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규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99억원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굿즈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불교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항생제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98
  • “이건 당신의 실수” 김선일씨 마지막 절규

    24일 인터넷에 떠다닌 김선일씨 피살 동영상에는 “나는 살고 싶다.”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파병 중지와 철군을 절규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다음은 동영상 속 김씨의 육성. 김씨는 “노무현 대통령에게.(To President Roh,MooHyun.) 나는 살고 싶습니다.(I want to live.)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I want to go to Korea.)”라고 말했다. 김씨는 “제발 이라크에 한국 군인들을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Please,don’t send to Iraq Korean soldiers.) 제발!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Please,this is your mistake.) 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This is your mistake.) 많은 한국인들은 이라크에 보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Many Korean people don’t like their *(판독불가)to send to Iraq.)”라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는 “모든 한국 군인들은 이라크에서 나가야 합니다.(All Korean soldier must out of Iraq.) 제발.제발.이건 당신의 실수입니다.(Please,please this is your mistake.) 왜 당신은 왜 당신은 한국군을 이라크에 보냈나요.(Why do you send why do you send Korean soldiers to Iraq.)”라고 절규했다. 김씨는 “고국에 계신 한국 동포에게.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To my all people all Korean people please support me.) 제발.대통령님! 제발,부시! 제발,노무현 대통령!(Please,President please Bush to President Roh.) 제발.나는 살고 싶습니다.나는 한국에 가고 싶습니다.(Please I want to live,I want to go to Korea.)”라고 말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열린세상] 단지 그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김진호 당대비평 편집주간 목사

    김선일씨가 살해당했다는 급보를 들었다.“죽고 싶지 않다.”고 처절한 절규를 내뱉던 그 청년은 끝내 처참한 시신이 되고야 말았다.납치부터 피살까지 체험했을 통제되지 않는 극도의 무력감과 공포감은 ‘단지 그때 거기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그에게 날아들었다.근년에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에서 스러진 수많은 주검도,그리고 주검 같은 절망도 단지 거기에 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미국 정부와 이라크 저항무장단체,그리고 한국 정부 등이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공모해낸 세계의 규칙이다.단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불행한 자’는 위로받을 길 없는 격렬한 절망감 속에서 자신의 최후를 맞이해야 한다는 규칙이다.예고도 없이 찾아든 저주는 단지 삶의 기회를 찾아 인생을 배회하던 이들의 진부한 평범함을 참아주질 않는다.위대한 거대 진리를 수호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은 작은이들의 하찮은 꿈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세계의 질서를 구축했던 것이다. 김선일씨 피살 직후 미국은 이번에도 알 자르카위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모처에 보복공격을 가했다고 한다.반인륜적인 테러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다.그리고 이러한 ‘인권 옹호적 발언’(?)과 더불어,필경 단지 거기에 있었을 뿐인 여러 이라크인은 쏟아붓는 포탄세례에 죽거나 불구가 되거나 심각한 정신적 장애상태에 떨어지게 되었을 것이다.이라크 무장 납치 단체는 처형을 실행하는 자리에서 단지 ‘잘못된 선택’을 행한 국가를 응징하기 위해 소박한 꿈들을 도살했다고,계속 그렇게 할 거라고 선언한다.그리고 그러한 악순환을 마치 모르는 양 한국 정부는 천진한 얼굴로 재건을 지원한다는 전투병 파병 명분을 다시 한번 천명하였다. 국가 혹은 국가임을 자임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대의’ 앞에 다른 것들이 모두 사소하게 보이는 모양이다.불현듯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 특권과 탈특권의 틀에서 살고 있고,그러면서도 그 대의에 동화되기보다는 개인적인 꿈과 욕망에 더욱 민감한 대다수 사람 가운데 하나인 나를,혹은 우리를 걱정하게 된다.국가 외부의 우리엔 당연히 우리의 시민사회가 포함된다. 그러니 시민사회가 걱정된다.김선일씨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 것처럼 나도,우리의 시민사회도 예고없이 찾아든 그 불행의 자리에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이 사건은 나를 혹은 우리를 우연히 찾아들지도 모르는 절망적 불행의 예감 속에 가둬버린다.공포의 일상화다.피해의식도 일상화되고 있다.또한 자기 보호의 과민함이 일상화되고 있다. 종종 그렇듯이 어떠한 감각이 일상적으로 예민해지면,다른 어떤 감각은 둔감해지곤 한다.가령,우리 자신에 대한 보호의 과민함은 우리 아닌 타자들의 공포에 무감각한 우리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실제로 어떤 사람은 이라크 출신 이주노동자가 있으면 뭇매를 가하겠다고 화를 터뜨린다.잔인한 흥미로움이지만,그의 입에서는 그 직전에 테러 조장하는 파병을 반대한다는 평화주의적 메시지가 튀어나왔다는 것을 나는 기억한다.물론 내 머릿속에서도 복수심 같은 어떤 분노가 이글거린다. 타자에 대한 적대감과 타자를 위한 평화주의는 이 사건을 경유한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동거를 시작했다.그리고 이러한 사소한 마음들이 우연히 마주친 곳에서 팍스아메리카나 같은,가해자 중심의 평화주의는 세계 속에서 실행에 옮겨진다.아메리카제국 외부에서도,멀고 먼 외부인 한반도에서도 말이다.또 그 적대적 사회인 이라크의 분노에 찬 시민들의 적의 속에서도 말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김선일씨 사건이 충동질한,삼국의 그 가해자들이 파 놓은 함정에 걸려들 위험에 빠졌다.단지 거기에 있었을 뿐인 타자들에 대한 폭력에 무감각해지는 적개심이 평화주의와 갈등없이 마음속에서 서식하기 시작한 것이다.자칫 전쟁 반대를 소망하는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팍스아메리카나의 공모자가 될 기로에 서게 되었다. 김진호 당대비평 편집주간 목사˝
  • AP-알자지라 영상 ‘너무 다른 金씨 모습’

    미국의 APTN 방송이 24일 방영한 김선일씨 비디오의 내용은 지난 20일 밤 알 자지라가 방송했던 김씨 영상과 큰 차이가 난다. 카타르의 아랍어 위성방송인 알 자지라가 방송했던 비디오에서 “죽고 싶지 않다.살려달라.”고 절규하던 김씨의 모습은 매우 초췌하고 지쳐보였다.또 면도를 하지 못한 얼굴에 얼룩이 진 허름한 회색 남방 차림이었다.이 비디오에는 ‘유일신과 성전’ 소속 인질범 등도 등장해 한국군 파병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낭독하기도 했다. 반면 AP통신의 TV매체인 APTN이 방송한 비디오를 보면 김씨는 상대적으로 덜 공포에 질린 모습이었다.깔끔해 보이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으며,짧은 머리에 면도를 한 얼굴이었다.화면에 드러나지 않은 질문자가 영어로 묻자 김씨는 “이라크인들은 친절하다.바그다드에서 나는 나에게 구걸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줬다.”며 돈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두 영상물 사이에 이처럼 큰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무엇보다 두 비디오는 3주 가까운 시차를 두고 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지난 3일 APTN에 전달된 영상은 김씨가 납치된 5월 말 직후에,20일 알 자지라에 전달된 영상은 그 직전인 6월 18∼19일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두 영상을 제작한 주체가 다를 것이라는 가설도 제기한다.첫 영상은 철군요구 등 정치적 성향을 띤 전문 테러단체가 아니라 단순히 몸값을 노린 소규모 단체가 김씨를 납치한 뒤 비디오를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그래서 이 비디오를 AP측에 보낸 뒤에도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자 김씨의 신병을 급진 테러단체에 넘겼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만일 애초부터 ‘유일신과 성전’이 김씨를 납치했다면 테러범들은 첫번째 비디오에서 닉 버그 등 미국인을 살해한 것과는 다른 시도를 했을 수 있다.그러나 테러범들이 다소 순화된 비디오를 찍어 언론에 전달했으나 한국 정부나 주 이라크 한국 대사관,미국측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자 한국인이 느끼는 ‘공포’의 효과를 확실히 하기 위해 기존의 참혹한 방식의 영상을 다시 만들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편,가나무역 직원들은 지난 5월부터 김씨가 사망한 팔루자 지역에 보낼 담요 5000장을 확보하고도 여태껏 전달하지 못한 사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김씨 등은 바그다드에서 담요를 구입,며칠밤을 새워 ‘한국 친구들이 이라크인에게’라는 문구를 부착했으나 담요를 받을 단체의 대표가 부재 중이어서 전달을 미뤄왔다는 것이다.오랜 무력충돌로 물자가 고갈된 팔루자에 한국 담요가 전달됐다면 김씨의 구명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이 가나무역 직원들을 짓누르고 있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열린세상] 故 김선일씨의 명복을 빌며…/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어제 새벽 2시경,TV 속보를 통해 이라크 무장단체에 의해 납치됐던 김선일씨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충격이었다.온 국민이 생환을 고대하던 상황에서 들려온 비보에 망연자실,할 말을 잃었다.초저녁까지만 해도 납치범들이 요구시한을 연장했다는 보도가 있었기에,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냘픈 희망을 키웠던 터라 충격은 더 컸다.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남도 이러니,그 가족들의 애통함이야 오죽하겠는가.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가족들에게 위로의 인사를 전한다.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정부는 큰 책임 의식을 느껴야 한다.반성문을 써야 한다.첫 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졌다.처절한 음성으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김씨의 비디오가 방영되고 나온 정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자국의 국민이 납치되어 24시간의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긴박한 상황에서,정부의 대응 방식은 어떻게든 사람 살려야겠다는 간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납치와 관련한 정부의 21일 ‘파병 방침 불변’ 발표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정리되었다는 정부의 입장은 귀를 의심케 하는 것이었다.꼭 그 상황에서 이라크 파병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고 큰소리로 외쳐야 했을까.테러 세력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이 적절했던가.설혹 정부의 속내가 그렇다 하더라도,그 사실을 꼭 그렇게 나발 불듯 떠들었어야 할까. 국가 대사를 이끌어가는 정부 입장에서는 원칙이 중요하다.논리와 명분도 필요하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정부 반응은 그럴듯해 보인다.그러나 한 인간의 생명이 달리고,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상황에서 정부가 그렇게 ‘잘난 척’을 했어야 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한국 정부의 잘난 입장은 CNN,알자지라 방송,인터넷 등에 크게 다뤄졌고,납치범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을 것은 뻔하다.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인질을 죽이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말로 해석되었을 것이다. 파병 방침 불변 발언이 무신경의 극치라면,이후 보여준 몇 가지 정부의 행동은 무지를 보여준다.이번 납치 사건의 핵심에는 이라크인들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 정부는 지나치게 미국과의 친화성을 드러내는 행보를 보였다.미국에 협조를 의뢰하고,그 정보에 의존하고,미국의 성명서가 나오고….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이라크 무장단체에 어떻게 비쳐졌을까가 걱정스러웠다.최대한 미국과의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을 간과했던 것도 사태를 악화시킨 한 요인이 되었다. 22일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NSC가 김선일씨의 참수에 대비한 대책을 보고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NSC의 정보관리실장이라는 사람이 피랍자가 참수당할 경우의 보상대책과 시신운송 방안 등을 보고했다는 것이다.절실한 마음과 결연한 의지로 분초를 다투어 사람 살리겠다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준비성 참 좋다고나 해야 할까. 어려운 가운데도 정말로 성실하게 살다가,간절하게 생명을 원했던 대한민국 청년 김선일씨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을 해주었는가.국가의 이름으로 온갖 희생을 강요하면서도,막상 필요할 때 국민의 바람막이가 돼주지 못한다면 누가 국가를 위해 충성을 할 것인가. 한 젊은이의 죽음이 주는 큰 메시지를 놓치지 말자.이라크 파병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내건 전쟁의 명분은 미국 내에서도 그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월남전의 재판이 되리라는 우려가 높은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전쟁에 휩쓸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귀한 우리 젊은이들을 초대받지 않은 곳에서 떼로 죽일 수는 없다.김씨의 마지막 절규를 귀담아 듣는 것이,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다. 애통한 마음으로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 교수˝
  • [김선일씨 피살] 피랍서 피살까지

    ‘두가지 우려가 모두 최악의 상황으로.’ 김선일씨 피랍은 그 자체가 경악스러운 일이었다.지난 21일 이른 아침 김씨는 TV를 통해 “죽기 싫다.살고 싶다.”고 국내의 온 국민을 향해 절규했다.실종사실도 알려지지 않은 채 급작스럽게 튀어나온 피랍소식이어서 ‘설마 한국인까지‘하는 방심에 경종을 울렸다. ●혼돈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당일 오전 8시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긴급 소집되고,외교부에 긴급대책본부가 구성되는 등 회의에 회의가 꼬리를 물었다.9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11시 최영진 외교부차관과 아랍 12개국 주한대사 긴급 면담,오후 1시30분에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오후 3시30분 NSC와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이 잇따라 개최됐다.이어 정부합동대책반이 현지에 파견됐고,저녁 6시에는 카타르 주재 정문수 대사가 알자지라에 출연,김씨의 석방을 호소했다.그러나 한나절에 이뤄진 이 모든 일 가운데 테러단체가 주목했던 것은 오전 10시에 발표된 ‘파병원칙 재천명’이었을 수도 있다. 테러단체가 제시한 협상시한이 다가온 22일 자정무렵,온 국민은 초조감에 휩싸였다.가정마다 ‘어찌 될까.’ 하는 걱정에 TV곁을 떠나지 못했다. ●희망 22일 이른 새벽,정부는 다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무소식을 희소식으로 여긴 듯했다.‘24시간 최후통첩’은 “물리적 시간이 아닌 협상 촉구용일 여지가 많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었다.조심스러운 가운데서도 “우려할 만한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정부 관계자의 멘트도 나왔다. 이날 정부는 한층 힘을 얻는다.마침 오전에는 현지 경호업체로부터 ‘김씨의 생존을 확인했다.무장단체와 협상중이다.’라는 소식이 전해졌다.요르단 암만에 도착한 정부대책반도 활동을 개시했다.결정적으로 오후 6시 현지의 알아라비야TV가 ‘협상시한이 연장됐다.’는 보도를 한다.7시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아시아협력대화(ACD) 외교장관회의를 서둘러 마치고 귀국한 반기문 장관이 알자지라의 일본 특파원을 불러 인터뷰를 갖고 김씨의 무사 귀환을 아랍세계에 촉구했다. 이날 불길한 징후들은 점점 가리워진다.NSC는 국회에서 여당과 가진 당정협의에서 김씨에 대한 참수 이후의 대책을 보고했다가 의원들로부터 면박을 당한다.오후 열린우리당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오늘 밤이 고비가 될 것으로 본다.”고 한 최영진 외교부차관의 말은 낙관적으로만 해석됐다.“상황을 어렵게 또는 쉽게 보는 많은 정보가 입수되고 있어 규정하기 힘들다.”는 말은 희미해져 갔다.밤 10시,노무현 대통령이 외교부 상황실을 방문한다.최 차관은 여기서 “희망이 보이고 있다.”고 보고했다.노 대통령은 “좋은 소식이 있나 싶어서”,“답답해서” 느닷없이 들른 길이었지만,대통령의 방문 자체가 상황의 급전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여겨졌다. ●절망 이같은 희망은 그러나 채 1시간도 가지 못했다.대통령이 상황실을 떠난 지 30분여,주 이라크 대사관으로부터 충격적인 보고가 도착한다.“10시20분쯤 미군이 동양인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발견,현지 한국군에 연락해 왔다.”는 것이다.이어 23일 0시45분에는 시신이 김씨의 것으로 확인됐다는 추가 보고가 접수되고,1시40분에는 알자지라가 김씨 사망관련 비디오를 방영한다.밝은 오렌지색 옷의 김씨는 복면을 한 무장세력 앞에서 눈이 가리워진 채 무릎을 꿇고 울먹이고 있었다.그는 마지막 길을 예감한 듯 영어로 ‘Please(제발)’를 외쳤다.뒤에는 기진한 듯,간간이 “I really don’t want to die(정말 죽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되뇌이기도 했다. 1시 55분쯤,정부는 “불행한 소식을 전하게 돼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라는 말로 김씨의 피살 소식을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그의 사체는 동강났으며 부비트랩이 설치된 채 도로변에 버려졌다.만 이틀도 못되는 동안,극도의 우려와 걱정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뽑아내는가 싶더니,이내 닥친 최악의 상황으로 온 국민이 참담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울음 삼킨 한국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살고 싶다.”고 절규하던 김선일씨가 끝내 살해됐다는 비보가 전해진 23일 국민들은 허탈감과 분노,충격을 감추지 못했다.김씨가 졸업한 한국외국어대에는 김씨의 분향소가 마련됐고 각계각층의 애도와 규탄성명이 이어졌다.인터넷 각 사이트마다 김씨의 사진과 근조리본(▶◀)이 걸리는 등 추모카페와 사이버 빈소에는 고인의 넋을 기리는 네티즌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다. ‘안티 이라크’ 사이트가 속속 개설되면서 ‘반 이라크’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분노한 일부 네티즌들이 몰려들어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 홈페이지가 이날 오전 3시간 정도 다운된 것으로 알려졌다.또 아랍계 일부 사이트와 김씨의 참수 장면 공개 의사를 밝힌 해외 사이트에 대해서도 국내 네티즌들의 해킹과 서버 공격이 시작됐다. 새벽녘에 피살 소식을 들었다는 주부 최혜영(46·서울 대림동)씨는 “충격과 안타까움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면서 “조국을 끝까지 믿고 도움을 기다렸을 고 김선일씨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고시생 김종헌(29·경기도 과천시)씨는 “이라크 무장단체의 행동은 잔혹한 범죄행위 이전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비겁한 행위로 자비를 표방하는 이슬람의 정신조차 외면한 것”이라고 말했다.컴퓨터 프로그래머 정치원(31·서울 옥수동)씨는 “국민의 생명보다 중요한 국익은 없다.”면서 “정부에 적극적인 협상자세와 외교능력을 기대했지만 결국 실패한 정부의 대응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종교단체 등도 애도 성명을 통해 강력히 규탄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이라크 무장세력의 반인륜적 행동을 규탄하며 결코 그들의 목적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외대는 이날 서울 캠퍼스 미네르바광장과 용인 정보산업관 등에 분향소를 마련하고 고인을 애도했다.근조리본을 가슴에 단 학생과 교직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학교측은 아랍어과 교수들을 주축으로 조문단을 부산에 보내고 조의금을 전달하기로 했다.안병만 총장은 유족에게 보낸 조전에서 “김선일 동문이 당한 고통과 희생은 우리 모든 국민의 고통이며 슬픔이 아닐 수 없다.”면서 “김 동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가족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위로했다. 다음,네이버 등의 추모 카페에는 새벽부터 1000건 이상의 글이 올랐다.아이디 ‘문경사랑’은 “울분과 눈물이 가슴 한 쪽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심정이며 하늘에서 편히 쉬세요.”라고 명복을 빌었다.네이버 아이디 ‘데즈카팬’은 “납치된 김씨가 결국 피살될 때까지 얼마나 무섭고 외롭고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티 이라크’ 사이트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개설 5시간여 만에 2200여명의 회원을 확보한 다음의 ‘안티 이라크’ 등은 아랍권 사이트들에 대한 집단 해킹과 서버 공격에 들어가는 등 사이버전쟁을 선포했다. 일부 회원들은 ‘이에는 이,눈에는 눈’이라는 식으로 국내 거주 이라크인들에 대한 보복을 다짐하는 글을 올리는 등 우려를 낳고 있다.운영진은 특별공지를 통해 “아랍권 전 사이트에 태극기를 올리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불량 아랍 사이트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통해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자.”고 주장했다. 안동환 채수범기자 sunstory@seoul.co.kr˝
  • [사설] 이라크 한국인 살해 용서 못한다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가나무역 한국인 직원 김선일씨가 22일 밤 살해됐다.이 무장단체는 전날 “한국군이 24시간내 철수하지 않을 경우 참수하겠다.”고 밝혔었다.문명사회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납치범들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것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우리는 전 세계인과 함께 분노한다.가족들은 김씨가 살아 있기만을 기대했다.그러나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던 김씨는 끝내 희생됐다.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지난 17일 사건이 발생한 나흘 뒤에야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그러다보니 때를 놓쳤다.외교력을 총동원해 무장단체와의 협상창구를 만들고,모든 채널을 가동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앞서 일본은 지난 4월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 외교력을 총동원하는 한편 이슬람 성직자단체의 지원을 받아 3명을 무사히 구출한 적이 있다.정부가 교민 안전 대책을 소홀히 하고 늑장 대처한 점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제사회의 노력도 허사가 됐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등도 김씨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과격단체인 이슬람 울라마 기구도 인도적 차원에서 인질의 즉각적 석방을 촉구했다.그럼에도 납치범들은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납치범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살해 사건을 둘러싸고 여러 갈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열린우리당 의원 18명은 엊그제 추가 파병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일부 의원들은 알자지라 방송에 직접 출연까지 했다.이들의 충정은 이해가 가고도 남으나 국익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무장단체의 테러기도에 당위성을 주는 행동으로도 비쳐질 수 있지 않은가.이런 때일수록 말과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파병 반대가 곧 석방이라는 식의 단선적 사고로 접근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정치권의 초당적 협력이 아쉽다.˝
  • [피랍 김선일씨 참수위기] “결국 이런일이” … 경악

    “걱정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21일 꼭두새벽에 전해진 김선일씨 피랍소식은 전 국민을 경악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TV에 비친 김씨의 절규에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았으나 납치단체들이 김씨의 석방조건으로 내건 한국군 파병 철회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파병 철회 움직임을 본격화했다.인터넷상에서도 김씨를 살리기 위한 파병철회가 이뤄져야 한다는 네티즌이 우세했다.그러나 “국익을 생각하면 추가파병은 이뤄져야 하며 김씨의 무사구출을 위해 정부가 전력을 기울이는 것과 파병문제는 별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참여연대,민주노동당 등 36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라크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의 무사귀환과 추가파병 중단을 촉구했다.비상국민행동은 이라크 무장단체 앞으로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미국의 부당한 침략과 전쟁,학살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저항은 정당하지만 민간인을 억류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고 비난하고 김씨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줄 것을 호소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홍근수 목사는 “정부의 목적은 국민의 생명을 보전·보호하는 것”이라면서 “정부의 잘못된 파병결정으로 생명이 위험해졌다.이번 파병결정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씨가 다닌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총학생회와 아랍어과 학생회 학생 등 20여명도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파병철회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네티즌도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포털사이트 다음이 이날 실시한 추가파병 여론조사에서 78.7%가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다.당장 추가파병을 철회해야 한다.”고 대답한 반면 “파병추진”은 14.4%에 불과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사설] 경악스러운 이라크 한국인 피랍

    가나무역 한국인 직원 김선일씨가 지난 17일 국제테러조직인 알 카에다와 관련된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충격을 주고 있다.이 무장단체는 “한국군이 24시간내 철수하지 않을 경우 참수하겠다.”고 경고했다.앞서 납치됐던 미국인 2명이 살해됐기에 더욱 경악스럽다.설마했던 일이 우리에게도 닥친 것이다.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하는 김씨를 구출해 내는 것이 급선무다.이를 위해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한다.무장단체와의 협상창구를 빨리 만들고 모든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일본은 지난 4월 납치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슬람 성직자단체의 지원을 받아 3명을 무사히 구출한 적이 있다.이런 사례를 거울삼아 중동국가뿐만 아니라 미국·일본,국제 종교기관 및 인권단체에도 긴밀한 협조를 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 같은 납치사건의 재발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우선 중동국가에서 우리 교민이 표적이 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안전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특히 이라크의 경우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민들을 전원 철수시키는 게 좋을 것이다.국민들도 중동국가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국내에서의 테러 대책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보도에 따르면 알 카에다는 9·11 당시 주한 미국시설 테러계획을 세웠다고 한다.우리나라도 테러의 예외지대가 아니라는 얘기다.경찰은 공항 검색 등 테러 대응 대책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이와 함께 이라크 국민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우리 군의 파병 목적이 ‘재건지원’에 있음을 충분히 알려 현지 여론 악화를 막는 게 급하다. 우리는 명분없는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혀 왔다.추가파병이 이라크 저항세력의 한국인 공격으로 이어질 것도 우려해 왔다.그러나 죄없는 민간인을 인질로 잡은 야만적 협박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자 한다.이라크 무장단체는 무고한 김씨를 무조건 석방해야 한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0)남해 노도(櫓島)의 파도소리

    국문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이자 조선 후기 이름 난 문신(文臣)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오리 백연 마을 건너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는 서울 태생인 데다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그런 그가 한반도의 끝 남해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작은 무인도에서 숨을 거둔 이유는 정치범이라는 죄를 덮어 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유배… 천연의 무인도 특별감옥 노도는 유배지였다.그러나 김만중 이전,또는 이후에 이곳으로 유배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노도는 김만중 한 사람을 유형시키기 위해 선택된 특별감옥이었던 셈이다. 그의 죄목은 역모와 관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숙종 임금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다툼에서 서인이 패배하게 되자 관직을 빼앗기고 죄인이 되었다.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거웠다.사람이 살 수 없는 변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즉 사방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감금하는 형벌이었다. 이같은 조건을 잘 갖춘 곳이 노도다.섬의 동남쪽은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일부러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다.서쪽도 급경사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북쪽으로 난 밋밋한 한 자락만이 간신히 바다에 이르는 길로 이용할 수 있는데,이곳에서 맞은편 남해까지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어 이 또한 천혜의 장애물이다.감옥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노도에다 김만중을 혼자 몰아 넣어 놓고 숙종은 장희빈과 쾌락의 나날을 보냈고,남인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은 조선시대를 비탈로 끌어내렸다. 그리움의 정서가 자주 표출되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생애가 잘 투영된 것들이다.또한 많은 인물 대부분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소설과 시들은 그의 낭만주의 정감을 엿보게 한다.실제로 노도에 유배당한 김만중은 유배지로 찾아온 어머니와 아내와의 피맺힌 해후를 통하여 한글소설 ‘구운몽’을 탄생시켰다. 그가 53세 되던 1689년에 끌려와서 3년 뒤인 1692년 타계할 때까지 홀로 꿈꾸고 절규했던 적소(謫所),노도로 가기 위해 백연 마을 포구에서 고깃배를 빌려 탔다.불과 5분 남짓이면 노도에 닿는 거리다.그러나 노도와 백연마을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포구의 방파제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패악질로 곳곳이 무너진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몰고 가는 초로의 남자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백연마을이나 노도는 1985년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단다.십여 년 전부터 노도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기름값이나 받고 손님을 실어다 주기도 한다는데,그 손님들 대부분이 어떻게 노도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는지 끔찍하다며 말을 잃곤 하더란다. 노도에는 그가 귀양살이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북쪽 산비탈에 울창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에서 산새 몇 마리가 가는 소리로 울고 있다.김만중의 외로운 넋이런가 싶다.이 섬에서 북쪽 동백나무 숲 아래의 다소 밋밋한 언덕배기가 배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피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아내와의 해후 필자는 배가 닿았던 지점에서 맞은편 백연마을 포구를 바라본다.소리치면 건너편 포구까지 닿을 듯도 싶다.큰소리로 외쳐본다.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그때 필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에 겪었던 피눈물로 얼룩진 사건을 떠올렸다.어쩌면 바로 이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가 노도로 유배 온 이듬해 늦은 봄이었다.움막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붓을 놓고 귀를 귀울였다.분명 사람 목소리였다.움막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의 눈길이 노도 맞은편 백연마을 언덕으로 가 닿는다.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노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두 사람은 여인이고 한 명은 남자였다.그 남자가 다시 고함을 쳤다.저쪽 사내는 김만중을 찾고 있었다.놀랍고 반가웠다.되도록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바람이 불고 있었다.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에 파묻혔다가 토막난 채 들려온다.김만중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저쪽의 여자 한 사람이 절규한다.김만중의 아내였다.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남자는 김만중의 집일을 도맡고 있는 주석아범이었다. 죄수가 유형생활하는 유배지에 가족이 찾아오는 것은 법으로 엄금했다.그리하여 주변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잠시만 만나기도 했다.노도에 있는 김만중을 만나려면 특별하게 마련된 배가 필요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주석아범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배를 구할 수 없었고,그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소리쳐 이름 불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님을 알렸다.어머니는 자식이 하도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남해까지 왔지만 자식의 적소까지는 다가설 수 없어서 애를 태웠다.김만중은 울음을 참으면서 소리 질러 집안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주석아범 목소리를 빌려서 부디 몸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늦은 봄날 하루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마침내 어머니가 혼절했다.주석아범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아내는 나귀를 몰고 돌아섰다.아내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세 사람 모습이 사라진 뒤 김만중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늦은 봄밤이 깊어와 파도소리도 따라 울었다. ●소설 못보고 어머니 눈감자 그도 앓다 숨져 그날 이후 김만중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어머니께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그는 어머니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지난날 그가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중국 소설책 몇 권을 구해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사신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고 분주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그 뒤로 다시는 중국 여행길이 마련되지 않아 늘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이었다.김만중은 노도에서 그렇게 어머니와 이별한 뒤로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절해고도에 갇힌 몸이라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했다. ‘구운몽’은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인생을 특정한 사상의 틀 안에 넣어서 보지 않고 모든 틀을 깨고 나와서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주제로 씌어진 소설이다.그래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금강경의 공(空)을 소설화했다고도 볼 수 있는 소설이다.김만중 자신의 육신이 절해고도에 감금당하고 자신의 삶이 철저한 불행 속에 놓여진 뒤에야 깨닫게 된 정신세계의 변화였다. 세속의 상식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남은 것은 외로움에 찢겨 피흘리다 파도소리에 젖은 채 죽는 일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때 그는 역설의 묘법을 눈치챈 것이다.명예,권력,소유의 욕망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마침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구운몽’을 쓴 셈이다.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보낼 길이 막연했다.어머니는 그렇게 다녀가신 그 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소식을 갖고 온 조카에게 완성된 ‘구운몽’을 들려보내면서 장례에도 못 가는 불효자식을 대신하여 구운몽을 어머니 영전에 올려달라며 피울음을 울었다.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쓴 소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보지도 못한 채 눈 감은 어머니를 부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어머니라는 등불이 꺼지고나자 자신의 삶은 더욱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 있던 언덕의 느티나무 잎이 지고 파도가 흰 갈기를 세우며 세상을 질타하는 겨울 내내 김만중은 병을 앓았다.그리움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김만중은 그렇게 앓으며 파도소리에 갇힌 채 유배지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육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는 갇힐 것 없는 무애의 빛이 되었을까.구운몽 책갈피가 파도소리에 젖는다.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글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면서 국문가사예찬론을 폈던 서포 김만중의 목소리가 이 여름 노도를 씻어가는 파도소리로 다가온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50)남해 노도(櫓島)의 파도소리

    국문소설 ‘구운몽(九雲夢)’의 작가이자 조선 후기 이름 난 문신(文臣)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1637∼1692)은 경남 남해군 이동면 양오리 백연 마을 건너 노도(櫓島)에서 56세 일기로 생을 마쳤다.그는 서울 태생인 데다 생애 대부분을 서울에서 살았다.그런 그가 한반도의 끝 남해바다에 외롭게 떠 있는 한 작은 무인도에서 숨을 거둔 이유는 정치범이라는 죄를 덮어 쓰고 이곳으로 유배되었기 때문이다. ●역모죄로 유배… 천연의 무인도 특별감옥 노도는 유배지였다.그러나 김만중 이전,또는 이후에 이곳으로 유배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노도는 김만중 한 사람을 유형시키기 위해 선택된 특별감옥이었던 셈이다. 그의 죄목은 역모와 관련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숙종 임금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의 다툼에서 서인이 패배하게 되자 관직을 빼앗기고 죄인이 되었다.그에게 내려진 형벌은 무거웠다.사람이 살 수 없는 변방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남해(南海)에 위리안치(圍籬安置),즉 사방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안에 감금하는 형벌이었다. 이같은 조건을 잘 갖춘 곳이 노도다.섬의 동남쪽은 가파른 경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일부러 울타리를 칠 필요가 없다.서쪽도 급경사지여서 탈출이 불가능하다.북쪽으로 난 밋밋한 한 자락만이 간신히 바다에 이르는 길로 이용할 수 있는데,이곳에서 맞은편 남해까지 사이에는 급류가 흐르고 있어 이 또한 천혜의 장애물이다.감옥으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춘 노도에다 김만중을 혼자 몰아 넣어 놓고 숙종은 장희빈과 쾌락의 나날을 보냈고,남인 권력자들의 끝없는 욕망은 조선시대를 비탈로 끌어내렸다. 그리움의 정서가 자주 표출되는 그의 시편들은 그의 생애가 잘 투영된 것들이다.또한 많은 인물 대부분이 여성으로 그려지고 있는 소설과 시들은 그의 낭만주의 정감을 엿보게 한다.실제로 노도에 유배당한 김만중은 유배지로 찾아온 어머니와 아내와의 피맺힌 해후를 통하여 한글소설 ‘구운몽’을 탄생시켰다. 그가 53세 되던 1689년에 끌려와서 3년 뒤인 1692년 타계할 때까지 홀로 꿈꾸고 절규했던 적소(謫所),노도로 가기 위해 백연 마을 포구에서 고깃배를 빌려 탔다.불과 5분 남짓이면 노도에 닿는 거리다.그러나 노도와 백연마을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 여객선 같은 것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포구의 방파제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패악질로 곳곳이 무너진 채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떨구고 있다. 작은 고깃배를 몰고 가는 초로의 남자가 전해 준 말에 따르면 백연마을이나 노도는 1985년까지도 등잔불을 켜고 살았단다.십여 년 전부터 노도를 찾아오는 이들이 가끔 있어서 기름값이나 받고 손님을 실어다 주기도 한다는데,그 손님들 대부분이 어떻게 노도에서 혼자 3년 동안이나 지낼 수 있었는지 끔찍하다며 말을 잃곤 하더란다. 노도에는 그가 귀양살이 한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북쪽 산비탈에 울창한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에서 산새 몇 마리가 가는 소리로 울고 있다.김만중의 외로운 넋이런가 싶다.이 섬에서 북쪽 동백나무 숲 아래의 다소 밋밋한 언덕배기가 배를 접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피눈물로 얼룩진 어머니·아내와의 해후 필자는 배가 닿았던 지점에서 맞은편 백연마을 포구를 바라본다.소리치면 건너편 포구까지 닿을 듯도 싶다.큰소리로 외쳐본다.바람이 그다지 불지 않는 날이어서 그런지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마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내 목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그때 필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중에 겪었던 피눈물로 얼룩진 사건을 떠올렸다.어쩌면 바로 이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그가 노도로 유배 온 이듬해 늦은 봄이었다.움막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애절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붓을 놓고 귀를 귀울였다.분명 사람 목소리였다.움막 밖으로 나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그의 눈길이 노도 맞은편 백연마을 언덕으로 가 닿는다.세 사람이 언덕 위에 서서 노도 쪽을 바라보고 있다.두 사람은 여인이고 한 명은 남자였다.그 남자가 다시 고함을 쳤다.저쪽 사내는 김만중을 찾고 있었다.놀랍고 반가웠다.되도록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바람이 불고 있었다.저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바람에 파묻혔다가 토막난 채 들려온다.김만중 자신을 찾는 것이 분명했다.그렇다고 대답했다.그러자 저쪽의 여자 한 사람이 절규한다.김만중의 아내였다.그 옆의 여인은 어머니였다.남자는 김만중의 집일을 도맡고 있는 주석아범이었다. 죄수가 유형생활하는 유배지에 가족이 찾아오는 것은 법으로 엄금했다.그리하여 주변을 지키는 포졸들에게 뇌물을 주고 잠시만 만나기도 했다.노도에 있는 김만중을 만나려면 특별하게 마련된 배가 필요했다.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주석아범은 백방으로 손을 써봤지만 배를 구할 수 없었고,그렇게 먼발치에서라도 소리쳐 이름 불러볼 수 있게 된 것도 여간 공들인 것이 아님을 알렸다.어머니는 자식이 하도 보고 싶어 서울에서 남해까지 왔지만 자식의 적소까지는 다가설 수 없어서 애를 태웠다.김만중은 울음을 참으면서 소리 질러 집안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 주석아범 목소리를 빌려서 부디 몸조심하라 신신당부했다. 늦은 봄날 하루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마침내 어머니가 혼절했다.주석아범은 어머니를 등에 업고,아내는 나귀를 몰고 돌아섰다.아내가 가다 말고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세 사람 모습이 사라진 뒤 김만중은 바닷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오래 울었다.늦은 봄밤이 깊어와 파도소리도 따라 울었다. ●소설 못보고 어머니 눈감자 그도 앓다 숨져 그날 이후 김만중은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어머니께 보내드리기 위해서였다.그는 어머니께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었다.지난날 그가 중국 사신으로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중국 소설책 몇 권을 구해와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그런데 사신의 임무가 너무 막중하고 분주하여 어머니의 부탁을 그만 잊어버렸던 것이다.그 뒤로 다시는 중국 여행길이 마련되지 않아 늘 어머니께 송구한 마음이었다.김만중은 노도에서 그렇게 어머니와 이별한 뒤로 지키지 못한 어머니와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언제 풀려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절해고도에 갇힌 몸이라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초조함이 더했다. ‘구운몽’은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인생을 특정한 사상의 틀 안에 넣어서 보지 않고 모든 틀을 깨고 나와서 자유롭게 관조한다는 주제로 씌어진 소설이다.그래서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금강경의 공(空)을 소설화했다고도 볼 수 있는 소설이다.김만중 자신의 육신이 절해고도에 감금당하고 자신의 삶이 철저한 불행 속에 놓여진 뒤에야 깨닫게 된 정신세계의 변화였다. 세속의 상식으로 볼 때 그의 인생은 끝장난 것이다.남은 것은 외로움에 찢겨 피흘리다 파도소리에 젖은 채 죽는 일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때 그는 역설의 묘법을 눈치챈 것이다.명예,권력,소유의 욕망을 놓아버리면 한없이 자유로운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안 것이다.마침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하면서 ‘구운몽’을 쓴 셈이다. 소설이 완성되었지만 보낼 길이 막연했다.어머니는 그렇게 다녀가신 그 해 가을에 눈을 감았다.소식을 갖고 온 조카에게 완성된 ‘구운몽’을 들려보내면서 장례에도 못 가는 불효자식을 대신하여 구운몽을 어머니 영전에 올려달라며 피울음을 울었다.자식 기다리는 어머니를 위로해드리기 위해 쓴 소설이지만 정작 그 소설을 보지도 못한 채 눈 감은 어머니를 부르며 바닷가를 거닐었다.어머니라는 등불이 꺼지고나자 자신의 삶은 더욱 작고 초라했다. 어머니와 아내가 서 있던 언덕의 느티나무 잎이 지고 파도가 흰 갈기를 세우며 세상을 질타하는 겨울 내내 김만중은 병을 앓았다.그리움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김만중은 그렇게 앓으며 파도소리에 갇힌 채 유배지 불 꺼진 방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육신을 벗어버림으로써 더는 갇힐 것 없는 무애의 빛이 되었을까.구운몽 책갈피가 파도소리에 젖는다.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로 글을 짓는다면 이는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과 같다면서 국문가사예찬론을 폈던 서포 김만중의 목소리가 이 여름 노도를 씻어가는 파도소리로 다가온다.
  • [여성 & 남성] 유지혜기자가 본 ‘밤 12시의 남자들’

    고교 시절 노처녀 히스테리로 악명이 높았던 지리 선생님은 남자를 제대로 보려면 꼭 함께 힘든 여행을 하거나 술을 진탕 마셔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렇게 잘 알면서 왜 본인은 결혼을 안하는지,이론이 현실을 못쫓아가는 선생님의 모습에 한 귀로 흘려버렸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은 진리였다. #1학교 앞에서 “도대체 왜 걔는 내가 싫다는 건데.내가 뭐가 그렇게 빠진다고….” 또 시작이다.‘이 녀석’의 ‘12시 그녀 증후군’.자정무렵이 되어 술이 꼭지까지 오르면 꼭 ‘그녀’를 부르며 절규한다.나는 녀석보다 술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꼬박 6년 동안 똑같은 주정을 받아주고 있다. 어이없는 건 만날 때마다 녀석이 부르는 ‘그녀’의 이름이 다르다는 것이다.녀석은 세상 시름을 다 짊어진 듯 비틀거리더니 곧 휴대전화를 들고 뽀르르 사라져 남은 술을 다 비우도록 오지 않는다.아마 ‘그녀’에게 술꼬장을 부리거나,‘새로운 그녀’에게 작업을 하고 있음이리라. 바람둥이면 욕이라도 하지,매번 차이는 녀석에게는 측은지심만 들 뿐이다.문득 녀석은 그저 솔직한 남자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네가 그래서 안되는 거야.’.한 대 후려치고 싶은 걸 꾹 참고 “그 여자가 눈이 삐어서 그래.”하고 위로한다. #2회사 앞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연을 맺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종종 놀랄 때가 있다.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던 인품이 술만 마시면 누더기로 변해버리는 사람들.술에 대해 안 좋은 추억만을 남긴다. 존경하던 선배가 육두문자를 날리면서 함부로 내 팔을 잡아끌 때는 얼마나 허탈했는지.드라마에서나 봤던 “이 손 누구 거야?”라고 외칠 지경에서는 진심으로 거꾸로 매달아 태형(笞刑)을 체험하게 해주고픈 마음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선배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던 사람이 ‘선배에 대한 딸랑이’를 흔들고 있다.여자의 내숭보다 남자의 내숭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는 순간이다.그래,나는 내숭쟁이 신데렐라보다는 슈렉으로 변한 피오나 공주가 되련다. #3‘사람들’과 함께 솔직히 취해서 해롱거리는 데 남자라고 더 추하고 여자라고 더 아름다울 것이 뭐 있을까.그래서 나는 남자도 말고,여자도 말고 ‘사람들’이랑 마시는 술이 좋다.앞에서 언급한 이들 가운데 일부는 술자리에서는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별 것도 아니다.내가 당해서 싫은 행동은 스스로도 하지 않는 것,초등학교 1학년 도덕시간에 배운 기본적인 예의이고 배려이다.그걸 아는 사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미있고,허풍인 줄 뻔히 아는 무용담도 흥이 난다.이런 사람들과 하는 자리가 있다는 것이 아마도 내가 술을 안 끊는 100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인디밴드·추억의 무대 만나세요

    여기 아직은 큰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했지만 새 시대의 감각을 예견하는 인디밴드들의 무대와,이미 한 시대의 젊음을 대표했던 그룹사운드들의 무대가 있다.다양한 음악적 충격을 느끼고 싶다면 전자의 무대를,옛 추억을 떠올리며 환호성을 지르고 싶다면 후자의 무대를 선택해보자. ●독창적 음악 라이브 어딕션 지난해부터 열린 정동극장의 심야 릴레이 콘서트 ‘라이브 어딕션’.올해엔 6월4∼28일 매주 금·토 오후 10시30분에 다양한 장르로 관객을 중독시킬 채비를 갖췄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와 달리 각각의 무대마다 서로 다른 독창적인 컨셉트를 가진다. 첫 무대는 라이너스의 담요와 줄리아 하트가 공동으로 꾸미는 ‘Simple Diary’.앙증맞은 비브라폰,부드러운 플루트 등으로 소소한 일상을 따뜻하고 포근하게 노래하는 밴드들이다. 다음날은 흑인음악인 펑크(Funk)의 절대강자로 떠오른 그룹 아소토 유니온이‘공동펑크구역’이라는 타이틀로 초여름밤을 뜨겁게달군다. 11일은 포크록 그룹 푸른새벽과 플라스틱 피플이 우울하면서도 푸른 젊음이 느껴지는 무대 ‘Blue Window’를 선보인다.12일은 박찬욱 감독이 직접 뮤직비디오를 찍어줘 화제가 되기도 했던 모던록 아티스트 이승열이 ‘Midnight Secret’이라는 컨셉트로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18일은 그로테스크한 절규와 주술적인 헤비사운드로 마니아를 몰고다니는 그룹 레이니선이 ‘Rainy Night’를,19일은 재즈와 록 등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뛰어난 테크닉을 자랑하는 솔로 베이시스트 모그가 ‘My Basement’를 꾸민다. 25일은 80년대 밴드 어떤날을 연상시키는 서정적인 포크듀오 재주소년이 ‘Summer Vacation’을 선사하고,26일은 펑크록밴드 레이지본의 ‘정동별곡’이 이어진다.(02)751-1500. ●중·장년층 위한 7080콘서트 공연 전회 매진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7080콘서트가 ‘보고싶다 친구야!’라는 타이틀로 6월12일 오후 7시30분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규모 앙코르 공연을 갖는다. 기존의 송골매,블랙테트라,옥슨80,로커스트,라이너스,건아들,이명훈과 휘버스 외에 김수철,산울림의 김창완,들국화 등이 이번 무대에 합세했다. ‘젊은 그대’‘나도야 간다’(김수철),‘그것만이 내 세상’‘행진’(들국화),‘희나리’(송골매),‘그대로 그렇게’(이명훈과 휘버스)등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노래들을 선사한다.150평 무대에 2대의 대형 스크린을 설치할 예정.(02)545-1211.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길섶에서] 면죄부/심재억 문화부 차장

    돈을 내면 현세의 죄를 씻을 수 있다는 면죄부는 중세의 악습이었다.악습이었지만,당시의 로마교회는 그 단맛에 빠져 헤어날 줄 몰랐다.마치 우리 역사의 암흑기에 있었던 백골징포(白骨徵布)처럼 교황 식스토 4세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면죄부까지 만들어 팔아 종교개혁의 빌미를 제공했다. 너무 먼 나라,먼 시대의 얘기라면 이런 사례도 있다.한때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서글픈 조롱이 우리사회를 풍미했다.지난 88년,탈옥수 지강헌 일당이 남긴 이 말은 범죄자의 자기변명 이상의 반향을 우리 사회에 불러있으켰다.반향은 공명(共鳴)이고,공감(共感)이다. 최근 시치미를 뗀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지켜보면서 중세의 면죄부나 한 탈옥수의 절규를 생각하는 건 결코 ‘이상(異常)감각’이 아니다.수백억원 대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해 법을 범한 재벌 총수들을 불러 조사 한번 하지 않은 처사를 두고 검찰은 국가경제를 위한 배려(?)라고 말할지 모르나,그 실상은 너무나 ‘면죄부적’이다.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그들의 뒤통수에 대고 삐죽거리지 않는가.“저들이 개혁의 끝”이라고.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
  • [데스크 시각] 눈여겨볼 고이즈미식 訪北/황성기 사회교육 부장

    북한과 일본의 22일 평양 정상회담은 누가 뭐라든 절반 이상의 성공이다.뉴욕타임스가 비꼬았지만 도시락을 싸들고 평양에 갔건,회담시간을 다 못 채웠건 그렇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납치피해자 자녀 5명을 데리고 귀국했다.일본인이지만 북한사람으로 살아온 자녀들이 일본정부 전세기에 오르려 석양을 받으며 순안공항에 얼굴을 드러낸 순간,잘 적응해 살기를 바랐다. 납치는 북한이나,일본이나 빨리 손에서 내려놓고 싶은 뜨거운 감자다.일본에 귀환한 피랍자 두 부부의 열여섯에서 스물두살된 가족들이 일본땅을 밟고,부모들과 1년 7개월만에 재회함으로써 30년 묵은 북·일 납치문제는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총리는 국교수립을 위한 회담재개에도 합의했다.납치문제를 매듭짓고 비정상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외교관계를 맺고자 하는 바람은 북한이나 일본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위성으로 생중계되는 NHK를 지켜보면서 보통 우리가 봐왔던 정상회담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납치 가족 몇명의 송환을 위해 정상이 국교도 없는 나라의 수도에 들어가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핵·미사일과 관련한 의제가 회담에서 논의되긴 했어도 사실 송환이 회담의 ‘모든 것’이었다.직접 가서 김 위원장을 만나,납치 피해자의 염원이자 많은 일본인이 바라던 가족을 데리고 온 것은 잘한 일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 위원장과의 회담후 미군 탈영병 출신으로 피랍자와 결혼한 젠킨스씨,그의 두 딸과도 1시간가량 만났다.그들의 귀국의사를 확인했으나 동행을 거부했다.기자회견에서 총리는 젠킨스 가족과 나눈 얘기를 소상히 전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들 한다.자신도 걸린 ‘국민연금미납 태풍’을 비켜가기 위한 퍼포먼스라거나,여름의 참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려는 전략이라거나,나아가 납치문제를 해결하고 북·일 수교를 이뤄낸 지도자로서 역사에 기록되고자 하는 명예욕이 배경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하지만 아무런 죄도 없이 납치돼 젊음을 북에 파묻고,자식들마저 두고온 이산(離散)의 고통은 정권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가로서 핵·미사일만큼이나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였다.그것을 풀러 갔다. 2002년 9월17일 평양 회담이 일본 외무성이 ‘한상 바쳐올린’ 것이었다면 22일 회담은 고이즈미 총리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다.주변에서 “상당한 정치적 위험을 동반한다.”고 말렸다고 한다. 다녀오자 두번째의 평양행을 놓고 평가가 엇갈린다.미흡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쪽이 있는가 하면,행방불명자 10명의 가족들은 “최악의 결과”라고 절규한다.잘해보자고 했던 일이 그를 자칫 위태롭게 할 수도 있어 보인다.그럼에도 일단 5명이라도 귀국함으로써 북과 일본이 다음 단계로 옮겨갈 발판은 생겼다.두 나라 사이에 놓인 암초 중 가장 큰 덩어리 하나를 두 정상이 들어냈다. 이제부터다.북핵해결과 맞물려 있긴 해도 북·일 수교는 조속히 실현되어야 한다.양국관계가 진전되면 한반도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일본에서 주장하는 실종자 10명의 재조사에 북측은 성실히 응해야 한다.일본 조야도 지난 1년10개월간의 모진 ‘북한 때리기’를 접고,대승적 차원에서 북·일관계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얘기는 다르지만 우리의 피랍자가 마음에 걸린다.방식이야 다를 수 있겠으나,숙제 하나를 풀러 평양을 오간 ‘고이즈미식’은 눈여겨 볼 만하다. 황성기 사회교육 부장 marry04@˝
  • [씨줄날줄] 전태일 남매/오풍연 논설위원

    1970년 11월13일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앞.22살의 한 청년이 몸에 불을 붙인 채 군중 속으로 뛰어든다.“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내 죽음을 헛되이하지 말라.” 전태일 열사는 이렇게 절규하며 한(恨)많은 생을 마감했다.그의 죽음은 이후 한국 노동운동의 ‘발화점’이 됐다. 전태일의 숭고한 삶은 평전과 영화로 거듭 태어났다.지난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를 받아오던 고 조영래 변호사는 그의 일대기를 책으로 엮었다.전 열사가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과 사명감을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그것이다.이 책은 몇년간 저자의 이름없이 읽혀졌다.나중에 ‘전태일 평전’으로 빛을 보게 된다.지난 95년 11월에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영화로 만들어졌다.주인공역을 맡은 영화배우 홍경인은 혼신의 연기를 펼쳐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도 했다. 열사의 가족사는 우리 노동운동 및 민주화운동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어머니 이소선(75)씨도 평범한 주부에서 ‘투사’로 변신하기에 이르렀다.군사독재 시절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위협도 어머니를 주저앉히지 못했다.민주화운동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이씨가 있었다.이씨는 지난 19일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아들이 묻힌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모란공원에서 귀한 손님을 맞았다.노동자와 농민의 권익보호를 위해 싸워온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당선자 10명이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 이씨는 “태일아,너와 한 약속을 지켰다.너도 지하에서 기뻐할 것”이라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그러면서 “우리가 국회 앞에서 농성을 할 때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국회의원들도 우리를 외면했다.이제 우리의 국회의원이 생겼으니 계속 싸워달라.”고 당부했다.전 열사의 여동생 순옥(50·성공회대 교수)씨도 “오늘 같은 날이 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근로기준법 책을 든 열사의 흉상도 가슴뭉클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옥씨가 엊그제 자신의 가족을 그렇게 괴롭혔던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특강을 했다.모두를 용서하는 자리였다.어머니 이씨를 연행했던 적이 있는 한 형사는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털어놨다.열사 가족의 값진 삶은 계속되고 있다. 오풍연 논설위원˝
  • “로켓포 40여발 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새벽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 근처의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州)의 사막 지대 ‘모그르 엘 디브’에서 미군이 결혼식장을 폭격해 45명이 숨진 사건의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특히 미군이 국경을 넘어 이라크에 들어온 무장저항세력의 아지트를 공격했다며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는 가운데 당시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라크인들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져 나오면서 분노가 이라크 전역으로 확산될 기세다. ●“한 살배기 손자,목 잘려 숨졌다” 가까스로 폭격에서 살아남았지만 딸을 잃었다는 마드히 나와프(54)는 “딸은 두 살배기 손자를 품에 안고 숨졌고 그 옆에는 돌 지난 손자가 목이 잘려 널브러져 있었다.”고 절규했다.그는 많은 아낙네들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잠을 자다가 숨졌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21일 전했다. 신랑 신부와 하객이 잠자는 텐트와 건물 등에 새벽부터 동이 틀 때까지 폭격이 이어졌을 뿐 아니라 미군이 폭격의 생존자들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생존자인 함단 칼라프 함마디(18)는 “동이 틀 때쯤 미군들이 간밤의 폭격 결과를 확인하러 왔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이 도망을 치자 한명 한명 차례로 총을 쏴 살해했다.”고 증언했다고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21일 보도했다. 결혼식 축하공연을 위해 바그다드에서 초빙된 8인조 전통음악 밴드는 단원 1명만 남고 모두 숨졌다.유일한 생존자인 오르간 연주자 바셈 하미드 둘라이미(26)는 20일 바그다드에서 열린 친구들의 장례식에서 “미군들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숙소에 40발 이상의 로켓포를 쐈다.”고 말했다. ●미군,“사막 결혼식,말도 안돼” 생존자들의 증언이 보도되자 미군측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민간인 공격이 아니었다는 입장은 고수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 마크 키밋 준장은 “군은 이번 작전이 연합군과 싸우기 위해 국경을 넘은 저항세력의 아지트가 목표였다고 주장한다.”면서 “병사들은 폭격 장소에서 권총과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기관총 등을 찾아냈다.”고 20일 말했다. 또 제임스 마티스 미 해병 소장은 “시리아 국경에서 15㎞ 떨어져 있고 가장 가까운 도시로부터도 130㎞ 떨어진 곳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게 말이 되느냐.사막에서 올리는 결혼식에 몇 사람이나 참가하겠느냐.”며 결혼식장에 폭격을 가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뿐만 아니라 그곳에는 군복무 연령대의 젊은 남성 30명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군의 주장과는 달리 많은 이라크인,특히 유목민들은 사막에 텐트를 치고 결혼식을 올리고 피로연을 여는 풍습이 있다고 LAT는 보도했다.18일 결혼식에 참석한 이라크인들은 유목민인 ‘보파하드 부족’으로 알려졌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10대 미혼모의 눈물

    “몸을 팔아서라도 해외로 입양되기 전에 우리 아기 새옷 한 벌 사입히고 싶었던 것 뿐인데….” 18일 오전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4반 사무실.눈물이 글썽한 미혼모 정모(18)양 앞에서 건장한 남성 3명이 고개를 떨군 채 “미안하다.”는 말만 되뇌고 있었다. 경찰수사 결과 정양은 불과 1년 사이에 몹쓸 어른들의 꾐에 빠져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정양이 아기를 갖게 된 것은 지난해 5월15일.친구 이모(18)양이 ‘아는 오빠’라고 소개한 윤모(36·주점업)씨의 집에 함께 놀러갔다가 친구가 잠시 나간 사이 윤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정신없이 도망쳐 나온 정양은 몇 개월이 지나서야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됐다.휴대전화 번호를 수소문해 겨우 윤씨와 연락이 닿았지만 “수술비용을 대주겠다.”고 약속한 윤씨는 곧바로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 정양의 어머니는 정양이 3살때 가출했다.아버지가 암으로 사망한 지난 2001년부터 정양은 학교를 그만두고 동생 둘과 함께 친척집에 머물며 피자가게와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와 용돈을 벌었다.하지만 배가 점점 불러오자 더이상 친척집에 있을 수가 없게 된 정양은 평택의 한 미혼모시설에 찾아가 지난 2월15일 2.67㎏의 남자아기를 출산했다.자신의 성을 따 이름도 지어줬지만 아기를 기를 능력이 없는 정양은 닷새 만에 아기를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복지재단으로 보냈다. 며칠 뒤 아기가 입양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들은 정양은 마지막으로 옷이라도 한 벌 사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하지만 수중에 돈이라곤 한 푼도 없었던 정양은 지난 2월25일 오후 9시쯤 인터넷 채팅을 통해 “5만원에 ‘조건만남’을 하자.”는 이모(23·무직)씨의 제의를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이씨는 돈부터 달라는 정양의 요구를 들은체도 않고 여관으로 끌고가 성폭행한 뒤 달아나버렸다.출산 열흘만의 일이었다.정양은 지난 3월15일 오후 2시30분쯤에도 돈을 주겠다는 고모(41·건축업)씨를 만났으나 역시 성폭행만 당했다. 아기의 아빠인 윤씨와 파렴치한 두 어른은 정양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던 이들은 대질심문을 한 뒤에야 고개를 떨궜다.정양은 “인생을 망치고 아기와도 생이별하게 만든 ‘애 아빠’를 한번 만나고 싶었다.”고 절규했다.경찰은 18일 윤씨 등 3명에 대해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
  • 시인과 선승, 어울려 세상을 논하다

    시인은 세상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가치를 추슬러 형상화하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한다.속세를 떠난 선승(禪僧)은 인간의 보편적인 진리와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그래서 시인과 선승은 승과 속을 떠나 언제든지 어울릴 수 있는 ‘도반’이다. 동국대 석좌교수인 신경림(69) 시인과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회주 오현(72 )스님.신 시인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치열하고 힘겨운 삶을 실천이라는 덕목과 생명력으로 살려낸 순박한 문인이라면,오현 스님은 승속을 넘나드는 기행과 필력으로 승가의 이목을 받았던 괴팍한 선승이다.언뜻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두 사람이 세상을 보는 눈은 도반의 그것이었다. 지난 10일 저녁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조계종 출판사인 ‘아름다운 인연’이 처음 낸 책 ‘신경림 시인과 오현 스님의 열흘간의 만남’의 주인공인 시인과 선승이 책 출간을 맞아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책은 지난해 6월부터 연말까지 10여차례에 걸쳐 시인이 백담사로 스님을 찾아 여행·사랑·환경·욕망·통일·전쟁·문학 등 7개의 테마를 놓고 솔직하게 대화한 것을 옮긴 기록이다. 두 사람은 오랜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동행자가 서로에 대한 믿음을 확인한 것처럼,세상을 향해 묻어 두었던 가슴 속의 절규를 속시원히 털어낸 듯 편안해 보였다.우선 시인이 “시는 시정잡배들이 세상의 밑바닥에서 하는 소리인데 선승이 잘 이해해서 고맙다.”는 말로 운을 떼자 스님은 중국 명(明)대의 현인 원호문의 글로 답했다.“시위선객첨금화/선시시가절옥도(詩爲禪客添錦花/禪是詩家切玉刀) 시인이 선승을 만나니 비단으로 덮이고 선승이 시인을 만나니 옥칼을 다듬어 주네.”시인의 승속을 넘나드는 경지를 극찬한 말이다. “세상의 평가대로 ‘괴승’으로 알았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정확하고 날카롭다.”고 시인이 말을 잇자 스님은 “신 시인의 시에는 세상 사는 사람들에 관한 모든 그림이 있고 그것은 불교의 선시(禪詩)에 다름 아니다.”라고 대꾸했다. 그럼에도 시인과 선승은 어쩔 수 없는 경계를 갖고 있는가 보다.시인이 “사람이 욕심이 없다면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고 그런 욕심은 결국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아닌가.”라고 묻자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꽃과 나무가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는 나름대로의 욕심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생명의 욕구일 뿐 그 욕심의 정도를 자제해야 하며 특히 사람은 적게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열흘간의 만남’은 두 사람의 인생역정과 세상을 향한 말을 가감없이 전한다.“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했는데 그 종착역인 죽음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라는 스님의 물음에 시인은 말한다.“죽음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죽음이 마냥 두려운 것만은 아니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두 사람의 알려지지 않은 연애 경험담도 들어 있다.시인이 ‘죽도록’ 사랑했던 소녀에 대한 짝사랑과 연상의 여인에 대한 연민과 실패를 고백하자 선승은 출가 직후 절집 공양주 딸과 나누었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들려준다. 인생을 시처럼 살고,시를 인생처럼 쓰는 선승과 시인은 결론 짓는다. “문학의 감동은 삶을 얼마나 생동감 있게 재구성했느냐에서 오는 것입니다.그리고 쓰지 않고는 못사는 사람만이 쓰는 것이지요.” 인제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모두가 얼짱·몸짱 나만은 ‘마음 짱’

    “굵고 짧은 무다리(중략) 저주받은 내 육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6일 오후 서울 신촌기차역 앞 가로공원 노상무대.여성 무용수가 온몸을 부여잡으며 “내 똥배가 도저히 용납 안된다.”고 절규하자 길가던 시민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하나 둘 멈춰섰다. ●성형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장면 연출하자 심각 무용수는 ‘몸짱’이 되겠다며 천으로 온몸을 친친 동여매고,가짜 코를 얼굴에 갖다 붙였다.웃으면서 지켜보던 시민들은 무용수가 성형의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장면을 연출하자 심각해졌다.퍼포먼스를 지켜보던 이화여대 2년 이모(21)씨는 “외모에만 집착하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허무하게 죽어가는 모습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아 섬뜩하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마련한 ‘내 몸의 주인은 나-No 다이어트,No 성형’ 캠페인의 한 장면이다.‘얼짱’ ‘몸짱’의 유행 속에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실을 빗댄 행사다.여성민우회 여성환경센터 정정희(55) 간사는 “최근 체중을 줄이기 위해 위 절제수술을 받은 젊은 여성이 심장마비로 숨지는 등 외모지상주의의 폐해와 사회적 낭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면서 “사회적으로 획일화된 외모만을 요구하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개인의 다양한 개성과 자신감을 회복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여성민우회는 가두 캠페인과 성명서·논평 발표,지역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마련 등 운동을 계속 펴나갈 계획이다. ●획일적 외모지상주의는 사회적 억압 차은주(44) 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성상담소 상담원 대표는 “여성의 외모에 대해 일정 수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회적 억압”이라면서 “외모 콤플렉스로 스트레스를 받거나,무리한 다이어트·성형수술 후유증으로 고민하는 젊은 여성의 상담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차 대표는 “무리한 다이어트와 성형은 영양불량,전신무력감,피로증상에서부터 무월경,무배란,골다공증,심장마비,피부괴사,경련쇼크,심리장애 등의 후유증을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이날 행사는 ‘국제 노 다이어트 데이’(INDD·International No Diet Day)를 기념한 것으로 올해가 두번째이다.‘INDD’운동은 1992년 영국의 반(反)다이어트 운동가인 메리 에번스 영이 과도한 다이어트로 죽어간 여성을 추모하며 시작,현재 전세계 12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채수범기자 lokavid@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