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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프란치스코 교황의 빗속 기도/이동구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프란치스코 교황의 빗속 기도/이동구 수석논설위원

    그림과 음악 등 예술작품은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기 마련이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는 오묘한 미소로 감동을 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언제나 신비스런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수많은 사람이 그 미소에 감춰진 비밀을 풀어 보려 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2012년 5월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1억 1992만 달러(당시 1355억원 상당)에 낙찰된 뭉크의 ‘절규’ 또한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분분하다. 뭉크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에서부터 산업혁명 이후 위선과 타락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절규하는 영혼의 모습을 그렸다는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절규’가 거짓과 위선 혹은 허상과 가식으로 포장된 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지금 세상 사람들의 심정은 뭉크의 절규 이상이다. 코로나19로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지내고 있다. 가족과 이웃마저 멀리하며 지내고 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간에게 여전히 심한 고통을 안겨 주고 있다.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고 이 가운데 3만명 이상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확진자가 아닐지라도 언제 자신에게 닥칠지 모를 감염에 불안해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안겨 줄 경제난의 고통 또한 두렵기만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에게 닥친 가장 큰 위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주말(현지시간 27일) 비가 내리는 바티칸의 성베드로광장에서 올린 특별기도의 모습이 가톨릭 교인을 넘어 세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평소 수천명이 모여들던 광장이었으나 이날 제단에는 교황과 수행 사제 1명뿐이었다. 바티칸이 위치한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겪고 있는 절박함이 그대로 비쳐졌다. 교황은 “저희를 돌풍의 회오리 속에 버려두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전 세계 교회의 수장으로 추앙받는 교황의 기도였지만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절규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교황은 또 “(코로나19로) 격리된 사람, 독거 노인, 병원에 입원한 사람, 봉급을 받지 못할 것 같아 자식들을 어떻게 먹여살려야 할지 모르는 부모 등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며 “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위로했다. 교황의 특별기도 모습은 이탈리아 공영방송 등이 중계해 1100만명 이상의 세계인이 직접 시청했다고 한다.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교황의 특별기도는 그들에게 더 큰 감동과 위로가 됐을 것이다. 교황의 바람처럼 하루빨리 사람들의 얼굴에 절규가 아닌 모나리자의 미소가 퍼졌으면 한다.
  • 트럼프 ‘공화 텃밭’ 텍사스 품은 바이든에 긴장… “워런 탓” 화풀이

    트럼프 ‘공화 텃밭’ 텍사스 품은 바이든에 긴장… “워런 탓” 화풀이

    히스패닉 지지 없이도 흑인 몰표에 승리 샌더스 광고비의 10% 지출로 최대 효과 민주 양강구도 ‘트럼프 반사이익’ 우려도 미국 14개주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열린 지난 3일(현지시간) 슈퍼 화요일, 10개주를 휩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부활을 조명한 미 언론들은 이에 더해 유독 ‘텍사스 승리’에 주목했다. 미국에서 세 번째 대형주(대의원 228명)로 라이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텃밭을 빼앗기도 했거니와 전통 공화당 지역이라 이곳에서의 승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위협적인 상대라는 이미지를 심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휴스턴, 오스틴, 댈러스, 샌안토니오 등 텍사스에서 불과 4개의 선거사무소를 운영한 바이든이 4800만 달러의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중도표 공략에 나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의 견제에도, 히스패닉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샌더스를 이겼다”고 평가했다. 실제 샌더스는 텍사스에서 히스패닉을 겨냥해 영어와 스페인어로 총 360만 달러어치의 광고를 내보냈다. 반면 바이든은 스페인어는 포기했고 광고비 지출액도 샌더스의 10%에 못 미치는 약 34만 달러였다. 바이든이 최소 지출로 최대 효과를 끌어내 샌더스에 두 배의 타격을 줬다는 의미다. 그간 텍사스 유권자 설문조사에서 줄곧 5% 포인트 이상 뒤지던 바이든은 실제 본선에서 34.5%를 득표해 샌더스(29.9%)를 여유롭게 따돌렸다. 선거 이틀 전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중도 사퇴 후 텍사스 댈러스 유세에서 바이든 편에 선 것이 일단 주효했다. 또 ‘화이트 오바마’로 불리던 베토 오로크 전 텍사스주 하원의원의 지지는 광고보다 효과가 컸다. 무소속 급진좌파 샌더스에게 밀릴 수 있다는 민주당 주류의 절박함에서 나온 의기투합이 빛을 발한 것이다. 텍사스 트리뷴은 “예상대로 바이든은 주요 지지층인 흑인 지역에서, 샌더스는 히스패닉 지역에서 강세였다”면서도 “출구조사에 따르면 히스패닉 유권자 득표수는 샌더스가 바이든의 2배였지만, 흑인 표는 바이든이 샌더스의 3배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의 대항마’를 자처해 온 바이든이 전통적인 공화당 지역인 텍사스를 중심으로 부활한 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날 백악관에서 “바이든의 대단한 컴백이었다”면서도 “워런이 해야 할 일을 했다면 그(샌더스)가 매사추세츠와 아마도 텍사스, 확실히 미네소타를 포함해 많은 주를 이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워런은 방해물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찍 (레이스에서) 나가서 바이든을 정말로 도와줬다. 그녀는 매우 이기적이었다”고 비난했다. 바이든의 대선가도는 탄탄대로가 되는 모양새다. 슈퍼 화요일 경선 직후 블룸버그도 백기를 들고 바이든 지지를 선언, 중도표를 더욱 불리게 됐다. 당내 반샌더스 세력이 원하는 대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바이든과 샌더스의 양강구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CNN은 “양측이 트럼프를 이기려 협력한다고 말은 하지만 인종과 나이에 따라 당을 분열시키고 있다”며 2016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샌더스의 경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반사이익을 얻은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중도층 결집 바이든 화려한 부활…‘오바마 향수’ 등에 업고 남부 석권

    중도층 결집 바이든 화려한 부활…‘오바마 향수’ 등에 업고 남부 석권

    텍사스·버지니아 등 9개주서 승리 기염 샌더스는 캘리포니아 등 4개주 겨우 1위 민주 주류 ‘급진주의 공약’ 샌더스 견제 바이든 vs 샌더스 막판까지 대접전 예고 블룸버그 지지 업은 바이든 중도票 탄력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슈퍼 화요일’에 승기를 잡으면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2016년 때처럼 다시 나락으로 밀어낼지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주류인 중도층은 무소속 샌더스에 밀릴 수 있다는 절박함에 불과 이틀 만에 공동전선을 구축해 바이든을 지지했고 흑인 표심도 든든하게 버텨 줬다. 다만 샌더스의 열혈 지지층도 만만치 않아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지가 승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날 14개 중 9개주에서 이긴 바이든은 로스앤젤레스 유세에서 “우리는 살아 있다. 우리의 선거운동이 트럼프 대통령을 쫓아낼 것”이라며 “사람들은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선을 중단하고 자신을 지지해 준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면 샌더스는 대의원 표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등 4개주에서 앞서거나 승리했다. 우편 투표가 많은 캘리포니아의 최종 개표 결과는 수일 뒤 나온다. 샌더스는 정치적 고향인 버몬트에서 “트럼프와 똑같은 낡은 정치로는 트럼프를 꺾을 수 없다. 우리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고, 역사상 가장 위험한 대통령을 꺾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 모두 자신만이 트럼프를 상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바이든의 흑인 표심은 두터웠다. 지난달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압승한 것과 같이 ‘오바마 향수’를 발판으로 남부를 석권했다. 흑인이 가장 많은 지역인 앨라배마에서 63%의 표를 얻어 샌더스(17%)를 압도했다. 흑인 인구가 25%를 넘는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각각 53%, 43%의 득표율로 샌더스를 20%포인트가량씩 앞섰다.여기에 강성 진보로 평가되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 샌더스의 텃밭으로 불리는 텍사스에서 ‘예상 밖 승리’를 거둔 것이 대역전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역시 샌더스 우세 지역인 메인에서도 한국시간 4일 오후 10시 현재(개표율 73%) 34%를 얻어 샌더스(33%)를 앞섰다. 반면 샌더스로서는 ‘2016년 악몽’이 재현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시에도 초기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슈퍼 화요일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밀리면서 2위에 그쳤다. 민주당 주류들이 힘을 합쳐 급진 좌파이자 무소속인 샌더스를 밀어내는 구도를 형성한 것도 당시와 같다. 특히 샌더스는 캘리포니아와 유타, 콜로라도 등 진보 색채가 짙은 4곳에서만 승리를 거머쥐었다. 젊은 유권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들의 투표율이 낮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주요 지지층인 히스패닉이 집중 거주하는 텍사스에서도 밀렸다는 점은 좋지 않은 징후다. 공립대 무상 등록금, 저소득층 주택 1000만채 공급, 최저임금 15달러 등 급진적 공약이 중도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변수는 중도 성향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과 급진 성향의 워런 의원이다. 초라한 성적에 중도 하차를 전격 선언한 블룸버그가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바이든에게는 중도 표심이 가세할 전망이다. 거기에 워런의 강공으로 급진적 진보층의 표심이 분산되면 샌더스는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경선 결과는 자신만이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수 있다는 바이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면서도 “다만 워낙 예측 불가능한 만큼 끝까지 혼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중도층 결집 바이든 화려한 부활…‘오바마 향수’ 등에 업고 남부 석권

    중도층 결집 바이든 화려한 부활…‘오바마 향수’ 등에 업고 남부 석권

    텍사스·버지니아 등 10개주에서 승리 샌더스, 캘리포니아 등 4개주 겨우 1위 민주 주류 ‘급진주의 공약’ 바이든 견제 바이든 vs 샌더스 막판까지 대접전 예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3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 ‘슈퍼 화요일’에 승기를 잡으면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2016년 때처럼 다시 나락으로 밀어낼지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주류인 중도층은 무소속 샌더스에 밀릴 수 있다는 절박함에 불과 이틀 만에 공동전선을 구축해 바이든을 지지했고 흑인 표심도 든든하게 버텨 줬다. 다만 샌더스의 열혈 지지층도 만만치 않아 결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있을지가 승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날 14개 중 9개주에서 이긴 바이든은 로스앤젤레스 유세에서 “우리는 살아 있다. 우리의 선거운동이 트럼프 대통령을 쫓아낼 것”이라며 “사람들은 혁명을 이야기하고 있고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경선을 중단하고 자신을 지지해 준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시장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반면 대의원 표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등 4개주에서 승리한 샌더스는 정치적 고향인 버몬트에서 “트럼프와 똑같은 낡은 정치로는 트럼프를 꺾을 수 없다. 우리가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고, 역사상 가장 위험한 대통령을 꺾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 모두 자신만이 트럼프를 상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 셈이다. 바이든의 흑인 표심은 두터웠다. 지난달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것과 같이 ‘오바마 향수’를 발판으로 남부를 석권했다. 흑인이 가장 많은 지역인 앨라배마에서 63%의 표를 얻어 샌더스(17%)를 압도했다. 흑인 인구가 25%를 넘는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도 각각 53%, 43%의 득표율로 샌더스를 20%포인트가량씩 앞섰다.  여기에 강성 진보로 평가되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 샌더스의 텃밭으로 불리는 텍사스에서 ‘예상 밖 승리’를 거둔 것이 대역전극의 발판이 됐다는 평가다. 역시 샌더스 우세 지역인 메인에서도 오후 6시 현재(개표율 73%) 34%를 얻어 샌더스(33%)를 앞섰다.  반면 샌더스로서는 ‘2016년 악몽’이 재현될 수 있는 상황이다. 당시에도 초기에 돌풍을 일으켰지만 슈퍼 화요일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밀리면서 2위에 그쳤다. 민주당 주류들이 힘을 합쳐 급진 좌파이자 무소속인 샌더스를 밀어내는 구도를 형성한 것도 당시와 같다.  특히 샌더스는 캘리포니아와 유타, 콜로라도 등 진보 색채가 짙은 4곳에서만 승리를 거머쥐었다. 젊은 유권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이들의 투표율이 낮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주요 지지층인 히스패닉이 집중 거주하는 텍사스에서도 밀렸다는 점은 좋지 않은 징후다. 공립대 무상 등록금, 저소득층 주택 1000만채 공급, 최저임금 15달러 등 급진적 공약이 중도 성향의 민주당 지지자들을 사로잡지 못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또 다른 변수는 중도 성향인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과 급진 성향의 워런 의원이다. 초라한 성적에 중도 하차를 고민하는 블룸버그와 달리 워런은 ‘완주’를 고집하고 있다. 만일 블룸버그까지 중도 표심을 바이든에게 몰아주고, 워런의 강공으로 급진적 진보층의 표심이 분산되면 샌더스는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경선 결과는 자신만이 트럼프 대통령을 꺾을 수 있다는 바이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면서도 “다만 워낙 예측 불가능한 만큼 끝까지 혼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바이든 아래 뭉친 ‘反샌더스’ 연합

    바이든 아래 뭉친 ‘反샌더스’ 연합

    슈퍼화요일 전 샌더스 독주 저지 총력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2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경선을 중단하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역시 전날 물러난 피터 부티지지 전 사우스벤드 시장도 바이든 뒤에 섰다. 소위 민주당 주류로 분류되는 중도 성향 후보들이 연합해 현재 선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필적할 세력을 만들면서 경선판을 흔들었다. 전체 대의원의 3분의1을 선정하는 슈퍼화요일(3일)에 무소속 샌더스가 선두를 가져간다면 뒤집을 기회조차 사라진다는 주류의 절박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클로버샤는 경선 중단을 결정한 뒤 이날 밤 텍사스주 댈러스의 바이든 유세장에서 “조에게 투표해 달라”고 지지 의사를 밝혔다. 부티지지도 같은 장소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 미국은 품위와 위엄의 정치가 필요하고 바이든이 평생 해 온 것”이라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이 8년간 부통령을 지낸 오바마 정부의 주요 인사들도 그의 손을 들고 있다.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트위터에 “트럼프가 국가 안보를 크게 훼손한 것을 복구하는 데 바이든보다 동맹국의 신임을 받는 이는 없다”며 “바이든이 트럼프를 물리칠 가장 강한 후보이고, 이게 트럼프가 바이든을 무서워하는 이유”라고 썼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슈퍼화요일을 목요일로 잘못 말하는 등 바이든의 말실수를 모은 폭스뉴스 영상을 올리고 “‘졸리는 조’(바이든을 폄하하는 별명)는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비꼬았다. 현재까지 샌더스는 60명, 바이든은 54명의 대의원을 확보해 캘리포니아(415명), 텍사스(228명), 노스캐롤라이나(110명), 버지니아(99명), 매사추세츠(91명) 등 15개주(사모아 포함)에서 열리는 슈퍼화요일이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아직은 ‘빅2’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 유리한 샌더스의 승리가 예상된다. 바이든도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에서 강세지만 슈퍼화요일부터 경선 무대에 서는 중도 성향의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돈의 화력’으로 표를 흡수하면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다만 바이든이 부티지지와 클로버샤의 표심을 완전히 흡수한다면 승부는 달라질 수 있다. 일례로 CBS는 이날 골든스테이트인 캘리포니아에서 1위인 샌더스의 지지도가 31%라고 보도했다. 바이든은 19%로 2위이지만 부티지지(9%)와 클로버샤(4%)의 지지율을 감안하면 격차를 크게 줄일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심리학의 세상유람] 마음의 전문성을 묻지 않는 것이 위험사회로 가는 길이다

    [심리학의 세상유람] 마음의 전문성을 묻지 않는 것이 위험사회로 가는 길이다

    최근 지인으로부터 한 부부의 이민 생활에 대해 들었다. 한국에서 정신분석 관련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져 있던 한 작가의 ‘부적절한 상담 행위’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던 그들은, 아무런 준비없이 무작정 이민을 떠났다. 유럽의 작은 도시에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정신적 상처로 헤아리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다. 믿고 자신의 내면을 열어 의지했던 사람에게 이용당했다는 상처는 수년이 지나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런 의문과 분노 또는 자책의 악순환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타인에 대한 불신을 남겼다고 한다. 몸의 고통보다 더 강력한 상흔을 남기는 것이 마음의 상처이다. 그 작가의 ‘부적절한 상담행위’는 잠깐 기사화되었다가 이내 사라졌지만, 그가 상담자로서 어떤 조치를 받았는지 혹은 심지어 지금도 어딘가에서 ‘상담행위’를 지속하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심리상담을 위한 자격이나 교육과정이 법률적 제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누구나 상담활동을 하고 싶다면, 전문성과 상관없이 민간업종으로 신고하고 상담소를 운영하면 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 지점이 되었던 종교집단에서 포교를 위한 방법으로 ‘전문상담’을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접근했다고 한다. ‘심리검사’를 해주고, 그럴듯한 말로 검사해석을 해주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심리상담을 흉내 내어 수차례 상담회기를 진행하면서 점차 자신들의 교리를 주입시키고 인간관계망을 장악했다고 한다. 심지어 ‘상담심리 전문가’라고 자신들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실재하는 단체에서 발급된 자격증을 보여주고 확인하게 해줬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상담 관련 자격증 종류가 수천 개에 육박하고 단 몇 시간의 교육으로도 자격증을 발급하는 곳도 있으니, 포교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손쉬운 방법이었을까 싶다.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단체가 공신력 있는 상담심리전문가들의 모임인지 분별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들의 마음 건강에 대한 국가적, 법률적 보호체계가 부재한 현실이 온 나라를 위협에 빠뜨리는 한 원인이 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상적 상담(Informal counseling)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문적 심리상담은 방대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전문적 교육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론 공부는 첫 단계일 뿐, 장기간의 심리상담 실습과 수퍼비전을 통한 수련과정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심리학회’ 산하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규정한 1급 전문가들은 석사학위 취득 후 최소 3년 이상의 수련기간과 수천 시간의 실습 및 교육을 거쳐야만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자격취득 후에도 지속적인 보수교육과 윤리적 실천 여부를 규제받게 된다. 상담을 전공하고 논문을 써서 학위를 받더라도, 그것이 곧 현장에서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상담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의 고통은 몸의 고통만큼이나 중요하다. 흔히 몸 힘든 건 참아도 마음 힘든 건 참기 어렵다고 하지 않는가. 또한 마음의 치유는 아픈 몸을 다루는 것만큼이나 축적된 지식과 고도로 숙련된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마음 치유에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만큼, 심리학과 심리상담학 분야는 방대한 지식과 연구결과들을 축적하고 있다. 단지 이를 현장에서 실행할 때 필요한 법률적, 제도적 체계가 부재하기에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난 특정 종교집단 또는 무자격자들의 폐해가 심각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칭하여 ‘피로사회’, ‘분노사회’를 넘어서 ‘위험사회’라는 용어까지 재등장하고 있다. 나의 안전과 행복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국민 개개인의 마음 건강을 악화시키고, 서로에 대한 불신을 넘어 혐오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마음이 힘들고 절박한 순간에 찾아가 기댈 수 있는 전문적 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다. 최근 ‘한국심리학회’를 중심으로 전문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심리서비스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참으로 다행스럽고 시의적절하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전 국민이 안전한 전문가에 의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법률적, 제도적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할 때이다. 한영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상담전공 교수
  • 단순해지니 풍요롭구나, 자유로우니 예술이구나

    단순해지니 풍요롭구나, 자유로우니 예술이구나

    >>> 단순한 볼륨(SIMPLE VOLUME) 철근 콘크리트로만 빚어진 현대 건축물이었을 뿐인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17개의 작품이 등재될 만치 20세기를 풍미했던 거장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명확하다. 복잡함에 주저하지 말고 단순함에 도달하라.” 그리고 “건축은 빛 아래의 단순한 볼륨들을 숙련되고 정확하게 그리고 장엄하게 모으는 작업이다”라고. 그의 핵심적 건축 개념을 다룬 저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Vers une architecture, 1923)에서 줄곧 단순성에 대한 가치를 언급했고, 오늘날 한국 도시 또한 당시에 그가 접했던 유럽의 도시들과 유사한 혼돈의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스위스에서 세계 건축의 중심이던 프랑스 파리로 올라온 르코르뷔지에가 새로운 건축을 시작할 즈음인 20세기 초, 현란한 도시 파리와 장식적 빈에 만연돼 있던 비본질적 형상에 대한 실망감은, 그로 하여금 인류 문명의 본향 아크로폴리스 하얀 대리석의 지고한 순수 볼륨을 찾아 떠나게 했다. 초기 건축 작업을 대표하는 파리 근교 사보아 저택의 하얀 사각 박스와 최초의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거친 콘크리트 상자에서 일관되게 추구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 순수한 형상에 대한 절박함이다. 단순한 큐빅 형상의 고전적 파르테논신전 아래에 무릎 꿇은 르코르뷔지에가 추구하던 그 가치에 내가 오롯이 공감한 이후부터, 그렇게 건축을 시작하려는 나의 생각은 한 번도 흔들림이 없다. 플라토닉한 입체는 항상 그것을 대면하는 이들에게 강한 첫인상과 감동을 준다. 그리고 어떻게 그 형상을 잘 구축하고 또 효과적으로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유사 이래 역량 있는 대부분 건축가들의 일관된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단순한 볼륨에 대한 모색은 건축적 감동을 유발하려는 내 설계 과정에서 항상 우선적인 태도가 된다.이렇듯 나의 첫 번째 건축은 대전의 한 복잡한 도시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목양교회라는 소담스러운 콘크리트 볼륨에서 시작됐다. 100평의 대지에 최대 건폐율로 60평 남짓의 건축면적 위에 놓인 사각의 단순한 볼륨, 비록 작지만 고상하고 견고하며, 도심 건축이 갖춰야 할 콘텍스트를 소중히 여긴 작업이었다. 비록 협소한 골목길에 소박하게 건축됐으나 외부 도시를 향해서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나름의 위엄을 지니고 있다. 수년 후, 신도시 광명에서는 최초 목양교회보다 다섯 배나 큰 용적의 건물을 설계하게 됐지만 단순한 볼륨의 가치를 그대로 견지하면서 발전시키는 선에서 설계했다. 늘샘교회는 4개의 서로 다른 입면을 제시하면서도 단순한 큐브를 지키려 애쓴 작업이었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통상적 한국 신도시 개발 현장 속에서도, 순수한 볼륨을 구축하는 일이 내게는 여전히 절실한 가치였다. 신도시에서 스트리트 월을 명료하게 유지하기 위해 건축물 모서리가 뭉개지지 않도록 힘썼다. 늘샘교회는 주변의 가로와 학교와 주거와 공원을 향해 단순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한 볼륨에 길이가 부가되고, 비례가 달라질 때 그 건축물의 개성은 드러난다”라는 르코르뷔지에의 교훈에 따라 숲속의 작은 전원형 푸른마을교회를 길고 나지막한 콘크리트 상자로 만들었다. 과천의 한 와인 수입상 사옥인 뱅루즈에서도 단순한 상자형 볼륨으로 시작된 건축물의 길이가 기대 이상으로 길게 늘여질 때, 색다른 개성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단순한 볼륨의 가치는 르코르뷔지에와 나의 건축에 있어서 알파요, 오메가이다. >>> 자유로운 공간(PLAN LIBRE) 르코르뷔지에가 현대 건축계를 향해 언급했던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사항’ 즉 ①전경을 무한하게 열어주는 수평창 ②습윤한 땅으로부터 바닥을 분리한 필로티 ③녹지를 지반의 속박에서 푼 옥상정원 ④외피를 구조체로부터 독립시킨 자유로운 입면 ⑤기능의 그리드 체계를 허문 자유 평면, 이 다섯 개념 정리들 모두 인간을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해방시키고자 그가 제시한 새로운 건축적 태도들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항이 바로 ‘자유로운 평면’(Plan Libre)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항들은 형태와 구조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자유 평면만은 건축에서의 기능적 자유와 풍요로운 공간 세계를 열어 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시적 질서와 처음 감동을 유발하는 형상으로서 단순하게 구축된 볼륨은 반대급부로 내부에서의 풍성함을 요청받게 된다. 아마도 절제된 볼륨 속에서도 인간 본성이 기대하는 다채로움과 풍요를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효율적인 그리드 체계 속에만 갇혀 있기보다 그 구조적 틀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평면 계획은 인간을 배려하는 역동적 공간과 넉넉함으로 나타난다. 이런 내면적 자유와 풍요가 밖으로 적절히 표현될 때, 비로소 볼륨에서의 파사드 깊이와 형상의 개성은 면면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상자이지만 목양교회에서는 빛과 대리석 벽면의 조화로 내적 감흥을 유발했고, 늘샘교회는 기울어진 바닥과 전경에 대해 반응하는 실내 변화로 공간의 풍성함을 자아내려 했다. 그러나 순수한 볼륨과 단순한 구성만으로 건축적 풍요를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 풍요로운 건축에 이르려면, 자유롭고 역동적일 뿐 아니라 시간의 개념까지를 공간에 부가하는 경지로 진전해 나가야 하는데, 이는 자유로운 평면을 맘껏 구사할 수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빌라 사보아의 경우 일견 가볍게 들린 단순한 상자처럼 보이나 자유로운 평면의 개념이 맘껏 발휘되는 내부를 갖춘 장엄한 저택이랄 수 있다. 그리드 구조체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3개 층을 수직으로 계단이 휘감아 오르고, 경사로가 시간과 빛 가득한 공간을 가로지르며, 방과 거실과 정원은 서로 열려 있어서, 끝없이 펼쳐지는 창 밖의 전경을 어디서나 누릴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거대 상자 샹디가르의 국회의사당에서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평면의 심포니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거친 콘크리트가 빚어내는 건축예술 행위가 얼마나 웅장하고 자유로우며, 동시에 가볍고도 풍요로우며 관대할 수 있는가를 잘 증명해 주는 결과다. 실용성과 순수, 경제성과 절제, 봉사와 헌신의 시기를 거치면서, 나에게도 최근 보다 더 복합적이고 여유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할 만한 규모의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부산의 온천천변의 섬처럼 생긴 대지에 부전 글로컬비전센터라고 불리는 기독교 복합시설을 제안하게 됐다. 이름 그대로 지역과 세계, 교회와 이웃, 자연과 도시로 관통하는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자유평면의 개념이 적극 구사돼야 했다. 또한 방어적 성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거대한 콘크리트 볼륨은 공중으로 들리며, 그 아래로 소통의 공간이 활성화된다. 전층의 기둥 라인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지만, 각 층이 한 번도 같은 형상으로 중복되지 않는 평면의 자유로움을 구사한다. 이는 지반 층을 자유롭게 해방하면서 동시에 ‘들린 건축, 열린 가치’의 건축개념을 이 땅에 소개하는 뚜렷한 이정표가 됐다.>>> 숭고함(NOBLESSE) 르코르뷔지에에게 자유로운 공간 획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는 그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롱샹의 노트르담 뒤오성당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완전히 자유로운 조형과 공간을 획득하기 위해서 아예 그리드의 구조체계를 내부공간 속에서 지워버렸던 것 같다. 이렇게 맘껏 자유를 구가하는 작은 채플 속에서 마침내 그는 풍성한 조형과 감동적 공간, 그리고 숭고한 예술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내게 있어서 자유로운 공간 연출에 대한 노력은 한국 최초의 교회인 신축 새문안교회 평면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단순한 볼륨과 자유로운 평면의 근원적 건축 작업 위에 덧대어 도시와 외부공간의 가치, 또한 하늘을 경외하고 이웃을 존중하는 공공성과 추상적 상징들을 새문안교회 작업에서 모색하려 했다. 이는 기능과 효율에 우선권을 두었던 그간의 실용성과 합리적 작업의 경계를 돌파하려는 내 건축적 여정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새문안교회에서 보듯이, 내외부 공간을 자유로이 활성화하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형상을 통해 건축이 베푸는 상징과 인간성의 풍요를 드러낼 수 있다면, 종교적 인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구태나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전통주의와 기능주의적 건축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열고, 대로로부터 수평으로 깊숙이 물러선 파사드는 하늘과 이웃에게로 열린 문이요, 도심의 넉넉한 공공의 마당이다. 광화문으로까지 연결되는 자유로운 로비 홀은 세속과 거룩함을 구분하던 수도원적 교회건축의 인습을 벗어나서, 이제는 서로 교류하고 상생하는 미래 교회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건축의 풍성함은 그 속에서 삶으로 참여하고, 함께 누리며, 감격하는 자들에게 베푸는 신의 은총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마치 동일한 모국어를 쓰는 것처럼 르코르뷔지에가 추구한 단순성에서 시작해 공간을 자유롭게 조성하고, 그 속에 인간적 삶의 풍요를 충만하게 하는 숭고함의 건축을 추구해 가려 한다. 그가 건축에 대해 한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정신적 숭고함의 상태와 질서, 그리고 사색과 조화를 통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바로 건축 예술이다.” 건축가 이은석
  • ‘가성비 최강 SUV’ 르노 XM3 출격

    ‘가성비 최강 SUV’ 르노 XM3 출격

    르노삼성자동차가 다음달 9일 야심작 ‘XM3’를 출시하며 경영난 탈출을 시도한다. XM3는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차다. 르노삼성차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경영 위기를 극복해야겠다는 절박함에 출시를 강행한다. 르노삼성차는 지난 21일부터 국산 최초 쿠페형 SUV XM3에 대한 사전계약에 돌입했다. XM3의 차체 길이는 4570㎜로 4480㎜인 현대차 준중형 SUV 투싼보다 90㎜, 4495㎜인 기아차 스포티지보다 75㎜ 더 길다. 실내 공간을 좌우하는 축간거리(휠베이스)도 2720㎜로, 2670㎜인 투싼과 스포티지보다 50㎜ 더 길다. 그러면서도 놀라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XM3 가격은 1795만~2695만원으로, 기아차 셀토스(1965만~2865만원), 한국지엠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1995만~2830만원) 등 주요 소형 SUV보다 200만원가량 저렴하게 책정됐다. 파워트레인은 TCe260(1.3 가솔린 터보)과 1.6GTe(1.6 가솔린) 엔진 2종으로 출시된다. 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 ‘TCe260’에는 게트락 7단 습식 EDC 변속기(DCT)가, 1.6GTe 엔진에는 엑스트로닉 무단변속기(CVT)가 각각 조합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XM3의 놀라운 가격경쟁력… 준중형 크기에 소형보다 저렴

    XM3의 놀라운 가격경쟁력… 준중형 크기에 소형보다 저렴

    XM3 전장 4570㎜… 투싼·스포티지보다 더 길어가격은 셀토스·트레일블레이저보다 200만원 저렴 르노삼성자동차가 다음달 9일 야심작 ‘XM3’를 출시하며 경영난 탈출을 시도한다. XM3는 2016년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QM6 출시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신차다. 르노삼성차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경영 위기를 극복해야겠다는 절박함에 출시를 강행한다. 르노삼성차는 지난 21일부터 국산 최초 쿠페형 SUV XM3에 대한 사전계약에 돌입했다. XM3의 차체 길이는 4570㎜로 4480㎜인 현대차 준중형 SUV 투싼보다 90㎜, 4495㎜인 기아차 스포티지보다 75㎜ 더 길다. 실내 공간을 좌우하는 축간거리(휠베이스)도 2720㎜로, 2670㎜인 투싼과 스포티지보다 50㎜ 더 길다. 그러면서도 놀라운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 XM3 가격은 1795만~2695만원으로, 기아차 셀토스(1965만~2865만원), 한국지엠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1995만~2830만원) 등 주요 소형 SUV보다 200만원가량 저렴하게 책정됐다.파워트레인은 TCe260(1.3 가솔린 터보)과 1.6GTe(1.6 가솔린) 엔진 2종으로 출시된다. 르노와 다임러가 함께 개발한 터보 직분사 가솔린 엔진 ‘TCe260’에는 게트락 7단 습식 EDC 변속기(DCT)가, 1.6GTe 엔진에는 엑스트로닉 무단변속기(CVT)가 각각 조합된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총선·하반기 국정 악영향 우려… ‘비상’ 6번, ‘특단’ 2번에 절박함 담겨

    총선·하반기 국정 악영향 우려… ‘비상’ 6번, ‘특단’ 2번에 절박함 담겨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국무회의에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비상 경제시국’으로 규정하고, 모든 정책 수단을 총동원할 것을 지시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전례가 있다, 없다를 따지지 말고”,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예상을 뛰어넘는 정책적 상상력을 발휘해 달라”는 주문에서 보듯 코로나19 사태와 관련, 문 대통령은 정부가 기업과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돕고 위축된 소비를 진작하기 위한 창의적 해법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전날 경제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상의 전환’을 강조하고, 앞서 지난 13일에는 “상상력을 동원해서라도 (임차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며 비슷한 언급을 되풀이한 것은 경직된 관료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코로나19로 발목 잡힌 한국경제의 활력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신년사에서 밝힌 민생·경제를 비롯한 국정 전반의 ‘확실한 변화’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이 4·15 총선과 문재인 정부 하반기 국정운영의 성패를 좌우할 변수로 떠올랐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선제적 대처로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한껏 위축된 소비심리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이어진다면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 민심에 영향을 줘 ‘정권 심판론’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비상’(비상경제 2회 포함 6회), ‘특단’(2회), ‘파격’ 등 표현 수위를 한층 높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소비심리 진작을 위한 소비쿠폰이나 구매금액 환급 등을 언급한 것과 관련, ‘총선용 포퓰리즘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절박한 상황에 놓인 분들이 많다. 대통령이 재계 총수도 만나고 현장에서 국민의 목소리도 듣는 것”이라며 “정부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며, 총선용이라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황교안 “유승민 소신 적극 환영…정의로운 승리 이뤄낼 것”

    황교안 “유승민 소신 적극 환영…정의로운 승리 이뤄낼 것”

    “정당 간 협의도 조속히 마무리하겠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10일 “어제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보수재건위원장이 합당과 총선 불출마에 대한 소신 있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추진하는 한국당은 적극 환영하는 바”라고 밝혔다. 황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보수 통합 논의와 관련해 “통합신당준비위를 통해 추진하고 있지만 조속한 시일 내에 정당 간 협의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통합신당준비위에서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황 대표는 자신의 종로 출마에 대해 “청년 황교안의 순수한 열망이 오늘 황교안의 절박함을 만나서 정권심판 경제심판의 의지를 다졌다”라고 했다. 그는 또 “친문 기득권 세력이 노골적으로 우리의 도전을 깎아내리고 통합을 비아냥대고 있다. 혁신과 통합의 위력을 잘 알기 때문”이라면서 “총선 패배와 함께 민심의 재판이 시작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발버둥 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의 승리는 시대의 명령”이라면서 “반드시 아름답고 정의로운 승리를 이뤄낼 것이다. 더 강한 혁신, 더 큰 통합으로 자유민주 시민께 희망을 드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취중생]중국 여성의 일기가 보여준 봉쇄된 우한 일주일

    [취중생]중국 여성의 일기가 보여준 봉쇄된 우한 일주일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의 개인은 자기 자신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국가 체제의 보호는 없다. 나는 다행히 어린 편이지만,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궈징(29)은 봉쇄된 우한에서 홀로 사는 여성입니다. 그는 중국의 미투 운동에 참여했고, 직장에서 성차별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법률 지원을 도왔습니다. 우한이 봉쇄된 지난 23일부터는 일기를 써서 페이스북 등에 올리고 있습니다. 우한 사람들에게 보낼 마스크를 전달받는 일도 했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우한에서 지낸 그는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도시가 봉쇄되는 일은 전례가 없고,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사회활동가로서 봉쇄된 도시를 기록하고 싶었고, 나의 삶의 일부분도 담았다”고 밝혔습니다. 우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그의 일기 일부를 소개합니다. ● 1월 23일 나는 꽤 침착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1월 20일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 수가 100명이 넘고, 다른 성에서도 확진자가 생겨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전까지 공표된 내용에서 은폐된 정황이 엿보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우한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여러 약국의 의료용 마스크는 몽땅 팔렸으며, 많은 사람은 감기약을 사들였다. 마침 이때 조금 감기 기운이 있었다. 평소였으면 약 없이 그냥 지나갔겠지만,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앞 사람이 감기약 4통 사서 나도 1통을 샀다. 1통에 62위안(약 1만원). 조금 비쌌다. 요 며칠 새 나는 계속 마음을 졸인다. 각지에서 들리는 확진 소식을 보면 대부분 15일 전에 우한을 방문했던 사람이었다. 우한은 전국에서 대학생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다. 1월 중순이면 대학생들이 방학을 맞는다. 게다가 지금은 춘제를 앞두고 역을 오가는 인원이 많다. 그런데도 우한기차역은 엄격히 관리·감독 되지 않았다. 나는 춘절에 집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지내던 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오늘 아침 우한이 봉쇄된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봉쇄를 얼마나 이어질까. 무슨 준비를 해야 할까. 모두 알 수 없었다. 최근 화가 나는 소식을 많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입원할 병원은 모자랐다. 열이 나는 환자들은 치료를 받지 못했다. 후베이성의 고위 관료들은 1월 21일 함께 춘제 공연을 관람했다. 친구들은 내게 빨리 물건을 쟁여두라고 했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기도 했고 아직 배달 주문을 할 수 있었다. 배달이 언제 갑자기 끊길지 모른다는 겁도 들었다. 밖이 어떤지 한번 보자는 마음을 안고 문을 나섰다. 거리에는 대부분 중장년층이 있었고, 젊은 사람들은 드물었다. 근처 마트에 가니 계산대 줄이 길었다. 쌀은 이미 거의 동나있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나도 집어 들었다. 어떤 남자는 소금을 많이 샀다. 누군가 왜 그렇게 소금을 많이 사냐고 물었다. 그는 말했다. 혹시 1년 가까이 도시를 폐쇄하면 어떡하냐고. 난 별생각 없이 가방도 없이 나와서 물건을 많이 사지 못했다. 다시 집 밖으로 나오자 조금 전 물건를 사기 위해 경쟁할 때 웃음과 좌절이 떠올랐다. 조금 두려워졌다. 길거리에 보이는 노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더 힘겹지 않을까 싶어졌다. 일상용품은 도시가 봉쇄돼도 공급이 되겠지 싶기도 했다. 두 번째로 마트에 가서는 요구르트나 꿀을 사는 약간의 사치를 부렸다. 집에 가는 길에서는 약국에 들렀다. 약국은 출입 인원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약국에서 마스크와 알코올은 이미 다 팔린 뒤였다. 감기약도 부족했다. 내가 약국에서 나갈 때가 되자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 시작했다. 한 중년여성은 나를 붙잡고 알코올을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말투에는 생명줄을 찾는 것 같은 절박함이 묻어있었다. 길거리에서 차와 행인은 점점 더 줄었다. 도시 전체가 멈춘 듯했다. 이 도시는 언제쯤 살아날까. ● 1월 24일온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다. 혼자 사는 나는 이따금 건물 복도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다른 사람의 존재를 확인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나는 별다른 돈도 인맥도 없다. 나는 아파도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내 목표 중 하나는 내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 게 됐다. 꾸준히 운동해야 했다. 살기 위해 음식도 필요했다. 생활필수품이 잘 공급되는지 알아야 했다. 정부는 도시 봉쇄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봉쇄한 뒤 도시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작동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봉쇄가 5월까지 갈 거라고 예상했다. 생존을 위해서나는 내가 생활하는 주변을 익혀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외출을 했는데, 근처 약국과 편의점은 문을 모두 닫았다. 1km 거리의 마트까지 걸어가는 동안 아직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를 봤다. 조금 위안이 됐다. 마트에는 여전히 음식 쟁탈전이 벌어졌다. 거의 모든 게 팔렸다. 쌀은 조금 남아 있었다. 야채는 무게를 재기 위해 20, 30명씩 줄을 서 있었다. 소시지나 만두, 고기만 샀다. 약국에는 여전히 마스크와 알코올이 없었다. 대신 비타민과 요오드 소독약을 샀다. 평소에 아픈 적이 거의 없어서 집에는 상비약을 두지 않았다. 비타민을 꼬박꼬박 먹기로 했다. 계산하는 줄에서 보니 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두 겹으로 쓰고 있었다. 다음에 나도 두 겹으로 마스크를 쓰겠다고 결심했다. 앞에 선 부부는 뭘 더 사야 할지 한참 얘기를 하더니 일회용 의료용 장갑을 샀다. 외출할 때 끼겠다고 한다. 좋은 아이디어 같아서 나도 한 상자 샀다. 조금 뒤에 의료용 마스크 재고가 왔다. 1상자에 100개. 2상자를 집었다가 1상자에 198위안(약 3만 5천원)이라는 말에 조용히 1상자를 내려놓았다. 계산할 때 보니 1상자에 99위안(1만 7천원)이어서 조금 후회가 됐다. 그래도 더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 솟았다. 결핍은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특히 이렇게 생사가 갈리는 순간에서 말이다. 시장에 또 가니 매대가 절반으로 줄어있었다. 파는 야채도 줄었다. 몇몇 채소와 계란을 샀다. 가게는 드문드문 열었는데, 국숫집은 오늘 안에 문을 닫겠다 했다. 꽃집이 문을 열어서 의아했다. 다음에도 꽃집이 문을 열면 화분을 사기로 했다. 집에 와서는 입었던 옷을 몽땅 빨고, 목욕했다. 깨끗이 생활하는 게 지금은 너무도 중요하다. 하루에 손을 20, 30번씩 씻는다. 반나절이 이렇게 지나갔고 점심밥을 지었다. 한번 외출을 하니 그래도 혼자가 아니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생존 팁도 배웠다. 이 전쟁에서 대부분 개인은 자기 자신 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 시스템의 보호는 없다. 나는 다행히 어린 편이다.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개인들은 이번 전쟁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1월 25일우한의 날씨는 지금의 우한처럼 음울하다. 오늘은 춘제다. 원래 명절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지금 명절은 나와 더 상관없는 일이 됐다. 어제 이틀 동안의 경험과 느낌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내가 아직 세상과 연결돼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에게서 우한에서 경험을 기록하라는 제안을 들었을 때 조금 망설였다. 나는 비극의 피해자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 너무 안됐다’라는 인상만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많은 사람은 내가 우한에 지난해 11월에 이사 왔다는 걸 몰랐다. 너무 많은 질문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성평등을 외쳐온 사회운동가인 나는 잘 알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들이 나서서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기록을 시작하고 많은 도움과 지지를 받았다. 매일 발포 비타민을 먹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는 방법부터 감기약을 아무 때나 먹지 말라는 조언도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마스크와 알코올을 보내줬고, 친구들은 돈을 보내줬다. 최근 이틀부터 나는 식사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평소의 절반 정도 양만 요리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우리는 신종 코로나라는 화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지역 사람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우한 근처 도시에 사는 친구도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어떤 친구는 ‘죽음을 무릅쓰고’ 가족과 만났다. 어떤 친구가 통화 중에 기침을 하자, ‘나가라’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거의 3시간 동안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나니 밤 11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으니 최근 일들이 뇌를 스쳤다. “나는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무기력했고, 화가 났고, 슬펐다. 죽음도 떠올랐다. 스스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삶에 큰 미련은 없다. 페미니스트로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서로 도왔다. 인생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일이다. 그래도 내 삶이 끝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도시 봉쇄가 풀리면 무슨 일을 하지 생각했다. 그건 어떤 행복일까. 이 시기가 지나면 내 인생도 한 단계 나아갈 것이다. 아침 7시에 잠이 깼다. 병에 대한 공포가 나를 짓누른다. 아침에 코를 풀었는데 약간 피가 나왔다. 무서웠다. 휴지는 버렸지만, 병에 대한 걱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12월 말에 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12월 30일에 안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1월 9일에 구이린으로 여행을 갔다. 그때 친구에게 감기가 옮았다. 1월 13일에 우한에 돌아왔다. 약은 먹지 않았지만, 감기는 호전되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가 내 집에 며칠 머물렀고, 친구들은 아직 다 괜찮다. 집에서 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열은 나지 않았고 배가 고팠다. 운동을 하고 집 밖을 나섰다. 밖은 조용했다. 마스크를 두 겹으로 썼다. 소용이 없다고 하지만 마스크가 가짜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국수집이 문을 열었는데, 들어가려고 하자 사장님은 손을 흔들며 영업이 끝났다고 알렸다. 꽃집은 문을 열었는데, 문밖에 국화가 있었다. 조의를 표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꽃집과 5m 떨어진 골목 어귀에도 똑같은 국화가 놓여 있었다. 시장에는 야채는 거의 떨어졌고 만두와 국수도 얼마 없었다. 줄 선 사람도 적었다. 가게에 갈 때마다 물건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집에 쌀이 7kg이나 있는데 2.5kg을 더 샀다. 참지 못하고 만두, 고구마, 소시지, 녹두, 팥을 샀다. 소금에 절인 오리알은 좋아하지 않지만, 만일을 대비해 샀다. 봉쇄가 풀리고도 오리알이 남으면 다른 사람에게 줄 생각이다. 문득 병적으로 먹을 거리를 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음식만으로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자책할 수 없었다. 똑같은 약국에 갔다. 알코올은 없다고 했다. 직원은 내게 어제 오지 않았냐고 물었다. “맞아요.” 나는 어쩌면 매일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강가를 걸었다. 내 생활은 너무 단조로워지고 있었다. 길에는 개와 산책하는 사람도 보였고, 강가에도 산책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갇혀있기 싫었을 것이다. 매일 마트에만 갈 수는 없다. 해가 나면 강가를 걸어야겠다.   ● 1월 26일갇힌 것은 도시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갇혀있다. 첫날 웨이보에 일기를 올릴 때 사진이 올라가지 않았다. 글도 쓸 수 없었다. 어제는 글을 사진으로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내려고 하는데, 이것도 보낼 수 없었다. 1월 24일 쓴 일기는 웨이보에서 5000명이 공유했는데 어제는 45명만 공유했다. 잠깐 나는 내가 글을 잘 못 썼나 고민했다. 인터넷 검열과 제한은 그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더욱 잔인하다. 많은 사람은 도시가 봉쇄된 뒤 집에 갇혀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의지해 정보를 얻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한다. 스스로가 고립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상을 유지하는 일 자체가 큰 도전인 나날이다. 운동을 하면서도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도 날이 추웠다. 길 양쪽의 가게는 모두 닫았다. 길에서 3명만 보였다. 1명은 환경미화원, 1명은 수위, 1명은 행인이었다. 국수 가게 앞까지 걸어가면서 8명을 만났다. ● 1월 27일 어제 저녁에는 국수를 먹고, 친구들과 3시간 동안 영상 통화를 했다. 다른 도시에 사는 친구는 아버지가 덤덤하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재난은 인류가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2003년에 우리는 사스를 겪었고, 2008년에는 쓰촨 원촨 지진을 겪었다. 어떤 친구는 내년 춘제는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고, 잘 모르는 친척들과 어색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고 했다. 다들 그렇지 않을 거라고 했다. 어쩌면 한을 풀듯이 사람들을 만나고, 결혼도 재촉할 거라고. 올해는 신종 코로나 때문에 친척들과 만나지 못할 테니 내년에는 더 많이 만날 거라고. 오늘 우한 날씨는 조금 풀렸지만, 여전히 흐렸다. 마트의 야채나 쌀은 거의 텅텅 비었고, 소금도 없었다. 줄 선 사람도 많았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물건을 샀고, 오늘은 잘 참아냈다.  약국에는 여전히 마스크와 알코올이 없었다. 정부청사 앞까지 걸어갔는데 자전거를 탄 중년 여성이 문 앞에서 크게 외치는 걸 봤다. 우한 말이어서 나는 “지도자를 만나게 해 달라”, “20년이다” 정도만 알아들었다. 그는 여러 번 반복해서 외쳤다. 차 몇 대가 들어갔고, 경찰도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그는 계속 외쳤다. 아마 이날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100m 이상 떨어져도 내 뒤에서는 여전히 “지도자를 만나게 해달라”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경찰서 앞에서는 “힘을 합치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과 방역 전쟁을 이겨낼 수 있다”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방송은 계속됐다. ● 1월 28일봉쇄는 공포를 가져왔고, 사람 사이의 거리도 벌어졌다. 많은 도시가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요구한다. 이 조치는 폐렴의 전파를 막기 위해서였지만, 권력 남용도 가져왔다. 어제 광저우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이 지하철에서 끌어내려졌고, 최루액을 맞았다. 그들이 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는 안내를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떤 이유더라도 외출할 권리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정부에게는 사람들이 외출을 삼가고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쓰도록 독려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선택지가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시민에게 마스크를 줄 수도 있다. 인터넷에서 자가격리된 사람의 집 문을 막는 영상을 봤다. 후베이성 사람들은 외지에서 쫓겨나 갈 곳이 없다. 끔찍한 일이다. 폐렴 예방이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외지에 있는 후베이성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살 곳을 마련해준다. 봉쇄된 상황에서 신뢰를 구축하고 연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제 어떤 기자는 내게 다른 사람들과 만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도시 전체는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지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봉쇄는 사람들의 삶을 원자 상태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과 관계는 사라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어젯밤 8시쯤 창문 밖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모두가 함께 “우한 힘내라”를 외쳤다. 함께 외치는 일은 개인에게 힘을 준다. 사람들은 연대를 갈망하고, 그 속에서 힘을 얻는다. 생존에 대한 불안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매일 더 멀리 걷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과 연락을 하지 않는다면 많이 걷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회적 참여는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다. 사회적 역할을 맡으며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야 삶은 의미가 있다. 오늘의 우한은 마침내 해가 보였다. 마치 나의 마음처럼. 길가에는 사람들이 좀 늘었는데, 2, 3명의 지역 사회복지사가 조사를 하는 듯 했다. 여성 복지사에게 마스크가 있는지 묻자, 없다고 했다. 다른 남자가 급하게 와서 마스크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8명의 환경미화원을 인터뷰했다. 6명은 여성이고 2명은 남성이었다. 그들은 매일 6, 7시간을 일한다. 월급은 2300, 2400위안이다. 세금을 떼면 2000위안(약 35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나는 폐렴이 퍼진 뒤 월급은 그대로인지 물었다. 누군가는 춘제 3일 동안은 두 배를 받았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모르겠다고 했다. 그들은 매일 소독약을 받고, 보호장갑을 계속 쓴다. 일회용 장갑은 없고, 대부분 마스크가 부족했다. 사정이 나으면 마스크 20개를 받고, 다 쓰면 다시 받을 수 있었다. 봉쇄 이후 2개의 마스크만 받은 최악의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다. 어떤 사람은 일회용 의료용 마스크가 없어서 스카프로 입을 감쌌다. 나는 가지고 나온 3개의 의료용 마스크를 건넸다. 억양 때문에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어떤 이는 잠시 마스크를 뗐다가 곧바로 다시 썼다. 어떤 이는 스스로 마스크를 준비한다. 가족과 다른 이들, 국가를 위해서. 가족들이 걱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어떤 여성은 걱정이 돼서 아들과 며느리는 따로 산다고 했다. 그들은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대신 그가 물건을 사서 문 앞으로 가져다준다. 자신도 두렵고 마음이 무겁다고 한다. 그들은 적은 월급을 받고, 기본적인 보호 장구도 받지 못한다. 그런데도 아직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3명의 남성 배달원도 만났다. 그들의 근무 시간은 유동적이었지만 대부분 마스크를 받았다. 적어도 하루에 1, 2개를 받았고, 매일 배달 상자를 소독했다. 손 세정제를 받는 업체도 있었다. 월급이 늘었냐고 묻자, 배달업체나 배달량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어떤 곳은 배달 1건에 평소보다 3.5위안(약 600원)을 더 주고, 어떤 곳은 평소보다 1건당 4위안(약 700원)을 더 준다. 다른 배달 업체는 그대로였다. 편의점 한 곳은 오전 5시에 열고 밤 11시에 닫는데, N95 마스크를 하나 준다고 했다. 알코올은 부족한 편이라고 했다. 내가 사람들을 연결하는 포인트가 되기로 했다. 내 위챗 코드를 공개했다. 연락을 환영한다. 당신이 우한에 있고 봉쇄를 끝내는 데 힘을 보내고 싶다면, 함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외지에 있다면 마스크나 필요한 물건을 보내줘도 된다. 받으면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겠다. ● 1월 29일2017년 말, 나는 직장에서 성차별을 당한 여성에게 법률지원을 하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어제 오후 임신으로 인해 받는 차별에 대한 전화 문의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남성이었고, 그의 부인은 국가기업의 행정직원이었다. 임신 3개월째인 부인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의사가 휴식을 권했다. 휴가를 몇 번 쓰니 회사는 그에게 이 일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가 직접 휴직을 권하지는 않아서, 나는 그에게 일을 계속하면서 증거를 모으라고만 말했다. 마침 그들은 우한에 있는데 먹을거리를 쌓아뒀다고 했다. 봉쇄가 풀린 뒤 그들을 만날지도 모른다. 일자리는 많은 사람에게 걱정거리가 됐다. 춘제 연휴가 2월 2일까지로 늘어났지만, 만약 병이 계속 확산한다면 어떻게 안심하고 출근을 할 수 있을까. 큰 기업은 계속 운영할 여력이 있지만, 작은 기업이나 개인 사업자는 휴일이 길어지면 입는 타격이 심각하다. 남는 이익은 많지 않고, 월세나 월급의 부담도 있다. 그럼 해고를 택할 수 있다. 여성은 보통 가장 먼저 해고된다. 개인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출근을 해야 할지 다들 고민 중이다. 집세를 내야 하고, 돌봐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감세 정책을 펴고,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생계 지원을 할 수 있다. 어제는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그녀는 간호사다. 그는 “너의 일기를 모두 보고 있어. 어떤 말로 너를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무거워. 나는 오늘 (발병지역에 가겠다는) 신청서를 냈어. 갈 수 있다면 네가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싸우고 싶다. 네가 외롭지 않게. 국가의 지원이 부족한 지역도 있지만, 점점 가까워지고 있어. 네가 희망과 사랑을 잃지 않길 바라. 네가 무사히 돌아올 거라 믿는다.” 다 읽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어젯밤에도 친구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어떤 친구는 광저우나 북경에서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우리는 환경미화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마스크를 쓰는 법을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어떤 사람들은 글을 읽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어떤 이들은 내게 돈을 환경미화원에게 보내 달라며 돈을 부쳐왔다. 환경미화원을 위한 기부를 받을지 의견을 나눴다. 나는 개인일 뿐이고, 투명성과 공신력을 보장하기 쉽지 않다. 기부를 관리할 시스템도 갖추지 않았다. 일단 이미 받은 돈은 기부하겠지만, 더는 환경미화원을 위한 기부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기부가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기부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그들의 삶에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환경미화원들과 더 많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아들과 며느리에게 물건을 사다 준다는 여성을 다시 만났다. 그는 이 일을 한 지는 1년이 넘었다. 이전에 일하던 공장에서 45살에 퇴직했다.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심장병으로 2년 전 수술을 받았다. 아들은 아직 몸이 좋지 않아서 며칠 일하면 며칠은 쉬어야 한다. 그녀는 월급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면서 아들도 돌봐야 한다. 우한이 봉쇄된 뒤에도 그는 생계를 위해 계속 일을 한다. 아침 11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을 한다. 그는 198위안(약 3만 4000원)을 주고 마스크 100개를 샀는데, 쉬는 시간에 도둑맞았다. 나는 지나가면서 마스크 몇 개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내게 고맙다 했지만, 나는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 2월 1일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데 닫힌 국수 가게 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2월 13일 자정까지 후베이성 각 기업은 영업을 재개하지 않는다’는 공고도 붙어 있었다. 믿을 수 없어 한참을 서성였다. 옆 가게는 ‘한 달 동안 쉽니다’는 안내가 붙었다. 마트가 오늘부터 입구에서 사람들의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고, 야채가 조금 늘었다. 약국 2곳을 갔는데, 마스크와 알코올은 없었다. 약국에서 사람들은 어떤 감기약을 찾았다. 약은 다 팔린 뒤였다. 어떤 사람들은 대중들이 판단력 없이 감기약을 찾는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인민일보도 웨이보에서 이 약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고 썼다. 사람들은 매일 끊임없이 늘어가는 확진 환자 수를 본다. 만약 특정 약물이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물론 인민일보는 나중에 억제가 예방이나 치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명했다. 우한 정부도 치료된 환자가 있다고 하면서, 어떻게 완치됐는지는 자세히 밝히지 않았다. 결국 이는 대중들이 특정 약이 있으면 치료가 된다고 믿게 했다. 알고 보니 완치됐다는 환자들은 대부분 자연스레 나아진 것이었다. 어쩌면 그 사람들의 면역력이 강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복잡해져서 강가로 갔다. 날이 흐렸다. 어제의 햇빛이 그리웠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머니게임’ 이성민, 도망자 행색 포착 ‘무슨 일?’ [SSEN컷]

    ‘머니게임’ 이성민, 도망자 행색 포착 ‘무슨 일?’ [SSEN컷]

    ‘머니게임’ 이성민의 도망자 행색으로 시선을 강탈한다. 첫 방송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와 배우들의 빈틈 없는 연기로 시청자를 매료시킨 tvN 수목드라마 ‘머니게임’ 측이 2회 방송을 앞둔 16일, 살인범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이성민(허재 역)의 모습이 담긴 현장 스틸을 공개해 본 방송을 향한 기대감을 수직 상승시킨다. 지난 1회에서는 채이헌(고수 분)이 국정감사에서 ‘정인은행 부실 사태’에 대해 현 정책에 반기를 드는 소신 발언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이에 문책성 인사로 금융위원장이 사퇴하고, 허재(이성민 분)가 유력한 차기 위원장으로 떠올랐다. 한편 허재는 ‘정인은행 매각이 최선’이라는 채이헌의 견해에 동조, 채이헌을 자신의 라인으로 삼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극 말미 허재가 오랜 앙숙이자 경제학계의 거목인 채병학(정동환 분)이 자신의 위원장 임명을 방해하자, 말다툼 끝에 그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려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이에 허재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됨과 동시에 채병학의 아들인 채이헌과 허재의 관계가 어떻게 변모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 이 가운데 공개된 스틸 속 이성민은 부쩍 초췌하고 까칠해진 몰골로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성민은 담장 뒤에 몸을 숨긴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모습. 초조함과 절박함이 공존하는 이성민의 눈빛이 보는 이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이와 함께 이성민은 하늘이 무너진 듯 고개를 떨구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어 그의 범행이 발각된 것인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에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전개를 예고하는 ‘머니게임’ 본 방송에 기대감이 폭등한다. 그런가 하면 이성민은 첫 회부터 폭발적인 연기력을 뽐내며 ‘역시 이성민’이라는 말을 되새긴 바 있다. 이 가운데 눈빛만으로도 숨막히는 텐션을 유발하는 이성민의 현장 스틸이 공개됨에 따라, 또 한번 레전드 연기를 경신할 이성민의 활약에 기대가 모인다. 한편 ‘머니게임’ 측은 “‘머니게임’ 첫 방송에 보내주신 뜨거운 성원에 감사 드린다”면서 “오는 2회에서는 고수와 이성민의 맹렬한 대립이 시작될 예정이다. 한층 더 스펙터클하고 박진감 넘치는 전개가 펼쳐질 예정이니 기대 부탁 드린다”고 전했다. tvN ‘머니게임’은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최대의 금융스캔들 속에서 국가적 비극을 막으려는 이들의 숨가쁜 사투와 첨예한 신념 대립을 그린 드라마. 16일 오후 9시 30분 방송.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황운하, 총선 출마 선언 …“사직원 수리되는 게 순리”

    황운하, 총선 출마 선언 …“사직원 수리되는 게 순리”

    검·경 수사권 조정의 첨병 역할을 했던 황운하 경찰인재개발원장이 15일 경찰청에 사직원을 제출했다. 황 원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방금 전 경찰청에 사직원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한민국 국민 어느 누구도 저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는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며 “ 험한 길이지만 가야 할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당하고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등을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맞서 싸우겠다”며 “총선 출마 후 예상되는 온갖 부당하고 저급한 공격에 맞서 싸워나가며 어렵고 힘들고 험한 길을 당당하게 헤쳐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황 원장이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만큼, 사직원이 수리될지는 확실치 않은 상황이다. 사표 수리 여부는 대통령훈령인 공무원 비위사건 처리 규정에 따라 최종 결정된다. 관련 규정을 보면 ‘수사 중인 경우 그 비위의 정도가 중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때’에 한해서 의원 면직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황 원장은 “선거법에는 ‘사직원이 접수됨으로서 그 직을 그만둔 것으로 본다’는 규정이 있어 저의 사직원이 접수된 이후에는 수리 여부와 관계없이 후보자 등록과 후보자 등록에 따른 선거 운동은 가능하게 된다”며 “헌법상의 무죄 추정의 원칙, 형사 소송의 대원칙인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In Dubio Pro Reo)’ 법리에 따라 저의 사직원은 수리되는게 상식과 순리에 부합한다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직원 접수가 확인되면 관련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란과 전면전 피한 트럼프…中 통한 ‘핵포기’ 끌어낼까

    이란과 전면전 피한 트럼프…中 통한 ‘핵포기’ 끌어낼까

    2단계 무역합의 등 지렛대로 中 압박 ‘경제난’ 이란에 中 영향력 활용할 듯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대신 핵개발과 테러 지원 활동 중단을 촉구하면서 향후 중국을 활용해 이란의 핵개발 포기를 유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의 최우방인 중국에 다양한 압박을 가해 이란의 태도를 바꿔 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의 핵 야망을 억제하고자 새로운 핵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란의 호전성은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 체결된 뒤 더욱 증가했다”면서 “(JCPOA에 참가한) 영국과 독일, 프랑스, 러시아, 중국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이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등 6개국과 JCPOA를 맺었다. 이란은 핵개발을 포기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한 것이 골자다. 하지만 2018년 미국은 “이란이 여전히 핵을 개발하고 있다”며 일방적으로 협정에서 탈퇴했다. 이란도 미군이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을 사살한 직후인 5일 합의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핵합의’와 ‘2단계 무역합의’ 등을 지렛대 삼아 이란의 최우방 국가인 중국의 영향력을 이용하려 할 것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는다. 이란은 미·EU 경제제재가 해제되자 외국 정상 가운데 가장 먼저 시진핑 국가주석을 초청할 만큼 중국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왔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란과 중국 두 나라가 ‘무기와 원유’ 무역으로 맺어진 불가분의 관계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이란 편에 서서 군사 장비를 공급했다. 원유도 대량 수입해 유엔 제재로 인한 이란의 경제난에 숨통을 틔워 줬다. 이 때문에 최근 미국의 이란 압박은 중국을 함께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로 미국의 드론 공습은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이란 핵문제의 근본 원인은 미국의 일방주의”라고 선언하고 귀국한 직후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서도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1단계 무역합의’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하는 중국의 절박함을 알고 일부러 서명식(15일) 직전 솔레이마니를 제거해 충격을 극대화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이 이란에 최대한의 압력을 가하고 다른 관련국들이 JCPOA 합의 이행을 막은 것이 이란 핵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핵 합의 제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사설] 총리 후보자의 민간경제 활성화 약속 기대한다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가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제를 살리는 힘은 기업으로부터 나온다”면서 “과감한 규제 혁신을 통해 기업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데 사활을 걸겠다”고 덧붙였다.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암울한 상황만 놓고 보면 정 후보자의 발언은 당연한 얘기지만 그동안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들은 ‘공정경제’ 등을 더 강조했던 터라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특히 정 후보자가 기업인 출신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절박함”을 깊이 인식한다니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된다. 최고의 경제 정책은 정부의 재정 확대가 아닌 기업의 투자 활성화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더욱이 지난해에는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FDI)가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됐고, 내국인의 해외 직접투자는 역대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산업의 매력이 떨어지고, 기업 하기 좋지 않은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무한경쟁 속에서 기업이 국적을 선택하는 시대에 규제혁신은 곧 투자 환경의 기틀을 다지고 성장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제 신년사에서 현 정부의 경제적 성과를 자랑하고 “확실한 변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해 역대 최고 고용률”, “일자리 뚜렷한 회복세”, “수출 동력 빠르게 성장” 등의 평가는 민간의 인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문제의 진단이 올바르지 않으면 해법을 찾기도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그나마 지난해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안정적”이라 평가했던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회했다. 인식의 전환은 다행이지만, 가격은 못잡고 부동산 시장 교란만 심화할 수도 있는 강력한 추가 규제가 염려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후반기로 접어든 만큼 올해는 국민과 기업 입장에서 경제회복을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성과도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 후보자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것도 주저해선 안 된다.
  • [2020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것들 -강성은의 시

    1. 별일, 없습니까? 강성은을 줄곧 예의주시하던 독자라면, 그녀가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현대문학, 2018)에서 보여 준 세계가 결코 낯설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안개가 도시를 뒤덮어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 여기에는 비록 논리적 인과가 생략되어 있지만, 그동안의 그녀의 작품 세계를 떠올려 보자면 이러한 결말은 거의 필연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일단 그 결말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 두도록 하자. 타인의 죽음을 노래하던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보다 무서운 것은, 그녀의 ‘별일 없습니다’라는 말에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강성은의 세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현실의 비틀림을 시적 언어로 치환하여 구조적 폭력과 그 속에 놓인 주체를 치밀하게 조망한다. 그 세계는 희생자의 관점에서 추상된 세계이기에, 폭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영역으로 남는다. 세계는 악몽이며, 깰 수 없는 꿈이라는 인식 속에서 강성은은 극복이나 초월을 말하지 않으며 단지 악몽을 더듬어갈 뿐이다. 그간 강성은이라는 시인이 평단과 독자 양쪽 모두의 주목을 받았음에도 그녀의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해석이 부재했던 것은 타자의 세계와 응전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기묘한 매력이 있음을 동시에 암시해 준다. 이 낯선 세계와 마주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별일 없다고 말하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우리에게는 보다 대담한 시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령 악몽을 이해하기 위해 또 다른 ‘악몽’을 나란히 세워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그 자리에 스즈키 고지 원작의 영화 ‘링’1)을 놓아보자. 악몽에 일상을 겹쳐 놓음으로써 ‘이것은 악몽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악몽에 또 다른 악몽을 겹쳐 놓음으로써 강성은 시의 깊이에 초점을 맞춰 보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 세계가 가진 디테일과 그로부터 펼쳐지는 어떤 파국의 매혹에 대해, 그리고 그 파국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심층적 의미에 대해 깊게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2. 죽음을 상연하는 세헤라자데의 서커스 -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 2009)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시인은 ‘세헤라자데’의 입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는 아직 비어 있다. 드러나는 것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마치 본 사람 중에 살아남은 이가 없어 아무도 그 내용을 모르는 ‘링’2)의 비디오처럼. 옛날 이야기 들려줄까 악몽처럼 가볍고 공기처럼 무겁고 움켜잡으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버리는 이야기 조용한 비명 같은 이야기 천년 동안 짠 레이스처럼 거미줄처럼 툭 끊어져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이야기 지난밤에 본 영화 같고 어제 꿈에서 본 장면 같고 어제 낮에 걸었던 바람 부는 길 같은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 (…) 당신이 마지막으로 했던 이야기 매일 당신이 하는 이야기 내가 죽을 때까지 죽은 당신이 매일 하는 그 이야기 끝이 없는 이야기 흔들리는 구름처럼 불안하고 물고기의 피처럼 뜨겁고 애인의 수염처럼 아름답고 귀를 막아도 들리는 이야기 (…) 어젯밤에 내가 들려준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내일 밤 내가 당신 귀에 속삭일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 ‘세헤라자데’ 중에서 천일야화 속 등장인물인 그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 가는 인물이다. 예컨대 그녀는 왕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도록 매혹해야 하는 숙명에 빠져 있다. 그러나 위의 시에서 소재가 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성격에서의 매혹과는 다른 결로 표현되어 있다. 그 이야기는 ‘무겁고’, ‘툭 끊어’질 것 같고, ‘비릿하고’ ‘개 같’다. 심지어 화자는 그것을 ‘흔해빠진 낯선 이야기’라고 말한다. 혼란에 빠진 듯 두서없이 말하는 시에서 내용이 아닌 목적에 맞춰 질문을 던져 보자. 그녀는 이런 설명으로 어떻게, 어떤 청자를 매혹하려는 걸까? 보편적 매혹과 구별되는 설명이 매혹으로 작용하는 경우에 대해 떠올려 보자. ‘링’의 첫 대목은 여고생의 통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녀는 저주받은 비디오에 대해 상대에게 집요하게 묻는다. ‘보면 죽게 되는 비디오’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기묘하고 혼란스러운 장면이 영화의 시작을 장식하는 것처럼, ‘세헤라자데’가 시집의 첫 작품으로 배치될 때 환기시키는 것은 위험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매혹이다. 그렇다면 ‘세헤라자데’는 누구로부터 죽음을 연기하려는 것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집에서 ‘죽음’이 특정한 사건이 아닌, 세계에 만연해 있는 일상으로 묘사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나’는 남편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하며(‘서커스 천막 안에서’), 자줏빛 스카프와 같은 사물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하며(‘누가 그레텔 부인을 죽였나’), 때로는 바람이 몰아쳐 내장을 쏟아내며 죽기도(‘새벽 두시의 변기’) 한다. 그 외에도 무수하게 변주되는 죽음의 양상 속에서, 죽음은 특별한 인과가 아니라 세계의 이상성을 보여 주는 한 표지(標識)가 된다. 여기에 덧붙여 화자가 죽음을 ‘신의 집에서 벌어지는 서커스’(‘잠의 형제’)라고 말한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죽음은 슬픔, 그리움, 안타까움과 같은 감정을 동반하는 사건이 아니라 신의 유희를 위해 상연되는 그 무엇이다. 이 시적 세계에서 인물은 신의 유희를 위한 희생양의 위치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희생양의 위치는 공포영화 속 인물의 위치와 같다. 공포영화에서 인물이 죽는 것은 살인마에 의해서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관객의 긴장과 응시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시 말해, 영화에서 인물의 삶과 죽음은 오직 내적 서사에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을 염두에 둔 상태로 전개된다. 영화 ‘링’의 결말 부분에서 인물의 죽음은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눈을 통해 우회적으로 전달된다. 눈은 1차적으로 내적 맥락인 사다코의 저주를 표상하지만 이는 동시에 외적 맥락인 관객의 응시 또한 형상화한다. 이어지는 엔딩에서 여주인공 아사가와는 다른 이에게 저주의 비디오를 전달하러 떠난다. 자신의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에서 ‘세헤라자데’ 또한 마찬가지로 이해될 수 있다. 예컨대 자신의 죽음을 연기하기 위해 타인의 죽음을 계속해서 상연하는 서커스라고 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시집에서의 수많은 죽음은 화자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연을 위해 화자가 뒤집어쓴 인물들의 죽음이다. 다시 말해 화자는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신 앞에서 계속 죽음을 연기(演技)해야 하는 저주받은 자이고, 그것이 시집에서 표상되는 세헤라자데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화자는 ‘구두 위에 구두를 또 신’고, 종국에는 ‘구두 속에서 나오지도 않’게 된다.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세헤라자데의 저주받은 삶을 표상하는 문장인 셈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신체 절단과 같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서커스에 연관될 수 있는 이미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작품 외적으로는 시인의 개성적인 상상력이면서, 작품 내적으로는 신의 눈을 홀리는, 화자가 계속 존재하기 위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의 그로테스크함은 통각의 언어이면서, 화자의 세계를 지탱하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정신분석학적 의미에서의 증상3)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가 그로테스크한 발화를 다룰 때, 그것을 단순히 희생자의 광기 어린 토로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가끔 그녀의 감은 눈꺼풀 속 검고 깊은 구멍 속에서 하얀 꽃잎들이 흩어져내렸네’(‘나무가 되는 법’)라거나 ‘나는 나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점들은, 살점들은, 몸에서 떨어져나가는 순간 선명하게 붉은 점이 되었다’(‘태양의 반대편’)라고 말할 때, 이는 화자의 광기를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하고 유지하려는 절박한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때에 나타나는 난해성은 해석에 저항하는 관성적 구성물로서 증상의 필연적 산물이다. 결국 증상들로부터 예증되는 이 그로테스크한 절박함이야말로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통해 강성은이 펼쳐 보인 시적 세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Komm, s廓r Tod) - ‘단지 조금 이상한’ (문학과지성사, 2013)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를 통해 강성은은 저주받은 세헤라자데의 몸을 빌려 독자적인 시적 세계와 그 속에서의 증상적인 발화를 보여 주었다. 그녀의 첫 시집은 이렇듯 죽음을 연기(延期)하기 위해 죽음을 연기(演技)하는 분투였다. 이는 두 번째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 에도 이어지는 것으로서, 여기에도 강성은은 자신의 시가 본질적으로 하나의 연기(演技)이자 제스처라는 방식을 줄곧 유지한다. 가령 ‘외계로부터의 답신’에서 화자는, 어떤 날은 내가 읽은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고 내 머리털 사이로 예쁜 독버섯이 자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죽지 않고 어떤 날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든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병들어가고 - ‘외계로부터의 답신’ 중에서 라고 말하며 삶과 연기의 간극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두 가지 효과가 발생하면서 이 시집이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첫째로 자신의 삶이 하나의 연기임을 완전히 선언했다는 점이다. 전작에서 화자는 ‘구두’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삶이 수많은 배역의 연기임을 드러냈지만, 이 같은 대비를 전경화하지는 않았다(전작에서 화자는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는 점에 유의하자). 두 번째는 연기와 삶 사이의 틈을 무대화한다는 점이다. 그 틈은 ‘단지 조금 이상한’ 것으로,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 병/잠처럼’(‘단지 조금 이상한’)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으며 드러나지 않지만, 해소될 수도 없는 틈. 화자는 그 틈을 어렴풋이 감지하며 그것의 윤곽을 그려 나간다. 이처럼 연기와 화자 사이의 틈이 무대화되는 지점에서 화자는 존재론적 물음에 직면한다. 예를 들어 ‘올란도’에서 화자는 과거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모두가 죽었다 몇 세기에 걸쳐 꿈을 꾸었다 수많은 계절들의 반복과 변주 수많은 사람들의 반복과 변주 어제와 내일의 경계가 사라져도 이 꿈은 사라지지 않아 죽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지면 다음 생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밤이 저 오랜 질문을 던지고 슬그머니 얼굴을 바꾸면 다음 날이 시작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몇 세기에 걸쳐 떨어져 내리는 낙엽들 나의 노래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나의 얼굴들이 켜켜이 쌓여간다 이 오랜 꿈이 끝나고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 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 - ‘올란도’ 전문 타자의 몸을 빌려 그로테스크한 죽음을 상연하던 것에 대해 이제 화자는 그것을 하나의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꿈은 깨지 않는 꿈이고 사라지지 않는 꿈이다. 그 꿈속에서, 화자는 자신의 실체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에 직면한다. ‘너는 누구지? 너는 누구야?’ 그러나 화자는 대답할 수 없다. 무수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나’란 ‘켜켜이 쌓여’가는 반복과 변주라는 사후적 형식으로만 파악될 뿐이다. 그렇기에 질문은 존재론적 해답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에는 빗나가며 실패한다. 화자는 그 빗나감과 실패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윤곽선만을 그려본다. 그 대답을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라며 사후의 순간에 은유할 뿐이다. 이때 ‘죽음’이라는 기표는 이전과 다른 의미로 조직된다. 이전 시집에서 그것이 신의 유희를 위해 상연되는 것이었다면, 이제 죽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오게 될 시간, 화자가 ‘밤’이 되는 순간으로 재전유된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떤 변화를 의미할까? ‘링’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아사가와의 표정을 상기해 보자. 이 장면에서 아사가와는 우연히 저주받은 비디오를 봐 버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매개물이 되어 자신의 부모에게 저주를 전염시키러 떠나고 있다. 여기에서 아사가와는 슬픔에 찬 눈과는 대조적으로 약간의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있다. 먼저 확실한 것은 그 표정이 저주에 사로잡혀 공포에 떨던 표정도,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초조해하던 표정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표정은 한결 평온해 보인다. 이 지점에서 ‘링’을 구성하는 두 개의 쇼트 형식4)은 완전히 겹쳐지고 영화는 끝이 나는데, 이는 아사가와가 저주로 인한 삶의 비틀림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그녀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더이상 시달리지 않는다. 앞서 ‘올란도’를 통해 보았듯이 화자는 죽음을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전 시집에 비해 연과 행의 나눔이 정갈해지는 변화 또한 이 같은 요소로부터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아사가와가 저주를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임으로써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났듯이, ‘단지 조금 이상한’의 화자 또한 죽음을 언젠가 찾아올 필연적 사건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말하기 방식의 변화를 불러왔다고 말이다. 이 같은 태도는 ‘기일(忌日)’과 ‘불 꺼진 방’, 그리고 ‘구빈원’의 세 편의 구도를 통해 다른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선 두 편의 시는 동일한 장면에 대한 서로 다른 위치에서의 관점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기일(忌日)’에서는 화자가 집 밖의 쓰레기장을 바라보며 거기에 버려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반면 ‘불 꺼진 방’에서 화자는 내다 버려진 ‘죽음’의 입장에서 주변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의 두 관점은 그 내용에서 두 입장의 차이를 드러내는데, 이러한 차이는 ‘구빈원’이라는 작품을 통해 변증법적 종합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종합은 통상적 정·반·합의 구도와는 다르다. 이 시에서 화자는 ‘실은 모두가 버려지고 있다/너무 먼 곳에 버려져 잊었을 뿐이다/이 행성이 우주의 거대한 쓰레기장이라는 걸/우리는 모른다/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며 화자의 가장 비참한 형상(죽어 버려진 모습)을 자신의 인식론적 밑바탕으로 삼는 모습을 보여 준다. 마치 ‘링’의 아사가와가 저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발버둥치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자기 삶의 변화된 기반으로 인정하고 그로부터 나아가듯이 말이다. 4. 커져가는 소음 속에서 자라나는 것 - ‘Lo-fi’ (문학과지성사, 2018) 그러나 세계는 여전하고, 화자는 여전히 ‘살아 있는 듯 잠자는 듯했지만/엄마 오늘밤 우리의 악몽은/태어나지도 깨어나지도 않는 영원한 불길함입니다’(‘양수 속에서’,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중)라고 표현했던 세계에 있다. 단지 자신의 죽음을 필연적인 것으로, 그것을 인식의 기반으로 삼음으로써 화자의 관점만이 변화했을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화자의 시각장을 재조직한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 그의 눈에 포착되면서, 시는 새로운 국면으로 흘러간다. 이 지점에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요소가 생활감 있는 유령들의 출몰일 것이다. k는 죽은 후에도 가끔 산책을 한다 p는 죽은 후에도 가끔 시를 쓰고 담배를 핀다 r은 술을 마시고 꿈도 꾼다 어제는 오래전 죽은 친구를 만나 강에서 수영을 했는데 죽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b는 살아 있는 사람인 척 온종일 카페에 앉아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서 떠드는 사람들도 살아 있는 척하느라 그런 것 같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 ‘계면’ 중에서 인용된 작품 전반부에서 죽은 이들은 생전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이어 간다. 이 가운데 화자는 도시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누가 죽은 사람인지 산 사람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이러한 독백 이후로 화자는 산 사람들의 삶을 나열한다. 그들(z, w, n)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죽음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강성은의 시에서 죽은 이의 출몰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전 시집에서 죽은 자들은 악령이었거나 자신이 죽은 줄 모르는 모습이었던 반면 여기서 포착되는 죽은 자들은 보다 생활감 있는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가 죽었음을 알면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래는 시의 후반부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 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 가수는 노래하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죽고 죽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 노래하고 s는 어제 쓴 일기를 반복해 써 내려가고 c는 읽을 수 없는 글자들을 매일 베껴 적는다 불행한 일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불운한 날들이 빛처럼 쏟아져 내려도 도시가 잠기도록 비가 내려도 - ‘계면’ 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면, 죽음과 살아 있음의 차이는 경미해진다. 시에서 죽은 인물들과 산 인물들의 이미지가 대비가 아닌 나열의 방식으로 나타나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면/죽음이 무슨 소용인가요’라고 화자가 독백할 때, 여기의 행간에는 앞선 산 자와 죽은 자의 비교로 인해 ‘삶이 죽음보다 더 죽은 것 같다면’이라는 문구가 새겨지고, 죽음과 삶의 의미는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산 자는 알 수 없는,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문구이다. 물론 이것은 불온한 인식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세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축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Lo-fi’는 이런 불온한 인식이 거듭 쌓여가는 모양을 취하고 있다. ‘그 여자는/살아 있을 땐 죽은 여자 같더니/죽고 나선 산 여자처럼’(‘Ghost’), ‘공동묘지와 아파트가 구분되지 않고/살아 있다는 것과 죽어 있다는 것이 구분되지 않는’(‘0℃’)과 같은 독백들, 혹은 ‘오늘 죽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오늘 산 자는 영원히 살지 않고//결코 다시 죽지 않으리’(‘안티고네’)와 같은 발화에서, 그 불온한 인식은 임계점을 향해 가는 힘처럼 시집에 거듭 축적되어 간다. 여기에 더불어 ‘이상하게도 그가 삶을 포기하고 나면/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면/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카프카의 잠’)라는 독백은 그러한 힘이 어떤 예기치 못한 결과를 발생시킬 것을 암시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여기서 잠시 ‘링’으로 돌아가 보자. ‘링0’5)에서는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저음질의 소음이 영화를 메운다. 이는 공포영화 특유의 클리셰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주인공인 사다코의 스트레스와 사건의 상관관계를 알려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저음질의 소음은 일종의 시그널로, 현재의 장면 속 어딘가에서 포착할 수 없는 일이 준비되고 있으며 그것이 곧 현실로 분출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 소리는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는 가장 작은 크기로 들리다가, 사다코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 영화의 절정 부분에서 최대치에 이르게 되며, 이는 저주를 통한 살해의 시발점이 된다. 어쩌면 ‘Lo-fi’ 또한 이러한 공포물의 구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시집이 계속될수록 쌓여가는 불온한 힘이 저음질(Lo-fi)의 소음과 같은 형태로 점차 커져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시집에서 이처럼 커져가는 소음은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현실의 밑에 차곡차곡 쌓인 어떤 것이 이윽고 분출되리라는, 절정이 곧 다가오리라는 암시인 것일까? 그것은 화자의 파멸인가, 아니면 세계의 파열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화자가 ‘섣달 그믐’에서 말하고 있는 한 점에 유의해볼 필요가 있다. ‘밖에선 종말처럼 어두운 눈이 내리고 있고/나는 이제 잠에서 깨버릴 것 같’다고. 이때의 ‘잠’은 이전 시집의 ‘올란도’에서와 유사한 의미로 들린다. 그때에 화자가 ‘나 자신이 희고 빛나는 밤이 될 때/이것이 어떤 잠이었는지 알게 되리’라고 했던 점을 상기하자면, 이는 곧 화자가 ‘밤’이 될 시간이 도래하고 있음을 예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까지의 시집들을 경유하여 살펴보자면 그 ‘밤’이 이성의 빛이 도래하기 이전의 암흑의 시간으로서의 ‘밤’이 아닌 것은 분명할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헤겔적 의미에서의 ‘세계의 밤’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탈구시키는 근원적 혼돈이자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잉여인 동시에 그것의 결핍을 드러내는 틈으로서의 ‘밤’. 그것은 주체의 출현을 암시하는 강력한 은유이다. 그러므로 ‘섣달 그믐’의 시점에서 ‘올란도’를 돌이켜본다면, 이는 다음과 같이 재의미화된다. 그녀가 온다.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그녀가. 그때 이 모든 잠의 의미를 우리는 알게 되리라. 5.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것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안개가 도시를 뒤덮어 이윽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이야기(‘눈 속에 안개가 가득해서’)로. 처음에는 국소 범위였던 안개가 점차 도시를 가득 메워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B시에서 일어나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TV를 통해 지켜보던 M시의 사람들은 이윽고 그것을 촬영하던 리포터가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며 공포에 휩싸인다. 이제 안개는 B시를 넘어 확산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확산의 이미지는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에서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반복된다. ‘꿈에서 배를 가르자/흰 솜뭉치가 끝없이 나왔다’(‘소설(小雪)’), ‘불행의 구렁텅이에 차오르는 빛 하나로/서로의 손과 발을 묶고’(‘첫아이’), ‘그가 가방을 열고 모래를 꺼낸다 가방에서 모래가 끝도 없이 나온다’(‘손님’), ‘그의 주위로 쇄기풀이 무성하게 돋아나고 있었다 풀은 무섭게 자라 기관실을 뒤덮고 곧 모든 객차를 넘실거리며 물결칠 것’(‘객차’) 등등. 이 같은 이미지들 가운데 ‘객차’의 ‘풀’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보자. 기차 안에서 벌어지는 공황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풀은 모든 것을 잠식하는 공포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그럼에도 기차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계속해서 달린다. 이러한 상황에 이어 재난상황은 확산과 그로 인해 퍼져가는 공포감을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제시한다. 재난이 벌어졌다고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재난은 처음이라고 우리들의 육체와 영혼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다줄 것이며 이후로는 결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방송을 하던 남자가 갑자기 울먹이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며 재앙을 계속될 것이라고 1분 후 다음 재난 방송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제껏 본 적 없는 더욱 경악할 만한 재난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였다 일요일 오후였다 - ‘재난 방송’ 중에서 화자는 재난 방송을 본다. 냉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리포터마저도 그것을 잊게 만들 정도로 사태는 심각해져간다. ‘이후로는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표현은 재난 규모가 미증유의 것임을 짐작게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화자의 태도이다. 화자는 방송을 바라보다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끓이며 일요일 오후의 일상을 준비한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왜 화자는 재난 앞에서 평온한 것일까?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왜 화자는 ‘별일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잠시 ‘링’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보자. 사다코의 원한을 해결했으니 이제 저주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한 류지는 자신의 방에서 밀린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방에 놓여 있던 TV가 갑작스레 켜지며, 예의 저주받은 비디오가 재생된다. 경악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류지를 향해 사다코는 우물에서 기어 나와 점차 다가오기 시작한다. 마침내 사다코가 TV에서 빠져나와 현실에 나타났을 때, 류지는 경악에 찬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통상적 해석을 따르자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이 현실화되는 재앙의 순간이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해서 보자면, 이것은 류지에게는 재난이지만 사다코에게는 출생의 순간이 아닐까.6) 마찬가지의 구도를 이 시집에 적용해보자. 세계에 몰아친 재난은 화자가 출생하기 위한 조건인 것은 아닐까? 계속해서 축적되어온 불온한 힘이 마침내 이야기의 틀을 넘어 현실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이와 더불어 ‘링’에서 거듭해서 나타나는 자라나는 머리칼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점차 자라나며 외부를 향해 확산되는 머리카락은 섬뜩한 무엇이면서, 사다코가 점차 비디오를 넘어 현실로 틈입해 들어오고 있음을 예시하는 이미지이다. 마찬가지로 강성은이 이 시집을 통해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는 확산의 이미지들 역시 서서히 증식되는 불길함의 이미지이면서 주체의 출현을 알리는 내러티브인 것은 아닐까? 그것은 세계의 입장에서는 악몽이지만 화자에게는 출생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출생은 모든 의미가 혼란에 빠지는 시간이며 주체가 세계를 잠식하는 사건이다. 이 시집에서 안개의 확산을 거대한 재앙으로 표현한 것은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한 서사화이며, 지젝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체적 보편성으로서의 주체가 추상적 보편성으로서의 세계를 잠식하는 과정이다. 강성은의 시세계는 이 지점을 통해 재의미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악몽이었으되, 주체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악몽이었다고 말이다. 오직 그 악몽으로부터, 그것을 자기 삶의 기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주체가 출현하기 위한 조건이다. 서서히 고조되는 불온한 분위기에서 스스로의 출생을 예감하고 마침내 세계를 잠식한다는 점에서, 강성은의 시적 주체의 탄생은 세계를 정지시키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로부터 다음의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네 권의 시집을 거쳐 비로소 태어난 이 시적 주체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인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보자면, 여기에는 그간 강성은이 여성 화자를 강조해왔다는 사실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구체적인 여성과 거리가 멀다. 강성은의 여성 주체는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에서, 궁극적으로는 세계 전체에 대한 부정항으로 출현한다. 억압된 것의 귀환 혹은 여성 주체의 직립. 그녀는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는 희생자가 아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을 위협하던 세계를 위협하는 공포다. 아사가와에서 사다코로의 기묘한 이행, 이것이 강성은의 궤적이며, 악몽을 거쳐야 태어나는 어떤 것이다. 1) 여기에서는 ‘링’의 시리즈 가운데 ‘링’(나카타 히데호, 1998)과 ‘링0-버스데이’(쓰루타 노리오, 2000)를 주요 텍스트로 삼고 있다. 이하 글에서는 ‘링’과 ‘링0’로 표기하도록 하겠다. 2) ‘링’의 주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방송국 기자 아사가와 레이코는 보면 일주일 후 죽게 된다는 어떤 비디오에 대한 학생들 사이의 소문을 취재하던 중 조카 도모코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도모코와 같은 날 죽은 세 명의 학생들이 같은 비디오를 봤다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사가와는 그 비디오를 찾아나선다. 결국 아사가와도 그 비디오를 보게 되는데 그는 죽음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비디오를 보여주는 것이다. 3) 지젝은 라캉이 말하는 증상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것은 특수하고 병리적인 기표적 형성물로 해석과 소통에 저항하는 관성적인 오점이면서 사회적 유대의 네트워크 속에 포함될 수 없는 얼룩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러한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만드는 실정적 조건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슬라보예 지젝, 이수련 역,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새물결, 2013, 132쪽 참조. 4) 영화 ‘링’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전개된다. 둘은 숏의 형식을 통해 구별된다. 현재는 시간과 날짜가 표기되며, 컬러 화면으로 구성된다. 반면 과거는 인물의 회상적 발언이 표지의 역할을 하며 흑백 화면으로 구성된다. 이 둘이 뒤섞이는 것은 영화에서 딱 두 번 나타난다. 하나는 저주의 장본인인 사다코가 TV화면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장면이고, 두 번째는 위에 예시된 아사가와의 장면이다. 사다코의 경우 흑백의 화면에서 컬러의 세계로 빠져나와 클로즈업되는 반면, 아사가와는 컬러의 세계로부터 흑백의 화면으로 넘어가며 롱숏으로 처리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5) ‘링0-버스데이’는 저주의 비디오가 태어나게 된 계기인 사다코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사다코는 어머니의 자살 이후 극단에 소속되어 연기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영적인 능력이 의지와 상관없이 발현되면서 극단은 공포에 휩싸인다. 계속되는 불길한 현상과 단원들의 죽음에 패닉에 빠진 단원들은 사다코에게 집단 린치를 가해 살해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사다코가 귀신이 되어 저주가 구체적인 형태로,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얼룩으로 세상에 남게 되는 계기가 된다. 6) 이 장면에서 사다코가 좁디좁은 TV 브라운관으로부터 고통스레 기어 나와 천천히 두 다리로 선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머리부터 빠져나와 두 팔을 뻗는 사다코의 모습은 자궁으로부터 빠져나오는 태아의 모습과 유사성을 지니고 있으며, 고통스레 두 다리로 직립을 시도하는 모습은 인간의 성장 과정을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으로 빚어낸 것처럼 느껴진다.
  • 7833명 몰린 농구영신, ‘절박’이 부른 ‘대박’

    7833명 몰린 농구영신, ‘절박’이 부른 ‘대박’

    KBL·구단, ‘복수전’ 기획 등 흥행 집중 한국프로농구(KBL)의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은 농구영신(농구+송구영신) 행사가 이번 시즌 최다 관중 동원으로 ‘대박’을 쳤다. 지난달 31일 밤 10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KT와 창원 LG의 농구영신 경기는 7833명의 관중이 입장했다. 2016년 시작된 농구영신 행사 최다 관중이자 이번 시즌 최다 관중 기록이던 SK와 삼성의 크리스마스 S더비 7634명을 뛰어넘는 수치였다. 이날 경기는 당초 예매분으로는 매진에 모자랐다. 그러나 경기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비지정석이 불티나게 팔렸고 경기시작 30분 전쯤엔 5300석이 넘게 나갔다. 결국 KT는 급히 양쪽 골대 뒤쪽에 있던 대형 현수막을 걷어냈다. 중계방송에 자주 노출돼 광고 협찬을 받는 비싼 자리였지만 매진이 임박해 오자 KT 측은 직접 광고주에게 연락해 발 빠르게 양해를 구했다. 홈팬들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은 KT는 이날 경기에서 84-66 대승을 거뒀다.이날 흥행 성공은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다. KT 관계자는 “이번 시즌 대행사를 선정할 때 농구영신 행사를 어떻게 할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았다”며 “보통은 개막전 행사에 힘을 많이 쏟지만 이번만큼은 농구영신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KBL도 농구영신 행사를 기획할 때 같은 팀끼리 2년 연속 홈·어웨이로 리턴매치를 치르도록 하는 등 복수혈전 구도로 흥행을 부추겼다. 농구인들이 이처럼 합심한 배경에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1990년대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프로농구는 2015~16시즌 103만 905명의 관중을 끝으로 3시즌 연속 100만 관중을 넘기지 못했다. 지난 시즌은 87만 3782명으로 20년 전인 2000~01시즌의 86만 4666명과 비슷한 수준이다. 겨울 스포츠 라이벌인 배구 관중수가 2005년 프로출범 이후 지난 시즌까지 6배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KBL은 유도훈(전자랜드), 문경은(SK), 서동철(KT) 감독에게 마이크를 착용시켜 현장 목소리를 담은 영상을 제작하는 등 리그 부흥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주엽 LG 감독은 직접 예능 방송을 통해 농구를 적극 알렸고, 그 결과 LG 선수들은 팬들이 뽑은 12명의 올스타 명단에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4명이 선정되기도 했다. 이날 경기를 마친 kt 서동철 감독은 “평소와 다른 경기 시간과 분위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팬들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다 해야 한다”며 “KBL에서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면 따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글 사진 부산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사설] 화합과 협치의 새 정치를 새해에 기대한다

    엄중한 국내외 현실 속에서 경자(庚子)년 새해를 맞았다. 정치, 외교, 국방, 경제 가운데 어느 하나도 순탄하게 보이지 않는 비감한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위기와 맞닥뜨리면 더 강해지는 대한민국이었기에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국민과 정부, 기업이 힘을 합쳐 하나가 된다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 4월 총선 앞두고 여야 ‘물갈이 공천’ 해야 올해는 4월 15일 총선에 여야가 명운을 건 한판 승부를 벌인다. 여의도 지형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반기 정국 주도권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다. 정치사회의 개혁도 일부 이뤘다. 지난 연말 정부 여당은 개정 선거법을 통과시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고,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췄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도 통과시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남았지만, 한국 사회의 오래된 숙제였던 검찰개혁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과반 승리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면 성공적인 ‘세대교체’와 ‘물갈이 공천’이 필요하다. 앞으로 4년을 관통할 새로운 정치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1월 1일자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역 의원을 뽑지 않겠다’는 답변이 42.6%로 다수였다. 이는 여당뿐 아니라 야당의 문제이기도 하다. 각 당은 국민의 공복이 될 만한 추진력과 전문성을 지닌 인재를 유권자들에게 추천하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올해 당청은 선거의 승패와 상관없이 야당과의 협치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민심은 ‘서초동 집회’와 ‘광화문 집회’로 갈라졌고 정치권에서는 대화와 타협, 협치가 설 공간을 잃었다. 물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지난해처럼 장외투쟁에만 매달린다면 유권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고, 무엇보다 준비된 수권 정당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깨달아야 한다. 총선 이후 구성된 국회에서는 대안을 제시하는 합리적 야당으로서 정부 여당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비핵화 위해 남북·북미·한중 대화해야 2020년 올해 한국 외교는 그 어느 해보다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2019년 외교안보 과제들이 고스란히 이월됐고, 북핵 등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탓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어그러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제 궤도에 다시 태우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연말에 중앙당 전원회의를 이례적으로 4일이나 이끄는 만큼 ‘새로운 길’로 나아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 두고 북한이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모라토리엄)을 유지하도록 손짓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절차와 11월 대선 등으로 김 위원장이 원하는 3차 북미 정상회담에 응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럴 때일수록 한반도 정세가 2017년의 군사적 초긴장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정부가 북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지난해 단절된 남북 당국 간 협의도 재개할 만한 창의적 발상을 내놓아야 한다.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현안이다. 미국은 주한미군 분담금 50억 달러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협상은 불가능하다. 이참에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을 재정의해야 한다. 한일 관계도 중대 기로에 섰다. 2018년 10월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을 두고 한일은 경제·군사적으로 갈등하고 있다. 지난해 말 한일 정상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는 텄으나 문재인 대통령의 ‘사법부 판단 존중’과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베 신조 총리의 ‘한국의 책임하에 해결’과 충돌하는 개념이라 ‘신(神)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중국과도 마찬가지다. 수교 30주년을 2년 앞두고 올봄 한국을 방문하게 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앙금을 털어내고 ‘한한령’(한류금지령)의 완전한 해제를 이뤄야 할 것이다. 저성장 해소하고 혁신경제용 규제개혁을 올해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벽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 정부 재정을 상반기에 70% 이상 집행해 경기 활성화에 기여해야겠지만, 가장 핵심적 경기 활성화 방안은 혁신경제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걷어 내는 것이다. 기업과 자영업자 등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좌절과 절박함에 귀를 기울여야 마땅하다. 특히 20대 국회는 ‘데이터 3법’ 등 혁신경제를 지원하는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정부가 지난해 ‘규제입증책임제’와 ‘규제샌드박스’ 등을 도입한 만큼 새해에는 제도의 정착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경기침체 등으로 한쪽에서는 ‘돈맥경화’ 현상이, 다른 한쪽에서는 부동산 시장의 유동자금 블랙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일단 시중 유동성이 생산적인 분야로 흘러갈 수 있도록 경기 활성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또 정부가 18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쏟아냈지만 부동산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라 정책에 대한 신뢰만 곤두박질치는 만큼 ‘시장을 이기는 정책은 없다’는 명제에 귀 기울여 수요·공급이라는 경제 논리에 바탕을 둔 냉정한 부동산 정책을 제시하길 바란다. 공급을 어디에 얼마나 늘릴지, 세금을 어느 수준까지 올릴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 이름처럼…무대에서 공주 인생

    이름처럼…무대에서 공주 인생

    전체적인 어울림이나 통일을 의미하는 프랑스 단어 앙상블(ensemble)은 뮤지컬에선 주·조연 배우 주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이름 없는’ 단역 배우들을 의미한다. 한두 명의 주연 배우가 무대 조명을 차지하고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 수십 명의 앙상블도 언제나 저마다의 역할에 온 열정을 쏟아낸다. 지금은 대한민국 뮤지컬을 이끄는 한 축인 배우 윤공주(38)의 시작도 그랬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 오디션에 합격했지만, 그에게 주어진 극 중 이름은 없었다. 자신만을 위한 조명도 없었고 지켜보고 기억하는 관객도 없었다. 그럼에도 윤공주는 ‘이 무대의 주인공은 나’라는 자기 최면을 걸며 생애 첫 뮤지컬 무대를 즐겼다. ‘지킬 앤 하이드’로 올해를 시작해 연말을 ‘아이다’로 장식하고 있다. “어린 시절 이름과 달리 어렵게 살았고 돈도 없었지만 저는 돈 없음에서 오는 두려움은 없었어요. 부모님은 100만원을 버시면 50만원으로 저를 키우고 50만원은 저축하셨죠.”‘아이다’ 공연이 한창인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만난 그는 이름 얘기를 꺼내더니 화제를 자연스럽게 부모님으로 옮겼다. 어릴 때는 이름 때문에 으레 놀림이 따라왔고, 그 자신도 인생을 이름처럼 소개한다. ‘이름 같지만은 않은 삶이었지만 이름처럼 키워 주신 부모님’이라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파트 경비 일과 건물 청소를 하며 고된 삶을 살면서도 저를 공주처럼 키우려 애쓰셨어요. 재래식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단칸방에서 아등바등 살았지만 마음만은 부족하지 않았거든요.” 윤공주는 당당한 목소리로 유년기를 떠올렸다. 작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난 자리였지만, 뮤지컬 주연 배우의 입에서는 ‘아버지’, ‘감사’, ‘행복’이라는 말이 반복됐다. 장성한 딸에게도 “내겐 공주 너 하나뿐”이라던 사랑 넘치던 아버지는, 지난 10월 27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뮤지컬 ‘아이다’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연습으로 연습실을 땀으로 적시고 있을 때였다. “올해 초부터 건강 악화로 통원치료를 받으셨던 터라 예상은 했지만 몇 년은 더 사셨으면 했다”는 윤공주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난 속에서도 ‘공주’로 키워 준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은 윤공주의 지금을 만든 자양분이 됐다. 그는 “물론 어릴 땐 가난과 평범하지 않은 환경이 싫었지만 배우로 성장하는 데 다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무대에 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다”고 말했다. 그의 절박함은 뮤지컬 제작자와 관객들의 눈과 마음에 닿았다. 앙상블과 각종 단역을 거쳐 2006년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드라큘라를 사랑한 여인 로레인 역을 맡아 그해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신인상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하루’, ‘맨 오브 라만차’, ‘그리스’ 등에 출연, 같은 시상식 인기스타상을 받으며 스타 배우 반열에 올랐다. “배우로 성공해서 부모님께 좋은 집 사드리고 싶다”던 스무 살 때 꿈은 서른이 넘어 이뤘다. “서른한 살 되던 해 엄청 싼 아파트를 샀어요. 서울과 비교해선 말도 안 되게 싼 곳이었지만 세 식구 살기엔 풍족한, 따뜻한 집이죠.” 현재 세계 각지에서 마지막 시즌 공연이 열리고 있는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와 만나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2005년 한국 초연, 2010년 재연 때 앙상블 오디션을 봤으나 떨어졌다. 2012년 공연에는 암네리스 역으로 도전했으나 선택받지 못했다. 결국 2016년 네 번째 시즌 공연에 주역 ‘아이다’로 오디션을 보고 무대를 꿰찼다. “이번에도 연락이 없어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조금 늦게 연락이 왔죠. 너무나 기쁘고 고마웠어요. 관객분들도 이번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작품이죠. 공연장을 찾으신다면 정말 소중한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거라고 자신합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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