국가로 상승을 시작하자 고부가가치 오락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 센토사섬에 대형 카지노 단지를 개발 중이다. 지난해 8월 취임한 리셴룽 총리는 리콴유 초대 총리의 장남. 권력을 세습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국가 부흥’의 모습으로 극복하려 애쓰고 있다. 2004년 경제 성장률은 전년보다 9배 높은 8.1%를 기록했다. 거리에 침만 뱉어도 벌금을 내는 도덕률을 우선하는 나라가 오락시설로 승부를 낸다는 것 자체만 해도 엄청난 변신이다. 대신 카지노 등 오락시설에는 마약과 매춘 등 부정적인 결과가 동반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주제를 ‘가족형’ 오락단지로 추진하고 있다. 바다를 메워 국토를 넓히는 사업도 계속하고 있다.
  • [CEO칼럼] 21세기 기업의 두가지 환경/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CEO칼럼] 21세기 기업의 두가지 환경/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미래경영은 친환경·친인간 경영이다. 고유가와 환경오염을 반영한 친환경 기술의 미래형 컨셉트카인 하이브리드카와 수소연료 전지차들이 속속 나올 예정이다. 수소 연료전지는 수소와 공기 중의 산소를 화학 반응해 전기를 얻는 미래 동력원이다. 또 운전석 자체가 휠체어로 되어 있는 장애인을 위한 이른바 친인간 자동차도 있다. 평소 휠체어로 사용하다 자동차 운전시에는 자동으로 운전석에 장착되는 편리함을 자랑한다. 이렇게 환경과 인간은 미래경영의 필수 과제가 됐다. 21세기 기업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두가지 ‘환경’이 있다. 첫째,‘자연환경’이다. 상처 난 환경의 역공을 받지 않으려면 매연·분진·폐수 방출을 억제하고 에너지와 원자재를 절약해야 한다. 둘째는 ‘사회 환경’이다. 장애인을 위한 자동차처럼 인간 개개인과 고객 개개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인간중심 경영은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회와의 갈등을 적극적으로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이른바 사회환경에 부응해야 한다. 이것이 또 다른 이름의 사회적 책임이다.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 그리고 도덕적 책임, 기업의 사회적 책임등은 경제적 가치는 물론 환경적 가치, 그리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 이해관계자와 사회일반의 요구나 기대를 충족시켜 나가는 규범이다. 이는 경제적 책임과 법적 책임뿐 아니라 도덕적 책임을 짐으로써 기업과 사회가 선순환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꾀하자는 것이다. 2005년 9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사회책임(SR) 국제표준 제정을 위한 국제회의가 있었다. 그래서 기업뿐 아니라 정부와 노조, 각 사회조직의 사회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2005년 10월20일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재벌에 대해 의견을 밝힌 바 있다.“삼성은 과거 국민들의 땀과 헌신 위에서 세워진 국민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경영자가 기억해야 한다. 삼성은 국민 위탁경영을 하고 있다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가져야 하며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더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삼성의 후계자로 부상하고 있는 이재용 상무의 재산형성과 증여세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삼성보다 규모가 작은 교보생명의 오너 가족들이 낸 수천억원의 상속세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설사 법적으로 잘못이 없다 해도 그럴 판인데 최근 법원 판결은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또 언론과 대권후보, 권력 유착 의혹을 불러일으킨 X-파일에 대해서도 국민으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국민 대표기업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강하게 요구 받는다.GE는 에디슨에 의해 창업되었지만 오랜 세월 전문경영체제를 굳히면서 미국 경영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MS의 빌 게이츠는 자식에 대한 재산상속 대신 부의 사회 환원을 선언하고 상당부분 실천함으로써 또 다른 미국식 자본주의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유럽의 최대 재벌 스위덴의 발렌베리 가문은 15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탁월한 경영을 해왔다. 통신회사 에릭슨, 자동차 및 항공기 엔진업체 사브, 세계 3대 엔지니어링기업 ABB, 가전업체 일렉트로룩스,SEB은행 등 14개 상장계열사를 거느린 유럽의 대표기업이다. 발렌베리는 투명경영을 통해 사회와 결합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 사회에 공헌해 왔다. 그래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 사람들은 보통사람처럼 운전을 손수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잔디를 깎는 모습이나 평범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대표기업 경영자들이 국민과 함께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목이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컨설턴트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평양그룹-창업주 故서성환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태평양그룹-창업주 故서성환 회장家

    태평양그룹 창업주 고 서성환(1924∼2003) 회장은 화장품업계의 신화가 됐다.‘미와 향을 파는 마케팅의 귀재’인 서 창업주는 어려서부터 개성에서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이후 기업경영에서 개성상인의 맥이 면면히 흘렀다. 서 창업주는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가의 사회적 책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태평양이 직접 운영하는 비영리 재단이 3개이며 후원 단체는 셀 수없이 많다. 신용과 근검절약을 가장 큰 밑천으로 삼는 개성상인의 기질, 이윤의 사회 환원이라는 기업윤리는 2세 경영으로 넘어온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가업 태평양은 1945년 9월5일 창립됐지만 연원은 좀 더 거슬러올라간다. 태평양의 역사를 알려면 서성환 회장의 가족사부터 살펴봐야 한다. 서 회장은 1924년 7월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에서 부친 서대근(1890∼1973)씨와 모친 윤독정(1891∼1959)씨의 3남3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서 창업주 가족은 소학교 시절인 1930년 좀 더 나은 생활을 찾아 개성으로 이사를 했다. 개성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인 동현동에 정착했다.‘상인의 도시’ 개성 생활은 소년 서성환에게 이후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개성에 정착한 가족들의 생계는 어머니 윤 여사가 책임졌다. 전 재산을 털어 조그마한 상점을 열고 잡화를 취급하다가 화장품 제조에 눈을 돌렸다. 윤 여사는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비상한 머리를 지녔다. 이웃으로부터 ‘여중군자’라고 불릴 만큼 활동적이고 사교적이었다. 인삼 매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개성지방은 소득수준이 높아 우수한 품질의 동백기름이 잘 팔린다는 것을 간파한 윤 여사는 직접 동백기름을 짜 만든 머릿기름을 팔았다. 당시 서민들은 피마자 기름을 썼지만 상류층은 고가의 동백기름을 애용했다. 참빗으로 곱게 빗어 쪽진 머리에 머릿기름을 자르르 바른 모습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보이도록 하는데 필수적이었다. ●태평양 모체는 어머니의 ‘창성상점’ 동백기름에서 자신을 얻은 윤 여사는 차츰 사업영역을 확대했다.1932년부터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던 미안수를 자가 제조법으로 만들어 판매를 시도했다. 또 구리무(크림), 가루분(백분) 등으로 화장품 제조의 종류와 품목을 넓혔다. 소년 서성환도 물건을 도매상에 배달해주는 등 잔심부름을 하며 가업에 참여했다. 당시 제조방식은 물론 가내 수공업이었다. 솥을 걸어놓고 그안에 물과 기름을 섞어 손으로 직접 젓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품질은 우수하다는 평을 얻어 수요를 따르지 못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자신감을 얻은 윤 여사는 ‘창성상점(昌盛商店)’이라는 생산자 명칭을 표기했다. 제품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상품에 ‘창성당제품’‘오리지날’ 등을 표기했다. 가업에 참여한 소년 서성환의 경영 수업은 계속됐다. 보통학교시절부터 소년 서성환은 하루 끼니인 도시락 세개를 자전거에 싣고 해뜨기 전에 개성을 출발, 화장품 제조에 필요한 물건을 사오곤 했다.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1939년부터 화장품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거래 도매상에게 물건을 납품하거나 예성강 20리를 따라 형성된 상로(商路)를 따라 직접 팔기도 했다. 자전거로 화장품을 팔러 다니면서 유통에도 눈을 떴다.10대 소년 서성환은 개성에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글리세린과 향료, 빈 병을 사는 일을 도맡았다. 창성상점의 제품은 1941년 개성 최초의 백화점인 3층 양옥의 김재현백화점에도 들어갔다. 백화점에 작은 코너를 개설, 자사의 제품뿐만 아니라 인기가 높던 다른 회사의 제품도 위탁 판매했다. 제조와 판매를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 제품도 함께 판다는 서성환의 생각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면서 화장품 제조법도 어머니 윤 여사로부터 직접 배웠다. 물과 기름의 혼합비율, 열을 가하는 강약 정도,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의 비율 등에 따라 화장품의 품질은 천차만별이었다. 화장품 유통에 이어 제조까지 현장 경험을 쌓았지만 스물한살이던 1944년 강제징용되면서 그의 화장품 수업은 중단됐다. ●‘블루오션’ 태평양으로 광복을 맞아 다시 개성으로 돌아온 청년 서성환은 화장품에 집중했다. 어머니가 세운 창성상점을 ‘태평양상회’로 이름을 바꿨다. 태평양만큼이나 큰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웅지와 태평양을 건너 세계로 진출하겠다는 도전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광복정국의 혼란속에서 서성환은 1947년 개성을 떠났다. 서울로 이주, 회현동에 새 터전을 마련했다. 청년 서성환은 당시 누님 한분이 내려오지 못한 이산가족의 한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야 했다. 이 즈음 부인 변금주(77) 여사를 만나 결혼했다. 모조품과 위조 화장품이 기승을 부리던 50년대 서성환은 “남보다 월등한 제품을 만들어야 제 값에 팔 수 있다.”며 시종일관 품질을 강조했다. 이때 내놓은 메로디크림은 태평양 1호 제품의 영예를 안았다.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는 듯했지만 6·25가 터졌다. 그는 피란길에도 화장품 원료를 싣고 부산으로 내려갈 정도의 집념을 보여줬다. 임시수도 부산에서 1951년 순식물성의 ABC포마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대단한 인기를 끌며 화장품 시장을 석권했다. 당시 멋쟁이들의 필수품이었다. 서성환 회장이 직접 작명한 ABC포마드는 60년대까지 대히트 브랜드로서 태평양의 성장 기틀이 됐다. 청년 서성환은 환도 이후 1954년 후암동시대를 열면서 기술력에 대한 갈증에서 장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만들었다.1953년 처음 열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등을 통해 화장문화가 태동한 것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향기나는 밥, 그리고 최초의 연속… 서성환은 후암동 시절 잘 팔리던 화장품을 구해 직원들과 함께 실험을 거듭했다. 생산직 여종업원들과 함께 밥을 지어 먹었다. 가내 수공업에 실험기구가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 향료가 밴 솥과 물바가지를 이용해서 밥을 하면 향내 나는 밥이 되고, 크림을 만들었던 도구를 쓰면 구리무 향밥이 됐다고 한다. 56년 용산으로 이전한 이후 성장가도에 들어섰다. 서성환은 57년부터 해마다 기술자들을 독일과 일본에 유학시켰고,58년엔 동양 최초로 고성능 미분기를 도입했다.59년 주식회사 체제로 출범했고 프랑스 코티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장업사의 새 장을 열었다.60년 장업계 최초의 해외방문,64년 오스카 브랜드로 최초의 화장품 수출, 당시 획기적인 방문판매제와 아모레화장품 개발 등에 힘입어 급신장했다.68년 매출이 14억 2800만원으로 창업 이후 처음 10억원대를 돌파했다. 당시 태평양의 품질은 어느 정도였을까?지난 71년 브뤼셀에서 열린 세계화장품 콘테스트에서 3개의 금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제조 능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74년 장업계 최초의 소비자과를 신설, 정부의 소비자 기본법안보다 3년 빨리 소비자 중심을 지향했다. 순항하던 태평양은 90년대 들어 무한경쟁시대를 맞았다. 서 창업주는 창업 50년을 맞은 95년을 ‘세계화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다짐했다. ●태평양에 순항중인 2세 경영 서 창업주는 개성상인 특유 기질을 두 아들에게 물려줬다. 서 창업주는 지난 82년 장남 영배(49)씨를,87년 차남 경배(42)씨를 입사시키면서 2세들에게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영배씨는 태평양화학에 입사해 도쿄 및 뉴욕 지사를 거쳐 태평양증권 부사장 태평양종합산업의 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태평양개발 회장으로 기업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 영배씨는 태평양개발을 연매출 1000억원대의 중견 건설업체로 키웠다. 차남인 경배씨는 재경본부를 시작으로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과감한 구조조정을 지휘했다. 태평양증권·태평양패션·프로야구단 돌핀스·여자농구단 등 계열사를 정리했다.97년 3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태평양에 2세 경영의 배를 띄웠다. 지난해 매출은 1조 1053억원. 후계작업이 부드럽게 진행되던 2003년 1월 장원 서성환 회장은 영면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기업가 태평양은 해마다 50억원 가량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여성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여성에게 되돌려준다.’는 취지에서 주로 여성의 삶의 질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이윤의 사회환원은 기업윤리 이전에 창업주 서성환 회장의 소신이라는 게 한 측근의 설명이다. 그는 “창업주는 ‘사회에 기여하면서 돈을 버는 게 바로 우량기업’이라고 자주 언급했다.”고 말했다.‘불쌍한 사람을 보고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후덕함도 있었다. 그러나 창업주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는 개성상인의 ‘짠돌이’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 창업주는 지난 63년 중앙대학교에서 처음으로 ‘성환 장학금’을 만들었다. 중앙대 최초의 외부장학금이다. 당시의 기업가치고는 사회적 책무를 빨리 깨달은 편이었다. 첫 수혜자는 리대룡(64)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이후 75년부터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학업 성적이 좋은 여고생 9700여명에게 17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지난 9월부터 태평양학술문화재단으로 이름을 바꿔 학술연구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여성들에게 유방은 모성의 상징이자 여성답게 해주는 상징적인 기관이다. 여성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태평양은 2000년 9월 한국유방건강재단을 만들었다. 태평양이 전액 출자한 재단은 국내 최초의 유방암 전문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지금까지 1만 2000여명의 여성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거나 무료로 검진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회 환원은 태평양이 출연한 재단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2003년 6월 서 창업주가 타계한 다음 태평양 주식 7만 4000주와 이익배당금 전액 등 50억원을 아름다운 재단에 전달했다.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아들 서경배 사장으로 이어졌다. 서 사장은 선친의 고향이 북한인 것을 감안, 북한 어린이와 여성을 돕기 위해 유니세프에 지난해와 올해 각각 1억원을 기부했다. ■ 오늘의 태평양 일군 3인방 오늘날의 태평양을 일군 데는 창업주 서성환 회장을 그림자처럼 보필한 3인방이 있다. 태평양의 사사에 남을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들은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재인식시키고, 국민 생활양식을 한층 높인 신화 창조의 주역이다. 오원식(69)전 부사장은 40년이 넘게 입에 오르내리는 브랜드 ‘아모레’를 1961년 작명했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끌었던 이탈리아 가곡 ‘아모레미오(난 당신을 사랑합니다)’에서 따왔다. 상금으로 당시 거금인 1만원(당시 월급 7000원)을 받았다. 오 전 부사장은 1967년부터 한방미용법을 연구, 지난 73년 인삼 사포닌을 이용한 화장품 아모레 진생삼미를 탄생시켰다. 진생삼미는 브랜드 진화를 거듭하다가 가장 한국적인 명품 ‘설화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설화수는 단일 브랜드로 매출이 2000년 1000억원을 달성했으며, 지난해에는 국내 최초로 3000억원을 돌파했다. 화장품 사상 유래가 없는 기염을 토했던 브랜드다.82년 대한화장품학회 회장을 지낸 오 부사장은 87년 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아 기술개발에 힘썼다. 이후 90년대 초까지 연구부문을 총괄하면서 태평양 40년 연구와 생산 분야의 산증인으로서 화장품 기술의 과학화에 큰 획을 그었다. 그 어렵던 50년대의 태평양 생존 기틀을 닦은 데는 구용섭(81)초대 연구실장의 공을 빠뜨릴 수가 없다. 좋은 원료 확보를 위해 암거래 시장에서 발품을 팔았다. 서울 환도이후 후암동의 가내 수공업 시절의 ‘향기나는 밥’과 ‘구리무밥’을 먹으면서도 제품개발을 진두 지휘했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태평양은 독자적인 기술 개발과 화장품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발판을 마련했다.68년 한국화장품 화학자회 창립회장에 취임,80년까지 회장을 지내면서 한국의 화장품 발전에도 공이 크다. 머리를 감을 때 비누에서 샴푸로 바꾸게 한 사람이 김창규(66) 고문이다. 프랑스 파리 이과대학 연구소의 실장으로 재직중 태평양에 스카우트됐다. 그가 73년 개발한 브랜드 ‘타미나’는 70년대를 대표하는 히트 상품이 됐다.78년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화장품학회 국제회의에서 인삼사포닌이 모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김 고문은 80년대 태평양의 생활용품 사업을 일궜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리도 푸로틴 샴푸는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기록했다. 무엇보다도 비누로 머리를 감던 국민들의 생활양식을 샴푸로 머리를 감게 바꿨다.88년 가정용품을 연구하는 기술연구소장과 92년 태평양중앙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91년부터 대한화장품학회장을 연임하면서 화장품학계 발전을 위해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chuli@seoul.co.kr ●정·관·재계로 연결된 화려한 혼맥 창업주 서성환 회장은 1947년 변금주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2남 4녀, 송숙(58), 혜숙(55), 은숙(52), 영배(49), 미숙(47), 경배(42)를 두고 모두 성혼시켰다. 서 창업주의 사돈가는 한마디로 쟁쟁한 집안들이다. 정·관계를 비롯해 기업인과 언론인으로 인연이 이어진다. 방우영(77)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비롯해 신춘호(73) 농심그룹 회장, 최두고(84) 전 국회의원 등의 기업인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을유문화사 정진숙(93) 회장, 최주호(작고) 전 우성그룹 회장, 박세정(88)대선제분 회장과는 혼맥을 쌓았다가 끊어졌다. 서 창업주는 또 사돈가의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을 통해 정재문(69) 대양산업 회장(전 의원), 신춘호 농심 회장을 통해 서봉균(79) 전 재무장관과는 ‘사돈의 사돈’으로 간접 혼맥을 이루고 있다. 김치열(84) 에이오에스 회장(전 법무·내무장관)과는 신춘호 농심 회장을 거쳐 박남규(85)조양상선 회장을 통해 연결된다. 서 창업주는 이같은 순환 혼맥을 통해 김일환(작고) 전 내무장관, 정운갑(작고) 전 농림부 장관, 김영생(작고) 전 의원, 김도창(작고) 전 법제처장 등 정·관계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다. 이같은 현상은 서 창업주 특유의 신중함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는 자녀 혼사를 사람됨됨이를 중시하여 중매 형식을 택한 서 창업주의 성격에서도 잘 나타난다. 사돈가의 ‘유명세’와 관련해 정략적이라는 세인의 오해를 받기 쉬우나 태평양측은 이를 극구 부인한다. 정관계의 발판을 만들 필요도 없었거니와 ‘정경유착’의 시선을 받고 싶지도 않았다는 게 서 창업주 측근의 설명이다. 관계(官界)의 집안과는 모두 현직에서 물러난 뒤 맺어졌고, 재계 인사들과는 업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대부분 양쪽 집안 가장들의 친분으로 혼사가 이뤄졌다고 전한다. 혜숙씨는 이화여대 사회생활과 출신으로 김일환씨의 3남인 의광(56)씨와 지난 74년 결혼했다. 김일환씨는 6·25전쟁 당시 국방차관을 역임한 전형적인 무관 출신으로 상공·내무·교통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의광씨는 연세대 정외과 출신으로 태평양 계열사의 장원산업 회장으로 활동하다 물러났다.4명의 사위 가운데 유일하게 장인 회사의 경영에 참여했다가 서울 인사동에서 목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공부하고 있는 근종(29)씨와 LG전자에 다니는 우종(27)씨를 두고 있다. 3녀 은숙씨는 국회 건설위원장을 지낸 최두고씨의 차남인 상용(53)씨와 지난 77년 결혼했다. 상용씨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은숙씨와 결혼, 미국에서 7년간 수련의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현재 고려대 의과대학장으로 재직중이다. 부부에겐 ㈜태평양에서 사원으로 근무하는 환석(27)씨와 미국에서 학업중인 양희(23)씨 등 1남1녀가 있다. 서 창업주의 두 아들인 영배씨와 경배씨의 혼사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장남인 영배씨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기 직전에 이미 그룹경영에 참가했다.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 대학원을 수료한 후 증권회사로 자리를 옮겨 90년도 태평양증권 부사장을 거쳐 태평양개발 회장을 맡고있다. 영배씨는 조선일보 방우영 명예회장의 1남3녀 가운데 장녀인 혜성(45)씨와 지난 83년에 결혼했다.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재원인 혜성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마친 후 조선일보에 입사, 문화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서씨 집안의 맏며느리가 됐다. 혜성씨는 태평양학원(성덕여중·성덕여상)의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영배씨 부부는 2남1녀를 두고 있는데 모두 학생이다. 차남인 경배씨는 지난 90년 11월, 농심 신춘호 회장의 막내딸인 윤경(37)씨와 화촉을 밝혔다. 서 창업주와 신춘호씨는 같은 용산구 관내에서 평소 자주 만나 인사를 나누던 사이로 지내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이 훗날 사돈으로 연결된 것. 경배씨는 경성고·연세대 경영학과를 마친 뒤 미국 코넬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수재로 87년 태평양화학 과장으로 그룹에 첫발을 내디뎠다.90년 태평양그룹 기획조정실 실장을 지내는 등 태평양 대표이사 사장 및 대한화장품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경배씨는 학생인 두딸 민정(14), 호정(10)을 두고 있다. chuli@seoul.co.kr ■ 故서성환 회장의 차사랑 “기다리는 시간의 맛도 있고, 잔의 맛도 있고, 차 맛도 있다.” 창업주 고 서성환 회장을 모신 회의에서 손수 차를 우려드렸던 서경배 사장의 회고담이다. 요즘 차는 단순한 기호식품이나 전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초스피드 시대에서 여유를 찾아주는 음료이다. 철학이 담긴 고급 문화로 이해된다. 이런 차가 화장품 회사 태평양과 어떻게 이어졌을까? 서 창업주는 60년대 일본 등 외국을 방문할 때마다 그 나라 고유의 차를 대접받았다. 일본 거래처를 찾았을 때 가루차가 늘 나왔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은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커피가 고작이었다. 특히 서 창업주는 일본 거래처 사람들이 고려·조선왕조의 다구(茶具)에 열광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차에 관심을 기울여 70년대 후반부터 녹차사업을 시작했다. “차밭을 조성하되 반드시 불모지를 개간해야 한다.”80년 녹차밭을 구상하면서 서 창업주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당시 차밭 개간은 무모한 사업으로 비쳐졌다. 80년대 초 우리나라는 차의 불모지나 다름 없었다. 부족한 전문인력과 제주도 땅의 척박함 등 그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았다. 골프장을 짓는다거나 땅투기를 한다는 등의 오해까지 받았다. 축적된 기술과 자료도 없었다. 주위에서는 회사 전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며 모두 만류했다. 그러나 서 창업주는 뚝심을 발휘해 밀어붙였다. 대한농구협회 회장 시절인 80년 중국을 방문, 공안(公安)을 설득해 황제차로 유명한 용정차(龍井茶)의 고향 항저우를 둘러봤다. 차가 거대한 산업임을 확인했지만 차 박물관은 그저 형식만 갖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히 풀렸다.90년대 초 사업을 위해 찾았던 그는 미국 하와이의 파인애플농장 안에 있는 돌(Dole)사의 파인애플하우스, 즉 파인애플박물관에 들렀을 때 무릎을 탁 쳤다. 그러나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할까말까 하던 차사업을 차박물관으로 견인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차박물관은 가슴에 고스란히 묻어두었다. 말년, 몸이 쇠약해진 서 창업주는 휴양을 위해 하와이에 머물면서 파인애플하우스를 가보곤했다. 지난 99년 아들 서경배 사장이 부친 문병을 위해 하와이에 들르자 그는 짐을 풀던 아들을 다짜고짜 차에 태우고 돌사의 파인애플농장으로 데려갔다.“바로 이거야, 이렇게 만들어봐라.”와병중이던 아버지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 이렇게 해서 설록차박물관 오’설록이 탄생했다. 지난 2001년 9월 남제주군 안덕면 서광리에 문을 연 오’설록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찻잔 등 다구가 잘 진열되어 있다. 차에 관한 명상의 최적 공간으로 소문나면서 연간 30여만명이 찾는다. 장원 서성환의 정성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있는 곳이다. chul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자동차보험료 절약법

    ‘자동차보험료, 이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아낄 수 있다.’ 이달부터 자동차 보험료가 정비수가 인상분이 반영되면서 손해보험사별로 평균 2.9∼4.1% 올랐다. 또 가해자 불명의 사고를 당해 보험 처리를 한 운전자는 내년 1월부터 보험료를 지금보다 10% 더 내야 한다. 인터넷 보험서비스회사인 인슈넷의 조언으로 자동차보험료 절약법을 알아본다. ●연령, 운전자, 차 부속장치별 특약 활용 보험사들은 자가용 승용차에 대해 특정 연령 이상만 운전할 경우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특약을 운영하고 있다. 높은 연령의 한정 특약에 가입할수록 보험료가 싸다. 삼성화재의 경우 21세,24세,26세,30세만 있던 연령 한정 특약을 이달부터 35세,43세,48세로 확대했다. 교통사고나 도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장치를 장착한 차량도 보험료가 할인된다. 모든 보험사가 운전석 에어백 장착때는 자기신체사고 보험료의 5∼10%를, 조수석까지 장착할 때는 10∼20%를 깎아준다. 미끄럼 방지 제동장치(ABS)를 장착한 차량은 전체 보험료의 2∼3%가 할인된다. 다음자동차보험 등 일부 보험사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설치하면 자기차량 손해 보험료의 0.7∼5%를 깎아 준다. 삼성, 제일, 그린화재 등은 자동변속기 차량에 대해 전체 보험료의 3∼3.3%를 할인해준다. 개인이 소유한 화물차와 승합차도 운전자의 범위를 본인, 부부, 가족 등으로 제한하면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또 군대 운전병이나 기업, 관공서의 운전사로 일한 경력이 있으면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사고경력자는 특별할증료율 살펴봐야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한 보험료 특별할증료율이 보험사나 사고별로 큰 차이가 있어 사고 경력자는 보험 계약때 이를 감안해야 한다. 보험사들은 사고 유형에 따라 A∼D 그룹으로 분류해 특별할증료율을 적용하고 있다. 할증료율이 높을수록 보험료가 올라간다. 음주나 뺑소니 사고 같은 A그룹의 경우 할증료율은 현대해상 50%, 쌍용화재 45%, 대한·제일화재 40%, 삼성,LG, 동부화재 30%, 메리츠화재 25% 등 보험사에 따라 편차가 크다. B그룹(중대 교통법규 위반 사고,3년간 3회 이상 사고)의 할증료율은 메리츠화재 14%, 신동아·쌍용화재 등은 15%로 낮은 반면 대한화재는 25%로 높은 편이다. C그룹(1회 200만원 이상 물적 사고 등)은 회사에 따라 3∼10%다.D그룹(1회 자기신체 사고 등)에 대해 제일,LG화재와 현대해상은 할증료율을 적용하지 않지만 나머지 보험사는 1∼2%다. 인슈넷 관계자는 “자동차 보험료는 회사별 비교 견적을 뽑아보고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코오롱그룹-이웅열 회장家

    코오롱의 역사는 한국 섬유산업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땅에 가장 먼저 나일론을 들여와 의생활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한때는 수출 한국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성숙산업에 따른 한계로 인해 코오롱은 재계서열이 점점 밀려났다. 섬유산업의 위상이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코오롱의 3세 경영이 닻을 올린지 올해로 10년째. 이웅열(49) 회장은 올해를 그룹경영의 ‘터닝포인트’로 만들기 위해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제2의 도약을 위해 노후화된 주력 사업에 다시 기름을 칠하고, 쪼이고, 닦고 있는 것이다. 혹독한 외환위기를 거치며 체질을 바꾼 코오롱이 재도약을 위한 또 한번의 체질 개선 시험을 치르고 있다. ●풍운아 이원만 창업주 코오롱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과 이동찬(83) 명예회장은 부자간이면서도 사업 동지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이 창업주가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사업의 ‘바람막이’가 돼 줬다면, 이 명예회장은 그룹의 안살림을 챙겼다. 부자는 동업자로서 40년 가까이 함께 일하며 코오롱의 기틀을 만들었다. 이 명예회장이 2세이면서 창업 1.5세대로 불렸던 까닭이다. 부자는 사업 파트너로서 환상의 듀엣이었지만 가정적으론 한때 애증의 관계였다. 기업가보다 정치가로서 더 알려진 이 창업주는 워낙 풍류를 즐기는 성격인 데다 이 명예회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남은 전답마저 처분하고, 사업을 위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이 명예회장은 어린 나이에 모친과 누이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명예회장에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선친의 호방한 성품과 능숙한 화술 등은 당시 정·재계에서 유명했다. 이 창업주는 술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술자리에선 재담으로 좌석을 압도했으며,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는 ‘문화재’로 불리울 정도였다. 이 창업주는 1930년대 초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 기반을 닦았으며, 해방 후에는 국내 최초로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을 개척했다.1957년엔 국내 첫 나일론사 제조 공장인 한국나일론(현 ㈜코오롱)을 설립했으며,63년엔 나일론 원사 공장을 지었다. 그는 또 한국산업수출공단 창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오늘의 구로공단과 구미공단을 조성하는 산파역할을 했다. 이 창업주는 정계에도 발을 들여 대한민국 초대 참의원과 6,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인맥 만들기에 탁월한 수단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이 창업주는 1960∼70년대 정·재계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5세대 창업주 이동찬 명예회장 “이 명예회장은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항상 비서와 한 방에서 잡니다. 비서들에게 해외 출장은 그야말로 곤욕이었죠. 회장이 바로 옆에서 주무시는데 잠이 편히 옵니까. 출장에서 돌아오면 몸무게가 3∼4㎏은 그냥 빠져요. 그렇다고 1달러가 아쉬운 나라에서 잠자는 곳에 돈낭비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에 뭐라고 할 수도 없고요.” 코오롱 비서 출신의 한 임원 얘기다. ‘가장의 짐’을 일찍 떠안은 탓에 이 명예회장은 근검 절약이 몸에 배어 있다. 한 번은 이 명예회장이 1947년부터 50여년 이상 신었던 슬리퍼를 비서실에서 새 것으로 바꿨다가 된통 야단을 맞고,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찾았던 적도 있다. 또 이 명예회장의 점심 메뉴는 주로 된장찌개와 칼국수, 수제비 등이었으며, 삼복 더위도 부채와 선풍기로 보냈다. 그는 15세 때 경리사원으로 부친의 사업을 도운 지 35년 만인 1977년 코오롱 회장에 올랐다. 그는 등산식, 마라톤식으로 표현되는 꾸준한 내실 경영으로 그룹의 체질을 다져놓은 이후 섬유와 무역에 치우친 사업구조를 건설과 화학으로 확대했다.1980년대는 전자소재와 합성섬유 등 신업종으로 영역을 더욱 넓혔다. 이 명예회장은 과외 활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1974년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후 1975년 농구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사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활약했다.1980년에는 대한농구협회 회장을 맡았으며,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서 스포츠 외교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경총 회장은 82년부터 무려 14년간이나 했다. 1996년 1월 이 명예회장은 10년 이상 경영수업을 받은 장남인 이웅열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고 선친처럼 명예회장으로 물러났다. ●‘3박4일’ 이웅열 회장 이웅열 회장은 5명의 누이들 속에서 컸지만 성격은 대단히 남성스럽다. 특히 스포츠를 좋아해서 축구와 야구, 테니스, 탁구, 당구, 골프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또 시작하면 프로(?)수준이 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그의 별명이 ‘3박4일’로 불린 이유는 무엇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 때문이다. 그의 학창 시절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다지 풍족하지 않았다. 부친인 이 명예회장이 박하지 않을 정도의 용돈만 줬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재벌 아들이 ‘짜다’는 소리를 수시로 들었다.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MBA)를 받았다. 이 회장은 활달하고 사교적이다. 전경련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아 재계 2∼3세의 리더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류진 풍산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가깝게 지낸다. 그의 이같은 사교적인 성격은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의 성품과 닮았다. 호방하고 풍류를 즐겼던 이 창업주는 사업가보다 정치인으로 이름이 더 잘 알려졌다. 1989년 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그룹 경영에 참여한 이 회장은 이동통신사업을 직접 진두지휘하면서 그룹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파고로 계열사 매각과 신세기통신(현 SK텔레콤) 지분(1조 700억원어치)을 팔아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 회장은 당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해 미래를 팔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침통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코오롱의 어려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섬산업이 고유가와 중국의 저가 공세로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올해를 ‘턴어라운드’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구조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권 장자 승계 코오롱 가문은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아들이 귀한 집안이다. 창업주인 이원만 회장은 슬하에 2남4녀를 뒀지만 이 명예회장은 1남5녀, 이웅열 회장도 1남2녀다. 그룹 경영은 장남만 참여하고, 딸들과 사돈가의 경영참여는 철저히 배제한다. 장자일계(長子一系)의 경영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코오롱가의 특징이다. 다른 그룹들이 사돈을 비롯한 친인척들로 방대한 족벌 경영체제를 이룬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명예회장과 숙부인 이원천 전 사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친인척 배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이 창업주가 그룹경영을 맡고 있을 때는 사위들의 경영 참여가 적지 않았지만, 이 명예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이같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정해졌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우리 집 여자들은 아버지 사업이나 남편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법이 없다. 사위들이 처가 덕을 보고 한자리 하겠다면 득보다 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방해가 될 뿐 아니라 잘 해내는 경우에도 열등감이 생긴다. 능력이 없다고 ‘백년손님’이라 쫓아낼 수는 없는 일이니 난처해질 것이고, 훗날 내가 일선에서 물러날 땐 조용해지기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철저히 장자일계의 경영구조를 갖춰 경영권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나 다툼을 미리 차단했다. ●김종필 전 총재와 한때 사돈 이원만가(家)의 혼맥은 국내 재벌가의 최정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될 정도로 화려하다. 이 창업주의 넓은 정계 인맥과 국내 굴지의 섬유그룹인 코오롱을 기반으로 정·관·재계 곳곳에 혈연 관계를 맺었다. 이 창업주와 이위문(작고) 여사는 2남4녀를 뒀다. 이 창업주의 영향력이 정·재계에 미치기 전에는 자녀들을 평범한 집안과 통혼시켰지만, 사업 성공에 이어 정치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던 시기엔 국내 내로라하는 집안을 사돈으로 맞았다. 이 때문에 정략 결혼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장남 이동찬 명예회장은 1944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장가부터 들라.’는 부친의 강요로 맞선을 본 지 1주일 만에 평산 신씨가(家)의 무남독녀 덕진(82)씨와 결혼했다. 이 명예회장 부부는 지난해 1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장녀 봉필(72)씨는 54년 고향 인근 임병진씨의 아들 승엽(작고)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승엽씨는 삼경물산 사장을 거쳐 그룹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차녀 애란(63)씨는 노영태(63)씨와 혼인을 치렀다. 3녀 미자(61)씨는 포항지주인 박문학가(家)의 장남 성기(66)씨와 결혼했다. 성기씨는 한국바이린 사장을 역임했다. 차남 이동보(56) 전 코오롱TNS 회장과 막내딸 미향(51)씨의 결혼으로 코오롱가는 재계 혼맥도의 핵심으로 올라선다. 이 전 회장은 74년 제3공화국의 2인자였던 김종필 전 총재의 장녀 예리(54)씨와 결혼했다. 이를 통해 코오롱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한 다리 건너 사돈이 됐으며, 최고 권력가와 혈연의 끈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결혼은 육영수 여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성격 차이로 갈라섰다. 이동보 전 회장은 1988년 코오롱그룹으로부터 분가했지만 부도와 구설수에 휘말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막내 미향씨는 삼립식품 창업자인 허창성 집안으로 출가했다. 식품종합그룹인 SPC의 허영인(56) 회장이 그의 남편이다. ●정략결혼과 3세 혼맥 코오롱가의 혼맥은 3세로 내려가면 더욱 빛이 난다. 이 창업주가 자신의 입지와 뜻을 펼치기 위해 손주들을 정략 결혼시킨 경우가 있어서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슬하에 경숙, 상희, 혜숙, 은주, 웅열, 경주씨 등 1남5녀를 뒀다. 장녀인 경숙(59)씨는 1969년 당시 공화당 의장 서리였던 고 이효상 전 국회의장의 3남 문조(65)씨와 화촉을 밝혔다. 이 전 국회의장은 도쿄대를 나와 경북대 교수로 있다가 1960년 정치에 투신해 5선 의원을 지냈다. 정계에선 대구·경북(TK) 인맥의 대부로 통했다. 국회의장을 비롯해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문조씨는 현재 영남대 교수로 재직중이다. 차녀인 상희(56)씨는 국내 대표적 ‘송상(松商)’으로 불렸던 고홍명 한국빠이롯드 회장 집안으로 출가했다.1973년 고 회장의 장남 석진(작고)씨와 결혼했다. 석진씨는 코오롱제약(옛 삼영신약) 사장을 거쳐 빠이롯드전자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부도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98년 별세했다. 3녀인 혜숙(53)씨는 고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의 장남인 동혁(58)씨와 결혼했다. 현재 고려해운 회장인 동혁씨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석사 출신이다. 해운선사로서는 처음으로 타이완과 홍콩 등 동남아 항로에 진출해 해운업계의 프런티어 경영인으로 이름이 높다. 4녀인 은주(51)씨는 테니스 인연으로 신병현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의 장남 영철(55·의사)씨와 결혼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와 상공부 장관,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 등을 지냈다. 이들 부부 결혼식은 신 전 총재가 직접 주례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웅열 회장은 큰 누이 경숙씨의 소개로 1983년 황해도 출신인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장녀 창희(45)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서 회장은 1962년 고급벽지의 대명사인 갈포벽지를 만들어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인물이다. 부인 창희씨는 이화여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이 회장 부부는 규호(21)와 소윤(18), 소민(16) 등 1남2녀를 두고 있으며, 규호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5녀인 경주(46)씨는 개인사업을 하는 최윤석(46)씨와 결혼했다. ●딸·며느리 모두 이대 동문 장자 경영과 친인척 경영 배제의 원칙 때문인지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 활동보다 가정주부로서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교육에 애쓴다. 이 명예회장의 부인인 신 여사는 지금껏 바깥 사교모임에 한번도 참석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신 여사는 집안에서 살림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3세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이 명예회장의 모친인 고 이위문 여사가 남편인 이 창업주의 호방한 성격과 바깥 활동으로 마음 고생이 매우 심했지만 결코 내색하지 않고, 자식들을 바르게 키운 선례 때문이다. 코오롱가의 딸과 며느리들은 또 모두 이화여대 동문들이다. 장녀 경숙씨가 생활미술과를 나왔으며, 상희씨는 기악과, 혜숙씨는 가정학과, 은주씨는 도서관학과를 나왔다. 이 명예회장은 평소에 딸들을 이렇게 평했다고 한다.“장녀는 걷는 모양부터 급한 성격까지 나를 제일 많이 닮았으며, 둘째는 시댁에서 살림만 하는 편이지만, 항상 밝고 착한 데다 쓸데없이 친정에 오는 일이 없다. 셋째는 공부도 제일 잘했고, 바른 소리도 잘했다. 악바리면서 의리가 강하다. 넷째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해서인지 덜렁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며느리 창희씨도 코오롱가의 여자답게 대외 활동보다 조용히 집에서 자녀 교육과 남편 내조에 열심인 한국적인 주부다. 사교 모임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창희씨지만 코오롱그룹 간부 부인들로 구성된 ‘코오롱가족사회봉사단’ 활동엔 적극 나서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의 ‘李트리오’ 지금의 코오롱그룹 토대를 쌓은 주역 가운데 한 명이 고 이원천 전 한국나일론(현 ㈜코오롱) 사장이다.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의 동생이며, 이동찬 명예회장에겐 숙부가 된다. 이 전 사장은 일제시대 때부터 일본에서 형님인 이 창업주의 사업을 도왔다.1957년에는 한국나일론 사장직에 추대돼 코오롱의 ‘섬유시대’를 이끌었다. 당시 이원만-이원천-이동찬 3인은 코오롱에서 ‘이 트리오’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전 사장은 조카인 이 명예회장과 회사 분할을 놓고 첨예하게 맞서면서 나중엔 경영권 분쟁에 빠졌다. 이 전 사장은 결국 1976년 한국나일론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자신의 지분을 챙겨 원진레이온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1년만에 쓰러졌다. 이 창업주는 이후 장남인 이 명예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겼고, 회장에 오른 이 명예회장은 동생인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을 분가시켰으며, 매제들도 계열사 경영에서 손을 떼게 했다. 이 명예회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숙부에 대한 회한이 커지는 요즘에도 회사 분할에 반대한 것은 옳은 일이 아닌가 싶다…. 숙부와의 경영권 분쟁은 결국 조카가 숙부의 세력을 완전히 퇴치해 버린 것 아니냐는 평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그룹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라면 나는 굳이 부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사업엔 실패했지만 이원천가(家)의 혼맥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다. 형님인 이원만 창업주가 제3공화국의 실력자 김종필 전 총재와 인연을 만들었다면, 이 전 사장은 또다른 실세였던 정일권 전 총리와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원천가(家)는 육군참모총장 출신으로 국무총리와 국회의장을 지낸 정일권 집안과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딸 희경씨가 이 전 사장의 아들과 결혼했다. 또 이원천가(家)와 영풍그룹은 한 다리 건너 사돈간이다. 고 정 총리의 장남인 세훈씨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딸 현주씨와 인연을 맺었다. 영풍그룹은 또 6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김세련씨 가문과도 연이 이어진다. golders@seoul.co.kr ■ 코오롱 이끄는 전문경영인들 ‘코오롱호’를 이끄는 대표 최고경영자(CEO)는 누가 있을까. 한광희(56) ㈜코오롱 대표는 코오롱그룹의 간판 CEO다. 그는 요즘 한계사업 정리와 차세대 먹을거리 준비에 분주하다.1976년 코오롱에 입사한 이후 기획관리 등 주요 사업부를 두루 거쳤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 대표는 책상에 앉아 숫자놀이를 하는 것보다 현장 영업을 더 즐기는 실물형 CEO에 속한다. 민경조(62) 코오롱건설 대표는 23년간 건설에서만 근무한 전문경영인으로 위기관리가 뛰어나다는 평이다. 사내에선 따뜻한 집안의 가장 같은 CEO로 불린다.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막내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로 상하간 의사소통을 중시한다.“똑똑… 민경조입니다, 야근 힘들죠, 문제되는 게 뭔가요, 오늘 팀원들과 저녁 같이 합시다.”로 유명해 먼저 다가서는 CEO로 통한다.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을 정도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제환석(59) FnC코오롱 대표는 현장주의자다.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800개에 이르는 매장을 서울에서 제주까지 하나하나 찾았다. 지금도 주말을 이용해 매장을 방문하고 있다. 제 대표는 또 CEO 명함 외에 ‘열사모’의 방장 직책을 갖고 있다. 열사모는 제 대표가 만든 모임으로 오프라인의 단체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사원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가상의 모임이다.“스스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원 모두가 열사모의 열사”라고 말하는 제 대표는 열사모 방장의 이름으로 직원들과 곧잘 의견을 교환한다. 배영호(61) 코오롱유화 대표는 엔지니어로서는 드물게 미국 뉴욕지사 근무를 했다.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해외 영업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죽기살기로 부딪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배 대표는 당시 직원 가운데 한국으로 되돌아온 유일한 사람이라고 한다. 첫 직장에 대한 그의 신의와 열정은 특유의 사업감각과 합쳐져 코오롱유화를 종합화학 회사로 도약시켰다. 김종근(55) 코오롱글로텍 대표는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여긴다. 직원 이름을 기억하고, 애로와 고충을 들어주며, 중요한 정보는 경영에 곧바로 반영한다. 또 직원들에게 책상에 앉아있지 말고 현장을 돌면서 문제와 해결방안을 찾으라고 한다.“사장님은 오늘도 지방사업장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바로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 때문이죠. 간담회라는 자유로운 형식을 통해 직원들과 허심탄회한 만남을 갖고 있습니다.61개 사업장인데 올해만 해도 벌써 세번째 라운딩입니다. 연초에 전직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바쁜 일정에도 사업장을 순회하고 계십니다.”한 직원의 이러한 설명에서 올 상반기에 비상장 5개사를 합병, 덩치가 커진 코오롱글로텍을 외형만큼이나 건실하게 키우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고유가 지속돼도 유류세 안내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일 “고유가가 장기화하더라도 유류세를 내리기보다 제품값에 반영해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한 부총리는 이날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한국표준협회 최고경영자 조찬회 초청강연에서 “지난해 배럴당 35달러였던 석유값이 올해 48달러로 올랐고 내년에는 더 오를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한 부총리는 이어 “서울에서 행정부처가 공주, 연기로 가고 200개 기업이 지방에 분산되는 상황에서 수도권이 앞으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하느냐에 대해 논의중”이라면서 “수도권 중소기업 내 보육시설 설치나 연구소 설립 등에 대해서는 필요하면 제도 개혁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 부총리는 또 “정부는 집단소송제 등을 2년여 동안 연기하면서 분식회계를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시간을 주고 있다.”면서 “어떤 것도 영원히 감춰지기는 어려운 만큼 이 기회를 활용하라.”고 강조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행정혁신 우리가 이끈다] (4) 대전 서구

    [행정혁신 우리가 이끈다] (4) 대전 서구

    “고장수리가 너무 빨라졌네요.” “요즘에는 가스사고 위험을 느끼지 못하면서 살아요.”대전 서구에 가스를 공급하는 업소 직원들은 최근 이런 말을 주민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서구가 지난 3월 국내 처음 구축한 ‘가스 안전관리 네트워크’ 덕분이다. 이는 구와 한국가스안전공사, 가스공급업소가 공동으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가정·음식점 등의 가스관리 실태를 실시간으로 점검, 대처하는 안전시스템이다. 우편 공문이나 방문을 통해 늑장 대처하던 이전과는 차이가 크다. 소비자나 업소 직원이 가스시설의 문제점을 발견해 신고하면 이 내용이 구와 가스공사, 업소가 공유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동시에 뜬다. 신고 내용을 네트워크에 올린 업소로서도 구와 공사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서둘 수밖에 없다. 이전처럼 3∼4시간씩 지체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가스가 새는지, 가스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지 등이 점검 대상이다. 네트워크 구축으로 더많은 혜택을 보고 있는 곳은 구와 가스공사, 가스공급업소다. 예전에는 업소 직원이 가스시설에 하자가 발견되면 구에 우편으로 통보하고 역시 우편을 통해 구의 시설개선명령을 받아 고장수리에 나섰다. 급할 때는 구를 직접 방문해야 했다. 수리를 마친 업소는 공사에 고장현장점검을 요청하고 공사의 합격진단이 떨어져야 끝이 났다. 보통 15일이 걸렸다. 하지만 불합격 판정이 나오면 이런 과정을 또다시 밟아야만 한다. 지금은 네트워크를 통해 구에 보고되고 개선명령도 이를 통해 나간다. 공사에서 최종 현장점검을 서두를 경우 이르면 하루 안에도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 좌승택 서구 에너지관리계장은 “업소 직원들이 ‘번거롭지 않고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정보를 공유해 좋다.’고 반긴다.”고 자랑했다. 구는 네트워크 프로그램 개발비로 620만원을 들였지만 우편료와 서류비용, 인력비 등을 합쳐 연간 1490만원의 행정비용을 절약하고 있다. 대전 5개 구를 합치면 7400여만원, 전국으로 확대하면 연간 12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사는 정확한 현황관리로 서구에서만 연 2813만원, 업소는 신속한 수리와 교통비 절감 등으로 19억 2000만원을 아끼고 있다. 대전시는 지난달 7일 5개 구청합동회의를 갖고 조만간 시 전역으로 이 네트워크를 확대, 시행키로 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뉴스피플] 마지막 개성상인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뉴스피플] 마지막 개성상인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명예회장

    “신용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돼. 그리고 기업인은 누구보다 정직해야지.” 올해 89세로 경영계 최고 어른인 동양제철화학 이회림 명예회장의 일침이다. 이른바 ‘삼성X파일’ 사건과 분식회계로 인한 두산그룹의 형제간 갈등, 장흥순 터보테크 회장과 김형순 로커스 사장의 퇴진 등으로 재계가 뒤숭숭해지면서 창업1세대이자 마지막 송상(松商)인 이 명예회장의 일생이 후배 경영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이 명예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수영 회장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 회장은 “상단을 조직해 전국을 누빈 개성상인들이 생명처럼 중하게 여긴 것은 신용이었다.”며 “회사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신용을 잃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이 돌아온다는 믿음을 토대로 신용을 쌓았지.”라며 요즘 젊은 경영인들이 상도(商道)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4세의 나이로 개성의 한 상점에서 무급(無給) 점원으로 출발해 국내 최대의 무역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근검절약과 신용제일주의’로 무장해 37년 개성에서 포목도매상인 건복상회를 개업한 뒤 해방 이후 서울 종로에서 포목 도매상인 이합상회와 개풍상사를 설립, 국내에 본격적인 무역업을 열었다. 이 회장은 이후 광산과 시멘트업체, 서울은행 등을 소유했으나 대부분 정리하고 59년에 동양화학을 설립한 뒤 공업용 기초화학제품 생산에 전념했다. 이 회장은 ‘기업윤리’보다는 ‘기업이윤’이 강조됐던 60년대에도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몸소 실천했다. 대한양회의 관리 부사장으로서 재직하던 그는 사내 다른 경영진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재단설립을 강행해 3·1장학금과 3·1문화상을 제정했다. 또 지난 6월에는 자신이 평생 모은 문화재 8437점을 인천시에 기증했다. 자신의 아호를 딴 ‘송암미술관’을 통째로 기증한 것이다. 이 미술관은소장 문화재들의 가치를 따지면 1000억원대에 이른다. 이 회장은 미술관 건립 당시 주위에서 인천이 아닌 서울에 세울 것을 권유하자 “내가 인천에서 뜻있는 사업을 시작했고, 여기서 성장해 지금에 이르렀는데 인천에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 인천시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경영인들이 정도경영을 실천하고 사치풍조를 배격하는 개성인들의 생활정신을 배워야 할 때”라며 대선배로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동원그룹-김재철 회장家

    “김재철(70) 회장은 자신을 장보고라고 생각하는 몽상가였다. 김 회장이 서울 농대를 포기하고 부산수산대를 지원한 것은 어쩌면 바다에 대한 동경이 아니면 힘든 선택이었을 것이다. 거칠고 험한 바다를 꿈의 대상으로, 기업의 대상으로 삼은 기업인은 우리 사회에 드물다.”소설가 최인호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원양어선을 타고 5대양을 주름잡던 마도로스 출신의 김 회장에 대해 건전하고 꿈이 있는 몽상가라고 평했다.2000년 당시 해상왕 장보고기념사업회를 이끌던 김 회장은 최인호씨에게 장보고를 소설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최인호씨는 장보고가 흥미있는 인물이지만 권력을 꿈꾸다 암살(삼국사기)당했던 만큼 내키지 않았지만 김 회장의 설명을 듣고 장보고에 깊이 빠져 소설 ‘해신(海神)’을 쓰게 됐다. ●바다와의 인연…장보고를 꿈꾸며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벤처 비즈니스맨의 전형이다. 서울대 입학을 마다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좇아 바다 인생을 택했기 때문이다. 성실과 불굴의 투지, 그리고 개척자 정신으로 바다와 싸워 성공을 거뒀고 식품가공업과 금융부문 등으로 그룹을 키워내며 자신의 꿈을 이뤘다. 김 회장의 삶은 이처럼 바다를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1935년 전남 강진 농촌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는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에 따라 동생들 대신 학교를 다닌 셈이다. 어린 동생들은 후에 김 회장이 학비를 대주었지만 기대와 책임감을 한몸에 안고 유년시절을 보냈다. 걸어서 두 시간이 족히 걸리는 강진농고를 결석 없이 다니면서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 진로를 고민하던 고3 시절.“바다는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이끌려 망망대해로 인생의 나침반을 돌렸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계기로 그는 수산대에 진학해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장학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다. 김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시골 학교에서 서울대에 들어간다면 큰 경사인데 갑자기 지방에 있는 뱃사람 학교에 가겠다고 하니 부모님을 비롯해 주위에서 반대가 많았습니다. 또 졸업하고 나서 배를 탈 때도 장애가 많았습니다. 정식 학부 졸업생이 배를 탄 것은 제가 처음이었거든요. 당시 수산대 졸업생들은 수산청이나 수산업협동조합 같은 관계기관에서 근무하거나 교사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여수수산고 교장으로 계시는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교사로 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백면서생의 객기쯤으로 받아들이는 듯했습니다. 결국 항해중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겨우 승선할 수 있었습니다.” ●‘참치 잘 잡는 마도로스’ 1958년은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원양어업을 시작한 뜻깊은 해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 첫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승선자이기도 하다. 기업가로 변신하기 전 김 회장은 8년간 실제로 마도로스 생활을 했다. 항해사로 시작한 뱃사람 생활에서 곧 능력을 인정받아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됐다. 파격적인 승진이다. 다른 배보다 빨리 만선을 기록한 데 대한 보상이었다. 그때부터 국내외 원양어선 업계에서 그는 ‘참치 잘 잡는 선장’으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나라 수산업을 일으켜 보겠다는 각오로 배를 탔고 한 마리라도 더 잡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는 생각으로 출어에 나섰다.”면서 “고기떼를 찾아 바다를 헤맬 때나 조업을 앞둔 새벽이면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뒤의 일은 신의 섭리에 맡긴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을 신조로 삼았던 마음 가짐 때문인지 승승장구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대충대충’‘괜찮아’다. 1964년 고려원양 수산부장으로 스카우트돼 물품판매, 차관업무, 선박도입 등 수산업 관련 업무를 익혔다. 당시 원양어선이 잡은 참치는 대부분 현지에서 수출됐는데 그때 외국상선들과 거래하며 쌓은 신용은 나중에 창업할 때 큰 도움이 됐다. 1969년.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조업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동원 산업을 창업했다. 당시 사업 밑천은 1000만원. 배는 일본 기업에서 공짜로 빌렸다. 일본에서 어선 구입비로 37만달러의 차관을 도입했는데 담보나 정부·은행의 지불보증 없이 신용만으로 빌린 것이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10여년간 쌓아온 신용의 결과였다. 사장이 된 뒤에도 그는 직접 배를 몰고 고기잡이에 나섰다.‘참치 잘 잡는 선장’이라는 별명이 무색치 않게 동원산업의 원양어선은 월등한 어획고를 기록했다. 창업 2년만인 1970년 외화 획득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수산청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물론 위기도 있었다.70년대 초 몰아닥친 1차 석유파동은 동원산업을 비롯해 모든 원양어선 업계에 타격을 주었다. 불황으로 도산하는 기업체가 속출하는 가운데 감원·감량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동원은 오히려 투자를 늘리는 등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4500t급 초대형 트롤어선을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큰 모험이었지만 그는 바다생활을 통해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배를 타면서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당시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만 해도 기상정보가 정확지 않아 예보없이 폭풍우를 만나는 일도 많았지만 바람이 온다고 일일이 피해 다니다보면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와 싸워 이기고 났을 때처럼 감격스럽고 벅찬 희열도 없다. 폭풍우와 맞서 싸운 경험들이 인생을 성장시켰고 여물게 해준 것 같다.” 그는 해양에 관한 풍부한 경륜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85∼91년 한국수산업 회장,90∼92년 원양어업협회 회장을 지냈다. ●식품과 금융업으로의 확장 다른 원양회사들이 낡은 배를 가지고 ‘본전뽑기’식 조업을 하는 동안 동원은 조업을 끝낸 선박은 현지에서 매각하고 최신형 장비를 갖춘 선박을 구입하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업계 선두주자가 됐다.30여척의 원양어선과 함께 연간 10만t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수산업체로 키운 것이다. 동원산업에서 참치캔을 내놓으며 식품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82년. 다랑어란 본명을 가진 참치는 참치의 일본명인 ‘마권(眞黑)’에서 ‘참(眞)’을 따고 우리나라 생선 대부분의 이름처럼 끝에 ‘치’를 넣어 참치로 부른 것이 유례가 됐다. 참치잡이는 그가 배를 타던 지난 1958년부터 시작됐지만 참치 가격이 비싸고 일반인들에게 낯선 고기여서 전량 수출됐다. 그는 “1981년 하버드대학 최고경영자 코스에서 몇달 공부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가 되면 참치통조림을 먹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그럼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참치통조림을 먹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서 참치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당시 어획고 전량을 일본·태국 등 외국에 전량 수출하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전혀 없었다. 한국에서 소비가 된다면 동원의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국내 다른 업체들이 참치통조림을 만들어 팔다 실패한 뒤의 도전이었지만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참치가 원래 우리나라 근해에서 잡히지 않는 고기라 낯설기 때문에 통조림에 참치 모양을 그려 넣고 텔레비전 광고를 시작했다. 등산로 입구에서 참치통조림 시식회를 하는 등 참치를 알리는 데 총력을 쏟았다. 출시 이후 4∼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88올림픽과 함께 국민 식품으로 자리잡으면서 동원은 명실공히 식품 업계 강자로 부상했다. 동원 참치캔은 국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식품업을 시작한 1982년. 김 회장은 증권업에도 뛰어들었다. 역시 하버드대학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공부하며 들었던 얘기가 동기가 됐다. 하버드대학 MBA출신들이 어떤 분야에 주로 취업하는가를 조사해 봤더니 우수한 사람들이 증권회사나 투자은행을 선호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라는 것이다. 그는 어선을 더 사려고 준비했던 돈으로 증권회사를 샀다. 당시 국내 증권회사의 인식이 좋지 않아 원양어선 한 척 값(80억원대)으로 중견 증권회사인 한신증권을 살 수 있었다. 한신증권을 낙찰받으면서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신증권은 1996년 동원으로 개명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아예 동원그룹에서 분리되어 한국투자증권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재탄생했다. 99년 무역협회 23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그룹의 일들은 주요 사항만 보고받고 있다. 무협 직원 절반가량을 줄이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는 한편 전자무역 인프라 구축, 세계적인 전시 컨벤션 육성, 수출입물류비개선 , 국제물류센터 추진 등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아들들에 밑바닥부터 경영수업 김 회장은 부인 조덕희(67) 여사와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선장시절인 1962년 당시 초등학교 동창이던 조 여사의 오빠 조영채(70)씨의 소개로 만나 6개월 만에 결혼했다. 조 여사의 아버지는 김 회장이 졸업한 군동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지낸 분으로 김 회장을 사위로 맞는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다. 김 회장은 2004년 12월 그룹을 각각 금융과 식품의 양대 지주회사로 분리하면서 큰아들에게는 금융을, 작은아들에게는 식품을 맡도록 했다. 장남인 김남구(42)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2004년 3월 동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듬해인 지난 6월 자사보다 덩치가 훨씬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기존 동원금융지주보다 시가총액이 두배나 많은 1조원대의 한국투자금융지주를 설립했다. 고려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하고 1987년 동원산업 사원으로 입사한 후 91년 동원증권 대리, 기획담당 상무, 부사장을 거쳐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금융지주 지분 33%를 소유하고 있다. 동원F&B 등 식품 계열의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김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32) 경영지원실장(직급 차장)이 물려받았다. 고려대 사회학과 92학번인 김 실장은 회사 지분 44.98%를 갖고 있다.97년 동원산업에 입사, 동원엔터프라이즈 과장 등을 거쳤다. 아버지가 만든 참치캔 이후 업계를 선도할 새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표다. 동원그룹 관계자는 “장남 김 사장은 입사하기 앞서 6개월간 남태평양과 베링해에 나가 참치배를 타며 동원을 이해하기 위한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쳤다.”면서 “하루 16시간 중노동을 하면서 그물을 던지고 참치를 잡는 한편 참치를 삶고 냉동시키는 과정에서부터 갑판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남 김 실장 역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시작, 동원산업 영업부 평사원으로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등 밑바닥부터 배웠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체구가 좋고 남들이 보면 구두쇠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평이다. ●정·관계로 이어지는 화려한 혼맥 건설교통부 장관부터 국정원장까지 동원가의 혼맥은 화려하다. 큰 아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사장은 집안끼리 알고 지내던 고병우(72) 28대 건교부 장관의 딸인 고소희(37·이대 전산학과 86학번)씨와 1992년 4월 공항터미널 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려대 김동기 교수가 주례를 섰다. 두 사람 사이에 동윤(12)과 지윤(7) 1남1녀가 있다. 고 전 장관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동아건설 회장 등을 역임하다 현재 한국경영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재철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 쌍용증권 회장 재직시절부터 김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김남구 커플은 ‘괜찮은 사람이니 한 번 만나보라.’는 양가 어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8개월간 연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대 서양학과 84학번인 첫째 딸 김은자(40)씨는 1989년 서울지검에 재직중이던 정택화(44·고대 법대 79학번) 검사와 중매로 결혼했다. 김은자씨는 내성적이고 일 욕심이 많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에서 초등학생을 겨냥한 사설 미술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정 검사는 광주지검 부부장검사, 대구지검 안동지청장, 부산고검 부부장검사, 의정부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 등을 역임한 뒤 현재 대구 고검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 올해 열두살된 외동아들 연욱이 있다. 둘째 딸 김은지(37·이대 정외과 87학번)씨는 고 김택수 전 의원의 4남인 서울 법대(81학번) 출신의 김중성(43)씨와 지난 1992년 10월 김상협 전 국무총리의 주례로 식을 올렸다. 성격이 명랑하고 친정과 시댁의 집안 대소사를 두루 잘 챙겨 어머니 조덕희씨의 자랑이 자자하다. 두 사람은 김 회장과 평소 친분이 있는 천신일 세중여행사 회장이 1988년 여행사에서 어린이들을 인솔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프로그램(CISV)의 대학생 리더로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나라종합금융 상무이사를 지낸 김씨는 지난 2001년 미국 뉴저지로 건너가 투자관리회사인 세인투자관리를 설립,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민선(12)과 현선(6) 두 딸이 있다. 막내 김남정(32) 실장의 아내는 33대 법무부 차관과 25대 국정원장을 지낸 신건(64)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의 셋째 딸 신수아(33·이대 장식미술학과 91학번)씨. 대학교 4학년 때 동아리 선배의 소개를 통해 누나-동생 사이로 만난 뒤 6개월만에 연인 사이로 발전,3년 열애끝에 결혼했다. 김상하 삼양사 회장 주례로 지난 1998년 10월 워커힐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동찬(5)과 서연(2) 남매를 두고 있다. 사돈인 신건 전 국정원장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인 김재국(63) 전 동해하이테크 사장의 친구이기도 하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뛰어난 문장가’ 김재철 회장 “재웅아! 우리는 드디어 만선(滿船)을 했다. 우리 배는 지금 어창(魚倉)마다 고기를 가득 싣고 사모아로 돌아가는 길이다. 푸른 하늘엔 흰 구름 떠가고 바다엔 새하얀 우리 배가 물결을 가르면서 달린다. 물위에 떼를 지어 놀던 고기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한가로이 물에 떠 있던 고래도 배를 피해 점잖게 물 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엊그제까지도 바다는 성난 파도로 꿈틀거렸는데 오늘은 우리의 만선귀항을 축하라도 하는 듯 잔잔하구나.”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 소개된 김재철 회장의 ‘남태평양에서’의 한 구절이다. 김 회장은 책을 많이 읽는 독서광으로 유명하지만 문장가로서도 이름이 높다. 젊은 시절 바다에서 생활하면서 간결하고 생동감 있는 글을 많이 썼다. 이밖에 ‘바다의 보고’,“거센 파도를 헤치고’ 등 그의 글은 초·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소설가 정비석씨는 ‘사상계(思想界)’에 발표한 김 회장의 글을 보고 “이 정도 글 솜씨라면 작가로 데뷔해도 좋겠다.”고 평했다. 김 회장 스스로도 기업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문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가 있다. 그는 원양어선 선장시절 선용품을 사기 위해 시모노세키 등의 항구에 기항하면 책방에 가서 헌책들을 무게로 달아 구입해 배 안에서 끊임없이 읽었다. 덕분에 김 회장은 문학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구사할 만큼 일본어 실력이 뛰어나다. 지난 2004년 일본 미쓰비시 그룹 회장·사장단으로 구성된 모임인 ‘금요회’에서 ‘나의 인생과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주제로 일본어 특강을 했다. 요즘도 월 평균 10∼20권의 책을 읽는다. 경제·경영·역사·심리 등 분야가 다양하다. 회계학도 독학으로 배워 재무제표도 꼼꼼히 본다. 직원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동원산업 사내 게시판에는 책 요약 서비스까지 제공된다. 처남인 박인구 동원F&B 사장도 국내 출장이나 여행 때는 반드시 KTX를 탄다.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에게도 어린 시절부터 독서를 강조했다.1주일에 적어도 한 권씩은 읽도록 했다. 정독이 안되면 통독을 하라고 가르쳤다. 책을 주고 A4용지 4∼5장 분량의 독후감도 받았다. 내용이 부실하거나 느낀 점이 부족하면 느껴야 될 점과 핵심 등을 설명해 주었다.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오래전에 독후감 제출을 졸업했지만 김 사장보다 열살 어린 동생 김남정 실장은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독후감 제출 대상이었다. 김 실장은 “일본 대하소설 ‘대망’을 읽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얼마나 고생해 지도자 자리에 올랐는지 토론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면서 “최근에는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추천받았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jhj@seoul.co.kr ■ 동원출신 CEO들 ‘반짝반짝’ 김재철 회장은 소식·금연·절주 등 절제된 생활로 유명하지만 인재 욕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좋은 인재=좋은 실적’이란 생각에서 1980년대 후반 증권업계 최초로 성과급제를 도입했고 금융권 최초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했다. 동원이 인수한 한신증권은 90년대 한번에 특별성과급을 400%씩 지급,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참치를 많이 잡으면 선장에게 돌아가는 몫이 많듯 선장을 지낸 그의 삶에 성과주의가 깊이 배어있는 것이다. 때문에 동원증권 출신들 중에는 스타급 인사가 많다. 동원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인)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대신증권에서 김 회장에게 한신증권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1998년 동원증권 사장 재직 당시 금융권 최초로 10만주의 스톡옵션을 받았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주택은행장으로 영전돼 권리 행사는 하지 못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이 즐겁게 일한 뒤 행복하게 헤어진 모범 케이스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동원이 놓아주지 않으려 애를 먹은 것으로 유명하다. 나이 마흔이 되면 창업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이사 재직 시절인 서른 아홉이 되던 해에 동원증권을 나왔다. 그를 놓아줬다는 이유로 화가 난 김 회장이 김 전 행장과 무려 6개월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낸 일화는 아직도 금융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행장은 한신증권 이사로 일하면서 박 회장을 동원에 영입했다. 두 사람은 절친한 광주일고 선후배 사이다. 재경부 공무원 출신의 정태석 광주은행장(전 동원증권 상무), 장인환 KTB 자산운용 사장(전 동원증권 차장), 송상종 피데스 투자자문 사장(전 한신증권 대리), 조승현 전 교보증권 사장(전 동원창업투자 사장)도 모두 한때 동원증권에 적을 뒀다. 지금도 동원에 몸담고 있는 스타 CEO들이 많다. 서두칠 동원시스템즈 사장은 2002년 초 김 회장의 영입제의를 받고 통신장비업체인 이스텔시스템즈(옛 성미전자) 사장으로 왔다. 동원시스템즈는 지난 3월 이스텔시스템즈와 동원EnC가 합병한 회사다. 그는 1997년 말 한국전기초자의 전문경영인으로 부임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 퇴출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3년만에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킨 주인공. 김범석 한국투자신탁운용 사장은 금융관료 출신으로 2002년 합류했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은행구조조정팀장과 구조개혁기획단 은행팀장을 지냈다.2000년 초 키움닷컴 사장을 지냈다. 김 회장의 두 아들을 제외하고 동원에서 일하는 인척은 김 회장의 셋째 동생 김재운 동영콜드프라자 대표이사 회장, 둘째 처남인 동영콜드프라자 최재열 상무와 셋째 처남인 동원F&B 박인구 사장 등이다. 박 사장은 1997년 산자부 상무관 시절 동원정밀 부사장으로 동원에 합류했다. 외환위기 당시 이익을 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동원F&B 사장이 됐다. 박 사장은 “김 회장은 항상 동생들과 가족들에게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부인이 아직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 없이 사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라고 덧붙였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7일 TV 하이라이트]

    ●도전!죽마고우(EBS 오후 8시5분) ‘종합 재활운동의 꽃’이라 불리는 휠체어 럭비는 1977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것으로, 목 아래쪽 신경이 마비된 경추마비 환자들을 위해 휠체어 농구 대신 개발한 경기이다. 죽마고우 팀이 도전할 종목이 바로 휠체어 럭비. 죽마고우 팀은 일주일간의 지옥훈련 끝에 실제 휠체어 럭비팀과 경기를 갖는데….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SBS 오후 8시55분) 올해로 10년차인 ‘만년 대학생’ 봉찬이가 돌아왔다.336회 순간포착 출연 후 가짜 대학생 봉찬이에게 학생증이 생겼다. 전공은 댄스, 부전공은 연예인 이름 외우기. 만년 대학생 봉찬이의 좌충우돌 캠퍼스 스토리가 펼쳐진다. 팔딱거리는 날생선을 날로 씹어 먹는 아저씨의 엽기 식성도 공개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1시25분) 허리케인으로 뉴욕 기름값은 지난해보다 22.8%가 오르고, 물가지수도 1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인 동포의 70%는 세탁소, 식당 등 자영업을 하고 있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에 따라 동포 사회에서는 기름값 절약은 물론 장보기, 난방, 세탁비까지 줄이는 알뜰생활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맨발의 청춘(MBC 오후 8시20분) 화숙이 최 영감의 차를 타고 있는 것을 본 정환은 깜짝 놀라 넘어진다. 화숙 생각에 심란해하던 정환은 딸 미선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미선은 미선대로 삐져서 말도 않는다. 경주가 체육관을 왔다 간 후, 기석은 연습에 더욱 매진한다. 한편, 경주는 쇼호스트 트레이닝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는데…. ●피플 세상 속으로(KBS1 오후 7시30분) ‘개그는 우리에게 맡겨라.’쌍둥이 개그맨 상호·상민 형제. 그들의 개그에 대한 꿈과 도전을 들어본다. 시각장애인 아내와 함께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김효근씨. 그들의 부부애와 장애를 이겨나가는 사랑을 담았다. 또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정확하게 구사하는 파키스탄 청년 아티프가를 만난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버섯돌이가 떨어뜨린 반달 목걸이를 주운 미르는 버섯돌이를 돌이로 의심하지만 아닐 것이라고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한편, 미르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호구와 주비는 간신히 마법방에 들어가지만 때마침 마패와 장미가 나타나는 바람에 리틀마법전사들을 제거하는 데 실패한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2) 파자법(破字法)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2) 파자법(破字法)

    한 개의 글자를 부숴 여럿으로 나누거나, 역으로 여러 글자를 조합해 하나로 만들어 비밀스러운 뜻을 알아내는 것이 파자법이다. 한자 문화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일종의 암호 생산기술이다. 이미 중국 고대의 전국시대에 귀곡자(鬼谷子)라고 불린 한 기인이 만들어 사용했다 할 정도로 파자법의 연원은 깊다. 본디 뜻글자인 한자는 구성이 복잡하고 두 글자 이상이 뭉친 경우가 많아, 파자법이 생겨나기 쉬운 조건이다. 뜸뜬다는 ‘구(灸)’자만 해도, 위에는 오래라는 뜻의 ‘(久)’자가 있고 아래는 ‘불 화(火)’가 놓여 있다. 파자법으로 풀이해 보면, 사람이 불 위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바로 뜸이란 뜻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서 나는 좀더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들었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열여섯에 성인이 된다고 보았는데, 그것을 파자법으로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파과(破瓜) 즉 오이가 깨지는 해에 성년이 된다는 말이 있다. 여기엔 물론 초경이 시작된다는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오이 과(瓜)자에 비밀이 숨어 있다 한다. 그 글자를 파자법으로 분석해 보면 여덟 팔(八)자 두 개가 겹친 것이란다. 요컨대 여자 나이 열여섯이면 성인이 되는 것이고, 천하절색 춘향이 이도령을 만난 것도 파과의 해였다는 주장이다. ●파자법(破字法)이란 비밀 코드 비밀을 해독하거나 생산하는 데 파자법은 매우 유용했다. 그래서 예언서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정감록’을 읽다 보면 글귀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만 해선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는 다른 사물에 빗댄 우의법(寓意法)이나 파자법(破字法)을 적용해야만 본래의 뜻을 대강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목자(木子) 장군의 칼이요, 주초(走肖)대부의 붓이로다. 비의(非衣) 군자가 품은 뜻은 다시 삼한의 서울을 정하는 일이다. 목자가 나라를 세우는 데 주초의 계략과 정기가 기틀을 마련할 지니.”(청구비결) 흔히 조선왕조의 건국을 예언한 것으로 풀이되는 구절이다. 목자(木子)는 곧 이(李)씨로 태조 이성계를 상징한다. 주초는 조(趙)씨, 비의(非衣)는 배(裵)씨를 파자한 것이다. 조선 개국공신들 가운데 마침 조준(趙浚·1346~1405)과 배극렴(裵克廉·1325~1392)이 포함돼 있어, 그들이 다름 아닌 ‘주초대부’와 ‘비의군자’로 비정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조선 개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정도전이 비결에 언급돼 있지 않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파자법이라면 위에 살핀 경우처럼 두 글자를 하나로 묶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때로는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기도 한다. 파자법의 압권을 ‘정감록’에서 찾아보자. “선비(士者)는 관을 비뚜로 쓰며(橫冠) 신인(神人)이 옷을 벗고(脫衣) 주변을 달리다 몸을 기댄 채(走邊橫己) 성인의 이름에 여덟 팔자를 덧붙이면(聖諱加八), 계룡산 바위가 희게 변하고 청포의 대나무가 하얗게 되며 (중략) 대중화와 소중화가 함께 망하리라.”(감결) 계룡산 바위가 변하는 것부터 시작해 중국(대중화)과 한국(소중화)이 일시에 망하고 만다는 예언이다. 글의 구조상 이런 일대격변을 일으키는 조건은 밑줄 친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읽어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술사들은 수수께끼처럼 여겨지는 밑줄 친 대목을 파자법으로 풀어냈다. 우선 ‘선비(士者)는 관을 비뚜로 쓰며(橫冠)’를 사(士)의 머리 부분에 빗금을 그어 얹은 임(壬)자로 간주했다.‘신인(神人)이 옷을 벗고(脫衣)’란 대목은 신(神)자에서 보일 시(示)변을 제거해 신(申)자로 해독했다. 요컨대 앞의 두 대목은 임신(壬申)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낸 것이다. 그 해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아래 두 구절에서 해결돼야 했다. 술사들은 지혜를 짜냈다.‘주변을 달리다 몸을 기댄 채(走邊橫己)’는 주(走)변에 기(己)자를 더해 일어날 기(起)자로 해독했다. 마지막 구절인 ‘성인의 이름에 여덟 팔자를 덧붙이면(聖諱加八)’은 성인을 공자(孔子)로 보고 그 이름인 구(丘)자에 팔(八)을 합친 군사 병(兵)자로 풀었다. 두 대목을 서로 연결하면 기병(起兵) 즉, 군사를 일으킨다는 뜻이 된다. 임신년에 반란이 일어나면 온갖 징조가 뒤따라 일어나고 마침내 중국과 한국이 동시에 멸망하게 된다는 그야말로 엄청난 예언인 셈이다. 참고로, 청나라가 망한 것은 무신년(1911)의 일이었다. 조선왕조는 그보다 한 해 앞선 경술년(1910)에 사라졌으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셈이었다. 바로 이런 예언은 철종13년(1862) 전국 각지에서 이른바 임술민란이 일어나던 무렵 ‘감록’에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임술년(1862)을 전후해 조선에는 국내외 정세에 상당한 식견을 지닌 술사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감록’을 고쳐 쓰면서 ‘임술기병’에 해당되는 구절을 파자법을 이용해 삽입했다고 믿어진다. 따지고 보면 그 당시 중국의 사정도 무척 어수선했다.1851년에 시작된 이른바 태평천국의 난이 10년가량 계속되다 가까스로 마무리된 처지였다. 난리는 일단 진정됐지만 중국을 압박해 들어오는 영국과 프랑스 등 서구 열강의 간섭이 만만치 않았다. ●파자법의 명인들 고대부터 한국의 예언서에 파자법은 자주 등장했다. 고려태조 왕건의 등극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 ‘고경참’에도 신라를 가리키는 ‘사유(四維)’ 즉 라(羅)자가 보인다. 고려 때도 이자겸이 발호하자 ‘목자위왕(木子爲王)’, 이씨가 왕이 된다는 예언이 한 때 유행했다. 조선 중종 때도 그와 흡사한 ‘주초위왕(走肖爲王)’ 즉, 조씨가 왕이 된다는 말이 퍼졌고, 그 바람에 개혁정치가 조광조가 희생됐다. 파자가 한국사회에 널리 유행하다 보니 점을 보는 사람들 중에도 파자법의 대가가 많았다. 아직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었다. 어느 날 그는 일부러 다 떨어진 옷을 몸에 걸친 채 수도 개성을 둘러보았다. 시내의 좁다란 어떤 골목에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이성계는 한 노인이 점판을 벌려 놓은 것을 보았다. 마음속에 큰 야망을 품고 있던 이성계는 자신의 미래 운명을 점쳐 보기로 했다. 점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무 글자나 가리키면 되는 것이었다. 이성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을 문(問)’ 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노인은 혼비백산하며 이성계의 귀를 빌렸다.“공은 반드시 이 나라의 대왕이 되실 운세입니다.” 노인은 몇 번씩이나 고개를 숙여 경하의 인사를 아뢰었다. 이성계가 선택한 글자를 파자해 보면 ‘임금 군(君)’ 자를 좌우로 벌려놓은 모양이었고, 그래서 노인은 이성계가 훗날 임금이 될 거라고 믿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제대로 엿듣지는 못했으나,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본 길손이 하나 있었다. 이성계가 그곳을 떠나기가 무섭게 그 역시 노인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같은 글자를 짚었다. 노인은 역시 문(問)자를 파자했는데 결과가 아주 딴판이었다.‘문문(門門) 개구(開口)라!’ 당신은 아무래도 남의 문 앞을 돌아다니며 밥을 빌어먹을 팔자인 모양이오. 부디 절약에 힘써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오. 이쯤 되면 파자법도 어렵기 그지없다. 같은 글자도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파자법의 명인들 가운데는 후세에 이름이 전해진 경우도 있다. 조선 중기의 뛰어난 예언가 남사고가 그랬다. 그는 여러 곳의 길지(吉地)를 점쳐 놓기도 했지만, 파자법을 통해 동서분당(東西分黨)이며 그 뒤의 정치적 추이를 정확히 예언했다. 그의 예언대로 뒷날 동인들은 주로 낙산(駱山) 밑에 거주했고, 서인들은 안산(鞍山) 아래 터를 잡았다. 낙산이라면 북악산, 인왕산, 남산과 더불어 한양의 내사산(內四山)이요,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오늘날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일대를 가리킨다. 그런데 낙산(駱山)의 낙자(駱字)는 마(馬)와 각(各)을 합친 글자이다. 말(馬)을 타고 가다 떨어(各)진 형상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분당되고 나서 초기에는 동인들이 국운을 좌지우지하게 되지만 나중에는 제각각(各各)으로 갈라서게 될 운명이라 했다. 장차 서인의 운명을 상징한 안산(鞍山)은 그 뜻이 사뭇 달랐다. 안(鞍)자는 파자로 뜯어볼 때 바꿀 혁(革)자에 편안 안(安)자를 더한 것이다. 혁명 즉, 반정을 일으킨 뒤 세력이 안정되어 권력을 오래 유지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인들이 집권한 것은 인조반정 때인데 그 뒤 잠깐씩 몇 차례 실권(失權)한 적이 있긴 해도 조선 말까지 모든 권력이 그들의 수중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산은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다. 남사고의 예언이 들어맞긴 했지만, 지나치게 과장되어선 곤란하다. 그는 인조반정을 언급한 적도 없었고, 서인 역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된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 도무지 누군들 미래의 일을 제 손금 보듯 할 수가 있을 것인가. ●‘격암유록’과 현대의 파자법 어쨌든 후대의 술사들은 남사고의 예언 능력을 과대평가했다.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최근에는 그가 저술했다는 ‘격암유록’이란 예언서가 출현해 크게 주목받기도 했다. 이 예언서는 ‘정감록’의 상이한 내용을 합성한 위에, 몇 가지 다른 요소까지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판 정감록인 셈인데,‘격암유록’에도 파자법의 자취가 완연하다. 간단한 예를 몇 개만 들어보겠다. 여러 사람들이 이미 밝힌 대로 ‘격암유록’에 보이는 ‘추대읍(酋大邑)’은 세 글자를 연이은 정(鄭)자에 해당한다.‘시구(矢口)’는 지(知)자이며,‘일팔간팔(一八干八)’은 금(金)자이다.‘여자(女子)’는 호(好)자,‘팔력시월이인(八力十月二八)’은 십승(十勝)으로 풀이된다. 이런 예는 부지기수라, 일일이 말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격암유록’에는 현대 한국의 운명이 예언돼 있기도 하다. 파자법으로 풀어야만 되는 대목도 여럿이다. 그 하나는 6·25전쟁에 관한 것이다.‘격암유록’에는 백호(白虎)에 전쟁이 일어난다 했다. 백호란 호랑이해이면서 흰색에 해당되는 경(庚)년 즉,1950년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이때 “난을 피하려면 팔금산(八金山)으로 가라 했다.” 팔금산은 파자법을 적용해 보면 영락없는 부산(釜山)이다.6·25전쟁 때 부산은 안전했다. 국토가 장차 38선을 경계삼아 양분된다는 예언도 이미 나와 있었다.‘십선반팔삼팔(十線反八三八) 양호역시삼팔(兩戶亦是三八) 무주주점삼팔(無酒酒店三八)’이라 했다. 한 대목씩 차례로 살피면,“십선반팔삼팔(十線反八三八)”은 십(十)에 팔(八)을 더하면 목(木)이 되고 그 옆에 반(反)을 나란히 놓으면 板(판)자가 되는데 그것이 38선에 있다는 것이다.“양호역시삼팔(兩戶亦是三八)”이란 호(戶)를 좌우 양쪽에 늘어놓아 門(문)이 되는데, 그 역시 38선상에 위치한다는 것이다.“무주주점삼팔(無酒酒店三八)”은 주점(酒店)은 주점인데 술(酒)이 없으므로 店(점)이 된다. 끝으로,“삼자각자삼팔(三字各字三八)”이라 했다. 위에서 만들어진 석자 즉, 판문점(板門店)은 각기 8획이며 역시 38선에 위치한다고 했다. 이 예언이 1953년 휴전 성립 이전에 나왔다면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격암유록’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목인비거후(木人飛去後) 대인산조비래(待人山鳥飛來)’란 구절도 있다. 혹자는 파자법을 동원해 이것을 한국현대정치사의 일면으로 해석한다.‘목인(木人)’은 박(朴)씨를 뜻한다. 문제는 그가 ‘비거후(飛去)’ 즉, 죽은 뒤의 일이다.‘인산조(人山鳥)’가 기다렸다 날아온다(飛來)고 했다.‘인산조(人山鳥)’는 최(崔)씨라 한다. ‘격암유록’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될 사항이 있다. 파자를 해보면 기독교적인 용어가 많이 나온다는 점이다. 가령 ‘육각팔인(六角八人)’은 천화(天火),‘인언일대십팔촌(人言一大十八村)’은 신천촌(信天村) 또는 신앙촌에 짝한다.‘일양형(一羊兄)’은 한 마리(一) 으뜸가는(兄) 어린 양(羊)으로 해석되기 일쑤다. 그런가 하면,‘활아자수(活我者誰) 삼인일석(三人一夕)이라.’ 했다. 삼인일석(三人一夕)이 나를 살린다고 해석되는데, 삼인일석(三人一夕)이 문제다. 사람들은 이것을 파자법으로 풀어 닦을 수(修)로 본다. 종교적 수행이란 것이다. 기독교적 취향이 강한 사람들은 ‘정감록’에 빈번히 등장하는 ‘궁궁(弓弓)’과 ‘을을(乙乙)’ 같은 오래된 용어까지 파자법을 응용해 재해석한다. 전자의 경우 궁(弓)자 두 개를 마주 바라보게 돌려놓으면 아(亞)자가 되는데 그 가운데 십자가(十)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후자도 마찬가지다. 을을(乙乙)의 경우 을(乙)자 두 개를 서로 겹쳐 놓으면 만(卍)자가 되어 불교를 상징하는 것 같아 뵈지만 실은 그것이 아니라 한다. 만(卍)자의 복판을 꿰뚫는 두 개의 선은 다름 아닌 십자가(十)라는 것이다. 따라서 ‘격암유록’이 제시하는 구원은 십자가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사회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기독교화되었고, 그에 따라 ‘정감록’ 역시 기독교적인 색채를 더하게 되었다. ‘격암유록’은 1970년대의 위작이라는 주장도 있다. 맞는 말 같다. 우선 이 예언서에는 ‘철학(哲學)’,‘공산(共産)’, 그리고 ‘원자(原子)’ 따위의 현대적인 용어가 등장한다.‘서학(西學)’이니 ‘동학(東學)’ 같은 낱말도 있고, 파자법을 가지고 읽어보면 ‘박태선(朴泰善)’이란 이름도 나온다. 박태선 장로는 1970년대 후반 신앙촌 운동을 벌였다.‘격암유록’은 그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김삿갓과 파자법 파자법은 조선후기에 이르러 문학에까지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그 시기를 대표하는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은 파자법의 또 다른 대가였다. 그는 전국을 방랑하며 수많은 설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말끝마다 김삿갓은 파자(破字)와 동음이의어를 빌려 사회적 모순과 일상을 노골적으로 풍자했고, 민중들로부터 아낌없이 갈채를 받았다. 한 번은 방랑시인 김삿갓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날도 어디를 가다 날이 저물어 어떤 집에 머물렀다. 다음날 아침, 이미 해가 중천에 솟았는데도 아침상이 들어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뜨락에서 안주인이 “‘인량차팔(人良且八)’ 하고 전혀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버럭 내질렀다. 그러자 바깥주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월월산산(月月山山)!’이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허기진 배를 끌어안고 밥상이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던 김삿갓은 ‘그게 무슨 뜻일까.´ 하고 잠시 궁리하였다. 그러더니만 김삿갓은 담뱃대로 재떨이를 두어 차례 후려쳤다.“견자화중(犬者禾重)아 정구죽요(丁口竹夭)로다!”라고 크게 외치며 김삿갓은 네 활개를 저으며 길을 떠나는 것이었다. 세 사람 사이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량(人良)’을 위아래로 붙이면 밥 식(食)이 되고,‘차팔(且八)은 갖출 구(具)자가 된다. 안주인은 “식사를 준비할까요?”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에 대해 바깥주인은 ‘월월(月月)’ 곧 친구 붕(朋)자에 ‘산산(山山)’이라 했다. 메 산(山) 두 개를 포개 놓으면 나갈 출(出)자가 된다. 요컨대 “이 친구가 떠나거든!” 밥을 먹자고 대꾸한 것이었다. 지독한 구두쇠부부요, 교활한 암호였다. 그러나 김삿갓은 문자 속이 밝기로 세상에 으뜸이었다. 대뜸 그들의 암호를 해독했고, 이어서 ‘저종(猪種·돼지 종자들)아, 가소(可笑)롭다!”며 후딱 그 집을 나섰다. 김삿갓에 이르러 파자법은 점과 예언이란 전통적인 범주를 초월해, 오락적인 기능을 한껏 발휘하게 되었다.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꿈틀거린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33평형 발코니 확장 400만원 든다

    33평형 발코니 확장 400만원 든다

    아파트 발코니 확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큰 돈 들이지 않고 거실이나 방을 넓게 사용하거나 다양한 취미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서 발코니 확장이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확장 공사에 앞서 무엇보다 안전을 따져봐야 한다. 확장 이후 물기 있는 물건을 두는 공간이 없어지거나 여름철 비가 들이칠 수 있어 창문을 열어놓지 못하는 등 불편한 점도 많다. 따라서 미리 활용 용도를 따져보고 필요한 부분만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사비는 어떤 제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가급적 여러 가구가 한꺼번에 공사를 진행해야 공사비를 절약할 수 있고, 공사 기간 중 소음·먼지 등의 피해도 줄일 수 있다. ●발코니 확장 주의할 점은 안전을 먼저 따져야 한다. 발코니 하중이 300㎏/㎡ 이상 돼야 한다.92년 6월 이후 건축허가를 받은 아파트는 이 기준을 충족한다. 개조 후 무거운 물건 등을 쌓아두거나 침대 등을 집중 배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재로 꾸미거나 의류 수납장 등으로 이용하면 안성맞춤이다. 난간을 보강해야 한다. 문을 열면 바로 바깥이다. 난간 창살을 촘촘하게 하고 어린이들이 거꾸로 넘어가지 않도록 손을 대야 한다. 어린이가 있는 집에서는 추락을 예방하기 위해 ‘틸트 앤드 턴(Tilt&Turn, 윗열기와 여닫이 시스템창호)’ 개폐 방식의 창호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어떤 경우라도 내력벽(건물 하중을 지탱하는 벽)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 대개 발코니 양쪽에 있는 ‘날개벽’은 비내력벽이기 때문에 철거해도 되지만 활용도를 고려해서 철거해야 한다. 안전 다음으로 단열·방음이다. 개정되는 법률에서는 이중창이나 시스템 창호로 공사하는 경우만 확장을 허용한다. 이중창은 단열, 방음, 기밀성이 탁월한 제품을 골라야 한다. 일반 창호는 소리 차단 정도가 10∼15㏈이지만 시스템창호는 37∼40㏈ 차음 효과가 있다. 기존 유리를 떼어내고 이중창을 설치하면서 공사를 꼼꼼히 해야 한다. 문틀을 뜯어내고 다시 맞추는 과정에서 틈이 생기면 이곳을 통해 빗물이 들어가 아래층으로 흘러내리고 이웃간 마찰의 원인이 된다. 외벽과 천장에도 단열재를 붙여야 한다. 천장을 낮추는 공사를 병행하는 것이 좋다. 난방을 연장하는 경우 기존 난방 코일과의 연결 부분 땜질을 잘해야 한다. 용접이 제대로 안되면 물이 새고 난방 효과가 떨어진다. 기존 방바닥과 발코니의 수평을 제대로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때 콘크리트·석재 등으로 채우는데, 이 경우 하중이 늘어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바닥재는 가급적 가벼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콘크리트로 채울 때는 충분히 건조한 뒤 바닥을 깔아야 한다. 에어컨에서 나온 물을 뺄 수 있는 공간을 미리 확보해야 한다. 화분 등을 놓을 자리는 마룻바닥을 깔 수 없다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대형 아파트에서는 한 면 또는 일부 공간에 대해서는 확장하지 않는 것이 물기 있는 물건이나 화분 등을 두기에 좋다. ●자재나 디자인 따라 두배이상 들수도 대개 방 발코니를 확장하면 방 하나에 200만∼340만원, 거실 발코니는 300만∼600만원 정도 든다. 인테리어 시공업체인 태현산업개발 신용준 이사는 “33평형 기준 거실(발코니만 2.8평)은 399만원, 큰 침실(1.3평)은 180여만원, 작은 침실(1.25평)은 160여만원 들어간다.”면서 “내부 목공을 고급스럽게 꾸미는 등 선택하는 인테리어 자재나 디자인 등에 따라 많게는 두배 이상 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33평형 거실 발코니 2∼3평 정도를 늘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가설공사·비내력벽과 창호 철거비 등 16만여원 ▲바닥 난방과 미장공사 27만여원 ▲벽마감·천장단내림·중문설치 등 목공공사비 90여만원 ▲도장 및 수장공사 등 13만여원 ▲이중창 설치비 100만여원 ▲전기공사 7만여원 ▲마루공사 36만여원 ▲공과금 등 잡비 14만여원 ▲현장 관리 폐기물 처리 등 관리비 15만여원 등이다. 원가에 영업이익 15%, 부가세 10% 등을 추가한 금액이 청구된다고 보면 된다. 45평형 아파트의 거실 발코니(2.5∼3평) 확대 비용은 450만∼500만원,55평형 500만원,77평형은 600만∼700만원 가량 든다. 건설회사가 분양 시점에 단체로 주문을 받아 구조물을 변경하면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공사비가 20∼30% 적게 든다. 미리 개조 여부를 결정하는 게 유리하다. 류찬희 주현진기자 chani@seoul.co.kr
  • 광릉수목원 대형트럭에 ‘몸살’

    경기도 포천 광릉 국립수목원 관통도로가 통행이 금지된 8t이상 대형트럭들의 질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5일 수목원 인근 주민 등에 따르면 포천 소흘 산림생산기술연구소∼남양주 진접 국도 47호선 연결지점까지의 98번 국지도(국가지정 지방도) 5.1㎞ 구간(속칭 수목원길)에 지난 7월1일부터 8t이상 트럭 통행이 제한됐으나 단속이 뜸한 이른 아침이나 야간엔 덤프트럭과 트레일러를 포함한 대형트럭들의 통행이 계속되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은 광릉숲 보전을 위해 대형 차량 통행을 제한, 위반자에게 범칙금 7만원과 벌점 15점을 부과하고 있다. 지난해 국립수목원 조사 결과 광릉숲 관통도로 차량은 전년에 비해 54%나 증가, 도로변 100∼150년된 노거수(老巨樹) 650여그루 중 75%인 490여그루가 매연과 차량과의 충돌로 고사하거나 고사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차량 운전자들은 광릉숲 관통도로가 포천 소흘∼남양주 진접간 43번 국도와 47번 국도를 연결하는 최단 노선으로 우회할 경우에 비해 10∼20분 정도 시간이 절약돼 수목이 우거진 비좁은 2차선의 무단 통행을 계속하고 있다.경찰은 앞으로 기습단속 등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광릉숲 관통도로는 오는 2007년 8월 포천 소흘읍 이동교리∼내촌면 진목리간 길이 7.86㎞, 왕복 4차로의 광릉숲 우회도로가 완공되면 모든 차량의 통행이 제한될 예정이다.포천 한만교기자mghann@seoul.co.kr
  • [클릭 이슈] 공공공사 입찰제도 논쟁

    건설업계와 시민단체 사이에 새로운 공공공사 낙찰제 도입을 놓고 ‘글로벌 스탠더드’ 논쟁이 붙었다. 업계는 국무조정실 규제개혁기획단이 내놓은 ‘최고가치 낙찰제’가 ‘운찰제(運札制)’로 변질된 현행 적격심사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찬성하는 분위기다. 반면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완전한 최저가 낙찰제만이 글로벌 스탠더드 입찰제라고 주장, 입법과정에서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업계 “낙찰제 심사기능 강화해야” 최고가치 낙찰제는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되 설계·시공·공기·유지관리 등 공사 전반에 걸친 기술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낙찰자를 결정짓는 방식. 무조건 가격을 가장 낮게 제시한 업체에 일감이 돌아가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어 미국,EU, 영국 등이 운용하고 있다. 현행 입찰제는 100억원 이상 대형 공사 중 22개 종목에 대해 발주처가 임의로 PQ(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를 통해 입찰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부실시공을 막고 공사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업체에만 입찰자격을 주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업계는 “현행 PQ는 입찰가를 제외한 평가 항목은 대부분 업체들이 만점을 받고 있어 변별력에서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적격 업체를 가려내는 기준이 못되고, 다양한 예정가격 가운데 한 개를 골라 낙찰하한율을 맞출 수 있는 최저가로 입찰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발주 때마다 낙찰 요행을 바라보며 30∼50개의 업체가 달려들어 저가낙찰이 성행하고 있다. 당첨 확률만 다르지 사실상 ‘로또 복권’에 다름없다는 실정이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어떤 식으로라도 저가입찰에 대한 심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단순 최저가 낙찰에 따른 공사비 절약보다는 준공 이후 유지관리 등을 포함한 ‘총생애주기비용’ 절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최고가치 낙찰제 역시 최저가 낙찰 방식을 기본으로 깔고 있기 때문에 최저가 낙찰제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며 “세계 흐름에 맞춰볼 때 최저가 낙찰제만이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완전 가격경쟁을” 반면 경실련은 완전 가격 경쟁을 주장하며 최고가치 낙찰제에 반대했다. 입찰가를 싸게 제시한 업체에 공사를 주는 것이 시장원리에 맞고 정부 재정을 절약할 수 있는 제도이며 글로벌 스탠더드 입찰제라는 것이다. 예정가 100억원 이상 공사에 최저가 낙찰제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으나 현재는 500억원 이상 공사에만 적용하고 있다. 박정식 경실련 공공예산감시국장은 “연간 50조원에 이르는 공공공사를 완전 최저가 입찰제로 발주하면 예정가의 20%인 10조원을 절약할 수 있다.”면서 “일정 낙찰률을 보장하는 현행 입찰제를 전면 뜯어고쳐야 재정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주처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고 업체 로비가 먹힐 수 있는 최고가치 낙찰제는 현행 부패 구조를 끊을 수 있는 제도로서 부족하다.”며 “자칫 ‘그 밥에 그 나물’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최저가 낙찰에 따른 부실공사 우려는 보증과 감리 강화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싼값에 일감을 따냈거나, 공사 수행능력이 없는 업체에는 보증서를 발급해주지 않거나 감리를 철저히 하면 부실시공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사실상 건설공제조합과 서울신용보증 독점체제인 보증 시장을 시중 은행 등으로 확대 개방하고, 가격 경쟁으로 절약한 재정으로 우수 감리원을 확보,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흑자 서울’ 뚝섬에 달렸다

    “살림을 잘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 부동산 덕분이다.” 올해 서울시의 재정흑자를 둘러싼 상반된 해석이다. 하지만 올해 서울시의 흑자재정 달성 여부는 뚝섬 상업용지에 달렸다는 분석이다.●긴축재정과 징세 노력의 결실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재정흑자라고 할 수 있는 올해 순세계잉여금이 6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해(4000억원)보다 2000억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올해 서울시의 예산은 모두 14조 1832억원. 하지만 긴축재정을 펴다보니 5800억원가량 절약이 됐다. 게다가 부동산 실거래가 제도의 도입 등으로 취득세를 비롯, 부동산세가 늘어나고, 시의 체납세금 징수노력이 효과를 발휘해 세수목표인 8조 6818억원보다 2000억원이상이 더 걷힐 전망이다. 잉여규모가 8000억원대로 늘어나는 셈이다. 다른 사업에 부족재원을 지원해주더라도 재정흑자 규모가 6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서울시는 보고 있다. 청계천 복원과 서울숲 조성 등 이미 완공된 사업과 현재 추진중인 신청사 건립과 오페라하우스 신축 등 대형 프로젝트에 익숙해진 시민들로선 언뜻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다.●뚝섬부지 매각에 달린 흑자재정 서울시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흑자재정은 무산될 수도 있다. 당초 예산은 뚝섬 매각대금이 올해 모두 입금된다는 가정하에 짜여졌다. 따라서 뚝섬 매각대금이 걷히지 않으면 흑자재정 달성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셈이다. 지난 6월17일 매각된 뚝섬 상업용지의 매각대금은 모두 1조 1262억원. 하지만 지난 8월29일 잔금납부일에 제때 잔금을 낸 곳은 대림산업(3441억원)뿐이었다. 개인자격으로 응찰한 노영미(42·여)씨와 부동산개발업체 피앤디홀딩스가 매각대금의 10%인 계약금만 납입한 상태에서 잔금 2698억원과 3996억원을 아직 내지 않았다. 이들은 한달에 95억원가량의 연체이자를 물면서도 아직 잔금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납액은 6694억원. 이 돈이 연내에 입금되지 않으면 서울시의 재정흑자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 수준의 세계잉여금은 뚝섬 매각대금이 납입되지 않으면 거의 사라질 수 있다.“며 “하지만 잉여금 규모가 6000억원대인 만큼 매각대금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서울시의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고 말했다.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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