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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女談餘談] 된장을 위한 변명/김미경 문화부 기자

    입추가 지난 어느 날, 퇴근하고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꿀단지 같은 항아리를 안고 속을 계속 들어다보시더니 “이게 뭔지 아니?오늘부터 우리 집 보물이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궁금한 마음에 항아리로 손을 뻗치는 순간, 구수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리산 민가에서 정성껏 만든 된장이란다. 가격은 시중의 반값인데 맛은 일품이라며, 당장 된장국을 끓여먹자며 서둘렀다. 지리산표 된장이 집에 온 사연은 이렇다. 어머니의 죽마고우가 지리산에 갔다가 우연히 들른 한 집에서 직접 만든 된장을 봤고, 몇시간을 졸라서 결국 된장을 산 뒤 친구들에게까지 소개하게 됐다. 주문한 지 수일만에 목을 빼며 기다리던 된장이 배달된 순간, 어머니는 꼭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내주신 것처럼 기뻐하며 된장에 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된장이라는 게, 콩으로 메주를 쑤어 훈훈한 곳에서 띄운 뒤 한참 지나 볕에 말려 말간 소금물을 붓고…. 메주를 건져 소금·간장을 친 뒤 항아리에 꼭꼭 눌러담은 뒤 볕을 쬐면 삭아서 된장이 된단다.” ‘누가 된장 만드는 거 모르나.’하는 마음에 처음에는 건성이었지만 새삼 된장에 애정이 느껴졌다. 오랜 기간 만드는 이의 정성이 담겨야 제대로 된 된장이 탄생한다는 사실에 절로 숙연해졌다. 그렇게 정성을 들이기 때문일까. 된장은 건강에 좋은 최고의 발효식품이다. 최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곰팡이’는 된장에 항체생성 증강물질이 있어 세균·바이러스 침투를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런데 한민족의 소중한 전통음식인 된장이 최근 수난을 겪고 있다. 이른바 ‘된장녀’ 논란 때문이다. 된장녀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철없이 행동하는’ 신세대 여성을 지칭하기도 하고, 그들이 즐겨 마시는 ‘스타벅스’커피가 된장과 비슷한 색이라서, 속은 토종(된장)인데 겉으로는 외국 것을 추종한다는 데서 나왔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된장을 ‘모욕’하는 것일 뿐이다. 인기 드라마작가 김정수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된장녀가 오히려 된장처럼 숙성하면 구수한 맛이 나오는 좋은 엄마, 훌륭한 아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부터 된장, 아니 된장녀에 대해 생각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이왕 된장과 연관시켰으니 말이다. chaplin7@seoul.co.kr
  • “시간 거스르는 작업… 풀 만드는 데만 15년”

    “시간 거스르는 작업… 풀 만드는 데만 15년”

    한번 훼손되면 시간을 돌이키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는 것들이 있다. 오랜 세월 내려온 문화재가 대표적이다. 무형문화재 배첩장 기능보유자 김표영(80)씨는 그런 면에서 어쩌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사람이다. ●폭풍 속 보물 구조작업 “여기 곡성 도림사인디요, 큰 일이 나 부렀소. 어르신이 후딱 쫌 내려오셔야 쓰겄는디요.” 지난달 10일 태풍 ‘에위니아’가 남부지역을 마구 할퀴던 날 밤, 김씨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폭풍으로 산사태가 나면서 전남 곡성군 월봉리 도림사에 소장돼 있던 보물 1341호 괘불탱(대형 탱화)이 훼손됐다는 것이었다. 이 괘불탱은 1683년에 만들어진 조선 중기 대표적인 불화로 2002년 보물로 지정됐다. 급하게 도구를 챙긴 김씨는 11t 트럭에 몸을 싣고 밤새 곡성으로 내달렸다. 상황은 최악이었다. 괘불을 두루마리 상태로 보관하고 있던 7m 길이 나무함은 두 동강이 났고, 그 위에 쌓인 2m 높이의 흙더미에 깔려 삼베로 된 괘불은 흙탕물에 벌겋게 젖어 있었다. 수백년 된 그림은 물이 몇방울만 스며도 때가 얼룩으로 번져 금세 망가지고 만다.“거기에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염료가 번지고 곰팡이까지 슬어 돌이킬 수 없게 될 판이었어.” 그는 그림을 급히 비닐로 싼 뒤 경기도 일산 자신의 지류문화재보존연구원으로 옮겼다. 며칠간의 밤샘 응급처치를 거쳐 괘불은 생사(生死)의 고비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1978년 이후 그의 손을 거쳐 복원된 국보와 보물, 지방문화재 등은 얼추 160여건이 넘는다. 한 질에 몇 십권씩 하는 고서적을 합치면 그 수는 이루 셀 수 없을만큼 늘어난다. 특히 괘불탱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배첩(褙貼)이란 글씨나 그림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들어 아름다움과 보존성을 높여주는 전통적인 서화 처리기법이다. 흔히 ‘표구(表具)’로 알고 있지만 이는 일본에서 온 개념이다. 도림사 괘불은 아직 본격적인 보수와 보존처리를 남겨놓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최종 보수·보존처리자를 결정할 계획이다. ●복원에 1년은 기본 김씨는 복원에 최소 1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시간을 거스르는 일인 문화재 복원작업은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된다. 수백년 된 종이나 삼베는 잘못 건드리면 바로 바스러져 버린다. 말라있는 염료가 약한 바람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작업 중에는 숨도 크게 쉴 수 없다. “시간을 거스르는 작업이야. 핀셋 한번, 붓 한 번 잘못 놀리면 그 문화재는 영영 사라지는 거야. 그래서 국보급은 밀가루풀 하나 만드는 데도 15년이 걸려.1㎠짜리 새끼손톱만한 종이를 떼어내는 데 만 하루반(36시간)이 걸린 적도 있지. 일본에서는 국보 배첩 하나를 하는 데 7∼10년을 잡기도 한다더라고.” 복원작업은 오물제거→해체→박락지 접착→구배접지 제거→초배 작업→화심 정리→액자 등 틀 구성→비단 붙이기→훈증 순으로 이뤄진다.100년 된 삼베가 떨어져 나간 곳은 똑같은 천을 구해야 한다. 천의 두께는 물론 부드러움이 틀려도 덧댄 부분이 도드라지거나 휘거나 색이 변한다. 염료도 옛날 그대로여야 한다. 건조시키는 데에는 몇달이 걸린다. “1980년이었을거야. 보물 613호 신숙주 영정이 종가에서 사라졌는데 며칠 만에 엉망으로 접힌 채 발견됐어. 팔려다 힘드니까 접어서 버린 거지.500년 지난 삼베천을 이리저리 접었으니 남아 났겠나. 그게 우리의 현실이야.” 글 사진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께/최광범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진흥팀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1일자 1면 사고를 통해 사장님을 비롯한 세 분의 낯익은 성함과 우리은행 출신 부사장님 등 다섯 분이 서울신문을 이끌 것이라고 독자들에게 공표했습니다. 취임을 계기로 ‘꿈★은 이뤄진다’는 친숙한 구호가 서울신문에서 구현되길 기대해 봅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임원진에게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마지막 옴부즈맨 칼럼이라 세세한 지면평가보다 더 중요하리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취임 하루 전인 지난주 금요일자 도하 신문들은 헌법재판소의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에 대한 위헌 소송사건에 대한 결정내용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새 임원 분들도 꼼꼼히 읽으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결정내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신문의 보도태도는 우리 신문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도로는 없고 목적지만 표시된 지도였습니다. 소아적 이기주의만 횡행했습니다. 저는 이번 결정의 핵심인 ‘국가의 신문산업 지원제도 공인(公認)’이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익적 가치가 우선하는 사기업 신문사에 공적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경영자료를 국민에게 알리라는 조건만 붙은 것이었습니다. 신문사주가 불법을 저질러도 ‘언론자유’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변호해왔습니다. 지금까지 광고주들은 발행부수와 유가부수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신문에 광고를 해왔습니다. 광고주협회가 조사하는 결과가 모든 신문업계 내부의 커다란 뉴스거리였습니다. 2년 전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75만 6500부를 발행하는 ‘댈러스 모닝 뉴스’라는 신문이 3만 9000부를 부풀렸다며 광고주들에게 230억원을 배상하고 경영담당 부사장이 사임했습니다. 또 ‘뉴스 데이’라는 신문과 ’시카고 선-타임스’도 이와 비슷한 곡절을 겪었습니다. 사장님은 이제 신문협회에서도 발언할 기회가 많을 겁니다. 신문업계가 공생하고 파이를 키우는 일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문협회가 특정 신문사들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돼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신문을 만들어도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특정지역에선 보고 싶은 신문도 배달이 되지 않습니다. 신문유통원의 성공적인 정착은 이런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신문의 미래, 그 독립성과 다원성의 보장’이란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신문 없는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가 발행취지였습니다.“읽기를 싫어해 신문독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정설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진단은 잘못입니다. 무료지 독자의 급성장 배경에는 독자 손에 직접 안겨주는 배달,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도 쉽게 읽을 수 있는 판형변화였습니다. 국가는 신문유통질서 혁신에 공적자금을 대대적으로 쏟아 붓기로 했습니다. 신문사들은 판형을 독자편의 중심으로 바꾸었습니다. 영국의 주요 일간지는 타블로이드 판형과 비슷한 콤팩트(Compact)판이나 현재 서울신문과 타블로이드 크기의 중간 크기인 베를리너(Berliner)판형으로 바꿔 발행부수가 7∼10%가 늘어났습니다. 신문부수를 늘리기 위해 100년 전통의 판형까지 바꾸는 혁신을 세계 신문업계는 단행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로 대표되는 무법천지 신문시장을 조장하는 우리 신문업계 풍토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신문업계 전체 발전을 위한 제안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서울신문 안에서는 임기제 사장이 취임하는 조직에 대한 예측이 빗나가게 해줬으면 합니다. 조직 내적 역량보다는 외적 역량에 기대거나 인적 공학이 횡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서별 스타(전문)기자를 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독자, 특히 전문가들에게는 좋은 기사를 많이 쓰는 기자의 이름만 남습니다. 이번 헌재 결정을 보도하는 서울신문을 보면서 누가 미디어 전문기자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사장님, 신문업계 스타 CEO가 돼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최광범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진흥팀장
  • 전통차 한잔이면 피로싹~

    전통차 한잔이면 피로싹~

    “어휴, 더워!” 해마다 여름이면 누구나 저절로 내뱉는 단어다. 하지만 뭐든 대비만 하면 “거참 시원하네!”로 바꿀 수 있다. 여름을 지혜롭게 이기는 방법에는 우리 생활 주변에도 많다. 이 가운데 전통차를 이용하는 방법을 권해 본다. 즉, 오미자·대추·둥글레차 등이 대표적이다. 올 여름에는 이들 전통차로 무더위를 이겨 보자. 인스턴트 음료수는 갈증 날 때 시원하게 해주지만 마시고 나면 후회된다. 특히 당분이 많아 살을 찌게 해주기에 다이어트할 때는 금물이다. 오미자차-다섯가지 맛 ‘여름의 지존’ 여름 더위를 날려주는 전통차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오미자차. 겨울철보다 여름철에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갈증 해소에 탁월한데다 몸을 건강하게 하고 정신적·육체적 활동력을 높여 피로를 막는 효능의 보약차다. 오미자는 열매를 말려 놓으면 지름 1㎝정도의 짙은 붉은 빛깔을 띤다. 속에는 붉은 즙과 불그스레한 갈색 종자가 1∼2개 들어 있다. 열매는 하나인데 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의 5가지 오묘한 맛이 난다고 해서 오미자가 됐다. 이 중 신맛이 가장 강하다. 종류에는 북오미자·남오미자·흑오미자 등이 있다. 오미자는 주로 태백산 일대에 많이 자라고 남오미자는 남부 섬지방, 흑오미자는 제주도에서 자란다. 사과산과 주석산이 많이 들어 있어 신맛이 강하다. 오미자는 폐기능을 보호해 주기 때문에 기침, 가래나 만성기관지염, 인후염, 편도선염 등에 좋다. 신맛이 있어 입이 마르고 갈증이 심할 때도 좋다. 오미자는 자양강장제로 오래 전부터 이용되어 왔는데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에게 정신 신경을 이완해 주고 머리를 맑게 해주어 정신 집중도를 높여 준다. 오미자차를 매일 마시면 낮의 권태로움이나 뻐근한 증상, 건망증에 좋다. 건강한 사람도 오미자를 먹으면 약 30분후 정신적·육체적 활동력이 높아지고 피로를 덜 느끼게 된다. 이 효과는 3∼4시간이나 계속된다. 말린 열매를 찬물에 담가 붉게 우러난 물에 꿀·설탕을 넣어 여름 별미 차로 마시거나 화채를 만들어 먹는다. 또 오미자 우린 물에 꿀과 레몬즙을 넣어 냉동실에서 얼린 뒤 포크로 으깨어 레몬 과육을 넣고 다시 냉동실에 얼렸다가 꺼내 먹는 오미자 셔벗도 여름철 별미다. 밤, 대추, 인삼을 함께 넣고 끓여 따뜻한 차를 만들기도 하고, 술을 담그기도 한다. 따라서 집에서 다소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다면 다이어트에도 좋고 더위를 싹 보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번에 많이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고 물처럼 자주 마시면 좋다. 어린이들에게도 양양가 있는 음료수가 된다. 전통차는 단순히 땀을 식혀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면서도 몸에 좋은 각종 성분이 들어 있어 보약이나 마찬가지. 더위를 이기고, 다양한 성분으로 몸도 튼튼하게 해주는 전통차, 그 신비한 맛의 세계를 음미해보면 어떨까.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촬영협조 : 한국 프레스센터 내 전통찻집 ■ 대추차-불면증·스트레스 한 방에 날린다 대추차는 숙면을 도와주기 때문에 여름철 열대야로 고생할 때 시원하게 마시면 효과가 있다. 마음을 안정시켜주기도 해 불면증은 물론 스트레스까지 한방에 날려준다. 비위(비장과 위장, 즉 소화기)를 튼튼하게 해 줘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인 사람이 복용하면 속을 편하게 해준다. 호흡기도 강하게 해주기에 기침을 낫게 하는 등 감기에도 효과가 있다.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어 관절염이나 류머티즘 등에 좋다. 체질상으로 소음인에게 좋다. ■ 둥글레차-건강한 혈색·정력보강 효능 여름철에는 더위 때문에 식욕을 잃고 제때 식사를 하지 않아 기운이 쭉 빠지기 쉽다. 둥글레차는 식욕 저하로 약해진 기운을 보충해 주는 데 효과적이다. 장기 복용하면 신체가 가벼워지고 안색과 혈색이 좋아진다. 또한 노후의 정력증진과 보강에 특출한 효과가 있다. 예로부터 스님과 선인(仙人)들이 식사 대용으로 했다 하여 ‘선인반(仙人飯)’ 또는 여인들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해 ‘여위(女萎)’라고도 한다. 이밖에 구기자차도 강장제의 성분인 베타인이 들어 있어 노화방지, 강장효과가 뛰어나 여름철 허해진 기운을 보충하는 데 좋은 차다. 전통차 이렇게 만들어요 (1) 오미자차 재료 : 말린 오미자열매 4작은술, 물 4컵, 꿀 조금 만드는 법 1 : (1)오미자는 씻어서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2)깨끗이 씻은 오미자를 주전자에 넣고 적당량의 물을 부은 다음 은근한 불에 끓여 찻잔에 따라 마신다.(3)꿀을 조금 넣어 마시면 신맛이 없어져 좋다. 만드는 법 2 : 오미자를 설탕에 재워 두었다가 물을 넣어 끓이면 된다. (2) 대추냉차 재료 : 대추 20개, 꿀 1/4큰술, 설탕 1/4큰술, 생수 1컵, 잣 만드는 법 : (1)대추 20개를 씨를 발라 내어 3∼4등분으로 썬 다음 꿀과 설탕에 재워 둔다.(2)꿀과 설탕에 재워 둔 대추를 물에 넣고 은은한 불에 끓인다.(3)대추물을 식힌 뒤 얼음과 잣을 띄운다. (3) 둥글레차 재료 : 둥글레(말린 뿌리줄기)4∼8g, 물 200㎖ 만드는 법 : (1)뿌리줄기를 깨끗하게 씻어 그늘에서 말린다.(2)잘 말린 뿌리 줄기를 잘게 썬다.(3)냄비에서 노랗게 변할 때까지 약한 불로 볶는다.(4)습기가 차지 않는 용기에 보관하여 필요한 만큼씩 이용한다.(5)볶은 뿌리줄기를 물과 함께 은근한 불에 우러나도록 끓인다.(6)찌꺼기를 걸러내 식힌 뒤 얼음을 넣어 마신다. (4) 수정과 재료 : 생강, 통계피 100g씩, 물 20컵, 황설탕 280g, 곶감 20개, 호두와 잣 조금 만드는 법 : (1)생강은 껍질을 벗겨 씻은 뒤 얇게 저민다.(2)통계피는 씻어서 부수어 둔다.(3)곶감은 가루를 털고 젖은 수건으로 표면을 깨끗이 닦은 뒤 꼭지와 밑동을 살짝 자른 다음 옆면을 칼로 잘라 씨를 발라낸다.(4)호두는 통째로 미지근한 설탕물에 잠시 넣었다가 꺼내어 꼬치로 껍질을 벗긴다.(5)곶감을 넓게 편 다음 호두를 넣고 김발로 꼭꼭 말아 곶감쌈을 만든다.(6)(1)의 생강은 찬물 10컵을 붓고 향이 우러나도록 은근한 불에 8컵이 될 때까지 30∼40분 정도 끓인다.(7)다른 그릇에 (2)의 계피와 찬물 10컵을 붓고 은근한 불에서 8컵이 될 때까지 끓인다.(8)(6)(7)을 각각 체에 거른 뒤 황설탕을 넣어 살짝 끓인 다음 식힌다.(9)(5)의 곶감쌈을 7∼8㎜ 두께로 썬다.(10)차게 식힌 수정과에 곶감쌈과 잣을 띄워 낸다
  •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그룹세브코리아 크리스티앙 페미니에 사장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그룹세브코리아 크리스티앙 페미니에 사장

    생활에 꼭 필요한 제품을 콕콕 찍어 선사하는 소형가전 브랜드 ‘테팔’. 요리, 살림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국내에 들어오는 테팔의 모든 제품을 그 누구보다 먼저 접하는 크리스티앙 페미니에 세브코리아 사장과 부인 필리스 페미니에가 부러울 법도 하다. 팬, 그릴, 무선주전자, 토스터, 커피메이커 등 테팔 제품에 관한한 ‘얼리어댑터’로 살고 있는 그들의 집을 살짝 들여다봤다. 프랑스의 생활가전용품 회사 ‘테팔’은 전 세계 여성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다. 프라이팬, 커피메이커, 전기그릴, 무선주전자, 스팀다리미…. 어느 것 하나 없으면 아쉬운 제품을 테팔에서 선보이고 있기 때문. 테팔의 한국지사인 그룹세브코리아 크리스티앙 페미니에(55)사장과 그의 부인 필리스 페미니에를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만났다. 깔끔하고 세련된 그의 집 분위기가 마치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테팔 제품의 이미지와 닮았다. 하얀색 거실 벽은 잡티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 거실 곳곳에는 한국의 전통 장식품들이 놓여 있어 그들의 한국 사랑이 전해진다. # 그릴 요리는 제 전공이죠 주부들이 부러워할 멋진 주방기구 일체를 갖추고 사는 그의 주방에서는 어떤 음식이 만들어질까 궁금했다.CEO로 바쁜 그이기에 요리는 잘해도 사실 자주 주방에서 실력 발휘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말에는 그의 손길이 닿은 요리로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가 잘 만드는 요리는 주말 오전에 먹는 브런치. 삶은 달걀, 구운 베이컨과 꿀을 바른 토스트 등을 접시에 담고, 커피와 주스를 곁들여 낸다. 간단한 요리 같지만 자신만의 정성이 들어가서 남과 다르단다. 커다란 목련 나무가 있는 뒤뜰에서 부인과 함께 브런치 먹는 시간은 그야말로 달콤한 데이트. 브로콜리, 컬리플라워, 가지, 토마토, 파프리카 등을 넣고 식초와 간 마늘, 프랑스 겨자, 올리브유를 섞은 드레싱을 뿌린 그린 샐러드도 그는 잘 만든다. 승마 사이클 수영 등 운동을 많이 하는 그가 칼로리 걱정 없고,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란다. 페미니에 사장이 특히 잘하는 것은 그릴을 이용한 요리. 날씨 좋은 날에는 고기나 흰살 생선을 올리브유와 마늘에 재웠다가 그릴에 구워 먹는다. 특히 왕새우 바비큐를 즐긴다. 그는 한국말을 못해도 입맛은 한국사람 다 됐다. 된장찌개, 청국장, 불고기 등을 좋아한다. 한국 음식은 좋아하지만 만들지는 못한다.“한국의 음식은 간단해보이면서도 과정이 복잡해 만드는 것은 엄두를 못 내요. 대신 맛있는 곳을 찾아 다니죠.” # 한국은 알면 알수록 정이 가는 나라 그가 한국에 부임한 것은 2002년 월드컵을 치른 뒤. 당시만 해도 88올림픽, 현대중공업의 거대한 선박 컨테이너, 노조들의 격렬한 시위, 삼성과 LG의 휴대전화 정도가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한국을 알면 알수록 더 정이 가는 나라란다. “한국은 결코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함이 있어요. 월드컵의 여운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한국인의 에너지와 열정은 절대 잊을 수 없어요.” 한국에 오기 전 결코 겪어보지 못한 심한 교통체증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 여러 곳을 찾아 다닌다. 주말을 이용해 각종 문화공연을 보고, 레저 스포츠도 즐긴다. 부인과 멀리 여행도 간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부인 역시 한국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거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항아리, 부처상, 붓걸이 등도 부인의 소장품. 프랑스인들과 한국인들에게 영어회화 강습을 하고, 서울의 영국인 모임인 ‘BASS(British Association of Seoul)’의 회장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한다. 또 짬짬이 붓을 잡고 동양화도 그린단다. # 한국 가정에 꼭 필요한 제품 선보일터 세브코리아의 사무실은 커다란 원통형이다. 한가운데에 회의실을 두고, 이 회의실을 둘러싼 창가쪽에 직원들의 책상이 놓여 있어 독특하다. 실내장식,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그가 쾌적한 근무환경을 고려해 직접 인테리어를 했다. 직원들에게 너무 ‘완벽하다’‘꼼꼼하다’‘준비가 철저하다’라는 평을 듣는 페미니에 사장. 업무는 물론 사적인 일도 2개월전부터 계획을 세워 놓을 정도다. 그는 생활의 변화를 바로 읽어내 소비자를 만족시키려고 노력한다. 혼자 사는 싱글족이 많아지는 추세를 반영, 초소형 무선 주전자를 출시하고, 여름을 겨냥해 콩국수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믹서기를 내놓았다. 불고기와 삼겹살 요리를 즐길 수 있도록 열센서 기능을 추가한 그릴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케팅 전략으로 접근한 제품이 아니에요. 한국인 감성에 대한 존중을 제품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매출 중심이었던 회사 체계에 균형이 잡히고, 한국지사 설립 이후 브랜드 선호도가 최고 수준으로 올라간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토스터에 뚜껑이 필요한 시장은 한국이 처음이죠. 하지만 이런 요소가 주부들을 만족시킨다면 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지금도 한국 문화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제품인지는 비밀이죠. 더욱 편리한 생활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제품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글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크리스티앙 페미니에 사장은 ▲1951년 프랑스 리옹 출생 ▲1973년 리옹대학교(Lyon University)에서 영어 전공 ▲1975년 스코틀랜드 카펫 회사 국제마케팅부 입사 ▲1981∼1991년 그룹 세브 본사 국제시장 담당 매니저 ▲∼1999년 전략마케팅 인터내셔널 상품개발 이사 ▲∼2002년 가정용품 사업단위 총괄 부사장 역임 ▲∼현재 그룹세브코리아 대표이사 사장 ■ 크리스티앙 페미니에씨의 솜씨자랑 1. 느긋한 휴일을 위한 브런치 재료:토스트 2쪽, 달걀 2개, 베이컨 4장, 토마토 6개, 양송이버섯 6개, 오렌지 4개, 자몽 3개, 생수 3컵, 설탕 3큰술 만드는법:(1)토스트는 토스터기에서 바삭하게 구워준다.(2)끓는 물에 달걀을 깨 넣어 터지지 않게 살짝 익혀 꺼낸다.(3)토마토와 양송이 버섯은 소금을 살짝 뿌려 그릴팬에 노릇하게 굽는다.(4)베이컨은 바삭하게 구운 뒤 접시에 모든 음식을 담아 낸다.(5)오렌지 4개에 생수 11/2컵, 설탕 1큰술을 넣어 곱게 갈아 오렌지 주스를 만든다.(6)자몽 3개와 생수 11/2컵, 설탕 2큰술을 넣고 갈아 자몽 주스를 만든다. 2. 해산물이 들어간 검은 파스타(4인분) 재료:블랙누들 320g, 새우살 200g, 브로콜리 200g, 방울토마토 50g, 생크림 250㎖, 우유 250㎖, 바질페스토 2큰술,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법:(1)브로콜리는 한 입 크기로 떼어 소금물에 데치고, 새우살도 살짝 데친다.(2)생크림, 우유를 혼합해 농도가 날 때까지 중불에서 졸이다가 데친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바질페스토를 넣는다.(3) (2)에 소금·후추 간을 한다.(4)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블랙누들을 삶아 소스에 살짝 볶는다. Tip:바질페스토는 바질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 후 다져 올리브오일에 담가놓는다. 여기에 파마산 치즈가루를 넣고 안초비를 잘게 다져 넣은 후 소금, 후추가루로 간한다. 넉넉히 만들어 랩으로 싼 뒤 냉장고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쓰면 편하다. 3. 카프레제 샐러드 재료:프레시 모차렐라 1봉지, 토마토 2개, 주키니호박 1/2개, 가지 1개, 파프리카 1/2개, 바질 30g, 소금·후추 조금,발사믹드레싱(올리브오일 3큰술, 발사믹식초 2큰술, 레몬즙 2큰술, 씨겨자 1/2큰술, 다진 양파 11/2큰술, 설탕 1작은술, 프레시바질 1큰술) 만드는법:(1)주키니호박, 가지, 파프리카는 0.7㎝ 정도로 어슷하게 썰어서 그릴팬에 아무것도 두르지 않은 상태에서 굽는다.(2) (1)에 소금·후추 간을 한 뒤 살짝 식힌다.(3)토마토와 모차렐라 치즈는 1㎝ 두께로 저며놓고, 바질은 굵게 채썬다.(4)발사믹 드레싱을 만든다.(5) (1)과 토마토, 프레시 모차렐라 치즈에 드레싱을 뿌려 낸다. 4. 아몬드 크러스트 연어구이 재료:스테이크용 연어 480g, 아몬드 슬라이스 200g, 화이트와인 2컵, 파슬리 1큰술, 로즈마리 1/2큰술, 타임 1/2큰술, 올리브오일, 버터,소스(올리브오일 3큰술, 꿀 2큰술, 케이퍼 다진 것 1큰술, 레드페퍼콘 1큰술, 레몬즙 4큰술, 씨겨자 1큰술, 다진 딜 11/2큰술, 소금·후추 약간) 만드는법:(1)연어를 손질해서 소금, 후추, 파슬리, 로즈마리, 타임, 화이트 와인에 30분정도 재워둔다.(2) (1)에 실온에 둔 버터를 발라준 후 아몬드 슬라이스에 묻혀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노릇하게 구워낸다.(3)재료를 골고루 섞어 소스를 만든다.(4)노릇하게 구운 연어스테이크 위에 뿌려낸다. ■ 강추! 이 식당 자주 가는 식당을 묻자 바로 식탁 한쪽에서 명함 한묶음을 가지고 왔다. 한 손에 잡기도 버거울 정도로 많은 식당 명함 컬렉션이다. 그 중에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곳은. # 석파랑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전통미가 물씬 풍기는 곳. 페미니에 사장은 “감나무가 아름다운 곳”이라고 설명했다. 최고급 한정식을 경험할 수 있다.(02)395-2500. # 알트스위스샬레 알프스 산장의 아늑함이 느껴진다. 스위스 정통 음식과 다양한 치즈요리, 스테이크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퐁뒤 요리가 특히 맛있다.(02)797-9664. # 뱀부하우스 고급한식당의 원조로 불리는 식당.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기, 직접 담근 김치, 고급스러운 분위기 등은 외국인에게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02)555-6390. # 아 따블르 서울 삼청동에서 ‘아 미디’와 함께 꼽은 식당.‘오늘의 메뉴’, 단 하나지만 실패한 적은 없다. 그날의 가장 싱싱한 재료만 골라서 만든다고. 테이블이 많지 않아 예약은 필수다.(02)736-1048.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1) 아랍인 영혼의 고향 바그다드

    [이슬람 문명과 도시] (11) 아랍인 영혼의 고향 바그다드

    바그다드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인류 문명의 시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고, 중세에 세계를 호령했던 아랍이슬람 제국의 수도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천일야화’의 탄생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편으로는 옛 영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가난과 공포와 절망에 찌들린 시민들의 눈동자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유유히 흐르는 티그리스강은 바그다드가 겪은 영욕의 세월을 가슴에 묻은 채 바그다드인들의 눈물과 한을 싣고서 때로는 검푸른 물결을, 때로는 황금 물결을 이룬다. #‘신의 축복´ 받은 바그다드 바그다드는 신의 축복을 듬뿍 받은 도시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풍부한 수자원, 비옥한 토양, 동서무역의 요충지, 전략적 요새 등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도시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서는 세계 제2의 석유매장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는 불행한 땅이 되어버렸다. 신의 축복이 보이지 않는 시샘을 불러온 것일까? 바그다드의 슬픈 운명은 1258년 몽골의 침략으로 도시가 초토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8년에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꼬박 700년이 걸렸다. 잃어버렸던 700년의 대가는 너무 혹독해서 이라크의 재기는 몸부림에 그칠 때가 많았다. 바그다드의 잃어버린 세월은 아랍인들이 잃어버린 세월이다. 바그다드는 중세 아랍이슬람 제국의 수도로서 아랍 문화의 기틀을 확립하여 발전시킨 곳이다. 아랍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바그다드는 아랍인들에게 긍지의 원천이며 영혼의 고향이다. 바그다드에는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들이 많다. 이들의 면모를 곰곰이 살펴보면 고대와 현대가 서로 맞닿은 느낌이 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숨결, 지구라트 기원전 3000년경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를 세웠던 수메르 왕국의 유적을 비롯해서 바빌론 왕국과 아시리아 왕국,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유적들이 당시의 숨결을 들려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대표적 문화유산은 신전탑인 지구라트(Ziggurat)와 설형문자, 다양한 인장들, 대형 석상과 부조 등이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다신숭배 사상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피라미드 형태로서 흙벽돌이나 석회석으로 지어진 이 신전탑은 3층으로 구성됐고 전면 중앙에 계단이 있다. 이라크에는 약 30개의 지구라트가 있는데, 바그다드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지점인 아가르고우프에 가면 대형 지구라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원전 1500년쯤 바빌론 왕국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자연 석회석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지구라트 주변에는 신전, 왕궁, 마을, 시장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생활의 구심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니파 모스크, 시아파 모스크 이라크는 수니파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시아파 인구가 훨씬 많다. 시아파의 주요 성지들이 이라크에 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에는 어디를 가든 수니파 모스크와 시아파 모스크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수니파 모스크는 알 아드함 모스크이다. 바그다드 서쪽 알 아드하미야 구역에 위치한 이 모스크는 이맘 아부 하니파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이맘 아부 하니파는 이슬람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하나피 학파의 창시자로서 766년에 타계했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1066년에 그의 묘소를 안치하는 모스크가 지어졌는데 이것이 알 아드함 모스크이다.1000년에 가까운 세월의 풍상 속에서 이 모스크는 파괴와 보수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수니파 무슬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한편 대표적인 시아파 모스크로는 카디마인 모스크를 꼽을 수 있다. 바그다드 북부 교외의 카디미야 구역에 위치한 이 모스크는 2개의 황금색 돔과 4개의 황금색 미나렛이 화려함과 신비를 자아내며 장엄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이 모스크는 시아파의 이맘이었던 무사 알 카딤과 무하마드 알 자와드의 묘소를 안치한 곳으로 사파위조 페르시아가 이라크를 통치하던 시기인 1515년에 건립됐다. 카디마인 모스크는 2005년 2월에 발생했던 폭탄 테러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의 폭탄 테러는 시아파의 최대 종교기념일인 아슈라 전야에 발생하여 사건의 배후로 수니파가 지목됐다. #‘천일야화’ 추억 깃든 아부 누와스 바그다드 시내를 걷다 보면 마치 ‘천일야화’의 한 장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인류가 탄생시킨 이야기 문학의 보고(寶庫)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낭만과 신비를 선사한 ‘천일야화’의 고향이 바로 바그다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신밧드의 모험’,‘알라딘과 요술램프’,‘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카라카데 거리에 즐비한 카펫 상점들 앞을 지날 때는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알라딘이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티그리스강을 따라 조성된 아부 누와스 거리에는 ‘천일야화’의 두 주인공 샤흐리야르 왕과 샤흐라자드 왕비의 대화 장면이 조각상으로 재현되어 있고, 알리바바 광장에 가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지혜로운 여종이 도둑들이 숨은 항아리에 기름을 붓는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천일야화’의 추억은 아부 누와스 거리에서 특히 새록새록 묻어난다. 아부 누와스는 이 작품에서 수없이 아름다운 노래를 읊었던 시인이 아니던가! 술과 여인과 사랑을 주제로 시를 읊으며 당대를 풍미했던 그는 아랍 세계의 이태백이었다. 아부 누와스 거리는 옛 시인의 체취를 간직한 채 오랜 독재와 전쟁, 가난에 지친 이라크인들에게 한 가닥의 여유를 선사하고 싶어한다. 또한 아부 누와스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통요리 마스쿠프다. 마스쿠프는 티그리스 강에서 잡아올린 민물고기 등을 갈라 편 후 내장을 제거하고 장작불에 구워 갖은 양념으로 조미한 요리다. 귀한 손님 접대 음식으로 많이 쓰이는 이 요리는 투르시(절인 고추 또는 오이)와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이라크 주권회복 상징 ‘자유 기념비´ 바그다드에는 정치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정치 이념을 강조하는 조형물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58년 혁명을 기념하는 ‘자유기념비’다. 알 타흐리르 광장 중앙에 위치한 ‘자유기념비’는 1958년 7월14일 혁명을 기념한다. 이 기념일은 수십년간 영국의 대리자 역할을 해온 왕정을 붕괴시키고 이라크인들이 주권을 찾은 날로 높이 평가된다.14개의 동판주조물로 이루어진 대형 부조에는 혁명을 유발한 사건들, 혁명장면, 혁명 후의 평화로운 삶 등이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묘사되어 있다. 이라크는 근대에 서구 식민지배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한 아랍 국가로서 일찍이 현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했고, 교육·과학·문화 등의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수차례 전쟁은 이라크를 아랍 국가 중 최하위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많은 역사가들은 바그다드를 ‘불사조의 도시’라고 칭한다. 혹독한 전란과 자연재해로 잿더미가 된 후에 어김없이 회생 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도시 바그다드에 하루빨리 평화가 정착되어 ‘불사조´의 역사를 다시 한번 기록하길 염원한다.
  • 태극전사요? 엄청나게 평범하게 먹죠

    태극전사요? 엄청나게 평범하게 먹죠

    독일 월드컵을 위해 땀 흘리는 태극전사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돌보는 ‘어머니’같은 존재, 정지춘(41)씨. 파주 국가대표축구 트레이닝센터(NFC)의 조리장으로 훈련때뿐 아니라 독일 월드컵 기간동안 현지에서 태극전사들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 과연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무엇을 먹고 전·후반 90분 동안 황소같은 체력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는지를 들어보았다. 글 사진 파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새벽 5시, 태극전사들이 하루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모두 잠들어 있는 파주 트레이닝센터에 어둠을 깨고 한쪽 구석에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무엇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태극전사들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정지춘 조리장이다. 나이는 비록 40대 초반이지만 가정에서 아들·딸 챙기듯 정성이 듬뿍듬뿍 담긴 음식을 마련한다. #어머니의 손맛으로 “아이를 키워보셨습니까. 처음 이유식을 할 때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줄까. 영양은 얼마나 있나. 혹은 아기가 잘 먹을까 고민을 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정씨가 딱 그 마음이다. 신선한 재료를 고르고 식사시간에 정확하게 맞추어 음식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주방의 조그만 창문으로 선수들이 잘 먹는지 엿본다. 선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아야 마음이 놓이고 행복해진다.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으면서 음식의 맛을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정씨는 재료의 선별부터 맛과 조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따라서 태극전사들의 가공할 ‘파워’는 그의 손맛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극전사들은 이런 것을 먹어요 “와∼도대체 박지성은 뭘 먹었기에 저렇게 90분을 뛰어도 지치지 않는 걸까.”“박주영 좀 봐. 생긴 것은 비실비실한데 날렵하게 야생마처럼 뛰는 거.”“아마 태극전사들은 ‘엄청난’것을 먹을 거야.” 축구경기를 지켜보는 우리들은 이같은 궁금증을 갖게 마련이다. 보통 태극전사들이 많은 양의 식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오산’이다. 축구선수들은 대부분 식사량이 보통 사람보다 적은 수준이다. 너무 많이 먹으면 90분을 뛰어야 하는 선수들의 몸이 무거워져 부담이 되기에 탄수화물과 단백질, 야채 위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대신 여러가지 음식을 조금씩 골고루 먹는다. 그래야만 몸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사는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하는 한식이다. 버섯, 청국장, 마샐러드 등 13가지 정도 정갈한 반찬이 따른다. 또 고기도 가끔 먹는다. 하지만 양은 아이 손바닥만 한 것 하나 정도. 김치는 조금 먹지만 맵고 짠 음식은 절대 금물. 위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선수들 스스로 자제하는 분위기. 닭가슴살은 지방이 없고 단백질이 많아 파워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어 자주 만드는 음식의 재료다. 고기는 위에 부담이 되며 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해물요리나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 콩, 버섯 등을 이용한 음식이 식단의 주를 이룬다. 정씨가 점심 때마다 빼놓지 않고 내놓는 음식이 ‘스파게티’다. 사람이 움직일 때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탄수화물이 가득해 고된 훈련을 소화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기 4∼5일 전에 ‘해물 유황오리백숙’같은 특식을 만들어낸다. 선수들의 원기를 보충해주는 유황오리에 전복, 낙지, 새우 등과 29가지 한약재를 넣고 끓이는 보양탕의 개념인데 그 맛과 영양이 만점. 금기시 되는 음식도 있다. 첫번째가 ‘떡’이다. 소화가 안되거나 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가 튀긴 음식. 지방이 체내에 오래도록 남아 있어 운동량이 많은 선수들에게는 부담된다. 셋째는 소화가 잘 안 되는 라면. 시원하고 매콤한 국물맛에 해외원정때 생각이 간절하지만 절대 먹지 않는다. 흔히 ‘대한민국의 힘은 고추장´에서 나온다고 이야기하지만 월드컵 훈련을 하는 동안에는 고추장을 피하는 것이 불문율. 매운 음식은 위에 자극을 주어 운동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어떻게 먹을까 특히 독일 월드컵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려면 맛난 음식이 필요충분조건. 이를 위해 정씨는 비장의 무기를 가지고 독일로 간다. 다름아닌 전기밥솥과 미역, 말린 북어, 김이다. 외국에는 찐밥이 보통이라 제대로 밥을 지을 수 있는 밥솥이 아주 중요하다. 또한 국을 끓이기 위해 말린 북어와 미역은 필수. 김치는 현지에서 조달한다. 선수들은 정씨가 해 준 음식과 호텔 뷔페의 음식을 같이 먹으며 영양과 체력을 보충한다. 역시 대한민국 사람들은 ‘밥힘’이 최고. #태극전사들, 숨겨놓은 비장의 무기 태극전사들이 자신을 위해 숨겨놓은 비장의 ‘보약’은 무엇일까. 참 다양하다. 영양제를 먹는 선수들도 있지만 전통 방식의 ‘보양식’을 먹는 선수들도 많다. 장어즙이 태극전사들에게 가장 인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강철같은 체력을 자랑하고 있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은 경기도 용인의 소문난 장어집에서 장어즙을 구해 먹는다. 또 다른 장어파로는 조원희(수원 삼성), 설기현(울버햄프턴), 김동진(FC서울) 등이 있다.‘꽃미남’ 백지훈(FC서울)은 세련된 얼굴과는 달리 ‘개소주’를 좋아한다. 박주영(FC서울), 이영표(토트넘)등도 홍삼 진액과 온갖 약재를 넣어 달인 한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아드보카트호의 1%인 송종국(수원 삼성)은 깔끔한 성격답게 사향과 녹용, 당귀, 산수유 등을 버무린 한약 ‘공진단’을 먹는다. ■ 경기앞둔 태극전사 특별식단 오리 한마리에 마 샐러드… 힘이 불끈 정씨가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을 위한 특별식으로 만드는 것이 해물오리백숙이다. 예로부터 오리탕은 고단백, 저지방, 저칼로리 음식으로 원기를 회복하는 데 아주 도움이 되는 음식이다. 특히 유황을 먹여 키운 오리고기는 특유의 냄새가 없고 맛이 아주 좋다. 또한 전복, 산낙지, 새우 등을 넣어 부족한 원기를 돋우는 데 최고. 게다가 십전대보탕에 들어가는 약재를 포함해 모두 29가지의 약재를 넣고 2시간을 푹 달여낸다. 재료는 유황오리 1마리, 오리 1마리, 전복 큰 것 3개, 산낙지 2마리, 새우 큰 것 5개와 당귀, 청궁, 상지 등 27가지(비법이라 더 이상은…), 생강 약간, 통마늘 5톨, 수삼 1뿌리, 소금 약간 만드는 법은 1. 오리를 커다란 솥에 물을 넉넉히 부어 각종 한약재를 넣고 1시간30분 이상 끓인다. 2. 오리와 한약재가 충분히 우러나오면 오리를 건져내고 채반을 통해 한약재를 건져낸다.3. 먹기 편한 그릇에 오리와 한번 거른 육수를 담고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먹기 직전 끓인뒤 준비한 해물을 넣고 다시 한 소뜸 끓인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여름철을 앞두고 어르신들을 위한 음식으로도 아주 훌륭하다. 두번째는 마(麻)요리. 예로부터 산약(山藥)’으로 불리며 원기를 회복하는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다. 이런 마에 상큼한 간장을 얹은 마 샐러드는 집에서 먹기도 좋은 음식.재료는 마, 고추냉이(와사비), 쪽파, 레몬, 부추 만드는 법은 1. 마는 껍질을 벗겨 어슷하게 썬다. 2. 썰어 놓은 마를 소금물에 1분 정도 담갔다가 건진다. 3. 진간장과 식초, 설탕, 레몬, 고추냉이를 적당히 넣고 양념 간장을 만든다. 4.(2)에 양념 간장을 붓고 위에 쪽파와 부추를 작게 썰어 얹으면 된다. #몸에 좋은 청국장 생청국장도 특별식 중 하나. 청국장이 몸에 좋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소화를 도와주는 각종 효소와 유산균이 가득한 천연 음식이 생청국장. 먹어 본 사람은 알지만 처음에는 먹기가 좀 그렇다. 냄새와 씹히는 맛 때문. 그래서 정씨는 생청국장에 양념장과 김을 뿌렸다.재료는 생청국장, 쪽파, 겨자, 진간장, 식초, 레몬 등. 만드는 법은 1. 진간장과 설탕, 식초, 레몬, 겨자를 넣고 양념 간장을 만든다. 2.(1)을 생청국장에 뿌리고 손으로 살짝 버무려준다. 3.(2)위에 자른 김과 쪽파를 썰어 올리면 된다.
  • ‘불교미술 거장’ 손에 붓 쥔 채 열반

    한국 불교미술의 거장 만봉(萬奉·속명 이치호·신촌 봉원사) 스님이 17일 오전 0시10분 봉원사 운수각에서 노환으로 열반했다. 세수 96세, 법랍 80세. 최근까지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고인은 작업에 전념하던 중 붓을 손에 쥔 채로 입적했다.1910년 10월 서울에서 태어나 1917년 단청장 김예운 스님에게 사사한 고인은 1926년 봉원사로 출가해 금어(金漁·불교에서 불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스님에게 주는 칭호) 자격을 취득했다.1971년엔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고인의 작품은 금강산 표훈사, 유점사, 장안사, 마연사, 서울 봉원사, 도봉산 도선사, 백련사 등 전국 주요 사찰과 문화재에 고루 남아있다. 고인은 1978년 세계불교도 우의회 동경총회 기념 전시회를 시작으로 2005년 6월 모란갤러리에서의 마지막 개인전을 열기까지 수많은 전시회를 열어 한국전통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불교 태고종 서울교구 종무원장, 봉원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1988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만봉 이치호 단청전 작품집’이 있다. 빈소는 봉원사에 마련되어 있으며, 영결식은 21일 오전 10시 봉원사에서 태고종 종단장으로 엄수된다. 다비식은 이날 오후 전남 순천 태고총림 선암사 연화대에서 열린다.(02)-392-3007.
  •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리디아 데를라트카 주한 폴란드 대사 부인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리디아 데를라트카 주한 폴란드 대사 부인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주한 폴란드 대사관저에는 요즘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안제이 데를라트카 대사부부의 3살된 늦둥이 아들 빅토르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난놀이를 재미있게 한다. 또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폴란드 과학연구원에서 현역으로 일하는 대사의 장모 엘쥐비에타 스타십스카가 4주간의 휴가를 얻어 서울 생활에 합류했다. 이들은 재래시장에 쇼핑도 가고,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 다니는 등 한국의 멋과 맛을 한껏 즐기고 있다. 저 멀리 동유럽에 있는 폴란드가 무척 가깝게 다가왔다. 유쾌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의 안제이 데를라트카(52) 폴란드 대사부부를 만나 폴란드 음식과 문화 등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번 여름 휴가는 폴란드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서울 성북구 한성대 입구역에서 북악스카이웨이길로 접어드는 성북동에 자리잡은 폴란드 대사관저를 찾았다. 뒤로 산이 있고, 정원 앞 연못에는 오리가 헤엄치고…. 풍수지리학적으로 지어졌다는 이 집을 안주인 리디아 데를라트카(43)는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지난해 말 크리스마스때 이사온 이 집은 조용한데다 집 구조 등이 이들 부부의 폴란드 집과 비슷해 더욱 좋단다.1층에 자리잡은 접견 방은 한국식 고가구들로 꾸며져 있고,2층은 유럽 스타일이다. # 3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요리솜씨 이 관저에는 대사 부부를 비롯, 딸 나탈리아(18)와 아들 빅토르(3)가 함께 살고 있다. 마침 대사의 장모 엘쥐비에타 스타십스카(65)가 4주간 휴가차 한국에 와 있어 집안 분위기가 한결 따뜻하다. 폴란드 과학연구원에서 근무한다는 친정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대사 부인 리디아는 맹렬 커리어 우먼이다.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한 그녀는 폴란드 경제부, 국제통화기금 본부(IMF) 등을 거쳐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부동산 회사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늦둥이 아들을 낳으면서 현재 2년간 육아휴직중이다. 한달 뒤면 폴란드 회사로 다시 복직할 예정이란다. 식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보니 리디아가 혼자 발휘한 솜씨는 아닌 듯.“어머니랑 며칠간 어떤 폴란드 요리를 소개할까 고민했어요, 폴란드의 재료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마침 부활절이 다가와서 하얀 소시지와 계란을 넣은 전통 수프와 케이크 마주렉 등 부활절 음식을 준비했어요.” 직장 생활로 자주 요리를 하지 못하지만 어머니 솜씨를 물려 받아 자신도 요리를 잘한단다. 자신의 딸인 나탈리아도 만찬 준비를 할 때 음식 장식을 맡을 정도로 벌써부터 요리 실력을 발휘하고 있어 요리 솜씨는 3대째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 보드카의 원조는 폴란드 안제이 대사가 직접 폴란드의 술 보드카를 잔에 따라 주며 점심 식탁의 흥을 돋우었다. 놀라운 사실은 보드카의 원조가 러시아가 아니고 폴란드라고 한다. 그는 “러시아 대사도 보드카의 원조가 러시아가 아니고 폴란드임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프랑스 이름을 갖고 있는 유명한 보드카 벨베도르도 사실은 폴란드에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폴란드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다. 이날도 돼지고기에 말린 자두를 곁들인 요리를 선보였는데 고기와 과일의 만남이 독특한 맛을 냈다. 고기를 먹을 때 튀긴 메밀과 마른 버섯이 들어간 양배추도 나왔다. 이 절인 양배추는 우리의 김치처럼 폴란드의 식탁에 늘 오르는 메뉴다. 구운 자두를 폴란드산 베이컨에 돌돌 말아낸 요리도 무척 맛있다. 폴란드 돼지고기는 우리나라로 수출되기도 한다. 우리가 즐겨 먹는 삽겹살도 폴란드 산이 많다. 또 생선은 청어를 주로 먹는데 구이보다는 날로 먹는다고 했다. 폴란드의 EU 가입이후 요즘 유럽에서는 폴란드산 육류, 과일, 유제품 등이 인기라고 자랑이 대단하다. 대사는 “최고의 자연 환경에서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소 먹이도 화학사료 대신 건초나 밭에 나는 풀을 먹여 키우다 보니 건강에는 정말 좋은 제품들”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리디아도 ‘건강 식단’에 신경쓰기는 마찬가지. 음식 알레르기가 있는 그녀는 폴란드에 있을 때 꼭 농부가 직접 돼지 등을 키우는 농가에 가서 고기를 사온다고 했다. # 한국음식은 예술이에요 리디아는 폴란드의 오랜 역사를 시작으로 아름다운 문화 유산, 쇼핑센터 등 폴란드를 소개하는데 너무나 적극적이다. 폴란드에서 나오는 과일만 해도 100여 종류가 넘고,200년 유서깊은 초콜릿 공장 등 폴란드의 자랑이 한없이 이어진다. 입고 있는 옷과 호박으로 만든 목걸이 세트도 폴란드 제품인데 무척 아름답다. 말린 자두가 들어간 초콜릿을 먹어봤는데 달콤 쌉싸름한 맛이 일품. 어머니가 자신과 손자를 위해 직접 폴란드에서 가져온 귀한 초콜릿이란다. 아버지를 똑 닮은 귀염둥이 아들은 자동차를 무척 좋아해 자동차가 많은 서울을 좋아 한단다. 지난해 8월 한국에 부임한 대사 가족은 벌써 설악산에만 세번 다녀올 정도로 한국 생활을 즐기고 있다. 다음 주는 안동 하회마을에 다녀올 계획이다. 시골의 논밭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는 엘쥐비에타는 “한국 음식은 예술”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국 음식에도 홀딱 반했다.“동대문에서 가방을 3개나 샀다.”며 “동대문 시장은 쇼핑하기 정말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대사의 한국 부임 전부터 폴란드의 한국 식당에서 김치를 사 먹었다는 이들 가족은 시간 나면 비빔밥, 불고기, 만두 등 한국 음식을 먹으러 다닌다. 리디아는 폴란드 자신의 집에 큰 삼성전자 냉장고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앞으로 본국으로 돌아가면 “한국과 관계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대사부인이 엄선한 폴란드요리 6선 베이컨으로 말린 자두 재료:말린 자두, 베이컨 만드는 법:튀긴 베이컨으로 자두를 말고 이쑤시개로 꽂는다. 하얀 소시지와 계란넣은 전통 수프 재료:호밀가루 20g, 마늘 3조각, 빵 껍질, 설탕, 소금, 우유 0,5ℓ, 계란 만드는 법: (1)물 1ℓ물 끓인 후 식을 때까지 둔다. 캐서롤(돌솥밥과 비슷한 폴란드 냄비)에 호밀가루를 놓고 준비했던 물을 붓는다. (2)여기에 빻은 마늘, 소금, 설탕, 빵의 껍질을 넣고 천으로 덮어서 며칠 동안 따뜻한 곳에 보관한다. 며칠 후 여기에 물 2잔을 넣고 끓인 후 하얀 소시지와 계란을 함께 내놓는다. 양파와 사과를 넣은 청어 재료:청어 3마리, 필레 살 3개, 사과 2개, 양파 1개, 레몬, 신 크림, 설탕, 하얀 후추 만드는 법:(1)강판으로 사과를 간 후 간 사과 위에 레몬을 뿌린다.(2)사과를 그릇에 놓고 얇게 썬 양파를 넣는다. 신맛이 나는 크림을 첨가한 후, 설탕과 하얀 후추로 간을 맞춘다.(3)마지막으로 청어 필레 살(미리 물에 적시고)을 네모로 썰어 그릇에 넣어서 섞는다. 자두를 넣은 돼지고기 재료:돼지고기(등뼈부위)1kg, 말린 자두 150g, 여러 가지 양념(후추, 소금, 고추 등), 올리브유, 마늘 만드는 법: (1)돼지고기를 씻어서 가운데 칼집을 낸 후 그 안에 말린 자두를 넣는다.(2)돼지고기 위에 마늘과 양념을 뿌린다.(3)올리브유를 겉에 바른 후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냉장고에 12시간 정도 보관한다.(4)오븐의 온도가 180℃가 되면 준비했던 돼지고기를 넣고 1시간 반 정도 굽는다. 마른 버섯이 들어가는 절인 양배추 재료:양배추, 소금, 버섯 만드는 법: (1)절인 양배추를 냄비에 넣고 양배추가 잠길 정도로 물을 넣은 후 약한 불에 끓인다.(2)다른 냄비에서는 말린 버섯을 삶는다.(3)버섯이 부드러워지면 썰어서 양배추가 담긴 냄비에 넣고 계속 약한 불에 부글부글 끓인다.(4)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썬 양파를 볶은 후 밀가루를 넣고 볶는다.(5)(4)를 양배추가 담긴 냄비에 넣고 양념으로 간을 맞춘 후 몇 분 동안 부글부글 끓인다. 초콜릿소스를 넣은 케이크 반죽 재료:밀가루 250g, 버터 180g, 가루 백설탕 100g, 노른자 2 개, 소금 소스 재료:계란 4 개, 설탕 250g, 초콜릿 250g, 밀가루 120g, 호두, 아몬드, 건포도 만드는 법: (1)밀가루, 가루 백설탕, 소금, 버터를 같이 잘게 썬 후 노른자를 넣고 반죽을 만든 후 약 2 시간 동안 냉장고에 보관한다.(2)차가워진 반죽을 버터를 바른 오븐용 프라이팬에 편 후 오븐에서 반죽의 색깔이 노랗게 될 때까지 잠깐 굽는다.(3)계란 흰자와 설탕을 함께 넣은 후 거품이 날 때까지 빠르게 저어서 만든 소스 안에 미리 녹인 초콜릿을 넣은 후 계속 비비면서 밀가루를 넣는다.(4)다음에 잘 빻은 소스에 건포도, 빻은 아몬드를 넣고 비빈다. 이 소스를 약간 구운 반죽에 바르고 오븐에서 약 20분 정도 다시 굽는다.(5)식은 후 호두, 아몬드로 장식한다. ■ 폴란드는 동유럽국가중 소련의 스탈린에게 반기를 처음으로 든 나라다. 사회주의 국가시절에도 종교적으로 가톨릭교를 확고히 믿고 발전시켜 나갈 정도로 자존심 강하고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인 이후 경제적 발전을 꾀하고 있으며,EU 가입으로 다시 한번 경제적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토면적은 31만 2677㎢로 한반도 총면적의 약 1.5배에 달하고 인구는 3860만명으로 동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상당한 양의 광물자원과 농업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폴란드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수도 바르샤바는 ‘동유럽의 파리’로 불려질 정도로 동유럽에서 제일 가는 도시이다.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폴란드 출신 유명인사으로 세계적인 작곡가인 쇼팽,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라듐을 발명한 퀴리부인등이 있다. 노벨상을 받은 헨리 시엔키에비츠, 레이몬트, 체스와프 미와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폴란드 출신이다.
  •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마니아]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동호회

    일상속에서 발견하는 자연 ‘민화’ “어머니,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아들 율곡이 숨가쁘게 달려옵니다. 풀밭에서 산 채로 잡아온 방아깨비를 어머니에게 보여줍니다. 신사임당은 방아깨비의 뒷다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뒤 놓아줍니다.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는 소박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치는 맛이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스러운 눈길이 묻어나오기 때문이지요. 신사임당은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림은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그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뒤 그릴 대상을 꼼꼼이 관찰해야 한다. 실체를 파악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없는 그림이 나올 뿐이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를 보고 닭이 와서 쪼아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현대판 신사임당’들이 민화를 그리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지난 7일 강동구 고덕2동 주민자치센터 2층의 ‘민화방(民房)’.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민화에 푹 빠진 20여명이 몰려든다. 민화방은 고덕2동 동사무소에서 운영하지만 절반 정도는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온다. 민화방을 이끄는 한국민화작가회 회장 안종혁씨의 개인전 등을 접하고 찾아오는 이들이다. ●취미로 시작… 국내외서 전시회 열어 이날은 민화 경력 19년차인 ‘왕 언니’ 이정순(60)씨가 분위기를 한껏 띄우면서 시작됐다. 전날 저녁 제사 상에 올렸던 인절미를 가져온 것. 대개 이른 시간 집을 나서며 아침을 먹고 오지 않은 터라 인절미에 손이 갔다. 커피를 곁들이면서 이씨는 민화의 매력에 대해 말했다. “민화는 서민들의 생활이 녹아든 과거의 민중 예술이었습니다. 궁중 화원이든, 떠돌이 작가든, 여인네든 민화를 그렸지요. 근대화 과정에서 민화는 무명작가들의 그림이라는 이유로 훼손당했지만 최근 회복되고 있지요.” 중학교 과학교사였던 이씨는 취미삼아 민화를 배웠다가 은퇴한 지금까지도 민화에 빠져 있다. 실력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지난해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십장생도’ 등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강원 영월의 ‘난고 김삿갓 축제’의 민화 공모전에도 입상하기도 했다. ●일산서 왕복 4시간 걸려 오가기도 민화방의 ‘최고참’ 민춘례(73) 할머니도 거든다. “노인들이 시간을 보낼 게 마땅치 않잖아요. 집에서 잠이 안 오면 민화를 그리면서 잡념을 떨치고 집중할 수 있지요. 수다만 떠는 것은 싫어요. 틈만 나면 이렇게 붙잡고 있답니다.” 이런 열정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민 할머니는 민화방이 열리는 매주 화요일이면 꼬박 2시간 동안 서울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행진’을 한다. 집이 일산에 있는 탓이다.“민화방까지 오는 게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민 할머니는 “예전에는 관절이 좋지 않아 오래 걷는 게 힘들 정도였지만 이렇게 움직이니까 힘이 난다.”라고 대답했다. 원래 서예와 사군자를 시작한 민 할머니는 서예전에 갔다가 우연히 안종혁 회장의 작품을 접하고 민화방에 오게 됐다. 회원들은 어느새 자리로 가서 제각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각자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어서 꽃들을 그린 화훼도(花卉圖), 풀과 곤충이 담긴 초충도(草蟲圖), 꽃과 새를 화조도(花鳥圖), 문방사우(文房四友)가 있는 책걸이(冊架) 등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가운데 민화방의 ‘청일점’ 박민수(52·남)씨가 단연 눈에 띄었다. 평일 오전 민화방에 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현직 경찰인 박씨는 3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아닐 때 짬을 내서 참석한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주 밑그림을 그린 산수화를 채색하다가 “근무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에 일찌감치 나서야 한다.”면서 서둘러 민화를 그렸다. ●세월 흐를수록 자연스러운 색감 민화방의 신혜영(50)씨는 지난달 뉴질랜드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지 예술협회와 한국총영사관 등의 후원을 받아 오클랜드 대학 초청으로 신씨의 작품이 이역만리까지 가게 됐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신씨는 미술학도답게 민화의 성격을 분석했다. “민화는 실용예술로 분류되지요. 옛 조상들의 일상 생활의 일부였지요. 방안의 족자, 소반, 병풍 등에 모두 민화가 담겨 있었고, 여인네들이 애장하던 물품이었지요. 민화를 두고 회화인지 아닌지 논쟁을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민화가 우리 삶을 다루는 친근한 그림이라는 것입니다.” 우영숙(42)씨는 민화의 색감에 대한 예찬론을 폈다. “한지에서 물감이 피어나듯 우러나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운 맛이 더해지지요. 민화는 돌가루·흙을 염색한 분말을 아교에 개어서 쓰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색감이 아름답게 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씨는 민화의 이런 매력에 빠져 올해 명지대 전통공예학과 대학원으로 입학하기까지 했다. 그런가 하면 김숙(49)씨는 신사임당이 즐겨 그린 ‘초화도’만 고집한다. 강아지풀에 오이 줄기가 얽혀 오이가 열려 있는 모습, 달개비꽃과 양귀비꽃 앞에 여치가 뛰어노는 모습, 개구리와 무당벌레가 연못가에서 노는 모습 등 온통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자연의 모습이다. 10개월 된 늦둥이를 포대기에 업고 그림을 그린 ‘신입생’ 김정현(40)씨는 오늘 처음 왔다. 신씨는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는 ‘까치 호랑이’ 민화에 정성스레 붓질하면서 “다음 민화방 마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안종혁 회장이 말하는 민화 고덕2동 ‘민화방’을 이끌고 있는 안종혁 회장에게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마치 대중가요처럼 남을 의식하면 망설여지지만 여흥을 내는 분위기에서는 저명 인사도 대중 가요 한두곡을 불러야 속이 풀리고 일체감을 느끼는 것과도 같지요. 민화야말로 제대로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는 궁중민화와 민중민화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점에서는 민화의 본질은 민중민화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민화가 민중에 가까워서인지 때로는 민화의 격을 낮춰 보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훈훈한 인정이 넘치며 재주와 기교를 자랑하지 않았고, 그림의 구도·기법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상식과 상상을 뛰어 넘는 파격적이고 해학적인 멋스러움이 배어나온다는 점은 민화만이 갖는 매력입니다.” 민화가 서민들의 소망이 녹아나는 매체라는 점도 독특한 매력 중의 하나이다. “민화에는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감성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순수하고 소박한 소망을 담아 장수, 부귀, 다남, 화합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렸고, 이를 곁에 두고 신앙처럼 기원하면서 살았지요. 기복 신앙에서 출발했다고 해야겠지요.” 민화의 소재는 화조(花鳥), 산수(山水), 동물, 인물, 책거리(冊架), 문자 등 다양한데, 각 소재마다 저마다 상징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물고기-다산(多産) ▲호랑이-잡귀를 막아주는 수호신 ▲모란꽃-부귀 ▲연꽃-군자(君子) ▲짝을 이룬 새·동물-부부간의 금실 등이다. 우리 조상들은 딸을 결혼시킬 때 물고기·새·동물 등이 들어간 민화를 혼수품으로 딸려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민화는 고구려 벽화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다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그려졌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춤하다 1970년대 전후로 다시 조명받기 시작해 1990년대 들어 미국·일본을 중심으로 가장 한국적인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시대에 걸맞은 창작품을 만드는 동시에 전승을 위한 재현 작업도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대들이 자랑할 수 있는 21세기 문화재를 창출해 나가야 하지요. 세계로 펼쳐가는 한류 열풍에 민화가 단단히 한몫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덕2동의 민화방은 그 밑거름이 될 것이고요.”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갤러리, 봄이 내려앉다

    봄은 이미 갤러리에서 시작되었다. 회색 도시와 마른 들판은 아직 겨울빛 그대로지만, 전시장들 문턱 너머엔 성급한 봄 기운이 넘실거린다. 전시장의 봄은 단순한 서정과 낭만의 봄이 아니다. 문명비판적 사유가 담겨 있는가 하면, 엄동설한을 꿰뚫고 나오는 인고의 미학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인 오세영과 화가 오세영이 합작한 ‘바이러스로 침투하는 봄전’은 자연 서정적 문명비판을 담은 시화전이다. 새달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02-310-9528)에서 열린다. 전시를 앞두고 만난 오세영 시인은 “정반합의 변증법이 아닌 조화 혹은 중용의 정신이야말로 비극으로 얼룩진 우리 시대, 논리가 지배하는 물질문명의 비리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오 시인은 이번 전시를 위해 이같은 사유를 담은 시 30편을 엄선했고, 오세영 화가가 이를 이미지화했다. ‘잘 자란 보리밭아/이제 너는 농부의 그 고운 땀조차 받기를 꺼리는 구나. 괭이를 움켜진 그 싱싱한 힘조차…제초제가 김매기를 대신하는 밭둑엔/들꽃하나 피지 않는데/유전자가 조작된 보리들만 잘 자라 무성하구나…. 이같은 봄은 시인 내면도 마찬가지여서 그는 이를 ‘한 문장의 이랑도 컴퓨터 없이는 갈지 못하는 내 원고지의 빈 들’이라고 표현한다. 오세영 화가는 오 시인의 이같은 인간과 문명의 내면적 탐구를 파스텔톤의 색채와 추상, 혹은 반추상으로 담아냈다. 그는 “동양적 사유와 함께 생을 살아온 오 시인의 시어들이 스크린의 영상처럼 떠올라 이미지화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말한다. 서울 청담동 아미화랑(02-514-9292)에선 프랑스 구상미술을 대표하는 중견작가 샤흘르 벨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5일까지.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채와 과일, 발코니의 화초, 들판의 꽃 등 그가 택한 소재는 결코 새롭지 않다. 그러나 이들을 담아낸 작가의 붓끝엔 알 수 없는 영혼의 깊이가 실려 있다. 샤흘르는 엄밀한 의미의 원근법이나 사물에 대한 정교한 묘사를 무시하고, 어떤 이야기도 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붓이 캔버스를 빠르게 휘젓고 다닌 흔적과 속도감을 품은 화폭에선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를 작가는 ‘삶의 에너지’라고 설명한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경기도 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에선 ‘바구니와 꽃의 작가’로 알려진 정란숙의 ‘봄, 그리고 그리움’전이 열리고 있다. 리앤박(031-957-7521)에서 3월31일까지. 정란숙은 1981년 프랑스 르 살롱전에서 ‘승’(承)이라는 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한 작가로, 이후 전통과 현대성의 조화를 부단히 모색하는 작업을 해왔다. 주요 작품소재는 광주리와 꽃, 반지고리, 조각보, 수저집, 노리개 등등. 전통적인 한국여성들이 일상에서 쓰던 소재들이다. 하지만 작품들엔 이처럼 단순한 전통적 아름다움의 사실주의를 뛰어 넘어 이를 현대적 조형성으로 승화시키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 흠뻑 배어 있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봄날의 感 좋아하세요?

    봄날의 感 좋아하세요?

    봄이 오는 길목, 문득 누군가가 기다려진다. 바람조차 싱그럽다.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여인의 분 냄새도 화사하게 달라진다. 노래가 생각난다.‘봄이 왔네 봄이 와, 그 처녀의 가슴에도….’ 이렇듯 봄은 가슴 설레는 찬란한 희망의 상징이다. 두꺼운 얼음을 녹이며 흐르는 경기도 양수리 시냇가에도, 부는 바람에 몸을 숙여 실개천을 어루만지는 버들강아지의 복실복실한 손끝에도 봄은 푸르게 일어서고 있다. 새벽녘 물안개에 싸인 북한강변 매화나무의 싸늘한 가지 끝에는 어느샌가 꽃망울이 부풀어 있지 않은가. 남쪽나라 제주에는 노란 유채꽃 내음이 못내 그리워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 이제 차가웠던 겨울을 서서히 떨쳐내고, 꽃잎처럼 화사한 봄을 만들어 보자. 겨우내 얼어 있던 마음속에 봄햇살을 가득 채워 꽃망울을 터뜨리듯 활짝 기지개를 켜보자. 아장아장 우리곁으로 다가오는 봄과의 멋진 만남을 상상해보자. 글 양평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법정 스님은 이런 얘기를 했다.‘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야 봄이 오는 것’이라고. 계절로 치면 지루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는 길목이다. 제주도에는 벌써 노란 유채꽃이 활짝 폈다. 늘 그랬듯 봄소식은 남쪽에서 사뿐사뿐 전해오고 있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이곳저곳에는 아직 겨울의 잔재가 남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 ‘고로쇠’ 채취에 한창이다. 또한 노래로 더욱 유명한 하동의 ‘화개장터’에는 싱싱한 봄나물을 캐고 파는 할머니의 손길이 분주하다. 글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지리산 고로쇠를 찾아 고로쇠 수액은 남도의 봄기운을 가장 먼저 전한다. 꽁꽁 언 땅이 차츰 풀리고 만물의 싹이 기지개를 켤 무렵이면 고로쇠나무는 수액을 통해 봄이 왔음을 알린다. 수액채취가 한창인 지리산 현장을 찾았다. 전남 구례에서 승용차를 타고 40여분을 달리자 지리산 국립공원 매표소가 나온다. 바로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계곡. 연곡사를 지나자 2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조그만 산골인 ‘직전마을’이 나온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잔설과 골짜기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은 겨울의 한기를 느끼게 하지만 이상하게 마을은 봄처럼 활기가 가득하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지나고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다가오자 마을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로쇠 채취로 분주하다. 경남 거제, 전남 광양, 강원 인제 등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지만 특히 지리산 고로쇠 수액을 으뜸으로 친다. 해풍의 영향을 받지않고 깨끗한 공기와 좋은 물 등 청정 지역의 정기를 잔뜩 머금었기 때문. 나무에서 수액이 흘러나오는 이유는 알고 보면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숨어있다. 원리는 일교차로 인한 나무 줄기 안의 압력 변화 때문이다. 밤 기온이 내려가면 나무줄기가 수축돼 뿌리로 물을 빨아들여 줄기 안을 가득 채운다. 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줄기 안의 물과 공기가 풍선처럼 팽창해 밖으로 밀려나오려고 한다. 이런 때는 나무껍질을 살짝만 긁어도 수액이 흐른다. 그래서 고로쇠 수액 채취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 변화를 알려주는 신호인 것이다. 밤 기온이 영하 5도, 낮기온은 영상 10도 정도 될 때가 수액이 가장 많이 나온다. 날씨가 너무 춥거나 따뜻해도 고로쇠는 잘 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날씨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때가 경칩 전후 15일 내외. 피아골의 직전마을에서 고로쇠를 가장 오래 채취했다는 강만석(70) 할아버지를 만났다.“어르신 요즘 고로쇠가 어때요.”라는 물음에 “지금이 한창이여. 그냥 나무에 대기만 혀도 수액이 줄줄 흐른당께. 워쩌 한번 같이 가볼랑가.”라며 앞장을 선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피아골 계곡을 건너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계곡을 몰아치는 칼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칠순이 지난 어르신들도 가뿐하게 바위를 밟고 건너는데 삼십대 중반을 지난 기자는 바위에 언 살얼음을 밟고는 그냥 곤두박질이다.“아따 카메라 괜찮은가.”라고 먼저 묻는 강 할아버지.“네”라며 짧게 대답을 하고는 신발 속에 들어간 물과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내고 다시 신었다.‘으∼미 차가운 거.’ 누구를 탓하랴. 무거운 카메라에 가방까지 지고 간 내가 잘못이지. 할아버지 말처럼 그래도 카메라가 물 속에 빠지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축축한 발로 지리산 속으로 들어갔다. 마을 주민들은 익숙한 듯 길도 없는 산을 잘도 헤치고 간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즈음 한두 개씩 나무에 달아 놓은 수낭들이 눈에 띈다.“여기서부터 고로쇠 나무들이 사는 곳입니다.”라는 한정환(46)씨.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 과에 속하는 활엽수로 해발 300m이상에서만 자란다. 그래서 지리산 중턱부터 정상 부근까지 고르게 분포돼 있단다. “이것 보쇼. 아따 맛있것지요.”라며 수낭에 가득한 고로쇠를 들어 보이는 김분례(63)씨.“이것이 새봄의 정기를 가득 머금은 고로쇠랑께.”라며 커다란 통에 따른다. “윙윙윙” 소리를 내며 익숙한 솜씨로 나무에 구멍을 뚫는 강 할아버지. 역시 60년 가까이 고로쇠를 채취한 내공이 역력하다.“어이 기자 양반. 이리 와 보랑께. 이것이 말이여 그 신비의 물인 고로쇠여.” 정말 신기하다. 지름 1㎝도 채 안되는 구멍으로 수액이 방울방울 맺힌다. 이내 하얀 고무관을 꽂자 관을 타고 수액이 흐른다.“햐, 이놈 봐라. 수액을 잔득 머금고 있고만.” 이라며 수낭에 연결을 한다. 관을 타고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고로쇠나무의 수액. 어찌 보면 나무가 좀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이거 이렇게 하면 나무가 크는 데 지장은 없나요.”라고 묻자 옆에 있던 한씨가 “거의 지장이 없어요.”라고 말한다. 요즘은 군에서 허가를 맡은 사람들만 고로쇠를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구멍을 8㎜ 내외로 뚫고 채취가 끝나면 구멍도 메워주어 나무가 자라는 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단다. “우리도 농사를 짓는 농사꾼마냥 여름철부터 나무 주변에 청소하고 거름도 줍니다.”라며 “이렇게 고로쇠 수액이 잘 나오도록 1년 내내 관리 하는 것이 농사꾼이 가을철에 벼베기를 하는 것과 똑같다.”고 강조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허가 없이 불법으로 고로쇠를 채취하고 구멍도 메워주지 않고 수낭이며 비닐 호스들을 마구 버려 자연과 나무를 망가뜨리는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전체가 욕을 먹는단다. 그래서 직전마을에서는 자체적으로 불법 채취를 감시하고 있다. # 고로쇠는 이렇게 먹는당께 고로쇠 수액은 고로쇠나무 냄새와 덤덤한 단맛이 나며 색깔 또한 조금 누런 색깔을 띤다. 너무 뿌옇게 보이며 단맛이 강하고 냄새가 진하거나 부유물들이 떠다니는 것은 이미 상한 것이다. 보통 실온에서 3~4일, 냉장보관을 해도 2주를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고로쇠 수액에는 당분, 철분, 망간 등 미네랄이 일반 물보다 10배 이상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위장병, 신경통, 비뇨기계 질환 등에 효험이 있으며 성인병 예방에도 좋고 몸속의 노폐물을 씻어준다고도 알려져 있으나 의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다만 전라남도 보건환경연구원은 1991년 고로쇠 수액을 분석해서 칼슘, 칼륨, 비타민 등 미네랄 성분과 에너지 공급원인 자당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고로쇠 수액을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른 3∼4명이 한 말(18ℓ)을 나누어 먹는다. 세숫대야 같은 커다란 그릇에 수액을 붓고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사발로 퍼먹는다. 많이 먹는 사람들은 둘이서 한말은 거뜬하단다.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많이 먹어야 소변으로 나쁜 성분들이 배출되고 고로쇠의 좋은 성분들의 흡수가 빨라진다. 수액과 같이 오징어, 멸치 등 짭짤한 음식과 함께 먹으면 좋다. 보통 물을 이렇게 먹으면 먹기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장에 탈이 나기 십상인데 고로쇠 수액은 아무리 먹어도 절대 탈이 나는 법이 없다. 찜질방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땀도 내고 고로쇠도 마시면 더욱 좋다. # 고로쇠의 전설 고로쇠는 본래 뼈에 이로운 물이라는 뜻의 ‘골리수(骨利水)’라고 불렸다. 삼국시대 지리산 일대에서 일어난 백제와 신라의 전쟁 중에 어느 병사가 쏜 화살이 고로쇠나무에 꽂혔다. 갈증이 심한 병사가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마셨는데 갈증해소는 물론 오랜 노역으로 쑤시던 뼈마디가 씻은 듯 나았다고 한다. 또한 신라말 도선국사가 광양 백운산에서 오랫동안 좌선을 하고 일어나려는 순간 무릎이 펴지지 않아 옆에 있는 나뭇가지를 붙잡았다. 이때 가지가 부러지면서 물방울이 떨어지자 마침 갈증을 느낀 도선국사가 목을 축이고 일어나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무릎이 펴졌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골리수라고 불렀고 뒷날 고로쇠가 됐다고 한다. # 고로쇠는 여기서 지리산 자락에서 고로쇠 수액을 파는 곳만 수백곳이 넘는다. 하지만 함부로 고로쇠를 사면 안 된다. 유통기한도 짧고 고로쇠를 희석해서 파는 곳도 많기 때문에 품질과 유통을 믿을 만한 곳에서 사거나 현지인에게 추천을 받는 것이 제일 좋다. 지리산 화엄사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한화리조트를 추천한다. 인근 고로쇠 채취 농가와 직접 계약을 맺고 납품을 받을 뿐 아니라 매일 매일 들어오는 고로쇠 수액의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1말(18ℓ)이 6만원,4.3ℓ로 포장된 작은 병 4개. 총 17ℓ가 6만 5000원이다. 전화로 주문하면 택배로 보내주며 품질에 하자가 있을 경우는 항상 반품할 수 있다.(061)782-2171. 또한 지리산 한화리조트에는 고로쇠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도 선보였다. 국산 토종닭을 고로쇠 수액에 푹 삶아 낸 ‘고로쇠 약수 토종닭 백숙’은 닭의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육질 또한 쫄깃한 것이 그만이다. 보통 4인 가족이 충분히 먹을 수 있으며 가격은 3만 9000원이다. 고기를 다 먹으면 직접 죽도 끓여준다. 고로쇠 영양 솥밥(5000원), 고로쇠 갈비구이(1만 6000원)도 맛있다. 고로쇠 수액을 먹기 편하게 세트로 만들어 판다. 고로쇠 수액 2ℓ와 명태, 멸치 등 마른안주로 구성된 피아골 세트가 2만 5000원이다. ■ 고로, 고로쇠 축제를 맛보라! 늦기 전에 경기 양평 단월면에서 열리는 ‘소리산 고로쇠 축제’는 3월 중순에 열린다.(031)770-3191. 경남 하동 일대에는 청학동과 신심산 주변에서 고로쇠 축제가 2월 말에 열린다.(055)880-2114. 경북 산청 시천면과 심장면에서도 3월 초에 다양한 문화행사와 함께 고로쇠 축제가 열린다.(055)970-6541. 전북 남원의 ‘남원 고로쇠 축제’는 3월 초에 열리며 피아골 등반대회, 고로쇠 마시기 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열린다.(011)464-3479. 강원 인제 미산면에서도 고로쇠 축제가 3월 중순 열리며 떡 메치기, 판소리 공연 등 여러 가지 문화행사가 펼쳐진다.(033)461-6797. ■ 화개장터, 그 5일장의 봄 노랗고 빨간 봄꽃이 아름다움을 뽐내기 직전인 2월 말 풍경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쓸쓸하다. 하지만 부지런한 아낙들이 펼쳐놓은 시골장터의 좌판엔 싱싱함과 따스함이 가득하다. 땅에서 캐고 바다에서 막 건져낸 봄의 먹을거리들이 구수한 사투리와 어우러져 만드는 정겨움, 흥겨움에 가슴이 넉넉해지고 따뜻해진다.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가마솥 국밥의 구수한 냄새와 엿장수의 질펀한 가위질에서 아련한 향수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추억의 5일장 여행은 지금이 제맛이다. 그래서 경남 하동의 화개장터에 다녀왔다. # 있어야 할 것 다 있고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아따 봄 좀 사가랑께. 무쟈게 싸게 줄 텐께.” 쑥, 냉이 취나물 등 화개장터에서 나물을 파는 김옥례(65·하동 내리)씨는 “지금 땅에서 처음 올라오는 나물은 약이여. 맛도 그만이고.”라며 구수한 사투리를 쏟아낸다. “이 놈 곶감 좀 먹어봐. 우리 집에서 만든거여.”라며 인심 좋게 잘라주는 할머니. 이름 모를 흘러간 노랫가락에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그런 곳이 시골장이다.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19번 국도를 따라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넘어서면 나룻배 하나가 오락가락할 듯한 나루터 자리가 나타난다. 바로 그곳이 구례 간전면 하천리와 그 유명한 하동 화개장터를 잇는 화개나루다. 전국에 수많은 장터가 있지만 하동군 화개면 탑리마을의 화개장터는 지리산 자락, 전남 평야에서 나오는 온갖 곡식과 남해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들이 섬진강을 따라 올라와 전국에서도 보부상들괴 장사치들이 많이 모이는 이름 난 5일장이었다. 이런 정겨운 시골장터에는 어린 시절 어머님 치맛자락을 잡고 돌아다니던 옛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가수 조영남이 목청 높여 불렀던 ‘화개장터’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한 30년 전부터 현대화에 밀려 5일장의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며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장이 서던 자리에는 버스터미널과 슈퍼마켓이 들어서고 주막자리는 다방과 식당이 차지하고 말았다. 몇 년 전에 비록 인위적이지만 화개장터가 복원됐다. 하동군에서 원래 화개장터 건너편에 화개장터의 옛모습을 재현해 놓은 상설 시장을 만들었다. 국밥과 막걸리 등을 파는 전통가옥 3동과 녹차 전시장, 대장간 등 옛 재래시장의 모습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고로쇠를 마시러 지리산으로 간다면 아이들과 함께 들러 옛날의 분위기에 젖어보는 것도 좋겠다. # 전국에 가볼 만한 5일장 경기도 안성의 안성장은 ‘서울에 없는 것도 이곳에는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갖가지 공예품과 보부상들이 북적대던 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옛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현대화된 시장분위기를 풍긴다. 장터는 안성시외버스터미널 뒤편 중앙시장과 인근 대로변에서 펼쳐진다. 그래도 풋풋한 인심이 아직 남아 있어 장이 서는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도시에 활기가 느껴진다. 장날은 2일과 7일. 충남 당진의 당진장은 서해대교 완공으로 한결 나들이가 쉬워졌다. 당진장은 읍사무소 맞은편 시장통에서 열린다. 장날엔 서산, 예산, 삽교 등지에서 400여명의 장꾼들이 모여들어 시끌벅적하다. 장터 골목마다 “아제 하나 사슈.”라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골 장터 여행의 재미가 느껴진다. 장날은 5일과 10일. 강원도 정선의 정선장은 때묻지 않은 자연과 시골장터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한 장으로 ‘정선 5일장 관광열차’ 등 다양한 여행상품이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은 오전 10시. 상인들이 좌판을 준비하는 모습부터 보려면 9시까지 장에 나와야 한다. 유명세와 달리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이것저것 구경하는 데 1시간이면 족하다. 장날은 2일과 7일. 전남 보성의 벌교장은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로 더 잘 알려진 벌교에서 열리며 30여년 전만 해도 인근의 고흥, 낙안, 보성의 장꾼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5일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벌교역전에서 제2부용교까지 300m 구간은 아침마다 장이 서는 매일장이지만 4일,9일 장날엔 벌교역 앞 도로와 골목이 모두 장터로 변한다.
  • 반신불수의 서예가 유희강씨

    반신불수의 서예가 유희강씨

    왼손으로 붓글씨를 쓰는 서예가가 탄생했다. 그것도 태어날 때부터의 왼손잡이는 아닌 인물이 바른 손의 기능이 마비되자 집념을 왼손에 옮겨 불사조 처럼 되살아 난 것이다. 사람의 의욕은 끝없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무언 중에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재기 불능이라던 중풍을 집념으로 이기고 첫작품 劍如 柳熙綱(검여 유희강•59•서울 영등포구 화곡동 61의99 주택207호)씨는 딸 小英(소영•23•홍익대미대 동양화과 졸) 양의 부축을 받아 아침 저녁 뜰을 거닐면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창백한 얼굴. 쇠약해서 바람이 불면 날려갈듯한 몸이다. 한쪽 편을 못 쓰는 조각 난 몸에 뜰의 분홍장미들 보다 더 뜨거운 것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짐작할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왼손으로 붓글씨를 써서 다시 세상에 나가겠다는 꿈틀거림이 그것이다. 그 의지의 싸움에서 그는 일단 승리했다. 6월 20일부터 25일까지 서울 국립공보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서예가협회 전시회」에 다른 서예가와 함께 씨의 작품 1점도 나란히 출품되었다. 원래 바른 손으로 붓을 잡던 씨가 중풍인 몸을 채찍질해서 왼 손으로 써낸 작품이다. 세상은 그를 재기불능이라고 평했다. 그는 작년 9월7일 동양화가 霽堂 裵廉(제당 배렴)씨의 장례식에 참례한 뒤 집에 돌아오자 뇌일혈로 쓰러졌었다. 다행히 큰일이 나지는 않았지만 죽음의 선고와 같은 증상에 빠졌다. 몸의 오른 쪽 부분을 못 쓰게 된 것이다. 고요히 잊혀져 가는 인물로 처졌다. 세상은 그 재능을 아까와 했고 그 기골있는 붓글씨에 다시 접할 수 없게 되었음을 안타까와 했다. 그는 우리나라 서예가로서는 드물게 젊을 때 淸國(청국)에 건너가 上海(상해)미술학교에서 서양화와 서예를 공부했다. 서양화로 출발해서 서예로 전향했다. 처음엔 한字를 써도 떨려 그만 붓을 놓아버리더니 제2회 國展(국전) 때 서양화부와 서예부에 동시에 출품한 뒤로는 서예 하나에만 전념, 특히 大朝(대조)시대의 隸書體(예서체)에 있어서 독특한 경지를 이룩해 왔고 해마다 海印寺(해인사)의 숲 우거진 계곡에서 붓글씨를 닦고 갈았다. 1955년 이후로는 國展 서예부 심사위원을 연임해 왔다. 그의 글씨를 평자는 꿋꿋하고 근엄한 힘이 응결된 서예양식이라고 했다. 또 어떤 평자는 천진절벽에 홀로 꽂힌 마른 향나무를 둔한 도끼로 마구 찍어 우틀두틀한 자국을 내었는데 그윽함을 느끼게 하는 필력- 이라고도 비유했다. 幽玄美(유현미)가 있다고도 했다. 왼손으로 쓴 글씨가 옛날의 기골을 가지게 될 것인가에 대해 세상은 상당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줄곧 병시중을 들어 온 딸 小英양은 『아버지가 낱말도 많이 잊으시고 글뜻도 모르시게 된 것이 많은데 차차 연습을 거듭할수록 필법이 옛날과 닮아 가신다』고 신기해 하고 있다. 『글씨도 옛날에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화곡동 자택에서 小英양의 부축을 받으면서 서울시내 모 한의에게 매일 침을 맞으러 다닐 정도는 회복이 되었다. 안마사의 치료도 받고 있다. 그러한 사이사이에 매일 30분씩 화선지 2분의 1절 크기의 종이 5장에다가 왼손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잔 글씨 쓰기부터 시작했다. 그것을 두 서너 글자만 써도 팔 다리가 떨려서 그만 붓을 놓아 버리기를 열흘 이상이나 거듭했다. 더욱이 창립에 참여한 한국서예가협회의 전시회를 목전에 두고 의욕을 불태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제자들의 작품전서 자극 이튿날 紙墨(지묵) 가져오라고 그는 별로 말이 없다.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직도 제대로 하지를 못한다. 입은 낱말을 분명히 소리내기는 한다. 그런데 여러 낱말들이 연결이 되지 않는다. 낱말이 온전한「센텐스」를 이루지 못해 듣는 이에게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 겨우 기동을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몸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연습시간이 오면-대체로 하오이지만- 그는 병상에서 상반신을 도움받아 일으켜 세운다. 그 앞에 책상과 종이가 놓여진다. 그는 왼 손에 붓을 들고 글씨를 써 나간다. 그러다가 지치면 누워 버린다. 연습을 시작한 것은 금년 4월부터였으니 3개월 남짓한 짧은 기간에 출품작을 제작해 낸 셈이다. 4월부터 연습을 시작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닌 듯 하다. 4월1일~7일 사이의 1주일 간 상업은행 화랑에서는 금년들어 최초의 서예전시회가 열렸었다. 그것이 劍如書院展(검여서원전)이었다. 문하생들이 자기들만의 힘으로 전시회를 연 것이었다. 오랫동안(7개월간) 스승의 직접지도를 받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제자들 끼리 부지런히 공부해왔다는 증거들이었다. 이 때 출품작은 모두 40점이었다. 바퀴의자에 실려 회장에 나타난 그는 제자들의 부축으로 방명록 제1호로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에 앞서 왼손에 가위를 쥐고 간신히 회장의「테이프」를 끊는 늙은 서예가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케 했다. 小英양 얘기로는 劍如는 그다음 날인 2일 하오에 딸을 병실에 불러 몸을 붙들어 일으키게 하고 글씨쓰는 시늉을 하면서 붓과 종이를 청했다. 그의 서숙 劍如書院(서울 안국동)에서는 그가 건강했을 때와 다름없이 제자들이 모여 스승없는 精進(정진)에 몰두하고 있다. 한편 그 스승은 스승대로 반신불수의 몸을 움직여 한국서예사상 최초인 右手(우수)에서 左手書(좌수서)에로의 기적을 창조해내고 있다. 그는 언젠가 가까운 동연배의 서예가에게 淸나라에서 글씨 배웠을 때의 경험을 말한 일이 있다. 왼손글씨 없지는 않아도 중풍 이기는 名筆은 처음 『그 스승이 가르치는 방법을 가만히 보았더니 제자들에게 일일이 지도를 하지는 않았다. 제자들 스스로가 자기 것을 개척해 나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러면서도 말없는 지도를 하였다』 그 기풍이 劍如의 제자들에게도 배어 스승없이 서예전을 열어 스승을 격려했고 그 역시 홀로 새 경지를 헤쳐 여는데 집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 왼손글씨의 전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의 사당에는 左手書라는 단서가 찍힌 현판이 걸린 곳이 여러군데 있다. 그러나 그 左手書는 원래가 왼손잡이의 글씨 아니면 바른 손도 쓰면서 餘技(여기)삼아 왼손을 움직여 본 글씨들이다. 劍如의 경우와 같이 처음에는 바른 손으로 높은 봉우리를 이룩한 뒤 더욱이 환갑을 1년 앞두고 그 손의 기능을 잃어서 붓을 다시 왼손에 고쳐 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서예사상 처음 있는 일을 그 병상에서 묵묵히 쌓아 올리고 있다. [ 선데이서울 69년 6/22 제2권 25호 통권 제39호 ]
  • 무협소설 거장 김용 안방공습

    무협소설 거장 김용 안방공습

    무협소설 광(狂)이 아니라도 ‘김용’이라는 이름 두 자는 들어봤을 것이다. 단연 무협소설의 최고봉이다. 신필(神筆)로 추앙받는다.1955년 ‘서검은구록’으로 무협에 붓을 댄 이후 1972년 ‘녹정기’로 절필을 선언하기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천하를 진동시켰다. 대륙을 넘나들며 가슴을 뛰게 하는 장대한 협객 이야기에, 송·금·원·명·청 등 실제 역사와 동양철학이 절묘하게 버무려진다. 생생한 캐릭터 묘사는 모든 무협작가 가운데 으뜸이다. 대표작은 ‘사조영웅전’‘신조협려’‘의천도룡기’‘천룡팔부’‘녹정기’‘소오강호’ 등이다. 김용은 장편 12편, 단편 3편을 썼으며, 그 판매부수가 모두 합쳐 1억 부를 넘었다. 해적판까지 포함하면 훨씬 웃돌 것이다. 중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연구하는 ‘김학(金學)’이 있을 정도. 무협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어 전통문학 위치까지 올랐다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도 그의 작품은 대학 교재에 실리고 각종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연히 중국, 타이완, 홍콩 등에서 김용 작품을 원작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기에 일일이 세기가 불가능하다. 그의 작품은 시청자들의 요구로 자주 리메이크된다는 점도 독특한 현상. 케이블 무협액션채널 ABO에서 16일부터 ‘천룡팔부’(2003·40부작),‘사조영웅전’(2004·42부작),‘신조협려’(2006·40부작)를 매일 오후 11시 릴레이 방송한다. 앞에 두 작품은 불법 복제물로 국내에 미리 상륙하기도 했으나, 공식적으로는 처음 소개된다. 반면 ‘신조협려’는 현재 중국 CCTV에서 제작하고 있는 최신판으로 중국 현지 방송과 동시방영을 추진하고 있다. 모두 고화질(HD)이다.‘사조영웅전’에는 국내 배우 지진희와 영화 ‘퍼햅스 러브’에서 호흡을 맞췄던 주신이 황용으로 나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용 원작 무협 드라마는 대개 오리지널 스토리에 충실할수록 인기가 높다. 양과와 소용녀의 애틋한 사랑으로 인기가 있는 ‘신조협려’는 드라마로만 다섯 차례 이상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유덕화가 주연한 83년 버전과 고영락이 나온 95년 버전이 국내 팬들 사이에 최고로 꼽힌다. 칭기즈칸 시대에 송나라를 구하는 대협으로 커나가는 곽정과 황용의 성장기를 다루는 ‘사조영웅전’은 94년 작품이, 금나라와 송나라의 다툼을 배경으로 의형제 교봉, 단예, 허죽의 활약상을 그리는 ‘천룡팔부’는 2003년 판이 각광을 받고 있다. 최근 만들어지는 작품들은 다소 각색되는 측면이 많아 열혈 팬들을 실망시키기도 하지만, 소설 속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되는 점이 돋보인다. 또 상상을 뛰어넘는 스케일은 시청자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한지공예와 지승장(紙繩匠)

    [사진으로 본 전통의 숨결] 한지공예와 지승장(紙繩匠)

    우리 선조들은 한지를 오랜 옛날부터 실생활 속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해왔다. 한지 공예도 그 중의 하나다. 한지 공예의 바탕이 되는 제지(製紙)기술은 삼국시대에 불교와 함께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고유의 한지(韓紙)는 닥나무를 원료로 만든다. 지질이 엷으면서도 부드럽고 질긴 특성이 있다.“지천년(紙千年)견오백(絹五百)”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처럼 종이는 여러 겹 붙이면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로 질기고 견고해 한지 공예에 활용됐다. 한지공예는 안방의 살림살이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사용하는 생활용구를 만드는 데 주로 활용됐다. 이는 한지의 부드러운 질감이 여성들의 정서에도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지공예는 크게 색지(色紙)공예, 지승(紙繩)공예, 지호(紙糊)공예 등 세 갈래로 나뉜다. 지승공예는 종이를 좁고 기다랗게 오려 손으로 비벼 종이끈을 만든 뒤, 이것을 엮어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드는 공예다. 지호공예는 종이를 물에 불린 뒤 풀을 고루 섞어 절구에 찧어 만든 종이점토로, 그릇이나 가면 등을 만드는 공예 기법이다. 한지로 만들 수 있는 작품으로는 색지상자, 반짇고리, 패물상자, 색실상자, 고비, 연상, 예단함, 부채, 붓통, 갓집, 지통, 색실첩, 동고리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한지공예는 자연미와 실용미가 결합된 환경 재활용 공예품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종이가 생산도 적게 되고 비싸기도 해서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일반 서민들은 문살에 바르고 남은 창호지 따위의 버려진 종이를 모아 갖가지 소품을 만들었다. 못 쓰게 된 서책을 뜯어 손으로 꼬아 ‘노엮개’라는 끈을 만들고, 조각 종이를 겹겹이 붙여서 그릇 등의 유지(油紙)제품을 만들었다. 폐지 재활용 측면이 강조된 부분이다. 한지가 공예품의 소재로 등장되면서 장식을 위한 다양한 색상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온 음양오행 사상에 근거한 적, 청, 황, 흑, 백의 전통 색채문화는 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요소로 사용되었다. 또 여러 가지 색깔의 한지로 다양한 문양을 파서 공예품을 장식했는데, 목기나 나전칠기품이 갖지 못한 담백하고 화려한 멋을 문양과 함께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한지는 우리 민족을 닮았다. 작은 충격에도 쉽게 구겨지고 찢어지고 상처를 받는다. 반면에 두드릴수록 탄탄해지고 모일수록 질겨지며 공을 들이면 명품(名品)으로 완성되는 모양이 마치 우리네 민족성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우리 고유의 색과 문양을 사용하여 만드는 한지 공예에는 민족의 뚜렷한 개성이 녹아 있다. 글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무형문화재 지승장 최영준씨 “씨줄·날줄 한지로만 해야”“원래는 씨줄과 날줄을 모두 한지(韓紙)로만 해야 합니다.” 지승공예가 최영준(55·여)씨는 요즘 와서 날줄로 매듭실을 사용해 만드는 제품이 못마땅하다. 최씨가 지승공예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3년. 결혼과 함께 충남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였던 시조부(김영복·1986년 작고)로부터 관련 기법을 배웠다. “정갈한 마음으로 노엮개를 해야 한다.”며 항상 나무라기만 하시던 시할아버지.“눈치보며 노엮개를 배운 기간이 족히 5년은 될 거예요.” 그래도 힘들게 배운 덕에 솜씨를 인정받아 그녀도 1986년 대를 이어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았다.“할아버지는 말년에 의식이 없으신 상태에서도 노엮개를 흉내내시며 뭔가 제게 자꾸 주는 시늉을 하셨어요.” 붓글씨가 쓰여진 한지를 찢어 노엮개를 엮어내고 있는 그녀는 지금 장인(匠人)의 맥을 한올 한올 잇고 있는 것이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51)끝. 새날의 희망

    ‘정감록’ 연재도 막바지라 맺음말이 없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예언문화를 다각도로 다루려 노력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화제는 조선후기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로 그 시기에 ‘정감록’이 등장했고, 그것이 한동안 정치 및 종교운동의 모태가 되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조선후기엔 이른바 ‘정감록’ 사건이 참 많기도 했다. 그런데 ‘정감록’은 과연 무슨 사상을 담고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때가 많다. 아무리 ‘정감록’을 읽어봐도 어떤 체계라든가 사상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설사 ‘정감록’에 예고된 정진인(鄭眞人)의 세상이 된다 해도, 그것은 또 하나의 왕조일 뿐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요한계시록’ 은 예수의 재림이 가져다 줄 인류역사의 완성을 예언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정감록’은 기껏해야 왕조교체를 논하는 수준이란 평가다. 그렇게만 볼 일이 아니다.‘정감록’이란 텍스트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정감록’을 읽는 나의 방법은 적혀 있는 글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문화적인 맥락에 비추어 읽는 방식이다. 텍스트의 안과 바깥을 부지런히 오가며 ‘정감록’을 읽는 것이다. 그러면 수수께끼가 풀린다. ●정감록, 지배이데올로기에 맞선 대항이데올로기 ‘정감록’은 조선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19세기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여러 신종교의 가르침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동학·증산교 및 원불교는 하나같이 곧 밝아올 새 세상을 노래했다. 그들이 선포한 새날은 ‘정감록’이 민중에게 약속한 새 나라였다. 그것은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왕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새 하늘, 새 땅이었다. 새 날의 모습은 성리학자들이 추구해온 목가적 이상세계와는 달랐다. 그것은 ‘정감록’으로 빚은 대항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연재 가운데 이미 검토된 사실이지만 동학과 같은 새 종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17세기 이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런 운동은 ‘정감록’을 매개로 평민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신종교 운동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조직적 경험과 이론을 확립해갔다. 마침내 19세기 후반에는 동학이란 교단으로 화려하게 부활해 민중에게 널리 지지를 받았다. 최제우의 동학은 ‘정감록’운동의 터전 위에서 창립된 것으로,‘정감록’없이는 동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 옳다. 나중에 동학의 교명을 천도교로 바꾼 손병희 같은 지도자도 ‘정감록’을 무척 중시했다. ●오만년 대운, 전환기의 괴질 동학을 비롯한 여러 신종교에서는 조선왕조가 망하고 나면 새 세상이 열린다고 보았다. 바로 ‘정감록’에 예언된 정진인의 나라다. 그때가 되면 문자 그대로 과거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롭고 복된 사회가 건설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오만년대운(五萬年大運)이 새로 시작된다고 표현했다. 동학의 경전 ‘용담유사’에는 ‘오만년’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용담가’에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 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라는 대목이 있다. 세상이 열린 지 오만 년 만에 최제우가 큰 가르침을 열었다는 말이다. 최제우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이상적인 종교를 창립했다며,“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좋을시고”라고 했다. 불교와 유교는 이미 낡은 것이 되었고, 이제는 인류 최상의 가르침인 동학을 통해 새 세상을 건설할 때라는 것이다. 최제우는 동학의 유행을 천운(天運)이라 했다. 그러면서 보통사람들은 근심걱정 없이 이러한 시운에 따라 최제우가 가르치는 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 했다. 최제우에 앞서 세상이 바뀔 거란 점을 누누이 강조한 것은 ‘정감록’이었다. 그 유행에 힘입어 사람들은 최제우의 주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정감록’엔 새 세상이 밝아올 때 여러 가지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예언돼 있다. 전쟁과 질병과 굶주림이 그것이다. 최제우는 ‘정감록’ 예언을 대폭 수용해 과도기의 징후를 ‘몽중노소문답가’에서 이렇게 정리한다.“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개벽 아닐는가.” 여기서 말하는 십이제국이란 문자 그대로 열두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온 세상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시달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른 곳에서 그는 ‘삼년괴질’이니 ‘연년괴질’과 같은 말을 한다. 요컨대 여러 해 동안 인류가 조류독감이나 에이즈와 같은 질병으로 시달린 다음에 “개벽”이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마치 성경에서 말세에 큰 환란을 겪은 뒤 예수가 재림한다는 식이다. 조선 후기엔 천주교가 수용되어 종말론이 널리 전파되었다.‘정감록’에 기록된 환란도 그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최제우의 동학 역시 마찬가지다. 동학은 이름부터 천주교(서학)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지만, 그 주장이 꼭 대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학을 계승한 증산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증산교의 창립자 강일순은 한국에 출생하기 전에 로마 교황청 꼭대기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서양신부 마테오리치를 중국으로 파견한 장본인이라고도 했다. 이런 증산교도 전환기에 찾아올 환란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강일순의 생각은 동양적이었다. 그는 이른바 괴질의 원인을 과거의 모든 악업(惡業)과 신명들의 원한과 보복이 쌓인 것이라 했다. 악업과 신명을 강조한 점에서 그의 생각은 다분히 불교적이다. 강일순은 괴질의 발생을 사계절과 비교한다. 봄과 여름에는 큰 병이 없다가 봄여름의 죄업에 대한 인과응보가 가을에 접어드는 환절기에 병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말세에는 이런 식으로 큰 병이 세상을 휩쓸게 되는데, 한국에서 최초 발병자가 나오며 병을 치료할 구원의 도(道) 역시 한국에서 일어난다 했다. 괴질은 전라북도 군산과 순창에서 발생해 49일 동안 전국을 휩쓸고는 외국으로 건너가 3년 동안 전 세계를 휩쓴다. 이것이 강일순의 예언이다. 그는 한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간주했는데 이런 사고방식은 ‘정감록’에서도 확인된다. 동학의 최제우 역시 오만년 대운을 열 새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함으로써, 한국을 세상의 중심으로 여겼다. 19세기 한국은 내우외란이 겹쳐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종교적인 면에서도 외래종교인 천주교가 들어와 전통사상이 도전에 직면했다. 이런 판국이라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예언은 더욱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말세의 환란과 새 세상에 대한 기대가 꽃을 피웠다. 동학과 증산교의 등장이 바로 그 보기다. ●새 세상은 미륵세상 최제우의 글에는 새 세상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강일순의 경우는 달라 다가올 세상을 비교적 자세히 예고했다. 언제나 발뒤꿈치를 땅에 붙이고 살기 마련인 사람들도 하늘에 올라갈 수 있게 된다 했다. 새 세상은 밤도 낮처럼 환해지며, 들에는 백가지 곡식이 풍성하고 만 가지 과일이 다 굵고 커, 음식이 풍성하게 된다. 아름다운 옷도 무척 흔해진다. 강일순이 꿈꾼 새날은 의식이 풍족하고 교통이 편리하게 되며 어둠이 사라진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선 거짓이 사라지고 온갖 차별도 없어지며 수명이 늘어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강일순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말한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얼마든지 하늘을 날게 되었고, 전깃불로 밤을 밝히게 되었다. 또한 대형 할인마트에는 국산과 외국산을 막론하고 음식과 과일 그리고 의복이 넘친다. 헐벗고 굶주리던 옛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인권이 잘 보장되며 평균수명도 많이 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강일순이 예고한 새 세상은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세상이다.‘미륵하생경’에 비슷한 모습이 더욱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새 세상이 되면 거리마다 번화하기 짝이 없고, 밤마다 향수가 가랑비처럼 내린다 했다. 길바닥은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고 평탄하며, 식량이 풍족해 인구도 번창한다. 보배가 무수하고 감미로운 과일나무, 향기로운 풀과 나무도 무성하다. 기후는 늘 온화하고 화창하며, 계절의 변화가 순조롭고 사람들은 착하고 고운 말만 서로 주고받는다. 대소변을 볼 때면 땅이 저절로 열렸다 닫혀 아무런 냄새도 안 난다.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 보통 8만 4000세까지 살게 된다. 이것이 지금 도솔천에서 수행 중인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건설할 새 세상의 모습이다. 물질이 지극히 풍족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고, 누구나 심신에 고통을 받지 않고 오래 사는 이상향이다. 불교신자라면 누구나 이런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교는 오랫동안 한국의 국교였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까지 늘 그랬다. 상하를 불문하고 모두 불교를 믿었다. 조선시대에야 사정이 달라졌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아 불교를 업신여기는 풍조가 유행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교적 세계관에 익숙했다.19세기에 강일순이 미래의 이상향을 언급하면서 미륵세상을 사실상 그대로 옮긴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륵세상은 한국사람 누구나가 지향한 이상향이었다. 그 점을 감안하면 조선후기 신종교운동을 펼친 평민지식인들이 이상세계를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은 것도 납득이 된다.‘정감록’에 미래사회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 때는 누구나 미륵세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정감록’이든 또는 동학의 경전이든 이상향에 관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던 시절이다. 조선시대 민중이 궁금했던 것은 이상향의 모습이 아니라 과연 언제 새날이 밝느냐는 문제였다.‘정감록’이 선포한 새 세상은 미륵세상이란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미륵이 얼마나 중시됐는가는 전국각지에 미륵신앙이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타난다. 일제시대 함경도 함흥에서 수집된 무가(巫歌)를 보면, 미륵은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로 인식될 정도였다. 바로 그 “미륵님 세월에는 섬(石)으로 말(斗)로 밥을 배불리 많이 먹고 인간 세월이 태평하였다.” 과거 미륵세상이 태평했다는 대목은 앞으로 다가올 미륵세상이 그러리란 기대를 역으로 투사한 것이다. ●정감록은 후천세계로 귀결 다가올 미륵세상을 신종교에서는 후천(後天)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인류의 역사를 양분해 지난 세상은 선천(先天), 다가올 세상은 후천으로 설명한다. 선천은 각종 모순이 쌓여 불합리하고 상극이 되어 충돌하던 어두운 세상, 후천은 상생의 논리가 지배하는 밝은 세상으로 본다. 원불교 교조 박중빈은 이미 선천과 후천이 교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후천세계는 평화롭고 평등한 문명 세상이다. 그것은 온갖 종류의 차별과 대립이 사라진 지상낙원인데, 한국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정감록’이 기약했던 정진인의 나라는 결국 후천세계로 귀결되었다. ■ 정감록과 임진왜란 ‘정감록’이 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선조25년(1592)에 일어난 왜란의 여파는 무척 컸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 돼 전쟁에 관한 예언이 수집되었다. 일종의 사후 약방문인 셈인데, 그것은 뒷날 ‘정감록’에 녹아들었다. ‘조선금석총람’ 하편을 보면 세조5년(1459) 원각(圓覺)이란 승려가 81세를 일기로 입적하며 앞날을 예언했다. 자기가 죽고 130여년이 지난 뒤 고래 같은 도적(왜적)이 쳐들어와 나라가 의지할 곳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 때가 되면 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이고 피가 천리를 적시는데 서쪽(중국) 병사들이 와서 구원하리라 했다. 임진왜란 발생과 경과를 대강 맞춘 셈.‘산과 냇물에 시체가 쌓인다.’는 식의 표현은 ‘정감록’에도 보인다. 원각은 참혹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늘의 신들이 도와주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그는 향불을 태우며 무릎꿇고 관세음보살의 주문을 외우면 화를 입지 않게 되며 오래 살 수 있다고 하였다. 당시 유행한 예언서에 “적은 부산에서 일어나 부산에서 그친다.”라고 돼 있었다 한다. 임진왜란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경상도 부산포에서 시작돼 어찌보면 거리가 매우 먼 평안도 부산에서 끝난다는 이야기였다. 보통은 잘 모르고 있지만 평양 서쪽 30리에 부산 고개라는 곳이 있다. 그 왼쪽 언덕에는 사람 모양의 석상이 있는데 언제 누가 무슨 일로 세웠는지는 알 수 없다 한다. 임진년(1592년) 봄, 석상이 피를 흘려 이웃한 부산 고개까지 흘러 내렸다. 전쟁이 일어날 징조였다. 전라도 광양에선 돌에 적힌 예언서가 발견되었다. 쇠무덤(鐵叢)이라 알려진 곳에서 출토된 예언서에는 이상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동쪽으로 시오리 되는 곳에 황금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면 만 배 이익이 될 것인데 그리 되면 아들은 능지기가 되고 노비가 능 주인이 되어 상하가 뒤집힌다. 승려가 승려노릇을 그만 두고 선비가 붓과 먹을 버리게 되며, 베 짜는 여인이 베틀을 버리고 농부가 쟁기를 버린다.” 상하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본업에 충실하지 않는 괴상한 일이 일어난다는 예언이었다. 비슷한 표현이 ‘정감록’에도 있다. “임진년에는 나라가 셋으로 갈라졌다가 계사년에 다시 평정되리라. 말해 또는 양해에 다시 태평하여질 것이다. 두류산에 들어가 난을 피하는 것이 제일이다. 호서는 조금 편안하고, 한양에 도읍하면 마땅히 팔백년을 갈 것이다. 당나라 병사가 임진강을 건너면 국운이 2백년은 더 하리라.” 이 대목은 ‘정감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삼국으로 갈라졌다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 말해와 양해가 대길하다고 예언한 것은 모두 ‘정감록’에 수용되었다. 이런 점을 보더라도 한 번 나온 예언은 어떤 식으론가 계승되게 마련인 것을 알 수 있다. 선조 때 명신인 이항복에 관한 이야기도 전한다. 왜란이 일어나기 한 해 전 겨울날이었다. 이항복이 퇴궐해 막 집에 도착하자 청지기가 뛰어 나와 어느 괴상한 남자가 뵙자고 야단이라 하였다. 그 사나이는 헤진 갓에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었다. 더러운 누더기를 몸에 걸쳤고 좁은 바지 자락은 정강이까지 돌돌 말아 올렸는데 얼굴은 큰 돌 같았고 키가 무척 컸다. 붉은 입을 괴물처럼 열고 한참 동안 무슨 말인가를 늘어놓은 뒤 갑자기 사라졌다. 이웃집에 살던 이덕형이 이를 목격하고 사정을 캐물었다. 이항복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그 사나이는 자칭 백악산의 야차(범어의 yaksa, 두억시니)라고 하는데 장차 내년에 큰 난리가 터질 텐데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내게 알려주러 왔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야차는 10세기 초 철원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토성 신을 연상케 한다. 그는 고려태조의 등극을 알리는 ‘고경참’을 시장에 내다 판 것으로 돼 있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긴긴 겨울밤 따끈한 팥죽

    긴긴 겨울밤 따끈한 팥죽

    동지는 1년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또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상들은 동지를 양기(陽氣)가 솟아나는 상서로운 날로 여겼다. 동지가 설 다음으로 경사스러운 날로 대접을 받았고,‘작은 설’이라는 뜻의 ‘아세(亞歲)’라고 불린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다. 떡국이 설날의 대표적인 먹거리라면 동지 음식은 단연 팥죽이다.‘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며 조상들이 즐겨먹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팥죽이다. 팥죽은 팥을 고아 죽을 만들고 ‘새알심’이라고 불리는 찹쌀 단자를 만들어 넣고 끓인 음식이다. 옛날에는 팥죽을 다 만들면 먼저 사당에 올리거나 대문과 벽, 곳간 등에 부려 잡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그 다음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고 이웃에 나누어 주기도 했다. 이런 주술적 의미 외에도 팥은 당질과 단백질, 비타민A, 비타민B1, 칼슘, 인, 철 등을 함유하고 있어 피로회복과 변비해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아주 좋은 음식이다. 경기도 전통음식 기능보유자인 김명자씨가 동지 팥죽 만드는 법을 들려줬다. “팥은 불리지 말고 씻어서 바로 삶아야해요. 그래야만 영양분이 빠지지 않고 제대로 삶아 지거든요. 또 삶은 팥은 체에 내려 껍질은 버리고 앙금(팥 속살)만 걸러서 쒀야 담백하고 색깔도 예쁜 팥죽이 되지요.”라며 김씨는 미리 준비해 놓은 재료들을 가리키며 요령을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쌀은 물에 충분히 불리고 아주 진밥을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또 찹쌀로 빚은 새알심은 그냥 넣고 끓이기도 하는데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넣는 것이 훨씬 퍼지지않고 쫄깃하다. 이렇게 밥과 새알심을 어느 정도 익혀 놓고 끓이면 팥이 타서 냄비바닥에 눌러 붙거나 쌀은 채 익지않는 등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팥을 삶으면 사포닌이란 성분이 나와 쌉쌀한 맛을 내기 때문에 팥을 넣고 처음 끓기 시작하면 물을 반드시 버리고 다시 끓여야 맛있는 팥죽을 만들 수 있다. 팥죽 4인분을 맛있게 끓이려면∼. 멥쌀1/2컵, 팥2컵, 물이 필요하다. 새알심 재료는 찹쌀가루 1컵, 뜨거운 물 3큰술, 소금 1/2작은술.(1)팥을 씻어서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끓인다. 끓어오르면 바로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부어 푹 무를 때까지 삶는다.(2)삶은 팥을 체에 내려 물 3컵 정도를 부어가면서 팥물을 받은 후 팥 껍질은 버린다.(3)찹쌀가루는 소금을 넣고 익반죽 하여 동그랗게 빚은 다음 녹말 가루를 입혀 굴려준 뒤 끓는 물에 넣고 새알심이 동동 뜨면 건진다. 불린 쌀에 웃물을 부어 퍼질 때까지 끓이다 앙금을 넣는다. 윗물과 앙금을 잘 섞이도록 끓인다. 여기에 쌀을 넣고 푹 퍼질때까지 끓이다가 새알심을 넣고 계속 끓인다. 끓이면서 잘 저어주어야 재료가 골고루 섞이고 바닥에 눌지 않는다. 동지 팥죽에 새알심을 넣는게 번거롭다면 조랭이 떡을 넣어도 된다. 개성지방의 떡인 조랭이 떡을 만들어 팥죽에 넣으면 쫄깃하고, 눈사람 모양이라 아이들이 좋아한다. 소금 대신 설탕이나 조린 밤, 단호박 등 취향에 따라 함께 넣어 끓이면 한결 색다른 팥죽이 된다. 팥요리 다모여라 영양이 가득한 팥으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알아보자. (1) 팥양갱 팥양갱도 집에서 달지 않고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재료 팥 3컵, 설탕 3컵, 한천(젤라틴과 같은 역할)30g. (1)팥은 끓는 물에 한번 삶아 버린 후 헹군 다음 팥이 무를 정도로 삶는다.(손으로 비볐을 때 터질정도로 완전히 익혀야 한다.) (2)푹 삶아진 팥을 체에 놓고 물 3컵을 부어 가면서 내려 팥물을 가라 앉힌다.(3)한천을 냉수에 녹인 후 끓여준다.(4)잘 걸러진 팥물에 적당량의 설탕을 넣어 끓이다가 (3)의 재료를 넣어 다시 한번 끓인 후 굳힌다. (5)예쁘게 모양을 낸 후 잣을 올려 접시에 담아낸다. (2) 단팥죽 우리는 보통 단팥죽과 동지 팥죽이 같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둘은 만드는 방법부터 다르다. 단팥죽은 삶은 팥을 그대로 사용해 팥의 씹히는 맛을 최대한 살린 음식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맛있는지 모르겠다. 재료 팥 1컵, 설탕 1컵, 소금 반 작은술, 물 3컵, 삶은밤 3∼5개, 생강즙 반 작은술, 물녹말 1 큰술(물녹말이란 물과 녹말을 1:1로 섞은 것을 말한다.) (1)팥은 깨끗이 일어 한번 끓으면 물을 버린 후 헹군 다음 다시 물을 넣고, 팥알이 푹 무르도록 삶는다. (2)삶은 팥에 물 3컵을 부어 끓이다가 설탕과 생강즙을 넣어 타지 않게 저어준다. (3) (2)에 물 녹말, 삶은 밤을 넣어 다시 한번 끓여준다. (4)예쁘게 담은 후 접시에 담아낸다. 설탕만 넣고 끓이면 단맛이 너무 가볍다. 물엿과 설탕을 반반씩 넣고 끓이면 보기도 좋고 단맛이 깊어진다. 기호에 따라 약간의 계핏가루를 넣어도 맛난다. (3) 팥칼국수 설탕으로 달달하게 간을 하고 한 젓갈 뜨면 붉게 물든 쫄깃한 면발이 팥물과 올라온다. 뜨끈한 팥물을 그릇채 들고 마시면 한 겨울의 추위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또한 젓가락이 아닌 수저로 국수와 국물을 같이 먹으면 더욱 맛있다. 팥칼국수의 단짝인 김치와 동치미 국물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재료 붉은팥 3컵, 칼국수 250g, 물 30컵, 소금 1큰술 (1)붉은 팥은 씻어 일어서 물을 충분히 붓고 한소끔 끓인 다음, 물을 버리고 새 물에 소금을 넣고 팥이 터질 때까지 푹 삶는다. (2)잘 삶아진 팥을 으깨어 고운 체에 거른다. (3)거른 팥의 웃물을 먼저 솥에 붓고 오랫동안 끓인 후 빛깔이 고와지면 앙금을 넣고 저으면서 다시 끓인다. (4)팔팔 끓으면 칼국수를 넣고 면이 익으면 불에서 내린다. 면은 시장에서 사도 되지만 밀가루, 계란, 우유 등을 넣고 반죽을 한 다음 병으로 밀어 만들면 더욱 맛있다. 팥죽 맛난곳 사다 먹으면 더 맛있다? 시장과 백화점은 물론 죽 전문집에서도 맛있는 팥죽을 포장해서 판다. 망원 1동 동사무소 근처에 있는 고모네 낭화(02-336-5015)는 담백하고 푸짐한 팥죽이 군침이 도는 곳. 직접 팥농사를 짓기 때문에 국내산 1등급 팥만을 사용한다. 진한 팥 국물이 자랑이다. 커다란 그릇에 새알심이 가득한 팥죽이 먹음직스럽다. 손으로 직접 밀어 만드는 팥 칼국수도 정말 맛있다. 새알팥죽 4000원, 팥칼국수 3500원, 잣죽 6000원. 삼청동에 있는 서울에서 두 번째 잘하는 집(02-734-5302)은 잘 알려진 단팥죽 명가.29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밤, 은행, 팥 등을 주인이 직접 경동시장에서 장을 봐온다. 햇밤이 들어 있어 달콤하며 달걀만 한 새알심의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원래 이곳은 한방 찻집이었는데 손님의 요청으로 한두 그릇씩 팔던 팥죽이 명물로 자리 잡았다. 단팥죽 5000원, 십전대보탕 5000원. 단점이라면 가격에 비해 팥죽 양이 좀 적다는 것. 예술의 전당 건너편에 있는 서초동 백련옥(02-525-8418)은 강남 지역에서 친절한 서비스와 청결함, 맛난 팥죽까지 먹을 수 있는 곳이다. 팥죽과 함께 먹는 김치와 동치미를 매일 담가 담백하고 시원함이 그만이다. 손님이 많지만 친절한 서비스를 유지하고 주방을 개방해 음식을 만드는 것도 볼 수 있다. 백련옥은 팥죽뿐 아니라 여러가지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집으로도 유명하다. 동지팥죽·팥칼국수 6500원, 왕만두 5500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두근두근 두고두고봐이~두바이

    두근두근 두고두고봐이~두바이

    아랍에미리트의 제2도시인 두바이는 미래의 관광지다. 세계에서 가장 ‘럭셔리한’ 여행지로의 탈바꿈이 한창이다. 현재는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이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세계 최고 빌딩 부르즈 두바이(189층)와 세계 지도 모형의 인공섬 더 월드 등 4개의 인공섬이 만들어진다.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인 두바이에 가면 사막에 쏟아붓는 어마어마한 ‘오일 달러’의 위력에 놀라게 된다. 그렇다고 현재 볼거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4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사막 구릉을 넘는 짜릿한 사막 사파리 투어가 있고, 곳곳에 살아 숨쉬는 아랍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지난 3일에는 400m길이의 슬로프를 갖춘 세계 최대 실내 스키장이 개장됐다. 아직까지는 유럽과 아프리카 등지로 떠나는 ‘스톱오버’(중간기착) 관광객들이 잠시 스쳐가는 관광지이지만 미래에는 세계 관광의 중심을 꿈꾸고 있다. 글 사진 두바이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세계 최고 럭셔리 호텔 ‘버즈 알 아랍’ 새벽 4시 45분. 두바이 공항에 내리자마자 7성급 호텔인 ‘버즈 알 아랍’으로 향했다. 하룻밤 숙박료가 최고 1만달러(약 1000만원)에 이른다는 세계 최고급 호텔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도착한 곳은 호텔이 가장 잘 보인다는 주메리아 비치. 비치는 아침 일찍부터 산책을 하거나 수영을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 곳에서 바라본 돛단배 형상의 호텔은 볼수록 ‘럭셔리´함이 묻어난다.‘아랍의 타워’라는 의미의 호텔은 두바이의 랜드마크로 1997년 문을 열었으며, 자칭 혹은 타칭으로 ‘7성급’ 호텔로 불린다. 호텔은 복층으로 27층에 불과하지만 높이가 321m로 호텔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호텔은 숙박객이나 음식점 예약자 외에는 출입이 통제돼 있어 들어가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 최근 결혼설이 나오고 있는 할리우드 톱스타 커플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휴가를 즐기며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두바이에서는 5성급 호텔들은 명함을 제대로 내밀지 못한다. 시내에 호텔만 290개, 호텔형 아파트도 100개에 이르는데 ‘6성급’이라는 명칭이 붙은 호텔들도 수두룩하다. 현재도 호텔이 계속 건립 중이며, 시내에 들어서면 곳곳이 각종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가장 널찍한 공사장은 ‘버즈 두바이’라는 700여m에 이르는 189층의 세계 최고 주상복합 레저단지 공사장으로 삼성물산이 2009년 완공을 목표로 짓고 있다. 지난 3일에는 길이 400m짜리 슬로프를 갖춘,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스키장을 개장했다. 스키장은 높이 85m, 너비 80m로 총 5개의 슬로프를 갖추고 있으며,1년 내내 영하 1도의 온도가 유지된다. 앞으로는 30∼40도를 웃도는 열사의 땅에서 스키도 즐길 수 있다. 또 미국 디즈니랜드의 8배 규모의 테마파크인 ‘두바이랜드’를 건설 중에 있다. ●스릴넘치는 사막 사파리투어 현재 두바이에서 가장 인기있는 투어는 ‘사막 사파리’.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을 달려 70㎞ 떨어진 하타에 도착하자 수십여대의 4륜구동 자동차들이 뜨거운 사막를 질주한다. 사막에서 들어서기도 전에 아프리카 출신의 운전사 겸 가이드는 “(차가 심하게 흔들려) 멀미를 할지 모른다.”며 겁을 준다. 사막 사이로 길게 뻗은 도로에서 벗어나 사막지대에 들어섰다. 먼저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타이어에 바람을 뺀 뒤 “안전벨트를 매라.”며 급하게 액셀레이터를 밟자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급경사를 오르내려야 하기 때문에 타이어 바람을 빼야 안정감이 있다고 한다. 모래 능선을 따라 곡예운전이 시작됐다. 능선을 힘겹게 올랐다가 내리면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 입에서는 저절로 비명이 쏟아진다. 자동차가 모래에 비탈길을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올 때면 차가 전복되는 듯한 공포에 휩싸인다. 차가 모래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한 느낌이다. 언덕 오르내리기를 수차례. 차가 사막 한가운데 들어서자 차가 잠시 멈췄다. 모래에 빠진 다른 차량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짬을 내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려 사막을 달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우선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맨발로 사막을 달렸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같은 사막. 하염없이 먼 사막을 응시했다. 1시간 남짓 사막에서의 곡예 운전을 만끽할 쯤 저멀리 일몰이 시작됐다. 샛노란 모래 사막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은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어두워지면 길을 잃을지 모른다는 운전사의 말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막 가운데 조성된 베두인 마을에 도착했다. 나무 울타리를 쳐놓은 이 곳은 베두인 일상을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민속촌. 물담배와 함께 양고기 바비큐 등을 맛볼 수 있으며, 베두인 전통 벨리댄스를 볼 수 있다.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밝게 빛났다. 먼저 물담배를 즐기는 장소가 마련됐다. 물담배는 유리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기구 안에 물이 담겨 있으며, 연결 호스에 빨대를 끼우고 연기를 흡입하면 된다. 물담배 맛은 순하면서 박하향 같은 냄새가 좋았다. 아랍 전통요리인 ‘티카’(양고기 요리)와 시원한 맥주를 걸치자 무대에서 벨리댄스가 시작됐다. 풍만한 육체의 아리따운 무희가 아랍 음악에 맞춰 허리와 엉덩이를 육감적으로 흔들며 흥을 돋우었다. 까만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원없이 만끽한 사막의 밤은 이렇게 저물었다. ●아랍인의 생활속으로 현지인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싶어 시티 투어에 나섰다. 발길 닿는 대로 재래시장이나 시내에 있는 아랍 건축 양식 등을 둘러보았다. 두바이는 크릭강을 중심으로 데이라 지구와 두바이 지구로 나뉘는데 수상택시인 ‘아브라’를 타고 크릭강을 건너 보는 것도 좋다. 목적지 별로 여러명이 함께 배에 오르는데 요금은 1인당 1디아르. 저녁 무렵이면 강위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먼저 6성급 호텔인 알카사 호텔에 있는 ‘마리낫 숙´을 들렀다. 전통시장을 고급스럽게 재현해 놓은 곳으로 아랍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예품을 비롯해 향료와 비누 등을 구입할 수 있다. 두바이 박물관에 들르면 두바이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곳에는 허허벌판이던 사막이 어떻게 지금의 두바이가 됐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두바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금시장과 향신료 시장이다. 금시장은 브루나이에 이어 세계 2위의 시장으로 두바이엔 300여개의 금 판매상이 밀집해 있다. 다양한 금은 세공품을 취급하는데 돌아보는 것만으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특히 두바이는 면세지역으로 모든 제품을 면세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같은 물건이라도 저렴하다. ●세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 중 두바이 관광청을 찾았다. 수조원을 들여 변모해 가는 두바이의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관광마케팅 담당자인 알리 빈 압둘 와합은 관광객 1억명 유치를 목표로 하는 원대한 ‘두바이 드림’ 계획(2018년 완료)을 설명했다. 그는 앞바다에 종려나무(대추야자) 모양을 본뜬 대형 인공 섬 ‘팜 아일랜드’와 세계지도 모양의 ‘더 월드’에 대해 설명했다. 두바이 해안에서 8㎞ 떨어진 바다 위에 조성되고 있는 ‘더 월드’는 가로 9㎞, 세로 6㎞의 넓이로 한국을 포함한 300여개의 섬으로 돼 있는데 각국을 닮은 섬들을 현재 분양하고 있다. 각 섬에는 고급 빌라, 주택, 호텔, 쇼핑몰 등이 들어서는데 한국의 섬 분양가는 200억원 정도라고 설명한다. 아파트나 건물 등을 구입하면 쉽게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미리 알고 떠나세요 인천에서 두바이까지는 에미리트항공(www.emirates.com/korea/kr·02-779-6999)이 매일 새벽 0시 30분 직항편을 운항한다. 시차는 한국보다 5시간 늦으며, 운항시간이 9∼10시간 정도 소요돼 새벽 5시분쯤 도착한다. 돌아오는 편은 오전 2시40분 두바이를 출발,8시간 30분 걸려 오후 3시 50분쯤 인천에 도착한다. 한국이 오전 9시면 두바이는 오전 4시다. 기온은 4∼9월은 40도를 오르내리지만 10∼3월은 15∼30도 정도로 여행하기 좋다. 두바이는 한달간 관광 목적의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다른 중동국가와 달리 술 반입도 허용된다. 환율은 1000원에 3.6디람 정도이며, 전압은 220볼트,1인당 국민소득은 2만 5000달러다. 한국식당은 4곳이 있며,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도 30여곳에 이른다. 만나랜드(www.dubaiinform.com)의 경우 1박 3식에 60달러 정도로 전화를 하면 공항 픽업서비스도 해준다. 중동지역 전문 랜드사인 ‘디티티에스’(www.godubai.co.kr)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8)정치적 야심가들과 ‘정감록-허균과 유효립’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8)정치적 야심가들과 ‘정감록-허균과 유효립’

    한국의 정치적 예언서는 권력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정감록’은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 기원은 실로 오래됐다. 신라 말 풍수예언의 대가 도선국사가 고려태조의 아버지에게 바쳤다는 ‘봉서’(封書)가 그것이다. 도선은 하늘의 명을 받아 송악에서 왕이 배출될 줄을 미리 알았다. 그는 한 편의 예언서를 밀봉한 다음, 왕건의 아버지에게 바쳤다. 훗날 고려 태조는 예언서를 펼쳐 보고 자신에게 천명이 있는 줄 알게 되었다 한다. 이것은 고려 초기 최유청이 지은 글에 자세히 나와 있다. 도선이 전해준 ‘봉서’에 힘입어 왕건이 고려의 성립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었다. 역사상 왕건만큼 운이 좋은 경우는 드물었다.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예언을 내세워 대권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실패로 끝났다. 허균(許筠·1569~1618)과 유효립(柳孝立·1579~1628)의 경우도 그랬다. 그들 두 사람은 거사에 앞서 각기 자신들에게 유리한 예언을 조작해 널리 유포했다. 역사상의 야심가들이 예언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게다가 그들이 퍼뜨린 예언은 직접 간접으로 ‘정감록’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끈다. ●허균과 유효립 허균은 우참찬(정2품)이란 고위직에 오르기까지 했으나 세평은 별로 좋지 않았다.“허균은 천지 사이의 한 괴물입니다.” 광해 10년(1618) 대간(臺諫)들이 허균을 탄핵할 때 나온 말이다. 상소문에는 허균이 평소에 저지른 온갖 악행이 고발되었다. 그는 상중(喪中)에도 창기를 끼고 놀았으며, 예언을 조작하고, 난리를 꾸미느라 혈안이 돼 있었다는 비난이다. 과장된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통용되던 도덕 기준을 가지고 보면 그에게 문제가 있긴 했다. 그는 본래 조정의 실권자 이이첨과 사이가 멀었다. 소문에 따르면, 이이첨의 집엔 머리가 큰 뱀이 하나 있다 했다. 허균은 그 뱀이 이이첨에게 죽임을 당한 최영경과 김직재의 귀신이라고 풀이했다. 허균은 이이첨을 저주했던 것인데 광해군 5년(1613) 이른바 ‘칠서(七庶·7명의 서자)사건’이 일어나 자기의 처신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이이첨에게 매달렸다. 허균이 높은 벼슬을 하게 된 것은 변절의 대가였다. ‘칠서사건’에는 평소 허균이 가까이 하던 서울 양반의 서자들이 모두 관련되었다. 그들은 광해군에게 서얼 차별을 없애 달라고 호소했으나 뜻이 이뤄지지 않자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도적질을 하였다. 그러다 경상도 문경새재에서 상인을 죽이고 수백 냥의 은을 약탈한 사실이 적발돼 모두 사형을 당했다. 대북파는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정권을 독점하려 했다. 서인과 남인이 서자들을 앞세워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며 사건을 조작해 정적들을 처단했다.‘칠서’와 가까웠던 허균은 신변의 위기를 느낀 나머지 이이첨에게 붙었다. 허균의 벼슬길은 트였다. 그러나 선비들은 허균의 처사를 비루하게 여겨 틈만 나면 공격해댔다. 약점을 잡힌 허균은 늘 우울하게 지냈다(실록 광해 6년(1614) 10월10일 기축). 그러나 그만한 처지도 유효립과 같은 사람이 보기엔 부럽기 그지없었을 테다. 허균이 처단되고 한참 지나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이 축출되고 그 아래서 최고 실권자로 행세하던 이이첨, 박승종 및 유희분이 일거에 숙청되었다. 유효립은 바로 그 유희분의 친조카였기 때문에 연좌되어 충청도 제천으로 유배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로 남부러울 것이 없었는데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울분을 참지 못한 유효립은 인조반정 자체를 부당한 역적행위로 규정하고, 유배지에서 역 쿠데타를 준비하였다. 그는 이미 폐위된 광해군을 상왕으로 모시고 인조의 숙부인 인성군공(仁城君珙)을 새 왕으로 추대할 계획이었다. 대북파의 복권을 위해서였다. ●유효립이 조작한 예언과 ‘정감록’ 예로부터 야심가들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예언을 조작하곤 했다. 인조 초년에 발생한 유효립 역모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유포된 예언 중에는 ‘정감록’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 적지 않았다. 유효립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 담화(曇華)라는 승려와 무척 친했다. 유효립의 사주를 받은 담화는 옛날 도선국사가 창건한 전남 광양의 옥룡사(玉龍寺)로 가서 “개해(戌年)와 돼지해(亥年)에 사람이 상하는 화가 발생한다. 그러면 범해(寅年)와 토끼해(卯年)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구절을 비석에 남몰래 새겨 넣었다. 인심을 선동하기 위해서였다. 그밖에도 담화는 예언서를 조작해 “쥐해(子年)와 소해(丑年)에는 안정되지 않다가 범해(寅年)와 토끼해(卯年)에 패한다.”라든가 “용해(辰年)와 뱀해(巳年)에 인성(仁城)을 얻는다.”는 대목을 삽입했다. 담화가 즐겨 이용한 편년체 예언방식은 18세기 이후 예언서의 기본형이 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정감록’에도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담화가 ‘인성´을 인성군 이공으로 해석하였던 관계로, 강원도 원주 지방 사람들은 머지않아 인성군이 즉위할 것으로 믿고 큰 기대를 걸었다 한다. 유효립과 담화 등이 퍼뜨린 예언 중에는 새 임금이 등극할 시기를 “계룡산의 돌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거친 개펄에 배가 다닐” 때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이 구절은 현재 ‘정감록´의 ‘감결’에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계룡산의 돌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청포 죽이 흰색으로 변한다. 거친 개펄에 조수가 일어 배가 다니며 누런 안개와 검은 구름이 일고 붉은 기운이 삼일 동안 감싼다.”는 구절이다. 역시 ‘정감록’의 일부인 ‘징비록’에도 “진인이 남해에서 계룡으로 오면 창업을 알 수 있다. 말세가 되면 계룡산의 돌들이 흰색으로 변하고, 거친 개펄에 배가 다니며, 목멱산의 소나무가 붉게 변하고 삼각산의 모양이 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미 여러 차례 강조했듯,‘정감록’은 역사상 등장한 한국의 수많은 예언들이 모여서 이뤄진 호수다. 그 일부는 결과적으로 유효립 등이 목숨과 맞바꿔 조작한 예언들이다. 사실 계룡산의 돌이니, 개펄의 배 또는 용의 해 따위는 ‘정감록’ 가운데서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앞의 두 가지는 앞으로 세상이 바뀔 조짐을 보여주며, 마지막 것은 진인이 나오는 시기를 점치는 것이라서 중요하다. ●허균이 조작한 예언과 ‘정감록’ 그의 반대파들이 보기에도 허균의 문재(文才)는 뛰어났다. 그는 붓만 손에 들면 수천 마디의 글을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한다. 특히 위서(僞書·가짜 책) 짓는데 취미가 있어 산수참설(山水讖說)과 선불이적(仙佛異迹·신선과 부처의 기이한 행적) 등을 멋대로 꾸몄다 한다. 허균의 위작은 그가 평상시 지은 글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허균은 ‘산수비기’(山水秘記)라는 예언서를 읽다가 거기에 본래 없던 내용을 보태 썼다. 조선의 첫째 수도는 한(漢), 둘째는 하(河), 셋째는 강(江), 넷째는 해(海)라고 조작해 넣었다 한다.‘한’은 두말 할 나위 없이 한양이었다. 그리고 ‘하’는 경기도 교하(交河)를 가리켰다.‘강’과 ‘해’는 어디에도 밝혀져 있지 않으나 ‘강’은 아마도 계룡산이 있는 금강을 뜻하지 않았을까.‘정감록’의 ‘감결’을 보더라도 한국의 수도는 한양, 계룡산, 가야산, 전주, 개성 등으로 몇 차례 더 바뀐다고 되어 있다. 허균은 예언서를 조작해 우선 인심을 뒤흔든 다음, 영창대군의 외척인 김제남과 공모해 서울을 교하로 옮기려 했다. 이것은 ‘칠서사건’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러나 허균은 그에게 씌워진 이런 혐의를 강력히 부정한다.‘산수비기’를 읽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법률상 엄격히 금지돼 있어 집안에 들여놓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 뒤에도 허균은 도성의 인심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매일 밤 부하를 시켜 남산에 올라가 고함을 지르게 했다.“서쪽의 도적이 이미 압록강을 건넜다.” “유구(琉球) 사람들이 바다 가운데 섬에 숨어 있다.”는 식이었다. 남북 양면에서 외적이 쳐들어올 기세란 거짓 소문이었다. 특히 유구는 조선에 쌓인 원한이 있어 군대를 보내 섬 속에 숨겨둔 채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주장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허균은 조선을 멸망시킬 군대가 섬에 있다는 예언을 조작해 널리 퍼뜨렸던 것인데,‘정감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발견된다. 오랑캐인지 왜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쳐들어 온다고도 했고, 새 나라를 일으킬 진인이 섬에서 군사를 이끌고 나온다고도 했다. 그밖에도 그는 다른 예언을 지어 전파시켰다.“성은 들만 같지 못하고 들은 멀리 도망가는 것만 못하다.”는 식이었다. 이 역시 ‘정감록’ 에 약간 변형된 형태로 남아 있다. 활활(活活 또는 闊闊), 궁궁(弓弓), 밭(田) 또는 소나무(松)가 난세에 가장 유리하다는 구절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허균은 부하들을 시켜 남산의 소나무 사이에 등불을 걸어 놓고 “살고 싶은 자는 피난을 가라.”고 소리쳤다 한다. 이런 소동으로 인해 도성 인심은 몹시 어지러워졌고 실제 도성을 떠나 피난을 가려는 인파가 길을 메웠다고 한다. 당시 한양 주민은 이미 임진왜란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허균이 조작한 외침 예언에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를 일으켰다. 아닌 게 아니라 광해 8년(1616)부터 북방이 어수선했다. 만주의 여진족들이 청나라를 일으켜 중국 대륙의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다. 여진족들은 건주까지 밀려들어 국내 인심이 흉흉하였다. 바로 그때 허균은 변방이 위급하다며 거짓 예언을 조작했고, 익명으로 된 글을 지어 어느 해 어느 곳에서 역적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등 실로 터무니없는 예언을 퍼뜨렸다. 반란에 관한 허균의 예언은 18세기 이후 ‘정감록’에 여러 차례 기록된 ‘삼국분국설’ 즉 특정한 시기에 나라가 세 토막이 나고 만다는 예언과 유사하다.‘분국설’의 기원이 허균에게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역자의 동지들 허균이든 유효립이든 그들이 일으킨 반역사건에는 다종다양한 여러 인사들이 관련되었다. 유효립 사건의 경우는 처형된 공범 수가 무려 50명을 헤아렸다. 그 가운데는 전 현직 관리는 물론 궁중의 내시와 화원(畵員)까지도 끼여 있었다. 이런 사건엔 늘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승려들도 상당수 포함되었다. 그 점에서는 허균의 역모사건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위에 말한 부류 외에도 무사와 하인들도 다수 가담했다. 허균의 경우엔 한두 가지 이색적인 취향이 도드라져 보인다. 그는 평소 정도전(鄭道傳)을 흠모하여 “현인(賢人)”이라 칭찬했다 한다. 정도전은 왕자의 난 때 태종 이방원에게 희생된 고관이었다. 그는 명실 공히 조선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공신이었으나 권력투쟁에서 실패해 역사에 오명을 남긴 불우한 인물이다. 허균은 바로 그 정도전을 사모해 ‘동인시문(東人詩文)’을 정리할 때 그의 시를 가장 먼저 실었다. 혹시 허균은 정도전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또 하나, 허균은 재주가 비상한 서자들과 가까웠다. 특히 처조카인 서자 심우영(沈友英)을 몹시 아꼈다. 심우영과 함께 ‘칠서사건’의 주범이던 서양갑과도 무척 친했다. 허균은 서양갑에게 석선(石仙)이란 자를 지어 주기도 했는데, 전설에 등장하는 신선 황초평(黃初平)이 돌을 양으로 둔갑시켰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평소 허균은 주장하기를,“오늘날 영웅은 서석선(徐石仙)뿐이다.”라고 했다. 물론 허균이 친하게 지냈던 서자들은 글재주가 탁월해 장안의 명망가로 통하던 인물들이었고, 서울의 양반들 중에는 그들 서자와 사귀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균만 그들과 친했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해도, 현실세계에서 버림을 받은 재주 있는 서자들, 그리고 비명에 죽은 정도전 같은 인물을 허균은 유달리 좋아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그는 반대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당하게 되었다. 허균은 자신의 신변안전을 위해 ‘칠서사건’ 이후 서자들을 비롯한 비제도권 인사들을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광해군 때 승려들이 난리를 일으키려고 모의한다는 소문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은 입을 모아, 허균이 꾸민 일이라고 비난했다. ●허균이 정말 반역을 꾀했을지는 의문 앞에서 예로 든 허균과 유효립은 서로 정치적 노선이 달랐다. 허균은 광해군과 대북파를 몰아내고 자신이 직접 왕이 될 생각이었다 한다. 그에 비해 유효립은 대북파의 재집권을 노렸다. 인조를 쫓아내고 광해군을 상왕으로 복권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주모자인 유효립은 자신의 ‘역모’가 정당하다고 굳게 믿었으므로, 체포된 뒤에도 떳떳했다. 그 태도에 놀란 조정 대신들은 “효립의 진술은 언사가 매우 흉악하고 버릇이 없어 차마 읽을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먼저 목을 베게 하소서.”라고 우선 처형부터 하자고 인조를 졸라댔다. 왕은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고, 유효립이 펼친 주장이 후세에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두려워 “그가 진술한 내용을 불살라 버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허균의 역모사건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실록’에 나오는 여러 기록을 정리해 보면 그가 은밀히 무사를 모은 것과 승군(僧軍)을 동원한 일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은 뚜렷하지 않다. 당시 허균은 군사를 이끌고 인목대비의 처소로 쳐들어가 먼저 대비를 제거한 다음 광해군에게 아뢸 계획이었다 한다. 왕도 이미 그 계획을 허락하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때 갑자기 조정의 실권자인 삼창(三昌·이이첨, 박승종 및 유희분)이 왕에게 허균이 반역을 꾀한다고 밀고했다. 대비를 없앤다는 구실 아래 허균이 역모를 일으킬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 말에 놀란 인조는 사건을 엄히 조사하게 했다. 아무리 보아도 허균이 역모를 꾸몄다는 증거는 명백하지 않다. 그는 대북파의 우두머리 이이첨을 상대로 인목대비의 폐모를 누가 먼저 할 것인가를 둘러싼 경쟁을 벌였다. 이이첨은 공을 빼앗길까봐 두려움을 느꼈고, 허균에게 반역죄를 씌워 반전을 도모한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실록 광해10년 8월21일 정축). 그때 허균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크게 조력한 이는 허균의 제자였던 기준격이었다. 기준격의 아버지 기자헌은 애초 허균의 친구였다. 그런데 인목대비에 관한 문제로 그들의 우정은 금이 갔다. 허균은 기자헌을 죽이려 들었고, 분노한 기준격은 허균의 과거 언행 가운데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을 꼬투리 삼아 공격했다(광해 9년 12월26일 정사). ●예언을 통한 집권의 정당화는 오랜 전통 어쨌거나 허균과 유효립에게는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예언을 통해 기성의 정치세력에 반항하다 실패했던 것이다. 만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성사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는 빤하다. 때로 예언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그러나 사람의 운명이 예언을 바꾸는 경우는 더욱 많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한솥밥 먹던 스타 다 모였네”

    올해 창단 10돌을 맞은 극단 차이무(대표 민복기)와 극단 유(대표 유인촌)가 나란히 ‘공연 잔치’를 벌인다. 한솥밥 먹던 옛 식구들까지 모두 가세해 펼치는 특별한 자축연이다. 극단 차이무는 풍자 코미디 ‘마르고 닳도록’(12월1∼1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으로 관객의 웃음보를 찌르고, 극단 유는 톨스토이 원작의 뮤지컬 ‘어느 말의 이야기, 홀스또메르’(12월9∼18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노래한다. 두 극단 모두 영화와 드라마에서 각광받는 스타 연기자들의 산실 노릇을 해왔는데 이들이 단역도 마다않고 뛰어드는 통에 보기 드물게 초호화 캐스팅 무대가 돼버렸다. ●새로운 차원으로 관객을 안내하는 즐거움 극단 차이무는 ‘차원이동무대선’의 준말이다. 세상을 보는 다차원의 관점을 제시하고 싶어서 붙인 이름이다. 연우무대 출신의 극작가 겸 연출가 이상우, 배우 문성근, 류태호를 중심으로 송강호 강신일 박광정 등 ‘범 연우인’들이 뭉쳤다. 이상우 연출가는 “91년 연우무대를 나온 뒤 개인사무실을 냈는데 동료·후배들이 매일 몰려와 술을 마시기에 ‘그러지 말고 공연을 하자.’고 해서 만든 극단”이라며 웃었다. 차이무는 번역극 ‘플레이랜드’로 창단 신고식을 치른 이후 ‘늙은 도둑이야기’‘비언소’‘돼지 사냥’ 등 창작 흥행작을 줄줄이 내놓았다.‘차이무 스타일’ 혹은 ‘이상우 스타일’로 불리는 차이무 연극의 가장 큰 특징은 ‘재미’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생각은 깊게, 표현은 경쾌하게’라는 이상우 연출가의 작품관은 풍자와 냉소가 깃든 독특한 질감의 ‘차이무표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극단 차이무의 또다른 특징은 단원들을 멀티플레이어로 키우는 것. 배우가 연출도 하고, 연출이 스태프 일을 하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면 ‘변절자’로 취급하는 다른 극단들과 달리 차이무는 오히려 배우들에게 “여기에서만 필요한 배우가 되지 말고 다른 곳에서도 불러주는 배우가 되라.”고 독려한다. 이런 분위기 덕에 차이무에는 TV와 스크린, 무대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는 배우들이 많다. 창단 공연 이후 10년 만에 무대에 서는 문성근은 “공동체 안에서 하모니를 이뤄내는 차이무만의 남다른 분위기가 있다.”면서 “차이무의 레퍼토리를 연중 공연할 수 있는 전용극장을 조만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0주년 기념작 ‘마르고 닳도록’(이강백 작·이상우 연출)은 애국가의 저작료를 받아내려는 스페인 마피아 집단을 내세워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꼬집는 블랙 코미디. 문성근 강신일 박광정 김승욱 등 스타 배우들이 단독 캐스트로 공연 내내 무대를 지킨다.(02)747-1010. ●무대와 관객을 향한 끝없는 열정 배우 유인촌이 이끄는 극단 유는 남들이 가지 않는 험한 길을 주로 택했다.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99년, 공연문화의 불모지인 강남 한복판에 전용극장을 덜컥 지었고,‘홀스또메르’‘철안 붓다’ 등 작품성은 있지만 돈은 안 되는 공연들을 뚝심있게 무대에 올렸다. 지난해에는 지방으로까지 눈을 돌려 강원도 봉평에 달빛극장을 개관했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유 대표가 CF 찍어 적자를 메워 온 시간들이 쌓여 어느새 10년. 그의 말대로 여태 버텨온 게 ‘기적’이다. 더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택시 드리벌’‘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같은 흥행작들도 큰 버팀목이 됐다. 과거 10년을 결산하고, 미래의 10년을 전망하는 기념 공연 ‘어느 말의 이야기, 홀스또메르’를 앞둔 그는 “기대감과 부담감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원래 계획했던 ‘햄릿’이 주역 캐스팅 문제로 무산되면서 차질이 빚어지긴 했지만 유 대표가 맨처음 10주년 기념작으로 점찍었던 작품은 ‘어느 말의 이야기’였다. 그는 “서사적인 스타일과 사실주의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무대로 연극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두루 갖춘 작품이어서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느말의 이야기’는 한때 뛰어난 경주마였으나 지금은 늙고 병든 말 홀스또메르의 일생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통찰하는 우화극이다. 러시아 전통민요를 연상케 하는 서정적인 음악들이 곁들여진 뮤지컬로, 러시아인 아코디언 연주자를 비롯한 5인조 밴드가 라이브로 음악을 연주한다. 1997년 초연부터 세차례 ‘홀스또메르’역을 맡아온 유 대표가 이번에도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오른다. 서울문화재단 대표로 임명되면서 잠시 배우 일을 접었던 그는 “체력적으로 아주 힘든 배역인데다 부족한 연습시간 등 어려운 점은 많지만 10주년 기념작인 만큼 최고의 완성도를 갖춘 공연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극단 출신의 영화배우 김수로, 정규수 등 30여명의 단원들이 출연한다.(02)515-0589.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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