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망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평택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용산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삼성동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 건물
    2026-06-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939
  • 대관령 옛길 걷기

    대관령엔 길이 세개다.지난해 개통된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새 구간과 그 이전의 구간,그리고 그보다도 훨씬 이전의 옛길이 그것들이다. 길이 험해 대굴대굴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을 한자어로 적으면서 생겼다는 대관령(大關嶺).그러나 지금은 새로 난 도로를 타고 미처 대관령을 지난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평창군 횡계에서 고개를 넘어 강릉 나들목까지 단 10분만에 내닫는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그러나 가파른 옛길을 오르내리는 등반객들의 눈엔,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따라 한달음에 내닫는 사람들에게선 볼 수 없는 여유로움이 넘친다. 초겨울,비오고 안개 자욱이 낀 대관령 옛길에 들어섰다.기점은 옛 고속도로 대관령 휴게소에서 1㎞쯤 강릉방향으로 내려가다 오른쪽에 보이는 반정(半程).왜 ‘반정’이란 지명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으나,혹시 그 옛날 고개를 넘다가 이곳에 이르러 험한 대굴령길을 반은 넘었다며 한숨 돌린데서 비롯된것은 아닐까? 옛길이라고는 하나 산림도로 용도로 쓰기 위해 길 초입 일부 구간은 포장도되어 있다.하지만 지난 여름 폭우때 대부분 유실돼 지금은 오토바이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차량을 위해 뜨문뜨문 설치해놓은 교통표지판이 생경하기만하다. 비가 와서인지 인적이 뚝 끊긴 옛길을 따라 내려간다.포장된 길은 이내 끝나고,좀 넓은 오솔길이라고나 할까.굽이굽이 펼쳐지는 흙길이 눈 앞에 정겹게 펼쳐진다. 여름이라면 길섶 가득 돋아난 온갖 야생초화들이 방문객을 반겨주겠지만,지금은 온갖 풍상 다 겪은 듯 여유로움을 풍겨주는 노송들이 묵묵히 지나는 이들을 지켜볼 뿐이다.멀리 동해바다를 굽어보며,해풍을 맞고 자라서인지,노송 하나하나가 참 운치가 있다. 강릉사람들은 고개를 넘나드는 일이 수월하지 않았던 시절,산신제나 노제를 지내며 안전한 행로를 빌었다.이들은 행여 자신들의 형제나 자식들이 호랑이가 가장 많이 서식했다는 대관령을 넘을 때 호환(虎患)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옛길 곳곳에서 노제를 올렸다. 이러한 전통이 지금도 이어져 4월 보름날이면 강릉시민들이 대관령 산신제나 군사서낭제사를 지내는데,강릉지역 버스회사들이 그 비용을 후원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의 제사가 ‘호환’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던데서 지금은 ‘윤화’(輪禍)를 막아달라는 것으로 바뀐 것뿐이다. 어쨌든 강릉사람들에게 대관령은 단순한 길,고개,산이 아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그래서 강릉시인 김선우는 그의 시 ‘대관령 옛길’에서 이렇게 읊었나 보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빙화의 대관령 옛길,아무도/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라고. 신사임당이 친정 부모를 두고 시댁으로 떠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오르내려야 했다는 대관령 옛길.당시 왕명을 받아 임지로 가던 관헌들은 이곳에이르러 멀리 넘실대는 동해바다를 보고 ‘세상 끝에 왔구나.’라는 절망감에,임기를 끝내고 돌아갈 때는 정든 곳을 떠난다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다고해 대관령은 ‘눈물 고개’란 또 하나의 이름이 전해진다. 반정에서 시작된 옛길은 강릉시 성산면 어흘리 대관령박물관이 있는 곳에서 끝난다.5㎞ 남짓한 길을 쉬엄쉬엄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30분 정도.길을 바꿔 대관령 박물관에서 반정으로 오르려면 2시간은 족히 소요될 듯하다. 대관령 박물관은 우리 문화재를 지극히 사랑한 한 개인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문화재박물관.미술사를 전공했다는 홍지숙(52)씨가 평생 투자해 모은 영동지방 일대의 민속자료와 선사유물,불교미술품 1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대관령박물관을 지나 오르는 옛길 일부엔 지금 붉은 벽돌 포장작업이 한창이다.옛길을 찾는 등반객들의 편의를 위한 정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그옛날 ‘대굴령’의 운치를 느껴보려는 사람들에게 평탄한 벽돌길이 과연 편하게만 느껴질지 의문이다. 강릉 임창용기자 sdragon@ ★여행가이드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새 구간 횡계 나들목에서 빠지는 게 가장 편하다.나들목에서 나와 우회전해 횡계 중심으로 들어가면 대관령 이정표가 나온다.이정표를 보고 15분쯤 길을 오르면 옛 영동고속도로를 만나고 대관령휴게소가 나온다.불과 1년만에 폐가로 전락한 휴게소에서 1㎞쯤 구불구불 내려가면 오른쪽에 ‘대관령 옛길’이란 비석이 보인다.이곳이 대관령 옛길이 시작되는 ‘반정’이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강릉시내에서 대관령박물관이 있는 어흘리행 25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오전 9시5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오후 8시50분까지 운행한다. ●먹을거리와 잠잘 곳 박물관에서 승용차로 5∼6분 내려가면 강릉시 성산면 구산리다.내려가는 동안 구미를 당기는 식당들이 즐비하다.특히 꿩고기로 만든 상큼한 만둣국,얼큰하고 구수한 추어탕,황태 해장국,대구 머리찜 등이 식욕을 자극한다.이중동해에서 잡힌 명태를 대관령 일대에서 해풍을 쏘이며 말린 황태를 쓰는 해장국의 시원함이 일품이다. 평창 일대엔 휘닉스파크와 용평리조트,한국콘도 등 콘도미니엄이 많다.이들 콘도들은 스키철을 맞아 주중에도 붐비기 때문에 꼭 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다.콘도가 아니라도 스키어들을 겨냥해 고급스럽게 지은 민박이 많으므로 주말만 아니라면 방을 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른 구경거리 동양 최대의 초지목장 삼양 대관령목장에 한번 들러보자.평창군 도암면 횡계리 해발 850∼1400m의 고지대,600만평의 초원에 2500여마리의 육우와 젖소가 자라고 있다.워낙 넓어 1년이 가도록 소의 발자국이 한번도 지나지 않는초지가 널려있을 정도다.봄엔 얼레지,가을엔 구절초가 지천인 이곳의 진면목은 뭐니뭐니 해도 겨울의 설원.눈 덮인 광활한 대관령 목장을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것만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는다.문의 평창군 문화관광과(033-330-2399),강릉시청 문화관광과(033-640-4114).
  • 킬리만자로 정복나선 중증 장애인들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저마다 극복해야할 산이 있습니다.” 중증 장애인 세 사람이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정복을 위해 지난달 30일 인천발 탄자니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화제의 주인공들은 뉴질랜드인 토니크리스찬슨(40)과 한국인 김홍빈(38)·김소영(31·여)씨. 크리스찬슨은 아홉살 때 친구와 함께 친구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당한 열차 사고로 하반신을 잃었다.산악인이었던 홍빈씨는 지난 91년 북미 최고봉인매킨리봉을 등반하다 동상에 걸린 뒤 두 손을 잘라내야 했다.소영씨도 스무살이 되던 지난 89년 ‘망막색소변성증’이란 생소한 병을 앓기 시작,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국적도 장애도 다른 이들이 한 팀으로 뭉치게 된 것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지원하는 HDTV 프로그램 촬영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저마다 다른 장애를 지녔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천만에요.우린 단지 다른 도전에 맞서 있을 뿐입니다.” 해발 5895m의 킬리만자로 키보봉 등반을 앞둔 이들의 얼굴에서는 긴장과 설렘이 함께 묻어났다.소영씨는 “등산경험도 적고 눈도거의 안 보여 걱정”이라면서도 “듬직한 동료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힘이 절로 난다.”고 말했다.“어차피 장애인들에게 삶이란 고난과 도전의 연속”이라던 홍빈씨도“세 사람의 도전이 절망과 실의에 빠진 장애인들에게 용기를 가져다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은 12일부터 열흘간 서로의 장애를 감싸주며 고봉준령에 도전한 뒤 오는 24일 귀국할 예정이다. 이세영기자 sylee@
  • 에디트 피아프 - 절망·고독·사랑을 노래한 피아프

    빛나는 카리스마로 관객을 압도한 무대 위의 피아프,그리고 평생 절망과 고독 속에서 완벽한 사랑을 찾아 헤맨 무대 밖의 피아프.프랑스 소설가 실뱅레네의 ‘에디트 피아프’(신이현 옮김,이마고 펴냄)는 그 전설적인 샹송가수의 두 모습 중 무대 밖 피아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부모의 외면 속에 피아프는 술주정뱅이 외할머니,매음굴을 운영하는 친할머니 집을 전전했으며 각막염으로 몇년 동안 맹인생활을 하기도 했다.노래 몇곡에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그날그날 살아가던 피아프는 카바레 사장루이 르플레의 눈에 띄어 카바레 무대에 서게 되고,작은 새라는 뜻의 ‘피아프’라는 이름도 얻는다. ‘샹송의 여왕’ 피아프는 언제나 사랑을 꿈꿨다.하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주위 연인들은 단지 피아프의 명성을 이용하거나,피아프에 기대어 편안한 한때를 보내려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보잘 것 없는 부두노동자이던 이브 몽탕과 작은 카바레를 전전하던 조르주 무스타키 등은 그녀의 보살핌에 힘입어 당대 최고 가수로 발돋움했다. 비행기 추락사고로 죽은 연인 마르셀 세르당을 위해 직접 가사를 쓰고 부른 ‘사랑의 찬가’,이브 몽탕과의 사랑이 빚어낸 ‘장밋빛 인생’ 등 피아프의 노래를 들으면 영혼의 상처를 입어본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처절함을 느끼게 된다.1만 5000원. 김종면기자
  • 문학사상사 올해 문학상 받은 재미작가 오정은 “이민생활 정체성 찾으려 소설 몰입”

    “날지 못하는 펭귄을 통해 자아를 확인하려 고뇌하는 교포들의 갈망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문학사상사의 올해 장편소설 문학상은 의외로 ‘펭귄의 날개’(문학사상사)를 쓴 재미교포 여류작가 오정은(36)씨에게 돌아갔다.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이 작품 이전까지 단 한 편의 소설도 발표하지 않은 신진이라는 점이다.실제로 그는 “따로 소설수업은 받지 않았으며,한국에서 살았던 초등학교 시절,주변에서 글쓰는 데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그는 15살 나던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뒤 모든 교육과정을 미국에서 마쳤다.뉴욕 폴리테크닉 공대를 거쳐 시러큐스대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IBM 본사 금융지원사업부에 근무하는,엔지니어 출신 프로젝트 매니저이다. 시상식 참석차 서울을 찾은 그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영어 산문을 쓴 적은 있으나 소설은 이번 수상작이 첫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20년이 넘게 미국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는 모국어를 잊지 않았을 뿐 아니라 끈질기게 소설문학을 천착,국내의 기성작가들도 다다르지 못한 장편소설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그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 기쁘다.언어와 관습이 다른 미국에서 힘겹게 글을 쓰는 제게 큰 격려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반가운 것은 국내 신진 작가들이 대부분 시류에 반한다며 애써 기피하거나 역량의 한계를 드러내기 일쑤인 장편소설에서 새로운 재원을 발굴했다는 점.심사를 맡았던 김윤식 교수는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근원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유려한 문장으로 완화시킨,강렬하고 은밀한 매력을 갖춘 작품”이라고 평했다. 소설을 창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소설의 배경이 미국이고 등장인물이 교포 2세여서 언어와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미국적 정서를 우리말로 정확하게 끄집어내는 일이 어려웠다.”는 오씨는 “그동안 많이 달라진 한글 맞춤법과 부쩍 늘어난 외래어를 소화하기도 무척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소설속 주인공인 한국인 2세 예리는 탁월한 실력으로 미국 사회에서도 촉망받는 대기업의 프로젝트 매니저.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열정과 열망은 ‘펭귄 콤플렉스’(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새)로 바뀌고,이런 혼란 중에 약혼자가 뜻밖의 죽음을 맞게 된다.이런 왜곡된 상황 속에서 예리는 점차 사랑의 의미를 깨우치고 또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 간다. 오씨는 자전적 소설이냐는 물음에 직답은 피했지만,그에게도 ‘펭귄 콤플렉스’는 전혀 다른 사람의 일일 수 없지 않을까.대답은 의외로 긍정적이었다.“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인종 편견이 덜한 나라”라는 그는 “한국 어린이들이 처음에는 백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생활하다가 나중에 피부색까지 같을 수 없다는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으나 어쩔 수 없는 차이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이민자들이 느끼는 콤플렉스는 자신이 생활하는 동부보다 중·서부 쪽이 더 심한 것 같다.”는 그는 “아직도 KKK단 같은 극단적 인종차별집단이 존재하지만 그들로부터 생활이 직접 위협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당사자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생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일에 집착하고 또 열정적인 성격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30대를 갓 지나면서 한차례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으며,이것이 문학으로 몰입하게 된 직접적인 요인이 됐다고 털어놨다.“그냥 살면 괜찮은 삶인데도 뭔가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느낌을 견디기 어려웠다.”며 “문학을 통해 직장이나 가정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확인하는 일이 기쁘다.”고 말하는 그다. 오씨는 “직장 때문에 주로 밤시간을 토막내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남편도 자신의 일을 잘 이해해줘 가정적으로는 힘들지 않다.”고 말하고 “돌아가서는 자아발견을 다룬 단편을 써낼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펭귄의 날개는 ‘절망’의 상징이지만 적어도 그는 그 날개에서 ‘희망’을 본다.그의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펭귄은 새지만 펭귄이기에 날지 못한다.하지만 펭귄은 날개를 움직여 빠르게 거센 물결을 헤치고,빙하 위로 미끄러지며 남극을 가로지른다.매년 두 달동안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방랑의 길을 떠나지만 언제나 사랑하는 짝을 찾아 다시 남극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은 펭귄에게 날개가 있기 때문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 [386세대가 본 W세대] 새로운 ‘개성시대’

    ‘반짝 가수’로 인기를 끌 수도 있던 강변가요제 출신의 이상은은 인기를 좇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추구한 끝에 ‘음악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최근 그녀는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 독특한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세계를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스무살 먹은,‘스캥크’라는 아명을 쓰는 친구를 초대손님으로 불렀다.스캥크는 음악 전문가는 아니지만,음악을 공유하고 싶어서 자신을 ‘음악 나눔가’라고 부른다.음악을 틀기도 하고,때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어느 때는 환경운동 시위현장에서 참여해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그는 수능시험 보기가 싫고,자신이 점수로 환산되는 것이 싫어서 대학에 가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요즘 대학에서 청강을 한단다.‘전통음악의 이해’‘대중음악’과목을 듣는데,담당 교수에게 얘기를 해서 리포트도 쓰고 평가도 받는다.물론 그는 학점을 받지 않지만.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집세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그는 앞으로도 ‘오늘 스무살 만큼만 잘 살겠다.’고 한다.스캥크에게 서열화된 대학은 없고,짙은 개성과 학업에 대한 열정이 있다. 수능시험이 끝나자 이른바 ‘이해찬 세대’에 대한 성토가 한참이다.그 핵심은 지적 능력 저하에 대한 일방적 비난이며,기준은 재학생들의 시험 성적하락이다.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평가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수험생 엄마들의 아우성에 편승한 냄비 여론 속에서,과학고 영재 학생들이 기초과학 분야를 빼고 의대만 가겠다고 하는 그림이 오버랩될 뿐이다.정말로 제7차 교육과정은 유죄일까. 요즘 고교 교과서에는 이런 질문이 나온단다.당신(학생)이 바스티유 감옥을 지키는 병사라면,감옥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오는 시민군에게 총을 겨눌 것인가를 묻는 질문.나는 이러한 교육을 받는 세대에게 희망을 느끼지만,이런 질문을 던져놓고도 모법 답안을 외우게 하는 주입식 교육에는 절망한다. 수능이 끝난 고등학교에서는 지금 축제가 한창이다.집 가까운 곳에 있는 과천고의 축제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감탄의 끝에 서고 말았다.고전적 레퍼토리인 합창·록밴드·방송반의 공연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개그·수화 공연도 있었다.또 록·힙합·헤비메탈 등을 공연하는 밴드도 서넛은 돼 보였다.관계자에게 물어 보니 이 공연들이 급조된 것이 아니라,동아리 활동을 통해 나온 산물이라고 한다.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그들에게는 꿈과 미래가 보였다. 교문을 나서면서 들은 한마디가 귀에 쟁쟁하다.“옛날같이 공부 잘하는 모범생도 샌님처럼 공부만 하지는 않아요.더 잘 놀아요.” 가수 싸이가 노래한다.“소리 지르는 네가 챔피언,음악에 미치는 네가 챔피언,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 30대의 이상은과 20대의 스캥크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생각도 하고 재미나고 개성있는 새로운 세대가 몰려오고 있다. 유민영 모아이 커뮤니케이션 기획실장
  • [사설] ‘장희빈’ 포르노 만들건가

    사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 21세기식 새로운 사극의 실체가 고작 남녀혼욕(混浴),동성애,방중술(房中術)이란 말인가. KBS의 수목드라마 ‘장희빈’의 괴이한 궁중생활 묘사가 포르노를 뺨칠 정도로 점입가경이다.21일 방영분에서는 궁궐 입성에 성공한 장희빈에게 또 다른 궁녀가 겁탈을 시도하는 동성애 장면이 방영될 것이라 한다.또 27일 방영분에서는 궁녀들이 왕에게 사랑받기 위한 비법으로서 애무훈련 차원의 ‘감핥기’,‘두 무릎으로 팥알 집어올리기’장면이 전파를 탄다고 하니 이것이 과연 에로비디오인지 공영방송사 드라마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제작진은 당초 왕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그린 ‘궁중 홈드라마’를 만들겠으며 궁중 생활의 ‘일상사’를 자세히 재현하겠다고 기획 의도를 밝힌 바 있다.그러나 실제 드라마가 되어가는 모습은 글래머 여배우를 십분 활용한 눈요기식 장면으로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심산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제작진은 이런 장면들이 극의 흐름상 필요한 부분이며 야사(野史)를 충실히 따른 것이라 말할 것이다.그러나 수많은 사료들 중에서 유독 이처럼 망측한 사실들만을 골라 재현한다면 역사 왜곡의 부작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야한 내용은 ‘19세 이상’등급을 붙여 방송하면 그만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그러나 등급 딱지가 어린이·청소년들의 TV시청을 막지는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조사에 의해 드러나고 있다. 벌써부터 어린이·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우려하는 비판의 글들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쇄도하고 있다.우리는 아직도 문제의 내용들이 방송 전에 있다는 점에서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방송사는 지금이라도 이런 비판을 수용해 본래 기획의도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 서윤복 추모사 “당신은 한국마라톤 버팀목 이셨습니다”

    ■서윤복 추모사 당신은 진정한 한국 마라톤의 든든한 버팀목이셨습니다. 선생님. 저는 지난 1947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저 머나먼 미국땅으로 향하기 전 선생님께서는 항상 ‘민족혼’을 강조하셨습니다.‘나는 태극기를 달고 뛰지 못했지만 너희들은 이제 가슴에 태극기를 달았으니 마음껏 달려 세계를 제패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울립니다.우리는 선생님의 피 맺힌 그 말씀을 가슴에 묻었습니다.그리고 보스턴 하늘에 선생님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태극기를 휘날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하시던 그 말씀의 힘으로 저는 미국땅 보스턴에서 태극기를 휘날릴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한 지난 시절이 눈에 잡힐 듯 아른거립니다.춥고 배고픈 시절,한국마라톤을 살리려고 몸부림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시간이 갈수록 뚜렷해집니다. 선수들의 끼니를 위해,비행기표를 사기 위해 서울시내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던 때가 그립습니다.비록 많은 기부금을 모으진 못했지만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그만두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낙담해 청진동 어귀 선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선생님이 생각납니다.막걸리로 지친 목을 축이시며 껄껄껄 웃으시던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쟁쟁합니다. 선생님은 그 막걸리 잔에 선생님의 인생을 담으셨습니다.몇 잔의 막걸리로 시름을 달래신 선생님은 다시 모금을 위해 지친 다리를 끌고 목적없는 길을 떠나시곤 하셨습니다.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고 눈물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그토록 좋아하시던 술 한 잔 더 대접해 드리지 못한 게 이제는 큰 후회로 남습니다.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며 홀로 앉아 막걸리로 목을 축여보지만 선생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희뿌연 액체만이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선생님. 한국 마라톤은 선생님의 든든한 가슴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선생님께서 걱정하셨던 만큼 이제는 혼자서도 세계를 호령할 정도로 크게 성장했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으십시오.우리 모두는 맥박이 뛰는 한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그리고하늘나라에서도 한국 마라톤을 지켜봐 주시고 후배들에게 힘을 주십시오. ■황영조가 본 손기정옹/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 “친할아버지나 다름없었는데….” 한국 마라톤의 ‘대부’ 손기정옹의 사망 소식을 접한 황영조(32·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 감독)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92바르셀로나 마라톤 우승으로 손옹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월계관을 되찾아온 황영조는 선배이자 정신적 지주인 손옹의 죽음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전국체전 관계로 제주에 머물던 황영조는 지난 14일 손옹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병원을 찾았다.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황영조는 눈시울을 붉혔다.그게 손옹의 살아생전 뵙는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몰랐다. 황영조는 “할아버지는 저에게 항상 예전과 지금의 마라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해주신 인간적이고 외로운신 분”이라면서 “단순한 마라토너가 아닌 우리역사 그 자체이며 마라토너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나에게 많은영향을 끼치신 분”이라고 말했다. 황영조는 올림픽마라톤 금메달리스트라는 공통분모 외에도 손옹과 각별한 인연이 많았다. 36년 8월9일과 92년 8월9일.56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같은 날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황영조가 한국 마라톤 영웅의 바톤을 넘겨받은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은 원래 36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지어진 경기장이어서 감격은 더했다. 특히 손옹은 바로셀로나올림픽 주경기장에서 1위로 골인한 황영조를 끌어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이후 황영조는 손옹을 친할아버지처럼 따랐고 손옹도 황영조에게 애틋한 정을 주었다. 손옹이 98년 ‘황영조 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황영조에게 힘을 실어 줬고 황영조 역시 99년 ‘손기정의 생애’라는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올 1월 창단된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팀에서 황영조가 감독,손옹이 고문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 손옹의 병원출입이 부쩍 잦아지면서 황영조는 늘 마음이 편치않았다.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손옹은 주위의 도움으로 통원치료를 받았고 최근에는자주 병원입원실을 드나들었다. 황영조는 “할아버지는 마라토너로서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도 귀감이 되는 분이었다.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곽영완기자 kwyoung@ ■이봉주가 본 손기정옹/ “항상 든든한 후원자” “그분을 볼 때마다 항상 든든한 후원자를 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손기정옹의 사망소식을 전해 들은 ‘보스턴의 영웅’ 이봉주(32·삼성전자)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봉주는 “돌아가시기 이틀전 위독하시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찾았다.”면서 “그게 마지막 대면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이어 “지난해 찾아뵜을 때 내 손을 꼭 잡아주며 ‘잘한다.’고 하신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직 귓가에 생생하다.”고 말하는 이봉주는 아직 손옹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닮고 싶은 마라토너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봉주는 늘 입버릇처럼 “손기정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그만큼 이봉주에게 손옹의 존재는 든든한 바람막이였으며 정신적 지주역할을 했다.이봉주는 손옹의불굴의 정신력을 가장 높이 샀다.그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동경하며 꿈을 키워왔다.”면서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봉주는 자주 손옹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죄스러워했다.2년 가까이 선생님을 못뵌 것이 죄송스러워 지난 12일에도 병원을 찾았지만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했다.특히 이봉주는 지난해 4월 보스턴 우승 직후 곧바로 손옹을 찾아뵙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당시 손옹이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경기를 입원실에서 밤잠을 설치며 지켜봤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동안 눈시울을 붉혔다. 이봉주는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우리 후배들은 그분의 뜻을 이어 한국마라톤을 다시 세계 정상에 올려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과 마라톤 역사/ 한국 마라톤의 ‘시작과 끝' 한국마라톤은 손기정의 올림픽 제패 뒤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육상은 불모지였지만 마라톤만은 한민족의 끈기를 말해 주듯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손기정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로 한국마라톤은 처음으로 세계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이 대회에서 손기정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지난해 2월 작고한 남승룡도 동메달을 따내자 세계는 일제 치하의 약소국 코리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손기정의 우승을 시발로 한국마라톤은 황금기를 맞았다.베를린의 두 영웅 손기정·남승룡이 코칭스태프를 맡은 47년 보스턴마라톤에서 한국은 우승을 일궈냈다.서윤복이 세계기록(2시간25분39초)을 세우며 우승,마라톤 한국의 기개를 다시 한 번 세계에 펼쳤다.한국마라톤의 역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3년 뒤인 50년 함기용이 또 보스턴마라톤을 제패,명실상부한 마라톤 강국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이후 한국 마라톤은 긴 침체에 빠졌다.한국전쟁 뒤 국민들은 먹고살기에 바쁜 나머지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이런 와중에 세계 마라톤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월하기 시작했다.그러나 한국마라톤은 긴 잠에서 깨어날 줄 몰랐다. 40여년이 흐른 뒤 한국마라톤은 거대한 용틀임을 재개했다.지난 92년 바로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월계관을 쓰면서 재도약의 전주곡을 울렸다.그뒤 한국마라톤은 세계와의 격차를 무서운 속도로 줄이기 시작했다.4년 뒤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이봉주는 은메달을 따냈다.2회 연속 올림픽 메달 획득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한민족은 여자마라톤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보였다.북한 선수이기는 하지만 정성옥은 지난 99년 세비야 국제육상대회에서 세계 철녀들을 제치고 당당히 우승했다.한민족 여자마라톤이 세계로의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박준석기자 pjs@ ■손기정 어록 “일장기 달고 우승 울고싶었다” ◆비극의 시대였다.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에 내가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희망을 향한 탈출구라도 좋았고,끝내는 파멸로 향한 길이라도 좋았다.한시라도 달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나는 마치 공기를 숨쉬듯 눈덮인 언덕,얼어붙은 자갈길을 뛰고 달렸다.(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중에서) ◆나 오늘 천당 갔다 온 기분이야.너무 너무 기분이 좋아(2000년 8월9일 양정고에서 열린 ‘베를린마라톤 제패 64돌’ 축하행사에서) ◆왜정 때는 아무리 잘 뛰어도 제대로 칭찬 한 번 못받았지.그래서 일장기말소 사건도 나온 것이고….마라톤을 하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모든 것이 한국 마라톤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니 결코 포기하지 말고 뛰어 주길 바라요.(97년 동아마라톤에 앞서) ◆마침내 우승은했으나 웬일인지 울고만 싶소.(1936년 베를린마라톤 우승 직후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아무리 아파도 세계를 제패한 다리만은 자를 수 없다(2001년 1월 서울삼성병원 입원 치료중 의료진의 발가락 절단 진단을 듣고) ◆눈을 감기 전에 보고싶은 게 두 가지가 있다.첫번째는 살아 생전 고향(신의주)땅을 밟아보는 것이고 두번째는 황영조가 마라톤을 다시 하는 것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이뤘다.(1998년 3월 ‘황영조후원회’ 회장을 맡으며) ◆오늘 내 국적을 찾아준 것이나 마찬가지다.내가 노래를 잘 한다면 운동장 한복판에 나가서 우렁차게 악을 쓰고 싶다.(1992년 8월 9일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우승한 직후) ◆코스도 모르고 뛰었던 마라톤 데뷔전. 1932년 3월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경영(경성∼영등포)마라톤대회 전날 코스답사를 하다가 길을 잃었다.광화문에서 반환점인 영등포까지 차비도 아낄 겸 걸어서 갔다 오기로 하고 나섰다가 해가 저물어 전차를 타고 그냥 돌아온 것.다음 날 서울역을 지나 삼각지까지는 선두를 달렸으나 이리저리 갈래를 뻗은 삼각지에서 어느쪽이 코스인지 몰라 망설이는 사이 변용환에게 추월당했고 이후 그의 꽁무니만 쫓아 다녔다.
  • 도종환 8번째 시집 ‘슬픔의 뿌리’/ 사랑… 낭만… 슬픔의 카타르시스

    시인 도종환(48).그의 이름에는 언제부턴가 사람을 슬프게 하는 사랑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아마도 시집 ‘접시꽃 당신’의 잔상 때문이리라. 그렇게 기억되고 또 말해지는 그가 여덟번째 시집 ‘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를 냈다.지난 98년의 ‘부드러운 직선’(창작과 비평사) 이후 4년만이다. 4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메우는 건 아직도 ‘사랑’이고 ‘슬픔’이다.그의 시구마따나 ‘산다는 게 생각할수록 슬픈 일’이어서 그는 여전히 세상을 ‘사랑과 슬픔’의 판별식으로 해체하고 또 조립한다.“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사랑이었다.”(목련나무 중)는 그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결코 낭만주의의 끝자락 같은 우울의 변주가 아니다.오히려 치열한 그의 의식세계를 필터로 해 걸러진 정련(精鍊)의 미학같은 것이다. “십칠 번 국도 위에서 역사를 우롱하던 바람은/한 찰나도 빼놓지 않고 피묻은 뻐꾹새 울음을 귓가에 실어오고/부대끼는 밤구름을 능선 위에 옮겨왔다./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도/이제 나의 개인화기는 발화하지 않을 것이다.”(사격명령 중)라는 시에서 보듯 그는 광주민주화 운동 때 계엄군으로 역사의 현장을 지킨 이다.이때 그의 총이 격발되지 않은 것은,탄창의 실탄을 거꾸로 박아넣은 그의 치명적인 ‘이적행위’의 결과였다. 전교조 활동도 지금의 그에게는 삶의 이면을 들여다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암으로 먼저 아내를 떠나보낸 뒤 감옥에 갇힌 그를 지켜낸 것은 홀로 남은 어린 아들과 시였다.“희망은 스스로 균열하는 절망의/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자라난다/안에서 절망을 끌어안고 뒹굴어라/희망의 바깥은 없다.”(희망의 바깥은 없다 중) 사실 생의 간난을 수없이 겪은 사람에게서 ‘온유’와 ‘사랑’만을 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일방통행식 욕심이다.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은 ‘시인 도종환’에게 사랑과 연민,그리고 슬픔의 카타르시스를 요구한다.일종의 대체체험을 바라는 것이다.이런 이들은 아포리즘적인 시 ‘저녁 무렵’을 읽자. “열정이 식은 뒤에도/사랑해야 하는 날들이 있다/벅찬 감동 사라진 뒤에도/부둥켜안고가야할 사람이 있다(중략)이정표 잃은 뒤에도/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평론가 유성호는 이런 그의 시를 두고 “이전의 시집들보다 삶에 대해,세계에 대해 한층 근본주의적인 사유를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시인은 말한다.“그럴 수만 있다면 강물처럼 조용히 깊어지고 싶다.”고. 심재억기자
  • 책/ 마키아벨리와 에로스 - ‘작가’ 마키아벨리의 문학세계

    니콜로 마키아벨리.그처럼 오랫동안 대중의 오해를 받은 인물도 없을 것이다.그의 이름에서 나온 마키아벨리즘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악한 권모술수로 여겨졌고,그 자신은 사탄의 화신이라는 평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달리 학계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마키아벨리는 정치와 종교,정치와 도덕을 분리해 정치의 자율성을 가져왔으며 권력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근대 정치학의 초석을 다졌다는 것이다.마키아벨리즘을 핵심으로 한 ‘정치가’혹은 ‘정치이론가’로서의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다.지금까지 마키아벨리에 대한 평가는 정치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로 이뤄졌다.하지만 마키아벨리는 생전에 많은 문학작품을 남긴 위대한 이탈리아 작가이기도 하다. ‘마키아벨리와 에로스’(곽차섭 편역,지식의 풍경 펴냄)는 문학이라는 틀로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려는 새로운 시도의 책이다.마키아벨리가 남긴 문학작품을 ‘에로스’라는 키워드로 재구성했다.이 책에는 ‘만드라골라’‘클리치아’‘벨파고르 이야기’‘친구에게 보낸 편지’등 4편이 실렸다. 1512년 마키아벨리는 메디치 가의 복귀로 공직에서 밀려나고 이듬해에는 반역음모에 연루돼 곤욕을 치렀다.절망 속에 은거하면서 그는 많은 저작을 남겼다.그것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정치의 본질을 파헤친 ‘군주론’을비롯,‘리비우스 논고’‘피렌체사’‘전술론’등 정치저술과 정치를 희극의 풍자 속에 녹여낸 ‘만드라골라’와 같은 희곡·시·설화·편지 등의 문학작품이 그것이다.그의 문학은 사랑을 소재로 하지만 그다지 달콤하거나 환상적이지 않다.웃음과 냉소가 공존한다.‘군주론’에서 빛을 발한,현실을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식 리얼리즘’은 희곡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한다. 마키아벨리의 희곡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만드라골라’는 늙은 법률가의 정숙한 아내를 사랑한 젊은이가 사랑을 얻어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당시 무대에서도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사랑이야기이지만 애끓는 연정보다는 잘못된 현실을 향해 던지는 마키아벨리의 메시지가 돋보인다.피렌체의 종교적 부패상을 티모테오 신부를 통해 신랄히 풍자하는 한편,니차 박사와 리구리오라는 인물을 대비시켜 선과 악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이밖에 로마 작가플라우투스의 ‘카시나’를 개작한 희곡 ‘클리치아’,마키아벨리의 사회비판을 읽을 수 있는 설화 ‘벨파고르 이야기’,사랑을 주제로 한 ‘친구에게보낸 편지’등도 작가로서의 마키아벨리의 면모를 엿보게 하는 작품들이다. ‘군주론’과 ‘만드라골라’로 대표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저술과 문학작품의 간극은 작지 않다.하지만 이것들을 서로 단절된 것으로 보거나 문학작품을 하위로 보는 시각은 마키아벨리의 전체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편역자인 곽차섭 부산대 교수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정치와 같은 ‘중대한 일’과 사랑과 같은 ‘자질구레한 일’사이를 거침없이 오가는 것은 마키아벨리 특유의 면모”라고 말한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편집자문위원 칼럼] 언론의 ‘미로式 정치보도’

    선거의 계절,국민은 괴롭다.정치가 뭐기에 선거 때만 되면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른다.출신지역이나 학교 때문에,그리고 지지하는 후보 때문에 온 국민이 동강이가 난다. 언론의 정치보도에서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여당이 병역비리가 있다고 말하면 야당은 사실무근이라고 맞선다.검찰이 개입해도 끝이 없다.힘없는 국민을 수사할 때는 천하를 찌를 듯한 검찰이 정치를 만나면 맥을 못춘다. 현대의 4000억원 대북지원설도 마찬가지이다.야당은 지원했다고 주장하지만 여당은 하지 않았다고 말싸움하더니 이내 화제가 다른 데로 간다.지금도 국민들은 눈치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돈이지만 관심은 사실여부에 몰려있다. 도청문제도 마찬가지이다.야당은 도청했다고 폭로하고 여당은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맞선다.전문가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며 언론보도는 국민들의 혼돈을 부채질한다.며칠 지나면 결론없이 또 마무리될 것이다. 올가을 국민을 불안케 한 이 사건으로 처벌을 받은 지도층은 아직 한명도 없다.하지만 국민들은 지지 후보가 다르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서로에게 마음의 총을 겨누고 있다.지난 6월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 붉은악마는 이렇게 갈기갈기 찢기고 있다. 언론이 병역비리,대북 4000억원 지원,도청의혹 등을 저널리즘의 원칙에 맞게 보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하다못해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고 사생결단식으로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까.불가능한 일이지만 신문이 4면으로 줄어들고 방송시간도 하루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면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을까. 언론은 이들 의혹사건에 대해 중계보도를 한다.도청설을 폭로한 정치인의 말을 보도한 뒤,이를 반박하는 상대 정치인의 말을 싣고,다시 정부나 관련자의 해명을 싣고,이 과정에서 모순이 있으면 다시 분석하는 식이다.진상규명을 요구하다 시간이 지나면 다른 뉴스로 관심을 돌린다.국민들은 이 사건이 오늘은 해결됐나 하고 신문을 읽고 방송뉴스를 시청하지만 끝이 없다. 눈치 빠른 국민은 사건이 터질 때 일단 신문기사를 자세히 읽는다.결론없이 중계되는 지루한 사건의전개과정에 대한 보도는 제목만 보고 넘기고 무시한다.다행스럽게 최종 결론이 나면 자세히 읽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다.고교생 자녀와 대화를 하는 데는 하루에 단 1분도 투자하지 않을 정도로 인색한 아버지(전체의 22%)들이면서도 ‘끝도 시작도 없는 미로’같은 정치보도가 결론을 내려주길 기대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신문을 읽고,방송뉴스를 시청한다. 지난여름 월드컵 때 한목소리로 ‘대~한 민국’을 외치던 붉은악마를 누가 서로 등지게 했을까.그 사이에 붉은악마였던 국민은 신문 방송의 정치뉴스를 주목한 것이 고작이다.바뀐 것은 월드컵 때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정치인과 언론이 대신 특정 대통령 후보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궤도를 어긋난 정치인,이에 대한 비정상적인 한국 언론의 정치보도는 국민을 절망케 한다.정치의 계절,결국 승자는 정치인으로,패자는 죄없는 다른 붉은악마에게 증오심을 품은 채 또 다른 5년을 살아가야 하는 국민으로 귀결되는 과정이 반복될 것이다.국민이 승자가 되는 정치,그리고 정치보도는 언제나 가능할까. 허행량 세종대 교수 매체경제학
  • 클로즈 업/ SBS ‘그것이 알고싶다’, 급증하는 청소년 동성애 실태와 원인

    지난 8월 대구 모 아파트에서 여중생이 애인의 결별 선언에 절망해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유품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연이 적힌 편지가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그런데 그 대상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오후10시50분)는 급속히 늘어난 청소년 층의 동성애 실태와 그 원인을 알아본다. 청소년보호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가출청소년의 15%가 가벼운 신체 접촉 이상의 동성애 행위를 해보았다고 답했다.대중문화로서의 동성애 코드는 영화·뮤직비디오·CF 등을 통해 이미 우리 주변 깊숙이 침투해 있다. 문제는,동성애를 깊이 고민해야 할 개인의 성 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유행이나 현실에서의 일탈·도피 행위 정도로 가볍게 받아들이는 청소년이 점점 늘어간다는 점에 있다. 동성애 열기의 한편에서는,평생 책임져야 할 성 정체성으로 동성애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유행처럼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10대를 ‘팬픽 이반’이라 부르며 자신들과 구분짓는다.‘팬픽’은 ‘팬’들이 쓰는 ‘픽션(소설)’,‘이반’은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일반’인들과 구분해 부르는 호칭이다.10대 사이에서 번져나가는 동성애 코드는 몇몇 철없는 아이들의 불장난일까,아니면 개인의 ‘선택의 문제’일까,또는 바로잡아야할 ‘교정의 대상’일까.SBS ‘그것이…’를 통해 같이 생각해 보자. 채수범기자 lokavid@
  • 고은시인, 시·산문·소설등으로 구성한 전집 38권 출간 “내게있어 문학과 역사는 한몸”

    그는 기원전 1125년 방랑시인으로 출생해 한때는 디오니소스의 친구이기도 했으며, 1302년에는 시베리아 예니세이 유역의 아기 무당으로 태어나기도 했다.또 모르는 어느 곳에서는 술집 주모,중앙아시아 사마르칸트에서는 행상,내몽고에서는 목동이기도 했으며,1689년 삼지연 어름에서는 피리부는 화전민이기도 했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한국문학의 큰 기둥 고은 시인이 이달말 출간되는 38권짜리 방대한 전집(김영사)의 연보에서 밝힌 자신의 전생(前生)이다. 지금까지 그의 문학세계를 총망라한 전집은 준비 기간만 3년이 걸렸으며 100여명의 편집위원이 나서 편집에만 2년이 걸렸다. 이렇게 출간되는 전집은 200자 원고지 12만장,책으로는 2만 3000쪽 분량으로 시 14권,산문 7권,자전 3권,소설 7권,기행 1권,평론과 연구 5권과 머리책 1권 등으로 구성돼 500질 한정판으로 출판됐다.출판을 맡은 김영사측이 “우리 출판계의 기념비적 사업”이라고 말할 만한 방대한 작업이다. 이렇게 ‘기념비적’이라는 수사로 운위되는 시인 고은,그는 누구인가.그는 문학적으로는 이른바 모국어를 모국어답게 지키고 가꿔온 지킴이였고,역사적으로는 압제에 온몸으로 맞서 싸운 전사였다. 일제하에서 국민학교 1학년 때 다카바야시 도라스케(高林虎助)로 창씨개명을 했다는 그는 “언어가 인간의 주체기호라는 사실은 식민지에서의 모국어가 어떻게 모독당하는가를 말해 주는 것과 함께 언어가 인간 존재의 고향이라는 사유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고 당시의 체험을 회고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전까지 정치·사회문제가 범접할 수 없었던 그의 시세계로 ‘현실’이 들어와 자리잡게 된 70년대의 격렬한 저항 상황에 대해서는 “문학이 현실과 도저히 절연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이런 70년대가 없었다면 내 문학은 어느 한 쪽 골짜기에서 피 한 방울 없이 피울음을 우는 소쩍새의 밤이었다가 말았을 것”이라고 돌이켰다.지금도 ‘문학과 역사는 한 몸’이라는 그다. 그러나 시대가 그를 문학 밖으로 이끌었을지라도 문학의 순정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그는 “행여 내 문학이 정치 현실이나 이데올로기의 하부구조로 봉사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면 나는 그것과 싸워야 한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그는 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철저한 자유주의적 성향을 드러내 왔다.어떤 종속적 필요나 강제도 그를 굴복시킬 수 없었다.이런 그의 문학사상은 고은을 시인의 범주에만 묶어둘 수 없었다.그는 실제로 시뿐 아니라 소설,평론,산문 등 생각이 미치는 모든 영역의 문학을 두루 섭렵하는 재능을 보여 왔다.올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이 그의 문학적 잠재력을 과대평가한 결과가 아님을 말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에 ‘마을의 어느 머슴’으로부터 언문을 깨우쳤다는 그가 자신의 시를 평하는 진단에서 그의 자유롭고 역사의식적 사고법이 명료하게 드러난다.“나의 시는 그러므로 흐름”이라거나 “나의 시는 그러므로 울림”이라는 그는 시를 ‘역사의 음악’이라고 규정해 시의 음악성을 역사성보다 우위에 두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시를 정의하기를 주저한다.“시는 그 누구도 정의할 수 없고,그 누구도 얼마든지 정의할 수 있는 무한 생명체”라는 것이 시에 대한 그의 정의이다. 승려에서 환속해 굴곡진 세속의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의 내면에 자리한 고뇌는 오히려 탈속 때보다 더했다.지난 90년대 초 폐결핵 진단을 받았을 때는 “드디어 내 허구와 사실이 어떤 차이도 없었다는 문학적 자기동일성을 확인했다.”고 토로했는가 하면 네번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치열한 자기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다. “전생이 이따끔 보였다.많은 전생들 가운데 몇 번인가는 시인이었다.”는 그는 “평생 언어의 일부를 혹사함으로써 나는 시인이리라.이 사실은 희망이기도 하지만 자주 절망이었다.언어는 절망인지도 모른다.”는 말로 그의 심경을 대신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이경형 칼럼] ‘남아공’식 북핵 해법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평화적인 무장 해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23일 새벽에 끝난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은 핵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는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북한의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문제를 싸고,각양각색의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이런 가운데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어떻게 핵 개발과 보유를 포기했는가를 보면 지금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나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1993년 3월 데 클레르크 당시 남아공 대통령은 그동안 자력으로 개발해 은닉했던 핵무기의 자진 폐기 결과를 공표했고,이듬해인 94년 8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핵사찰로 이를 공식 확인함으로써 객관적 사실로 인정받았다.아무런 조건 없이 스스로 핵 능력을 폐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고,국가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70년대 초반부터 핵개발에 착수한 남아공은 핵 포기를 결정할 때까지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우라늄 원자탄과 위력이 비슷한 6개의 핵무기를 보유했다.남아공은 왜 핵 포기를 결정했으며,또 당초왜 핵을 개발하려 했던 것인가.핵 포기 배경은 오랜 흑백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 비등과 지속적인 국제 제재로 인한 남아공 경제의 악화였다.그러나 더 실질적인 이유는 소련이 붕괴되고,나미비아 독립으로 앙골라 내전이 종식되어 5만명에 이르던 쿠바군이 철수하는 등 주변 안보 상황이 안정되었기 때문이다. 남아공이 처음 핵개발에 착수한 동기는 인근 앙골라 사태로 소련의 지원 아래 쿠바군이 진입하는 등 안보가 위협받은 데서 비롯됐다.당시 남아공으로서는 유사시 외부의 원조를 기대하기 어려워 한정적인 핵 억지력을 필요로 했고,따라서 핵 전략도 실전 사용 전략이라기보다는 미국 등 대국의 분쟁 조정 개입을 유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가 남아공 사례에서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은 우선 특정국의 핵 포기문제는 안전보장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북한의 핵 포기 선언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 체제의 안전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실제로 북한은 미국이 ‘불량 국가’‘악의 축’운운하는 ‘적대적 행위’를 철회할 경우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는 국제 제재 문제다.남아공의 핵 포기는 장기간에 걸친 국제 제재의 누적된 효과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하지만 국제적 고립을 강화할 초기제재 단계에서는 오히려 핵개발을 가속화했다.그리고 국제사회가 남아공의 핵 개발 의혹에 대해 지속적으로 감시를 해왔지만,남아공이 스스로 핵 시설을 밝힐 때까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이런 점을 되돌아 볼 때,일방적인 대북 압박 조치나 북한이 수용하지 않는 국제사회의 핵 감시가 반드시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북한이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당시처럼 핵 카드를 또다시 구사하도록 방치하자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북한에 대해 핵 포기를 선언하는 것이 ‘벼랑 끝’ 협상에서보다 훨씬 많을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해줘야 한다.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미국’과 함께 북한이 미국에 절망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기술적으로는모순되는 강·온 정책이 될지는 몰라도 한국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과 일본의 협력을 통해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성급하게 중유 제공을 중단하거나 경수로 건설을 철수하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해법이 아니다. 북한은 남북 평화체제 구축의 형식을 통하든,안 통하든 간에 그들의 안전보장과 외부의 투자가 절실히 요청되는 상황이다.이런 상황을 잘 요리하면 북핵 해법의 묘수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경형/논설위원실장 khlee@
  • [씨줄날줄] 백야

    영화 ‘백야’(white night·1985년작)는 공연 여행 중 러시아에 불시착한 소련 출신의 망명 발레리나와 인종 차별이 싫어 소련을 택했던 미국 출신의 흑인 탭 댄서의 운명적 조우와 우정,그리고 극적인 탈출 등의 구도가 아름답고 긴박감 넘치게 펼쳐진다.배신한 조국 러시아에 다시 갇힌 발레리나의 절망과 갈등이 질식할 것 같은 순백의 ‘백야’ 이미지와 맞물려 묘한 긴장감을 더하게 했다.특히 주연을 맡았던 소련 출신의 세계적인 망명 발레리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 흑인 탭 댄서 그레고리 하인즈의 남성미 넘친,격정적이고 현란한 춤의 경연은 영화 팬들에게 깊고 긴 잔영을 남겼다. 하얀 밤속에 자신의 내면을 풀어 낸 전시회가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열리고 있다.청송 교도소 장기수 8명이 꾸민 ‘백야 2002’이다.밤새 불을 켜 놓는 장기수 감방의 상황을 은유해 작품전 이름을 달았다고 한다.유리병 속에 갖힌 자신과 목탁 안에서 고개만 내민 다람쥐,창살에 걸린 시계,탁자에서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붉은 사과 등 60여점의 그림엔 자유에 대한 갈망이 담겼다.그림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에 갇힌 심상이 투영된 데다 연필(콘테)만으로 그려져 다소 음울하고 경직된 느낌을 준다.하지만 진솔한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는 게 평론가들이나 관람객들의 평이다. 이들 작품은 다음 달 초 광주 나들이에 이어,내년엔 뉴욕 화랑가에 전시된다고 한다.전시회는 3년여 그림 지도를 한 캐나다 교포의 노력으로 이뤄졌다.그는 “이들이 훌륭한 화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지도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이들과 미술의 만남은 우연이었을까,필연일까.그림이라는 통로를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이들의 정진이 기대된다.먼 훗날 전시회에 자유롭게 자리를 할 수 있게 될 때 이들에게 ‘백야’는 절망의 긴 터널에서 만난 길잡이로 기억될지 모르겠다.시인 이응준은 20대의 어두웠던 방황의 극복을 ‘그대’에서 함축적으로 표현했다.‘밤은 검어야 할 텐데/그래야 될 텐데/오늘은 이상하다/너무 환해서 눈이 멀 것만 같다/백야에서 나는/수만 그루의 흰 빛 나무들로 서 있는/오직 하나의 흰빛 나무만을 본다.’ 최태환 논설위원
  • 절망 뚫고 나오는 신비한 빛 - 재불 추상화가 방혜자展

    40년간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빛의 작가’로 알려진 추상화가 방혜자(65)가 31일까지 서울 성곡미술관에서 ‘빛의 숨결’전을 연다. 이번 서울전은 97년 갤러리현대 전시에 이어 5년만의 자리.출품작은 대부분 나무를 심을 때 사용하는 부직포처럼 짜임이 성긴 천에 식물염료와 석채를 사용해 그린 것들.과거엔 주로 한지를 사용했지만 5년 전부터는 천과 병행하고 있다. 천의 앞뒤에 모두 그림을 그려서 뒤의 색이 앞으로 배어나오는 효과를 노린다.그래서인지 그가 그려낸 빛은 깜깜한 절망을 뚫고 파르르 올라오는 마음의 빛처럼 신비롭다.작지만 또렷한 희망,열정같다. 그는 색채를 직접 만들어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데,이번 기회에 자신이 개발한 자연채색을,필요한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예정이다.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물씬 담긴 추상화 신작들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02)737-7650. 문소영기자 symun@
  • “주말께 집단脫黨”민주分黨 초읽기

    한나라당이 과거를 묻지 않고 원하면 모두 받아들이기로 하는 등 의원 영입을 통한 세 확산에 나선 가운데,민주당 내 반노(反盧)·비노(非盧)측 의원들은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단계적으로 탈당할 계획이어서 정계개편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급류를 탈 조짐이다. 민주당 후보단일화 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 17명은 15일 김영배(金令培) 의원의 회장직 사퇴에 따라 최명헌(崔明憲)·김원길(金元吉) 의원을 공동대표로 선출하고,정몽준(鄭夢準)·이한동(李漢東) 의원 및 자민련 등 각 정파와의 연대 교섭을 맡기기로 했다. 이와 관련,이윤수(李允洙) 의원은 “탈당은 3∼4차례로 나눠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후단협 소속 한 의원은 “이르면 내주 중반까지 지역구 출신의원들이 1차로 탈당하고,전국구 의원들이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후보단일화를 지지하는 배선영(裵善永·서울 서초갑) 위원장 등 원외위원장 7명은 이날 성명을 통해 탈당을 선언하고,16일 정몽준 의원측의 ‘국민통합21’ 창당발기인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완구(李完九)의원에 이어 자민련 의원 1∼2명이 다음주쯤 한나라당에 추가 입당할 것으로 관측되는 등 자민련 의원들의 동요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지난 14일 저녁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과 뜻을 같이 하겠다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문호개방을 선언했다.그는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민국당 김윤환(金潤煥)대표,박근혜(朴槿惠) 한국미래연합 대표와도 뜻을 같이하면 앞으로 얼마든지 같이 갈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연대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김종필 총재와 박근혜 대표,민주당 이인제(李仁濟) 의원 등의 거취도 관심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후보사퇴는 없다.”며 후보단일화 불가 입장을 강조했다. 전용학(田溶鶴)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에 대해서는 “3김이 그랬다면 체념하겠지만 3김정치를 청산하자는 이회창 후보가 이렇게 하니까 절망하고 분노한다.”고 비판했다. 정몽준 의원측도 정계개편이 가속화됨에 따라 현역의원에 대한 개별영입을 적극 추진키로 하고,접촉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회는 15일 김석수(金碩洙)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들을 출석시킨가운데 본회의를 열어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을 벌일 예정이었으나,민주당과 자민련이 전용학·이완구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에 반발하며 참석을 거부해 이틀째 파행사태를 빚었다. 곽태헌 김재천기자 tiger@
  • 아시안게임/ 복싱 8년만에 ‘금펀치’

    ‘대머리 복서’ 김기석(22·서울시청)이 ‘복싱 강국’ 중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라이트플라이급의 김기석은 13일 마산체육관에서 열린 지난해 월드컵 3위 타나모르 해리(필리핀)와의 결승전에서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초반 점수를 지켜 24-19로 이겼다.이번 대회 한국 복싱 첫 금메달이자 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고교 때부터 체중감량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탈모증에 시달려온 김기석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예 머리를 밀어버렸다.“환자 같다.”는 주위의 비아냥거림이나 “운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영원히 머리가 자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경고도 금메달을 향한 그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웰터급의 김정주(21·상지대)는 카자흐스탄의 세르게이 리치코에 31-30 극적인 판정승을 거둔 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내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보살펴 주신 덕분”이라며 기뻐했다.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를,중3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은 김정주는 ‘부모 없는 설움’을 복싱으로 달래며 금메달을 향한 꿈을 키워 왔다. 밴텀급의김원일(20·한체대)도 금메달을 추가했고 라이트헤비급의 최기수(함안군청),라이트급의 백종섭(대전대)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한국 복싱은 98년 방콕대회 ‘노골드’의 수모를 딛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86년 서울대회에서 사상 첫 12개 전체급 석권 신화를 일군 한국은 90년 베이징대회 금 5개,94년 히로시마대회 금 2개 등으로 명맥을 유지했지만 98년 방콕대회에서 은 2개에 그치며 쇠락했다.복싱 인기가 떨어지면서 선수층이 얇아진 데다 연맹 내부 갈등까지 겹쳐 절망의 소리마저 새어 나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 ‘명예회복’을 벼르며 강원도 태백에서 체계적인 대표팀 훈련을 소화했다.금메달을 딴 선수들은 “고지대 훈련이 큰도움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고비도 많았다.플라이급에서 금메달이 유력시된 김태규(충남체육회)와 라이트웰터급의 신명훈(한체대),미들급의 문영생(한체대)이 파키스탄 선수와의 경기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주저앉은 것.게다가 대회 기간에도 계속된 연맹 내부의 갈등이 금메달이 쏟아진 13일 경기장에서 급기야 멱살잡이로 번지며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연맹 관계자는 “외우내환을 딛고 승리를 엮어낸 선수들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마산 조현석기자 hyun68@
  • [마당] 아, 명예퇴직자

    얼마 전 인터넷에 떠돌던 ‘아,아버지’라는 글이 입소문으로 번지면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무엇이 이 땅의 아버지를 그렇게 울렸던가.아버지가 우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인간사에 부침이 있듯 시대의 시련도 그만 했으면 좋으련만 또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증시가 무너지고 대졸자들의 취업문이 다시 좁아진다고 한다.지금도 포화상태인 명퇴자가 더욱 늘어날지 모른다.혹독한 IMF 이후 대한민국의 명퇴자들은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한 장 쓰다버린 휴지처럼 누가 떠도는 명퇴자의 아픔을 알기나 하랴. 일이 없는 명퇴자는 하기 싫은 일이라도 있는 ‘아버지’보다 더 슬픈 존재다.명퇴자는 어디든 갈 수 있으나 아무 데도 갈 데가 없는 사람이다. 명퇴자는 시간의 바다에 익사한 사람이다.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나 아무 것도 할 시간이 없는 사람이다.휴일도 휴일이고 평일도 휴일인 나날의 연속은 그냥 떠다니는 시간의 뭉치일 뿐이다.약속할 일이 없는 자에게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명퇴자는 거리를 걸어도 남의 나라에 와있는 느낌이다.늘 타던 버스가 지나가고 전철역이 보여도 그 모두 낯선 풍경일 뿐이다.점심 먹으러 빌딩을 돌아 나오던 길목에는 낯선 젊은이들이 깔깔거리며 지나간다.알아보는 이도,돌아보는 이도 없다.불과 몇 달,몇 년 전의 일이 까마득한 옛일 같다.수위들의 경례를 받으며 드나들던 회전문도 이젠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그의 책상,그의 캐비닛은 어느새 남의 것이 되어 있다.그는 그저 지나간 바람,사사(社史)의 한 페이지에조차 끼지 못한 소모품이었음을 느낀다. 명퇴자는 겁날 일이 없는데도 겁낼 일은 많은 사람이다.길 가다가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겁이 난다.집에서도 화장실에 갈 때는 발소리를 죽인다.고교생 딸이나 대학 다니는 아들과 맞닥뜨릴까봐 겁이 나서다.온종일 집에 있어도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상대가 마누라 친구들일지 모르기 때문이다.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현관문을 열어줄 수 없다.엘리베이터도 출퇴근시간이 아니면 타기가 두렵다.이웃집 아줌마나 관리인 아저씨 보기가 무서워서다. 명퇴자의 목소리는 낮고 무겁다.아무리 외쳐도 누구도 듣지 못한다.신문도,정부도 말만 많았지 명퇴자를 위한 실질 대책이 없다.노령사회를 들먹이면서도 출산율이 낮은 것만 걱정한다. 대책 없는 그를 버려 두고 마누라는 아침이면 증권 하러 가버린다.깨졌다고 툴툴대는 아내에게 예전처럼 물 떠 오라 소리치지 못한다.이유 없이 늦게 들어오는 자식을 나무라지 못한다.한 때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던 아버지요,하늘 같은 남편 자리가 울 없는 울타리요,교미 끝난 수컷으로 치부된다. 명퇴자는 다 떠난 거리에 혼자 서 있는 가로수다.무성하던 잎도 지고 찬바람을 맞으며 떨고 서 있는 나목이다.밤새 암만 충전해 놓아도 안 터지는 휴대전화이다.계절이 바뀌어도 기다리는 소식은 아니 오고,부고장과 청첩장만 밀린 세금처럼 우르르 쏟아진다.이제는 휴일을 동강내는 청첩도 밉지가 않다. 명퇴자는 언어의 유희에 마취 당한 사람이다.그들의 명예에는 불명예의 주사바늘이 꽂혀 있다.‘희망퇴직자’의 희망에는 절망이 꿈틀거린다.명퇴나 희퇴는 정년퇴직보다 황당하고 음모적이다.겉으로는 “후배를 위해!” 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하필 왜 내가?”하고 창끝이 솟는다.수십 년 키워온 쓸 만한 이 지식과 노하우를 사 주는 곳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명퇴자는 올라갈 때 못 보던 꽃을 내려올 때 보는 사람이다.분노라도 하지 않으면 존재의의가 없는 것처럼 절박감을 느낀다. 돌아보면 아득한 옛날이지만 내다보아도 아득하기는 마찬가지,어느새 인생의 하류에 밀려난 그들은 섬이 되고 난 후에야 자신이 섬이었음을 알게 된다. 박구하 시인 시조월드 편집위원 명예논설위원
  • “이라크, 美 생화학공격 음모”부시, 아프간전쟁 1주년 연설서 경고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7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흉악한 폭군’이라고 부르면서 그가 생화학무기로 미국을 공격할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작 1주년이 되는 이날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가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라크는 1년내 핵무기를 갖게 된다면서 “만일 그냥 놔둔다면 후세인은 그의 침략에 반대하는 누구도 협박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 대한 사실상의 최후통첩 성격을 가진 이날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은 언제라도 테러범들에게 생화학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사담 후세인은 스스로 무장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은 만일 후세인 대통령이 생화학무기와 핵무기를 버리지 않는다면 미국이 동맹국을 이끌고 그를 무장해제하겠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시점은 의회가 이라크 전쟁 결의안에 대한 본격적인 심의를 시작하는 날,그리고 미국 정국 향방을 결정하는 중간선거를 불과 4주 남겨놓은 날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장군들에게도 후세인 대통령의 잔인하고 절망적인 조치에 복종해 미국의 공격에 반격을 한다면 ‘전쟁 범죄자’로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테러그룹을 훈련해 왔다면서 “고위 알 카에다 지도자가 바그다드의 병원에서 올해 치료를 받았다.”고 말해 이라크와 알 카에다의 상호 관련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국의 정보에 따르면 이라크가 유인 및 무인 항공기를 건조하고 있다면서 그 항공기들은 미국을 생화학 무기들로 겨냥하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부시 대통령은 위성 사진들을 보면 이라크는 과거 핵무기를 개발하던 장소들을 재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mip@
  • [사설] 대학생 휴학 부추기는 사회

    전국의 4년제 대학생 31.4%가 휴학중이고,이 가운데 40%가 외국유학·연수등을 위한 일반휴학이라고 한다.취업에 보탬이 되는 능력개발 및 향상을 위해서라는 것으로,정상적인 대학공부와 생활은 취업이나 진로개척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학생들의 판단이 깔려 있다.우리의 현실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취업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고 여기에 공부와 관심의 초점을 극도로 편향되게 맞추는 것을 무조건 나무라기 어렵다.고등학교 총 재적생이 170만명이던 1980년도 4년제 대학의 총 재적생은 40만명이었으나 고교 재적생이 180만명인 올해 4학제 대학생은 177만명으로 140만명 가까이 불어났다.그러나 대학 졸업생 일자리는 크게 늘어나지 않았다. 대학의 황폐화와 직결되는 휴학생 폭증 현상은 그간 우리가 대학교육·진학에 적용한 평등과 개방 원칙의 필연적인 부작용일 수 있다.경제력 향상을 훨씬 웃도는 대학진학 확대,이에 따른 취업 경쟁의 심화는 우리 사회가 보다 평등해지고 개방되는 진통일 수 있으나,기업이나 사회의 단견이 휴학 ‘광풍’을 부추긴 측면이 적지 않다고 본다.대학공부를 중도파기하고 해외여행에 나서는 휴학생이 부지기수인데 여행의 실제 이유가 인격·경험을 위한 편력이 아니라,배낭여행이 취업 면접의 필수 질문사항이기 때문인 경우가 태반이다.휴학의 대종을 이루는 해외연수는 영어 능력향상을 위한 것으로,여기에는 대학 전공을 공부해봤자 취업 길이 트이지 않아 영어로 길을 뚫겠다는 절망감이 있다.우리 사회의 영어 광풍은 기업이 내거는 취업 전공제한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또 고시제도에 근본적인 메스를 가하지 않는 한 고시공부를 위한 휴학도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사회,기업,학생들이 고칠 수 있는 것을 먼저 한 뒤 대학 문호를 너무 넓혔다는 문제제기를 하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