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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조에 빠져 죽은 아들…노닥거리며 맥주 마시던 부모

    엄마 아빠가 친구들과 잡담하고 떠드는 사이 혼자 욕실에 버려진 아들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영국 데일리메일, 메트로는 24일(이하 현지시간) 아들을 욕조에 익사하게 둔 한 커플에게 중과실치사혐의로 총 8년 6개월의 실형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법원에 따르면, 사건은 2015년 9월 26일 오후 5시 30분 쯤 발생했다. 영국 우스터셔주 텐버리웰스 출신의 부부 웨인 데일(44)과 리사 패세이(28)는 집 2층 욕실 목욕용 좌석에 13개월된 아들 키안 데일을 앉혀놓고, 1층에서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음악을 듣던 중이었다. 13분 쯤 지난 뒤 욕실로 돌아온 부부는 욕조물에 아들이 잠긴 것을 발견하고, 즉시 건져내 비명을 지르며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빠는 급하게 긴급구조대에 신고를 했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설명을 들으며 아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 패세이의 이웃도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1분간 인공호흡을 실시했다. 얼마 안 있어 경찰이 도착해 사건을 넘겨받았다.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 라이언 데비스는 “아이의 엄마가 울면서 절규했고 아주 괴롭고 슬픈 상태로 보였다. 아빠 역시 ‘어서, 아들아!’라고 말하며 아이를 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를 진정시키려 시도했으나, 뭐라고 말해야할지 몰라서 다만 우리가 도움이 될 수 있길 희망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불행하게도 아이는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눈은 흐릿했고, 눈꺼풀은 반쯤 열린 상태에다 움직임없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오후 6시 58분 쯤 버밍엄의 어린이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8시 17분 병원에서 사망했다. 에밀리 렌햄 검사는 “두 피고인은 아들 키안이 물로 가득찬 욕조 안에 방치되어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부모가 아래층에서 사교활동을 하는 동안 아들이 거의 15분 동안 혼자 있었다. 이는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고 아이의 죽음을 피할 수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들을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고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으나, 키안의 부모는 본분을 다하지 못했고, 부주의한 행위로 인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패세이는 “어린 키안을 잠시 혼자 욕조에 두는 일은 일상적이었고, 단지 몇 분 동안이었다”며 “어떤 동정도 원하지 않는다. 윗층에 가지 않은 내가 어리석었다. 이는 나와 웨인의 책임, 우리 잘못이다”라고 밝혔다. 공판 이후, 국립아동학대예방기구 (NSPCC) 대변인은 “비극적인 사건”이라며 “부모들은 아이를 홀로 남겨두는 것에 대한 폐해를 인식해야 한다. 기안의 죽음은 이를 상기시켰다. 물 아래로 쉽게 미끄러질 수 있는 아이들은 2~3인치의 물에도 익사할 수 있다. 부모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예상가능 시나리오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나혼자산다 한혜진♥전현무, 제주도서 무르익은 ‘썸’ 꿀 떨어지는 눈빛

    나혼자산다 한혜진♥전현무, 제주도서 무르익은 ‘썸’ 꿀 떨어지는 눈빛

    ‘나혼자산다’ 한혜진을 바라보는 전현무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21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4주년을 맞이해 무지개 회원들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저녁을 먹으면서 박나래는 보물찾기 때의 미션을 일깨웠다. “제 벌칙이 두 분께 ‘똑똑똑’ 드리는 겁니다. 두 분이서 하세요”라고 말했다. ‘똑똑똑’은 헨리가 보여준 음식을 먹여주는 방식이다. 한혜진은 질겁했지만 이시언은 “싫어하는 척 하면서 은근히 웃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현무는 적극적으로 나서며 방법을 물었고 헨리가 먹여주는 시범을 보였다. “됐어”라며 자리를 피하던 한혜진은 싫다면서도 시범을 뚫어져라 지켜봤다. 헨리는 숟가락에 음식을 담아 박나래 입에 가져간 뒤 “똑똑똑! 문 열어 주세요~”라고 청했고, 박나래는 “아~~앙”라면서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그 모습에 웃음과 절규가 터졌고, 전현무는 한혜진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데 성공했다. 한혜진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전현무의 눈에선 꿀이 ‘뚝뚝뚝’ 떨어져 눈길을 끌었다. ‘나 혼자 산다’는 매주 금요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북마크]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북마크]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수습기자였던 2000년 6월 30일. 유족들의 멘트를 받아 오라는 선배 기자의 지시로 갔던 현장이 씨랜드 참사 1주기 추모식이었습니다. 씨랜드 사건은 한 해 전 경기도 화성의 청소년수련원 씨랜드에서 일어난 불로 5~6세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등 23명이 숨진 참사입니다. 그날 유족들로부터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말조차 건네지 못했습니다.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아빠)가 미안해”라고 절규하는 부모들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을 뿐입니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의 뜻을 그때 실감했습니다.그 수습기자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참사들, 인재(人災)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진단, 그리고 개인에게 재난의 고통을 전가하는 국가의 몰염치한 태도조차. 16일은 봄이어서 더 무참했던 세월호 참사 3년입니다. 배는 뭍으로 귀환했지만 우리는 304명의 죽음 뒤에 숨은 괴물의 정체를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출판계는 남겨진 자들의 기록으로 추모를 대신합니다.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해토), ‘재난을 묻다’(서해문집),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오름) 등 참사 3년을 맞아 출간된 책들은 우리의 상처와 기억이 오롯이 담긴 ‘시대화’(時代畵)입니다. 책으로 복원된 기록 중 ‘44년 전의 세월호’ 남영호 참사가 있습니다. 제주~부산을 오가는 여객선 남영호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침몰해 최소 319명, 최대 337명(정부 기관별 사망자 추정)이 숨진 비극입니다. 침몰 원인은 과적으로 결론 났지만 당시 정부가 사고 발생을 알고도 10시간 넘게 구조에 나서지 않은 사실은 은폐됐습니다. 정부는 분노한 유족들을 불순 세력으로 매도했습니다. 두 비극이 유일하게 다른 점은 기록입니다. 남영호 참사가 제대로 된 공식 기록조차 찾기 어려운 “망각의 완전한 승리”였다면, 세월호는 우리 안에 호명되고 기록되고 환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설가 김훈 선생과의 저녁식사 중 ‘세월호를 소설로 쓰려고 하지 않으셨나’고 물었습니다. 선생은 “세월호 자료도 모으고 팽목항과 동거차도를 기웃거리며 인터뷰도 했지만 그 참담함과 비통함은 글의 한계 너머에 있다”고 답하시더군요.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문학잡지 릿터 5호에서 “말을 하든 문장을 쓰든 마침에 당도하기가 어렵고 특히 술어가 잘 떠오르지 않게 된 소설가(황정은)들의 고백을 전하며 “2014년 4월 16일 이후 쓰는 것, 써야 하는 것, 보고 들었던 그 ‘사건적 경험’에 대한 사후적 윤리 감각(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다”(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며 펜을 놓지 않는 수많은 무명(無名) 기록자들의 헌신이 고맙습니다. ipsofacto@seoul.co.kr
  • 개미도 전투 중 부상당한 동료 병사 구조한다

    개미도 전투 중 부상당한 동료 병사 구조한다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투 현장. 적군의 총에 맞아 부상당한 군인이 고통에 절규하면 동료 병사와 위생병이 달려와 그를 구조한다. 이는 휴머니티 영화의 흔한 소재가 될 만큼 전쟁터에서 자주 발생하는 일이지만 흥미롭게도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장면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연구팀은 개미도 전투 중 부상당한 동료를 구조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마치 인간같은 전우애를 가진 개미종은 흰개미를 학살해 먹이로 삼는 것으로 유명한 '아프리칸 마타벨레 개미'(African Matabele ant). 흰개미보다 덩치가 큰 마타벨레 개미는 먼저 흰개미 둥지에 정찰병을 투입시킨 후 대규모로 군대를 몰아가 닥치는대로 학살한다. 이에 맞선 흰개미 역시 둥지를 막으며 목숨을 건 방어에 나서 마치 인간의 처절한 전투를 연상시킨다. 이번에 연구팀은 아이보리 코스트 코모에 국립공원에 사는 마타벨레 개미를 연구대상으로 삼아 이들의 흰개미 공격 과정 전후를 정밀하게 관찰했다. 그 결과 흥미로운 과정이 목격됐다. 병정 흰개미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오도가도 못하는 마타벨레 개미를 구조해 자신의 둥지로 끌고가는 전우를 발견했기 때문. 또한 둥지로 돌아가 부상을 치료한 마타벨레 개미는 이후 다시 전장에 섰다.       그 과정은 인간과 똑같지만 부상당한 마타벨레 개미 구조 요청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연구를 이끈 에릭 프랑크 박사는 "부상당한 개미는 페로몬을 분비해 자신이 위험한 상태라는 것을 동료에게 알린다"면서 "이를 감지한 덩치가 더 큰 개미들이 달려와 부상병을 끌고 둥지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마타벨레 개미가 부상당한 전우를 돕는 이유는 무엇일까? 프랑크 박사는 "아마도 새로운 병사를 키우는 것보다 기존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해 다시 전투에 나서는 것이 경제적이라 판단했을 것"이라면서 "전우애라기 보다는 일종의 자연선택"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고(故)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씨, 대선출마 선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아들 장호권씨, 대선출마 선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아들인 장호권 월간장준하사상계 대표가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장 대표는 11일 경기 파주시에 있는 장준하공원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장 대표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장 대표가 “더 이상 이 나라의 정치꾼들에게 우리의 운명과 이 나라의 미래를 맡길 순 없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장 대표는 “촛불을 들고 박근혜 퇴진과 구속을 외친 것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양심과 정의가 바로 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자는 한 맺힌 절규였지만 기성 정치권은 이에 귀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국가개혁의 동력은 국민이다. 정부는 국가를 지키는 것을 위탁받은 것에 불과하다”며 “양심이 바로 선 국가를 건설하는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는 “이 나라의 온갖 적폐와 구태를 청산하는데 일조하는 한편 정치판을 바꾸고,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열 참신한 정치세력을 발굴해 육성하겠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희정 “비록 대선후보 되진 못했지만…우리는 승리했다”

    안희정 “비록 대선후보 되진 못했지만…우리는 승리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9일 “비록 제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러분과 저의 새로운 길은 이제 시작”이라며 “여러분과 저의 투쟁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저를 지지해주고 저의 승리를 위해 애써 준 전국의 모든 시민, 동지 여러분께 감사 인사 올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4월 3일(민주당 최종 순회경선일) 이후 패자로서 승복 의무를 다하려고 노력했다. ‘승자의 오만과 패자의 저주’가 반복된 우리 정치사에서 이를 극복하는 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앞으로도 승복과 단결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해 민주주의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여러분들과 용감하고 아름다웠던 도전을 회상하고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전국 곳곳에서 버티고 싸우던 수많은 분의 목소리가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는 참호 속의 외마디 절규 같았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 폭풍우를 뚫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하고 감사드린다. 그리고 죄송하다. 제가 많이 부족했다”며 “하지만 우리의 모든 의제는 2017 대선 국면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또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내자. 국민이 진정으로 국가와 정부의 주인이 되고 정당과 의회를 정상화하자”며 “이 패배는 작은 과정에 불과할 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역사의 너른 대지 위에 저리도 선명하다. 그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저와 함께 걷지 않겠나”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안희정 지사 “우리는 승리했다.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 열어보자”

    안희정 지사 “우리는 승리했다.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 열어보자”

     안희정 충남지사는 9일 “여러분과 저의 투쟁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라며 경선 패배 후 지지자들을 위로하고 나섰다. 안 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경선 패배에 대한 소회를 정리하는 글을 남겼다. 그는 “4월 3일 이후 패자로서의 승복 의무를 다하려 노력했다”면서 “‘승자의 오만, 패자의 저주’가 반복돼 온 우리 정치사에서 ‘오만과 독식, 불복과 저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일이 패배 후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승복과 단결의 새로운 정치문화를 위해 저는 민주주의자로서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지사는 “우리는 한 번도,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면서 “(안 지사의 비판 소재가 됐던) 대연정, 사드, 공짜밥, 선의, 캠프와 정당 등 논란이 됐던 모든 주제들에 비난과 야유가 총알처럼 쏟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국 곳곳에서 버티고 싸우던 수많은 분의 목소리가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는 전선의 참호 속 외마디 절규 같았다”고 털어놨다.  안 지사는 “제가 많이 부족했다”면서도 “선악의 이분법적 정치 문화를 극복하자, 낡은 진보·보수의 진영 논리를 깨뜨리자, 연정을 통해 한 차원 높은 민주주의 정치를 실천하자는 모든 의제는 2017년 대선 국면을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비록 제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러분과 저의 새로운 길은 이제 시작”이라면서 “대화와 타협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내고 국민이 진정으로 국가와 정부의 주인이 되자. 정당과 의회를 정상화시키자”고 강조했다.  안 지사는 “그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저와 함께 걷지 않겠냐”면서 “이 패배는 그저 작은 과정에 불과할 뿐 우리가 가야 할 그 길이 역사의 너른 대지 위에 저리 선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지쳐 쓰러지면 또 그 누군가는 나타날 것”이라면서 “저는 지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함께 가자”고 밝혔다.  안 지사는 경선 패배 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의 정권교체를 강조하며 문 후보를 지원사격했다. 문 후보는 지난 6일 오후 안 지사 관저를 찾아 저녁 식사를 같이한 데 이어 7일 충남도청을 찾아 안 지사와 회동했다. 또 문 후보는 같은 날 오후 이 시장과 만나기도 했다. 이어 문 후보는 지난 8일 안 지사와 이 시장, 최성 고양시장과 서울 마포구의 한 호프집에서 ‘소맥(소주+맥주) 회동’을 하는 등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고 당내 화합을 다졌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힘쎈여자’ 도봉순·박형식, 사랑이 되찾아준 봉순이의 괴력 ‘사이다 엔딩’

    ‘힘쎈여자’ 도봉순·박형식, 사랑이 되찾아준 봉순이의 괴력 ‘사이다 엔딩’

    ‘힘쎈여자 도봉순’ 박형식과 박보영이 서로에 대한 굳건한 사랑을 확인했다. 지난 8일 방송된 JTBC 금토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 14회에서는 특별한 힘을 잃고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간 봉순(박보영 분)의 일상 적응기와 또 한 번 위기상황에 놓이는 봉순, 민혁(안민혁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앞서 ‘순수 괴력녀’ 봉순은 여성 연쇄 납치사건의 범인 장현(장미관 분)의 덫에 걸려 괴력을 모조리 잃어버린 상황. 다행히 봉순은 민혁과 국두(지수 분)의 등장으로 목숨을 구했고, 장현은 국두와의 추격전 끝에 추락 사고를 당한 뒤 실종됐다. 그렇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였다. 사건 이후로 봉순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봉순은 경심을 구한 대신 힘을 잃게 됐고 바라던 일이긴 했지만 익숙한 게 없어진 허전함은 예상보다 컸다. 봉순은 평소처럼 사과즙을 손으로 짜내지도 못했고,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치여 넘어지기도 했다. “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앞으로 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이제는 맘 편히 늦은 시간까지 다닐 수도 없고 이젠 다른 사람을 지켜줄 수도 없다. 누군가를 맘대로 도와줄 수도 없다. 나 도봉순은 이제 진짜 평범한 사람이 됐다”는 봉순의 독백은 안타까움마저 자아냈다. 하지만 봉순은 굳게 마음먹고 파이팅을 외쳤다. 봉이처럼 순은 표면적인 힘만 센 것이 아니라 내면마저도 ‘슈퍼 파워걸’이었다. 힘들어하는 봉순의 옆엔 힘 쓰는 건 이제 자신이 다 할테니 자신을 좀 신경써달라고 말하는 든든한 남자친구 민혁이 있었다. 민혁은 자신의 옆에서 잠든 봉순이 일어나려고 하자 그녀를 끌어당겨 초밀착 상태로 ‘아이컨택’하게 만든 뒤 “나 좀 봐줘”라고 청했다. 이에 봉순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보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나 좀 사랑해줘”라는 말에도 “하고 있어요”라고 답한 봉순. 그리고 봉순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이어 봉순은 “넌 땅콩 같아서 이 안에 넣고 다닐 수 있는데 네 가슴 속에 내가 없는 것 같아”라는 민혁의 고백에 “있어요”라고 자신의 마음을 드러냈고, 민혁은 눈물로 “사랑한다”며 봉순을 품에 안았다. 그렇게 완벽하게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다시 달달해졌다. 괴력 때문에 조금은 스펙터클했던 동갑내기 멍뭉커플의 평범한 연애는 조금 더 풋풋했다. 손잡고 길거리도 거닐고 소풍도 가는 등 평범한 연인들처럼 알콩달콩 데이트를 즐기는 두 사람의 모습에 시청자들의 설렘 지수도 급상승했다. 그렇게 웃는 일만 남아있을 것 같던 멍뭉커플이지만 위기는 또 한 번 찾아왔다. 이들이 행복한 연애를 즐기는 사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장현이 기자로 완벽하게 위장해 태연하게 아인소프트 건물에 들어온 것. 급기야 장현은 봉순을 납치해 건물 옥상에 묶어놓고 그녀의 몸에 폭탄까지 설치했다. 민혁은 가까스로 봉순이 있는 곳을 발견했지만 쇠사슬로 꽁꽁 묶여있는 탓에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봉순은 시한폭탄이 있다며 제발 가라고 소리쳤지만 피투성이가 된 민혁은 “가긴 어딜가. 혼자 두고 안 가. 같이 가. 봉순아 울지마”라며 오히려 봉순을 다독였다. 제발 가라는 봉순과 절대 혼자 두고 안 간다는 민혁. “제발 저 사람 살리게 해주세요”라는 봉순의 절규에 하늘도 감동한 걸까. 봉순에게 기적처럼 다시 괴력이 생겼고, 그녀는 다시 ‘슈퍼 파워걸’이 돼 예전처럼 문을 박차고 나와 폭탄을 하늘 멀리 날려버렸다. 하늘에서 팡팡 터지는 시한폭탄처럼 시청자들의 통쾌함도 폭발했다. 민혁과 봉순은 그제서야 서로를 품에 안았고 시청자들도 안심할 수 있었다. 한편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두고 멍뭉커플의 설렘 가득 로맨스와 스펙터클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는 ‘힘쎈여자 도봉순’은 매주 금, 토 밤 11시 방송된다. 사진=JTBC ‘힘쎈여자 도봉순’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기의 사랑’으로도 미화할 수 없는 비극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세기의 사랑’으로도 미화할 수 없는 비극

    세월호가 304명의 생명은 바다에 버려두고 험한 몰골로 저 혼자만 돌아왔다. 가슴이 멍하고 짠하다 못해 쓰리다. 이렇게 허망하게 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건은 인간의 오만과 방종에 노여워진 신의 경고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신은 이렇게 엄청난 죽음을 허용한단 말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나 ‘타이타닉’(1997년)도 이런 질문인 동시에 재해로부터 방심하지 말라는 경고 또는 교훈의 의미로 제작됐을 터이다.1912년 4월 14일 하느님도 가라앉히지 못할 배라고 불렸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첫 출항에서 빙산을 만나 두 동강이 났다. 배는 승선자 2200여명 중 1500여명을 4000m나 되는 깊고 어두운 대서양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73년이 지난 1985년 바닷속에서 선체가 발견됐고, 이를 계기로 영화화됐다. ‘비극 속에 침몰한 세기의 사랑’을 보태 흥행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이 엄청난 재난이 미화될 수는 없다.1908년 미국의 1만 5000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과 노동조합 결성,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일 정도로 열악했던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상류층으로 갈수록 더 남성 중심이었으며 여성은 종속적이었다. 이런 시대에 가부장적 질서에 숨막혀 하는 미국 상류층 로즈(케이트 윈즐릿)는 사교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권위적인 귀족 약혼자 칼(빌리 제인)과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타이타닉호 1등실에 타고 있다. 배가 출발하기 직전 부두의 선술집에서 도박으로 3등실 표를 얻은 가난한 화가 지망생 잭(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영화처럼 가까스로 배에 오른다. 우연하게 잭은 바다에 투신하려는 로즈를 구하고 지상의 천국 1등실에 초대를 받는다. 허위와 허영, 허세로 가득한 저녁식사가 역겨웠지만 무사히 넘긴다. 그리고 로즈를 현실 세계인 3등실로 초대해 자유롭고 거칠 것 없는 파티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지고, 영화의 백미로 꼽히는 뱃머리 신으로 그들의 사랑과 운명을 암시한다. 이렇게 여객선이 아니라면 결코 한데 어울릴 수 없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배를 타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축소판을 의미한다. 잭과 로즈, 칼은 전혀 만날 일조차 없는 사람들이지만 한배에서 만나 서로의 삶을 엿보게 된다. 잭은 가진 것 없지만 자유분방하다. 로즈는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고 칼은 물려받은 부와 권세로 세상을 조롱하고 거들먹거리는 재미로 산다. 그는 부자일지언정 교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영화에 등장하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1907년)은 이런 세상의 다양한 삶과 부류를 보여 주기에 아주 적합한 그림이다. 그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 소위 삐걱거리는 마루 때문에 세탁선이라 불렸던 작업실에서 제작한 이 그림은 5명의 벌거벗은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들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본 모습들이 한 화면을 이룬다. 배경을 분할하는 윤곽선이 입체적인 공간을 만들어 준다. 가운데 두 여인은 구상적이지만 얼굴과 몸은 보는 각도가 다르다. 양쪽의 세 여인은 오른쪽에서 본 모습과 왼쪽에서 본 모습이 섞여 있다. 또 왼쪽 눈은 정면을 보지만 오른쪽 눈은 옆을 쳐다본다. 앉아 있는 여인은 뒷모습이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한다. 이렇게 피카소는 다빈치가 발명해서 미술사를 바꾸어 놓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무시하고 한 사람을 정면과 측면, 뒷면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한 그림 속에 그려넣어 마치 펼친그림처럼 조합해서 보여준다. 그의 유명세는 이렇게 한 방향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각각 보고 이를 조합해서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데서 기인한다. 타이타닉에 타고 있는 영화 속 사람들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하나의 세상을 그려낸다. 당시 부호들은 여행을 다닐 때도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가지고 다녔고 자신이 묵는 호텔이나 선실에 소장품을 걸어 장식을 했다고 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부와 예술적 소양을 드러내려는 속물근성 때문이기도 했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칼은 “피카소라니, 내 장담하지만 돈 한 푼 안 될 거요”라고 말한다.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보았다. 로즈의 어머니는 금광을 개발해서 갑작스레 큰돈을 번 몰리에게 ‘뉴 머니’라고 경멸하며 우월감을 느낀다. 칼과 어머니의 그런 속성에서 요즘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기시감 때문일까.하지만 이런 칼과는 달리 로즈는 피카소의 ‘볼라르의 초상’을 보며 “꼭 꿈속에 있는 것처럼 진실은 있지만 논리는 없지요”라고 말한다. 이는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이다. 세상을 지탱하는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은 유지된다. 끝까지 배를 지키는 스미스 선장이나 배를 설계한 토머스 그리고 선원 조지프 G 벨과 배가 가라앉을 때까지 연주를 멈추지 않던 지휘자 월리스 하틀리,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페기 구겐하임의 아버지 벤저민 등이 그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참사 속에서도 세상의 도리와 원칙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적어도 인간에게 명예와 책임 그리고 도리라는 것을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돌아온 세월호가 우리에게 회한과 울분만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적어도 타이타닉에는 있었던 그들이 너무도 적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믿었던 국가가 개개인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믿기지 않았던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는 피카소의 입체파풍의 그림처럼 우리 사회의 번지르르한 앞면보다 옆면과 뒷면을 우리에게 동시에 보여 주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아직도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처절한 결말은 결코 어떤 사건도 미화할 수 없다. 문득 “무엇을 더 원합니까? 여기까지 올 동안 당신 도움 받은 적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합니까? 얼마나 더 목숨이 필요합니까? 이제 여기엔 겨우 일곱 명이 남았을 뿐이니, 그렇다면 내 목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저들은 살려주십시오”라던 ‘포세이돈 어드벤처’의 스콧 목사의 절규가 떠오른다.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진정 차기 대통령감이 아닐까.
  •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28. 서른줄의 연애가 오래 못 가는 이유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28. 서른줄의 연애가 오래 못 가는 이유

    서른줄의 연애가 번잡하기만 하고 실속은 없다. 사귀는 듯 만나서 헤어지며, 헤어지는 듯 만나서 사귄다. 전 남자친구와 전 여자친구의 바짓가랑이를 줄줄 붙잡고 있거나, 겹치기 소개팅을 시도하지만 별 남는 건 없다. 그 와중에도 ‘연애’가 아니라 ‘사랑’이 하고 싶다는 고백은 넘쳐난다. 아니면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다.  ◆ 서른줄의 연애가 오래 못 가는 이유 나는 10회(#10.“내가 이러려고 연애했나” 남성들의 절규)에서 연애에 성실하지 않은(?) 뭇 남성들에 대해 ‘디스 아닌 디스’를 했었다. 그러나 근 20여회가 더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서른줄의 연애가 오래 못 가는 이유가 꼭 남성들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는 남자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니까. 고민해 보건대 내 기사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헬조선’의 정언 명령처럼 ‘기승전 노오력’이 러브앤더시티의 골자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애시당초 연애에, 혹은 상대에 노오력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게 현실이다. 친구도 누구로부터 받았다는 이별 카톡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생각해 봤는데 우리 잘 안 맞는 것 같아. 시간을 두고 노력해 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되네.” 포인트는 ‘노력해 보려고 했는데’이다. 노력을 했다는 게 아니라 시도조차 이미 힘들었다는 거다.왜 우리는 노력할 필요를 못 느낄까. 서른 언저리에 들면 “얘랑 결혼할 것도 아닌데…”라며 ‘시간 낭비’ 하지 않겠다는 사고가 지배적이다. 더군다나 나와 다른 그를 도통 참을 수가 없다는 것도 한 몫 한다. 근 30년, 이미 나의 ‘에고’는 완벽하다. 20대 초반, 연애 경험이 궁했던 시절에 “아~ 얘는 이렇구나~ 이럴 때 이렇게 생각하는구나~”하던 아량이 지금은 “얘는 어쩜 이래?”로 돌변하게 되는 것. 수틀리면 ‘헤어지자’는 말이 절로 나온다. 거기다 ‘세상은 넓고 남자(여자)는 많다’가 끼얹어지고 내가 ‘이렇게까지’ 맞추지 않아도 찰떡같이 잘 맞는 상대가 어딘가에는 존재할 것이라는 결론이 난다. 여기에 지난 연애사가 끼얹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 지코 노래처럼 ‘너는 나 나는 너’가 아니라… 이토록 불안한 서른춘기의 연애. 그렇다면 내가 바라고 너가 바라는 ‘안정적인 사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3년여 연애 후 ‘알콩달콩’ 신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호인(30·여)이 하는 말은 “오빠는 항상 그 자리에 있더라”였다. 수원유부초밥(30·여)도 말했다. “다 성격에 하자는 있는데 그림 퍼즐처럼 서로 맞는 모양끼리 만나서 결혼 하는거 같아. 별 대단한 사람 없더라고~” 오랜 기간 지켜 본 그 커플들은 유달리 별다른 부침도 없었고, 결혼으로 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그러면서 호인이 예시로 든 커플은 팝핀과 국악의 만남, 팝핀현준 & 박애리 부부였다. 비주얼이 ‘하이브리드’인 팝핀현준과 박애리 커플. 집에 오락기·당구대를 거쳐 자판기까지 들인 팝핀현준. 아내 박애리는 “솔직히 자판기까지는 그랬다. 오락기는 충분히 워낙 현준 씨의 감성을 이해하니까 괜찮았다”고 말했다. 남들이 보기엔 좀 난해한, 있는 그대로의 팝핀현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거다.‘너는 나, 나는 너’ 라고 부르짖던 지코의 시대는 지났다. 나와 너가 한 몸이 아닌 이상 너는 나, 고 나는 너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너는 너’고 ‘나는 나’인 상태로 평화롭게 공존이 가능한 상태라야 지속 가능한 연애가 되는 것이다. 노오력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결혼이 사랑의, 연애의 종착점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만인 앞에 사랑을 맹세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 [사설] 세월호 인양 성공, 의혹 말끔히 해소해야

    세월호가 마침내 완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남 진도 앞 맹골수도 40여m 물속을 빠져나오는 데 무려 1075일이 걸렸다. 수면에 완전히 부상한 세월호를 바라보며 피해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도 참담함에 가슴이 막히고 말문이 닫혔을 것이다. 차디찬 바닷물이 선내로 들이닥치자 “나는 꿈이 많은데… 죽기 싫은데…”라고 울부짖던 단원고 학생의 절규가 가슴을 친다. 반잠수식 선박에 실린 세월호는 배수와 잔존유 제거 작업을 모두 마친 뒤 28일쯤 목포신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제 세월호는 육지로 올라가 미수습자를 가족 품에 돌려주고 참사의 원인을 밝혀 줄 일만 남았다. 먼저 미수습자를 찾아내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침몰한 지 3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더구나 물살 빠르기로 소문난 맹골수도였기에 미수습자를 수습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배 구석구석을 뒤지고, 여기서 안 나오면 맹골수도를 다 훑는 한이 있더라도 3년을 팽목항에서 버틴 미수습자 가족의 한과 응어리를 풀어 줘야 한다. “네가 신고 싶어 하는 축구화 사왔다”며 녹슬고 찌그러진 세월호를 향해 오열하는 모정을 생각하면 쉽게 끝낼 일도 포기할 일도 아니다. 세월호 침몰을 둘러싸고 잠수함 충돌, 해양수산부 은폐 의혹 등 그동안 온갖 풍문과 의혹이 난무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만큼 조만간 출범할 선체조사위원회의 활동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조사위는 국회와 유가족 대표가 추천하는 8인으로 구성된다. 활동 시한은 6개월이지만 한 차례 조사 기간을 연장할 수 있어 최장 10개월간 활동할 수 있다. 조사위는 최우선 과제인 미수습자를 수습한 뒤 침몰 원인과 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해야 한다. 당시 정부는 세월호가 조타수의 부적절한 조타로 무리하게 실은 화물들이 쏟아지면서 균형을 잃고 침몰한 것으로 결론 냈다. 그러나 대법원은 조타 실수보다 조타기의 결함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조타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정부의 사고 원인 발표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혹과 풍문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인양에 성공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세월호 인양을 대립과 갈등, 반목을 치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더는 세월호를 둘러싼 국론 분열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해수부 등 관련 부처도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 역시 세월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영원히 꺼질 수 없는 위대한 정신

    오늘날 이 역동적(力動的) 한국 사회의 창출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한국 사회의 이 역동적-다이너미즘(dynamism)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안전사고가 속출하지만. 그것은 한국 사회의 다이너미즘이 안전사고 대비 속도를 늘 넘어서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대비책을 세워도 사회 역동성의 속도, 역동성과의 큰 폭을 줄이지 않는 한 안전사고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도대체 이 역동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 기원은 어디일까. 미상불 3·1운동이 그 기원이고. 3·1운동 때까지 올라가서 보아야 이 역동성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든 그 당시의 단면으로는 그 시대의 시대상 그 시대의 진정한 특징을 알 수가 없다. 그 시대가 시작되는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아야 그 시대로 이어져 오는 생태를 알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3·1운동이 일어났던 근 한 세기 전의 한국 사회와는 아예 비교가 되지 않는다. 3·1운동 때의 우리 사회와 지금의 우리 사회는 구조와 기능면에서 그 차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다. 생활양식은 물론 사고방식이며 행위유형에서 3·1운동을 일으킨 우리 선인(先人)들과 오늘의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지금 한국인은 3·1운동을 일으킨 그 선인들의 생물학적 후손일 뿐 사회학적 후예는 아니다. 그 선인들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오로지 DNA(유전자 본체)며 혈통일 뿐, 그 외의 모든 것은 단절되고 변화되었다. 얼굴도 달라지고 키도 달라지고 몸무게도 달라졌다. 읽는 책도 달라지고 (한문 위주에서 영어 위주), 쓰는 어휘도 달라지고 (한자 위주 어휘에서 한글·영어 위주 어휘), 말하는 스타일도 달라졌다.(점잖고 느린 데서 단순하고 빠른 데로) 그렇다면 100년 전 3·1운동의 그 무엇이 꺼지지 않고 아직도 타고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우리 헌법의 전문(前文)이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이 이루어졌지만 전문의 시작은 내내 그대로다. 그것은 바로 3·1운동이다. # 자유는 전 국민 절규로 국가건설 지향점이 된 것 이 3·1운동, 3·1 정신은 다음 4가지 면에서 오늘날 이 역동적인 대한민국을 만들어 낸 기초이며 바탕이고, 그리고 우리가 어떤 나라를 건설할 것인가의 지향점을 제시한 것이다. 첫째로 ‘자유’의 정신이다. 어느 나라 어느 국민이든 자유는 근대의 개념이다. 우리에게 있어 이 근대적 개념인 자유가 온 국민에게 각성되고 실감되고 절규되는 것은 기미독립선언서의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부터다. 물론 그 이전 소소하게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1운동 때처럼 전 국민적으로 절규한 때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 3·1운동 때 외쳐진 이 ‘자유’를 먹고 산다. 3·1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 레닌의 러시아 혁명 여파로 고조된 평등사상도 우리에게 꼭 같이 근대사상의 한 축을 이루었지만 우리는 평등보다는 자유를 근간으로 해서 오늘날 우리의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고, 그 자유에 대한 신념과 갈구,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측면에서의 이 자유의 생활화, 제도화가 오늘날 북한과의 현격한 차이를 만들어 냈다. 3·1정신. 그것은 바로 ‘자유’의 정신이고 그것은 곧 오늘날 대한민국을 존립하게 하고 번성케 한 정신이다. 그 정신의 뿌리는 3·1정신이다. 둘째로 ‘개방화의 정신’이다. 이 개방화는 오늘날의 세계화 정신에 비견할 만하지만 오늘날의 글로벌리제이션(globalization) 개념과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정신과 기운과 활동에서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가겠다고 하는 점에선 오늘날의 세계화 개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인류적(人類的) 양심(良心)의 발로(發露)에 기인(基因)한 세계개조(世界改造)의 대기운(大機運)에 순응병진(順應竝進)하기 위하여 차(此)를 제기(提起)함이며’에서와 같이 세계를 새롭게 고치고 만들며 변화시키는 그 큰 기회에 우리도 순응해 함께 나아가겠다는 선언이 오늘날로 말하면 세계화 선언이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나라보다 세계화에 앞장서 있고, 그 어느 나라보다 앞장서서 다른 나라와 교류하면서 신자유주의로 향한 세계개조의 기틀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한·미 FTA는 이러한 세계 개조의 일환이다. 이미 100년 전에 이 세계화의 기대와 욕구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는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어가고 있고, 이 같은 대 성취는 이미 3·1정신, 3·1운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로 ‘창의성’의 정신이다. 개방화 세계화는 적나라한 경쟁을 불러온다. 옷을 입은 신사가 벌리는 경쟁이 아니라 발가벗고 치열하게 달려드는 격렬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이다. 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창의성 독창성을 발휘하는 길 뿐이다.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 세계문화(世界文化)의 대조류(大潮流)에 기여(寄與)보비(補裨)할 기연(機緣)’을 되찾겠다는 의지나, ‘아(我)의 자족(自足)한 독창력(獨創力)을 발휘(發揮)하여 춘만(春滿)한 대계(大界)에 민족적(民族的) 정화(精華)를 결뉴(結紐)’ 하겠다는 다짐. 이는 모두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해 우리의 능력 우리의 자긍심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겠다는 100년 전의 비전이며 자신감이다. 이러한 비전 이러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는 특허출원 건수에서 미국 일본 독일 다음의 4번째 지위에 올라 있을 뿐 아니라 2차 대전 후 신생한 140개 국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한 나라가 되어 있다. 이 모두 그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3·1정신, 3·1운동에 가 닿는다. # 저항,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일어설 힘도 없어 넷째로 저항의 정신이다. 저항하고 분노할 줄 모르는 민족은 일어설 힘도 도전할 의지도 없는 민족이다. 3·1정신은 저항·분노의 정신이고, 3·1 운동은 분노·저항의 결실이다. 근대 중국의 선각자 양계초(梁啓超)는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의 서문에서 ‘지금 한국인은 아무 쓸모없는 소수점 이하의 사람들’ (生爲今日韓人者宜若爲宇宙間一奇零之夫無可以自效於國家與天壤)이라 했다. 양계초가 그렇게 말한 것은 3·1운동이 일어나기 5년 전인 1914년이었다. 그러나 양계초는 한국인을 몰랐다. 한국인은 중국인에 비해 10배, 100배로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아는 민족이다. 3·1운동 같은 활화산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민족이다. 당시 (1910년대)는 제국주의의 기세가 극에 달한 시대로, 중국인은 일본인들에게 한국인 이상으로 당하고도 안중근 의사 같은 혹은 윤봉길열사 같은, 의사 열사 한 명도 내지 못한 민족이다. 말할 것도 없이 3·1운동 같은 엄청난 폭발력의 대저항 운동이 일어나리란 것은 일본도 중국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본에 비해 당시의 조선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너무 열악했고 너무 열패(劣敗)했고, 너무 열등했다. 더구나 일본의 군사력과 경찰력은 전 아시아를 휩쓸고도 남음이 있었다. 폭력의 차원에서 한국은 전무했다. 오직 맨주먹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들고 일어날 수 있었는가. 이는 어떤 이유, 명분으로도 설명 되지 않는 오직 한국인만이 갖는 ‘저항·분노’의 정신이 설명해 준다. 우리가 우리 역사 이래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니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자유·자주의 정신 개방화·세계화의 정신 창의와 독창성의 정신 그리고 저항·분노의 정신은 모두 3·1정신에서 연원하고 그리고 3·1운동에서 그 정신의 동력을 찾았다. 그 정신 그 동력으로 오늘의 이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면, 3·1정신은 영원하다. 그것은 지금 현재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꼭 같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영원히 꺼질 수 없는 한국인 정신이다. 인류가 3·1 정신이 품고 있는 그 정신을 거부하지 않는 한 그 의미는 계속된다. 연세대 명예교수
  • ‘역적’ 김정태, 머리 산발한 채 한양으로 압송 ‘윤균상 통쾌한 한방’

    ‘역적’ 김정태, 머리 산발한 채 한양으로 압송 ‘윤균상 통쾌한 한방’

    7일 방송된 MBC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제작 후너스엔터테인먼트) 12회에서는 ‘홍길동 사단’이 드디어 충원군(김정태 분)에게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충원군이 한양으로 압송된 것. 그 과정에서 길동(윤균상 분)의 지략이 빛났다. 특히 기방을 열어야 한다는 전략은 적중했다. 걸출한 양반들의 사랑방으로 거듭난 활빈정으로 궁궐 안의 모든 소문이 모였고, 역린을 찾겠다고 다짐한 길동은 활빈정에 앉아서도 궁 안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다. 연산이 증조할아버지 세조에 관한 추문을 빌미로 역모의 씨앗을 찾으려 한다는 정황을 파악한 길동은 반역죄에 충원군을 엮기로 했다. 세조를 왕위에 올린 일등공신 양응대군의 손자에게 세조를 욕보였다는 죄를 씌우겠다니, 모두가 고개를 저었지만 길동은 해냈다. 궁지에 몰린 쥐의 불안감을 이용한 것. 역모죄로 몰릴까 전전긍긍하는 김일손에게 손을 내민 길동의 지략 덕분에 충원군은 오밤중에 한양으로 압송됐다. 이제 완전한 지도자로 거듭난 길동이었다. 반짝거리는 지략은 물론이고 충원군이 벌을 받는 방법은 충원군의 나쁜 짓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님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임을 정확하게 간파한 판단력과 불안해하는 사단을 아우르고 설득하면서도 제 뜻을 관철시키는 모습이 그랬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승기를 선점하는 모습이 아모개(김상중 분)와 판박이였다. 윤균상은 방물장수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진 길동을 분명하게 표현해냈다. 아버지에게 이제 위험한 일은 그만 하고 오순도순 농사나 지으며 살자고 애처럼 울던 다 큰 사내는 아버지의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느새 눈빛이 단단해졌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성장해가는 길동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낸 윤균상의 기민함이 빛났다. 김정태는 역모로 몰린 순간조차 기고만장함이 꺾이지 않는 왕족을 지독하게 연기했다. 잔뜩 헝클어져 길게 늘어진 머리칼도 반역으로 몰린 황당함과 연산에게 외면받았다는 불안감, 감히 왕족인 나를 건드렸다는 분노를 감추지는 못했다. 이미 연산의 눈 밖에 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전하를 뵙게 해다오, 전하를 뵙게 해줘!”라고 절규할 때, 자신이 누구 때문에 의금부로 끌려왔는지도 모르고 증인으로 “조방꾼 발판이”를 간절하게 꼽을 때 충원군은 우매하고 어리석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충원군의 지목으로 의금부로 들어간 길동은 확실하게 승기를 잡을 수 있을까? 13일 월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MBC ‘역적’에서 공개된다. 사진=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경찰, 탄핵 선고 당일 헌재 앞 대규모 집회 금지

    경찰, 탄핵 선고 당일 헌재 앞 대규모 집회 금지

    평일에도 서울 곳곳 찬반집회‘인용’ 촉구 4·16대학생연대 “세월호 7시간 탄핵사유 명시를” 엄마부대·행주치마 의병대 “태극기의 절규 외면하지 말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여부를 선고하는 당일 경찰이 보다 엄격한 기조로 집회 관리에 나선다. 그동안 많은 탄핵 찬반 단체들이 기자회견 형태로 법망을 피해 가며 사실상의 집회를 열었지만 선고 당일에는 이런 식의 변형된 집회가 일절 금지될 전망이다.경찰 관계자는 7일 “선고 당일은 소음을 내지 않는 1인 시위나 소규모 기자회견만 허용될 것”이라며 “서울 종로에 있는 헌재 인근의 율곡로(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부터는 시위대의 통행을 막게 된다”고 밝혔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헌재 담벼락부터 100m 안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열 수 없다. 지금까지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헌재를 압박하는 내용의 집회를 병행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선고 당일에는 실제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인원을 제외하고는 100m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 모두 선고 당일에 헌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선고가 임박하면서 평일임에도 서울 곳곳에서는 탄핵 찬반 집회가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헌재 앞에는 탄핵을 찬성하는 이들과, 기각을 주장하는 친박(친박근혜) 단체 회원들의 목소리가 맞섰다. 4.16대학생연대 회원들은 박대통령의 탄핵 사유에 ‘세월호 7시간’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은하 4·16대학생 연대 대표는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야 할 첫 번째 사유로,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은 국민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수행 의무를 위반했다”며 “박 대통령 탄핵과 세월호 진상 규명이 국민 주권을 온전히 실현하는 일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5500명이 참여한 ‘세월호 참사의 주범 박근혜 즉각 탄핵 대학생 서명’을 헌재에 제출했다. 반면 탄핵 기각을 주장하는 엄마부대의 주옥순 대표는 “박대통령에게 아무 죄가 없어서 이렇게 나와서 절규하는 것”이라며 “태극기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라”고 맞섰다. 또 ‘행주치마 의병대’ 회원들은 태극기, 성조기, 박정희 대통령 사진이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고 ‘탄핵 기각’을 외쳤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대통령 탄핵과 구속은 성소수자 인권 증진의 시작”이라며 탄핵을 촉구했다.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국가정보원 앞에서 “블랙리스트 사태와 공작정치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자유수호국민운동, 교학연, 국가안보정책연합, 우국충정단 등 보수단체로 구성된 대한민국 구국채널은 이날 오후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합진보당 해산까지 409일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에 비해 대통령 탄핵 여부 결정까지 불과 50여일이 소요됐다”며 “탄핵선고 날짜가 나와도 이를 무효로 여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지금, 이 영화] ‘쇼콜라’, 19세기 프랑스를 사로잡은 흑인 광대와 백인 광대 실화

    [지금, 이 영화] ‘쇼콜라’, 19세기 프랑스를 사로잡은 흑인 광대와 백인 광대 실화

    쇼콜라(Chocolat)는 프랑스어로 초콜릿을 뜻하는 보통명사다. 그런데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쇼콜라는 한 남자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도 했다. 그의 진짜 이름은 라파엘이다. 하지만 그는 쇼콜라라는 예명으로 사람들에게 불렸다. 유럽에 노예로 여덟 살에 팔려 온 흑인 남성 라파엘에게 관심을 갖는 프랑스인은 없었다. 다들 무대에서 우스꽝스럽게 발길질당하는 흑인 광대 쇼콜라를 구경하며 깔깔대고 싶어 할 뿐이었다. 순진무구한 웃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웃음은 웃는 사람과 웃기는 사람의 위계에서 생긴다. 웃는 사람은 정상인 척, 웃기는 사람은 바보처럼 군다. 웃는 사람은 웃기는 사람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암묵적으로 믿는다.“인간은 웃음으로써 물어뜯는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를 산책하듯 살았던 시인 보들레르의 말이다. 그는 웃음의 본질에 대해 쓰면서 웃음은 이렇듯 ‘악마적’이므로 또한 철저하게 ‘인간적’이라고 언급한다. 로슈디 젬 감독의 영화 ‘쇼콜라’를 보는 일이 그렇다. 분명 이것은 100여년 전 실존했던 웃기는 광대에 관한 작품이다. 그러나 관객은 박장대소하지 못한다. 이를 통해 악마적이어서 오히려 인간적인 웃음의 속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식민주의에 기반을 둔 인종차별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감독은 그것을 회피하지 않았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대스타가 된 흑인 광대. 이 흥미롭고 놀라운 스토리와 함께 우리의 식민주의 과거를 얼버무리지 않고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포부를 밝힌 대로 그는 ‘자유·평등·박애’의 가치를 내세우던 프랑스가 어떻게 쇼콜라(오마 사이)를 ‘억압·차별·조소’의 대상으로 취급했는가를 낱낱이 보여 준다. 그렇기 때문에 상투적 재현(쇼콜라를 경찰이 고문하는 장면)을 답습하거나, 과잉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쇼콜라가 길에서 절규하는 장면)도 나온다. 관객이 자문하도록 하지 않고, 관객에게 그냥 설명해 버리는 신(scene)도 눈에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장점이 더 많다. 그중 하나가 쇼콜라의 파트너 백인 광대 푸디트(제임스 티에레)라는 인물의 등장이다. 그의 진짜 이름은 조르주다. 그렇지만 그는 쇼콜라와 마찬가지로 평생을 푸디트라는 예명으로 불렸다. 영화에서 푸디트의 개인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한데 그는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푸디트가 양면적인 캐릭터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공연장에서 그는 식민주의의 대리자를 연기한다. 제국―푸디트는 식민지―쇼콜라를 발로 걷어찬다. 반면 공연장 밖에서 푸디트는 쇼콜라를 돕는 유일한 친구다. 이와 더불어 무대에서는 최고의 익살꾼인 그가 현실에서는 더없이 과묵한 남자라는 사실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푸디트의 이중적 모습은 웃으면서 우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닮았다. 달콤하고 쌉싸름한, 초콜릿 같은 보통의 삶. 9일 개봉. 12세 관람가.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황건적서 유비 구출한 ‘의형제’ 장비, 범인도피죄 처벌받나?

    [삼국지로 풀어 보는 法이야기] 황건적서 유비 구출한 ‘의형제’ 장비, 범인도피죄 처벌받나?

    도원결의 1년 전. 유비는 어머니에게 차 맛을 보여 드리기 위해 낙양에서 오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비는 1년간 열심히 모은 돈으로 차를 산 뒤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갑작스레 황건적을 만나 포로 신세가 된다. 가까스로 어느 스님의 도움을 받아 도망치지만, 얼마 못 가 다시 추격을 당하게 된다. 그때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장비. 황건적 틈에서 유비를 구해 준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린 둘은 훗날을 기약하며 헤어지고…. 1년 뒤 어느 날 우연히 재회한 유비와 장비는 눈빛으로 알게 된다. 서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음을. 여기에 관우를 더해 다시 한번 서로가 품은 청운의 꿈을 확인한다. 이어지는 도원결의(桃園結義). ※원저 : 요코야마 미쓰데루(橫山光輝) ※참고 : 만화 삼국지 30,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역자 이길진유비는 장비의 도움이 없었다면 황건적에게 다시 붙잡혔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늘날 우리가 삼국지라는 명작을 접할 기회도 없었을 터. 또 황건적이 난에 성공해 천하를 얻었다면 장비도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포로의 도주를 돕고 황건적까지 여러 명 죽였으니 현상 수배 신세가 아니었을까.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유비와 장비의 도원결의가 법적으로 유효하다면 장비를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 있을까? ●친족범죄 형사적 유불리 사건마다 달라 친족이 되면 형사적으로는 어떤 효과가 생길까? 먼저 같은 범죄라도 친족관계 때문에 더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어떤 범죄는 가볍게 처벌되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범죄는 아예 처벌 자체를 받지 않기도 한다. 친족관계가 어떤 때에는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행위인데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친족 관계 때문에 무겁게 처벌되는 경우는 존속살해, 상해, 폭행, 유기, 학대, 체포·감금, 협박죄 등이다. 예를 들어 살인죄는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5년 이상의 징역’(형법 제250조 제1항)이다. 하지만 존속살해죄는 ‘사형, 무기징역, 7년 이상의 징역’(형법 제250조 제2항)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가족 질서 내에서 효(孝)를 중심으로 한 인륜 관계가 중시됐다. 존속 살해를 일반적인 살인보다 높게 처벌하는 이유다. 그런데 반대로 비속 살해를 가중해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따라서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면 존속 살해로 처벌받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살해했다면 일반적인 살인으로 처벌받는다. 관우가 맥성에서 여몽에게 잡혀 처형당했을 때의 일이다. 유비의 양아들인 유봉은 맥성과 가까운 상용성에 있었지만, 원군을 보내 주지 않는다. 유봉의 원군만 있었다면 관우는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관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유비는 절규한다. 그리고 유비는 유봉의 책임을 물어 목을 베었다. 유비의 행위를 법적으로 평가하면 어떻게 될까? 단순 살인죄가 적용된다. 그렇다면 가족 질서에서 상위자가 하위자에게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가중 처벌되는 경우는 없을까? 이런 경우에도 가중해서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최근에 특별법의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친족 관계에 의한 (준)강간·(준)강제추행’이 그렇다. 강간죄의 법정형은 ‘3년 이상의 징역’이다. 이에 반해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죄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반인륜적인 범죄이다 보니 피해자들이 입는 육체적·정신적 상처가 매우 크기 때문에 더 무겁게 처벌하는 것이다. 반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족 관계이기 때문에 가볍게 처벌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영아살해(형법 제251조)다.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이다. 살인죄의 ‘5년 이상’에 비해 상당히 낮다. 영아(?兒)는 유아(乳兒)보다도 더 어린 갓난아기를 말한다. 갓난아기는 스스로를 보호할 만한 힘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영아 살해를 더 크게 처벌하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그럼에도 가볍게 처벌하는 이유는 뭘까? 특별한 범행 동기 때문이다. 형법도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라고 규정하고 있다. 양형에서만 범죄의 동기를 참작하도록 돼 있는 다른 범죄와는 달리 보기 드물게 법률 규정 안에 범죄 동기를 적어 놓고 있다. 이런 동기를 감안해 범죄의 대상도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로 매우 제한적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했거나 출산을 했지만 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는 심리적 불안감 등으로 영아를 살해한 경우 조금 가벼운 형으로 처벌하는 것이다. 영아유기죄(형법 제272조)도 유사한 취지의 규정이다. ●법은 가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절도, 사기, 공갈, 횡령, 배임, 권리행사방해, 장물죄와 같은 재산 범죄는 피해자인 친족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받는 경우도 있고, 형이 자동으로 면제되는 경우도 있다(형법 제328조, 제365조). 위 죄들은 피해자가 직계 혈족, 배우자, 동거하는 친족, 동거하는 가족 또는 그 배우자인 경우 형이 면제돼 처벌받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제법 자주 있다. 아들이 부모에게 사업을 하겠다고 거짓말을 해 상당한 돈을 사업 자금으로 받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돈을 유흥비로 탕진했다. 화가 난 부모는 아들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 사이이기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이런 경우 처벌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법은 원칙적으로 가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경우 법보다는 가족들끼리 원만히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 외의 친족이 피해자인 경우에는 고소를 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 익주에 사는 장비가 형주에 사는 관우의 성에 놀러가 술을 몰래 훔쳐 마셨다. 이 경우 장비를 처벌할 수 있을까? 관우가 장비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고 싶다면 반드시 고소를 해야 한다. 동거하지 않는 친족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장비를 처벌할 수는 없다. 이런 죄를 친고죄(親告罪)라고 한다. ●유비의 도주를 도와준 장비의 운명은? 본래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황건적이 정권을 잡았다면 장비를 처벌하는 것이 가능할까? 장비는 유비의 도주를 도와주었으므로 범인도피죄(형법 제151조 제1항)가 성립할 수 있다. 그런데 장비가 ‘나는 유비의 동생이다’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형법상 친족(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 또는 동거 가족이 범인의 도피를 도왔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즉 장비가 법적으로 유비의 동생이 맞다면 처벌되지 않는다(형법 제151조 제2항). 이런 경우는 증거인멸죄(형법 제155조)도 마찬가지다. 양중진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부장검사) [용어 클릭] ■법정형(法定刑) 범죄별로 법률에 규정돼 있는 형벌의 종류와 범위. ※ 처단형(處斷刑) 법정형에 각종 가중, 감경 사유를 더해 법관이 선고 가능한 범위의 형벌. ※ 선고형(宣告刑) 처단형의 범위에서 법관이 여러 사정을 감안해 최종적으로 선고하는 형. ■양형(量刑) 범죄자에게 어떠한 형벌을 얼마만큼 처벌할지 결정하는 것. ■ 친고죄(親告罪)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 ※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처벌할 수 있지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 무너진 건물 속 생매장 직전 구조된 시리아 소녀 (영상)

    무너진 건물 속 생매장 직전 구조된 시리아 소녀 (영상)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더미에서 한 소녀가 기적적으로 구조되는 장면이 영상으로 공개됐다.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지 등 해외언론은 시리아 다마스커스 인근 지역에서 생매장될 뻔한 어린 소녀의 구조 소식을 전했다. 사건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으로 민간 건물 등이 무너지면서 벌어졌다. 이 폭격으로 아야라는 이름으로만 알려진 어린 소녀가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그대로 파묻힌 것. 소녀의 구조는 시리아 시민방위대가 맡았다. 이들은 시리아의 공습 지역에서 부상자 등을 구조하는 민방위 조직으로 흰색 헬멧을 쓰고 구조활동을 한다고 해서 ‘하얀 헬멧'(White Helmets)으로 불린다. 시민방위대는 어린 소녀가 생매장됐다는 한 여성의 절규를 듣고 다급히 구조에 나섰고 땅 속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발견했다. 곧 소녀는 흙먼지가 가득한 상태에서 무사히 구조됐으며 부상 여부는 알려져지 않았다. 한편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지금까지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피해는 고스란히 수많은 민간인들이 받고 있다. 특히 알레포와 다마스커스의 경우 러시아의 지원을 받고 있는 시리아 정부군의 주요 공습대상 지역으로 ‘어린아이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조선소 중단 땐 전북 경제 흔들”…거리로 나온 ‘군산의 투사’

    [자치단체장 25시] “조선소 중단 땐 전북 경제 흔들”…거리로 나온 ‘군산의 투사’

    문동신(79) 전북 군산시장은 요즘 ‘장외 투사’로 변신했다. 조선업 불황 직격탄을 맞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오는 6월 말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최후의 통첩을 하자 머리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다. 범도민 서명운동, 가두행진, 출정식, 1인 시위, 궐기대회 등으로 연일 쉴 틈이 없다. 농어촌공사 사장 출신 3선 단체장으로 진중한 행보를 해오던 예전 모습과 판이하다. 지난 14일에는 군산시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존치 범도민 총결의대회’에 참석해 하청업체 근로자들과 함께 가슴 아픈 절규를 토해냈다. 지난달 25일에는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서울 평창동 자택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벌였다. 20일 군산시청에서 만난 문 시장은 “지역균형 발전은 나 몰라라 하고 경제논리를 앞세워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잇따른 장외투쟁으로 얼굴이 검붉게 그을린 그는 “군산 경제는 현재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환자 수준”이라며 “군산조선소 가동이 정상화될 때까지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다짐했다.→조선업 불황으로 군산시 지역경제 기반이 흔들린다. 현재 실태는. -군산 경제는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는 중환자 수준이다. 지난 주말 텅 빈 오식도 일대를 둘러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근로자들이 빠져나간 오식도동 원룸은 공실률이 50%를 넘어 썰렁한 분위기다. 가슴이 미어졌다. 호황을 누렸던 수송동 시내까지 영향을 받아 전체 지역경제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시민들이 얼어붙은 경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현대중공업을 유치하기 위해 60고초려를 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1조 4600억원이 투입돼 130만t 규모의 독, 1650t의 골리앗 크레인 등 세계 굴지의 시설을 갖췄다. 협력업체 투자비용도 5000억원이다. 2012년부터 한 해 평균 12척 이상의 대형 선박을 건조했다. 연 매출이 1조 2000억원에 이르고 고용인력이 5500명 이나 돼 군산 경제의 24%, 수출의 19.4%를 차지한다. 이는 전북 전체 수출의 8.9%를 점유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직결되는 인건비는 1975억원, 군산지역 가계소비지출은 600억원으로 지역경제를 이끄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생산유발 효과가 2조 2000억원, 지역 협력업체 거래실적 2905억원, 지난 7년간 지방세 납부액은 360억원이다. →군산조선소 물량 감소로 빚어진 협력업체 폐업과 실업률은. -지난해 4월까지 군산조선소 협력업체는 86곳이고 근로자는 5250명이었다. 현재 27개 협력업체가 폐업했고 근로자는 5250명에서 3396명으로 1854명이 실직했다. 오는 6월 말 가동이 중단되면 관리인력만 남고 수천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다. 군산조선소 폐쇄는 전북경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군산조선소와 함께 꿈을 키워 온 도내 조선 관련 학과 대학생과 기술계 고등학생들의 미래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것이다.→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존치돼야 할 이유는. -군산조선소는 단순히 배를 만드는 곳이 아니다. 서해안 최초의 최첨단 시설을 갖춘 기술집약체다. 특히 독이 1개뿐이다. 독이 10개인 울산 본사나 각각 3개와 4개의 독을 가진 삼호, 미포조선소와 사정이 다르다. 군산은 독 폐쇄가 바로 가동 중단이고 대량실업과 전북산업 붕괴로 직결된다. 지난 10여년간 엄청난 자본과 시간을 투자해 구축한 시설, 기술인프라 손실도 막대하다. 재가동하려면 인력 확보와 시설 운영 구축에 1년 이상 기간이 소요되고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 전북본부, 그린쉽기자재 시험인증센터, 중소형 선박 엔진 및 관련 기자재 공인시험인증센터 등 고부가가치 인프라 손실도 크다. 현대중공업은 경제논리만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경제적 논리로 보면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있다. -절대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말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조 6000억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냈다. 군산조선소를 폐쇄할 경우 현대중공업이 얻는 경제적 이익은 연간 450억원 수준이다. 반면 국가에서 부담해야 할 실업급여는 650억원에 이른다. 현대중공업이 지역과 근로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군산조선소 구조조정안은 당연히 재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대책을 세워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존치를 위해 지자체에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전북도, 상공회의소 등 도내 기관·단체·협력업체 등과 함께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범도민 서명운동을 전개해 28만 5000명의 서명부를 정치권과 현대중공업 본사 등에 전달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등 지역 출신 국회의원 등 정치권과도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등 중앙부처와도 문제 해결 방안 도출에 노력하고 있다. 송하진 전북지사와 함께 울산 현대중공업 본사를 수차례 방문했고 국회에서 긴급 토론회도 개최했다. 도내 각계각층에서도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간절한 염원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몽준 이사장과 산업부 장관에게는 군산조선소 존치 서한문을 전달했다. 지난달 25일에는 서울 평창동 정몽준 이사장 자택 도로변에서 릴레이 시위 출정식을 개최하고 1일부터 자택 앞에서 매일 피켓과 현수막을 이용한 릴레이 시위를 한다. 14일에는 군산 롯데마트 앞에서 2만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범도민 총 결의대회를 가졌다. →지역의 군산조선소 존치 목소리에 대해 현대중공업 반응은. -전혀 없다. 정몽준 전 의원은 정치권, 전북도, 군산시가 여러 루트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만나주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 자체 보고서는 2018년 이후에는 선박건조 수주난이 해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도 수주한 물량이 있다. 군산조선소에 할애 가능성은. -현대중공업 최길선 회장이 지난달 군산시를 방문해 6월 말 가동 중단을 공식적으로 밝힌 이후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올해 17척을 수주했지만 경영 효율적인 측면에서 가동 중단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부와 정치권은 규모가 큰 울산과 거제지역 조선 경제 살리기에만 치중한다. -지난해 10월 31일 정부에서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하면서 현대중공업 독 3개 폐쇄를 언급했다. 이 중 1개가 군산조선소다. 그러나 정부의 중요한 역할과 의무는 지역균형 발전이다. 정부의 조선업 경쟁력 강화방안인 2조 6000억원의 선박펀드 중 일부를 군산조선소에 배정해야 한다.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퍼붓고도 성과가 없는 회사와 지역에 또다시 일감을 몰아주는 것은 불공정하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수주물량 배정을 절실하게 호소한다. 군산조선소 독은 초대형이라 정부가 발주하는 군함 등 작은 배는 건조할 수 없다. 한 해 5~6척이라도 대형 선박 건조 물량을 배정해 가동이 멈추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을 막기 위한 향후 계획은. -힘든 여정이 계속되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정치권과 연계해 지속적으로 군산조선소 폐쇄 취소를 요구하겠다. 조선업 밀집지역 지원 예산 확보, 구조조정 관련 실무협의 간담회,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조선산업 위기대응 대책 연구용역 등을 하겠다. 특히 어느 당 어느 후보든 전북경제의 심장인 군산조선소 존치를 대선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촉구한다. 수도권 300만명을 포함한 500만 전북 출향민과 200만 전북도민이 이를 희망하고 있음을 감안하길 바란다. 군산조선소 가동이 정상화될 때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지부진했던 사업들이 결실을 보고 있다.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업들은. -군산 전북대병원 건립, 새만금 송전선로 건설, 롯데아울렛 건립 등 지역 현안들이 원만하게 진행된다. 한국지엠 군산공장도 올뉴 크루즈 생산을 시작했다. 올해 생산계획은 7만대다. 조선업 근로 퇴직자를 위해 43억원을 투입해 1100명에 대한 공공근로 일자리 사업도 추진한다. 재취업을 위한 조선일자리센터도 운영한다. 군산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절대로 의사 노릇 마라

    다산 정약용이 누구인가. 조선 후기 최고의 실학자다. 시대의 양심이자 진보와 개혁의 상징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 그의 언행에도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는 점이 있었다. 1810년 봄 정약용이 유배지 강진에서 큰아들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를 나는 떠올리고 있다. 그때 정약용의 나이 49세였다. 유배된 지 어언 10여년, 세월의 풍파 속에 그의 몸은 이미 상했다. “나는 지금 풍병으로 사지를 쓰지 못한다. 오래 살 것 같지가 않구나. 그저 단정히 앉아 섭생에 힘쓴다면, 혹시 수명을 조금 연장시킬 수 있을까.”(다산시문집 제18권) 입을 다물려 해도 절로 침이 흘러내렸고, 왼쪽 다리가 마비돼 걷기 어려웠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버지가 아들을 심하게 질책하는 대목이 있다. “네가 갑작스레 의원(醫員) 노릇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무슨 잇속이 있어 그러는 것이냐? 알량한 의술을 통해 고관들과 사귀고, 그리하여 너는 이 아비가 풀려나기를 바라기라도 한다는 말이냐? 옳지 못한 일이다.” 큰아들은 의술에 조예가 있었다. 그는 의술을 통해 권력자들에게 줄을 댈 심산이었던가 보다. 그렇게라도 해서 병든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바란 것이었다. 정약용은 아들의 효심을 알았으나 짐짓 모르는 체했다. “겉으로 덕을 베푸는 척한다는 말이 있다. 저들은 그저 입술만 움직여 너를 기쁘게 만든 것이다. 돌아서서 너를 비웃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너는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들의 얕은 술수에 속고 말다니, 어찌 그것이 어리석은 노릇이 아닐까?” 아버지가 보기에 상대방은 도덕성이 결여된 사람들이었다. 천하에 다시 없는 보배를 가지고 애원한다 한들 될 일이겠는가. 이처럼 되묻는 정약용의 글에는 권세가를 향한 원망이 묻어 있다. 그러나 그런 분노가 이 편지의 요체는 아니다. 정약용은 큰아들이 의원 노릇을 하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했다. 아들이 의료 행위로 돈을 버는 것이 싫었던 것인데, 에둘러 반대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진심은 곧 드러난다. “너는 지금 소문을 내고,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하여 온갖 사람들이 날마다 거리를 메우며 찾아온다. 물고기 떼도 같고 짐승 떼도 같은 한량과 잡배들이건마는 너는 내력도 묻지 않는다. 그들의 근본과 행실도 모르면서 방금 만난 사람들을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다니.” “도대체 이 무슨 변고인가? 내게도 들을 귀는 있느니라. 만약 그 버릇을 당장 고치지 않는다면, 너와 왕래를 끊어 버리겠다. 아마 죽어도 나는 눈을 감지 못하리라. 내 말을 절대 잊지 마라. 다시는 이런 말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구나.” 정학연은 의원의 길을 포기했다. 절규와 애원으로 가득한 아버지의 분부를 어찌 거스르겠는가. 그런데 말이다. 18세기 후반 서울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개업해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들 중에는 내세울 만한 전공 분야가 없는 일반의들이 대다수다. 하나 한 분야에 정통한 요즘의 전문의 같은 의원들도 제법 있었다. 또 그때는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의약 분업도 이뤄졌다. 느린 속도로나마 의약업은 전문직으로서 당당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런 사회 변화를 정약용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의학에 소질도 있고 개업 의지도 완강했던 큰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정약용은 아들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책에 정통한 선비가 되라고 강요할 뿐이었다. 후세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화신으로 기리는 위인도 세상 물정에 깜깜한 구석이 있었다.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권력·재산·위신, 셋 중 하나만 가져야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권력·재산·위신, 셋 중 하나만 가져야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근대국가의 특징이다. 역사상 근대는 솥(鼎)의 다리처럼 권력이 3개로 나누어지는 데서 시작한다. 단순히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누어져서 각기 독립적 기능(function)을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하나로 작동하는 ‘응집된 전체’(cohesive whole)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사고를 했을까. 동양에서는 권력은 나누어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늘에 해가 둘이 아니듯이’가 그 상징적 표현이며 사고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아직도 ‘근대’가 아니다.그러나 이 근대를 연 서양인들은 법을 만드는 권한, 법을 시행하는 권한, 법에 따라 재판하는 권한―국가 권력을 이 세 가지로 나눠 본 것이다. 국가기구도 이 세 가지 나눔에 맞춰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분리했다. 그 막강한 국가 권력이며 국가기구를 이 세 가지로 분립한 것이야말로 정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3권 분립이 이뤄짐으로써 비로소 권력에 대한 견제가 가능했다. 견제 없는 권력은 예외 없이 절대 권력이 된다. 이 절대 권력을 3권 분립이 막는 것이다. 그만큼 3권 분립은 ‘엄청난’ 사상적 혁명이고, 제도적 발전이고, 그리고 ‘엄청난’ 인권적 성취다. 소위 말하는 동양적 전제주의(oriental despotism)는 이 분립 사고가 되지 않는 데서 시작되고 지속됐다. 권력은 한 곳에 모이면 절대화(絶對化)한다. 절대화는 ‘맞설 상대’가 없는 것이고,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오로지 나, 내 말, 내 의견, 내 지시, 내 명령만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은 묘한 존재여서 아무도 나를 제약(制約)하지 않으면 나는 자의적(恣意的)이 되고 방자(放恣)해진다. 그리고 사악(邪惡)해진다. 이렇게 사악해진 나에게 그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칼이 주어진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억압과 횡포, 그리고 절대적으로 부패해 버린다. 그 절대 권력은 국민의 편에서 ‘절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권력을 향해 아무리 절규해도 국민의 편에 서 주지 않는다. 마침내 봉기해서 그 ‘절대권력’을 무너뜨리면 또 다른 ‘절대권력’이 다가온다. 해변을 때리는 파도처럼 물러갔다가 다시 오고, 그리고 그 모습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나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국가 권력을 부정적으로 본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국가는 으레 국민들을 ‘속박하는’ 것 그리고 ‘기만하는’ 것, 힘으로 뭐든 빼앗아 가기만 하는 것, 덕이라고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하의 주인은 백성인데 군주라는 큰 도적이 나타나서 나라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사상가도 많이 나왔다. 국가 권력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사고, 부정적 인식, 부정적 가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3권 분립이 헌법으로 명문화되고 민주화로 학습되고 있는 지금도 권력에 대한 견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절대 권력적인 성향이 빈번히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3ps가 소수에 집중되면 절대 불평등 3권 분립은 국가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꼭 같이 중요하다. 국가라는 권력기구에서만 3권 분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생활세계에서도 꼭 같이 필요하다. 사회는 등급화(等級化)된 세계다. 흔히 말하는 대로 높고 낮은 층으로 차별화된 사람들의 모임체다. 어느 사회든 반드시 위층이 있고 아래층이 있고 또 그 사이에 중간층이 있다. 각 층도 또 상중하가 있어 사람들이 속해 있는 층은 잘게 나누면 수도 없이 많다. 문제는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등급화된 세계 그 차별화된 층에 위치하게 하는가이다. 옛말에 개시동인(皆是同人)이라 해서 사람들은 모두 똑같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은 높은 층에, 어떤 사람은 낮은 층에 속하게 하는가. 그것은 사회적 희소가치의 불평등한 배분 때문이다. 어떤 사회든 누구나 열망하고 추구하는 사회적 희소가치는 앞 회(回)에서 이미 열거한 대로 세 가지가 있다. 권력(power)과 재산(property), 위신(prestige)이 그것이다. 앞에 모두 ‘p’ 자가 있어 서구 사회학자들은 이를 ‘3ps’라 한다 했다. 이 세 가지 모두를 다 가지고 있으면 말할 것도 없이 가장 높은 층이다. 상중에서도 상층이다. 그중 2개는 물론 한 개만 가지고 있어도 상층에 속한다. 어느 것도 갖고 있지 않으면 하층이고, 중간 정도라도 갖고 있으면 중층이 된다. 중요한 것은 권력기구의 3권 분립처럼 사회에서도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갖는 것이다. 정치인처럼 권력 가진 사람은 재산을 노려서는 안 된다. 기업인처럼 재산 가진 사람은 권력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학자, 교육자, 언론인, 예술인, 체육인처럼 높은 위신, 명예와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권력이나 재산, 그 어느 것도 추구해선 안 된다. 이것이 사회적 3권 분립이다. 국가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절대 권력이 되듯이 사회도 이 3가지 희소가치가 소수 사람들이나 소수 집단에 집중되면 ‘절대 불평등’이 된다. 절대 권력하에서 살 수 없듯이 절대 불평등하에서도 살 수 없다. 절대 권력이 국가를 붕괴시키듯이 절대 불평등도 사회를 붕괴시킨다. # 정치나 기업 경영에 뛰어들려면 교수직 내놔야 그중에서도 더 강조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권력 가진 사람보다, 재산 가진 사람보다 명예와 존경을 받는, 위신 가진 사람이 사회적 3권 분립에 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위신 가진 사람의 이름이 권력이나 재산 가진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추하게 나쁘게 더럽혀진다는 것이다. 자손들이 얼굴을 들 수 없도록 썩은 냄새가 악취를 풍긴다는 것이다. 예부터 최고의 악취는 ‘썩은 먹물 냄새’라 했다. 실제 자연 상태에서도 먹물 썩은 냄새가 그 어떤 냄새보다 지독하다. 위신은 먹물이나 진배없다. 오직 위신 하나만 가져도 최고의 가치를 누리는 것이 된다. 둘째로 위신은 권력·재산과 달리 제2의 생명이다. 권력과 재산이 아무리 중요한 희소가치라 해도 생명은 아니다. 생명처럼 중히 여겨도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위신은, 특히 명예는 생명과도 맞바꾼다.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 롱펠로는 ‘명성은 제2의 생명, 영생의 기틀’(A good fame is a second life and the groundwork of eternal existence)이라고 읊었다. 사람에게는 2개의 생명이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학적 생명이다. 생물학적 생명은 유한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원히 끝나게 돼 있다. 그러나 사회학적 생명은 유기체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갖는 명예이고 명성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고 기록돼서 인구에 널리널리 회자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이미 지상의 사람이 아님에도 그 이름은 지상에 살아 있는 사람 이상으로 살아 있다. 물론 그 이름이 명성이 아닌 오명(汚名)으로 기억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회학적 생명은 명예와 존경으로 칭송되고 추앙되는 가치 있는 이름이다. 그러려면 누구보다 위신 가진 사람이 수범을 보여 사회적 3권 분립의 전위에 서야 한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학을 보면 너무 실망스럽다. 대학교수는 위신의 한 축(軸)이다. 그 희소가치를 점유한 채 권력이며 재산이라는 희소가치를 중복적으로 추구하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책 창안 능력이며, 그것을 실현하려는 의지며 능력이 남달라서 현실 정치나 기업 경영에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 그것을 폄하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 해도 지식인으로 스승으로 올바른 평가를 받으려면 교수직을 흔쾌히 내놓아야 한다. 희소가치의 중첩적 점유는 본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 해만 있고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에는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교수가 될 수 있는 자격 가진 사람이 너무 많다. 그 사람들을 나의 겸직 때문에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 사회적 3권 분립에 가장 충실한 것이다. 이 3권 분립에 가장 철저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도덕적 의무감을 가장 엄격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 불평등 지수는 떨어지고, 사회 갈등도 그만큼 줄어든다. 사회는 그만큼 온기가 돌고 사람들은 화합한다. 그중에서도 위신 가진 사람들의 3권 분립 행위가 핵심이다.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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