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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2018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남촌 ‘다크투어’… 일제·독재의 잊고 싶은 기억을 기억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8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9회 서울사방 남촌 편이 지난 7일 중구 필동과 예장동, 회현동 일대 남산 아랫마을에서 진행됐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소서(小暑)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뤘다. 인터넷 예약에 실패한 네댓 분이 “신문 보고 왔다”며 즉석 합류를 요청해 운영진을 곤혹스럽게 했다. 준비한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 40개가 동나는 바람에 진행자용 기기를 양보했다. 많은 인원이 시원한 그늘을 찾아다니다 보니 행렬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체되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서울미래유산이 비록 국가공인 지정 및 등록문화재는 아니지만, 참가자 본인이 직접 겪고 들은 유형과 무형의 소중한 미래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실감했다.남산은 서울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코스이다. 다크투어란 인간이나 자연이 저지른 어두운 현장을 찾는 역사교훈관광이다. 이날 참가자들은 남산골한옥마을(청학동, 조선헌병대사령부)을 출발, 필동 예술통(남학당)~서울소방재난본부(중앙정보부 유치장)~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녹천정, 통감관저·총독관저)~문학의 집(중앙정보부장 공관)~서울유스호스텔(중앙정보부 남산본관)~서울애니메이션센터(통감부·총독부)~남산원(노기신사)~한양공원비(왜성대공원)~백범광장(조선신궁)~안중근의사기념관(조선신궁)까지 빡빡한 코스를 2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김완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독창적인 관점의 해설을 열정적으로 들려줘 호응을 얻었다. 투어가 끝난 뒤 실시한 설문조사에 참여한 21명 중 6명이 “시간이 짧아서 아쉬웠다”면서 해설시간 연장이나 코스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부분 참가자는 늘 걷던 남산 길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남산은 상념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서울 어디서나 고개만 들면 보이는 누이 같은 산이고, 서울 바깥에서 봤을 때 서울 진입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서울이 사대문 안을 벗어나 10배 이상 확장되면서 옛 서울의 남쪽 경계였던 남산과 한강이 서울의 중심부가 됐다. 조선 말 고종이 종로구 인사동 194(하나로빌딩)에 세운 서울중심점 표식이 지금은 남산 정상으로 남하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의 관문 노릇을 하던 한강 또한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관통하는 도심 속 하천이 됐다. 남산은 광화문네거리에 솟아 있던 황토마루(黃土峴) 역할을 하는 중앙산이 됐고, 한강은 사대문을 북촌과 남촌으로 나눈 청계천처럼 서울의 강남과 강북 사이 중앙천이 됐다. 한강이 허리띠처럼 감싼 남산은 명실공히 서울을 대표하는 자연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서울의 북쪽을 병풍처럼 두른 삼각산(북한산)이 왕조와 왕을 지키는 장풍(藏風)의 산이라면 남산은 백성과 함께 즐기는 득수(得水)의 산이다. 신라의 고도 경주의 남산, 고려 개성의 자남산에 이어 서울 남산은 한반도를 지배하는 왕조가 백성에게 내준 어울림의 영역이다. 태조 이성계가 경복궁 뒤 백악산(북악산)에 여신 진국백(鎭國伯)을 둔 반면 남산에는 목멱대왕(木覓大王)이라는 남신을 모신 국사당을 세운 데서 나타난다. 남산은 국가의 제례 공간이자 민간신앙의 터전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세워진 삼국지의 영웅 관우를 모신 관왕묘 중 남관묘가 남산에 가장 먼저 건립됐고 제갈공명을 모신 와룡묘도 따라 들어섰다. 남산 범바위를 중심으로 한 무속신앙이 성행한 이유도 남산을 한양도성의 수호신 목멱대왕이 깃든 신성한 산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팔도에서 올라오는 봉수대의 종착 지점을 남산에 둔 까닭이기도 하다. 제왕은 남면(南面)하는 법이다. 남산은 왕이 바라보는 산이다. 이를 쫓아 옛사람들은 마을의 앞산을 남산이라고 불렀다. 남산의 남(南)자는 ‘남녘 남’ 자가 아니라 ‘앞 남’ 자를 썼다. 남산의 다른 이름 ‘마뫼’는 우리 말 ‘앞산’과 동의어다. 목멱이란 마뫼의 이두식 표기다. 남산=마뫼=목멱 등식이다. 남산은 소나무를 베거나 돌을 캐거나 무덤을 두지 못하게 엄히 규제한 사산금표(四山禁標)의 금역이기도 했다. 남산에 소나무를 심었다는 실록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애국가 가사 중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서울사람이 늘 보는 일상 풍경이었다. 남산을 그린 옛 그림 ‘목멱산도’와 ‘은암등록’, ‘장안연우’ 속 큰 소나무 한 그루일 수도 있다. 서울에 사는 남인 양반촌의 시대는 옛 노랫가락처럼 흘러갔지만 남산만큼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칠정(七情)을 제대로 겪은 산이 또 있을까. 남산 아랫마을 중 회현동(호현동)과 필동, 충무로 일대에는 본래 경주 이씨, 동래 정씨, 안동 김씨, 풍산 홍씨 같은 경화사족(京華士族)이 살았다. 서울에 기반이 없던 다산 정약용 같은 ‘남산골샌님’이나 ‘딸깍발이’ 신세의 남인 선비들도 산등성이와 계곡에 초가를 지었다. 연암 박지원이 지은 ‘허생전’의 주인공 허생이 살던 가난한 동네였다. 남산산록을 수놓은 귀록정, 노인정, 청학동, 녹천정, 천우각, 쌍회정은 남산풍류의 본거지였다. 한양의 대표적 경관시 중 하나인 정이오의 ‘남산팔영’은 사실상 한양팔경가였다. ‘장소의 윤회’인가. 조선 건국 초 왜국사신 숙소 동평관을 지금의 인현동에 둔 게 화근이 돼 200년 뒤인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을 점령한 왜군이 진을 친 곳이 예장동(왜장대)이다. 또 300년이 흐른 1885년 일본공사관이 녹천정(통감관저 터)으로 틈입하면서 남산은 수난의 그림자에 덮였다. 황현은 “녹천정을 빼앗아 일본공사관으로 삼은 후로 야금야금 주동, 나동, 호위동, 남산동, 난동과 종현, 저동을 가로지르는 진고개 일대를 점거하여 남촌 50개 동 가운데 30개 동이 일본인 촌이 됐다”고 ‘매천야록’에서 절규했다.남촌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심장부였다. 통감부를 중심으로 통감관저, 헌병대사령부, 정무총감 관저(필동 한국의 집)가 집결했다. 명동과 충무로에 화려한 상가가 들어서고 조선은행과 식산은행, 동양척식회사 등 경제수탈기구가 남대문에 집결했다. 벚꽃 묘목 1500그루를 들여와 왜성대공원(한양공원)에 심은 게 1907년이었다. 한양도성의 수호신 남산은 일본 국교 신도(神道)에 무참히 유린당했다. 1925년 조선신궁이 세워지면서 남산은 정치와 종교, 문화의 지배공간이 됐다. 1932년 남산기슭 장충단 자리는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로 둔갑했다. 남산은 식민지배의 상처를 씻어내지 못한 채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 산업화 과정에서 훼손됐다. 경성호국신사(용산동 2가) 자리에 해방촌이 들어선 데 이어 적산 처리 과정에서 동국대, 서울중앙방송국, 숭의학원, 미군 통신부대, 외인주택 등 각종 정부기관과 학교, 군 및 종교단체가 파고들어 잠식당했다. 동상과 기념물 그리고 터널과 타워는 남북 체제 경쟁과 정치이데올로기 홍보의 상징물이다.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시대 중앙정보부는 ‘남산’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예장자락에 무려 41개의 건물을 차지하고 정권의 홍위병 역할을 했다. 그 상처를 씻어내는 진혼곡이 이제야 연주되고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문희일 연구위원 ●다음 일정: 홍릉산책(홍릉수목원) ●일시: 7월 14일(토) 오전 10시~낮 12시 ●집결장소: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여성 인권” 외침과 함께 자라는 ‘남성 혐오’

    “여성 인권” 외침과 함께 자라는 ‘남성 혐오’

    6만명 모여 몰카 편파수사 규탄 전국서 전세버스 동원 등 조직화 “사회적 차별에 저항” 공감대 속 ‘편파수사 부정’ 文대통령 조롱 남성 비하 등 극단적 구호 논란성 평등 사회를 요구하는 여성 시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용광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과도한 ‘남성 혐오’로 흐르고 있다는 반발도 나온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근처에서는 여성 전용 인터넷 카페 ‘불편한 용기’가 주최한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6만명(경찰 추산 1만 8000명)의 여성이 모였다. 5월 19일 1차 집회에는 1만 2000명, 2차 집회에는 2만 2000명이 모였다. 이 집회는 5월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남성이 피해자라서 경찰이 신속하게 수사한다’는 주장에 수많은 여성이 공감했다. 이날 같은 시간 광화문광장에서는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 집회가 열려 젠더 이슈와 관련된 집회가 더 활발해질 것을 예고했다. 혜화역 집회에 참가한 여성들은 “무죄추정 남(男)가해자 무고추정 여(女)피해자”, “경찰청장을 여성으로 임명하라”, “우리의 일상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불편한 용기’ 측은 주로 인터넷 카페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참가자를 조직하고 있다. 지방 여성들은 전세 버스를 이용해 서울로 오기도 했다. 주최 측은 “우리는 ‘웜’(워마드·남성 혐오 사이트)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혜화역 시위 현장에 조용히 다녀왔다. 많은 여성이 분노하고 절규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었다”고 썼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에 저도 포함된다. 제 책임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3차 집회에서 새롭게 나온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는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 ‘재기해’는 2013년 한강에 투신해 숨진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를 조롱하는 단어로, 남성 혐오 사이트에서는 “자살하라”는 의미로 쓰인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편파수사라는 말은 맞지 않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촛불시위 혁명이고 혜화시위 원한이냐”는 피켓도 등장했다. 이 역시 문 대통령이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명예심에 대해서 특별히 존중한다는 것을 여성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줘야 여성들의 원한 같은 것이 풀린다”고 말한 데에 대한 항의였다. “무X탄핵 유X당선”이라는 피켓도 등장했는데,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여성이라서 탄핵을 당한 반면 문 대통령은 남성이라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지지층 사이에선 “여성시위가 적폐세력과 공생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시위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는 “남성을 조롱하거나 혐오하는 표현은 여성운동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서 “연대의 폭을 넓히면서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인숙 건국대 교수는 “집회의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저항 문화는 있을 수 없다”면서 “극단적인 구호도 주류 사회에 대한 소수의 몸짓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경찰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대사 새기며, 초심 다잡는 우리

    “경찰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대사 새기며, 초심 다잡는 우리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자존심을 뜻하는 속어)가 없냐.” 전국 경찰관 540명에게 경찰이 주인공인 영화, 드라마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가 무엇인지 물었다. 가장 많이 돌아온 답변(192명·35.6%)은 2015년 개봉한 영화 ‘베테랑’의 주인공 서도철(황정민 분) 형사가 동료 형사에게 외친 이 한마디였다. 경찰의 직업적 자부심을 압축적으로 보여 줬다는 것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팀장급 경찰관은 29일 “솔직히 가오가 없어진 지도 오래됐다”면서 “음주자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등 여러 제약들이 경찰관 사기를 떨어뜨렸지만 그래도 ‘베테랑’의 대사를 생각하면서 초심을 붙잡는 편”이라고 말했다.수많은 영화, 드라마에서 경찰은 ‘약방의 감초’처럼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지만 대부분 경찰 캐릭터는 희화화돼 소비되기 일쑤였다. 전문성보다는 무능함, 청렴보다는 비리의 이미지가 강조된다. 공권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신이 미디어 속 경찰에 그대로 투영돼 온 것이다. 경찰을 부정적으로 비추지 않은 영화와 드라마일지라도 경찰관의 인간적인 면모보다 영웅적인 모습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최근 들어서야 일상과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경찰관들의 애환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삶도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조명하는 시도들이 잇따르고 있다.서울신문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5일까지 경찰청 및 전국 17개 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경찰관 540명을 대상으로 ‘미디어에 비친 경찰의 모습’이란 주제의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찰관이 뽑은 최고의 영화(중복 3개 허용)는 ‘베테랑’(216명)으로 나타났다. 악랄한 재벌 3세와 끝까지 싸우는 경찰관의 끈기와 열정, 그리고 통쾌한 승리에 현장 경찰관들도 대리만족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베테랑’은 명대사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반면 경찰관의 현실을 왜곡한 영화로는 2012년 영화 ‘신세계’(135명)가 꼽혔다.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찰관의 모습이 현실과 크게 동떨어졌다고 본 것이다. 일부 비리 경찰관의 모습을 일반화한 것에 대해서도 다수의 경찰관들이 실망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을 다룬 한국 영화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경찰에 대한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을 알 수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경찰 영화가 등장했는데 1993년 개봉한 영화 ‘투캅스’만 보더라도 경찰 풍자가 극 중 내내 이어진다. 이 영화는 경찰관이 불법 도박 현장에서 금품을 빼돌리거나 시민들로부터 돈을 뜯는 장면 등을 통해 ‘부패 경찰’의 단면을 보여 준다. 2002년 개봉한 ‘공공의 적’에서 주인공 강철중 형사는 정의를 구현하기는 하지만 폭력적이고 비리에 찌든 형사로 등장한다. 2010년 영화 ‘부당거래’도 권력을 좇다 비참한 죽음을 맞는 경찰관의 모습을 보여 주며 사회 부조리를 꼬집었다.영화에 비하면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최장수 수사드라마로 꼽히는 1970~80년대 ‘수사반장’부터 1990년대 ‘폴리스’, 2000년대 ‘경찰특공대’까지 경찰 본연의 역할에 더 주목했다. 지난달 종영한 케이블TV 드라마 ‘라이브’도 일선 지구대의 경찰관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아 냈다. “드라마의 최우선 가치는 공감”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힌 라이브 제작진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경찰관이 꼽은 최고의 드라마로 ‘라이브’(372명)가 선정됐다. 드라마 속 홍일지구대의 실제 배경이 된 서울 홍익지구대의 윤경호 팀장은 “지구대는 물 먹은 경찰관 또는 하위직이나 오는 자리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라이브’ 덕에 깨진 부분이 많다”면서 “시청률 7% 정도면 잘 나온 것이라고 하지만 93%는 못 본 것 아니냐. 직원들도 빨리 시즌2가 나왔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라이브’의 마지막 회에서 배우 배성우(오양촌 역)가 경찰 수뇌부를 향해 “누가 내 사명감을 가져갔냐”며 절규하는 장면은 종영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도 경찰 내부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현장 경찰관들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지만 쉽게 내뱉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배우가 대신 해 줬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김명훈 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라마 ‘라이브’가 참 고맙다”면서 “앞으로 조금씩 현실이 나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게 됐다”고 썼다. 경찰 생활 27년차라고 밝힌 한 경찰관은 내부 게시판 ‘현장 활력소’에 “마지막 장면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다 아내에게 들켜 ‘남자 갱년기다. 아빠도 운다’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14일 ‘라이브’의 출연진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 “경찰관의 명예를 드높여 줬다”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현실과 다른 전개로 현장 경찰관들로부터 외면받은 드라마도 없지는 않다. 드라마 ‘유령’(2012년)에 나오는 것처럼 사복 입은 형사가 살인 사건 현장에 먼저 도착한 제복 입은 파출소 경찰관으로부터 거수경례를 받는 장면도 현장 경찰관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부분이다. 드라마 제작 지원을 맡고 있는 이희목 경찰청 대변인실 경위는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이 상관일 수도 있다”면서 “의도야 어찌됐든 현실과 다른 연출은 제복 경찰관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베테랑’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 드라마에서 형사가 범인을 체포할 때 “묵비권(진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도 경찰관들이 씁쓸해하는 대목 중 하나다. 시나리오 작가가 현행법 조항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과거의 잘못된 표현을 그대로 갖다 쓰면서 기본적 실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에는 피의자를 체포할 때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나와 있을 뿐, 묵비권은 어디에도 언급이 없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보이스’는 112 신고센터 대원들을 다루면서도 112 신고 관련 경찰 업무 프로세스를 제대로 숙지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드라마 방영 당시 한 지방경찰청의 112종합상황실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오는 8월 ‘보이스2’ 방영을 앞두고 촬영에 들어가는 제작진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112지령실 직원들을 미리 섭외하는 등 시즌1 때보다 치밀하게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이스2’ 제작진처럼 경찰 영화, 드라마를 제작할 때 경찰청에 협조를 구하는 경우도 많다. 강력반 형사, 112 접수요원, 과학수사요원 등과의 인터뷰 요청부터 경찰특공대 차량 지원, 경찰서·사격장 등 장소 지원 요청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추석 시즌에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는 실제 서울 금천경찰서를 배경으로 했다. 이희목 경위는 “한 달에 평균 5건 정도 요청이 들어온다”면서 “아직까지 헬기 지원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경찰 이미지 제고 차원이라면 지원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드라마 ‘라이브’는 경찰청에서 20차례 이상 지원했다. 지난해 퇴직한 경찰관이 아예 자문 경찰관으로 드라마 제작 전반에 참여했다. 배우들에게 사격술, 교통 수신호를 가르쳐 주기 위해 촬영장에 파견 갔다가 ‘깜짝 출연’하는 경찰관도 있었다. 라이브 6회차 때 배우 정유미, 이광수 등에게 사격 자세 등을 전수한 민경원 대전서부경찰서 가수원파출소 경위는 현장에서 캐스팅돼 사격통제관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민 경위는 “모형 총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정신까지 경찰관에 가깝게 무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종원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경찰 드라마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부조리를 끄집어내 드라마 밖에 있는 ‘우리’들이 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미국 드라마처럼 다양한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장기 시즌제’ 도입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사설] 양심적 병역거부 사실상 허용, 대체입법 서둘러야

    헌법재판소는 어제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이유로 입영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지만,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는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이어 2019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일종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병역법을 개정하라고 판시했다. 헌재는 “대체복무제가 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한다면 과잉금지 원칙을 위반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헌재의 이번 판단은 분단 특수성에 따른 병역 의무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할 통로를 열어 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헌재는 2004년 등 세 차례에 걸쳐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조항이 합헌이라 결정했지만 이번에는 전향적인 판단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최근 한반도 긴장 완화 추세로 병역의 의무를 좁게 해석할 필요가 줄어든 덕분이다. ‘촛불’ 이후 높아진 인권 의식도 배경이 됐다. 사법부 역시 1, 2심 때 무죄를 선고하는 건수가 지난해 44건, 올 상반기엔 28건을 기록했다. 1950년 병역법 시행 이후 양심적 병역거부로 전과자라는 ‘빨간줄’이 그어진 청년만 1만 9000명이 넘는다. 매년 500명 안팎이 입영 및 집총 거부로 1년 6개월의 실형을 살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른 식으로 이행하겠다’는 이들의 절규는 구치소의 쇠창살을 넘지 못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사실상 대체복무를 하고 있다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다. 유죄 확정을 받아도 미결수 수용소인 구치소에서 교도관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도 오는 8월 30일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여부를 두고 공개변론을 열고, 올해 안에 무죄 판례를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남은 과제는 정부와 국회가 대체복무제를 하루빨리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다. 헌법의 국민개병제 정신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악용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대체복무를 일반 군역보다 길고 어려운 일을 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대체복무제를 앞서 도입한 대만의 경우 대체역 복무 기간이 군역의 2배 이상인 데다 대체복무자들이 경찰, 사회복지 등 군 복무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표현을 ‘신념·종교에 따른 병역거부’ 등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양심의 반대는 비양심이 되는 탓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반감이 컸다. 헌재는 2004년 헌법소원 판결문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서의 ‘양심’은 ‘선한 행위에 대한 의지’라는 일반적 개념이 아닌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허물어지는 마음의 소리’라는 법률적 개념이라고 구분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는 건 ‘양심적 병역이행’에 해당하는 셈이다. 국방의 의무라는 가치가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대체복무자들이 떳떳하게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대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 “빨리 나와” 아버지 절규에도 못 빠져나온 아들…세종시 화재 안타까운 사연들

    “빨리 나와” 아버지 절규에도 못 빠져나온 아들…세종시 화재 안타까운 사연들

    세종시 주상복합아파트 화재로 숨진 희생자 중 20대 청년이 아버지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나온 첫날 변을 당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7일 세종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A(25)씨는 전날 아버지와 함께 새종시 새롬동(2-2 생활권 H1블록) 트리쉐이드 주상복합아파트 신축공사장에 하청업체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러 갔다. 용돈을 벌기 위해 공사장에 나간 첫 날이었다. 아버지는 건물 지상에서, 아들은 지하에 배치돼 작업을 이어가던 중 오후 1시 10분쯤 ‘펑’ 소리와 함께 큰 불이 났다. 아버지는 가까스로 빠져나와 아들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빨리 튀어나와 OO야! 아빠 들어갈 거니까 빨리 뛰져나와”라고 외쳤지만 아들은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들은 화재 발생 5시간 여만에 지하 1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와 함께 지하 1층에서 노동자 B(53)씨도 숨진 채 발견됐다. 7개월 전까지는 버스 운전대를 잡았던 B씨는 대학생 딸의 자취방 마련을 위해 직장을 바꿨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다른 사망자 중국 국적의 C(34)씨는 중국에서 아직 가족이 도착하지 못해 현재 빈소에 시신만 안치된 상태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1박2일’ 데프콘, 조보아와 브런치 먹는 모습 포착 ‘성덕’

    ‘1박2일’ 데프콘, 조보아와 브런치 먹는 모습 포착 ‘성덕’

    ‘1박2일’ 데프콘, 조보아의 브런치 장면이 공개돼 화제다. 17일 방송되는 KBS2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는 ‘정준영 PD의 막내 투어’ 마지막 이야기로 그려진다. 그런 가운데 데프콘-조보아가 스타와 팬으로 짜릿한 만남을 가진 모습이 포착돼 무슨 일이 펼쳐졌을지 궁금증을 높인다. 공개된 사진에는 꿀맛 같은 브런치를 즐기고 있는 데프콘-조보아의 모습이 담겼다. 그 동안 데프콘은 조보아의 열혈 팬 인증으로 화제를 모은 상황. 하지만 꿈에 그리던 스타와의 첫 만남에 어색한 듯 두 손을 무릎에 살포시 올려놓은 채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이와 달리 조보아는 자신의 팬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던 데프콘과의 시간이 즐거운 듯 아침 햇살보다 상큼한 미소와 눈웃음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르르 녹게 만든다. 이에 과연 두 사람이 일생일대 첫 브런치 만남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을지 관심을 높인다. 그런 가운데 데프콘-조보아의 브런치에 제일 맹활약을 펼친 것은 다섯 멤버들. 두 사람의 브런치를 지켜보던 정준영 PD가 연신 실수를 저지르는 데프콘에게 “눈치도 없고 경험도 없고”라며 불만을 폭발해 현장을 빵 터지게 했다. 김준호 또한 둘만의 만남 대신 먹방을 찍는 데프콘의 모습에 급기야 “그만 좀 먹어”라고 절규, 보는 이들의 웃음보를 자극했다는 후문. 특히 두 사람의 브런치에 감놔라 대추놔라 참견하다가도 애교 가득한 조보아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연신 광대를 들썩인 채 흐뭇한 삼촌 미소를 지으며 몰입했다. 과연 데프콘-조보아의 브런치는 어땠을지 이에 멤버들은 어떻게 반응했을지 관심을 높인다. 한편, KBS2 ‘1박2일’은 17일 오후 6시 10분에 방송된다. 사진=KBS2 ‘1박2일’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국가폭력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조성

    국가폭력 ‘남영동 대공분실’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조성

    내년 이관… 시민단체가 운영 독재정권 시절 국가 폭력과 인권 탄압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추모·체험학습 공간으로 탈바꿈되고 관리도 시민단체가 맡는다.문재인 대통령은 10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독한 ‘6·10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엔 고문과 불법 감금, 장기 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 폭력에 희생당한 많은 분의 절규와 눈물이 담겼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면서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새로 만들어지는 민주인권기념관은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미래를 열어 가는 공간이 될 것”이라면서 “공공기관, 인권단체, 고문 피해자와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이 이 공간을 함께 키워 가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덧붙였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등은 지난 1월 “시민사회가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운영하도록 해 달라’고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해 제6기 이사회 출범 후 민주화 기념관 건립을 재추진하면서 이곳을 유력 후보지로 검토했다. 이에 정부는 과거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시민사회에 환원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로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지만, 이는 결국 그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고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민주화운동 시절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다. 지난해 개봉해 누적 관객수 700만명을 돌파한 영화 ‘1987’에 관련 내용이 묘사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민주화 이후 이곳을 보안분실로 이용하다가 2005년 10월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경했다. 정부는 우선 관리권을 경찰에서 행안부로 옮겨 민주·인권 기념관으로 조성한다. 이어 이르면 내년 초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관리권을 넘기는 절차를 밟는다. 박종철 기념사업회와 고문피해자 등으로 ‘인권기념관 추진위원회’도 꾸린다. 정부뿐 아니라 시민사회, 역사학자도 참여한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건물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기로 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시민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의 품으로

    시민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 시민의 품으로

    국가에 의한 인권 탄압의 상징인 ‘남영동 대공분실’이 시민사회의 품으로 돌아온다. 내년 초부터 시민사회로 관리권 이관절차가 진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6·10 민주항쟁 31주년 기념사’에서 “우리 민주주의 역사엔 고문과 불법감금, 장기구금과 의문사 등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많은 분의 절규와 눈물이 담겼다. 그 대표적인 장소가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면서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고문당하고, 박종철 열사가 희생된 이곳에 ‘민주인권기념관’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기념사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독했다. 지난 1월 ‘박종철 기념사업회’ 등은 경찰이 운영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토록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해 제6기 이사회 출범 후 민주화 기념관 건립을 다시 추진하면서, 이곳을 유력한 후보지로 검토했다. 이에 정부는 과거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이곳을 시민사회에 환원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다 숨진 곳이다. 당시 경찰은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로 이 사건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했지만, 이는 결국 그해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2011년 숨을 거둔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고문을 받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개봉해 누적 관객 수 700만을 돌파한 영화 ‘1987’에 관련 내용이 묘사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정부는 민주화 이후 이곳을 보안분실로 이용하다가 2005년 10월 경찰청 인권센터로 변경해 지금에 이른다. 일단 관리권을 경찰에서 행안부로 이관해 이곳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건립하도록 돕는다. 관리권 이관은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관리를 맡긴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고문피해자 등으로 ‘인권기념관 추진위원회’도 꾸려 이들이 주도하는 활용방안을 마련한다. 이 과정에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역사학자가 참여한다.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건물의 원형은 최대한 보존한다. 일반 시민들은 이곳에서 민주화 열사에 대한 추모나 체험형 교육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1%의 우정’ 한현민, 주진우 기자 만난 첫 반응은? 설렘→좌절

    ‘1%의 우정’ 한현민, 주진우 기자 만난 첫 반응은? 설렘→좌절

    ‘1%의 우정’ 한현민이 주진우 기자를 보자마자 절규했다. 매회 극과 극 우정 만들기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1%의 우정’(연출 손자연)은 99%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1%의 우정을 만드는 리얼리티 예능. 한편 오는 9일(토) 종영을 앞두고 역대급 우정 멤버 안정환-김희철-주진우-배정남-한현민이 총 출동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가운데 한현민이 주진우를 보자마자 롤러코스터급 감정 변화를 보였다고 해 이목을 끈다. 공개된 스틸 속에는 다이나믹한 한현민의 표정 변화가 담겨 있어 폭소를 자아낸다. 먼저 한현민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다. 하지만 입가에 자동으로 흘러 나오는 미소는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습. 이어 급 시무룩해져 땅만 바라보고 있는 한현민의 모습이 포착돼 웃음을 터트린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주진우와 김희철을 붙들고 무언가를 토로하는 한현민과 이를 보고 장난 가득한 웃음을 터트리는 안정환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미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사실 이날 안정환이 한현민에게 트와이스 다연과 만나게 해 주겠다는 거짓으로 장난을 친 것. 평소 트와이스 다연의 광팬인 한현민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안정환을 따라 나섰지만 예상치 못한 주진우-김희철과의 만남에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해 폭소를 자아냈다. 한현민은 “안정환 형이 엄청 펌프질 했어요!”라며 끝내 안정환을 향해 버럭 화를 내 모두를 포복절도케 만들었다는 전언이다. 이에 마지막까지 웃음만발 우정 쌓기가 예고된 ‘1%의 우정’ 본 방송에 기대가 수직 상승된다. 서로 상반된 두 사람이 만나 함께 하루를 보내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우정을 쌓아 가는 리얼리티 예능프로그램 ‘1%의 우정’은 오는 9일 토요일 밤 10시 45분에 마지막 회가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국가가 대를 끊었다”… 日 강제불임수술 피해자들의 절규

    [글로벌 인사이트] “국가가 대를 끊었다”… 日 강제불임수술 피해자들의 절규

    2만 5000명의 남녀가 평생 자기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국가로부터 불임수술을 받았다. 그중엔 9살짜리 여자아이도, 10살 된 남자아이도 있었다. 10명 중 7명은 여자였다. 상당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의사의 손에 이끌려 몸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메스를 받았다. 싫다고 발버둥치다가 마취제를 맞고 수술대에 쓰러진 이도 있었다. “대(代)를 이었다가는 사회에 짐이 될 불량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에서 1996년까지 존속됐던 ‘우생(優生)보호법’ 아래에서 ‘합법’을 가장해 이뤄진 국가 주도의 인권 유린이었다. 일본 사회는 반성하고 있다. 그런 악법을 어떻게 70년이나 유지해 왔는지, 또 그 법이 사라지고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어떻게 피해자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있었는지를 말이다.강제 불임수술의 실태와 피해자의 고통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올 1월 미야기현에 사는 61세 여성 A씨가 국가를 상대로 1100만엔(약 1억 1000만원)의 피해보상 소송을 처음으로 제기한 게 발단이 됐다. A씨는 열다섯 살이던 1972년 12월 ‘유전성 정신박약’을 이유로 난관을 묶는 수술을 강제로 받았다. 잦은 복통 등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그는 서른 살 즈음 ‘난소낭종’ 진단을 받고 오른쪽 난소를 절제했다. 이 때문에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로부터 파혼을 당했다. 지난 3월 28일 센다이 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A씨 측 변호인단은 “피해자는 어릴 적 마취 치료로 인한 부작용으로 정신병 증세를 보였는데, 이를 파악하지 않은 우생보호심사위원회의 잘못으로 강제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가능하게 한 우생보호법은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및 개인 존엄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14세 때 설명 못듣고 수술대 오른 70대男도 소송 A씨에 이어 70대 남녀 4명이 오는 17일 도쿄, 센다이, 삿포로 등 3개 도시 법원에 같은 내용의 소송을 낸다. 도쿄 지방법원에 소장을 내기로 한 미야기현 출신 남성은 아동 보호시설에 있던 14세 때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수술을 받았다. 그는 “내 인생을 돌려받고 싶다”고 했다. 우생보호법이 일본 국회를 통과한 것은 1948년이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기 직전인 1940년 나치 독일의 ‘단종법’(斷種法)을 참고해 만들었던 ‘국민우생법’을 이어받아 다니구치 야사부로라는 산부인과 의사 출신의 참의원이 입법을 주도했다. 다니구치는 “패전으로 영토가 협소해진 가운데 인구는 많고 식량은 부족하다. 급속한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해 선천성 유전병자의 출생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당시 일본은 전후 식민지에서 귀환한 사람들과 ‘베이비붐’에 따른 출생아 급증 등으로 인구 과잉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다. 극심한 식량난과 주택난 속에 국민들의 큰 저항 없이 탄생한 우생보호법은 기존의 국민우생법보다 더한 독소조항을 갖고 있었다. 바로 ‘강제 불임수술 허용’이었다. 국민우생법하에서도 ‘다산(多産) 장려에 반한다’는 이유로 강제 수술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1949년 전국 시행… 후생성 ‘강제수술 가능’ 공문 1949년부터 유전성 질환 등을 이유로 한 국가 주도의 정관 수술과 난관 수술이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당시 후생성은 강제 수술 여부에 대한 지방 행정기관들의 문의에 대해 “본인의 동의에 반해 수술을 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신체구속이나 마취약의 사용도 인정된다”고 답했다. 1952년에는 유전병이 아닌 일반 정신질환이나 지적장애를 앓는 사람들도 강제 수술 대상에 새롭게 편입됐다. 수술 대상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정부 공식통계에 따른 우생보호법 불임수술은 총 2만 4991건. 이 중 3분의2(66%)에 해당하는 1만 6475건이 본인 동의 없는 강제 수술이었다. 미성년자도 2337명이나 됐다. 미야기현에서는 9세 여아와 10세 남아에게 수술이 이뤄졌다. 수술은 1955년(1362건)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1970년대 중반까지도 연간 100건 이상 규모로 실시됐다. 마지막 수술은 1992년에 이뤄진 1건이었다. ●일부 의사·공무원 ‘실적 채우기용’ 집행 법을 집행하면서 일부 의사들은 범죄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홋카이도는 1965년 8~11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우생보호심사위원회 없이 서류 심사만으로 3명에 대한 강제 수술을 결정했다. 후쿠오카현에서도 1981년 3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같은 과정으로 수술대에 오른 20~39세 남녀가 최소 6명이다. 1960년 오이타현은 한 정신과 의사가 제출한 여성 5명 강제 불임수술 신청서에 대해 “실제로 진찰한 결과인지 의문”이라며 보류 결정을 내렸다. 5명에 대한 건강진단서 기재 내용이 하나같이 ‘병명: 정신박약’, ‘현재상황: 정신 발육이 지체돼 있어 유전병이 인정된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군마현에서는 1955년 우생보호법 대상 환자가 맹장염으로 병원에 실려오자 의사가 산부인과 전문이 아닌데도 맹장수술을 하면서 동시에 불임수술을 진행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자기 잇속에 눈이 멀기는 일부 공무원들도 다르지 않았다. 강제 수술 건수가 1950년대 중반 이후 감소하자 실적에 부담을 느낀 후생성 공무원들은 1957년 수술 실적 증대를 독려하는 공문을 지방행정기관에 내려보냈다. 당초 예상했던 수술 실적 목표치를 밑도는 기관에는 주민 계몽활동 등 노력을 더 열심히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자기 실적을 위해 무리한 집행에 나선 현장 공무원들도 적지 않았다. 전체 수술건수 2593건으로 전국 최다인 홋카이도의 경우 1950년대에 ‘우생수술 1000건 돌파’, ‘전국 1위 실적’ 등의 홍보물을 만들기도 했다. 이 법에 대한 문제 제기가 오랜 기간 일본 내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부 정치권의 폐지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늘 국회에 가면 후순위로 밀렸다. 그러던 중 1994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국제인구개발회의,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세계여성회의 등에서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여당인 자민당은 국내 의견 등을 수렴해 1996년 우생보호에 관한 조항 등을 삭제하고 ‘모체보호법’으로 바꿨다. 이후에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4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강제 불임수술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정부가 구제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2016년에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도 피해 실태 조사와 피해자 법적 구제를 권고했다. 이때마다 일본 정부는 “합법적인 조치였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강제성 입증·소멸시효 해석이 쟁점으로 앞으로 진행될 피해 보상 소송에서는 자신이 강제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피해자들이 어떻게 입증할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강제 수술 1만 6475명 가운데 누구인지 자료가 분명한 경우는 26%인 4347명에 불과하다. 피해 보상 등 권리 청구가 가능한 민법상 제척기간(일종의 소멸시효)을 어떻게 볼지도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불임수술을 받은 지 모두 20년이 넘어 ‘불법행위로부터 20년이 지나면 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는 일본 민법상 제척기간은 일단 완성됐기 때문이다. 불임수술에 동의한 사람 중에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경우가 많아 향후 정부의 피해자 지원이 이뤄졌을 때 상당한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를테면 한센병 회복자가 요양원에서 결혼하려면 불임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사실상 강제 수술이나 다름없다. ●스웨덴, 재판 없이 곧바로 피해보상 법률 제정 피해 소송이 본격화할 조짐을 나타내자 정치권도 뒤늦게 따라가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야는 지난 3월 6일 오쓰지 히데히사 전 후생노동상을 대표로 하는 초당파 의원 모임 ‘옛 우생보호법하에서의 강제 불임수술에 대해 생각하는 의원연맹’을 발족시켰다. 자민당은 강제 불임 문제를 다루는 실무팀을 구성했다. 일본과 비슷한 우생학적 수술이 행해졌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미국의 일부 주와 독일, 스웨덴 등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이 이뤄지고 있다. 1976년까지 강제 수술이 이뤄졌던 스웨덴의 경우 재판 없이 곧바로 피해 보상을 해 주는 법률이 제정됐다. 마쓰바라 요코 리쓰메이칸대 교수는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고령자가 된 피해자들을 위해 당장 있는 자료만으로 빠르게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해 주어야 한다”며 “이와 별개로 앞으로 몇 년이 걸리더라도 국가의 강제 불임수술의 실체를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공연리뷰] 소문만큼 풍성했던 ‘뮤지컬 만찬’

    [공연리뷰] 소문만큼 풍성했던 ‘뮤지컬 만찬’

    덕지덕지 붙은 일상의 때를 음악으로 씻어 내는 느낌이랄까.지난 2일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000여석을 채운 ‘뮤직 오브 앤드류 로이드 웨버 기념 콘서트’.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거장의 탄생 70주년을 기념해 단 2회로 끝난 이날 무대는 국내외 뮤지컬 스타들이 한자리에서 명곡의 감동을 압축 전달한 ‘어벤저스급 무대’였다.‘오페라의 유령’이 탄생시킨 발군의 팬텀 라민 카림루와 ‘최다 팬텀’ 기록을 보유한 브래드 리틀을 비롯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주인공 마이클 리, 웨버의 뮤즈 애나 오번, 차지연, 김소현, 정선아 등 실력파 배우 15명이 대표작 25곡을 선사한 ‘뮤지컬 만찬’이었다. 국내 관객에게 팬텀과 더불어 ‘캣츠’의 올드 듀터로노미로도 익숙한 리틀은 특유의 화려한 쇼맨십으로 객석을 환호하게 했다. 국내에 공연된 적이 없는 작품인 ‘선셋 블러바드’의 동명 주제곡을 부른 그는 짙은 선글라스를 낀 채 허세 가득한 마초 스타일로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 냈다. ‘빵아저씨’로 불릴 만큼 한국 팬과 친숙한 그는 ‘오페라의 유령’에서 자주 호흡을 맞춘 크리스틴 역의 김소현과 능수능란한 듀엣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2012년 뮤지컬 ‘에비타’에서 에바 페론 역을 연기한 정선아는 이날 6년 만에 대표곡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를 청아한 목소리로 완벽히 불러 여운과 감동을 안겼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작품 중 예수가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느냐’고 절규하는 대표곡 ‘겟세마네’를 부른 마이클 리는 홀로 대극장 무대를 압도하는 가창으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웨버의 최신작 ‘러브 네버 다이즈’의 히어로인 라민 카림루는 동명의 작품에 나오는 솔로곡 ‘너의 노래를 들을 때까지’를 선보였다.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호평받았지만 단 1곡만 부르고 무대를 내려와 아쉬움을 남겼다 주옥같은 선율을 협연한 45인조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한정림도 이날 콘서트의 주역이었다. 특히 한정림은 135분 공연 내내 무대 중앙에서 경쾌한 곡이 나오면 발을 구르고 어깨춤을 추며 온몸으로 유쾌 발랄한 기운을 발산, 객석과 소통하는 지휘법으로 시선을 받았다. 라민 카림루와 애나 오번, 마이클 리, 지휘자 한정림과 45인조 오케스트라는 4~6일 세종문회화관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오페라의 유령’ 전곡 갈라 콘서트 무대에도 오른다. 올해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30주년을 기념해 내한한 오리지널 크리에이티브 팀이 꾸민 무대로, 높은 완성도가 기대된다. ‘오페라의 유령’ 전곡 갈라 콘서트는 초연했던 런던을 제외하고 이번 서울 공연이 세계 최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배우 황찬호 사망... 여자친구 “빨리 돌아와, 나 두고 이러기야” 절규

    배우 황찬호 사망... 여자친구 “빨리 돌아와, 나 두고 이러기야” 절규

    배우 황찬호가 지난 26일, 향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고 황찬호가 사망한지 이튿날, 그의 여자친구는 인스타그램에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는 글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찬호야 황찬호 빨리 와 빨리 오라고 내 남자친구 황찬호 오빠 진짜 빨리 와. 나 두고 이러기야? 빨리 돌아와.... 어제도 오빤 여전히 사랑한다고 했는데..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난 자느라 대충 대답하고.. 또 듣고 싶어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오빠 정말 많이 고마웠고 정말 많이 사랑해..” 라는 글은 보는 이들을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다. 그녀는 발인을 마친 뒤 납골당 속 유골함 사진을 게시하곤 황찬호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추모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황찬호는 ‘유리가면 Episode 5 - 또 하나의 영혼’으로 데뷔한 이래 ‘챠이카’ ‘벚꽃동산’ ‘셜록홈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등 굵직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존재감을 알려온 배우다. 지난 2016년에는 브라운관에 진출, KBS1 ‘장영실’ MBN ‘연남동 539’ 등에 출연하며 대중과 가까이 호흡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29년, 달러의 몰락…미국의 절규

    2029년, 달러의 몰락…미국의 절규

    맨디블 가족/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592쪽/1만 6500원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G1’에 등극한다면. 미국에 우호적이었던 나라들이 갑자기 등을 돌린다면.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미국이 경제 위기의 늪에 빠진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봤지만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가정들이다. 상상의 결말을 엿보고 싶다면 미국 작가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신작 소설 ‘맨디블 가족’을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다.우선 책의 부제가 소설 속 미국이 마주한 현실을 함축한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 2001년 9·11테러,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미국은 2024년 인터넷 인프라 마비로 수많은 연쇄 충돌 사고와 비행기 참사, 열차 사고가 잇따른 스톤에이지 사건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는다. 사회가 안정을 되찾을 때쯤 사상 최악의 참사가 찾아온다. 2029년 세계 경제를 장악한 중국이 러시아와 결탁해 금융 쿠데타를 주도한 것. 하룻밤 사이에 전지전능한 달러의 환율이 곤두박질 치고 급기야 기축통화는 달러에서 ‘방코르’로 대체된다. 미국 정부는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내고 심지어 개인이 방코르를 보유하는 것을 반역 행위로 간주한다. 미국 정부가 세계와의 금융 전쟁을 선포하면서 괴로워지는 건 서민들이다. 금마저 정부에 빼앗긴 서민들이 휴짓조각이 된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맨해튼 출판계에서 큰돈을 주무른 90대 가장 더글러스 맨디블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날만 바라보던 맨디블 가족 4대가 이 ‘위기의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그 삶의 행적을 좇는 게 이 소설의 골자다.작가는 소시오패스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 ‘케빈에 대하여’를 비롯해 미국 의료제도의 모순을 다룬 ‘내 아내에 대하여’ 등 주로 사회적인 주제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미국의 몰락과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상을 특유의 상상력으로 치밀하게 그려냈다. “미국인들은 침체되어 있는 게 아니야. 부정하고 있지. (중략) 그래서 기껏해야 잃어버린 10년을 걱정하지.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개념,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이 쇠퇴해버렸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이 나라의 정신에는 너무도 생경한 거야”라는 등장인물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는 늘 1등의 자리에서 세계를 내려다보던 미국의 자만에 일침을 놓는다. 맨디블 가족들이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재정적 파탄을 경험하고 허우적대는 과정과 더불어 주목할 부분은 더글러스의 손자이자 어릴 때부터 독학으로 경제학을 익힌 윌링이다. 졸지에 소작인으로 전락한 가족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윌링은 미국에서 분리 독립한 네바다 합중국으로 떠나 살길을 모색한다. 2024년 정부가 사람들의 몸에 신용카드와 같은 칩을 이식하면서 급여가 칩에 예치되면 지방세, 연방세 등 급여의 77%에 달하는 세금이 정부 손에 넘어갔다. 정부에 조종당하는 듯한 께름칙한 기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인 네바다는 과연 유토피아였을지. 윌링은 이곳에서 다시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꾸릴 수 있을지. 작가의 예리한 통찰이 담긴 결말은 제법 서늘하게 다가온다. 향후 수십년 내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펼쳐낸 이 ‘예언 소설’에는 눈에 띄는 설정이 많다.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이 폐지되면서 2028년엔 미국 최초로 멕시코 태생의 대통령이 등장한다. 일본은 중국에 흡수된다. 일본이 중국 구축함을 침몰시키면서 싸움을 걸었지만 오히려 타격을 입은 것이다. 통일을 한 한국은 오랜 동맹국이었던 미국에 등을 돌리고 세계 공용 통화 대열에 합류한다. 준비 통화, 인플레이션, 채권 경매, 부채의 화폐화, 금본위제 등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경제 개념에 대한 언급은 가벼운 소설을 읽기 위해 책을 집어든 독자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락한 미국이 마주한 충격적인 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롭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오리의 애절한 절규 “제 친구 살려주세요”

    오리의 애절한 절규 “제 친구 살려주세요”

    동료 오리를 살리기 위한 또 다른 오리 한 마리의 애절한 모습이 화제다. 지난 7일(현지시각)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은 중국 한 남성이 오리 목을 잡고 내려치려는 순간, 남성 옆에 있던 또 다른 오리 한마리의 애절한 절규 장면을 소개했다. 영상 속엔 남성이 동료 오리의 목을 잡고 큰 칼로 내려치려하자 이 남성의 소맷자락을 부리로 물고 늘어진다. 동료 오리를 살리기 위한 애절한 동료애에 남성은 실소를 지으며 동작을 잠시 멈춘다. 잠시 후 다시 목을 내려치려하자 이 오리는 남성의 소맷자락을 부리로 무는 동작을 반복한다. 남성과 영상을 찍고 있는 여성은 오리의 이러한 행위를 크게 웃으며 즐기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두마리 오리들에겐 생과 사의 처절한 순간이다. 동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건 이 오리와 죽음의 순간에 있었던 동료오리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는 알려지진 않았다. 웃지 못할 가슴 아픈 모습이다. 사진 영상=GiyyuE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바라봐야만 했던 블랙리스트… 우리도 흔들렸다”

    “바라봐야만 했던 블랙리스트… 우리도 흔들렸다”

    “2017년 1월 13일 블랙리스트에 반대하는 예술가들이 탄 ‘블랙리스트 버스’가 문화체육관광부 앞에 도착했어요. 그들이 진상 규명을 외치며 절규했을 때, 저는 그저 창가에 서서 그들을 쳐다봐야만 했어요. 당시의 그 참담함이란….”‘블랙리스트가 있었다’(위즈덤하우스)의 저자 정은영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실 행정관은 지난해 그날을 생각하며 9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잠시 눈물을 훔쳤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문체부 존재 자체를 격렬하게 흔드는 사건이었다. 15년 동안 공무원으로 일했던 나 자신도 크게 흔들렸다”면서 “당시의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어 책을 쓰게 됐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선고에서 24년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좌파 성향 문화·예술인과 단체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해 직권남용으로 박 전 대통령의 유죄를 인정했다. 정 행정관은 2015년부터 2017년 5월까지 문체부 국민소통실에서 여론과장으로 일했다. 책을 함께 쓴 김석현씨는 정 행정관의 남편으로, 문체부에서 일하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비서관을 지냈다. 블랙리스트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됐던 두 저자는 책을 통해 내부자의 눈으로 당시 상황을 복기하는 한편 문화국가를 향한 대안도 제시한다. 책을 함께 쓰자고 제안한 이는 김씨였다. 그는 “문체부에서 일했던 나 자신에 관한 반성을 위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정 행정관에게 같이 글을 쓰자고 제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몇 개의 사건들을 통해 블랙리스트 사건을 재구성했다. 예컨대 박근형 연출가의 연극 ‘개구리’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불러일으킨 논란은 정 행정관과 김씨가 몸담았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 시스템이 불능에 빠지는 현장을 생생히 다룬다. 2013년 9월 공연한 ‘개구리’는 그리스 희곡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화하고 박 전 대통령은 비하하면서 문제가 됐다. 박 연출가의 또 다른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체부의 공연예술창작산실 지원 사업에 응모해 그해 4월 최종 8개 작품에 선정됐지만, ‘개구리’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선정작이 결정됐음에도 그해 6월까지 결과 발표가 나지를 않았다. 한국문화예술위 직원들이 박 연출가를 찾아가 포기를 종용하고, 박 연출가가 이를 마지못해 수용했던 일이 뒤늦게 밝혀졌다. 책은 이 밖에 세월호 참사, 홍성담 화가의 ‘세월오월’의 광주 비엔날레 전시 무산, 국정농단 국조특위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2013년에서 2017년까지 문체부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기록했다. 김씨는 블랙리스트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케인스의 팔 길이의 원칙’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나 행정 기관이 예술 창작과 관련해 예술가(또는 단체)를 지원할 때 ‘팔 길이만큼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원칙에 정 행정관도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는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지원은 하되 통제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예술가들을 포함한 시민들의 관심과 인식의 수준도 더 높아져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들도 문제가 생기면 감지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인식이 높아졌으면 좋겠어요.”(김석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의 소환조사도 받았습니다. 책을 쓰면서 블랙리스트를 두고 발생했던 문제들을 돌아보고 정리해 보니 저도 치유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체부가 이번 일을 잊지 않고 조직을 위해 고생한 직원들에 대해 그 어려움, 고단함, 아픔과 슬픔을 잊지 않는 ‘조직의 예의’도 지켜 주길 바랍니다.”(정은영)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우린 장난감이 아냐”···반나체로 미투에 나선 여배우의 절규

    “우린 장난감이 아냐”···반나체로 미투에 나선 여배우의 절규

    카스트 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인도에서 한 여성 영화배(34)우가 반나체로 ‘미투(Me 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에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스리 레디라는 발리우드 배우가 ‘토플리스’(topless·상의탈의)’로 미투한 사연을 소개했다.NYT에 따르면 레디는 지난 7일 인도 중남부 하이데라바드에서 현지 영화위원회 사무실 인근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레디는 사무실로 걸어가다가 카메라 앞에서 상의를 모두 벗었다. 그러면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우리가 여성인가 아니면 갖고 놀 장난감인가”라고 절규했다. 곧이어 레디는 경찰에 의해 끌려갔다. 공공장소에서 심하게 노출한 혐의였다. 관련 영상과 사진은 인터넷으로 빠르게 퍼졌다. 그간 성적으로 억압받던 인도 여성 등은 레디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지지에 나섰다.발리우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심한 성차별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인 레디도 부당한 성적 요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 영화 제작자가 레디에게 배역에 캐스팅되기 전에 누드 영상을 보내라고 한 것.이에 레디는 요청에 따랐지만 관련 영상은 돌려받지 못했다.이와 관련해 인도 사회학자 디파 나라얀은 “레디와 함께할 여성이 생기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증거’로 절규하다

    위안부 할머니 ‘증거’로 절규하다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2/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 집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기획/푸른역사/314~320쪽/각권 1만 5000원“열여섯이 되는 1940년 가을 어느 저녁이었다. 친구 집에서 놀다 돌아가는데 일본인 헌병, 조선인 헌병, 조선인 형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대구역에서 기차에 태워졌다. 꼬박 사흘간 달려 도착한 곳은 북만주 동안성이었다. ‘군폴’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민가에 들어갔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조선인 여성들이 있었다. 열네, 다섯 살 되는 사람도 있었다. 매일 20명에서 30명 정도 일본인 군인이 찾아왔다. 나는 매일매일 울었다. 그러나 울어도 울어도 남자들이 왔다.”(‘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본문 109쪽) 1924년 봄 대구에서 태어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이다. ‘아버지가 길에 떨어진 보석을 줍는 꿈’을 꿔 이름이 ‘옥주’였던 귀한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문 할머니는 그렇게 북만주에서 1년을 지내고 외출 허가를 받아 가까스로 한국으로 도망쳤다. 1년 뒤 “일본군 식당에 일하러 가자”는 친구들을 따라 1942년 7월 마쓰모토라는 조선인 남자의 인솔을 받아 미얀마 랑군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군인은 그와 친구들을 보고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 속아서 왔구나. 불쌍하게도. 너희는 잘못 안 거야. 여기는 ‘삐야’(위안소)야.” 울다 지쳐 잠든 밤이 밝자 군인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테(‘방패’의 일본어) 8400부대’에 소속된 그녀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또다시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는 문 할머니와 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6명의 이야기를 모은 사례집이다. 서울시가 2016년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의 결과물이다. 책은 위안부 할머니를 ‘나’로 내세워 생생한 경험을 여과 없이 전하는 구술 생애 방식으로 서술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사진과 관련 자료를 덧붙여 고통스러운 경험을 구체화했다.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태국, 영국을 방문해 ‘위안부’ 자료들에 대한 발굴 조사를 펼쳤다. 정 교수는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을 사전에 조사하고 현지에서 타깃을 좁히는 방식으로 미·중 연합군 공문서, 포로 심문 자료, 기록 사진, 지도 등 300여건의 가치 있는 자료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책에 수록된 노수복, 문옥주 할머니는 지금껏 ‘증언’만 존재했지만 이번 사례집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들도 제시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기록은 피해자들이 끌려가고 귀환하는 과정, 귀환 이후의 삶까지 담았다. 각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동·귀환 경로를 지도로 확정하면서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미얀마 등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걸 확증했다.책은 정부에 피해 등록을 하지 않은(혹은 ‘하지 못한’) 피해 할머니들 이야기도 포함했다. 이들 가운데 작고한 피해자, 중국에 살면서 국적 회복을 포기했거나 국적 회복 중 작고한 피해자, 뒤늦게 피해를 드러내고 정부 등록 과정을 진행하다 작고한 이들도 수록했다. 배봉기, 홍강림, 하복향 할머니 사례다.고(故) 김학순 할머니에 이어 1991년 12월 정부에 두 번째로 위안부 피해 신고를 한 문 할머니는 “친구들은 위안부였음을 밝힌 나를 비난했다”며 “이를 계기로 친구를 잃었고, 또 친구를 얻었다”고 했다. 위안부였던 사실이 알려지며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미얀마에서 지내던 당시 저금했던 돈을 일본 정부에서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하면서, 그리고 일본에 사죄와 배상 요구를 하면서 활동가들과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친구가 됐다. 문 할머니는 “위안부 일을 알면서도 친구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후 공식적으로 등록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239명이다. 30일 안점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생존자는 29명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돌아볼 마지막 때임은 분명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사설] 최악 미세먼지, 중국에 저감 방안 강력 요구하라

    지난 주말 이후 미세먼지 공포에 온 나라가 떨고 있다. 나들이는커녕 집 안에서도 온종일 창문을 꽁꽁 닫아건다. 초미세먼지 수준이 역대 최악인 탓에 청소기를 돌릴 때도 창문을 열지 못할 지경이다. 마스크가 아니라 방독면을 써야겠다는 아우성이 거의 절규 수준이다. 딴것도 아니고 숨 쉬는 일이 힘들어지니 일상을 제대로 이어 갈 수가 없다. 어제 수도권에는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발령됐다. 공공기관 차량 2부제와 함께 서울의 공공기관 주차장들은 전면 폐쇄됐다. 일선 학교에서는 실외 수업을 취소하는 등 부랴부랴 비상 대응에 나섰다. 미세먼지 대란에 분통이 터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제오늘 불거진 문제가 아니며, 하루 이틀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는 치명적 폐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경고가 진작에 쏟아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미세먼지가 심각할 때마다 재난경보나 울릴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중에 미세먼지 배출량을 30%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을 했다. 대책 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으나 지금까지의 성과는 거의 없다. 환경부는 오늘부터 초미세먼지의 하루 평균 환경 기준을 50㎍/㎥에서 35㎍으로, 예보 기준도 두 배로 강화했다. 지난 주말 서울과 경기도의 오염도는 강화된 새 기준치보다 무려 3배나 많았다. 관계 부처와 국회는 열 일을 제쳐 놓고라도 숨 쉬는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고농도 대기오염 긴급조치 등이 포함된 특별법은 국회에서 해를 넘겨 낮잠만 자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뒀다고 이 눈치 저 눈치 보고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이 문제는 그러나 집 안 단속으로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이 30~50%에 이른다는 사실을 이제는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다.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하되 중국에 미세먼지 저감 방안을 강구하도록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과학적 증거 운운하는 중국이 즉각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더라도 꾸준히 압박하면서 실효적인 근거를 축적하는 작업을 더는 늦출 수 없다. 최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중국 춘절 기간의 폭죽이 초미세먼지로 국내에 유입된 사실을 최초로 규명해 화제가 됐다. 지금껏 정부 차원의 과학적인 입증 노력이 없었어도 문제이며, 증거 자료들을 갖추고도 속앓이만 하고 있었어도 문제다. 미세먼지 대책을 한·중 정상급 의제로 다루겠다고 문 대통령은 공약했다. 지난해 장관급 차원의 양국 환경협력센터를 만들겠다고 후퇴했으나 그마저 후속 조치가 없다. “숨을 못 쉬는데, 지금 개헌이 대수냐”는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국민 생명 안전에 침묵하는 정부는 이유 막론하고 존재 의미를 말할 수 없다. 벙어리 냉가슴 앓지 말고 중국에 할 말은 하는 당당한 환경외교를 펼쳐 보이라.
  • 음악 천재 뛰어넘은 연기 천재

    음악 천재 뛰어넘은 연기 천재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주셨어야지!”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비교되며 질투와 열등감의 대명사가 된 살리에리는 무대에서 절규한다. 신의 선택을 받은 ‘천재’와 신을 저주하는 ‘범재’의 대립적 서사는 예술로 변주됐고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낳았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최우수 작품상 등 아카데미 8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아마데우스’(1984)를 고스란히 무대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와 신성로마제국의 궁정 악장인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다. 연극 ‘아마데우스’는 음악극 요소를 극대화한 형식적 차별화가 돋보인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교향곡 25번 등 6인조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원곡을 연주하고, 음악감독 채한울의 창작곡을 배우들이 노래하면서 연극·뮤지컬 혼합 장르의 신선한 실험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노년의 살리에리(한지상·왼쪽)가 “모차트르는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으로 막을 연다. 극은 모차르트(조정석·오른쪽)의 생애를 회상하는 살리에리의 시선을 통해 전개된다. 음악에 대한 욕망과 성실함으로 황제의 궁정 악장이 된 살리에리는 빈에 온 모차르트의 공연을 보고 단숨에 그의 천재성에 매료된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경배할수록 자신의 재능에 한계를 느끼는 살리에리는 현실을 증오하고 신을 저주하게 된다. 연극 ‘트루 웨스트’(2011) 이후 7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조정석은 순수와 방탕의 양극단을 오가는 천방지축 모차르트에 빙의됐다. 특유의 하이톤 웃음소리와 섬세한 감정선을 드러내며 캐릭터 연기의 귀재임을 입증한다. 이에 못지 않게 진가를 드러낸 배우는 한지상이다. 출연 회차마다 만석을 기록하는 조정석의 인기 속에서 관객들이 발견하는 배우가 한지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나 역시 평범함 속에 출발했기 때문에 살리에리의 마음이 와 닿는다”고 하던 그는 ‘인생 캐릭터’가 된 살리에리 역을 탁월하게 소화해 호평받고 있다. 특히 150분(인터미션 20분) 내내 단 한 번도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엄청난 대사와 내레이션, 능청스러운 유머와 고뇌, 모순적인 감정들을 쏟아내는 그는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무대를 꽉 채운다. 특히 조정석과 한지상의 찰떡 같은 케미스트리는 ‘브로맨스’ 드라마인양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 밖에 극 중 오페라 가수 ‘카테리나 카발리에리’ 역을 맡아 무대를 압도하는 ‘아리아’를 부른 손의완,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치열한 드라마를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농축한 이지나의 연출력도 빼어나다. 굳이 지적하자면 무대 뒤편에 어중간하게 자리잡은 6인조 오케스트라를 무대 전면으로 끌어냈다면 음악극으로서의 매력이 제고되지 않았을까. 모차르트를 죽여서라도 그 이름 옆에 기억되는 불멸의 존재를 꿈꾼 살리에리. 세계적인 ‘앙숙’으로 회자되는 두 사람은 실제 서로를 증오했을까. 일단 러시아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퍼트린 살리에리의 독살설은 후대 연구에서 거짓으로 판명됐다. 모차르트는 생전 “내가 빈에서 출세하지 못한 건 살리에리가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투덜댔고, 살리에리 역시 “나만 모차르트를 싫어한 게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모차르트 사후 230여년 만에 두 사람의 관계는 극적으로 반전된다. 2015년 11월 체코 프라하의 음악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오필리아의 건강을 위하여’라는 칸타타 악보가 발견됐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공동으로 작곡한 진본 악보로 확인되면서 둘은 ‘적’이 아니라 친구였다는 게 밝혀졌다. 살리에리 역으로 지현준, 한지상, 이충주, 모차르트 역의 조정석, 김재욱, 성규 등 화려한 ‘트리플 캐스팅’을 자랑한다. 오는 4월 29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6만 6000~9만 9000원. 1577-3363.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특파원 생생 리포트] 로또 당첨자들은 행복할까…대다수가 대박이 쪽박으로

    [특파원 생생 리포트] 로또 당첨자들은 행복할까…대다수가 대박이 쪽박으로

    ‘로또가 과연 인생 역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우리는 항상 돈벼락인 로또 당첨을 꿈꾼다. 또 ‘로또 당첨=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지금의 궁핍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매우 ‘행복’해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매주 서너 명씩 나오는 로또 당첨자들의 소식에 ‘나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에 부푼다. 벼락에 맞을 확률(70만분의1)보다 더 어렵다는 로또 당첨 확률(814만분의1)을 뚫은 사람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답은 제각각 다르지만, 대부분은 ‘노’(NO)라는 답을 얻는다. 최근 미국 뉴욕대 로스쿨 조사에 따르면 복권 1등 당첨자의 파산 확률은 3분의1에 이른다. UC버클리의 심리학자 캐머런 앤더슨 교수는 “갑자기 불어난 재산으로 인한 행복감이 고작 9개월”이라면서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영원히 행복을 누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거액 복권 당첨자들의 삶을 추적한 ‘공짜 돈’(Money for Nothing)의 저자인 에드워드 어겔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된 후 이전보다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뜻하지 않은 대박이 결국 인생 쪽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1월 9일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한 여성이 역대 파워볼 기록 가운데 두 번째, 미국 복권 사상 일곱 번째로 많은 금액인 5억 5900만 달러(약 5950억원)에 당첨됐다. 하지만 이 여성은 익명성을 요구하며 당첨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복권 당첨의 흑역사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즉석 복권인 파워볼을 긁는 게 취미인 시카고의 우루즈 칸에게 10년여 만인 2012년 6월 100만 달러(약 10억원)의 행운이 찾아왔다. 하지만 칸은 당첨금을 일시금으로 찾아온 지 한 달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청산가리 중독사였다. 경찰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고 그의 재산은 아내와 딸에게 돌아갔다. 2006년 1700만 달러(약 181억원)짜리 파워볼에 당첨된 에이브러햄 셰익스피어는 3년 뒤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셰익스피어에게 접근한 여성 도리스 무어에게 암살당한 것이다. 2002년 3억 1500만 달러(약 3556억원) 파워볼에 당첨된 웨스트버지니아의 잭 휘태커는 4년 만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파산을 선언했다. 경제적 파산뿐 아니라 그의 가정도 산산조각 났다. 그는 이혼했고, 외손녀와 딸은 마약 남용으로 세상을 떴다. 2016년 자신의 남은 재산이었던 집 한 채마저 화재로 타버리면서 빈털터리가 됐다. 휘태커는 “전처는 ‘차라리 그 복권을 찢어 버렸어야 했다’고 말하곤 했다”며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파워볼 당첨 복권을 태워 버릴 것”이라고 절규했다. 1985년 390만 달러(약 415억원)에 당첨되고서 몇 개월 뒤 다시 같은 복권 게임에서 140만 달러(약 149억원)에 당첨되는 등 평생 한 번도 오기 어려운 행운을 두 번이나 거머쥔 에블린 베이쇼어는 놀음으로 2000년 재산을 탕진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내 돈을 원했고 내게 손을 벌렸다”면서 “결국 무일푼이 되고서야 ‘돈’에서 해방됐다”고 고백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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