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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유일 폐지 공예가 이제성 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국내유일 폐지 공예가 이제성 씨

    흥미진진 ‘그리스 신화’의 한토막이다. 지혜로 가득찬 ‘실레노스’가 등장한다. 술과 풍요의 신(神) ‘디오니소스’의 양부이자 스승으로 전해진다. 어느날 실레노스가 미다스의 왕국에 잠시 머무를 때 길을 잃어 위험한 고비를 맞았다. 그러자 미다스는 실레노스를 구하고 극진한 대접을 한다. 이를 전해들은 디오니소스는 고마워서 미다스에게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제의했다. 미다스는 자신의 손이 닿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미다스가 만지는 것은 죄다 황금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미다스도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손대면 짠’ 하고 황금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배가 고파 먹으려 했던 음식도, 반갑게 포옹하는 딸도, 또 잠자리에서의 부인도 모두 황금으로 변해 버렸다. 결국 눈물의 참회를 하게 된 미다스는 다시 디오니소스에게 소청을 철회해 달라고 부탁했고 신의 명령에 따라 파크톨로스강에서 목욕을 하고 원상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 일이 있은 뒤부터 파크톨로스강에는 사금(砂金)이 나온다는 전설이 생겼다. 기원전 700년쯤의 일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미다스의 손’은 일상 생활에서 수사적 표현으로 통용될 만큼 널리 사용된다. 어떤 경쟁에서 자주 ‘대박’을 터뜨리거나 기업 등에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인물을 일컬어 종종 이에 비유한다. ‘미다스의 손’처럼 정말 손이 닿기만 하면 감쪽같이 ‘보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 주변에 버려지는 모든 것들을 주워다가 생명을 불어넣어 진귀한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또한 이 시대에, 환경오염으로 찌든 때를 벗겨 만들어낸 ‘청량한 보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끈다. ●폐지·폐품 모아 10년째 공예품 만들어 이제성(60·대전시 판암동)씨. 국내 유일의 ‘폐지 공예가’로 명성이 자자하다. 말 그대로 생활 주변의 온갖 폐지와 폐품을 모아 각종 신출귀몰 공예품을 만들어낸다. 그의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1998년 외환위기(IMF) 때 구조조정의 쓴맛에도 좌절하지 않고 국내 최초로 폐지 공예품을 개발한 지 10년째. 그동안 면봉이나 이쑤시개를 꽂아놓는 작은 통에서부터 꽃병, 쌀통, 스탠드, 가방, 모자, 촛대, 연화탑 등 폐지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도무지 믿기지 않을 불멸의 작품만 500여점에 이른다. 1998년 ‘대전사랑 생활용품 공모전 대상수상’을 비롯, 이듬해 ‘제7회 전국 폐품 생활용품 공모전’ 은상,2006년 ‘제8회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 창작아이디어 분야 동상 등 각종 수상기록만 수십차례.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데다 손재주가 남달라 언론매체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그가 만든 공예품은 신문지 등 종이류가 기본재료이고 음료캔, 일회용 약병, 버려진 요구르트병 등 안 쓰이는 게 없다. ●IMF시절 실직 아픔 딛고 새 분야 개척 특히 그는 실직의 아픔을 전화위복으로 삼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데다, 자녀 둘까지 떳떳하게 결혼시켜 이래저래 훈훈한 감동을 선사한다. 게다가 1급 정신지체장애인 부인과 임대아파트에 단 둘이 살면서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하는 미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씨의 조그마한 작업실인 대전시 판암동의 ‘한국 폐지·폐품 공예원’을 찾았을 때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신문지더미를 옆에 잔뜩 쌓아 놓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지금은 경기도 양평군민회관 전시를 위해 대부분의 작품을 보낸 관계로 이곳에는 얼마 없다.”며 반긴다.5평남짓 작업실 안에는 성인 키만 한 높이의 ‘연화탑’이 놓여 있었다.“저건 신문지 300장 정도 들어갔다. 만드는 데 한 3개월쯤 걸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문지, 광고전단지, 쌀포대, 현수막, 비닐끈 등 웬만한 것은 다 재료로 사용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폐지의 경우 흑백, 컬러 등 색깔별로 물에 축여 둘둘 만 다음, 날줄과 씨줄의 엇꼬기 방식으로 엮어나가면 살아있는 작품으로 재탄생된다고 했다.“버려진 분유통, 약병, 각종 캔 위에 폐지를 입히면 꽤 쓸 만한 것들이 생겨난다.”면서 비록 종이가 재료지만 둘둘 말았기 때문에 강도가 뛰어나고 어느 정도의 습기는 오히려 흡수해 버리는 장점이 있어 물건으로서도 튼실하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게 됐을까. 이씨는 산수유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에서 태어났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중학을 중퇴하고 일찍부터 농사를 지었다. 이때 어깨너머로 멍석 엮는 것을 배웠는데 깨알조차 안 새도록 촘촘히 잘 만들어 동네 어른들한테 칭찬을 자주 받았다. 그러던 중 대전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형의 권유로 결혼 직후 대전으로 이사했다. 출판사 일을 돕다가 나중에는 유통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IMF 때 두 아이를 둔 가장 이씨는 실직하게 된다. 눈앞에 찾아온 것은 절망뿐이었다. 실직자, 누구나 그러했던 것처럼 하루종일 구인·구직란이 게재된 ‘벼룩시장’ 등을 끼고 돌아다녔다.1998년 초 쌓인 신문을 쓰레기통에 버리던 중 문득 ‘이걸 새끼 꼬아 뭔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른다. 어릴 적 고향에서 멍석을 엮던 실력을 새삼 떠올리며 이리저리 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패도 많았다. 신문종이의 결이 세로라는 것을 아는 데만 해도 3개월은 걸렸다. 수저통, 쓰레기통 등 집안에 필요한 것부터 만들어 나갔다. ●가정형편 어려워도 사회에 보탬 ‘뿌듯´ 1998년 12월 대전시 새마을 부녀회에서 주최하는 폐품활용 공모전에 처음 출품했다. 여기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이제성’이라는 이름과 함께 작품의 존재가치가 세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록 경제적 보탬이 되지는 않았지만 폐지를 이용,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 그에게는 새로운 보람으로 다가왔다.‘폐지공예가’라는 이름이 국내 처음으로 붙여졌다. “제작방법은 이렇습니다. 폐지를 2∼3㎝ 너비로 결따라 쭉쭉 오려서 적당한 양의 물을 뿌려 축인 후 꼬아서 지끈을 만든 다음 전통 짚공예법을 응용하지요. 생활쓰레기도 줄이고 우리 전통 지승공예법도 배울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아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부인은 1983년부터 원인 모를 병을 앓아 지금은 정신연령이 세 살짜리 아이에 불과하다. 집을 나가도 못 찾아오기에 항상 같이 다녀야 한다. 아들, 딸이 장가·시집간 것도 모른다. 어쩌다 남편 이씨를 보고 알아보는 듯 웃을 뿐이다. 매일 식사와 빨래를 해주는 것도 이씨의 몫. 그의 심성만큼이나 “배운 것도 없고, 또 모아둔 재산도 없지만 세상에 한번 태어났으면 사회에 뜻 있는 일 하나는 하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의미있는 물음을 던진다. 아울러 환경문제, 자라나는 청소년에 대해 절박한 각성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인다. 폐지와 왜 씨름하는지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그는 또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농한기때 일거리 없는 시골사람들이 공동으로 폐지공예 작업을 해 농가수입에 보탬이 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같은 뜻이 곧 실현될 전망이다. 지난 2월과 3월말 경기도 양평군민회관에서 전시를 열어 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또 고향 친구들이 앞장서서 ‘지방무형문화재 지정’의 필요성을 행정관청에 건의했다. 이와 함께 폐지·폐품 재활용 테마공원을 만드는 것 또한 소망이다. 그래서 비록 가난하지만 ‘오늘도 걷는다마는’ 쓰레기통을 열심히 뒤지고 있다. ■ 프로필 ▲1947년 양평 출생. 중학 중퇴후 농사일에 전념. ▲80년 결혼 직후 대전 이사, 출판사와 유통업에 종사. ▲98년초 외환위기(IMF)때 실직. ▲98년 4월 국내 최초 폐지 공예품 개발. ▲98년 12월 제1회 대전사랑 폐품이용 생활용품 공모전 대상 수상. ▲99년 11월 제7회 전국폐품 생활용품 공모전 은상 수상. ▲2005년 6월 제35회 공예품대전 및 제8회 관광기념품 공모전(창작아이디어 분야) 동상 수상. ▲07년 경기도 양평군민회관 초대전 등 수십차례 전시.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이 거대한 ‘술통’속에선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다

    이 거대한 ‘술통’속에선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다

    글 박재곤《산따라 맛따라》저자, www.sanchonmirak.com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안성 서운산의 북쪽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 31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스무 살 나이에 3·1독립선언서를 영역, 해외에 보내고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 는 논개의 높은 절개를 노래한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 선생은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을 남겼다. 명정(酩酊)의 명(酩)은 ‘술 취할 명(酩)이고, 정(酊) 또한 ‘술 취할 정(酊)’이다. 그러고 보면 ‘명정 40년’은 ‘술 취하고 술 취한 40년’이라는 뜻이겠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몇 날 몇 밤을 앉은자리에서 꼬박 새우며 술을 마셨다는 얘기부터 배꼽을 잡고 웃어야만 할 ‘술 취한’ 얘기들이 수두룩하다.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월간 《山》에 등장하는 등산만화 ‘악돌이’도 이제 40의 나이로 접어 드는데 돌이켜 챙겨보니 어느 한 달 술 안 마셨던 달이 없었다. ‘악돌이’는 만화의 주인공이지만 만화를 그리는 박영래 화백 바로 그 사람이다. 악돌이는 천하에 이름 높은 술꾼이자 산꾼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의 아내는 악처(惡妻. 岳妻)가 되었다. 홍두깨 같은 빨래방망이가 아니면 연탄집게를 하늘높이 쳐들고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 잡으려 악을 쓰는 악처다. 악돌이는 이 악처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고는 도망을 치듯 산으로 간다. 덕분에 악돌이는 세상이 알아주는 공처가가 되고 말았다. 등산 헬멧을 눈까지 가릴 정도로 깊숙이 내려쓰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계속 범하면서도 어김없이 매달 산행을 하고 어김없이 술을 마신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장마 중의 나흘 동안 경기도 안성땅 서운산 주변을 헤매다가 마지막날 우리는 ‘대한민국 술박물관’이라는 거대한 술독으로 빠져들었다. ‘술박물관’이라는 ‘술독’에서 자꾸 떠오른 인물이 바로 수주 변영로 선생과 악돌이 박영래 화백이었다. ”술도 엄연한 하나의 문화인데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던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서운산의 북쪽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 31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국호 대한민국을 술박물관 이름으로 쓰고 있다기에 첫 느낌은 ‘지나치구나’ ‘건방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지만 박물관을 둘러보고 박영국(朴泳國. 51) 관장을 만나보고서는 금방 그런 생각의 경솔했음을 뉘우쳤다. 슈퍼마켓과 술 도매점을 운영하며 술에 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박 관장은 세상에 태어났다가 스스로 무엇 한 가지라도 남겨야겠다는 신념에서 23년 전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버려진 양조장이나 고물상을 닥치는 대로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 다녔다. 고물상에서 술병 하나를 찾으면 2~3일 동안 일을 도와 주고 그 병을 얻어 왔다고 한다. 남들이 하찮게 보는 병마개 하나 얻으려 외진 시골을 찾아가느라 십만 원 정도의 교통비를 뿌린 경우는 부지기수로 꼽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에게 지금은 전국 각지의 고물상이 자료수집의 창구가 되어 있고 돈독한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고도 한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한 그가 이제사 건물을 북향으로 지어 술병의 상표가 빛에 바래지지 않도록 하는 등 독특한 형태의 2층 건물에 박물관의 문패를 걸었다.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우리 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쳇도리(깔대기)와 소주를 받는 증류기인 소줏고리, 내린소주를 보관하는 기기인 술춘 등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술빚기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두밥을 짓고 발효시켜 청주와 소주를 만들어내는 전통주 제조과정도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소주·맥주·와인·양주·전통민속주 등 다양한 술의 광고와 홍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민속주에 대한 기록이 담긴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와 조선시대 술에 대한 예법을 그린 향례합편(鄕禮合編) 같은 희귀본도 소장해 놓았다. 대형 술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옥외 전시장에서는 술꾼들의 추억과 흥미를 돋우는 장면들이 즐비하다. 전통주를 직접 빚을 수 있는 부뚜막 시설과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치는 술방에서 술빚기 시연을 보고 스스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거대한 ‘술통’속에서는 술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어디까지나 박물관일 뿐, 술을 마시는 주장(酒場)은 아니다. 전시된 34,000여 점의 자료들은 지금까지 모아 온 자료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태산보다도 더 크다며 즐거워하는 박영국 관장. 그는 전통주를 보존 계승하는 일에 계속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며 술체험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던 원대했던 꿈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수주’나 ‘악돌이’같은 당대 최고 주당들의 면면들도 자신의 술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임을 밝혔다. 문의: 031-671-3903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0) 다예사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30) 다예사

    봄빛이 완연하다. 겨우내 자연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일깨웠다. 자연은 모든 사람들의 환상같은 것이다. 그러나 자연속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괴로움과 공포를 느끼곤 한다. 이번 겨우내 일지암 초당은 황금빛 베이지색 지붕없이 지내야 했다. 한번 내리면 20∼30㎝씩 쏟아지는 눈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외국자격증 남발 ‘茶 사대주의’ 경계를 초당 지붕을 얹는 인근 마을의 일꾼들은 그냥 손을 묵히고 있어야 했다. 입춘이 지나 땅속 깊이 잠복해 있던 얼음이 풀리던 날에야 겨우 초당지붕 얹는 작업이 시작됐다. 어느새 얼음에서 풀려난 붉은 땅들이 고슬고슬하다. 일지암 초당 운력이 끝나자 순천의 눈이 크고 순박한 차농사꾼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땅이 풀렸으니 자신의 다원을 한번 방문해달라는 것이었다. 다원의 이름은 ‘土父茶園’. 땅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경건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대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그는 타고난 차 농사꾼이다. 상사호가 바라보이는 20도 넘는 경사지에 한폭의 수채화 같은 다원을 8년만에 일궈냈다. 차밭을 비껴 물이 흐르는 계곡을 손질하고, 소나무와 진달래를 가꾸는 데서 나아가 온 동네사람이 참여하는 작은 생산공동체를 일궈냈다. 밤낮없이 땅을 일구고 차를 돌보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진짜 차농사꾼이라고 한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유기농 차농사를 위해 온몸을 던지고 있다. 우직하게 한길로만 차를 만들고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권한다. 그런 그의 눈에서는 맑은 차의 진향이 있다. 차는 진실하고 맑은 마음자리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산비탈을 홀로 8년을 거닐며 일궈낸 차밭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아름답다. 한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면 그같은 작업들이 바로 우리의 차를 지키는 지킴이다. 오늘 우리의 차문화는 급속히 분화하고 있다. 차 품평회며 다예사, 한·중·일 등 각국 다도의 맥을 공부하는 다양한 장들이 늘어가고 있다. 급속히 확산되는 차문화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은 바로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는 일의 부족이다. 일본의 다풍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뒤 그것을 마치 우리의 다도인 양 공부시키는 차인들이 있는가 하면, 중국(타이완)의 다예사 자격증을 무분별 남발하는 차인들이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우리가 짚어야 할 점은 바로 중국과 일본 다풍에 대한 무분별한 ‘우리화’이다. 우라센케, 오모도센케의 일본다풍을 마치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의 다풍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이다. 일본의 다풍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70년 초부터다. 당시 거의 멸절된 한국의 다도는 효당 최범술, 의재 허백련, 응송 박양희, 금당 최규용 등 몇몇 다인들에 의해서만 교류될 뿐 일반 차인들에게까지 전수되기에는 역량의 한계가 분명했다. 그런 틈을 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일본의 대표적인 다풍들이 우리 차인들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그런데 그 차풍들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검증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우리 전통다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풍조가 일각에서 인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그런 일본의 다풍을 일본다도의 대표적인 종가에서 공부한 일본인 차 선생들이 직접 국내에 들어와 가르치고 있다.70년대 초반 미국의 문화를 최고로 치고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이던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 일본이 차문화의 최강국으로 인정받는다고 해서 일본의 차문화를 수입할 만큼 우리의 전통차문화가 빈약하지 않다. 우리 전통차문화의 원류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깊고 넓은 역사의 푸른 광맥을 갖고 있다. 다음은 중국 다예사 열풍이다.‘묻지마’보이차에 이어 우리 차인들에게 마치 음습한 안개처럼 스며들고 있는 것이 바로 ‘묻지마’다예사 열풍이다. 현재 중국에는 수없이 많은 다예사들이 있지만 아직 다예의 기준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물론 중국은 차의 역사로 볼 때 그 원류랄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의 차문화가 부활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문화혁명으로 인한 차 생산기반과 차문화 파괴의 영향권에서 이제 막 벗어나기 시작했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차생산은 걸음마 단계에 있다. 그런 점에서 수십년 나이를 먹었다는 보이차는 제대로 된 제품이 아닌 불량품이다. 건강을 위해 마시는 보이차가 바로 건강을 해치는 약이 되어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예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한국의 차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무분별하게 다예사 자격증을 취득해온다. 마치 그 다예사가 훌륭한 차인의 증표인 것처럼 여기면서 그들은 자랑스럽게 우리 차인임을 내세운다. 많은 차인들이 ‘차의 사대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중국과 일본에서 배워온 차심평도 예외일 수 없다. 우선 다예사처럼 품평사 자격증을 취득해온다. 각자 배운 대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차를 심평하지만 심평기준이 없으니 오류가 생김은 당연하다. 이같은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차인들의 노력도 배가되고 있다. 대한민국 차 품평대회, 대한민국 명차 품평대회 등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들이다. 차를 연구하는 곳도 마찬가지다. 보성 도립차 시험 연구소, 원광대·부산동의대·부산여대·순천대한국녹차연구소 등에서는 향, 탕색, 맛 등의 재질과 우린잎, 외관 등 외질을 통해 차의 품평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차의 품평은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쌓는 중요한 작업이다.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는 차의 품질은 생산자나 소비자 사이에 신뢰를 쌓음으로써 그 품질을 한층 더 발전시킬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차 품질 향상을 위한 품평기준 마련이 긍정적인 것은 차문화계 인사, 차 생산자, 차 연구자, 차 소비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공통의 장이 꾸준히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제주에서 마련된 세미나는 그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차와 관련된 한국 차인들이 다 모여 녹차 평가기준을 설정하기 위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향후 우리 차 현실에 맞는 심평기준안을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 그같은 일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한국차 품평기준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 자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매우 많다. 불과 몇해 전 일이다. 차인구가 늘어가고 차 소비량이 증가함에 따라 차의 브랜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자 명차선정을 위한품평대회가 곳곳에서 열렸다. 이른바 한국명차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생산자들 사이에서 무리한 명차 만들기 경쟁이 벌어졌다. 생산량의 유무와 상관없이 명차 브랜드로 선정됨은 유리한 마케팅을 선점하는 것으로 여겨져 명차 출품용 차를 만들기위해 올인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차 품평대회는 대회 당일 차 생산자가 출품한 100g단위 차 몇통을 심평하는 수준이었다. 차 생산자들은 명차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팽개치고 오로지 명차 몇통을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그래서 탄생한 명차는 이름만 명차였다. 심평이 끝난 후 시중에 나오는 차는 그같은 등급을 맞출수 있는 차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같은 명품차 생산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차인들이 새로운 기준을 가진 품평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최근의 품평대회는 차 생산자도 모르게 열리는 경우가 많다. 차 생산지에서 생산되는 차와 일반시중에서 유통되는 차를 한꺼번에 구입, 차 생산자도 모르게 품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은 남는다. 우선 생엽의 생산시기나 채다·제다법이 서로 다른 차를 함께 비교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심평기준. 차가 지역적 특산물이라고 한다면 각 지역마다 차의 분류법이 보다 세분화돼야 한다. 한발짝 더 나아가서 첫물차, 두물차, 끝물차, 여름차, 가을차 등 계절차에 대한 심평이 각 시기에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품평에 쓰이는 용어의 정립도 시급하다. 심평용어의 정립에 있어서 차의 외형과 내질을 우리의 기준에 맞게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차인구 500만시대를 맞아 우리차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목들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갖는 것은 우리 차문화를 한차원 발전시킬 수 있는 시금석이다. 우리 차문화를 찾기 위해서는 두가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규방다례 선비다례 생활다례 등 전통의 수많은 행다예법을 제대로 정립해야 한다. 고전이라는 고고한 장강의 흐름속에 내재한 전통다법을 있는 그대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다도를 연구할 다도학에 대한 투자와 결실이 필요하다. 또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 우리차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가열찬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현실에 맞는 심평과 품평, 그리고 다예사 등을 배출하기 위한 기준을 생산자와 소비자 연구자 차문화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한국차문화 바탕을 만들기 위해 한발짝씩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 일지암 암주 ■ 묵은차 맛있게 만들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차인들은 햇차의 진향이 그리워진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차나무들을 보면 엄마가 아이를 기르듯 대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마음이 부산해진다. 그러나 한해를 건너온 묵은 차들은 그맛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차의 맛을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보관이 매우 중요하다. 병차, 이른바 발효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맛과 향이 진해지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녹차는 다르다. 묵은 차일수록 그 맛과 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매년 알맞은 양을 한꺼번에 준비해 잘 보관해야 한다. 일부 차인들은 차를 보관하기 위해 따로 저온냉장고를 준비하기도 한다. 그러나 웬만한 차인이 아니라면 차 전용냉장고를 준비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묵은차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차를 마시기 전에 살짝 볶는 것이다. 번거롭고 예민한 일이기는 하지만 다른 냄새가 배지 않을 깨끗한 프라이팬을 준비한 후 뜨겁게 데워 살짝 볶아 먹으면 햇차의 향을 즐길 수 있다. 또다른 방법도 있다. 워머(warmer:찻물이나 차를 따뜻하게 해주는 차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요즘 차인들 사이에서 애용되는 워머는 두가지로 사용된다. 하나는 우려낸 찻물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차담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경우이다. 그것은 매우 통상적인 워머의 기능이다. 밤에 차담을 나눌 때 워머위에 놓인 투명한 찻그릇과 찻빛깔은 보는 사람, 마시는 사람 모두에게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해준다. 또 다른 워머가 있다. 돌이나 쇠 워머이다. 워머위에 묵은 차를 올려놓고 열을 가한 후 그 차를 우려내 마시는 것이다. 그때 워머는 차를 다시 한번 볶는, 이른바 가향처리의 기능을 한다. 가향처리된 차는 햇차의 맛과 향을 온전하게 회복하지는 못하지만 묵은차의 체증을 덜어버려 햇차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3∼4년이나 묵은 차도 같은 방법으로 가향처리를 하면 잃어버린 차맛을 일정정도 회복할 수 있다. 묵은 차를 볶아서 새롭게 마시는 것 역시 차를 마시는 비방 중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차를 마시는 비방이 아니라 찻속에 깃든 화·경·청·적의 진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우선이다. 차의 종류를 구분하고 질이 좋은 물을 사용하고 차의 분량을 가늠한 다음 물을 끓여 차를 마시는 행위는 차의 진정한 모습에 다가가는 체(體)와 용(用)의 진미를 알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요즘들어 차를 잘 음용하기 위해 현대적인 차구들이 많이 도입되고 있다.‘크로스 오버’란 것이 차문화에도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차 문화가 도입되고 실험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차문화가 중장년층의 전유물을 넘어 어린 학생, 젊은 청년들까지 함께하는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문화적 접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감 익는 청도 ‘감 좋다’

    가을 청도는 풍요롭다. 국내 최대의 감 생산지답게 청도는 진홍빛 감에 폭 싸여 있다. 파란 하늘 아래에서 붉게 물들어가는 반시(盤枾)를 따는 농부의 모습은 가을의 넉넉함을 느끼게 한다.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운문사 비구니의 예불 소리는 아늑한 가을의 품속에 안긴 듯 마음이 편하다. 새벽을 여는 운문호의 물안개는 가을을 더욱 호사스럽게 한다.‘맑은 길이 있는 고장’이라는 뜻의 청도(淸道). 그 곳에 가면 높고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 여유로운 전원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파란 하늘에 홍시가 걸렸네 청도에는 감나무 천지다. 감나무 밭인지 마을인지 구분 하기 힘들 만큼 가는 곳마다 온통 감나무다. 추수가 한창인 논과 밭, 산등성이, 마을 담장은 물론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까지 감나무가 즐비하다. 때문에 청도의 가을 하늘은 붉은 감과 어우러져 유달리 높고 푸르다. 차를 달려 비슬산 자락에 있는 풍각면 상수월 마을에 들어서자 때묻지 않는 시골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호박 넝쿨이 휘감긴 돌담과 도리깨질을 하며 깨를 터는 농부, 하늘을 향해 갈고리가 달린 긴 장대를 휘두르며 감을 따는 농부의 모습에서 시골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감이나 하나 맛보소.”감을 따던 마을 주민 정육지(71)씨가 갓 딴 홍시를 건넨다. 환갑도 채 안돼 보이는 그의 나이를 듣고 놀라자 “감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라며 농을 건넨다. 정씨는 “청도에는 흔한게 감나무여, 우리 동네 감은 씨가 없어서 먹기에도 좋아.”라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청도하면 으레 소싸움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감의 고장이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감이 연간 2만여t. 전국 생산량의 20%에 이를 정도로 국내 최대 생산지다. 주민의 70% 이상이 감농사에 의지해 살고 있다. 청도의 감은 반시(盤枾)라 부르는데 감이 납작한 모양이 쟁반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명종 때인 1545년 청도 이서면 출신의 박호 선생이 평해 군수로 있다가 귀향하면서 가져온 감나무가 반시의 효시라고 한다.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될 정도로 유명했다. 반시는 씨가 없다. 타 지역에서 새 종자를 들여와도 청도에만 오면 씨가 없어진다. 청도군에서 대학 연구소에 이 같은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해 연구 의뢰를 했지만 암나무가 대부분이라서 수정을 못하고 씨가 맺히지 않는다는 결과를 내놨을 뿐 정확한 이유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반시는 공판장에서 10㎏(60∼80개)에 1만 5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웰빙’으로 거듭난 감 흔한 게 감나무다 보니 감을 이용한 ‘웰빙’ 제품들이 많다. 눈길을 끄는 것은 감 와인. 세계 최초로 지난해 감와인 ‘감그린’을 개발했다. 청도와인(gamwine.com·054-372-8314)의 하상오(45)대표가 5년여 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개발했다. 그는 “감은 화이트와인에 많은 ‘탄닌’ 성분이 많아 심장병과 노화방지에 좋은 고급 와인으로 청도 감은 씨가 없어 와인 생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750㎖ 1병에 2만 2000원. 아이스 홍시와 감말랭이는 대표 먹거리. 반시는 수분과 당도가 높아 곶감을 만들기 쉽지 않아 그 대신 감을 네 조각으로 나눠 말린 감말랭이를 만들거나 통째로 얼린 아이스 홍시로 판매한다. 곶감에 비해 부드럽고 쫄깃한 감말랭이를 만드는 농가는 두산농원(054-372-2428) 등 10여곳이 있다. 감말랭이는 1㎏(250g짜리 4박스)에 1만 5000원. 전통 염색기법에 따라 감물 천연염색은 색다른 체험거리다. 감을 씻어 즙을 낸 뒤 염색과 건조를 4∼5회 반복해서 천연 원단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개량한복과 침구류, 커튼, 가방, 차받침, 지갑 등을 만든다. 개량 한복 한벌을 만드는데 감즙 한말(20∼30㎏), 감 150∼160개 정도가 들어간다. 때문에 가격은 한벌에 30만∼50만원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다. 감물들이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예던길따라(054-372-8314)에서는 손수건과 스카프 등 간단한 소품을 물들여 가져갈 수 있다. 체험료는 1인당 5000∼1만원. ●산사에 울리는 은은한 예불소리 병풍처럼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천년고찰 운문사(054-372-8800)는 호젓한 가을 분위기가 묻어난다. 울창한 솔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조용한 산사를 울리는 예불소리가 마음을 맑게 한다. 천년의 세월을 지킨 비구니 도량으로 다른 사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늑함과 섬세함이 숨어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때인 560년 창건된 사찰로 현재는 270여명이 불법을 닦는 비구니 승가대학 등 총 30여동의 전각을 갖춘 도량이다. 이름난 법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 1200년전 원광법사는 당나라에서 돌아와 세속오계를 이곳에서 전수했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은 왕명에 따라 운문사에서 주지를 맡은 바 있다. 신라 때는 화랑들의 훈련장으로 쓰였다. 경내에는 화려한 당대 불교예술의 혼이 그대로 담겨 있다. 신라때 지어진 삼층석탑과 석등, 고려때 지어진 원응국사비, 조선초에 세워진 비로전 등 7점의 보물이 있다. 불가의 예법도 볼 수 있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저녁예불이 행해진다. 가죽짐승을 깨우는 북소리, 물고기를 위한 목어, 그리고 입구에 걸린 커다란 범종 소리와 함께 예불이 진행된다. 10년전 운문댐이 완공되면서 생긴 운문호는 청도의 아침을 연다. 새벽이면 몽환적인 물안개를 토해낸다. 구불구불한 호반길을 돌다 보면 호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 신라의 고도 경주와 청도를 잇는 운문댐 주변 도로는 운문사와 삼계리 계곡의 전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이 밖에 소요당 박하담이 벼슬을 사양하고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했던 운강고택과 운곡 김몽로의 생가인 운곡정사, 전국 6개의 석빙고중 가장 오래된 숙종 때 세워진 석빙고 등은 역사 체험코스로 손색이 없다. ●시원한 청도 추어탕 청도역 주변의 추어탕 거리에서는 시원한 청도 추어탕을 맛볼 수 있다. 청도 추어탕은 남도 추어탕과는 달리 운문댐 아래 동창천에서 잡은 미꾸라지 외에 떡붕어와 쏘가리, 미꾸라지, 꺽지, 메기 등을 갈아서 맑은 국물을 낸 뒤 시래기를 듬뿍 넣어 끓인다. 자연산청도추어탕(054-371-5510)은 추어탕(4000원)과 올갱이로 끊인 고디탕(4500원)을 판매한다. 용암온천 인근의 음식점 하늘정원(054-373-3334)은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오리황토연잎구이와 오리바비큐보쌈 등을 맛볼 수 있다. 숙박은 이 지역에서 유일한 1급 호텔인 용암온천관광호텔(054-371-5500)이 좋다. 숙박료는 주중 6만 8000원, 주말 7만 8000원. 호텔에 있는 용암온천은 1000m의 암반에서 뿜어나오는 양질의 게르마늄 유황온천으로 각종 성인병에 좋다.6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요금 6500원. ●청도로 가는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북대구IC에서 빠져 대구신천대로와 30번 지방도를 따라 내려가면 된다.5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로는 서울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를 타고 내려가 청도행 무궁화로 갈아타면 2시간30분에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다.(barota.com·1544-7788) 청도군청 문화관광과(054-370-6373). 청도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책꽂이]

    ●나의 육필 까세집(김성환 엮음, 인디북 펴냄)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저자가 반평생을 두고 모았던 유명화가들의 육필 까세 모음집. 까세란 우표 수집가들이 새 우표가 나오면 이를 편지봉투에 붙이고 그 날짜 소인을 찍은 뒤 봉투 한 모퉁이에 우표 관련 그림을 그려넣는 걸 의미한다.1만 5000원.●화가 나혜석(윤범모 지음, 현암사 펴냄) 최린과의 불륜,‘이혼고백서’ 발표, 정조 유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등 파격적인 일생에 가려 오히려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던 화가로서의 나혜석의 삶을 집중 조명한 평전. 한국 유화를 처음 정착시키는 등 그의 본령은 미술이었음을 보여준다.1만 5000원.●명문종가 사람들(이연자 지음,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전통을 계승, 보존하며 명가를 지켜가는 19곳의 종가 탐방기. 고택의 아름다운 면모에서부터 종가의 내림음식과 예법, 전통 성년식인 ‘관례’, 차와 복식 등 종가를 지켜가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냈다.1만 8000원.●이야기로 읽는 부의 세계사(데틀레프 귀르틀러 지음, 장혜경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부와 부자’를 소재로 한 세계사. 이집트의 파라오를 시작으로 카이사르를 거쳐 현대의 빌 게이츠까지, 인류 3000년 역사속에서 부의 탄생과 흐름을 펼쳐보인다.1만 2000원.●경매장 가는 길(박정민 지음, 아트북스 펴냄) 뉴욕에서 활동중인 그림감정사의 뉴욕 경매 일기. 세계적 경매회사인 소더비와 크리스티에서 겪은 견습시절의 체험과 일상을 중심으로 뉴욕의 미술정보와 예술적 풍경에 대해 스케치하듯 경쾌하게 묘사했다.1만 6000원.●거룩한 테러(브루스 링컨 지음, 김윤성 옮김, 돌베개 펴냄) 9·11테러 이후 종교와 폭력에 관한 성찰을 담았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인 저자는 9·11이 명백하게 종교와 연관성을 갖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일반적 특성으로 이해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1만 5000원.●개에 대하여(스티븐 부디안스키 지음, 이상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시리즈 ‘진화와 인간’ 7권. 진화론과 고고학, 동물행동학 등의 힘을 빌려 이해하기 어려운 개들의 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시리즈 8권 ‘고양이에 대하여’(이상원 옮김),9권 ‘말에 대하여’(김혜원 옮김)도 함께 출간됐다.1만 3000∼1만 5000원.
  • 진~한 탁배기 한잔에 취해볼까

    ‘민족의 술 막걸리 골고루 맛보세요.” ‘2005 대한민국막걸리축제’가 14∼15일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호수공원앞 미관광장서 열린다. 대한민국막걸리축제조직위원회(위원장 김향수)가 주최하고 경기도·고양시·가평군·강화군·양평군·포천군이 후원하며 경기도·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 전국에 산재한 1000여개 막걸리 양조업체 중 인지도와 제품 경쟁력이 높은 전통 생막걸리, 인삼막걸리·잣막걸리·밤막걸리 등 50여개 업체의 명품 막걸리 50여종이 출품된다. 14일 오전 10시부터 모든 막걸리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다. 도매가 이하에 직접 구매할 수 있고, 막걸리용 전통 안주와 파전·빈대떡·묵 등도 판매한다. 옛 사대부들의 음주 예법을 재현하는 향음주례가 시연되고, 경기민요·고전무용·밸리댄스 등 공연과 막걸리 천하장사 선발 등 이벤트도 준비됐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전북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새로운 주거생활로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이곳에는 고래등 같은 전통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세월이 비켜간듯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옥마을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도시속의 한옥 밀집지역이다. 교동과 풍남동 3가 일원 7만 6323평에 보존돼 있는 한옥은 모두 658채.솟을대문에 추녀가 날아오르는 듯한 궁궐같은 한옥에서부터 일반적인 중산층이 소유했던 마당 좁은 4칸 한옥들이 어우러져 있다. 마을 전체가 1920∼60년대에 지어진 한옥들로 우리나라 근대사와 현대사가 압축돼 있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불린다. 이곳은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전주시의 주거생활 중심지였다.내로라하는 부자와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곳에 몰려 살았다. 하지만 아파트시대가 열리면서 한옥마을은 빠른 속도로 퇴조의 길을 걷게 됐다.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집을 개조하거나 신축할 수 없도록 규제하면서 이 일대는 슬럼가로 변했다.이곳에 살던 전주토박이와 재산가들은 대부분 신개발지로 떠났다. 그러나 99년 전주시가 이곳을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하면서 한옥마을은 다시 옛 영화를 서서히 되찾기 시작했다.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대대적인 정비작업이 이뤄져 ‘떠나는 한옥마을’이 ‘다시 찾는 한옥마을’로 변모했다. 전통한옥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팔려고 내놓는 집이 없어 값이 수년 전보다 3∼4배나 올랐다. 특히 한옥마을을 연결하는 골목길을 전통방식의 테마관광골목길로 조성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전주의 명소가 됐다. 태조로,은행나무길,토담길,관선2길 등 주요 도로변에 한옥생활 체험관,전통술박물관,공예품전시관과 명품관 등이 들어서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한옥생활체험관은 한옥의 역사를 고스란히 살필 수 있는 곳이다.안채,사랑채로 나뉘어져 조선시대 양반생활사를 그대로 엿볼 수 있도록 전통가옥을 재현했다.구들방 숙박체험은 전통한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추억거리다. 전통술박물관은 각종 민속주 생산과정을 지켜보거나 직접 빚어볼 수 있는 체험박물관이다.향음주례의 재현을 통해 예절바른 주연문화를 가르치기도 한다. 공예품전시관과 명품관에서는 전주부채와 한지 등 대표적 명품과 각종 민속공예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한옥마을에서는 풍남제,전주국제영화제,전통술축제 등 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려 매월 10만여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인근에 이태조 영정을 모신 경기전,풍남문,강암서예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태조로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판소리,사물놀이,가야금병창 등 신명나는 국악한마당잔치가 펼쳐지고 있다.다른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우리 가락과 우리 춤사위를 무료로 만끽할 수 있다. 한옥마을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상가들도 활성화됐다. 옛 선인들의 전통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전통찻집,한정식집,한지제작체험장,민속장터,도예가,전통문화관,공예사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둘러보기 반일코스,전일코스,1박2일코스 등 테마관광상품도 개발했다. 시는 한옥마을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전통한옥지구’‘문학예술촌’‘맛촌’‘향교지구’‘전통문화교육공간’ 등으로 나누어 보존·개발한다는 전략이다. 8월에는 한방체질진단,한방식당,한방바이오상품관,한방찜질관 등을 갖춘 한방문화센터가 문을 연다. 내년까지 마지막 황손 이석 황실보존국민연합회장이 거주하며 황실 역사문화와 예법,황실음식체험을 설명하는 ‘황실체험테마민박’과 공방촌,최명희문학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전북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아파트들이 새로운 주거생활로 자리잡은 지 오래지만 이곳에는 고래등 같은 전통한옥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세월이 비켜간듯 고색창연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옥마을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도시속의 한옥 밀집지역이다. 교동과 풍남동 3가 일원 7만 6323평에 보존돼 있는 한옥은 모두 658채.솟을대문에 추녀가 날아오르는 듯한 궁궐같은 한옥에서부터 일반적인 중산층이 소유했던 마당 좁은 4칸 한옥들이 어우러져 있다. 마을 전체가 1920∼60년대에 지어진 한옥들로 우리나라 근대사와 현대사가 압축돼 있는 생활사 박물관으로 불린다. 이곳은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전주시의 주거생활 중심지였다.내로라하는 부자와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곳에 몰려 살았다. 하지만 아파트시대가 열리면서 한옥마을은 빠른 속도로 퇴조의 길을 걷게 됐다.77년 한옥보존지구로 지정돼 집을 개조하거나 신축할 수 없도록 규제하면서 이 일대는 슬럼가로 변했다.이곳에 살던 전주토박이와 재산가들은 대부분 신개발지로 떠났다. 그러나 99년 전주시가 이곳을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하면서 한옥마을은 다시 옛 영화를 서서히 되찾기 시작했다.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대대적인 정비작업이 이뤄져 ‘떠나는 한옥마을’이 ‘다시 찾는 한옥마을’로 변모했다. 전통한옥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팔려고 내놓는 집이 없어 값이 수년 전보다 3∼4배나 올랐다. 특히 한옥마을을 연결하는 골목길을 전통방식의 테마관광골목길로 조성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전주의 명소가 됐다. 태조로,은행나무길,토담길,관선2길 등 주요 도로변에 한옥생활 체험관,전통술박물관,공예품전시관과 명품관 등이 들어서 새로운 볼거리로 등장했다. 한옥생활체험관은 한옥의 역사를 고스란히 살필 수 있는 곳이다.안채,사랑채로 나뉘어져 조선시대 양반생활사를 그대로 엿볼 수 있도록 전통가옥을 재현했다.구들방 숙박체험은 전통한옥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추억거리다. 전통술박물관은 각종 민속주 생산과정을 지켜보거나 직접 빚어볼 수 있는 체험박물관이다.향음주례의 재현을 통해 예절바른 주연문화를 가르치기도 한다. 공예품전시관과 명품관에서는 전주부채와 한지 등 대표적 명품과 각종 민속공예품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한옥마을에서는 풍남제,전주국제영화제,전통술축제 등 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려 매월 10만여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인근에 이태조 영정을 모신 경기전,풍남문,강암서예관 등 볼거리도 풍부하다. 태조로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판소리,사물놀이,가야금병창 등 신명나는 국악한마당잔치가 펼쳐지고 있다.다른 도시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우리 가락과 우리 춤사위를 무료로 만끽할 수 있다. 한옥마을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면서 상가들도 활성화됐다. 옛 선인들의 전통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전통찻집,한정식집,한지제작체험장,민속장터,도예가,전통문화관,공예사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전주시는 한옥마을 둘러보기 반일코스,전일코스,1박2일코스 등 테마관광상품도 개발했다. 시는 한옥마을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전통한옥지구’‘문학예술촌’‘맛촌’‘향교지구’‘전통문화교육공간’ 등으로 나누어 보존·개발한다는 전략이다. 8월에는 한방체질진단,한방식당,한방바이오상품관,한방찜질관 등을 갖춘 한방문화센터가 문을 연다. 내년까지 마지막 황손 이석 황실보존국민연합회장이 거주하며 황실 역사문화와 예법,황실음식체험을 설명하는 ‘황실체험테마민박’과 공방촌,최명희문학관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조선왕조 ‘마지막 왕손’ 전주에 정착/전주시 ‘테마 한옥촌’ 운영자로 뽑힌 이석

    “어머님의 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함을 느낍니다.삶의 터를 마련해주신 전주시민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손 이석(본명 李瑛吉·62·황실보존국민연합회 총재)씨가 이씨 조선의 발상지인 전주에 삶의 뿌리를 내리게 됐다. 전주시는 최근 교동 한옥마을에 조성된 ‘테마 한옥촌’의 민박시설 두채의 운영자를 심사한 결과 이 가운데 한 채의 운영자로 이씨를 후원하기 위해 구성된 황손후원회가 선정됐다고 24일 밝혔다. 이로써 지난 6월부터 추진됐던 조선조 마지막 왕손의 전주 정착이 결실을 보게 됐다.운영자는 앞으로 2년간 임대형식으로 이 민박시설을 운영하게 된다.이 가옥은 대지 70평에 건평이 34평으로,본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본채는 이씨의 숙소와 조선 왕조들이 사용한 유물들을 전시하는 ‘황실 유물전시관’으로 이용되고,사랑채는 한옥체험 민박시설로 활용하게 될 예정이다. 시는 이를 위해 이 한옥을 개·보수한 후 내년 3월 이씨를 입주시킬 계획이다.이씨는 이곳에서 전주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조선역사 알기’,‘황실 다례 및 예법 익히기’,‘전주,황실음식 체험’,‘전주 술맛 익히기’ 등 전주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설명하는 문화유산 해설사 역할을 하게 된다.전주시 관계자는 “이씨 왕가의 발상지인 전주 한옥마을에 조선왕조의 혈통을 잇는 황손이 정착하면 전주의 역사성과 상징성이 부각되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67년 ‘비둘기 집’을 불러 왕족가수로 널리 알려진 이씨는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義親王)의 열한번째 아들로, 그동안 서울 등지에 살면서 조선말기 왕가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는 작업을 해 왔다. 중3때인 55년 의친왕이 타계하면서 생활이 곤궁해져 61년 미8군 밤무대에 서면서 가요계에 발을 디뎠다.기복이 많은 가요계 생활동안 8차례나 자살을 시도했고,79년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89년 귀국했다. 이씨는 “전주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불면증도 없어지고 마음이 무척 편해졌다.”며 “태종의 영정을 모신 경기전에 들어서면 지금도 조선왕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이제야 긴 방황에 종지부를찍게 됐다.”고 활짝 웃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
  • 술 권하는 교수님? 酒道 강의하는 중앙대 정헌배 교수

    “요즘 학생들은 술을 그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만 알고 있어요.인생과 사회를 고민하던 70·80년대의 술 문화는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앙대의 최고 인기과목 중 하나인 ‘명주(明酒)와 주도(酒道)’강좌를 6년째 개설하고 있는 정헌배(鄭憲培·46·경영학과) 교수.지난달 초 첫 강의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그릇된 술 문화에 대한 개탄으로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씩 열리는 그의 강의는 내용이 다채로워 학생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주도뿐 아니라 국내외의 여러가지 술을 소개,흥미를 유발하기 때문이다.그에게서 수업을 받은 다음 ‘술 문화 개선을 위한 전도사’로 나선 학생들도 여럿이다. ●다채로운‘술강의’ 인기폭발 정 교수가 술을 강의하게 된 것은 신입생 환영회 때 일부 학생들이 과음으로 숨지는 것을 본 뒤부터다.원래 술로 박사학위를 딴 터라 술강좌에는 제격이었다.그는 영남대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유학,파리 제9대학에서 ‘세계 주류시장의 국제마케팅 전략’이라는 논문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술 연구가이다. 지난 98년 2학기 때 강의가 개설되자 이색적이라 여겼는지,학생 700여명이 수강신청을 했다.당시 강의실이 비좁아 옆 강의실에 TV를 설치하고 화상수업을 하기도 했다.요즘에는 수강인원을 아예 120명으로 제한해 학생들이 치열한 수강경쟁을 펼친다. 정 교수는 이 시간에 술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가르친다.틈틈이 맥주공장을 방문하거나 직접 누룩으로 전통주를 빚는 등 ‘현장평가’도 병행한다.술잔 잡는 방법이나 술 권하는 방법 등 주도는 기본이다. 수업의 백미는 학생들이 직접 술잔을 기울이는 ‘명주 체험학습’.전통주에서부터 중국술,위스키,맥주 등 세계의 유명주를 맛본다.그러나 딱 한잔이 ‘마지노선’이다.‘한두잔 이상의 술은 독’이라는 게 정 교수의 지론이다.취하면 혀의 감각이 둔화돼 술맛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다. 비록 2학점짜리 교양과목이지만 시험이 어렵기는 전공과목 못지 않다.‘왜 우리 술은 뜨겁게 마시지만 일본 술은 차갑게 마시는가.’ ‘스카치위스키나 와인 등 외국 술이 명성을 얻은 이유는’ 등 평소 생각지 않던 문제가 출제된다.공부를 소홀히 한 학생은 F학점을 감수해야 한다. 학생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수업이 끝나는 날.정 교수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골라 학교 앞 맥주집에서 대작(對酌)하는 현장체험을 갖는다.학생들은 배운대로 주도에 맞춰 술잔을 채우고 비운다. ●술 강요하는 풍토가 문제 정 교수는 대학생들의 폭음 습성은 술을 강요하는 풍토에서 형성된다고 분석한다.‘술문화는 자취없이 사라지고 빈 술잔만 남은 형국’이라는 것이다.정 교수는 “예전에는 ‘고래 잡으러 동해로 떠나자.’라는 식의 목표지향성이 있었지만 이제는 단순히 취기를 즐기는 쾌락만 남았다.”고 지적했다. 또 외국 술이라면 뭐든지 좋아하는 태도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정 교수는 “와인 열풍이 한창이지만 정작 와인의 풍부한 맛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정 교수는 “술이 원수이지 마시는 사람이 원수인가.”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술은 취하기 위한 게 아니라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것이고,주량을 조절하지 못해 실수를 하는 것은 ‘술취한 사람’의 잘못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 교수의 이상적인 음주 문화는 술과 나의 주량을 안 상태에서 풍류(風流)를 즐기며 마시는 것이다.술의 특성에 맞게,자신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마셔야 주도의 핵심인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술은 함께 먹는 음식에 따라 달라진다.맵고 짠 한식에는 탁주가,정갈하면서도 깔끔한 일식에는 청주가,약간 느끼한 양식에는 와인이 제격이다.아무 음식에나 소주를 들이켜면 술도 음식도 망치게 된다. 또 술자리의 풍류는 무조건 취한다고 즐길 수 있는 게 아니다.적당히 취기가 돈 상태에서 서로 예의범절을 지켜야 자유롭게 인생을 논할 때 풍취가 살아난다.정 교수는 “요즘은 술자리를 주도하는 어른이 깊은 대화 없이 술병과 잔을 들고 돌아다니며 무조건 술만 권유하는데 이는 우리 술 예법에 없는 것”이라면서 “술자리 격식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의 질서도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인삼주를 세계적인 술로” 하루 두 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는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는정 교수도 가끔 과음을 하기도 한다.교수 모임 때 가끔씩 도는 폭탄주도 거절하지 않는다.‘어쩔 수 없이’ 많이 마셔야 할 자리가 있는 게 현실인 탓이다. 정 교수는 “‘술 권하는 사회’인 우리나라에서 ‘하루 두잔’을 지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과음을 피할 수 없다면 대신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연구를 현실에 대입하는 일에 매달려 있다.조만간 ‘정헌배 인삼주가’라는 회사를 차리고 인삼주를 스카치 위스키나 코냑과 같은 세계적인 술로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에 나선다. 정 교수는 “술자리가 더이상 ‘마시고 죽는’ 자리가 아니고 즐거운 자리가 되도록 하는 것과 인삼주가 세계의 유명호텔 테이블에 오르도록 하는 게 평생의 목표”라고 밝혔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
  • 책/ 코르티잔, 매혹의 여인들 - 세상을 유혹한 전설의 ‘코르티잔’

    15세기 베네치아를 주름잡은 베로니카 프랑코,18세기 프랑스의 숨은 권력자 마담 드 퐁파두르,에밀 졸라의 소설 ‘나나’의 모델 블랑시,벨 에포크(1900년 전후의 황금시대) 때 프랑스를 풍미한 리안 드 푸지,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의 주인공 마리 뒤플레시스….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당대 최고의 코르티잔(courtesan)이었다는 점이다.코르티잔의 사전적 의미는 ‘부유한 남자들이나 귀족과 관계를 가진 고급 창녀 또는 정부’.그러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코르티잔이야말로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남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여성으로서 유례없는 지적 자유를 누린 존재”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코르티잔,매혹의 여인들’(수전 그리핀 지음,노혜숙 옮김,해냄 펴냄)은 이러한 보봐르의 관점에서 코르티잔 이야기를 풀어간다.그런 만큼 독자들은 이 책에서 여성의 사회적·경제적·성적 제약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힘으로 부와 명예와 권력을 움켜쥔 특별한 여인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코르티잔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서구 문화예술사의 흐름은 물론현대인의 감성도 달라졌을지 모른다.코르티잔은 직접 시와 소설을 썼고,물랭 루즈에서 캉캉을 고안했으며,폴리베르제르에서 눈부신 연기를 보여주는 등 당대 문화사의 중심에 있었다. 코르티잔은 문인·화가·조각가들의 작품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보들레르는 ‘악의 꽃’에서 아폴로니 사바티에라는 여인을 노래했고,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줄거리 한가운데에 코르티잔이 놓여 있다.또한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당시의 유명한 코르티잔인 프리네를 모델로 비너스를 조각한 이래 티치아노,베로네세,라파엘로,조르조네,부셰 등 많은 작가들이 코르티잔을 모델로 여신을 그렸다. 한국의 전통적인 기생이나 일본의 게이샤가 그랬듯이 코르티잔은 높은 교양을 갖춰야 했다.버나드 쇼의 희곡 ‘피그말리온’ 또는 뮤지컬 ‘마이 페어레이디’에서처럼 그들은 상류층의 말투와 옷 입는 법,우아하게 걷는 법,춤추는 법을 배워야 했다.식사예절뿐만 아니라 때로는 궁중의례를 포함한 예법도 알아야 했다.이 책은 그런 관점에서 코르티잔이 지닌 특별한 매력과 유혹의 기술을 일곱 가지 덕목으로 나눠 소개한다.특히 기회를 행운으로 바꿀 줄 아는 타이밍 감각,벨 에포크의 분위기를 주도한 쾌활함,여성의 부드러움과남성의 힘을 동시에 지닌 양성적 우아함 등은 그들의 삶을 이끈 강력한 무기였다. 프랑스에서 코르티잔은 수 세기에 걸쳐 내려온 전통의 일부였다.적어도 벨에포크 이전 수백년 동안 파리는 코르티잔과 코르티잔 후보들,그리고 그들과 함께 마법을 추구한 남자들을 끌어들었다.실제로 제2제정 시대에는 코르티잔들이 너무 활개를 쳐 “파리는 코르티잔이다.”라고 한 발자크의 말이 당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코르티잔은 사라졌다.그 어떤 아름다움과 재능으로 세상을 유혹한다 해도 코르티잔이라 불리지 않는다.20세기 초 사라져가는 코르티잔의 역사에 마지막 생명을 불어넣은 인물은 미국에서 공연된 ‘춘희’의 여배우사라 베르나르.관중을 사로잡은 그녀의 음성은 황금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다. 고대 그리스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유럽 사회에서 사교계를주름잡으며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 간 코르티잔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은,그것이 서구의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1만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책/ 옷 잘입는 남자에게 숨겨진 5가지 키워드 - 멋쟁이 비결은 ‘개성 살리기’

    이탈리아의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은 영화 ‘루드비히 2세’에서 유럽의 전통적인 양식미를 압축해 보여줘 우리 눈을 즐겁게 했다.감독은 루드비히 2세가 재위한 1860년대의 화려한 의상과 세간들,귀족들의 예식,인사법,식탁예법,사교춤 예절,심지어 지팡이 짚는 법까지 철저하게 고증해 스크린에 재현했다.탐미주의자이기도 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현대가 잃어버린 상류계급의 우아함 그 자체였다. 일본의 세계적인 패션평론가 오치아이 마사카츠(57)가 쓴 ‘옷 잘입는 남자에게 숨겨진 5가지 키워드’(이유정옮김,나무와숲 펴냄)또한 이 영화와 비슷한 메시지를 전한다. 비스콘티의 영화가 광기를 숨긴 미의 구도자 루드비히 2세(헬무트 버거)를 통해 양식화한 형식미를 보여줬다면,이 책은 인간 내면에 잠재된 미의식을 통한 개성적인 미의 연출을 강조한다.저자는 영화 속의 생생한 장면들을 예로 들며 미의 본질에 접근한다. 저자는 “진정한 모던을 알기 위해서는 클래식을 먼저 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클래식 스타일은 사람을 가리지않으며 어디에 입고 가든 위화감을 주지 않는다.그렇다고 개성을 접어두라는 말은 아니다.개성과 멋이 살아있는 옷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입어야 할까. 한 예로 셔츠는 부드러움이 생명이다.영화 ‘위대한 개츠비’(1974년작)에 등장하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셔츠는 던져질 때마다 봉긋하게 언덕처럼 쌓인다.이렇듯 재킷의 움직임에 따라 신축성있게 변하는 셔츠가 좋은 셔츠다.‘사람을 태우는 물건’인 구두는 어떠해야 할까.타기 편한 구두는 톱 라인이 발목에 딱 들어맞아야 한다.구두코 끝이 올라간 정도는 25㎜가 넘지 말아야 하며,그 이상 들려 올라가면 구두의 위엄과 품위를 잃게 된다.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의 주인공들이 신은 해적선 같은 구두는 웃음을 자아낸다. 일본에는 ‘리쿠르트 양복’이라는 말이 있다.취직면접 때 보통 입는 양복을 일컫는 말이다.감색 슈트에 흰색 드레스 셔츠,튀지 않는 색깔과 무늬의 넥타이….오로지 단정하고 신뢰감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받는 리쿠르트양복에서 개성과 진정한멋을 찾기는 쉽지 않다.요컨대 개성을 살리는 일이야말로 멋내기의 알파요 오메가다.9800원. ▶ 오치아이 마사카츠 지음 /이유정 옮김 / 나무와숲 펴냄 김종면기자 jmkim@
  • ‘부처님 오신 날’ 알찬 특집 풍성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각 방송사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난 5일 어린이 날 특집에 이어 특집을 마련하느라 방송사 편성실의 지친기색도 있지만 그래도 제법 알찬 상차림이 시청자를 기다리고 있다. KBS-1과 MBC는 11일 오전 10시 조계사에서 열리는 봉축 법요식 행사를 50분간 생중계한다.이어 KBS-1에서는 비구니 사찰로 유명한 석남사를 공개하는‘네트워크기획-석남사’(오후1시30분)를 재방송하고 ‘현장르포 제3지대-밥상에 펼쳐진 부처의 가르침’(밤12시)에서 사찰음식을 집중 조명한다.‘현장르포…’에서는 경남 양산 통도사의 전통 음식과 부엌살림,독특한 불교의 식사예법 등이 공개된다.KBS-2에서는 한 스님의 파계·득도 과정을 그린 드라마 ‘오세암’(오전11시)을 방영한다. MBC에서는 ‘큰 스님 숭산’(오전11시)을 내놨다.하버드대와 예일대학원을졸업한 현각스님과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흑인 인권운동을 하다 불가에 귀의한 무상스님 등 5만여 외국인 스님으로부터 스승으로 모셔 지는 숭산 스님에 대해 알아보고 미국에서지난 4월8일 열린 부처님 오신날의 행사 모습을 담았다.이어 12일 ‘MBC 스페셜-행자들,계(戒)를 받다’(밤9시55분)에서는 6개월의 행자 수련을 거쳐 예비스님이 되는 마지막 단계인 행자교육원에 입소한 행자들의 수련기를 가감없이 담았다.걷는 법에서부터 매맞는 법까지 새로배우는 행자들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23일간의 교육기간동안 실시되는 오후불식(不食).그래서인지 공양 때만 되면 행자들은 자신의 밥발우에 밥을 산처럼 쌓아놓고 먹는다. EBS는 ‘인도로 가는 길’(밤10시)에서 부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다가야 근처 수자타 지역의 수자타아카데미를 찾아 본다.이곳은 인도의 전통적 신분제도인 카스트의 최하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不可觸) 천민’을 위한 학교.이곳에서 한국불교 정토회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SBS는 ‘혜초와 달라이 라마-왕오천축국전을 찾아서’(오전9시)와 영화 ‘화엄경’(오전11시)을 준비했다.케이블 방송 중에서는 다큐전문 케이블 방송인 Q채널(채널25)이 멕시코의 불교이야기를 다룬 ‘멕시코에 피어나는 연꽃’(오후3시)를 방송한다. 전경하기자 lark3@
  • 오늘 KBS 공사창립 27돌

    방송법이다 뭐다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가운데 KBS가 3일 공사창립 27주년 잔칫상을 받는다.다채널 뉴미디어시대를 맞아 위성2TV가 김장독에서 묵은김치를 덜어내듯 양념맛이 흠뻑 밴 특집 4편을 상에 차린다. 메뉴는 모두 약간의 지적 모험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독일의 문명학자 하랄트 뮐러 교수와 서울대 사회학과 김경동교수의 대담 ‘21세기 문명진단-충돌인가 공존인가’(밤9시)에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비판하고 한반도통일이 가져올 문명의 공존을 그려보는 등 시청자의 지적 유영(遊泳)을 유도한다. 이에 앞서 오후8시부터 내보낼 ‘음식보감,내림 손맛을 찾아서’시리즈 1편‘전통음식의 뿌리,사찰음식’은 우리 민족의 식습관에 뿌리깊이 남은 사찰음식의 철학을 조명한다.발우공양이란 독특한 예법에 숨은 절약과 환경보호정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후10시엔 웹TV와 인디문화의 만남을 내세운 ‘열려라 인디넷’을 내보낸다.독특하게도 문을 여는 것은 마임,화상통신,만화식 동시해설 등 마임이스트들의 다양한 언어표현.노브레인·코코어·앤 등 인디밴드들의 뮤직비디오가 이어지고 이들의 음악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회를 마련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제국을 꿈꾸는 애니메이터의 하루를 엿보고 칸에서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송일곤감독의 ‘소풍’을 감상할 수 있다. 이어 ‘명감독 명배우’시리즈 1편 ‘아직도 숨쉬는 신화-하길종’에선 암울한 시대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채 7편의 연출작만을 남겨두고 훌쩍 세상을 떠버린 하감독의 예술관을 조명한다.그와 함께 시대를 견뎌낸 평론가 변인식과 동생 하명중 등의 증언도 소개한다. 이 프로들은 봄 개편과 함께 정규 편성돼 위성TV가 뉴미디어 시대에 대비해심혈을 기울여 작업해온 디지털 영상 라이브러리의 초석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나름대로 푸짐한 위성에 비해 지상파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듯’내세울 게 없다.1TV의 ‘이창호와 루이나이웨이 기념대국’‘자연다큐멘터리밤섬’이 그런대로 봐줄만 하고 나머지는 앙코르나 재방송으로 때운다. 2TV는 ‘도전 골든벨-금강산 가는 길’정도가 땀냄새를 맡을 수 있는것이고 5일 밤10시 방영할 ‘TV문학관-길은 그리움을 부른다’가 위안거리.잔칫상치곤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임병선기자 bsnim@
  • 문화가 당신곁으로 찾아갑니다

    ‘찾아가는 문화활동’에 민간단체의 참여가 적극적이다. ‘찾아가는…’은 문화관광부가 문화예술단체로 하여금 전국,특히 문화소외지역을 직접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업.비용의 일부를 지원한다지만 참여단체도 상당한경제적 부담이 불가피하다.지역문화에 대한 소신이 없다면 참여가 불가능하다는점에서 사업의 활성화는 반가운 일이다. ‘찾아가는 문화활동 2000’에 참여하는 단체는 모두 30개.국립중앙극장과국립국악원,국립민속국악원,국립중앙박물관,국립민속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예술원 등 정부기관말고도 23개 민간단체가 참여할 예정.이들 단체는 올 한해 동안 전국에서 모두 836차례의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펼친다. 대표적인 민간단체는 전국적으로 110차례 문화활동을 갖는 한국문화복지협의회.800여 회원이 문화예술분야에 폭넓게 포진해있어 연극·합창·성악·무용·대중음악·인형극·아동극·마임 등 지역실정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정동극장은 서울·경기지역의 소외청소년을 중심으로 60차례 창작국악과 연극 등 공연을 갖고,한국청소년공연예술진흥회는 농어촌과 실업고교·소년원·사회복지시설을 돌며 42차례 뮤지컬 해상왕 장보고’를 공연할 계획이다. 광주의 무등청소년회는 9.5t짜리 무대차에 각종 전통놀이기구를 싣고 현장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35곳의 농어촌 학교에서 차전놀이와 줄다리기·강강수월래 등 민속놀이와 풍물놀이·공동체놀이를 펼친다.예지원도 전국의 전통시범학교 22곳에서 다도와 전통예법을 실습한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는 클래식과 국악·영화음악·가요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고 주로 중소도시의 지역문화축제를 12차례 찾아가고,MBC예술단도오케스트라와 대중가수 등을 이끌고 10곳의 지역 문예회관과 야외행사장을 방문한다. 예술학교발전기금은 10개 지역 문예회관과 문화원에서 ‘피아노가 있는 풍경’콘서트를 펼치고,박진희 상명무용단은 음성과 가평의 꽃동네와 서울장애인 종합사회복지관 등 3곳에서 전통춤을 보여준다.한국문화학교와 여성문화예술기획·극단 독립극장도 연극을 공연하고,사물놀이 한울림과 한국종이접기협회는 주로 문화의 집을 찾는다. 문화부는 올해 사업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3일 오후 2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찾아가는 문화활동’ 출범식을 갖는다.퍼포먼스 ‘난타’와뮤지컬 ‘넌센스’,김덕수 사물놀이,창극,유진박과 서울팝스오케스트라 등주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이 사업에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다짐하는 자리가될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간소하게…평등하게…차례상에도 변화 물결

    제사나 차례는 영구불변의 철칙인가.모든 것이 요동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대에 예법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수는 없는 것 같다.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사에 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 하여 금기로 여겼다.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제사나 차례법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일차 도전을 받았던 전통제사법은 현대화와실용주의에 의해 대폭 간소화되었고 최근에는 여성주의적 새 제사법 마저 제안되기에 이르렀다.준비단계에서부터 경건함과 정성을 강조했던 전통적 가르침을 떠나 음식도 주문업체를 이용하는등 변화 추세가 뚜렷하다.설을 앞두고차례와 관련된 여러 제사법 제안과 음식준비 추세를 알아본다. ▲간소한 차례(茶禮) 전통차례연구회 이연자회장이 옛문헌 고증을 통해 제안한 문자 그대로의 차례법. 이회장은 “예학의 태두인 김장생(金長生·1548∼1613)선생의 ‘상례비요’(喪禮備要)나 ‘가례집람’(家禮集覽)에는 정초 차례상에 신주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술잔,왼쪽에는 찻잔을 놓고 잔앞쪽에 과일 한접시를 올렸다”며“명절차례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사와 달리 제물을 간소하게 올리도록 한것을 알수 있다”고 말했다. 차례의 기본제물은 술 차 다식 과일이 전부.여기에 떡국이나 전을 올려도 무방하지만 이는 차례가 끝난 후 가족들이 모여 푸짐한 음복을 하기 위해서일뿐이라는 것. 그는 “술도 올리지만 차례를 지낼때는 한 잔만 올리기 때문에 전이나 적은포함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차례는 다식과 과일만 올려도 되므로 주부들의 일손이 줄어들고 상차림 경비가 절약된다고 말했다. 차례를 올릴 경우 제사를 시작하기 직전에 젯상 한켠에서 차를 우려 식지 않게 다관(茶館)에 담았다가 찻잔에 따르면 된다. ▲천주교 기독교식 차례 토착화과정에서 한국의 전통과 풍습을 받아들였던천주교에서는 특별히 제사나 차례와 관련한 규제는 없다.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신위 대신 사진을 놓거나 아예 없이 지낸다.제사나 차례를 가족간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계기로 삼으며 가족들이 즐기는 음식중심으로 준비한다.대신 이날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기도 한다. 기독교 가정에서도 명절은 가족간의 화목과 정을 돈독히 하는 날이다.가족들이 모여 예배를 보고 자녀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그리고 둘러 앉아 식사한다.추모 음식은 따로 준비하지 않는다. ▲평등가족을 위한 제사법 작가 이하천이 주장하는 제사방식.동학의 제사법인 ‘향아설위’(向我設位)개념에 제사주체로 여성과 여아를 포함시켰다.향아설위는 위패와 밥그릇을 벽쪽에 갖다 놓던 제사양식에서 탈피,제사지내는사람,즉 살아있는 사람앞에 위패와 밥그릇을 되돌려 놓는다는 것. 이씨의 제사법은 집에서 가장 좋은 곳에 제사상을 놓고 그릇에 맑은 물을 가득 담는다.계절에 맞는 꽃잎을 서너개 띄우고 꽃·향·초를 준비,상을 장식한다.가족전제가 상을 빙 둘러 앉는다.사회자를 한명 정하고 그는 오늘은 누구누구의 제사날이라는 것을 말하며 명절때는 그곳에 모인 모든 여성 남성들의 조상을 다 불러 모은다.조상에게 근황을 알리며 돌아가면서 자신의 삶에대해 이야기 한다.3분정도 묵념시간을 갖고 예식을 끝낸다.청수를 한 모금씩돌아가면서 마신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주문 차례상 98년 문을 연 가례원을 시작으로 종가제사,예지원,예빈시 등에서 차례나 제사상을 주문,판매하고 있다.가례원 관계자는 주문양이 2년만에 6배가 늘었다고 말했다.가격은 업체별로 차이가 있으나10인기준 15만 선. 강선임기자 sunnyk@ *전통 설 차례상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의식이 변해도 차례만큼은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주부클럽연합회 황명자이사는 “차례상은 가짓수보다는 정성을 담되 격식에서 벗어나지는 않아야 한다.그러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고인이 즐겨드시던 것 중심으로 하라”고 권한다.황이사의 도움말로 본 설 차례상차림. 신위가 놓인 쪽이 북쪽이고 신위를 마주하였을 때 제주의 오른쪽이 동쪽,왼쪽이 서쪽이 된다.방위를 맞추기가 적당치 않을 때는 지내기 편한 방향에 차례상을 차린다. 차례와 기제사의 차이점은,제사 때는 술을 세번 올리지만 차례에는 술을 한번 올리고 술대신 차로 할 수 있다는 점이다.또 차례에서는 여러 조상을 동시에 모시므로 신위를 각각 준비하고,시접(수저를 놓은 대접)이나 떡국도 한그릇씩 따로 놓는다. 차례상차림의 기본은 5열.신위 앞이 1열이고 놓는 순서는 왼쪽에서 시작한다. 1열에는 양쪽에 촛대를 놓고 그 사이에 잔반(술잔과 받침대)과 시접,떡국을놓는다.2열에는 국수와 전 적 조기 편(떡)을,3열에는 탕을,4열에는 포(북어오징어 문어 말린 것중 한가지)숙채(익힌 나물)청장(간장)침채(물김치)식혜(건데기만)를,5열에는 밤 배 감 약과 강정 사과 대추를 놓는다.과일은 홀수로준비한다. 상차림이 끝난 후 차례를 지낼 때는 신위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남자 자손이 왼쪽에는 여자 자손이 자리해서 함께 지낸다.일반적으로 신위를 상위에올려놓는데 예전에는 병풍과 상사이에 교의라 하여 신주나 위패를 봉안하는 의자를 뒀다. 강선임기자
  • “기독교 상·장례는 신학적 오류”

    기독교인들은 상·제례에서 절차와 용어의 상당부분을 전통유교 의식을 따르고 있으면서 그것이 서양 기독교 의례인줄 착각하는 등 신학적 오류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오세종 암사감리교회 담임목사는 지난 17일 대한불교 조계종 불교어산작법학교가 마련한 ‘한국종교의 사생관과 상장예법’에서 ‘한국개신교의 영혼관과 장례절차’를 발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오목사가 지적한 한국 기독교계의 신학적 오류는 상·장례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드러난다.오목사는 이같은 유형으로 임종한 시신을 거둘 때 쓰는 나무판자를 기독교인들도 재래적인 용어인 칠성판(七星板)이라고 부르며 시신을 가릴 때 병풍을 사용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입관하고 난뒤 시신앞에 병풍이나 흰 휘장을 친 다음 그 앞에 작은 상을 놓고 그위에 고인의사진을 중심해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거나 꽃을 꽂는 것도 그중 하나.작은상을 놓고 사진을 놓는 것은 유교의 상례에서 혼백(魂帛)을 대신하는 유교적습속으로 서양에는 그런 의식이 없다는 것. 입관이 끝난뒤상복을 입는 의식도 유교적 성복(成服)절차의 유습과 절차가 같다.산소에 시신을 매장하고 돌아와서 유교는 우제(虞祭)를 지내는데 한국기독교인들도 장례 당일 집으로 돌아와 예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다는 것.또유교의례에는 삼우제(三虞祭)가 있는데 한국 기독교인들도 장례후 3일째 되는날 산에 가는 습속이 있으며 많은 기독교인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삼우제’라는 말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목사는 “한국 기독교 상·장례의식은 외형적 의례의 절차에 있어 임종에서부터 추도식에 이르기까지 서양 기독교 의식 절차보다 재래 유교적 절차와 유사한 점이 많다”면서 “이는 그 의례속에 있는 사상·신학적인 부분이이해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앞으로 의례신학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다. 김성호기자
  • CD롬 전자족보 출시/사이버공간서 찾아본 우리집안 혈통과 뿌리

    ◎274개 성씨·3천400여개 본관 정리/동영상·사운드 가미 신세대 감각 맞게 집안의 혈통과 뿌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족보정보가 사이버공간에서 제공된다. 어렵고 딱딱한 한문투의 족보를 퀴퀴한 냄새가 나는 책자 대신 동영상,애니메이션,사운드를 결합한 멀티미디어 형태로 CD롬이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다. 일명 ‘전자족보’제작은 정보통신부가 국책사업으로 선정,현재 한국족보신문사(대표 최실광)가 추진하고 있는 것. 한국족보신문사는 1차사업으로 최근 “성씨와 나의 족보는?”이라는 제목의 CD롬을 개발,출시했다. 이 제품은 우리나라의 현존 3천400여개 본관,274개의 성씨에 관한 정보를 CD롬 8장으로 나눠 수록한 것이다.김,이,박,최 등 4대 성씨는 각각 한장의 CD롬에 담았으며 나머지 성씨들은 4장의 CD롬에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이 CD롬은 ▲시조 및 본관유래 ▲빛나는 우리조상 ▲집성촌 ▲가문의 유적지 등 가문의 역사를 담은 것들과 항렬별 돌림자의 변화를 알 수 있는 항렬표,가문의 계보를 정리한 세계표 등을 성씨별주요 메뉴로 하고 있다. 컬러 이미지,만화,표 등 시각적인 디자인과 내레이터의 음성을 곁들여 족보에 익숙치 않은 젊은 세대들의 감각에 맞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 뿌리학습코너를 마련,촌수를 계산하는 계촌법,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근친간 호칭을 가르쳐 주는 근친간 칭호법,제사의 순서와 지방 쓰는 법 등을 담은 제례법 등 전통예법에 관한 상식을 알려준다. 검색기능도 붙여 검색범위를 설정한 뒤 검색어를 입력하면 바로 관련 정보를 볼 수 있다. 한국족보신문사가 계획하고 있는 이 사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터넷으로 족보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를 위해 이번에 출시한 CD롬을 기초로 내년 1월중 모든 인물의 신상 및 약사까지 담은 완벽한 ‘전자족보’를 CD롬으로 내놓을 예정이다.이어서 내년말까지 서버를 구축,인터넷 상용 서비스를 한다는 복안이다. 이 회사 최사장은 “데이터베이스 및 검색기능 강화에 기술적인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특히 흔히 쓰이지 않는 한자들을 이미지폰트로 실어 검색에 불편이 없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씨와 나의 족보는?”의 가격은 한장에 4만원.(02)766-7997.
  • 추석상/알뜰 상차림 요령·전통요리 2제

    ◎햇곡식으로 정성담아 간소하게/고인이 평소 즐기던 생선·과일 진설 무난/손님올때마다 요리,음식쓰렉 최소화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오곡백과가 무르익은 좋은 계절에 고향을 떠났던 모든 가족이 부모님 아래 모이는 우리 민족의 최대명절.추석을 맞는 마음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하지만 주부들에겐 큰 고민거리가 아닐수 없다.집안에 어른이 계셔도 젊은 주부들에겐 차례상 차리는 법이 해마다 새롭고 어렵다.장보기 두려울 정도로 장바구니 물가가 오른 요즈음 추석 장보기는 또한 엄청난 부담이 된다. 해마다 겪으면서도 해마다 숙제인 추석상 차리는 법과 알뜰 상차림 요령,아울러 온가족이 명절기분을 내며 즐길수 있는 멋진 전통요리 등을 알아본다. ▷차례상 차리는 법◁ 차례상은 북쪽으로 병풍을 치고 붉은 음식과 생선은 동쪽으로,흰 것과 육고기는 서쪽으로 차린다.이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둔다.진설하는 가짓수는 반드시 홀수로 하고 국물없이 건더기만 놓는게 원칙이다.밥은 놓지 않고 송편을 놓는다. 이러한 기본원칙아래 평소 고인이 즐겨 드시던 것으로 차리는 것이 바른 제사법.탕은 육탕 소탕 어탕 등 3가지를 따로 할 것 없이 합탕으로 진설하는 것도 경제적이다.나물도 푸른 색,검은 색,흰색의 색깔만 맞춰 한 접시에 담는 모듬나물로 차리는 것도 좋다. 차례상 차림은 지방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다음같은 기본 상차림(서울·경기지방 차례상)을 참고로 하면 된다. 신위 앞 1열에는 숟가락을 담아놓는 대접(시접)과 잔반(잔과 받침대),송편을 놓는다.2열에는 왼쪽부터 국수 전 육적 소적 어적 어전 고물떡을 놓고 3열에는 식혜(건더기만)를 놓는다.5열에는 홍동백서라 하여 과육이 흰 과일을 왼쪽에,붉은 것은 오른쪽에 둔다.3열에 놓은 탕은 세가지를 함께 끓여 한그릇으로 줄여도 되고 과자류는 약과 한가지만으로 가능하며,과일과 생선은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것으로 올리면 된다. ▷알뜰 상차림 요령◁ 차례상은 전통예법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간소하게 준비한다. 햅쌀 햇과일 등 새로 나온 농산물로 하되 평소 재료보다는 버섯 풋콩 밤 등 제철식품으로 준비한다.장보기는마른 재료는 5∼6일전,야채류는 2∼3일 전까지 구입해 손질한다. 음식은 재료만 준비했다가 손님이 올 때마다 요리하는 것이 낭비를 막고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요령이다.추석별식인 송편은 손님이 많은 가정에서는 미리 많이 만들어 쪄서 냉동실에 얼렸다 조금씩 해동해서 먹으면 편하다. ▷한가위 절식◁ ◇구절판 ▲재료=쇠고기(우둔살) 120g,표고버섯 5개,오이 2개,당근 100g,석이버섯 15g,삶은 죽순 100g,달걀 3개,고기양념(간장 2큰술,설탕 1큰술,다진 파 4작은술,다진 마늘 2작은술,참기름,깨소금 2작은술,후추 약간),밀전병(밀가루 1컵,소금 1/2작은술,물 1 1/4컵),겨자장(겨자가루 2큰술,물 1큰술,식초 1큰술,설탕 1/2큰술),초간장,잣가루 2큰술,소금,후추,샐러드유,참기름 적당량. ▲만드는 법=⑴쇠고기와 표고버섯은 채썰어 고기양념장에 고루 무친다.⑵오이는 채썰어 소금에 절여 물기를 꼭 짠다.⑶당근 죽순 손질한 석이버섯은 채썬다.⑷오이 당근 죽순 석이버섯은 참기름 소금 후추로 양념해 볶은뒤 펴서 식힌다.⑸달걀지단은 채썬다.⑹밀가루에 소금을 섞어 물을 넣고 묽게 풀어 체에 거른다.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밀가루 푼 것을 떠넣어 밀전병을 부친다.⑺구절판 틀의 가운데칸에 밀전병을 담고 둘레의 칸에 여덟가지 재료를 담는다. ◇사태밤찜 ▲재료=쇠고기(사태) 400g,소의 양 곱창 400g,무 200g,표고버섯 4개,밤 8개,은행 8개,홍고추 2개,달걀 1개,양념장(간장 5큰술, 갈은 배 3큰술,설탕 2 1/2큰술,다진 파 3큰술,다진 마늘 1 1/2큰술,참기름 2큰술,깨소금 1큰술,후추 약간). ▲만드는 법=⑴사태는 덩어리째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서 끓는 물 10컵에 넣어 삶는다.⑵양은 굵은 소금으로 문질러 씻어 끓는 물에 넣었다 건져 칼등으로 검은 막을 벗기고 곱창은 흰 기름을 떼어서 ⑴에 넣어 함께 삶는다.무는 고기가 반이상 무르면 통째 넣어 덜 무르게 삶는다.⑶표고버섯은 물에 불려 꼭지를 떼고 밤은 깨끗이 속껍질까지 벗기고 은행은 딱딱한 껍질을 까서 기름에 볶아 속껍질을 없앤다.⑷삶은 고기와 무를 4㎝ 정도로 토막내고 밤과 표고버섯을 한데 합해 양념장을 만들어 골고루 버무려서 냄비에 담는다.재료가 담길 정도로 육수를 부어 중불에 서서히 익힌다.⑸홍고추는 씨를 빼고 어슷하게 썰고,달걀은 황백으로 나누어 지단을 부쳐 완자모양으로 썬다.⑹국물이 거의 졸아들고 간이 고루 배면 은행과 고추를 넣어 잠시 더 찜을 해 더울때 그릇에 담아 낸다.
  • 「서유기」 저자 오승은의 회안(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0)

    ◎타동항 생가 연당에 주인닮은 청죽 꼿꼿이…/영원불후한 명성 불구 무덤가엔 잡초만 휘휘하고/거리는 온통 “탄신 100주년” 주은래 기념 플래카드가 비록 중국의 장배항 교수가 최근 「서유기」의 저자는 오승은이 아니라고 회의를 제기했지만 중국의 4대기서 가운데 「서유기」만큼 그 저자·생졸·저작연대·출생지·무덤에 대한 논쟁이 적은 것도 없거니와 「서유기」만큼 신마소설을 비롯한 사회소설·종교소설·기행소설·공상과학소설·우언소설 등의 다양한 성격 부여도 없을 것이다. 오승은(1504∼1582)의 행운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중국 도처에 널려있는 명인들의 동상이나 입상은 겨우 그사람의 인상이나 풍격을 과장적으로 풍기는 상징에 지나지 않는다.그럼에도 지금 오승은의 고향집이나 화과산 산구에 세워진 오승은의 입상은 400여년전 생존했던 실재 용모와 매우 흡사하다는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의 과학적인 검증을 거친 제작이기 때문이다. 그 입상을 세우기까지는 상당한 곡절이 있었다.1974년 겨울.그러니까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폭풍속에 모든 문화재가 닥치는대로 파괴되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무덤들이 까뭉개지는 난장판이었다.그런 난리판에 회안. 마전향(회안) 이보촌의 오씨 선영으로 알려진 무덤 몇개가 도굴당했다. 그중 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 오국옹의 무덤으로 판명되었지만그 옆 무덤에선 관목만 파냈을 뿐 백골 한무더기를 고스란히 그 자리에 묻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관목은 당시 어느 중학교에 팔려서 창문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그런데 그 관목을 헐어 손질하다가 「오」자를 비롯한 글자들이 발견, 계속 추심끝에 그곳 중학교 역사교사들은 당판에 쓰인 글자들을 겨우 「형부기선사양오공지구」로 판독하기에 이르렀다.그리고 세월이 흘러 문혁이 끝나고 서서히 질서가 회복되던 1981년 8월,강소성청 문화재관리국은 그 오씨선영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착수, 위의 당판에 쓰인 열글자가 오승은의 마지막 문서직 관명임을 확인했고그 무덤에서 수습한 1남2녀의 유골을 중국과학원 고인류연구소에 보내 검증,그중 미골이 뾰족한 장렴에 키 1m60∼70cm,생존연령칠십몇쯤으로 보이는 남성의 유골은 오승은의 것이요,나머지는 초취와 지취부인의 것임을 각각 확인했으니 「서유기」연구에는 일대 개가가 아닐수 없었다. 오승은은 저승으로 떠날때 겨우 「회안부지」에 「서유기」의 저자라는 단 한줄로 남았지만 400년이 지나는 동안 그는 세계적인 작가로 떠오를뿐 아니라 공상과학소설로 연구의 열기를 모으고 있다. 그는 회안땅 하하리,소상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경항운하가 지나가는 중원의 요충인 회안땅에는 본시 인걸이 많았다.옛날 한고조때 천하통일의 기초를 확립한 한신대장을 비롯해 한나라의 대표적인 부가 매승, 한나라 말엽 건안칠자의 하나로 불리는 시인 진림,그리고 청말의 대표적인 풍자소설로 꼽히는 「노잔유기」의 저자 유악등이 이곳에서 낳거나 살았던 곳.그러나 그 모두를 몽땅 모아도 문학으로는 어찌 「서유기」한권을 감당할 것이며 정치하는 사람 모두를 내놓아도 어찌 죽은 주은래(1898∼1976)한 사람을 당하랴! 그는 회안사람으로 모택동을 도와 신중국을 세우곤 줄곧총리를 지냈던 제2인자요,또한 시인이었다. 필자가 오승은을 만나러 연운항에서 2시간반이나 버스에 터덜거리며 회안에 당도했는데 회안은 주은래 일색이었다. 거리에는 그의 「탄신100주년」을기념하는 빨강 플래카드가 물결을 치고,회안시 북교에는 수만평 규모의 호상공원으로 꾸며진 「주은래기념관」,다시 시내 한복판 서문대가 연도에는 주은래 생가가 옛날 반가의 풍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30년전, 대북에서 즐겨 탔던 삼륜차를 타고 회안시 북단에 있는 초호 지나 하하로 머리를 돌렸다. 오승은이 태어나서 예순살이 넘어 장흥현의 현승을 살아먹은 1년남짓 말고 줄곧 살았던 생가를 찾는 길이었다.회안호텔에서 겨우 15분거리.하하는 들판.타동항이라는 골목에 접어들자 네모난 전통 가옥.동향 대문에는 「오승은고거」라는 횡편이 걸렸고,대문으로 발을 딛자 맨앞에 손님맞이의 객실,객실옆으로 오승은의 서재로서 불후의 명작 「서유기」를 썼던 「사양이」(사양은 회안의 옛이름이요,오승은의 호.이는 다락)가 있고,서재옆으로 대청,그 안에는 중국과학원의 검증으로 제작된 오승은의 반신 동상이 있다.그 옆으로 오승은이 거처했던 안방,안방 건너편에 사랑방.마당에는 작은 연당,연당에는 가산.가산에는 청죽 몇그루 꼿꼿이 서있는데 비록 불우하게 큰 벼슬 하나 건지지 못했지만 천궁 지부를 마음대로 출입하고 작은 이끗에도 굽히지 않던 신통과 오기가 보이는 듯했다. 16년 전만 하더라도 오승은의 무덤은 깜깜한 안개속이었다.이제 그 무덤이 확인되고 그 유골이 틀림없다는 그곳은 찾는 이의 마음을 부풀게 했다. 경항운하를 따라 남행 8㎞쯤의 도로에 이윽고 「마전공업단지(마전공업원)」라는 안내판이 보였다.거기서 좌회전하여 내를 건너 다시 미루나무가 이열 횡대로 선 언덕을 따라 남으로 1.5㎞쯤 걸었을때,왼편에 작은 마을.아무 팻말도 없었다.그 마을이 이보촌.곽대장.그러니까 두번째 방축 마을의 곽씨네 집성촌이란 뜻이겠다.마을앞에 묘문이 보였다.「오승은지묘」. 온 마을에 푸릇푸릇고개를 흔드는 밀밭,그 복판에 버드나무로 방풍림을 세우고 묘문안에는 아주작은 봉분 2기.하나는 오승은의 아버지,그러나 2기 모두 잡초와 잡목이 휘휘했다. 오승은의 묘앞에는 「형부기선사양오공승은지묘」라는 묘표.여기서 형부는 명나라 인종의 서출왕자인 형헌왕의 왕부요, 기선이란 왕부의예법을 관장하는 자문직,사양은 오승은의 관향을 말한다. 곧 왕부의 8품으로 말직인데 그것마저 증여의 관작으로 보인다.오승은의 만년 관운이 얼마나 소조했을까를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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