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단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혜택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취임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MB 측근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죄송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734
  • “美 레널즈사 담배위험성 은폐” 흡연자에 181억원 배상 판결

    (캔자스(미 캔자스주) AP 연합) 미 캔자스시티 연방지법은 21일 한 흡연자가 담배 제조회사 RJ레널즈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레널즈사가 원고에게 1500만달러(181억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연방지법의 배상 명령은 지난 2월 레널즈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인 데비비드 버튼(67)에게 19만6416달러(2억4000만원)를 지급하라는 배심원들의 평결이 내려진 후 4개월만에 나왔다. 존 W 스트럼 연방 지법 판사는 이날 오랜 흡연으로 인한 (혈액)순환계 질환으로 다리를 절단했다고 주장한 버튼이 레널즈사를 상대로 흡연의 위험성을 숨겼다면서 낸 손배소 재판에서 이 담배회사가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판결했다.
  • 방송단신/ ‘한국의 아름다운‘ 출간 등

    ***‘한국의 아름다운…' 출간 한국방송출판은 환경부와 공동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을 출간했다. 책은 지난해 ‘환경 스페셜-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을 제작해 화제를 모은 KBS교양국 장해랑 부주간이 직접 집필했다.‘사계’‘향토’‘울림’‘향수’‘생명’의 5부로 나누어졌으며 소리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도록 동영상 DVD가 2장 제공된다. 월드컵 기간동안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이고 자연적인 소리들을 널리 알리기위해 영문판으로도 출간됐다.2만원. ***‘상하이TV 페스티벌’참가 아리랑TV가 문화관광부와 함께 지난 9일 개막돼 11일까지의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중국 ‘상하이TV 페스티벌’에 참가해 ‘한국의 날’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한·중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한국의 날’행사에는 아시아권 한류(韓流)바람을 일으킨 HOT의 강타와 탤런트 채림이 한국의 문화사절단으로 참석중이다. ‘상하이TV 페스티벌’은 세계 50개국이 모이는 TV영상물 마켓으로 올해로 9회째를 맞았다.
  • 日 가전용 반도체부문 중국 이전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반도체 메이커들이 중국에서의 반도체 조립생산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도시바(東芝)는 2년 뒤 현지 조립생산능력을 현재의 10배인 월 3000만개로 늘릴 계획이며 미쓰비시(三菱)전기도 2003년에는 현재의 2배인 월 3500만개로 늘릴 방침이다. 5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에 따르면 중국이 세계의 가전제품 생산기지로 부상함에 따라 일본 반도체 메이커들은 가전제품용 저가 집적회로(IC) 조립생산의 대부분을 일본 국내에서 중국으로 이전할 전망이다. 일본 반도체 메이커들이 이전을 추진하고 있는 공정은 ‘후공정’.조립·검사공정으로 회로를 그려넣은 웨이퍼를 칩으로 절단해 배선 등을 넣은 뒤 케이스에 집어넣는 공정으로 인건비가 전체 생산비용의 약 20%를 차지한다.미쓰비시전기 관계자는“생산공정을 중국으로 이관함으로써 고객의 요구에 신속하게 부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동시에 40% 정도의 비용절감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marry01@
  • 부산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조선과 일본 도쿠가와 정권의 평화적 우호 교린을 담당했던 사절단인 조선통신사행렬이 ‘2002 FIFA 월드컵 한·일 공동개최’를 계기로 5일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재현됐다.7일에는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섬 이즈하라에서 조선통신사 행렬이 펼쳐지며,8일에는 이즈하라 문화회관에서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국제학술심포지엄’ 학술행사가 열린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웰컴투코리아 시민협 최불암 회장 “”문화를 파는 관광산업 펼칠때””

    “외국 손님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안겨주면 우리나라 국가경쟁력도 그만큼 높아집니다.” 사단법인 웰컴투코리아 시민협의회 회장인 탤런트 최불암씨는 이번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 기간에 가장 바쁜 연예계 인사중 한 명으로 꼽힌다. ●청사초롱 손님맞이= 협의회는 문화관광부와 필립스 조명으로부터 1억 2000만원 상당의 협찬을 받아 월드컵 전야제가 열린 지난달 30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청사초롱 3만개를 제공했다. 그는 “청사초롱은 선조들이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고 보낼 때 쓰던 아름다운 고유의 문화상품”이라고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전야제에서 관중이 일제히 청사초롱을 들어 장관을 연출한 데에는 그의 이같은 세심함이 깃들어 있었다. 서울 여의도 등 한강변 아파트 단지 4000가구에도 청사초롱을 제공해 8일까지 베란다에 내걸도록 했다.유람선에 탄 외국 손님들을 시민들이 함께 맞이한다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동분서주 홍보대사= 그는 “국가 이미지는 곧 그 나라의 경쟁력과 연결된다.”면서 “외국 손님들을 따뜻하게맞이해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개선하면 외국 관광객도 많이 유치하고 외국에서 우리 상품도 많이 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한 27가지 지역축제마다 협의회 홍보대사들과 함께 찾아다닌다.우리 국민에게는 ‘청결’‘친절’‘질서’등 선진문화를 이루자고 홍보하고,외국인에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사절 구실을 하고 있다. ●자비로 시작한 관광홍보= 그가 국가 이미지 개선 및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뛰어온 지 벌써 3년8개월이 됐다.지난 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한국관광 CF에 무료 출연한 연예인 58명을 홍보위원으로 위촉해 웰컴투코리아 시민협의회를 발족시킨 것.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내는 등 기반을 닦고 홍보활동을 하느라 1년 만에 4600만원의 자비를 털어넣었다.현재는 30여 시·군·구 등이 법인 형태로 협의회 회원으로 참여해 연 200만원의 회비를 내고 있다. 연예인 등 이름이 알려진 다른 홍보위원들이 이 지자체들에서 주최하는 행사를 찾아가 손님맞이를 돕는 홍보사절단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본적인 홍보활동을 펴고 있다. ●관광인프라 구축 시급= 그러나 그는 국내 관광산업이 발전하려면 홍보보다는 인프라 구축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다.대통령과 최정상급 연예인이 예쁜 옷을 입고 청사초롱을 든 채 ‘한국으로 오세요.’를 백날 외쳐 봐야 ‘볼거리’와 ‘시설’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인구 13억의 관광시장인 중국 현지에서는 한국관광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설명이다.최 회장은 최근 중국인 관광객 40여명이 청와대로 몰려가 시위를 벌인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고 예를 들었다.숙박업체들이 ‘러브호텔’식으로 운영하고자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낮에는 짐을 들고 나가라고 종용해 국제적인 망신살이 뻗쳤던 것.관광의 기본도 없이 무턱대고 손님만 유치할 일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국민협력 따라줘야= 그는 “관광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2만원대의 깨끗한숙박업소,5000원대의 맛있는 먹거리는 기본”이라면서 “역사·인심·볼거리가 일치해야 관광객이 꾸준히 찾아오는 만큼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합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우리 국민은 ‘들고 일어나는 근성’에 대해 한번쯤 반성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예컨대 제주도에 ‘마차 관광’ 사업을 유치하자면 택시협회가 들고 일어나 무산된다.수산시장 주차장 빌딩 4층에 외국인을 위한 관광식당가를 조성하려 했더니 ‘용도변경 불가’란 이유로 당시 주차장을 관리하던 기업이 퇴짜를 놓았다. 결국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국민의 적극적인 협력과 불협화음을 조절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이 최 회장의 주장이다. ●한강 프로젝트는 남은 숙원= 그의 최종 목표는 한강대교 부근 중지도 위에 63빌딩보다 높은 350m 높이의 철제 관광전용 빌딩을 만드는 것이다.야간 경관을 조성해 유람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으로도 이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또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젖줄인 한강을 프랑스의 센강 못지않은 명소로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최 회장은 정부 차원의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관이 합심할 때 우리 관광문화가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면서 “관광산업이란 단순히 외국인의 주머니를 비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를 이해시켜 국가 이미지를 높이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는 말로 끝을 맺었다. 주현진기자 jhj@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8)군사교육 지원의 전모

    ***“6000精兵 양성” 러 군사교관단 2차례 파견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閔泳煥) 특명전권공사는 1896년 6월13일 외무장관 로바노프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민영환 특사는 러시아군대 파견,군사교관단 파견,차관제공,재정고문 초빙,전신선가설 등 5가지 요청 사항을 제시했다.이중 러시아군 및 군사교관단 파견요청에 대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답은 다음과 같다. 고종의 호위를 위해 러시아 군대를 조선에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 동안 러시아 해군이 호위할 것이다.공사관에 체류하고 싶은 만큼 체류할 수 있다.(로바노프).조선군대를 훈련시키는 동시에 왕을 호위할 군사교관 200명을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군사교관은 파견할 것이나 빠른 시일안에는 곤란하다.(로바노프) 당시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아관파천(1896년2월11일∼1897년 2월20일)기간중이었고 러시아가 조선의 국사를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고종은 자신의안위를 보호해줄믿을 만한 군대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러시아군이 그같은 역할을해줄 것으로 여겼다.고종은 일본인 특히 일본 군사고문단의 한반도 진출을 꺼려했다.일본 군사고문단 대신 러시아 군사교관단을 초청하고 싶었다.하지만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러시아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열강을 동원한 일본과 친일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러시아로서도 극동주둔 군사력의 대(對)일본 열세를 잘 알고 있었고 당시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군대 파견의 전제조건이자 러시아의 확고한 한반도 지배의사로 해석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1896년 2월23일 일본 군사무관 보각 대령은 참모본부 학술위원회에 보낸 전문에서 “조선의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요청에 동의하면 일본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이 경우 일본 정계에서 조선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협력을 하려는 분위기를 파국으로 이끌거나 아니면 일본의 적극적인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러시아 군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팽배했다.이 때문에 러시아정부는 파견결정을 차일피일미뤘고 주한 베베르 대리공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결국 군사고문단의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생색내기용’파견이 이뤄졌다. 조선의 불안한 정세로 보아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문제를 고종과 협의하기는아직 시기상조이다.(1896년 3월1일 로바노프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서울주재 공사대리에게) 가능하면 신속하게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그것이 왕권강화,질서회복 그리고일본견제책의 유일한 수단이다.(같은해 3월2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문)국방부에서 검토한 결과 고종의 시위대는 러시아인 장교를 지휘관으로 한인 1개 대대로 구성하고 교관은 위관급 5명,상사 4명,하사관 10명과 소총 1000정이 적합하다고 한다.(1896년 4월28일 외무장관이 베베르에게).고종은 무기와 교관단 파견결정에 감사를 표했다.조선군은 4000명이기 때문에 왕의 시위대외에 서서히 다른 부대의 교육도 위탁하고자 한다.(같은해 같은달 3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1896년 11월22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민영환 특사와 청국주재 군사무관이던푸차타 대령 사이에 제1차 군사교관단초청 계약서가 체결됐다.계약에 따르면 초청기간은 1년이며,인원은 장교 2명,하사관 10명,군의관 1명,악장 1명 등 모두 14명으로 돼있다.조선측은 장교급에겐 매월 150엔,사병에게 20엔의 월급과 숙소를 제공키로 했다.제물포까지의 여비와 부임수당 등도 별도로 부담하는 조건이었다.이들 중악장을 제외한 13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레마쉬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했다. 곡절끝에 13명의 제1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은 1896년 10월24일 조선땅에 들어왔다.고종이 요청했던 200명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숫자였지만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의 의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는 군사교관단의 파견과 함께 푸차타 대령을 군사교관단장에 임명했다.또 1896년 1월 동부 시베리아 제2보병여단 소속 스트렐비스키 중령을 서울주재 러시아공사관 군사무관(軍事武官)으로 임명했다.1895년 6월17일 아무르군관구 참모부장이 외무장관에게 “이제 서울에도 별도의 상주 군사무관이 필요하다.앞으로극동의분쟁에서 조선의 무력이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스트렐비스키 무관은 1902년 라벤 중령과 교체될 때까지 서울에서 근무했다. 조선은 청·일전쟁(1894∼1895)이전까지는 지리적 특성으로 러시아 우수리지방의중요한 국경을 보호해 주는 방벽구실을 했다.현재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앞으로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그러나 조선의 최근 역사를 분석해 볼 때 아마도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정치적 욕망이 많은 열강,특히 일본의 세력각축장으로 변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의 1897년 수기)조선은 6000명의 상비군을 보유해야 국내 질서가 안정될 것이다.고종은 유럽식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3000명의 정병(精兵)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6000명 정병양성은 조선의 영토나 국민수로 보아 외국의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조선과 병력양성문제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과 협의를 해야 할것이다.군부에 만연돼 있는 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예산집행이 이뤄져야 한다.(1897년 6월17일 푸차타의 비밀보고서) 푸차타의 이같은 조선군대 증강계획안에 대해 일본은 거세게 항의했으며 러시아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증강계획을 포기하든지 일본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전쟁은 러시아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 계획에 착수하면 돌이킬수 없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제1차 군사교관단의 대한제국군 군사조련은 일단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1897년6월9일 고종과 각부 대신 그리고 주한외교사절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선군 의장대 사열식은 참석자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대한제국군중 러시아교관단 산하부대로 들어오려는 경쟁도 치열했다. 당시 서울에는 대한제국군 5개 대대병력 4000여명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30대의 젊은 한국인 대대장이 부대에 출근할 때는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영감행세’를 하기 일쑤였다.병력중 많은 숫자가 ‘유령 병력’이었다.식비를 횡령하기 위해 숫자를 부풀린 탓이다.대부분이 군인 신분을 창피하게 여겨 밖에 나갈 때는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교관단은 이중 1600여명을 선발해 2개 대대로 조직했다.이들은 궁정을 경비하는 시위대 요원이었다.따라서 훈련과목에는 궁중 예절과 궁중 호칭법 등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정부는 대한제국 군대의 개편을 포함,재정지원을 제공하고 제2차 군사교관단을 또다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장교 3명,하사관 10명,사관학교 교관·병기병·군악대지휘자 각 1명,군악대원 3명,위생병 2명 등 총 21명이다.(1897년 5월15일 베베르가 무라비요프 외무장관에게) 1차 군사교관단의 성공에 고무된 러시아가 제2차 군사교관단을 파견했다.2차 교관단의 장교와 하사관 등 13명은 아무르군관구에서 차출됐으며 나머지 기능직은 예비역중에서 선발됐다.하지만 독립협회의 활동과 친일파의 득세 등으로 인해 대한제국내 정세는 급격하게 반(反)러감정이 확산되고 있었다.급기야 1897년 8월14일 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이 본국으로 소환되면서 알렉세예프 중위에게 교관단 통솔권이 위임됐다.푸차타 대령의 야심찬 조선군 증강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후 소장으로 진급,아무르지사로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최근 여러 보고서로 미뤄볼 때 대한제국의 정세가 매우 불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모든 당파가 러시아에 적대적이며 친러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고종황제 역시 매우 의심스럽게 되었다.이러한 상황 때문에 러시아가 대한제국 국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니콜라이 황제께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 정부가 향후 러시아의 지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지 문의하라고 하셨다.대한제국의 요청으로 파견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이 필요치 않다면 러시아는 마땅히 소환하겠다.(1898년 3월3일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에게) 대한제국 정부가 공식적인 회답을 보냈다.현재 러시아의 군사 및 재정고문(알렉세예프)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다.러시아는 모든 외국인 고문의 파면을 요청하고 최근 통역관(김홍륙)살해 음모자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대한제국 정부가 거부하면 공사관 기를 내리고 원산을 점령해야 한다.(같은해 3월12일 스페이예르의 회신) 평소 거칠고 직선적인 언사 때문에 초대 대리공사 베베르가 10년동안 한국에서 닦아놓은 외교적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스페이예르는 ‘공사관철수 후 한반도 북부 무력 점령’이라는 극단 처방을 내놓았다.니콜라이 2세는 1898년 5월4일 대한제국에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의 철수를 허락했다. 러시아 군사교관단이 철수한 이후 대한제국군의 조직은 일본의 수중에 넘어갔다.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20명의 한국인 장교들이 교관이 되었다.1901년 1월 당시 대한제국군은 장교 372명에 사병 1만 5200명이었고 군대예산은 360만엔이었다. 1,2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과 철수시기를 전후해 일본과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모스크바 프로토콜)체결,1898년 로젠-니시협정(러·일특별협정) 등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협정을 맺었다.러시아가 일본과 일련의 협정체결과 함께 군사교관단을 철수시킨 것은 대한제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사실상 접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종은 이후 국내외 압력에 밀려 러시아교관단이 철수하도록 등을 떼민 자신의 ‘우둔한’결정을 한없이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눈엣가시’러시아군이 떠나자 일본의 한반도 점령 프로젝트 추진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노주석기자 joo@ ■'거문도 사건' 러 대응 1885년 4월15일부터 23개월 동안 영국의 극동함대가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를 무단 점령한 사건은 러시아의 태평양진출정책을 경계한 열강,특히 영국의 극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 사건이었다. 새로 발굴된 러시아문서보관소의 비밀외교문서에 따르면 러시아 군부는 거문도 점령 당일 외무부에 급보를 띄워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서울점령 등 강공책을 제시하는 등 급박하게 움직였다.하지만 영국의 무력시위 앞에 러시아는 다소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이 과정에서 영국과 청의 비밀거래설도 제기돼 주목된다. 블라디보스토크호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귀국하는 길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거문도를 방문한다.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의행위는 러시아에 적대적인 것이다.러시아의 태평양함대사령부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영국의 군사기지를 폐쇄하도록항의해야 한다.영국과의 협상에서 카스피해 동부지역과 조선이나 일본의 항구를 점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야 한다.(1885년 4월15일 해군부관리관이 기르스 외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문서). 만일 영국이 거문도를 합병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순양함대는 동해에서완전히 군사적으로 봉쇄당하게 된다.또한 일본군이나 청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게 되면 러시아군이 그들을 몰아내고 아예 서울을 점령해야 한다. (1885년 4월1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코르프가 황제의 시종무관장에게 띄운 암호전문). 러시아는 정보라인을 총동원,영국의 점령의도와 군사력 등을 파악했다.거문도점령 9일후인 4월23일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된 코스틸예프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는“거문도에는 1척의 영국전함이외에 2척의 소형함정이 있다.오늘 식료품을 실은 기선이 거문도로 출발했다.그곳에는 상륙병 50명이 있으며 나가사키에 있는 영국군함에는 200명의 수병이 승선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또 베이징주재 러시아 공사 파포프는 1885년 9월20일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청국의 이홍장(李鴻章)은 영국의 거문도점령을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그는 종속국인 조선의 보호를 의무로 여기고 있다.청국의 거문도철수항의를 영국이 수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거문도 때문에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면 영국은 거문도를 떠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영국의 거문도점령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결과로 분석된다.”라고정확하게 분석했다.청국주재 군사무관 시누에르는 1885년 11월17일 참모본부학술위원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확증은 없지만 청과 영국의 비밀거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이홍장의 한 측근은 나에게 ‘영국은 러시아와 전쟁시 거문도를 요새로 사용하고 전쟁후에는 시설물 일체를 청국에 팔기로 했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해 영국과 청의 거래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결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중재에 의해러시아는 한국영토의 어느 지점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했고 영국함대는 1887년 2월27일 자신들이 헤밀턴섬이라고 이름붙인 거문도를 떠났다. 노주석기자
  • 월드컵 전야제 이모저모/ ‘평화의 불빛’ 세계를 밝히다

    10,9,8,7,6….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고무대에 2002 월드컵 마스코트 ‘아토’가 등장하자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염원하는 함성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 메아리쳤다. 월드컵 전야제 행사가 열린 30일 밤 월드컵공원에 모인 5만여 시민들은 생명의 태동과 태평성대를 의미하는 불춤과 태평무로 첫째마당 ‘설렘’의 막이 오르자 빗줄기 속에서도 일제히 환호함으로써 월드컵 개막을 축하했다. 200여 무용수들이,박찬수 목조각장이 직접 조각한 목어를 두드려 낮은 타악기 소리로 삼라만상을 일깨우고,100여명의 전통 연희단은 대나무·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연과한데 어우러진 한국의 멋을 한껏 펼쳤다. 이어 김덕수패가 신명나는 사물소리로 둘째마당 ‘어우름’을 열었다.그 다음 무대에 한국을 대표하는 조용필,중국의 송조영,우루과이의 하이메로스,스웨덴의 리얼그룹,세네갈의 이스마엘로 등이 잇따라 출연해 각 나라의 다양한 팝음악으로 화합의 정신을 지구촌에 전달했다. 그러나 하이라이트로 예정된 조수미,사카모토 아케미등세계 정상급 성악가들의 클래식 콘서트는 비 때문에 취소됐다.대신 조수미씨는 따로 전야제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해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제임스 본드’역으로 유명한 배우 로저 무어와 세계평화아동사절단이 ‘평화의 공’을 안치하고 세계적인 축구스타들의 축하무대도 큰 박수를 받았다.독일의 문호 귄터그라스가 비디오를 통해 월드컵 축시 ‘밤의 경기장’을낭독하자 경기장은 일순 숙연해졌다.11명의 축구선수를 상징하는 로봇 새가 밤하늘로 날아올라가면서 둘째 마당은마감됐다.마지막 마당 ‘어깨동무’는 증오의 벽을 깨뜨리고 모두 친구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자고 제안한다는 의미.모델 70여명이 ‘분단의 벽’을 열고 그 사이로 조용필씨와 합창단 2002명이 걸어나와 ‘꿈의 아리랑’을 열창하자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공연 내내 무대를 비추는 형형색색의 레이저 빔은 빗줄기를 가르며 화려한 무대를 더욱돋보이게 했다. 전야제에 앞서 이날 낮 12시부터 한강을 따라 진행된 ‘세계 민속 한마당’과 ‘평화의 배’ 행사에서도 서울시민을 비롯한 국내외 관람객들이 세계인의 잔치를 즐겼다. 또 유니세프 친선대사인 로저 무어 부부,세계평화아동축제에 참가한 49개국 어린이 250여명 등을 태운 ‘평화의배’가 오후3시 잠실 선착장을 떠나 상암동까지 항해하는동안 주변을 오가던 시민들은 걸음을 멈추고 함께 세계평화와 월드컵 성공을 기원했다. 김소연기자 purple@
  • 월드컵/ 월드컵 개최도시마다 풍성한 볼거리 - 전통문화 세계축제로 꽃피운다

    60억 지구인의 이목을 집중시킬 월드컵축구대회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이번 월드컵은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호기다.지방자치단체들은 6월 월드컵기간에 맞춰 국내외 관광객을 겨냥,한국의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지방 축제를 선보여 세계의축제로 꽃피운다는 계획이다.월드컵 개최도시의 주요 축제를 살펴본다. ●서울= 2일 오후 3시부터 종로 일대에서 열리는 ‘종묘대제(宗廟大祭)’는 국내외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사적 125호 종묘(宗廟)는 지난 9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종묘대제와 제례악도 지난해 유네스코세계무형자산으로 선정됐다.종묘에서 제사를 모시기 위해임금과 세자,문무백관,종친부 등 1000여명이 경복궁을 출발,세종로∼종로1·2·3가∼종묘로 이어지는 어가(御駕)행렬이 장관이다.오후 7시30분부터는 하이라이트인 종묘대제가 봉행된다.종묘내 정전에서 태조∼순종에 이르는 왕과 왕비 등 49명과 역대 공신 83명에게 제사를 올린다. ●부산= 조선시대 한일 문물교환의 가교였던 ‘조선통신사행렬’이 5일 조선시대 왜관(倭官)이 있었던 용두산공원일대에서 재현된다.월드컵 공동개최국인 일본에서 60여명이 참여,의미를 더한다.통신사(通信使)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조선과 일본 도쿠가와 정권의 우호교린(友好交隣)을 담당했던 외교사절단이다.동래부사가 조선통신사 행렬(150명)을 맞이하는 ‘통신사 접영식’에 이어 과거 부산포 영가대에서 일본으로 출항했던 조선통신사의 행렬이 드러난다. ●대구= 대구월드컵경기장과 인접한 경북 경산에서 ‘자인단오-한장군놀이’축제가 14일부터 3일동안 자인면 서부리 계정숲 일원에서 펼쳐진다.한장군놀이는 통일신라때 주민을 괴롭혀 온 왜적을 물리쳤다는 한장군에서 유래됐다.장군이 적을 유인해 무찌른 뒤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을 생생히 묘사한다.올 행사는 14일 제석사에서 원효성사 탄생을 기념하는 다례제로 시작해 15일 한묘대제,여원무(女圓舞·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등이 줄을 잇는다. ●광주= 상무시민공원을 중심으로 1∼22일 ‘남도문화 예술 축제’가 열려 ‘예향의 도시’임을 세계에 과시한다.진도 다시래기,가거도 멸치잡이 노래,조도 뱃노래,강강술래,남도들노래 등 다채로운 민속 행사로 관광객을 매료시키게 된다.다시래기는 진도지방에서 출상하기 전날밤 초상집에서 벌어지는 전통음악·노래·춤 등을 음미할 수 있다.‘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는 거친 파도와 싸우는 소흑산도사람들의 노동요다. ●수원= ‘정조대왕 능행차’가 1일 오후 4시 수원종합운동장을 출발,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을 거쳐 동문인 창룡문 연무대로 이어진다.정조가 화성을 축성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시 융릉으로 이장한 뒤 참배한 것을 재현하는 수원의 대표적인 행사.월드컵을 기념해 프랑스 왕 행차연출 등이 더해져 볼거리가 풍부하다. ●제주= 서귀포 칠선녀축제가 7∼9일 천제연폭포 일원에서열린다.특히 중국·브라질전(8일)에 맞춰 중국 및 브라질민속 공연까지 준비됐다.칠선녀축제는 별빛 영롱한 밤이면 천상의 선녀들이 옥피리를 불며 내려와 천제연 맑은 물에서 멱을 감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길놀이를 시작으로 칠선녀제가 열리고 칠선녀 하강무와 노래,민요 한마당,탐라민속예술단 공연,칠선녀와 함께하는 도예공연,선녀 하강무 등이 잇따른다. ●대전= ‘프린지(Fringe·언저리) 축제’가 11∼19일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에서 펼쳐진다.대전,충남·북을 대표하는향토 민속놀이가 매일 바꿔 열리는 것이 특징.12일에는 부사칠석놀이,13일 웃다리판굿,14일 버드내 보싸움놀이,15∼16일 기지시줄다리기,17일 상여놀이,18일 들말두레소리,19일 지경다지기놀이가 매일 오후 5시부터 열린다. ●전주= 8∼16일 풍남문과 태조로 일대에서 열리는 풍남제는 8일 오후 5시30분 대규모 길놀이로 시작된다.태조로변에는 옛 난장을 재현한 ‘민속생활거리’와 ‘팔도명산거리’가 들어선다.옛날 장터에서의 먹거리와 볼거리,살거리가 전주의 멋과 맛의 진수를 뽐낸다. ●인천= 대표적 우리 고전인 ‘심청전’을 주제로 한 ‘인천심청축제’가 1∼7일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열린다.동화를 패러디한 ‘심청아 나랑놀자’,바다음악제,선상 콘서트 ‘인당수로 가자’등으로 구성된다. ●울산= 남구 옥동 울산대공원에서 다양한 문화축제가 22일까지 마련된다.한국의 전통공연과 월드컵 참가국의 각종공연이 펼쳐지며 세계의 음식문화를 맛볼 수 있다. 전국종합·정리 조덕현기자
  • 2002 월드컵/ 세계를 한강의 품으로

    월드컵 하루 전날.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다면 한강으로 나가 보자.낮 12시부터 잠실에서 신명나는 ‘세계 민속한마당’이 펼쳐진다.오후 3시에는 ‘평화의 배’가 잠실을 떠나 상암동으로 향한다.오후 8시 배가 도착하면 ‘월드컵 전야제’의 무대가 열린다.잠실부터 상암동까지,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질 월드컵 공식 전일(前日)행사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미리본 전야제 26일 오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상암동 월드컵 공원.까맣게 그을린 전야제 행사 진행요원들은 짜증이 날법도한데 표정이 밝았다.“처음 무대 설치를 할 때 이틀간 비가 내려 아까운 시간을 날렸죠.월드컵 개막식이 열릴 때까지 이렇게 좋은 날씨가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전야제의 첫 마당을 장식할 무용수들을 지휘하는 조용환진행감독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월드컵 행사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그는 며칠 남지 않은 전야제의 준비에 행여 차질이 있을까봐 분주하게 이리저리 현장을 누볐다.월드컵 공원을 찾은 무용수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쿵따따 쿵따쿵…’마이크 소리에 맞춰 불을 형상화한 의물(儀物)을올렸다 내렸다 하는 무용수들은 군부대에서 동원된 장병들.음악·춤 동아리에서 활동한 장병 가운데 시험을 치러 뽑은 ‘정예’무용수들이다.이들이 선보일 ‘불춤’은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전야제의 시작을 여는 공연이다. 군부대 ‘오빠’들과 함께 무용을 전공하는 여고생들이날렵한 손동작으로 목어(木魚)를 힘차게 두드리고 있다.서울예고 1학년 김선정양은 “한달 전부터 수업 끝나고 연습해 손목이 너무 아프다.”면서 “그래도 세계적인 행사에참여하게 돼 좋다.”고 수줍은 듯 웃으며 연습 대열로 뛰어 들어갔다.안무를 맡은 김향금 창원대 무용과 교수는 “죽비,박 등을 이용,전통적인 소리의 어울림을 통해 화합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무대 연출을 맡은 오태호 감독은 ‘시민들의 축제’에 의의를 둔다.“세계적인 스타 위주의 공연보다는 시민들이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로 꾸몄습니다.” 낮 12시부터 잠실 둔치에서 진행될 민속 행사는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있다.상암동 전야제는 각 구청을 통해 서울시민 5만여명을 초청했다.나들이 나온 시민들을 위해 무대 뒤편에 대형스크린을 설치,입장권 없이도 인공호수 뒤 공원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 감독에게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사실 FIFA 주관이라 모든 것을 허락 받아야 했죠.공식 스폰서인 S뮤직에서 소속 뮤지션들의 출연을 요구할 때는 난감했습니다.조수미,사피나는 경쟁사 소속이라 출연을 성사시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죠.”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 감독은 마케팅과 평화의 축제라는 개념이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방송중계도 골칫거리였다.월드컵 독점중계를 맡은 HBS측에서 “우리는 경기만 중계한다.”며 전야제 중계를 거부한 것.결국 국내 방송사에서 중계한 화면을 50여개국으로송출하기로 했다. 이번 전야제의 대표적 컨셉트는 ‘어깨동무’.기획을 맡은 홍성용 제작단장은 “한국이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겠다는 의미”라면서 “월드컵을 통해 친구가 되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무대는 모두 다섯으로 구성된다.인공호수의 시원한 바람을 뒤로 받는 메인 무대,관람석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중앙 무대,전야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1000여명의 합창단이 설보조 무대,그리고 관람석 양쪽의 소나무 숲에 무대가 둘더 마련돼 있다.출연 인원만 모두 2600여명.화려하고 입체적인 전야제를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김소연기자 purple@ ■세계 민속 한마당/ 12시~18시 ‘한강에서 신명나게 놀아보세.’ 인간문화재와 세계 민속공연의 대가들이 함께하는 ‘세계 민속 한마당’이 낮 12시∼오후 6시 잠실 고수부지 1.7㎞를 따라 펼쳐진다. *대동마당 월드컵의 개최를 알리고 성공을 기원하는 제의로 구성된다.전북 기세배놀이,서울 고유제,전남 고놀이,전통춤 한마당,일본 타이코 다이 축제,농악 한마당 순. *전통마당 한국을 대표하는 연희 형태인 탈춤과 전통 춤,민요가 한데 어우러진 행사.경기 서해안 대동굿,고성 오광대 공연,봉산탈춤 등을 공연한다. *해외마당 월드컵 본선 진출국 가운데 프랑스,중국,파라과이,폴란드,세네갈,브라질,터키,일본,덴마크,슬로베니아등 11개국의 민속공연단을 초청했다.각국의 화려한 민속의상,춤,연주로 이국적인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민속놀이마당 시민들과 함께 하는 놀이 한마당.널뛰기,그네뛰기,줄타기,연날리기 등을 각 단체들이 시연하고 관람객들도 참여할 수 있다.한강변 하늘을 색색으로 누빌 무형문화재의 연날리기 시연도 장관.페이스 페인팅과 즉석사진촬영 등 가족단위 행사가 푸짐하다. ■상암행 평화의 배/15시~20시 신명나는 민속축제가 무르익는 오후 3시 잠실 한강공원에서는 ‘평화의 배’가 닻을 올린다.월드컵의 열기를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상암으로 실어나르는 것. 세계평화아동축제에 참가한 50여개국 어린이 250여명과유니세프 친선대사인 로저 무어 부부,남북이산가족 대표등 모두 500여명의 평화사절단이 한강 유람선에 오른다.32발의 축포가 터지고 2002개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간다. 오후3시 평화의 배가 출항하면 좌우·전후를 모터보트,제트스키,소방선 등 선박 100여대가 호위한다.크고 작은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강을 항해하는 모습은 일대 장관을 이룰 것이다. 오후 3시40분 잠수교에서는 취타대와 농악연주가,반포대교에서는 물줄기 분사쇼가 평화사절단을 반긴다.오후4시30분 여의도한강공원에 도착해 전야제 행사에 전달할 평화의 공을 받는다.오후 6시 양화대교에 들어서면 선단에서 종이 비둘기를 날리고,선유도에서는 연날리기,선녀춤 등의공연이 기다린다.오후 7시30분 난지도에 도착한 평화사절단 250여명은 청사초롱을 들고 전야제 무대로 향한다. ■전야제 3마당/20시~22시 평화의 배가 상암동에 도착하면 3마당으로 구성된 전야제의 화려한 막이 오른다. *설렘 생명의 태동을 의미하는 불춤,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무로 막을 열어,35개의 목어 연주로 이어진다.낮은타악기 소리가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삼라만상을 일깨운다.100여명의 전통 연희 공연단이 새 생명의 탄생을 춤사위로 표현한다. *어우름 클래식과 팝음악을 넘나드는 대형콘서트가 80분간 펼쳐진다.조수미,아케미 사카모토 등 한국과 일본의 유명 성악가들의 합동공연이 첫 무대를 장식한다.로봇 비둘기가 하늘로 비상,전 인류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마지막으로 조용필,리얼그룹 등 세계 유명 가수의 열창 무대가 준비돼 있다. *어깨동무 대금 연주,창 공연,패션 퍼레이드,아리랑과 대합창,불꽃축제 등 총 7가지 공연으로 구성된다.대미를 장식하는 최대의 장관은 ‘장벽 오프닝’.70명의 모델들이분단의 벽 앞에 서면 분단을 상징하는 거대한 장벽이 열린다.그 사이로 조용필과 1000명의 합창단이 걸어 나와 부르는 ‘꿈의 아리랑’이 전세계로 울려퍼진다.
  • 월드컵전야는 ‘축제세상’

    ‘월드컵축구대회 D-1’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 개막을 축하하는 초대형 전야제가30일 한강일원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서울시는 15일 월드컵 전야 행사인 ‘2002 한강판타지(Han River Fantasy)’를 30일 낮 12시부터 잠실한강공원 등한강일원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잠실부터 난지한강공원에 이르는 한강과 강변,하늘 등지에서 입체적으로 화려하게 진행된다. 한강에서는 세계평화사절단 어린이 등을 태운 100여대의대규모 선단이 오후 3시 잠실한강공원을 출발,여의한강공원을 거쳐 난지한강공원까지 항해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져월드컵 개막을 세계에 알린다. 세계평화아동축제에 참가한 50개국 어린이 250명과 유엔아동기금(UNICEF) 친선대사 겸 월드컵 서울시 홍보사절인영화배우 로저 무어 부부 등이 승선한 한강 유람선 ‘평화호’를 모선으로 모터보트와 제트스키 등이 뒤따르며 깃발 등으로 월드컵 이미지를 연출하게 된다. 선단 퍼레이드에 맞춰 패러글라이딩을 비롯한 갖가지 ‘항공쇼’가 하늘을 수놓는다. 잠실선착장에서 여의도선착장에 이르는 한강시민공원에서는 1000여 일반 시민과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자전거 대행진도 어우러진다. 밤 8시쯤 월드컵공원내 평화의 공원에서는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세계인의 어깨동무’가 전야제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이루게 된다. 이밖에 각 공원에서는 세계민속축제와 군악대 및 의장대공연,붉은악마 등의 응원전,세계 연날리기 행사,인기그룹GOD 공연,불꽃놀이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줄을 잇는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정치 뉴스라인/ ‘빠순이’유머로 한대 머쓱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가 15일 10대 소녀들 앞에서 “빠순이 부대…” 운운했다가 썰렁해진 분위기에 머쓱해 했다. 이 후보는 스승의 날을 맞아 15일 서울 대조동 동명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를 방문,일일교사로 강단에 섰다.강당에 모인 350여명의 여학생들 앞에 선 이 후보는 불쑥 ‘빠순이부대’로 입을 열었다.“여러분들 보니 명랑하고…빠순이부대가 많을 것 같아요.우리 당에도 많아요.지방 돌아다녀보면 오빠부대 많아요.오빠가 아니라 ‘늙빠’지,늙은 오빠….” 폭소를 기대했건만 그러나 장내 분위기는 달랐다.말뜻을알아듣고 웃는 여학생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의아해하며 술렁거렸다.이 후보가 말한 ‘빠순이 부대’란 인기스타를 좇아 방송국 등을 찾아다니며 ‘오빠∼’를 외치는 10대소녀부대다.그러나 기성세대 일부에선 이 말이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통한다.‘10대와 가까운 후보’라는 친근감을 주려고한 말이었건만,정작 학생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던 것이다. 이 후보는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으나 곧바로 책 얘기를꺼내 ‘위기’를 벗어났고,이후 1시간 남짓 자신의 학창시절을 더듬는 것으로 무사히 강연을 마쳤다.그리곤 사진촬영을 하자고 몰려드는 그 ‘빠순이 부대’에 파묻혔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 총재는 15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가운데 내각제에 동의하는 쪽과 연대할 수 있다.”고밝혔다. 김 총재는 이날 오전 불교방송 ‘아침저널’ 프로그램에출연,다른 당과의 합당문제에 대해선 “누가 자꾸 끄집어내는지 모르지만 남의 당을 절단내는 발언을 해선 안된다.”며 “그런 이야기한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아니다.”고 못박았다. 김 총재는 민주당과의 지방선거 연대와 관련,“바람직한결과 도출을 위해 양당의,또 양당에 속해 있는 개인의 협력은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말했으나,대선공조에 대해선 “정치상황의 진행을 봐가며 지방선거후 선택적으로 숙고할문제이고 현재로선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 21개국 주한 외교사절단 직지사서 한국 불교문화 체험

    “오랜 역사를 가진 절에서 배우는 한국불교의 전통 수행방식과 생활이 신기하고 흥미있습니다.” 콜린 헤젤틴 호주 대사를 비롯해 21개국 대사와 가족 등43명으로 구성된 주한 외교사절단이 11·12일 1박2일간의일정으로 경북 김천 직지사에서 한국의 전통 불교문화를체험해 관심을 끌었다. 직지사측이 한·일 월드컵 성공을 위해 마련한 ‘템플 스테이(temple stay)’에 참가한 이들은 아침 4시부터 시작되는 새벽 예불부터 저녁 공양까지 전통의식을 고스란히따라하며 즐거워했다. 지난 11일 오후 직지사에 도착한 이들은 스님으로부터 사찰예절을 배운 뒤 곧바로 설법전에서 입재(入齋)식을 갖고 저녁공양에서 절 음식을 맛보았다.대웅전에서 스님의 지도에 따라 저녁 예불을 드린 이들은 다도와 연등 만드는법을 배웠고,둘째날인 12일에는 전원이 오전 3시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나 대웅전에서 새벽 예불을 드린 뒤 설법전에서 가부좌를 튼 채 면벽 참선까지 했다. 사절단에는 핀란드,그리스,캐나다 등 구미권과 멕시코,칠레,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출신의 외교관들도 들어 있었다.이들은 탑돌이와 발우공양,회향(回向)식까지 빼놓지 않고참가하며 평소 접하기 힘든 동양의 정신 세계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 폴 머레이 아일랜드 대사는 “이번 체험은 한국의 문화와 정신세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불교를 단지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직접 경험한 것이어서 인상이 깊었다.”면서 “특히 다도 실습과 탁본 뜨기는 한국문화를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천 임창용기자 sdragon@
  • [기고] ‘北 경추위 불참’ 숨은 이유는

    무려 17개월만에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제2차 남북경협추진위원회가 북측의 일방적인 불참 통보로 무산되고 말았다.그 조짐은 이미 전날까지도 북측이 대표단 명단을 서울에 통보하지 않은 데서 엿볼 수 있었다.지난 4월 임동원특보가 대통령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나서 발표된 야심찬 합의문과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그동안 침체된 남북관계가 원상회복될 것이라고 떠들어댄언론과 전문가들은 머쓱해지고 말았다. 결국 북한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이 또 한번 속고말았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된 셈이다.임 특보는 방북 때 이산가족 상봉,경의선 연결,장관급회담 재개등 6개항의 합의가 이루어졌으며,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변화 욕구와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남북관계가 다시금잘 되어갈 것이라고 확언했다.그 예로 북한당국이 경의선연결공사에 착수하기 위해 매설된 지뢰를 제거하고자 남측이 보유한 최신장비를 빌려줄 것을 요구한 사실을 들었다. 나아가 임 특보는 한 심포지엄에서 10년 내로 남북한은사실상의 통일상태에 도달할 것이라고까지 주장했다.비록금강산에서지만 한동안 연기되었던 이산가족들의 4차 상봉도 열렸다.당연히 국민들의 기대가 커졌던 것은 당연했다.그런데 갑자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먼저 남북관계사에서 볼 때 북한은 남한의 임기 말 정권과는 상대하지 않아왔다.그럼에도 임 특보를 받아들이고합의문에 서명했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먼저 2003년위기설을 강조해 온 남측의 의도를 알아볼 이유가 있었을것이고,역대 어느 정권보다 북측에 너그러운 현 정권이 끝나기 전 식량이나 비료 등 받을 수 있는 것은 일단 모두받고 보자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DJ 정권으로서도 연이은부패 스캔들 정국을 일거에 벗어날 수 있는 묘수를 찾고있었을 것임은 당연했다.결국 서로의 이해관계가 적당히맞아 떨어지면서 6개항의 합의사항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무산됨으로써 합의문 내용 중 장관급회담 재개,경제사절단 서울 방문,군사회담 개최 등의 실현은 물건너갔다고 봐야 한다.북측은 겉으로야 우리 외교통상부 장관의 방미시 발언을 들고 있지만,속내는 다른 데서 찾을 수도 있다.대규모 군병력을 동원해 건설한 금강산댐을 선군정치·사상의 표상으로 강조해온 북한에 댐붕괴 우려에 대한 우리측 문제 제기는 모함 내지는 도발로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또는 남북간 이면계약의 실행,예컨대 전력지원,발전소 건설 등이 불가능해지자 북지도부가 아예이 정권은 약속을 실천할 의지는 물론 능력도 없다고 판단한 결과라고 본 것은 아닐까? 최근 아들들의 부패 연루,차기대선후보의 각축전으로 인해 무력화되고 있는 DJ의 현저한 위상 추락이 북한의 대남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북한은 정권교체기에 맺었던 클린턴정부와의 합의문이 부시 정부가 등장하자 휴지조각으로 변한 체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었음이 분명하다.이사를 준비하는 이웃과는 거래를하지 말라는 것이다.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이 일정한 수준에 달하기까지에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쉽사리 흥분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끈질긴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하나보다. 김광용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책/ 우리말의 수수께끼

    보통 우리말,즉 ‘국어’에 관한 이야기라 하면 딱딱하거나 뻔한 내용일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언어학 자체가 그리 흥미로운 주제가 못되는 데다 우리말에 대해서는 일단‘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거나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적 태도가 널리 유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수수께끼’(박영준·시정곤·정주리·최경봉지음,김영사)는 국어에 대한 이런 선입관을 훌훌 털어 버리고 ‘우리말 우리글과 함께 뛰고 뒹굴며 부담 없이 즐기는’ 가운데 우리말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중 국어학’ 책이다. 저자들은 모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강단 국어학자들.상아탑에 갇혀있던 전문지식을 새 모양으로 산출시켜대중과의 공유를 선언한 학자들의 책답게 철저하게 대중의 눈높이에서 출발한다. 우선 누구나 알 것 같으면서도 실은 잘 모르는 사실들에대해 하나하나 물음표를 치면서 비밀을 풀어주는 전개방식이 독특하다.이두는 설총이 만들었나? 훈민정음은 과연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스스로 만든것일까? 다른 나라 문자를 모방한 것은 아닐까? 훈민정음은 모든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았을까? 왜 한글은 알파벳처럼 풀어쓰지 않는것일까? 독자들은 책을 통해,신라의 대학자 설총은 이두를 만들었다기보다 기존의 표기법을 집대성했을 것이며,세종대왕은 그 자신이 훌륭한 언어학자로 직접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 등을 확인하게 된다.또한 훈민정음은 고대 인도계 문자를 참고했을 수 있다는 것,훈민정음을 만든 주요 목적의 하나가 한문의 발음 표기였기 때문에 음소문자이면서도 처음부터 음절단위로 ‘모아쓰기’를 했다는 것도새롭게 알게 된다. 다음으로 책은 갈등과 애증의 인간 드라마 속에 우리말 이야기를 녹여 넣어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소재에 감동과 흥미라는 양념을 친다.세종대왕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의갈등.강직한 성리학자였던 최만리는 “근거도 없는 훈민정음을 창제하는 것은 조선을 곧 오랑캐로 만드는 것”이라며 언문 창제 반대 상소를 올린다.세종대왕은 최만리를 크게 꾸짖었지만 상소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최만리가 낙향하자 부제학 자리를 비워두고 그를 그리워 했다.또 1933년 첫 한글맞춤법통일안이 탄생하기까지에는 박승빈과 최현배의 첨예한 학문적 논쟁이 있었다.한글의 ‘소리’에 초점을 맞춘 박승빈의 ‘정음파’와 ‘글’에 초점을 맞춘최현배의 ‘한글파’는 사흘간의 공청회에서 논리싸움을벌였는데 현대문법적 인식이 뚜렷했던 ‘한글파’가 승리함으로써 표음주의 표기시대가 가고 형태주의 표기법이 정착되었다. 책은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이라는 부제를달고 있지만 결코 옛날 얘기로 그치지 않는다.오늘날 세계 언어학계에서 한글의 위치를 소개하는가 하면 ‘속도’를 중시하는 인터넷 채팅 현장에서 일상화되고 있는 문자축약 현상과 컴퓨터 자판의 부호들을 문자처럼 활용하는 ‘이모티콘’(emoticon) 사용의 언어학적 의미도 살핀다.인류는 다시 그림문자를 썼던 원시로 회귀하고 있는 것일까?언어의 역사는 인간의 마음을 보다 잘 표현하고자 했던 인간 욕망의 역사.‘우리말의 수수께끼’는 적절한 지적 흥미와 학문적 엄격함을 맛볼수 있는 보기 드문 책이다.1만900원. 신연숙기자 yshin@
  • 정부 무역투자진흥 확대회의/ 수출 ‘양에서 질로’전환

    정부는 수출 패러다임을 ‘저가 다량’에서 ‘적정가 다량’으로 전환하고,중국·유럽연합(EU)을 집중 공략해 미국·일본에 대한 수출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이를 위해 수출입대금 입금 지연에 따른 연체이자를 연체기간에 따라 차등화하고,해외 플랜트공사 지원대상 기준을외화가득률 30%에서 25%로 완화키로 했다. 정부는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주재로 정부부처 장·차관 14명과 수출유관기관 대표 11명,업계 대표 112명이 참석한 가운데 ‘무역투자진흥확대회의’를 열고 이같은 방침을 추진키로 했다. 신국환(辛國煥) 산업자원부 장관은 “물량 위주의 전략을품질에 상응한 제값 받기 전략으로 전환하고,특정국가에 대한 과도한 무역수지 불균형에서 탈피한 국가별 무역균형화등을 통해 수출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갈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금융·세제 지원 확대]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는 수출입대금 입금 지연에 따른 연체이자를 연체기간에 따라 달리하기로 했다.건설교통부는 해외 플랜트공사에 대한 수출입은행의금융지원 대상을 외화가득률 30%에서 25%로 낮추고,지원범위를 국내 및 제3국 소요비용 이외에 현지비용까지 확대할 방침이다.농림부는 농산물 수출자금 대출금리를현행 5%에서 3%로 내릴 계획이다.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의해외유명규격 획득 지원 총액을 107억원에서 128억원으로확대키로 했다. [시장 다변화] 중국 등 무역흑자국에 대해서는 수입규제 예방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구매사절단을 보내기로 했다.또 독일·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 등 우리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1% 미만인 국가에 대해서는 중소기업 50개사에서 해마다 100명씩 선발,해당국 언어에 대한 교육지원사업을 통해 시장접근을 강화키로 했다.중소기업의 수출 지원을 위해 미국(15개)·독일(10개)의 수출인큐베이터를 올해 20개로 각각늘리고 중국에도 10개의 수출인큐베이터를 설립키로 했다. [수출지원서비스 강화] 물류·채권추심·관세·통관 등 수출지원서비스를 일괄 제공하는 ‘종합수출지원시스템’을오는 6월까지 구축하고,서울 삼성동 COEX 3층에 ‘무역박물관’을 설립한다.첨단 무역인력 양성을 위한 무역 전문 고등교육기관을 세우고,물류기지 확충을 위해 의왕 내륙컨테이너기지(ICD)를 비롯한 전국 5대 권역의 내륙컨테이너기지 및 복합화물터미널도 조기에 완공키로 했다. 전광삼기자 hisam@
  • [우리고장 NGO] 서울 ‘대한민간홍보사절단’

    ‘나가자! 만나자! 알리자!(Let’s go world,Inform Korea)’ 정보통신 분야의 젊은 최고경영자(CEO)들이 우리나라의올바른 국가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대한 민간홍보사절단(단장 金英基·41)’을 구성,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특히 30여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 2000년 12월 IT분야의 30∼40대 CEO 10여명이 주도해 구성된 순수 민간봉사단체다.사무실이 서울광진구 군자동 세종대의 벤처 창업센터 내에 있는 것도 이 단체의 성격을 잘 말해준다.설립 때는 동호회 성격으로출발했지만 3년여만에 회원 수가 1000여명으로 불어났다. 대부분의 민간단체들이 정부의 시책을 비판·감시하며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비해 이 단체는 국가홍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다.공동의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회원 20여명이 지난해 3월 금강산을 찾아 통일을 기원하며 이들의 국가홍보 활동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월드컵 홍보와 관련,이들의 활동이 돋보인다.지난달 14일부터는 회원 50여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객을 대상으로 월드컵 홍보를 펼치고 있다.월드컵 365일을 앞둔지난해 5월에는 경인여대·세종대 등 각 대학에 국가홍보단을 결성해 월드컵 붐 조성 캠페인을 벌였고,지난해 7월에는 국가홍보를 위한 아이디어 공모를 실시해 대학생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무대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국가홍보가 필요한 곳이면 지구촌 어느 곳이든 찾아간다.지난달 14일부터17일까지는 필리핀에 사절단 10여명을 파견해 우리의 월드컵 준비상황을 알렸고,다음달에는 중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우리나라와 월드컵을 홍보하기로 하는 등 10여건의 큼직한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나면 이들의 활동은 부산아시안게임과 내년에 열릴 예정인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한 홍보활동으로 이어진다.오는 10월에는 아시안게임 지원 기동대결성을 계획하고 있고,7·8월에는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국홍보 붐 일으키기’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한마디로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회원 개개인은 평소 영어 채팅과 펜팔 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나가고 있다. 이에 대해 김영기 단장은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고찰과 차원높은 시민정신이 발휘될 때 국가 이미지가 좋아진다.”며 CEO들의 적극적인 봉사활동 참여를 강조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
  • 韓·美 합동조사 결과, KF16기 추락 엔진결함 탓

    지난 2월 26일 충남 서산에서 추락한 KF-16 전투기의 사고원인은 엔진 결함으로 확인됐다. 공군은 17일 “미국 조사단과 합동으로 사고 엔진을 분해한 결과,엔진 내부의 작은 날개인 블레이드 60개가 모두절단된 상태였다.”면서 “특히 절단된 블레이드 1개의 금속 내부에서 기공 및 피로균열,프렉클(금속합금시 응고기피) 현상이 발견돼 부품의 제작상 결함으로 판명됐다.”고밝혔다. 즉 불량 블레이드 1개로 인해 나머지 59개가 연쇄절단됐고, 금속 조각이 엔진 옆의 연료관을 파열시켜 엔진에 불을 냈다는 것이다. 문제의 블레이드는 엔진 제작사인 프랫 앤드 휘트니(P&W)사가 미국 H사에 하청을 의뢰해 제작한 제품으로 우리 공군의 KF-16 전투기 120대 가운데 80대가 장착하고 있다.나머지 40대는 다른 하청업체인 P사의 블레이드를 사용하고있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공군은 미국측과 손해배상 문제를 협의중이다. 공군 관계자는 “문제가 없는 40대 외에 현재 40대분의 P사 예비 블레이드를 보유하고 있어 앞으로 2개월 정도 비행훈련을 하지 못하는 전투기는 120대중 40대”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남북관계 복원/ 분야별 내용

    ■철도·도로 연결. 남북한이 합의한 대로 경의선과 동해북부선 철도·도로가연결되면 남·북한간 교류·협력 증진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육로로 잇는 양축의 ‘실크로드’를 확보할 수 있어 기대가 크다. [동해북부선·국도 7호선] 이번에 새롭게 합의한 동해북부선(동해선) 철도는 부산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수송로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서울∼신의주∼중국 톈진(天津)·베이징(北京)으로 이어지는 경의선과 함께 물류운송의 양대 혈맥이 된다. 동해선 연결 대상구간은 남쪽(강릉∼군사분계선) 127㎞,북쪽(온정리∼군사분계선) 18㎞ 등 총 145㎞이다.남쪽이 공사할 구간이 훨씬 길다.국도 7호선(부산∼온성)은 남쪽(송현리∼군사분계선) 3.8㎞,북쪽(고성∼군사분계선) 10㎞ 등 총 13.8㎞으로,북쪽의 공사 구간이 길다.남쪽 3.8㎞를 왕복 2차선으로 공사하는데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 [경의선·국도 1호선] 문산∼ 개성간 24㎞를 잇는 경의선철도 공사는 남쪽 비무장지대(도라산역∼장단역 1.8㎞)와 북쪽 구간(개성역∼장단역 12㎞)만 연결하면 된다.2000년 9월부터 시작된 남쪽 문산역∼도라산역 10.2㎞ 구간은 지난해 12월 마무리됐다.문산과 개성을 잇는 국도 1호선 공사도 지난해 통일촌∼군사분계선 5.1㎞ 구간이 개통돼 비무장지대와북쪽 구간만 남았다. 북한은 2000년 9월 당시 개성시 봉동,남촌골,미촌골 등 3곳에 군 천막 139동을 설치하고 연결공사를 진행하다 이듬해공사를 중단했다.군 관계자는 7일 “북쪽 구간은 지뢰 등이거의 없는 논·밭이어서 공사가 재개되면 몇개월내 개통이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은 과제들]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되면 과거 남북을 잇던 철도는 4개 노선 가운데 경원선과 금강산선 2개만 남는다.국도도 1·7호선이 이어지면 3·5·31·43호선 등 4개만이남는다. 남북은 지난해 2월 비무장지대 공사인력에 대한 안전보장등을 약속한 41개항의 ‘남북 철도·도로 군사보장합의서’를 타결했으나 아직 발효시키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비무장지대내 공사가 본격 시작되려면 이 군사보장합의서가 발효되어야 한다. 김경운기자 kkwoon@ ■김정일 서울답방…확답 안해 연내 어려울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성사될까. 임동원 특사는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서울 답방문제도 심도있게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그러나 김 위원장은 김대중대통령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원론적 입장만 피력한 채 ‘확답’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 위원장의 답방 일정 등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선 청와대측의 반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박선숙(朴仙淑) 대변인은 7일 “서울답방 문제에 대한 김 위원장의 심정은 이미 메가와티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통해 들은바 있다.”면서 “구체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특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기정사실화했다가 성사시키지 못했던 만큼 이제는 차분히 기다리겠다는 얘기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답방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가 매달리는 인상을 줄 경우 남북관계 개선은 물론 국민역량 결집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듯하다. 이에 김 대통령도“가능한 문제부터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다.”며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연내 답방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오풍연기자 poongynn@ ■이산상봉, 금강산서 ‘순차’ 상봉 가능성. 이산가족 상봉 장소가 금강산으로 바뀜에 따라 3차례에 걸쳐 이뤄졌던 이산가족들의 만남 방식에도 변화가 예고되고있다. 이번 특사 방북에서는 ‘제4차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큰틀에서만 합의를 봤기 때문에 자세한 일정과 상봉 절차 등은 곧 열릴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통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남북 이산가족 100명씩 평양과 서울을 각각 방문,500명 안팎의 피붙이들이 만나는 ‘상봉단 교환’ 형식이었다.앞으로는 남쪽 출신 북한 가족과 북쪽 출신 남측 실향민들이 금강산을 ‘순차’ 방문하는 형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한 가족의 공식 상봉인원이 5명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남쪽에서는 가족·친지들이 비표를 바꿔 차고 상봉장에 교대로들어가거나 관람지·공항 등에서 피켓 등을동원해 비공식만남을 가져 왔다. 또 직접 만나 상대가 원하는 선물을 물어보고, 이를 전달하기도 했었다. 대한적십자사 이병웅(李柄雄) 총재특보는 7일 “이번 4차상봉은 상봉 대상자 100명이 모두 건재,지난번 합의한 사항들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우선 금강산을 오가는현대아산의 관광선을 이용해야 하겠지만,육로로 오갈 수 있게 되면 면회소 설치 등도 제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영우기자 anselmus@ ■새달 7일 경추위 전망. 남북 양측이 다음달 7일 서울에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열기로 합의함에 따라 그동안 중단되다시피 했던 개성공단조성사업·임진강수해방지·개성관광사업 등 주요 경협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조성사업] 지난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이 합의한 사업으로 공단부지의 측량·토질조사 등 기초작업은 끝났지만 구체적 조성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사업권을 가진 현대아산은 “이번 경협추진위 결과가 좋으면 올 하반기 시범공단 조성에 착수,내년 하반기 매듭지을 수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아산은 당초 한국토지공사와공동으로 개성에 총 800만평 규모의 공단을 조성,국내 기업을 유치해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었다.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1차 입주희망 조사를 실시,부산신발지식산업협동조합,한국섬유산업연합회 등 3개 협회로부터 입주의향서를 받아놓은 상태다.이밖에도 300여개의 개별기업이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 전력공급] 지난 2000년 12월 평양에서 열린 제4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의 요청으로 공식화됐다. 이후 양측은 지난해 2월8일 평양에서 ‘남북 전력협력 실무협의’를 열었으나 우리측의 ‘선 실태조사 후 전력공급’과 북측의 ‘선 전력공급’이라는 주장이 맞서는 바람에 결렬됐다. 산자부 관계자는 “북한의 송·배전시스템이 우리와 다르기때문에 실태조사를 하지 않고는 전력을 공급해주고 싶어도할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러나 내부적으로 휴전선 근처에 화력발전소를 지어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안과 문산∼개성 및 문산∼남천 구간에 154㎸의 고압송전선로를 건설해 각각 40만㎾,20만㎾를 공급하는 방안을 마련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력 지원은 그러나 국내의 여론과 미국의 반대가 만만찮아양측의 합의만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임진강 수해방지사업] 수차례 실무회의를 가졌으나 이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많아 기초적인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다. 총연장 554.6㎞인 임진강은 전체 유역면적 8117㎢ 가운데 북측 유역이 5108㎢에 이른다. 따라서 경기도 파주·문산·동두천 등지의 여름철 물난리를막기 위해서는 북측지역의 수방대책이 절실하다.건설교통부김창세 수자원국장은 “별다른 진척이 없지만 남북이 기본계획에만 합의하면 연내 공동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관광사업] 관광특구 및 육로관광이 연내 실시될지 여부에관심이 쏠리고 있다.특히 동해선 철도·도로를 조기 연결키로 함에 따라 금강산 육로관광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금강산 육로관광의 경우 비무장지대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 군부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반면개성관광사업은 경의선 복원사업과 맞물려 쉽게 풀릴 가능성이 높다. 전광삼기자 hisam@ ■北 경제시찰단 규모…부부장급등 15명내외. 북한 경제시찰단의 방한은 2000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 장관급회담때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당시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에게 처음 언급한 뒤 이제까지실천되지 않고 있는 분야다.북한이 최근 경제사절단을 유럽과 러시아,동남아 등지에 보내 식량 지원 등을 요청한 것과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시찰단 규모는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급을 단장으로 15명 안팎이 될 가능성이 크다.2000년 10월 임동원(林東源)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최근 북한동향’에서 “김 국방위원장이 10월 하순쯤 방한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경제시찰단을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 핵심측근들과 경제관료 및 전문가 15명 규모로 구성하겠다고 한 바 있다.”고 밝힌 점을 근거로 한다.경제를 집행하는 내각의실무급 인사로 구성될 것으로 점쳐진다. 주관심 대상은 정보기술(IT)과 전력분야 등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최근 IT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으며,각급 학교에 컴퓨터학과 등 IT분야와 관련된 학과를 잇달아 설치하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등 산업단지도 시찰대상이 될 것으로보인다. 김태균기자 windsea@
  • 中 반덤핑제소 한국 ‘단골’

    중국이 지난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한국이 반덤핑 제소를 가장 많이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97년 12월 한국,미국,캐나다산 신문용지에 대해 처음으로 반덤핑 조사에나선 이래 WTO 가입 이전까지 4년간 12건의 반덤핑 조사를 했다. 그러나 WTO 가입 이후인 지난해 12월 11일 이후 4개월도안 되는 기간에 6건의 반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이들 6건의 반덤핑 조사 가운데 한국이 5건으로 가장 많이 제소를 당했다. 이에 따라 무역협회는 지난달 중국에 삼성전자,LG상사 등 대기업이 포함된 구매사절단을 보내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전광삼기자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