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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들의 어머니(송정숙 칼럼)

    아들을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셋은 두어야겠다고 벼르는 사람이 있다.「맏이는 사업가를 만들고 둘째는 법관시키고 셋째는 의사로 키우기 위해」셋은 있어야겠다는 것이다.언제부턴가 신문 부음란에는 화려한 직함이 열거된 아들들의 친상이 실리곤 한다.아들을 셋씩이나 원하는 마음도 그런데서 자극받은 것인지 모른다. 불화하던 재벌 형제의 극적인 화해소식이 최근 화제가 되었었다.아직은 소를 취하하기 전이므로 재연의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형제는 화해를 했다.그 아들들의 화해를 지켜보던 그들의 모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가업을 일으켜 거부의 재산을 남긴 그들 부친의 위패를 모신 재실에 형제를 데리고 들어가 부둥켜안고 울었다는 대목이다. 또 최근에 지방에서는 아우가 형의 자동차에 폭발물을 설치하여 형의 아내와 자녀를 폭사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몇백만원의 빚시비가 형제간에 골깊은 불화를 만들었고 그러다 일어난 범행이었다.혹시 그들의 어머니가 생존해 있다면 이 기막힌 일을 어떻게 맞이했을까. 그리고 그 끔찍한 「아버지 살해」.어마어마한 부잣집 맏아들이면서도 공부도 잘해서 어엿한 대학교수가 되었고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을 『우리 김 박사』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했다는 그 장남이 아버지 목줄에 칼을 꽂았다.우리로 하여금 몸이 오그라드는 전율을 맛보게 하고 세상에 회의를 느끼게 한 사건이다.그러나 살아있는 그의 모친에 비하면 우리의 전율과 회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재산이란 사람을 그토록 가혹하게 시험하는 것인가보다.박한상은 돈이 직접 자식을 망친 경우라 치더라도 「금용」집안의 경우에는 재산관리에 엄격하고 가족에게 절제를 가르치며 금욕적으로 키운 것같은데도 마찬가지로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다.재산이란 이렇게 여러형태로 인성을 파괴하고 파탄시키는 힘을 지닌 모양이다.타락과 일탈만이 아니고 학문,교양,종교도 그것앞에서는 이처럼 무력하고 사람이기를 포기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돈의 한 속성인 모양이다. 요즘 세상은 어머니의 영향력이 커져서 아들의 대학입학식에도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따라다닌다.불화한 아들들이 안타까워 통곡하며 타이르는 어머니도 있고 「덕산」처럼 배후에서 자금줄을 죄고펴고 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어머니도 있다.교육열 강한 어머니 치마폭에서 성장한 세대가 본격적인 사회의 주역이 된 시대가 지금 막 다가왔는데 이런 기막히고 절망스런 사회문제가 잇따르는 것은 그냥 우연일까. 요즘의 재산가는 그저 붙박이 땅부자일 뿐이던 고전적 부잣집과 다르다.그렇게 근대적인 부의 축적을 이룬 재산가의 가족노릇에는 재산에 걸맞은 자기 관리능력과 철학같은 것이 있어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을 가르치고 훈련하는 것을 못한 탓에 실패의 수렁에 빠지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돈이란 워낙 힘있고 좋은 것이므로 그걸 갖고,유지하고,잘 쓸 수 있기 위해서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는 일을 충분히 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을 셋이나 욕심내는 사람의 말처럼 아직은 아들이 보험이면서 재산으로 되어 있다.재산을 일구고 지키는 역할도 거기 맡겨야 하고 돈보다 소중한 재산이기도 하므로 돈에 의해 망쳐질 가능성도 크다.그러므로 돈의 부정적 기능에 대한 방어력과 적응력을 갖춰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자랄때 골목안에서는 매맞는 아우를 형이 영웅처럼 지켜주고,궁지에 몰린 형 곁에서 승산도 없는 싸움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우이다.그런 형제도 자란 뒤에 원수가 되어 폭발물로 날려보내는 일조차 서슴지 않게 되고,법정에서 치사한 이전투구를 벌인다.아버지에게는 「아비보다 나은 아들」이 기쁨이지만 「아버지만 못한 아들노릇」의 강박관념은 정신분열증의 빌미가 된다. 아버지의 승인을 받지 못한채 사업을 벌여놓고 거액의 부도가 나게 생긴 아들은 그로해서 아버지와 불화하고 마침내는 아예 「아버지 죽이기」를 계획했다고 말한다.성한 정신이 아니다.치마폭 넓은 현대의 어머니에게는 재산이 많을 경우 이렇게 끊임없이 시험당하는 「돈많은 집 아들」을 바르게 기를 역할도 주어져 있다.그것에 실패하면 희대의 패륜아를 아들로 두어야 하는 불행의 지옥을 헤매야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재산은 무슨 소용이고 영화가 가당하겠는가.「공부 잘 하고 모범생이던 사랑하는 자식」도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우리 모두 같이 죽자』며 기절해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처참한 어머니.오늘의 아들들의 어머니노릇은 이렇게 가슴이 오그라드는 두려움을 바로 곁에 두고 있다.참으로 조심스럽고 힘든 노릇이다.
  • 교민 환영속 대EU 정상외교 시작/김대통령(김대통령 유럽순방여로)

    ◎벨기에 부총리 등 주요인사 공항 영접/이붕,김 대통령 이름새긴 돌도장 선물 김영삼 대통령은 12일 하오 코펜하겐의 사스 스칸디나비아 호텔에서 중국의 이붕총리와 한·중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끝으로 3일동안의 덴마크 방문일정을 마감했다. 김대통령은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가 폐막된 이날 하오 코펜하겐을 떠나 유럽방문 마지막 나라인 벨기에의 브뤼셀에 안착,2박3일 동안의 벨기에및 유럽연합(EU)과의 정상외교 활동에 들어갔다. ▷브뤼셀 도착◁ ○…코펜하겐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 참가일정을 모두 마친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카스트룹 국제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마지막 순방국인 벨기에로 출발. 특별기는 1시간45분정도 비행끝에 이날 하오 4시40분(한국시간 13일 상오 0시40분)벨기에 멜스부르크공항에 도착. 김대통령은 2명의 트럼펫 나팔수의 환영곡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드바엔스트 벨기에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으며 트랩을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반름피부총리겸 예산장관의 인사를 받고 반갑게 악수. 이날 공항환영식에는 베르메렌주한벨기에대사와 스크레이 버스 왕실의전장,브라티니 EU집행위의전장과 드랑게 공항부대장 등이 영접인사로 나왔고 우리측에서는 주벨기에대사내외,주EC대사내외와 이종춘 한인회장 내외가 참석. 김 대통령은 이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친 뒤 바로 영빈관 숙소인 스타이벤베르그성으로 출발했으며 영빈관 정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교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박수를 받고 손을 흔들며 입장. ▷한·중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이붕 중국총리의 12일정상회담은 김대통령의 공식수행원들 숙소인 사스 스칸디나비아 호텔에서 이날 상오9시(한국시간 하오5시)부터 1시간동안 진행. 처음 회담장소는 김대통령이나 이총리의 숙소가 아닌 제3의 장소인 「로열 요트 클럽」으로 정해졌으나,중국측이 경호상의 이유등을 들어 우리측에 새 장소 선정을 요청,이 호텔 2층 아이슬랜드 룸으로 결정.이 방은 11일 김대통령이 스리랑카의 구마라퉁가 대통령과 회담한 곳. 김 대통령은 회담 초청자로 회담 시작 10분전에 이 방에 도착,유종하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최종 브리핑을받으며 대기. 이 총리는 호텔 현관에서 외무부 문동석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회담장에 도착,김 대통령과 반갑게 악수. 김 대통령과 이 총리는 지난해 3월 김대통령의 중국 방문및 지난해 10월 이 총리의 한국 방문에 이어 세번째로 대면. 김 대통령과 이 총리는 정해진 자리로 향하면서 먼저 이총리가 우리측 공로명 외무부장관 등 배석자들과 차례로 악수를 했고 이어 김대통령도 이 총리를 뒤따라 들어온 중국측 배석자들과 악수. 김 대통령과 이총리가 자리에 앉은 뒤 이총리는 김대통령에게 중국 특산 돌에 김대통령 이름을 새긴 도장 2개를 선물로 증정. 도장은 한글과 한자로 「김영삼」 「김영삼」이라고 음각한 것이었는데,이총리는 『글씨를 많이 쓰신다기에 준비했다』고 설명했고,김대통령도 『귀한 선물인데 앞으로 붓글씨를 쓸 때(낙관으로) 반드시 사용하겠다』고 화답. 이어 두 정상은 전날 있은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 관한 이야기와 이번 유엔회의를 계기로 각국 정상들이 개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는 점등에 관한 이야기를 교환. 두 정상은 1시간 동안의 회담이 끝난 뒤 서로 만족스런 표정으로 작별인사를 나눴는데 김대통령은 문간에서 이총리와 악수를 했고 문의전장은 호텔 현관까지 따라 나와 이총리를 배웅. ◎각국 정상발언/지금도 인류 10억이상이 기아로 허덕/수하르토/「공통문제 논의」 회동만으로도 큰 의미/만델라/개도국을 밑빠진 독으로 간주 말아야/마하티르 ◇『우리가 회의하는 동안에도 지구상에서는 10억명 이상이 빈곤과 기아와 절망속에서 희망없는 삶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갈 것이다』(수하르토 인도네시아대통령) ◇『세계지도자들은 20세기말인 바로 지금에서야 살상하는 방법보다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나라시마 라오 인도총리) ◇『사람이 지속적으로 빈곤에 시달릴 수 밖에 없을 때 무력충돌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 쉽다.국제분쟁은 무력 사용이나 협박에 의존하지 않고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중국은 현재나 미래에도 헤게모니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이붕 중국총리) ◇『우리가 세계를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지구시장이 되도록 방치할 것인지 자문하고 싶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 『사회적 진보는 자유가 지배하는 곳에서만 가능하다.경제원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회진보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은 버려야 한다』(헬무트 콜 독일총리) ◇『주요회의를 열고 또 열어서 고상한 범세계적 행동계획을 발표하지만 실행에 옮길 적절한 수단을 강구한 적은 없다.개발도상국은 더이상 밑빠진 독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말레이시아총리)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인 기대들이 좌절되면 충돌이 생겨 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질서와 조화가 위태롭게 될 수밖에 없으며 풍요의 섬은 박탈의 바다에서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게 됐다』(파루크 아마드 칸 레가리 파키스탄대통령) ◇『지금 이 순간부터 어느 누구도 지구상에서 「나는 내 형제의 재산관리인인가요」라는 카인의 말을 듣지 않아야 한다』(에두아르도 프레이 뤼즈 타글레 칠레대통령) ◇『부유한 나라들은 값싸게 물건을 사들이고 가난한 나라들은 비싼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어떤 제3세계의 문제들은 코펜하겐 선언문에 아예 들어 있지도 않다.미약한 내용의 코펜하겐 선언문에 모두가 서명할 것이고,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피델 카스트로 쿠바대통령) ◇『아프리카를 잘도 이용해먹고 난 뒤 배가 부를대로 부를 때 선진국들은 아프리카를 향해 귀찮게 굴지 말라고 말한다』(오마르 봉고 가봉대통령) ◇『세계지도자들이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모여 앉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한 성과가 없더라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모여 앉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를 25∼50% 해결하고 들어가는 셈이다』(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
  • 광복50돌에 맞는 3·1절(사설)

    오늘 우리는 76돌 3·1절을 맞는다.올해 3·1절은 우리국민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안겨주고 있다.하나는 광복50주년을 맞는 해의 뜻깊은 3·1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제 식민지통치의 상징이었던 총독부건물의 철거를 알리는 고유제가 국립중앙박물관앞 광장에서 열린다는 것이다.구총독부청사의 철거는 해방 반세기만에 문민정부의 결단으로 이룩된 쾌거다. 총독부건물의 철거와 더불어 경복궁의 완전복원은 민족정기와 자존을 드높이는 기념비적 역사이다.그러나 종전 50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에게 참담한 고통을 안겨주었던 가해자 일본은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기피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에는 국회에서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 식민지를 해방시킨 전쟁』이라고 미화시키는 망발마저 보이고 있다.일본국회의 부전 및 사죄결의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극우세력들이 국회와 민간에서 목청을 높이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참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안될 일본의 복고적 변신이다. 1919년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3·1만세운동은 민족적 에너지가 자유와 독립이란 명제로 활화산처럼 결집된 장엄한 드라마였다.국권을 빼앗긴지 10년째,도탄에 빠진 민생들이 절망과 무기력에 직면해 있을때 놀라운 민족의 에너지가 만세운동으로 분출한 것이다.죽은 줄로만 알았던 한민족의 기개와 투혼이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라는 원대한 국가목표를 설정하고 올해 그 원년을 맞았다.세계화전략을 통해 국력을 키우며 제2의 광복인 통일을 달성하고 나아가 세계중심국가로 발전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 3·1만세운동을 가능케했던 열화같은 우리민족의 에너지를 세계화에 결집시켜 세계일류국가를 만드는 일에 온국민이 합심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이것은 우리 시대와 역사의 소명이기도 하다.
  • 김정일의 새로운 선택(사설)

    세상에서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월일 것이다.김일성에 이은 오진우의 죽음을 보면서 하게 되는 생각이다.이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이 결국 변화라면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변화 또한 어쩔 수 없는 역사의 필연적 과정 아니겠는가.때문에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및 남북한의 공존·공영과 통일을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변화라고 우리는 생각한다.지금의 북한은 개방과 개혁을 거부하면서 시대역행적인 적화통일의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세계유일의 스탈린식 공산독재국가다.이런 상태로는 평화도 공존도 통일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원하며 유도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오의 죽음으로 북한에 당장 어떤 변화가 올 것으로는 물론 생각지 않는다.김일성의 사망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북한이다.그러나 북한을 움직이고 있는 것도 역시 사람이다.김·오의 죽음은 그 사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사람의 변화는 결국 북한의 변화로 이어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는 북한 권력서열 2위의 인민무력부장이요 빨치산출신의 혁명1세대다.북한체제의 핵을 이루는 군의 대부였다.김일성에 이은 그의 죽음은 북한군 지휘사령탑의 변화를 의미한다.그것은 곧 어떤 형태든 북한 군부및 체제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오의 죽음은 북한군부의 세대교체를 가속시킬 것이다.6·25를 경험하지 못한 혁명2세대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개방·개혁의 체제변화 없이도 북한이 살아남을 수는 절대 없다.김정일을 비롯한 혁명2세대들은 오 등 1세대들의 죽음을 변화의 기회나 계기로 삼아야 한다.우리는 오의 사망이 북한변화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그리고 그 변화가 질서있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져 남북평화·공존·공영및 민주평화통일로 이어지기를 아울러 기대한다.
  • 하롱베이로 가는 길(송정숙 칼럼)

    1968년 전쟁중의 사이공을 본 눈으로 오늘의 하노이와 만나는 것은 많은 감회를 느끼게 한다.무엇보다도 그때 「월맹」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했던 적대세력의 실체가 어떠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일이 고소를 머금게 한다.하노이사람들은 조그만 체격이 다부지고 질기고 영악하다.그리고 매우 호전적이다. 하롱베이로 가는 길에는 그런 모습의 베트남 인민들이 열매처럼 다글다글하게 열려 있었다.하롱베이는 우리에게 「인도차이나」라는 영화로 알려진 아름다운 만이다.3천개나 되는 석회암의 섬들이 에메랄드 빛 바다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용이 누운 것 같은 형상의 기막힌 경색의 만이다.이곳을 찾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해 돈맛을 안 암팡지고 영악한 사회주의 베트남 인민들이 엉겨붙어 있고 어른보다 더 야무진 2세들도 합세하고 있다. 학교는 『부모님이 돈부터 벌어오라고 해서』 집어치웠다는 열네살짜리 구두닦이 소년은 밤 11시에도 여행객의 신발을 벗겨간다.값은 『1달러!』.그들의 조상이 13세기에 바다를 타고 침략해 온 몽골군을3번씩이나 기지의 전술로 물리쳤다는 자랑스런 역사를 가진 백등강나루에서는 5살도 채 안된 유아기의 어린이가 바나나 한송이를 내밀며 말한다.『마담,텐사우센드 동!』.베트남돈 1만동은 1달러다.그걸 안사면 죄를 받을 것 같아 값을 치르고 받아 들었더니 아주 분명한 발음으로 어린이는 말했다.『메르시!』.흑요석처럼 맑고 깜찍하게 예쁜 얼굴이다.그 뒤에서 그의 어머니임이 분명해 보이는 여인이 이번에는 다른 상품을 쥐어주었고 그 아기 장사꾼은 다시 젖내나는 음성으로 『텐 사우센드 동…』을 뇌며 저쪽으로 아장아장 걸어간다. 가슴아프다.옛날 그와 비슷했던 우리 처지를 회상하게 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그 많은 예쁘고 영특한 아이들을 길에 내세워 「1달러!」벌이를 시켜야 하는 오늘의 하노이 현실이 가슴아프다.혁명에 성공한 그들도 다른 여느 발전도상국과 꼭같은 과정을 생략없이 겪고 있다는 사실도 서글프다.프랑스도 미국도 중국까지도 이 맹랑한 나라에 물리고는 오금을 못썼다.그 거인들이 어떻게 하면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하고 빠져나갈까 고민하게 만들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달아나게 만든 것이다.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그 금욕적인 이념의 덕이 아니었을까.그걸 저버려가며 의무교육도 못마친 어린 싹들을 「1달러」벌이로 먼지나는 길가에 도열시켜야 한다는 것은 남의 일이지만 우울하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이 만든 소책자를 보면 그들의 국민학교 취학률은 95%지만 이후 중등과정의 진학은 40%만이 하고 있다고 한다.놀랄만한 검소함과 금욕이 그들을 지탱해 온 지주였던 것에 비하면 경제발전이 최우선의 덕목이 된 오늘의 정신적 혼란을 그들은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하롱베이로 가는 확장되는 도로변 집들은 거의 모두가 길로 향해 가게를 열고 있다.물건이라야 빈약한 좌판수준이거나,위생이나 볼품에 대한 고려가 전혀 안된 쌀국수정도가 몇개의 의자와 함께 놓여 있을 뿐이다.그리고 의외로 많이 눈에 띄는 것은 당구장이다.그런 당구대에는 어김없이 깜깜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귀가할 생각을 않는 것 같은 청소년들이 그득그득 둘러싸고 있다.맨발이거나 슬리퍼뿐인 발에 헐렁한 바지와 셔츠차림의,윤끼도 장식기도 전혀없는 청소년들이 당구놀이에 이렇게 탐닉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강이 많고 겨울이 없는 베트남은 중부 이북에서는 2모작이,남쪽에서는 3모작이 가능한 나라다.그래도 만년 식량부족으로 한해에 수십만t을 수입해 와야 했는데 개방정책을 실시한 이후로 지난 해에는 2백5십만t의 쌀을 수출해서 세계에서 3번째 쌀 수출국이 되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강과 호수가 많은 이 나라에서는 물이 가장 큰 자원임을 알 수 있다.그러나 하노이 중심가조차도 도로에 하수도 공사가 되어 있지 않아 보인다.모든 생활오수가 바다로 강으로 직접 뚫린 길을 따라 곧장 흘러드는 것 같다. 경제적 도덕성의 지표인 환경오염과 정신적 도덕성의 기본인 윤리의식이 극도의 혼란을 예측시키며 달리고 있는 길.베트남에 속했지만 신이 인류에게 함께 즐기도록 마련했을 그 아름다운 바다를 향해 가는 길에는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고 있었다.
  • 「월드스타」강수연/「돌아온 명배우」명계남/연극무대서 자존심 대결

    ◎강/「메디아」서 복수의 화신역 훌륭히 소화/명/10년만에 무대 컴백… 「콘트라…」 주연 맡아 「월드스타」와 「돌아온 명배우」가 동숭동에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베니스영화제(87년)와 모스크바영화제(89년) 여주주연상을 수상,세계적인 스타가 된 영화배우 강수연씨(30)와 불혹을 넘긴 나이에 전업배우로 돌아와 의욕적인 무대활동을 펼치고 있는 명계남씨(43).「월드 스타」와 「명배우」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들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3일 막을 올린 극단 무천의 「메디아」(김윤미 작,김아라 연출)와 극단 완자무늬가 소극장 학전에서 4일 무대에 올린 「콘트라베이스」(파트릭 쥐스킨트 작,김태수 연출)에 각각 주인공으로 출연중이다. 두 작품 모두 연극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정통극으로 상업적 색채가 강한 감각적 연극들이 득세하는 요즘 연극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메디아」는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유리피데스의 대표작 「메디아」와 독일의 현대작가 하이네 뮐러의 삼부 단막극 「황폐한 강변,메디아 소재,아르고 선원들이 있는 풍경」을 토대로 연출가 김아라씨와 작가 김윤미씨가 재창작한 작품.콜키스의 공주 메디아는 사랑하는 남편의 성공을 위해 살인과 계략을 서슴지 않지만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자 그 복수로 남편의 연인은 물론 자기가 낳은 자식까지 살해한다.유리피데스는 사랑과 증오의 관계를 파헤쳐 인간의 숙명적 비극을 그렸지만 이번 연극에선 생산력과 파괴력의 대비를 통해 여성의 무한한 생명력이 상징적으로 그려진다. 이 연극에서 강수연씨는 발성과 호흡에 다소 문제가 보이지만 특유의 강렬한 눈빛을 번득이며 질투와 증오에 불타는 복수의 화신 역을 훌륭히 소화해 내고 있다.극의 전개에 맞춰 무대에서 두드리는 현대 음악가 임동창씨의 피아노 연주,기억속의 풍경을 보는듯한 독특한 무대도 볼만한 이 연극은 오는 5월 덴마크 프렌자페스티벌에 참가한다. 한편 독일의 은둔작가 파트릭 쥐스킨트의 대표작인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에서 오케스트라의 콘트라베이스 주자로 출연,세상에 대한 환멸과 절망감을 지닌채 살아가는 소시민의연약한 모습을 연기하는 명계남씨(43)는 연세대 연희극예술연구회 출신의 배우. 73년 연극활동을 시작,극단 창고극장·사조·세실·사계 등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85년 연극활동을 중단하고 광고회사 카피라이터,이벤트 기획자로 일하다 뜻한 바 있어 지난 93년 무대로 돌아왔다.연극 「북회귀선」「불좀 꺼 주세요」외에도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 그가 정말 연극다운 연극으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일념으로 30년 지기인 김태수씨와 손잡고 만든 것이 이번 작품이다. 복수의 화신으로 질투와 분노로 절규하는 강수연,자기 몸만큼이나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나타나 인생의 의미를 묻는 명계남.이들의 열정이 신춘 연극계를 뜨겁게 달군다.
  • 미­중 무역분쟁/파장과 대응

    ◎한­미 육류·자동차·지재권 “불씨 잠복”/서울­워싱턴 통상이슈 점검/“협상 부진땐 WTO제소” 미 으름장/「자잘한 현안」 분쟁도화선 될가능성 한미간에는 통상마찰의 우려가 없나. 『미 통상관료들은 우호적 협력관계가 한국에는 통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그들은 한국에 절망하고 있다.한국의 시장개방을 위해선 미국의 응징적 무역제재 밖에 없다고 말한다…』 워싱턴에 있는 한국경제연구소(KEI)가 낸 「긴박한 양국 통상관계,불행한 상황」이란 보고서의 일부이다.미 무역대표부(USTR)와 국무·재무,상무부 및 국가안보위원회 등 통상관계 기관의 강성 기류를 전한 이 보고서는 지난 해 12월21일 작성됐다. 미국 내 「한국 응징론」의 일단을 보여주는 보고서이다.이를 대변하듯 바세프스키 USTR 부대표도 지난 2일 하원 청문회에서 『한국은 겉으로는 수입장벽을 낮추면서 정작 새롭고 교묘한 장벽을 구축해 쌍무문제가 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미국의 대한 강성 통상기류는 곳곳에서 감지된다.더구나 미·중 무역전쟁이 터져,이 전쟁이 「강건너 불」만은 아닌 상황이 됐다. 한미 간에 불거진 핫 이슈는 현재로선 없다.지난 해 자동차 협상 이후 겉으로는 평온하다.물론 자동차 육류 지적재산권 등 「자잘한」 현안은 꽤 많다.문제는 이러한 현안이 언제,어떻게 불거질지 모른다는 점이다. 미·중 무역전쟁도 사실 「해적판 컴팩트 디스크(CD) 한 장」이 불러왔다.이런 점에서 『한국과 쌍무문제가 늘고 있다』는 바세프스키의 불만을 가볍게 흘려버리기는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고위 관리는 얼마 전 『한국과의 양자협상이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말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한미간의 통상현안은 육류 자동차 지적재산권 문제 등이다. 육류문제는 미 육류업계가 통상법 301조를 걸어 청원한 내용이 현안이다.냉동가열 소시지 및 진공 포장된 신선냉장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유통기한 연장,수입육의 검사기간 단축이 골자이다.우리 정부가 문제의 소시지 유통기한을 90일로 늘렸지만 미 업계의 요구강도는 여전히 높다. 자동차의 경우 정부는 지난 해 관세 인하(10%→8%),취득세 중과조항 폐지(7천만원 이상 15%),형식승인 축소 등 미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그럼에도 미국은 관세를 2.5%까지 내리고 특별소비세와 등록세,지하철 공채매입 제도의 개편까지 요구한다. 미·중 무역전쟁의 불씨가 된 지적재산권 분야에도 현안은 있다.미국은 우리의 지적재산권 보호노력을 평가하면서도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가 여전하고 반도체 칩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또 88년 양국이 합의한 담배 양해각서를 한국이 개정을 요청한 데 대해서도 외국산 담배에 높은 관세를 물리려 한다며 자동차 및 육류문제와 싸잡아 WTO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이다.전기통신장비의 형식승인 문제,애완동물용 사료수입 제재 등 작은 현안들도 많다. 박재윤 통상산업부 장관은 오는 13일 워싱턴에서 미키 캔터 미 USTR 대표를 만난다.신뢰구축을 위한 의례성 방문이지만 통상현안이 자연스럽게 거론될 전망이다. 통상부의 관계자는 『통상책임자 교체로 미국과 합의가 잘 지켜지지 않거나 애매한 표현 때문에 나중에 마찰이 심화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설득력있는 자료와 논리로 협상하되 합의 내용은 반드시 지킴으로써 불필요한 마찰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진보­퇴행 국가」로 이원화/독 언론인 좀머,「냉전종식 5년」진단

    ◎유럽­미주­아태 경제통합·중동평화 “합창”/종교·민족분쟁지역선 자원파괴­낭비 심각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 테오 좀머씨(독일 차이트지 공동발행인)는 6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냉전후 세계는 2분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진보의 나라」와 「퇴행하는 나라」로 분화되고 있는 가운데 신질서의 형성은 어려운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다음은 좀머씨 기고문의 요약이다. 5년전 냉전의 종결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프랜시스 후쿠야마와 같은 예언자는 밝은 모습으로 「역사의 종언」을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새로운 긴장의 불씨가 여기저기서 출현했다.민족적 열기와 종교적 원리주의에 자극받은 공격적 내셔널리즘이 대두됐다.94년은 환멸·붕괴 ·절망의 해였는가,진보와 공동성장·희망의 해였는가. 비관론자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많다.유럽의 안마당인 보스니아가 킬링필드화하는 등 50여곳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1914년의 사라예보와 달리 94년의 사라예보는 유럽의 전쟁으로 연결되고 있지 않다.강대국 외교는 성공했다.이슬람원리주의의 위협도 지중해를 넘어서는 대규모 난민의 흐름을 발생시킬 정도는 아니다.유럽,미주,아·태협력체(APEC) 여러나라에서는 통합의 움직임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중국·인도등도 진보하는 국가에 들어간다. 퇴행하는 국가로는 아프리카등 개발도상국을 꼽을 수 있다.구소련의 남부 공화국들은 진보와 퇴행의 가운데 놓여있다.중동도 평화의 움직임이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고 한반도도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영속적인 데탕트를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공산주의가 몰락한지 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2분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한쪽은 희망의 과실을 향수하고 사태가 개선되고 있으며 노력을 기울일 가치있는 목표도 있다.다른 한쪽은 절망에 닫혀 있다. 이러한 분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앞으로 수십년동안 2개의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는 점이다. 현대적인 세계에서 여러나라의 부는 증대하고 각국은 마찰을 빚으면서도 전쟁은 포기하게 될 것이다.협력,네트워크화,상호의존의 증대가 예견된다.새로운 패턴의 통합이 다양한 주권형태,다양한 동맹관계의 진화를 촉진할 것이다.여기에 역행하는 세계는 흘러드는 부가 민족중심주의에 의해 낭비될 것이다.무력충돌이 평화창조의 본능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첫째는 즉효약은 없다는 것이다.둘째는 어떤 종류의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셋째로는 서둘러서는 일을 그르친다는 것이다.현재의 불투명한 상황을 참고 견디며 미래에의 길을 탐색해 나가는 데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걸릴 것이다. 94년을 지나면서 나에게는 3가지 생각이 자리잡게 됐다. 첫째는 5년전 베를린장벽의 붕괴는 단순히 철의 장막이 걷힌 것뿐만이 아니고 서방측 민주주의의 진화를 다시 시작하도록 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이 진화는 냉전기간동안 정지돼 있었다.변화는 일본 이탈리아뿐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둘째로는 신질서의 모색은 어려운 일임이 이해되게 됐다.유엔이 분쟁지역 어디든지 개입할 수는 없다.유엔의 개입은 성공보다도 실패로 끝나는 쪽이 많다.국제사회는 평화유지활동에 참가할 의욕도 없고 힘도 없다. 셋째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주의 세계는 냉전기간동안 성공을 가져다준 지도원칙을 상기해 두는 것이 좋다.그것은 침략적 의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억지력을 구축하는 것,비참한 생활을 경감하기 위해 가능한 어디든지 인도적 원조를 행할 것,자유의 영역을 힘으로 확대하지 말고 물 표면의 기름처럼 부드럽게 퍼져 나가도록 한다는 것등이다. 이러한 생각은 89년당시 우리가 품었던 높은 희망에는 못미치는지 모른다.그러나 2분화의 시대에 이상주의적인 창조력의 산물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지도원칙이 바람직하다.현재의 세계에서는 낮은 자세로 땅에 발을 붙이고 실무적인 어프로치를 하는 쪽이 실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 아우슈비츠(임춘웅칼럼)

    지난 1주 여동안 우리는 다시 보고싶지 않은 장면과 기억하고 싶지않은 이야기들을 다시 되새기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비록 반세기전의 일이라고는 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으며 우리와 같은 형상을 한 인간들이 무슨짓을 할 수 있는가를 새삼 일깨워주는 일들이었다. 1월 27일은 1백50여만명의 생명을 살륙한 인간도살장 아우슈비츠가 해방된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50주년을 맞아 세계의 매스컴들이 아우슈비츠특집을 했던 것이다.발가벗긴채 줄을지어 가스실로 끌려가는 유태인들,피골이 상접한 포로들의 절망적인 모습,머리를 박박깎은 수용소의 여인들,철조망을 붙잡고 늘어선 눈만 동그란 어린이들,이런 처절한 모습들을 담은 사진과 기사들을 다시 보아야 했던 것이다.그중에도 가스실에서 죽은 수많은 알몸시체들을 가득 실은 트럭이 시체화장실 화덕 입구에 서있는 한장의 사진은 우리가 과연 문명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했다. 폴란드의 독일인접 국경지역에 위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본시 독일군이폴란드를 점령한후 폴란드의 레지스탕스들을 수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그후 유태인들을 학살키로 작정하면서 독일이 점령한 모든 지역의 유태인들을 집단살륙한 인간 원죄의 현장이 된 것이다. 아우슈비츠는 나치가 운영한 6개의 수용소중 하나다.고문·기아·가스실집단살해,생체실험등 갖은 만행의 현장인 아우슈비츠가 유태인과연관되는것은이곳희생자중유태인이90%를차지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아우슈비츠의 충격으로 고통속에 여생을 살았거나 살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아우슈비츠에서의 생존」의 저자가 훗날 자살하고 말았으며 이곳에서 풀려난 유태인철학자 한사람도 끝내 스스로 목슴을 끊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전 일본에서 기괴한 일이 일어났다.문예춘추사가 발행하는 월간 「마르코 폴로」지가 2월호에 「나치의 가스실은 없었다」는 글을 실었다가 폐간되는 사태다.너무나 명백한 사실도 아니라고 우기는 비이성적인 인간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세상사는 경험을 통해 누구나 알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권위있는 문예춘추사가 발행하는 잡지에 이런글이 실렸다는 것은 단순한 실수라고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본인들이 2차대전중 점령지에서 저지른 수없는 만행이 독일인들의 아우슈비츠에 못지 않았다는 것은 다아는 사실이다.그런데 스스로 저지른 범죄를 역사적으로 소화하는 방식에서 두나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왔다. 독일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런일이 또는 없도록 후손들을 교육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끝까지 부인하고 철저히 은폐하려 해왔다.이제는 독일의 범죄까지 비호하고 나선 것이다. 독일 사람과 일본인의 차이다.
  • 「시대흐름 읽은 통찰력」일 부흥 일궜다(신 지도자론:4)

    ◎21세기 선진한국 이끌 리더십/새진로 찾는 일본/「군사력없는 경제대국」 국가목표 설정/요시다/보수화 국제조류 타고 “정치대국”발진/나카소네/「록히드」등 정치자금 스캔들 사회자정 계기로 일본은 역사의 적응력이 가장 뛰어난 국가중의 하나이다.시대의 흐름을 국가발전에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그러한 능력은 세계정세의 변화를 읽는 지도자의 통찰력과 국민의 단합된 힘의 합작품이다. 일본이 전후 반세기만에 세계적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원동력도 시대변화에 대응한 지도자의 정책과 그것을 충실히 실행한 국민의 힘이었다.그 대표적인 지도자가 요시다 시게루.요시다는 참담한 패전의 절망속에서 오늘의 일본을 있게 한 탁월한 지도자였다.46년부터 54년까지 5차례의 총리를 역임한 요시다는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이라는 국가목표를 설정했다. 그는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경제건설에 집중 투자했다.요시다는 전후 일본이 필요한 것은 경제부흥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그의 전략적 선택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은 올바른 판단으로 평가받고 있다.요시다는 미·소냉전속에서 미국과 안보조약을 체결,안보는 미국의 맡기고 오로지 경제발전에 전념했다. 요시다는 그러나 경제지상주의자는 아니었다.그는 열렬한 천황숭배주의자였으며 그의 저서 「세계와 일본」에서 『당시 일본이 재무장하는 것은 경제적·사상적·사회적으로 불가능했다.그러나 국가의 안보를 언제까지라도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요시다는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 가를 냉철하게 읽고 경제지상주의 전략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그의 선택은 결국 주어진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통찰력 있는 선택이었으며 전후 전혀 새로운 상황은 통찰력과 뚝심있는 요시다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요시다의 뒤를 이어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총리 등도 「군사력 없는 경제대국」 전략을 충실히 실행해왔다.국가주의 신본자인 기시총리는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했다.일본지도자들은 전후 기술과 시장을 함께 제공한 미국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시다이후 70년대 가장 강력한 정치지도력을 발휘한 지도자는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였다.그는 「결단과 실행」의 정치인 답게 「일본개조론」을 내세우며 전 국토의 개발이라는 과감한 성장정책을 추진했다.그의 개발론은 부동산 폭등이라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일본경제를 더욱 부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다나카는 또 외교에도 과감했다.미국이 중국과 국교정상화 움직임을 보이자 「컴퓨터가 장착된 불도저」라는 별명에 걸맞게 84일만에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다나카는 중국의 중요성을 잘알고 있었다.물론 다른 지도자들도 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 차지하는 무거운 비중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다나카는 그러나 과거사문제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었지만 과감하게 정상화를 이루어 지도자의 결단력의 중요함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 청렴성이 부족했다.그는 개발이익을 정치자금과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더욱이 「록히드 사건」으로 기소되는 불행을 맞았다.많은 일본인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쓸쓸히 사라진 그의 비극은 정치가에게 도덕성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세계정치에 보수화물결이 나타나자 일본에서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한다.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일본이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며 민족적 자신감이 되살아나는 사회분위기속에서 나카소네는 일본의 보수정치를 선도했다.나카소네는 레이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무대에서 정치력을 높혔다.나카소네는 전후 일본이 고수해왔던 평화주의를 부분적으로 거부하고 군비증강을 시도했다.그의 정책은 내외에 적지않은 비판을 받았으나 그는 지금의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위해 발진할 때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일본정치에는 고질적인 정치자금 스캔들이 반복됐다.다나카 뿐만아니라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도 정치자금 스캔들로 사임했고 마야자와 기이치 총리도 스캔들에 연루됐다.정치자금 스캔들은 그러나 일본사회를 정화하는 중요한 자정의 계기가 됐다.일본인들도 고도성장기에는 정치자금 스캔들을 어느정도 묵인했지만 21세기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깨끗한 정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배경으로 나타난 지도자가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였다.그는 참신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국민들의 높은 인기속에 정치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그러나 호소카와도 정치자금의혹에 연루되며 8개월 만에 총리를 사임하지 않으면 안됐다.그러나 호소카와가 추진한 정치개혁은 단순히 깨끗한 정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더욱 중요한 것은 21세기 일본이 급변하는 세계정세속에 살아남기위한 국가개조의 시작인 것이다.일본은 지금 정치적 혼돈속에서 새로운 국가진로를 모색하고 있다.일본은 전후 경제제일주의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경제신화를 이룩하고 지금은 경제력을 정치력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그러나 정치적 혼돈은 그러한 실험이 아직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일본은 새로운 국가진로를 위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낼수 있는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는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잘 조화시킬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 같다.
  • 새해 시단에 거센 여성파워/작가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세계 구축

    ◎황인숙·정은숙·최정례·정화진씨 새시집 선보여/섬세한 감성·필력으로 다양한 삶 노래 새해 시단에 여성시인들의 시집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황인숙씨의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와 민음사에서 각각 출간된 정은숙씨의 「비밀을 사랑한 이유」,최정례씨의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정화진씨의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가 그것으로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들 시집들은 여성시인들이 갖는 섬세함을 무기로 다양한 삶의 경험과 의식을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하며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해 보이고 있다.황인숙의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와 정은숙의 「비밀을 사랑한 이유」가 현실세계와 맞부딪치면서 겪은 시인의 고통을 외부적으로 표출하며 세상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있다면 최정례의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과 정화진의 「고요한 동백을 품은 바다가 있다」는 과거의 고통스런 기억을 시인의 내면에 침전시키고 이를 승화시키는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우리는 철새…」는훼손된 바깥세상과 대결하는 시인의 치열함이 돋보이는 시집이다.『…/아,다시 봄이라는데/갈라진 마음은 언청이라서/휘파람을 불 수 없다』(「사랑의 구개」중) 척박하고 황폐한 세상과의 전면적인 대결 앞에서 시인은 때로 절망하고 좌절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우리」와 「내면」의 힘을 새로 깨닫고 꿈속에서도 세상과의 싸움을 그치지 않는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문학평론가 성민엽). 발랄함이 전편에 배어있는 「비밀을 사랑…」은 역시 세상과의 불화가 기본틀이지만 화해의 여지가 아직 남아있다.세상의 억압은 시인에게 자의식의 고뇌를 느끼게 하지만 시인은 때로 유부남과의 사랑 등 위반을 꿈꾸면서 현실을 견디어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시인 김승희).일탈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삶을 통해 역설적으로 현실의 억압을 고발하는 시집인 셈이다. 늦깍이 시인 최정례씨(40)의 첫 시집인 「내 귓속의…」는 시골에서의 어린시절,언니의 죽음 등 시인의 과거와 밀착되어 있다.그 과거는 시인으로 하여금 순수에의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한편현실적으로 삶의 고통과 연결되어 서글픈 인간의 실존을 노래하게 만든다.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지만 그 노래는 부드럽게 들린다.이같은 부드러움이야말로 과거를 게워내고 시인의 새출발을 가능토록 한다는 게 평자들의 분석. 정화진의 「고요한 동백…」 역시 유년기의 상처를 보듬고 세상과 마주친 시인의 암울한 심정을 노래한 시집이다.대부분의 시편에서 시인의 절망과 막막함을 비·강·바다 등 비의 이미지를 빌어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끼루룩 죽어간 혼들이 갈매기떼로/그 검은 무대 위에 뜬다/핏빛 동백 한 송이가 물의 끝가지 위에서 피어 올랐다』(「동백 그리고 기이한 바다」중)처럼 동백의 이미지를 빌어 시인이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다.
  • “신세계 열자” 상업성 벗기 힘찬 몸짓(브로드웨이 “새바람”:1)

    ◎뮤지컬·미술·춤·패션… 창조의 수도/1백년 영화거부,인간성 회복 도전/문화·경제적 흡인력 바탕…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매김 미국의 심장이자 세계의 심장을 자처하는 뉴욕 맨해튼의 브로드웨이에 새시대를 맞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세계금융의 중심인 월스트리트를 시발로 하고 있는 브로드웨이는 1894년 첫 뮤지컬 아도니스의 대히트 이래 미술·건축·뮤지컬·영화·오페라등을 꽃피우며 「20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아 왔다.이제 1995년으로 문화의 꽃밭으로서 새세기의 원년을 맞은 브로드웨이.그 약동의 현장을 나윤도 뉴욕특파원의 취재로 약 20회에 걸쳐 싣는다. 『나를 살게 해주오 모든 불빛이 붉게 빛나는 브로드웨이에/오가는 사람 모두가 행복에 넘쳐 보이는 그곳에/사람들은 어리석은 꿈을 말하며 그 꿈의 실현을 기도하는/꿈이 헛됨을 알아도 결코 떠날수 없는 마을에//브로드웨이 불빛마다에 상심한 가슴들이 달려있고/불빛들은 수많은 슬픔을 이야기 하네/머리위의 불빛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을/무엇인가를 갚아야 할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인데』(하워드 존슨 「브로드웨이 불빛」) 브로드웨이의 새세기는 서설로 시작된다.세계인의 꿈과 기대,사랑과 동경,그리고 이별과 슬픔,절망과 좌절을 한데 받아온 브로드웨이 1백년을 「아메리칸 드림의 부활」로 승화시키는 대서사시의 첫장은 현란한 불빛보다도 고즈너기 내려앉아 제막을 기다리는 하얀 광목천 처럼 소담스런 백설축제로 와닿는다. ○정형의 구속 거부 새세기를 여는 오늘 브로드웨이의 첫아침은 지난 1백년의 역사를 거부한다.상업성을 지상최고의 덕목으로 쌓아온 브로드웨이의 영화(영화)는 또 하나의 바벨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뮤지컬 1백년,영화 1백년으로 응축돼온 브로드웨이에 『인간은 어디로 갔는가』의 외침이 메아리져 온다.그러나 새세기는 인간상실에서 벗어날 설렘에서 어느때 보다 힘찬 발걸음으로 다가온다.신성과 인간의 모독을 청산하고 신성과 인간의 경건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의 남쪽끝 배터리파크에서 북으로 북으로 뻗어올라가 맨해튼섬을 종단하여 브롱스까지 30여㎞ 길이로 이어져 있으며 지난 1백년동안 수많은 가지에 자양분을 공급해온 맨해튼의 척추이자 뉴욕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브로드웨이는 그 길의 생김새부터 정형의 구속을 거부하고 변형의 자유를 추구한다.남북으로 뻗은 애브뉴와 동서로 뻗은 스트리트로 바둑판 처럼 구획된 맨해튼 한복판을 굽이굽이 헤치며 남북으로 달리는 브로드웨이는 많은 애브뉴들과 만나면서 스퀘어(광장)라는 독특한 공간을 창출해왔다. 이는 결국 도전의 역사이고 그 숱한 도전 속에서도 브로드웨이는 새로운 만남에 대해 질시와 반목보다는 관용과 융화를 통해 거대한 용광로처럼 포용해 나감으로써 브로드웨이의 신화를 만들어왔다. 자유의 여신상을 마주하는 배터리파크 북쪽의 1번지 「볼링 그린」공원을 출발한 브로드웨이는 왼쪽으로는 월드트레이드센터,오른쪽으로는 월스트리트를 거느리며 국제 금융의 중심가로 당당하게 시청앞 광장까지 북상한다. 여기서 브로드웨이는 미술의 거리이자 패션의 발상지인 소호로부터 첫번째 도전에 직면한다.차이나타운과 리틀 이태리도 작은 도전이다.미로처럼 퍼져나간 구시가의 골목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는 도전을 모두 포용하여 브로드웨이는 4번가와 만나는 워싱턴 스퀘어에서 하나의 용광로를 이룬다. 히피들의 퍼포먼스 혹은 반전주의자들의 반전집회는 물론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한 스트리트 퍼포먼스의 본고장인 워싱턴 스퀘어는 백남준의 굿판을 주제로한 비디오 아트 예술도 훌륭하게 융화시킨다. 워싱턴 스퀘어를 떠나 또 북상하던 브로드웨이는 예술의 도시 그리니치빌리지를 지나며 14번가에서 파크애브뉴(4th.)와 만난다.이는 두번째 도전이며 거대한 유니언 스퀘어를 만들어낸다.이어서 23번가에서는 세번째 도전인 피프스(5th.)애브뉴와의 만남이 이뤄지며 여기서 만들어진 매디슨 스퀘어는 남부 브로드웨이 최대 오아시스인 메디슨 스퀘어 파크를 이루고 있다. ○수많은 인파 몰려 네번째 도전은 아메리카스 애브뉴(6th.)와 만나는 34번가에서 이뤄지며 헤럴드 스퀘어를 창출한다.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맨해튼 상업문화의 표본인 메이시백화점의 생스기빙(추수감사절) 퍼레이드의 종점이기도 하다. 다섯번째 도전은 브로드웨이에 가장 큰 충격을 주었으며 세븐스(7th.)애브뉴와 만나는 42번가의 타임스 스퀘어가 바로 그 현장이다.맨해튼의 40여개에 달하는 뮤지컬극장이 몰려있는 이곳은 브로드웨이 생명력의 원천으로 늘 수많은 인파로 밤낮없이 북적댄다. 여섯번째 도전은 에잇스(8th.)애브뉴와 만나는 59번가로 맨해튼 최대의 오아시스인 센트럴파크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한 이곳에는 콜럼버스 동상이 높이 받들어진 콜럼버스서클이 자리잡고 있으며 교통의 요지를 이루고 있다. 일곱번째 도전은 콜럼버스 애브뉴(9th.)와 만나는 65번가에 위치한 링컨 스퀘어에서 이뤄진다.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뉴욕주립극장을 비롯,줄리어드음대 등으로 구성된 링컨센터는 타임스 스퀘어의 뮤지컬에 비길수 있는 미국음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덟번째 도전은 암스테르담 애브뉴(10th.)와 만나는 72번가로 이탈리아 음악가 베르디의 동상이 서있어 베르디 스퀘어라고 불린다.부근에 미국자연사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으며 바브라 스트라이센드,아놀드 슈와르제네거등 수많은 인기스타들이 몰려 살고 있다. 브로드웨이는 베르디 스퀘어를 지난후에는 107번가에서 웨스트엔드애브뉴(11th.)와 만나면서 줄곧 함께 올라간다.모닝사이드 하이츠라는 지역으로 불리는 이곳은 콜럼비아대학이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브로드웨이의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학구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어서 브로드웨이는 할렘의 중심가인 125번가와 만나 랩과 힙합등 흑인음악과 만난후 줄곧 북상하여 168가에서 세인트 니콜러스 애브뉴와 만나면서 미첼 스퀘어를 형성한후 폭도 좁아지고 조용한 거리로 변하여 브롱스로 연결된다.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모여들게 하는 브로드웨이의 엄청난 흡인력은 오늘날 맨해튼을 인간의 창조력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들의 수도로 만들었다.뮤지컬의 수도,오페라의 수도,출판의 수도,건축의 수도,미술의 수도,박물관의 수도,고전음악의 수도,춤의 수도, 재즈의 수도, 패션의 수도, 광고의 수도, 금융의 수도, 법률의 수도, 경영의 수도, 신문의 수도, 잡지의 수도가 되고 있으며 또 다이아몬드의 수도, 레스토랑의 수도이기도 하다.혼잡함의 수도,범죄의 수도,세금의 수도,오만의 수도,경멸의 수도등 악명도 따라다닌다. ○상업주의 중병 앓아 맨해튼이 이같은 수도로서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17세기 중반 신성모독의 도시로 신대륙의 타도시들과 차별화되면서부터였다.청교도의 도시 보스턴, 퀘이커의 도시 필라델피아에서 볼때 맨해튼섬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건설한 뉴암스테르담은 신성보다도 이윤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신성모독의 수도였던 것이다. 1643년의 한 선교보고서에는 당시 뉴암스테르담의 5백명 거주자들의 언어가 18개에 달할 정도로 뉴암스테르담은 국제적 성격을 띠고 있었으며 이들의 유일한 공통가치는 상업이윤이었다고 적혀 있다. 그후 17세기말 네덜란드 세력이 밀려나고 영국의 지배권이 강화되면서 맨해튼은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으로 이름이 바뀌고 해적의 수도로 변모했다.당시 부패한 영국 총독은 세계각국의 보화를 강탈해 오도록 해적활동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이후 맨해튼은 조선의 수도,산업의 수도로 발전해왔으며 1830년 대에는 금융의 수도로,1860년 대에는 공업의 수도로,19세기말에는 문화의 수도로 변해왔다.2차대전 이후에는 유럽세의 약화로 맨해튼은 유엔의 수도가 되면서 명실공히 세계의 수도로 등장했다.그러나 극도의 상업주의를 바탕으로 구축된 맨해튼은 최근 십수년간은 세기말의 중증을 앓아왔다. 이제 새세기를 맞는 맨해튼은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인간을 회복하는 인간의 수도로,절망의 도시가 아니라 소망의 도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새해아침 브로드웨이는 누구보다 먼저 스스로 잠에서 깨어나 서설의 의미를 깨닫는다.이제 브로드웨이 구석구석을 찾아 심연에서 우러 나오고 있는 재탄생의 벅찬 고동과 몸짓을 생생하게 독자들과 함께 느끼고 싶다.
  • 아들에게/윤대녕 소설가(굄돌)

    일곱살 난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알레르기성 천식으로 정기적으로 면역주사를 맞혀야만 하는 것이다.병원으로 가면서 나는 문득 아들녀석의 할아버지인,즉 내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내 아버지도 오로지 자식 때문에 평생 자기 몫의 생이라는 것을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가정 형편도 넉넉한 편이 못 되어서 그야말로 「노동」그 자체로 살아온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그 「거룩한 자」의 자식인 나는 과연 어떠했던가.아버지의 기대와 희망을 그야말로 열심히 배반하며 살아왔다.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나도 결혼을 하고 마침내는 자식을 거느린 아비가 되었다.이제와서 나는 부모자식간의 생리랄까 그 모면할 수 없는 관계에 대해 가끔 생각해 보곤 한다. 모든 자식들의 성장이란 결국 제 아비(부모)를 끝없이 배반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기어이 부모의 품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 자체라고 봐도 옳다.그런 다음 먼 세월이 지나,돌아오기도 힘든 거리에 있게 되면 비로소 내 아비가 내 시작의 전부임을 깨닫게 된다. 아들아,나는 지금 네작고 보드라운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생각한다.내가 그러했듯 너도 이제부터 아버지인 나를 거듭거듭 배반하겠지.그리고 나는 그 배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묵묵히 받아들여야만 하겠지.그건 바로 네가 성장해간다는 증거이고 또 네 갈 길을 부지런히 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하지만 이 젊은 아비는 벌써부터 외롭구나.이제부터 너는 떠나기 시작해 내 머리가 희어질 때쯤에나 돌아올 터이니.한데 그건 얼마나 늦은 때인 것이냐.그래,어느 먼 훗날에 너도 나를 조금은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그리고 너도 나처럼 아버지 없는 세상을 미리 생각하곤 캄캄하게 절망하게 되겠지. 그러나 부디 너는 네 갈 길로 혼자 가거라.결코 아비가 놓아둔 다리로 세상을 건너지는 말거라.너무 자주 아버지인 나를 배반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 광복 50년/양국 유학생들이 본 「갈등의 골」 극복 방안

    ◎“세계화시대… 한일 「협력의 폭」 넓히자” 올해는 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 그동안 한·일간에는 과거사문제등 많은 현안을 두러싼 갈등과 대립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과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정립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및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 와있는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어본다. ◎서울의 일본 학생들/「과거사」에 얽매여 대일비난 하는데 당혹감/일은 진정으로 과거청산… 양국우호 힘쓸때 ▲요리타 다케시(33·서울대 보건대학원·교토대 교육심리학과졸)=한국은 일본의 이웃에 있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국가라고 처음에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나병실태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깊고 활력과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솔직한 표현에서는 인간미를 느낄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또 일본을 감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기업관계자들중에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난 여름 독립기념관에 갔을때 어린이의 손을 잡고 온 어른들이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한일간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까지 느꼈다. ▲고무라 가오리(31·한양대 국악과대학원·한양대 국악과졸)=한국의 판소리,사물놀이,창극등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은 알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국악속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활기찬 나라이며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않는 대륙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특히 일본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강하며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나치게 비난 할 때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일본은 물론 과거청산을 하여야하지만 한국도 지나치게 과거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경우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결국은 지게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보다 강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대범해져야하며 넓은 세계적 시각으로 양국관계를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우치 아키라(27·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와세다대 인간과학대졸)=중학교때 재일한국인에 대해 알고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신문·방송등을 통해 한국을 알았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강한 전통적인 유고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와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같은 사실이라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나 히로시마 아세안게임 보도를 볼때 마치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일본을 꺾었다는 등 일본과의 대전을 중심으로 쓰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식이 강한 것 같다. ▲고가 사토시(31·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주오대 사회학과졸)=국민학교 6학년때 옆반에 있던 재일한국인을 친구로 사귄후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한국에 온후 많은 친구도 사귀고 한국문화도 접할수 있어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한국사람들은 개성적이며 친구가 되면 매우 친절하다. 한국은 21세기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것들을 보며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또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비판이 조금은 약한것 같다. 물론 일본도 과거문제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점이 있으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세타니 도모오(32·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고베대 경영학과졸)=백제의 관계가 깊었던 나라현에서 자라며 한국및 중국등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은 처음에 완고한 유교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와보니 한락가가 있는등 어느면에서는 성에 대해 노골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사귈때 일본사람들과는 달리 거리를 두지않고 지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보고 유감스러웠다.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그책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썼다면 하나의 좋은 충고가 될수 있으나 한국인이 일본을 이해하는데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과거청산을 하여야하며 개인보상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과거침략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등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도쿄의 한국 학생들/감정적 일본혐오 벗어나 객관 인식 바람직/문화·경제장점 서로 배워 공동이익 창출을 ▲채원호(33·도쿄대 대학원 행정학과졸)=올해는 한국으로서는 해방 50년,일본으로서는 패전 50년이 되는 해다.일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도 이웃한 나라라는 숙명적 관계에 있는 나라다.앞으로 국제화·개방화·지역경제의 블록화등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은 양국의 교류 및 협력관계를 더욱 요구할 것이다.과거의 식민통치 경험이 일본의 한국에 관한 지식의 축적을 가져 왔다면 해방후 일본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빨리 잊고 싶은 망각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돼야 하는 일본연구는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인식의 틀에서 활발한 일본연구가 필요하며 양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물리는 분야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박종문(31·와세다대 경제학과 대학원·연세대 경영학과졸)=대학시절 민주화를 둘러싼 학생들과 정권의 주장이 맞서고 있을 때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열등한 나라다』라고 배워왔기에 그 말이 사실인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일 뿐』이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일본이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에 못미친다는 말은 거짓이다.정신적인 선진성없이 경제의 선진화는 이룩될 수 없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이유없는 반일감정,이유없는 일본 멸시언행은 우리를 영원히 일본과 같은 선진대열에 끼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김기석(34·와세다대 경영학과 대학원·동아대 화공과졸)=일본식 경영법을 만들어 낸 일본의 사회·문화·윤리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사회가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한일관계를 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역사문제·종군위안부 문제등은 물론 일본이 원인제공을 했지만 처리과정에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확실히 일본에도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아직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이성보다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한 이런 책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져와 일본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바람직한 한일우호관계를 위해서는 지도층의 교류보다 최근 활발해진 시민단체등의 상호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경순(27·여·조지대 신문학과 대학원·추계예술대문예창작과졸)=한국은 오랜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에 대한 연구나 인식이 빈약하다고 느껴진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외국인에 대한 차별등이 엄존한다.지나친 풍요로움에 때론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저력은 막강하다.일본은 외국문화의 흡수력이 대단하며 외래어를 단순하게 일본어화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일본은 또 공공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어 시간계산을 잘하면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더욱이 정보화·산업화 과정은 과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같은 문화권안에 있지만 너무도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양국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재육성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직·구성의 마련이다. ▲김정준(35·도쿄대 공학부 대학원·서울대 공업화학과졸)=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국민의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보다는 이성적 보도가 필요하다.반복되는 일본 지도층의 망언에 대해서도 매번 흥분할 것이 아니라 배경과 진원지를 분석해 주면 좋겠다. 양국간에는 직접적인 경험과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와 함께 문화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김치를 먹고 치마저고리를 입는 분단된 나라」,「스시(생선초밥)와 기모노의 나라」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도 생활양식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음악·연극등 문화교류가 필요하다.우리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일본문화에 빠져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의 너무 많은 책들이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을 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한국은 일본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며 국제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감각을 가져 상대방에게 매력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증인 보복살인극(94년/충격의 365일:3)

    ◎“우리가정 이젠 누가 돌보나요”/머리 맞아 불구된 아내 병원비 막막/「제2의 희생」없게 신변보호 강화를 『단순하게 생각한 법정증인 출석이 이처럼 큰 고통을 가져다 줄지는 정말 몰랐습니다.보복살인이라니요.그것도 아무 죄없는 어린 아들과 아내를…』 「지존파 연쇄살인사건」등 잇따른 강력범죄로 불안이 높아지고 있던 지난 10월 초순 경기도 수원에서는 법정증인가족을 대상으로 한 희대의 보복살인극이 벌어져 또 한번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4년전 강간피의자에 대한 불리한 법정증언이 불씨가 된 이 보복살인극의 피해자 김만재(김만재·38·경기도 수원시 파장동)씨 일가는 이날 이후 계속되는 악몽과 허탈감에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범인 김경록(27)에게 아들 현(11)이를 잃었고 머리를 다친 부인 김순남(37)씨마저 여전히 반신불수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법정증인 출석의 어리석음을 곱씹고 후회하며 딸 유미(13·국교6년),어머니 정진순(66)씨와 함께 부인을 간호하는일이 전부다. 트럭을 직접 운전해 상품을 나르던 생업마저 마음이 안잡혀 그만 두었고 병원비가 걱정이 돼 아내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가끔씩 일당을 받고 품일도 나가보지만 쉬운일은 아니다. 『사건 이후 가장 허탈했을 때는 범인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을 때였습니다.딸과 함께 두려움에 떨며 파출소에서 보호를 받으면서도 직접 만나 그토록 원한에 사무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우리가족에게 남은 한은 어디서 풀어야 하겠습니까』 그 한을 풀기 위해 범인가족들을 상대로 또 다른 보복도 생각해보았다는 김씨의 모습에서 보복살인의 잔인성이 새삼 느껴져 온다. 그의 모습에서 보듯 이 보복살인극은 법정증인들이 범죄에서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많은 사건에서 입증됐듯이 날뛰는 범죄를 잡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용기있는 고발과 증언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이처럼 범죄피해자나 신고인들이 범죄자들의 보복대상으로 노출되는 상황은 치안의 위기상황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물론 범죄신고자 보호와 범죄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증인에 대한 신변안전조치」가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돼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규정에 그쳤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었다. 증인들에 대한 신분보장과 비공개증언 등 제도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처럼 얼마든지 김씨와 같은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무방비상태에서 피해자들이 갖는 또 다른 고통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피해를 보상해줄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김씨는 편의주의적인 법정증인문제에 화살을 돌린다. 『자신들이 불러 증언을 하도록 한 증인가족들이 절망속에 빠져 있는데도 검찰은 물론 법원에서 조차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불구가 되는 정신적인 충격뿐 아니라 아내의 병원비를 물어야 하는 물질적인 피해까지도 자신의 몫이 돼버린 그는 얼마전 청와대와 법무부에 이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냈다.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내용과 함께.
  • 외채·인플레 “해방”/중남미경제 되살아난다(현장 세계경제)

    ◎브라질 인플레 월1∼3%로 진정/페루 성장률 12%… 평균3% 상회/통화긴축·무역자유화 주효… 해외자본 유입도 급증 공룡같은 외채와 인플레 압박에 오랫동안 숨이 막혔던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파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80년대는 중남미의 30여 모든 나라에게 「절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둠의 시대였다.1950년부터 80년까지 중남미 전지역은 연평균 5.5%의 우수한 경제성장률을 자랑했으나 계속된 정정불안과 국가경제 관리미숙으로 곧 구제할 길 없는 「제3세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정보불안으로 점철 초 인플레율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80년부터 90년 사이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브라질 2천7백50%,아르헨티나 3천80%,페루 7천5백%,볼리비아 1만1천8백%,니카라과 1만4천3백% 등이다.또 개도국의 외채는 81년 총 6천억달러에 이르러 10년새 6배로 불어났는데 중남미 제국들의 채무액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80년대 말경엔 중남미 각국에서 외국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원리금상환과 이익배당금으로 흘러나간 돈이무려 연 2천억달러를 넘어설 지경이었다.만성적 경기침체,대량실업,실질임금 감소로 점철된 80년대는 상실의 시대였으며 당연히 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의 1인당 평균소득은 10년 전 수준을 밑돈 형편이었다. 그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가 견실하게 되살아나는 중이다.브라질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평균 인플레 증가율이 30∼50%에 달했지만 지난 7월 새 통화단위와 함께 강력한 통화안정정책을 실시한 후 월 인플레가 1∼3%로 낮아졌다.지난해 1년새 물가가 10배 가까이 치솟은 브라질을 제외하고 경제 규모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할 경우,올 라틴아메리카의 물가는 12%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도 만만찮게 이루어지고 있다.중남미 전지역은 올해 3% 이상의 성장률을 4년 연속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특히 페루는 12%를 웃돌 것이며 아르헨티나는 6% 성장을 장담한다.멕시코의 세디요 새 대통령은 내년 4% 성장을 목표로 하고있고 브라질도 안정화시책이 자리잡히면 현재의 갑절인 7∼8% 경제성장이 확실시된다. ○브라질도 흑자 재정 한때 세계경제의 문제아였던 라틴아메리카가 「제3세계답지 않게」 이처럼 낮은 인플레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긴축재정·무역자유화·민영화로 연결되는 개혁시책을 끈기있게 추진한 결과이다.칠레와 콜롬비아가 이같은 개혁의 선두주자이며 브라질,베네수엘라,우루과이,에콰도르 등이 다소 뒤쳐져 있다. 멕시코는 87년 당시 중앙정부의 재정적자 누계가 GDP의 15%에 달했으나 91년부터 긴축예산으로 흑자재정을 달성,적자누계를 반으로 줄였다.아르헨티나가 지난해 이를 뒤따랐으며 브라질도 올해 흑자재정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자국산업 과보호와 수입품 고율관세 경향도 뚜렷이 퇴색했다.93년 현재 전지역의 평균관세가 12%로 2년 전의 26%보다 크게 낮아졌다.상호간 교역량 역시 급속히 늘어나 주요 11개국 사이의 무역이 89년 이후 배 이상 불어난 데 이어 전지역간 교역은 83년 70억달러에서 현재 2백60억달러로 급증했다. ○민영화 꾸준히 진행 정부재원을 풍부히 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국영기업 매각정책은 중남미 개혁의기치로서 지금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칠레와 멕시코는 거의 대부분의 국영기업을 민간에 팔았으며 아르헨티나는 원전,우체국,조폐공사,석유화학사 등 마지막 남은 정부기업마저 내년 안에 완전 매각할 계획이다. 해외자본 유입만큼 라틴아메리카의 달라진 모습과 높아진 위상을 반증하는 실례도 없을 것이다.국제채무 상환포기선언의 불명예와 그에따른 외국자본 단절로 압축되는 중남미의 「외채위기」는 4천9백억달러의 외채상존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거의 과거지사로 여겨진다.지난 90년부터 93년까지 라틴아메리카로 흘러온 해외자본의 순액은 1천7백억달러를 웃돌 뿐 아니라 외채적 성격이 짙은 상업차관은 단 5%에 불과하고 각국 유망산업과 기업에 대한 직·간접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옛 영화 되찾자” 힘찬 발진/메넴정부,무역·외환정책 획기적 전환/90∼94년 30%이상 성장… 세계3위 기록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는 「아르헨티나의 역설」이라는 조어를 낳았다. 20세기초 풍부한 광물자원과 농장을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무역규모 세계 10위의 아르헨티나가 근 1백년만에 완전히 피폐한 상태로 전락한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추진된 아르헨티나의 개혁작업으로 「군화발 자객」「고인플레」「보호주의」등의 오명과 함께 이같은 역설도 이젠 실효성을 잃을 것같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은 다시 소비열을 느끼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달러화시세를 전광판으로 즉시 게시한다.과거 정부와 가격인상을 위한 협의에만 능했던 기업인들은 마켓팅 방법을 논의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 모든 변화가 89년 「메시아」처럼 등장한 메넴정부가 이룩한 공적이다.그의 개혁정책을 떠받치는 3대지주는 수입관세인하와 비관세장벽 철폐로 시작된 경쟁도입이 그 하나요,연간 운영비로 수십억달러를 삼키던 공기업 민영화가 둘째다.메넴정부는 우편,항공,전기 등의 민영화로 2백40억달러를 조달했다.민영화는 외국인투자 러시를 촉발해 90∼93년 사이 무려 2백45억달러의 외자를 거두어 들였다. 세번째는「메네노믹스」로 불리는 외환정책이다.하버드대 경제학자 출신인 카발로를 재무장관으로 등용,자국통화인 페소와 달러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정한 이른바 「태환 플랜」이 그것이다. 이와같은 개혁정책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90년 이후 4년동안 30%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중국,태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80년대 연평균 4백%를 유지하다 90년 연간 2만%까지 치솟았던 인플레도 수그러들어 올해엔 4%를 맴돌고 있다.노동생산성도 91년 이후 42%나 증가해 메넴은 다른 나라가 20년 걸릴 일을 아르헨티나는 5년만에 해치웠다며 자신에 차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개발도상국으로 보는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아르헨티나는 「회복하는」국가라는 것이다.물론 이같은 회복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끄떡없이 견뎌냈던 아르헨티나는 49년부터 74년까지 집권한 후안 페론 정권 하에서 불구가 됐었다. 무모한 반미외교정책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고 국내의 계급투쟁으로 국민은 사분오열됐다.기업국유화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장벽은 국고를 탕진했다. 또 70년대초 군부와 좌익반군간에 벌어진 「더러운 전쟁」과 뒤이은 군부 쿠데타는 아르헨티나를 부패와 초고인플레 아래 허덕이게 했고 급기야 80년대 5백억달러 재산의 해외도피를 몰고왔다. 메넴정부의 「기적」은 암울한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다만 아직 부패척결과 공공부문의 개혁이 과제로 남아있고 폐소화의 평가절상으로 올해 60억달러까지 무역적자폭이 확대될 전망이어서 외환정책에 대한 요구도 만만치 않다.게다가 GDP의 17.6%에 불과한 저축률은 기업의 자본부족을 부채질하고 있어 메넴의 승리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미완의 혁명인 메네미즘이 「기적」이란 이름값을 할지 국제적 관심사이다.
  • 이창호/유시훈/연구생 시절 단짝·맞수(이창호와 유시훈:상)

    ◎안성문씨(패왕전필자)가 본 바둑세계/한­일 바둑계 라이벌로/이/7살에 입문,4년뒤 프로로… 성장속도 단연 두각/11살에 뛰어든 늦깎이… 스승 못찾아 중3때 도일/유/조훈현 내제자 된 「이」 일취월장… “호각” 균형 무너져 유시훈 6단이 도일 8년만에 일본의 5대타이틀전의 하나인 천원을 거머쥐며 일본바둑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다.일본바둑계는 유시훈을 「예고된 대기」라며 한국의 이창호를 능가할 활약을 그에게 걸고 있다.한·일 양국의 바둑계를 이끌어갈 기대가 2명의 한국인 청년에게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최근 일본에서 유시훈을 현지취재하고 돌아와 유시훈의 천원 획득 가능성을 낙관한 패왕전 필자 안성문씨의 글로 2회에 걸쳐 두 사람의 우정과 바둑수련일화,바둑세계등을 살펴본다. 현대바둑의 역사는 곧 라이벌의 역사다.사카다(판전영남)와 임해봉,조치훈과 고바야시(소림광일),조훈현과 서봉수 등등 시대를 점철하는 숱한 라이벌의 명승부를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열광했던가.이들로 인해 바둑계는 공전의 활력을 얻었고 내용 또한 충실해졌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제 현해탄을 마주하고 새로운 라이벌이 생기려 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준수한 용모의 유시훈과 퉁퉁한 체구에 졸린듯 멍한 눈을 하고 있는 이창호.이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딴판인 생김새만큼이나 사뭇 대조적이다. 전주의 시계점에서 태어난 이창호(19)는 7살때 바둑을 배워 11살에 프로에 입문했다.안동의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인 유시훈(23)은 11살때 뒤늦게 바둑을 배워 17살이 돼서야 프로가 됐다.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바둑을 배웠고 한국기원 연구생시절에는 둘도 없는 단짝으로 지냈지만 스타트나 성장속도면에서는 이창호쪽이 훨씬 빨랐다. 『참 이상한 일이었어요.오청원 선생이나 조훈현 9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제가 본 기재중에 창호같이 생긴 사람은 없었어요.어린애치고는 지나치게 의뭉한 것이… 외모만 놓고 본다면 시훈이 쪽이 훨씬 기재에 가까왔지요.그런데 막상 같이 연구생으로 출발하고 보니 창호 쪽이 신통하게도 한발짝 앞서가는 거예요.처음엔 「별일도 다 있구나」생각했었지요』 이창호의 두번째 스승인 동시에 유시훈을 가르치기도 한 전영선 6단의 회고다. 이창호는 출발부터 불가사의였다.타고난 노력가였고 승부가 끈질겼다.유시훈은 이 괴이한 후배를 이기기 위해 식사중에도 바둑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지만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84년 여름 이창호가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창호보다 4살 위지만 간발의 차이로 뒤져 있던 유시훈은 이창호의 연희동 입성에 아차하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다.유시훈의 집에서도 당연히 새로운 스승을 물색하기 시작했다.하나 이게 생각대로 잘 되지가 않았다.당시 제2인자인 서봉수 9단은 아직 제자를 받아들일 입장이 아니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는 사이 이창호는 비약적으로 강해져 1년후에는 연구생 가운데 최초로 1급이 됐다.그런대로 호각을 유지하던 두 사람의 성적도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조숙하고 자존심 강한 유시훈에게 이것은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절망감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그리하여 중3때인 86년 여름유시훈은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게 된다.
  • 인권의날 무궁화장 받은 이홍규옹/무료변론 29년 “법조인의 사표”

    ◎매주 한번 가난한 사람 찾아 법률상담/검사땐 유명한 「대쪽」… 「구속1호」 기록/이회창전총리 부친… 구순나이에도 턱걸이 30번 거뜬 『뚜렷이 내세울 만한 업적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큰 상을 받게 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재조와 재야법조계에서 근 반세기동안 인권신장에 힘써온 우리나라 법조사의 「산 증인」 이홍규(89)변호사가 10일 제46회 세계인권선언일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겸양의 말로 소감을 대신한 이변호사는 「호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쪽판사」로 세간에 알려진 이회창(59) 전총리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변호사는 40세의 「늦깎이」로 광주지검 검사에 임관,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이후 정년퇴임 때까지 광주세무서사건,장면부통령 저격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수사검사의 표상이 될만한 숱한 일화를 남겨 「대쪽 검사」라는 별칭을 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6·25 발발직후 청주지검 평검사 재직시 수사를 맡은 「충북도지사 횡령사건」.전쟁이 남긴폐허속에서 굶주리고 있는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미국의 구호물자를 당시 충북도지사가 빼돌려 착복한 사건이다. 즉각 수사에 착수했지만 일개 평검사의 「칼날」로써는 도저히 벨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구호물자를 횡령한 도지사가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미국에서부터 개인적으로 교분을 쌓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구속은 물론 아예 수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모가지」를 날리겠다는 압력이 연일 들어왔지요』 당시의 이검사는 그러나 은밀히 내사를 마치고 도지사를 구속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외압을 피하기 위해 구속한 당일 즉시 기소,법정에 세웠다. 이 사건외에도 부패로 점철된 자유당시절에 「윗사람」의 눈으로 봐선 달갑지 않은 처사를 한 탓으로 이변호사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50년 서울지검 재직시 좌우익 갈등속에서 무고한 시민을 풀어준게 꼬투리가 돼 반공법 위반혐의로 전격 구속됐던 것.건국후 현직 검사 「구속1호」를 기록한 셈이다. 『전기고문·물고문·잠안재우기고문 등 안 당해 본 게 없어요.정의가 썩은데 대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지요』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썩은 정권에 대한 염증과 회의에 사로잡힌 이변호사는 「정의구현을 위해 의지할 지주」를 찾아 카톨릭에 귀의,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검사생활 20년만인 65년 정년퇴임,변호사로 개업한뒤 29년동안 카톨릭법조인회 회장등을 역임하면서 매주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법률상담과 무료변론을 통해 서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옹호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변호사는 아들인 이전총리가 새정부 들어 감사원장과 총리의 중책을 맡았을 때 행여 국정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가장 가슴을 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아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며 내일 모레면 회갑을 바라보는 아들에 대한 「부정」을 감추지 않는다.이변호사는 부인 김사순(83)여사와 4남1녀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원칙에 따르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웃는다. 요즘도 한달에 3번정도 법정에 직접 나가 변론을 맡는 이변호사는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다. 젊을 때부터 철봉으로 몸을 다져와 80이 넘은 나이에 모방송국 장수프로그램에 나가 기계체조에 가까운 철봉묘기를 선보인 적도 있고 요즘도 턱걸이 30번은 거뜬히 할 수 있다. 『인권신장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겠다』며 환히 웃는 이변호사는 후배법조인에게 『소신껏 일하라』는 당부의 말로 그동안 걸어온 긴 여정을 되새겼다.
  • 공직부정의 말로를 보라(사설)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평생을 바쳐 구청장직에까지 올라갔을 50줄의 공직자가 부정을 눈감아주며 얼마간의 검은 돈을 즐겨온 죄로 쇠고랑을 차고 40대인 공무원은 야산에서 목을 맸다.쥐도 새도 모르게 축재해서 돈에 여한없이 살아보리라고 마음먹고 저지르는 것이 부정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죄업을 치르게 되고 남는 것은 비참한 낙인뿐이게 되는 것이 공직부정의 최후요 말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가족을 잘 살게 해주고 싶어서 저지른 죄라고 변명하지만 사회에 죄짓는 일은 결국 가족에게도 죄인이 되고 만다.어떤 물질적인 호강도 가장의 파렴치한 죄를 상쇄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더구나 감옥에 가고 목매어 죽어야 할 만한 죄를 짓는 아버지를 만들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란 없다. 생명처럼 소중한 자식들에게 있어 「죄지은 아버지」만큼 불명예스럽고 불행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는 없는 것이다.실제로 가족 때문에 유혹을 당했다는 많은 공무원의 경우 유혹에 넘어가 가족을 호강스럽게 해준 경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속에 가족을 몰아넣은 경우가 거의 전부일 것이다.게다가 그 불행은 자녀의 장래와 혼사,출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형은 모범적이고 아우는 부정과 연루되어 구속된 공무원집안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그 형이 아우 때문에 도세파동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그 말은 아주 명증하게 그의 상태를 설명해준다.그런 삶에는 사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후회와 한탄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표면화한 경우말고도 속으로 더 많이 있을 것이다.목을 죄며 다가오는 조사에 가위가 눌려 야산으로 달려나가 스스로 목을 맸을 때는 그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겠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죄지은 공무원들이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것은 개인의 불행 못지않게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이다.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만년 가난만이 주어진 채 뱀의 혀처럼 널름거리는 유혹이 즐비한 세무공무원의 경우 그것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그렇게 자기 앞의 삶은 빈곤하면서유혹이 많은 자리일수록 여러가지로 감시감독의 기능이 철저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가 세금을 도둑맞는 일을 방지하는 일로도 중요하지만 훈련된 공무원인력을 타락시켜 못쓰게 만드는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거기다가 국민으로 하여금 겪어야 하는 좌절감과 무력감을 생각하면 감시감독의 부실은 범행의 방조행위라고 할 만큼 크다.도세정국이 남기는 교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 동국대 이기동교수,민중사학론자들 역사관 비판

    ◎“근대사는 실패한 역사 아니다”/현실 외면,근대화 과정 문제점만 꼬집어 지난 1백년 동안의 한국 근대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는 진보사학자들의 사관에 대해 한 중견역사학자가 공개적인 비판을 하고 나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기동 동국대교수(51)는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가 주최해 26일 고려대에서 열린 제35회 한국사회논단에서 「한국 근대화에 대한 민중사학적 시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교수는 이날 『진보적인 사학자로 불리며 우리 학계에서 이미 근·현대사 연구를 독점하고 있다시피한 민중사학론자들은 다소의 견해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라면서 『이들은 우리 근대화 과정의 문제점 만을 꼬집는데 만족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교수에 따르면 민중사학론자들은 갑오농민혁명을 자주적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로 파악하고 혁명이 실패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지 못했다고 애석해 하면서 연구의 초점을 지배계급과 민중의 반목에만 맞추어 왔다는 것.또 우리 사회의 총체적 성격을 「신식민지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그들이 최근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선진국의 폐기산업이 이동한 결과로 보고 후발자본주의 국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진국에 놀아날 수 밖에 없다는 절망론인 「세계체제이론」과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그러나 그들이 「종속에서의 탈피」를 소리높이 외치지만 그 주장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 내부에 그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선진국에 예속이 심해진다는 논리도 이제는 누가 보아도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그들은 누가보아도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19세기말의 험악한 시대상황을 무시한채 한국 근·현대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이처럼 현실을 도외시한 전근대적 도덕사관으로 복귀하고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비역사적인 태도』라고 강력히 질책했다. 이교수는 또 『한국사회에 가해진 불가항력적인 외부적 힘을 외면하고 당시 사회의지도층에 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역사연구가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 문제를 놓고 얼마든지 공개토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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