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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자의 길/전장호 수필가(굄돌)

    일전 모여고 교장 취임식에서 종교계 지도자 한경직 목사와 상면하니 목회자다운 너그러움과 사랑의 화신인 듯한 인격,강직하고 고결한 성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분은 「맡은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란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모든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릴만큼 감동적이었다. 자기 분수에 따라 책임을 완수하고 직무에 충실하라고 말문을 열었다. 고령임에도 차분하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모습은 의의 면류관을 쓰고,사랑의 옷을 입고,자유의 허리띠를 두르고,평화의 신을 신고,진리의 길을 걸어간 사명인인 그리스도의 바로 그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암흑이 있는 곳에 광명을 심은…. 그분은 사람은 자기 설자리에 바로 설때가 가장 아름답다며 내 마음에 탐욕이 나를 지배할 때는 범죄하지만 내마음의 왕좌에 그리스도를 모시면 날마다 새로워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은 저마다 부여된 몫이 있는데 자기에게 알맞는 몫을 차지해야지 지나치면 화를 자초한다면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은 더욱 중요하고 매사에 유종의 미를 장식하되 과정도 결코 소홀해선 안된다고 끝맺었다. 한목사는 지난해 세계적 종교지도자 1명에게 수여하는 템플턴상을 수상하였다.19 72년 미 월 스트리트의 신탁전문가인 「존,템플턴」이 설립한 이상은 수상자의 명예는 물론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의 영예이기도 하다. 그분의 책임과 성실론을 들으니 민족혼의 화신인 안창호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그는 나라 사랑을 위해 살았고 국권회복에 생애를 바친 애국자였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왔다.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그때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백성의 병고를 어여삐 여기거든 그대가 먼저 의사가 되라.의사가 못되더라도 그대의 벽부터 고쳐서 건전한 사람이 되라』 지도자는 청렴결백하고 정직 성실로 일관하며 자기 일에 몰두하고 참된 삶을 통해 만인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 프랑스영화 수입 러시/7편 3∼5월 개봉… 10여편 추진중

    ◎갑싸고 정서맞아 “손해는 안본다” 고급영화에 대한 관객의 선호경향이 높아지고있는 가운데 감상가치를 평가받는 프랑스영화수입이 활발하다.이에따라 올상반기 극장가는 여느때와는 달리 프랑스영화가 봇물을 이룰전망이다. 영화업계에 따르면 최근에 수입된 프랑스영화는 「르 제브르」(아내의 연인) 「라콩파니아트리스」(반주자) 「두사람」 「사베지 나이트」 애리조나 드림」 「카사노바」 「책읽어주는 여자」등 7편이나 되며 현재 수입추진중인 영화만도 10여편이 넘는다.특히 이들 작품은 대부분 사랑주제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표현주의 양식으로서 작품성과 감수성·섬세성이 뛰어나 고급관객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가운데 수입이 확정된 7편은 3∼5월중 일제히 개봉될 예정이다 「르 제브르」(아내의 연인)는 중년에 접어든 한남자의 인간적 고뇌와 사랑과 번민을 코미디 형식에 접목시켜 부부간의 짙은 애정을 허무와 익살속에 그린 작품.극도로 섬세한 묘사와 절제된 대사 그리고 넘치는 해학은 하이코미디로서의 가치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장푸와레감독이 연출했고 티에르 레르미트와 카롤린 셀리에가 공연 했다. 「라콩파니아트리스」(반주자)는 가난한 나이어린 반주자가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미모의 성악가를 만나 그녀를 사랑하고 질투 하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를 아름다운 음악속에 담은 작품.극도로 상반되는 세계속의 인물을 고통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어 압축한 영화로 평가받고있다.클로드 밀러감독이 연출했고 리하르트 브링거와 엘레나 사파노바가 공연했다. 「사베지 나이트」는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삶을 사는 절망적인 영화촬영기사와 배우지망의 사춘기 소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프랑스식 현대적 사랑이야기의 전형으로 놀라울정도의 활기찬 삶에대한 찬미를 주제로 하고있다.시릴 콜라르가 자신의 소설을 각색 감독 주연한 화제작으로 로만 보랑제가 상대역을 맡았다. 「책읽어주는 여자」는 가정을 방문,책을 읽어주는 일을 직업으로하는 여인이 여러 유형의 인간을 만나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인간의 사랑스러움과 슬픔의 요소가 세련된 양식미속에 정교하게 담겨있는 걸작이다.미셸 드빌연출에 미우미우와 크리스창 루셰가 공연했다.88년 루이데륙상과 몬트리올 그랑프리수상작이다. 또 「카사노바」는 여자와 도박과 여행으로 점철된 카사노바의 모험 가득한 인생을 격렬한 영상에 담은 작품(에두와드 니에르망 연출,알랭 들롱,화브리스 뤼치니 출연)이며 「두사람」은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는 한 부부가 갈등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확인해 가는 과정을 묘사한 사랑영화이다(클로드 지디연출,제라르 드파르뒤,마르슈카 데트메르출연). 이밖에 「애리조나 드림」은 평범한 청년이 주변인으로 밀려난 몽상가들과 만나면서 격게되는 내면의 성장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로 93년도 베를린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정된 수작이다(에밀 쿠스트리차 연출,조니 뎁,페이 더너웨이출연). 최근 프랑스영화가 수입러시를 이루고있는것은 지난해 「연인」 「퐁네프의 연인들」등이 히트한데 자극을 받은때문.외국직배영화사의 직배강화로 미국영화의 수입이 어려워진데다가 수입가가 저렴한 점도 프랑스영화수입을 부추기는 한 요인.프랑스영화의특성이 한국인의 정서적 특성과 유사해 어느정도 흥행이 보장된다는점 또한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시각장애 딛고 마침내 교수로/연대 사회사업학과 이익섭박사

    ◎국교때 실명… 냉대·차별속 면학정진/부인 뒷바라지로 미 유학 박사 따내 시각장애인이 연세대 객원교수로 강단에 선다. 지난 88년부터 시간강사로 연세대와 인연을 맺어오다 이번 봄학기부터 이 학교 사회사업학과에서 강의를 맡게 된 이익섭박사(40). 이미 대구대학등 몇몇 대학 특수교육학과 등에서는 시각장애인이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나 연세대에서는 이박사가 처음이다. 이박사는 서울사대부속국교 5학년때인 63년 망막염을 앓아 시력을 잃게 돼 일반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서울맹학교의 문을 두드려 중·고교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뿌리깊었던 시절 대학은 거의 접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어 여러대학에 입학원서를 냈지만 접수조차 거부당하는 절망을 맛보아야 했다. 2년여의 방황이 계속되던 75년 연세대 신학과에서 입학을 허용,영문학도의 꿈은 뒤로 미루고 우선 대학에 들어갔다. 이박사는 1·2학년때 과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학업에 열의를 보였지만 점점 신앙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과같은 처지에 놓인 장애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사회사업학에 끌리기 시작했다. 졸업후 당장 취직이 어렵게 되자 이박사는 한강성심병원에서 갑작스런 병이나 사고로 장애인이 돼버린 불행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상담해주는 자원봉사에 나섰다. 이때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김종애씨(39)와 결혼,11살된 외동딸을 두고 있다. 김씨 가족들은 당초 「절대 결혼만은 안된다」고 말렸지만 이박사 부부는 81년 결혼식을 올리고 곧바로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낯선 곳에서 익숙지 못한 언어로 정상인들과 함께 경쟁하는 것은 상상보다 힘들었다. 관련자료를 수집해 읽어주고 녹음해주는 아내의 뒷바라지에도 불구,「볼 수 없다」는 한계를 자신이 인정해야만 할때 더 힘들었다. 그러나 이박사는 피츠버그주립대학에서 2년만에 석사학위를 받은데 이어 88년 시카고대학에서 「가족구조와 사회복지」라는 논문으로 정상인들보다 1∼2년 빨리 박사학위를 따냈다. 이박사는 『나를 선뜻 받아준 모교에 보답하기 위해 「면모를 갖춘 교수」가 되겠다』는 포부와 함께 『정상인과 장애자가 함께 장애의 고통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생활해가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새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38)

    ◎소년시절:16/화성시절 목격자의 최후/민족주의자 활동 비밀 아는 김시우/58년 입북하자 “우상화 걸림돌” 배척/벽지 귀양살이… 죽을때 “인연” 발설 종전의 김일성 전기에서는 김일성이 화성의숙을 중퇴한 일을 둘러싸고 아무말도 없었다.그런데 이번 회고록은 종전과는 달리 그의 퇴학을 가지고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그 내용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생애 첫 대용단” 선전 ㈀독립군의 3중대장은 운영난에 빠지고 있었던 화성의숙을 위하여 모금한 돈을 몽땅 자기의 결혼식 비용에 써버렸다.김일성은 이러한 독립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ㅌ·ㄷ」성원들과 협의한 끝에 각 중대에 성토문을 돌렸다.정의부를 비난하는 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오동진까지도 이 성토문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그러나 한장의 성토문 정도로 독립군의 정치도덕적 타락을 막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화성의숙의 학생들은 모연공작에 나가면 경쟁적으로 재물과 양식을 거둬들였다.그들은 식사때 조밥에 시래기국만 준다고 밥타발까지 하였다.이런 학생들이 2년 후에 군관이 되어 독립군의 중대와 소대들을 거느리게 된다는데 김일성은 실망하였다. 이런 말을 하면서 회고록은 화성의숙은 김일성의 기대에 만족을 주지 못하였고 또 그는 화성의숙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고 하고 있다.그리하여 그는 사망한 김형직의 약방을 지키고 있는 삼촌 김형권대신 약방을 할것인가.아니면 번양이나 하얼빈이나 길림같은 도시에 가서 상급학교에 진학할 것인가라고 고민했다는 것이다.그는 화성의숙을 중퇴하고 길림에 가서 중학교에 다니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심은 그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용단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회고록의 말 속에서 어용작가들이 「심양」을 들먹이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김일성은 심양의 평단중학교에 한동안 있었기 때문이다.이 평단중학교 시절이 없으면 그의 길림중학교 전학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그가 이 학교에 있었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전천협동농장 배치 그가 심양에 있었던 시기는 그가 화전이나무송에는 없었던 시기로 된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는 화전이나 무송에 발은 디딜 수는 있었다.그러나 그는 이런 지방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따라서 화전에서 있었던 이상의 일들은 김일성이 모친이 있는 무송현성과 심양을 오가는 사이에 이곳을 지나가다가 김시우 집에 들러서 들은 이야기들 이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그가 김시우 집에 들른 일도 회고록에는 나오고 있다. 김일성은 화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김시우를 자기와 아주 가깝고 친한 사이로 묘사한다.그러나 이 일을 김시우쪽으로부터 보면 문제는 사뭇 다르다. 그는 해방후 오랫동안 중국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다가 1958년에 가서야 비로소 북한에 돌아왔다.그런데 그는 김일성이 있는 평양에 가서 살지는 않고 북한에서도 아주 벽지인 평북 강계군 전천지방에서 숨어살다 싶이 했다.김일성이 전천을 현지지도해도 그와 만나지도 않았다.그는 죽을 때 자기 자식들에게 처음으로 자기와 김일성과의 인연을 말했다고 한다. 어용작가들은 이러한 김시우를 마치 김일성에게 충실한 것 같이 묘사하고 있다.그러나 회고록에서 뽑은 이상의 골자만으로도 북한에 돌아온 김시우의 절망은 엿볼 수가 있다.그는 귀국하지 말 것을 귀국하였다. 화전에서 문제아였던 김일성과 몇번이나 만나서 그의 성향을 익히 알고 있었던 김시우는 모택동치하의 중국에 버티고 있으면서도 김일성 곁에는 가지 않았다.그러나 58년 무렵의 중국에서는 「조국」이 융성발전하고 있다는 김일성의 허위선전이 그냥 먹혀 들고 있었다.아마도 귀국하고 싶어하는 자식들의 요구 때문에 그는 그들과 같이 북한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조국」이라고 돌아온 그들은 그러나 김시우가 북한에서 가장 문제로 삼는 출신성분에 걸렸기 때문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그는 정의부,국민부계통의 민족주의자였다.남로당파,연안파,소련파 등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에게 「종파」란 딱지를 붙여서 한창 숙청하고 있는 58년에 이러한 김시우가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다.그들은 입국하자마자 첩첩산골인 전천의 협동농장으로 배치되어 거기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과거 민족주의 계통이었다는 사실은 철저한 비밀로 되어있다.그것은 지금 현재도 마찬가지이다.그는 철두철미 「공산주의자」였던 것으로 되어있고 또 그렇게 행세하고 있다. ○「종파」딱지 붙여 숙청 1920년대 김일성과 안면이 있었던 민족주의자들이 70년대 이후 북한에 가서 그와 만나는 일이 생겼다.그리고 때로는 사망한 인물도 노동신문에서 소개하고 있다.그런데 이러한 일은 김일성 우상화에 무슨 득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그리고 김일성과 만나거나 노동신문에 게재되는 민족주의자들은 예외없이 그들의 언행이 우상화에 복무되도록 철저히 왜곡된다. 그런데 김시우는 이러한 우상화작업에 참여할 때를 놓친 인물이다.그러나 그는 적어도 자기 입으로는 김일성에 아첨하지 않았다는 공적을 쌓고 죽었다. ①「세기와 더불어1」177면 ②같은책 181∼182
  • 오출신 요절화가 에곤 쉴레 유작전

    ◎28세에 독감사망… 에로틱한 여인상 눈길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에곤 쉴레(1890∼1918)의 28년 생애는 짧아도 너무 짧았다고 할수 있다.오는 27일까지 일정으로 프랑스 파리의 세타미술관에서 인기리에 전시되고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이 화가의 작품들을 보면 그의 짧은 생애가 너무 아까울만큼 매우 천분이 있는 작가라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된 소묘와 수채화등 1백여점 거의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관람객들은 『이런 작품들이 어디에 숨어있다 이제 나왔을까』의아해 하며 조금은 복잡한 그의 내면 세계와 만난다. 에곤 쉴레는 스페인 독감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그의 임신 6개월된 아내가 독감의 희생자가 된지 사흘만이었다.이런 죽음을 생각하면 그의 그림에 어린 분노와 우울함이 더 짙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가난과 병고에만 시달린 불운한 화가는 아니었다.이미 19살애 화가로서 명성을 얻어 그의 작품은 계속 잘 팔렸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빈 미술학교에서 구스타프 클립트라는선생의 지도를 받았다.클립트의 지도로 17살때 첫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팔았다.19살에 「아르 누보」(신미술)그룹을 만들고 학교에서 쫓겨났다.그는 조숙하고 반역아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여인들을 에로틱하게 그리곤 했다.그러나 마냥 널브러지거나 쾌락에 들떠 있는 여인들에게서 풍겨지는 것은 고통과 절망이다.쉴레는 소묘 솜씨가 매우 빠르고 인물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탁월했다고 한다.그러나 이상한 점은 색깔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이었다. 그의 과격한 그림들을 두고 어떤이들은 심리학적인 해석을 시도하기도 한다.쉴레가 15살때 아버지가 매독으로 죽었기 때문에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같은시대 사람들과 쉽게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1918년 그가 죽기 얼마전에 가진 전시회는 대성공이어서 거의 모든 작품이 팔렸다.그는 자신의 재능을 결코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내 작품은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세월의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그의 그림들이 그리 충격적인 것은 되지 못한다.그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세기초 한 젊은이의 정서이며 사랑과 죽음과 욕망이라는 문제에 대한 고통어린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 “인구폭발·환경파괴…21세기 암담”/폴 케네디교수,새 저서서 주장

    ◎자원고갈로 1백억인류 생존조차 위협/한·일·독 등 일부국가는 비교적 밝은 내일 「강대국의 흥망」이란 책을 써 세계적인 관심과 열띤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미국의 역사학자 폴 케네디 교수가 최근에 낸 「21세기에의 대비」가 또한번 새로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강의하고 있는 케네디 교수의 「강대국의 흥망」이 그토록 화제가 됐던 것은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예외없이 군사력을 과도하게 팽창시키고 과도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부를 잠식하게 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됐다』는 명쾌한 논리에 있었다. 케네디 교수는 이번 「21세기에의 대비」에서는 21세기의 세계를 「책을 계속해서 읽기가 두려울 만큼」암담하게 내다보고 있다. 그는 인구문제,특히 개발도상 지역에서의 인구폭발을 21세기의 가장 큰 인류문제로 지적하고 있다.세계은행의 계산대로 21세기 중반 세계인구가 1백억에 이르게 되면 그 인구가 어떻게 생존해 갈것인가 하는 전망이 2세기전 토머스 R 맬서스가 「인구론」에서 내다봤던 절망보다 더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맬서스(1766∼1834)는 인구 증가율이 언제나 농업생산 증가율을 앞질러가기 때문에 엄격한 인구통제가 없으면 그가 살았던 영국의 미래는 암담하다고 보았었다.그러나 영국은 북미 호주등지로의 과감한 이민정책과 농업혁명,산업혁명,그리고 침략전쟁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했었다. 케네디 교수는 인구과잉문제,교통의 발달과 국제화 추세에 따라 못사는 지역으로부터 잘사는 지역으로의 인구의 대량유입,또 이에 따른 사회불안,다른 한편으로는 생산을 늘리기 위한 기술혁신과 이에 따른 직업전환 문제가 일으킬 문제등 지구가 직면하게 될 어려움은 18세기말 영국이 부딪쳤던 것 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고 했다. 이민은 18∼19세기와는 달리 받아들이는쪽에 이익이 되기보다 사회불안의 요인이 될뿐이고 농업생산성도 급격히 향상되고는 있으나 동시에 농산물 무역에 새로운 긴장의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환경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혁명은 자원의 개발을 촉진시켜 인류가 오늘의 생활수준을 유지케 했으나 동시에 자원을 고갈시키고 환경을 오염시켜 오늘날 부자나라들이 누리는 생활수준,아니 그 반의 수준도 인류가 계속해서 유지하기가 불가능하다.따라서 지구가 1백억인구를 동시에 먹여 살린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모두가 다 암울한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많은 개인,또는 우수한 회사들,수가 많지는 않지만 몇몇 나라들은 적어도 현재의 입장에서보면 상당히 괜찮은 전망을 갖고있다.일본 한국 그리고 몇개의 동아시아 무역국들,독일 스위스 그밖의 북구 몇나라등이 그런 나라다. 이들의 공통점은 높은 저축률,인상적인 시설투자,훌륭한 교육시스템,변호사 보다는 엔지니어를 더많이 갖고있는 문화환경,그리고 문화적 동질성과 인종적 통합성 등이다. 폴 캐네디는 이 책에서 21세기 인류의 문제에 어떤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고있다.그는 이런 문제들을 함께 푸는 지혜를 모으기 위해 토론과 회의를 통한 노력을 거듭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 기여입학제,이렇게 가야한다(사설)

    입시부정의 충격이 온국민을 암담한 실의에 빠뜨리고 있다.웬만한 시간과 노력으로는 회생이 어려워 보이는 충격이다.부정조직은 전사학을 상대로 풀 해왔고 「부정」의 감각조차 마비된채 대학 알선의 사설서비스기구 쯤으로 횡행해온 형국이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지경이다.더욱 절망스러운 것은,이런 현상이 사학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에서 비롯하므로 뿌리뽑아 소탕하기가 매우 비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입시부정 질곡벗어나는 기회 사학재정의 불실이 해결되지 않고는 어설피 건드려봐야 말기증장 암환자의 환부에 메스만 댔다 덮는 형국이 되고 말 형편이다.그러나 그 모든 암담함을 극복하고 이번에 만은 이 해묵고 질긴 부조리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뜻에서 이번 사태는 입시부정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생적인 집단위기의식의 발로로도 해석된다.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시기에 터진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기때문이다.치유되어야할 한국형 고질의 대명사격인 것을 방치한채 우리는 개혁을 운위할수 없다.이번만은엉거주춤하고 즉흥적인 일과성 대안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기여입학제」부터 서둘러 논의되는 듯한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분명히 말하지만 기여입학제는 사학의 정상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안 중의 하나일뿐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또한 아직도 유효성만큼 그 부작용이 우려되는 매우 조심스런 방안이기도 하다.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고 성공을 위해 갖춰져야할 여건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부정의 고리가 완전무결하게 끊겨야 한다.현재형은 물론 과거형에서 미래형의 부정 모두가 병든몸의 지체를 절단하는 용기로 도려내지는 작업이,충분하고도 신뢰감들게 이뤄지지 않으면 마치 잠복형 전염균을 놔둔채 외상을 치유하는 것같은 결과를 부를 뿐이다.이런 작업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가의 충분하고도 절대적인 기능이 사학에 대한 지원이나 감독에 미쳐야 한다. ○기부금아닌 「기여」정신 살려야 우리나라처럼 사학의 국민교육담당기능이 공교육규모를 훨씬 앞지르는 경우에는 사학에 대한 국고의 지원이 지금처럼 빈약해서는 할말이 없어진다.예산의 특별운용으로라도 다만 얼마만큼이라도 지원비율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한다.지원폭이 늘어나면 감독기능도 강화될 수 있다.위기에 처해 허우적거리는 사학을 바라보면서 도움도 제대로 못주는 처지에서는 웬만한 부정은 눈감아주게 된다.그런 과정에서 관권불조이가 개입되고 가족형 부정의 유형도 잉태되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전제될 일은 대학의 자율능력의 신장이다.모집에서 졸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학사기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능력이 퇴영된 상태에 있는 것이 우리의 대학이기도 하다.간섭이 아닌 보조의 형태로 홀로서기의 훈련이 쌓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교육당국이 엄격하게 진행시켜야 할 일은 대학들이 학사운영과 재정을 상장된 기업처럼 공개해서 운영하도록 촉구하고 감독하는 일이다.이런 전제가 만족되지 않고는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도 어렵고 잘못하다가는 또 다른 형태의 「합법적 부정」을 만드는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 ○대학·사회가공인하는 제도를 우선 이 제도를 「기부금」으로 하지 않고 「기여」라고 부르게 한 뜻에서부터 접근해보는 일도 중요하다.그것은 이 제도가 단순히 「돈」으로 입학권을 살수 있게 한다는 뜻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게 하기위함이다.우수한 능력으로 「기여」할 수도 있고 재정적 능력으로도 「기여」할 수있다는 뜻이 된다.호주같은 나라가 하듯이 한 일터에서 바친 일정기간의 공헌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 성숙시키는 수단으로 정규학업을 이어가기 바라는 보통시민에게 기회를 주는 방법같은 것도 차츰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사회를 심도있고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인력의 양성을 위해 대학은 끊임없이 기여해야하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의 기여입학제도의 실시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 있음도 밝혀둔다.첫째 이 제도는 「정원」을 침범해서도 안되고 정규강의에 부담이 되어서도 안된다.자기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의 자리와 환경을 「기여」가 침식하거나 방해하는 일을 일반국민의 정서는 용납하지 못한다.그런 갈등요인을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또한 일정수준의 수학능력이 유지되도록 납득할만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그리고 기여입학의 「넓은 문」이 졸업의「좁은 문」을 절대로 넓힐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또한 기여입학생의 인권이 수학과정에서 흠으로 노출되는 일에 대한 보완도 유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기여입학에 의한 재원이 교수 인건비나 대학운영의 경상비로 쓰이는 일은 안된다.장학기금이나 교수를 위한 연구기금 또는 대학의 특수발전기금으로만 쓰이도록 엄격히 관리되어야 한다.이모든 기능을 맡을수 있도록 대학사회에서 공인받을 수 있는 기구가 설치되는 일도 중요하다.대학 교육협의회안에 그런 기구를 마련하는 구상은 타당해보인다.이런 모든 조건과 여건을 만족시키고 성숙시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참담한 현실에서 희망의 미래로 탈출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라는 그런 각오와 결연함으로 이 국면을 벗어나가기 바란다.
  • 조각가 최종태씨(이세기의 인물탐구:15)

    ◎영혼 깃들인 조형세계 표출에 온힘/내면적 깊이서 「참예술」 찾는 미의 탐구자/「착한 사람」 형상화 일념… 순수 소녀상 집착/중3때 충남학생 미전서 수상계기로 예술의 길 걸어 오늘은 뭔가 될듯하다.뭔가 할 수 있을것 같다고 느낀다.그래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되는듯 싶다고 생각될 때 되지않으면 왠지 「암담」해진다.되고있는 「하루」를 얻기위해 그는 오늘도 지하실 작업장으로 내려간다. 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집요하게 소녀상에 집착하고 있는 조각가 최종태씨.슬픔이나 미움이 묻어있지않은 얼굴속에서 그는 「좋은 사람」「착한 사람」을 끌어내고 싶다.그리고 그가 성취하고자하는 얼굴을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끝없이 그리고자 한다.그는 실재하는 얼굴을 그리려할뿐 실재하는 얼굴의 외형을 원치는 않는다.이에 충실하면 할수록 그가 접근하려는 얼굴로부터 점점더 멀어지는 안타까움은 어쩔 수 없다. 부피가 느껴지지않는 식물성의 체구에 때묻지않은 시선,때묻지않은 표정,그러나 날카로운 예술가의 초상에는 고고함과 고통이 동시에 담겨져있다.만일 시인이 조각가보다 한수 위라면 그는 단순한 조각가아닌,「미의 탐구자같은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그는 만사에 꾸밈도 변명도 없다.술수도 책략도 타협도 없다.오로지 「순수무결한 소녀」에 집착하는 해맑은 심성은 우리가 살고있는 오염된 현실에서 한줄기 다이아몬드 빛처럼 인간의 영혼을 정화시키려는 정령과도 같다. 프랑스의 파트리스 브로크 로랑 프상티는 그의 작품은 「극동의 지혜와 준엄함이 깃든 예술」,정병관은 「세계미술사적인 수준에서도 그는 독보적인 인물조각가로 불려 마땅하다」고 평한다. 아마도 동시대를 사는 생존작가중에서 최종태만큼이나 평자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도 드물거라는 생각이다. 가장 높이 나르는 새가 가장 먼데를 보듯 그의 내면에 무한한 공간을 구성해놓고 작가의 마음속 먼데까지 높이 올라 늘 전체를 관망하려는 자세때문인지도 모른다.예술이 예술을 넘어선 경지,그는 조형의 단계를 지나 이미 초월을 꿈꾸는 위치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하마터면 소설가가 될뻔도 했다.서예가 또는 작곡가가됐을지도 모른다.그만큼 그는 다양한 재능을 타고났다.그러나 중학교 3학년때 야외사생이 충남학생미전에서 2등상을 탄 것이 계기가 되어 선택의 여지없이 화가의 길을 정했던것 같다. ○보수적 집안서 자라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보수적인 집안에서 아버지는 아들이 법대에 가기만을 완강히 우겼다.별로 좌절이라든가 타격을 받는 타입이 아니지만 이때만은 「큰 충격」이었음을 그는 여러 글에서 밝히고 있다. 대전사범 졸업후 미대에 진학,그는 『내가 왜 서도의 길을 내던지고 그림의 길을 갔는가,그림의 길을 내던지고 조각의 길을 갔는가 하는것 등은 내가 선택했다기 보다 수동적으로 그때마다 그렇게 조건이 지어졌다는 편이 옳다』고 말한다. 중학교때는 화가 이동훈씨가,대학교 1학년때는 장욱진씨,조각으로 돈것은 김종엽씨의 영향때문이다. 그는 스승인 김종엽씨를 부모처럼 따르고 존경해왔다.그러나 졸업할무렵 스승이 추상형태를 추구하자 스승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음에도 형태에 관한한은 자신의 길을 곧게 지켰다. 당시 서구 현대미술사의 한편에는 모딜리아니가 있고 루오와 자코메티,자드킨이 있고 또 현실을 살아가는 아픔과 거기 실존주의 철학과 동양철학이 있었다. 60년대초반의 그는 아르프와같은 유동하는 추상포름을 딱 한번 만들었고 후반에는 미니멀쪽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는 『「예속이나 편승」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판단,「예술가의 삶은 참삶을 찾는것이며 따라서 형태의 선택은 자신의 진실이 우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외진 길이라도 그의 길을 고수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단 한번도 모델을 쓰지않은 작가로도 유명하다.조각은 물론 그림에서도 「모델」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그저 본대로 느낀대로 형태를 다루고 있다. 그는 최근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들었다.손을 귀에다 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마득한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자세다.이는 70년대이후 두번째 시도다. ○모델 쓰지않는 작가 그무렵 사는것이 너무 힘든 절화의 상황에서 형태를 어떻게 다룰지몰라 고심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끊임없이 그를 감전시키는 어떤 힘,바로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였다.어머니의 소리를,어떤 천상의 소리를,들릴듯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면에서 확인키위해 그는 이와 비슷한 작품을 만든적이 있다. 『재산이라곤 쌀밖에 없었던 우리집,할머니와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쌀을 팔아서 물감·종이를 사주었다』아끼고 아껴도 1주일에 한곽씩 물감을 써야하는 그였기에 지금도 눈물없이는 「어머니」를 말할 수가 없다고 돌아본다.「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은 어머니가 그에게 준 또하나의 구원의 선물이 된 셈이다. 그는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그중에서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잊지못한다. 「인생의 문제는 무엇인가/싸우는 것이다.다음의 문제는 누엇인가/이기는 것이다.그 다음의 문제는 무엇인가/죽는 것이다」이 짤막한 서시는 「바로 레미제라블을 그대로 요약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인생과 예술의 전쟁에서 싸워 이긴 자코메티를 부러워하고 있다.특히 싸르트르가 자코메티에게 한말,「그는 매일 아니라고 하지만 그는 늘 승리하고 있다」는 예술가에 대한 최대의 찬사가 아니겠느냐고. 이제 나이 60이 넘어 「죽음」을 한번쯤 떠올려볼 시점에 서서 그는 「무궁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유한한 인간존재와도 같은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도 문득 애틋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가 사는 하루 하루가 매일같이 새로운 날이기를 기원하기도 한다.그리고 세상에서 처음보는 풀,처음보는 나무,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는 신천지의 경이로운 광휘를 최초로 그리고 싶은 것이다. 「삶과 죽음사이에 그 이름할 수 없는 빈공간에서 파르르 떨고있는 풀잎처럼 나의 그림은 그렇게 존재한다」는 그는 이제 관조의 강가에 서서 그가 건너온 피안의 언덕을 중용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것이 서있는 인물이건 얼굴상이건 한결같이 거룩하게 우뚝 솟아 정면을 향하고 있는것이 특징이다.늘 똑바로 서서 무엇인가를 계시하는 얼굴은 범속을 떠났으나 대지의 슬픔이 깃들어 있다.어느때는 절망과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도끼같은 얼굴을 내밀고 자유의 저편을 내다본다. 물론 최소한의 필요만 남기고 곁가지는 가차없이 생략되어 어느경우든 입체감의 거부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직선의 작가이면서 자칫 단조로움에 빠질 위험에서 벗어나 얼굴상 조각은 매끄러운 곡면이 연출되고 측면의 선도 보일듯말듯한 곡선의 변화를 부여하고 있다. ○부인 헌신에 늘 감사 그는 대전에서의 교사시절 같은 학교 영어교사이던 부인 김절자씨와의 사이에 지영(이대대학원) 범락(서울대4)남매. 그는 조각일을 할뿐.부인은 예술가 남편에게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다.작품을 파는 일도 싫어하고 작품흥정을 소름끼치게 거부하는 남편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온 부인에게 그는 어느 글에선가 「아내여 미안하다」고 쓰고있다. 술은 주사가 있을만큼 폭음.특히 시인 박용래를 좋아한다.그러나 이젠 나이먹고 실수할 것이 두려워 시인 소월처럼 「마누라를 건너편에 앉혀놓고」집에서 술마신다.끝없는 줄담배.대신 어디서든지 「글써달라」는 부탁만은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이대뒤 노고산동 하꼬방,신촌역 전세집에 살다가 80년에 연남동에 정착하여 지난해 처음 작업실이 있는 집을 지었다.뭔지 부자가 된듯하지만 마당에다 천막을 치고 흙을 바르고돌을 쪼던 때가 진짜 작품을 하던 시기가 아닌가 생각된다.그러나 이런 일에는 이미 초연하여 여전히 「착한 사람」「훌륭한 사람」만드는 일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의 「착한 사람」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나 그의 작품들은 어딘가 그의 모습을 비슷비슷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웅변보다는 침묵,발언보다는 경청하는,행동보다는 사변하는 모습등이 그렇다. 그리고 정연하게 늘어선 수많은 그의 소녀들을 바라보는 순간,그들이 하나같이 살아움직이는듯한,루크 브젱이 그에게 했던대로 「청동·목재·화강암으로 된 모습들에서 문득 심장뛰는 소리가 들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는 결국 그가 집요하게 추구한대로 어쩌면 정신세계를 가진 인체를 지금 이시간에 성취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인지도 모른다. □연보 ▲1932연12월 충남 대덕군 회덕면 출생 최명교씨와 임용자씨의 4남1여중 장남 ▲1952연 대전사범졸업(화가 이동훈씨에게 그림지도) ▲58연 서울대 미대 졸업(공주고­천안여고­숙명여중­천안고­대전 대성고에서 교사)▲59연 국전 입선 ▲60연 조각 「서있는 여인」으로 문교부 장관상에 이어 「어머니와 아들」「앉아있는 여인」으로 연3회 특선,국전 추천작가 ▲64연 대전 문화원서 제1회 조각 개인전 ▲65연 시인 임강빈 시화전 ▲66연 공주사대 교수 ▲67연 이대 미대 교수,서울대 미대 동문 이남규·이민회·이지휘·조영동과 5인작가전(서울신문회관) ▲68연 현대 공간회 창립(이후 15년간 해마다 클럽전) ▲70연∼현재 서울대 미대교수 ▲71연 유럽지역여행(이탈리아 조각가 파치니와 교류) ▲75연 조각개인전(미국 문화원) ▲76연 파스텔화·소묘·조각·목판·릴리프전시회(문헌화랑) ▲77연 조각과 목판화전(신세계 화랑) ▲81연 조각개인전(신세계 미술관)구미지역여행 ▲84연 파스텔 그림전(가람화랑) ▲85연 FIAC(국제견본시 현대 미술)85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조각개인전(가나화랑),FIAC86에 조각·파스텔화·목판화 출품 ▲87연 가나화랑주관 파리 샹프륄리 아틀리에서 오리지널 판화제작 서울대 연구교수 ▲88연 일본 광륭사 반가사유상·법륭사 백제관음상 감상 조각개인전(호암갤러리) ▲90연 조각·파스텔화 개인전(가나화랑) ▲91연 FIAC91 출품(부부가 유럽여행) ▲92연 파스텔화·테라코타·조각·연필화·먹그림 개인전(가나화랑),그외 「순교자를 위한 기념상」(서울양화진성당)「김대건신부상」(한강성당)「성모상」「콜롬바와 아그네스 자매상」「예수성심상」「십자가의길」(명동성당)장욱진 탑비(충남 연기)제작 충남문화상·국전추천작가상,서울시문화상 수필집 「예술가와 역사의식」「현장을 찾아서」「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열화당간 「최종태 화집」,가남아트간 「최종태」
  • 사춘기에 성장중단 왜소증/「터너증후군」환자 만남의 자리 마련

    ◎연세대 김덕희교수 주선… 오락 즐기며 투병정보 교환/성염색체 결손… 난소의 기능 손실/성인 키 140㎝이하,중이염 등 동반/호르몬 투여로 치료가능,작년 세쌍둥이출산 경사 18세가 넘도록 2차성징이 없어 국민학교 3∼4학년정도의 작은 키로 고민하는 10대들이 있다. 신생아 2천명에 1명꼴로 발생한다는 이른바 「터너증후군」환자들. 지난 19일 연세대 알렌관에서는 터너증후군환자및 보호자 6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를 위로,격려하며 투병정보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연세대의대 김덕희교수(소아내분비학)의 주선으로 「소녀들의 모임93」이란 이름 아래 열린 행사에는 수녀들과 의료진도 참석,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터너증후군에 대한 강의를 듣고 환자및 부모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크리에이션의 시간도 함께 가졌다. 미국 스웨덴등 선진국에서는 「터너증후군캠프」등 정기적인 모임이 있어 환자들의 투병생활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이번 행사가 처음. 김교수는 『환자나 보호자가 무지할 정도로 알려져 있지 않은실정』이라며 『특히 이병은 사춘기발달장애를 일으켜 방치해두면 정신적결손을 일으키기 쉬우나 치료가 가능한 만큼 마리 포기나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모임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터너증후군은 XX의 구성을 가져야 할 여성의 성염색체가운데 XX가 1개밖에 없는(44+XX)선천성 유정질환.몸의 표현형을 여성으로 자궁이나 질·난관은 있지만 생리나 치모·유방발육이 전혀 안 이뤄지고 골근육계·심혈관계및 비뇨기계등에도 이상증상을 보인다. 김교수는 터너증후군의 주된 특징으로 왜소증을 꼽았다.2∼3세까지는 거의 정상적인 성장을 하다가 4∼13세에 성장속도가 감소되며 사춘기엔 정상인과 달리 급성장이 안이뤄진다.따라서 성인이 되어도 키가 1백40㎝를 넘지않게 된다.또 이 환자의 80%가 중이염을 동반하며 40%가량이 대사장애로 인해 당뇨병이나 갑상선질환을 앓는다.외관상의 특성은 하지가 짧고 목에 물갈퀴같은 근육이 덧붙거나 팔과 다리가 안으로 휘고 손·발등에 심한 부종증세를 보인다. 터너증후군은 무엇보다 여성염색체이상으로 인한 난소기능 소실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난소자극호르몬(FSH)과 항체호르몬(LH)이 과다하게 분비됨에 따라 여성호르몬 분비가 안돼 생리가 없고 임신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발육부진이나 사춘기장에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오늘날 치료가 가능하다.김교수에 따르면 왜소증은 성장호르몬이나 여성호르몬·옥산드로론등의 약물투여로 정상인에 가깝게 치료되고 있다.또 무월경등 산춘기발달장애도 여성호르몬을 적절히 투여해주면 완전한 여성화가 가능하다는 것. 특히 연세대의대 박기현교수팀(산부인과교실)은 지난해 터너증후군환자에게 국내 첫 인공수정을 실시,세쌍둥이를 출산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소녀들의 모임」에 참석한 김모양(17)은 『친구들보다 키가 작고 성징발현이 안돼 남모르게 고민하여 속상한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으며 『오늘 모임을 통해 약점을 숨기기보다는 정확히 내몸의 특징을 알아 치료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환자의 모임」을앞으로 매년 정례화해 나갈 계획이라며 『터너증후군이 더이상 난치병이나 「수치병」이란 생각을 버리고 환자자신과 부모가 적극적으로 나서 육체적·정신적 건강을 되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 모든것 걸고 입시부정 뿌리뽑으라(사설)

    이 환멸스런 사태를 어찌하면 좋은가.고도한 범죄수법을 달마가는 입시부정소식에 염증이 나있는데 그도 모자라 이번에는 현직교사가 중심이 된 본격적인 부정조직이 적발되었다는 소식이다.「선생님」과 「대학생」과 「학부모」가 범죄주식회사를 차린 꼴이다.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리고 신문광고로 대리시험 칠 학생을 모집한 것 등을 보면 가히 기업규모인 이 조직은,그 행태로 보아 아마추어가 아닌 것 같다.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헤아리는 규모로 보아도 현재 적발된 몇사람으로 이뤄진 일이 아닐 것으로 추정된다. 명색 「선생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수 있었는지가 무엇보다도 환멸스럽다.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범죄를 교사하고 옛날에 가르쳤을 제자뻘 대학생들을 범죄하수인으로 끌어들이고 그것으로 수억을 챙기는 일에 「교감선생님」까지 가담한 형국에 분노의 전율이 있다. 이렇게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내겠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는 또 무엇인가.부모와 선생과 작당해서 범죄수법으로 대학을 다닌 자녀가 그래도 대학을 못다닌 것보다 더나은 인생과 행복을 누릴 것으로 생각하는,도무지 정신병자같은 이런 사고방식이 어느 계층에 만연되어 있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무릇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은 「사람이 되게」하는데 있다.몸에 좋으라고 보약을 먹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그런데 범죄 수법으로 학교에 보낸다면 보약대신 독약을 주는 것과 같다.보하는게 아니라 독을 주는 것이다. 대학입시에서 부정이 자행되고 있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나 있었다.이미 불량한 아이들의 협박으로 순진한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나 삐삐 전자시계 따위로 하는 부정행위가 상당히 적발되었고 지난해에는 시험지 도난이라는 엄청난 사건도 있었다.이제 기업형 대리시험조직까지 나왔으니 유형의 다양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이렇기까지는 운영의 허술함도 적잖았을 것이다.관리가 처저하여 아무 틈도 주지 않았다면 생심도 안했을지 모른다.예능계입시등 유사한 부정들의 빈발이 입시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만연시킨 것도 간접원인이 되었을 것이다.또한 획일적 국가고시에 따른 문제들도 허점을 만든 요인이 됐을 수 있다. 입시부정은 사회의 근저를 썩게 하는 원천부정이다.이런 구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인력이 사회에 나가면 아예 부정에 대한 감수성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국기가 흔들리는 부정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이 기회에 이것을 뿌리뽑지 못한다면 나라의 장래가 암담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을 바로잡는데 국운을 거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문형렬 첫 장편 「그리고 이 세상…」(이달의 소설)

    ◎통속적 소재 불구 문학적 향기 가득/불치병 여대생·신학생의 비극적인 사랑 지금까지 적지않은 수의 우수한 단편들을 발표해온 문형열이 이번에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펴냈다.「그리고 이 세상이 너를 잊었다면」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리고…」는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는 여대생과 독신의 서약에 매여 있는 천주교 신학생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기둥 줄거리로 삼고 있다.내적인 오뇌와 외적인 제약에 의하여 양면으로 포위된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강렬하게 이어져 가던 그들의 사랑은 결국 남주인공이 부제 서품을 앞두고 군에 자원 입대한 후 여주인공이 쓸쓸히 죽고 그 소식을 들은 남주인공 또한 자살해 버리는 것으로써 종막을 고한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줄거리의 차원만을 피상적으로 관찰하면서 이 소설에 대한 평가를 시도한다면 우리는 금방 「아,값싼 감상에 호소하는 흔해빠진 통속소설이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사실 어떻게 보면 작가는 통속소설에서 항용 애호되는 요소들 가운데 한 부분을 일부러 골라서 이 소설의 얼개를 만들어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줄거리의 차원에 대한 피상적 관찰만을 토대로 하여 「통속소설」이라는 개념을 운위하는 것은 사실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따지고 보면 오늘날 세계적인 고전으로 공인받고 있는 작품들 가운데에도 단순한 줄거리의 차원에서는 통속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줄거리의 측면에서는 동일한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 가운데에서 어떤 것은 고전의 반열에까지 상승하고 어떤 것은 철저히 통속적인 작품의 수준에서 주저앉고 마는가라는 물음에로 관심의 초점을 전환시킬 필요가 있으리라.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짧게 말하자면 줄거리라는 이름의 골격을 얼마만큼 풍요롭고 깊이있는 문학성의 살로서 감싸는데 성공하였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게 될 것이다. 이처럼 문제의 성격을 새롭게 다듬어 놓고 나서 다시 「그리고…」라는 작품에로 돌아가 그 전체적인 면모를 꼼꼼히 살펴볼 때 우리는 이 작품이비록 고전의 반열에 오를 만한 걸작은 아닐지언정 그것 나름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갖춘 의미있는 작업의 결실임에는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문형열은 그동안 여러 단편들에서 꾸준히 제기해 왔던 「절망을 강요하는 듯한 세계의 부조리성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의미의 차원을 건져낼 수 있는가」라는 다분히 실존론적인 질문을 이 작품에서 좀 더 평이한 언어로 그러나 전과 다름없는 긴장미를 동반하는 가운데 다시한번 던지고 있으며 그 질문을 통하여 독자의 정신을 삶에 대한 고통스럽고 진지한 성찰에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앞에와 같은 평가가 가능하다.이 작품 속을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서정성의 향기가 단순한 감상의 차원과는 구별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 6·25가 남긴 교훈/최갑석 재향군인회 중앙이사(굄돌)

    3년 1개월간 계속된 6·25동란의 참전자의 한사람으로서 나는 이 전쟁이 남긴 세가지 교훈을 후배들에게 꼭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첫째 창군한지 불과 2년밖에 안되는 소수 국군의 초인적인 투지였다.개전 초기의 국군의 장비는 전차·전투기·군함 한척 없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게다가 동원할 예비군도 없고 축성진지도 없고 지휘 통신체제도 갖추지 못한 유아기의 군대였다.이에 비해 공산군은 중국과 소련에서 전투경험을 가진 베테랑 장병들이며 화력은 3대1,인원은 5대1의 비율로 국군에 비해 우월했다. 그러나 국군은 3개월간을 버티면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다. 둘째는 전국민적인 참전의식이다.낙동강 최후방어선에서 학도병 20만명,청소년 1백50만명,노무자 40만명등 2백만명이 참전했다.이들은 군번도 계급도 훈장도 보상도 없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총·칼을 들고 전선에 달려온 애국자들이었다.이는 국난극복을 위한 위대한 총력전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우리국군은 중공군의 대포위망속에서도 결코 소대이상 집단투항한 일이 없었다.북한군은 부대단위로 집단투항한 결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13만명이나 수용되어 있었는데 국군의 포로는 낙오병들이 중심이 되어 1만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1·2차 대전기간동안 독일과 이탈리아·소련군·일본군·영국군이 사령관이 항복문서에 서명,집단적으로 2만∼3만명씩 포로가 되었으나 우리군은 장교가 항복문서에 서명한 기록이 없다. 이렇듯 우리 국군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호국정신으로 싸웠다.지휘관이 전사하고 부대가 궤멸되어도 상부의 명령없이도 개별적으로도 용감하게 싸우는 병사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찾아보기 힘들다.국군의 감투정신은 참으로 가상한 일이다. 건립중인 전쟁기념관에도 이런 정신적인 사료들을 잘 보존하고 홍보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 혈혈단신으로 참전했던 용사들은 죽어서는 국립묘지에 안장됨으로써 호국영령으로 국민의 참배로 승화됨이 마땅하다 하겠다.
  • 도밍고,혼신의 무대 준비/고저음반복 바그너작 오페라 2개 맹연습

    ◎96년 공연계획… “성악가 최후시험대” 도전 스페인이 배출한 세기적인 테너가수 플라시도 도밍고(52)가 성악가로서 자신의 역량에 대한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고 시사주간지 타임 최근호가 보도했다.그동안 역부족으로 여겨왔던 독일작곡가 바그너의 두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와 「지그프리트」를 정복하는 것을 남은 생애 최대의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소화해내기 위해 중년기의 열정을 다바치고 있다는 것이다. 도밍고 스스로 『오페라에 관한한 마지막 대도전』이라고 할 만큼 바그너의 오페라는 성악가들에게 두려운 레퍼토리로 꼽히고 있으며 특히 독일태생이 아닌 도밍고에게는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물론 도밍고가 바그너의 오페라에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다.그는 지난 68년의 「로엔그린」을 시작으로 이미 「탄호이저」,「파르시팔」등 5∼6편의 오페라에서 주인공역을 해냈다.이들 작품은 바그너 오페라의 한결같은 특징인 갑자기 고음에서 저음으로 바뀌거나 반대로 저음에서 고음으로 치닫는 부분이 많지만 도밍고는 그런대로 무난하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독일 오페라의 쌍두봉으로 지칭되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그리고 「지그프리트」는 도밍고에게 있어 엄두를 내기가 어려운 숙제였다.그는 『바그너의 작품을 소화하고 나면 다른 작품에서는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된다.나는 이같은 이유로 트리스탄과 지그프리트역에 무한한 매력과 유혹을 느껴왔지만 자신이 없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도밍고가 이 두 작품에 정면도전을 결심한 것은 최근 오스트리아 빈의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가진 바그너의 「전쟁의 여신」공연에서 얻은 자신감이 크게 작용했다.이 오페라는 절망한 주인공 지그문트가 부친이 죽으면서 남긴 긴급시 사용할 무기얘기를 상기하고 「아버지의 칼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절규하는 대목이 절정으로 가수와 관객 모두를 긴장시키는 대목이다.지그문트역을 맡았던 성악가들은 거의 모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 대목에서 음이 불안정해지고 주춤함으로써 관객의 이마에 땀이 돋게 했었다. 그러나 도밍고의 무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그는 이 공연에서 풍성한 성량과 완벽한 음조절,그리고 무엇보다도 바그너가 설정한 지그문트의 은유적 성격묘사를 능가하는 표정연기로 극장안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도밍고는 이제 더이상 바그너가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아직 독일어발음에 스페인어 억양이 강하게 스며있지만 중요한 것은 발음이 아니라 탄력있는 목소리와 음악적 재능이라고 강조한다. 도밍고는 현재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과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오페라단으로부터 이들 두 작품을 96년에 공연하자는 제의를 받아놓고 있다.
  • 농성○일(외언내언)

    몇년전 서울에 상주중이던 한 외교관이 한국을 「데모광」으로 비유했대서 물의를 빚은 일이 있었다.민주주의(Democracy)와 데모광(Demo­crazy)의 발음이 닮은 것을 기지삼아 비유 인용했던 것이 민감한 반응을 불러 한동안 작은 갈등이 되었었다.고위 외교관이 주재국을 혹평한 태도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었던 이 사건은 대내적 정치공세로 발전하여 상당기간 물의를 빚었다. 돌아보면 별일도 아닌것 같은 일이 그토록 민감한 반응을 불렀던 것은 실제로 그 무렵의 우리에게 「데모」가 그토록 곤혹스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민주화시기를 맞기 위한 일시적인 사회적 증후라고 느긋해 하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바가 없지 않았다.우리는 그렇게 한시대를 낭비해 오다 시피했다. 그러자니 그것이 낳은 부작용도 적지 않다.집단이기주의가 성하고 다수의 횡포가 심해져서 준법정신을 희석시키고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은 하지 않는 이른바 님비현상이 사회병리적 현상으로 뿌리를 내리기도 했다.시위와 농성으로 지새우노라고 민원부서의 업무는 마비되고 치안력은 민생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강력범은 물론 인신매매범의 창궐이라는 수치스럽고 절망적인 치안부재 현상에까지 이른 것도 이 「시위만능 증후군」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6공들어 처음으로 지난 9일에는 시위와 농성이 「제로」를 기록했다고 한다.대선이후 집회와 농성이 급격히 줄었다는 것은 시민의 피부로도 느껴진 일인데 마침내 「하나도 없는 날」이 찾아온 것이다.새로 태어날 「시대」에 대한 「유예」인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88년 대선후에 비하면 현저한 차이인 것은 틀림없다. 민주화시대의 홍역 마마를 지난 시대가 다 견뎌 주었기 때문에 그만큼 성숙했는 지도 모른다.열병을 앓고 난뒤의 예후관리가 중요하듯이 이런 변화의 시기에 대한 대처가 중요하다.그것은 또 한사람의 능력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어쨌든 시위만은 이제 싫다는 4천만의 의지는 이것으로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제는 건전한 의사표시의 시대를 성숙시켜갈 차례다.
  • 21세기로 가는 길(정근모/과학논평)

    ◎대학 입시제도 유감/과학기술연 양성 역행 개혁을/학생의 재능·창의성 살려줄 방안 강구해야 계유년의 첫 주일,우리는 8년 앞으로 다가선 21세기를 좀더 가까이 느끼게 된다.퇴임하는 미국의 부시대통령과 경제파동에 휩싸여 있는 러시아의 옐친대통령이 역사적인 2단계 전략핵감축협정에 조인함으로써 양국이 갖고 있는 전략핵무기를 10년이내에 3분의2를 폐기한다는 것을 공식화하였다.인류를 핵공포에서 해방시키겠다는 희망의 새시대가 열리는 것이다.우리나라도 새로운 문민정부에 대한 신뢰가 과거 어느때보다도 드높고 21세기 선진한국사회를 향한 획기적인 도약이 시작되리라는 기대감이 많은 국민의 새해 아침을 밝게 해주고 있다. ○개인자질발굴에 무력 이러한 국내외적인 분계점을 직시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관심은 대학입학시험 결과 발표에 초점을 두고 있다.말할 수 없는 기쁨에서 절망적인 패배감까지 극과 극을 달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현행 대학입시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점수로 결정되는 합격과 불합격의판정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승부게임이요 안타까운 비교육적 판가름이다.3백40점 만점으로 계산되는 입학시험은 학생의 대학 수학능력을 판정하기에도 극히 부족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갖고 있는 특수자질을 발굴,장려하기에는 너무나 무기력한 교육수단이다.시험문제 작성자들의 문제선별에 따라 시험의 판별력은 크게 달라질 수 있으며 채점자들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서는 2∼3점의 가감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 시험의 한계성이다.정답의 이론도 개재할 수 있으니 입학시험 1점차로서 합격,불합격이 판정되고 이 때문에 재수,삼수하는 학생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고삼가정」이라는 초긴장상태의 가정상황까지 사회적 현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우리 교육제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취약점이 아닐 수 없다.원시적이고 비논리적인 입시제도로 말미암아 파급된 교육적 병폐현상은 너무나 심각하다.전인교육을 지향하여야 할 고등학교교육은 대학입시라는 한 고지를 향한 단순지식교육과 게임(Game)훈련이 되고 말았다.대학입시와 관련이 적은 교육활동은 실질적으로 무시당하고 있으며 엄청난 시간과 재원이 교육적 가치가 희박한 입시준비에 소모되고 있다.그뿐만이 아니라 대학교육마저도 이제는 본말이 전도되어 입시성적이 졸업기준보다 더 중요한 척도가 되고 대학교육내용의 충실성과 수월성은 뒷전에 밀리고 있는 것이다.아무리 훌륭한 교수진을 갖추고 있더라도,아무리 혁신적인 교과과정을 운영하고 있다하더라도 그들은 학생들의 학교선정이나 졸업후의 진로선택에 있어서 주요 결정요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더욱이 각 대학이 갖고 있는 건학이념이나 교육특성은 획일화된 입시성적 점수에 가려져서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되었다. 다원화된 사회로서 개인개인의 역할의 특성화가 과거 어느때보다도 가속되는 오늘의 과학기술문명사회와는 뚜렷한 역류현상이요 심각한 문제이다. ○문제해결능력 계발을 대학입시제도가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육성하는데 미치는 악영향은 잘 알려져 있다.주어진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으로 한정된 교육으로는 절대로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기를 수 없다.창조적이요 혁신적인 과학기술자는 문제의 해결 접근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는 창안력을 길러야 하며 더 나아가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 인식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위대한 과학자는 바로 다른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였던 문제를 찾아내고 새로운 문제들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이로써 획기적인 발견과 발명의 기반을 만들었던 것이다.훌륭한 기술자들은 새로운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새로운 접근방식을 고안해냄으로써 문명의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다.따라서 우리 교육이 발전하는 과학기술문명과 보조를 같이 하려면 재능있는 학생들로 하여금 마음껏 사물을 관찰하게 하고 자유로이 새로운 접근방법을 실험할 수 있는 교육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이미 만들어진 시험문제들의 정답을 찾고 아주 규격화되고 제한된 교과내용의 속달만을 강요하는 입시준비교육과는 정반대의 교육방법인 것이다.하나하나의 학생들을 장기적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재능·재질을 충분히 지도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현실화되지 못하고는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양성할 수 없다. ○학생선발 대학자율로 세계적인 명문대학교들은 학교마다 독특한 입학전형제도를 따르고 있다.학생들을 가르친 선생님들의 소견서를 중시하고 동창생들의 추천서들을 중요한 참고자료로 하는가 하면 책임있는 사회인사들의 추천서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지원생 자신들이 작성한 입학지원동기 및 장래포부에 관한 자술서가 기본자료가 되며 학생의 중·고등학교 성적도 참고가 된다.많은 대학이 지원학생들의 면접을 필수로 하고 있고 입학생 전형 전문가들은 그 학교가 원하는 학생들을 찾아내고자 최선을 다한다.과연 학생이 지원한 대학에서 성공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또는 학생의 전반적인 인품이 미래사회 지도자로서 특출한 요건을 갖추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한번의 시험성적점수에 좌우되지 않고 종합적인 사정방법을 따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소외층학생들에게도 교육기회도 넓혀주고 대학자체의 교육이념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다.입학생선발권이 대학에 주어져 있기 때문에 교수들은 교권의 하나로서 가르칠 학생들을 스스로 선발할 수 있는 것이다.대학입시제도가 갖고 있는 교육병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하루바삐 교권을 대학에 돌려주어 대학 스스로 건학이념에 따라 학생선발을 할 수 있는 자율권을 행사토록 해야 할 것이다.
  • 소설가 최인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0)

    ◎「자신의 언어」에 충실한 “지적성직자”/현실묘사보다 관념성 짙은 작품활동 주력/화제작 「광역」발표로 “전후최고작가” 명성도/다방면에 해박한 지식·분석정신… 주관 강한 성품 『흰 바다새들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마스트에도 그 언저리 바다에도.아마,마카오에서 다른데로 가버린 모양이다』 소설 「광장」은 이렇게 끝나고 있다.추악한 밤의 광장인 남쪽이나 밀실은 없고 광장만 허용되는 북의 기계적 체제등 모든 것에 염증과 환멸을 느낀 주인공이 어딘가 먼곳,아득한 이상의 나라인 제3국으로 가는 선상에서 실종되자 독자는 그의 실종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은둔인가,영원한 죽음인가,그렇다면 희망과 기대없는 암담한 절망이란 말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이 소설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었다. 곧 이 소설은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을 동시에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는 점과 분열된 이데올로기의 비극이 첨예하게 묘사됐다는 이유외에도 불꽃튀기는 눈부신 지적 문체와 지성미 넘치는 철학적 사고,극명한 체제분석등은 60년당시 정치상황의 독자들에겐 싱그러운 통쾌한 충격일수밖에 없었다. 최인훈은 문단데뷔 1년만에 일약 유명작가로 부상되었고 많은 평자들은 다각도로 그를 조명하기에 앞을 다투었다. 문단과 젊은 문학도들은 당연히 이 당돌한 신인작가가 누구인가에 주목했다.그러나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최인훈은 그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전진하거나 물러서지 않은,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적당한 범주속에서 언제나 담담하고 온화하게 미소짓고 있을 뿐이다. ○견고한 자기세계 구축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 자신이 자신을 감추거나 도사린 것이 아니라 제3자가 그의 실체를 공략할 수 없게끔 이미 탄탄하고 견고한 지식의 성속에 군림하고 있었다는 편이 옳다. 그와 친한 친구들­이라기보다 그를 가까이 하려고 접근했던 이들은 그의 문학과 철학 역사와 생태학 진화론에 이르는 해박한 지식과 지적직관,철저하게 파고드는 분석정신에 삼투된 나머지 오히려 그를 난삽한 존재로 규정짓고는 일찌감치 그에대한 현혹을 포기했던 것 같다. 예를들어 그는 아무나를 만나서 선뜻선뜻 대화에 응하거나 문학지등이 내건 잡다한 기획에 뛰어들어 그때마다 지면을 장식하는데 도움을 주는 필자는 아니다. 그가 나설 자리 나서지않을 자리를 또박또박 구두점을 찍어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타당성 여부를 명료하게 따지고 타진한다.그래서 편집자측도 그에게 맞는 마땅한 기획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그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게되었고 그역시 『부덕한 사람이 실수를 피할수 있는 길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최상』임을 전제,상대방이 빠져나갈수 있는 탈출구를 터주고 있다. 만사에 긍·부정을 분명히 하면서 이렇게 적당한 변명을 달아주는 것만봐도 지금까지의 주변의 평가대로 그의 행동과 말에는 막무가내의 기미는 없어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작가라는 작위」가 갖는 위치가 「막대한 부채를 인수한 상속자」라 현지라도 체면상 마지못해 얼굴을 내밀거나 체면상 글 한줄 써야 하는 허례와 허식,의례적 형식들을 외면하기 위해서,그러니까 그 자신을 보호하려는 걸맞는 이유를 장치하고 있었는지도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가 오라하지도 않고 갈만한 일도 없었다는 논리는 성립된다.따라서 사교적인 모임이나 장소에서는 객관적으로 건너다보아도 그의 존재는 어울려보이지 않는다. 그의 소설의 네 귀가 딱딱 들어맞아 빈틈이나 허술함을 찾아볼수 없듯이 그의 평상시의 모습,작가로서의 모습도 여전히 그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그의 걸음걸이에서도 성격이 나타난다.그는 손끝까지 똑바로 편채 걷는다.호들갑스럽게 놀라고 감탄하고 감동하지 않는다.침착하게 아주 천천히 반응하기 때문에 그와 사무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곤혹스러운 노릇이다. 자연스러운 자리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아무리 떠들어도,그래서 의도적으로 작가의 어떤 면을 꿰뚫어보고 그 대답을 얻고자 하는 방법일 때는 그 질문이 명료해질 때까지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린다.그리고 산만함중에도 상대방의 의중이 진지하고 진실하다고 여겨지면 비로소 한마디의 압축된 대답으로 노냐 예스냐로 반응한다. 그는 말을 절제하되될수 있는한 명증한 말만을 고르고 있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 그의 소설은 흔히 「관념소설」또는 「환상소설」,작가로서의 그는 이상주의자이며 비현실적이라고도 말한다. 혹자들은 그의 소설에는 「생동하는 인물」보다 「지적괴뢰」들이 넘쳐있으며 「쉽게 쓸것도 어렵게 쓰고」그래서 그는 「관념보다는 현실을 그리는게 목적인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우선적으로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비꼬기도 한다. 이른바 카뮈나 사르트르보다는 로맹롤랑이나 레마르크처럼 삶의 향훈이 물씬 풍기는 눈물과 한숨과 인생역정과 사랑의 애증을 그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현실은 관념에 우선한다」는 논리에 반대되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관념」은 예술적으로 소설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도 「현실에 우선할 수 있는 소설적 기법」임을 그의 여러소설에서 단정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고귀한 자가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비극적 상황」만이 독자의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정답은 「두 점 사이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는 유클리드의 공식만큼이나 자명하고 단순할뿐 「고귀한 자」는 「한사람의 남자」이거나 「귀족」이거나 「영웅」이전에 그가 처하고 있는 사회적·철학적·도덕적 차원에서 「고뇌하는 현대인」「방황하는 지식인」일수도 있음을 그는 대표작 「광장」과 「가면고」「회색인」「웃음소리」등에서 증명해보이고 있다. 평소의 그는 그의 소설속의 주인공들처럼 24시간 책읽기에 빠져있고 혼자 앉아있기를 좋아하며 남들과의 케상공론보다 아들 윤F(20)에게 「영산회상곡」이나 베토벤을 신청해 듣는 것이 행복하다. 바둑을 둘줄도 모르고 스포츠도 모른다.다른 취미나 오락이 있을리 없다.요즘은 긴 방학을 맞아 갈현동 2층서재에서 오랜만에 신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실은 소설에 손댈 경황도 심적 여유도 없었다.34세에 뒤늦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 윤F가 중2때 간염백신주사를 맞는 과정에서 보균자로 나타나는 바람에 그는 아들을 살려야 한다는 부모로서의 일념과 기원으로 좋은 의사,좋은 병원을 찾아 뛰어다녀야만 했다. 학업을 중단한채 누워서 책과 음악으로 소일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천둥처럼 무너져 내렸으리라. 문학이 예술이라면 그중에서도 가장 가혹하고 잔인한 예술일 것이다.아들의 아픔을 보면서 이를 체험으로 끄집어내고 휘두를만큼 그는 잔혹하지 못하다. 그것이 작가로서 위대한 것이라면 그는 「사양하고 싶은 위대함」이라고 외면해 버린다.2년전 윤구는 회복하여 검정고시합격으로 지난해 대학에 갔다.딸아이 윤경이도 올해 이대 영문과에 입학,모처럼 가정에 안락이 찾아들어 그는 작품구상을 할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무슨일에든 까탈을 부리거나 까다롭게 군 적은 없다.남들이 지레짐작하는 것이라면 그로서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다.그는 다만 글을 쓰는 일에서는 한순간도 긴장을 풀지않아 쓰지않을때도 언제나 내면에서 쓰고있었다고 말한다.그러나 「광장」이후 사람들은 그를 향해 작품을 쓰느니 못쓰느니 끝없는 소요로 들끓었다. 그가 「광장」을 쓴것은 24세때다.이후 이 소설은 대학생과 문학도들의 필독서에다 지난 32년간 해마다 1만부이상,지난해엔 2만부,지난해초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기도 했다. 단일작품으로는 평자들의 가장 많은 논란을 받았고 「전후 최대의 작가」로 찬사되기도 했다. ○24세때 「광장」 발표 그는 함남 회령출신으로 6·25때 가족이 모두 월남,피란지 부산에서 16세때 장편소설 「두만강」을 쓰기 시작해서 이 소설은 70년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아무런 목적없이 법과를 택한 자책감에 학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해 결국 출석미달로 4학년에서 1학기를 남기고 대학을 중퇴했다. 그의 웃음은 순백하다.그의 심성은 천진무구한 소년과도 같고 그의 행동은 순리를 좇아 자연스럽기만 하다.그는 집에서는 두남매와 소탈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원영희씨)와의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고 그리고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의 한사람이다. 평론가 김현은 그의 향기높은 지적 탐구로서의 문학에 대해 롤랑 바르트와 줄리앙 방데의 말을 빌려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그는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에 성실하게 맞부딪치려고 글을 쓰고 있다.그의 정신의 질서는 혼란된 세계를 조리있게 파악하려는 의지이며 논리에 따라 부당하게 기울어지지 않는 천칭,그는 바로 지적 성직자」라고. 그리고 평론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임무가 무엇이든 성직자에겐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라고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연보 ▲1936년4월 함북 회령서 목재상인 부친 최국성씨와 김경숙여사의 4남2녀중 장남 ▲47년 함남 원산으로 이사,회령국민교에 이어 원산중­원산고2까지 ▲50년 6·25로 가족 전원 월남,부산 정착 ▲57년 서울대 법대 4년때 출석미달로 중퇴 ▲58년 군입대,통역장교로 근무 ▲59년 「GREY 구락부 전말기」「라울전」이 안수길씨 추천으로 「자유문학」지 통해 문단 데뷔 ▲60년 문제의 작품 「광장」을 「새벽」(10월호)에 발표 ▲61년 단행본 「광장」(정향사)출간 ▲67년 「총독의 소리 1·2」연작 발표에 이어 단편집 「총독의 소리」(홍익출판사)출간 ▲70년 평론집 「문학을 찾아서」(현암사)출간,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극단 자유극장공연),11월17일 신문회관에서 이헌구씨 주례로 원영희씨와 결혼 ▲71년 창작집 「서유기」(을유문화사)출간 ▲72년 창작집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삼성출판사)출간 ▲73년 장편 「태풍」(중앙일보)연재 ▲73년8월∼76년5월 미국체류,미아이오와대 세계작가 프로그램(IWP)초청,「광장」(일어판),수필가 김소운씨 역으로 일본 동수사출간 ▲76년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극단 산하 초연) ▲77년 「봄이오면 산에들에」(극단 동랑레파토리 공연) ▲78년 「둥둥 낙랑둥」(국립극단 97회 정기공연) ▲79년 미뉴욕주 브록포드대 초청,「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참가,「최인훈전집」(문학과 지성사)완간(전 12권) ▲80년 소설집 「왕자와 탈」(문장사),「하늘의 다리」(고려원)출간 ▲81년 소설집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민음사)출간 ▲82년 희곡집 「한스와 그레텔」(문학예술사)출간 ▲87년 미 뉴욕 「범아시아 레파토리」극단 10주년기념공연,「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공연 참관 ▲89년 창작선집 「달과 소년병」(세계사),산문집 「길에 관한명상」(청하),창작선집 「웃음소리」(책세상)출간 ▲92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가 소설 「광장」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 ▲77∼현재 서울예전 교수 그외 대표작 「구운몽」「회색인」「가면고」「크리스마스캐럴」「두만강」「우상의 집」과 수필집 「유토피아의 꿈」외 동인 문학상,한국연극영화예술상(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중앙문화대상 예술부문 장려상,서울극평가 그룹상(달아 달아 밝은 달아)
  • 싱가포르/“독신추방” 범국민운동(세계의 사회면)

    ◎새해들어 정부·사회단체 대대적 전개/학력별로 배우자 알선기구 설치/1년간 수천쌍 「짝짓기」작전 돌입 높은 생활수준에도 불구하고 독신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싱가포르가 새해들어 대대적인 「독신추방운동」을 선포하고 나섰다. 「독신은 인생을 절망적이고 추하게 만든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독신추방운동에 나선 싱가포르정부는 모든 정부기관과 단체를 동원,올 한햇동안 수천쌍의 부부를 만들어 내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시행에 들어갔다. 이를 위해 싱가포르정부는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를 대졸자,중졸이상,국졸자등 학력별로 구분해 이들의 배우자알선을 전담하는 기구를 설치했다. 정부가 마련해 놓은 계획을 보면 대학졸업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사회개발단」(SDU)을,중졸이상자는 「사회개발과」(SDS)를,또 국졸자나 무학력자를 위해서는 「사회증진과」(SPS)를 두어 미혼남녀가 자신이 원하는 기구에 상담을 의뢰,구체적으로 배우자를 고를 수 있도록 하고 있다.이외에도 각 부처별로 사회개발사무실을 별도로 두고 있다. 물론싱가포르정부의 이같은 독신추방캠페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지난 84년 이광요전수상은 독신생활을 막기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사회개발단」을 처음 만들어 그동안 미혼남녀짝지어주기운동을 계속 전개해왔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동안 2만6천쌍의 미혼남녀들이 짝을 이루는데 성공했다.그러나 그 실적이 기대에 못미치고 있는게 사실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지난 90년 미혼남녀숫자를 보면 10년전보다 3배가 늘어난 약 8만명에 이르며 현재는 10만명을 훨씬 웃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돼 독신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이 급증한 미혼자를 줄이기 위해 정부산하에 있는 3개단체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독신추방운동에 온힘을 쏟고 있다.이들단체가 지금까지 결혼하기를 원하는 회원모집에 나서 모두 약 5만명에 이르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데,이들에게 짝을 지어주는 일만 남은 셈이다. 이들 단체들이 모집한 회원을 단체별로 보면 「사회개발단」이 1만 3천여명,「사회개발과」도 3만여명에 이르고 있다.그외에 「사회증진과」도 1만여명에 달하는 회원을 확보해 두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이같은 짝짓기추진기구를 이용,많은 젊은 남녀들에게 적극적으로 교제할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한편으로 결혼하게 되면 싱가포르개발은행을 통해 결혼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혜택까지 부여하고 있다. 싱가포르정부당국은 이처럼 독신을 선호하던 젊은 남녀들이 최근들어 정부기관의 주선등의 영향을 받아 결혼을 하는 쪽으로 맘을 돌리고 있는 것은 본디 내향적인 성격을 가진 대다수의 싱가포르 남성들이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뀐데다 구직에 대한 열의만큼 결혼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정부의 이같은 시책에 각기업들도 상당한 호응을 하고 있다.각기업체는 금년 3월부터 사내에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정부산하의 3기구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기구에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와 주고있다. 이같은 정부의 짝짓기운동이 금년 한햇동안 얼마나 많은 결실을 맺게 될지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하여튼 이같은 짝짓기운동이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를 몰고온 성장제일주의 개발정책이 빚은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 출발선에서(외언내언)

    각 대학 합격자 발표가 시작되었다.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합격한 이들은 그동안의 긴장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두달간의 긴 자유시간을 누리게 되었다.디스코장등 각 유흥장과 영화관은 연일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는 뉴스다. 대학에 입학했으니 이제 남부러울 것도 더 바랄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못해본 일들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은 있을수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대학이라는 새로운 사회로의 진출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명심해야할 때다. 사이키조명 번뜩이는 디스코장에서 귀청이 떨어져라 랩·록음악에 도취되어 자신을 내던지는 쾌락추구는 일시적 기분풀이는 될수 있을지언정 이것이 일상화되면 모처럼의 대학입학 성취가 무색해지기 십상이다. 대학에 오기위한 각오와 야무진 준비로 새로운 생활에 도전하려는 다른 학생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뒤쳐지는 결과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활은 인생의 시작,사회생활의 시작이라는 측면에서 인생을 시작하는 문턱에서 옷깃을 다듬어보듯 이 시점이야말로 바로 자아확립의 시기로 삼는 것이 현명하다. 원해서 선택한 학과는 물론 엉뚱한 학과를 선택했을 경우 이 전공이 내게 맞는가,내가 이 학문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등 관련서적을 찾아보거나 그 방면의 선배와의 대화를 갖는것도 괜찮다. 입시공부로 부족했던 정서·교양을 위해 명시·명작을 읽고 클래식 음악 감상이나 짧은 여행,차창에 펼쳐진 차가운 겨울하늘에 푸르른 「장래의 나」를 설계해 보는 것도 한방법이다. 전체적으로 59만명의 응시자중 16만4천의 선택된 사람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만도 하다. 그러나 나머지 실패의 쓰라림속에 일시나마 좌절과 절망감을 안게될 쪽도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모든 시작은 신선하고 정결하며 올바른 시작만이 보람찬 성취가 보장된다」는 명언처럼 지금 진짜 시작을 위한 「팽팽한 긴장감」으로 출발을 준비해야겠다.
  • 깨끗한 정부와 강력한 정부(사설)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를 신뢰하게 하는 일이야 말로 예나 이제나 변할 수 없는 위정의 첫째 요체라 할 수 있다.국민에게 믿음을 심지 못한 정부라면 그 정부는 허공에 떠있는 것과 같다.민심이 이미 이반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런 정부를 가리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그 신뢰는 어디서 오는가.바로 청렴이다.깨끗한 정부이다.모든 공직자가 맡은바 직분에 충실한 가운데 공익을 앞세우고 사익을 멀리 하는 것이 피부로 전달될 때 국민은 그 정부를 믿는다.국민이 정부를 믿을 때 그 정부는 강력해지고 나라는 부강해진다.사회기강이 올바로 서서 질서사회가 이룩되는 것임은 두말할 것이 없다.지나간 우리의 왕조시대에 청백리가 현창되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할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당선자의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대통령 입후보 때부터 윗물 맑기론을 누차에 걸쳐 펼치면서 깨끗한 정부에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온 김당선자는 「대통령직 이수위원회」아래 설치할 「신한국 위원회」로 하여금 그 실천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할 것이라 한다. 그에 따라 고위공직자의 재산공개 범위확대,장·차관급 이상 공직자의 이취임시 재산공개 의무화,재벌의 정치참여차단 조치 등이 검토·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또 김당선자는 취임 직후 「반부패선언」을 할 것이며 대통령 직속으로 「부정방지위원회」를 둠으로써 「깨끗한 정치」를 위한 길을 지속적으로 모색·연구하여 펴나갈 뜻을 보다 확고하게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윗물이 맑지 못하고 아랫물이 흐려져 부정·부패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가장 뼈아픈 절망감에 젖어드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며 정직하게 사는 선량한 시민들이다.정직과 성실이 소외와 패배로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은 위정이 있는 올바른 사회의 모습일 수가 없다.따라서 새로운 정부를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하게 이끌어 가려고 하는 김당선자는 「한국병」을 제대로 진단했고 또 가장 올바른 근본적 처방전을 냈다고 할 것이다.그는 도덕사회에 기초한 위정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의지가 어떻게 착실하게뿌리내려 현실화해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과거라고 해서 그러한 노력이 없지 않았음을 국민들은 알고 있는 터이다.우선 모든 공직자부터 이 뜻에 부응하여 공직윤리를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장난명이라고 했다.국민 또한 깨끗한 정부­깨끗한 사회기강이 바로 복지국가라는 점을 인식하면서 저마다 「반부패선언」을 해야 한다.「깨끗한 정부」못지않게 「깨끗한 국민」으로도 되자는 뜻이다.
  • 백혈·심장병 딛고 「새생명 감사모임」

    ◎서울대·인천길병원,환자에 「희망심기」·「사랑의 나눔」 자리마련/백혈/완치아들 춤추며 투병자 격려/심장/새 삶찾은 80명 함께 기쁨나눠/그늘진 얼굴 밝게하는데 사회적 관심·사랑 절실 성탄과 연말을 앞두고 투병중인 어린이들을 돕는 2건의 행사가 열려 어느때보다 뜻깊은 사랑의 나눔의 계절이 되고 있다.인천길병원과 서울대병원이 마련한 행사를 가 보았다. ▷백혈병어린이를 위한 잔치◁ 「호랑나비 한마리가 꽃밭에 앉았는데… 호랑나비야 날아봐… 하늘 높이…」 제1회 백혈병어린이를 위한 잔치가 열린 23일 하오 서울대병원 소아병동 제2강의실.사형선고와 같은 「절망」을 딛고 우뚝 선 80명의 어린이가 한데 모여 「호랑나비」반주에 맞춰 저마다 춤솜씨를 뽐내고 있다.불과 10년전만해도 1백%사망으로 받아들여졌던 백혈병어린이들은 이제 더이상 영화 「러브스토리」에서와 같은 비운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백혈병후원회(회장 김명욱)주최로 열린 이날 행사는 밸혈병어린이와 부모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이미 완치된 80명외에도 치료중인 50명의 어린이도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서 맹호부대 장병들은 1천1백장의 헌혈증서를 기증해 격려를 보냈고 럭키화재 새마음회,불교사회봉사회등의 후원금 전달이 줄을 이었다.또 서울대병원의 수위 교환원 간호사 교수들로부터도 성금이 답지했다.특히 10년전부터 이들의 치료를 맡아온 서울대병원 안효섭박사(소아과)는 22년 의사생활가운데 가장 보람된 순간임을 회고하고,완치된 어린이 80명의 이름과 병력을 일일이 기억해내며 「황영조선수의 그것보다 더 값진」기념메달을 걸어주었고 부모들은 지난날의 회한에 겨워 끝내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들에게서는 백혈병따위는 이미 잊고 산지 오래인듯 「그늘」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린이 백혈병은 최근 화학요법의 발달로 급성림프구성의 경우 90%이상 치유가 가능한 병.그러나 「어린애가 무슨 암이냐」 「불치병인데 돈만 들여가며 효과없는 치료를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식의 그릇된 인식과 몰이해로 자칫하면 절망의 늪에 빠지기 쉬웠다. 따라서 백혈병어린이와 가족들에겐 무엇보다 용기와 격려가 요구된다. 3살짜리 아들이 백혈병을 앓고 있는 이미경씨(29·서울 용산구 한남동)는 『절망적인 고통은 결코 예고하며 찾아오지 않습니다.가장 참기 힘들었던 고통은 「왜 하필 나에게…」라는 고립과 단절감이었지요』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한방울의 피와 정성어린 성금도 중요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게끔 고통을 분담하려는 주위의 사랑이 필요하다. ▷새생명 만남의 밤◁ 『이젠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도 실컷 할 수 있고 마음대로 뜀박질도 할 수 있습니다.수술전에는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강효정·10·인천 대흥국교3년)『처음에는 저희들의 작은 힘이 얼마나 보탬이 될까 망설였습니다.하지만 한푼두푼 모은 정성으로 인해 핏기없는 얼굴에 저처럼 화사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정말 보람이 새록새록 느껴집니다.특히 운전석옆에 새 생명을 찾은 어린이들의 사진을 붙이고 다니노라면 절로 힘이 솟아납니다』(이범석씨·사랑실은 교통봉사대원) 22일 하오6시 인천중앙길병원(원장 이길녀) 가천인력개발원 대강당에서는 심장병수술을 받고 새로 태어난 어린이와 가족,이를 지원해준 교통봉사대원등 후원단체 그리고 의료진등 5백여명이 어울려 새 생명을 찾아준 보람과 새 생명을 되찾은 고마움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행사는 지난 90년부터 심장병어린이에게 「새생명 찾아주기」운동을 펴온 인천중앙길병원측이 그동안 주위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은 어린이 80명을 초청해 이뤄진 것이다. 선천성심장병은 해마다 새로 태어나는 신생아중 6천여명쯤 발생하며 수술을 받지 않으면 대부분 20세를 못넘기는 난치병. 국내 의료술의 발달로 시설과 의료진이 어느정도 갖춰진 병원이면 손쉽게 수술이 가능하지만 수술비용이 너무 비싸 선뜻 수술엄두를 못내는 병이기도 하다.이에따라 길병원측은 「돈때문에 생명을 잃어선 안된다」는 생각에서 지난 5월부터 시민단체와 손잡고 본격적인 모금활동을 벌인결과 7개월사이 성금이 3억원이나 답지했고 후원회원만 해도 3천여명에 이르고 있다.기업체나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국민학생들의 고사리손에서부터 구두닦이모임인 기능미화원과 가축병원협회등에서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에 동참했다.또 택시기사 모임인 「사랑실은 교통봉사대원」들은 헌혈로 이 운동에 불을 지폈고,아들의 결혼축의금 일체를 성금으로 내놓는 독지가가 나타나는등 「새생명살리기」는 말그대로 범시민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날 행사에서 이길녀이사장은 『동심의 나래를 활짝펴고 발고 명랑하게 자라나야 할 어린 생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시한부인생을 살아가는 어린이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인천에서만큼은 병든 이웃이 돈때문에 의료혜택을 못받고 숨지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호소,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어린이,의료진,자원봉사자들은 서로의 가슴에 장미꽃을 달아주며 「심장병환자를 위해 다함께 노력하자」는 외침으로 이날 행사는 막을 내렸지만,작은 정성도 모아지면 생명까지 건져내는 큰 힘이 될수 있음을 새롭게 일깨워준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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