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망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독수리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문체부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존스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도쿠리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884
  • 내일 없는 청춘, 오늘도 절망에 베팅

    내일 없는 청춘, 오늘도 절망에 베팅

    불법 인터넷도박 피의자 76%가 2030극심해진 실업난에 빗나간 한탕주의 모바일로 쉽게 접속… 현실 도피처로‘2030’ 청년세대가 사이버 도박의 늪에 깊숙이 빠졌다. 최근 극심해진 실업난이 이들을 한탕주의 수렁에 빠트린 것으로 분석된다.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사이버 도박 피의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입건된 20~30대 피의자는 총 2만 8225명이다. 이는 전체 인터넷 도박 피의자의 76%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4년 5117명(78.1%), 2015년 4546명(75.9%), 2016년 1만 1180명(77.4%), 2017년 5237명(75.2%), 2018년 1~7월 2145명(73.5%)으로 집계됐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스포츠토토 사이트를 제외한 곳에서 현금으로 이뤄지는 모든 사이버 도박은 현재 불법이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제출한 ‘최근 5년간 연령별 도박중독 상담인구자료’에도 20~30대의 상담 비율이 매년 60~70%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63.3%, 2015년 70.8%, 2016년 70.7%, 2017년 67.2%를 각각 기록했다. 김영호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도박의 트렌드가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포츠 도박 중심으로 변하면서 젊은 세대가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면서 “접근성이 높다 보니 자신이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도박으로 풀려는 청년이 많아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30세대뿐만 아니라 10대의 불법 도박도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5년간 도박 혐의로 형사입건된 10대 청소년은 모두 761명이었다. 올해는 7월까지만 65명이 적발됐다. 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자의·타의로 상담을 받은 10대도 2014년 57명에서 지난해 309명으로 3년 사이 5배 넘게 증가했다. 중학교 교사 김모(31)씨는 “불법 스포츠토토를 하다가 돈이 필요해 선생님의 지갑에 손을 대는 학생도 있다”면서 “도박에 빠진 10대들이 학교폭력 사건과 연결된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도박 중독 예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국 중·고교의 도박 중독 예방교육 이행률은 지난 8월 기준으로 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도박문제관리센터 관계자는 “흥미로 도박을 시작했다가 자신도 모르게 중독되는 청소년이 많다”면서 “학교에서 도박 예방교육도 성교육처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버도박 문제가 심화되자 경찰청은 최근 17개 지방청에 사이버도박 전담반을 구성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지방청마다 2~5명의 인원을 확보해 전담반을 꾸렸다”면서 “앞으로 예산 등을 확보해 전담팀으로 격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기생 시인의 겨울사랑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기생 시인의 겨울사랑

    - 기생 시인 매창(梅窓)의 '겨울 사랑' 우리 옛시조 중 가장 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조 중 하나가 매창의 다음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 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이화는 배꽃이다. 배꽃은 갈래꽃이다. 변덕스런 봄바람이 한바탕 불어제끼면 낱낱이 떨어진 흰 꽃잎들이 마치 빗낟처럼 난분분 허공을 비산한다. 그래서 이화우라 한다. 이처럼 이화우, 추풍낙엽 같은 동적인 소재, 그리고 봄에서 가을로 건너뛰는 장면 바뀜 등으로 위의 시조는 마치 한 편의 동영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는 듯한 절창이다. 그래서 예전엔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매창은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직업은 기생이었다. 그 아비가 부안현의 아전이었는데, 매창은 그마나도 첩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갈데없는 천출이다. 하지만 자질이 영특했다. 어릴 때부터 한문을 배웠고, 거문고 타기를 즐겨 상당한 기량의 연주 솜씨를 지니기에 이르렀다. 시재(詩才)는 일찍 드러났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떴다. 시 잘 짓고 거문고 잘 타는 천출 처녀가 아버지마저 일찍 여의었으니 갈 길은 대강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기적에 이름을 올리고 기생이 되었다. 나이 16살 때였다. 거문고 연주가 빼어날뿐더러 시재까지 출중한 이런 조합이 그리 흔치는 않다. 명기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런 소문을 듣고 멀리서 시인묵객, 한량들이 찾아왔다. 때로는 손님 중 술이 거나해지면 집적대는 이들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매창은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는 여인은 아니었다. 다음 '증취객(贈醉客)' 제목의 오언절구를 보면 그녀의 시재와 마음자리까지 오롯이 드러난다. 醉客執羅衫 취하신 님 사정없이 날 끌어단 羅衫隨手裂 끝내는 비단적삼 찢어놓았지 不惜一羅衫 적삼 하날 아껴서 그러는 게 아니야 但恐恩情絶 맺힌 정 끊어질까 두려워 그러지 (신석정 역) 하지만, 험한 세파에 일찍 몸을 실었으니, 인생의 쓴 맛도 일찍 찾아왔다. 현감에게 수청을 들었으나 버림받고 말았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렇게 빼어난 미색은 아니었다 한다. 이런 매창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다. 임진란이 일어나기 1년 전 선조 24년(1591) 18살 때였다. 그런데 그 상대는 28살이나 연상인 유부남으로, 한양에서 이미 문명을 날리는 시인인 촌은(村隱) 유희경(劉希慶)이었다. 부안에 놀러왔다가 매창을 찾아온 것이다. 매창과 마찬가지로 유희경 역시 천민 출신으로, 같은 천출 시인인 백대붕과 함께 유 · 백으로 일컬어지며 문단을 주름잡고 있었다. 매창이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한양에서 온 시객(詩客)이란 말을 듣자, '유희경과 백대붕 가운데 뉘신지요?' 물었다고 한다. 그만큼 촌은의 문명이 멀리 부안에까지 알려져 있었던 터이다. 두 사람은 28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을 나누게 된다. 같은 천민이라 더욱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유희경은 묘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다. 상례에 아주 밝아 국상이나 사대부가의 상(喪)에 집례하는 것으로 이름이 났다. 또한 화담 서경덕계의 문인으로 기녀를 멀리하고 반듯한 선비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지만, 이때 매창을 만나 지족선사가 되고 말았다. 평생 처음으로 ‘파계’를 했던 것이다. 얼마 후 유희경이 한양으로 돌아가고,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는 통에 이들의 재회는 기약 없게 되었다. 유희경은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화우' 시조는 이 무렵 첫사랑 유희경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 지은 것이다. 봄바람에 날리는 하얀 꽃잎처럼 그들의 사랑도 덧없고 아름다웠으리라. 이 무렵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전한다. 이 고장 출신의 '촛불'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 하였다.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를 일컫는 송도삼절을 본딴 모양이다. 어쨌든 유희경과의 첫사랑은 매창의 영혼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그녀는 천리 밖 정인을 모질도록 그리워했고, 그것은 나중에 서러움과 한으로 응어리지기까지 했다. 한양의 유희경 역시 매창을 그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은 좀 다르지만, 다음의 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娘家在浪州 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 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 보고 腸斷梧桐雨 오동나무에 비 뿌릴 젠 애가 끊겨라 (懷癸娘, 허경진 역) 이처럼 독한 사랑이었지만, 시절은 그네들의 편이 아니었다. 7년 전쟁의 불길이 조선땅을 온통 휩쓸고 갔으며, 전후에도 세상이 어수선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구러 10년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줄곧 유희경만을 그리며 살던 매창에게 두 번째 남자가 나타났다. 이웃 고을 김제에 군수로 내려온 이귀(李貴)였다. 그는 율곡의 문인으로 문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절의가 곧아 나중에 인조반정에 앞장서 공신이 된 인물이다. 이런 인물에게 매창이 마음이 끌려 그의 정인이 되었던 것이다. 10년 동안 첫사랑 유희경으로 가슴앓이를 하던 매창에게 두 번째 정인으로 이귀를 만났으나, 그 만남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환해(宦海)를 떠도는 이귀의 입장에서 매창을 수습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남자마저 떠나보낸 매창은 사랑의 덧없음, 인생사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깊이 받아들였던 듯하다. 그 뒤 매창의 행로를 더터보면 그런 짐작을 아니 할 수가 없다. 매창에게 깊은 흔적을 남긴 유희경과의 두 번째 만남은 15년 만에 이루어졌다. 매창을 잊지 못한 유희경이 다시 부안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재회는 잠깐의 만남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뒤로 영원히 만나지 못했다. 짐작컨대, 15년의 세월이 이미 두 사람의 얼굴을 크게 바꿔놓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므로 오랜 옛사랑은 다시 찾을 것이 못된다. 그냥 마음속 깊이 간직함만 못하다는 걸 여기서도 확인하게 된다. 이 재회 후 매창은 3년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37살의 한창 나이였다. 이승의 삶에서 더 이상 붙잡을 것이 없음에 깊이 절망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매창은 죽어서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유언에 따라, 평생을 끌어안고 살며 고락을 같이했던 자기 거문고를 안은 채 묻혔다고 한다. 누구도 오래 머물지 않았던 매창의 옆에 거문고가 끝까지 함께했던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의 소유였던 모양이다. 그 뒤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매창이 죽은 지 45년 만에 매창을 잊지 못하는 부안 사람들이 그녀의 무덤 앞에 빗돌 하나를 세웠다. 그로부터 다시 13년 뒤에 부안의 아전들이 중심이 되어 그녀가 남긴 시 중에서 구전되는 58편의 작품을 목판에 새겨 인근 사찰 개암사에서 <매창집>을 펴냈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많은 사람들이 시집을 찍어달라 하여 개암사의 절 살림이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말도 전한다. 허균의 누이인 허난설헌과 황진이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 시인으로 꼽히는 매창의 시는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여성적인 정서로 섬세하게 읊으며, 자유자재로 시어를 구사하는 데에 있다"는 평을 받는다. 세월이 한참 지나 매창 빗돌의 글씨들이 이지러진 1917년, 부안 시인들의 모임인 부풍시사(扶風詩社)에서 높이 4척의 비석을 다시 세우고 '명원이매창지묘(名媛李梅窓之墓)'라고 새겼다. 그전까지는 마을 나뭇꾼들이 벌초하며 무덤을 돌보았다고 한다. 가극단이나 유랑극단이 부안 읍내에 들어와 공연할 때도 먼저 매창 무덤을 찾아 한바탕 굿을 벌이며 시인을 기렸다. 바로 곁에는 명창 이중선의 묘가 있다. 지금도 음력 4월이면 부안 사람들은 매창의 제사를 모신다. 매창이 간 지 360여 년이 지난 1974년 어느 날, 매창뜸을 찾아온 시조 시인 가람 이병기가 그녀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시조를 올렸다. 돌비는 낡아지고 금잔디 새로워라 덧없이 비와 바람 오고가고 하지마는 한 줌의 향기로운 이 흙 헐리지를 않는다 이화우 부르다가 거문고 비껴두고 등 아래 홀로 앉아 누구를 생각는지 두 뺨에 젖은 눈물이 흐르는 듯하구나 나빈상(羅衫裳) 손에 잡혀 몇 번이나 찢었으리 그리던 운우(雲雨)도 스러진 꿈이 되고 그 고운 글발 그대로 정은 살아 남았다 ('매창뜸' 전문) 한편, 매창의 첫사랑 유희경은 대시인으로 문명을 날리며 91살까지 천수를 누렸다. 그의 집은 경복궁 뒷담 너머 개울 가에 있었다. 가끔 궁궐 사람들이 담 너머로 그의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하얗게 늙은 모습이 마치 신선 같았다고 한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도 욕망도

    밤은 알고 있다, 당신의 사랑도 욕망도

    밤을 가로질러/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352쪽/1만 6000원“나 태어난 곳 그대 어둠이여. 그댈 불빛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대 어둠이여’라는 시로 밤을 예찬한다. “불빛은 세계의 경계를 그어버리지만, 어둠은 모든 것을 품 안에 품는다”고 한 그는 어둠이 오히려 세계의 본질을 알려준다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나는 밤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릴케는 어둠을 품은 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밤. 낮의 반대말, 잠을 통한 휴식의 기간, 기이한 꿈이 펼쳐지는 때, 연인이 사랑을 나누는 시간. 그러나 누군가에겐 두려움일 수도 있겠다. 독일 과학사 학자인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신간 ´밤을 가로질러´는 밤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다. 때로는 과학, 때로는 문학, 때로는 철학으로 들여다본, 그야말로 밤에 관한 ‘종합판’인 셈이다. 저자는 밤의 여러 모습을 다양하게 살피고자 어둠, 그림자, 우주, 잠, 꿈, 사랑, 욕망, 악을 소재로 삼는다. 밤이란 무엇인가, 우주는 왜 검은가, 우리는 왜 잠을 자는가, 꿈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악을 어떻게 볼 것인가 등 밤을 둘러싼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하나씩 답한다.인간의 역사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인류가 밤을 밝힌 것은 불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어둠을 밝히면서 인류의 뇌는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물, 흙, 공기와 불을 4가지 원소로 꼽았지만, 인류가 불의 정체와 원천을 알기까지는 그 뒤로 2000년이나 걸렸다. 빛이 없는 이 기간에 밤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중세 사람들은 밤과 어둠을 인간이 저지른 큰 잘못의 결과로 해석하고, 밤이 오면 밤바람 속의 정령들과 더불어 인간의 내면에서 어두운 욕망이 고개를 든다고 상상했다. 예컨대 16세기 영국 작가 토머스 내시는 ‘밤의 공포’라는 책에서 ‘밤을 절망의 어머니, 지옥의 딸’로 묘사했다. 밤을 논할 때 잠과 꿈을 떼 놓고 이야기하긴 어렵다. 인공조명이 없던 과거에는 초저녁에 잠들었다가 한밤에 깨어 두세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잠을 자는 ‘2단계 수면 패턴’이 보편적이었다. 잠의 패턴이 바뀌었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꿈을 꾼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꿈은 활동하는 뉴런들의 마구잡이 조합에서 발생한다. 잠을 자면 자극성 신호를 가지런히 모으는 모노아민성 시스템과 연결망을 어지럽히는 콜린성 시스템이 함께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꾸는 꿈을 프로이트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은폐된 의미’로 파악했다. 은밀한 공포, 바람, 희망이 상징으로 포장됐다는 뜻이다. 과학사에서 봤을 때, 꿈에 의해 창조적인 영감을 얻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예컨대 아우구스트 케쿨레는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벤젠의 구조에 관한 힌트를 꿈에서 얻는다. 벽난로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케쿨레는 뱀 한 마리가 꼬리를 물고 비웃듯 맴도는 꿈을 꾸고 이른바 밴젠 고리 구조를 발견한다. 이 발견 덕분에 19세기 화학공업이 어마어마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저자는 이를 가리켜 “밤 과학 없이는 위대한 과학이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마지막 장에서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주제는 ‘인간 속의 악’이다. 인간은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 과거 세계대전 등에서 드러난 인간의 무자비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도덕의 원천에 관해 ‘개별 인간의 특수성에 대한 감각지각’이라 설명한다. 앞에 놓인 이가 친구냐 적이냐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도덕의 이중성을 명민하게 파헤친다. 저자는 밤을 종횡무진하면서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은 밤의 어둠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는 결론에 이른다. 빛이 존재하려면 어둠이 있어야 하고, 인간은 낮과 밤, 모두를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삶은 밤을 통해 가치를 얻는다”는 게 그의 마지막 결론이다. 저자는 문학, 과학, 역사, 철학의 해박한 지식을 동원하고 유려한 글솜씨를 선보인다. 다만, 너무나 방대한 범위를 다루는 데다가 온갖 지식을 쏟아내기 때문에 자칫하면 저자의 안내를 놓치고 어둠 속에 남겨질 수 있음을 유의하시길.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2

    “고종 빼돌려 을사늑약 체결 막아라” 12

    서울신문은 일제 침략 당시 독립운동가의 활약을 소재로 한 해외소설 두 편을 발굴했습니다. 글쓴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시나리오 작가 로버트 웰스 리치(1879~1942)이고, 두 소설의 주인공은 대한매일신보와 코리아데일리뉴스(KDN)를 창간해 우리 민족 항일의식을 고취한 어니스트 토머스 베델(1872~1909·한국명 배설)입니다. 100여년 전 발간된 이 소설에는 베델뿐 아니라 ‘고종의 밀사’로 잘 알려진 호머 허버트(1863~1949), 노골적 친일 행보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된 더럼 화이트 스티븐슨(1851-1908), 조선통감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 을사늑약 직후 자결한 충신 민영환(1861~1905) 등 역사적 인물이 대거 등장합니다. 작가가 실제로 조선에 와서 베델 등을 취재해 쓴 이 소설에는 고종의 연해주 망명 시도 등 최근에야 알려진 극비 내용도 담겨 있어 관심을 모읍니다. 서울신문은 이 소설 가운데 하나인 ‘황제 납치 프로젝트’(1912년 12월 출간·원제 The cat and the king)를 번역해 연재 형태로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12회>소녀는 키 작은 일본인(훗날 2대 조선총독이 되는 하기와라 슈이치)의 말을 완전히 가로막았다. “제가 서울에 도착한 첫날 밤에 스파이를 보내 제 트렁크를 뒤졌잖아요?” 질문을 던지는 소녀의 목소리에 약간의 분노와 떨림이 있었다. 자신의 훼손된 존엄성을 보상하라는 요구가 담겨 있었다. “나는 몰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하기와라는 놀란 듯 더듬거리며 말했다. “당신이 아니면 이 조선에게 누가 저에게 사람을 보내겠어요.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하기와라씨!” “아...그건 정말 실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당신을 잘 몰라서 그랬습니다.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이 혹시라도 무슨 음모를 꾸밀지 몰라서 무서웠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베델(어니스트 토머스 베델)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델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사람을 보내 조사해보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주 바보짓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사실을 털어놓게 돼 지금 제 마음이 무척 홀가분합니다.” 하기와라는 거의 절망적으로 소녀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집우재(경복궁에 있던 왕실 도서관)에 있던 나는 소녀의 혼을 담은 연기에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진심으로 사과하신다는 뜻으로 이해할게요.” 그녀의 목소리가 실크처럼 부드러워졌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당신에게 사과를 구합니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하기와라의 눈에 이슬방울이 맺혔다. 그제서야 ‘때가 됐다’는 듯 그녀가 마음속에서 하려던 말을 꺼냈다.“하기와라씨, 그러면 좀 더 이야기를 드릴게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며칠간 황제 폐하(고종)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온 정신을 쏟고 있어요. 하기와라씨는 그 시간에 우리와 같이 있고 싶다고 고집하시고요. 하지만 당신도 아시겠지만 폐하는 당신을 매우 두려워하십니다. 이 때문에 그분이 초상화 작업에 몰입하시는 데 방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제대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저에게도 몰입을 힘들게 만들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당신이 나를 감시하려고, 최소한 내가 저 불쌍한 노인(고종)과 무슨 계략이라도 세울까봐 거기에 계셨던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달콤함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하기와라는 그 말에 안심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녀의 언어는 주저함없이 겸손한 어조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기와라 씨. 이제부터는 폐하와 제가 단 둘이서만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약속해 주십시오. 그러면......“ “음....그러면요?” “그렇게 해 주시면 하기와라씨와 단 둘이서만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볼게요.” 소녀는 짧게 웃으며 유혹하듯 말했다.다시 그녀의 스커트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렸다. 나(빌리)는 발코니 가장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길게 늘어진 소나무 줄기를 통과한 햇빛이 반사되어 나부끼는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를 보았다. 그녀의 어깨가 부드러운 리듬을 타며 움직이는 것도 보았다. 키작은 하기와라가 그녀 옆을 성급히 따라갔다. 그녀는 편안한 보폭으로 오래된 아치형 다리를 건너 궁궐(경운궁 금천교로 추정)로 이어지는 길로 나갔다. 마침내 그녀가 자칼(하기와라)의 턱에 재갈이 물린 것이다. 13회로 이어집니다. 번역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세계반도핑기구 러시아 징계 풀자 “깨끗한 선수들에 대한 배신”

    세계반도핑기구 러시아 징계 풀자 “깨끗한 선수들에 대한 배신”

    세계반도핑기구(WADA) 집행위원회가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에 가해졌던 3년 동안의 징계를 풀기로 결정하자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깨끗한 선수들을 배신한 것”이란 지적 등이 이어지고 있다. WADA는 20일(현지시간)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에서 집행위원회를 열어 RUSADA의 자격 회복 여부를 논의한 끝에 WADA 규정에 부합한다고 복권시키기로 했다. 크레이그 리디(영국) WADA 위원장은 “오늘 WADA 집행위원회의 절대 다수 위원이 엄격한 요건에 따라 RUSADA의 자격을 회복시키기로 했다”고 밝혔다. 12명의 집행위원 가운데 9명이 복권을 지지하고 2명이 반대했으며 1명이 기권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리디 위원장은 “WADA는 정해진 기간에 옛 모스크바 반도핑실험실에 보관된 (도핑) 샘플과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조건이 이행되지 않으면 WADA 집행위는 RUSADA의 자격을 다시 정지할 것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이날 결정으로 러시아 선수들이 각종 국제대회에 제한 없이 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유리 가누스 RUSADA 대표도 “우리의 복권이 WADA의 요구를 준수해야 하는 조건부임을 이해한다”면서도 “육상연맹, 패럴림픽위원회처럼 자격이 정지된 다른 러시아 스포츠 기구들에게 긍정적 신호”라고 반겼다. 러시아의 국가 주도 약물 스캔들을 폭로한 내부고발자인 그리고리 로드첸코프는 “올림픽 역사를 통틀어 깨끗한 선수들을 겨냥한 가장 커다란 배반”이라고 질타했고, 짐 왈든 *은 “미국은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WADA에 계속 기금을 지원하는 돈낭비를 하고 있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영국 체육부는 실망했다고 밝히며 WADA가 (징계를 철회해야 하는) 이유들을 “전적으로 투명하게”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다. 영국반도핑기구(UKAD)도 이번 결정을 미뤄주도록 요청한 국가 기구 가운데 한 곳이었다. 니콜 샙스테드 UKAD 최고경영자(CEO)는 “WADA는 깨끗한 선수들과 스포츠 팬, 깨끗한 스포츠를 위해 열심히 일한 이들 모두에 대한 의무들을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국가 주도 도핑 프로그램을 폭로하는 보고서를 집필했던 리처드 매클라렌 교수는 “정치가 이번 결정을 지배했다. 러시아는 (WADA가 요구하는) 요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고 새로운 제안을 한 것이다. 재진입 규칙을 스스로 만들어 시행할 수 있게 됐다. 재량권을 갖고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게 됐다. WADA는 지렛대를 잃었다”고 개탄했다. 트래비스 타이가트 미국반도핑기구(USADA) 위원장 역시 WADA의 결정은 “당혹스럽고 불가해한” 것이라며 “세계의 깨끗한 선수들에게 절망적인 일격”을 가한 것이라며 “WADA는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던졌는데 한줌의 스포츠 기구가 수백만 깨끗한 선수들의 권리와 수십억 팬들의 꿈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회는 징계를 끝내야 한다는 권고안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사설] ‘50년 집권론’ 외치는 이해찬 대표의 오만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고, 눈치가 빠르면 절에서도 젓갈을 얻어먹는다. 케케묵은 옛말이 아니라 만고불변의 인지상정이다. 그렇건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체 왜 저러는지 모를 일이다. 그제 민주당 창당 63주년 기념식에서 이 대표는 “앞으로 열 번은 더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한다”고 외쳤다. 집안 잔치에서 당 대표가 정권 재창출 의지를 확인한 것은 나무랄 일은 아니다. 우리 현대정치사에서 민주당의 역할과 좌표는 중대했다. 1955년 창당해 63년간 김대중·노무현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까지 그 자체로 한국 민주주의의 기둥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 대표의 막힘없는 언변과 자신감은 그러나 때를 가려야 한다. 당 대표 경선에서 ‘20년 집권론’으로 구설에 올랐던 그가 ‘50년 집권론’을 대놓고 외친 언행이 국민 눈에 곱게 비칠지 돌아볼 문제다. 지금은 외환위기 이후 19년 만에 실업자는 최고에다 집값 폭등에 부동산 양극화로 민심이 어수선한 판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 성취를 기대하면서도 오죽했으면 “집안 살림살이부터 좀 보살피라”는 절망이 새 나오겠는가. 이 대표는 국민성장론을 놓고 토론하자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제안도 한마디로 무질렀다. “격이 안 맞다”는 거절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머리 맞댈 난제가 산적한데 야당을 협치 대상으로 보지 않는 안하무인은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렵다. 노회하고 오만한 정치 9단이 아니라 유연하게 소통하는 겸손한 집권당 대표가 우리에게 절실하다.
  • [금요칼럼] 열반불과 좌탈입망/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금요칼럼] 열반불과 좌탈입망/서동철 서울신문STV 사장

    좌탈입망(坐脫立亡)이란 죽음의 순간을 앉거나 선 채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만큼 법력이 깊음을 보여 준다. 그런데 어느 스님의 좌탈입망 순간이라는 사진을 보고는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죽음이란 미혹과 집착에서 벗어나 대(大)고요에 접어드는 순간이라고 불교에서는 가르친다. 하지만 사진 속 스님은, 맑은 정신이었다면 당신 스스로 원치 않았을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살아생전의 미혹과 집착을 버리기는커녕 죽음 이후의 세계로까지 떠메고 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연출된 흔적이 역력했으니 안타까웠다. 얼마 전 돌아가신 오현 스님은 시조시인이기도 했는데, 필자가 서울신문에서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신춘문예의 시조부문 심사를 맡기도 했다. 몇 년 전 마지막 전화통화를 했을 때 그는 매우 취한 목소리였는데, 그 때문이었는지 수화기 너머에서는 여느 때보다도 유쾌함이 느껴졌다는 기억이 있다. 하지만 술에 취해 껄껄거리는 중이라니…. 오현 스님은 어느 해 ‘세계평화시인대회’에서 즉흥적으로 시조를 지어 낭송하기도 했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중이 어떤 모습으로 눈을 감았는지가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오히려 오현 스님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가르침을 얻는다. 또 하나의 계율 논란이 있다. 지난해 당선된 총무원장이 탄핵을 받음에 따라 조계종은 또다시 선거 열풍에 휩싸여 있다. 전 총무원장과 관련된 논란 가운데 세간의 흥미를 불러일으킨 대목은 아무래도 ‘은처자(隱妻子) 의혹’이었을 것이다. 글자 그대로 숨겨 놓은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불교계 계율 논란에는 관심이 없다. 아내와 자식이 있다고 실정법을 어긴 것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총무원장이 자리에서 물러날 만큼 조계종의 질서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본질은 세상 사람의 삶과 관계가 없는 절 식탁의 밥그릇 다툼에는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현 스님처럼 술을 마시고 대취하는 것도 계율에 어긋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그것이 중요한 문제라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당연히 저들끼리 정해 놓은 계율 때문이 아니다. 스님과 대화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곤 한다. 대뜸 삶의 자세를 거론하며 가르치려 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스스로를 다른 중생보다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교단은 속세보다 더 속세 같으니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가르침은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좌탈입망이 측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석가가 입멸하는 순간을 표현한 것이 열반불(涅槃佛)이다.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누워 있는 모습의 불상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셨다. 그러니 부처님을 따른다면서 실제로는 따르지 않는 것이 좌탈입망이다. 물론 궁극의 수행경지를 드러내는 ‘진짜’ 좌탈입망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공된 초월적 법력을 중생에게 과시해 우월을 강조하겠다는 취지라면 해탈의 경지와는 거리가 멀다. 흔히 죽음의 문제에 해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죽음에 앞서 생존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오현 스님은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고 했지만, 내세(來世)가 아니라 이번 생애에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절망에 빠져 있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그러니 격론은 ‘은처자 의혹’이 아니라 ‘중생의 생존’을 놓고 벌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부처님 위에 올라서려 하지 말고 부처님 뜻만 따르면 된다.
  • 채인묵 시의원, 서울시 균형발전 전략 허구성 지적

    서울특별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채인묵 시의원(더불어민주당, 금천1)은 9월 7일 경제진흥본부 추경예산안 심사를 통해 서울시의 ‘지역균형발전 정책구상’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채인묵 의원은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월 19일 삼양동 옥탑방 한달살이를 마감하면서 「서울시 지역균형발전 정책구상」을 대대적으로 발표했다”며 “주거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교통인프라 확충을 포함한 박원순 시장의 균형발전 전략 발표를 들으면서 소외된 지역의 많은 시민들이 큰 기대를 갖게 된 것이 사실”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채 의원은 동시에 서울시가 제출한 추경안 심사를 하면서 박원순 시장의 지역균형발전 실천 의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채 의원은 “일례로 서초구 양곡도매시장 일대 부지(51,648㎡)에 총 사업비 6,036억원을 투입해 250여개 글로벌 연구소와 기업 입주를 목표로 하는 양재 R&D 캠퍼스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반면 이 캠퍼스 보다 4배나 넓은(약 23만㎡) 독산동 우시장 일대 도시재생 사업추진을 위해 시가 책정한 예산이 200억원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서울 땅값 상승에 따라 차질을 빚고 있다. 이와 같은 점을 보며 깊은 절망감을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또한 “무더운 더위를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 이겨내며 내놓은 박원순 시장의 지역균형발전 전략에 대해 서울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시끌벅적한 발표와 달리 실제 정책은 오히려 운동장 기울기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로 악화시키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채 의원은 “서울시내 지역불균형 문제의 핵심은 도시제조업의 쇠퇴와 이로 인한 지역경제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양재 R&D 캠퍼스 조성 사업처럼 미래 서울의 핵심 성장잠재력이 되는 산업 기반 시설은 비 강남 소외지역에 입주시키는 것이 지역균형발전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익은 여의도·용산 개발 마스터플랜 발표를 통해 부동산 가격 폭등에 기름을 끼얹은 서울시가 또 다른 정책 실패로 지역불균형을 가속화시키는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월드피플+] 세계서 가장 작지만 강인한 엄마, 44세 나이로 지다

    [월드피플+] 세계서 가장 작지만 강인한 엄마, 44세 나이로 지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세 자녀를 낳아 ‘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강인한 엄마’로 주목 받아온 여성이 유감스럽게도 4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미국 켄터키 주 출신의 스테이시 헤럴드가 사랑하는 남편 윌(35)과 두 딸 카테리(11)와 마크야(10), 아들 말라키(8)를 뒤로하고 떠났다고 전했다. 키가 4피트 2인치(약 71cm)에 불과한 스테이시는 골형성부전증(Osteogenisis Imperfecta)이란 희귀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특별한 원인 없이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질환으로 발육부전과 청각 손실, 심할 경우 호흡기에 문제를 일으켜 생존율이 높지 않은 병이다. 그녀는 2000년에 만난 남편과 4년의 열애 끝에 결혼해 두 딸을 낳았다. 그리고 10년 전 ‘뱃속의 아기가 자라서 엄마의 폐와 심장을 으스러뜨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의사의 충고에도 셋째 아이를 출산해 전 세계에 화제가 됐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아들은 몸무게가 1.18kg에 불과한 미숙아였지만, 출산 당시 스테이시는 “내가 본 아이 중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다”며 “평생 아들 곁에 있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그녀는 휠체어 신세를 져야하는 불편한 몸으로 아이들을 목욕시키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등 육아에 적극 관여했다. 그러다 부부는 곧 자신들의 바람과 달리 장녀 카테리와 막내 말라키가 엄마의 건강상태를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스테이시는 절망하지 않았다. 자신이 현실을 직시하고 세상의 편견과 싸워온 것처럼 아이들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남편과 함께 가능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지지할 생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음에 감사해하던 스테이시는 결국 병마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최근 눈을 감았다. 생전에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된다는 것이 좋았다.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 그리고 태어난 아이들 모두 내게는 ‘기적’”이라는 말을 남긴 그녀는 세상을 향해 진정한 모성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서울광장] 악마는 ‘희망’에 숨었다/송한수 부국장·사회2부장

    [서울광장] 악마는 ‘희망’에 숨었다/송한수 부국장·사회2부장

    ‘매미’가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14호 태풍이 발톱을 그리 세웠다.한반도 속살을 끔찍이 할퀴었다. 사람들을 어딘가로 날려 보냈다. 비바람이 견디지 못하게 거셌다. 한국 기상 관측 이래 ‘최강’이었다. 무려 104년 만에 기록을 세웠다. 추석 연휴를 이틀째 즐기던 터다. 재산 피해는 4조원을 웃돌았다. 위력을 뿜던 국가경제를 흔들었다. 더욱이 귀한 국민 목숨을 앗았다. 무려 130명이나 희생시켰다. 부산 앞바다 바위가 도심을 쳤다. 낙동강 다리를 끊어 던져 버렸다. 2003년 9월 12일 그날이었다. 되돌아보긴 싫지만, 그땐 그랬다. 옴짝달싹 못 하고 무릎을 꿇었다. 꼭 15년을 보낸 지금 어떤가. 오늘로 한가위를 열이틀 앞뒀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잇따른다. 작은 듯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재해라 ‘셀프 위로’를 보낼 순 없다. 유치원 건물이 주저앉을 뻔했다. 주택가 싱크홀 역시 마찬가지다. 국민 생명과 맞닿았기 때문이다. ‘매미’는 끝내 명단에서 사라졌다. 세계를 돌며 죽도록 괴롭혀서다. ‘매미’ 일을 앞세운 까닭은 이렇다. 예쁜 이름을 가진 태풍이 거칠다. ‘불편한 진실’ 중 하나라고 할까.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린다. 늦었더라도 실패에서 배우란다. 또 무조건적인 믿음을 지우란다. 다시금 ‘세월호 아픔’을 새기란다. 그러지 않으면 큰일을 부른단다. 희망이란 글자엔 두 뜻이 담겼다. 첫째 ‘어떤 일을 이루기를 바람’이다. ‘앞으로 잘될 가능성’도 가리킨다. 비슷한 듯하면서 다르지 않은가. 우리말에서 묘미를 느낄 만하다. 미명(美名)에 숨은 절망은 수두룩하다. 역대급 태풍에 머무르지 않는다. 겉만 번지르르한 세태를 꾸짖는다. 거짓이 거짓을 낳는다고 말한다. 언젠간 ‘희망계획’ 괴물이 나왔다. 광화문 집회를 겨눈 것이다. 멀쩡한 시민을 짓뭉갤 태세였다. “누구를 위한 희망이겠나” 싶었다. 서울 언저리에는 ‘희망촌’도 있다. 철거민들을 한데 모은 동네다. 정권은 희망을 선물하진 않았다. 그냥 저대로 꿈을 키우란 말이다. 책임은 병아리 눈곱만큼도 없다. 한 톨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달콤한 약속이 많다는 얘기다. 없어야 할 되풀이가 큰 문제다. 두 번 실패에선 변명을 불허한다. 많은 사람이 진리라 굳게 믿는다. 뭣보다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말이다. 책임이 있는 곳엔 권한도 따른다. 그러나 늘 책임만 강조하곤 한다. 아니면 거꾸로 권리만 내세운다. 그럴싸한 단어만 나란한 셈이다. 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못 끊는다. 최근 사건을 돌이키자면 뻔하다. 누굴 매질할지 가늠하지 않는다. 그저 저냥 남을 지적할 따름이다. 두고두고 곱씹을 ‘세월호’를 보자. 이제 불과 4년 지났을 따름이다. 여태 ‘제2세월호 사건’을 걱정한다. 2014년과 견줘 고개를 갸웃댄다. 되새길 우리네 옛말을 떠올린다. 머리를 삶으면 귀까지 익는단다. 나쁜 일에는 두루 살피란 뜻이다. ‘진짜 문제’를 제대로 캐라는 게다. 어리한 이를 꼬집는 말은 숱하다. ‘눈 내려야 솔 푸른 줄 안다’고 한다. 느지막한 후회를 새삼 일깨운다. 하지만 차선책도 생각할 일이다. 무시무시한 자연의 힘 앞엔 더하다. 늦느니 ‘과잉대응’이 외려 낫다. 희망은 가만히 쌓이는 것이다. 바로 ‘꿀돼지 저금통’처럼 그렇다. 울부짖는다고 날아들진 않는다. 한낱 구호로만 이뤄질 리도 없다. 깊은 물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잘잘못을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 희망이란 글자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사회를 되짚어 봐야 한다. 혹시나 ‘네 탓’만 그득하진 않은지. 국민행동요령만 기대진 않는지. 명절 앞뒤론 불안감이 겹치는 법. ‘무보장 희망’을 띄우지 말아야 한다. 실패 앞에선 ‘먼저 내 탓’이 답이다. 이후에야 잘잘못을 따질 일이다. 기회는 힘을 다한 뒤 맞는 것이다. 위기를 넘긴 태풍 매미 때 그랬다. 오늘날 닥친 시련도 마찬가지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습격했다. 달갑잖게도 하루하루가 고비다. 다가선 태풍 진로가 불투명하단다. ‘망쿳’이 우리를 위협할지 모른다. 태국에서 아끼는 과일 이름이란다. 우리네 명절을 괴롭힐지 모른다. 물론 큰일은 생기지 않아야겠다. 하지만 아무리 대비해도 턱없다. 작던 구멍이 뜻밖에 커질 수 있다.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라”고 했다. “대신, 하던 일을 잘 해내라”고 했다. 우리 모두에게 빠짐없이 해당한다. 특히 공직자들이 곱씹을 만하다. onekor@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아버지를 감당 못한 저는 루저입니다…평생 죄를 반성하겠습니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아버지를 감당 못한 저는 루저입니다…평생 죄를 반성하겠습니다”

    ⑧ 함께 풀어야 하는 과제 <끝> 에필로그-김민준씨 항소심 최후 변론여기 아버지를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한 28세 청년이 있습니다. 13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아들 혼자서 돌보다 벌어진 비극입니다. 천륜을 저버린 범죄지요. 그가 저지른 일의 결과를 보면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기자는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청년을 향해 돌팔매를 던지는 일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절망으로 몇달 사이 백발이 된 어머니의 기막힌 사연을 듣고 하기 쉬운 손가락질이 온당한가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족은 살려고 노력한 죄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십수년 간병에 지쳐 본인은 우울증에 걸렸고, 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던 아들이 2년 전부터 간병을 도맡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똑똑해 줄곧 반장을 해 왔고, 과외 없이 명문대에 입학한 아들이었습니다. 간신히 오른손만 움직이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잘했습니다. 사건 전날도 부친을 업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막국수를 먹으러 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뇌출혈 후유증으로 5살 아이 수준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행동을 온전히 감당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루 4번, 알약 17개를 먹이면서 ‘먹기 싫다’고 떼쓰고 소리 지르는 아버지에게 순간 화가 치밀었는지 모릅니다. 이 청년은 결국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형이 줄거나 무죄가 선고될 확률은 희박합니다. 청년을 편들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지난 7월 이 청년이 항소심 최후 변론에서 고통스럽게 내뱉은 고백의 말을 함께 나누고 고민하고 싶습니다. 이를 끝으로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을 마무리 짓습니다. “우선 이런 나쁜 죄를 저질(울먹임)…정말 죄송합니다. 생활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서 저거(제 감정)를…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희의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이 안정되지 못해 늘 불안했습니다. 이겨 내지 못하고…제 아버지를 잘 보살피지 못한 점 너무 부끄럽고, 미안하고, 후회됩니다. 입이 열 개라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평생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겠습니다. 꼭 의사가 돼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도우며 사회의 일원으로 사람이 되겠습니다. 처음 사건 조사받으며 제 가족에게 생긴 일이 믿기지 않았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건 어쩌면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상황을 부정해서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조사 태도에 대해서도 늦었지만 사죄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자주 너무 슬펐습니다. 외로웠고,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침묵). 저 혼자서 버티기엔 버거웠고 비참했습니다. 가족과 함께하고 싶었던 일들이 가슴속에 가득했는데…눈앞에 처해 있는 제 상황들을 이겨 내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고통을 버텨야 했고 힘겹게 살아 냈어야 했습니다. 저는 결국 루저입니다. 제가 잘못한 점들은 변명의 여지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못난 모습을 보이고 큰 죄를 지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평생 사죄하고 반성해 반드시 이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가 지은 죄를 절대 잊지 않고 반성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018년 김민준(가명) 올림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살인 비극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는 침묵하지 말고 하루빨리 나서야”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간병살인 비극 더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는 침묵하지 말고 하루빨리 나서야”

    서울신문이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연재를 시작한 건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가족 간 살인과 자살이 점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 중 상당수는 ‘노노(老老) 간병’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노인 인구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한국은 지난해 고령 사회(65세 인구 비율 14% 이상)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만성 질환자도 늘었다. 보건복지부의 ‘2017 노인실태조사’에 의하면 만성 질환을 앓는 65세 이상 노인이 89.5%에 달했다. 노인 인구는 앞으로도 급속도로 증가해 2026년이면 초고령 사회(65세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노-노 간병 외에도 장애를 지녔거나 병에 걸린 환자의 가족들이 간병의 굴레 속에 고통받고 있다. 서울신문은 문제의 해법을 찾고자 전문가 5명을 본사로 초청, 해법을 모색해 봤다. 차흥봉(76)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형선(58)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신영석(57)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효영(41) 성북미르사랑데이케어센터장, 이성희(59) ‘마을살림 가족지원협회’ 대표가 참석했다. 유영규 탐사기획부장이 좌담을 진행했다.→‘간병살인’이나 ‘간병자살’이 일어나는 원인은. -차흥봉 전 장관(이하 차 전 장관) 거시적으로 보면 ‘인구학적 변화’와 ‘가족 부양 체계의 변화’ 때문이다. 사람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1980년 전체 인구의 3.9%에 불과했던 노인(65세 이상)은 지난해 14%로 급증했다. 당연히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도 늘었다. 또 1980년에는 약 85%의 노인이 자식과 함께 살았는데, 지금은 따로 사는 등 가족 부양 체계가 급변했다. 이런 이유로 노노 간병이 증가하고, 간병 고통에 시달리는 노인도 늘었다. -정형선 교수(이하 정 교수) 노인 인구 비중이 28%에 이르는 일본은 지역별로 고령 환자에 대한 간병 계획을 짜고, 서비스를 연결해 주는 등 아픈 환자와 가족간병인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반면 우리는 간병 부담을 대부분 환자 가족들에게만 떠넘긴다. 가족들의 고통이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신영석 연구위원(이하 신 연구위원) 최근 정부가 치매 의료비 90%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들고 나오는 등 간병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기 전 세밀한 실태 파악이 우선이다. 서울신문 탐사보도는 우리 사회의 암울한 간병 실태를 드러내고자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성희 대표(이하 이 대표) 현장에서 가족간병인을 만나면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매우 많다. 사회가 이들을 위해 하루빨리 나서야 할 때다. 미국은 만성 질환자들을 관찰하다 힘겨운 간병으로 보호자가 먼저 사망하는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가족간병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서울신문 보도를 계기로 우리도 이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서울신문 설문조사 결과 가족간병인의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었다. 이유는. -차 전 장관 서울신문의 분석처럼 간병 기간과 하루 간병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감이 상승한다. 치매 등 만성 질환자를 종일 돌보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 돌봄은 끝이 없지만 환자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여기서 오는 절망감도 우울증의 한 원인이 된다. -신 연구위원 가족이 환자들을 종일 돌본다는 건 경제적 능력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일 간병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간병인을 고용했을 것이다. 결국 경제력이 낮을수록 간병 시간이 길어지고 우울감도 높아진다. -이 대표 경제력과 별개로 꼭 가족이 환자를 돌봐야 한다는 인식도 간병인에게 족쇄가 된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주간보호시설로 모시는 게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무리해서 종일 환자를 돌보다 우울증을 앓는다. 이런 가족들을 설득해 주간보호시설을 이용하도록 하면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환자들은 시설에서 전문적인 케어를 받고, 가족들은 그 시간만큼 간병 부담이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지역사회의 돌봄 제도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좋다. -박효영 센터장(이하 박 센터장) 간병인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도 위험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치매를 부끄러운 질병으로 여기고 환자와 가족들이 스스로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울감이 증폭된다. 일본이나 네덜란드에는 ‘치매안심마을’이 있다. 치매를 노화의 한 과정으로 여기고 간병인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의 도움을 받으며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정 교수 결국은 간병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사회에서 적절하게 풀어 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간병 시간을 줄여 주는 요양시설과 요양보호사 등 간병 인력이 상당히 부족하다.→‘간병살인’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은. -정 교수 일본은 가족을 돌보다 폭행할 경우, 케어매니저(돌봄 전문가)가 곧바로 둘을 분리시킨다. 매뉴얼에 따라 환자를 쇼트스테이(단기보호시설)에 보내거나, 심각한 경우 보호자에게 요양시설 입소 등을 제안한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간병 스트레스가 극단적으로 분출되는 걸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이 대표 결국 폭력이 불행의 시작이다. 폭력이 습관화되고 극단적 사태로 치닫기 전 ‘고리’를 끊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케어매니저 시스템도 사실 지역사회에서 환자가 있는 가정을 살피고 돌봄에 참여하는 시스템이 잘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이런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차 전 장관 간병인에게 휴식을 주는 ‘레스핏 케어’가 필요하다. 레스핏 케어는 간병인들이 돌봄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 환자를 전문시설에 보내거나 간병인을 투입하는 제도다. 영국 등에 잘 구축돼 있다. 신체적·정서적으로 한계에 몰린 간병인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점점 단기 또는 주야간 보호시설이 늘고 있다. 이런 시설을 활용하면 충분히 제도 운용이 가능하다. -박 센터장 간병인들의 정신 건강을 위한 프로그램 지원도 늘어나야 한다. 간병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다른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간병을 해 보지 않으면 그 고통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소소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지 프로그램이나 자조모임을 진행하면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안타까운 것은 사회적 지원과 홍보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대표 남성간병인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남성간병인의 수치를 집계하는 데 우리나라는 없다. 그만큼 간병은 남자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고, 드러내서 말하길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간병의 어려움, 갈등을 털어놓는다거나 정보를 얻을 기회가 여성보다 적다. 실제 서울신문이 분석한 판결문을 보면 남성이 간병살인의 가해자인 경우가 약 74%다. 남성을 위한 간병교육 프로그램과 자조모임 등이 필요하다. -정 교수 나아가 우리 사회가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 왔다고 생각한다. 서울신문이 분석한 간병살인, 간병자살 사건의 상당수가 노노 간병에서 발생했다. 환자가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간병인마저 병에 걸렸을 때 간병살인 비극이 다수 발생했다. 환자들에게 괴로운 삶을 강요하기보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걸 생각해 봐야 한다. 어쩌면 죽음에 다다른 개인의 선택을 사회가 막으면서도 대안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개인에게 선택의 출구를 열어 주는 것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경제적 어려움이 간병살인의 기폭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원인과 해결책은. -정 교수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원을 활용해 저소득층 간병 비용을 줄여 주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국가 재정상 한계가 있다. 치매 환자가 있는 경우 가족의 경제활동에 제동이 걸려 생활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정부도 ‘치매국가책임제’ 공약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치매안심센터 설치 등 인프라 구축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치매환자 1인당 연간 2000만원 정도의 돌봄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전국 치매환자가 70만명에 달하니 14조원이 필요하단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한 해 편성되는 치매환자 관련 정부 예산은 모두 합쳐도 3000억원 정도다. -차 전 장관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극단에 몰려 자살이나 범죄 위험군에 있는 환자의 가정만 지원 대상으로 하면 재정적 부담을 덜 수 있다. 다만 제도를 새롭게 만드는 게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갑작스럽게 생계 곤란이나 위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생계·의료·주거지원 등을 해 주는 긴급복지지원제도 등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제도로 위태로운 환자의 가정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이 대표 저소득층의 경우 특히 경제적·육체적·정신적 고통이 복합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간병하는 것만도 벅차 복지 서비스를 직접 찾아 나서기에 어려움이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 이들에게 찾아가는 서비스가 중요하다. 지역 단위의 사회복지사 등이 방문을 통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도심권50+센터’는 건강 코디네이터 60여명을 생활고를 겪는 치매 가정에 파견하고 있다. 치매 가정의 다양한 어려움을 돌보고 환자들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인지교육을 실시한다. 이런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신 연구위원 이른바 ‘간병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평소에 아픈 사람을 돌봐 마일리지를 쌓고, 훗날 본인이 병들면 그만큼 간병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다. 경제적 부담 없이 간병을 받을 수 있고, 가족도 간병 부담을 덜 수 있다. 마일리지가 남는다면 현금으로 돌려받으면 된다. -정 교수 현재 경로당 등에서 제한적으로 ‘노노 케어 마일리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를 신 연구위원의 말처럼 더 많은 사람에게 적용하면 좋겠다. 저소득층에게 특히 도움 될 것이다.→주요 선진국들은 가족간병 해법으로 ‘커뮤니티 케어’를 거론한다.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집과 지역사회가 환자를 돌보는 개념이다. 이에 대한 생각은. -이 대표 앞서 이야기 한 해외 제도 대부분이 커뮤니티 케어에 기반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직접 찾아 복지 시스템과 연결해 주는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어 가능하다. 결국 해답은 커뮤니티 케어가 가능한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차 전 장관 일본의 커뮤니티 케어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05년부터 시·군·구에 주민을 위한 약 4300개의 ‘지역포괄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이 센터의 케어매니저들은 도움이 필요한 환자와 가족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단기보호시설이나 간병인, 요양원 등 환자 상태에 맞는 돌봄 제도를 지원한다. -정 교수 환자들이 집이나 지역사회에 머물면서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려면 주간보호, 단기보호, 방문요양·간호 서비스 등 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이런 지원 체계를 제대로 갖추는 게 필수 조건이다. -차 전 장관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는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민간단체가 운영한다. 우리도 전국에 많은 복지기관과 시설, 인력이 있지만 제각각이라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지역포괄지원센터처럼 제도를 통일하고 산재한 민간단체에 가족간병 지원 역할을 맡겨야 한다. 또 일본과 마찬가지로 일정 경력을 갖춘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등을 국가자격시험을 통해 케어매니저로 흡수해야 한다. 체계적인 요양서비스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케어매니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환자들에게 효율적인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박 센터장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 한 환자와 가족이 완전히 분리돼 지내는 건 환자의 증상 개선에도 좋지 않다. 주간보호센터에 치매 환자를 보내면서 돌봄 프로그램에 동참하는 보호자들이 있다. 이렇게 가족이 관심을 두면 환자의 심리 상태가 안정되고 증세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족과 사회 모두 돌봄에 참여하는 커뮤니티 케어가 환자들에게도 이상적이다. -신 연구위원 하지만 현재 정부가 하겠다는 커뮤니티 케어의 목적이 불분명해 보인다. 유럽이 커뮤니티 케어를 시작한 건 의료서비스를 지역사회로 일부 옮겨 재정 부담을 덜려는 목적이었다. 반면 일본은 환자를 보살피는 복지적인 측면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발전시키고 있다. 우리나라에 적합한 방향과 발전상부터 명확하게 해야 한다.→요양보호시설과 요양보호사 제도의 문제점과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정 교수 요양원 등 요양시설의 경우 의사가 상근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의 서비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된 것처럼 요양시설 서비스가 엉망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환자들이 그곳에 있기를 거부하고,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도 괴롭다. 그래서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는 만성 질환자가 2~3배의 비용을 더 지불하고 요양병원에 장기로 입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 대표 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노인요양시설은 2016년 기준 3137개로 전년 대비 202개 늘어나는 등 증가 추세다. 문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가족들이 믿고 맡길 곳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장까지 그만두고 간병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시설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 교수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은 요양병원과 요양원의 중간시스템인 개호노인보건시설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 시설엔 입원 환자 100명당 의사 1명, 간호사 2명을 둔다. 만성 질환자임에도 어쩔 수 없이 요양병원에 머물렀거나 요양원에서 질 낮은 서비스를 받던 환자들을 개호노인보건시설이 흡수한다. 치매나 뇌졸중 등으로 치료가 필요하면서도 집에서 돌보기 어려워 요양이 필요한 환자들이 의료·복지 서비스를 복합적으로 받을 수 있다. -신 연구위원 우리나라도 개노인보건시설과 유사한 시설로 보훈시설이 있다. 전국 5개의 보훈병원 인근에 보훈시설이 있다. 병원에서 급성기 치료가 끝나면 시설로 이동시켜 의료 서비스를 받으면서 요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모델을 확대해봄 직하다. -이 대표 요양보호사도 질은 낮고 숫자는 부족하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150만명이 넘지만 실제 활동하는 사람은 30만~35만명 수준이다. 만성 질환자들을 돌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게다가 활동한 지 1년 된 요양보호사나 10년 된 사람이나 제공하는 서비스 질이 큰 차이가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는 열악하기 때문이다. -박 센터장 처우 개선과 함께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직무교육만 받으면 손쉽게 취득할 수 있다. 진입 장벽을 높여 전문성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환자 보호자들도 전문성이 없는 요양보호사에게 가족을 맡기는 것을 불안해한다. -차 전 장관 교육과 함께 시험을 치르도록 자격증 제도를 손질하면 좋겠다. 일본은 동남아시아 등에서 1만명의 간병 인력을 데려오겠다고 하지만, 그러면 서비스 질이 낮아질 수 있다. 우리는 현행 제도를 발전시키는 쪽으로 고민하는 것이 좋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탐사기획부 -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춤이 좋으니까요”…다리 잃고도 꿈 포기 않은 소녀

    “춤이 좋으니까요”…다리 잃고도 꿈 포기 않은 소녀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은 후에도 춤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은 12세 소녀의 사연이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에 사는 12세 소녀 딜라니 엉거는 2년 전인 2016년 갑작스런 다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딜라니의 병명은 골육종(osteosarcoma). 소아와 청소년기에 발생하는 골종양 중 가장 흔한 종류로, 뼈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이다. 당시 10살이었던 딜라니는 암세포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평생 안고가야 할 장애만큼이나 어린 딜라니를 고통스럽게 한 것은 춤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3살 때부터 춤에 소질을 보여 온 딜라니의 꿈은 프로 댄서가 되는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량을 자랑했던 딜라니는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 후 다시는 춤을 추게 되지 못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고작 10살이 갓 넘은 딜라니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꿈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의료진의 헌신적이고 실험적인 치료 덕분이었다. 의료진이 선택한 ‘회전 성형술’은 절단한 다리 부분을 거꾸로 돌려 이식, 무릎 관절 대신 발목 관절을 이용해 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수술이다. 이 수술을 한 뒤 의족을 착용하면 무릎 아래를 완전히 절단한 것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딜라니는 이 시술을 통해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한 번 ‘프로 춤꾼’의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모든 수술이 끝난 뒤 의족을 착용하기 시작한 딜라니는 이미 일주일에 5번 댄스 수업에 참여할 정도로 일상을 회복했다. 딜라니는 어린이 암환자를 위한 기금모금 행사인 ‘큐어페스트’(CureFest) 행사에 솔로 댄서로 초청받는 등 자신의 꿈을 향해 매 순간, 한 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숨바꼭질’ 송창의, 결혼식날 신부 아닌 이유리와 키스 “충격 엔딩”

    ‘숨바꼭질’ 송창의, 결혼식날 신부 아닌 이유리와 키스 “충격 엔딩”

    ‘숨바꼭질’이 이유리와 송창의의 파격 키스신 엔딩으로 안방극장을 제대로 사로잡았다. 지난 25일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배우들의 완벽한 캐릭터 싱크로율과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최강의 몰입도,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폭풍 전개로 안방극장의 시선을 단 번에 사로잡은 MBC 주말특별기획 ‘숨바꼭질’(극본 설경은, 연출 신용휘, 제작 네오엔터테인먼트)이 방송 2주 만에 역대급 레전드 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했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캐릭터와 더욱 완벽하게 동화된 배우들의 존재감과 몰입감을 높이는 파격 전개가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 그 가운데 지난 8일(토)에 방송된 ‘숨바꼭질’은 드라마 역사상 길이 남을 역대급 파격 키스신 엔딩이 안방극장을 초토화시켰다. 결혼식 당일, 송창의가 신부인 엄현경이 아닌 이유리와 거침없는 키스신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기 때문. 회사를 지키기 위해 태산그룹의 후계자 문재상(김영민)과 어쩔 수 없이 정략결혼을 해야만 했던 민채린(이유리)에게는 고난과 시련의 결혼생활이 시작됐다. 시아버지인 태산그룹의 회장 문태산은 계속해서 메이크퍼시픽을 인수하기 위해 은밀하게 음모를 세워 압박했고, 요리클래스에서는 자신을 따돌리며 막말을 퍼붓는 다른 재벌 며느리들과 격렬한 육탄전을 벌였다. 게다가 나해금(정혜선)은 진짜 손녀딸 수아가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채린의 모든 물건을 태운 것도 모자라 문전박대까지 하기도. 이 모든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그녀가 대용품에 불과하다는 것까지 알게 된 차은혁(송창의)은 채린이 위험에 빠진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해 구해냈고, 서로의 약점을 쥐고 있던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한편 하연주(엄현경)는 우연히 가게 된 해란(조미령)의 집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을 느끼고, 해란 역시 연주에게 왠지 모를 친밀한 감정을 갖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호기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에 은혁과의 결혼을 손수 준비하면서 설렘에 들떠있던 연주는 결혼식 당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누군가의 손을 잡아 끌고 비상구로 향하던 은혁을 발견하고 쫓아간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바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한 남자 은혁이 누군가에게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 이처럼 채린과 은혁의 예상치 못한 파격 키스신과 이를 발견한 연주의 충격과 절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끝난 ‘숨바꼭질’은 역대급 엔딩 장면을 완성해내며 다음 주 방송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을 수직 상승시켰다. 무엇보다 한 시라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피디한 전개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예측불가 스토리는 안방극장을 점령하기에 충분했다. 방송 시작 단 2주 만에 2번의 결혼식 장면에 이어 엇갈린 러브라인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박력 넘치는 키스신은 역대급 레전드 드라마의 탄생을 알리며 많은 시청자들을 ‘숨바꼭질’의 매력에 단 숨에 빠지게 만들었다. 때문에 이제 막 출발점을 지난 ‘숨바꼭질’이 앞으로는 또 어떤 스토리로 시청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지, 이유리와 송창의, 엄현경, 그리고 김영민까지 이들에게는 또 어떤 앞날이 펼쳐지게 될지 벌써부터 그 결말에 귀추가 주목된다. 방송 단 2주 만에 안방극장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MBC 주말특별기획 ‘숨바꼭질’은 지난 방송에서 3.9%, 7.0%, 6.8%, 8.7%로 첫 방송보다 상승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청률 퀸 이유리의 흥행 마법에 시동을 걸었다. 매주 토요일 밤 8시 45분부터 4회가 연속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자살 원인 밝히는 심리부검 정부 차원 사례 분석 등 필요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자살 원인 밝히는 심리부검 정부 차원 사례 분석 등 필요

    이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선 일본은 10여년 전부터 스트레스로 인한 간병 살인 및 자살 통계를 집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가족 간병 고통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정부 차원의 사례 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자살 예방 차원에서 중앙심리부검센터를 통해 2015~2017년 발생한 자살 사건 중 유족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온 289건에 대해 ‘심리부검’을 실시했다. 심리부검은 자살자의 유서나 유족, 동료와의 면담 등을 통해 자살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다.서울신문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도움을 받아 이 중 가족 간병에 따른 스트레스가 원인인 것으로 유추되는 5건을 찾아낼 수 있었고 ‘간병자살’의 흔적이 엿보이는 2건을 제공받았다. “힘들어서 먼저 갑니다.” 2016년 4월 강원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이진승(당시 47·가명)씨는 이런 쪽지를 남긴 채 목을 맸다. 이씨 아버지는 치매와 조현병을 앓고 있었다. 어머니가 소일거리를 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맏아들인 이씨도 과거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별다른 직업이 없어 어머니에게 의존했다. 이씨는 그런 자신을 싫어했다. 종종 “엄마와 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살아서 뭐하냐”며 자책했다. “아버지보다 먼저 가겠다”는 말도 자주 했다고 한다. 동생들이 찾아와도 식사만 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등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이씨가 집에 보탬이 되기보다는 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홀로 아버지를 돌보고 경제적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감이 스트레스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사인을 분석했다. 2014년 강원도에서 음독자살한 윤성택(당시 67·가명)씨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딸의 상태를 비관했다. 딸이 종종 이상행동을 하면 “쟤는 틀렸다”며 절망했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절어 있는 일이 많았고 심각한 불면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우울증으로 입원치료도 받았다. “정신병자가 무슨 사람들을 만나느냐”며 자기 혐오감을 드러냈다. 3년 전부터 죽겠다며 유서를 써놨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만성 정신질환자의 가족이 겪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며 가족의 정신 건강 역시 손상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사건”이라면서 “환자가 원하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하는 현재의 정신건강 서비스 지원 체계도 전반적으로 수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탐사기획부 유영규 부장, 임주형·이성원·신융아·이혜리 기자
  • 인류에게 닥친 위협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인류에게 닥친 위협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유발 하라리 지음/전병근 옮김/김영사/560쪽/2만 2000원 전 세계 50개국에서 8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독자의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작가다. 아마도 그가 다루는 주제가 ‘빅 히스토리’(거대담론)여서일 것이다. 오랜 기간, 폭넓은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려면 굵직한 주제만 남기고 세부적인 이야기는 생략할 수밖에 없다. 책으로 비유하면 ‘목차+요약판’ 같은 느낌이랄까. 그러나 방대한 분량의 정보가 매일 쏟아지는 시대다.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공부하려면 사실상 온 인생을 바쳐도 어렵다. 이럴 때는 그의 책이 요긴하다. 굵직한 주제를 핵심만 요약해 엮어내는 그의 솜씨를 따라갈 이가 드물기 때문이다. ●사피엔스·호모 데우스에 이은 신작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도 그의 특기는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인류가 당면한 굵직한 주제들을 던지고, 어떻게 대처할지 우리에게 묻는다. 앞서 저자는 보잘것없던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됐는지 설명한 ‘사피엔스’로 과거를 조망했다. 두 번째 책 ‘호모 데우스’에서는 기술혁명, 생명혁명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미래에 신이 될 수 있을지 추측했다. 과거와 미래를 거쳐 이번 책이 향하는 시점은 바로 ‘현재’다. 21개 주제는 5부로 엮었다. 1부 ‘기술적 도전’은 ‘환멸’ ‘일’ ‘자유’ ‘평등’을, 2부 ‘정치적 도전’은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을 다룬다. 3부 ‘절망과 희망’의 테마는 ‘테러리즘’ ‘전쟁’ ‘겸허’ ‘신’ ‘세속주의’다. 4부 ‘진실’에서는 ‘무지’ ‘정의’ ‘포스트-트루스’ ‘과학 소설’을, 5부 ‘회복력’은 ‘교육’ ‘의미’ ‘명상’으로 구성됐다.●인공지능·빈부 갈등 등 굵직한 주제들 21개 주제는 하나하나가 굵직하다. 저자는 이 주제들을 통해 인류가 당면할 위협과 위험을 집중 조명한다.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외려 인류를 새로운 도전과 위협에 직면하게 했다. 인공 지능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킬 수 있지만,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 생명기술의 혁명적 발전에 따라 인간의 수명은 연장되지만, 빈부 갈등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기후 변화와 핵전쟁은 인간의 미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민족과 종교, 인종주의에 갇혀 반목한다. 21개의 주제는 마치 독립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대로 연결해 서사적으로 구성한다. 예컨대 3부의 경우 ‘테러리즘→전쟁→겸손→신→세속주의’로 이어진다. 저자는 우선 인류가 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테러리즘을 왜 두려워하는지 설명하고, 테러리즘이 핵무장으로 번질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런 핵무장이 전쟁으로 이어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 저자는 이런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해법으로 ‘겸손’을 든다. 이 겸손은 신을 향한 겸손함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도덕적 삶을 살기 위해 반드시 신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 이런 질문에 관한 답은 세속주의에 대한 필요성으로 연결된다. 테러리즘으로 시작한 설명이 인류사의 전쟁을 훑고, 신을 넘어 다시 인간에게 돌아오는 셈이다. 독립된 듯 보이는 주제를 설명하고 비판하고 답을 추구하는 이런 방식의 서술은 그야말로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감탄스럽다. 특히 앞선 2권의 저작과 연결하면 인류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연결된 21개 주제의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면 최종 주제인 명상에 이른다. 인류 조상인 사피엔스부터 시작한 여정이 결국 나 자신에 이른다는 점에서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사실상 하나로 묶이는 셈이다. ●읽는 내내 해결책을 고민하게 하는 책 저자는 앞서 2권의 책을 통해 박학다식, 참신한 해석, 도발적 문제제기를 보여줬다. 이 책들에 매료됐던 이들이라면 이번 책도 만족할 것이다. 다만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예고하건대, 저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지는 않는다. 개별 주제들은 전 세계 석학들이 했던 이야기가 사실상 태반이다. 주제별로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분야별로 다른 책을 읽는 게 낫다. 무엇보다 큰 주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세부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힘이 떨어진다. 따라서 읽는 내내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역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들이 무엇인지 전반적으로 생각해보고, 해결책을 고민하게 하는 게 바로 이 책의 매력인 셈이다. 500여쪽에 이르는 책은 ‘현재’라는 과목의 한 학기 인문학 강의를 통째 수록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이런 저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는 순간 결국 유발 하라리의 식견과 통찰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쌍용차 해고자의 가족도 ‘이런 해고’의 피해자입니다

    쌍용차 해고자의 가족도 ‘이런 해고’의 피해자입니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은지 올해로 9년이 흘렀지만, 많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여전히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경찰이 제기한 수십억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는 지금도 생계가 막연한 해고노동자들을 더욱 궁지로 내몰고 있다. 그의 가족들 역시 절망감이 깊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해고노동자의 가족들도 국가와 사회에 의해 버림 받은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의 삶은 조금씩 파괴되고 있었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연구팀은 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복직자, 그리고 이들의 배우자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현장에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이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나요’라는 글자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앞서 2009년 쌍용차의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 상태, 해고자의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고립 등을 조사한 연구는 있었지만 이들의 가족, 특히 배우자의 건강과 차별 경험 등을 연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최종적으로 해고자의 배우자 28명과 복직자의 배우자 38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했다. ‘지난 1년 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이 질문에 답한 해고자 배우자(25명) 중 절반에 가까운 48.0%(12명)가 ‘있다’고 답했다. 같은 나이대의 일반 여성(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일반 여성)과 비교했을 때 8배 이상 높은 숫자였다. 같은 문항에 응답한 복직자 배우자(34명) 중에서도 일반 여성보다 약 3배 높은 비율인 20.6%(7명)가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일반 여성보다 자살을 생각한 정도가 많다’ 정도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현실을 생각해야 한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의 일반 여성보다 적게는 3배, 많게는 8배 이상 높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지난 1주일 간 우울 증상’ 유무를 묻는 질문에서도 해고자 배우자(23명) 중 82.6%(19명)가 ‘우울 증상이 있다’고 밝혔다. 응답 비율이 일반 인구의 약 8배에 달했다. 같은 질문에 답한 복직자 배우자(31명) 중에서도 절반 가량(48.4%·15명)이 ‘있다’고 응답했다. 역시 일반 인구의 응답 비율보다 5배 이상 높았다. 특히 해고자 배우자의 경우에는 해고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고 있었다. ‘(남편의)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는 질문에 해고자 배우자(24명)의 70.8%(17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남편의) 해고로 인해 내가 남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거나 행동하게 될까봐 전처럼 사람들과 잘 사귀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도 45.8%(11명)에 달했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고 응답한 비율도 45.8%(11명)였다. 김 교수는 “정리해고가 사회적 낙인이 되면서 해고자와 그의 가족들이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고 소외되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런 낙인은 사회적 차별로 이어졌다. ‘2009년 이후 남편이 정리해고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겪었는지’를 물은 질문에, 해고자 배우자(22명)와 복직자 배우자(32명) 모두 ‘그렇다’는 응답(각각 54.6%(12명), 62.5%(20명))이 더 많았다. 주로 직장과 동네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한다. 심리치유센터 ‘와락’의 권지영 대표는 “정리해고로 남편이 해고당한 이후 경제활동을 시작한 아내들이 식당, 어린이집, 작은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일터에서 ‘해고자들이 이기적이었다’, ‘해고자들이 잘못했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고 전했다. 2009년 당시 회사의 정리해고에 맞서 해고자들이 경기 평택공장에서 파업을 하는 동안, 회사는 ‘살아 남은’ 노동자들을 동원해 데모를 일으켰다. 김 교수는 해고자 배우자들이 “얼마 전까지 남편의 동료였던, 가족 간 모임도 같이 했던 남편의 동료들이 육두문자를 날리는 경험들, 오히려 경찰이나 국가가 자신들을 힘들게 하는 경험은 견딜 수 있었지만 같은 처지를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폭력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고 말했다. 결국 해고노동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해고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 국가폭력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김 교수는 9년 전 쌍용차의 정리해고에 우리가 계속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대단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부당하게 해고당했으니 돌아가겠다는 겁니다. 한국 사회에서 향후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기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정리해고는 한국 사회에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남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겪은 고통이 우리의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는 기업이 아니라 해고당하는 가족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해고로 인한 고통을 온전히 감내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입안자의 책무이자 역할이다. 정리해고가 노동자 삶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쌍용차 해고자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를 지냈던 이정아씨는 눈물로 호소했다. “이 10년에 가까운 시간에 저희가 겪었던 일들, 감정들, 기억들. 이런 것들은 누가 보상해 주는 건가요. 저는 묻고 싶어요. 그냥 퉁 치고 지나가면 되는 일들인가, 그 10년의 시간들은 그냥 없었던 것처럼 지금 잘 지내는 것처럼 넘어가도 되는 건지. 경찰에게, 이명박에게, 권력자들에게, 국가에게 똑똑히 묻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앞서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009년 8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경찰의 강제진압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승인으로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진행된 해고자들의 옥쇄파업은 테이저건, 다목적발사기, 헬기, 기중기 등의 장비를 사용한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종결됐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중산층이 사라지고 난 후…

    중산층이 사라지고 난 후…

    순수한듯, 자극적이며 중독적인 필력 죽음 향해 살아가기 급급한 인간의 삶 승자·패자 양극화된 이분법 세상 그려아내가 임신할 무렵 두 집 살림을 차린 대기업 회장의 아들, 시아버지와 남편을 제치고 기업을 손에 넣겠다고 마음먹은 금수저 며느리, 기업 회장 아들과 사귀며 화려한 ‘톱’의 세계를 꿈꾸게 된 평범한 젊은 여성. 김사과(34) 작가가 2013년 ‘천국에서’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장편 ‘뉴(N.E.W.)’(문학과지성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막장 드라마’에서 본 듯 익숙하다. 작가는 부와 권력을 좇는 그들의 욕망보다 그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춘다.소설은 대기업 오손그룹을 이끄는 정대철 회장 일가 사람들과 우연히 이들과 얽히게 된 젊은 여성의 이야기다. 아버지인 정 회장의 카리스마에 눌려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지용은 겉은 멀쩡하지만 어쩐지 의뭉스럽다. 학벌과 미모, 집안 등 삼박자를 고루 갖춘 최영주는 정지용과 정략결혼을 하지만 이내 자신 앞에 놓인 절망적인 삶에 괴로워한다. 두 사람이 신혼집을 마련한 아파트에 우연히 입주한 이하나는 정지용의 유혹에 이끌려 그의 내연녀가 되고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중독된다. 미국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작 ‘천국에서’를 통해 몰락하는 중산층의 삶을 묘사하고 난 뒤, 정말로 중산층이 사라져버리고 나면 남는 풍경은 어떨지 궁금했다”면서 “승자와 패자, 먹는 자와 먹히는 자로 양극화된, 흑과 백의 완벽한 이분법의 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집필 계기를 설명했다. ‘200평짜리 최고급 펜트하우스’에 사는 상류계층과 ‘5평짜리 서민용 원룸’에 사는 하류계층의 배경과 특징은 다르지만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극단적으로 순응한다는 점에서 같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곤경에 처해 있지만 곤경의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기보다는 그저 가능한 한 빨리, 스마트하게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데 몰두한다”면서 “그 수단으로서 하는 행동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유령처럼 보일 수도 있을 만큼 괴상한 방식이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나가려는 젊은 세대의 모습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그려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불륜 치정극이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듯하다가 후반부에서 작가 특유의 파괴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정지용은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자신을 위해 제발 죽어 달라고 호소한다. 최영주는 지용의 후계자인 아이를 제 손으로 죽이고, 아이 잃은 슬픔을 태연하게 연기한다. 정지용에게 삶을 송두리째 ‘잡아먹힌’ 이하나의 왼쪽 팔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잘린다. 돈과 물질에 집착하는 시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를 꼬집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그보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간 종족은 대체로 비이성적이고, 공격적이며, 단기적인 사고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따라서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듯 세상이 점점 더 나아진다는 개념은 사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느낍니다. 그저 죽음을 향해 매일매일을 살아가기에 급급할 뿐이죠.” 세상을 향한 분노를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가 특유의 형식 실험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편하게 술술 읽히지만 현 세태를 조명하는 날카로운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여러 가지 심각한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소설을 읽는 것이 순수한 즐거움, 순도 높은 쾌락에 가깝기를 바랍니다. 텔레비전, 극장, 스마트폰이 줄 수 없는 복잡하고 세련된 수준의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경험으로서의 독서를 제공하는 것이 저의 작가로서의 야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욕하고 때리는 치매 10년…아들은 수면제를 탔다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욕하고 때리는 치매 10년…아들은 수면제를 탔다

    잠든 어머니 코·입 막은 40대 양성준씨“저 도둑년이 우리 집 살림을 거덜 내려고 하네. 나가, 이년아.” 양성준(47·가명)씨가 출근한 뒤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상황이 급하다는 간병인의 전화를 받고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오자 어머니(당시 67세)는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며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간병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들을 본 어머니는 그제야 안심이 된 듯 누그러졌지만 간병인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며 그 길로 짐을 쌌다. 또 일주일을 못 견뎠다. 2001년 환갑도 안 돼 뇌경색으로 쓰러진 어머니 몸에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찾아왔다. 거동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폭행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바뀌었다. 어머니의 정신은 필라멘트가 다한 전구 같았다. 처음에는 한두 번 깜빡거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빛을 잃다가 나중에는 아주 가끔 불이 들어오는 듯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동네 주민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쳤다. 행동은 점점 과격해졌다. TV부터 전기밥솥, 전화기까지 살림은 남아나는 게 없었다. 자식들도 알아보지 못하고 도둑이라며 욕설을 퍼붓던 어머니는 잠깐이나마 기억이 돌아오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때문에 네 동생이 힘들어. 죽고 싶어도 그것조차 쉽지 않구나.” 그도 잠시, 딸이 “그런 말 말고 건강하세요”라고 하면 또다시 욕설을 퍼부으며 돌변했다. 우울한 암전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2007년 아버지마저 간암으로 사망하자 간병은 오롯이 양씨의 몫이 됐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암 투병 사실마저 숨겼던 아버지는 “네 엄마와 함께 가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꼭 요양원에 모셔라”고 당부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들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최대한 바깥일을 줄이고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는 시간을 늘렸다. 하지만 양씨가 없으면 꼭 사달이 났다. 어머니는 혼자 집 밖으로 나가 길을 잃어버렸다. 같은 신고가 반복되자 경찰들도 짜증스러워했다. 양씨가 종일 동네를 찾아 헤매다 보면 어머니는 길가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밖에서 문을 잠그고 출근을 하면 어머니는 몇 시간씩 괴성을 질렀다. 주민들의 원성은 더 커졌다.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셨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다른 환자를 슬리퍼로 때리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반복해 하루 만에 다시 집으로 모셔 와야 했다. 다른 병원에서는 어머니의 팔다리를 침대에 묶어 놓았다. 이런 어머니가 안쓰러웠던 양씨는 잘 때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자며 묶은 끈을 풀어드리고 병원에서 함께 밤을 새우고 출근하곤 했다. 잘되던 입시학원까지 접고 어머니를 돌봤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카드빚이 늘어났다. 끝을 알 수 없는 간병에 양씨도 지치기 시작했고, 고립감, 우울, 절망이 숨통을 조였다. 무엇보다 완전히 딴사람이 된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아들 앞에서는 옷도 갈아입지 않을 정도로 흐트러짐 없던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후 혼자서는 입지도, 먹지도, 볼일을 볼 수조차 없는 지경이 됐다. 식사도 거부한 채 움직이지 못하는 다리로 병원 현관에 기어나와 매일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몸무게가 15㎏이나 빠져 이미 산송장 같은 모습이었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에게 주사로 영양분을 억지로 공급했다. 양씨가 올 때마다 어머니는 “제발 나가게만 해줘”라고 매달렸다. ‘짜르르 짜르르….’ 매미가 자지러지게 울던 2011년 8월 초, 휴가철이니 바람이라도 쐬어 드리고 싶다며 병원에 외박 신청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다섯 번째 병원. 옮긴 지 한 달 반 만이었다. 집에 오신 어머니는 아들이 주는 죽과 과일을 맛있게 드셨다. “어머니가 음식을 드시지 못하는 게 아니었어.” 양씨가 흐느꼈다. 어머니는 양씨가 건넨 수면제 다섯 알을 먹고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어머니 옆에 몇 시간이나 있었을까. 날이 밝아오는 것을 본 양씨는 테이프로 어머니의 입과 코를 막고는 어머니 품에 가만히 머리를 묻었다. ‘어머니 편하게 해드리고 저도 따라갈게요.’ 간병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었다. 자살에 실패한 양씨는 사흘 뒤 경찰에 자수했다. 양씨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서 어머니를 정성껏 모시던 걸 봐왔던 이웃주민들이 먼저 나서 법원에 선처를 호소했다. 법원은 양씨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당시 양씨와 같은 구치소에 있던 수감자로부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 듣고는 양씨의 사건을 맡게 된 변호사는 “아들은 구치소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죄인이라 할 말이 없다며 스스로를 변호하려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양씨는 2016년 출소했다. 서울신문은 양씨를 직접 만나려고 수소문했으나 연락을 끊은 채 살아가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양씨의 이야기는 변호사와 경찰, 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 재구성했다.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의심과 망상, 그리고 폭력성은 치매 간병의 또 다른 고통이다. 이는 치매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안겨 준다. 환자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 때문에 늘 긴장하게 되고, 간병 기간이 길어지면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간병인은 치매 환자의 폭언과 폭행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이 같은 폭력성은 간병인으로 하여금 우발적 살인이나 자살 충동을 부추기기도 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외 3명이 2016년 발표한 ‘치매노인의 증상 정도가 부양자의 자살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치매 환자의 증상이 심해질수록 가족 관계가 악화될 뿐만 아니라 부양자의 자살 생각도 심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병 범죄의 절반 이상이 치매 환자 가정에서 일어난다. 서울신문이 2006년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간병살인 108건을 분석한 결과 절반 이상(53.7%)이 치매 환자를 간병하면서 일어났다. 33.3%(36건)는 평소 피해자가 자신을 돌봐온 가해자에게 폭력이나 언어폭력을 행사한 정황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가 근거 없이 엄마의 외도를 의심하실 때 그게 치매 초기라는 걸 미리 알았어야 했어요. 좀더 일찍 대처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후회스럽죠.” 아버지의 치매 증상으로 쓰라린 경험을 한 정진규(48·가명)씨는 기자와 만나 아픈 기억을 털어놓았다. 정씨의 어머니 이옥자(75·가명)씨는 2011년 11월 남편의 머리를 변압기로 내려쳐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됐다. 남편의 의심과 폭력이 날로 심해지더니 급기야 추석 때 온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네 엄마가 다른 남자와 놀아난다”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것이다. 이씨가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자 병원까지 찾아가 소동을 일으켰다. 폭력적인 치매 남편과 사는 건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그러다 한순간에 폭발했다. 법정에 선 이씨는 “나는 이렇게 힘든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치가 떨리게 미웠다”며 흐느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은 이씨에게 살해의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남편을 헌신적으로 병수발해 온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건 이후 법원과 병원의 권유에 따라 정씨와 형제들은 아버지를 국립요양원으로 모셨다.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는 어머니는 서둘러 병원에 모시고 가 약을 복용하며 관리하고 있다. “치매가 의심되면 무조건 검사를 받고 약을 드시도록 하는 게 첫 번째예요. 증상이 심해지면 요양원에 모시든 요양보호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으세요. 가족이 직접 모셔야 자식 노릇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그게 최선이 아닐 수 있어요. 우리 가족이 혹독한 경험을 치르고서야 깨달은 거예요. 지금 두 분은 행복하세요.” 글 사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브라질 ‘인류 유산’ 화마가 삼켰다… 유물 2000만점 잿더미 위기

    브라질 ‘인류 유산’ 화마가 삼켰다… 유물 2000만점 잿더미 위기

    소화전 고장 호수 물 퍼날라 초기진화 실패 여성 해골 ‘루치아’ 등 상당수 소실된 듯 테메르 대통령 “비통한 날”… 각계 ‘절망’“브라질 국민에게 비극적인 날”,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 브라질의 국보급 문화재가 소장된 200년 역사의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이 2일(현지시간)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불탔다. 인류 유산으로 꼽히는 소장 문화재 상당수가 소실됐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브라질 각계에서 절망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영국 BBC방송, AP통신 등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여성 해골 ‘루치아’ 등 2000만점에 달하는 소장 유물의 상당수가 소실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화재는 박물관 관람 시간이 종료된 오후 7시 30분 시작됐으며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브라질 정부는 3일 현재까지도 피해 상황을 공식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크리스티아나 세레주 부관장은 “남미에서 가장 큰 자연사 박물관이자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브라질의 과학과 역사, 문화 소장품들이 이곳에 있다”고 말했다. 올해 200주년 기념 행사도 연 리우데자네이루 국립박물관은 1818년 건립됐으며 포르투갈 왕족들이 거처하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1만 2000년 전의 인류 해골부터 미이라, 화석, 운석 등 자연사적 연구 가치가 높은 유물부터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돔 페드로 1세의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예술품 등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인류 유산들이 보관돼 있다. 리우 소방청은 초기 화재 진압에도 실패해 국립박물관이 불타는 걸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주변 소화전들이 작동하지 않아 주변 호숫가에서 물을 길어 진화에 나섰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트위터에 “200년 넘은 브라질의 지식과 연구 성과, 작품들을 잃게 됐다”며 “브라질 국민에게 비통한 날!”이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국립박물관 측은 테메르 정부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긴축 정책으로 과학·문화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박물관이 황폐해졌다는 울분을 쏟아냈다. 또 다른 부관장인 루이스 두아르테는 현지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수년 동안 우리는 지금 파괴돼 버린 이 유산들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싸워 왔다. 이제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박물관이 최근 브라질개발은행(BNDES)과 계약을 맺고 화재 예방 예산을 마련했다는 사실도 드러나면서 “끔찍한 아이러니”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브라질의 역사와 문화가 통째로 ‘재’가 됐다는 통탄이 쏟아지고 있다.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베르나드 벨루 프랑쿠는 이날 “이 비극은 국가 자살 행위로 과거와 미래 세대에 대한 범죄”라고 탄식했다. BBC방송은 “브라질 국민들은 불에 탄 국립박물관 사태를 치솟는 범죄율과 폭력, 경제 쇠퇴, 정치적 부패 등 브라질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