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난치병 정복과 도전] (9)뮤코다당체 침착증
“인체의 대사 과정에 작용하는 수많은 효소 중 한 가지라도 결핍되면 관련 대사작용이 모두 중단되는데, 이 때 부분적으로 분해된 이른바 ‘뮤코다당(多糖)’이 세포와 조직에 쌓여 병증으로 발전하는 질환이 뮤코다당체 침착증(이하 뮤코다당증)입니다.” 삼성서울병원 소아과 진동규 박사. 유전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로, 국내 관련 환자 70∼80%를 치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결국 이런 현상이 세포 손상을 일으켜 가시적인 증상, 이를 테면 아이의 외모가 변하고 이어 몸의 기능과 발달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뮤코다당증을 설명했다.
뮤코다당증(MPS·Mucopolysaccharide)은 뮤코다당이 비정상적으로 체내에 축적되어 생기는 유전성 질환이다.“아이가 MPS를 가졌더라도 태어날 때는 정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생후 1년 가량이 지나면서 점차 다양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증상은 MPS의 종류와 환자의 연령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데, 치료가 필요한 증상의 시작은 보통 귀의 감염, 콧물, 감기 등입니다.”
MPS는 유전성이면서 동시에 진행성 질환이다.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구체적이고 심각해진다.“병증을 가진 모든 아이는 조악한 얼굴 형태에다 정도는 다르지만 관절 등 골격계 변형으로 신체활동에 심각한 제한이 따르게 됩니다.”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장기 기능에 장애를 일으키는가 하면 시력장애를 유발하는 각막혼탁, 간과 비장의 비대와 이로 인한 심장과 혈관 압박, 성장 지체, 뇌수종 등이 나타난다. 또 피부가 두꺼워지고, 몸에 털이 많아지며, 만성 중이염에 나중에는 정신지체까지 오게 된다.
최근 이 병증이 부쩍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런 병증과 무관하지 않다. 이 질환이 주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다.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 독감에 잘 걸리고, 한 번 걸리면 병원 문턱이 닳도록 치료를 받아도 잘 낫지 않는다. 특히 대부분의 환자가 어린 아이여서 부모들이 겪는 심신의 고통은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치료받지 않는 중증 환자 대부분이 10∼20세에 죽음을 맞는다는 점도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다.
아직 정확한 국내 유병률도 파악되지 않아 전국적으로 수백 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만 추산될 뿐이다. 환자의 90% 이상이 어린이나 청소년이며 18세를 넘긴 환자는 10% 안팎에 불과하다.
이 병의 원인이 체내 특정 효소의 결핍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 이후 전문적인 연구가 진행돼 지금은 환자에 따라 부족한 효소에 따라 같은 뮤코다당증이라도 1∼9형(5,8형은 사용하지 않음)으로 구분하고 있다.
헐러증후군으로도 불리는 1형은 상염색체 열성질환으로 서구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다. 헌터증후군으로 알려진 2형은 국내 환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관절이 굳고, 성장이 더디며, 특징적으로 머리가 커져 육안으로도 쉽게 증상을 판별할 수 있다. 산 필리포증후군인 3형은 중추신경계 증상을,4형인 모르퀴오증후군은 저신장 등 특징적인 골격계 이상을 보인다. 마로토-라미증후군으로 명명된 6형은 심폐 합병증으로 20세를 넘기기가 어려우며,7형인 슬라이증후군은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으며,9형은 특징적으로 관절 부위의 연조직 종괴가 나타난다. 진 박사는 “이렇듯 종류가 많고, 유형에 따라 치료법과 증상이 제각각이어서 일률적인 패턴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질환의 특징”이라고 지적했다.
진단이 어렵지는 않다. 전문 소변검사와 효소검사를 거치면 대부분 확진이 가능하다. 치료제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1·2·6형은 리소소옴 효소제가 나와 활용되고 있으며, 진 박사팀도 산자부 지원으로 우리나라에 환자가 많은 2형 치료제 개발에 나서고 있다.
“질환의 특성상 완치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적용하는 치료도 주로 보존치료법이지요.”예컨대 보존치료란 관절에 문제가 드러나면 관절을 유연하게 해주고, 감염에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하며, 호흡기에 문제가 나타날 경우 기도를 확보하거나 산소공급 등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더러 심장이나 눈에 문제가 생기면 외과적인 수술을 하기도 한다.“엄밀하게 말하자면 현재의 치료법은 병 진행을 제어하는 단계라기보다 드러난 증상에 대해 대증적 치료법을 적용하는 단계라고 보는 게 옳다고 봐야죠. 희망적인 사실은 1·2·6형에 이어 3·4형 치료제도 임상연구 중이라 머잖아 치료에 사용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더라도 치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적절하게 의료기관의 관리를 받는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의 삶의 질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본래적으로 질병을 갖고 삽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잘 관리하고 치료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듯 이 병도 전문적인 치료를 통해 얼마든지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합니다. 완치가 아니라고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진 박사는 특히 조기진단과 조기치료를 강조했다.“제가 관리하는 환자들을 봐도 조기치료를 받는 환자와 성인 환자의 치료 예후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당연히 조기치료를 받는 환자의 예후가 좋은데, 이런 경우 같은 환자라도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요. 또 지금은 산전진단을 통해 미리 문제의 소지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족력이 있다면 반드시 산전검사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 질환이 산정특례에 해당돼 치료비 중 80%는 건강보험에서 지원해 주며, 나머지도 각 지자체 등에서 지원해 환자들이 치료제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아직도 일부에서는 이런 병증을 갖고 있으면서도 치료비 걱정 때문에 병원 찾기를 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진 박사는 “지금의 치료법으로도 얼마든지 증상을 완화, 개선시킬 수 있으므로 환자와 가족이 희망을 갖고 이 질환을 봐줬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