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통예술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검찰 송치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15억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추격전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석탄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909
  • 한국무용가 양길순(이세기의 인물탐구)

    ◎영혼이 깃든 춤사위로 무대마다 긴장감…/한동작 일만번씩 연습… 타고난 예살키워/결혼후 매헌 문하로… 경기 도살풀이 맥이어 양길순은 매헌 김숙자의 「경기 도살풀이」 이수자이자 전수교육조교다.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살풀이춤 가운데 호남 동살풀이의 맥을 잇는 이매방류와는 달리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은 경기 무악인 도당굿의 아홉거리중 한 종류다.고개를 끄덕이는 「목젖놀이」가 특징인 이 춤은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는듯한 나뭇잎사위며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사위, 학처럼 발끝을 딛고 서는 고고한 학사위가 일품이다. 똑바로 가르마탄 쪽진 머리에 하얀 치마 저고리, 허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으로 양길순이 무대에 서면 섬뜩한 푸른 귀기가 언뜻 번뜩이고 아직 동작을 이루지 않았는데도 벌써 정중동의 미선이 숨막힐듯 이어진다.서무에서는 짐짓 느리게 거닐다가 세발이 넘는 긴 명주수건을 허공에 뿌리면서 어깨에서 오른팔, 다시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바닥에 던져서 기쁨과 슬픔, 흥과 멋을 달래는 전과정은 삼엄한 천둥속에서 한송이 백매화가 피어나는 이미지다. ○취학전 학원서 춤배워 검은 가사에 흰고깔, 오방장단에 맞춘 「승무」역시 깊고 긴 호흡과 포개고 떼는 보법이 현란하다.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은 뿌리칠때마다 장대한 능선을 그리고, 천수북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휘돌아가는 처연한 의식은 북가락에 실린 오뇌의 흐느낌과 함께 허물많은 세속에서 무상의 열반으로 무한정 빠져들게 한다.발딛음새는 고결하면서도 온누리를 세밀히 다지는듯 하다. 지난 94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양길순이 전통춤을 발표했을때 평론가 정병호씨는 「한국춤에 알맞는 맵시있는 양태」란 글에서 「양길순만의 규모있는 매력」을 크게 호평한바 있다.「그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불세출의 명무 김숙자의 살풀이춤 교육조교로서 스승의 도살풀이춤 입춤 부정놀이춤 승무를 추면서도 종래의 전통무용발표회에서 보여준 춤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고전적 형식을 재창조하여 한국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물론 전통춤사위를 그대로 살리고 보존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양길순만의 앙칼지고 결연한 분위기탓에 춤사위사위마다가 제단앞에 선 사제같은 신명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그와 매헌 김숙자와의 만남은 77년 일본에서 「김숙자 도살풀이춤」공연이 있을때부터 시작된다. 양길순은 본래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으나 약사이던 부친 량원극씨를 따라 4살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했고 용산구 후암국민학교에 다니다가 이번엔 부친의 약방이 강원도 홍천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홍천여고를 졸업했다.국민학교다니기전부터 임미자· 김정자무용학원에서 춤추기 시작했고 학교행사때마다 『춤과 노래로 좌중을 사로잡는 재간동이였다』고 어머니 곽오덕씨가 전한다.파조· 이화무용콩쿠르를 비롯 전국학생무용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 한가지를 가르치면 열가지를 아는 지혜와 눈썰미탓에 주변에선 「장래 범상치않은 무용가탄생」을 점치고 있었다. 경희대 무용과에서 김백봉사사후 국립무용단에 입단, 그러나 무용에의 길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남들이 개인무용발표회를 갖거나 큰무대의 주역으로 발탁되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무용가로서 최고가 될수 없다면 무용을 그만둔다」는 결심으로 집안의 중매로 만난 재일동포 사업가 이태호씨와 결혼했다.한국을 떠나 오사카에 정착했으나 한국에서 교포위문공연이 올때마다 객석뒤에 숨어서 무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역시 무용을 떠나서는 살수없는 운명」을 몇번씩이나 재확인할수있었다.그무렵 오사카에 온 「김숙자무용」공연을 보고 「삶의 애환이 깃든 춤으로 보는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살풀이」에 반해 스승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스승은 첫마디에 『아담한 몸맵시에 작고 예쁜 얼굴, 타고난 예살』을 지적하여 쾌히 문하에 받아주었고 그때부터 다시 서울에 돌아와 낙원동에 있던 김숙자무용학원에서 「밤이나 낮이나 스승의 모든 것을 전수」받는데 전념했다. 그는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었으나 스승과 고락을 함께한다는 자세로 하루종일 학원에 머물러 스승을 돕고 보조하는 역할을 해냈다.그리고 「궁색한 티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스승의 자존심」을 존경하여 친부모이상으로 스승을 모시는 모습은 무용계와국악계의 화제가 됐었다.국악계의 원로이던 박귀희 김소희씨는 「실과 바늘」같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당신들같은 스승과 제자는 다시 없다」고 부러워했고 그는 스승의 사랑속에서 자신의 춤경력과 「천부적 소질」을 살려 매헌의 「소중한 후계자」로 자라났다. ○친부모이상 스승 공경 그는 하나의 춤사위를 익히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속에든 모든 것을 쥐어짜고 그것을 손끝으로 발끝으로 어깨로 풀고 뿌리라」던 스승의 말을 어긴 적이 없다.그래서 하나의 동작을 「일만번씩 연습」하고 춤사위가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자연스러운 선으로 흘러나올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릴줄 알게 되었다.무용발표회를 가질때도 마치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듯이 전통 무태와 무작을 살린 완벽한 무대를 준비했고 이생강 윤윤석 김덕수사물놀이패 등 인간문화재급을 초청하여 「음악과 춤의 조화」를 실천하는 화려하고 풍성한 공연을 펼쳤다. 스승이 일찍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관련기관에 이를 호소하는데 앞장서기도 했고 91년 쾰른에서 열린 가우클러페스티발에 다녀오다가 김포공항에서 매헌의 「문화재지정」소식을 듣고는 스승과 제자가 부등켜 안고 통곡한 일화는 무용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심금 움직이는 춤으로 지금도 무대에 오를때마다 스승이 계시지않다는 슬픔때문에 그의 큰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넘쳐있고 스승을 기리는 뜻에서 그와같은 살풀이 이수자이며 스승의 딸인 김운선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감싼다.정의감이 강하고 남에게 폐끼치지 않는 결백한 성격에다 약한 사람의 편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죽파류 가야금산조 준인간문화재인 양승희와 송죽같은 우정을 나눈다. 「춤은 아름답고 이쁘게 추는 것이 아니라 심금을 움직이는 춤」이 진실한 춤이며 「스승을 감히 능가할수는 없으나 스승에 접근할수있는 춤」 그리고 「나의 영혼이 깃든 춤」을 춘다는 것이 그의 과제다.흰 명주수건을 들고 무대에 서있는 그자체가 바로 춤이고 싶고 매헌 김숙자­양길순으로 이어지는 춤의 맥을 고결하고 극진하게 지키고 싶은것만이 그의 소원이다. □연보 ▲53년전남 진도 출생 ▲72년 강원도 홍천여고 졸업 ▲76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77년 국립무용단단원 ▲78년 김숙자무용학원 강사 ▲81년 김숙자무용50년기념공연 ▲84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 ▲85년 전주대사습전국대회 장원 ▲86년 86,아시아 문화예술축전 무용제 우수단체선정기념 전국6개도시순회,김숙자선생회갑축하공연 ▲87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자유중국태평양문화기금초청 동남아순회 ▲88년 일본 아사히신문사 「조일우의 회」초청 양길순무용공연 ▲88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서울올림픽개막전야제 축하공연 ▲89년 한길무용회 창작무용극 「바람꽃」발표회 ▲91년 독일 가우클러페스티발 초청공연(쾰른) ▲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이수자지정,양길순무용단 창단,고김숙자선생 1주기추모공연,「명무전」 대한민국국악제 및 「춤과 그사람 명무」해마다 출연,춤의 해 「춤의 날」초청공연 ▲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조교지정,국악협회무용분과위 부위원장,전주대사습놀이 심사위원,대전 엑스포기념및 명인전공연,94년 94,국악의 해기념 여성국극 「안평대군」 및 서울예술단 「터벌림」안무,한·중·일 문화교류명인전공연 ▲95년 전주대사습놀이 및 서울전통예술보존회 일반대회심사위원 ▲96년 고려대언론대학원수료,국제예능교류협회 학생무용콩쿠르 및 정읍사문화재 전국학생국악대회심사위원,김숙자 선생 5주기추모공연,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기념축하 「살풀이」공연
  • 김덕수 40년(외언내언)

    아버지는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아이가 다섯살만 되면 난장에 데리고 다니겠다』고 말했다.아버지 무릎위에서 풍물놀이를 재롱처럼 익힌 그는 어김없이 5살때 조치원 난장에 섰다.작고한 남사당 인간문화재 남운용씨 어깨위에 올라 탄 무동으로서 였다.물론 무동중에서도 가장 나이어린 새미였다. 일곱살 때는 전국농악경연대회에 자기 키만한 장고를 메고 나가 대통령상을 받았고 아홉살 때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했다.법고잽이였던 아버지(김문학)와 당시 남사당패 뜬쇠(최고의 기예자)들로부터 상모돌리기 법고 장고 쇠 춤 버나(접시돌리기) 덜미(꼭두각시) 어름(줄타기) 등을 배운 그가 남사당의 기본악기인 사물(북 장고 징 꽹과리)을 앉아서 연주하는 「사물놀이」를 만들어 낸 것은 운명이었던 셈.그에 의해 지난 78년 서울 공간사랑에서 고유명사로 시작한 「사물놀이」는 이제 보통명사로 바뀌어 이 시대 문화유산의 창조적 전승의 한 전범으로서 세계적 언어가 됐다. 사물놀이의 김덕수씨가 데뷔 40년을 기념하는공연 「코리아 판타지」를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연다.나이 마흔다섯에 자신의 무대생활 40년을 당당하게 기념하고 아낌없는 축하를 받을수 있는 사람은 그 하나뿐일듯 싶다.놓쳐서는 안될 귀한 무대다. 유랑예인집단 남사당의 마지막 세대라는 것에 짱짱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이 지닌 최고의 기량을 오늘의 무대에 맞게 다듬어 온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몸매,서글서글한 얼굴에 구김살 없는 웃음을 지닌 그는 우리 땅의 기운을 모두 받은 건강한 농사꾼 처럼 보이나 그의 삶은 도깨비 같다.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동서양을 누비며 사물놀이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연주자로서,공연기획자로서,교육자로서 사물놀이를 한국의 전통예술만이 아닌 세계의 예술로서 전파하고 있는 그의 건강과 앞선 시각·열린 마음이 계속되기를 기원한다.
  • ’97 동계U대회 격전지 무주리조트/세계적 휴양도시로 거듭난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분교 등 유치/1조원 투입 골프·테니스장 등 확충/4계절 레저스포츠 시설 완벽 조성 오는 24일 동계유니버시아드를 치르는 무주리조트가 「자연과 문화예술의 나라」로 거듭난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았다. 무주리조트는 최근 2000년까지 모두 1조원 가량을 들여 국제적인 4계절 레크리에이션 콤플렉스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이 계획의 기본 테마는 자연과 문화예술이 조화를 이룬 세계적 휴양도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즉 단순한 스키장에서 탈바꿈해 자연속에서 문화예술의 향기와 고향의 정서를 느낄수 있고 가족 중심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4계절 휴양도시로 자리잡는다는 것이다. 또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한국분교를 세우며 발레스쿨 미술원 전통예술원 호텔교육원 체육원 어학원 등을 세우는 등 종합예술학교와 레저스포츠학원을 설립운영해 문화예술의 산실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우선 레저스포츠 분야에서는 세계적 골퍼 아놀드파머가 설계한 18홀의 야생고원골프장을 신설하는 것을 비롯,세계 최대규모의 108면 테니스코트와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목표로 하는 스키장을 만든다.이밖에 물썰매 눈썰매 등 각종 레저스포츠 시설이 완비되며 봄시즌에는 산악5종경기,여름에는 수상스포츠,가을의 산악자전거와 승마,겨울의 스키 등 4계절 레저스포츠 시설을 갖춘다. 특히 만선봉(1,215m)을 중심으로 하는 스키장은 35만여평의 면적에 시간당 2만8천500여명을 수송할 수 있는 리프트와 곤도라를 갖추는 것을 비롯,4만5천여명이 동시에 스키를 즐길수 있는 규모로 개발된다. 이를 위해 숙박시설도 획기적으로 확장해 23동 1천832실의 가족호텔,910실의 국민호텔,33개동 700실의 세미나텔 등을 갖춘다. 무주리조트는 이어 각종 국제회의와 기업연수의 메카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연면적 1천500평에 3층 규모의 연수원을 지어 각종 컨벤션과 세미나를 위한 시설과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또 예술인마을 대극장 1천200석과 4천200석 규모의 12개 실내극장,예술인마을 1천200석의 야외극장 등 동시 수용능력 9천여명의 컨벤션·세미나 시설을 갖추게 된다. 이밖에 3천여평의 부지위에자리잡을 신데렐라 뷰티팔레스는 대형 스위밍풀을 중심으로 계곡노천온천을 비롯,약초탕 인삼탕 정종탕 향수탕 진흙탕 등 22개의 각기 다른 온천탕과 국내 처음의 동굴사우나 헬스센터 등이 들어서 국제적 온천휴양시설로 발돋움한다. 무주리조트에는 또 한국자생의 야생화만으로 이루어질 자생화 생태식물원을 만든다. 각종 이벤트도 활발히 개발된다.「빛과 소리」라는 개념아래 연중 이벤트가 열려 봄의 민들레축제,여름밤 불꽃축제,가을 들국화축제,겨울 눈축제 등이 벌어진다.
  • 옛 총독부 철거기념/범 국민축제 성대히/27일 건물잔해도 나눠줘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기념하는 범국민축제가 오는 27일 하오 5시 조선총독부가 헐린 자리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철거를 기념하고 남북통일과 민족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국내외 귀빈 1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400여명의 출연진이 전통예술공연을 벌이는 「겨레의 얼 되살리기 한마당 축제」를 개최키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축제예술 대표 허규씨가 총감독을 맡은 이날 행사는 국군 전통의장대와 국방부 취타대,국립국악원 무용단,국립무용단,서울예술단,국립창극단,국립국악고교 등이 민속무용 고풀이와 궁중무용,대형 북춤을 공연하는데 이어 출연진과 참석인들이 함께 지신밟기와 강강수월래 불꽃놀이를 벌이는 대동춤 한판이 벌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측은 이날 행사 직전 경복궁 복원을 상징하기 위해 경복궁 근정전에 조명시설을 설치,점등식을 가지는 한편 행사후 참석인사와 관람객들에게 옛 조선총독부 철거 잔해인 석재를 나눠줄 예정이다.
  • 공연프로 관광상품과 연계 “시동”

    ◎국립중앙극장­타워호텔 공동 「겨울패키지」 발매/정동극장·국립국악원도 내년부터 상품 판매 미국 뉴욕이나 오스트리아 빈 등 도시에서는 저녁시간 공연관람이 관광코스처럼 돼있다.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러한 프로그램이 없어 외국인들의 발길을 유흥시설쪽으로만 몰아가는 형편. 서울의 큰 예술공연 극장들이 공연 프로그램을 관광상품과 연계시키는 문화상품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립중앙극장은 장충동 남산기슭에 위치하는 점을 활용,맞은편의 타워호텔과 타워호텔∼남산∼국립극장을 잇는 겨울 패키지 문화상품권을 발매한다. 또 정동극장과 국립국악원도 내년부터 외국관광객들을 위한 문화관광 상품을 개발할 준비를 갖추었다. 국립극장과 타워호텔이 발매하는 상품권은 오는 20일부터 내년 3월20일까지 운영하는 한시상품.호텔 투숙객이 이 상품권을 구입하면 국립오페라단 등 국립극장 산하 7개단체의 공연 가운데 2장의 공연관람권을 얻을 수 있고 사우나·테니스코트·남산전망대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 프로그램.고객이 보고싶은 공연을 호텔에 마련된 프로그램을 보고 선택하면 호텔 데스크에서 좌석을 마련해주는 형식이다.국립극장 관계자는 『하얏트·신라 등 근처 호텔과도 공동프로그램을 마련,남산을 묶는 관광코스로 정착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동극장은 내년 2월부터 연말까지 외국인들을 위한 전통상설무대를 개설한다.서울 중심에 위치한 정동극장 역시 근처의 조선·플라자·코리아나호텔과 공동으로 문화관광상품을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상설무대는 현재 정동극장이 곧 탄생시킬 전속 전통예술단을 중심으로 꾸려진다.사전홍보 작업으로 정동극장은 20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동극장 코너를 설치,사물놀이·전통무용·전통기악 등 상설프로그램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한다. 정동극장 홍사종극장장은 『지난 4월 외국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공연물과 관람이 쉬운 시간대 등을 조사하는 등 사전작업을 했다』면서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우리문화를 접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극장 개관에 맞춰 공연물의 관광상품화를 추진해온 국립국악원(원장이성천)도 내년초 일본의 관광성등에 직원들을 파견할 계획이다.일본관광객들을 집중공략한다는 전략이다.국악원은 시내 중심가와 떨어져있는 지리적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공연관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전통공예품 쇼핑코너 등 다양한 보조시설을 설치한다.
  • 남북문화교류협회 세미나… 임채욱씨 주제발표

    ◎“남북 문화의 이질성 극복때 진정한 통일”/상호 민족동질성 확보 통합기반 마련해야 남북 문화의 이질성 극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학술세미나가 6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사단법인 남북문화교류협회(회장 이배영 구청장) 주관으로 열렸다. 「민족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간 문화교류」란 주제의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국문화정책개발원 임채욱 수석연구원과 한국외대 남성우 교수가 나서 주제 발표를 한데 이어 토론이 진행됐다. 「남북한 문화통합을 위한 문화교류방안」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한 임수석연구원의 발표내용을 요약한다. 남북한은 역사관의 차이로 말미암은 상이한 역사해석,의식의 이질화,풍습·예술행위의 상이성 등으로 문화적 이질화가 가속되고 있다.이같은 문화 이질성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통일이 이뤄지더라도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라 할 수 없다.따라서 남북한의 문화통합은 양극화된 문화적 이질성을 동질화하는데 기여하고 혼란없는 문화적 통일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그러자면 남북한간에는 서로의이해를 증진시켜서 통합기반을 마련하고 동일 역사의 공유와 동일언어 사용에 바탕한 민족동질성의 확보와 문화적 변용을 통한 동질화를 추구해야 한다.이해증진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압도하는 내용보다는 서로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내용이 좋은데 전통문화 영역등에서 많이 찾아질 수 있다. 북한의 문화변용을 자극시키기 위해서는 가능하다면 생활문화분야로 부터 규범문화,그리고 관념문화분야 순서로 꾸준히 교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이 방향은 ①경쟁배제 ②전통문화 중시 ③생활문화분야 우선 ④단계적 추진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교류과정에따라 교류단계도 교류모색단계­제한교류단계­확대교류단계­단일문화권 형성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교류모색단계는 한반도에서 평화가 정착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인적교류를 중심으로 쌍방 공동관심사를 확인하고 모색하는 시기다.통신·통행협정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제한교류단계는 화해속에서 인적교류와 자료교환이 부분적으로 실시되는 시기다.이 단계에서는 교류목표인민족동질성확보를 위해 단일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공통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내용이 우선돼야한다.국어,역사,민속 전통예술분야 등을 들 수 있다.스포츠나 제한적인 과학기술분야의 교류도 가능하다. 확대교류단계는 교류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지는 단계이다.전분야에서 어떤 형태로든 무제한의 교류가 가능하다.제한교류단계까지의 상호주의적이고 동등량이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다.이 단계에서는 남북정권이 직접 개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남북은 서로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배우고 모방하여 가치보완을 하는 가운데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동질화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이때 우리는 북한의 민족주의세력과 자유주의적 지식층이 형성되도록 촉구하는 한편 이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통일문화공동체 형성에 필요한 단일교육체계,문화체계의 수립 논의도 이즈음 착수해야한다. 끝으로 단일문화권 형성단계는 동질화가 더욱 촉진되어 남북한의 사회문화적 통합이 필연화되는 시기다.통일문화공동체 형성이 목표가 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 곡마단(외언내언)

    동네 빈터나 시골 장터에 곡마단이 나타나면 온통 축제분위기에 들뜨던 시절이 있었다.요즘 신세대에겐 곡마단이란 단어 자체도 낯설지만 40대 중반 이후 세대는 그 시절을 아련한 향수로 기억한다. 어느 날 갑자기 세워진 커다란 천막,그 주변에 휘날리는 만국기,트럼펫을 앞세운 선전대의 거리돌기,천막안에서 펼쳐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묘기와 마술….그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 곡마단은 민중의 사랑을 한몸에 모은 대중예술이었다. 한번 보고도 또 보고싶어 자기집 쌀뒤주를 축내다가 부모님께 『다리 몽둥이』가 부러지도록 얻어 맞는 아이들도 있었고 천막 자락을 슬그머니 들추고 몰래 들어가 공짜구경을 하려다가 곡마단 사람에게 엉덩이를 걷어채는 경우도 있었다.그 곡마단이 떠난후엔 곡예사가 되겠다고 곡마단을 따라 나선 바람난 처녀·총각들의 이야기가 후렴(후렴)처럼 남기도 했다. 그러나 곡마단의 전성기는 60년대 들어 끝난다.대중적인 전통예술이었던 남사당놀이와 판소리를 밀어냈던 곡마단이 새로운 대중예술인 영화와 TV에 밀려난 것이다.한때 몇백개에 이르렀던 곡마단은 이제 다섯손가락에도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줄어들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형편이다. 서울시가 최근 사양전통문화 지원육성사업의 하나로 곡마단의 원조인 동춘곡예단에 4천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동춘곡예단은 1910년대 초 부산에서 공연을 가진 일본 고사쿠라곡예단을 따라갔던 한 청년(박동춘)에 의해 1923년 설립된 한국의 첫 곡마단.지금은 고인이된 허장강 이봉조 서영춘씨 등 많은 연예인을 배출해 내기도 했다. 서울시의 곡마단 지원계획은 아름다운 향수를 되살려 주는 것이다.그러나 향수는 기억속에서만 생명력을 지니는 것.그 한계를 동춘곡예단이 어떻게 극복해 낼지 궁금하다.〈임영숙 논설위원〉
  • 「대모」 홍성덕씨 자전에세이집 내

    ◎“「여성국극」은 한국판 뮤지컬이죠”/전통가락+춤사위·연기=무한한 가능성/60년대 들어 사양길… 정부·기업 지원 절실 『여성국극이 한때의 옛 이야기로 잊혀져가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시대에 맞지않는 요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국극은 우리의 전통가락과 춤사위,연기가 어우러진 「한국판 뮤지컬」로 현대감각만 살리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장르인데 말이죠』 「여성국극의 대모」로 불리는 홍성덕씨(56·한국여성국극예술협회 이사장)가 자전에세이집 「내뜻은 청산이요」(한뜻)를 냈다. 조선후기 창악인들의 단체인 「협률사」단장이던 아버지와 판소리 명창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4세때 동편제의 달인 강도근 선생에게 수궁가를 배우면서 본격적인 소리꾼 인생을 살게된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팔랐던 예술가로서의 삶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지난 51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인 「동지사」가 창단되면서 여성국극은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그러나 60년대초부터는 사양길에 접어들어 이제는 존재 자체가 희미해진 형편이에요.돌이켜보면 집과 패물을 팔아 공연하기 예사였고,기껏해야 가설무대가 전부였어요』 같은 전통예술인 판소리의 경우 62년 국립창극단이 생기고 64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등 정부의 배려로 활기를 찾고 있는데 비해 여성국극은 여전히 무관심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쇠퇴의 길을 걷게된 한 요인.『여성국극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성국극인 스스로의 혁신노력이 있어야겠지만 정부의 지원 또한 절실합니다.가까운 예로 1912년에 창단된 일본의 여성극단 다카라즈카(보총)는 정부와 기업의 전폭적인 지원속에서 세계유수의 극단으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우리 여성국극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나아가 그는 일본의 다카라즈카 극은 비교적 근대적인 성격의 연극양식이지만 여성국극은 고전 판소리를 모태로 한 일종의 전통극인 만큼 한층 시선을 끌만한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한국 공연단체로는 처음으로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여성국극 「내뜻은 청산이요」 초청공연을 가진데 이어 최근미주 9개도시 순회공연을 마친 홍성덕씨.그는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 작업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인의 의무요 사명』이라고 말한다.
  • 독서 어우러진「한국전통예술」/「코리안 서머페스티벌」베를린서 개막

    ◎사물놀이·승무·판소리·전시회 등 공연 한국의 전통예술과 풍물을 유럽에 소개하는 「코리언 서머 페스티벌­베를린 난장 96」이 6일 독일 베를린 「우파 파브릭」에서 개최됐다. 6일 김덕수씨가 이끄는 사물놀이 한울림의 공연을 시작으로 10일까지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사물놀이의 삼도농악과 명창 안숙선의 판소리·가야금병창,그리고 무형문화재 살풀이 이수자인 김리혜의 승무 등이 공연된다.또 30여년간 한지를 만져온 세계적 한지연구가 김경씨의 한지전시회,박승무씨의 한국 전통예술·문화재·생활사진전도 함께 열린다. 육태안씨의 우리 고유무예 수벽치기및 판소리·춤·사물놀이 워크숍도 함께 마련돼 유럽인을 향한 우리 문화소개가 적극적으로 시도된다. 베를린 우파 파브릭은 4백석규모의 대극장과 2백석의 소극장·스포츠센터·동물원·교육센터·야외무대 등으로 꾸며진 베를린의 대표적 문화예술공간으로 주최측은 공연기간중 우파 파브릭에 솟대를 세우고 청사초롱을 밝혀 한국 무드를 한껏 고양시킬 계획이다.
  • 우즈베키스탄공 타슈켄트(세계속 한인촌 탐방:2)

    ◎30년대 연해주서 이주… 8만여명 정착/근면은 타민족 본보기… 80%가 농업 종사 옛소련 땅의 한인최대밀집지역인 우즈베키스탄공화국의 타슈켄트주에 있는 한 목화농장.초로의 황 스타니슬라브씨(53)가 이곳 치르치크구역내의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구성된 목화수확반의 작업을 일일이 지켜보며 독려하고 있었다.다른 한쪽 켠에서도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인을 비롯해 10여종족으로 구성된 종업원들이 그의 감독하에 목화송이를 거둬들이느라 여념이 없다. 불과 2년전까지만해도 황씨는 국영기업에 가까운 콜호스의 농장장에 불과했다.하지만 이제 그는 회장님이라 불린다.우즈베키스탄정부의 민영화방침에 따라 국영농장(콜호스)이던 이 목화밭이 주식회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영농장 회장이 한인 황회장의 오늘은 아버지 황만금씨(74)의 후광이 컸다.아버지 황씨는 지난 30년간 이 목화농장을 옛소련지역 최고의 콜호스로 이끈 장본인이다.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 빈농가에서 태어난 아버지 황씨는 지난 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선친과 함께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곳에 내던져졌다.타슈켄트 교외 사막 허허벌판에 던져진 이들 부자는 10년동안 막노동과 농업전선을 전전했다.그러던 1947년,특유의 한인기질인 성실성과 총명함이 돋보여 황만금씨는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 콜호스의 관리위원장에 선출됐다.지금의 목화농장 관리위원장으로 뽑힌 것은 53년.이후 30년간 그는 이 농장을 옛소련의 모델농장으로 끌어올렸다.목화재배에 과학영농기법을 도입,다른 지역 콜호스 생산량의 최고 10배까지 달성하기도 했다.58년 노동영웅칭호를 시작으로 그는 3번의 레닌훈장과 10월혁명훈장,소련인민위원회 계관칭호 등 더이상 받을 상이 없을 정도로 모든 상을 휩쓸었다. 이곳에 사는 문 피요트르씨(64)는 『그는 어려울수록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을 발휘한 콜호스의 상징이자 한국인의 상징』이라고 치켜세웠다.황씨의 바통은 90년대초반 아들이 이어 받았다.그가 아버지의 농업철학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비닐하우스 재배기법을 우즈베키스탄에 도입한 장본인이라는 점이 발탁의이유였다. 황회장의 경영능력도 아버지 못지않다.이른바 새 콜호스건설에 신사고를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는 요즘 토지의 유상분배와 인센티브제의 도입,컴퓨터농정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황회장은 『일을 시켜보면 역시 한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라면서 『한때 도시로 빠져나갔던 한인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고 있어 기대가 크다』고 했다. 이러한 역유입은 나름의 배경이 있다.주 요인은 바로 언어문제.한인들 가운데는 소련시절 공용어인 러시아어는 하면서도 현지어인 우즈벡어는 제대로 구사할줄 모르는 이가 많다.그런데 올해부터 우즈벡정부가 우즈벡어를 공용어로 채택,우즈벡어를 모르면 공공기관 취업을 금지하는 정책을 펴고있기 때문이다.이에따라 대도시에서의 공공기관 취업이 힘들어진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한인들은 22만 2천여명.이중 8만 9천여명이 타슈켄트주에 살고 있다.타슈켄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 가운데 60%가 농업에,나머지가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었다.그러던 것이 최근들어 농업종사자수가 80%이상으로 다시 늘어났다.따라서 최근들어 한인들 사이에는 우즈벡어를 배우려는 노력이 한창이다.특히 40대이하 청년층가운데는 우즈벡어를 배우는 부담때문에 우리말을 배우지 못해 우리 말을 할줄 아는 교포가 전체의 3%도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유명 변호사도 배출 이런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현지인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한국인이 많다.김 블라디미르씨(62)도 그가운데 한사람이다.타슈켄트시에서 80㎞ 떨어진 타슈켄트주 아쿠르간 마을.마을 전부라야 2백50호정도밖에 되지않는 아담한 전원마을에 위치한 김씨의 주택에는 하루종일 이웃주민들의 발길이 북적거린다.취직문제에서부터 한인지위에 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교포「민원인」들의 발길이다.남의 집을 빈손으로 찾지못하는 한인들의 기질탓인지 이들은 과일을 담은 비닐백같은 선물꾸러미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교포들이 이처럼 그의 집을 찾는 것은 김씨부자가 우즈베키스탄 변호사동맹의 소문난 변호사이기 때문이다.아들 보로니야씨(38)도 변호사다.김씨는 다민족으로 이뤄진 타슈켄트사회에서 동포들의 억울한 일들을대변,사건해결사 혹은 인권변호사로 지내오기가 올해로 꼭 40년째다.그 역시 37년 극동의 연해주지역에 살다 삼촌과 함께 카자흐스탄땅에 버려졌다.아버지는 일본스파이라는 누명과 함께 시베리아로 끌려갔다.삼촌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7살때 우즈베키스탄의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고아원을 전전하며 대학을 졸업한 해인 55년.시민권도 없던 그는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변호사자격을 따냈다. ○조선인 자치지역 건의 그는 지난 89년 고르바초프대통령때 『연해주를 조선인자치지역으로 돌려달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이 문제는 당시 상무위원회에 보고돼 대통령에 직접 전달됐으나 고르비가 『기다려보라』는 답신을 한뒤 얼마되지 않아 실각해 문제제기에 그치기도 했다. 지난 90년때의 일.당시 우즈베키스탄인과 투르크메니스탄인사이에 종족갈등이 폭력사태에까지 이르자 우즈벡공화국정부는 「24시간안에 모든 소수민족은 우즈벡을 떠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투르크메니스탄인 등 다른 소수민족들은 대거 국경을 넘어갔다.하지만 한인들만은 모두 마을을 고스란히 지켰다.『연해주에 이어 또다시 조선사람들의 일터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간곡한 그의 청원이 큰 작용을 했다는 후문이다. 비록 타슈켄트의 한인들이 언어에는 어려움을 겪고있지만 문화·풍습은 나름대로 보존해가고 있다.우즈벡인의 70%가 이슬람교도로 이슬람식 일상풍속의 영향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것은 1%의 한인소수민족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런데도 이곳 한인들은 주로 「고려인문화센터」를 중심으로 문화·풍습을 보존해 나가고 있다.현재 우즈벡공화국내에 24곳의 한인문화센터가 있다.이곳에서는 우리말을 가르치거나 우리 전통예술보존을 위한 전시회활동 등도 벌이고 있다.한인들의 춤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는 고려악단·청춘가무단·금붕어아동무용단·한인합창단 등 예술단체만도 20여개소나 된다.이곳 한인들의 최대 명절은 역시 추석.우즈벡인들이나 한인마을에 함께 사는 다른 소수민족들도 아예 이날을 자기들의 명절로 인식할 정도다. 황씨의 목화농장에 살고 있는 30대의한 교포주부는 『설날이나 명절때 한인들은 구역별로 모여 음식을 차리고 잔치를 벌인다』면서 『결혼식과 돌·환갑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들의 유대의식의 장』이라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명절에 한복을 입는 것,윷놀이 등은 잘 알지못한다고 했다. ◎라술로프 카리드라슬로비치 대통령 자문위원장/“한민족은 역사와 전통을 중시”/개인보다 남을 생각하는 지혜 돋보여 무려 1백40여민족이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인들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특출난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우즈베키스탄민족을 포함해 가장 훌륭한 민족이 한인이다.특유의 부지런함과 화합하며 사는 법,개인보다는 집단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한민족은 역사와 교육·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민족이다.한인들은 특히 언어와 종교,기질 등이 틀리지만 다른 민족과 쉽게 잘 화합해왔다.소수민족가운데 우즈베키스탄어를 가장 잘 구사하는 민족도 한인들이다.소련에서 독립한 뒤 우즈베키스탄에는 명절이 많이 생기게 됐는데 한인의 추석명절을 다른 민족이 본받아 함께 쇠기도 한다. 한민족은 이곳에서 예술분야에서도 단연 다른 민족들을 압도한다.최근 타슈켄트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유명화가 초대전에 20명의 우즈베키스탄화가가 초대됐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18명이 한인들이었다.우즈베키스탄이 독립된 뒤 각국에 파견하는 경제·문화사절단도 때때로 거의 한인으로 채워지기도 한다.그러한 한인들의 단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서울신문­중국 인민일보 제휴 의미

    ◎국제언론 교류 확대로 세계화 뒷받침/특별취재단 교환·기자연수 협력/도약기 양국관계 발전의 한 상징 서울신문과 중국 인민일보의 제휴협력 결정은 한·중 양국의 두 권위지가 언론교류활동을 통해 두나라 국민의 상호이해및 교류 폭을 넓혀나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신문은 특히 지난 93년 지역유력지인 북경일보와 우호협력 협정을 수립한데 이어,이번엔 중국 최고 권위지인 인민일보와 협조관계를 수립,국제언론 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세계화 정책을 뒷받침해나가고 있다. 수교3년동안 정치경제부문의 급속한 관계발전에 반해 상대적으로 미흡한 양국 국민들의 상호이해의 수준을 언론의 노력과 교류를 통해 끌어올려보자는 것이 이번 제휴의 큰 뜻이다. 양사가 합의한 특별취재를 위한 기자단의 파견,학술회의및 문화·체육교류사업,기자 연수교류를 통한 인력배양등의 사업은 상대방에 대한 보도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양국의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언론의 상업주의로 보도의 정확성및 객관성이 외면되고흥미위주의 보도로 균형있는 정보제공및 분석이 결여되어가는 오늘의 언론상황을 고쳐가겠다는 뜻이 이번 제휴협력의 배경에 깔려있다. 이번 제휴협력관계의 합의로 두 언론사는 이전보다 활발하게 기자교류및 연수협력사업을 비롯,정보및 자료,사진등 신문제작 관련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할 수 있게 됐다.회화·도예·조각등의 미술및 사진전시회개최,전통예술단의 상호교류주선등 문화사업을 통한 상호이해 노력도 준비되고 있다. 손주환 사장의 방한 초청을 소화택 인민일보사장이 받아들임에 따라 인적 교류 및 대표단의 상호방문도 본격화단계에 들어섰다. 인민일보와는 별도로 이미 우호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북경일보와의 교류확대계획도 국민과 정부의 세계화 노력을 다양하게 뒷받침하려는 서울신문의 노력을 보여준다.손주환 사장은 11일 북경일보 만운래 사장과 북경시내 화교빌딩에서 기존 우호협정관계를 재확인하고 교류확대계획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손주환사장은 상업주의와 선정주의를 배격하고 수준높은 정론지를 추구하는 것은 서울신문과 북경일보의 공통점이기도 하다면서 이런 특성을 바탕으로 양사의 발전을 진전시키자고 말했다. 한편 10일 서울신문과 제휴를 합의한 인민일보는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직할기구로 전국지 성격의 중국 최대 권위지며 사상교육도 담당하고 있다.전국에 36곳의 국내지사(외국지사망은 32곳)가 있고 각종 중국신문 제작의 전형이 돼오고 있다.지난49년 설립이래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정책방향과 입장의 대변자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하루 3백만부가량을 찍어낸다.당 중앙위 선전부 이론분야간부들이 이곳으로 옮겨와 일을 한다는데서도 성격을 알수 있다. 한편 이번 서울신문대표단의 방중으로 서울신문과 인민일보 및 북경일보와의 교류협력사업은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되게 됐다.인민일보사와의 제휴 합의는 수교3주년을 지내고 새로운 도약기에 있는 두나라 관계발전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다.특히 오는 11월 세번째주 국가최고지도자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강택민총서기겸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둔 시점이어서 더욱 더 큰 의미와 함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음악도 세계화”/해외나들이 활발

    ◎국립국악원­2002년 월드컵유치 홍보 유럽순회 공연/KBS 향­새달 8일 정명훈씨 지휘로 유엔서 연주회/미 LA 「한국의 날」 행사에 정상급 음악인 대거 출연 세계화의 고조된 분위기와 함께 광복 50주년을 맞은 올하반기 우리 공연의 국제무대 진출이 어느때보다 활발하다. 국립국악원이 오는 24일부터 유럽순회공연길에 오르는가 하면 22일부터 미국 LA에서 국내 각 장르의 음악인들이 대거 출연하는 「대한민국 광복50주년 기념 경축음악제」가 펼쳐지고 10월 8일에는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광복 50주년및 유엔창설 50년을 기념하는 「KBS교향악단 유엔연주회」가 열린다. 우리 전통예술의 해외소개에 본격적인 장을 펼칠 국립국악원의 유럽공연은 오는 20 02년 월드컵 유치활동을 지원한다는 특별한 임무를 띄고 있다.이를 위해 공연단은 FIFA 집행위원국인 러시아·독일·벨기에·영국등 4개국 5개도시를 돌며 해당국 축구연맹및 프로축구 관계자,언론인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통한 활발한 홍보작전을 펼칠 예정이다. 국립국악원의 전속연주단과 무용단등56명으로 이뤄진 공연단은 궁중음악「표정만방지곡」,궁중무용 「포구락」과 「처용무」 「남도민요」 「사물놀이」 「시나위」 「부채춤」 「농악」등 우리 전통음악과 무용의 진수를 선보인다. 한편 LA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는 「한국의 날」 행사 시기에 맞춰 마련된 「대한민국 광복 50주년 기념 경축음악제」는 LA코리아타운 교민회가 올해 설립된 재단법인 한미문화예술재단과 함께 주최하는 행사. 국내 공연기획사인 (주)아트커넥션에 기획을 의뢰해 구성된 이 축제는 22일부터 12월 16일까지 LA의 윌턴극장과 윌셔 이벨극장,파사디나 앰버서더오디토리움등 대형공연장에서 6회 공연을 갖는다. 출연진은 바이얼리니스트 강동석씨,LA챔버오케스트라등 재미교포 음악인들과 국내 성악인 엄정행·백남옥씨등과 국악인 명창 안숙선씨등.10월 20일 윌셔 이벨극장에서 공연을 갖는 안숙선씨는 「흥보가」를 완창하는 특별무대를 꾸민다. KBS교향악단이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공연하는 「…유엔연주회」는 10월 8일(한국시간 상오8시) 유엔총회장에서 역사적인 화음을 울리게 된다. 한국의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씨가 지휘를 맡을 이 공연에는 파리에서 활약중인 바이얼리니스트 김영욱씨와 뉴욕 오페라계의 프리마돈나 신영옥씨가 호흡을 맞춘다.또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의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등장하고 국악인 김희조씨가 무대를 장식한다. 문화체육부와 KBS가 공동으로 성사시킨 의미있는 이 공연은 당일에 위성으로 국내에 실황중계된다.
  • 현암사 발간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예인 백사람」(화제의 책)

    ◎예맥 이어온 「장이들」 조명/명창서 무명인간문화재까지 소개 황병기,박동진,안숙선,공옥진….다들 잘 알려진 이름이지만 이들의 음악이나 공연을 제대로 접해본 사람은 많지 않다. 이처럼 이름값에 비해 푸대접 받아온 전통 예술인들을 조명하는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이규원 지음,정범태 사진)이 현암사에서 나왔다.일반인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우리 문화에 초점을 맞춘 의의가 클 뿐더러 문외한들도 흥미롭게 읽게끔 사람얘기 중심으로 풀어썼다. 6백50여쪽 분량의 이 책엔 1백30명에 이르는 우리 전통예술의 우뚝한 봉우리들이 망라돼 있다.가야금산조,사물놀이,씻김굿 등으로 제법 알려진 예능인 뿐만 아니라 칠머리당굿,선소리 산타령,결성농요 같이 이름도 생소한 예맥을 지켜온 장이들의 사연이 실려 있는 것.「뱃놈」으로 사는 고생이 하도 심해 신세한탄하느라 「배치기 노래」를 배웠거나,유복자로 태어난 한에 독경의 세계에 빠져버린 이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예인의 예술세계와 그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춤,무속,공연·놀이·의례의 다섯분야로 나눠 전통예술의 지형도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장점. 부록으로 예인들의 이름과 공연·춤·노래명을 가나다 순으로 정리한 찾아보기를 덧붙였다.임방울·정정렬·이동백 등 전설적인 명창들의 희귀한 사진을 비롯,세계일보 사진부 부장기자가 직접 찍은 예인들의 공연사진 등 1백60쪽의 화보도 실렸다.
  • 진도 「영등살놀이」 오늘 전야제/본사·LG전자 주최

    ◎판소리·무속춤 등 한마당 【진도=박성수 기자】 서울신문·스포츠서울 그리고 LG전자가 공동 마련하는 진도영등제 「영등살놀이」 전야제가 15일 하오 전남 진도국민학교교정에서 펼쳐진다.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널리 알려진 진도군 고군면 회동마을 앞바다의 「영등살」에 맞춰 열리게 되는 축제는 16일 하오 회동양외공연장에서 본격적인 막을 올린다. 본행사에 앞서 전야제에는 서울가무예술단,진도 군립예술단을 비롯,국내 유명 국악인들이 대거 출연해 진도가락과 판소리,무속춤과 굿판 등 전통예술을 다채롭게 선보인다. 특히 25명의 서울가무예술단이 펼칠 진도씻김굿 「청왕굿」,「부정풀이춤」은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진도지역 전통 굿으로 이번 행사의 절정을 이끌어 갈 것으로 보인다. 진도군은 이날 전야제 행사에 10만여명의 국내외 관람객들이 찾아올 것으로 보고 축제분위기를 한결 돋우기 위해 진도읍 거리 곳곳에 1만여개의 청사초롱을 밝히는 한편,축포와 폭죽터뜨리기 행사도 갖기로 했다.
  • “최고의 뇌물은 외화”(북한의 이모저모)

    ◎해외서 미술품 판촉활동 ○…북한이 최근 해외에서 전시회 형식을 빈 미술품 판매에 나서고 있어 눈길. 북한은 최근 몰타 싱가포르 독일 폴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과 러시아의 지방 도시들을 돌며 미술품전시회를 갖고 적극적인 작품 판촉활동을 벌였으며 지금은 러시아에서 이같은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모스크바방송이 1일 보도. 모스크바 도심의 옛 건물에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는 범민련러시아지부와 북한의 능라도무역회사가 주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북한 예술창작가들의 전통예술품과 현대작품들이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인민화폐 재산가치 없어 ○…북한의 당정고위간부들은 수뢰시 「외화」를 가장 선호하고 그다음 현물을 국정가격으로 제공받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귀순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때문에 일반주민들은 인사청탁이나 기타 생활에서 발생한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하위층 당·정관료들은 승진이나 보다 좋은 부서로의 전직을 위해 외화와 물품공급카드 확보에 혈안이 돼있다. 북한의 당정고위간부들이 외화를 최고의 뇌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잦은 화폐개혁으로 북한돈이 부의 축재 기능을 상실한 데다 구소련 및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단 붕괴로 북한체제의 존립 여부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이 증폭된데 따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설연휴/가족과 함께 민속놀이를

    ◎고궁·민속촌등서 2월1일까지 다채로운 행사/고궁/윷놀이·널뛰기 등 놀이마당 마련/민속촌/송파산대놀이 등 전통예술 공연/잠실 석촌호수선 팽이치기 등 전통놀이 다섯마당 설날인 31일을 전후해 민속놀이와 축제등 각종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각 고궁이 관람객들을 위해 개방되고 민속놀이 마당이 마련돼 찾는이들이 자유롭게 전통놀이들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런가하면 잠실 석촌호수에서는 민속 대축제가 열리기도 한다.또 한국민속촌에서는 내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공연과 놀이대회도 다채롭게 마련될 예정이다. 문화체육부는 29일부터 2월1일까지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종묘등 5개궁과 12개 능·원을 개방하고 이 가운데 창경궁과 덕수궁·경복궁에는 민속놀이 실습장을 마련키로 했다. 이 기간동안 덕수궁 함녕전부근과 창경궁 간천대,경복궁 향언지부근에는 윷놀이,널뛰기,제기차기,투호.팽이치기등을 할 수 있는 실습장이 개설돼 관람객들이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각종 민속놀이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게 된다.이와 함께 정릉 서오릉서삼릉 광릉 동구릉 태강릉 홍릉 사릉 헌인릉 선정릉 육릉 영릉 장릉 등 서울과 주변 12개지구 능·원도 개방돼 인근 주민들이 연휴동안 이용할 수 있다. 한편 국립민속박물관측도 지난 26일부터 2월15일까지 「설맞이 전통민속놀이마당」을 박물관 광장에 설치,운영하고 있는데 이곳에는 널뛰기 팽이 윷 제기차기 줄넘기 굴렁쇠 연 투호를 즐길 수 있는 장소와 함께 씨름판도 마련돼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과 한국민속촌이 설날인 31일과 2월1일 이틀동안 각각 준비하는 「95돼지해 설 민속 대축제」와 「설날맞이 전통문화 한마당」도 수도권에 살고 있는 주민이나 귀성객들에게 설 분위기를 갖게 해주는 행사로 눈길을 끈다. 서울시와 민학회가 후원하는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의 서울놀이마당 민속대축제는 그동안 잠실 석촌호수 서울놀이마당에서 단순히 보여주기식 행사로 펼쳐졌던 것에서 탈피,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행사로 바뀐다. 서울놀이마당 2천5백평 부지에서 윷놀이 널뛰기 투호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전통놀이 다섯마당이 동시에 펼쳐지며 놀이 중간중간 전통예술공연이 펼쳐진다.전통 놀이마당 주변에는 토정비결 엿장사 국밥장사등의 전통 장거리도 재현된다. 전통예술공연은 설날 비나리의 명인인 김복섭옹이 사물놀이패와 함께 비나리굿을 재현하며 남사당패를 초청해 흥겨운 풍물로 마당밟기도 한다.둘째날에는 송파산대놀이팀이 흥겨운 마당놀이,평택농악팀이 판굿을 벌인다. 한국민속촌이 마련하는 「설날맞이 전통문화 한마당」도 현장감있는 전통문화 소개를 위한 특별행사. 송파산대놀이 농악 지신밟기 서낭제 고사 등 민속촌 자체공연외에 송파산대놀이 북청사자놀음을 초청공연으로 보여주며 매일 상오 11시부터 하오 3시까지 팔씨름 제기차기 윷놀이등 민속놀이대회를 열기도 한다.
  • 농악무으뜸… 아박무·접시춤 등 창작(연변조선족 1백년:14)

    ◎오늘의 삶에서 억척의 생명력을 다시본다/민속춤/사회주의 영향 마당놀이서 무대예술로 변모 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을 조감해 보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가치있는 일이다.특히 해방전의 이주민들이 펼쳐온 놀이마당을 전통과 변화라는 시각에서 검토하는 것은 한국 전통예술을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 1백년을 회고해 볼 때 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은 조국보다 훨씬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밟았다.우선 해방후 중국 조선족은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이란 위상확립을 위해 몸부림을 쳤고 문화혁명시기에는 갖은 탄압을 받아가며 예술활동의 위축을 겪어야 했다.그리고 북한의 끈질긴 교화를 받으면서 지내오다 최근에는 한국의 영향으로 예술활동의 변화라는 파도를 타야만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에 근거를 둔 전통예술성은 굴절하지 않고 맥을 이었다.특히 이주로부터 해방까지의 예술활동 중에서 춤과 노래를 조명해 보면 조선족의 의식이 가장 잘 표출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신촌마을 농악대 유명 이 시기에 연희되었던 민속춤으로는 승무·농악무·남무·한량무·살풀이·강강술래 등이 있다.이밖에 「아박무」가 있다.구전에 의하면 「아박무」는 1923년 봄,안도현 송강 송화의 한 골짜기에서 발생했다고 한다.그러나 조국으로부터 그대로 옮겨 온 전통춤 중에서는 뭐니뭐니 해도 농악이 으뜸이다.가장 먼저 농악대가 구성되어 연희된 곳은 1928년 왕청현의 어느 마을이라고 하나 규모있고 영향력을 가진 농악대로서는 1938년 길림성 안도현의 신촌마을이다. 경남의 이주민 1백여가구가 1938년 이곳에 자리 잡았다.그들이 올 때 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 농악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도구를 휴대해 왔다.그들은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농악을 울리며 피로를 풀고 망국의 설움을 달랬다.그후 1941년 남사당패에서 농악을 추었다는 광대 이원보씨를 전라도로부터 모셔와 본격적으로 연수를 받았다.이리하여 20명 내외로 구성된 신촌농악대는 마을 마당놀이(지신밟기)·두레굿·집돌이농악의 수준을 넘어서서 무대에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이에 자극을 받은 농민들은 자신의 마을농악대를 조직하려는 의욕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속춤 중에서는 「쾌지나 칭칭나네」가 가장 많이 추어졌다.특히 정월보름날 줄다리기에 나가기 위한 선행놀이로서 이 춤을 추었다고 하는데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해방전 동북 3성의 조선족 마을에서 주로 재인들에 의해 추어진 민속춤으로는 승무·탈춤·칼춤·학춤·사자춤·수박춤·양산도 등을 들 수 있다.물론 이것들은 전문 광대들에 의해 무대에서 추어진 것들이 태반이다. ○항일투쟁 춤도 등장 이금덕(1922·전남태생)은 이리 권번에서 노래·기악·춤을 익히고 40년대에 이주하여 「양산도춤」과 「수건춤」을 보급시켰다.김선덕은 14세 때 평양권번에 들어가 음악과 무용을 익히고 이주후 「칼춤」과 「남무」를,김재산(1890·강원도출생)은 1914년 길림성 안도현으로 이주하여 「학춤」과 「거북춤」을 퍼뜨렸다.조정숙(1928·평양출생)은 8세부터 기예를 배워 활동하다가 해방후 이주하여 「승무」 「한산춤」 「봉산탈춤」등을 추었다.이밖에 박정록과 김학천 같은 예인이 있다. 특히김학천의 「수박춤」은 유명하다.김씨네 집안에서 5백년이나 전승된 춤이라고 한다.알몸으로 허리엔 짐승가죽을 두르고 맨발로 추는 이 춤은 악기라고는 물을 담은 큰 함지안에 작은 함지박을 엎은 것인데,이를 두드리는 정도이다.이 두닥거리는 소리에 박자를 맞추어 연희자가 두 어깨를 으쓱거리며 두 손으로 자기 몸을 치면서 추는 춤이다.도중 갖가지 새소리와 짐승소리를 낸다.사냥꾼의 모의춤이라 할 수 있는 이 춤의 끝은 맹수를 정복한 사냥꾼의 희열로 끝난다. 박정록이 전수시킨 「접시춤」은 30년대부터 훈춘지방에서 추어진 것인데 이 지역에서 자생된 춤으로 알려졌다. 해방전의 중국조선족의 춤을 말하면서 항일투쟁배경에서 자생한 몇가지 춤들을 빠뜨릴 수 없다.항일 전투가 지속되는 긴박감 속에서 여성대원들이 군복을 누벼나가는 모습을 극화시킨 여성군무인 「재봉대원의 춤」을 비롯해서 「기병대 춤」「무장춤」등이 1930년대부터 항일투쟁 집단에서 연희 되었었다. 그 유명한 무용가 최승희도 중국에서 무용활동을 했다.그로인해 조선족의콧대를 한층 높여준 결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춤의 예술적 경지를 한층 높이는데도 몫을 했다.최승희 편력을 살필 여유는 없지만 그녀는 1912년 서울 태생으로 14세 때 도일하여 혀대무용과 발레를 배운 세계적 무용수이다.1930년 조선경성공회당에서 처음 귀국공연을 시작으로 그의 명성은 일약 아시아로부터 유럽·미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최승희가 중국에서 활동을 개시한 것은 1940년부터이다.당시 조선족이 10만여명이 살고 있었던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최승희가 공연을 했다. ○최승희 무용 큰 호평 최승희의 창작춤들은 한국전통의 춤사위를 되살려 새로운 감각과 창조성을 가미시킨 것으로 크게 호평을 받았다.당시 중국 경극계에서는 『노래를 위주로 했던 재래의 경극은 최승희무용의 영향을 받아 끝내는 변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할 정도였다. 처음에는 마당놀이에서 출발한 농악이 섬세한 기예의 독창성을 살려 무대 「농악무」가 되었고 따라서 민속춤의 대부분이 무대극으로 공연되기에 이르렀다.이를테면 「탈춤」과 같은 여러 춤들이 무대에오르게 되자,마당놀이로서의 민속춤은 차차 위축되어 「쾌지나 칭칭나네」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사회주의가 민중의 소박한 놀이를 무대예술로 자리바꿈 시켰다는 사실은 오늘의 중국 조선족 예술활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 한국의 발전이끈 50인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50년 동안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는가.서울신문이 광복 50년을 이끌어온 각계인사 50인을 선정,소개한다.북한사람과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은 선정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승만◁ 1875.3.26∼1965.7.19.황해도 평산출신.배재학당졸업·미국 프린스턴대학 철학박사·초대∼3대 대통령,독립협회등의 간부로 개화운동.일제때 상해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하는등 광복때까지 해외에서 독립운동.해방직후 미국에서 귀국해 민주진영 최고지도자로서 건국준비에 매진.48년 제헌의회의 국회의장에 이어 초대 대통령에 당선.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 개헌을 감행한끝에 60년 4·19혁명으로 하야 한뒤 하와이로 망명했다. ▷김구◁ 1876.8.29∼1949.6.26.황해도 해주출신.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장 국무령 주석·한국독립당 집행위원·민주의원 총리·국민의회 부주석.일제때 신민회 황해도총감을 시작으로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민족주의자.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이봉창의사 등으로 하여금 일본왕등에게 폭탄을 던지게 했다.임시정부 주석으로 광복군을 창설했으며 해방뒤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병로◁ 1887∼1964.전남순창출신.1913년 일본메이지대졸업.일제시절 경성법전·보성전문교수 거쳐 변호사로 활약하면서 광주학생운동,6·10만세운동,원산파업사건 등 민족운동관련사건 무료변론.항일단체인 신간회중앙집행위원장역임.46년 남조선과도정부사법부장을 맡았고 건국후 초대·2대 대법원장을 거치며 우리나라의 사법제도의 기틀을 다졌다. ▷조병옥◁ 1894.3.21∼1960.2.15.충남 천안출신·미국 콜럼비아대 대학원 수료·1929년 광주학생사건으로 3년 복역·조선일보 전무·37년 수양동우회사건으로 복역.해방뒤 우익의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미군정아래서 경무부장을 역임했으나 이승만정권의 독주에 반발,52년 반독재구국선언을 주도.54년 보수야당을 묶은 민주당을 창당,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입후보했으나 신병으로 선거 한달전에 미국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신익희◁ 1894.6.9∼1956.5.5.경기도 광주출신.한성공립외국어학교졸·1919년 상해 망명·임정 내무총장·법무총장·48년 초대 국회의원·국회의장·대한국민당 위원장을 역임.54년 자유당정권이 4사5입 개헌등 횡포를 부리자 야당세력을 묶어 민주당을 창당.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한강 백사장유세에 수십만 인파를 모으는등 지지를 받았으나 이틀뒤 전주유세장으로 가던 야간열차에서 사망했다. ▷최현배◁ 1894.10.19∼1970.3.23.호 외솔.경남 울산출신.일신학교·한성고등학교·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경도제국대학졸업.연희전문 교수·문교부 편수국장·한글학회 이사장·학술원 회원역임.국어학 연구·국어정책의 수립·국어운동 추진에 공헌.「우리말본」으로 20세기 전반의 문법연구를 집대성.한글전용을 주창해 각종 교과서에 한글 가로쓰기 체제를 확립했다. ▷백낙준◁ 1895∼1985.평북 정주출신.22년 미국 파크대졸.27년 연희전문교수.46∼60년 연세대총장을 역임한 것을 비롯,대한소년단총재·문교부장관·국사편찬위원·국토통일자문회의장·외솔회이사장과 학술원 명예회원 역임.교육자로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면서 한국기독교 발전을 위해 「한국개신교사」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유일한◁ 1895∼1971.평양출신.19년 미미시건대 졸업.26년 제약회사인 유한양행 창설.42년 미육군성고문.44년 로스앤젤레스·뉴욕한미상공회의소회장을 역임.해방 이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회장을 맡아 우리나라의 산업부흥에 기여했다.또 전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데 이어 유한학원을 설립,기업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보기가 됐다. ▷윤보선◁ 1897.8.26∼1990.7.18.충남 아산출신.영국 에딘버러대 졸업.대한임시의정원 의원·대한적십자사 총재·제4대 대통령·신민당 총재.이승만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서울시장과 상공장관을 지냈으며 「4·19」로 60년 대통령에 취임.그러나 1년만에 「5·16」에 성공한 박정희에 의해 하야당했다.3대국회 이후 야당에 몸담으며 반독재·반군정투쟁을 벌였다. ▷최규남◁ 1898.1.26∼1992.4.27.황해 개성출신.연희전문 수물과·미웨슬리안대·미시건대학원졸.서울대교수·서울대총장·문교부장관·민의원·학술원회원 등 역임.국내 물리학계의태두이자 교육행정가로 큰 업적을 남김.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시건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취득.서구의 신물리학을 국내에 도입,한국 물리학계의 초석을 다졌고 원자력발전과 과학기술교육의 기초를 다졌다. ▷우장춘◁ 1898.4.8∼1959.8.10.일본 도쿄태생.동경제대 농학과졸(1919).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채소종자의 육종합성에 성공하고 씨없는 수박을 개발하는 등 해방후 국내 농업발전에 기여.대학졸업후 일본 농림성 농사시험장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육종학연구.36년 종의 합성설로 동경제대에서 박사학위 취득.50년 정부 초청으로 귀국.농업연구소장·학술원회원 등을 역임했다. ▷장면◁ 1899.8.28∼1966.5.14.인천출신.미국 맨해튼 가톨릭대 졸.제헌의원·초대 주미대사·60년 부통령입후보 낙선·60년 4·19로 제2공화국 국무총리·60년 당시 민주당 신파의 영수로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결과로 촉발된 「4·19」로 총리에 취임.그러나 구파출신 윤보선대통령과 권력암투를 벌인데다가 불안정한 정치로 5·16정권에 쫓겨났다. ▷김활란◁ 1899∼1970.인천출신.이화여전·미웨슬리언대학졸.25년 이화여전교수로 임용돼 해방직후부터 61년까지 이화여대총장을 역임.대학을 운영하면서도 한국여자기독교청년회 연합회재단이사장·공보처장·대한적십자사부총재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개화기와 해방이후 신여성 교육에 헌신하고 기독교를 통한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함석헌◁ 1901.3.13∼1989.2.4.평북 용천출신.동경고등사범졸.28∼38년 오산학교교사.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교육자·종교인·언론인등으로 활발하게 사회참여를 하며 성서와 노장철학을 바탕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편 사상가.자유당 및 군사정권시대에는 반독재자유민권투쟁에 앞장.「뜻으로 본 한국역사」등 저서와 「씨알의 소리」등을 발간했고 민권운동에도 헌신했다. ▷한경직◁ 1902.12.29.평남 평원출신.숭실대·미국 프린스턴대졸.영락교회 목사·숭실대학장·기독교1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총재·대한예수교 잘로회 총회장 역임.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 수상.한국 개신교 부흥에 불을 당긴 성직자.평생을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이나 저금통장 하나없이 청빈한 삶으로 일관하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상백◁ 1904∼1966.서울출신.일본 와세다대학 사회철학과 졸업.서울 대학교 문과대교수(47).한국사회학회장(57).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서울신문사 체육공로상 수상.일제시대에 일본 농구협회를 창립하고 제11회 올림픽 때는 일본선수단 총무로 참가.광복직후 조선체육동지회를 결성해 대한체육회 발족에 디딤돌을 놓았으며 64년 대한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64년 한국의 제2대 IOC위원으로 한국체육의 근대화를 이루었다. ▷유진산◁ 1905.10.18∼1974.4.28.충남금산 출신.보성고보졸.일본와세다대학 정경학부중퇴.만주에서 중경임정 연락원활동.46년 대한청년단 창립·자유당정권의 사사오입개헌파동뒤 민주당 창당에 참여.신파로 출발했으나 뒤에 구파로 변신,민주당 원내총무를 거쳐 분당뒤 신민당 간사장·대표위원을 지내는등 정통야당의 맥을 이었다.너무 타협적이라는 비판도 있었으나 현실을 감안한 정치력의 달인이었다는 평가가 높다. ▷이병철◁ 1910.2.12∼1987.11.19.경남 의령출신.중동 중학 4년 수료.일본 와세다 대학 정경과 2년 수료.38년 삼성상회 서립.삼성물산·제일제당·제일모직 설립.61년 한국경제인협회(전경련 전신)초대 회장.삼성그룹의 창업주로 해방 이후 궁핍했던 시절 소비재산업 중심으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경제계의 선구자다. ▷이범석◁ 1900.10.20∼1972.5.11.서울 출신.운남육군강무학교기병과졸.만주 청산리전투사령관·한국광복군참모장·초대국무총리·주중국대사·원외자유당부당수·내무부장관·참의원·국민의당 최고위원.항일독립투사로서 해방이후에도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다.초대 국무총리로서 국방부장관을 겸임하면서 건국과 건군에 큰공.52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윤석중◁ 1911.5.25∼.서울 출신.일본 상지대졸.새싹회 회장·난파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위원장·방송윤리위원회 회장·한국방송협회 회장 역임.예술원회원.일제하 소학교시절 일본말 노래가 싫어 우리말 동요에관심을 가진후 평생을 어린이 운동에 몸바친 아동문학가.「초생달」「굴렁쇠」「바람과 연」등 20여권의 동요·동시·동화집을 냈다. ▷성철스님◁ 1912.4.10∼1993.11.4.속명 이영주.경남 산청출신.진주중학 졸업.35년 지리산 대원사에서 수행.68년 해인사 초대방장,81년 조계종 종정 취임.수행의 깊이와 경전의 섭렵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로 한국 불교계의 정신적 사표가 됨.16년간의 생식과 8년간의 눕지않는 수행자세,「중답게 산다」는 생활철학등으로 원효 이래 한국불교의 최대 거목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김용기◁ 1912∼1988.경기도 양주출신.농촌계몽등을 통한 민족운동을 위해 40년 양주군에 봉안이상촌 건립.52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한데 이어 62년 가나안농군학교 설립.73년 강원도 원성군에 신림 가나안 농군학교설립,82년 가나안 농군사관학교설립 등을 통해 농촌의 젊은 일꾼을 양성하고 농촌발전에 큰 업적을 세웠다. ▷김동리◁ 1913.11.24∼.경북 경주출신.경신중 중퇴.청년문학가협회회장·예술원회장·한국문인협회 이사장·서라벌예술대학장·국정자문위원 역임.예술원회원.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화랑의 후예」당선으로 등단.단편소설「무녀도」「바위」「황토기」「밀다원시대」「등신불」과 장편 「사반의 십자가」「을화」등 발표.신·인간·자연을 주제로 삼아 특유의 순수문학 세계를 가꾸어 온 한국문단의 대부(대부)이다. ▷김기창◁ 1914.2.18∼.호 운보·서울출신.1930년 승동보통학교 졸업 및 김은호 문하입문.31∼36년 선전 연입선.37∼40년 선전 연4회 특선.69년 국전 심사위원 부위원장.71년 3·1문화상.예술원 회원.근대 한국화의 추상화작업 선도,전통수묵산수를 뛰어 넘어 특유의 바보산수와 청록산수로 한국화의 새로운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서정주◁ 1915.5.18∼.호 미당.전북 고창 출신.고창 고보 중퇴·중앙불교전문학교 명예졸업.동아일보 사회부장·문교부 예술과 초대과장·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위원장·동국대 부교수 역임.대한민국 예술원 회원.「귀촉도」「신라초」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서정주 시선집」등에 시8백수 수록.「동천」을 비롯,수많은 절창을 통해 민족어를 연마하고 민족심성을 계발한 한국 서정시의 대가이다. ▷정주영◁ 1915.11.25∼.강원도 통천 출신.송전소전학교 졸업.현대그룹 회장·명예회장·대한체육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장·명예회장·국회의원·국민당 대표.47년 맨손으로 출발,기발한 아이디어와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현대를 국내 최대의 기업군으로 키운 「현대신화」의 주역.92년 국민당을 창당,대통령선거에 나섰다 실패하고 그룹경영에서도 손을 뗐다. ▷장기영◁ 1916.5.2∼1977.4.11.서울출신.선린상고졸.한국은행 부총재·한국일보 사장·IOC위원·한국일보 회장·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남북조절위원회 위원장대리·국회의원.금융계 언론계 정계등 여러방면에서 활약,「불도저」로 불리기도 했다.54년 한국일보를 창간했으며 초창기 한국체육을 궤도에 올려 놓았다.경제기획원장관으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고도 경제성장의 기반을 구축했다. ▷박정희◁ 1917.11.14∼1979.10.26.경북 구미 출신.대구사범·육사졸.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제5∼9대 대통령.61년 「5·16쿠데타」를 일으켜 제2공화국을 종식시키고 군사통치.64년 공화당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72년 10월 유신을 거쳐 79년 10·26으로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18년동안 장기집권.몇차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한국경제의 기적」을 창출하고 자주국방의 기틀을 마련했다. ▷정일권◁ 1917.11.21∼1994.1.18.연해주 추풍출신.만주국 군관학교·일본 육사졸업.육군총참모장겸 육해공군 총사령관·육군대장·육군참모총장·국무총리·국회의장·해방직후 국방경비대 창설에 참여.경비대가 국군으로 개편된 뒤에는 군요직을 두루 역임했다.박정희대통령 시절 국무총리·국회의장으로 장기재직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했으나 「얼굴마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김소희◁ 1917.12.1∼.본명 김순옥.전북고창출신.전남여고보 2년 수료.송만갑 정정렬 신호렬로부터 창악 가야금 서예 배움.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역임.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감성에만 치우치지 않는 품위있는 소리로 판소리의 격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살아있는 최고의 명창.전통 국악의 맥을 오늘에 잇고 많은 해외공연으로 전통예술이 국제적으로평가받는데도 기여했다. ▷김승호◁ 1918.7.13∼1968.12.1.서울출신.보성고등보통학교졸.39년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영화배우 생활 시작.59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63년 제10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시집가는 날」「박서방」「역마」「혈맥」등 2백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중년의 서민적 아버지상을 탁월하게 연기,한국영화 붐을 조성하는데 공헌했다. ▷장준하◁ 1918.8.27∼1975.8.17.평북 의주출신.44년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중국에서 탈영한뒤 광복군에 가담.45년 김구 비서로 귀국.53년 「사상계」창간.67년 국가원수모독죄로 투옥.제7대 국회의원에 옥중당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사상계」가 폐간된 뒤 75년 등산중 의문의 실족사.62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언론부문)을 받았다. ▷김수환◁ 1922.5.8∼.대구출신.일본 상지대 철학과·성신대학 신학부졸.51년 천주교 신부서품,69년 47세로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아시아주교회의 상임위원장·서강대 재단이사장 역임.천주교 서울대교구장·70년대 유신독재체제하에서는 민주화와 인권운동,80년대에는 인간성회복과 제도의 민주화를 외치면서 양심의 대변자 역할을 맡아 명동성당을 「한국민주화의 성지」로 만듦.천주교는 물론 한국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남철◁ 1923.11.30∼.전북 부안출신.국수 9연패·패왕 4연패·최고위 7연패등 50∼60년대 각종 기전 석권.83년 9단·37년 도일,바둑수업을 받은 뒤 43년 귀국해 걸음마단계의 현대바둑 보급에 힘쓴 한국바둑의 선구자.84년 일본 대창상,89년 은관문화훈장수상.현재 한국기원 명예이사장으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남덕우◁ 1924.10.10∼.경기 광주출신.국민대 정치학과.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경제학박사)졸.서강대 교수·재무장관·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국무총리·무역협회 회장.69년부터 10년간 경제각료로 일하며 부가가치세를 신설하는 등 경제개발정책의 기틀을 다짐.71년의 외환위기와 74년의 오일쇼크를 극복,연10%의 고도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대중◁ 1925.12.3∼.전남 신안출신.목포상고졸업.6선 의원.신민당 대통령후보.80년 내란혐의로 사형선고.87·92년 야당 대통령후보.아시아 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70년대와 80년대 20년동안 낙선과 투옥을 거듭한 강력한 반정부운동 지도자.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으며 9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뒤 정계를 은퇴.아태재단을 통해 평화·통일을 연구하며 「야당의 후견인」역할을 하고 있다. ▷김종필◁ 1926.1·7∼.충남 부여출신.육사 졸.초대 중앙정보부장·6대 국회의원·공화당 의장·국무총리·공화당 총재·민자당 대표최고위원.「5·16」의 막후 실력자로 중앙정보부및 공화당의 산파역할과 한·일 회담의 주역을 맡았다.박정희의 장기집권을 위한 3선개헌에 반대해 공직을 사퇴하고 외유에 나서면서 「자의반·타의반」이란 말을 남겼으며 반대세력에 밀려 실각도 했지만 결국 박정희의 18년 장기집권을 도왔다. ▷김준◁ 1926.4.25∼.전남 영광출신.49년 서울대농대졸.전남대 농대교수를 역임,62년 재건국민운동 경북지부장,64년 농협대교수 등을 맡으며 새마을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입법회의의원·새마을운동중앙본부회장·명예회장 등을 역임.건국이래 최대의 국민운동을 이끌며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피폐된 농촌 부흥과 사회발전에 기여했다. ▷박경리◁ 1926.10.28∼.경남 충무출신.진주고등여학교 졸.56년 현대문학에 단편 「흑흑백백」이 추천완료돼 등단.작품집 「불신시대」「환상의 시기」,장편 「시장과 전장」「김약국의 딸들」등.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한 5부16권의 대하소설 「토지」를 26년만인 지난해 완결.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격동기 우리민족의 삶을 다양한 인물묘사와 섬세한 필치로 표현한 이 작품으로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박태준◁ 1927.9.29∼.경남 양산 출신.일본 와세다대.육사졸.최고회의 비서실장.대한중석 사장.포항제철 사장·회장·명예회장.민정당 대표위원.민자당 최고위원.황량한 모래벌판이었던 포항에 세계 2위의 조강능력을 지닌 포항제철을 건설한 「포철 신화」의 주인공으로 「철의 사나이」로 불린다.민자당의 민정계 관리자로 정계에 나섰다가 실패,포철에서도 손을 뗐다. ▷김영삼◁ 1927.12.20∼.경남 거제출신.서울대 철학과 졸.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뒤 9선·신민당 원내총무·신민당 총재·제14대 대통령.최연소·최다선 의원이며 최연소 제1야당 총재.93년 31년만의 문민 출신 대통령으로 취임.한때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켰고 84년 전두환대통령시절 4주일동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대통령취임후 특유의 결단력과 정면돌파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전두환◁ 1931.1.18∼.경남 합천출신.육사졸.예비역 육군대장.국보위상임위원장.제12대 대통령.79년 국군 보안사령관으로 「12·12 사태」를 주도.박정희대통령 서거이후 공백상태이던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80년 「5·18」로 권력의 정상으로 등장한 뒤 그해말 대통령에 취임.재임 7년동안 엄격한 물가관리로 경제안정성장 주도.1인당 국민소득 2배이상 상승.평화적 정권교체 실현. ▷김운용◁ 1931.3.19∼.서울출신.미국 텍사스웨스턴대·연세대 정치외교과 졸.미국 메리빌대 법학박사.주미대사관 참사관(63),IOC부위원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세계태권도연맹 총재·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 회장.국제 스포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스포츠계의 제2인자.태권도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도록 막후 조정해 한국 스포츠의 이미지를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다.현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유력한 후임후보로 꼽히고 있다. ▷노태우◁ 1932.12.4∼.대구출신.육사졸.예비역육군대장.제13대 대통령.「12·12」를 주도.권력핵심부에 진입.제5공화국 때 체육·내무부장관 역임.87년 「6·29선언」으로 민주화의 물줄기를 텄고 그해말 제13대 대통령으로 당선.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북방외교」로 공산권국가들과 국교수립.지방자치제 일부 실현.90년 여소야대 국면에서 3당통합으로 안정기반 구축. ▷임권택◁ 1936.5.2∼.전남 장성출신.광주 숭일고 중퇴.61년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영화감독 데뷔.「만다라」「씨받이」「길소뜸」등 90여편 연출.89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보관장.93년 「서편제」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94년 「태백산맥」을 베를린 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킴.우리영화의 세계화와 한국영화 중흥에 크게 공헌했다. ▷김우중◁ 1936.12.19∼.서울출신.연세대졸.축구협회 회장·한국기원총재·대우그룹 회장·전경련 부회장.샐러리맨(한성실업)에서 연간 매출 35조원의 재벌 총수로 성장.기업인의 노벨상인 국제 기업인상(84년)수상.발로 뛰는 비즈니스로 아프리카등 수출 사각지대를 개척.기업 인수와 부실기업 재건의 명수로 알려져 있다. ▷김지하◁ 1941.2.4∼.전남 목포출신.서울대졸.64년 「서울대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회」일원으로 학생운동에 참여.6·3사태 관련 첫구속자가 됨.이후 8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억압과 사회적 질곡에 맞서 「오적」「타는 목마름으로」등 문제 시를 잇따라 발표하며 투사 시인으로 활동.최근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통찰과 함께 생명왜곡 현상을 염려하며 「생명사상」에 몰두하고 있다. ▷이미자◁ 1941.10.30∼.서울출신.문성여고졸.67년 무궁화훈장 받음.대중가수로는 최초로 세종문화회관 공연.59년 데뷔이래 1천6백여곡을 부르고 이 가운데 4백여곡을 히트시켜 「엘레지의 여왕」으로불림.왜색시비에도 불구하고 6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대중의 정서를 트로트 노래로 대변하며 한국 가요계를 대표해 왔다. ▷김수현◁ 1943.3.10∼.본명 김순옥.충북 청주출신.고려대 국문과졸.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87년∼).67년 라디오 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로 데뷔한 이후 「새엄마」「사랑과 야망」「배반의 장미」「사랑이 뭐길래」「작별」등 수많은 TV드라마 집필.솔직담백한 표현과 인간심리를 꿰뚫는 듯한 대사처리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언어의 마술사」이자 대중문화시대의 선두주자였다. ▷황영조◁ 1970.3.22∼.강원도 삼척출신.삼척 근덕중·강릉 명륜고·고려대.91유니버시아드(쉐필드).92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마라톤 1위.한국 마라톤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린 주인공.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의 우승 이후 56년만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우리 국민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주고 마라톤 재건의 계기를 만들었다.
  • 즐겨 부른 노래(연변 조선족 1백년:11)

    ◎구성진 민요가락에 고달픈 삶 절절이/1914년께 찬송가 보급… 항일가사 붙여 불러/해방이후 대중가요 첫선… 지금은 노래방서 모국가요 판쳐 중국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말을 해왔다.「조선사람 사는 마을엔 논밭이 있고,벼농사 하는 곳엔 조선사람이 있다」고….조선사람은 황무지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다.밭을 논으로 바꿔 벼농사를 지으니 중국인이 보기에는 영농엔 도가 튼 조선인이라고 감탄하여 마지 않았을 것이다.19세기초,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에 살던 우리 민족은 봄만 되면 강을 건너 중국땅에서 황무지를 일궈 가꾸었다.그리고 가을이 되면 알곡을 잔뜩 지고 다시 강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이 무렵 중국땅에서 피땀 흘려가며 개간하던 우리 농민들 사이에선 이런 민요가 불려졌다. 「월편이 나붓기는 갈잎대 가지는/애타는 내가슴을 불러야 보건만/이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기러기 갈 때마다 일러야 보내며/꿈길에 그대와는 늘 같이 다녀도/이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신세타령 농요 많아 이름하여 「월강곡」이다.아마도 현행법으로는 월강이 불법인 줄은 알면서도 그곳에 가서 농사를 지어오는 농민들의 마음을 조금은 읽을 것 같다.압록강과 두만강 연안주민들은 국경 의식이 적었던 모양이다.그도 그럴것이 예로부터 강 북쪽이 어디 외국영토였던가.한때는 우리의 삶터였기도 했고,선조들이 묻힌 땅이었다.현실이 어찌 그들의 의식을 제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 무렵 중국땅으로 건너가 개간하던 빈농들이 부른 민요는 거의 삶의 몸부림이었다.노동을 할 때 일의 능률을 위한 민요도 있고 신세타령도 있다. 농사꾼이 있는 곳엔 대장장이가 없을 수 없다.대장장이는 농사꾼을 따라다니며 농기구를 고치거나 만들어주며 목숨을 유지한다.그러나 이것도 만만치는 않다.천하디 천한 직업으로 대장장이에게 시집올 처녀가 없다. 「대장일 십년에/망치깨만 남겼네/후렴 어깨넘어 실포장도/네 날 살려주렴아/후렴 누덕저고리 진자지고름/나를 살려주렴아/후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난한 농민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월강하여 그곳에 정착을 했다.그리하여 조선족 마을을 형성했다.뒤따라 자리 잡은 것이 천주교와 기독교였다. ○우리말 찬송가 나와 중국조선족이 민요 다음으로 맞이한 노래가 신식학교 창가과에서 부른 찬송가였다.1914년이래 기독교,천주교 계통에서 간도일대에 많은 학교를 세웠다.용정에 「명신여자학교」와 「은진중학교」 「해성학교」등이 생겼다.그러나 조선인 신식학교로는 1906년에 이상설선생이 세운 서전의숙이 처음이다.1892년 한글로 번역된 찬송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한자발음으로 불렀다.예를들면 「예수 사랑하심」을 「주 예수 아이워」와 같은 경우다. 이렇게 창가는 찬송가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것이 보급되면서 찬송가 곡조에 새 가사를 바꾸어 넣어 부르는 일이 많았다.그리고 나서 찬송가와 비슷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특히 지적할 것은 중국조선족이 세운 사립학교 창가과에서의 반일사상을 담은 새창가 개발이었다.예컨대 당시 집안현의 광성학교에서 사용한 창가교재에는 「모험맹진가」 「운동가」등이 있었고 통화현의 배달학교 창가교재에는 「학도가」 「세계이주가」 「부모의 은덕」등이 있었다.전체적으로봐서 두 주류의 의도가 있었으니 하나는 반일사상을 고취시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지식을 고취시키자는 것이었다. 용정은 나라 잃은 민족의 항일구국독립운동의 산실이자 중국조선족의 교육의 중심지였다.그러다보니 일본도 이곳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용정에 일본영사관을 세우고 겉으로는 중국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탄압했다.1930년대로 접어들자 독립군의 조직과 활동이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이 무렵 이정호가 만든 조선의용군행진곡이 불려졌다. ○작곡 정율성씨 유명 중국조선족 사회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중에 정율성(1918∼1976)이 있다.그는 40년 동안에 3백60여곡을 남겼으며 장르도 다양하여 가요·행진곡·아동요·합창곡 등으로 분류된다.1936년 중국의 남경에서 개최된 「5월문예사」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처녀작 「5월의 노래」로 데뷔했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연변에도 「우리의 향토」「여성행진곡」「아침은 빛나라」등 해방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대중가요가 나왔다.이어서 「토지 얻은 기쁨」「농민의 노래」「새아리랑」등 토지개혁으로 농민들이 소작생활을 청산하는 기쁨을 노래하는 가요들이 나왔다.그리고는 한국동란으로 인해 북한에 동조하여 한국으로 진격하자는 내용의 가요들도 나왔다.그러나 1966년부터의 10년간은 문화혁명시기로 대수난기를 맞는다.대비판의 소용돌이 속에서 음악부분이 당하는 과녁은 민족전통예술분야였다.중국조선족의 예술활동이 비판을 받으면서 고난의 10년이 흘렀다.그리고 다시 원상을 회복했다. 연변을 처음 찾은 것은 1990년 7월이었는데 이 무렵은 이미 한국의 관광객이 붐비던 시기였다.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국의 대중가요 테이프를 틀어가며 감상하고 있었다.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내게 「사랑의 종말」을 부르라고 강요받아서 모두 합창한 경험이 있다.지금은 노래방이 성시를 이루어 그 시절은 벌써 옛날이 되었다.
  • 국악의 해/성공↔실패 엇갈린 평가

    ◎“국민관심 환기”·“소문만 요란” 양론 팽팽/성공/국악교육 강화·전통예술 발전기반 마련/실패/순회공연 중단·휘장사업 물의 등 잇달아 「94 국악의 해」는 성공이었나 실패였나」 이제 얼마 남지않은 「국악의 해」를 두고 『소문만 요란했지 정작 먹을 것 없었던 잔치』라는 부정적 평가와 『당장 먹을 것은 적었지만 앞으로 오래두고 먹을 양식을 장만하지 않았느냐』는 주장이 엇갈린다. 그러나 실패라고 주장하는 쪽도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고 성공했다고 강변하는 사람들도 한심한 대목이 적지않았음을 시인하고 있다.각자가 매긴 점수는 다르지만 시각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국악의 해」가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당초 국민적인 관심과 기대속에 출발했음에도 국악계가 결속력이 없는 상태로 내분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행사진행 자체도 크게 삐꺽거렸다고 지적한다. 국악계의 양대축인 정악과 민속악 계열의 알력속에 조직위원회가 3월이나 되어서야 간신히 가동하기 시작했다.이 와중에 국악협회는 이성림이사장의 전력 시비로 투서와 소송이 이어지는 집안싸움에 휩싸였고 중요한 수익사업으로 예상됐던 휘장사업은 오히려 물의를 빚었다.여기에 일년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국악 붐을 일으키려고 계획했던 「라이브 스테이지 카」사업도 재원이 없어 4·5월 두달동안 22개 지역을 순회하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반면 「국악의 해」를 비교적 성공한 것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국악의 장래를 결정하는 음악교육분야에서 국악인들의 목소리가 먹혀들기 시작한데다 전통예술발전을 위한 중장기발전안이 마련되게 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악인들의 한결같은 염원을 받아들여 교육부는 현재 국민학교 25%,중·고등학교 15∼20%인 음악 교과서의 서양음악 대비 국악 비율을 96학년도까지 모두 30∼40%로 상향조정한다.이에 맞추어 교사에 대한 국악교육을 강화하고 교육체계도 현행 이론·감상 위주에서 민요 부르기·국악기 연주 등의 표현 중심으로 전환키로 했다. 또 조직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전통공연예술진흥을 위한 심포지엄」을 열었다.이 심포지엄은 우리 국악계의 대표적인 전문가들이 망라되어 우리 국악계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국악발전을 위한 모든 가능성을 제시하는 자리였다.여기서 나온 주제발표와 토론내용은 「전통예술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안」으로 정리되어 오는 20일 있을 「국악의 해」 마무리 행사에서 발표된다고 한다. 물론 각종 공연과 음반,관련서적 출판이 예년의 4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성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요한 성과이다. 이처럼 「국악의 해」는 성공론과 실패론이 엇갈려 있다.그러나 성공론을 펴든 실패론을 펴든 국악의 앞날을 위해서는 지나간 올해보다는 다가올 내년부터가 더욱 중요하다는데는 국악인 모두가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