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프 코리아] 단풍놀이 사고 주의보
동해바다보다 깊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형형색색으로 펼쳐지는 단풍의 절경(絶景)은 가을철 놓칠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설악산, 오대산 등 강원 지역의 산들은 이미 붉은 빛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북한산과 내장산 등 중·남부 산들도 차츰 화사한 자태를 뽐내며 산행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러나 단풍놀이에 취해 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다 보면 부상이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는 비극을 맞을 수 있다. 더구나 주5일 근무와 ‘웰빙’ 열풍에 따라 산행 인구가 늘어나면서 안전사고도 증가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연간 사고 3분의1 가을에 몰려
지난해 가을 산행철인 9월부터 11월까지 일어난 산악 사고 건수는 모두 1743건이다. 지난해 전체 산악 사고인 5605건의 3분의1이 가을철 3달에 집중돼 있다. 더구나 지난 2003년에는 1283건이던 것이 2004년 1702건 등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는 이상 가을 가뭄과 고온 탓으로 단풍의 ‘질’이 떨어지면서 가을 산행 인파는 조금 줄었다지만 산악 사고는 여전하다.
지난 12일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곰바위 부근에서 암벽을 오르던 등산객이 40m 계곡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엄모(39)씨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이모(46)씨는 머리와 허리 등에 중상을 입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7일에도 북한산 칼바위 부근에서 이모(60)씨가 30m 절벽 아래로 떨어져 숨졌다.
지난 15일 오전 7시에는 경남 거제시 수월리에서 등산객 김모(64)씨가 산행 중 뇌출혈로 쓰러졌다. 김씨는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을 거뒀다.
사고는 산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5일 오전 4시10분쯤 강원도 속초시의 한 콘도에서는 단풍관광을 온 김모(50·여)씨가 4층 베란다에서 추락해 숨지는 어이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결국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모두 344건의 사고가 일어나 10명이 사망하고 347명이 다쳤다.
●일요일 늦은 오후 하산길 조심
가을철 산악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실족이다. 최근 3년 동안 10월에 발생한 산악 사고 2060건 가운데 30.0%인 618건이 발을 헛디뎌 일어났다. 이어 등산로 이탈 및 실종이 27.1%인 559건으로 뒤를 이었다.
탈진이나 호흡곤란, 마비 등 개인의 신체 이상에 따른 사고도 23.2%인 478건이나 일어났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등반 중 사망 사고는 등반자의 신체 이상이 가장 큰 원인”이라면서 “단풍철에는 평소에 등산을 잘 하지 않던 사람들도 무리해서 산에 오르는 사례가 많은 만큼 자신의 건강 상태를 반드시 체크하고 무리한 산행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요일은 등산객의 절대 숫자가 많은 일요일이다. 전체 사고의 40% 이상이 일요일에 몰려 있다. 등산로가 붐비면서 사고의 위험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산에서 내려올 시간인 오후 3∼5시 사이에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산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대형 교통사고, 축제 사고도 주의
연간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귀성·귀경 차량이 몰리는 설과 추석 등 명절이지만 사망을 수반하는 대형 교통사고는 가을철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
대형 교통사고가 이 시기에 집중되는 것은 행락철 단체 관광을 떠나는 초행길·장거리 운전자가 증가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단풍 관광지로 통하는 대부분의 길이 급경사·급커브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관광버스 탑승자들이 음주 가무를 즐기면서 운전자의 안전 운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해마다 1200여개에 이르는 지역 축제도 가을철에 많이 열린다. 올해는 9∼11월 사이에 350여개의 각종 지역 축제와 행사가 개최된다.
대표적인 지역 축제 안전사고는 지난해 10월에 발생한 경북 상주시민운동장 참사. 한 방송사의 공연에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사망 11명, 부상 148명 등 모두 15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또한 가을철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작업을 끝내기 위해 각종 건설현장에서 막바지 공사가 활발히 이뤄지는 시기. 이에 따라 공사장 슬래브·옹벽 등이 붕괴하거나 타워크레인이 넘어지는 사고 등도 잦다. 지난해 10월 공사 근로자 9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은 경기도 이천의 한 대형 홈쇼핑 물류센터 신축 공사장 사고도 슬래브가 붕괴하면서 빚은 참극이었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서해페리호 침몰사고,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대형 참사들도 공교롭게 10월에 몰려 있다.”면서 “행락철을 즐기기에 앞서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먼저 챙기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가을산행 주의점
산악 사고는 바닷가 사고와 마찬가지로 준비 없는 ‘과시형 사고’가 많다. 등산화와 피켈 등 충분한 장비를 갖추지 않고 산행에 나서거나 나이와 건강, 경험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산행이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실족 사고는 맑은 날보다는 바위가 미끄러워지는 비가 온 뒤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이 훨씬 위험하다.
산행의 기본 수칙은 아침 일찍 산에 오르기 시작해서 해지기 한두 시간 전에는 마치는 것. 올라갈 때는 급경사, 내려갈 때는 완경사 길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익숙한 산이 아니면 혼자 등산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또한 일행 가운데 가장 체력이 약하고 등산에 미숙한 사람을 기준으로 산을 오른다.
적정한 배낭의 무게는 30㎏ 이하. 나무 등을 잡고 오를 수 있도록 손에는 되도록 아무 것도 들지 않는 것이 좋다.
등산화는 발에 잘 맞는 것을 신는다. 크면 발목 부상을 당할 수 있고, 작으면 얼마 못 올라가 통증이 온다. 조금 비싸더라도 통기성과 방수 능력이 좋은 것을 착용한다. 서울 북한산 등 암벽이 많은 산은 반드시 바위 전용인 리지화를 챙겨야 한다.
산행 중에는 과식이나 과음은 금물이다. 물이나 오이 등을 꾸준히 먹는 것이 좋다.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무턱대고 전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희미하게 인적이 남아 있는 길이라도 산사태 등으로 중간에 끊겼을 가능성이 높다. 길을 알고 있는 곳까지 되돌아간 뒤 다시 산행을 시작하자.
아예 길을 잃었을 때는 계곡을 피하고 능선으로 올라가는 것이 현명하다. 계곡은 예기치 않은 집중호우의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다.
사고가 났을 때는 곧바로 119에 신고하는 것이 좋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저체온 증상이 나타나면 움직임을 최소화하면서 열 손실을 막아야 한다. 더구나 이번주부터는 기온이 떨어지고 낮이 더 짧아지는 만큼, 여벌 옷은 가을철 등산 필수품이다. 심혈관 질환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바로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한 뒤 하산한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