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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일교포3세 지위 보장 의견 접근” 2일 본회의(의정중계)

    ◎주한미군 감축 전력 공백 메울 대책은 질문/북한서 수용하면 방북취재 적극허용 답변 ◇박정수의원(민자)=노태우대통령이 유엔연설에서 제안한 동북아 6자평화협의회구성 추진은 얼마만큼 진전되었나. 또 연내 유엔단독가입에 대한 전망은. 미ㆍ일의 대북접촉과 관련해 우리와 미ㆍ일 사이에 긴밀한 협의체제는 수립되어 있는가. 북한이 미국측에 의원교류를 협의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재일한국인 후손 법적지위 문제가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전에 타결될 전망과 현재의 정부노력을 밝혀라. ◇이찬구의원(평민)=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이 군축협상 의지를 천명하기에 앞서 남북한 국축협상에 관해 총리와 협의한 사실이 있는가.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남북한 군축협상의 시기와 내용은. 「남북한군사력 공동평가조사단」의 구성을 북한에 제안할 용의는 없는가. 소위 「제4땅굴」은 정말 땅굴인지 아니면 자연동굴인지 밝혀라. 소련이 희망하는 대로 한소 양국간에 평화협정을 체결할 요의는. 국방참모총장제도를 창설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전용원의원(민자)=「한민족 공동시」의 건설을 비무장지대나 서해5도중 적당한 장소에 추진할 용의는 없는가.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해 남북한 언론인의 자유왕래와 취재활동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이를 북측에 제안할 용의는. 북한의 핵무기개발 박차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이며 통일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다고 보는가. ◇강영훈국무총리=민자당 김영삼최고위원이 국회 대표연설에서 남북군축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전에 정부측과 협의한 것이다. 동구권의 변화등을 고려할 때 북한도 개방과 개혁의 흐름을 끝까지 거부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북한은 외부와 차단된 전체주의의 일인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개방과 개혁을 추진중인 인접국가가 없어 단시일내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주한미군은 남북간 군사력의 불균형 해소와 긴장완화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억제수단으로 계속 주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호중 외무장관=중소는 그동안 한국과의 관계에서 정경분리원칙을 고수해 왔으나 소련은 상호 영사처설치 외에 금명 항공노선이 개설되는등 국교수립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재일한국인3세의 법적지위 문제와 관련,일본측은 기본적으로 3세이하 후손들에 대한 안정적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이상훈국방장관=북한의 핵연료 재처리공장은 중단돼야 마땅하며 국제원자력위원회 전면안전장치에 가입하도록 촉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언론자유가 전방에서 땅굴탐사작업을 하고 있는 장병의 생명이나 국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의 남침용 땅굴과 관련한 기사는 확인되기 전까지는 신중히 다뤄야 하며 미확인 제4땅굴 기사를 게재한 워싱턴타임스지에도 항의한 바 있다. ◇이홍구통일원장관=남북회담에 참여하는 우리측 대표 선정기준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경륜과 능력이지 출신지는 아니다. 현재 진행중인 4개의 남북대화 대표단 21명중 북한출신은 4명에 지나지 않는다. 북의 권력계승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김정일과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남북간에 언론인의 교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정부의 입장이며 북한만 허용한다면 우리측 기자들의 북한방문 취재는 적극 허용할 방침이다. ◇정상용의원(평민)=지난 1월11일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김대중 총재가 제안한 북한방문 허용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밝혀라. 평민당이 북한방문을 요청하면 허락할 용의는. 사건 유형별ㆍ형량별ㆍ복역연수별ㆍ교도소별 반공법 또는 국가보안법 위반 장기수의 통계와 특히 70세 이상의 장기수 실태를 공개하고 고령자에 대한 전면적인 사면조치를 단행할 용의는. ◇박충순의원(민자)=미국의 대북접촉에 대한 정부측 입장은. 또 미국측으로부터 대북접촉에 대한 사전 협의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이 이뤄질 경우 이에 따른 대북한 전력감소와 군사력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계획을 밝혀라. 국방참모본부가 창설될 경우 군통합으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전력증대효과 및 예산절감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강총리=최근 일련의 남북한간 회담이 결렬된 것은 북한측이 동구개혁사태 이후 대화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회담을 판문점이 아닌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하는 문제는 남북고위예비회담이나 남북국회준비회담에서 본회담 장소를 서울ㆍ평양으로 합의했기 때문에 회담이 진전되면 실현될 것이다. ◇최외무장관=사할린교포 및 원폭피해자에 대해서 일본은 65년 청구권협정에 의해 국제법상 권리ㆍ의무가 소멸됐다고 주장하나 우리는 인도적 차원에서 일본측의 성의를 촉구하고 있다. 사할린교포의 모국방문은 일본정부의 일부 예산 지원아래 적십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6백명의 교포가 모국을 방문했다. 원폭피해자문제는 병원ㆍ요양시설 설립 등을 위한 일본측의 기금설립 문제를 논의중이며 조만간 성과를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동구권과의 수교에서 정부는 차관제공과 수교를 연계시키고 있지는 않다. ◇이국방장관=국방참모총장제를 채택할 경우 무기체계등 국방투자의 중복투자를 배제할 수 있어 투자효율성을 제고,예산절감과 전력증강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본다.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장소에 대해서 한미간에 어떠한 협의도 합의도 없었다. 용산기지의 대전이전설은 전혀 사실무근이다. 군사기밀보호와 언론자유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국회에서 심의중인 안기부법ㆍ국가보안법의 개정 추이를 지켜본 뒤 새로운 군사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마련,국회에 상정하겠다. ◇이통일원장관=북한의 선전극인 「꽃파는 처녀」ㆍ「피바다」와 같은 공연물의 상연은 앞으로 법과 제도의 개선에 맞춰 점진적으로 허용할 계획이다.
  • “안기부법 고쳐 정치적 중립성 보장” 28일 본회의(의정중계)

    ◎혁신정당 의회 진출 제도적 장치 마련을/직업공무원제 정착ㆍ공직 기강 확립 방안은 질문/지자제 선거 「공명」 보장,후유증 최소화/6공출범 이후 보안법 위반 구속자 6백12명 답변 ◇조세형의원(평민)=지난 1월23일 공보처장관이 3당합당을 찬양하는 성명을 발표했는데 장관은 정부 대변인인가 민자당 대변인인가 관련자를 문책하라. 6공화국 출범 이후 지금까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람은 모두 몇명인가. 시국과 관련,구속자 수를 구속사유별ㆍ직업별로 밝혀라. 헌병들이 민간인을 검문ㆍ검색한 것과 세계일보 기사와 관련,편집간부를 수사기관에서 연행,조사한 법적근거는. 비대여당의 출현으로 청와대는 행정부뿐 아니라 국회도 지배하고 사법부 독립이 위협되고 있어 유신과 5공식 현상이 복귀되고 있다. 총선과 지자제를 금년 상반기 동시 실시하자는 평민당의 제안에 대한 정부입장을 밝히라. ◇김정수의원(민자)=앞으로 국민통합의 정치를 본격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민주악법개폐와 시국관련 구속자의 대폭적인 사면ㆍ석방이 시급히 단행돼야한다. 보안법ㆍ안기부법 개폐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석방할 수 없는 시국사범의 기준은 무엇인가. 안기부와 보안사를 효율적으로 통제할 방법으로 국회내에 정보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총리의 견해는. 혁신정당의 출현과 의회내 진입을 가능토록 하는 제도적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매년 늘어가는 공직자의 비리ㆍ부정을 엄중히 다스리고 무사안일ㆍ무책임으로 해이된 공직자 기강을 쇄신할 방안은 무엇인가. 광주보상문제와 관련,민자ㆍ평민 양당이 제출한 법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박찬종의원(가칭 민주)=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이 선택한 여소야대를 거부한 것은 헌법적 쿠데타가 아닌가. 성역없는 5공수사와 중간평가를 약속한 노태우대통령의 선거공약은 어느 정도 이행됐는가. 3당통합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살포되고 구민주당 김모,구민정당 이모의원이 공안당국으로 불려가 반발자제를 요청받았다는 설이 있는데 그 진상을 명확히 밝혀달라. 지금의 정국구도가 보수와 혁신의 구도인가. 진정한 보수세력이 없는데 어떻게 혁신을 육성하나.◇강영훈국무총리=최근의 민생치안부재와 전세값 급상승 물가불안문제등 민생의 어려움에 대해 송구스럽고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나 이는 정치ㆍ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요구가 한꺼번에 폭발하면서 민주시민 질서가 정착되지 못한 데도 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각오로 민생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 국무위원들의 3당통합에 대한 지지성명은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새여당의 출현으로 정치안정이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정부의 정책수행을 지원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데 뜻을 모았고 관례에 따라 공보처장관이 이를 발표한 것이다. 시국사범 석방은 대상자의 행형성적 등을 고려해 적법절차에 따라 실시해왔고 앞으로도 이같은 원칙에 따라 고려하겠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한 특별가석방에서 누락된 장기수는 순수간첩,체제전복사범 또는 폭력ㆍ파괴사범인 것으로 알고 있다. 3당통합 사실은 노태우대통령이 연초에 야3당총재들과 연쇄회담을 가진 뒤에 대체로 알게 됐다. 통합 자체가 비밀로 추진됐다기 보다는 사안의중대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다뤄졌다고 생각한다. 지자제선거는 공명성이 보장되고 타락선거가 되지 않도록 하며 선거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 관련법이 마련되면 예정된 시기에 실시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은 새로운 정치상황에 부합되도록 전향적인 방향에서 검토하되 분단의 특수상황을 감안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반국가단체 개념은 국외공산계열을 대상에서 삭제하고 금품수수,잠입탈출 등의 죄에 있어서는 목적범으로 제한하는 방향으로 개정하려 한다. 안기부법은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인신구속에 있어 법적근거를 분명히 하며 수사업무는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 국회내에 정보위원회를 설치하는 문제는 국가기밀 누설이 국가안전보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특수상황을 고려할 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결문제라고 생각한다. 김구선생 암살사건 진상재규명은 40년 전에 매듭된 과거 사건으로 정부가 다시 진상조사에 착수한다는 것은 법률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광주피해자에 대한 보상금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하고 생활지원금은 국민성금으로 충당할 계획이나 부족액은 국고에서 보충하겠다. ◇김태호내무장관=민주당의 3일 부산집회와 관련,예비군 동원문제는 국방부 소관이라 알 수 없으나 대청소및 벽보철거문제는 실태를 잘 파악해 민주당집회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 ◇허형구법무장관=6공출범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숫자는 6백12명이다. 정치적 의미의 시국사범에 대한 통계는 집계하지 않고 있다. 화염병에 의한 폭력이나 폭력배에 의한 폭력 등을 구분해서 집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인권규약 가입은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동의안이 통과되면 신속히 가입토록 할 것이다. ◇윤재기의원(민자)=새마을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시대상황에 맞는 새로운 국민정신운동으로 전개해나갈 용의는 없는가. 공무원의 기강확립을 위해서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감사원을 국회에 이관,의회가 행정부를 효율적으로 감시감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공보처는 과거와 같이 국가시책을 선전하는것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북한의 생활실태를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사회에 소개해야 한다. 북한의 꽃파는 처녀ㆍ피바다와 같은 연극도 과감하게 공개,전체주의의 허구와 실상을 국민들이 체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라디오와 TV는 언제쯤 시청을 개방할 것인가. 좌경시국사범들에게 북한의 실상을 체험할 수 있게 수감기간을 북한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북한당국과 교섭할 용의는. ◇신기하의원(평민)=거대여당의 출현으로 정치사회에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정국의 불안은 여당이 소수일 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여당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했을 때 찾아왔다. 일본의 자민당이 재계의 압력으로 통합된 것과 같이 3당야합도 그 배후에는 재벌이 있다. 광주의거 희생자에 대한 배상 그리고 기념탑ㆍ위령탑ㆍ기념관 건립과 기념공원조성 등 기념사업 추진에 들어갈 비용에 대해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계획과 그 예산 확보내용을 밝히기 바란다. ◇오유방의원(민자)=국민들은 거대여당이 다수의 힘을 과신,권력에 안주하여 민주개혁을 소홀히 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국정쇄신및 민주개혁의지를 밝혀라. 정부는 호남 소외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종래 야당에게 해오던 안보정세브리핑과 같은 대야 정보제공 채널을 부활시켜 안보ㆍ외교ㆍ통일에 대한 중요문제를 초당적으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경제정책 등을 정치논리에 따라 운영,경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유의해야 한다. ◇강총리=남북한의 비밀접촉 여부는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국제관례에 비춰볼 때 시인도 부인도 않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 2월초 북한당국자의 서울방문은 금시초문으로 전혀 아는 바 없다. 감사원은 나라의 여건과 전통에 따라 입법부 산하에 두는 국가와 행정부 산하에 두는 국가로 대별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중점을 두고 대통령직속기구로 존치하고 있다. 내각제개헌은 정치권에서 이따금 거론되고 있으나 정부차원에서 검토ㆍ연구된 적은 없다. 정치체제의 변경은 헌법정신에 따라 국민다수가 원해야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3당통합 후 공무원에 대한 교육은 정국이 어떻게 변하든 공무원사회가 안정되도록 공무원상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지 3당통합 자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광주보상법」 통과에 대비해 지원및 대책 등을 준비중에 있다. 광주보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배상이 아닌 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내무장관=민생치안 확립을 위해 경찰인력장비증강 3개년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그동안 유흥업소의 심야영업단속 결과 금년 들어 작년 동기보다 강도 34%,절도 12%,폭력 18% 등 중요범죄가 감소하고 있다. 특히 심야범죄는 32%,경범죄는 33%가 감소했고 자정 이후 음주운전도 30%가 준 것으로 추정된다. 형사학교를 신설,수사요원을 전문화하고 과학수사연구소 지방분소를 부산ㆍ광주ㆍ대전 등에 연차적으로 설치해 나가겠다. ◇허법무장관=백화점 사기세일 관련자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올 수 있도록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 재소자들이교도소 내에서 악성범죄수법 등에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교도소 내에 분류심사과를 신설하겠다. 또 재소자들이 출소 후 사회적응 능력을 높이도록 하기 위해 고급기능 교육ㆍ외부출장직업훈련 등을 강화토록 하겠다. ◇이홍구통일원장관=남북 TV시청 개방은 공동체 형성을 위해 바람직하다. 우리쪽만의 TV시청 개방은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도 있으나 북한의 정치공세에 이용될 수도 있다. 남한의 사상범과 북한의 민주인사 상호교환은 실현 가능성이 간단하지 않다.
  • 차모로 니카라과 대통령 당선의 의의와 앞날

    ◎「선거혁명」으로 민주화장정 시작/미 외교 승리… 중미 좌익세력 큰타격/산디니스타 지지 군 향배가 변수로/새정부,경제난 타개 못할땐 도전 받을듯 25일 실시된 니카라과대통령선거에서 전국야당연합(UNO)의 비올레타 바리오스 데 차모로후보와 미국이 승리를 거두었다. 패배자는 지난 10여년동안 좌익 산디니스타정부를 이끌어 온 다니엘 오르테가후보와 중미의 좌익전체주의. 오르테가는 불과 선거 하루전만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를 훨씬 웃도는 큰 폭의 우세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패배는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결과가 나온 뒤 정치관측통들은 차모로후보가 낙승을 거둘 만큼 산디니스타정권의 존립기반이 취약해져 있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산디니스타정권은 10여년동안 농지개혁ㆍ문맹퇴치ㆍ보건수준향상등에 적지않은 성과를 남겼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콘트라반군과의 내전과 그로인한 경제난으로 지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경제난과 내전의 원인이 미국에 있다는 산디니스타정권의 주장보다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야당측 주장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차모로후보 승리의 뒤에는 미국의 지원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키 어렵다. 미국은 인구 3백50만에 불과한 니카라과선거에 5백만달러 이상의 자금을 투입,차모로후보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극우로부터 극좌에 이르기까지 무려 13개정파가 모인 UNO와 정치적 경험이 일천한 차모로후보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선거캠페인을 벌일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지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유엔,미주기구,카터 전 미대통령이 중심이된 국제선거감시단 등의 선거감시활동도 산디니스타정권의 선거부정을 봉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미국은 국내외의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전대통령이 85년2월 『현 니카라과정부가 물러나지 않거나 반혁명세력에 항복하지 않는 한 미국의 정책목표는 니카라과의 현정부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힌 것이나 부시대통령이 니카라과를 「가든 파티장의 스컹크」라고 비유한데서 보듯이일관되게 산디니스타정권 제거를 목표로 삼아 왔다. 미국이 지난해 12월 파나마를 무력침공,친미정권을 세운 것이나 니카라과에서 반군군사지원과 야당선거지원을 통해 친미정권을 세운것은 「미국의 뒷마당」중미에서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반미정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읽게 해 준다. 1926년 농민군을 이끌고 미해병대를 물리친 아우구스트 세자르산디노(산디니스타라는 명칭은 산이노를 기념키 위해 붙여진 것)를 1934년 암살한 소모사를 지원하면서 미국은 46년간의 우익독재정권을 지원해 준 대가로 미국의 이익을 보호받아 왔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차모로가 승리함으로써 미국의 대중미 지배력은 일층 공고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농촌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혁명노선을 추구해 온 중남미지역 좌익혁명세력은 정치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들의 민중혁명노선이나 「선거를 통한 혁명」(칠레와 니카라과)노선이 모두 결정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차모로정권이맞닥뜨려야 할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난. 비록 내전과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때문이라고는 해도 산디니스타정권은 1인당 GNP 7백70달러(87년),실업률 25%,인플레 1천7백%,외채 57억달러(89년)의 피폐된 경제를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오는 4월25일 출범할 차모로정권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과 미국으로 빠져나간 전문인력의 재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모로정권은 콘트라와의 휴전,야당이 된 산디니스타와의 정쟁등 정치적ㆍ군사적 갈등을 풀어나가야 하고 13개 정파의 연합체인 UNO의 허약체질도 차모로의 정치적 약점이다. 콘트라반군의 경우 미국의 지원을 받는 세력이기 때문에 휴전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반군의 귀환,정착문제는 적지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 산디니스타와의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정권인수과정에서 공식명칭이 「산디니스타민중군」인 니카라과정부군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산디니스타에 의해 장악돼 있는 노동조합등 사회제세력과의 마찰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 것인가,최대 단일야당이 될 산디니스타로부터의 정치적 도전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것인가 등등 풀기에 쉽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군이 선거를 통해 들어서는 정권에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겠지만 차모로가 군을 장악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차모로정권이 빠른 시일내에 가시적인 경제성과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변화를 바란 국민과 군,산디니스타로부터의 도전은 거세어질 것이고 그럴수록 미국에 대한 차모로의 의존도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니카라과 최근 10년 일지 ▲1979년 7월17일=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아나스타시오 소모사 장군의 독재정권 전복. ▲7월19일=오르테가와 차모로를 포함,5인으로 구성된 국가재건평의회 마나과에 도착. 다당정부 구성. ▲1980년 4월19일=차모르 여사와 알폰소 로벨로,산디니스타정권 비난하며 평의회 위원직 사임. ▲1981년 3월4일=온건파들이 평의회에서 제거되고 오르테가가 부각. ▲4월1일=미정부,니카라과정부가 살바도르 반군을 지원한다며 경제원조 중단. 미국은 뒤이어 산디니스타를 반대하는 콘트라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공언. ▲1984년 11월4일=오르테가,집권당 산디니스타와 함께 총선에서 승리. ▲1985년 5월1일=미,니카라과가 중미지역에서 침략을 자행했다는 이유로 대니카라과 전면 금수 조치 단행. ▲1986년 8월13일=미상원,콘트라반군에 대한 1억달러의 원조를 가결함으로써 오르테가 정권과 「사실상의 전쟁선언」감행 ▲1986년 후반∼1987년 초반=온두라스에 본거지를 둔 콘트라반군의 니카라과 침공 격화. ▲1987년 8월7일=중미 5개국 정상,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제의한 협상에 의한 무력분쟁 종결과 외국원조 중단에 의한 니카라과 평화안에 서명. ▲1989년 2월14일=오르테가대통령,중미정상회담에서 90년 2월25일까지 총선을 실시키로 하는 등의 니카라과 민주화조치를 발표.참가국들은 인접국들내 콘트라반군 기지들의 해체에 동의.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 소「민주사회주의 새 깃발」 올리다/고르바초프「도박」의 의미와 전망

    ◎정치개혁과 경제발전 연계 포석/재야흡수,온건진보정당 결성 가능성도/서유럽서 극동까지 대폭 군비축소 시도 1백40년 전에 카를 마르크스가 근로대중의 자기임금 되찾기 운동으로 제시한 공산주의 이념은 그로부터 70년후 소련땅에 현실로 적용됐다. 그런데 누구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공산주의 이념이 소련땅에 적용된지 정확히 73년이 지난 1990년,올해의 벽두에 그만 공산주의의 깃발을 내리게 됐다. 소련은 소수 민족자치령을 국가체제로 연합하면서 유럽국가중 후발대 국가로 형성된 제정러시아를 붕괴시키면서 시작됐다. 국민의 9할 이상이 저소득계층으로 구성된 농경사회였던 제정 러시아를 1917년 소수파인 볼셰비키가 과격 공산혁명으로 무너뜨렸다. 그후 토지 자본국가공영제,중앙계획경제와 통제배급제를 실시하고 서방세계와는 중공업위주의 군수산업으로 군비경쟁을 하면서 냉전구도를 이룩해 왔다. 레닌이 심장ㆍ뇌졸질환으로 조기에 사망하자 오히려 극단적 소수파로서 민주사회주의를 건국하려던 도덕성에서 정반대의 궤를그린 사회주의 파시즘을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역사발전의 맥락에서 가설적으로 제시한 근로자의 기대임금과 실질임금의 차액을 소수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빈부격차가 극대화된 자본주의가 성숙된 사회에 공산혁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한 논리는 소련에서는 해당될수 없는 그 당시 상황이었다. 즉,극소수 상업가ㆍ지주 외에는 성숙된 자본주의사회의 지표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중산계층이나 활발한 상업활동이 소련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스탈린은 정체된 후진사회를 성장시키기 위한 신축적인 경제활성화와 생필품위주의 산업발전 대신에 군수산업 위주의 중공업 육성에 정책선택의 최우선권을 부여했다. 스탈린의 명령없이는 전 사회가 움직이지 않았으며 하부구조 구성원의 창의성은 본질적으로 봉쇄됐다. 이와같은 자기모순의 공포사회가 스탈린 이후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말하자면 성숙된 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던 후진국 러시아의 풍토속에서 다원적 공산주의 이상은 스탈린 이후의전체주의 지배자들에 의해 침묵과 복종만을 강조하는 관료적 동원체제를 구사해온 것이 핸재의 소련사회이다. 현재의 소련사회는 순발력없는 저능 거인이며 실질적 파산선고를 내린 회사와 같다. 중지한 부실기업이며 저능거인은 기초운동과 기초이론 학습부터 시작하여 거듭 태어나야 하고,부실파산회사는 처음부터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구조적으로 재조직ㆍ관리돼야 한다. 바로 여기서 개혁,재조직(Perestroika)과 만인에게의 공개성(Glasnost)을 강조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스탈린 후기세대의 대표주자로 새로운 사고를 가진 고르바초프가 통치권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소련사회의 변혁은 미시적으로 볼때 원초적으로 빈곤했던 소련이 군사대국 유지로 인해 더욱 피폐된 생필품 절대빈곤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시장경제원리 도입,사유재산의 인정으로 민중봉기 일보직전의 긴박한 경제빈곤의 고리를 풀자는데 있다. 그런데 그같은 경제빈곤 해결은 주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전체가 새로운 생산기풍을 진작하는 자발적 노력의지가보여야 하는데 국민은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그리고 지성인을 비롯한 여론주도계층에서는 공산당 통치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현상황에서 그같은 노력은 아무리 신사고를 가진 개혁의지에 불타는 개혁주의자가 있다고 해도 개혁은 무위로 끝날수 있다. 인구증가와 같이 서서히 로가리즘적으로 누적되어온 소련의 사회경제침체는 아무리 자유와 개방ㆍ개혁이 뒷받침돼도 하루 이틀에 성취될 일이 아니다. 여기에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의 자발적 총의를 민생문제 해결 위주의 경제발전에 연계하려는 전략포석으로 이미 동구에서 시행돼 오고 있으며 고르바초프가 원거리에서 보호해준 바 있는 다당제 도입ㆍ자유경선ㆍ시장경제 원리도입,그리고 국가원수의 직선제 등을 도입하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로서는 그의 정치적 주사위인 대통령 직선제에 출마하여 국민의 직접 신임을 얻음으로써 지속적 정치경제사회 개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90년 초인 이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85년에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래 현재까지가 개혁의 신호탄을 올린 시기라면 90년대는 개혁의 실적을 경제사회적으로 보이는 행동단계라고 보겠다. 고르바초프는 미국이 응하든 않든 서유럽에서 이제는 극동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군비축소를 국내정치맥락에서 자의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또한 조만간 28차 당대회를 치르고 난후 그는 공산당을 해체하거나 구조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여 이에 걸맞은 당명 또한 새로이 변경하면서 어쩌면 수면위에 부상하는 재야조직을 흡수하여 의외의 인물로 충원하는 새로운 온건진보정당을 조직할지도 모른다. 볼셰비키 소수 급진공산당이 해체된다고 해서 공산당 통치의 러시아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러시아 사회가 소수민족의 자치도 인정하면서 제국주의적 영토팽창에 눈돌릴 수 없는 내치의 민주화ㆍ경제활성화에 당분간,적어도 2000년 이후까지 정책집행에 우선권을 유지하는 역사의 긍정적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노력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인 정치국원이나 참모들은 과거 공산당의 보수적 당관료가 아닌데 그들의 전직은 해외근무 특파원,대외경제 전문가,기타 국내 각분야에서 개혁에 불타던 깨끗한 도덕정치를 표방하는 인물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당면문제를 다룰때 소련 역사의 방향을 다원화된 민주사회주의 국가로 그 키를 돌리는 역사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믿고있다. 혹한기를 피할수 있으며 대서양과 발트해를 접하고 있는 정치ㆍ상업ㆍ관광도시인 레닌그라드의 옛 이름은 성 페테르스부르크시였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공산혁명의 진원지가 된 이후로 레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레닌그라드(레닌시)라고 명명하였는데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치가 90년에 정착돼 2000년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을 본따 고르비그라드(고르비시)로 부를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또 이렇게 예상하는 서방인에게 소련인은 처음으로 빙그레 웃음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 벼랑에 선 공산주의/변혁물결 집중탐구:2

    ◎동구개혁은 「인민 민주주의」 퇴장의 서곡/불 제2혁명기의 「주권민주주의」 몰락과 상통/“인간의 생사 지배한 폭압”이 빚은 역사적 귀결 지난해 유럽대륙의 서부와 동부에서는 큰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서쪽 프랑스에서는 「혁명」 2백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거국적으로 거행되었고,동쪽에서는 보다 압도적인 광경들이 세계의 숨을 죽이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냉전의 장벽이 터져 나는가 하면,부쿠레슈티의 펠리스 광장은 대학살을 수반한 내전끝에 얻어진 국민의 정치적 소생으로 열기가 가득했다. 유럽대륙 양편의 그 사건들은 모두가 세계사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사람들의 눈과 귀는 주로 동쪽으로만 쏠리다시피 하였다. 동쪽에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주는 놀라움이나 충격이 훨씬 큰것이었기 때문이리라. 프랑스 혁명 2백주년과 그 대단원의 막은 아직 내려지지 않은 상태인 동구의 드라마,그것은 서로 별개의 사건일까. 이 물음을 풀어보는 것은 동구의 변혁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의미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급진혁명논리 무장 「프랑스 혁명」은 흔히 유럽대륙에서 최초로 시민국가의 탄생을 가능케한 자유주의적 시민혁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알고 지나쳐 버릴수 없게 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혁명의 전개과정이 단일한 이념이나 노선으로 시종 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님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크게 두 단계로의 가름이 가능한데,그 첫단계를 헌법국가를 세우기 위한 혁명(1789∼1791)이라 규정한다면,그 다음단계는 헌법국가를 부정하기 위한 혁명(1792∼1794)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시기적인 구분을 한다면 전자는 제1차 혁명이 되고 후자는 제2차 혁명이 된다. 「제1차 혁명」은 인권의 기본이념이 되는 민주적 헌법국가의 건설이 그 과제였다. 당시 국민의회는 스스로 「제헌의회」임을 선언하고 봉건제도의 폐지,귀족과 시민의 법적 평등,귀족특권의 폐지를 의결하고(1789년8월5일) 인권선언을 채택했으며(1789년8월16∼26일),헌법심의와 문안작성에 2년을 투입한 끝에 1791년9월3일 헌법을 의결하였다. 18세기 정치적 계몽주의의 정수를 이루었던 인권과 권력분립과 민주주의가 이 헌법속에 담겨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그 이념적 모태였다고 할수 있다. 이 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주권자의 존재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어느 일부의 국민이나 어느 일개인도 주권의 행사를 전유할수 없다」는 명문규정이 있기도 하려니와 권력분립이란 원리는 주권자의 존재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해서 국민주권을 부정한것은 아니었다. 「주권은 불가분,불가양이며 시효에 의하여 소멸하지 않는다. 주권은 국민에 속한다」 국민주권은 명시적으로 선언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권은 「헌법제정권력」이란 의미에 국한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일단 헌법이 제정되면 헌법속에 해소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은 주권의 담지자일뿐 그 행사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헌법은 1년도 채 안가서 도전을 받는다. 1792년8월10일 파리코뮨(파리시 평의회)에서 시작된 「제2차 혁명」이 발발한 것이다. 이 혁명의 주도자들(로베스피에르 그룹)은 인권과 권력분립에 기초한국법을 파기하고 인간의 절대적인 「해방」을 추구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관심사는 국가권력의 제한이 아니라 그것의 극복이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이 관철하려고 한 것이 곧 「주권적 민주주의」였다. 이것은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라는 이상을 그 전제로 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별이 없어지고 만인이 모두 지배자가 되는 경지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대표」의 원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고,완전한 자유는 이러한 동일성에서만 기대될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은 현실의 국가에서는 실천이 될 수 없는 이상이요 극단적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동일성 또는 완전한 자치라는 것은 그것이 순수한 이상으로 고양될 경우 오히려 권력국가적 현실을 전체주의적 테러로까지 고양시키는 것도 허용하게 된다. 동일성이라는 목표가 성취될때까지는 거기에 이르는 도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또는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사람,곧 「진리의 엘리트」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현실을 규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혁명재판소」(인민재판소의 일종으로 원고와 재판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의 설치(1793년3월10일),「공안위원회」의 구성(1793년4월6일),신헌법 발효의 연기(1793년7월),「용의자 법률」의 의결(1793년9월17일ㆍ이 법률에 의해 테러가 합법화됨) 등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논리가 관철되어 나가는 표현들이었다. 1793년10월10일 국민공회는 마침내 「공안위원회」에 무제한의 권력(주권)을 부여하는 수권법을 정식으로 공포하기에 이른다. 1789년의 혁명으로 사라졌던 주권자가 명실공히 재등장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혁명전의 주권자가 군주였었는데 비해서 이제는 민중의 「참이익」 옹호그룹이라는 것이다. 이듬해 6월10일 사형이 「혁명재판소」의 임의적인 권한에 속하게 되고 시민이 섬겨야할 「교리」까지 도입되었다. 「국민복지의 관리자」들은 생사여탈권 뿐만 아니라 생존자의 신앙문제를 결정할 권리까지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1789년 인권의 이름으로 시작된 대혁명이 그 인권의 절대적인대립물로 변화되고 만 셈이다. 국가가 진리와 인간의 생사와 신앙영역까지 마음대로 지배하기에 이르렀으니까. 이와 같은 야만성의 극치는 다름아닌 「주권적 민주주의」가 초래한 현실적 귀결인 것이다. 1794년7월24일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추종자들이 치열한 권력투쟁에 패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짐으로써 혁명은 일단 막을 내린다. ○“인민의 옹호자” 강변 「주권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대단원이 막을 내리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것인가. 동구사태를 눈여겨 보면 유럽지역내에 있어서 그것은 차우셰스쿠의 몰락이 분기점으로,말하자면 퇴장의 시작으로 인정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프랑스혁명의 저 급진적 시기의 혁명논리 위에 구축된 국가의 주권자였기 때문이다. 루마니아의 로베스피에르로서 그도 처형되는 순간까지 『인민의 이익의 옹호자』임을 주장했다. 2백년의 시간을 상거해서 발생된 역사적 사건이 이념사적 견지에서 동질성을 지닌 것임은 분명해졌다. 양자가 공히 주권자의 현존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를 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프랑스 「제2차 혁명」 시기의 「국민의회」는 오늘의 민주적 집중제(De­mocratic Centralism)에 있어서의 소비에트(평의회)의 모범이 된 것이고,「혁명재판소」와 「공안위원회」는 각각 인민재판소와 전위당(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전례가 된 것이다. 「노동계급과 모든 근로대중의 이익」이라는 상투어는 프랑스 제2혁명 그룹의 전가의 보도였던 「민중의 참이익」의 복사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백년 전이나 오늘이나 좌파혁명의 그 주도자들은 「진리의 엘리트」임을 선전한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가 루소의 「국교」를 「도입」했듯이 레닌ㆍ울브리히트ㆍ차우셰스쿠는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국교로 도입했다. 요컨대 프랑스 제2혁명기의 「주권민주주의」는 동구 공산권이 신봉해온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혹은 「인민민주주의」)의 원형이라 보아도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 발상지 파리에서 1871년 「파리코뮨」을 통해 50여일간 득세를 한 적이 있고 1917년의 러시아혁명을 계기로 해서 역사의전면에 다시 등장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새 현형 등장 주목 이렇게 보면 「프랑스대혁명」은 2세기동안 서로 각축하면서 현대사를 각인해 오다시피한 민주주의의 두 이념형의 최초의 경쟁이 시발을 본 사건이고,1989년의 동구의 변혁은 2백년에 걸친 이데올로기적 세계시민전쟁의 두 주역중의 하나가 드디어 힘이 부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는 징조로 보면 될것 같다. 그것이 금세기가 다 가기전에 현실적 생명력을 끝내 상실하고 정치이념서적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것인지,아니면 모종의 새로운 현형을 등장시킴으로써 존속을 계속할 것인지 금후의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확실해지고 있는것은 폴란드ㆍ동독 혹은 체코등 인민들이 메시아주의적 전통의 멍에로부터 빠져나와 경험주의적이고 함리주의적인 방향으로 계몽과 성숙을 성취해 나가고 있는 나라들의 경우 「민중주권민주주의」는 주권자의 현존을 전제로 하는 경제체제(계획경제체제)를 대동하고 서서히,그리고 쓸쓸히 무대의 뒤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정수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문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교육철학 및 정치교육학 연구(교육학 박사) ■서독 튀빙엔 대학 연구교수(정치교육학 연구) ■민주 이념연구소 소장 ■저서=▲민중과 혁명논리 ▲한국대학생의 실존적 좌절
  • 동구 「피플파워」공산종주국에 역류/모스크바시위 배경과 파장

    ◎더딘 변화 불만… 중앙당에 개혁 압력 일당독재 폐지와 민주개혁을 요구하며 수십만의 시위군중이 일요일 하루 모스크바시내 중심가를 가득 메웠다. 지난 한햇동안 동유럽에서 민주화 「혁명」을 주도한 힘은 기본적으로 시민들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힘이 마침내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에까지 밀어닥친 것이다. 전체주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시민의 힘은 이제 거대한 하나의 시대정신이 돼 버렸다. 이번 일요일의 모스크바시위는 그 규모나 내건 요구사항들로 볼때 이전에 가끔있었던 소규모 개혁지지 시위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면이 많다. 개혁을 요구하지만 단순히 고르바초프를 지지하는 시위도 아니다. 공산당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세력이나 지도적인 재야단체가 없는 가운데서 20여만명의 군중이 모였다는 사실은 고르바초프가 이끌고 있는 개혁의 정도와 현체제에 대해 일반시민들이 품고 있는 불만의 정도를 짐작케 한다. 89년 동유럽을 휩쓴 시민운동을 가능케한 것은 크게 보아 서구 복수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자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각을 가능케해 준 것은 직접적으로는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된 개혁과 개방의 새물결,간접적으로는 현대적인 매스미디어에 의한 여론형성,기술의 발달,물질적 욕구증대,그리고 인권의식의 신장등 여러 요인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시민혁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간 누적된 공산주의의 폐해라는 토양이 이 혁명의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이 혁명의 기운은 공산당 지도부내에서 동조자가 나오면서 재야지도자 일반시민들 사이로 급속히 번져 나갔다. 그리고 루마니아를 제외하고 동유럽의 구공산지도자들은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평화적으로 권력을 시민들에게 넘겨주었다. 덴마크의 언론인인 아스거 라슨씨는 이들을 진정한 용기를 가진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물론 이들이 무력을 쓰지 않고 물러난데는 소련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동독과 체코에서는 무력동원을 고집하는 완고한 지도자들이 소련의 설득으로 권력을 내놓았다. 소련군이 주둔하지 않는 루마니아에서 비극적인 유혈진압이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이런 설명을 뒷받침해 준다. 그러나 1년 전만해도 동유럽에서 이런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개혁파 지도자들이 스탈린주의 종식과 새로운 시장경제질서로의 편입을 위해 조심스런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독 체코 불가리아 루마니아에서는 타락한 구체제의 지도자들이 결사적으로 버티며 혼란의 씨를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의 위기가 증대되기 시작한 80년대에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기운이 동유럽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75년에 체결된 헬싱키협정과 79년 교황요한 바오로2세의 폴란드방문은 이지역에 인권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비폭력ㆍ민주주의 이념에 기반을 둔 시민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를 처음으로 구현시킨 것이 폴란드의 자유노조였다. 자유노조는 81년 불법화된 이래 8년여를 인내와 타협으로 계엄이라는 구체제의 통치방식을 이겨냈다. 체코에서는 「7ㆍ7헌장」의 정신이 젊은 지식인ㆍ노동자들에게 자유와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심어 주었다. 역설적이지만 소련은 동유럽의 이러한 혁명을 시작한 장본인이면서도 상대적으로 가장 낙후된 정치체제를 유지해 오고있다. 소련지도부가 헝가리ㆍ폴란드의 뒤를 따를지 체코ㆍ동독,아니면 루마니아의 뒤를 따를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이번 당중앙위 총회에서 다루어질 내용은 사회주의의 근본원칙에 메스를 가하려는 작업이다. 앞으로 경제면에서 과감한 개혁이 추진되면 인플레ㆍ실업ㆍ임금동결 등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필요로 할 부분이 산적해 있다. 이러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선 우선 정치체제면에서 「제2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과감한 개혁이 이번 당중앙위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소련사회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모스크바의 「일요일 항의」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시민혁명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 벼랑에 선 공산주의/변혁물결 집중탐구:1

    ◎시장경제ㆍ다당제로의 전환 몸부림/「노멘크라투라」군림에 국민불만 폭발/레닌의 국가론에 반하는 개혁 불가피/동구 자유선거 실시땐 공산당 붕괴는 시간문제 동구와 소련의 격변이 거듭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서방의 시각은 여러갈래며 또한 심상치 않다. 공산주의 내부 모순을 극복해 가는 개혁의 소용돌이라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위기적인 모습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는 공산권의 변혁을 국내 학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교수),박명호(국민경제제도연 연구위원),안정수(경희대교수),박영호씨(한신대교수)등 네분의 다양한 입장의 분석을 차례로 소개한다. 1,공산주의채택 이전으로의 복귀 공산주의국가들이 사회주의 이념을 국가의 통치원칙과 경제운영방식으로 채택한 것은 소련이 종주국가로서 1917년 볼셰비키혁명 때였던 것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경우 2차대전이 종결된 1945년 이후 약 반세기 걸친 현실 사회주의 기간이다. 독일 제3제국과 일본군국주의를 패망시킨승전연합국중 하나인 소련은 전리품으로 할당받은 동유럽 국가에서 해방군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공산주의를 심는데 성공하였다. 전후 귀국한 런던망명정부 요인들과 기존브르좌 정당 및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한 첫번째 선거에서 소련에서 훈련된 공산당원들은 소수밖에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으나 소련은 이들을 보안담당 내무 및 국방등 주요부서에 심어 놓고 비공산세력을 제거하여 결국에는 친소정권이 수립되어 공산화되도록 하는 수법이 활용되었다. ○팽배한 반소사상 이와 같은 과정은 독일점령군에 저항하여 독립을 쟁취할 유고슬라비아와 내전을 통하여 공산화할 중국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유럽국에서 예외없이 거치게 되었는데 국민들이 원치않는 공산체제를 외세에 의하여 불가항력적으로 채택한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동유럽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주화 추세는 본래의 희망이 충족되어 공산화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 가는 순리에 따른 역사적 흐름이다. 소련영향권에 속한 나라들에 있어 반소사상이 팽배해 있는 현상은공산주의를 강요한데 대한 적개심의 발로이다. 또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라는 공산국에서 기대했던 「근로자의 열광된 노동」이 있어 본적도 없는 사실은 공산이념의 본질적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선견지명때문에 난처한 입장에서 구제되었다고 보겠다. 그는 1987년 11월 볼셰비키혁명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소련공산당은 동맹국의 정책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간의 관계가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그는 또한 1988년 12월 유엔총회에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나라사정에 맞는 노선을 채택할 수 있다고 연설하여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을 재확인하였다. 이러한 정책변화를 선언해두지 않았던들 소련은 동유럽동맹국들이 시장경제와 다당제를 채택하여 고삐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할 명분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망령을 다시 불러들여 무력을 동원하여 간섭할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극히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긴장완화의 산파로서 서방진영에서 높이 평가받고 동유럽에서는 개혁을 허용한 유공자로서 「고르비선풍」을 일으킬 만큼 인기가 높고 소련에게는 체면을 살려준 선각자이다. 2,개혁의 복합적 원인 독일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하여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의 변천은 역사적 법칙으로 어느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으며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오늘날 공산권에서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의하여 잘못된 예측의 결과이었음이 증명되고 있다. 정치이념으로 무장되어 전쟁까지도 불사하도록 만들었던 장본인인 마르크스가 수모를 피할 수 없게 된 이유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의 복합적인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침체ㆍ낙후만 초래 공산주의 정치는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정당이 국가위에 군림하여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는 제한성을 애초부터 갖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뜻이 제대로 정치에 반영될 수 없다. 따라서 통제와 감시가 주된 통치수단이 되고 국민들의 불만은 축적되어 기회만 있으면 터질 수 있는 상태에까지 발전하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 중앙계획통제체제속에서 당지도부에서 국민경제행위를 엄격한 규격속에 묶어 운영한 결과 침체와 낙후만을 초래하였다. 국민에게 생활의 질을 높여주기 위하여 과감한 경제개혁이 불가피하게 되었는데 이제는 자본주의와의 체제경쟁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시장경제를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주의국가에 있어 이론상의 지배계급은 노동자와 농민이며 이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공산주의 정당을 통하여 특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근로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국민은 하층계급을 형성하고 당간부 및 정치ㆍ경제 엘리트로 구성된 지배층에 대층되는 만년 서민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론과 실제가 다른 현실에 불만족하는 국민의 울분이 축적되어 과감한 개혁만이 문제해결의 방법이 되었고 신흥귀족으로 형성된 「노멘크라투라」를 혐호하는 국민감정은 개혁을 가속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3,시장경제로의 변화 마르크스는 사회경제발전 이론속에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변천하기 위한 조건을 제시하고 사회주의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선언하였는데 레닌과 스탈린이 이를 바탕으로 공산주의 중앙계획통제 경제체제를 확립하였다. 일사불란한 지휘체제속에 움직이는 이제도는 제한된 자원과 노동력을 단기간안에 동원할 때에는 그런대로 효험이 있었으나 경제구조가 다양화되고 국제협력이 확대되면서 필요로하는 활력을 주지 못하여 침체만을 유발하는 제도로 탈락하였다. ○개인 창의성 결여 중앙계획제도가 풍부한 천연자원과 잠재노동력을 가진 광활한 땅 소련에서 조차 쓸모없는 것으로 낙인찍힌 것은 고르바초프가 집권한지 1년만인 1986년 2월 개최된 27차 당대회에서 과감한 경제개혁을 강조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계획된 수량생산에만 치중하고 시장ㆍ분배ㆍ서비스ㆍ판매에는 소홀하며 개인창의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결여된 이 제도가 통용된 사회주의권 전체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신속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시장경제체제가 오늘날에는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국민을 잘 살게 해 주는 특효약으로 받아들여지고 사회주의권 공동번영을 위하여 소련에 의하여 적극 권장된다. 시장경제 체제로의 개혁은 처음 헝가리에서 1968년 니에르쉬 사회당수(당시 경제연구소장)의 제창으로 시작되었는데 헝가리가 사회주의 국가중에서 최초로 작년 2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하여 북방정책에 첫번째 결실을 맺게 했던 나라라는 점을 고려할때 헝가리의 진취성은 모든 분야에서 돋보인다. 4,다당제의 채택 공산주의 국가들이 일당독재 통치를 하면서 이론적 받침대로 삼아온 레닌의 국가론을 보면 국가는 사회주의 건설을 계획하고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그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지배계급인 노동자층의 전위기능을 가진 공산주의 정당의 교시에 따라서만 통치되도록 되어 비공식 정당의 정치참여가 사실상 금지된다. ○일당독재 쇠퇴 그러나 알바니아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가들이 금년 상반기안에 자유선거를 실시하여 작년에 시작된 정치개혁을 제도적으로 마무리 지을 계획을 세워놓고 있어 다당제 채택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소련에서도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명시한 헌법6조를 개정하기 위한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현재 개최중에 있다. 자유선거가 실시되면 공산주의정당은 자연 소멸하거나 최소한의 의석만을 갖는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것이 분명하다. 폴란드에서 공산국으로서는 처음으로 작년 6월 하원의석의 35%만이 허용된 제한적 자유선거가 실시되었을 때 자유노조가 의석을 석권함으로써 국민들이 공산당을 발붙이지 못하도록 혐오한다는 사실이 나타난 바 있다. 이는 헝가리공산당이 사회민주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었고 동독ㆍ불가리아ㆍ체코에서도 공산당이 체질개선을 서두르도록 만들었다. 피를 흘린 혁명에 의하여 차우셰스쿠 정권이 타도된 루마니아에서도 총선거가 실시될 계획으로 있어 모든 동유럽 국가에서 다당제가 채택된다. 5,이념에서 떠나 군사ㆍ경제적으로 결속 동유럽국가 사람들이 「동유럽」이라는 표현을 싫어하고 「유럽」혹은 「중부유럽」으로 불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공산주의 체제가 열등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인식되어지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결속하는 응집력을 상실했고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집착해 볼만한 이념으로서의 매력도 잃었다. 소련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로 새로운 사태발전에 능숙히 대처하고 있듯이 공산권의 질적 변화를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에 동조하는 것으로 수용할 것이다. 소련은 폴란드의 마조비에츠키 비공산내각이 바르샤바조약기구와 코메콘의 회원국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서약한 예를 다른 동맹국의 새정권에도 요구할 것이다. 작년7월 부카레스트에서 개최된 바르샤바조약 군사자문위원회에서 소련은 통합의지를 강하게 부각시켰고 회원국의 탈퇴불가 원칙을 재확인한 바도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코메콘회원국간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고 나라별 개혁이 기구구조와 일치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1992년 완성될 유럽공동체 시장단일화에 적응키 위한 공동시장 건설이 적극 추진된다. ○집단결속력 상실 동유럽국가들이 다투어 추진하는 시장경제와 다당제채택은 국민들의 열망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후퇴란 있을 수 없다. 한번터진 봇물은 막을 수 없으며 만약 전체주의적 보수세력이 저항한다면 이는 역사적 추세를 거스르는 것이므로 루마니아에서와 같은 피를 흘리는 혁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병철 ■서울대독문과졸 서독쾰른대(정치학) 수학 ■서독 본 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독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서독 라인차이퉁(일간신문)기자 ■저서=▲자주외교론 ▲통일을 위한 동서독관계의 조명 ▲변모하는 공산권
  • 오늘의 유럽 판도 어떻게 변화할까/아스거 라슨(해외 특별기고)

    ◎동구개혁 새 지도… 희망과 혼란 공존/「고도」 알바니아 붕괴는 “시간문제”/민주에 목말랐던 시민들,새 지도부 불신/민족갈등 표면화… 불확실성으로 치달아 『다음 차례는 어느 나라일까』 지난 6개월동안 전세계 언론인들은 바로 이러한 심정으로 소련과 동유럽에서 일어난 혁명적인 변화들을 지켜보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동유럽에서 유일하게 남은 스탈린주의의 요새는 인구 3백50만의 소국 알바니아 뿐이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나라는 유럽의 최후진국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 혁명의 속도에 놀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지난해 12월22일자 서울신문 기고문에서 작가인 인권운동가 바클라프 하벨을 체코의 차기 지도자로 부각시켰던 것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글을 쓴 뒤에 하벨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경제건설등 난제로 현재와 같은 속도로 사회주의와 마르크시즘이 붕괴돼 간다면 지금 쓰는 이 글이 신문지상에 실릴때쯤 알바니아도 온전치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놀라운 변화의 속도는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새로이 심각한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어떤 모습의 세계가 새로 만들어질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자유가 인류의 궁극적인 선이라는 서구민주주의적인 입장에서 볼때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붕괴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붕괴 사실만 가지고 최고의 이상적인 세계질서가 성취되었다고 할 수 는 없다. 새로 자유를 되찾은 모든 동유럽국들에 있어서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비록 이들 나라에 공산주의가 또다시 통치제도로 도입되리라고 믿을 사람은 없지만 아직은 불안하다. 풀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민주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하고 건전한 경제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민족간의 갈등과 반목을 푸는 문제이다. 동유럽과 소련내 많은 국가ㆍ공화국이 이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위태위태한가는 1월초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공식적인 외교일정을 취소했을 때 그대로입증되었다. 그 일로 인해 세계 최대의 도쿄증권시장에서 주가급락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소련에서 진행되는 자유화 과정이 어느 때라도 반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국제 재계의 우려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동독과 루마니아에선 새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여전히 넓게 자리하고 있다. 한달전 니콜라이 차우셰스쿠 부부의 처형으로 루마니아의 압제정치는 일시에 막을 내린것 같지만 이와 관계없이 새 지도부에 대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는 수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민과 강제이주ㆍ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종교적인 대립과 관련돼 있다. 1월 한달동안 소련내 많은 지역이 정치적 불안상태에 놓여 있었다. 가장 심각한 곳은 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이다. 이들 지역에서는 공산당이 모스크바 중앙당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가 하면 주민 모두가 소연방으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소연방에서의 분리독립 요구가 거세지면 그것은 분명 고르바초프의 개방ㆍ개혁정책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소연방의 약체화라는 것은 공산당내 보수파들에게 개혁주의자 고르바초프를 타도할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연방공화국들의 불만은 수세기전 구차르왕정의 전제정치 때부터 계속된 러시아인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래 72년간 알게 모르게 당해온 폭압과 테러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는 것이다. 구 러시아제국을 지배한 러시아 민족은 소연방 곳곳에서 여전히 지배 이민족으로 간주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발트해 3국뿐이 아니고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멘 우즈베크 타지크 키르기스 그리고 카자흐 공화국 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러시아인 지배체제에 항거해 주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어떤 곳에서는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도 공산주의세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고 서반구에서 현재 마르크스주의 정부가 유지되고 있는 곳은 쿠바와 니카라과 뿐이다. 그외에 공산주의를 통치원리로 고집하고 있는 나라들을 손꼽자면 베트남ㆍ중국ㆍ아프가니스탄ㆍ몽고 그리고 북한 정도가 있을 뿐이다. ○후퇴론은 거의 없어 세계지도는 이제 다시 그려지고 있다.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극적인 저항은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새 희망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과거 선명하게 실체를 드러내던 「적」이 사라짐으로써 서구의 지도자들은 이제 누구와 함께 정치ㆍ경제적인 문제들을 논의해야 할지 알기 힘들게 되었다. 2백여년 전 독일의 군사전략가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모든 작전중에서 가장 힘든 것이 「후퇴」라고 말한바 있다. 독일의 작가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씨는 클라우제비츠의 이 후퇴론을 동유럽의 변화에다 적용시켰다. 그는 군사작전에서 후퇴와 꼭 필요한 경우 패배의 길을 택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클라우제비츠의 후퇴론을 이런식으로 공산정권 변혁기의 인물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스스로의 권력을 내놓는 사람보다는 권력을 잡기위해 몰두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온게 우리사회이다. 그런 점에서 엔첸스베르거 식으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쁠것은 없다고 본다. 이런 「고차적」인 정의론에 화답하듯 몇몇 독재자들의 동상과 기념물들이 철거되었다. 스탈린의 대형동상이 곳곳에서 부서졌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상징인 낫과 망치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직도 일반국민들의 희생을 디디고 전체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 정권을 세워놓고 개인숭배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자들이 있다. ○하벨 신망 본받아야 이들 모두 언젠가는 스탈린의 동상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다. 일생동안 개인숭배를 강요한 절대 독재자일수록 그의 몰락은 더욱더 돌연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다시 한번 바클라프 하벨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고통과 겸손속에 원하지 않는 사이 권력에 접근해간 사람이다. 엔첸스베르거가 말한대로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한 영웅은 물론 아니다. 그는 항상 뛰어난 용기로 자유를 위한 투쟁을 일관되게 전개해 왔다.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보다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더 귀하게 여긴 사람이다. 1968년부터 1989년말까지 하벨의 작품은 그의 조국 체코에서 금서로 묶여 있었다. 하지만 서구에서 그의 희곡작품 「선전」(1967년작)은 거의 20년간 공연돼왔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관료주의와 권력의 횡포에 대한 신랄한 풍자는 끊임없이 화제에 올랐다. 「선전」에서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관료주의가 묘사되고 있다. 권력을 쥔 자들은 신종 인공언어를 개발해 모든 사람을 혼란에 빠뜨려 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말을 해독하기 시작할 때쯤이면 또다시 새 언어를 개발한다. 그리고 권력자들의 작위성이 법을 대신할 때 이 언어는 권력자들의 좋은 동지가 된다. 이 작품의 정신이 앞으로 체코의 새 대통령 바클라프 하벨을 지켜줄 것이다.
  • 고르바초프의 무덤에는… /임춘웅 국제부장(서울칼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실각설이 나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소련내 인종분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과연 살아 부지할 수 있을 것인지,나아가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입방아들을 찧고있던 터였다. 고르비(고르바초프의 애칭)의 실각설은 그 진위가 어떻든 아무래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의 실각은 그가 줄기차게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의 후퇴를 의미하고 그동안 우리가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던 동구의 변화 물결에도 영향을 미칠게 뻔한 일인 때문이다. 더욱이 페레스트로이카가 조성해 주었던 동서간 화해분위기나 평화 무드에도 얼마간 찬바람이 일게될 것이다. 확실히 그는 세계의 스타다. 누구도 그사실에 이의를 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미국사람들까지 80년대의 인물로 그를 내세우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그뿐이랴. 스타가 없는 세상은 아무래도 재미가 덜하다. 일이 이쯤되고 보면 그의 신변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요즘 세계의 소련문제전문가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제가끔 한마디씩 하고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애당초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는 둥,고르바초프는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의 페레스트로이카는 동구권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이라는 둥…고만고만한 얘기들에서부터 아주 상반된 전망까지 고르비의 운명이 다채롭게 조명되고 있다. 실패론의 선두는 역시 미국의 학술계간지 디덜러스(DEDULUS)겨울호에 실려 화제가 됐던 「Z」의 분석이다. 공산주의는 스스로 개혁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는 실패할 수밖에 없고,그런 측면에서 자유세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도울 수 없으며 도와봤자 결국엔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는 논리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본 취지는 개혁하자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공산당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지도해야 하는 체제의 논리에 역행하는 결과가 된다는 얘기다. 기실 고르바초프가 추진했던 페레스트로이카도 공산당 지도하의 개혁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견해로는 소련의 지배엘리트들이아무리 개혁에의 열망에 불타고 있다해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과를 거둘 만큼 과감한 변혁을 허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분석이다. 소련공산당의 지배상실과 소연방의 해체,나아가 세계무대에서의 힘의 상실로 이어질 개혁의 길을 소련지도자들이 스스로 택할 수는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은 성공쪽을 본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진행돼 버렸다는 관점이다. 그것은 고르바초프나 소련ㆍ동구의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 흐름이라는 견해다. 그 누가 저처럼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소련의 군부내 보수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켜 고르바초프를 몰아내고 다시 중앙통제 체제를 강요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뿐 페레스트로이카를 더욱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논지도 편다. 그것은 일시적인 반동일뿐 반동은 페레스트로이카의 힘에 다시 밀리고 그렇게 되면 소련사회는 본질적으로 뒤바뀌는 사태로 급전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논쟁들인지도 모른다. 고르바초프의 실각따위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고르바초프의 권좌가 무너졌다고 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절되리라고 보는 것은 명철한 시각이 아니다. 고르비는 페레스트로이카가 불가피했던 동구사회의 현상을 대변했을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한계를 말하고 대안이 없음을 지적한다. 우리는 여기서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레스트로이카는 기존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스탈리니즘,다시 말하면 좌익 전체주의에 대한 자성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는 본질적으로 해체기능을 할 뿐 그것 자체가 대안을 수반하거나 동구사회를 재통합하는 기능까지 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은 해체의 시기인지 모른다. 해체의 시기에는 해체될 뿐 바로 재통합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해체의 속도,해체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점들이 충분히 드러난 연후에야 대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붕괴되고 있는 동구가 재통합의 에너지를 얻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고르바초프 스스로도 그의 페레스트로이카가 빚어내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에 대해 아무런 대안이 없음을 고백한 일이 있다. 그는 지난해 소련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에 쓴 「사회주의사상과 혁명적 페레스트로이카」란 글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고 자문하고 『페레스트로이카는 끝을 알 수 없는 정치적 프로세스일 뿐』이라고 자답했다. 어떤 학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효과가 20년 후에나 나타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체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이미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금세기 마지막 남은 인류의 적인 좌익 전체주의를 무너뜨린 거대한 공적을 이미 남긴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의 기저는 인간화,자유화다. 자유와 휴머니즘은 인류가 추구하는 영원한 가치다. 고르바초프는 실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의 실각여부와 관계없이 페레스트로이카는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먼 훗날 그의 무덤에는 빨간 장미꽃 다발이 끊이지 않고 꽂히게 될 것이다.
  • 살얼음판위의 고르바초프 통치

    경제침체와 최근의 인종분규로 지난 85년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는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실각가능성을 점치는 소련 전문가들의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 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의 운명이 걸린 그의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미국과 서구가 군축협정의 형태로 도탄에 빠진 소련경제를 도와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그렇지 않을 경우 고르바초프는 민중봉기로 3개월내 거세될지 모른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미소관계위원회 사무국장인 아서 메이시콕스와 스웨덴 경제학자 앤더즈 이슬런드씨의 기고문 요지이다. ◎소 문제 전문가 미 콕스,LA타임스 기고/위기에 빠진 소경제 미ㆍ서구지원 시급/SDI 중단땐 정치적으로 큰 도움 발트해 연안국들이 독립을 요구하고 있으며 소련군은 아제르바이잔인과 아르메니아인들이 서로 살상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고,동구 또한 서로가 다른 길로 치닫고 있을 뿐 아니라 소련의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이같은 와중에서도 고르바초프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세계에서가장 임기응변의 재주가 있는 정치가로 부상한 고르바초프를 능가할만한 사람은 아직 없다. 민주주의로 향한 그의 정력적인 노력에도 불구,소련공산당 안에서 절대다수의 지지를 상실하게 되면 그는 실각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성공하기 위해선 경제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진전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하기위해선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군비축소 협정이란 형태로 소련을 도와주는 것이 시급하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와 민주화를 이만큼이라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같은 일은 KGB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커다란 사상을 담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불변의 계획은 아니다. 고르바초프는 반대세력으로부터 그의 개혁정책의 추진속도가 너무나 느리다고 호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는 공산당의 실체를 바로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위대한 정치가들처럼 그는 균형을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미 민주주의 쪽으로 상당히 깊숙히 전진해 갔다. 인민대표회의의 구성과 운영,소련 최고회의는 의회민주주의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계규정들은 아직 공산당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도록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대표들은 비밀투표 방식으로 선출됐다.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는 일반대중에게까지도 민주주의를 택하도록 요구하게 될 것이다. 글라스노스트는 통신혁명이 소련사회 전체에 확산될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이에따라 대중적인 직접 행동주의도 만연하고 있다. 부시 미국대통령은 고르바초프의 생존시 미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바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리더십에 대한 감도 못잡고 거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느린 행보로 가고 있다. 부시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기를 바란다면서도 그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시는 아직도 백악관 참모진,국방부,보수적인 두뇌집단,군사관학교 및 많은 대학을 지배하고 있는 낡은 사고의 소유자들의 희생자라 할 수 있다. 이들 소련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가 정권을 잡은 후 줄곧 모든 면에서 과오를 범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소련의 신사고의 역동성을 믿지 못했거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행정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을 바란다면서도 다른 분야에서마저 구시대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북경의 전체주의 정권에 대해선 최혜국대우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으나 소련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 만약 부시행정부가 소련을 더이상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고르바초프는 상당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는 미국측이 SDI(전략무기방어구상)와 같은 무기계획이 의미하는 군사적 압력을 중단하게 된다면 정치적으로 상당한 혜택을 입게될 것이다. 그는 과학적인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소비재생산 쪽으로 돌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폭넓은 군비축소에서 가장 커다란 혜택을 입게될 것이다. 다시말해 미국측의 도움은 고르바초프는 과연 살아남을 것인가란 질문 대한 답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스웨덴 이슬런드교수,워싱턴 포스트 기고/3월 지방선거 이전 정치적 운명 가름/군부 개입…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높아 소련의 경제는 서방측이 알고있는 것보다 급격하게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국민소득은 88년에 비해 5%가 감소했고 올해는 10%가 감소할 전망이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은 확실한데 문제는 그것이 혁명이냐 반혁명이냐이다. 경제위기는 소련지도부가 점진적이며 포괄적인 경제개혁안을 채택한 87년 여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초기부터 경제개혁안은 근본적인 결함을 내포했다. 그것은 개혁주도자들과 급격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지도자들과의 타협의 산물이었다. 지난해 10월 고르바초프의 수석 경제개혁 주창자인 레오니드 아발킨 부총리가 91년까지 자유가격체제,부동산 소유및 매매등의 진정한 시장경제 체제 도입을 목적으로한 급진적 개혁안을 내놓았을때 크렘린의 대결이 시작됐다. 보수파의 중심세력인 레닌그라드 공산당은 11월 반격에 나섰고 12월 중앙위회의에서 아발킨의 급진적 개혁안이 거부되고 리슈코프가 제안한 대안이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리슈코프의 대안은 3년동안 중앙통제 경제체제를 더 실시하고 93년부터시장경제체제를 발전시키자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는 현명하게도 리슈코프의 안이 실패할 것을 알고 리슈코프에게 거리를 두고 있다. 소련의 경제침체를 초래하는 것은 무엇인가. 첫째는 원자재의 심한 부족이고 둘째는 행정의 사실상 미비 때문이다. 원자재난이 너무 심하기 때문에 소련인들은 일할 기분을 느끼지 않고 있다. 상부로부터의 지시도 거의 없지만 지시가 있다해도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고르바초프는 왜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 있는가. 소련의 경제개혁에 대한 주요 장애가 최고위층의 정치적 저항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르바초프는 집권 5년이 됐지만 12명의 정치국원중 국제정책담당인 알렉산더 야코블레프와 외무장관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등 2명으로부터만 전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최고 이론가인 바딤 메드베데프와 KGB의장인 블라디미르 크류치코프는 조건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총리 리슈코프,중앙위 경제담당서기 니콜라이 슬륜코프,국가계획위 위원장 유리 미솔유코프등 3인의 정치국원들이 중도파로서 정치국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이 주요 경제정책을 입안하고 있는데 중도파들은 소련경제의 완전한 시장경제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가 경제개혁추진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정치국에서 그의 개혁안에 대한 과반수지지를 얻지 못한데 있는 것이다. 아울러 고르바초프는 방대한 관료조직의 저항을 깨부수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85년 중앙정부조직을 1백60만명에서 1백10만명으로 대폭 줄였고 계속 살빼기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관료들이 완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 소련에는 몇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그중 첫째는 보수파들이 정치국을 완전 장악한 후 진정한 보수파를 내세우기에는 힘이 약하기 때문에 중도파인 리슈코프를 잠정적인 후계자로 앉히는 것이다. 보수파들의 결정적인 패배를 가져올지 모르는 3월 지방선거이전에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소련은 더 큰 혼란으로 빠져들어 궁극적으로 군부가 개입,아프간의 최후 주둔군 사령관인 보리스 그로모프 키에프지역 군사령관이나 육군참모총장인 발렌틴 바레니코프를 지도자로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 다른 시나리오는,고르바초프가 3월의 지방선거이후 당에 대해 실망했다고 선언하고 당서기장직을 포기,국가원수직만을 갖고 진정한 고르바초프 혁명을 지휘하는 것이다. 몇년만 지나면 글라스노스트는 폴란드의 경우처럼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오래 권좌에 남아 있으면 소련의 장래회복은 쉬워질 것이다.
  • “북한체제 「변화의 움직임」태동”/카네기재단,「북한과의 대화」분석

    ◎“남한서 공산혁명 불가능… 남북한 공존 추구”/북한학자 4명,통일방안에 유화적 제스처 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정치적 격변을 겪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 변화의 움직임은 평양에서 태동하고 있다고 미국의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이 8일 전망했다. 카네기 재단은 작년 5월말 워싱턴에서 북한학자 4명과 미국정부ㆍ학계 등의 한반도문제 관계자 20여명이 비공개로 진행했던 「한반도 긴장완화 심포지엄」의 토론내용을 「북한과의 대화」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간,공개하면서 이같이 요약했다. 이 보고서는 동구와 중국의 최근 사태는 한반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말하고 심포지엄에서 평양국제문제연구소의 김종수 부소장을 단장으로한 북한측 참가자들은 『이제 남한에서 공산혁명은 불가능하며 평양은 자본주의 남한과 공존할 준비가 돼있음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평양을 두차례 방문한 바 있는 카네기재단 수석연구원 샐랙 해리슨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북한의 공공연한 군축 양보태세,즉 주한미군철수를 조건으로한 국방비 삭감용의,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제관계를 맺기 위한 자유화 조건,남한의 정치ㆍ경제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내용의 연방제 통일방안 등에는 『워싱턴과 서울을 향한 놀랄만한 유화적 자세가 나타나 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미ㆍ북한 전문가간의 이 토론이 군비제한 조치와 남북한 화해에 관한 가능한 타협의 윤곽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주한미군철수 조건의 타협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새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미측 참가자들은 1988년 북한이 제의한 3개년에 걸친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와 이와 병행한 남북한 군사력의 동시 감축방안에 대해 『워싱턴과 서울이 보다 긍정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은 또 북한제의에 대한 수정제의를 통해 미군철수와 남북한 상호감군이 진행될 경우 이의 개시와 더불어 38선으로부터 남북한군이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미측 주장을 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 이 문제는 앞으로 미ㆍ북한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토의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일문제 토론에서 미측은 하나의 군대와 두개의 자치정부를 가진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의 타당성에 한결같이 의문을 나타냈으나 일부 인사는 주권을 가진 두개의 공화국이 초기엔 각기의 군대와 외교정책을 유지하다가 단계적으로 연방정부에 권한을 넘겨주는 김대중씨의 「공화국 연방제」에서 좋은 타협안이 찾아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측은 「고려연방제」가 현실적이라고 강조하며 김대중씨의 방안은 연방의 개념을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검토될 수 있다고 동의했다. 서울과 평양의 접촉방식에 대해 북한측은 남한 민중의 통일열망을 반영하기 위해 정부ㆍ비정부 차원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미측은 모든 교류를 강력히 통제하고 있고 전체주의 사회인 평양이 정부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하려는 남한 야당인사들을 초청함으로써 2중 기준을 적용하려 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틀간 계속됐던 이 토론에서 북한측 참가자들이 가장 많이 되풀이한 발언은 ▲군비제한 토의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태도가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의도를 의심케하고있다 ▲미국은 과연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것인가 ▲펜터건은 소련의 극동전략에 대응하는데 주한미군을 필요한 요소로 보는가 ▲서울은 상호 감군에 응할 태세와 군사대결을 종식시킬 태세가 돼있는가,아니면 미국의 고무아래 군사적 우위를 계속 추구할 것인가 등이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 「90년대 개혁바람」 어떻게 불까(해외특별기고)

    ◎“동구국,새 사회주의 모델 개발 박차”/“「과거체제」에 실망”… 재생가능성에 회의적/다당제ㆍ개방화등 「새질서」형성기 될듯/안정확보ㆍ갈등해소위해 대통령중심제 채택 예상 지금 동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혁명이라는 말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89년초까지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ㆍ중국은 지금까지 지켜온 체제의 근본원리 즉 당의 지도적 역할이나 재산의 국가소유,마르크시즘 등을 유지한 채 부분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개혁으로는 사태를 호전시킬 수가 없었고 오히려 더 악화시켜 놓은 결과가 되었다. 과거의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갖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회주의하에서의 개혁과 사회주의의 재생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다. 기존의 지배계층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급격히 떨어졌고 동독ㆍ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에서도 폭발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질적변화 추구 시급 89년 가을 동독에서 터져나온 시민운동은 마침내 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에 잇따라 변화의 불을 댕겼다. 헝가리ㆍ폴란드에서 수개월,혹은 몇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들이 불과 몇주만에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질적인 변화없이 부분적인 개혁만으로는 구체제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질적변화란 진정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보장해줄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사회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부터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개인의 발전이 보장되는 가운데 경제ㆍ학문ㆍ문화등 전체의 발전이 추구되는 사회의 실현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명령식 행정통제 체제의 해체와 함께 정치와 이념에서 교조주의와 이상주의를 몰아내야 한다. 경제와 정치분야 모두에서 이러한 질적변화가 요구된다. 중국의 경우는 경제와 이념분야에서의 개혁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할 때의 위험을 잘 보여주었다. 그것은 개혁과정 전체를 복잡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그것을 역류시킬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민주제도는 시장의 형성과정에 그 바탕을 두어왔음을알 수 있다. 반면에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자체의 변화가 다른 분야의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시장경제로 나가기 위해서도 권력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가지 점에서 90년대는 동유럽에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형성기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양한 소유형태와 자유경쟁에 바탕을 둔 시장,그리고 다당제와 의회주의를 포함한 정치적 복수주의,광범위한 민주주의와 개방화,이념의 다양성,자유와 휴머니즘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이 회복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헝가리,동독,체코 같이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고 있는 국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체제의 토대를 이미 마련해 가고 있다. 반면에 유고,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속에 첨예한 대결상황에 놓여있는 다민족국가들은 보다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변혁의 와중에 들어있는 국가들은 모두 의회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진정한 의회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에 달려 있다. 명실상부한 자유선거에 의거한 공권력의 형성,대의원들의 완전한 활동보장,그리고 3권분립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중 많은 나라들이 정권이양기에 안정을 확보하고 갈등을 해결키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할 것이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는 권력의 의회로의 이양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적시한 헌법조항이 폐기되는가 하면 복수권력체제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동독,체코,불가리아,그리고 유고의 일부 공화국들도 뒤이어 이같은 작업에 들어갔다. ○공당,권력독점 포기 이러한 변화의 과정들을 우연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발전단계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로 간주되어야 한다. 앞으로 헝가리,동독,체코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될 경우 폴란드에서와 같이 공산당이 패배를 당할 수도 있다. 공산당은 이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과감한 개혁과 함께 권력독점을 포기해야만 한다. 공산당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냐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에 대한 일반국민들이 갖고 있는 실망감을 고려해 볼때 「헝가리식 개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공산당과는 결별하되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이데올로기적인 대결상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단기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애국주의와 서구지향적인 실무형 인사들,다시 말하면 급진파와 진보주의자들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전개될 것이다. 새로운 복수정당체제가 만들어지고 의회ㆍ국가기구에서 함께 실질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들은 시급히 경제개혁을 시도할 것이고 이는 불가피하게 사회적동요를 야기케 될 것이다. 이러한 개혁과정의 성공여부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적절한 정치적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느냐에 상당부분 달려있다. 여기서 사회주의 세계는 사회변혁을 위한 독자적인 길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서구식 변화모델은 이 경우에 적합치가 않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가치들을 유지하면서상품경제체제로 점진적인 전환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많은 경우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동시에 통화나 가격,국내시장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정부는 인기없는 조치들을 함께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이러한 조치들을 참아내 줄 것이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러한 조치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빌미로 다시 독재정권을 수립하려는 기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도기 단계에서의 이러한 우여곡절이 현재 동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장 민주주의에로의 일반적인 흐름자체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동유럽이 서방의 발전모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몇나라에서 비공산세력이 지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 나라가 자본주의국가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 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회주의와 집단주의,그리고 국가의 「보호우산」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일반국민들의 욕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재산제를 다른 소유 형태로 바꾸기는 극히어려운 일이다. ○국제관계 호전될 것 이런 점을 무시하면 엄청난 사회혼란만 야기하게 된다. 현재 동유럽에 있는 많은 반대 세력들도 인식상의 차이가 있을뿐 사실은 사회주의 이상의 영향권 내에 있다. 현재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성격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2분법적 사고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이 새로운 사회는 보다 다른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민주적 사회주의,아니면 인간적 사회주의라고나 할까. 이 새로운 사회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평등주의에 입각해 자유시장에 대해서도 어떤 제약을 가해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화들이 일어난다면 국제관계는 어떻게 될까. 동유럽에서의 변화로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세계가 이루어질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다. 「유럽공동의 집」이 이에 대해 밝은 전망을 약속한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간의 경제 정치적 관계도 변화될 것이다. 양측의 협력관계는 완전한 평등과 시장관계를 통한 상호이해,그리고 지속적이고 안정된 동반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올레그 보고믈로프 △1927 모스크바생 △1949 모스크바 무역연구소 졸업 △1967 모스크바대 교수 △1980 사회과학아카데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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