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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맞수 CEO] 송병준 게임빌 대표 vs 박지영 컴투스 대표

    [우리는 맞수 CEO] 송병준 게임빌 대표 vs 박지영 컴투스 대표

    ‘테트리스’(컴투스)와 ‘물가에 돌튕기기’(게임빌). 모바일 게임업계 쌍두마차격인 컴투스와 게임빌이 모바일 게임시장에서 히트를 친 상품이다. 두 업체는 모바일 게임을 잇따라 출시, 청소년에게 지하철과 버스에서의 무료함을 한방에 날려준 천사 같은 존재다.‘전통’과 ‘새로움’으로 각각 주목을 받으면서 게임업계 선두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컴투스는 전통게임인 테트리스를 작은 액정으로 옮겨와 모바일 게임 대중화에 공을 세웠고, 게임빌은 놈 시리즈와 물가에 돌튕기기 등 기발한 작품으로 주목을 받으며 성장해 왔다. 이들 업체의 노력으로 모바일 게임 시장은 2000년 첫 출발 때 37억원에서 6년 만인 올해는 1800억원대로 커져 있다. 박지영(31) 컴투스 대표와 송병준(30) 게임빌 대표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모바일게임이 막 출발하던 초창기,20대 초반의 어린 나이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뒤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걸작까지 배출해냈다. 이들은 회사를 ‘거느리기’엔 어린 나이에 성공한 X세대 CEO다. 일반 기업에 취직했다면 이제 막 초년병 딱지를 뗄 나이인데,100명이 넘는 조직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게임의 미래 못지않게 이들의 성공 비결과 야망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다. 평범한 공대생이었던 두 사람의 출발은 거창하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1998년 박지영 사장은 ‘재밌는 거 해보자.’는 생각으로 학교 앞 20평 옥탑방에 사무실을 차렸다. 하드웨어 제조업도 해보고, 검색 엔진도 내놓았지만 실패를 거듭해 2억원의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절망의 끝에서 생각해 낸 사업이 휴대전화 게임. 그는 “휴대전화가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는 생활필수품이 되면 이동형 기기의 최후승자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면서 당시를 회상한다. 송병준 사장도 창업에 유난히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 창업동아리 회장을 하며 ‘무엇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것인가.’를 고민해 본 뒤 ‘게임’이라는 답을 얻었다. 송 사장의 출발도 순탄치는 않았다.2000년 회사를 세워 온라인 게임을 집중 개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1년 만에 온라인 게임쪽은 접고 사명을 바꾼 뒤 휴대전화용 게임 개발에 몰두한다. 모바일 게임분야에 한 발 먼저 발을 내민 박 사장이 더 높은 고지에 먼저 올랐다.2002년 모바일 테트리스가 큰 히트를 치며 1년 만에 세배 정도로 회사가 커 2003년 매출 118억원, 당기순이익 49억원을 기록했다. 이익률은 다소 줄었지만 매출은 지난해 155억원으로 꾸준히 올랐다. 송 사장은 ‘놈’,‘물가에 돌 튕기기’가 유명세를 얻은 지난해부터 본격적 조명을 받았다. 지난해 매출 82억원, 당기순이익 16억원의 건실한 회사로 자리를 굳혔고, 각종 상을 휩쓸었다. 사업은 혼자 잘해서 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여느 중견 CEO에 뒤지지 않을 만큼 직원들을 잘 챙긴다. 박 사장은 아침 식사를 못하고 나오는 직원들을 위해 아침에 과일팩을 1개씩 매일 준다. 컴투스 박성진씨는 “야근하는 직원들에게 식사비 지원은 물론 늘 간식으로 빵을 제공하는 등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전했다. 송 사장은 직원들이 즐기는 기분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한다. 수시로 사내 게임 대회를 열어 아이디어 개발에 동참하고 게임에서 이긴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막상 자신은 여가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만큼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벼르고 있다.40여개국 이동통신사로 게임을 수출하고 있는 컴투스의 박 사장은 “해외 사업의 안정화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꿈을 말한다. 미국지사를 설립한 게임빌의 송 사장은 “해외 자본들이 결합해 경쟁자의 규모가 커지고 있지만 우리의 창의력이면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이들은 어느 한 쪽을 누르고 올라갈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 듯 보였다.“게임빌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조직이며 배울 게 많은 회사”라고 말하는 박 사장에 대해 송 사장은 “서로 배우면서 시장을 같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씨줄날줄] 아름다운 길/육철수 논설위원

    인간과 자연을 잘 어울리게 이어주는 끈은 ‘길’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산’과 ‘강’도 친밀하나, 그건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나 길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져 발자국을 남겨야만 제구실을 하게 된다. 인간의 숨결과 체취가 한번도 스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은 엄밀히 따져서 없다. 그래서 길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만나 이루어낸 ‘접점’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끼리의 ‘소통’이라는 깊은 의미도 지녔다. 인생이 길에 비유되는 것도 이런 친밀감이 바탕이다. 꼬불꼬불한 길, 울퉁불퉁한 길, 죽 뻗은 신작로는 우리네 인생들과 너무 닮았다. 하지만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에는 인정과 여유, 특히 자연의 정경과 여운이 담겨있다. 이런 길은 유독 인간만 맞아들인다. 따라서 산길, 들길처럼 사는 인생이라고 해서 슬퍼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속도와 경쟁 같은 ‘이물질’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만도 훌륭한 인생이 아닌가. 인공의 길은 멀리 2300년전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길이 침략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로마는 소금운반로를 마찻길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 요로를 연결하는 길을 수십만㎞ 닦았고, 일부 도로에는 아스팔트를 깔고 배수로까지 설계했단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반면 현대식 도로는 차량이동과 물류운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연히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걸어서는 얼씬도 할 수 없고, 터널이다 교량이다 해서 산을 뚫고 강을 가로질렀으니 자연도 상처투성이다. 이런 각박함을 깨달았는지, 최근 건설교통부는 전국의 ‘아름다운 길’ 100곳을 선정했다. 미관·역사성·기능성을 고려했다고 하나, 역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바다와 섬을 벗삼은 남해의 창선·삼천포 대교, 가로수가 멋들어지게 울창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영남 선비들의 땀방울이 맺힌 문경새재,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으뜸인 덕수궁 돌담길 등이 여기에 꼽혔다. 길에는 인생이 있다는데, 아름다운 길에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법도 하다. 이번 여름휴가엔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인생을 찾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보자.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유림 속 한자이야기](129)絶絃(절현)

    儒林(630)에는 ‘絶絃’(끊을 절/줄 현)이 나오는데,‘진정으로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친구와의 死別(사별)’을 이르는 말이다. ‘絶’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가 칼을 들고 실을 끊는 모습’을 나타낸 데서 ‘끊다’라는 뜻이 나왔다.用例(용례)에는 絶望(절망: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림),抱腹絶倒(포복절도:배를 그러안고 넘어질 정도로 몹시 웃음) 등이 있다. ‘絃’은 意符인 ‘ ’(가는 실 멱)과 音符(음부) ‘玄’(검을 현)이 합쳐져 ‘악기의 줄’을 뜻한다.斷絃(단현:금슬의 줄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아내가 죽음을 이르는 말),續絃(속현:아내를 여읜 뒤에 다시 새 아내를 맞음) 등에 쓰인다. ‘列子(열자)’의 ‘湯問(탕문)’에는 백아(伯牙)와 종자기(鐘子期)의 故事(고사)가 나온다. 백아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에서 高官(고관)을 지낸 거문고의 達人(달인)이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정확히 이해해주는 종자기(鐘子期)라는 친구가 있었다. 종자기는 백아가 거문고 演奏(연주)를 통해 표현하려는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였다. 백아는 종자기의 갑작스러운 訃音(부음)을 접하자 깊은 슬픔에 잠겨 그토록 愛之重之(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스스로 끊었다. 그날 이후로 평생토록 거문고 연주를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제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伯牙絶絃(백아절현), 혹은 伯牙破琴(백아파금)이며, 간략히 絶絃(절현)이라고도 한다.知音(지음)도 같은 脈絡(맥락)의 성어이다. 우정을 나타낸 漢字(한자) 성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水魚之交’(수어지교)를 들 수 있다.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나날이 돈독해지자 관우(關羽)와 장비(張飛)의 불평도 심해졌다. 유비는 이들에게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다는 것은 고기가 물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니, 다시는 불평을 하지 말도록 하게나.”라고 하였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刎頸之交’(문경지교)는 대신 목을 내주어도 좋을 만큼 친한 친구의 사귐을 뜻한다.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 때의 명신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장군은 한때 인상여의 벼락 출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인상여는 주위의 차가운 視線(시선)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라를 위하는 一念(일념)으로 일관하였다. 염파는 마침내 인상여의 넓은 度量(도량)에 感泣(감읍)하여 謝過(사과)함으로써 다시 친한 사이가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親交(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그밖에도 아교풀로 붙이고 그 위에 옻칠을 하면 서로 떨어지지 않고 벗겨지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서로 떨어지지 않고 마음이 변하지 않는 두터운 우정을 뜻하는 ‘膠漆之交’(교칠지교),芝草(지초)와 蘭草(난초)처럼 맑고 깨끗하며 두터운 벗 사이의 사귐을 일컫는 ‘芝蘭之交’(지란지교),易(역)의 ‘繫辭傳’(계사전)에서 “두 사람의 마음을 함께 하면 그 날카로움은 단단한 쇠와 돌도 자를 수 있고, 마음을 함께 하는 사람의 말은 그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同心之言 其臭如蘭)고 한 데서 나온 ‘斷金之交’(단금지교) 등 여러 말이 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김근태의장 “성장·복지 아우르는 ‘제3의길’ 걸어야 난관 극복”

    김근태의장 “성장·복지 아우르는 ‘제3의길’ 걸어야 난관 극복”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3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현안들에 대한 입장을 소상하게 밝혔다. 특히 당·청 관계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결정해도 가지 않을 수 있고, 당이 결정해도 대통령은 따로 갈 수 있다.”고 수평적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따로 놀면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5·31 지방선거 참패 원인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도 그 충격으로부터 떨어지지 못하고 지지율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상처에 소금이 뿌려진 것 같다. 기대에 한참 못미친다는 실망이 컸고 그것을 커버하고자 하는 말과 태도가 거슬렸다. 반감이 쌓이는 계기가 됐다. 서민경제가 안 좋은 것이 겹쳐져 최악이었다. ▶참패 원인이 개혁 프로그램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점과 국민이 원하는 방향과는 다른 쪽에 너무 신경쓴 측면, 그리고 이른바 ‘싸가지 없는 말’ 때문에 감점됐다는 지적이 있다. -‘싸가지 없다.’는 말은 더 안 썼으면 좋겠다. 여론조사 결과, 혼선과 혼돈, 당·정·청 불화로 정책의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이 50%,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것이 30%, 개혁 피로가 17%쯤 됐다. 그게 맞다고 본다. ▶취임 일성으로 성장과 복지, 모두 다 신경쓰겠다고 했다. 김근태식 패러다임이 뭔가. -‘제3의 길’이다. 지금보다 (GDP)1% 정도는 추가 성장해야 난관과 과제를 극복할 수 있다. 정경유착적이고 발전주의적 국가모델을 사용해서 IMF(국제통화기금) 위기가 왔다.IMF 10년 해보니,‘(미국이 내세우는 시장경제원칙인)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해 요구되는 것이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미국은 슈퍼파워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치명적인 것은 시장자유주의, 신자유주의의 저성장이다. 추가적 성장을 통해야 희망을 제시할 수 있다. 쏟아붓는 복지를 할 수는 없다. ●“한·미FTA 외교안보 논리로 접근해선 안돼” ▶한·미FTA와 관련, 추진 속도에서 청와대와 시각을 달리하는데, 계급장 떼고서라도 논쟁해야 하는 것 아닌가. -‘계급장 떼고 하자.’는 것은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쟁이었다.‘계급장 떼고’라는 말, 이제 잊어달라. 한·미FTA가 그에 버금가는 것임은 틀림없다. 다자라운드의 합의·발전되는 쪽으로 가야 한다. 문제는 미국은 전세계 슈퍼파워라는 것이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미국이 왜 한·미FTA를 우리와 먼저 하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국민에 보고해야 하고 공감대를 얻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 정권으로 넘기자는 것인가. -미국이 정한 신속협상 기한이 내년 6월까지다. 기간을 정해서 하면 밀리는 것이다.‘의회로 가면 보호주의자의 발언권이 세진다는 것’은 참고 수준으로 둬야 한다. 둘째, 경제 논리로 접근해야지 외교안보 논리로 접근해선 안된다. 끝으로 일본과는 추진하다 중단되지 않았나. 유념해야 한다. ▶얼마전 ‘한나라당 계열은 두번의 대선에서 심판받았고 민주화 세력은 집권으로 보상받았다.’고 했다. -국민은 빚을 다 갚았다고 생각한다.‘민주화운동 했으니까 다시 선택해달라.’고 하면 선택도 안 해주고 경쟁력을 높일 수도 없다. 자부심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훈장처럼 내놓고 하는 것은 안 된다.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해서 지지받고 선택받아야 한다. ▶다음 대선에서 지금 이 당으로 대선 치를 수 있나. 신장개업해야 하나. -국민이 명령하는 대로 가겠다. 출발로서 두가지를 하겠다. 하나는 서민경제 회복을 위해 함께 하겠다. 두번째는 당과 대통령, 정부가 따로 놀면 안된다. 그런데 개발독재시대, 그후 한나라당(계열) 집권 때는 ‘대통령이 결정하면 나머지는 간다.’였다. 지금은 수평적 관계다. 또 대통령이 단임제여서 선거에 아무래도 관심을 덜 쓸 수밖에 없다. 헌정적인 결함도 문제가 있다. ▶차기 대선 전에 개헌할 생각은. -대통령 임기 4년으로 줄이고 중임으로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현재 구도에서 다음 대선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다음 대선에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걸고 하자.’고 한다. 우리는 내년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는데. -국민이 북한에 대해 다소 거리감을 느끼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호소한다. 부탁한다. 경의선 연결시 보수 언론들이 ‘북한 탱크 내려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했다. 저는 못사는 북한주민 수백·수천명 내려오면 어찌하나 걱정했다. 우리가 먹여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걱정한다. 지금 우리가 부담하는 것은 초기 선행투자다. 선행투자가 있어야 발전과 도약도 가능하지 않나. ▶내년 대선에서 제시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통합적 경제다. 추가 성장을 통한 복지의 선순환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협력과 공동번영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지 비전을 내는 것이다. ●“개각, 청문회에서 의견 제시할 수 있다” ▶당청 관계와 관련,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교육부총리 내정으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개각과 관련돼 의원들 분위기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소속 의원들이 의견 개진하는 것은 이해된다. 그러나 (인사가)행정부를 움직이는 대통령의 권한이라는 것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정하기 전까지는 의사를 전달하지만 그 이후에는 따라야 한다. 다만 청문회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켜주길 바란다. ▶대선 레이스 완주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다. -대선은 먼 훗날 얘기다. 지방선거에서 무서운 심판을 받았고 그에 응답해야 한다.7·8월에 당 조직을 정비하고 의원들을 뒷받침해서 9월 정기국회 준비해야 한다. 지금 (대선 얘기하고)그러면 당도 망하고 저도 망한다. 사람이라는게 잘하면 칭찬받고 못하면 심판받는다. 아직 시간은 넉넉하다. ●“호남표만으로 미래 없다” ▶지방선거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호남표 분산이었다. 민주당과 통합이든 연대든 필요한 것이 아닌지. -지역주의 극복하려다가 영남지역에서는 10% 내외 지지율이 나왔지만 호남에서 무너졌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지역표 계산만으론 미래가 없다고 본다. 하나의 고려사항은 될 수 있겠지만 주된 고려사항으로 하면 창당 취지를 버리는 것이다. 미래로 가는 연합이 돼야 한다. 구체적 방안은 골치가 아파 정기국회 뒤로 미루는 것이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 정리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계급장 떼자는 말 이젠 잊어달라” 서울 영등포 당사 2층에 있는 김근태 의장의 집무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취임한 지 몇 개월만에 짐 싸기 바빴던 근래의 집권여당 의장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김 의장은 건강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인터뷰에 앞서 측근들에게 주말 동네축구단(파랑새 축구단) 게임에서 두 골을 넣었다며 자랑했다고 한다. 김 의장은 인터뷰 내내 주요 현안에 대해 자신감있게 임했다.‘김진지’라는 별명이 말하듯 논리적인 화법도 여전했다.6·10항쟁 19주년 기념식에서 언급했던 “민주화운동의 훈장을 떼겠다.”는 말은 “가슴속의 자부심까지 버리자는 건 아니다.”고 부연설명했다. 특히 경제관련 질문에는 전문가급의 식견을 과시했다. 지론인 ‘따뜻한 시장경제’를 설명하는 부분이나 “제3의 길이 김근태식의 경제 패러다임”이라며 성장과 복지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부정했다. 그러나 ‘호남표 공략’ 등 민감한 질문을 던지자 “매우 어려운 지적”이라며 얼마간 곤혹스러워했다. 이따금 전례없이 단호한 어투를 구사했다. 지방선거 참패 원인을 묻는 질문 도중 ‘싸가지 없는’(여당 의원들의 태도)이라는 대목에서는 “이제 싸가지 없다는 말은 안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김근태의 상징이 된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어록이 거론될 때는 “계급장 떼자는 말은 이제 잊어달라. 부동산 정책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식으로, 본질이 뒤바뀐 채 파문이 인 점을 우려하는 듯했다. 여당의장으로서 투쟁성보다 안정감을 중시하는, 스스로에 대한 채찍으로 들렸다. 김 의장은 힘들 때 가끔씩 집 근처에 있는 포스트모던한 카페를 찾는다고 했다. 라이브 음악과 함께 맥주 한두 병을 마시며 손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6·10항쟁 주역이었던 함세웅 신부와 김상근 목사, 지선 스님을 멘토(조언자)로 찾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했다. 김 의장 측은 유약하다는 평가와 함께 운동권 출신의 강성 이미지가 이중적으로 덧씌워져 있음을 의식하는 듯했다. 한 측근은 “힘있는 부드러움 아닐까. 절망과 좌절보다 희망과 용기가 더 넓고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김 의장을 ‘변호’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 문 밖까지 따라나오는 그의 얼굴 위로 ‘희망의 근거’,‘희망은 힘이 세다.’ 등 유독 ‘희망’을 강조했던 그의 책 표지가 겹쳐졌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씨줄날줄] 월드컵 심판/육철수 논설위원

    월드컵 역사상 대표적 오심으로는 마라도나(아르헨티나) 선수의 ‘신의 손’ 사건이 꼽힌다.1986년 멕시코 대회 8강전, 아르헨티나-잉글랜드의 경기 후반 6분. 마라도나는 헤딩슛을 시도하는 척하면서 공을 손으로 슬쩍 쳐서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반칙이 명백했지만 심판은 득점으로 인정했다. 선제 골이었다. 아르헨티나는 이 경기에서 결국 2-1 승리를 거두고, 결승까지 승승장구해 우승을 차지한다. 마라도나는 나중에 뻔뻔스럽게도 이렇게 말했다.“그 손은 내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고. 2002년 월드컵에서는 한국팀의 경기 때마다 심판의 판정이 입방아를 달고 다녔다.16강전에서 이탈리아의 득점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는가 하면,8강전에서는 스페인의 헤딩슛이 성공했으나 슛 이전에 골라인 아웃이었다며 ‘노골’이 선언되기도 했다. 이런 판정은 FIFA에서 오심이었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었고, 심판들 사이에서는 ‘참사’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한국팀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런저런 도움으로 우리는 ‘4강 신화’를 창조했다. 이번 독일대회에서는 2002년 대회를 거울삼아 심판 선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45세 이하 국제심판을 대상으로 메디컬·심리·경기규칙·영어구사·체력테스트를 강도 높게 실시하고, 공정하게 판정하라며 수당도 100% 올려 4만달러(약 3800만원)를 줬단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동일경기에 같은 나라 또는 같은 대륙 출신 심판진을 투입하고, 서로 헤드폰으로 대화를 나누게 하는 등 신경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도 오심시비는 오히려 더 심해졌고 출전국마다 아우성이다. 당장 우리도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편파판정과 오심에 분루를 삼켰다. 경기장의 심판은 골대처럼 ‘시설물’로 간주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절대권한을 휘두르는 ‘제왕’이라 표현하는 게 적절할 듯하다. 일단 내려진 판정엔 번복이란 없다.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것쯤은 심판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의 두 눈은 10억개의 세계 시청자들 눈보다 위력적이며, 휘슬을 삑 불 때마다 한 나라의 국민은 희망과 절망을 넘나든다. 월드컵 심판들은 ‘국적은 있으되 조국은 없다.’는 말을 신조로 삼는다고 한다. 하지만 돈과 축구권력 앞에선 그들도 인간일 따름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당신은 어떤 ‘꿈’을 꾸세요?

    북유럽의 노르웨이는 1세기에 걸쳐 세계 연극사에 남을 걸출한 극작가 두 명을 배출했다.‘인형의 집’‘유령’ 등을 통해 근대 리얼리즘극을 확립한 헨리크 입센(1828∼1906)과 현대 유럽 연극의 선두주자로 주목받는 욘 포세(47)이다. 간결한 일상언어로 현대인의 고독과 사랑, 절망 등을 표현해 ‘제2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리는 욘 포세의 작품이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소개된다. 새달 7일 대학로 아룽구지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가을날의 꿈’은 욘 포세가 1999년 발표한 희곡으로 작가의 특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늦가을, 비 내린 교회 묘지에 한 중년 남자가 찾아온다. 잠시 후 그의 곁에 한 여자가 다가온다. 젊은 시절 서로 사랑했지만 그 사실을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헤어졌던 두 사람. 여자가 다른 곳으로 떠난 사이 남자는 결혼해 아들을 두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고향에 들른 여자는 왠지 남자를 만날 것 같은 예감으로 묘지를 찾았던 것.두 사람은 죽은 자가 묻힌 묘지에서 예전의 애틋한 감정을 떠올린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나 갈등 구조는 없다. 대신 짧고 은유적인 대사와 침묵, 망설임 같은 비언어적인 요소가 적절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내며 극을 이끌어간다. 김윤석과 예수정이 시간의 강을 건너 조우한 중년 남녀의 미묘한 감정을 연기한다. 예수정은 지난해 ‘바다와 양산’‘그린벤치’로 각종 연기상을 휩쓴 연기파 배우. 김윤석은 이번이 첫 연극 도전이다.7월30일까지.(02)744-0300.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World cup] 용한 용병 감독은 히딩크-두이코비치

    축구에 관한 한 잉글랜드의 자존심은 남다르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식명칭이 축구협회(FA)일 정도. 하지만 잉글랜드조차 스웨덴의 스벤 예란 에릭손을 고용할 만큼 ‘순혈주의’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독일월드컵 본선 32개국 가운데 외국인을 사령탑에 앉힌 나라가 15개국에 달하는등 ‘용병감독’은 보편화됐다. 외국인 감독들의 독일월드컵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이다.23일까지 조별리그를 마친 A∼F조에 포함된 11명 가운데 6명이 팀을 16강에 끌어올렸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역시 독일월드컵 최대 이변을 이끌어낸 거스 히딩크(60·네덜란드) 호주 감독과 라토미르 두이코비치(60·세르비아-몬테네그로) 가나 감독이다. 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네덜란드와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히딩크는 ‘사커루’ 호주를 사상 첫 16강에 올려놓아 ‘월드컵청부사’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냈다.호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히딩크는 250만달러(약 23억 8700만원)의 연봉에 16강 진출에 따른 인센티브로 85만달러(약 8억 1100만원)의 가욋돈을 챙기게 됐다. 조국 세르비아-몬테네그로는 ‘죽음의 C조’에서 3전 전패로 망가졌지만, 두이코비치 감독의 주가는 급상승하고 있다.C조를 능가하는 ‘죽음의 조’로 꼽힌 E조에서 체코(FIFA랭킹 2위)와 미국(FIFA랭킹 5위)을 연파하고 아프리카 국가로는 유일하게 ‘검은 별’ 가나를 사상 첫 16강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대량학살의 공포에 젖어 있던 르완다를 2004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8강으로 이끌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법사’란 별명을 얻은 두이코비치는 2005년 가나의 감독으로 부임한 지 1년 만에 또 한번의 기적을 이뤄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숙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재혼 남편 딸 문제로 자주 싸워요

    Q재혼한 지 1년째예요. 저는 아이가 없고 남편은 초등학교 5학년 딸이 있어요. 이혼 아픔을 잊으려고 가입한 동호회에서 남편을 알았고 혼자 딸을 키우는 것이 불쌍하고 안쓰러워 결혼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남편의 딸을 내 자식처럼 키우려 하는데 친엄마와 만나고 오면 밥투정도 심해지고 짜증도 늘어 좋아지려던 관계가 엉망이 돼요. 남편에게 다른 불만은 없는데 아이 문제로 싸우는 날이 많아졌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한 명 희(가명·35세) A 자녀문제로 남편과 싸우는 날이 많아졌다고 하니 안타깝네요. 그러나 남편과의 문제보다는 자녀로 인한 것이라면 해결해 나가야 하고 또 해결할 수 있다고 느껴집니다. 재혼가정은 초혼가정의 단순한 관계와는 달리 복합적이고 다중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재혼가정의 특징적인 관계구도를 부부가 잘 이해해야 하지요. 특히 출산하지 않고 부모가 되면서 준비기간 없이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부모역할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원만한 재혼 생활을 위해서는 관계의 여러 측면들이 동시에 고려돼야 합니다. 우선 완벽한 ‘친엄마’가 되겠다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버리세요. 남편과의 결혼을 결정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만약 남편 딸의 ‘친엄마’가 되기 위해서 결혼했다면 냉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것은 잘못된 결정입니다. 자녀가 엄마와의 관계를 인식하고 친밀한 유대관계를 경험했다면 그 자녀에게는 이미 ‘친엄마’의 자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친엄마와 딸은 동거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정서적으로 깊이 맺어져 있는 관계이며 영원히 지속되어야 할 필수적인 관계입니다. 새엄마가 그 관계를 단절시키려 한다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자녀는 새엄마에게 적개심을 품게 될 것이고 새엄마 또한 그런 자녀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현대판 ‘콩쥐와 새엄마’의 관계가 재현되는 것이지요. 자녀와 친엄마의 관계를 방해하지 않고 함께 살면서 필요한 부분을 새엄마가 채워주는 경험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고마운 관계가 됩니다. 친엄마가 되려는 부담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자녀도 친엄마와 같은 완벽한 역할 기대를 하지 않게 돼 서로 고마운 관계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친엄마’가 되고 싶다면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출산하여야 합니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은 대개 언젠가 친부모와 함께 옛날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습니다. 재혼할 때 부모는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인생으로 ‘희망’을 생각하지만 자녀는 그 순간 기대감을 저버려야 하는 ‘절망’을 보게 됩니다. 또한 자신의 부모를 새 부모나 새 형제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며 새부모를 따르는 것은 친부모와의 의리를 저버린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딸은 상실과 상처의 경험을 이미 가지고 있고 아빠와 단둘이 살면서 새로운 그들만의 생활이 있었습니다. 딸이 아빠와 새엄마의 관계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고 아빠와 더 친밀한 관계에 힘을 쏟는 모습은 그동안 독차지해 왔던 아빠를 새엄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심리적인 박탈감, 소외감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기도 하고요. 친엄마를 만나고 오면 잊고 지냈던 친엄마와의 좋은 감정과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현실이 짜증스럽고 일시적으로 새엄마의 존재를 거부하고 싶을 때가 있게 됩니다. 그런 경우 딸의 심리를 이해하고 너그럽게 그 시기를 넘긴 뒤 딸과 서로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보듬어 안아 주세요. 다시 강조하지만 ‘부부관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남편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래야 소외감, 불안감, 두려움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고 자녀와의 갈등도 서서히 없앨 수 있습니다. 재혼가족의 특성을 서로 잘 이해하고, 부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사랑으로 소중한 가정 만드시길 바랍니다. <나우미가족문화연구원장>
  • 2년 기다림끝에 난민 인정 직장 잡아도 카드발급 거부

    2년 기다림끝에 난민 인정 직장 잡아도 카드발급 거부

    항상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로넬 차크마 나니(38). 그러나 그의 눈가와 입매에 드리운 주름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과 절망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그를 난민이라 부른다. 20일은 6번째를 맞는 세계 난민의 날. 인종·종교·국적·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란 이유로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어 조국에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은 더이상 국제뉴스에만 존재하지 않는다.199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880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48명이 인정받았고 수천명이 난민 지위를 기대하며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사회의 난민에 대한 이해와 관심, 정책의 부재는 심각하다. 난민의 날을 맞아 국내 정책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2004년 12월에 난민 인정을 받은 로넬을 그가 ‘만년 총무’로 일하고 있는 줌마민족네트워크 한국지부(JPNK·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서 만났다. 로넬은 방글라데시에서 자신이 속한 소수 민족인 줌마족의 권리를 지켜내는 활동을 하다 3년의 옥고까지 치른 ‘과격 운동권’이었다. 정보기관의 감시에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1994년 4월 한국으로 탈출했다. 3년 뒤 정부와 줌마족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평화를 기대하며 고국에 돌아간 그는 다시 탄압이 이어지자 2000년 3월 한국에 돌아왔다. 조국에 남아있던 아내 졸리 데완(29)과 아들 주니(7)를 데려온 것은 그로부터 3년6개월 뒤였다. ●통역도 없이 심사… 난민인정 이유도 몰라 로넬과 가족은 각각 2년2개월과 1년을 기다린 끝에 난민 인정을 받았다.“출입국 관리 직원과 면담을 열 몇차례인가 했습니다. 왜 한국에 왔느냐, 왜 불법 체류를 하다가 난민 신청을 했느냐, 방글라데시에서 어떤 활동을 했느냐, 직장은 어디냐,JPNK는 어떤 활동을 하느냐 등등 똑같은 질문을 수십번 되풀이했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방글라데시어 통역이 자리를 함께한 기억도 전혀 없다.“왜 2년씩이나 심사를 끌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더군요. 늦어지는 이유를 알아야 기다려도 막막하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기약 없는 기다림처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다. 아들 주니를 유치원에 보내도 좋은 건지, 자신과 아내는 취업할 수 있는 건지, 난민 인정을 받으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가 JPNK의 만년 총무로 일하는 것도 다른 줌마족 신청자들의 답답한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설픈 한국말을 늘어놓다가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그는 열일 제쳐두고 발품을 판다. 자신이 난민 인정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고국에서 탄압받은 경력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법무부 처분서를 보면 난민협약의 난민 정의를 인용하면서 ‘사실상 난민이기 때문에 난민이다.’라거나 ‘난민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난민이 아니다.’는 식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난민으로 인정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어떤 신청자도 그 사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뒤 달라진 것이 있는지,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난민으로 인정됐다는 것, 난민으로 인정되게 된 박해의 가능성 등에 대해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 많이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인정 후에도 관심이 없고 난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전혀 없습니다. 한두 번 전화 걸어 확인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잘 지내느냐, 지금 사는 집은 전세냐 월세냐, 직장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 고작입니다.” ●돌아갈 곳 없어 한국이 유일한 희망 로넬은 현재 조그만 가구공장에서 1년째 일하고 있다. 한국에 온 뒤 가장 오랫동안 몸담은 직장이다. 걸핏하면 난민 심사를 위해 자리를 뜨는 그를 공장주들이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주니의 앞날. 여느 한국 아이처럼 장난감, 컴퓨터, 하얀 종이와 크레파스를 좋아하는 주니가 좀 내성적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곧잘 어울려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어린이날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과천 서울랜드에 다녀왔다.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나중에 좋은 직장을 구해 잘 생활해야 할 텐데, 이런 것들이 걱정이에요.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한국 사회에 좋은 기여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저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1년이나 다닌 직장이 있지만 그에게는 신용카드 한 장 없다. 은행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발급해 주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가입이 안 되는 곳이 많다. 직장의료보험은 난민 인정 뒤 겨우 가입됐다. 어리석은 질문이라 생각하면서도 왜 하필 한국을 택했는지 물었다.“민주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불교가 자리잡고 있는 점, 그때까지 줌마족 활동이 없는 곳이란 점도 감안했어요.” 많은 실망을 안겨 주었음에도 로넬은 한국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돌아갈 수 없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들. 우리가 그들을 ‘짐’으로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줄 것,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다. 황필규 객원편집인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hopenvision@naver.com
  • [난민의 날 특집] 난민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난민의 날 특집] 난민문제 얼마나 심각한가

    한국에서의 난민 보호는 어쩌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심각한 상황에 견줘 다루기 쉬운 편이라 할 수 있다. 보호 신청자 증가세가 가파른 편이고, 처리되지 않은 신청서가 계속 쌓이고 있으며, 체류 난민들의 현지 적응 문제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심각한 상태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훨씬 많은 수의 난민 보호 신청자와 난민들을 수용하는 국가들과 유엔난민기구는 훨씬 복잡하고 난해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난민 관련 상황 가운데 특히 더 어렵고 이 시점에서 중요하게 부각되는 사안들을 살펴본다. ●수단 다르푸르 사태 동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선 종교·인종적 갈등과 주권, 토지 다툼에서 비롯해 2003년부터 고향을 등지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170만명은 국내 유민이 되고 있고,20만명은 국경너머 차드의 난민캠프에 수용돼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들에게 신변 보호와 물, 피난처, 식량, 옷, 의약품 등 생활하는 데 기본적인 것들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캠프 안팎에서 계속되는 공격으로 이 지역에서 우리의 활동은 지장을 받아왔다. 또한 무장세력들은 난민과 실향민 캠프에서 병사들을 징용함으로써 평화롭고 인도주의적인 캠프의 성격을 훼손하고 있다. ●네팔에 체류하는 부탄 난민 약 10만명의 부탄 난민이 네팔 캠프에 14년간 피난해 있으며 이들의 고난에는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부탄에 귀환하거나, 네팔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혹은 이들을 받아줄 용의가 있는 제3국에 재정착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가운데 어느 방법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난민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동티모르 최근 뉴스에서 계속되는 폭력으로 인해 10만명 이상의 실향민이 발생한 동티모르를 접할 수 있었다. 유엔난민기구에서는 동티모르로 즉각 긴급 구호품을 수송하였으며, 현지 상황을 완화하려는 유엔의 인도주의적 구호 노력의 일환으로 구호팀을 긴급 파견했다.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에는 이른 시일 안에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이 거의 사라진 2만여 미얀마인들이 위험하고 힘든 캠프 생활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과거 몇년간 캠프에서 구타와 살인, 다른 잔학 행위들이 보고됐다. ●파키스탄 300만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이 20년 이상을 피난처로 삼아온 파키스탄을 떠나 집으로 귀환했지만 아직도 260만명 정도가 본국의 불안한 치안 때문에 귀환을 결심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사실 유엔난민기구는 한국 정부의 선의와 물적·인적 자원에 있어 충분한 잠재력을 갖고 있어 정부가 비호 신청 처리 과정을 더 갖추고 난민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아시아에서 모범적인 난민 보호 국가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적절한 계획과 전략적으로 사용된 충분한 자원들을 통해 한국의 잠재력은 2년 안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제니스 린 마셜 객원편집인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대표 unhcr@unhcr.or.kr> ■ 변화를 원하시는 분은… 역사적으로 모든 나라가 난민 문제를 직접 경험했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구나 난민이 될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도 한국전쟁으로 대규모 유민 사태를 경험한 바 있고 탈북 사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가슴 아픈 경험 때문에라도 우리 사회는 난민이 사회의 부담을 주거나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일시적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는 점을 이해하고 부축해야 한다. 아인슈타인 등도 한때 난민이었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사회에 큰 공헌을 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그만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www.unhcr.or.kr,02-773-7012)를 두드리면 된다. 유혜정 객원편집인 (UNHCR 한국사무소 행정팀장 unhcr@unhcr.or.kr> ■ 기획부터 만들어지기까지 객원편집인이 직접 지면을 기획하고 취재와 기사 작성까지 맡는, 다소 파격적인 지면이 오늘 게재되기까지 적지 않은 산고(産苦)를 치러야 했다. 본지 편집국 자체 작업이라면 사나흘 걸릴 일을, 한 달 이상 공을 들여야 했다. 이 기획을 처음 구상하고 착수한 것은 지난달 9일쯤의 일이다. 세계 난민의 날 특집을 준비하다 난민 문제에 가장 정통하고 경험이 있는 전문가 집단에 지면을 통째로 내주기로 한 것이다. 이후 여러 단체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한 결과, 아름다운재단 소속 공익변호사 그룹인 ‘공감’과 유엔난민기구가 적격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본지는 광고 5단을 제외하고 10단짜리 2개 지면을 할애하기로 하고 두 단체와 접촉, 취지를 설명한 뒤 매주 한번씩 이들 기관의 사무실에서 만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이 기획을 구상할 때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가급적 전문가 집단의 의견과 판단을 존중하고 본지 편집국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본지 편집국은 기술적인 문제에 관한 조언에 치중하고 기획의 핵심은 이들 두 기관이 스스로 방향을 잡아가도록 했다. 사진 촬영과 그래픽 작업, 제목 작성 등은 편집국 기자들 손에 맡겨졌다. 또 점검 회의에서 정부의 난민 보호 담당자들과 난민 보호를 위해 앞장서 일해온 여러 단체 활동가들의 좌담을 마련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따라 이 기획이 나간 뒤 적정한 시점에 좌담을 갖기로 하고 이를 추진 중이다. 본지 편집국은 객원편집인 기획을 앞으로도 늘려가려 한다. 기자 집단의 한계를 벗어나 정부나 시민사회 대표자들이 직접 지면을 꾸려보고 시민을 상대로 대화하게 함으로써 활동의 외연(外延)을 넓혀나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맞혀보세요 다음 10명의 유명인 가운데 한때 난민으로 지낸 적이 있는 사람은?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마들렌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나디아 코마네치 체조선수 조지 웨아 축구선수 김대중 전 대통령 마를렌 디트리히 가수 겸 배우 게오르규 솔티 지휘자 루돌프 누레예프 발레리노 답은 10명 모두
  • 칙칙한 추억, 그러나 감출 수 없는…

    오우암의 작품에선 작가의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깊은 상처가 느껴진다.6·25때 부역한 부친을 잃고 극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는 지난 20여년간 고집스레 이미 오래전 보았던 상처의 기억만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서울 신문로2가 아트포럼뉴게이트에서 19일부터 열리는 ‘오우암 〉 길’전에 선보이는 작품들에선 이같은 상처의 응어리들이 선명하게 재현되어 있다. 침침한 기차역 내부를 울타리 바깥에서 호기심에 들여다보는 아이, 직업소개소 앞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극장 매표소 앞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특이한 것은 등장 인물들이 하나같이 표정이 없고, 건물이나 육교, 기차 등 오브제들이 대부분 칙칙하게 묘사되었다는 점. 화면엔 또 많은 길이 보인다. 역, 철길, 굽은 산길 등등. 길은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절망의 시대에 한가닥 희망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는 잠재된 욕구가 읽혀지기도 한다. 그림을 좋아했지만 미술공부는 엄두도 못낸 작가는 책의 삽화나 화집 등을 보고 화법을 스스로 익혔다. 유화물감을 만져본 것도 20여년밖에 안 된다. 미술대학에 들어간 딸이 그리다 망친 캔버스 뒷면에 자투리 물감으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칠순에 가까운 작가는 작품소재로 아픈 기억을 계속 고집하는데 대해 “생각이 당시에 머물러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다. 다른 특별한 이유는 없다.”라고 말한다.마치 어린 나이에 더이상 성장하기를 거부한 귄터 그라스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 소년처럼, 작가는 50년대에 멈추어 더 이상 기억이 자라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고아소년으로 깊숙이 맺힌 상처의 응어리가 풀어질 때까지 말이다.7월1일까지.(02)737-9011.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외채의 냉혹한 세계지배 실상

    외채는 구원의 손길인가, 아니면 신 식민지배의 수단인가. 불과 몇 년 전 절망적인 외환위기를 맞아 극심한 고통을 겪었던 우리에게도 외채 혹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은 적지 않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벨기에에 본부를 둔 제3세계 외채 탕감을 위한 위원회(CADTM)에서 활동하는 다미앵 미예와 에릭 뚜생이 함께 지은 ‘신용불량국가’(조홍식 옮김, 창비 펴냄)는 페어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IMF와 외채의 냉혹한 세계지배의 실상을 고발한 책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외채는 그 형성과정에서부터 철저하게 채권국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70년대 자국 인플레를 우려한 미국이 해외투자를 장려하면서, 그리고 오일쇼크로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인 산유국들의 돈이 서방은행에 몰려들었으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대규모의 외채를 제3국가에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 선진산업국은 남아도는 돈을 개도국에 빌려줌으로써 자국 상품의 판매를 꾀했고(연계 원조), 또한 맥너마러가 이끈 세계은행은 미국의 반공·반민족주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외채를 이용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이렇게 쌓이기 시작한 외채는 80년에 이르러 6000억달러에 이르는 등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급기야 1983년 멕시코의 부채상환 포기를 시작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러시아, 동남아시아, 한국, 다시 라틴아메리카 지역으로 외채 위기가 반복되었다고 분석한다. 외채 위기가 닥칠 때 이를 처리하는 IMF와 세계은행 등 세계금융기관의 조치는 개도국 상황을 개선하기보다는 더 악화시켰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채무국의 수출을 장려한다며 빌려준 돈으로 몇가지 원자재나 1차산업에 투자하게 한 뒤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 이를 사들여 완제품을 만들어 역수출함으로써 부가가치의 주요부분을 선진국들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즉 IMF의 구조조정정책은 서구의 금융기관과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정책이라고 저자들은 단언한다. 이들은 이같은 과중 채무빈곤국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선 외채의 전면적 탕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기존의 경감조치는 단지 상환금을 나누어 갚으라는 조치로,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독재정권에 의해 부도덕하게 체결된 외채를 개도국의 민중들이 모두 갚을 이유가 없으며, 개도국은 이미 외채 원금의 7.5배에 해당하는 돈을 갚았음에도 아직 원금의 4배가 남아있다는 수치상 증거를 탕감의 이유로 내세우기도 한다. 외채 탕감운동을 벌이는 운동가로서 이들의 주장은 다소 과격해 보이지만, 외채의 속성과 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빈틈없는 분석은 IMF사태를 넘기며 극심한 고통과 부작용을 경험해야 했던 우리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1만 5000원.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보다 위대한 사랑/길자연 목사 왕성교회 당회장

    누구나 일인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일인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나 정상에 서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정상에 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인생의 정상은 단 한자리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생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일인자가 되어 인생의 정상에 섰을 때 영광과 기쁨을 맛보게 되지만 그 정상에서 밀려나게 될 때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자괴감과 절망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인자가 되려 하고 생의 정상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들이 그렇게도 원하는 행복과 성공을 삶의 정상에만 두시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어디에나 행복이 있고 성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일인자가 맛볼 수 있는 행복을 이인자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취감과 행복은 다릅니다. 일인자가 되고 정상에 서는 것은 성취감에 해당하는 것이지 그것이 행복은 아닙니다. 일인자가 되고 삶의 정상에 섰어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행복과 성공은 반드시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주어진 삶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최상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정상에 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만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고 성공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일인자에게는 일인자의 삶이 있고 이인자에게는 이인자의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은 그 차지하는 자리보다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일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역사의 표면에 선 영웅도 위대하지만 무대 뒤에서 그를 돕는 숨은 영웅 역시 그에 못지않게 위대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다윗은 난세에 태어나 무너져 가던 이스라엘을 다시 일으켜 세워 강대국을 만들었던 불세출의 영웅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나단이 있었기에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수 있었으므로 다윗 없는 요나단은 생각할 수 있어도 요나단 없는 다윗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백도 없고 돈도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나라의 한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에서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양을 치던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비해 요나단은 당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던 사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승계 일순위였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용기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런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다윗에게 넘겨주고 홀연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성입니다. 용맹있는 사람은 위대합니다. 만난을 극복하고 생의 정상에 선 사람도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모든 것을 이루고서도 또 모든 것을 가지고서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요나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요나단이 어떻게 그런 자기희생적 사랑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사울을 버리고 다윗으로 이스라엘 왕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그런 하나님의 뜻은 결코 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다윗으로 자신을 대신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보여주신 예수의 정신입니다.“내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 예수의 정신이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다윗같은 영웅이 아닙니다. 모든 일을 자기의 지도력 하에 두고 자기 입맛대로 이끌려는 사람이 아닙니다. 요나단처럼 양보와 희생의 정신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는 사람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요나단 정신이 더욱 요구되는 것은 양보와 희생의 정신이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길자연 목사 왕성교회 당회장
  • “동성애도 똑같은 사람의 사랑”

    동성애자가 겪는 고통과 절망은 가장 밀착된 관계에서 비롯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이지 그들의 남다른 사랑 형태가 빚어낸 비극이 아니다. 방현희(42)의 첫 소설집 ‘바빌론 특급우편’(열림원)에는 동성애나 양성애, 근친상간 같은 금기의 사랑이 넘쳐난다. 수록작 10편 가운데 예닐곱편이 여기에 속하는 걸 보면 ‘성적 소수자’ 혹은 ‘비정상적 사랑’에 대한 일관된 문제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논쟁적인 소재를 즐겨 다뤘다는 사실보다 더 흥미로운 건 ‘금지된 사랑’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다. 진보적인 영화나 소설이 흔히 그렇듯 성적 소수자를 연민하거나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려는 의도 따위는 찾아볼 수 없다.그의 소설에서 동성애는 이성애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고, 삶이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이런 그에게 “동성애를 어떠한 자의식 없이, 무심하게, 그저 사람이 사랑하는 방식으로 그려낸 한국 최초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똑같은 동성애영화라도 ‘브로큰백 마운틴’보다는 ‘해피 투게더’를 더 좋아해요.‘브로큰백…’은 갈등의 원인을 사회적인 문제로 돌리지만 ‘해피 투게더’는 오로지 두 사람의 관계에만 집중하잖아요. 동성애나 근친상간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끄러지는 관계, 그걸 쓰고 싶었습니다.” 수록작 ‘연애의 재발견’에서 패션디자이너 여자친구와 모델지망생 청년을 동시에 사랑하는 주인공이나 ‘녹색원숭이’에서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하는 동성애자 무용수가 겪는 고통과 절망은 “가장 밀착된 관계에서 비롯된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이지 그들의 남다른 사랑 형태가 빚어낸 비극이 아니라는 얘기다. 근친상간을 다룬 ‘바빌론 특급우편’과 ‘화이트 아웃’은 사뭇 도발적이다.‘바빌론…’에서 아들은 하반신이 마비된 엄마를 13년간 업고 다닌다. 아들의 등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있는 엄마는 시체나 다름없다. 오래 전 ‘열기를 가누지 못하고 내달리던 수소’처럼 엄마를 범했던 아들은 이제 최초의 연인이었던 엄마를 떠나보내려 한다.‘화이트 아웃’의 ‘나’는 외사촌 누이 홍주와의 근친상간을 피해 북빙양 항해길에 오르지만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왜 이토록 비정상적인 사랑에 집착하는 걸까.“간호학과(전북대)다닐 때 정신병동을 실습하면서 친한 친구의 동생이 철창 안에 갇혀있는 걸 보고 너무 놀랬다. 그때 이후 내게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는 작가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운 관계, 장애가 많은 관계를 통해 우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부터 겪는 고통의 본질에 대해 심층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2001년 ‘동서문학’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이듬해 장편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로 계간 ‘문학·판’의 장편소설상을 수상했다.“사랑 얘기는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라는 작가는 “인간 안에 내재된 역사성에 관심이 많다. 지난해부터 박물관 학예사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하고 있다.”고 밝혔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World cup] 공은 둥글다…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독일월드컵에 명함을 내민 32개국이 최소 ‘일합’ 이상을 겨뤘다. 저마다 필살기를 뽐냈지만 상대를 압도한 것은 체코와 스페인, 아르헨티나였다. ●체코·스페인·아르헨티나 ‘탄탄대로’ 체코와 스페인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각각 2·5위. 유럽의 강호지만 월드컵에서 실속은 없었다. 하지만 첫 경기에서 드러난 두 나라의 전력은 눈부셨다. 1934·1962년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한 체코는 90이탈리아대회 이후 16년 만에 출전한 본선에서 ‘현대축구의 전형’을 선보였다. 공격과 미드필드는 촘촘한 간격을 유지한 채 톱니바퀴처럼 물려돌았고, 포백과 골키퍼의 유기적 호흡을 앞세워 미국을 일축했다.‘서른넷 동갑내기’ 네드베트-포보르스키-갈라섹에 로시츠키가 가세한 허리는 단연 최강. 스페인의 환골탈태는 더욱 극적이다. 스페인의 최고성적은 1950년 4강에 오른 게 전부로 ‘무적함대’란 별명이 민망했다. 유로2004 조별예선 탈락에 이어 독일월드컵 예선에서도 플레이오프를 거치는 등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아라고네스 감독의 세대교체는 빛을 발했다.‘투톱’ 비야-토레스의 화력과 영리한 미드필더진, 푸욜이 조율하는 수비를 앞세워 우크라이나를 4-0으로 대파했다. 통산 3번째 우승을 노리는 아르헨티나도 복병 코트디부아르를 2-1로 꺾고 첫 단추를 제대로 뀄다.2002년에 이어 네덜란드, 세르비아-몬테네그로 등과 함께 ‘죽음의 C조’에 묶여 우려를 자아냈지만 리켈메의 공·수 조율과 크레스포-사비올라의 파괴력은 놀라웠다. ●독일은 ‘허허실실’ 브라질·프랑스는 ‘기대이하’ 개최국 프리미엄을 업은 독일은 탄탄한 전력을 앞세워 코스타리카, 폴란드를 연파,16강에 올랐다. 클로제-발라크-람이 제 몫을 해낸 독일의 순항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 다만 중앙수비는 스피드가 떨어지는 허점을 노출했다. ‘우승 0순위’ 브라질이 18개의 슈팅을 날리고도 크로아티아에 1-0으로 이긴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호나우두는 “뒤뚱거렸다.”는 혹평을 들을 만큼 실망스러웠다.98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떠올리는 팬들에게 프랑스의 첫 경기는 절망적. 스위스와 0-0 무승부를 기록,“늙은 수탉”이란 비아냥을 들었다. 대회 때마다 지진을 일으켰던 아프리카 팀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도 눈길을 끈다.‘검은 돌풍’의 선봉 코트디부아르를 비롯, 앙골라와 가나, 토고가 거푸 무너졌다. 그나마 튀니지가 사우디아라비이와 2-2로 비기며 체면치레를 했다. 아시아도 힘을 잃었다. 일본과 이란이 각각 호주와 멕시코에 1-3으로 쓰러졌고 사우디아라비아만 튀니지와 비기는 데 그쳤다. 한국만 첫 승을 거두며 명맥을 유지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한·일 네티즌 ‘악플 전쟁’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창인 가운데 한·일 네티즌들 사이에서 월드컵을 소재로 한 악플(악의적 댓글)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상대팀의 탈락을 기원하거나 축구실력 깎아내리기는 물론이고 민족성이나 역사 비하 등 다양하다. 발단은 지난 12일 일본과 호주전. 일본인들에게는 ‘쓰라린 역전패’일 수밖에 없는데 ‘고소하다.’는 듯한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이 일본 네티즌들을 자극했다.히딩크 감독의 “한국을 위해 일본을 이기겠다.”라는 인터뷰나 한국인의 일방적인 호주응원도 이들을 자극했다. 야후 재팬 월드컵 게시판에는 ‘한국 놀리지 마!’라는 별도 게시판까지 생겼을 정도다. 일본 네티즌들은 “같은 아시아 국가이고 2002월드컵 공동개최국인데 호주를 일방적으로 응원한 건 너무 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게시판엔 “신이시여, 프랑스·스위스·토고가 한국한테 다 이기게 해주세요!”,“한국은 심판을 매수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는 나라”라는 글로 한국 대표팀의 4강 신화를 깎아 내렸다. 일본의 분풀이는 토고전 이후에도 이어졌다. 한국 경기결과의 예상을 묻는 한 일본포털에는 이틀 동안 1100여건의 글이 이어졌다. 반한감정이 강하기로 유명한 일본 커뮤니티 ‘2ch’에도 “개발도상국은 축구를 좋아한다.”,“프랑스·스위스 힘내라. 한국에 영원의 굴욕과 절망을!”,“결국 한국은 일본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 나라”등의 비아냥거림이 이어졌다. 종군위안부 문제나 독도문제를 건드리는 이들도 있었다. 한국 네티즌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네이버 인조이 재팬 스포츠게시판에는 토고전 이후 하루 동안 5000건이 넘는 글이 이어졌다. 대부분 일본 네티즌에 대한 반박과 비난 글이다. 아이디 ‘railgun7’은 “골키퍼 밀어서 겨우 1점 낸 일본이 한국에 심판 매수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다.”고 지적했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관타나모 美기지 수감자 3명 자살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쿠바 관타나모의 미군 기지에 수용돼 있던 테러 용의자 3명이 동시에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 관타나모에서의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관타나모 기지를 관할하는 미 남부사령부는 1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2명과 예멘 출신 1명 등 수감자 3명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자살한 수감자들은 아랍어로 유서를 남겼으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관타나모 기지 사령관인 해리 해리스 해군소장은 기자회견에서 “이들이 10일 오전 감방에서 숨도 쉬지 않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발견돼 소생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침대시트와 옷으로 올가미를 만든 뒤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고 밝혔다. 해리스 소장은 “그들은 우리 생명이든 자신의 생명이든 생명을 존중하지 않았다.”면서 “이것은 절망에 의한 행동이 아니라 우리를 겨냥한 전쟁행위”라고 주장했다. 미 해군 범죄조사국은 사건 경위 조사에 착수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국제테러 조직 알 카에다,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해온 탈레반과 연루된 것으로 의심되는 테러 용의자 460여명이 수감돼 있다고 미군측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인권단체들은 수감자 가운데 대부분이 테러와 연관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수감자들이 기소도 되지 않은 채 무기한 억류된 관타나모 기지는 그동안 각종 고문 등의 의혹이 제기되는 등 대표적인 인권 침해 시설로 지목돼 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 유럽 국가의 지도자들은 기지 폐지를 요구하기도 했다. 관타나모 기지에서는 지난달 수감자들과 군 경비원들간의 유혈충돌이 발생했다. 또 지난해 8월부터 수감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이자 미군은 굶어죽는 것을 막으려고 수감자들의 코를 통해 강제로 음식물을 투입, 국제 인권단체들로부터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자살한 세명의 수감자도 단식투쟁에 참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기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월 테러 용의자들이 수감되기 시작한 이래 4년 반 동안 수감자 25명이 41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지금까지 사망자는 보고되지 않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휴양지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 비서실장으로부터 이번 사건 및 관련 정보를 보고받았다고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이 밝혔다. 이 자리에서 부시 대통령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스노 대변인은 전했다.dawn@seoul.co.kr
  • [오늘의 눈]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세영 국제부 기자

    198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 등장한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열정적이고 단호한 어조로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란 수상연설문을 읽어내려갔다. “서구인들만이 독립과 독창성을 추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문학의 독창성은 그렇듯 쉽게 인정하면서 우리가 시도하는 사회변혁은 왜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입니까.” 이 ‘마술적 리얼리즘’의 대가를 절망케 한 것은 라틴아메리카를 미개하고 잔인하며, 비합리적 열정에 사로잡힌 땅으로 낙인찍은 서구의 오만이었다. 4일(현지시간) 치러진 페루의 대통령선거 결선투표 결과를 전하는 서구 언론의 반응에서도 ‘1세계 문명인들’의 무례함은 어김없이 묻어난다. 중도좌파 알란 가르시아를 선출한 페루인을 향해 이들은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했다.”며 냉소했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통신 등 경제매체들이 최근까지 보여준 보도행태는 특정 후보의 낙선을 노렸다는 혐의를 두기에 충분했다. 이들은 급진민족주의자 오얀타 우말라가 선두로 부상한 3월부터 그의 집권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며 선거구도를 ‘공포와의 대결’로 몰아갔다. 과연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외국인과 부자에 대한 적대감에 정치적 잔혹극을 일삼는 우중(愚衆)일 뿐인가. 자원 국유화와 부의 분배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주권행위를 음험한 포퓰리스트와의 야합으로 단죄한다면, 대체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경계는 어디인가. 24년 전 마르케스는 ‘다른 세계’를 향한 노력을 용인치 않는 서구의 편협함이 라틴아메리카를 고독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들이 20년 전 페루 경제를 거덜낸 가르시아에게 재차 기회를 준들,16년 전 미국에 의해 ‘축출’된 다니엘 오르테가에게 니카라과의 운명을 다시 맡긴들 또 어떤가. 이미 그들은 피노체트와 콘트라,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서구의 개입으로 충분히 고통받았다. 이제 지긋지긋한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그들을 해방시킬 때도 됐다. 이세영 국제부 기자 sylee@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1) 아랍인 영혼의 고향 바그다드

    [이슬람 문명과 도시] (11) 아랍인 영혼의 고향 바그다드

    바그다드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인류 문명의 시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고, 중세에 세계를 호령했던 아랍이슬람 제국의 수도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천일야화’의 탄생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편으로는 옛 영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가난과 공포와 절망에 찌들린 시민들의 눈동자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유유히 흐르는 티그리스강은 바그다드가 겪은 영욕의 세월을 가슴에 묻은 채 바그다드인들의 눈물과 한을 싣고서 때로는 검푸른 물결을, 때로는 황금 물결을 이룬다. #‘신의 축복´ 받은 바그다드 바그다드는 신의 축복을 듬뿍 받은 도시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풍부한 수자원, 비옥한 토양, 동서무역의 요충지, 전략적 요새 등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도시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서는 세계 제2의 석유매장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는 불행한 땅이 되어버렸다. 신의 축복이 보이지 않는 시샘을 불러온 것일까? 바그다드의 슬픈 운명은 1258년 몽골의 침략으로 도시가 초토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8년에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꼬박 700년이 걸렸다. 잃어버렸던 700년의 대가는 너무 혹독해서 이라크의 재기는 몸부림에 그칠 때가 많았다. 바그다드의 잃어버린 세월은 아랍인들이 잃어버린 세월이다. 바그다드는 중세 아랍이슬람 제국의 수도로서 아랍 문화의 기틀을 확립하여 발전시킨 곳이다. 아랍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바그다드는 아랍인들에게 긍지의 원천이며 영혼의 고향이다. 바그다드에는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들이 많다. 이들의 면모를 곰곰이 살펴보면 고대와 현대가 서로 맞닿은 느낌이 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숨결, 지구라트 기원전 3000년경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를 세웠던 수메르 왕국의 유적을 비롯해서 바빌론 왕국과 아시리아 왕국,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유적들이 당시의 숨결을 들려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대표적 문화유산은 신전탑인 지구라트(Ziggurat)와 설형문자, 다양한 인장들, 대형 석상과 부조 등이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다신숭배 사상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피라미드 형태로서 흙벽돌이나 석회석으로 지어진 이 신전탑은 3층으로 구성됐고 전면 중앙에 계단이 있다. 이라크에는 약 30개의 지구라트가 있는데, 바그다드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지점인 아가르고우프에 가면 대형 지구라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원전 1500년쯤 바빌론 왕국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자연 석회석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지구라트 주변에는 신전, 왕궁, 마을, 시장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생활의 구심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니파 모스크, 시아파 모스크 이라크는 수니파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시아파 인구가 훨씬 많다. 시아파의 주요 성지들이 이라크에 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에는 어디를 가든 수니파 모스크와 시아파 모스크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수니파 모스크는 알 아드함 모스크이다. 바그다드 서쪽 알 아드하미야 구역에 위치한 이 모스크는 이맘 아부 하니파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이맘 아부 하니파는 이슬람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하나피 학파의 창시자로서 766년에 타계했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1066년에 그의 묘소를 안치하는 모스크가 지어졌는데 이것이 알 아드함 모스크이다.1000년에 가까운 세월의 풍상 속에서 이 모스크는 파괴와 보수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수니파 무슬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한편 대표적인 시아파 모스크로는 카디마인 모스크를 꼽을 수 있다. 바그다드 북부 교외의 카디미야 구역에 위치한 이 모스크는 2개의 황금색 돔과 4개의 황금색 미나렛이 화려함과 신비를 자아내며 장엄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이 모스크는 시아파의 이맘이었던 무사 알 카딤과 무하마드 알 자와드의 묘소를 안치한 곳으로 사파위조 페르시아가 이라크를 통치하던 시기인 1515년에 건립됐다. 카디마인 모스크는 2005년 2월에 발생했던 폭탄 테러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의 폭탄 테러는 시아파의 최대 종교기념일인 아슈라 전야에 발생하여 사건의 배후로 수니파가 지목됐다. #‘천일야화’ 추억 깃든 아부 누와스 바그다드 시내를 걷다 보면 마치 ‘천일야화’의 한 장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인류가 탄생시킨 이야기 문학의 보고(寶庫)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낭만과 신비를 선사한 ‘천일야화’의 고향이 바로 바그다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신밧드의 모험’,‘알라딘과 요술램프’,‘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카라카데 거리에 즐비한 카펫 상점들 앞을 지날 때는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알라딘이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티그리스강을 따라 조성된 아부 누와스 거리에는 ‘천일야화’의 두 주인공 샤흐리야르 왕과 샤흐라자드 왕비의 대화 장면이 조각상으로 재현되어 있고, 알리바바 광장에 가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지혜로운 여종이 도둑들이 숨은 항아리에 기름을 붓는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천일야화’의 추억은 아부 누와스 거리에서 특히 새록새록 묻어난다. 아부 누와스는 이 작품에서 수없이 아름다운 노래를 읊었던 시인이 아니던가! 술과 여인과 사랑을 주제로 시를 읊으며 당대를 풍미했던 그는 아랍 세계의 이태백이었다. 아부 누와스 거리는 옛 시인의 체취를 간직한 채 오랜 독재와 전쟁, 가난에 지친 이라크인들에게 한 가닥의 여유를 선사하고 싶어한다. 또한 아부 누와스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통요리 마스쿠프다. 마스쿠프는 티그리스 강에서 잡아올린 민물고기 등을 갈라 편 후 내장을 제거하고 장작불에 구워 갖은 양념으로 조미한 요리다. 귀한 손님 접대 음식으로 많이 쓰이는 이 요리는 투르시(절인 고추 또는 오이)와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이라크 주권회복 상징 ‘자유 기념비´ 바그다드에는 정치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정치 이념을 강조하는 조형물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58년 혁명을 기념하는 ‘자유기념비’다. 알 타흐리르 광장 중앙에 위치한 ‘자유기념비’는 1958년 7월14일 혁명을 기념한다. 이 기념일은 수십년간 영국의 대리자 역할을 해온 왕정을 붕괴시키고 이라크인들이 주권을 찾은 날로 높이 평가된다.14개의 동판주조물로 이루어진 대형 부조에는 혁명을 유발한 사건들, 혁명장면, 혁명 후의 평화로운 삶 등이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묘사되어 있다. 이라크는 근대에 서구 식민지배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한 아랍 국가로서 일찍이 현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했고, 교육·과학·문화 등의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수차례 전쟁은 이라크를 아랍 국가 중 최하위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많은 역사가들은 바그다드를 ‘불사조의 도시’라고 칭한다. 혹독한 전란과 자연재해로 잿더미가 된 후에 어김없이 회생 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도시 바그다드에 하루빨리 평화가 정착되어 ‘불사조´의 역사를 다시 한번 기록하길 염원한다.
  • ‘중국판 개똥녀’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 어떻게 버젓이 남편 있는 여자와 놀아날 수 있습니까. 이 분노와 절망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까요.” 지난 4월 중순 중국의 한 인터넷 전자게시판에 ‘얼어붙은 잎새’란 필명으로 한 남성이 글을 올렸다. 자신의 아내와 ‘푸른 수염’이란 닉네임을 쓰는 한 대학생의 혼외관계를 비난하는 글이었다. 곧바로 격한 반응들이 이어졌다. “확실하고 만족할 만한 참회를 하기 전까지 모든 회사와 사무실, 학교, 병원, 쇼핑몰에 ‘푸른 수염’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자.”,“키보드와 마우스를 무기 삼아 간통자들의 목을 베자.”●“키보드와 마우스를 무기삼자” 인터넷 사용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중국이 나날이 확산되는 ‘사이버 집단폭력’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1일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중국 네티즌들의 ‘인터넷 사냥’은 강도와 집요함에 있어 한국 네티즌들을 넘어선다. 게시판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유명인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파헤치는가 하면 오래된 미제 범죄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민간수사팀을 꾸리기도 한다. 배우자들의 부정을 조사하는 사이버 모임도 있다. 이 같은 인터넷 사냥은 대부분 전자게시판 사이트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자게시판은 인터넷 초창기에 활발하게 운영되다가 웹 브라우저가 보편화되면서 쇠퇴했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인터넷 문화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부모 집까지 찾아가 피켓시위도 지난해 한국의 ‘개똥녀’ 소동을 연상시키는 ‘푸른 수염’ 사건 역시 중국에서 인기있는 사이트인 톈야(天涯·www15.tianya.cn)의 대화방을 통해 확산됐다. 당시 네티즌들은 ‘푸른 수염’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온라인 모임을 결성했다. 얼마 안가 ‘푸른 수염’의 개인정보가 낱낱이 공개됐다. 네티즌들은 당장 그를 제적시키라며 대학의 홈페이지로 몰려가 게시판을 ‘도배’했다. 부모들이 살고 있는 집까지 찾아가 피켓시위를 벌이는 네티즌도 있었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푸른 수염’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6분짜리 동영상을 제작, 게시판에 올렸다. 이 동영상에는 처음 문제를 제기한 ‘얼어붙은 잎새’도 출연해 자제를 호소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결국 ‘푸른 수염’은 학교를 자퇴한 뒤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사건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달 톈야 게시판의 하루 조회수는 4000만건을 넘어섰다. 평소보다 10% 가까이 늘어난 수치였다.●“인터넷이 유일한 토론마당” 중국 내에도 ‘인터넷 마녀 사냥’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다. 일부선 네티즌들의 행태가 ‘사이버 인민재판’에 가깝다며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들과 비교했다. 중국정부도 최근 인터넷 카페 이용자들에게 실명등록을 의무화하는 등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인들은 온라인 규제를 강화하려는 정부 움직임이 가뜩이나 취약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상하이 통지대학의 저우다케 교수는 “인터넷은 중국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유일한 통로”라며 규제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중국청년대학 정치학과의 찬 지앙 교수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은 규제돼야 하지만 그것이 다수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사회의 타락을 막고 규범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푸른 수염’을 비난하는 장문의 글을 게시판에 올렸던 한 네티즌은 “우리 사회가 그처럼 저열한 상태로 추락하는 것을 어떻게 두고볼 수가 있는가.”라며 자신의 행동을 적극 두둔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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