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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행정의 달인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2) 문화관광분야

    [지방행정의 달인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 (2) 문화관광분야

    천문대와 박물관을 활용한 지역관광 마케팅의 대가, 문화 불모지에 문화의 향기를 전파하는 공연기획자, 아름다운 섬 속 자연자원 발굴 및 보전의 파수꾼. 제2회 지방행정의 달인으로 꼽힌 22명 중 문화관광 분야 달인들의 면면이다. 열정과 헌신으로 똘똘 뭉친 이런 공직자들이 있기에 지역은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오는 16일에는 농업분야 4명의 달인들을 소개한다. ■이형수 강원 영월군 도시디자인과장 국내 첫 ‘시민 천문대’ 건립… 관광 영월 자리매김 수훈 갑 강원 영월군 도시디자인과 이형수(56·지방행정5급) 과장은 폐광지 영월을 ‘박물관의 고장’으로 탈바꿈시킨 신지식 공무원이다. 이 과장은 정부 산하 연구용 천문대와 달리 누구나 이용 가능한 시민 천문대인 별마로천문대를 비롯해 지역 특성을 살린 박물관과 과학관 등 10개의 문화시설을 직접 기획하고 건립했다. 영월이 민간 박물관까지 포함해 모두 19개 박물관을 갖추고 문화관광도시로 변신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내년까지 10여개의 박물관이 추가로 건립되거나 구상되고 있어 시너지 효과는 더 커질 전망이다. 2001년 별마로천문대가 건립되고 10년동안 해마다 10만여명의 관람객이 찾는 등 영월 박물관을 찾는 유료 관람객만 연간 150만여명에 이르고 있다. 군민이 4만여명이니 박물관 관람객만 주민의 38배나 되는 셈이다. 박물관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영월 이미지도 좋아져 래프팅과 패러글라이딩 등 레포츠를 즐기려는 관광객들까지 몰려 한 해 영월을 찾는 관광객만 500만명에 이른다. 이처럼 영월을 박물관을 포함한 문화관광의 고장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 이 과장이다. 그가 남다른 안목으로 ‘하늘의 별을 상품해 팔자’며 팔을 걷어붙인 것은 1996년 일본 배낭여행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폐광지 영월과 비슷한 여건인 일본의 이와키시를 찾아 도시가 다시 회생된 계기가 석탄박물관과 동굴, 천문대였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천문대는 유지비가 많이 들지 않고 사계절 체류 관광객을 맞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1000여곳의 민간 천문대가 있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만 100여개가 있는 등 사설 천문대가 외국에서는 각광을 받고 있었지만 국내에는 제대로 된 천문대가 없었다. 이후 7년간의 기획으로 해발 800m 봉래산 정상에 별마로천문대 건립에 들어갔다. 천문대가 들어설 자리를 찾기 위해 3년 동안 500번 이상 산을 올랐다. 고(故) 조경철 박사에게 얻은 중고 망원경을 메고 맑은 날, 흐리고 안개 끼고 눈비가 오는 악천후를 가리지 않고 산 정상을 찾아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하며 최적의 입지를 찾았다. 워낙 인적이 드문 산을 주로 밤에 찾다 보니 멧돼지와 고라니떼를 만나 봉변도 당하고 주변 동료들로부터 ‘천문대에 미친 사람’이라는 오해도 샀다. 설립 초기 일부 주민들로부터 ‘영월의 맥을 끊어 놓으려 한다’는 질타도 받고 천체 관측 장비의 국제 입찰 과정에서 비방과 투서가 난무해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까지 받는 수모도 겪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장비를 들여와 영월의 랜드마크 천문대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극복했다. 이 과장은 “45억원이 들어가는 천문대가 건립 후 애물단지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미친 듯이 산을 찾았고 일본 천문대 도면을 복사해 오고 일본 천문대 주변 주민들의 삶과 경제 효과까지 세밀하게 관찰하면서 외롭게 천문대 건립을 추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별마로천문대와 연계해 천체 체험과 교육, 휴양을 할 수 있는 천문과학관을 만들어 관광객을 맞고 있다. 또 국내 유일의 공립 사진박물관인 동강사진박물관, 카르스트 지형의 영월 생태자원을 담은 동굴생태 전시관, 방랑시인 김삿갓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감삿갓문학관, 탄광 지역의 애환을 담아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탄광문화촌, 영월 특산품 숯을 웰빙시대에 맞게 관광상품화한 상동숯마을과 참숯역사관까지 이 과장의 기획과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2002년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로부터 신지식 공무원으로 선정되고 같은 해 관광공사로부터 아름다운 관광 한국을 만드는 1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 과장은 “늘 공부하는 공무원이 지역을 이끌 수 있다.”면서 “지난 15년 동안 국내외 지역사회 개발 사례 책자와 논문 4000여권을 찾아 소장하고 공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영월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송필석 부산 사하구 을숙도 문화회관 공연기획팀장 사라 장 등 유명인 공연 유치… 국내 최고 수준 극장 탈바꿈 한때 국내 최고 철새 도래지였던 부산 사하구 을숙도에 자리 잡은 ´을숙도 문화회관´에서는 요즘 문화예술 향기가 솔솔 피어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불편한 교통과 낙후된 시설 등으로 지역민과 예술인들로부터 외면받던 극장이 부산 서부산권을 대표하는 공연예술 장소로 떠올랐다. 문화회관의 대변신에는 송필석(51·행정6급) 공연기획팀장의 열정과 노력이 한 몫했다. 송 팀장은 부산 지역 공직사회와 예술계에서 이미 ‘공연 기획의 달인’으로 이름나 있다. 그는 을숙도 문화회관 운영에 혁신적인 공연기획 시스템을 도입, 지난해 전국 284개 공연장의 1년 평균 기획 공연의 6배를 갖는 등 을숙도 문화회관을 수준 높은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0 문예회관 운영현황 조사’에 따르면 전국 284개 공연장의 1년 평균 기획 공연이 23.4회지만, 을숙도 문화회관은 6배 수준인 130여회(2011년 기준)에 달했다. 올해도 100여 차례 공연을 준비 중이다. 2010년에는 한국문예회관 연합회 주관 ‘전국 문예회관 운영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1987년 행정직 9급으로 공직에 뛰어든 그는 부산시 문화예술과, 부산문화회관 등 문화예술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대학원에 진학, 예술경영을 전공하고 2007년에는 음악 박사 학위까지 받아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공연기획 전문가로 거듭났다. 시 공연기획 담당으로 입지를 굳힌 그가 을숙도 문화회관 근무를 자원한 것은 2008년 2월이다. 해운대 등 부산 남부권에 비해 문화 혜택을 누릴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는 서부산권 시민들에게도 문화예술을 보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뜻에서였다. 하지만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2002년 개관한 을숙도 문화회관의 실상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공연이라고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한 연극이나 인형극이 고작이었다. 월평균 4~5차례 공연이 전부였다. 게다가 턱없이 부족한 전문인력과 예산, 동네 피아노 학원 발표회 장소라는 낮은 이미지, 불편한 교통여건, 성능이 낮은 조명과 조악한 음향 시설 등 모든 게 엉망이었다. 직원들도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이런 어려운 여건을 극복할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야만 했다. 결론은 우수 연주자 초청 등 공연장의 브랜드를 향상시킬 ‘소프트웨어’였다. 그러나 적은 기획예산과 전문인력도 없는 형편에서 우수 연주자를 초청해 공연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듯 2008년 개관 6주년 특별기념 공연으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사라 장을 초청, 대박을 터뜨렸다. 문화회관 개관이래 최초로 700여 좌석 표가 모두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초청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라 장이 협연할 만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등을 협연 파트터로 초청하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도움을 달라.”는 호소 끝에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하면 된다’는 직원들의 자신감이었다. 이후 피아니스트 백건우, 국민가수 인순이, 마법의 사운드 필라델피아 챔버 오케스트라, 자연주의 피아니스트인 조지 윈스턴, 명창 박성희 초청 완창 판소리 흥부가, 바이올리스트 강동석 등의 공연을 잇따라 유치했다. 현재 을숙도 문화회관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 등 국내외 문화예술 기관 단체와의 공연·교류협약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새로운 개념의 상설 프로젝트형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송 팀장은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을숙도 문화회관이 전국 최고 극장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직원들의 혼신을 다한 열정과 노력 때문”이라며 “을숙도 문화회관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고경남 전남 신안군 철새갯벌팀장 섬의 문화·생태적 가치 발굴… 장도습지 람사르 등록 주도 전남 신안군 해양수산과에 근무하는 고경남(47·지방사서6급) 철새갯벌팀장은 1004개의 섬으로 유명한 신안군의 자연자원을 발굴·보전하는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고 팀장은 인문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가지고, 환경과 지역의 자연보호에 앞장서 ‘문화관광 분야’의 행정 달인에 선정됐다. 고 팀장은 1004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의 문화적·생태적 가치를 발굴하고 지키는 일이 장기적으로 주민들의 삶을 발전시키고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고 팀장은 섬이 가진 고유의 생태적·문화적 가치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명감으로 1997년부터 틈나는 대로 낯선 섬들을 답사했다. 2003년 흑산도에 딸린 장도에서 산지습지를 발견한 것은 그 첫 사례다. 20여 가구가 사는 장도섬은 산 정상부에 습지가 있어 가뭄에도 늘 부족함 없이 식수로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가파르게 험준한 산을 오른 후 갑자기 넓게 펼쳐진 습지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소를 방목하고 식수를 얻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뒷산이었으나, 섬에서 수천년에 걸쳐 형성된 독특한 산지 습지의 가치를 인정받아 람사르습지로 지정받게 됐다. 이곳은 습지 관리 및 홍보를 위해 매년 수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지역의 대표적 명물이 됐다. 고 팀장은 이러한 경험을 살려 주변에서 늘 보아 왔던 자연이 중요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자연을 자세히 살피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 2009년 흑산도에서 국내 미기록종인 새우란 2종을 발견해 신안새우란과 다도해새우란으로 명명하였고, 압해도에서는 103년 만에 사라진 갯정향풀과 병아리다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가거도에서는 희귀종인 섬천남성의 서식지를, 흑산도 진리에서는 어린 초령목 43주를 찾아내 천연기념물로 등록시키기도 했다. 고 팀장은 문화유산에도 관심이 많아 매주 공휴일에는 문화유산, 민속, 야생화, 조류 등을 관찰한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실력을 쌓기 위해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만난 흑산 사리와 비금 내월리 돌담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기도 했다. 또 신안군 문화유산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전남 22개 시·군 내고장 문화유산해설사를 양성하는 교수로서 6개월간 120명 이상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고 팀장은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게 철새갯벌팀을 만들어 습지에 도래하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 도요물떼새의 종 보전을 위해 40여 민관학 단체가 참여하고 국제 네트워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도요물떼새 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전국 도요물떼새 동시센서스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야생식물 및 철새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지난해부터 전국적인 탐조 단체인 한국야생조류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면서 전문성을 키워 왔다. 현재 신안의 많은 무인도서(칠발도·구굴도 등)가 바닷새 번식지로 중요한 곳이나 외래종의 도입 등으로 피해를 보고 있어 문화재청, 국립공원 등과 협의체를 구성해 복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야생조류 서식지 및 철새도래지 모니터링, 센서스 등 연구활동을 통해 신안군에 서식하는 철새 분포현황 보고서 2권과 각종 정책 자료집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해 왔다. 고 팀장은 “섬으로 이루어진 신안군이 가지고 있는 무궁한 자연자원과 작은 섬 문화가 가장 경쟁력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며 “신안군 갯벌 자원을 비롯해 우리나라 자연환경의 지속적인 보전과 이용을 위한 관리 모델을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사진 신안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클래식 팬들 올핸 지갑 ‘텅텅’ 비겠네!

    클래식 팬들 올핸 지갑 ‘텅텅’ 비겠네!

    클래식 팬이라면 임진년 2, 6, 11월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우열을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 유수의 교향악단 공연이 봇물 터지듯 열리기 때문. 2008년 영국 클래식 전문지 그라모폰이 발표한 ‘세계 오케스트라 톱 20’ 중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허바우(1위), 영국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4위), 독일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6위),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14위) 등이 한국 팬을 찾아온다. 포트폴리오를 짜지 않고 ‘질러대면’ 낭패보기 십상이다. ●잔인하거나 행복하거나 첫 테이프는 2월 21~22일 로열콘세르트허바우(RCO)가 끊는다. 브람스 교향곡 2번,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3번 등을 연주한다. 그라모폰 랭킹이 절대적인 잣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독일 베를린필과 오스트리아 빈필을 제친 ‘넘버 1’이다. 2010년에 이어 2년 만의 방한이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점이 눈에 띈다. 2010년 11월 이후 국내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영국 리즈 콩쿠르의 한국인 첫 우승자 김선욱이 피아노를 맡는다. 같은 달 23일에는 세계 최고(最古)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들려준다. 1750년 바흐 서거 이후 도서관에서 잠을 자던 악보가 빛을 본 건 1829년 멘델스존에 의해서다. 당시 멘델스존은 거의 2년 동안 예행연습에 매달렸다. 바로크 음악의 모든 형식을 망라한 대작인 만큼 연주시간만 3시간이 필요하다. 2004년과 2008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하는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성 토마스 합창단의 무대에 기대가 쏠리는 까닭이다. 런던심포니는 러시아 출신 수석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온다. 6년 만의 내한공연이다. 프로코피예프(피아노협주곡 3번), 쇼스타코비치(교향곡 5번·바이올린 협주곡 1번), 차이콥스키(교향곡 6번) 등 러시아 레퍼토리의 정수를 들려준다. 깊이와 쇼맨십을 두루 갖춘 게르기예프의 능력을 잘 보여줄 선곡이라는 평가다. 피아노 협연은 러시아 출신 데니스 마추예프, 바이올린은 한국 출신 사라 장이다. 마니아들의 공연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3가지 요인(상임지휘자의 직접 지휘, 가장 자신 있는 프로그램 선곡, 협연자와의 궁합)을 모두 충족하는 셈. 1980년대 후반 개혁과 개방의 물결 속에 옛 소련의 오케스트라들은 재정난에 시달린다. 서방으로 짐보따리를 싸던 레닌그라드필과 모스크바방송 교향악단의 악장·수석급 연주자들을 붙잡아 설립한 게 1990년 창단된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RNO)다. 산파를 맡은 사람은 명(名)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미하일 플레트네프. RNO는 객원지휘자에 대해 낯을 가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여년을 함께한 플레트네프가 3년 만의 내한공연 지휘를 맡는다. 한국 관객은 운이 좋다. ●게르기예프와의 최적 궁합은? 11월에는 게르기예프가 한국을 다시 찾는다. 이번에는 마린스키극장 오케스트라와 함께다. 1860년 개관한 마린스키극장은 러시아 황실의 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로 황금기를 보냈다. 그렇다고 옛 소련 체제 막바지의 침체기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게르기예프가 총감독을 맡으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각기 다른 악단을 만나 게르기예프의 지휘가 어떻게 변주되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터다. RCO 내한 때 상임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오지 않는다고 실망한 팬이라면 11월을 노려볼 만하다. 바이에른방송 교향악단이 얀손스와 함께 온다. 바이에른의 내한은 처음. 1949년 창단 때부터 초대 지휘자 오이겐 요훔의 헌신과 방송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 악단은 동유럽의 유능한 연주자를 대거 영입하면서 급성장했다. 2차대전 이후 작곡가 말러가 재평가를 받는 데 공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첫 내한공연도 반가운데 베토벤 교향곡(2·3·6·7번)을 들고 온다. 기대치가 한껏 치솟는 까닭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교사들의 줄잇는 학교탈출 막을 대책 세워라

    정든 학교와 제자들을 뒤로하고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오는 2월 말 명예퇴직을 신청한 서울시 초등·중·고등학교의 교사는 919명으로 1년 전보다 25.5%나 늘어났다. 같은 시기 명예퇴직을 신청한 경기도 초등·중·고등학교의 교사는 563명으로 1년 전보다 무려 44.7%나 늘어났다. 정년 전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이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최근의 전반적인 교권 추락이 주요인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해 말 전국의 초등·중·고등학교 교사 2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명예퇴직 신청이 증가한 원인으로는 ‘학생인권조례, 교육과정 개정 등 교육환경 변화에 따른 어려움’이 93.5%로 가장 많았다. 이 중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추진 등으로 인한 학생 지도의 어려움과 교권 추락’이 80.6%로 절대적이었다. 소위 진보교육감이 취임한 이후 서울과 경기도 등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추진되면서 학생의 인권은 종전보다 보장됐지만, 상대적으로 교사의 권위는 떨어진 게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주요인으로 꼽힌 것이다. 학생인권조례에 따라 교사들이 학생을 지도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학생 지도에 어려움이 있어 교단을 떠나는 교사가 늘고 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학생에 대한 체벌금지 등으로 교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점차 사라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학생의 인권도 물론 중요하지만 교사들의 인권도 중요하다. 학교를 살리고, 교사의 사기를 올릴 수 있는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최근의 동료 교사 명예퇴직 신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학생인권조례에는 환영하던 전교조가 최근 불거진 학교 폭력사태에는 침묵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전교조도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현역엔 위기, 신인엔 기회… 여의도硏 5대 물갈이 기준

    현역엔 위기, 신인엔 기회… 여의도硏 5대 물갈이 기준

    3일 공개된 한나라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여연)의 공천 개혁안은 향후 여권에 불어닥칠 ‘총선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 신인에게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겠다는 이면에는 현역 의원의 대대적 퇴출이 복선처럼 깔려 있기 때문이다. ●여연 “공심위 전원 외부인사로” 여연은 총선 공천심사위원회를 전원 외부 인사로 구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공천 심사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특히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공심위원은 아예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할 수 없도록 못 박았다. 비례대표 공천도 지역구 의원 공천처럼 하향식 배심원단 제도와 상향식 국민참여경선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총선 때마다 불거졌던 ‘나눠 먹기 공천’, ‘밀실 공천’ 논란을 없애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비례대표 후보자를 국민 공모한 후 배심원단 공개심사 절차를 거쳐 선정하고, 투명성 확보를 위해 배심원단 투표 과정을 TV로 중계한다는 것이다. 배심원단은 당원 30%, 대의원 20%, 일반 국민 50%의 비율로 구성된다. 또 ‘벼락·졸속 공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심위를 분리토록 했다. 공심위가 특정 계파나 인물의 입김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자 공천 물갈이에 대한 강한 의지로도 해석된다. 같은 맥락에서 공심위 산하 검증위원회를 설치해 현역 의원들에 대한 사전 검증도 대폭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현역 공천평가 7대 항목 제시 여연이 제시한 현역 의원 교체 기준은 모두 다섯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당 지지도보다 개인 지지도가 5% 포인트 이상 낮을 경우 공천 대상에서 탈락된다. 또 ▲재판에 계류 중이거나 ▲재공천 시 여론이 악화될 우려가 있거나 ▲지역 주민의 교체지수가 현저히 높거나 ▲외부 영입 인사가 희망하는 경우에는 해당 지역 현역 의원을 공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연은 또 현역 의원에 대한 재공천 또는 공천 배제를 결정하기 위한 평가표도 처음으로 제시했다. 향후 공천 심사 과정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평가표는 정량평가 4개 항목, 정성평가 3개 항목 등 모두 7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여론조사를 통해 이뤄질 정량평가에는 ▲지역주민 교체지수 ▲야당 후보와의 가상 대결을 통한 경쟁력(20%) ▲당·개인 지지율 비교 ▲해당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 등이 포함됐다. 공천심사위원회 위원들이 평가할 정성평가는 ▲선거 경쟁력 ▲경력과 지역 기반 ▲한나라당 후보 적합도 등으로 구성돼 있다. ●현역 vs 신인 ‘1대1 맞짱’ 구도 공천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등 상향식 경선을 원칙을 한다. ‘현역 프리미엄’을 없애기 위해 현역 의원과 정치 신인이 이른바 맞짱을 뜰 수 있도록 ‘1대1’ 구도를 만들어 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상향식 공천이 현역 기득권을 보장해 주는 장치로 악용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1 대 다수’ 구도가 형성될 경우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도전자 단수화→현역 대 도전자 간 1대1 경선’으로 이어지는 2단계 방안을 제시했다. 1단계에서는 공심위가 인재영입위원회에서 영입한 외부 인사 등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해 경선에 나설 도전자를 압축·추천한다. 2단계에서는 현역과 도전자가 1대1 구도로 경선을 실시하되 선거인단을 현행 ‘당원+국민’에서 ‘국민’으로 일원화하도록 했다. 이 역시 현역 프리미엄을 배제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연은 문건에서 “현재 공천과 관련한 당의 기본 입장은 전략공천 20%와 상향식 경선제 도입 양대 축으로 하고 있지만, ‘총선 물갈이’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비춰 보다 진일보한 새 입장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서 “당내 경선이 기존 인물(특히 현역 의원)의 무소속 출마를 차단하고 새 인물의 수혈을 성공시키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장치를 마련한 뒤 시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장세훈·황비웅기자 shjang@seoul.co.kr
  • 예비 고1 겨울방학 국어·문학 정복법

    예비 고등학생들에게 겨울방학은 고등학교 성적의 첫걸음을 내딛는 선행 학습의 중요한 시기다.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영어, 수학에 많은 비중을 두게 마련이다. 반면 국어와 문학은 학교 성적에서의 중요성에 비해 소홀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국어·문학에 대한 홀대는 최근 수능 언어영역과 관련이 있다.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조차 ‘교과서에 있는 작품 위주’로 수능이 출제되면서 공부해야 할 문학작품의 절대적인 수가 적어졌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16종, 문학 교과서는 14종에 이른다. 특히 문학의 경우에는 기본적인 소양을 기르는 학문으로, 단기간에 많은 작품을 보고 외운다고 해서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비교적 시간이 많은 겨울방학 때 충분히 학습해 둘 필요가 있다. 예비 고1 학생을 위한 국어·문학 과목 학습법을 정리했다. 고등학교 국어를 암기 위주로 공부한다면 내신 성적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능 대비책은 되지 않는다. 평소 한정된 시험 범위를 단순 암기하는 것이 아닌, 언어적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공부를 염두에 둬야 한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독서로 배경 지식을 넓혀야 한다. 언어영역은 지문 독해 능력이 관건인데 해법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 한 권을 읽더라도 목적에 맞게 정확히 읽는 것이 효과적인 책 읽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책은 각 교육청이나 대학 등에서 추천한 도서 중에서 고르는 것이 좋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다가오지 않는 개념을 접하면 사전을 찾아 정리해 두는 것이 좋다. 개념어를 제대로 이해하면 글을 읽는 속도를 높일 수 있고, 논술 문제나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문학작품을 감상한다는 생각으로 학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품에 대한 접근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감상 원리를 익히는 학습법은 사고력을 높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처음 보는 현대시를 읽더라도 스스로 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하려는 시도를 한 후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해석과 비교해 봐야 한다. 이 경우 둘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이때는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 살피면서 다시 작품을 감상한다. 한 번 길러진 ‘감상의 힘’은 쉽게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낯선 작품, 다른 장르의 문학을 만나도 힘을 발휘한다. 수능 언어영역은 30여권의 국어·문학 교과서 가운데서 출제된다. 여러 교과서의 문학작품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범주별로 한눈에 볼 수 있는 교재가 좋다. 시의 경우에는 시·소설·고전시가 등 범주별로 작품을 모아둔 교재를 택하면 된다. 미래엔 교육사업본부 국어팀 박정희 차장은 “예비 고1 학생들의 경우 고등학교에서는 중학교 때처럼 1권의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지문과 배운 내용만 공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수능 국어는 문학작품이 워낙 방대해 출제 문제를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있을 때 많은 작품을 접해 깊이 있는 감상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SK 임직원, 최태원 회장 선처 호소

    SK그룹 임직원들은 1일 최태원 회장이 불구속 기소되지 않도록 검찰에 선처를 호소했다. 최 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면 재판 참석에 따른 ‘경영 공백’과 해외 신인도 하락에 따른 ’해외 영업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이유에서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불구속 기소라도 된다면 큰 경영 공백이 예상된다.”면서 “일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회사 게시판을 통해 최 회장 선처를 위한 서명운동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 SK그룹은 장기간에 걸친 강도 높은 검찰 수사로 지난해 말 마무리했어야 할 인사와 조직개편, 투자계획 수립은 물론 그룹 단위 중요 행사인 시무식도 취소한 상태다. 또 지난해 3조 4000억원을 주고 최종 인수하게 된 하이닉스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도체는 과감한 투자와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최 회장의 기소로 투자의사 결정이 6개월만 늦어져도 겨우 지키고 있는 2위 자리마저 경쟁업체에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최 회장은 중국, 중동을 비롯한 남미 등에서 계열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패키지형 사업 개발을 추진 중”이라면서 “이들 사업은 각국 정부의 최고위층을 상대로 하다 보니 최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인데 불구속 기소라도 되면 이들 사업은 물 건너 가게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최 회장이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한 1998년 37조원에 불과하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1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北 체제안정 최역점… 식량해결 고심

    北 체제안정 최역점… 식량해결 고심

    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 공동사설에는 ‘김정은 시대’를 맞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인 강성대국과 선군혁명을 앞세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급함과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이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조속히 안정시키고 내부 결속을 꾀하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남·대외 관계에 대한 언급은 뒷전으로 밀렸다. 사설은 강성국가 건설을 위한 김 위원장의 업적을 치켜세우며 “올해 주체101(2012)년은 김정일 동지의 강성부흥 구상이 빛나는 결실을 맺게 되는 해이며, 2012년은 정치사상적 위력이 최대한 발휘되는 일심단결의 해”라고 밝혔다. 사상적 단결을 강조해 김 위원장 유훈을 관철시키고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사설의 상당 분량이 경제 부문에 할애된 것도 눈에 띈다. 사설은 “강성부흥 전략을 관철하기 위한 총돌격전을 힘차게 벌여 나가야 한다.”며 “강성국가 건설의 주공전선인 경공업 부문과 농업 부문에서 대혁신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하여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현 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 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라며 “당 조직들의 전투력과 일꾼들의 혁명성은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검증된다.”고 강조했다. 인민경제 개선을 통해 내부 불만을 잠재워 결속을 다지고 후계 안정을 도모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내정된 2009년부터 주도해 온 것으로 알려진 컴퓨터수치제어(CNC)가 이례적으로 언급된 것도 김정은의 업적을 부각시켜 충성심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군사 부문에서도 김정은에 대한 충성이 강조됐다. 사설은 “김정은 동지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천만 자루의 총, 폭탄이 되어 결사옹위하여야 한다.”며 “선군의 총대 위에 강성국가 건설의 승리가 있다.”고 밝혔다. 반면 대남·대외 부문에서는 우리 정부의 조문 제한에 대한 비난이 포함됐을 뿐 예년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한 미군 철수’ 주장이 4년 만에 다시 등장했지만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커버스토리] 복지바람 거셌던 2011… 새해도 복지전쟁 예고되지만

    [커버스토리] 복지바람 거셌던 2011… 새해도 복지전쟁 예고되지만

    올 한해는 ‘복지바람’이 거셌다. 사회 전반에 걸쳐 복지가 화두였다.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논쟁은 복지 전쟁을 부추겼다.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하는 개념도 상당부분 사회 저변에 똬리를 틀고 있다. 때문에 2012년 임진년은 총선과 대선이 맞물린 탓에 ‘복지바람’이 훨씬 세차게 불 수밖에 없다. 태풍 수준 이상일 수도 있다. 돌변할 낌새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약이 난무하고 있다. 여야 모두 “내년 예산의 핵심은 민생복지”라고 공언할 정도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도 아랑곳없다. ‘복지국가 건설’은 한국의 미래다. 복지담론은 화려하다. 그러나 복지현장은 침침하다. 어두운 곳도 적잖다. 복지의 첨병으로 현장을 뛰는 사회복지사들의 눈에 비친 한국 복지의 현주소는 “아직 갈 길이 멀다.”이다. 낙제점이다. 송인석 서울 강서구 등촌4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기초생활수급자나 독거노인, 장애인은 서류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관리가 필요한데 실제로는 단 한번 인사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밀 손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사 10명이 800가구를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의료서비스나 정서적인 지원, 경제문제 상담 등의 집중관리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복지 서비스 정보조차 알리기도 벅차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의 경우, 일자리 제공과 더불어 심도 있는 보살핌이 절실하다. 그러나 사회복지사 3명이 400가구를 담당하는 사례도 있다. 사회복지사 1명이 20~25가구를 담당하는 선진국과는 판이한 것이다. 야쿠르트 아줌마가 안부를 묻는 서비스까지 나왔다. 한 사회복지사는 “복지 예산을 확대하지 않고 단순히 안부만 전하는 복지전달체계가 굴러가는 상황에서 이들이 어떻게 자립할 수 있겠으며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겠나.”라면서 “복지 공무원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현장을 살펴 실상을 깨우쳐야 한다.”고 흥분했다. 아동 복지의 질도 낮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의 사업이 중복돼 있는 탓에 아동을 유치하려는 쟁탈전까지 벌어지고 있다.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아동 30명당 2명의 인력을 배당, 월 200만~250만원의 인건비와 110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해 주고 있다. 때문에 임대료를 내지 못해 인건비를 전용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마저도 사회복지사가 수시로 바뀌어 관리도 허술하다. 임채휘 돈보스꼬아동복지센터 팀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복지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올해도 명목상의 보육 예산만 늘어났을 뿐 생활반경이나 복지환경을 튼튼하게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고 토로했다. 우하영 대전 유성노인종합복지관 사무국장은 “하루 300명이 복지관을 이용하는데 직원이 11명에 불과한 상황”이라면서 “그나마 사회복지사는 6명밖에 안 되는데다 4명은 관리직이어서 남은 2명이 대부분의 노인과 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 관리업무를 맡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반적인 복지 예산증액으로 전담 공무원은 늘고 있지만 사회복지사 같은 실무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정현용·이영준기자 junghy77@seoul.co.kr
  • ‘퇴마록’ 이우혁 “교수가 나를 부담스러워해…”

    ‘퇴마록’ 이우혁 “교수가 나를 부담스러워해…”

    모든 창작자는 신의 영역에 접근한다. ‘퇴마록’의 이우혁(46)은 괴팍하지만 절대적인 제우스에 가까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작가는 신을 창조해서 부려야 한다. 소설가는 한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20년 전 컴퓨터통신 하이텔에 처음으로 연재됐던 ‘퇴마록’은 출간 후 지금까지 1000만부에 이르는 경이적인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판매량으로는 단행본 출간사상 이문열의 ‘삼국지’ 다음가는 기록이다. 1994년 1권이 나와 이미 2001년 7월 완간된 ‘퇴마록’ 시리즈는 지난 9월 ‘국내편’에 이어 최근 ‘세계편’(엘릭시르 펴냄)이 소장판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작가는 “옛날 ‘퇴마록’을 읽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든다는 독자가 많다. 이야기는 변하지 않았지만 문체 등은 많이 고쳤다. 처음 나온 ‘퇴마록’이 잘 쓴 글은 아니란 걸 나도 인정한다. 20년 전 ‘퇴마록’을 낼 때 처음으로 글을 썼고 문학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고백했다.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와 석사과정을 졸업한 작가는 박사 과정에 진학하려 했지만 교수가 그를 부담스러워해 잘랐다고 말했다. 작가라는 운명은 스스로 찾은 게 아니라 살다 보니 떨어졌다는 것. 그리고 글을 쓰게끔 사람들로부터 강요당했다고 덧붙였다. 악을 쫓는 퇴마사들의 활약을 그린 퇴마록 ‘국내편’은 1998년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세계편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집트 고대 석실 발굴의 비밀, 아서 왕의 전설, 드라큘라와 흡혈귀 전설 등 배경도 세계적이고 주인공도 한국인만이 아니다. 영국, 프랑스, 루마니아, 미국 등 세계를 무대로 블랙서클이란 악의 무리와 대적하는 다양한 개성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난 더는 판타지 소설을 쓰지 않아요. 우리 문화의 특수성 안에 전 세계 사람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집어넣고 있어요. 1990년대 유행했던 판타지 소설이 요즘 거의 사라진 것은 ‘퇴마록’에서는 이야기가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는 수단이었지만 다른 소설은 괴담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요즘 몰두하는 것은 영미권에서 ‘퇴마록’을 번역, 출간하는 일이다. 중국에서도 오래전 ‘퇴마록’이 나와 서점에서 쌓아두고 팔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인세는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타이완에서는 책 한 권을 번역하는 데 4~5년이 걸린다. 가장 큰 문제는 한국어를 영어로 “제대로” 번역하는 인재가 없는 점이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작품이 흔히 판타지 소설, 장르 소설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이 작가는 “소설과 문학이 대중한테서 멀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소설은 한번 보고 책꽂이에 꽂아두면 자기 책인 줄 안다. 지식을 인터넷으로 공유하면서 인류는 스스로 멍청이가 되어가는 걸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작가들이 트위터에서 수많은 팔로어를 거느리는 것에 대해 “작가들이 나팔수나 확성기가 되어 조종당하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질타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작가로 성장한 이씨는 인터넷을 적극적인 자료 조사 도구이자 의견 표현 창구로 활용했다. 60~70개의 익명 아이디를 가지고 악플러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결론은 “예수님도 악플러는 감화시키지 못한다.”로 마무리됐다.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소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현재 그는 독자적인 서버 업체에 개인 홈페이지를 맡겨 광고 없이 운영 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수억원을 버는 경험은 이미 해봤습니다. 목표는 내 작품이 대중 문학, 장르 문학을 떠나서 영원히 읽히는 고전이 되는 것입니다. 문학적 잣대는 신경 쓰지 않아요. 작품성으로만 평가할 게 아니라 보편적 인간성을 뽑아내 독자들을 느끼게 한 걸 봐야 합니다.” 최근 KBS에서 방영된 아동 애니메이션 ‘부루와 숲 속 친구들’ 시나리오 작업을 끝낸 이 작가는 “우리나라 문화산업의 10%는 내 아이디어였다.”며 자신감을 표현했다. 내가 아니면 못 쓸 이야기를 준비 중이라는 그는 악플러와 싸우는 퇴마사이자 지적 재산을 훔치는 도둑들에게 선전포고를 내리는 전사처럼 보였다. 글 사진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11 5개 키워드로 본 ‘올해의 과학’

    2011 5개 키워드로 본 ‘올해의 과학’

    2011년이 저물고 있다. 전 세계 언론들이 앞다퉈 ‘올해의 사건’, ‘올해의 사진’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다. 수천년을 이어온 과학의 역사에서 고작 1년은 뚜렷한 변화를 느끼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2011년은 여러 가지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들이 유난히 많았다. 꼭 기억해 둬야 할 ‘2011년 올해의 과학’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1. 올해의 말 스티븐 호킹 “천국은 동화다” 과학자가 ‘연구’가 아닌 ‘발언’으로 주목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누구의 말이냐에 따라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기도 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명예교수는 지난 5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인류의 오랜 믿음에 배치되는 발언을 했다. “사후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동화일 뿐”이라고 말이다. 호킹 교수가 ‘무신론’을 주장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저서 ‘위대한 설계’에서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강도가 훨씬 높아졌다. 호킹 교수는 “마지막 순간 뇌가 깜빡거림을 멈추고 나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면서 “뇌는 부속품이 고장나면 멈추는 컴퓨터이며, 고장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호킹 교수는 ‘과학’이라고 선언했다. “과학은 우주가 무에서 창조됐다는 것을 설명하며, 우주는 과학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것이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노과학자의 결론이다. 2. 올해의 사건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공포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쓰나미로 이어졌을 때 모두들 범람하는 바다와 쓸려가는 집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곧이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자연과 과학이 합작한 최악의 사고로 역사에 기록될 전망이다. 지진으로 인한 발전소 설비의 손실과 비상 전원의 단절은 냉각시스템을 마비시켰고, 이는 노심 융해와 방사능 유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원전 주변 20㎞는 죽음의 땅으로 변했고, 일본 전역은 아직까지 방사능 유출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기로 누출된 방사성물질의 양은 37경 베크렐 이상으로 추산되며, 이는 원전 사고 최고등급인 7등급에 해당한다. 사고 당시와 이후 수습과정을 통틀어 최소한 840명의 원전 관계자들이 공식적으로 실종 상태다. 3. 올해의 실험 아직끝나지 않은 ‘힉스 찾기’ 11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 주요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힉스’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주 탄생의 기원을 찾겠다는 과학자들의 오랜 꿈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산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 투입된 예산은 100억 달러. ‘인류 역사상 최대의 과학실험’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관심이었다. CERN은 지난 13일 공개세미나와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모두의 궁금증에 답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한 ‘신의 입자’ 힉스는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가능성’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채웠다. CERN은 125기가전자볼트(Gev) 영역에서 힉스 입자가 존재한다는 결과가 일부 나왔지만 확신까지는 좀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확률은 99.5~99.7% 수준. CERN는 내년 실험이 진행되면 가능성이 99.99994%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4. 올해의 논란 아인슈타인의 진리는 틀렸나 과학사에 2011년이 기록된다면, ‘물리학의 신’으로 추앙받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도전의 원년으로 쓰여질 가능성이 높다. CERN은 지난 9월 “빛보다 빠른 소립자, ‘중성미자’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물리학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 확실하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이후, 빛보다 빠른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우주의 모양이 지금까지의 생각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OPERA로 불리는 실험에서 물리학자들은 CERN의 입자가속기에서 나온 중성미자의 빔을 땅속을 통해 730㎞ 떨어진 그란사소 실험실로 쏘는 작업을 1만 6000번 반복했다. 그 결과 중성미자가 빛보다 60나노초 빠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실험 당사자들조차 믿지 못한 결과에 대한 논란은 진행형이다. CERN은 물론 미 페르미연구소도 검증 실험을 진행 중이다. 5. 올해의 해프닝 영전에 바친 노벨상 매년 10월이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스웨덴 노벨위원회 구성원들은 아마 올해 과학계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사람들로 뽑혀도 불만이 없을 것 같다. 노벨위원회는 올해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랠프 스타인먼 미 록펠러대 교수를 선정했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 후 록펠러대는 스타인먼 교수가 췌장암으로 며칠 전에 숨졌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1974년 노벨위원회는 이전까지 관례적으로만 내려오던 ‘생존 인물만 수상자로 뽑는다.’는 규정을 공식화했다. 스스로 정한 규정을 어긴 셈이다. 결국 위원회는 “그가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해 애석할 뿐, 선택을 바꾸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올해 유독 갈팡질팡했다. 올해 물리학상을 공동수상한 솔 펄머터 캘리포니아버클리대 교수는 수상소식을 스웨덴의 기자에게 전해들었다. 두 사건 모두 업적을 평가하는 데 지나치게 골몰한 때문인지, 수상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노벨위원회의 거만이 만들어 낸 해프닝으로 한동안 회자될 전망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1677년 네덜란드 헤이그. 판 데르 스픽은 자신의 집에 하숙했던 친구의 책상을 조심스레 포장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는 시신도 없는 텅 빈 관(棺)으로 친구의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온 참이었다. 친구의 시신은 교회에 안치되어 있던 중 도난당했다. ‘신을 모독한 불경스러운 자’라는 꼬리표가 시신 역시 편치 못하게 한 게 틀림없었다. 그 친구는 몇 주 전, 자신이 죽으면 책상을 암스테르담의 한 출판사에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포장재에는 어떤 것도 적지 말고 세관에 내용물을 신고하지도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조심성 많은 친구의 도움 덕에 책상은 무사히 출판사에 도착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에티카’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그 책은 곧 금서로 지정돼 압수되었다. 비록 익명으로 출간되었지만, 사람들은 그 글의 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던 것. 그 책의 저자는 ‘베네딕투스 스피노자’였다. 베네딕투스가 불경한 자로 낙인 찍힌 것은 1656년, 그의 나이 겨우 24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종교재판을 피해 에스파냐에서 포르투갈로, 그리고 다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유대인 상인 집안에서 1632년에 태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이름은 ‘바뤼흐’. 이 말은 히브리어로 ‘축복받은 자’라는 뜻이었다. ●불경한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니 당시 신생 공화국이었던 네덜란드는 유대인 상인들을 받아들여 번영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이 공화국은 종교와 인종에 관용적이었던 만큼 한계 또한 분명히 규정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존의 신앙 이외에 이단적 교리를 만들면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바뤼흐 스피노자는 이 금지의 선을 넘어버렸다. “낮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일어서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밖에 나가도…그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신은 그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모든 천계의 저주를 통해 그를 전체 이스라엘 부족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다.” 스피노자가 신성모독의 발언들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해지자, 유대인 공동체는 그의 파문을 결정했다. 하지만 스피노자가 태어난 이후 발생한 14건의 파문 중 이와 같은 분노의 파문서는 없었다. 그것은 공식적인 책이나 가르침을 퍼뜨린 적 없는 청년이 받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저주였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파문을 전후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상례였다. 요컨대 파문은 일종의 경고였던 셈. 그러나 스피노자는 ‘회개’하지 않았다. 돈을 주겠다는 회유도, 격리시키겠다는 협박도, 암살 기도의 공포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부모님의 침대를 제외한 모든 상속을 거부했고, 유대인의 흔적을 없애려고 라틴어 ‘베네딕투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평생토록 이 파문 사건에 대해 어떤 억울한 심정도, 항변도 토로하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게 열려 있는 길로 기쁜 마음으로 들어서련다.” 신성모독죄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신을 사랑하는 자라 여겼다. 그는 신의 뜻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신이란 말 그대로 무한하고 절대적이고 완전한 존재다. 그런 존재는 외부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자족적인 삶을 영위할 것이다. 요컨대 신이란 스스로 그러한 존재인 자연 그 자체며, 세상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 인간이 성취해야 할 것은 신의 본성에 따라 사는 것, 즉 자유로운 삶이었다. 스피노자에게 자유로운 삶을 일구는 것이야말로 구원이었다. 하지만 기존 교회 속의 신은 복종을 원했다. 스피노자가 보기에 그러한 신은 인간을 자유가 아닌 예속 상태에 두기 위한 상상의 작품이었다. 교회는 응답하고, 심판하고, 처벌하는 신, 즉 인간화된 신을 꾸며냈다. 스피노자에게 공화국이란 종교의 예속과 반대되는 자유를 의미했다. 전제군주와 결탁한 교회의 종교적 핍박을 피해 유대인들이 정착했던 자유의 국가. 바로 이곳 네덜란드가 그러한 공화국이었다. 하지만 그 공화국은 1669년 스피노자의 친구인 쿠르바흐에 대한 종교적 탄압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은 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제주의 최고의 비결이자 그것을 떠받치는 큰 기둥은 사람들을 계속 기만의 상태에 처해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억압될 수밖에 없게끔 공포를 조장하고 그것을 종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그것이 구원인 양 오히려 자신들의 예속을 위해서 싸우게 될 것이다.” 전제주의를 이끄는 원리가 공포라면, 공화국의 존립 근거는 무엇보다도 자유에 있었다. 그렇다면 쿠르바흐에 대한 탄압을 공모한 공화국은 스스로 자기의 존재 근거를 무너뜨려버린 셈이었다. 자유에 대한 억압, 그것은 곧 공화국의 종말을 의미했다. 스피노자의 이러한 우려는 2년 후 현실로 드러난다. ●자유인, 그 불온한 자 1672년 프랑스의 침공에 네덜란드는 가까스로 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전쟁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죽음과 기근이 만연했다. 이 절망의 틈새를 군주제를 원했던 오란예 집안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위기의 원인을 공화국의 탓으로 돌렸다. 폭도로 변한 군중은 공화국의 지도자인 데 비트 형제를 거리로 끌어내 처참하게 살해하고, 살점은 구워 먹거나 기념품으로 팔았다. 비통함에 빠진 스피노자는 ‘극한의 야만인들’이란 격문을 들고 거리로 나서려 했지만 하숙집 주인이자 친구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완강히 스피노자를 막아 세웠다. 왜 군중은 자신들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공화국을 거부하고 전제주의라는 예속을 향해 달려가는가. 스피노자는 공화국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알았다. 자유는 국가가 ‘보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각자가 자신의 삶에서 자유를 ‘구성’하지 않는 한, 어떤 국가 체제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스피노자는 자신의 생각을 ‘에티카’에 적어내려 간다. ‘에티카’는 수학책을 방불케 하는 공리와 정의, 증명들로 가득하다. 이 건조한 윤리학의 주제는 우리의 감정이다. 스피노자에게 자유인의 열쇠는 감정에 있었다. 감정이란 우리 신체에 일어나는 변용에 대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며 산다. 요컨대, 우연적인 외적 원인에 끌려다니는 수동적 상태다. 그렇기에 “더 나은 길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쁜 길을 따라”간다. 자유인이 된다는 것은 이 수동적 신체를 능동적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권력은 오로지 수동적 신체를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돈과 명예, 신의 이름으로 쾌락과 절망, 희망과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우리에게 복종을 이끌어냈다. 지배자들에게 두려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신들이 작동할 수 없는 능동적 신체를 가진 자유인이었다. ‘에티카’는 단지 자유인이라는 자기 구원을 위해 능동적 신체를 구성하는 길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길이야말로 지배자들에게는 불온한 것이었다. ●자유를 생산하는 앎과 삶 스피노자는 1676년 하이델베르크의 교수직 제안을 거절한다. 그에게 대학이란 기존의 법과 종교의 계율 위에서 작동하는 공간일 뿐이었다. 대학은 철학함의 자유를 제한할 뿐 아니라, 자유의 철학을 생산하기에도 부적합한 곳이었다. 대학교수직을 거절한 스피노자는 하숙집 책상 위를 자기의 공부 현장으로 삼았다. 지인들과 주고받는 편지와 만남은 그 자체로 배움의 과정이었다. 그는 대학 강당 대신 헤이그의 하숙집에서 조용히, 하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자유인의 삶을 만드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동안, 사실은 그것을 하기 싫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실행되지 않는 것이다.” 그는 국가나 돈, 명예나 신, 그 무언가에 의해 미래에 찾아올 자유를 꿈꾸지 않았다. 미래로 유예된 자유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자유란 자신의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뿐이었다. 시신마저 사라진 뒤 스피노자의 이름으로 남은 것은 바지 두 벌, 셔츠 일곱 장, 손수건 다섯 장뿐이었다. 예속에 대한 단호함과 자기 구원의 열정. 그리고 자유인의 소박하지만 정갈했던 삶. 바로 이것이 혁명을 외친 적 없었던 스피노자를 역사상 가장 위험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남게 했다. 남산 강학원 연구원 신근영
  • [Weekly Health Issue] 인슐린

    [Weekly Health Issue] 인슐린

    최근 들어 당뇨병이 20~30대 젊은 층에까지 확산되면서 인슐린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당뇨병 자체가 인슐린 분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환인 데다 치료 역시 인슐린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슐린 제제가 워낙 많을 뿐 아니라 의사들의 치료 방법도 제각각이어서 환자들은 인슐린을 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슐린 투여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 당뇨병 환자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슐린 문제에 대해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내분비내과 유형준 교수로부터 듣는다. ●먼저, 인슐린이란 무엇인가. 인슐린은 약이 아니라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음식물로 섭취한 포도당의 대사에 관여해 혈당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당뇨가 없는 사람은 인슐린이 정상 분비돼 혈당을 조절하지만 당뇨병 환자는 그렇지 못하므로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보충해 줘야 한다. ●인슐린은 체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은 대부분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에너지원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슐린이 작용한다. 인슐린은 분해된 포도당을 혈액에서 세포로 이동시켜 인체의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분비되지 않거나 제대로 쓰이지 못하면 포도당이 에너지원으로 쓰이지 못하고 혈액 속에 쌓이거나 소변으로 빠지는데, 이 상태를 당뇨병이라 한다. ●어떤 경우에 인공적으로 인슐린을 투여하는가.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진 상태이므로 인위적인 공급이 필요하다. 특히 반드시 인슐린을 사용해야 할 상황이 있는데 이를 ‘인슐린의 절대적 적응증’이라고 한다. 인슐린이 아예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병, 당뇨병성 혼수 환자, 임신한 환자, 간·신장질환자가 응급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인슐린이 어느 정도 분비되는 2형 환자의 경우 예전에는 식사·운동요법과 경구용 혈당강하제를 주로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합병증 예방 차원에서 초기부터 인슐린 치료를 시도하는 추세다.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 치료가 필요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인슐린 치료는 경구용 혈당강하제에 비해 혈당 조절력이 강해 그만큼 당뇨 합병증 예방 효과도 크다. 특히 인슐린 치료는 서구인보다 인슐린 분비 능력이 떨어지는 아시아 환자들에게 효과적인데, 실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에서도 인슐린을 사용한 환자의 목표혈당 도달 비율이 95.2%, 도달 시간이 5.6일로, 경구용 혈당강하제의 83.5%, 9.3일보다 우월했다. 또 경구용 혈당강하제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환자들의 인슐린 분비량이 준다는 점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에 많은 2형 당뇨병 환자들의 경우 처음에는 인슐린 분비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만 병이 진행될수록 췌장의 베타세포가 손상돼 인슐린 분비가 줄거나 중단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 2형 당뇨병을 5년 이상 앓고 있는 환자 중에는 이미 베타세포가 심하게 손상돼 인슐린을 전혀 분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환자들에게는 인위적으로 인슐린을 공급해 혈당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내 당뇨병 유병률과 최근의 발병 추이를 설명해 달라. 국내 유병률은 9.8%로, 국민 10명 중 1명이 당뇨 환자로 추산된다. 과거에는 중년 이후의 환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습관, 운동 부족, 비만 등으로 20∼30대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처럼 환자가 느는데 혈당 관리는 안 돼 최근 5년간 당뇨 합병증이 발생한 환자의 60%가 말초순환장애를, 35.9%가 당뇨병성 망막병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국내 당뇨병 환자 중 약 20%가 인슐린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인슐린 단독 치료 환자는 5.8%, 인슐린과 경구용 혈당강하제를 함께 사용하는 환자는 14.2% 정도로 나타났다. ●인슐린의 종류와 특성을 짚어 달라. 정상인은 인슐린 분비 양태에 따라 ‘기저인슐린’과 ‘식후인슐린’으로 구분된다. 기저인슐린은 지속적으로 분비되는 인슐린으로, 주로 공복과 식사 사이의 포도당 양을 조절하는 데 비해 식후인슐린은 음식 섭취 후 높아진 혈당을 조절한다. 인슐린 치료 역시 이런 생리적 인슐린 분비와 유사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다. 인슐린은 또 약효가 나타나는 시간과 효과의 지속 시간에 따라 속효성, 중간형, 지속형으로 나뉜다. 속효성은 식후인슐린과 유사한 역할을 하며 지속 시간이 짧아 저혈당 우려가 적지만 식사 때마다 맞아야 하며 공복혈당을 조절하기 어려운 게 문제다. 중간형은 1일 1∼2회 투여하며 속효성에 비해 작용 시간이 길어 공복혈당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야간에 인슐린 농도가 높아져 저혈당을 초래할 위험이 있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슐린 투여량을 줄이면 아침에 혈당 조절이 어렵게 된다. 지속형은 하루 한번만 주사하면 24시간 이상 약효가 지속되므로 간편하고 저혈당 및 체중증가 등의 부작용이 훨씬 적다. 그러나 식후 혈당을 관리하기 위해 경구용 혈당강하제나 인슐린을 추가로 투여해야 할 때도 있다. ●인슐린 투여 방법의 차이도 짚어 달라. 인슐린 투여 방법으로는 주사식과 펌프식이 있다. 주로 사용하는 인슐린펜은 용량 조절이 쉽고 통증도 거의 없어 1세대 주사 방식이 갖는 단점을 대부분 극복했다. 펌프는 24시간 인슐린이 공급되도록 고안된 기계로, 미니 펌프를 옷에 부착하고 바늘을 복부 피하조직에 꽂아 지속적으로 인슐린이 공급되도록 설계됐다. 이런 펌프는 정확한 인슐린 주입이 가능하나 항상 바늘이 몸에 꽂힌 상태여서 감염 위험이나 이물감을 느낄 수 있으며, 샤워 등을 할 때 펌프를 따로 관리해야 하는 불편함, 펌프의 고장·파손으로 당뇨병 혼수에 빠질 수 있다는 점 등이 문제다. ●인슐린 치료의 한계나 부작용도 있을 텐데…. 인슐린 치료의 단점으로는 저혈당과 체중증가를 꼽을 수 있다. 저혈당을 예방하려면 적절한 용량의 인슐린 투여가 중요하다. 체중의 경우 경구용 혈당강하제 대비 인슐린 투여로 인한 체중 증가는 1∼2㎏ 정도로 심하지 않으며, 이는 식이요법 등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北 김정은시대 선언] 中만 보는 北경제… 무역의존도 90%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북한을 지원할 경우 북한의 개방 속도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남북한 경제협력 공동체 건설을 위한 그랜드 플랜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3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과 북한 간 무역 규모(수출액+수입액)는 36억 39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82.2%나 증가했다. 김 위원장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올해 말 교역액 규모는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해보다 72.8%가 늘어난 규모다. 북·중 교역액은 지난 2003년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07년 19억 7600만 달러로 20억 달러에 육박하더니 2010년(34억 7200만 달러) 처음으로 30억 달러를 초과했다. 특히, 남북 교역을 제외한 북한의 대중 무역 의존도는 올해 90%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05년 52.6%였던 것을 감안하면 6년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반면 남북 교역액은 지난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올해 들어 줄어들고 있다. 1~10월 1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이상 줄었다. 김 위원장 사후에 북한이 체제 안정을 위해 기댈 수 있는 곳은 중국이다. 결국 중국에 대한 북한경제의 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내년 중국의 경제 상황도 녹록지 않아 북한 지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중국에서 외국인자금(직접투자 포함)은 10~11월 300억 달러가 순유출됐다. 2007년 12월 이후 거의 4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유출이다. 노무라증권은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가 겹치면서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은 경착륙 수준인 7.9%로 떨어진다고 예측했다. 실제 중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북·중 교역액은 26억 8100만 달러로 2008년(29억 9300만 달러)에 비해 4% 줄어든 바 있다. 전년보다 연간 무역규모가 줄어든 것은 1999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중국이 자국 경제 형편과 상관없이 북한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북한 경제를 도우면 미국과 경제 전쟁에서 유리한 카드를 쥐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으면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봤다. 최명해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절대적인 것은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라면서 “북한도 러시아와의 경협 강화·남북 경협 확대를 비롯해 6자회담을 통해 핵을 부분적으로 포기하고 경제 지원을 이끌어 내는 등 전방위적으로 돌파구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최강희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 맡겠다”

    최강희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만 맡겠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최강희(52) 축구대표팀 신임감독은 마지막을 기약했다. 최 신임감독은 22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내 임기는 2013년 6월까지다.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감독직을 맡지 않겠다고 했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대표팀 감독은 (외부 입김에서 자유로운) 외국인이 해야 한다.”는 거침없는 말도 터뜨렸다. 평소 ‘바른말 사나이’로 불렸던 최 감독은 사령탑의 공식 행보를 일갈로 시작했다. ●“월드컵 본선은 외국인 지도자가 적격” 최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확정·발표된 지난 21일 외부연락을 끊었다. 대신 그날 밤 전북FC 공식 홈페이지에 긴 글을 남겼다. “쿨하게 good bye(안녕)가 아니라 so long(또 봐요)입니다.”라는 문장이 의미심장했다. 마무리는 ‘영원한 봉동이장 올림’이었다. ‘so long’의 뜻은 이튿날 기자회견장에서 밝혀졌다. 최 감독은 “내 계약기간은 2013년 6월까지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더라도 그땐 전북으로 꼭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2013년 6월은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2012년 6월 3일~2013년 6월 18일)이 끝나는 시점. 월드컵 본선에서 큰 성과를 내기에는 본인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일주일 전까지 전북을 떠날 생각이 1%도 없었다. 한국축구에 책임감을 느껴 구단을 잠시 떠나기로 했다.”는 발언을 통해 감독직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복잡한 상황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상황을 다소 거칠게 말하면 ‘전북이 최 감독을 1년 6개월간 축구협회에 임대’했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고” 소신발언은 또 있었다. “월드컵 본선무대는 외국인 지도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최 감독은 “감독 선임과정을 밖에서 지켜보면서 대표팀 사령탑은 절대적으로 외국인 감독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연 내 판단대로 대표팀을 이끌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지연·학연·정치라인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내파 감독의 한계를 따끔하게 역설한 것. ‘4강 신화’를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처럼 외부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는 외국인이 사령탑에 적합하다는 의견이었다. 쓴소리만 한 건 아니었다. 혼란에 빠진 한국축구를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시키겠다는 굳은 의지도 드러냈다. 최 감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함께한다면 아시아에서는 아직 우리가 최고다. 짧은 시간 동안 효율적으로 팀을 극대화시켜 최고의 성적을 내겠다.”고 말했다. 기존 조광래 감독과의 차별성도 예고했다. 최 감독은 “선배님이 일궈놓은 걸 모델로 삼을 순 있겠지만, 내가 가진 노하우를 빠르게 접목시키겠다. 선수 구성과 선발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씨줄날줄] 유훈통치/임태순 논설위원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가 우등생을 집에 데려오면 크게 반긴다. 공부를 잘하면 착하고 모범적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친구로 사이 좋게 지내라며 후하게 대접한다. 불상과 마리아상은 받침대의 은은한 빛으로 더욱 빛이 난다. 이른바 ‘광배’(光背)다. 광배로 인해 불상과 마리아상은 자비로움과 신비로움이 더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효과를 ‘후광효과’라고 부른다. 김정일이 사망한 북한이 엊그제부터 본격적으로 ‘유훈통치’에 들어갔다. 김정일 시신을 공개하고 후계자 김정은이 그에게 가장 먼저 조의를 표했다. 전형적인 후광효과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김정일이 3년간 유훈통치를 하면서 권력이양을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북한에서 유훈통치가 가능한 것은 폐쇄사회인 데다 지배자 김일성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는 후계자 김정은이 20대 후반인 데다 통치 경험이 일천하고 권력기반도 확고하지 않아 김정일의 후광에 기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광적인 집단 조문도 여전하다. 김일성 사망 시에 비해 강도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미친 듯 오열하는 것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단 최면이 가능한 것은 인간에겐 남을 따라하는 동조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옆에서 슬퍼하면 같이 슬퍼져 결국 전체로 전염된다. 집단 오열은 동질감을 가져와 내부 결속력을 다지는 데 효과적이다. 북한의 광적인 추모 열기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의외로 허점이 많은 존재다. 미국의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권위에 쉽게 굴복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를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문제를 틀릴 때마다 학생들에게 전기를 15V씩 올리자 처음에는 주저 없이 따르던 실험 보조자들도 점차 전압이 올라가자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저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책임지겠으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자 40명 중 26명이 400V의 무시무시한 전기고문을 끝까지 가했다. 냉정한 이성과 합리성을 갖춘 인간도 이처럼 쉽게 무너지는데 오랜 시간 외부와 차단돼 주체사상에 감염된 북한 주민들은 후광효과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국내 정치에서도 선거철이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지나 유업을 계승한다고 하는 만큼 후광효과는 일상화된 기법이다. 그래서 예부터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씨줄날줄] 열차/임태순 논설위원

    기차만큼 인류의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친 것도 없다. 산업혁명 초기인 1800년대 초 발명된 증기기관차는 마차 중심의 생활권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기차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물자와 사람을 실어날라 시간과 공간을 무한히 확대했다.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이질적 공간들이 동일 공간대, 동일 시간대에 편입되면서 경제적 번영을 가져왔다. 이동이 잦아지면서 행락 및 여행문화가 자리잡고 이에 따라 견문도 넓어져 문학, 회화, 사진 등 문화적 지평도 확대됐다. 철도는 근대적 경영을 태동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850년대 미국의 경우 세계적인 제철소나 섬유공장을 짓는 데 100만 달러가 들어간 데 비해 철도산업은 150마일을 건설하는 데만 800만 달러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초대형 투자였던 만큼 개인투자자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당연히 유럽의 자본이 유입되고 주식과 채권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만큼 경영의 합리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돼 라인과 스태프의 인적 구조, 원가회계 개념 등이 등장하고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이 시작됐다고 하버드대학교 경영사학자 알프레드 챈들러는 말한다.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었지만 제국주의 시대에는 약소국 침탈의 도구였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탄하면서 경인선, 경부선을 부설했다. 그런 만큼 철도는 약소국 입장에선 저항의 대상이다. 당시 경부선은 충남 공주를 지나기로 돼 있었으나 유생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대전으로 우회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대전은 번영하고, 공주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북한을 장기 통치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한반도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그가 유명을 달리한 장소는 평소 애용하던 ‘야전열차’였다. 그가 북한 내 ‘현지지도’는 물론 해외방문 시에도 비행기가 아닌 기차를 이용하는 것은 안전상의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한다. 고소공포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열차가 비행기에 비해 경호에도 유리하고 외부의 공격을 받아도 신축적으로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기차를 고집함으로써 시대에 뒤지고 은둔의 이미지가 굳어진 것 또한 사실이다. 시속 300㎞의 고속열차가 등장하면서 철도도 많이 현대화됐지만 초음속으로 나는 비행기와 견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유럽 유학에 신세대인 후계자 김정은이 아버지처럼 열차를 탈지 궁금하다. 그의 선택에 따라 북한의 미래가 달라지는 것은 분명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사설] 불량택시 잡겠다는 서울시 정책 주목한다

    서울시가 올 연말부터 승차거부·바가지요금 등을 일삼는 불량택시 퇴출에 나선다. 벌점제를 도입해 3000점이 넘는 택시의 사업면허를 취소하는 방식이다. 개인·법인택시 모두 해당된다. 승차거부·부당요금·합승금지위반은 과태료 10만원당 5점, 전액관리제를 안 하면 10만원당 2점, 복장위반·장기주차 등 일반 과태료는 10만원당 1점이다. 벌점이 적어 3000점을 초과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벌점은 가산돼 무겁다. 개인택시가 1회 승차거부를 하면 1년에 360점이 쌓이는 만큼 9차례 적발되면 더 이상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사납금 징수를 금지하는 전액관리제 위반 벌금은 1차 500만원, 2·3차 각 1000만원, 4차 감차명령이 내려지는 만큼 법인택시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벌점에 의한 불량택시 퇴출제는 택시업계의 자업자득이다. 심야시간대 택시잡기는 거의 전쟁수준이어서 한겨울에 1시간 가까이 추위에 떨기 일쑤다. 택시기사들이 운행 수입을 노려 입맛에 맞는 승객을 골라 태우기 때문이다. 콜택시가 있어도 황금시간대는 불통이다.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가 하면 불러도 백년하청이다. 이러니 승객이 태워 달라고 애걸복걸하고 합승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멀거나 돌아올 때 승객이 없는 곳은 아예 가지 않거나 웃돈을 요구한다. 서비스가 실종됐으니 퇴출제가 도입되는 것도 당연하다. 경찰은 연말까지 택시 승차거부 집중단속 및 계도활동에 나선다.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의 심야시간은 대중교통이 끊긴 교통사각시간인 만큼 택시 횡포에 대한 단속 및 계도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져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일이 없어야 한다. 불량택시 퇴출제가 효과를 거두려면 시민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동안 시민들은 택시에 대한 불만 및 불편사항은 감내하고 지내 왔지만 이제부터는 신고·고발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승차거부 등 위법행위를 적발하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기를 들어야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승차거부는 지난해 4082건에서 4254건, 부당요금은 382건에서 463건으로 증가추세에 있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더 이상 불량택시로부터 시달리지 않으려면 다산콜센터(120번)나 서울시 교통지도과(6361-3658)로 부지런히 신고해야 한다. 차제에 택시업계도 친절 등 서비스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사랑가득 ‘복지 마포’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사랑가득 ‘복지 마포’

    “장애 어린이에서부터 80~90세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입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15일 개관식을 열고 본격 운영을 시작한 ‘우리마포복지관’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러면서 “서울에서 가장 사랑이 넘치고 훈훈한 복지관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귀띔했다. 노고산동 1-50 일대 3225㎡ 부지에 세워진 우리마포복지관은 각 분야 복지시설을 총망라한 지역 최대 규모의 종합복지관이다. 지상 5층, 지하 2층 건물에 노인데이케어센터부터 장애인 주간이용센터, 장애인보호작업장, 재활치료실, 푸드마켓 등이 들어섰다. 또 어린이집, 동주민센터,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 건강가정지원센터 등 주민편의시설까지 두루 갖춰 모든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꾸몄다. 공사는 2009년 6월부터 30개월간 진행됐다. 총 342억여원의 예산이 투입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박 구청장은 “구청 예산 규모와 비교할 때 상당히 벅찬 공사”라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마포구가 이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노인 인구 급증 등으로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관내 복지시설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자치구 평균 종합복지 시설수는 3.7곳인데 마포구는 겨우 2곳에 불과했다. 우리마포복지관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인 데다가 신촌로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접근성이 좋다는 강점을 뽐낸다. 특히 상대적으로 복지시설이 부족했던 아현동과 공덕동 일대 주민들의 불편도 말끔히 해결하게 됐다. 박 구청장은 “이용객 분석 결과 하루 평균 1500여명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복지관 건물은 국토해양부에서 친환경건축물로 인증도 받았다. 보기 좋게 유리로 외관을 꾸민 건물인데 일반 복층유리보다 에너지 절감률이 좋은 로이 복층유리를 사용해 에너지 효율을 한껏 높였다. 지하주차장에서 침수를 막는 차수판(遮水板)도 설치했다. 하지만 박 구청장은 건물의 화려함보다는 의미 있고 알찬 운영을 더 강조했다. 그는 “건물 마련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건물 안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을 사랑으로 대해 드리고 이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에서 행복을 키워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한편 개관식에는 박 구청장, 박영길 마포구의회 의장을 비롯, 지역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조촐한 자축의 시간을 가졌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통일비용 수천억弗’ 한면만 부각시키는데… 통일혜택은 왜 계산하지 않나

    ‘통일비용 수천억弗’ 한면만 부각시키는데… 통일혜택은 왜 계산하지 않나

    통일비용은 얼마나 될까. 이 질문은 조금 김 샌 느낌이 있다. 북한에 불어닥쳐 3대 세습정권을 쓰러뜨리라고 기원했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촉발된 아프리카 재스민혁명이 북한 대신 남한에 들이닥친 분위기라서다. 그럼에도 북한을 생각할 때면 빠질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통일비용은 대개 수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언급된다. 그런데 이 숫자들은 믿을만한 것일까.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등에 따른 경제적 효과처럼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숫자인 것은 아닐까. 계간지 역사비평 겨울호에 임현진(서울대 사회학과)·정영철(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두 교수가 쓴 논문 ‘전환의 계곡을 넘어-통일편익, 통일비용, 그리고 통일혜택’은 이 질문을 던지는 글이다. 두 교수가 보기에 기존의 통일비용 연구는 “통일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통일비용의 일면성만 부각시킨 결과”였다. 물론 북한은 비정상 국가의 대표 사례이고, 따라서 정상적인 국가로 되돌리는 과정에서 비용은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 액수도 만만치 않으리라고 본다. 그렇지만 비정상적인 국가를 더 이상 상대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통일편익’ 역시 분명히 있다. 따라서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데는 통일에서 생기는 이익에서 통일비용을 뺀 액수가 중요하다는 것이 두 사람 주장의 핵심이다. 바꿔 말하면 어떤 통일이냐에 따라 비용보다 이익이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면 통일비용은 흔히 생각하듯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통일비용 개념 독일모델에 너무 기대 이들은 먼저 통일비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격적인 흡수통일이라는 독일모델에 너무 기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동독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서독의 그것과 동일해지는 순간까지 소요되는 서독의 정부 지출액’이 독일 통일 당시 통일비용 개념이었다. 따라서 남북통일의 경우에도 남한의 흡수통일을 전제한 뒤 북한의 1인당 GNP가 언제쯤 남한의 1인당 GNP에 다다를 것이냐를 중심으로 논의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정치, 사회, 문화, 군사적 상황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즉, 경제적 비용을 계산할 때는 온갖 비용을 다 포함해서 계산하다가 왜 이득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한마디로 “여지껏 논의된 것은 총 통일비용으로, 통일로 인한 이익을 감안한 순 통일비용은 언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통일로 얻게 되는 이익을 계산할 때도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군사적 이익을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동독 지역에서 이뤄진 민주주의와 인권의 증대, 동·서독의 국방비 절감, 외교적 경쟁에 따른 불필요한 지출 절감 등을 고려해야한다는 얘기다. 결국 통일비용이 엄청 드니까 미리 적립해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통일비용이 실제 얼마인 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통일비용이 한 덩어리로 제시되다보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단계적인 투자와 통일 이후 점증하는 통일 효과가 무시된다 ▲초기에 상당한 부담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용이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어 있다고 두 교수는 지적한다. “남북한 지역 격차, 남한 내의 격차, 북한 내의 격차는 언제든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북한만의 격차가 없어야 한다고 상정한 채 통일비용을 산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결론이다. 남한 내 격차를 없애자면 국가재정을 파탄내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면서 남북한은 왜 절대적으로 차이가 없는 상황을 전제하느냐는 반문이기도 하다. ●정치·사회 등 경제외적 이익도 따져야 그렇다면 남북한 통일에 따른 이득은 뭐가 있을까. 대표적인 게 국방비 감축이다. 국방비를 직접적으로 줄이는 비용뿐 아니라, 정부가 내놓는 다른 장밋빛 전망들처럼 이 줄인 비용으로 다른 곳에 투자했을 경우 더 큰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두 교수는 “통일비용보다는 통일이익에 대한 심층적 연구가 더 필요하고, 통일 이후 창출될 편익이 어떻게 분배되는 가에 대한 분명한 프로세스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막대한 규모의 정부사업이 추진될 때마다 경제적 효과가 얼마라는 내용을 쏟아내는 정부와 각종 경제연구단체들이 뭐라고 답할 지 궁금해진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축구협 기술위 “새 대표팀 감독, 외국인에 무게”

    지난 7일 밤 군사작전처럼 조광래 감독을 전격 경질할 때는 시나리오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대본은 조 감독 경질까지였다. 다음은 없었다. 새로 구성된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13일 첫 회의를 열고 내린 결론은 “기본적으로 외국인 감독”이다. ●“한국 정서 이해·경험있는 지도자 필요” 황보관 기술위원장은 파주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기술위를 마친 뒤 새 감독 선임 기준을 밝혔다. 황보 위원장은 “국내외 감독을 대상으로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외국인 감독을 좀 더 검토하고 선정 작업을 해야 한다.”면서 “단기간에 전력을 극대화하고 팀을 장악해야 하며 한국의 축구 발전을 위해 앞으로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국가대표팀을 맡은 경험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한국 선수들이 정말로 잘 따를 수 있고 될 수 있으면 한국 정서를 잘 이해하는 감독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뻔한 이야기다. 눈길을 끄는 것은 기술위가 내세운 3단계 계약론. 기술위는 내년 2월 쿠웨이트와의 2014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 최종전을 1단계, 이어질 최종예선을 2단계, 월드컵 본선 기간을 3단계로 구분해 감독과 계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쿠웨이트에 져서 최종예선에 못 올라가면 경질하고, 최종예선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도 경질하고, 브라질행 티켓을 따내도 월드컵 본선은 다른 감독에게 맡길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위가 축구협회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내건 셈인데, 한국 축구에 엄청난 애정을 지닌 외국인 지도자가 아니면 한국행이 불가능한 조건이기도 하다. ●“올해 안에 대표팀 감독 후보 구체화” 감독 선임 절차는 기술위의 추천이 아니라 기술위원장이 후보들과 접촉한 다음 기술위에서 후보군을 두고 논의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기술위가 여전히 축구협회 수뇌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요식적인 회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황보 위원장은 “축구협회 정관에는 대표팀 감독의 선임은 기술위가 추천한다고 명기돼 있으니 기술위원들은 그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축구협회 정관은 조 감독 경질 때 이미 내팽개쳤다. 다음 기술위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축구협회의 당초 목표는 연내에 새 감독을 선임하는 것이었지만 후보들과의 접촉 결과에 따라 선임 시점이 해를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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