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절규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렉서스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중학생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의사 대체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절기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98
  • 「12·12」­「5·18」 선고/법정 표정

    ◎1996년 8우러 26일 정오의 심판/한특대 권력자가 사형수로/전씨 선고순간 두눈에 경련/노씨는 눈감은채 시종 고개숙여 전두환 피고인은 눈을 내리 감은 채 애써 태연하려 했다.그러나 속마음을 모두 감추지는 못했다. 26일 낮 12시 정각.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동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 방청석은 물론 양 옆 통로까지 방청객으로 가득 찼지만 침 삼키는 소리도 크게 느껴질 만큼 법정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 앉았다.재판장이 「주문」을 읽어내려갔다. 『피고인 전두환을 사형에,피고인 노태우를 징역 22년6월에,피고인 황영시…』 나머지 피고인에 대한 선고는 방청석의 술렁임 속에 묻혀버렸다.모두의 눈길이 두 전직 대통령에게 쏠렸다. 전피고인은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두 뺨의 근육이 불거질 정도로 입을 굳게 다물었다.두 눈은 파르르 떨렸다. 이어 천장을 잠시 응시한 뒤 시선을 떨구는 모습에서 착잡한 심정이 읽혀졌다.평소 습관대로 다리를 떨거나 흰고무신을 신은 발을 꼼지락거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가 일개 사형수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노태우피고인은 눈을 감은 채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공판이 시작된 것은 예정보다 조금 늦은 상오 10시8분쯤. 전피고인은 건강이 많이 호전됐는지 50여일만에 반팔 수의를 입고 나타났다.예의 당당한 자세로 법정에 들어선 그는 판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담담한 표정이다가도 『수많은 광주시민을 살해했고』『집권의 정당성이 없으며』 등 아픈 곳을 찌르는 대목에서는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꾹 다물었다. 노피고인은 시종 고무신을 벗어 놓고 발을 포갠 채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했다.『자위권 발동은 사실상 발포 명령이었다』는 대목에서 잠시 서너차례 고개를 가로저었을 뿐이었다. 낮 12시6분쯤 2시간에 걸친 상오 공판이 끝나고 재판부가 퇴정하자 또 한차례 소동이 펼쳐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전피고인이 담담한 얼굴로 돌아서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준병피고인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어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피고인 등 가까이 있던 과거의 「동지」들과 손을 잡으며 담소를 나눴다. 동시에방청석에서는 『살인마 전두환,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절규가 터져나왔다.광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5·18 동지회」 소속 어머니들이었다. 피고인들은 방호원들에 둘러싸여 총총히 법정을 빠져나갔다.그러나 소복 차림의 어머니들은 끝까지 법정을 떠날 줄 몰랐다.
  • “이런비극 내아들로 끝내야”/순직 김종희 이경 빈소 표정

    ◎“희생 헛되지 않게 친북 폭력시위 근절돼야”/유가족 등 ·같은 학생끼리 이럴수가…” 절규/청주대 재학중 전경 입대 『같은 젊은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한 가정을 파탄에 빠지게 하는 폭력시위를 벌여야 하는 겁니까』 한총련의 연세대 폭력시위 진압도중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사경을 헤매다 숨진 김종희 이경(20)의 아버지 김수일씨(48·건설업·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송죽동)는 장남을 잃은 슬픔에 넋이나가 말끝을 흐렸다. 청주대 사회학과 1학년을 다니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한 김이경의 주검 앞에서 동료들은 『더이상 이러한 희생자가 나와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동료는 『김이경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않는 것은 이 땅에 폭력시위가 사라지는 것』이라며 『김이경이 마지막 희생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나 강심씨(72·경북 상주군 하남면 평원 2리)는 『지난 4월 군에 입대한 종희가 고구마 부침을 좋아해 휴가나오면 주려고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며 울먹였다. 『평생 아들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야 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합니다』 어머니 박귀임씨(45)는 20일 상오 아침식사도중 병원에서 전화가 와 『올것이 왔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연세대에서 1주일간 학생시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소식에 아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가슴 졸이던 김씨는 『그래도 팔다리나 부러졌으려니…』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나 20일 상오 9시부터 3시간에 걸친 뇌수술을 받고도 중환자실에 옮겨진 김이경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21일 하오 9시20분쯤 심전도기의 표시가 끊겨 의사 2명이 긴급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으나 김이경은 끝내 숨졌다. 21일 상오 9시20분쯤 주치의가 회진을 돌며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1% 정도 될 뿐 소생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가족은 사망소식에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하오 12시쯤 김이경의 시신이 영안실로 옮겨지는 순간 가족과 친지 20여명이 모두 오열, 주변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집안의 장손이자 외아들로 평소 효심이 지극하고 순진무구한 성격이었던 김이경은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 했었다. 부대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김영호 수경(22)은 『착하고 고참말도 잘들어 내무반 막내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영안실 앞에는 서울경찰청 1기동대장 김욱 총경 등 경찰간부 10여명과 같은 내무반 소속 의경들이 굳은 표정으로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 소설가 이순원씨 전·노씨 구형공판 방청기

    ◎이제 국민이 심판할 차례다/전·노씨는 구형순간 터진 박수의 의미 알아야 우리 같은 일반 사람들에게 법원이나 검찰청은 왜 그 주변분위기부터 삼엄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서울 형사지방법원 417호 대법정.10시부터 열리는 이 역사적 재판을 구경하기 위하여 진작부터 입장한 방청객들은 숨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앉아 있다.늦게 들어갔는데도 방청석 제일 앞에 자리를 잡고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소복차림의 아주머니들과 베잠방이를 입은 나이드신 촌로들,묻지 않아도 어디에서 올라온 누구인지 알겠다.목발을 짚고 뒤늦게 자리를 찾는 40대 남자의 모습도 눈에 아프게 들어온다.그래서 더 엄숙하게 보이는 법정은 마치 긴 회랑의 한 부분을 잘라놓은 것 같다. 잠시 후 검사들이 들어오고 변호인들이 자리를 채우고,부장판사를 포함한 세명의 판사가 들어왔다.늘 그렇듯 재판부 판사들의 얼굴은 근엄하다.가운데 앉은 재판장이 이 재판의 성격이 피고인들에 대한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중요임무 종사,반란중요임무 종사 등에 대한 것임을 알리며 개정을 선언하고 한사람 한사람 피고인을 호명해 법정 안으로 불러들였다. 전두환.그와 그 이름에 대한 어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그는 하늘색 수의를 입고도 재판장보다 더 근엄한(?)얼굴로 꼿꼿이 들어와 재판부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하곤 지정된 피고인석 앞에 서서 잠시 허리춤에 두 손을 짚어보았다간 자리에 앉았다.검찰이나 방청석을 향해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였다. 노태우.안으로 들어서며 그는 재판부를 향해 인사를 하고 방청석을 향해서도 조금은 곤혹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했다.어쩌면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고 들어 알고 있는 두 사람의 성정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뒤를 이어 유학성,차규헌,박준병,최세창,장세동 등 16명의 피고인이 수의를 입거나 양복을 입은 채로 차례로 들어와 피고인석을 채웠다. 상오 중 공판에선 김경일 전1공수1대대장에 대한 증인신문과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부 보충신문이 있었다.재판부 보충신문에 대해 전두환 피고인은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다시 재판장이 『노태우 피고인도 답변을 않겠느냐』는 물음에 그는『아직 그런 결심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해 작은 웃음을 자아냈다. 전두환 피고인은 마치 봉건시대의 상왕과도 같은 태도로 반란 및 내란 수괴의 피고인이 아닌 한때 만인지상의 권력자로서의 오로지 자신의 옛 영화와 명예만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피고인석에 앉아서도 그토록 자신의 그릇된 명예만을 중시하는 그가 이 재판이 열리기까지 16년간이나 땅에 떨어져 있던,한때는 스스로 「폭도」로까지 몰았던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명예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그리고 상오 공판의 휴정과 함께 터져나온 죽은 사람들의 목숨도 아니고 『어디에 묻었는지도 모를 뼈다귀를 돌려달라』는 유가족들의 절규를 들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판은 하오2시에 속개되어 검찰측의 논고로부터 시작되었다.「현대사의 오욕」이 나오고 「잘못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청산」이 나오고,「역사와 국민 앞에 심판받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사건을 수사했으며,「법은 만민에게 평등하며 어떤 권력을 가진 자라도 법의 천강을 벗어날 수 없다는 교훈을 주는역사의 심판장이 되어야 한다」던 검찰 논고는 그 자체로서는 더없이 준엄하다.그러나 94년과 95년 두 차례에 걸쳐 공식적으로 12·12사건에 대한 기소유예와 5·18 사건에 대한 공소권 없음 등 결정을 내렸던 검찰이 아니던가.그래서인지 그 논고문의 울림까지 준엄하게 들리지는 않았다.논고 도중 전두환 피고인은 애써 검사와의 시선이 마주치길 피했고,노태우 피고인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았다. 이윽고 구형순간이 다가왔다. 전두환 피고 사형.속으로야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방청석도 숨을 죽이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노태우 피고 무기징역.그는 움찔 몸을 떨었다.유학성 징역 15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호용 피고 무기징역. 검찰의 구형이 끝나는 순간 커다란 박수소리가 들렸다.어쩌면 그 박수는 15년만에 처음으로 그렇게 터져 나온 것인지 모른다.우리는 지켜볼 것이다.그들의 죄과도 이 재판도 결국은 우리가 심판할 것이다.
  • 김영현·성석재/시인겸업 소설가,나란히 작품집 펴내

    ◎시의 향기와 소설의 육질 “절묘한 조화”/김­숨겨둔 내면의 소리 모처럼 시원하게 털어놔/성­시같은 짧은 소설로 독특한 개성의 공간 연출 한권의 책에 시와 산문을 함께 담은 작품집 두권이 나란히 출간을 앞두고 있다. 김영현씨의 시소설 「짜라투스트라의 사랑­연적」(문학동네)과 성석제씨의 작품집 「새가 되었네」(강). 연배나 경력 등은 김씨가 성씨에 비할바 없이 앞서 있지만 두사람 모두 시인 겸업 소설가로 은근하게 울리는 아름답고 개성적인 문체를 자랑한다.이번 책에서는 이같은 문체의 특장을 최대로 보여줄 수 있게끔 시의 향기와 소설의 육질을 결합하고 있다. 「짜라투스트라…」는 80년대 작품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로 「김영현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던 진보작가 김씨가 괄호쳐 뒀던 내면의 소리를 모처럼 털어놓은 것.산문과 시를 엮어짜 한편의 극서사시 같은 작품엔 철학 전공의 작가이력이 갈피마다 배어있다. 작품은 서점에서 노철학자의 사연이 담긴 시집과 소설집을 발견한 내가 이를 옮겨적어 전달하는 액자형식.자신의 아름다운 젊은 아내를 딴 남자에게 빼앗긴 노인은 질투심에 두 남녀를 죽이려하지만 젊은 남녀가 꽃피우는 눈부신 사랑을 숨어서 엿보곤 자살결심으로 선회한다.이 노인은 방탕하게 흘려보낸 자신의 젊음을 회고하며〈젊은이들은 늙은이가 되고/그 늙은이의 의자에 앉았다가 사라지고,/다시 새로운 젊은이가 늙어/앞선 늙은이의 의자에 앉았다가 사라지고,/…/존재가 갑자기 무로 될 수 있다니!〉라고 안타까이 절규한다.김씨는 성경,플라톤,아우렐리우스,아폴리네르,베를렌,괴테,백석,성철 등을 종횡무진 인용하며 「태어나 순간의 젊음을 누리다 병들어 티끌로 돌아갈」 삶의 불가항력적 섭리를 토로한다. 이에 견줘 일곱편의 단편을 모은 성씨의 작품집 「새가 되었네」가 시적인 것은 은유를 가득 담은 명징한 문장때문.엽편소설이라 할만한 극히 짧은 소설만 모아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라는 작품집도 펴낸 바 있는 성씨의 작품세계는 시와 산문이 밀고당기는 팽팽한 긴장사이에서 독특한 개성의 공간을 일궈왔다. 그것은 하나의 신화적 상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중심엔 항상 신화와 소문의 존재인 깡패두목이 놓여있다.중심이 아닌 변방지역의 약하고 불우한 소년인 나는 한편으론 그 두목과의 겨루기와 극복을 통해,다른 한편으론 구원의 여인상에 대한 사랑을 통과하며 「남자」가 된다. 한 깡패가 자동차 추락사고로 떨어져 죽기까지 4∼5초간 그 의식세계에 번개처럼 스쳐간 지난날을 투영해 보여주는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는 새로운 소설감각과 이같은 신화적 공식의 결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독특한 문체도 신화세계의 형성에 한몫 거든다.〈나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바로 그 처녀의 눈에 빠졌다.놀람과 분노와 당혹감을 한껏 떠진 눈으로 총알처럼 쏘아보내던 눈빛.희고 검은 부분의 경계선이 지금도 손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뚜렷한 그 눈.동그란 눈.홉뜬 눈.〉〈손정숙 기자〉
  • 시인 김명수·평론가 최영호씨 「내 마음의 바다」 1·2권 펴내

    ◎그리움… 낭만… 애달픔 바다시 모음집 출간/「바다의 날」 제정 기념 해양문학 결산/김소월 「바다」 등 우수작 380여편 망라 『뛰노는 흰 물결이 일고 또 잦는 붉은 풀이 자라는 바다/파랗게 좋이 물든 남빛 하늘에 저녁놀 스러지는 바다/곳없이 떠다니는 늙은 물새가 떼를 지어 쫓니는 바다』(김소월「바다」). 시인 소월이 꿈꾸었던 바다는 초록생명의 고향이자 저녁놀의 은신처,물새들의 낙원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바다엔 『어디에도 붉은 백일홍은 보이지 않고/한숨처럼 뒤척이는 파도소리 뿐』(김영현「남해엽서」),『버려지고 잃어진 희뿌연 폐항위엔 까마귀만 난다』(신경림「폐항」) 그리움과 낭만의 바다를 노래한 경쾌한 서정시에서부터 문명의 때에 절어 신음하는 바다를 애달파하는 「환경고발시」,바닷물처럼 남북이 하나가 되길 기원하는 「통일희구시」에 이르기까지 바다와 관련된 3백80여편의 시들이 한데 묶여져 나왔다. 시인 김명수씨와 문학평론가 최영호씨가 함께 펴낸 현대해양시선집「내 마음의 바다」1·2권(도서출판 엔터).우리 정부가 올해 처음 제정 선포한 「바다의 날」(5월31일)을 기념해 내놓은 이 선집은 그동안 축적된 우리 해양시문학에 대한 결산의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신문학 운동의 선구자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이후 1백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씌어진 우수시편들을 될 수 있는대로 시대적 균형을 맞춰 실었다. 한용운(해촌의 석양),김억(해변소곡),이육사(해조사),심훈(현해탄),유치환(울릉도),조지훈(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서면)등 작고시인 외에 고운기(행당산아,반월 바다야),이성부(믿을 수 없는 바다),오세영(바닷가에서)등 현재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는 시인들의 작품세계가 선보인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통일에의 염원을 「뜨거운 가슴 정성스레 여미고」 절규하는 고운기의 시다.『사람이 못나 갈라져 사는 땅/물이 제 먼저 알고 이루었나니/깊이 깨달아 배우는 게 있거든/반월 바닷물아 외쳐/함흥이나 원산 바닷가에 서있을 마을들이/일제히 머리 들어 우릴 보게하고/그땅에 우리 발길도 옮겨 보아야지/언제까지 바닷물이나 서로 만나게 버려둘 수 있나』(「행당산아,반월 바다야」) 바닷물처럼 분단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그때 우리 바다는 이성부 시인이 읊고 있듯 『외로운 희망이 번뜩이고/고기는 고기의 물을 떠나 육지에서 춤을 추는』(「믿을 수 없는 바다」) 아득한 반가움에 몸을 떨 것이다. 『사는 길이 슬프고 외롭거든/바닷가,가물가물 멀리 떠있는 섬을 보아라/홀로 견디는 것은 순결한 것/멀리 있는 것은 아름다운 것/스스로 감내하는 자의 의지가 거기 있다』고 노래하는 오세영의 「바닷가에서」도 눈길을 줄만한 작품.시인은 바다에 의해 끊임없이 시달리지만 그 도전 속에서 오히려 자신을 발견하고 빛을 발하는 섬의 생명력에 주목한다.이를 통해 시인은 「우직함의 미학」 혹은 견인주의적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다. 바다 뿐 아니라 섬·개펄·항구·부두·연안까지도 포괄해 「바다의 시」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우리 문학공간에서 해양시문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케 해준다.그러나 조병화의 「해변」이나 김태홍의 「해변풍경」등 대표적인 현대해양시들이 누락돼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김종면 기자〉
  •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 현충일(송정숙 칼럼)

    21년만이다.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서도 우리는 선열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현충탑을 스쳐가는 바람소리에서도 우리는 호국영령들의 외침을 들을 수 있습니다.우리는 영령들의 외침에 응답해야 합니다.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에 보답해야 합니다』 너무 오랜만에 우리는 대통령의 육성으로 읽는 현충일 기념사를 들었다.다 읽고난 끝에 잦아드는 목소리로 「대독!」하고 덧붙이는 소리를 듣지않아도 되는 기념사였다.분초를 쪼개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행사에 다 대통령이 참석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그러나 그자리서만은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꼭 보고싶은 자리가 있고 대통령의 육성으로 꼭 듣고싶은 기념사가 있다.현충일은 그런 날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국가의 근본을 생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그리고 목숨을 총탄삼아 나라위해 바친 영령들이,빛나게 발전해가는 조국을 못잊어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날이기도 하기때문이다.그러므로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단순히 추모하는데 그쳐서는 안됨』을 강조하며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통일된 세계중심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으로 삼자고 호소하는 기념사를 듣게된 올해 현충일은 각별했다. 그래서 『온국민이 진실한 마음으로 국가유공자와 유가족,그리고 아직도 병상에서 고생하는 전상자들을 보살피고 위로하는 것을 나라의 기풍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결의에 뜨거운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56년에 훈충일이 제정된 뒤 꼭 40년이 지났다.70년 북한 공작원의 박대통령 위해폭파사건이었던 현충문사고 이후 현충일 추념제전의 의식은 국무총리 참석을 전례로 해왔다.그 의식이 올해로 격상되기에 이른 것이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밀림에서 전사한 전우를 밤마다 보는 괴로움때문에 정신을 앓는 영화가 있다.불타는 밀림에서 피투성이가 된 전우가 손을 저으며 『나를 여기서 데려가 달라!』고 절규하는 악몽이다.그 역시 베트남 베테랑인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위싱턴에 있는 베트남전 기념공원을 찾아간다.그곳의 그 장엄하고도 비장한 검은 기념비에서 깨알처럼 새겨진 전우의 이름을 확인하고,울며 쓰다듬어보고 그리고 소리높이 이름불러 그 전우가 돌아왔음을 느껴보고 나서야 정신증세를 가라앉히게하는 장면이 있다. 전장에 버려진 전쟁용사들을 위해 조국은,그 이름을 확인하고 울며 쓰다듬어보고 소리높이 불러서 위로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우리는 그런 일에 소홀해 왔다.현충일마저 그저 전몰군경 유가족의 제삿날정도로 생각하거나 더러는 그냥 쉬는날로 생각하여 행락인파가 혼잡을 이루는 날로 여기게도 되었으며 조기같은걸 다는 일은 아예 잊고 지내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세월에 퇴색하기 쉬우므로 이런 현상은 적건 많건 나타난다.그러나 제전의 의식이 약해짐으로써 그것을 촉진시키는 허물까지 우리는 저질러온 것이다.게다가 우리는 어쩐일인지 많은 진보연하는 지식인들의 폄하까지 곁들여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운 용사」를 기리는 일을 주눅들게 만들기도 한 혐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잡혀야 한다.그런 계기를 이번의 「의식 격상」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맛보게 한다.그것은 과거 지향의 것이 아니므로 희망이다.사회적 역량을 총동원하여 새로운 국가 목표를 향해 가야 할 지금에 바로 맞는 희망이다.21세기 세계중심국가 건설,한민족 통일국가 이룩,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등 나라의 진운을 걸어야 할 하고많은 과제들을 성취하는 원동력을 그곳에서 우리는 찾을 수 있다.국민안보의식과 애국심 고취는 올바른 시민정신 함양의 기저를 이루기때문이다.「바로 세워지는 역사」의 출발점도 그곳에서 비롯된다. 4반세기 만에야 「격하」를 회복하고 『경건히 머리숙여 명복을 빌며 삼가 국민의 이름으로 추념사를』를 올리고 호국영령들앞에 「빛나는 미래」를 다짐하는 대통령을 보는 일은 안도와 기쁨이다.〈고문〉
  • 비겁한 어른들/눈앞 여중생 성폭행/보복겁나 신고안해

    【원주=조한종 기자】 들에서 모내기를 하던 마을사람들이 하교길 여중생의 『살려달라』는 절규를 듣고도 보복이 두려워 성폭행을 말리지 않은 사건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1일 강원도 원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하오 5시30분쯤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옥산리 지촌마을에서 이웃마을의 H모양(15)이 평소 행실이 좋지 않은 같은 마을의 한성희씨(33)에게 끌려가 성폭행당했다. 이날 H양은 귀가길에 한씨에게 붙잡혀 강제로 끌려가면서 마침 이곳에서 모내기를 하고 있던 3∼4명의 마을 아주머니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외치고 야산으로 끌려가면서도 거듭 『도와달라』고 애원했는데도 이들중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 정보교환의 새 길트기 「문학 장르파괴」(건널목)

    ○…「소설과 시,시와 평론의 결합」.「장르파괴」가 두드러진 흐름으로 자리잡은 요즘 문단에 흔히 볼수 없었던 혼합장르가 나와 절로 눈길을 끌고 있다.계간 「작가세계」여름호에 실릴 작가 조성기씨의 「소설시」와 시인겸 평론가 이승훈씨의 「시비평」이 그것.말 그대로 시형식에 소설적 줄거리나 비평적 내용을 결합한 「혼혈종」들이다. ○…계간지 작가특집에 여러 평자들의 작품·작가론과 함께 실릴 조씨의 「소설시」는 「내 영혼의 백야」라는 제목을 달고있다.지난해 육신의 과로를 의식하지 못한채 1주일간 단식하다 죽을 뻔한 체험을 담은 것.〈저 모습이 내가 딸아이를 보는 마지막 모습인지도 몰라/이런 생각이 들면서도 전혀 눈물 같은 것은 흐르지 않았습니다/…그것은 공포였으나 뭉크의/「절규」같은 공포가 아니라/멀거니 바라보는 공포였습니다〉조씨는 『죽을줄 알면서도 잠도 밥도 취할수 없었던 메마름,영성을 입어 되살아난 신비체험 등을 도저히 허구의 형태에 담을수 없었기에』 소설아닌 「소설시」를 지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이씨의 「시비평」들은 시속에 자기 시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다는 점이 특징.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놓고 다른 평론가와 대담한 것을 시로 재구성하기까지 한다.〈이승훈은 그가/사용하는 바로 그 언어를 부재시키기 위하여/…글을 쓴다 취소와 부재의/기술!그러므로 비평가가 그의 시에서 논해야 하는 것은/그 부재를 가리키는 반복되는 주요 개념들인 구멍,간극,/…그리고 특히 미지수 등이다〉(「크리티포에추리?」중)〈하하하 우린 함께 웃는다/…아아 웃음은/변증법도 죽이는구나 난 웃으면서 부탁한다 윤 교수/나에 대해 잘 써주세요…〉(「윤호병 교수와의 대담」중) ○…시인겸 「작가세계」를 발간하는 세계사 주간 최승호씨는 이런 글들에 대해 『정보화 물결을 타고 시와 산문도 상호 정보교환을 통해 새로운 길트기를 꾀하고 있는것 아니냐』는 풀이를 내놨다.〈손정숙 기자〉
  • 8순 노파의 목메인 절규/박성수 전국부기자(현장)

    ◎“산불 경계령에 하루도 쉬지 못했는데 23일 하오 4시.동두천시청 3층 상황실. 이날 낮 발생한 동두천 소요산 줄기 산불로 순식간에 직원 7명이 희생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실은 울음바다를 이뤘다. 상황실 복도 한켠에는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 온 한 노파가 끝내 몸을 가누지 못한채 실성한듯 그대로 바닥에 나딩굴고 말았다. 『아이구 어떻게 키운 손잔데…』 이날 희생된 녹지과 산림계 이강욱 계장(39·임업6급)의 할머니 임상천씨(88)의 목메인 절규였다.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잠까지 설치며 일을 하더니 끝내 목숨까지 내놓았구나.』 군사지역으로 둘러싸인 동두천지역은 곳곳에 지뢰나 불발탄이 묻혀 있어 산불이 났다 하면 거의 손을 쓰지 못하기가 일쑤다. 지난해 1월 진급과 함께 산림계장으로 임명된 이씨는 그동안 불을 끄기 위해 5차례나 산을 누벼왔다. 평소 친형처럼 직원들을 아끼고 책임감이 강한데다 어려운 살림에 조부모까지 봉양하는 등 효성까지 극진해 부하직원들의 신뢰를 받아왔다. 한 동네 사는 김국한씨(39)는 『이계장은 매일 새벽마다 조부모들을 모시고 약수터를 찾아 이웃들로부터 효성이 지극하다는 칭송이 자자했다』고 말했다. 산림과장 김준만씨(59)는 『이달들어 산불경계령으로 직원들이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후삼국시대 방불” 지역감정 고조(4·11의 변수)

    ◎“핫바짐푸대접” 유세장마다 선동 난무/소지역주의 합세… 정책대결은 말뿐 『아시아 정치발전이 더딘 것은 각종 연고가 정치풍토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스웨덴의 사회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방대한 저서 「아시아의 드라마」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그의 지적은 60년대에 나온 것임에도 21세기 문턱에 와 있는 우리는 아직도 그 테두리 안에서 헤매고 있다.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커녕 여야 정치권은 이를 부추기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한 여론조사 기관은 지역감정이 총선의 최대 변수가 될 것임을 예고 했다.8천9백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지역감정이 6·27지방선거 때 만큼 심할 것으로 보는 응답자가 43.2%,그 이상일 것이라는 답변이 19.7%에 이른다. 이런 조사결과는 총선일이 임박해지면서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유세장을 둘러보면 온통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말들이 난무한다.「후삼국 시대」가 도래한 느낌마저 준다.「강원도 푸대접론」「TK정서론」까지 가세,나라 전체가 이리 찢겨지고 저리 찢겨지고 있다. 지역바람은 호남에서부터 거세다.『나를 국회로 보내는 것은 김대중 선생을 대통령으로 모시는 길』 『백제권이 뭉쳐 김대중 총재는 대통령,김종필 총재는 총리가 돼 한을 풀자』 『DJ의 인간 지팡이가 되겠다』 충청권의 자민련도 가세하고 있다.『6·27의 녹색돌풍으로 이번에도 현정부를 깜짝 놀라게 해주자』 『핫바지의 위력을 보여주자』 이른바 「TK정서」라는 복병을 만난 신한국당 역시 예외가 아니다.『정권은 유한하지만 우리 TK는 영원하다』 『TK와 PK가 힘을 모아 이 나라를 이끌어가자』 『민주화의 성지에서 다시 한번 영광을』 이런 바람을 뛰어넘으려는 후보들의 호소는 절규에 가깝다.『우리나라 국회의원은 2백99명이지만 이를 움직이는 것은 3명이다』 『신한국당·국민회의·자민련은 영남·호남·충청을 대표하는 지역향우회』 『큰 도둑에 빌붙은 작은 도둑을 낙선시키자』 지역감정 조장을 놓고 여야간에 벌이는 「닭과 달걀」논쟁은 극으로만 치닫고 있다.신한국당 허세욱 의원은 『DJ는 경상도에서 경남북을 이간질하고,강원도에서 강원도 수탈론으로 자극하고,제주도는 육지의 식민지라고 팔도를 분할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 했다.이에 국민회의 김한길 선대위대변인은 『스스로 지역감정을 선동하려 드는 치졸한 시도』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현상은 「후삼국시대」로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우리면,우리동네」를 따지는 「소지역주의」로 세분화되고 있는 것이다.시·군통합,선거구 조정 등으로 한 선거구 안에서도 이질적인 지역끼리의 대결구도가 심화되기 일쑤다.최근 총선전 실태를 보면 소지역주의가 총선 변수로 부각되고 있는 지역이 60여곳에 이른다. 고려대 김호진 교수는 『우리처럼 정당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인물 중심으로 선택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는 지역감정의 틀에 얽매여 정당중심으로 선택하는 2중적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 했다.김교수는 『궁극적으로 현대적 민주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가 정치중심세력이 될 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총선에서 뽑힌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2000년까지다.「4월의 선택」이 21세기 발판을 마련해줄것인가,아니면 또다시 과거에 발을 묶이게 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박대출 기자〉
  • 저마다“정치혁신”·“지역개발”목청(4·11총선 합동연설이모저모)

    ◎생활정치·대선자금 공개 등 역설­서울 영등포을/여 “인물보고 선택” 야 「핫바지」 들먹­충북 진천·음성 30일 전국의 각 지역에서 열린 첫 합동연설회는 후보자들이 저마다 정치혁신과 지역개발 등을 내세워 뜨거운 표몰이 대결을 벌였다. 첫 합동연설회에서 기선을 잡기 위해 각 후보들은 단상에서의 유세전은 물론 유세장 주변에서도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유권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다툼도 치열했다. ▷서울 영등포을◁ 봄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대동초등학교에서 열린 영등포을 합동연설회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1천여명의 청중들이 몰렸다. 출마자 전원이 한자리에 모여 유권자들의 평가를 받는 만큼,각 후보들은 각자 「비교우위」를 역설하며 한표를 호소했다.일부 후보들은 상대후보의 연설중 지지자들과 퇴장,눈총을 받기도 했다. 첫 연사로 나선 민주당 김연동후보는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3김정치가 우리의 정치문화를 병들게 했다』며 3김청산에 초점을 맞춰 「명분의 민주당」을 강조했다.이어 등단한 국민회의 김민석후보는 『장학노씨는 매일 1억원의 돈을 챙겼는데 청와대에서 한푼도 받지 않았다는 말을 누가 믿겠냐』며 『김영삼 대통령은 노태우씨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을 공개하라』며 고삐를 죄었다. 자민련 전홍기후보는 『책임정치가 가능한 내각제만이 비자금 등 대통령제의 악습을 바로 고칠 수 있다』며 차별화를 호소했다.「탤런트 최불암」으로 더 유명한 신한국당 최영한의원은 『오염된 정치,파벌정치 나아가 투사정치는 더 이상 필요없다』고 목소리를 높인후 『서민정치 1번지인 영등포을에서 생활정치를 펼치겠다』고 호소했다. ▷인천 남동갑◁ 남동구 구월동 체육공원에서 열린 남동갑 연설회는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 탓인지 청중들이 5백명에 불과했으나 후보들은 인천의 「신정치1번지」답게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KBS 앵커 출신인 신한국당 이윤성후보는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킨 뒤 『잘나가던 방송인 생활을 마감하고 더럽고 치사하다는 정치판에 뛰어든 것은 고향이자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인천을 위해 무언가 해줄 때가 되었다는 사명감 때문』이라며 수도권정비법 완화 등 지역발전을 위한 50개 공약을 제시. 국민회의 유재희후보는 『지난 3년간 김영삼정부는 밖으로 세계화를 외치고 안으로는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고 삼풍백화점·성수대교 사고 등 부끄러운 것들만 세계에 알리고 있다』며 정부시책을 일일이 성토. 민주당 김종용후보는 등단하자마자 자신의 대머리를 만지며 『인천의 고르바초프,김대머리』라고 소개하고 『원내에 진출하면 세금을 도둑질하며 호의호식하는 사람이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강조. 자민련 이상만후보는 『현정부는 사고공화국,교도소공화국,경제파탄공화국으로 이번 총선은 실정을 저지른 집권여당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가 있다』고 맹공. ▷충북 진천·음성◁ 하오 2시 진천군 공설운동장에서는 정치거목으로 키워줄 것을 호소하는 여권후보와 선거혁명을 기대하는 야권·무소속후보들이 열변. 첫번째로 등단한 민태구후보(61·신한국당)는 『4년 키운 나무 한차례 땔감으로 쓰고 말것이 아니라 8년째 키워 못되도 서까래나 대들보감으로 키워달라』며 충북도지사 등 요직을 지낸 자신의 경력과 14대 국회에서의 의정활동을 소개. 두번째로 나선 박병남후보(43·국민회의)는 『지난 13대때 야당후보를 당선시킨 진천군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달라』며 『농민을 사랑하는 농민의 아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선거혁명을 후손들에게 이번에 보여주자』고 한표를 부탁. 또 정우택(42·자민련)후보는 『더 이상 충청도 핫바지론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자민련후보에게 표를 몰아달라』고 절규. 구자웅후보(47·민주당)는 장학로 사건을 들어 『자기집 안방이 썩는 마당에 어떻게 남의 부정을 치유하겠느냐』며 3김정치 종식을 강조. ▷경북 구미갑◁ 구미공단 운동장에서 1천5백여명의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구미갑 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4명의 후보들은 근로소득세 인하와 노동관계법 개정 등 봉급생활자들을 위한 공약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며 지지를 호소. 특히 공천때부터 경합을 보였던 신한국당 박세직후보와 자민련 박재홍후보는 「화려한 경력」과 「지역 공헌도」를 내세워 양보없는 공방을 보였다.신한국당 박후보는 국무위원,국가안전기획부장,서울시장,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의 경력을 내세우며 『2천년대에 구미에 전자 산업박람회를 유치해 정부가 구미의 발전을 위해 돈을 쓸수 있도록 하고 경북도청을 유치해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 시킬수 있도록 하겠다』고 호언. 자민련 박후보는 『정부 여당은 선거철만 되면 공명선거를 내세워놓고 묘하게 야당을 박해하고 있다』고 비판. 이어 민주당의 윤상규후보는 3김씨를 맹공격한뒤 근로소득세를 50% 감면하고 사교육비를 줄이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공약. ▷광주동◁ 중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합동연설회에는 이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로 청중이 4백여명에 불과했으나 초반 기선을 잡으려는 후보들의 유세 열기는 화끈. 첫번째 연사로 나선 국민회의 신기하후보는 『장학로씨가 37억원의 뇌물과 떡값을 챙긴 사건을 계기로 김영삼 대통령은 청와대의 모든 전·현직 비서관을 파면하고 수사하라』고 포문을 연 뒤 『유일 야당인 국민회의에 표를 몰아달라』고 호소. 민주당 김범태후보는 『민주당은 분가해 나간 작은집(국민회의)이 잘되길 바라는데 작은집은 큰집(민주당)을 여당의 2중대라 부르며 욕만 한다』며 『어떤 사과가 썩은 사과인지 진짜인지 유권자들이 비교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국민회의를 겨냥. 신한국당 조규범후보는 『이 지역 국회의원들은 특정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지금까지 지역주민을 무시하고 지역구 관리를 소홀히 해왔다』고 인물론을 제기.〈전국 종합〉
  • 시집·산문집 동시 출간 시인 황명걸씨(인터뷰)

    ◎“손주들에 시인 할아버지로 기억 되고파” 시인 황명걸씨(61)가 20년만에 두번째 시집 「내마음의 솔밭」(창작과 비평사)을 펴내고 산문집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만든다」(지구촌)도 묶어냈다. 『돈도 안되는데 시는 써서 뭐하나 싶었는데 환갑을 넘겨 손주를 품에 안고보니 그게 아니더군요.그녀석들한테 할아버지가 괜찮은 시인이었다는 얘기 하난 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여기저기 발표했던 시들을 한데 모은 「∼솔밭」은 시인의 생각이나 삶의 변천까지 자화상을 그린듯 보여준다.「요지경 난세」「절규」「궁핍의 나날」에선 단속할 수 없는 젊음의 열정이 치기와 맞물려 있고 「피그미에게」「난지도에서」「민초」「대장균이란 놈」같은 시들엔 참여시인의 형형한 눈빛이 살아있다.하지만 나이들어 쓴 최근 시들은 역시 도통한 인생론쪽으로 기운듯하다. (「백로 훨훨」중에서) 산문집 「한 마리의 제비∼」에는 톨스토이,졸라 등을 빌린 인생론부터 유럽여행기,50년대 명동을 함께 쏘다닌 동료문인이나 화가 등에 얽힌 에피소드 등이 잡다하게 모아져 있다.술과 도박으로 시도 잊고 「험하게」 살아온 젊은날을 고백하는 진솔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북한강이 보이는 양평 한자락에서 화랑카페 「무너미」를 경영하고 있는 시인은 『자연에 묻혀 늙어가다보니 삶과 죽음에 대한 시상이 새록새록 솟는다』며 앞으로의 활발한 시작을 다짐했다.
  • “봉사활동 수혜자 입장도 헤아려야”/허길남(공직자의 소리)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열등감에 빠진 나머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주부가 있었습니다.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자원봉사에 참여하면서 긍정적이고 자기개발에 힘쓰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봉사한 셈이 되었습니다.만일 이 주부에게 자원봉사의 기회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근 한 세미나에서 발표된 글의 서두이다.봉사활동이 사회적으로는 물론 개인에게도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임을 웅변해 주는 사례이다.봉사를 받는 사람은 물론 봉사자 스스로도 큰 보람을 얻는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최근 자원봉사 활동이 각계 각층으로 확산되는 중이다.전국에서 활동하는 자원 봉사자가 줄잡아 1백만명,많게는 3백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는 이러한 국민의식의 전환기를 놓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봉사할 수있는 동기를 일깨우고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정부와 자치단체가 자원 봉사자를 안내하는 복덕방을 만들고 자원봉사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단체에는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도고려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원봉사 활동의 양적 팽창과 함께 질적 향상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신체 장애자이면서 나름대로 명성을 지닌 한 시인의 절규를 보자.『자원 봉사자들은 나를 교묘하게 파멸시킨다.때로는 나를 응석부리도록 만들고 자주 액세서리로 만들기도 한다.심지어 나를 여름휴가의 과제로 여기기도 한다…』 자원봉사 활동이 일방 통행으로 펼쳐지고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말이다.봉사를 「받는」 사람들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규이다. 자원봉사를 여가선용,또는 금전적 여유에서 베푸는 자선으로 여긴다면 곧 봉사의 수혜자를 더욱 불행에 빠뜨리는 죄악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애써 모은 헌 옷이나 책이 당사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낭비이다.봉사는 숭고하고 아름답다는 맹목적인 생각에서,봉사의 형태나 내용을 도외시한다면 큰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봉사를 받는 측의 감정과 수요를 무시한다면 자칫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알아야 한다.봉사의 계획과 시간의 운영을 봉사자와 그 대상자가 정성껏 논의하고 합의해야 한다. 올해부터 중·고교생의 종합생활 기록부에 봉사실적이 반영되면서 자원봉사에 참가하는 인구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봉사활동 인구의 저변이 확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그러나 우려할만한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봉사활동을 학부모가 대신하고 확인증을 받아 가는 사례까지 있다니 말이다. 자원봉사는 나에게 귀중한 시간이나 물건을 남에게 양보하는 것이어야 한다.또 그런 아쉬움이나 섭섭함을 봉사자 스스로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맨홀빠진 50대 9일만에 극적 구조/동진컨설팅 직원 조성철씨

    ◎연말 망년회서 만취… 귀가중 추락/인근 주민이 “살려달라” 신음 듣고 신고/어둠속 헤매며 하수물 마시고 견뎌 지난달 28일 하오 망년회를 마치고 술에 취해 귀가하다 맨홀에 빠져 하수관에 갇혀 있던 50대 남자가 9일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6일 상오 1시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삼창골든빌라 103동 옆 깊이 4m,한변이 각각 2m인 삼각기둥 모양의 맨홀에서 조성철(51·동진컨설팅 자문위원·강동구 둔촌2동)씨가 119구조대에 의해 구조됐다. 이 빌라 105동 310호에 사는 김충배씨(41)는 이날 담배를 피우기 위해 베란다에 나왔다가 하수관쪽에서 『사람살려』라는 희미한 소리를 듣고 119 구조대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초소방서 119구조대(대장 이광수·53)대원 8명은 맨홀 뚜껑을 열었다. 『아래 누구있습니까』라는 구조대원의 물음에 『예,살아있어요』라는 조씨의 또렷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구조대원은 사다리로 3m 아래에 내려가 5분만에 조씨를 구조했다. 초췌한 모습의 조씨는 두터운 코트차림에 다리와 머리에는 방수와 방한을 위해 하수관에서 주운 비닐을 쓰고 있었다. 강남성모병원에 옮겨진 조씨는 얼굴과 손등에 약간의 찰과상과 동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건강상태가 좋았다. 조씨는 사고가 난 지난달 28일 하오 7시부터 서초구 방배동 중국음식점 「함지박」에서 동료들과 망년회를 가졌다.10시쯤 만취한 동료 이요한씨(31)를 택시에 태워준 뒤 반포동방향으로 걷던 중 어딘가에 빠져 의식을 잃었다.취기를 느껴 정신을 추슬렀을 때 그의 앞엔 칠흑같은 어둠만 있었다. 조씨는 주변에서 주운 긴 막대기를 쥐고 하수관 벽을 두드리며 출구를 찾아 끊임없이 걸었다. 허리를 굽혀야만 할 정도의 하수관이 나오기도 했고 막대기로 닿지 않을 만큼 넓은 곳도 거쳤다.하지만 긴 하수관 속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그는 바깥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람살려』,『사람이 갇혀있다』고 힘껏 외쳤으나 반응이 없었다.배가 고플 땐 바닥에 고인 비교적 깨끗한 물을 골라 마셨다.여기저기 버려져있는 스티로폴을 깔고 새우잠을 청했다. 생존의 유일한 희망인 「출구찾기」를 반복하면서 그는 힘이 있을 때마다 『사람살려』라고 외쳤다. 그의 절규는 마침내 바깥세상의 김씨에게 전달됐고 새 삶을 열어주는 광명으로 이어졌다. 조씨는 현대건설 과장으로 일하다 지난 93년 동진컨설팅에 입사,신축공사 때 전기배선 등에 대해 자문하는 자문위원직을 맡고 있다. 그의 가족들은 『한달에 20일 이상 해외 등으로 장기출장을 가는 경우가 많아 이번에도 출장을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 러 록음악계 스타 빅토르 최 앨범 출시

    ◎타이틀곡 「변화」 외 「별」·「전쟁」 등 수록 한인 3세로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적 존재로 추앙받는 빅토르 최의 두번째 앨범 「변화」가 출시됐다. 옛 소련체제하의 암울했던 민중의식을 대변하는 저항의 음유시인인 그의 이번 두번째 앨범에는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의 개인적 애창곡이자 범국민적 노래였던 타이틀 곡 「변화」를 비롯,답답한 사회주의 현실의 타개를 토로한 「여름」「별」「자아성찰」「전쟁」「혈액형」등 그의 대표곡들이 수록돼 첫 앨범 「마지막 영웅」의 아쉬움을 채워주고 있다. 일반적인 록밴드와는 달리 복잡하지 않으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록음악을 사용해 흐느끼듯 절규하는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는 빅토르 최의 매력을 이번 앨범을 통해 다시한번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CD자켓의 표지를 빅토르 최 자신이 직접 그린 자화상으로 장식해 눈길을 끈다.
  • 장백현 민간 예인(압록강 2천리:8)

    ◎민족혼 담긴 「함경도 수박춤」 사라질판/예인 김학천옹 와병… 생활고로 은둔 생활/중앙정부 지원금 적어 유·무형 문화재 관리 엄두 못내/한글판 잡지 「장백」… 재정난으로 발행 중단 장백현에는 문화전반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문화관이 있다.문화예술은 물론 체육과 오락,성인교육활동을 담당해온 장백현문화관은 지난 194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이 문화관은 현안에 92개 촌단위 문화실과 연계되었다.문화실은 대개 저마다 특색을 가진 문화오락활동을 벌여왔다.반달이나 한달을 주기로 여는 노인무도회·장기대회·문예공연·이야기회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촌 문화실마다 마치 공통과목과 같은 별도의 활동이 또 있다.어느 촌이든 농악대를 운영하는 것이다.특히 태양촌 농민악대가 유명하다.지난 1989년 길림성 혼강시(장백은 혼강시 관할에 속함) 제2차 농민문예공연에서 1등을 차지한 농악대다.이러한 일련의 성과는 장백현문화관의 문예보도사업의 성과이기도 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장백현문화관은 19 92년부터 3년간 내리 길림성 전체에서 2등 자리에 올라서는 영예를 안았다.기관지로 한족어 위주의 「장백문화보」와 한글판 「장백」잡지를 내고 있다.「장백」은 제5호를 끝으로 마감했다.그 이유는 재정난 때문이었다.국가에서 해마다 주는 16만원의 사업비로는 20명 직원들의 임금을 주고나면 전화비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악대 촌 단위로 운용 장백현문화관장은 조선족 문단에서 꽤나 문명을 날리는 이성태 선생이다.중편소설 「도도히 흐르는 압록강」을 발표한 이후 여러 문인을 길러냈고 많은 전설과 문화유산을 발굴한 장본인이기도 하다.그는 문화관의 어려운 살림을 하소연 삼아 털어놓았다. 『문화사업은 본래 돈을 들여야 되는 일이 아니겠습네까.그런데 지난달 15일 장백조선족자치현 창립기념 조선족예술절 경비로 문화관 수입이 벌써 거덜이 났디요.문화유산 발굴은 커녕 문화재 관리도 어려운 판이야요.그 유명한 민간예인 한분이 병환에 계신줄 알면서도 도움을 못드리고 있디요.한국 같았으면 인간문화재라 해서 생활보장은 될텐데…』 그의 민간예인이라는 말이귀에 번쩍 들어왔다.아니나 다를까 와병 중이라는 민간예인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진 김학천(64)노인이었다.그는 장백현문화관장을 지낸 동생 김학현(60)선생과 함께 지난 1990년 요령성 단동에서 열린 전국 소수민족문예콩쿠르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분이다.그 때의 수상작품은 수박춤이었다.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심사위원들이 며칠 계속된 콩쿠르에 지쳐 꾸벅꾸벅 졸다 수박춤을 구경하던 관객들의 박수에 놀라깨어 침을 흘리면서 춤에 도취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김학천·학현 형제는 울로초를 가지고 미니스커트 모양으로 짧게 엮은 치마만을 팬티위에 걸치고 무대에 올랐다.수박춤에는 이렇다 할 악기반주가 없다.다만 주연격인 형이 발가벗은 사지를 이리저리 치면서 입으로 갖가지 소리를 냈다.그 소리는 바람,우레,비,짐승,새 소리 등 무궁무진했다.동생은 함지박 물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두들겨 형의 손바닥 장단을 따라 맞추었다.흥이 한껏 돋아나면 형이 여러 형태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리고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몸을 손바닥으로 쳤다.이들 일가는 함경북도 단천군에서 지난 1962년 77세로 작고한 아버지 김달순대에 장백현으로 들어왔다.이주지는 14도구 간구자였는데 슬하에 아들 넷과 딸 하나를 두었다.아버지가 가보로 여긴 수박춤은 셋째 아들 김학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다.이미 고인이 된 맏아들은 목청이 나빠 아버지 마음에 들지 못했고 둘째는 조선(한국)전쟁에 나가 부상을 입고 집에 돌아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부친한테서 전수 받아 그리고 넷째 아들 김학현은 어려서 집을 나와 공부를 하다가 조선전쟁에 참전하는 바람에 면제를 받았다.그렇지만 그 핏줄이 그 핏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음악재질이 뛰어났다.넷째는 공부도 제대로 한터라 1959년 장백현문예공작단(문공단)이 생겨나면서 부단장과 단장을 지내고 장백현문화관장을 끝으로 사회공작(사회생활과 일)을 마무리 했다.지금은 농사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우리 문공단은 통화지구에서 유일한 조선족단체여서 현 밖을 자주 나갔디 않았겠수.통화,유화,임강,혼강,휘남 같은 도시에 나가면 극장이 미어졌수다.인근 농촌 조선족들은 찰떡을 해서리 기차를 타고 버스도 타고 와서 친척집이나 여관에 묵으며 관람을 했지 않슴메.도시공연이 끝나면 농촌을 돌았는데 돈과는 거리가 멀었지비.그래도 인심이 좋아 동구 밖까지 와서 환대했댔수다.어떤 사람들은 타지로 떠나면 짐을 지고 따라와 같은 공연을 며칠씩 보기도 했으니 인기가 대단했디우』 김학현 선생과 함께 그의 형님 김학천 노인을 찾아나섰다.집은 장백현 14도구진에 있었으나 겨울이 오기전까지는 늙은 양주가 더 멀리 떨어진 골짜기에 들어가 과수농사를 짓는 중이라고 했다.차가 더 기어올라갈 수가 없어서 맑디맑은 물이 흐르는 도랑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포수막을 닮은 귀틀집이 보였다.좁은 마당에 배추며 부추가 자랐다.그러나 지난해 옮겨심었다는 사과나무는 몸살에 걸려 아직 사과 한톨도 매달고 있지 않았다. ○올로초 치마입고 춤춰 그 집에서 나오던 김학천 노인은 우리 일행을 보고 반겨 맞았다.나이에 비해 너무 겉늙었으려니와 허리가 잔뜩 굽어 1m67㎝라는 키가 1m20㎝도 안되어 보였다.얼굴의 피부는 소나무껍질 같이 주름 투성이었고 러닝 밖으로 드러난 살결이 무척이나 검었다.설상가상으로 근육위축병에 걸려 손발이 쪼그라 들었다.목불인견의 몰골 그것이었다. 노인은 윗옷을 훌훌 벗었다.그리고 벽에 걸린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모처럼 찾아온 나그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동생 김학현선생도 따라서 울로초 치마를 걸쳤다.노인은 손바닥으로 앙상한 몸골을 치면서 갖가지 소리를 내고 앙천대소 하기도 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려 희로애락을 연출했다.인간의 마지막 절규로 들려왔다.노인의 눈가에는 땀인지 눈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운 물기가 어렸다.초점을 잃은 노인의 동공이 풀린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나는 허공을 바라다 보았다.
  • “마약없는 사회 만들어주세요”(사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다 자살이라는 길을 택한 30대 윤모씨의 절규는 마약의 인간성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 가를 말해주고 있다.『후회하면서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다.그게 사람의 정신까지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또 손을 대게 되고…마약없는 사회를 만들어 주세요』라는 그의 절규는 우리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마약폐해에 대한 고발이라고 하겠다. 윤씨의 비극적인 종말이 우리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는 것은 그가 마약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친 고통과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 처절해서만은 아니다.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는 그에게 우리사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이다.그의 유서에서 발견된 마약공급책들의 명단은 마약 공급조직이 우리사회의 저변까지 얼마나 깊이 파고 들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마약은 개인의 생활을 파괴할 뿐만아니라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유엔마약위원회(CND)와 긴밀한 협조아래 끊임없는 단속을 펴고 있지만 최근에는 회사원·주부·학생층까지 파고들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검찰의 통계에 따르면 한 분기에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91년 3백78건에서 올해 9백68건으로 5년새 2백56%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마약의 중간 공급루트에서 최근 소비지역으로 변한데다 그 공급·판매·수요 조직이 은밀하게 이뤄져 추적이 어려운 실정이다.마침 검찰이 마약밀매에 대응하기 위해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마약단속인원을 현재 70명에서 3배로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윤씨와 같은 비극을 막기위해서는 국민 각자가 마약의 끔찍한 해독을 자각하고 우리 가정과 사회를 지키는 일이다.서울신문사가 마약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모두가 마약없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사회를 이루는데 동참하길 바란다.
  • 5·18/송복 연대 교수·정치사회학(서울광장)

    「5·18」은 우리 현대사의 아킬레스건이다.누가 집권을 하고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위기의 소지는 결코 가시지 않을 것이고,그로 하여 정치는 내내 진통을 겪을 것이다. 「5·18유혈참극」이 있은 8년후 이 비극적 역사를 캐내는 「5공 청문회」가 열렸고 그리고 4년후 대통령선거 때엔 김대중 후보의 「국민대화합」선언도 있었고,그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에 묻자」는 스테이트먼트도 있었다.그러나 잊을만 하면 다시 상기되고 잊을만 하면 다시 들고 일어나는 것이 「5·18비극」이다. 우리는 그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도 했고 「민족중흥」이라고 할만큼 새로운 역사도 일으켰다.공산주의 콤플렉스,적화통일의 위협에서도 상당한 정도 벗어났고,드디어는 자유민주주의의 빛나는 승리,흡수통일의 위업을 이룩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가졌다.그러나 이 「5·18」의 비극은 그대로 남아 있다.그 참극을 당한 사람들의 그때 그 상처의 치유는 커녕 그 아픔조차도 달래주지 못하고 있다. 야당에서 주장하는 대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그때 그진실이 밝혀지고 그 아픔이 줄어들 수 있을까.「5공 청문회」에서처럼 제대로 규명되는 것은 없이 세상만 더없이 소란해지고,정치만 더욱 혼란해지고,이 세계화시대 나라의 위신만 천인단애로 추락하는 것이 아닐까.그리고 다시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게 되지 않을까. 미상불 그렇게 될 것이다.그것이 우리가 겪어온 역사다.우리 역사 뿐아니라 총체적으로 인간의 역사 자체가 개인의 아픔과 관계없이 흘러가고 또 흘러왔다.마키아벨리는 그의 「군주론」에서 개인의 선과 역사의 선을 구분하고 있다.개인에게 있어 선이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악이 될 수 있고,개인에게 있어 악이 역사에서는 얼마든지 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늘상 쓰는 「역사적 행위」라는 말은 그의 이같은 개인 선과 역사 선의 분리에서 나왔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며 늘 개탄하는 것은 역사의 현실과 인간의 가치가 이렇게 서로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역사의 현실은 선한 자의 편에 서 있는 것도 아니고,사람들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며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어느 역사든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그 시대,그 사회의 가치지향적 인간들이다.그러나 그 인간들이 만드는 그 역사는 그 인간들이 바라는 가치대로 진행돼 가지 않는다.사람들은 누구나 「역사의 정신」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절규한다.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 정신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다.그러나 그 역사는 그 역사의 논리대로 움직여갈 뿐이다.역사는 오직 역사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조선조 5백년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 전반에서 가장 정통성 없는 왕은 수양대군 세조라 할 수 있다.세조만큼 가장 명분없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해가며 왕의 자리에 앉은 군주는 없다.그의 치적도 부왕 세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그렇게 왕위에 앉고도 재위기간은 13년에 지나지 않는다.그런데도 그의 시호는 아버지 「세종」보다 더 위업을 드러내는 「세조」가 돼 있다.시호는 왕이 죽은 뒤 그의 공덕을 높이 받들어 바치는 이름이다.그 이름이 부왕보다 더 위대했다.그리고 그의 사후 조선조 20대 왕들은 모두 그의 자손들이다. 조선조의 의기로운 남아들이 그냥 넘어갈리가 없다.세조가 죽은 30년 뒤 그의 부당한 왕위찬탈을 고발하는 글을 사초에 올렸다 하여 또 한 차례 값진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비극이 있었다.그것이 역사에서 말하는 무오사화다.그럼에도 오늘날 국민학교 학생들의 역사교과서에까지 세조는 좋은 임금으로 칭송돼 있고,「성공한 쿠데타」는 「성공한 사례」로 그려져 있다. 사마천은 그의 명저 사기열전 제1권 백이편에 이렇게 「역사」를 혹평하고 있다.『사람들은 하늘은 선한 자의 편에 선다고 말한다.그런데 행동이 궤도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고(조행불궤),세상에서 해서는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하는 데도(전범기위),일생이 편안하고 부는 자손대대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가더라(이종신일락 부후루세불절).반대로 땅도 골라서 밟고(택지이도),꼭 때맞춰 발언을 하고,공정한 일이 아니면 절대로 분노하지 않는데도(시연후출언 비공정불발분),재앙을 만나 죽는 자 그 수는 헤일 수가 없더라(이우화재자 불가승수).도대체 이놈의 세상,천도가 있느냐 없느냐(당소위천도시야 비야)』 역사란그런 것인가. 2천년전이나 이제나 하나도 다름이 없다. 역사적 허무주의가 우리의 가슴을 친다.
  • 극작가 차범석(이세기의 인물탐구:83)

    ◎리얼리즘 바탕 「정통극 파수꾼」 40년/대표작 「산불」 전쟁의 인간파괴 신랄하게 묘파/부당한 것 거부하는 「연극계 면도칼」로 한평생/최승희 무용보고 「무대 인생」 예감… 이해랑·유치진 문하서 엄격한 수련 희곡작가 차범석은 연극계의 로맨티시스트다.동숭동 마롱카페에 나가보면 젊은 연극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는 맥주를 마시며 연극과 인생을 논하고 있다.「주역만 있고 조연 없는 연극은 있을 수 없다.우리의 삶은 큰 배역만 탐내는 한편의 연극 같이 보이지만 작은 배역 없이 큰연극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파우스트보다 메피스토 텔레스가 진짜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역이듯이 무대 구석구석에 세워둔 단역조역들의 몫에서 극중 희열과 비감,완미가 성취된다.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는 것과 같이 깊고 다양한 여러 경험이 크고 광활한 연기력을 키운다」고 후배들을 가르친다. 한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가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퇴장하기까지 그것은 하나의 삶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다.그런만큼 배우는 등장도 중요하지만 퇴장도 중요하다.막을 내리기가 무섭게 분장을 지우고 무대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자기포기와 무책임」이 느껴지지만 연기의 온기를 오래도록 가슴에 담는 배우의 모습에선 「비장미가 넘친다」고 찬양해 마지않는다. 그가 63년부터 20년이나 이끌던 극단산하를 해체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연극을 지상목표로 삼으려는 의지는 눈비비고도 찾아볼 수 없이 연기를 가르쳐 무대에 설만하면 그들은 철새처럼 돈을 따라 텔레비전으로 가버린다」고 했다.「연극은 집단예술인만큼 인간적인 결합 없이는 아무런 작업도 가능하지 않다.그럼에도 정신적인 반항이 없는 정지된 예술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껍질을 깨는 아픔을 모르는 젊은이들이 환멸스럽다」고 그는 한 글에서 개탄하고 있다.이어서 「기대할 수 없는 것에 얽매어 질척대는 것은 자기비하이자 존재를 흩트리는 추일 수 밖에 없으며」「부나비처럼 떠도는 인간불신풍조속에서 나만이 홀로 절개와 의리를 지키는 것은 명분 없다」고 절규했다. 적자를 면치못하는 극단의 영세한 상황속에서도 「산불」「밀주」「대리인」「손탁호텔」등 알찬 창작극으로 꾸준히 「좋은 무대」를 이끌던 산하는 「연기자의 연극정신부재」「저질공연우려」등을 내세워 83년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채 이렇게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칠순의 나이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만년청년 같은 그는 옛 예술가의 낭만과 니힐과 반항과 순수를 지금도 면면히 지니고 있다.그가 「한달이면 29일」을 술을 마시는 이유는 사람들과의 따사로운 온정에 굶주려 「정을 마시기 위해 술잔을 든다」는 것이며 인생의 어둡고 뒤틀린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긍정에의 동경이 너무 강한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 40년간 「연극계의 면도칼」로 불리면서 그는 과연 부당한 것을 굳이 옳다고 양비론을 펼치거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할 수 있다고 과장한 적이 없다.연극상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무의미한 공연기록과 긴 연륜을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질과 연기력을 따져 날카롭게 자격여부를 가려낸다.또한 스스로의 조로를 경멸하여 연극의 모든 일에 은근히 참여하고 옳바른 소리를 주저 없이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기나 교변」 사물에 대한 심정의 움직임에서 세말적인 기미대신 싱그러운 미소로 만사를 감싸기 때문에,각층의 폭넓은 호감을 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단산하를 잃은후 그는 한국연극협회 이사장,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대한민국예술원회원과 청주대 예술대학장등 여러 역할을 전전했다.86년에는 88올림픽을 앞둔 88서울예술단 초대단장에 임명되었으나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창단기념 시연회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관련장관이 코를 골고 잔 것에 자존심을 심하게 상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진 씁쓸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간과 함께 그의 까다로운 일면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고 반항과 증오와 충동에서 시작한 초기의 경험을 버리고 「삶이란 양파를 벗겨내듯 아무리 벗겨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서서히 깨닫게 되었나보다.그 때부터 톡쏘는 옳은 소리를 줄이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계신공구의 자세로 전환했다. 그의 지나온 인생은 평온한 중에 끝 없는 파고가 잔물결처럼 파동치는 것이 남과 다르다. 목포의 개화되고 풍족한 집안에서 일본 메이지대(명치대) 법학과를 나온 차남진씨의 3남3녀중 차남. 남부러울 것 없는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집안의 서고에 파묻혀 아리시마 다케오(유도무낭) 무샤노코지 사네아쓰(무자소로 실독)의 소설에 탐닉하고 일본 히메지(희로)고교에 시험을 보러갔다가 낙방하고 돌아오는 길에도 후지자와 다케오(등택)의 「신설」을 가슴에 품을 만큼 열렬한 문학지망생의 시기를 보냈다.어릴 때의 아명은 평균.광주고보시절 목포 평화극장에서 열린 최승희무용공연을 보고 「정중동의 미세한 움직임과 끊어질듯 이어지고 멈춘듯 움직이는 유현미와 고담미」에 반해 그는 훗날 「무대」와 관련을 갖게 되리라는 예감을 굳혔다. 그는 철저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다. 뒤늦게 23세에 대학에 진학해서 문자그대로 「경마장의 말처럼 정해진 코스를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엄격한 스승인 이해랑 유치진문하에서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정통극」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연극계는 언제부턴가 「리얼리즘의 희곡작가」 또는 「리얼리즘의 파수꾼」으로 그를 부르게 되었다. 「나름대로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쳐왔다.나라는 인간은 일관성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온 모순덩어리라는 생각 때문이다.그 증거로 나의 인생행로에는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이 없다.적극적인 동참이나 협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그렇다면 나는 뭐란 말인가」.그러나 평론가 유민영은 「그의 작품은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구시대의 붕괴와 전후의 사회변화,변천하는 사회속에 갈등하는 개인의 삶을 끈질기게 묘파」하고 있고 특히 대표작 「산불」은 「전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인간을 파멸시키는 가를 미사여구나 기교 없이 신랄하게 파고든 리얼리즘 희곡의 최고봉」으로 손꼽고 있다. 지난해 출판한 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에서 그는 「지금까지 나는 대과 없이 살았고 욕심부리지 않았고 하고싶은 일과 가고싶은 길을 지칠줄 모르고 살았으니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영원한 동반자인 박옥순여사와의 사이엔 3남2녀.자녀는 모두 출가하고 송파구 가락극동아파트에서 부부가 노후를 함께 하고 있다. 언제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소시민」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은 서릿발 같은 차가운 이성을 정으로 융해시킨 처절한 삶의 애가와 뜨거운 인간애의 정수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는 참으로 「큰배우」의 역할이 아닐 수 없다.이제 그의 퇴장은 「한편의 좋은 작품」을 남기는 일이며 연극계가 그를 두고 「이시대 마지막 휴머니스트」라고 한 말대로 그는 지금도 동숭동 마롱카페에 앉아 「배우가 되기전 먼저 인간이 될 것」을 젊은 연극인들에게 당부하며 그의 「정」을 높이 치켜들고 있다. □연보 ▲1924년 전남 목포 출생 ▲1942년 광주고보 졸업후 도일 ▲1946년 연희전문 문과 입학 ▲1949년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 희랍극 「오이디푸스왕」연 출 수상 ▲1951년 처녀작 「별은 밤마다」 공연(목포문화협회 주최)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밀주」당선,제작극회 창단 ▲1961∼71년 문화방송 제작부장·편성부국장 역임 ▲1962년 「산불」 초연(국립극단) ▲1963∼83년 극단 「산하」대표 ▲1965년 이대·연대 출강 ▲1966년 연세대 영문과졸업,국제PEN대회 뉴욕회의 참가 ▲1968∼74년 한국연극협회이사장 ▲1969년 신연극 60주년기념 「그래도 막은 오른다」 공연 ▲1972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사 ▲1973년 예총부회장 ▲1975년 ITI베를린회의 참가 ▲1978년 ITI한국본부 부위원장,대한민국연극제 심사위원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정회원 ▲1983년 서울극작가그룹 발족,회장 ▲1984∼86년 청주예술대학장 ▲1986년 서울88예술단장 ▲1988년 청주대 교수협의회회장 ▲1991년 「연극의 해」집행위원장 대한민국 예술원회원·한국연극협회이사·공연윤리위 심의이원 희곡집 「껍질이 째지는 아픔없이는」「대리인」「산불」「학이여 사랑일레라」「식민지의 아침」,수필집 「거부하는 몸짓으로 사랑했노라」,고희기념문집 「목포행 완행열차의 추억」,차범석문학전집(12권·융성출판)등 대한민국 문화예술상(70)·대한민국 예술원상(82)·동랑연극상(83)·대한민국 문학상(91)·이해랑연극상(93)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