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박함
    2026-08-19
    검색기록 지우기
  • 봉사활동
    2026-08-19
    검색기록 지우기
  • 계곡
    2026-08-19
    검색기록 지우기
  • 사외이사
    2026-08-19
    검색기록 지우기
  • 진달래밭
    2026-08-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85
  • [野단일화 정국… 세 후보 기류] 安측 “거대 정당후보와 단일화 협상 골리앗과 싸우는 느낌”

    [野단일화 정국… 세 후보 기류] 安측 “거대 정당후보와 단일화 협상 골리앗과 싸우는 느낌”

    안철수 무소속 후보측에 야권 후보 단일화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오는 10일 이후 본격적인 단일화 협상을 앞둔 가운데 현재 여론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다는 점에는 다소 안도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민주통합당이란 거대 정당과의 단일화 싸움인 만큼 캠프 내부에서의 불안감도 적지 않다. 앞으로 지지율을 공고하게 하면서 단일화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묻어 있다. 안 후보는 31일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선거캠프에서 조정래 후원회장 주최로 열린 ‘시월의 마지막 밤을, 철수와 함께’ 후원회 모임에 참석해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의 느낌이다. 저와 싸우는 정당들은 거대 정당들이고 전국적으로 수십만명의 조직을 갖고 있어 여러 가지로 비교가 안 된다.”며 대선을 치르는 무소속 후보로서의 힘든 상황을 피력했다. 안 후보가 제시한 시간표대로 캠프는 10일까지는 정책 및 공약 집중, 이후 단일화 논의 시작이라는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다. 10일까지 시간은 벌었지만 단일화 논의가 수면 위로 부각되면서 단일화 방식 등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더 커졌다. 안 후보 측은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방식을, 문재인 후보 측은 국민경선을 선호하고 있다. 단일화 과정에서 이같은 간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목졸린 치매’…해답없는 사회

    ‘목졸린 치매’…해답없는 사회

    “여보, 같이 가자. 내가 당신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78세 노인이 반평생 넘게 함께해 온 네 살 아래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하는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지난 19일 오후 9시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치매를 앓던 부인 조모씨를 살해하고 투신하려던 남편 이모씨는 30일 살인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 조사 결과 조씨는 사건 당일 방에서 잠잘 준비를 하던 남편 이씨에게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늘 있던 치매 증세였기에 이씨는 거실로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조씨가 따라 나와 옷걸이와 베개 등으로 이씨를 때렸고 “부모 없이 자라서 막돼먹었다.”고 욕까지 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었던 이씨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조씨의 목을 졸랐다. 이씨는 둘째 아들(45) 부부와 함께 살고 있었으나 당시 아들 부부와 고등학생, 대학생인 두 손주는 모두 외출해 집에는 이씨 부부뿐이었다.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 대형 건설회사 임원을 지낸 뒤 아들 부부와 함께 살던 이씨의 은퇴 생활은 2년 전 조씨가 치매 증세를 보이면서 흔들렸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밑도 끝도 없이 남편을 의심하는 등 조씨의 증상은 날로 심해졌다. 하지만 이씨는 5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내를 지극정성으로 간병했다. 이씨는 하루 종일 아내 곁을 지키며 밥도 직접 먹였다. 종교가 없었던 이씨는 아내 병세에 행여 도움이 될까 해서 매일같이 아내의 손을 잡고 새벽 기도도 다녔다. 그러나 78세의 고령인 데다 관절염까지 앓고 있던 이씨는 간병에 지쳐 이전에도 여러 번 아파트에서 투신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때마다 이씨는 홀로 남게 될 아내가 자식에게 짐이 될 것을 걱정했다. ‘같이 가자’는 이씨의 외침은 그런 절박함에서 터져 나왔다. 아내가 숨진 뒤 이씨는 둘째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네 어머니를 죽였다.”고 전했다. 아들이 급히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씨는 8층 베란다 창문을 연 채 난간을 딛고 뛰어내리려던 차였다. 아들이 이씨를 말렸고 이씨는 아들에게 경찰에 신고하라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이씨 같은 치매 가정의 비극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올해 53만 4000여명에 달한다. 13년 뒤인 2025년에는 100만명을 넘을 전망이다. 그러나 치매 노인을 관리하고 치료하는 정부 체계는 여전히 부족해 치매 노인들은 이씨처럼 가족들이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스스로도 노인인 남편이나 아내 또는 자식들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치매 노인의 부양을 책임지는 현실이다. 치매 노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 체계가 확립되지 않는 한 치매 노인을 버리거나 살해하는 범죄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로우리스’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로우리스’

    1931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프랭클린 카운티. 금주령이 엄연한 시대에 활약했던 본두란 가의 3형제-하워드, 포레스트, 잭은 역사 속의 인물로 남았다. 본두란 형제의 전설은, 새로 임명된 검사가 권력을 강화하려고 특별수사관 찰리 레이크스를 기용하면서 시작된다. 법을 지켜야 할 검사는 보호를 명목으로 금전을 요구했고, 시카고 출신 레이크스는 시골의 거친 남자들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밀주 사업을 유지하려고 소작농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본두란 형제는 더러운 거래에 협조하기를 거부한다. 존 힐코트 감독은 생존하기에 힘겨운 상황을 곧잘 영화에 끌어들인다. 개척기 호주에서 황야와 문명의 법칙에 맞서는 무법자의 이야기인 ‘프로포지션’은, 멸망한 세계에서 길을 따라 이동하는 남자와 아이의 묵시록인 ‘더 로드’를 거쳐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원제: Lawless)에 도착했다. 그런 까닭에 힐코트 영화의 주요한 주제는 ‘생존’이다. 갱스터 영화이면서도 ‘로우리스’는 제목에서부터 무법자를 다룬 영화가 아니라 ‘법이 없는 상태’에 관한 영화임을 밝힌다. 인물들은 무법의 공포를 딛고 살아남아야 한다. ‘로우리스’의 도입부와 결말부에 나오는 내레이션에서 ‘불멸의 존재’라는 문구는 여러 차례 강조해서 언급된다. ‘프로포지션’과 ‘더 로드’의 절박함과 비교해 ‘로우리스’는 담담한 톤을 유지한다. ‘로우리스’의 3형제는 법이 무법을 자행하는 상황에서 자유와 생존을 지키려고 싸우는 듯이 행동한다. 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 영화에서 갱들은 종종 타의에 의해 어둠의 세계로 들어간 것처럼 묘사된다. 갱들은 가난하고 배고픈 상황이 총을 쥐도록 강요했다고 변명한다. 갱들이 “(불특정한 존재를 지칭해) 그들이 나를 범죄자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갱스터 영화의 하위 장르인 산적영화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로우리스’는 무법의 상황에 분노하면서도 무법의 주체로 살아남아야 했던 인물들의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로우리스’는 3형제의 생존방식이 곧 현대 미국이 걸어온 길이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형제 중 막내인 잭은 형들의 밀주 사업에 뛰어들고 싶지만, 두 형은 어린 동생을 쉬 받아들이지 않는다. 끝내 잭은 사업 수완과 대담함을 인정받아 형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달리 말해 잭은 돈에 대한 집착과 폭력에 대한 무감각을 통해 성숙한 존재로 거듭난다. 잭의 성숙은 미국의 위상 변화와 연결된다. ‘로우리스’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삶의 질을 추구하던 당시 미국이 기실 코카콜라 자본주의와 총의 폭력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음을 밝힌다. ‘로우리스’가 화목한 대가족의 모습으로 끝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코트는 가족이라는 만들어진 신화마저 조롱한다. ‘로우리스’는 ‘파티 걸’, ‘언터처블’ 같은 잔혹한 갱스터 영화의 계보에 오를 만한 작품이다. 그런데 힐코트와 각본을 쓴 뮤지션 닉 케이브는 호주 출신이다. 또한 근래 나온 가장 중요한 갱스터 영화 ‘애니멀 킹덤’도 호주영화였다. ‘로우리스’가 오래된 비디오 화질의 제작사 로고로 시작하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것을, 자기들의 역사와 영화를 잊어버린 할리우드에 대한 비판으로 읽는다면 오독일까. 18일 개봉. 영화평론가
  • 사이버경찰 ‘강남여대생 노출’ 검색하자…

    사이버경찰 ‘강남여대생 노출’ 검색하자…

    우리나라에서 한 해 다운로드되는 아동·청소년 출연 음란물은 약 400만건. 이런 음란물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근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인터넷 특성상 수사기관만의 활동으로는 근절할 수 없다. 전국을 통틀어 경찰의 사이버 수사인력은 900여명 수준이다. 범람하는 음란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 직접 나선 시민들이 있다. 명예 사이버 경찰 ‘누리캅스’ 대원 700여명과 행정안전부의 ‘사이버 지킴이’ 모니터 단원 400여명이다. 음란물 퇴치에 나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활약상을 살펴봤다. “해변 백사장에서 모래 한 삽 퍼내는 심정이죠. 워낙 많으니까…. 그래도 인터넷이 점점 깨끗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일해요.” 대구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배영호(49)씨는 지난 8월, 부동산 일이 끝나면 인터넷에서 ‘야동’(음란 동영상)을 찾아 헤맸다. 익숙한 듯 ‘연옌(포털사이트 등의 차단 조치를 피하려 연예인을 변형해 쓰는 말) 합성’, ‘강남 여대생 노출’ 등 그들만의 단어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하자 금세 음란물 수십개가 화면을 채웠다. 배씨의 또 다른 직함은 ‘대한민국 누리캅스’의 최정예 요원이다. 배씨는 경찰청이 개최한 인터넷 음란물 신고 대회(8월 6~19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매일 5시간을 투자했다는 배씨가 2주 동안 찾아낸 불법음란물은 2600여건에 달한다. 1남 1녀를 둔 평범한 가장인 배씨는 “7~8년 전 사무실 부근 원룸에서 강간 사건이 터져 성범죄 예방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몇년 전만 해도 성관계하는 수준의 음란물이 많았는데 요즘엔 고문 등 가학적 포르노물이 늘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훈련 안받았지만 열정은 ‘최정예’ 누리캅스는 경찰청이 2007년 인터넷의 불법·유해 정보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민간 명예 경찰이다. 현재 782명이 활동 중이다. 대원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초·중·고등학생인 동생을 둔 형과 누나 등 대부분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이들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사이버 세상에 은밀히 뿌리내린 음란물을 찾아내는 실력은 경찰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누리캅스 대원들이 찾아 경찰에 신고한 음란물은 올해에만 8395건에 이르며 설립 뒤 5년여간 1만 4000여건의 음란물을 찾아 경찰에 알렸다. 지난달 10일 아동·청소년 출연 음란물을 대량으로 유포한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지도교사 등 헤비업로더(음란물 다량 게시자)와 웹하드 운영자 21명을 붙잡는 데도 누리캅스의 신고가 큰 역할을 했다. 경찰청의 음란물 신고대회에서 올해 2위를 차지한 문태화(39·건강가정사)씨는 “겉으로 음란물과 관련 없어 보이는 블로그도 성인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해 놓은 곳이 많다.”면서 “구글 등 기능이 좋은 검색 사이트를 이용해 틈새를 찾아낸다.”고 비법을 전했다. 이병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기획수사팀장은 “사이버 범죄는 음란물 유포뿐 아니라 해킹, 도박, 사이버 사기, 명예훼손, 스토킹 등 범위가 워낙 넓어 경찰이 음란물 수사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열정과 노하우를 발휘하는 누리캅스 대원들이 큰 힘이 된다.”고 평가했다. 행정안전부가 YWCA 등 시민단체 11곳을 모아 결성한 ‘사이버 지킴이’ 음란물 모니터단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4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 중이다. 지난 6월 결성 이후 지난달 말까지 1500여건의 음란물을 적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신고했다. ●아이 꾸짖자 “다른 애들도 본다” 당당 음란물 한 건을 신고하면 단원들이 받는 독려금은 2000원 수준이다. 하지만 시민 모니터단의 열정은 급여에 비례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낯 뜨거운 동영상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절박함에서 일을 시작한 부모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박승진(45) 건전미디어연대 활동가도 두 아들이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컴퓨터에서 성인 사이트 접속 기록을 발견한 뒤 활동을 시작했다. 박씨는 “막내 아들에게 ‘벌써 이런 영상을 봐서 되겠느냐’고 타일렀더니 ‘다른 애들도 다 본다’며 오히려 당당해하더라.”면서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모들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 당장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음란물 모니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온종일 음란물을 보며 단속하다 보면 어려운 점도 많다. 김민선(49)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사명감에 집에서 음란물 단속을 하는데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고는 ‘엄마가 집에서 이상한 것을 본다’고 해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는 데다 음란물을 지속적으로 보다 보니 정신적 고통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대근·이범수기자 dynamic@seoul.co.kr
  • [음란물 없는 e세상으로] (5)음란물 퇴치에 나선 우리 이웃들

    [음란물 없는 e세상으로] (5)음란물 퇴치에 나선 우리 이웃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다운로드되는 아동·청소년 출연 음란물은 약 400만건. 이런 음란물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근절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인터넷 특성상 수사기관만의 활동으로는 근절할 수 없다. 전국을 통틀어 경찰의 사이버 수사인력은 900여명 수준이다. 범람하는 음란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려 직접 나선 시민들이 있다. 명예 사이버 경찰 ‘누리캅스’ 대원 700여명과 행정안전부의 ‘사이버 지킴이’ 모니터 단원 400여명이다. 음란물 퇴치에 나선 평범한 우리 이웃들의 활약상을 살펴봤다. “해변 백사장에서 모래 한 삽 퍼내는 심정이죠. 워낙 많으니까…. 그래도 인터넷이 점점 깨끗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일해요.” 대구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배영호(49)씨는 지난 8월, 부동산 일이 끝나면 인터넷에서 ‘야동’(음란 동영상)을 찾아 헤맸다. 익숙한 듯 ‘연옌(포털사이트 등의 차단 조치를 피하려 연예인을 변형해 쓰는 말) 합성’, ‘강남 여대생 노출’ 등 그들만의 단어를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하자 금세 음란물 수십개가 화면을 채웠다. 배씨의 또 다른 직함은 ‘대한민국 누리캅스’의 최정예 요원이다. 배씨는 경찰청이 개최한 인터넷 음란물 신고 대회(8월 6~19일)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매일 5시간을 투자했다는 배씨가 2주 동안 찾아낸 불법음란물은 2600여건에 달한다. 1남 1녀를 둔 평범한 가장인 배씨는 “7~8년 전 사무실 부근 원룸에서 강간 사건이 터져 성범죄 예방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몇년 전만 해도 성관계하는 수준의 음란물이 많았는데 요즘엔 고문 등 가학적 포르노물이 늘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훈련 안받았지만 열정은 ‘최정예’ 누리캅스는 경찰청이 2007년 인터넷의 불법·유해 정보를 감시하기 위해 만든 민간 명예 경찰이다. 현재 782명이 활동 중이다. 대원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초·중·고등학생인 동생을 둔 형과 누나 등 대부분 평범한 우리 이웃이다. 이들은 전문적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하지만 사이버 세상에 은밀히 뿌리내린 음란물을 찾아내는 실력은 경찰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누리캅스 대원들이 찾아 경찰에 신고한 음란물은 올해에만 8395건에 이르며 설립 뒤 5년여간 1만 4000여건의 음란물을 찾아 경찰에 알렸다. 지난달 10일 아동·청소년 출연 음란물을 대량으로 유포한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지도교사 등 헤비업로더(음란물 다량 게시자)와 웹하드 운영자 21명을 붙잡는 데도 누리캅스의 신고가 큰 역할을 했다. 경찰청의 음란물 신고대회에서 올해 2위를 차지한 문태화(39·건강가정사)씨는 “겉으로 음란물과 관련 없어 보이는 블로그도 성인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해 놓은 곳이 많다.”면서 “구글 등 기능이 좋은 검색 사이트를 이용해 틈새를 찾아낸다.”고 비법을 전했다. 이병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기획수사팀장은 “사이버 범죄는 음란물 유포뿐 아니라 해킹, 도박, 사이버 사기, 명예훼손, 스토킹 등 범위가 워낙 넓어 경찰이 음란물 수사에만 전념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면서 “보수 한 푼 받지 않고 열정과 노하우를 발휘하는 누리캅스 대원들이 큰 힘이 된다.”고 평가했다. 행정안전부가 YWCA 등 시민단체 11곳을 모아 결성한 ‘사이버 지킴이’ 음란물 모니터단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4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 중이다. 지난 6월 결성 이후 지난달 말까지 1500여건의 음란물을 적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신고했다. ●아이 꾸짖자 “다른 애들도 본다” 당당 음란물 한 건을 신고하면 단원들이 받는 독려금은 2000원 수준이다. 하지만 시민 모니터단의 열정은 급여에 비례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낯 뜨거운 동영상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는 절박함에서 일을 시작한 부모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박승진(45) 건전미디어연대 활동가도 두 아들이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컴퓨터에서 성인 사이트 접속 기록을 발견한 뒤 활동을 시작했다. 박씨는 “막내 아들에게 ‘벌써 이런 영상을 봐서 되겠느냐’고 타일렀더니 ‘다른 애들도 다 본다’며 오히려 당당해하더라.”면서 “주변에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부모들이 많은 것을 확인하고 당장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음란물 모니터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온종일 음란물을 보며 단속하다 보면 어려운 점도 많다. 김민선(49) 아이건강국민연대 사무국장은 “사명감에 집에서 음란물 단속을 하는데 아이가 이런 모습을 보고는 ‘엄마가 집에서 이상한 것을 본다’고 해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는 데다 음란물을 지속적으로 보다 보니 정신적 고통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유대근·이범수기자 dynamic@seoul.co.kr
  • 文 “쌍용차 문제 국조 추진… 반드시 해결”

    文 “쌍용차 문제 국조 추진… 반드시 해결”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후보가 21일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을 찾아 눈시울을 붉혔다. 문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는 ‘힐링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번 방문은 이를 실천하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다. 문 후보는 이날 경기 평택 통복동 와락센터를 방문했다. 와락센터는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을 위해 2011년 정신과 전문의인 정혜신 박사가 집단상담을 시작하며 만들어진 곳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가족 10여명은 문 후보에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또 자살시도가 있었다.”면서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들고 있는 상태”라며 절박함을 호소했다. 이에 문 후보는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현 정부에서 해결이 안 되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해고노동자 복직 문제 등을) 반드시 해결하겠다.”면서 “아무리 어려워도 꿋꿋이 버티셔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문 후보는 수직형 선대위에서 탈피해 정당·시민·정책 등 3개 부문이 대등한 관계를 갖는 수평형 선대위를 만들 계획이다. 캠프 공보를 총괄할 공보단장에는 재선의 우상호 최고위원을 선임했다. 캠프 본진은 영등포 당사에 마련할 예정이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K리그 하위그룹 감독들의 ‘9위 출사표’

    “반드시 9위(하위그룹 1위)에 오르겠다.” “등수를 따질 때가 아니다. 강등만은 피하고 싶다.” 프로축구 K리그 스플릿 시스템에서 하위그룹(9~16위)으로 떨어진 8개 구단 감독들이 12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 강당에서 미디어데이 행사를 갖고 오는 15일부터 재개되는 스플릿 일정을 앞두고 출사표를 던졌다. 13일에는 상위그룹 8개 구단의 같은 행사가 이어진다. 사령탑들은 어느 때보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전날 상주 상무가 성적과 관계없이 강등되면서 성적으로 강등되는 팀이 하나로 줄었지만 그런 안도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즌 초반 부진을 털고 스플릿 직전 9위까지 올라온 인천의 김봉길 감독은 “어렵게 올라 왔으니까 9위를 꼭 지키겠다.”고 포문을 열었다. 인천, 경남 등과 30라운드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대구의 모아시르 페레이라 감독은 ”현재 10위이니 더 올라갈 자리가 있다. 최선을 다해 9위까지 올라가도록 하겠다.”며 ”그런 점을 선수들도 잘 알고 충분히 동기 부여가 되고 있다.”고 자신했다. 신태용 성남 감독은 “설마하던 일이 현실이 돼 하위리그로 떨어졌지만 포기하지 않겠다. 골대를 많이 맞히는 등 운이 없었지만 사실 스스로 2% 부족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며 “남은 기간 성남의 미래를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최하위 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12위까지 올라온 하석주 전남 감독은 “강등권을 탈출하는 데 지도자로서의 인생을 걸겠다.”며 “내가 백수되는 걱정보다 선수들 걱정이 더 크다.”고 절박함을 드러냈다. 유상철 대전 감독은 “휴식 기간에 준비를 철저히 했다. 9위를 고집하는 인천을 잡기 위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비쳤다. 달변가인 최만희 광주 감독은 “비빔밥은 잘 비볐는데….”라고 아쉬워하며 “산악인들이 산에 오를 때는 죽을 만큼 하기보다 아예 죽겠다는 생각으로 간다고 한다. 우리도 같은 마음가짐”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현재 꼴찌인 강원의 김학범 감독은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 강등의 첫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최만희 감독이 있는 14위까지는 올라간다.”고 광주를 경계했다. 각 팀의 대표 선수들도 나와 강등을 피하면 휴가와 두둑한 보너스를 달라는 희망을 밝혔다. 특히 대전 김형범은 “9위가 되면 감독님이 마지막 경기에서 트렁크 바람으로 멋진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유상철 감독이 “9위만 한다면 강남 스타일이 아닌, 대전 스타일로 멋지게 춤을 추겠다.”고 화답해 좌중을 웃겼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심재억 전문기자의 건강노트] 명의를 찾아서

    얼마 전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학교를 마친 뒤에는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였지요. 안부를 대충 얼버무린 친구가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간암 잘 치료하는 명의 좀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간암 판정을 받았는데 의사는 이미 전이가 진행된 것 같다고 했답니다. 그 친구처럼 종종 ‘명의’를 찾는 사람과 만납니다. 오죽 절박하면 저럴까 싶어 아는 정보를 그러모아 건네지만 그래도 찜찜함은 남습니다. 제가 아는 한 현대의학에 명의는 없습니다. 의사들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라 의료정보가 낱낱이 공유되는 디지털 세상이 명의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유능한 의사, 무능한 의사가 갈리고, 환자의 고통을 나누려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가 따로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똑같은 감기라도 환자를 배려해 처방하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자기 중심으로 처방하는 의사도 당연히 있습니다. 약을 처방하는 일은 의사의 권한이니까요. 그러나 암 같은 중증질환은 좀 다릅니다. 표준치료 방법이 이미 정립돼 있어 수술이든 화학요법이든 병원이나 의사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공부 안 하고 노력 안 하는 의사들이 반색할 일은 아닙니다. 특정 질환에 대한 의사들의 능력이 천차만별인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물론 아직도 상당 부분 비방(秘方)의 영역이 존재하는 한방은 좀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런 사실과 명의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요. 단언컨대 뛰어난 의사는 있어도 남이 못 가진 의술을 가진 명의는 없습니다. 특히나 암은 의사 한 사람이 아니라 팀이 병을 다루는 데다 첨단 진단·치료 기기가 전방위로 활용되니 더욱 그렇습니다. 환자의 절박함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렇더라도 허명에 현혹돼 이곳저곳을 전전하느니 가까운 곳의 유능하고 성실한 의사를 찾아 체계적으로 치료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온전히 환자와 가족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명의에 연연해 아까운 시간과 돈을 버릴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jeshim@seoul.co.kr
  • [사설] 중산층 희망 잃으면 국가 미래 없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 결과, 소득만 보면 중산층이지만 스스로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50.1%가 저소득층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지난해 통계청에서 가처분소득 등을 기준으로 집계한 저소득층 비율 15.2%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반면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응답자는 46.4%로 통계청의 분류보다 18.6% 포인트나 낮았다. 게다가 향후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서는 98.1%가 ‘어려울 것’이라고 응답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마저 잃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인 중산층의 심리적 위축은 소비 감소와 경기 침체로 귀결돼 중산층 몰락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중산층의 위기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얘기는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 6월 11일 부동산 버블 붕괴와 금융위기의 여파로 최근 3년간 순자산가치가 38.8% 급감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 가정의 자산가치가 20년 전으로 후퇴하면서 중산층이 급격히 몰락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우리나라도 1995년 75.3%였던 중산층 비중이 2000년 71.7%, 2011년에는 65.0%로 떨어졌다. 1990년 15.8%였던 중산층의 적자가구 비중은 2010년에는 23.3%로 늘었다. 실질소득 감소와 가계부채 증가, 사교육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최근 은퇴하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자영업자 진출 증가 추세 등을 감안하면 중산층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서민층 지원’만 강조할 뿐 중산층의 몰락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우리가 자산 디플레이션과 ‘하우스 푸어’에 대해 정책당국과 정치권의 관심을 촉구한 것도 신빈곤층의 양산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중산층이 희망을 잃으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중산층 맞춤형 대책을 촉구한다.
  •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⑦푸르메재단

    [공익재단-부자의 상상력을 기부하라] (3부) 한국형 공익재단의 도전 ⑦푸르메재단

    사내는 절박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이던 2002년,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고 공익재단과 병원 설립에 도전한 건 온전히 절박함 때문이었다. 4년 전 그는 영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는 100일 만에 깨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귀국. 아내가 입원한 재활병원의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비좁은 병상에는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이 몸을 맞댄 채 24시간 생활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불친절한 의료진이 대다수였다. 그는 ‘선진국 의료시설 같은 재활병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계획을 세운 지 꼭 10년째 되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푸르메재활센터’를 개관했다. 장애 어린이를 위한 재활시설과 치과, 복지관 등이 들어섰다. 땅도, 돈도, 의료 인력도 없던 그는 어떻게 10년 만에 병원을 지었을까. ‘사내’ 백경학(49)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를 3일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만나 성공 비결을 물었다. ●목표사업 뚜렷해 기부자 설득 수월 백 이사와 재단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은 덕이 크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막연한 목표 대신 ‘재활 병원 설립’이라는 뚜렷한 계획을 세웠다. 목표 사업이 뚜렷하니 추진력이 붙었고 훗날 기금 모금 때도 기부자들을 설득하기 편했다. 첫 번째 성공 키워드다. 의사가 아닌데다 자금마저 충분치 않던 백 이사가 병원을 지으려면 우선 비영리재단이 필요했다. 재단이 있어야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단 설립을 허가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종잣돈이었다.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하우스 맥주가게였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2002년 영세업자의 맥주 제조가 허용된 터라 양조전문가인 후배 방호권씨 등과 함께 가내제조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강남에 오픈했다. 재산을 쌓은 뒤 자선을 결심하는 보통 자산가들과는 반대로 자선을 위해 돈벌이에 뛰어든 것이다. 도박 같았던 맥주 사업은 성공했다. 맥주집 한쪽에서 재단설립 구상을 마친 백 이사는 2004년 자신의 맥주사업 지분 10%(약 2억 8000만원 상당)와 사재를 내놓아 푸르메재단을 세웠다. 이후 아내가 보험사와 8년 소송 끝에 받은 교통사고 보상금 중 절반인 10억 6000만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백 이사는 “주변 사람들도 ‘전재산의 절반 이상을 재단에 바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듯 싶다.”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 백 이사가 전한 재단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여럿이, 함께’다. 그는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 대신 집요한 설득으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늘렸고, 힘을 합쳤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가 각각 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맡아 줬고 전신화상의 아픔을 이겨낸 작가 이지선씨와 가수 션 등이 홍보대사 제안에 응했다. 병원 건립 때 보태라며 돈을 내놓은 기부자도 7000명이나 됐다. 백 이사에게 사람과 돈을 끌어모은 비법을 물었다. “결국 감동의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일하라.”는 강요 대신 장애인 재활 사업에 힘을 더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도록 해야 마음도, 주머니도 열린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외국계 항공사 직원에게 장애 아동과 함께 민속박물관 등을 견학하게 유도했다.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기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박완서 작가가 생전 인세와 글 등을 기부한 것도 백 이사의 진정성 담긴 편지 때문이었다. 백 이사는 푸르메 재활센터 건립 때도 ‘제3섹터 방식’(시민과 기업이 기금을 모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지와 행정 지원을 제공해 시설을 짓는 방식)을 통해 여럿이 힘을 합쳤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사업인 만큼 재활병원 설립은 국가의 몫”이라는 것이 백 이사의 철학이다. 다만, 정부가 직접 운영할 경우 관료주의의 덫 등에 걸릴 수 있는 만큼 운영은 노하우가 있는 민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푸르메 센터의 재활시설에서는 운영을 위해 환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은 받지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환자가 있다면 기업 등에게 지원을 부탁할 예정이다. 재활병원인 푸르메 센터를 세웠지만, 백 이사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 센터는 외래병원인 탓에 입원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포구로부터 병원 부지를 빌려 병상 100개를 갖춘 연면적 1만 6860㎡ 규모의 어린이재활병원을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2015년 개관이 목표인데 380억원가량이 드는 건축비 등을 계속 모금 중이다. 병상을 갖춘 재활병원이 세워져도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입원을 원하는 어린이 환자는 1만 5000명이나 되는데 병상은 150분의1수준인 탓이다. 백 이사는 “푸르메 병원이 모델이 돼 전국 8개권역에 선진 재활병원이 최소 하나씩 건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02)720-7002.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혼수상태 아내 보상금서 10억 뗀 남편 결국엔…

    혼수상태 아내 보상금서 10억 뗀 남편 결국엔…

    사내는 절박했다. 마흔이던 2002년, 일간지 기자 생활을 접고 공익재단과 병원 설립에 도전한 건 온전히 절박함 때문이었다. 이태 전 그는 영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는 100일 만에 깨어났지만 한쪽 다리를 잃었다. 그리고 귀국. 아내가 입원한 재활병원의 풍경은 아비규환이었다. 비좁은 병상에는 환자와 보호자, 간병인이 몸을 맞댄 채 24시간 생활했다. 불러도 대답 없는 불친절한 의료진이 대다수였다. 그는 ‘선진국 의료시설 같은 재활병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계획을 세운 지 꼭 10년째 되는 지난달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푸르메재활센터’를 개관했다. 장애인을 위한 재활시설과 치과, 복지관 등이 들어섰다. 땅도, 돈도, 의료 인력도 없던 그는 어떻게 10년 만에 병원을 지었을까. ‘사내’ 백경학(49)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를 3일 푸르메재활센터에서 만나 성공 비결을 물었다. ●목표사업 뚜렷해 기부자 설득 수월 백 이사와 재단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었던 건 목표를 구체적으로 잡은 덕이 크다. ‘장애인을 돕겠다.’는 막연한 목표 대신 ‘재활 병원 설립’이라는 뚜렷한 계획을 세웠다. 목표 사업이 뚜렷하니 추진력이 붙었고 훗날 기금 모금 때도 기부자들을 설득하기 편했다. 첫 번째 성공 키워드다. 의사가 아닌데다 자금마저 충분치 않던 백 이사가 병원을 지으려면 우선 비영리재단이 필요했다. 재단이 있어야 기금을 모아 장기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가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재단 설립을 허가받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종잣돈이었다. 고민 끝에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쳤다. 하우스 맥주가게였다.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2002년 영세업자의 맥주 제조가 허용된 터라 양조전문가인 후배 방호권씨 등과 함께 가내제조 맥주 전문점 ‘옥토버페스트’를 강남에 오픈했다. 재산을 쌓은 뒤 자선을 결심하는 보통 자산가들과는 반대로 자선을 위해 돈벌이에 뛰어든 것이다. 도박 같았던 맥주 사업은 성공했다. 맥주집 한쪽에서 재단설립 구상을 마친 백 이사는 2004년 자신의 맥주사업 지분 10%(약 2억 8000만원 상당)와 사재를 내놓아 푸르메재단을 세웠다. 이후 아내가 보험사와 8년 소송 끝에 받은 교통사고 보상금 중 절반인 10억 6000만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백 이사는 “주변 사람들도 ‘전재산의 절반 이상을 재단에 바친 사람이라면 믿어도 되겠다.’고 생각한 듯 싶다.”고 말했다.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이 된다 백 이사가 전한 재단의 두 번째 성공 비결은 ‘여럿이, 함께’다. 그는 재단 설립과 운영 과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았다. 대신 집요한 설득으로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을 늘렸고, 힘을 합쳤다.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와 강지원 변호사가 각각 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맡아 줬고 전신화상의 아픔을 이겨낸 작가 이지선씨와 가수 션 등이 홍보대사 제안에 응했다. 병원 건립 때 보태라며 돈을 내놓은 기부자도 7000명이나 됐다. 백 이사에게 사람과 돈을 끌어모은 비법을 물었다. “결국 감동의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일하라.”는 강요 대신 장애인 재활 사업에 힘을 더해야 하는 이유를 체감하도록 해야 마음도, 주머니도 열린다는 얘기다. 그는 “최근 외국계 항공사 직원에게 장애 아동과 함께 민속박물관 등을 견학하게 유도했다. 아이들과 그 가족의 어려움을 이해해야 기부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박완서 작가가 생전 인세와 글 등을 기부한 것도 백 이사의 진정성 담긴 편지 때문이었다. 백 이사는 푸르메 재활센터 건립 때도 ‘제3섹터 방식’(시민과 기업이 기금을 모으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부지와 행정 지원을 제공해 시설을 짓는 방식)을 통해 여럿이 힘을 합쳤다. “의료서비스가 공공사업인 만큼 재활병원 설립은 국가의 몫”이라는 것이 백 이사의 철학이다. 다만, 정부가 직접 운영할 경우 관료주의의 덫 등에 걸릴 수 있는 만큼 운영은 노하우가 있는 민간에 맡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푸르메 센터의 재활시설에서는 운영을 위해 환자에게 최소한의 비용은 받지만, 불필요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형편이 어려운 어린이환자가 있다면 기업 등으로부터 지원을 부탁할 예정이다. 재활병원인 푸르메 센터를 세웠지만, 백 이사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이 센터는 외래병원인 탓에 입원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마포구로부터 병원 부지를 빌려 침대가 100개 있는 3215㎡ 규모의 어린이재활병원을 내년 착공할 계획이다. 2015년 개관이 목표인데 380억원가량이 드는 건축비 등을 계속 모금 중이다. 병상을 갖춘 재활병원이 세워져도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 입원을 원하는 어린이 환자는 1만 5000명이나 되는데 병상은 150분의1수준인 탓이다. 백 이사는 “푸르메 병원이 모델이 돼 전국 8개권역에 선진 재활병원이 최소 하나씩 건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후원문의 (02)720-7002.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軍 장악한 김정은 ‘경제개혁’ 본격 나서나

    軍 장악한 김정은 ‘경제개혁’ 본격 나서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18일 ‘원수’ 칭호를 받는 등 북한 당국이 군부 재편 과정을 거치면서 내세울 다음 카드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리영호 경질부터 김정은 원수 등극까지 일련의 과정이 단순한 내부 권력 투쟁 차원을 넘어 김정은 체제가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결단이라는 관측에 따라 식량난 등을 겪는 북한이 민생과 경제 챙기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군의 북한 전문가는 19일 “북한의 조치는 단순한 인물 교체만이 아니라 향후 북한의 생존 방향을 결정하고자 내린 정치 엘리트들의 결단”이라면서 “잠재적 위협 세력이자 개혁의 걸림돌인 군부를 통제하고 체제의 생존을 위해 나름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인식하에 계획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체제 안착을 위해 이뤄야 할 성과로는 민생 안정 등의 경제 문제와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 4월 15일 태양절 열병식에서 “인민이 다시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자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면서 “경제 강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길에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지난달 29일 “선군정치로 국력이 다져진 조건에서 이제 경제 강국의 용마루에 올라서야 한다.”고 보도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보인다. 북한의 외자 유치를 담당하는 합영투자위원회는 우방인 중국의 투자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각종 우대 정책과 근로자 고용 조건 등을 제시했다. 지난달 28일에는 협동농장과 국영기업을 대상으로 생산물의 정부 수매 가격을 시장 가격에 맞추고 추가 생산품에 대한 개인 분배 비율을 높인다는 ‘6·28 방침’을 하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는 공공 경제 부문의 생산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2002년 임금 현실화와 기업의 경영 자율권 확대 등 개혁을 주도했다 숙청된 박봉주 전 내각 총리가 2010년 복권되고 김정은 정권 출범 직후 당 경공업 부장을 맡았다는 점도 경제 업적을 쌓고 민심을 다독이려는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007년 박봉주의 실각 이후 경제적 시행착오를 겪은 북한이 체제 생존의 절박함에 따라 경제 개선 조치를 꾀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라고 분석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서민 밀착형, 개방적 이미지를 보여주는 등 기존 지도자들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으며 경공업과 농업, 외자 유치를 위한 금융 부문을 개혁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국제적 여건, 남북관계와 맞물려 방향이 정해질 것이며 이르면 다음 달 새 조치를 발표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한국과 중국이 권력 교체기를 맞는 등 정국이 불투명한 지금이 경제 개혁의 적기인지는 의문”이라면서 “복권된 박봉주 당 경공업 부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소방장비 예산 국가 지원 절실”

    “소방장비 예산 국가 지원 절실”

    “이번 태풍은 규모는 작지만 속도가 빠르죠. 게다가 서해 쪽으로 지나갑니다. 원래 태풍의 눈 오른쪽이 피해가 크거든요.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7호 태풍 카눈이 북상하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18일 오전 상황을 태풍 2단계로 올렸다. 7명이던 근무인원이 29명으로 대폭 늘었다.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은 이날부터 재난상황실에 상주하며 상황을 보고받기 시작했다. 상황실에서 만난 이 청장은 “태풍은 차분하게 되새길 여유를 주지 않는다.”며 “소방관들 모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국민들도 주변에 위험 요인이 없는지 살펴봐 달라.”고 당부했다.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소통 오는 22일 취임 1주년을 맞는 이 청장은 35년 경력의 현장 소방관 출신 첫 소방방재청장이다. 부친과 아들까지 3대에 걸친 소방관이다. 이 청장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소방관들의 사기를 올려주고, 미비한 재난 제도를 고치는 데 주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직접 사무실로 찾아갔고, 때때로 호프타임을 가지며 직원들과 소통했고, 현장 소방관들을 직접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서 “소방직과 일반행정직, 기술직의 융합이 절대적 과제였던 본청 직원들은 물론 인사에 불만이 많았던 소방관들에게 100%는 아니지만 만족감을 줬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공상자 치료기간을 3년에서 무제한으로 늘렸고 전국 1000개 가까운 119안전센터로부터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들은 뒤 안전센터 운영 관련 매뉴얼을 새로 짜는 등 현장 중심으로 확 바꿨다.”고 지난 1년의 변화를 설명했다. ●‘소방청 독립기구화’ 논의 기대 하지만 소방관들의 오랜 염원은 여전하다. 바로 ‘소방청 독립기구화’다. 직접 호스를 들고 불구덩이를 뛰던 현장에서부터, 소방방재청의 과장·국장·차장까지 모두 거친 그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새 정부 들어 자연스럽게 논의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을 아꼈다. 그럼에도 이내 “엄연히 국가사무도 수행하는데 소방장비 등 국가의 예산지원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마스크, 장갑 등 소방장비 하나를 두세 명이 돌려 쓰는 데다 장비의 질조차 열악하다.”고 국가 지원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박근혜 대선국면 중대악재 판단… 사실상 ‘자진 탈당’ 압박

    박근혜 대선국면 중대악재 판단… 사실상 ‘자진 탈당’ 압박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13일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사태에 대해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박 전 위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정 의원이 직접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탈당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압박으로 해석된다. 이 같은 강성 발언은 위기의식이 작동한 결과로 보인다.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불체포특권 포기를 가장 먼저 약속했지만, 이번 부결 사태를 계기로 쇄신책이 ‘정치쇼’로 전락한 형국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박 전 위원장이 강조해 온 ‘원칙과 신뢰’ 정치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사태를 유야무야 넘겼다간 앞으로 대선 국면에서 국민들에게 무슨 약속을 하더라도 무게감이나 신뢰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예비후보의 처지에서 ‘지침’을 내리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는 부담이 있지만, 이를 따질 계제가 아니라고 본 것이다. 캠프 관계자들도 “박 전 위원장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번 사태를 방치할 경우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등 우려 섞인 반응을 나타냈다. 박 전 위원장이 12~13일 이틀 동안 당초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취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정 의원에 대한 압박 수위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당은 이날 의총에서 정 의원에게 ‘7월 임시국회 내 가시적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 이는 정 의원이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즉시 검찰이 영장을 다시 청구하면 바로 법원에 출두할 것”이라고 밝힌 것보다 강도가 더 센 것이다. 정 의원이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당으로서는 출당 카드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사퇴를 선언한 현 원내지도부가 언제 물러날지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당은 원내지도부에 7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다음 달 3일까지 마무리해 줄 것을 요청키로 했다. 실제 오는 16일 교섭단체 대표연설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인사청문회, 대정부질문(18∼20일, 23일),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 결과 본회의 상정, 민간인 불법사찰 국정조사 계획서 작성 등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이한구 원내대표는 “의총 결과와 관계없이 사퇴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재신임이 아닌 시한부 활동인 만큼 절충 가능성은 열려 있다. 차기 원내대표 선출은 대선후보 경선 일정을 피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선 선거운동 기간이 오는 21일부터 8월 19일까지 30일인 만큼 원내대표 선출은 21일 이전 또는 8월 20일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차기 원내대표를 누가 맡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번 부결 사태를 수습하고 쇄신을 주도할 수 있는 인물이 ‘1순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친박 성향의 이주영 의원이 거론된다. 4선인 이 의원은 비대위에도 참여해 박 전 위원장과 호흡을 맞춰 본 경험도 있다. 이 의원이 박 전 위원장 경선캠프에서 선거대책부위원장 겸 특보단장직을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친박(친박근혜)계 유승민 의원도 후보군으로 분류되고 있다. 3선이기는 하나 경제학자 출신의 정책통인 데다, 당 최고위원을 지내는 등 정치적 무게감을 갖췄다는 평가다. 각각 4선 의원인 정갑윤·정병국·원유철 의원 등도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女농구, 런던 못 갑니다… 협회 임원님들, 얼마나 기쁘십니까

    [스포츠 돋보기] 女농구, 런던 못 갑니다… 협회 임원님들, 얼마나 기쁘십니까

    결국 설마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국 여자농구가 5회 연속 올림픽 본선행에 실패했다. 1일 터키 앙카라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5~8위전에서 일본에 51-79로 참패했다. 5위까지 받을 수 있는 런던티켓을 놓쳤다. 여자농구가 올림픽에 초대받지 못한 건 1996년 애틀랜타 이후 처음 있는 일. 내용도, 점수도 충격적이었다. 한국은 1쿼터부터 4-29로 크게 뒤졌고, 내내 30여점을 끌려갔다. 실책을 23개나 저질렀다. 일본은 6개. 일본은 5~6위전에 대비해 주전을 아끼며 힘을 뺐지만 끝내 28점 차로 지고 말았다. 선수들은 부상과 피로 누적으로 컨디션이 엉망이었고, 이렇다 할 작전도 없었다. 우리가 일본에 진 건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4위전에서 70-74로 머리 숙인 이후 5년 6개월 만이다. 예고된 참사였다. 지난 4월 대표팀 선임부터 문제였다. 대한농구협회 강화위원회는 우승팀 감독을 선임하던 관례를 뒤엎고 이호근 삼성생명 감독에게 사령탑을 맡겼다. 2009년부터 대표팀을 이끌어 2010년 세계선수권 8강과 아시안게임 은메달,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준우승이란 준수한 성적을 받아든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이 ‘팽’당했다. 협회의 한 임원이 임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으로 보복성 선임을 했다는 정황이 불거졌다. 그래도 협회 임원들은 결국 올림픽에 나갈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피해는 고스란히 선수들 몫이었다. 최종엔트리 두 명이 교체됐고, 출국 전까지 12명이 함께 훈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상 선수가 워낙 많아 신정자(KDB생명)·변연하(KB국민은행)·최윤아(신한은행) 등 몇몇에만 의존했다. 혹시나 해서 데려간 하은주(202㎝·신한은행)는 무릎이 아파 1초도 뛰지 못했다. 선수들은 자부심 대신 부담과 절박함만 안고 뛰었다. 이런 와중에도 한 임원은 “하은주가 못 뛰는 건지 안 뛰는 건지 모르겠다.”고 화살을 날렸다. 물은 엎질러졌다. 참담한 건 물을 담을 이도 없다는 점. 6개 구단으로 운영되던 여자프로농구리그(WKBL)는 신세계가 돌연 해체하며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 인수 구단을 찾겠다던 김원길 총재는 물러났다. 올림픽 진출로 탈출구를 모색하겠다고 했는데, 터키 참사로 수렁은 더 깊어졌다. 몸이 부숴져라 뛴 선수들의 ‘런던행 꿈’을 망친 게 누구인지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책임질 사람은 깨끗하게 옷을 벗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6·25전쟁과 통일의 필요성 바로 알기

    6·25전쟁과 통일의 필요성 바로 알기

    6·25 전쟁이 발발한 지 올해로 62주년을 맞았다. 아직도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은 계속되고 있고, 납북자 문제를 비롯한 많은 일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맘때쯤 진행하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 5명 중 2명은 6·25전쟁이 몇년도에 일어났는지, 남침인지 북침인지도 모르고 있다. 누구에게는 아픔이 계속되고 누구에게는 잊혀지는 게 현실이다. EBS는 25일 낮 12시 10분에 ‘기획특강-끝나지 않은 전쟁, 6·25’를 방송한다. 기획특강은 학교 수업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기획한 EBS 모델 수업의 하나로, ‘3·1절 특강’과 ‘선거 특강’에 이은 3번째 프로그램이다. 최태성 대광고 교사가 강사로 나서, 남침을 위한 북한 내부의 전쟁 준비 상황과 중국·소련·미국 등 주변국 움직임 등 6·25 전쟁의 발발 배경을 설명한다. 낙동강 전선을 두고 북한군과 벌인 치열한 공방전, 인천상륙작전 진행 과정, 휴전 협정문에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서명이 빠진 이유 등 다양한 동영상 자료와 문서, 지도로 알기 쉽게 살펴본다. 또 ‘가거라 삼팔선’, ‘전우야 잘가라’, ‘단장의 미아리 고개’, ‘굳세어라 금순아’ 등 대중가요 속에 담긴 애절한 가사와 음률로, 당시 상황의 절박함을 되새긴다. 이와 함께 이산가족이 겪고 있는 뼈아픈 현실을 되짚어 보며 진정한 통일의 의미와 그 필요성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서동원 담당PD는 “청소년 상당수가 남침과 북침의 의미를 혼동하고, 심지어 6·25전쟁을 일본, 소련 또는 러시아가 일으킨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면서 “호국선열의 피가 서린 6·25전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이번 특강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수능강의 전문 사이트 EBSi(www.ebsi.co.kr)와 포털 다음의 ‘EBS 지식’에서도 볼 수 있다. EBSi 사이트에서는 시청 소감 달기 이벤트도 진행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선택! 역사를 갈랐다] (17) ‘실학거성’ 정약용 & ‘북학거두’ 김정희

    다산(茶山)과 추사(秋史)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조선 최고의 지식인들이다. 한 사람은 조선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인물로 추앙받고, 한 사람은 북학(北學)의 종장으로 일컬어진다. 중국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다산, 청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인을 스승으로 삼고 청나라의 학술과 문화를 배우고 좋아했던 추사, 이런 사실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달랐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당색(黨色)마저 달랐으니 애초부터 가까이 지내기엔 서로가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추사는 다산의 아들 정학연과 가까운 친구였고 선배인 다산을 존경했다. 다산 사후에는 다산의 제자들이 추사의 문하를 수시로 출입하며 교유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의 삶이 다르면서도 닿아 있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 죄인의 몸이 되어 유배형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배의 설움 글로 푼 정약용 대대로 문한(文翰)을 숭상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다산은 정조 임금의 총애를 온몸으로 받았던 신하이자 제자였다. 그런데 출세가도를 달리던 다산에게 시련이 닥쳤다. 젊은 시절 천주학(天主學)에 관한 책을 읽고 연구했던 게 화근이었다. 다산의 집안에는 형님과 매형을 비롯한 천주교도들이 많았다. 호기심 많던 다산이 천주학에 관심을 뒀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에 다산은 성균관에 들어가면서 천주학과의 인연을 끊지만, 젊은 시절 그가 한때 마음을 두었던 천주학은 결국 인생의 항로를 바꾸고 만다.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은 시절 천주학에 몸담았던 사실은 점점 다산의 목을 겨누는 칼로 변해갔다. ●든든한 후원자 정조 죽자 유배생활 시작 상황이 악화되자 다산은 짐을 챙겨 고향으로 돌아갔다. 1800년 봄의 일이었다. 얼마 후 다산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승하하자, 다산은 다음해 2월에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 10월에 상경하여 재조사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고 만다. 죄인의 몸이 되어 강진을 찾은 다산을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801년 겨울, 강진에 도착한 다산은 동문 밖 술집에 거처를 마련했다. 동천여사(東泉旅舍) 뒷골방인 사의재(四宜齋)였다. 이곳에서 1806년 여름까지 지냈다. 1805년 겨울은 승려인 아암(兒庵)의 배려로 아들 정학연과 함께 보은산방(寶恩山房)에서 지냈다. 1806년 가을에는 제자 이학래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1년 남짓 살았다. 이렇게 떠돌던 다산은 1808년 봄부터 1818년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다산초당(茶山草堂)에 머물렀다. 다산은 유배생활 대부분을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하는 일로 보냈다. 누구보다도 승려들과 많은 교유를 하였고 차(茶)를 사랑했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강진에 도착한 다음해 봄부터 붓과 벼루를 옆에 두고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저술에 매달렸다. 그 때문에 왼쪽 어깨에 마비 증세가 나타나 폐인이 될 지경이 되었고, 시력은 나빠져 늘 안경을 끼고 살았다. 다산이 그렇게 저술에 매달린 것은 폐족(廢族)이 되어버린 자신의 가문과 자신을 구원할 길이 오직 저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저술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전하고, 이로써 죄인의 오명을 벗어 던지고 싶었던 것이다. ●폐족 벗어나기 위해 두 아들의 학문정진 강조 한편으로는 두 아들에게 수시로 훈계의 글을 써 보내 공부를 강조했다. 청족(淸族)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존경을 받게 되지만, 폐족이 된 마당에 학문에 힘쓰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천시하고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두 아들이 자포자기하면 자신의 저술이 후대에 전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자신의 글이 전해지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은 단지 관청의 문서만 가지고 자신을 평가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신은 끝내 죄인의 오명을 벗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이런 절박함은 다산으로 하여금 500권이라는 방대한 저술을 남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유배의 恨 서화로 푼 김정희 김정희의 증조부는 영조 임금의 사위였다. 그런 집안에서 자랐으니 왕실의 한 구성원인 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였다. 1810년 부친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베이징)을 다녀온 뒤로 북학의 종장으로 성장하였다. 연경의 지식인들은 김정희와 교유하기를 희망하였고, 김정희의 연구 논문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이미 동아시아 최고의 석학으로 성장했던 것이다. ●‘親청’ 추사, 反청 다산 선배로 여기고 후학들끼리 교류도 그러나 김정희가 45세 되던 1830년에는 부친 김노경이 전라도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1840년에는 그 자신마저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모두가 정쟁 속에서 빚어진 일들이었다.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김정희에게 제주도의 유배생활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음식은 거칠어 목에 넘어가지도 않았고, 날씨는 맞지 않아 걸핏하면 앓아누웠다. 제주도에 도착한 다음해, 추사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장 친한 친구 김유근의 부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김유근은 추사를 유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가장 큰 희망이었는데, 이제 그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김유근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로 추사는 미쳐버린 듯, 정신이 나가버린 듯하였다. 하늘을 향해 혀를 차고 밥상을 대하면 수저를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돌멩이가 목구멍에 걸린 듯하고 대못이 가슴에 박혀 있는 듯하여 몰골은 날마다 말라가고 정신도 따라서 나가버린 것 같았다. 슬픔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추사는 두 번째 아내인 예안(禮安) 이씨와 사별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반대파들의 박해도 끊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친구들과는 소식도 점차 끊어졌다. 젊은 시절 그렇게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마저 소식 한 통 전해오지 않았다. 그런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 이상적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모두 쉽게 구할 수 없는 책들이었다. 그 덕분에 몸은 제주에 있었지만, 중국 소식을 손금 보듯 하며 지낼 수 있었다.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이상적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자한’ 편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라는 구절이었다. 공자께서는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추사는 이상적의 행동이야말로 공자가 인정했던 송백(松柏)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추사는 그 고마움을 그림에 담아 이상적에게 선물하였다. 그렇게 ‘세한도’가 탄생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추사체로 불리는 그의 글씨는 바로 9년간의 유배생활 속에서 탄생하였다. 추사 또한 평생 수많은 저술을 하였고, 유배기간에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년에 자신의 저술을 두 번에 걸쳐 불에 태워버렸다. 그가 남긴 것은 그의 혼이 담긴 서화뿐이었다. ●올해 다산 탄생 250주년… 활발한 학술행사 열려 18년 유배생활을 저술로 보냈던 다산, 9년 유배생활을 예술로 승화시킨 추사, 이들의 삶은 이렇게 같으면서도 달랐다.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밖으로 풀어내 책을 지었고, 또 한 사람은 가슴 속에 쌓인 것을 붓 끝에 모아 서화로 표출했다. 올해는 다산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전시회와 함께 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열린다. 다산의 바람대로 죄인이라는 오명은 오래 전에 씻어졌다. 이제 다산을 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500권의 저술을 남긴 위대한 학자로서의 명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산의 치열했던 삶이 온전히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박철상(고서연구가)
  • [사설] 임의비급여 기준 환자가 중심돼야 한다

    건강보험 항목에 없는 치료를 하고 진료비를 전액 환자에게 부담시키는 임의비급여 진료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적절하게 치료받을 환자의 권리와 의료인의 진료권을 동시에 인정한 결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환자의 병원비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걱정이 앞서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법원도 이 부분을 십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원칙적으로는 부당한 행위지만 의학적 필요성이 있을 땐 부당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대목에서 이를 유추해석할 수 있다. 병원이 돈벌이 목적으로 과잉진료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자, 임의비급여 진료가 환자 중심이 돼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임의비급여 진료행위로 인정받으려면 “의학적 안전성·유효성·필요성이 있고 진료내용과 진료비 부담에 대한 환자의 동의를 거쳤는지를 병원 쪽이 증명해야 한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에서 다시 심리토록 했다. 그렇지만 의료인이 아닌 재판부가 심사규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대법원이 과거의 판례를 뒤집고 새로운 결정을 한 것은 현실을 인정한 결과다. 그런 만큼 정부와 의료계는 하루빨리 만나 임의비급여 진료에 대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안을 도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것이 환자와 가족의 절박한 심정이다. 따라서 임의비급여 진료가 환자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수단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정부가 사후 심사와 관리에 관한 보다 정교한 규정을 만들 필요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임의비급여 진료가 제한적으로 인정되는 마당에 건강보험 규정을 이대로 둘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임의비급여 진료 중 꼭 필요한 진료는 건강보험 적용 목록(급여)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임의비급여 진료가 일부 허용된 틈을 이용해 의료계가 포괄수가제 반대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안 될 말이다. 모든 기준은 환자가 중심이 돼야 한다.
  • “정권·정치·시대 모두 교체…정치적 보복 하지 않겠다”

    “정권·정치·시대 모두 교체…정치적 보복 하지 않겠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현 정치를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不通)의 정치’로 규정하고, 온(On)·오프(Off)라인를 통해 자신이 국민과 소통하고 동행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라고 내세웠다. 문 고문은 17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소수 특권층의 나라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주인인, 우리나라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선언한다.”며 “국민과 동행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며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비장한 심경을 표현했다. 대선 출마 선언은 소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이뤄졌다. 그는 온라인을 통해 출사표를 먼저 던졌다. ‘테드’(TED) 방식으로 사전에 녹화된 12분 10초 분량의 출마 동영상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에 게재했다. TED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의 영문 머리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강연을 통해 지식을 공유·전파하는 강연회다. 문 고문은 동영상 속에 홀로 등장해 ‘모두에게 공정한 나라’, ‘모두 함께하는 정치’, ‘함께 만드는 우리나라’의 모토를 설명하고, 시민들이 ‘함께 쓰는 출마선언문’에 보내온 트위트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오프라인 출마 선언은 37년 전 문 고문이 수감 생활을 했던 서대문형무소 터가 있는 독립공원에서 진행됐다. 그 자리에는 문 고문을 지지하는 한명숙 전 대표 등 민주당 친노(친노무현)계 의원 30명과 대선 싱크탱크 조직인 담쟁이포럼, 학계·언론계·문화예술계·법조계와 문풍지대 등 팬카페 회원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불비불명’(不飛不鳴·큰 일을 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를 제시하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날지도 울지도 못하는 새가 돼 주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국민이 당당하게 말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다.”며 ‘문재인의 꿈’을 제시했다. 이어 “권력과 돈을 가진 집단이 나라를 마음대로 움직이던 시대는 끝났다.”며 “힘없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희생을 강요하던 낡은 경제, 낡은 정치, 낡은 권력도 모두 끝났다.”고 강조했다. 문 고문은 캐치프레이즈로 ‘정권교체·정치교체·시대교체’를 제시했다. 그는 “국민이 모두 아프다.”고 전제한 뒤 “빚 갚기 힘들고 아이 키우기 힘들고 일자리가 보이지 않아 국민 모두가 고달프다.”며 “약자의 고통에 관심 없는 정부, 부자와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기에 급급한 정치가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역사상 최악의 정부’라고 평가하면서 특권과 불평등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과 함께 평가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에 우리가 당한 것처럼 앙갚음을 하거나 되갚아 주는 것은 안 된다.”며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근본적 혁신과 거대한 전환 없이는 나라가 무너지겠구나 하는 절박함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발독재 모델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문 고문은 손학규 상임고문이 제기한 “실패한 국정 경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참여정부는 부분적으로만 실패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우리 역사가 나아갈 방향에 부합되는 정부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안동환·이범수기자 ipsofacto@seoul.co.kr
  • 문재인 딸, 부친 대선출마 반대하더니 결국…

    문재인 딸, 부친 대선출마 반대하더니 결국…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은 현 정치를 국민과 소통하지 않는 ‘불통(不通)의 정치’로 규정하고, 온(On)·오프(Off)라인를 통해 자신이 국민과 소통하고 동행할 수 있는 대통령 후보라고 내세웠다. 문 고문은 17일 서울 서대문구 독립공원에서 “소수 특권층의 나라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주인인, 우리나라를 ‘우리 모두의 나라’로 선언한다.”며 “국민과 동행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기자회견에서는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며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고 비장한 심경을 표현했다. 대선 출마 선언은 소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이뤄졌다. 그는 온라인을 통해 출사표를 먼저 던졌다. 지식 전파를 모토로 하는 강연회인 테드(TED) 방식으로 사전에 녹화된 12분 10초 분량의 출마 동영상을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에 게재했다. TED는 기술(Technology),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영문 머릿글자를 조합한 단어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빌 게이츠 등 미국의 유명 인사들이 강연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문 고문은 동영상 속에 홀로 등장해 ‘모두에게 공정한 나라’, ‘모두 함께하는 정치’, ‘함께 만드는 우리나라’의 모토를 설명하고, 시민들이 ‘함께 쓰는 출마선언문’에 보내온 트위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오프라인 출마 선언은 37년 전 문 고문이 수감 생활을 했던 서대문형무소 터가 있는 독립공원에서 진행됐다. 그 자리에는 문 고문을 지지하는 한명숙 전 대표 등 민주당 친노(친노무현)계 의원 26명과 대선 싱크탱크 조직인 담쟁이포럼, 학계·언론계·문화예술계·법조계와 문풍지대 등 팬카페 회원 등 2000여명이 참석했다. 그는 ‘불비불명’(不飛不鳴·큰 일을 하기 위해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를 제시하며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날지도 울지도 못하는 새가 돼 주인 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국민이 당당하게 말하고 정치에 참여하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고 싶다.”며 ‘문재인의 꿈’을 제시했다. 문 고문은 캐치프레이즈로 ‘정권교체·정치교체·시대교체’를 제시했다. 그는 “빚 갚기 힘들고 아이 키우기 힘들고 일자리가 보이지 않아 국민 모두가 고달프다”며 “약자의 고통에 관심 없는 정부, 부자와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기에 급급한 정치가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앗아가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에 대해 특권과 불평등의 나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근본적 혁신과 거대한 전환 없이는 나라가 무너지겠구나 하는 절박함 때문에 출마를 결심했다.”며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발독재 모델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고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정조준했다. 문 고문은 이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역사상 최악의 정부’라고 평가하면서 “그러나 이는 국민들과 함께 평가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에게 우리가 당한 것처럼 앙갚음을 하거나 되갚아주는 것은 안 된다.”며 정치적 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문 고문은 손학규 상임고문이 제기한 “실패한 국정 경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참여정부는 부분적으로만 실패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우리 역사가 나아갈 방향에 부합되는 정부라는 게 민주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저녁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스피치 콘서트 바람-내가 꿈꾸는 나라,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 행사에 부인 김정숙씨, 아들 문준용씨와 참석해 가족들과 함께 대선 출마 소회도 공개했다. 그러나 문 고문의 딸은 이날 행사에 일체 참석하지 않았다. 문 고문의 대선 출마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트위터에서 “문 후보의 가족을 (행사에 참가하도록)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면서 그 과정을 공개한 바 있다. 탁 겸임교수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콘서트 참석을 부탁했지만 딸은 “그건 아버지의 결정이고 아버지가 하는 일인데 왜 제가 거기 나가야 하죠? 아버지 출마도 개인적으로는 반대고 저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은 더더욱 싫다.”고 말했다. 딸은 특히 “노무현 아저씨 가족들 보지 않았나. 저는 그게 너무 눈물나고 슬프고 무섭다. 아버지의 결정을 저는 싫지만 이해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저와 제 아이 그리고 우리 식구들이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안동환·이범수기자 ipsofacto@seoul.co.kr /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