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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다시읽기] (93) 파국의 전야

    [병자호란 다시읽기] (93) 파국의 전야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가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고, 왕실과 대신의 가족들이 모두 포로가 되어버린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출성(出城)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홍타이지가 자신을 심양으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다. 척화신 가운데 누구를 뽑아, 몇 명을 보낼 것인지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사신을 보내 인조의 신변 안전을 확실히 보장받으려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척화신을 ‘낙점’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出城을 결정하고 三學士를 ‘낙점’하다 1월27일 김신국과 이홍주, 최명길 등이 국서를 들고 다시 청 진영으로 갔다. 이전에 가져갔던 국서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신(臣)은 죄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기에 두려운 마음으로 여러 날을 머뭇거렸습니다. 이제 듣건대 폐하께서 곧 돌아가실 것이라 하는데, 만약 스스로 나아가 용광(龍光)을 우러러 뵙지 않는다면 조그만 정성도 펼 수 없게 될 것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이 바야흐로 300년 동안 지켜온 종사(宗社)와 수천 리의 생령(生靈)을 폐하께 의탁하게 되었으니 정성을 굽어살피시어 안심하고 귀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소서.’ 국서의 내용은 공순하고 처절했다. 결국 남한산성에서 나가겠다고 ‘굴복 선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출성만은 면하게 해달라던 ‘호소’는 사라지고 대신 인조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해 달라는 요청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미 강화도마저 함락된 상황에서 출성을 거부하고 버틸 여력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인조가 출성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자결을 시도하는 신료들이 나타났다. 예조판서 김상헌이 목을 매고, 이조참판 정온(鄭蘊)은 칼로 배를 찔렀다. 두 사람 모두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산성에는 처절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출성을 약속했음에도 청군은 포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혹시라도 조선의 마음이 변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처절하고 황망한 분위기 속에서 인조와 대신들은 청군 진영으로 보낼 척화신의 숫자를 조율했다. ‘홍익한만을 보낸다고 했기 때문에 홍타이지가 강화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 속에 일각에서는 열 한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묶어 보낼 대상자로 김상헌, 정온, 윤황(尹煌), 윤문거(尹文擧), 오달제(吳達濟), 윤집(尹集), 김수익(金壽翼), 김익희(金益熙), 정뇌경(鄭雷卿), 이행우(李行遇), 홍탁(洪琢) 등이 거명되었다. 너무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보내고, 누구를 뺄 것인가? 이 ‘불인지사(不忍之事)’를 둘러싼 논란 끝에 오달제와 윤집 두 사람만을 보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이들 두 사람과 당시 남한산성에 없었던 홍익한을 가리켜 보통 삼학사(三學士)라고 부른다. ●홍타이지, 항복 조건을 제시하다 1월28일 용골대가 홍타이지의 조유문(詔諭文)을 가지고 왔다. 조유는 ‘그대는 짐이 식언(食言)할까 의심하지 말라. 지난날 그대의 죄를 모두 용서하고 규례(規例)를 상세하게 정하여 군신(君臣) 관계를 대대로 이어가고자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홍타이지는 향후 인조와 조선이 준수해야 할 조건들을 제시했다. 맨 먼저 명나라와의 모든 관계를 끊으라고 요구했다. 명 황제가 준 고명(誥命)과 책인(冊印)을 반납하고, 명의 숭정(崇禎) 연호 대신 자신들의 숭덕(崇德) 연호를 사용하라고 했다. 조선의 ‘상국(上國)’을 바꾸라는 요구였다. 이어 맏아들 소현세자와 둘째아들 봉림대군뿐 아니라 여러 대신들의 아들이나 동생들을 인질로 보낼 것을 요구했다. 인질들을 붙잡아 놓음으로써 조선의 ‘변심’을 견제하겠다는 속셈이었다. 홍타이지는 또한 향후 자신이 명을 정벌할 때, 조선도 보병, 기병, 수군을 동원하여 원조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 자신이 항복을 받고 돌아갈 때 가도( 島)를 공격할 계획임을 밝히고, 조선이 전함 50척과 수군을 내어 동참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군과 화기수(火器手)를 조선으로부터 보충하여 명을 공격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요구는 계속 이어졌다. 성절(聖節), 정조(正朝), 동지(冬至), 중궁천추절(中宮千秋節), 태자천추절(太子千秋節) 등 청나라와 관련된 경조사가 있을 때는 대신을 파견하여 예물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심양으로 오는 사신이 지참하는 외교 문서의 형식, 조선에 오는 청 사신에 대한 의전과 접대 절차 등은 한결같이 과거 명나라에 행했던 구례(舊例)를 따르라고 요구했다. 특기할 것은 포로들과 관련된 조건이었다. 홍타이지는 ‘아군에게 사로잡힌 포로들이 압록강을 건너 청 영토로 들어온 뒤, 조선으로 도망쳐 오면 반드시 체포하여 청의 주인에게 보내라.’고 요구했다. 그는 포로를 ‘우리 군사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얻은 성과’라고 규정한 뒤, 포로들을 데려오고 싶으면 정당한 가격을 치르라고 강요했다. 포로와 관련된 이 조항은 훗날 조선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남기게 된다. 홍타이지는 그 밖에 조선이 해마다 바쳐야 할 세폐(歲幣)의 수량을 제시한 뒤, ‘청의 신료들과 조선 신료들이 혼인을 맺을 것’, ‘조선의 성들을 수리하거나 다시 쌓지 말 것’, ‘조선에 사는 우량허(兀良哈) 사람들을 쇄환할 것’,‘일본과의 무역을 계속 하고 그들의 사신을 심양으로 인도해 올 것’ 등의 조건도 같이 내 걸었다. 홍타이지가 제시한 항복 조건은 조선에 대해 이중 삼중의 그물을 쳐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건’을 따를 경우 인조는 어렵사리 왕위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청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인조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다. 홍타이지는 유시문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인조에 대한 협박을 빼놓지 않았다. ‘그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는데, 짐이 다시 살려 주었다. 짐은 망해가던 그대의 종사(宗社)를 온전하게 하고, 이미 잃었던 그대의 처자를 완전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마땅히 국가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를 생각하라. 뒷날 자자손손까지 신의를 어기지 않도록 한다면 나라가 영원히 안정될 것이다.’ ‘국가를 다시 일으켜 준 은혜’란 조선이 명에 대해 그토록 고마워했던 ‘재조지은(再造之恩)’에 다름 아니었다. 이제 청은 조선의 항복을 코앞에 두고, 자신들이 조선에 대해 ‘재조지은’을 베풀었다고 역공을 취했던 것이다. ●오달제와 윤집을 적진으로 보내다 1월28일 저녁, 인조는 하직 인사를 하러 온 오달제와 윤집을 만났다. 인조는 두 사람을 보자 목이 메었다. ‘그대들의 본 뜻은 나라를 그르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구나. 고금 천하에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인조는 결국 오열했다. 임금으로서 자신의 신하를 붙잡아 적진에 보내고, 적의 처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참담함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윤집은 오히려 인조를 위로했다. ‘이러한 시기에 진실로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만 번 죽더라도 아깝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어찌 이렇게 구구한 말씀을 하십니까.’ 오달제는 의연했다. ‘신은 자결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는데, 이제 죽을 곳을 얻었으니 무슨 유감이 있겠습니까. 신들이 죽는 것이야 애석할 것이 없지만, 다만 전하께서 성을 나가시게 된 것이 망극합니다. 신하된 자로서 지금 죽지 않으면 장차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인조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울음 섞인 소리로 자책과 회한,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대들이 나를 임금이라고 여겨 외로운 성에 따라 들어왔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내 마음이 어떻겠는가.’ 인조는 오달제와 윤집에게 가족 사항을 물은 뒤, 자신이 그들을 돌봐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윽고 술을 내렸다. 이별주였다. 술을 다 마시기도 전에 승지가 아뢰었다. 사신들이 두 사람을 빨리 내보내라고 독촉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직을 고하는 두 사람에게 인조는 울면서 꼭 살아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출성을 코앞에 둔 남한산성의 밤이 슬픔 속에 깊어가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대통령 연설 여야 반응

    여야는 13일 이루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첫 라디오 연설에 대해 극명한 입장차를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첫 라디오 연설을 ‘희망가’로 의미부여한 반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입장은 ‘절망가’라는 평가에 가까웠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금융위기에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생각한다.”고 호평하면서 “우리 당도 이를 계기로 더욱더 국민에게 신뢰감을 높이고 이번은 IMF 위기 때와 완전히 다르다는 차별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윤선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제통화기금(IMF) 때를 떠올리고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현재 외환보유고 상황이 어떻게 그때와 다른지 정확히 알렸다.”면서 “특히 4분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희망을 주면서 해외소비를 줄이고 국내소비를 늘려달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서울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안이하고 책임의식이 결여됐다.”고 비판한 뒤 “신뢰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지난 10년에 대한 평가가 과거 주장을 바꾼 것인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최재성 대변인도 “국민들에 대한 책임전가이자 정부의 무대책을 입증한 연설이었다.”고 혹평하는 한편,“방송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통해서라도 정례적으로 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야당의 반론권을 요구했다. 민주노동당 박승흡 대변인은 “경제위기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의 정확한 문제의식과 경제실정에 대한 반성은 생략된 채 신변잡기에 불과한 연설”이었다며 ‘노변정담’ 프로그램의 전면 백지화를 주장했다. 구혜영 구동회기자 koohy@seoul.co.kr
  • 바닥 모르는 ‘코스닥의 추락’

    코스닥시장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유가증권 시장도 급락하고 있지만 코스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세계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은 코스닥은 주식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릴 만큼 극도의 혼돈 상태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일 마감된 코스닥지수는 350.28이다.2004년 8월18일 346.54를 기록한 뒤 최저치다.2000년 3월10일 2834.40으로 최고점을 기록한 지 8년 만에 90% 가까이 급락했고 2004년 8월4일 324.71인 사상 최저치 경신도 눈앞에 두고 있다. 10일 현재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떨어진 코스닥 종목은 전체 상장사 1047개의 12.7%인 133개나 된다. 코스닥시장이 투자처의 의미를 상실하면서 외국인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발길을 끊고 있고 최근 10여개 기업의 유상증자, 전환사채(CB) 등 발행이 무산돼 자금조달이라는 본연의 기능도 잃어가고 있다. 외국인들은 코스닥시장에서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무려 5188억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횡령ㆍ배임, 주가조작 사건 등 코스닥 시장에서 발생한 각종 비리 사건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그런 와중에 터진 금융위기는 비실거리던 코스닥을 절망적인 상황으로 내몰았다. 코스닥의 중견 수출업체들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피하기 위해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 결국 시가총액 비중의 10%를 차지하는 NHN 등 우량 기업들은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겨갔다. 현재 시가총액이 1조원 이상인 기업은 SK브로드밴드뿐이다. 코스닥시장이 ‘마이너리그’로 전락한 것은 시장을 악용해 일확천금을 챙기려고 했던 상장사들의 도덕적 해이와 도박처럼 투기의 수단으로 이용한 투자자들, 무책임한 감독당국의 공동작품이라는 지적이다. 코스닥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등록 기업의 감독과 관리를 더욱 철저하게 해서 우량기업들을 유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코스닥시장에 대한 신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코스닥 진입을 쉽게 하는 대신 퇴출제도를 강화해 시장을 정화하고 체질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추락하는 세계금융] 자살·항의시위… 절망에 빠진 증권가

    주가 폭락으로 투자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증권사 직원이 자살하는가 하면, 펀드에서 원금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은행을 찾아가 원금을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10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 8시25분쯤 서울 관악구 한 모텔 객실에서 K증권 서초지점 직원 유모(32)씨가 객실 문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주인 임모(44·여)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숨진 유씨는 결혼을 앞두고 최근 금전 손실 문제로 고객에게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 관계자는 전했다. D증권 광교지점의 최모(33) 대리는 “투자자들 대부분의 주식이 반토막났는데, 하소연을 들어주느라 하루가 다 간다.”면서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져서 투자회사나 투자자들 모두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펀드 고객 50여명은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으로 몰려가 펀드 원금의 손실분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원금의 80% 이상을 손해봤다는 구정수(39·여·강서구 화곡동)씨는 “은행 측에서 원금보장과 수익률(6.5∼6.7%) 보장을 분명히 명시했다.”면서 “올해가 가기 전에 원금을 다 날릴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은행측은 “펀드 판매 당시 원금 손실 위험성을 고지했다.”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의 증권사 지점 객장에 나온 시민들은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녹색 숫자(주가하락 표시)가 빼곡한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객장에 나왔다는 정영근(61·도봉구 창동)씨는 “집에서 혼자 인터넷 거래만 하기에는 답답해서 나왔다.”면서 “퇴직금 3000만원을 투자했다가 지금 50%밖에 안 남았는데, 거래수수료도 만만치 않아 빼도 박도 못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주식 폭락은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한 시장심리가 반영된 것”이라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의 위기가 해소돼야 소폭이라도 반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2) 조선,항복하기로 결정하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2) 조선,항복하기로 결정하다

    1637년 1월22일 강화도가 함락되었지만, 남한산성의 조정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조정은 이 때 청군이 또 다른 조건으로 제시한 척화신(斥和臣)을 잡아 보내는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적진에 당도하면 죽음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한데 어떤 기준으로 누구를 몇 명이나 묶어 보낼 것인가? 인조나 비변사 신료들에게나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不忍之事)’이었다. 하지만 앞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청군은 연일 인조의 출성을 독촉해댔고, 산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민심도 갈수록 흉흉해지고 있었다. 결국 최명길과 김류 등이 이 끔찍한 ‘불인지사’의 총대를 멨다. ●척화신들에게 자수를 권하다 1월22일, 김류와 이성구(李聖求), 최명길 등이 입시했다. 척화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김류는 ‘척화신들의 논의가 과거에는 정론(正論)이었지만, 결국 나라를 그르친 죄를 범했으니 그들 스스로 적진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최명길은, 자신이 홍익한(洪翼漢)과 같은 집안이지만 종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를 묶어보낼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이성구 또한 ‘홍익한의 죄가 무겁다며 청군으로 하여금 처치하도록 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인조는 너무 참혹한 일이라며 입장 결정을 유보했다. 삼사(三司)를 비롯하여 신료들로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인조와 대신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이윽고 조정에서는 척화신들에게 자수하라고 촉구했다.‘불인지사’를 밀어붙이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비롯된 고육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할까? 척화신 박송(縛送) 문제로 조정이 뒤숭숭할 때, 산성을 지키는 군관들과 병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1월23일, 수원과 죽산(竹山) 출신의 초관(哨官) 수백 명이 행궁 앞으로 몰려와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척화신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들은 체찰부(體察府)로 몰려가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겁에 질린 체찰사 김류는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며 속히 해산하라고 종용했다. 나만갑은 ‘병자록’에서, 이 날의 시위는 하급 지휘관들의 본심이 아니라 고위 무장들의 사주에 따른 것이었다고 적었다. 어쨌든 산성의 분위기는 내부 분열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척화신들을 내 놓으라.’는 시위가 위력을 발휘했던 것일까? 이 날 조정은 청군 진영에 보낸 국서에서 척화신의 ‘처리’에 동의한다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국서에서 척화신으로 확실하게 언급된 인물은 홍익한이었다. 그는 당시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재직하고 있어서 산성에는 없었다. 국서에서는 ‘홍익한이 당초 가장 열렬히 척화를 주장했기에 평양을 맡김으로써 그로 하여금 대국 군대의 예봉을 스스로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만약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청군이 철군하는 날 평양 부근에서 그를 체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사실상 홍익한을 잡아 가라는 내용이었다. ●청군의 양동작전과 최후 통첩 1월23일, 청군은 양동작전을 펼쳤다. 조선이 척화신들을 묶어 보내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남한산성에 대해 최후의 공세를 시작했다. 인조의 출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가 짙게 배어 있었다. 이 날 자정 무렵, 청군은 먼저 서문 방향으로 공격해 왔다. 그들은 운제(雲梯-성을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사다리)를 이용하여 성을 넘으려고 시도했다. 당시 서문 방면의 조선군은 대부분 잠들어 있었다. 청군을 발견한 수어사(守禦使) 이시백(李時白)의 군관이 병사들을 깨웠다. 병사들은 올라오는 청군을 돌로 내려치고, 화포를 이용하여 공격했다. 새벽 두 시 무렵에는 망월대(望月臺) 쪽으로 몰려오는 청군을 신경진(申景 ) 휘하의 병력들이 물리쳤다. 서문과 망월성을 공격하다가 적지 않은 수의 청군이 죽었다. 1월24일에도 청군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구굉(具宏)이 지키고 있는 남성(南城)을 공격해 오자 아군이 조총을 쏘아 물리쳤다. 남성에서 물러난 청군은 망월봉(望月峯) 아래 홍이포를 설치해 놓고 산성을 향해 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포격은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포탄은 행궁(行宮)까지 날아와 천장을 뚫고 바닥으로 깊이 처박힐 정도로 대단한 위력을 보였다. 행궁뿐 아니라 성첩의 많은 부분이 포탄에 맞아 허물어졌다. 산성 안 사람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했다. 1월25일, 청군은 사람을 서문으로 보내 사신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덕형(李德泂)과 최명길 등이 청 진영으로 가자 용골대와 마부대는 협박을 늘어 놓았다.‘황제가 내일 귀국하실 것이니 국왕이 출성하지 않는다면 사신은 다시 오지 말라.’며 그 동안 받았던 국서를 모두 돌려 주었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최명길 등은 변변하게 이야기를 꺼내 보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최명길 등이 돌아온 뒤, 포격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무렵 청군은 한편으로는 포격을 통해 산성을 공포 분위기로 몰아 넣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강화도에서 사로잡은 조선인 포로 몇 명을 다그쳐 산성 쪽으로 급히 이동시키고 있었다.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증거’를 제시함으로써 인조를 끌어 내려는 작전이었다. 이 같은 와중에 산성에서는 더욱 절망적인 상황이 빚어지고 있었다.1월26일, 이번에는 훈련도감과 어영청(御營廳)의 장졸들이 행궁으로 몰려와 무력시위를 벌였다. 역시 척화신들을 붙잡아 청군 진영으로 보내라는 요구가 터져 나왔다.‘인조실록’에 따르면 그들을 배후에서 사주한 주체도 신경진, 구굉, 홍진도(洪振道) 등 고위 무장들이었다. 시위를 벌이는 병사들은 해산하라는 명령에도 따르지 않았다. 승지 이행원(李行遠)이 나서 나무라자 군사들은 눈을 부릅뜨며 ‘승지를 모시고 가면 적을 쳐부술 수 있을 것’이라며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김류는 ‘그들은 부모와 처자가 살육당했기 때문에 화친을 배척한 사람을 원수처럼 여긴다.’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군사들이 난을 일으킬 기미까지 보이자 인조는 다급해졌다. 인조는 세자를 청군 진영에 보내겠다며 사신을 보내 통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세자의 출성을 통해 수습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강화도 함락’을 통고받다 이 날 저녁 최명길, 김신국, 홍서봉 등이 청군 진영으로 갔다. 왕세자가 출성한다는 사실을 통고하기 위해서였다. 청군 지휘관들은 ‘국왕이 직접 나오지 않는 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여전히 선을 그었다. 이윽고 용골대 등은 최명길 일행에게 충격적인 내용을 통고했다. 그들은 강화도에서 급히 데려온 종실 진원군(珍原君)과 내관 나업(羅業)을 보여 주면서 강화도를 함락시켰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들이 들고 온 봉림대군의 친필 편지와 윤방(尹昉)의 장계도 전해 주었다. ‘강화도 함락’ 소문이 전해지자 남한산성은 충격에 빠졌다. 인조를 알현한 자리에서 최명길은 봉림대군의 편지와 윤방의 장계가 위조되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인조는 편지가 봉림대군이 쓴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분위기는 한 순간에 바뀌었다. 홍서봉, 김류, 이홍주, 최명길 등은 모두 인조의 ‘결단’을 촉구했다.‘신하된 자로서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머뭇거리면 더욱 기고만장해진 저들에게 화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인조는 차라리 자결하고 싶다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왕실의 가족들까지 모두 인질로 잡혀 버린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무기력함의 표현이었다. 이 무렵 구원군이 끊어진 것은 물론, 들려오는 것은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었다. 당시 청군의 일부 부대는 이미 경기도를 넘어 충청도 일원까지 남하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공주의 공산성(公山城)을 비롯하여 목천(木川), 청주 등지까지 출몰하여 겁략을 자행했다. 전라감사 이시방(李時昉)은 청주에 있다가 청군의 습격을 받아 옥천으로 피신해야 했다. 인조와 조정의 입장에서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캄캄할 뿐이었다.‘강화도 함락’은 절망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인조의 면전에서 물러난 최명길 등은 국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인조의 출성을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강화도가 무너졌다는 소식이 남한산성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우리들의 이웃’ 작가 이외수를 만나다

    ‘우리들의 이웃’ 작가 이외수를 만나다

    작가 이외수가 라디오 DJ로 변신한다.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외수가 매주 청취자들과 세상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한 외모와 정곡을 찌르는 감성 언어로 10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작가 이외수를 늦은 저녁 여의도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만났다. # 우리들의 이웃 작가 이외수를 만나다 외부인들도 자주 드나들지 않는 강원도 산골 화천의 감성마을에 사는 이외수가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이외수에게는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인 만큼 하루 종일 빽빽한 스케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몇 차례의 스케줄을 소화한 그가 결국 옆에 있던 부인 전영자 씨에게 불평섞인 투정을 토로했다. “오늘 스케줄이 라디오 관련 사진 촬영과 인터뷰, 강연, ‘화제집중’, ‘2580’ 등 네 군데가 넘어요. 이렇게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수입이 다 부인에게 돌아갈 뿐 제게는 한 푼도 남지 않으니 이게 노예계약이 아니고 뭡니까?(웃음)” # 작가 이외수, DJ가 되다 이외수는 오는 13일부터 MBC 라디오 표준FM(95.9㎒)에서 ‘이외수의 언중유쾌’의 진행을 맡았다. 최근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등을 통해 몇몇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췄지만, 지금처럼 자신의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처음이다. 그렇기에 작가 이외수에게도 라디오 DJ 도전은 특별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세대간의 소통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인터넷 악플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이때 어른들이 먼저 나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과 함께 나누다 보면 분명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실제 이외수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젊은 이들과 소통하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때론 10대들마저 놀라게 할 정도의 인터넷 용어를 사용하기 까지 한다. 또한 그는 온라인을 제외하고도 강원도 일대 부대의 관심사병들에게 직접 강연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더듬이가 잘라나간 곤충들처럼 자신의 인생 목표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학창 시절엔 대학을 목표로 했다면, 그 이후로는 취업, 월급 인상 등 만을 생각하죠. 그런데 그게 과연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그들은 자신을 조금 더 혹독하게 키워야 할 필요가 있죠.”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이외수식 감성의 요체다. 그는 자신만의 감성으로 청취자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초기 제 작품 등을 보면 주인공들이 좌절을 겪다 결국 자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어느 날 제가 독자에게 자살, 절망을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이후 8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고, 그 후부터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죠.” 작가 이외수가 라디오 DJ를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 방송 출연에 익숙하지 않은 그가 일주일에 5번 꾸준하게 청취자들과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외수는 이 모든 걱정을 한번에 날려 보낼 준비를 마쳤다. “작가라면 독자에게 구원을 제시하고 진정한 행복을 모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또한 실제적인 행복, 구원 등을 독자에게 전해 줄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글 뿐만 아니라 라디오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을 직접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게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사진제공=MBC 서울신문NTN 서미연 기자 miyoun@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18대 첫 국감 돌입] 與 “감세등 정책국감 총력” 野 “종부세 저지·경질인사”

    [18대 첫 국감 돌입] 與 “감세등 정책국감 총력” 野 “종부세 저지·경질인사”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번 국감을 통해 감세정책, 규제개혁 정책, 법치주의 확립, 공기업 개혁, 방송 정상화, 미래 성장동력 확보, 국회 운영개혁 등 모든 것이 이뤄지는 정책 국감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8대 첫 국정감사에 대한 출사표를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첫 국감에 대한 포부를 이같이 밝혔다. 그는 “18대 국회만큼은 정쟁이 아닌 정책 국회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한나라당이 솔선수범해서 가능하면 정쟁 국감을 지양하도록 모든 상임위에 지시해 놓았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국감에서 이슈가 될 여러 현안들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최진실씨의 자살을 계기로 정치권의 최대 이슈로 부상한 ‘최진실법’ 논란에 대해 정기국회내 처리를 강조했다. 그는 “포털상의 퍼나르기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를 보듯이 포털도 화장실 벽처럼 이용돼서는 안 된다.”며 포털 규제 강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동의안 비준과 관련,“다음주 중에 정부로부터 비준안이 다시 (국회로) 넘어올 것”이라며 “한·미 FTA 비준안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에서는 FTA 발효와 함께 25가지 법률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에서 우선 동의하고 법률 개정을 미국의 FTA 처리에 맞추자는 견해가 있다.”면서 ‘한·미 FTA 선(先) 처리’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 국회 원 구성 직후부터 강조하던 국회 개혁에 대한 의지도 재차 확인했다. 홍 원내대표는 간담회 직후 이어진 오찬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거의 완성됐으며 다음 주말에 제출할 예정”이라면서 “개정안 내용에는 일 안 하는 의원들에게 세비를 주지 않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상임위 법안이 자동 상정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 “잘못된 국정 운영 기조 밝혀내고 국정 쇄신 계기를 만들겠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5일 국감 전략회의를 겸해 원내대표단·상임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감에 임하는 민주당의 각오를 밝혔다.‘이명박 정부 7개월 실정론’을 중심으로 국감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원 원내대표는 우선 국감의 최우선 목표 3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국민의, 시장의 절대 불신을 받고 있는 3인방의 경질을 이끌어내는 인사쇄신이 돼야 한다.”며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최시중 방송통신위 위원장,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질을 이끌어 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어 “미국발 금융 위기 위험을 최소화해 경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면서 “1% 특권층을 위한 감세로 99% 중산층을 절망케 하고 부담을 서민, 중산층이 지게 하는 종부세를 막아내는,‘종부세 저지, 부가세 관철’ 국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자료 제출과 증인 채택에 대한 문제제기도 했다. 그는 “이런저런 핑계로,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있다.”면서 “정권 실정을 은폐하겠다는 의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좌편향 교과서 개정’ 등을 둘러싸고 이념 논쟁이 예상되는 가운데 원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은 낡고 폐기된 좌우 이념 색깔론으로 국감을 덧칠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은 ‘사이버 모독죄’ 신설에는 반대하되, 악의적 댓글 피해자의 권익을 보호하고,‘악플러’ 양산을 제어하기 위해 기존의 ‘형법’과 ‘정보통신법’을 보완하기로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는 ‘피해분야에 대한 선 대책이 전제된, 미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고려한 신중한 처리’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키로 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경찰 “최진실 충동적 자살”

    고(故) 최진실씨 자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3일 최진실씨가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양재호 서울 서초경찰서 형사과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족, 매니저 등의 진술과 최씨의 메모, 자살 직전 통화내용을 종합해볼 때 충동적으로 자살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씨가 평소에도 ‘연예생활을 그만할 것이다. 죽고 싶다. 내가 죽으면 납골당이 아니라 산에 뿌려달라.’는 식으로 신변을 비관하는 말을 자주 했다는 매니저 박모씨의 진술을 경찰은 확보했다. 박씨는 경찰에서 “최씨가 자살 전날 ‘개천절이 애들 운동회인데 어떻게 하느냐. 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우울증과 관련해 경찰은 “최씨가 개인병원에서 한 차례 정신과 치료를 받았고, 매니저가 매번 약을 타왔다.”고 밝혔다. 최씨는 인터넷에 ‘사채 괴담’을 올린 혐의로 입건된 증권사 직원 A(25)씨와 지난달 30일 밤 전화 통화를 한 뒤 잠을 못 자고 울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A씨가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입건됐으니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하자 최씨가 전화기를 집어던지는 등 격분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최씨 집에서 외톨이·왕따·절망 등의 단어를 포함한 자필 메모가 적힌 탁상용 달력과 수첩이 여러 개 나왔다.”면서 “악성루머와 관련해 ‘세상사람들이 왜 나를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꿋꿋하게 극복하겠다.’는 내용도 있지만, 안재환씨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3일 오후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씨의 입관식이 진행됐다. 최씨의 시신은 4일 오전 8시30분 발인을 거쳐 오전 10시 성남 영생원에서 화장될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도 양평군 갑산공원으로 결정됐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자살자 80~90%가 우울증

    세간에 충격을 줬던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원인은 대부분 우울증이었다.1990년 자살한 가수 고(故) 장덕씨는 ‘불안정한 생활로 인한 고독감’과 그로 인해 우울증을 겪었다는 진단을 받았다.서지원(새 앨범에 대한 부담감과 우울증), 김광석(절망감으로 인한 우울증), 이은주(경제적 문제과 우울증), 유니(악플로 인한 정신적 상처와 우울증), 정다빈(우울증)씨 등도 마찬가지였다. 최진실씨는 최근 6개월간 신경안정제(항우울제)를 복용했을 정도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 전문가들은 일반적으로 자살자의 80% 정도가 우울증을 앓았다고 말한다. 이화영 고대안암병원 정신과 교수는 3일 “자살자의 90% 이상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그 가운데 80∼90% 이상을 우울증 환자로 보고 있다.”면서 “우을증이 있던 최씨도 그간 힘든 일이 많았고 사채 루머까지 겹치면서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이 약해져 자살 가능성을 높인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울증 환자는 계속 늘고 있다. 옛 보건복지부가 2001년과 2006년 전국 대학병원을 조사해 발표한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1년 우울증 환자 추정치는 57만 1679명(인구대비 1.8%)이었지만 2006년에는 78만 9022명(인구대비 2.5%)으로 5년새 38%가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도 주변의 시선 탓에 병원 치료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이영식 중앙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예전에 비해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우울증은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완치가 가능하므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전문가와 상담하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의 관심도 필수적이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자의 80∼90%는 ‘죽고 싶다.’는 식의 극단적인 말을 자주 내뱉는 등 우울증을 심하게 겪는다.”면서 “이런 사람에게 ‘정신 차려라.’는 식의 말은 병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차분한 치료를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경원 황비웅기자 leekw@seoul.co.kr
  • [이용원 칼럼] 아테네의 김경자씨,이스탄불 조미열씨

    [이용원 칼럼] 아테네의 김경자씨,이스탄불 조미열씨

    지난주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만난 현지 관광가이드 김경자씨는 박학다식하고 열정 또한 넘쳤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 파르테논 신전, 디오니소스 극장, 페리클레스 음악당 등 유적을 둘러보는 동안 그녀의 입담은 거침이 없었다. 시대 배경이 되는 서양고대사는 물론이고 민주주의의 함의(含意), 종교·사상의 전개, 건축술의 특성에 이르기까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었다. 올해로 쉰셋. 그리스에 들어와 산 지 20년이 넘었다지만 그 내공은 단순히 연륜에만 의지한 게 아니었다. 우리 일행은 곧 그녀를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아테네에 앞서 방문한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도 한국인 현지 가이드 조미열씨를 만났다.‘교수님’과는 달리 한창 활력 넘치는 28세 아가씨이다.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고 내공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안내하는 유적지에 관한 지식이 해박했다. 또 젊은이 특유의 감각으로 터키 사회를 분석한 내용을 틈틈이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프로’였다. 아테네와 이스탄불은 둘 다 서울과 시차가 6시간이나 된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까지 항공편으로 직항해도 11시간 안팎 걸리는 머나먼 이역(異域)인 것이다. 그 땅에 그들이 들어와 살게 된 사연이 궁금했다. ‘교수님’은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다. 그리고 1980년 잠시 들르러 간 고향 광주에서 5·18을 겪었다. 이어지는 ‘80년대적’ 한국 상황은 그녀를 절망케 했고, 게다가 실연까지 겹쳤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기 전인 1987년 그녀는 그리스를 향해 무조건 한국을 떠났다. 그리스를 택한 까닭이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냐는 객쩍은 질문에 ‘교수님’은 피식 웃으면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고 했다. 해외 연고라고는 이모 부부가 사는 그리스뿐이었다는 것이다. ‘교수님’은 그리스 남자와 결혼했고 국적도 얻었다면서 그리스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절망만을 가득 안고 도망쳐 나온 모국을 이야기하면서 왜 회한이 없을까마는 ‘교수님’의 말투는 담담했다. 조미열씨는 스스로 터키 행을 택한 사람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지만, 해외에서의 삶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어서 영어는 단단히 공부해 두었다.2년 전 어느날 구인란을 찾아 인터넷을 뒤지다 터키에서 가이드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즉시 응모했다. 터키 말은 한마디도 못하던 이 당찬 아가씨는 이제 현지 대학에 진학해 터키의 언어나 역사를 공부할까 고민 중이다. 대학에 진학할 만큼 저축을 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한달에 250만∼300만원 정도는 버니까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서울에 한번 오가면 “돈이 너무 깨져서” 싫다고 했다. 그녀는 “관광가이드란 원래 노마드(유목민)”라면서 굳이 한국에 돌아가 살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 시대에 고향이란 언제라도 돌아가 쉴 수 있는 공간일 뿐 생활의 터전일 필요는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국 땅에서 만난 두 한국 여성, 아테네의 김경자씨와 이스탄불의 조미열씨는 삶의 궤적이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삶은 각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일정부분 반영하는 듯했다. 이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두 한국여성에게 건강과 행운이 늘 함께하기를 빈다. 이용원 편집국 수석부국장 ywyi@seoul.co.kr
  • 공시족들 “내년 4·5월 노린다”

    공시족들 “내년 4·5월 노린다”

    9급 국가공무원 최종합격자 발표에 이어 지난달 30일 7급 필기시험 합격자 1435명이 발표됐다.1172명 선발에 5만 2992명이 지원,45대1의 경쟁률을 보인 7급은 대부분의 직렬에서 합격선이 하락했다.9급 시험 때보다 하락폭이 더 컸다. 이로써 오는 23∼26일 면접이 끝나면 올해 공시(공무원시험)도 사실상 마무리된다. 이에 따라 수험생들은 벌써 내년 공시 준비에 들어갔고 학원가에서는 유인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7급 필기 합격선 최대 16점이상 ‘뚝´ 이번 7급 시험은 지난해와 합격선 비교가 가능한 31개 직렬 중 74%인 23곳에서 합격선이 떨어졌다. 특히 기술직렬 합격선은 최대 16점 이상 폭락했다. 토목직은 60.71점으로 전년 대비 16.57점이나 곤두박질쳤다. 또 화공직이 15점 떨어진 55.85점, 전송기술직이 13.43점 떨어져 63.71점, 건축직이 10.71점 내려앉은 75.14점을 기록했다. 모집 규모가 큰 행정직 상황도 마찬가지다. 특히 올해 모집정원이 가장 많은 세무직(일반 476명)의 경우 전년 대비 7.86점 떨어진 67.28점을 기록, 행정직렬에서 합격선이 최하위였다. 지난해보다 모집정원을 두 배로 늘린 교정직렬도 71.71∼75.57점으로 지난해보다 최대 6.93점이 추락했다. 지난해 80점을 넘긴 감사직은 올해 72.92점에 그쳤다. 합격선이 오른 직렬은 장애인을 제외한 일반직의 관세·기계·외무영사직 등 3개 분야에 불과하다. 가장 합격선이 높은 부문은 외무영사직(82.14점)이었고 검찰사무직(81.42점), 일반행정직·교육행정직(80.85점) 등이 뒤를 이었다. 여성합격자 비율은 30.1%(432명)로 지난해보다 소폭 올랐다. 특히 외무직은 61.8%에 달해 ‘여풍’을 실감케 했다. 노량진 남부행정고시학원 관계자는 “세무직의 경우 회계학·세법 등 전공과목이 전반적으로 어렵게 나와 하락세를 주도했다.”면서 “취약 과목은 반드시 오답노트를 만들거나 기본서 외에 보완교재를 둬 충분히 학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굵직한 국가직 공채가 마무리되고 지방직도 줄지어 합격자를 발표하면서 올해 공무원 시험도 파장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공시생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에서는 이미 내년 공시에 돌입한 수험생과 학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내년 대비반을 구성한 남부행정고시학원 등은 10% 할인 강좌를 내걸었고, 일부 학원들은 직장인과 주부들을 겨냥해 주말·야간반을 편성하기로 했다. 한 관계자는 “올해 공시가 막바지여서 내년 4∼5월 있을 시험에 일찌감치 대비하는 수험생이 많다.”면서 “아무래도 공무원 채용이 준다고 해 침체된 모습이 대세지만 직장인과 주부들은 나이제한 폐지로 문의가 많다.”며 엇갈린 분위기를 전했다. ●학원가도 내년 공시 준비 체제로 수험생들은 행정직에서 세무·관세·출입국관리직 등으로 분산되고 있다. 이그잼고시학원 관계자는 “9월 개강하고 보니 세무직 수험생이 두 배까지 늘었다.”면서 “커트라인이 낮아지고 많이 뽑다 보니 수험생들의 기대심리도 세무직 등으로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험생 대부분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정부의 내년 공무원 신규채용 동결 또는 감축 기조에 ‘확인 도장’을 찍듯, 공무원 정원과 보수 동결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지난 1년6개월 동안 공시에 올인한 수험생 진모(28)씨는 “솔직히 절망스럽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상태”라며 한숨지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문화마당] 위기에 처한 중견작가들/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겸임교수

    [문화마당] 위기에 처한 중견작가들/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겸임교수

    최근 미술계의 가장 큰 변화라면 중견작가들의 개인전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한때 스타작가로 명성을 얻었던 중견작가들의 개인전마저 화랑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중견작가들의 개인전은 뜸한 반면 젊은 열정과 의욕으로 무장한 신진작가들은 무서운 속도로 전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메이저화랑들은 신세대작가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전속작가로 발탁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수집가들은 미래의 피카소가 되기를 내심 기대하면서 과감하게 신진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한다. 이런 세대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이른바 블루칩으로 불리는 극소수의 작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중견작가들은 예술에 대한 회의, 경제적 고통 등으로 가슴앓이를 한다.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한다면 중견작가의 위기요, 몰락이다. 나이보다 젊게 보이려고 성형수술까지 불사하는 동안(童顔)열풍, 경륜보다 젊음을 숭배하는 사회분위기가 미술계에도 전염된 것일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진작가들은 화랑가에서 냉대받던 찬밥신세가 아니었던가. 미술계가 대안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던 것도, 신진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공공기금을 조성한 것도 젊은작가들의 절박한 처지를 통감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미술계의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졌다. 신세대작가들은 대안공간에서 왕성하게 전시회를 개최하고, 공공기금의 혜택을 받기가 과거에 비해 수월해진 반면 중견작가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중견작가들은 왜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까. 그 까닭을 분석해 보자. 첫째, 대다수의 중견작가들은 미술계의 변화에 둔감하다. 과거에는 전시경력만 쌓으면, 저절로 작품 값이 올라가고 중견 혹은 원로작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나이, 학번, 전시경력으로 예술가의 순번이 매겨지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건만 중견작가들은 미술계의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 옛날이여∼를 노래한다. 둘째, 대다수의 중견작가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전통에서 자유로운 신세대작가들은 현란한 기법을 구사하고, 최첨단 기술과 접목하고, 신선한 감각으로 포장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반면 중견작가들은 예술가의 정신, 진지함, 작품성에 애착을 갖는다. 셋째, 대다수의 중견작가들은 미술시장이 미술계를 주도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미술품경매회사, 아트펀드, 아트페어 등으로 엄청난 자금이 흘러 들어오고, 미술품으로 대박을 노린 투자가들이 미술시장을 쥐락펴락한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상업공간인 화랑에 전시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대신 미술관이나 비영리 전시장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려야 하는데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중견작가들이 위기에 처한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담할 일만은 아니다. 왜? 중견작가들은 신세대 작가들은 엄두도 못낼 꿈의 무기를 지녔으니, 무기란 바로 내공이다. 흔히 재능, 열정, 야심, 지구력, 이 네 가지를 갖추면 미술사를 빛낼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중 지구력, 즉 내공은 젊은 작가들의 몫이 아니다. 세월의 가혹한 시련을 견뎌낸 중견, 혹은 원로작가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이 값진 나이테가 그대들의 영혼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데 왜 지레 절망한단 말인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겸임교수
  • 우울증으로 뚜벅뚜벅?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 원인 모를 쓸쓸함과 울적함에 빠지기 쉬운 ‘남자의 계절’이기도 한다. 실제로 9∼11월 중에 ‘가을을 탄다.’고 느끼는 남성이 많다. 어려운 경제사정과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남성의 고독감과 우울감은 더욱 심해진다. ●호르몬 변화로 감정기복 심해져 남성의 가을 우울증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는 지속 기간으로 평가한다.2주간 우울감이 계속되거나 수면, 식사, 행동, 생각, 신체 등에 영향을 미쳐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가을 우울증은 계절변화에 따른 일조량의 감소와 관련이 있다. 가을로 접어들어 시간이 지날수록 인체가 활동할 수 있는 낮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따라서 햇볕을 쬐는 시간도 감소한다. 또 수면과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증가해 신체 리듬이 깨지고 이로 인해 우울증이 나타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남성을 더욱 남성답게 해주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가을에 많이 분비되기 때문에 남성들은 기분이 가라앉는 등 감정적인 변화를 겪고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갱년기 증상이 겹치면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다. 남성 우울증은 그 자체만으로 심각한 위험성을 노출한다. 초조, 후회, 죄책감, 절망감, 우울한 망상 등이 깊어지면 심한 경우 자살로 이어진다. 남성 우울증 환자는 여성 우울증 환자에 비해 자살 성공률이 4배 높다. 자살을 생각하는 여성은 많지만, 실제로 자살에 이를 정도로 극단적인 생각을 갖는 사례는 남성이 더 많은 것이다. ●적극적 취미생활로 변화 꾀해야 우울증을 완화시키려면 일상생활에서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취미생활을 찾고 지인과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거나 규칙적인 생활, 균형있는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산책, 여행 등의 야외생활도 도움이 된다. 만약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 치료는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남성은 치료에 대한 편견으로 병원을 찾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면서 “의사와 스트레스 해소법, 대인관계 유지법 등에 대해 가볍게 얘기한다는 마음으로 상담을 한 차례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멋진? 불편한! 연인들의 하루

    멋진? 불편한! 연인들의 하루

    아침 저녁으로 스산한 바람이 부는 가을. 문득 그때 헤어진 그 혹은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계절이다. 하지만 지나간 추억의 무게 때문에 혹은 변해버린 옛 연인의 모습에 실망할까봐 선뜻 전화기를 들기가 망설여진다. 영화 ‘멋진 하루’(감독 이윤기, 제작 스폰지이엔티·영화사 봄)의 희수(전도연)는 초겨울 바람이 코끝을 찡하게 하는 어느날,1년전 헤어진 애인 병운(하정우)을 찾아간다. ●로드무비 형식… 채권·채무자로 만난 연인들 햇살이 눈부신 토요일 아침, 한 여자가 경마장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고는 밑도 끝도 없이 앙칼진 목소리로 외친다.“돈갚아!” 로맨틱한 남녀의 재회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상황.1년만에 둘의 관계는 연인에서 돈 350만원을 둘러싼 채권·채무자 신분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둘의 불편한 하루가 시작된다. ‘멋진 하루’는 일반적인 멜로물과는 각도를 달리 하는 영화다. 여주인공 희수의 자아성찰과 심리 묘사에 기반한 한편의 로드무비에 가깝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결혼 준비에 매진하던 희수는 약혼자의 파산으로 이별을 통보받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매사에 계획적이고 똑부러진 그녀에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삶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또다시 마주하게 된 병운.“내가 변했으면 네가 실망했을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로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당장 수중에 돈이 없으면서도 아는 사람들을 총동원해 갚아주겠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도 그대로다. 하지만 희수는 그에게 꿔준 돈을 돌려 받으면서 잃었던 희망과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다. ●‘칸의 여왕’ 전도연과 ‘충무로 젊은피’ 하정우 일본의 다이라 아즈코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멋진 하루’는 극적인 상황 전개나 격정적인 카타르시스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감수성과 이윤기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묘하게 합쳐져 내면을 돌아보게 한다. 주인공 남녀가 어떻게 사랑했고, 왜 헤어졌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 만큼 관객들은 보다 분방한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다소 밋밋하다 싶은 영화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은 “영화 ‘밀양’이 제 연기의 정점으로 평가받는 것 같았다.”며 “이런 시선들을 빨리 털어내기 위해 차기작으로 ‘멋진 하루’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딱 희수의 감정을 절도 있게 표현한 연기는 퍽 담백하다. 철 없고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 병운을 현실감있게 그려낸 ‘충무로의 젊은피’ 하정우의 연기력도 만만찮다.‘추격자’의 살인범과는 전혀 다르지만,‘비스티 보이즈’의 바람둥이 호스트와는 겹쳐 보이는 구석도 없지 않다. ‘여자, 정혜’‘러브 토크’ 등의 작품에서 여성 심리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이윤기 감독은 종로의 뒷골목, 이태원의 언덕길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며 추억이 주는 삶의 위안과 소소한 일상의 울림을 이야기한다. 영화 내내 까칠하고 원망에 가득찬 희수는 마지막에 가서야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다. 감정 과잉의 시대, 무자극의 ‘성찰형’ 멜로가 관객들에게도 멋진 영화로 기억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2008 美 대선] 인기 식은 매케인 ‘TV토론 연기’ 승부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금융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지지율에서 밀리기 시작한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또 한번 도박을 걸었다.매케인은 24일(현지시간)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25일부터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26일로 예정된 TV토론회도 연기하자고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에 요구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즉각 토론회는 예정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밝혀 이틀 앞으로 다가온 TV토론 개최 여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매케인의 ‘돌출 선언’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에 지지율이 최고 10%포인트까지 뒤지면서 판세를 뒤흔들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국가가 먼저’라는 명분보다는 즉흥적인 정치적 모험이나 쇼로 보는 분위기다. 지난달 말 세라 페일린 러닝메이트 카드처럼 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매케인 승부수 이번에도 통할까 매케인은 선거운동을 잠정 중단하고 워싱턴으로 달려가 협상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경제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큰 정치인의 선택’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지만, 그 아래 깔린 정치적 계산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한창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에 ‘문외한’인 매케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높다. 더군다나 이번 주말까지는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이 높아 자칫 매케인이 던진 승부수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공화당 환영·우려 엇갈려 공화·민주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공화당 지도부는 매케인의 결정이 구국의 결단이라며 환영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역대 대선 후보 가운데 가장 책임있는 결정”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은 왜 위험부담이 큰 결정을 내렸는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일부는 절망적이고 잘못된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상·하원 지도부는 정치적 ‘꼼수’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상원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은 리더십이지 선거운동용 사진촬영 기회가 아니다.”고 일축했다.한편, 오바마는 중차대한 시기일수록 어떻게 경제·금융위기를 헤쳐나갈지를 국민들에게 밝혀야 한다며 TV토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바마는 부시 대통령의 회동 제의는 수락, 일단은 매케인과 보조를 맞췄다. 하지만 제3자처럼 한발 물러나 신중하게 사태를 지켜보는 모습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kmkim@seoul.co.kr
  • [열린세상] 촛불,이후/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열린세상] 촛불,이후/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아마 실패한 민란 뒤가 대개 이러했을 듯싶다. 밤마다 사람들은 숨죽여 두런거린다. 어젯밤은 뒷집 최씨네, 오늘 밤은 앞집 이씨네, 그리고 내일 밤은? 어젯밤은 MBC, 오늘 밤은 KBS, 내일밤은 YTN 그리고 그 뒤는? 지난 100여일, 온 나라를 뒤흔든 촛불집회가 스러지자 도처에서 ‘학살극’이 연출되고 있다. 주동자 색출이란 이름으로, 제대로 ‘공안’정국이 만들어졌다. 슬그머니 미스터리 여간첩도 끼여 있다. 촛불정국에서 상상도 못할 입법안들도 버젓이 고개를 쳐들고, 원인 제공자였던 정부 일각의 협상 당사자들마저 볼멘소리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협상은 잘된 협상이었다. 문제는 단지 MBC ‘PD수첩’이 국민을 오도하고 선동했을 뿐이다.’ 질세라 정치권도 거든다.‘우리는 설거지만 했을 뿐, 일은 이전 정권이 저지른 것이다.’ 돌이켜보자. 도대체 촛불이 무엇이었고 또 무엇을 원했던가. 그 답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국민들은 대통령 방미중에 쇠고기협상이 전격 타결된 것이 우선 이상했다. 바로 몇달 전까지만 해도, 그 무슨 새우깡보다 작은 뼛조각 하나만 나와도 전량 반송되던 미국산 쇠고기가 하루아침에 ‘값싸고 질좋은’ 쇠고기로 둔갑해 버렸는데 어느 누가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서 그 협상 내용을 들여다보게 된 사람들은 조금씩 경악하기 시작한다.‘30개월 미만의 살코기’만 해도 괜히 꺼림칙했는데,30개월 이상도 안전하고, 수입금지 품목이던 내장 등 부산물도 안전하고 심지어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수입금지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광우병은 사실 ‘얼굴없는 공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정부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에이즈 등과 같은 질병과 비교해 그 빈도는 분명 매우 낮고 과장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촛불을 든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자마자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관료들의 태도와 뻔뻔함 때문이었다. 나아가 (인간)광우병이 ‘통제’가능한 질병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를 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아니하는 무책임과 그저 이를 말장난으로 때우려는 데 절망했던 것이다. 시민들은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했고,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사실상 하나의 자구행위였을 뿐이다. 이들은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에서 그 가능성을 스스로 찾아내었다. 그런 점에서 공안당국이 생뚱맞게 웬 사회주의 조직을 배후로 들이대고, 여간첩을 찾아내는 것은 헛짚어도 한참을 헛짚은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사회주의와도, 북한과도 전혀 무관한 아무리 과장되게 해석해도 ‘급진 민주주의 이상’이 아니다. 정치의 수동적 대상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가 주권자임을 나서서 선언함은 그 자체로 우리 민주주의의 위대한 일보 전진으로 보아야 한다. 쇠고기 재협상여부가 논란이 되었을 때, 촛불시민들은 주권자로서 이를 ‘명령’하였다. 이는 반미도 친미도 아닌 그저 정부가 그 마땅한 의무인 식품안전을 위해 협상을 다시 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과연 촛불은 무엇을 남겼나. 한참 늦게 국회가 촛불민심에 반응해 쇠고기 국정조사 특위도, 가축법 개정 특위도 만들었다. 조사는 했지만 나온 것은 없고, 가축법이 좀 바뀌긴 했지만 족탈불급이다. 연인원 수십, 수백만명이 모였건만 도대체 된 것이 무언가. 어지간한 나라에서 이 정도면 정권이 바뀌어도 너댓번은 바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수배자들이 간난신고를 겪고 있고, 정부측의 묻지마 기소는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촛불집회로 구속되어 짧은 감방생활을 하고 나온 활동가 한 사람이 체험담을 들려준다.“안에 있을 때 교도관도 재소자도 너무 잘 대해줘 아주 잘 지냈다.” 이 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당신들 아니었다면 우리가 제일 먼저 미국 쇠고기를 먹었을 것 아닙니까.”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 서울신문 주최 ‘2008 윤이상 페스티벌’ 막 올라

    서울신문 주최 ‘2008 윤이상 페스티벌’ 막 올라

    ‘윤이상의 삶과 음악을 재발견했다.’ 17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08윤이상페스티벌-표상’의 서막이 올랐다. 살아생전 이미 세계 5대 작곡가로 꼽히며 세계무대에서 먼저 인정받았던 윤이상(1917∼95). 그의 자전적 작품이 2500여 객석을 90여분간 감동과 회한에 빠뜨렸다. ●자유 꿈꾸는 인간의 숙명 음악에 담아 이날 윤이상 선생의 제자이기도 한 해설가 홍은미씨는 “윤이상 선생님은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승화, 시대와 삶을 첨예하게 표현하고 성찰과 위로, 희망을 준 우리 시대의 표상이었다.”며 “이번 음악회에서 그와 그의 음악을 다시 발견하고 공감해달라.”고 당부했다.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쓴 ‘비극적 서곡’이 먼저 무대를 채웠다. 뒤이어 첼리스트 고봉인의 협연으로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 연주됐다. 절망에서 희망의 좁은 틈으로 치달으며 끊길 듯 이어지는 첼로 소리에 관객들은 윤이상 선생의 굴곡진 삶을 떠올리며 숙연해졌다. 이 작품은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사형을 구형받고 감옥에 수감됐던 그의 경험을 담은 곡이다. 당시 죽음에 직면했던 윤이상은 이상에 가닿지는 못하지만 영원한 자유를 꿈꾸는 인간의 숙명을 음악에 담았다. ●객석 압도한 비탄과 부활의 멜로디 2막의 주인공은 ‘광주여, 영원히’였다. 윤이상이 독일에서 5·18 광주민주화항쟁을 지켜보며 만든 이 곡은 ‘비극은 어떤 이유로도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그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 비탄과 부활의 멜로디로 객석을 압도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지휘하고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았다. 이 자리에는 고인의 딸인 윤정씨를 비롯해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 노회찬 진보신당 공동대표,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조건식 현대아산 회장, 첼리스트 정명화, 노르베르트 바스 주한 독일대사 등 각계 인사가 참석했다. 윤이상페스티벌은 춘천(19일), 전주(20일)를 거쳐 선생이 끝내 잠들지 못했던 고향 통영에서 21일 마무리된다.1만∼7만원.(02)723-0364.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문제는 지도력이다

    씁쓸한 기억이지만, 지난 10일 경기를 떠올려 본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북한과의 남아공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졸전 끝에 간신히 비겼다. 필자는 새벽까지 이어지는 여러 나라의 최종예선 경기를 보았다. 우리와 같은 B조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경기가 이어졌고 A조 호주-우즈베키스탄전도 중계됐다. 유럽 최종예선 4조의 러시아-웨일스전도 보게 됐는데 정말 처절한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화면이 바뀌는 순간마다 그들의 축구는 아름다운 정열의 꽃으로 피어났다.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뛰고 또 뛰는 여러 선수들의 열정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긴 했지만 웨일스 선수들은 강호 러시아의 옆구리를 끝까지 타격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빗줄기를 헤쳐가며 히딩크 감독이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할 수 있도록 골을 넣었다. 호주-우즈베키스탄 경기는 강한 힘이 맞부딪치는 명승부였다. 핌 베어벡 감독의 신뢰를 받은 호주 선수들은 지칠 줄 모르고 달렸다. 사우디나 UAE도 시종일관 난타전을 벌였다. 흡사 하이라이트로 편집된 장면처럼 채널이 바뀔 때마다 그 모든 경기들은 짧게 끊어치는 패스와 정교한 크로스, 바윗장을 뚫을 듯한 슛으로 가득찼다. 태클을 시도한 어떤 선수는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광고판에 가서 쓰러지기도 했다. 우리네 축구에선 실종된 아름다움이었다. 물론 우리에게도 그런 기억이 없지는 않다. 불행하게도 그 기억은 최근의 것이 아니라 무려 6년 전의 일이다.2002년 한일월드컵 때 우리 선수들은 맹공에 맹타를 날리는 맹수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동네 축구도 저렇게 건성으로 뛰지 않는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이회택 축구협회 기술위원장과 허정무 감독은 이런 결과를 두고 투지가 실종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진단으로는 전혀 올바른 처방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감독의 지도력에 있는 것이다. 똑같은 자원을 갖고도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보배가 될 수도 있고 모래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날 밤 필자가 보았던 러시아, 웨일스, 호주, 사우디 선수들의 주요 거점을 확보하는 전술 능력, 그렇게 확보한 공을 부챗살처럼 펼쳐가는 공격력, 좌우에서 날카롭게 올리는 크로스, 그리고 공과 한몸이 돼 골문으로 쳐들어 가는 슈팅 능력은 높은 수준의 기술이었다. 이를 불타는 투지로 봐선 정말 곤란하다. 투지, 곧 싸움에 임하는 결연한 자세는 탄탄한 기술과 풍부한 전술의 바탕 위에 존립하는 것이다. 이 역시 히딩크 감독과 함께 경험했던 일이다. 이제 그런 단계로 다시 일어서야 한국 축구가 진정 살아난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중남미 ‘反美 도미노’

    남미의 극단적인 반미 분위기가 대륙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15일 AP·AFP통신은 볼리비아 및 베네수엘라에 이어 니카라과와 온두라스까지 가세함에 따라 대륙에 이러한 움직임이 커졌다고 보도했다. 중미 국가인 온두라스는 미국 대사의 신임장 제정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런 조치는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정부가 자국 주재 미국 대사를 추방키로 결정한 데 대해 연대한다는 뜻이 담겼다. 마누엘 셀라야 온두라스 대통령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과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볼리비아와의 연대를 위해 이날 예정됐던 휴고 로렌스 자국 주재 미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연기했다. 그는 “우리는 볼리비아의 현 문제에 대해 에보 모랄레스 정부를 지지하고 (그 정부를 흔드는) 미국에 항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도 “제국의 어두운 세력들이 볼리비아 정부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모랄레스 대통령의 미 대사 추방을 지지했다. 니카라과 다니엘 오르테가 대통령 역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방미 초청을 거부한다고 14일 밝혔다. 그러나 그는 부시 대통령이 자신을 초청한 배경과, 미 대사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반미 움직임은 볼리비아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리는 15일 남미 정삼회담을 계기로 더 구체화할 가능성도 있다. 친·반정부 시위로 불안해진 볼리비아 정국을 해결하려는 취지라고 했지만,12개 회원국 가운데 페루 등 많은 나라들이 모랄레스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반면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정상회담 의제인 볼리비아 문제 논의는 해당국 정부 대표와 반정부 대표가 참여해야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차베스 대통령은 친 모랄레스 움직임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으료 한다.”며 의구심을 내비쳤다. 앞서 미국 정부는 베네수엘라가 단행한 대사추방에 대해 상대국 대사들을 추방하는 보복으로 맞섰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대사 추방에 유감을 표한다.”면서 “이러한 행위는 내부 도전에 직면한 두 정상의 취약성과 절망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차베스와 모랄레스는 11∼12일 미국이 정부 전복 음모를 부추기고 있다며 자국 주재 미국 대사에 추방령을 내렸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아시지요

    ‘폭풍의 화가’ 변시지를 아시지요

    ‘제주 서귀포에 화가 변시지(邊時志)가 산다.’ 이 단순한 명제에 동의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제주를 알지 못한다. 서귀포에는 이중섭미술관도 있고 이중섭거리도 있다. 그 정도만 안다면 당신은 제주를 보지 못했다. 혹시 이런 뉴스를 들은 적은 있는가? 제주의 화가 변시지의 작품 <이대로 가는 길(100호)>, <난무(100호)>가 세계 최대의 박물관으로 16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스미소니언박물관에 2007년 6월부터 향후 10년간 상설전시에 들어갔다는. 스미소니언박물관에 생존하는 작가로 자신의 작품을 건 화가는 변시지가 동양인으로는 처음이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도 그의 사후에 전시됐다. 이는 변시지의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1926년 제주 서귀포에서 출생했으니 그의 나이는 한국식으로 83세. 그는 여전히 현역인 제주의 화가다. 변시지는 6살 때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대회에 나가 오사카시장상을 받아 신동 소리를 들었던 그는 1948년, 23세 때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광풍회’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회원자격을 얻었다. 광풍회는 일본이 서양화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진 단체로 광풍회 공모전은 일본에서 일전(日展) 같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 화가들도 여러 차례의 입상을 통해 40이 넘어서 회원자격을 얻는 공모전인데 23세 조선 청년이 광풍처럼 나타나 최고상을 수상하고 회원자격을 얻은 일은 100년이 가까운 광풍회 역사에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신화로 남아 있다. 변시지는 1957년, 32세 때 서울대 교수직을 제안 받고 일본에서 영구 귀국했다. 그가 귀국하면서 가져온 것은 ‘조센징’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초등학교 때 씨름대회에 나가 다쳐 불구가 된 오른쪽 다리와 조국에서 펼칠 화가의 꿈이었다. 그러나 전후의 혼란스럽고 요란한 한국의 화단은 그를 실망시켰다. 줄서기를 강요하는 화단에 맞서 그는 부정으로 얼룩진 국전개혁운동을 2번이나 주도했다. 그 결과 그에게 돌아온 것은 절망과 자학뿐이었다. 비원(秘苑)을 주제로 극사실주의 화풍으로 비원 시대를 열어갔던 그는 1975년, 지천명의 나이로 제주로 돌아왔다. 서귀포를 떠난 지 44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그는 제주대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고독한 33년. 아내와 가족을 서울에 두고 스스로 유배자가 되어 고향 제주의 황토 빛을 찾았다. 동시대 화가들이 유럽이나 미국으로 진출을 할 때 그는 고향을 찾아 자신의 색깔을 찾았다. 스미소니언박물관 측은 그의 그림을 전시하며 “제주성(性)을 그린 그의 표현을 보면 그는 지역적인 특성에 의해 영감을 받았다. 한 예로 이것은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고향 제주에서 찾은 색깔로 당당히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의 그림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색깔과 소재가 있다. 누런 해와 누런 바다, 그 사이로 번쩍이는 흰 파도, 문이 닫힌 제주 초가, 소나무, 돛배, 돌담, 조랑말, 화가 자신을 표현한 고독한 사내, 까마귀 그리고 바람이 있다. 서귀포의 한기팔 시인은 변시지 그림의 소재를 “고향 제주의 이미지를 가진 기호”로 말한다. 시인은 “그 기호가 가장 지역적이며 개인적인 출발점에서 가장 세계적이며 우주적인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변시지는 제주에서 1,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그림들은 서귀포문화예술회관 내에 자리 잡은 기당미술관 안에 별도의 특별공간에 전시되어 있다. 유명세를 타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은 입소문을 타고 고급 매니아들을 가졌고 그 덕에 오래전부터 위작이 떠돌고 있을 정도다. 필자가 몇 년 전 서귀포에서 그의 작품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때 나는 감동에 찬 목소리로 동행에게 외쳤다. 한라산과, 제주와도 바꾸고 싶지 않은 그림을 만났다! 고. 최근 서귀포에서 만난 변시지 화백은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혼자서 생활하며 100호 대작을 그리고 있었다. 예전처럼 집중력을 쏟아내지 못하지만 한 달에 몇 번 집중력의 시간이 찾아오면 ‘폭풍의 바다’를 오일캔버스에 재현하고 있다. 그가 그리는 제주 바다는 오늘의 제주 바다가 아니다. 그의 바다는 신화의 바다며 영원의 바다다. 그 바다에는 어김없이 바람이 분다. 화가에게 물었다. 왜 그 바다엔 바람이 부는가? 화가는 이렇게 답했다. “제주는 바람으로 역사가 이뤄졌다. 바람 때문에 바다로 나간 남자가 죽고 여자만 남았다. 바람 때문에 씨앗은 다 날아가고 돌멩이만 남았다.” 모두(冒頭)의 명제를 바꾼다. ‘제주 서귀포에 세계적인 화가 변시지(邊時志)가 산다.’ 이제 당신도 그 명제에 동의할 것이다. 정일근·《경향신문》과 《문화일보》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기자 시절 많은 특종상을 수상했으며 방송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며 ‘한국방송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주요 일간지 등에 칼럼리스트로 활동하며 한국의 고래를 보호하는 일과 동티모르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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