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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way OSLO 오늘, 오슬로

    Norway OSLO 오늘, 오슬로

    오슬로에서 한 예술가의 절망을 목격했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을 엿봤다. 삶의 방향성을 끈질기게 고민하는 여행자라면 오늘, 오슬로로 향하라. 2008년 개장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드를 형상화 했다. 건물 깊숙이 바다가 차오른 듯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鑛夫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묻은 책 하이데거 러셀 헤밍웨이 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 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 신동엽의 <산문시> 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신동엽 시인의 시에도 그곳은 등장한다. 헬싱키를 거쳐 오슬로까지. 가는 데만 14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었다. 그래도 노르웨이는 꼭 가야만 했다. 깔끔한 북유럽식 가구처럼 매스컴을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세련된 이야기를 동경했다. 정말 시인의 말처럼 대통령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거니는 세상일까. 3일간의 짧은 일정상 그들의 복지 체계는 얼마나 단단한지, 그들 사이에는 얼마만큼 끈끈한 신뢰가 엮여 있는지는 알 턱이 없겠지만. 오랜 시간 품어 오던 의문에 답을 내릴 때가 된 것이다. 평생 한번쯤 메카를 여행하는 이슬람교도처럼 그렇게 오슬로로 향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쑤욱 찬바람이 파고든다. 달력의 날짜가 동지 즈음에 걸린, 해가 가장 짧다는 시기라 다소 스산했지만 문제가 되진 않았다. 북유럽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풍경은 추위에도 당당히 맞설 만한 값어치를 했다. 호텔로 향하는 길에 침엽수림이 울창하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빨간 지붕 집들이 언뜻언뜻 솟았다. 오슬로를 키운 건 7할이 숲이고 도시를 걷는 건 산림욕과도 같다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머지 3할은 바다의 몫이다. 바이킹의 후손들에게 바다는 투쟁과 호혜의 대상이었다. 움푹 파인 만灣 끝자락에 자리한 오슬로는 혹독하기도, 자비롭기도 한 바다와 지척이었다. 여기에 볕에 굶주린 듯 최대한 창을 키운 건물들이 단순하지만 모던한 자태를 더한다. 숲, 바다, 건물이 어우러져 오슬로만의 노르딕 스타일을 창조한다. 도시를 소개하는 브로슈어를 보니 오슬로 카피 문구는 바로 ‘슬로 시티Slow City’. 이 느릿한 도시를 흡수하는 최고의 수단은 걷기라는 뜻이다. 현재 국왕과 여왕 등 왕족일가가 머무는 노르웨이왕궁에서 오슬로 중앙역에 이르는 1.5km의 칼요한슨거리Karl Johans Gate를 따라 걷는다. 구석구석 가구와 디자인 숍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소담한 수도의 첫인상은 우선 합격점이다. 나의 침대를 바라보고 있던 것은 밤과 광기와 죽음의 검은 천사들이었다. 그들은 그 후에도 줄곧 나의 생활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 뭉크의 일기 中 당신도 셀카를 찍는군요 겨울에 오슬로에 와야 할 이유가 또 있었다. 뭉크Edvard Munch를 기념하는 뭉크박물관Munch Museet에서 뭉크 탄생 150주년이 되는 2013년을 기념해 특별한 기획전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인을 포착했다는 그의 작품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시 기간이 올해 2월13일까지라 발걸음을 서둘렀다. ‘더모던아이The Modern Eye’라는 부제의 전시는 집단보다 개인이, 자연보다 도시가, 농업보다 공업이, 종교보다 과학이 우선시된 근대를 살아간 뭉크의 기록을 집약했다. 합리성을 내세웠지만 근대는 개인의 외로움과 절절한 고독을 불러왔다. 소년기에 사랑하는 어머니와 누나를 잃었고 여동생은 정신병을 앓았으며 성년이 됐을 땐 남동생마저 죽었다는 뭉크의 인생은 듣는 것조차 버겁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아버지의 히스테리를 고스란히 받아냈던 지친 영혼은 캔버스에 자신을 투영했다. 깨끗하고 단아한 느낌을 자랑하는 뭉크박물관. 들어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의 작품은 감당하기가 녹록진 않다. ‘절규’ 앞에 섰을 때도 작품 속 울렁거리는 붉은 하늘이 평온하기만 한 오슬로의 그것과는 완전 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뭉크의 작품은 콜렉터 사이에서 최고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사실 뭉크의 ‘절규’는 단 한 점이 아니라 5가지 버전이 있는데 그중 한 작품이 지난해 5월 소더비 경매에서 사상 최고가인 1,370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현재 뭉크박물관에 걸린 절규도 도둑맞았던 것을 다시 찾아와 복원한 것이다. 도난 중 훼손을 심하게 입어 지금도 1/3가량이 변색된 그림을 보니 세상은 뭉크에 미쳐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고깃덩이마냥 육체가 나뒹굴고 어둑한 사자가 튀어나오는 작품인데도 전세계 관람객은 그를 숭앙하고 환호한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려는 찰나 그는 대예술가답게 반전을 선사한다. 절규의 방에서 그의 사진이 전시된 방으로 건너갔다. 이게 웬걸. 그곳에는 히스테릭한 뭉크가 처음 접한 카메라를 장난감 삼아 숱하게 찍었던 ‘셀카’가 진열돼 있었다. 이런저런 얼짱 각도를 연출한 모습을 보고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셀카의 의외성은 강렬했다. 그의 자화상과도 같은 셀카들. 당당히 렌즈를 자신 앞으로 가져갔던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 번민했을까. 인간의 심연에 있는 불안과 광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 뭉크는 진솔하다. 남이 눈치챌까 꼭꼭 숨겨 놓은 우리 모두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제야 그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렷해졌다. 우리 안의 꿈틀거리는 어둠을 대신 꺼내 보였던, 이 예술가의 솔직함에 대한 경의는 아닐지. 묵직했던 무언가가 소화되면서 자신의 결핍과 욕망에 너무도 충실했던 그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뭉크박물관Munch Museet┃주소 Tøyengata 53 0578 OSLO 개관시간 월, 수, 목, 금, 토요일 오전 12시~오후 6시.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화요일 휴무(1월1일부터 5월12일까지 적용) 입장료 성인 95크로네(약 1만8,000원) 학생 50크로네(약 1만원) 홈페이지 www.munch.museum.no 1 셀카의 달인, 뭉크. 그의 작품은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예술품 중 하나다.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뭉크식 화풍으로 풀어냈다 2 올해 뭉크 사후 150주년을 기념해 오슬로 뭉크박물관에서는 대대적인 회고전이 열린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같이 함께 살기, 어렵나요? 노르웨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던 듯하다. 우리를 잠식한 우울과 고통은 같이 극복해내는 거라고. 두루두루 사는 인생이 행복의 총량을 높일 거라고 말이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거리의 모습도 다를 바 없다. 오슬로는 마천루가 즐비한 도시는 아니다. 고층빌딩 없이 고만고만하게 고풍스런 건물들이 어깨를 견주고 있다. 2008년 개관한 오페라하우스는 정갈한 오슬로의 풍광을 화사하게 수놓는 건물이다. 피오르드를 상징화했다는 오페라하우스는 바다에 유유히 떠다니는 빙산처럼 바다를 품었다. 유명한 건축회사인 스뇌헤타Snøhetta가 설계했다고 해서, 건물 전면이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도배될 만큼 호화롭다고 해서 마음에 찬 건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위축감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다. 고고한 예술의 정수가 되어 신전처럼 떠받들여지는 여느 무대와는 달랐다. 오슬로 시민들과 관광객은 긴 경사면을 타고 오페라하우스 지붕과 벽면을 완만히 오르락내리락한다. 여름이면 옥상 정원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스크린을 통해 전해지는 오페라 공연을 마음껏 향유할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대통령이나 총리조차 특별할 것 없는 그들의 철학이 부러웠다. 하지만 오슬로에 와서야 철저히 착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구도 특별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누구나 특별하다는 것, 그 명제가 행복한 노르웨이를 만들었다. 부산에 들어설 오페라하우스도 스뇌헤타가 설계한다고 하니, 건물이 문화를 낳는 힘을 좀 기대해도 되려나.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일상의 면면에 구체화된다. 요즘 노르웨이에는 협동조합 설립이 붐인데 마침 우리나라도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당장 지난해 8월 개장했다는 마달렌Mathallen으로 향했다. 마달렌은 오슬로 시가 리모델링한 폐공장터에 들어선 푸드코드. 30여 개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신선한 과일, 연어, 염소치즈를 사러 노르웨이 사람들이 바지런히 드나든다. ‘푸드코트’로 직역되지만 ‘식품문화원’으로 번역하는 게 어울릴 것 같다. 푸드 컨퍼런스, 조리 강습, 푸드 페어, 음식 경연대회가 활발하게 열리면서 노르웨이식 ‘잘 먹고 잘 살기’를 실천해 간다. 요새 우리 식탁에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마일리지가 쌓이는 것처럼 원거리를 여행해 푸드마일리지를 쌓은 식재료가 태반이다. 20cm 집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닭, 우유만 주구장창 생산하다 평균수명의 1/10도 못 채우고 죽는 소, 유전자변형이란 유혹에 쉽게 노출된 콩과 옥수수들. 건강하지 못한 밥이 건강한 사람을 만들 리 없다. 이 평범한 진리를 알기에 음식이 자본의 도구가 된 지금 좋은 음식에 대한 열망도 반사적으로 높아졌다. 안정적인 판매를 원하는 공급자와 바른 먹을거리가 필요한 소비자의 만남에 문화적 옷을 덧입혀 관광객에게 내보이는 그들의 자신감이 더없이 부러웠다. “우리도 싸울 때가 있다구.” 감탄 사이사이에 어쩔 수 없이 부러움이 묻어나자 오슬로 사람들,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위로랍시고 이런 말을 한다. 90년대 노르웨이 국민들은 EU 가입 여부를 두고 극명하게 두 편으로 갈라섰다. 논쟁을 벌이다 결국 1994년 국민투표까지 이어졌다. 결과는 반대 52%, 찬성 48%. 얼마 전 우리나라 대선 결과와 묘하게 맞물린다. 세가 비슷한 집단이 첨예한 갈등을 겪고 나면 허탈감과 혼란을 피할 수 없는 건 동서가 마찬가진가 보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자국 경제가 나날이 번창하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이웃 EU 국가들을 보면서 성공적인 논쟁이었다고 자평한다. 물론 사람도 사회도 실수할 수 있다. 대신 옳은 선택을 이끌어내는 생산적인 ‘갑론을박’이 필요하다. 비현실적인 정답을 실현한 사회. 합리적이고 따뜻한 노르딕 라이프스타일은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남길 것 같다. 3 마달렌은 오슬로에서 가장 신선한 노르웨이와 유럽산 식재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이다 4 푸드홀 마달렌은 장도 보고 유기농 식사를 즐기는 오슬로 시민들의 잇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오페라하우스┃주소 Kirsten Flagstads pl. 1 N-0150 Oslo 박스오피스 개장시간 월~금요일 오전 9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일요일 낮 12시~오후 6시 홈페이지 www.operaen.no 사이트를 방문하면 5월, 6월에 집중된 문화공연 스케줄 표를 볼 수 있다. 마달렌Mathallen┃주소 Maridalsveien 17 OSLO 개장시간 화~수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목~금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일요일 낮 12시~오후 5시, 월요일 휴무 홈페이지 www.mathallenoslo.no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02-777-594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용산참사·패륜적 살인·양심적 병역거부… 모욕당한 삶들, 그 섬뜩한 초상

    용산참사·패륜적 살인·양심적 병역거부… 모욕당한 삶들, 그 섬뜩한 초상

    뒤틀린 결혼생활의 상처를 보상받으려 자식에게 병적으로 매달리던 어머니. 전교 1등을 하라며 피칠갑이 되도록 고교생 아들에게 골프채를 휘두르던 어머니의 시신은 수개월 뒤 별거 중인 아버지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조작한 성적표를 내밀다 들통날 것을 우려해 흉기를 휘두른 것이다. 시신을 둔 방의 문틈은 공업용 본드로 봉인됐고, 아들은 수능까지 치른 채 반년 넘게 시체와 동거했다. 2011년 11월, 세상을 뒤흔든 이 사건은 소설가 정찬의 단편집 ‘정결한 집’(문학과지성사 펴냄)의 표제작으로 다시 태어났다.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수상작가인 정찬이 내놓은 일곱 번째 소설집에는 ‘세이렌의 노래’ ‘흔들의자’ 등 여덟 편의 단편이 담겨 있다. 표제작 ‘정결한 집’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란 장치를 통해 소년과 어머니의 마음 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작가는 에두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돌직구’처럼 엇갈린 인간 관계의 비극을 살핀다. 칼꽂이에 꽂힌 네 개의 칼을 내려다보는 소년의 시선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는 아들에게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어머니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머니는 소년을 집어삼킨 거대한 괴물인가 하면, 어린 아들을 품에 안은 성모이기도 했다.’(19쪽) 현실과 몽상이 만나고 의지와 운명이 엇갈린다. 여자친구 명희가 작은 새처럼 허공으로 몸을 날려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아들은 처음으로 자정을 넘겨 집에 돌아온다. 어머니에게 맞는 것보다 버림받는 게 더 두려웠던 아들은 새벽빛이 창을 통해 비스듬히 스며들던 때, 윤리나 패륜이란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을 저지른다. 30년 경력의 작가는 신문 사회면의 한 켠을 짤막하게 장식했을, 무미건조한 사건들에서 하늘을 활공하는 새처럼 유려하고 매끄러운 몸짓으로 탄탄한 서술을 창조해 낸다. 어쩌면 누락됐을지도 모를 사소한 팩트까지 챙겨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다. 작가는 용산참사, 한진중공업 사태,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사건들에도 소설로서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트로이의 목마 속에서 깨어난 오디세우스가 개발과 발전의 미명 아래 사람들이 붙타 죽은 용산참사의 현장을 낯선 시선으로 내려다보거나(세이렌의 노래), 타워팰리스 66층에서 일하는 가사도우미가 고공농성을 벌이는 해고 노동자인 남편과 어지럼증을 함께 겪는(흔들의자) 식이다.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한 청년의 목소리도 들린다(녹슨 자전거). ‘오랫동안 모욕당한 사람들만이 갖는 상처’는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주제다. ‘세이렌의 노래’에선 망루보다 높은 하늘에서 참사를 지켜보고 기록하는 오디세우스의 입을 빌려 망루에 접근하는 경찰 헬리콥터를 현대판 트로이의 목마로 규정한다. 농성자들은 노래로 사람을 유혹해 죽인다는 괴물, ‘세이렌’일 따름이다. 작가는 왜 이런 소설들을 썼을까. 정찬은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문학이란 삶과 연관된 표현의 형식인데 어느 순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워낙 충격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들인 만큼 파헤쳐보고 싶었다”면서 “사건 자체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기보다 소설이란 고유의 형식 속에 용해시켜 나름의 미학적 방식으로 소화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또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모욕이 불러일으키는 고통”이라고 단언했다. ‘사랑이 꿈과 기적 사이의 어떤 것이라면, 모욕은 절망과 죽음 사이의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는 정치,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존까지 무너뜨린 사람들이 많다”며 “자본이 권력을 뛰어넘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금강산관광 중단 피해액 수십억… 북핵실험 소식에 눈물만”

    “금강산관광 중단 피해액 수십억… 북핵실험 소식에 눈물만”

    “아들놈이 전화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말하는데 너무 서러워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2001년부터 북한 금강산 관광특구에 15억원을 투자한 레포츠라인 대표 김희주(왼쪽·51)씨는 북한의 3차 핵실험 소식에 다시 한번 절망했다. 금강산 현지에서 4륜바이크와 자전거 등을 대여하는 사업을 하던 그는 2008년 7월 우리나라 관광객 박왕자씨의 피살 사건을 계기로 문을 닫았다. 그날 이후 4년 넘게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은 상태다. 김씨의 손해는 30억원에 이른다. 금강산 관광 중단 이후 푼돈이라도 벌 생각에 경기 파주 출판단지에서 교정 업무를 본다는 김씨는 13일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오늘까지 경희대에 입학한 막내딸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정말 막막하다”면서 “큰아들도 대학생인데, 애들 공부시키려고 장기 매매까지도 알아봤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새 정부의 대북 기조는 대화와 소통이라고 해 한껏 기대를 했는데 찬물을 뿌리듯 북한이 또 핵실험을 하니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어제 북한 핵실험 뉴스를 접하고서 쓰러질 뻔했어요. 북한 당국은 물론이고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하는 정부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금강산코퍼레이션 대표인 이종흥(오른쪽·53)씨도 2007년 5월 금강산 관광지구에 20억원을 투자했다. 호텔과 골프장에 납품할 맥주공장을 가동했고, 귀금속과 초콜릿, 허브, 생활용품을 파는 매장을 5개나 운영했지만 13개월 만에 중단됐다. 피해액은 현재 38억원까지 불어난 상황이다. 그는 원래 잘 나가던 ‘삼성맨’이었다.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퇴직하기 전인 49세에 삼성그룹 계열사의 상무까지 지냈다. 이씨는 “한때 직원 11명을 거느렸지만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화장품부터 소변검사기까지 안 팔아 본 것이 없다”면서 “지금은 상조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특구에 진출한 중소업체는 40여개, 투자금은 1330억원에 이른다.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 최요식(62) 회장은 “과거 금강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지금 대부분 대리기사, 택시기사, 막노동 등으로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면서 “남북관계가 꼬이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들이 느끼는 충격은 상상도 못하는데 정초부터 다시 좌절에 빠졌다”고 전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 日, 8월까지 우경화 스케줄… “양국 미래 위해 대화 계속해야”

    [한·일 미래의 길을 묻는다] 日, 8월까지 우경화 스케줄… “양국 미래 위해 대화 계속해야”

    ‘우경화 행보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거나, 혹은 과거를 치유하며 관계 복원을 시도하거나….’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와 지난해 말 집권 여당이 된 아베 신조 정부 간의 올해 한·일 관계 전망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그동안 얼음장 같던 양국 관계에 기회와 위기 요인이 모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극단적인 대립 구도로 가면 양국 관계는 ‘양패구상’(兩敗俱傷·서로 싸우다 양쪽 모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상처만 입음)격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올해 국내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양국 관계는 특히 아베 총리의 ‘우익 본능’이 어떤 식으로 표출될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첫 1년의 한·일 관계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이룬 한·일 기본조약(1965년) 체결 50주년인 2015년 박근혜 임기 중반까지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당선인은 자서전인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다른 어느 나라와의 관계보다 인내심이 더 필요한 게 일본과의 외교이고, 양국 모두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바 있다. “일본과 진심을 털어놓는 대화를 계속한다면 조금씩 풀려갈 것으로 믿는다”고도 했다. 역사와의 화해를 위해서는 독도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뜻도 밝혔다. 첫 변수로는 22일 일본 시마네현이 여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 수위가 꼽힌다. 아베 총리 등 주요 각료들이 불참을 표명했지만 자민당은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승격하겠다는 총선 공약을 실행하려는 기류가 짙다. 일본 정부는 독도 등 자국의 영토분쟁 전담 부서인 ‘영토·주권대책 기획조정실’을 신설하며 우익·보수 세력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 총리 산하에 조직을 신설한 건, 독도 문제 등을 정권 차원의 핵심 과제로 격상시켰다는 의미인 동시에 아베 내각이 우익 공약 실천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짙게 한다. 3월에는 독도 영유권 기술 및 과거사 왜곡을 강화한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 일본 고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발표된다. 곧 이어 아베 총리가 4월에 열리는 야스쿠니신사 춘계 예대제에 참배할지도 주목된다. 자민당과 2차 세계대전 전몰자 유족 모임인 일본유족회는 아베의 참배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첫 집권 때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지 않았지만 자민당 총재였던 지난해 10월 참배한 후 “임기 중 야스쿠니 참배를 못한 게 통한의 극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4~5월에는 일본 외교정책 기조인 외교청서가 발간된다. 7월 참의원 선거와 8월 이내 발표되는 방위백서는 양국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마저 승리할 경우 아베의 우익 기조도 강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12일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때까지는 경기 부양 등 내치에 집중하며 대외 강경 정책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도 “선거에 승리하면 아베 기조를 본격 추진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일본 평화헌법을 개정해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격상하고 집단 자위권 행사를 용인해야 한다는 기조를 보여 왔다. 참의원 선거 결과와 맞물려 방위백서가 우경화 전략을 어떤 식으로 드러낼지 주목된다. 일본 정부의 경제 기조인 ‘엔저 정책’도 변수로 여겨진다. 한국 경제의 체감 피해가 확대되면 반일 기류가 퍼질 수도 있다. 환율 효과가 국내 경제 실적에 본격 반영되면 우리 주력 산업의 수출에 현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양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지만 한·일 관계뿐 아니라 중·일 관계와 미·일 관계 속에서 일본의 유동성이 커 한·일 양국의 새로운 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엔저 문제는 우리 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보디 블로’(Body Blow·몸통 공격)로 한국 경제가 일본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는 국민 감정을 자극하는 긴장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우경화 흐름에 대화를 차단하거나 협력을 기피하는 건 우리의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제언하고 있다. 역내 안정을 위해서도 양국 간 갈등을 관리하며, 내실 있는 조용한 외교를 통한 신뢰 회복에 양국이 힘써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어른이 되어도 전쟁의 상처는 그대로였다

    어른이 되어도 전쟁의 상처는 그대로였다

    AP통신은 2011년 9월 말 “한국계 미국 소설가 이창래의 소설 ‘항복한 사람들’(The Surrendered)이 올해의 미 데이튼 문학평화상 픽션 부문 수상작으로 뽑혔다”고 보도했다. 한국전으로 상처받은 삶들을 수십 년에 걸쳐 조명한 이 소설로 이창래는 그해 퓰리쳐상 최종후보작에도 올랐다. 또한, 그해 시인 고은 등과 함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다. ‘항복한 사람들’이 최근 출판사 RHK에서 ‘생존자’란 제목으로 번역·출판됐다. 영문을 곧이곧대로 번역하면 항복한 사람들이겠지만, 출판사가 왜 ‘생존자’라는 제목을 택했는지 소설을 읽다 보면 뼈저리게 느껴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고통에 머물지 않고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1950년대 한국전쟁과 그로 인해 발생한 20만 명의 전쟁고아의 처참한 삶, 연합군으로 참전한 20살의 미군의 고통, 선교활동을 위해 파견된 미국인 목사 부부의 엇나가는 삶 등이 갈피갈피에 스며 있다. 또한, 재미교포들의 뿌리 없는 삶뿐만 아니라 미국의 밑바닥 인생들의 삶도 밀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다움을 말살하는 전쟁의 참상이 쓸고 간 자리에도 사람들은 신통하게 살아간다. 그것은 스스로 인간다움을 포기한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1950년 한국에서 전쟁으로 11살 어린 ‘준’이 엄마와 쌍둥이 언니와 오빠, 또한 쌍둥이 여동생과 남동생을 처참하게 잃고 고아가 되면서 시작된다. 이어 곧바로 1986년 뉴욕에서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47~48세의 ‘재미교포 준’의 인생으로 훌쩍 건너뛴다. 준은 10여년 이탈리아로 훌쩍 여행을 떠난 뒤 연락이 끊긴 아들 니콜라스를 추적하고 있다. 이제 서른 살이 됐을 아들이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 사는 헥터라는 한국전쟁 참전 군인을 찾고 있다. 공간적 배경은 1950년대 전쟁으로 인생이 망가져 버린 10대의 준과 아버지를 지키지 못한 죄의식으로 도망치듯 전쟁을 찾아온 20살의 헥터, 1930년 만주에서 살다가 만주사변을 경험하고서 인생의 한 자락을 놓아버린 선교사의 아내 실비가 한데 모이는 ‘새로운 희망’ 고아원이다. 준과 헥터, 실비가 안은 각자의 삶의 무게는 누구도 덜어내 줄 수가 없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돼 지루하지 않다. 1965년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 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가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계 미국작가인 이창래의 작품은 비교적 감정의 과잉이 적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질척거리지도 않고, 앞뒤 가리지 않는 증오와 ‘마땅히 이러해야 했다’는 식으로 재단하는 지독히 한국적 윤리의식을 강요하지 않아 한국전쟁을 비교적 자유로운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다. 당시를 돌아보며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극한까지 다가가지 않은 채 살아남은 자의 오만에 불과하지 않을까.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조인성 “5년 공백 뒤, 더 자유로워져…흥행보다 호평받고 싶네요”

    조인성 “5년 공백 뒤, 더 자유로워져…흥행보다 호평받고 싶네요”

    “‘조인성’이라는 이름이 창피하지 않은 작품이 돼야죠. 흥행보다 연기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안방극장에 조인성 바람이 불 것인가. 톱스타 조인성(32)이 오는 13일 첫 방송되는 SBS 새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로 브라운관에 복귀한다. 2011년 5월 제대한 그가 드라마에 복귀하는 것은 ‘봄날’(2005) 이후 무려 8년 만이다. 오랜 공백을 딛고 복귀한 그에게 방송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만난 조인성에게서는 긴장감과 여유가 동시에 느껴졌다. “8년 만의 복귀라고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셔서 부담감을 느낍니다. 복귀작이라기보다 차기작이라고 불러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제대 이후 빨리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는데 말년 휴가 때 출연을 결정한 영화 ‘권법’의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공백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다른 작품을 찾아봤을 때는 이미 캐스팅이 끝난 상태더군요. 오랫동안 기다려 주신 팬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컸어요.” 그는 팬들을 마냥 기다리게 하는 것이 미안해 예능 프로그램도 출연하고 CF에도 얼굴을 비쳤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그가 만난 작품은 노희경 작가의 ‘그겨울, 바람이 분다’였다.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이 원작이다. 그가 맡은 오수는 돈과 욕망을 좇는 전문 도박사로 시각장애인 상속녀 오영(송혜교)에게 자신을 오빠라고 속이고 접근하는 인물이다.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 도전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사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은 대본으로 읽었을 때와 연기했을 때 느낌이 굉장히 다르고 어렵거든요. 배우로 발전하려면 꼭 한번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죠. 시청자들이 작품을 보면서 마음을 줄 만한 캐릭터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있어요. 이야기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인물이니까 그가 변화하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시청자와 함께 호흡해 나가도록 연기할 생각입니다.” 오수는 상당히 거칠지만 내면의 아픔을 가진 차가운 인물이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첫사랑마저 잃은 뒤 절망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삶을 포기하려는 여자 오영을 본 뒤 생긴 궁금증이 점차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게 된다. 노희경 작가와 조인성은 오수라는 인물에 대해 의견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원작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호스트로 나오지만 갬블러로 바뀌었어요. 직업적인 설명보다는 캐릭터에 집중했죠.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을 오가는 점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죠. 큰 의견 차이라기보다는 배우가 투입되면서 표현 방법이 좀 달라진 부분이 있어요. 작가님 말씀처럼 원작보다 더 젊고 생동감 있는 인물이 된 것 같아요.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이 탄생하리라 생각합니다.” 노희경 작가는 “원작에는 일본 정서와 상당히 차가운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따뜻한 감정을 관계 속에 녹이려고 했다”면서 “조인성은 현장에서 자신의 단점을 스스럼없이 내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있고 누구보다 뜨거운 배우”라고 평가했다. 김규태 감독은 “현장에서 인성씨가 분위기 메이커였다. 작품에서도 그의 동적이고 유머러스한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제대 이후 첫 공식 석상에 선 조인성은 이전보다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 보였다. 군대가 연기자 조인성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 줬을까. “여유로워졌다기보다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에 얽매이기보다는 편안하고 자유롭게 사고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인간 조인성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 시청자들께서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 변화한 조인성의 모습을 찾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피아노’, 영화 ‘비열한 거리’ 등 그의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면 유독 어둡고 상처받은 역할이 많았다. 영화 ‘쌍화점’ 이후 5년간의 공백기가 연기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오랜만의 복귀인 만큼 흥행 성적도 관심이 쏠리는 부분이다. “물론 공백기 동안의 변화가 좋은 방향으로 이해됐으면 합니다. 전 생각보다 무거운 놈이 아니거든요(웃음). 연기하는 캐릭터의 경우도 진중하게 다가가려고 하지만 재밌는 장면들이 많아서 균형을 잘 이룰 것 같아요. 물론 배우로서 흥행에 대한 의무감이 있지만 저는 연기자로서 제 직분을 다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흥행은 하늘의 뜻에 달리지 않았을까요(웃음).” 군대에서 일과를 마친 뒤 틈틈이 드라마를 봤다는 그는 드라마 ‘골든 타임’의 이선균 역할이 특히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섬세한 감정 표현을 잘하는 노 작가의 작품에 출연하면서 연애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글쎄요. 신인 연기자였을 때는 그런 생각이 있었을 수도 있겠죠. 데뷔 10년이 지나니까 순간적으로 작품에 집중하고 역할에서도 잘 빠져나오는 편입니다. 내가 만일 오수가 되어 오영이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한다면 어떤 기분일까를 상상하면서 연기하죠.”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 멋진 성이 완성되듯이 매 장면 최선을 다해 표현하려고 한다는 조인성. 그에게서 이번 작품에 임하는 남다른 각오가 느껴졌다. 이번 작품을 통해 조인성이 배우로서 얻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노 작가의 대본은 결코 눈빛 연기 하나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너무나 힘들지만 캐릭터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오롯이 오수가 되어 진정성 있게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본 속의 오수를 캐내 내 안에 심는 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아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그놈의 ‘네 탓’… 야권 참패 불렀다

    누워만 있어도 잘 익은 권력이 입안으로 똑 떨어질 것 같았다.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높았고, 야권의 두 잠룡이 힘을 합치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권력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기가 찰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멘붕’(멘털 붕괴) 상태로 있을 순 없다. 먼저 패인을 분석하는 게 순서다. 대처방안은 이후의 문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증오 상업주의’(인물과 사상사 펴냄)는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충실하게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와 출판사는 “한국의 양극화된 정치 현실과 함께 한국 사회가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꼽히는 ‘증오’란 과연 무엇이며 정치권과 언론에서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를 분석한 결과물”이라고 책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 들여다보면 지난 18대 대선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그리고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왜 패했는지를 돌이켜 보고, 차기 대선에 안 전 교수가 출마한다면 어떤 전략과 스탠스를 가져야 하는지를 에둘러 충고하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강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야권이 패한 가장 큰 이유로 “선악 이분법 구도로 전략을 짠 것”을 꼽았다. ‘증오 상업주의’란 뭔가. 선악 이분법으로 대중의 증오를 일으켜 물건을 파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경우 보수와 진보 간 경계가 갈수록 명확하게 갈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더 쉽다. 나와 다른 경계에 선 사람을 증오하도록 슬슬 부추기기만 해도 물건은 팔린다. 강 교수가 현재의 한국 언론을 보는 틀도 이와 흡사하다. 그런데 문제는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 이 ‘증오 상업주의’를 정치 동력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우리 편이 질 수도 있다는 걸 전제”해야 하는데, ‘우리 편’이 지는 것은 천사가 악마에게 지는 것처럼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지닌 이들이 당권과 언로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치명적인 단점은 자기 성찰이 없다는 것, 또 모든 잘못의 원인을 자기 밖에서 찾는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엔 그들이나 그들과 대척점에 선 사람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데 말이다. 강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 절반을 절망시키는 정치’를 끝내겠다고 공언한 안 전 교수가 진보·보수 양 진영에서 모두 비판받았다고 본다. 증오 전쟁을 벌이면서 ‘적대적 공존 관계’를 형성한 양 세력이 ‘안철수 죽이기’에 나섰다는 얘기다. 저자는 안 전 교수의 대선 재도전 여부도 결국 민주당이 ‘증오 상업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지 여부와 연계돼 있다고 진단한다. 1만 30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에이즈 청년 ‘절망의 10년’

    에이즈 청년 ‘절망의 10년’

    A씨는 26세 때인 2003년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한창 나이였다. 수치심과 두려움에 사람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었다. 치료를 위해 병원에 열심히 다녔지만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가장 힘든 건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뚜렷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살다보니 치료비 마련도 힘겨웠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2010년 상습절도로 징역 2년을 살았다. 지난해 4월 출소할 때는 새 인생을 다짐했지만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감기간 병세는 한층 악화됐다. 출소 3개월 만인 지난해 7월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집에 침입해 현금 70여만원과 금반지를 훔쳤다. 이후 일주일 동안 6차례에 걸쳐 총 8000여만원어치의 금품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부지법 형사2부(부장 서경환)는 1일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과 같은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에이즈 판정 이후 홀로 생활하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으나 동종 범행으로 수차례 실형을 받은 전력이 있는 점, 피해자와 합의가 안 된 점 등을 고려해 항소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낯설지 않다, 지금도 어딘가 있을 모습 같아서

    낯설지 않다, 지금도 어딘가 있을 모습 같아서

    1930년대, 그러니까 대공황의 잿더미 속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신화가 이륙하던 그 시간, 그 시간은 하나의 기념비다. 비슷한 내용인데 강조점에 따라 조금씩 달리 부르는 말들이 많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누군가는 자유민주주의의 갱신, 누군가는 수정자본주의 혹은 혼합경제체제, 누군가는 대압착의 시대, 누군가는 실질적인 사회민주주의의 시대, 누군가는 최첨단 정보기술(IT) 유행을 타고 자본주의 2.0이라 부르는 시대. 국가의 원체험기이기도 하다. 대공황이란 공포에서 길어올려진.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 가지. 하나는 파란 약 먹고 꿈꾸는 것이다. 야리야리한 여자아이들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라 신나게 흔들며 노래 부르는 뮤지컬이다. 고전으로 꼽히며 지금도 한국 무대에 종종 선뵈는 ‘애니’, ‘42번가’, ‘시카고’ 같은 것들이다. 다른 하나는 빨간 약 먹고 냉정하게 현실을 보는 것이다. “농업안전국(FSA)의 국장이던 경제학자 렉스퍼드 터그웰은 1935년 그의 오랜 조수인 로이 스트라이커에게 역사 관련 분과를 일임했다.” 중요한 것은 1935년이란 시점. 숨 죽이고 있던 기득권층이 마침내 뉴딜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을 때다. 이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터그웰의 제자이자 사회학자인 스트라이커가 선택한 것은 사진이었다. 왜? “삶의 현실을 포착하는 사진이야말로 경제학적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나라 꼴이 어떤지 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는 얘기다. ‘지속의 순간들’(제프 다이어 지음, 한유주 옮김, 사흘 펴냄)은 바로 이 시기를 전후해 확립된 다큐사진들이 지금까지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다룬다. 알프레드 스티글리츠, 다이앤 아버스, 유진 아제, 리처드 애버던, 워커 에번스, 도로시아 랭, 유진 스미스 등 현대다큐 사진을 말할 때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사진을 두고 ‘지속’과 ‘순간’을 얘기하는 것은 지겨운 감이 있다. 지속되면 순간이 아니요, 순간은 지속되지 않는다. 이 둘의 충돌지점이 사진의 매력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저자는 작가의 의도, 시대 배경 등을 모두 뛰어넘어 개별 작품들을 징검다리 삼아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작가나 시대에 따른 연대기적 ‘순간’을 해체한 뒤 저자의 관점에 따라 재배치해서 이를 ‘지속’으로 재해석한다. “이 책을 써내려 가면서 나는 점차 실제로 사진을 찍은 사진가가 아닌 다른 사람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할 정도다. 연대기가 차이, 구분, 범주화라면 저자는 이를 한데 섞어 콜라주를 만든다. 콜라주를 빛내는 것은 저자의 독창적 글쓰기다. 가령 이런 식이다. 책은 폴 스트랜드의 1916년작 ‘맹인’(Blind woman)에서 시작한다. 뉴욕 시내의 맹인이란, 구걸하는 누추한 이들이다. 눈이 안 보이기 때문에 포장하거나 위장할 수 없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존재다. 맹인들은 주로 아코디언을 들고 있다. 그래서 루스벨트의 죽음에 흑인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담은 에드 클라크의 1945년작 ‘귀향’(Going home)을 들고 나온다. 얼굴을 위장하거나 꾸미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신적 맹인, 그러니까 정신병자 등 특이한 사람들을 열심히 찍은 다이앤 아버스 얘기를 꺼낸다. 그러고는 1932년 어둠에 잠긴 파리 뒷골목을 렌즈에 담은 사진집으로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브라사이 얘기로 넘어간다. “밝은 한낮의 빛 아래서 당신이 주목하는 것들-색, 머리카락, 옷-은 모두 손쉽게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집중해서 보아야만 하는 것들-어깨의 경사각, 옷이 닳은 방식, 걸음걸이-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당신의 손금만큼이나 개인적이고 불변적이다.” 그래서 손, 조지아 오키프의 손을 집중적으로 찍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불러낸다. 저자는 이런 방식으로 사람의 등, 누추하게 낡아버렸거나 절망적인 손에 쥐어져 구겨진 모자, 복잡하게 구겨진 시트가 씌워진 빈 침대, 텅 비거나 부서진 벤치, 창으로 내다보는 도시 이미지, 길과 이발소의 모습, 땅바닥 속으로 꺼져들어가는 이미지로서의 계단, 불안감에 서성이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보안관의 흔들의자 등 끊임없이 소재를 이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결론? 막바지에는 9·11테러로 충격에 빠진 뉴욕 사람을 찍어둔 사진을 배치해 뒀다. 도입부 맹인 사진과 절묘하게 겹쳐진다. 전망을 잃어버린, 그래서 민낯을 드러내버린 미국인이다. 별다른 장, 절 구분이나 소제목조차 없이 27쪽 맹인 사진에서 468쪽 뉴요커 사진까지 한번에 통으로 쭉 이어지는 본문은, 어쩌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속의 순간들 그 자체임을 드러낸다. 저자는 9·11테러에서 멈췄다지만, 그러고 보니 집권 2기 오바마 정부가 다시 불러낸 인물은 루스벨트다. ‘중산층의 아버지’로서 말이다. 흑백 다큐 사진에나 남아 있는 옛 추억이라 밀쳐 뒀던 과거가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온전히 미국적 맥락의 작업들임에도 이 사진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 역시 70% 중산층 복원을 내세워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번역자는 짐작하는 그 소설가가 맞다. 출판사에서 먼저 접촉했는데 저자의 매력에 빠져 다른 책들 번역까지 맡았다. 재즈를 다룬 ‘그러나 아름다운’(But Beautiful: A Book About Jazz)을 오는 4월쯤에, 그 뒤 소설 등도 번역해낼 예정이다. 이 책은 보도사진의 아성으로 꼽히는 뉴욕국제사진센터에서 상을 받은 책이다. 2만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즐거운 책 읽기(KBS1 밤 12시 40분) 명사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 명작을 선정해 함께 읽어보는 코너 ‘책과 나’에서는 임옥상 화가가 추천한 책, 임근혜의 ‘창조의 제국’을 함께 읽어본다. 영국 현대미술의 성공 신화 전 과정을 다뤘다. 갖가지 상상력이 폭발하고 충돌하는 영국 예술현장을 370개의 도판과 함께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다. ■삼국지(KBS2 밤 12시 50분) 제갈량은 사마의와 독대한 자리에서 자신이 펼친 기문팔괘진을 깨뜨려보라고 주문한다. 사마의는 포기하고 도주한다. 제갈량은 군량 운송 책임자인 구안이 보름이나 기일을 어기자, 죄를 추궁하며 그에게 곤장을 치고, 이에 앙심을 품은 구안은 사마의에게 투항해 거짓 밀서를 들고 이엄을 찾아간다. ■일일연속극 오자룡이 간다(MBC 밤 7시 15분) 마리는 미행원을 붙여 진주(서현진)의 움직임을 보고받고, 진주와 우연히 만난 것처럼 마주친다. 한편, 자룡이네 가족 모두가 만수가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룡이네가 큰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공주는 자신이 AT그룹 딸이라는 것을 밝히고 돈을 빌려주려고 한다. ■희망풍경(EBS 밤 12시 5분) 소리 예술이 맺어준 인연이 있다. 젊은 시절 교통사고로 예뻤던 얼굴이 망가진 한 여자와 당뇨합병증으로 점점 시력을 잃고 신부전증을 앓기 시작한 한 남자. 그가 삶에 절망하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을 때, 소리를 배우려고 나타난 한 여자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소리꾼 동료이자, 인생의 귀한 동반자가 된다. ■장수 가족 건강의 비밀(EBS 밤 10시 45분) 대한민국 최남단에 있는 마라도. 35가구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섬에는 87세 변춘옥 할머니와 가족들이 살고 있다. 할머니는 24세 때부터 50년 동안 해녀로 물질을 해 왔다. 이제 쉴 법도 하건만 가족을 도와 해산물 가게에서 장사를 한다. 할머니의 특별한 건강비결을 찾아 마라도로 떠나본다. ■가족(OBS 밤 11시 5분) 경기 김포시의 아파트에는 평범해 보이는 한 노부부가 살고 있다. 심상치 않은 반짝이 턱시도와 빨간 드레스로 제작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바로 우리나라 마술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윤왕국·오동분 마술사 부부다.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아내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여전히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는데….
  • 20대 베트남女, 한국 남편 몰래 현지 애인과…

    20대 베트남女, 한국 남편 몰래 현지 애인과…

    3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베트남 신부. 기다림에 지친 남자는 절망의 고통을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어머니도 아들을 따라 세상을 등졌다. 누나는 소송을 통해 동생의 한을 풀어 주려 했다. 법원은 동생의 혼인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무리하게 시도된 국제결혼. 남은 것은 착하게 살아가던 모자의 안타까운 죽음뿐이었다. 2009년 10월. 서른넷의 총각 김모씨는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베트남에서 올렸다. 전남 여수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소문난 효자. 하지만 숫기가 없고 소심해 결혼과 도통 인연을 맺지 못했다. 보다 못한 누나가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했다. 당시 열아홉 살이던 T. 같은 동네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의 친척이었다. 여자의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든 김씨는 곧바로 베트남으로 날아가 예식을 치렀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뒤따라 한국으로 오겠다는 신부의 말을 믿고 김씨는 먼저 귀국했다. 그해 12월 29일에는 여수시청에 정식으로 혼인신고까지 했다. 그러나 T는 “일주일만 더 있다 가겠다”, “한 달 후에 가겠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한국 입국을 미뤘다. 김씨는 일이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현지에서 사정이 생긴 것이라 여기고 3년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누나가 알아본 결과 T는 처음부터 한국에 올 마음이 없었다. 이미 현지의 애인과 집을 나가고 없었다. T의 부모는 한국 남자와 결혼해 잘살기를 바랐지만 딸은 원치 않았고, 중매업자로부터 받은 소개비만 챙기고 가출을 해버린 것이었다. 누나는 차마 이 소식을 동생에게 알리지 못했다. 결국 일이 터졌다. 신부와의 유일한 연락책으로 믿고 있던 동네 베트남 여성마저 집을 나가 버린 것이었다. 허탈과 충격을 참지 못한 김씨는 결국 지난해 6월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베트남 처녀에게 사기를 당하고 자살한 내 새끼. 가슴이 미어진 어머니는 며칠 뒤 농약을 마시고 아들의 뒤를 따랐다. 김씨의 누나는 혼인 무효 소송에 나섰다. 신부를 제대로 맞아보지도 못하고 자살한 동생이 혼인 상태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혼으로 처리해 서류에 흔적이 남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동생과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인 무효 소송은 피고에게 애초부터 혼인의 의사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피고의 자백이 없는 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은 피고가 외국인인 데다 가출해 주소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어서 공시송달도 쉽지 않았다. 종합법률사무소 열린의 박지훈 변호사는 넉 달 동안 인천, 여수, 순천, 거제 등 전국 곳곳을 발로 뛰며 혼인 무효의 증거를 찾았다. 우선 출입국관리소를 방문해 출입국 내역을 확인, 신부가 한 차례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음을 밝혔다. 가출했던 베트남 친척 여성을 수소문 끝에 거제도에서 만나 T의 거주지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공시송달이 가능해졌다. 최초의 혼인신고 자료도 역추적해 여수시청 등을 찾아다니며 가족관계 등록사항을 확인하고,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인적사항과 주소지 등을 발췌했다. 지난해 12월 13일 공시송달이 확정됐고 재판이 급물살을 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25일 혼인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밝혔다. 권 판사는 “피고가 혼인신고 후 대한민국에 입국하지 않고 다른 남성과 가출, 연락조차 두절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이 혼인은 피고의 진정한 혼인의사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망인의 친누나는 그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소송이 끝난 후 누나는 “동생의 한이 풀려 다행”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박 변호사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고 관련 기관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어려움이 컸지만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꼭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3년간 입국 거부한 베트남 아내 알고 보니 사기결혼 먹튀…남편과 노모, 충격에 세상 등져

    3년간 입국 거부한 베트남 아내 알고 보니 사기결혼 먹튀…남편과 노모, 충격에 세상 등져

    3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베트남 신부. 기다림에 지친 남자는 절망의 고통을 못 견디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어머니도 아들을 따라 세상을 등졌다. 누나는 소송을 통해 동생의 한을 풀어 주려 했다. 법원은 동생의 혼인에 대해 무효 판결을 내렸다. 무리하게 시도된 국제결혼. 남은 것은 착하게 살아가던 모자의 안타까운 죽음뿐이었다. 2009년 10월. 서른넷의 총각 김모씨는 꿈에 그리던 결혼식을 베트남에서 올렸다. 전남 여수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소문난 효자. 하지만 숫기가 없고 소심해 결혼과 도통 인연을 맺지 못했다. 보다 못한 누나가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을 주선했다. 당시 열아홉 살이던 T. 같은 동네에서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의 친척이었다. 여자의 사진을 보고 마음에 든 김씨는 곧바로 베트남으로 날아가 예식을 치렀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뒤따라 한국으로 오겠다는 신부의 말을 믿고 김씨는 먼저 귀국했다. 그해 12월 29일에는 여수시청에 정식으로 혼인신고까지 했다. 그러나 T는 “일주일만 더 있다 가겠다”, “한 달 후에 가겠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한국 입국을 미뤘다. 김씨는 일이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현지에서 사정이 생긴 것이라 여기고 3년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누나가 알아본 결과 T는 처음부터 한국에 올 마음이 없었다. 이미 현지의 애인과 집을 나가고 없었다. T의 부모는 한국 남자와 결혼해 잘살기를 바랐지만 딸은 원치 않았고, 중매업자로부터 받은 소개비만 챙기고 가출을 해버린 것이었다. 누나는 차마 이 소식을 동생에게 알리지 못했다. 결국 일이 터졌다. 신부와의 유일한 연락책으로 믿고 있던 동네 베트남 여성마저 집을 나가 버린 것이었다. 허탈과 충격을 참지 못한 김씨는 결국 지난해 6월 제초제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베트남 처녀에게 사기를 당하고 자살한 아들로 인해 가슴이 미어진 어머니도 며칠 뒤 농약을 마시고 아들의 뒤를 따랐다. 김씨의 누나는 혼인 무효 소송에 나섰다. 신부를 제대로 맞아보지도 못하고 자살한 동생이 혼인 상태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이혼으로 처리해 서류에 흔적이 남는 것도 싫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동생과 어머니의 한을 조금이라도 풀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인 무효 소송은 피고에게 애초부터 혼인의 의사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피고의 자백이 없는 한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사건은 피고가 외국인인 데다 가출해 주소지조차 모르는 상황이어서 공시송달도 쉽지 않았다. 종합법률사무소 열린의 박지훈 변호사는 넉 달 동안 인천, 여수, 순천, 거제 등 전국 곳곳을 발로 뛰며 혼인 무효의 증거를 찾았다. 우선 출입국관리소를 방문해 출입국 내역을 확인, 신부가 한 차례도 한국에 들어온 적이 없음을 밝혔다. 가출했던 베트남 친척 여성을 수소문 끝에 거제도에서 만나 T의 거주지에 대한 단서를 찾았다. 공시송달이 가능해졌다. 최초의 혼인신고 자료도 역추적해 여수시청 등을 찾아다니며 가족관계 등록사항을 확인하고,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인적사항과 주소지 등을 발췌했다. 지난해 12월 13일 공시송달이 확정됐고 재판이 급물살을 탔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25일 혼인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고 밝혔다. 권 판사는 “피고가 혼인신고 후 대한민국에 입국하지 않고 다른 남성과 가출, 연락조차 두절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이 혼인은 피고의 진정한 혼인의사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망인의 친누나는 그 확인을 구할 이익이 있다”고 판시했다. 소송이 끝난 후 누나는 “동생의 한이 풀려 다행”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박 변호사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했고 관련 기관들의 책임 떠넘기기로 어려움이 컸지만 사연이 너무 안타까워 꼭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동성애·사생아…‘루저’들의 보고서

    동성애·사생아…‘루저’들의 보고서

    한 세기 전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쓴 D H 로렌스는 근현대 문학작품을 둘러싼 외설시비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적나라한 성애(性愛) 묘사로 파문을 불러왔다. 그는 사랑과 연애 자체를 새로운 표현 수단으로 삼아 기계적 무감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구원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리 먼 나라의 일만도 아니다. 21년 전 국내에서 외설논란을 일으킨 마광수 교수 또한 소설 ‘즐거운 사라’ 때문에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2010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여성 작가 김혜나(31)에게 농도 짙은 ‘성적 표현’의 본뜻은 무엇일까. 데뷔작 ‘제리’부터 “충격적이고 반도덕적인 소설”(박성원 계명대 교수), “청춘들에 대한 킨제이 보고서”(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라는 혹평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두 번째 장편소설 ‘정크’(민음사 펴냄)도 마찬가지다. “허리띠를 풀고 바지 단추를 열어 지퍼를 내렸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내 아랫도리 안으로 들어왔고…”(186쪽) 같은 과도한 동성애 장면은 오히려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과잉진술이랄까. ‘랏슈’ ‘떨이’ ‘물뽕’ 등 심심찮게 등장하는 마약도 평범한 독자라면 기겁할 일이다. 작가는 전화인터뷰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 외로움을 지우기 위해 상대의 몸에 집착하는 일탈적 성관계를 그리고 싶었다”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운명적 몸부림으로 봐 달라”고 부탁했다. 작가는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평범한 요가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가출과 퇴학으로 점철된 10대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 종로·이태원 등지의 동성애 클럽을 거리낌 없이 들락거렸다. 동성애자의 내면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이 무렵이다.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22살 때부터 독한 습작에 매달렸지만,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작가는 “그때의 절망감이 소설에 투영됐다”며 “한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드러내는 데 청춘, 비정규직, 사생아, 성적 소수자만큼 적합한 소재는 없었다”고 말했다. 제목 ‘정크’도 정크메일, 정크푸드처럼 버려지고 하찮은 쓰레기 같은 삶을 형상화하기 위한 도구였다.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 ‘성재’는 화장품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동성애자(게이)이자 사생아다. 관심사는 “오로지 미용이나 패션, 메이크업, 그리고 남자와의 연애뿐”(33쪽)이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죽기 직전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와 하루 종일 방바닥에 누워만 있는 엄마도, 일주일에 두 번씩 집으로 찾아와 본 척도 하지 않고 돈만 놓고 가버리는 아버지도 모두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다. 첩의 자식으로 살아온 20여년의 시간을 잠시나마 잊게 하는 건 화장을 통해 다른 존재로 변신하거나 마약을 통해 자신을 망각하는 것뿐이다. 이런 주인공에게 동성애인인 치과의사 ‘민수 형’과의 사랑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위한 탈출구였다. 하지만 동성 결혼이 허용되는 나라에 가 결혼식을 올리는 꿈까지 꾼 성재는 민수에게 단지 성적 욕구의 대상이다. 민수는 부유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치과를 개원했고 딸아이도 얻었다. 성재는 “진짜인 건, 아무것도 없잖아. 오직 나뿐이잖아”(157쪽)라며 소리지른다. 성재는 악착같이 살지만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이어가기에도 벅차다. 절망감을 견디지 못해 무너져 내리고, 죽음을 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절망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건 죽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가슴 속 응어리진 말을 뱉어낸다. “아빠…아버지…그리고 아버지.”(256쪽) 소설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벌써 엇갈린다. 문학평론가 이현우는 “이 시대 사회적 루저들의 초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정크들의 존재론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살인, 섹스 등의 험악한 소재가 경기침체란 암울한 시대상을 틈타 다시 강하게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글로벌 시대]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글로벌 시대] 우리는 대한민국입니다/이명신 월드비전 동해종합사회복지관장

    언제부턴가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름 ‘대한민국’. 분명 어릴 적에는 “왜 이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고생하는가”라며 불평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구호·개발 NGO(비정부기구) 사업을 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닐 때 제일 먼저 일본인이냐, 아니라고 하면 중국인이냐 묻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과 10년 전쯤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어느 곳을 가든지 한국인이라고 하면 친밀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렇게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체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세계 경제력 규모가 10위 안팎,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3000달러를 넘어섰고 2011년 인간개발지수(HDI)는 15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도 2010년에 가입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입장이 전환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제하에서 해방된 지 68년, 6·25 동족상잔을 겪으면서 나라가 초토화된 지 63년이 지났다. 그리고 세계지도에서 찾기도 쉽지 않은 작은 대한민국은 아직 반으로 나뉘어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초고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는 세계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누구도 대한민국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금도 전 세계에는 나라를 잃었거나, 분쟁 등으로 생활의 터전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난민들이 아시아를 비롯 6개 대륙에 3392만명(2011년 기준)이나 된다. 이 중에서 아예 나라가 없는 무국적자는 340만명에 이르고 있다. 저개발국가에서 구호·개발사업을 하다 보면 가장 비참한 것이 난민들이다. 왜냐하면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100여년 전 우리나라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끔찍한 고통을 당했는가? 아직도 일제 치하 고통의 흔적이 우리 안에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지진이나 전쟁, 기근이나 한파, 쓰나미 등으로 폐허가 되어도 살아만 있으면 된다. 당장은 많은 어려움이 직면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가가 나서고, 세계가 나서서 고통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참 다행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나라가 있다. 대한민국. 이름만 불러보아도 가슴이 벅차온다. 대한민국이 나의 조국이라는 것,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주변 많은 나라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부모 세대와 선배 세대의 험난한 과정을 헤쳐 오는 지혜와 희생이 있었지만 우리만의 힘으로 이곳까지 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사랑의 빚을 갚자. 고마움을 아는 나라, 세상의 고난과 아픔에 동참하는 나라 대한민국. 많은 저개발국가가 대한민국을 바라보고 있다.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잿더미에서 일어난 유일한 나라니까. 이제 우리는 세계 속으로 들어가 어려움과 절망 가운데 있는 이웃들에게 꿈과 소망을 나누고 전해야 할 때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니까.
  • [기고] 새해 소망/김용희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기고] 새해 소망/김용희 서울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중년의 남자 셋이 한겨울 홍천 성당에서 만났습니다. 전 스포츠 선수(박찬호)와 탤런트(차인표)와 스님(혜민)입니다. 눈 덮인 산장 난롯가에서 인생사 이야기로 하룻밤을 보냅니다, 화덕에는 군고구마와 떡가래를 올려놓고 세상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스님이 눈물을 흘립니다. 선수도 웁니다. 트위트하는 스님은 올라온 글들을 이야기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새벽 3시에 메신저를 올리는 힘겨운 이, 취업전선에서 불합격 통지에 이젠 무감각해져 가는 자신이 싫어지는 젊은이, 희망의 출구를 잃어가는 그런 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얕은 위로밖에 없다면서 웁니다. 속세를 떠나올 때 노부모가 생일 밥상을 차려준 이야기를 할 때는 울지 않던 스님이, 힘겨운 이웃들 때문에 웁니다. 선수는 단칸방에서 자기를 키워주신, 단벌 운동복을 한밤중에 세탁해 줄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찌든 가난과 한없이 내어주는 부모님의 사랑을 추억하면서 웁니다. 눈물의 내용이 좀 다릅니다. 한 분은 자기를 위해 울고, 다른 한 분은 타인을 위해 웁니다. 우리 세속인들이야 모두 자기를 위해 웁니다. 지난 시절의 아픈 추억 때문에, 감당할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때로는 현실이 퍼다 붓는 희망과 절망 때문에 웁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울어주는 타인이 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겠습니까. 새 정부는 할 일이 많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울어내야 할 맡은 바 소명이 너무나 많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상가 건물주는 매년 월세를 올립니다. 세입자들은 열심히 수고해서 주인 통장에 입금하기 바쁩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해마다 9%씩 월세를 올리면 5년이면 50%가 넘습니다. 주택임차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상률 법정상한선 운운하는 세입자는 2년 만기 후 내보내면 됩니다. 주택은 부족한 데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젊은 기간제교사가 있습니다. 휴일과 연장근무는 기간제의 몫입니다. 기간제는 재계약을 위해 묵언수행해야 하지만, 정교사는 그런 힘든 것 하지 않아도 신분이 보장됩니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의 보수는 정교사의 절반도 안 됩니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직업을 가진 것은 행운아입니다. 이명박(MB) 정권의 반값등록금 공약은 학자금 대출로 미봉되었습니다. 덕분에 학교재단은 수업료를 쉽게 받았습니다만 정작 학생 본인은 큰 빚과 이자를 안고 사회에 나섰습니다. 현실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그날 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사는 것,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온 힘을 다해 살아내는 것, 그것만이 이 시점에서 우리의 의무요 역할이라 합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이제 희망의 등불을 내겁니다. 만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차마 떨치고 갈 수 없어서…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올해 세모에는 스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에 우리 모두 방관자가 아닌 참여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 [커버스토리-위기의 활자매체] 영상매체에 밀린 종이책, 우연히 만나는 책의 즐거움을 찾아라

    [커버스토리-위기의 활자매체] 영상매체에 밀린 종이책, 우연히 만나는 책의 즐거움을 찾아라

    “출판은 죽을 수가 없다. 출판은 인간의 본능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정보·지식을 발신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수신하고 싶어 하며, 그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이고 본능이기 때문이다. 다만, 책이 전화번호부에서 학술서까지 팔방미인처럼 굴었다면, 이제부터 책은 가장 본질적인 것을 남기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은 사라지지 못한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강무성(52) 주간은 17일 ‘출판의 위기, 활자매체의 고사’라는 주제에 대해 비교적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다거나, 대한민국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출판사는 장사해야 한다 치고, 사람들은 왜 책을 읽어야 하죠”라는 강력한 반론이 들어오기도 했다. 강 주간은 1985년 출판계에 들어와 지난 28년간 출판계의 성쇠를 경험하고 있다. 1980년대는 소설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서적의 폭발적 수요가 뒷받침된 출판의 중흥기였지만, 1990년대 개인컴퓨터(PC) 보급과 2000년대 말 스마트폰의 확산 등으로 출판은 날로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매체의 비약적 성장과 대비한 활자매체의 침체는 몰락으로 표현할 만하다. 고려대 불문과 81학번인 그는 동기들이 대기업에 입사할 때 출판계에 투신했다. 대학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러시아 문학을 제대로 소개하는 전문출판사를 하자’는 홍지웅 대표의 뜻을 반영해 출판사 이름을 순 한글인 ‘열린책들’이라 짓고 로고도 직접 만들었다. 그는 자신을 ‘책 엔지니어’라고 부른다. 기획·교정·교열이란 순수 편집자의 길보다는 서체 개발, 북디자인 등 책의 형태와 모양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쏟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출판계에 입문했을 때 ‘초판 1쇄’는 5000권을 의미했다. 대부분 5000권 정도는 소비됐고, 3000권 정도가 손익분기점이었던 만큼, 1쇄를 다 판매한 출판사는 다음 책을 준비할 여유가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3000권으로 줄었고, 외환위기를 겪은 1997년 이후부터는 2000권으로 줄었다. 요즘 1쇄는 1000권을 찍는 일도 허다하다. 학술서적은 최소 단위인 500부를 찍는다는 것이 이제 비밀도 아니다. 역사전문 출판사로 사랑받는 푸른역사는 최근 레미제라블과 함께 신문에 서평이 많이 소개된 ‘속물교양의 탄생’을 초판 1쇄로 1000권을 찍었고, 2쇄로 500권을 더 찍었다.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요즘 1500부 이상 안 찍는다. 불황도 원인이지만 출판 도매상들이 다 도산해 뿌릴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주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서점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니, 5000부는 찍어야 달라는 서점에 다 넣을 수 있었다. 아마 문방구가 서점을 겸업하는 곳까지 치면 약 1만개가 넘었을 것이다. 출판사의 책이 말초 혈관, 모세혈관까지 들어갔다. 시골 작은 서점에서 책이 팔리지 않더라도 반품되지 않고 그 서점에서 운명을 마치는 일이 허다했다. 현재 출판사가 약 2000개가 된다고 하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출판사는 500여개에 불과할 것이다.” 한국출판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서점은 2011년 1752곳으로 2004년의 2205개와 비교하면 453개(20.5%)가 줄었다. 그는 “서울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걸어갈 때 그 옆으로 줄줄이 서점이 있었는데, 이젠 다 사라지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정도 살아남은 것 아니냐”고 했다. 1980년대 모세혈관이 팔아주던 만큼 인터넷서점에서 팔아주고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인터넷서점을 통해서는 사람들이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는 책’을 바랄 수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 서점에서 만나는 우연한 책은 왜 중요할까? “문득 책을 읽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치자.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집 근처에 서점이라도 있으면 둘러보다가 한 권 골라서 나오면 되는데, 서점들이 사라지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인터넷서점에서는 대형 출판사들이 노출하는 광고를 보거나, 검색해서 책을 고를 수밖에 없다. 그런 수많은 정보는 정보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그냥 우연하게 책을 만나야 하는데, 주변에 서점이 없으니 그것이 안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출판사가 독자를 찾기가 쉬웠다. 책 종류가 적었고, 독자들은 신간이 나오면 주목했다. 활자매체의 힘도 어마어마했다. 그는 1990년에 소설책 ‘빠빠라기’를 베스트셀러로 만든 적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티저광고를 신문사에 냈다. 5단 광고로 폭이 5㎝에 불과한 조인트 광고인데, 광고 세번 만에 대박이 났다. 당시 편집자들은 잘나가는 책이 아니라도 독자의 손에 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독자를 만날 방법은 훨씬 더 다양해졌지만, 책의 움직임을 통해 독자를 만날 가능성은 훨씬 줄었다. 독자와 출판 편집자의 거리가 너무 멀다. 독서인은 줄었지만 출판사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이유로 도서관의 꾸준한 증가를 꼽을 수 있다. 2011년 도서관 수는 1만 3320개로 2004년 1만 1793개와 비교하면 1527개(13.4%)가 늘었다. 2011년 도서구입비가 680억원으로 2005년 433억원과 비교하면 247억원(57%)이 증가한 덕분이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공공도서관은 도서구입비를 정가의 80%를 보존하도록 규정해 두었다. 출판사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출판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이기도 하다. 1990년대까지 책의 분류는 ‘소설/비소설’이었다. 교보문고에서도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소설 관련 매대가 넓게 자리 잡았었다. 이제 그 자리를 인문학에 내주고 있다. 2000년대 ‘인문학의 위기’가 논란이 됐지만 인문학은 오히려 유지된다. 강 주간은 “인문·실용서는 폭발적이지 않아도 필요로 하는 인구를 겨냥해 큰 욕심을 내지 않으면 순환되는 구조다. 그런데 ‘인생 그 어딘가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을 서술하는 문학은 경기 위축에 같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문선공들이 납 활자를 찾아서 조판하던 시대에서, 1990년대 오프셋인쇄와 사진식자로 전환됐고, 이제 전자식자로 전환하는 것처럼 말이다. 1980년대 하루에 30~40쪽 이상의 조판을 할 수 없던 시절엔 하루 교정지도 30~40장만 보면 됐다. 시간은 느리고 여유롭게 흘렀다. 그러나 30여년 세월 사이에 출판과 관련된 수많은 직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문선공, 조판사, 컴퓨터 조판사, 사식 치는 아가씨들 등등. 출판 위기의 시대에 강 주간은 책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왜 장담하는가. 그는 “책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주선이 달나라에 가는 요즘도 돌과 망치로 못을 박아야 할 때가 있지 않느냐. 석기시대, 철기시대가 아니더라도 어떤 도구는 사라질 수 없는데, 책이 그런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무인도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의 손에 들어간 칼은 나무도 베고, 요리도 하고, 사냥도 하고, 뗏목도 만들고, 머리카락과 수염도 자른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칼의 분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과도, 초밥 칼, 흉기, 부엌칼, 고기칼, 유화나이프 등등. 칼의 기능이 다양화된다고 해서 칼의 소비가 주는 것이 아니듯, 책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만, 책의 본질적 기능을 남기도록 노력하고 다양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 전자출판을 위해 독립도 해봤던 강 주간은 이제 본격적인 전자책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직감하고 있다. “조선의 음향기기 시장은 1926년 윤심덕의 음반 ‘사의 찬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 음반으로 조선에 겨우 몇 개 있었던 축음기가 몇 천 개로 확산되는 거다. 물론 극작가 김우진과의 정사(情死)라는 스캔들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당시 축음기 가격을 현재가로 환산하면 아이폰 가격인데도 조선 식자층은 ‘사의 찬미’라는 음반 한 개 때문에 축음기를 구입했다. ‘사의 찬미’는 1920년대의 킬러 콘텐츠였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전자책으로 읽지 않으면 안 될 콘텐츠가 나오면 사람들은 그 책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물론 종이책은 종이책에 최적화한 콘텐츠로 살아남을 것이다. 출판계는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도 찾고 있다.” 다시 “책을 꼭 읽어야 할까요”로 돌아가 보자.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좋은 책 필요 없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 된다.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다고 한다. 그런데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독서를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더 문제다. 책은 아무 때나 손에 걸리는 대로 읽어도 된다. 절망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만 읽는 것이 아니다. 아무 관련 없는 책도 몇 줄만 읽다 보면 내 안에서 어떤 생각이나 반발 등이 올라오는데, 그렇게 내 안에서 솟아 나오는 그 무엇을 찾는 시간이 소중한 것 아니겠나.” 글 사진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다른 사람 이익은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의 재정 위기로 이어지면서 세계가 극심한 경제 몸살을 앓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그런 세계적 상황을 놓고 ‘신자유주의의 붕괴’로 표현한다. 갈수록 심화되는 격차와 빈곤은 모든 나라가 풀어야 할 최대의 공통 난제지만 해결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경제학만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현재 상황에 ‘절망적’이라는 관측마저 겹쳐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나눔’의 보편적인 철학을 그 해법으로 제시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진노 나오히코 지음, 정광민 옮김, 푸른지식 펴냄) 역시 ‘신자유주의의 해악’에 바탕을 둔 ‘나눔’의 철학을 강조한 책이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심해지는 격차와 빈곤 탓에 절망의 사회로 변해가는 일본의 위기 탈출에 천착하는 재정학자다. 그가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위기 탈출의 핵심은 바로 나눔과 중용이다. 그리고 그 나눔과 중용의 키워드를 지구상 가장 행복하게 산다는 유럽의 복지국가 스웨덴의 ‘옴소리’(omsorg)와 ‘라곰’(lagom)이라는 말에서 찾는 과정이 흥미롭다. 스웨덴에서 사회서비스로 통용되는 ‘옴소리’와 ‘라곰’은 원래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와 ‘적당히’(중용)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 ‘나눔의 경제’(옴소리)와 시장경제의 균형(라곰)을 조화롭게 추구해 나가는 정책이 이례적인 복지국가를 만들고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눈독을 들이는 그 ‘옴소리’와 ‘라곰’의 철학은 이렇게 요약된다. “다른 사람의 이익이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제는 나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을 추구해야 할 때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세계적 상황을 세계대전으로까지 연결됐던 1929년 세계공황과 자주 비교한다. 저자도 그 위기의 상황을 더 늦기 전에 직시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그리고 그 낡은 세계질서가 붕괴해 가는 시대의 획기(劃期)에, 나누어 가져야 할 행복을 서로 빼앗는 일본 사회에 대한 실망을 감추지 않고 있다. 다행히 책 앞머리에 한국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도 격차와 상대적 빈곤으로 고뇌하고 있지만, 일본과 비교하면 인간의 유대에 기초한 나눔의 정신이 남아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너 나 할 것 없이 후보들이 입에 가장 많이 올렸던 키워드는 단연 ‘민생’이다. “지난 시대가 서로 뺏고 빼앗기는 일종의 ‘강도문화’의 시대였다면 앞으로의 사회는 나누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나눔’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는 책 말미에 이렇게 쓰고 있다. “내 사상은 이단이다. 세상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단자이기에 내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과의 만남은 지극히 행복한 시간이다.” 1만38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극우 헌재소장 후보’ 지명에 판사들 뿔났다

    ‘극우 헌재소장 후보’ 지명에 판사들 뿔났다

    이동흡(62)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반발 기류가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를 넘어 사법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판결로 말한다’는 판사들이지만 청와대의 이 후보자 지명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1일 서울의 A 부장판사는 “막말 논란이 일었던 윤창중씨는 한시적인 인수위원회 대변인이지만 헌법재판소장의 임기는 6년이다. 다음 정권까지 이어질 헌재 소장에 9명의 재판관 중 가장 보수적인 인물을 지명한 것은 국민 대통합은커녕 사실상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한 48%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 아닌가”라며 이 후보자를 헌재소장으로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A 부장판사는 이어 “지난 대선이 진보와 보수라는 양강 구도로 치러지면서 상당수 국민들이 양극단으로 분열된 가운데 국민 대통합을 강조했던 박 당선인의 첫 인사를 보고 막연한 기대감이 절망으로 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의 B 판사는 “판사들 사이에서는 ‘막장 수준의 인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박 당선인이 강경 보수인 이 후보자를 헌재 소장에 임명해 헌재를 통해 사법부마저 통제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까지 든다”고 말했다. 같은 법원의 C 판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과 ‘도가니’ 등의 흥행 이후 국민들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위협받는 상황인데 독립기관인 헌재가 보수 이미지로 덧칠된다면 국민들이 사법부를 더욱 불신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변호사 단체에서는 성향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 적절성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에 반하는 소수의견을 여러 차례 표시했고, 친일재산국가귀속법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낸 것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 우리 헌법정신에 반하는 결정이었다”며 “이 후보자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장으로서 갖춰야 할 균형 감각이 결여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은 “이 후보자가 헌재에서 낸 의견이 일부 왜곡된 측면이 있다”며 “이 후보자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에 앞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MB도 비리 측근 풀어주기?… 특사 비판여론 확산

    설날(2월 10일)을 전후해 단행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특별사면 대상에 권력형 비리로 구속된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포함되는 방안이 검토되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번 특사는 ‘국민대통합’을 명분으로 경제·노동계 인사가 주로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대통령의 처사촌인 김재홍 전 KT&G 이사장 등이 특별사면 리스트에 오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이 전 의원은 현재로서는 형이 확정되지 않아 특사 대상이 아니지만 나머지 세 명은 모두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특별사면 대상에 올라있다. 이 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인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과 서울시 인맥인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 역시 형이 확정돼 특별사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수 있다. 때문에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이 대통령의 마지막 특사 명단에는 권력형 비리로 구속된 정치인이나 측근들이 줄줄이 들어갈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도 결국 임기 마지막에 측근들에게 ‘막판 봐주기’로 ‘마지막 선물’을 안길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말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특별사면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2년 12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 12월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을 특별사면했다. 이 대통령의 특사 움직임에 대해 야권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5년 내내 실정으로 국민을 절망으로 몰아넣고도 자화자찬에 급급하더니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사면하는 뻔뻔한 태도마저 보이려는가”라고 비판한 뒤, “특별사면과 관련해서 대화합 조치라는 궤변까지 나오고 있는데, 비리전력자는 심판의 대상이지 화합의 대상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대변인은 또 “박근혜 당선인이 특별사면을 묵인한다면 이는 스스로 실패한 정권으로 평가한 이명박 정권의 잘못을 감싸는 것으로 비칠 것임을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청와대 사면과 관련해 아직까지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은 “박 당선인이 특별히 의견을 나누거나 표시한 적이 없으며 청와대와도 공식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거나 나눈 적도 없다”고 밝혔다. 인수위원들도 대부분 말을 아꼈지만 그다지 긍정적인 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권력형 비리로 법의 심판을 받은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사면되는 것에 대해 국민 정서상 납득하기 힘들 것이라는 기류가 강하다. 김성수 기자 sskim@seoul.co.kr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씨줄날줄] 심리부검/육철수 논설위원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은 자살에 대해 “개인이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잃었을 때 스스로를 죽인다”고 했다. 그는 자살의 여러 유형 가운데 이런 ‘아노미(anomie)적 자살’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아노미란 ‘규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욕망이 규제를 받지 못해서 생기는 무규율 상태’라고 정의한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는 저서 ‘자살, 차악의 선택’에서 자살의 유형을 8가지로 세분했다. 우선 자기 귀책적 유형으로 ▲회피형 ▲이해형 ▲해결형 ▲배려형을 들었다. 또 타인 전가적 유형에서 ▲비난형 ▲각인형 ▲고발형 ▲탄원형으로 나누었다. 최근 몇년 사이에 학생, 해고 근로자, 유명 정치인·연예인, 재벌의 자녀, 대기업 사장·회장, 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삶을 정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근로자들의 잇단 자살은 고발형이나 탄원형이 대부분일 게다. 학생·연예인·정치인 등은 회피형이나 이해형이 많은 편이다. 자식에게 짐이 되기 싫은 노인의 자살은 해결형이나 배려형에 가깝다. 그러나 어떤 자살 유형이든,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의 지적대로 합리적이거나 도덕적 정당성이 결여돼 있다. 우리나라는 8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참으로 심각한 사회·국가적 병리현상이다. 가족 등 주변 사람이 자살했을 때 ‘자살생각계수’(자살 생각을 할 가능성을 0~1 사이 값으로 나타낸 것으로, 1에 가까울수록 자살을 생각할 가능성이 높음)는 0.101이라고 한다. 1명이 자살하면 6명이 충격을 받는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도 있다. 자살은 그만큼 심리적 전염성이 높다는 얘기다. 특히 유명 인사나 연예인이 자살하면 인터넷 관련 검색어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한다. 정말이지 이제는 사회와 국가를 해부해서라도 ‘자살병’의 처방전을 찾아야 할 때다. 마침 부산시가 자살자의 ‘심리 부검’을 도입해 환경 요인부터 제거한다는 소식이다. 죽음에 이르게 한 심리적 요인, 이를테면 질병·학력·거주형태·소득·가족갈등 등 20개 항목을 조사해서 자살예방책을 만든다고 한다. 1980년대 자살률 세계 1위였던 핀란드가 이런 방식의 자살방지 프로젝트로 20년 만에 자살률을 절반 수준으로 낮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프로파일러(범죄행동분석관)들에 따르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행’ 열흘 전부터 가깝게는 1시간 전에 전화·문자·일기·언행 등으로 주변에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절망에 빠진 이들이 생명의 끈을 놓지 않도록 다시 한번 주변을 잘 살펴봐야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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