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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파견 판결에도 사측 그대로… 대통령 나서야”

    “불법파견 판결에도 사측 그대로… 대통령 나서야”

    최근 법원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한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사측이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이제그만 등 130개 시민사회단체는 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파견으로 드러난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현대기아차, 한국도로공사, 한국GM, 아사히글라스 등이 최근 법원으로부터 모두 불법 파견 판결을 받았는데도 현실은 그대로”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수십미터 상공에서 농성을 벌이는데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불법 파견, 위장 도급 판정이 나면 즉시 직접 고용을 하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면서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둘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회장은 “잘못한 건 사용자인데, 왜 억울한 노동자들이 굶어 가며 애원해야 하느냐”면서 “노동자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법대로만 해 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성원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고용실장은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과 고용노동부 차관을 만났지만, 법원 판결까지 난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속 시원히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면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불사른 지 5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노동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면서 “‘촛불 정권’이 초심으로 돌아가 약자의 편에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불법파견 판결 나도 사측은 요지부동 단식·고공농성에 비정규직들 죽어가”

    최근 법원이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한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지만, 사측이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비정규직이제그만 등 130개 시민사회단체는 4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 파견으로 드러난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현대기아차, 한국도로공사, 한국GM, 아사히글라스 등이 최근 법원으로부터 모두 불법 파견 판결을 받았는데도 현실은 그대로”라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하고 수십미터 상공에서 농성을 벌이는데도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불법 파견, 위장 도급 판정이 나면 즉시 직접 고용을 하도록 제도화하겠다’고 밝혔다”면서 “대통령은 공약을 지키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을 때까지 내버려 둘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순향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부지회장은 “잘못한 건 사용자인데, 왜 억울한 노동자들이 굶어 가며 애원해야 하느냐”면서 “노동자들은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그저 법대로만 해 달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신성원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 고용실장은 “최근 청와대 정책실장과 고용노동부 차관을 만났지만, 법원 판결까지 난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속 시원히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면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스스로 불사른 지 50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노동현장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면서 “‘촛불 정권’이 초심으로 돌아가 약자의 편에서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흙수저 고통 관심 없더니 이제야 노력한다니”… 더 멀어진 청년들

    “과거의 말과 행동과 달라 배신감 들어” 대학가 “실망만 더해… 3차 집회 열자” “과거 본인이 했던 말과 행동이 달라 배신감을 느낀다.” 8시간 20분에 걸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해명에도 청년들은 냉담했다. 2030 세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 딸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조 후보자의 답변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조 후보자는 딸 문제로 청년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 2일 조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를 지켜본 많은 2030 청년들은 “허탈했다”, “의혹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조 후보자는 딸의 장학금이나 입시 문제에 대한 의혹을 언급하며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입시나 장학금 특혜 의혹에 대해 “(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이나 집안 문제에 소홀한 아빠였던 것을 고백한다”고 해명했다. 대부분 자신은 “몰랐다”는 입장이었다. 청년들은 “우리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취업준비생 김모(29)씨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해 더 실망했다”면서 “성공하려면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는 허탈감만 더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박승하 ‘일하는 2030’ 대표 역시 “대다수는 조 후보자의 딸과 가족이 누리는 혜택과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데도 조 후보자는 마치 원래 본인의 것처럼 누렸다”고 비판했다. 특히 조 후보자의 ‘흙수저’ 발언에 대해서도 혹독한 평가가 이어졌다. 조 후보자는 “나는 통상적 기준으로 ‘금수저’가 맞다”면서 “흙수저 청년들의 마음과 고통을 10분의1도 모른다는 게 한계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겠다”고 말했다. 2016년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구의역 김군(당시 19세)’의 옛 동료인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은 “과거에는 ‘흙수저’ 청년들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야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조 후보자의 말이 얼마나 행동으로 지켜질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단체인 ‘청년전태일’의 김종민 대표 역시 “흙수저 청년들에게 미안하다는 조 후보자의 말이 면피용이 아니기를 바란다”면서 “99%의 청년들을 위한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혹을 풀고 싶다면서 ‘모른다’, ‘수사와 관련돼 대답할 수 없다’고만 하면 어떻게 의혹을 풀겠다는 것이냐”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이용자는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알아서 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록, 장학금 지급, 유급 면제를 해주고 본인의 사모펀드도 (다른 사람이) 가입시켜 굴려준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3차 촛불집회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이용자는 “단순히 입시문제가 아닌,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자질과 본인 및 가족들의 위법 문제로 옮겨 간 것 같다”면서 “(3차 집회 때는) 사퇴 요구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흙수저 고통 관심 없다가 이제야 노력한다고 하나”…더 멀어진 청년들

    “흙수저 고통 관심 없다가 이제야 노력한다고 하나”…더 멀어진 청년들

    “과거의 말과 행동과 달라 배신감 들어” 대학가 “실망만 더해… 3차 집회 열자”“과거 본인이 했던 말과 행동이 달라 배신감을 느낀다.” 8시간 20분에 걸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해명에도 청년들은 냉담했다. 2030 세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 딸과 관련된 의혹에 대한 조 후보자의 답변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조 후보자는 딸 문제로 청년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배신감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 2일 조 후보자의 기자간담회를 지켜본 많은 2030 청년들은 “허탈했다”, “의혹이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고 했다. 조 후보자는 딸의 장학금이나 입시 문제에 대한 의혹을 언급하며 “청년들이 느끼는 박탈감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입시나 장학금 특혜 의혹에 대해 “(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이나 집안 문제에 소홀한 아빠였던 것을 고백한다”고 해명했다. 대부분 자신은 “몰랐다”는 입장이었다. 청년들은 “우리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느냐”고 되물었다. 취업준비생 김모(29)씨는 “계속 모르쇠로 일관해 더 실망했다”면서 “성공하려면 금수저로 태어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는 허탈감만 더해졌다”고 털어놓았다. 박승하 ‘일하는 2030’ 대표 역시 “대다수는 조 후보자의 딸과 가족이 누리는 혜택과 기회를 가지지 못하는데도 조 후보자는 마치 원래 본인의 것처럼 누렸다”고 비판했다. 특히 조 후보자의 ‘흙수저’ 발언에 대해서도 혹독한 평가가 이어졌다. 조 후보자는 “나는 통상적 기준으로 ‘금수저’가 맞다”면서 “흙수저 청년들의 마음과 고통을 10분의1도 모른다는 게 한계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겠다”고 말했다. 2016년 스크린도어를 고치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한 ‘구의역 김군(당시 19세)’의 옛 동료인 임선재 서울교통공사노조 PSD지회장은 “과거에는 ‘흙수저’ 청년들에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야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면서 “조 후보자의 말이 얼마나 행동으로 지켜질지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단체인 ‘청년전태일’의 김종민 대표 역시 “흙수저 청년들에게 미안하다는 조 후보자의 말이 면피용이 아니기를 바란다”면서 “99%의 청년들을 위한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의혹을 풀고 싶다면서 ‘모른다’, ‘수사와 관련돼 대답할 수 없다’고만 하면 어떻게 의혹을 풀겠다는 것이냐”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이용자는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알아서 딸 의학논문 제1저자 등록, 장학금 지급, 유급 면제를 해주고 본인의 사모펀드도 (다른 사람이) 가입시켜 굴려준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3차 촛불집회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눈에 띄었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이용자는 “단순히 입시문제가 아닌,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자질과 본인 및 가족들의 위법 문제로 옮겨 간 것 같다”면서 “(3차 집회 때는) 사퇴 요구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조국 “흙수저 청년들 편지 가슴 아팠다…거취 관계없이 장학금 만들 것”

    조국 “흙수저 청년들 편지 가슴 아팠다…거취 관계없이 장학금 만들 것”

    청년단체가 지난달 29일 보낸 면담요청서 언급조국 “배우자 펀드, 딸 장학금 정리해 장학금 조성”“정치 민주화에 투신…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소홀”“불평등 문제 외면한 결과 딸, 합법이지만 혜택받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거취에 관계 없이 논란이 된 사모펀드와 딸의 장학금 등을 정리해 흙수저 청년을 위한 장학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조 후보자는 2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딸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 면담을 요청하는 봉투를 받고 가슴이 아팠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지난달 29일 청년노동자 권리 증진단체인 ‘청년 전태일’은 법무부 대변인실에 등기우편을 보내 조 후보자와 공개 대담회를 요청한 바 있다. 조 후보자는 “흙수저 청년들은 저 같은 부모가 없어서 저희 아이처럼 합법적이더라도 (인턴십 등의) 제도를 누릴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며 “그 점에 대해 청년들에게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조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 임명 여부와 관계 없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배우자가 투자한 펀드, 딸 아이가 받은 장학금 등을 다 정리해서 흙수저 청년이나 어려운 어린이 등을 위해 환원하겠다”며 “그것으로 마음의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지만 제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도리”라고 말했다. 조 후보자는 정치 민주화에 투신한 나머지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불평등에 소홀했다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는 “이른바 386, 586 세대 일원으로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정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으나 대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경제적 민주화 문제에는 소홀했던 것 아닌지 후회와 반성을 해본다”고 말했다.조 후보자는 이어 “지금은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얘기해도 처벌받지 않고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해도 아무도 막지 않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정치 민주화를 이뤘다”면서도 “사회경제적인 불평등 문제와 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는 “모두 제 책임이다. 누구도 탓하지 않겠다”며 “정치 민주화를 외치면서 불평등 문제에는 앞장 서서 나서지 못한 점, 그 때문에 결과적으로 저희 아이가 합법이라 할지라도 혜택을 받은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구의역 사고’ 책임자 항소심 판결 불복…“사회적 책임도 있어”

    ‘구의역 사고’ 책임자 항소심 판결 불복…“사회적 책임도 있어”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에 관한 책임이 인정돼 1·2심에서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정원 전 서울메트로 대표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며 상고했다. 서울동부지법에 따르면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9일 상고장을 제출했다고 1일 밝혔다. 앞서 지난달 서울동부지법 형사항소1부(유남근 부장판사)는 검찰과 이 전 대표의 항소를 기각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따라서 이 전 대표의 업무상 과실치사 유무죄에 대한 최종 판단은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된다. 2016년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당시 19세였던 은성PSD 직원 김모군이 스크린도어를 혼자서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가 벌어졌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표와 스크린도어 정비 외주업체 은성PSD 대표 등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사고를 유발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전 대표는 지난해 1심 판결 후 “서울메트로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했으나 사고를 예견하거나 막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항소했다. 또 피해자 김군이 선로 작업을 할 때 따라야 할 작업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과실로 인해 사고가 발생할 것까지 예상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은성PSD 대표에게도 1심과 같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200시간을 명령했다. 이외에 은성 PSD 법인과 당시 구의역 부역장, 서울메트로 안전관리본부장 등 8명에게도 모두 1심과 같이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전 대표를 뺀 나머지 피고인과 검찰은 상고를 제기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한편 항소심 재판부가 서울메트로나 은성PSD의 업무상 과실뿐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언급해 시민단체와 노조의 반발을 샀다. 항소심 재판부는 “안전조치를 충분히 하기 위해서는 이용자들이 더 비싼 교통 요금을 납부하거나 열차 운행이 지체되더라도 이를 감수해야 하는 등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사고 당시에는 이를 감수할 만한 시민 의식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사고에는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다”는 양형 이유를 들었다. 이에 임선재 은성PSD 노조 지부장은 “사회의 안전불감증 등 인식 개선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러한 조건이 “피고인 양형에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년단체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는 또한 “사람이 죽은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미미한 처벌만 받는 관행이 더 문제”라며 “약소한 처벌을 용인하는 사회 분위기가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는 당시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했다. 이후 2017년 5월 5∼8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도시철도공사와 통합됐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反아베 투쟁’ 한일 깨어 있는 시민들 손잡는다

    ‘反아베 투쟁’ 한일 깨어 있는 시민들 손잡는다

    한국 공동행동, 일본 공동행동과 행사 日대사관까지 행진 후 항의 서한 전달 지바현 철도노조, 반아베 투쟁 지지 성명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연대해 아베 정권의 부당한 조치에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양국의 시민 갈등을 조장하는 아베 정부의 행보에 흔들리지 않고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함께 뭉쳐 국면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한국 공동행동)을 비롯한 국내 20여개 시민단체들은 일본 측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일본 공동행동)과 함께 광복절 국제평화 행진 행사를 개최한다. 한국 공동행동은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18개 단체로 구성돼 있다. 한국노총과 전태일재단 등도 이번 행사에 동참한다. 일본 공동행동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전범기업이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것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일본 내 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단체다. 한일 공동행동은 15일 오전 11시 서울광장에서 주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하고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할 계획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양측 시민단체 관계자 등 2000여명이 참여한다. 양측 시민단체는 이날 악화일로의 한일 갈등 국면에 시민들이 어떻게 연대해 대응해 나갈지 논의하는 비공개회의도 갖는다. 앞서 일본 공동행동은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아베 정권은 한일 시민의 대립을 부추김으로써 한국 대법원 판결을 ‘없었던 일’로 하고 과거를 또다시 ‘무시’하려 한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일본 노동계에서도 한국의 ‘반(反)아베 투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 지바현 철도노조 ‘도로치바’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는 74년간 역사에 깊이 새긴 전쟁 책임을 아직도 명확히 지지 않으면서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한국 및 전 세계 노동자들과 굳게 뭉쳐서 보복적 수출 규제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고 개헌·전쟁으로 향하는 아베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는 일본 시민 200여명이 한국의 반아베 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노(NO) 아베’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또한 일부 일본 시민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노아베’ 운동에 동참하는 글을 올리며 지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한일 시민단체 ‘반아베 공동전선’ 광복절 스크럼

    한일 시민단체 ‘반아베 공동전선’ 광복절 스크럼

    한국 공동행동, 일본 공동행동과 함께 행사 추진광복절 서울광장에서 함께 국제평화 행진 열어지난 4일 도쿄서 日시민 200명 반 아베 시위도 일본 정부의 경제보복으로 한일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여러 시민단체가 연대해 아베 정권의 부당한 조치에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양국의 시민 갈등을 조장하는 아베 정부의 행보에 흔들리지 않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함께 뭉쳐 이 국면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한국 공동행동) 등 국내 20여개 시민단체들은 오는 15일 일본 시민단체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일본 공동행동)과 함께 국제평화 행진 행사를 개최한다. 한국 공동행동은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강제동원 피해자단체와 노동계 등 18개 단체로 구성돼 있으며, 이 외에도 한국노총, 전태일재단 등에서도 이번 행사에 동참한다. 한·일 공동행동은 15일 오전 11시 서울광장에서 주한 일본대사관까지 행진하고, 대사관에 항의 서한을 전달할 계획이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양측 시민단체 관계자 등 약 20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한다. 이날 양측 시민단체가 계속되는 한일 갈등 국면에 어떻게 연대해 대응해나갈 지를 논의하는 비공개 회의도 진행된다. 앞서 일본 공동행동은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아베 정권은 한·일 시민의 대립을 부추김으로써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없었던 일’로 하고 과거를 또다시 ‘무시’하려 한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일본 공동행동은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일본 내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만든 단체다. 일본 노동계에서도 한국의 ‘반 아베 투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일본 치바현 철도노조 도로치바 국제연대위원회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일본 정부는 74년간 역사에 깊이 새긴 전쟁 책임을 아직도 명확히 지지 않으면서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한국-전 세계 노동자들과 굳게 뭉쳐서 보복적 수출규제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고, 개헌-전쟁을 향하는 아베 정권을 반드시 타도하겠다”고 밝혔다. 이 노조는 철도 민영화 반대 등의 목소리를 내며 한국 민주노총과 연대 활동을 해 왔다. 지난 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서는 일본 시민 200여명이 한국의 반아베 운동에 힘을 보태기 위해 ‘노 아베’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가치 없는 노동은 없어…중증장애인의 ‘노동’ 새 기준 만들 것”

    “가치 없는 노동은 없어…중증장애인의 ‘노동’ 새 기준 만들 것”

    “가치 없는 노동은 없다.” 장애인일반노동조합이 전태일 열사의 기일인 오는 11월 13일에 공식 출범한다. 전체 장애인의 노동 문제를 아우르는 첫 장애인 노동조합이다. 이달 6일 장애인 교원 노동조합인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조’(장교조)도 출범하는 등 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정명호(29) 장애인일반노동조합 준비위원장은 21일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하겠다”며 “자본이 규정한 생산력에 따른 기준이 아닌,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새로운 기준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장애인일반노동조합을 꾸리게 된 배경은. “장애인 일반노조를 처음 구상한 건 2017년 11월이다. 10년 넘게 장애인운동을 하며 가슴 한구석에 뭔가 답답함이 있었다. ‘왜 이 사회는 장애인, 특히 중증장애인들이 노동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왜 장애인은 시설에 수십년 처박혀 살아야 하며 주변에 장애인 실업자가 넘쳐나는가.’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과 지난해 2월부터 준비 모임을 했고, 이번에 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노조 규모는. “20여명이 준비위원으로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준비위원과 더불어 현재 조합원 가입 신청도 받고 있다. 일하는 장애인은 물론, 일할 의지가 있는 장애인 실업자 등 최대한 많은 조합원을 모으려고 한다.” -출범 이후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 “장애인은 실업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30대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1.92% 정도다. 법정 고용률 3.1%에 훨씬 못 미친다. 그나마 장애인노동자 대부분이 50인 이하의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일하다 해고되고 승진에서 차별받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인 장애인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것이다. 아울러 중증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해 자본이 규정한 생산력에 따른 기준이 아닌, ‘일할 수 있는 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새로운 기준을 규정하는 대안도 논의하고 있다.” -장애인의 노동을 ‘새롭게 정의한다’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예를 들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 농성을 할 때 중증장애인들은 1842일 동안 농성장을 지켰고, 역사 측에서도 1842일 동안 역사 경비를 했다. 둘 다 ‘지키는’ 노동을 했는데 한쪽은 의미가 없는 노동, 다른 한쪽은 의미가 있는 일, 즉 임노동으로 인정됐다. 자본의 관점에선 농성장을 지킨 장애인의 ‘노동’은 이윤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므로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헌법이 규정한 권리와 의무 중에는 노동과 함께 ‘교육’이 있다.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섬에 취학 연령의 아이가 있다면 국가는 교육의 받게 할 의무를 지키려고 분교를 세우고 교사를 파견할 것이다. 하지만 중증장애인의 ‘노동의 의무’는 국가가 아예 내버려두고 있다. 특히 최중증장애인에게는 존재하는 것, 살아있는 것 자체가 노동이다. 우리는 우리 몸에 맞는 노동을 쟁취하려고 한다.” -어떤 연유로 장애인 노동문제에 주목하게 됐나. “19살에 어떤 센터에서 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부당한 노동 착취였다. 나는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워 입으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하고, 언어 장애 때문에 보완대체의사소통(AAC) 프로그램으로 소통한다. 그런데 내 장애에 맞지 않는 빠른 업무처리를 강요받아 1년 만에 그만뒀다. 그 직후 민들레장애인자립센터에서 일하게 됐다. 그곳에서 장애인운동에 대한 올바른 전망을 찾고 치열하게 토론하며 중증장애인의 권익옹호 활동도 열심히 했다. 연대활동으로 동광기연, 한국GM 등 인천지역 장기투쟁 사업장 집회에 자주 나가면서 중증장애인의 노동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장애인 노조는 왜 한 번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나도 그 점이 궁금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세계적으로도 장애인노조가 거의 없었다. 아마 다른 나라도 중증장애인들은 노동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면 선진국은 노동을 대체하는 복지가 이미 잘 되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장애인운동은 2000년대 이후 장애인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탈시설, 자립생활 운동,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투쟁 등 숨 가쁘게 달려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장애인의 노동할 권리’ 문제는 약간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노동’은 장애인의 여러 가지 권리(이동, 교육, 자립생활, 편의시설, 문화, 건강 등) 중 가장 핵심적인 권리다. 장애인 노동의 문제를 장애인일반노동조합 운동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헌법은 인종, 성별, 장애 등의 문제로 노동을 차별하진 않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임금 적용 제외를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단 3개 국가뿐이다. 저는 ‘노동의 평등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최근 가사노동을 새로운 기준으로 재평가하는 것과 같이 장애가 있는 노동자의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동’ 또한 사용가치가 있는 노동으로 평가해야 한다. 단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장애인의 노동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다.” -장애인 의무고용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제정하는 국회(1.4%), 학생 교육을 책임지는 각 시도교육청(평균 1.7%) 등이 여전히 장애인의 고용을 회피하고 있다. 공공기관의 올해 법정 의무고용률 3.4%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실효성 있는 의무고용제도를 위해서는 먼저 의무고용률을 장애인등록률(4.5%) 정도로 대폭 올려야 한다. 또한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 내는 고용부담금(벌금)도 최저임금의 두 배 정도로 올려야 한다.” -현장에선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얼마나 심한가. “아직 장애인노조 준비위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며칠 전 천안에서 일하던 경증장애인(6급)이 부당해고를 당했다며 전화로 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많은 장애인이 일터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이 50인 이하의 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 일반노조가 정식 출범하면 실태조사부터 시작해서 각종 차별 사례와 그 대안을 찾을 것이다.” -취업을 하려는 장애인은 먼저 어떤 벽에 부닥치게 되나. “취업원서를 잘 쓰면 서류 심사를 통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면접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휠체어를 타고서 면접장에 들어서는 순간 그 장애인은 투명인간이 된다.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당하는 것이다. 각 유형의 장애에 맞는 편의시설 설치 등에 1인당 1000만원, 최대 3억원까지 무상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는데도 기업들은 조그만 턱 하나, 책상 높이 등을 조절하기보다 장애인 고용을 회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장애인의 노동은 이윤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우리는 그 틀을 깨려고 한다. 비장애인 노동자이든 장애인 노동자이든 그 ‘노동’이 동등한 처우를 받게 하겠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잘되지 않아도 진짜 좋아서 했던 진보정치…노회찬 정신은 당선 전후가 다르지 않은 것”

    “잘되지 않아도 진짜 좋아서 했던 진보정치…노회찬 정신은 당선 전후가 다르지 않은 것”

    “내가 왜 잘되지 않는 일(진보정치)을 계속하는지 아냐.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래.” 2014년 9월 추석, 노회찬 의원이 취기가 남은 목소리로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 노 의원은 동생 회건씨 집에서 평소답지 않게 취할 정도로 음복했다. 노 의원의 큰조카인 선덕(29)씨는 잠든 큰아버지를 차로 집까지 모셔다드렸다. 선덕씨는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노회찬재단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에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큰아버지가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마음을 보이셨다”고 회상했다. 선덕씨는 자녀가 없는 노 의원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했고 운구 때 영정을 들었다. 당시 노 의원은 2013년 2월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7명의 실명을 밝힌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다. 같은 해 4월 노 의원의 지역구였던 노원구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아내이자 동지인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졌다. 이듬해 7월 동작구 재보궐 선거에 나선 노 의원은 나경원 의원에게 패배했다. 900여표 차이였다. 진보정당은 성공할 수 없다는 비관과 민주당 표만 깎아 먹는 세력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말을 조카에게 했을지도 모른다.선덕씨는 큰아버지를 멘토로 삼았다. 고민이 있을 때면 와인을 사 들고 큰아버지를 찾아갔다. 선덕씨는 “항상 겸손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로스쿨에 진학한 것도 큰아버지 같은 사람을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서다. 선덕씨는 진로 상담을 하다가 노 의원에게 “미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매 순간 선택을 하실 텐데 어떤 기준으로 하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노 의원은 “잘 모르겠을 때는 제일 어려운 게 맞다”고 답했다. 이 말은 선덕씨의 좌우명이 됐다. 2018년 7월 23일 노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당부를 유서에 남겼다. 큰아버지는 항상 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집에 살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다. 선덕씨는 5일장을 치르는 내내 “도대체 큰아버지가 하시려던 건 무엇인가”라고 되뇌었다. 운구차가 화장터로 가다가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다. 시민들이 모두 발길을 멈추고 큰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향해 목례를 했다. 선덕씨는 “정치인 한 명이 많은 사람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큰아버지가 하시려는 게 이런 거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그때야 들었다”고 말했다. 큰아버지의 빈자리는 그대로다. 찻잔을 꺼내려다가 큰아버지가 보내 준 녹차를 보면 그리움이 밀려온다. 선덕씨는 “일상 속에서 큰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그립다”면서 “1주기가 다가오면서 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다시 힘들어하신다”고 걱정했다. 아이가 없었던 노 의원은 조카들을 예뻐했다.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도 늘 조카들 선물을 챙겼다. 그중 여섯 살 때 받았던 두발자전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 타는 두발자전거를 뒤에서 잡아 준 사람도 큰아버지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이런 것도 들어 봐야 한다”며 서태지 음악 테이프를 줬다. ‘전태일 평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법학 책도 숱하게 받았다. 하루는 열 살이던 선덕씨의 동생이 두 번 연속으로 방송국 토론 기념시계를 받고 실망한 표정으로 “또 시계야”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밖으로 나가더니 만원을 뽑아왔다. 안경에는 서리가 잔뜩 끼어 있었다. 노 의원의 죽음에 청년들이 특히 슬퍼했던 건 청년을 대하던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덕씨는 “큰아버지는 자기가 아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생각하고 대화 주제로 삼았다”면서 “영화, 음식, 4차산업, 비트코인 이야기를 자주 했고 ‘꼰대’처럼 말씀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덕씨는 ‘노회찬 정신’을 ‘진정성’이라고 했다. 그는 “진정성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행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히 밀고 가야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 노회찬이 노동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당선 이전과 이후가 같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정신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민주노총 “촛불 정부가 선전포고…내달 18일 총파업”

    민주노총 “촛불 정부가 선전포고…내달 18일 총파업”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4일 김명환 위원장의 구속에 맞서 다음달 18일 ‘문재인 정부의 노동탄압 분쇄’를 내건 총파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날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위원장 구속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는 구호로만 존재하던 ‘노동존중’을 폐기하고 ‘재벌존중’과 ‘노동탄압’을 선언했다”며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투쟁을 비상한 결의로 조직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위원장 구속 상황에 걸맞게 일상 사업을 최소화하고 모든 역량을 투쟁 조직에 집중할 수 있는 비상체제를 구축함과 동시에 즉각적이고 전국적인 규탄 투쟁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부연했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3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공동 총파업 투쟁은 사회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를 알릴 것이며 결국은 18일 문재인 정부의 노동탄압 분쇄를 향한 전국 투쟁(총파업 대회)으로 확장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 달 18일 총파업은 사업장별로 4시간 이상 파업한다는 지침을 확정했다. 또 총파업에 앞서 오는 26일 울산 전국노동자대회, 27일 최저임금 1만원 쟁취와 노동탄압 분쇄 결의대회, 28일 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결의대회를 잇따라 개최해 투쟁 열기를 고조시킨다는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다만 긴급한 노동현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 따라 최저임금위원회를 포함한 정부 위원회 불참 여부는 추가 논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위원장 직무대행인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결의문을 통해 “박근혜가 잡아 가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두고 ‘눈에 밟힌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끝내 민주노총을 짓밟고 김명환 위원장 동지를 잡아 가뒀다”며 “문재인 정부의 선전포고”라고 비판했다. 김 부위원장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해결을 위한 ‘탄력근로제와 최저임금제 개악 저지 투쟁’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교섭과 투쟁 과정에서 발생한 현상만을 문제 삼은 극우언론과 극우정당의 마녀사냥에 굴복했다”고 덧붙였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비롯한 ‘노동 개악’ 정책을 열거하고 “좌측 깜빡이를 넣고 우회전을 했던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해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성토했다. 최 위원장은 “이제까지 투쟁은 문재인 정권의 잘못된 노동정책을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이제부터 투쟁은 친재벌, 반노동 정책을 명확히 한 문재인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한 투쟁으로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병호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촛불 항쟁을 통해 박근혜 퇴진을 끌어냈고 그 촛불 항쟁의 힘으로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며 “문재인 정부의 김명환 위원장 구속은 명백한 정치도덕적 배반 행위”라고 비판했다. 청년전태일, 특성화고졸업생노조, 일하는2030 등 청년 노동단체 7곳도 김명환 위원장을 구속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며 “노동자 탄압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단체는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자들을 장시간 저임금으로 몰아넣는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기 위해 싸웠던 김명환 위원장을 즉각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 대표적인 노동정책 약속을 하나도 실현하지 못하고 스스로 무능을 드러내며 약속을 파기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말로만 노동 존중을 외치고 노동자를 탄압하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한다”며 “문재인 정부가 청년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때까지 민주노총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문소영 칼럼] 열심히 일한 산업화·민주화 세대, 떠나라

    [문소영 칼럼] 열심히 일한 산업화·민주화 세대, 떠나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2015년에 개봉된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가 컴컴한 영화관에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은 와락 웃으며 박수도 살짝 쳤던 것 같다. 박봉의 형사가 마약흡입에 불법을 일삼는 재벌 2세와 맞붙어 내뱉는 이 발언은, 그래, 자본주의 시대에도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이런 공감들을 확 일으켰다. 장삼이사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함께 뿌듯하게 느낀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의 체면이 서는 듯한 일이 최근 늘고 있다. ‘불멸의 밴드’ 비틀스를 넘어섰다는 20대 청년으로 구성된 방탄소년단(BTS)이 벌인 런던 공연에서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한국어 떼창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 축구선수단의 최고 성적이라는 20세 이하(U20)의 준우승과 ‘축구의 신’ 메시와 똑같은 나이인 18살에 골든볼을 안은 이강인 선수를 보면서 탄성했다. 어깨 부상을 극복하고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괴물투수로 거듭난 류현진 선수도 감탄의 대상이다. 이런 멋진 10~30대가 앞으로 한국을 이끌겠구나 싶어 뿌듯하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출신인 봉준호 영화감독이 만든 ‘기생충’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는 ‘국뽕´이 철철 흐르게 되었다. 홍콩인 200만명이 참가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철폐 시위에서 어설픈 한국어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보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시아의 롤모델로서 진짜 잘해야 한다는 각오도 생겨난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0.4%로 역성장해 빛이 바랬지만, 올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을 뜻하는 3050클럽에 7번째로 진입한 국가가 되었다. 한국보다 앞선 3050클럽은 미국과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국뿐이다.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는 이제 “우리가 돈이 없냐! 가오가 없냐!”로 바뀌어야 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한국은 지난 100여년 동안 수많은 한국인이 척박한 상황에서 뼈와 살을 갈아 넣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생애를 같이한 ‘산업화 세대’들의 피와 땀도 듬뿍 들어있다. 1970년 7월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에 사망한 노동자 등은 공식적으로 77명이다. 10대 시다와 미싱사 등의 처우 개선을 요구한 전태일의 분신자살도 1970년이다. 그러나 이른바 ‘87체제’를 만든 ‘민주화 세대’는 할아버지 세대의 독립운동을 평가하면서도, 아버지 세대의 산업화를 평가절하했다. ‘아버지 세대가 시대의 과제를 제대로 처리했더라면, 아들 세대인 우리가 군부독재와 목숨 걸고 싸울 일이 없었을 텐데’라는 원망이 깔린 탓이었다. 이런 발칙한 생각은 어쩌면 신화의 시대부터 면면히 내려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하고 올림포스 최고의 신이 되었고, 또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한 뒤 우주의 지배자가 되었다. 앞 세대를 전복하는 것이 뒷세대의 권리이자 의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며 유유히 흐르는 것처럼. 제 잘난 맛에 살아온 386세대도 그러나 30대와 40대인 후배 세대들의 “제대로 해놓은 게 없다”는 원망과 반발에 직면하고서는 새삼 산업화 세대를 역지사지하게 된다. 항산항심(恒産恒心)이라는 말처럼, 아버지들의 시대적 과제는 산업화였고, 산업화를 위해 그 세대가 미뤄두었던 민주화의 과제는 386세대가 미흡하나마 수행한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심화와 일상화, 조국의 평화체제 구축 등은 후세대의 몫이라는 생각에도 도달하게 된다. 그리하여 산업화 세대도, 민주화 세대도 그 시대의 과제를 수행하느라 너무 많이 고생했으니, 이제 ‘우리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떠나보내고, 현실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뒷일은 비 온 뒤 죽순처럼 쑥쑥 자랐으나, 능력 발휘의 기회가 적은 후배 세대에게 맡겨도 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더 잘 적응해 대책을 낼 세대이다. 그러니 386세대도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정치 경제 사회의 노른자위 자리를 내줄 태세를 갖춰야 하며, 하물며 산업화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애국애족도 독식해서는 안 된다. 광화문의 깃발시위대들도 아들 세대가 미덥지 못하다면, 손자 세대의 능력을 믿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때마침 총선도 다가온다. 30~40대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세대교체, 나쁘지 않다. symun@seoul.co.kr
  • 문무일 검찰총장, 이한열 열사 모친 만나 “민주화 운동 유가족에 경의”

    문무일 검찰총장, 이한열 열사 모친 만나 “민주화 운동 유가족에 경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공동체 한울삶 방문해 사과이한열 모친 배은심 여사 “이렇게라도 찾아와줘 고맙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열사들의 유가족들을 만나 검찰의 지난 과오에 대해 사과했다. 문 총장이 과거사와 관련해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박종철 열사의 부친 고 박정기씨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18일 검찰에 따르면 문 총장은 전날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울삶’을 방문해 장남수(장현구 열사 부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 등 유가족 10여명을 만났다. 한울삶은 유가협 회원들의 생활공동체로 전태일 열사 어머니인 고 이소선 여사 등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문 총장은 유가족들에게 “권위주의 정부 시절 자제분들을 희생 당하시고, 그들을 대신해 민주화 운동을 해 오신 부모님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고,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뵙겠다”면서 “다시금 국민의 검찰로 나아가는 모습을 잘 봐달라”고 했다. 문 총장은 지난해 3월 투병 중이던 박종철 열사 부친인 고 박정기씨를 찾아가 사과하며 “과거의 잘못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 총장은 이 자리에서 박씨로부터 선물받은 책 ‘유월의 아버지’를 읽고 한울삶 방문을 결심했다고 한다. 문 총장과 한 시간가량 환담을 나눈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문 총장이) 갑자기 온다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였다”면서 “이렇게라도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서울대생 내란음모’ 故 조영래 변호사 47년 만에 무죄

    ‘서울대생 내란음모’ 故 조영래 변호사 47년 만에 무죄

    고(故) 조영래 변호사가 박정희 정권에서 겪은 시국사건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 재심에서 47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쓴 ‘전태일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조 변호사는 한국의 대표적 인권변호사로 불린다. 서울고법 형사13부(구회근 부장판사)는 3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 변호사의 재심에서 과거 2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불법 체포돼 고문에 의해 진술했고, 진술 외의 나머지 증거들을 봐도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조 변호사의 아내 이옥경씨가 출석해 작고한 남편이 반세기 만에 혐의를 벗는다는 설명을 대신 들었다. 중앙정보부(중정)가 1971년 발표한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은 당시 사법연수생이던 조 변호사와 서울대생이던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이신범 전 의원, 심재권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등 5명이 국가전복을 꾀했다는 내용이다. 중정은 이들이 학생 시위를 일으키고 사제 폭탄으로 정부기관을 폭파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으로 내란을 일으키려 했다며 김근태 전 고문을 수배하고 조 변호사 등 4명을 구속했다.재판에 넘겨진 조 변호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았다. 그러나 유족의 청구로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전체적으로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마찬가지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신범 전 의원과 심재권 의원 등은 지난해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은 바 있다. 조 변호사는 1984년 망원동 수재민 사건 집단소송, 1986년 여성조기정년제 철폐사건,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1987년 상봉동 진폐증 사건 등의 변론을 맡아 노동· 빈민·여성 인권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기록한 전태일 평전을 써 노동운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그는 1990년 12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교육감들 함께한 전교조 30돌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전진할 것”

    교육감들 함께한 전교조 30돌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전진할 것”

    “교육감協 차원 법외노조 문제 해결할 것”오월어머니·정태춘에 ‘참교육상’ 수여“오늘에 머물지 않겠다. 새로운 30년, 새로운 교육사를 쓰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설립 30주년을 맞은 28일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전교조 결성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지난 25일 전국 교사대회가 법외노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대정부 투쟁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자리였다면 이날 기념식은 전교조의 과거를 돌아보며 초심을 기억하고 전교조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성격으로 차분히 진행됐다. 권정오 위원장과 김현진 수석부위원장은 기념사에서 “전교조를 지키고 성장시킨 것은 결성 초기 선생님을 지키기 위해 나선 제자들과 이름 모를 민초들의 응원과 사랑이었다”면서 “어떤 권력의 지배와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참교육 참세상을 향한 전진을 멈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전국에서 모인 200여명의 전교조 조합원들은 뜨거운 박수로 이에 화답했다.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출신인 장석웅 전남교육감을 비롯해 김승환(전북교육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 조희연 서울교육감 등 현직 교육감 3명도 자리를 함께했다. 김 회장은 “진정한 교육자치를 위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면서 “시도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전교조의 법외노조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또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와 여영국 의원 등 현직 국회의원 2명도 참석해 전교조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했다. 이부영·정진화·김정훈·변성호 등 역대 전교조 위원장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신병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 나명주 참교육을위한학부모회 회장 등도 기념식에 참석했다. 김 위원장은 “이전 한 세대가 시련과 투쟁으로 조직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이후 한 세대는 더 큰 노동조합으로 도약하는 시기가 되길 바란다”고 축하를 전했다. 전교조는 이날 옛 전남도청 별관 앞에서 옛 전남도청 복원을 요구하며 1000일 가까이 농성을 벌인 ‘오월어머니’와 전교조 설립 초기 전교조와 함께 순회공연을 했던 가수 정태춘씨에게 ‘참교육상’을 수여했다. 한편 이날 청와대 앞에서는 전교조 법외노조 취소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의 집회도 열렸다. 보수 성향의 학부모 단체 모임인 전국학부모단체연합은 “전교조는 편향된 교육과 정치적 투쟁 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고 주장하며 전교조의 법적 지위 회복을 반대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전태일 평전 밤새 읽고 접견 온 盧변호사…노동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정치인이었다”

    “전태일 평전 밤새 읽고 접견 온 盧변호사…노동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정치인이었다”

    “노동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정치인 노무현. 노무현이 최초로 사랑한 노동자 문성현.”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신문 광화문 라운지에서 10년 전 조문록에 썼던 글귀를 떠올렸다. 문 위원장은 “경사노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사실은 노 전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라면서 “변호사 노무현이 변론했던 첫 노동자가 바로 나”라고 소개했다. 문 위원장과 노 전 대통령의 첫 만남은 1985년 구치소 변호사 접견에서 이뤄졌다. 당시 경남의 방위사업체(통일중공업)에서 일했던 문 위원장은 노조위원장으로서 파업을 이끌고 구속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문 위원장을 보자마자 “나는 상고를 졸업하고 ‘새가 빠지게’ 공부해 고시 패스하고 돈 벌려고 변호사가 됐는데, 서울대 경영학과까지 나온 당신은 왜 돈 버는 길을 마다하고 노동운동을 합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문 위원장은 “저를 이해하려면 전태일 평전부터 읽어 보시라”고 권했다.“전태일이 누구요?”라고 되묻던 노 전 대통령은 그날로 책을 사서 밤새 다 읽고 다시 구치소로 왔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전태일의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진작 전태일 평전을 읽었다면 나도 노동운동 했을 것이다. 나는 대학도 나오지 않고 공사판에서 일했기 때문에 당신보다 노동운동을 더 잘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변호사가 됐으니 변호사로서 노동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검사와 판사에게도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라고 권했던 노 전 대통령은 징역형이 유력했던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냈다. 첫 노동재판을 무사히 끝낸 노 전 대통령은 1986~1987년 창원, 울산, 거제 등에서 ‘노동인권변호사’로 활약하며 문 위원장과 인연을 이어갔다. 2002년 16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 앞두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노무현 후보 옆에 ‘노동’이 없어 외로우니 꼭 같이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문 위원장은 거절했다. 노 전 대통령도 대선 3일 전 “내가 대통령이 된다. 같이 하자”고 했지만, 또 거절했다. 당시 문 위원장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후보를 위해 뛰고 있었다. 문 위원장은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인간적 회한이 몰려왔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도운 것도 마음의 빚 때문이다. 그는 “사회적 대화가 참 어렵다”면서도 “노무현, 문재인 두 변호사에게 인간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애를 쓰겠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전태일이 누구요” 물었던 노무현, 내가 사회적 대화 이끄는 이유

    “전태일이 누구요” 물었던 노무현, 내가 사회적 대화 이끄는 이유

    “그런데 전태일이 누구요?” 뜻밖의 일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처음 만난 1985년에, 당시 대학생들이라면 이름 석자는 다 들어봤을 인물에 대해 그런 질문을 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문성현 위원장은 마침 노 전 사망 10주기인 23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서울신문 광화문 라운지가 27번째로 연 ‘노동존중 사회와 사회적 대화’ 강연 첫 머리를 열며 노동자 계급을 처음 가슴으로 이해했던 대통령인 노무현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85년 구치소 변호사 접견실에서였다. 당시 경남의 방위사업체(통일중공업)에서 노조를 결성한 것만으로도 구속 감이었던 문 위원장은 파업까지 이끌어 구속된 뒤 부산에서 찾아온 노무현 변호사를 맞았다. 무명의 변호사라 마뜩치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난 부산상고를 졸업해서 정말 쎄빠지게 공부해서 고시 패스한 뒤 판사하다 돈이 안돼 돈 벌려고 변호사가 됐는데, 서울 상대까지 가서 돈 버는 길 마다하고 왜 노동운동을 합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금방 마음이 풀어졌다고 했다.문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날 이해하고 싶으면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을 읽어보라”고 권했고, “전태일이 누구요?”라고 되묻던 노 대통령은 책을 사서 밤새 다 읽고 다음날 문 위원장을 찾아와 ‘내게 대학생 친구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란 전태일의 얘기에 속속들이 공감했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진작 내가 전태일 평전을 읽었더라면 문 위원장처럼 노동운동을 했을 것이다. 난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공사판에서 일해기 때문에 문 위원장보다 노동운동을 더 잘했을 것”이라면서도 “지금은 변호사가 됐으니까 변호사로서 노동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검사와 판사도 재판을 잘하려면 전태일 평전을 사서 읽어보라고 권했던 노 대통령은 징역형이 유력했던 문 위원장이 집행유예를 받게 만들었다. 첫 노동재판을 승리로 장식한 뒤 이듬해부터 1987년까지 경남 창원, 울산, 거제 등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약하며 문 위원장과 돈독한 인연을 맺었다. 10년 전 그날, 문 위원장이 경남 봉하마을을 찾아 조문하고 조문록에 ‘노동자를 진심으로 사랑한 정치인 노무현. 노무현이 최초로 사랑한 노동자 문성현’이라고 적은 이유이기도 했다. 문 위원장은 “이 자리에 내가 서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이라며 “노 대통령도 변호사 시절 노동자였던 날 만났기에 조금 더 일찍, 그리고 깊이 있게 노동자를 사랑하는 변호사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를 한달 앞두고 유시민 당시 작가가 “노 대통령 옆에는 노동자가 없어 외로우니 꼭 좀 같이 해달라”고 제안했지만 당시 민주노동당원으로 권영길 후보 대선 운동을 하고 있던 문 위원장은 거절했다. 그러자 노 대통령이 대선 투표 사흘을 앞두고 전화를 걸어와 “내가 대통령 된다. 같이 하자”고 했지만, 또 거절했다. 노 정부 시절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다 2009년 노 대통령이 사망하자 문 위원장은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인간적 회한과 자책이 밀려와 힘들었다고 했다. 문 위원장이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운동을 돕고 노동계로부터 변절 얘기를 들으면서도 경사노위 위원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했다.문 위원장은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탄력 근로제 등 노동계의 지난한 이슈들을 해결해 온 과정을 돌아보며 “사회적 대화가 참 어렵다”고 털어놓은 뒤 “대화의 참뜻이 뭔가, 이념이나 진영, 파당의 논리를 떠나 상대방을 존중하고 최선이 안되면 차선,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며 타협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가 아닌가 돌아본다”고 밝혔다. 또 자신이 온갖 핀잔과 험구(險口)를 들으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노동자를 위해 뭔가를 해보려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다하지 못한 인간적 도리를 문재인 대통령에게라도 대신 해야 하겠다는 마음가짐 하나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강연 내내 강조한 것은 최저임금은 받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주는 사람의 입장도 중요하니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국민토론회 같은 것을 열어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좋겠다 싶어 직언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으며, 지금 최저임금 때문에 경제가 파탄났다고 프레임을 짜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데, 좋다, 그렇다면 최저임금 올리지 않을테니 반대하는 이들은 국내 제조업, 특히 자동차 산업을 살려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봐라, 민주노총이 여러 차례 불참과 참가를 번복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타협의 DNA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한국노총 간부가 어용이란 비난을 듣고 ‘어려울 때 용기를 내는 게 어용’이라고 반박하며 사회적 대화에 꾸준히 나서는 이유를 돌아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여기에다 북유럽의 사회적 대타협과 규모도 작고 거리도 있지만 SK이노베이션 등 SK 계열사 세 곳 노동조합은 기본급의 1%를 회사와 매칭펀드 형식으로 적립해 협력사 임금 인상 재원으로 활용하며 , 제2금융권 공공노조들은 비정규직 정규직화 재원 기금을 적립하고 있어 이를 전국적으로,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또 광주형 일자리를 값싼 일자리로 오해들 하고 있는데 중국 자동차 산업과 맞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지난한 고민을 안고 출발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아파트를 제공하는 것마저도 복지 차원이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고육책이란 점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흥미진진 견문기] 김광석·백남준·박수근의 삶·사랑에 가슴이 먹먹

    [흥미진진 견문기] 김광석·백남준·박수근의 삶·사랑에 가슴이 먹먹

    사람들로 붐비는 흥인지문 앞에서 엄태호 해설사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해설로 탐방을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등 이 땅에 민주화를 위해 생명을 바친 열사들과 가족들의 아픔이 서린 생활 공동체 한울삶이었다. 문 앞에 그들의 뜻을 담은 시비와 어우러진 꽃들을 보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와 다림질하는 하얀 연기가 여기가 봉제거리임을 알려 주었다. ‘메이드 인 창신동’과 다리미를 들고 있는 재미있는 모나리자 그림을 지나 봉제박물관 이움피움에 도착했다. 박물관 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봉제 역사 이야기를 듣고 4층 바느질 카페에 도착해 알싸한 생강차를 마시며 바라본 창신동 절개지의 모습은 앗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풍경이었다. 옷감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를 이리저리 피하며 김광석이 살았던 다세대 주택 앞에 이르렀다. 해설사가 준비해 온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를 들으며 30년 전 학전소극장에서 만났던, 삶을 사랑을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김광석이 떠올라 잠시 가슴이 먹먹했다. 김광석의 49제를 올렸다는 안양암에 도착했다. 거대한 바위 위 비석에 새겨진 ‘일제의 밀정’ 배정자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김광석이 유년시절 다녔던 창신초등학교와 골목골목의 추억을 뒤로하고 백남준이 생전에 가장 오고 싶었다던 고향집터에 이르렀다. 사라질 뻔했던 백남준의 생가가 주민들의 의견으로 재생돼 ‘백남준을 기억하는 집’으로 다시 태어난 이야기와 ‘굿모닝 미스터 오웰’ 등 시대를 앞서간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왕십리 똥파리’ 궤도 전차가 다니던 길을 지나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동신교회에 이르렀다. 이 교회 신자였던 화가 박수근의 ‘빨래터’ 작품도 감상하고 “가진 것은 붓과 팔레트뿐이지만 행복하게 해주겠소”라며 아내에게 보낸 박수근의 구애편지를 들으며 봄 햇살과 같이 마음이 따뜻해졌다. 박수근과 그의 가족이 10여년 살았던 집터를 찾았으나 지금은 홈통과 그 위에 ‘박수근 화백 사시던 집’이라는 글씨만이 남아 있어 아쉬웠다.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
  • [유정훈의 간 맞추기] 어머니의 이름으로

    [유정훈의 간 맞추기] 어머니의 이름으로

    지난 3월 미국 워싱턴DC로 출장을 갔을 때, 일정 중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스미스소니언 아프리칸ㆍ아메리칸 역사문화 박물관을 방문했다. 개관한 지 3년이 돼 가는데 아직도 입장권을 구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박물관이다. 지하 3개 층에 걸쳐 미국의 흑인 역사를 집대성한 전시관이 여기의 핵심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흑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강제이주로부터 시작해서 노예제도의 확립과 심화,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 계속되는 인종분리정책, 이에 저항한 민권운동을 거쳐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한나절이 부족할 만큼 꽉 찬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에밋 틸 기념관’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1955년 8월, 시카고에 살던 소년 에밋 틸은 미시시피에 친척을 만나러 갔다가 식료품 가게에서 백인 여성을 유혹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백인 여성의 남편과 친척이 틸을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한 다음 시신을 강에 버렸다. 그의 나이 14세 때의 일이다. 며칠이 지나 그의 시신이 강에서 떠올랐다. 시카고에서 장례를 치를 때 그의 모친 메이미 틸은 충격적 결정을 한다. 백인의 끔찍한 증오범죄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아들의 시신을 담은 관을 열어 참혹한 모습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에밋 틸과 메이미 틸은 시대를 바꾼 인물이 됐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메이미는 얘기했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자기에게는 집도, 직장도, 아들도 있었고 남부에서 흑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도시지역 중산층이던 메이미는 아들의 살해 사건을 계기로 남부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혹독한 인종차별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민권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바로 그 에밋 틸의 관이 이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실에 놓여 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음에도, 에밋 틸의 관을 보는 순간 경외감에 압도돼 한참 넋을 잃고 그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도 그 잔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구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같은 분들이 계셨다. 5년 전 세월호 사건은 수많은 ‘누구의 어머니’를 만들어 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은 분들이 자기 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세상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그걸 바꾸어 보겠다고 나섰다. 본인들이 누구보다 상처받은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겪은 다른 사람을 품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분들의 희생을 대가로 만들어진 더 나은 세상을 누리며 살아간다. 아주 가끔씩 누구누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될지 몰라도, 그 빚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버이날도 챙겨야 하고 가정의 달도 좋지만, ‘어머니의 이름으로’ 세상을 고치는 일에 던져지는 분이, ‘누구의 어머니’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더이상 나올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우리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 “노동·평화·인권 만나는 곳” 전태일기념관 시민 곁으로

    “노동·평화·인권 만나는 곳” 전태일기념관 시민 곁으로

    근로감독관에게 보낸 편지 아트월 구현 기념 공간·권익 지원 시설 등 자리잡아“이곳은 노동과 평화, 인권이 만나는 곳입니다. 오늘 개소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서울 종로구 관수동 청계천변에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이 정식 개장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1981년 ‘전태일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한 지 약 38년 만이다. 이날 열린 개관식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을 ‘노동존중특별시장’이라고 소개하며 “당시로서는 어리고 미약한 청년노동자가 스스로 불꽃이 돼 엄혹한 시대의 어둠을 뚫고 세상을 변화시켰다”고 전태일 열사를 평했다. 박 시장은 “전태일 열사가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면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지금도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고 고통받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념관이 땀과 노력, 기쁨과 연대 속에서 위대한 시민들을 닮은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시내에 나올 때나 지나갈 때 언제든 들러 달라”면서 “이곳이 노동존중 서울시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11월 13일 22살의 나이로 분신한 곳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청 수표교 인근에 자리잡은 전태일 기념관은 지상 6층, 연면적 1920㎡ 규모로 조성됐다. 기념관 정면의 아트월은 그가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보내기 위해 자필로 작성한 진정서의 내용을 디자인으로 구현해냈다. 서울시가 조성을 맡았으며, 전태일재단이 위탁 운영한다. 시는 노동운동의 역사를 관람하는 전시공간과 함께 노동인권교육시설, 노동자단체가 이용할 수 있는 사무공간 등을 한데 모아 ‘노동허브’로 기능하게 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기념관 1층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모임 공간이, 2~3층에는 전태일 열사를 기리는 기념 전시공간이 들어섰다. 전태일 열사와 그의 어머니이자 한국 노동운동의 대모 역할을 한 이소선 여사, ‘전태일평전’을 집필해 세상에 알린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의 족적을 다룬 상설전시와 함께 매년 3~4회 기획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우선 오는 6월 30일까지 전태일 열사가 1969년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그가 그렸던 모범 봉제작업장을 구현해낸 ‘모범업체: 태일피복’ 전시가 열린다. 4~6층은 노동자 권익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시설이 자리잡았다. 특히 5층에는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입주해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 노동자의 권리 침해를 상담하고 구제하는 일을 지원한다. 개관식에는 박 시장과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노동·시민운동가,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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