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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50년/양국 유학생들이 본 「갈등의 골」 극복 방안

    ◎“세계화시대… 한일 「협력의 폭」 넓히자” 올해는 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 그동안 한·일간에는 과거사문제등 많은 현안을 두러싼 갈등과 대립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과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정립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및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 와있는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어본다. ◎서울의 일본 학생들/「과거사」에 얽매여 대일비난 하는데 당혹감/일은 진정으로 과거청산… 양국우호 힘쓸때 ▲요리타 다케시(33·서울대 보건대학원·교토대 교육심리학과졸)=한국은 일본의 이웃에 있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국가라고 처음에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나병실태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깊고 활력과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솔직한 표현에서는 인간미를 느낄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또 일본을 감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기업관계자들중에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난 여름 독립기념관에 갔을때 어린이의 손을 잡고 온 어른들이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한일간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까지 느꼈다. ▲고무라 가오리(31·한양대 국악과대학원·한양대 국악과졸)=한국의 판소리,사물놀이,창극등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은 알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국악속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활기찬 나라이며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않는 대륙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특히 일본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강하며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나치게 비난 할 때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일본은 물론 과거청산을 하여야하지만 한국도 지나치게 과거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경우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결국은 지게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보다 강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대범해져야하며 넓은 세계적 시각으로 양국관계를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우치 아키라(27·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와세다대 인간과학대졸)=중학교때 재일한국인에 대해 알고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신문·방송등을 통해 한국을 알았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강한 전통적인 유고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와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같은 사실이라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나 히로시마 아세안게임 보도를 볼때 마치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일본을 꺾었다는 등 일본과의 대전을 중심으로 쓰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식이 강한 것 같다. ▲고가 사토시(31·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주오대 사회학과졸)=국민학교 6학년때 옆반에 있던 재일한국인을 친구로 사귄후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한국에 온후 많은 친구도 사귀고 한국문화도 접할수 있어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한국사람들은 개성적이며 친구가 되면 매우 친절하다. 한국은 21세기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것들을 보며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또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비판이 조금은 약한것 같다. 물론 일본도 과거문제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점이 있으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세타니 도모오(32·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고베대 경영학과졸)=백제의 관계가 깊었던 나라현에서 자라며 한국및 중국등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은 처음에 완고한 유교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와보니 한락가가 있는등 어느면에서는 성에 대해 노골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사귈때 일본사람들과는 달리 거리를 두지않고 지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보고 유감스러웠다.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그책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썼다면 하나의 좋은 충고가 될수 있으나 한국인이 일본을 이해하는데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과거청산을 하여야하며 개인보상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과거침략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등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도쿄의 한국 학생들/감정적 일본혐오 벗어나 객관 인식 바람직/문화·경제장점 서로 배워 공동이익 창출을 ▲채원호(33·도쿄대 대학원 행정학과졸)=올해는 한국으로서는 해방 50년,일본으로서는 패전 50년이 되는 해다.일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도 이웃한 나라라는 숙명적 관계에 있는 나라다.앞으로 국제화·개방화·지역경제의 블록화등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은 양국의 교류 및 협력관계를 더욱 요구할 것이다.과거의 식민통치 경험이 일본의 한국에 관한 지식의 축적을 가져 왔다면 해방후 일본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빨리 잊고 싶은 망각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돼야 하는 일본연구는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인식의 틀에서 활발한 일본연구가 필요하며 양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물리는 분야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박종문(31·와세다대 경제학과 대학원·연세대 경영학과졸)=대학시절 민주화를 둘러싼 학생들과 정권의 주장이 맞서고 있을 때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열등한 나라다』라고 배워왔기에 그 말이 사실인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일 뿐』이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일본이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에 못미친다는 말은 거짓이다.정신적인 선진성없이 경제의 선진화는 이룩될 수 없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이유없는 반일감정,이유없는 일본 멸시언행은 우리를 영원히 일본과 같은 선진대열에 끼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김기석(34·와세다대 경영학과 대학원·동아대 화공과졸)=일본식 경영법을 만들어 낸 일본의 사회·문화·윤리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사회가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한일관계를 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역사문제·종군위안부 문제등은 물론 일본이 원인제공을 했지만 처리과정에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확실히 일본에도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아직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이성보다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한 이런 책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져와 일본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바람직한 한일우호관계를 위해서는 지도층의 교류보다 최근 활발해진 시민단체등의 상호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경순(27·여·조지대 신문학과 대학원·추계예술대문예창작과졸)=한국은 오랜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에 대한 연구나 인식이 빈약하다고 느껴진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외국인에 대한 차별등이 엄존한다.지나친 풍요로움에 때론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저력은 막강하다.일본은 외국문화의 흡수력이 대단하며 외래어를 단순하게 일본어화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일본은 또 공공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어 시간계산을 잘하면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더욱이 정보화·산업화 과정은 과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같은 문화권안에 있지만 너무도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양국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재육성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직·구성의 마련이다. ▲김정준(35·도쿄대 공학부 대학원·서울대 공업화학과졸)=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국민의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보다는 이성적 보도가 필요하다.반복되는 일본 지도층의 망언에 대해서도 매번 흥분할 것이 아니라 배경과 진원지를 분석해 주면 좋겠다. 양국간에는 직접적인 경험과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와 함께 문화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김치를 먹고 치마저고리를 입는 분단된 나라」,「스시(생선초밥)와 기모노의 나라」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도 생활양식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음악·연극등 문화교류가 필요하다.우리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일본문화에 빠져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의 너무 많은 책들이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을 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한국은 일본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며 국제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감각을 가져 상대방에게 매력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증인 보복살인극(94년/충격의 365일:3)

    ◎“우리가정 이젠 누가 돌보나요”/머리 맞아 불구된 아내 병원비 막막/「제2의 희생」없게 신변보호 강화를 『단순하게 생각한 법정증인 출석이 이처럼 큰 고통을 가져다 줄지는 정말 몰랐습니다.보복살인이라니요.그것도 아무 죄없는 어린 아들과 아내를…』 「지존파 연쇄살인사건」등 잇따른 강력범죄로 불안이 높아지고 있던 지난 10월 초순 경기도 수원에서는 법정증인가족을 대상으로 한 희대의 보복살인극이 벌어져 또 한번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4년전 강간피의자에 대한 불리한 법정증언이 불씨가 된 이 보복살인극의 피해자 김만재(김만재·38·경기도 수원시 파장동)씨 일가는 이날 이후 계속되는 악몽과 허탈감에 아직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다. 범인 김경록(27)에게 아들 현(11)이를 잃었고 머리를 다친 부인 김순남(37)씨마저 여전히 반신불수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김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법정증인 출석의 어리석음을 곱씹고 후회하며 딸 유미(13·국교6년),어머니 정진순(66)씨와 함께 부인을 간호하는일이 전부다. 트럭을 직접 운전해 상품을 나르던 생업마저 마음이 안잡혀 그만 두었고 병원비가 걱정이 돼 아내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가끔씩 일당을 받고 품일도 나가보지만 쉬운일은 아니다. 『사건 이후 가장 허탈했을 때는 범인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을 때였습니다.딸과 함께 두려움에 떨며 파출소에서 보호를 받으면서도 직접 만나 그토록 원한에 사무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우리가족에게 남은 한은 어디서 풀어야 하겠습니까』 그 한을 풀기 위해 범인가족들을 상대로 또 다른 보복도 생각해보았다는 김씨의 모습에서 보복살인의 잔인성이 새삼 느껴져 온다. 그의 모습에서 보듯 이 보복살인극은 법정증인들이 범죄에서 무방비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많은 사건에서 입증됐듯이 날뛰는 범죄를 잡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용기있는 고발과 증언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이처럼 범죄피해자나 신고인들이 범죄자들의 보복대상으로 노출되는 상황은 치안의 위기상황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물론 범죄신고자 보호와 범죄신고를 유도하기 위해 「증인에 대한 신변안전조치」가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 규정돼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규정에 그쳤고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었다. 증인들에 대한 신분보장과 비공개증언 등 제도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계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처럼 얼마든지 김씨와 같은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무방비상태에서 피해자들이 갖는 또 다른 고통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피해를 보상해줄 곳이 없다는 사실이다.김씨는 편의주의적인 법정증인문제에 화살을 돌린다. 『자신들이 불러 증언을 하도록 한 증인가족들이 절망속에 빠져 있는데도 검찰은 물론 법원에서 조차 누구도 책임을 지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들을 잃고 아내마저 불구가 되는 정신적인 충격뿐 아니라 아내의 병원비를 물어야 하는 물질적인 피해까지도 자신의 몫이 돼버린 그는 얼마전 청와대와 법무부에 이를 호소하는 진정서를 냈다.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된다는 내용과 함께.
  • 외채·인플레 “해방”/중남미경제 되살아난다(현장 세계경제)

    ◎브라질 인플레 월1∼3%로 진정/페루 성장률 12%… 평균3% 상회/통화긴축·무역자유화 주효… 해외자본 유입도 급증 공룡같은 외채와 인플레 압박에 오랫동안 숨이 막혔던 라틴아메리카 경제가 파란 생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 80년대는 중남미의 30여 모든 나라에게 「절망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던」 어둠의 시대였다.1950년부터 80년까지 중남미 전지역은 연평균 5.5%의 우수한 경제성장률을 자랑했으나 계속된 정정불안과 국가경제 관리미숙으로 곧 구제할 길 없는 「제3세계」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정보불안으로 점철 초 인플레율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80년부터 90년 사이 연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보면 브라질 2천7백50%,아르헨티나 3천80%,페루 7천5백%,볼리비아 1만1천8백%,니카라과 1만4천3백% 등이다.또 개도국의 외채는 81년 총 6천억달러에 이르러 10년새 6배로 불어났는데 중남미 제국들의 채무액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따라서 80년대 말경엔 중남미 각국에서 외국 채권자와 투자자에게 원리금상환과 이익배당금으로 흘러나간 돈이무려 연 2천억달러를 넘어설 지경이었다.만성적 경기침체,대량실업,실질임금 감소로 점철된 80년대는 상실의 시대였으며 당연히 90년대 초 라틴아메리카의 1인당 평균소득은 10년 전 수준을 밑돈 형편이었다. 그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가 견실하게 되살아나는 중이다.브라질은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평균 인플레 증가율이 30∼50%에 달했지만 지난 7월 새 통화단위와 함께 강력한 통화안정정책을 실시한 후 월 인플레가 1∼3%로 낮아졌다.지난해 1년새 물가가 10배 가까이 치솟은 브라질을 제외하고 경제 규모에 따른 가중치를 부여할 경우,올 라틴아메리카의 물가는 12%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성장도 만만찮게 이루어지고 있다.중남미 전지역은 올해 3% 이상의 성장률을 4년 연속 기록할 것이 틀림없다.특히 페루는 12%를 웃돌 것이며 아르헨티나는 6% 성장을 장담한다.멕시코의 세디요 새 대통령은 내년 4% 성장을 목표로 하고있고 브라질도 안정화시책이 자리잡히면 현재의 갑절인 7∼8% 경제성장이 확실시된다. ○브라질도 흑자 재정 한때 세계경제의 문제아였던 라틴아메리카가 「제3세계답지 않게」 이처럼 낮은 인플레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은 긴축재정·무역자유화·민영화로 연결되는 개혁시책을 끈기있게 추진한 결과이다.칠레와 콜롬비아가 이같은 개혁의 선두주자이며 브라질,베네수엘라,우루과이,에콰도르 등이 다소 뒤쳐져 있다. 멕시코는 87년 당시 중앙정부의 재정적자 누계가 GDP의 15%에 달했으나 91년부터 긴축예산으로 흑자재정을 달성,적자누계를 반으로 줄였다.아르헨티나가 지난해 이를 뒤따랐으며 브라질도 올해 흑자재정 기록을 세울 것으로 기대된다. 자국산업 과보호와 수입품 고율관세 경향도 뚜렷이 퇴색했다.93년 현재 전지역의 평균관세가 12%로 2년 전의 26%보다 크게 낮아졌다.상호간 교역량 역시 급속히 늘어나 주요 11개국 사이의 무역이 89년 이후 배 이상 불어난 데 이어 전지역간 교역은 83년 70억달러에서 현재 2백60억달러로 급증했다. ○민영화 꾸준히 진행 정부재원을 풍부히 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국영기업 매각정책은 중남미 개혁의기치로서 지금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칠레와 멕시코는 거의 대부분의 국영기업을 민간에 팔았으며 아르헨티나는 원전,우체국,조폐공사,석유화학사 등 마지막 남은 정부기업마저 내년 안에 완전 매각할 계획이다. 해외자본 유입만큼 라틴아메리카의 달라진 모습과 높아진 위상을 반증하는 실례도 없을 것이다.국제채무 상환포기선언의 불명예와 그에따른 외국자본 단절로 압축되는 중남미의 「외채위기」는 4천9백억달러의 외채상존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거의 과거지사로 여겨진다.지난 90년부터 93년까지 라틴아메리카로 흘러온 해외자본의 순액은 1천7백억달러를 웃돌 뿐 아니라 외채적 성격이 짙은 상업차관은 단 5%에 불과하고 각국 유망산업과 기업에 대한 직·간접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옛 영화 되찾자” 힘찬 발진/메넴정부,무역·외환정책 획기적 전환/90∼94년 30%이상 성장… 세계3위 기록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는 「아르헨티나의 역설」이라는 조어를 낳았다. 20세기초 풍부한 광물자원과 농장을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세계 6위,무역규모 세계 10위의 아르헨티나가 근 1백년만에 완전히 피폐한 상태로 전락한 것을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다.그러나 1990년대 들어 급속하게 추진된 아르헨티나의 개혁작업으로 「군화발 자객」「고인플레」「보호주의」등의 오명과 함께 이같은 역설도 이젠 실효성을 잃을 것같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시민들은 다시 소비열을 느끼기 시작했고 은행들은 달러화시세를 전광판으로 즉시 게시한다.과거 정부와 가격인상을 위한 협의에만 능했던 기업인들은 마켓팅 방법을 논의하는데 여념이 없다. 이 모든 변화가 89년 「메시아」처럼 등장한 메넴정부가 이룩한 공적이다.그의 개혁정책을 떠받치는 3대지주는 수입관세인하와 비관세장벽 철폐로 시작된 경쟁도입이 그 하나요,연간 운영비로 수십억달러를 삼키던 공기업 민영화가 둘째다.메넴정부는 우편,항공,전기 등의 민영화로 2백40억달러를 조달했다.민영화는 외국인투자 러시를 촉발해 90∼93년 사이 무려 2백45억달러의 외자를 거두어 들였다. 세번째는「메네노믹스」로 불리는 외환정책이다.하버드대 경제학자 출신인 카발로를 재무장관으로 등용,자국통화인 페소와 달러의 교환비율을 1대 1로 정한 이른바 「태환 플랜」이 그것이다. 이와같은 개혁정책 덕분에 아르헨티나는 90년 이후 4년동안 30% 이상의 경제성장을 달성,중국,태국에 이어 세계 제3위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80년대 연평균 4백%를 유지하다 90년 연간 2만%까지 치솟았던 인플레도 수그러들어 올해엔 4%를 맴돌고 있다.노동생산성도 91년 이후 42%나 증가해 메넴은 다른 나라가 20년 걸릴 일을 아르헨티나는 5년만에 해치웠다며 자신에 차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를 개발도상국으로 보는 시각을 단호히 거부한다.아르헨티나는 「회복하는」국가라는 것이다.물론 이같은 회복은 엄청난 고통을 수반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30년대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끄떡없이 견뎌냈던 아르헨티나는 49년부터 74년까지 집권한 후안 페론 정권 하에서 불구가 됐었다. 무모한 반미외교정책으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고 국내의 계급투쟁으로 국민은 사분오열됐다.기업국유화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관세장벽은 국고를 탕진했다. 또 70년대초 군부와 좌익반군간에 벌어진 「더러운 전쟁」과 뒤이은 군부 쿠데타는 아르헨티나를 부패와 초고인플레 아래 허덕이게 했고 급기야 80년대 5백억달러 재산의 해외도피를 몰고왔다. 메넴정부의 「기적」은 암울한 과거를 딛고 일어섰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다만 아직 부패척결과 공공부문의 개혁이 과제로 남아있고 폐소화의 평가절상으로 올해 60억달러까지 무역적자폭이 확대될 전망이어서 외환정책에 대한 요구도 만만치 않다.게다가 GDP의 17.6%에 불과한 저축률은 기업의 자본부족을 부채질하고 있어 메넴의 승리는 시기상조라는 반론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미완의 혁명인 메네미즘이 「기적」이란 이름값을 할지 국제적 관심사이다.
  • 이창호/유시훈/연구생 시절 단짝·맞수(이창호와 유시훈:상)

    ◎안성문씨(패왕전필자)가 본 바둑세계/한­일 바둑계 라이벌로/이/7살에 입문,4년뒤 프로로… 성장속도 단연 두각/11살에 뛰어든 늦깎이… 스승 못찾아 중3때 도일/유/조훈현 내제자 된 「이」 일취월장… “호각” 균형 무너져 유시훈 6단이 도일 8년만에 일본의 5대타이틀전의 하나인 천원을 거머쥐며 일본바둑계에서 급부상하고 있다.일본바둑계는 유시훈을 「예고된 대기」라며 한국의 이창호를 능가할 활약을 그에게 걸고 있다.한·일 양국의 바둑계를 이끌어갈 기대가 2명의 한국인 청년에게 집중되고 있는 셈이다.최근 일본에서 유시훈을 현지취재하고 돌아와 유시훈의 천원 획득 가능성을 낙관한 패왕전 필자 안성문씨의 글로 2회에 걸쳐 두 사람의 우정과 바둑수련일화,바둑세계등을 살펴본다. 현대바둑의 역사는 곧 라이벌의 역사다.사카다(판전영남)와 임해봉,조치훈과 고바야시(소림광일),조훈현과 서봉수 등등 시대를 점철하는 숱한 라이벌의 명승부를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열광했던가.이들로 인해 바둑계는 공전의 활력을 얻었고 내용 또한 충실해졌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이제 현해탄을 마주하고 새로운 라이벌이 생기려 하고 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준수한 용모의 유시훈과 퉁퉁한 체구에 졸린듯 멍한 눈을 하고 있는 이창호.이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딴판인 생김새만큼이나 사뭇 대조적이다. 전주의 시계점에서 태어난 이창호(19)는 7살때 바둑을 배워 11살에 프로에 입문했다.안동의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인 유시훈(23)은 11살때 뒤늦게 바둑을 배워 17살이 돼서야 프로가 됐다.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바둑을 배웠고 한국기원 연구생시절에는 둘도 없는 단짝으로 지냈지만 스타트나 성장속도면에서는 이창호쪽이 훨씬 빨랐다. 『참 이상한 일이었어요.오청원 선생이나 조훈현 9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제가 본 기재중에 창호같이 생긴 사람은 없었어요.어린애치고는 지나치게 의뭉한 것이… 외모만 놓고 본다면 시훈이 쪽이 훨씬 기재에 가까왔지요.그런데 막상 같이 연구생으로 출발하고 보니 창호 쪽이 신통하게도 한발짝 앞서가는 거예요.처음엔 「별일도 다 있구나」생각했었지요』 이창호의 두번째 스승인 동시에 유시훈을 가르치기도 한 전영선 6단의 회고다. 이창호는 출발부터 불가사의였다.타고난 노력가였고 승부가 끈질겼다.유시훈은 이 괴이한 후배를 이기기 위해 식사중에도 바둑책을 놓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지만 좀처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그리고 84년 여름 이창호가 조훈현의 내제자로 들어가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창호보다 4살 위지만 간발의 차이로 뒤져 있던 유시훈은 이창호의 연희동 입성에 아차하는 위기감을 느낀 것 같다.유시훈의 집에서도 당연히 새로운 스승을 물색하기 시작했다.하나 이게 생각대로 잘 되지가 않았다.당시 제2인자인 서봉수 9단은 아직 제자를 받아들일 입장이 아니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러는 사이 이창호는 비약적으로 강해져 1년후에는 연구생 가운데 최초로 1급이 됐다.그런대로 호각을 유지하던 두 사람의 성적도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조숙하고 자존심 강한 유시훈에게 이것은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과 절망감을 한꺼번에 안겨주었다.그리하여 중3때인 86년 여름유시훈은 혈혈단신 현해탄을 건너게 된다.
  • 인권의날 무궁화장 받은 이홍규옹/무료변론 29년 “법조인의 사표”

    ◎매주 한번 가난한 사람 찾아 법률상담/검사땐 유명한 「대쪽」… 「구속1호」 기록/이회창전총리 부친… 구순나이에도 턱걸이 30번 거뜬 『뚜렷이 내세울 만한 업적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큰 상을 받게 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재조와 재야법조계에서 근 반세기동안 인권신장에 힘써온 우리나라 법조사의 「산 증인」 이홍규(89)변호사가 10일 제46회 세계인권선언일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겸양의 말로 소감을 대신한 이변호사는 「호랑이는 고양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대쪽판사」로 세간에 알려진 이회창(59) 전총리의 부친이기도 하다. 이변호사는 40세의 「늦깎이」로 광주지검 검사에 임관,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이후 정년퇴임 때까지 광주세무서사건,장면부통령 저격사건 등을 수사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아 수사검사의 표상이 될만한 숱한 일화를 남겨 「대쪽 검사」라는 별칭을 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6·25 발발직후 청주지검 평검사 재직시 수사를 맡은 「충북도지사 횡령사건」.전쟁이 남긴폐허속에서 굶주리고 있는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미국의 구호물자를 당시 충북도지사가 빼돌려 착복한 사건이다. 즉각 수사에 착수했지만 일개 평검사의 「칼날」로써는 도저히 벨 수 없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구호물자를 횡령한 도지사가 당시 이승만대통령과 미국에서부터 개인적으로 교분을 쌓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구속은 물론 아예 수사를 그만두지 않으면 「모가지」를 날리겠다는 압력이 연일 들어왔지요』 당시의 이검사는 그러나 은밀히 내사를 마치고 도지사를 구속한 것은 물론 더 이상의 외압을 피하기 위해 구속한 당일 즉시 기소,법정에 세웠다. 이 사건외에도 부패로 점철된 자유당시절에 「윗사람」의 눈으로 봐선 달갑지 않은 처사를 한 탓으로 이변호사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50년 서울지검 재직시 좌우익 갈등속에서 무고한 시민을 풀어준게 꼬투리가 돼 반공법 위반혐의로 전격 구속됐던 것.건국후 현직 검사 「구속1호」를 기록한 셈이다. 『전기고문·물고문·잠안재우기고문 등 안 당해 본 게 없어요.정의가 썩은데 대해 어이가 없기도 하고 절망감에 빠지기도 했지요』 결국 무혐의로 풀려나긴 했지만 썩은 정권에 대한 염증과 회의에 사로잡힌 이변호사는 「정의구현을 위해 의지할 지주」를 찾아 카톨릭에 귀의,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된다. 검사생활 20년만인 65년 정년퇴임,변호사로 개업한뒤 29년동안 카톨릭법조인회 회장등을 역임하면서 매주 가난한 사람을 위한 무료법률상담과 무료변론을 통해 서민들의 기본적인 인권옹호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이변호사는 아들인 이전총리가 새정부 들어 감사원장과 총리의 중책을 맡았을 때 행여 국정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가장 가슴을 조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번정도 아들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며 내일 모레면 회갑을 바라보는 아들에 대한 「부정」을 감추지 않는다.이변호사는 부인 김사순(83)여사와 4남1녀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도 원칙에 따르며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덕분이 아니겠느냐고 웃는다. 요즘도 한달에 3번정도 법정에 직접 나가 변론을 맡는 이변호사는 여느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하다. 젊을 때부터 철봉으로 몸을 다져와 80이 넘은 나이에 모방송국 장수프로그램에 나가 기계체조에 가까운 철봉묘기를 선보인 적도 있고 요즘도 턱걸이 30번은 거뜬히 할 수 있다. 『인권신장을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아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야겠다』며 환히 웃는 이변호사는 후배법조인에게 『소신껏 일하라』는 당부의 말로 그동안 걸어온 긴 여정을 되새겼다.
  • 공직부정의 말로를 보라(사설)

    갖가지 어려움을 딛고 평생을 바쳐 구청장직에까지 올라갔을 50줄의 공직자가 부정을 눈감아주며 얼마간의 검은 돈을 즐겨온 죄로 쇠고랑을 차고 40대인 공무원은 야산에서 목을 맸다.쥐도 새도 모르게 축재해서 돈에 여한없이 살아보리라고 마음먹고 저지르는 것이 부정이지만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든 죄업을 치르게 되고 남는 것은 비참한 낙인뿐이게 되는 것이 공직부정의 최후요 말로다. 대개의 경우 그들은 가족을 잘 살게 해주고 싶어서 저지른 죄라고 변명하지만 사회에 죄짓는 일은 결국 가족에게도 죄인이 되고 만다.어떤 물질적인 호강도 가장의 파렴치한 죄를 상쇄할 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더구나 감옥에 가고 목매어 죽어야 할 만한 죄를 짓는 아버지를 만들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란 없다. 생명처럼 소중한 자식들에게 있어 「죄지은 아버지」만큼 불명예스럽고 불행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는 없는 것이다.실제로 가족 때문에 유혹을 당했다는 많은 공무원의 경우 유혹에 넘어가 가족을 호강스럽게 해준 경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속에 가족을 몰아넣은 경우가 거의 전부일 것이다.게다가 그 불행은 자녀의 장래와 혼사,출세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형은 모범적이고 아우는 부정과 연루되어 구속된 공무원집안이 언론에 소개된 적이 있다.그 형이 아우 때문에 도세파동에 휘말리면서 자신의 고통을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표현한 일이 있다.그 말은 아주 명증하게 그의 상태를 설명해준다.그런 삶에는 사는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이건 사는 게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후회와 한탄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표면화한 경우말고도 속으로 더 많이 있을 것이다.목을 죄며 다가오는 조사에 가위가 눌려 야산으로 달려나가 스스로 목을 맸을 때는 그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이었겠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죄지은 공무원들이 이렇게 많이 쏟아지는 것은 개인의 불행 못지않게 국가적으로도 큰 불행이다.벗어날 길이 없어 보이는 만년 가난만이 주어진 채 뱀의 혀처럼 널름거리는 유혹이 즐비한 세무공무원의 경우 그것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그렇게 자기 앞의 삶은 빈곤하면서유혹이 많은 자리일수록 여러가지로 감시감독의 기능이 철저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가 세금을 도둑맞는 일을 방지하는 일로도 중요하지만 훈련된 공무원인력을 타락시켜 못쓰게 만드는 손실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하다.거기다가 국민으로 하여금 겪어야 하는 좌절감과 무력감을 생각하면 감시감독의 부실은 범행의 방조행위라고 할 만큼 크다.도세정국이 남기는 교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 동국대 이기동교수,민중사학론자들 역사관 비판

    ◎“근대사는 실패한 역사 아니다”/현실 외면,근대화 과정 문제점만 꼬집어 지난 1백년 동안의 한국 근대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는 진보사학자들의 사관에 대해 한 중견역사학자가 공개적인 비판을 하고 나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기동 동국대교수(51)는 한국사회과학연구협의회가 주최해 26일 고려대에서 열린 제35회 한국사회논단에서 「한국 근대화에 대한 민중사학적 시각」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교수는 이날 『진보적인 사학자로 불리며 우리 학계에서 이미 근·현대사 연구를 독점하고 있다시피한 민중사학론자들은 다소의 견해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라면서 『이들은 우리 근대화 과정의 문제점 만을 꼬집는데 만족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교수에 따르면 민중사학론자들은 갑오농민혁명을 자주적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로 파악하고 혁명이 실패해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지 못했다고 애석해 하면서 연구의 초점을 지배계급과 민중의 반목에만 맞추어 왔다는 것.또 우리 사회의 총체적 성격을 「신식민지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하는 그들이 최근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선진국의 폐기산업이 이동한 결과로 보고 후발자본주의 국가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선진국에 놀아날 수 밖에 없다는 절망론인 「세계체제이론」과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그러나 그들이 「종속에서의 탈피」를 소리높이 외치지만 그 주장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 내부에 그만큼 긍정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선진국에 예속이 심해진다는 논리도 이제는 누가 보아도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교수는 『그들은 누가보아도 실현불가능한 유토피아를 설정하고 19세기말의 험악한 시대상황을 무시한채 한국 근·현대사를 실패한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면서 『가장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이 이처럼 현실을 도외시한 전근대적 도덕사관으로 복귀하고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비역사적인 태도』라고 강력히 질책했다. 이교수는 또 『한국사회에 가해진 불가항력적인 외부적 힘을 외면하고 당시 사회의지도층에 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역사연구가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 문제를 놓고 얼마든지 공개토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 우리는 개혁의 방관자인가/「신문로포럼」 월례조찬 연설 요지

    ◎국민 모두 「참여자」 될때 「미래」는 새기회로 사단법인 신문로포럼이 25일 조선호텔 1층 그랜드볼룸에서 개최하는 월례조찬회에서 최한선 전남대 총장이 「우리는 개혁의 방관자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대안없는 방관자나 비판자의 위치에서 탈피,국민들이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해 주목된다.최총장 연설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본다. 해방이후 다사다난했던 현대사 속에서 우리는 문민정부를 출범시키는데 성공했다.집권 초기 문민정부는 개혁의 기치 아래 공직자 재산공개,금융실명제 등을 전격 단행하여 국민들은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전 국민은 소위 고통분담운동을 내 일처럼 받아들였으며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저항도 이러한 국민의 신뢰와 동의를 기반으로 한 개혁의 바람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일으켰던 신선한 바람은 지난 해 우루과이라운드의 파고를 넘으면서 점점 약해지더니 최근에는 크고 작은 역풍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개혁의지를 의심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개혁의 실종」이니 「총체적 부패」니 하는 주변의 말들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잘 대변해 준다.거기에 성수대교 붕괴,지존파 사건,인천 세무비리 등의 대형 사건·사고가 겹치면서 국민들의 희망과 기대는 절망과 좌절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사회와 국가가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개혁을 통해 새로이 거듭나야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사라져 버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작금의 위기를 다시 한번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고 이제까지의 개혁추진 방식을 반성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또한 정부는 흩어진 민심을 수습한다는 「국면전환」차원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로이 출발한다는 각오로 그리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대수술」하겠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개혁은 구호성 캠페인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개혁은 일관되게,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가지고,과학적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무엇보다도 개혁은 그 원칙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또한 개혁은 그 대상에 있어서 선별적으로,그 방식에 있어서 다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그러나 비능률·적당주의·한탕주의·형식주의·배금사상과 같은 의식개혁의 차원에서 논의될 것들은 국민들의 몫이다.우리는 나 자신이 바로 개혁의 대상이며,우리가 속해 있는 조직이 바로 개혁의 대상임을 엄숙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국가 운명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온 국민이 국가발전에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느냐 아니면 개인적 이해관계의 구습에 젖어 국가발전의 방관자나 대안없는 비판자로 머물러 있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개혁은 역사 속에서 완료되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 정권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우리 모두는 저마다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의 작은 부분부터 지속적으로 개혁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이 개혁에는 나 혹은 특수한 계층은 예외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개혁은 바로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개혁의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될 때 우리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개혁은 새로워짐을 의미한다.모든 사회조직은 생물유기체와 마찬가지로 항시 새로워지지 않으면 쇠락하기 마련이다.따라서 개혁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개혁은 결국 개방화·국제화·세계화·무한경쟁으로 표방되는 21세기 지구촌 시대를 앞두고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이루기 위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기틀로서의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선진사회를 빠른 시일 안에 정착시키고자 하는 과정이다.때문에 개혁은 부정적·소극적으로만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국가발전 프로그램에 맞춰 긍정적·적극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우리사회의 합리주의적 잠재에너지를 개발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스스로의 자정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환경문제·교통문제·교육문제와 같은 부문에서는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적극 유도하여 지시나 규제·단속 일변도에서 벗어나야겠다. 개혁은 무엇보다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다.현재에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기대의 지평위에서의 위기이다.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해야 할 시대적 요청 속에서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미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넘지 못할 장벽이 될 수도 있다.우리의 건강한 요소들이 자생력을갖고 새로운 문명시대의 토대를 구축하는데 국민의 역량이 집결되어야 한다.
  • 미국에선:3(녹색환경 가꾸자:93)

    ◎뉴욕 죽음의 강 「아서 킬」 4년만에 되살렸다/90년초 송유관서 56만갤런 유출/시,정화뒤 물풀 이식… 생태계 회복/자원봉사자 4백명 참여… 참게 살아나고 왜가리 찾아와 「죽음의 강 아서 킬(Arthur Kill)이 되살아났다」.지난 여름 아서 킬(수로)의 개펄에서 푸른 빛의 참게들이 발견됐을 때 뉴욕의 매스컴들이 이구동성으로 뽑은 제목이다. 뉴욕시의 5개 보로(자치구)중 하나인 스테이튼 아일랜드와 뉴저지주의 유니온 카운티·미들섹스 카운티가 마주하고 있는 폭 1㎞에 25㎞ 가량 뻗은 이 수로는 대서양에서 뉴욕의 외항인 뉴어크,엘리자베드항으로 연결되는 길목으로 파나마운하의 통행량보다 많은 배가 통행할 정도로 붐비는 곳이다. ○급류타고 오염확산 수많은 배들의 통행과 스테이튼 아일랜드 쪽에 조성된 뉴욕시 쓰레기 매립장으로 인해 중병을 앓던 이 수로가 결정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은 90년1월 수로 북부를 지나던 엑슨사의 송유관에서 뜨거운 기름 56만7천갤런이 누출되면서부터였다. 이 기름은 해류를 타고 남쪽으로 급속히 퍼져 수로 대부분을 뒤덮었다.수면의 기름띠들은 여러날 동안의 제거작업으로 걷혔지만 검은 스펀지처럼 연안에 쌓인 기름찌꺼기들은 각종 해초와 조개류,어류 등 해안생물들을 죽였을 뿐아니라 왜가리,백로 등 철새들까지 모두 쫓아버리는 등 수로의 생태계를 완전히 파괴시켰다. 불과 9개월전 알래스카에서 유조선 엑슨 발데즈호의 좌초로 인한 기름누출사고로 경종이 울려 있던 뉴욕시와 뉴저지주 환경당국은 엑슨측과 1년 이상의 보상 줄다리기를 하면서 응급복구 뿐아닌 생태계복구 비용까지 포함,모두 1천5백만달러(한화 약1백20억원)를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서 킬의 경우 대부분 환경연구기관의 진단은 「회생불능」이었다.워낙 오염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알래스카 경우보다도 회생이 어렵고 쿠웨이트해안 오염보다도 기름집적량이 많아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같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뉴욕시 공원과의 생태학팀은 마지막으로 생물학적 이식방법을 채택했다.물풀을 손으로 이식시켜 식물성 플랑크톤을 생성시켜 먹이사슬을 형성케 하는 이 치유방법은 당시까지 실제 활용된 적이 없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미세한 유기체 생성 이들은 이듬해부터 첫단계로 1백10만달러를 들여 국립해양어류연구소에서 배양해낸 물풀들을 4백여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로 한가운데 있는 프롤스섬 일대 1만여평에 이식을 끝냈다. 이 생태학팀의 팀장인 앤드루 버겐 박사는 『물풀들이 높은 생존율을 보였고 산소가 풍부해진 새로운 환경에서 오일을 먹는 미세한 유기체를 생성시켜 새로운 먹이사슬을 형성해 나갔다』고 말하고 『결국 3년동안 계속된 물풀이식의 결과 서서히 생태계의 회복이 시작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참게는 그 회복신호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또 왜가리,백로 등 철새들도 돌아와 사고 직전 1네스트(둥지)당 1.5마리에서 그후 0·3마리까지 줄어들었던 백로가 최근 1.2마리로 증가하기도 했다.이같은 가능성에 힘입어 내년부터는 아서 킬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생태계회복 운동이 전개될 예정이다. 이같은 회복운동과 함께 원인 발생을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89년 엑슨 발데즈호 사건을 계기로 90년 오일공해법이 새로 제정돼 정유사,유조선사 등 모든 오일 관련업체들은 스스로 방지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오염방지단 올 설치 그러나 이같이 해양오염방지 노력이 강화됐음에도 미국내 오일 누출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지난 10월 텍사스주 남부의 홍수로 휴스턴시 동부지역을 관통하는 송유관 2개가 절단돼 누출된 기름이 주택가를 뒤덮고 인근 샌 재신토강 하구 30여㎞를 오염시켜 엄청난 피해를 발생시켰다. 또한 수많은 선박들이 폐유 등 각종 오염물질을 몰래 바다에 버리는 것도 해양오염에 큰 문제가 되고 있다.한 예로 지난 8월말 바이킹 프린세스라는 관광유람선은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고의적으로 폐유를 바다에 버린 혐의로 50만달러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이는 새로 제정된 오일공해법에 따라 취해진 첫 조치였으며 또한 최근 엑슨사의 알래스카 어민들에 대한 보상판결에서 사상최대 액수인 50억달러가 선고된 것도 강화된 이 법에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다행히 올해초 푸에르토리코 산후안항 바지선에서의 7억5천만갤런의 디젤오일 누출사고에서 첫선을 보인 MSRC(해양오염방지단)가 신속한 오염방지 활동을 폄으로써 앞으로 사건발생시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일공해법에 따라 65개 정유사들이 출자한 10억달러 규모의 비영리법인으로 설립된 이 방지단은 뉴저지주 에디슨에 있는 본부를 포함,플로리다주 마이애미,루이지애나주 레이크찰스,캘리포니아주 포트 휴네메,워싱턴주 에드먼즈 등 5개지역에 지역본부를 두고 있으며 미국 해안경비대와의 협조로 사고발생 해역에 2시간내 출동토록 돼있다. 이들이 운용하고 있는 오염방지선은 모두 16척으로 최신 진공흡입기 장착 등 특별히 설계돼 시간당 9만배럴의 기름을 물로부터 추출해낼 수 있으며 대당 가격은 1천2백만달러에 달한다.
  • 불 국립영화센터(유럽 문화산업현장:상)

    ◎「100년 전통」 불영화 명예회복 “앞장”/연 4천4백억원 투자,우수작품 집중 지원/「국립학교」 운영… 학생 1인당 투자비 연1억/매년 30∼40명의 전문인 배출… 한국인 입학생 1명 국제화·개방화 시대에 문화의 역할은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과거 냉전시대엔 무력이,그 다음엔 경제적 힘이 국가간 경쟁의 주요 무기였지만 이제 문화가 무기화 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문화전쟁의 시대 21세기를 앞두고 선진국들은 문화의 무기화 작업을 이미 시작한지 오래다.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 문화를 지닌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특히 문화의 무기화에 앞장선 나라들이다.두 나라의 문화산업현장과 적극적인 문화진흥정책을 현지취재로 3회에 걸쳐 싣는다. 프랑스는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과 함깨 세계영화시장을 양분해 온 영화종주국이었다.비록 지난해 미국영화 「쥬라기공원」과 프랑스영화 「제르미날」의 흥행대결에서 「제르미날」이 참패를 당하기는 했지만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은 여전히 살아있다. 『프랑스 영화는 프랑스의 예술과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상예술로 제작되는데 비해 미국 영화는 대규모 상업자금을 투자한 문화상품일 뿐이다.프랑스는 흥행여부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재능있는 영화인으로 하여금 영원히 남는 예술 작품을 만들도록 한다』 프랑스 국립영화센터(CNC) 사무총장 장 푸레씨의 말이다.그는 프랑스 영상 및 음향산업의 발전을 위해서 폭력적이고 음란한 영화를 제작할 의도는 없으며 과거 1백년간의 영예를 미래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적인 문예영화를 제작하는데 국가적인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1895년 세계최초로 활동사진을 촬영한 뤼미에르 형제를 배출한 나라.그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 온 곳이 바로 국립영화센터다. CNC라는 약자로 불리는 국립영화센터는 영상산업진흥을 위해 지난 45년 문화부 직속으로 창설돼 올해로 50주년을 맞는다.CNC에서는 프랑스 영화 진흥을 위해 재정지원과 제작 배포 수출지원 등 영화 산업에 대한 모든 지원을 하고 있다.연간 4천4백억원의 예산을 영화진흥에 투자하고 있는 CNC는 지난 60년앙드레 말로 문화부 장관 재직 당시부터 우수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를 지원하는 ATR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ATR제도란 매년 6백편정도의 시나리오를 심사해서 이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돈이 없는 영화사나 신인 감독에게 제작비를 융자해주고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이 지원을 받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CNC에서 손해를 볼 뿐 영화 작가들은 금전적 손해를 입지 않는다. 해마다 40∼50편의 작품이 이 돈으로 제작되며 지금까지 모두 1천2백25편의 영화가 이 돈을 받아 만들어졌다.따라서 해마다 프랑스 영화의 30% 이상이 실험성이 강한 신인 감독에 의해 제작된다. CNC는 우수한 영화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국립영화학교도 설립,운영하고 있다.이 학교는 해마다 30∼40명의 대학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해서 시나리오·연출·촬영·음향·장치·편집·제작등 7개 과정으로 40개월의 전문교육을 시켜 국가 자격증을 가진 전문영화인을 배출한다. 이 학교의 학생 한 사람에게 프랑스 정부가 투자하는 돈은 1년에 약 1억원.『프랑스정부는 한 사람의 전문 영화인을 양성하기 위해 전투기 조종사를 양성하는 만큼 투자하고 있다』고 이 학교의 교감이자 프랑스 외무부 장관 알랭 쥐페의 부인인 쥐페여사는 말했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이 학교는 외국인들에겐 1년에 3∼4명씩만 입학을 허용하는데 지난해 한국영화아카데미출신의 변혁씨가 최초의 한국인 학생으로 입학했다. 학생들에게는 한달에 50만원씩의 장학금이 지급된다.또한 문화부 장관 이름으로 발급되는 이 학교 학생증만 가지면 전국 4천4백여곳의 영화관에서 언제든지 무료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극까지 볼 수 있다. 지난해 프랑스 영화는 모두 1백1편이 국내에서 제작되고 70여편이 외국과 합작으로 제작되었다.영국이 28편,스페인과 독일이 30여편,이탈리아가 90여편밖에 제작하지 못한데 비해 프랑스가 1백70여편의 영화를 제작한 것은 유럽에서는 프랑스가 아직도 영화산업의 선진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수준 높은 예술영화를 제작하던 독일과 이탈리아 소련 등이 영화 명맥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 나라의 우수한 영화인들이 본국에서 절망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가고 있다』고 설명한 장 푸레씨는 『프랑스가 유일하게 유럽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우수한 영화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물론 프랑스도 미국 영화의 침투에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지난해 프랑스 영화관람인구 1억1천1백만명 가운데 프랑스 영화를 본 사람(4천40만명)보다 미국 영화를 본 사람(6천5백만명)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자의 입장에서는 프랑스의 적극적인 영상산업 진흥정책은 부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방대한 영화시장을 지닌 미국보다는 프랑스가 한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영상산업 진흥정책은 우리에게도 참고가 될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CNC사무총장 장 푸레씨는 『영화는 아주 다루기 힘든 분야여서 국가가 정치적으로 관심을 표명해야 한다』며 『국가의 영화정책이 빈곤하면 한때는 영화 강국이었던 이탈리아가 영화 후진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듯이 다른나라도 이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프랑스전국의 4천4백여곳 영화관에서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다양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고 전하고 『파리나 런던 뉴욕 도쿄 서울 등에서 동시에 한 영화가 개봉되는 것보다는 각 지역마다 특색있는 영화가 상영되는 것이 문화의 다양성을 위헤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칸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영화를 두편 본 일이 있다는 장 푸레씨는 CNC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한국의 영상예술을 국제화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기법을 답습하지 말고 한국 고유의 문화를 배경으로 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 문화의 질/강한섭 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굄돌)

    서울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에 갔다.「쥘과 짐」이라는 현대 프랑스 소설이 혹시 번역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출판물량으로 보면 세계 몇째라는 우리나라,또 「개미」라는 프랑스 소설은 정작 본국에서는 별볼일 없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찾아본 외국소설의 진열대에서 필자는 커다란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제인 에어」와 같은 고전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를 잇는 미국소설과 영국소설의 연결고리는 도대체 찾을 수 없었다.이러저러한 외국소설들은 많이 출간되었지만 거기에서 출판의 깊이와 체계를 찾기가 어려웠다.양적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속이 빈 허황된 발전이었다.좀 과장하자면 우리는 어쩌면 60년대의 「명작전집시대」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월부로 구입한 전집을 자랑스레 거실에 전시하던 때가 이제 아득할 만도 하고 그때에 비하면 외국문학의 전공자만도 10배 이상이나 늘었을 텐데… 이런 빛좋은 개살구의 상황은 영화분야도 마찬가지다.전세계의 연간 영화제작 편수는 4천여편에 불과하다.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은 이중 4백여편을 들여오고 비디오 분야에서는 무려 1천여편을 수입한다.여기에 주평균 7편의 외국영화를 방영하는 텔레비전까지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전세계의 거의 모든 영화를 수입하는 셈이다. 이렇게 외국영화는 쏟아져 들어오지만 우리나라에 앉아있으면 세계영화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은 거의 수입되지 않기 때문이다.출판문화와 마찬가지로 영화문화도 겉만 요란하지 속이 비어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문화의 「대량공급시대」로 급속하게 접어들고 있다.일간지가 주간지보다도 더 두꺼워지고 방송은 매체 분화 뿐만 아니라 채널증대 그리고 24시간 방송으로 달려간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문화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문화는 근본적으로 양이 아니라 질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 불에 김정일진단 의뢰 가능성/검진자료 오진우가 휴대했을수도

    【파리=박정현특파원】 폐암 치료를 위해 파리를 방문중인 오진우북한인민무력부장은 그의 신병치료외에 김정일의 질병검진도 의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 고위 외교소식통이 28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오진우부장은 그의 고령을 감안할때 치료를 받더라도 그다지 희망이 없어 보인다』며 『6명이라는 많은 수행원이 오부장을 동행했다는 점을 감안할때 그의 파리행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수 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들은 김정일의 증세를 나타내는 검진기록이나 진료사진등을 갖고와 간접진단을 받을수도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김정일 체제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인물인 오진우의 건강이 절망적인 상태라면 파리까지 내보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 하야다선수의 선글라스(송정숙칼럼)

    「히로시마」를 달리던 일본의 「하야다 도시유키」선수의 모습은 일품이었다.흡사 브론즈조상같은 몸모양과 흐트러지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며 일정한 속력으로 뛰는 그 모습은 당당하고 정한했다.그리고 그 선글라스.첨단과학을 이용했을 것이 분명해보이는 멋있는 안경이었다.조깅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듯이 뛸때에는 손에 든 휴지조차도 귀찮다.그런데 하야다선수와 또다른 일본선수는 둘다 그 안경을 쓰고 있었다.그래서 TV중계를 보던 우리로 하여금 「특별 병기인가」하며 긴장하게 했다. 유니폼 또한 특별디자인된 것이 분명해보이는 것을 갖춰입고 경기가 시작되어 전체코스의 3분의 2지점인 30㎞에 이르기까지를 하야다선수는 그렇게 선두로 달렸다.뒤따르는 두번째 그룹을 1백미터쯤 떨쳐놓고 혼자서 늠름하게 달리는 그 모습은 참 근사했다.거기 비하면 뒤따르는 그룹은,선두를 따라잡는 건 감히 엄두도 못내며 둘째나 차지하려고 안간힘하는 오종종한 패거리로 비쳤고 거기 우리의 황영조선수도 들어 있었다. 그렇게 3분의 2구간을 달리고 있는하야다의 모습을 보며 차츰 이상한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그가 인간이 아니고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법한 인조인간으로 보이는 그런 착각현상이었다.피부를 한꺼풀 벗기면 혈관대신 전선이 가득 들어있고 가슴을 열면 복잡한 기계들이 장착되어있는 로봇인간.그러니 기계를 상대로 우리선수가 이길수 있겠는가 하는 절망감도 들었다. 그런 한편으로 하야다선수의 그 뛰는 모습이 하도 근사해서 그가 선두를 못지키는 일이 없기를 바라야만 할것같은 「착각」도 순간 들었다.그 착각은 뒤따르는 오종종한 패거리속의 우리선수들도 우승을 체념해야 하고 볼품좋은 「선두작품」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야 할 것같은 해괴한 착각이었다. 그러다가 코스가 30㎞지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의 황영조 김재룡팀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기 시작했다.그것은 우리중계팀 해설자의 예고와 정확하게 적중되는 지점이었다. 황영조선수의 모습은 하야다와는 달랐다.키도 작고 다소 촌스럽고 겉멋같은 것에는 아무런 투자도 하지않은 소박함 그대로의 모습이었다.그러나 투지가 담긴 얼굴,다부지고 독특한 몸매,특히 따악 벌어져서 앞으로 헤치고 나오는 듯한 그 황금같은 앞가슴은 온기로 가득한 「사람의 가슴」이었다.그리고 선글라스로 가려지지 않은 그의 맨눈은 고통을 점잖게 참으며 기품을 잃지않은 「사람의 눈」이었다.그런 황선수가 「예고」대로 선두와의 거리를 착착 단축하고 하야다를 따라잡았을 때 비로소 「착각」들에서 깨어났다. 마침내 황선수에게 따라잡혔을 때의 하야다선수의 모습은 그 근사함에서 급전직하한 참담,그것이었다.의연한 자세로 접근하는 황선수를 초조하게 돌아보느라고 보폭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고통으로 일그러져버리는 아주 참혹한 모습이었다.「기계」처럼 냉혹하던 표정 뒤의 어디에 그런 모습이 숨어있었던 것일까.멋쟁이 선글라스가 별안간 거추장스런 장난감처럼 보이는 기막히게 「인간적」인 표정이었다. 그러고보면 그것이 일본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기계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압도해서 경쟁상대의 우승욕을 처음부터 좌절시킨다는 시나리오를 가졌었는지도 모른다.문제의 선글라스는 Y광학이라는 일본의 안경회사와 일본육상연맹이 특별히 개발한 것으로 무게가 22g쯤 되는 신소재의 것이라고 한다.목적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것으로 바르셀로나대회때부터 일본선수들이 착용 했었다고 한다.히로시마에서도 방향에 따라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지점이 있으므로 쓰게 한 것이라고 한다.아마도 우승을 했더라면 이 「병기」의 제원도 자세히 밝혀지고 「신상품」으로 각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라톤은 가볍기의 전쟁이다.러닝셔츠 무게라도 줄여보기 위해 구멍을 내기도 하고 운동화무게를 줄이기 위해 옛날선수들은 칼로 밑창을 도려내기도 했다.그러므로 그 선글라스는 「햇빛」을 위해서보다는 「위용」을 위한 소도구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은밀한 「기도」를 우리의 황선수는 무산시켰다.그것은 아주 원형적인 소박함과 성실성,그리고 인간다운 극기로 이뤄진 것이다.그렇게도 멋있던 하야다선수가 구겨져 부서지듯 참담해지게 만든 그 따뜻함은 위대한 것이었다.황선수도 바로 그 30㎞지점에서 『그만 포기하고싶을 만큼』고통을느꼈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하야다선수의 은밀한 작전에 실패할 뻔한 위기도 겪었던 셈이다. 효성이 지극하고 겸손하고 성실한 황선수의 그 「사람의 모습」은 원래 우리의 본디모습이다.진실하고 책임감이 있고 꾀를 부리지않고 지성을 다하며 겸허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그런 것이 본디의 우리모습이었다.그 모습은 오늘처럼 자학의 늪에 빠질만큼 실망스런 우리모습과는 다르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는 아직도 그런 모습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그것을 찾았으면 좋겠다.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황선수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지 않은가. 자중자애로 우리 그런 본성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충주호 동승 장재훈씨 살신 뒤늦게 밝혀져

    ◎30여명 구한뒤 숨진이 있었다/불길 아수라장속 사력다해 선창 깨/노약자 탈출 도와준뒤 탈진해서 익사 화마가 삼켜버린 충주호 유람선에 타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동승한 승객 30여명을 구한뒤 실종됐던 장재훈씨(60·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120의8)가 26일 상오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돼 가족들은 물론 그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을 오열케 했다. 같은 동네 「3천년친목회」회원 60여명과 함께 유람선에 오른 장씨는 사고직전 친구 3명과 함께 갑판에 나와 짙은 가을속 단양팔경의 절경에 연신 감탄사를 뱉어내고 있었다. 이때 갑자기 선미에서 검은 연기와 함께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본 장씨일행은 누군가의 외침에 따라 서둘러 객실로 들어갔다. 평소 입담이 좋기로 소문난 장씨는 객실에 대피한채 불안에 떠는 아주머니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몇년전에 등산중에 만났던 일 등 우스갯소리를 하며 불이 꺼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와 불길이 죽음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객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더이상지체할 수 없었다. 장씨는 함께 있던 승객들에게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는다』고 소리치며 등산용 가방으로 유리창을 수십차례 내리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공포와 절망감에 젖은 승객들의 아우성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장씨는 애지중지하던 비디오카메라로 다시 유리창을 내리쳤고 순간 그토록 견고하던 유리창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10여m쯤 떨어진 곳에서 눈에 익은 다른 유람선과 어선등이 구조를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다들 빨리 빠져나갑시다』 장씨는 서둘러 대피할 생각은 않고 객실에 갇혀 있던 승객중 수영에 익숙지 못한 노약자들을 도와 구조대가 있는 쪽의 물속에 한사람씩 내려주었다. 그러기를 수십차례,어느새 불길은 장씨의 발끝까지 다가왔고 장씨는 본능적으로 차가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승객들을 먼저 내보내는 과정에서 탈진한 상태였다. 충남 아산만 출신으로 수영에는 자신이 있었던 장씨는 10여m를 헤엄쳐가다 물속으로 그만 가라앉아 버렸다. 그의 도움으로 살아난 승객들은 저마다 장씨의 용감한 살신성인의 모습을 칭송했으며 끝내 시체로 발견되자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일행 임병수씨(61)는 『당시 장씨가 유리창을 깨고 우왕좌왕하던 승객들의 탈출을 돕지 않았다면 객실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불길속에 죽어갔을 것』이라며 눈물지었다. 그는 또 『장씨가 1개월전 척추수술을 받은 부인 김정자씨(59)와 함께 오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아내를 위해 붉게 물든 단풍잎과 기념품을 준비했는데…』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 「78년 참사」이래 최악의 테러/텔아비브 버스폭파 참사 안팎

    ◎“아랍인에 죽음” 피킷들고 반정시위/「이」 군중/“만행주범 체포에 협력” 이례적 성명/아라파트 19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중심가에서 발생한 버스폭탄테러는 중동의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저질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이번 테러는 회교과격단체 「하마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데 하마스는 지난 17일 이스라엘­요르단간의 평화협정 가조인으로 무르익던 중동평화분위기를 제지하기 위해 초조감을 보여왔다.한편 이스라엘은 즉각 하마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대한 봉쇄조치를 취하는 등 사태는 점차 악화되고 있다. ○…이날 테러는 상오 9시 카페가 줄지어 있는 텔아비브 번화가에 버스가 도착한 뒤 갑자기 폭탄이 터짐으로써 일어났다.폭발이 일어난 뒤 깨진 유리파편과 금속들,희생자들의 떨어져 나간 신체 일부가 길거리에 흩어졌고 이스라엘의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장의협회 인부들이 사건발생 뒤 수시간동안 현장에서 희생자들의 소지품과 시신을 수거했다.이번 사건은 78년 버스납치로 37명의 이스라엘인이 사망한뒤 최악의 참사다. ○…지난 10일 동안 일어났던 3건의 테러에 이어 이번 사건 역시 「하마스」의 소행으로 알려지자 사건현장에 있던 수천명의 군중들중 일부는 『아랍인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울부짖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19일밤에도 많은 시민들이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 「나는 다음번 희생자가 되고 싶지 않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반정부시위를 벌였다. ○…라빈 이스라엘총리는 이날 긴급마련된 TV 연설에서 격앙된 모습으로 『테러는 종식될 것이고 종식돼야만 한다』고 말하며 이슬람과격주의자들에 대한 대규모 검거를 다짐했다. 한편 아라파트 PLO 의장은 사건직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번 만행의 주범들을 색출,체포하는데 이스라엘정부에 전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이어 『평화협상을 계속하는 일만이 잘 알려진 외부세력으로부터 훈련과 자금을 지원받는 평화의 적들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회교과격파 하마스/요르단강 서안·가자에 은거… 테러활동 텔아비브 폭탄테러사건을 자행한 것은 회교저항단체인 하마스의 무장행동대 「이제딘 알 카삼」 대원들.이들은 평화를 향해 나가는 이 지역을 볼모로 잡기 위해 무장공격을 저질렀다. 이제딘 게릴라들은 모두 수백명 정도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자치지역인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2∼3개의 지하 세포조직으로 활동중이며 모두 20대와 30대 초반의 남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번 폭탄테러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요르단강 서안에 있는 라파트 출신의 예히아 아야시.그는 금년에만도 3차례에 걸친 폭탄테러로 이미 수배를 받고 있다. 아랍어로 이슬람저항운동이라는 뜻과 함께 열정이라는 뜻도 갖고 있는 하마스는 지난 87년12월 봉기 직후 가자지구에서 창설됐으며 무장행동대는 게릴라지도자인 이제딘 알 카삼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다.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는 사지가 마비된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58)으로 지난 89년 체포되기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 누운 채 지내며 일일이 지시를 내렸었다.그는 가자지구 난민촌의 가난과 절망을 보고 무장행동의 씨앗을 키워나갔다고 한다.
  • 지존파 논고 요지

    인간성 상실과 도덕적 불감증으로 범죄가 갈수록 흉포화·잔혹화하는 경향을 보여 마치 기록을 경신하듯 강력범죄에 「전대미문」「전례가 없는」이라는 말이 상투적인 수식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정녕 세상에 신과 악마가 존재한다면 본 사건이야말로 악마의 대리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라고 규정짓고 싶습니다. 피고인들은 범행동기에서 소위 「있는 자」들은 모두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았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마치 자신들의 범행이 사회적 불균형이라는 구조적 모순에 의해 파생된 것이고 자신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처럼 떠벌여 범행을 합리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있는 자」가 되기위해 1인당 10억원을 벌게되면 조직을 해체하기로 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피고인들의 범행동기는 「배금주의」와 「한탕주의」입니다.떼돈을 벌기위해 목숨을 걸고 벌인 한판의 도박인 것입니다. 피고인들은 인간의 생명을 「연습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뿐아니라 납치해온 피해자들에게 미리 살인예고를 해 극도의절망감과 두려움속에서 죽어가게 했으며 증거를 없애기 위해 사체를 소각하는등 범행수법에서 잔인성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또 함께 납치당한 애인과 소윤오씨를 공기총으로 살해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구사일생으로 탈출해 신고한 한 여인의 일생을 완전히 파멸시켰습니다.비록 이 여인이 극적으로 탈출해 몸은 살았다고 하겠으나 그녀가 앞으로 죽을때까지 겪어야 할 정신적 고통을 생각한다면 피고인들이야말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악마의 살인집단」이라고 할 것입니다. 피고인들의 범행은 인간성 말살이란 수준을 넘어 광기로 뭉쳐진 살인집단의 소행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또 누구하나 후회나 회한,자신의 처지에 대한 절망등 어떠한 이유에서건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피고인들은 정녕 인간이기를 포기한 살인기계인 것일까요.아니면 선악을 판단할 능력이 마비된 것일까요.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사회로 책임을 전가하는 철면피한 태도등에 비춰 볼때 본 검사는 전 우주보다 더 무겁다는 사람의 생명을 다섯명씩이나 무참히 살해한 피고인들이 교육을 통해 개선가능한 범죄자들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형벌의 예방적 측면과 교육적 측면이 중시되고 있기는 하나 형벌의 첫째 본질은 역시 응보이고 죄에 상응하는 처벌이야말로 정의에 부합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문명사회에 대한 정면도전행위인 본건과 같은 흉악범죄로부터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할 책무를 부여받은 법은 그 엄정한 칼을 뽑아 피고인들을 이 사회에서 영원히 제거,추방함으로써 법이 살아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 「연극계 가수」 박정자·연극인 장두이/노래가 있는 창작극 꾸민다

    ◎중년여성의 일과 사랑과 고독 담아/「11월초 왈츠」 27일부터 「연극계의 가수」 박정자와 전천후 연극인 장두이가 손잡고 노래가 있는 창작극 무대를 꾸민다. 극단 실험극장은 「오늘의 명배우 시리즈」 제2탄으로 오는 27일부터 박정자의 「11월의 왈츠」(이충걸 작·장두이 연출)를 선보인다. 특히 이번 무대는 사실상 1인극에 다름없지만 피아노를 활용하는 등 물체극적 요소를 도입했으며 박씨가 직접 노래와 함께 왈츠도 곁들일 예정이어서 단조롭지만은 않은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년여성의 일과 사랑과 고독으로 압축되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기존 멜로극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20년동안 무대에만 몰입해온 50대의 여배우가 주인공.그의 결혼생활은 한지붕 생활을 하지만 마치 투명인간처럼 서로를 못본채하며 지내는 남편과의 끝없는 신경전으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이들은 결국 갈라서게 되고,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진통제로 유지되는 삐걱거리는 육체와 빈둥지같은 허전함뿐.방황의 늪에 빠져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스무살연하의 남자(성기훈 분)가 신기루처럼 나타나면서 극은 일대 반전을 이룬다.너무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솜사탕같은 사랑에 중년의 가슴은 사정없이 요동친다.하지만 남자는 운명처럼 멀어져가고,그는 세상이 끝난것 같은 절망감에 몸부림치지만 결국 자신의 유일한 귀의처는 무대임을 값비싸게 깨닫는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다. 지난 89년 「아직은 마흔네살」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포함한 노래모음집과 시낭송 테이프를 내기도 한 박씨가 이번에 부를 노래는 끈적한 분위기의 트로트곡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비롯,「시노메모로」「4월이 가면」「허무한 그날」「페드라,사랑의 테마」등 모두 5곡. 국내정착후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장두이씨는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연극적 이중구조를 통해 인간 내면에서 부글거리는 원초적인 욕망을 표현해내는데 연출의 역점을 두겠다』며 『피아노 클래식 기타소리가 들리는 한판의 라이브 공연같은 연극을 보여주겠다』고 의욕을 보인다. 손숙의 모노드라마 「셜리 발렌타인」으로 서장을 화려하게 장식한 「오늘의명배우 시리즈」는 앞으로 1년 3개월동안 계속되며 각 작품마다 3개월씩 공연된다.다음 작품으로는 이호재 전무송씨가 출연하는 「뗏목」(이만희 작·김아라 연출)과 「청바지를 입은 파우스트」(이윤택 작·연출)가 차례로 올려질 예정이다.화요일 하오7시,수∼금요일 하오3시·7시,토요일 하오3시·6시,일요일 하오3시 공연.515­7661.
  • 민간인 변장 이라크군 국경집결설/긴장고조 중동 표정

    ◎걸프 6국 쿠웨이트 보호 합동군 파견/“후세인 지지” 민간인시위대 국경향해/재침공 재현 우려… 짐싸는 쿠웨이트인 늘어 ○…이라크 반정부방송은 9일 이라크당국이 10만명의 병력을 쿠웨이트및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지역으로 집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군 방송」이라고 밝힌 이 반정부 방송은 이라크의 최정예부대인 공화국수비대 소속 5개 사단이 이라크 남부지역으로 이동하고있다고 덧붙였다. ○…쿠웨이트 국경지역을 향해 집결하고있는 수천명의 민간인들이 9일 현재 비무장지대에서 1㎞ 이내 지역에 모두 1천여개의 텐트를 설치했으며 쿠웨이트 반대 연좌시위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유엔 이라크 쿠웨이트 옵서버단(UNIKOM)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상오부터 몰려들기시작한 민간인들이 현재 급속히 증가,수천명에 이르렀으며 이날중으로 2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하고 『상황이 현재 심각한 단계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이들의 숫자가 급속히 증가하고있어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 ○…이라크군의 대규모 병력이동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특별한 군사도발 움직임이 포착되지는 않고있는 가운데 미국이 9일(한국시간) 4천여명의 병력을 파병키로 하는등 이라크에 대한 응징위협과 군사대응은 계속 강화되고 있는 양상. 미국 국방부는 그러나 이라크가 쿠웨이트 접경지역에 최정예 공화국수비대 1만4천명을 추가집결 시켰으나 즉각적인 재침공 징후는 없는 것으로 판단. 특히 이라크 병력이 집결돼 있는 접경지대는 난민들로 보이는 이라크 주민들이 비무장상태로 천막을 설치하는 모습이 눈에 띄고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평온한 상태라고 현지 유엔옵서버들이 전언. ○…걸프지역 국가들은 이라크군의 이번 군사움직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공조대응체제를 모색하는등 신속하고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 군수뇌들은 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이라크의 군사위협으로부터 쿠웨이트를 보호하기 위해 GCC 합동군 급파 조치를 마련. 걸프지역 외교관들은 사우디 북부 하프르 알바탄에 기지를 둔 합동군이이날 쿠웨이트를 향해 출발했다고 말했으나 병력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유엔제재를 받고있는 리비아는 8일 『미국이 이라크군의 병력이동에 과잉대응을 하고있다』며 미국을 강력 비난. 미국의 걸프개입에 반대해온 비아랍국가인 이란도 『미국이 걸프국가의 경제·안보종속을 영구화시키는 명분으로 이라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 이와함께 이라크를 지지해온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이라크에 대한 유엔제재조치를 해제할 것을 유엔안보리에 촉구. ○…쿠웨이트 주재 외교관들은 이라크군의 이번 군사움직임이 유엔제재 해제를 위한 외교노력이 실패로 끝난데 대한 절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 이들은 특히 쿠웨이트 인근에 집결돼있는 이라크군이 도발행위를 할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관련,한 서방외교관은 『현재로서는 이라크군의 병력이동은 쇼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 ○…모하마드 메흐디 살레 이라크 통상장관은 8일 미국과 영국이 기아에 허덕이는 이라크 국민들을 위한 식료품 구입노력을 봉쇄하고 있다고 비난. 살레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50만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 1백만명이 유엔 제재조치 이후 식료품과 의약품 부족으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설탕,옥수수등 식료품을 구입할수 있도록 해줄 것을 호소. ○…이라크군의 병력이동 소식을 접한 쿠웨이트인들은 일부가 현금인출기와 주유소 앞에 몰려든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동요없이 차분한 모습을 유지. 쿠웨이트인들은 특히 정부의 위기극복 호소를 잘 따르고 있으며 특히 사우디 국경으로의 왕래나 비행기 예약등이 정상적인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4년전의 이라크침공이 재현될 것을 우려,쿠웨이트를 떠날 준비를 하고있다고 현지인들이 전언.
  • 멸망의 원인(백제를 다시본다:30·끝)

    ◎한강유역 뺏긴뒤 서남부에 고립/의자왕,초기 전승에 자만 실정 거듭/대당외교 실패… 많은 충신 귀향보내/18만 나당연합군 침공때 동원가능 병력은 5천명 부소산성에 올라 금강을 굽어보노라면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이 마냥 평화롭게만 느껴진다.1천3백년 전 이곳에서 망국의 통한을 품은 3천 궁녀들이 떨어져 죽었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그러나 서기 660년 당의 침략군이 신라와의 사전협약에 따라 서해로부터 금강 하구에 소리없이 진입하여 상륙작전을 개시한 뒤 사비도성을 유린한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백제는 왜 멸망했는가.이 수수께끼를 속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란 없다.백제 멸망원인은 매우 복합적이다.역사적 인과관계에서 볼 때 우리들은 많은 멸망원인을 열거할 수 있으나 이를 대내적인 것과 대외적인 것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삼국항쟁이 격화된 6세기 후반 이래 백제는 경쟁국가인 고구려나 신라에 비해 그 입지랄까 행동반경이랄까가 매우 좁았다.즉 한강유역을 송두리째 신라에 빼앗긴 뒤로부터 백제는 줄곧 한반도 서남부지역에 고립되어 있었던 것이다.백제가 기대를 건 잠재적인 동맹세력은 고구려였으나,양국은 다만 해상으로 연락을 취할 수 있을 뿐 이었다.그런 까닭으로 백제는 자신을 ㄱ자 모양으로 포위하고 있는 신라와의 군사경계선을 돌파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것은 한 때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하지만 백제는 결코 신라의 포위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이처럼 백제가 신라와의 국경전쟁에서 헛되이 국력을 소모하는 동안 내부사정은 차츰 악화되어 갔다.의자왕이 641년 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만 해도,희망은 아직 남아 있었다.그는 인간적으로 나무랄데 없는 성품이었고,국가중흥의 열망에 불타 있었다.왕태자 시절 지극한 효성으로 해동의 증자라는 평까지 듣던 의자왕이었다. ○신라 포위 못벗어 그가 왕위에 오른 직후에 결행한 신라 침공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마침 642년 평양에서는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군국의 대권을 장악했는데,의자왕은 그와 손잡고 신라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개시했다.백제군은 중국으로 통하는 신라의 서해 관문인 당항성(경기도 화성군)의 목을 죄는 한편 신라의 낙동간 방면 전선사령부가 위치한 대야성(경북 합천군)을 함락하여 경주를 가까이서 위협했다.이같은 전과는 의자왕의 경탄할 만한 기민성과 결단력에 힙입은 바 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의자왕의 인간적인 약점이 노출되었다.전투에 잇따라 승리한 의자왕은 어느 덧 자만심에 빠져 만기를 독재하는 통치스타일로 기울어졌다.사태를 더욱 악화시긴 것은 왕비 은고의 지나친 권력욕이었다.백제를 멸망시킨 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부여 정림사탑에 전승을 기념하는 글을 새기도록 했는데,거기에는 멸망 당시 백제의 정치상황을 설명하여 『의자왕이 곧은 신하를 버리고 아낙네(왕비)를 너무 믿어 형벌이 오로지 충양한 사람에게 미쳤다』고 했다.양심적인 재상인 성충이 옥사하고 흥수가 귀양을 간 것도 이같은 난정이 빚어낸 어처구니없는 결과였다.또한 해방 직후 부여에서 우연히 탑비가 발견됨으로 해서 그 실재가 확인된 대좌평 사택지적의 정계은퇴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충신들이 밀려난 자리에는 신라의 간첩망에 포섭된 임자 같은 인물이 도사리고 있었다. ○왕비 권력욕 지나쳐 무엇보다도 의자왕이 범한 큰 과오는 백제를 둘러싼 국제관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다.당은 신라측의 끈질긴 한반도 개입 요청을 받아들여 백제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와 화평관계를 꾀하도록 외교적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의자왕은 이같은 권고를 거듭 묵살했다.652년 이후 백제는 더 이상 사신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당과의 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다.백제를 치기로 한 신라와 당 양국간의 비밀협상이 한창 무르익어가던 절박한 때에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외교적 실책이었다.바야흐로 백제 상공에는 잔뜩 먹구름이 닥쳐오고 있었으나,의자왕은 전혀 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서기 660년 여름 신라와 당 연합군의 침공은 백제로서는 그야말로 청천백일하의 날벼락이었다.김유신이 이끄는 신라의 5만 대군이 국경선 깊숙이 나타났을 때 백제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결사대 5천명이 고작이었다.이 결사대는 사흘동안 황산벌(충남 연산)에서 신라군과 처절하게 싸운 끝에 전원 옥쇄했다.한편 13만명에 달하는 당나라 군대는 금강 동쪽 기슭에 상륙,7월 11일 신라군과 합세했다. 드디어 12일에는 나당연합군이 사비도성 공격에 나섰다.연합군은 도성 동쪽 20여리쯤 떨어진 곳에서 백제군의 소규모 저항을 받았으나 이를 단숨에 격파하고 염창리에서 능산리로 이어지는 나성을 통과,순식간에 도성 안으로 진입했다.적군의 강습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의자왕은 태자와 함께 북쪽 웅진성(공주)으로 달아났다.이에 왕의 둘째 아들 부여태가 왕권을 대행했으나 혼란을 수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이윽고 연합군이 시가지를 가로질러 부소산성을 포위하자 절망에 빠진 지배층과 백성들이 떼지어 성에서 내려와 항복했다.그리하여 부소산성 정상에는 나당 연합군 깃발이 나부끼게 되었다. ○부흥운동 무위로 그러나 백제는 그 뒤 3년간 더 살아 꿈틀거렸다.국왕의 항복결정을 거부한 지방주둔 병력이 왕족 복신의 지휘 아래 총집결하여 조직적인 부흥운동을 벌인 것이다.이들은 한때 사비도성을 포위한 일까지 있었다.주류성(서천 한산 혹은 부안으로 짐작됨)과 임존성(예산 대흥)이 당시 부흥운동군의 일대 거점이었다. 663년 가을 백제와 전통적인 우호관계에 있던 일본이 부흥운동군을 돕기 위해 3만대군을 보냈다.그러나 왜군은 백강하구에서 신라·당 연합군에 포착되어 네차례의 접전 끝에 섬멸되고 말았다.당시 불에 탄 왜선 4백척에서 뿜어대는 연기와 불꽃이 하늘을 붉게 하고 바닷물도 빨갛게 물들었다고 한·중 양국 사서는 기록하고 있다.왜군 격파로 사기가 오른 연합군의 일제 공격으로 주류성은 마침내 함락되고 백제부흥운동은 그 종말을 맞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는 가고 말았으나 그들이 창조한 문화의 가지는 신라와 일본 등지에 이식되어 그뒤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했다.지난해말 세상에 공개된 금동향로는 찬란했던 백제문화의 정화로,그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망국의 군주/의자왕 중국 북망산에 묻힌듯/패망후 당나라에 끌려가 병사 우리가 고대사에서 만날 수 있는 큰 비극을 꼽자면백제패망을 다룬 AD660년의 기사가 그 하나일 것이다.궁녀들이 꽃처럼 떨어졌다는 낙화암 옛 이야기와 더불어 아련히 들려오는 사비도성의 황급스러운 말발굽소리는 백제사가 간직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때에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했던 의자왕도 결국 나·당연합군에 붙잡혀 2만여 백제유민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역사는 기술하고 있다.그러나 이 망국의 군주는 생몰연대도 전해지지 않고 그저 막연하게 당에서 병사한 것으로만 되어있다.이는 의자왕과 휩쓸려 포로가 된 왕자 부여릉(AD615∼682년)이 당에서 남긴 비교적 소상한 활동기록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의자왕은 어떻게 되었을까.이 물음에 해답을 던져줄 가능성은 있다.의자왕의 신하로,또 왕자 부여릉과 백제부흥운동을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흑치상지(AD630∼689년)와 그의 아들 흑치준의 묘지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중국 하남성 낙양의 북망산에서 1929년에 발굴된 이 묘지명은 현재 남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흑치상지의 묘지명은 왕자 부여융이 주군으로 받들어지고 있음을 표현했다.또 묘지명은 AD677년 부여융이 당으로부터 「웅진도독 대방왕」에 임명되었을 때 흑치상지는 속관의 직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다만 41줄 1천6백4글자나 되는 묘지명 새김글씨에 의자왕 기록이 전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사학계는 당나라 왕후장상들의 묘역 북망산을 계속 주시하는 입장이다.북망산에서는 백제유민 흑치상지 부자의 묘지명 말고도 연개소문의 아들이자 고구려유민인 천생의 묘지명이 출토되었다.이로 미루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 묘역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백제 최후의 군주 의자왕의 무덤을 찾는 일은 한·중학계의 협력에 따라 성사될 수도 있을 것이다.그래서 학계는 북망산 한쪽에 묻혀있을 의자왕 묘지명을 찾아야할 큰 역사숙제를 안고 있는지도 모른다.
  • 「지존파」의 엽기적 범행을 보고/백상창(기고)

    ◎“네탓”만 하는 사회풍조 20대 초반의 범인들이 6명씩 떼를 지어서 치밀하고 반복된 훈련 끝에 그랜저를 타고다니는 사람들을 골라서 금품을 뜯은뒤 납치살해,『용기를 북돋우며 힘을 얻는다』며 시체의 일부를 먹는등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벌어졌다.그렇지 않아도 박한상의 부모살해사건,60대 노인의 생활고로 인한 80대 어머니의 살해,그리고 인천에서 공무원들이 짜고 국민의 혈세를 조직적으로 착복하여 모처럼 발족된 문민정부의 개혁의지를 손상케하는 일등이 터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지존파」범죄사건은 차라리 경악을 넘어선 절망감과 불길한 예감마저 던져주고 있다. 어째서 이런 망국적 범죄가 일어나야 하는가. 여기에는 현정부만 나무랄수 없는 사회병리적 원인들이 누적되어 왔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이들 20대 초반의 범인들이 치밀한 계획과 수차례에 걸친 끔찍한 범죄행위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관심을 쏟거나 충고,선도하거나 따뜻한 사랑을 베푼 일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무엇이그리 바쁜지 쫓기며 살고,남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과 불신등이 판을 치고 있는 점이다. 또 당사자들에게 있어 인면수심의 도덕적 양심의 결핍증을 들수 있다.이들에게는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초자아(Superego)즉,양심층이라는 인성에서 마치 오존층이 파괴되듯 일부 마비증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이고,심지어는 살인·방화·시체의 일부를 먹기등에서 묘한 병적 쾌감마저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사건은 선량한 한국전체 국민들의 위신마저 송두리째 추락시켰으며 그 원인은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투사심리(Projection)와도 관계가 있다. 원래 겸양했고 천지인의 조화를 강조해 왔으며 동방례의지국으로 일컬어져온 한국의 전통가치는 상처를 입었다.너나 할것없이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존재를 과대하게 보며,바라는 일들이 안되거나 실패하게 되면 남을 원망하고 제도·사회·조상등에 책임을 돌리는 풍조가 만연된 현상은 아닌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이번 사건과 같이 반사회적인 범죄의 빈발을 차단하는 처방은 무엇인가.우선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치권을 비롯한 행정부및 지식층등의 분발이 요구된다. 김영삼대통령이 「한국병」을 진단하고 이의 퇴치를 다짐하고는 있지만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추진하겠다는 정치지도층의 불같은 정열과 곰같은 뚝심,명경지수 같은 개혁의지의 동참이 요청된다. 이번 사건과 같이 상상을 넘는 범죄행위는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며 엄중하고 단호한 처벌이 있어야 일벌백계의 교훈을 얻게된다. 더욱이 이런 동물과도 같은 극악한 범죄꾼이 나오지 못하도록 가정·학교·사회가 혼연일체가 된 인격교육(Educationforpersonality)이 요청되는데 특히 만1세에서 7세까지의 인격형성기에 있어 「따뜻한 모유주기」,「가정속에서 안도감주기」,「아버지는 모범적인 모습보이기」,「어머니는 과잉보호,무관심이 아닌 적절한 사랑주기」,「자신의 뜻을 펴되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해롭히는 일을 하지않도록 교육하기」등을 가르쳐주는 사회운동이 요청된다. 끝으로 정치권의 책임을 들수 있다.좌절감,실망감에 빠지는 일이없는 사회정책을 펴고,많은 기회를 주는 고용창출을 하며,외롭거나 방황하는 이들이 쉽사리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할수 있는 상담실운영 등이 요청된다. 범인은 반드시 붙잡히고 처벌을 받는다는 대중적 인식이 확산되게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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