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차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지영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운영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해외 IB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선주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683
  • 북한 군부쿠데타 가능성 희박/일지,한국군 시뮬레이션 보도

    ◎부대마다 정치장교 배치… 동향 감시/대대급 이동땐 보고 필수… 꼼짝 못해 김일성이 죽은 북한에는 그의 아들 「김정일시대」가 열리고 있다.김정일체제의 최대의 관건은 군부와의 관계라 할 수 있다.군은 과연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계속할 것인가.아니면 반기를 들 것인가.그러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군의 심리작전담당부서가 최근 북한에 군사쿠데타 가능성에 대한 시뮬레이션(도상연습)을 실시한 결과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산케이(산경)신문이 20일 서울발로 보도했다. 쿠데타의 최대 걸림돌은 각부대에 배치된 정치장교.권력중추와 연결되어 있는 정치장교들은 각부대내 감시망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감시망을 피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감시망의 눈을 피해 전술적으로 최대한 순조롭게 세력을 모았다고 가정해도 쿠데타 성공의 최소단위라 할 수 있는 연대규모(약1천여명)로 쿠데타를 시도할 경우 그 성공률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쿠데타 부대가 사단규모(약1만명) 정도면 성공률은 거의 1백%.그러나 군출신 망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1개대대(약3백명)를 이동하는데도 인민최고사령관(김정일서기)의 결재가 필요하기 때문에 권력핵심부가 모르게 부대를 이동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부대에서는 권력에 충성심이 강하고 병을 지휘하는 장교를 어떻게 장악하는가가 최대의 과제다.그러나 1개 연대에는 40∼50명의 장교가 배치되어 있으며 사단에는 장교수가 더욱 많기 때문에 그들 모두를 「배반」못하게 하며 쿠데타에 가담시키거나 속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장교와 일반병 사이에는 더욱이 충성도가 높은 스파이가 비밀리에 배치되어 있는등 부대 전체가 상호 감시체제아래 놓여 있다.특히 장교에 대해서는 출신지역을 고려,지역적 반발심을 이용한 상호견제의 교묘한 감시망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돌출행동은 극도의 심리적 규제를 받는 시스템이다. 김정일은 군부 장악을 위해 인민군의 「참모부」「정치부」「정치안전부」등 3개의 감시루트를 통해 「1일3전」이라고 불리는 보고체제를 만들어놓고 있다.사단장등 지휘관 장군들의 동향은 인민무력부의 「총정치국」에서 파악되며 총정치국은 당조직지도부의 감시를 받고 있다. 북한의 군은 정치 우선의 당지배이며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개인숭배를 강조하는 사상교육에 의한 이데올로기 통제가 강하기 때문에 쿠데타등 군부에 의한 정치적 반란이 일어나기 어려운 체제이다. 최근 망명자가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루마니아 사태를 거울 삼아 일반부대와는 별개로 김일성·김정일 직속의 친위대로 있는 「호위총국」의 병력을 1개군단(3개사단규모)에서 2개군단으로 증강했다.호위총국은 본래 김부자의 신변·관저·별장등을 경비하는 부대이다.하지만 최근에는 미사일·방공전투기·전차등으로 중무장,군의 반란에 대비한 대규모 진압부대로 바뀌었다.그러한 친위부대의 전력증강도 쿠데타를 어렵게 하는 요소라 할 수 있다.
  • 평양시내 40㎞ 운구… 2백만 광적 애도/김일성 장례식 이모저모

    ◎곳곳 전군 수십대 배치… 경비 대폭 강화/김성애·평일모자 TV서 모습 안보여 김일성의 장례식은2백여만명에 이르는 평양주민들의 광적인 애도 속에 치러졌다고 북한 방송들이 보도. 이날 상오 10시께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을 출발한 운구행렬은 금성거리∼영웅거리∼보통문∼천리마거리∼통일거리∼옥류교∼김일성광장 등 평양시 일원의 40㎞의 시가지를 지나 주석궁으로 되돌아가 영구는 다시 이곳에 안치됐다.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이날 릴레이식 녹음중계로 사이사이 조곡을 내보내면서 운구행렬이 지나는 연도의 근로자와 군인 및 학생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도. 남녀 아나운서들은 『하늘과도 같고 태양과도 같은 수령님,우리들의 효도를 받지 못하고 그렇게 간단 말입니까』라며 울음을 터뜨려 말끝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이날 영결식에는 오진우인민무력부장,강성산정무원총리,이종옥·박성철·김영주·김병식부주석,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 등 장의위원 전원이 참석,김정일의 건재를 과시. 김일성의 시신이우리의 장례풍속과는 달리 다시 주석궁에 되돌아옴으로써 특수처리된 그의 시신은 영구보존될 것으로 관측됐다. ○…북한은 이날 장례식 식순과 운구행렬의 코스는 물론 장지까지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으며 해외홍보 TV용 장례장면도 검열을 거쳐 하오 3시가 넘어서야 첫송출. 이와 관련,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이날 『운구행렬에 사용된 관이 주석궁에서 김일성 시신을 담고 있던 수정관이 아닌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 ○…운구되기에 앞서 수정관 속에 안치된 김일성의 시신앞에는 공화국영웅메달과 노력영웅메달등 생전에 그가 받은 각종 훈장과 메달들이 놓여있었고 시신옆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정일」 명의의 화환이 배치. 김정일은 당정군간부들을 대동한채 식장에 들어서 곧바로 김일성시신앞으로 가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참배.이 순간 엄숙히 서있던 참석자들은 큰 슬픔과 비애에 젖어 가슴을 저미며 흐느꼈다고 북한TV가 보도했으나 김성애·김평일 모자의 얼굴은 끝내 비치지 않아 주목. ○…김일성 영구가 평양시내 주요 시가지를 지나는 동안 연도에는 주민들이 몰려나와 『수령님 못 가십니다』를 외치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고 북한방송들이 보도. “인민의 심장속 영생” ○…북한방송들은 이날 중계방송을 마치며 『김일성 수령의 심장은 비록 고동을 멈추었으나 수령은 인민들의 심장속에 영생할 것』이라며 앞으로 김정일을 혁명무력의 최고지도자로 받들어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할 것이라고 강조. 또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를 비롯한 김정일 찬양가요를 집중적으로 방송해 영결식 시작전 조곡 일변도의 애도분위기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목. ○…미국 CCN방송은 이날 하오 북한방송국이 그들의 의도대로 촬영,편집한 녹화실황을 장시간에 걸쳐 방송. CNN방송에 따르면 영결식을 마친 뒤 김주석의 시신이 들어있는 검은 관은 붉은 천으로 절반이 덮인 채 흰꽃으로 지붕을 단장한 검은 리무진 위에 놓여 출발. 운구행렬이 김정일의 배웅과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주석궁 정문을 빠져나가자 국가장의위원 등 상당수의 북한 당정군 고위 간부들은 손으로 눈물을 닦기도. ○…북한은 김일성의 장례식을 앞두고 경비강화를 위해 지난 17일까지 평양시내 요소요소에 전차를 배치했다고 일본 요미우리(독매)신문이 한국 정부소식통을 인용해 19일 보도. ○…운구행렬의 길 양쪽으로는 평양교외및 지방에서 올라온 시민들이 늘어서 통곡하면서 애도하는 모습들. 한 외교관은 광장곳곳에 종이조각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이 운구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에서 밤을 지샌 것같다고 전언. ○…김일성의 장례식은 거창하게 치러질 것이라는 일반의 예상을 뒤엎었다. 평양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는 한 중국기자는 서울신문 북경지국과의 전화통화에서 『오늘 영결식은 주석궁을 출발한 운구차량이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를 거쳐 김일성광장까지 간 후 다시 주석궁으로 되돌아오는게 전부였다고 전언. ◎단동·연길·도문서 본 북표정/북상사원 「조문귀국」 차량 이어져/“TV속 김정일 다리 절고 있었다” 김일성주석의 영결식인 19일 요란한 평양의 추도분위기와는 달리 단동·연길·도문등에 머무르고 있는 상사원등 북한의 요원등은 조용한 가운데 북한직영 음식점 등에 모여 자체 추도식을 갖고 업무를 준비하는등 정상을 되찾아가는 모습. 또 평양·회령 등에 있는 북한의 국영상사들도 전화나 팩시밀리를 통해 중국측 무역담당자들과 중단된 무역업무를 논의하는등 사실상 업무를 재개. 단동에서 북한과 무역업무를 해온 김모씨(42·단동시 신안가)는 『22일 북에서 사람이 나와 철강재 등을 인도해 주겠다고 전화로 통보해 왔다』고 전언. 단동시와 연길시에 남아있는 국가상업부소속 협동무역회사·고려무역회사 직원들도 19일 『그간 무역이 이뤄지지 못해 안됐다.내일부터 사업을 다시 논의하자』고 정상적인 무역활동 재개를 중국측 상대방에 통보.도문에 무역사무실을 두고 있는 한 조선족 무역업자도 북한의 거래업체(국가직영)에서 21일부터 정상업무를 재개하며 사업논의를 위해 22일쯤 상담원들을 파견하겠다고 전해왔다고 설명. 단동시 중국국제여행사 양기선 부경이도 『북한측이 김주석사망 이후 단절됐던 단동∼평양간 단체여행코스의 재개를 통보해 왔으며 여행단의 입북도 이미 허가했다』며 『오는 24∼25일쯤부터 2백∼5백명에 이르는 대규모 관광단의 입북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썰렁한 신의주쪽 모습과는 달리 신의주가 내려다보이는 단동시의 압록강공원과 철교에는 쌍안경을 이용해 북한쪽을 살피는 여행객들로 만원.또 압록강을 오르내리는 중국측 유람선도 관광객들의 요구에 따라 신의주쪽에 다가서서 항해하는 모습. 한편 단동과 도문등 북한과의 접경지대에서는 북한의 중앙TV를 시청한 조선족들이 이날 영결식장에 나타난 김정일이 약간 저는등 거동이 불편한 모습이었다며 김정일의 와병설에 관심을 기울이는 표정.
  • 이스탄불/처녀의 탑(아랍서 지중해까지:8)

    ◎바다위 돌탑… 안개에 싸여 “섬뜩”/아테네때 조망대로 건립… 콘스탄티누스대제의 딸이 뱀에 물려죽은 전설 간직 이스탄불의 서안에 있는 돌마바체궁전 앞에서 그 탑을 처음 보았을 때 마음이 이상하게 섬뜩했다.탑은 이스탄불의 동안인 위스퀴다르지역의 바다 한가운데 희뿌연 안개를 휘감고 솟아 있었다. 궁전 앞에서 만난 택시기사의 설명에 의하면 터키말로 「KizKulesi·처녀의 탑」으로 불리는 그 탑은 본래 아테네의 알키비아데스에 의해 살라케해안의 조망대로 세워졌으나 1857년이후 지금까지는 등대로 이용되어왔다고 한다.하지만 그 설명은 내 마음을 스친 섬뜩한 신비감과는 무관한 듯했다. 그뒤 탑은 두번다시 내 앞에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마치 바닷속으로 자취를 감춘 듯. 우리가 탁심거리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이 도시에 와서 무기같은 것이 내 속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껴요.저것이 눈앞에 보이는 것인가 하고 보노라면,그 너머에서 또다른 환영이 어른거려요.시공의 음영속으로 마음이 휙휙 감기는 기분이랄까」 내 얘기는 일행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사실 내 얘기는 주변분위기와 아주 동떨어진 것이었다. ○1백40년간 등대로 터키의 젊은 남녀들은 튀김닭이나 감자칩을 씹으며 콜라컵에 꽂힌 스트로를 빨면서 미국팝송에 맞추어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창밖으로 붉은 색의 이층버스와 노란색의 택시들이 줄지어 지나다녔고,어느 빌딩의 외벽에 설치된 실물모양의 대형넥타이는 이제 이스탄불이 더이상 코란을 정신적 지주로 삼지 않는다는 전시같았다(물론 지금도 이슬람은 여러 민족의 피가 뒤섞인 터키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동질성이다). 케말 아타튀르크는 연합군으로부터 자주권을 챙취한 뒤 서구화에 박차를 가했다.그는 이슬람계파에게 재갈을 물린 반면 라틴알파벳의 표기를 의무화했고,여성들에게 피선거권을 부여했다. 케말이 사망한 지 56년이 지난 오늘 대부분의 터키국민들은 그가 회교정통파들에게 맞서 자본주의경제이념을 받아들임으로써 터키의 경제사정이 다소나마 나아졌다고 믿고 있었다. 「돈이 조금 더 많아지면 그만큼 생활이나아지는 것이다」 대낮에도 탁심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그러나 정작 상점안에는 주인들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신호텔의 수납일을 보는 타신씨에 의하면 최근들어 이스탄불을 찾는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어 불경기라고 했다.쿠르드족의 폭탄테러로 3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 때문이다. 로터리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는 젊은이중 한 사람에게 테이프가게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안내까지 해주고 나서 양품점의 상호가 찍힌 카드를 내밀었다.필요하면 연락해달라고 사뭇 신사답게 돌아선 그가,일행들이 터키의 민속음악테이프를 고르는 꽤 긴 시간 상점앞에 서 있었다. 탁심거리를 메운 인파중에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시골청년이라고 한다.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두리번거리며 관광객을 찾고 있었다.상점에 손님을 끌어다주고 받는 약간의 돈이 그들의 벌이였다. 이 거리에서 고도 이스탄불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것은 협궤를 오가는 백년 나이의 전차뿐이었다. 그런데카데시로 불리는 전찻길주변으로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어느 샛길에서 「처녀의 탑」이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났다. ○탁심가 인파 가득 저녁식사후 영화칼럼을 쓰는 L씨의 제의로 터키영화를 보기로 했다.영화관을 찾는 일은 마치 미로를 더듬는거나 다름없었다.길을 묻고 또 물어 골목 깊숙이 파묻혀 있는 영화관에 찾아가보기를 서너차례,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영화관에서는 「필라델피아」 「피아노」 「쉰들러 리스트」같은 미국영화 일색이었다.그중에 아무거나 한 편을 보아도 좋으련만 L씨는 한사코 터키영화여야 한다고 우겼다. 길도 꼬불꼬불,L씨의 막무가내의 고집까지도 가세해 선자리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숙한 미로 한복판… 언제부턴가 영화간판들,불이 환하게 밝혀진 텅빈 로비,행인들이 주고받는 이방의 언어,어둠속에서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이 실제이면서 환영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생시가 아니라 꿈속 같다.나의 몽롱한 의식속으로 한 남자가 푸른 물길 저편에서 노란 노를 저어오고 있었다.그는 자주빛 소파에 앉은 채로 노를저어왔다.나는 그 괴상한 포스터 앞에서 한동안 발이 묶여 있었다.내 의식은 그가 노를 저어오는 푸른 물빛으로 물들었다. 블루,블루,여기는 어디일까.그로부터 얼마 뒤였다.우리가 여러번 지나친 골목 한가운데서 짙은 블루 색조의 영화포스터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 「Kiz Kulesiasi klari(처녀의 탑으로)」 농염한 키스신을 클로즈업시킨 그 영화의 제목이었다. 갈라타다리를 건너거나 해안을 지나칠 때마다 줄곧 찾아도 물속으로 가라앉아버린 듯 다시는 나타나지 않던 탑. 그럴 법했다.그것은 미로 깊숙한 데서 길을 잃어버릴 때만 나타나는 전설이었다. 콘스탄틴대제에게는 몹시 사랑하는 딸이 하나 있었다.왕은 그 딸이 뱀에게 물려 죽게 된다는 얘길 듣고 딸을 탑으로 피신시켰다.왕은 그 탑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뱀이 접근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그러나 뭍에서 가져간 과일바구니 속에 숨어 있던 뱀이 물어 공주는 목숨을 잃었다. 오스만시대에 나무로 재건축된 이 탑은 화재로 타버린 뒤 아메드3세때 돌로 다시 복구되었다. 영화관안은 물이 가득 찬 수조를 연상시켰다.커튼도,의자도,바닥도 모두 청색이었다.아들의 부축을 받고 머리 흰 노인이 천천히,아주 천천히 푸른 통로 사이로 걸어왔다.관객은 열 사람 남짓했다. 청색커튼이 미끄러지듯 양쪽으로 갈라지며 하얀 스크린이 나타났다.바깥세계와 전혀 다른 시간이 열린 것이다.40대의 남자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가고 있다.바다에는 비바람이 불어 파도가 뱃전을 때린다.남자는 오래된 탑의 모형을 소중하게 들고 있다.사공이 남자를 등대에 내려주고 뭍으로 돌아간다.남자는 등대꼭대기에 있는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오래전부터 비어 있은 듯 그 방에 있는 모든 것 위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다.녹이 슨 철침대,침대옆 벽에 걸려 있는 등대지기의 제복·모자,침대아래 놓여 있는 신발·벽거울·책상과 걸상… 모든 것이 등대지기가 살아 있을 때 그대로다. 남자는 모형을 책상위에 내려놓고 서랍을 열어본다.오래전 날짜의 소인이 찍힌 엽서 한장과 일기장. 남자가 일기장을 펼치자 내레이션이 깔린다(터키말이므로 뜻을 알 수 없다.그러나짐작컨대 그의 딸에 관한 얘기인듯).남자는 일기장을 반쯤 읽다 말고 자기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본다.거울에 나타난 얼굴은 그가 아니라 오래전에 사망한 등대지기다.두려움에 사로잡힌 채로 남자는 등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등대지기의 환영을 계속 뒤쫓는다.환영을 쫓는 사이 남자는 환생한 등대지기로 바뀐다. ○오스만때 재건축 그러자 그의 발길은 저절로 탑의 구석에 있는 하나의 방으로 이끌려간다.그 방의 문에는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자물쇠를 부수고 남자는 안으로 들어간다.그 방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기미가 역력하다.푸른 시트가 덮여 있는 커다란 침대,촛농이 흐른 두개의 촛대,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그림.나신의 처녀가 횃불을 높이 쳐들고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는데,나신의 남자가 등대를 향해 기를 쓰고 헤엄쳐가고 있다. 뭍에서는 등대지기의 딸이 어머니 몰래 집을 나와 거룻배를 타고 등대로 간다.그녀는 등대로 올라서자 횃불을 켜들고 바다를 비춘다.마치 남자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이.남자는 바다를 헤엄쳐 등대에 이르러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다.처녀는 이전에 그래왔듯이 촛대에 불을 붙인다. 딸과 아버지의 정사. 등대지기의 제복을 입고 남자는 집(등대지기집)으로 돌아간다.그의 아내가 남편의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키다가 분통을 터뜨린다.집을 나가서 그동안 무얼 하다가 이제서야 돌아오느냐고.아내는 분을 참지 못해 뜨거운 물 한바가지를 그의 국부에다 끼얹는다. 그후에도 두 사람은 등대에서 만나 정사를 계속한다.어느날 딸에게 생긴 남자 때문에 둘은 심하게 다투던중 촛불을 쓰러뜨려 방이 불에 탄다. 등대는 그후부터 어둠에 잠기고 다시는 불을 밝히지 않는 등대가 된다. 청색커튼이 열릴 때처럼 그렇게 천천히 일마즈 귀니감독의 이름 위로 닫혔다.
  • 경인전철 이틀째 지연운행

    12일 하오 전철1호선 영등포역과 신도림역 중간지점에 있는 경인선 상행선의 전차선애자가 파손되면서 고장난 영등포역 구내 자동신호기가 13일 상오까지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전동차가 최고 30분까지 지연되는 바람에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변을 겪었다.
  • 전차선 더위로 늘어져/1호선전철 2시간 불통

    ◎영등포∼신도림역 구간 12일 하오 1시47분쯤 서울 영등포구 전철 1호선 영등포역에서 신도림역 방향 약 1㎞지점에서 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이 늘어져 전기공급이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상행선 전철운행이 2시간남짓 중단됐다. 사고는 영등포역 1번 선로의 전차선을 연결하는 절연체인 애자가 무더위로 파열,전동차의 전기공급이 자동중단되면서 일어났다. 사고가 나자 영등포역측은 긴급복구작업에 나서 하오 3시40분쯤 복구를 완료했으나 복구후에도 사고여파로 전철이 계속 지연운행돼 전철이용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으며 이 일대교통도 큰 혼잡을 빚었다.
  • 북 혼란 사전차단… 「주민탈출」희박/동구권과 대비해본 북주민 동향

    ◎후계작업 철저… 조기안정 가능성/개방과정 불만폭발땐 난민사태 지난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매년 10만명에 가까운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탈출 했다.동독인들의 엑서더스는 결국 철옹성처럼 보이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동서독 통합으로 이어졌다. 김일성 사망소식이 공식 발표된 9일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북지역 주둔군에 경계태세를 강화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북한주민들의 대규모 탈출에 대비한 조치로 알려졌다. 과연 중국의 우려대로 북한주민들의 엑서더스가 일어날까. ○중,국경경계 강화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일단 김일성이 죽었다고 해서 당장 대규모 탈출사태가 일어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즉각적인 탈출사태를 촉발시킬 수 있는 계기는 북한사회의 내부 혼란이지만 극심한 혼란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관측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선 20여년 전부터 김정일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한 세습체제 구축 작업을 철두철미하게 해왔기 때문에 큰 반발이나 혼란 없이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군과 당을 장악하고 있는 김정일 등 집권층도 김일성 사후의 내부 혼란을 가장 우려하고 있는 만큼 최단 시일 안에 형식적인 승계 절차를 끝내고 사회안정을 위해 진력할 것으로 보인다.김일성의 후광과 「정통성」을 내세워 동요를 사전에 막고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면 당장 북한 주민들의 대규모 탈출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일방적 단언 못해 그렇지만 대탈출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김정일도 앞으로 핵문제 등 대외적인 현안해결과 안정적인 권력 유지를 위해서는 개방과 개혁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이 과정에서 북한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할 것이고 변화의 물결 속에서 북한 주민들의 탈출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90년에 몰아닥친 동구권의 거센 개혁 물결에 밀려 알바니아가 45년간의 철권 통치의 빗장을 열자마자 빚어진 알바니아인들의 대규모 탈출 사태를 보면 북한 주민의 엑서더스도 충분히 점 칠 수 있다. 우선 김정일이 앞으로 북한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식량 수급 등 경제문제 해결에 실패,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벼랑 끝까지 몰리면 내부 혼란이 야기되고 이는 주민들의 대대적인 탈출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아울러 반 김정일 세력으로 몰려 박해받는 사람들의 탈출도 예견할 수 있다. ○식량난 등 변수로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개방과 개혁 조치에 따른 북한 사회체제의 변화 자체에서 가정해 볼 수 있다.개방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금기처럼 돼 있는 남한 등 외부 세계의 실상들이 속속 북한 사회로 흘러들어가 주민들의 사상체계 및 사고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이렇게 되면 보다 나은 사회와 자유를 찾는 주민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론적으로 당장 몇개월안에 북한주민의 엑서더스가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다만 향후 북한 사회에 몰아칠 개방과 개혁의 강도가 예상외로 크거나 김정일의 대내적인 사회·경제정책이 실패하는 경우 대규모 탈출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 「41년 휴전체제」 끝날까(남·북한 화해시대:10)

    ◎불가침­평화공동선언 채택 가능성/「평화체제」 각론 이견… 구체합의 힘들듯/평양측의 「남북한 당사자」 인정이 열쇠 6·25전쟁이 끝난지 4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한반도에 정전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합리한 일임에 틀림없다.정전협정은 잠시 전쟁을 중지하자는 것이지 항구적인 평화장치가 아니다. 남북한은 모두 한반도의 정전체제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뜻을 같이 한다.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북한을 평화공존의 상대로 인정하는데 반해 북한은 우리를 배제시키고 미국을 상대하려는 것이다.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더 불안한 상태를 만들려는 모순에 빠져있다. 북한의 주장은 「평화협정」으로 요약된다.우리는 빼고 미국과 직접 평화협정을 맺어 정전협정을 대체하겠다는 발상이다. 우리의 대응논리는 「평화체제」구축이다.남북한 사이의 신뢰회복,교류협력의 진전에 따라 포괄적 평화상태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물론 평화체제 구축의 당사자는 남북한이어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확립과 관련되어 구체적 합의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다.총론에서의 인식이 같더라도 남북한이 중심이 되느냐,미국이 끼어야 하느냐에 대한 견해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우리가 신뢰구축을 토대로 한 단계적 해결방안을 제시하는데 대해 북한은 정치·군사문제의 일괄타결을 주장하고 있는 것도 장애요소이다. 북한이 이제까지의 주장에서 한치도 양보 않는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우리를 배제시키는 평화협정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그 점에서는 미국 정부도 확고하다.8일부터 제네바에서 열리고 있는 미국과 북한의 3단계 회담에서도 평화협정문제는 의제에조차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미국은 이미 밝혔다.평화체제는 남북한 사이에 논의될 문제라는데 한미의 인식이 일치한다. 따라서 평양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나 평화협정문제는 반드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평화체제의 구축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된 정전협정의 준수라도 얻어내겠다는게 우리쪽의 뜻이다.북한도 선전차원에서라도 평화협정의 체결을 들고 나올 것에 틀림없다. 지금 볼때 남북정상들이 평양회담에서 평화체제 혹은 평화협정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합의에 이르기 보다는 선언적 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평화공동선언,상호불가침선언등이 채택될 수 있다. 핵심쟁점인 미국의 개입여부를 놓고는 김영삼대통령이 북한주석 김일성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전망된다.다른 형태의 평화체제,심지어 평화협정을 체결하더라도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여겨진다.어떻게 북한과 미국만의 협정으로 한반도 평화가 보장되겠느냐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또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체제가 만들어지면 당연히 군사공동위 및 군비통제위가 가동될텐데 한국을 배제하고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논리도 펼 것이다. 김대통령의 이러한 설득이 먹혀 북한이 태도를 다소라도 바꾼다면 우리도 전향적 자세를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를 평화체제의 직접 상대로 인정하고 핵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남북한 사이에 평화협정의 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언질을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측에 전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능란한 화술… “협상의 귀재”/만나본 사람들의 김일성 평가

    ◎곤란한 주제 피하는 임기응변 탁월 해방 후 49년만에 열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베일에 싸여있는 김일성주석의 성격·화술·대인관계등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영삼대통령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가질 김일성주석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 지금까지 공식·비공식적으로 김주석을 만난 인사들은 대체적으로 김주석이 좌중을 선점하는 능수능란한 화술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회담에서는 장황한 논리보다는 자연스럽게 핵심 문제로 이끌어가고 간단한 구어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0년10월18일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대표로 강영훈 당시 총리와 함께 김주석을 만난 이병용민족통일연구원장은 『즉흥적으로 분위기를 유도해 자기의 의도를 적절하게 관철시키는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주석은 85년10월 장세동당시안기부장이 방북했을 때에도 『내집에 온 것 처럼 푸근하게 있으라』고 말했는가 하면 92년2월 정원식전총리를 만났을 때도 『외교형식을 버리고 한식구처럼 화목하게 얘기하자』며 분위기를 잡았다.김우중대우그룹회장도 방북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주석이 앞으로 내집처럼 생각하고 들러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전안기부장은 특히 『공산주의식 협상의 노하우는 물론 항일투쟁에서부터 고대 유적등 화젯거리가 풍부하고 상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대화를 주도한다』면서 『지난 84년9월 우리측이 예상을 뒤엎고 수재구호물자 공급 제의를 받아들이자 당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구호물자를 받는 전대통령의 용기에 감탄한다」고 치켜세우는 등 임기응변을 보였다』고 전했다. 한갑수전경제기획원차관도 『오찬 당시 쏘가리 매운탕,들쭉술 등의 음식과 서울의 공해문제를 화제로 내세워 대화를 이끌어 가는 능력이 뛰어났다』고 기억했다. 그의 친화력은 불법 방북자들도 느낀 점들이었다.황석영씨는 『김주석이 소설 「장길산」을 다 읽었다』고 했으며 임수경양도 『화술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김주석은 솔직담백한 합리적 인물이며 인민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말한 대목도 그의 능란한 화술을 웅변하는 대목이라고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그런 화려한 화술 만큼 경계해야 할 대목도 많다.반세기동안 권좌에 머물면서 인민들을 다스려온 경력이나 수없이 많은 외국 원수들을 만나 외교를 해온 풍부한 경험과 전력을 유념해야한다는 분석들이다. 이동복전안기부장특보는 『마치 위대한 배우를 대하듯 유들유들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또 한갑수전차관은 『김주석이 「우리는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또 한 관계자는 『최근 핵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남북정상회담을 제기해 국면을 전환시킨 것도 교묘한 외교술』이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김주석과의 합의는 추상적이기 보다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한 관계자는 『쌍방이 편리한대로 해석할 수 있는 추상적 합의는 북한에게 명분만 제공할 수 있다』면서 『실천이 담보되지 않는 합의는 공산주의 협상전술의 하나』라고 경계했다.이동복전특보도 『그들이 말하는 자주·평화·민족등의 개념은 우리의 대미 존속을 전제로 한 것이니만큼 지난 반세기동안 계속해온 대남 선전전과 용어혼란 전술에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석은 강전총리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제의하자 『아무런 결과가 없는 정상회담은 인민들에게 실망만 준다』면서 『정상들이 순조롭게 만날 수 있도록 많은 사업을 해달라』며 의례적이면서도 능란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김주석의 건강은 대체로 양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동원전외교안보연구원장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우 건강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이병용민족통일연구원장도 『보청기를 끼고 있어 귀가 다소 어두운 것 같았으나 전체적으로 건강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임원장도 『연형묵 당시 총리가 서울 방문 경험담을 꺼내자 김주석은 「뭐라고 뭐라고」하면서 큰소리로 말하라는 시늉을 해 한쪽 귀의 청력이 떨어졌음을 알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전총리를 수행했던 정호근전합참의장도 『김주석의 걸음걸이는 불편이 없어 보였고 특유의 갈지자걸음을 걸으며 걸걸하고 쾌활한 목소리로 「환영합니다」,「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면서 『그러면서도 우리와 악수하는 장면이 TV등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잘 알고 있듯이 행동했다』고 말했다.
  • 독일축구(외언내언)

    세계축구를 경기운영면에서 보면 유럽식축구와 남미식축구로 나눌 수 있다.유럽식이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는 힘의 축구인데 반해 남미식은 현란한 개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기술의 축구.브라질이 남미축구의 대명사라면 독일은 유럽축구의 대표주자다. 일반적으로 남미선수들은 몸이 부드럽고 리듬감각이 뛰어나 기술축구를 선호하고 있는데 비해 유럽선수들은 강인한 체력과 안정된 팀워크로 전차처럼 밀어붙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그래서 전형적인 유럽축구를 구사하는 독일대표팀을 「전차군단」이라고 부른다. 60년대 독일축구의 스타 우베젤레는 『우리는 축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한다.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28일 아침 한국과 맞붙게 되는 독일은 54년 스위스대회,74년 서독대회,90년 이탈리아대회 우승에 이어 사상최초의 4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을뿐 아니라 대회2연패를 넘보고 있는 강력한 우승후보. 월드컵대회에서 독일처럼 화려한 전적을 쌓은 팀도 드물다.우승 3회,준우승 3회,3위 2회가 그것을 말해준다.월드컵대회 통산전적은 40승16무14패.독일축구의 저변은 엄청나다.1900년 축구협회를 창설한 독일은 분데스리가에 38개(1부 18개,2부 20개)의 프로축구팀이 있고 아마추어클럽은 2만1천여개나 된다.등록된 선수만도 4백70만명. 객관적인 여건이나 전력으로는 한국이 뛰어넘기 힘든 높은 벽이다.그러나 공은 둥글다.우리라고 파란과 이변을 연출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더구나 이번 독일대표팀은 「손발이 안맞고 노쇠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전차군단임에는 틀림없지만 첨단장비가 장착된 최신의 전차군단이 아니라 낡은 전차군단 이라는 것이 볼리비아전과 스페인전에서 증명됐다. 한국선수들이 특유의 투혼을 발휘한다면 독일을 물리칠 수 있다.문제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다.선전분투를 당부한다.
  • 「6·25」 44돌… 중부전선 초산진부대를 가다

    ◎“압록강 진격했던 선배영광 잇겠다”/초병들,철통 경계… “국민은 우릴믿길”/정적깨는 대남비방확성기 소리 여전 6·25사변 44주년을 맞는 중부전선 최전방 초산진 부대 남방한계선 경계초소. 서울에서 1백10㎞ 떨어진 이곳은 남북정상회담 실무접촉을 앞두고 있건만 1.2㎞거리의 맞은편 북녘 능선에 설치된 대남 비방방송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제2의 조선전쟁」,「필승불패」,「민족대단결아래 통일된 조선민족 만세」등 상투적인 대남비방 방송은 아직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다. 최전방 초소에서 관측용 대형망원경을 잡고 적의 동태를 관측하고 있는 초병들의 눈매는 상황의 변화에 아랑곳 없이 경계근무에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부대이동은 없어 초병들은 『최근 머리깎은 인민군들의 모습이 다시 보일 뿐 부대이동등 도발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만일 적의 도발이 있다면 선배 전우들처럼 즉시 격퇴할 만반의 태세가 갖추어져 있다』고 힘있게 말했다. 초산진 부대는 50년 10월 26일 하오 2시15분 최초로 압록강까지 진격,초산땅에 태극기를 꽂고 압록강물을 수통에 담아 그날의 감격을 이승만대통령에게 보냈으며 73년 11월 20일에는 북한의 제2땅굴을 발견,그들의 흉계를 전세계에 고발했던 부대다. 특히 이 부대는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적의 공격을 육탄으로 돌격,전차를 파괴하는등 전장병이 혼연일체가 되어 38선을 3일동안이나 방어한 유일한 부대였으며 개전이후 처음으로 충북 음성 무극리 지역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패전을 거듭하던 국군과 국민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당시 전 장병이 일계급 특진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한국전때 첫승리 이 부대원들은 이러한 선배 전우들의 필승무패의 초산투혼을 이어받아 오늘도 필승의 경계근무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이 부대 중대장 정봉용대위(29)는 『적정은 평소와 다른 점이 조금도 없으나 최근 북핵개발 의혹과 관련해 유사시 적의 침투나 도발에도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11년째 이 부대에 근무하는 주유동주임원사(48)는 『밖에서 사재기를 하는등 북한핵문제로 소란을 피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서 『늘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경계근무를 하고 있는데다 무슨 일이든지 강한 정신력만 있으면 이룰 수 있는만큼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사재기 이해안돼 경계근무중인 심인용상병(22)은 『내평생에 단 한번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니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면서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선배들의 뒤를 이어 압록강으로 진격,강물을 떠마시겠다는 각오로 경계근무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병들의 믿음직한 경계근무 모습에서 제2의 한국전쟁은 일어날 수 없으며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책 경계선도 언젠가는 허물어 질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 6·25 그때와 오늘의 남북한 경제·군사력 비교

    ◎남 GNP 북의 16배… 수출은 80배 6·25전쟁이 발발한지 어언 44년.전차와 야포등 고성능 화력을 앞세우고 38선을 돌파,남침을 개시한 북한군앞에 우리국군은 무기력 할 수 밖에 없었다.가까스로 낙동강교두보를 형성한뒤 유엔군과 함께 북진을 계속,잃었던 땅을 회복하고 휴전을 맞았지만 44년이 흐른 지금도 통한의 6월25일을 잊을 수 없다.50년6월과 94년6월.44년 전후 남북한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국방부와 한국은행,민족통일연구원등의 자문을 중심으로 비교해본다. ◎군사력/현 한국군 독자 군사력 북의 71% 수준/해군함정수 남 251척·북 460척/1994년/군인수 남 65만·북 1백3만명/1950년/북한,병력 2배·장비 3배 앞서 6·25당시를 보면 북한이 남한에 비해 병력은 약 2배,장비는 약 3배가량 많아 전력이 훨씬 강했다. 개전초기 북한의 총병력수는 19만8천여명으로 이중 18만명이 육군 10개 사단으로 편성돼 있었다. 장비도 박격포 1천7백여문을 비롯,남한에는 없던 전차 54대,자주포 1백76문,고사포 36문을 갖고 있어 각종 화력이 모두 3천3백37대에 이르렀다. 북한 보유 포들은 대부분 1백20㎜이상의 대구경이었다. 반면 남한은 총병력 10만5천여명으로 육군이 8개 사단 9만4천여명이었으며 장비는 장갑차 27대를 비롯,박격포·곡사포·대전차포등 3종의 포 1천1백91문이 전부였다.이 포들은 그나마 최대구경이 1백5㎜로 북한의 화력에 비해 크게 뒤졌다. 당시 북한군은 양적 측면뿐아니라 군사훈련등 질에서도 남한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북한군은 3명중 1명꼴로 중국내전등에서 실전경험을 쌓았으며 육군은 8개 사단중 7개 사단이 사단급 연습을 끝마쳐 놓고 있어 전투력이 최고수준이었다. 장비와 보급품도 당시로서는 최신인 47∼50년식 소련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남한은 고급장교중 문관이 상당수를 차지하는등 대부분 장교들이 전투경험이 없었다. 육군의 경우 공비토벌작전을 펼치느라 소규모로 흩어져 있어 겨우 4개 사단만이 대대급 훈련을 끝냈으며 나머지 4개 사단은 중대훈련이 고작이었다. 장비등도 미군이 2차대전중 사용하던 중고품이나 일본제 소총등이 주종이었으며 보급품 비축량은2일분에 불과했다. 주한미군도 치안유지에 적절한 수준으로 전면전을 치르기에는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남한과 미국측은 이처럼 현저하게 열세인 전력으로 전쟁초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20여년쯤 70년대초반.남한은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고속경제성장가도를 달리면서 비로소 군사력건설을 위한 율곡사업을 시작,지난 20여년 약 21조원을 투자했으나 주한미군을 제외한 한국군 독자군사능력은 북한의 71%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94년도 북한의 병력은 1백3만명으로 정규사단이 53개,후방침투등 특수전을 위한 여단이 99개등이며 전차는 3천8백대,1백70㎜자주포등 야포는 무려 1만3백문에 이르고 있다. 해군도 전투함이 4백34척이고 잠수함도 26척이나 된다.공군은 전술항공기가 8백50대로 지원기·헬기를 포함하면 1천3백30대에 이른다. 이같은 북한의 군사능력은 6·25당시에 비해 병력은 5.2배가 늘어났으며 전차는 15.7배,각종 포는 3.4배,함정은 25.7배,항공기는 7.7배 늘어난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병력이 65만5천명으로 육군사단은 50개,여단이 21개이며 전차는 1천8백대,장갑차 1천9백대,야포 4천5백문이다. 함정은 전투함 1백90척을 비롯해 잠수함 1척등 2백51척이며 항공기는 전술기 5백90대와 헬기 6백대등 1천3백10대다. 한국의 군사력은 6·25당시에 비해 병력은 6·2배,야포는 3.8배,항공기는 29.8배가 늘어난 것으로 특히 공군전력이 강화됐다. 이처럼 남북한의 군사력이 엄청나게 확대됨에 따라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반도는 거의 초토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경제력/무역량 남 1천6백억불로 북의 63배/철도길이 남 1.3배… 44년간 같아/1955년/북한 발전시설용량 남의 8배/1993년/자동차생산량 남이 2백5배 ▷국민총생산(GNP)◁ 93년 한국의 GNP는 3천2백87억달러로 북한(2백5억달러)보다 16배에 이른다.53년에는 남한 13억5천달러,북한 4억4천만달러로 3배의 차이가 났다가 60년대 말까지 그 격차가 좁혀졌다.그러나 남한에서 본격적인 경제발전 정책이 추진되면서 70년 2배,80년 4.5배,90년 10배 등 격차는 더 벌어졌다.이제는 북한이 도저히 따라올수 없게 된 것이다. 1인당 GNP는 더 큰 변화를 보였다.74년을 분기점으로 남저북고가 남고북저로 역전됐다.53년에는 남한이 다소 앞섰지만 그뒤부터는 역전돼 60년에는 남한이 94달러로 북한의 1백37달러의 70% 수준이었다.그러나 74년 남한이 5백35달러로 북한(4백61달러)을 앞지르기 시작해 93년에는 남한 7천4백66달러,북한 9백4달러로 8배가 넘었다. ▷대외무역◁ 60년대 중반까지 수출·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남북한이 비슷했다.그러나 남한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지난 73년 5배의 차이에서 20년이 지난 93년에는 1천6백60억달러 대 26억4천만달러로 남한이 북한의 63배나 됐다.수출은 80.6배,수입은 51.7배이다. ▷광공업◁ 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중공업 분야에서 우위를 지켰다.전쟁 직후 남한이 경공업 중심의 성장정책을 편 반면 북한은 군수산업과 연관된 중공업을 우선시 했기 때문이다.지난 55년 북한의 발전시설 용량은 80만8천㎾로 남한(10만㎾)의 8배였다.총 발전량도 남한의 4배 가까이 됐다.60년의 제강능력도 66만t 대 5만t으로 북한이 앞섰다. 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 남한이 중화학 부문에 투자를 늘리면서 상황은 역전됐다.우선 지난 해 남한의 발전시설용량은 2천7백65만㎾로 북한(7백14만㎾)의 4배이다.총 발전량도 남한이 북한의 6배나 된다.제강능력은 남한이 3천3백25만t으로 북한의 1백86만t을 18배나 앞질렀다. 93년 남한의 자동차 생산량은 2백5만대인 반면 북한은 1만대 수준에 그쳤다.선박 건조량도 남한이 북한의 66배나 됐다.화학비료 생산량은 60년대 중반까지는 비슷했지만 지금은 남한이 4백11만t으로 북한보다 3배가 많다.풍부한 지하자원으로 철광석 생산량은 북한이 4백76만t으로 남한의 21만t 보다 여전히 많다. ▷식량생산◁ 쌀 생산량은 다른 부문보다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지난 65년 남한이 3백50만t,북한 1백25만t으로 2.8배의 격차를 보였다.지난 해에는 4백75만t 대 1백31만t으로 남한이 3.6배 많았다. 전체 경지면적은 65년에는 남한이 2백55만6천㏊로 북한(1백99만㏊)보다 넓었지만 90년에는 북한이 2백14만1천㏊로남한(2백1만9천㏊)을 앞질렀다. ▷수송수단◁ 도로 총 연장은 남한이 55년 2만6천6백㎞에서 93년 6만1천2백95㎞로 2배 이상 늘었다.북한은 1만7천6백82㎞에서 2만3천㎞로 늘었다.철도 총 연장은 50년대부터 줄곧 남한이 북한보다 1.3배 정도가 많다.
  • 채명신장군이 말하는 「우리를 지키는 길」

    ◎“국민 깨어있어야 불행 막는다”/“유사시 나부터 희생” 각오로 뭉쳐야/군에 따뜻한 애정과 격려 절실한 때/탄광속 학살 등 공산군의 잔학행위 지금도 생생… 북 평화손짓 늘 경계를 최근 북한핵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극히 미묘해 지면서 올해 6·25는 예년과 달리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고 있다.6·25와 월남전에 참전한 「국군의 산 역사」 채명신 전주월한국군사령관(69·예비역중장)역시 이번 6·25를 맞아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있다.채장군은 황해 곡산 출신으로 46년「같이 일하자」는 김일성의 권유를 뿌리치고 공산치하에서 1년반만에 남하,47년 소위로 임관(육사5기)한뒤 야전을 누빈 맹장.6·25 44돌을 앞두고 자그마한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 용산구 후암동55 자택에서 채장군을 만났다. ­6·25 개전 당시 상황을 말씀해주십시오. ▲당시 북한병력은 20만여명으로 한국의 2배에 이르렀습니다.공산군은 일요일 새벽 4시 주공격 방면을 의정부·개성일대로 삼고 최신형 T34전차 1백50여대를 집중시켜 남침에 나섰습니다.한국은 이 지역을 7사단이 맡고 있었으나 예하 1개연대는 온양에 위치해 2개연대만이 방어를 하고 있었습니다.더욱이 5월이후 비상경계상태에 있던 군은 전쟁발발 며칠전 경계령을 해제,농촌병사들은 농번기일손돕기를 위한 휴가중이어서 전후방 병력은 평소 절반수준이었습니다.또 연대장 이상급 장교들은 24일 저녁 서울 육군본부 장교클럽 낙성식 축하 댄스파티에 참석,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댄스파티에 만취 특히 전방에서 새벽 6시쯤 국방장관에게 전화로 비상을 알리려 했으나 보좌관이 『장관님은 일요일에 전화를 받지 않는다』며 전화를 연결시켜 주지 않았으며 육군총장집에서도 『주무시고 있어 깨울 수 없다』고 전화를 끊는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병사들의 사기등 의식은 어땠는지요. ▲전쟁초기 북한군의 사기가 남한에 비해 훨씬 높았습니다.그러나 대한민국의 운이 좋아 미국이 전쟁발발 한달여만에 조속히 참전하게 됐으며 북한이 3일만인 28일 서울을 점령한뒤 이상하게 7월3일까지 더이상 남하하지않고 시간을 허송세월해 아직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 남아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미군의 참전이후 국군도 사기가 충천해 북한을 다시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6·25당시 소대장과 중대장·대대장으로 직접 전투를 벌였는데 공산군에 대해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공산군은 참으로 잔혹했습니다.국군이나 민간인은 물론 동료전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북한군에 밀리다 반격에 나설 당시 대대장으로 죽령점령을 위해 전투를 벌인 적이 있었습니다.치열한 격전끝에 죽령을 확보했는데 죽령터널안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으며 악귀형상을 한 사람들이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있었어요.처참한 전쟁에 단련된 부대원들도 이들을 진짜 귀신으로 생각하고 깜짝 놀랐습니다.가까이 다가가 확인해보니 이들은 북한군 부상병들이었습니다.터널을 야전병원 겸 유류저장창고로 사용하던 북한군이 후퇴하기 직전 부상병이 잔뜩 있는 그 곳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터널 입구에 있던 부상병들이 살겠다는 의지로 화상을 입고 피범벅이 된채 간신히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전장병들은 통곡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때 북진이 늦어지면 그만큼 동포들이 흘리는 피가 많아진다고 말하던 일이 생각납니다.탄광등에 갇혀 떼죽음을 당한 동포들도 엄청났습니다. ○역사교훈 배워야 ­최근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데 전쟁을 막기 위해 국민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될까요. ▲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히틀러는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침공하려 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스위스 국민들은 일치단결해 전쟁이 나면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울 것임을 행동으로 히틀러에게 보여주었던 것입니다.한마디로 스위스 국민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화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경험으로 보아 장병정신무장의 지름길이 무엇입니까. ▲장병들이 의식은 몇시간의 정훈교육이나 높은 계급자의 훈시로 절대 전환되지 않습니다.경험을 얘기하면 4·3폭동때 처음 일선 소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하자 모든 소대원의 눈빛이 적대감으로 가득 차있었고 중대장은 이미 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밤새 기도하다 새벽녘에 『좋다.그들사이로 뛰어들자』고 결심하고 숙소를 소대막사로 옮겼습니다.아픈 병사를 보면 죽을 끓여다 주며 간호하고 잠자다 모포를 걷어차는 사람은 모포를 덮어주고 해서 친동생처럼 병사들을 대했습니다. ○「골육지정」 필요 그 결과 일주일만에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당시 중대장이 저격병을 보냈으나 몰래 신변보호를 해주던 소대원들이 그들을 먼저 쏴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습니다.그때 부대통솔은 골육지정임을 깨달았습니다.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전쟁은 병사들이 하는 것이고 병사들은 소대장·중대장을 위해 싸웁니다.그 것이 전력입니다.여순사건을 일으킨 반란군 3천명도 모두 빨갱이는 아니었습니다.주동자들이 그렇게 이끌었습니다.그러나 전제조건이 하나 있습니다.전쟁에서 다친 사람들을 돌봐줘야 합니다.월남전 고엽제후유증환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듭니까.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을 냉대하면 누가 전쟁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겠습니까.다치면 나만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북한의 핵이 걱정이 아니라 위기때 전방 소·중대장과 병사들이 얼마나 싸워줄 것인가를 염려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김영삼대통령과 김일성주석간의 정상회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며칠전만해도 김영삼대통령에게 험담을 퍼붓던 김일성이 태도를 하루아침에 바꾼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만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입니다.그러나 지금까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해온 김일성이 회담을 갑자기 제의해온 것은 유엔 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평화제스처로서 미국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어내자는 속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앞으로 진전될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경계를 흩뜨리지 않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채장군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면 우리 민족은 모두 망하게 된다』며 국민이 단결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거듭 말했다.또한 요즘 군을 나쁜 존재로 보는 시각에 대해 0.01%만이 잘못된 사람이라면서 언론의 바른 역사인식이 전쟁을 막는데 중요하다고 몇차례씩 강조했다.노장군이 제시한 전쟁방지의길은 로마의 격언이었다.『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 한국 자체군사력 북의 71%/국방부,「문답 국방비」 책자 발간

    ◎주한미군전력 대체엔 20조원 추가소요/소령양성비 보병 2천만·조종사 3억4천만원/K1전차 23억·구축함 2,100억·F16기 334억원 육군 보병소령 1명 양성비용 2천만원,육군 정보소령은 9천5백70만원,공군조종사 소령은 3억4천4백20만원. 육군장교와 공군장교의 값이 대략 17∼4배 가량 격차가 있는 셈이다. 국방부는 9일 「문답으로 알아보는 국방비」라는 소책자를 발간,군의 예산사용실태를 이처럼 소상하게 밝혔다. 이 책은 처음으로 군인 양성의 「코스트」를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우선 전문인력 양성비용을 보면 하사관의 경우 육군보병 4백10만원,육군기갑은 9백20만원,해군 함포병은 9백40만원이 든다. 사병은 육군소총병의 경우 불과 40만원이 소요되고 공군항공정비는 5백60만원,해군통신은 2백10만원이 들어 육군이 가장 값싸게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장비의 값을 보면 육군의 K1 한국형 전차는 23억원,지대지유도탄은 14억원,자주포는 9억6천만원,장갑차는 2억7천만원이며 해군과 공군의 무기는 이보다 엄청나게 비싸다. 해군의 한국형 구축함은 2천1백억원,잠수함은 1천4백억원,하푼미사일은 13억3천만원이며 공군의 F16전투기는 3백34억원이나 된다. 따라서 차량화 보병사단을 창설할 경우 비용이 7천3백억원이지만 해군 1개 전투함대를 창설하려면 9천6백억원,공군 F16전투비행단은 2조1천5백억원이 든다. 그러나 북한은 사회주의권간에 염가로 무기를 수출입하고 있어 주력 T72탱크가 우리 탱크값의 22분의 1인 1억5천만원,미그29전투기는 F16의 절반값인 1백76억원이다. 그 결과 한국의 국방비 규모는 76년 38억달러(90년 불변가격)로 33억달러인 북한을 앞질렀으며 92년엔 북한의 2배인 1백11억달러에 이르고 있으나 자체군사력은 북한의 71% 수준으로 아직 열세에 있다는 것. 한국군 열세를 보완해주고 있는 전력이 바로 주한미군이며 이들의 전력을 한국군이 대체하려면 88년기준 2백59억달러(20조원)가 추가소요된다. 국방예산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증강에 쓰임으로 장병 후생복지는 뒷전에 밀려 많은 병사들이 집에서 돈을 타다 쓰고 있는 실정이다. 군이 올초 병사 1천4백72명을 대상으로 월 추가용돈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5%가 월 3만∼5만원을 집에서 가져다 쓰고 있으며 15만원 이상도 2.2%로 「오렌지 병사」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장교의 경우 대령이 되려면 적어도 20년 근무해야 하고 평균 12.4회 이사를 다닌다. 이처럼 근무환경이 열악해 직업군인 중 71%가 전역을 희망하고 있으며 하사관은 83%에 이르고 있다.
  • 전쟁기념관/6·25전장 재현…산 교육장으로/10일개관…미리 가보면

    ◎「한국전쟁실」 등 6개 전시실 볼만/전쟁영웅 초상·전투모형도 전시 『나가자.나를 따르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옛 육군본부 터 3만5천여평에 자리잡은 전쟁기념관 4층 전쟁체험실. 20여평 남짓한 이 체험실에는 조명이 꺼진 어둠속에서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군과 적군인 북한군,중국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4분30초동안 재연된다. 6·25당시 평양부근의 전선을 본떠 만든 이 체험관 속에 들어온 관중들은 귀청을 울리는 총성과 포성,코를 찌르는 화약냄새,부상병의 비명소리등으로 실전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지상 4층·지하 2층규모의 기념관 내부의 각 전시실마다 모두 7천8백35졈의 전쟁기념물과 전쟁기록화,조형물,드라마등을 갖춘 전쟁기념관이 6·25발발 44주년을 앞두고 오는 10일 정식 개관한다. 이 기념관은 88년 특별입법된 전쟁기념사업회법에 따라 1천10억원을 투입,90년9월 착공된지 만 2년9개월만에 공사를 완료,선열들의 호국혼을 국민들에게 보여준다. 이 전쟁기념관은 한반도의 전쟁역사를 한눈에 조감하고 순국선열의애국심을 일깨울 수 있도록 모든 전시실마다 전쟁관련 자료와 전시물들이 입체적,역동적으로 전시한 것이 특징. 이 기념관은 우리나라의 군사유물을 비롯,세계각국의 무기·장비·복식·기치·문서·그림등을 주제별로 호국추모실,전쟁역사실,한국전쟁실,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대형장비실등 6개 전시실에 나눠 전시해놓고 있다. 전쟁역사실에는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 민족이 외침에 대항해 싸운 대외항쟁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살수대첩과 한산대첩 전투상황을 모형인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하고 안시성전투 행주대첩 청산리전투를 담은 기록화도 곁들여놓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로 남아있는 6·25전쟁을 재현한 한국전쟁실은 이 기념관의 핵심. 전시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이 전시실은 전쟁발발의 배경·남침과정·반격·중공군 개입·전선교착·휴전의 순으로 관련자료등을 배열해놓고 있다. 특히 6·25초기의 남북한 무기를 실물로 비교전시,전투상황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민간인들의 고통스런 생활상까지 담고 있다.전선의 아들이 부모에게 보낸 편지나 전장에 나서는 남편에게 준 부적,피난살이에 사용한 생활용품등도 전시하고 있다. 실전을 느끼도록 하는 전쟁체험실도 이 전시실의 일부이다. 기념관 안에 있는 대형장비실과 외부에 있는 옥외전시장에는 북한이 6·25당시 앞세운 T­34전차등 남북한 무기와 B­52미전략폭격기를 포함한 각종 항공기·전차·포·차량등 1백10여점이 전시돼있다. 또 삼국시대부터 월남전에 까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전쟁영웅 1백32명을 선정,이들의 초상화,사진등을 기념관 양쪽 회랑과 전시실에 전시했다. 이 기념관은 개관이후 시민들에게 독립기념관이나 중앙박물관과 비슷한 수준의 입장료를 받는다. 전쟁기념 사업회(회장 이병형)측은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침을 물리치고 오늘에 이르렀다』면서 『기념관이 전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의 산교육장이자 시민들이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수화기없는 핸드폰 나온다/일 교수 개발 이어폰마이크로 대체

    ◎내년가을께 시판 【도쿄 연합】 수화기 없는 휴대전화가 빠르면 내년 가을쯤 선보인다. 일본의 대학입시 센터 특별시험연구반의 오노 히로시(소야박)교수는 소리를 낼때 생기는 귀의 진동을 음성으로 바꾸어 상대방에게 전하는 휴대전화용 이어폰 마이크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일 마이니치(매일)신문이 31일 보도했다. 이 이어폰 마이크를 사용하면 조그만 목소리로도 통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혼잡한 전차안에서 전화를 하더라도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 또한 공사현장등 소음이 있는 곳에서도 통화가 가능할 뿐아니라 수화기를 갖고다닐 필요가 없어서 전화를 하면서 음식을 만들거나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신문은 전하고 빠르면 내년 가을쯤 상품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이어폰 마이크는 보통 이어폰과 거의 같은 크기로 휴대전화와 코드로 연결해 사용토록 되어 있으며 중앙에 원통형의 진동탐지 센서가 붙어 있어 소리를 낼때 일어나는 귀뼈와 귓구멍의 진동을 음성으로 바꾸어 상대방에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 일 극우세력이 움직인다/호소카와 저격… 드러나는 폭력성

    ◎「침략」 발언 반발… 테러활동 등 조직화/12만명 추산… “군국정당회의 전위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전일본총리가 30일 우익세력의 테러를 당했다.호소카와 전총리에 대한 이번 테러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우익단체의 폭력성과 일본사회 변화의 한 단면을 나타내고 있다. 우익단체 「송혼숙」의 전단원으로 알려진 범인은 호소카와 전총리의 「전쟁발언」에 반발,권총을 발포했다고 밝혔다.호소카와 전총리는 지난해 8월 총리취임 직후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었다』고 발언한후 우익단체의 협박과 규탄을 받아왔다. 우익단체들은 「호소카와총리의 발언은 국가를 모독한 행위」라며 선전차등을 동원,활발한 규탄활동을 해왔다.호소카와 전총리에 대한 발포는 이러한 규탄활동의 일환이며 최근 늘어나고 있는 우익단체의 정치인,언론등에 대한 테러사건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본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익단체들의 테러·게릴라사건은 최근 10년간 약 1백10건으로 나타났다.그중에는 『천황에게 전쟁책임이 있다』고 말한 모토시마 히도시 나가사키 시장과 가네마루 신 전자민당 부총재에 대한 저격사건도 포함되며 올해만도 아사히(조일)신문 침입사건,월간잡지 문예춘추사 사장집에 대한 발포등 4건의 테러사건이 발생했다.일본의 우익단체는 또 지난 92년 한국TV드라마의 일왕저격 장면에 대한 불만으로 요코하마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난입하기도 했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전전의 우익활동을 계승한 우익본류와 60년대말 신좌익운동에 대항,새로 만들어진 신우익으로 구별된다.일본우익은 좌익에 대항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는 세계의 우익과 이념적 배경이 같다.그러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점에서는 파시스트적이며 특히 일왕숭배론자들이다. 일본의 우익세력은 80년대 나카소네총리 취임이후 많이 늘어났다.매년 20∼30개 단체가 새로 생겼으며 현재는 약 9백80개 단체 12만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일본경찰은 추산하고 있다.우익단체중에는 단원이 1천명이 넘는 경우도 있지만 1명으로 구성된 단체도 있는등 그 규모가 매우 다양하다.그중에서 활동이 활발한 이른바 「행동우익」은 1백50개 단체의1만5천명정도. 일본우익단체들은 공산주의세계의 붕괴에 따라 종래의 반공일변도 운동으로 부터 반체제·국가혁신운동으로 전환하고 있다.우익세력들은 국가혁신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일왕중심의 정치 ▲자본주의경제의 개혁 ▲공산주의 배격 ▲아시아민족의 해방등을 강조하며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우익단체들은 그러나 우익적 사고를 가진 세력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우익적 사고와 논리를 가진 세력들은 일본의 정계·학계·언론계등 일본사회 지배층에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이들은 적극적인 우익활동은 하지않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수라는 이름으로 우익의 논리를 옹호·지원하고 있다. 우익단체들의 활발한 활동은 결국 이러한 얼굴없는 우익세력들이 지향하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향상을 위한 사회분위기를 잡는 전위대적인 역할이라 할수 있다.일본은 지금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에 있으며 국제변화에 기동적으로 대응할수 있도록 하기 위한 국가개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승용차 금지령(외언내언)

    런던의 스모그 사건은 1878년부터 시작한다.환경재난이라할 만한 대사건만도 62년까지 10회나 된다.최대사건이 52년.12월10일부터 1주일간 아황산가스안개가 지속되자 이로부터 3주사이에 질식과 호흡곤란으로만 4천여명이 사망했다.그후 만성폐질환으로 죽은 사람이 또 8천여명이다. 1987년 2월 멕시코시티 하늘을 날던 수천마리의 새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새 사체를 조사한 결과 심장,폐,간등에서 다량의 납,카드뮴,수은등이 검출됐다.이사건은 호흡으로 죽는것만이 아니라 누적과 농축을 거쳐서도 죽는다는 것을 확인해줬다.멕시코시티는 89년부터 외교관차량을 제외한 전차량의 5부제운행을 실시하고있다.2천만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두통,불면증,무기력,구토증세를 겪고있고 심한사람은 확각과 환청증세에까지 다다른다. 25일 그리스정부는 수도 아테네 일원에 승용차 운행금지 긴급조치령을 발동했다.금주 들어 60여명의 시민이 대기오염에 의해 호홉기 및 심장질환으로 입원하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이다.아마도 이것이 제3의 최대사건이 될지도 모른다.아테네 역사유적들은 이미 매연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었다.매연에 의한 부식으로 코와 귀가 없는 고전 대리석흉상들이 현재 한둘이 아니다. 대리석은 쉽게 부식된다해도 그 도가 지나친다.그리스 산성부식전문가 스콜리키디스는 「지난 2천4백년에 걸쳐 부식된 정도보다 최근20년사이에 부식된 정도가 더 크다」고 단정한다. 자동차매연이 주범인 도시대기오염은 기온 연평균 1도증가,먼지10배증가,일사량 총량20%감소 자외선30%감소,풍속30%감소,안개빈도 겨울100% 여름30%증가를 가져온다.이 결과가 모여 갑자기 불상사를 만들어낸다.남의 일이 아니다.다음차례가 중국 센양이거나 한국 서울일 가능성도 있다.지금 서울은 매연분진에 있어 세계수위그룹에 끼여 있다.
  • 세르비아계 철수약속 준수 인정/유엔,나토의 공습요청 거부

    【자그레브 로이터 AP 연합】 유엔은 24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에 대해 오는 27일까지 회교계 고립지역 고라주데시에서 20㎞ 떨어진 지역으로 철수하지 않으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습을 받게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이 융통성이 없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엔은 세르비아계가 24일 0시1분(GMT)까지 고라주데에서 3㎞ 떨어진 곳까지 철수할 것을 요구한 첫번째 시한이 지난뒤 비록 세르비아계가 정확하게 시한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정도로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인정,나토의 공습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의 구유고 특사인 아카시 야스시특사는 세르비아계에 대해 오는 27일까지 고라주데에서 20㎞ 떨어진 곳까지 대포와 전차및 기타 중화기를 철수시키라는 다음번 시한은 별로 융통성이 있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 유기농업 보급하는 농민들(일본농업탐방:24)

    ◎20년전부터 무공해농산물 계약재배/4천농가 그룹 결성…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백화점·슈퍼에도 특별코너… 「21세기형 농업」으로 각광 생명의 근원은 자연에 있다.유기농업은 그 자연을 이용,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명산업」이라 할수 있다.일본에서는 이러한 유기농업이 21세기에도 발전할수 있는 미래농업으로 정착되고 있다. 유기농업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퇴비를 이용하는 농업이다.일본의 유기농업은 지난 70년대 중반부터 크게 늘어났다.유기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20여년전 「일본유기농업연구회」를 만들어 유기농업보급에 앞장서고 있다.현재 회원은 약 4천명.도쿄 세다가야구에서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오히라 히로시(대평박사·61)씨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도쿄역으로부터 전차로 약 30분 서쪽으로 달리면 오히라씨의 유기농장을 만난다.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밭에는 무·파·시금치·갓등 여러가지 채소가 자라고 있다.그밖에 오이·토마토·양배추·피망·가지등 50여종의 채소들이 계절별로 재배되고 있다. ○농약·화학비료 안써 오히라씨가 소유하고 있는 농장은 1㏊.도쿄 변두리이기는 하지만 1㏊의 땅을 가지고 있는 그는 대단한 부자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그는 넓은 땅을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밭으로 생각하며 농사에 전념하고 있다.그에게는 더욱이 농한기도 없다.1년내내 기후에 맞는 채소를 돌아가며 재배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는 농가소득를 특별히 의식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그만큼 여유가 있다고 할수 있다.그러나 보통농가의 3∼4배는 된다고 강조한다.보통 1년에 5번의 윤작을 하며 생산비가 30%정도 덜 들기때문이다.그는 전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다.퇴비를 만들어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 오히라씨가 유기농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 68년.자신과 부인및 아들부부등 4식구와 2명의 연수생과 함께 채소를 재배하고 있다.그는 명성대학 농학부를 졸업하고 농사일를 하고 있다.자신의 유기농업을 설명하는 자료중에는 영어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그 자료를 받는 순간 조금 놀랐다.그는 또 유기농업에 관한 3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그중「실천 유기농업독본」은 한국에서도 번역됐다고 들려준다. 유기농업으로 재배되는 농산물은 무공해 식품으로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오히라씨는 농산물 판매를 위해 군마·후쿠시마·지바·나가노·시즈오카·에히메현등에 있는 15명으로 「약엽회」를 만들었다.채소·쌀·과일등 각자 재배한 농산물을 모아 도쿄에 있는 4백가구 1천6백여명에게 정기적으로 공급한다.고정된 4백가구 소비자들은 다른 농산물은 먹지않는다고 그는 말한다.남는 농산물은 학교급식용으로 판매한다. ○전문 유통업체 등장 오히라씨와 같이 농산물을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유통구조가 일반적이다.그러나 유기농업이 대규모화하면서 백화점·슈퍼등과 계약을 맺고 백화점등에 「유기농산물 코너」를 설치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가락시장과 같은 일본의 대표적인 농산물유통센터 오타(대전)시장에도 「유기농산물 코너」가 만들어졌으며 전문 유기농업유통업체도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유기농업이 이같이 발전하게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것은 한권의 소설책이었다.아리요시 사와코의 「복합오염」.지금은 고인이지만 그녀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작품에서 농축산물의 오염이 인체에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고 있다.이 작품이 발표된후 일본인들은 농산물 오염의 위험성을 깨달으며 유기농산물에 큰 관심을 갖기시작했다고 한다. 유기농업은 사실 새로운게 아니다.옛날의 농업으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물론 새로운 영농방법이 개발되고 있지만 퇴비를 이용하는 유기농업은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없던 옛날의 농업방식의 계승이라 할수 있다.전후 일본의 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대량사용,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공업화 과정의 효율화개념이 「농업의 근대화」란 이름으로 농업에서도 강조된 것이다. ○정부 적극 지원방침 일본은 「잡초의 나라」라고 비유될 만큼 농업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나쁘다.일본은 이때문에 미국의 5∼6배,유럽의 10배에 가까운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해왔다.그러나 농약과 화학비료의 대량사용은 토양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환경을 악화시킴은 물론이고 농산물의 안전성에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에서는 이에대한 반성으로 유기농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일본의 유기농업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그룹을 만들거나 법인의 형태로 각지역에서 발전하고 있다.유기농업의 발달로 지방자치단체나 농협·정부도 이들을 무시할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그러나 일본의 유기농업은 농협이나 정부의 지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농민 자신들의 지혜와 노력으로 발전해왔다. 유기농업의 발달로 일본인들은 안전한 유기농산물를 찾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이는 농업시장이 개방되더라도 일본농산물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데 한몫을 할 것이다. 유기농산물의 최대 소비지인 도쿄도는 이러한 유기농업 발전을 위해 백화점·슈퍼·청과·채소장수등 5천여 가맹점을 지정,생산·판매를 지원할 방침이다.일본의 유기농업은 「21세기 농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 「공장의 도시」 영 맨체스터/얼룩때 벗고 「문화」 치장

    ◎시당국 재개발·집중투자 성과/거리곳곳 극장·카페·화랑 가득/올 핸「드라마 도시」로 뽑히기도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의 맨체스터.세계최초의 산업도시인 맨체스터가 공장때로 얼룩진 구각을 벗고 문화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공장의 도시는 옛말이 됐고 영국인 스스로도 이제는 음악과 미술,스포츠의 본고장으로 으레 맨체스터를 꼽고 있다. 시내 어디를 가더라도 호화로운 극장이나 연주회장,화랑등이 가득하다.밤만되면 낭만적인 카페,레스토랑,클럽들이 휘황찬란하다.이전에 방치됐던 공장이나 창고들이 호사스런 나이트클럽으로 바뀐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 모든 것은 맨체스터시당국의 재개발정책과 전폭적인 투자덕택이었다. 시당국의 투자는 실내 사이클경기장,국제공항,8만석을 자랑하는 대운동장,2년전 개통한 시가전차망으로 까지 이어졌다. 재개발을 추진하면서 도시의 일부지역은 레저공원이나 산업공원같은 것으로 변했다. 맨체스터의 공항은 영국에서 세번째로 큰 공항이다.여느 국제도시 못지않게 지난해에는 1천3백만명이 이 공항을이용했다.올해에는 이 숫자가 훨씬 넘을 것이라는 게 이 지역 관광업계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다.맨체스터는 올해 영국에서 「1994드라마 도시」로 선정됐다.이것은 당국이 영국의 도시가운데 연극,연주회,오페라를 1년중 가장 많이 개최하는 도시에 수여하는 상이다.현재 유행하고 있고 틴에이저의 각광을 받고 있는 인기그룹 「테익 뎃(Take that)」도 이 지방출신이다. 영연방 국가들사이에 개최되는「2002년공화국게임」장소로도 뽑혔다.최근 96년,2000년 올림픽 개최신청을 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다. 물론 문화의 도시로 성장하면서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이 나아지면서 범죄의 도시로도 「성장」했던 것이다.2백40만명의 맨체스터시민이 「유럽에서 가장 불안한 도시」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얼마전 모스크바시발레단이 묶고 있던 호텔에서는 단원들의 보석과 현금이 강탈당한 적도 있었다.밤이 되면 거리곳곳에서는 외국인과 불량배들이 격투를 벌이는 현장이 쉽게 목격된다. 시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92년의 강도사건은 모두 3만4천여건으로 이는 88년보다 두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또 절도사건은 88년의 7천여건에서 92년엔 1만6천여건으로 역시 2배이상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빌 리즈비 맨체스터시장은『이같은 통계수치는 세계 여느 도시보다 결코 많은 것은 아니다』면서 『맨체스터는 무법의 도시이기보다는 분명 문화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