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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송 미술관/개관 25돌 특별전

    ◎국보 135호 등 진경시대 걸작품 망라/회화·조선최고 도자기 등 130점 전시 조선후기 문화의 절정기로 불리는 「진경시대」의 미술품을 종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민간 고미술 전문미술관인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개관 25주년을 맞아 마련한 「진경시대전」.6월2일까지,762­0442. 진경시대는 숙종조로부터 정조때까지 1백25년간 조선고유의 색을 찾아낸 시기로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표암 강세황,단원 김홍도,혜원 신윤복등의 거장을 낳았다.이번 전시는 간송측이 이 대가들의 작품경향에 따라 우리 산하의 실경과 함께 그 산하에 어린 정신까지 담아내겠다는 뜻으로 소장품 가운데 진경시대의 것 모두를 내놓은 흔치 않은 자리.회화와 도자기 1백30점이 눈길을 끈다. 이 진경시대 작품은 미술관을 탄생시킨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때 미술경매장 등에서 사들였다.전선생은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과를 졸업한 후 일제하에서 민족문화전통의 단절을 막기 위해 민족문화재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고 미술사연구의 요람을 세운다는 각오로 보화각을 세웠으며 이 보화각이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됐다.이번에 나온 미술품은 각고 끝에 모은 것으로 국보 제135호인 신윤복의 「전신첩」과 31세때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열린 경매에서 힘겹게 구입한 보물 제241호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란국초충문병」등 30점이상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전신첩은 초상화 30폭을 묶은 것으로 산수풍경과 주변배경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있다.조선후기 풍속화 개척자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으며 「청화백자…」는 조선 최고의 자기로 평가되기도 한다. 전영우 관장은 『조선 진경시대 문화는 당시 세계 최고수준급으로 손색이 없다』면서 『이번 전시는 조선왕조의 업적을 고의로 폄하해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려 한 일제 식민사관 불식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성호 기자〉
  • 불상속 보물/반영환 논설고문(외언내언)

    한 권의 책이 능히 역사를 바꿔놓는 경우가 있다.알려져 있지 않은 새로운 사실을 공개하기 때문이다.중간 고리가 끊어져있는 공백을 메워주는 이같은 책의 발견은 학계를 흥분시킬뿐 아니라 학문 연구성과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그러나 이러한 발견은 바닷가에서 바늘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뒤 그것을 세상에 반포하기 위해 지은 책이 「훈민정음」이다.훈민정음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국보 70호로 지정돼 있지만 국보 1호가 돼야한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할 정도.1943년 문화재 수장가로 유명한 간송 전형필이 거금 1만원에 안동지방에서 구입한 것이다. 이 책으로 훈민정음의 원리와 「서문」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엊그제 발표된 월인석보 한권은 국문학사나 서지학적으로 깜짝 놀랄 대발견이다.그동안 세조가 편찬한 월인석보를 24권으로 추정해 왔으나 권25까지 있다는 점,또 세종이 친히 지은 월인천강지곡의 시 7수를 추가로 밝혀주고 있기 때문.세조때 발간된 초간본이란 점도 이 책의 귀중성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 귀중한 고서의 출처는 장흥 보림사의 목조 사천왕상 몸속이다.20여년 전에도 이 곳 사천왕상에서 월인석보 한권이 나온 적이 있다.2백여권의 불경과 함께 불상의 복장품으로 수습된 것이다.옛날에는 불상을 조성한 뒤 봉안의식을 치르고 법당에 모셨다.그 의식에서 텅 비어있는 불상의 몸 안에 불경이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넣는다.불경은 부처님의 말씀이므로 법신이라고 해서 진신사리와 동일하게 여겼다. 월인석보가 간행된 것은 1459년,5백30여년 전이다.그런데도 발견된 책의 상태는 매우 훌륭하며 인쇄도 선명하다.그 비결은 무엇일까.목조 불상 안의 습기도 내뿜고 저절로 환기도 되는 쾌적한 공간이었을 것이다.사천왕상 내부의 나무도 생생했다고 한다.의식으로뿐 아니라 불경의 보존까지 함께 생각한 과학적 예지가 아닌가.
  • 유출 문화재(외언내언)

    일제하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가 일본으로 유출되는것을 안타까워한 간송 전형필선생(1906∼1962)은 「문화적 항일」의 방법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다.일본인에게 빼앗겨서는 안되는 중요한 문화재는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구입,전설적인 일화들을 남기기도 했는데 군수 월급이 70원이던 당시 거금 1만4천여원을 던져 일본인에게 경매되기 직전의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보물 241호)을 사들인것이 그 한 예.백석지기만 되어도 부자 소리를 듣던 때 황해도 일대의 방대한 토지와 종로의 상권을 장악했던 선대의 유산 10만석을 그는 고미술품 수집에 고스란히 바쳤다. 그렇게 수집된 우리 문화재가 소장돼 있는 곳이 서울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이곳의 소장품중 「훈민정음」원본,혜원 신윤복의 「풍속화첩」등 20여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소장품에 대한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아 모두 몇점의 문화재가 이곳에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질에 있어서 국립박물관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간송의 선각자적인 안목과 혼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일본에 유출됐다.해외 유출문화재의 약 60%가 일본에 있어 세계 15개국에 유출된 우리 문화재 5만4천6백55건 가운데 일본에 3만1천2백23건이 있는것이다(문화재관리국 집계).그러나 이는 박물관등 공개된 곳에 전시된 것만을 밝힌 공식집계일뿐 개인소장품등까지 합한다면 6만건도 넘을것으로 추정된다. 청와대의 한 당국자가 일본의 대중예술시장 개방과 관련,한국문화재 반환 문제를 다시 제기했다.일본대중예술과 한국문화재의 관계가 어떻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다시 찾는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그리스 문화상 멜리나 메르쿠리처럼 문화재 반환을 위한 끈질긴 외교활동을 펴는 한편 민간차원에서도 간송의 대를 잇는 우리 문화재의 역수입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그를 위한 행정지원도 물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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